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26권, 광해 10년 1618년 4월

싸라리리 2026. 1. 1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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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경인

전교하였다. "인경궁(仁慶宮)의 동궁(東宮)의 침실을 여태 시공(施工)도 하지 않고 있는데 속히 시공하게 하라. "
"인경궁(仁慶宮)의 동궁(東宮)의 침실을 여태 시공(施工)도 하지 않고 있는데 속히 시공하게 하라. "

 

4월 2일 신묘

의금부가 아뢰기를, "본부의 초기(草記)에 대해 전교하시기를 ‘알았다. 이밖에 병든 죄인이 있는지 다시 자세히 살펴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신들이 살리기 좋아하시는 성상의 덕에 깊이 감복된 나머지 즉시 치료하는 의관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 보고서가 이와 같았습니다. 신들이 감히 뽑아서 아뢸 성질이 못되기에 모두 서계(書啓)합니다. 삼가 성상께서 결재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본부의 초기(草記)에 대해 전교하시기를 ‘알았다. 이밖에 병든 죄인이 있는지 다시 자세히 살펴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신들이 살리기 좋아하시는 성상의 덕에 깊이 감복된 나머지 즉시 치료하는 의관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 보고서가 이와 같았습니다. 신들이 감히 뽑아서 아뢸 성질이 못되기에 모두 서계(書啓)합니다. 삼가 성상께서 결재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백성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국가가 그들을 보살펴 주는 뜻을 안다면 아무리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도(道) 모두가 그렇겠습니다만 관동(關東)의 경우는 토지가 척박하고 주민이 적어 더욱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재목이 생산되는 각 고을의 전세(田稅)를 적당히 헤아려 견감하고 전결에서 거두어 들이는 포목도 헤아려 견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이 비록 막걸리를 강물에 타서 같이 맛보는 것처럼 별 효과는 없다 할지라도 방면(方面)을 책임진 신하가 그 덕의(德意)를 선포하고 감해 주어야 할 물품을 균일하게 견감해 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이 공역이 부득이해서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면 백성들이 어찌 이렇게까지 극도로 국가에 원망을 돌리겠습니까. 근래 관동 지역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건대, 견감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것조차 민간에서 모를 정도로 혜택이 아래로 백성에게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는 거창하고 힘은 다 빠져 서로 잇달아 유랑하면서 원망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하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관동의 재목이 물에 떠내려간 뒤에 다시 벌목하고 있는지 그 여부를 모르겠기에, 상의 분부를 인하여 행이(行移)해서 조사하도록 한지 지금 벌써 오래 되었는 데도 여태 치보(馳報)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더욱 온당치 못합니다. 강원 감사를 각별히 추고하고, 어느어느 고을의 공물(貢物) 가운데 어느어느 종류를 견감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어느 고을의 전세(田稅)를 얼마나 감해 줄 것인지에 대한 일 및 떠내려간 재목 대신 다시 벌목하게 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속히 치계(馳啓)토록 하소서. 그리고 재목이 생산되는 각 고을 백성들의 힘이 고갈되어 운반할 수 없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영동(嶺東)의 연군(烟軍)을 징발해 힘을 보태게 해야 할 것이니, 이 뜻도 아울러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관동과 호서(湖西)에 내려간 경관(京官)들은 공억(供億)하는 데 따른 폐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客官)이라서 본도의 사정을 모르는 까닭에, 호령을 발하는 즈음에 걸핏하면 민심을 거스르고 소요를 일으키며 피해를 끼치는 일 역시 허다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모두 ‘경관을 철수시키고 본도 감사로 하여금 벌목하고 수송하는 일을 전담케 한다면 약간 폐단을 덜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호서와 관동에 보낸 벌목 감역관들을 올라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벌목하는 일을 어찌하여 여태 완료하지 못했는가. 우선 그 일을 끝낸 다음에 올라오도록 하라. 그리고 지금 건축하는 공사는 실로 대내(大內)가 유고(有故)하기 때문이다마는 두 궁궐을 아울러 건조하고 있으므로 백성에게 폐단을 끼칠까 깊이 염려하여 밤낮으로 민망하게 여기고 있다. 외방의 어리석은 백성들이야 어떻게 이런 뜻을 알겠는가. 견감할 물건들을 십분 참작하여 착실히 거행함으로써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혜택을 받도록 하라." 하였다.
"백성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국가가 그들을 보살펴 주는 뜻을 안다면 아무리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도(道) 모두가 그렇겠습니다만 관동(關東)의 경우는 토지가 척박하고 주민이 적어 더욱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재목이 생산되는 각 고을의 전세(田稅)를 적당히 헤아려 견감하고 전결에서 거두어 들이는 포목도 헤아려 견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이 비록 막걸리를 강물에 타서 같이 맛보는 것처럼 별 효과는 없다 할지라도 방면(方面)을 책임진 신하가 그 덕의(德意)를 선포하고 감해 주어야 할 물품을 균일하게 견감해 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이 공역이 부득이해서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면 백성들이 어찌 이렇게까지 극도로 국가에 원망을 돌리겠습니까.
근래 관동 지역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건대, 견감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것조차 민간에서 모를 정도로 혜택이 아래로 백성에게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는 거창하고 힘은 다 빠져 서로 잇달아 유랑하면서 원망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하니,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관동의 재목이 물에 떠내려간 뒤에 다시 벌목하고 있는지 그 여부를 모르겠기에, 상의 분부를 인하여 행이(行移)해서 조사하도록 한지 지금 벌써 오래 되었는 데도 여태 치보(馳報)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더욱 온당치 못합니다. 강원 감사를 각별히 추고하고, 어느어느 고을의 공물(貢物) 가운데 어느어느 종류를 견감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어느 고을의 전세(田稅)를 얼마나 감해 줄 것인지에 대한 일 및 떠내려간 재목 대신 다시 벌목하게 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속히 치계(馳啓)토록 하소서. 그리고 재목이 생산되는 각 고을 백성들의 힘이 고갈되어 운반할 수 없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영동(嶺東)의 연군(烟軍)을 징발해 힘을 보태게 해야 할 것이니, 이 뜻도 아울러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관동과 호서(湖西)에 내려간 경관(京官)들은 공억(供億)하는 데 따른 폐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객관(客官)이라서 본도의 사정을 모르는 까닭에, 호령을 발하는 즈음에 걸핏하면 민심을 거스르고 소요를 일으키며 피해를 끼치는 일 역시 허다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모두 ‘경관을 철수시키고 본도 감사로 하여금 벌목하고 수송하는 일을 전담케 한다면 약간 폐단을 덜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호서와 관동에 보낸 벌목 감역관들을 올라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벌목하는 일을 어찌하여 여태 완료하지 못했는가. 우선 그 일을 끝낸 다음에 올라오도록 하라. 그리고 지금 건축하는 공사는 실로 대내(大內)가 유고(有故)하기 때문이다마는 두 궁궐을 아울러 건조하고 있으므로 백성에게 폐단을 끼칠까 깊이 염려하여 밤낮으로 민망하게 여기고 있다. 외방의 어리석은 백성들이야 어떻게 이런 뜻을 알겠는가. 견감할 물건들을 십분 참작하여 착실히 거행함으로써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혜택을 받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재자관(齎咨官) 남명우(南溟羽)의 장계를 보건대, 유언비어를 해명하는 일에 대하여 포정(布政)은 곽이(郭二)가 대중을 미혹시킨 죄를 끝까지 다스려야 마땅하다 하였고, 순안(巡按)은 제대로 단속하고 엄금하지 못한 책임을 상국의 관사(官司)에 돌렸으니 그 뜻이 매우 훌륭합니다. 그리고 축성(築城)하는 한 조목과 관련하여 순안은 비록 결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으나 포정은 내년에 공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가 곡진하게 우리 나라의 청을 들어주어 잠시나마 공사를 정지시킨 것은 참으로 범연한 뜻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전일 연위사(延慰使)와 재자관이 ‘다시 각 아문에 극력 진달하여 기필코 허락을 받겠다.’는 뜻을 치계(馳啓)하였을 때 본사에서 복계(覆啓)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유해야 마땅하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일단 내년으로 물려 행하겠다는 뜻을 알려 왔는데 또 굳이 청하면서 기필코 영원히 정지시키려 한다면 타당하지 못할 듯하니, 내년으로 물려서 행하라는 포정의 명령이 과연 이미 진강(鎭江)에 도착했거든 다시 진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남명우에게 하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변무(辨誣)하는 주문(奏文)은 사은사(謝恩使) 행차 편에 부쳐야 마땅하나 떠날 날짜가 박두했었기 때문에 군문(軍門)에 보내는 자문(咨文)을 급히 작성하여 협부(協府)에 올리는 자문과 함께 아울러 남명우에게 보내 그로 하여금 가서 올리게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은사의 일정이 점점 늦춰지고 사태가 바뀌었으니, 우선 협부에 보내는 자문만 예전에 계청(啓請)한 대로 급히 치송(馳送)하고 군문에 보내는 자문은 사은사가 떠나기를 기다려 다시 관원 한 명을 차출해 형세를 보아가면서 떠나 보내는 것이 또한 합당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단지 포정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어찌 유격(遊擊)이 머리를 숙이고 명을 들어 성 쌓는 공사를 시작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중국 조정에서 우리 나라를 방비하려고 성을 쌓다니 2백 년 이래로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내 시대에 이르러 오늘날 이런 큰 변고를 만났으니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할 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공사가 정지되지 않는 한 변무를 한다 해도 실효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황상(皇上)에게도 곧장 주문(奏聞)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더구나 각 아문에 해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한 조목은 시행하지 말라." 하였다.
"삼가 재자관(齎咨官) 남명우(南溟羽)의 장계를 보건대, 유언비어를 해명하는 일에 대하여 포정(布政)은 곽이(郭二)가 대중을 미혹시킨 죄를 끝까지 다스려야 마땅하다 하였고, 순안(巡按)은 제대로 단속하고 엄금하지 못한 책임을 상국의 관사(官司)에 돌렸으니 그 뜻이 매우 훌륭합니다.
그리고 축성(築城)하는 한 조목과 관련하여 순안은 비록 결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으나 포정은 내년에 공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가 곡진하게 우리 나라의 청을 들어주어 잠시나마 공사를 정지시킨 것은 참으로 범연한 뜻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전일 연위사(延慰使)와 재자관이 ‘다시 각 아문에 극력 진달하여 기필코 허락을 받겠다.’는 뜻을 치계(馳啓)하였을 때 본사에서 복계(覆啓)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유해야 마땅하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일단 내년으로 물려 행하겠다는 뜻을 알려 왔는데 또 굳이 청하면서 기필코 영원히 정지시키려 한다면 타당하지 못할 듯하니, 내년으로 물려서 행하라는 포정의 명령이 과연 이미 진강(鎭江)에 도착했거든 다시 진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남명우에게 하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변무(辨誣)하는 주문(奏文)은 사은사(謝恩使) 행차 편에 부쳐야 마땅하나 떠날 날짜가 박두했었기 때문에 군문(軍門)에 보내는 자문(咨文)을 급히 작성하여 협부(協府)에 올리는 자문과 함께 아울러 남명우에게 보내 그로 하여금 가서 올리게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은사의 일정이 점점 늦춰지고 사태가 바뀌었으니, 우선 협부에 보내는 자문만 예전에 계청(啓請)한 대로 급히 치송(馳送)하고 군문에 보내는 자문은 사은사가 떠나기를 기다려 다시 관원 한 명을 차출해 형세를 보아가면서 떠나 보내는 것이 또한 합당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단지 포정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어찌 유격(遊擊)이 머리를 숙이고 명을 들어 성 쌓는 공사를 시작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중국 조정에서 우리 나라를 방비하려고 성을 쌓다니 2백 년 이래로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내 시대에 이르러 오늘날 이런 큰 변고를 만났으니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할 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공사가 정지되지 않는 한 변무를 한다 해도 실효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황상(皇上)에게도 곧장 주문(奏聞)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더구나 각 아문에 해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한 조목은 시행하지 말라."
하였다.

 

승문원이 아뢰기를, "이번에 비국이 아뢴 것은 ‘성 쌓는 일을 중지하라고 청하는 내용을 우선은 다시 진달하지 않았으면 싶다.’는 것이었는데, 상께서 ‘이 한 조목은 시행하지 말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초에 거론된 여러 아문 및 협부(協府) 아문에 성을 쌓지 말라고 청하는 내용으로 모두 이자(移咨)해야 합니까? 아니면 협부 아문 외의 여러 아문은 단지 재자관으로 하여금 다시 해명하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비국에서 ‘군문(軍門)에 보내는 자문은 사은사(謝恩使)가 떠나는 날을 기다렸다가 별도로 관원 1인을 차출하여 자문을 갖고 가게 하고 싶다.’고 아뢰어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군문에 보내는 자문을 뒤따라 마련한 뒤 사신이 떠나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그 편에 부쳐서 보내야 합니까? 아니면 별도로 관원 1인을 차출하여 싸 보내야 합니까? 신들의 의견으로는 비단 여러 아문에서 이미 환히 알고 있을 것이므로 다시 이 일을 제기하여 이야깃거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할 뿐 아니라, 더구나 협부 아문에는 예전부터 자문을 띄워 보고하지 않았는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미 해명된 일을 가지고 관례를 깨뜨려가면서 다시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으니, 지금은 우선 자문을 보내지 않는 것이 온당할 듯싶은데, 각 아문에서도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 조정에 보내는 주문 역시 우선 정지하고 서서히 앞으로의 사태를 관망하면서 상의해 처리해야 할 것인데 대신의 뜻도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의주 부윤(義州府尹) 및 연위사(延慰使)의 서장(書狀)을 보건대, 모두 ‘이 달 1일에서 5일 사이에 축성 공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여러 아문에 다시 자문을 보내 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으니, 다시 자문을 보내 청하는 것이 옳다. 축성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를 의심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가슴 아픈 일이니 사유를 갖춰 급히 주문(奏聞)함으로써 막대한 원통함을 풀고 망극한 무함을 해명하는 일을 또한 그만둘 수 없다. 어찌 차마 우선 정지한 채 구차하게 세월을 보내겠는가. 일체 전에 분부한 대로 자세히 살펴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이번에 비국이 아뢴 것은 ‘성 쌓는 일을 중지하라고 청하는 내용을 우선은 다시 진달하지 않았으면 싶다.’는 것이었는데, 상께서 ‘이 한 조목은 시행하지 말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초에 거론된 여러 아문 및 협부(協府) 아문에 성을 쌓지 말라고 청하는 내용으로 모두 이자(移咨)해야 합니까? 아니면 협부 아문 외의 여러 아문은 단지 재자관으로 하여금 다시 해명하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비국에서 ‘군문(軍門)에 보내는 자문은 사은사(謝恩使)가 떠나는 날을 기다렸다가 별도로 관원 1인을 차출하여 자문을 갖고 가게 하고 싶다.’고 아뢰어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군문에 보내는 자문을 뒤따라 마련한 뒤 사신이 떠나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그 편에 부쳐서 보내야 합니까? 아니면 별도로 관원 1인을 차출하여 싸 보내야 합니까?
신들의 의견으로는 비단 여러 아문에서 이미 환히 알고 있을 것이므로 다시 이 일을 제기하여 이야깃거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할 뿐 아니라, 더구나 협부 아문에는 예전부터 자문을 띄워 보고하지 않았는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미 해명된 일을 가지고 관례를 깨뜨려가면서 다시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으니, 지금은 우선 자문을 보내지 않는 것이 온당할 듯싶은데, 각 아문에서도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 조정에 보내는 주문 역시 우선 정지하고 서서히 앞으로의 사태를 관망하면서 상의해 처리해야 할 것인데 대신의 뜻도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의주 부윤(義州府尹) 및 연위사(延慰使)의 서장(書狀)을 보건대, 모두 ‘이 달 1일에서 5일 사이에 축성 공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여러 아문에 다시 자문을 보내 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으니, 다시 자문을 보내 청하는 것이 옳다. 축성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를 의심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가슴 아픈 일이니 사유를 갖춰 급히 주문(奏聞)함으로써 막대한 원통함을 풀고 망극한 무함을 해명하는 일을 또한 그만둘 수 없다. 어찌 차마 우선 정지한 채 구차하게 세월을 보내겠는가. 일체 전에 분부한 대로 자세히 살펴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본조가 궁궐의 각 문에 무장(武將)이 직숙(直宿)할 가가(假家)를 조성(造成)할 일로 계사를 올리자 ‘알았다. 궐문 밖의 별장(別將)·수문장(守門將)·내관(內官)이 수직(守直)할 곳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그려 품한 뒤 조성토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즉시 본조 낭청으로 하여금 일을 아는 사복(司僕)을 대동하고 가서 형세를 살펴보고 지도를 그려 올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만 후원(後苑)의 각 문 중 내관이 수직할 곳은 낭관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문 어느 곳에 조성해야 할지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후원은 단지 영강문(永康門) 밖에 부장(部將) 1인과 내관 2인이 직숙토록 하라." 하였다.
"본조가 궁궐의 각 문에 무장(武將)이 직숙(直宿)할 가가(假家)를 조성(造成)할 일로 계사를 올리자 ‘알았다. 궐문 밖의 별장(別將)·수문장(守門將)·내관(內官)이 수직(守直)할 곳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그려 품한 뒤 조성토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즉시 본조 낭청으로 하여금 일을 아는 사복(司僕)을 대동하고 가서 형세를 살펴보고 지도를 그려 올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만 후원(後苑)의 각 문 중 내관이 수직할 곳은 낭관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문 어느 곳에 조성해야 할지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후원은 단지 영강문(永康門) 밖에 부장(部將) 1인과 내관 2인이 직숙토록 하라."
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충장위(忠壯衛)의 장수가 예전부터 서영(西營)에 입직(入直)했는데 지금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겨 입직하게 되었으니 도총부에서 서영의 장수 2인을 차출하여 수직(守直)케 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충장위의 장수는 서영에 그대로 입직케 하고, 충익위(忠翊衛)의 장수가 하인을 이끌고 창경궁을 지키게 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즉시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충장위(忠壯衛)의 장수가 예전부터 서영(西營)에 입직(入直)했는데 지금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겨 입직하게 되었으니 도총부에서 서영의 장수 2인을 차출하여 수직(守直)케 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충장위의 장수는 서영에 그대로 입직케 하고, 충익위(忠翊衛)의 장수가 하인을 이끌고 창경궁을 지키게 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즉시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실록청이 아뢰기를, "병조의 계사로써 호위 대장(扈衛大將)을 이미 차출했으니, 그런데 적합한 관사를 찾을 수 없는데, 옛날 승문원 자리에 현재 찬집청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청(各廳)의 방사(房舍)에 비어 있는 곳이 많다 하니, 호위 대장을 그곳에 입직시키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조(先朝) 때 각 지역에 미처 나누어 보관하지 못한 실록들을 현재 본청에 봉안(奉安) 중이고, 세초 문서(洗草文書)052)   역시 그대로 보관하면서 아직까지 처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찬집청이 한 쪽 구석에 설치된 것만도 구차스러운 일인데 비사(祕史)가 소장되어 있는 곳에 군대를 거느린 대장을 함께 있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본청을 설치했던 곳에 방 하나가 현재 비어 있는데, 총부와도 거리가 가까우니 대장은 오히려 그곳에 입직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조로 하여금 다시 결정하여 시행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註 052] 세초 문서(洗草文書) : 폐기 처분된 문서.
"병조의 계사로써 호위 대장(扈衛大將)을 이미 차출했으니, 그런데 적합한 관사를 찾을 수 없는데, 옛날 승문원 자리에 현재 찬집청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청(各廳)의 방사(房舍)에 비어 있는 곳이 많다 하니, 호위 대장을 그곳에 입직시키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조(先朝) 때 각 지역에 미처 나누어 보관하지 못한 실록들을 현재 본청에 봉안(奉安) 중이고, 세초 문서(洗草文書)052)   역시 그대로 보관하면서 아직까지 처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찬집청이 한 쪽 구석에 설치된 것만도 구차스러운 일인데 비사(祕史)가 소장되어 있는 곳에 군대를 거느린 대장을 함께 있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본청을 설치했던 곳에 방 하나가 현재 비어 있는데, 총부와도 거리가 가까우니 대장은 오히려 그곳에 입직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조로 하여금 다시 결정하여 시행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3일 임진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오늘 좌상·우상·판의금이 병 때문에 오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추국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命招)하고 추국을 그대로 행하라." 하였다.
"오늘 좌상·우상·판의금이 병 때문에 오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추국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命招)하고 추국을 그대로 행하라."
하였다.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을 재차 명초했으나 모두 병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다시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또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을 세 번째 명초했으나 모두 병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좌상·우상·판의금을 재차 명초했으나 모두 병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다시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또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을 세 번째 명초했으나 모두 병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임자년053)  에 만들었던 의장(儀仗)을 개조하라고 이미 오래 전에 하교했었는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회계(回啓)하여 처치하지 않는가. 존숭 도감(尊崇都監)에 문의하라."


[註 053] 임자년 : 1612 광해군 4년.
"임자년053)  에 만들었던 의장(儀仗)을 개조하라고 이미 오래 전에 하교했었는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회계(回啓)하여 처치하지 않는가. 존숭 도감(尊崇都監)에 문의하라."

 

전교하였다. "서쪽에서 돌을 뜨는 일을 요즘 시작했다 하는데 그 동안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야 하게 되었는지 살펴서 아뢰도록 하고, 지금 이후로는 철저히 감독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서쪽에서 돌을 뜨는 일을 요즘 시작했다 하는데 그 동안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야 하게 되었는지 살펴서 아뢰도록 하고, 지금 이후로는 철저히 감독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내가 안질(眼疾)로 무척 고통을 받고 있는데 침과 약도 효험이 없어 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칙서(敕書)를 맞이하는 대례(大禮)조차 몇 달이나 뒤로 미루어 왔는데 이는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서 속이 타고 절박한 심정이 들 따름이다. 그래서 백관으로 하여금 교외에 나가 영접하며 예를 행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도 구례(舊例)가 어떤지 몰라서 더욱 안타까운 느낌만 들 뿐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요즘에는 다시 침이라도 맞고서 이달 안으로 병을 무릅쓰고 예를 행해 보려고 하는데, 급하지 않은 소장과 긴요하지 않은 공사(公事)를 가지고 어지럽게 입계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귀찮게 하고 있으니, 어떻게 조용히 조섭할 수 있겠는가. 내가 연소했을 때부터 선조(先朝)의 일을 익히 보아 왔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잡스럽고 혼란스럽게 올리는 소장은 있지 않았다. 돌아보건대 내가 병든 사람으로서 어떻게 제대로 살펴보겠는가. 우리 나라는 정말 소차(疏箚)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더구나 국기일(國忌日)에는 소차뿐만 아니라 급하지 않은 일체의 각종 공사를 입계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구례(舊例)인데, 근래 새로 들어온 승지가 구례를 잘 알지 못한 나머지 국기일에도 긴급하지 않은 공사를 분분하게 입계하고 있다. 비록 내 건강이 평상시와 같은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이렇게 하는 것은 실로 전례(前例)가 아닌 것이다. 지금 이후로는 국기일 및 건강이 회복될 동안은 급하지 않은 소차와 공사를 일체 봉입(捧入)하지 말고, 단지 상국(上國)·변보(邊報)·영건(營建)·역옥(逆獄) 등에 관한 일 및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긴급한 일을 상세히 살펴 초계(抄啓)하는 것을 특별히 더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내가 안질(眼疾)로 무척 고통을 받고 있는데 침과 약도 효험이 없어 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칙서(敕書)를 맞이하는 대례(大禮)조차 몇 달이나 뒤로 미루어 왔는데 이는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서 속이 타고 절박한 심정이 들 따름이다. 그래서 백관으로 하여금 교외에 나가 영접하며 예를 행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도 구례(舊例)가 어떤지 몰라서 더욱 안타까운 느낌만 들 뿐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요즘에는 다시 침이라도 맞고서 이달 안으로 병을 무릅쓰고 예를 행해 보려고 하는데, 급하지 않은 소장과 긴요하지 않은 공사(公事)를 가지고 어지럽게 입계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귀찮게 하고 있으니, 어떻게 조용히 조섭할 수 있겠는가.
내가 연소했을 때부터 선조(先朝)의 일을 익히 보아 왔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잡스럽고 혼란스럽게 올리는 소장은 있지 않았다. 돌아보건대 내가 병든 사람으로서 어떻게 제대로 살펴보겠는가. 우리 나라는 정말 소차(疏箚)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더구나 국기일(國忌日)에는 소차뿐만 아니라 급하지 않은 일체의 각종 공사를 입계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구례(舊例)인데, 근래 새로 들어온 승지가 구례를 잘 알지 못한 나머지 국기일에도 긴급하지 않은 공사를 분분하게 입계하고 있다. 비록 내 건강이 평상시와 같은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이렇게 하는 것은 실로 전례(前例)가 아닌 것이다.
지금 이후로는 국기일 및 건강이 회복될 동안은 급하지 않은 소차와 공사를 일체 봉입(捧入)하지 말고, 단지 상국(上國)·변보(邊報)·영건(營建)·역옥(逆獄) 등에 관한 일 및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긴급한 일을 상세히 살펴 초계(抄啓)하는 것을 특별히 더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근일 병조가 부장(部將) 10인을 원록체아(原祿遞兒)로 더 차출하고는 비교해 보아서 녹봉을 지급하라고 이문(移文)하였으며, 또 무신 겸선전관 30인을 체아직으로 더 차출했는데 부사과(副司果) 2인, 부사정(副司正) 5인, 부사맹(副司猛) 8인, 부사용(副司勇) 15인으로 계하(啓下) 받아 녹봉을 지급하라고 이문하였습니다. 또 병조의 관문(關文)을 보건대, 그 안에 ‘별장(別將)과 위장(衛將)은 모두 정원 외에 남아도는 관원을 신설한 것이므로 현재 남아 있는 녹체아로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부사과와 부사정으로 각각 10인, 부사맹 20인을 균등하게 부록(付祿)하는 체아직으로 더 차출하고 가위장(假衛將) 이하 다관(多官)은 돌아가며 부록할 것으로 승전을 받들었다.’ 하였습니다. 그런에 요즘 으레 녹봉을 지급하는 규정을 보건대, 통산 1년 사등(四等)의 녹봉이 미두(米豆)로 도합 1천 7백여 석입니다. 현재 국가 재정이 고갈될 대로 고갈되었다는 것을 상께서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녹봉을 나눠줄 시기가 이미 박두했는데, 정박한 세선(稅船)은 한 척도 없습니다. 예로부터 양호(兩湖)의 세선이 4월이 되었는 데도 강에 도착하지 않은 때가 언제 있기나 했습니까. 소문에 의하면 양호에서 세금으로 미두를 전혀 거두지 못했다고도 하고 유민(流民)이 길에 깔려 봄 초에 납부해야 할 미곡도 지금까지 반이나 넘게 납부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고을이 없다고도 합니다. 여기에 다시 겨울과 봄의 빗물 때문에 봄 보리도 갈지 못한 채 보리와 밀이 시들어 버리고 말았으니 앞으로 참혹한 광경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때야말로 경비를 철저히 절감해서 줄이는 것은 있어도 늘리는 것은 없도록 해야만 그런대로 지탱해 갈 수가 있는데, 지금 졸지에 1백 명에 가까운 관원들을 더 두고는 그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라 하고 있습니다. 정례적으로 나누어주어야 할 녹봉도 넉넉하지 못한데 더구나 이렇게 천만 뜻밖에 더 설치한 인원에 대한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신들이 감히 구구하게 비용을 아까워하는 유사(有司)의 행태를 융통성 없이 지키려고 해서가 아니라 정말 바짝 마른 나무에서 물을 찾듯이 어찌해 볼 계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금방 실시했다 금방 그만둘 성격의 것이 아니고 형세상 오래도록 시행될 것이 분명한데 혹 그만한 액수만큼 더 백성에게 부과하든가 아니면 양전(量田)하는 정사를 급히 행하여 세입(歲入)을 증가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는 일을 의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곡절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을 지은 뒤에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근일 병조가 부장(部將) 10인을 원록체아(原祿遞兒)로 더 차출하고는 비교해 보아서 녹봉을 지급하라고 이문(移文)하였으며, 또 무신 겸선전관 30인을 체아직으로 더 차출했는데 부사과(副司果) 2인, 부사정(副司正) 5인, 부사맹(副司猛) 8인, 부사용(副司勇) 15인으로 계하(啓下) 받아 녹봉을 지급하라고 이문하였습니다. 또 병조의 관문(關文)을 보건대, 그 안에 ‘별장(別將)과 위장(衛將)은 모두 정원 외에 남아도는 관원을 신설한 것이므로 현재 남아 있는 녹체아로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부사과와 부사정으로 각각 10인, 부사맹 20인을 균등하게 부록(付祿)하는 체아직으로 더 차출하고 가위장(假衛將) 이하 다관(多官)은 돌아가며 부록할 것으로 승전을 받들었다.’ 하였습니다.
그런에 요즘 으레 녹봉을 지급하는 규정을 보건대, 통산 1년 사등(四等)의 녹봉이 미두(米豆)로 도합 1천 7백여 석입니다. 현재 국가 재정이 고갈될 대로 고갈되었다는 것을 상께서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녹봉을 나눠줄 시기가 이미 박두했는데, 정박한 세선(稅船)은 한 척도 없습니다. 예로부터 양호(兩湖)의 세선이 4월이 되었는 데도 강에 도착하지 않은 때가 언제 있기나 했습니까. 소문에 의하면 양호에서 세금으로 미두를 전혀 거두지 못했다고도 하고 유민(流民)이 길에 깔려 봄 초에 납부해야 할 미곡도 지금까지 반이나 넘게 납부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고을이 없다고도 합니다. 여기에 다시 겨울과 봄의 빗물 때문에 봄 보리도 갈지 못한 채 보리와 밀이 시들어 버리고 말았으니 앞으로 참혹한 광경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때야말로 경비를 철저히 절감해서 줄이는 것은 있어도 늘리는 것은 없도록 해야만 그런대로 지탱해 갈 수가 있는데, 지금 졸지에 1백 명에 가까운 관원들을 더 두고는 그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라 하고 있습니다. 정례적으로 나누어주어야 할 녹봉도 넉넉하지 못한데 더구나 이렇게 천만 뜻밖에 더 설치한 인원에 대한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신들이 감히 구구하게 비용을 아까워하는 유사(有司)의 행태를 융통성 없이 지키려고 해서가 아니라 정말 바짝 마른 나무에서 물을 찾듯이 어찌해 볼 계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금방 실시했다 금방 그만둘 성격의 것이 아니고 형세상 오래도록 시행될 것이 분명한데 혹 그만한 액수만큼 더 백성에게 부과하든가 아니면 양전(量田)하는 정사를 급히 행하여 세입(歲入)을 증가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는 일을 의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곡절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을 지은 뒤에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각도의 방물(方物)을 들여 놓은 곳에 부장(部將) 등을 정해 보내 특별히 더 엄하게 지키는 일에 대해 다시 자세히 점검하고 단속하라는 뜻을 병조로 하여금 착실히 거행하게 하라."
"각도의 방물(方物)을 들여 놓은 곳에 부장(部將) 등을 정해 보내 특별히 더 엄하게 지키는 일에 대해 다시 자세히 점검하고 단속하라는 뜻을 병조로 하여금 착실히 거행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두 번째 방물이 이미 올라왔다. 만약 몇 달이 지난 뒤에야 봉입(捧入)할 경우 갑주(甲冑)나 피장(皮張)·궁전(弓箭) 같은 물건 등은 필시 벌레가 먹어 쓰지 못하게 될 것인데 다시 마련하게 한다면 폐단이 있을 것이니, 하루 이틀 내로 속히 안에 들이도록 하라. 그런 뒤에 특별히 잘 보관해 두었다가 진하(陳賀)하는 정월 초하루가 되거든 대궐 뜰에 내놓아 진열한다면 구례(舊例)에도 어긋나지 않을 듯한데, 이렇게 하는 것 또한 부득이해서 나온 일이다. 각도(各道)에서 방물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지금 우선 내려보냈다가 그때 가서 올라오도록 하는 것이 무방할 듯하니, 이 점도 아울러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두 번째 방물이 이미 올라왔다. 만약 몇 달이 지난 뒤에야 봉입(捧入)할 경우 갑주(甲冑)나 피장(皮張)·궁전(弓箭) 같은 물건 등은 필시 벌레가 먹어 쓰지 못하게 될 것인데 다시 마련하게 한다면 폐단이 있을 것이니, 하루 이틀 내로 속히 안에 들이도록 하라. 그런 뒤에 특별히 잘 보관해 두었다가 진하(陳賀)하는 정월 초하루가 되거든 대궐 뜰에 내놓아 진열한다면 구례(舊例)에도 어긋나지 않을 듯한데, 이렇게 하는 것 또한 부득이해서 나온 일이다. 각도(各道)에서 방물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지금 우선 내려보냈다가 그때 가서 올라오도록 하는 것이 무방할 듯하니, 이 점도 아울러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이 네 번째 사직소를 올리니, 불윤 비답(不允批答)을 내리라고 전교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조옥건(趙玉乾)의 일에 대해 속히 대신과 판의금의 의견을 수렴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좌상·우상 및 판의금에게 문의하였는데 모두 병 때문에 의논하지 못했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근일 대신과 판의금이 오래도록 출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여 금부 당상과 양사 장관만이라도 모여 국문하게 하였는데 뒷날 폐단이 생길 듯하기에 나름대로 늘 걱정해 왔다. 그런데 더구나 이 조옥건의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시금 속히 의논을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조옥건(趙玉乾)의 일에 대해 속히 대신과 판의금의 의견을 수렴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좌상·우상 및 판의금에게 문의하였는데 모두 병 때문에 의논하지 못했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근일 대신과 판의금이 오래도록 출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여 금부 당상과 양사 장관만이라도 모여 국문하게 하였는데 뒷날 폐단이 생길 듯하기에 나름대로 늘 걱정해 왔다. 그런데 더구나 이 조옥건의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시금 속히 의논을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금호문(金虎門)에서 글을 얻은 군사를 먼저 국문하는 것이 어떠한지 의논해 아뢰게 하되, 좌상·우상·판의금에게도 모두 의논을 올리도록 하라."
"금호문(金虎門)에서 글을 얻은 군사를 먼저 국문하는 것이 어떠한지 의논해 아뢰게 하되, 좌상·우상·판의금에게도 모두 의논을 올리도록 하라."

 

4월 4일 계사

우부승지 박정길이 아뢰기를,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命招)하고, 추국은 그대로 진행하라." 하였다.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命招)하고, 추국은 그대로 진행하라."
하였다.

 

박정길이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을 다시 명초(命招)했으나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좌상·우상·판의금을 다시 명초(命招)했으나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경덕궁 각 아문의 칸수를 위에 물어보고 결정지은 뒤 지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공사를 시작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어째서 서계(書啓)하지 않는 것인가?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런데 각 아문의 칸수에 대해서는 ‘찬성 이충(李沖)이 출사(出仕)하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제조들은 탈이 났다고 핑계대지 말고 일제히 모두들 모여서 상의한 다음에 속히 짓도록 하라.’는 분부가 계셨기 때문에 신들이 바야흐로 이충이 출사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 하교를 받들었기에 각 아문의 칸수를 별단(別單)으로 서계드립니다. 그런데 액정서와 사옹원과 내반원(內班院) 등 아문의 칸수는 일체 차지 중사(次知中使)가 말한 대로 하였는데 마련되어 있는 간가(間架)가 무려 2백 3칸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지금 이 경덕궁은 원래 일시적으로 피하여 잠깐 거처하기 위해 짓는 것인만큼 아문의 모양새가 법궁(法宮)의 그것과는 본디 같지 않으니 구조를 간략하게 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지금 마련되어 있는 칸수가 무려 2백 칸이나 되고 보면 들어갈 재목과 기와가 엄청나게 많을 테니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신들의 소견을 말씀드린다면 번을 서서 드나드는 내관청(內官廳)은 내반원에 포함시켜 세워도 되겠고 곳간도 줄이거나 다른 것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들이 또한 많습니다. 전항(前項)의 사옹원·내반원·액정서의 칸수를 도형으로 작성해 입계하니, 한 번 보시고 상께서 특별히 명해 그 간가를 줄이도록 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리고 궁시 별조청(弓矢別造廳)같은 것은 인경궁(仁慶宮) 안에 지어야 마땅한데, 두 궁궐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이 궁 안에 꼭 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덕응방(德應房)과 내사복(內司僕)은 인경궁 안에 짓고 있는 이상 그것 역시 경덕궁 안에 꼭 지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감히 결재하시기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정원 이하 각 아문 역시 많은 것 같으니 경운궁(慶運宮)과 비교해서 어떠한지 자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그리고 내사복·승문원·내주방(內酒房)도 인경궁에 아울러 설치되어 있으니, 통합하거나 줄여야 할 곳들을 다시 의논해 결정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로 ‘경덕궁 각 아문의 칸수를 위에 물어보고 결정지은 뒤 지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공사를 시작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어째서 서계(書啓)하지 않는 것인가?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런데 각 아문의 칸수에 대해서는 ‘찬성 이충(李沖)이 출사(出仕)하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제조들은 탈이 났다고 핑계대지 말고 일제히 모두들 모여서 상의한 다음에 속히 짓도록 하라.’는 분부가 계셨기 때문에 신들이 바야흐로 이충이 출사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 하교를 받들었기에 각 아문의 칸수를 별단(別單)으로 서계드립니다.
그런데 액정서와 사옹원과 내반원(內班院) 등 아문의 칸수는 일체 차지 중사(次知中使)가 말한 대로 하였는데 마련되어 있는 간가(間架)가 무려 2백 3칸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지금 이 경덕궁은 원래 일시적으로 피하여 잠깐 거처하기 위해 짓는 것인만큼 아문의 모양새가 법궁(法宮)의 그것과는 본디 같지 않으니 구조를 간략하게 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지금 마련되어 있는 칸수가 무려 2백 칸이나 되고 보면 들어갈 재목과 기와가 엄청나게 많을 테니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신들의 소견을 말씀드린다면 번을 서서 드나드는 내관청(內官廳)은 내반원에 포함시켜 세워도 되겠고 곳간도 줄이거나 다른 것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들이 또한 많습니다. 전항(前項)의 사옹원·내반원·액정서의 칸수를 도형으로 작성해 입계하니, 한 번 보시고 상께서 특별히 명해 그 간가를 줄이도록 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리고 궁시 별조청(弓矢別造廳)같은 것은 인경궁(仁慶宮) 안에 지어야 마땅한데, 두 궁궐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이 궁 안에 꼭 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덕응방(德應房)과 내사복(內司僕)은 인경궁 안에 짓고 있는 이상 그것 역시 경덕궁 안에 꼭 지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감히 결재하시기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정원 이하 각 아문 역시 많은 것 같으니 경운궁(慶運宮)과 비교해서 어떠한지 자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그리고 내사복·승문원·내주방(內酒房)도 인경궁에 아울러 설치되어 있으니, 통합하거나 줄여야 할 곳들을 다시 의논해 결정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인경궁의 홍정전(弘政殿)과 광정전(光政殿)을 장차 푸른 기와로 덮고 근정전(勤政殿)의 예에 따라 단청에 쓰는 진한 채색으로 칠하려 하니 특별히 더 자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그리고 외방에서 올려 보낸 은자(銀子)를 이번에 부경(赴京)하는 세 차례 사신 행차에 따라가는 화원(畫員)들에게 똑같이 나눠주어 채색(彩色)을 골라 무역해 오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인경궁의 홍정전(弘政殿)과 광정전(光政殿)을 장차 푸른 기와로 덮고 근정전(勤政殿)의 예에 따라 단청에 쓰는 진한 채색으로 칠하려 하니 특별히 더 자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그리고 외방에서 올려 보낸 은자(銀子)를 이번에 부경(赴京)하는 세 차례 사신 행차에 따라가는 화원(畫員)들에게 똑같이 나눠주어 채색(彩色)을 골라 무역해 오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요즘 침을 맞아야 할 형편이니 문·무과의 복시(覆試) 날짜를 보름이 지난 뒤로 물려 정하도록 하라."
"요즘 침을 맞아야 할 형편이니 문·무과의 복시(覆試) 날짜를 보름이 지난 뒤로 물려 정하도록 하라."

 

4월 5일 갑오

한찬남이 아뢰기를,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하고, 추국은 그대로 진행하라." 하였다.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하고, 추국은 그대로 진행하라."
하였다.

 

박정길이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을 다시 명초했으나 모두들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다시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또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을 세 번째 명초했으나 모두들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좌상·우상·판의금을 다시 명초했으나 모두들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다시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또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을 세 번째 명초했으나 모두들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두 궁궐의 공사가 날이 갈수록 더욱 해이해지고 있다 하는데 만약 요포(料布)가 떨어지고 나면 말할 수 없이 될 것이다. 경덕궁(慶德宮)은 단지 잠깐 피하려고 머무는 곳인데, 현재 대전(大殿)과 내전(內殿) 건물은 짓고 있으니 아문 같은 것들은 작은 재목들로 간략하게 속히 짓는 것이 편할 듯하다. 그리하여 금년 이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미루지 말고 완공토록 하라. 그리고 암석을 캐내는 작업 역시 매우 해이해지고 있다 하는데 각별히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두 궁궐의 공사가 날이 갈수록 더욱 해이해지고 있다 하는데 만약 요포(料布)가 떨어지고 나면 말할 수 없이 될 것이다. 경덕궁(慶德宮)은 단지 잠깐 피하려고 머무는 곳인데, 현재 대전(大殿)과 내전(內殿) 건물은 짓고 있으니 아문 같은 것들은 작은 재목들로 간략하게 속히 짓는 것이 편할 듯하다. 그리하여 금년 이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미루지 말고 완공토록 하라. 그리고 암석을 캐내는 작업 역시 매우 해이해지고 있다 하는데 각별히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경덕궁에 궁시 별조청을 만들지 않을 수 없으니 일체 도형대로 조성토록 하라. 단 봉상시(奉常寺) 옮길 곳을 속히 논정해서 아뢰라고 도감에 이르라."
"경덕궁에 궁시 별조청을 만들지 않을 수 없으니 일체 도형대로 조성토록 하라. 단 봉상시(奉常寺) 옮길 곳을 속히 논정해서 아뢰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존숭 도감(尊崇都監)이 여러 차례나 의장(儀仗)을 다시 만들면서도 임자년에 만든 의장만은 그대로 두고 있으니 지극히 괴이하다. 임자년에 만든 의장은 지금 이미 7년이나 경과한 만큼 혹 보수한다 하더라도 그대로 쓰기는 결코 어렵다. 이 물건들을 십분 자세히 살펴 다시 만드는 것이 타당하니, 이 뜻을 본 도감에 일러 속히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최근 몇 년 동안 존숭 도감(尊崇都監)이 여러 차례나 의장(儀仗)을 다시 만들면서도 임자년에 만든 의장만은 그대로 두고 있으니 지극히 괴이하다. 임자년에 만든 의장은 지금 이미 7년이나 경과한 만큼 혹 보수한다 하더라도 그대로 쓰기는 결코 어렵다. 이 물건들을 십분 자세히 살펴 다시 만드는 것이 타당하니, 이 뜻을 본 도감에 일러 속히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춘추관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안질(眼疾)이 무척 악화되어 내가 요즘 더욱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달 안으로 차도가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더 날짜를 물릴 수가 없다. 선조(先朝) 때에도 단지 백관으로 하여금 칙서를 맞이하게 했던 예가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되는데, 선조 때에 단지 백관으로 하여금 칙서를 맞이하게 했던 절목(節目)에 대하여 하루 이틀 안으로 단지 춘추관 당상 3인만 선조의 실록을 상세히 상고한 뒤 아뢰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신들이 선조의 실록을 가져다 상고해 보건대, 각 연도(年度)에 칙서를 내렸을 때 모두 교외에 나아가 영접하였으며, 다만 기축년054)  에 윤근수(尹根壽)가 《대명회전(大明會典)》 전서(全書) 및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왔을 때는 홍화문(弘化門) 밖에서 영접한 뒤 명정전(明政殿)에 거둥하여 진하(陳賀)를 받고 교서(敎書)를 반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백관으로 하여금 칙서를 맞이하게 한 예는 없었다 하더라도 일이 있을 경우에는 직접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선조 때에 일단 백관들에게만 칙서를 영접케 한 예가 없는 이상, 가까운 시일 내에 내 증세가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게 되면 바로 칙서를 영접하는 대례(大禮)를 행해야 하겠다. 만약 이달 안에 차도가 보이지 않을 경우라도 또 몇 달씩이나 미룰 수는 없으니, 형세를 보아가며 별도로 의논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註 054] 기축년 : 1589 선조 22년.
"비망기로 ‘안질(眼疾)이 무척 악화되어 내가 요즘 더욱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달 안으로 차도가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더 날짜를 물릴 수가 없다. 선조(先朝) 때에도 단지 백관으로 하여금 칙서를 맞이하게 했던 예가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되는데, 선조 때에 단지 백관으로 하여금 칙서를 맞이하게 했던 절목(節目)에 대하여 하루 이틀 안으로 단지 춘추관 당상 3인만 선조의 실록을 상세히 상고한 뒤 아뢰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신들이 선조의 실록을 가져다 상고해 보건대, 각 연도(年度)에 칙서를 내렸을 때 모두 교외에 나아가 영접하였으며, 다만 기축년054)  에 윤근수(尹根壽)가 《대명회전(大明會典)》 전서(全書) 및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왔을 때는 홍화문(弘化門) 밖에서 영접한 뒤 명정전(明政殿)에 거둥하여 진하(陳賀)를 받고 교서(敎書)를 반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백관으로 하여금 칙서를 맞이하게 한 예는 없었다 하더라도 일이 있을 경우에는 직접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선조 때에 일단 백관들에게만 칙서를 영접케 한 예가 없는 이상, 가까운 시일 내에 내 증세가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게 되면 바로 칙서를 영접하는 대례(大禮)를 행해야 하겠다. 만약 이달 안에 차도가 보이지 않을 경우라도 또 몇 달씩이나 미룰 수는 없으니, 형세를 보아가며 별도로 의논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4월 6일 을미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예조가 첩정(牒呈)을 올리기를 ‘헌릉 참봉(獻陵參奉)의 보고에 의하면 사노(私奴) 감년(甘年)과 돌시[石乙屎] 등 2명이 능침의 나무를 몰래 베었다 하니, 유사(有司)로 하여금 중히 다스리게 하고 그 땔나무 역시 해조로 하여금 처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시기를 ‘나무는 이왕에 잘려진 것이니 영건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셨습니다. 이에 군역(軍役)을 이끄는 부장(部將) 김신원(金信源)을 즉시 파견하여 척간(擲奸)하게 하였더니 나무가 대·중·소 모두 5백 50개였다고 합니다. 그것들을 가져와서 썼으면 하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땔나무를 나인(內人)이 들어와 사는 곳에서 쓸 만하면 모두 경덕궁(慶德宮) 안으로 실어 들여오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가 첩정(牒呈)을 올리기를 ‘헌릉 참봉(獻陵參奉)의 보고에 의하면 사노(私奴) 감년(甘年)과 돌시[石乙屎] 등 2명이 능침의 나무를 몰래 베었다 하니, 유사(有司)로 하여금 중히 다스리게 하고 그 땔나무 역시 해조로 하여금 처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시기를 ‘나무는 이왕에 잘려진 것이니 영건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셨습니다. 이에 군역(軍役)을 이끄는 부장(部將) 김신원(金信源)을 즉시 파견하여 척간(擲奸)하게 하였더니 나무가 대·중·소 모두 5백 50개였다고 합니다. 그것들을 가져와서 썼으면 하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땔나무를 나인(內人)이 들어와 사는 곳에서 쓸 만하면 모두 경덕궁(慶德宮) 안으로 실어 들여오도록 하라."
하였다.

