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29권, 광해 10년 1618년 6월

싸라리리 2026. 1.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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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무오

비변사가 아뢰기를, "남방의 관방(關防)이 오늘날 정말 급하기만 한데 병력을 뽑아 올리라는 명령이 또 제도에 내려졌으니, 이러한 때 각도의 감사를 오래도록 비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3도의 감사를 체차시킨 뒤 이미 천망(薦望)을 들였는데, 감사를 마중하러 온 하인들이 서울에 온 지 몇 달이 지나 도로에서 걸식을 하고 있으니 지극히 염려됩니다. 전라좌·우수사와 동래 부사(東萊府使)는 모두 비중이 큰 자리인데 오래도록 임명되지 않고 있으니 며칠 안으로 차출하여 급히 내려 보내도록 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남방의 관방(關防)이 오늘날 정말 급하기만 한데 병력을 뽑아 올리라는 명령이 또 제도에 내려졌으니, 이러한 때 각도의 감사를 오래도록 비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3도의 감사를 체차시킨 뒤 이미 천망(薦望)을 들였는데, 감사를 마중하러 온 하인들이 서울에 온 지 몇 달이 지나 도로에서 걸식을 하고 있으니 지극히 염려됩니다. 전라좌·우수사와 동래 부사(東萊府使)는 모두 비중이 큰 자리인데 오래도록 임명되지 않고 있으니 며칠 안으로 차출하여 급히 내려 보내도록 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營建都監)의 제조를 김개(金闓)로 임명하라."
"영건 도감(營建都監)의 제조를 김개(金闓)로 임명하라."

 

전교하였다. "인경궁(仁慶宮)에 거둥해서는 특별히 자고 올 일이 없는데, 외방에서 군대를 징발하는 것은 폐단이 있다. 그러나 도감의 군병만으로 시위하게 한다면 허술하지 않겠는가. "
"인경궁(仁慶宮)에 거둥해서는 특별히 자고 올 일이 없는데, 외방에서 군대를 징발하는 것은 폐단이 있다. 그러나 도감의 군병만으로 시위하게 한다면 허술하지 않겠는가. "

 

유학(幼學) 이승선(李承善)이 상소하여 속히 절목을 내려서 폐출하는 일을 완결짓도록 청하였다.

 

전교하였다. "오늘이 사기(私忌)이긴 하다마는 은(銀)을 찾아낼 일이 급하니, 오늘 당장 정사를 하되 평안 도사(都事)와 평사(評事)만 결정하여 내일 내려 보내도록 하라."
"오늘이 사기(私忌)이긴 하다마는 은(銀)을 찾아낼 일이 급하니, 오늘 당장 정사를 하되 평안 도사(都事)와 평사(評事)만 결정하여 내일 내려 보내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성절사(聖節使)를 윤휘(尹暉)로, 서장관을 권광환(權光煥)으로, 당상 역관을 임예룡(林禮龍)으로 삼아 속히 떠나 보내도록 하라. "
"성절사(聖節使)를 윤휘(尹暉)로, 서장관을 권광환(權光煥)으로, 당상 역관을 임예룡(林禮龍)으로 삼아 속히 떠나 보내도록 하라. "

 

6월 2일 기미

전교하였다. "이렇듯 나랏일이 몹시 급해진 때를 당하여 부리기에 합당한 내관(內官) 가운데 사고를 당한 자가 매우 많아 승전색(承傳色)으로 고작 2, 3인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 승전색 한신(韓信)과 전 장번 내관(長番內官) 최대청(崔大淸)·최봉천(崔奉天)·김인(金仁) 등을 조종조의 예에 따라 기복시키고, 시위할 때의 복장을 결정하여 아뢰도록 하라."
"이렇듯 나랏일이 몹시 급해진 때를 당하여 부리기에 합당한 내관(內官) 가운데 사고를 당한 자가 매우 많아 승전색(承傳色)으로 고작 2, 3인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 승전색 한신(韓信)과 전 장번 내관(長番內官) 최대청(崔大淸)·최봉천(崔奉天)·김인(金仁) 등을 조종조의 예에 따라 기복시키고, 시위할 때의 복장을 결정하여 아뢰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영정을 오래도록 수원(水原)에 머물러두고 있는데, 서관(西關) 역시 변방의 근심거리가 있으니, 우선 서울에 봉안토록 할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영정을 오래도록 수원(水原)에 머물러두고 있는데, 서관(西關) 역시 변방의 근심거리가 있으니, 우선 서울에 봉안토록 할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지사 장만(張晩)이 아뢰기를, "신은 초봄에 큰 병을 앓고난 뒤로 정신이 멍하고 일을 대할 때면 현기증이 나곤 하는데, 비국에서는 유사의 직책을 맡고 있고 도감에서는 포물(布物)과 번와(燔瓦)의 일을 아울러 맡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오랑캐의 정상을 헤아리기 어려워 한창 병사(兵事)가 바빠지고 있으므로 문서에 응수하고 변방 일을 처리하는 데에 한 시각이 급하며 도감의 포물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두 곳의 일이 이처럼 밀어 닥치고 있으니 아무리 노쇠하여 병든 몸을 채찍질해도 두 가지 일을 겸해 살피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도감과 비국 중 한 곳을 체차시켜 주시어 공사(公私)간에 편하게 하소서. " 하니, 답하기를, "우선은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면서 직무를 살피도록 하라." 하였다.
"신은 초봄에 큰 병을 앓고난 뒤로 정신이 멍하고 일을 대할 때면 현기증이 나곤 하는데, 비국에서는 유사의 직책을 맡고 있고 도감에서는 포물(布物)과 번와(燔瓦)의 일을 아울러 맡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오랑캐의 정상을 헤아리기 어려워 한창 병사(兵事)가 바빠지고 있으므로 문서에 응수하고 변방 일을 처리하는 데에 한 시각이 급하며 도감의 포물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두 곳의 일이 이처럼 밀어 닥치고 있으니 아무리 노쇠하여 병든 몸을 채찍질해도 두 가지 일을 겸해 살피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도감과 비국 중 한 곳을 체차시켜 주시어 공사(公私)간에 편하게 하소서. "
하니, 답하기를,
"우선은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면서 직무를 살피도록 하라."
하였다.

 

전계(前啓)를 합사(合司)하여, 서궁(西宮)에 대한 절목을 속히 내려서 폐출하는 형전을 마무리짓도록 청하고, 신계(新啓)하기를, "좌의정 한효순(韓孝純)은 본래 견해가 같지 않은 사람인데 외람되게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초 대론이 일어났을 때 양쪽을 쥐처럼 기웃거리며 배회하고 관망만 하면서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으니, 정청(庭請)을 한 것이 그의 본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나라 사람으로서 그 누가 몰랐겠습니까. 그러다가 여태까지 절목이 내려지지 않자 사람들의 겁주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정고를 함으로써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의 기를 북돋아주고 이 일을 담당한 자들을 외롭고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런 것입니까. 더구나 지금 변방의 사태가 바야흐로 급해지고 있는데 대책을 강구하고 대응하는 일을 누구에게 떠맡긴단 말입니까. 효순의 죄가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하겠습니다. 지난번 처음 돈유하셨을 때에는 적막하게 아무 소리도 없었고, 징병에 관한 일과 오랑캐의 편지가 온 일 때문에 성상께서 재삼 간절하게 분부하셨을 때에도 듣고도 못들은 척하였습니다. 그를 귀양보내도록 명하시어 일을 당해 교묘히 피한 죄를 징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절목은 알아서 내릴 것이다. 조용히 조섭하는 때에 다시는 소란을 떨지 말도록 하라. 좌상에 대한 일은 나랏일이 바야흐로 급해지고 있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속히 나와 정성껏 대책을 강구토록 하라." 하였다.
"좌의정 한효순(韓孝純)은 본래 견해가 같지 않은 사람인데 외람되게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초 대론이 일어났을 때 양쪽을 쥐처럼 기웃거리며 배회하고 관망만 하면서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으니, 정청(庭請)을 한 것이 그의 본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나라 사람으로서 그 누가 몰랐겠습니까. 그러다가 여태까지 절목이 내려지지 않자 사람들의 겁주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정고를 함으로써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의 기를 북돋아주고 이 일을 담당한 자들을 외롭고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런 것입니까. 더구나 지금 변방의 사태가 바야흐로 급해지고 있는데 대책을 강구하고 대응하는 일을 누구에게 떠맡긴단 말입니까. 효순의 죄가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하겠습니다. 지난번 처음 돈유하셨을 때에는 적막하게 아무 소리도 없었고, 징병에 관한 일과 오랑캐의 편지가 온 일 때문에 성상께서 재삼 간절하게 분부하셨을 때에도 듣고도 못들은 척하였습니다. 그를 귀양보내도록 명하시어 일을 당해 교묘히 피한 죄를 징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절목은 알아서 내릴 것이다. 조용히 조섭하는 때에 다시는 소란을 떨지 말도록 하라. 좌상에 대한 일은 나랏일이 바야흐로 급해지고 있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속히 나와 정성껏 대책을 강구토록 하라."
하였다.

 

전계(前啓)를 합사(合司)하기를, "정청에 불참한 사람들에게 속히 유배를 명하시고, 이항복의 관작을 회복시키라고 내리신 명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를 기다리라. 조용히 조섭하는 때에 다시 소란을 떨지 말도록 하라. 서궁을 비호한 자가 어찌 이항복뿐이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정청에 불참한 사람들에게 속히 유배를 명하시고, 이항복의 관작을 회복시키라고 내리신 명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를 기다리라. 조용히 조섭하는 때에 다시 소란을 떨지 말도록 하라. 서궁을 비호한 자가 어찌 이항복뿐이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장령 강수가 아뢰기를, "좌의정 한효순은 바로 신의 동생의 매부인데 대간의 탄핵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대론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변방 사태가 몹시 급해지는 날을 당하여 이를 이유로 인피한다면 그 죄가 만 번 죽어 합당하겠습니다만, 이미 한집안의 정리가 있는만큼 그대로 언지(言地)에 있으면서 논계에 동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의 체직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좌의정 한효순은 바로 신의 동생의 매부인데 대간의 탄핵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대론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변방 사태가 몹시 급해지는 날을 당하여 이를 이유로 인피한다면 그 죄가 만 번 죽어 합당하겠습니다만, 이미 한집안의 정리가 있는만큼 그대로 언지(言地)에 있으면서 논계에 동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의 체직을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외방에 있는 무신을 급히 거두어 활용하고 장사(將士)를 위로해주는 제반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
"외방에 있는 무신을 급히 거두어 활용하고 장사(將士)를 위로해주는 제반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

 

전교하였다. "함경도 방어사를 유몽룡(劉夢龍)으로 임명해 보내라."
"함경도 방어사를 유몽룡(劉夢龍)으로 임명해 보내라."

 

6월 3일 경신

전교하였다. "기복시킨 인원에게 길복을 입게 하는 예가 법전에 있는가? 다시 살펴 아뢰도록 하라. "
"기복시킨 인원에게 길복을 입게 하는 예가 법전에 있는가? 다시 살펴 아뢰도록 하라. "

 

거창(居昌)의 생원 여후망(呂後望)이 상소하였다. "영의정 정인홍은 도가 바르고 덕이 순일하며 학문이 깊고 행실이 단정하며 스승에게서 얻은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상께서는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군신의 대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밤중의 일월과 같은 만큼, 몸은 비록 집에 돌아가 있어도 마음만은 대궐을 늘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형남(閔馨男)이 ‘높이 누워 있다.[高臥]’는 두 글자를 가지고 드러나게 현상(賢相)을 배척하면서 스스로 사론(邪論)을 지어내었으니, 아, 참혹하기도 합니다. 군신 대의 네 글자로 통쾌하게 사정(邪正)을 분별해 주심으로써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채 대현을 해치려 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끔 하소서. 그리고 급히 체찰사를 보내 변경에 머물며 대비하게 하라는 영상의 말을 특별히 따르시고, 아울러 방수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소서."
"영의정 정인홍은 도가 바르고 덕이 순일하며 학문이 깊고 행실이 단정하며 스승에게서 얻은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성상께서는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군신의 대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밤중의 일월과 같은 만큼, 몸은 비록 집에 돌아가 있어도 마음만은 대궐을 늘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형남(閔馨男)이 ‘높이 누워 있다.[高臥]’는 두 글자를 가지고 드러나게 현상(賢相)을 배척하면서 스스로 사론(邪論)을 지어내었으니, 아, 참혹하기도 합니다. 군신 대의 네 글자로 통쾌하게 사정(邪正)을 분별해 주심으로써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채 대현을 해치려 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끔 하소서. 그리고 급히 체찰사를 보내 변경에 머물며 대비하게 하라는 영상의 말을 특별히 따르시고, 아울러 방수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소서."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속히 서궁에 대한 절목을 내리시고, 한효순을 유배보내라고 속히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좌상의 일은, 대신이 논박을 받은 이상 형세로 볼 때 출사하기 어려울 것이니 체차하라." 하였다.
"속히 서궁에 대한 절목을 내리시고, 한효순을 유배보내라고 속히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좌상의 일은, 대신이 논박을 받은 이상 형세로 볼 때 출사하기 어려울 것이니 체차하라."
하였다.

 

합계로 연계하기를, "정청에 불참한 사람들을 유배보내라고 속히 명하소서. 이항복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도록 명하신 것을 환수하소서." 하고, 신계(新啓)하기를,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과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에 대해 현재 합계로 논죄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녹봉을 제급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론이 해이해지고 왕법(王法)이 추락하고 말 것이니 어찌 크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속히 성명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의창군과 당원위는 실제로 병을 앓았다. 따라서 녹봉을 제급해도 무방하니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정청에 불참한 사람들을 유배보내라고 속히 명하소서. 이항복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도록 명하신 것을 환수하소서."
하고, 신계(新啓)하기를,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과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에 대해 현재 합계로 논죄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녹봉을 제급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론이 해이해지고 왕법(王法)이 추락하고 말 것이니 어찌 크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속히 성명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의창군과 당원위는 실제로 병을 앓았다. 따라서 녹봉을 제급해도 무방하니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공조 참의 신의립(辛義立)은 향리에서 버림받은 인물인데 급기야 본직을 제수받자 물의가 자자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외에서 머무르며 대기하고 있을 때에 열읍(列邑)을 침학하면서 비루한 짓을 많이 행했으니, 파직하고 서용치 말도록 명하소서. " 하니, 답하기를, "신의립에 대한 일은 서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공조 참의 신의립(辛義立)은 향리에서 버림받은 인물인데 급기야 본직을 제수받자 물의가 자자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외에서 머무르며 대기하고 있을 때에 열읍(列邑)을 침학하면서 비루한 짓을 많이 행했으니, 파직하고 서용치 말도록 명하소서. "
하니, 답하기를,
"신의립에 대한 일은 서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함평 현감(咸平縣監) 박정원(朴鼎元)은 본래 사의(邪議)를 주장했던 사람인데 본직을 제수받고나서는 더욱 그 독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론의 상소를 올린 유생들을 몰아내는가 하면 본현의 유생들을 붙잡아두고 상소에 참여치 못하게 하였으니, 사판에서 삭제해 버리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함평 현감(咸平縣監) 박정원(朴鼎元)은 본래 사의(邪議)를 주장했던 사람인데 본직을 제수받고나서는 더욱 그 독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론의 상소를 올린 유생들을 몰아내는가 하면 본현의 유생들을 붙잡아두고 상소에 참여치 못하게 하였으니, 사판에서 삭제해 버리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유학 이국헌(李國獻)이 상소하였다. "서궁의 죄악이 흘러 넘치고 있으니 《춘추(春秋)》의 대의와 호씨(胡氏)109)  의 정론에 입각하여 곧장 폐출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북방 오랑캐로 인해 병란이 장차 일어나게 된 만큼 서궁의 화가 이 때문에 더욱 극심해질 것이니 속히 폐출하소서."


[註 109] 호씨(胡氏) : 호인(胡寅).
"서궁의 죄악이 흘러 넘치고 있으니 《춘추(春秋)》의 대의와 호씨(胡氏)109)  의 정론에 입각하여 곧장 폐출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북방 오랑캐로 인해 병란이 장차 일어나게 된 만큼 서궁의 화가 이 때문에 더욱 극심해질 것이니 속히 폐출하소서."

 

합사와 합계에 대해 공론을 쾌히 따르라고 옥당이 잇달아 청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내 뜻은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6월 4일 신유

전교하였다. "그저께 의창군(義昌君) 등에게 녹봉을 지급하라고 명한 것을 환수하라고 합계한 데 대해 비답을 내릴 때 내용을 빠뜨린 채 썼고 보면 승전색(承傳色)이 품계했어야 마땅한데 섣불리 잘못 전하였고 정원도 살폈어야 할 것인데 그냥 지나치고 품하지 않았으니 너무도 온당치 못한 일이다. 당해 승전색을 행공 추고(行公推考)하고 지금 이후로는 다시 더 자세히 살펴서 하도록 하라."
"그저께 의창군(義昌君) 등에게 녹봉을 지급하라고 명한 것을 환수하라고 합계한 데 대해 비답을 내릴 때 내용을 빠뜨린 채 썼고 보면 승전색(承傳色)이 품계했어야 마땅한데 섣불리 잘못 전하였고 정원도 살폈어야 할 것인데 그냥 지나치고 품하지 않았으니 너무도 온당치 못한 일이다. 당해 승전색을 행공 추고(行公推考)하고 지금 이후로는 다시 더 자세히 살펴서 하도록 하라."

