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계미
이사명(李師命)을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삼았다. 이사명은 위험하고 간사한 자로서 몸가짐이 음험하였다. 병권을 넘보고서 어영 대장(御營大將) 윤지완(尹趾完)을 몰아내고자 하여, 윤지완이 환관(宦官) 김현(金鉉)에게 보내는 글을 위조해서 길에다 버려 그 소문이 저절로 진신(搢紳)들에게 퍼지게 하니, 윤지완이 두려워 하여 벼슬을 극력 사양하였다. 이사명은 김현과 서로 결탁하고서 훈련 대장(訓鍊大將)이 되려고 도모하였는데 그 소문이 자못 널리 전파되었다. 이 때에 이르러 영상 김수항(金壽恒)이 병조 판서로 의망(擬望)하여 임명되었으니, 공론이 해괴하게 여겼다.
9월 21일 임인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판부사(判府事) 이상진(李尙眞)이 홍우원(洪宇遠)과 민희(閔熙)의 일을 논하였다. 【경연(經筵)에서 한 말은 위에 보인다.】 한 번 당화(黨禍)가 일어나서 서로 해친 뒤로부터 인품을 논평함에 있어 그 경중은 전연 참작하지 아니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기만 하면 하나같이 허물을 꾸며대어 자기 개인의 원한을 풀고 있는데, 그것은 김수항(金壽恒) 등이 악을 미워한다고 핑계하고 있으나, 사실은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홍우원은 기풍과 절개가 오래 전부터 드러났었다. 가인괘(家人卦)에 대한 한 마디 말은 진실로 매우 망령된 것이기는 하나, 그 본래의 심정이야 어찌 감히 동조(東朝)019) 를 모함하거나 핍박하기 위해서였겠는가? 더구나 80세의 거의 죽게 된 나이로써 7년 동안 영해(嶺海) 지역에 귀양가 있은 것으로도 그 죄는 충분히 징계되었을 것이다. 민희의 죄도 규명하기가 어려운 것이므로 아울러 너그럽게 용서하기를 청한 것은 원로 대신으로서 나라를 위한 충후(忠厚)한 생각일 뿐이다. 법을 맡은 처지로서는 간쟁(諫爭)을 하는 것은 옳겠으나, 처음에 역사를 편찬한 자가 감히 내키는 대로 심하게 무함하여 심지어는 백성의 이륜(彛倫)을 끊으려 한다고까지 하였다.
아! 이상진의 청수(淸修)한 절개는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인데, 그가 세상과 맞지 않는 것은 바로 뒤돌아보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다. 기사년020) 사건의 상소만 하더라도 그것을 뒤돌아보면서 눈치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백성의 이륜을 부지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그들의 모함하고 헐뜯음이 이와 같으니, 견식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해괴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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