11월 10일 계축
주강(晝講) 때에 승지(承旨) 조지겸(趙持謙)과 지경연(知經筵) 이민서(李敏敍)가 김환(金煥)등을 분수에 넘게 초자(超資)한 것을 논박하고, 조지겸이 또 김익훈(金益勳)을 추고(推考)할 것을 청하였다. 【경연에서 한 말은 위에 보인다.】 그 뒤에 김수항(金壽恒)이 또 청대(請對)하여 김익훈을 위해 변명하니, 【이 일은 20일(계해일)에 보인다.】 일시에 사론(士論)이 모두 그르다고 하였다. 처음에 사실(史實)을 기록한 자가, 조지겸 등이 김익훈을 논박한 것을 아주 나쁜 속셈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여, 마치 조지겸이 은밀히 뒷날을 도모하여 남인(南人)들로부터 은혜나 바라서 그렇게 한 것처럼 말하였다. 그 말이 무리(無理)였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데서 신빙할 수 있다.
그 당시 삼사(三司)에 있었던 당인(黨人)들이, 조지겸이 논박한 말에 대하여, 어찌하여 한 사람도 같은 말로 다투려 한 사람이 없었는가? 여기에서도 그것이 공의(公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사람을 논박할 적에는 마땅히 일의 실상을 보아야 하는데, 김익훈의 보잘것없는 행위가 저처럼 가릴 수 없게 낭자한데도, 은혜를 바란다는 것을 혐의스러워 하여 배척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은 기사년015) 과 갑술년016) 뒤로 피차에 서로 원망과 불화가 심하게 된 뒤에 공연히 억압하고 무고와 욕설을 추가하여, 윤증(尹拯)을 일러 윤휴(尹鑴)의 편이라 하여, 기사년의 일을 만들어 냈다고 한 것과 동일한 말투이다. 참으로 어린아이의 견해라 할 만한 것이니, 어찌 많은 말을 하겠는가?
11월 16일 기미
통신사(通信使) 윤지완(尹趾完)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윤지완은 몸가짐이 매우 엄하여, 추호도 누(累)가 되는 행동이 없었다. 왜인과 만나서 오로지 신의(信義)로써 하고, 하는 말이나 처리하는 일들도 모두 엄중하며, 멀리 내다보는 헤아림과 깊은 식견이 있어, 왜인들이 공경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돌아올 때에 왜인이 한 개의 물건도 가지지 않은 것을 보고, 굳이 〈선물을 가지고 갈 것〉을 청하니, 〈윤지완이〉웃으면서 말하기를, ‘백한(白鷳)은 우리 나라에 없는 새이니, 가지고 갈 것이다.’ 하고서, 한 쌍을 가지고 와서 좋아하는 사람[好事者]에게 주었다. 뒤에 왜사(倭使)가 오게 되면, 반드시 안부를 물었는데, 〈그것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11월 30일 계유
전라도에서 돈을 주조하였다. 관찰사(觀察使) 이사명(李師命)의 청을 따른 것이었다. 이사명은 벼슬아치로 있으면서 오로지 돈벌이만을 일삼았다. 육지와 바다에서 아무리 〈재화를〉 휘몰아들여도 더 이상 남을 만한 이익이 없게 되자, 다시 진휼에 보탠다고 핑계하고서 많은 돈을 주조하니, 욕심이 많다는 소문이 길에 자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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