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23권, 광해 10년 1618년 1월

싸라리리 2026. 1. 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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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신유

유학(幼學) 최숙(崔淑)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이병(李覮)은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으로서 그의 간악한 모의와 비밀스러운 계책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 데도, 형(刑)으로 바루어지지 않은 채 연줄을 타고 현직(顯職)에 올랐으니, 그의 처지에서는 안면을 고치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바쳤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론(大論)을 담당한다고 거짓으로 일컫고는 급급하게 사흉(四兇)에 대한 논계를 정지시켰는가 하면, 끝내 폐출(廢黜)에 대한 의논을 꺼내지도 않았으니, 먼저 이병에게 주벌(誅罰)을 가하여 임금을 잊은 죄를 바로잡으소서. 그런 다음에 삼사(三司)가 폐출에 관한 논의를 발동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고, 곧장 서궁(西宮)을 폐출하여 천하에 사과토록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이병(李覮)은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으로서 그의 간악한 모의와 비밀스러운 계책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 데도, 형(刑)으로 바루어지지 않은 채 연줄을 타고 현직(顯職)에 올랐으니, 그의 처지에서는 안면을 고치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바쳤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론(大論)을 담당한다고 거짓으로 일컫고는 급급하게 사흉(四兇)에 대한 논계를 정지시켰는가 하면, 끝내 폐출(廢黜)에 대한 의논을 꺼내지도 않았으니, 먼저 이병에게 주벌(誅罰)을 가하여 임금을 잊은 죄를 바로잡으소서. 그런 다음에 삼사(三司)가 폐출에 관한 논의를 발동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고, 곧장 서궁(西宮)을 폐출하여 천하에 사과토록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1월 2일 임술

유학 정지문(鄭之問)이 상소하기를, "속히 호오(好惡)의 바른 도리를 보여 주어 충량(忠良)한 기상을 일으켜 세우시고, 빨리 서궁의 죄를 태묘(太廟)에 고하시고 곧바로 폐출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속히 호오(好惡)의 바른 도리를 보여 주어 충량(忠良)한 기상을 일으켜 세우시고, 빨리 서궁의 죄를 태묘(太廟)에 고하시고 곧바로 폐출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대사헌 이병이 아뢰기를, "삼가 최숙이 상소한 대략적인 내용을 보건대, 신의 이름을 끄집어 내어 극도로 배척을 가하면서, 심지어는 이홍로의 심복이라고까지 말을 하였는데, 홍로의 심복이라면 이는 곧 대역(大逆)인 셈입니다. 인신(人臣)으로서 대역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어떻게 스스로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이 이렇게까지 극도에 이르렀으니, 신이 비록 의리를 떨쳐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싶어도, 어찌 감히 무릅쓰고 자리를 그냥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신의 삭직(削職)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가 최숙이 상소한 대략적인 내용을 보건대, 신의 이름을 끄집어 내어 극도로 배척을 가하면서, 심지어는 이홍로의 심복이라고까지 말을 하였는데, 홍로의 심복이라면 이는 곧 대역(大逆)인 셈입니다. 인신(人臣)으로서 대역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어떻게 스스로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이 이렇게까지 극도에 이르렀으니, 신이 비록 의리를 떨쳐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싶어도, 어찌 감히 무릅쓰고 자리를 그냥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신의 삭직(削職)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대사헌 이병(李覮), 대사간 윤인(尹訒), 집의 임건(林健), 사간 남이준(南以俊), 장령 한영(韓詠)·강수(姜𢢝), 지평 정양윤(鄭良胤)·김호(金昈),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이강(李茳)·박종주(朴宗胄)가 아뢰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변이 가장 가까운 내부에서 일어났습니다. 무고(巫蠱)하고 저주(咀呪)한 일이 궁궐에 낭자하고 밖으로 역모에 응한 것이 적의 공초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 꾀하여 성상을 모해하려 한 정상이 불을 보듯 환히 밝혀졌습니다. 유릉(裕陵)을 눌러 이기려고 흉악한 짓을 저지른 절차를 보면 차마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할 점이 있는데, 이는 박동량(朴東亮)의 공초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수호군(守護軍) 등도 모두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 것입니다. 이 어찌 종묘 사직에만 죄를 지은 것이겠습니까. 그야말로 신민들 모두가 토죄하면서 용서해서는 안될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시비가 밝혀지지 않고 의리가 어두워진 나머지, 한갓 명위(名位)에 대한 상례(常例)에 구애를 받고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대의에 대해서는 모르는 채 각자 사설(邪說)을 세워 듣는 이들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충신의 사기를 저상시키고 의사(義士)의 입을 다물게 한 지 어느덧 6년이 지나면서, 오래도록 정론(正論)은 암흑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그러다가 초야에서 항장(抗章)을 올리고 신서(臣庶)가 대궐문 앞에서 부르짖으며 화근을 제거해서 원수를 끊어버리도록 청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시일만 끌면서 판국을 마무리할 기약이 없게 되자 사람들은 위구(危懼)스럽게 생각하고 선비들의 마음은 식은 재처럼 되었습니다. 간악한 자가 날로 흔단을 만들어내어 거의 일이 망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약 일찌감치 치밀하게 계책을 세워 놓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는 화가 금방이라도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삼가 최광필(崔光弼)의 소(疏)를 보건대, 군부(君父)를 위해 깊고 원대하게 계책을 세워 논한 것이 지극히 확실한데, 이는 또한 신들이 일찍이 경사(經史)에 의거하고 참작하여 마음속으로 굳게 결론지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광필의 소에 따라 즉각 거행하게 해서 종묘 사직이 안정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운명이 기박하여 여러 차례나 망측한 변을 당하고 보니, 괴롭고 한스럽기만 하여 곧장 귀를 막고 멀리 도망치고 싶을 따름이다. 이 어찌 내가 들을 이야기이겠는가.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국가가 불행하여 변이 가장 가까운 내부에서 일어났습니다. 무고(巫蠱)하고 저주(咀呪)한 일이 궁궐에 낭자하고 밖으로 역모에 응한 것이 적의 공초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 꾀하여 성상을 모해하려 한 정상이 불을 보듯 환히 밝혀졌습니다. 유릉(裕陵)을 눌러 이기려고 흉악한 짓을 저지른 절차를 보면 차마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할 점이 있는데, 이는 박동량(朴東亮)의 공초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수호군(守護軍) 등도 모두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 것입니다. 이 어찌 종묘 사직에만 죄를 지은 것이겠습니까. 그야말로 신민들 모두가 토죄하면서 용서해서는 안될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시비가 밝혀지지 않고 의리가 어두워진 나머지, 한갓 명위(名位)에 대한 상례(常例)에 구애를 받고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대의에 대해서는 모르는 채 각자 사설(邪說)을 세워 듣는 이들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충신의 사기를 저상시키고 의사(義士)의 입을 다물게 한 지 어느덧 6년이 지나면서, 오래도록 정론(正論)은 암흑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그러다가 초야에서 항장(抗章)을 올리고 신서(臣庶)가 대궐문 앞에서 부르짖으며 화근을 제거해서 원수를 끊어버리도록 청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시일만 끌면서 판국을 마무리할 기약이 없게 되자 사람들은 위구(危懼)스럽게 생각하고 선비들의 마음은 식은 재처럼 되었습니다. 간악한 자가 날로 흔단을 만들어내어 거의 일이 망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약 일찌감치 치밀하게 계책을 세워 놓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는 화가 금방이라도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삼가 최광필(崔光弼)의 소(疏)를 보건대, 군부(君父)를 위해 깊고 원대하게 계책을 세워 논한 것이 지극히 확실한데, 이는 또한 신들이 일찍이 경사(經史)에 의거하고 참작하여 마음속으로 굳게 결론지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광필의 소에 따라 즉각 거행하게 해서 종묘 사직이 안정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운명이 기박하여 여러 차례나 망측한 변을 당하고 보니, 괴롭고 한스럽기만 하여 곧장 귀를 막고 멀리 도망치고 싶을 따름이다. 이 어찌 내가 들을 이야기이겠는가.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부제학 정조(鄭造), 직제학 이익엽(李益燁), 응교 이상항(李尙恒), 교리 이잠(李埁)·홍요검(洪堯儉)·정준(鄭遵), 수찬 신광업(辛光業)·윤성임(尹聖任)·서국정(徐國楨)·남명우(南溟羽), 박사 조유선(趙裕善) 등이 상차하여, 공론을 통쾌하게 따라 대계(大計)를 정하도록 청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국기일(國忌日)에 번거롭게 소란을 피우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국기일(國忌日)에 번거롭게 소란을 피우지 말라."
하였다.

 

1월 3일 계해

유학(幼學) 홍덕민(洪德民)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전의 소에서 말한 자모(子母)의 설이란 사흉(四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속히 사흉을 목베어 대사를 정하고 여러 날씩 안에 놔두고 아직도 결정짓지 않고 있기에, 재차 간절한 심정을 진달하는 것입니다. 속히 통쾌하게 결단을 내리시어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의 소에서 말한 자모(子母)의 설이란 사흉(四兇)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속히 사흉을 목베어 대사를 정하고 여러 날씩 안에 놔두고 아직도 결정짓지 않고 있기에, 재차 간절한 심정을 진달하는 것입니다. 속히 통쾌하게 결단을 내리시어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기를, "이렇듯 소요스러운 날을 당해서는 경운궁(慶運宮)에 더욱 자주 가서 규검(糾檢)해야 할 것이니, 이 뜻을 헌부에 말하라." 하였다. 【경운궁을 에워싸고 지키게 한 뒤로 왕이 헌부의 관원으로 하여금 매일 교대로 가서 순찰하고 감독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대론(大論)이 발동되자 또 더욱 감독하게 한 것이다.】
"이렇듯 소요스러운 날을 당해서는 경운궁(慶運宮)에 더욱 자주 가서 규검(糾檢)해야 할 것이니, 이 뜻을 헌부에 말하라."
하였다. 【경운궁을 에워싸고 지키게 한 뒤로 왕이 헌부의 관원으로 하여금 매일 교대로 가서 순찰하고 감독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대론(大論)이 발동되자 또 더욱 감독하게 한 것이다.】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서궁(西宮)이 일으킨 변이야말로 고금 천하에 있지 않았던 죄악입니다. 무고하고 저주한 일이 궁궐에 낭자하고 밖으로 역모에 응한 일이 모조리 적의 공초에서 드러났으니, 성상을 모해하려 한 정상이 불을 보듯 환해졌습니다. 심지어는 유릉(裕陵)에 흉악한 짓을 자행하며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고까지 한 일은 차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할 점이 있으니, 그야말로 신민이 모두 분개하며 토죄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시비가 밝혀지지 않고 의리가 어두워진 나머지, 그저 명위(名位)가 높다는 데에만 구애를 받고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대의는 알지 못한 채 사설(邪說)을 세워 다투어서, 듣는 이들을 현혹시킨 결과 충신의 사기를 저상시키고 의사(義士)가 말을 못하게 한 지 어느덧 6년이 지나는 동안 정론은 오래도록 암흑 시대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초야에서 항장(抗章)을 올리고 사서(士庶)가 대궐문에서 부르짖으며, 화근을 없애 원수를 끊어버리라고 청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런데도 시일만 끌며 판국을 마무리할 기약이 없게 되자, 간사한 자가 날로 흔단을 일으켜 일을 거의 망치고 있으니, 만약 치밀한 계획을 사전에 정해 놓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는 화를 필시 제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삼가 최광필(崔光弼) 등의 소를 보건대 계책과 생각이 깊고 원대하며 논한 것이 지극히 확실한데, 이는 신들 역시 일찍이 경사(經史)에 의거하고 참작해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려 두었던 것으로서, 신들이 이미 남김없이 논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그 말뜻이 간절하여 신들이 지극히 감격스러운 심정을 억누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여정(輿情)을 끝내 억제할 수는 없고 대의는 끝내 밝히지 않을 수가 없으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광필의 상소대로 즉각 거행하게 해서 종묘 사직이 안정을 되찾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서궁(西宮)이 일으킨 변이야말로 고금 천하에 있지 않았던 죄악입니다. 무고하고 저주한 일이 궁궐에 낭자하고 밖으로 역모에 응한 일이 모조리 적의 공초에서 드러났으니, 성상을 모해하려 한 정상이 불을 보듯 환해졌습니다. 심지어는 유릉(裕陵)에 흉악한 짓을 자행하며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고까지 한 일은 차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할 점이 있으니, 그야말로 신민이 모두 분개하며 토죄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시비가 밝혀지지 않고 의리가 어두워진 나머지, 그저 명위(名位)가 높다는 데에만 구애를 받고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대의는 알지 못한 채 사설(邪說)을 세워 다투어서, 듣는 이들을 현혹시킨 결과 충신의 사기를 저상시키고 의사(義士)가 말을 못하게 한 지 어느덧 6년이 지나는 동안 정론은 오래도록 암흑 시대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초야에서 항장(抗章)을 올리고 사서(士庶)가 대궐문에서 부르짖으며, 화근을 없애 원수를 끊어버리라고 청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런데도 시일만 끌며 판국을 마무리할 기약이 없게 되자, 간사한 자가 날로 흔단을 일으켜 일을 거의 망치고 있으니, 만약 치밀한 계획을 사전에 정해 놓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는 화를 필시 제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삼가 최광필(崔光弼) 등의 소를 보건대 계책과 생각이 깊고 원대하며 논한 것이 지극히 확실한데, 이는 신들 역시 일찍이 경사(經史)에 의거하고 참작해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려 두었던 것으로서, 신들이 이미 남김없이 논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그 말뜻이 간절하여 신들이 지극히 감격스러운 심정을 억누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여정(輿情)을 끝내 억제할 수는 없고 대의는 끝내 밝히지 않을 수가 없으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광필의 상소대로 즉각 거행하게 해서 종묘 사직이 안정을 되찾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일찍이 평안 병사 성우길(成佑吉)을 잡아다 국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으로 이미 빠짐없이 논열했는 데도, 성상께서는 추고하라는 비답을 내리셨습니다. 우길은 본래 어리석고 망녕스러운 데다 범람한 인간으로서 난을 당해 임금을 버리는 등 인륜 기강에 죄를 지었는 데도 뇌물을 써서 관직에 복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침을 뱉으며 더럽게 여겼습니다. 전라 병영과 통영(統營)이 한 번 그의 손을 거친 뒤로는 형편없이 탕진되었으므로, 양남(兩南)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 직책을 맡게 되자 의기양양하여 제멋대로 굴면서 기탄없이 침해를 가하고 있으므로 서쪽 변방에서는 원망이 자자합니다. 게다가 사나운 첩의 말만 듣고 군사를 놓아 포목을 거두면서 각박하게 고혈(膏血)을 쥐어짜 크게 군심(軍心)을 잃었으므로, 군사들이 그를 원수처럼 본 나머지 군기(軍器)에 불을 질러 그들의 분한 마음을 풀었습니다. 그리하여 2백 년 동안 비축해 온 군기가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으니, 혹시라도 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적을 대응하겠습니까. 이는 군율에 관계되는 일로서 그 죄를 용서하기 어려우니, 우길 및 차지 군관(次知軍官)·색리(色吏)·고자(庫子) 등을 모두 잡아다가 국문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추고하였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신들이 일찍이 평안 병사 성우길(成佑吉)을 잡아다 국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으로 이미 빠짐없이 논열했는 데도, 성상께서는 추고하라는 비답을 내리셨습니다. 우길은 본래 어리석고 망녕스러운 데다 범람한 인간으로서 난을 당해 임금을 버리는 등 인륜 기강에 죄를 지었는 데도 뇌물을 써서 관직에 복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침을 뱉으며 더럽게 여겼습니다. 전라 병영과 통영(統營)이 한 번 그의 손을 거친 뒤로는 형편없이 탕진되었으므로, 양남(兩南)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본 직책을 맡게 되자 의기양양하여 제멋대로 굴면서 기탄없이 침해를 가하고 있으므로 서쪽 변방에서는 원망이 자자합니다. 게다가 사나운 첩의 말만 듣고 군사를 놓아 포목을 거두면서 각박하게 고혈(膏血)을 쥐어짜 크게 군심(軍心)을 잃었으므로, 군사들이 그를 원수처럼 본 나머지 군기(軍器)에 불을 질러 그들의 분한 마음을 풀었습니다. 그리하여 2백 년 동안 비축해 온 군기가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으니, 혹시라도 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적을 대응하겠습니까. 이는 군율에 관계되는 일로서 그 죄를 용서하기 어려우니, 우길 및 차지 군관(次知軍官)·색리(色吏)·고자(庫子) 등을 모두 잡아다가 국문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추고하였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대계(大計)를 정하도록 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기자헌(奇自獻)은 대간의 논계 때문에 아직 처치하지 못하고 있는데 서서히 정배(定配)토록 하라."
"기자헌(奇自獻)은 대간의 논계 때문에 아직 처치하지 못하고 있는데 서서히 정배(定配)토록 하라."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상차하여 속히 새 정승을 뽑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가까운 시일 내에 뽑을 것이니 경은 우선 기다리도록 하라." 하였다.
"가까운 시일 내에 뽑을 것이니 경은 우선 기다리도록 하라."
하였다.

 

1월 4일 갑자

관학 유생 민심(閔𦸂) 등이 상소하기를, "속히 삼사로 하여금 경사(經史)를 참고하고 고금의 역사에 징험해서 즉시 폐출하는 법전을 거행하게 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군부의 시름을 펴게 하며 온 나라 신민들의 의구심이 없어지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제생(諸生)들도 차마 이런 말을 하는가. 내가 듣고 싶지 않으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속히 삼사로 하여금 경사(經史)를 참고하고 고금의 역사에 징험해서 즉시 폐출하는 법전을 거행하게 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군부의 시름을 펴게 하며 온 나라 신민들의 의구심이 없어지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제생(諸生)들도 차마 이런 말을 하는가. 내가 듣고 싶지 않으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아뢰기를, "우리 성상께서는 임진년 파천(播遷)할 적에 선왕으로부터 분조(分朝)의 명을 받고 몸소 종묘 사직을 받들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으며 이어 황제의 조칙을 받고 전라·경상 지역을 감무(監撫)하며 중흥하는 일을 도와 공덕이 크게 드러났습니다. 세자의 지위에 오르신 지 17년이 지난 무신년001)  에 이르러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았으므로, 신인(神人)이 의탁하고 만물이 모두 성덕을 우러르게 되었습니다. 선왕께서 부탁하신 바가 이미 중하고 천자가 더욱 융숭하게 은총을 베푸시어, 그 존귀함이 하늘과 같게 되신 만큼 그 누구도 범할 수 없게 되었는데, 서궁이 그만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면서 성상을 해치려고 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무고하고 저주하는 일을 궁궐에서 낭자하게 행하고 흉악하고 비밀스러운 꾀를 내어 은밀히 역적의 무리와 결탁하였는데, 이는 여러 역적들의 공초가 서로 부합되는 것으로서 반역을 도모한 정상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고 유릉에 흉악한 짓을 자행한 것은 더욱 차마 말하지 못할 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박동량이 국문을 받으면서 실토했을 뿐만이 아니라 수호군(守護軍)들 역시 지금까지도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모두 증언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리(天理)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천하의 대변고라 할 것입니다. 가령 그 흉모가 당시에 행해졌다면 성상의 위태로움이 어떠했겠으며, 종묘 사직과 신민이 입는 화는 또한 어떠하였겠습니까. 그 해가 성상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라면 성상께서 혹 용납해 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화가 선릉(先陵)에까지 미쳤는데 성상께서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종묘 사직에 있어서는 종묘 사직의 죄인이요 신민에 있어서는 신민의 원수입니다. 종묘 사직이 싫어하고 신민이 토죄하려는 대상이니, 성상께서 아무리 사은(私恩)을 보전시키고 싶다 하더라도 종묘 사직이 싫어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이며 신민이 토죄하려 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천리는 끝내 없어질 수 없는 것이고 대의는 끝내 어두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초야에서 잇달아 소장을 올리고 신서(臣庶)가 궐문을 두드리면서 이구동성으로 모두들 죄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화근을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할 일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존호(尊號)를 깎고 공헌(貢獻)을 폐지하며, 분조(分朝)를 철폐하고 조알(朝謁)을 정지시키어 안집으로 옮겨 둠으로써 못된 자들이 끼고서 난을 일으킬 근심을 미리 막도록 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註 001] 무신년 : 1608 선조 41년.
"우리 성상께서는 임진년 파천(播遷)할 적에 선왕으로부터 분조(分朝)의 명을 받고 몸소 종묘 사직을 받들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으며 이어 황제의 조칙을 받고 전라·경상 지역을 감무(監撫)하며 중흥하는 일을 도와 공덕이 크게 드러났습니다. 세자의 지위에 오르신 지 17년이 지난 무신년001)  에 이르러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았으므로, 신인(神人)이 의탁하고 만물이 모두 성덕을 우러르게 되었습니다. 선왕께서 부탁하신 바가 이미 중하고 천자가 더욱 융숭하게 은총을 베푸시어, 그 존귀함이 하늘과 같게 되신 만큼 그 누구도 범할 수 없게 되었는데, 서궁이 그만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면서 성상을 해치려고 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무고하고 저주하는 일을 궁궐에서 낭자하게 행하고 흉악하고 비밀스러운 꾀를 내어 은밀히 역적의 무리와 결탁하였는데, 이는 여러 역적들의 공초가 서로 부합되는 것으로서 반역을 도모한 정상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고 유릉에 흉악한 짓을 자행한 것은 더욱 차마 말하지 못할 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박동량이 국문을 받으면서 실토했을 뿐만이 아니라 수호군(守護軍)들 역시 지금까지도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모두 증언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리(天理)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천하의 대변고라 할 것입니다.
가령 그 흉모가 당시에 행해졌다면 성상의 위태로움이 어떠했겠으며, 종묘 사직과 신민이 입는 화는 또한 어떠하였겠습니까. 그 해가 성상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라면 성상께서 혹 용납해 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화가 선릉(先陵)에까지 미쳤는데 성상께서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종묘 사직에 있어서는 종묘 사직의 죄인이요 신민에 있어서는 신민의 원수입니다. 종묘 사직이 싫어하고 신민이 토죄하려는 대상이니, 성상께서 아무리 사은(私恩)을 보전시키고 싶다 하더라도 종묘 사직이 싫어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이며 신민이 토죄하려 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천리는 끝내 없어질 수 없는 것이고 대의는 끝내 어두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초야에서 잇달아 소장을 올리고 신서(臣庶)가 궐문을 두드리면서 이구동성으로 모두들 죄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화근을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할 일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존호(尊號)를 깎고 공헌(貢獻)을 폐지하며, 분조(分朝)를 철폐하고 조알(朝謁)을 정지시키어 안집으로 옮겨 둠으로써 못된 자들이 끼고서 난을 일으킬 근심을 미리 막도록 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잇달아 상차하여 공론을 흔쾌히 따를 것을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양사 전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오늘 계사(啓辭)를 올린 것은 실로 폐(廢)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안집에 폐치(廢置)하자는 표현을 쓰면서 대강의 내용을 내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옥당의 답간(答簡)에 ‘폐(廢) 자를 천(遷) 자로 고치자.’고 하는 말이 있었는데, 신들의 생각에도 천이나 폐나 다름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곧바로 천 자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표현을 명백하게 하지 못해 본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한 결과, 보는 이들로 하여금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일을 잘못 논한 신들의 실수가 큽니다.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오늘 계사(啓辭)를 올린 것은 실로 폐(廢)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안집에 폐치(廢置)하자는 표현을 쓰면서 대강의 내용을 내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옥당의 답간(答簡)에 ‘폐(廢) 자를 천(遷) 자로 고치자.’고 하는 말이 있었는데, 신들의 생각에도 천이나 폐나 다름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곧바로 천 자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표현을 명백하게 하지 못해 본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한 결과, 보는 이들로 하여금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일을 잘못 논한 신들의 실수가 큽니다.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연원 부원군(延原府院君) 이광정(李光庭), 행 지중추 박홍구(朴弘耉), 좌찬성 박승종(朴承宗), 병조 판서 유희분(柳希奮),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 여천 부원군(驪川府院君) 민형남(閔馨男), 형조 판서 조정(趙挺), 판중추 노직(盧稷), 한평군(韓平君) 이경전(李慶全), 우찬성 이충(李沖), 이조 판서 민몽룡(閔夢龍), 달성위(達城尉) 서경주(徐景霌), 해숭위(海崇尉) 윤신지(尹新之), 길성위(吉城尉) 권대임(權大任), 한산군(漢山君) 조진(趙振), 문평군(文平君) 유공량(柳公亮), 판윤 윤선(尹銑), 청릉군(淸陵君) 김신국(金藎國), 한남군(漢南君) 이필영(李必榮), 호조 판서 최관(崔瓘), 우참찬 유간(柳澗), 행 동지 심돈(沈惇), 행 사직 김경서(金景瑞)·조의(趙誼), 이조 참판 유몽인(柳夢寅), 일선위(一善尉) 김극빈(金克鑌), 공조 참판 조탁(曺倬), 행 호군 남근(南瑾)·유경종(柳慶宗)·송석경(宋錫慶)·이선복(李善復)·여우길(呂佑吉)·정문부(鄭文孚)·윤휘(尹暉)·박이서(朴彛叙), 동지 박정현(朴鼎賢)·박자흥(朴自興), 예조 참판 윤수민(尹壽民), 병조 참판 이덕형(李德泂), 호조 참판 경섬(慶暹), 좌윤 김개(金闓), 우윤 이원(李瑗), 행 대사성 조존세(趙存世), 행 판결사 박경신(朴慶新), 행 돈령도정 이형욱(李馨郁), 완산군(完山君) 이순경(李順慶), 한흥군(漢興君) 조공근(趙公瑾), 하청군(河淸君) 정희현(鄭希玄), 풍안군(豐安君) 임연(任兗), 석흥군(碩興君) 이척(李惕), 원양군(原陽君) 송강(宋康), 익흥군(益興君) 이응순(李應順), 운성군(雲城君) 신경행(辛景行),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 봉산군(逢山君) 정상철(鄭象哲), 영평군(鈴平君) 윤중삼(尹重三), 석릉군(石陵君) 전룡(全龍), 해신군(海愼君) 이희령(李希齡), 분병조 참판 김지남(金止男)·이성길(李成吉), 행 훈련 도정 유승서(柳承瑞), 행 부호군 유지신(柳止信), 행 사직 우치적(禹治績)·안륵(安玏)·원근(元瑾)·박봉수(朴鳳壽)·유몽룡(劉夢龍)·전윤(田潤)·이현(李玹)·원유남(元𥙿男)·이백복(李伯福)·박덕린(朴德獜)·변응지(邊應祉)·김응함(金應緘)·유순무(柳舜懋)·민형(閔泂)·이은종(李殷宗)·이충길(李忠吉)·이응린(李應獜)·조유정(趙惟精)·구인경(具仁慶)·이문전(李文荃)·오정방(吳定邦)·구덕령(具德齡)·신충일(申忠一)·김윤신(金允信), 이조 참의 유희발(柳希發), 호조 참의 조유도(趙有道),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 병조 참의 정립(鄭岦), 참지 이원엽(李元燁), 형조 참의 정규(鄭逵), 공조 참의 장자호(張自好), 행 호군 정광성(鄭廣成)·이위경(李偉卿)·이여검(李汝儉)·윤의(尹顗)·성이문(成以文)·김영남(金穎男)·윤안국(尹安國)·황치성(黃致誠)·유대일(兪大逸)·황락(黃洛)·강담(姜紞)·이정험(李廷馦)·이식립(李植立)·전유형(全有亨)·성시헌(成時憲)·조희보(趙希輔)·박재(朴榟)·이일원(李一元)·김효신(金孝信)·김경운(金慶雲)·유민(柳旻)·안몽윤(安夢尹)·유응형(柳應泂)·박상(朴瑺) 등을 이끌고, 사인(舍人) 유충립(柳忠立)·정광경(鄭廣敬)이 당하관을 이끌고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어서 여기서는 대략만 거명(擧名)했다. 이때 분위기가 너무도 무시무시하여 사람들이 모두 정청(庭請)에 불참하면 꼭 죽을 줄로 알았기 때문에, 평소 명검(名檢)을 약간 지닌 자들마저 휩쓸려 따라가는 꼴을 면치 못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참한 이들은 단지 영돈녕부사 정창연(鄭昌衍), 진원 부원군(晉原府院君) 유근(柳根), 행 판중추부사 이정귀(李廷龜), 해창군(海昌君) 윤방(尹昉), 행 지중추부사 김상용(金尙容),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 행 부호군 이시언(李時彦), 지중추부사 신식(申湜), 진창군(晉昌君) 강인(姜絪), 청풍군(淸風君) 김권(金權),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 동지돈령부사 김현성(金玄成), 복천군(福川君) 오백령(吳百齡), 행 부호군 이시발(李時發), 행 사직 김류(金瑬)·권희(權憘), 행 첨지중추부사 오윤겸(吳允謙), 행 사직 송영구(宋英耉), 행 사과 박동선(朴東善), 행 사정 정효성(鄭孝成), 이경직(李景稷)뿐이었으며, 당하관으로는 박자응(朴自凝)·강석기(姜碩期)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신의(李愼儀)와 권사공(權士恭)의 경우는 의논을 수합할 때 지극히 명백하게 진달했는 데도 결국은 그만 며칠동안 따라 참여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그리고 김지수(金地粹)는 의논드릴 때 우물쭈물했고 또 정청에 참여했으므로 역시 유배당했는데, 당시에 그를 평가하기를 ‘이쪽과 저쪽을 모두 편들면서 양쪽 어깨를 다 드러낸 채 걸어다녔다.’고 하였다.】  아뢰기를, "역적을 토죄하는 일은 《춘추(春秋)》를 법으로 삼아야 하고, 변고에 대처할 때에는 종묘 사직을 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구차하게 사정(私情)을 따르다 보면 의리가 밝혀지지 않고, 혹시 차마 못하는 점이 있게 되면 난망(亂亡)이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臣子)가 오늘날 정청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생각건대 이 서궁(西宮)이 화를 길러 난을 빚어낸 것은 서적에서도 보기 드물며 고금 역사상에도 듣지 못했던 일인데, 여기에서 죄 열 가지를 들어 그 대강을 설명드릴까 합니다. 역적 이의(李㼁)를 처음 낳았을 때 은밀히 유영경(柳永慶)으로 하여금 속히 진하(陳賀)하는 예를 드리게 하여 인심을 동요시켰고, 또 흉악한 점장이를 사주하여 지극히 귀하다고 칭찬하게 하는 한편, 날마다 요사스러운 경문(經文)을 외어 큰 복을 기원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첫번째 죄입니다. 선왕께서 건강이 좋지 못하셨을 때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여 역적 유영경과 결탁하여 안팎으로 상응하면서 언문으로 은밀히 분부를 내려 전위(傳位)하지 못하게 막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초야에서 대현(大賢)002)  이 충성을 다 바쳐 항소(抗疏)를 올리자, 이것을 기회로 감히 세자를 바꿔 세우려고 도모하여 눈물을 흘리며 선왕께 권한 나머지 여러 차례 엄한 분부를 내리시게 하고 아직 책봉(冊封)을 받지 못했다는 등의 말씀이 있도록 함으로써 듣는 이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선왕께서 승하하셨을 때 유명(遺命)이라고 사칭하고는 희건(希騫)으로 하여금 어필(御筆)을 위조하여 쓰게 한 다음, 칠흉(七兇)003)  에게 의를 부탁하여 합심해서 보호케 하고 그가 장성하기를 기다려 대위(大位)를 뺏으려고 획책하였으니, 이것이 네 번째 죄입니다. 김제남(金悌男)을 가까이 끌어들여 궁중에서 유숙(留宿)케 하고, 흉도(兇徒)와 많이 결탁하여 밤낮으로 역모를 꾀하는 한편, 궁노(宮奴)를 단속하여 은밀히 부서(部署)를 정해서 행하게 하고 양식과 군기(軍器)를 비축하여 급할 때 대비토록 하였으며, 서얼 출신들로 하여금 널리 무사를 모집케 한 다음, 야간에 훈련을 시켜 흔단을 틈타 난을 일으키려 하였으니, 이것이 다섯 번째 죄입니다. 궁중에 제단을 설치한 뒤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사리 축문을 모아 차마 말할 수 없이 성상의 몸에 위해를 가하려 하였고, 눈먼 무당을 시켜 못할 짓 없이 저주를 행하게 하면서 닭·개·돼지·쥐 등을 잡아 궁궐 안에서 낭자하게 술수를 자행했는가 하면, 16종에 이르는 비법을 써서 기필코 계책을 이루려 하였으니, 이것이 여섯 번째 죄입니다. 선후(先后)를 눌러 이길 목적으로 능침(陵寢)을 파내고 가상(假像)을 만들었으며, 칼과 활로 흉악한 짓을 자행했는가 하면 고기 조각에 어휘(御諱)를 써서 까마귀와 솔개에게 흩어줘 먹임으로써 감히 선령(先靈)을 욕되게 하고 성상의 몸을 해치려 하였으니, 이것이 일곱 번째 죄입니다. 이경준(李耕俊)이 지은 격문은 그 말이 헤아릴 수 없었고 화살에 묶어 궁궐 담으로 던져 넣은 글은 참혹하기 그지없는데, 이 모두가 서궁에서 지어낸 것들로서 이를 외간에 전파시킨 결과 흉악한 역적의 무리들이 전후에 걸쳐 핑계를 삼고 차마 듣지 못할 사항들을 문자로 드러내게 하였으니, 이것이 여덟 번째 죄입니다. 흑문(黑門)에 글을 통하려던 서응상(徐應祥)이 붙잡혔고, 베개 속의 파자(破字)한 글의 곡절은 의일(義一)이 공초(供招)하였는데, 중국 관원에게 호소케 함으로써 상국(上國)에 화란을 부추기려 하였으니, 이것이 아홉 번째 죄입니다. 선왕께서 어질다고 여겨 택하셨고 천자가 책봉을 명하였으므로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져 국내에서 모두 떠받들고 있었는데, 내탕금(內帑金)을 많이 내어 서양갑(徐羊甲)에게 넉넉하게 밑천을 대주면서 왜인 속으로 들여보낸 뒤 은밀히 외부의 원조를 부탁하면서 이해(利害)로 유혹하게 하였고, 또 심우영(沈友英)으로 하여금 몰래 노추(老酋)의 진영과 통하게 함으로써 그 세력에 가탁해 어린 아이를 세울 계책을 깊이 꾸미고 장차 중국 조정에 항거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열 번째 죄입니다. 그러고 보면 무씨(武氏)004)  의 죄악들도 여기에 비하면 오히려 적고 조후(趙后)005)  가 후계자를 없앤 것도 여기에 비하면 심한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한 나라의 국모(國母)로서 행해야 할 도리를 잃은 이상, 신자(臣子)가 된 처지에서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의리만이 있을 뿐인데, 당(唐)나라 때 종묘(宗廟)에서 수죄(數罪)했던 것처럼은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漢)나라 때 폐출(廢出)시켰던 것은 따르기에 합당한 관전(寬典)이라 할 것이니,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종묘 사직의 큰 계책을 깊이 생각하시고 온 나라의 여론을 굽어 따르시어 화의 근본을 제거하소서. 그러면 더 이상의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니, 【이이첨이 지은 것이다. 이첨이 한효순을 협박하여 의논을 정하게 하고는, 제학 이경전과 유몽인을 불러 한 막소(幕所)에 함께 들어가게 한 뒤 김개로 하여금 붓을 잡고 입으로 불러주는 대로 쓰게 한 것이었다. 이는 대개 이첨과 허균·김개가 오래 전부터 밖에서 구상해 온 것이었다.】  답하기를,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운명까지 기구하여 무신년과 계축년의 변고가 모두 천륜(天倫)에서 나왔으니, 이 어찌 상정(常情)으로 볼 때 참아 넘길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종묘 사직이 중한 탓으로 애써 정신(廷臣)의 요청을 따르긴 했다마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애타고 아픈 마음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이런 논을 듣게 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어쩌면 이다지도 한결같이 혹독한 형벌을 내린단 말인가. 차라리 신발을 벗어 버리듯 인간 세상을 벗어나 팔을 내저으며 멀리 떠나서 해변가에나 가서 살며 여생을 마치고 싶다. 나의 진심을 살펴 연민의 정을 가지고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폐모론을 시종일관 주장하면서 화란을 빚어내게 된 원인이 이이첨이 앞장서서 음모를 꾸민 데에 연유한 것이지만 그 당시 대신과 중신들이 만약 죽을 힘을 다해 극력 쟁집하면서 확고한 태도를 견지하여 따르지 않았다면 필시 그 흉모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헌(奇自獻)과 이항복(李恒福) 등이 유배된 뒤로는 온 조정이 조용히 침묵만 지킬 뿐 한 사람도 의기를 떨쳐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은 한효순이 우상의 신분으로서 이이첨에게 내몰려 부림을 받은 나머지 앞장서서 백관을 인솔하고 나가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정청(庭請)하는 일을 따름으로써 인륜을 파괴하는 일로 혼주(昏主)를 인도하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개벽 이후로 겪는 일대 변고였다고 할 것이다. 저 흉악한 역당(逆黨)이야 원래 말할 가치도 없지마는, 효순이 지레 악으로 유도한 죄는 과연 주벌(誅罰)하더라도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다.】