 

전흥 부원군(全興府院君) 이시언(李時言)이 아뢰기를, "삼가 생각건대, 국가에 일이 많아 인주의 근심이 날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신이 이런 때에 마침 훈련 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오늘날 조정에서 의지할 만한 것은 오직 이 도감의 군사뿐입니다. 신이 늙고 병든 몸으로 큰 직책을 잘못 맡고 있으면서 군무(軍務)의 완급이나 인신(人臣)의 향배 등 전하에게 진달드려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신이 서북 지방의 곤수로 출입한 것이 전후 20여 년이므로 변방 백성의 애환과 오랑캐의 행태에 관해 한번 상소를 갖춰 올림으로써 만에 하나라도 묘당이 채택해 쓸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만, 신이 무부(武夫)라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늦추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소대의 명을 받아 노신이 그동안 가슴 속에 품어 왔던 생각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된다면 신은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조용히 조섭하시는 때에 이렇듯 인견해주십사 청하는 것이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습니다마는, 신이 나라로부터 후한 은혜를 받은 것이 무신 중에서는 예전에 없었던 일이고 또 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만 번이라도 죽기를 무릅쓰고 품달드립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국가에 일이 많아 인주의 근심이 날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신이 이런 때에 마침 훈련 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오늘날 조정에서 의지할 만한 것은 오직 이 도감의 군사뿐입니다. 신이 늙고 병든 몸으로 큰 직책을 잘못 맡고 있으면서 군무(軍務)의 완급이나 인신(人臣)의 향배 등 전하에게 진달드려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신이 서북 지방의 곤수로 출입한 것이 전후 20여 년이므로 변방 백성의 애환과 오랑캐의 행태에 관해 한번 상소를 갖춰 올림으로써 만에 하나라도 묘당이 채택해 쓸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만, 신이 무부(武夫)라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늦추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소대의 명을 받아 노신이 그동안 가슴 속에 품어 왔던 생각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된다면 신은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조용히 조섭하시는 때에 이렇듯 인견해주십사 청하는 것이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습니다마는, 신이 나라로부터 후한 은혜를 받은 것이 무신 중에서는 예전에 없었던 일이고 또 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만 번이라도 죽기를 무릅쓰고 품달드립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내 눈병이 아직도 낫지 않은 상태라서 저녁이 되면 더욱 고통스러운데 근래 서쪽 변방의 소식 때문에 눈을 감고 조용히 조섭하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양사의 계사를 보면 긴급하지도 않은 잡다한 일들인데, 이를 가지고 번잡스럽게 드나들기 때문에 이에 여러 가지로 응수하다 보면 병세가 더욱 중해지기만 한다. 더위가 물러갈 때까지만이라도 전에 전교했던 대로 긴급한 군국(軍國)의 일 이외에는 봉입하지 말도록 정원은 특별히 더 살펴서 하라."
"내 눈병이 아직도 낫지 않은 상태라서 저녁이 되면 더욱 고통스러운데 근래 서쪽 변방의 소식 때문에 눈을 감고 조용히 조섭하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양사의 계사를 보면 긴급하지도 않은 잡다한 일들인데, 이를 가지고 번잡스럽게 드나들기 때문에 이에 여러 가지로 응수하다 보면 병세가 더욱 중해지기만 한다. 더위가 물러갈 때까지만이라도 전에 전교했던 대로 긴급한 군국(軍國)의 일 이외에는 봉입하지 말도록 정원은 특별히 더 살펴서 하라."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어제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이미 유시하였다고 분부하셨으므로 신들은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들이 궐문에 엎드려 합사의 형식으로 그칠 줄 모르고 잇달아 소장을 올려 호소하면서 기대한 것이 어찌 이미 유시하였다[已諭]는 두 글자에 있겠습니까. 서궁의 대변(大變)이야말로 예전에 없었던 일로서 오늘날 신민들은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이미 진달드린 논이라고 하여 차마 중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고 보면 절목을 내리는 일을 어찌 잠시라도 늦춰서야 되겠습니까. 화의 근본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변방 사태마저 급해지고 있으므로 불안한 분위기가 더욱 조성되고 인심이 갈수록 두려워하고 있으니 하루가 급하게 대론을 마무리지어야 할 것입니다. 속히 절목을 내리시어 묘당으로 하여금 미진한 사항을 보충해 정하게 하고 차례차례 거행하게 함으로써 폐출하는 형전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전 좌의정 한효순은 본래 견해를 달리했던 사람인데 지난번 인재가 부족했던 탓으로 정승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당초 대론이 일어났을 때 머뭇거리며 관망만 한 채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는데 공의가 격발되자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긴 했으나 본래 성의가 없어 겨우 책임만 때웠을 따름입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절목이 내려지지 않고 대론이 마무리되지 않자 사람들의 겁주는 말을 듣고는 별안간 정고를 함으로써 다른 논을 펼치는 자들의 기를 북돋아주고 이 일을 추진하는 이들을 외롭고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런 것이란 말입니까. 더구나 지금은 변방의 사태가 몹시 급해져 인심이 흉흉해지고 있는 만큼 대신이 물러가기를 청할 때가 아닌데 여러 차례 돈유했음에도 끄떡도 하지 않았으니 효순의 죄가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하겠습니다. 유배보내도록 명하심으로써 일에 임해 교묘하게 피한 죄를 징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를 기다리고 번잡스럽게 소란을 떨지 말라. 한효순의 일도 그렇다. 고관 대작으로서 서궁을 비호한 자가 효순 한 사람만이 아닌데, 그렇다면 일일이 죄를 주어야 하는가. 더구나 이미 체차시켰으니 그만 논하도록 하라." 하였다.
"어제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이미 유시하였다고 분부하셨으므로 신들은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들이 궐문에 엎드려 합사의 형식으로 그칠 줄 모르고 잇달아 소장을 올려 호소하면서 기대한 것이 어찌 이미 유시하였다[已諭]는 두 글자에 있겠습니까. 서궁의 대변(大變)이야말로 예전에 없었던 일로서 오늘날 신민들은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이미 진달드린 논이라고 하여 차마 중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고 보면 절목을 내리는 일을 어찌 잠시라도 늦춰서야 되겠습니까. 화의 근본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변방 사태마저 급해지고 있으므로 불안한 분위기가 더욱 조성되고 인심이 갈수록 두려워하고 있으니 하루가 급하게 대론을 마무리지어야 할 것입니다. 속히 절목을 내리시어 묘당으로 하여금 미진한 사항을 보충해 정하게 하고 차례차례 거행하게 함으로써 폐출하는 형전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전 좌의정 한효순은 본래 견해를 달리했던 사람인데 지난번 인재가 부족했던 탓으로 정승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당초 대론이 일어났을 때 머뭇거리며 관망만 한 채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는데 공의가 격발되자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긴 했으나 본래 성의가 없어 겨우 책임만 때웠을 따름입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절목이 내려지지 않고 대론이 마무리되지 않자 사람들의 겁주는 말을 듣고는 별안간 정고를 함으로써 다른 논을 펼치는 자들의 기를 북돋아주고 이 일을 추진하는 이들을 외롭고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런 것이란 말입니까. 더구나 지금은 변방의 사태가 몹시 급해져 인심이 흉흉해지고 있는 만큼 대신이 물러가기를 청할 때가 아닌데 여러 차례 돈유했음에도 끄떡도 하지 않았으니 효순의 죄가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하겠습니다. 유배보내도록 명하심으로써 일에 임해 교묘하게 피한 죄를 징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를 기다리고 번잡스럽게 소란을 떨지 말라. 한효순의 일도 그렇다. 고관 대작으로서 서궁을 비호한 자가 효순 한 사람만이 아닌데, 그렇다면 일일이 죄를 주어야 하는가. 더구나 이미 체차시켰으니 그만 논하도록 하라."
하였다.

 

합계로 연계하기를, "천하의 죄에 대해서는 살았을 때 중하게 벌을 내리고 죽었다고 해서 가볍게 해 주는 이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항복의 경우, 살았을 때는 의논드린 것이 도리에 어긋나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렸다 하여 유배보내기까지 하였는데, 죽고나자 갑자기 관작을 회복시켜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한 항복에 대해서 살았을 때는 죄를 주고 죽고나자 관작을 회복시켜 주다니 이것이 무슨 거조입니까. 신들은 정말 성상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론이 모두 분개하면서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니 속히 성명을 환수하라 명하소서. 지난번 정청한 것이야말로 충성심에 북받쳐 역적을 토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민들이 꾀하지 않고도 같은 말을 하며 피를 뿌려 가면서 진달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관 중에 괴이한 무리들은, 감히 다른 마음을 품고서 시종일관 불참한 자도 있고 의논드리면서 저쪽 편을 든 자도 있습니다. 이런 일도 차마 할 수 있을진대 무슨 일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창연(鄭昌衍) 등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는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사람들이 모두 아는 늙고 병들어 폐인이 된 자들의 경우는, 대열에 따르도록 요구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라에 대론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물러가 태연히 있으면서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경우는, 좀 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일체 정부의 거안(擧案)대로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지난번 정청할 때 종실은 행불행을 같이해야 할 의리가 있는 만큼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성 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 등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청하는 대열에 불참하였고, 심지어 의창군 이광은 소원한 종실과는 입장이 크게 다른 데도 끝내 의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 이현 등은 종친부에 늙고 병들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고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만,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것은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그리고 의창군 광과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에 대해서 합계로 한창 죄를 청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녹봉을 제급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대론이 이로부터 해이해지고 왕법이 이로 말미암아 폐기되고 말 것이니 어찌 크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속히 성명을 환수하소서. 신들이 삼가 듣건대, 재자관(齎咨官)의 비밀 장계 중에 ‘하남 어사(河南御史)가 조선의 병마 및 광령(廣寧)·요동(遼東)의 군졸과 함께하기를 청하였다.’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신들이 알 수 없습니다마는, 예전부터 중국 조정에서는 우리 나라를 내복(內服)110)  처럼 여겨 크고 작은 근심거리가 생길 때마다 보살펴주지 않은 일이 없었으니, 의리상으로는 군신이지만 정리로 보면 부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 임진년 때 우리 청구(靑丘)가 하마터면 왜놈들에게 먹힐 뻔하였는데, 다행히 성스런 천자(天子)께서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고 천하의 양식을 운반하여 깨끗이 소제해주신 덕분으로 오늘날이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후히 베풀어 준 그 깊은 은혜야말로 아홉 겹의 못보다도 깊고 구정(九鼎)보다도 무겁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오랑캐가 화를 일으켜 군사 행동을 벌이는 바람에 원근이 시끄러워지면서 우서(羽書)가 잇달으고 있으니, 우리 나라의 도리로서는 이를 듣는 즉시 군대를 징발한 뒤 밤을 낮삼아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가서 선봉 역할을 수행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어떻게 황제의 조칙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체찰사와 원수 등을 즉시 내보내 급히 요리하게 함으로써 뒤늦은 데 따른 주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궁궐 공사가 부득이해서 나온 일이긴 합니다만, 경영한 지 이미 오래 되어 백성의 힘이 탈진되었으니 변방의 급보가 없다 할지라도 우선 쉬게 하면서 뒷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중국의 어려움을 급히 구해야 할 이때에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두 궁궐의 공사를 속히 정지시키소서. 요즘 성상의 건강이 좋지 못하신 탓으로 경연을 오래도록 폐지하다 보니 대소 신료가 생각이 있어도 뵙고 진달드릴 길이 없습니다. 지금 사태가 날로 악화되어 가기만 하니 신료를 인접하시는 일이야말로 오늘날의 급무라 할 것입니다. 불시에 소대(召對)를 명하시어 바람직한 대책을 자문하소서.  전 지평 이중계(李重繼)는 입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듯 대론이 한창 전개되는 날을 당하여 역적을 토죄하는 일에 성의가 없어 같이 일하려 하지 않은 나머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교묘히 피하려 한 자취가 현저하게 드러났는데, 끝내는 누차 정사하여 기필코 체차됨으로써 그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신자의 의리가 과연 이러한 것입니까. 대론을 회피하려 꾀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유배보내라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를 기다리고 번잡스럽게 소란떨지 말라. 의창군 등에게 녹봉을 제급토록 한 일과 이항복에 관한 일은 이미 유시하였다. 징병에 대한 일은 묘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니 번거롭게 아뢸 필요가 없다. 궁궐 공사에 관한 일은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는데 지금 공사를 섣불리 중단시킬 수는 없다. 소대하는 일은, 나의 병 증세가 마찬가지이니 형세를 보아가며 하겠다. 이중계의 일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모조리 다스릴 수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대개 대간도 신하이다. 전후로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전교를 무시한 채 매번 급하지도 않은 계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귀찮게 하다니 부당하기 짝이 없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우선 정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방수(防守)와 관련된 기발하고 훌륭한 계책이 있거든 그런 것은 논계해도 좋다." 하였다.


[註 110] 내복(內服) : 중국 안의 제후.
"천하의 죄에 대해서는 살았을 때 중하게 벌을 내리고 죽었다고 해서 가볍게 해 주는 이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항복의 경우, 살았을 때는 의논드린 것이 도리에 어긋나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렸다 하여 유배보내기까지 하였는데, 죽고나자 갑자기 관작을 회복시켜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한 항복에 대해서 살았을 때는 죄를 주고 죽고나자 관작을 회복시켜 주다니 이것이 무슨 거조입니까. 신들은 정말 성상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론이 모두 분개하면서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니 속히 성명을 환수하라 명하소서.
지난번 정청한 것이야말로 충성심에 북받쳐 역적을 토죄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서 대소 신민들이 꾀하지 않고도 같은 말을 하며 피를 뿌려 가면서 진달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백관 중에 괴이한 무리들은, 감히 다른 마음을 품고서 시종일관 불참한 자도 있고 의논드리면서 저쪽 편을 든 자도 있습니다. 이런 일도 차마 할 수 있을진대 무슨 일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창연(鄭昌衍) 등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는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사람들이 모두 아는 늙고 병들어 폐인이 된 자들의 경우는, 대열에 따르도록 요구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라에 대론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물러가 태연히 있으면서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경우는, 좀 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일체 정부의 거안(擧案)대로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지난번 정청할 때 종실은 행불행을 같이해야 할 의리가 있는 만큼 더욱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성 도정(西城都正) 이희성(李希聖) 등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청하는 대열에 불참하였고, 심지어 의창군 이광은 소원한 종실과는 입장이 크게 다른 데도 끝내 의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니 모두 멀리 유배보내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한음군 이현 등은 종친부에 늙고 병들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고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만,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시종일관 참여하지 않은 것은 그 죄가 없지 않으니 모두 삭출을 명하소서. 그리고 의창군 광과 당원위(唐原尉) 홍우경(洪友敬)에 대해서 합계로 한창 죄를 청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녹봉을 제급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대론이 이로부터 해이해지고 왕법이 이로 말미암아 폐기되고 말 것이니 어찌 크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속히 성명을 환수하소서.
신들이 삼가 듣건대, 재자관(齎咨官)의 비밀 장계 중에 ‘하남 어사(河南御史)가 조선의 병마 및 광령(廣寧)·요동(遼東)의 군졸과 함께하기를 청하였다.’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신들이 알 수 없습니다마는, 예전부터 중국 조정에서는 우리 나라를 내복(內服)110)  처럼 여겨 크고 작은 근심거리가 생길 때마다 보살펴주지 않은 일이 없었으니, 의리상으로는 군신이지만 정리로 보면 부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 임진년 때 우리 청구(靑丘)가 하마터면 왜놈들에게 먹힐 뻔하였는데, 다행히 성스런 천자(天子)께서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고 천하의 양식을 운반하여 깨끗이 소제해주신 덕분으로 오늘날이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후히 베풀어 준 그 깊은 은혜야말로 아홉 겹의 못보다도 깊고 구정(九鼎)보다도 무겁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오랑캐가 화를 일으켜 군사 행동을 벌이는 바람에 원근이 시끄러워지면서 우서(羽書)가 잇달으고 있으니, 우리 나라의 도리로서는 이를 듣는 즉시 군대를 징발한 뒤 밤을 낮삼아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가서 선봉 역할을 수행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어떻게 황제의 조칙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체찰사와 원수 등을 즉시 내보내 급히 요리하게 함으로써 뒤늦은 데 따른 주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궁궐 공사가 부득이해서 나온 일이긴 합니다만, 경영한 지 이미 오래 되어 백성의 힘이 탈진되었으니 변방의 급보가 없다 할지라도 우선 쉬게 하면서 뒷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중국의 어려움을 급히 구해야 할 이때에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두 궁궐의 공사를 속히 정지시키소서.
요즘 성상의 건강이 좋지 못하신 탓으로 경연을 오래도록 폐지하다 보니 대소 신료가 생각이 있어도 뵙고 진달드릴 길이 없습니다. 지금 사태가 날로 악화되어 가기만 하니 신료를 인접하시는 일이야말로 오늘날의 급무라 할 것입니다. 불시에 소대(召對)를 명하시어 바람직한 대책을 자문하소서.
전 지평 이중계(李重繼)는 입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듯 대론이 한창 전개되는 날을 당하여 역적을 토죄하는 일에 성의가 없어 같이 일하려 하지 않은 나머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교묘히 피하려 한 자취가 현저하게 드러났는데, 끝내는 누차 정사하여 기필코 체차됨으로써 그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신자의 의리가 과연 이러한 것입니까. 대론을 회피하려 꾀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유배보내라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를 기다리고 번잡스럽게 소란떨지 말라. 의창군 등에게 녹봉을 제급토록 한 일과 이항복에 관한 일은 이미 유시하였다. 징병에 대한 일은 묘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니 번거롭게 아뢸 필요가 없다. 궁궐 공사에 관한 일은 나의 뜻을 이미 유시하였는데 지금 공사를 섣불리 중단시킬 수는 없다. 소대하는 일은, 나의 병 증세가 마찬가지이니 형세를 보아가며 하겠다. 이중계의 일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모조리 다스릴 수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대개 대간도 신하이다. 전후로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전교를 무시한 채 매번 급하지도 않은 계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귀찮게 하다니 부당하기 짝이 없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우선 정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방수(防守)와 관련된 기발하고 훌륭한 계책이 있거든 그런 것은 논계해도 좋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윤휘(尹暉)를 겸 진주사(陳奏使)로 계하하라."
"윤휘(尹暉)를 겸 진주사(陳奏使)로 계하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양 경략(楊經略)111)  이 5월 22일에 이미 산해관(山海關)에 도착했다고 하니, 곽천호(郭天豪)를 급히 떠나 보내야 하겠습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게첩(揭帖)을 속히 마련케 한 뒤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보내도록 하되 요동(遼東)과 광령(廣寧)의 소식을 연속적으로 치계하라.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註 111] 양 경략(楊經略) : 양호(楊鎬).
"양 경략(楊經略)111)  이 5월 22일에 이미 산해관(山海關)에 도착했다고 하니, 곽천호(郭天豪)를 급히 떠나 보내야 하겠습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게첩(揭帖)을 속히 마련케 한 뒤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보내도록 하되 요동(遼東)과 광령(廣寧)의 소식을 연속적으로 치계하라.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이시언(李時言)을 인견하였다. 시언이 아뢰기를, "중국 조정은 우리 나라에 있어 부모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상국이 모욕을 받은 이상 징병 요청을 기다릴 것도 없이 달려가 구원하는 것이 의리상 마땅하니 속히 군병을 동원하여 요동 지역으로 들여보내 응원하게 하는 한편 우리 변경을 굳게 지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도감의 포수(砲手)들은 모두 쇠약한 사람들로 구차하게 충원하였는데, 입번하는 것 외에도 잡역에 동원되는 일이 많습니다. 가령 조총을 만들고 염초를 굽는 곳에도 가서 일을 하고 있으므로 한 달에 휴식을 취하는 날이 5, 6일을 넘지 않으니 너무나도 고달프다 하겠습니다. 간혹 호궤하여 마음을 위로해 주어도 안될 것이 없는데, 요즘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라서 오래도록 이 일을 못하고 있으니, 삼가 원하옵건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소서.  평안 감사의 군대가 2천여 인이고 병영을 지키는 병사의 패졸(牌卒)도 많은데 거의 대부분이 정예 군사이니 위급할 때 쓸 수가 있습니다. 두 군사를 합치면 병력 3천을 얻을 수 있는데, 이 군사를 먼저 강변에 보내 파수하게 함으로써 오랑캐에게 침범 못할 형세를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 조정으로 하여금 우리가 군대를 동원해 구원한다는 뜻을 알게끔 한다면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방어책으로는 성을 지키는 것이 제일인데 여기에 적임자를 얻어 요리하게 해서 이때에 군대를 다스리고 기계를 수선한다면 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평안도의 강변 일대가 가장 염려스러운데 벽동(碧潼)의 성지(城池)가 매우 견고하니 급히 사람을 가려 보내 잘 수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나라의 방벽을 삼을 수 있는 지역으로는 강도(江都)가 가장 좋은데 조치가 늦어진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리고 경상도는 인심이 순박하니 이곳에도 하나쯤 피할 만한 지역을 마련해두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도감의 포졸(砲卒)에게도 의지해야 할 형세가 없지 않은데, 만약 변란을 만나 그들이 홀몸으로 대가(大駕)를 따르게 될 경우 필시 버리고 달아날 근심이 있게 될 테니 무엇보다도 그들의 부모와 처자를 보살펴주고 양료(糧料)를 넉넉하게 주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중국 조정은 우리 나라에 있어 부모와 같은 점이 있습니다. 상국이 모욕을 받은 이상 징병 요청을 기다릴 것도 없이 달려가 구원하는 것이 의리상 마땅하니 속히 군병을 동원하여 요동 지역으로 들여보내 응원하게 하는 한편 우리 변경을 굳게 지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도감의 포수(砲手)들은 모두 쇠약한 사람들로 구차하게 충원하였는데, 입번하는 것 외에도 잡역에 동원되는 일이 많습니다. 가령 조총을 만들고 염초를 굽는 곳에도 가서 일을 하고 있으므로 한 달에 휴식을 취하는 날이 5, 6일을 넘지 않으니 너무나도 고달프다 하겠습니다. 간혹 호궤하여 마음을 위로해 주어도 안될 것이 없는데, 요즘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라서 오래도록 이 일을 못하고 있으니, 삼가 원하옵건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소서.
평안 감사의 군대가 2천여 인이고 병영을 지키는 병사의 패졸(牌卒)도 많은데 거의 대부분이 정예 군사이니 위급할 때 쓸 수가 있습니다. 두 군사를 합치면 병력 3천을 얻을 수 있는데, 이 군사를 먼저 강변에 보내 파수하게 함으로써 오랑캐에게 침범 못할 형세를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 조정으로 하여금 우리가 군대를 동원해 구원한다는 뜻을 알게끔 한다면 무척 다행이겠습니다.
방어책으로는 성을 지키는 것이 제일인데 여기에 적임자를 얻어 요리하게 해서 이때에 군대를 다스리고 기계를 수선한다면 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평안도의 강변 일대가 가장 염려스러운데 벽동(碧潼)의 성지(城池)가 매우 견고하니 급히 사람을 가려 보내 잘 수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나라의 방벽을 삼을 수 있는 지역으로는 강도(江都)가 가장 좋은데 조치가 늦어진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리고 경상도는 인심이 순박하니 이곳에도 하나쯤 피할 만한 지역을 마련해두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도감의 포졸(砲卒)에게도 의지해야 할 형세가 없지 않은데, 만약 변란을 만나 그들이 홀몸으로 대가(大駕)를 따르게 될 경우 필시 버리고 달아날 근심이 있게 될 테니 무엇보다도 그들의 부모와 처자를 보살펴주고 양료(糧料)를 넉넉하게 주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6월 5일 임술

전교하였다. "절일(節日)이 점점 다가오는데 윤휘를 지금까지 떠나보내지 않고 있으니 매우 염려된다. 1, 2일 안으로 급히 떠나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역관도 6인 이외에 추가로 아뢰어 청한 2인을 아울러 차출해서 보내도록 하라."
"절일(節日)이 점점 다가오는데 윤휘를 지금까지 떠나보내지 않고 있으니 매우 염려된다. 1, 2일 안으로 급히 떠나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역관도 6인 이외에 추가로 아뢰어 청한 2인을 아울러 차출해서 보내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비가 이처럼 오니 인경궁에 친림할 날짜를 7일로 물려 정하는 것으로 다시 부표하라."
"비가 이처럼 오니 인경궁에 친림할 날짜를 7일로 물려 정하는 것으로 다시 부표하라."

