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17권, 숙종 12년 1686년 6월

싸라리리 2025. 10. 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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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을묘

앞서 좌의정                     남구만이 양역(良役)을 충당시키기 어려운 문제로써 건의하여, 충의위(忠義衞)에 함부로 배속된 자를 사정(査正)할 것을 청하였는데, 이사명(李師命)으로 하여금 그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사정한 결과 공평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데 충의위 등에서 이사명의 집에 투서를 하고, 또 남구만의 선대 조상의 산소에서 변고(變故)를 일으켰으나, 남구만은 본래 강직한 사람이라 끝까지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영상(領相) 김수항(金壽恒)이 2품과 삼사(三司)의 관원을 모아 놓고 의논하여 교대시키는 수를 한정하였는데,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6월 13일 을축

비국(備局)의 관원을 인견하였다. 이 때 지평(持平)                     이덕성(李德成)이 아뢰기를,
"역관(譯官)                     장현(張炫)은 역적 이남(李楠)의 사반(射伴)017)                                             으로서 귀양 갔다가 사면되었으니, 다시 역관의 명부에 등록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였으나, 따르지 아니하였다. 또 아뢰기를,
"신이 지난번에 신여철(申汝哲)의 집에 들렀다가 마침 동백나무를 싣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장신(將臣)이 이런 문제에 뜻을 두고 있겠습니까?"
하고, 양기중(楊沂中)의 괴석(怪石) 사건을 인용하여 임금이 탑전에서 꾸짖어 개유하기를 청하였다.

 

6월 15일 정묘

함경 감사(咸鏡監司)                     윤지완(尹趾完)이 장계(狀啓)를 올려 본도의 형편을 논하기를,
"만약에 사변을 만나 감사가 함흥(咸興)을 버리게 된다면 철령(鐵嶺) 이북 지역은 국가의 소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얼음이 얼었을 적에는 적(賊)이 후주(厚州)로 부터 황초령(黃草嶺)을 지나서 함흥에 이르게 되니, 그 길이 매우 빠른 지름길입니다. 함흥이 비록 금성 탕지(金城湯池)018)                                             일지라도 창졸간에 어떻게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청컨대 황초령에 성을 쌓고 백성을 모집하여 둔보(屯堡)를 설치하여 하나의 관방(關防)을 만들게 하소서."
하니, 묘당(廟堂)에 내려서 의논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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