 

4월 7일 병신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어탑의 닫집에 쓰이는 가판(椵板)을 지난해 선공감의 계사에 따라 관동(關東)에 책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재삼 재촉해도 지금까지 와서 바치지 않고 있어 어탑을 가려 막을 재료가 장차 다 떨어질 지경이 되었으니 너무도 태만스럽다고 하겠습니다. 그 지방의 감사로 하여금 당해 수령을 추고하고 급히 올려보내게 할 일을 파발마로 행이(行移)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어탑의 닫집에 쓰이는 가판(椵板)을 지난해 선공감의 계사에 따라 관동(關東)에 책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재삼 재촉해도 지금까지 와서 바치지 않고 있어 어탑을 가려 막을 재료가 장차 다 떨어질 지경이 되었으니 너무도 태만스럽다고 하겠습니다. 그 지방의 감사로 하여금 당해 수령을 추고하고 급히 올려보내게 할 일을 파발마로 행이(行移)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무릇 크고 작은 건축 공사에는 재목·기와·쇠·돌 네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제대로 되지 한 가지만 없어도 안됩니다. 그러나 네 가지 중에서도 재목이 근본이 되는데, 쇠와 돌의 경우는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재목은 모두 백성의 힘에 의지해야 하니 앞으로 계속 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쇠와 돌의 예에 의거하여 사목(事目)을 마련한 뒤 중외(中外)에 효유함으로써 와서 바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무릇 크고 작은 건축 공사에는 재목·기와·쇠·돌 네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제대로 되지 한 가지만 없어도 안됩니다. 그러나 네 가지 중에서도 재목이 근본이 되는데, 쇠와 돌의 경우는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재목은 모두 백성의 힘에 의지해야 하니 앞으로 계속 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쇠와 돌의 예에 의거하여 사목(事目)을 마련한 뒤 중외(中外)에 효유함으로써 와서 바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외방에서 재목이 잇달아 올라오니 승군(僧軍)을 내보내 그 즉시 높고 건조한 곳으로 끌어올려 두게 함으로써 물에 떠내려 가는 걱정이 없게 하라. 그리고 수레를 끄는 소들이 날이 갈수록 병들어 죽는 일이 심해진다 하니, 특별히 만든 새로운 모형의 수레 및 소들을 다시 더 재촉해 가져 오도록 하고, 부석도 속히 수송해 들이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외방에서 재목이 잇달아 올라오니 승군(僧軍)을 내보내 그 즉시 높고 건조한 곳으로 끌어올려 두게 함으로써 물에 떠내려 가는 걱정이 없게 하라. 그리고 수레를 끄는 소들이 날이 갈수록 병들어 죽는 일이 심해진다 하니, 특별히 만든 새로운 모형의 수레 및 소들을 다시 더 재촉해 가져 오도록 하고, 부석도 속히 수송해 들이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경덕궁의 대전(大殿)과 집희전(集禧殿)을 조금 더 개조하여 전각(殿閣)의 제도처럼 하라고 지난해에 이미 하교했었다마는, 다락 위에 만든 곳간까지도 모조리 없애버리고 속히 개조하고, 또 인경궁에는 부역(赴役)하는 경성(京城)의 장인(匠人)들이 매우 적다고 하니, 예전에 전교한 대로 경성의 장인을 반으로 나누어 부역시키라."
"경덕궁의 대전(大殿)과 집희전(集禧殿)을 조금 더 개조하여 전각(殿閣)의 제도처럼 하라고 지난해에 이미 하교했었다마는, 다락 위에 만든 곳간까지도 모조리 없애버리고 속히 개조하고, 또 인경궁에는 부역(赴役)하는 경성(京城)의 장인(匠人)들이 매우 적다고 하니, 예전에 전교한 대로 경성의 장인을 반으로 나누어 부역시키라."

 

4월 8일 정유

한찬남이 아뢰기를, "죄인 진명생(陳命生) 등을 잡아 온 가도사(假都事) 이경(李儆)이 와서 말하기를 ‘진명생을 잡아 올 때에 그가 말하기를 「조사할 문서가 있다.」고 하였는데, 내 생각에 「전지(傳旨)로 받은 일이 아니니 감히 가지고 올 수 없다.」고 여겨지기에 그것을 본 뒤에 손수 봉함하고 나서 나주 목사(羅州牧使)에게 전해 주었다.’ 하였습니다. 작지 않은 고변(告變) 문서를 즉시 가지고 오지 않는 등 일 처리가 서투르기 짝이 없으니 추고하소서. 그리고 그 문서를 속히 올려보내라고 본도 관찰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지금 이후로는 가도사를 이렇게 일 처리가 서툰 사람으로 구차하게 채워 차출하지 말고 일을 아는 음관(蔭官)을 각별히 가려 차출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그리고 이경은 가도사를 개차(改差)하라." 하였다.
"죄인 진명생(陳命生) 등을 잡아 온 가도사(假都事) 이경(李儆)이 와서 말하기를 ‘진명생을 잡아 올 때에 그가 말하기를 「조사할 문서가 있다.」고 하였는데, 내 생각에 「전지(傳旨)로 받은 일이 아니니 감히 가지고 올 수 없다.」고 여겨지기에 그것을 본 뒤에 손수 봉함하고 나서 나주 목사(羅州牧使)에게 전해 주었다.’ 하였습니다. 작지 않은 고변(告變) 문서를 즉시 가지고 오지 않는 등 일 처리가 서투르기 짝이 없으니 추고하소서. 그리고 그 문서를 속히 올려보내라고 본도 관찰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지금 이후로는 가도사를 이렇게 일 처리가 서툰 사람으로 구차하게 채워 차출하지 말고 일을 아는 음관(蔭官)을 각별히 가려 차출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그리고 이경은 가도사를 개차(改差)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했습니다. 오늘 추국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모두 명초하고 추국은 그대로 진행하라." 하였다.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했습니다. 오늘 추국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모두 명초하고 추국은 그대로 진행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흥인문(興仁門) 안 달성위(達城尉)의 집에 큰 못이 있는데 조종조(祖宗朝)에서 그 곳을 파저수지로 만든 뜻이 분명히 있다. 도감으로 하여금 잡석(雜石) 및 흙을 모두 파내어 가져다 쓰게 하고, 이와 함께 그 일대를 더 넓게 파서 큰 못으로 조성하는 일을 살펴 하도록 하라. 그리고 외방의 새 모형의 수레 및 각도의 소들을 다시 급히 올려보내도록 재촉하여 쓰라고 도감에 이르라."
"흥인문(興仁門) 안 달성위(達城尉)의 집에 큰 못이 있는데 조종조(祖宗朝)에서 그 곳을 파저수지로 만든 뜻이 분명히 있다. 도감으로 하여금 잡석(雜石) 및 흙을 모두 파내어 가져다 쓰게 하고, 이와 함께 그 일대를 더 넓게 파서 큰 못으로 조성하는 일을 살펴 하도록 하라. 그리고 외방의 새 모형의 수레 및 각도의 소들을 다시 급히 올려보내도록 재촉하여 쓰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전일 관상감에 계하(啓下)한 책자(冊子)를 속히 인출(印出)하라고 교인 도감(校印都監)에 이르라. 또 새로 만든 기공(妓工)의 의복을 지금은 사용하지 말고 내년에 적전(籍田)을 친경(親耕)할 때 내다 쓰도록 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또 청옥(靑玉)이 분명히 단천(端川)에서 생산되는데 내려간 낭청이 파내지 못했다고 한다. 청옥은 국가에서 긴요하게 쓰는 물건인데 전후의 본읍 군수들이 모조리 파내어 사사로이 쓴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내려간 낭청에게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청옥이 있는지의 여부를 다시 더욱더 분명하게 본도에 하유하여 자세히 살펴 아뢰게 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단천의 청옥을 십분 엄하게 살펴, 절대 제멋대로 쓰지 못하게 할 일도 아울러 하유하라."
"전일 관상감에 계하(啓下)한 책자(冊子)를 속히 인출(印出)하라고 교인 도감(校印都監)에 이르라. 또 새로 만든 기공(妓工)의 의복을 지금은 사용하지 말고 내년에 적전(籍田)을 친경(親耕)할 때 내다 쓰도록 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또 청옥(靑玉)이 분명히 단천(端川)에서 생산되는데 내려간 낭청이 파내지 못했다고 한다. 청옥은 국가에서 긴요하게 쓰는 물건인데 전후의 본읍 군수들이 모조리 파내어 사사로이 쓴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내려간 낭청에게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청옥이 있는지의 여부를 다시 더욱더 분명하게 본도에 하유하여 자세히 살펴 아뢰게 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단천의 청옥을 십분 엄하게 살펴, 절대 제멋대로 쓰지 못하게 할 일도 아울러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양주(楊州) 등 지역에 승냥이와 범이 횡행하며 사람과 가축을 물어 상하게 하는 데도 그곳을 지키는 관원이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하니 지극히 잘못되었다. 각별히 신칙하여 그로 하여금 급히 잡도록 함으로써 백성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하라고 경기 감사에게 하유하라."
"양주(楊州) 등 지역에 승냥이와 범이 횡행하며 사람과 가축을 물어 상하게 하는 데도 그곳을 지키는 관원이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하니 지극히 잘못되었다. 각별히 신칙하여 그로 하여금 급히 잡도록 함으로써 백성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하라고 경기 감사에게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새 궁전을 건축하는 공사는 대개 대내(大內)에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실로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된 것인데, 혹시 백성을 병들게 하지나 않을까 하고 늘 걱정하느라 한시도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듣건대 요사스러운 말들이 또 일어나 듣는 이들을 미혹시키고 있다 하는데, 주자동(鑄字洞) 근처에 또 궁궐을 지으려 한다고도 하고 혹은 경복궁(景福宮)과 인경궁(仁慶宮)을 이어지게 하는 공사를 벌인다고도 하여, 도성 백성들을 동요시키고 원근에서 듣고는 놀라게 하고 있다 한다. 이렇듯 인심이 불측한 때를 당하여 말을 만들어 내 군중을 현혹시키는 자는 효수(梟首)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방(榜)을 걸어 개유(開諭)함으로써 여론을 진정시킬 일을 한성부로 하여금 상세히 살펴 거행토록 하라."
"새 궁전을 건축하는 공사는 대개 대내(大內)에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실로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된 것인데, 혹시 백성을 병들게 하지나 않을까 하고 늘 걱정하느라 한시도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듣건대 요사스러운 말들이 또 일어나 듣는 이들을 미혹시키고 있다 하는데, 주자동(鑄字洞) 근처에 또 궁궐을 지으려 한다고도 하고 혹은 경복궁(景福宮)과 인경궁(仁慶宮)을 이어지게 하는 공사를 벌인다고도 하여, 도성 백성들을 동요시키고 원근에서 듣고는 놀라게 하고 있다 한다. 이렇듯 인심이 불측한 때를 당하여 말을 만들어 내 군중을 현혹시키는 자는 효수(梟首)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방(榜)을 걸어 개유(開諭)함으로써 여론을 진정시킬 일을 한성부로 하여금 상세히 살펴 거행토록 하라."

 

전교하였다. "대신 없이는 거둥할 수 없으니, 칙서를 맞이하는 일은 보름 뒤로 날짜를 다시 가려 조금 미루고, 좌상과 우상에게 다시 돈독히 유시하여 속히 출사하게 하라."
"대신 없이는 거둥할 수 없으니, 칙서를 맞이하는 일은 보름 뒤로 날짜를 다시 가려 조금 미루고, 좌상과 우상에게 다시 돈독히 유시하여 속히 출사하게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본사에서 무릇 공사(公事)에 대해 회계(回啓)할 때에는 유사 당상이 상신(相臣)에게 물어 결정하여, 그 내용을 기초(起草)하고는 여러 제조(提調)들의 의논을 두루 들은 다음, 그 논의가 귀일되어야만 입계(入啓)하니 이는 예로부터 내려온 전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좌상과 우상이 모두 병에 걸려 제대로 가부를 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계(覆啓)해야 할 일체의 공사에 대해 회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이 정말 어떤 때인가. 좌상과 우상이 출사(出仕)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집에서 의논해 처리함으로써 사태가 제때에 수습되게 하라." 하였다.
"본사에서 무릇 공사(公事)에 대해 회계(回啓)할 때에는 유사 당상이 상신(相臣)에게 물어 결정하여, 그 내용을 기초(起草)하고는 여러 제조(提調)들의 의논을 두루 들은 다음, 그 논의가 귀일되어야만 입계(入啓)하니 이는 예로부터 내려온 전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좌상과 우상이 모두 병에 걸려 제대로 가부를 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계(覆啓)해야 할 일체의 공사에 대해 회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이 정말 어떤 때인가. 좌상과 우상이 출사(出仕)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집에서 의논해 처리함으로써 사태가 제때에 수습되게 하라."
하였다.

 

대사헌 남근,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사간 신광업, 장령 한영·강수, 지평 이중계·신칙, 헌납 박종주, 정언 이원여·서국정이 아뢰기를, "합사하여 논하는 일은 평범하게 계차를 올리는 것과는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본사에서 모이는 일도 폐한 채 날마다 대궐에 나아가 재계(再啓)하기도 하고 삼계(三啓)까지도 하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또 사직하는 예까지 있으니 어찌 중차대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일단 발론(發論)한 이상에는 결코 중지할 수 없는 것인데, 지난번 비망기를 누차 내리시면서 매번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중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분부를 하셨으므로, 신들이 오래도록 물러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대간의 사체상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성상의 비답을 어기는 것을 어렵게 여긴 나머지 우선 정지한다는 것이 날짜가 많이 흘러가 버리고 말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신들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신들이 쟁집(爭執)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국가가 위태롭게 되어 망할 화란이 목전에 박두했으므로 뭇사람들이 두렵게 여기고 놀라워하고 있는데 간악한 패거리들은 속으로 비웃고 있습니다. 화의 근본을 제거하는 일을 마치 불길 속에서 구해 내고 물 속에서 건져내기에 겨를이 없는 것처럼 하더라도 오히려 이루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되는데, 더구나 오래 지체시켜 그냥 놔둔채 세월만 보내면서 어떻게 흉도의 역모(逆謀)를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조섭하고 계시는 성상을 귀찮게 해드리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신들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가 생각건대 국가를 위하는 지극한 계책을 조정에서 의논하여 정하고, 그 폄삭(貶削)하는 절목(節目)을 이미 보시도록 입계하였으니, 윤허를 내리시는 것은 그저 잠깐 사이일 뿐 성상께서 수고롭게 경중을 맞춰 헤아려 보는 번쇄한 일 따위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상께서는 무엇을 애석하게 여기시기에 이렇듯 주저하고 오래도록 버티며 윤허하지 않으시어, 계속 사람들이 의심하게 하고 흉악한 자들이 꾀를 부리게 하십니까. 성상께서 명위(名位)에 따른 상례(常例)에 구애되어 차마 사은(私恩)을 끊어 버리고 폐출하는 일을 하지 못한 채 굳게 거절하며 따르지 않으셨으므로 온 나라 신민들의 분노가 풀리지 않고 가슴 속에 맺혀 있는데, 백관들이 성상의 뜻을 따라 우선 말감(末減)하는 율(律)을 적용하여 겨우 폄삭하는 전형(典刑)만 행하게 되었으니, 시종 보전해주려 하신 성상의 처지에서 볼 때는 극진하게 되었다고 할지 몰라도 《춘추(春秋)》의 역적을 토벌해야 하는 대의(大義)로 볼 때는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 절목에 대한 계사(啓辭)조차도 그냥 놔두고 시행하지 않고 계시니, 임금의 세력은 날로 고립되고 괴상한 논의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계속 이렇게 되면 장차 나라를 다스려나갈 길이 없고 판국이 뒤엎어질 환란이 한 순간에 박두할 것이니, 어찌 크게 한심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끊어야 할 때 끊지 않다가 거꾸로 재앙을 받은 전철(前轍)이 분명하니 이런 역사의 교훈을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상께서 결단을 내리느냐 못내리느냐에 따라 종묘 사직의 존망(存亡)이 결판나니, 그 긴요한 시기는 머리카락 하나 정도도 용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성상께서 아무리 줄곧 고식적으로 처리하려 하시더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서궁(西宮)이 자기 아비를 끼고 역모를 꾀한 정상이 남김없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천자가 봉해 준 전하를 폐하고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하였으니,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잡아 죽일 대상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일을 광명정대하고 당당하게 하는 것으로는 의리에 입각하여 진정(陳情)함으로써 화란의 씨앗을 끊어버리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는데, 지금까지 주문(奏聞)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여정(輿情)이 모두들 근심하며 위태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통쾌하게 결단 내리기를 주저하고 계시니 신들의 의혹이 더욱 커집니다. 속히 전에 입계한 절목을 판하하시어 간악한 자들이 틈을 엿보며 역모를 이루려 하는 꾀를 막아버리고, 이어서 사정을 잘 알고 전대(專對)에 적합한 신하를 고른 뒤, 급히 달려가 전후에 걸친 악한 역모의 정상을 진달하게 함으로써 폐출하는 전형을 마무리지어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서서히 결정짓겠다. 조용히 조섭하는 중이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논하는 일은 평범하게 계차를 올리는 것과는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본사에서 모이는 일도 폐한 채 날마다 대궐에 나아가 재계(再啓)하기도 하고 삼계(三啓)까지도 하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또 사직하는 예까지 있으니 어찌 중차대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일단 발론(發論)한 이상에는 결코 중지할 수 없는 것인데, 지난번 비망기를 누차 내리시면서 매번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중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분부를 하셨으므로, 신들이 오래도록 물러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대간의 사체상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성상의 비답을 어기는 것을 어렵게 여긴 나머지 우선 정지한다는 것이 날짜가 많이 흘러가 버리고 말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신들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신들이 쟁집(爭執)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국가가 위태롭게 되어 망할 화란이 목전에 박두했으므로 뭇사람들이 두렵게 여기고 놀라워하고 있는데 간악한 패거리들은 속으로 비웃고 있습니다. 화의 근본을 제거하는 일을 마치 불길 속에서 구해 내고 물 속에서 건져내기에 겨를이 없는 것처럼 하더라도 오히려 이루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되는데, 더구나 오래 지체시켜 그냥 놔둔채 세월만 보내면서 어떻게 흉도의 역모(逆謀)를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조섭하고 계시는 성상을 귀찮게 해드리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신들이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가 생각건대 국가를 위하는 지극한 계책을 조정에서 의논하여 정하고, 그 폄삭(貶削)하는 절목(節目)을 이미 보시도록 입계하였으니, 윤허를 내리시는 것은 그저 잠깐 사이일 뿐 성상께서 수고롭게 경중을 맞춰 헤아려 보는 번쇄한 일 따위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상께서는 무엇을 애석하게 여기시기에 이렇듯 주저하고 오래도록 버티며 윤허하지 않으시어, 계속 사람들이 의심하게 하고 흉악한 자들이 꾀를 부리게 하십니까.
성상께서 명위(名位)에 따른 상례(常例)에 구애되어 차마 사은(私恩)을 끊어 버리고 폐출하는 일을 하지 못한 채 굳게 거절하며 따르지 않으셨으므로 온 나라 신민들의 분노가 풀리지 않고 가슴 속에 맺혀 있는데, 백관들이 성상의 뜻을 따라 우선 말감(末減)하는 율(律)을 적용하여 겨우 폄삭하는 전형(典刑)만 행하게 되었으니, 시종 보전해주려 하신 성상의 처지에서 볼 때는 극진하게 되었다고 할지 몰라도 《춘추(春秋)》의 역적을 토벌해야 하는 대의(大義)로 볼 때는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 절목에 대한 계사(啓辭)조차도 그냥 놔두고 시행하지 않고 계시니, 임금의 세력은 날로 고립되고 괴상한 논의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계속 이렇게 되면 장차 나라를 다스려나갈 길이 없고 판국이 뒤엎어질 환란이 한 순간에 박두할 것이니, 어찌 크게 한심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끊어야 할 때 끊지 않다가 거꾸로 재앙을 받은 전철(前轍)이 분명하니 이런 역사의 교훈을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상께서 결단을 내리느냐 못내리느냐에 따라 종묘 사직의 존망(存亡)이 결판나니, 그 긴요한 시기는 머리카락 하나 정도도 용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성상께서 아무리 줄곧 고식적으로 처리하려 하시더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서궁(西宮)이 자기 아비를 끼고 역모를 꾀한 정상이 남김없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천자가 봉해 준 전하를 폐하고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하였으니,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잡아 죽일 대상이 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일을 광명정대하고 당당하게 하는 것으로는 의리에 입각하여 진정(陳情)함으로써 화란의 씨앗을 끊어버리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는데, 지금까지 주문(奏聞)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여정(輿情)이 모두들 근심하며 위태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통쾌하게 결단 내리기를 주저하고 계시니 신들의 의혹이 더욱 커집니다. 속히 전에 입계한 절목을 판하하시어 간악한 자들이 틈을 엿보며 역모를 이루려 하는 꾀를 막아버리고, 이어서 사정을 잘 알고 전대(專對)에 적합한 신하를 고른 뒤, 급히 달려가 전후에 걸친 악한 역모의 정상을 진달하게 함으로써 폐출하는 전형을 마무리지어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서서히 결정짓겠다. 조용히 조섭하는 중이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건강이 회복될 동안 삼사의 계차를 우선 정지하라고 이르라."
"건강이 회복될 동안 삼사의 계차를 우선 정지하라고 이르라."

 

검열 이필달(李必達)이 아뢰었다. "신이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에게 유시하러 갔더니, 요즘 또 계절병에 걸려 예전보다 배나 구토를 하는가 하면 목소리도 변했고 게다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였으므로, 신이 그저 성상의 유지(有旨)만 유시하고 돌아왔습니다."
"신이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에게 유시하러 갔더니, 요즘 또 계절병에 걸려 예전보다 배나 구토를 하는가 하면 목소리도 변했고 게다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였으므로, 신이 그저 성상의 유지(有旨)만 유시하고 돌아왔습니다."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좌사(左司)의 중초 포수(中哨砲手) 김언추(金彦秋)를 포도청으로 하여금 급히 체포하게 하라."
"좌사(左司)의 중초 포수(中哨砲手) 김언추(金彦秋)를 포도청으로 하여금 급히 체포하게 하라."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김언추 형제를 도성 안팎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체포하라고 포도 대장에게 이르라."
"김언추 형제를 도성 안팎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체포하라고 포도 대장에게 이르라."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포수 심계생(沈繼生) 역시 포도청으로 하여금 급히 체포하게 하라."
"포수 심계생(沈繼生) 역시 포도청으로 하여금 급히 체포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지난 밤에 도적이 수진궁(壽進宮)에 들어와 잡물(雜物)을 훔쳐 나갔는데 이는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도성 안에서 횡행하는 도적을 단속하고 체포하라고 그 동안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포도 대장이 전교를 유념하지 않은 채 직무를 살피지 않은 결과 도적들이 공가(公家)에 들어와 거리낌없이 훔쳐가게 하였으니 놀랍기 그지없다. 좌·우 포도 대장으로 하여금 급히 체포하게 한 뒤, 엄히 형신(刑訊)을 가해 국문하여 기필코 그 패거리들을 알아내도록 하고, 순시하며 기찰하는 일들을 다시 더 날마다 새롭게 신칙하도록 하라. 포도 대장은 잡아다 추문하여 율(律)대로 죄를 정해야 마땅하겠지만, 지금은 우선 중하게 추고만 하고 종사관도 모두 추고하라. 그리고 도성의 각 지역을 일일이 순시하고 기찰하는 일을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지난 밤에 도적이 수진궁(壽進宮)에 들어와 잡물(雜物)을 훔쳐 나갔는데 이는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도성 안에서 횡행하는 도적을 단속하고 체포하라고 그 동안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포도 대장이 전교를 유념하지 않은 채 직무를 살피지 않은 결과 도적들이 공가(公家)에 들어와 거리낌없이 훔쳐가게 하였으니 놀랍기 그지없다. 좌·우 포도 대장으로 하여금 급히 체포하게 한 뒤, 엄히 형신(刑訊)을 가해 국문하여 기필코 그 패거리들을 알아내도록 하고, 순시하며 기찰하는 일들을 다시 더 날마다 새롭게 신칙하도록 하라. 포도 대장은 잡아다 추문하여 율(律)대로 죄를 정해야 마땅하겠지만, 지금은 우선 중하게 추고만 하고 종사관도 모두 추고하라. 그리고 도성의 각 지역을 일일이 순시하고 기찰하는 일을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좌·우 포도청이 아뢰기를, "포수 김언추 형제와 심계생 등을 급히 체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무릇 도적을 체포할 때는 반드시 도적맞은 사람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밀고(密告)한 데에 따라 엄습하여 체포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저번에 김언추 등이 모두 대군(大君) 궁방(宮房)의 담 밑에 붙어살고 있었는데, 신들이 명을 받들기도 전에 먼저 본궁(本宮)의 하인들이 직접 나서서 수탐(搜探)하는 바람에 적도(賊徒)가 낌새를 채고는 도피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좌·우 포도청에서 군사를 풀었는 데도 바로 잡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군관을 많이 배정해 놓고 샅샅이 살피며 체포하게 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포수 김언추 형제와 심계생 등을 급히 체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무릇 도적을 체포할 때는 반드시 도적맞은 사람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밀고(密告)한 데에 따라 엄습하여 체포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저번에 김언추 등이 모두 대군(大君) 궁방(宮房)의 담 밑에 붙어살고 있었는데, 신들이 명을 받들기도 전에 먼저 본궁(本宮)의 하인들이 직접 나서서 수탐(搜探)하는 바람에 적도(賊徒)가 낌새를 채고는 도피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좌·우 포도청에서 군사를 풀었는 데도 바로 잡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군관을 많이 배정해 놓고 샅샅이 살피며 체포하게 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양사가 합계로 연계(連啓)하기를, "전일 정청(庭請)한 것은 실로 충성심을 떨쳐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민들이 의논하지 않고도 같은 말을 하면서 피 끓는 정성으로 소를 올려 진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관 중에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감히 다른 마음을 품고서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자도 있고, 혹은 의논드릴 때 저쪽 편을 든 자도 있는데,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창연(鄭昌衍)은 왕실과 가까운 친척으로서 대신의 지위에 오른만큼 국가와 휴척(休戚)을 같이 해야 할 의리가 있는 데도, 종묘 사직과 군부(君父)의 위급함이 목전에 박두했는 데도 그는 감히 서궁을 남몰래 보호하려는 계책을 행하면서 뒷날 복을 받으려고 도모하였습니다. 당초 유소(儒疏)를 내리셨을 때 예관(禮官)이 가지고 가서 의논하자, 병이 중하여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한 글자도 뜯어보지 않았으며, 정부에서 의논을 거둘 때 낭청이 여러 차례 청하자 문을 닫아 걸고는 성내고 욕하면서 끝내 써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론(邪論)을 주창하고 그 아들과 조카를 미혹시키면서 저쪽 편의 우두머리가 기꺼이 되었습니다. 대론(大論)이 이미 정해져 백관이 정청을 할 때에는 꼼짝않고 누워 있으면서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었는가 하면, 달을 넘겨가며 복합 상소(伏閤上疏)를 올렸을 때에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매부 김극효(金克孝)가 죽었을 때에는 감히 거만스럽게 교자(轎子)를 타고 그 집에 가서 조문(弔問)하였으니, 그가 질병을 칭탁하여 일을 회피하면서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죄를 어찌 다스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유근(柳根)은 천부적으로 사특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평소부터 이론(異論)을 주창해 왔는데, 유소(儒疏)가 처음 들어왔을 때 서궁(西宮)을 처치하는 일이 분명히 있게 되리라는 것을 환히 알고서, 재빨리 사직소를 올리고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신(朝臣)에게 휴가를 줄 때에는 본래 정해진 기한이 있는 법인데, 대론을 피할 목적으로 기한을 넘기고서도 돌아오지 않고는 날짜가 너무 늦어지자, 아프다는 핑계로 장계를 올려 겸대한 제조를 체차하여 줄 것을 청하면서 장차 대국이 마무리된 뒤에나 올라올 계책을 세웠습니다. 그가 교묘하게 꾀를 내어 일을 회피한 자취가 불을 보듯 환하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그 죄가 또한 지극히 중하다 하겠습니다.  윤방(尹昉)은 소분(掃墳)하고 올라와 궐내에서 병을 핑계로 수레를 타고 돌아간 뒤로는 의논을 드리지도 않았고 정청에도 와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김상용(金尙容)은 아비의 병 때문에 간호해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역시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정귀(李廷龜)·이시언(李時彦)은 의논을 거둘 때, 혹 제 병세만 진달하고 대론은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면, 혹 입을 다물고 남에게 떠넘기면서 기꺼이 저쪽 편을 들었으며, 백관의 모임에도 따라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역적을 토벌해야 하는 인신(人臣)의 의리로 볼 때 병이 죽을 정도만 아니라면 남에게 들려져서라도 궐하에 나아와 그 직분을 다해야 마땅한데, 어떻게 속 편하게 집에 있으면서 태연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오윤겸(吳允謙)과 송영구(宋英耉)는 의논드린 말이 모두 저쪽 편을 드는 것이었으며 정청할 때에도 끝내 따라서 행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유근 이하는 모두 서인(西人)인데 김제남(金悌男)이 그 부류에서 나와 논의나 심지(心志)가 평소부터 서로 부합되었으므로 제남이 패망한 뒤에도 당세를 부식시키려는 뜻을 갖고는 서궁에게 침을 흘리면서 뒷날 판국을 뒤엎어버릴 소지를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차라리 성상을 저버릴지언정 서궁을 차마 등질 수는 없다 하고 있으니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조국빈(趙國賓)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들었고, 윤형준(尹衡俊)은 의논을 거둘 때 희롱하였으니, 그 죄가 앞서 말한 8간(姦)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시발(李時發)은 대론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는 말미를 얻어 시골에 내려간 뒤 고의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며, 서울에 돌아온 뒤에도 머리를 내밀지 않다가 파주 목사(坡州牧使)에 제수된 뒤에야 곧장 배사(拜辭)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교묘하게 회피한 자취가 분명하여 숨길 수 없습니다.  김류(金瑬)는 아무 일 없이 서울에 있으면서 끝까지 자기 견해를 고수한만큼 그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는 불을 보듯 환하니,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것 정도는 논할 것도 없습니다. 박자응(朴自凝)은 경연 신하의 신분으로서 대론을 피해보려고 꾀하여 병을 핑계로 사직소를 올려 즉시 체직되었으며 그 뒤 전적(典籍)을 제수받고도 오래도록 사은 숙배를 늦추면서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가 전후로 교묘하게 회피한 정상에 대해서는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경직(李景稷)은 대론이 일단 발동된 뒤에 시골로 피해 내려갔는데, 그의 본심을 살펴보면 그 죄가 정청에 불참한 것만으로 그치지 않으니, 전후의 심적(心跡)이 김류와 완전히 일치된다고 하겠습니다. 박동선(朴東善)은 본래 이의(異議)를 제기했던 사람인데,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고 심지어 하리(下吏)가 ‘나왔다[進]’고 글자를 잘못 썼을 때 나가지 않았었다고 스스로 밝히기를 마치 절개를 세우려는 자처럼 하였으니,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더욱더 심한 자라 하겠습니다.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 등은 모두 연소한 자로서 병이 없는 데도 시종일관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들만 유독 죄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효성(鄭孝成)은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은 자로서 본래 심사(心事)가 정론(正論)과는 모순되고 또 정백창(鄭百昌)의 아비로 조정에서 하는 일에 대해 매양 손가락질하고 비웃으며 조롱하였으니 그 죄가 정청에 불참한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는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함으로써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엄하게 하소서. 그리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아는 늙고 병든 자와 폐질자(廢疾者)는 대열을 따르도록 요구할 수 없을 듯도 합니다만, 나라에 대론이 전개되고 있는 때에 시종일관 물러가 편안하게 있으면서 불참한 것은 그 죄가 덜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무죄라고 할 수는 없으니, 한결같이 정부의 거안(擧案)에 따라 모두에게 삭출을 명하소서. 이밖에 누락된 사람이 꼭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듣는 것에 선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부득불 듣는 대로 추론(追論)해야 할 처지인데, 정효성의 경우가 또한 그 하나의 예입니다. 전일 정청했을 때 종실(宗室)은 휴척(休戚)을 함께 해야 할 의리가 있는만큼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종친부의 조사 내용을 보건대,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의원감(義原監) 이역(李櫟)·석양정(石陽正) 이정(李霆)·평림수(平林守) 이지윤(李祉胤)·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영가 부수(永嘉副守) 이효길(李孝吉)·진원 부수(珍原副守) 이세완(李世完)·선성 부수(先城副守) 이신원(李信元)·계림령(鷄林令) 이광윤(李光胤)·광원령(光原令) 이호(李琥)·명원령(明原令) 이효(李孝)·계양령(桂陽令) 이예길(李禮吉)·수양령(樹陽令) 이충길(李忠吉)·낙양 부령(洛陽副令) 이낭(李琅)·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경(李瓊)·영원 부령(靈原副令) 이작(李晫)·원흥 부령(原興副令) 이거(李琚)·광성 부령(廣城副令) 이제길(李悌吉)·영릉 부령(靈陵副令) 이질(李晊)·신천 부령(信川副令) 이경사(李景獅)·화성감(花城監) 이희천(李希天)·학성령(鶴城令) 이주(李儔) 등은 시종일관 정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고,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은 소원한 종친들과는 크게 다른 데도 끝내 의논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 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공성군(功城君) 이식(李植)·고산 부령(高山副令) 이공(李恭)·덕원 부령(德原副令) 이덕손(李德孫)·덕양도정(德陽都正) 이충윤(李忠胤)·익산도정(益山都正) 이진(李璡)·하성령(夏城令) 이형륜(李炯倫)·한성령(漢城令) 이영(李濘) 등에 대해서는 종친부에서 늙고 병들어 참여하지 못했다고 써 보냈습니다만,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시종일관 불참한 것은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황제가 이미 오래 전에 칙서를 내렸는 데도 사은하는 행차를 지금까지 보내지 않고 있으므로, 중국 조정의 사람들이 우리 나라가 일이 있어 지연된 줄은 모르고 혹 의아하게 여기고들 있다 하니, 어찌 너무도 미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이극신(李克信)이 변고를 일으킨 뒤로는 사태가 전일과는 달라졌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만약 성상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친영(親迎)하기로 한다면 날짜가 자꾸만 지연될 것이니, 백관으로 하여금 급히 교외에 나아가 칙서를 맞이하게 하고, 그 이튿날 사은사를 떠나 보내도록 하소서." 하고, 신계(新啓)로 아뢰기를, "말세(末世)의 공도(公道)는 오직 과거(科擧)에 달려 있으므로 과장에서 시취(試取)할 때에 조금이라도 미진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파방(罷榜)을 하고야 마니, 이는 과거를 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별시(別試)의 경우는 어쩌다 인원수를 정함이 없이 시취하는 때도 있습니다만, 식년시(式年試)나 증광시(增廣試)에는 원래 정해진 숫자가 있어 한 사람이라도 더 뽑거나 덜 뽑아서는 안되도록 되어 있으니, 이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바꿀 수 없는 성헌(成憲)입니다. 그런데 이번 증광 무과 초시(初試)에 입격자(入格者)가 3백여 인이었는데 이들에 대해 모두 급제(及第)의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비록 방수(防守)하는 군대를 증강시키려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이라 하더라도 요행히 벼슬을 얻는 문이 한 번 열리게 되면 뒷날의 폐단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 단지 금석(金石)과 같은 법전이 이로 말미암아 크게 무너지는 것뿐이겠습니까. 아마도 군액(軍額)이 날마다 줄어들 것은 물론이고, 활을 잡을 줄도 모르는 자들이 이 일로 말미암아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 꼭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듯하니, 속히 성명(成命)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모두 서서히 결정짓도록 하겠다.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때에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전일 정청(庭請)한 것은 실로 충성심을 떨쳐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민들이 의논하지 않고도 같은 말을 하면서 피 끓는 정성으로 소를 올려 진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관 중에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감히 다른 마음을 품고서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자도 있고, 혹은 의논드릴 때 저쪽 편을 든 자도 있는데,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창연(鄭昌衍)은 왕실과 가까운 친척으로서 대신의 지위에 오른만큼 국가와 휴척(休戚)을 같이 해야 할 의리가 있는 데도, 종묘 사직과 군부(君父)의 위급함이 목전에 박두했는 데도 그는 감히 서궁을 남몰래 보호하려는 계책을 행하면서 뒷날 복을 받으려고 도모하였습니다. 당초 유소(儒疏)를 내리셨을 때 예관(禮官)이 가지고 가서 의논하자, 병이 중하여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한 글자도 뜯어보지 않았으며, 정부에서 의논을 거둘 때 낭청이 여러 차례 청하자 문을 닫아 걸고는 성내고 욕하면서 끝내 써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론(邪論)을 주창하고 그 아들과 조카를 미혹시키면서 저쪽 편의 우두머리가 기꺼이 되었습니다. 대론(大論)이 이미 정해져 백관이 정청을 할 때에는 꼼짝않고 누워 있으면서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었는가 하면, 달을 넘겨가며 복합 상소(伏閤上疏)를 올렸을 때에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매부 김극효(金克孝)가 죽었을 때에는 감히 거만스럽게 교자(轎子)를 타고 그 집에 가서 조문(弔問)하였으니, 그가 질병을 칭탁하여 일을 회피하면서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죄를 어찌 다스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유근(柳根)은 천부적으로 사특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평소부터 이론(異論)을 주창해 왔는데, 유소(儒疏)가 처음 들어왔을 때 서궁(西宮)을 처치하는 일이 분명히 있게 되리라는 것을 환히 알고서, 재빨리 사직소를 올리고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신(朝臣)에게 휴가를 줄 때에는 본래 정해진 기한이 있는 법인데, 대론을 피할 목적으로 기한을 넘기고서도 돌아오지 않고는 날짜가 너무 늦어지자, 아프다는 핑계로 장계를 올려 겸대한 제조를 체차하여 줄 것을 청하면서 장차 대국이 마무리된 뒤에나 올라올 계책을 세웠습니다. 그가 교묘하게 꾀를 내어 일을 회피한 자취가 불을 보듯 환하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그 죄가 또한 지극히 중하다 하겠습니다.
윤방(尹昉)은 소분(掃墳)하고 올라와 궐내에서 병을 핑계로 수레를 타고 돌아간 뒤로는 의논을 드리지도 않았고 정청에도 와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김상용(金尙容)은 아비의 병 때문에 간호해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역시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정귀(李廷龜)·이시언(李時彦)은 의논을 거둘 때, 혹 제 병세만 진달하고 대론은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면, 혹 입을 다물고 남에게 떠넘기면서 기꺼이 저쪽 편을 들었으며, 백관의 모임에도 따라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역적을 토벌해야 하는 인신(人臣)의 의리로 볼 때 병이 죽을 정도만 아니라면 남에게 들려져서라도 궐하에 나아와 그 직분을 다해야 마땅한데, 어떻게 속 편하게 집에 있으면서 태연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오윤겸(吳允謙)과 송영구(宋英耉)는 의논드린 말이 모두 저쪽 편을 드는 것이었으며 정청할 때에도 끝내 따라서 행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유근 이하는 모두 서인(西人)인데 김제남(金悌男)이 그 부류에서 나와 논의나 심지(心志)가 평소부터 서로 부합되었으므로 제남이 패망한 뒤에도 당세를 부식시키려는 뜻을 갖고는 서궁에게 침을 흘리면서 뒷날 판국을 뒤엎어버릴 소지를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차라리 성상을 저버릴지언정 서궁을 차마 등질 수는 없다 하고 있으니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조국빈(趙國賓)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들었고, 윤형준(尹衡俊)은 의논을 거둘 때 희롱하였으니, 그 죄가 앞서 말한 8간(姦)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시발(李時發)은 대론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는 말미를 얻어 시골에 내려간 뒤 고의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며, 서울에 돌아온 뒤에도 머리를 내밀지 않다가 파주 목사(坡州牧使)에 제수된 뒤에야 곧장 배사(拜辭)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교묘하게 회피한 자취가 분명하여 숨길 수 없습니다.
김류(金瑬)는 아무 일 없이 서울에 있으면서 끝까지 자기 견해를 고수한만큼 그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는 불을 보듯 환하니,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것 정도는 논할 것도 없습니다. 박자응(朴自凝)은 경연 신하의 신분으로서 대론을 피해보려고 꾀하여 병을 핑계로 사직소를 올려 즉시 체직되었으며 그 뒤 전적(典籍)을 제수받고도 오래도록 사은 숙배를 늦추면서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가 전후로 교묘하게 회피한 정상에 대해서는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경직(李景稷)은 대론이 일단 발동된 뒤에 시골로 피해 내려갔는데, 그의 본심을 살펴보면 그 죄가 정청에 불참한 것만으로 그치지 않으니, 전후의 심적(心跡)이 김류와 완전히 일치된다고 하겠습니다. 박동선(朴東善)은 본래 이의(異議)를 제기했던 사람인데,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고 심지어 하리(下吏)가 ‘나왔다[進]’고 글자를 잘못 썼을 때 나가지 않았었다고 스스로 밝히기를 마치 절개를 세우려는 자처럼 하였으니,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더욱더 심한 자라 하겠습니다.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 등은 모두 연소한 자로서 병이 없는 데도 시종일관 정청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들만 유독 죄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효성(鄭孝成)은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은 자로서 본래 심사(心事)가 정론(正論)과는 모순되고 또 정백창(鄭百昌)의 아비로 조정에서 하는 일에 대해 매양 손가락질하고 비웃으며 조롱하였으니 그 죄가 정청에 불참한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는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함으로써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엄하게 하소서.
그리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아는 늙고 병든 자와 폐질자(廢疾者)는 대열을 따르도록 요구할 수 없을 듯도 합니다만, 나라에 대론이 전개되고 있는 때에 시종일관 물러가 편안하게 있으면서 불참한 것은 그 죄가 덜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무죄라고 할 수는 없으니, 한결같이 정부의 거안(擧案)에 따라 모두에게 삭출을 명하소서. 이밖에 누락된 사람이 꼭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듣는 것에 선후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부득불 듣는 대로 추론(追論)해야 할 처지인데, 정효성의 경우가 또한 그 하나의 예입니다.
전일 정청했을 때 종실(宗室)은 휴척(休戚)을 함께 해야 할 의리가 있는만큼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종친부의 조사 내용을 보건대,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의원감(義原監) 이역(李櫟)·석양정(石陽正) 이정(李霆)·평림수(平林守) 이지윤(李祉胤)·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영가 부수(永嘉副守) 이효길(李孝吉)·진원 부수(珍原副守) 이세완(李世完)·선성 부수(先城副守) 이신원(李信元)·계림령(鷄林令) 이광윤(李光胤)·광원령(光原令) 이호(李琥)·명원령(明原令) 이효(李孝)·계양령(桂陽令) 이예길(李禮吉)·수양령(樹陽令) 이충길(李忠吉)·낙양 부령(洛陽副令) 이낭(李琅)·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경(李瓊)·영원 부령(靈原副令) 이작(李晫)·원흥 부령(原興副令) 이거(李琚)·광성 부령(廣城副令) 이제길(李悌吉)·영릉 부령(靈陵副令) 이질(李晊)·신천 부령(信川副令) 이경사(李景獅)·화성감(花城監) 이희천(李希天)·학성령(鶴城令) 이주(李儔) 등은 시종일관 정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고,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은 소원한 종친들과는 크게 다른 데도 끝내 의논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 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공성군(功城君) 이식(李植)·고산 부령(高山副令) 이공(李恭)·덕원 부령(德原副令) 이덕손(李德孫)·덕양도정(德陽都正) 이충윤(李忠胤)·익산도정(益山都正) 이진(李璡)·하성령(夏城令) 이형륜(李炯倫)·한성령(漢城令) 이영(李濘) 등에 대해서는 종친부에서 늙고 병들어 참여하지 못했다고 써 보냈습니다만,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시종일관 불참한 것은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황제가 이미 오래 전에 칙서를 내렸는 데도 사은하는 행차를 지금까지 보내지 않고 있으므로, 중국 조정의 사람들이 우리 나라가 일이 있어 지연된 줄은 모르고 혹 의아하게 여기고들 있다 하니, 어찌 너무도 미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이극신(李克信)이 변고를 일으킨 뒤로는 사태가 전일과는 달라졌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만약 성상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친영(親迎)하기로 한다면 날짜가 자꾸만 지연될 것이니, 백관으로 하여금 급히 교외에 나아가 칙서를 맞이하게 하고, 그 이튿날 사은사를 떠나 보내도록 하소서."
하고, 신계(新啓)로 아뢰기를,
"말세(末世)의 공도(公道)는 오직 과거(科擧)에 달려 있으므로 과장에서 시취(試取)할 때에 조금이라도 미진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파방(罷榜)을 하고야 마니, 이는 과거를 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별시(別試)의 경우는 어쩌다 인원수를 정함이 없이 시취하는 때도 있습니다만, 식년시(式年試)나 증광시(增廣試)에는 원래 정해진 숫자가 있어 한 사람이라도 더 뽑거나 덜 뽑아서는 안되도록 되어 있으니, 이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바꿀 수 없는 성헌(成憲)입니다. 그런데 이번 증광 무과 초시(初試)에 입격자(入格者)가 3백여 인이었는데 이들에 대해 모두 급제(及第)의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비록 방수(防守)하는 군대를 증강시키려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이라 하더라도 요행히 벼슬을 얻는 문이 한 번 열리게 되면 뒷날의 폐단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 단지 금석(金石)과 같은 법전이 이로 말미암아 크게 무너지는 것뿐이겠습니까. 아마도 군액(軍額)이 날마다 줄어들 것은 물론이고, 활을 잡을 줄도 모르는 자들이 이 일로 말미암아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 꼭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듯하니, 속히 성명(成命)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모두 서서히 결정짓도록 하겠다.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때에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의금부가 양양(襄陽)의 죄인 김윤황(金胤黃)과 【경운궁(慶運宮)에 던져 넣은 흉격(凶檄)을 주운 자인데 바로 허균 집 여종의 남편이라고 한다.】 나주(羅州)의 죄인 진명생(陳命生)을 【흉서를 만들어 고변(告變)한 자이다.】  국문할 것과 모두 나수(拿囚)할 것을 청하였다.

