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신묘
유학(幼學) 박시준(朴時俊)·이구(李榘)·황정필(黃廷弼)·김정량(金廷亮)·이국헌(李國獻)·박몽준(朴夢俊)·한보길(韓輔吉)·한천정(韓天挺)·설구인(薛求仁)·임욱(任頊) 등이 상소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역적을 엄하게 토죄(討罪)하지 못한 탓으로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궁(西宮)이 이미 낮춰진 뒤에도 사론(邪論)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서(西)·남(南)·소북(小北)의 사람들 모두가 ‘천자가 봉(封)해 준 고명(誥命)과 관복(冠服)이 아직도 있는데 어떻게 멋대로 폐(廢)할 수 있는가.’ 하자, 온 나라 사람들이 그 주장에 붙좇고 있습니다. 어제 도당(都堂)에서 회의할 적에 재신(宰臣)이 15인만 와서 참석했을 뿐 나머지는 일을 핑계대고 오지 않았으며, 와서 참석한 자들도 서로 미루기만 한 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어찌 정성을 다해 임금을 위해야 하는 신자(臣子)의 도리라 하겠습니까. 뼈에 사무치는 통분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박승종(朴承宗)은 왕실과 가까운 친족으로서 은총을 받는 신하인 데도 누차 청했으나 오지 않았고, 이경전(李慶全)은 자칭 대론(大論)을 담당한다고 하면서 정부에 왔으면서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도망갔으니, 임금을 저버린 그 죄를 성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훈척(勳戚)이라거나 중신(重臣)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용서하지 말고 속히 중한 형전(刑典)을 적용함으로써 불충한 신하들에게 경종을 울리도록 하소서. 그러면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공주가 비록 선왕의 딸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바로 역적 우두머리의 소생으로서 역적 이의(李㼁)023) 와 동복(同腹)인데, 《예경(禮經)》을 보면 ‘역모를 꾀했을 경우에는 동복은 모두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용서하고 죽이지 않는 것은 곧 선왕 때문이겠습니다만, 그 혼례(婚禮)를 궁궐에서 치르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절목을 마련할 때 대사헌 유간(柳澗)은 풍헌의 장관인 신분으로서 강력하게 반대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말하기를 ‘우러러 생각건대 선왕께서는 아무리 미천한 신분의 소생이라도 옹주(翁主)로 삼았는데, 더구나 역모와는 상관이 없는 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고 굳이 쟁집하며 그만두지 않다가 예관(禮官)이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기를 원하자 어쩔 수 없이 따랐습니다. 대저 서궁이 선왕의 배필이 되었지만, 중국 조정을 배신할 것을 꾀하고 선릉(先陵)을 저주했기 때문에 폄삭당했으니, 그 소생에 대해 어떻게 가례청을 설치해서 혼인을 치르게 해 주면서 백관이 주위를 에워싸고 관청에서 혼수(婚需)를 공급해 주며, 그 남편이 금대(金帶)를 하고 조정에 들어오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유간이 명예를 독차지하고 복 받으려 한 정상이 남김없이 드러났는데, 신들의 생각에는 유간의 목을 베지 않는 한 간악한 무리들의 계책을 단속할 길이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의논을 거두어 들일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를 양사에서 지금까지 성토하지 않고 있으니, 이목(耳目)의 관원으로서 그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먼저 입 다물고 있는 대간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기강을 바로잡고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절목 가운데 공주의 혼인을 낮춰 거행하는 일을 다시 의논케 하며, 서인의 예(例)로 처리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이와 함께 박승종·이경전·유간 등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고, 속히 폄삭하게 된 사유를 가지고 중국 조정에 상주(上奏)하여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마무리짓도록 하소서. 그러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註 023] 이의(李㼁) : 영창 대군(永昌大君).
"삼가 아룁니다. 역적을 엄하게 토죄(討罪)하지 못한 탓으로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궁(西宮)이 이미 낮춰진 뒤에도 사론(邪論)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서(西)·남(南)·소북(小北)의 사람들 모두가 ‘천자가 봉(封)해 준 고명(誥命)과 관복(冠服)이 아직도 있는데 어떻게 멋대로 폐(廢)할 수 있는가.’ 하자, 온 나라 사람들이 그 주장에 붙좇고 있습니다.
어제 도당(都堂)에서 회의할 적에 재신(宰臣)이 15인만 와서 참석했을 뿐 나머지는 일을 핑계대고 오지 않았으며, 와서 참석한 자들도 서로 미루기만 한 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어찌 정성을 다해 임금을 위해야 하는 신자(臣子)의 도리라 하겠습니까. 뼈에 사무치는 통분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박승종(朴承宗)은 왕실과 가까운 친족으로서 은총을 받는 신하인 데도 누차 청했으나 오지 않았고, 이경전(李慶全)은 자칭 대론(大論)을 담당한다고 하면서 정부에 왔으면서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도망갔으니, 임금을 저버린 그 죄를 성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훈척(勳戚)이라거나 중신(重臣)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용서하지 말고 속히 중한 형전(刑典)을 적용함으로써 불충한 신하들에게 경종을 울리도록 하소서. 그러면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공주가 비록 선왕의 딸이라 하더라도 그녀는 바로 역적 우두머리의 소생으로서 역적 이의(李㼁)023) 와 동복(同腹)인데, 《예경(禮經)》을 보면 ‘역모를 꾀했을 경우에는 동복은 모두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용서하고 죽이지 않는 것은 곧 선왕 때문이겠습니다만, 그 혼례(婚禮)를 궁궐에서 치르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절목을 마련할 때 대사헌 유간(柳澗)은 풍헌의 장관인 신분으로서 강력하게 반대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말하기를 ‘우러러 생각건대 선왕께서는 아무리 미천한 신분의 소생이라도 옹주(翁主)로 삼았는데, 더구나 역모와는 상관이 없는 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고 굳이 쟁집하며 그만두지 않다가 예관(禮官)이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기를 원하자 어쩔 수 없이 따랐습니다. 대저 서궁이 선왕의 배필이 되었지만, 중국 조정을 배신할 것을 꾀하고 선릉(先陵)을 저주했기 때문에 폄삭당했으니, 그 소생에 대해 어떻게 가례청을 설치해서 혼인을 치르게 해 주면서 백관이 주위를 에워싸고 관청에서 혼수(婚需)를 공급해 주며, 그 남편이 금대(金帶)를 하고 조정에 들어오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유간이 명예를 독차지하고 복 받으려 한 정상이 남김없이 드러났는데, 신들의 생각에는 유간의 목을 베지 않는 한 간악한 무리들의 계책을 단속할 길이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의논을 거두어 들일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를 양사에서 지금까지 성토하지 않고 있으니, 이목(耳目)의 관원으로서 그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먼저 입 다물고 있는 대간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기강을 바로잡고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절목 가운데 공주의 혼인을 낮춰 거행하는 일을 다시 의논케 하며, 서인의 예(例)로 처리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이와 함께 박승종·이경전·유간 등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고, 속히 폄삭하게 된 사유를 가지고 중국 조정에 상주(上奏)하여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마무리짓도록 하소서. 그러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정원이 아뢰기를, "역적을 토죄하는 일로 유생이 와서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선조 대왕(宣祖大王)의 국기(國忌)입니다. 이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품합니다." 하니, 들이라고 전교하였다.
"역적을 토죄하는 일로 유생이 와서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선조 대왕(宣祖大王)의 국기(國忌)입니다. 이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품합니다."
하니, 들이라고 전교하였다.
2월 2일 임진
대사헌 유간(柳澗)이 아뢰기를, "그저께 도당(都堂)에서 회의할 때 신도 참여하였습니다. 대신이 거행할 조목들을 죽 벌여 써서 여러 재신(宰臣)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마지막에 ‘공주의 늠료(廩料)는 궁인(宮人)의 예에 따르고 혼인은 사대부의 예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망령된 생각에 ‘서궁(西宮)과 같은 죄악도 성상께서 포용하는 도량을 보여 주시어 특별히 관전(寬典)을 따르신 결과 오히려 후궁(後宮)의 예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공주가 서궁 때문에 궁인으로 강등된다면 이는 서인(庶人)이 되는 것이니 혹 과중하게 될 듯싶다.’고 여겨지기에, 자리에서 나와 부제학 정조와 대사간 윤인에게 말하기를 ‘공주를 궁인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과중하지 않은가? 여러분의 의논은 어떠한가?’ 하였더니, 정조와 윤인이 모두 그렇다고 동의하였으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정조가 이어 말하기를 ‘지극히 미천한 궁인의 소생도 옹주가 되니, 강등하여 옹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들이 함께 들어가서 먼저 과중하다는 뜻을 묘당에 고한 뒤에 정조가 잇달아 옹주로 강등하자는 말을 꺼내면서 좌중에 물어보았더니 ‘만약 옹주의 예에 따른다면 혼인을 자연히 조가(朝家)에서 행해야 될 테니 이 점이 난처하다.’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이가 말하기를 ‘선왕조 때에도 공주의 혼례를 사가(私家)의 예에 따라 한 적이 있다.’고 하자,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이 말하기를 ‘그것은 국초(國初)에 있었던 일이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묘당이 상의하여 정한 것이고, 삼사의 관원은 그저 가부(可否)를 상의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어찌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양사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를 논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대론(大論)이 이제야 정해진 데다 마침 국기일(國忌日)이었던 관계로 논계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니 실로 사세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박시준(朴時俊)으로부터 현저하게 배척을 받았으니 신이 어떻게 감히 거만하게 자리에 그대로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그저께 도당(都堂)에서 회의할 때 신도 참여하였습니다. 대신이 거행할 조목들을 죽 벌여 써서 여러 재신(宰臣)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마지막에 ‘공주의 늠료(廩料)는 궁인(宮人)의 예에 따르고 혼인은 사대부의 예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망령된 생각에 ‘서궁(西宮)과 같은 죄악도 성상께서 포용하는 도량을 보여 주시어 특별히 관전(寬典)을 따르신 결과 오히려 후궁(後宮)의 예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공주가 서궁 때문에 궁인으로 강등된다면 이는 서인(庶人)이 되는 것이니 혹 과중하게 될 듯싶다.’고 여겨지기에, 자리에서 나와 부제학 정조와 대사간 윤인에게 말하기를 ‘공주를 궁인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과중하지 않은가? 여러분의 의논은 어떠한가?’ 하였더니, 정조와 윤인이 모두 그렇다고 동의하였으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정조가 이어 말하기를 ‘지극히 미천한 궁인의 소생도 옹주가 되니, 강등하여 옹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들이 함께 들어가서 먼저 과중하다는 뜻을 묘당에 고한 뒤에 정조가 잇달아 옹주로 강등하자는 말을 꺼내면서 좌중에 물어보았더니 ‘만약 옹주의 예에 따른다면 혼인을 자연히 조가(朝家)에서 행해야 될 테니 이 점이 난처하다.’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이가 말하기를 ‘선왕조 때에도 공주의 혼례를 사가(私家)의 예에 따라 한 적이 있다.’고 하자,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이 말하기를 ‘그것은 국초(國初)에 있었던 일이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묘당이 상의하여 정한 것이고, 삼사의 관원은 그저 가부(可否)를 상의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어찌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양사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를 논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대론(大論)이 이제야 정해진 데다 마침 국기일(國忌日)이었던 관계로 논계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니 실로 사세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박시준(朴時俊)으로부터 현저하게 배척을 받았으니 신이 어떻게 감히 거만하게 자리에 그대로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대사간 윤인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박시준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적으로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논하지 않은 양사의 죄를 다스리라.’고 청한 것이었는데, 이는 대론이 이제야 정해진 데다 일이 많이 발생하여 미처 논핵하지 못했던 것일 뿐으로, 형세가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신이 그저께 대사간의 자격으로 도당(都堂)의 회의에 참석했는데, 대사헌 유간(柳澗)이 좌중에서 일어나 나가더니, 신 및 부제학 정조(鄭造)를 불러 말하기를 ‘방금 묘당이 의논한 것을 보건대, 공주를 궁인(宮人)의 예에 따라 대우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기에, 신과 정조가 대답하기를 ‘삼사가 들어가서 묘당에 고한 뒤 의논해서 처리하게 해도 무방하겠다.’ 하였습니다. 이에 유간이 즉시 좌중에 들어가 먼저 과중하다는 뜻을 묘당에 고하니, 좌우에서 서로들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하였으므로, 신이 말하기를 ‘사람마다 각각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일 뿐 꼭 그렇게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묘당에서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언론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이런 큰 의논을 당하여 밝게 변론하지 못한 잘못이 크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삼가 박시준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적으로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논하지 않은 양사의 죄를 다스리라.’고 청한 것이었는데, 이는 대론이 이제야 정해진 데다 일이 많이 발생하여 미처 논핵하지 못했던 것일 뿐으로, 형세가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신이 그저께 대사간의 자격으로 도당(都堂)의 회의에 참석했는데, 대사헌 유간(柳澗)이 좌중에서 일어나 나가더니, 신 및 부제학 정조(鄭造)를 불러 말하기를 ‘방금 묘당이 의논한 것을 보건대, 공주를 궁인(宮人)의 예에 따라 대우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기에, 신과 정조가 대답하기를 ‘삼사가 들어가서 묘당에 고한 뒤 의논해서 처리하게 해도 무방하겠다.’ 하였습니다. 이에 유간이 즉시 좌중에 들어가 먼저 과중하다는 뜻을 묘당에 고하니, 좌우에서 서로들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하였으므로, 신이 말하기를 ‘사람마다 각각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일 뿐 꼭 그렇게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묘당에서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언론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이런 큰 의논을 당하여 밝게 변론하지 못한 잘못이 크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집의 임건(林健), 장령 강수(姜𢢝)·한영(韓詠), 지평 정양윤(鄭良胤),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이원여(李元輿)·박종주(朴宗胄)가 아뢰기를, "신이 삼가 박시준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양사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를 논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론(大論)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아 다른 것을 살필 겨를이 없었고, 또 국기일(國忌日)을 만나 그렇게 되었던 것인데, 일단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은 이상, 신들이 뻔뻔스럽게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삼가 박시준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양사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시종일관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를 논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론(大論)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아 다른 것을 살필 겨를이 없었고, 또 국기일(國忌日)을 만나 그렇게 되었던 것인데, 일단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은 이상, 신들이 뻔뻔스럽게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부제학 정조(鄭造)가 아뢰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그저께 정부의 분부를 받고 도당(都堂)에 나아가 참석했는데, 사인(舍人)이 네 가지 안건의 절목을 모두 써서 좌우에 두루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대사헌 유간이 좌석에서 일어나 협실(夾室)로 나가더니, 대사간 윤인 및 신을 불러 말하기를 ‘절목 가운데에 「공주의 늠료는 궁인의 예에 따라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공주는 곧 선왕의 골육(骨肉)인데 지금 서궁 때문에 궁인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과중하게 생각된다. 들어가서 묘당에 이를 고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는데, 신 역시 ‘지극히 천한 자라도 은총을 입어 딸을 낳으면 옹주(翁主)가 된다. 따라서 공주를 옹주로 대우하는 것 또한 낮추는 뜻이 될 것이니 유간의 이 주장이 무방할 듯하다.’고 여겨져서 그대로 따라 들어가서 묘당에 고한 결과, 묘당이 다시 의논해 개정해서 옹주의 예에 따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박시준 등의 상소를 보건대, 유간만 배척하고 신의 이름을 거론해 배척하지는 않았기에 동참한 처지에서 홀로 면한 것을 괴이하게 여겼었는데, 뒤에 유간과 윤인이 피혐한 사연을 보니 모두 신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었습니다. 신이 시종일관 대론(大論)에 따라 참여하면서 서궁에 대해서조차 용서하지 않았는데, 절목 가운데의 한 가지 일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찌 사의(私意)를 개재시켰겠습니까. 그러나 흐리멍덩하게 개정하기를 청한 잘못은 신에게도 똑같이 있으니, 태연히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을 삭직시키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아룁니다. 신이 그저께 정부의 분부를 받고 도당(都堂)에 나아가 참석했는데, 사인(舍人)이 네 가지 안건의 절목을 모두 써서 좌우에 두루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대사헌 유간이 좌석에서 일어나 협실(夾室)로 나가더니, 대사간 윤인 및 신을 불러 말하기를 ‘절목 가운데에 「공주의 늠료는 궁인의 예에 따라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공주는 곧 선왕의 골육(骨肉)인데 지금 서궁 때문에 궁인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과중하게 생각된다. 들어가서 묘당에 이를 고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는데, 신 역시 ‘지극히 천한 자라도 은총을 입어 딸을 낳으면 옹주(翁主)가 된다. 따라서 공주를 옹주로 대우하는 것 또한 낮추는 뜻이 될 것이니 유간의 이 주장이 무방할 듯하다.’고 여겨져서 그대로 따라 들어가서 묘당에 고한 결과, 묘당이 다시 의논해 개정해서 옹주의 예에 따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박시준 등의 상소를 보건대, 유간만 배척하고 신의 이름을 거론해 배척하지는 않았기에 동참한 처지에서 홀로 면한 것을 괴이하게 여겼었는데, 뒤에 유간과 윤인이 피혐한 사연을 보니 모두 신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었습니다. 신이 시종일관 대론(大論)에 따라 참여하면서 서궁에 대해서조차 용서하지 않았는데, 절목 가운데의 한 가지 일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찌 사의(私意)를 개재시켰겠습니까. 그러나 흐리멍덩하게 개정하기를 청한 잘못은 신에게도 똑같이 있으니, 태연히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을 삭직시키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유학(幼學) 이구(李榘)가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충성스럽고 어진 이가 무함을 당했으니 속히 분명하게 씻어 주는 은전을 내리시고 도깨비 같은 원궤를 엄히 국문하여 흉악한 역적들의 음모를 적발해내소서. 김제남(金悌男)의 처를 법률대로 먼 곳에 정속(定屬)시키고, 그 모의에 참여한 족속들이 아직도 도성에 있으니, 그들도 아울러 유배보내도록 하소서. 그리고 속히 주문(奏聞)하는 일을 행하여 고명과 관복을 뺏음으로써 화근을 끊고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충성스럽고 어진 이가 무함을 당했으니 속히 분명하게 씻어 주는 은전을 내리시고 도깨비 같은 원궤를 엄히 국문하여 흉악한 역적들의 음모를 적발해내소서. 김제남(金悌男)의 처를 법률대로 먼 곳에 정속(定屬)시키고, 그 모의에 참여한 족속들이 아직도 도성에 있으니, 그들도 아울러 유배보내도록 하소서. 그리고 속히 주문(奏聞)하는 일을 행하여 고명과 관복을 뺏음으로써 화근을 끊고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2월 3일 계사
옥당이 상차하여 양사 모두에게 출사(出仕)를 명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유간(柳澗)은 대사헌의 신분으로서 법을 집행하는 의리가 자못 없으니 체차하라." 하였다. 【어미를 원수로 삼는 것이 이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인륜(人倫)이 끊어졌다는 탄식만으로는 제대로 느낌을 표현할 수가 없다.】
"아뢴 대로 하라. 유간(柳澗)은 대사헌의 신분으로서 법을 집행하는 의리가 자못 없으니 체차하라."
하였다. 【어미를 원수로 삼는 것이 이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인륜(人倫)이 끊어졌다는 탄식만으로는 제대로 느낌을 표현할 수가 없다.】
2월 4일 갑오
생원 이홍순(李弘詢) 등이 상소하여, 속히 주문(奏聞)해 중국 조정에 알림으로써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완결짓기를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임급(任极)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남이준(南以俊)·김호(金昈)·정양윤(鄭良胤)·조정립(曺挺立) 등이 서로 잇달아 정고(呈告)하여 근친(覲親)을 청하였는데, 이 모두가 정창연(鄭昌衍)의 주장에 미혹된 나머지 감히 교묘하게 피할 계책을 낸 것이니, 먼저 네 사람을 유배하여 그 죄를 징계하고, 다음으로 정창연의 목을 베어 시종일관 의논드리지도 않고 정청(庭請)에도 참여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소서. 그리고 이와 함께 주문(奏聞)하는 일을 행하여 고명과 관복을 도로 뺏음으로써 화근을 끊어 버리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남이준(南以俊)·김호(金昈)·정양윤(鄭良胤)·조정립(曺挺立) 등이 서로 잇달아 정고(呈告)하여 근친(覲親)을 청하였는데, 이 모두가 정창연(鄭昌衍)의 주장에 미혹된 나머지 감히 교묘하게 피할 계책을 낸 것이니, 먼저 네 사람을 유배하여 그 죄를 징계하고, 다음으로 정창연의 목을 베어 시종일관 의논드리지도 않고 정청(庭請)에도 참여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소서. 그리고 이와 함께 주문(奏聞)하는 일을 행하여 고명과 관복을 도로 뺏음으로써 화근을 끊어 버리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계하기를, "서궁(西宮)을 폐출하는 일이야말로 온 나라의 신민들이 충성심을 떨쳐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논에서 나온 것으로, 대소(大小) 신료와 관학(館學) 유생들과 방민(坊民)·이서(吏胥)들이 날마다 피끓는 정성을 바치며 계사(啓辭)를 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오윤겸(吳允謙)·송영구(宋英耉)·이시언(李時彦)·이정귀(李廷龜) 등은 시종일관 정청(庭請)하는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도록 명하소서. 역적의 괴수 김제남(金悌男)의 처가 궁중을 출입하며 역모에 동참한 이상 처자라 하여 상법(常法)으로 논할 수는 없는 일024) 인데, 아직도 목숨을 부지시켜 그 집에 있게 하면서 6년 동안이나 수직(守直)케 하였으니,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자못 잃었습니다. 금부에 명하여 조속히 처치하도록 하소서. 서궁의 죄악이 흘러 넘쳐 온 나라가 토벌하기를 청한 결과 감손(減損)하는 절목(節目)을 정하게 되었습니다만, 천자가 내려 준 고명과 관복이 그대로 있는 이상 천자의 명은 여전히 있는 셈입니다.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된 만큼 이 정도로만 하고 그만둘 수는 없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곧장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폐출하는 전형을 마무리짓게 하소서. 전일 묘당에서 의논을 거둘 때에 이신의(李愼儀)·김권(金權)·권사공(權士恭)·김지수(金地粹) 등은 역적을 비호하려는 계책을 남몰래 품고 감히 저쪽을 편드는 의논을 바쳤습니다. 저쪽 편을 든 무리들을 모조리 다스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들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던 자들이니 모두 유배보내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서서히 결정짓도록 하겠다.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가 이 네 사람뿐인가.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었으면서도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는 저쪽 편을 든 자들보다 더 많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적용된 율(律)을 보면 저쪽 편을 든 자들보다 가벼워 책임만 메우려고 한 인상이 드는데, 양사의 뜻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두 그냥 놔 두어라. 그리고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註 024] 처자라 하여 상법(常法)으로 논할 수는 없는 일 : 죄인만 처벌하고 처자에게까지는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함.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하(下)에 "죄인의 처자에게까지 죄를 적용하지 않는다.[罪人不孥]" 하였음.
