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을미
헌부가 아뢰기를,
"삼가 어제 정원의 계사를 보건대, 너무도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른바 승지와 한림(翰林)의 실례라는 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중관(中官)은 외조(外朝)에 대해 체면에 본디 구별이 있는 것인데, 정원에서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감히 상사(上司)에서 하는 것처럼 질책을 가하여 규검(糾檢)할 수 있단 말입니까. 환관이 교만 방자한 것은 예로부터 걱정거리가 되어 왔었습니다. 앞으로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해당 내관을 먼저 파직시키고 나서 추문하도록 명하소서."
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4월 2일 병신
수리 도감이 아뢰기를,
"저승전(儲承殿) 추경원(秋景苑)의 동쪽 담장 밑 두 곳에서 또 썩은 뼈 몇 말과 나무로 깎아 만든 인형을 발굴했습니다. 원내의 흙을 다 파헤쳐 의심스러운 곳이 없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다 파낼 필요는 없다. 의심스러운 곳만 수색하여 찾아내게 하면 된다."
하였다.
4월 3일 정유
헌부가 아뢰기를,
"상번(上番)하는 군졸은 경성(京城)을 숙위하기 위한 것인데 경중 사람들이 사사로이 대립(代立)합니다. 그런데 간혹 억지로 대립하면서 그 대가를 강제로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군졸들의 원망이 끝이 없습니다. 병정(兵政)의 허술함을 이를 미루어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법령을 엄하게 세워서 이전의 습관을 답습하는 자가 있으면 드러나는 대로 무겁게 다스리게 하고, 해당 당상과 낭청도 논죄하여 뒤폐단을 막으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4월 8일 임인
헌부가 아뢰기를,
"신득연(申得淵)은 자신이 망극한 죄를 지고 위리 안치(圍籬安置)된 상태에서 죽었는데, 그때의 방백(方伯)이 검시(檢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거운 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강원 감사 홍헌(洪憲)은 공공연히 각 고을에 이문하여 선생(先生)007) 의 부의(賻儀)를 보내도록 재촉하면서 마치 죄가 없어서 응당 행해야 할 것을 하는 것처럼 했습니다. 홍헌을 파직시키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4월 9일 계묘
헌부가 아뢰기를,
"공물(貢物)을 방납하는 폐단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오늘날에 와서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모리배들이 세력가에게 부탁하고 수령에게 청탁한 다음 먼저 이득을 받아내기도 하고 해당 고을에서 대가를 배로 징수하기도 하는데, 풍년에는 베로 받고 흉년에는 쌀로 받고 있으니, 백성들의 고달픔은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해조와 제도의 감사로 하여금 통렬하게 금단하게 하여 그들이 이익을 노려 멋대로 빼앗는 폐단을 막으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4월 10일 갑진
헌부가 아뢰기를,
"신들이 법전을 조사하여 보니 제사(諸司) 가운데 시장(柴場)을 지급한 데는 봉상시 등 14개 관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울 근방 1백 리 안에는 궁가(宮家)와 세가(勢家)에서 법금을 무시하고 널리 점유하여 꼴을 베는 사람들이 감히 발을 붙일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연전에 대간에서 금할 것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으나 끝내 봉행하지 못한 채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법을 무시하고 입안(立案)하여 공한지를 사사로이 점유하고 있는 자들을 경기 감사로 하여금 살펴서 통렬히 금단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4월 11일 을사
순릉(順陵)에 변을 일으킨 자들을 삼성(三省)에 명하여 추국하게 하였으나 끝내 그 실상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형장을 맞다가 죽기도 하고 사면을 받아 풀려나기도 하였다.
4월 12일 병오
송국택(宋國澤)을 좌부승지로, 심지원(沈之源)을 대사간으로, 이해창(李海昌)을 헌납으로, 곽지흠(郭之欽)을 지평으로, 최후윤(崔後胤)을 정언으로, 이정영(李正英)을 교리로, 김홍욱(金弘郁)을 수찬으로 삼았다.
강원도 삼척(三陟)·강릉(江陵)에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졌는데 압사한 사람이 있었다. 본도로 하여금 휼전(恤典)를 거행하게 하였다.
4월 13일 정미
우박이 크게 내렸다.