 

유학 이시량(李時亮)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조 참판 유몽인(柳夢寅)이 지난번 국청에서 회동했을 때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백주(栢舟)의 비유와 노간(老奸)의 설(說)을 보면 실로 의도가 있는 것으로서 분명히 우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양사의 관원들은 사당(私黨)이 있는 줄만 알았지 전하께서 계시다는 것은 모르고 귀머거리나 소경처럼 입을 다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유몽인의 권세가 중하다 할 만하며 양사가 패거리를 옹호하는 것이 지극하다고 할 만합니다. 몽인의 백주와 노간에 대한 설을 자세히 조사하여 부도(不道)한 죄를 다스리고, 패거리를 곡진히 비호하며 즉시 신문할 것을 청하지 않은 양사의 죄를 다스리도록 하소서."
"이조 참판 유몽인(柳夢寅)이 지난번 국청에서 회동했을 때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백주(栢舟)의 비유와 노간(老奸)의 설(說)을 보면 실로 의도가 있는 것으로서 분명히 우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양사의 관원들은 사당(私黨)이 있는 줄만 알았지 전하께서 계시다는 것은 모르고 귀머거리나 소경처럼 입을 다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유몽인의 권세가 중하다 할 만하며 양사가 패거리를 옹호하는 것이 지극하다고 할 만합니다. 몽인의 백주와 노간에 대한 설을 자세히 조사하여 부도(不道)한 죄를 다스리고, 패거리를 곡진히 비호하며 즉시 신문할 것을 청하지 않은 양사의 죄를 다스리도록 하소서."

 

이조 참판 유몽인이 아뢰기를, "신이 외람되게 이조 참판의 직에 몸을 담은 지 4년 동안 세 차례나 간절하게 사직소를 올리면서 체차(遞差)되지 않으면 출사(出仕)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명을 기다려 온 지 몇 달이 지났는 데도 여전히 윤허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홀연히 투서(投書)하여 고변(告變)한 옥사(獄事)가 일어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억지로 출사하긴 하였습니다만 그저 국옥(鞫獄)이 조금 정해지거든 자처할 수 있을 테니 이렇듯 역변(逆變)이 거듭 발생하고 있는 지금은 신자(臣子)가 놀고 즐길 때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잇달아 이 국옥에 참여하면서 옥정(獄情)을 살펴보니 대단한 것은 아닌 듯하므로 신이 혼자서 통분스럽게 생각하기를 ‘이런 재앙을 어떤 자가 만들어 내어 이렇듯 1백 명이나 연루되는 옥사를 이루게 했단 말인가.’ 하였습니다. 마침 이달 4일에 신의 처사촌 정회(鄭晦)가 술병을 들고 신의 집 위 남산(南山) 기슭에서 봄경치를 즐기려고 찾아왔습니다. 신의 동네에 사는 은개(銀介)라는 소녀가 가사(歌詞)를 잘 부르기에 불러다 노래를 시켰더니, 그 아이가 처음에는 모시(毛詩) 중에서 공강(共姜)의 백주(栢舟)를 부르고 또 녹명(鹿鳴) 등 여러 편을 불렀는데, 모두 대지(大旨)를 합쳐 부른 것으로서 그날 자리에서 새로 만들어 부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들이 한창 듣고 있을 때에 하인이 달려와 추국에 참석할 시간이 임박했다고 알려 오므로, 신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처럼 좋은 시절에 어떤 도깨비 같은 자가 감히 이렇게 익명(匿名)으로 고변하여 나로 하여금 이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하고는 즉시 가마를 재촉하여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길 가는 도중에 입 속으로 절구(絶句) 한 수를 중얼거리다가 국청에 들어가서는 종이와 붓을 찾아 옮겨 썼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 안의 가득한 꽃과 버들에 봄놀이 즐기는데 미인이 잔을 놓고 백주장을 부르누나 장사가 홀연히 장검을 짚고 서서 취중에 늙은 간신의 머리 찍으려 하네. 이 작품이 취중에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 의도적으로 지은 것이겠습니까. 백주는 그 아이가 늘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 이런 시편들과 고금의 가사(歌詞)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을 모두 주인 이승형(李升亨)이 5, 6년 전부터 교습시켜 왔으니 그 책을 조사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간(老姦)이라는 말은 본래 박치의(朴致毅)를 가탁하여 변을 일으킨 자를 가리키는데 바로 안처인(安處仁) 따위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두 조목의 말에 날조할 만한 여지가 뭐가 있기에 이시량(李時亮)이 상소하여 부도(不道)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신의 죄를 다스리라고 청했단 말입니까. 신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신이 봄날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어서는 안될 자리에서 시를 지어 바깥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말썽이 나게 만들었으니 이는 모두 신이 삼가지 못해서 빚어진 일들입니다. 그리고 신이 머뭇거리기만 하면서 오래도록 사퇴하지 못하였으니, 남들의 말이 있게 된 것은 신이 참으로 초래한 것입니다. 이에 땅에 엎드려 죄를 기다릴 뿐입니다. 속히 신의 본직(本職)과 겸대(兼帶)한 직책을 해면하시어 남들의 말에 사과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경(亞卿)은 건성으로 처리할 직임이 아니고 국청은 시를 짓는 장소가 아니다. 일이 해괴하기 그지없으니 물러가 공의(公議)를 기다리라." 하였다.
"신이 외람되게 이조 참판의 직에 몸을 담은 지 4년 동안 세 차례나 간절하게 사직소를 올리면서 체차(遞差)되지 않으면 출사(出仕)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명을 기다려 온 지 몇 달이 지났는 데도 여전히 윤허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홀연히 투서(投書)하여 고변(告變)한 옥사(獄事)가 일어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억지로 출사하긴 하였습니다만 그저 국옥(鞫獄)이 조금 정해지거든 자처할 수 있을 테니 이렇듯 역변(逆變)이 거듭 발생하고 있는 지금은 신자(臣子)가 놀고 즐길 때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잇달아 이 국옥에 참여하면서 옥정(獄情)을 살펴보니 대단한 것은 아닌 듯하므로 신이 혼자서 통분스럽게 생각하기를 ‘이런 재앙을 어떤 자가 만들어 내어 이렇듯 1백 명이나 연루되는 옥사를 이루게 했단 말인가.’ 하였습니다. 마침 이달 4일에 신의 처사촌 정회(鄭晦)가 술병을 들고 신의 집 위 남산(南山) 기슭에서 봄경치를 즐기려고 찾아왔습니다. 신의 동네에 사는 은개(銀介)라는 소녀가 가사(歌詞)를 잘 부르기에 불러다 노래를 시켰더니, 그 아이가 처음에는 모시(毛詩) 중에서 공강(共姜)의 백주(栢舟)를 부르고 또 녹명(鹿鳴) 등 여러 편을 불렀는데, 모두 대지(大旨)를 합쳐 부른 것으로서 그날 자리에서 새로 만들어 부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들이 한창 듣고 있을 때에 하인이 달려와 추국에 참석할 시간이 임박했다고 알려 오므로, 신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처럼 좋은 시절에 어떤 도깨비 같은 자가 감히 이렇게 익명(匿名)으로 고변하여 나로 하여금 이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하고는 즉시 가마를 재촉하여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길 가는 도중에 입 속으로 절구(絶句) 한 수를 중얼거리다가 국청에 들어가서는 종이와 붓을 찾아 옮겨 썼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 안의 가득한 꽃과 버들에 봄놀이 즐기는데
미인이 잔을 놓고 백주장을 부르누나
장사가 홀연히 장검을 짚고 서서
취중에 늙은 간신의 머리 찍으려 하네.
이 작품이 취중에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 의도적으로 지은 것이겠습니까. 백주는 그 아이가 늘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 이런 시편들과 고금의 가사(歌詞)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을 모두 주인 이승형(李升亨)이 5, 6년 전부터 교습시켜 왔으니 그 책을 조사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간(老姦)이라는 말은 본래 박치의(朴致毅)를 가탁하여 변을 일으킨 자를 가리키는데 바로 안처인(安處仁) 따위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두 조목의 말에 날조할 만한 여지가 뭐가 있기에 이시량(李時亮)이 상소하여 부도(不道)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신의 죄를 다스리라고 청했단 말입니까. 신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신이 봄날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어서는 안될 자리에서 시를 지어 바깥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말썽이 나게 만들었으니 이는 모두 신이 삼가지 못해서 빚어진 일들입니다. 그리고 신이 머뭇거리기만 하면서 오래도록 사퇴하지 못하였으니, 남들의 말이 있게 된 것은 신이 참으로 초래한 것입니다. 이에 땅에 엎드려 죄를 기다릴 뿐입니다. 속히 신의 본직(本職)과 겸대(兼帶)한 직책을 해면하시어 남들의 말에 사과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경(亞卿)은 건성으로 처리할 직임이 아니고 국청은 시를 짓는 장소가 아니다. 일이 해괴하기 그지없으니 물러가 공의(公議)를 기다리라."
하였다.

 

전흥 부원군(全興府院君) 이시언(李時言)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경의 병세가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는 매우 위로가 되고 기쁘다. 훈부(勳府)의 작질(爵秩)은 관례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인데 미안하게 여길 것이 뭐 있는가. 대장(大將)의 직임은 가벼이 체차할 수 없다.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여 출사(出仕)하라." 하였다.
"경의 병세가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는 매우 위로가 되고 기쁘다. 훈부(勳府)의 작질(爵秩)은 관례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인데 미안하게 여길 것이 뭐 있는가. 대장(大將)의 직임은 가벼이 체차할 수 없다.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여 출사(出仕)하라."
하였다.

 

4월 9일 무술

한찬남이 아뢰기를, "금부의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 판의금 박승종(朴承宗), 지사 윤선(尹銑), 동지사 유몽인(柳夢寅)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지의금을 모두 명초(命招)하여 추국하도록 하라." 하였다.
"금부의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 판의금 박승종(朴承宗), 지사 윤선(尹銑), 동지사 유몽인(柳夢寅)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지의금을 모두 명초(命招)하여 추국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전일 국청에서 보건대, 동지사 유몽인이 술에 잔뜩 취해 와서 칠언 절구(七言絶句) 한 수를 써서 좌중에 보여 주며 말하기를 ‘오늘 동네 친구와 꽃 구경하며 노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소녀 하나가 가사(歌詞)를 부르면서 모시(毛詩)의 백주편(栢舟篇)까지 외웠는데 그 낭랑한 목소리가 들을 만하였다. 주흥(酒興)이 반쯤 무르익었는데 금부의 하리(下吏)가 와서 국청에 참석해야 한다고 독촉하기에 마침내 옷을 떨치고 일어났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익명서(匿名書)를 투고한 흉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좋은 자리를 버려 두고 국청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는 바로 분한 김에 나온 작품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좌중이 노간(老姦)은 누구를 가리킨 것이지 물어 보았는데, 몽인이 안처인(安處仁) 형제를 가리킨 것이라고 대답하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웃고 그만두었습니다. 신이 평소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시에 대해서는 ‘쇠귀에 경 읽기’와 마찬가지여서 그 시가 잘 되었는지 못되었는지와 의도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더욱 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이 어제 이시량(李時亮)의 상소를 보건대, 군신의 대의를 모른다고 배척하였기에, 신이 황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전일 국청에서 보건대, 동지사 유몽인이 술에 잔뜩 취해 와서 칠언 절구(七言絶句) 한 수를 써서 좌중에 보여 주며 말하기를 ‘오늘 동네 친구와 꽃 구경하며 노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소녀 하나가 가사(歌詞)를 부르면서 모시(毛詩)의 백주편(栢舟篇)까지 외웠는데 그 낭랑한 목소리가 들을 만하였다. 주흥(酒興)이 반쯤 무르익었는데 금부의 하리(下吏)가 와서 국청에 참석해야 한다고 독촉하기에 마침내 옷을 떨치고 일어났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익명서(匿名書)를 투고한 흉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좋은 자리를 버려 두고 국청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는 바로 분한 김에 나온 작품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좌중이 노간(老姦)은 누구를 가리킨 것이지 물어 보았는데, 몽인이 안처인(安處仁) 형제를 가리킨 것이라고 대답하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웃고 그만두었습니다. 신이 평소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시에 대해서는 ‘쇠귀에 경 읽기’와 마찬가지여서 그 시가 잘 되었는지 못되었는지와 의도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더욱 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이 어제 이시량(李時亮)의 상소를 보건대, 군신의 대의를 모른다고 배척하였기에, 신이 황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좌상·우상·판의금·지의금을 명초(命招)했더니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고 지의금 윤선(尹銑)은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그대로 추국하도록 하라." 하였다.
"좌상·우상·판의금·지의금을 명초(命招)했더니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고 지의금 윤선(尹銑)은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추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그대로 추국하도록 하라."
하였다.

 

대사헌 남근이 아뢰기를, "전일 국청의 모임에 동지사 유몽인이 술에 취하여 맨 마지막에 도착하더니,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급히 하리(下吏)를 불러 말하기를 ‘지어 둔 시구(詩句)를 쓰려고 하니 종이와 붓을 찾아 오라.’고 하기에 신이 바로 정색하면서 ‘이곳은 음풍 농월(吟風弄月)하는 곳이 아니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몽인이 자리를 떠나 잠시 물러가더니 칠언 절구(七言絶句) 두 장을 크게 써서, 하나는 남산(南山)의 집회소에 보내고 하나는 좌중에 돌려 보였는데, 거기에 과연 백주(栢舟)·노간(老姦)이라는 4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좌중의 사람들이 일제히 묻기를 ‘노간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였더니 안처인 형제라고 대답하였고, 백주에 대해서는 어린 애가 잘 부르더라고 스스로 말하기에 그냥 보아 넘기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시량(李時亮)의 상소를 보건대 신들이 군신(君臣)의 대의를 모른다고 배척하였고, 나아가 양사가 패거리를 옹호하고 있다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신은 실로 그 의도를 모르겠습니다만, 공무를 집행하는 청사에서 희롱한 죄를 그때 바로 규핵(糾劾)하지 못한 것은 신이 또한 크게 잘못한 것이니, 그대로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속히 신의 직을 파척(罷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일 국청의 모임에 동지사 유몽인이 술에 취하여 맨 마지막에 도착하더니,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급히 하리(下吏)를 불러 말하기를 ‘지어 둔 시구(詩句)를 쓰려고 하니 종이와 붓을 찾아 오라.’고 하기에 신이 바로 정색하면서 ‘이곳은 음풍 농월(吟風弄月)하는 곳이 아니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몽인이 자리를 떠나 잠시 물러가더니 칠언 절구(七言絶句) 두 장을 크게 써서, 하나는 남산(南山)의 집회소에 보내고 하나는 좌중에 돌려 보였는데, 거기에 과연 백주(栢舟)·노간(老姦)이라는 4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좌중의 사람들이 일제히 묻기를 ‘노간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였더니 안처인 형제라고 대답하였고, 백주에 대해서는 어린 애가 잘 부르더라고 스스로 말하기에 그냥 보아 넘기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시량(李時亮)의 상소를 보건대 신들이 군신(君臣)의 대의를 모른다고 배척하였고, 나아가 양사가 패거리를 옹호하고 있다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신은 실로 그 의도를 모르겠습니다만, 공무를 집행하는 청사에서 희롱한 죄를 그때 바로 규핵(糾劾)하지 못한 것은 신이 또한 크게 잘못한 것이니, 그대로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속히 신의 직을 파척(罷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을 봉안하는 일은 9월 초승으로 다시 날짜를 잡아 부표하라."
"영정(影幀)을 봉안하는 일은 9월 초승으로 다시 날짜를 잡아 부표하라."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에서, 의원(醫員)과 침의(鍼醫)가 도감에 대기하고 있지 않은 탓으로 장역(匠役)들 가운데 병이 중한 사람을 구료(救療)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모두 추고하고, 지금 이후로는 두 궁궐에 모두 의원 및 침의를 배정한 뒤, 자리를 떠나지 말고 간병(看病)하며 구료케 하라고 도감과 해사(該司)에 이르라."
"영건 도감에서, 의원(醫員)과 침의(鍼醫)가 도감에 대기하고 있지 않은 탓으로 장역(匠役)들 가운데 병이 중한 사람을 구료(救療)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모두 추고하고, 지금 이후로는 두 궁궐에 모두 의원 및 침의를 배정한 뒤, 자리를 떠나지 말고 간병(看病)하며 구료케 하라고 도감과 해사(該司)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인경궁(仁慶宮)의 정문(正門)은 돈화문(敦化門)의 예에 따라 층문(層門)으로 조성하고, 경덕궁(慶德宮)은 그저 잠시 피해 거처하는 곳일 뿐이니 단층문으로 알아서 조성하도록 하라. 그리고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일은 곧바로 급히 처치했어야 마땅한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결정하지 않았는가. 속히 의논해 처치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인경궁(仁慶宮)의 정문(正門)은 돈화문(敦化門)의 예에 따라 층문(層門)으로 조성하고, 경덕궁(慶德宮)은 그저 잠시 피해 거처하는 곳일 뿐이니 단층문으로 알아서 조성하도록 하라. 그리고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일은 곧바로 급히 처치했어야 마땅한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결정하지 않았는가. 속히 의논해 처치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이시량(李時亮)의 상소로 인하여 전교하기를, "이 상소를 국청에 내려 대신과 의논해서 처리토록 하되 판의금에게도 아울러 문의한 뒤 아뢰라." 하였다. 【이때 무고(誣告)로 인한 옥사(獄事)와 익명서(匿名書)로 인한 옥사가 4개월 간격으로 발생해 국청을 오래도록 설치하였는데, 연루자가 1백여 인씩이나 되었으며 대신이 출사(出仕)하지 않고 추관(推官)이 구비되지 않아도 날마다 신문을 벌였으므로, 유몽인처럼 혼망(昏妄)한 사람도 분개하여 술 취한 김에 시를 지은 것이었다. 그런데 김개(金闓)와 윤인(尹訒)의 무리가 인사권(人事權)을 뺏을 목적으로 무뢰배인 이시량(李時亮)을 사주하여 상소해서 공격하게 한 것이었다.】
"이 상소를 국청에 내려 대신과 의논해서 처리토록 하되 판의금에게도 아울러 문의한 뒤 아뢰라."
하였다. 【이때 무고(誣告)로 인한 옥사(獄事)와 익명서(匿名書)로 인한 옥사가 4개월 간격으로 발생해 국청을 오래도록 설치하였는데, 연루자가 1백여 인씩이나 되었으며 대신이 출사(出仕)하지 않고 추관(推官)이 구비되지 않아도 날마다 신문을 벌였으므로, 유몽인처럼 혼망(昏妄)한 사람도 분개하여 술 취한 김에 시를 지은 것이었다. 그런데 김개(金闓)와 윤인(尹訒)의 무리가 인사권(人事權)을 뺏을 목적으로 무뢰배인 이시량(李時亮)을 사주하여 상소해서 공격하게 한 것이었다.】

 

전교하였다. "유몽인은 현재 의논해 처리토록 하는 중에 있으니 동지의금에서 체차시키고 그 후임자를 속히 차출하라. 그리고 고변(告變)한 진명생(陳命生) 등이 이미 오래 전에 들어왔으니, 인원이 차지 않더라도 속히 먼저 공초(供招)를 받아 아뢰도록 하라."
"유몽인은 현재 의논해 처리토록 하는 중에 있으니 동지의금에서 체차시키고 그 후임자를 속히 차출하라. 그리고 고변(告變)한 진명생(陳命生) 등이 이미 오래 전에 들어왔으니, 인원이 차지 않더라도 속히 먼저 공초(供招)를 받아 아뢰도록 하라."

 

4월 10일 기해

비밀 전교를 내렸다. "사은 문서(謝恩文書)를 마련할 때 예부(禮部)에 보내는 자문(咨文) 중에 곧장 ‘당직(當職)이 마침 병을 앓고 있는 데다 차출한 사신마저 병으로 교체된 바람에 사은하는 일이 지체되었으니 삼가 황공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을 설명해야 할 것이니, 말을 잘 만들어 첨가해 들이는 일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질병은 사람들 모두 면하기 어려우니 곧이곧대로 개진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시 더 살펴서 하라."
"사은 문서(謝恩文書)를 마련할 때 예부(禮部)에 보내는 자문(咨文) 중에 곧장 ‘당직(當職)이 마침 병을 앓고 있는 데다 차출한 사신마저 병으로 교체된 바람에 사은하는 일이 지체되었으니 삼가 황공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을 설명해야 할 것이니, 말을 잘 만들어 첨가해 들이는 일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질병은 사람들 모두 면하기 어려우니 곧이곧대로 개진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시 더 살펴서 하라."

 

전교하였다. "성절사와 천추사를 이제야 차출했으니 노비(路費) 등 물품이 필시 많이 전도되어 제때에 미치지 못할 걱정이 있을 것이다. 해조로 하여금 급히 재촉하여 지급케 하라."
"성절사와 천추사를 이제야 차출했으니 노비(路費) 등 물품이 필시 많이 전도되어 제때에 미치지 못할 걱정이 있을 것이다. 해조로 하여금 급히 재촉하여 지급케 하라."

 

전교하였다. "인경궁에 파묻은 뼈가 매우 많다고 한다. 별도로 감역관(監役官)을 정해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서 파내게 하고 승려들을 배정해 보내어 정결한 곳에 묻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인경궁에 파묻은 뼈가 매우 많다고 한다. 별도로 감역관(監役官)을 정해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서 파내게 하고 승려들을 배정해 보내어 정결한 곳에 묻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경덕궁(慶德宮)의 사랑(舍廊)을 잘 수리해서 소대(召對)하고 야대(夜對)할 때의 청사(廳舍)로 쓰게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경덕궁(慶德宮)의 사랑(舍廊)을 잘 수리해서 소대(召對)하고 야대(夜對)할 때의 청사(廳舍)로 쓰게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한찬남이 아뢰기를, "대신이 오지 않았고 금부 당상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추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대로 추국하도록 하라." 하였다.
"대신이 오지 않았고 금부 당상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추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대로 추국하도록 하라."
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역옥(逆獄)을 추국하는 일은 사체(事體)가 지극히 중하니 반드시 대신이 와서 참여해야만 국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일 대신과 판부사에게 모두 탈이 생겼는데, 수인(囚人)들이 많이 적체되는 것을 상께서 염려하시어 신 등으로 하여금 파격적으로 추국케 하셨습니다. 신들도 반드시 뒤폐단이 있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외람되게 엄명을 받들어 아무 말없이 국청에 참여해 온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지사(同知事) 한 사람의 자리가 또 비면서 선(銑)과 수민(壽民)만이 남아 인원을 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얼마나 중요한 옥사를 신문하고 있는데 줄곧 이런 식으로 구차하게 한단 말입니까. 신들이 이모저모로 생각해 보건대 지극히 미안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러한 때에 어찌 상규(常規)에 구애받아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원정(元情)만 받는 일이니 더욱 더 그만두어서는 안될 듯하다. 안심하고 공초(供招)를 받아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역옥(逆獄)을 추국하는 일은 사체(事體)가 지극히 중하니 반드시 대신이 와서 참여해야만 국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일 대신과 판부사에게 모두 탈이 생겼는데, 수인(囚人)들이 많이 적체되는 것을 상께서 염려하시어 신 등으로 하여금 파격적으로 추국케 하셨습니다. 신들도 반드시 뒤폐단이 있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외람되게 엄명을 받들어 아무 말없이 국청에 참여해 온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지사(同知事) 한 사람의 자리가 또 비면서 선(銑)과 수민(壽民)만이 남아 인원을 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얼마나 중요한 옥사를 신문하고 있는데 줄곧 이런 식으로 구차하게 한단 말입니까. 신들이 이모저모로 생각해 보건대 지극히 미안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러한 때에 어찌 상규(常規)에 구애받아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원정(元情)만 받는 일이니 더욱 더 그만두어서는 안될 듯하다. 안심하고 공초(供招)를 받아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추국청이 아뢰기를, "민승룡(閔承龍)·허홍소(許弘小)·원복개(元福介)·이명식(李明識)·엄의산(嚴義山)·엄의남(嚴義男)·이우필(李禹弼)·이삼익(李三益)·전계남(全繼男)·이사인(李思認)·이사규(李思圭)·박명부(朴明扶)·정홍서(鄭弘緖)·박순명(朴順命)·박환(朴煥)·유신갑(劉信甲)·박명계(朴明桂)·박식(朴識)·박명원(朴明遠)·박광원(朴光元)·권극신(權克信)·돌개[石乙介] 등의 공초(供招)는 이러하고 추가로 받은 조신(趙信)·조옥건(趙玉乾)·안처인(安處仁)·안후인(安厚仁)의 공초는 이러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조옥건과 조신의 대질 신문을 벌이도록 하라." 하였다.
"민승룡(閔承龍)·허홍소(許弘小)·원복개(元福介)·이명식(李明識)·엄의산(嚴義山)·엄의남(嚴義男)·이우필(李禹弼)·이삼익(李三益)·전계남(全繼男)·이사인(李思認)·이사규(李思圭)·박명부(朴明扶)·정홍서(鄭弘緖)·박순명(朴順命)·박환(朴煥)·유신갑(劉信甲)·박명계(朴明桂)·박식(朴識)·박명원(朴明遠)·박광원(朴光元)·권극신(權克信)·돌개[石乙介] 등의 공초(供招)는 이러하고 추가로 받은 조신(趙信)·조옥건(趙玉乾)·안처인(安處仁)·안후인(安厚仁)의 공초는 이러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조옥건과 조신의 대질 신문을 벌이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호남(湖南)의 죄인들은 원정(元情)을 이미 모두 받았으니 속히 의논해 처리하되 대신과 판의금 모두 집에서 의논드리도록 하라. 그리고 죄인들 중에 나이가 8, 90인 자는 모두 우선 보방(保放)토록 하라."
"호남(湖南)의 죄인들은 원정(元情)을 이미 모두 받았으니 속히 의논해 처리하되 대신과 판의금 모두 집에서 의논드리도록 하라. 그리고 죄인들 중에 나이가 8, 90인 자는 모두 우선 보방(保放)토록 하라."

 

죄인 조신(趙信) 등을 보방하는 것으로 승전(承傳)을 받들자, 전교하기를, "조신을 대질 신문키로 했으니 어떻게 승전을 받들 수 있는가."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죄인들 중에 나이가 8, 90인 자는 모두 보방하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승전을 받들었습니다만, 방금 대질 신문하는 일로 조신도 궐내로 올려 보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호남 죄인들 중에 나이가 7, 8, 90인 자는 모두 우선 보방하되 조신은 그대로 수금토록 하라." 하였다.
"조신을 대질 신문키로 했으니 어떻게 승전을 받들 수 있는가."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죄인들 중에 나이가 8, 90인 자는 모두 보방하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승전을 받들었습니다만, 방금 대질 신문하는 일로 조신도 궐내로 올려 보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호남 죄인들 중에 나이가 7, 8, 90인 자는 모두 우선 보방하되 조신은 그대로 수금토록 하라."
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이 아뢰기를, "이조 참판 유몽인은 파직하고 서용(敘用)치 못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알아서 의논해 처리토록 할 것이니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이조 참판 유몽인은 파직하고 서용(敘用)치 못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알아서 의논해 처리토록 할 것이니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두 궁궐 공사를 지난해에 시작하였는데 신들이 이 일을 맡고 보니 미혹되기만 할 뿐 이렇게까지 공사 규모가 엄청나고 마무리가 어렵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요즘 듣건대 원근(遠近)의 백성들이 한꺼번에 소란스러워지면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상실한 채 혹 중외(中外)로 떠도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모두들 신들이 한 번도 건의하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다 하니, 신들이 두렵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백성에게 피해를 끼칠까 깊이 염려되어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다고 분부하셨습니다. 이를 듣고 보는 이들로서 그 누가 감격스럽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참작해서 줄이도록 일단 상께서 명을 내리셨으니 신들은 진실로 이를 받들어 주선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렇지마는 나라에서 공사를 벌일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백성의 힘을 의지해서 마련해야 하는데 공사의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드는 비용 역시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궁궐을 세우는 것은 실로 전에 없던 큰 공사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백성들의 힘을 가지고 감당케 하는 것은 마치 난장이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고 정위(精衛)에게 바다를 메우게 하는 것055)  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지금 조금이라도 변통하여 의논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선 한 곳이라도 공사를 중지하지 않고 한결같이 양쪽 모두 일제히 거행하여 공사가 끝난 뒤에나 그만두면서 백성의 힘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공사를 시작한 뒤로 이미 사용한 면포(綿布)가 3천 2백 40여 동(同)이고 미곡이 3만 4천 4백여 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달에 쓰는 면포가 수백 동이고 지급해 주는 양곡의 수량이 5천여 섬을 밑돌지 않아 두 달이면 1만 섬이 됩니다. 이렇게 헤아려 보건대 앞으로의 공사에 미곡 6, 7만 섬과 면포 수천 동을 쓰지 않으면 결코 이 일을 끝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총섭(摠攝)을 개차(改差)하라는 계사(啓辭)로 인하여 ‘시험삼아 몇 년 동안 시켜 보라.’고 명을 내리셨고 또 ‘장차 법궁(法宮)을 경영하려 한다.’는 분부를 내리셨으니 이를 합산할 경우 공사를 끝낼 기약이 어찌 몇 년 정도로 그치고 말겠습니까. 그렇다면 또 앞으로 미곡 10만 섬과 면포 수천 동을 더 마련해야만 용도를 잇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10만 섬의 양곡과 수천 동의 면포를 가지고 토목 공사 비용으로 충당시킨 때가 언제 있기나 했었습니까. 천하의 물력(物力)을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이 큰 공사 비용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개 새로 창건하는 공사는 중수(重修)하는 것에 비해 공력이 몇 배나 더 들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 재목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서 물과 가까운 곳은 남김없이 벌목하였습니다. 돌 공사는 더욱 힘이 드는데 땅을 고르고 주춧돌을 놓으며 첨폐(簷陛)로 쓰는 것 외에 중사(重戺)와 층체(層砌)에 들어가는 돌도 한이 없으며 기다란 언덕이나 벼랑 같은 곳은 다듬은 돌을 입혀야 하니 공력이 백 배는 더 들어갑니다. 궁궐 면적이 너무 넓고 전당(殿堂)이 너무 많은 탓으로 재목과 돌을 운반하는 일이 거리를 메우고 골목에 흘러 넘치는데, 각소(各所)에 배정해 들여 보내는 것은 언제 끝날지 까마득합니다. 그리고 청기와에 드는 비용 역시 이루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만약 2백 눌(訥)을 만든다면 3만 근(斤)의 염초(焰硝)를 써야 되는데 다른 물건도 이에 비례합니다. 지금 공사에 동원된 각종 군장(軍匠)들이 도합 5천 8백여 명이고 아직 올라오지 않은 인원도 많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양식이 들어가는 것은 원래 당연한 일입니다. 또 단확(丹艧)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중국의 물감을 무역해 오는 값으로 미곡과 은냥(銀兩)이 모두 천(千) 이상인데 앞으로 또 단확을 가하는 규정에는 박채(薄彩)만 써서 묽게 그리는 경우도 있고 완전히 진채(眞彩)를 써서 칠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창경궁(昌慶宮)의 채색이 창덕궁(昌德宮) 보다 훨씬 낫다고 하는데, 이번에 새로 짓는 전당(殿堂)에 쓰는 채색은 또 창경궁에 비할 바가 아니니, 앞으로 단확을 가해야 할 그 많은 곳들을 일체 이런 식으로 할 경우, 거기에 드는 물감이 한이 없을 텐데 그 값을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상께서는 필시 ‘이미 2결(結)의 목면(木綿)을 거두기로 했고, 또 외방에서 공사를 돕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요포(料布)도 많으니, 재정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리고 두 궁궐 공사를 함께 진행한다 하더라도 빨리 끝내기만 하면 민력(民力)에 무슨 해가 되겠는가. 불행히 요사스러운 변고가 일어나 이어(移御)하는 일이 급해졌기 때문에 이렇듯 부득이한 거조를 하는 것이니, 일반적으로 상례(常例)를 가지고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신들도 어찌 성상의 의도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백성들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공사(公私)간에 저축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모두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피와 땀에서 나오는 것인데, 조그마한 우리 나라에서 이토록 엄청난 비용을 내놓도록 한다면 백성이 어찌 곤궁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재물이 어찌 고갈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춥거나 덥기만 해도 백성들은 원망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렇듯 난리를 겪은 끝이라서 큰 고달픔이 가시기도 전인데, 공사간에 물력(物力)이 고갈된 상태에서 전에 볼 수 없던 공사를 일으키고 있으니, 백성을 돌보는 정사를 어찌 병행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예컨대 도감에서 쓰는 잡물(雜物)의 수목(數目)도 엄청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각읍(各邑)에 배정하고 있는데, 중간에서 이익을 독점하며 방납(防納)하는 폐단이 없지 않아 백성들이 배나 재물을 내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도감에서 매번 본색(本色)으로 납부하라고 신칙하며 누누이 주지시키고 있습니다만 간사한 자들의 행위를 금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줄이자니 모두가 큰 공사에 필요한 것으로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들이니 신들이 달리 참작하여 선처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 해도 그 행할 방도가 없으니, 오직 원하건대 성상께서 빠짐없이 헤아리시어 앞으로 결말을 지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미리 조용히 살펴보신 뒤, 조속히 대책을 강구해 주시면 그런 다행이 없겠습니다. 충(沖)·만(晩)·관(瓘) 등은 모두 미포(米布)를 담당하는 제조(提調)로서 가장 긴요한 일을 맡고 있는데 일을 마칠 기약이 까마득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금방이라도 망쳐져 후회막급하게 될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던 차에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고서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진달하여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내가 아무리 좋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런 때에 법궁을 어떻게 함부로 지을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의 기강이 완전히 없어져 각도(各道)에 정해진 금산(禁山)의 재목마저 거의 다 베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앞으로 법궁을 경영할 일이 있으므로 단지 벌목을 금지하고 재목을 기르도록 명한 것일 뿐인데 아뢴 뜻이 지나치다. 청기와의 경우도 어찌 꼭 1년에 2백 눌을 다 만들어야 하겠는가. 10여 년을 기한으로 잡으면 편의에 따라 알아서 구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비록 법궁이라 하더라도 어찌 모두 청기와로 덮을 수 있겠는가. 청기와를 쓸 전각(殿閣)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창경궁의 채색이 창덕궁의 그것보다 더한 것이 뭐 있는가.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위에서 가감(加減)할 바를 알지 못하겠지만 진채(眞彩)를 어찌 곳곳마다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대개 두 궁궐의 공사는 실로 부득이해서 시작한 것이니 일단 착공한 이상 편의에 따라 잘 만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찌 앞으로 연한이 정해지지도 않은 법궁 경영하는 일을 헤아려서 시급한 공사를 그만두어서야 되겠는가. 오직 장인과 역군들을 감독하여 세월만 보내지 말고 속히 공사를 끝내도록 하라." 하였다.


[註 055] 정위(精衛)에게 바다를 메우게 하는 것 :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임. 여름을 맡았다는 신(神)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東海)에 빠져 죽어 정위라는 새가 된 뒤, 늘 서산(西山)에서 나무와 돌을 물어다 동해에 빠뜨리면서 바다를 메우려 했다는 전설이 있음. 《산해경(山海經)》 북산경(北山經).
"두 궁궐 공사를 지난해에 시작하였는데 신들이 이 일을 맡고 보니 미혹되기만 할 뿐 이렇게까지 공사 규모가 엄청나고 마무리가 어렵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요즘 듣건대 원근(遠近)의 백성들이 한꺼번에 소란스러워지면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상실한 채 혹 중외(中外)로 떠도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모두들 신들이 한 번도 건의하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다 하니, 신들이 두렵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백성에게 피해를 끼칠까 깊이 염려되어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다고 분부하셨습니다. 이를 듣고 보는 이들로서 그 누가 감격스럽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참작해서 줄이도록 일단 상께서 명을 내리셨으니 신들은 진실로 이를 받들어 주선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렇지마는 나라에서 공사를 벌일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백성의 힘을 의지해서 마련해야 하는데 공사의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드는 비용 역시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궁궐을 세우는 것은 실로 전에 없던 큰 공사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백성들의 힘을 가지고 감당케 하는 것은 마치 난장이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고 정위(精衛)에게 바다를 메우게 하는 것055)  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지금 조금이라도 변통하여 의논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선 한 곳이라도 공사를 중지하지 않고 한결같이 양쪽 모두 일제히 거행하여 공사가 끝난 뒤에나 그만두면서 백성의 힘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공사를 시작한 뒤로 이미 사용한 면포(綿布)가 3천 2백 40여 동(同)이고 미곡이 3만 4천 4백여 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달에 쓰는 면포가 수백 동이고 지급해 주는 양곡의 수량이 5천여 섬을 밑돌지 않아 두 달이면 1만 섬이 됩니다. 이렇게 헤아려 보건대 앞으로의 공사에 미곡 6, 7만 섬과 면포 수천 동을 쓰지 않으면 결코 이 일을 끝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총섭(摠攝)을 개차(改差)하라는 계사(啓辭)로 인하여 ‘시험삼아 몇 년 동안 시켜 보라.’고 명을 내리셨고 또 ‘장차 법궁(法宮)을 경영하려 한다.’는 분부를 내리셨으니 이를 합산할 경우 공사를 끝낼 기약이 어찌 몇 년 정도로 그치고 말겠습니까. 그렇다면 또 앞으로 미곡 10만 섬과 면포 수천 동을 더 마련해야만 용도를 잇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10만 섬의 양곡과 수천 동의 면포를 가지고 토목 공사 비용으로 충당시킨 때가 언제 있기나 했었습니까. 천하의 물력(物力)을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이 큰 공사 비용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개 새로 창건하는 공사는 중수(重修)하는 것에 비해 공력이 몇 배나 더 들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 재목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서 물과 가까운 곳은 남김없이 벌목하였습니다. 돌 공사는 더욱 힘이 드는데 땅을 고르고 주춧돌을 놓으며 첨폐(簷陛)로 쓰는 것 외에 중사(重戺)와 층체(層砌)에 들어가는 돌도 한이 없으며 기다란 언덕이나 벼랑 같은 곳은 다듬은 돌을 입혀야 하니 공력이 백 배는 더 들어갑니다. 궁궐 면적이 너무 넓고 전당(殿堂)이 너무 많은 탓으로 재목과 돌을 운반하는 일이 거리를 메우고 골목에 흘러 넘치는데, 각소(各所)에 배정해 들여 보내는 것은 언제 끝날지 까마득합니다.
그리고 청기와에 드는 비용 역시 이루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만약 2백 눌(訥)을 만든다면 3만 근(斤)의 염초(焰硝)를 써야 되는데 다른 물건도 이에 비례합니다. 지금 공사에 동원된 각종 군장(軍匠)들이 도합 5천 8백여 명이고 아직 올라오지 않은 인원도 많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양식이 들어가는 것은 원래 당연한 일입니다.
또 단확(丹艧)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중국의 물감을 무역해 오는 값으로 미곡과 은냥(銀兩)이 모두 천(千) 이상인데 앞으로 또 단확을 가하는 규정에는 박채(薄彩)만 써서 묽게 그리는 경우도 있고 완전히 진채(眞彩)를 써서 칠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창경궁(昌慶宮)의 채색이 창덕궁(昌德宮) 보다 훨씬 낫다고 하는데, 이번에 새로 짓는 전당(殿堂)에 쓰는 채색은 또 창경궁에 비할 바가 아니니, 앞으로 단확을 가해야 할 그 많은 곳들을 일체 이런 식으로 할 경우, 거기에 드는 물감이 한이 없을 텐데 그 값을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상께서는 필시 ‘이미 2결(結)의 목면(木綿)을 거두기로 했고, 또 외방에서 공사를 돕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요포(料布)도 많으니, 재정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리고 두 궁궐 공사를 함께 진행한다 하더라도 빨리 끝내기만 하면 민력(民力)에 무슨 해가 되겠는가. 불행히 요사스러운 변고가 일어나 이어(移御)하는 일이 급해졌기 때문에 이렇듯 부득이한 거조를 하는 것이니, 일반적으로 상례(常例)를 가지고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신들도 어찌 성상의 의도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백성들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공사(公私)간에 저축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모두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피와 땀에서 나오는 것인데, 조그마한 우리 나라에서 이토록 엄청난 비용을 내놓도록 한다면 백성이 어찌 곤궁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재물이 어찌 고갈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춥거나 덥기만 해도 백성들은 원망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렇듯 난리를 겪은 끝이라서 큰 고달픔이 가시기도 전인데, 공사간에 물력(物力)이 고갈된 상태에서 전에 볼 수 없던 공사를 일으키고 있으니, 백성을 돌보는 정사를 어찌 병행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예컨대 도감에서 쓰는 잡물(雜物)의 수목(數目)도 엄청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각읍(各邑)에 배정하고 있는데, 중간에서 이익을 독점하며 방납(防納)하는 폐단이 없지 않아 백성들이 배나 재물을 내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도감에서 매번 본색(本色)으로 납부하라고 신칙하며 누누이 주지시키고 있습니다만 간사한 자들의 행위를 금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줄이자니 모두가 큰 공사에 필요한 것으로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들이니 신들이 달리 참작하여 선처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 해도 그 행할 방도가 없으니, 오직 원하건대 성상께서 빠짐없이 헤아리시어 앞으로 결말을 지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미리 조용히 살펴보신 뒤, 조속히 대책을 강구해 주시면 그런 다행이 없겠습니다. 충(沖)·만(晩)·관(瓘) 등은 모두 미포(米布)를 담당하는 제조(提調)로서 가장 긴요한 일을 맡고 있는데 일을 마칠 기약이 까마득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금방이라도 망쳐져 후회막급하게 될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던 차에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고서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진달하여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내가 아무리 좋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런 때에 법궁을 어떻게 함부로 지을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의 기강이 완전히 없어져 각도(各道)에 정해진 금산(禁山)의 재목마저 거의 다 베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앞으로 법궁을 경영할 일이 있으므로 단지 벌목을 금지하고 재목을 기르도록 명한 것일 뿐인데 아뢴 뜻이 지나치다.
청기와의 경우도 어찌 꼭 1년에 2백 눌을 다 만들어야 하겠는가. 10여 년을 기한으로 잡으면 편의에 따라 알아서 구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비록 법궁이라 하더라도 어찌 모두 청기와로 덮을 수 있겠는가. 청기와를 쓸 전각(殿閣)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창경궁의 채색이 창덕궁의 그것보다 더한 것이 뭐 있는가.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위에서 가감(加減)할 바를 알지 못하겠지만 진채(眞彩)를 어찌 곳곳마다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대개 두 궁궐의 공사는 실로 부득이해서 시작한 것이니 일단 착공한 이상 편의에 따라 잘 만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찌 앞으로 연한이 정해지지도 않은 법궁 경영하는 일을 헤아려서 시급한 공사를 그만두어서야 되겠는가. 오직 장인과 역군들을 감독하여 세월만 보내지 말고 속히 공사를 끝내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서쪽에서 암석을 떼어 내는 공사를 정월 11일에 시작했는데 이제는 채석하여 실어다 쓰고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서쪽에서 암석을 떼어내는 공사를 정월에 시작했다면 어찌하여 계속 실어 들이지 않았는가. 다시 더 감독하여 속히 실어 들여 쓰도록 하라." 하였다.
"서쪽에서 암석을 떼어 내는 공사를 정월 11일에 시작했는데 이제는 채석하여 실어다 쓰고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서쪽에서 암석을 떼어내는 공사를 정월에 시작했다면 어찌하여 계속 실어 들이지 않았는가. 다시 더 감독하여 속히 실어 들여 쓰도록 하라."
하였다.