 

6월 6일 계해

전교하였다. "‘우리 나라 군병은 외롭고 약해 변방 세 곳을 방어하는 군사를 제외하면 약간의 잔약한 군졸만 남게 되는데, 조련되지 않은 약졸로서 전진(戰陣)에 임하게 하면 필시 먼저 동요되어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고 게다가 이 적의 기세가 이미 거세기 짝이 없는 상태이니, 원컨대 노야가 기미를 살펴 진퇴하여 만전을 기하도록 힘쓰라.’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응대하거나 정문(呈文)을 올려 극력 주선하라고 곽천호에게 말해 보내라."
"‘우리 나라 군병은 외롭고 약해 변방 세 곳을 방어하는 군사를 제외하면 약간의 잔약한 군졸만 남게 되는데, 조련되지 않은 약졸로서 전진(戰陣)에 임하게 하면 필시 먼저 동요되어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킬 염려가 있고 게다가 이 적의 기세가 이미 거세기 짝이 없는 상태이니, 원컨대 노야가 기미를 살펴 진퇴하여 만전을 기하도록 힘쓰라.’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응대하거나 정문(呈文)을 올려 극력 주선하라고 곽천호에게 말해 보내라."

 

지사(知事) 장만(張晩)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근일 들여오고 내가는 공사(公事)를 비밀로 하지 말아 중외로 하여금 모두 조정의 거조를 알게 함으로써 인심을 진정시키도록 하소서. 우선 큰 공사를 중단하여 백성의 소망을 따르소서. 속히 애통해 하는 조서를 내리고 인재를 선발함으로써 난국을 극복토록 하시고 징병에 관한 일을 충분히 강구하고 헤아려서 선처토록 하소서. 그리고 비국의 유사 당상 직책을 체차하여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제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대내(大內)에 요망한 변고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니 형세상 그 안에 앉아 있기가 어렵다. 그리고 두 궁궐의 공사가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으니 갑자기 중단하여 그동안의 공을 모두 버리게 할 수는 없다. 요즘 이 공사를 중단하라고 서로들 다투어 차자를 올리고 있는데, 나같이 혼미하고 병든 사람은 자세히 살필 수 없다만, 다시 서쪽 사태의 보고를 들어 가면서 알아서 참작해 처리하겠다.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들에게 어찌 오랑캐를 방어할 계책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오직 이렇게 진달하여 곧다는 이름만 얻으려 하면서 군상에게 악명을 돌리는 일로 일생의 사업을 삼고 있다. 그리하여 고관이 먼저 한 마디 하면 대간이 화답을 하곤 하는데 경까지 이런 행태를 본받을 필요는 없다. 비국의 일 등에 대해서는 경 역시 유사 당상이니 다만 하나하나 대책을 강구해 나가면서 일에 앞서 미리 대비해두어야 할 것이다. 어찌 번거롭게 논계하고 상차하는가. 비국의 당상마다 모두 진달한다면 날수가 또한 부족하게 될 것이다. 궁궐 공사를 더욱 감독해서 속히 마무리짓도록 하라. 기타 사항은 의논해 처리하겠다.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직무를 살피도록 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차자를, 궁궐에 대한 일은 빼고 비변사에 내려 의논해서 처리케 하라." 하였다.
"근일 들여오고 내가는 공사(公事)를 비밀로 하지 말아 중외로 하여금 모두 조정의 거조를 알게 함으로써 인심을 진정시키도록 하소서. 우선 큰 공사를 중단하여 백성의 소망을 따르소서. 속히 애통해 하는 조서를 내리고 인재를 선발함으로써 난국을 극복토록 하시고 징병에 관한 일을 충분히 강구하고 헤아려서 선처토록 하소서. 그리고 비국의 유사 당상 직책을 체차하여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제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대내(大內)에 요망한 변고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니 형세상 그 안에 앉아 있기가 어렵다. 그리고 두 궁궐의 공사가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으니 갑자기 중단하여 그동안의 공을 모두 버리게 할 수는 없다. 요즘 이 공사를 중단하라고 서로들 다투어 차자를 올리고 있는데, 나같이 혼미하고 병든 사람은 자세히 살필 수 없다만, 다시 서쪽 사태의 보고를 들어 가면서 알아서 참작해 처리하겠다.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들에게 어찌 오랑캐를 방어할 계책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오직 이렇게 진달하여 곧다는 이름만 얻으려 하면서 군상에게 악명을 돌리는 일로 일생의 사업을 삼고 있다. 그리하여 고관이 먼저 한 마디 하면 대간이 화답을 하곤 하는데 경까지 이런 행태를 본받을 필요는 없다. 비국의 일 등에 대해서는 경 역시 유사 당상이니 다만 하나하나 대책을 강구해 나가면서 일에 앞서 미리 대비해두어야 할 것이다. 어찌 번거롭게 논계하고 상차하는가. 비국의 당상마다 모두 진달한다면 날수가 또한 부족하게 될 것이다. 궁궐 공사를 더욱 감독해서 속히 마무리짓도록 하라. 기타 사항은 의논해 처리하겠다.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직무를 살피도록 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차자를, 궁궐에 대한 일은 빼고 비변사에 내려 의논해서 처리케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진양(晉陽)이나 봉천(奉天)같은 보장(保障) 지역112)  에 대해 본사의 당상들로 하여금 각각 소견을 진달케 하고, 병든 사람이나 정사한 사람은 집에서 의논드리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보장 지역은 미리 조치해두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강도(江都)에 대해 지금 별도로 요리하고 있는데, 나주(羅州)나 안동(安東) 등 지역에 대해서도 모두 유의해서 대책을 강구할 예정입니다. 다만 이잠의 장계 및 명조(明朝) 과도관(科道官)의 제본(題本)을 보건대, 저 적이 더욱 기승을 부려 재차 침범해 왔으므로 중국 조정에서 천하의 군대를 동원하여 한결같이 정벌할 뜻을 두면서 ‘조선의 사졸들을 거느려야 하니 바다를 건널 누선(樓船)을 가지고 가야 한다.’ 하기도 하고, ‘이 조선 병력을 빌려 그 예봉을 꺾어야 한다.’ 하기도 하고, ‘조선에서 전후 7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소비한 것이 8백 만에 가깝다.’ 했다 합니다. 우리 나라에 기대하는 것이 적지 않아 언어 사이에 우리 나라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 이와 같은 만큼 조만간 징병을 요구해 오는 일을 필시 그만두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크게 걱정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군서(軍書)가 급히 오가고 사태가 지극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데도 신들이 전하를 한번 뵙고 소회를 털어놓을 수가 없으니 하정(下情)이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명께서는 본사의 신하들을 접견하시어 각각 견해를 진달드릴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러면 아랫사람들의 생각을 상달할 수 있을 것인데 범연히 글로 써서 진달드리는 것보다는 훨씬 상세하게 아뢸 수 있을 것이고 응원하는 일 및 스스로 지키는 일과 보장 지역 등에 관한 일도 모두 탑전에서 설명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나를 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나 가까운 날 직접 보고 의논토록 하겠다. 다만 요리하고 조치할 제반 일들은 본사에서 각별히 관심을 갖고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註 112] 진양(晉陽)이나 봉천(奉天)같은 보장(保障) 지역 : 보장 지역이란 일단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최후의 근거지로 삼아 재도전할 발판을 삼을 수 있는 곳을 말함. 진양은 춘추 시대 때 조 양자(趙襄子)가 지백(智伯)의 공격을 받고 피신했던 곳이며 봉천은 당 덕종(唐德宗)이 피난했던 곳임. 《통감절요(通鑑節要)》 권1 주기(周紀), 권45 당기(唐紀).
"비망기에 ‘진양(晉陽)이나 봉천(奉天)같은 보장(保障) 지역112)  에 대해 본사의 당상들로 하여금 각각 소견을 진달케 하고, 병든 사람이나 정사한 사람은 집에서 의논드리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보장 지역은 미리 조치해두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강도(江都)에 대해 지금 별도로 요리하고 있는데, 나주(羅州)나 안동(安東) 등 지역에 대해서도 모두 유의해서 대책을 강구할 예정입니다.
다만 이잠의 장계 및 명조(明朝) 과도관(科道官)의 제본(題本)을 보건대, 저 적이 더욱 기승을 부려 재차 침범해 왔으므로 중국 조정에서 천하의 군대를 동원하여 한결같이 정벌할 뜻을 두면서 ‘조선의 사졸들을 거느려야 하니 바다를 건널 누선(樓船)을 가지고 가야 한다.’ 하기도 하고, ‘이 조선 병력을 빌려 그 예봉을 꺾어야 한다.’ 하기도 하고, ‘조선에서 전후 7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소비한 것이 8백 만에 가깝다.’ 했다 합니다. 우리 나라에 기대하는 것이 적지 않아 언어 사이에 우리 나라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 이와 같은 만큼 조만간 징병을 요구해 오는 일을 필시 그만두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크게 걱정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군서(軍書)가 급히 오가고 사태가 지극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데도 신들이 전하를 한번 뵙고 소회를 털어놓을 수가 없으니 하정(下情)이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명께서는 본사의 신하들을 접견하시어 각각 견해를 진달드릴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러면 아랫사람들의 생각을 상달할 수 있을 것인데 범연히 글로 써서 진달드리는 것보다는 훨씬 상세하게 아뢸 수 있을 것이고 응원하는 일 및 스스로 지키는 일과 보장 지역 등에 관한 일도 모두 탑전에서 설명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나를 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나 가까운 날 직접 보고 의논토록 하겠다. 다만 요리하고 조치할 제반 일들은 본사에서 각별히 관심을 갖고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뒤의 주문(奏文)에는 단지 오랑캐의 편지에 대한 사정을 설명했을 뿐 절급한 사정을 명백하게 결말짓는 말이 별로 없다. 내 생각은 이렇다. 박정길(朴鼎吉)은 탑전에서 직접 전교를 받았던만큼 징병과 관련된 걱정스러운 일과 우리 나라의 사정을 이미 상세히 알고 갔으니 정길은 속히 앞의 주문을 주어서 보내고, 윤휘는 그저 오랑캐의 편지에 관한 주문만 가지고 잇달아 가게 하는 것이 좋겠는데 그러면 절일(節日)에도 맞출 수 있을 뿐더러 일마다 모두 편하게 될 것이다. 비변사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들이 전후에 걸쳐 망령되이 어리석은 견해를 진달드린 것과 대제학이 곧바로 전하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이는 단지 이번 일이 너무도 중대한만큼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상의하여 후회되는 일이 없게끔 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일 뿐입니다. 어찌 그 사이에 털끝만큼이라도 사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잠이 찾아 보낸 조보(朝報)가 겨우 3통밖에는 안되지만 모두 우리 나라의 군병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니, 이를 보건대 군문(軍門)과 무원(撫院)에서 징병을 요구해 온 일이 두 아문의 뜻만이 아니고 중국 조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큼을 대체로 알 수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난처한 기색을 보이면서 너무 노골적으로 말을 하다 보면 이 때문에 중국 조정에 죄를 얻을 가능성이 많겠기에 전일 개좌(開坐)했을 때 뒤의 주문에 있는 몇 조목의 말을 가지고 다시 대제학과 논란을 벌였던 것인데, 이 또한 모두가 신중하게 처리하려는 의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사(都司)가 우리 나라 가까이 머물면서 우리 사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변방의 일개 소관(小官)에 지나지 않는만큼 그 말은 무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는 병사(兵事)를 주장하는 관원이 아니니 멋대로 할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그의 말은 업남(業男)과 수작하다가 나온 말로써 당초 매우 긴요한 말은 아닌 듯싶습니다. 더구나 당당한 여러 가지의 논의에 대해서 도사의 한 마디가 어떻게 그 사이에 영향력을 발휘하겠습니까. 신들의 견해는 시종일관 이러한데 이는 신들의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인심도 본래 그러합니다. 그런데도 누차 엄한 분부를 받고 보니 황공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신들이 대제학과 다시 더 상의한 결과는 이러합니다. 앞의 주문은 이미 오래 전에 정서(正書)해 놓았으니 오늘 안보(安寶)113)  를 하고, 뒤의 주문은 결어(結語)에 명백하지 못한 곳이 없는 듯하기는 하지만 성상의 분부대로 약간 고쳐서 올린 다음 윤허를 받으면 내일 그것 역시 정서하여 안보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문서 때문에 사신이 애로를 겪을 일은 없을 듯한데, 오랑캐의 편지에 대해서는 급히 먼저 주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전에 올린 계사의 내용대로 하고, 뒤의 주문은 그대로 박정길이 가는 편에 부쳐도 구애될 것이 없겠습니다. 삼가 성상의 결재를 기다립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황공하게 여기지 말라." 하였다.


[註 113] 안보(安寶) : 옥새를 찍음.
"비망기에 ‘뒤의 주문(奏文)에는 단지 오랑캐의 편지에 대한 사정을 설명했을 뿐 절급한 사정을 명백하게 결말짓는 말이 별로 없다. 내 생각은 이렇다. 박정길(朴鼎吉)은 탑전에서 직접 전교를 받았던만큼 징병과 관련된 걱정스러운 일과 우리 나라의 사정을 이미 상세히 알고 갔으니 정길은 속히 앞의 주문을 주어서 보내고, 윤휘는 그저 오랑캐의 편지에 관한 주문만 가지고 잇달아 가게 하는 것이 좋겠는데 그러면 절일(節日)에도 맞출 수 있을 뿐더러 일마다 모두 편하게 될 것이다. 비변사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들이 전후에 걸쳐 망령되이 어리석은 견해를 진달드린 것과 대제학이 곧바로 전하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이는 단지 이번 일이 너무도 중대한만큼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상의하여 후회되는 일이 없게끔 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일 뿐입니다. 어찌 그 사이에 털끝만큼이라도 사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잠이 찾아 보낸 조보(朝報)가 겨우 3통밖에는 안되지만 모두 우리 나라의 군병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니, 이를 보건대 군문(軍門)과 무원(撫院)에서 징병을 요구해 온 일이 두 아문의 뜻만이 아니고 중국 조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큼을 대체로 알 수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난처한 기색을 보이면서 너무 노골적으로 말을 하다 보면 이 때문에 중국 조정에 죄를 얻을 가능성이 많겠기에 전일 개좌(開坐)했을 때 뒤의 주문에 있는 몇 조목의 말을 가지고 다시 대제학과 논란을 벌였던 것인데, 이 또한 모두가 신중하게 처리하려는 의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사(都司)가 우리 나라 가까이 머물면서 우리 사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변방의 일개 소관(小官)에 지나지 않는만큼 그 말은 무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는 병사(兵事)를 주장하는 관원이 아니니 멋대로 할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그의 말은 업남(業男)과 수작하다가 나온 말로써 당초 매우 긴요한 말은 아닌 듯싶습니다. 더구나 당당한 여러 가지의 논의에 대해서 도사의 한 마디가 어떻게 그 사이에 영향력을 발휘하겠습니까. 신들의 견해는 시종일관 이러한데 이는 신들의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인심도 본래 그러합니다. 그런데도 누차 엄한 분부를 받고 보니 황공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신들이 대제학과 다시 더 상의한 결과는 이러합니다. 앞의 주문은 이미 오래 전에 정서(正書)해 놓았으니 오늘 안보(安寶)113)  를 하고, 뒤의 주문은 결어(結語)에 명백하지 못한 곳이 없는 듯하기는 하지만 성상의 분부대로 약간 고쳐서 올린 다음 윤허를 받으면 내일 그것 역시 정서하여 안보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문서 때문에 사신이 애로를 겪을 일은 없을 듯한데, 오랑캐의 편지에 대해서는 급히 먼저 주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전에 올린 계사의 내용대로 하고, 뒤의 주문은 그대로 박정길이 가는 편에 부쳐도 구애될 것이 없겠습니다. 삼가 성상의 결재를 기다립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황공하게 여기지 말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본사의 계사를 가지고 전교하시기를 ‘문희성(文希聖)을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제수할 경우에는 다른 방어사(防禦使)를 차출하여 강변을 굳게 지키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어떻게 다른 고을의 수령에게 들어와 응원하고 자기 고을은 방치해두도록 할 수 있겠는가. 다시 의논해 선처하라.’ 하시고, 또 비망기로 ‘의주(義州)를 방어하는 일을 급히 선처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경들은 이 점을 또한 유념하고 있는가. 정주 목사(定州牧使)는 체차하고 조방장(助防將) 한 사람을 차임해 보내되 만약 정주 목사가 병력을 이끌고 본주(本州)를 파수할 경우에는 혹시라도 조방장을 겸하게 하지 말고 별도로 가려서 차임해 보내도록 하라. 군병을 의주에 들여보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를테면 정주와 같은 곳에서 대장이 군대를 지휘하며 사태를 살피다가 달려가 구원하게 하는 것이 실로 사의에 합당하니 다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논해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를 비변사에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당초 본도의 우후(虞候)를 더 내보내도록 한 뜻은, 대개 병사(兵使)가 군대를 이끌고 강변을 지킬 경우 본영의 군무를 주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직질이 높은 우후를 내보내 순찰사의 지휘를 받으면서 병사의 일을 대신 행하게 하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순변사(巡邊使)가 일단 나가 한 도의 군병을 주관하고 있는 만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니 우후를 보낼 경우 오히려 남아도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송안정(宋安廷)이 일찍이 안주 목사로 있으면서 민심을 많이 얻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의논을 내놓기를 ‘이 사람을 안주 목사로 임명하고 방어사를 겸하게 한 뒤 백성과 군사들을 통솔하여 본주의 성을 지키는 일을 전담시켜야 한다. 문희성은 정주로 옮겨 제수한 뒤 강변에 들어가 방비하게 하고 판관(判官)을 엄선해서 차출한 뒤 그로 하여금 왕래하는 사명(使命)을 접응케 하는 것이 실로 편리하겠다.’ 합니다. 감히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정주에서 성을 지킬 일이 있게 될 경우 어찌 목사는 강변에 들어가 응원하게 하고 본주를 판관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강변에 방어사를 별도로 차출하고 우후는 혹 다른 사람을 가려 보내는 것이 편할 듯하니 다시 의논해 살펴서 하라. 송안정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본사의 계사를 가지고 전교하시기를 ‘문희성(文希聖)을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제수할 경우에는 다른 방어사(防禦使)를 차출하여 강변을 굳게 지키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어떻게 다른 고을의 수령에게 들어와 응원하고 자기 고을은 방치해두도록 할 수 있겠는가. 다시 의논해 선처하라.’ 하시고, 또 비망기로 ‘의주(義州)를 방어하는 일을 급히 선처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경들은 이 점을 또한 유념하고 있는가. 정주 목사(定州牧使)는 체차하고 조방장(助防將) 한 사람을 차임해 보내되 만약 정주 목사가 병력을 이끌고 본주(本州)를 파수할 경우에는 혹시라도 조방장을 겸하게 하지 말고 별도로 가려서 차임해 보내도록 하라. 군병을 의주에 들여보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를테면 정주와 같은 곳에서 대장이 군대를 지휘하며 사태를 살피다가 달려가 구원하게 하는 것이 실로 사의에 합당하니 다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논해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를 비변사에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당초 본도의 우후(虞候)를 더 내보내도록 한 뜻은, 대개 병사(兵使)가 군대를 이끌고 강변을 지킬 경우 본영의 군무를 주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직질이 높은 우후를 내보내 순찰사의 지휘를 받으면서 병사의 일을 대신 행하게 하자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순변사(巡邊使)가 일단 나가 한 도의 군병을 주관하고 있는 만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니 우후를 보낼 경우 오히려 남아도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송안정(宋安廷)이 일찍이 안주 목사로 있으면서 민심을 많이 얻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의논을 내놓기를 ‘이 사람을 안주 목사로 임명하고 방어사를 겸하게 한 뒤 백성과 군사들을 통솔하여 본주의 성을 지키는 일을 전담시켜야 한다. 문희성은 정주로 옮겨 제수한 뒤 강변에 들어가 방비하게 하고 판관(判官)을 엄선해서 차출한 뒤 그로 하여금 왕래하는 사명(使命)을 접응케 하는 것이 실로 편리하겠다.’ 합니다. 감히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정주에서 성을 지킬 일이 있게 될 경우 어찌 목사는 강변에 들어가 응원하게 하고 본주를 판관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강변에 방어사를 별도로 차출하고 우후는 혹 다른 사람을 가려 보내는 것이 편할 듯하니 다시 의논해 살펴서 하라. 송안정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비가 이렇게 오니 인경궁에 친림할 날짜로 13일이 어떤지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물려 정하여라."
"비가 이렇게 오니 인경궁에 친림할 날짜로 13일이 어떤지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물려 정하여라."