"서궁(西宮)을 폐출하는 일이야말로 온 나라의 신민들이 충성심을 떨쳐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논에서 나온 것으로, 대소(大小) 신료와 관학(館學) 유생들과 방민(坊民)·이서(吏胥)들이 날마다 피끓는 정성을 바치며 계사(啓辭)를 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오윤겸(吳允謙)·송영구(宋英耉)·이시언(李時彦)·이정귀(李廷龜) 등은 시종일관 정청(庭請)하는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도록 명하소서.
역적의 괴수 김제남(金悌男)의 처가 궁중을 출입하며 역모에 동참한 이상 처자라 하여 상법(常法)으로 논할 수는 없는 일024) 인데, 아직도 목숨을 부지시켜 그 집에 있게 하면서 6년 동안이나 수직(守直)케 하였으니,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자못 잃었습니다. 금부에 명하여 조속히 처치하도록 하소서.
서궁의 죄악이 흘러 넘쳐 온 나라가 토벌하기를 청한 결과 감손(減損)하는 절목(節目)을 정하게 되었습니다만, 천자가 내려 준 고명과 관복이 그대로 있는 이상 천자의 명은 여전히 있는 셈입니다.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된 만큼 이 정도로만 하고 그만둘 수는 없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곧장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폐출하는 전형을 마무리짓게 하소서.
전일 묘당에서 의논을 거둘 때에 이신의(李愼儀)·김권(金權)·권사공(權士恭)·김지수(金地粹) 등은 역적을 비호하려는 계책을 남몰래 품고 감히 저쪽을 편드는 의논을 바쳤습니다. 저쪽 편을 든 무리들을 모조리 다스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들은 그 정도가 특히 심했던 자들이니 모두 유배보내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서서히 결정짓도록 하겠다.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가 이 네 사람뿐인가.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었으면서도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죄는 저쪽 편을 든 자들보다 더 많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적용된 율(律)을 보면 저쪽 편을 든 자들보다 가벼워 책임만 메우려고 한 인상이 드는데, 양사의 뜻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두 그냥 놔 두어라. 그리고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2월 5일 을미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장령 한영·강수, 정언 박종주·이원여가 아뢰기를, "전일 정청(庭請)한 것이 실로 화근을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고 보면,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은 자로서는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수레에 누워서라도 와서 참여했어야 마땅한데, 수수방관한 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론(大論)이 이제야 끝난 데다 양사의 관원이 혹은 체차되고 혹은 사직소를 올리고 혹은 근친(覲親)을 청한 나머지 신들 몇 명만 남아 있는데, 견문이 넓지 못하여 먼저 드러나게 불참한 4인을 거론하면서 우선 말감(末減)한 율(律)을 적용하고, 이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뒤에 듣고 보는 대로 논계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지극히 엄한 성상의 비답을 받들고 보니 신들이 살피지 못한 잘못이 현저합니다. 모두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피하지 말라. 사적으로 세력을 심으려 하지 말고 퇴폐한 기강을 바로잡아 대의를 밝히도록 하라." 하였다.
"전일 정청(庭請)한 것이 실로 화근을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고 보면,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은 자로서는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수레에 누워서라도 와서 참여했어야 마땅한데, 수수방관한 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론(大論)이 이제야 끝난 데다 양사의 관원이 혹은 체차되고 혹은 사직소를 올리고 혹은 근친(覲親)을 청한 나머지 신들 몇 명만 남아 있는데, 견문이 넓지 못하여 먼저 드러나게 불참한 4인을 거론하면서 우선 말감(末減)한 율(律)을 적용하고, 이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뒤에 듣고 보는 대로 논계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지극히 엄한 성상의 비답을 받들고 보니 신들이 살피지 못한 잘못이 현저합니다. 모두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피하지 말라. 사적으로 세력을 심으려 하지 말고 퇴폐한 기강을 바로잡아 대의를 밝히도록 하라."
하였다.
합계(合啓)로 연계(連啓)하여 이신의(李愼儀) 등을 유배보내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고 싶지 않았다만, 양사에서 일을 논하는 체례(體例)가 자못 공정하게 하는 뜻이 못되기에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어 한 마디 할테니, 양사는 시험삼아 들어보라. 기자헌(奇自獻)과 이항복(李恒福) 등은 대신의 신분으로서 자기 생각만 진달했을 뿐이었고, 또 대신은 일반 관원과는 같지 않은 데도 당시 삼사는 똑같은 목소리로 죄를 청하여 하루에 여러 차례나 아뢰면서 위리 안치시키는 율문을 적용했었다. 지금 이 이신의 등이 자헌이나 항복과 무엇이 다른가. 더구나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으면서도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신하된 의리가 전혀 없는 것이니, 그 죄는 저쪽 편을 든 자들보다 오히려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서너 사람만 뽑아내어 책임이나 메우려고 죄를 청하는가 하면, 율을 적용하는 것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마음내키는 대로 거리낌없이 하여, 어떤 때는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을 정청에 불참한 자들보다 낮추어 논핵하기도 하니, 양사의 권한이 세기는 세다고 하겠다. 이처럼 정당하지도 못하고 공평하지도 못한 주장을 가지고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모두 그냥 놔 두도록 하라." 하였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고 싶지 않았다만, 양사에서 일을 논하는 체례(體例)가 자못 공정하게 하는 뜻이 못되기에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어 한 마디 할테니, 양사는 시험삼아 들어보라.
기자헌(奇自獻)과 이항복(李恒福) 등은 대신의 신분으로서 자기 생각만 진달했을 뿐이었고, 또 대신은 일반 관원과는 같지 않은 데도 당시 삼사는 똑같은 목소리로 죄를 청하여 하루에 여러 차례나 아뢰면서 위리 안치시키는 율문을 적용했었다. 지금 이 이신의 등이 자헌이나 항복과 무엇이 다른가. 더구나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으면서도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신하된 의리가 전혀 없는 것이니, 그 죄는 저쪽 편을 든 자들보다 오히려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서너 사람만 뽑아내어 책임이나 메우려고 죄를 청하는가 하면, 율을 적용하는 것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마음내키는 대로 거리낌없이 하여, 어떤 때는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자들을 정청에 불참한 자들보다 낮추어 논핵하기도 하니, 양사의 권한이 세기는 세다고 하겠다. 이처럼 정당하지도 못하고 공평하지도 못한 주장을 가지고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모두 그냥 놔 두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김제남(金悌男)의 처를 국청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고, 주문(奏聞)하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김제남(金悌男)의 처를 국청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고, 주문(奏聞)하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전교하였다. "오늘날의 일이 얼마나 위급하게 되었는가. 그런데 대론(大論)이 이제야 정지된 상황에서 양사의 언관(言官)들이 혹은 근친(覲親)한다고 핑계대고, 혹은 병에 걸렸다고 일컬으면서 앞을 다투어 정고(呈告)하며 혹시라도 도망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으니, 의리를 알고 사태의 경중을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충성스럽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그 행태가 유간(柳澗)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모두 체차시키고 외직(外職)에 보임하라."
"오늘날의 일이 얼마나 위급하게 되었는가. 그런데 대론(大論)이 이제야 정지된 상황에서 양사의 언관(言官)들이 혹은 근친(覲親)한다고 핑계대고, 혹은 병에 걸렸다고 일컬으면서 앞을 다투어 정고(呈告)하며 혹시라도 도망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으니, 의리를 알고 사태의 경중을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충성스럽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그 행태가 유간(柳澗)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모두 체차시키고 외직(外職)에 보임하라."
의정부가 아뢰기를, "박시준(朴時俊)의 상소를 이미 오래 전에 계하하셨는데, 우상이 정사(呈辭)하고 삼사의 장관과 관각(館閣)의 당상 역시 많이 유고(有故) 중이기 때문에 제때에 회계(回啓)하지 못하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박시준(朴時俊)의 상소를 이미 오래 전에 계하하셨는데, 우상이 정사(呈辭)하고 삼사의 장관과 관각(館閣)의 당상 역시 많이 유고(有故) 중이기 때문에 제때에 회계(回啓)하지 못하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우참찬 이병이 상소하여 그를 삭직(削職)시켜 줄 것과 그의 죄를 국문하여 조사하게 해 주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하였다.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하였다.
2월 6일 병신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이 첫번째 사직소를 올리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비답하였다.
대사간, 집의, 양(兩) 장령, 양 정언이 아뢰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법이 지극히 엄하고 중하니, 의논을 거둘 적에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정청(庭請)에 불참한 사람들에게 유배보내는 전형을 적용한다 해도 오히려 가볍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들이 화의 근본을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려 한다면, 역적을 비호한 일체의 부류들을 급급히 토벌해 제거함으로써 이론(異論)이 제기되는 길을 근본적으로 끊어버리는 것이 의리상 마땅할 것입니다만, 미처 분명하게 조사하지 못한 탓으로 우선 눈에 띄게 드러난 자들을 먼저 죄주도록 청하였고, 시종일관 불참한 자들도 네 사람뿐만이 아니지만, 뒤에 널리 의논들을 채집하여 논계하더라도 상관은 없을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먼저 8인을 유배보내도록 청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이시언(李時彦)·오윤겸(吳允謙) 등은 의논을 거둘 적에 저쪽 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청에도 불참했기 때문에,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논계하였습니다. 신들도 인신(人臣)의 분의(分義)를 알고 있는데 어찌 감히 사사로운 마음을 개입시켜 역적을 비호한 무리들을 비호함으로써 스스로 나라를 저버리는 죄에 떨어지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말씀하시는 뜻이 준엄한 듯하였으니, 신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가 이에 이르러 커졌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역적을 토벌하는 법이 지극히 엄하고 중하니, 의논을 거둘 적에 저쪽 편을 든 자들과 정청(庭請)에 불참한 사람들에게 유배보내는 전형을 적용한다 해도 오히려 가볍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들이 화의 근본을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려 한다면, 역적을 비호한 일체의 부류들을 급급히 토벌해 제거함으로써 이론(異論)이 제기되는 길을 근본적으로 끊어버리는 것이 의리상 마땅할 것입니다만, 미처 분명하게 조사하지 못한 탓으로 우선 눈에 띄게 드러난 자들을 먼저 죄주도록 청하였고, 시종일관 불참한 자들도 네 사람뿐만이 아니지만, 뒤에 널리 의논들을 채집하여 논계하더라도 상관은 없을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먼저 8인을 유배보내도록 청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이시언(李時彦)·오윤겸(吳允謙) 등은 의논을 거둘 적에 저쪽 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청에도 불참했기 때문에,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논계하였습니다.
신들도 인신(人臣)의 분의(分義)를 알고 있는데 어찌 감히 사사로운 마음을 개입시켜 역적을 비호한 무리들을 비호함으로써 스스로 나라를 저버리는 죄에 떨어지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말씀하시는 뜻이 준엄한 듯하였으니, 신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가 이에 이르러 커졌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유학(幼學) 박신(朴紳)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대비의 칭호를 없애고 서궁으로 부르라는 성상의 분부를 일단 받았다고 해서 정부는 그만두고 아뢰지 않고 삼사는 물러가 논계하지 않고 있으며, 조정은 파한 채 청하지 않고 관학(館學) 또한 연소(連疏)하는 의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속히 삼공·백관들의 유시 무종(有始無終)한 책임을 먼저 따져 바로잡은 다음, 서궁을 옮겨 문 바깥에 안치(安置)시키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대비의 칭호를 없애고 서궁으로 부르라는 성상의 분부를 일단 받았다고 해서 정부는 그만두고 아뢰지 않고 삼사는 물러가 논계하지 않고 있으며, 조정은 파한 채 청하지 않고 관학(館學) 또한 연소(連疏)하는 의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속히 삼공·백관들의 유시 무종(有始無終)한 책임을 먼저 따져 바로잡은 다음, 서궁을 옮겨 문 바깥에 안치(安置)시키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전일 서궁을 폐출하는 일로 정청(庭請)한 것은 실로 온 나라 신민들이 충성심을 떨쳐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료와 관학 유생과 방민(坊民), 이서(吏胥)들이 날마다 피끓는 정성을 바치며 계사(啓辭)를 진달했는데, 백관 가운데 수수방관한 자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선 보고 들은 자들만 거론하여 논하건대, 오윤겸(吳允謙)·송영구(宋英耉)·이시언(李時彦)·이정귀(李廷龜)·유근(柳根)·김상용(金尙容)·윤방(尹昉)·정창연(鄭昌衍) 등은 시종일관 정청하는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서궁의 죄악이 흘러 넘쳐 스스로 종묘 사직과 관계가 단절되었으므로 만백성이 같은 목소리로 모두들 폐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일 의논을 거두어 들일 때, 이신의(李愼儀)·김권(金權)·권사공(權士恭)·김지수(金地粹)·조국빈(趙國賓) 등은 역적을 비호하려는 계책을 남몰래 품고는 감히 저쪽 편을 드는 의논을 바쳤습니다. 저쪽 편을 든 무리들을 다 다스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들은 그 정도가 특별히 더 심한 자들이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전일 정청할 때 종친의 입장에서는 행 불행을 같이 해야 할 의리가 있으니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종친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건대,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의원감(義原監) 이역(李櫟)·석양정(夕陽正) 이정(李霆)·평림수(平林守) 이지윤(李祉胤)·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영가 부수(永嘉副守) 이효길(李孝吉)·진원 부수(珍原副守) 이세완(李世完)·선성 부수(先城副守) 이신원(李信元)·학림령(鶴林令) 이광윤(李光胤)·광원령(光原令) 이호(李琥)·명원령(明原令) 이효(李孝)·계양령(桂陽令) 이예길(李禮吉)·수양령(樹陽令) 이충길(李忠吉)·낙성 부령(洛城副令) 이낭(李琅)·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기(李玘)·연창 부령(蓮昌副令) 이신호(李信虎)·원평 부령(原平副令) 이박(李珀)·원계 부령(原溪副令) 이경(李瓊)·영원 부령(靈原副令) 이작(李晫)·원흥 부령(原興副令) 이거(李琚)·광성 부령(廣城副令) 이제길(李悌吉)·영릉 부령(靈陵副令) 이질(李晊)·신천 부령(信川副令) 이경사(李景獅)·화성감(花城監) 이희천(李希天)·학성령(鶴城令) 이주(李儔) 등은 시종일관 정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공성군(功城君) 이식(李植)·고산 부령(高山副令) 이공(李恭)·덕원 부령(德原副令) 이덕손(李德孫)·덕양도정(德陽都正) 이충윤(李忠胤)·익산도정(益山都正) 이진(李璡)·하성령(夏城令) 이형륜(李炯倫)·한성령(漢城令) 이영(李濘)·덕순령(德純令) 이경충(李鏡忠) 등은 노병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종친부에서 써 보냈습니다만, 늙고 병들었다 해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소서. 시종일관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 신들이 상세히 알지 못하기에 우선 눈에 띄게 드러난 자들만 거론하여 논했습니다. 이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낭청이 작성하는 백관의 거안(擧案)과 종친부의 색관(色官)이 작성하는 종실의 거안을 본 뒤에야 알 수 있겠기에 본부(本府)의 하리(下吏)를 불러 조사해 와서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종친부의 하리는 오늘 아침에야 써서 올렸고, 정부의 하리는 재삼 독촉했는 데도 해질녘에 느릿느릿 와서 말하기를 ‘색낭청이 써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간이 무엇을 토대로 참고해서 백관 중에 누가 나오고 누가 나오지 않았는지를 알겠습니까. 색낭청이 감히 이렇게 지연시키다니 어쩌면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감싸주려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사체상으로 매몰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정(私情)을 따른 자취가 현저하게 드러났으니, 색낭청을 파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추고하라.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사람들 및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찌 내가 말한 것 때문에 더 논핵하고 더 율(律)을 중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전일 서궁을 폐출하는 일로 정청(庭請)한 것은 실로 온 나라 신민들이 충성심을 떨쳐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료와 관학 유생과 방민(坊民), 이서(吏胥)들이 날마다 피끓는 정성을 바치며 계사(啓辭)를 진달했는데, 백관 가운데 수수방관한 자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선 보고 들은 자들만 거론하여 논하건대, 오윤겸(吳允謙)·송영구(宋英耉)·이시언(李時彦)·이정귀(李廷龜)·유근(柳根)·김상용(金尙容)·윤방(尹昉)·정창연(鄭昌衍) 등은 시종일관 정청하는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서궁의 죄악이 흘러 넘쳐 스스로 종묘 사직과 관계가 단절되었으므로 만백성이 같은 목소리로 모두들 폐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일 의논을 거두어 들일 때, 이신의(李愼儀)·김권(金權)·권사공(權士恭)·김지수(金地粹)·조국빈(趙國賓) 등은 역적을 비호하려는 계책을 남몰래 품고는 감히 저쪽 편을 드는 의논을 바쳤습니다. 저쪽 편을 든 무리들을 다 다스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들은 그 정도가 특별히 더 심한 자들이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전일 정청할 때 종친의 입장에서는 행 불행을 같이 해야 할 의리가 있으니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종친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건대,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의원감(義原監) 이역(李櫟)·석양정(夕陽正) 이정(李霆)·평림수(平林守) 이지윤(李祉胤)·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영가 부수(永嘉副守) 이효길(李孝吉)·진원 부수(珍原副守) 이세완(李世完)·선성 부수(先城副守) 이신원(李信元)·학림령(鶴林令) 이광윤(李光胤)·광원령(光原令) 이호(李琥)·명원령(明原令) 이효(李孝)·계양령(桂陽令) 이예길(李禮吉)·수양령(樹陽令) 이충길(李忠吉)·낙성 부령(洛城副令) 이낭(李琅)·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기(李玘)·연창 부령(蓮昌副令) 이신호(李信虎)·원평 부령(原平副令) 이박(李珀)·원계 부령(原溪副令) 이경(李瓊)·영원 부령(靈原副令) 이작(李晫)·원흥 부령(原興副令) 이거(李琚)·광성 부령(廣城副令) 이제길(李悌吉)·영릉 부령(靈陵副令) 이질(李晊)·신천 부령(信川副令) 이경사(李景獅)·화성감(花城監) 이희천(李希天)·학성령(鶴城令) 이주(李儔) 등은 시종일관 정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공성군(功城君) 이식(李植)·고산 부령(高山副令) 이공(李恭)·덕원 부령(德原副令) 이덕손(李德孫)·덕양도정(德陽都正) 이충윤(李忠胤)·익산도정(益山都正) 이진(李璡)·하성령(夏城令) 이형륜(李炯倫)·한성령(漢城令) 이영(李濘)·덕순령(德純令) 이경충(李鏡忠) 등은 노병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종친부에서 써 보냈습니다만, 늙고 병들었다 해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소서. 시종일관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 신들이 상세히 알지 못하기에 우선 눈에 띄게 드러난 자들만 거론하여 논했습니다.