 

좌·우 포도청이 아뢰기를, "명을 내리신 죄인 포수(罪人砲手)를 염탐하여 체포하였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심계생(沈繼生)도 아울러 속히 체포하라. 그리고 이 적이 수진궁(壽進宮)에서 훔친 물건들을 감춘 곳과 한 패거리와 동생이 있는 곳을 모두 일일이 상세하게 엄히 국문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명을 내리신 죄인 포수(罪人砲手)를 염탐하여 체포하였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심계생(沈繼生)도 아울러 속히 체포하라. 그리고 이 적이 수진궁(壽進宮)에서 훔친 물건들을 감춘 곳과 한 패거리와 동생이 있는 곳을 모두 일일이 상세하게 엄히 국문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정을 봉안하는 일은 9월 초승으로 날짜를 다시 택하여 부표하라."
"영정을 봉안하는 일은 9월 초승으로 날짜를 다시 택하여 부표하라."

 

판의금 박승종(朴承宗)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나라에 몸 바치려는 피 끓는 정성을 충분히 알았다. 지금 인심이 오락가락 하면서 그저 명예나 얻어 볼까 하다가 역적을 놓아 주고 임금을 등지는 결과로 스스로 빠져드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슬픈 일이다. 멋대로 떠들어대는 이야기는 한 번 웃음거리도 되지 못하니 경은 그저 귀에 지나가는 모기 소리 정도로만 여기고서 안심하고 속히 나와서 엄하고 분명하게 역옥(逆獄)을 추국함으로써 국난이 진정되도록 하고 사직서는 올리지 말라. 나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다." 하였다. 【이 때 유몽인(柳夢寅)의 시에 나오는 노간(老姦)은 박승종을 가리켜 배척한 것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상차하여 사직한 것이었다.】
"차자를 보고 나라에 몸 바치려는 피 끓는 정성을 충분히 알았다. 지금 인심이 오락가락 하면서 그저 명예나 얻어 볼까 하다가 역적을 놓아 주고 임금을 등지는 결과로 스스로 빠져드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슬픈 일이다. 멋대로 떠들어대는 이야기는 한 번 웃음거리도 되지 못하니 경은 그저 귀에 지나가는 모기 소리 정도로만 여기고서 안심하고 속히 나와서 엄하고 분명하게 역옥(逆獄)을 추국함으로써 국난이 진정되도록 하고 사직서는 올리지 말라. 나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겠다."
하였다. 【이 때 유몽인(柳夢寅)의 시에 나오는 노간(老姦)은 박승종을 가리켜 배척한 것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상차하여 사직한 것이었다.】

 

4월 11일 경자

전교하였다. "한신민(韓信民)이 돌을 바친 적이 있는데 아직 논상(論賞)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얼마나 돌을 바쳤는지 아울러 상세히 살펴서 아뢰라고 도감에 이르라."
"한신민(韓信民)이 돌을 바친 적이 있는데 아직 논상(論賞)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얼마나 돌을 바쳤는지 아울러 상세히 살펴서 아뢰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지난해 이래 각 궁궐에 행차한 숫자 및 중국 채색(彩色)을 무역한 숫자를 모두 일일이 상세하게 서계(書啓)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지난해 이래 각 궁궐에 행차한 숫자 및 중국 채색(彩色)을 무역한 숫자를 모두 일일이 상세하게 서계(書啓)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호남의 죄인에 관한 일과 유몽인의 일에 대해서 왜 대신과 판의금에게 의논하여 아뢰지 않는가. 조옥건(趙玉乾)과 진명생(陳命生) 등의 일에 대해서도 모두 의논해 아뢰도록 하고, 의논해 아뢴 일은 모두 대신과 판의금에게 일일이 자세히 문의한 다음 아뢰도록 하라. 오늘 죄인은 우선 궐내로 올려 보내지 말고 의논해 아뢰기만 하라."
"호남의 죄인에 관한 일과 유몽인의 일에 대해서 왜 대신과 판의금에게 의논하여 아뢰지 않는가. 조옥건(趙玉乾)과 진명생(陳命生) 등의 일에 대해서도 모두 의논해 아뢰도록 하고, 의논해 아뢴 일은 모두 대신과 판의금에게 일일이 자세히 문의한 다음 아뢰도록 하라. 오늘 죄인은 우선 궐내로 올려 보내지 말고 의논해 아뢰기만 하라."

 

양사가 합계하기를, "지난번에 평안 병사(平安兵使) 성우길(成佑吉)의 아들과 사위가 자기 아비의 군관들을 다수 이끌고 창주(昌洲) 지역에 모여 사냥하다가, 그 길로 중국의 경계로 말을 달려 들어갔는데 중국인들에게 발각되자 탈출해 도망쳐 왔습니다. 구 유격(丘遊擊)이 이 말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의주 부윤(義州府尹)에게 첩문(牒文)을 보내기를 ‘그대 나라 서관 총병(西關摠兵)의 아들과 사위가 군병을 많이 이끌고 우리 경내로 몰래 들어와 산천과 도로의 형세를 염탐하고 갔는데, 이는 번방(藩邦)에서 예전에 일찍이 없던 일이다. 우길의 아들과 사위를 모두 잡아 보내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이에 이극신(李克信)은 이미 체직되었다고 말하면서 덮어둔 채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았고, 성우길은 일이 드러나 숨기기 어려움을 스스로 알고 삼(蔘)과 은(銀)을 많이 마련해 보냄으로써 겨우 그 사건을 무마하였는데, 진강(鎭江) 사람 치고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극신이 변을 만들어 낸 뒤로 사은사(謝恩使)를 지금까지 보내지 않고 있으므로 중국인들이 바야흐로 의아하게 생각해 왔는데 이번 일로 더욱 괴이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유격이야 이미 성우길에게서 뇌물을 받았으니 다른 말이 없을 듯합니다만, 만약 변무(辨誣)하는 일을 행할 경우에는 그 많은 중국인들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리라고 보장하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되면 이보다 더 큰 국가의 불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우길을 우선 잡아다 국문하여 중국에 말썽을 일으킨 죄를 바로잡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답하였다.
"지난번에 평안 병사(平安兵使) 성우길(成佑吉)의 아들과 사위가 자기 아비의 군관들을 다수 이끌고 창주(昌洲) 지역에 모여 사냥하다가, 그 길로 중국의 경계로 말을 달려 들어갔는데 중국인들에게 발각되자 탈출해 도망쳐 왔습니다. 구 유격(丘遊擊)이 이 말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의주 부윤(義州府尹)에게 첩문(牒文)을 보내기를 ‘그대 나라 서관 총병(西關摠兵)의 아들과 사위가 군병을 많이 이끌고 우리 경내로 몰래 들어와 산천과 도로의 형세를 염탐하고 갔는데, 이는 번방(藩邦)에서 예전에 일찍이 없던 일이다. 우길의 아들과 사위를 모두 잡아 보내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이에 이극신(李克信)은 이미 체직되었다고 말하면서 덮어둔 채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았고, 성우길은 일이 드러나 숨기기 어려움을 스스로 알고 삼(蔘)과 은(銀)을 많이 마련해 보냄으로써 겨우 그 사건을 무마하였는데, 진강(鎭江) 사람 치고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극신이 변을 만들어 낸 뒤로 사은사(謝恩使)를 지금까지 보내지 않고 있으므로 중국인들이 바야흐로 의아하게 생각해 왔는데 이번 일로 더욱 괴이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유격이야 이미 성우길에게서 뇌물을 받았으니 다른 말이 없을 듯합니다만, 만약 변무(辨誣)하는 일을 행할 경우에는 그 많은 중국인들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리라고 보장하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되면 이보다 더 큰 국가의 불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우길을 우선 잡아다 국문하여 중국에 말썽을 일으킨 죄를 바로잡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답하였다.

 

사헌부가 연계(連啓)하여 유몽인(柳夢寅)을 파직시키고 서용치 말 것을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강원도 낭천(狼川)의 주민 윤기(尹記) 등 12인이 연명(聯名)하여 정장(呈狀)하기를 ‘본현(本縣)은 주민도 별로 없는 작은 고을로서 병란을 당한 뒤에 물난리까지 참혹하게 입었으니 온 경내가 텅 비어 거의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무신년 연간에 체찰사(體察使) 이항복(李恒福)이 형편없이 결딴났다는 것을 알고는 사유를 갖춰 입계(入啓)해서 각종 공물(貢物)을 10년 동안 감면토록 해 주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해마다 벌목(伐木)을 시키는 바람에 안정된 생활을 못하고 뿔뿔이 흩어진 결과 현재 남아 있는 가구가 50호(戶) 미만이고 현재 경작하고 있는 전지(田地)도 1백 결(結)에 미치지 못하는데 전후로 벌목하는 재목은 한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형세상 온 경내가 텅 비고 말 것이다. 그래도 믿는 바는 오직 공물을 감면해주는 것 한 가지인데 10년의 기한이 올해로 다 끝나니 백성들이 절대로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절박한 사정을 전하에게 상달하여 궁궐 공사가 끝날 동안만이라도 제사(諸司)의 공물을 예전처럼 줄여 주었으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본현에서 벌목한 숫자를 조사해 보니 그 동안 운송해 온 것을 모두 합쳐 각종 재목이 무려 1천 90여 그루나 되었습니다. 산골짜기의 잔약한 백성들로서는 형세상 감당해내기가 정말 어려우니 각사(各司)의 공물을 앞으로 3, 4년 동안만이라도 예전처럼 견감해 주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특별히 처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양구(楊口)·평창(平昌) 등 고을도 피폐된 정도가 심하니 모두 똑같이 시행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강원도 낭천(狼川)의 주민 윤기(尹記) 등 12인이 연명(聯名)하여 정장(呈狀)하기를 ‘본현(本縣)은 주민도 별로 없는 작은 고을로서 병란을 당한 뒤에 물난리까지 참혹하게 입었으니 온 경내가 텅 비어 거의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무신년 연간에 체찰사(體察使) 이항복(李恒福)이 형편없이 결딴났다는 것을 알고는 사유를 갖춰 입계(入啓)해서 각종 공물(貢物)을 10년 동안 감면토록 해 주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해마다 벌목(伐木)을 시키는 바람에 안정된 생활을 못하고 뿔뿔이 흩어진 결과 현재 남아 있는 가구가 50호(戶) 미만이고 현재 경작하고 있는 전지(田地)도 1백 결(結)에 미치지 못하는데 전후로 벌목하는 재목은 한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형세상 온 경내가 텅 비고 말 것이다. 그래도 믿는 바는 오직 공물을 감면해주는 것 한 가지인데 10년의 기한이 올해로 다 끝나니 백성들이 절대로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절박한 사정을 전하에게 상달하여 궁궐 공사가 끝날 동안만이라도 제사(諸司)의 공물을 예전처럼 줄여 주었으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본현에서 벌목한 숫자를 조사해 보니 그 동안 운송해 온 것을 모두 합쳐 각종 재목이 무려 1천 90여 그루나 되었습니다. 산골짜기의 잔약한 백성들로서는 형세상 감당해내기가 정말 어려우니 각사(各司)의 공물을 앞으로 3, 4년 동안만이라도 예전처럼 견감해 주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특별히 처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양구(楊口)·평창(平昌) 등 고을도 피폐된 정도가 심하니 모두 똑같이 시행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12일 신축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제주(濟州)의 관비(官婢) 탐진(耽眞)이 정철(正鐵) 1천 근(斤)을, 선무랑(宣務郞) 김하(金河)가 정철 8백 근을, 전 훈도 김응남(金應男)이 정철 5백 근을 바치고 싶다 합니다. 이렇듯 큰 공사를 벌이는 날을 당하여 돕겠다는 정성이 지극히 가상하니 관례대로 받아서 썼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철물(鐵物)을 바치는 양이 매우 많은데 상격(賞格)에 관한 전례를 상세히 써서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제주(濟州)의 관비(官婢) 탐진(耽眞)이 정철(正鐵) 1천 근(斤)을, 선무랑(宣務郞) 김하(金河)가 정철 8백 근을, 전 훈도 김응남(金應男)이 정철 5백 근을 바치고 싶다 합니다. 이렇듯 큰 공사를 벌이는 날을 당하여 돕겠다는 정성이 지극히 가상하니 관례대로 받아서 썼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철물(鐵物)을 바치는 양이 매우 많은데 상격(賞格)에 관한 전례를 상세히 써서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무릇 조가(朝家)의 호령에 대해서 먼 지방 백성들은 까마득히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비록 견감해 주는 물건이 있다 하더라도 수령이 봉행하지 않고 옛날대로 마구 징수한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들이 어떻게 하소연이라도 하겠습니까. 풍문에 의하면 관동(關東)의 벌목하는 각 고을 가운데에는 혹 2결(結)에 대한 면포(綿布)마저 거두어들이면서 감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백성을 보살펴 견감하여 준 조정의 뜻이 허사로 돌아간 채 거꾸로 수령들이 수입잡는 밑천이 돼버리고 만 셈이니 통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상세히 탐문해 적발한 다음 치계하도록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무릇 조가(朝家)의 호령에 대해서 먼 지방 백성들은 까마득히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비록 견감해 주는 물건이 있다 하더라도 수령이 봉행하지 않고 옛날대로 마구 징수한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백성들이 어떻게 하소연이라도 하겠습니까. 풍문에 의하면 관동(關東)의 벌목하는 각 고을 가운데에는 혹 2결(結)에 대한 면포(綿布)마저 거두어들이면서 감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백성을 보살펴 견감하여 준 조정의 뜻이 허사로 돌아간 채 거꾸로 수령들이 수입잡는 밑천이 돼버리고 만 셈이니 통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상세히 탐문해 적발한 다음 치계하도록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내가 조리하여 칙서(敕書)를 맞이하려 하는데, 근일 양사가 날마다 급하지도 않은 일을 번거롭게 아뢰고 있으니 지극히 부당하다. 전일 전교한 대로 내 병이 회복될 동안만은 계사(啓辭)를 우선 정지토록 하라."
"내가 조리하여 칙서(敕書)를 맞이하려 하는데, 근일 양사가 날마다 급하지도 않은 일을 번거롭게 아뢰고 있으니 지극히 부당하다. 전일 전교한 대로 내 병이 회복될 동안만은 계사(啓辭)를 우선 정지토록 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경상도의 곡식을 면포(綿布)로 대납(代納)케 한 것은 대체로 나라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구차하게나마 임시 변통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인데 근년 이래 이 일이 한 번 시작되면서부터 간혹 값을 깎아서 바꿔주거나 혹 강제로 기한을 설정하여 실어오게 하는가 하면 색목(色目)을 잡다하게 만들고 무절제하게 가져다 쓰는 것이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니, 도내의 사람들이 자기들만 고초를 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 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목면이 없으면 목전의 위급함을 구할 길이 없기 때문에 신들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전처럼 마련해내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요즘 본도를 왕래하는 인편에 듣건대, 전지(田地)가 1, 2결(結)이라도 있는 자는 포목을 무려 30여 필이나 내기 때문에 공녀(工女)가 옷이 없어 제대로 몸을 가리지 못하는가 하면 남정네도 겨울철이면 누에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고 솜 타는 것을 일삼아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일년 내내 수고한 농부가 공녀의 일을 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대체로 여자 한 사람이 짜는 것만으로는 한 집에 배정된 역(役)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니 이 또한 애달플 뿐입니다. 게다가 지난 가을에는 목화(木花)가 결실되지 않아 심지어는 헤진 옷의 헌 솜까지 넣고 짜내고 있다 하니, 민간에서 얼마나 어렵게 포목을 마련해내고 있는지 이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대단한 데도 구중 궁궐 위에서는 들을 길이 없게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신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으로서 더욱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본도에서 내야 할 포목을 통틀어 조사해 보건대, 영건 도감에서 거두어 들일 포목 7백여 동(同), 본도에 남겨두었다가 왜인(倭人)들에게 지급해야 할 1천 동, 본조가 받아들여 경비로 써야 할 것 4백여 동, 전교로 분부하신 데에 따라 은(銀)을 무역할 대금 4, 5백 동 등 도합 2천 6백여 동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영건 도감에서 쓸 것은 도감의 명령이 엄하기 때문에 거의 모두 징수해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타 해조(該曹)에 납부해야 할 것과 왜인에게 지급해야 할 포목들은 마치 거북등에서 털을 구하는 것처럼 도저히 마련해낼 처지가 못되고 은을 무역할 4, 5백 동 역시 마련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합니다. 온 도내 백성들의 고달픔에 비추어 볼 때 변통해 주는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지 결코 강압적으로 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만, 본조(本曹)의 형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치 밀가루도 없이 수제비를 빚는 것과 같으니 앞으로 들어갈 허다한 경비를 무슨 수로 마련해야 할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신들이 나이 많은 벼슬아치들과 일을 아는 산원(算員)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난리가 일어나기 전에는 근년처럼 용도가 번다한 때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전성기 때 축적된 양을 보면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녹봉을 지급해 주는 것을 제외하고도 창고에 저장한 미곡이 매년 30여 만 섬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해사에 비축한 온갖 물품도 차고 넘쳤으니 어찌 모자랄 걱정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규정 이외의 비용을 지출할 경우에는 해조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처지를 고수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이현궁(梨峴宮)과 죽전궁(竹前宮)을 조성할 당시 ‘해조의 목면 40동을 내수사로 옮겨 보내라.’는 명이 있었는 데도, 최흥원(崔興源)이 판서로 있으면서 그만 감히 방계(防啓)하며 세 차례 아뢴 끝에 윤허를 받아내고 끝내 옮겨 보내지 않았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사의 신하가 어찌 방계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마는, 대개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것이 직책상 당연하다고 여겨 그렇게 했던 것일 뿐입니다. 현재 노비(奴婢)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공포(貢布)가 평시의 10분의 1에도 차지 못하는만큼, 부경(赴京)하는 사신 일행이 한 번 떠날 때 방물가(方物價)와 무역가(貿易價)를 지급하고 나면 사섬시의 물력(物力)이 번번이 바닥이 나곤 하는데 그밖에 밑 빠진 독에 물붓듯 들어가는 과외(科外)의 비용이 또 어디 한량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구례(舊例)에는 오직 절사(節使)가 부경할 때에만 중국 물건을 무역해 오는 규정이 있었고, 그때에 지급하는 금액도 많지 않았으며 그밖에 별행(別行)의 경우에는 무역해 오는 규정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별행이나 절사를 막론하고 무역해 오는 양이 지극히 많을 뿐더러 규정 외로 무역하는 것이 또 있어 거기에 드는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예전에는 있지 않았던 일입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이번의 사은사 행차 때에는 긴급하지 않은 무역은 재감(裁減)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개 천지간에 쓸 수 있는 재물은 일정한 수밖에 없는데 너무 헤프게 쓰면 이치상 계속 댈 수가 없는 법이니 이것이야말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費)는 경비(經費)라 하고 용(用)은 경용(經用)이라 하여 경(經)이라는 하나의 글자를 붙여 쓰고 있는 것도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통쾌하게 재감하라는 명을 내려 일에 따라 절약해 주시지 않는다면 신들이 또한 무엇에 근거하여 봉행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지금 이후로 쓸데없이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는 일체 경중을 막론하고 성상께서 직접 단안을 내리시어 모두 제거토록 해 주소서. 그리고 묘당으로 하여금 품지(稟旨)하여 긴급하지 않은 도감이나 특별히 설치한 각청(各廳)을 정파(停罷)시키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약토록 하는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될 듯합니다. 황공한 심정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뜻이 옳다. 다만 무역하는 물건들이 어찌 이렇게 엄청나기까지야 하겠는가. 내 생각에는 여러 도감과 임시로 설치하는 각청을 한꺼번에 함께 설치하기 때문에 경비를 더욱 계속 대기가 어려운 듯하다. 지금 이후로는 부득이 도감이나 각청을 설치해야 할 때라도 먼저 설치한 곳의 폐지를 기다렸다가 그 뒤에 순차적으로 설치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경비를 그런 대로 계속 댈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대신에게 의논한 뒤 참작해서 선처토록 하라. 그리고 사은사 일행이 무역하는 일 같은 것은 지금 곧 떠나게 되어 있으니 재감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경상도의 곡식을 면포(綿布)로 대납(代納)케 한 것은 대체로 나라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구차하게나마 임시 변통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인데 근년 이래 이 일이 한 번 시작되면서부터 간혹 값을 깎아서 바꿔주거나 혹 강제로 기한을 설정하여 실어오게 하는가 하면 색목(色目)을 잡다하게 만들고 무절제하게 가져다 쓰는 것이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니, 도내의 사람들이 자기들만 고초를 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 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목면이 없으면 목전의 위급함을 구할 길이 없기 때문에 신들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전처럼 마련해내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요즘 본도를 왕래하는 인편에 듣건대, 전지(田地)가 1, 2결(結)이라도 있는 자는 포목을 무려 30여 필이나 내기 때문에 공녀(工女)가 옷이 없어 제대로 몸을 가리지 못하는가 하면 남정네도 겨울철이면 누에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고 솜 타는 것을 일삼아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일년 내내 수고한 농부가 공녀의 일을 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대체로 여자 한 사람이 짜는 것만으로는 한 집에 배정된 역(役)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니 이 또한 애달플 뿐입니다. 게다가 지난 가을에는 목화(木花)가 결실되지 않아 심지어는 헤진 옷의 헌 솜까지 넣고 짜내고 있다 하니, 민간에서 얼마나 어렵게 포목을 마련해내고 있는지 이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대단한 데도 구중 궁궐 위에서는 들을 길이 없게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신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으로서 더욱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본도에서 내야 할 포목을 통틀어 조사해 보건대, 영건 도감에서 거두어 들일 포목 7백여 동(同), 본도에 남겨두었다가 왜인(倭人)들에게 지급해야 할 1천 동, 본조가 받아들여 경비로 써야 할 것 4백여 동, 전교로 분부하신 데에 따라 은(銀)을 무역할 대금 4, 5백 동 등 도합 2천 6백여 동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영건 도감에서 쓸 것은 도감의 명령이 엄하기 때문에 거의 모두 징수해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타 해조(該曹)에 납부해야 할 것과 왜인에게 지급해야 할 포목들은 마치 거북등에서 털을 구하는 것처럼 도저히 마련해낼 처지가 못되고 은을 무역할 4, 5백 동 역시 마련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합니다. 온 도내 백성들의 고달픔에 비추어 볼 때 변통해 주는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지 결코 강압적으로 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만, 본조(本曹)의 형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치 밀가루도 없이 수제비를 빚는 것과 같으니 앞으로 들어갈 허다한 경비를 무슨 수로 마련해야 할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신들이 나이 많은 벼슬아치들과 일을 아는 산원(算員)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난리가 일어나기 전에는 근년처럼 용도가 번다한 때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전성기 때 축적된 양을 보면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녹봉을 지급해 주는 것을 제외하고도 창고에 저장한 미곡이 매년 30여 만 섬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해사에 비축한 온갖 물품도 차고 넘쳤으니 어찌 모자랄 걱정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규정 이외의 비용을 지출할 경우에는 해조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처지를 고수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이현궁(梨峴宮)과 죽전궁(竹前宮)을 조성할 당시 ‘해조의 목면 40동을 내수사로 옮겨 보내라.’는 명이 있었는 데도, 최흥원(崔興源)이 판서로 있으면서 그만 감히 방계(防啓)하며 세 차례 아뢴 끝에 윤허를 받아내고 끝내 옮겨 보내지 않았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사의 신하가 어찌 방계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마는, 대개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것이 직책상 당연하다고 여겨 그렇게 했던 것일 뿐입니다.
현재 노비(奴婢)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공포(貢布)가 평시의 10분의 1에도 차지 못하는만큼, 부경(赴京)하는 사신 일행이 한 번 떠날 때 방물가(方物價)와 무역가(貿易價)를 지급하고 나면 사섬시의 물력(物力)이 번번이 바닥이 나곤 하는데 그밖에 밑 빠진 독에 물붓듯 들어가는 과외(科外)의 비용이 또 어디 한량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구례(舊例)에는 오직 절사(節使)가 부경할 때에만 중국 물건을 무역해 오는 규정이 있었고, 그때에 지급하는 금액도 많지 않았으며 그밖에 별행(別行)의 경우에는 무역해 오는 규정이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별행이나 절사를 막론하고 무역해 오는 양이 지극히 많을 뿐더러 규정 외로 무역하는 것이 또 있어 거기에 드는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예전에는 있지 않았던 일입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이번의 사은사 행차 때에는 긴급하지 않은 무역은 재감(裁減)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개 천지간에 쓸 수 있는 재물은 일정한 수밖에 없는데 너무 헤프게 쓰면 이치상 계속 댈 수가 없는 법이니 이것이야말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費)는 경비(經費)라 하고 용(用)은 경용(經用)이라 하여 경(經)이라는 하나의 글자를 붙여 쓰고 있는 것도 깊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통쾌하게 재감하라는 명을 내려 일에 따라 절약해 주시지 않는다면 신들이 또한 무엇에 근거하여 봉행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지금 이후로 쓸데없이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는 일체 경중을 막론하고 성상께서 직접 단안을 내리시어 모두 제거토록 해 주소서. 그리고 묘당으로 하여금 품지(稟旨)하여 긴급하지 않은 도감이나 특별히 설치한 각청(各廳)을 정파(停罷)시키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약토록 하는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될 듯합니다. 황공한 심정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뜻이 옳다. 다만 무역하는 물건들이 어찌 이렇게 엄청나기까지야 하겠는가. 내 생각에는 여러 도감과 임시로 설치하는 각청을 한꺼번에 함께 설치하기 때문에 경비를 더욱 계속 대기가 어려운 듯하다. 지금 이후로는 부득이 도감이나 각청을 설치해야 할 때라도 먼저 설치한 곳의 폐지를 기다렸다가 그 뒤에 순차적으로 설치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경비를 그런 대로 계속 댈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대신에게 의논한 뒤 참작해서 선처토록 하라. 그리고 사은사 일행이 무역하는 일 같은 것은 지금 곧 떠나게 되어 있으니 재감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합계하여 성우길(成佑吉)을 잡아다 국문하기를 청하니, 전교하기를,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조옥건(趙玉乾)과 진명생(陳命生) 등의 일에 대해 의논해 아뢴 것이 자세하지 않다. 진명생과 조신(趙信)은 무슨 율(律)을 적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최찬(崔纘) 등을 어찌 분간(分揀)해 주어서야 되겠는가. 비방하는 등 의심할 만한 자취가 현저하다. 또 이완(李完) 등도 거리낌이 없이 참여해 들었으니 똑같이 죄가 있다. 이 모두에 대하여 다시 상세히 의논해 아뢰라고 대신과 판의금에게 이르라."
"조옥건(趙玉乾)과 진명생(陳命生) 등의 일에 대해 의논해 아뢴 것이 자세하지 않다. 진명생과 조신(趙信)은 무슨 율(律)을 적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최찬(崔纘) 등을 어찌 분간(分揀)해 주어서야 되겠는가. 비방하는 등 의심할 만한 자취가 현저하다. 또 이완(李完) 등도 거리낌이 없이 참여해 들었으니 똑같이 죄가 있다. 이 모두에 대하여 다시 상세히 의논해 아뢰라고 대신과 판의금에게 이르라."

 

한찬남이 아뢰기를, "‘오늘은 추국을 잠시 정지하고 속히 의논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조옥건·진명생·조신·최찬·이완 등의 일에 대해 모두 다시 상세하게 의논해 아뢰라고 대신과 판의금에게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런데 추관(推官)과 양사(兩司)에게는 의논해 아뢰도록 하지 않고 대신과 판의금만 의논해 아뢰라고 합니까? 아니면 추관·양사·대신·판의금 모두 똑같이 의논해 아뢰라고 합니까?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추관은 이미 의논해 아뢰었으니 대신과 판의금에게만 다시 물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오늘은 추국을 잠시 정지하고 속히 의논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조옥건·진명생·조신·최찬·이완 등의 일에 대해 모두 다시 상세하게 의논해 아뢰라고 대신과 판의금에게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런데 추관(推官)과 양사(兩司)에게는 의논해 아뢰도록 하지 않고 대신과 판의금만 의논해 아뢰라고 합니까? 아니면 추관·양사·대신·판의금 모두 똑같이 의논해 아뢰라고 합니까?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추관은 이미 의논해 아뢰었으니 대신과 판의금에게만 다시 물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4월 13일 임인

전교하였다. "두 궁궐을 지을 재목으로 비록 굵고 큰 나무를 베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모두 10척(尺)이나 9척밖에 안되는 짧은 나무를 벌목하여 올려 보냈다고 한다. 지름이 크지는 못하더라도 길이야 어찌 꼭 짧아야 하겠는가. 이는 어떻게든 떼워 보려는 교활한 행동에서 빚어진 일이니 2년 사이에 내려가 벌목을 책임졌던 경차관(敬差官)과 감역관(監役官) 등을 모두 추고하고 도감으로 하여금 다시 자세히 살펴 처리케 하라."
"두 궁궐을 지을 재목으로 비록 굵고 큰 나무를 베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모두 10척(尺)이나 9척밖에 안되는 짧은 나무를 벌목하여 올려 보냈다고 한다. 지름이 크지는 못하더라도 길이야 어찌 꼭 짧아야 하겠는가. 이는 어떻게든 떼워 보려는 교활한 행동에서 빚어진 일이니 2년 사이에 내려가 벌목을 책임졌던 경차관(敬差官)과 감역관(監役官) 등을 모두 추고하고 도감으로 하여금 다시 자세히 살펴 처리케 하라."

 

전교하였다. "가만히 듣건대 조그마한 수레로 돌을 나르는 일이 어린애 장난처럼 되면서 날이 갈수록 더욱 해이해지고 있다 한다. 앞으로 요포(料布)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경덕궁(慶德宮)의 각 아문이나 군보(軍堡) 같은 곳들의 공사는 그다지 크지 않으니 각별히 엄하게 단속하고, 십분 공사를 감독하여 경덕궁은 내년에는 완공 일자를 미루지 말라고 도감에 이르라."
"가만히 듣건대 조그마한 수레로 돌을 나르는 일이 어린애 장난처럼 되면서 날이 갈수록 더욱 해이해지고 있다 한다. 앞으로 요포(料布)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경덕궁(慶德宮)의 각 아문이나 군보(軍堡) 같은 곳들의 공사는 그다지 크지 않으니 각별히 엄하게 단속하고, 십분 공사를 감독하여 경덕궁은 내년에는 완공 일자를 미루지 말라고 도감에 이르라."

 

【금부 죄인 민정학 등 1백 20여 명을 보방하였다.】  【이들은 바로 전라도의 안처인(安處仁)·안후인(安厚仁) 등이 무고(誣告)하여 국옥(鞫獄)에 연루된 자들이었는데, 추안(推案) 문서는 유실되었으므로 기록하지 못한다.】

 

이비(吏批)가 아뢰기를, "행 해원감(海原監) 이장(李墻)이 신철(薪鐵) 1천 근(斤)을, 그리고 행 운림수(雲林守) 이종윤(李宗胤)이 섬돌과 주춧돌 등 2백 개를 모두 영건 도감에 바쳤으니 가자(加資)토록 하라는 승전(承傳)을 받들었습니다. 해원감 장과 운림수 종윤은 모두 명선 대부(明善大夫)인만큼 이들을 가자할 경우에는 정의 대부(正義大夫)로 올려 군(君)으로 봉해 주어야 마땅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다." 하니, 군으로 봉해 주라고 전교하였다.
"행 해원감(海原監) 이장(李墻)이 신철(薪鐵) 1천 근(斤)을, 그리고 행 운림수(雲林守) 이종윤(李宗胤)이 섬돌과 주춧돌 등 2백 개를 모두 영건 도감에 바쳤으니 가자(加資)토록 하라는 승전(承傳)을 받들었습니다. 해원감 장과 운림수 종윤은 모두 명선 대부(明善大夫)인만큼 이들을 가자할 경우에는 정의 대부(正義大夫)로 올려 군(君)으로 봉해 주어야 마땅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다."
하니, 군으로 봉해 주라고 전교하였다.

 

한명욱(韓明勖)을 군기시 정으로, 최호(崔濩)를 부수찬으로, 이강(李茳)을 수찬으로, 이모(李慕)를 사서로, 이홍엽(李弘燁)을 필선으로, 채겸길(蔡謙吉)을 문학으로, 김주하(金奏夏)를 봉교로, 이점(李蒧)을 대교로, 신게(申垍)를 검열로, 정준(鄭遵)을 겸문학으로, 한영(韓詠)을 겸필선으로, 이여검(李汝儉)을 동지돈령으로, 남궁경(南宮㯳)을 사인으로, 강린(姜繗)을 교리로, 강홍립(姜弘立)을 진령군(晉寧君)으로, 김개(金闓)를 동지의금으로, 최명선(崔明善)을 설서로, 박재(朴梓)를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한희(韓暿)를 겸사서로 삼았다. 성지(性智)를 첨지(僉知)에 제수하라고 전교하였다. 【성지는 요승(妖僧)이다. 처음에 인왕산(仁王山) 아래에 왕기(王氣)가 있다는 설을 가지고 왕을 미혹하여 인경궁(仁慶宮)을 세우게 하고 통정 대부(通政大夫)에 올랐는데, 이번에 또 첨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아 머리에 옥관자를 두르고 말을 타고 다니는 등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지첨지(智僉知)라고 불렀는데 계해년에 복주(伏誅)되었다.】

 

4월 14일 계묘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난을 치른 뒤로 강창(江倉)에 남아 있는 곳간의 수효가 적은데 해조의 얼마 안되는 세입(稅入)은 받는 대로 들여놓아도 곳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도감에서 빈 곳간을 빌어 써 왔습니다. 그런데 금년은 도감에서 징수해 받아들일 면포(綿布) 중에서 덜어내어 작미(作米)한 숫자가 꽤 많아서 빈 곳간 몇 개로 비축할 수 없고 또 요즘 들어 미선(米船)이 계속 들어오는 데도 받아들일 곳이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도감에서 구부러져 용도에 맞지 않는 재목을 덜어내어 군자감 창고 안의 빈 터에다 곳간 수십 칸을 임시로 지은 뒤 먼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선(漕船)이 도착하는 대로 짐을 부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체하여 머무는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구부러져 용도에 맞지 않는 나무를 골라 쓰는지 알 수 없으니 다시 더 자세히 살펴 구부러져 용도에 맞지 않는 나무만 가져다 쓰도록 하라." 하였다.
"난을 치른 뒤로 강창(江倉)에 남아 있는 곳간의 수효가 적은데 해조의 얼마 안되는 세입(稅入)은 받는 대로 들여놓아도 곳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도감에서 빈 곳간을 빌어 써 왔습니다. 그런데 금년은 도감에서 징수해 받아들일 면포(綿布) 중에서 덜어내어 작미(作米)한 숫자가 꽤 많아서 빈 곳간 몇 개로 비축할 수 없고 또 요즘 들어 미선(米船)이 계속 들어오는 데도 받아들일 곳이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도감에서 구부러져 용도에 맞지 않는 재목을 덜어내어 군자감 창고 안의 빈 터에다 곳간 수십 칸을 임시로 지은 뒤 먼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선(漕船)이 도착하는 대로 짐을 부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체하여 머무는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구부러져 용도에 맞지 않는 나무를 골라 쓰는지 알 수 없으니 다시 더 자세히 살펴 구부러져 용도에 맞지 않는 나무만 가져다 쓰도록 하라."
하였다.

 

신궐 영건 도감(新闕營建都監)이 아뢰기를, "매탄 낭청(埋炭郞廳) 한율(韓嵂)을 관례에 따라 논상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도감의 일로 외방에 파견되어 마음을 다해 공을 이루어서 상을 받은 자로는 김성옥(金成玉)밖에 없는데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위에서 재결(裁決)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가자(加資)하라고 전교하였다.
"매탄 낭청(埋炭郞廳) 한율(韓嵂)을 관례에 따라 논상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도감의 일로 외방에 파견되어 마음을 다해 공을 이루어서 상을 받은 자로는 김성옥(金成玉)밖에 없는데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위에서 재결(裁決)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가자(加資)하라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전곡(錢穀)의 출납을 담당하는 임무는 가장 중한 것입니다. 도감에서 미곡과 포목을 받아들여 처리하는 숫자가 한 달에 수천, 수백을 밑돌지 않으니 결코 대리로 담당하는 인원이 주견 없이 아무렇게나 처리하게 함으로써 허술하게 되고 헛되이 소모되는 폐단이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포물소(布物所)는 낭청이 한 사람뿐인데 언제 병이 나서 사고가 생길지 미리 알 수 없으니 미면소(米麪所)의 예에 따라 한 사람을 특별히 고르게 하고 적당한 인원을 더 차임하여 전담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요즘 들어 낭청과 감역관을 전혀 고르지 않은 채 차임하고 있다. 이 낭청은 문관 중에서 엄선해 차출하여 책임지고 공을 이루도록 하라." 하였다.
"전곡(錢穀)의 출납을 담당하는 임무는 가장 중한 것입니다. 도감에서 미곡과 포목을 받아들여 처리하는 숫자가 한 달에 수천, 수백을 밑돌지 않으니 결코 대리로 담당하는 인원이 주견 없이 아무렇게나 처리하게 함으로써 허술하게 되고 헛되이 소모되는 폐단이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포물소(布物所)는 낭청이 한 사람뿐인데 언제 병이 나서 사고가 생길지 미리 알 수 없으니 미면소(米麪所)의 예에 따라 한 사람을 특별히 고르게 하고 적당한 인원을 더 차임하여 전담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요즘 들어 낭청과 감역관을 전혀 고르지 않은 채 차임하고 있다. 이 낭청은 문관 중에서 엄선해 차출하여 책임지고 공을 이루도록 하라."
하였다.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이 다섯 번째 정사(呈辭)하였는데, 윤허하지 않는다고 비답하였다.

 

4월 15일 갑진

전교하였다. "백악(白岳)에서 채석(採石)해 온다는 말이 사실인가? 모군(募軍)과 승군(僧軍)들이 잡석(雜石)을 찾아서 바치는 데에 급급하여 혹 성곽 밖 무덤의 계제석(階梯石)이나 무덤 근처의 잡석들을 파내고 있다 하니 매우 놀랄 일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십분 단단히 엄금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백악(白岳)에서 채석(採石)해 온다는 말이 사실인가? 모군(募軍)과 승군(僧軍)들이 잡석(雜石)을 찾아서 바치는 데에 급급하여 혹 성곽 밖 무덤의 계제석(階梯石)이나 무덤 근처의 잡석들을 파내고 있다 하니 매우 놀랄 일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십분 단단히 엄금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4월 16일 을사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지난해 여름과 가을 사이에 전 찰방 한신민이 섬돌과 주춧돌을 아울러 1백 8개와 잡석(雜石) 12개를 진상하였으므로 즉시 서계(書啓)하여 6품직에 승진시키는 것으로 윤허를 받았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6품직을 속히 제수토록 하라." 하였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사이에 전 찰방 한신민이 섬돌과 주춧돌을 아울러 1백 8개와 잡석(雜石) 12개를 진상하였으므로 즉시 서계(書啓)하여 6품직에 승진시키는 것으로 윤허를 받았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6품직을 속히 제수토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경상 감사가 진상한 왜물(倭物)을 보니 구멍이 뚫어진 곳도 있고 파손된 자국도 있었다. 왜인이 이런 물건을 가지고 왔으면 왜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잘 타일러 공경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하도록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번에 올라온 왜물 가운데 후추[胡椒] 상자 안에는 나뭇잎과 다른 것들이 섞여 있었고 제롱(提籠)에는 파손된 곳도 있었다. 왜물이 별로 중요치 않고 개·돼지같은 자들을 책망할 가치가 없다 하더라도 업신여기며 소홀히 대하려는 그들의 마음이 극에 달한만큼 각별히 엄하게 타일러 뒷날 능멸하는 폐단이 없도록 막아야 할 것이니, 이 점을 모두 경상 감사와 동래 부사에게 하유토록 하라."
"경상 감사가 진상한 왜물(倭物)을 보니 구멍이 뚫어진 곳도 있고 파손된 자국도 있었다. 왜인이 이런 물건을 가지고 왔으면 왜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잘 타일러 공경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하도록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번에 올라온 왜물 가운데 후추[胡椒] 상자 안에는 나뭇잎과 다른 것들이 섞여 있었고 제롱(提籠)에는 파손된 곳도 있었다. 왜물이 별로 중요치 않고 개·돼지같은 자들을 책망할 가치가 없다 하더라도 업신여기며 소홀히 대하려는 그들의 마음이 극에 달한만큼 각별히 엄하게 타일러 뒷날 능멸하는 폐단이 없도록 막아야 할 것이니, 이 점을 모두 경상 감사와 동래 부사에게 하유토록 하라."

 

전교하였다. "거둥은 반드시 대신이 출사한 뒤에야 할 수 있다. 좌상과 우상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출사하는 날을 상세히 물어 아뢴 뒤에 징병에 관한 일을 하유토록 하라."
"거둥은 반드시 대신이 출사한 뒤에야 할 수 있다. 좌상과 우상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출사하는 날을 상세히 물어 아뢴 뒤에 징병에 관한 일을 하유토록 하라."

 

사도시 주부 김우성(金佑成)이 상소하였다. 그 대개는 최찬(崔纘)이 노래를 만든 일에 대해 의논을 정하여 시골로 내쫓게 된 곡절을 와서 진달한 것이었는데, 추국청에 계하(啓下)하였다.