 

6월 7일 갑자

성천(成川)의 강선루(降仙樓)가 낙성되었는데, 전교하기를, "오는 7월 20일 무렵에 성천 부사 이하에게 선온(宣醞)할 것이니, 강선루를 만든 공장(工匠) 등을 우선 올려 보내지 말고 기일에 앞서 본부에 일제히 집결시켜 대기토록 할 일을 미리 알려주어 살펴서 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오는 7월 20일 무렵에 성천 부사 이하에게 선온(宣醞)할 것이니, 강선루를 만든 공장(工匠) 등을 우선 올려 보내지 말고 기일에 앞서 본부에 일제히 집결시켜 대기토록 할 일을 미리 알려주어 살펴서 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營建都監)이 아뢰기를, "경덕궁 북쪽 담을 물려 짓는 곳에 들어가게 된 각인의 집터를 도감 낭청과 한성부 관원과 당부(當部)의 관원이 입회하여 측량한 칸수에 대해 별단으로 서계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관례대로 보상토록 하라." 하였다.
"경덕궁 북쪽 담을 물려 짓는 곳에 들어가게 된 각인의 집터를 도감 낭청과 한성부 관원과 당부(當部)의 관원이 입회하여 측량한 칸수에 대해 별단으로 서계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관례대로 보상토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전일 양사의 계사 가운데 징병에 관한 일을 조보(朝報)에 내면 안되는데 조보에 내어 중외에 전파시켰으니 정원이 너무도 잘못했다. 지금 이후로 이런 일은 조보에 내지 말라."
"전일 양사의 계사 가운데 징병에 관한 일을 조보(朝報)에 내면 안되는데 조보에 내어 중외에 전파시켰으니 정원이 너무도 잘못했다. 지금 이후로 이런 일은 조보에 내지 말라."

 

전교하였다. "박정길(朴鼎吉)이 있는 곳에 선전관을 시켜 밤을 도와 급히 달려가서 주문을 전해주고 곧장 강을 건너가도록 하라."
"박정길(朴鼎吉)이 있는 곳에 선전관을 시켜 밤을 도와 급히 달려가서 주문을 전해주고 곧장 강을 건너가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박정길이 있는 곳에 뒤의 주문 1건을 베껴 보내야 하는지 비변사로 하여금 급히 의논해 조처케 하라. 그리고 우리 나라 사정 및 진강(鎭江)에 천병(天兵)을 내보내는 일에 관해 다시 더 마음을 다해 주선하라고 상세히 하유하라."
"박정길이 있는 곳에 뒤의 주문 1건을 베껴 보내야 하는지 비변사로 하여금 급히 의논해 조처케 하라. 그리고 우리 나라 사정 및 진강(鎭江)에 천병(天兵)을 내보내는 일에 관해 다시 더 마음을 다해 주선하라고 상세히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도감의 요포(料布)가 거의 다 떨어져 큰 공사가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때 이를 담당하는 당상은 원망을 감수하면서라도 떠맡고 나서면서 비방을 피할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니, 어떻게든 주선하여 모을 대책을 다방면으로 강구하여 급히 처치토록 하라."
"도감의 요포(料布)가 거의 다 떨어져 큰 공사가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때 이를 담당하는 당상은 원망을 감수하면서라도 떠맡고 나서면서 비방을 피할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니, 어떻게든 주선하여 모을 대책을 다방면으로 강구하여 급히 처치토록 하라."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의 주사(舟師)와 초군(哨軍) 5, 6백 명을 도감에서 가려 정해 잘 타이르도록 한 일 등에 대해서는 일체 분부하신 대로 늘 단속을 가하면서 착실히 거행하고 있습니다. 또 주사의 대장(大將)에 대해서는 비변사가 이미 의망하여 서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군(中軍)의 경우는, 무신인 당상 양호(梁護)가 일찍이 낭청으로서 그 일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주사에 대한 일을 익숙히 알고 있는데 직질이 오름에 따라 그 직책에서 갈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다각도로 요리하고 정돈해야 할 때를 당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마땅하겠기에 양호를 단망(單望)으로 서계합니다. 이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때 왕이 바다로 나가 오랑캐를 피할 계책을 낸 나머지 특별히 주사 도감(舟師都監)을 설치하여 삼남(三南)과 해서(海西)의 전선을 모아들이게 하는 한편, 사치하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용주(龍舟)를 만들어 서강(西江)에 정박시키게 하였다. 그리고 이응해(李應獬)를 대장으로 삼고 양호를 중군으로 삼았는데, 이 두 사람은 모두 왕의 총애를 받는 자들로서 천 금을 뇌물로 주고 그 자리를 얻었다. 그리하여 크게 공사를 일으켜 백성의 고혈을 쥐어 짜면서 모두 자기를 살찌우며 위를 기쁘게 하려고만 하였는데, 주사는 끝내 모양도 갖추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백성들이 더욱 통분스럽게 여겼다.】
"도감의 주사(舟師)와 초군(哨軍) 5, 6백 명을 도감에서 가려 정해 잘 타이르도록 한 일 등에 대해서는 일체 분부하신 대로 늘 단속을 가하면서 착실히 거행하고 있습니다. 또 주사의 대장(大將)에 대해서는 비변사가 이미 의망하여 서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군(中軍)의 경우는, 무신인 당상 양호(梁護)가 일찍이 낭청으로서 그 일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주사에 대한 일을 익숙히 알고 있는데 직질이 오름에 따라 그 직책에서 갈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다각도로 요리하고 정돈해야 할 때를 당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마땅하겠기에 양호를 단망(單望)으로 서계합니다. 이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때 왕이 바다로 나가 오랑캐를 피할 계책을 낸 나머지 특별히 주사 도감(舟師都監)을 설치하여 삼남(三南)과 해서(海西)의 전선을 모아들이게 하는 한편, 사치하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용주(龍舟)를 만들어 서강(西江)에 정박시키게 하였다. 그리고 이응해(李應獬)를 대장으로 삼고 양호를 중군으로 삼았는데, 이 두 사람은 모두 왕의 총애를 받는 자들로서 천 금을 뇌물로 주고 그 자리를 얻었다. 그리하여 크게 공사를 일으켜 백성의 고혈을 쥐어 짜면서 모두 자기를 살찌우며 위를 기쁘게 하려고만 하였는데, 주사는 끝내 모양도 갖추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백성들이 더욱 통분스럽게 여겼다.】

 

성절사 윤휘를 인견하였는데, 우부승지 이명남, 가주서 한여현, 기사관 안응로·신기가 입시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중국 조정에서 징병을 요구해 온 일에 대해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상국이 모욕을 받은 이상 달려가 구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 나라의 병력이 약하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징병해서 들여보내는 일로 말한다면, 임진년에 우리를 구제해 준 은혜가 없다 하더라도 신자(臣子)의 도리상 당연히 난리를 구하러 달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병력이 약하여 전투에 임하면 먼저 동요된 나머지 중국의 위엄을 손상시킬까 두렵다. 그럴 경우 우리 나라의 불행일 뿐만이 아니라 필시 중국 군사들의 사기를 꺾는 결과가 빚어지고 말 것이기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여러 과도관(科道官)들이 탄핵하여 논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의 일을 중국 조정에서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도 비국의 신하들은 이를 지나치게 염려한 나머지 늘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경이 이제 경사에 가면 완벽하게 잘 정문(呈文)을 하고 오도록 하라."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비국의 신하들 가운데 어찌 잘 계책을 세워 국가를 편안하게 할 자가 없겠습니까. 신도 마음을 다해 주선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경이 의주(義州)에 가서 박정길(朴鼎吉)과 곽천호(郭天豪) 등을 보거든 군문(軍門)과 각 아문에 이야기를 잘하라고 말해 주어라."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가서 유시하고 상의해서 주선토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노적(奴賊)이 거세게 날뛰고 있으니 아무리 중국 조정의 군병이라 하더라도 멀리서 위세를 떨치며 성세(聲勢)를 돋우기만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 소굴로 깊이 들어가 기필코 섬멸시키려 할 경우에는 불리해질 걱정이 없지 않다. 경이 중국 조정에 들어가거든 사태의 진전을 살펴가면서 진퇴하라고 모를 드러내지 말고서 이야기를 잘해 설명하라."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성상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10일에 출발하면 절일(節日)에 댈 수 있겠는가?"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지난해 이척(李惕)의 사행(使行) 때 9일 출발했는데 절일에 댈 수 있었습니다. 신이 속도를 배로 해서 강을 건너 군문 등에게 정문(呈文)한 뒤에 앞으로 나아가면 댈 수 있습니다." 하였다. 윤휘가 아뢰기를, "신은 전부터 경사에 가는 사신들이 별인정(別人情)114)   문제로 계청하는 것을 매우 온당치 않게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이 가면서 별인정 조로 2천 냥(兩)을 지급받았는데 복제(覆題)한 뒤에 예부에 보내거나 병부에 보낼 경우 그 사이에 들어가는 인정이 필시 많을 것입니다. 근래 국가 재정이 고갈되어 감히 다시 청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인정이 혹시라도 부족하게 될까 염려됩니다. 그리고 도중에 양 경략(楊經略)이나 다른 장수를 만나게 될 경우, 중국 조정은 우리 나라와 같지 않아서 반드시 예단(禮單)을 보낸 뒤에야 먼저 소개받을 수가 있는데, 인정이 충분치 못하므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였다.


[註 114] 별인정(別人情) : 특별히 정표로 주는 물품이나 돈.
"중국 조정에서 징병을 요구해 온 일에 대해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상국이 모욕을 받은 이상 달려가 구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 나라의 병력이 약하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징병해서 들여보내는 일로 말한다면, 임진년에 우리를 구제해 준 은혜가 없다 하더라도 신자(臣子)의 도리상 당연히 난리를 구하러 달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병력이 약하여 전투에 임하면 먼저 동요된 나머지 중국의 위엄을 손상시킬까 두렵다. 그럴 경우 우리 나라의 불행일 뿐만이 아니라 필시 중국 군사들의 사기를 꺾는 결과가 빚어지고 말 것이기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여러 과도관(科道官)들이 탄핵하여 논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의 일을 중국 조정에서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도 비국의 신하들은 이를 지나치게 염려한 나머지 늘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경이 이제 경사에 가면 완벽하게 잘 정문(呈文)을 하고 오도록 하라."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비국의 신하들 가운데 어찌 잘 계책을 세워 국가를 편안하게 할 자가 없겠습니까. 신도 마음을 다해 주선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경이 의주(義州)에 가서 박정길(朴鼎吉)과 곽천호(郭天豪) 등을 보거든 군문(軍門)과 각 아문에 이야기를 잘하라고 말해 주어라."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가서 유시하고 상의해서 주선토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노적(奴賊)이 거세게 날뛰고 있으니 아무리 중국 조정의 군병이라 하더라도 멀리서 위세를 떨치며 성세(聲勢)를 돋우기만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 소굴로 깊이 들어가 기필코 섬멸시키려 할 경우에는 불리해질 걱정이 없지 않다. 경이 중국 조정에 들어가거든 사태의 진전을 살펴가면서 진퇴하라고 모를 드러내지 말고서 이야기를 잘해 설명하라."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성상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10일에 출발하면 절일(節日)에 댈 수 있겠는가?"
하니, 윤휘가 아뢰기를,
"지난해 이척(李惕)의 사행(使行) 때 9일 출발했는데 절일에 댈 수 있었습니다. 신이 속도를 배로 해서 강을 건너 군문 등에게 정문(呈文)한 뒤에 앞으로 나아가면 댈 수 있습니다."
하였다. 윤휘가 아뢰기를,
"신은 전부터 경사에 가는 사신들이 별인정(別人情)114)   문제로 계청하는 것을 매우 온당치 않게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이 가면서 별인정 조로 2천 냥(兩)을 지급받았는데 복제(覆題)한 뒤에 예부에 보내거나 병부에 보낼 경우 그 사이에 들어가는 인정이 필시 많을 것입니다. 근래 국가 재정이 고갈되어 감히 다시 청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인정이 혹시라도 부족하게 될까 염려됩니다. 그리고 도중에 양 경략(楊經略)이나 다른 장수를 만나게 될 경우, 중국 조정은 우리 나라와 같지 않아서 반드시 예단(禮單)을 보낸 뒤에야 먼저 소개받을 수가 있는데, 인정이 충분치 못하므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였다.

 

6월 8일 을축

정원이 아뢰기를, "영정(影幀)을 수원(水原)에서 옮겨 출발시킬 날짜를 7월 24일로 가려 정했는데, 과거를 22일에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경기에서 응시할 무사들이 필시 많아 2일 안으로 시험을 끝내기는 형세상 어려울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과거 시험 날짜를 참작해서 앞당겨 정하도록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을 수원(水原)에서 옮겨 출발시킬 날짜를 7월 24일로 가려 정했는데, 과거를 22일에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경기에서 응시할 무사들이 필시 많아 2일 안으로 시험을 끝내기는 형세상 어려울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과거 시험 날짜를 참작해서 앞당겨 정하도록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인경궁에 친림할 날짜로 13일을 좋지 않다고 하니 11일이나 다른 날짜를 일관(日官)에게 다시 물어 고쳐서 부표(付標)하라."
"인경궁에 친림할 날짜로 13일을 좋지 않다고 하니 11일이나 다른 날짜를 일관(日官)에게 다시 물어 고쳐서 부표(付標)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박승종(朴承宗)이 현재 아비 상중에 있습니다만 지금 기복시키라는 명이 계셨으므로 복상 단자(卜相單子)에 그도 포함시켜 서계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박승종(朴承宗)이 현재 아비 상중에 있습니다만 지금 기복시키라는 명이 계셨으므로 복상 단자(卜相單子)에 그도 포함시켜 서계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무릇 유수(留守)라고 하는 것은 고도(古都)를 맡은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따라서 강도(江都)의 관원을 무턱대고 유수라는 명호로 일컫는 것은 부당하니 부윤(府尹)으로 개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무릇 유수(留守)라고 하는 것은 고도(古都)를 맡은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따라서 강도(江都)의 관원을 무턱대고 유수라는 명호로 일컫는 것은 부당하니 부윤(府尹)으로 개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병조 판서 유희분이 정사한 데 대해 전교하였다. "이런 때에 사마(司馬)115)  의 장관이 어떻게 사퇴할 수 있는가. 더구나 앞으로 거둥할 일이 있고 또 직접 만나서 의논할 일도 있으니 조리하여 속히 출사하라."


[註 115] 사마(司馬) : 병조.
"이런 때에 사마(司馬)115)  의 장관이 어떻게 사퇴할 수 있는가. 더구나 앞으로 거둥할 일이 있고 또 직접 만나서 의논할 일도 있으니 조리하여 속히 출사하라."

 

전교하였다. "박승종을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계하하라."
"박승종을 도체찰사(都體察使)로 계하하라."

 

심돈(沈惇)을 도검찰사(都檢察使)로, 유몽룡(劉夢龍)을 함경 방어사로 삼았다.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치계하였다. "경략(經略) 양호(楊鎬)가 지난달 24일에 산해관(山海關)을 나와 전둔위(前屯衛)116) 상임(上任)에 이르렀습니다."


[註 116] 전둔위(前屯衛) : 산해관 동쪽 지역.
"경략(經略) 양호(楊鎬)가 지난달 24일에 산해관(山海關)을 나와 전둔위(前屯衛)116) 상임(上任)에 이르렀습니다."

 

전교하였다. "이 적이 간첩 활동을 벌이며 엿보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군기(軍機)에 관한 일체의 사항이 절대로 누설되지 않도록 하고 변경에 돌아다니는 수상한 자가 있거든 항상 엄밀하게 기찰하도록 할 것이며, 귀화한 호인(胡人)들에 대해서는 더욱 세밀히 살피면서 변방 고을을 드나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양계(兩界) 감사와 병사에게 명백히 하유하여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이 적이 간첩 활동을 벌이며 엿보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군기(軍機)에 관한 일체의 사항이 절대로 누설되지 않도록 하고 변경에 돌아다니는 수상한 자가 있거든 항상 엄밀하게 기찰하도록 할 것이며, 귀화한 호인(胡人)들에 대해서는 더욱 세밀히 살피면서 변방 고을을 드나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양계(兩界) 감사와 병사에게 명백히 하유하여 착실하게 거행토록 하라."