경상도 용궁현(龍宮縣)의 인가에서 닭이 다리가 네 개인 병아리를 깠고, 전라도 무안현(務安縣)의 인가에서는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몸뚱이는 하나에 머리가 둘이었다. 감사가 아뢰었다.
4월 16일 경술
경기의 김포(金浦)·장단(長湍)·안성(安城)·금천(衿川)·양천(陽川)에 우박이 내렸다. 부평부(富平府)에는 우박이 내리고 크게 천둥이 쳤는데, 그 고을 사람인 충의위(忠義衛) 김류(金瑠)가 벼락맞아 죽었다.
접위관(接慰官) 정창주(鄭昌胄)가 치계하였다.
"평성춘(平成春)이 말하기를 ‘예수교[耶蘇敎]의 무리가 천천영결(天川永決) 등과 교결하여 심복이 되어 일본을 엿보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천천의 배 2척이 장기(長崎)에 와서 정박하고 있었는데 1척에 1천여 인씩 탑재하였다. 선척을 출동시켜 수색하여 체포하려 할 즈음에 돛대를 올리고 달아나 되돌아갔다. 금년 2월에 대군(大君)이 제장(諸將)들과 의논하기를 「만일 기회를 놓치면 끝내는 반드시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네 고을의 태수(太守)를 장기로 보내어 장성(長城)을 축조하여 도랑을 깊게 파고 보루를 높게 쌓아 변란에 대비하여야 한다.」 하였고, 또 집정(執政)이 도주(島主)에게 글을 보내기를 「적들이 장기에 설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혹 몰래 조선의 국경으로 넘어 들어가 대마도를 경유하여 들어올 수도 있으니 도주는 본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뜻밖의 변에 대비하라. 그리고 조선에 통보하여 만일 의심스러운 선척이 표박해 오거든 반드시 체포하여 보내게 하라.」고 했다.’ 했습니다."
우의정 이행원(李行遠)이 중도에서 졸하였다. 행원은 아름다운 외모에 긴 수염이 있어 풍의(風儀)가 훤칠했으나 본디 쓸 만한 재능이 없었다. 도헌(都憲)으로 있을 때에 양사가 바야흐로 강씨(姜氏)를 곧바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논하자, 상이 진노하니, 행원이 제일 먼저 그 의논을 정지하였다. 그리하여 상이 발탁하여 이조 판서로 앉혔고 한 달 남짓 되어서 또 정승에 제배했으므로 물의가 비루하게 여겼다. 이때에 이르러 사명을 받들고 북경으로 가게 되었는데, 관서(關西)에 이르러 병을 만나 졸한 것이다.
4월 17일 신해
정유성(鄭維城)을 좌승지로, 심택(沈澤)을 장령으로, 유황(兪榥)를 전남 감사로, 홍명일(洪命一)을 강원 감사로, 김응조(金應祖)를 집의로, 신익전(申翊全)을 동부승지로 삼았다.
4월 18일 임자
상이 최득룡(崔得龍)·이형익(李馨益) 등을 명소하여 들어와 진찰하게 하였다. 영의정 김자점도 청대(請對)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자점이 아뢰기를,
"도감(都監)의 대장인 구인후(具仁垕)가 지금 어미의 상을 당했는데 대임자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구오(具鏊)는 부자 사이여서 대신 병권을 잡게 하는 것은 불가할 것 같습니다. 이시백(李時白)은 군무에 익숙합니다만 신과 혼인을 맺은 관계로 혐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말하기를 ‘지금처럼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 어찌 인혐하는 것이 마땅한 처사이겠는가.’라고 합니다. 심액(沈詻)은 원두표(元斗杓)가 쓸 만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또 한흥일(韓興一)이 합당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누가 제일 나은가?"
하였다. 대답하기를,
"이시백이 이미 높은 품계에 올라 있고 오랫동안 군졸을 거느려 그들의 환심을 얻고 있으므로 공의가 가장 낫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본디부터 시백이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번 호서(湖西)에 변이 있었을 적에도 명을 듣고 즉시 떠났었다. 또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의 힘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니, 나도 그가 합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였다. 자점이 아뢰기를,
"왜사(倭使)가 온갖 방법으로 애걸하는 것이 교활한 데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형세로 헤아려 보면 목이 타는 듯한 안타까운 정상이 있습니다. 장기(長崎)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또한 우려스러운 일이니, 한결같이 굳게 거절하는 것은 이웃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는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정(輿情)이 모두 반드시 왜변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왜인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우리 나라의 인심은 본디 견고하지 못하여 비록 막는다고는 하지만 준열하게 배척하지 못하기 때문에 왜인이 이런 것을 헤아려 알고서 처음에는 협박하려 하다가 나중에는 속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남방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여긴다."