이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낭청이 작성하는 백관의 거안(擧案)과 종친부의 색관(色官)이 작성하는 종실의 거안을 본 뒤에야 알 수 있겠기에 본부(本府)의 하리(下吏)를 불러 조사해 와서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종친부의 하리는 오늘 아침에야 써서 올렸고, 정부의 하리는 재삼 독촉했는 데도 해질녘에 느릿느릿 와서 말하기를 ‘색낭청이 써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간이 무엇을 토대로 참고해서 백관 중에 누가 나오고 누가 나오지 않았는지를 알겠습니까. 색낭청이 감히 이렇게 지연시키다니 어쩌면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감싸주려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사체상으로 매몰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정(私情)을 따른 자취가 현저하게 드러났으니, 색낭청을 파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추고하라.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사람들 및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찌 내가 말한 것 때문에 더 논핵하고 더 율(律)을 중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전 훈도(訓導) 김대하(金大河)가 상소하여, 기자헌이 임금을 업신여기고 부도(不道)하게 행동한 죄를 성토하여 신인(神人)의 분노를 통쾌하게 씻어줄 것을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기를, "문화 부사(文化府使) 이여척(李汝惕)을 배천 현감(白川縣監)으로 옮겨 제수하고, 문화 부사에는 유간(柳澗)을 제수하라. 경성 판관(鏡城判官) 홍명형(洪命亨), 온성 판관(穩城判官) 유시길(柳時吉), 수성 찰방(輸城察訪) 김상윤(金相潤)을 체차하고, 남이준(南以俊)을 경성 판관으로, 김호(金昈)를 온성 판관으로, 조정립(曺挺立)을 북청 판관(北靑判官)으로, 정양윤(鄭良胤)을 수성 찰방으로 제수하라. 북청 판관 조원범(趙元範)은 만경 현령(萬頃縣令)에 제수하라. 이선복(李善復)을 의주 부윤(義州府尹)으로, 남근(南瑾)을 대사헌으로, 신광업(辛光業)을 사간으로, 신칙(申恜)·이창정(李昌庭)을 지평으로, 서국정(徐國楨)을 정언으로 삼아라." 하였다.
"문화 부사(文化府使) 이여척(李汝惕)을 배천 현감(白川縣監)으로 옮겨 제수하고, 문화 부사에는 유간(柳澗)을 제수하라. 경성 판관(鏡城判官) 홍명형(洪命亨), 온성 판관(穩城判官) 유시길(柳時吉), 수성 찰방(輸城察訪) 김상윤(金相潤)을 체차하고, 남이준(南以俊)을 경성 판관으로, 김호(金昈)를 온성 판관으로, 조정립(曺挺立)을 북청 판관(北靑判官)으로, 정양윤(鄭良胤)을 수성 찰방으로 제수하라. 북청 판관 조원범(趙元範)은 만경 현령(萬頃縣令)에 제수하라. 이선복(李善復)을 의주 부윤(義州府尹)으로, 남근(南瑾)을 대사헌으로, 신광업(辛光業)을 사간으로, 신칙(申恜)·이창정(李昌庭)을 지평으로, 서국정(徐國楨)을 정언으로 삼아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문화 부사 유간과 울산 부사(蔚山府使) 윤경득(尹敬得)을 맞바꾸도록 하라." 하였다.
"문화 부사 유간과 울산 부사(蔚山府使) 윤경득(尹敬得)을 맞바꾸도록 하라."
하였다.
2월 7일 정유
정원이 아뢰었다. "방금 금부의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역적 김제남의 처를 처치하는 일 및 이춘기(李春祺)의 세 아들을 연좌(連坐)시키는 일을 가지고 좌의정에게 가서 물어 보았더니 「나는 알고 있으니 우상 및 재신(宰臣)들과 금부 당상에게 물어보고 오라.」고 대답하였다. 도사(都事)가 즉시 우상에게 가서 물어보았더니, 병세가 너무 중하여 말을 통할 수도 없었고, 정창연(鄭昌衍)에게 갔더니 이미 금장(衿庄)으로 나갔으며, 판의금 박승종(朴承宗)과 동지사 유몽인(柳夢寅)은 모두 「이미 사직소를 내었고 또 병이 났다.」고 사양하였으며, 지사 윤선(尹銑)은 「양사의 장관 및 대신이 한곳에 모여서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여러 재신들 및 본부 당상의 뜻을 가지고 돌아가 보고하였더니, 좌상이 대답하기를 「이 일은 중대하니 한두 사람이 경솔하게 아뢰어 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선 우상과 판의금이 출사(出仕)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뒤에 의논해서 처리해야 마땅하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방금 금부의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역적 김제남의 처를 처치하는 일 및 이춘기(李春祺)의 세 아들을 연좌(連坐)시키는 일을 가지고 좌의정에게 가서 물어 보았더니 「나는 알고 있으니 우상 및 재신(宰臣)들과 금부 당상에게 물어보고 오라.」고 대답하였다. 도사(都事)가 즉시 우상에게 가서 물어보았더니, 병세가 너무 중하여 말을 통할 수도 없었고, 정창연(鄭昌衍)에게 갔더니 이미 금장(衿庄)으로 나갔으며, 판의금 박승종(朴承宗)과 동지사 유몽인(柳夢寅)은 모두 「이미 사직소를 내었고 또 병이 났다.」고 사양하였으며, 지사 윤선(尹銑)은 「양사의 장관 및 대신이 한곳에 모여서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여러 재신들 및 본부 당상의 뜻을 가지고 돌아가 보고하였더니, 좌상이 대답하기를 「이 일은 중대하니 한두 사람이 경솔하게 아뢰어 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선 우상과 판의금이 출사(出仕)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뒤에 의논해서 처리해야 마땅하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전교하였다. "안변 부사(安邊府使) 권여경(權餘慶)을 속히 부임시키되 다음 달 보름 뒤에 올라와서 숙의(淑儀)가 입궐하는 것을 보고 다시 내려가도록 말해 보내라."
"안변 부사(安邊府使) 권여경(權餘慶)을 속히 부임시키되 다음 달 보름 뒤에 올라와서 숙의(淑儀)가 입궐하는 것을 보고 다시 내려가도록 말해 보내라."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오윤겸·송영구·이시언·이정귀·유근·김상용·윤방·정창연·이신의·김권·권사공·조국빈·김지수, 서성 도정 이희성·의원감 이역·석양정 이정·평림수 이지윤·의신 부수 이비·영가 부수 이효길·진원 부수 이세완·선성 부수 이신원·학림령 이광윤·광원령 이호·명원령 이효·계양령 이예길·수양령 이충길·낙성 부령 이낭·우산 부령 이기·연창 부령 이신호·원평 부령 이박·원계 부령 이경·영원 부령 이거·광성 부령 이제길·영릉 부령 이질·신천 부령 이경사·화성감 이희천·학성령 이주 등을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시고, 한음군 이현·공성군 이식·고산 부령 이공·덕원 부령 이덕손·덕양 도정 이충윤·익산 도정 이진·하성령 이형륜·한성령 이영·덕순령 이경충 등을 모두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소서." 하고, 신계(新啓)하기를, "윤형준(尹衡俊)은 의논을 거둘 때 지극히 패만하게 말을 하면서 모욕을 가하고 희롱하였으니, 그 죄를 또한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조국빈·윤형준·오윤겸·이시언 등에 대해서는 서서히 결정하겠다. 오늘의 삼사는 바로 지난날 기자헌과 이항복을 공격하던 삼사이다. 전날에 사람을 다스릴 때는 기력이 그처럼 굉장하더니, 오늘날에 와서는 어찌 이다지도 기운이 빠졌는가. 앞뒤의 일을 보면 두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만 같으니, 어찌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기자헌과 이항복이 너무 치우치게 재액을 당한 것 같은데, 아무리 삼사라도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정청(庭請)에 불참한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많은데, 뽑아 내어 논계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억지를 부려 논하지 말라." 하였다. 【당시 종실들이 잘못된 관례(慣例) 탓으로 관례(冠禮)도 치르지 않은 유아를 봉(封)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녹봉을 받으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 정청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모조리 뽑아 기록하여 헌부에 보내었는데, 이들 모두가 유배 대상에 포함되자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대간의 말 앞에서 애걸하는 종실들이 줄을 이었다.】
"오윤겸·송영구·이시언·이정귀·유근·김상용·윤방·정창연·이신의·김권·권사공·조국빈·김지수, 서성 도정 이희성·의원감 이역·석양정 이정·평림수 이지윤·의신 부수 이비·영가 부수 이효길·진원 부수 이세완·선성 부수 이신원·학림령 이광윤·광원령 이호·명원령 이효·계양령 이예길·수양령 이충길·낙성 부령 이낭·우산 부령 이기·연창 부령 이신호·원평 부령 이박·원계 부령 이경·영원 부령 이거·광성 부령 이제길·영릉 부령 이질·신천 부령 이경사·화성감 이희천·학성령 이주 등을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시고, 한음군 이현·공성군 이식·고산 부령 이공·덕원 부령 이덕손·덕양 도정 이충윤·익산 도정 이진·하성령 이형륜·한성령 이영·덕순령 이경충 등을 모두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소서."
하고, 신계(新啓)하기를,
"윤형준(尹衡俊)은 의논을 거둘 때 지극히 패만하게 말을 하면서 모욕을 가하고 희롱하였으니, 그 죄를 또한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조국빈·윤형준·오윤겸·이시언 등에 대해서는 서서히 결정하겠다. 오늘의 삼사는 바로 지난날 기자헌과 이항복을 공격하던 삼사이다. 전날에 사람을 다스릴 때는 기력이 그처럼 굉장하더니, 오늘날에 와서는 어찌 이다지도 기운이 빠졌는가. 앞뒤의 일을 보면 두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만 같으니, 어찌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기자헌과 이항복이 너무 치우치게 재액을 당한 것 같은데, 아무리 삼사라도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정청(庭請)에 불참한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많은데, 뽑아 내어 논계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억지를 부려 논하지 말라."
하였다. 【당시 종실들이 잘못된 관례(慣例) 탓으로 관례(冠禮)도 치르지 않은 유아를 봉(封)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녹봉을 받으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 정청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모조리 뽑아 기록하여 헌부에 보내었는데, 이들 모두가 유배 대상에 포함되자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대간의 말 앞에서 애걸하는 종실들이 줄을 이었다.】
2월 8일 무술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분승정원(分承政院)의 초기(草記)를 보건대, 분병조 참의 박사제(朴思齊)가 직접 교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병을 이유로 시간에 앞서서 입직소(入直所)를 나갔는데, 다른 관원 기꺼이 입직하려 하지 않아 궐직(闕直)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합니다. 이렇듯 대론(大論)이 겨우 정해져 현재 역적과 흉인들의 종자가 도성에 흩어져 있고 충성스럽고 지극한 언론이 밝혀졌다 어두워졌다 하고 있으니, 신자(臣子)된 입장으로서는 철저를 기해 엄하게 지키고 마음을 다해 기찰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전연 관심을 두지 않고 국가의 지극한 계책에 어두웠으니 중하게 추고하소서. 그리고 입직했어야 할 인원도 중하게 추고하고, 즉시 패초(牌招)하여 입직하게 함으로써 지키는 일을 중히 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 시각에 문을 열어 입직하게 할 수는 없으니 날이 밝거든 패초하여 입직하게 하라." 하였다.
"지금 분승정원(分承政院)의 초기(草記)를 보건대, 분병조 참의 박사제(朴思齊)가 직접 교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병을 이유로 시간에 앞서서 입직소(入直所)를 나갔는데, 다른 관원 기꺼이 입직하려 하지 않아 궐직(闕直)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합니다. 이렇듯 대론(大論)이 겨우 정해져 현재 역적과 흉인들의 종자가 도성에 흩어져 있고 충성스럽고 지극한 언론이 밝혀졌다 어두워졌다 하고 있으니, 신자(臣子)된 입장으로서는 철저를 기해 엄하게 지키고 마음을 다해 기찰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전연 관심을 두지 않고 국가의 지극한 계책에 어두웠으니 중하게 추고하소서. 그리고 입직했어야 할 인원도 중하게 추고하고, 즉시 패초(牌招)하여 입직하게 함으로써 지키는 일을 중히 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 시각에 문을 열어 입직하게 할 수는 없으니 날이 밝거든 패초하여 입직하게 하라."
하였다.
예조의 계목(啓目)에, "옛날에 큰 변고를 만나면 반드시 광명정대하게 하는 것으로 선처(善處)하는 도리를 삼았습니다. 지금 혹시라도 고식적으로 구차하게 하면서 목전의 무사하기만을 바란다면 결국에는 뒷날 후회하는 일이 분명히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서궁(西宮)이 능침(陵寢)을 저주하고 궁위(宮闈)에서 무고를 행하는 등 역모를 꾀한 정상이 모조리 드러나 죄가 흘러 넘쳤으므로, 종묘 사직이 다 함께 노하고 신민이 모두 원수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뒤에야 온 나라가 쟁집한 끝에 폄손하는 절목을 정하게 되었으니, 정부에서 백관의 뜻을 가지고 곧장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함으로써 고명과 관복을 환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세상 그만둘 수 없는 일인 동시에 의리상으로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왜적과 통하고 호인(胡人)과 결탁하면서 상국을 배반하려 꾀했으니, 중국 조정의 토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면서 황제가 봉해 준 것을 바꾸려고 한 이상, 왕법(王法)이 가해지는 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황상(皇上)의 조정에서 내복(內服) 이상으로 우리 나라를 대하고 있으니, 큰 일이 벌어졌을 때 감히 사실대로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황상의 조정을 부모와 다름없이 의지하고 있으니, 호소하는 일을 어찌 기꺼이 따라 주지 않겠습니까. 막중하고 막대한 일을 가지고 우리를 어루만져 주고 보살펴 주는 황상에게 하소연한다면, 어여삐 여겨 들어 주면서 필시 어려워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불을 꺼 주고 물에서 구원해 줄 것입니다. 지금 만약 시일만 끌고 지체시키면서 즉시 주문하여 아뢰지 않은 결과,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이 천하에 밝혀지지 않게 되고, 상국을 섬기는 정성이 조정에 미쁘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 아무리 후회해도 일은 이미 지나버렸으니 실제로 아무 이익이 없게 될 것이며, 입 다물고 있는 사이에 진상은 어두워지고 말 것이니 소급해 변명하기도 어렵게 될 것입니다. 예전과 같지 않게 강역(疆域)이 서로 통하지 않고 전보다 더 심하게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으니, 이초(彝初)025) 의 무함이나 조이(趙李)026) 의 날조가 꼭 없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일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고 계책은 기선(機先)을 제압해야 합니다. 초야의 소(疏)를 보면 분개한 심정이 표출되어 있고 대간의 논(論)을 보면 그 생각이 깊으니 주문하는 일을 지체시키면 정말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성화(成化)027) 연간에 중국에서 변방에 봉해 준 한음왕(漢陰王) 징시(徵鍉)에게 후사(後嗣)가 없자 그 어미 평씨(平氏)가 다른 성씨의 아들을 데려다 그 뒤를 잇게 하였는데, 일이 발각되어 중국 조정으로부터 벌을 받았으니, 번국(藩國)의 모후(母后)를 폐출했던 예(例)를 여기에서도 원용(援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속히 사신을 가려 절행(節行)028) 에 부쳐 보내면서 큰 판국을 마무리짓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만, 종묘 사직과 관계된 일로서 사체가 중대하니, 대신과 의논해 결정해서 시행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하였다.
[註 025] 이초(彝初) : 고려 말기의 윤이(尹彝)와 이초(李初).[註 026] 조이(趙李) : 조반(趙胖)과 이색(李穡).[註 027] 성화(成化) : 명 헌종(明憲宗)의 연호.[註 028] 절행(節行) : 명절에 보내는 사신 행차.
"옛날에 큰 변고를 만나면 반드시 광명정대하게 하는 것으로 선처(善處)하는 도리를 삼았습니다. 지금 혹시라도 고식적으로 구차하게 하면서 목전의 무사하기만을 바란다면 결국에는 뒷날 후회하는 일이 분명히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서궁(西宮)이 능침(陵寢)을 저주하고 궁위(宮闈)에서 무고를 행하는 등 역모를 꾀한 정상이 모조리 드러나 죄가 흘러 넘쳤으므로, 종묘 사직이 다 함께 노하고 신민이 모두 원수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뒤에야 온 나라가 쟁집한 끝에 폄손하는 절목을 정하게 되었으니, 정부에서 백관의 뜻을 가지고 곧장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함으로써 고명과 관복을 환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세상 그만둘 수 없는 일인 동시에 의리상으로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왜적과 통하고 호인(胡人)과 결탁하면서 상국을 배반하려 꾀했으니, 중국 조정의 토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면서 황제가 봉해 준 것을 바꾸려고 한 이상, 왕법(王法)이 가해지는 것을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황상(皇上)의 조정에서 내복(內服) 이상으로 우리 나라를 대하고 있으니, 큰 일이 벌어졌을 때 감히 사실대로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황상의 조정을 부모와 다름없이 의지하고 있으니, 호소하는 일을 어찌 기꺼이 따라 주지 않겠습니까. 막중하고 막대한 일을 가지고 우리를 어루만져 주고 보살펴 주는 황상에게 하소연한다면, 어여삐 여겨 들어 주면서 필시 어려워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불을 꺼 주고 물에서 구원해 줄 것입니다.
지금 만약 시일만 끌고 지체시키면서 즉시 주문하여 아뢰지 않은 결과,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이 천하에 밝혀지지 않게 되고, 상국을 섬기는 정성이 조정에 미쁘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면, 아무리 후회해도 일은 이미 지나버렸으니 실제로 아무 이익이 없게 될 것이며, 입 다물고 있는 사이에 진상은 어두워지고 말 것이니 소급해 변명하기도 어렵게 될 것입니다. 예전과 같지 않게 강역(疆域)이 서로 통하지 않고 전보다 더 심하게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으니, 이초(彝初)025) 의 무함이나 조이(趙李)026) 의 날조가 꼭 없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일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고 계책은 기선(機先)을 제압해야 합니다. 초야의 소(疏)를 보면 분개한 심정이 표출되어 있고 대간의 논(論)을 보면 그 생각이 깊으니 주문하는 일을 지체시키면 정말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성화(成化)027) 연간에 중국에서 변방에 봉해 준 한음왕(漢陰王) 징시(徵鍉)에게 후사(後嗣)가 없자 그 어미 평씨(平氏)가 다른 성씨의 아들을 데려다 그 뒤를 잇게 하였는데, 일이 발각되어 중국 조정으로부터 벌을 받았으니, 번국(藩國)의 모후(母后)를 폐출했던 예(例)를 여기에서도 원용(援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속히 사신을 가려 절행(節行)028) 에 부쳐 보내면서 큰 판국을 마무리짓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만, 종묘 사직과 관계된 일로서 사체가 중대하니, 대신과 의논해 결정해서 시행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하였다.