 

전교하였다. "근래 서쪽 변방의 소식 때문에 유언비어가 일어나 법석을 떨면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혹 짐짝을 나르고 다투어 피난할 계책을 꾸미고 있다 한다. 무슨 놀랄만한 급보가 있기에 이렇듯 경거망동을 한단 말인가. 도성의 사민들이 필시 서쪽 변방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상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니, 속히 방문(榜文)을 내걸고 효유하며 경거망동하지 말고 편안히 있으면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긴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이제는 기필코 우리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상세히 설명해 주어 진정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케 하라."
"근래 서쪽 변방의 소식 때문에 유언비어가 일어나 법석을 떨면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혹 짐짝을 나르고 다투어 피난할 계책을 꾸미고 있다 한다. 무슨 놀랄만한 급보가 있기에 이렇듯 경거망동을 한단 말인가. 도성의 사민들이 필시 서쪽 변방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상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니, 속히 방문(榜文)을 내걸고 효유하며 경거망동하지 말고 편안히 있으면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긴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이제는 기필코 우리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상세히 설명해 주어 진정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을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케 하라."

 

유공량(柳公亮)을 형조 판서로, 이위경(李偉卿)을 우승지로, 이명남(李命男)을 좌부승지로, 정규(鄭逵)를 우부승지로, 김치(金緻)를 동부승지로, 백대형(白大珩)을 형조 참의로, 김질간(金質幹)을 판결사로, 이창후(李昌後)를 전라 감사로, 여우길(呂祐吉)을 공홍 감사(公洪監司)로, 박경신(朴慶新)을 경상 감사로, 김존경(金存敬)을 강원 감사로, 안륵(安玏)을 전라 좌수사로, 원수신(元守身)을 전라 우수사로, 유림(柳琳)을 공홍 수사로, 황덕부(黃德符)를 응교로, 한명욱(韓明勖)을 장령으로, 남명우(南溟羽)를 지평으로, 윤성임(尹聖任)을 예조 정랑으로, 황중윤(黃中允)을 사서(司書)로, 최명선(崔明善)을 예조 좌랑으로, 심지청(沈之淸)을 설서로, 임장(任章)을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송안정(宋安廷)을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윤민일(尹民逸)을 동래 부사(東萊府使)로, 【민일이 수세관(收稅官)으로 있으면서 뇌물을 주고 이 자리를 얻었다. 이때 오윤겸(吳允謙) 등이 일본에서 돌아오다 대마도(對馬島)에 이르렀을 때 왜인들이 말하기를 ‘듣건대 동래 부사는 수세관이 될 예정이라 한다.’고 하자, 윤겸 등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였는데 부산(釜山)에 도착하고나서 이렇게 임명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심대복(沈大復)을 대구 부사(大丘府使)로, 김성옥(金成玉)을 개천 군수(价川郡守)로, 양극선(梁克選)을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변삼근(卞三近)을 경기 도사(京畿都事)로, 김지남(金止男)을 남양 부사(南陽府使)로 삼았다.

 

전 밀창 부원군(密昌府院君) 박승종(朴承宗)을 기복시켜 의정부 우의정 겸 도체찰사로 삼았다. 【우리 강토 안에서 당시 전란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승종이 인친(姻親)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기복시키라는 명이 있게 된 것이었다. 승종은 평소 행검(行檢)이 없었으며 아비를 아비답게 대하지도 않았다. 거상(居喪) 중의 음식과 잠자리도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승종이 이때에 이르러 공의를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나와서 숙배하지 못한 채 집에 있으면서 간혹 의논을 드리기만 하였다.】

 

6월 9일 병인

전교하였다. "근래 도성 안에서 심지어는 유식한 사대부들까지 마소로 짐짝을 실어 나르는 것이 종일토록 계속되고 있다 하는데, 그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듣기만 해도 놀랍다. 지금 이후로 또 이런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적발해서 중률(重律)을 적용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한성부를 시켜 방(榜)을 내걸어 타이르게 하여 진정시키도록 노력하라."
"근래 도성 안에서 심지어는 유식한 사대부들까지 마소로 짐짝을 실어 나르는 것이 종일토록 계속되고 있다 하는데, 그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듣기만 해도 놀랍다. 지금 이후로 또 이런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적발해서 중률(重律)을 적용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한성부를 시켜 방(榜)을 내걸어 타이르게 하여 진정시키도록 노력하라."

 

전교하였다. "며칠 사이에 도성의 사민들이 나가 피난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으므로 성안이 날이 갈수록 점점 허전해지고 있다 한다. 지금 이후로는 포도청으로 하여금 각별히 살펴 적발케 한 뒤 효수(梟首)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진정시킬 계책을 힘써 마련토록 하라. 그리고 재상이나 조관(朝官)이 가족을 내보내고 짐짝을 옮기는 경우에도 양사로 하여금 사실에 입각해서 탄핵해 다스리게 하는 일을 단속해서 거행토록 해야 마땅하다. 이 일을 속히 의논해 처리하라. "
"며칠 사이에 도성의 사민들이 나가 피난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으므로 성안이 날이 갈수록 점점 허전해지고 있다 한다. 지금 이후로는 포도청으로 하여금 각별히 살펴 적발케 한 뒤 효수(梟首)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진정시킬 계책을 힘써 마련토록 하라. 그리고 재상이나 조관(朝官)이 가족을 내보내고 짐짝을 옮기는 경우에도 양사로 하여금 사실에 입각해서 탄핵해 다스리게 하는 일을 단속해서 거행토록 해야 마땅하다. 이 일을 속히 의논해 처리하라. "

 

전교하였다. "박정길(朴鼎吉)에게 군문(軍門)과 경략(經略)에게 가서 다방면으로 주선하며 극력 잘 도모함으로써 기필코 일이 순조롭게 풀리도록 하라고 상세히 하유하라. 그리고 전후의 주문(奏文)과 양계(兩界)에 보낸 호서(胡書)를 일일이 베껴 급히 선전관을 보내 박정길에게 전해주도록 하라."
"박정길(朴鼎吉)에게 군문(軍門)과 경략(經略)에게 가서 다방면으로 주선하며 극력 잘 도모함으로써 기필코 일이 순조롭게 풀리도록 하라고 상세히 하유하라. 그리고 전후의 주문(奏文)과 양계(兩界)에 보낸 호서(胡書)를 일일이 베껴 급히 선전관을 보내 박정길에게 전해주도록 하라."

 

6월 10일 정묘

성절 겸 진주사(聖節兼陳奏使) 윤휘를 경사(京師)에 가게 했다.

 

선공감 주부 정사온(鄭思溫)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급하지 않은 공사를 중단하여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시고 오로지 군정(軍政)을 급무로 삼으소서. 속히 원수와 장수들을 내보내어 팔도의 군병을 통솔하면서 한편으로는 상국의 징집을 기다리고 한편으로는 노적(奴賊)의 침공에 대비토록 하소서. 염치를 숭상하게 하고 탐욕스러운 풍조를 개혁하며 언로를 널리 열고 폐단을 제거하며 인심을 수습하고 군정(軍情)을 기쁘게 하며 원옥(冤獄)을 신설해주고 추국청을 혁파하며 전공이 있는 자를 임명하고 널리 무사를 뽑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건대 이 시대를 걱정하는 뜻을 충분히 알겠다. 의논하여 처리토록 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비변사에 내려 회계토록 하라." 하였다.
"급하지 않은 공사를 중단하여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시고 오로지 군정(軍政)을 급무로 삼으소서. 속히 원수와 장수들을 내보내어 팔도의 군병을 통솔하면서 한편으로는 상국의 징집을 기다리고 한편으로는 노적(奴賊)의 침공에 대비토록 하소서. 염치를 숭상하게 하고 탐욕스러운 풍조를 개혁하며 언로를 널리 열고 폐단을 제거하며 인심을 수습하고 군정(軍情)을 기쁘게 하며 원옥(冤獄)을 신설해주고 추국청을 혁파하며 전공이 있는 자를 임명하고 널리 무사를 뽑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건대 이 시대를 걱정하는 뜻을 충분히 알겠다. 의논하여 처리토록 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비변사에 내려 회계토록 하라."
하였다.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방금 금호문(金虎門)의 수문장 이유신(李有信)이 와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금호문에 불쑥 뛰어들어 오기에 붙잡고 물어 보았더니 자칭 부평(富平)에 사는 품관(品官) 오득인(吳得仁)이라고 하면서 고변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그를 붙잡아 데려와서 상세히 물어 보았더니 특별한 문서는 없었고 단지 입으로 이야기하기를 「병진년 11월 초승 무렵에 서울 남부(南部)의 동네에 사는 사인(士人) 한필수(韓必壽)가 나와 함께 그 집에서 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필수가 주상을 향해 위를 범하는 대역부도(大逆不道)한 말 두 가지를 하는 것을 들었다. 필수가 말할 때 나하고만 상대하였을 뿐 같이 들은 다른 사람은 없다.」고 했다.’ 하였습니다. 신이 그의 말을 듣자니 귀로 차마 들을 수 없고 입으로도 차마 말할 수 없고 붓으로도 차마 쓸 수 없는 것이기에 감히 아룁니다. 이 사람은 성격상 고발자에 해당되는데 도주할 염려도 있으니 법대로 수금하소서.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한필수를 붙잡아 오고 두 가지 일이라는 것을 상세히 서계토록 하라." 하였다.
"방금 금호문(金虎門)의 수문장 이유신(李有信)이 와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금호문에 불쑥 뛰어들어 오기에 붙잡고 물어 보았더니 자칭 부평(富平)에 사는 품관(品官) 오득인(吳得仁)이라고 하면서 고변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그를 붙잡아 데려와서 상세히 물어 보았더니 특별한 문서는 없었고 단지 입으로 이야기하기를 「병진년 11월 초승 무렵에 서울 남부(南部)의 동네에 사는 사인(士人) 한필수(韓必壽)가 나와 함께 그 집에서 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필수가 주상을 향해 위를 범하는 대역부도(大逆不道)한 말 두 가지를 하는 것을 들었다. 필수가 말할 때 나하고만 상대하였을 뿐 같이 들은 다른 사람은 없다.」고 했다.’ 하였습니다. 신이 그의 말을 듣자니 귀로 차마 들을 수 없고 입으로도 차마 말할 수 없고 붓으로도 차마 쓸 수 없는 것이기에 감히 아룁니다. 이 사람은 성격상 고발자에 해당되는데 도주할 염려도 있으니 법대로 수금하소서.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한필수를 붙잡아 오고 두 가지 일이라는 것을 상세히 서계토록 하라."
하였다.

 

정원이 서계하였다. "부평의 주민 오득인이 고변한 한필수의 대역부도한 말의 내용은 ‘아비를 시해하고 형을 시해하고 아우를 죽였다. 은냥(銀兩)을 받고 벼슬자리를 준 뒤 가죽 주머니 속에 돈을 집어넣고는 늘 주머니를 흔들어 대면서 「어느 때나 이것을 가지고 피난을 갈꼬.」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평의 주민 오득인이 고변한 한필수의 대역부도한 말의 내용은 ‘아비를 시해하고 형을 시해하고 아우를 죽였다. 은냥(銀兩)을 받고 벼슬자리를 준 뒤 가죽 주머니 속에 돈을 집어넣고는 늘 주머니를 흔들어 대면서 「어느 때나 이것을 가지고 피난을 갈꼬.」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교하였다. "급할 때 보장(保障)으로 삼을 곳을 미리부터 강구해두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도성이야말로 종묘 사직이 있는 곳이고 만백성이 의지하는 곳이니 어쩔 수 없이 위급한 상황이 된 뒤에야 조용히 살펴 처리해야지 섣불리 움직여서는 정말 안될 것이다. 도성의 수어 대장(守禦大將)을 미리 차출해 착실히 요리하게 함으로써 임진년 때 흩어져 무너졌던 것처럼 되지 않도록 하라."
"급할 때 보장(保障)으로 삼을 곳을 미리부터 강구해두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도성이야말로 종묘 사직이 있는 곳이고 만백성이 의지하는 곳이니 어쩔 수 없이 위급한 상황이 된 뒤에야 조용히 살펴 처리해야지 섣불리 움직여서는 정말 안될 것이다. 도성의 수어 대장(守禦大將)을 미리 차출해 착실히 요리하게 함으로써 임진년 때 흩어져 무너졌던 것처럼 되지 않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하삼도(下三道)와 황연도(黃延道)의 기한이 만료된 선박들을 일일이 올려 보내게 한 뒤 다시 수리하여 쓰도록 하라. 공홍도(公洪道)와 황연도 선박의 경우는 다 올려 보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참작해서 적당량을 올려 보내게 하여 급할 때의 수요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하삼도(下三道)와 황연도(黃延道)의 기한이 만료된 선박들을 일일이 올려 보내게 한 뒤 다시 수리하여 쓰도록 하라. 공홍도(公洪道)와 황연도 선박의 경우는 다 올려 보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참작해서 적당량을 올려 보내게 하여 급할 때의 수요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서쪽 변방의 일은, 앞으로 어떤 근심이 있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현재로는 섣불리 움직일 근심은 없는 듯한데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민간이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피난나가는 사람과 짐을 실어나르는 것을 신들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성명께서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 적자(赤子)를 버리지 않겠다.’고 전교하신다면, 도성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그 누가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인심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참으로 이번 일에 달려 있으니, 한성부로 하여금 곳곳에 방을 내걸어 성상의 분부를 효유하게 하는 동시에 포도청으로 하여금 망령되이 행동하여 대중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을 기찰하여 특별히 중하게 처치하도록 하고, 사대부 가운데 먼저 이를 범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도 법사(法司)로 하여금 드러나는 대로 치죄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서쪽 변방의 일은, 앞으로 어떤 근심이 있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현재로는 섣불리 움직일 근심은 없는 듯한데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민간이 소란스럽기만 합니다. 피난나가는 사람과 짐을 실어나르는 것을 신들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성명께서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 적자(赤子)를 버리지 않겠다.’고 전교하신다면, 도성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그 누가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인심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참으로 이번 일에 달려 있으니, 한성부로 하여금 곳곳에 방을 내걸어 성상의 분부를 효유하게 하는 동시에 포도청으로 하여금 망령되이 행동하여 대중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을 기찰하여 특별히 중하게 처치하도록 하고, 사대부 가운데 먼저 이를 범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도 법사(法司)로 하여금 드러나는 대로 치죄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6월 11일 무진

우찬성 이충(李沖)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도감의 미포(米布)가 몇 달 안으로 다 떨어질텐데 달리 꾸려나갈 방책이 없으니 한 궁궐의 공사를 중단하여 조금이라도 백성의 힘이 펴지게 하소서. 성상의 시대에 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귀천을 막론하고 용서해줄 만한 정상이 있을 경우에는 가능한 한 널리 사면하는 은전을 베푸시어 인심을 위로해 주소서. 그리고 새로 제수하신 비변사 주사(舟師) 차지(次知)의 직임을 속히 체차하시고 적합한 사람을 임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다.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극진히 수행하라. 궁궐에 대한 일은 앞으로 서쪽 변방의 사태를 다시 보아가면서 참작해 처리하겠다. 여타의 일은 유념하겠다." 하였다.
"도감의 미포(米布)가 몇 달 안으로 다 떨어질텐데 달리 꾸려나갈 방책이 없으니 한 궁궐의 공사를 중단하여 조금이라도 백성의 힘이 펴지게 하소서. 성상의 시대에 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귀천을 막론하고 용서해줄 만한 정상이 있을 경우에는 가능한 한 널리 사면하는 은전을 베푸시어 인심을 위로해 주소서. 그리고 새로 제수하신 비변사 주사(舟師) 차지(次知)의 직임을 속히 체차하시고 적합한 사람을 임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다.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극진히 수행하라. 궁궐에 대한 일은 앞으로 서쪽 변방의 사태를 다시 보아가면서 참작해 처리하겠다. 여타의 일은 유념하겠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번에 노적(奴賊)이 소방(小邦)을 침범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미 드러났는데 화기수(火器手) 6, 7천을 봉황성(鳳凰城) 근처에 보내 주둔시키면 요동(遼東)과 광령(廣寧) 지방 역시 의지하는 바가 있게 될 것이다.’는 내용으로 경유하는 각 아문과 병부 등에 가서 충분히 마음을 다해 주선하라고 박정길(朴鼎吉)에게 하유하라."
"이번에 노적(奴賊)이 소방(小邦)을 침범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미 드러났는데 화기수(火器手) 6, 7천을 봉황성(鳳凰城) 근처에 보내 주둔시키면 요동(遼東)과 광령(廣寧) 지방 역시 의지하는 바가 있게 될 것이다.’는 내용으로 경유하는 각 아문과 병부 등에 가서 충분히 마음을 다해 주선하라고 박정길(朴鼎吉)에게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포도 대장이 한 사람씩 서로 번갈아 나가서 도성 안의 기찰과 적을 체포하는 일을 순검하라. 그리고 대장이 나간 편은 종사관이 군관(軍官)·부장(部將)과 군사들을 이끌고 궐문 밖을 대신 지키면서 기찰과 순복(巡伏)을 검칙하라. 대장이 교대할 때에는 호위 대장 한 사람이 포도 대장 직수처(直守處)에 와서 지키면서 직접 얼굴을 보고 교대하라. 이상의 일을 살펴서 하라."
"포도 대장이 한 사람씩 서로 번갈아 나가서 도성 안의 기찰과 적을 체포하는 일을 순검하라. 그리고 대장이 나간 편은 종사관이 군관(軍官)·부장(部將)과 군사들을 이끌고 궐문 밖을 대신 지키면서 기찰과 순복(巡伏)을 검칙하라. 대장이 교대할 때에는 호위 대장 한 사람이 포도 대장 직수처(直守處)에 와서 지키면서 직접 얼굴을 보고 교대하라. 이상의 일을 살펴서 하라."

 

6월 12일 기사

정원이 아뢰기를, "죄인 한필수(韓必壽)가 자수하였습니다. 추국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오늘 바로 정국(庭鞫)하라고 전교하였다.
"죄인 한필수(韓必壽)가 자수하였습니다. 추국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오늘 바로 정국(庭鞫)하라고 전교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이조에서 초기(草記)를 올리자 단천 군수(端川郡守) 이정신(李廷臣)을 호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고 하교하셨습니다. 이정신은 청렴하고 성실하며 잘 다스리는 데다 은(銀)을 캐는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어 적절히 일을 처리할 수가 있기 때문에 잉임(仍任)시켜 성과를 내도록 하자는 뜻을 이미 계청드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병세가 실제로 얼마나 위중한지에 대해서는 신들이 확실히 알 수 없으니, 해조로 하여금 다시 자세히 알아보게 한 뒤 처치하소서. "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바야흐로 은을 캐내야 하니 이정신을 잉임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이조에서 초기(草記)를 올리자 단천 군수(端川郡守) 이정신(李廷臣)을 호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고 하교하셨습니다. 이정신은 청렴하고 성실하며 잘 다스리는 데다 은(銀)을 캐는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어 적절히 일을 처리할 수가 있기 때문에 잉임(仍任)시켜 성과를 내도록 하자는 뜻을 이미 계청드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병세가 실제로 얼마나 위중한지에 대해서는 신들이 확실히 알 수 없으니, 해조로 하여금 다시 자세히 알아보게 한 뒤 처치하소서. "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바야흐로 은을 캐내야 하니 이정신을 잉임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금부가 아뢰기를, "본부의 판부사 자리가 오래도록 비어 있는 데도 차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강상(綱常)에 관련된 중죄인과 긴급히 회계해야 할 공사마저도 몇 달째 지체되고 있으니 이것만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추국하라는 명이 내렸는데, 이미 행공(行公)할 대신도 없는 데다 판부사마저 없으니, 신들만 국문에 참여하기는 미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 공초를 받아서 아뢰어라." 하였다.
"본부의 판부사 자리가 오래도록 비어 있는 데도 차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강상(綱常)에 관련된 중죄인과 긴급히 회계해야 할 공사마저도 몇 달째 지체되고 있으니 이것만도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추국하라는 명이 내렸는데, 이미 행공(行公)할 대신도 없는 데다 판부사마저 없으니, 신들만 국문에 참여하기는 미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 공초를 받아서 아뢰어라."
하였다.