 

4월 17일 병오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어제 전교하신 내용대로 좌상과 우상에게 본부의 낭청을 보내 물어보게 하였더니 즉시 다녀와서 말하기를 ‘우의정 민몽룡은 「병세가 위중하여 회복될지 기약하기가 어렵다.」 하였고, 좌의정 한효순은 「큰 병을 앓고 난 뒤로 원기(元氣)가 극도로 손상되어 오래도록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 밤낮으로 신음하느라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늘 황공스러운 심정이었는데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보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다시 조리하면서 병을 무릅쓰고라도 출사하여 대례(大禮)에 참석토록 하겠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징병에 관한 일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우선 며칠 동안 내 건강에 차도가 있는지 좌상이 출사하는지의 여부를 살펴본 뒤에 다시 자세히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어제 전교하신 내용대로 좌상과 우상에게 본부의 낭청을 보내 물어보게 하였더니 즉시 다녀와서 말하기를 ‘우의정 민몽룡은 「병세가 위중하여 회복될지 기약하기가 어렵다.」 하였고, 좌의정 한효순은 「큰 병을 앓고 난 뒤로 원기(元氣)가 극도로 손상되어 오래도록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 밤낮으로 신음하느라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늘 황공스러운 심정이었는데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보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다시 조리하면서 병을 무릅쓰고라도 출사하여 대례(大禮)에 참석토록 하겠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징병에 관한 일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우선 며칠 동안 내 건강에 차도가 있는지 좌상이 출사하는지의 여부를 살펴본 뒤에 다시 자세히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죄인을 대궐에 올려 보내지 말도록 하라. 김우성(金佑成)의 소에 대해 의논해서 아뢰게 하되 판의금과 대신에게도 아울러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좌상·우상·판의금이 모두 병 때문에 오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오늘 추국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죄인을 대궐에 올려 보내지 말도록 하라. 김우성(金佑成)의 소에 대해 의논해서 아뢰게 하되 판의금과 대신에게도 아울러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군병이 지난해 정월부터 궁성을 호위하게 된 뒤로 매달 세 번씩 습진(習陣)하는 일을 완전히 폐지한 채 행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신입 군병들이 제식 동작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니 군병을 양성하는 본래의 뜻을 헤아려 볼 때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 낮시간이 바야흐로 길어져 가고 또 비가 올 염려도 없으니, 오는 20일에 특별히 습진하는 일을 행하되 입직(入直)한 장관과 군병들도 표신(標信)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반으로 나눠 덜어 낸 뒤 훈련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군병이 지난해 정월부터 궁성을 호위하게 된 뒤로 매달 세 번씩 습진(習陣)하는 일을 완전히 폐지한 채 행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신입 군병들이 제식 동작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니 군병을 양성하는 본래의 뜻을 헤아려 볼 때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 낮시간이 바야흐로 길어져 가고 또 비가 올 염려도 없으니, 오는 20일에 특별히 습진하는 일을 행하되 입직(入直)한 장관과 군병들도 표신(標信)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반으로 나눠 덜어 낸 뒤 훈련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조칙을 영접하는 일은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라도 행해야 하겠지만 고묘제(告廟祭)는 형세상 내달 안으로 행하기 어려우니, 5월 그믐쯤으로 날짜를 다시 잡아 외방에 하유하라고 예관(禮官)에게 이르라."
"조칙을 영접하는 일은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라도 행해야 하겠지만 고묘제(告廟祭)는 형세상 내달 안으로 행하기 어려우니, 5월 그믐쯤으로 날짜를 다시 잡아 외방에 하유하라고 예관(禮官)에게 이르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전라도 병영에서 새로 뽑은 인원들의 가포(價布)로 철(鐵)을 무역해 올려 보내는 일을 전에 이미 입계하여 하유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외방에서 조정의 명령을 봉행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이미 고질적인 폐단으로 되었을 뿐 아니라 더러는 외람되게 속이는 경우도 있는데 병영과 수영(水營)이 특히 더 그러합니다. 본영에서 새로 뽑은 인원들에게 거둔 포목으로 철을 무역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강제로 거두지 말라고 간곡하게 타일렀습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군인들 중에서 도감이 배정하였다고 핑계하며 마구잡이로 거둬들이게 되면 군정(軍情)이 필시 원망하며 괴롭게 여길 것이니 관계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대개 병영에서 사사로이 쓰는 물건을 수괄하여 철을 무역하려는 것은 민간에 배정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이라도 혜택을 주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만약 혹시라도 무턱대고 받아들여 올려 보낸다면 조정의 본의가 끝내 허사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이번에 철물 경차관(鐵物敬差官) 오숙(吳䎘)이 가지고 가는 사목(事目) 안에 ‘만약 이런 폐단이 있거든 적발하여 계문함으로써 처치할 수 있는 자료로 삼게 하라.’는 내용을 첨가해 들여서 보내도록 하고, 또 감영의 노쇠한 사람들의 포목으로 철을 무역하는 것을 열읍(列邑)에 배정한 것처럼 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이것도 듣는 대로 계문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라도 병영에서 새로 뽑은 인원들의 가포(價布)로 철(鐵)을 무역해 올려 보내는 일을 전에 이미 입계하여 하유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외방에서 조정의 명령을 봉행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이미 고질적인 폐단으로 되었을 뿐 아니라 더러는 외람되게 속이는 경우도 있는데 병영과 수영(水營)이 특히 더 그러합니다. 본영에서 새로 뽑은 인원들에게 거둔 포목으로 철을 무역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강제로 거두지 말라고 간곡하게 타일렀습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군인들 중에서 도감이 배정하였다고 핑계하며 마구잡이로 거둬들이게 되면 군정(軍情)이 필시 원망하며 괴롭게 여길 것이니 관계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대개 병영에서 사사로이 쓰는 물건을 수괄하여 철을 무역하려는 것은 민간에 배정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이라도 혜택을 주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만약 혹시라도 무턱대고 받아들여 올려 보낸다면 조정의 본의가 끝내 허사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이번에 철물 경차관(鐵物敬差官) 오숙(吳䎘)이 가지고 가는 사목(事目) 안에 ‘만약 이런 폐단이 있거든 적발하여 계문함으로써 처치할 수 있는 자료로 삼게 하라.’는 내용을 첨가해 들여서 보내도록 하고, 또 감영의 노쇠한 사람들의 포목으로 철을 무역하는 것을 열읍(列邑)에 배정한 것처럼 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이것도 듣는 대로 계문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철물을 바친 역관(譯官) 변기(邊基)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논상(論賞)하라고 전교하셨기에 변기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번 두 절사(節使)의 행차 중에서 어느 행차를 통하든 부경(赴京)하고 싶다고 했으니 소원대로 차송(差送)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철물과 중국 채색을 바치는 것을 허락하는 일로 누차 비망기를 내리셨는 데도, 그 동안 바친 자는 고작 변기와 최영(崔泳) 등 3인뿐이니 우선 이들을 차송하여 기부하는 길을 넓히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변기와 최영 등을 부경시키는 일을 본원(本院)에서 승전(承傳)을 받들어 시행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철물을 바친 역관(譯官) 변기(邊基)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논상(論賞)하라고 전교하셨기에 변기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번 두 절사(節使)의 행차 중에서 어느 행차를 통하든 부경(赴京)하고 싶다고 했으니 소원대로 차송(差送)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철물과 중국 채색을 바치는 것을 허락하는 일로 누차 비망기를 내리셨는 데도, 그 동안 바친 자는 고작 변기와 최영(崔泳) 등 3인뿐이니 우선 이들을 차송하여 기부하는 길을 넓히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변기와 최영 등을 부경시키는 일을 본원(本院)에서 승전(承傳)을 받들어 시행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18일 정미

사간원이 아뢰기를, "이조 정랑 한옥(韓玉)은 본래 용렬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이 청반(淸班)에 끼어 들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비웃고 매도하였는데, 본직을 제수받고 나서는 그 기세를 믿고 남의 노비를 탈취하였으므로 물의가 비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전일 정사(政事)할 때에는 동료가 외방에 나간 틈을 타서 청선(淸選)에 주의(注擬)함을 일체 자기 사욕에 따라 행하면서 당상조차 감히 개입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가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며 거리낌없이 저지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답하였다. 【한옥이 허균의 패거리인 원종(元悰)을 끌어다 쓰려고 문학에 의망(擬望)했다가 탄핵을 당한 것이었다.】
"이조 정랑 한옥(韓玉)은 본래 용렬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이 청반(淸班)에 끼어 들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비웃고 매도하였는데, 본직을 제수받고 나서는 그 기세를 믿고 남의 노비를 탈취하였으므로 물의가 비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전일 정사(政事)할 때에는 동료가 외방에 나간 틈을 타서 청선(淸選)에 주의(注擬)함을 일체 자기 사욕에 따라 행하면서 당상조차 감히 개입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가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며 거리낌없이 저지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답하였다. 【한옥이 허균의 패거리인 원종(元悰)을 끌어다 쓰려고 문학에 의망(擬望)했다가 탄핵을 당한 것이었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랑(銓郞)은 당하관들 중에서 엄선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정랑 한옥(韓玉)은 그릇이 보통 밖에 되지 않는 데다 인망(人望) 역시 가벼워 처음부터 적임자가 못된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공도(公道)를 무시하고 사정(私情)을 좇아 권세를 멋대로 휘두른다는 비난이 점점 더 심해지니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답하였다.
"전랑(銓郞)은 당하관들 중에서 엄선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정랑 한옥(韓玉)은 그릇이 보통 밖에 되지 않는 데다 인망(人望) 역시 가벼워 처음부터 적임자가 못된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공도(公道)를 무시하고 사정(私情)을 좇아 권세를 멋대로 휘두른다는 비난이 점점 더 심해지니 파직을 명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답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전일 정청(庭請)한 것은 실로 충성심에 분발되어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민이 미리 꾀하지 않고도 똑 같은 내용을 끓는 정성으로 소장을 올려 진달하였습니다. 백관들 가운데는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감히 딴 마음을 품고 혹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기도 하고, 혹 의논을 드릴 때 저쪽 편을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짓도 할 수 있으니 어떤 일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창연(鄭昌衍)·유근(柳根)·윤방(尹昉)·김상용(金尙容)·이정귀(李廷龜)·이시언(李時彦)·오윤겸(吳允謙)·송영구(宋英耉)·조국빈(趙國賓)·윤형준(尹衡俊)·이시발(李時發)·김류(金瑬)·박자응(朴自凝)·이경직(李景稷)·박동선(朴東善)·정효성(鄭孝成)·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 등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 보내도록 명하시어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엄하게 하소서. 그리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노병자(老病者)·폐질자(廢疾者)에 대해서는 대열을 따르도록 요구할 수 없을 듯도 합니다. 그러나 나라에 대론(大論)이 전개되고 있는 때에 시종일관 물러가 편안히 있으면서 참여하지 않은 것은 죄가 덜하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또한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일체 정부의 거안(擧案)대로 모두 삭출시키도록 명하소서. 전일 정청했을 때 종실(宗室)은 행·불행을 함께 해야 하는 의리가 있는만큼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종친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건대,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의원감(義原監) 이역(李櫟)·석양정(石陽正) 이정(李霆)·평림수(平林守) 이지윤(李祉胤)·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영가 부수(永嘉副守) 이효길(李孝吉)·진원 부수(珍原副守) 이완(李完)·선성 부수(先城副守) 이신원(李信元)·계림령(鷄林令) 이광윤(李光胤)·광원령 이호(光原李令琥)·명원령(明原令) 이효(李孝)·계양령(桂陽令) 이예길(李禮吉)·수양령(樹陽令) 이충길(李忠吉)·낙양 부령(洛陽副令) 이낭(李琅)·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경(李瓊)·영원 부령(靈原副令) 이작(李晫)·원흥 부령(原興副令) 이거(李琚)·광성 부령(廣城副令) 이질(李晊)·신천 부령(信川副令) 이경사(李景獅)·학성령(鶴城令) 이주(李儔) 등은 시종일관 정청하는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은 소원한 종친과 처지가 크게 다른 데도 끝내 의논을 드리지도 않았으니,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공성군(功成君) 이식(李植)·고산 부령(高山副令) 이공(李恭)·덕원 부령(德原副令) 이덕손(李德孫)·덕양도정(德陽都正) 이충윤(李忠胤)·익산도정(益山都正) 이진(李璡)·하성령(夏城令) 이형륜(李炯倫)·한성령(漢城令) 이영(李濘) 등은 늙고 병들어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였으나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조섭 중인 때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전일 정청(庭請)한 것은 실로 충성심에 분발되어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민이 미리 꾀하지 않고도 똑 같은 내용을 끓는 정성으로 소장을 올려 진달하였습니다. 백관들 가운데는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감히 딴 마음을 품고 혹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기도 하고, 혹 의논을 드릴 때 저쪽 편을 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짓도 할 수 있으니 어떤 일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창연(鄭昌衍)·유근(柳根)·윤방(尹昉)·김상용(金尙容)·이정귀(李廷龜)·이시언(李時彦)·오윤겸(吳允謙)·송영구(宋英耉)·조국빈(趙國賓)·윤형준(尹衡俊)·이시발(李時發)·김류(金瑬)·박자응(朴自凝)·이경직(李景稷)·박동선(朴東善)·정효성(鄭孝成)·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 등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 보내도록 명하시어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엄하게 하소서.
그리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노병자(老病者)·폐질자(廢疾者)에 대해서는 대열을 따르도록 요구할 수 없을 듯도 합니다. 그러나 나라에 대론(大論)이 전개되고 있는 때에 시종일관 물러가 편안히 있으면서 참여하지 않은 것은 죄가 덜하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또한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일체 정부의 거안(擧案)대로 모두 삭출시키도록 명하소서.
전일 정청했을 때 종실(宗室)은 행·불행을 함께 해야 하는 의리가 있는만큼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종친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건대,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의원감(義原監) 이역(李櫟)·석양정(石陽正) 이정(李霆)·평림수(平林守) 이지윤(李祉胤)·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영가 부수(永嘉副守) 이효길(李孝吉)·진원 부수(珍原副守) 이완(李完)·선성 부수(先城副守) 이신원(李信元)·계림령(鷄林令) 이광윤(李光胤)·광원령 이호(光原李令琥)·명원령(明原令) 이효(李孝)·계양령(桂陽令) 이예길(李禮吉)·수양령(樹陽令) 이충길(李忠吉)·낙양 부령(洛陽副令) 이낭(李琅)·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경(李瓊)·영원 부령(靈原副令) 이작(李晫)·원흥 부령(原興副令) 이거(李琚)·광성 부령(廣城副令) 이질(李晊)·신천 부령(信川副令) 이경사(李景獅)·학성령(鶴城令) 이주(李儔) 등은 시종일관 정청하는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은 소원한 종친과 처지가 크게 다른 데도 끝내 의논을 드리지도 않았으니,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공성군(功成君) 이식(李植)·고산 부령(高山副令) 이공(李恭)·덕원 부령(德原副令) 이덕손(李德孫)·덕양도정(德陽都正) 이충윤(李忠胤)·익산도정(益山都正) 이진(李璡)·하성령(夏城令) 이형륜(李炯倫)·한성령(漢城令) 이영(李濘) 등은 늙고 병들어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였으나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조섭 중인 때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대사헌 남근,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사간 신광업, 장령 한영·강수, 지평 이중계·신칙, 헌납 박종주, 정언 이원여·서국정이 아뢰기를, "대론(大論)이 완결되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합사하게 되었으니 어찌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성상께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엄한 분부를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명을 순종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나면 부득불 와서 아뢰곤 하는데, 이것이 어찌 신들이 그만둘 수 있는 데도 이러는 것이겠습니까. 국가가 망하게 될 화란이 눈앞에 다가왔으므로 사람들이 놀라며 두려워하고 있는데, 저쪽 편을 든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근을 제거하는 일을 불길 속에서 구해 내고 물속에서 건져 내는 것보다 급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이루지 못할까 두려운데, 더구나 미적거리고 늦추면서 세월만 헛되이 보낸다면 흉도의 역모를 어찌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성상의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니 지금 번거롭게 할 때가 아님을 신들이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국가의 대계를 조정에서 의논하여 이미 정했고, 그 폄삭 절목을 성상께서 보신 지도 이미 오래 되었는데, 성상께서는 돌아볼 것이 뭐가 있어서 이렇듯 어려워하시며 한 번 윤허하시기를 여태 아끼시어 계속 사람들이 의심하게 하고 흉악한 계책을 도모하도록 길을 열어 주신단 말입니까. 백관이 성상의 뜻에 순종하여 우선 말감(末減)하는 법을 따르면서 겨우 폄삭하는 전형(典刑)만 행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보전해 주려 한 생각이 성상의 처지에서는 극진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적을 토벌하는 《춘추(春秋)》의 대의로 볼 때에는 오히려 부끄러운 점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 절목에 대하여 아뢴 것조차 내버려 둔 채 시행하지 않고 계시니, 임금의 형세가 날로 고립되고 괴이한 논의가 날마다 기승을 부림이 당연합니다. 끊어야 할 때 끊지 않으면 거꾸로 재앙을 받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이 분명하니, 지난 일을 경계로 삼아야만 할 것입니다. 성상께서 결단을 내리느냐 못내리느냐에 종묘 사직의 존망이 달려 있는만큼 사태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는 성상께서 아무리 줄곧 고식적인 태도를 취하려 하시더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서궁(西宮)이 아비를 끼고서 역모를 꾀한 정상이 남김없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천자가 봉해 준 임금을 폐하고서 자기 소생을 세우려 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잡아서 죽일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의리에 입각하여 주청(奏請)함으로써 화란의 싹을 끊어 버려야 일을 가장 공명정대하게 처리함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문(奏聞)하지 않아 여론이 모두 위태롭게 여기며 걱정하고 있는데, 여전히 윤허하지 않고 계시니 신들의 의아심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속히 전에 입계한 절목을 계하하시어 간악한 무리들이 틈을 엿보며 역모를 꾀하는 계책을 막으시고, 이어 사정을 잘 알고 전대(專對)에 적합한 신하를 골라, 그 동안 벌어진 흉역(兇逆)의 정상을 급히 진달하게 함으로써 폐전(廢典)을 마무리하고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조섭하고 있는 이때에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대론(大論)이 완결되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합사하게 되었으니 어찌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성상께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엄한 분부를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명을 순종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나면 부득불 와서 아뢰곤 하는데, 이것이 어찌 신들이 그만둘 수 있는 데도 이러는 것이겠습니까. 국가가 망하게 될 화란이 눈앞에 다가왔으므로 사람들이 놀라며 두려워하고 있는데, 저쪽 편을 든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근을 제거하는 일을 불길 속에서 구해 내고 물속에서 건져 내는 것보다 급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이루지 못할까 두려운데, 더구나 미적거리고 늦추면서 세월만 헛되이 보낸다면 흉도의 역모를 어찌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성상의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니 지금 번거롭게 할 때가 아님을 신들이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국가의 대계를 조정에서 의논하여 이미 정했고, 그 폄삭 절목을 성상께서 보신 지도 이미 오래 되었는데, 성상께서는 돌아볼 것이 뭐가 있어서 이렇듯 어려워하시며 한 번 윤허하시기를 여태 아끼시어 계속 사람들이 의심하게 하고 흉악한 계책을 도모하도록 길을 열어 주신단 말입니까.
백관이 성상의 뜻에 순종하여 우선 말감(末減)하는 법을 따르면서 겨우 폄삭하는 전형(典刑)만 행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보전해 주려 한 생각이 성상의 처지에서는 극진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적을 토벌하는 《춘추(春秋)》의 대의로 볼 때에는 오히려 부끄러운 점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 절목에 대하여 아뢴 것조차 내버려 둔 채 시행하지 않고 계시니, 임금의 형세가 날로 고립되고 괴이한 논의가 날마다 기승을 부림이 당연합니다. 끊어야 할 때 끊지 않으면 거꾸로 재앙을 받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이 분명하니, 지난 일을 경계로 삼아야만 할 것입니다. 성상께서 결단을 내리느냐 못내리느냐에 종묘 사직의 존망이 달려 있는만큼 사태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는 성상께서 아무리 줄곧 고식적인 태도를 취하려 하시더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서궁(西宮)이 아비를 끼고서 역모를 꾀한 정상이 남김없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천자가 봉해 준 임금을 폐하고서 자기 소생을 세우려 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잡아서 죽일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의리에 입각하여 주청(奏請)함으로써 화란의 싹을 끊어 버려야 일을 가장 공명정대하게 처리함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문(奏聞)하지 않아 여론이 모두 위태롭게 여기며 걱정하고 있는데, 여전히 윤허하지 않고 계시니 신들의 의아심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속히 전에 입계한 절목을 계하하시어 간악한 무리들이 틈을 엿보며 역모를 꾀하는 계책을 막으시고, 이어 사정을 잘 알고 전대(專對)에 적합한 신하를 골라, 그 동안 벌어진 흉역(兇逆)의 정상을 급히 진달하게 함으로써 폐전(廢典)을 마무리하고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조섭하고 있는 이때에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그 동안 경외(京外)에서 공사를 돕기 위해 보낸 미포(米布) 및 전결(田結)에서 거둔 면포(綿布), 외방에서 올려 보낸 미포 및 조도사(調度使)가 올려 보낸 미포와 은냥(銀兩)을 일일이 상세하게 기록하여 아뢰라고 도감에 이르라."
"그 동안 경외(京外)에서 공사를 돕기 위해 보낸 미포(米布) 및 전결(田結)에서 거둔 면포(綿布), 외방에서 올려 보낸 미포 및 조도사(調度使)가 올려 보낸 미포와 은냥(銀兩)을 일일이 상세하게 기록하여 아뢰라고 도감에 이르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경기 근처에서는 쓸 만한 재목을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된 정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크고 곧은 것을 찾아내기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만, 그다지 구부러지지 않은 것을 골라 베어 낸다면 줄기는 작아도 그런 대로 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가 경기 감사에게 보낸 경차관(敬差官)이 벌채한 재목들을 보건대, 지름이나 길이가 크고 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구부러지고 구멍이 많이 나 있어 쓰기에 부적합하니, 백성이 애쓴 것이 애석하기만 합니다. 경차관을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쓰지 못할 구부러진 재목은 적당량을 경덕궁(慶德宮)에 보내어 차비 나인(差備內人)이나 하인들이 거처할 곳을 만들게 하고, 비록 구부러졌더라도 몸통이 큰 재목들은 경덕궁의 어디든 선택해서 활용하도록 하라." 하였다.
"경기 근처에서는 쓸 만한 재목을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된 정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크고 곧은 것을 찾아내기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만, 그다지 구부러지지 않은 것을 골라 베어 낸다면 줄기는 작아도 그런 대로 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가 경기 감사에게 보낸 경차관(敬差官)이 벌채한 재목들을 보건대, 지름이나 길이가 크고 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구부러지고 구멍이 많이 나 있어 쓰기에 부적합하니, 백성이 애쓴 것이 애석하기만 합니다. 경차관을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쓰지 못할 구부러진 재목은 적당량을 경덕궁(慶德宮)에 보내어 차비 나인(差備內人)이나 하인들이 거처할 곳을 만들게 하고, 비록 구부러졌더라도 몸통이 큰 재목들은 경덕궁의 어디든 선택해서 활용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단천(端川)에서 올라 온 옥편(玉片)을 들이라고 존숭 도감(尊崇都監)에 이르라."
"단천(端川)에서 올라 온 옥편(玉片)을 들이라고 존숭 도감(尊崇都監)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도감의 일이 날이 갈수록 매우 해이해지고 있는데 심지어는 재목이나 석재(石材)의 경우에 있어서도 간사한 폐단이 없지 않다고 하니, 도감에서 다시 더 자세히 살펴 엄히 단속함으로써 허술해지는 일이 없게끔 하라. 대개 묘궐(廟闕) 공사는 전결(田結)에서 거두어 들이는 면포(綿布) 8천 동(同)으로 하는데, 묘궐을 중건하는 일 이외에 국상(國喪)이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의 수요를 모두 이 미포(米布)로 보충해 써도 여유가 있었다. 이번에 영건(營建)하는 일이 비록 신궁(新宮)을 조성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공사를 돕는 미포나 장인세포(匠人稅布), 조도사(調度使)가 올려 보낸 물건, 전결에서 거두어 들인 포목 등을 합치면 그 수가 어찌 8천 동만 되겠는가. 이만한 재력을 가지고도 공사를 끝낼 기약이 까마득하기만 한 채 헛되이 소모되는 수효가 한 없으니 이렇게 된 것이 무슨 이유인지 알지 못하겠다. 다시 더 단속해 절약하면서 속히 완공시키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도감의 일이 날이 갈수록 매우 해이해지고 있는데 심지어는 재목이나 석재(石材)의 경우에 있어서도 간사한 폐단이 없지 않다고 하니, 도감에서 다시 더 자세히 살펴 엄히 단속함으로써 허술해지는 일이 없게끔 하라. 대개 묘궐(廟闕) 공사는 전결(田結)에서 거두어 들이는 면포(綿布) 8천 동(同)으로 하는데, 묘궐을 중건하는 일 이외에 국상(國喪)이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의 수요를 모두 이 미포(米布)로 보충해 써도 여유가 있었다. 이번에 영건(營建)하는 일이 비록 신궁(新宮)을 조성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공사를 돕는 미포나 장인세포(匠人稅布), 조도사(調度使)가 올려 보낸 물건, 전결에서 거두어 들인 포목 등을 합치면 그 수가 어찌 8천 동만 되겠는가. 이만한 재력을 가지고도 공사를 끝낼 기약이 까마득하기만 한 채 헛되이 소모되는 수효가 한 없으니 이렇게 된 것이 무슨 이유인지 알지 못하겠다. 다시 더 단속해 절약하면서 속히 완공시키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유약(柳瀹)의 상소를 추국청에 내리면서 회계(回啓)하라고 하교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회계하지 않고 있다. 회계하는 일을 요즘 들어 점점 지체하며 소홀히 하고 있는데, 이후로 색승지는 특별히 더 신칙하도록 하라."
"유약(柳瀹)의 상소를 추국청에 내리면서 회계(回啓)하라고 하교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회계하지 않고 있다. 회계하는 일을 요즘 들어 점점 지체하며 소홀히 하고 있는데, 이후로 색승지는 특별히 더 신칙하도록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부석소(浮石所)에서 수레를 끄는 소 1백 마리의 사료용 황초(黃草)를 당초에 마련해서 계하(啓下)받았습니다만, 그 뒤로 더 배정된 소들이 연속적으로 올라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임시로 변통해서 먹여 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연도(黃延道)의 연안(延安)·배천(白川) 등 고을에 나누어 배정한 황초가 무려 6천여 속(束)이나 되는데, 공문을 발송해 재촉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 데도 지금까지 올려 보낸다는 기별이 없으니, 앞으로 먹여 기를 일이 지극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본도 감사 및 두 고을 수령을 모두 중하게 추고하고, 금군(禁軍)에게 말을 주어 내려 보내 성화같이 바치라고 독촉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부석소(浮石所)에서 수레를 끄는 소 1백 마리의 사료용 황초(黃草)를 당초에 마련해서 계하(啓下)받았습니다만, 그 뒤로 더 배정된 소들이 연속적으로 올라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임시로 변통해서 먹여 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연도(黃延道)의 연안(延安)·배천(白川) 등 고을에 나누어 배정한 황초가 무려 6천여 속(束)이나 되는데, 공문을 발송해 재촉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 데도 지금까지 올려 보낸다는 기별이 없으니, 앞으로 먹여 기를 일이 지극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본도 감사 및 두 고을 수령을 모두 중하게 추고하고, 금군(禁軍)에게 말을 주어 내려 보내 성화같이 바치라고 독촉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부석소 수송 차량의 밧줄로 사용되는 숙마(熟麻)를 잡물소(雜物所)에 남겨 저장된 것을 계속 가져다 쓰고 있는데, 차량 숫자는 점점 증가되고 있으니 밧줄의 수요를 계속 댈 수가 없을 듯합니다. 3백 량(輛)의 수요 만큼 한정하여 우선 공홍도(公洪道)에 나누어 배정함으로써 급히 용도에 충당케 하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을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부석소 수송 차량의 밧줄로 사용되는 숙마(熟麻)를 잡물소(雜物所)에 남겨 저장된 것을 계속 가져다 쓰고 있는데, 차량 숫자는 점점 증가되고 있으니 밧줄의 수요를 계속 댈 수가 없을 듯합니다. 3백 량(輛)의 수요 만큼 한정하여 우선 공홍도(公洪道)에 나누어 배정함으로써 급히 용도에 충당케 하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을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홍문관 교리 강린, 수찬 이강 등이 상차하기를, "삼가 살피건대 서궁(西宮)은 신민의 처지로서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는 원수이고, 종사(宗社)는 서궁에 대해서 단죄하여 관계를 끊어버려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죄목을 거론하여 수십일 동안 논열(論列)했는 데도 폐출시키자는 요청을 윤허받지 못했음은 물론, 절목(節目)을 계하(啓下)받는 일조차 석 달 동안이나 지체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삿된 의논이 마구 일어나고 있으며, 의사(義士)는 입을 다물고 충신은 눈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화란이 일어날 요소가 암암리에 불어나 장차 놀라운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는 데도 전하께서는 여태 살피지 않고 계시며, 여론이 분개하는 것이 갈수록 격화되고 귀신이 말없이 의논하고 있는 데도 전하께서는 역시 단안을 내리지 않고 계십니다. 하늘이 싫어하는 것을 끊어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을 받는 법이고, 민심이 한 번 어긋나면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보장하기가 어려운데 전하께서 이토록 지연시키고 계시니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그리고 주문(奏聞)하는 일 역시 급히 해야 마땅한데, 아프고 가려우면 반드시 부모에게 호소하기 마련인 것이니, 일이 있어 고하는 것을 황제께서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종묘 사직의 역적에 대해서는 의리상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혈기(血氣)를 가진 자는 모두 토벌하기를 청하고 있는데, 국가와 휴척(休戚)을 같이 해야 할 대신의 신분으로서 남 몰래 비호하고 기웃기웃하면서, 오히려 이서(吏胥)들이 충성심을 발휘하는 것보다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쪽 편을 들어 모욕하고 조롱하며 의논을 드릴 때도 모호하게만 하면서 남 몰래 다른 뜻을 품고는 뒷날 복을 꾀하고 있으니 그 죄를 어찌 천지 사이에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조용히 조섭하고 계시는 때에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만, 대의를 밝히지 않으면 종묘 사직이 장차 위태로워지겠기에 감히 침묵만 지키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통쾌하게 공론을 따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조섭하는 때에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서궁(西宮)은 신민의 처지로서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는 원수이고, 종사(宗社)는 서궁에 대해서 단죄하여 관계를 끊어버려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죄목을 거론하여 수십일 동안 논열(論列)했는 데도 폐출시키자는 요청을 윤허받지 못했음은 물론, 절목(節目)을 계하(啓下)받는 일조차 석 달 동안이나 지체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삿된 의논이 마구 일어나고 있으며, 의사(義士)는 입을 다물고 충신은 눈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화란이 일어날 요소가 암암리에 불어나 장차 놀라운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는 데도 전하께서는 여태 살피지 않고 계시며, 여론이 분개하는 것이 갈수록 격화되고 귀신이 말없이 의논하고 있는 데도 전하께서는 역시 단안을 내리지 않고 계십니다. 하늘이 싫어하는 것을 끊어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을 받는 법이고, 민심이 한 번 어긋나면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보장하기가 어려운데 전하께서 이토록 지연시키고 계시니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그리고 주문(奏聞)하는 일 역시 급히 해야 마땅한데, 아프고 가려우면 반드시 부모에게 호소하기 마련인 것이니, 일이 있어 고하는 것을 황제께서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종묘 사직의 역적에 대해서는 의리상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혈기(血氣)를 가진 자는 모두 토벌하기를 청하고 있는데, 국가와 휴척(休戚)을 같이 해야 할 대신의 신분으로서 남 몰래 비호하고 기웃기웃하면서, 오히려 이서(吏胥)들이 충성심을 발휘하는 것보다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쪽 편을 들어 모욕하고 조롱하며 의논을 드릴 때도 모호하게만 하면서 남 몰래 다른 뜻을 품고는 뒷날 복을 꾀하고 있으니 그 죄를 어찌 천지 사이에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조용히 조섭하고 계시는 때에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만, 대의를 밝히지 않으면 종묘 사직이 장차 위태로워지겠기에 감히 침묵만 지키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통쾌하게 공론을 따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조섭하는 때에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예조가 계목(啓目)을 올리기를, "수원(水原)의 무학(武學) 박예남(朴禮男)이 상소하기를 ‘영정을 봉안하는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므로 사람들 모두가 은택이 내려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이번에 그가 상소한 것이 외람된 것 같기도 합니다만 다른 도의 예(例)에 따라 간략하게 과거 시험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또한 한때의 은전이라 할 것입니다. 상께서 재결(裁決)하시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이르기를, "아뢴 대로 윤허한다. 문과(文科)도 아울러 대거(對擧)하여 약간 명을 시취(試取)하도록 하라." 하였다.
"수원(水原)의 무학(武學) 박예남(朴禮男)이 상소하기를 ‘영정을 봉안하는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므로 사람들 모두가 은택이 내려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이번에 그가 상소한 것이 외람된 것 같기도 합니다만 다른 도의 예(例)에 따라 간략하게 과거 시험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또한 한때의 은전이라 할 것입니다. 상께서 재결(裁決)하시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이르기를,
"아뢴 대로 윤허한다. 문과(文科)도 아울러 대거(對擧)하여 약간 명을 시취(試取)하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의 계목에, "경상 감사 윤훤(尹暄)과 동래 부사(東萊府使) 황여일(黃汝一)이 올려 보낸 왜인의 서계(書啓)를 보건대, 대마 도주(對馬島主)의 아들이 그 아비가 죽은 뒤에 도주로 올라섰으면 전에 받은 도서(圖書)를 환수하여야 마땅할 듯한 데도 그냥 가지고 파견했으니 지극히 간교합니다. 이번에 접대한 뒤로는 이를 예로 삼지 말도록 할 일을 대신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승문원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 답서를 보내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윤허하였다.
"경상 감사 윤훤(尹暄)과 동래 부사(東萊府使) 황여일(黃汝一)이 올려 보낸 왜인의 서계(書啓)를 보건대, 대마 도주(對馬島主)의 아들이 그 아비가 죽은 뒤에 도주로 올라섰으면 전에 받은 도서(圖書)를 환수하여야 마땅할 듯한 데도 그냥 가지고 파견했으니 지극히 간교합니다. 이번에 접대한 뒤로는 이를 예로 삼지 말도록 할 일을 대신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승문원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 답서를 보내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윤허하였다.

 

4월 19일 무신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전라 감사의 장계 안에 ‘진명생(陳命生)을 붙잡아 올 때 그가 말한 참고할 만한 문서 1봉(封)을 봉부동(封不動)056)  으로 올려 보낸다.’ 하였는데, 이른바 ‘문서’란 완의(完議)한 내용 3장(張)과 언서 가사(諺書歌詞) 2장이었습니다. 봉해서 들이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註 056] 봉부동(封不動) : 결정적인 시기가 올 때까지는 열지 않는 것.
"전라 감사의 장계 안에 ‘진명생(陳命生)을 붙잡아 올 때 그가 말한 참고할 만한 문서 1봉(封)을 봉부동(封不動)056)  으로 올려 보낸다.’ 하였는데, 이른바 ‘문서’란 완의(完議)한 내용 3장(張)과 언서 가사(諺書歌詞) 2장이었습니다. 봉해서 들이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기를, "인경궁(仁慶宮) 별당(別堂)의 차지 낭청(次知郞廳) 성희구(成僖耉)가 상중(喪中)에 있다 하니, 그의 후임자로 성실하고 일을 아는 낭청을 엄선해서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추고한 낭청과 감역관(監役官) 등을 모두 행공(行公)시키라고 도감에 이르라. 또 번와소(燔瓦所)의 땔나무를 전혀 올려 보내지 않기 때문에 기와 굽는 일이 눈에 뜨이게 지난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더 납부하라고 재촉해서 속히 기와를 굽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또 외방의 재목이 어째서 지금까지 올라오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만약에 올라왔다면 어째서 실어들이지 않는 것인가? 올라왔는지의 여부를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게 하라." 하였다.
"인경궁(仁慶宮) 별당(別堂)의 차지 낭청(次知郞廳) 성희구(成僖耉)가 상중(喪中)에 있다 하니, 그의 후임자로 성실하고 일을 아는 낭청을 엄선해서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추고한 낭청과 감역관(監役官) 등을 모두 행공(行公)시키라고 도감에 이르라. 또 번와소(燔瓦所)의 땔나무를 전혀 올려 보내지 않기 때문에 기와 굽는 일이 눈에 뜨이게 지난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더 납부하라고 재촉해서 속히 기와를 굽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또 외방의 재목이 어째서 지금까지 올라오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만약에 올라왔다면 어째서 실어들이지 않는 것인가? 올라왔는지의 여부를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경덕궁 안에 액정서의 하인이 들어가 살 곳과 각 아문을 지을 때는 큰 재목을 써서 짓지 말고 그저 지난해에 쓰다 남은 작은 재목들을 사용해서 속히 짓도록 하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자세히 의논해서 행하게 하라. 또 도감에서 적합한 사람을 엄선하여 의망(擬望)한 뒤 낙점을 받아 차임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또 성지(性智)가 군직(軍職)에 부쳐졌다고는 하나 녹봉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니, 첨지(僉知)의 녹봉을 속히 제급(題給)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또 두 대궐의 석재(石材) 공사가 매우 많은데 캐 낸 돌을 제때에 즉시 실어오지 않고 있다 하니, 각별히 감독해서 속히 연속적으로 실어 들여 쓰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하였다.
"경덕궁 안에 액정서의 하인이 들어가 살 곳과 각 아문을 지을 때는 큰 재목을 써서 짓지 말고 그저 지난해에 쓰다 남은 작은 재목들을 사용해서 속히 짓도록 하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자세히 의논해서 행하게 하라. 또 도감에서 적합한 사람을 엄선하여 의망(擬望)한 뒤 낙점을 받아 차임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또 성지(性智)가 군직(軍職)에 부쳐졌다고는 하나 녹봉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니, 첨지(僉知)의 녹봉을 속히 제급(題給)하라고 해조에 이르라. 또 두 대궐의 석재(石材) 공사가 매우 많은데 캐 낸 돌을 제때에 즉시 실어오지 않고 있다 하니, 각별히 감독해서 속히 연속적으로 실어 들여 쓰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외방에서 올려 보낸 미곡과 공사 보조용 미두(米豆)의 수량을 상세히 서계(書啓)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군읍(郡邑)의 풍족하고 모자란 형편이 각자 같지 않기 때문에 공사 보조용 미포(米布) 역시 많고 적은 차이가 있는데 이제 상고해 내어 아뢰겠습니다. 그 가운데 공홍 병사(公洪兵使) 김의직(金義直)의 경우는 제도(諸道) 중 가장 피폐한 병영인 데도 불구하고 전후에 걸쳐 보내온 것을 보면 백미(白米)가 4백 석(石), 황두(黃豆)가 2백 석, 정목(正木)이 30동(同)이나 되니 나라에 정성을 다 바쳐 큰 공사를 도운 그 마음이 지극히 가상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장계에 부친 미두가 지금 올라왔으니 받아서 써야 하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김의직을 가자(加資)하라." 하였다.
"비망기로 ‘외방에서 올려 보낸 미곡과 공사 보조용 미두(米豆)의 수량을 상세히 서계(書啓)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군읍(郡邑)의 풍족하고 모자란 형편이 각자 같지 않기 때문에 공사 보조용 미포(米布) 역시 많고 적은 차이가 있는데 이제 상고해 내어 아뢰겠습니다. 그 가운데 공홍 병사(公洪兵使) 김의직(金義直)의 경우는 제도(諸道) 중 가장 피폐한 병영인 데도 불구하고 전후에 걸쳐 보내온 것을 보면 백미(白米)가 4백 석(石), 황두(黃豆)가 2백 석, 정목(正木)이 30동(同)이나 되니 나라에 정성을 다 바쳐 큰 공사를 도운 그 마음이 지극히 가상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장계에 부친 미두가 지금 올라왔으니 받아서 써야 하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김의직을 가자(加資)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재목을 모집하는 사목(事目)을 마련해서 입계하니 판부(判付)하시기를, ‘이 사목 중에 「목재 3백 조(條)를 바치면 당상에 올린다.」고 한 것은 사목의 규정이 너무도 협소하다. 개정할 곳을 자세히 살펴 다시 마련토록 하라.’ 전교하셨습니다. 사목의 규정이 과연 너무도 협소하기에 재목의 수효가 너무 많은 곳을 줄여 마련한 다음 부표(付標)해서 들이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재목을 모집하는 사목(事目)을 마련해서 입계하니 판부(判付)하시기를, ‘이 사목 중에 「목재 3백 조(條)를 바치면 당상에 올린다.」고 한 것은 사목의 규정이 너무도 협소하다. 개정할 곳을 자세히 살펴 다시 마련토록 하라.’ 전교하셨습니다. 사목의 규정이 과연 너무도 협소하기에 재목의 수효가 너무 많은 곳을 줄여 마련한 다음 부표(付標)해서 들이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삼사(三司)의 관원도 인신(人臣)이다. 그런데 위에서 바야흐로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중인데, 전교를 무시한 채 그저 긴요하지도 않은 잡된 공사(公事)를 가지고 조섭하고 있는 때에 번거롭게 하다니 지극히 잘못되었다. 건강이 회복될 동안만이라도 급하지 않은 계사(啓辭)는 우선 정지토록 하라."
"삼사(三司)의 관원도 인신(人臣)이다. 그런데 위에서 바야흐로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중인데, 전교를 무시한 채 그저 긴요하지도 않은 잡된 공사(公事)를 가지고 조섭하고 있는 때에 번거롭게 하다니 지극히 잘못되었다. 건강이 회복될 동안만이라도 급하지 않은 계사(啓辭)는 우선 정지토록 하라."
전교하였다. "두 궁궐 공사에 역군(役軍)을 모집할 때 어린애로 구차하게 충원하여 부역시키지 말고 반드시 건장한 사람만 각별히 골라 부역케 하는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두 궁궐 공사에 역군(役軍)을 모집할 때 어린애로 구차하게 충원하여 부역시키지 말고 반드시 건장한 사람만 각별히 골라 부역케 하는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라 감사 이홍주(李弘胄)가 장계(狀啓)를 올려 아뢰기를, "삼가 받은 유지(有旨) 안에 ‘호남의 흉서(凶書)를 안처인(安處仁)이 지었다고 애춘(愛春)이 공초(供招)하였다는데, 과연 이 말대로라면 두 안가(安哥)야말로 흉악한 역적이라 할 것인데, 경은 어찌하여 하나하나 들어서 계문하지 않았는가? 처인 등이 한 고을 모두에 원한을 품고서 흉서를 만들어 모함할 이치도 진정 없지 않으니, 같은 도내 및 다른 도의 허다한 사람들 역시 모두 원망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지 경은 밀계(密啓)하도록 하라.’고 하유하셨습니다.  애춘의 초사(招辭)에 의거하여 안처인의 정적(情迹)이 의심스러운 정상에 대해서는 이미 치계(馳啓)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더 자세히 물어본 결과 도내 각 고을에서 잡혀 온 사람들 모두가 장수(長水) 한 고을과 관련이 있었으니, 이번의 흉서는 전적으로 장수 사람들 때문에 나온 것인 듯합니다. 장수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명록(名錄)에 기입하였는데, 온 고을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도내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고 합니다." 하였다. 【이때 안처인이 스스로 흉서를 지어내어 장수 한 고을을 무함하는 바람에 호남과 영남 사이에 파급되어 체포된 자들이 1백 수십 인이나 되었는데 국청을 설치한 몇 달 동안 구속된 사람들이 감옥에 가득하였다.】
"삼가 받은 유지(有旨) 안에 ‘호남의 흉서(凶書)를 안처인(安處仁)이 지었다고 애춘(愛春)이 공초(供招)하였다는데, 과연 이 말대로라면 두 안가(安哥)야말로 흉악한 역적이라 할 것인데, 경은 어찌하여 하나하나 들어서 계문하지 않았는가? 처인 등이 한 고을 모두에 원한을 품고서 흉서를 만들어 모함할 이치도 진정 없지 않으니, 같은 도내 및 다른 도의 허다한 사람들 역시 모두 원망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지 경은 밀계(密啓)하도록 하라.’고 하유하셨습니다.
애춘의 초사(招辭)에 의거하여 안처인의 정적(情迹)이 의심스러운 정상에 대해서는 이미 치계(馳啓)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더 자세히 물어본 결과 도내 각 고을에서 잡혀 온 사람들 모두가 장수(長水) 한 고을과 관련이 있었으니, 이번의 흉서는 전적으로 장수 사람들 때문에 나온 것인 듯합니다. 장수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명록(名錄)에 기입하였는데, 온 고을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도내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고 합니다."
하였다. 【이때 안처인이 스스로 흉서를 지어내어 장수 한 고을을 무함하는 바람에 호남과 영남 사이에 파급되어 체포된 자들이 1백 수십 인이나 되었는데 국청을 설치한 몇 달 동안 구속된 사람들이 감옥에 가득하였다.】
4월 20일 기유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어탑의 석재(石材) 및 봉교(鳳橋)의 석재를 모두 채취하였으니, 전에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동쪽 채석장은 지금 우선 서쪽 채석장으로 옮겨 힘을 합쳐서 많이 채취한 뒤 다시 형세를 보아 가며 동쪽 채석장으로 인원을 돌려 보내는 것이 무방할 듯도 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다만 경덕궁(慶德宮)의 어탑과 봉교의 석재까지 다 채취한 다음에 서쪽 채석장으로 옮겨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어탑의 석재(石材) 및 봉교(鳳橋)의 석재를 모두 채취하였으니, 전에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동쪽 채석장은 지금 우선 서쪽 채석장으로 옮겨 힘을 합쳐서 많이 채취한 뒤 다시 형세를 보아 가며 동쪽 채석장으로 인원을 돌려 보내는 것이 무방할 듯도 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다만 경덕궁(慶德宮)의 어탑과 봉교의 석재까지 다 채취한 다음에 서쪽 채석장으로 옮겨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가 안질(眼疾)로 무척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례(大禮)조차 누차 물렸으니 지금은 하례(賀禮)를 받을 때가 아니다. 탄일(誕日)의 하례는 권정례(權停例)로 하도록 하라."
"내가 안질(眼疾)로 무척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례(大禮)조차 누차 물렸으니 지금은 하례(賀禮)를 받을 때가 아니다. 탄일(誕日)의 하례는 권정례(權停例)로 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변무(辨誣)하는 주문(奏文)을 천추사(千秋使)나 성절사(聖節使) 편에 부쳐 보낸다면 어떤 사신들 가운데 상사(上使)와 부사(副使)를 차임해 보낼 것인지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변무(辨誣)하는 주문(奏文)을 천추사(千秋使)나 성절사(聖節使) 편에 부쳐 보낸다면 어떤 사신들 가운데 상사(上使)와 부사(副使)를 차임해 보낼 것인지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유학 윤해수(尹海壽)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론(大論)이 여태 지체되어 화근(禍根)이 제거되지 않고 있으므로 괴상한 논의가 대중을 현혹하고 간악한 패거리가 일을 망치고 있습니다. 황덕부(黃德符)는 본래 흉악하고 사특하며 극악무도한 인간으로서 맨 먼저 이의(異議)를 제창하여 남 몰래 서궁(西宮)을 비호하고 거의(擧義)한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박종주(朴宗胄)는 행실이 부박(浮薄)하고 금수같은 자로서 돈으로 벼슬길에 나와 전랑(銓郞)으로 들어가려고 급급한 나머지 암암리에 그의 사주를 받고는 먼저 전랑을 공격함으로써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세웠는데, 양사의 관원들은 덕부의 위세에 겁을 먹고 감히 이에 맞서서 제지하려고도 하지 못했습니다. 덕부 등이 권세를 부리며 충성스러운 사람을 가로막은 죄를 다스려 조정을 맑게 하고 정론을 일으켜 세우소서. 그리고 속히 절목(節目)을 내리는 동시에 주청(奏請)하는 일을 행하여 대국(大局)이 정해지도록 하소서."
"대론(大論)이 여태 지체되어 화근(禍根)이 제거되지 않고 있으므로 괴상한 논의가 대중을 현혹하고 간악한 패거리가 일을 망치고 있습니다. 황덕부(黃德符)는 본래 흉악하고 사특하며 극악무도한 인간으로서 맨 먼저 이의(異議)를 제창하여 남 몰래 서궁(西宮)을 비호하고 거의(擧義)한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박종주(朴宗胄)는 행실이 부박(浮薄)하고 금수같은 자로서 돈으로 벼슬길에 나와 전랑(銓郞)으로 들어가려고 급급한 나머지 암암리에 그의 사주를 받고는 먼저 전랑을 공격함으로써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세웠는데, 양사의 관원들은 덕부의 위세에 겁을 먹고 감히 이에 맞서서 제지하려고도 하지 못했습니다. 덕부 등이 권세를 부리며 충성스러운 사람을 가로막은 죄를 다스려 조정을 맑게 하고 정론을 일으켜 세우소서. 그리고 속히 절목(節目)을 내리는 동시에 주청(奏請)하는 일을 행하여 대국(大局)이 정해지도록 하소서."


