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17권, 숙종 12년 1686년 10월

싸라리리 2025. 10. 25. 11:53
반응형

10월 3일 갑인

판부사(判府事)                     이상진(李尙眞)이 이이명(李頤命)의 모함으로 인하여                        【사실은 위에 보인다.】                      글을 올리고 교외(郊外)로 나갔는데, 대략 이르기를,
"지난날 등대(登對)하였던 것은 오로지 걸신(乞身)021)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만을 간절하게 아뢰고 말았더라면 제 개인의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상의 존안(尊顔)을 지척에서 뵙게 되니, 어리석은 충정(衷情)이 배나 격동되어 망극(罔極)한 지경에 놓인 백성의 일과 위급한 처지에 있는 나라의 형편을 자세히 말하다가 아울러 홍우원(洪宇遠) 등의 일까지 언급하였던 것인데, 그 의도는 그들이 죄를 받은 지가 이미 오래였으며 나이 또한 거의 죽을 때가 되었으므로, 나라에서 참작하여 조처하는 것은 반드시 관대한 덕을 베푸는 것이 된다고 여긴 것에 지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도 용서해 주지 아니하고, 너무 지나치게 의심하여 심지어는 ‘명성 왕후(明聖王后)의 3년상(三年喪)을 겨우 마치자 곧 그러한 말을 한다.’라고까지 하는데, 아!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떠나기에 임하여 글을 올려서 영구히 밝은 시대를 하직하오나 북쪽으로 대궐을 바라보니, 눈물이 저절로 떨어집니다."
하였다. 임금이 너그러운 비답(批答)을 내리고 사관(史官)을 보내어 전유(傳諭)하였으나, 이상진은 그로부터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다시는 조정에 나오지 아니하였다.

 

10월 9일 경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김수흥(金壽興)이 차자를 올려 군병(軍兵)을 더 뽑을 것을 청하였는데, 비답하기를,
"요즈음 의논하는 자들은 모두가 군대 정원을 줄이는 것으로 제일의 급무를 삼으므로 평소에 개탄하였는데, 이번에 경의 차자는 실로 내 뜻에 부합된다."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우리 나라의 경비가 헛되게 소모되는 것은 오로지 군문(軍門)이 너무 성하기 때문인데, 대신의 자리에 있는 몸으로서 곧 숙위군(宿衞軍)이 볼 모양이 없다는 말로써 임금에게 영합하는 뜻을 드러내었으니, 견식이 있는 이들은 이를 그르게 여겼다."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90면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역사-사학(史學)
사신은 말한다. "우리 나라의 경비가 헛되게 소모되는 것은 오로지 군문(軍門)이 너무 성하기 때문인데, 대신의 자리에 있는 몸으로서 곧 숙위군(宿衞軍)이 볼 모양이 없다는 말로써 임금에게 영합하는 뜻을 드러내었으니, 견식이 있는 이들은 이를 그르게 여겼다."

 

10월 14일 을축

대사헌                     이선(李選)이 인피(引避)하기를,
"김환(金煥)은 본래 무고(誣告)한 죄가 없고, 더구나 상변(上變)한 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국문하여 죽이고자 하는 것은 진실로 정도에 지나친 일입니다. 일찍이 간장(諫長)022)                                             으로 있을 적에도 이 일로써 인피하였었는데, 지금 양이(量移)하자는 요청이 또다시 양사(兩司)에서 나왔으니, 어찌 감히 앞뒤를 바꾸어가며 무리를 따라 의논에 참여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는데, 처치하여 체임(遞任)하였다. 김환은 나중에 무고를 자백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이 선이 김환을 두둔한 것은 대체로 김익훈(金益勳)을 위하는 처지이기 때문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