 

오득인(吳得仁)을 국문하였는데, 득인이 공초하기를, "한필수는 신의 누이의 아들입니다. 병진년 10월 무렵에 일이 있어 상경했다가 그가 사는 남부동(南部洞)에 찾아가 보았더니, 이야기하던 도중에 필수가 신에게 말하기를 ‘주상이 아비를 시해하고 형을 시해하고 아우를 죽였으니, 만고에 어찌 이런 임금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관직을 하나 제수할 때마다 은(銀) 2백 냥씩을 받는데, 가죽 주머니를 만들어 가득 채워넣은 뒤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보면서 말하기를 「어느 때나 피난길을 떠나게 될 것인고.」 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이웃에 부령 부사(富寧府使)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모르겠습니다만, 필수가 신에게 말하기를 ‘이 부사도 2백 냥의 은자(銀子)를 바쳤다 한다.’ 하였습니다. 숙질(叔姪) 사이인데 불편한 일만 없었다면 어찌 감히 고변(告變)을 했겠습니까. 필수가 신의 처와 모의하여 신을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신이 간신히 탈출해 와서 고변한 것입니다." 하였다. 한필수가 공초하기를, "득인이 병진년 겨울부터 사귀(邪鬼)가 씌여 광증(狂症)이 발작하였는데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몸을 도사린 채 감히 머리도 내놓지 못하면서 늘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약을 조제하여 치료하려고 하자 거꾸로 신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의심을 하고는 낫을 들고서 쫓아 몰아내기도 하였는데, 그 뒤로 늘 ‘필수가 내 처와 모의하여 나를 죽이려 하니 내가 멀리 도망가 피신해야겠다.’고 하였으므로 그 집 사람이 굳게 지키면서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달 8일 밤에 그의 처자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그 집을 빠져나와 상경해서는 곧장 궐하에 들어가 지친(至親)을 무고한 것입니다. 광증이 발작한 정상에 대해서는 부평(富平)의 대소 인민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흉역스러운 말을 하다니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국청이 아뢰기를, "득인과 필수의 공초가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의논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였다.
"한필수는 신의 누이의 아들입니다. 병진년 10월 무렵에 일이 있어 상경했다가 그가 사는 남부동(南部洞)에 찾아가 보았더니, 이야기하던 도중에 필수가 신에게 말하기를 ‘주상이 아비를 시해하고 형을 시해하고 아우를 죽였으니, 만고에 어찌 이런 임금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관직을 하나 제수할 때마다 은(銀) 2백 냥씩을 받는데, 가죽 주머니를 만들어 가득 채워넣은 뒤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보면서 말하기를 「어느 때나 피난길을 떠나게 될 것인고.」 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이웃에 부령 부사(富寧府使)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모르겠습니다만, 필수가 신에게 말하기를 ‘이 부사도 2백 냥의 은자(銀子)를 바쳤다 한다.’ 하였습니다. 숙질(叔姪) 사이인데 불편한 일만 없었다면 어찌 감히 고변(告變)을 했겠습니까. 필수가 신의 처와 모의하여 신을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신이 간신히 탈출해 와서 고변한 것입니다."
하였다. 한필수가 공초하기를,
"득인이 병진년 겨울부터 사귀(邪鬼)가 씌여 광증(狂症)이 발작하였는데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몸을 도사린 채 감히 머리도 내놓지 못하면서 늘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약을 조제하여 치료하려고 하자 거꾸로 신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의심을 하고는 낫을 들고서 쫓아 몰아내기도 하였는데, 그 뒤로 늘 ‘필수가 내 처와 모의하여 나를 죽이려 하니 내가 멀리 도망가 피신해야겠다.’고 하였으므로 그 집 사람이 굳게 지키면서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달 8일 밤에 그의 처자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그 집을 빠져나와 상경해서는 곧장 궐하에 들어가 지친(至親)을 무고한 것입니다. 광증이 발작한 정상에 대해서는 부평(富平)의 대소 인민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흉역스러운 말을 하다니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국청이 아뢰기를,
"득인과 필수의 공초가 이와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의논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였다.

 

가주서 유집(柳潗)이 서계하기를, "신이 복상(卜相)에 관한 일로 지난달 18일 명을 받들고 영의정 신 정인홍(鄭仁弘)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가 말하기를 ‘소신(小臣)은 현재 대죄(待罪)하고 있는 중이라서 국가의 대정(大政)에 감히 뭐라고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복상(卜相)에 관한 일로 지난달 18일 명을 받들고 영의정 신 정인홍(鄭仁弘)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가 말하기를 ‘소신(小臣)은 현재 대죄(待罪)하고 있는 중이라서 국가의 대정(大政)에 감히 뭐라고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비망기를 내렸다. "방을 내걸어 알릴 때에 ‘도성이야말로 종묘 사직이 있는 곳이고 만백성이 의지하는 곳인데 이곳을 놔두고 어디로 가겠는가. 설령 상황이 정말 위급해져서 어쩔 수 없이 이어(移御)하게 될 경우라도 마땅히 너희들에게 유시하여 함께 갈 것이요, 임진년 때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전도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는 내용을 상세히 첨가해서 효유하는 속에 포함시켜라."
"방을 내걸어 알릴 때에 ‘도성이야말로 종묘 사직이 있는 곳이고 만백성이 의지하는 곳인데 이곳을 놔두고 어디로 가겠는가. 설령 상황이 정말 위급해져서 어쩔 수 없이 이어(移御)하게 될 경우라도 마땅히 너희들에게 유시하여 함께 갈 것이요, 임진년 때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전도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는 내용을 상세히 첨가해서 효유하는 속에 포함시켜라."

 

6월 13일 경오

전교하였다. "도체찰사를 이미 계하하였으니 부체찰사를 장만(張晩)으로 제수하여 도체찰사와 함께 상의해서 요리하게 하라."
"도체찰사를 이미 계하하였으니 부체찰사를 장만(張晩)으로 제수하여 도체찰사와 함께 상의해서 요리하게 하라."

 

전라도 진사 이해(李垓)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궁(西宮)117)  의 죄악은 전고(前古)에 비할 바가 없는데 아직도 폐출(廢黜)하는 형전을 마무리짓지 않고 있습니다. 태종조(太宗朝)에 정릉(貞陵)118)  을 아들과 관련된 일 때문에 죽은 뒤에도 오히려 추급해서 폐한 일이 있었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정릉의 옛 예에 따라 속히 폐출하는 일을 마무리짓게 하소서."


[註 117] 서궁(西宮) : 인목 대비(仁穆大妃).[註 118] 정릉(貞陵) : 태조의 계비(繼妃)로서 이방석(李芳碩)과 이방번(李芳蕃)의 생모인 신덕 왕후(神德王后)의 능.
"서궁(西宮)117)  의 죄악은 전고(前古)에 비할 바가 없는데 아직도 폐출(廢黜)하는 형전을 마무리짓지 않고 있습니다. 태종조(太宗朝)에 정릉(貞陵)118)  을 아들과 관련된 일 때문에 죽은 뒤에도 오히려 추급해서 폐한 일이 있었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정릉의 옛 예에 따라 속히 폐출하는 일을 마무리짓게 하소서."

 

6월 14일 신미

정원이 아뢰기를, "삼가 황연 감사(黃延監司) 유순익(柳舜翼)의 장계를 보건대, 강음(江陰)의 유생 윤상(尹湘) 등이 상소하여 현감 이무림(李茂林)을 찬미한 일이었습니다. 윤상 등은 백성이고 무림은 수령인만큼 백성의 신분으로 수령을 찬미하는 일이 온 경내를 통틀어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은 타당치 못할 듯한데, 더구나 10여 인이 정소(呈疏)하였고 보면 온 경내의 공론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게다가 현감이 그 고을에 재직하고 있는 때에 이런 거조를 취했고 보면 갑이 볼 때에는 사주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고 을이 볼 때에는 아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실로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곧장 초승(超陞)시키라고 청하기까지 하였으니 일이 지극히 놀랍습니다. 이러한 소를 봉입(捧入)한다면 조정이 살펴서 처리하는 뜻이 정말 없게 될 것이니, 유순익을 추고하고 유상의 소는 도로 내주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 소가 일단 올라 왔으니 본 뒤에 처치하겠다.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삼가 황연 감사(黃延監司) 유순익(柳舜翼)의 장계를 보건대, 강음(江陰)의 유생 윤상(尹湘) 등이 상소하여 현감 이무림(李茂林)을 찬미한 일이었습니다. 윤상 등은 백성이고 무림은 수령인만큼 백성의 신분으로 수령을 찬미하는 일이 온 경내를 통틀어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은 타당치 못할 듯한데, 더구나 10여 인이 정소(呈疏)하였고 보면 온 경내의 공론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게다가 현감이 그 고을에 재직하고 있는 때에 이런 거조를 취했고 보면 갑이 볼 때에는 사주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고 을이 볼 때에는 아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실로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곧장 초승(超陞)시키라고 청하기까지 하였으니 일이 지극히 놀랍습니다. 이러한 소를 봉입(捧入)한다면 조정이 살펴서 처리하는 뜻이 정말 없게 될 것이니, 유순익을 추고하고 유상의 소는 도로 내주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 소가 일단 올라 왔으니 본 뒤에 처치하겠다.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비망기로 ‘심돈(沈惇)이 내려갈 때 안동(安東)도 살피도록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강화 검찰사(江華檢察使)가 경기·황연(黃延)·공홍(公洪)·전라 4도를 겸해 관장하는 일로 입계해서 윤허를 받았기 때문에 4도 검찰사라고 칭했습니다만, 이제 안동도 아울러 간심토록 한다면 5도 검찰사라고 칭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품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망기로 ‘심돈(沈惇)이 내려갈 때 안동(安東)도 살피도록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강화 검찰사(江華檢察使)가 경기·황연(黃延)·공홍(公洪)·전라 4도를 겸해 관장하는 일로 입계해서 윤허를 받았기 때문에 4도 검찰사라고 칭했습니다만, 이제 안동도 아울러 간심토록 한다면 5도 검찰사라고 칭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품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영의정 정인홍(鄭仁弘)이 상차하였다.

 

의주 부윤(義州府尹) 이선복(李善復)이 장계(狀啓)를 올리기를, "삼가 듣건대, 구탄(丘坦)이 참장(參將)에서 체차되고 또 과도관(科道官)의 탄핵을 받았는데 현재 군문(軍門)의 참모관(參謀官)으로 임명되려고 꾀하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이 달 8일에 중강(中江)의 위관(委官) 양진(梁眞)이 와서 참장의 뜻을 전하기를 ‘듣건대 상사(上司)가 귀국의 군병을 우선 강변에 주둔시키고 중국 장수 한 사람을 도강(渡江)시켜 관장하게 하다가 대군이 일제히 도착하기를 기다려 동시에 진격하려 하는데 다만 적임자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귀국이 지금 만약 군문 등 아문에 이자(移咨)하면서 「구탄이 변경에 오래도록 있어 이쪽과 저쪽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데 만약 이런 사람을 얻어 본국의 병마를 관장하도록 책임지운다면 일이 매우 편하게 될 것이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간청한다면 내가 임명될텐데, 그럴 경우 그래도 내가 귀국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대하는 다른 사람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절제사는 속히 국왕에게 이를 보고하라.’ 하였습니다. 중국 장수가 강을 건너와 군병을 지휘한다는 것이 확실한 정보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말한 것이 이와 같기에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삼가 듣건대, 구탄(丘坦)이 참장(參將)에서 체차되고 또 과도관(科道官)의 탄핵을 받았는데 현재 군문(軍門)의 참모관(參謀官)으로 임명되려고 꾀하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이 달 8일에 중강(中江)의 위관(委官) 양진(梁眞)이 와서 참장의 뜻을 전하기를 ‘듣건대 상사(上司)가 귀국의 군병을 우선 강변에 주둔시키고 중국 장수 한 사람을 도강(渡江)시켜 관장하게 하다가 대군이 일제히 도착하기를 기다려 동시에 진격하려 하는데 다만 적임자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귀국이 지금 만약 군문 등 아문에 이자(移咨)하면서 「구탄이 변경에 오래도록 있어 이쪽과 저쪽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데 만약 이런 사람을 얻어 본국의 병마를 관장하도록 책임지운다면 일이 매우 편하게 될 것이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간청한다면 내가 임명될텐데, 그럴 경우 그래도 내가 귀국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대하는 다른 사람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절제사는 속히 국왕에게 이를 보고하라.’ 하였습니다. 중국 장수가 강을 건너와 군병을 지휘한다는 것이 확실한 정보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말한 것이 이와 같기에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흠차 경략 요동 군무 병부 좌시랑 겸 도찰원 우첨도어사(欽差經略遼東軍務兵部左侍郞兼都察院右僉都御史) 양호(楊鎬)가 변무(邊務)에 관해 보낸 표문(票文) 초본(抄本)에, "지금 백호 우승은을 차견(差遣), 관전(寬奠)·진강(鎭江)·창성(昌城) 등 지역에 나아가 변경 밖의 지형 및 강 연안의 수구(水口)와 도로를 답사하게 하고 아울러 창성 총병에게 물어보도록 할 것이며 조사한 대로 지도를 만들게 할 것인데, 이를 토대로 대조하여 조선 국왕이 따로 본관(本官)에 자문을 보내어 일을 내지 않도록 할 것이다. "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이 서장을 급히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지금 백호 우승은을 차견(差遣), 관전(寬奠)·진강(鎭江)·창성(昌城) 등 지역에 나아가 변경 밖의 지형 및 강 연안의 수구(水口)와 도로를 답사하게 하고 아울러 창성 총병에게 물어보도록 할 것이며 조사한 대로 지도를 만들게 할 것인데, 이를 토대로 대조하여 조선 국왕이 따로 본관(本官)에 자문을 보내어 일을 내지 않도록 할 것이다. "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이 서장을 급히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6월 15일 임신