유학(幼學) 박민준(朴敏俊)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기자헌이 남몰래 다른 뜻을 품고는 뒷날 제왕의 복을 누릴 목적으로 그 첩을 백세(百世)토록 군왕(君王)이 나온다는 경주(慶州) 땅에 장사지내고, 그 집을 천년 동안 왕기(王氣)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곳에 지었으니, 임금을 업신여기고 역모를 꾀한 정상이 여기에서 모두 드러났습니다. 어사(御史)를 파견하여 자세히 살펴보게 한 다음 무덤을 파고 집을 허물게 하는 동시에 자헌 3부자(父子)의 목을 베어 흉악하기 그지없는 인신(人臣)의 죄를 징계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기자헌이 남몰래 다른 뜻을 품고는 뒷날 제왕의 복을 누릴 목적으로 그 첩을 백세(百世)토록 군왕(君王)이 나온다는 경주(慶州) 땅에 장사지내고, 그 집을 천년 동안 왕기(王氣)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곳에 지었으니, 임금을 업신여기고 역모를 꾀한 정상이 여기에서 모두 드러났습니다. 어사(御史)를 파견하여 자세히 살펴보게 한 다음 무덤을 파고 집을 허물게 하는 동시에 자헌 3부자(父子)의 목을 베어 흉악하기 그지없는 인신(人臣)의 죄를 징계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계로 연계하기를,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 등을 멀리 유배보내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 등을 삭출하라고 청한 일에 대하여,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고 보니 신들이 무기력하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죄야말로 죽어도 애석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정청에 불참한 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고, 신들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다만, 정부에서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조사해 작성한 거안(擧案)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명백하게 듣고 본 자들만을 거론하여 논열(論列)했던 것입니다. 어찌 감히 원수(元數) 가운데에서 뽑아 내며 그 사이에서 비호하려 한 것이겠습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사정(私情)을 따른 점이 있다면 신들의 죄도 그들과 똑같다 할 것입니다. 어제 정부의 낭청을 파직시킬 일을 정계(停啓)한 것은 ‘낭청의 잘못은 추고 정도로 끝내면 된다.’고 여겨서가 아니고, 그로 하여금 행공(行公)케 해서 급히 조사해 보내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오늘 아침 일찍 본부(本府)에 모여 정부의 하리(下吏)를 불러다 재촉한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모르는데, 하리가 와서 관원의 말을 전하기를 ‘입계(入啓)하여 계하(啓下)받기 전에는 결코 보내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정적(情迹)을 살펴보면 사정(私情)에 구애받고 형세에 견제받는 듯한 인상이 짙은데, 심지어는 대간의 말까지 듣고도 못들은 체하고 있으니 사체가 지극히 매몰스럽습니다. 당해 낭청을 먼저 파직시킨 다음 추고하고, 다른 낭청으로 하여금 급히 조사해 보내게 하소서.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조국빈(趙國賓)·윤형준(尹衡俊)·이시언(李時彦)·오윤겸(吳允謙) 등에 대해서는 서서히 결정짓겠다.’ 하고, 또 ‘정청에 불참한 자들의 숫자가 매우 많은데 뽑아 내어 논계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굳이 논집하지 말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대체로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하는 것은 뭔가 조사해 처치할 일이 있을 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4간(奸)의 죄는 정적(情迹)이 여지없이 드러나 숨길 수 없이 분명하니, 다시 더 조사할 만한 정상이 없는데, 어찌 서서히 결정되기만을 기다리면서 속히 그 죄를 다루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정청에 불참한 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조사 내용을 본 뒤에야 그 숫자를 알고 논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신들이 우선 8간(奸)을 논계한 것은 그들만 뽑아 내어 죄를 청한 것이 아니고, 눈에 띄게 드러난 사람을 듣는 대로 아뢴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 자들이 먼저 중전(重典)을 적용받게 되면 뒤따라 나오는 자들도 대개 그 율(律)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을 신들은 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신들이 여러 간인들의 정상을 감히 전하께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정창연(鄭昌衍)은 왕실과 가까운 친족으로서 대신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나라와 함께 행 불행을 같이 해야 할 의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종묘 사직과 군부(君父)의 위급함이 호흡간에 박두했는 데도, 그는 감히 남몰래 서궁을 비호하는 계책을 행하면서 뒷날 복을 받고자 도모하였습니다. 당초 유소(儒疏)가 내려졌을 때 예관(禮官)이 그것을 갖고 가서 의논하자, 병세가 중해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핑계대면서 열어 보지도 않았고, 정부가 의논을 거둘 때 낭청이 누차 청했는 데도 문을 닫아 걸고는 욕하고 성내면서 끝내 써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론(邪論)을 창도하여 그의 아들과 조카까지 미혹시키면서 저쪽 편의 우두머리를 기꺼이 맡았습니다. 그리하여 가령 대론(大論)이 일단 정해져서 백관이 정청할 때면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이 꼼짝 않고 누워 있었고, 달을 넘겨가며 복합 상소(伏閤上疏)를 올릴 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의 매부 김극효(金克孝)의 상(喪)에는 감히 거만스럽게 교자(轎子)를 타고 그 집에 가 조문하였습니다. 그러니 병을 핑계대고 일을 피하며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어찌 다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근(柳根)은 천성적으로 사특하여 평소부터 이론(異論)을 주창하였는데, 유소(儒疏)가 처음 들여졌을 때 서궁을 처치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되리라는 것을 훤히 알고서, 재빨리 사직 단자를 올리고는 묘산(墓山)으로 내려갔습니다. 조신(朝臣)의 휴가에는 본래 정해진 기간이 있는데, 대론을 피할 목적으로 기한을 넘겨 가면서 돌아오지 않았고, 그러다 날짜가 너무 지연되면 병을 핑계대고 장계를 올려 겸대한 제조(提調)를 체차해 달라고 청하면서 큰 판국이 마무리된 뒤에야 올라올 계책을 세웠습니다. 교묘하게 일을 피하려 한 자취가 불을 보듯 뻔하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그의 죄 또한 지극히 무겁다 할 것입니다. 윤방(尹昉)은 소분(掃墳)하고 올라와 궐내에서 병을 핑계대며 수레를 타고 돌아간 뒤로 의논을 올리지도 않았고 정청에 와서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김상용(金尙容)은 아비의 병 때문에 직접 간호해야 한다고 핑계대면서 역시 기꺼이 참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정귀(李廷龜)와 이시언(李時彦)은 의논을 거둘 때에 혹 자기의 병세에 대해서만 진달하고 대론은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면, 혹은 얼버무리고 떠넘기면서 저쪽 편에 드는 것을 감수하기도 하였는데, 백관의 모임에는 역시 따라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역적을 토벌해야 하는 인신(人臣)의 의리로 볼 때 병이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떠메어져서라도 궐하에 나아와 그 직분을 극진히 수행해야 마땅한데, 어찌 마음 편히 집에 있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태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윤겸과 송영구는 의논을 드린 말이 모두 저쪽 편을 드는 것이었으며, 정청할 때에도 끝내 따라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유근 이하는 모두가 서인(西人)인데 김제남이 그 부류에서 나온 관계로 논의하는 것이나 마음에 뜻을 둔 것이 평소에 서로 부합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제남이 이미 패망한 뒤에도 오히려 부식(扶植)할 뜻을 갖고는 서궁을 기화로 삼아 뒷날 판을 뒤엎을 여지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차라리 성상을 등질지언정 차마 서궁은 등지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이밖에 조국빈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들었고 윤형준은 의논을 거둘 때 희롱하였으니 그 죄가 8간(奸)과 다름이 없습니다. 멀리 유배하도록 명하시어 역적을 토벌하는 법전을 엄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정부의 낭청을 추고하라. 조국빈 이하의 일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서성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 등을 멀리 유배보내고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 등을 삭출하라고 청한 일에 대하여,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고 보니 신들이 무기력하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죄야말로 죽어도 애석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정청에 불참한 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고, 신들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다만, 정부에서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조사해 작성한 거안(擧案)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명백하게 듣고 본 자들만을 거론하여 논열(論列)했던 것입니다. 어찌 감히 원수(元數) 가운데에서 뽑아 내며 그 사이에서 비호하려 한 것이겠습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사정(私情)을 따른 점이 있다면 신들의 죄도 그들과 똑같다 할 것입니다.
어제 정부의 낭청을 파직시킬 일을 정계(停啓)한 것은 ‘낭청의 잘못은 추고 정도로 끝내면 된다.’고 여겨서가 아니고, 그로 하여금 행공(行公)케 해서 급히 조사해 보내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오늘 아침 일찍 본부(本府)에 모여 정부의 하리(下吏)를 불러다 재촉한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모르는데, 하리가 와서 관원의 말을 전하기를 ‘입계(入啓)하여 계하(啓下)받기 전에는 결코 보내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정적(情迹)을 살펴보면 사정(私情)에 구애받고 형세에 견제받는 듯한 인상이 짙은데, 심지어는 대간의 말까지 듣고도 못들은 체하고 있으니 사체가 지극히 매몰스럽습니다. 당해 낭청을 먼저 파직시킨 다음 추고하고, 다른 낭청으로 하여금 급히 조사해 보내게 하소서.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조국빈(趙國賓)·윤형준(尹衡俊)·이시언(李時彦)·오윤겸(吳允謙) 등에 대해서는 서서히 결정짓겠다.’ 하고, 또 ‘정청에 불참한 자들의 숫자가 매우 많은데 뽑아 내어 논계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굳이 논집하지 말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대체로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하는 것은 뭔가 조사해 처치할 일이 있을 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4간(奸)의 죄는 정적(情迹)이 여지없이 드러나 숨길 수 없이 분명하니, 다시 더 조사할 만한 정상이 없는데, 어찌 서서히 결정되기만을 기다리면서 속히 그 죄를 다루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정청에 불참한 자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조사 내용을 본 뒤에야 그 숫자를 알고 논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신들이 우선 8간(奸)을 논계한 것은 그들만 뽑아 내어 죄를 청한 것이 아니고, 눈에 띄게 드러난 사람을 듣는 대로 아뢴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 자들이 먼저 중전(重典)을 적용받게 되면 뒤따라 나오는 자들도 대개 그 율(律)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을 신들은 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신들이 여러 간인들의 정상을 감히 전하께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정창연(鄭昌衍)은 왕실과 가까운 친족으로서 대신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나라와 함께 행 불행을 같이 해야 할 의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종묘 사직과 군부(君父)의 위급함이 호흡간에 박두했는 데도, 그는 감히 남몰래 서궁을 비호하는 계책을 행하면서 뒷날 복을 받고자 도모하였습니다. 당초 유소(儒疏)가 내려졌을 때 예관(禮官)이 그것을 갖고 가서 의논하자, 병세가 중해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핑계대면서 열어 보지도 않았고, 정부가 의논을 거둘 때 낭청이 누차 청했는 데도 문을 닫아 걸고는 욕하고 성내면서 끝내 써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사론(邪論)을 창도하여 그의 아들과 조카까지 미혹시키면서 저쪽 편의 우두머리를 기꺼이 맡았습니다. 그리하여 가령 대론(大論)이 일단 정해져서 백관이 정청할 때면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이 꼼짝 않고 누워 있었고, 달을 넘겨가며 복합 상소(伏閤上疏)를 올릴 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의 매부 김극효(金克孝)의 상(喪)에는 감히 거만스럽게 교자(轎子)를 타고 그 집에 가 조문하였습니다. 그러니 병을 핑계대고 일을 피하며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어찌 다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근(柳根)은 천성적으로 사특하여 평소부터 이론(異論)을 주창하였는데, 유소(儒疏)가 처음 들여졌을 때 서궁을 처치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되리라는 것을 훤히 알고서, 재빨리 사직 단자를 올리고는 묘산(墓山)으로 내려갔습니다. 조신(朝臣)의 휴가에는 본래 정해진 기간이 있는데, 대론을 피할 목적으로 기한을 넘겨 가면서 돌아오지 않았고, 그러다 날짜가 너무 지연되면 병을 핑계대고 장계를 올려 겸대한 제조(提調)를 체차해 달라고 청하면서 큰 판국이 마무리된 뒤에야 올라올 계책을 세웠습니다. 교묘하게 일을 피하려 한 자취가 불을 보듯 뻔하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그의 죄 또한 지극히 무겁다 할 것입니다.
윤방(尹昉)은 소분(掃墳)하고 올라와 궐내에서 병을 핑계대며 수레를 타고 돌아간 뒤로 의논을 올리지도 않았고 정청에 와서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김상용(金尙容)은 아비의 병 때문에 직접 간호해야 한다고 핑계대면서 역시 기꺼이 참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정귀(李廷龜)와 이시언(李時彦)은 의논을 거둘 때에 혹 자기의 병세에 대해서만 진달하고 대론은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면, 혹은 얼버무리고 떠넘기면서 저쪽 편에 드는 것을 감수하기도 하였는데, 백관의 모임에는 역시 따라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역적을 토벌해야 하는 인신(人臣)의 의리로 볼 때 병이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떠메어져서라도 궐하에 나아와 그 직분을 극진히 수행해야 마땅한데, 어찌 마음 편히 집에 있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태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윤겸과 송영구는 의논을 드린 말이 모두 저쪽 편을 드는 것이었으며, 정청할 때에도 끝내 따라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유근 이하는 모두가 서인(西人)인데 김제남이 그 부류에서 나온 관계로 논의하는 것이나 마음에 뜻을 둔 것이 평소에 서로 부합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제남이 이미 패망한 뒤에도 오히려 부식(扶植)할 뜻을 갖고는 서궁을 기화로 삼아 뒷날 판을 뒤엎을 여지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차라리 성상을 등질지언정 차마 서궁은 등지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이밖에 조국빈은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들었고 윤형준은 의논을 거둘 때 희롱하였으니 그 죄가 8간(奸)과 다름이 없습니다. 멀리 유배하도록 명하시어 역적을 토벌하는 법전을 엄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정부의 낭청을 추고하라. 조국빈 이하의 일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성진 첨사(城津僉使) 조응립(趙應立)은 사람됨이 범람하고 행동이 패악하여, 전에 초관(哨官)으로 있을 때 군졸을 침해하며 말할 수 없는 일을 많이 저질렀으므로, 본직을 제수하자 물정이 놀라 분개하고 있습니다. 새로 설치된 중진(重鎭)을 이런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 그를 파직하도록 명하시고, 그 후임자로 일찍이 곤수(閫帥)를 지낸 경력이 있는 자를 각별히 가려 보내도록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성진 첨사(城津僉使) 조응립(趙應立)은 사람됨이 범람하고 행동이 패악하여, 전에 초관(哨官)으로 있을 때 군졸을 침해하며 말할 수 없는 일을 많이 저질렀으므로, 본직을 제수하자 물정이 놀라 분개하고 있습니다. 새로 설치된 중진(重鎭)을 이런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 그를 파직하도록 명하시고, 그 후임자로 일찍이 곤수(閫帥)를 지낸 경력이 있는 자를 각별히 가려 보내도록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2월 9일 기해
유학(幼學) 문의남(文義男)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지난번에 전 훈도 김대하(金大河)가 올린 상소의 내용을 얻어 보건대, 기준격(奇俊格)이 박응서(朴應犀)·성문진(成文振)·성익진(成益振) 등과 역모를 꾀한 정상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김대하 및 박민준(朴敏俊)의 소장을 보건대, 기자헌(奇自獻)이 방서(方書)를 많이 모으고 날마다 술사(術士)를 맞고 있는데, 도선(道詵)의 비기(祕記)가 나덕수(羅德秀)의 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잡아오도록 계청하며 그 비서(祕書)를 얻은 뒤에야 그만두었으며, 왕기(王氣)가 다하지 않은 최고의 명당(明堂) 자리를 훔쳐 첩을 장사지내고 집을 세우면서 뒷날 제왕의 복을 누리려고 도모하였다 하니, 그가 역모를 꾀한 정상이 또한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부자가 모두 흉악한 역적인 이상 법으로 복주(伏誅)하지 않을 수 없으니, 속히 자헌 부자의 목을 베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지난번에 전 훈도 김대하(金大河)가 올린 상소의 내용을 얻어 보건대, 기준격(奇俊格)이 박응서(朴應犀)·성문진(成文振)·성익진(成益振) 등과 역모를 꾀한 정상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김대하 및 박민준(朴敏俊)의 소장을 보건대, 기자헌(奇自獻)이 방서(方書)를 많이 모으고 날마다 술사(術士)를 맞고 있는데, 도선(道詵)의 비기(祕記)가 나덕수(羅德秀)의 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잡아오도록 계청하며 그 비서(祕書)를 얻은 뒤에야 그만두었으며, 왕기(王氣)가 다하지 않은 최고의 명당(明堂) 자리를 훔쳐 첩을 장사지내고 집을 세우면서 뒷날 제왕의 복을 누리려고 도모하였다 하니, 그가 역모를 꾀한 정상이 또한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부자가 모두 흉악한 역적인 이상 법으로 복주(伏誅)하지 않을 수 없으니, 속히 자헌 부자의 목을 베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였다. "분병조가 궐직(闕直)한 일에 대해 이미 하교했었다. 그런데 조금도 거리낌없이 직접 얼굴을 보고 교대도 하지 않은 채 임의로 출입했으니, 잡아다 파직하고 중하게 따져야 마땅하겠다마는, 그렇게 하면 그 소원을 이루어 주기에 꼭 알맞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니, 기다렸다가 사목(事目)이 판하되거든 입직하다 미리 나온 관원과 입직하러 들어갔어야 할 관원 모두를 파직함으로써 조정의 기강을 엄숙히 하도록 하라."
"분병조가 궐직(闕直)한 일에 대해 이미 하교했었다. 그런데 조금도 거리낌없이 직접 얼굴을 보고 교대도 하지 않은 채 임의로 출입했으니, 잡아다 파직하고 중하게 따져야 마땅하겠다마는, 그렇게 하면 그 소원을 이루어 주기에 꼭 알맞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니, 기다렸다가 사목(事目)이 판하되거든 입직하다 미리 나온 관원과 입직하러 들어갔어야 할 관원 모두를 파직함으로써 조정의 기강을 엄숙히 하도록 하라."
왕이 안질(眼疾)을 치료하느라고, 침을 맞기 때문에 양사에서 아뢰는 일을 잠정적으로 정지하였다.
정창연(鄭昌衍) 등 종실을 멀리 유배보내는 일에 관한 승전 단자(承傳單子)에 계(啓)를 찍지 않고 도로 내리면서 전교하였다. "조국빈 이하에 대한 일을 윤허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정원이 살펴서 처리하거나 다시 품하여 처치하거나 했어야 할 텐데, 어찌하여 이처럼 분부한단 말인가. 놀랍기 그지없다. 지금 이후로는 이와 같이 하지 말고 자세히 살피거나 품하여 처치하도록 하라."
"조국빈 이하에 대한 일을 윤허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정원이 살펴서 처리하거나 다시 품하여 처치하거나 했어야 할 텐데, 어찌하여 이처럼 분부한단 말인가. 놀랍기 그지없다. 지금 이후로는 이와 같이 하지 말고 자세히 살피거나 품하여 처치하도록 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어제 합계(合啓)에 윤허를 받은 뒤 승전 단자를 써서 들인 승지는, 오늘 해가 졌으므로 이미 퇴청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신이 대방(代房)으로서 방금 비망기를 받들고 그저께와 어제 합계한 초본(草本) 및 그에 대한 비답을 가져다 상고해 보건대, 그저께의 계사(啓辭)에 대해서는 ‘조국빈·윤형준·오윤겸·이시언 등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분부하셨고, 어제의 계사에 대해서는 ‘아뢴 대로 하라. 조국빈 이하의 일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고 분부하셨습니다. 따라서 서성 도정 이희성 이하 및 정창연 이하에 대해서는 예(例)에 따라 승전을 받들고, 조국빈 이하에 대해서는 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다시 품하여 처치하도록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황공한 심정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정원이 구례(舊例)를 잘 모르고 있다. 어떤 계사에 대해서든 처음에 이름을 쓴 사람을 거론하여 비답을 내리는 것이 예이다. 그저께 계사에 조국빈의 이름을 첫머리에 썼기 때문에 이 이름을 거론하여 운운했던 것이니, 이는 바로 아래로 종실에 이르기까지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뢴 대로 하라고 한 것은 단지 정부의 다른 낭청으로 하여금 조사해 보내도록 하라는 일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 일체 구례에 따라 자세히 살피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어제 합계(合啓)에 윤허를 받은 뒤 승전 단자를 써서 들인 승지는, 오늘 해가 졌으므로 이미 퇴청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신이 대방(代房)으로서 방금 비망기를 받들고 그저께와 어제 합계한 초본(草本) 및 그에 대한 비답을 가져다 상고해 보건대, 그저께의 계사(啓辭)에 대해서는 ‘조국빈·윤형준·오윤겸·이시언 등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분부하셨고, 어제의 계사에 대해서는 ‘아뢴 대로 하라. 조국빈 이하의 일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고 분부하셨습니다. 따라서 서성 도정 이희성 이하 및 정창연 이하에 대해서는 예(例)에 따라 승전을 받들고, 조국빈 이하에 대해서는 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다시 품하여 처치하도록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황공한 심정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정원이 구례(舊例)를 잘 모르고 있다. 어떤 계사에 대해서든 처음에 이름을 쓴 사람을 거론하여 비답을 내리는 것이 예이다. 그저께 계사에 조국빈의 이름을 첫머리에 썼기 때문에 이 이름을 거론하여 운운했던 것이니, 이는 바로 아래로 종실에 이르기까지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뢴 대로 하라고 한 것은 단지 정부의 다른 낭청으로 하여금 조사해 보내도록 하라는 일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 일체 구례에 따라 자세히 살피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근일 대간이 아뢰는 것을 보면 꼭 야심할 때 입계(入啓)하곤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선조(先朝) 때에 없었던 잘못된 예라 하겠다. 선조 때에는 아무리 겨울철 한절기에 해가 짧은 때라 하더라도 반드시 오후에 입계하였는데, 이는 내가 일찍이 직접 보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후로는 제때에 일찍 아뢰는 일을 다시 밝혀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근일 대간이 아뢰는 것을 보면 꼭 야심할 때 입계(入啓)하곤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선조(先朝) 때에 없었던 잘못된 예라 하겠다. 선조 때에는 아무리 겨울철 한절기에 해가 짧은 때라 하더라도 반드시 오후에 입계하였는데, 이는 내가 일찍이 직접 보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후로는 제때에 일찍 아뢰는 일을 다시 밝혀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정청(庭請)에 나아가 참여한 당상은 2백 45인이었다.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38인을 초계(抄啓)하였는데, 그 명단은 정창연·유근·김상용·이정귀·김권(金權)·신식(申湜)·오윤겸·구성(具宬)·윤방·조응록(趙應祿)·김위(金渭)·이시발(李時發)·박동선(朴東善)·성진선(成晉善)·신익성(申翊聖)·정효성(鄭孝成)·박미(朴瀰)·홍우경(洪友敬)·박안세(朴安世)·이시언·권희(權憘)·유적(柳頔)·오백령(吳百齡)·김류(金瑬)·윤홍(尹鴻)·윤응삼(尹應三)·정사서(鄭思緖)·이계남(李桂男)·정호신(鄭好信)·이상준(李尙俊)·권극정(權克正)·강인(姜絪)·이사공(李士恭)·김경생(金慶生)·정승서(鄭承緖)·이상(李祥)과 입번(入番)한 이희(李憘)와 김현성(金玄成)이다.
