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임술
대사헌(大司憲) 이수언(李秀彦)이 상소하여 민진주(閔鎭周) 및 이징명(李徵明) 등을 구제하니, 임금이 엄한 비답(批答)을 내렸다. 【원래의 상소와 비답한 교지는 앞에 보인다.】 조사석(趙師錫)을 가복(加卜)하게 하여 정승을 제배(除拜)한 것이 만일 진실로 군상(君上)이 척속(戚屬)에게 사정(私情)을 쓴 것이라면, 보궐(補闕)029) 하는 도리에 있어 바로 이를 가지고 논계(論啓)했어야 한다. 깊숙한 곳의 보이지 않는 경로(經路)의 일은 아무에게나 의심을 가질 수 없는 법인데, 이수언이 농금(籠錦)030) 해 놓은 말도 보통으로 논한 것이 아닌 듯하여 이것도 이미 이상스럽거니와, 장(張)031) 의 어미가 조사석의 처갓집 종이란 것은 전연 허황한 말이고, 사통(私通)했다는 말은 더욱 무리(無理)한 말이다. 적(賊) 동평군(東平君) 이항(李杭)은 진시로 조사석과 지친(至親)이고, 조사석은 또한 이미 탁룡(濯龍)에게서 수계(受戒)한 사람이고 보면, 궁중(宮中)에서 세력이 있는 사람에게 의지함은 당초부터 일찍이 길이 없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 이제야 유독 동평군 항에게만 의지하게 되었겠는가? 당초에 역사를 찬수(纂修)하는 사람들이 조사석을 사류(士流)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긴 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데, 정승으로 정하기를 처음부터 상례와 다르게 했었기 때문에, 당동 벌이(黨同伐異)032) 하기에 급급하여 억측(臆測)하고 부회(傅會)하여 억지로 어둠침침한 상태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로 인해 사류(士類)들이 오욕(汚辱)을 입게 되므로, 식견 있는 사람들이 통탄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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