정원이 아뢰기를, "선왕의 법은 지극히 엄하고 중하니 그대로 준수해야지 휘어서 고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봄과 여름철 경기 지방 수령들에 대해 포폄(褒貶)하고 등제(等第)할 때 감사가 수원 부사(水原府使)의 이름 아래에 등제한 것을 써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2백 년 동안 준수해 온 법이 오늘날 비로소 폐지되고 말았으니 뒷날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등제하는 것과 사핵(査覈)하는 것은 본래 상관이 없습니다. 등제했으면 사실대로 기록하고 사핵했으면 그것도 사실대로 써넣으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번신(藩臣)의 입장에서 법을 지키는 정상적인 법도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감히 전에 없던 폐단을 만들었으니 유희량(柳希亮)을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방금 다시 조사해 아뢰라고 명하였다. 그렇다면 아직 조사해 처치하기 전이라서 등제를 하지 않은 것인데 무슨 상관이 있는가. 추고하지 말고 속히 조사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선왕의 법은 지극히 엄하고 중하니 그대로 준수해야지 휘어서 고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 봄과 여름철 경기 지방 수령들에 대해 포폄(褒貶)하고 등제(等第)할 때 감사가 수원 부사(水原府使)의 이름 아래에 등제한 것을 써넣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2백 년 동안 준수해 온 법이 오늘날 비로소 폐지되고 말았으니 뒷날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등제하는 것과 사핵(査覈)하는 것은 본래 상관이 없습니다. 등제했으면 사실대로 기록하고 사핵했으면 그것도 사실대로 써넣으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번신(藩臣)의 입장에서 법을 지키는 정상적인 법도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감히 전에 없던 폐단을 만들었으니 유희량(柳希亮)을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방금 다시 조사해 아뢰라고 명하였다. 그렇다면 아직 조사해 처치하기 전이라서 등제를 하지 않은 것인데 무슨 상관이 있는가. 추고하지 말고 속히 조사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지중추부사 장만(張晩)이 상차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을 체찰 부사(體察副使)로 제수하는 명을 내리셨는데, 국가가 위급해진 때를 당했으면 그야말로 신하로서는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니, 어떤 직책을 제수하든 감당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막론하고 사직하기란 진실로 어려운 것인만큼 오직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나랏일에 이바지하다가 죽은 뒤에나 그만두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도체찰사(都體察使) 박승종(朴承宗)은 제수하는 명이 내려졌는 데도 끄떡않고 거상(居喪)하고 있으면서 빈종(賓從)을 접응하고 사무를 수응하는 일 등을 일체 거절하여 먼 발치로도 쳐다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신의 직분은 바로 좌막(佐幕)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서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묘당에서는 그저 이미 오래 전에 명이 내려졌다고 하면서 일이 매우 급하니 해야 할 일들을 빨리 처리하라고 신을 독촉하고 있는데, 신의 입장에서는 품의(稟議)드릴 곳도 없어 어쩔 줄 모르고 휩쓸려 다니기만 할 뿐 어찌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체찰 부사의 명을 환수해 주소서. 그리고 이 기회에 삼가 염려되는 바를 진달드릴까 합니다. 의주(義州)에서 보내 온 소식이 혹 헛되지 않다고 한다면, 군병을 조사하는 외에 또 도로를 자세히 살핀다고 하는 것은, 그 뜻이 필시 우리 병력으로 하나의 부대를 만든 다음 우리 경내를 통해 진격하겠다는 것이고, 또 고급 장령(將領) 한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 군대를 인솔하게 해 발을 빼지 못하게 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되는 일을 끝내 면하지 못하게 된다면, 병력을 융통성있게 스스로 맡아 처리하기가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오로지 절제(節制)를 받아 진퇴할 수밖에 없게 될텐데, 훈련되지 않은 우리 나라의 군졸 단독으로 새로 정비된 오랑캐를 맞닥뜨리게 할 경우 그 승패의 형세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편으로는 특별히 더 단속하여 전일처럼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다가 중국 조정이 화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니 만약 그 마음을 잃게 되면 뒷날 일어날 환난이 차마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시 재지(才智)와 말솜씨가 있는 인사를 차견(差遣)하여 경략에게 간청을 함으로써 단독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명령을 면할 수 있게만 된다면 어찌 일대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성명께서는 유념해 주소서. 그리고 차관이 곧 경내로 들어올 예정인데 큰 공사가 아직도 정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듯 군대를 일으키고 일이 많은 날을 당하여 영차영차하며 실어 나르는 소리가 혹 차관의 귀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일이 매우 난처하게 될 것이니, 또한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잠시 중단하라고 명하시고 시사(時事)가 조금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소서. 이어 생각건대,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는 참으로 어려우나 만약 극도로 소요스러워지면서 도성이 무너지는 지경에 이른 뒤에야 그 재와(材瓦)나 미포(米布)를 수습하려고 하면 필시 뜻대로 가지런하게 되지 못해 많은 손실을 보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때에 조용히 수습해 저장해둠으로써 전도되는 일을 면하게 한다면 더 이상 다행스러울 수가 없겠습니다. 신이 영선(營繕)을 책임지고 있는 몸으로서 전에 간절한 심정을 진달드렸다가 이미 엄한 분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마음에 사세가 이토록까지 전개된 것을 목도하였기에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재차 번거롭게 해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이런 때에 어찌 사직해서야 되겠는가. 도체찰사와 상의해 처리해서 사기(事機)를 잃지 말도록 하라. 오랑캐의 기병이 짓쳐들어오는 것은 실로 우리가 징병해서 군사를 보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병력이 극도로 허약하여 형편없으니 사정을 직간(直諫)하는 것이야 안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서쪽 변경에서 보고가 하나 들어오기만 하면 경들 스스로가 겁만 먹고 있으니 내가 가슴을 썩이면서 한밤중에도 근심하느라 애를 태운다. 차관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구탄(丘坦)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것이 사실인지는 본디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더구나 미리 공사를 중단함으로써 인심이 더욱 붕괴되도록 한단 말인가. 경은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내가 어찌 한갓 큰 공사를 갑자기 중단시키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겠는가. 가을 이전에는 목전에 극도로 위급한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듯하니 다시 더 공사를 감독하고 이런 말은 꺼내지를 말라. 공사를 중단하고 나무와 돌을 수습해 저장해두라고 하였는데, 만약 도성이 무너질 경우 그 나무와 돌이 과연 허술한 상황에서 없어질 염려가 없겠는가. 지금 차자의 내용을 보건대 한번 웃을 거리도 되지 않는다. 여타의 일은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고, 도성을 수어(守禦)하는 절목을 급히 조치해 인심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신을 체찰 부사(體察副使)로 제수하는 명을 내리셨는데, 국가가 위급해진 때를 당했으면 그야말로 신하로서는 목숨을 바쳐야 할 것이니, 어떤 직책을 제수하든 감당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막론하고 사직하기란 진실로 어려운 것인만큼 오직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나랏일에 이바지하다가 죽은 뒤에나 그만두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도체찰사(都體察使) 박승종(朴承宗)은 제수하는 명이 내려졌는 데도 끄떡않고 거상(居喪)하고 있으면서 빈종(賓從)을 접응하고 사무를 수응하는 일 등을 일체 거절하여 먼 발치로도 쳐다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신의 직분은 바로 좌막(佐幕)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서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묘당에서는 그저 이미 오래 전에 명이 내려졌다고 하면서 일이 매우 급하니 해야 할 일들을 빨리 처리하라고 신을 독촉하고 있는데, 신의 입장에서는 품의(稟議)드릴 곳도 없어 어쩔 줄 모르고 휩쓸려 다니기만 할 뿐 어찌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체찰 부사의 명을 환수해 주소서.
그리고 이 기회에 삼가 염려되는 바를 진달드릴까 합니다. 의주(義州)에서 보내 온 소식이 혹 헛되지 않다고 한다면, 군병을 조사하는 외에 또 도로를 자세히 살핀다고 하는 것은, 그 뜻이 필시 우리 병력으로 하나의 부대를 만든 다음 우리 경내를 통해 진격하겠다는 것이고, 또 고급 장령(將領) 한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 군대를 인솔하게 해 발을 빼지 못하게 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되는 일을 끝내 면하지 못하게 된다면, 병력을 융통성있게 스스로 맡아 처리하기가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오로지 절제(節制)를 받아 진퇴할 수밖에 없게 될텐데, 훈련되지 않은 우리 나라의 군졸 단독으로 새로 정비된 오랑캐를 맞닥뜨리게 할 경우 그 승패의 형세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편으로는 특별히 더 단속하여 전일처럼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다가 중국 조정이 화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니 만약 그 마음을 잃게 되면 뒷날 일어날 환난이 차마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시 재지(才智)와 말솜씨가 있는 인사를 차견(差遣)하여 경략에게 간청을 함으로써 단독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명령을 면할 수 있게만 된다면 어찌 일대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성명께서는 유념해 주소서.
그리고 차관이 곧 경내로 들어올 예정인데 큰 공사가 아직도 정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듯 군대를 일으키고 일이 많은 날을 당하여 영차영차하며 실어 나르는 소리가 혹 차관의 귀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일이 매우 난처하게 될 것이니, 또한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잠시 중단하라고 명하시고 시사(時事)가 조금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소서. 이어 생각건대,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는 참으로 어려우나 만약 극도로 소요스러워지면서 도성이 무너지는 지경에 이른 뒤에야 그 재와(材瓦)나 미포(米布)를 수습하려고 하면 필시 뜻대로 가지런하게 되지 못해 많은 손실을 보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때에 조용히 수습해 저장해둠으로써 전도되는 일을 면하게 한다면 더 이상 다행스러울 수가 없겠습니다.
신이 영선(營繕)을 책임지고 있는 몸으로서 전에 간절한 심정을 진달드렸다가 이미 엄한 분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마음에 사세가 이토록까지 전개된 것을 목도하였기에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재차 번거롭게 해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이런 때에 어찌 사직해서야 되겠는가. 도체찰사와 상의해 처리해서 사기(事機)를 잃지 말도록 하라. 오랑캐의 기병이 짓쳐들어오는 것은 실로 우리가 징병해서 군사를 보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병력이 극도로 허약하여 형편없으니 사정을 직간(直諫)하는 것이야 안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서쪽 변경에서 보고가 하나 들어오기만 하면 경들 스스로가 겁만 먹고 있으니 내가 가슴을 썩이면서 한밤중에도 근심하느라 애를 태운다.
차관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구탄(丘坦)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것이 사실인지는 본디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더구나 미리 공사를 중단함으로써 인심이 더욱 붕괴되도록 한단 말인가. 경은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내가 어찌 한갓 큰 공사를 갑자기 중단시키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겠는가. 가을 이전에는 목전에 극도로 위급한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듯하니 다시 더 공사를 감독하고 이런 말은 꺼내지를 말라. 공사를 중단하고 나무와 돌을 수습해 저장해두라고 하였는데, 만약 도성이 무너질 경우 그 나무와 돌이 과연 허술한 상황에서 없어질 염려가 없겠는가. 지금 차자의 내용을 보건대 한번 웃을 거리도 되지 않는다. 여타의 일은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고, 도성을 수어(守禦)하는 절목을 급히 조치해 인심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진령군(晉寧君) 강홍립(姜弘立)이 도원수를 사직하는 재소(再疏)를 입계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사직하지 말고 군량과 방비하는 일 등을 단단히 마음먹고 강구하면서 묘당과 자세히 의논해 선처토록 하라." 하였다.
"내 뜻은 이미 모두 유시하였다. 사직하지 말고 군량과 방비하는 일 등을 단단히 마음먹고 강구하면서 묘당과 자세히 의논해 선처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만포(滿浦)에서 호인(胡人)이 진고(進告)해 왔다고 치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망쳐 온 자인지 간첩 행위를 하는 자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진고한 내용을 보면 전일 글을 가지고 온 호인이 했던 말이나 북도(北道)에서 치계한 내용과 대략 서로 같은데, 작은 배를 많이 만든다는 그 계책이야말로 더욱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사태가 날이 갈수록 점점 절박해지고 있는데 우리 쪽의 방비책은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도 병사(兵使)는 매번 이 적이 의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강변의 방비를 급히 조치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수진(水鎭)에 병력을 증강시켰다는 보고도 지금까지 올라오지 않은 채 조용하기만 한데 적이 만약 졸지에 쳐들어 온다면 어떻게 응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산(理山)의 경우 성지(城池)가 형편없고 지세 또한 좋지 않다는 것은 신들도 이미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우유부단하게 주저만 하다가 그때에 가서 불행하게 되기 보다는 차라리 일찍 도모하여 함락되는 일을 면하게 하는 것이 낫겠기에 본사의 신하들 중에서 일찍이 본도를 맡은 경력이 있는 자들과 이모저모로 상의해 보았더니 ‘이산 아래로 2식정(息程)쯤 가면 아질이진(阿叱耳鎭)이 나오는데 지세가 매우 좋고 삼 면이 깎아 지른듯 험준한 데다 파저강(波猪江)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산과 산양회보(山羊會堡) 등 각처의 군병을 모아 꼭 지킬 장소로 삼는다면 매우 사의(事宜)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대로 한다면 편리하게 될 듯싶은데, 다만 이산은 읍소재지로서 관속과 인민이 많이 집결해 있는 곳인만큼 철수해 옮기다 보면 필시 소요스럽게 되는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관한 편부(便否)를 감사와 병사에게 급히 상의하게 해서 사기(事機)에 합당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그렇게 시행하는 한편으로 계문토록 하고, 불가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도 사유를 갖춰 계문하게 함으로써 처치할 근거를 삼을 수 있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만포(滿浦)에서 호인(胡人)이 진고(進告)해 왔다고 치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도망쳐 온 자인지 간첩 행위를 하는 자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진고한 내용을 보면 전일 글을 가지고 온 호인이 했던 말이나 북도(北道)에서 치계한 내용과 대략 서로 같은데, 작은 배를 많이 만든다는 그 계책이야말로 더욱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사태가 날이 갈수록 점점 절박해지고 있는데 우리 쪽의 방비책은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도 병사(兵使)는 매번 이 적이 의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강변의 방비를 급히 조치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수진(水鎭)에 병력을 증강시켰다는 보고도 지금까지 올라오지 않은 채 조용하기만 한데 적이 만약 졸지에 쳐들어 온다면 어떻게 응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산(理山)의 경우 성지(城池)가 형편없고 지세 또한 좋지 않다는 것은 신들도 이미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우유부단하게 주저만 하다가 그때에 가서 불행하게 되기 보다는 차라리 일찍 도모하여 함락되는 일을 면하게 하는 것이 낫겠기에 본사의 신하들 중에서 일찍이 본도를 맡은 경력이 있는 자들과 이모저모로 상의해 보았더니 ‘이산 아래로 2식정(息程)쯤 가면 아질이진(阿叱耳鎭)이 나오는데 지세가 매우 좋고 삼 면이 깎아 지른듯 험준한 데다 파저강(波猪江)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산과 산양회보(山羊會堡) 등 각처의 군병을 모아 꼭 지킬 장소로 삼는다면 매우 사의(事宜)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대로 한다면 편리하게 될 듯싶은데, 다만 이산은 읍소재지로서 관속과 인민이 많이 집결해 있는 곳인만큼 철수해 옮기다 보면 필시 소요스럽게 되는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관한 편부(便否)를 감사와 병사에게 급히 상의하게 해서 사기(事機)에 합당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는 그렇게 시행하는 한편으로 계문토록 하고, 불가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도 사유를 갖춰 계문하게 함으로써 처치할 근거를 삼을 수 있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김제우(金悌祐) 등이 베껴 보낸 패문(牌文)을 보건대, 경략(經略)이 이달 3일에 이미 광령(廣寧)에 도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구 참장(丘參將)이 사적으로 ‘군대를 조사하는 차인(差人)이 나올 것이다.’고 통지해 온 말이 헛되지 않다면 우리 나라가 징병하고 정비해서 대기해야 하는 일이 정말 긴급해졌습니다. 본도에서는 대략 정비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각종 기계와 전구(戰具)를 모두 일일이 준비해 놓았는지 아니면 그저 각 고을에서 뽑아 올린 문서에만 근거하여 범범하게 치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차관이 온다 하더라도 필시 곧장 경성에 올 것이고 그 뒤에 계속해서 군대를 점검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마는, 혹시라도 먼저 점검할 경우에는 장계의 내용대로 연로(沿路)의 의주(義州)·선천(宣川)·정주(定州)·안주(安州)·평양(平壤) 같은 곳에서 각각 그 부근 고을의 군병을 집결시켜 검열을 받도록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황연도(黃延道)에서 3천 명을 뽑는 일로 병조에서 계하(啓下)받아 행회(行會)한 지 이미 오래이니, 이곳 역시 똑같이 준비하고 대기하라는 뜻으로 황연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행이(行移)토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삼가 김제우(金悌祐) 등이 베껴 보낸 패문(牌文)을 보건대, 경략(經略)이 이달 3일에 이미 광령(廣寧)에 도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구 참장(丘參將)이 사적으로 ‘군대를 조사하는 차인(差人)이 나올 것이다.’고 통지해 온 말이 헛되지 않다면 우리 나라가 징병하고 정비해서 대기해야 하는 일이 정말 긴급해졌습니다. 본도에서는 대략 정비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각종 기계와 전구(戰具)를 모두 일일이 준비해 놓았는지 아니면 그저 각 고을에서 뽑아 올린 문서에만 근거하여 범범하게 치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차관이 온다 하더라도 필시 곧장 경성에 올 것이고 그 뒤에 계속해서 군대를 점검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마는, 혹시라도 먼저 점검할 경우에는 장계의 내용대로 연로(沿路)의 의주(義州)·선천(宣川)·정주(定州)·안주(安州)·평양(平壤) 같은 곳에서 각각 그 부근 고을의 군병을 집결시켜 검열을 받도록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황연도(黃延道)에서 3천 명을 뽑는 일로 병조에서 계하(啓下)받아 행회(行會)한 지 이미 오래이니, 이곳 역시 똑같이 준비하고 대기하라는 뜻으로 황연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행이(行移)토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노적(奴賊)이 중국 조정과 맞서고 있는 만큼 말을 타고 멀리 달려와 우리 경내로 깊이 들어올 리는 없을 듯한데, 설사 변방에 비상 사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어찌 섣불리 도성을 버려 흙더미가 무너지는 듯한 형세를 이루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성상의 하교를 받들건대 ‘도성이야말로 종묘 사직이 있는 곳이고 만 백성이 의탁하는 곳이다.’라고 분부하셨으니, 보고 듣는 이로서 그 누가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도성을 떠나 보전되기를 도모하는 것도 혹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극도로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이 아닌 한 경솔하게 옮겨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군신 상하가 진정시키는 데에 유념하여 임진 왜란 때처럼 혼란스럽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어찌 오늘날의 급무가 아니겠습니까. 도성을 방어하는 대장은 국조(國朝)의 고사에 반드시 대신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 역시 대신이 출사한 뒤에 의논해서 차출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직질이 높은 무장 당상 중에서 별장(別將)과 종사관(從事官)도 미리 가려 차출해두도록 하라. 그리고 양주(楊州)와 광주(廣州)에는 모두 산성이 있는데 그곳에도 적합한 무장이나 문무를 겸비하여 급할 때 믿을 수 있는 자를 엄선하여 보내는 것이 좋겠으니 아울러 의논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노적(奴賊)이 중국 조정과 맞서고 있는 만큼 말을 타고 멀리 달려와 우리 경내로 깊이 들어올 리는 없을 듯한데, 설사 변방에 비상 사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어찌 섣불리 도성을 버려 흙더미가 무너지는 듯한 형세를 이루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성상의 하교를 받들건대 ‘도성이야말로 종묘 사직이 있는 곳이고 만 백성이 의탁하는 곳이다.’라고 분부하셨으니, 보고 듣는 이로서 그 누가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도성을 떠나 보전되기를 도모하는 것도 혹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극도로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이 아닌 한 경솔하게 옮겨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군신 상하가 진정시키는 데에 유념하여 임진 왜란 때처럼 혼란스럽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어찌 오늘날의 급무가 아니겠습니까. 도성을 방어하는 대장은 국조(國朝)의 고사에 반드시 대신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 역시 대신이 출사한 뒤에 의논해서 차출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직질이 높은 무장 당상 중에서 별장(別將)과 종사관(從事官)도 미리 가려 차출해두도록 하라. 그리고 양주(楊州)와 광주(廣州)에는 모두 산성이 있는데 그곳에도 적합한 무장이나 문무를 겸비하여 급할 때 믿을 수 있는 자를 엄선하여 보내는 것이 좋겠으니 아울러 의논해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도체찰사가 이미 계하된 상태에서 부사(副使)로 장만(張晩)을 제수하고 함께 의논해서 요리하라고 하교하셨습니다. 현재 서쪽 변방의 보고가 날이 갈수록 긴급해지고 있는만큼 책응(策應)해야 할 일들을 조금이라도 늦추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장만이 성상의 선발을 입어 일단 체찰 부사의 명을 받긴 했습니다만 도체찰사가 출사할 기약은 막연하기만 하니 아무리 그와 함께 의논해 요리하고 싶어도 접응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군기(軍機)에 관한 중대한 일을 재단할 길이 없으니 지극히 안타깝고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우상에게 별도로 돈유하여 나오도록 하겠다만 부체찰사가 일에 따라 그에게 가서 의논함으로써 사기(事機)를 잃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도체찰사가 이미 계하된 상태에서 부사(副使)로 장만(張晩)을 제수하고 함께 의논해서 요리하라고 하교하셨습니다. 현재 서쪽 변방의 보고가 날이 갈수록 긴급해지고 있는만큼 책응(策應)해야 할 일들을 조금이라도 늦추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장만이 성상의 선발을 입어 일단 체찰 부사의 명을 받긴 했습니다만 도체찰사가 출사할 기약은 막연하기만 하니 아무리 그와 함께 의논해 요리하고 싶어도 접응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군기(軍機)에 관한 중대한 일을 재단할 길이 없으니 지극히 안타깝고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우상에게 별도로 돈유하여 나오도록 하겠다만 부체찰사가 일에 따라 그에게 가서 의논함으로써 사기(事機)를 잃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평양의 중군 이완(李莞)은 연소하면서도 재주가 있고 게다가 사졸의 마음까지 얻고 있으니 이런 인물은 쉽게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직질(職秩)이 낮은 듯하고 명호(名號)도 중하지 못하니 위급할 때 성을 지키는 책임을 전적으로 이 사람에게 위임할 수는 없습니다. 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종2품 무장 중에서 재략과 용력이 있는 자를 특별히 골라 별장(別將)이라는 이름으로 내려보낸 뒤 순찰사의 지휘를 받아 성을 지키도록 책임지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평양의 중군 이완(李莞)은 연소하면서도 재주가 있고 게다가 사졸의 마음까지 얻고 있으니 이런 인물은 쉽게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직질(職秩)이 낮은 듯하고 명호(名號)도 중하지 못하니 위급할 때 성을 지키는 책임을 전적으로 이 사람에게 위임할 수는 없습니다. 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종2품 무장 중에서 재략과 용력이 있는 자를 특별히 골라 별장(別將)이라는 이름으로 내려보낸 뒤 순찰사의 지휘를 받아 성을 지키도록 책임지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문희성(文希聖)은 무장 중에서도 특출하게 쓸 만한 인재인 데다 목민관으로서의 재주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본사의 신하들이 의논해 천거해서 제수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원의 계사를 보건대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본 식견이 보통 사람의 생각에 뛰어나 정말 범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신들의 생각에는 문희현(文希賢)의 이름이 꼭 중국 조정에 전파되었다고 볼 수도 없고 설령 전파되었다 하더라도 희성이 희현의 형이라는 사실을 중국인이 꼭 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이렇듯 인재가 부족한 때를 당하여 지나치게 의심하고 염려한 나머지 쓸 만한 인물 하나를 버린다면 정말 애석한 일입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문희성(文希聖)은 무장 중에서도 특출하게 쓸 만한 인재인 데다 목민관으로서의 재주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본사의 신하들이 의논해 천거해서 제수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원의 계사를 보건대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본 식견이 보통 사람의 생각에 뛰어나 정말 범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신들의 생각에는 문희현(文希賢)의 이름이 꼭 중국 조정에 전파되었다고 볼 수도 없고 설령 전파되었다 하더라도 희성이 희현의 형이라는 사실을 중국인이 꼭 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이렇듯 인재가 부족한 때를 당하여 지나치게 의심하고 염려한 나머지 쓸 만한 인물 하나를 버린다면 정말 애석한 일입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유공량(柳公亮)이 차자에서 논한 내용을 보건대 오늘날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이었습니다. 서도(西道)와 북도(北道)의 각 성을 수어(守禦)하는 일에 대해서는 본사가 이미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으므로 이제 바야흐로 각도에 행회(行會)하여 거행케 하려 합니다. 평안도 영유 산성(永柔山城)과 황연도 서흥 산성(瑞興山城)은 형세가 험준하고 견고하니 병력을 배치해둘 만한 장소이긴 합니다. 그런데 각도에서 바야흐로 각 성을 수선하고 있고 양서(兩西)의 경우는 병력 1만을 조발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으니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거행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사태가 전개되는 상황을 서서히 보아가면서 점차적으로 수축하라는 뜻을 본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행회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철령(鐵嶺)이 과연 험절(險絶)한 곳이긴 합니다만 사방으로 길이 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또 요새지로 축성해놓지도 않았으니, 그곳은 일이 벌어졌을 때 그저 병력을 주둔시켜 파수하게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근래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군령이 엄하게 시행되지 않는 탓으로 성을 지키지 못한 장수와 패군한 장수들조차 대부분 구차하게 살 길을 찾고 있으니 소에서 진달드린 것처럼 군법으로 단죄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급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뜻으로 각도의 일을 담당한 신하에게 하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기타 강화(江華)의 보장책(保障策)이나 주사(舟師)를 집결시키는 계책이나 나루터에 부교(浮橋)를 설치하는 등 응당 행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검찰사(檢察使) 및 경강(京江) 주사 대장(舟師大將)으로 하여금 편의 여부를 헤아려 본 뒤 품지하여 거행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유공량(柳公亮)이 차자에서 논한 내용을 보건대 오늘날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이었습니다. 서도(西道)와 북도(北道)의 각 성을 수어(守禦)하는 일에 대해서는 본사가 이미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으므로 이제 바야흐로 각도에 행회(行會)하여 거행케 하려 합니다. 평안도 영유 산성(永柔山城)과 황연도 서흥 산성(瑞興山城)은 형세가 험준하고 견고하니 병력을 배치해둘 만한 장소이긴 합니다. 그런데 각도에서 바야흐로 각 성을 수선하고 있고 양서(兩西)의 경우는 병력 1만을 조발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으니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거행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사태가 전개되는 상황을 서서히 보아가면서 점차적으로 수축하라는 뜻을 본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행회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철령(鐵嶺)이 과연 험절(險絶)한 곳이긴 합니다만 사방으로 길이 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또 요새지로 축성해놓지도 않았으니, 그곳은 일이 벌어졌을 때 그저 병력을 주둔시켜 파수하게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근래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군령이 엄하게 시행되지 않는 탓으로 성을 지키지 못한 장수와 패군한 장수들조차 대부분 구차하게 살 길을 찾고 있으니 소에서 진달드린 것처럼 군법으로 단죄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급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뜻으로 각도의 일을 담당한 신하에게 하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기타 강화(江華)의 보장책(保障策)이나 주사(舟師)를 집결시키는 계책이나 나루터에 부교(浮橋)를 설치하는 등 응당 행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검찰사(檢察使) 및 경강(京江) 주사 대장(舟師大將)으로 하여금 편의 여부를 헤아려 본 뒤 품지하여 거행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웅 어사(熊御史)는 우리 나라를 위해 극진히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다. 만약 그가 경사(京師) 안에 있거든 역관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 호소하게 하거나 완곡한 어투로 정문(呈文)하여 간청하는 등 극력 주선해서 일이 꼭 순조롭게 풀리도록 하되 일이 누설되지 않게끔 신중하게 도모하여 더욱 선처토록 하라."
"웅 어사(熊御史)는 우리 나라를 위해 극진히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다. 만약 그가 경사(京師) 안에 있거든 역관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 호소하게 하거나 완곡한 어투로 정문(呈文)하여 간청하는 등 극력 주선해서 일이 꼭 순조롭게 풀리도록 하되 일이 누설되지 않게끔 신중하게 도모하여 더욱 선처토록 하라."