[註 002] 대현(大賢) : 정인홍(鄭仁弘)을 말함.[註 003] 칠흉(七兇) : 이른바 유교 칠신(遺敎七臣)을 말함.[註 004] 무씨(武氏) : 당(唐)의 측천 무후(則天武后).[註 005] 조후(趙后) : 한 성제(漢成帝)의 황후 조비연(趙飛燕).
"역적을 토죄하는 일은 《춘추(春秋)》를 법으로 삼아야 하고, 변고에 대처할 때에는 종묘 사직을 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구차하게 사정(私情)을 따르다 보면 의리가 밝혀지지 않고, 혹시 차마 못하는 점이 있게 되면 난망(亂亡)이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臣子)가 오늘날 정청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생각건대 이 서궁(西宮)이 화를 길러 난을 빚어낸 것은 서적에서도 보기 드물며 고금 역사상에도 듣지 못했던 일인데, 여기에서 죄 열 가지를 들어 그 대강을 설명드릴까 합니다.
역적 이의(李㼁)를 처음 낳았을 때 은밀히 유영경(柳永慶)으로 하여금 속히 진하(陳賀)하는 예를 드리게 하여 인심을 동요시켰고, 또 흉악한 점장이를 사주하여 지극히 귀하다고 칭찬하게 하는 한편, 날마다 요사스러운 경문(經文)을 외어 큰 복을 기원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첫번째 죄입니다. 선왕께서 건강이 좋지 못하셨을 때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여 역적 유영경과 결탁하여 안팎으로 상응하면서 언문으로 은밀히 분부를 내려 전위(傳位)하지 못하게 막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초야에서 대현(大賢)002)  이 충성을 다 바쳐 항소(抗疏)를 올리자, 이것을 기회로 감히 세자를 바꿔 세우려고 도모하여 눈물을 흘리며 선왕께 권한 나머지 여러 차례 엄한 분부를 내리시게 하고 아직 책봉(冊封)을 받지 못했다는 등의 말씀이 있도록 함으로써 듣는 이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선왕께서 승하하셨을 때 유명(遺命)이라고 사칭하고는 희건(希騫)으로 하여금 어필(御筆)을 위조하여 쓰게 한 다음, 칠흉(七兇)003)  에게 의를 부탁하여 합심해서 보호케 하고 그가 장성하기를 기다려 대위(大位)를 뺏으려고 획책하였으니, 이것이 네 번째 죄입니다. 김제남(金悌男)을 가까이 끌어들여 궁중에서 유숙(留宿)케 하고, 흉도(兇徒)와 많이 결탁하여 밤낮으로 역모를 꾀하는 한편, 궁노(宮奴)를 단속하여 은밀히 부서(部署)를 정해서 행하게 하고 양식과 군기(軍器)를 비축하여 급할 때 대비토록 하였으며, 서얼 출신들로 하여금 널리 무사를 모집케 한 다음, 야간에 훈련을 시켜 흔단을 틈타 난을 일으키려 하였으니, 이것이 다섯 번째 죄입니다.
궁중에 제단을 설치한 뒤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사리 축문을 모아 차마 말할 수 없이 성상의 몸에 위해를 가하려 하였고, 눈먼 무당을 시켜 못할 짓 없이 저주를 행하게 하면서 닭·개·돼지·쥐 등을 잡아 궁궐 안에서 낭자하게 술수를 자행했는가 하면, 16종에 이르는 비법을 써서 기필코 계책을 이루려 하였으니, 이것이 여섯 번째 죄입니다. 선후(先后)를 눌러 이길 목적으로 능침(陵寢)을 파내고 가상(假像)을 만들었으며, 칼과 활로 흉악한 짓을 자행했는가 하면 고기 조각에 어휘(御諱)를 써서 까마귀와 솔개에게 흩어줘 먹임으로써 감히 선령(先靈)을 욕되게 하고 성상의 몸을 해치려 하였으니, 이것이 일곱 번째 죄입니다. 이경준(李耕俊)이 지은 격문은 그 말이 헤아릴 수 없었고 화살에 묶어 궁궐 담으로 던져 넣은 글은 참혹하기 그지없는데, 이 모두가 서궁에서 지어낸 것들로서 이를 외간에 전파시킨 결과 흉악한 역적의 무리들이 전후에 걸쳐 핑계를 삼고 차마 듣지 못할 사항들을 문자로 드러내게 하였으니, 이것이 여덟 번째 죄입니다. 흑문(黑門)에 글을 통하려던 서응상(徐應祥)이 붙잡혔고, 베개 속의 파자(破字)한 글의 곡절은 의일(義一)이 공초(供招)하였는데, 중국 관원에게 호소케 함으로써 상국(上國)에 화란을 부추기려 하였으니, 이것이 아홉 번째 죄입니다. 선왕께서 어질다고 여겨 택하셨고 천자가 책봉을 명하였으므로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져 국내에서 모두 떠받들고 있었는데, 내탕금(內帑金)을 많이 내어 서양갑(徐羊甲)에게 넉넉하게 밑천을 대주면서 왜인 속으로 들여보낸 뒤 은밀히 외부의 원조를 부탁하면서 이해(利害)로 유혹하게 하였고, 또 심우영(沈友英)으로 하여금 몰래 노추(老酋)의 진영과 통하게 함으로써 그 세력에 가탁해 어린 아이를 세울 계책을 깊이 꾸미고 장차 중국 조정에 항거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열 번째 죄입니다.
그러고 보면 무씨(武氏)004)  의 죄악들도 여기에 비하면 오히려 적고 조후(趙后)005)  가 후계자를 없앤 것도 여기에 비하면 심한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한 나라의 국모(國母)로서 행해야 할 도리를 잃은 이상, 신자(臣子)가 된 처지에서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의리만이 있을 뿐인데, 당(唐)나라 때 종묘(宗廟)에서 수죄(數罪)했던 것처럼은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漢)나라 때 폐출(廢出)시켰던 것은 따르기에 합당한 관전(寬典)이라 할 것이니,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종묘 사직의 큰 계책을 깊이 생각하시고 온 나라의 여론을 굽어 따르시어 화의 근본을 제거하소서. 그러면 더 이상의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니, 【이이첨이 지은 것이다. 이첨이 한효순을 협박하여 의논을 정하게 하고는, 제학 이경전과 유몽인을 불러 한 막소(幕所)에 함께 들어가게 한 뒤 김개로 하여금 붓을 잡고 입으로 불러주는 대로 쓰게 한 것이었다. 이는 대개 이첨과 허균·김개가 오래 전부터 밖에서 구상해 온 것이었다.】  답하기를,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운명까지 기구하여 무신년과 계축년의 변고가 모두 천륜(天倫)에서 나왔으니, 이 어찌 상정(常情)으로 볼 때 참아 넘길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종묘 사직이 중한 탓으로 애써 정신(廷臣)의 요청을 따르긴 했다마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애타고 아픈 마음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이런 논을 듣게 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어쩌면 이다지도 한결같이 혹독한 형벌을 내린단 말인가. 차라리 신발을 벗어 버리듯 인간 세상을 벗어나 팔을 내저으며 멀리 떠나서 해변가에나 가서 살며 여생을 마치고 싶다. 나의 진심을 살펴 연민의 정을 가지고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폐모론을 시종일관 주장하면서 화란을 빚어내게 된 원인이 이이첨이 앞장서서 음모를 꾸민 데에 연유한 것이지만 그 당시 대신과 중신들이 만약 죽을 힘을 다해 극력 쟁집하면서 확고한 태도를 견지하여 따르지 않았다면 필시 그 흉모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헌(奇自獻)과 이항복(李恒福) 등이 유배된 뒤로는 온 조정이 조용히 침묵만 지킬 뿐 한 사람도 의기를 떨쳐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은 한효순이 우상의 신분으로서 이이첨에게 내몰려 부림을 받은 나머지 앞장서서 백관을 인솔하고 나가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정청(庭請)하는 일을 따름으로써 인륜을 파괴하는 일로 혼주(昏主)를 인도하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개벽 이후로 겪는 일대 변고였다고 할 것이다. 저 흉악한 역당(逆黨)이야 원래 말할 가치도 없지마는, 효순이 지레 악으로 유도한 죄는 과연 주벌(誅罰)하더라도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다.】


[註 002] 대현(大賢) : 정인홍(鄭仁弘)을 말함.[註 003] 칠흉(七兇) : 이른바 유교 칠신(遺敎七臣)을 말함.[註 004] 무씨(武氏) : 당(唐)의 측천 무후(則天武后).[註 005] 조후(趙后) : 한 성제(漢成帝)의 황후 조비연(趙飛燕).

 

예문관 봉교 오익환(吳益煥)·조정생(曺挺生), 대교 김주하(金奏夏)·이경익(李慶益), 검열 안응로(安應魯)·박종윤(朴宗胤)·이필달(李必達)·이점(李蒧) 등이 상차하여 공론을 쾌히 따라 서궁을 폐출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나의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시강원 보덕 배대유(裵大維), 필선 곽천호(郭天豪) 등이 상소하여 공론을 쾌히 따라 종묘 사직을 평안케 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나의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1월 5일 을축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 왕자 이하 여러 종실을 이끌고 아뢰기를, "서궁(西宮)이 밖으로 흉당(兇黨)과 결탁하여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고 꾀한 것과 안으로 저주를 행하여 성상을 은밀히 해치려 한 정상이 서양갑(徐羊甲) 등 여러 역적들의 초사(招辭)에서 모두 드러났는데, 오히려 오늘까지 보전되고 있는 것은 대의가 캄캄하게 막히고 사론(邪論)이 치성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입니다. 신들은 종묘 사직의 신하이고 전하의 신하인데, 오직 저 서궁만은 종묘 사직의 큰 적이니 신들에게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라 할 것입니다. 이에 온 나라 신민들 모두가 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는 바로 ‘국민 모두가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006)  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대효(大孝)의 도리를 극진히 하려 하신다 하더라도, 온 나라 인심을 어떻게 하실 것이며 종묘 사직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쾌히 공론을 따르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종척(宗戚)인 경들마저 차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듣고 싶지 않다." 하였다.


[註 006] ‘국민 모두가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하(下)에 나오는 말임.
"서궁(西宮)이 밖으로 흉당(兇黨)과 결탁하여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고 꾀한 것과 안으로 저주를 행하여 성상을 은밀히 해치려 한 정상이 서양갑(徐羊甲) 등 여러 역적들의 초사(招辭)에서 모두 드러났는데, 오히려 오늘까지 보전되고 있는 것은 대의가 캄캄하게 막히고 사론(邪論)이 치성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입니다. 신들은 종묘 사직의 신하이고 전하의 신하인데, 오직 저 서궁만은 종묘 사직의 큰 적이니 신들에게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라 할 것입니다. 이에 온 나라 신민들 모두가 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는 바로 ‘국민 모두가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006)  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대효(大孝)의 도리를 극진히 하려 하신다 하더라도, 온 나라 인심을 어떻게 하실 것이며 종묘 사직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쾌히 공론을 따르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종척(宗戚)인 경들마저 차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듣고 싶지 않다."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오늘 추국하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만, 백관이 정청할 때에는 추국을 하지 않기에 그러한 내용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추국하지 않았던 최근의 사례를 상고하여 아뢰어라." 하였다.
"오늘 추국하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만, 백관이 정청할 때에는 추국을 하지 않기에 그러한 내용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추국하지 않았던 최근의 사례를 상고하여 아뢰어라."
하였다.

 

관학 유생 민심(閔𦸂) 등이 상소하여, 속히 폐출하는 형전(刑典)을 시행하여 중외 신민들의 소원에 답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내 뜻을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을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도승지 한찬남(韓纘男), 좌승지 유대건(兪大建), 우승지 이창후(李昌後),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 동부승지 이대엽(李大燁) 등이 아뢰기를, "서궁의 10대 죄악은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서 스스로 종묘 사직과 관계를 끊었으니, 이는 조종(祖宗)의 죄인이요 신민의 원수입니다. 전하께서는 천자의 책명(冊命)을 받고 조종의 부탁을 받드시어 신민의 주인이 되셨으니, 천자가 토죄(討罪)하고 조종이 끊어버리고 신민이 버린 자에 대해 전하께서 어찌 사정을 두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신료가 청한 것이야말로 《춘추(春秋)》의 정론(定論)인 동시에 종묘 사직의 큰 계책이니,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즉시 여정(輿情)을 따르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서궁의 10대 죄악은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서 스스로 종묘 사직과 관계를 끊었으니, 이는 조종(祖宗)의 죄인이요 신민의 원수입니다. 전하께서는 천자의 책명(冊命)을 받고 조종의 부탁을 받드시어 신민의 주인이 되셨으니, 천자가 토죄(討罪)하고 조종이 끊어버리고 신민이 버린 자에 대해 전하께서 어찌 사정을 두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신료가 청한 것이야말로 《춘추(春秋)》의 정론(定論)인 동시에 종묘 사직의 큰 계책이니,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즉시 여정(輿情)을 따르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감찰 조형남(趙亨男) 등이 상소하였다. 대체적인 내용은 속히 정청을 따라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라는 것이었는데, 답하기를, "내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을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어젯밤 백관과 삼사의 계사와 차자가 4경(更)이 지난 뒤에 비로소 들어왔는데, 이것이야말로 전고에 듣지 못했던 일이다. 누가 이런 의논을 주장해서 감히 이처럼 괴상하고 놀랄 일을 했단 말인가. 지금 이렇게 정청(庭請)하는 일 역시 시급히 처리해야 할 군국(軍國)의 기무(機務)가 아닌 만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하더라도 시기에 뒤쳐져 미치지 못할 걱정은 본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꼭 눈보라치는 한밤중에 소란스럽게 될 것은 생각지도 않고 대궐 뜰로 몰려 들어왔단 말인가. 내가 병중에 갑절이나 더 신경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근에서 듣는 이들 역시 모두 해괴하게 여길 것이다. 국체(國體)가 잘못되어 무너진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없을 것이니 내가 정말 통탄할 뿐이다. 이제는 절대로 이처럼 괴이한 일은 하지 말라고 정부와 삼사에 일러라."
"어젯밤 백관과 삼사의 계사와 차자가 4경(更)이 지난 뒤에 비로소 들어왔는데, 이것이야말로 전고에 듣지 못했던 일이다. 누가 이런 의논을 주장해서 감히 이처럼 괴상하고 놀랄 일을 했단 말인가. 지금 이렇게 정청(庭請)하는 일 역시 시급히 처리해야 할 군국(軍國)의 기무(機務)가 아닌 만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하더라도 시기에 뒤쳐져 미치지 못할 걱정은 본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꼭 눈보라치는 한밤중에 소란스럽게 될 것은 생각지도 않고 대궐 뜰로 몰려 들어왔단 말인가. 내가 병중에 갑절이나 더 신경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근에서 듣는 이들 역시 모두 해괴하게 여길 것이다. 국체(國體)가 잘못되어 무너진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없을 것이니 내가 정말 통탄할 뿐이다. 이제는 절대로 이처럼 괴이한 일은 하지 말라고 정부와 삼사에 일러라."

 

백관이 정청으로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반평생을 어렵기 짝이 없게 보내 오면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도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또 이렇듯 엄청난 변고를 만났으니 몸둘 곳이 없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들은 내 뜻을 살펴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반평생을 어렵기 짝이 없게 보내 오면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도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또 이렇듯 엄청난 변고를 만났으니 몸둘 곳이 없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들은 내 뜻을 살펴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홍문관이 아뢰기를, "삼가 살피건대 삼사는 일체라서 논의를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으므로 어제 양사가 그 계사(啓辭)의 대략적인 내용을 본관에 통지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보건대 분사(分司)를 철폐하고 조알(朝謁)을 정지하며 공헌(貢獻)을 폐지하고 존호(尊號)를 깎자는 네 조항의 절목(節目)은 모두 폐(廢)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끝 부분에 가서는 ‘안집에 폐치(廢置)시킴으로써 못된 무리들이 끼고서 난을 일으킬 근심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일단 폐하고 나서 또 쫓아내야 한다[黜]고 한 것이야말로 환난을 예방하고 화근을 끊어버리기 위한 것으로서 그 생각이 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들의 생각에는 ‘네 조항의 절목에서 「폐」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폐」의 내용이 그 속에 들어있고, 일단 구궁(舊宮)에서 옮겨 다른 곳에 있게 하자고 하였으니 「출」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출」의 내용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고 여겼기 때문에 물어 온 데에 따라 대답하기를 ‘폐라는 글자를 천(遷)으로 고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대체로 《춘추》에서 ‘손(遜)’이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강목(綱目)》에서 ‘천’이라는 글자로 표현한 뜻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온 나라의 신민들이 이미 서궁을 원수로 여겨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천이니 폐니 하는 두 글자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인피(引避)까지 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당초 대답한 것도 왕복하며 논의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지, 꼭 양사로 하여금 기어이 그렇게 고치라는 뜻에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들이 대답한 것을 가지고 양사에서 인피한 이상 신들이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들의 삭직(削職)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삼사는 일체라서 논의를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으므로 어제 양사가 그 계사(啓辭)의 대략적인 내용을 본관에 통지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보건대 분사(分司)를 철폐하고 조알(朝謁)을 정지하며 공헌(貢獻)을 폐지하고 존호(尊號)를 깎자는 네 조항의 절목(節目)은 모두 폐(廢)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끝 부분에 가서는 ‘안집에 폐치(廢置)시킴으로써 못된 무리들이 끼고서 난을 일으킬 근심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일단 폐하고 나서 또 쫓아내야 한다[黜]고 한 것이야말로 환난을 예방하고 화근을 끊어버리기 위한 것으로서 그 생각이 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들의 생각에는 ‘네 조항의 절목에서 「폐」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폐」의 내용이 그 속에 들어있고, 일단 구궁(舊宮)에서 옮겨 다른 곳에 있게 하자고 하였으니 「출」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출」의 내용이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고 여겼기 때문에 물어 온 데에 따라 대답하기를 ‘폐라는 글자를 천(遷)으로 고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대체로 《춘추》에서 ‘손(遜)’이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강목(綱目)》에서 ‘천’이라는 글자로 표현한 뜻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온 나라의 신민들이 이미 서궁을 원수로 여겨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천이니 폐니 하는 두 글자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인피(引避)까지 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당초 대답한 것도 왕복하며 논의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지, 꼭 양사로 하여금 기어이 그렇게 고치라는 뜻에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들이 대답한 것을 가지고 양사에서 인피한 이상 신들이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들의 삭직(削職)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사가 합사하여 연계(連啓)하고 옥당이 연차(連箚)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再啓)하고 양사가 합사하여 재계하고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1월 6일 병인

종실이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아뢰기를, "신들이 한 나라의 공공(公共)의 논의를 가지고 와 궐문에 엎드려서 우러러 피끓는 정성을 바치고 있는 이것이야말로 종묘 사직을 위하는 지극한 계책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까마득히 들어주시지 않은 채 오히려 준엄한 비답만 내리시니, 신들은 머리를 모으고 서로 돌아볼 뿐, 성상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임금의 효(孝)란 국가가 편안하고 그 토대가 길이 유지될 때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구구한 소은(小恩)이나 사정(私情) 따위는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서궁이 일으킨 화는 고금을 통해 있지 않았던 일로서 당(唐)나라의 무씨(武氏)도 이에 비하면 덜하다 하겠는데, 그럼에도 호인(胡寅)007)  은 무씨의 죄를 세면서 장간지(張柬之) 등이 무후를 폐주(廢誅)시키지 못했던 것을 꾸짖기까지 하였습니다. 신들은 무씨의 아홉 가지 죄를 서궁의 열 가지 죄와 비교하며 논해 볼까 합니다.  이의(李㼁)를 낳은 뒤에 진하(陳賀)하게 하고 점장이를 시켜 복을 빌게 한 죄는 사제(嗣帝)를 고혹(蠱惑)한 것보다 심하고,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고 능을 파헤치면서 흉악한 짓을 행한 죄는 주모(主母)를 살해한 것보다 심하며,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며 전위(傳位)하지 못하도록 막은 죄는 황제를 축출한 것보다 심하고, 눈먼 무당을 시켜 저주하게 하면서 성상을 해치려고 꾀한 죄는 자식을 죽인 것보다 심하며, 성상께서 즉위한 초에 어보(御寶)를 한동안 머물러두고 내놓지 않았던 죄는 자신이 황제가 되었던 것보다 심하고, 유명(遺命)이라 사칭하여 의를 보호하게 하면서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던 죄는 멋대로 종묘 사직을 폐했던 것보다 심하며, 흉악한 무리와 결탁하고 양식과 군기를 비축하면서 널리 무사들을 모집해 훈련한 것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키려 했던 죄는 더러운 덕을 널리 들리게 했던 것보다 심하고, 흑문(黑門)에 글을 통해 중국 관원에게 호소함으로써 상국에 화(禍)를 부추겨 종묘 사직을 멸하려 했던 죄는 종실을 전멸시켰던 것보다 심하며, 은밀히 궁노(宮奴)를 모아 남몰래 부서(部署)를 정해서 일을 집행하게 하는 한편 흔단을 틈타 난을 얽어냄으로써 간사하게 엿보는 계책을 이루려 했던 죄는 오로지 혹리(酷吏)를 썼던 것보다 심하고, 남쪽으로 왜(倭)와 결탁하여 응원을 부탁하고 북쪽으로 오랑캐와 교분을 맺음으로써 중국 조정을 배반하고 의를 세울 기반을 마련하려 했던 것은 무씨에게도 없었던 일로서 서궁에게만 있는 죄라 할 것입니다. 하늘을 거역한 그 죄에 대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주벌(誅罰)을 가하려 하는데 전하께서 어떻게 명위(名位)에 따른 상례(常例)에 구애받은 나머지 천하의 죄인을 놔두고 토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일에 결단코 다른 뜻은 없습니다. 폐출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행해야만 하니,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속히 결단을 내리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히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 어찌 내가 알 바이겠는가. 내가 너무도 불행하여 또 이런 변을 만났는데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하였다.


[註 007] 호인(胡寅) : 호안국(胡安國)의 조카로서 양아들이 되었음.
"신들이 한 나라의 공공(公共)의 논의를 가지고 와 궐문에 엎드려서 우러러 피끓는 정성을 바치고 있는 이것이야말로 종묘 사직을 위하는 지극한 계책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까마득히 들어주시지 않은 채 오히려 준엄한 비답만 내리시니, 신들은 머리를 모으고 서로 돌아볼 뿐, 성상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임금의 효(孝)란 국가가 편안하고 그 토대가 길이 유지될 때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구구한 소은(小恩)이나 사정(私情) 따위는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서궁이 일으킨 화는 고금을 통해 있지 않았던 일로서 당(唐)나라의 무씨(武氏)도 이에 비하면 덜하다 하겠는데, 그럼에도 호인(胡寅)007)  은 무씨의 죄를 세면서 장간지(張柬之) 등이 무후를 폐주(廢誅)시키지 못했던 것을 꾸짖기까지 하였습니다. 신들은 무씨의 아홉 가지 죄를 서궁의 열 가지 죄와 비교하며 논해 볼까 합니다.
이의(李㼁)를 낳은 뒤에 진하(陳賀)하게 하고 점장이를 시켜 복을 빌게 한 죄는 사제(嗣帝)를 고혹(蠱惑)한 것보다 심하고,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고 능을 파헤치면서 흉악한 짓을 행한 죄는 주모(主母)를 살해한 것보다 심하며, 자기 소생을 세우려고 꾀하며 전위(傳位)하지 못하도록 막은 죄는 황제를 축출한 것보다 심하고, 눈먼 무당을 시켜 저주하게 하면서 성상을 해치려고 꾀한 죄는 자식을 죽인 것보다 심하며, 성상께서 즉위한 초에 어보(御寶)를 한동안 머물러두고 내놓지 않았던 죄는 자신이 황제가 되었던 것보다 심하고, 유명(遺命)이라 사칭하여 의를 보호하게 하면서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던 죄는 멋대로 종묘 사직을 폐했던 것보다 심하며, 흉악한 무리와 결탁하고 양식과 군기를 비축하면서 널리 무사들을 모집해 훈련한 것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키려 했던 죄는 더러운 덕을 널리 들리게 했던 것보다 심하고, 흑문(黑門)에 글을 통해 중국 관원에게 호소함으로써 상국에 화(禍)를 부추겨 종묘 사직을 멸하려 했던 죄는 종실을 전멸시켰던 것보다 심하며, 은밀히 궁노(宮奴)를 모아 남몰래 부서(部署)를 정해서 일을 집행하게 하는 한편 흔단을 틈타 난을 얽어냄으로써 간사하게 엿보는 계책을 이루려 했던 죄는 오로지 혹리(酷吏)를 썼던 것보다 심하고, 남쪽으로 왜(倭)와 결탁하여 응원을 부탁하고 북쪽으로 오랑캐와 교분을 맺음으로써 중국 조정을 배반하고 의를 세울 기반을 마련하려 했던 것은 무씨에게도 없었던 일로서 서궁에게만 있는 죄라 할 것입니다.
하늘을 거역한 그 죄에 대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주벌(誅罰)을 가하려 하는데 전하께서 어떻게 명위(名位)에 따른 상례(常例)에 구애받은 나머지 천하의 죄인을 놔두고 토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일에 결단코 다른 뜻은 없습니다. 폐출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행해야만 하니,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속히 결단을 내리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히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 어찌 내가 알 바이겠는가. 내가 너무도 불행하여 또 이런 변을 만났는데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하였다.

 

양사가 아뢰기를, "그저께 논계할 때 백관이 다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정청(庭請)하다 보니 자연히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대론(大論)이 급하다는 것만 알았지 밤이 깊은 때 아뢰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결과 엄한 분부를 내리시게끔 수고를 끼쳐 드렸으니 신들의 잘못이 큽니다.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그저께 논계할 때 백관이 다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정청(庭請)하다 보니 자연히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대론(大論)이 급하다는 것만 알았지 밤이 깊은 때 아뢰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결과 엄한 분부를 내리시게끔 수고를 끼쳐 드렸으니 신들의 잘못이 큽니다.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백관이 재계(再啓)하니, 답하기를, "내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모쪼록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모쪼록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재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재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삼계(三啓)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삼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연차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관학(館學) 유생이 첫번째 소(疏)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두 번째 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이항복(李恒福) 등의 정배 단자(定配單子)에 대해 전교하였다. "대신이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변경에 놔둘 수는 없다. 더구나 바야흐로 우려할 만한 단서가 있는 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길주(吉州)나 북청(北靑) 등지로 고쳐 정배하라."
"대신이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변경에 놔둘 수는 없다. 더구나 바야흐로 우려할 만한 단서가 있는 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길주(吉州)나 북청(北靑) 등지로 고쳐 정배하라."

 

전교하였다. "기자헌(奇自獻)을 길주로 정배하라."
"기자헌(奇自獻)을 길주로 정배하라."

 

이항복을 북청으로 바꿔 정배하였다.