윤홍(尹鴻)의 아들 윤승임(尹承任)이 상소하여, 자기 아비가 정청에 따라 참여했는 데도 잘못 초계되었다고 호소하였다. 이계남과 이상준 등의 아들 역시 상소하여 자기 아비가 원통하게 되었다고 호소하였다. 【종실로서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의논을 거둘 때에 패악스럽게 말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혹 외방에 있거나 나이를 속여 직책을 부여받았어도, 어려서 출근도 못하거나 혹은 늙고 병들어 문 밖 출입을 못하는 자들이었는데, 한결같이 종친부의 거안(擧案)에 따라 모조리 유배하는 법전에 처하기를 청하였으므로, 마침내 그 자제와 부형들이 어지럽게 정사(呈辭)하며 원통하다고 호소한 것이 수십 차례나 되었고, 심지어는 금품을 모아 뇌물을 바치기까지도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아뢴 대로 하라."고 한 뒤에 승전(承傳)을 도로 내리는 일이 있게 되자, 정원이 한 일에 허물을 돌렸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그 중에서 유독 한음군 이현만은 의논드린 것이 가장 우수했는데, 병을 이유로 정청에 불참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文)·무(武)·음관(蔭官)으로서 혹 산직(散職)에 있거나 혹 실제로 병이 들어 나아가 참여하지 못한 경우에도 자제들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대궐에 찾아와 원통하다고 호소를 하였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변하였으니 어찌 통탄함을 금할 수 있겠는가.】
2월 10일 경자
승지 유대건(兪大建)이 아뢰기를, "지난 8일 초경 중에 신이 입직하여 대방(代房)하면서 나가 대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아뢴 대로 하라. 조국빈 이하에 대해서는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고 하교하셨으므로, 신의 망령된 생각에 ‘조국빈 이하를 윤허하지 않으신 것이니 그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는 뜻일 것이다.’고 여기고는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또 취품하지도 않은 채 마음 먹은 대로 승전 단자를 써서 들였습니다. 흐리멍덩하여 살피지 못한 죄가 극에 이르렀으므로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지난 8일 초경 중에 신이 입직하여 대방(代房)하면서 나가 대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아뢴 대로 하라. 조국빈 이하에 대해서는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고 하교하셨으므로, 신의 망령된 생각에 ‘조국빈 이하를 윤허하지 않으신 것이니 그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는 뜻일 것이다.’고 여기고는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또 취품하지도 않은 채 마음 먹은 대로 승전 단자를 써서 들였습니다. 흐리멍덩하여 살피지 못한 죄가 극에 이르렀으므로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좌의정 한효순(韓孝純)의 뜻으로 사록(司錄)이 아뢰기를, "정청(庭請)에 나와 참여한 인원 및 시종일관 불참한 인원을 정부로 하여금 일일이 자세히 살펴 분명하게 서계(書啓)하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낭청으로 하여금 각사(各司)의 거안(擧案)에 따라 일일이 조사해 내게 했더니, 당상(堂上) 이상으로 나와서 참여한 사람은 2백 45인이었고 시종일관 불참한 사람은 38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권희와 박동선의 경우, 거안 속에는 나와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스스로 말하기를 ‘앓아서 끝내 나아가 참여하지 못했는데 하리(下吏)가 잘못 써 넣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관아의 하인을 즉시 수금(囚禁)하는 한편, 우선 조사한 내용을 먼저 서계드립니다. 그 밖에 당하관의 경우는 거안의 권수(卷數)가 더욱 많아 시방 조사 중인데 조사가 끝나는 즉시 서계드리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재신(宰臣) 중에 유영순(柳永詢)·김상준(金尙寯)·목장흠(睦長欽) 등은 어째서 누락되었는가. 다시 자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이 밖에 조신(朝臣)들 중에 누락된 자에 대해서도 다시 상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38인 가운데에는 실제로 병에 걸려 죽게 되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예컨대 박안세·성진선·구성·홍우경 같은 이들이 그들인데 이런 부류는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죽기로 맹세하고 스스로 지조를 지키며 시종일관 불참한 자들에 대해서는 위에 이미 기록했다. 당시 실제로는 참여하지 않았는 데도 하리가 참여했다고 써 넣은 것을 그대로 인정해 받아들인 자도 있었고, 실제로는 참여했으면서 스스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는데, 박동선과 권희 같은 이들은 우뚝하게 홀로 선 자들이라 하겠다.】
"정청(庭請)에 나와 참여한 인원 및 시종일관 불참한 인원을 정부로 하여금 일일이 자세히 살펴 분명하게 서계(書啓)하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낭청으로 하여금 각사(各司)의 거안(擧案)에 따라 일일이 조사해 내게 했더니, 당상(堂上) 이상으로 나와서 참여한 사람은 2백 45인이었고 시종일관 불참한 사람은 38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권희와 박동선의 경우, 거안 속에는 나와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스스로 말하기를 ‘앓아서 끝내 나아가 참여하지 못했는데 하리(下吏)가 잘못 써 넣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관아의 하인을 즉시 수금(囚禁)하는 한편, 우선 조사한 내용을 먼저 서계드립니다. 그 밖에 당하관의 경우는 거안의 권수(卷數)가 더욱 많아 시방 조사 중인데 조사가 끝나는 즉시 서계드리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재신(宰臣) 중에 유영순(柳永詢)·김상준(金尙寯)·목장흠(睦長欽) 등은 어째서 누락되었는가. 다시 자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이 밖에 조신(朝臣)들 중에 누락된 자에 대해서도 다시 상세히 살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38인 가운데에는 실제로 병에 걸려 죽게 되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예컨대 박안세·성진선·구성·홍우경 같은 이들이 그들인데 이런 부류는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죽기로 맹세하고 스스로 지조를 지키며 시종일관 불참한 자들에 대해서는 위에 이미 기록했다. 당시 실제로는 참여하지 않았는 데도 하리가 참여했다고 써 넣은 것을 그대로 인정해 받아들인 자도 있었고, 실제로는 참여했으면서 스스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는데, 박동선과 권희 같은 이들은 우뚝하게 홀로 선 자들이라 하겠다.】
왕이 침을 맞고 조용히 조섭하는 일로 인하여 삼사의 계사와 차자를 정지하고 잡다한 공사(公事)를 정원은 들이지 말라고 명하였다. 【폐모(廢母)에 관계된 소만은 들였다.】
2월 11일 신축
유학 김극민(金克敏)·서경상(徐景祥)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종묘에 고하는 날짜도 아직 잡아 놓지 않고 감손(減損)하는 절목도 계하하지 않고 계시는데 속히 거행토록 하소서. 그리고 엄성(嚴惺)과 조경기(趙慶起) 등을 위리 안치하지 않고 기자헌 등의 목을 즉시 베지 않은 결과, 이론(異論)이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게 되었는 데도, 삼사에서는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따라서 용납해 주고 있기까지 합니다. 먼저 드러나게 자헌 등의 목을 베고 엄성과 조경기 등을 위리 안치하는 동시에 삼사에서 역적을 비호하는 자들을 유배함으로써 퇴폐한 기강을 일으켜 세우고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종묘에 고하는 날짜도 아직 잡아 놓지 않고 감손(減損)하는 절목도 계하하지 않고 계시는데 속히 거행토록 하소서. 그리고 엄성(嚴惺)과 조경기(趙慶起) 등을 위리 안치하지 않고 기자헌 등의 목을 즉시 베지 않은 결과, 이론(異論)이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게 되었는 데도, 삼사에서는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따라서 용납해 주고 있기까지 합니다. 먼저 드러나게 자헌 등의 목을 베고 엄성과 조경기 등을 위리 안치하는 동시에 삼사에서 역적을 비호하는 자들을 유배함으로써 퇴폐한 기강을 일으켜 세우고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유학 정주한(鄭周翰) 등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예조가 의논을 거둘 때에 좌상 한효순(韓孝純)은 자기 의견을 밝히지는 않고 그저 영상에게 떠넘기기만 하였으니, 그 간특하고 교활한 정상이 늙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하겠습니다.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다시 효순에게 의논을 거두게 하되, 시비(是非)와 가부(可否)를 한 마디로 결정하게 한 뒤에 영상에게 묻도록 하고, 혹시라도 줄곧 말하지 않을 경우에는 효순의 목을 벰으로써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리는 노신(老臣)의 경계로 삼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예조가 의논을 거둘 때에 좌상 한효순(韓孝純)은 자기 의견을 밝히지는 않고 그저 영상에게 떠넘기기만 하였으니, 그 간특하고 교활한 정상이 늙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하겠습니다.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다시 효순에게 의논을 거두게 하되, 시비(是非)와 가부(可否)를 한 마디로 결정하게 한 뒤에 영상에게 묻도록 하고, 혹시라도 줄곧 말하지 않을 경우에는 효순의 목을 벰으로써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리는 노신(老臣)의 경계로 삼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좌의정 한효순의 뜻으로 검상(檢詳)이 아뢰기를, "정청(庭請)했을 때 백관이 나왔는지 안나왔는지는 단지 각사(各司)의 거안(擧案)을 토대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영순과 김상준의 경우는 순청(巡廳)의 거안 속에 이름이 없었던 탓으로 누락되었기 때문에 순청의 하인을 수금하여 조사 중에 있고, 목장흠의 경우는 당시 분승지(分承旨)였는데, 정원에는 거안을 두는 예가 없었기 때문에 이 이유로 해서 역시 누락되었습니다. 이 밖에 군직(軍職)의 거안에도 불참한 사람이 꼭 없으리라고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낭청으로 하여금 다시 관안(官案)을 토대로 해서 현재 일일이 조사해 내게 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시 일일이 상세하게 조사한 뒤에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정청(庭請)했을 때 백관이 나왔는지 안나왔는지는 단지 각사(各司)의 거안(擧案)을 토대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영순과 김상준의 경우는 순청(巡廳)의 거안 속에 이름이 없었던 탓으로 누락되었기 때문에 순청의 하인을 수금하여 조사 중에 있고, 목장흠의 경우는 당시 분승지(分承旨)였는데, 정원에는 거안을 두는 예가 없었기 때문에 이 이유로 해서 역시 누락되었습니다. 이 밖에 군직(軍職)의 거안에도 불참한 사람이 꼭 없으리라고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낭청으로 하여금 다시 관안(官案)을 토대로 해서 현재 일일이 조사해 내게 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시 일일이 상세하게 조사한 뒤에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정부·육조·관각(館閣)의 당상, 삼사 장관이 빈청에서 모여 다시 폄손하는 절목을 의논한 뒤에 입계하였는데, 좌의정 한효순이 아뢰기를, "박시준(朴時俊) 등의 상소를 정부에 내리신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삼사와 관각의 당상이 유고 중이라서 제때에 회계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신들이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 예조 판서 이이첨, 동지춘추 이경전(李慶全), 우찬성 이충(李沖), 호조 판서 최관(崔瓘), 대사헌 남근(南瑾), 공조 참판 조탁(曺倬), 예조 참판 윤수민(尹壽民), 병조 참판 이덕형(李德泂), 형조 참판 박자흥(朴自興), 호조 참판 경섬(慶暹), 병조 참의 정립(鄭岦), 부제학 정조(鄭造),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 형조 참의 정규(鄭逵), 대사간 윤인(尹訒) 등과 회동하여 다시 더불어 상의하였더니, 모두 말하기를 ‘공주의 호를 낮추고 늠료(廩料)를 지급하고 혼례를 치르는 일은 당초 정했던 의논에 따라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공사가 계하되기를 기다렸다가 고쳐서 부표(付標)하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이때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은 병세가 중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박시준(朴時俊) 등의 상소를 정부에 내리신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삼사와 관각의 당상이 유고 중이라서 제때에 회계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신들이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 예조 판서 이이첨, 동지춘추 이경전(李慶全), 우찬성 이충(李沖), 호조 판서 최관(崔瓘), 대사헌 남근(南瑾), 공조 참판 조탁(曺倬), 예조 참판 윤수민(尹壽民), 병조 참판 이덕형(李德泂), 형조 참판 박자흥(朴自興), 호조 참판 경섬(慶暹), 병조 참의 정립(鄭岦), 부제학 정조(鄭造),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 형조 참의 정규(鄭逵), 대사간 윤인(尹訒) 등과 회동하여 다시 더불어 상의하였더니, 모두 말하기를 ‘공주의 호를 낮추고 늠료(廩料)를 지급하고 혼례를 치르는 일은 당초 정했던 의논에 따라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공사가 계하되기를 기다렸다가 고쳐서 부표(付標)하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이때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은 병세가 중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2월 12일 임인
유학(幼學) 이세영(李世榮)이 상소하기를, "남이준·김호·정양윤·조정립 등이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하며, 두 마음을 품고 기웃거린 죄를 다스려 변방에 유배하소서. 그런 다음에 대간이 사정(私情)을 끼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사람들 및 정청(庭請)에 불참한 간인(奸人)들을 비호하고 감싸 주면서 초계(抄啓)할 때 불공정하게 처리한 죄를 다스림으로써 조정에 경종을 울리고 종묘 사직을 편안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남이준·김호·정양윤·조정립 등이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하며, 두 마음을 품고 기웃거린 죄를 다스려 변방에 유배하소서. 그런 다음에 대간이 사정(私情)을 끼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의논을 거둘 때 저쪽 편을 든 사람들 및 정청(庭請)에 불참한 간인(奸人)들을 비호하고 감싸 주면서 초계(抄啓)할 때 불공정하게 처리한 죄를 다스림으로써 조정에 경종을 울리고 종묘 사직을 편안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우의정 민몽룡이 두 번째 사직소를 올리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비답하였다.
비변사가, 의주 부윤(義州府尹) 이극신(李克信)이 와붕(窩棚)029) 을 설치하고 군사 훈련을 실시해 구탄(丘坦)을 격노케 하였다는 이유로 나문(拿問)하여 정죄(定罪)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註 029] 와붕(窩棚) : 대피소 구실을 한 초소의 일종.
정원이 아뢰기를, "전일 의주 부윤 이극신의 장계 가운데 ‘와붕 때문에 구 유격(丘遊擊)이 깜짝 놀라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는 중국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킨 일을 듣고도 범연히 장계함으로써 입막음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상국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비국(備局)에서는 제때에 즉시 회계했어야 마땅한데, 1월 29일에 비국에 계하한 뒤로 이제 와서야 비로소 회계하였으니, 지극히 느리게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차지 당상을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일 의주 부윤 이극신의 장계 가운데 ‘와붕 때문에 구 유격(丘遊擊)이 깜짝 놀라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는 중국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킨 일을 듣고도 범연히 장계함으로써 입막음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상국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비국(備局)에서는 제때에 즉시 회계했어야 마땅한데, 1월 29일에 비국에 계하한 뒤로 이제 와서야 비로소 회계하였으니, 지극히 느리게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차지 당상을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권반(權盼)·윤의립(尹義立) 등이 정청 대열에 따라 참여한 것이 확실한지 다시 살펴 아뢰라고 정부에 일러라."
"권반(權盼)·윤의립(尹義立) 등이 정청 대열에 따라 참여한 것이 확실한지 다시 살펴 아뢰라고 정부에 일러라."
진사 임헌지(任獻之)가 상소하여, 속히 주문(奏聞)하는 일을 행함으로써 앞으로 올 환란을 예방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소의 내용은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상소를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소의 내용은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상소를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의주 부윤 이극신은 본래 거칠고 사나운 데다 탐욕스러운 사람인데, 외람되게 관방(關防)의 중요한 지역을 제수받고는 군민(軍民)을 수탈하였으므로 계속 인심을 잃어 왔습니다. 게다가 방금 동지사(冬至使) 이상길(李尙吉)의 장계를 보건대 ‘중원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많이 유포하면서 소동을 일으켜 무너져 흩어지고 있다.’ 하였는데, 소문이 지극히 놀랍기만 하니, 그의 죄를 용서하지 말고 죽여야 할 것입니다. 봄·가을로 군사 훈련을 벌이는 것이 예전부터의 예라 하더라도, 군병을 운용하노라면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할텐데 먼저 유격(遊擊)에게 보고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서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여 이런 꼴을 앉아서 초래했단 말입니까. 그리고 와붕을 설치한 것이 조정의 명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처지에서는 십분 자세히 형세를 살펴, 눈·비를 맞지 않을 정도로만 설치했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높고 크게 만들어 사람들이 보고 놀라고 있는 판에 또 군사 훈련까지 벌였으니 상국 백성들이 자연 소동을 벌여 철수해 가게끔 만들었음은 물론 노추(老酋) 역시 핑계 댈 구실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때에 그의 죄를 드러내어 상국에 전문(轉聞)함으로써 혹시라도 품을지 모르는 의심을 풀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가 끝내 난처하게 되는 우환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속히 선전관을 파견하여 이극신의 목을 베어 변경에 머리를 내걸게 함으로써 우리 나라가 조금도 다른 뜻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의논해 처리했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의주 부윤 이극신은 본래 거칠고 사나운 데다 탐욕스러운 사람인데, 외람되게 관방(關防)의 중요한 지역을 제수받고는 군민(軍民)을 수탈하였으므로 계속 인심을 잃어 왔습니다. 게다가 방금 동지사(冬至使) 이상길(李尙吉)의 장계를 보건대 ‘중원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많이 유포하면서 소동을 일으켜 무너져 흩어지고 있다.’ 하였는데, 소문이 지극히 놀랍기만 하니, 그의 죄를 용서하지 말고 죽여야 할 것입니다. 봄·가을로 군사 훈련을 벌이는 것이 예전부터의 예라 하더라도, 군병을 운용하노라면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할텐데 먼저 유격(遊擊)에게 보고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서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여 이런 꼴을 앉아서 초래했단 말입니까. 그리고 와붕을 설치한 것이 조정의 명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처지에서는 십분 자세히 형세를 살펴, 눈·비를 맞지 않을 정도로만 설치했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높고 크게 만들어 사람들이 보고 놀라고 있는 판에 또 군사 훈련까지 벌였으니 상국 백성들이 자연 소동을 벌여 철수해 가게끔 만들었음은 물론 노추(老酋) 역시 핑계 댈 구실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때에 그의 죄를 드러내어 상국에 전문(轉聞)함으로써 혹시라도 품을지 모르는 의심을 풀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가 끝내 난처하게 되는 우환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속히 선전관을 파견하여 이극신의 목을 베어 변경에 머리를 내걸게 함으로써 우리 나라가 조금도 다른 뜻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의논해 처리했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2월 13일 계묘
유학(幼學) 강굉(姜肱) 등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역적 김비(金祕)의 잔당 김영구(金永耉)가 아직도 조정에 남아 있으면서 남몰래 흉역스러운 무뢰배와 관계를 맺고는 장차 불측한 화를 일으키려 하니, 속히 그의 죄를 다스리도록 명하여 전형(典刑)을 분명히 보여 주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역적 김비(金祕)의 잔당 김영구(金永耉)가 아직도 조정에 남아 있으면서 남몰래 흉역스러운 무뢰배와 관계를 맺고는 장차 불측한 화를 일으키려 하니, 속히 그의 죄를 다스리도록 명하여 전형(典刑)을 분명히 보여 주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박신(朴紳)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한보길(韓輔吉)·박몽준(朴夢俊)·김대하(金大夏) 등 3, 4명의 당당한 인사들이 초야에서 잇달아 소를 올린 덕택으로 종묘 사직이 평안해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조경기(趙慶起) 등의 목을 베어 정론(正論)을 주장한 사람들을 목 베라고 청한 그 죄를 통렬하게 징계하시고, 그 다음에 서궁(西宮)을 죽이고 폐하는 법전을 거행하여 신인(神人)의 분노에 답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한보길(韓輔吉)·박몽준(朴夢俊)·김대하(金大夏) 등 3, 4명의 당당한 인사들이 초야에서 잇달아 소를 올린 덕택으로 종묘 사직이 평안해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조경기(趙慶起) 등의 목을 베어 정론(正論)을 주장한 사람들을 목 베라고 청한 그 죄를 통렬하게 징계하시고, 그 다음에 서궁(西宮)을 죽이고 폐하는 법전을 거행하여 신인(神人)의 분노에 답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이국헌, 감역(監役) 이국광 등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이극신이 중국과 틈이 벌어지게 하였는데, 이는 극신이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는 기자헌이 시켜서 한 일입니다. 흉모가 실제로 자헌에게서 나왔다면 어찌 극신의 죄만 다스려서야 되겠습니까. 극신이 자헌과 함께 모의한 것은 극신이 자헌의 천거를 받아 기용되었으니, 극신이 자헌의 흉모를 듣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헌이 흉모를 주도하여 서궁을 떠받들면서 늘 중국 조정을 이용하여 군부(君父)를 협박하다가 공론(公論)에 성토되어 흉모를 이루지 못하자, 또 흉모를 꾸며 낸 뒤 은밀히 극신을 사주(使嗾)해서 상국에 무력 시위를 벌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천자를 격노케 해 그로 하여금 천하의 병력을 동원해서 우리 나라의 국경에 다다르게 한 뒤 군부를 겁주며 해치고 서궁을 떠받들려고 하였으니, 그 흉계가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언관이 자헌을 기필코 북쪽으로 옮기려 했던 것도 이런 화가 있을까 걱정해서였으니, 언관이 미리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심대하다 하겠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속히 자헌과 극신의 목을 베어 빨리 중국 조정에 보내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이극신이 중국과 틈이 벌어지게 하였는데, 이는 극신이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는 기자헌이 시켜서 한 일입니다. 흉모가 실제로 자헌에게서 나왔다면 어찌 극신의 죄만 다스려서야 되겠습니까. 극신이 자헌과 함께 모의한 것은 극신이 자헌의 천거를 받아 기용되었으니, 극신이 자헌의 흉모를 듣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헌이 흉모를 주도하여 서궁을 떠받들면서 늘 중국 조정을 이용하여 군부(君父)를 협박하다가 공론(公論)에 성토되어 흉모를 이루지 못하자, 또 흉모를 꾸며 낸 뒤 은밀히 극신을 사주(使嗾)해서 상국에 무력 시위를 벌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천자를 격노케 해 그로 하여금 천하의 병력을 동원해서 우리 나라의 국경에 다다르게 한 뒤 군부를 겁주며 해치고 서궁을 떠받들려고 하였으니, 그 흉계가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언관이 자헌을 기필코 북쪽으로 옮기려 했던 것도 이런 화가 있을까 걱정해서였으니, 언관이 미리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심대하다 하겠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속히 자헌과 극신의 목을 베어 빨리 중국 조정에 보내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황정필(黃廷弼) 등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속히 이극신을 강변에서 목 베어 상국의 의혹을 해소시키고, 구탄(丘坦)의 참소가 행해지기 전에 속히 주문(奏聞)토록 하소서. 중강(中江)에 장시(場市)를 다시 개설하여 중국인의 화를 풀어 주고, 이세영(李世榮)이 몰래 정관(政官)을 붙잡은 죄를 다스리소서. 공의(公議)를 가탁하여, 원수로 삼는 사람을 공격하며 들추어 내는 유소(儒疏)는 정원(政院)으로 하여금 일체 봉입(捧入)하지 말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속히 이극신을 강변에서 목 베어 상국의 의혹을 해소시키고, 구탄(丘坦)의 참소가 행해지기 전에 속히 주문(奏聞)토록 하소서. 중강(中江)에 장시(場市)를 다시 개설하여 중국인의 화를 풀어 주고, 이세영(李世榮)이 몰래 정관(政官)을 붙잡은 죄를 다스리소서. 공의(公議)를 가탁하여, 원수로 삼는 사람을 공격하며 들추어 내는 유소(儒疏)는 정원(政院)으로 하여금 일체 봉입(捧入)하지 말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계로 연계하기를, "신들이 삼가 이극신의 장계 가운데 와붕의 설치와 관련된 내용을 보건대 ‘유지(有旨)에 따라 강 연안에 간간이 움푹 패어 휴식을 취할 만한 곳에 가가(假家) 한두 칸을 지어 순라(巡邏)하는 장졸(將卒)이 머물 장소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유격(遊擊)의 표문(票文)에 회답한 말을 보니, ‘강 연안 1백 3, 40리에 부득불 와붕을 대충 세워 휴게소로 삼게 하거나, 앉아서 파수를 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는 이미 국왕에게 사유를 갖추어 아뢴 일이다.’ 하였습니다. 장계에는 한두 가가라고 말을 하고 회답하는 정문(呈文)에는 ‘1백 3, 40리에 지은 와붕은 바로 국왕에게 아뢰어 알린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쪽에 한 말과 저쪽에 한 말이 종잡을 수 없이 달라 경중(輕重)이 현격하게 차이가 납니다. 제 죄를 모면할 목적으로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팔아 틈이 벌어지게 하고 화를 일으킨 그 죄는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없으니, 나국할 필요 없이 국경에서 효수(梟首)하여 중국인들의 의혹을 풀고 나라 전체가 당한 무함을 분명히 밝히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극신에 대한 일은 위에서 이미 논정하여 나문(拿問)토록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히 조섭하는 날에 어찌 꼭 번거롭게 소란을 피워야 하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신들이 삼가 이극신의 장계 가운데 와붕의 설치와 관련된 내용을 보건대 ‘유지(有旨)에 따라 강 연안에 간간이 움푹 패어 휴식을 취할 만한 곳에 가가(假家) 한두 칸을 지어 순라(巡邏)하는 장졸(將卒)이 머물 장소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유격(遊擊)의 표문(票文)에 회답한 말을 보니, ‘강 연안 1백 3, 40리에 부득불 와붕을 대충 세워 휴게소로 삼게 하거나, 앉아서 파수를 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는 이미 국왕에게 사유를 갖추어 아뢴 일이다.’ 하였습니다.