 

유학 김홍원(金弘愿)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궁의 죄악이 천지에 가득 찼는데 감손(減損)한 절목마저 속히 내리지 않고 계시므로 괴상한 논의가 대중을 현혹하고 간악한 무리들이 남 몰래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황덕부가 이론(異論)을 먼저 제창하고 의논을 거둘 때에도 모호하게 하면서 의로운 행동을 일으킨 사람들을 모함하게 된 것입니다. 박종주가 금수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벼룩처럼 덕부에게 빌붙어서 전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욕심에서 양사의 관원을 협박하여 한옥(韓玉)을 논계하게 하였는데, 양사의 관원이 모두 휩쓸려 따라갔으니 언지(言地)의 직분을 잘못 수행했다고 하겠습니다. 먼저 덕부와 종주가 대론을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권세를 휘두르며 흉악한 생각을 품은 죄를 다스리시고, 속히 절목을 내려 종묘 사직이 안정되도록 하소서."
"서궁의 죄악이 천지에 가득 찼는데 감손(減損)한 절목마저 속히 내리지 않고 계시므로 괴상한 논의가 대중을 현혹하고 간악한 무리들이 남 몰래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황덕부가 이론(異論)을 먼저 제창하고 의논을 거둘 때에도 모호하게 하면서 의로운 행동을 일으킨 사람들을 모함하게 된 것입니다. 박종주가 금수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벼룩처럼 덕부에게 빌붙어서 전랑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욕심에서 양사의 관원을 협박하여 한옥(韓玉)을 논계하게 하였는데, 양사의 관원이 모두 휩쓸려 따라갔으니 언지(言地)의 직분을 잘못 수행했다고 하겠습니다. 먼저 덕부와 종주가 대론을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권세를 휘두르며 흉악한 생각을 품은 죄를 다스리시고, 속히 절목을 내려 종묘 사직이 안정되도록 하소서."

 

4월 21일 경술

사간 신광업이 아뢰기를, "전일 합사한 자리에서 헌납 박종주가 맨 먼저 한옥(韓玉)의 문제를 발론하였는데, 신도 동료와 함께 이 논에 따라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소(儒疏)를 보건대, 대개 ‘양사의 관원들이 황덕부의 위세에 겁이 나서 이에 휩쓸려 따랐다.’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척(遞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전일 합사한 자리에서 헌납 박종주가 맨 먼저 한옥(韓玉)의 문제를 발론하였는데, 신도 동료와 함께 이 논에 따라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소(儒疏)를 보건대, 대개 ‘양사의 관원들이 황덕부의 위세에 겁이 나서 이에 휩쓸려 따랐다.’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척(遞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헌납 박종주가 아뢰기를, "신이 전일 합사한 모임에서 이조 정랑 한옥의 추잡하고 더러운 정상과 권세를 제멋대로 휘두른 죄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꺼내 조금 바로잡는 거조를 보인 것은 대체로 일단의 공론을 펴기 위함이었지, 어찌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사의(私意)가 개재된 것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유학 윤해수가 상소한 것을 보건대, 대개 ‘그의 음험한 사주를 받고 먼저 전랑(銓郞)을 공격함으로써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하였다.’고 말했으니, 신은 삼가 괴이쩍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신과 황덕부는 함께 같은 울타리 안에 거하면서 장자(長者)의 문하에서 어울려 놀았습니다. 그래서 국가에 관계되는 일이 있을 때에 가부(可否)를 상의한 적이 혹 있기는 하였습니다만, 일개 5품의 관원을 공격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기에 감히 덕부의 사주를 받고 이렇게 한옥을 공격하는 일을 했겠습니까. 더구나 한옥도 같은 무리의 사람인데 한 번 바로잡아 꾸짖는 것으로 어찌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렇게 한옥을 공격한 일을 가지고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했다고 고집한다면, 한옥은 과연 다른 판국에 속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김홍원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하였다.’는 말이 있었으니 더욱 통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대론(大論)이 처음 발동될 때 어떤 언관(言官) 하나가 맨 먼저 일을 회피하려는 자취를 보였었습니다. 그래서 신과 장령 한영(韓詠)이 밤새 초안을 작성해 마치 매가 참새를 쫓듯 그를 공격해 제거하였으므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대론이 펼쳐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성상께서 훤히 아시는 바이고 대소 신료들이 듣고 본 바입니다. 또 그 자가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했다고 가리킨 것이 무슨 뜻에서 나온 것인지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비록 우매하여 사리를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일찍이 사우(師友)에게서 들었고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일찍이 《춘추》에서 배웠으며, 대론을 시종일관 담당한 것도 실로 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요망한 유자(儒者)가 뭐라고 말을 많이 하든 같이 따질 것은 없겠습니다만, 언지(言地)에 있는 신분으로서 갖은 모욕을 당했으니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전일 합사한 모임에서 이조 정랑 한옥의 추잡하고 더러운 정상과 권세를 제멋대로 휘두른 죄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꺼내 조금 바로잡는 거조를 보인 것은 대체로 일단의 공론을 펴기 위함이었지, 어찌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사의(私意)가 개재된 것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유학 윤해수가 상소한 것을 보건대, 대개 ‘그의 음험한 사주를 받고 먼저 전랑(銓郞)을 공격함으로써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하였다.’고 말했으니, 신은 삼가 괴이쩍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신과 황덕부는 함께 같은 울타리 안에 거하면서 장자(長者)의 문하에서 어울려 놀았습니다. 그래서 국가에 관계되는 일이 있을 때에 가부(可否)를 상의한 적이 혹 있기는 하였습니다만, 일개 5품의 관원을 공격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기에 감히 덕부의 사주를 받고 이렇게 한옥을 공격하는 일을 했겠습니까. 더구나 한옥도 같은 무리의 사람인데 한 번 바로잡아 꾸짖는 것으로 어찌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렇게 한옥을 공격한 일을 가지고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했다고 고집한다면, 한옥은 과연 다른 판국에 속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김홍원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하였다.’는 말이 있었으니 더욱 통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대론(大論)이 처음 발동될 때 어떤 언관(言官) 하나가 맨 먼저 일을 회피하려는 자취를 보였었습니다. 그래서 신과 장령 한영(韓詠)이 밤새 초안을 작성해 마치 매가 참새를 쫓듯 그를 공격해 제거하였으므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대론이 펼쳐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성상께서 훤히 아시는 바이고 대소 신료들이 듣고 본 바입니다. 또 그 자가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했다고 가리킨 것이 무슨 뜻에서 나온 것인지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비록 우매하여 사리를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일찍이 사우(師友)에게서 들었고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일찍이 《춘추》에서 배웠으며, 대론을 시종일관 담당한 것도 실로 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요망한 유자(儒者)가 뭐라고 말을 많이 하든 같이 따질 것은 없겠습니다만, 언지(言地)에 있는 신분으로서 갖은 모욕을 당했으니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언 서국정이 아뢰기를, "지난번 합사하던 날 한옥을 논계하는 일이 자리에서 발론되었는데 그때 신도 동참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삼가 윤해수와 김홍원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형편없는 말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뿐이었는데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추잡하게 비난하고 모욕을 가했으니, 신은 삼가 괴이하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대개 대간의 논계는 관원 한 사람이 발언했을 때 관원 모두가 따르면 하는 것이고,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피혐하거나 정지하는 것이 예(例)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옥을 논한 것은 실로 양사 모두가 동의해서 나온 것이지 박종주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낭관(郞官) 하나를 탄핵하는 것이 대론(大論)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 것이겠으며 조정에 도대체 무슨 비중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윤해수와 김홍원이 틈을 엿보다 잇달아 소장을 올리면서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자를 배척하였으며 위세에 겁이 나서 판국을 뒤바꾸려 했다.’는 등의 말을 가지고 지척(指斥)하여 화를 전가시키고 재앙을 만들어 내는 자료로 삼고 있으니, 도성에 잠복해 있으면서 교묘하게 유도해 분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간악한 자가 반드시 그 배후에 있을 것입니다. 이 어찌 통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의리를 떨쳐 대론을 일으킨 것은 오늘날에 나온 것이 아니고 실로 계축년에 상소하였던 유생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신도 그 상소한 유생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김제남(金悌男)이 복주(伏誅)된 뒤로 서궁의 죄상에 대해 대각(臺閣)이나 초야를 막론하고 한 사람도 의리에 입각하여 발론한 자가 없었는데, 신과 이홍엽(李弘燁)·이위경(李偉卿)·황덕부(黃德符)·이상항(李尙恒)·한희(韓暿)·한급(韓昅)·최호(崔濩)·채겸길(蔡謙吉)·신게(申垍)·안응로(安應魯) 등 20인이 처음으로 서궁을 토죄(討罪)하며 호씨(胡氏)의 논을 따르자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역적을 비호하던 복형(復亨)·엄성(嚴惺)의 무리들이 유적(儒籍)에서 이름을 삭제하기도 하고 사관(四館)에서 정거(停擧)시키기도 하였으며, 계속해서 경기(慶起)·무적(茂績)·효성(孝誠) 등이 정조(鄭造)·윤인(尹訒) 및 상소한 유생들을 목 베라고 청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신들은 해수와 홍원이 역적을 토벌하자는 말을 한 번이라도 꺼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본다면 해수 등의 이른바 ‘대사를 망쳤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일을 가리키는 것이며,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했다는 말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심지어는 위세에 질렸다고 하였습니다만, 그렇다면 한옥도 똑 같은 전랑인데 어찌하여 덕부에게만 겁을 내고 유독 한옥에게는 겁을 내지 않았단 말입니까. 판국을 뒤바꾸려 했다는 말은 더욱 더 괴이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날의 대론은 신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고 있으므로 절목(節目)을 속히 내리고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빨리 폐전(廢典)을 완결짓자고 누차 청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 여태 윤허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사론(邪論)이 벌떼처럼 일어나면서 뭇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이니, 신은 흉악한 무리들이 판국을 뒤바꾸는 날 신들이 반드시 죽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요망한 유자(儒者)가 남의 사주를 듣고는 대론을 칭탁하면서 소장을 교대로 올려 대각을 배척하고 조정에 간섭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의 기강이 떨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차지해서는 안될 직책에 있으면서 온갖 배척을 받았으니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지난번 합사하던 날 한옥을 논계하는 일이 자리에서 발론되었는데 그때 신도 동참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삼가 윤해수와 김홍원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형편없는 말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뿐이었는데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추잡하게 비난하고 모욕을 가했으니, 신은 삼가 괴이하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대개 대간의 논계는 관원 한 사람이 발언했을 때 관원 모두가 따르면 하는 것이고,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피혐하거나 정지하는 것이 예(例)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옥을 논한 것은 실로 양사 모두가 동의해서 나온 것이지 박종주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낭관(郞官) 하나를 탄핵하는 것이 대론(大論)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 것이겠으며 조정에 도대체 무슨 비중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윤해수와 김홍원이 틈을 엿보다 잇달아 소장을 올리면서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자를 배척하였으며 위세에 겁이 나서 판국을 뒤바꾸려 했다.’는 등의 말을 가지고 지척(指斥)하여 화를 전가시키고 재앙을 만들어 내는 자료로 삼고 있으니, 도성에 잠복해 있으면서 교묘하게 유도해 분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간악한 자가 반드시 그 배후에 있을 것입니다. 이 어찌 통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의리를 떨쳐 대론을 일으킨 것은 오늘날에 나온 것이 아니고 실로 계축년에 상소하였던 유생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신도 그 상소한 유생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김제남(金悌男)이 복주(伏誅)된 뒤로 서궁의 죄상에 대해 대각(臺閣)이나 초야를 막론하고 한 사람도 의리에 입각하여 발론한 자가 없었는데, 신과 이홍엽(李弘燁)·이위경(李偉卿)·황덕부(黃德符)·이상항(李尙恒)·한희(韓暿)·한급(韓昅)·최호(崔濩)·채겸길(蔡謙吉)·신게(申垍)·안응로(安應魯) 등 20인이 처음으로 서궁을 토죄(討罪)하며 호씨(胡氏)의 논을 따르자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역적을 비호하던 복형(復亨)·엄성(嚴惺)의 무리들이 유적(儒籍)에서 이름을 삭제하기도 하고 사관(四館)에서 정거(停擧)시키기도 하였으며, 계속해서 경기(慶起)·무적(茂績)·효성(孝誠) 등이 정조(鄭造)·윤인(尹訒) 및 상소한 유생들을 목 베라고 청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신들은 해수와 홍원이 역적을 토벌하자는 말을 한 번이라도 꺼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본다면 해수 등의 이른바 ‘대사를 망쳤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일을 가리키는 것이며,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했다는 말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심지어는 위세에 질렸다고 하였습니다만, 그렇다면 한옥도 똑 같은 전랑인데 어찌하여 덕부에게만 겁을 내고 유독 한옥에게는 겁을 내지 않았단 말입니까. 판국을 뒤바꾸려 했다는 말은 더욱 더 괴이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날의 대론은 신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하고 있으므로 절목(節目)을 속히 내리고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빨리 폐전(廢典)을 완결짓자고 누차 청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 여태 윤허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사론(邪論)이 벌떼처럼 일어나면서 뭇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이니, 신은 흉악한 무리들이 판국을 뒤바꾸는 날 신들이 반드시 죽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요망한 유자(儒者)가 남의 사주를 듣고는 대론을 칭탁하면서 소장을 교대로 올려 대각을 배척하고 조정에 간섭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의 기강이 떨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차지해서는 안될 직책에 있으면서 온갖 배척을 받았으니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장령 한영·강수, 지평 신칙이 아뢰기를, "신들이 지난번 합사하던 날 이조 정랑 한옥이 권세를 멋대로 휘두른 정상을 가지고 공론에 따라 상의해서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윤해수와 김홍원 등이 서로 잇달아 소장을 올렸는데 하나는 ‘먼저 전랑(銓郞)을 공격하여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하고 있다.’ 하고, 또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하였다.’고 하면서, 있는 힘을 다 쏟아 추악한 비난을 드러나게 가하였습니다. 신들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론을 담당한 사람들로서 피 끓는 정성으로 역적을 토벌하며 목숨을 내걸고 있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신들 이외에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이 대의를 밝히고 대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일개 한옥이 대론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렇듯 판국을 뒤바꾸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계책을 세운단 말입니까. 아, 이 또한 참혹한 일입니다. 한옥의 추잡한 정상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들이 논계한 것이야말로 공공(公共)의 뜻에서 나온 것인데 위세에 눌려 서로서로 휩쓸려 따랐을 리가 있겠습니까. 도깨비 같은 말은 본래 따질 가치도 없다 하겠습니다만, 언지(言地)에 있는 몸으로서 이미 배척을 받았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지난번 합사하던 날 이조 정랑 한옥이 권세를 멋대로 휘두른 정상을 가지고 공론에 따라 상의해서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윤해수와 김홍원 등이 서로 잇달아 소장을 올렸는데 하나는 ‘먼저 전랑(銓郞)을 공격하여 판국을 뒤바꿀 계획을 하고 있다.’ 하고, 또 ‘대사를 망치고 의로운 행동을 한 이들을 배척하였다.’고 하면서, 있는 힘을 다 쏟아 추악한 비난을 드러나게 가하였습니다.
신들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론을 담당한 사람들로서 피 끓는 정성으로 역적을 토벌하며 목숨을 내걸고 있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신들 이외에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이 대의를 밝히고 대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일개 한옥이 대론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렇듯 판국을 뒤바꾸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계책을 세운단 말입니까. 아, 이 또한 참혹한 일입니다. 한옥의 추잡한 정상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들이 논계한 것이야말로 공공(公共)의 뜻에서 나온 것인데 위세에 눌려 서로서로 휩쓸려 따랐을 리가 있겠습니까. 도깨비 같은 말은 본래 따질 가치도 없다 하겠습니다만, 언지(言地)에 있는 몸으로서 이미 배척을 받았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집의 임건이 아뢰기를, "전일 석상에서 한옥에 대한 논이 중하게 발동되었을 때 신도 논계하는 대열에 동참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윤해수와 김홍원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그 내용이 극도로 배척한 것이었으니, 신은 뻔뻔스럽게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일 석상에서 한옥에 대한 논이 중하게 발동되었을 때 신도 논계하는 대열에 동참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윤해수와 김홍원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그 내용이 극도로 배척한 것이었으니, 신은 뻔뻔스럽게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대사간 윤인, 정언 이원여가 아뢰기를, "한옥은 일개 추잡한 인간으로서 남의 노비를 빼앗으면서도 거리낌이 전혀 없었으므로, 입이 있는 이는 모두 말을 하고 이를 들은 이는 침을 뱉으며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정청(政廳)에서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 당상(堂上)을 능멸하며 정사(政事)하는 초안을 찢어 버리기까지 하였으니, 그가 권세를 멋대로 휘두른 정상이 이미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신들이 논한 것이야말로 공공(公共)의 뜻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윤해수와 김홍원 등이 ‘위세에 질려 서로서로 휩쓸려 따랐다.’는 등의 말로 온 힘을 기울여 신들을 배척하였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한옥은 일개 추잡한 인간으로서 남의 노비를 빼앗으면서도 거리낌이 전혀 없었으므로, 입이 있는 이는 모두 말을 하고 이를 들은 이는 침을 뱉으며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정청(政廳)에서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 당상(堂上)을 능멸하며 정사(政事)하는 초안을 찢어 버리기까지 하였으니, 그가 권세를 멋대로 휘두른 정상이 이미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신들이 논한 것이야말로 공공(公共)의 뜻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윤해수와 김홍원 등이 ‘위세에 질려 서로서로 휩쓸려 따랐다.’는 등의 말로 온 힘을 기울여 신들을 배척하였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지평 이중계가 아뢰기를, "삼가 윤해수와 김홍원 등의 상소를 보건대, 거의 온 힘을 기울여 양사를 배척하였습니다. 이에 양사의 관원들이 모두 이를 이유로 인피(引避)하였는데, 신 역시 양사의 일원이니 결코 뻔뻔스럽게 자리에 그대로 있기가 어렵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윤해수와 김홍원 등의 상소를 보건대, 거의 온 힘을 기울여 양사를 배척하였습니다. 이에 양사의 관원들이 모두 이를 이유로 인피(引避)하였는데, 신 역시 양사의 일원이니 결코 뻔뻔스럽게 자리에 그대로 있기가 어렵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대교 이점(李蒧)이 아뢰기를, "신이 우의정 민몽룡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이러한 때를 당하여 병세가 그다지 중하지만 않다면 어찌 감히 하루라도 병을 핑계대고 직무를 폐하겠는가. 담증(痰症)이 날마다 격화되고 구토가 그치지 않아 미음도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기력이 전혀 없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데 누차 성상의 유시를 받고 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우의정 민몽룡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이러한 때를 당하여 병세가 그다지 중하지만 않다면 어찌 감히 하루라도 병을 핑계대고 직무를 폐하겠는가. 담증(痰症)이 날마다 격화되고 구토가 그치지 않아 미음도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기력이 전혀 없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데 누차 성상의 유시를 받고 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문제를 응당 요리해서 조성해야 할 것인 데도 여태 의논해 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이충(李沖)이 나갔으니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제조들은 무슨 핑계든 대지 말고 회동해 상의해서 봉상시를 옮길 곳을 결정하도록 하라. 그리고 경덕궁(慶德宮)의 3문(門)도 아울러 속히 의논해 정하도록 하라. 시일만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도감에 일러 각별히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문제를 응당 요리해서 조성해야 할 것인 데도 여태 의논해 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이충(李沖)이 나갔으니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제조들은 무슨 핑계든 대지 말고 회동해 상의해서 봉상시를 옮길 곳을 결정하도록 하라. 그리고 경덕궁(慶德宮)의 3문(門)도 아울러 속히 의논해 정하도록 하라. 시일만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도감에 일러 각별히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진사 윤유겸(尹惟謙)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궁(西宮)에 대한 절목(節目)을 아직 내리시지 않은 탓으로 괴이한 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황덕부(黃德符)가 의논을 거둘 때 모호하게 하고, 흉계를 이루려고 장차 대론(大論)을 주장한 동료들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박종주(朴宗胄)가 덕부에게 아첨하며 빌붙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을 엄폐하려고 급급하여 그의 눈치를 보아가며 비위를 맞춰 맨 먼저 시끄럽게 될 단서를 야기시켰습니다. 속히 절목을 내리시고 이어 주청(奏請)하는 일을 행하소서. 그리고 먼저 신이 망언하여 번거롭게 해 드린 죄를 다스리시고, 다음에 황덕부와 박종주가 임금을 등지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가로막은 죄를 다스리심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국시(國是)가 정해지도록 하소서."
"서궁(西宮)에 대한 절목(節目)을 아직 내리시지 않은 탓으로 괴이한 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황덕부(黃德符)가 의논을 거둘 때 모호하게 하고, 흉계를 이루려고 장차 대론(大論)을 주장한 동료들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박종주(朴宗胄)가 덕부에게 아첨하며 빌붙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을 엄폐하려고 급급하여 그의 눈치를 보아가며 비위를 맞춰 맨 먼저 시끄럽게 될 단서를 야기시켰습니다. 속히 절목을 내리시고 이어 주청(奏請)하는 일을 행하소서. 그리고 먼저 신이 망언하여 번거롭게 해 드린 죄를 다스리시고, 다음에 황덕부와 박종주가 임금을 등지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가로막은 죄를 다스리심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국시(國是)가 정해지도록 하소서."
4월 22일 신해

대사헌 남근이 아뢰기를, "한옥(韓玉)에 대한 말이 간원에서 발론되긴 하였으나 본부 또한 따라서 논계하였는데, 신은 바로 동참한 사람들 중의 우두머리로서 똑 같이 추악한 비난을 받았으니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남근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한옥(韓玉)에 대한 말이 간원에서 발론되긴 하였으나 본부 또한 따라서 논계하였는데, 신은 바로 동참한 사람들 중의 우두머리로서 똑 같이 추악한 비난을 받았으니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남근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흥 부원군(全興府院君) 이시언(李時言)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경은 숙장(宿將)으로서 사명(司命)의 임무에 진실로 적합하니,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여 직무를 극진히 살피도록 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경은 숙장(宿將)으로서 사명(司命)의 임무에 진실로 적합하니,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여 직무를 극진히 살피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 안질이 아직도 쾌차되지 않았으니, 존호(尊號)를 올리는 일을 9월 초승으로 날짜를 다시 택해 물려서 행하라고 예관(禮官)에게 이르라."
"내 안질이 아직도 쾌차되지 않았으니, 존호(尊號)를 올리는 일을 9월 초승으로 날짜를 다시 택해 물려서 행하라고 예관(禮官)에게 이르라."


 

비밀 전교를 내렸다. "내 병 때문에 사은사(謝恩使)가 지금까지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만약 조칙을 영접하기 전이라도 먼저 길을 떠나게 하되 의주(義州)에 머물러 있도록 하고, 조칙을 영접한 다음에 사은하는 표문(表文)을 승문원 관원으로 하여금 싸 가지고 가게 해서 부쳐 보낸다면 온당하게 될 듯싶으니, 이 뜻을 승문원에 말해서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내 병 때문에 사은사(謝恩使)가 지금까지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만약 조칙을 영접하기 전이라도 먼저 길을 떠나게 하되 의주(義州)에 머물러 있도록 하고, 조칙을 영접한 다음에 사은하는 표문(表文)을 승문원 관원으로 하여금 싸 가지고 가게 해서 부쳐 보낸다면 온당하게 될 듯싶으니, 이 뜻을 승문원에 말해서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외방에서 이미 올려 보낸 공사 보조용 미두(米豆)의 수효를 상세히 서계(書啓)하고, 담당 제조(提調)가 한 번 나가서 수직(守直)하는 일을 점검하라. 그리고 이렇게 올려 보내는 미두를 보관할 창고를 만들 때 관원이 숙직할 곳도 몇 칸 아울러 짓고, 담당 감역관(監役官)과 담당 낭청이 상호 교대로 나가 지킴은 물론, 군사와 부장(部將)을 많이 배정한 뒤 교대 인원을 한 사람씩 정해 내보내어, 각별히 엄하게 지키도록 함으로써 허술해지는 폐단이 없게 할 일을 도감에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신 관(瓘)이 어제 나가서 미두를 저장해 놓은 곳을 살펴보니 별로 허술한 폐단은 없었습니다만, 창고 칸수가 매우 적은 탓으로 이미 올라온 미두 1천여 섬을 뜰에 쌓아 놓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곳간을 지을 곳은 낭청 한 사람이 전담해서 요리하고 있는데 오늘이나 내일쯤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재목이 약소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중에서 아주 심하게 구부러진 것들을 골라 더 많이 가져다가 활용해서 관원이 숙직할 곳을 아울러 마련해 짓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지은 뒤에는 숙직할 군사와 부장을 상께서 하교하신 대로 교대로 정해 엄히 지키게 할 일을 승전(承傳)을 받들어 시행하겠습니다. 외방에서 이미 올라온 공사 보조용 미두의 수효는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비망기로 ‘외방에서 이미 올려 보낸 공사 보조용 미두(米豆)의 수효를 상세히 서계(書啓)하고, 담당 제조(提調)가 한 번 나가서 수직(守直)하는 일을 점검하라. 그리고 이렇게 올려 보내는 미두를 보관할 창고를 만들 때 관원이 숙직할 곳도 몇 칸 아울러 짓고, 담당 감역관(監役官)과 담당 낭청이 상호 교대로 나가 지킴은 물론, 군사와 부장(部將)을 많이 배정한 뒤 교대 인원을 한 사람씩 정해 내보내어, 각별히 엄하게 지키도록 함으로써 허술해지는 폐단이 없게 할 일을 도감에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신 관(瓘)이 어제 나가서 미두를 저장해 놓은 곳을 살펴보니 별로 허술한 폐단은 없었습니다만, 창고 칸수가 매우 적은 탓으로 이미 올라온 미두 1천여 섬을 뜰에 쌓아 놓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곳간을 지을 곳은 낭청 한 사람이 전담해서 요리하고 있는데 오늘이나 내일쯤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재목이 약소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중에서 아주 심하게 구부러진 것들을 골라 더 많이 가져다가 활용해서 관원이 숙직할 곳을 아울러 마련해 짓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지은 뒤에는 숙직할 군사와 부장을 상께서 하교하신 대로 교대로 정해 엄히 지키게 할 일을 승전(承傳)을 받들어 시행하겠습니다. 외방에서 이미 올라온 공사 보조용 미두의 수효는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존호를 올리는 것을 9월로 물려 정하였으니, 전문(箋文)과 물선(物膳)도 모두 9월에 봉진하라고 각도에 급급히 하유하라."
"존호를 올리는 것을 9월로 물려 정하였으니, 전문(箋文)과 물선(物膳)도 모두 9월에 봉진하라고 각도에 급급히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경운궁(慶運宮) 누각의 재목·기와·연석(鍊石)을 헐어 경덕궁(慶德宮)으로 이송하는 동안만 새 서대문을 아침에 열었다가 저녁에 닫되, 수문장이 각별히 엄하게 지켜 역군(役軍)과 장인(匠人)들만을 출입하게 하라고 분병조(分兵曹)에 이르라."
"경운궁(慶運宮) 누각의 재목·기와·연석(鍊石)을 헐어 경덕궁(慶德宮)으로 이송하는 동안만 새 서대문을 아침에 열었다가 저녁에 닫되, 수문장이 각별히 엄하게 지켜 역군(役軍)과 장인(匠人)들만을 출입하게 하라고 분병조(分兵曹)에 이르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경덕궁 봉교(鳳橋)의 석재(石材)를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모두 채취해야 하겠습니다만, 융정전(隆政殿)의 보토(補土)와 계석(階石)을 배설하는 일을 아직 반절도 진척하지 못하였습니다. 봉교의 석재는 가을철 뒤에 쓰게 될 것이라고 하니, 동쪽 채석장의 인원과 자재를 지금부터 서쪽 채석장으로 옮겨서 2, 3개월 동안 힘을 합쳐 다량 채취한 뒤에 본래의 장소로 돌려 보내더라도 늦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경덕궁 봉교(鳳橋)의 석재(石材)를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모두 채취해야 하겠습니다만, 융정전(隆政殿)의 보토(補土)와 계석(階石)을 배설하는 일을 아직 반절도 진척하지 못하였습니다. 봉교의 석재는 가을철 뒤에 쓰게 될 것이라고 하니, 동쪽 채석장의 인원과 자재를 지금부터 서쪽 채석장으로 옮겨서 2, 3개월 동안 힘을 합쳐 다량 채취한 뒤에 본래의 장소로 돌려 보내더라도 늦지는 않을 듯싶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유학 김정량(金廷亮)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덕부(黃德符)와 한옥(韓玉) 모두 전관(銓官)으로는 부적합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한옥이 먼저 탄핵을 받은 것은 대단한 일도 못되는데 제생(諸生)이 과격한 논을 펼친 것이 이에 이르렀습니다. 황덕부가 장자(長者)의 문하에 출입했으니 참으로 마음과 힘을 합해 대론(大論)을 완결해야 마땅할 것인데, 김개(金闓)와 이강(李茳)을 극력 배격함으로써 타인들의 분노를 자초한 것입니다. 어찌 꼭 덕부만이 인재를 진퇴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모두가 대국(大局)이 완결되지 않은 탓으로 이렇듯 소란스러워진 것이니, 속히 절목(節目)을 내리시는 동시에 주문(奏聞)하는 일을 행하소서. 그리고 속히 덕부를 축출하여 조정을 맑게 하소서."
"황덕부(黃德符)와 한옥(韓玉) 모두 전관(銓官)으로는 부적합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한옥이 먼저 탄핵을 받은 것은 대단한 일도 못되는데 제생(諸生)이 과격한 논을 펼친 것이 이에 이르렀습니다. 황덕부가 장자(長者)의 문하에 출입했으니 참으로 마음과 힘을 합해 대론(大論)을 완결해야 마땅할 것인데, 김개(金闓)와 이강(李茳)을 극력 배격함으로써 타인들의 분노를 자초한 것입니다. 어찌 꼭 덕부만이 인재를 진퇴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이 모두가 대국(大局)이 완결되지 않은 탓으로 이렇듯 소란스러워진 것이니, 속히 절목(節目)을 내리시는 동시에 주문(奏聞)하는 일을 행하소서. 그리고 속히 덕부를 축출하여 조정을 맑게 하소서."


 

 

 

홍문관 교리 이잠(李埁), 부수찬 윤성임(尹聖任)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삼가 살피건대 양사가 모두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한옥을 논계하자는 의견이 일단 합사(合司)한 자리에서 나왔고, 양사의 관원들이 조금도 다른 의견을 제기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공공(公共)의 의논이었음을 이에 의거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윤해수(尹海壽)와 김홍원(金弘愿)이 그만 감히 그 사이에서 손뼉을 치면서, 심지어는 남 몰래 사주를 받았다느니 위세에 겁을 먹었다느니 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없이 방자하게 추악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그 자들이 어떤 사람의 사주를 듣고 어떤 사람의 위세에 겁을 먹었기에 조정을 간섭하고 양사를 공격하기를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무신년과 계축년에 궁궐 내부에서 변이 일어남에 따라 역적을 토벌하자는 대론(大論)이 한 무리의 인사들에게서 나왔는데, 해수와 홍원은 슬그머니 공의(公議)에 빌붙으면서 마치 저네들에게서 나온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를 틈 타 소장을 올려 전도된 이야기를 늘어 놓았는데, 심지어는 판국을 뒤바꾸려 한다는 등의 말로 남을 함정에 빠뜨리려 하고 있으니, 이러한 조짐은 자라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장차 만연되면 도모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요망한 유자(儒者)들의 괴이한 주장은 더불어 따질 가치도 없으니 양사의 관원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대사헌과 대사간 이하 모두에게 출사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양사가 모두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한옥을 논계하자는 의견이 일단 합사(合司)한 자리에서 나왔고, 양사의 관원들이 조금도 다른 의견을 제기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공공(公共)의 의논이었음을 이에 의거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윤해수(尹海壽)와 김홍원(金弘愿)이 그만 감히 그 사이에서 손뼉을 치면서, 심지어는 남 몰래 사주를 받았다느니 위세에 겁을 먹었다느니 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없이 방자하게 추악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그 자들이 어떤 사람의 사주를 듣고 어떤 사람의 위세에 겁을 먹었기에 조정을 간섭하고 양사를 공격하기를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무신년과 계축년에 궁궐 내부에서 변이 일어남에 따라 역적을 토벌하자는 대론(大論)이 한 무리의 인사들에게서 나왔는데, 해수와 홍원은 슬그머니 공의(公議)에 빌붙으면서 마치 저네들에게서 나온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를 틈 타 소장을 올려 전도된 이야기를 늘어 놓았는데, 심지어는 판국을 뒤바꾸려 한다는 등의 말로 남을 함정에 빠뜨리려 하고 있으니, 이러한 조짐은 자라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장차 만연되면 도모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요망한 유자(儒者)들의 괴이한 주장은 더불어 따질 가치도 없으니 양사의 관원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대사헌과 대사간 이하 모두에게 출사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4월 23일 임자