 

1월 7일 정묘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 어찌 종척(宗戚)이 차마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내가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으니 절대로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 어찌 종척(宗戚)이 차마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내가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으니 절대로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 유생이 첫 번째 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양사가 아뢰기를, "전날 신들이 기자헌(奇自獻)·기준격(奇俊格)·허균(許筠)을 모두 국문할 일에 대해 논계하자 성상께서는 비답을 내려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분부하셨습니다. 신들이 막중한 일을 연계(連啓)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마침 대론(大論)을 만나 합사(合司)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우선 정지하고서 결정을 내리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제 묘당에서 우선 정지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면서 심지어는 왕복하며 상의했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신들이 무기력하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 이처럼 조정에 물의를 야기시켰으니 구차하게 언지(言地)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사가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날 신들이 기자헌(奇自獻)·기준격(奇俊格)·허균(許筠)을 모두 국문할 일에 대해 논계하자 성상께서는 비답을 내려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분부하셨습니다. 신들이 막중한 일을 연계(連啓)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마침 대론(大論)을 만나 합사(合司)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우선 정지하고서 결정을 내리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제 묘당에서 우선 정지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면서 심지어는 왕복하며 상의했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신들이 무기력하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 이처럼 조정에 물의를 야기시켰으니 구차하게 언지(言地)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사가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듣건대, 머리와 팔 다리는 서로 도와 한 몸을 이루니 아프거나 가려우면 서로 근심해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막대한 변고를 당했음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차마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심정으로 그저 혼자서 하늘에 호소하며 안타깝게 울고 있는 형편이니, 경들의 처지에서는 본래 이런 논의를 내지 말아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야 마땅한데, 어쩌자고 백관을 이끌고 와서 하루에 세 차례씩이나 번거롭게 소란을 피운단 말인가. 아무쪼록 내 뜻을 살펴 속히 정지하고 물러가도록 하라." 하였다.
"내가 듣건대, 머리와 팔 다리는 서로 도와 한 몸을 이루니 아프거나 가려우면 서로 근심해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막대한 변고를 당했음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차마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심정으로 그저 혼자서 하늘에 호소하며 안타깝게 울고 있는 형편이니, 경들의 처지에서는 본래 이런 논의를 내지 말아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야 마땅한데, 어쩌자고 백관을 이끌고 와서 하루에 세 차례씩이나 번거롭게 소란을 피운단 말인가. 아무쪼록 내 뜻을 살펴 속히 정지하고 물러가도록 하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자, 답하기를, "차마 듣지 못하겠다.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차마 듣지 못하겠다.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첫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차마 듣지 못하겠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차마 듣지 못하겠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삼계(三啓)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좌찬성 박승종(朴承宗)이 아뢰기를, "2일에 정부의 관리가 와서 말하기를 ‘4일에 백관을 이끌고 정청(庭請)할 일이 있다.’고 하였는데, 4일 이른 아침에 정부의 관리가 와서 말하기를 ‘앞으로 5, 6일 동안은 정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가 저물녘에 또 와서 말하기를 ‘오늘 비록 늦었지만 정청하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정부의 동벽(東壁)에 있는 신분으로서 날짜를 왜 물리는지, 왜 앞당기는지에 대해서 까마득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신은 실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좌찬성의 체직을 명하시고 산관(散官)으로나 수행(隨行)하게 해 주신다면 공사(公私)간에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2일에 정부의 관리가 와서 말하기를 ‘4일에 백관을 이끌고 정청(庭請)할 일이 있다.’고 하였는데, 4일 이른 아침에 정부의 관리가 와서 말하기를 ‘앞으로 5, 6일 동안은 정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가 저물녘에 또 와서 말하기를 ‘오늘 비록 늦었지만 정청하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정부의 동벽(東壁)에 있는 신분으로서 날짜를 왜 물리는지, 왜 앞당기는지에 대해서 까마득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신은 실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좌찬성의 체직을 명하시고 산관(散官)으로나 수행(隨行)하게 해 주신다면 공사(公私)간에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아뢰기를, "2일에 대사헌 이병과 대사간 윤인이 와서 말하기를 ‘오늘 양사가 대론(大論)을 가지고 이미 논계한 만큼 내일은 백관이 정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그대로 하겠다.’고 하고는 즉시 각사(各司)에 알렸습니다. 이에 조신(朝臣)이 3일에 예궐(詣闕)할 예정이었는데, 윤인이 또 와서 말하기를 ‘오늘 정청하기로 어제 이미 의논해 정하긴 했지만 시의(時議)가 「오늘은 유고(有故)하니 내일로 물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고 하기에, 신이 또 답하기를 ‘영공의 말에 따라 내일로 물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우찬성 이충(李沖)이 와서 말하기를 ‘요즘 부득이한 일이 생겼으니 5, 6일이 지난 뒤에나 해야겠다.’고 하기에, 신이 또 답하기를 ‘시의가 그러하다면 거기에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4일 오후에 우참찬 유간(柳澗)이 본부(本府)에 급히 말을 전해 오기를 ‘오늘 비록 늦었지만 백관이 정청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각사에 즉각 공문을 보내어 알려야겠다.’ 하고, 얼마 뒤에는 우찬성 이충이 신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시의가 「오늘 비록 늦었지만 정청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해가 이미 기울었는데 백관이 대궐뜰에 모여 출입하는 것은 전도된 일이지만 대론(大論)이 매우 급해져서 시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한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하리(下吏)를 시켜 동벽과 서벽에 두루 알리도록 하고는 즉시 궐하로 나아가 훈척(勳戚) 중신(重臣)과 반복해서 논의하였는데, 그러는 가운데 자연히 밤이 깊어지고 말았으니 정말 미안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좌찬성 박승종의 계사를 보건대 신이 일을 당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잘못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이에 감히 사유를 갖추어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경은 안심하라." 하였다.
"2일에 대사헌 이병과 대사간 윤인이 와서 말하기를 ‘오늘 양사가 대론(大論)을 가지고 이미 논계한 만큼 내일은 백관이 정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그대로 하겠다.’고 하고는 즉시 각사(各司)에 알렸습니다. 이에 조신(朝臣)이 3일에 예궐(詣闕)할 예정이었는데, 윤인이 또 와서 말하기를 ‘오늘 정청하기로 어제 이미 의논해 정하긴 했지만 시의(時議)가 「오늘은 유고(有故)하니 내일로 물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고 하기에, 신이 또 답하기를 ‘영공의 말에 따라 내일로 물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우찬성 이충(李沖)이 와서 말하기를 ‘요즘 부득이한 일이 생겼으니 5, 6일이 지난 뒤에나 해야겠다.’고 하기에, 신이 또 답하기를 ‘시의가 그러하다면 거기에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4일 오후에 우참찬 유간(柳澗)이 본부(本府)에 급히 말을 전해 오기를 ‘오늘 비록 늦었지만 백관이 정청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각사에 즉각 공문을 보내어 알려야겠다.’ 하고, 얼마 뒤에는 우찬성 이충이 신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시의가 「오늘 비록 늦었지만 정청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해가 이미 기울었는데 백관이 대궐뜰에 모여 출입하는 것은 전도된 일이지만 대론(大論)이 매우 급해져서 시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한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하리(下吏)를 시켜 동벽과 서벽에 두루 알리도록 하고는 즉시 궐하로 나아가 훈척(勳戚) 중신(重臣)과 반복해서 논의하였는데, 그러는 가운데 자연히 밤이 깊어지고 말았으니 정말 미안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좌찬성 박승종의 계사를 보건대 신이 일을 당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잘못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이에 감히 사유를 갖추어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경은 안심하라."
하였다.

 

우찬성 이충이 아뢰었다. "이달 3일에 신이 정청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듣고 궐하로 갔더니 이미 4일로 물렸다고 하기에 신이 물러가려고 할 즈음에 예조 판서 이이첨을 빈청(賓廳)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그가 신에게 말하기를 ‘정청하는 일에 대해서는 물의가 모두 며칠 지난 뒤에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있으니 급히 우상에게 통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신이 사양했으나 그만둘 수 없어 우상에게 통고하였습니다. 이튿날 예판이 신에게 글을 보내기를 ‘삼사의 뜻이 또 정청을 오래도록 하지 않는 것은 미안하다고 하니 오늘 안으로 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으므로 신이 또 부득이 우상에게 다시 통지하였습니다. 그 사이의 곡절은 이와 같을 뿐인데 지금 우상의 계사를 보니 중간에서 말을 전한 신의 잘못이 크기에 황공한 심정으로 대죄(待罪)합니다."
"이달 3일에 신이 정청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듣고 궐하로 갔더니 이미 4일로 물렸다고 하기에 신이 물러가려고 할 즈음에 예조 판서 이이첨을 빈청(賓廳)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그가 신에게 말하기를 ‘정청하는 일에 대해서는 물의가 모두 며칠 지난 뒤에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있으니 급히 우상에게 통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신이 사양했으나 그만둘 수 없어 우상에게 통고하였습니다. 이튿날 예판이 신에게 글을 보내기를 ‘삼사의 뜻이 또 정청을 오래도록 하지 않는 것은 미안하다고 하니 오늘 안으로 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으므로 신이 또 부득이 우상에게 다시 통지하였습니다. 그 사이의 곡절은 이와 같을 뿐인데 지금 우상의 계사를 보니 중간에서 말을 전한 신의 잘못이 크기에 황공한 심정으로 대죄(待罪)합니다."

 

예조 판서 이이첨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이충의 계사를 보건대 신의 이름을 거론하기까지 하였으니 그 사이의 곡절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신이 성묘(省墓)하기 전에 정부가 대론을 발동하려고 하면서 이미 4일로 날짜를 잡았다는 말을 듣고서 떠났었는데, 3일 예궐(詣闕)하여 숙배(肅拜)할 때 들으니 대론을 그날로 앞당겨 발동하려 한다 하기에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이충을 보고 묻기를 ‘나라의 대사에 대해 이미 날짜까지 잡아놓았는데 오늘로 앞당겨 발동해서야 되겠는가. 우상이 홀로 대론을 담당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고 있으니 새 정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상의해서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차라리 며칠 더 지나서 7일쯤에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이충이 말하기를 ‘내가 그렇게 통지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곧바로 물의를 듣건대 삼사가 ‘대론이 점차 지체되는 것을 온당치 못하게 여긴다.’고 하기에 4일 이른 아침에 이충이 간통(簡通)해 왔을 때 그날 바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답통(答通)하였고, 밥 먹은 뒤 유간이 찾아왔을 때에도 역시 그날 바로 정청해야 한다는 뜻을 말하였습니다. 저물녘에 정청하는 일로 분발(分撥)008)  이 왔기에 신이 즉시 예궐하였더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는 무렵인데 백관이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우상이 백관을 이끌고 대궐 뜰에 들어와 신에게 분부하기를 ‘대제학은 속히 초계(初啓)를 지으시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계사의 주된 내용을 폄삭(貶削)에 두어야 하는가. 폐출에 두어야 하는가?’ 하니, 우상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있는 재신(宰臣)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서로들 미루고 결정을 내리지 못해 밤만 깊어 갔는데, 이 사이의 허다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 전달드릴 수가 없습니다. 신이 재삼 재촉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합사(合司)하여 논계한 대체적인 내용을 보고서는 우상이 결단을 내리기를 ‘대간이 폄삭을 내용으로 계사를 올렸고, 또 폐(廢) 자를 천(遷) 자로 바꾸었으니 그 뜻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도 합사로 올린 계사의 뜻에 따라 짓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이때 재신들은 각각 흩어져 쉬러 나가고 신도 두 제학과 이어 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간통으로 양사에 계사의 뜻을 물어보았더니 ‘실제로 폐출에 뜻이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즉각 불분명하게 글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인피(引避)하였습니다. 신들이 우상에게 보낸 답간에 ‘합사의 본의가 이와 같은데 우리도 합사의 뜻에 따라 폐출 위주로 글을 지어야 하는가?’ 하니, 우상이 말하기를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하였으므로 신이 즉시 초안을 작성하여 우상에게 아뢰도록 청했습니다. 대개 대론이 이미 나왔는 데도 오래도록 정청을 하지 않자 인심이 헤아릴 수 없게 되면서 괴이한 변고가 날로 일어나고 있으니, 속히 정청을 하려고 하는 것이 어찌 유독 신만의 뜻이라 하겠습니까. 그리고 물의가 지체시키는 것을 그르게 여긴다는 말을 듣고 즉시 정부의 관원에게 말을 했던 것은 형세상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동료에게 통지하지 않은 일이나 백관이 즉시 모이지 않은 일이나 대신이 곧장 단안을 내리지 못한 일 등은 모두 신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더구나 종묘 사직의 존망(存亡)과 인심의 향배(向背)가 오직 그 하룻밤 사이에 달려 있었는 데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서로들 눈치만 보던 그 분위기야말로 가증스러운 것이었으니 그날 밤에 끝내 결렬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통탄스럽게 여기는 점이 있습니다. 대론을 청하는 것이야말로 신자(臣子)라면 똑같이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서 혹시라도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며 모든 심혈을 다 기울여야 할 터인데, 지금 어째서 조목마다 트집을 잡으면서 일을 망치려 하는 것처럼 한단 말입니까. 먹기 싫은 밥을 보면 검부러기가 먼저 눈에 띈다는 속담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이 평생 일을 해 오면서 비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이런 비방이 또 신의 몸에 미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황공스러운 심정으로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註 008] 분발(分撥) : 급보를 전하는 것.
"신이 삼가 이충의 계사를 보건대 신의 이름을 거론하기까지 하였으니 그 사이의 곡절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신이 성묘(省墓)하기 전에 정부가 대론을 발동하려고 하면서 이미 4일로 날짜를 잡았다는 말을 듣고서 떠났었는데, 3일 예궐(詣闕)하여 숙배(肅拜)할 때 들으니 대론을 그날로 앞당겨 발동하려 한다 하기에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이충을 보고 묻기를 ‘나라의 대사에 대해 이미 날짜까지 잡아놓았는데 오늘로 앞당겨 발동해서야 되겠는가. 우상이 홀로 대론을 담당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고 있으니 새 정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상의해서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차라리 며칠 더 지나서 7일쯤에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이충이 말하기를 ‘내가 그렇게 통지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곧바로 물의를 듣건대 삼사가 ‘대론이 점차 지체되는 것을 온당치 못하게 여긴다.’고 하기에 4일 이른 아침에 이충이 간통(簡通)해 왔을 때 그날 바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답통(答通)하였고, 밥 먹은 뒤 유간이 찾아왔을 때에도 역시 그날 바로 정청해야 한다는 뜻을 말하였습니다.
저물녘에 정청하는 일로 분발(分撥)008)  이 왔기에 신이 즉시 예궐하였더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는 무렵인데 백관이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우상이 백관을 이끌고 대궐 뜰에 들어와 신에게 분부하기를 ‘대제학은 속히 초계(初啓)를 지으시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계사의 주된 내용을 폄삭(貶削)에 두어야 하는가. 폐출에 두어야 하는가?’ 하니, 우상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있는 재신(宰臣)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서로들 미루고 결정을 내리지 못해 밤만 깊어 갔는데, 이 사이의 허다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 전달드릴 수가 없습니다.
신이 재삼 재촉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합사(合司)하여 논계한 대체적인 내용을 보고서는 우상이 결단을 내리기를 ‘대간이 폄삭을 내용으로 계사를 올렸고, 또 폐(廢) 자를 천(遷) 자로 바꾸었으니 그 뜻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도 합사로 올린 계사의 뜻에 따라 짓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이때 재신들은 각각 흩어져 쉬러 나가고 신도 두 제학과 이어 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간통으로 양사에 계사의 뜻을 물어보았더니 ‘실제로 폐출에 뜻이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즉각 불분명하게 글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인피(引避)하였습니다. 신들이 우상에게 보낸 답간에 ‘합사의 본의가 이와 같은데 우리도 합사의 뜻에 따라 폐출 위주로 글을 지어야 하는가?’ 하니, 우상이 말하기를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하였으므로 신이 즉시 초안을 작성하여 우상에게 아뢰도록 청했습니다.
대개 대론이 이미 나왔는 데도 오래도록 정청을 하지 않자 인심이 헤아릴 수 없게 되면서 괴이한 변고가 날로 일어나고 있으니, 속히 정청을 하려고 하는 것이 어찌 유독 신만의 뜻이라 하겠습니까. 그리고 물의가 지체시키는 것을 그르게 여긴다는 말을 듣고 즉시 정부의 관원에게 말을 했던 것은 형세상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동료에게 통지하지 않은 일이나 백관이 즉시 모이지 않은 일이나 대신이 곧장 단안을 내리지 못한 일 등은 모두 신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더구나 종묘 사직의 존망(存亡)과 인심의 향배(向背)가 오직 그 하룻밤 사이에 달려 있었는 데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서로들 눈치만 보던 그 분위기야말로 가증스러운 것이었으니 그날 밤에 끝내 결렬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통탄스럽게 여기는 점이 있습니다. 대론을 청하는 것이야말로 신자(臣子)라면 똑같이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서 혹시라도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며 모든 심혈을 다 기울여야 할 터인데, 지금 어째서 조목마다 트집을 잡으면서 일을 망치려 하는 것처럼 한단 말입니까. 먹기 싫은 밥을 보면 검부러기가 먼저 눈에 띈다는 속담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이 평생 일을 해 오면서 비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이런 비방이 또 신의 몸에 미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황공스러운 심정으로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관학 유생이 두 번째 소를 올리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좌참찬 허균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4일 2경(更)에 밖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장정 2명이 울타리 밑에 숨어 있다가 손을 쓰려 하였는데, 그때 말 뒤에 있던 종이 알아채고는 도적이 있다고 소리치니 그 도적이 달아나 인가에 숨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수색해서 붙잡아 결박하고 물어보니 처음에는 문창(文昌)009)   집의 종이라고 했다가 다음에는 정승댁의 종이라고 했는데, 어느 정승댁이냐고 강력하게 추궁하였으나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저께 그를 포도청으로 보냈는데 어제 일선위(一善尉)의 여종이 그를 풀어주기를 청하면서 또 문창의 집에 드나드는 모의장(毛衣匠)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내가 혼자서 대론(大論)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원수진 사람이 미워한 나머지 이사도(李師道)가 배도(裵度)를 해치려 했던 일을 행하려 한 것인데 어찌 남의 사주를 받아 풀어줄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대장 등이 지금까지 미루면서 국문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권귀(權貴)와 굳게 결탁하여 모의하는 바가 있는 정상을 이에 의거해서 알 수 있습니다. 신이 기반도 미약한 처지에서 화근을 제거하자는 논의를 극력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오래전부터 신을 죽이려 하였는데, 지금은 기가(奇家)010)  에서 원한을 품고 사람을 사주하여 흉소(兇疏)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이병은 곧 신과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자로 전일 아뢰면서 ‘군부를 위해하려 모의한다.[謀爲君父]’는 네 글자를 스스로 지어 신에게 덮어씌우기까지 하였는데, 기준격(奇俊格)011)  의 소가 내려지기도 전에 이병이 무슨 수로 미리 알고서 갑자기 불측한 이름을 덮어씌우게 되었는지 신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국문하는 자리에 나아가 기필코 이병과 대질 신문을 벌여 신이 군상을 위해하려 모의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곡절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만 단지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하셨으므로 신은 거적을 깔고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자헌이 유배되어 나갈 적에 다시 혈소(血疏)를 진달하여 함께 대질 신문을 벌이려 하였습니다만 곧바로 ‘대간의 논계가 처치되지 않았으니 서서히 정배보내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므로 신은 그저 입대(入對)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객(刺客)이 횡행하면서 신을 먼저 없애려 하고 있으니, 신이 한번 죽고 나면 신의 원통함을 풀 길이 없겠기에 감히 대론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때에 번거롭게 해드리는 일을 피하지 못한 채 우러러 간절한 충정을 진달하게 되었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대개 자헌이 기필코 신을 죽이려 하는 것은 바로 신의 입을 막고자 해서입니다. 계축년의 변이 처음 일어났을 때 서궁(西宮)이 흉역(兇逆)을 도모한 정상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신이 기(奇)에게 말하기를 ‘이는 신자로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이다. 어찌 지극히 높은 자리에 놔두어 인륜을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하였더니, 기가 말하기를 ‘그대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김제남(金悌男)은 사리에 어둡고 유약한 사람인데 어떻게 비상한 모의를 획책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궁중에서 저주(咀呪)했다는 것도 궁인(宮人)들 스스로 하고서 대비전(大妃殿)에 화를 전가시킨 것이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더구나 심우영(沈友英)의 공초(供招)에도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서양갑(徐羊甲)이 박응서(朴應犀)의 계책에 자신이 횡사(橫死)하게 된 것을 분하게 여긴 나머지 국가에 난을 끼칠 목적으로 이런 흉악한 이야기를 지어 낸 것이다. 그들이 역적질을 하려 한다 해도 그 누가 기꺼이 따르겠는가. 《위료자(尉繚子)》에도 말하기를 「가혹한 형벌을 가하면 지사(志士)도 무복(誣服)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지금 주상에게 다른 아들이 없고 동궁에게도 아직 후사(後嗣)가 없다 해도 혹 만세(萬世) 뒤에 정론(正論)이 일어난다면 오늘날 이 일을 한 자에게 자손이 있다 한들 그들이 또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나의 외조부가 바로 임백령(林百齡)인데 지금 사람들이 을사년의 일012)  을 말하면 내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그대는 이런 의논을 내놓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대체로 김제남을 임류(任瑠)에 견준 것이고 서양갑 등이 무복했다고 여긴 것이었으므로 신은 한심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그의 자식과 조카가 역적의 공초에 나왔으므로 뒷날 말할 여지를 만들기 위해 이런 의논을 주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는 기자헌이 이 말이 누설될까 매우 두려워하며 의구심을 가졌는데 신 역시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였습니다. 이 밖에 상을 원망하는 말과 난을 요행으로 여기는 설로서 신의 귀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감히 아울러 진달하지 못하겠습니다.  준격의 상소에 대해서는 신이 알 수가 없습니다. 준격이 신에게 가르침을 받기는 하였습니다만, 훈회(訓誨)하는 것 이외에는 나이 어린 사람과 시사(時事)에 대해 말하는 것도 오히려 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이렇듯 흉소에 거론된 불측한 말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가 만약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어찌하여 일찍 고발하지 않고 그의 아비가 죄를 입은 날에야 발설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가 고발하지 않은 죄가 또한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 데도 무고(誣告)하여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려다 보니 신자로서 차마 듣지도 못할 일을 그만 감히 글로 쓴 것인데, 참으로 천륜을 모독하고 어지럽히는 짓을 상습적으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꺼내어 전하의 귀에까지 들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늘을 거스르고 위를 거역한 말을 스스로 얽어내었으니 그 죄가 역신(逆臣)보다 심한 점이 있다 할 것입니다. 신은 삼가 통탄할 따름입니다. 병오년013)   겨울에 신의 형 허성(許筬)이 이조 판서로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성에게 말하기를 ‘이홍로(李弘老)가 이병을 광주(廣州) 경주인(京主人) 집에 우거(寓居)시키고는 밤낮으로 사람들을 모아 교활한 음모를 획책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다고 하니, 모쪼록 동궁을 위하여 외직(外職)에 보임(補任)시키는 것이 좋겠다.’ 하였으므로 성이 즉시 잇달아 외방 고을에 의망(擬望)한 결과 결국 그 뒤에 정주(定州)의 수령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신년014)  에는 이홍로의 심복(心腹)이라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5년 동안 삭관(削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라 사람으로서 그가 홍로의 패거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 데도 권세 있는 자의 연줄을 타고 요행히 면하여 청반(淸班)에 오르게 된 것인데, 그가 겉으로는 대론을 가탁하면서도 속으로는 실상 사세를 관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가 4일 올린 계사를 보더라도 폐출이라는 두 글자는 꺼내지도 않은 채 폄삭하는 절목(節目)만을 거론하고는 끝에 가서 ‘내택(內宅)에 옮겨 안치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그의 본마음이 여기에서 다 드러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병이 그만 감히 사주를 받고는 원한을 갚기 위해 거꾸로 악명을 신에게 뒤집어씌웠으니, 신은 더욱 원통하기만 합니다. 인신(人臣)으로서 이런 대역(大逆)의 죄명을 지고서는 하루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고 살 수가 없는 일이니, 급히 기자헌 및 이병 등과 함께 하옥시켜 대질 신문을 벌이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어째서 난모(亂謀)를 일찍 고발하지 않았고 어째서 화근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는지를 기자헌에게 끝까지 캐어묻고, 이어 이병에게 신이 군상을 위해하려고 모의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따지게 해 주심으로써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간사한 정상을 적발해 내고 한편으로는 미천한 신하가 무고당한 정상을 씻게 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이 군부를 위하여 만 번 죽을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종묘 사직을 붙들어 세웠는 데도 끝내는 망극한 참소를 받고 말았는데, 오늘날 횡행하는 자객도 신을 미워하는 자의 소행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통쾌하게 변별하여 씻어주심으로써 간인들의 기도를 저지시켜 주지 않으신다면 충정(忠貞)한 신하가 여생을 보전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막히고 말이 움츠러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불쌍하게 여기시어 곡진히 살펴 주소서." 하였는데, 윤4월 14일에 비로소 추국청에 내렸다.


[註 009] 문창(文昌) : 유희분(柳希奮)의 봉호(封號).[註 010] 기가(奇家) : 기자헌(奇自獻)의 집안.[註 011] 기준격(奇俊格) : 기자헌의 아들.[註 012] 을사년의 일 : 명종(明宗) 원년(1545)에 일어난 을사 사화를 말함. 소윤(小尹)의 거두 윤원형(尹元衡)이 대윤(大尹)의 거두인 윤임(尹任)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이 죽고 많은 명사들이 축출되었는데 이때 임백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음.[註 013] 병오년 : 1606 선조 39년.[註 014] 무신년 : 1608 선조 41년.
"삼가 아룁니다. 신이 4일 2경(更)에 밖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장정 2명이 울타리 밑에 숨어 있다가 손을 쓰려 하였는데, 그때 말 뒤에 있던 종이 알아채고는 도적이 있다고 소리치니 그 도적이 달아나 인가에 숨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수색해서 붙잡아 결박하고 물어보니 처음에는 문창(文昌)009)   집의 종이라고 했다가 다음에는 정승댁의 종이라고 했는데, 어느 정승댁이냐고 강력하게 추궁하였으나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저께 그를 포도청으로 보냈는데 어제 일선위(一善尉)의 여종이 그를 풀어주기를 청하면서 또 문창의 집에 드나드는 모의장(毛衣匠)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내가 혼자서 대론(大論)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원수진 사람이 미워한 나머지 이사도(李師道)가 배도(裵度)를 해치려 했던 일을 행하려 한 것인데 어찌 남의 사주를 받아 풀어줄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대장 등이 지금까지 미루면서 국문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권귀(權貴)와 굳게 결탁하여 모의하는 바가 있는 정상을 이에 의거해서 알 수 있습니다.
신이 기반도 미약한 처지에서 화근을 제거하자는 논의를 극력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오래전부터 신을 죽이려 하였는데, 지금은 기가(奇家)010)  에서 원한을 품고 사람을 사주하여 흉소(兇疏)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이병은 곧 신과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자로 전일 아뢰면서 ‘군부를 위해하려 모의한다.[謀爲君父]’는 네 글자를 스스로 지어 신에게 덮어씌우기까지 하였는데, 기준격(奇俊格)011)  의 소가 내려지기도 전에 이병이 무슨 수로 미리 알고서 갑자기 불측한 이름을 덮어씌우게 되었는지 신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국문하는 자리에 나아가 기필코 이병과 대질 신문을 벌여 신이 군상을 위해하려 모의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곡절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만 단지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하셨으므로 신은 거적을 깔고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자헌이 유배되어 나갈 적에 다시 혈소(血疏)를 진달하여 함께 대질 신문을 벌이려 하였습니다만 곧바로 ‘대간의 논계가 처치되지 않았으니 서서히 정배보내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므로 신은 그저 입대(入對)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객(刺客)이 횡행하면서 신을 먼저 없애려 하고 있으니, 신이 한번 죽고 나면 신의 원통함을 풀 길이 없겠기에 감히 대론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때에 번거롭게 해드리는 일을 피하지 못한 채 우러러 간절한 충정을 진달하게 되었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대개 자헌이 기필코 신을 죽이려 하는 것은 바로 신의 입을 막고자 해서입니다. 계축년의 변이 처음 일어났을 때 서궁(西宮)이 흉역(兇逆)을 도모한 정상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신이 기(奇)에게 말하기를 ‘이는 신자로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이다. 어찌 지극히 높은 자리에 놔두어 인륜을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하였더니, 기가 말하기를 ‘그대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김제남(金悌男)은 사리에 어둡고 유약한 사람인데 어떻게 비상한 모의를 획책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궁중에서 저주(咀呪)했다는 것도 궁인(宮人)들 스스로 하고서 대비전(大妃殿)에 화를 전가시킨 것이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더구나 심우영(沈友英)의 공초(供招)에도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서양갑(徐羊甲)이 박응서(朴應犀)의 계책에 자신이 횡사(橫死)하게 된 것을 분하게 여긴 나머지 국가에 난을 끼칠 목적으로 이런 흉악한 이야기를 지어 낸 것이다. 그들이 역적질을 하려 한다 해도 그 누가 기꺼이 따르겠는가. 《위료자(尉繚子)》에도 말하기를 「가혹한 형벌을 가하면 지사(志士)도 무복(誣服)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지금 주상에게 다른 아들이 없고 동궁에게도 아직 후사(後嗣)가 없다 해도 혹 만세(萬世) 뒤에 정론(正論)이 일어난다면 오늘날 이 일을 한 자에게 자손이 있다 한들 그들이 또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나의 외조부가 바로 임백령(林百齡)인데 지금 사람들이 을사년의 일012)  을 말하면 내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그대는 이런 의논을 내놓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대체로 김제남을 임류(任瑠)에 견준 것이고 서양갑 등이 무복했다고 여긴 것이었으므로 신은 한심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그의 자식과 조카가 역적의 공초에 나왔으므로 뒷날 말할 여지를 만들기 위해 이런 의논을 주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는 기자헌이 이 말이 누설될까 매우 두려워하며 의구심을 가졌는데 신 역시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였습니다. 이 밖에 상을 원망하는 말과 난을 요행으로 여기는 설로서 신의 귀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감히 아울러 진달하지 못하겠습니다.
준격의 상소에 대해서는 신이 알 수가 없습니다. 준격이 신에게 가르침을 받기는 하였습니다만, 훈회(訓誨)하는 것 이외에는 나이 어린 사람과 시사(時事)에 대해 말하는 것도 오히려 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이렇듯 흉소에 거론된 불측한 말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가 만약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어찌하여 일찍 고발하지 않고 그의 아비가 죄를 입은 날에야 발설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가 고발하지 않은 죄가 또한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 데도 무고(誣告)하여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려다 보니 신자로서 차마 듣지도 못할 일을 그만 감히 글로 쓴 것인데, 참으로 천륜을 모독하고 어지럽히는 짓을 상습적으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꺼내어 전하의 귀에까지 들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늘을 거스르고 위를 거역한 말을 스스로 얽어내었으니 그 죄가 역신(逆臣)보다 심한 점이 있다 할 것입니다. 신은 삼가 통탄할 따름입니다.
병오년013)   겨울에 신의 형 허성(許筬)이 이조 판서로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성에게 말하기를 ‘이홍로(李弘老)가 이병을 광주(廣州) 경주인(京主人) 집에 우거(寓居)시키고는 밤낮으로 사람들을 모아 교활한 음모를 획책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다고 하니, 모쪼록 동궁을 위하여 외직(外職)에 보임(補任)시키는 것이 좋겠다.’ 하였으므로 성이 즉시 잇달아 외방 고을에 의망(擬望)한 결과 결국 그 뒤에 정주(定州)의 수령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신년014)  에는 이홍로의 심복(心腹)이라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5년 동안 삭관(削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라 사람으로서 그가 홍로의 패거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 데도 권세 있는 자의 연줄을 타고 요행히 면하여 청반(淸班)에 오르게 된 것인데, 그가 겉으로는 대론을 가탁하면서도 속으로는 실상 사세를 관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가 4일 올린 계사를 보더라도 폐출이라는 두 글자는 꺼내지도 않은 채 폄삭하는 절목(節目)만을 거론하고는 끝에 가서 ‘내택(內宅)에 옮겨 안치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그의 본마음이 여기에서 다 드러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병이 그만 감히 사주를 받고는 원한을 갚기 위해 거꾸로 악명을 신에게 뒤집어씌웠으니, 신은 더욱 원통하기만 합니다. 인신(人臣)으로서 이런 대역(大逆)의 죄명을 지고서는 하루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고 살 수가 없는 일이니, 급히 기자헌 및 이병 등과 함께 하옥시켜 대질 신문을 벌이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어째서 난모(亂謀)를 일찍 고발하지 않았고 어째서 화근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는지를 기자헌에게 끝까지 캐어묻고, 이어 이병에게 신이 군상을 위해하려고 모의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따지게 해 주심으로써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간사한 정상을 적발해 내고 한편으로는 미천한 신하가 무고당한 정상을 씻게 해 주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이 군부를 위하여 만 번 죽을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종묘 사직을 붙들어 세웠는 데도 끝내는 망극한 참소를 받고 말았는데, 오늘날 횡행하는 자객도 신을 미워하는 자의 소행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통쾌하게 변별하여 씻어주심으로써 간인들의 기도를 저지시켜 주지 않으신다면 충정(忠貞)한 신하가 여생을 보전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막히고 말이 움츠러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불쌍하게 여기시어 곡진히 살펴 주소서."
하였는데, 윤4월 14일에 비로소 추국청에 내렸다.