장계에는 한두 가가라고 말을 하고 회답하는 정문(呈文)에는 ‘1백 3, 40리에 지은 와붕은 바로 국왕에게 아뢰어 알린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쪽에 한 말과 저쪽에 한 말이 종잡을 수 없이 달라 경중(輕重)이 현격하게 차이가 납니다. 제 죄를 모면할 목적으로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팔아 틈이 벌어지게 하고 화를 일으킨 그 죄는 더 이상 물어볼 것이 없으니, 나국할 필요 없이 국경에서 효수(梟首)하여 중국인들의 의혹을 풀고 나라 전체가 당한 무함을 분명히 밝히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극신에 대한 일은 위에서 이미 논정하여 나문(拿問)토록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히 조섭하는 날에 어찌 꼭 번거롭게 소란을 피워야 하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좌상 한효순(韓孝純)의 뜻으로 검상(檢詳)이 아뢰었다. "권반·윤의립 등이 정청(庭請)의 대열에 따라 참여한 것이 확실한지 다시 살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권반과 윤의립이 정청에 따라 참여했을 때 이를 본 조신(朝臣)들이 많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를 믿을 수가 없어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권반은 ‘1월 5일에 나아가 참여했다.’ 하고, 윤의립은 ‘1월 6일에 나아가 참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거안(擧案)에 기록된 참석 날짜와 같지 않으니, 각사(各司)의 하인이 거안을 사실대로 작성하지 않은 정상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지극히 경악스러우니 중하게 가두고 다스려 하리(下吏)가 함부로 허위 작성하는 일을 징계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권반·윤의립 등이 정청(庭請)의 대열에 따라 참여한 것이 확실한지 다시 살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권반과 윤의립이 정청에 따라 참여했을 때 이를 본 조신(朝臣)들이 많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를 믿을 수가 없어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권반은 ‘1월 5일에 나아가 참여했다.’ 하고, 윤의립은 ‘1월 6일에 나아가 참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거안(擧案)에 기록된 참석 날짜와 같지 않으니, 각사(各司)의 하인이 거안을 사실대로 작성하지 않은 정상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지극히 경악스러우니 중하게 가두고 다스려 하리(下吏)가 함부로 허위 작성하는 일을 징계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감역(監役) 김영구가 상소하여 강굉(姜肱)과 대질 신문을 벌이게 해 주기를 청하였다. 【영구는 기자헌의 조카이다.】
2월 14일 갑진
유학 이구가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공주의 호(號)를 이미 낮춘 이상 서궁(西宮)과 함께 살 수 없으니, 속히 바깥의 집으로 옮겨 두도록 하소서. 사은사(謝恩使)를 엄선하여 급히 보내되, 내용이 비어 있는 주본(奏本) 하나를 구비하고 정본 사자관(正本寫字官)을 대동케 한 뒤 상국의 지방에 이르렀을 때, 만약 대론(大論)에 대하여 참소하는 말이 있거든, 일국 신민의 심정을 대신하여 이 원통함을 씻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공주의 호(號)를 이미 낮춘 이상 서궁(西宮)과 함께 살 수 없으니, 속히 바깥의 집으로 옮겨 두도록 하소서. 사은사(謝恩使)를 엄선하여 급히 보내되, 내용이 비어 있는 주본(奏本) 하나를 구비하고 정본 사자관(正本寫字官)을 대동케 한 뒤 상국의 지방에 이르렀을 때, 만약 대론(大論)에 대하여 참소하는 말이 있거든, 일국 신민의 심정을 대신하여 이 원통함을 씻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2월 15일 을사
전 훈도 김대하(金大河) 등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몇 해 전 여름에 우경방(禹慶邦)·박신(朴紳)·박몽준(朴夢俊)·한보길(韓輔吉)·한천정(韓天挺)·설구인(薛求仁) 등과 함께 큰 일을 앞장서서 의논했을 때에 박신이 기자헌과 박홍도(朴弘道) 등의 집에 은밀히 통지하고 이어 시골로 내려갔으므로, 한보길 등이 관학(館學)에 부탁하여 삭적(削籍)시켰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박신이 대의(大議)가 거의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시골에서 올라와 거꾸로 찬탄하는 소를 올려 전날의 허물을 덮으려 하였습니다. 그의 간특함이 분명하게 드러나 엄폐할 수 없게 되었으니, 박신을 속히 목 베어 두 마음을 품는 신하들로 하여금 경계함이 있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몇 해 전 여름에 우경방(禹慶邦)·박신(朴紳)·박몽준(朴夢俊)·한보길(韓輔吉)·한천정(韓天挺)·설구인(薛求仁) 등과 함께 큰 일을 앞장서서 의논했을 때에 박신이 기자헌과 박홍도(朴弘道) 등의 집에 은밀히 통지하고 이어 시골로 내려갔으므로, 한보길 등이 관학(館學)에 부탁하여 삭적(削籍)시켰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박신이 대의(大議)가 거의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시골에서 올라와 거꾸로 찬탄하는 소를 올려 전날의 허물을 덮으려 하였습니다. 그의 간특함이 분명하게 드러나 엄폐할 수 없게 되었으니, 박신을 속히 목 베어 두 마음을 품는 신하들로 하여금 경계함이 있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김권(金權)을 강계(江界)로, 이신의(李愼儀)를 회령(會寧)으로, 권사공(權士恭)을 창성(昌城)으로, 김지수(金地粹)를 부령(富寧)으로 정배하였다. 전교하였다. "이신의의 흉패스러운 말이 정홍익(鄭弘翼) 등과 차이가 없으니 위리 안치시키도록 하라."
"이신의의 흉패스러운 말이 정홍익(鄭弘翼) 등과 차이가 없으니 위리 안치시키도록 하라."
요동 순안 어사(遼東巡按御史)가 이달 17일에 말을 타고 떠나 동순(東巡)한다고 평안 감사가 치계(馳啓)하여 보고하였다. 이에 형조 참의 정규(鄭逵)를 보내 강에서 영접하게 하였다.
이중계(李重繼)를 지평으로 삼았다.
2월 16일 병오
좌의정 한효순(韓孝純)의 뜻으로 검상이 아뢰기를, "당하(堂下) 백관이 정청(庭請)할 때 나아와 참여한 사람 5백 37인, 갖가지 탈이 생겨 불참한 사람 1백 11인과 시종일관 불참한 사람 10인을 낭청으로 하여금 거안(擧案)에 있는 대로 일일이 조사해 내게 한 뒤, 별단(別單)으로 분류하여 서계(書啓)드리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당하(堂下) 백관이 정청(庭請)할 때 나아와 참여한 사람 5백 37인, 갖가지 탈이 생겨 불참한 사람 1백 11인과 시종일관 불참한 사람 10인을 낭청으로 하여금 거안(擧案)에 있는 대로 일일이 조사해 내게 한 뒤, 별단(別單)으로 분류하여 서계(書啓)드리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예조의 계목(啓目)에,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좌의정 한효순은 ‘이번에 곧바로 주문(奏聞)하는 일은 사체가 지극히 중대하니, 신의 생각에는 널리 조정의 의논을 수렴하여 재신(宰臣)들로 하여금 각각 소견을 진달케 하는 것이 마땅하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영상이야말로 오늘날의 시귀(蓍龜)030) 로서 국가를 위하는 심모 원려는 영상보다 나을 이가 없으니, 급히 하서(下書)하여 자문해 처리하는 것이 온당할 듯싶다.’ 하였고,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은 ‘병들었을 때는 의논드리지 않는 것이 평상시 규례이긴 하나, 실날 같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매우 중차대한 일에 대하여 감히 잘못된 규례만 따르며 의견을 바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신이 삼가 보건대, 해조(該曹)에서 마련한 공사도 사의(事宜)에 합당하여 더 이상 의논할 것이 없다. 그러나 영상에게 물어본 다음에 처리하는 것이 어쩌면 온당할 듯하다. 삼가 상께서 결재하시기에 달렸다.’ 하였습니다. 대신의 의견이 이와 같으니 상께서 재결하여 시행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계하하기를, "이처럼 막중한 국가의 일은 영상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마땅하다. 예조의 당상 1인으로 하여금 급히 달려가 충분히 의논하고 오게 하라." 하였다.
[註 030] 시귀(蓍龜) : 귀감으로 삼을 만한 원로.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좌의정 한효순은 ‘이번에 곧바로 주문(奏聞)하는 일은 사체가 지극히 중대하니, 신의 생각에는 널리 조정의 의논을 수렴하여 재신(宰臣)들로 하여금 각각 소견을 진달케 하는 것이 마땅하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영상이야말로 오늘날의 시귀(蓍龜)030) 로서 국가를 위하는 심모 원려는 영상보다 나을 이가 없으니, 급히 하서(下書)하여 자문해 처리하는 것이 온당할 듯싶다.’ 하였고,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은 ‘병들었을 때는 의논드리지 않는 것이 평상시 규례이긴 하나, 실날 같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매우 중차대한 일에 대하여 감히 잘못된 규례만 따르며 의견을 바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신이 삼가 보건대, 해조(該曹)에서 마련한 공사도 사의(事宜)에 합당하여 더 이상 의논할 것이 없다. 그러나 영상에게 물어본 다음에 처리하는 것이 어쩌면 온당할 듯하다. 삼가 상께서 결재하시기에 달렸다.’ 하였습니다. 대신의 의견이 이와 같으니 상께서 재결하여 시행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계하하기를,
"이처럼 막중한 국가의 일은 영상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마땅하다. 예조의 당상 1인으로 하여금 급히 달려가 충분히 의논하고 오게 하라."
하였다.
비변사의 비밀 계사(祕密啓辭)로 인하여 자문(咨文)을 갖고 가는 관원을 남명우(南溟羽)로 차송하라고 전교하였다. 이극신(李克信)이 구탄(丘坦)을 격노케 하였기 때문에, 요동의 각 아문에 정문(呈文)하여 해명하려 함이었다.
2월 17일 정미
유학 강굉(姜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였다. "전에 올린 소에서 실제로 기자헌의 부도(不道)함을 거론하고, 다음으로 김영구(金永耉)의 죄를 언급했었는데, 정현도(鄭顯道)가 영구를 배척한 일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니 살피지 못한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속히 기자헌의 목을 베어 신인(神人)의 분노를 통쾌하게 씻어 주시고 또 잘못 진달드린 점을 살펴 주시어 영구가 엉뚱하게 걸려 든 원통함을 풀어 주도록 하소서."
"전에 올린 소에서 실제로 기자헌의 부도(不道)함을 거론하고, 다음으로 김영구(金永耉)의 죄를 언급했었는데, 정현도(鄭顯道)가 영구를 배척한 일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니 살피지 못한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속히 기자헌의 목을 베어 신인(神人)의 분노를 통쾌하게 씻어 주시고 또 잘못 진달드린 점을 살펴 주시어 영구가 엉뚱하게 걸려 든 원통함을 풀어 주도록 하소서."
주서 한유상(韓惟翔)이 서계(書啓)하기를, "신이 명을 받들고 합천(陜川) 땅 영의정 정인홍(鄭仁弘)의 집에 내려가서 전유(傳諭)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전후에 걸쳐 사직하는 소를 올린 것이 수십 번 되는데 아직 윤허는 받지 못하고, 또 관직을 옮기는 명만 내려왔다. 그런데 마침 며칠 전부터 근골(筋骨)이 쑤시듯 아프기 시작하여 소명(召命)에 응할 수 없으니 황공하여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의정의 밀부(密符)를 가져 가서 전해 준 뒤에 좌의정의 밀부를 도로 받아 왔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지금 가는 예관(禮官)에게 속히 올라 올 일을 돈유(敦諭)케 하고, 정원에서 이에 대한 말을 잘 작성해서 그에게 부송토록 하라." 하였다.
"신이 명을 받들고 합천(陜川) 땅 영의정 정인홍(鄭仁弘)의 집에 내려가서 전유(傳諭)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전후에 걸쳐 사직하는 소를 올린 것이 수십 번 되는데 아직 윤허는 받지 못하고, 또 관직을 옮기는 명만 내려왔다. 그런데 마침 며칠 전부터 근골(筋骨)이 쑤시듯 아프기 시작하여 소명(召命)에 응할 수 없으니 황공하여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의정의 밀부(密符)를 가져 가서 전해 준 뒤에 좌의정의 밀부를 도로 받아 왔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지금 가는 예관(禮官)에게 속히 올라 올 일을 돈유(敦諭)케 하고, 정원에서 이에 대한 말을 잘 작성해서 그에게 부송토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조 판서에 누가 적합한지 예관으로 하여금 영상에게 가서 아울러 물어 오도록 하라."
"이조 판서에 누가 적합한지 예관으로 하여금 영상에게 가서 아울러 물어 오도록 하라."
전교하기를,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은 늙고 병들었으며, 참판 윤수민(尹壽民)은 금부 당상이다. 그러니 영상에게 올라오라고 돈유하고 주문(奏聞)에 대하여 의논을 거두는 일은 승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속히 갔다가 돌아오게 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동부승지 이위경(李偉卿)을 보내라." 하였다.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은 늙고 병들었으며, 참판 윤수민(尹壽民)은 금부 당상이다. 그러니 영상에게 올라오라고 돈유하고 주문(奏聞)에 대하여 의논을 거두는 일은 승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속히 갔다가 돌아오게 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동부승지 이위경(李偉卿)을 보내라."
하였다.
2월 18일 무신
정원이 아뢰기를, "역변(逆變)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강굉이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김영구를 역적이라고 하면서 소장을 올려 죄를 청했다가 또 금방 해명하며 풀어 주었습니다. 앞의 설(說)에 따른다면 이는 고변(告變)한 것이고, 뒤의 설에 따른다면 이는 무고(誣告)한 것인데, 고변한 뒤에 스스로 무고했다고 승복(承服)했으니, 그가 기망(欺罔)하며 우롱한 정상이 의심할 여지 없이 밝게 드러났습니다. 국청에 명하여 처단케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역변(逆變)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강굉이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김영구를 역적이라고 하면서 소장을 올려 죄를 청했다가 또 금방 해명하며 풀어 주었습니다. 앞의 설(說)에 따른다면 이는 고변(告變)한 것이고, 뒤의 설에 따른다면 이는 무고(誣告)한 것인데, 고변한 뒤에 스스로 무고했다고 승복(承服)했으니, 그가 기망(欺罔)하며 우롱한 정상이 의심할 여지 없이 밝게 드러났습니다. 국청에 명하여 처단케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합계로 연계하여 이극신을 국문하라고 청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금부가 강굉을 잡아다 가두었다. 【강굉은 용렬한 데다 일자 무식꾼이다. 허균이 김영구를 함정에 빠뜨려 기자헌에까지 파급시킬 목적으로 상소를 얽어 만든 다음 강굉에게 주어 올리게 하였다. 그런데 영구는 거칠고 교활한 데다 담략이 있었는데, 칼을 빼 들고 강굉을 잡아 끌고 곧장 허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말하기를 ‘네가 강굉을 부추겨 내가 역적이라고 무함하게 하였는데, 나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니 차라리 먼저 너를 죽이겠다.’ 하고 마침내 칼을 허균의 목에 겨누었다. 이에 허균이 참으로 급해져서 말하기를 ‘내가 해명해 주겠다.’ 하고 즉시 앞의 주장을 뒤엎는 소초(疏草)를 만들어 다시 강굉으로 하여금 소를 올리게 하니 영구가 웃으며 나갔다. 강굉은 결국 무고율(誣告律)에 연좌되어 기시(棄市)되었는데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기가 왜 죽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2월 19일 기유
전교하였다. "유학(幼學) 안정(安瀞)·김대윤(金大胤)·안두원(安斗元)·고인우(高仁友)·이춘형(李春馨)·구숙(具橚)·이용(李溶)·최몽윤(崔夢尹)·이덕홍(李德弘)과 생원 정현세(鄭顯世) 등이 빈 집터를 인경궁(仁慶宮)의 부지로 들였다. 안정은 주부(主簿)에 제수하고 김대윤·안두원·고인우는 직장(直長)에 제수하고, 이춘형·구숙은 봉사(奉事)에 제수하며, 이용·최몽윤·정현세·이덕홍은 직책을 제수하라."
"유학(幼學) 안정(安瀞)·김대윤(金大胤)·안두원(安斗元)·고인우(高仁友)·이춘형(李春馨)·구숙(具橚)·이용(李溶)·최몽윤(崔夢尹)·이덕홍(李德弘)과 생원 정현세(鄭顯世) 등이 빈 집터를 인경궁(仁慶宮)의 부지로 들였다. 안정은 주부(主簿)에 제수하고 김대윤·안두원·고인우는 직장(直長)에 제수하고, 이춘형·구숙은 봉사(奉事)에 제수하며, 이용·최몽윤·정현세·이덕홍은 직책을 제수하라."