헌납 박종주(朴宗胄)가 아뢰기를, "신이 그저께 삼가 윤유겸(尹惟謙)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을 지목하여 ‘황덕부(黃德符)에게 아첨하여 빌붙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잘못을 엄폐하려 하였다.’고 하며, 마구 추악하게 비난한 것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것이었는데, 어쩌면 못할 말없이 지껄여댄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그는 윤해수나 김홍원과 사실상 서로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도깨비 같은 그 소행이야말로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통분스럽기 그지없는 일인만큼 큰 소리로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신이 시골에서 자라나긴 했지만 그래도 일찍이 사우(師友) 사이에서 공부했으므로 예의를 지키는 도리에 대해서 조금은 알며, 평소 집에 있으면서 양심에 거리끼는 부끄러운 짓을 일찍이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타고난 성격이 편협해서 남의 잘못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데, 마침 언지(言地)에 몸을 담고서 일이 있을 때마다 탄핵하며 논박을 하다 보니 여러 차례에 걸쳐 군소배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신이라고 해서 어찌 몸을 사리며 녹봉이나 그대로 타 먹는 꾀를 낼 줄 모르겠습니까마는, 성격이 꼬장꼬장해 아직도 손을 대는 것마다 그러한 결과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겉으로 대론(大論)을 가탁하고는 감히 개인적인 원한을 풀 목적으로 근거도 없는 불측한 말들을 지어 내어 신을 모함하고 사류(士類)에게 화를 떠넘기려 하였으니 그 계책이 교묘하고도 참혹하지 않습니까. 신은 성실하게 선대(先代)의 업을 지키어 감히 실추시키지 않은 결과 난리를 치르고도 가정 형편이 제기(祭器)를 빌어 오는 일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신이 실제로 그와 같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한 마을이나 이웃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라고 해서 용서해 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부(富)라고 하는 한 글자를 가지고 모함하는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밭 갈고 우물 판 것이 그래도 독직(瀆職)하거나 매관(賣官)한 무리들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집집마다 돈을 주고 뇌물을 돌려도 그런 소문을 막기가 어려울 텐데 어찌 황덕부에게 뇌물을 많이 써서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언지에 있는 몸으로서 중하게 매도를 당하여 조정에 부끄러움을 끼쳤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한데, 조용히 조섭하고 계시는 때에 재차 번거롭게 해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신의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커졌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박종주가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그저께 삼가 윤유겸(尹惟謙)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을 지목하여 ‘황덕부(黃德符)에게 아첨하여 빌붙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잘못을 엄폐하려 하였다.’고 하며, 마구 추악하게 비난한 것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것이었는데, 어쩌면 못할 말없이 지껄여댄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그는 윤해수나 김홍원과 사실상 서로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도깨비 같은 그 소행이야말로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통분스럽기 그지없는 일인만큼 큰 소리로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신이 시골에서 자라나긴 했지만 그래도 일찍이 사우(師友) 사이에서 공부했으므로 예의를 지키는 도리에 대해서 조금은 알며, 평소 집에 있으면서 양심에 거리끼는 부끄러운 짓을 일찍이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타고난 성격이 편협해서 남의 잘못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데, 마침 언지(言地)에 몸을 담고서 일이 있을 때마다 탄핵하며 논박을 하다 보니 여러 차례에 걸쳐 군소배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신이라고 해서 어찌 몸을 사리며 녹봉이나 그대로 타 먹는 꾀를 낼 줄 모르겠습니까마는, 성격이 꼬장꼬장해 아직도 손을 대는 것마다 그러한 결과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겉으로 대론(大論)을 가탁하고는 감히 개인적인 원한을 풀 목적으로 근거도 없는 불측한 말들을 지어 내어 신을 모함하고 사류(士類)에게 화를 떠넘기려 하였으니 그 계책이 교묘하고도 참혹하지 않습니까.
신은 성실하게 선대(先代)의 업을 지키어 감히 실추시키지 않은 결과 난리를 치르고도 가정 형편이 제기(祭器)를 빌어 오는 일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신이 실제로 그와 같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한 마을이나 이웃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라고 해서 용서해 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부(富)라고 하는 한 글자를 가지고 모함하는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밭 갈고 우물 판 것이 그래도 독직(瀆職)하거나 매관(賣官)한 무리들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집집마다 돈을 주고 뇌물을 돌려도 그런 소문을 막기가 어려울 텐데 어찌 황덕부에게 뇌물을 많이 써서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언지에 있는 몸으로서 중하게 매도를 당하여 조정에 부끄러움을 끼쳤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한데, 조용히 조섭하고 계시는 때에 재차 번거롭게 해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신의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커졌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박종주가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언 이원여가 아뢰기를, "윤해수·김홍원·윤유겸 등이 양사에서 한옥(韓玉)을 공격하며 논계한 것 때문에 없는 사실을 날조하며 서로 잇달아 소장을 올리면서 망극하게 사류(士類)를 모함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이 삼가 듣건대, 유겸의 상소 내용에 황덕부(黃德符)의 짝을 세었는데 신의 이름까지도 그 42명 속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 본래 황덕부와는 은원(恩怨) 관계가 전혀 없는데, 다만 계축년에 이위경(李偉卿)·이상항(李尙恒) 등 약간 명과 대론(大論)을 담당했기 때문에 사류로 인정했던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유겸이 남의 사주를 받고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 보조로 활용하려 한 것이니, 그가 추악한 무리에게 빌붙어 군부(君父)를 기망한 정상을 이에 의거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한옥이 논박을 당한 것이 그들과는 상관이 없을 듯한데 잇달아 똑 같이 행동하면서 오히려 미치지 못할세라 한옥 한 사람을 변호하고 나섰으니, 한옥이 이런 괴이한 무리들에게 무슨 공덕을 베풀었기에 그렇게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어찌 그만한 이유가 없겠습니까. 신은 삼가 통탄할 따름입니다. 신이 언지에 몸을 담고 직책을 수행하면서 누차 추악한 비난을 받았으니 재직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속히 신의 직책을 체차하도록 명하시어 요망한 무리들의 상소를 근절시키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윤해수·김홍원·윤유겸 등이 양사에서 한옥(韓玉)을 공격하며 논계한 것 때문에 없는 사실을 날조하며 서로 잇달아 소장을 올리면서 망극하게 사류(士類)를 모함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이 삼가 듣건대, 유겸의 상소 내용에 황덕부(黃德符)의 짝을 세었는데 신의 이름까지도 그 42명 속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 본래 황덕부와는 은원(恩怨) 관계가 전혀 없는데, 다만 계축년에 이위경(李偉卿)·이상항(李尙恒) 등 약간 명과 대론(大論)을 담당했기 때문에 사류로 인정했던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유겸이 남의 사주를 받고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 보조로 활용하려 한 것이니, 그가 추악한 무리에게 빌붙어 군부(君父)를 기망한 정상을 이에 의거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한옥이 논박을 당한 것이 그들과는 상관이 없을 듯한데 잇달아 똑 같이 행동하면서 오히려 미치지 못할세라 한옥 한 사람을 변호하고 나섰으니, 한옥이 이런 괴이한 무리들에게 무슨 공덕을 베풀었기에 그렇게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어찌 그만한 이유가 없겠습니까. 신은 삼가 통탄할 따름입니다. 신이 언지에 몸을 담고 직책을 수행하면서 누차 추악한 비난을 받았으니 재직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속히 신의 직책을 체차하도록 명하시어 요망한 무리들의 상소를 근절시키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장령 한영이 아뢰기를, "전일 한옥에 대한 논계는 실로 공의(公議)가 일제히 격분해서 나온 것으로서 신과 박종주가 발론하여 양사가 합동으로 논계한 것이니 종주가 독단적으로 한 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윤유겸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유박(帷薄)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까지 거론하면서 마치 개인적으로 원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집중적으로 종주를 공격했으니 신은 통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종주는 대현(大賢)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문이 독실하고 예의를 잘 알아 처신하고 일을 행함에 있어 빙옥(氷玉)처럼 흠이 하나도 없으므로, 영남의 사류치고 그를 공경하며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겸은 도대체 어떤 도깨비 같은 자이기에 허무맹랑하게 무함하며 이런 불측한 말을 지어 내어, 위로 전하의 판단을 흐리게까지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을 속일 수 있을지언정 어찌 하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늘을 속일 수 있을지언정 어찌 성상을 속일 수야 있겠습니까. 국가가 유지되는 것은 언관이 임금의 귀와 눈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관원 하나를 논하거나 한 사람을 탄핵하기만 하면 유자(儒者)의 이름을 가탁한 무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고슴도치가 털을 세우듯 하면서 반드시 근거도 없고 사리에 닿지도 않는 말을 가지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모함하며 다투어 소장을 올림으로써 언관으로 하여금 감히 소리 하나 말 하나 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차 언로가 끊어져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를 것이니, 오늘날의 일이 어찌 크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성상께서 만약 이러한 풍조를 통렬하게 개혁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감정을 품고 무함하는 자들이, 오늘은 이 사람을 무함하고 내일은 저 사람을 무함할 테니 장차 온 조정에 완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신이 이미 종주와 동일한 발언을 한 사람으로서 종주만 유독 불측스러운 무함을 받았으니, 신이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일 한옥에 대한 논계는 실로 공의(公議)가 일제히 격분해서 나온 것으로서 신과 박종주가 발론하여 양사가 합동으로 논계한 것이니 종주가 독단적으로 한 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윤유겸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유박(帷薄)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까지 거론하면서 마치 개인적으로 원수 관계에 있는 것처럼 집중적으로 종주를 공격했으니 신은 통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종주는 대현(大賢)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문이 독실하고 예의를 잘 알아 처신하고 일을 행함에 있어 빙옥(氷玉)처럼 흠이 하나도 없으므로, 영남의 사류치고 그를 공경하며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겸은 도대체 어떤 도깨비 같은 자이기에 허무맹랑하게 무함하며 이런 불측한 말을 지어 내어, 위로 전하의 판단을 흐리게까지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을 속일 수 있을지언정 어찌 하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늘을 속일 수 있을지언정 어찌 성상을 속일 수야 있겠습니까.
국가가 유지되는 것은 언관이 임금의 귀와 눈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관원 하나를 논하거나 한 사람을 탄핵하기만 하면 유자(儒者)의 이름을 가탁한 무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고슴도치가 털을 세우듯 하면서 반드시 근거도 없고 사리에 닿지도 않는 말을 가지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모함하며 다투어 소장을 올림으로써 언관으로 하여금 감히 소리 하나 말 하나 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차 언로가 끊어져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를 것이니, 오늘날의 일이 어찌 크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성상께서 만약 이러한 풍조를 통렬하게 개혁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감정을 품고 무함하는 자들이, 오늘은 이 사람을 무함하고 내일은 저 사람을 무함할 테니 장차 온 조정에 완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까 두렵습니다. 신이 이미 종주와 동일한 발언을 한 사람으로서 종주만 유독 불측스러운 무함을 받았으니, 신이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헌납 박종주가 인피하고 물러갔습니다. 종주는 쇠처럼 굳세고 옥처럼 깨끗한 사람으로서 다른 뜻이 전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현상(賢相)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언행이 아름다웠으므로 평소 마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벼슬길에 올라서서는 청직(淸職)의 반열을 많이 거치면서 늘 안빈(安貧)과 근신(謹身)으로 자임하였으므로, 관직에 몸을 담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 조금도 잘못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요망한 유자(儒者)들의 무리가 감히 형편 없는 말과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못할 짓 없이 추악하게 비난하고 모욕을 가하면서 기필코 불측한 지경에 빠뜨리고야 말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필시 나라 일을 망치려고 하는 사람이 남 몰래 도깨비같은 무리를 사주하여 틈을 엿보다 물여우처럼 해치려 한 것으로서, 종주 한 사람만 공격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한 무리의 선류(善類)를 모함에 빠뜨리려 계획한 것이니, 이 어찌 교묘하고도 참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설사 종주가 별별 도깨비같은 무리들로부터 교대로 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정작 그 자신을 돌아본다면 혐의할 것이 없으니, 무턱대고 악명(惡名)이 가해진 데에 대해서 피혐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대론(大論)이 마무리되지 않아 삿된 패거리들이 틈을 엿보고 있는 때에 어찌 없는 사실을 날조한 일 때문에 시종일관 극력 대론을 주도한 언관을 경솔하게 체차시킴으로써 결국 간악한 무리의 술수에 떨어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헌납 박종주의 출사(出仕)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요망한 유자들이 종주를 공격한 것이 정권을 다투던 허균의 꾀에서 나온 것이긴 하다. 그러나 종주가 탐욕을 부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한 도(道)를 무단(武斷)하다가 등제(登第)하고 난 뒤에 갑자기 갑부가 된 것이야말로 숨길 수 없는 죄악이라 할 것인데, 지금 얼음처럼 깨끗하고 옥처럼 고결하다고 비유하다니 놀라겠다.】
"헌납 박종주가 인피하고 물러갔습니다. 종주는 쇠처럼 굳세고 옥처럼 깨끗한 사람으로서 다른 뜻이 전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현상(賢相)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언행이 아름다웠으므로 평소 마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벼슬길에 올라서서는 청직(淸職)의 반열을 많이 거치면서 늘 안빈(安貧)과 근신(謹身)으로 자임하였으므로, 관직에 몸을 담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 조금도 잘못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요망한 유자(儒者)들의 무리가 감히 형편 없는 말과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못할 짓 없이 추악하게 비난하고 모욕을 가하면서 기필코 불측한 지경에 빠뜨리고야 말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필시 나라 일을 망치려고 하는 사람이 남 몰래 도깨비같은 무리를 사주하여 틈을 엿보다 물여우처럼 해치려 한 것으로서, 종주 한 사람만 공격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한 무리의 선류(善類)를 모함에 빠뜨리려 계획한 것이니, 이 어찌 교묘하고도 참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설사 종주가 별별 도깨비같은 무리들로부터 교대로 공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정작 그 자신을 돌아본다면 혐의할 것이 없으니, 무턱대고 악명(惡名)이 가해진 데에 대해서 피혐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대론(大論)이 마무리되지 않아 삿된 패거리들이 틈을 엿보고 있는 때에 어찌 없는 사실을 날조한 일 때문에 시종일관 극력 대론을 주도한 언관을 경솔하게 체차시킴으로써 결국 간악한 무리의 술수에 떨어지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헌납 박종주의 출사(出仕)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요망한 유자들이 종주를 공격한 것이 정권을 다투던 허균의 꾀에서 나온 것이긴 하다. 그러나 종주가 탐욕을 부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한 도(道)를 무단(武斷)하다가 등제(登第)하고 난 뒤에 갑자기 갑부가 된 것이야말로 숨길 수 없는 죄악이라 할 것인데, 지금 얼음처럼 깨끗하고 옥처럼 고결하다고 비유하다니 놀라겠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황와(黃瓦) 본래의 빛깔을 구워내려고 박용수(朴龍守)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모저모로 강구하여 여러 차례 시험적으로 제조해 보았으나 모두 원 빛깔을 찾아내는 일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전일 처음으로 담황색(淡黃色) 하나를 얻었으므로 그 제조 방식에 따라 재차 갖가지로 시도하여 다시 구워 냈더니 전일 보셨던 황와에 비해 빛깔이 더욱 핍진한 기와가 나왔습니다. 이 빛깔로 만들어 내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황색이 묽은 듯하니 다시 더 검칙해서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하였다.
"황와(黃瓦) 본래의 빛깔을 구워내려고 박용수(朴龍守)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모저모로 강구하여 여러 차례 시험적으로 제조해 보았으나 모두 원 빛깔을 찾아내는 일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전일 처음으로 담황색(淡黃色) 하나를 얻었으므로 그 제조 방식에 따라 재차 갖가지로 시도하여 다시 구워 냈더니 전일 보셨던 황와에 비해 빛깔이 더욱 핍진한 기와가 나왔습니다. 이 빛깔로 만들어 내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황색이 묽은 듯하니 다시 더 검칙해서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외방의 재목을 벌채하는 데에 선후의 차이가 있고 그것을 발송하는 데에 늦고 빠른 차이가 있으니 한꺼번에 일제히 도착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3월부터는 계속해서 도착하고 있습니다. 이미 도착한 수량을 보면 각종 재목을 합산하여 거의 5천여 조(條)를 승군(僧軍)을 독촉하여 창고 안으로 끌어 들여오고, 한편으로는 차부(車夫)를 검칙하여 매일 실어 들여오고 있습니다. 차량이 부족한 탓으로 하루에 운반해 오는 양이 많지 않고 재목이 아주 굵어서 승군 70명이 하루에 끌어 들여오는 수효가 많아야 5, 60조를 넘지 않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경덕궁(慶德宮)의 각 아문 및 액정서를 지을 때나 차비문(差備門)에 하인이 들어가 살 곳을 지을 때에는 큰 재목을 들여다 쓰지 말도록 십분 자세히 살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외방의 재목을 벌채하는 데에 선후의 차이가 있고 그것을 발송하는 데에 늦고 빠른 차이가 있으니 한꺼번에 일제히 도착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3월부터는 계속해서 도착하고 있습니다. 이미 도착한 수량을 보면 각종 재목을 합산하여 거의 5천여 조(條)를 승군(僧軍)을 독촉하여 창고 안으로 끌어 들여오고, 한편으로는 차부(車夫)를 검칙하여 매일 실어 들여오고 있습니다. 차량이 부족한 탓으로 하루에 운반해 오는 양이 많지 않고 재목이 아주 굵어서 승군 70명이 하루에 끌어 들여오는 수효가 많아야 5, 60조를 넘지 않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경덕궁(慶德宮)의 각 아문 및 액정서를 지을 때나 차비문(差備門)에 하인이 들어가 살 곳을 지을 때에는 큰 재목을 들여다 쓰지 말도록 십분 자세히 살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존숭 도감(尊崇都監)이 아뢰기를, "양전(兩殿)이 타시는 여연(輿輦)의 용봉두(龍鳳頭) 등에 지금 도금(鍍金)을 해야 하는데, 본 도감의 등록(謄錄)에 부친 장인(匠人) 김언희(金彦熙)가 대전 별감(大殿別監)으로 현재 입번(入番) 중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다른 서투른 장인에게 대신 맡길 수는 없으니, 김언희가 번 서는 것을 면제해 주어 와서 일하게 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존호 올리는 일을 9월로 물려 정했으니, 도금하는 일은 7, 8월 사이에 하도록 하라." 하였다.
"양전(兩殿)이 타시는 여연(輿輦)의 용봉두(龍鳳頭) 등에 지금 도금(鍍金)을 해야 하는데, 본 도감의 등록(謄錄)에 부친 장인(匠人) 김언희(金彦熙)가 대전 별감(大殿別監)으로 현재 입번(入番) 중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다른 서투른 장인에게 대신 맡길 수는 없으니, 김언희가 번 서는 것을 면제해 주어 와서 일하게 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존호 올리는 일을 9월로 물려 정했으니, 도금하는 일은 7, 8월 사이에 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밀 전교를 내렸다. "평시에 침향(沈香)이나 침속향(沈束香)·용뇌(龍腦)처럼 약으로 쓸 물건들을 왜인(倭人)이 으레 진상하였고 왜검(倭劍)도 진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물건들을 올려 보내지 않고 있으니, 이는 필시 왜인이 옛날의 관례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하여금 옛날 관례를 잘 인용하되 번거롭게 개유하지는 말고 그들로 하여금 때때로 와서 바치게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뜻을 경상 감사에게 상세히 하유하도록 하라."
"평시에 침향(沈香)이나 침속향(沈束香)·용뇌(龍腦)처럼 약으로 쓸 물건들을 왜인(倭人)이 으레 진상하였고 왜검(倭劍)도 진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물건들을 올려 보내지 않고 있으니, 이는 필시 왜인이 옛날의 관례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하여금 옛날 관례를 잘 인용하되 번거롭게 개유하지는 말고 그들로 하여금 때때로 와서 바치게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뜻을 경상 감사에게 상세히 하유하도록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인경궁(仁慶宮) 동문 밖 돌다리 옆의 철거한 인가(人家)에 대해서 모두 관례대로 보상하라고 일찍이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철거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도감에서 사실 조사를 한 뒤 해당 부(部)의 관원으로 하여금 실제 가옥 부지의 칸수를 측량하게 하였는데, 이를 별단(別單)으로 기록하여 올립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른 예(例)에 따라 속히 보상토록 하라." 하였다.
"인경궁(仁慶宮) 동문 밖 돌다리 옆의 철거한 인가(人家)에 대해서 모두 관례대로 보상하라고 일찍이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철거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도감에서 사실 조사를 한 뒤 해당 부(部)의 관원으로 하여금 실제 가옥 부지의 칸수를 측량하게 하였는데, 이를 별단(別單)으로 기록하여 올립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른 예(例)에 따라 속히 보상토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에서 당채색(唐彩色)의 무역에 관한 별단을 서계하니, 전교하시기를 ‘지난해에는 어떤 행차가 가서 얼마나 무역해 왔고 올해에는 어떤 행차가 가서 얼마나 무역해 올지 다시 상세하고 명백하게 기록해서 아뢰어라.’ 하고, 또 비망기로 ‘외방에서 올려보낸 은을 이번에 부경(赴京)하는 세 행차의 화원(畫員)에게 똑같이 나누어주고 채색을 착실하게 무역해 오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지난해의 성절(聖節)·동지(冬至) 두 행차 때 무역해 온 수목(數目) 및 이번의 사은(謝恩)·성절·동지 세 행차 때 무역해 올 수목을 별단으로 기록하여 올립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창경궁(昌慶宮)에서 쓰다 남은 채색은 어디에다 썼는지 자세히 살펴 아뢰라. 그리고 이청(二靑)·삼청(三靑)·대청(大靑)·하엽(荷葉)·대록(大綠) 등 채색도 부족할 듯하니, 천추사(千秋使) 행차 때 이를 아울러 참작해서 가외로 더 무역해 오도록 하라. 조도사(調度使)가 도감에 올려 보낸 은은 무역해 오는 데에 쓰지 않는가? 모두 상세히 살펴 회계(回啓)하라." 하였다.
"도감에서 당채색(唐彩色)의 무역에 관한 별단을 서계하니, 전교하시기를 ‘지난해에는 어떤 행차가 가서 얼마나 무역해 왔고 올해에는 어떤 행차가 가서 얼마나 무역해 올지 다시 상세하고 명백하게 기록해서 아뢰어라.’ 하고, 또 비망기로 ‘외방에서 올려보낸 은을 이번에 부경(赴京)하는 세 행차의 화원(畫員)에게 똑같이 나누어주고 채색을 착실하게 무역해 오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지난해의 성절(聖節)·동지(冬至) 두 행차 때 무역해 온 수목(數目) 및 이번의 사은(謝恩)·성절·동지 세 행차 때 무역해 올 수목을 별단으로 기록하여 올립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창경궁(昌慶宮)에서 쓰다 남은 채색은 어디에다 썼는지 자세히 살펴 아뢰라. 그리고 이청(二靑)·삼청(三靑)·대청(大靑)·하엽(荷葉)·대록(大綠) 등 채색도 부족할 듯하니, 천추사(千秋使) 행차 때 이를 아울러 참작해서 가외로 더 무역해 오도록 하라. 조도사(調度使)가 도감에 올려 보낸 은은 무역해 오는 데에 쓰지 않는가? 모두 상세히 살펴 회계(回啓)하라."
하였다.

 

4월 24일 계축

우의정 민몽룡이 여섯 번째 사직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대신의 진퇴야말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다. 경이 병들었을지라도 안심하고 조리하여 낫는 대로 곧장 나오고 사직서를 올리지 말아 나의 기대에 부응토록 하라." 하였다.
"대신의 진퇴야말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다. 경이 병들었을지라도 안심하고 조리하여 낫는 대로 곧장 나오고 사직서를 올리지 말아 나의 기대에 부응토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가 요즘 침을 맞아야 할 뿐만이 아니라서 조칙을 맞이하는 대례(大禮)조차 지금까지 몇 차례나 날짜를 물렸으니, 그지없이 걱정스럽고 안타깝기만 할 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경은 나라 일을 크게 근심하여 속히 출사(出仕)토록 하라.’고 좌상에게 사관(史官)을 보내어 다시 돈유(敦諭)하라."
"내가 요즘 침을 맞아야 할 뿐만이 아니라서 조칙을 맞이하는 대례(大禮)조차 지금까지 몇 차례나 날짜를 물렸으니, 그지없이 걱정스럽고 안타깝기만 할 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경은 나라 일을 크게 근심하여 속히 출사(出仕)토록 하라.’고 좌상에게 사관(史官)을 보내어 다시 돈유(敦諭)하라."

 

전교하였다. "앞으로 장마철이 멀지 않았으니 외방에서 올라오는 재목을 십분 신칙하고 잘 간수하여 1조(條)라도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앞으로 장마철이 멀지 않았으니 외방에서 올라오는 재목을 십분 신칙하고 잘 간수하여 1조(條)라도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영은문(迎恩門)의 청기와가 파손되었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병조로 하여금 각별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영은문(迎恩門)의 청기와가 파손되었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병조로 하여금 각별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어제 신이 늦게 외소(外所)에 나갔더니 번와소(燔瓦所) 장인(匠人) 30명이 연명(連名)으로 정장(呈狀)하기를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도감이 사기로 만든 중와(中瓦)와 상와(常瓦)가 모두 1천 5백여 눌(訥)인데 현재 미처 바치지 못한 수효가 아직도 많으니, 지금 바야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워 내어 떨어질 걱정이 없게 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사 가는 대소 인원들이 계속 줄을 이으면서 아문의 위세를 빙자해 기와를 팔도록 협박하기도 하고 혹은 옛날 빚이 있다고 핑계하여 차지(次知)를 가두고 빨리 바치라고 독촉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부지런히 손을 놀려도 부족해 관(官)에 조달할 기와를 제때에 갖추어 납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였습니다. 두 궁궐의 각 전당(殿堂) 및 월랑(月廊)·행각(行閣), 각 아문 등의 건물을 계속 짓는 데에 드는 기와의 수요가 이렇게 급한 때에 만약 특별히 금단하지 않는다면 필시 계속 공급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의 예(例)에 따라 남교(南郊)의 별장(別將) 등을 별도로 더 신칙하여, 관에서 쓸 기와를 실어 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도감의 장표(章標)가 있는지 확인하고 기타 장표가 없이 개인적으로 기와를 실어 나르는 사람들은 일일이 잡아 두고 도감에 보고해서 입계하여 중하게 다스리도록 하소서. 그리고 이러한 내용으로 각처에 공고하고 효유하여 엄금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어제 신이 늦게 외소(外所)에 나갔더니 번와소(燔瓦所) 장인(匠人) 30명이 연명(連名)으로 정장(呈狀)하기를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도감이 사기로 만든 중와(中瓦)와 상와(常瓦)가 모두 1천 5백여 눌(訥)인데 현재 미처 바치지 못한 수효가 아직도 많으니, 지금 바야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워 내어 떨어질 걱정이 없게 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사 가는 대소 인원들이 계속 줄을 이으면서 아문의 위세를 빙자해 기와를 팔도록 협박하기도 하고 혹은 옛날 빚이 있다고 핑계하여 차지(次知)를 가두고 빨리 바치라고 독촉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부지런히 손을 놀려도 부족해 관(官)에 조달할 기와를 제때에 갖추어 납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였습니다.
두 궁궐의 각 전당(殿堂) 및 월랑(月廊)·행각(行閣), 각 아문 등의 건물을 계속 짓는 데에 드는 기와의 수요가 이렇게 급한 때에 만약 특별히 금단하지 않는다면 필시 계속 공급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의 예(例)에 따라 남교(南郊)의 별장(別將) 등을 별도로 더 신칙하여, 관에서 쓸 기와를 실어 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도감의 장표(章標)가 있는지 확인하고 기타 장표가 없이 개인적으로 기와를 실어 나르는 사람들은 일일이 잡아 두고 도감에 보고해서 입계하여 중하게 다스리도록 하소서. 그리고 이러한 내용으로 각처에 공고하고 효유하여 엄금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에서 초기(草記)를 올리자 전교하시기를 ‘모두 10척(尺)으로 재단(裁斷)해서 올라온다고 하는데 도감에서는 이와 같이 아뢰고 있으니 그 간의 곡절을 상세히 알지 못하겠다. 두 궁궐의 당실(堂室)은 몇 척짜리 재목으로 짓는지 다시 살펴 서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해 벌채한 재목은 척수(尺數)가 짧았는데 비해 금년 재목은 척수가 길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아뢸 때 다 말씀드렸으므로 지금 감히 누누이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당실의 체제는 대소의 차이가 있는데 1실(室) 안에서 쓰는 재목만 하더라도 고저(高低)와 장단(長短)이 갖가지로 다릅니다. 시험삼아 인경궁(仁慶宮)의 두 침실을 예로 든다면, 그 길이가 고주(高柱) 19척, 중고주(中高柱)가 16척, 평주(平柱)가 10척, 상복(上栿)이 21척, 중복(中栿)이 15척, 도리창방(道里昌防)이 정간(正間)이 12척, 변간(邊間)이 11척, 별당(別堂)은 고주 13척, 평주 10척, 도리창방이 11척입니다. 경덕궁(慶德宮) 당실(堂室)의 재목도 대개 이와 비슷한데, 경덕궁의 후궁(後宮)이 기거할 별당과 같은 것은 주(柱)와 도리의 길이가 모두 9척입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근일 재목과 관계되는 일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쓴다고 하는데, 전당(殿堂)·월랑(月廊)·행랑(行廊)과 경덕궁에 작은 재목 등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임의로 마구 쓰는 것은 지극히 부당한 일이다. 지금 이후로는 각소(各所)의 감역관(監役官)으로 하여금 일일이 자세히 살펴 쓰게 하라." 하였다.
"도감에서 초기(草記)를 올리자 전교하시기를 ‘모두 10척(尺)으로 재단(裁斷)해서 올라온다고 하는데 도감에서는 이와 같이 아뢰고 있으니 그 간의 곡절을 상세히 알지 못하겠다. 두 궁궐의 당실(堂室)은 몇 척짜리 재목으로 짓는지 다시 살펴 서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해 벌채한 재목은 척수(尺數)가 짧았는데 비해 금년 재목은 척수가 길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아뢸 때 다 말씀드렸으므로 지금 감히 누누이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당실의 체제는 대소의 차이가 있는데 1실(室) 안에서 쓰는 재목만 하더라도 고저(高低)와 장단(長短)이 갖가지로 다릅니다. 시험삼아 인경궁(仁慶宮)의 두 침실을 예로 든다면, 그 길이가 고주(高柱) 19척, 중고주(中高柱)가 16척, 평주(平柱)가 10척, 상복(上栿)이 21척, 중복(中栿)이 15척, 도리창방(道里昌防)이 정간(正間)이 12척, 변간(邊間)이 11척, 별당(別堂)은 고주 13척, 평주 10척, 도리창방이 11척입니다. 경덕궁(慶德宮) 당실(堂室)의 재목도 대개 이와 비슷한데, 경덕궁의 후궁(後宮)이 기거할 별당과 같은 것은 주(柱)와 도리의 길이가 모두 9척입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근일 재목과 관계되는 일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쓴다고 하는데, 전당(殿堂)·월랑(月廊)·행랑(行廊)과 경덕궁에 작은 재목 등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임의로 마구 쓰는 것은 지극히 부당한 일이다. 지금 이후로는 각소(各所)의 감역관(監役官)으로 하여금 일일이 자세히 살펴 쓰게 하라."
하였다.

 

대교(待敎) 김주하(金奏夏)가 서계하기를, "신이 명을 받들고 좌의정 한효순(韓孝純)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초고를 갖추어 신에게 내주면서 말하기를 ‘성상께서 이렇게까지 분부하시니 황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삼가 듣건대 조칙을 맞이하는 날짜를 조금씩 물렸다 하니, 신이 모쪼록 조리하여 병을 무릅쓰고라도 나가서 참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명을 받들고 좌의정 한효순(韓孝純)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초고를 갖추어 신에게 내주면서 말하기를 ‘성상께서 이렇게까지 분부하시니 황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삼가 듣건대 조칙을 맞이하는 날짜를 조금씩 물렸다 하니, 신이 모쪼록 조리하여 병을 무릅쓰고라도 나가서 참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검열 이점이 서계하기를, "신이 우의정 민몽룡에게 유시하러 갔더니, 근일 또 병이 들어 전보다 배나 구토를 하고 말소리도 정상이 아니었으며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으므로 신이 단지 성지(聖旨)만 유시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우의정 민몽룡에게 유시하러 갔더니, 근일 또 병이 들어 전보다 배나 구토를 하고 말소리도 정상이 아니었으며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으므로 신이 단지 성지(聖旨)만 유시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위경이 좌상에게 돈유할 일로 내용을 작성하여 입계하니, 전지하기를, "알았다. 내일 돈유하도록 하라." 하였다.
"알았다. 내일 돈유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영남의 승군(僧軍)을 각소(各所)에 나누어 보내지 말고 모두 채석장에 보내 오로지 석재(石材)를 운반하는 일에 힘을 쏟게 하도록 도감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거행케 하라."
"영남의 승군(僧軍)을 각소(各所)에 나누어 보내지 말고 모두 채석장에 보내 오로지 석재(石材)를 운반하는 일에 힘을 쏟게 하도록 도감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거행케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비망기로 ‘변무(辨誣)하는 주문(奏文)을 천추사(千秋使)나 성절사(聖節使) 행차 편에 부쳐 보낸다면 어느 사행쪽에 상사(上使)와 부사(副使)를 갖추어 차송(差送)할 것인지,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변무하는 주문 등을 남명우(南溟羽)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송한다면 천추사 행차에는 부쳐 보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성절사에 상사와 부사를 갖춰 차송해야 마땅할 듯도 합니다만, 예전부터 천추사나 성절사에는 상사와 부사를 차송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부쳐 보내는 일이 있을 경우에 비록 단사(單使)라 하더라도 부쳐 보냈습니다. 본사의 제조들 중에도 일찍이 성절사가 되어 주문을 싸 가지고 부경(赴京)했던 사람이 있으니, 이는 근거할 만한 전례(前例)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그대로 단사만 차출하여 부쳐 보내도 무방할 듯한데, 다만 상께서 재결하시기에 달렸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변무하는 일에 단사를 차송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설혹 단사를 차송한다 하더라도 통정 대부(通政大夫)를 단사로 임명해 주문을 싸 가지고 가서 변무하게 하면 사체가 중하지 못한 것이니 다시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로 ‘변무(辨誣)하는 주문(奏文)을 천추사(千秋使)나 성절사(聖節使) 행차 편에 부쳐 보낸다면 어느 사행쪽에 상사(上使)와 부사(副使)를 갖추어 차송(差送)할 것인지,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변무하는 주문 등을 남명우(南溟羽)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송한다면 천추사 행차에는 부쳐 보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성절사에 상사와 부사를 갖춰 차송해야 마땅할 듯도 합니다만, 예전부터 천추사나 성절사에는 상사와 부사를 차송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부쳐 보내는 일이 있을 경우에 비록 단사(單使)라 하더라도 부쳐 보냈습니다. 본사의 제조들 중에도 일찍이 성절사가 되어 주문을 싸 가지고 부경(赴京)했던 사람이 있으니, 이는 근거할 만한 전례(前例)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그대로 단사만 차출하여 부쳐 보내도 무방할 듯한데, 다만 상께서 재결하시기에 달렸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변무하는 일에 단사를 차송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설혹 단사를 차송한다 하더라도 통정 대부(通政大夫)를 단사로 임명해 주문을 싸 가지고 가서 변무하게 하면 사체가 중하지 못한 것이니 다시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박정길(朴鼎吉)이 아뢰었다. "‘유약의 상소를 왜 대신에게 물어서 아뢰지 않느냐고 금부에 이르라.’고 명하셨는데, 방금 금부 도사가 와서 말하기를 ‘좌상과 우상이 모두 병 들어 의논을 거두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유약의 상소를 왜 대신에게 물어서 아뢰지 않느냐고 금부에 이르라.’고 명하셨는데, 방금 금부 도사가 와서 말하기를 ‘좌상과 우상이 모두 병 들어 의논을 거두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좌의정 한효순이 아뢰기를, "신이 큰 병에 걸린 뒤로 원기가 극도로 손상되어 어떤 때는 5, 6일 동안, 또 어떤 때는 10여 일씩 갖가지 병증(病症)이 서로 잇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기력이 소진되어 몸이 이부자리를 떠나지 못하여 눕고 앉는 데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면서 기식(氣息)이 엄엄한 상태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신이 출사한 뒤에 추국하라는 명이 이미 오래 전에 내려졌는 데도 즉시 출사하여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으므로 황공한 심정으로 발만 구를 뿐 어찌해야 될지 모르고 있습니다. 또 그저께부터는 고질적인 가래가 더욱 치솟아 올라와 가슴에 걸려서 밤낮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거의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러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의 나이가 80에 가까워 이루 말할 수 없이 쇠약하고 병든 정상에 대해서는 성명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갖은 병이 몸에 몰리어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고 있으니 몇 달 안으로는 도저히 회복될 가망이 없습니다. 이렇듯 국가에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 정승의 주요한 직책을 오래도록 비워 둘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속히 체면(遞免)을 윤허하심으로써 시종 온전하게 해 주소서. 간절히 기구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이 병 끝에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조리하여 출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이 큰 병에 걸린 뒤로 원기가 극도로 손상되어 어떤 때는 5, 6일 동안, 또 어떤 때는 10여 일씩 갖가지 병증(病症)이 서로 잇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기력이 소진되어 몸이 이부자리를 떠나지 못하여 눕고 앉는 데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면서 기식(氣息)이 엄엄한 상태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신이 출사한 뒤에 추국하라는 명이 이미 오래 전에 내려졌는 데도 즉시 출사하여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으므로 황공한 심정으로 발만 구를 뿐 어찌해야 될지 모르고 있습니다. 또 그저께부터는 고질적인 가래가 더욱 치솟아 올라와 가슴에 걸려서 밤낮으로 고통에 시달리며 거의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러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의 나이가 80에 가까워 이루 말할 수 없이 쇠약하고 병든 정상에 대해서는 성명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갖은 병이 몸에 몰리어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고 있으니 몇 달 안으로는 도저히 회복될 가망이 없습니다. 이렇듯 국가에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 정승의 주요한 직책을 오래도록 비워 둘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속히 체면(遞免)을 윤허하심으로써 시종 온전하게 해 주소서. 간절히 기구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이 병 끝에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조리하여 출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좌상에게 내의(內醫)를 보내어 병을 보살피도록 하라."
"좌상에게 내의(內醫)를 보내어 병을 보살피도록 하라."

 

4월 25일 갑인

주서(注書) 한유상(韓惟翔)이 서계하기를, "신이 오늘 아침 명을 받들고 좌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그가 초고를 갖추어 신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며칠 전에 또 담으로 가슴이 막히는 증세가 일어나, 밤낮으로 고통에 시달리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부득이 진정(陳情)하며 차자를 올렸다. 그런데 지금 삼가 간곡하신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보니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으니 진달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오늘 아침 명을 받들고 좌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그가 초고를 갖추어 신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며칠 전에 또 담으로 가슴이 막히는 증세가 일어나, 밤낮으로 고통에 시달리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부득이 진정(陳情)하며 차자를 올렸다. 그런데 지금 삼가 간곡하신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보니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으니 진달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악기를 거는 틀이나 여러 가지 형상, 연희를 행하는 일에는 모두 조화(造花)로 장식하는데 본부의 등록(謄錄)에 오른 화장(花匠)은 김충익(金忠翼)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그에게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충익을 안에서 화등(花燈) 만드는 데에 부리고 있기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그곳에만 나가고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없다면 조화와 관련된 일이 형편없이 될 텐데, 대례(大禮)를 행할 날짜는 임박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김충익을 일 끝낼 동안만이라도 와서 일하게 했으면 좋겠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안에서는 그를 잡아 와서 일을 시킨 적이 없으니 빨리 나오라고 독촉해서 일을 시키고, 만약 명령을 어기면 수금(囚禁)하여 중히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악기를 거는 틀이나 여러 가지 형상, 연희를 행하는 일에는 모두 조화(造花)로 장식하는데 본부의 등록(謄錄)에 오른 화장(花匠)은 김충익(金忠翼)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그에게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충익을 안에서 화등(花燈) 만드는 데에 부리고 있기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그곳에만 나가고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없다면 조화와 관련된 일이 형편없이 될 텐데, 대례(大禮)를 행할 날짜는 임박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김충익을 일 끝낼 동안만이라도 와서 일하게 했으면 좋겠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안에서는 그를 잡아 와서 일을 시킨 적이 없으니 빨리 나오라고 독촉해서 일을 시키고, 만약 명령을 어기면 수금(囚禁)하여 중히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좌·우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황연도(黃延道) 감사가 형구(刑具)를 채워 보낸 적인(賊人) 단복(丹福)과 단춘(丹春) 등을 전교하신 대로 누차 엄하게 형장을 가하며 반복해서 캐물었으나 한사코 무죄를 변명하였고, 장계 중에 용모나 나이와 비교해 보아도 서로 같지 않았으므로, 그 일의 정상을 보건대 억울한 점이 없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서원현(西原縣)에 수감된 적인 금손(今孫)에게 다시 자세히 물어보라고 서원현에 비밀 공문을 띄운 뒤 그 회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더 엄히 국문했으면 싶다는 뜻을 전에 이미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서원현에서 보낸 회답을 보건대 ‘현에 수감된 적인 금손에게 다시 캐물었더니, 금손이 공초하기를 「단복·단춘 등과는 일찍이 같은 패거리로 일을 벌인 적이 없는데, 단지 똑 같은 재인(才人)이고 그에게서 대당(大黨)의 이름을 들었기 때문에 과연 끌어다 댄 것이다. 그가 같은 패거리였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또한 아는 바가 없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볼 때 전후에 걸쳐 공초한 내용이 크게 서로 어긋나고 있기는 합니다만, 단지 금손이 끌어다 대었다는 이유만으로 줄곧 엄하게 형장을 가한다면 억울하게 죽을 염려도 없지 않을 듯합니다. 다시 추문하여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경솔하게 놓아 줄 수는 없으니 대신과 의논하여 처치토록 하라." 하였다.
"황연도(黃延道) 감사가 형구(刑具)를 채워 보낸 적인(賊人) 단복(丹福)과 단춘(丹春) 등을 전교하신 대로 누차 엄하게 형장을 가하며 반복해서 캐물었으나 한사코 무죄를 변명하였고, 장계 중에 용모나 나이와 비교해 보아도 서로 같지 않았으므로, 그 일의 정상을 보건대 억울한 점이 없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서원현(西原縣)에 수감된 적인 금손(今孫)에게 다시 자세히 물어보라고 서원현에 비밀 공문을 띄운 뒤 그 회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더 엄히 국문했으면 싶다는 뜻을 전에 이미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서원현에서 보낸 회답을 보건대 ‘현에 수감된 적인 금손에게 다시 캐물었더니, 금손이 공초하기를 「단복·단춘 등과는 일찍이 같은 패거리로 일을 벌인 적이 없는데, 단지 똑 같은 재인(才人)이고 그에게서 대당(大黨)의 이름을 들었기 때문에 과연 끌어다 댄 것이다. 그가 같은 패거리였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또한 아는 바가 없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볼 때 전후에 걸쳐 공초한 내용이 크게 서로 어긋나고 있기는 합니다만, 단지 금손이 끌어다 대었다는 이유만으로 줄곧 엄하게 형장을 가한다면 억울하게 죽을 염려도 없지 않을 듯합니다. 다시 추문하여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경솔하게 놓아 줄 수는 없으니 대신과 의논하여 처치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남쪽 변방의 적정(敵情)을, 상황이 발생했든 안했든 간에 두 달 간격으로 진강(鎭江) 아문에 자문(咨文)으로 보고해 왔는데, 이번 달이 바로 보낼 차례이니 승문원으로 하여금 관례대로 거행케 해야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남쪽 변방의 적정(敵情)을, 상황이 발생했든 안했든 간에 두 달 간격으로 진강(鎭江) 아문에 자문(咨文)으로 보고해 왔는데, 이번 달이 바로 보낼 차례이니 승문원으로 하여금 관례대로 거행케 해야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경덕궁의 침전과 별당은 물론이고 양전(兩殿)과 동궁(東宮)의 침실(寢室) 및 서연청(書筵廳)에 낭청만 있거나 혹은 감역관만 있다고 하니, 각처에 낭청과 감역관을 각각 1명씩 더 차출하여 공사를 감독케 하라. 그리고 경덕궁에 쓸 채색(彩色)을 품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지출하는 데도 그 양이 적다고 하니 다시 자세히 살펴 하도록 하라. 역군(役軍)을 모집할 때 어린이들로 하여금 충당하여 입역하지 말라고 전에 이미 하교하였다. 그런데도 아직 그대로 거행하지 않으면서 어린이들로 충정(充定)하고 있다 하니 다시 전교하여 건장한 사람만 엄선하여 충정토록 하라. 경덕궁의 동궁과 별당에는 성실하고 일을 잘 아는 낭청과 감역관을 차출하여 그곳 역시 속히 공사를 시작케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경덕궁의 침전과 별당은 물론이고 양전(兩殿)과 동궁(東宮)의 침실(寢室) 및 서연청(書筵廳)에 낭청만 있거나 혹은 감역관만 있다고 하니, 각처에 낭청과 감역관을 각각 1명씩 더 차출하여 공사를 감독케 하라. 그리고 경덕궁에 쓸 채색(彩色)을 품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지출하는 데도 그 양이 적다고 하니 다시 자세히 살펴 하도록 하라. 역군(役軍)을 모집할 때 어린이들로 하여금 충당하여 입역하지 말라고 전에 이미 하교하였다. 그런데도 아직 그대로 거행하지 않으면서 어린이들로 충정(充定)하고 있다 하니 다시 전교하여 건장한 사람만 엄선하여 충정토록 하라. 경덕궁의 동궁과 별당에는 성실하고 일을 잘 아는 낭청과 감역관을 차출하여 그곳 역시 속히 공사를 시작케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지금 이후로 탄일(誕日) 및 명일(名日)에 진상하는 말[馬]에 대해서는 위에서 본 뒤에 물려 보내어 다시 진상토록 하겠으니 지레 먼저 퇴짜(退字)를 놓지 말라고 사복시에 이르라."
"지금 이후로 탄일(誕日) 및 명일(名日)에 진상하는 말[馬]에 대해서는 위에서 본 뒤에 물려 보내어 다시 진상토록 하겠으니 지레 먼저 퇴짜(退字)를 놓지 말라고 사복시에 이르라."

 

보루 도감(報漏都監)이 아뢰기를, "본 도감의 일은 다른 데에서 만드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만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아 들여 뒷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전 교수 고경익(高景益)이 마음속으로 궁리하는 것이 가장 묘하고 기교면에서도 정밀하기 그지없다 합니다. 고경익에게 감조관(監造官)이라는 칭호를 내려 준 다음 도감으로 와서 근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본 도감의 일은 다른 데에서 만드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만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아 들여 뒷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전 교수 고경익(高景益)이 마음속으로 궁리하는 것이 가장 묘하고 기교면에서도 정밀하기 그지없다 합니다. 고경익에게 감조관(監造官)이라는 칭호를 내려 준 다음 도감으로 와서 근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26일 을묘