 

1월 8일 무진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 모두에게 출사(出仕)를 명할 것을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종실이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여러 종친들이 한 번 여러 사람들의 심정을 이야기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찌 꼭 날마다 번거롭게 소란을 피워야 하겠는가. 많은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여러 종친들이 한 번 여러 사람들의 심정을 이야기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찌 꼭 날마다 번거롭게 소란을 피워야 하겠는가. 많은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再啓)하니, 답하기를, "차마 듣지 못하겠다.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차마 듣지 못하겠다.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유학(幼學) 설구인(薛求仁)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이병이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이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로서 그 역시 악명을 받고 있는데, 대론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날에 권귀(權貴)의 은미한 뜻을 받들어 억지로 피혐함으로써 대의(大義)를 느슨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폄삭하고 폐(廢) 자를 천(遷) 자로 고치자는 의논을 주장하여 대사를 그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대간들도 쟁집(爭執)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차하게 그 의논을 따랐습니다. 먼저 이병을 목베어 역적에 편든 죄를 바루고, 다음으로는 양사를 귀양보내 불충한 죄를 다스리고, 이어 치당(致堂)015)  이 주장했던 것처럼 서궁을 태묘(太廟)에서 수죄(數罪)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註 015] 치당(致堂) : 송(宋) 호인(胡寅).
"이병이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이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로서 그 역시 악명을 받고 있는데, 대론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날에 권귀(權貴)의 은미한 뜻을 받들어 억지로 피혐함으로써 대의(大義)를 느슨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폄삭하고 폐(廢) 자를 천(遷) 자로 고치자는 의논을 주장하여 대사를 그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대간들도 쟁집(爭執)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차하게 그 의논을 따랐습니다. 먼저 이병을 목베어 역적에 편든 죄를 바루고, 다음으로는 양사를 귀양보내 불충한 죄를 다스리고, 이어 치당(致堂)015)  이 주장했던 것처럼 서궁을 태묘(太廟)에서 수죄(數罪)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관학 유생 민심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서궁을 폐출하자는 논의가 한창 일어나고 있는 데도 묘당에서는 속히 이를 처리하지 않고 있을 뿐만이 아닙니다. 이렇듯 전에 없던 변고를 당해서는 상규(常規)로만 처치할 수 없는 일인데, 거꾸로 다사(多士)가 복합(伏閤)하여 상소한 것을 가리켜 옛 규례에 없는 일이라고 하는가 하면 대관(臺官)을 윽박질러 긴요치도 않은 말을 가지고 인피(引避)하게 함으로써 급히 토죄해야 할 일을 고의로 지연시켰습니다. 그리고 옥당 역시 폐 자를 천 자로 고쳐 대론을 늦추었습니다.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가 극에 달했으니 속히 묘당과 삼사의 불충한 죄를 다스리는 동시에 통쾌하게 결단을 내려 곧장 서궁을 폐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서궁을 폐출하자는 논의가 한창 일어나고 있는 데도 묘당에서는 속히 이를 처리하지 않고 있을 뿐만이 아닙니다. 이렇듯 전에 없던 변고를 당해서는 상규(常規)로만 처치할 수 없는 일인데, 거꾸로 다사(多士)가 복합(伏閤)하여 상소한 것을 가리켜 옛 규례에 없는 일이라고 하는가 하면 대관(臺官)을 윽박질러 긴요치도 않은 말을 가지고 인피(引避)하게 함으로써 급히 토죄해야 할 일을 고의로 지연시켰습니다. 그리고 옥당 역시 폐 자를 천 자로 고쳐 대론을 늦추었습니다.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가 극에 달했으니 속히 묘당과 삼사의 불충한 죄를 다스리는 동시에 통쾌하게 결단을 내려 곧장 서궁을 폐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차마 따르지 못할 일을 가지고 5년이나 지난 뒤에 와서 소급해 논하다니 더욱 부당하기 그지없다. 속히 정지하고 소란을 피우지 말라." 하였다.
"차마 따르지 못할 일을 가지고 5년이나 지난 뒤에 와서 소급해 논하다니 더욱 부당하기 그지없다. 속히 정지하고 소란을 피우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성격의 일이 아니니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성격의 일이 아니니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삼계(三啓)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관학 유생이 두 번째 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제생(諸生)들은 이제 그만 멈추도록 하라. 그대들의 정성 또한 이미 할 만큼 다 바쳤으니 다시 번거롭게 진달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제생(諸生)들은 이제 그만 멈추도록 하라. 그대들의 정성 또한 이미 할 만큼 다 바쳤으니 다시 번거롭게 진달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이병이 상소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잘 알았다.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다하라." 하였다.
"소를 보고 잘 알았다.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다하라."
하였다.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사간 남이준, 장령 한영·강수, 지평 정양윤·김호, 헌납 조정립, 정언 이강·박종주가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설구인·민심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적인 내용이 신들을 배척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으니 태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罷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삼가 설구인·민심 등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적인 내용이 신들을 배척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으니 태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罷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대사헌 이병이 아뢰기를, "신이 이미 허균의 배척을 받았는데 설구인과 민심 등이 또 허다한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극단적으로 배척을 가했으니, 형세상 직책에 있기가 어렵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遞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이미 허균의 배척을 받았는데 설구인과 민심 등이 또 허다한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극단적으로 배척을 가했으니, 형세상 직책에 있기가 어렵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遞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옥당이 첫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으니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미 유시하였으니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1월 9일 기사

전 훈도(訓導) 김대하(金大河)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서궁의 죄악이 하늘과 땅에 가득 찼으니 폐출하자는 주장을 따를 것 없이 곧장 죽여버림으로써 화근을 영원히 끊고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서궁의 죄악이 하늘과 땅에 가득 찼으니 폐출하자는 주장을 따를 것 없이 곧장 죽여버림으로써 화근을 영원히 끊고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으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으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런 엄동설한에 경들이 날마다 와서 따를 수 없는 일을 아뢰고 있으니, 내가 매우 걱정되고 안타까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였다. 재계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런 엄동설한에 경들이 날마다 와서 따를 수 없는 일을 아뢰고 있으니, 내가 매우 걱정되고 안타까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였다. 재계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상차하여 대사헌 이병을 체차시킬 것과 대사간 윤인 이하에게 모두 출사를 명할 것을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종실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차마 못할 일이거늘 종척(宗戚)이 오히려 이런 말을 차마 할 수 있단 말인가. 속히 정지하는 것만 못하니 다시는 번거롭게 소란을 떨지 말라." 하였다.
"내가 차마 못할 일이거늘 종척(宗戚)이 오히려 이런 말을 차마 할 수 있단 말인가. 속히 정지하는 것만 못하니 다시는 번거롭게 소란을 떨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첫 번째 차자를 올리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두 번째 상차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관학 유생들이 첫 번째 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제생이 그저 성의를 한 번 진달했으면 되었다. 백료(百僚)와는 사체가 다른데 궐하에 들어와 엎드려서 하루에 두 번씩이나 번거롭게 진달하다니 너무도 안될 일이다. 물러나 돌아가서 스스로 학문이나 닦고 다시는 번거롭게 소란을 떨지 말라. 나는 두 번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였다. 재차 소를 올리니, 이미 유시했다고 답하였다.
"제생이 그저 성의를 한 번 진달했으면 되었다. 백료(百僚)와는 사체가 다른데 궐하에 들어와 엎드려서 하루에 두 번씩이나 번거롭게 진달하다니 너무도 안될 일이다. 물러나 돌아가서 스스로 학문이나 닦고 다시는 번거롭게 소란을 떨지 말라. 나는 두 번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였다. 재차 소를 올리니, 이미 유시했다고 답하였다.

 

1월 10일 경오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런 엄동설한에 경들이 날마다 와서 따를 수 없는 일을 아뢰고 있으니, 내가 매우 걱정되고 안타까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였다. 재계하니, 번거롭게 소란떨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런 엄동설한에 경들이 날마다 와서 따를 수 없는 일을 아뢰고 있으니, 내가 매우 걱정되고 안타까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였다. 재계하니, 번거롭게 소란떨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사(合司)하여 초계하니, 답하기를, "차마 따를 수 없는 일을 5년이나 지난 뒤에 소급해 논하다니 더욱 부당하기 그지없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차마 따를 수 없는 일을 5년이나 지난 뒤에 소급해 논하다니 더욱 부당하기 그지없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런 엄동설한에 날마다 대궐에 나아와 따를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청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그만 정지하여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이런 엄동설한에 날마다 대궐에 나아와 따를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청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그만 정지하여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관학 유생 하인준(河仁俊) 등이 【흉악한 패거리들이 유적(儒籍)에 이름이 올랐다는 핑계를 대고 궐하에 들어와 엎드려서 교대로 소두(疏頭)가 되어 날마다 두 번씩 상소하였다.】  첫번째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우선 관대한 형전(刑典)을 따라 곧장 서궁을 폐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천하에 사과하는 동시에, 위로 하늘의 마음에 응답하고 아래로 여정(輿情)에 순응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어제 이미 다 유시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차 상소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우선 관대한 형전(刑典)을 따라 곧장 서궁을 폐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천하에 사과하는 동시에, 위로 하늘의 마음에 응답하고 아래로 여정(輿情)에 순응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어제 이미 다 유시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차 상소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니, 답하기를,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첫 번째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감찰 조형남(趙亨男) 등이 상소하여, 속히 정청(庭請)을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재신(宰臣)들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재신(宰臣)들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1월 11일 신미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유학(幼學) 김창(金昶)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백관이 정청하는 것을 보건대 늦게 모였다가 일찍 파하면서 극력 쟁집(爭執)하지 않았으니, 묘당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이정귀(李廷龜)는 바로 김제남(金悌男)의 심복으로서 정협(鄭浹)의 공초(供招)에 나왔던 자인데, 수의(收議)할 때에도 병을 핑계대었고 정청할 때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무시하고 역적을 비호한 죄가 극에 이르렀으니 먼저 그를 죽이소서. 그리고 이어 치당(致堂)이 논했던 것처럼 서궁을 태묘(太廟)에서 수죄(數罪)하고 폐척(廢斥)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백관이 정청하는 것을 보건대 늦게 모였다가 일찍 파하면서 극력 쟁집(爭執)하지 않았으니, 묘당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이정귀(李廷龜)는 바로 김제남(金悌男)의 심복으로서 정협(鄭浹)의 공초(供招)에 나왔던 자인데, 수의(收議)할 때에도 병을 핑계대었고 정청할 때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무시하고 역적을 비호한 죄가 극에 이르렀으니 먼저 그를 죽이소서. 그리고 이어 치당(致堂)이 논했던 것처럼 서궁을 태묘(太廟)에서 수죄(數罪)하고 폐척(廢斥)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관학 유생 하인준(河仁俊) 등이 상소하기를, "먼저 유희분(柳希奮)이 다사(多士)를 몰아 내쫓은 죄를 다스려 사림(士林)을 위로해 주시고,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형전을 시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그대들은 일체 전례(前例)에 따라 궐문 밖에 나가 있으면서 비답을 기다리도록 하라. 그리고 내 뜻을 이미 다 유시했으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먼저 유희분(柳希奮)이 다사(多士)를 몰아 내쫓은 죄를 다스려 사림(士林)을 위로해 주시고,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형전을 시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그대들은 일체 전례(前例)에 따라 궐문 밖에 나가 있으면서 비답을 기다리도록 하라. 그리고 내 뜻을 이미 다 유시했으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初啓)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시강원이 상소하여 속히 정청을 따르도록 청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재신들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재신들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옥당이 첫 번째 차자를 올리고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삼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모쪼록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모쪼록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종실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런 엄동설한에 날마다 대궐에 와서 따를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청하고 있으니 내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그만 정지하여 나의 마음을 편케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런 엄동설한에 날마다 대궐에 와서 따를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청하고 있으니 내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그만 정지하여 나의 마음을 편케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관학 유생이 두 번째 소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유간(柳澗)을 대사헌으로, 이상항(李尙恒)을 겸사서로, 박자흥(朴自興)을 형조 참판으로, 한유상(韓惟翔)을 주서로, 이병(李覮)을 완창군(完昌君)으로, 박이서(朴彛叙)를 영광 군수(靈光郡守)로 삼았다.

 

1월 12일 임신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종척(宗戚)조차 이런 말을 차마 한단 말인가. 번거롭게 소란을 떨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고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종척(宗戚)조차 이런 말을 차마 한단 말인가. 번거롭게 소란을 떨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고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유학(幼學) 윤로(尹魯)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먼저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지연시킨 채 즉시 대의를 거론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시고, 다음으로 삼사가 한효순을 비호한 죄를 다스리소서."
"먼저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지연시킨 채 즉시 대의를 거론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시고, 다음으로 삼사가 한효순을 비호한 죄를 다스리소서."

 

진사 하인준(河仁俊), 생원 정기(鄭淇), 진사 민심(閔𦸂), 생원 김상하(金尙夏)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종묘 사직과 군부(君父)를 위해 대궐에 엎드려 잇달아 소장을 올린 것은 화의 근본을 제거할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원궤(元簋)에게 전해진 흉서(兇書)를 얻어 보건대, 그 속에 신 등 네 사람의 이름이 들어 있었음은 물론이고 예조 판서 이이첨, 좌참찬 허균,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 부수찬 서국정(徐國楨) 등의 이름까지 모두 거론하고는 역모를 꾀했다고 무고(誣告)하는 것이었습니다. 흉서를 봉입(封入)하니 원궤를 나문(拿問)하여 흉서의 출처를 조사함으로써 신들의 지극한 원통함을 씻도록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의 내용은 모두 잘 알았다. 대신과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상소를 속히 대신과 의논하여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종묘 사직과 군부(君父)를 위해 대궐에 엎드려 잇달아 소장을 올린 것은 화의 근본을 제거할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원궤(元簋)에게 전해진 흉서(兇書)를 얻어 보건대, 그 속에 신 등 네 사람의 이름이 들어 있었음은 물론이고 예조 판서 이이첨, 좌참찬 허균,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 부수찬 서국정(徐國楨) 등의 이름까지 모두 거론하고는 역모를 꾀했다고 무고(誣告)하는 것이었습니다. 흉서를 봉입(封入)하니 원궤를 나문(拿問)하여 흉서의 출처를 조사함으로써 신들의 지극한 원통함을 씻도록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의 내용은 모두 잘 알았다. 대신과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상소를 속히 대신과 의논하여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관학 유생 이정(李綎)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삼가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궐문 밖으로 물러가 있다가 다시 피끓는 정성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우선 관대한 전형(典刑)을 따르시어 속히 폐출하는 일을 거행하심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신민의 소망을 위로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너희들의 정성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궐문 밖에 나가 있는 것과 궁궐 뜰에 들어와 엎드려 있는 것에 어찌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 쓸 만하다면 천리 밖에 있다 할지라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지만, 만약 하는 말이 쓸 만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구중궁궐 안에 있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데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너희들은 그저 한결같이 구례(舊例)를 따라 준수하면서 잘못을 범하지 말도록 하라. 서궁의 일에 대해서는 조정 신하들이 날마다 세 번씩이나 진달하며 청하고 있으니 너희들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 이제 그만두도록 하라." 하였다.
"삼가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궐문 밖으로 물러가 있다가 다시 피끓는 정성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우선 관대한 전형(典刑)을 따르시어 속히 폐출하는 일을 거행하심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신민의 소망을 위로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너희들의 정성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궐문 밖에 나가 있는 것과 궁궐 뜰에 들어와 엎드려 있는 것에 어찌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 쓸 만하다면 천리 밖에 있다 할지라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지만, 만약 하는 말이 쓸 만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구중궁궐 안에 있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데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너희들은 그저 한결같이 구례(舊例)를 따라 준수하면서 잘못을 범하지 말도록 하라. 서궁의 일에 대해서는 조정 신하들이 날마다 세 번씩이나 진달하며 청하고 있으니 너희들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 이제 그만두도록 하라."
하였다.

 

생원 박홍익(朴弘益)이 상소하였는데, 대체로 흉서를 얻어 보게 된 곡절을 진달한 것이었다.

 

백관이 초계(初啓)하고, 합사(合司)하여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것이 어찌 따를 만한 일인가. 번거롭게 소란 떨지 말라." 하였다.
"이것이 어찌 따를 만한 일인가. 번거롭게 소란 떨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再啓)하고, 합사하여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삼계(三啓)하고, 합사하여 삼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첫 번째 상차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따를 만한 일이 아니다. 번거롭게 소란 떨지 말라." 하였다. 두 번째 상차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것은 따를 만한 일이 아니다. 번거롭게 소란 떨지 말라."
하였다. 두 번째 상차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1월 13일 계유

유학 김윤겸(金允兼)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김권(金權)·이신의(李愼儀)·유몽인(柳夢寅)·황덕부(黃德符)가 은혜를 온전히 할 것을 주장하며 원수를 잊고 역적을 비호한 죄를 다스려 목을 베고, 이어 강수(姜𢢝)·김호(金昈)가 대각에 있으면서 느슨하게 논의를 내어 성의 없이 일을 논한 죄를 다스려 귀양을 보내시고,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을 거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먼저 김권(金權)·이신의(李愼儀)·유몽인(柳夢寅)·황덕부(黃德符)가 은혜를 온전히 할 것을 주장하며 원수를 잊고 역적을 비호한 죄를 다스려 목을 베고, 이어 강수(姜𢢝)·김호(金昈)가 대각에 있으면서 느슨하게 논의를 내어 성의 없이 일을 논한 죄를 다스려 귀양을 보내시고,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을 거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종실이 초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재계하고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관학 유생 이정 등이 상소하여, 흉서의 출처를 엄히 신문하여 하인준 등이 무함당한 원통함을 씻어 줄 것과 속히 큰 계책을 정해 서궁을 폐출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할 것을 청하였다.

 

장령 강수가 아뢰기를, "신은 본래 형편없는 사람으로서 외람되게 성상의 은혜를 입어 언지(言地)에 발탁되었는데, 이렇듯 대론(大論)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날을 당하여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정성을 다하며 온종일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위로는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아래로는 신민(臣民)을 위로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유학 김윤겸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이 대론(臺論)을 느슨하게 세워 성의 없이 일을 논한 죄가 있다고 배척하면서 유배를 보내라고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신이 이런 죄명(罪名)을 갖고는 결코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기가 어려우니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신은 본래 형편없는 사람으로서 외람되게 성상의 은혜를 입어 언지(言地)에 발탁되었는데, 이렇듯 대론(大論)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날을 당하여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정성을 다하며 온종일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위로는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아래로는 신민(臣民)을 위로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유학 김윤겸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이 대론(臺論)을 느슨하게 세워 성의 없이 일을 논한 죄가 있다고 배척하면서 유배를 보내라고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신이 이런 죄명(罪名)을 갖고는 결코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기가 어려우니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따를 만한 일이 아니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따를 만한 일이 아니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이첨이 아뢰기를, "신이 그저께 정청에 참여하러 나아갈 때에, 관유(館儒)가 얻은 하나의 흉서 속에 신의 이름도 들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놀랍고 괴이한 생각을 억누르지 못한 채 곧장 여러 사람들이 앉아 있는 의막(依幕) 가운데에서 그 서찰을 찾아보았더니, 바로 비암(琵巖)이라고 호칭하는 자가 여성(汝盛)이라는 자(字)로 불리는 원 진사(元進士)에게 글을 보낸 것이었는데, 그 편지에 이르기를 ‘여성 대형(大兄)에게 올립니다. 원 진사는 보십시오. 번거로운 말은 생략하겠습니다. 저녁에 드린 기상(奇相)의 소록(小錄)은 그에게 전했습니까? 유감(柳鑑)이 마음으로 사귄 벗 약간 명과 가까운 시일 안에 거사(擧事)하면서 먼저 하인준(河仁俊)·김상하(金尙夏)·정기(鄭淇)·민심(閔𦸂) 등을 제거하려 한다 하는데, 인준·상하·기·심을 먼저 제거해 버리면 그 나머지는 염려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상하와 인준이 허균·이이첨과 함께 날마다 흉도(兇徒)를 모으면서 대궐에 엎드려 상소한다고 하는데 그 마음속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만합니다. 이 뜻을 유령(柳令)이 안으로 통해서 상의 허락을 이미 받았다 하니 멀지 않아 일이 일어날 것인데, 그대가 강하게 버티면서 흉소(兇疏)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인준과 김상하 등이 역적이라는 사실을 어리석은 필부라 하더라도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대가 실제로 흉악한 역적의 소에 참여한다면 우리들은 그대를 인정치 않을 것이니 그대는 잘 알아서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상하는 김질간(金質幹)의 조카이고 인준은 허균의 조카이며 민심은 서국정(徐國楨)의 손위처남이고 정기는 이이첨의 패거리입니다. 이렇게 역모를 꾀하는 자들은 멀지 않아 모두 제거될 것이니 그대는 잘 살펴서 하십시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세하게 회답해 주십시오. 소란스러워서 할 말을 다하지 못하겠으니 부디 살펴서 하십시오. 지금 비암은 술에 취해 일일이 말씀을 못드리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른바 유감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안에 거사하겠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무슨 일을 일으키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인준·김상하 등 네 유생이 신 등과 대궐에 엎드려 상소한다고 하는데 그 마음속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만하다.’고 하였는데, 대론(大論)을 역모라고 한다면 서궁에 대한 역모를 역모라고 하는 것입니까, 전하에 대한 역모를 역모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유령이 안으로 통해서 상의 허락을 이미 받았으니 멀지 않아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고 하였는데, 유령이 또한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런 불측한 말을 하면서 내지(內旨)에 가탁(假托)하여 흉도를 유인하며 협박한단 말입니까. 또 ‘하인준·김상하 등이 역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필부라 하더라도 누구인들 모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만, 이번의 대론이야말로 어리석은 필부들까지도 모두 대의(大義)에 입각한 것임을 알고 있는데 과연 이 유생들을 가리켜 역적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렇듯 흉모를 꾀하는 자들은 멀지 않아 모조리 제거될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말이야말로 더욱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대저 대론의 발동이 위포(韋布)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흉악한 무리가 먼저 이 유생들을 제거하여 일을 망치려고 함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하게 일어나면서 온 나라가 같은 목소리로 호응하자 사특한 의논을 주장하는 흉악한 무리들이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기필코 한 무리의 사류(士類)를 죽여 없앤 뒤에야 그만두려 하고 있으니, 무씨(武氏)이 난이 제거되기도 전에 오왕(五王)016)  이 먼저 화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 저으기 두렵습니다. 신이 한마음으로 나라를 따르면서 전후에 걸쳐 역적을 토벌해 온 만큼 여러 얼자(孼子)들이 신을 원수로 삼고 칼을 어루만지며 적대시한다는 것을 본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단 이런 추악한 비난을 받고도 분명하게 해명하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스스로 용납받을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정청(庭請)에 따라 참여하지 못한 처지에서 또 석고 대죄도 못했으므로 처신하기가 매우 딱하게 되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하는 것이니,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절박한 심정을 굽어살피시어 원씨(元氏) 성 가진 사람을 국문하도록 명하심으로써 글을 보낸 사람을 붙잡아 조목조목 추궁하게 하여 실상을 적발해 내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알아서 조사해 처리토록 할 것이니, 경은 안심하고 더욱 충성스럽고 곧은 마음을 독실히 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라." 하였다.


[註 016] 오왕(五王) : 당(唐) 환언범(桓彦範)·경휘(敬暉)·최원위(崔元暐)·장간지(張柬之)·원서기(袁絮己) 등 명신(名臣)을 말함.
"신이 그저께 정청에 참여하러 나아갈 때에, 관유(館儒)가 얻은 하나의 흉서 속에 신의 이름도 들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놀랍고 괴이한 생각을 억누르지 못한 채 곧장 여러 사람들이 앉아 있는 의막(依幕) 가운데에서 그 서찰을 찾아보았더니, 바로 비암(琵巖)이라고 호칭하는 자가 여성(汝盛)이라는 자(字)로 불리는 원 진사(元進士)에게 글을 보낸 것이었는데, 그 편지에 이르기를 ‘여성 대형(大兄)에게 올립니다. 원 진사는 보십시오. 번거로운 말은 생략하겠습니다. 저녁에 드린 기상(奇相)의 소록(小錄)은 그에게 전했습니까? 유감(柳鑑)이 마음으로 사귄 벗 약간 명과 가까운 시일 안에 거사(擧事)하면서 먼저 하인준(河仁俊)·김상하(金尙夏)·정기(鄭淇)·민심(閔𦸂) 등을 제거하려 한다 하는데, 인준·상하·기·심을 먼저 제거해 버리면 그 나머지는 염려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상하와 인준이 허균·이이첨과 함께 날마다 흉도(兇徒)를 모으면서 대궐에 엎드려 상소한다고 하는데 그 마음속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만합니다. 이 뜻을 유령(柳令)이 안으로 통해서 상의 허락을 이미 받았다 하니 멀지 않아 일이 일어날 것인데, 그대가 강하게 버티면서 흉소(兇疏)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인준과 김상하 등이 역적이라는 사실을 어리석은 필부라 하더라도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대가 실제로 흉악한 역적의 소에 참여한다면 우리들은 그대를 인정치 않을 것이니 그대는 잘 알아서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상하는 김질간(金質幹)의 조카이고 인준은 허균의 조카이며 민심은 서국정(徐國楨)의 손위처남이고 정기는 이이첨의 패거리입니다. 이렇게 역모를 꾀하는 자들은 멀지 않아 모두 제거될 것이니 그대는 잘 살펴서 하십시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세하게 회답해 주십시오. 소란스러워서 할 말을 다하지 못하겠으니 부디 살펴서 하십시오. 지금 비암은 술에 취해 일일이 말씀을 못드리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른바 유감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안에 거사하겠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무슨 일을 일으키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인준·김상하 등 네 유생이 신 등과 대궐에 엎드려 상소한다고 하는데 그 마음속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만하다.’고 하였는데, 대론(大論)을 역모라고 한다면 서궁에 대한 역모를 역모라고 하는 것입니까, 전하에 대한 역모를 역모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유령이 안으로 통해서 상의 허락을 이미 받았으니 멀지 않아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다.’고 하였는데, 유령이 또한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런 불측한 말을 하면서 내지(內旨)에 가탁(假托)하여 흉도를 유인하며 협박한단 말입니까. 또 ‘하인준·김상하 등이 역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필부라 하더라도 누구인들 모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만, 이번의 대론이야말로 어리석은 필부들까지도 모두 대의(大義)에 입각한 것임을 알고 있는데 과연 이 유생들을 가리켜 역적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렇듯 흉모를 꾀하는 자들은 멀지 않아 모조리 제거될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말이야말로 더욱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대저 대론의 발동이 위포(韋布)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흉악한 무리가 먼저 이 유생들을 제거하여 일을 망치려고 함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하게 일어나면서 온 나라가 같은 목소리로 호응하자 사특한 의논을 주장하는 흉악한 무리들이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기필코 한 무리의 사류(士類)를 죽여 없앤 뒤에야 그만두려 하고 있으니, 무씨(武氏)이 난이 제거되기도 전에 오왕(五王)016)  이 먼저 화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 저으기 두렵습니다.
신이 한마음으로 나라를 따르면서 전후에 걸쳐 역적을 토벌해 온 만큼 여러 얼자(孼子)들이 신을 원수로 삼고 칼을 어루만지며 적대시한다는 것을 본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단 이런 추악한 비난을 받고도 분명하게 해명하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스스로 용납받을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미 정청(庭請)에 따라 참여하지 못한 처지에서 또 석고 대죄도 못했으므로 처신하기가 매우 딱하게 되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하는 것이니,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절박한 심정을 굽어살피시어 원씨(元氏) 성 가진 사람을 국문하도록 명하심으로써 글을 보낸 사람을 붙잡아 조목조목 추궁하게 하여 실상을 적발해 내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알아서 조사해 처리토록 할 것이니, 경은 안심하고 더욱 충성스럽고 곧은 마음을 독실히 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 유생의 소에 답하였다. "소의 내용은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서궁의 일에 대해서는 내 뜻을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소의 내용은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서궁의 일에 대해서는 내 뜻을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합사하여 초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삼계하니, 답하기를,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고 삼계하니,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첫 번째 상차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두 번째 상차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여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어제 하인준·정기·민심·김상하 등이 상소한 것을 보건대, 대개 원궤에게 전해진 흉서 가운데서 아들 네 사람의 이름과 예조 판서 이이첨, 좌참찬 허균, 좌부승지 김질간, 부수찬 서국정 등의 이름을 모두 거론하면서 역모를 꾀하였다고 무고하였으니, 감히 흉서(兇書)를 봉입(封入)한다고 하였습니다. 위에 거론된 사람들이야말로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하면서 기필코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는 이들인데, 흉악한 무리들이 대론(大論)을 거꾸로 역모라고 하면서 장차 모조리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자들이 이런 흉계를 조만간 내놓으리라는 것은 신들이 본래 알고 있었습니다만, 대론이 완결되기도 전에 적의 흉모가 먼저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글은 다른 대수롭지 않은 익명서(匿名書)에 견줄 바가 아니니, 원궤를 잡아다 국문하도록 명하여 흉서를 조작해낸 사람을 찾아내도록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삼가 어제 하인준·정기·민심·김상하 등이 상소한 것을 보건대, 대개 원궤에게 전해진 흉서 가운데서 아들 네 사람의 이름과 예조 판서 이이첨, 좌참찬 허균, 좌부승지 김질간, 부수찬 서국정 등의 이름을 모두 거론하면서 역모를 꾀하였다고 무고하였으니, 감히 흉서(兇書)를 봉입(封入)한다고 하였습니다.
위에 거론된 사람들이야말로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하면서 기필코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는 이들인데, 흉악한 무리들이 대론(大論)을 거꾸로 역모라고 하면서 장차 모조리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자들이 이런 흉계를 조만간 내놓으리라는 것은 신들이 본래 알고 있었습니다만, 대론이 완결되기도 전에 적의 흉모가 먼저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글은 다른 대수롭지 않은 익명서(匿名書)에 견줄 바가 아니니, 원궤를 잡아다 국문하도록 명하여 흉서를 조작해낸 사람을 찾아내도록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부수찬 서국정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전후에 걸쳐 역적을 토죄한 것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몸바칠 각오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흉역스러운 무리가 정론(正論)을 막으려고 하면서 거꾸로 익명으로 마구 신들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흉서 속에 거론하였습니다. 원궤를 나문(拿問)하여 흉서의 출처를 끝까지 캐묻게 함으로써 신들의 지극한 원통함이 씻어지도록 하소서. 그리고 신의 직명을 깎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후에 걸쳐 역적을 토죄한 것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몸바칠 각오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흉역스러운 무리가 정론(正論)을 막으려고 하면서 거꾸로 익명으로 마구 신들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흉서 속에 거론하였습니다. 원궤를 나문(拿問)하여 흉서의 출처를 끝까지 캐묻게 함으로써 신들의 지극한 원통함이 씻어지도록 하소서. 그리고 신의 직명을 깎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좌부승지 김질간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생원 김상하는 신의 5촌 조카입니다. 그가 전일 관소(館疏)를 올릴 때 한 번 소두(疏頭)로 참여하면서 서궁의 죄를 빠짐없이 진달하였고, 또 복합 상소(伏閤上疏)를 올릴 때 며칠 동안이나 참여하였으므로 사의(邪議)를 주장하는 무리들에게 원수로 여겨져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 여파가 문족(門族)에게까지 미쳐 신의 이름이 거론되어 불측한 흉서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신이 이런 오명을 받고서 근밀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의 직명을 깎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생원 김상하는 신의 5촌 조카입니다. 그가 전일 관소(館疏)를 올릴 때 한 번 소두(疏頭)로 참여하면서 서궁의 죄를 빠짐없이 진달하였고, 또 복합 상소(伏閤上疏)를 올릴 때 며칠 동안이나 참여하였으므로 사의(邪議)를 주장하는 무리들에게 원수로 여겨져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 여파가 문족(門族)에게까지 미쳐 신의 이름이 거론되어 불측한 흉서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신이 이런 오명을 받고서 근밀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의 직명을 깎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지평 김호가 아뢰기를, "삼가 김윤겸(金允兼)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의 이름을 끄집어내어 극단적으로 배척을 가하면서 유배보내라고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신이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 장령 강수와 다름이 없으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김윤겸(金允兼)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의 이름을 끄집어내어 극단적으로 배척을 가하면서 유배보내라고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신이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 장령 강수와 다름이 없으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도승지 한찬남, 좌승지 유대건, 우승지 이창후, 좌부승지 김질간, 우부승지 박정길, 동부승지 이대엽 등이 아뢰기를, "오늘날 정청(庭請)은 실로 국가 존망의 기틀에 관계되는 것인데 전하께서는 이렇게 오래도록 굳게 거절하며 따르지 않고 계십니다. 신들이 근밀한 자리에서 모시며 지극히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다시 간절하게 진달하오니 모쪼록 전하께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서궁이 지은 열 가지 죄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천자에게 죄를 지었으니 천자가 토벌해야 할 것이고 조종(祖宗)에 죄를 지었으니 조종이 끊어버려야 할 것이며 신민에게 죄를 지었으니 신민이 원수로 삼아야 할 대상이 되었는데, 전하께서 어찌 사정(私情) 때문에 용납하실 수 있겠습니까. 《춘추》의 대의는 오랫동안 숨기기 어렵고 종묘 사직을 위하는 지극한 계책은 하루가 급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정청을 따르시어 화근을 제거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정신(廷臣)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오늘날 정청(庭請)은 실로 국가 존망의 기틀에 관계되는 것인데 전하께서는 이렇게 오래도록 굳게 거절하며 따르지 않고 계십니다. 신들이 근밀한 자리에서 모시며 지극히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다시 간절하게 진달하오니 모쪼록 전하께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서궁이 지은 열 가지 죄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천자에게 죄를 지었으니 천자가 토벌해야 할 것이고 조종(祖宗)에 죄를 지었으니 조종이 끊어버려야 할 것이며 신민에게 죄를 지었으니 신민이 원수로 삼아야 할 대상이 되었는데, 전하께서 어찌 사정(私情) 때문에 용납하실 수 있겠습니까. 《춘추》의 대의는 오랫동안 숨기기 어렵고 종묘 사직을 위하는 지극한 계책은 하루가 급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정청을 따르시어 화근을 제거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정신(廷臣)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관학 유생이 두 번째 소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참지 이원엽, 승지 이대엽, 직제학 이익엽 등이 상소하여 사직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1월 14일 갑술

유학(幼學) 김상건(金尙鍵)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윤겸(金允兼)과 홍덕민(洪德民)이 시론(時論)을 가탁하여 선류(善類)를 모함하면서 사림(士林)에 화를 야기시키려 한 죄를 먼저 다스리시고,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속히 거행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김윤겸(金允兼)과 홍덕민(洪德民)이 시론(時論)을 가탁하여 선류(善類)를 모함하면서 사림(士林)에 화를 야기시키려 한 죄를 먼저 다스리시고,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속히 거행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유학 김탁(金琢)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의는 지극히 엄하고 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죄가 종묘 사직과 관계되고 성상을 모해(謀害)하려는 것이라면 서궁과 같은 명위(名位)가 있는 자도 오히려 보전될 수가 없는 법인데, 더구나 역모를 꾀한 신자의 경우이겠습니까. 기준격과 허균의 일이 대역에 관계되는 것이고 보면 진위(眞僞) 여부야 어떻든 간에 급히 서둘러 분명히 조사해야 마땅할 것인데, 오늘날 정신이 여태 국문하기를 청하지도 않고 있으니, 고금 천하에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양사와 옥당을 다스려 간인(奸人)과 패거리를 지으면서 비호한 죄를 밝히고, 그 다음으로 허균의 위세에 겁을 먹은 나머지 감히 토죄(討罪)할 것을 청하지도 못하는 묘당과 훈척(勳戚) 제신(諸臣)의 죄를 다스리소서."
"대의는 지극히 엄하고 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죄가 종묘 사직과 관계되고 성상을 모해(謀害)하려는 것이라면 서궁과 같은 명위(名位)가 있는 자도 오히려 보전될 수가 없는 법인데, 더구나 역모를 꾀한 신자의 경우이겠습니까. 기준격과 허균의 일이 대역에 관계되는 것이고 보면 진위(眞僞) 여부야 어떻든 간에 급히 서둘러 분명히 조사해야 마땅할 것인데, 오늘날 정신이 여태 국문하기를 청하지도 않고 있으니, 고금 천하에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양사와 옥당을 다스려 간인(奸人)과 패거리를 지으면서 비호한 죄를 밝히고, 그 다음으로 허균의 위세에 겁을 먹은 나머지 감히 토죄(討罪)할 것을 청하지도 못하는 묘당과 훈척(勳戚) 제신(諸臣)의 죄를 다스리소서."