옥당이 상차하여 통쾌하게 공론을 따라 이극신을 처단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내 뜻을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을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2월 20일 경술
전교하였다. "근일 양사의 계사(啓辭)에 잘못된 말이 많이 있다. 의주(義州)는 상국과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신임 판관이 하직(下直)한 지 며칠 되지 않을 뿐더러 신임 부윤은 아직 내려가지도 않고 있다. 이런 때에 혹 긴급한 사태라도 발생하면 모르겠으나 어떤 사람이 책응(策應)할 것인가. 아무리 대간이라 하더라도 임금에게 고하는 말은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에서 일개 이극신을 비호해 줄 일이 무엇이기에 즉시 잡아오지 않겠는가. 더구나 신임 부윤이 차출된 지 며칠이 지났으나, 아직 하직하지 않고 있는 데도 양사가 감히 한 마디 말도 재촉하지 못하고 그저 극신을 잡아 오는 일에 미치지 못할세라 자꾸만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나를 귀찮게 하고 있으니, 어찌 그렇게도 사세를 헤아리지 못하는가. 의주에 하루라도 부윤과 판관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신임 부윤을 재촉해서 내려 보내 부임케 한 뒤에 이극신을 즉시 잡아오도록 하라고 양사에 이르라."
"근일 양사의 계사(啓辭)에 잘못된 말이 많이 있다. 의주(義州)는 상국과 경계를 접하고 있는데, 신임 판관이 하직(下直)한 지 며칠 되지 않을 뿐더러 신임 부윤은 아직 내려가지도 않고 있다. 이런 때에 혹 긴급한 사태라도 발생하면 모르겠으나 어떤 사람이 책응(策應)할 것인가. 아무리 대간이라 하더라도 임금에게 고하는 말은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에서 일개 이극신을 비호해 줄 일이 무엇이기에 즉시 잡아오지 않겠는가. 더구나 신임 부윤이 차출된 지 며칠이 지났으나, 아직 하직하지 않고 있는 데도 양사가 감히 한 마디 말도 재촉하지 못하고 그저 극신을 잡아 오는 일에 미치지 못할세라 자꾸만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나를 귀찮게 하고 있으니, 어찌 그렇게도 사세를 헤아리지 못하는가. 의주에 하루라도 부윤과 판관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신임 부윤을 재촉해서 내려 보내 부임케 한 뒤에 이극신을 즉시 잡아오도록 하라고 양사에 이르라."
좌의정 한효순의 뜻으로 검상(檢詳)이 아뢰었다. "전일 ‘조신(朝臣) 가운데 누락된 자들을 상세히 살펴 아뢰라.’고 분부하심에 따라 다시 낭관으로 하여금 병조에서 베껴 보낸 관안(官案)에 입각하여 조사하게 하였더니, 정청(庭請)했을 때의 거안(擧案)이 없으므로 군직(軍職)에 부쳐진 당상(堂上) 가운데 부록인(付祿人) 44인과 무록인(無祿人) 2백 82인을 일일이 분류하여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합니다. 대개 군직은 정직(正職)과 같지 않아서 조사해 낼 근거가 없습니다. 아무리 당상 이상의 부류라 하더라도 무록직이나 체아직(遞兒職)의 경우는 본래 인원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한 번 그 직명(職名)에 부쳐지면 오랜 세월 그대로 있기 마련인데, 그 동안에 상(喪)을 당한 사람도 있고 파산(罷散)된 자도 있으니, 이 숱한 사람들을 다 조사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더구나 당하(堂下) 무록인의 부류는 내삼청(內三廳)에서 승진되어 옮겨 오기도 하고, 청백리의 자손을 그냥 군직에 붙여 주기도 하는데, 사방에 흩어져 있고 서울에 사는 자는 극소수입니다. 가령 잡류(雜類)들까지도 이 속에 포함되는데, 이들은 평상시 공회(公會)에 참석하지 않으므로 일찍이 현직(顯職)을 거쳐 눈에 띄게 드러난 자들 외에는 상고할 만한 증빙 자료가 없기 때문에 그저 관안에 따라 서계드립니다. 그리고 전날 거안을 조사해 낼 당시, 송영구는 시종일관 불참했는 데도 기록에 빠뜨렸고, 박홍소는 탈이 생겨 참여하지 못한 부류에 들어가야 하는 데도 누락되었으므로, 이번에 아울러 추가로 기록하고, 박자응(朴自凝)은 이시발(李時發)의 예에 따라 시종일관 불참한 부류로 기록을 고쳐 다시 바로잡아 서계하게 되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전일 ‘조신(朝臣) 가운데 누락된 자들을 상세히 살펴 아뢰라.’고 분부하심에 따라 다시 낭관으로 하여금 병조에서 베껴 보낸 관안(官案)에 입각하여 조사하게 하였더니, 정청(庭請)했을 때의 거안(擧案)이 없으므로 군직(軍職)에 부쳐진 당상(堂上) 가운데 부록인(付祿人) 44인과 무록인(無祿人) 2백 82인을 일일이 분류하여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합니다.
대개 군직은 정직(正職)과 같지 않아서 조사해 낼 근거가 없습니다. 아무리 당상 이상의 부류라 하더라도 무록직이나 체아직(遞兒職)의 경우는 본래 인원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한 번 그 직명(職名)에 부쳐지면 오랜 세월 그대로 있기 마련인데, 그 동안에 상(喪)을 당한 사람도 있고 파산(罷散)된 자도 있으니, 이 숱한 사람들을 다 조사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더구나 당하(堂下) 무록인의 부류는 내삼청(內三廳)에서 승진되어 옮겨 오기도 하고, 청백리의 자손을 그냥 군직에 붙여 주기도 하는데, 사방에 흩어져 있고 서울에 사는 자는 극소수입니다. 가령 잡류(雜類)들까지도 이 속에 포함되는데, 이들은 평상시 공회(公會)에 참석하지 않으므로 일찍이 현직(顯職)을 거쳐 눈에 띄게 드러난 자들 외에는 상고할 만한 증빙 자료가 없기 때문에 그저 관안에 따라 서계드립니다.
그리고 전날 거안을 조사해 낼 당시, 송영구는 시종일관 불참했는 데도 기록에 빠뜨렸고, 박홍소는 탈이 생겨 참여하지 못한 부류에 들어가야 하는 데도 누락되었으므로, 이번에 아울러 추가로 기록하고, 박자응(朴自凝)은 이시발(李時發)의 예에 따라 시종일관 불참한 부류로 기록을 고쳐 다시 바로잡아 서계하게 되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전교하였다. "내가 병 때문에 침을 맞느라 사목(事目)을 아직 판하하지 못하니, 외방의 진상 단자(進上單子)나 서울 각사(各司)의 공상(供上)을 우선 전례에 따라 그대로 봉진(封進)해야 할 것이니, 이 뜻을 각 해사에 일러라. 그리고 사목 단자가 판하된 뒤에야 서궁(西宮)으로 써서 보내도록 하는 일을 아울러 해조로 하여금 행회(行會)케 하라."
"내가 병 때문에 침을 맞느라 사목(事目)을 아직 판하하지 못하니, 외방의 진상 단자(進上單子)나 서울 각사(各司)의 공상(供上)을 우선 전례에 따라 그대로 봉진(封進)해야 할 것이니, 이 뜻을 각 해사에 일러라. 그리고 사목 단자가 판하된 뒤에야 서궁(西宮)으로 써서 보내도록 하는 일을 아울러 해조로 하여금 행회(行會)케 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동지사(冬至使) 이상길(李尙吉) 등의 장계를 보건대, 중국 조정의 각 아문에서 지금까지 사은사(謝恩使)가 오지 않는 것을 모두 괴이하게 여기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어제 비망기를 내리시면서 재자관(齎咨官)으로 하여금 응대를 잘하게 하라고 하시고 별도로 처치할 것이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니, 성상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실로 보통을 훨씬 뛰어 넘는다 하겠습니다만, 정례(情禮)로 헤아려 보거나 사세를 보더라도 사은사 행차야말로 급히 서둘러 떠나 보냄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칙서(敕書)가 오면 궐문 밖에서 지영(祗迎)하는 예가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조섭하시는 날을 당하여 추위를 무릅쓰고 교외로 거동하시라고 청하는 것이 신자(臣子)된 도리로 볼 때 지극히 안타깝긴 합니다만, 다시 더 생각하시어 속히 궐문 밖에서 칙서를 지영하는 예를 행하신 다음 속히 사신을 떠나 보냄으로써 지체에 따르는 걱정이 없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가까운 시일 안에 조리하여 행하겠다." 하였다.
"지금 동지사(冬至使) 이상길(李尙吉) 등의 장계를 보건대, 중국 조정의 각 아문에서 지금까지 사은사(謝恩使)가 오지 않는 것을 모두 괴이하게 여기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어제 비망기를 내리시면서 재자관(齎咨官)으로 하여금 응대를 잘하게 하라고 하시고 별도로 처치할 것이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니, 성상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실로 보통을 훨씬 뛰어 넘는다 하겠습니다만, 정례(情禮)로 헤아려 보거나 사세를 보더라도 사은사 행차야말로 급히 서둘러 떠나 보냄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칙서(敕書)가 오면 궐문 밖에서 지영(祗迎)하는 예가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조섭하시는 날을 당하여 추위를 무릅쓰고 교외로 거동하시라고 청하는 것이 신자(臣子)된 도리로 볼 때 지극히 안타깝긴 합니다만, 다시 더 생각하시어 속히 궐문 밖에서 칙서를 지영하는 예를 행하신 다음 속히 사신을 떠나 보냄으로써 지체에 따르는 걱정이 없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가까운 시일 안에 조리하여 행하겠다."
하였다.
유학 김정량(金廷亮)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다. "서궁을 폐출하고 속히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신인(神人)의 분을 통쾌하게 풀어 주소서. 그리고 언제나 역적을 토죄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데 억울하게 유배된 이극해(李克楷)의 죄를 풀어 주소서."
"서궁을 폐출하고 속히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신인(神人)의 분을 통쾌하게 풀어 주소서. 그리고 언제나 역적을 토죄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데 억울하게 유배된 이극해(李克楷)의 죄를 풀어 주소서."
예조가 아뢰기를, "앞으로 거행할 대례(大禮)가 중첩해 있는데 상의 건강이 아직도 쾌차되지 못하여, 또 날짜를 뒤로 물려 정하도록 하셨으므로 신들이 나름대로 품어 온 생각을 감히 이렇게 진달드리게 되었습니다. 황제의 칙서가 이미 몇 개월이나 지나도록 교외에 체류되어 있으니 일이 미안하기 그지없는데, 단지 성상의 건강이 좋지 못한 탓으로 오래도록 나가 영접하는 일을 지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로 가운데에 체류시키기보다는 차라리 속히 궐문 안에서 지영하는 것이 정례(情禮)에 합당할 듯합니다. 적전(籍田)을 친경(親耕)하시는 일이야말로 성대한 의식인데, 예로부터 제왕이 반드시 2월 경칩(驚蟄)이 지난 상해일(上亥日)에 이 의식을 행했던 것은, 천하의 농민들에 앞서서 구호(九扈)031) 를 몸소 이끄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밭 갈고 씨 뿌리는 것 역시 한식(寒食) 전에 시작되는만큼, 전에 20일로 정한 것도 원래 늦은 셈인데 지금 또 30일로 물려 정하면 절후상으로 너무 늦어져 온 들판이 모두 경작을 하게 되니, 직접 먼저 나서서 일을 권장하는 뜻이 전혀 없어지게 됩니다. 더구나 대가(大駕)가 임하고 백관이 호종하다 보면 원근에서 구경하러 나오는 사녀(士女)들이 넘쳐 흘러, 이 과정에서 이미 갈아 놓은 민간의 밭이 밟힐 테니 이것 또한 걱정입니다. 이 의식은 성상의 건강이 회복되기 이전에는 결코 진행시킬 수 없으니, 차라리 내년 봄으로 물려 정하는 것이 온당할 듯한데 대신의 의견도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그리고 30일은 바로 국기일(國忌日)이라서 다시 일관(日官)에게 물어보았더니, 3월 20일 이후로는 길일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뜻도 아울러 품달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시어 시행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25일과 28일 사이는 며칠밖에 되지 않으니 칙서를 지영하는 일은 28일로 물려 정하라. 그 전에 내 병세의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별도로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친경하는 일은 20일자 그대로 정하라. 고묘제(告廟祭)는 4월 초승으로 다시 날짜를 가려서 물려 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註 031] 구호(九扈) : 소호(少昊) 때 농상(農桑)에 관련된 9개의 관직.
"앞으로 거행할 대례(大禮)가 중첩해 있는데 상의 건강이 아직도 쾌차되지 못하여, 또 날짜를 뒤로 물려 정하도록 하셨으므로 신들이 나름대로 품어 온 생각을 감히 이렇게 진달드리게 되었습니다.
황제의 칙서가 이미 몇 개월이나 지나도록 교외에 체류되어 있으니 일이 미안하기 그지없는데, 단지 성상의 건강이 좋지 못한 탓으로 오래도록 나가 영접하는 일을 지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로 가운데에 체류시키기보다는 차라리 속히 궐문 안에서 지영하는 것이 정례(情禮)에 합당할 듯합니다.
적전(籍田)을 친경(親耕)하시는 일이야말로 성대한 의식인데, 예로부터 제왕이 반드시 2월 경칩(驚蟄)이 지난 상해일(上亥日)에 이 의식을 행했던 것은, 천하의 농민들에 앞서서 구호(九扈)031) 를 몸소 이끄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밭 갈고 씨 뿌리는 것 역시 한식(寒食) 전에 시작되는만큼, 전에 20일로 정한 것도 원래 늦은 셈인데 지금 또 30일로 물려 정하면 절후상으로 너무 늦어져 온 들판이 모두 경작을 하게 되니, 직접 먼저 나서서 일을 권장하는 뜻이 전혀 없어지게 됩니다. 더구나 대가(大駕)가 임하고 백관이 호종하다 보면 원근에서 구경하러 나오는 사녀(士女)들이 넘쳐 흘러, 이 과정에서 이미 갈아 놓은 민간의 밭이 밟힐 테니 이것 또한 걱정입니다. 이 의식은 성상의 건강이 회복되기 이전에는 결코 진행시킬 수 없으니, 차라리 내년 봄으로 물려 정하는 것이 온당할 듯한데 대신의 의견도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그리고 30일은 바로 국기일(國忌日)이라서 다시 일관(日官)에게 물어보았더니, 3월 20일 이후로는 길일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뜻도 아울러 품달합니다. 상께서 재결하시어 시행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25일과 28일 사이는 며칠밖에 되지 않으니 칙서를 지영하는 일은 28일로 물려 정하라. 그 전에 내 병세의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별도로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친경하는 일은 20일자 그대로 정하라. 고묘제(告廟祭)는 4월 초승으로 다시 날짜를 가려서 물려 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2월 21일 신해
전교하였다. "존호(尊號)를 올릴 때 진배(進排)할 면주(綿紬)와 목면(木綿)을 보건대 지극히 거칠고 얇아 보기에 엉성했을 뿐만 아니라 쓸 수도 없었다. 지금 이후로는 특별히 가려 진배토록 하라. 그리고 특별히 공상(貢上)한 면주와 목면이 모두 이런 식이라면 나라의 용도면에서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는가. 해조로 하여금 특별히 더 살펴 처리케 하라."
"존호(尊號)를 올릴 때 진배(進排)할 면주(綿紬)와 목면(木綿)을 보건대 지극히 거칠고 얇아 보기에 엉성했을 뿐만 아니라 쓸 수도 없었다. 지금 이후로는 특별히 가려 진배토록 하라. 그리고 특별히 공상(貢上)한 면주와 목면이 모두 이런 식이라면 나라의 용도면에서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는가. 해조로 하여금 특별히 더 살펴 처리케 하라."
2월 22일 임자
전교하였다. "친경한 뒤 어느 날에 진하(陳賀)할 것인지, 어찌하여 서계하지 않았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게 하라."
"친경한 뒤 어느 날에 진하(陳賀)할 것인지, 어찌하여 서계하지 않았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게 하라."
전교하였다. "고묘제를 4월 2일로 물려서 행하기로 한 일을, 선전관을 파견해 급히 각도에 하유케 하라."
"고묘제를 4월 2일로 물려서 행하기로 한 일을, 선전관을 파견해 급히 각도에 하유케 하라."
2월 23일 계축
유학(幼學) 김경(金璥)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다. "속히 서궁에 대한 절목을 판하하시고, 종묘에 고하는 날짜를 앞당겨 정하시며, 이와 함께 묘당을 꾸짖어 속히 폐출하는 법전을 끝내게 함으로써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그리고 정원을 꾸짖어 제 변명을 하거나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상소는 봉입(封入)하지 말게 하여 시끄러운 단서가 잠잠해지게 하소서."
"속히 서궁에 대한 절목을 판하하시고, 종묘에 고하는 날짜를 앞당겨 정하시며, 이와 함께 묘당을 꾸짖어 속히 폐출하는 법전을 끝내게 함으로써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그리고 정원을 꾸짖어 제 변명을 하거나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상소는 봉입(封入)하지 말게 하여 시끄러운 단서가 잠잠해지게 하소서."
유학 최숙(崔淑)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먼저 유의남(柳義男)의 ‘무모(無母)’에 대한 설(說)을 신문하여 법전을 분명하게 보이시고, 다음으로 이간(李衎)의 ‘불인(不忍)’, 성시량(成時亮)의 ‘심의(心議)’, 민진흥(閔震興)의 ‘결신(潔身)’ 따위 말에 의한 죄를 다스리신 다음에, 속히 서궁에 대한 절목을 내리시고 즉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시어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하였다. 【이때 이이첨과 허균이 각각 흉도의 우두머리가 되어 서로들 시기하였는데, 허균이 이첨의 무리인 유의남의 말을 최숙으로 하여금 적발해 내게 한 뒤 날조해서 소를 올리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반정(反正)한 뒤에 최숙을 죄주려 하였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어떤 이는 혹시 허균이 만들어 낸 인명(人名)이 아닌가 의심을 품기도 하였다.】
"먼저 유의남(柳義男)의 ‘무모(無母)’에 대한 설(說)을 신문하여 법전을 분명하게 보이시고, 다음으로 이간(李衎)의 ‘불인(不忍)’, 성시량(成時亮)의 ‘심의(心議)’, 민진흥(閔震興)의 ‘결신(潔身)’ 따위 말에 의한 죄를 다스리신 다음에, 속히 서궁에 대한 절목을 내리시고 즉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시어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하였다. 【이때 이이첨과 허균이 각각 흉도의 우두머리가 되어 서로들 시기하였는데, 허균이 이첨의 무리인 유의남의 말을 최숙으로 하여금 적발해 내게 한 뒤 날조해서 소를 올리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반정(反正)한 뒤에 최숙을 죄주려 하였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어떤 이는 혹시 허균이 만들어 낸 인명(人名)이 아닌가 의심을 품기도 하였다.】
2월 24일 갑인
생원 박홍익(朴弘益)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다. "지난해 진사 유두립(柳斗立)의 집에서 가요분축연(歌謠分軸宴)을 열었을 때 신도 가서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하인준(河仁俊)이 먼저 일어나자 유의남이 그를 지목하여 말하기를 ‘어미 없는 사람[無母之人]032) 이 나갔으니 이제 술을 마셔도 되겠다…….’고 하였는데, 이전방(李傳芳)이 옷을 잡아 당기며 말리자 의남이 대답하기를 ‘촌놈이라 이처럼 곧이곧대로 말을 한다.’ 하였습니다. 그 말이 흉악·참혹하였으므로 신이 즉시 진달드리려 하였습니다만, 큰 판국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이 혐의롭게 여겨져 지금까지 꾹 참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최숙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적으로 신의 말 때문에 나온 듯하므로 감히 와서 진달드리게 되었습니다."
[註 032] 어미 없는 사람[無母之人] : 당시 인목 대비(仁穆大妃)의 폐출을 주장했던 사람이라는 뜻임.
"지난해 진사 유두립(柳斗立)의 집에서 가요분축연(歌謠分軸宴)을 열었을 때 신도 가서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하인준(河仁俊)이 먼저 일어나자 유의남이 그를 지목하여 말하기를 ‘어미 없는 사람[無母之人]032) 이 나갔으니 이제 술을 마셔도 되겠다…….’고 하였는데, 이전방(李傳芳)이 옷을 잡아 당기며 말리자 의남이 대답하기를 ‘촌놈이라 이처럼 곧이곧대로 말을 한다.’ 하였습니다. 그 말이 흉악·참혹하였으므로 신이 즉시 진달드리려 하였습니다만, 큰 판국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이 혐의롭게 여겨져 지금까지 꾹 참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최숙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적으로 신의 말 때문에 나온 듯하므로 감히 와서 진달드리게 되었습니다."
진사 민진흥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최숙과 왕옥(王獄)에 함께 넘겨 결신(潔身)에 대한 설을 조사받도록 해주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생원 정기(鄭淇)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다. "어제 최숙의 상소에 ‘이간(李衎)이 차마 억지로 따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정기에게 말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들은 곡절을 진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 최숙의 상소에 ‘이간(李衎)이 차마 억지로 따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정기에게 말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들은 곡절을 진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교하였다. "친경(親耕)은 드물게 있는 성대한 의식이니, 예행 연습할 때 십분 상세히 살펴 강구해서 익히도록 예조에 이르라."
"친경(親耕)은 드물게 있는 성대한 의식이니, 예행 연습할 때 십분 상세히 살펴 강구해서 익히도록 예조에 이르라."