우승지 이창후(李昌後)가 아뢰기를, "서궁(西宮)의 죄악이 흘러넘쳐 온 나라의 신민에게 죄를 지었으므로 폄손(貶損)하는 절목을 이미 입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상·강원·공홍 3도에서 진상한 단자(單子)를 보건대 ‘소성정의(昭聖貞懿)’라는 네 글자를 공공연히 써 넣었으니 통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윤훤·이욱(李稶)·이춘원(李春元)을 중하게 추고하소서." 하니, 추고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서궁(西宮)의 죄악이 흘러넘쳐 온 나라의 신민에게 죄를 지었으므로 폄손(貶損)하는 절목을 이미 입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상·강원·공홍 3도에서 진상한 단자(單子)를 보건대 ‘소성정의(昭聖貞懿)’라는 네 글자를 공공연히 써 넣었으니 통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윤훤·이욱(李稶)·이춘원(李春元)을 중하게 추고하소서."
하니, 추고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전일 유징(柳澂)이 미곡을 납부하겠다고 한 상소를 영건 도감에 계하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회계(回啓)하는 말이 한 마디도 없는가. 이와 같은 일은 그때그때 바로 의논해서 처리하라."
"전일 유징(柳澂)이 미곡을 납부하겠다고 한 상소를 영건 도감에 계하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회계(回啓)하는 말이 한 마디도 없는가. 이와 같은 일은 그때그때 바로 의논해서 처리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전후에 걸쳐 경외(京外)에서 보내 온 공사 보조용 미포(米布) 및 전결(田結)에서 거둔 포목, 그리고 외방에서 올려 보낸 것과 조도사(調度使)가 올려 보낸 미포와 은냥(銀兩)을 하나하나 상세히 기록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각종 미포 및 은냥으로 이미 올려 보낸 것과 아직 올려 보내지 않은 것, 그리고 지출한 숫자와 현재 남아 있는 수를 하나하나 기록하여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도감의 미석(米石)은 요즘도 쓸 양이 남아 있는데, 다만 지난해 4월 이후로 목포(木布)를 지출한 수량이 지극히 호대하여 지금 남아 있는 비축량이 많지 않다. 만약 목포를 다 쓰고 나면, 모르겠다만 어떻게 하겠는가. 미리 먼저 별도로 의논해서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로 ‘전후에 걸쳐 경외(京外)에서 보내 온 공사 보조용 미포(米布) 및 전결(田結)에서 거둔 포목, 그리고 외방에서 올려 보낸 것과 조도사(調度使)가 올려 보낸 미포와 은냥(銀兩)을 하나하나 상세히 기록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각종 미포 및 은냥으로 이미 올려 보낸 것과 아직 올려 보내지 않은 것, 그리고 지출한 숫자와 현재 남아 있는 수를 하나하나 기록하여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도감의 미석(米石)은 요즘도 쓸 양이 남아 있는데, 다만 지난해 4월 이후로 목포(木布)를 지출한 수량이 지극히 호대하여 지금 남아 있는 비축량이 많지 않다. 만약 목포를 다 쓰고 나면, 모르겠다만 어떻게 하겠는가. 미리 먼저 별도로 의논해서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여러 도감에서 쓸 곳이 많이 있으니, 유선(油扇)을 양남(兩南)의 감사는 각각 5백 파(把)씩, 경상 좌·우 병사는 각각 3백 파씩, 전라 병사는 4백 파, 경상·전라의 좌·우 수사는 각각 1백 파씩, 통제사는 2백 파를, 그리고 양남의 감사는 칠선(漆扇)을 각각 1백 파씩, 5월 안으로 속히 올려 보내라고 하유하라."
"여러 도감에서 쓸 곳이 많이 있으니, 유선(油扇)을 양남(兩南)의 감사는 각각 5백 파(把)씩, 경상 좌·우 병사는 각각 3백 파씩, 전라 병사는 4백 파, 경상·전라의 좌·우 수사는 각각 1백 파씩, 통제사는 2백 파를, 그리고 양남의 감사는 칠선(漆扇)을 각각 1백 파씩, 5월 안으로 속히 올려 보내라고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일을 의논해 정하는 것이 한 시각이 급한데 여태 처치하지 않고 있다. 비록 대신이 출사(出仕)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며칠 안으로 여러 제조(提調)가 회동하여 상의한 다음 속히 정하도록 하라. 그리고 경덕궁(慶德宮)의 외삼문(外三門)과 각 아문 및 액정서의 하인이 기거할 곳, 그리고 장사(將士)들이 거주할 영보(營堡)를 7, 8월 이전까지 빠짐없이 완공하는 일을 각별히 감독하여 착실히 살펴서 행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일을 의논해 정하는 것이 한 시각이 급한데 여태 처치하지 않고 있다. 비록 대신이 출사(出仕)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며칠 안으로 여러 제조(提調)가 회동하여 상의한 다음 속히 정하도록 하라. 그리고 경덕궁(慶德宮)의 외삼문(外三門)과 각 아문 및 액정서의 하인이 기거할 곳, 그리고 장사(將士)들이 거주할 영보(營堡)를 7, 8월 이전까지 빠짐없이 완공하는 일을 각별히 감독하여 착실히 살펴서 행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의 제조가 무려 10여 인이나 되는데, 일차 당번 당상으로 출근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그러고 보면 제조의 수효가 아무리 많다 한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만약 마음을 다해서 감독한다면 5, 6인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당번 제조가 유고일 때에는 다른 제조가 대신 나와 감독하도록 하라. 그리고 경덕궁의 각 아문 공사는 의논해서 처리함에 단안을 내리기 어려운 일이 별로 없는데 지금까지 기둥을 세운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낭청과 감역관을 모두 차출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도록 하라. 또 상고(床庫)·궁방(弓房)·액정서 등도 감역관 1인을 차출하여 철저히 공사를 감독케 해서 2, 3개월 안으로 속히 완공토록 하라."
"영건 도감의 제조가 무려 10여 인이나 되는데, 일차 당번 당상으로 출근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그러고 보면 제조의 수효가 아무리 많다 한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만약 마음을 다해서 감독한다면 5, 6인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당번 제조가 유고일 때에는 다른 제조가 대신 나와 감독하도록 하라.
그리고 경덕궁의 각 아문 공사는 의논해서 처리함에 단안을 내리기 어려운 일이 별로 없는데 지금까지 기둥을 세운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낭청과 감역관을 모두 차출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도록 하라. 또 상고(床庫)·궁방(弓房)·액정서 등도 감역관 1인을 차출하여 철저히 공사를 감독케 해서 2, 3개월 안으로 속히 완공토록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올해 기와의 수요가 필시 지난해의 배는 될 것이므로 각도(各道)에 배정된 와장(瓦匠) 및 이름을 적어서 강제 징집하도록 한 사람들을 관문(關文)이 도착하는 그날 바로 독촉해 보내라는 뜻을 신칙한 것이 두세 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날씨가 이처럼 가무니 그야말로 기와를 굽는 데는 최적기라 할 것인데, 장인의 원수(元數) 70명 가운데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가 무려 44명이나 됩니다. 이는 각도의 감사가 장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간하지 않고 그저 각 고을의 이름으로만 범연히 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도감에 문보(文報)하는 것만 줄을 이을 뿐 공문이 오가는 사이에 세월만 헛되이 흘러 좋은 시기를 놓치고 있으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각도에서 아직 올라오지 않은 와장의 수를 별단(別單)으로 써서 올리니, 해도(該道)에 하서(下書)하여 다시는 예전처럼 범연히 처리하지 못하게 하고, 그 중 분명히 진장(眞匠)이 없어서 사람을 사서 대신 입역(立役)시킨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하여 감하(減下)해 주는 대신 그 인원을 장인이 있는 고을에 배정토록 하소서. 그런 뒤에 각도의 공방(工房) 영리(營吏)로 하여금 일제히 이끌고 와서 도감에 교부(交付)케 하되, 혹시 진장이 아니거나 1명이라도 도착하지 않을 경우에는 당해 영리를 경옥(京獄)에 수금(囚禁)하고 감사는 추고토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그런데 근일 도감이 아뢰는 것을 보면 늘 외방의 공장(工匠)을 독촉하는 것만 중히 여기고 있다. 물론 외방의 공장을 독촉해서 일을 시키는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서울에 있는 공장들을 단속해서 일을 시키라고 몇 차례나 번거롭게 전교하였는 데도 전혀 마음을 써서 거행하지 않는다. 구워 낸 기와를 개인적으로 사 가는 수효에 대해서도 살펴 처리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일들도 모두 자세히 살펴서 착실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올해 기와의 수요가 필시 지난해의 배는 될 것이므로 각도(各道)에 배정된 와장(瓦匠) 및 이름을 적어서 강제 징집하도록 한 사람들을 관문(關文)이 도착하는 그날 바로 독촉해 보내라는 뜻을 신칙한 것이 두세 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날씨가 이처럼 가무니 그야말로 기와를 굽는 데는 최적기라 할 것인데, 장인의 원수(元數) 70명 가운데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가 무려 44명이나 됩니다. 이는 각도의 감사가 장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간하지 않고 그저 각 고을의 이름으로만 범연히 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도감에 문보(文報)하는 것만 줄을 이을 뿐 공문이 오가는 사이에 세월만 헛되이 흘러 좋은 시기를 놓치고 있으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각도에서 아직 올라오지 않은 와장의 수를 별단(別單)으로 써서 올리니, 해도(該道)에 하서(下書)하여 다시는 예전처럼 범연히 처리하지 못하게 하고, 그 중 분명히 진장(眞匠)이 없어서 사람을 사서 대신 입역(立役)시킨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하여 감하(減下)해 주는 대신 그 인원을 장인이 있는 고을에 배정토록 하소서. 그런 뒤에 각도의 공방(工房) 영리(營吏)로 하여금 일제히 이끌고 와서 도감에 교부(交付)케 하되, 혹시 진장이 아니거나 1명이라도 도착하지 않을 경우에는 당해 영리를 경옥(京獄)에 수금(囚禁)하고 감사는 추고토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그런데 근일 도감이 아뢰는 것을 보면 늘 외방의 공장(工匠)을 독촉하는 것만 중히 여기고 있다. 물론 외방의 공장을 독촉해서 일을 시키는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서울에 있는 공장들을 단속해서 일을 시키라고 몇 차례나 번거롭게 전교하였는 데도 전혀 마음을 써서 거행하지 않는다. 구워 낸 기와를 개인적으로 사 가는 수효에 대해서도 살펴 처리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일들도 모두 자세히 살펴서 착실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번와소의 땔나무를 올려보내지 않기 때문에 기와를 구워 내는 일이 분명 지난해보다 못하다. 다시 더 바치라고 독촉하여 속히 많은 양의 기와를 구워 내도록 도감에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당초에 땔나무는 결포(結布)를 면제해 주는 대신 경기의 각읍에 배정했었는데, 서울에서 방납(防納)하는 무리들이 각 고을의 수령과 한통속이 되어 도감에 대신 납부하면서 두 배나 많은 미석(米石)을 민간에서 징수하였기 때문에 기보(畿輔) 안에서 백성들의 원망 소리가 무척 높았습니다. 그래서 전일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입계(入啓)하여, 원주(原州)에 거주하는 전 부장(部將) 김영(金穎)과 전 주부 김흡(金洽) 등으로 하여금 값을 지급하고 강변에서 무역한 뒤에 이 달까지는 모두 물로 흘려 내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도착할 때까지는 도감이 직접 경강(京江)에서 사다가 쓰면서 현재 만드는 대로 굽고 있으므로 일을 중지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시 더 독촉하여 일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라. 또 청와(靑瓦)와 황와(黃瓦)는 한결같이 옛날 빛깔에 따라 자세히 살펴서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리고 금년에 구워 낸 청와의 수효가 지난해에 미치지 못한다 하니, 각별히 감독하여 지난해의 예(例)에 의거하여 많은 양을 구워 내는 일을 착실히 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로 ‘번와소의 땔나무를 올려보내지 않기 때문에 기와를 구워 내는 일이 분명 지난해보다 못하다. 다시 더 바치라고 독촉하여 속히 많은 양의 기와를 구워 내도록 도감에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당초에 땔나무는 결포(結布)를 면제해 주는 대신 경기의 각읍에 배정했었는데, 서울에서 방납(防納)하는 무리들이 각 고을의 수령과 한통속이 되어 도감에 대신 납부하면서 두 배나 많은 미석(米石)을 민간에서 징수하였기 때문에 기보(畿輔) 안에서 백성들의 원망 소리가 무척 높았습니다. 그래서 전일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입계(入啓)하여, 원주(原州)에 거주하는 전 부장(部將) 김영(金穎)과 전 주부 김흡(金洽) 등으로 하여금 값을 지급하고 강변에서 무역한 뒤에 이 달까지는 모두 물로 흘려 내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도착할 때까지는 도감이 직접 경강(京江)에서 사다가 쓰면서 현재 만드는 대로 굽고 있으므로 일을 중지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시 더 독촉하여 일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라. 또 청와(靑瓦)와 황와(黃瓦)는 한결같이 옛날 빛깔에 따라 자세히 살펴서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리고 금년에 구워 낸 청와의 수효가 지난해에 미치지 못한다 하니, 각별히 감독하여 지난해의 예(例)에 의거하여 많은 양을 구워 내는 일을 착실히 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기와 굽는 데에 소요되는 땔나무를 당초 경기의 가까운 고을에 배정한 것은 갖다 쓰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는데, 방납(防納)하는 무리들이 중간에서 다 납부하고는 민간에서 가미(價米)를 배나 징수하므로 백성들이 매우 원망하며 괴로워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주(原州)에 사는 김흡(金洽)과 김영(金穎) 등을 뽑아 그들로 하여금 값을 주고 무역하게 하면서 사공가(沙工價) 및 생갈(生葛)과 진장목(眞長木)도 일일이 주어 보낸 뒤 이 달까지 모두 물에 흘려 내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김흡이 와서 말하기를 ‘원주·충원(忠原)·제천(堤川) 등 3읍(邑)의 수령이 사공을 조발(調發)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천 현감의 경우는 심지어 나의 차지(次知)를 가두고 발을 못붙이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전일에 없던 변고로서 비단 도감을 심히 멸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마치 흙덩이처럼 무지하게 자리에 앉아만 있으면서 사체를 모름을 이에 의거하여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하게 처치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우선은 추고만 하고 색리(色吏)는 잡아다가 추론(推論)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당초 도감에서는 한결같이 사무역(私貿易)에 의존하여 땔나무를 마련해 왔습니다. 세 고을에서 경강(京江)까지 수로(水路)로 5, 6일밖에 걸리지 않는 데도 사공 1인당 도감에서 목면(木綿)을 3필씩 주었는데, 이는 대체로 품값을 후하게 주어 가능한 한 민폐를 없애는 동시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 애당초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토목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금 기와를 구워 낼 나무를 전적으로 이 두 사람이 무역해 오는 데 의지하고 있는데 와서 바치는 물량이 하나도 없어 장차 일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일이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거론한 세 고을의 수령을 중하게 추고하고, 별도로 금군(禁軍) 3인을 차정(差定)한 뒤에 말을 지급해 세 고을에 나눠 보내 곧바로 독촉해서 물로 띄워 보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기와 굽는 데에 소요되는 땔나무를 당초 경기의 가까운 고을에 배정한 것은 갖다 쓰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는데, 방납(防納)하는 무리들이 중간에서 다 납부하고는 민간에서 가미(價米)를 배나 징수하므로 백성들이 매우 원망하며 괴로워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주(原州)에 사는 김흡(金洽)과 김영(金穎) 등을 뽑아 그들로 하여금 값을 주고 무역하게 하면서 사공가(沙工價) 및 생갈(生葛)과 진장목(眞長木)도 일일이 주어 보낸 뒤 이 달까지 모두 물에 흘려 내려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김흡이 와서 말하기를 ‘원주·충원(忠原)·제천(堤川) 등 3읍(邑)의 수령이 사공을 조발(調發)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천 현감의 경우는 심지어 나의 차지(次知)를 가두고 발을 못붙이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전일에 없던 변고로서 비단 도감을 심히 멸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마치 흙덩이처럼 무지하게 자리에 앉아만 있으면서 사체를 모름을 이에 의거하여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하게 처치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우선은 추고만 하고 색리(色吏)는 잡아다가 추론(推論)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당초 도감에서는 한결같이 사무역(私貿易)에 의존하여 땔나무를 마련해 왔습니다. 세 고을에서 경강(京江)까지 수로(水路)로 5, 6일밖에 걸리지 않는 데도 사공 1인당 도감에서 목면(木綿)을 3필씩 주었는데, 이는 대체로 품값을 후하게 주어 가능한 한 민폐를 없애는 동시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 애당초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토목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금 기와를 구워 낼 나무를 전적으로 이 두 사람이 무역해 오는 데 의지하고 있는데 와서 바치는 물량이 하나도 없어 장차 일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일이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거론한 세 고을의 수령을 중하게 추고하고, 별도로 금군(禁軍) 3인을 차정(差定)한 뒤에 말을 지급해 세 고을에 나눠 보내 곧바로 독촉해서 물로 띄워 보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4월 27일 병진

예조가 아뢰기를, "증광 회시(增廣會試) 날짜를 이미 다음달 4일로 정하였습니다만 조칙(詔敕)을 영접하는 대례(大禮)가 7일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형세가 매우 불편할 뿐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무과(武科) 초시(初試)에 입격(入格)한 사람을 직부 회시(直赴會試)하게 하지 말라고 양사가 논집하였는데,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하셔서 우선 정지했다 하고 있으니, 시험 기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매사가 군색하기만 합니다. 무과에 관한 한 조목을 빨리 결정지어야만 과거 시험 날짜를 앞당기거나 물릴 수 있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과에 대한 일은 알아서 처치하겠다. 다만 내일 내가 침을 맞을 예정이니 7일이나 다른 날로 조금 물려서 행하도록 하라. 그리고 조칙을 영접하는 일은 9일이 어떤지 일관(日官)에게 물어 부표(付標)하도록 하라." 하였다.
"증광 회시(增廣會試) 날짜를 이미 다음달 4일로 정하였습니다만 조칙(詔敕)을 영접하는 대례(大禮)가 7일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형세가 매우 불편할 뿐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무과(武科) 초시(初試)에 입격(入格)한 사람을 직부 회시(直赴會試)하게 하지 말라고 양사가 논집하였는데,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하셔서 우선 정지했다 하고 있으니, 시험 기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매사가 군색하기만 합니다. 무과에 관한 한 조목을 빨리 결정지어야만 과거 시험 날짜를 앞당기거나 물릴 수 있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과에 대한 일은 알아서 처치하겠다. 다만 내일 내가 침을 맞을 예정이니 7일이나 다른 날로 조금 물려서 행하도록 하라. 그리고 조칙을 영접하는 일은 9일이 어떤지 일관(日官)에게 물어 부표(付標)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내 병이 낫는 대로 참작해서 처리하겠다마는 조칙을 영접하는 일은 아무리 백관을 교외에 나가서 영접하게 한다 하더라도 대신이 없이는 예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니, 우선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그리고 이렇듯 북쪽 변방에 우려스러운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 무사들을 널리 뽑아 방어 병력을 늘린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증광시 때에는 가외로 많은 인원을 뽑는 것이 이미 요즘 들어 관례화하였는데 어찌하여 유독 무과에 대해서만은 굳이 고집하는 것인가.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양사에 이르라." 하였다. 【전일 합계(合啓)한 데 대한 비답을 이제 와서 비로소 내렸다.】
"내 병이 낫는 대로 참작해서 처리하겠다마는 조칙을 영접하는 일은 아무리 백관을 교외에 나가서 영접하게 한다 하더라도 대신이 없이는 예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니, 우선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그리고 이렇듯 북쪽 변방에 우려스러운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 무사들을 널리 뽑아 방어 병력을 늘린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증광시 때에는 가외로 많은 인원을 뽑는 것이 이미 요즘 들어 관례화하였는데 어찌하여 유독 무과에 대해서만은 굳이 고집하는 것인가.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양사에 이르라."
하였다. 【전일 합계(合啓)한 데 대한 비답을 이제 와서 비로소 내렸다.】

 

전교하였다. "탄일(誕日)에 정부가 각전(各殿)에 진상한 표리(表裏)를 보니 승수(升數)가 거칠고 품질이 좋지 않은 데다 복(袱)의 색깔마저 엷은 색이었다. 해사(該司)의 담당 관리를 추고하여 뒷날을 경계토록 하라."
"탄일(誕日)에 정부가 각전(各殿)에 진상한 표리(表裏)를 보니 승수(升數)가 거칠고 품질이 좋지 않은 데다 복(袱)의 색깔마저 엷은 색이었다. 해사(該司)의 담당 관리를 추고하여 뒷날을 경계토록 하라."

 

전교하였다. "정부가 탄일에 진상한 말을 보건대 병든 말을 봉진(封進)하였으니 타당하지 못한 일인 듯하다. 후일에는 자세히 살펴 가려서 봉진하라."
"정부가 탄일에 진상한 말을 보건대 병든 말을 봉진(封進)하였으니 타당하지 못한 일인 듯하다. 후일에는 자세히 살펴 가려서 봉진하라."

 

전교하였다. "경덕궁 집희전(集禧殿)을 지금까지 개조하지 않고 있는데 속히 철거하고 소전(小殿)을 개조하라. 지세가 협착하여 대전(大殿)을 지을 수는 없으니 소전을 환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일을 도형(圖形)으로 입계한 뒤 속히 착공하도록 하라. 대체로 볼 때 경덕궁 공사는 단지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것 외에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별로 없으니 지어야 할 곳들을 서둘러 감독함으로써 속히 완공시키라."
"경덕궁 집희전(集禧殿)을 지금까지 개조하지 않고 있는데 속히 철거하고 소전(小殿)을 개조하라. 지세가 협착하여 대전(大殿)을 지을 수는 없으니 소전을 환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일을 도형(圖形)으로 입계한 뒤 속히 착공하도록 하라. 대체로 볼 때 경덕궁 공사는 단지 봉상시를 옮겨 설치하는 것 외에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별로 없으니 지어야 할 곳들을 서둘러 감독함으로써 속히 완공시키라."

 

전교하였다. "도감의 목포(木布)가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다. 만약 목포의 납부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각별히 중상(重賞)을 내려 그 길을 넓히되, 사목(事目)은 철(鐵)·석재(石材)·목재의 예에 의거하여 마련해서 계하(啓下)받은 뒤 상세히 중외(中外)에 알려 속히 모집해 들이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도감의 목포(木布)가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다. 만약 목포의 납부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각별히 중상(重賞)을 내려 그 길을 넓히되, 사목(事目)은 철(鐵)·석재(石材)·목재의 예에 의거하여 마련해서 계하(啓下)받은 뒤 상세히 중외(中外)에 알려 속히 모집해 들이도록 하라고 도감에 이르라."

 

좌의정 한효순이 첫번째 사직소를 올리니, 전교하기를, "국가에 일이 많아 우려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불행히도 대신 모두가 유고(有故) 중이다. 좌상과 우상이 사직소를 올리고 한꺼번에 들어가버렸는데 이런 때에 어찌 그래서야 되겠는가. 좌상은 사직소를 올리지 말고 조리하여 출사(出仕)하라고 사관(史官)을 보내 유시하도록 하라." 하였다.
"국가에 일이 많아 우려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불행히도 대신 모두가 유고(有故) 중이다. 좌상과 우상이 사직소를 올리고 한꺼번에 들어가버렸는데 이런 때에 어찌 그래서야 되겠는가. 좌상은 사직소를 올리지 말고 조리하여 출사(出仕)하라고 사관(史官)을 보내 유시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후로는 어떤 사직소든 한 관아에서 두 개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일을 정원은 살펴서 하라."
"이후로는 어떤 사직소든 한 관아에서 두 개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일을 정원은 살펴서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회답사(回答使)를 들여보내는 일을 이미 주문(奏聞)한 이상 돌아온 뒤에도 주문하여 보고하는 일이 있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일 오랑캐 편지 속의 말 뜻이 흉악하기 이를 데 없었던만큼 듣는 즉시 치주(馳奏)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지금까지 덮어두고 있었던 것 또한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아울러 주문을 갖추게 하여 사은사(謝恩使) 행차 편에 부쳐 보내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회답사(回答使)를 들여보내는 일을 이미 주문(奏聞)한 이상 돌아온 뒤에도 주문하여 보고하는 일이 있어야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일 오랑캐 편지 속의 말 뜻이 흉악하기 이를 데 없었던만큼 듣는 즉시 치주(馳奏)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지금까지 덮어두고 있었던 것 또한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아울러 주문을 갖추게 하여 사은사(謝恩使) 행차 편에 부쳐 보내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박정길이 아뢰기를, "전교하신 뜻을 가지고 양사의 성상소를 불러 말하였더니, 양사의 성상소가 말하기를 ‘이번에 양사가 논한 무과(武科) 직부 회시(直赴會試)에 관한 일은 조야(朝野)의 물의가 비등하여 중하게 발동된 것이다. 따라서 감히 경솔하게 우리들 멋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신 뜻을 가지고 양사의 성상소를 불러 말하였더니, 양사의 성상소가 말하기를 ‘이번에 양사가 논한 무과(武科) 직부 회시(直赴會試)에 관한 일은 조야(朝野)의 물의가 비등하여 중하게 발동된 것이다. 따라서 감히 경솔하게 우리들 멋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토포사(討捕使) 조찬한이 장계를 올리기를, "신이 전주(全州)에 도착한 뒤 군관(軍官)에게 분부하여 복장을 바꿔 입고 미행(微行)해서 지리산(智異山)의 크고 작은 사찰 및 암자·굴혈(窟穴) 등 의심할 만한 곳을 수색케 하여 모두 이미 찾아보았습니다. 또 다른 군관을 차출하여 순창(淳昌) 등 일곱 고을의 잘 알려진 산사(山寺)를 드나들면서 빠짐없이 기찰하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런 뒤에 신이 전주에서 남원(南原)으로 가서 또 박적(朴賊)의 용모를 아는 양원남(梁元男)으로 하여금 한 사람을 대동하고 곧장 덕유산(德裕山)으로 가서 그곳을 드나들며 기찰하게 하였습니다. 또 구례(求禮)로 가서 저번에 보았던 군관을 만났더니 ‘모조리 수색해 보았지만 의심할 만한 곳이 없었다.’고 하기에 신이 전주로 돌아왔습니다. 대개 장수(長水)의 익명서(匿名書)로 인한 옥사(獄事) 때문에 인심이 흉흉하였으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모함한 흔적을 조정이 바야흐로 수사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요즘에는 백성이 조금 안정되어 오로지 농사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필 일이 없기에 우선 다른 군관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공홍도(公洪道)로 향할까 합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안처인(安處仁)과 안후인(安厚仁) 등이 ‘박치의(朴致毅)가 호남에 몸을 숨기고 패거리를 모아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였기 때문에 조찬한을 보내 산골짜기의 사찰·암자·굴혈 등을 두루 수색하는 일이 있었다.】
"신이 전주(全州)에 도착한 뒤 군관(軍官)에게 분부하여 복장을 바꿔 입고 미행(微行)해서 지리산(智異山)의 크고 작은 사찰 및 암자·굴혈(窟穴) 등 의심할 만한 곳을 수색케 하여 모두 이미 찾아보았습니다. 또 다른 군관을 차출하여 순창(淳昌) 등 일곱 고을의 잘 알려진 산사(山寺)를 드나들면서 빠짐없이 기찰하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런 뒤에 신이 전주에서 남원(南原)으로 가서 또 박적(朴賊)의 용모를 아는 양원남(梁元男)으로 하여금 한 사람을 대동하고 곧장 덕유산(德裕山)으로 가서 그곳을 드나들며 기찰하게 하였습니다. 또 구례(求禮)로 가서 저번에 보았던 군관을 만났더니 ‘모조리 수색해 보았지만 의심할 만한 곳이 없었다.’고 하기에 신이 전주로 돌아왔습니다.
대개 장수(長水)의 익명서(匿名書)로 인한 옥사(獄事) 때문에 인심이 흉흉하였으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모함한 흔적을 조정이 바야흐로 수사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요즘에는 백성이 조금 안정되어 오로지 농사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필 일이 없기에 우선 다른 군관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공홍도(公洪道)로 향할까 합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안처인(安處仁)과 안후인(安厚仁) 등이 ‘박치의(朴致毅)가 호남에 몸을 숨기고 패거리를 모아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였기 때문에 조찬한을 보내 산골짜기의 사찰·암자·굴혈 등을 두루 수색하는 일이 있었다.】

 

4월 28일 정사

왕이 안질(眼疾) 때문에 침을 맞았는데 하루씩 간격을 두어 다섯 번 맞고 그쳤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바다로 조운(漕運)할 때는 오직 바람이 없는 하절기에 해야만 배가 전복될 염려가 없습니다. 가을철 이후가 되어 바람이 거세지면 아무리 발을 구르며 독촉해도 배의 운행에 불리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현재 도감에 납부해야 할 전결(田結) 수미(收米)로 아직 상납되지 않은 숫자가 10에 7, 8은 되는데 해도(該道)에 이를 관장하며 조운을 독려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선척도 없기 때문에 제때에 실어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시기를 잃고 나면 뒤에 아무리 급하다고 독촉을 해도 더욱 소요스럽기만 할 뿐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조도사(調度使)의 종사관(從事官) 오숙(吳䎘)에게 경차관(敬差官)의 칭호를 부여한 뒤 가까운 장래에 내려가게 해서 양호(兩湖)를 이 사람에게 전담시켜 왕래하며 감독하여 실어나르도록 하고, 황해도는 조도사 종사관 송방조(宋邦祚)로 하여금 담당하여 운송을 감독케 하되, 배를 띄운 상황을 연속적으로 치계(馳啓)하게 하거나 도감에 보고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뜻을 오숙이 내려갈 때 말해 보내는 한편 종사관 송방조에게 행회(行會)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바다로 조운(漕運)할 때는 오직 바람이 없는 하절기에 해야만 배가 전복될 염려가 없습니다. 가을철 이후가 되어 바람이 거세지면 아무리 발을 구르며 독촉해도 배의 운행에 불리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현재 도감에 납부해야 할 전결(田結) 수미(收米)로 아직 상납되지 않은 숫자가 10에 7, 8은 되는데 해도(該道)에 이를 관장하며 조운을 독려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선척도 없기 때문에 제때에 실어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시기를 잃고 나면 뒤에 아무리 급하다고 독촉을 해도 더욱 소요스럽기만 할 뿐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을 것입니다.
조도사(調度使)의 종사관(從事官) 오숙(吳䎘)에게 경차관(敬差官)의 칭호를 부여한 뒤 가까운 장래에 내려가게 해서 양호(兩湖)를 이 사람에게 전담시켜 왕래하며 감독하여 실어나르도록 하고, 황해도는 조도사 종사관 송방조(宋邦祚)로 하여금 담당하여 운송을 감독케 하되, 배를 띄운 상황을 연속적으로 치계(馳啓)하게 하거나 도감에 보고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뜻을 오숙이 내려갈 때 말해 보내는 한편 종사관 송방조에게 행회(行會)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황와(黃瓦)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석자황(石雌黃)을 창졸간에 많이 구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시기에 맞춰 구워내야만 장마가 닥치기 전에 홍(弘)·정(政) 등 양전(兩殿)의 지붕을 덮을 수가 있는데 여러 곳에서 무역해 얻는 숫자가 매우 약소한 데다 무역해 올 즈음에 걸핏하면 열흘이나 한 달을 넘기기가 일쑤입니다. 그런데 잡물소(雜物所)와 채색소(彩色所)에서 입수하여 구비해 놓은 숫자가 상당히 많은데 용도가 급하지 않다 하니 10여 근(斤)을 우선 가져다 쓰고서 선득리(宣得李)가 무역해 오면 빌린 만큼 상환(償還)토록 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황와(黃瓦)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석자황(石雌黃)을 창졸간에 많이 구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시기에 맞춰 구워내야만 장마가 닥치기 전에 홍(弘)·정(政) 등 양전(兩殿)의 지붕을 덮을 수가 있는데 여러 곳에서 무역해 얻는 숫자가 매우 약소한 데다 무역해 올 즈음에 걸핏하면 열흘이나 한 달을 넘기기가 일쑤입니다. 그런데 잡물소(雜物所)와 채색소(彩色所)에서 입수하여 구비해 놓은 숫자가 상당히 많은데 용도가 급하지 않다 하니 10여 근(斤)을 우선 가져다 쓰고서 선득리(宣得李)가 무역해 오면 빌린 만큼 상환(償還)토록 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작년에 무역해 온 채색(彩色)은 품질이 떨어져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이번에 각 사신의 행차를 통해 영건 도감이 무역해 오는 채색은 십분 주의해서 잘 가려서 무역해 와야 할 것이다. 만약 또 쓰지 못할 채색을 무역해 올 경우에는 상통사(上通事)를 각별히 중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을 도감 및 해조에 말하여 착실히 거행하게 하라."
"작년에 무역해 온 채색(彩色)은 품질이 떨어져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이번에 각 사신의 행차를 통해 영건 도감이 무역해 오는 채색은 십분 주의해서 잘 가려서 무역해 와야 할 것이다. 만약 또 쓰지 못할 채색을 무역해 올 경우에는 상통사(上通事)를 각별히 중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을 도감 및 해조에 말하여 착실히 거행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침을 맞으며 조섭하는 기간 동안만이라도 긴급하지 않은 공사는 우선 정원에 계류해두고 일체 들이지 말라. 근일처럼 번잡하게 계속 봉입하지 말도록 다시 더 자세히 살펴서 하고 긴급한 일만 뽑아서 입계하라."
"침을 맞으며 조섭하는 기간 동안만이라도 긴급하지 않은 공사는 우선 정원에 계류해두고 일체 들이지 말라. 근일처럼 번잡하게 계속 봉입하지 말도록 다시 더 자세히 살펴서 하고 긴급한 일만 뽑아서 입계하라."

 

전교하였다. "근래 전교한 일들을 도감이 즉시 거행하지 않고 있는데 지금 이후로는 각별히 착실하게 거행하여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
"근래 전교한 일들을 도감이 즉시 거행하지 않고 있는데 지금 이후로는 각별히 착실하게 거행하여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

 

검열 심지청(沈之淸)이 서계(書啓)하기를, "신이 명을 받들고 좌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유시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신의 병이 중한 정상에 대해서는 이미 전후에 걸쳐 모두 말씀드렸는데, 삼가 이렇게까지 성상의 분부를 받들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명을 받들고 좌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유시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신의 병이 중한 정상에 대해서는 이미 전후에 걸쳐 모두 말씀드렸는데, 삼가 이렇게까지 성상의 분부를 받들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한강 연안에 쌓여 있는 서까래감 가운데 이른바 작은 서까래감이라고 하는 것도 덩치가 커서 별당(別堂)의 월랑(月廊) 용도에나 적합합니다. 그것을 경덕궁 각 아문의 서까래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듯하기에, 그 중에서 가장 작은 것들을 골라 우선 쓰고 있는데,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공홍도(公洪道) 안면곶(安眠串)에 소소한 서까래감들이 많이 있으니 본도에 내려가는 감역관으로 하여금 작은 서까래감 4, 5천 개를 급히 벌채한 뒤 배로 실어 올려보내게 하는 일을 본도 감사 및 감역관에게 역마(驛馬)로 행회(行會)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요즘 배를 만들고 수레를 만드느라 안면곶의 나무를 날마다 많이 벌채하고 있으니 그것만도 이미 타당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또 서까래감으로 무려 5, 6천 조(條)를 벌채하다니, 각 아문의 서까래가 무슨 중요한 관계가 있기에 또 이렇듯 다시 벌채한단 말인가. 꼭 해야 한다면 황연도(黃延道)와 강원도에 작은 서까래감들을 나누어 배정해서 벌채해 오도록 하고 한 곳의 나무만 치우치게 벌채하지는 말도록 하라. 그리고 각 아문에 쓰는 재목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다시 감역관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강 연안에 쌓여 있는 서까래감 가운데 이른바 작은 서까래감이라고 하는 것도 덩치가 커서 별당(別堂)의 월랑(月廊) 용도에나 적합합니다. 그것을 경덕궁 각 아문의 서까래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듯하기에, 그 중에서 가장 작은 것들을 골라 우선 쓰고 있는데,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공홍도(公洪道) 안면곶(安眠串)에 소소한 서까래감들이 많이 있으니 본도에 내려가는 감역관으로 하여금 작은 서까래감 4, 5천 개를 급히 벌채한 뒤 배로 실어 올려보내게 하는 일을 본도 감사 및 감역관에게 역마(驛馬)로 행회(行會)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요즘 배를 만들고 수레를 만드느라 안면곶의 나무를 날마다 많이 벌채하고 있으니 그것만도 이미 타당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또 서까래감으로 무려 5, 6천 조(條)를 벌채하다니, 각 아문의 서까래가 무슨 중요한 관계가 있기에 또 이렇듯 다시 벌채한단 말인가. 꼭 해야 한다면 황연도(黃延道)와 강원도에 작은 서까래감들을 나누어 배정해서 벌채해 오도록 하고 한 곳의 나무만 치우치게 벌채하지는 말도록 하라. 그리고 각 아문에 쓰는 재목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다시 감역관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하도록 하라."
하였다.

 

경운궁(慶運宮) 서쪽과 남쪽 담 밖에서 입직(入直)하는 대장(大將)과 별장(別將)이 아뢰기를, "이달 28일 사시(巳時)에 남쪽 군보(軍堡)를 수직(守直)하는 군사 정산(鄭山)이 와서 말하기를 ‘27일 유시(酉時)에 사령(使令) 귀남(貴男)이 새를 쏘다 잘못 발사하여 화살이 궁의 담 너머로 날아갔다.’ 하였습니다.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기에 귀남을 잡아 구류시키고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를 가두고 중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이달 28일 사시(巳時)에 남쪽 군보(軍堡)를 수직(守直)하는 군사 정산(鄭山)이 와서 말하기를 ‘27일 유시(酉時)에 사령(使令) 귀남(貴男)이 새를 쏘다 잘못 발사하여 화살이 궁의 담 너머로 날아갔다.’ 하였습니다.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기에 귀남을 잡아 구류시키고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를 가두고 중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동·서의 채석장에서 크고 작은 동거(童車)를 끌고 들어올 승군(僧軍)에 대해서는 4백 50여 명을 이미 나누어 보냈는데, 이는 각소(各所)의 수본(手本)에 의거해서 공사가 긴급하고 헐한 정도에 따라 적당히 헤아려 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비망기를 받들고서 전교하신 대로 영남(嶺南)의 승군은 모조리 파견해 돌을 끄는 데로 내보냈습니다. 또 역군(役軍)을 모집할 때 어린애는 충당시키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 문제는 이렇습니다. 담당 관원이 맡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늘 맡은 일을 검칙하는 것만도 날마다 겨를이 없으므로 다만 그 담당 관원은 각소의 수본에 따라 군인이 몇 명이든 많고 적은 것을 따지지 않고 요청한 대로 수를 정하여 입역(立役)을 허락하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는 어디에 아동이 있으며 어떤 일이 고되고 헐한지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에 그저 적간(摘奸)하여 드러나는 대로 하인을 치죄(治罪)하기도 하고 혹은 감역관을 힐책하는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그리고 입역된 역군들의 숫자가 매우 많기 때문에 혹 처음에는 건장한 사람으로 응모했다가 일단 뽑힌 뒤에는 간간이 아동으로 끼워넣기도 하는데 아무리 금지해도 안될 경우에는 장정보다 그 요포(料布)를 줄여 지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령 석수(石手)의 조역(助役)을 예로 들면 그들이 꼭 어려서부터 배워 같이 일하며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자를 데리고 하기 때문에 장정이라 하더라도 어린애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알면서도 하는 대로 놔두는데, 각소에서 모집된 역군은 원하지 않고 다투어 승군을 요청하는 것이 대개 이 때문이며, 담당 관원이 늘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좋은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직도 거행하지 않고 있다.’는 분부를 받고 보니 두려운 심정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상이 분부하신 대로 다시 더 날마다 새롭게 신칙하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동·서의 채석장에서 크고 작은 동거(童車)를 끌고 들어올 승군(僧軍)에 대해서는 4백 50여 명을 이미 나누어 보냈는데, 이는 각소(各所)의 수본(手本)에 의거해서 공사가 긴급하고 헐한 정도에 따라 적당히 헤아려 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비망기를 받들고서 전교하신 대로 영남(嶺南)의 승군은 모조리 파견해 돌을 끄는 데로 내보냈습니다.
또 역군(役軍)을 모집할 때 어린애는 충당시키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 문제는 이렇습니다. 담당 관원이 맡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늘 맡은 일을 검칙하는 것만도 날마다 겨를이 없으므로 다만 그 담당 관원은 각소의 수본에 따라 군인이 몇 명이든 많고 적은 것을 따지지 않고 요청한 대로 수를 정하여 입역(立役)을 허락하게 되는데, 그러고 나서는 어디에 아동이 있으며 어떤 일이 고되고 헐한지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에 그저 적간(摘奸)하여 드러나는 대로 하인을 치죄(治罪)하기도 하고 혹은 감역관을 힐책하는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그리고 입역된 역군들의 숫자가 매우 많기 때문에 혹 처음에는 건장한 사람으로 응모했다가 일단 뽑힌 뒤에는 간간이 아동으로 끼워넣기도 하는데 아무리 금지해도 안될 경우에는 장정보다 그 요포(料布)를 줄여 지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령 석수(石手)의 조역(助役)을 예로 들면 그들이 꼭 어려서부터 배워 같이 일하며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자를 데리고 하기 때문에 장정이라 하더라도 어린애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알면서도 하는 대로 놔두는데, 각소에서 모집된 역군은 원하지 않고 다투어 승군을 요청하는 것이 대개 이 때문이며, 담당 관원이 늘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좋은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직도 거행하지 않고 있다.’는 분부를 받고 보니 두려운 심정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상이 분부하신 대로 다시 더 날마다 새롭게 신칙하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황와(黃瓦)의 색깔을 제대로 내는 참다운 방법을 터득하지 못해 한참 고민해 왔는데, 전일 석자황(石雌黃)을 약물(藥物)에 첨가해 넣었더니 그 색깔이 평시에 만들던 것과 대략 동일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이 방식에 따라 만들어 내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석자황은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지를 않으므로 시장이나 화원(畫員)·역관(譯官) 등에게서 사들이려 해도 모두 많이 얻을 수가 없으니, 부득이 중국에서 무역해 와야만 계속해서 쓸 수가 있겠습니다. 삼가 듣건대 순무(巡撫) 아문의 청에 따라 요동 도사(遼東都司)가 현재 수달피를 무역하려고 하기 때문에 역관 선득리(宣得李)가 지금 물품을 가지고 요동으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도감에서 석자황의 대금을 그에게 지급하여 넉넉하게 무역해 오게 함으로써 제때에 구워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석자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화원이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우니 일을 아는 화원 한 사람을 그와 함께 들여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동은 중국 도성과 거리가 약간 멀어 시장에 물자가 많지 않은만큼 1백여 근(斤)이나 되는 석자황을 한 곳에서 모두 무역하기는 형세상 어려울 것이니, 그대로 선득리를 광령(廣寧)으로 나아가게 해서 수달피를 무원에 교부하게 하는 동시에 석자황을 무역해 오게끔 하는 것이 더욱 온당하겠습니다. 그러니 싸가지고 가는 자문(咨文) 속에 무원에 곧바로 보낸다는 뜻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약간 말을 만들어 집어넣게 하고, 왕래에 소요되는 노자 및 각 아문에서 쓸 인정(人情)을 호조로 하여금 관례를 살펴 지급하게 한 뒤 급히 달려갔다가 밤을 낮삼아 돌아오게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겠습니다. 황와의 색깔을 제대로 내는 비슷한 방법을 이미 터득했으니 번거롭게 절사(節使) 편에 장인(匠人)을 보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뭇 의논들이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석자황을 이번에 부경(赴京)하는 세 사행(使行) 때 넉넉히 무역해 오도록 하는 일을 살펴서 하라. 그리고 와장(瓦匠)을 들여보내 배우고 오도록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방색(防塞)하지 말고 전에 분부한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황와(黃瓦)의 색깔을 제대로 내는 참다운 방법을 터득하지 못해 한참 고민해 왔는데, 전일 석자황(石雌黃)을 약물(藥物)에 첨가해 넣었더니 그 색깔이 평시에 만들던 것과 대략 동일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이 방식에 따라 만들어 내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석자황은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지를 않으므로 시장이나 화원(畫員)·역관(譯官) 등에게서 사들이려 해도 모두 많이 얻을 수가 없으니, 부득이 중국에서 무역해 와야만 계속해서 쓸 수가 있겠습니다. 삼가 듣건대 순무(巡撫) 아문의 청에 따라 요동 도사(遼東都司)가 현재 수달피를 무역하려고 하기 때문에 역관 선득리(宣得李)가 지금 물품을 가지고 요동으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도감에서 석자황의 대금을 그에게 지급하여 넉넉하게 무역해 오게 함으로써 제때에 구워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석자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화원이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우니 일을 아는 화원 한 사람을 그와 함께 들여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동은 중국 도성과 거리가 약간 멀어 시장에 물자가 많지 않은만큼 1백여 근(斤)이나 되는 석자황을 한 곳에서 모두 무역하기는 형세상 어려울 것이니, 그대로 선득리를 광령(廣寧)으로 나아가게 해서 수달피를 무원에 교부하게 하는 동시에 석자황을 무역해 오게끔 하는 것이 더욱 온당하겠습니다. 그러니 싸가지고 가는 자문(咨文) 속에 무원에 곧바로 보낸다는 뜻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약간 말을 만들어 집어넣게 하고, 왕래에 소요되는 노자 및 각 아문에서 쓸 인정(人情)을 호조로 하여금 관례를 살펴 지급하게 한 뒤 급히 달려갔다가 밤을 낮삼아 돌아오게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겠습니다. 황와의 색깔을 제대로 내는 비슷한 방법을 이미 터득했으니 번거롭게 절사(節使) 편에 장인(匠人)을 보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뭇 의논들이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석자황을 이번에 부경(赴京)하는 세 사행(使行) 때 넉넉히 무역해 오도록 하는 일을 살펴서 하라. 그리고 와장(瓦匠)을 들여보내 배우고 오도록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방색(防塞)하지 말고 전에 분부한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화원(畫員) 이득의(李得義)가 주홍(朱紅) 6근(斤) 11냥(兩), 하엽(荷葉) 10근, 대록(大綠) 5근, 연지(臙脂) 8냥(兩), 석자황(石雌黃) 11냥을 바치겠다고 하고, 역관(譯官) 박인후(朴仁厚)는 이청(二靑) 4냥 5전(錢), 삼청(三靑) 2냥, 주홍 9근, 하엽 10근을 바치겠다고 하고, 역관 김사일(金士一)은 주홍 3근, 하엽 20근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현재 여러 전당(殿堂)을 한꺼번에 색칠해야 하는데 값이 비싼 당채(唐彩)는 계속 대기 어려운 걱정이 있을 듯하니 부득불 바치는 대로 받아서 써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만 각 사람들이 모두 임예룡(林禮龍)의 예에 의거하여 경사(京師)에 가고 싶어하는데 도감에서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채색은 십분 정밀히 살펴 받아 쓰도록 하고 품질이 떨어져 쓸 수 없는 채색은 일체 받아서 쓰지 말도록 각별히 살펴 행하게 하라." 하였다.
"화원(畫員) 이득의(李得義)가 주홍(朱紅) 6근(斤) 11냥(兩), 하엽(荷葉) 10근, 대록(大綠) 5근, 연지(臙脂) 8냥(兩), 석자황(石雌黃) 11냥을 바치겠다고 하고, 역관(譯官) 박인후(朴仁厚)는 이청(二靑) 4냥 5전(錢), 삼청(三靑) 2냥, 주홍 9근, 하엽 10근을 바치겠다고 하고, 역관 김사일(金士一)은 주홍 3근, 하엽 20근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현재 여러 전당(殿堂)을 한꺼번에 색칠해야 하는데 값이 비싼 당채(唐彩)는 계속 대기 어려운 걱정이 있을 듯하니 부득불 바치는 대로 받아서 써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만 각 사람들이 모두 임예룡(林禮龍)의 예에 의거하여 경사(京師)에 가고 싶어하는데 도감에서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채색은 십분 정밀히 살펴 받아 쓰도록 하고 품질이 떨어져 쓸 수 없는 채색은 일체 받아서 쓰지 말도록 각별히 살펴 행하게 하라."
하였다.

 

4월 29일 무오

경기 감사 유희량(柳希亮)이 장계를 올리기를, "광주 목사(廣州牧使) 김두남(金斗南)의 비밀 첩정(牒呈)에 ‘여주(驪州)의 주민 박의립(朴義立)이 주(州) 안에 사는 이귀향(李貴香)에게 을묘년에 빌려 쓴 목면(木綿)의 강제 징수와 관련하여 소지(所志)를 올릴 때 석이암(石耳庵)의 승려 봉충(奉忠) 명의의 소지를 슬쩍 끼워넣어 바쳤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박의립을 불러 물어보기를 ‘이런 큰 일을 왜 직고(直告)하지 않고 봉충의 명의로 정고(呈告)했는가?’ 했더니, 의립이 말하기를, ‘봉충 명의의 소지를 같이 바친 적이 없다.’고 하면서 다방면으로 변명하였습니다. 이에 바로 의립에게 형구(刑具)를 채워 수금(囚禁)한 뒤에 원장(元狀)을 아울러 올려보내는 한편, 목사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능운(李凌雲)을 체포하게 하고, 여주와 이천(利川) 등 두 고을에 조대윤(趙大允)과 서준(徐濬)을 추적해 체포하라고 이미 비밀히 행이(行移)하였는데, 그 흉서(兇書) 속에서 위의 사람들이 사냥의 모임을 갖는다는 핑계를 대고 실제로는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박의립·봉충·조대윤·서준을 모두 잡아와 조사해서 처치하라." 하였다.
"광주 목사(廣州牧使) 김두남(金斗南)의 비밀 첩정(牒呈)에 ‘여주(驪州)의 주민 박의립(朴義立)이 주(州) 안에 사는 이귀향(李貴香)에게 을묘년에 빌려 쓴 목면(木綿)의 강제 징수와 관련하여 소지(所志)를 올릴 때 석이암(石耳庵)의 승려 봉충(奉忠) 명의의 소지를 슬쩍 끼워넣어 바쳤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박의립을 불러 물어보기를 ‘이런 큰 일을 왜 직고(直告)하지 않고 봉충의 명의로 정고(呈告)했는가?’ 했더니, 의립이 말하기를, ‘봉충 명의의 소지를 같이 바친 적이 없다.’고 하면서 다방면으로 변명하였습니다. 이에 바로 의립에게 형구(刑具)를 채워 수금(囚禁)한 뒤에 원장(元狀)을 아울러 올려보내는 한편, 목사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능운(李凌雲)을 체포하게 하고, 여주와 이천(利川) 등 두 고을에 조대윤(趙大允)과 서준(徐濬)을 추적해 체포하라고 이미 비밀히 행이(行移)하였는데, 그 흉서(兇書) 속에서 위의 사람들이 사냥의 모임을 갖는다는 핑계를 대고 실제로는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박의립·봉충·조대윤·서준을 모두 잡아와 조사해서 처치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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