 

종실이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따를 만한 일이 아니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再啓)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것은 따를 만한 일이 아니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再啓)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지평 정양윤(鄭良胤)이 아뢰기를, "이번에 합사의 논계에 대해 신은 장령 강수, 지평 김호와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의견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강수와 김호만이 유독 김윤겸(金允兼)의 배척을 받아 모두 인피(引避)하였는데, 신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했던 사람이니 지금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처치할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윤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이번에 합사의 논계에 대해 신은 장령 강수, 지평 김호와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의견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강수와 김호만이 유독 김윤겸(金允兼)의 배척을 받아 모두 인피(引避)하였는데, 신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했던 사람이니 지금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처치할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윤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원궤를 나수(拿囚)하였다.

 

진사 하인준(河仁俊)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속히 원궤를 신문하여 실상을 알아내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속히 원궤를 신문하여 실상을 알아내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차마 못할 일을 어찌하여 이처럼 굳이 핍박하는가. 나는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 하였다.
"차마 못할 일을 어찌하여 이처럼 굳이 핍박하는가. 나는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
하였다.

 

집의 임건(林健), 장령 한영(韓詠)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보건대 장령 강수와 지평 김호가 모두 김윤겸의 배척을 받고 인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들도 이번의 대론(大論)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한 이상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임건 등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삼가 보건대 장령 강수와 지평 김호가 모두 김윤겸의 배척을 받고 인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들도 이번의 대론(大論)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참한 이상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임건 등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爭執)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爭執)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고, 옥당이 첫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차마 하지 못할 일인데, 어찌하여 이처럼 굳이 핍박하는가. 내가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 하였다.
"차마 하지 못할 일인데, 어찌하여 이처럼 굳이 핍박하는가. 내가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
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가 지난해 여름과 가을 무렵부터 우연히 안질(眼疾)을 앓게 되었는데, 침(針)과 약을 쓴 것이 며칠이나 되었는 데도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때는 좀 나은 듯하다가도 더 심해지곤 하면서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는 상태라, 영칙(迎敕)하는 대례(大禮)조차 날짜를 물려 거행하는 일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므로 안타깝고 근심됨이 평상시의 배가 된다. 그런데 조섭하는 중에 또 이렇듯 전에 없던 변고를 만나게 되었는데 계사(啓辭)와 소장(疏章)이 저녁 때에 답지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야심할 때 이르기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 저것 응수하다 보면 정신이 취한 듯해지는데 앉아서 밤을 새우고 침식(寢食)도 전폐한 상태에서 안타깝게 걱정하며 고뇌하다 보니 뼈만 남게 되었다. 기력을 돌아보건대 결코 재결(裁決)하기가 어려우니 백관과 삼사의 계사와 차자를 정지할 동안만이라도 긴급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공사(公事)는 우선 정원(政院)에 놔두고 입계(入啓)하지 말도록 하라."
"내가 지난해 여름과 가을 무렵부터 우연히 안질(眼疾)을 앓게 되었는데, 침(針)과 약을 쓴 것이 며칠이나 되었는 데도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때는 좀 나은 듯하다가도 더 심해지곤 하면서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는 상태라, 영칙(迎敕)하는 대례(大禮)조차 날짜를 물려 거행하는 일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므로 안타깝고 근심됨이 평상시의 배가 된다. 그런데 조섭하는 중에 또 이렇듯 전에 없던 변고를 만나게 되었는데 계사(啓辭)와 소장(疏章)이 저녁 때에 답지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야심할 때 이르기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 저것 응수하다 보면 정신이 취한 듯해지는데 앉아서 밤을 새우고 침식(寢食)도 전폐한 상태에서 안타깝게 걱정하며 고뇌하다 보니 뼈만 남게 되었다. 기력을 돌아보건대 결코 재결(裁決)하기가 어려우니 백관과 삼사의 계사와 차자를 정지할 동안만이라도 긴급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공사(公事)는 우선 정원(政院)에 놔두고 입계(入啓)하지 말도록 하라."

 

진사 윤유겸(尹惟謙)이 상소하여 원궤의 흉소에 대한 곡절을 증거하였다.

 

전교하였다. "내일은 월식(月蝕)이 일어나는 날이다. 정청(庭請)의 계사, 삼사의 계사와 차자 및 소장들을 일체 봉입(捧入)하지 말도록 하라."
"내일은 월식(月蝕)이 일어나는 날이다. 정청(庭請)의 계사, 삼사의 계사와 차자 및 소장들을 일체 봉입(捧入)하지 말도록 하라."

 

관학(館學)이 첫 번째 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너희들도 이런 말을 하는가. 그저 성의를 진달했으면 되었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너희들도 이런 말을 하는가. 그저 성의를 진달했으면 되었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삼사에서 계사와 차자를 올리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을 간원 성상소(城上所)에 말했더니 ‘막중한 대론(大論)을 정지할 수 없으니 아뢰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대론이 중하다 하더라도 왕명 역시 중하니 내일은 봉입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삼사에서 계사와 차자를 올리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을 간원 성상소(城上所)에 말했더니 ‘막중한 대론(大論)을 정지할 수 없으니 아뢰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대론이 중하다 하더라도 왕명 역시 중하니 내일은 봉입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이조 참판 유몽인(柳夢寅)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전후에 걸쳐 올린 유소(儒疏)에서 신의 이름을 끄집어내어 배척한 것이 무려 4, 5차례나 되니 뻔뻔스럽게 재직할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깎아버리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후에 걸쳐 올린 유소(儒疏)에서 신의 이름을 끄집어내어 배척한 것이 무려 4, 5차례나 되니 뻔뻔스럽게 재직할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깎아버리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이 두 번째 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너희들까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너희들까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원궤를 국문하고 사련인(辭連人) 김원량(金元亮)도 아울러 국문하였다. 【허균이 윤유겸·박홍익 등과 함께 직접 흉서를 만든 뒤 큰 옥사(獄事)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참고가 될 만한 증거를 구비하지 못해 결국 옥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대체로 대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에 철저하게 알리려는 목적과 함께 이 사건을 유씨에게 맞춤으로써 흉격(兇檄)의 옥사를 완화시켜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노극함(盧克諴)을 국문하였다. 극함이라는 자는 초계(草溪) 출신으로 향리에서 패악스럽게 놀다가 사람을 죽인 뒤 도망하였다. 지난해 12월 스스로 흉서(兇書)를 지어 소매 안에 넣고 초계에서 창원(昌原)으로 가다가 칠원(漆原) 길가에 일부러 떨어뜨렸다. 당시 팔로(八路)에 도직(盜直)을 설치하고 기찰하는 등 매우 치밀하게 비상망이 쳐져 있는 상황이었다. 칠원의 도장(都將) 한이층(韓二層)이 이를 주워서 현(縣)에 바치자 이에 현감        권성오(權省吾)가 군사를 풀어 뒤쫓아 가서 체포하니, 극함의 주머니 속에서 흉서 3장(張)이 또 나왔는데 모두가 똑같은 문자로 되어 있었다. 그 흉서에 적혀 있기를,      "각도(各道)에 통유(通諭)하기 위해 이 글을 보낸다. 각도 제장(諸將)을 얼마쯤 모았으니 새해에 큰 일을 일으킬 것이다. 이미 충청도에 좌위장(左衛將), 경상도에 우위장, 전라도에는 중위장을 정해 두었는데, 이달 20일에 제장을 마련하여 서울에서 각도로 내려보낸 뒤 차차 선봉(先鋒)에 전령을 띄울 예정이다. 돌격장(突擊將)        박증윤(朴曾胤), 유격장(遊擊將)        안위(安偉), 참모관(參謀官)        김양선(金良善)·박덕윤(朴德胤), 개성(開城)에 거주하는 대장(大將)        박치의(朴致毅)가 모두 서울에 와서 모여 있다. 대장들을 모아 큰 일을 일으킬 때 모이기로 한 약속을 그르치지 말라……." 하였다. 권성오가 즉시 신국(訊鞫)을 가하자 극함이 공초(供招)하기를 ‘7월 무렵에 박증윤이 이 흉서를 전해 주었다.’고 하였는데, 성오가 이를 감사에게 전보(轉報)하자 감사        윤훤이 그 내용대로 치계(馳啓)하였다. 이에 왕이 크게 놀라면서 체포하러 사방으로 내보냈는데 이렇게 해서 구속된 자가 옥(獄)에 가득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국문하였는데, 극함이 국문을 받는 자리에서 다시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바꾸어 말하기를, "이것은 곧 도장        한이층과 현감        권성오가 날조해 무함하여 옥사를 만든 것으로서 나는 전연 모르는 일이다." 고 하였다. 이에 왕이 흉서에 나타난 박증윤·박덕윤·안위·김양선           【양선은 바로 양선(揚善)인데 크게 꺼리는 일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양(良) 자로 고쳐서 그 자취를 혼동되게 한 것이었다.】        ·한이층 등 및 여러 사련인(辭連人)으로 체포된 자들을 국문하라고 명하였는데, 모두들, "평소 오래 된 원한이 있어서 이렇듯 익명(匿名)으로 역적이라는 모함을 받게 되었다." 고 공초하였으며 그 증거도 죄다 갖추어져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하였다. 국청이 합동으로 형추(刑推)하기를 청하자 왕이 윤허하였는데, 형신(刑訊)을 네 차례 받고 죽었다. 무함당한 사람 및 사련인으로 옥에 갇힌 자 20여 인은 모두가 석방되었다.
"각도(各道)에 통유(通諭)하기 위해 이 글을 보낸다. 각도 제장(諸將)을 얼마쯤 모았으니 새해에 큰 일을 일으킬 것이다. 이미 충청도에 좌위장(左衛將), 경상도에 우위장, 전라도에는 중위장을 정해 두었는데, 이달 20일에 제장을 마련하여 서울에서 각도로 내려보낸 뒤 차차 선봉(先鋒)에 전령을 띄울 예정이다. 돌격장(突擊將)        박증윤(朴曾胤), 유격장(遊擊將)        안위(安偉), 참모관(參謀官)        김양선(金良善)·박덕윤(朴德胤), 개성(開城)에 거주하는 대장(大將)        박치의(朴致毅)가 모두 서울에 와서 모여 있다. 대장들을 모아 큰 일을 일으킬 때 모이기로 한 약속을 그르치지 말라……."
하였다. 권성오가 즉시 신국(訊鞫)을 가하자 극함이 공초(供招)하기를 ‘7월 무렵에 박증윤이 이 흉서를 전해 주었다.’고 하였는데, 성오가 이를 감사에게 전보(轉報)하자 감사        윤훤이 그 내용대로 치계(馳啓)하였다. 이에 왕이 크게 놀라면서 체포하러 사방으로 내보냈는데 이렇게 해서 구속된 자가 옥(獄)에 가득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국문하였는데, 극함이 국문을 받는 자리에서 다시 전에 했던 이야기를 바꾸어 말하기를,
"이것은 곧 도장        한이층과 현감        권성오가 날조해 무함하여 옥사를 만든 것으로서 나는 전연 모르는 일이다."
고 하였다. 이에 왕이 흉서에 나타난 박증윤·박덕윤·안위·김양선           【양선은 바로 양선(揚善)인데 크게 꺼리는 일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양(良) 자로 고쳐서 그 자취를 혼동되게 한 것이었다.】        ·한이층 등 및 여러 사련인(辭連人)으로 체포된 자들을 국문하라고 명하였는데, 모두들,
"평소 오래 된 원한이 있어서 이렇듯 익명(匿名)으로 역적이라는 모함을 받게 되었다."
고 공초하였으며 그 증거도 죄다 갖추어져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하였다. 국청이 합동으로 형추(刑推)하기를 청하자 왕이 윤허하였는데, 형신(刑訊)을 네 차례 받고 죽었다. 무함당한 사람 및 사련인으로 옥에 갇힌 자 20여 인은 모두가 석방되었다.

 

이때 또 평강(平康)에 정배(定配)된 정당시(鄭當時)라는 사람이 오래 된 혐의 때문에 무고하기를, "장고사(長鼓寺)의 승려 태인(太仁)이 상을 향해 부도(不道)한 말을 많이 하였는데, 같이 거주하는 승려 현관(玄冠)·법잠(法岑) 및 학생(學生) 권대형(權大衡)이 같이 들었다." 하였다. 현감 박안정(朴安鼎)이 감사에게 전보하자 감사 이욱(李稶)이 치계하여 보고하니, 왕이 국문하라고 명하였다. 태인이 공초하기를, "본래 말한 것이 없다. 단지 당시가 전날 싸우며 따진 일 때문에 원한을 품고 이렇게 무고한 것이다." 하였는데, 현관·법잠·대형 등의 증언이 모두 이것과 일치하였다. 당시는 무고죄에 걸려 장(杖)을 맞고 죽었으며, 태인 등은 모두 석방되었다.
"장고사(長鼓寺)의 승려 태인(太仁)이 상을 향해 부도(不道)한 말을 많이 하였는데, 같이 거주하는 승려 현관(玄冠)·법잠(法岑) 및 학생(學生) 권대형(權大衡)이 같이 들었다."
하였다. 현감 박안정(朴安鼎)이 감사에게 전보하자 감사 이욱(李稶)이 치계하여 보고하니, 왕이 국문하라고 명하였다. 태인이 공초하기를,
"본래 말한 것이 없다. 단지 당시가 전날 싸우며 따진 일 때문에 원한을 품고 이렇게 무고한 것이다."
하였는데, 현관·법잠·대형 등의 증언이 모두 이것과 일치하였다. 당시는 무고죄에 걸려 장(杖)을 맞고 죽었으며, 태인 등은 모두 석방되었다.

 

1월 15일 을해

대사헌 유간(柳澗)이 아뢰기를, "집의 임건, 장령 강수·한영, 지평 김호·정양윤이 모두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이번에 대론(大論)을 발동함에 있어 신자의 분의(分義)로 볼 때 어찌 일찍이 느슨하게 하고 급하게 하거나 의견이 같고 틀릴 수가 있겠습니까. 유소(儒疏)에서 배척한 것도 모두가 공론(公論)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으니 이 때문에 언관을 가벼이 체직시킬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동료가 배척을 받은 것 때문에 처치하기가 곤란하다거나 병 때문에 즉시 인피(引避)하지 못한 것 등은 피혐할 이유가 더더욱 없습니다. 모두 출사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집의 임건, 장령 강수·한영, 지평 김호·정양윤이 모두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이번에 대론(大論)을 발동함에 있어 신자의 분의(分義)로 볼 때 어찌 일찍이 느슨하게 하고 급하게 하거나 의견이 같고 틀릴 수가 있겠습니까. 유소(儒疏)에서 배척한 것도 모두가 공론(公論)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으니 이 때문에 언관을 가벼이 체직시킬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동료가 배척을 받은 것 때문에 처치하기가 곤란하다거나 병 때문에 즉시 인피(引避)하지 못한 것 등은 피혐할 이유가 더더욱 없습니다. 모두 출사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오늘은 정청(庭請)·종실·백관의 계사와 차자를 봉입(捧入)하지 말라."
"오늘은 정청(庭請)·종실·백관의 계사와 차자를 봉입(捧入)하지 말라."

 

1월 16일 병자

지난해에 최광필(崔光弼) 등이 올린 소에 답하였다.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만 두려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어떻게 이런 말까지 할 수 있는가. 내가 차마 듣지 못하겠다."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만 두려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어떻게 이런 말까지 할 수 있는가. 내가 차마 듣지 못하겠다."

 

종실이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이처럼 버티면서 번거롭게 하니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이처럼 버티면서 번거롭게 하니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경들이 또 눈보라를 무릅쓰고 와서 아뢰니 내 마음이 더욱 미안하다. 내 뜻은 이미 다 유시하였으니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경들이 또 눈보라를 무릅쓰고 와서 아뢰니 내 마음이 더욱 미안하다. 내 뜻은 이미 다 유시하였으니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부디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부디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관학이 첫 번째 상소하니, 답하기를, "너희들의 정성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 학업을 닦도록 하라." 하였다.
"너희들의 정성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 학업을 닦도록 하라."
하였다.

 

옥당이 첫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차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차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다 유시하였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다 유시하였다.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정언 이강이 아뢰기를, "신은 영외(嶺外)의 고독한 몸인 데도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아 왔으므로 외람되이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를 더럽히게 되었으므로 평상시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몸바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초야의 선비가 앞장서서 대의(大義)를 주창한 것이 늘 통분하게 여겨 왔던 뜻과 부절을 맞춘 듯 꼭 맞았기 때문에, 서로 안팎이 되어 주고받으면서 기필코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 한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외부의 말을 듣건대 김윤겸(金允兼)이 혹 신의 사주를 받아 그런 상소를 올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합니다. 의논을 거둘 때에 모호하게 말을 하고 기롱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그런 자에 대해서는 신이 대석(臺席)에서 경중을 논계하며 한 번 손을 쓰기만 하면 될 것인데, 어찌 꼭 급급하게 사람을 사주하여 대론에 앞서 경솔하게 그런 일을 꺼내겠습니까. 더구나 윤겸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지금에 와서야 듣게 되었는데 또 어떻게 그 사람이 한 일을 알겠습니까. 무른 땅에 말뚝을 박듯이 의심하지 않을 일을 의심하고 있으니 태연히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은 영외(嶺外)의 고독한 몸인 데도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아 왔으므로 외람되이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를 더럽히게 되었으므로 평상시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몸바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초야의 선비가 앞장서서 대의(大義)를 주창한 것이 늘 통분하게 여겨 왔던 뜻과 부절을 맞춘 듯 꼭 맞았기 때문에, 서로 안팎이 되어 주고받으면서 기필코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 한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외부의 말을 듣건대 김윤겸(金允兼)이 혹 신의 사주를 받아 그런 상소를 올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합니다. 의논을 거둘 때에 모호하게 말을 하고 기롱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그런 자에 대해서는 신이 대석(臺席)에서 경중을 논계하며 한 번 손을 쓰기만 하면 될 것인데, 어찌 꼭 급급하게 사람을 사주하여 대론에 앞서 경솔하게 그런 일을 꺼내겠습니까. 더구나 윤겸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지금에 와서야 듣게 되었는데 또 어떻게 그 사람이 한 일을 알겠습니까. 무른 땅에 말뚝을 박듯이 의심하지 않을 일을 의심하고 있으니 태연히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정언 이강이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이렇듯 대론이 한창 치열해지고 있는 날을 당하여 언책(言責)을 맡은 자로서 제 몸을 잊어 버리고 나라에 몸 바칠 각오를 하면서 기필코 어려운 상황을 극복토록 해야 마땅한데, 감히 피혐할 대상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소란스럽게 될 단서를 야기시켜 대론이 지체되도록 만들었으니, 체차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정언 이강이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이렇듯 대론이 한창 치열해지고 있는 날을 당하여 언책(言責)을 맡은 자로서 제 몸을 잊어 버리고 나라에 몸 바칠 각오를 하면서 기필코 어려운 상황을 극복토록 해야 마땅한데, 감히 피혐할 대상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소란스럽게 될 단서를 야기시켜 대론이 지체되도록 만들었으니, 체차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2품 이상을 이끌고 아뢰기를, "전날 대간이 합계(合啓)한 바, 기준격(奇俊格)이 상변(上變)한 일과 허균이 스스로 해명하며 상소한 것이야말로 모두 국가에 막중한 일인 만큼 끝내 덮어 둘 수가 없는데, 이렇듯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해져 백관이 정청(庭請)하는 날을 당해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관유(館儒)가 바친 흉서 때문에 이미 정국을 행하였으니, 전일 대간이 아뢴 대로 기준격과 허균을 똑같이 조사해 처치토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아서 적당히 처리할 것이다. 어째서 꼭 번거롭게 아뢰는가." 하였다.
"전날 대간이 합계(合啓)한 바, 기준격(奇俊格)이 상변(上變)한 일과 허균이 스스로 해명하며 상소한 것이야말로 모두 국가에 막중한 일인 만큼 끝내 덮어 둘 수가 없는데, 이렇듯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해져 백관이 정청(庭請)하는 날을 당해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관유(館儒)가 바친 흉서 때문에 이미 정국을 행하였으니, 전일 대간이 아뢴 대로 기준격과 허균을 똑같이 조사해 처치토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아서 적당히 처리할 것이다. 어째서 꼭 번거롭게 아뢰는가."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그저께 정국을 행할 때 죄인 원궤가 공초한 사연을 보건대, 소위 비암(琵巖)이 보낸 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지만, 전일 윤유겸(尹惟謙) 등이 보았던 편지는 그의 처삼촌 김원량(金元亮)이 보낸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미 승복(承服)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글 속에 나오는 이른바 ‘뜻을 굽혀 억지로 따르지 말고 강건한 자세로 자신을 지키라.’는 말이야말로 이렇듯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해지고 있는 날을 당하여 신자(臣子)로서 입 밖에 내놓을 소리가 못되니, 암암리에 화의 장본인을 엄호하려 한 그 뜻이 비암이라는 자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미 스스로 이렇듯 역모를 꾀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으니, 앞 편지와 뒷 편지가 모두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는지 또 어찌 알겠습니까. 원궤와 김원량 등을 엄히 국문하라고 속히 명하시어 흉측한 실상을 조사해 내도록 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그저께 정국을 행할 때 죄인 원궤가 공초한 사연을 보건대, 소위 비암(琵巖)이 보낸 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지만, 전일 윤유겸(尹惟謙) 등이 보았던 편지는 그의 처삼촌 김원량(金元亮)이 보낸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미 승복(承服)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글 속에 나오는 이른바 ‘뜻을 굽혀 억지로 따르지 말고 강건한 자세로 자신을 지키라.’는 말이야말로 이렇듯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해지고 있는 날을 당하여 신자(臣子)로서 입 밖에 내놓을 소리가 못되니, 암암리에 화의 장본인을 엄호하려 한 그 뜻이 비암이라는 자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미 스스로 이렇듯 역모를 꾀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으니, 앞 편지와 뒷 편지가 모두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는지 또 어찌 알겠습니까. 원궤와 김원량 등을 엄히 국문하라고 속히 명하시어 흉측한 실상을 조사해 내도록 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관학이 두 번째 소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1월 17일 정축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경들이 또 와서 아뢰니 내 마음이 더욱 불안하다.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으니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나의 뜻을 유시하였다. 부디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다시 말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경들이 또 와서 아뢰니 내 마음이 더욱 불안하다.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으니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나의 뜻을 유시하였다. 부디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다시 말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관학이 잇달아 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간 남이준, 장령 강수, 지평 정양윤·김호, 헌납 조정립이 아뢰기를, "전일 양사가 기준격과 허균에 대한 일을 연계(連啓)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혐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직책에 나아온 뒤에, 연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신들이 석상(席上)에서 발론했더니, 혹 말하기를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결정이 될 때까지 우선 정지하는 것이 무방하겠다.’고 하였는데, 신들이 스스로의 의견을 고수하지 못하고 그냥 잠정적으로 정지한채 다시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대신의 계사를 보건대 신들이 무기력하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으니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이때 유희분(柳希奮)이 의논을 주도하여 2품 이상과 함께 아뢰면서 기준격과 허균 등을 속히 국문할 것을 청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정론(廷論)을 완화시켜 기자헌을 구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전일 양사가 기준격과 허균에 대한 일을 연계(連啓)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혐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직책에 나아온 뒤에, 연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신들이 석상(席上)에서 발론했더니, 혹 말하기를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결정이 될 때까지 우선 정지하는 것이 무방하겠다.’고 하였는데, 신들이 스스로의 의견을 고수하지 못하고 그냥 잠정적으로 정지한채 다시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대신의 계사를 보건대 신들이 무기력하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으니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이때 유희분(柳希奮)이 의논을 주도하여 2품 이상과 함께 아뢰면서 기준격과 허균 등을 속히 국문할 것을 청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정론(廷論)을 완화시켜 기자헌을 구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장령 한영, 정언 박종주가 아뢰기를, "천하의 역적인 것은 마찬가지라 하더라도 역적을 다스리는 데에는 선후가 있는 법입니다. 대체로 이번의 대론이 역적을 다스리는 것 중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화의 근원을 미처 제거하기도 전에 또 어찌 다른 역적을 손을 댄단 말입니까. 소위 원궤라고 하는 자는 이 대론을 거꾸로 역모라고 하였기 때문에 관학의 제생(諸生)과 양사의 많은 관원들이 정국을 행하는 날 이를 아울러 다스림으로써 흉도들이 일을 망치려는 계책을 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기준격이 허균에 대해서 말하고 허균이 이병에 대해서 말하여 서로들 고소(告訴)한 것처럼 하였는데, 소위 이홍로(李弘老)와 글을 통했다느니 이홍로의 심복(心腹)이라느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리기 위해 본래 모두 국문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허균은 이곳에 있지만 기자헌은 이미 배소(配所)에 갔는데, 어떻게 준격과 대질 신문을 벌이며 준격에게 10세 이전의 일을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소에 첨부한 서찰 5통이 일단 기자헌이 지은 것이니, 어찌 자헌에게 묻지 않고 그 아들에게 물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옥당이 양사를 처치할 때에 이미 ‘대론이 한창 치열해지고 있으니 역옥(逆獄)에 관한 일은 일체 잠정적으로 정지해야 할 것이다.’고 차자를 올렸기 때문에, 신들이 출사(出仕)한 뒤에 연계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대신이 2품 이상을 이끌고 대론에 앞서 허균과 기준격을 국문하라고 계청(啓請)하였으니, 양사의 많은 관원들이 인피한 것은 당연합니다. 신들의 생각은 ‘대신이 이미 추관(推官)이 된 이상 마땅히 국청에서 이 세 사람을 국문하자고 계청했어야 할 것인데, 하필 정청하는 2품 관원들을 이끌고서 대론은 놔둔 채 이를 먼저 청했단 말인가. 사체(事體)가 뒤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대론이 오히려 기·허가 서로 고소한 사건보다 가볍게 되고 말았는데 그 사이의 곡절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만약 이 옥사를 대론에 앞서 국문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기자헌을 중도에서 서울로 도로 잡아오게 한 뒤에야 조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들의 소견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연계하지 않았던 것인데, 지금 보건대 많은 관원들이 피혐하였으니 태연히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천하의 역적인 것은 마찬가지라 하더라도 역적을 다스리는 데에는 선후가 있는 법입니다. 대체로 이번의 대론이 역적을 다스리는 것 중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화의 근원을 미처 제거하기도 전에 또 어찌 다른 역적을 손을 댄단 말입니까.
소위 원궤라고 하는 자는 이 대론을 거꾸로 역모라고 하였기 때문에 관학의 제생(諸生)과 양사의 많은 관원들이 정국을 행하는 날 이를 아울러 다스림으로써 흉도들이 일을 망치려는 계책을 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기준격이 허균에 대해서 말하고 허균이 이병에 대해서 말하여 서로들 고소(告訴)한 것처럼 하였는데, 소위 이홍로(李弘老)와 글을 통했다느니 이홍로의 심복(心腹)이라느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리기 위해 본래 모두 국문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허균은 이곳에 있지만 기자헌은 이미 배소(配所)에 갔는데, 어떻게 준격과 대질 신문을 벌이며 준격에게 10세 이전의 일을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소에 첨부한 서찰 5통이 일단 기자헌이 지은 것이니, 어찌 자헌에게 묻지 않고 그 아들에게 물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옥당이 양사를 처치할 때에 이미 ‘대론이 한창 치열해지고 있으니 역옥(逆獄)에 관한 일은 일체 잠정적으로 정지해야 할 것이다.’고 차자를 올렸기 때문에, 신들이 출사(出仕)한 뒤에 연계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대신이 2품 이상을 이끌고 대론에 앞서 허균과 기준격을 국문하라고 계청(啓請)하였으니, 양사의 많은 관원들이 인피한 것은 당연합니다. 신들의 생각은 ‘대신이 이미 추관(推官)이 된 이상 마땅히 국청에서 이 세 사람을 국문하자고 계청했어야 할 것인데, 하필 정청하는 2품 관원들을 이끌고서 대론은 놔둔 채 이를 먼저 청했단 말인가. 사체(事體)가 뒤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대론이 오히려 기·허가 서로 고소한 사건보다 가볍게 되고 말았는데 그 사이의 곡절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만약 이 옥사를 대론에 앞서 국문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기자헌을 중도에서 서울로 도로 잡아오게 한 뒤에야 조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들의 소견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연계하지 않았던 것인데, 지금 보건대 많은 관원들이 피혐하였으니 태연히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대사헌 유간(柳澗)이 아뢰기를, "신이 이달 12일에 나와 사은(謝恩)한 뒤에 바로 합사(合司)하는 모임에 참석하여 대사간과 집의에게 묻기를 ‘지난번에 제기되었던 바 기준격과 허균 두 사람 모두 국문하도록 청한 논을 양사가 인피한 뒤에는 결말을 지어야 할 것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처리하려 하는가?’ 하였더니, 윤인과 임건이 대답하기를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리고 원소(元疏)가 아직 내려오지 않았고 옥당 역시 우선 정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양사가 상의하여 연계하지 않기로 하였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의 생각에 ‘양사가 일단 그렇게 하기로 완전히 정한 이상 어찌 신임 관원이 다시 이 일을 제기하여 소란스럽게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잇달아 동료들이 인피하였고 이를 처치하는 일이 있게 되었으므로 그냥 머뭇거리면서 아무 말없이 시일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미 김탁(金琢)으로부터 간인(奸人)과 붕당을 지어 패거리를 옹호한다는 배척을 받았는데, 또 대신이 ‘끝내 덮어둘 수만은 없다.’고 아뢰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대간이 하루라도 그 관직에 있었으면 그 하루만큼이라도 직책을 성실히 수행해야 마땅하니, 신이 어찌 감히 그 관직에 있었던 날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태연하게 그대로 자리에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이달 12일에 나와 사은(謝恩)한 뒤에 바로 합사(合司)하는 모임에 참석하여 대사간과 집의에게 묻기를 ‘지난번에 제기되었던 바 기준격과 허균 두 사람 모두 국문하도록 청한 논을 양사가 인피한 뒤에는 결말을 지어야 할 것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처리하려 하는가?’ 하였더니, 윤인과 임건이 대답하기를 ‘대론이 바야흐로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다른 일은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리고 원소(元疏)가 아직 내려오지 않았고 옥당 역시 우선 정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양사가 상의하여 연계하지 않기로 하였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의 생각에 ‘양사가 일단 그렇게 하기로 완전히 정한 이상 어찌 신임 관원이 다시 이 일을 제기하여 소란스럽게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잇달아 동료들이 인피하였고 이를 처치하는 일이 있게 되었으므로 그냥 머뭇거리면서 아무 말없이 시일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미 김탁(金琢)으로부터 간인(奸人)과 붕당을 지어 패거리를 옹호한다는 배척을 받았는데, 또 대신이 ‘끝내 덮어둘 수만은 없다.’고 아뢰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대간이 하루라도 그 관직에 있었으면 그 하루만큼이라도 직책을 성실히 수행해야 마땅하니, 신이 어찌 감히 그 관직에 있었던 날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태연하게 그대로 자리에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덕이 없고 어둡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차마 못할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 경들은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덕이 없고 어둡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차마 못할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 경들은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고 삼계하니, 모두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잇달아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1월 18일 무인