생원 이전방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다. "어제 최숙의 상소를 보고 일단 유두립의 집에 가서 유의남의 ‘무모’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 보았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무모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못들었고 박홍익도 듣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무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는데, 부끄러워하면서 ‘의남을 위해서는 죽음도 달갑게 여기겠다.’고 말했다니, 이는 앞뒤의 말이 서로 어긋나는 것으로서 정말 괴이하다고 하겠습니다. 한 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 그 말을 들은 자가 한 사람이고 듣지 못한 자가 네 사람이었으니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신 및 유두립·민진흥 등과 박홍익을 일시에 대질 신문시켜 진위(眞僞)를 가리도록 하소서."
"어제 최숙의 상소를 보고 일단 유두립의 집에 가서 유의남의 ‘무모’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 보았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무모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못들었고 박홍익도 듣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무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는데, 부끄러워하면서 ‘의남을 위해서는 죽음도 달갑게 여기겠다.’고 말했다니, 이는 앞뒤의 말이 서로 어긋나는 것으로서 정말 괴이하다고 하겠습니다. 한 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 그 말을 들은 자가 한 사람이고 듣지 못한 자가 네 사람이었으니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신 및 유두립·민진흥 등과 박홍익을 일시에 대질 신문시켜 진위(眞僞)를 가리도록 하소서."
진사 정성(鄭晟)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다. "‘사목(事目)이 판하되기 전까지는 서궁에 대한 진상을 예전대로 하고 그만두지 말라.’는 이 명이 한 번 내려지자 뭇 사람들이 놀라고 있는데, 묘당과 양사에서 감히 집론(執論)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잘못되었습니다. 속히 절목을 판하하시어 간악한 무리들의 희망을 누르고 폐출하는 전형과 주문(奏聞)하는 일을 즉각 거행하소서. 그리고 정창연(鄭昌衍) 이하에 대해서는 무거운 율(律)을 적용하시어 임금의 위엄을 세우고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사목(事目)이 판하되기 전까지는 서궁에 대한 진상을 예전대로 하고 그만두지 말라.’는 이 명이 한 번 내려지자 뭇 사람들이 놀라고 있는데, 묘당과 양사에서 감히 집론(執論)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잘못되었습니다. 속히 절목을 판하하시어 간악한 무리들의 희망을 누르고 폐출하는 전형과 주문(奏聞)하는 일을 즉각 거행하소서. 그리고 정창연(鄭昌衍) 이하에 대해서는 무거운 율(律)을 적용하시어 임금의 위엄을 세우고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2월 25일 을묘
유학(幼學) 최숙(崔淑)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였다. "지금 민진흥(閔震興)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변론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다시 ‘결신(潔身)’이라는 말의 출처를 진달드립니다. 제생(諸生)에게 문의하신 뒤에, 시종일관 숨기면서 임금을 속인 진흥의 죄를 속히 다스리소서."
"지금 민진흥(閔震興)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변론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다시 ‘결신(潔身)’이라는 말의 출처를 진달드립니다. 제생(諸生)에게 문의하신 뒤에, 시종일관 숨기면서 임금을 속인 진흥의 죄를 속히 다스리소서."
사과(司果) 임위(任瑋)가 상소하여,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는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하였다.
유학 한영(韓英)이 상소하여, 그 아비 한수겸(韓守謙)이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는 원통함을 호소하였다.
허통(許通)된 이시호(李時豪)가 상소하여, 그 아비 사정(司正) 이계남(李桂男)이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는 원통함을 호소하였다.
2월 26일 병진
청산(靑山)의 유학(幼學) 김형(金炯)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서궁은 열 가지 죄를 지었으니 신민(臣民)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속히 폐출하는 법전을 행하시어 바깥 집에 놔 두고 위리 안치하여 굳게 지키도록 하는 한편,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하사한 고명과 관복을 급히 도로 뺏은 뒤에 그 죄에 맞게 벌 줌으로써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전날 정청한 것이야말로 온 나라가 함께 분노하며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는 자로서 수수방관하며 시종일관 정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있었으니,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을 적발하여 모두 목을 베라고 명함으로써 인신(人臣)의 의리를 밝히도록 하소서. 그리고 도깨비 같은 원궤를 엄히 국문하여 간악한 흉도들의 꾀를 막고 충직한 이들이 받은 무함을 밝혀 주도록 하소서." 하였다. 【김형은 곧 이정귀(李廷龜)의 재종매(再從妹) 아들이다. 김형의 어미는 장차 정귀가 멀리 유배되리라는 말을 듣고 김형을 시켜 서울에 들어가 위문케 하였다. 김형이 허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는데 허균이 이익으로 김형을 유인한 뒤 이 소를 만들어 김형에게 올리게 하였다, 어리석어 글자 한 자 모르는 김형이 드디어 정원(政院)에 소를 바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정귀의 집에 갔다가 거기에서 비로소 그 소 안에 목을 베라고 청하는 말이 들어 있음을 알자 마침내 두렵고 부끄러워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싸 안고 도망쳤는데, 집에 돌아가자 또 그 어미와 제부(諸父)가 모두 꾸짖으며 매를 때렸다. 김형이 일단 죄를 얻은 뒤로 집안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자 승사(僧舍)에 떠돌며 살다가 몇 년이 지나 죽고 말았다. 아, 강굉이나 김형 같은 자들을 통해서 세변(世變)이 극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겠다.】
"서궁은 열 가지 죄를 지었으니 신민(臣民)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속히 폐출하는 법전을 행하시어 바깥 집에 놔 두고 위리 안치하여 굳게 지키도록 하는 한편,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하사한 고명과 관복을 급히 도로 뺏은 뒤에 그 죄에 맞게 벌 줌으로써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하소서. 전날 정청한 것이야말로 온 나라가 함께 분노하며 역적을 토벌하려는 의리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임금의 밥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는 자로서 수수방관하며 시종일관 정청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있었으니,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자들을 적발하여 모두 목을 베라고 명함으로써 인신(人臣)의 의리를 밝히도록 하소서. 그리고 도깨비 같은 원궤를 엄히 국문하여 간악한 흉도들의 꾀를 막고 충직한 이들이 받은 무함을 밝혀 주도록 하소서."
하였다. 【김형은 곧 이정귀(李廷龜)의 재종매(再從妹) 아들이다. 김형의 어미는 장차 정귀가 멀리 유배되리라는 말을 듣고 김형을 시켜 서울에 들어가 위문케 하였다. 김형이 허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는데 허균이 이익으로 김형을 유인한 뒤 이 소를 만들어 김형에게 올리게 하였다, 어리석어 글자 한 자 모르는 김형이 드디어 정원(政院)에 소를 바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정귀의 집에 갔다가 거기에서 비로소 그 소 안에 목을 베라고 청하는 말이 들어 있음을 알자 마침내 두렵고 부끄러워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싸 안고 도망쳤는데, 집에 돌아가자 또 그 어미와 제부(諸父)가 모두 꾸짖으며 매를 때렸다. 김형이 일단 죄를 얻은 뒤로 집안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자 승사(僧舍)에 떠돌며 살다가 몇 년이 지나 죽고 말았다. 아, 강굉이나 김형 같은 자들을 통해서 세변(世變)이 극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겠다.】
2월 27일 정사
의금부가 아뢰기를, "정원이 좌상의 뜻으로 아뢰기를 ‘이춘기(李春祺)의 세 아들을 연좌(連坐)시키는 일은 우선 우상과 판의금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이춘기의 일은 대신에게만 의논해 아뢰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좌의정에게 문의하였더니 ‘《대명률(大明律)》 안에 「역적의 아들로 나이 16세 이상일 경우에는 교수형에 처하고 15세 이하일 경우에는 종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며, 또 「범죄 발생 당시에는 어렸고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에는 장성했을 경우에는 어렸을 때를 기준하여 논한다.」고 되어 있다. 역적 이춘기의 아들 이춘남(李春男)·이중남(李仲男)·이종남(李終男)의 나이를 금부로 하여금 상고하게 한 뒤에 율문대로 처치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고, 우의정에게 문의하였더니 ‘역적인 이상 연좌를 시켜야 하고 연좌를 시키는 이상 그에 대한 율문이 있을 것이니, 일체 율문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삼가 상의 재결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대신의 의논이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의논드린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정원이 좌상의 뜻으로 아뢰기를 ‘이춘기(李春祺)의 세 아들을 연좌(連坐)시키는 일은 우선 우상과 판의금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이춘기의 일은 대신에게만 의논해 아뢰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좌의정에게 문의하였더니 ‘《대명률(大明律)》 안에 「역적의 아들로 나이 16세 이상일 경우에는 교수형에 처하고 15세 이하일 경우에는 종으로 삼는다.」고 하였으며, 또 「범죄 발생 당시에는 어렸고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에는 장성했을 경우에는 어렸을 때를 기준하여 논한다.」고 되어 있다. 역적 이춘기의 아들 이춘남(李春男)·이중남(李仲男)·이종남(李終男)의 나이를 금부로 하여금 상고하게 한 뒤에 율문대로 처치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고, 우의정에게 문의하였더니 ‘역적인 이상 연좌를 시켜야 하고 연좌를 시키는 이상 그에 대한 율문이 있을 것이니, 일체 율문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삼가 상의 재결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대신의 의논이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의논드린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2월 28일 무오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지난번 연위사(延慰使) 정규(鄭逵)의 장계를 보건대, 역로(驛路)가 형편 없어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번에 황연 감사(黃延監司) 유순익(柳舜翼)의 장계를 보니 여러 역참(驛站)의 피폐된 상황을 극력 말하면서 7참(站)이 쓸쓸하게 된 정상을 진달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명령은 오직 우전(郵傳)을 통해서만 행해지는데, 해서(海西)가 이런 정도라면 관서(關西)는 더욱 심할 것입니다. 신이 매번 서로(西路) 왕래자를 통해 듣건대, 대동(大同)과 어천(魚川)에는 근년 이래로 누차에 걸쳐 적임자 아닌 사람들이 그곳을 맡으면서 아무 거리낌없이 역졸(驛卒)을 침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호(馬戶)에 잘 달리는 상등마(上等馬)가 있으면 찰방(察訪)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어 그 말을 퇴마(退馬)라 지목하여 강제로 정해 개립(改立)033) 케 하면서 사사로이 부탁한 사람의 관단마(款段馬)034) 로 공공연히 대신케 하는 한편, 마호의 주인으로 하여금 3동(同)의 목면(木綿)을 갖추어 납부케 하는 동시에, 본래의 말마저 빼앗아서 그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미 말을 빼앗은 데다가, 또 목면을 징수하고 있으므로 본래 말을 분양하여 복호(復戶)를 받아 겨우 살아가고 있는 마호의 처지에는 말을 잃고 생활이 기울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관군(館軍)과 여정(餘丁)이 1년에 납부하는 가포(價布)의 양이 매우 많은데, 이는 말을 무역할 때 값으로 치를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찰방이 사사로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겨우 살아가는 관군들이 형세상 그 가포를 마련해 낼 길이 없어 서로 이끌어 도망하고 있습니다. 중화(中和)의 생양관(生陽關) 한 역을 예로 들어 말하건대,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이 기유년에 대동 찰방(大同察訪)으로 있을 당시, 생양의 관군(關軍) 장정이 8백 명이나 입역(立役)하고 있었는데, 현존하는 숫자가 고작 5호(戶)밖에 되지 않는다 하니, 다른 역의 상황도 이를 의거하여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왕래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를 직접 확인하여 마음속으로 탄식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목(耳目) 구실을 하는 관원들 역시 이에 대하여 모두 익히 듣고 있을텐데 한 번도 처치하도록 청하는 계사를 올리지 않았으니, 탐관오리를 어떻게 징계하여 다스리겠으며, 뿔뿔이 흩어지는 역졸들을 어떻게 무마하여 안정시키겠습니까. 대동과 어천의 찰방만은 예전부터 꼭 일찍이 시종(侍從)을 거친 명망이 있는 자를 차송(差送)했으니, 그렇게 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리석고 둔한 미관(微官)으로 구차하게 충원하여 차송하고 있으니 역로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지금 만약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여 찰방의 탐학 여부 및 역로의 폐단을 조사한 뒤 일일이 계문케 해서 그 실상을 파악하고, 그런 뒤에 명망이 있는 대시(臺侍)를 뽑아 보내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을 바꾸어 고질적인 폐단을 통렬히 개혁케 한다면, 도망쳤던 관군을 도로 모아들이고 역로를 다시 소생시키는 일이 뭐 어렵겠습니까. 이렇듯 관리가 타락하고 백성이 곤궁한 때를 당한 것은 서로(西路)만 그럴 뿐이 아니라 팔로(八路)의 폐단도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병조로 하여금 마적(馬籍) 및 관군(館軍)의 명부를 조사하게 한 뒤, 만약 도망친 말이 생겼는 데도 아직 충원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찰방을 해유(解由)할 때 이에 따라 처치토록 하고, 본역 찰방으로 하여금 도망친 관군을 추쇄(推刷)하여 매년 연말에 일일이 병조에 보고케 하며, 추쇄하지 못하면 경중에 따라 입계(入啓)해서 죄를 과(科)하는 일 따위에 대하여 승전(承傳)을 받들어 시행케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케 하라." 하였다. 【각 역(各驛)에서 말을 바치도록 하여 이익을 탐한 것이야말로 모두 박정길 등이 한 짓으로서 그 집안의 부유한 정도가 왕궁과 동등하였다. 그 딸을 이원엽(李元燁)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때 시아비를 뵐 때의 예물이 모두 3백여 기(器)나 되었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굉장한 구경거리라고 하였으며, 세력 있는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어 그 본을 따르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역로의 폐단을 극력 진달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보이다니 정말 간교한 인간이라 하겠다.】
[註 033] 개립(改立) : 대마(代馬)로 채우는 것.[註 034] 관단마(款段馬) : 굼뜬 말.
"지난번 연위사(延慰使) 정규(鄭逵)의 장계를 보건대, 역로(驛路)가 형편 없어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번에 황연 감사(黃延監司) 유순익(柳舜翼)의 장계를 보니 여러 역참(驛站)의 피폐된 상황을 극력 말하면서 7참(站)이 쓸쓸하게 된 정상을 진달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명령은 오직 우전(郵傳)을 통해서만 행해지는데, 해서(海西)가 이런 정도라면 관서(關西)는 더욱 심할 것입니다.
신이 매번 서로(西路) 왕래자를 통해 듣건대, 대동(大同)과 어천(魚川)에는 근년 이래로 누차에 걸쳐 적임자 아닌 사람들이 그곳을 맡으면서 아무 거리낌없이 역졸(驛卒)을 침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호(馬戶)에 잘 달리는 상등마(上等馬)가 있으면 찰방(察訪)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어 그 말을 퇴마(退馬)라 지목하여 강제로 정해 개립(改立)033) 케 하면서 사사로이 부탁한 사람의 관단마(款段馬)034) 로 공공연히 대신케 하는 한편, 마호의 주인으로 하여금 3동(同)의 목면(木綿)을 갖추어 납부케 하는 동시에, 본래의 말마저 빼앗아서 그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미 말을 빼앗은 데다가, 또 목면을 징수하고 있으므로 본래 말을 분양하여 복호(復戶)를 받아 겨우 살아가고 있는 마호의 처지에는 말을 잃고 생활이 기울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관군(館軍)과 여정(餘丁)이 1년에 납부하는 가포(價布)의 양이 매우 많은데, 이는 말을 무역할 때 값으로 치를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찰방이 사사로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겨우 살아가는 관군들이 형세상 그 가포를 마련해 낼 길이 없어 서로 이끌어 도망하고 있습니다. 중화(中和)의 생양관(生陽關) 한 역을 예로 들어 말하건대,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이 기유년에 대동 찰방(大同察訪)으로 있을 당시, 생양의 관군(關軍) 장정이 8백 명이나 입역(立役)하고 있었는데, 현존하는 숫자가 고작 5호(戶)밖에 되지 않는다 하니, 다른 역의 상황도 이를 의거하여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왕래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를 직접 확인하여 마음속으로 탄식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목(耳目) 구실을 하는 관원들 역시 이에 대하여 모두 익히 듣고 있을텐데 한 번도 처치하도록 청하는 계사를 올리지 않았으니, 탐관오리를 어떻게 징계하여 다스리겠으며, 뿔뿔이 흩어지는 역졸들을 어떻게 무마하여 안정시키겠습니까.
대동과 어천의 찰방만은 예전부터 꼭 일찍이 시종(侍從)을 거친 명망이 있는 자를 차송(差送)했으니, 그렇게 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리석고 둔한 미관(微官)으로 구차하게 충원하여 차송하고 있으니 역로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지금 만약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여 찰방의 탐학 여부 및 역로의 폐단을 조사한 뒤 일일이 계문케 해서 그 실상을 파악하고, 그런 뒤에 명망이 있는 대시(臺侍)를 뽑아 보내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을 바꾸어 고질적인 폐단을 통렬히 개혁케 한다면, 도망쳤던 관군을 도로 모아들이고 역로를 다시 소생시키는 일이 뭐 어렵겠습니까.
이렇듯 관리가 타락하고 백성이 곤궁한 때를 당한 것은 서로(西路)만 그럴 뿐이 아니라 팔로(八路)의 폐단도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병조로 하여금 마적(馬籍) 및 관군(館軍)의 명부를 조사하게 한 뒤, 만약 도망친 말이 생겼는 데도 아직 충원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찰방을 해유(解由)할 때 이에 따라 처치토록 하고, 본역 찰방으로 하여금 도망친 관군을 추쇄(推刷)하여 매년 연말에 일일이 병조에 보고케 하며, 추쇄하지 못하면 경중에 따라 입계(入啓)해서 죄를 과(科)하는 일 따위에 대하여 승전(承傳)을 받들어 시행케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케 하라."
하였다. 【각 역(各驛)에서 말을 바치도록 하여 이익을 탐한 것이야말로 모두 박정길 등이 한 짓으로서 그 집안의 부유한 정도가 왕궁과 동등하였다. 그 딸을 이원엽(李元燁)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때 시아비를 뵐 때의 예물이 모두 3백여 기(器)나 되었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굉장한 구경거리라고 하였으며, 세력 있는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어 그 본을 따르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역로의 폐단을 극력 진달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보이다니 정말 간교한 인간이라 하겠다.】
[註 033] 개립(改立) : 대마(代馬)로 채우는 것.[註 034] 관단마(款段馬) : 굼뜬 말.
전교하였다. "양궁(兩宮) 영건(營建) 공사가 날이 갈수록 세월만 보내는 꼴이 되고 있다. 다시 더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라고 도감에게 일러라."
"양궁(兩宮) 영건(營建) 공사가 날이 갈수록 세월만 보내는 꼴이 되고 있다. 다시 더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라고 도감에게 일러라."
전교하였다. "친경(親耕)한 뒤에 환궁하자면 필시 날이 저물 것이니, 그 날 바로 백관이 진하(陳賀)하면 야심(夜深)해질 우려가 있다. 이튿날 아침 오전에는 백관이 와서 진하하고 오후에는 세자와 세자빈이 진하하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하니,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급히 의논해 처리케 하고 선전관을 파견하여 각도(各道)에 하유토록 하라. 그리고 친경한 뒤에 세자와 세자빈이 진하할 때 치사(致詞)가 없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게 하라."
"친경(親耕)한 뒤에 환궁하자면 필시 날이 저물 것이니, 그 날 바로 백관이 진하(陳賀)하면 야심(夜深)해질 우려가 있다. 이튿날 아침 오전에는 백관이 와서 진하하고 오후에는 세자와 세자빈이 진하하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하니,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급히 의논해 처리케 하고 선전관을 파견하여 각도(各道)에 하유토록 하라. 그리고 친경한 뒤에 세자와 세자빈이 진하할 때 치사(致詞)가 없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게 하라."
2월 29일 기미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사간 신광업, 장령 한영·강수, 지평 신칙·이중계, 헌납 박종주, 정언 이원여·서국정이 아뢰기를, "어제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의 계사를 보건대, 그 속에 ‘이목(耳目)의 관원 또한 모두 익히 들었을 텐데 일찍이 처치하라고 논계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른바 이목의 관원이란 양사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신들이 외람되이 양사의 대열에 끼어 있으면서 찰방의 탐포(貪暴)함과 역로를 왕래하는 사람들을 통해 과연 익히 듣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 조섭하시는 중이기 때문에 미처 논열(論列)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런 때에 후설(喉舌)의 신하로부터 미리 앞서 배척을 받고 말았으니, 신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큽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윤인 등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어제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의 계사를 보건대, 그 속에 ‘이목(耳目)의 관원 또한 모두 익히 들었을 텐데 일찍이 처치하라고 논계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른바 이목의 관원이란 양사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신들이 외람되이 양사의 대열에 끼어 있으면서 찰방의 탐포(貪暴)함과 역로를 왕래하는 사람들을 통해 과연 익히 듣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 조섭하시는 중이기 때문에 미처 논열(論列)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런 때에 후설(喉舌)의 신하로부터 미리 앞서 배척을 받고 말았으니, 신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큽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윤인 등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사직 참봉 유노증(兪魯曾)이 상소하여, 그 아비 유대희(兪大禧)가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는 원통함을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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