하였다.
4월 19일 계축
비국이 아뢰기를,
"상사 이행원(李行遠)이 중도에서 졸했으니, 부사 임담(林墰)으로 하여금 그대로 북경으로 가서 상사가 의주에 도착하여 병으로 죽었다는 사유를 갖추 진달하게 하고 그 대임을 내지 마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4월 20일 갑인
신익전(申翊全)의 딸을 숭선군(崇善君)의 부인(夫人)으로 삼았다.
4월 21일 을묘
이시백을 훈련 대장으로 삼았다. 비국이 아뢰기를,
"이시백이 새로 대장에 제수되었는데 그 직임이 매우 중하여 총융사(摠戎使)는 사세상 겸대하기가 어려우니, 개차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이에 김응해(金應海)를 대임으로 임명했다.
4월 22일 병진
이시백을 병조 판서로, 김휼을 좌승지로, 양만용(梁曼容)을 사간으로, 이상진(李尙眞)을 대교로, 정태화(鄭太和)를 대사헌으로, 김중일(金重鎰)을 부교리로 삼았다.
4월 24일 무오
간원이 아뢰기를,
"숙위병(宿衛兵)에 대해 따로 장령(將領)을 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당연히 본병(本兵)에 예속시켜야 하는데 정초군(精抄軍)이 궐내에 입번할 때에는 중관(中官)·사알(司謁)이 전적으로 규검을 맡고 있습니다. 옛날에 환관들에게는 단지 청소와 왕명을 전하는 것만 맡겼을 뿐, 일을 맡기지 않았는데, 그것은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정초군은 오로지 본병에 예속시키게 하소서."
하고, 누차 아뢰니, 따랐다.
4월 25일 기미
상이 번침(燔鍼)을 맞았다. 김자점이 내의원 도제조(內醫院都提調)로 입시해 있다가 상에게 아뢰기를,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속기(俗忌)에 저주를 한 곳에는 절대로 왕래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창경궁(昌慶宮)에는 거둥하지 마소서."
하니, 상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4월 26일 경신
상이 번침을 맞았다. 내의원 제조 조경(趙絅)이 아뢰기를,
"병이란 모두가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평온한 마음과 안정된 생각을 지니고서 올바른 것으로 사특함을 제어한다면 의약을 쓰지 않아도 효험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병이 점점 더하여 가니 혹 의혹스러운 것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무슨 말인가?"
하자, 대답하여 아뢰기를,
"구궁(舊宮)의 저주가 혹 상의 마음을 의혹시킨 것인가 염려스럽습니다. 일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태연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이미 사특한 것을 제거하고 더러운 것을 씻어냈는데 무슨 의심스런 생각을 지닐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병이 들 때에 어찌 의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자, 대답하여 아뢰기를,
"마음이 태연하여 맑은 거울과 맑은 물 같게 되면 비록 미령한 가운데 계시더라도 진실로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였다.
4월 27일 신유
상이 번침을 맞았다.
4월 28일 임술
정언벽(丁彦璧)을 정언으로, 임중(任重)을 지평으로, 박서를 대사헌으로 삼았다.
4월 29일 계해
평안도 순안(順安)·희천(熙川)·순천(順川) 등 고을에 우박이 내렸다.
4월 30일 갑자
상이 번침을 맞았다. 내의 제조 조경이 나아가 아뢰기를,
"지난번 정원에서 후원(後園)에 영조(營造)한 일 때문에 진계했을 적에 위에서 아름답게 여겨 받아들였습니다만, 별로 채택하여 실행한 실상이 없으므로 바깥 의논이 자못 불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다시 살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내가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자, 조경이 아뢰기를,
"잗단 오락에 탐닉되어 큰 걱정거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옛사람이 경계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복어(服御)에 대한 물품은 절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로지 마음을 청정하게 할 것만을 힘쓰신다면 장차 조섭하는 방도에 있어서도 이로운 점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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