관학(館學)이 연달아 상소하여, 속히 대의에 입각하여 단안을 내려서 폐전(廢典)만이라도 시행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아, 너희 유생들은 어찌하여 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차마 못할 일로서 끝내 행할 수 없으니 너희들은 헛수고만 할 뿐이다. 다시 번거롭게 소란 떨지 말라." 하였다.
"아, 너희 유생들은 어찌하여 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차마 못할 일로서 끝내 행할 수 없으니 너희들은 헛수고만 할 뿐이다. 다시 번거롭게 소란 떨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친경(親耕)하는 날짜로 3월 19일은 좋지 않다고 하니, 속히 다른 날을 가려 각도(各道)에 하유토록 하라."
"친경(親耕)하는 날짜로 3월 19일은 좋지 않다고 하니, 속히 다른 날을 가려 각도(各道)에 하유토록 하라."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덕이 없고 어둡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 경들은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내가 덕이 없고 어둡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 경들은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대신이 오지도 않았는데, 경들이 어찌 꼭 이렇게까지 억지로 번거롭게 하는가. 백관이 정청(庭請)하는 일은 사체(事體)가 지극히 중하니 대신 없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디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도록 하라." 하였다.
"대신이 오지도 않았는데, 경들이 어찌 꼭 이렇게까지 억지로 번거롭게 하는가. 백관이 정청(庭請)하는 일은 사체(事體)가 지극히 중하니 대신 없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디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도록 하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나의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상차하여 양사 모두에게 출사를 명하도록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고,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따를 일이라면 따르지 않겠는가.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일이라면 따르지 않겠는가. 굳이 쟁집하지 말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전일 2품 이상의 관원이 계사(啓辭)를 올린 것은 실로 여러 재신(宰臣)들과 뭇 사람들의 의논에서 나온 것으로서, 감히 그것을 대론보다 중시해서가 아니었고 대론에 우선하여 계청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궤의 흉서 사건을 지금 추문(推問)하고 있는 중이니 기준격과 허균 두 사람을 아울러 국문하는 일도 불가할 것이 없으므로 그저 하정(下情)을 진달드린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처리할 즈음에 제대로 살펴 처리하지 못한 나머지 양사가 인피하게 만들었으니, 속히 신의 삭직(削職)을 명하시고 새 정승을 뽑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전일 2품 이상의 관원이 계사(啓辭)를 올린 것은 실로 여러 재신(宰臣)들과 뭇 사람들의 의논에서 나온 것으로서, 감히 그것을 대론보다 중시해서가 아니었고 대론에 우선하여 계청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궤의 흉서 사건을 지금 추문(推問)하고 있는 중이니 기준격과 허균 두 사람을 아울러 국문하는 일도 불가할 것이 없으므로 그저 하정(下情)을 진달드린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처리할 즈음에 제대로 살펴 처리하지 못한 나머지 양사가 인피하게 만들었으니, 속히 신의 삭직(削職)을 명하시고 새 정승을 뽑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고 삼계하니, 이 모두에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유학 유시영(柳時榮)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리가 어두워지고 막혀 역적을 토죄(討罪)하는 일이 엄하게 행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사간 윤인 등이 인피한 사연을 보건대 역적 허균의 죄를 비호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윤인과 임건·한영·박종주가 마음속으로 기꺼이 역적을 비호하면서 차라리 전하를 등질지언정 차마 허균과 기준격을 저버리지는 못하겠다고 한 그 죄를 주벌하시고, 다음으로 허균의 위세에 겁을 내어 연계하지도 못한 채 책임만 겨우 메우려고 한 묘당의 죄를 다스리소서. 그리고 준격도 아울러 국문하여 실정을 밝혀 낸 다음 분명하게 전형(典刑)을 시행하소서."
"의리가 어두워지고 막혀 역적을 토죄(討罪)하는 일이 엄하게 행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사간 윤인 등이 인피한 사연을 보건대 역적 허균의 죄를 비호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윤인과 임건·한영·박종주가 마음속으로 기꺼이 역적을 비호하면서 차라리 전하를 등질지언정 차마 허균과 기준격을 저버리지는 못하겠다고 한 그 죄를 주벌하시고, 다음으로 허균의 위세에 겁을 내어 연계하지도 못한 채 책임만 겨우 메우려고 한 묘당의 죄를 다스리소서. 그리고 준격도 아울러 국문하여 실정을 밝혀 낸 다음 분명하게 전형(典刑)을 시행하소서."

 

양사가 합계하기를, "기준격과 허균의 일을 대론이 결정될 동안만은 우선 정지하기로 했었는데, 이번에 대신이 ‘끝내 덮어둘 수만은 없다.’고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준격의 소가 기자헌(奇自獻)의 교시를 받아 나온 것이어서 자헌을 국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자헌을 급히 서울로 도로 잡아들여 허균·준격 등과 함께 일시에 모두 국문토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일단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분부를 했으면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려야 마땅할 것인데, 이렇듯 정청으로 소란스럽게 된 날을 당하여 어찌해서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논하는 것인가. 내가 괴이하게 여긴다. 다시 논하지 말라." 하였다.
"기준격과 허균의 일을 대론이 결정될 동안만은 우선 정지하기로 했었는데, 이번에 대신이 ‘끝내 덮어둘 수만은 없다.’고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준격의 소가 기자헌(奇自獻)의 교시를 받아 나온 것이어서 자헌을 국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자헌을 급히 서울로 도로 잡아들여 허균·준격 등과 함께 일시에 모두 국문토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일단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분부를 했으면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려야 마땅할 것인데, 이렇듯 정청으로 소란스럽게 된 날을 당하여 어찌해서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논하는 것인가. 내가 괴이하게 여긴다. 다시 논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좌상이 민몽룡(閔夢龍)을 크게 쓸 만하다고 극력 말했는데 내가 그 말을 일찍부터 잊지 않고 있다. 상신(相臣)의 빈 자리에 민몽룡을 제수하라."
"좌상이 민몽룡(閔夢龍)을 크게 쓸 만하다고 극력 말했는데 내가 그 말을 일찍부터 잊지 않고 있다. 상신(相臣)의 빈 자리에 민몽룡을 제수하라."

 

완창군(完昌君) 이병이 상소하기를, "먼저 신을 삭직시키고 그 다음 신의 죄를 국문함으로써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하였는데, 2월 4일에 비로소 내렸다.
"먼저 신을 삭직시키고 그 다음 신의 죄를 국문함으로써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하였는데, 2월 4일에 비로소 내렸다.

 

이상항(李尙恒)·정준(鄭遵)을 이조 좌랑으로, 이창정(李昌廷)을 사예(司藝)로, 민몽룡(閔夢龍)을 우의정으로, 한효순(韓孝純)을 좌의정으로, 정인홍(鄭仁弘)을 영의정으로, 조정립(曺挺立)을 예조 좌랑으로, 민호(閔頀)를 사성(司成)으로, 이원여(李元輿)를 정언으로, 이시정(李時楨)을 봉상시 정으로, 이익엽(李益燁)을 겸보덕으로, 황덕부(黃德符)를 겸문학으로, 신칙(申恜)을 사서로, 김시국(金蓍國)을 병조 좌랑으로 삼았다. 【지난해의 도목 정사(都目政事)를 이제야 행한 것이다.】

 

1월 19일 기묘

종실이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종척들이 지금 어쩌자고 차마 이런 말을 하는가. 사리에 닿지 않는 주장을 하여 나의 부덕함을 무겁게 하지 말라." 하였다.
"종척들이 지금 어쩌자고 차마 이런 말을 하는가. 사리에 닿지 않는 주장을 하여 나의 부덕함을 무겁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는 뜻을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다는 뜻을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館學)이 잇달아 상소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정론(正論)이 날로 해이해져 삿된 패거리들이 고개를 내미는데 대사(大事)에 관한 소는 요즘 들어 조용하기만 하고 교묘히 피할 목적으로 성균관의 상소를 올리는 자들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소장을 다투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대사를 망치려는 자들의 소행으로서 암암리에 서궁(西宮)을 비호하려는 계책 아닌 것이 없으니, 속히 여정(輿情)에 부응하시어 흉도의 모의를 중지시키고 종묘 사직이 편안해지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한 것은 장차 처치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양사가 처치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지레 앞서서 조섭하는 중에 있는 나를 다그치고 있으니 내가 괴이하게 여긴다. 서궁의 일에 대해서는 내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정론(正論)이 날로 해이해져 삿된 패거리들이 고개를 내미는데 대사(大事)에 관한 소는 요즘 들어 조용하기만 하고 교묘히 피할 목적으로 성균관의 상소를 올리는 자들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소장을 다투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대사를 망치려는 자들의 소행으로서 암암리에 서궁(西宮)을 비호하려는 계책 아닌 것이 없으니, 속히 여정(輿情)에 부응하시어 흉도의 모의를 중지시키고 종묘 사직이 편안해지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한 것은 장차 처치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양사가 처치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지레 앞서서 조섭하는 중에 있는 나를 다그치고 있으니 내가 괴이하게 여긴다. 서궁의 일에 대해서는 내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장령 한영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유시영(柳時榮)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들을 가리켜 역적을 비호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신은 삼가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인피하는 사연 속에서 ‘기준격·허균·기자헌 등을 모두 국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단지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체례(體例)에 의거해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일 뿐이니, 어찌 조금이라도 허균을 비호하려는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마구 배척을 가했으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삼가 유시영(柳時榮)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신들을 가리켜 역적을 비호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신은 삼가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인피하는 사연 속에서 ‘기준격·허균·기자헌 등을 모두 국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단지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체례(體例)에 의거해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일 뿐이니, 어찌 조금이라도 허균을 비호하려는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마구 배척을 가했으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계로 연계하기를, "기준격이 ‘허균이 군상(君上)을 위태롭게 하려고 꾀하고 있다.’는 일로 소장을 올려 고변(告變)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면 허균이 대역(大逆)이 될 것이고, 없는 일을 날조하여 무고했다면 기준격이 또한 대역이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대역과 관계된 일이니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거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정청(庭請)을 하고 있는 날이라 하여 덮어두고 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 나국을 명하여 그 실정을 조사토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대저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한 말은 장차 처치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선조(先朝) 때부터 이런 분부를 한 번 내렸을 경우 대간이 소장을 올려 다그쳤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번에 준격이 고변한 일은 반드시 자세히 조사해 처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준격이 이에 10년이 지난 뒤에야 고변하였고 준격 등이 일단 도주할 사람들이 아니므로 위에서 헤아려 처치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대들이 대론(大論)과 함께 이 일까지 거론하며 조섭하는 중에 번거롭게 하는 의도가 과연 무엇이냐. 누가 이런 주장을 하여 지극히 소란스럽게 만들었는가. 우선 처치할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는 귀찮게 하지 말라. 나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는다." 하였다.
"기준격이 ‘허균이 군상(君上)을 위태롭게 하려고 꾀하고 있다.’는 일로 소장을 올려 고변(告變)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면 허균이 대역(大逆)이 될 것이고, 없는 일을 날조하여 무고했다면 기준격이 또한 대역이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대역과 관계된 일이니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거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정청(庭請)을 하고 있는 날이라 하여 덮어두고 묻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 나국을 명하여 그 실정을 조사토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대저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한 말은 장차 처치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선조(先朝) 때부터 이런 분부를 한 번 내렸을 경우 대간이 소장을 올려 다그쳤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번에 준격이 고변한 일은 반드시 자세히 조사해 처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준격이 이에 10년이 지난 뒤에야 고변하였고 준격 등이 일단 도주할 사람들이 아니므로 위에서 헤아려 처치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대들이 대론(大論)과 함께 이 일까지 거론하며 조섭하는 중에 번거롭게 하는 의도가 과연 무엇이냐. 누가 이런 주장을 하여 지극히 소란스럽게 만들었는가. 우선 처치할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는 귀찮게 하지 말라. 나는 두 번 다시 말하지 않는다."
하였다.

 

백관이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렇듯 국가가 어렵고 위태로운 날을 당하여 백관이 직무는 돌보지 않고 이와 같이 극력 쟁집하고 있는데, 일이 종묘 사직과 관계되고 여러 사람들의 심정을 막기 어려우니, 다만 백관으로 하여금 조알(朝謁)을 하지 말게 하라. 이 역시 의리 때문에 은혜를 억누르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돌아보건대 내가 기구하게도 이런 망극한 변고를 당하게 되었으니 하늘에 호소하며 눈물만 흘릴 뿐 드러낼 면목이 없다. 경들은 부디 나의 심정을 살펴 다시는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이렇듯 국가가 어렵고 위태로운 날을 당하여 백관이 직무는 돌보지 않고 이와 같이 극력 쟁집하고 있는데, 일이 종묘 사직과 관계되고 여러 사람들의 심정을 막기 어려우니, 다만 백관으로 하여금 조알(朝謁)을 하지 말게 하라. 이 역시 의리 때문에 은혜를 억누르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돌아보건대 내가 기구하게도 이런 망극한 변고를 당하게 되었으니 하늘에 호소하며 눈물만 흘릴 뿐 드러낼 면목이 없다. 경들은 부디 나의 심정을 살펴 다시는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좌의정 한효순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경이 노성(老成)한 숙덕(宿德)으로서 오래 전부터 인망을 쌓아 왔으니, 이제 와서 자리에 오른 것도 다 때가 늦었다 할 것이다. 부디 사직하지 말고 임금같지 않은 나를 힘껏 보좌하라." 하였다.
"경이 노성(老成)한 숙덕(宿德)으로서 오래 전부터 인망을 쌓아 왔으니, 이제 와서 자리에 오른 것도 다 때가 늦었다 할 것이다. 부디 사직하지 말고 임금같지 않은 나를 힘껏 보좌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고,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대신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은 이미 대신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합사하여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1월 20일 경진

진사 정용서(鄭龍瑞)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속히 서궁(西宮)을 폐하여 영원히 화근을 끊어버림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할 것을 청하는 것이었다.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만한 일이면 따르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대신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은 어제 이미 유시하였다. 억지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만한 일이면 따르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대신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경들의 청에 못이겨 이미 백관에게 조알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대의(大義)가 또한 이미 행해진 셈이니 다시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내가 경들의 청에 못이겨 이미 백관에게 조알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대의(大義)가 또한 이미 행해진 셈이니 다시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고,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미 백관에게 조알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공의(公議)가 또한 이미 행해진 셈인데 어찌 모질게도 다시 차마 못할 말로 핍박하는가.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미 백관에게 조알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공의(公議)가 또한 이미 행해진 셈인데 어찌 모질게도 다시 차마 못할 말로 핍박하는가.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이미 애써 경들의 말을 따라 신하들에게 조알을 정지하라고 하였다. 다시는 따를 수 없는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이미 애써 경들의 말을 따라 신하들에게 조알을 정지하라고 하였다. 다시는 따를 수 없는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고,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정언 박종주(朴宗胄)가 아뢰기를, "요즘 들어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유명(儒名)을 가탁하고는 암암리에 화의 장본인을 비호하면서 대론(大論)을 늦추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유시영(柳時榮)이란 자도 원궤와 같은 부류인데 적반하장격으로 신을 가리켜 역적을 비호한다고 하였으니 신은 통분스럽기만 합니다.  기준격이 허균을 배척하였고 허균이 이병을 고소하였으니 모두 다 대질 신문을 벌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전일 피혐(避嫌)하면서 모두 국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단지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체례(體例)에 의거해서 말한 것일 뿐이니, 어찌 조금이라도 허균을 비호할 개인적인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허균만 말하고 이병은 언급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그가 이른바 역적을 비호한다고 한 것은 바로 자신을 두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언지(言地)에서 직분을 수행하면서 이미 추악한 비난을 받은 데다가 어제는 병을 심하게 앓아 동료와 함께 한꺼번에 인피하지도 못했으니 신의 잘못이 더욱 커졌습니다.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요즘 들어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유명(儒名)을 가탁하고는 암암리에 화의 장본인을 비호하면서 대론(大論)을 늦추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유시영(柳時榮)이란 자도 원궤와 같은 부류인데 적반하장격으로 신을 가리켜 역적을 비호한다고 하였으니 신은 통분스럽기만 합니다.
기준격이 허균을 배척하였고 허균이 이병을 고소하였으니 모두 다 대질 신문을 벌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전일 피혐(避嫌)하면서 모두 국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단지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체례(體例)에 의거해서 말한 것일 뿐이니, 어찌 조금이라도 허균을 비호할 개인적인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허균만 말하고 이병은 언급하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그가 이른바 역적을 비호한다고 한 것은 바로 자신을 두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언지(言地)에서 직분을 수행하면서 이미 추악한 비난을 받은 데다가 어제는 병을 심하게 앓아 동료와 함께 한꺼번에 인피하지도 못했으니 신의 잘못이 더욱 커졌습니다.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예조 판서 이이첨이 아뢰기를, "지난번 관학 유생들이 회합한 곳에서 얻은 흉서를 보건대, 신의 이름도 그 속에 끼어 있었는데 똑같이 악명(惡名)을 뒤집어 씌었으므로 지극히 경악스럽고 통분스러웠습니다. 신이 이어 생각건대 이 편지에 일단 원궤의 자(字)가 적혀 있고 또 비암(琵巖)이라는 칭호가 있으니 결코 익명서(匿名書)와 같은 종류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궤와 김원량(金元亮)은 모두 조경기(趙慶起)의 사촌이다.’고 말하니 필시 일종의 사론(邪論)이 스스로 형성된 집안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 유생 4명이 소장을 올렸고 그 뒤를 다사(多士)가 이었으며, 논사(論思)의 관원과 후설(喉舌)의 신하들 역시 모두 스스로 해명하였으니, 신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 감히 한 번 아뢸까 합니다. 지금 국청의 말을 듣건대 원궤와 김원량이 앞 편지에 대해서는 모두 이미 승복(承服)했지만 뒷 편지에 대해서는 끝내 숨기고 있기 때문에 장차 신국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찰과 관련하여 비록 그 정적(情迹)이 명백하다고 인정되어 큰 옥사(獄事)를 이루게 되었다 하더라도 형륙(刑戮)까지 받게 하여 끝내 장(杖)을 맞고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일을 군자가 조정에 있으면서 어찌 차마 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의심스러울 때에는 가벼운 쪽으로 처리하라는 옛 교훈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다스리지 않는 것으로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임금된 이의 큰 도량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두 사람이 서로 글을 통하며 ‘대론(大論)에 참여하는 것은 뜻을 굽히는 것이다.’고 한 죄를 가지고 말감(末減)하는 율(律)을 적용한다면 그들 모두가 아무 말 못하고 자복(自服)할 것입니다. 대저 시대 상황이 불행하게 전개되어 의리가 어두워지고 막힌 나머지 이처럼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서로 잇달아 나오고 있으니 본래 그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옳겠습니다만, 자칭 선비라고 하는 자가 오랏줄에 묶이는 일을 면치 못하게 하는 것 또한 정녕 밝은 시대의 아름다운 일은 못된다 할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대사헌으로 있을 때 감히 탑전(榻前)에서 유생을 특별히 용서하시라고 극력 진달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이 옥사를 만나고 보니 마음이 매우 미안하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진달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다시 국청에 자문하시어 가능한 한 관대한 전형(典刑)을 적용하심으로써 두 마음을 품은 자들로 하여금 모두 얼굴을 고치고 스스로 편안케 되도록 하소서. 그러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였다.
"지난번 관학 유생들이 회합한 곳에서 얻은 흉서를 보건대, 신의 이름도 그 속에 끼어 있었는데 똑같이 악명(惡名)을 뒤집어 씌었으므로 지극히 경악스럽고 통분스러웠습니다. 신이 이어 생각건대 이 편지에 일단 원궤의 자(字)가 적혀 있고 또 비암(琵巖)이라는 칭호가 있으니 결코 익명서(匿名書)와 같은 종류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궤와 김원량(金元亮)은 모두 조경기(趙慶起)의 사촌이다.’고 말하니 필시 일종의 사론(邪論)이 스스로 형성된 집안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 유생 4명이 소장을 올렸고 그 뒤를 다사(多士)가 이었으며, 논사(論思)의 관원과 후설(喉舌)의 신하들 역시 모두 스스로 해명하였으니, 신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 감히 한 번 아뢸까 합니다.
지금 국청의 말을 듣건대 원궤와 김원량이 앞 편지에 대해서는 모두 이미 승복(承服)했지만 뒷 편지에 대해서는 끝내 숨기고 있기 때문에 장차 신국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찰과 관련하여 비록 그 정적(情迹)이 명백하다고 인정되어 큰 옥사(獄事)를 이루게 되었다 하더라도 형륙(刑戮)까지 받게 하여 끝내 장(杖)을 맞고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일을 군자가 조정에 있으면서 어찌 차마 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의심스러울 때에는 가벼운 쪽으로 처리하라는 옛 교훈도 분명히 있습니다만, 다스리지 않는 것으로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임금된 이의 큰 도량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두 사람이 서로 글을 통하며 ‘대론(大論)에 참여하는 것은 뜻을 굽히는 것이다.’고 한 죄를 가지고 말감(末減)하는 율(律)을 적용한다면 그들 모두가 아무 말 못하고 자복(自服)할 것입니다.
대저 시대 상황이 불행하게 전개되어 의리가 어두워지고 막힌 나머지 이처럼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서로 잇달아 나오고 있으니 본래 그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옳겠습니다만, 자칭 선비라고 하는 자가 오랏줄에 묶이는 일을 면치 못하게 하는 것 또한 정녕 밝은 시대의 아름다운 일은 못된다 할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대사헌으로 있을 때 감히 탑전(榻前)에서 유생을 특별히 용서하시라고 극력 진달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이 옥사를 만나고 보니 마음이 매우 미안하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진달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다시 국청에 자문하시어 가능한 한 관대한 전형(典刑)을 적용하심으로써 두 마음을 품은 자들로 하여금 모두 얼굴을 고치고 스스로 편안케 되도록 하소서. 그러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였다.

 

 

 

집의 임건, 장령 한영이 아뢰기를, "신들이 전일 피혐한 사연 가운데 ‘기준격은 허균에 대해서, 허균은 이병에 대해서 서로 고소하였으니 모두 국문하는 것이 본래 마땅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옥사를 다스리는 체례에 입각하여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또 유시영(柳時榮)의 배척을 받고 어제 피혐할 때 관례대로만 인피했을 뿐 그 사연을 상세하게 진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정언 박종주가 피혐한 사연을 보건대 자세하게 사연을 갖추어 논했는데 그것 역시 당초에 신들이 연명(聯名)해서 인피했던 뜻이었습니다. 신들이 어제 피혐한 사연과는 자세함과 소략함에 차이가 있는 듯하니, 신들이 상세히 진달하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전일 피혐한 사연 가운데 ‘기준격은 허균에 대해서, 허균은 이병에 대해서 서로 고소하였으니 모두 국문하는 것이 본래 마땅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옥사를 다스리는 체례에 입각하여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또 유시영(柳時榮)의 배척을 받고 어제 피혐할 때 관례대로만 인피했을 뿐 그 사연을 상세하게 진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정언 박종주가 피혐한 사연을 보건대 자세하게 사연을 갖추어 논했는데 그것 역시 당초에 신들이 연명(聯名)해서 인피했던 뜻이었습니다. 신들이 어제 피혐한 사연과는 자세함과 소략함에 차이가 있는 듯하니, 신들이 상세히 진달하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진사 이건원(李乾元)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간은 임금의 귀와 눈 구실을 수행하는 자들인데, 논계할 즈음에 귀척(貴戚)의 위세에 겁을 먹고 있습니다. 2품 이상의 관원이 허균을 공격한 계사(啓辭)를 보건대 이병의 죄는 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병이 일단 이홍로(李弘老)의 심복(心腹)이라는 죄를 짓고 있는 이상 기준격이나 허균과 똑같이 국문하기를 청했어야 하는데 이병은 놔두고 논하지 않았습니다.  정양윤(鄭良胤)은 원궤를 국문하려 하지 않았고 김호(金昈)는 권귀(權貴)의 풍지(風旨)를 떠받들어 앞장서서 시끄러운 단서를 야기시켰고 김윤겸(金允兼)·김탁(金琢)·유시영은 서로 잇달아 소장을 올려 사림(士林)에 화를 끼치면서 대사를 망치려고 하였는 데도 여태 죄를 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시언(李時彦)·김권(金權)·오윤겸(吳允謙)·이신의(李愼儀)는 수의(收議)할 때 기꺼이 저쪽 편을 들었고, 이정귀(李廷龜)·김상용(金尙容)·윤방(尹昉)은 임금을 등지고 역적을 편들며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는 데도 토죄(討罪)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승종(朴承宗)이 큰소리로 국청에서 말하기를 ‘원궤가 비암(琵巖)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거의 살아날 길이 있다.’고 하였는데 윤인(尹訒)은 이 말을 직접 듣고도 탄핵하지 않았습니다. 대관(臺官)이 이 모양이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그리고 그저 조알(朝謁)만 정지시킨다면 어떻게 간인(奸人)의 손발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대관이 말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시고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하게 하소서."
"대간은 임금의 귀와 눈 구실을 수행하는 자들인데, 논계할 즈음에 귀척(貴戚)의 위세에 겁을 먹고 있습니다. 2품 이상의 관원이 허균을 공격한 계사(啓辭)를 보건대 이병의 죄는 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병이 일단 이홍로(李弘老)의 심복(心腹)이라는 죄를 짓고 있는 이상 기준격이나 허균과 똑같이 국문하기를 청했어야 하는데 이병은 놔두고 논하지 않았습니다.
정양윤(鄭良胤)은 원궤를 국문하려 하지 않았고 김호(金昈)는 권귀(權貴)의 풍지(風旨)를 떠받들어 앞장서서 시끄러운 단서를 야기시켰고 김윤겸(金允兼)·김탁(金琢)·유시영은 서로 잇달아 소장을 올려 사림(士林)에 화를 끼치면서 대사를 망치려고 하였는 데도 여태 죄를 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시언(李時彦)·김권(金權)·오윤겸(吳允謙)·이신의(李愼儀)는 수의(收議)할 때 기꺼이 저쪽 편을 들었고, 이정귀(李廷龜)·김상용(金尙容)·윤방(尹昉)은 임금을 등지고 역적을 편들며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는 데도 토죄(討罪)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승종(朴承宗)이 큰소리로 국청에서 말하기를 ‘원궤가 비암(琵巖)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거의 살아날 길이 있다.’고 하였는데 윤인(尹訒)은 이 말을 직접 듣고도 탄핵하지 않았습니다. 대관(臺官)이 이 모양이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그리고 그저 조알(朝謁)만 정지시킨다면 어떻게 간인(奸人)의 손발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대관이 말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시고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하게 하소서."


 

 

 

관학이 잇달아 상소하기를,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바루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시고, 이어 윽박지르는 대관을 내려 중전(重典)을 적용케 하시고, 원궤 등을 엄히 국문하여 간교하게 될 조짐을 끊어 버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서궁(西宮)의 일에 대해서는 내 뜻을 이미 대신에게 말하였다." 하였다.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바루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시고, 이어 윽박지르는 대관을 내려 중전(重典)을 적용케 하시고, 원궤 등을 엄히 국문하여 간교하게 될 조짐을 끊어 버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서궁(西宮)의 일에 대해서는 내 뜻을 이미 대신에게 말하였다."
하였다.
병조 판서 유희분(柳希奮)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지금은 인신(人臣)이 병을 핑계할 때가 아니다. 경은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 나오도록 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지금은 인신(人臣)이 병을 핑계할 때가 아니다. 경은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 나오도록 하라."
하였다.


 

 

 

보은(報恩)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박일(朴㟳)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깨비 같은 원궤의 옥사가 일단 일어났는 데도 헌관(憲官) 중에 원궤를 국문하지 않으려 하는 자가 있고 추관(推官) 중에 비암(琵巖)의 이름을 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관(賢關)017)  의 다사(多士)들까지 모두 추악한 비난을 받은 만큼 극력 변론해야 마땅한데, 이런 악명을 직접 받고서도 다시 급급하게 조사하라고 청하지 않고 있으니 사풍(士風)이 땅을 쓸어버린 듯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옥사가 한 번 흐지부지되면 군부(君父)의 치욕을 어떻게 씻을 것이며 선류(善類)가 당하는 화를 어떻게 막을 것이며 사자(士子)의 부끄러움을 어떻게 설욕하겠습니까.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을 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시고, 원궤 등을 엄히 국문하여 그 흉악한 실상을 알아낸 뒤 충성스럽고 곧은 인사가 무함당한 것을 분명히 밝혀줌으로써 간악하게 엿보는 조짐이 단절되도록 하소서."


[註 017] 현관(賢關) : 관학(館學)을 말함.
"도깨비 같은 원궤의 옥사가 일단 일어났는 데도 헌관(憲官) 중에 원궤를 국문하지 않으려 하는 자가 있고 추관(推官) 중에 비암(琵巖)의 이름을 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관(賢關)017)  의 다사(多士)들까지 모두 추악한 비난을 받은 만큼 극력 변론해야 마땅한데, 이런 악명을 직접 받고서도 다시 급급하게 조사하라고 청하지 않고 있으니 사풍(士風)이 땅을 쓸어버린 듯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옥사가 한 번 흐지부지되면 군부(君父)의 치욕을 어떻게 씻을 것이며 선류(善類)가 당하는 화를 어떻게 막을 것이며 사자(士子)의 부끄러움을 어떻게 설욕하겠습니까.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을 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시고, 원궤 등을 엄히 국문하여 그 흉악한 실상을 알아낸 뒤 충성스럽고 곧은 인사가 무함당한 것을 분명히 밝혀줌으로써 간악하게 엿보는 조짐이 단절되도록 하소서."
전교하기를, "원이곤(元以坤)을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이곤이 일찍이 상소하여 과거(科擧)에서 농간을 부려 패거리를 부식(扶植)한 이이첨의 간악한 행동을 극력 진달하였다. 이에 흉악한 무리들이 그의 죄를 얽어 만든 뒤 계청하여 신국(訊鞫)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몇 차례에 걸쳐 형신(刑訊)을 받는 과정에서 장(杖)을 맞고 거의 죽을 뻔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배하라는 명이 내려 거제(巨濟)에 위리 안치하게 되었다. 이 옥사에 이극건(李克健)·김원(金愿) 등 몇 사람이 또한 사련인(辭連人)으로 구속되어 모두 유배되었는데, 사적(事跡)이 없어져 기록하지 못한다.】
"원이곤(元以坤)을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이곤이 일찍이 상소하여 과거(科擧)에서 농간을 부려 패거리를 부식(扶植)한 이이첨의 간악한 행동을 극력 진달하였다. 이에 흉악한 무리들이 그의 죄를 얽어 만든 뒤 계청하여 신국(訊鞫)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몇 차례에 걸쳐 형신(刑訊)을 받는 과정에서 장(杖)을 맞고 거의 죽을 뻔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배하라는 명이 내려 거제(巨濟)에 위리 안치하게 되었다. 이 옥사에 이극건(李克健)·김원(金愿) 등 몇 사람이 또한 사련인(辭連人)으로 구속되어 모두 유배되었는데, 사적(事跡)이 없어져 기록하지 못한다.】


 

1월 21일 신사

종실이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이미 백관에게 조알(朝謁)하지 말게 하였고 보면 공의(公議) 역시 이미 행해진 셈인데, 어찌하여 다시 차마 못할 말을 하면서 윽박지르는가.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재계(再啓)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三啓)하니, 답하기를,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백관에게 조알(朝謁)하지 말게 하였고 보면 공의(公議) 역시 이미 행해진 셈인데, 어찌하여 다시 차마 못할 말을 하면서 윽박지르는가.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재계(再啓)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三啓)하니, 답하기를,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대사간 윤인이 아뢰기를, "삼가 집의 임건과 장령 한영이 인피한 사연을 보건대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한 잘못은 신 역시 면하기 어려우니 구차하게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신이 지난번 국청에서 말하기를 ‘원궤가 만약 곧바로 비암이 누구인지 댄다면 그런 대로 살아날 길이 있을 것이다.’ 하였더니, 판의금 박승종(朴承宗)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비암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면 그가 혹 살지 모르지만 비암의 이름이 나올 경우에는 흉모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그를 국문하게 될 것인데 원궤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하면서 우스갯 소리로 말하기를 ‘내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였는데, 신의 생각에 ‘이 말은 대개 원궤에게 살아날 길이 없다는 뜻을 말한 것일 것이다.’고 여기고는 범연히 듣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건원(李乾元) 등이 직접 듣고서도 탄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을 배척하였으니, 신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이에 이르러 더욱 커졌습니다. 이쪽으로 보나 저쪽으로 보나 결코 재직하기가 어려우니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가 집의 임건과 장령 한영이 인피한 사연을 보건대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한 잘못은 신 역시 면하기 어려우니 구차하게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신이 지난번 국청에서 말하기를 ‘원궤가 만약 곧바로 비암이 누구인지 댄다면 그런 대로 살아날 길이 있을 것이다.’ 하였더니, 판의금 박승종(朴承宗)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비암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면 그가 혹 살지 모르지만 비암의 이름이 나올 경우에는 흉모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그를 국문하게 될 것인데 원궤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하면서 우스갯 소리로 말하기를 ‘내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였는데, 신의 생각에 ‘이 말은 대개 원궤에게 살아날 길이 없다는 뜻을 말한 것일 것이다.’고 여기고는 범연히 듣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건원(李乾元) 등이 직접 듣고서도 탄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을 배척하였으니, 신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이에 이르러 더욱 커졌습니다. 이쪽으로 보나 저쪽으로 보나 결코 재직하기가 어려우니 체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우의정 민몽룡(閔夢龍)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영상이 일찍이 경을 정승으로 삼으라고 청하였는데 필시 나를 속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디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조리하여 속히 나와 나를 보좌하라." 하였다.
"영상이 일찍이 경을 정승으로 삼으라고 청하였는데 필시 나를 속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디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조리하여 속히 나와 나를 보좌하라."
하였다.


 

 

 

관학 유생 이정 등이 잇달아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원궤 등을 국문하여 그 실정을 캐낸 다음 왕법(王法)으로 바룸으로써 신들의 굴욕스러운 정상을 분명하게 씻어주소서. 그리고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을 행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원궤 등을 국문하여 그 실정을 캐낸 다음 왕법(王法)으로 바룸으로써 신들의 굴욕스러운 정상을 분명하게 씻어주소서. 그리고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을 행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은혜와 의리를 참작하여 경들의 청에 억지로 부응했는데 내 속마음은 마치 돌아갈 곳이 없는 궁한 사람의 심정과 같다. 다시는 차마 따르지 못할 일을 가지고 이처럼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는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모쪼록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은혜와 의리를 참작하여 경들의 청에 억지로 부응했는데 내 속마음은 마치 돌아갈 곳이 없는 궁한 사람의 심정과 같다. 다시는 차마 따르지 못할 일을 가지고 이처럼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는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모쪼록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초계·재계·삼계하고,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고,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좌찬성 박승종(朴承宗)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초야(草野)의 말을 어찌 따질 수 있겠는가. 경은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고서 다시 충성을 다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초야(草野)의 말을 어찌 따질 수 있겠는가. 경은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고서 다시 충성을 다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라."
하였다.
1월 22일 임오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백관에게 조알(朝謁)하지 말라 하였으니 경들의 주장이 또한 이미 행해진 셈이다. 종척(宗戚)의 의리는 정신(廷臣)과는 본래 다르니 너무 심한 주장을 하지 말아 나의 마음을 편안케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는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모쪼록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미 백관에게 조알(朝謁)하지 말라 하였으니 경들의 주장이 또한 이미 행해진 셈이다. 종척(宗戚)의 의리는 정신(廷臣)과는 본래 다르니 너무 심한 주장을 하지 말아 나의 마음을 편안케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는 뜻을 이미 유시하였다. 모쪼록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진사 윤유겸(尹惟謙)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예조 판서 이이첨 및 삼재(三宰)018) 허균 그리고 좌윤 김개(金闓)가 대론(大論)을 주장하였는데 영의정도 일찍이 이런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맨 처음에 위태로운 말을 꺼냈었는데, 정관(政官)이 성의가 없어 나랏일을 방관만 한 채 도둑 정사(政事)를 하고 있다는 말이 중외(中外)에 이미 퍼졌습니다. 이에 신이 김윤겸(金允兼)과 함께 상의하여 소장을 진달하면서 6적(賊)의 죄를 청하였는데, 황덕부(黃德符)가 이를 갈고 입을 실룩거리면서 더욱 기승을 부려 즉시 삼척(三陟)의 역자(驛子)인 김상건(金尙鍵)을 사주해 윤겸을 무함하게 하는 한편, 관유(館儒) 1, 2인과 내통하며 신을 재벌(齋罰)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말하기를 ‘흉소(兇疏)를 함께 보고서도 사류(士類)를 구하려고는 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방자하게 행하면서 위복(威福)의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신을 죽을 곳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임금의 원수를 토벌하기만 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속히 서궁(西宮)을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거행하신 다음 사류를 반목시킨 황덕부의 죄를 다스리소서." 하였다.【 【황덕부가 맨 처음 폐론(廢論)을 주장하는 소를 올리고 이어 부당한 방법으로 과거에 합격한 뒤 전조(銓曹)에 들어왔는데, 일단 뜻을 얻고 나서는 또 허균의 무리가 매우 많아 장차 자기의 출세에 장애 요인이 될 것을 저어하여 말하기를 ‘이 무리들의 공이 크니 일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논상하고 거두어 써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렇게 해서 김개와 원종(元悰) 등의 청망(淸望)을 모두 막았는가 하면 소를 올린 유생들이 행여 관직 얻기를 소망해도 주의(注擬)해 주지 않았으므로 유겸 등의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


[註 018] 삼재(三宰) : 좌참찬.
"예조 판서 이이첨 및 삼재(三宰)018) 허균 그리고 좌윤 김개(金闓)가 대론(大論)을 주장하였는데 영의정도 일찍이 이런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맨 처음에 위태로운 말을 꺼냈었는데, 정관(政官)이 성의가 없어 나랏일을 방관만 한 채 도둑 정사(政事)를 하고 있다는 말이 중외(中外)에 이미 퍼졌습니다. 이에 신이 김윤겸(金允兼)과 함께 상의하여 소장을 진달하면서 6적(賊)의 죄를 청하였는데, 황덕부(黃德符)가 이를 갈고 입을 실룩거리면서 더욱 기승을 부려 즉시 삼척(三陟)의 역자(驛子)인 김상건(金尙鍵)을 사주해 윤겸을 무함하게 하는 한편, 관유(館儒) 1, 2인과 내통하며 신을 재벌(齋罰)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말하기를 ‘흉소(兇疏)를 함께 보고서도 사류(士類)를 구하려고는 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 방자하게 행하면서 위복(威福)의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신을 죽을 곳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임금의 원수를 토벌하기만 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속히 서궁(西宮)을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거행하신 다음 사류를 반목시킨 황덕부의 죄를 다스리소서."
하였다.【 【황덕부가 맨 처음 폐론(廢論)을 주장하는 소를 올리고 이어 부당한 방법으로 과거에 합격한 뒤 전조(銓曹)에 들어왔는데, 일단 뜻을 얻고 나서는 또 허균의 무리가 매우 많아 장차 자기의 출세에 장애 요인이 될 것을 저어하여 말하기를 ‘이 무리들의 공이 크니 일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논상하고 거두어 써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렇게 해서 김개와 원종(元悰) 등의 청망(淸望)을 모두 막았는가 하면 소를 올린 유생들이 행여 관직 얻기를 소망해도 주의(注擬)해 주지 않았으므로 유겸 등의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


[註 018] 삼재(三宰) : 좌참찬.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부덕한 탓으로 여러 차례 큰 변고를 만나게 되었는데, 하늘에 올라가고 싶어도 길이 없고 땅에 들어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나의 망극한 심정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경들은 부디 내 뜻을 살펴 속히 이 논을 정지토록 하라." 하였다.
"내가 부덕한 탓으로 여러 차례 큰 변고를 만나게 되었는데, 하늘에 올라가고 싶어도 길이 없고 땅에 들어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나의 망극한 심정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경들은 부디 내 뜻을 살펴 속히 이 논을 정지토록 하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듣건대 사람들이 혹 말하기를 ‘사람을 사랑할 때는 덕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경들은 어찌하여 덕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내가 차마 못할 일을 억지로 청하고 다그치면서 엄동설한에 매일 궁중에 와서 모이고 있으니, 내가 비록 깊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마음을 다잡겠는가. 속히 이 논을 정지하여 나의 안타깝고 위축되는 심정을 위로하도록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 어찌 과인이 차마 들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나의 안타깝고 절박한 마음을 살펴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듣건대 사람들이 혹 말하기를 ‘사람을 사랑할 때는 덕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경들은 어찌하여 덕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내가 차마 못할 일을 억지로 청하고 다그치면서 엄동설한에 매일 궁중에 와서 모이고 있으니, 내가 비록 깊이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마음을 다잡겠는가. 속히 이 논을 정지하여 나의 안타깝고 위축되는 심정을 위로하도록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 어찌 과인이 차마 들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나의 안타깝고 절박한 마음을 살펴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 유생 채유제(蔡有濟) 등이 상소하여, 대개 대국을 속히 마무리짓고 폐전(廢典)을 빨리 행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할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제생(諸生)들의 소가 여러 차례나 올라와 그 지극한 정성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 어찌 꼭 번거롭게 소란을 피워야 하는가. 이제 그만 돌아가도록 하라." 하였다.
"제생(諸生)들의 소가 여러 차례나 올라와 그 지극한 정성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 어찌 꼭 번거롭게 소란을 피워야 하는가. 이제 그만 돌아가도록 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고,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대각(臺閣)의 의논은 초야(草野)의 말과는 다르니 어찌 법도가 없을 수 있겠는가. 삼사의 뜻은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꼭 그렇게까지 서로 버틸 것이 없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아 내 마음을 편케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대각(臺閣)의 의논은 초야(草野)의 말과는 다르니 어찌 법도가 없을 수 있겠는가. 삼사의 뜻은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꼭 그렇게까지 서로 버틸 것이 없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아 내 마음을 편케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옥당이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우상에게 속히 출사(出仕)하여 직무를 살피라고 사관(史官)을 보내 유시하라."
"우상에게 속히 출사(出仕)하여 직무를 살피라고 사관(史官)을 보내 유시하라."

 

사관이 회계(回啓)하기를, "신이 명을 받들고 우의정 신 민몽룡(閔夢龍)에게 가서 전유(傳諭)했더니 초본(草本) 하나를 신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병세가 만약 행공(行公)할 만하다면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 감히 병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병세가 마침 이러하므로 신도 애가 타며 안타깝기만 한데 삼가 하유를 받들고 보니 그저 황공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릴 뿐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신이 명을 받들고 우의정 신 민몽룡(閔夢龍)에게 가서 전유(傳諭)했더니 초본(草本) 하나를 신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병세가 만약 행공(行公)할 만하다면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 감히 병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병세가 마침 이러하므로 신도 애가 타며 안타깝기만 한데 삼가 하유를 받들고 보니 그저 황공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릴 뿐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1월 23일 계미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부덕한 탓으로 누차 큰 변고를 만났는데 하늘에 올라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고 땅에 들어가고 싶어도 길이 없다. 나의 망극(罔極)한 심정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종척(宗戚) 제경(諸卿)은 부디 나의 마음을 살펴 속히 이 논을 정지토록 하라." 하였다.
"내가 부덕한 탓으로 누차 큰 변고를 만났는데 하늘에 올라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고 땅에 들어가고 싶어도 길이 없다. 나의 망극(罔極)한 심정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종척(宗戚) 제경(諸卿)은 부디 나의 마음을 살펴 속히 이 논을 정지토록 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고,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고, 옥당이 두 번째 상차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종실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종척 제경들은 어찌하여 나의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을 살피지 못하는가. 정신(廷臣)이야 비록 의(義)에 입각해서 그런 주장을 한다 하더라도 경들은 정신과는 본래 다른데 어떻게 부화뇌동하며 구차하게 맞추려 할 수 있는가. 법만 고수하는 말을 하지 말아 나의 근심이 펴지게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종척 제경들은 어찌하여 나의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을 살피지 못하는가. 정신(廷臣)이야 비록 의(義)에 입각해서 그런 주장을 한다 하더라도 경들은 정신과는 본래 다른데 어떻게 부화뇌동하며 구차하게 맞추려 할 수 있는가. 법만 고수하는 말을 하지 말아 나의 근심이 펴지게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이미 차마 듣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경들이 어떻게 차마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가. 속히 정지하는 것만 못하니 다시는 이 일을 말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정리상(情理上) 차마 못할 일이며 고금(古今)에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나만 유독 어찌하여 변을 만나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너무 다그치지 말고 내 마음이 위로되도록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이미 차마 듣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경들이 어떻게 차마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가. 속히 정지하는 것만 못하니 다시는 이 일을 말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정리상(情理上) 차마 못할 일이며 고금(古今)에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나만 유독 어찌하여 변을 만나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너무 다그치지 말고 내 마음이 위로되도록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館學)이 잇달아 상소하니, 답하기를, "너희들의 말을 이미 충분히 들었고 너희들의 정성을 이미 모두 살폈다. 조정 대신들이 바야흐로 진정(陳情)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너희들의 말을 이미 충분히 들었고 너희들의 정성을 이미 모두 살폈다. 조정 대신들이 바야흐로 진정(陳情)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1월 24일 갑신

유학(幼學) 김종(金錝)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국이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도깨비 같은 행동이 갖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조 판서 이이첨과 좌참찬 허균은 한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치면서 전후로 역적을 토죄하며 온 힘을 다 기울였는데, 흉찰(兇札)에 그 이름을 끄집어냄으로써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인준·정기·김상하·민심 등 4인은 앞장서서 제생(諸生)들을 이끌고 정론(正論)을 주장했는데, 그들에 대해서도 역시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지목하였습니다.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거행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다음으로 흉서를 만들어 충성되고 선량한 사람들을 무함한 죄를 다스려 화의 조짐을 끊어 버리소서."
"대국이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도깨비 같은 행동이 갖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조 판서 이이첨과 좌참찬 허균은 한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치면서 전후로 역적을 토죄하며 온 힘을 다 기울였는데, 흉찰(兇札)에 그 이름을 끄집어냄으로써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인준·정기·김상하·민심 등 4인은 앞장서서 제생(諸生)들을 이끌고 정론(正論)을 주장했는데, 그들에 대해서도 역시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지목하였습니다. 속히 서궁을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거행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고, 다음으로 흉서를 만들어 충성되고 선량한 사람들을 무함한 죄를 다스려 화의 조짐을 끊어 버리소서."
종실이 초계(初啓)하니, 답하기를, "내가 이미 차마 듣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경들이 어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가. 속히 정지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정리상 차마 못할 일이며 고금(古今)에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너무 다그치지 말고 내 마음을 위로토록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이미 차마 듣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경들이 어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가. 속히 정지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정리상 차마 못할 일이며 고금(古今)에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너무 다그치지 말고 내 마음을 위로토록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 안질(眼疾)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감기마저 걸렸으니, 영칙(迎敕)하는 대례(大禮)는 2월 4일쯤 할 것이라고 일관(日官)에게 이르라."
"내 안질(眼疾)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감기마저 걸렸으니, 영칙(迎敕)하는 대례(大禮)는 2월 4일쯤 할 것이라고 일관(日官)에게 이르라."
전교하였다. "우상이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추국하는 일이 매우 급하고 나랏일이 더욱 위태해지고 있으니, 속히 출사(出仕)하라고 다시 사관(史官)을 보내어 유시하라."
"우상이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추국하는 일이 매우 급하고 나랏일이 더욱 위태해지고 있으니, 속히 출사(出仕)하라고 다시 사관(史官)을 보내어 유시하라."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10여 년 동안 누차에 걸쳐 화란(禍亂)을 겪어 왔는데 이는 실로 인간 세상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초로서 두렵고 떨리기만 할 뿐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이 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오늘날 또 이런 주장을 듣게 되었으니 차라리 땅을 파고 들어가 영원히 듣지 않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부디 나의 심정을 살펴 다시는 번거롭게 진달하지 말라." 하였다.
"10여 년 동안 누차에 걸쳐 화란(禍亂)을 겪어 왔는데 이는 실로 인간 세상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초로서 두렵고 떨리기만 할 뿐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이 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오늘날 또 이런 주장을 듣게 되었으니 차라리 땅을 파고 들어가 영원히 듣지 않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부디 나의 심정을 살펴 다시는 번거롭게 진달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사리를 헤아려 보건대 단연코 따를 수 없다.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리를 헤아려 보건대 단연코 따를 수 없다.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館學)이 잇달아 상소하니, 답하기를, "너희들은 이제 그만 정론(停論)해도 될 텐데 날마다 번거롭게 하기를 일삼아 나를 고뇌하게 하니, 차라리 듣는 일이 없도록 잠들어 영원히 세상과 이별이라도 하고 싶다. 부디 다시는 진달하지 말고 돌아가 독서나 하도록 하라." 하였다.
"너희들은 이제 그만 정론(停論)해도 될 텐데 날마다 번거롭게 하기를 일삼아 나를 고뇌하게 하니, 차라리 듣는 일이 없도록 잠들어 영원히 세상과 이별이라도 하고 싶다. 부디 다시는 진달하지 말고 돌아가 독서나 하도록 하라."
하였다.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유욱(柳稶)과 이봉길(李鳳吉)을 국문하였다. 유욱은 바로 정협(鄭浹)의 매부인데 정협은 계축년 옥사 때 역적으로 복주(伏誅)되었다. 왕이 그 당시 역옥(逆獄)을 더욱 준엄하게 다스리면서 법을 넘어 정협의 누이를 온성(穩城)에 유배하였으므로 유욱이 처를 따라 그곳에 갔다. 거기에서 배인(配人) 이봉길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봉길은 곧 대군(大君) 궁방(宮房)의 장무(掌務)였다. 그가 유욱에 대해서는 서속(庶屬)이 되는 데도 면전에서 모욕을 가하고 매도하자 유욱이 술에 취한 김에 그를 묶어놓고 거의 죽을 정도로 매를 때렸다. 이에 봉길이 그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마침내 상변(上變)하여 고하기를 ‘유욱은 정협의 매부요 유영경(柳永慶)의 조카로서 나라를 원수로 알고 상을 원망하며 차마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할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대궐 뜰에서 그와 대질 신문을 받기를 청한다.’ 하니, 왕이 유욱과 봉길을 모두 국문하라고 명하였다. 유욱이 공초(供招)하며 실상을 진달하고, 사련인(辭連人)으로 체포된 20여 인도 모두 유욱의 말이 올바르다고 증거를 대니 봉길의 말이 비로소 막혔다. 유욱이 이에 죽음을 면하고 사련인들도 모두 풀려났는데, 봉길에게 역시 반좌율(反坐律)을 적용하지 않았다.
1월 25일 을유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사리를 헤아려 보건대 단연코 따를 수 없다.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경들의 정성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지 말고 나의 마음을 편케 하라." 하였다.
"사리를 헤아려 보건대 단연코 따를 수 없다. 부디 나의 뜻을 몸받아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경들의 정성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 이제 그만 번거롭게 하지 말고 나의 마음을 편케 하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다. 다시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지난번 영상의 의논을 듣건대 또렷하게 실마리를 찾아내어 말은 간략하게 하면서도 의리는 엄하였으니 확실하여 꺾을 수 없었다. 옛 사람이 한 마디 말로 옥사(獄事)를 결판내었던 것이 어찌 이보다 더했겠는가. 경들이 이를 귀감으로 삼을 경우에는 또한 말할 줄 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건대 과인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은(私恩)이니, 사은을 덮어버리라는 경들의 주장은 정말 차마 들을 수가 없다. 원컨대 내 심정을 살펴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경들의 청에 못이겨 이미 신하들에게 조알(朝謁)을 하지 말라 했으니, 대의(大義)가 이미 밝혀지고 공의(公議)도 행해진 셈인데, 어찌하여 모질게도 다시 차마 못할 말을 하면서 윽박지르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지난번 영상의 의논을 듣건대 또렷하게 실마리를 찾아내어 말은 간략하게 하면서도 의리는 엄하였으니 확실하여 꺾을 수 없었다. 옛 사람이 한 마디 말로 옥사(獄事)를 결판내었던 것이 어찌 이보다 더했겠는가. 경들이 이를 귀감으로 삼을 경우에는 또한 말할 줄 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건대 과인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은(私恩)이니, 사은을 덮어버리라는 경들의 주장은 정말 차마 들을 수가 없다. 원컨대 내 심정을 살펴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경들의 청에 못이겨 이미 신하들에게 조알(朝謁)을 하지 말라 했으니, 대의(大義)가 이미 밝혀지고 공의(公議)도 행해진 셈인데, 어찌하여 모질게도 다시 차마 못할 말을 하면서 윽박지르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계로 초계하고,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오늘날 삼사(三司)에서 하는 주장이 과연 초야(草野)에서 내놓는 말과 같아야 한단 말인가.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날에 구차하게 부화뇌동하는 주장을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 삼사가 논한 것은 바로 폐출하기를 청한 것이었다. 신하로서 임금의 어미를 폐하고 자식으로서 모후(母后)를 축출하다니, 이는 실로 개벽(開闢) 이래로 있지 않았던 큰 변고이다. 그런데 왕은 그만 이렇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기필코 정신(廷臣)으로 하여금 정인홍(鄭仁弘)이 죽이라고 청한 의논을 곧바로 거론하게 할 목적으로 하교하여 격동시키기까지 하였다.】
"오늘날 삼사(三司)에서 하는 주장이 과연 초야(草野)에서 내놓는 말과 같아야 한단 말인가.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날에 구차하게 부화뇌동하는 주장을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 삼사가 논한 것은 바로 폐출하기를 청한 것이었다. 신하로서 임금의 어미를 폐하고 자식으로서 모후(母后)를 축출하다니, 이는 실로 개벽(開闢) 이래로 있지 않았던 큰 변고이다. 그런데 왕은 그만 이렇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기필코 정신(廷臣)으로 하여금 정인홍(鄭仁弘)이 죽이라고 청한 의논을 곧바로 거론하게 할 목적으로 하교하여 격동시키기까지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관학이 잇달아 상소하니, 답하기를, "《논어(論語)》에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정사를 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너희들은 그저 소회(所懷)만 진달하면 된다. 잇달아 소장을 올려 다그치고 날마다 번거롭게 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은 사체(事體)에 어긋나는 점이 있으니,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논어(論語)》에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정사를 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너희들은 그저 소회(所懷)만 진달하면 된다. 잇달아 소장을 올려 다그치고 날마다 번거롭게 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은 사체(事體)에 어긋나는 점이 있으니, 속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전흥군(全興君) 이시언(李時言)은 일찍이 무신년간에 나라를 위해 공을 많이 세웠는데, 지금 듣건대 병세가 위중하다고 하니 가자(加資)하여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도록 하라. 양덕 현감(陽德縣監) 심눌(沈訥)은 전에 그의 상격(賞格)에 대하여 승전(承傳)을 받들도록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가자하는 것으로 하비(下批)를 고쳐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시언은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을 죽일 때 공을 세운 자이다. 심눌은 서출인 음관(蔭官)으로 특별히 양덕에 제수되었으므로, 양사가 모두 서경(署經)을 넘겨 가면서 법에 입각하여 체직(遞職)시키기를 청했는 데도 억지로 부임시켰었다. 그 뒤에 양사가 모두 이 문제를 꺼내어 한 달이 넘게 논집(論執)했는 데도 끝내 따르지 않은 채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하며 한 해를 넘겼는데, 이번에 또 가자하여 보내라고 명함으로써 서경을 넘기고서 청하는 길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이는 대체로 당상관은 서경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흥군(全興君) 이시언(李時言)은 일찍이 무신년간에 나라를 위해 공을 많이 세웠는데, 지금 듣건대 병세가 위중하다고 하니 가자(加資)하여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도록 하라. 양덕 현감(陽德縣監) 심눌(沈訥)은 전에 그의 상격(賞格)에 대하여 승전(承傳)을 받들도록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가자하는 것으로 하비(下批)를 고쳐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시언은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을 죽일 때 공을 세운 자이다. 심눌은 서출인 음관(蔭官)으로 특별히 양덕에 제수되었으므로, 양사가 모두 서경(署經)을 넘겨 가면서 법에 입각하여 체직(遞職)시키기를 청했는 데도 억지로 부임시켰었다. 그 뒤에 양사가 모두 이 문제를 꺼내어 한 달이 넘게 논집(論執)했는 데도 끝내 따르지 않은 채 서서히 결정짓겠다고 하며 한 해를 넘겼는데, 이번에 또 가자하여 보내라고 명함으로써 서경을 넘기고서 청하는 길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이는 대체로 당상관은 서경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황덕부(黃德符)를 이조 정랑으로, 이시언(李時言)을 전흥 부원군(全興府院君)으로, 이병(李覮)을 우참찬으로, 한희(韓暿)를 부교리로, 이위경(李偉卿)을 동부승지로, 신광업(辛光業)을 교리로, 심지청(沈之淸)을 겸설서로, 이중계(李重繼)를 문학으로, 조유선(趙裕善)을 수찬으로, 심눌(沈訥)을 통정 대부 양덕 현감으로 삼았다.
1월 26일 병술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따르기 어렵다는 뜻을 이미 모두 유시했다. 다시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어째서 억지를 부려 번거롭게 하는가." 하였다.
"따르기 어렵다는 뜻을 이미 모두 유시했다. 다시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다. 어째서 억지를 부려 번거롭게 하는가."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가 차마 듣지 못할 일이다. 따를 수 없으니 이런 겨울철에 다시는 번거롭게 소란을 피우지 말라." 하였다.
"내가 차마 듣지 못할 일이다. 따를 수 없으니 이런 겨울철에 다시는 번거롭게 소란을 피우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초계하고, 옥당이 첫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백관이 일단 조알(朝謁)하지 않게 되었으니 삼사의 의논이 이미 행해진 셈이다. 너무 심한 말을 하여 나를 고뇌에 빠뜨리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백관이 일단 조알(朝謁)하지 않게 되었으니 삼사의 의논이 이미 행해진 셈이다. 너무 심한 말을 하여 나를 고뇌에 빠뜨리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백관과 삼사가 재계하니, 답하기를, "영욕(榮辱)과 성패(成敗)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마는, 나처럼 여러 차례에 걸쳐 화변(禍變)을 당하고 인간 세상에서 극도로 고초를 받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 이는 실로 내가 죄를 지은 탓이니 다시 누구를 원망하고 허물하겠는가. 다시 번거롭게 아뢰어 천하 후세에 죄를 짓게 하지 말라." 하였다.
"영욕(榮辱)과 성패(成敗)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마는, 나처럼 여러 차례에 걸쳐 화변(禍變)을 당하고 인간 세상에서 극도로 고초를 받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 이는 실로 내가 죄를 지은 탓이니 다시 누구를 원망하고 허물하겠는가. 다시 번거롭게 아뢰어 천하 후세에 죄를 짓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데에는 선후(先後)나 경중(輕重)의 차이를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사가 일찍이 ‘기자헌(奇自獻)·기준격(奇俊格)·허균·이병 등을 대질 신문해야 한다.’는 뜻을 피혐하는 가운데 아울러 언급했었는데, 이는 대체로 이홍로(李弘老)와 글을 통했다든지 이홍로의 심복(心腹)이라고 하는 주장이 모두 대질 신문한 뒤에야 그 진위(眞僞)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정목(政目)을 보건대 이병을 참찬에 의망(擬望)하여 낙점(落點)을 받기까지 하였으니 마치 아무 죄도 없는 자처럼 되었습니다. 전관(銓官)이 어찌 감히 이처럼 거리낌없이 조정을 무시하고 공의(公議)를 돌아보지 않은 채 제 뜻대로 방자하게 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조 당상과 색낭청(色郞廳) 모두에게 파직을 명하시어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엄하게 하소서." 하고, 사헌부도 동일한 계사(啓辭)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병을 참찬에 의망했다고 하더라도 무슨 해가 있겠는가. 전관을 어찌 파직시켜야 하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역적을 토벌하는 데에는 선후(先後)나 경중(輕重)의 차이를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사가 일찍이 ‘기자헌(奇自獻)·기준격(奇俊格)·허균·이병 등을 대질 신문해야 한다.’는 뜻을 피혐하는 가운데 아울러 언급했었는데, 이는 대체로 이홍로(李弘老)와 글을 통했다든지 이홍로의 심복(心腹)이라고 하는 주장이 모두 대질 신문한 뒤에야 그 진위(眞僞)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정목(政目)을 보건대 이병을 참찬에 의망(擬望)하여 낙점(落點)을 받기까지 하였으니 마치 아무 죄도 없는 자처럼 되었습니다. 전관(銓官)이 어찌 감히 이처럼 거리낌없이 조정을 무시하고 공의(公議)를 돌아보지 않은 채 제 뜻대로 방자하게 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조 당상과 색낭청(色郞廳) 모두에게 파직을 명하시어 역적을 토벌하는 전형(典刑)을 엄하게 하소서."
하고, 사헌부도 동일한 계사(啓辭)를 올리니, 답하기를,
"이병을 참찬에 의망했다고 하더라도 무슨 해가 있겠는가. 전관을 어찌 파직시켜야 하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만한 일이라면 이런 동절기를 당하여 경들로 하여금 날마다 세 번씩이나 진달하면서 이렇게까지 서로 버티게 하겠는가. 보통 사람들이 서로 알 때에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데 하물며 경들이 어째서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단 말인가.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만한 일이라면 이런 동절기를 당하여 경들로 하여금 날마다 세 번씩이나 진달하면서 이렇게까지 서로 버티게 하겠는가. 보통 사람들이 서로 알 때에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데 하물며 경들이 어째서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단 말인가.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이 잇달아 상소하니, 답하기를, "너희들이 날마다 소장을 진달하고 있는데 너무 번거롭게 하며 소란을 피우는 일이 아닌가. 일은 적당하게 해야 좋은 것이니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라." 하였다.
"너희들이 날마다 소장을 진달하고 있는데 너무 번거롭게 하며 소란을 피우는 일이 아닌가. 일은 적당하게 해야 좋은 것이니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삼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1월 27일 정해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경들이 나를 어떤 모양의 인간으로 만들려고 이런 일을 가지고 날마다 세 번씩 번거롭게 하는가. 처지를 바꿔보면 모두 마찬가지라고 옛 사람도 말하였다. 경들이 가령 직접 이런 변고를 당했다면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 부디 나의 심정을 살펴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경들이 나를 어떤 모양의 인간으로 만들려고 이런 일을 가지고 날마다 세 번씩 번거롭게 하는가. 처지를 바꿔보면 모두 마찬가지라고 옛 사람도 말하였다. 경들이 가령 직접 이런 변고를 당했다면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 부디 나의 심정을 살펴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지금이 정말 얼마나 중요한 때인가. 그런데도 경들이 직무는 폐기한 채 백관을 이끌고 와서 무리한 일을 굳이 청한단 말인가. 내가 놀랍고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다시는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지금이 정말 얼마나 중요한 때인가. 그런데도 경들이 직무는 폐기한 채 백관을 이끌고 와서 무리한 일을 굳이 청한단 말인가. 내가 놀랍고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다시는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삼사가 초계하니, 답하기를, "일단 신하들에게 조알하지 말라고 했으니 삼사의 의논이 이미 행해진 셈이다. 번거롭게 논집(論執)하지 말라." 하였다.
"일단 신하들에게 조알하지 말라고 했으니 삼사의 의논이 이미 행해진 셈이다. 번거롭게 논집(論執)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삼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는 일을 어찌하여 다시 번거롭게 하는가.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는 일을 어찌하여 다시 번거롭게 하는가.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삼사가 재계하니, 답하기를, "따르기 어렵다는 뜻을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굳이 쟁집(爭執)하지 말라." 하였다.
"따르기 어렵다는 뜻을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굳이 쟁집(爭執)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삼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연산(連山)의 유학(幼學) 조엄(趙渰)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서궁(西宮)을 폐출하여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라고 청한 것이었다.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만한 일이라면 이런 겨울철을 당하여 경들로 하여금 날마다 세 번씩 진달하면서 이렇게까지 버티게 하겠는가. 보통 사람들이 서로 알 때에도 마음을 아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는데, 더구나 경들이 어찌 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만한 일이라면 이런 겨울철을 당하여 경들로 하여금 날마다 세 번씩 진달하면서 이렇게까지 버티게 하겠는가. 보통 사람들이 서로 알 때에도 마음을 아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는데, 더구나 경들이 어찌 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속히 정지하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차마 듣지 못할 일을 말하다니 따를 수 없다. 이런 겨울철을 당하여 다시 번거롭게 소란 피우지 말라." 하였다.
"차마 듣지 못할 일을 말하다니 따를 수 없다. 이런 겨울철을 당하여 다시 번거롭게 소란 피우지 말라."
하였다.

 

삼계하니, 답하기를, "영욕(榮辱)과 성패(成敗)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마는 나처럼 누차 화변(禍變)을 당하면서 인간 세상의 고초를 극도로 받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 이는 실로 내가 지은 죄 때문이니 다시 누구를 원망하고 허물하겠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아뢰어 천하 후세에 죄를 얻지 않게끔 하라." 하였다.
"영욕(榮辱)과 성패(成敗)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마는 나처럼 누차 화변(禍變)을 당하면서 인간 세상의 고초를 극도로 받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 이는 실로 내가 지은 죄 때문이니 다시 누구를 원망하고 허물하겠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아뢰어 천하 후세에 죄를 얻지 않게끔 하라."
하였다.

 

관학이 잇달아 상소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유생이 굳이 청할 일이 못된다. 정지하고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유생이 굳이 청할 일이 못된다. 정지하고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1월 28일 무자

종실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는 일을 어찌하여 다시 번거롭게 하는가."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모쪼록 억지를 부려 쟁집(爭執)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는 일을 어찌하여 다시 번거롭게 하는가."
하였다. 재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모쪼록 억지를 부려 쟁집(爭執)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이 잇달아 상소하니, 답하기를, "내가 차마 듣지 못하겠다. 너희들은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차마 듣지 못하겠다. 너희들은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여 하늘에 어여삐 여김을 받지 못하여 이런 큰 변고를 만났으므로 밤낮으로 목놓아 울었다. 내 몸이 상하는 것이야 걱정할 것이 못되지만, 유릉(裕陵)에 흉악한 짓을 자행하여 선후(先后)를 저주한 이 일이야말로 신자(臣子)로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극한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산처럼 분노하고 마음속으로 일제히 통분해 하자 경들이 대궐 뜰을 가득 메우고 의논하면서 날마다 세 번씩 다그쳤으므로 형세상 끝내 저지하기는 어려웠기에 우선 백관의 조알(朝謁)을 정지시킴으로써 중외(中外)의 인심에 답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부득이해서 나온 일이었지 어찌 그렇게 한 것이 과인의 본심이었겠는가. 걱정되고 두려우며 안타깝고 위축되는 심정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경들이 나의 뜻을 살피지 못하여 백관들을 이끌고 얼어붙은 대궐 뜰에 모두 모여 직무도 폐기한 채 따를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청하고 있다. 돌아보건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변고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들이 일단 종묘 사직과 관계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상 내가 줄곧 거절할 수만은 없는 처지이다. 지금 이후로는 단지 서궁이라고만 칭하고 대비(大妃)의 호칭은 없애도록 하라. 그리고 다시는 폐(廢)라는 글자를 거론하지 말아 사은(私恩)과 의리 모두가 온전하게 되도록 하라. 공봉(供奉)을 감손(減損)하는 절목(節目)에 대해서는 일일이 자세하게 의논하여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내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여 하늘에 어여삐 여김을 받지 못하여 이런 큰 변고를 만났으므로 밤낮으로 목놓아 울었다. 내 몸이 상하는 것이야 걱정할 것이 못되지만, 유릉(裕陵)에 흉악한 짓을 자행하여 선후(先后)를 저주한 이 일이야말로 신자(臣子)로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극한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산처럼 분노하고 마음속으로 일제히 통분해 하자 경들이 대궐 뜰을 가득 메우고 의논하면서 날마다 세 번씩 다그쳤으므로 형세상 끝내 저지하기는 어려웠기에 우선 백관의 조알(朝謁)을 정지시킴으로써 중외(中外)의 인심에 답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부득이해서 나온 일이었지 어찌 그렇게 한 것이 과인의 본심이었겠는가. 걱정되고 두려우며 안타깝고 위축되는 심정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경들이 나의 뜻을 살피지 못하여 백관들을 이끌고 얼어붙은 대궐 뜰에 모두 모여 직무도 폐기한 채 따를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청하고 있다. 돌아보건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이 변고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들이 일단 종묘 사직과 관계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상 내가 줄곧 거절할 수만은 없는 처지이다. 지금 이후로는 단지 서궁이라고만 칭하고 대비(大妃)의 호칭은 없애도록 하라. 그리고 다시는 폐(廢)라는 글자를 거론하지 말아 사은(私恩)과 의리 모두가 온전하게 되도록 하라. 공봉(供奉)을 감손(減損)하는 절목(節目)에 대해서는 일일이 자세하게 의논하여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합사(合司)하여 초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집의 임건(林健) 이하와 사간 남이준(南以俊) 이하가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백관에게 내리신 비답을 보건대 ‘단지 서궁(西宮)이라고만 칭하고 대비(大妃)의 호칭은 제거하도록 하라. 그리고 다시는 폐(廢) 자를 거론하지 말도록 하라.’고 분부하였는데, 신들이 쟁집(爭執)한 것은 폐출(廢黜)이었기 때문에 연계(連啓)를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계사(啓辭)의 내용을 이전과는 다르게 작성해야 하는 만큼 필수적으로 장관(長官)과 함께 의논해야만 했는데, 대사헌 유간과 대사간 윤인이 국청이 파하자 그대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막대한 중론(重論)을 장관도 없이 독자적으로 연계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대론(大論)을 지체시키고 말았으니 신들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토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삼가 백관에게 내리신 비답을 보건대 ‘단지 서궁(西宮)이라고만 칭하고 대비(大妃)의 호칭은 제거하도록 하라. 그리고 다시는 폐(廢) 자를 거론하지 말도록 하라.’고 분부하였는데, 신들이 쟁집(爭執)한 것은 폐출(廢黜)이었기 때문에 연계(連啓)를 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계사(啓辭)의 내용을 이전과는 다르게 작성해야 하는 만큼 필수적으로 장관(長官)과 함께 의논해야만 했는데, 대사헌 유간과 대사간 윤인이 국청이 파하자 그대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막대한 중론(重論)을 장관도 없이 독자적으로 연계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대론(大論)을 지체시키고 말았으니 신들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토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백관이 재계하니, 답하기를, "경들이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나를 몰아세웠는데 내가 감히 사은 때문에 끝내 경들의 뜻을 덮어버릴 수는 없어 명호(名號)와 존봉(尊奉) 등의 예(禮)를 일단 감손토록 하였으니 이 또한 공의(公議)를 중시하고 사직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근심과 안타까움이야 어찌 끝이 있겠는가. 다시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이것이 나의 소망이다." 하였다.
"경들이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나를 몰아세웠는데 내가 감히 사은 때문에 끝내 경들의 뜻을 덮어버릴 수는 없어 명호(名號)와 존봉(尊奉) 등의 예(禮)를 일단 감손토록 하였으니 이 또한 공의(公議)를 중시하고 사직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근심과 안타까움이야 어찌 끝이 있겠는가. 다시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이것이 나의 소망이다."
하였다.

 

1월 29일 기축

대사헌 유간, 대사간 윤인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합사하여 초계한 뒤에 대궐에서 나가 국청에 참석했다가 저녘에 비로소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동료가 대청(臺廳)에 있으면서 하리(下吏)를 보내어 말하기를 ‘상의할 일이 있으니 즉시 들어오라.’ 하였는데, 신이 하리에게 말하기를 ‘궐문이 이미 닫혔으니 가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꼭 서로 의논하여 정하고 싶다면 문틈으로 간통(簡通)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동료가 인피한 사연을 보건대 모두 신들이 불민했던 탓으로 빚어진 일이니 잘못이 큽니다. 형세상 그대로 자리에 있기가 어려우니 신들의 직을 파척토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어제 합사하여 초계한 뒤에 대궐에서 나가 국청에 참석했다가 저녘에 비로소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동료가 대청(臺廳)에 있으면서 하리(下吏)를 보내어 말하기를 ‘상의할 일이 있으니 즉시 들어오라.’ 하였는데, 신이 하리에게 말하기를 ‘궐문이 이미 닫혔으니 가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꼭 서로 의논하여 정하고 싶다면 문틈으로 간통(簡通)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동료가 인피한 사연을 보건대 모두 신들이 불민했던 탓으로 빚어진 일이니 잘못이 큽니다. 형세상 그대로 자리에 있기가 어려우니 신들의 직을 파척토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옥당이 상차하여 대사헌·대사간 이하에게 모두 출사를 명할 것을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관학이 잇달아 상소하여 속히 결단을 내려 화근을 영원히 끊어버릴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종실의 계사(啓辭)에 답하였다. "따를 만한 일이라면 따르지 않겠는가.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따를 만한 일이라면 따르지 않겠는가.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백관이 아뢰기를, "서궁을 폐(廢)해야 하는 정상에 대해서는 신들이 극진하게 간쟁하였습니다. 지금 비록 조알(朝謁)을 정지하고, 분사(分司)를 철수하며, 공헌(貢獻)을 없애고, 존호(尊號)를 낮추고, 또 대비(大妃)의 이름을 없애고 서궁이라 부르게 한다 하더라도, 만약 고명(誥命)이 아직 건재하고 관복(冠服)이 여전히 있다면 어찌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죄는 무씨(武氏)보다도 많은데 종묘에서 수죄(數罪)하지 않고, 죄악은 문강(文姜)보다도 큰데 제(齊)나라로 도망치지도 않고, 조후(趙后)처럼 북궁(北宮)에 옮겨지지도 않고,019) 염씨(閻氏)처럼 별관(別館)으로 옮겨지지도 않은 채020)   그대로 옛 궁궐에 살게 하면서 바깥 집에 거처하지 않게 한다면, 또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수악(首惡)021)  인 몸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게 하였으니 전하께서 곡진하게 비호해 주신 것이 대단하고, 스스로 대역죄를 범했는 데도 오래도록 존봉(尊奉)을 향유하게 하였으니 전하께서 사정(私情)을 따르신 것이 극진하며 화가 능침(陵寢)에 파급되었는 데도 드러나게 토죄(討罪)하지 않으시니 전하께서 차마 못하시는 마음이 관대하고, 중국 조정을 배반하려고 꾀했었는데 아직도 바로 주문(奏聞)하지 않고 계시니 전하께서 보전해 주신 것이 많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전하와 서궁의 관계에서는 사은이 이토록 지극하게 가해진 반면, 신민(臣民)과 서궁의 관계에 있어서는 대의가 아직도 펴지지 못하고 있으니,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과 군부(君父)의 위급함을 장차 어떻게 구제할 것이며 신인(神人)의 분노와 조야(朝野)의 소원을 장차 어떻게 풀어주겠습니까. 신들이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성덕(聖德)에 탄복하고 지극히 인자하신 면을 우러러 사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이끌고 물러가서 절목(節目)을 의정해야 원래 마땅하겠습니다만, 피 끓는 정성을 아직 다 바치지 못했으므로, 소리 높여 호소하는 심정이 더욱 절실해지기만 하니,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통쾌하게 결단을 내리시어 속히 여정(輿情)을 따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경들의 핍박을 받고 사은을 덮어버리라는 주장을 모진 마음으로 따랐다만, 내가 마음으로야 어찌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을 금할 수 있겠는가. 속히 정지하고 다시는 거론하지 말아서 나로 하여금 태양 아래에서 얼굴을 들고 살 수 있게 하라." 하였다.


[註 019] 조후(趙后)처럼 북궁(北宮)에 옮겨지지도 않고, : 조후는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황후 조비연(趙飛燕)임. 그의 여동생인 소의(昭儀)와 날마다 고혹(蠱惑)을 일삼다가 성제가 후사도 없이 갑자기 죽고 애제(哀帝)도 죽자 서인(庶人)으로 폐하니 자살하였음. 《한서(漢書)》 권97 하(下).[註 020] 염씨(閻氏)처럼 별관(別館)으로 옮겨지지도 않은 채 : 염씨는 후한(後漢) 안제(安帝)의 황후. 궁인(宮人) 이씨(李氏)가 총애를 받아 황자(皇子) 보(保)를 낳자 이씨를 독살하고 보를 제음왕(濟陰王)으로 삼게 하였으며, 안제가 죽자 북향후(北鄕侯) 의(懿)를 왕으로 세웠는데, 의가 죽은 뒤 환관 손정(孫程)이 제음왕을 세우고 황후를 이궁(離宮)으로 옮겼음. 《후한서(後漢書)》 권10.[註 021] 수악(首惡) : 원흉(元兇).
"서궁을 폐(廢)해야 하는 정상에 대해서는 신들이 극진하게 간쟁하였습니다. 지금 비록 조알(朝謁)을 정지하고, 분사(分司)를 철수하며, 공헌(貢獻)을 없애고, 존호(尊號)를 낮추고, 또 대비(大妃)의 이름을 없애고 서궁이라 부르게 한다 하더라도, 만약 고명(誥命)이 아직 건재하고 관복(冠服)이 여전히 있다면 어찌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죄는 무씨(武氏)보다도 많은데 종묘에서 수죄(數罪)하지 않고, 죄악은 문강(文姜)보다도 큰데 제(齊)나라로 도망치지도 않고, 조후(趙后)처럼 북궁(北宮)에 옮겨지지도 않고,019) 염씨(閻氏)처럼 별관(別館)으로 옮겨지지도 않은 채020)   그대로 옛 궁궐에 살게 하면서 바깥 집에 거처하지 않게 한다면, 또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수악(首惡)021)  인 몸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게 하였으니 전하께서 곡진하게 비호해 주신 것이 대단하고, 스스로 대역죄를 범했는 데도 오래도록 존봉(尊奉)을 향유하게 하였으니 전하께서 사정(私情)을 따르신 것이 극진하며 화가 능침(陵寢)에 파급되었는 데도 드러나게 토죄(討罪)하지 않으시니 전하께서 차마 못하시는 마음이 관대하고, 중국 조정을 배반하려고 꾀했었는데 아직도 바로 주문(奏聞)하지 않고 계시니 전하께서 보전해 주신 것이 많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전하와 서궁의 관계에서는 사은이 이토록 지극하게 가해진 반면, 신민(臣民)과 서궁의 관계에 있어서는 대의가 아직도 펴지지 못하고 있으니,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과 군부(君父)의 위급함을 장차 어떻게 구제할 것이며 신인(神人)의 분노와 조야(朝野)의 소원을 장차 어떻게 풀어주겠습니까.
신들이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성덕(聖德)에 탄복하고 지극히 인자하신 면을 우러러 사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이끌고 물러가서 절목(節目)을 의정해야 원래 마땅하겠습니다만, 피 끓는 정성을 아직 다 바치지 못했으므로, 소리 높여 호소하는 심정이 더욱 절실해지기만 하니,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통쾌하게 결단을 내리시어 속히 여정(輿情)을 따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경들의 핍박을 받고 사은을 덮어버리라는 주장을 모진 마음으로 따랐다만, 내가 마음으로야 어찌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을 금할 수 있겠는가. 속히 정지하고 다시는 거론하지 말아서 나로 하여금 태양 아래에서 얼굴을 들고 살 수 있게 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아뢰기를, "삼가 어제 내리신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말뜻이 간절하셨음은 물론 끝내 지극한 정을 억누르고 사은을 덮어버리기까지 하셨으므로 신들이 서로 마주 보고 감격하여 울면서 성상께서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극진히 하신 것을 우러러 사모하였습니다. 다만 서궁의 죄악은 열 가지로도 오히려 부족하니, 신민(臣民)의 대의(大義)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참으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서궁이라 부르게 하고 대비라는 칭호만 없앤다면 이 어찌 그 죄악에 합당한 것이겠으며 신인의 분노를 풀어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거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백관은 나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이미 정청(停請)하였는데, 양사에서는 어찌하여 유독 이다지도 번거롭게 하는가. 다시 번거롭게 진달하지 말라." 하였다.
"삼가 어제 내리신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말뜻이 간절하셨음은 물론 끝내 지극한 정을 억누르고 사은을 덮어버리기까지 하셨으므로 신들이 서로 마주 보고 감격하여 울면서 성상께서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극진히 하신 것을 우러러 사모하였습니다. 다만 서궁의 죄악은 열 가지로도 오히려 부족하니, 신민(臣民)의 대의(大義)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참으로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원수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서궁이라 부르게 하고 대비라는 칭호만 없앤다면 이 어찌 그 죄악에 합당한 것이겠으며 신인의 분노를 풀어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거행하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백관은 나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이미 정청(停請)하였는데, 양사에서는 어찌하여 유독 이다지도 번거롭게 하는가. 다시 번거롭게 진달하지 말라."
하였다.

 

유학(幼學) 이국헌(李國獻)·설구인(薛求仁)·최숙(崔淑)·박몽준(朴夢俊)·송영서(宋永緖)·한보길(韓輔吉)·한천정(韓天挺)·박률(朴嵂)·김종(金錝)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서궁이 종묘 사직에 화를 끼치려 하고 선왕을 배반하여 역모를 꾸몄으니 종묘 사직의 적이요 선왕의 죄인입니다. 따라서 선왕께서 생존해 계셨다면 폐출하고 죽였을 것이 분명하니, 그렇다면 부부로서의 의리가 이미 선왕에 의해 끊어진 셈인데, 사은을 가해야 할 도리가 어떻게 전하에게 있겠습니까. 서궁은 전하에게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같은 존재입니다. 아니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일 뿐만이 아닙니다. 밖으로는 역적과 호응하여 종묘 사직에 화를 끼치려 하였고 안으로는 저주(咀呪)를 행하여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 하였으니 서궁은 전하에게 있어서 크나큰 원수라 하겠습니다. 아니 크나큰 원수일 뿐만이 아닙니다. 뒷날 불행하게도 역적의 패거리들이 뜻을 얻게 될 경우 직접 맹주(盟主)가 되어 종묘 사직에 참혹한 화를 끼치고 전하를 해칠 사람은 필시 서궁일 터이니, 서궁은 전하께 승냥이나 호랑이와 같은 존재라 하겠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흉인(兇人)이 미친 듯 꾀를 내어 서궁을 비호하고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삿된 의논이 마구 일어나고 있으니, 전하의 외롭고 위태로운 정상이 어떻다 하겠습니까. 화란(禍亂)이 아침 아니면 저녁에 일어날 상황인 데도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 누워 스스로 편안하게 여기고 있으니, 신들은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오늘날의 형세가 태산처럼 안정되어 있다고 여기십니까. 지금 당장 불행하게도 역변(逆變)이 졸지에 일어나 종묘 사직에 화가 박두하고 전하께 해(害)가 미치게 될 경우 전하께서는 폄삭(貶削)하는 전형(典刑)을 행한 것만으로 서궁의 난을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춘추(春秋)》의 전(傳)에 이르기를 ‘대의가 이미 끊어졌다.’ 하였고, 선유(先儒) 호씨(胡氏)의 정론(定論)에 ‘즉시 종묘에 고하고 죽였어야 했다.’고 하였습니다. 《춘추》에는 공자(孔子)의 의리가 담겨 있고 호씨는 백대(百代)의 스승이니, 정사를 행하는 데에 있어 《춘추》의 의리와 호씨의 정론에 입각해서 할 수만 있다면 천하 후세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춘추》의 대의와 호씨의 정론을 본받지 않은 채 저 선왕께 죄를 짓고 종묘에서 끊어진 죄인을 용서하고 보살펴주기만 하면서, 단지 폄삭하는 전형을 시행하는 것만으로 신인(神人)의 분노에 답하려 하시어 폐출하는 일을 행하지 않고 공론을 따르지 않고 계시니, 《춘추》의 대의와 선유의 정론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까. 종묘 사직의 죄인을 선왕의 정궁(正宮)에 있게 할 수는 없으니,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통쾌하게 공론에 따라 대의를 행하시어 폐출하여 사제(私第)에 옮기고 위리(圍籬)하여 굳게 지키도록 한 다음 호씨의 정론대로 종묘에 고하고 처치하도록 하소서. 그러면 신인의 분노에 답하는 동시에 종묘 사직의 복을 융성하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서궁이 종묘 사직에 화를 끼치려 하고 선왕을 배반하여 역모를 꾸몄으니 종묘 사직의 적이요 선왕의 죄인입니다. 따라서 선왕께서 생존해 계셨다면 폐출하고 죽였을 것이 분명하니, 그렇다면 부부로서의 의리가 이미 선왕에 의해 끊어진 셈인데, 사은을 가해야 할 도리가 어떻게 전하에게 있겠습니까. 서궁은 전하에게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같은 존재입니다. 아니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일 뿐만이 아닙니다. 밖으로는 역적과 호응하여 종묘 사직에 화를 끼치려 하였고 안으로는 저주(咀呪)를 행하여 선후(先后)를 눌러 이기려 하였으니 서궁은 전하에게 있어서 크나큰 원수라 하겠습니다. 아니 크나큰 원수일 뿐만이 아닙니다. 뒷날 불행하게도 역적의 패거리들이 뜻을 얻게 될 경우 직접 맹주(盟主)가 되어 종묘 사직에 참혹한 화를 끼치고 전하를 해칠 사람은 필시 서궁일 터이니, 서궁은 전하께 승냥이나 호랑이와 같은 존재라 하겠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흉인(兇人)이 미친 듯 꾀를 내어 서궁을 비호하고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삿된 의논이 마구 일어나고 있으니, 전하의 외롭고 위태로운 정상이 어떻다 하겠습니까. 화란(禍亂)이 아침 아니면 저녁에 일어날 상황인 데도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 누워 스스로 편안하게 여기고 있으니, 신들은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오늘날의 형세가 태산처럼 안정되어 있다고 여기십니까. 지금 당장 불행하게도 역변(逆變)이 졸지에 일어나 종묘 사직에 화가 박두하고 전하께 해(害)가 미치게 될 경우 전하께서는 폄삭(貶削)하는 전형(典刑)을 행한 것만으로 서궁의 난을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춘추(春秋)》의 전(傳)에 이르기를 ‘대의가 이미 끊어졌다.’ 하였고, 선유(先儒) 호씨(胡氏)의 정론(定論)에 ‘즉시 종묘에 고하고 죽였어야 했다.’고 하였습니다. 《춘추》에는 공자(孔子)의 의리가 담겨 있고 호씨는 백대(百代)의 스승이니, 정사를 행하는 데에 있어 《춘추》의 의리와 호씨의 정론에 입각해서 할 수만 있다면 천하 후세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춘추》의 대의와 호씨의 정론을 본받지 않은 채 저 선왕께 죄를 짓고 종묘에서 끊어진 죄인을 용서하고 보살펴주기만 하면서, 단지 폄삭하는 전형을 시행하는 것만으로 신인(神人)의 분노에 답하려 하시어 폐출하는 일을 행하지 않고 공론을 따르지 않고 계시니, 《춘추》의 대의와 선유의 정론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까.
종묘 사직의 죄인을 선왕의 정궁(正宮)에 있게 할 수는 없으니,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통쾌하게 공론에 따라 대의를 행하시어 폐출하여 사제(私第)에 옮기고 위리(圍籬)하여 굳게 지키도록 한 다음 호씨의 정론대로 종묘에 고하고 처치하도록 하소서. 그러면 신인의 분노에 답하는 동시에 종묘 사직의 복을 융성하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유학 이훤(李萱)·임징지(任徵之)·조유황(趙有璜)·권문욱(權文郁)·임원(任援)·이송수(李松壽)·김신(金愼)·이광홍(李光弘)·서국재(徐國材)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어제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았습니다. 신들은 물론 전하의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과 종묘 사직을 부탁한 뜻을 생각하시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성상의 비답에 ‘단지 서궁이라고 칭하라.’고 분부하신 점에 대해서는 신들이 갈수록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경운궁(慶運宮)은 바로 법궁(法宮)입니다. 일단 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상 하루라도 아무 이름이 없는 사람을 이곳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대비라는 이름이 이미 없어졌는데 어찌 그대로 법궁에 거처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공(支供)하는 절목(節目)을 자세히 정하게 하셨는데 이 일은 더욱 신들이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지공이라 하는 것은 바로 나라 사람들이 지공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찌 나라 사람들이 지공하는 것을 가지고 나라 사람들이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로 여기는 자에게 지공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의 처지에서는 그저 어주(御廚)의 물건을 가지고 끊임없이 개인적으로 보내신다면 혹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신자(臣子)의 입장에서 합법적으로 작정할 경우에는 비록 지푸라기 하나라도 의리상 지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지공하는 일을 없애고 속히 본가(本家)에 돌려 보낸 다음, 태묘(太廟)에 고하고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신민의 소원을 통쾌하게 풀어 주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신들이 어제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았습니다. 신들은 물론 전하의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과 종묘 사직을 부탁한 뜻을 생각하시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성상의 비답에 ‘단지 서궁이라고 칭하라.’고 분부하신 점에 대해서는 신들이 갈수록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경운궁(慶運宮)은 바로 법궁(法宮)입니다. 일단 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상 하루라도 아무 이름이 없는 사람을 이곳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대비라는 이름이 이미 없어졌는데 어찌 그대로 법궁에 거처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공(支供)하는 절목(節目)을 자세히 정하게 하셨는데 이 일은 더욱 신들이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지공이라 하는 것은 바로 나라 사람들이 지공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찌 나라 사람들이 지공하는 것을 가지고 나라 사람들이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로 여기는 자에게 지공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의 처지에서는 그저 어주(御廚)의 물건을 가지고 끊임없이 개인적으로 보내신다면 혹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신자(臣子)의 입장에서 합법적으로 작정할 경우에는 비록 지푸라기 하나라도 의리상 지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지공하는 일을 없애고 속히 본가(本家)에 돌려 보낸 다음, 태묘(太廟)에 고하고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신민의 소원을 통쾌하게 풀어 주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백관·합사·옥당·종실이 초계(初啓)한 뒤에 파하고 나갔다.

 

1월 30일 경인

좌의정 한효순(韓孝純), 우의정 민몽룡(閔夢龍),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 동지춘추 이경전(李慶全),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 우찬성 이충(李沖), 호조 판서 최관(崔瓘), 대사헌 유간(柳澗), 대사간 윤인(尹訒), 부제학 정조(鄭造), 공조 참판 조탁(曺倬), 예조 참판 윤수민(尹壽民), 병조 참판 이덕형(李德泂), 형조 참판 박자흥(朴自興), 호조 참판 경섬(慶暹), 병조 참의 정욱(鄭昱),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 형조 참의 정규(鄭逵) 등이 도당(都堂)에 모여 폄손(貶損)022)  하는 절목을 의논해 아뢰었다.






[註 022] 폄손(貶損) : 폐사(廢祀).

 

존호(尊號)를 낮추고 전에 올린 본국의 존호를 삭제하며, 옥책(玉冊)과 옥보(玉寶)를 내오며, 대비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 서궁이라 부르며, 국혼(國婚) 때의 납징(納徵)·납폐(納幣) 등 문서를 도로 내오며, 어보(御寶)를 내오고 휘지 표신(徽旨標信)을 내오며, 여연(輿輦)·의장(儀仗)을 내오며, 조알(朝謁)·문안(問安)·숙배(肅拜)를 폐지하고, 분사(分司)를 없애며, 【승정원·병조·도총부(都摠府)·겸춘추(兼春秋)·사옹원·위장소(衛將所)·내의원·금루(禁漏)·주방(酒房)·승전색(承傳色)·사약(司鑰)·별감(別監)·내관(內官)·궁중의 각 차비 나인(差備內人).】  공헌(貢獻)을 없애며, 【각도(各道)의 매월 진상(進上)·각도의 삼명일(三名日) 진상·정부 및 육조(六曹)의 물선(物膳)·정부의 표리(表裏)·각사의 삼일 공상(三日供上).】 서궁의 진배(進排)는 후궁(後宮)의 예에 따르며, 공주의 늠료(廩料)와 혼인은 옹주(翁主)의 예에 따르며, 아비는 역적의 괴수이고 자신은 역모에 가담했고 아들은 역적의 무리들에 의해 추대된 이상 이미 종묘에서 끊어졌으니 죽은 뒤에는 온 나라 상하가 거애(擧哀)하지 않고 복(服)을 입지 않음은 물론 종묘에 들어갈 수도 없으며, 궁궐 담을 올려 쌓고 파수대를 설치한 다음 무사를 시켜 수직(守直)하게 한다. 【이 의논을 할 때 민몽룡이 신임 정승으로서 팔을 걷어붙이고 수염을 휘날리면서 흔연히 떠맡았는데, 폄손하는 절목 일체에 대하여 이이첨으로부터 익히 지시를 받은 뒤 물음에 응하여 물 흐르듯 거침없이 외워 나갔으며, 한효순은 머리를 구부린 채 ‘예. 예.’ 하고 대답만 할 따름이었다. 처음에 공주를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는 것에 대해 유간이 말하기를 ‘서궁을 일단 선왕의 후궁과 똑같이 대한다면 공주도 옹주로 낮추는 것이 온당하다.’고 하였으나, 이이첨이 따르지 않고 단지 혼인과 늠료만 옹주의 예에 따르도록 하였는데,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유간을 울산 부사(蔚山府使)로 내보낸 뒤 이어 다시 의논케 하였다. 2월 11일에 도당에 모여 다시 절목을 늘려 정하였다.【옹주의 예에 따른다고 한 절목을 그대로 두고 고치지 않자 왕이 더욱 노하여 마침내 사목(事目)을 계하(啓下)하지 않았다.】】

 

호조 판서 최관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신에게 82세 된 홀아버지가 계시는데 병세가 위독하여 명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신을 체직하시어 간호케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런 일을 당한 다른 당상도 있으니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하였다.
"신에게 82세 된 홀아버지가 계시는데 병세가 위독하여 명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신을 체직하시어 간호케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런 일을 당한 다른 당상도 있으니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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