 

6월 16일 계유

예조가 아뢰기를, "금년에 시행해야 할 과거가 매우 많습니다. 앞으로 변무(辨誣) 회시(會試), 관복(冠服)과 추숭(追崇)을 합해 실시하는 별시(別試), 식년(式年) 제과(諸科)의 초시(初試)와 회시, 수원(水原)의 별시 등을 모두 차례로 거행해야 하는데, 지금 전교하신 데 따라 또 하나의 과거를 실시해야 하고 보면 과거가 더욱 빈번하게 되어 1년 안에 모두 실시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다만 이번에 널리 무사를 뽑는 과거야말로 서쪽 변방을 지키기 위해 실시하는 것인 만큼 7월 안으로 역마를 띄워 행이(行移)하고, 문과(文科)의 규정은 정시의 예에 의거하여 마련하는 것이 마땅할 듯싶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문과는 정시의 예에 따라 약간만 뽑고 무과는 널리 뽑을 일로 다시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금년에 시행해야 할 과거가 매우 많습니다. 앞으로 변무(辨誣) 회시(會試), 관복(冠服)과 추숭(追崇)을 합해 실시하는 별시(別試), 식년(式年) 제과(諸科)의 초시(初試)와 회시, 수원(水原)의 별시 등을 모두 차례로 거행해야 하는데, 지금 전교하신 데 따라 또 하나의 과거를 실시해야 하고 보면 과거가 더욱 빈번하게 되어 1년 안에 모두 실시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다만 이번에 널리 무사를 뽑는 과거야말로 서쪽 변방을 지키기 위해 실시하는 것인 만큼 7월 안으로 역마를 띄워 행이(行移)하고, 문과(文科)의 규정은 정시의 예에 의거하여 마련하는 것이 마땅할 듯싶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문과는 정시의 예에 따라 약간만 뽑고 무과는 널리 뽑을 일로 다시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전 군수 강욱(康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널리 과거를 실시하여 무사를 뽑고, 조신(朝臣)을 인접하시어 무사(武事)를 강구하고, 사치를 억제하고 공도(公道)를 열어 훌륭한 정치를 도모하고, 양계(兩界)의 성이 있는 곳에 나누어 주둔하여 방어하게 하고, 급하지 않은 공사를 중단하고 헛되이 쓰이는 비용을 줄이고, 억울한 이를 심리(審理)하고 상벌(賞罰)을 엄정히 하여 인심을 위로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였다.
"널리 과거를 실시하여 무사를 뽑고, 조신(朝臣)을 인접하시어 무사(武事)를 강구하고, 사치를 억제하고 공도(公道)를 열어 훌륭한 정치를 도모하고, 양계(兩界)의 성이 있는 곳에 나누어 주둔하여 방어하게 하고, 급하지 않은 공사를 중단하고 헛되이 쓰이는 비용을 줄이고, 억울한 이를 심리(審理)하고 상벌(賞罰)을 엄정히 하여 인심을 위로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소를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의논해 처리토록 하겠다."
하였다.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장계를 올리기를, "이달 11일에 경략의 차관 우승은(于承恩)이 본주에 도착하자마자 창성(昌城)으로 곧장 가려고 하기에, 신이 ‘본도의 병사(兵使)는 현재 영변(寧邊) 본영에 있다. 따라서 치보하는 한편으로 그에게 진주케 하더라도 최소한 며칠이 지나야 창성에 도착할텐데 지금 미리 앞서 떠나면 병사가 형세상 때에 맞춰 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이와 같은 곡절을 이미 국왕에게 아뢴 만큼 반드시 조정의 지휘를 기다려서 표문(票文) 안의 일을 준행해야 마땅할 듯하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만류했더니, 차관이 성을 내면서 대답하기를 ‘나는 노야(老爺)의 분부를 받들어 단지 도로를 살피고 형세를 지도로 그린 다음 가려고 한다. 그곳에도 반드시 보(堡)를 지키는 관원이 있을 것이니 총병(摠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군문(軍門)이 정해놓은 기한이 박두했으니 도저히 한 순간도 머물러 지체할 수가 없다.’ 하면서 머물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어쩔 수 없이 신의 군관인 전 주부 고일민(高逸民) 등으로 하여금 함께 뒤따라 가면서 연로의 번잡스러움을 단속하게 하였습니다. 신이 당일 전례에 따라 그를 접대하였는데 접대했을 때 문답한 사연은 별단(別單)으로 서계합니다." 하였다.
"이달 11일에 경략의 차관 우승은(于承恩)이 본주에 도착하자마자 창성(昌城)으로 곧장 가려고 하기에, 신이 ‘본도의 병사(兵使)는 현재 영변(寧邊) 본영에 있다. 따라서 치보하는 한편으로 그에게 진주케 하더라도 최소한 며칠이 지나야 창성에 도착할텐데 지금 미리 앞서 떠나면 병사가 형세상 때에 맞춰 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이와 같은 곡절을 이미 국왕에게 아뢴 만큼 반드시 조정의 지휘를 기다려서 표문(票文) 안의 일을 준행해야 마땅할 듯하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만류했더니, 차관이 성을 내면서 대답하기를 ‘나는 노야(老爺)의 분부를 받들어 단지 도로를 살피고 형세를 지도로 그린 다음 가려고 한다. 그곳에도 반드시 보(堡)를 지키는 관원이 있을 것이니 총병(摠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군문(軍門)이 정해놓은 기한이 박두했으니 도저히 한 순간도 머물러 지체할 수가 없다.’ 하면서 머물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어쩔 수 없이 신의 군관인 전 주부 고일민(高逸民) 등으로 하여금 함께 뒤따라 가면서 연로의 번잡스러움을 단속하게 하였습니다. 신이 당일 전례에 따라 그를 접대하였는데 접대했을 때 문답한 사연은 별단(別單)으로 서계합니다."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삼가 이선복(李善復)의 장계 내용을 보건대, 차관이 본주에 머물러있으려 하지 않고 창성으로 갔다 합니다. 장계를 13일에 작성했는데 오늘 비로소 도착했고 보면 13일부터 오늘까지의 사이에 닷새라는 날짜가 이미 지나간 셈입니다. 한편 의주에서 창성까지는 이틀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지금 이미 차관이 홀로 창성에 도착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중국인을 접대하는 예에 비추어 볼 때 어찌 너무나도 매몰스럽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접반관 채승선(蔡承先)을 패초하여 숙배케 한 뒤 오늘 안으로 떠나보내야 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삼가 이선복(李善復)의 장계 내용을 보건대, 차관이 본주에 머물러있으려 하지 않고 창성으로 갔다 합니다. 장계를 13일에 작성했는데 오늘 비로소 도착했고 보면 13일부터 오늘까지의 사이에 닷새라는 날짜가 이미 지나간 셈입니다. 한편 의주에서 창성까지는 이틀 거리밖에 되지 않으니 지금 이미 차관이 홀로 창성에 도착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중국인을 접대하는 예에 비추어 볼 때 어찌 너무나도 매몰스럽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접반관 채승선(蔡承先)을 패초하여 숙배케 한 뒤 오늘 안으로 떠나보내야 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예조가 점련(粘連)하는 형식으로 아뢰기를, "기복(起復)을 판하(判下)하셨습니다. 그런데 상례(喪禮)는 대변(大變)으로서 사체가 극히 중한데, 가령 무신들에 대해 서경(署經)을 행하지 않는다면 법전 본래의 뜻이 장차 이로부터 무너져버릴 것이고 인륜 또한 어지럽게 될 것입니다. 임진년 때의 구례는 문서가 없어 상고해 낼 수가 없으니, 상께서 재결하여 시행토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무릇 변례를 행하는 것은 실로 위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서경하는 일은 실시하지 말라." 하였다.
"기복(起復)을 판하(判下)하셨습니다. 그런데 상례(喪禮)는 대변(大變)으로서 사체가 극히 중한데, 가령 무신들에 대해 서경(署經)을 행하지 않는다면 법전 본래의 뜻이 장차 이로부터 무너져버릴 것이고 인륜 또한 어지럽게 될 것입니다. 임진년 때의 구례는 문서가 없어 상고해 낼 수가 없으니, 상께서 재결하여 시행토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무릇 변례를 행하는 것은 실로 위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서경하는 일은 실시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양남(兩南)의 군병은 강도(江都)에 들어가 지키게 하고, 공홍도(公洪道)의 군병은 남한 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가 지키게 하고, 경기·강원의 군병은 삼각 산성(三角山城)과 파주 산성(坡州山城)에 들어가 지키게 하라. 그러면 오랑캐 군대가 어찌 이렇듯 각읍에서 험준함을 의지하여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버려둔채 그 속을 뚫고 지나오겠는가. 당상 무신(堂上武臣)을 엄선하여 경계를 나눠서 각처의 산성을 굳게 지키도록 하라."
"양남(兩南)의 군병은 강도(江都)에 들어가 지키게 하고, 공홍도(公洪道)의 군병은 남한 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가 지키게 하고, 경기·강원의 군병은 삼각 산성(三角山城)과 파주 산성(坡州山城)에 들어가 지키게 하라. 그러면 오랑캐 군대가 어찌 이렇듯 각읍에서 험준함을 의지하여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을 버려둔채 그 속을 뚫고 지나오겠는가. 당상 무신(堂上武臣)을 엄선하여 경계를 나눠서 각처의 산성을 굳게 지키도록 하라."

 

전교하기를, "김성옥(金成玉)이 지난해 상소하여 진달한 것을 보건대 주사(舟師)의 일을 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개천(价川)에는 맞지 않으니 서산 군수(瑞山郡守)와 맞바꾼 뒤 그로 하여금 배를 만들어 보내게 하면 필시 나랏일에 마음을 다할 것이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성옥은 뇌물을 많이 쓰면서 궁첩(宮妾)과 교통(交通)하였다. 일찍이 모속관(募粟官)이 되었을 때 소금을 굽고 철을 만들면서 백성을 겁박하여 축재하고선 한편으로는 안에 바치고 한편으로는 공사를 돕게 하였으므로 해서(海西) 사람들이 야차(夜叉)처럼 여겼는데 임금은 매우 좋아하였다. 이번에 그가 변방에 부임하는 것이 싫고 또 호내(湖內)의 넉넉한 고을을 맡아 보려고 꾀했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게 된 것이었다.】
"김성옥(金成玉)이 지난해 상소하여 진달한 것을 보건대 주사(舟師)의 일을 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개천(价川)에는 맞지 않으니 서산 군수(瑞山郡守)와 맞바꾼 뒤 그로 하여금 배를 만들어 보내게 하면 필시 나랏일에 마음을 다할 것이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하였다. 【성옥은 뇌물을 많이 쓰면서 궁첩(宮妾)과 교통(交通)하였다. 일찍이 모속관(募粟官)이 되었을 때 소금을 굽고 철을 만들면서 백성을 겁박하여 축재하고선 한편으로는 안에 바치고 한편으로는 공사를 돕게 하였으므로 해서(海西) 사람들이 야차(夜叉)처럼 여겼는데 임금은 매우 좋아하였다. 이번에 그가 변방에 부임하는 것이 싫고 또 호내(湖內)의 넉넉한 고을을 맡아 보려고 꾀했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게 된 것이었다.】

 

전교하였다. "어제 고경민(高敬民)이 올린 소의 내용을 보건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경민을 평안 우후(平安虞候)로 차임해 보내고 김응하(金應河)는 조방장으로 잉임(仍任)시켜야 하겠다. 속히 떠나보내는 것이 온당할 듯한데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어제 고경민(高敬民)이 올린 소의 내용을 보건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경민을 평안 우후(平安虞候)로 차임해 보내고 김응하(金應河)는 조방장으로 잉임(仍任)시켜야 하겠다. 속히 떠나보내는 것이 온당할 듯한데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추국청이 아뢰기를, "오득인(吳得仁)과 한필수(韓必壽)의 대질 신문 때 나온 공초(供招)를 의논해 아뢰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오득인이 고발한 말은 모두가 신하로서는 차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할 이야기인데 그가 감히 3년이 지난 뒤에 와서 고발하면서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은 없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더구나 그의 원정(元情)을 보면 ‘족하(族下) 관계에 있는데 만약 편치 못한 일이 없었다면 어찌 감히 고변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그러고 보면 이모저모로 따져 볼 때 사실로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의 원정이나 대질 신문할 때 전후에 걸쳐 공초한 것을 보면 잡스럽고 망령된 말이 많으니 그가 정신 이상자라는 것을 이에 의거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변한 말은 모두가 대역부도에 관계되는 만큼 법으로 논한다면 끝까지 국문해 율대로 처치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그가 정신 이상자라서 율대로만 처리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한필수는 별로 물어볼 일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득인이 고발한 것은 보통의 무고에 비할 바가 아닌데 그가 마음먹고 조작해낸 정상이 지극히 흉악하고 참혹하다. 그리고 정인서(鄭獜瑞)의 일과는 경우가 같지 않은데 어떻게 율대로 처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부터 무고한 사람을 내가 철저하게 다스리려 하지 않았던 탓으로 요즘 들어 무고하는 자가 서로 잇달아 국청을 파할 기약이 없게 되었으니 내가 마음이 아프다. 급히 율대로 처치하여 전형(典刑)을 분명히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오득인(吳得仁)과 한필수(韓必壽)의 대질 신문 때 나온 공초(供招)를 의논해 아뢰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오득인이 고발한 말은 모두가 신하로서는 차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할 이야기인데 그가 감히 3년이 지난 뒤에 와서 고발하면서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은 없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더구나 그의 원정(元情)을 보면 ‘족하(族下) 관계에 있는데 만약 편치 못한 일이 없었다면 어찌 감히 고변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그러고 보면 이모저모로 따져 볼 때 사실로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의 원정이나 대질 신문할 때 전후에 걸쳐 공초한 것을 보면 잡스럽고 망령된 말이 많으니 그가 정신 이상자라는 것을 이에 의거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변한 말은 모두가 대역부도에 관계되는 만큼 법으로 논한다면 끝까지 국문해 율대로 처치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그가 정신 이상자라서 율대로만 처리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한필수는 별로 물어볼 일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득인이 고발한 것은 보통의 무고에 비할 바가 아닌데 그가 마음먹고 조작해낸 정상이 지극히 흉악하고 참혹하다. 그리고 정인서(鄭獜瑞)의 일과는 경우가 같지 않은데 어떻게 율대로 처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부터 무고한 사람을 내가 철저하게 다스리려 하지 않았던 탓으로 요즘 들어 무고하는 자가 서로 잇달아 국청을 파할 기약이 없게 되었으니 내가 마음이 아프다. 급히 율대로 처치하여 전형(典刑)을 분명히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무고 죄인 오득인의 형을 집행하고, 한필수는 석방하였다.

 

추국청이 아뢰기를, "‘봉산(鳳山)에 갇힌 사람의 익명서 사건은 국청에서 이미 의논해 아뢰었으니 속히 석방하라고 하유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교하셨습니다. 황연 감사(黃延監司)가 익명서 사건 때문에 전후로 장계를 올렸는데, 하나는 장만연(張萬連) 등의 정장(呈狀)과 관련된 것이었고 하나는 황처인(黃處仁) 등의 정장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과 부합되는 각 사람들을 본도의 여러 고을에 수금했었는데, 국청에서 모두 무고라고 이미 의논드려 아뢰면서 석방할 것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전교에서는 단지 봉산의 죄인만 거론하셨는데, 이 두 건의 죄인을 전후에 의논해 아뢴 대로 모두 똑같이 석방하라고 하유합니까? 감히 품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봉산(鳳山)에 갇힌 사람의 익명서 사건은 국청에서 이미 의논해 아뢰었으니 속히 석방하라고 하유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교하셨습니다. 황연 감사(黃延監司)가 익명서 사건 때문에 전후로 장계를 올렸는데, 하나는 장만연(張萬連) 등의 정장(呈狀)과 관련된 것이었고 하나는 황처인(黃處仁) 등의 정장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과 부합되는 각 사람들을 본도의 여러 고을에 수금했었는데, 국청에서 모두 무고라고 이미 의논드려 아뢰면서 석방할 것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전교에서는 단지 봉산의 죄인만 거론하셨는데, 이 두 건의 죄인을 전후에 의논해 아뢴 대로 모두 똑같이 석방하라고 하유합니까? 감히 품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비망기로 ‘적이 경내를 침범해 오지도 않았는데 조방장 등을 미리 강변에 들여보낸다면 저 적이 필시 먼저 우리를 의심하는 마음을 낼 것이다. 비변사로 하여금 살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강변의 고을들은 적경(賊境)과 단지 강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외롭고 위태로운 정상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만약 적이 침입해 온 뒤에야 비로소 군병을 들여보내 지키게 한다면 제때에 응원할 수가 전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증강시켜 방어하게 하는 군졸이라고 해야 1백 명에도 차지 않는 숫자에 불과하고 적은 경우에는 기껏 3, 4십 명밖에 안되는 곳도 있는데, 이렇게 보잘것없는 군졸을 보낸다고 해서 저 적들이 의심을 내지는 않을 것이고, 한두 명의 장관(將官)이 출입하는 것은 더더욱 대단한 일이 못되니, 이것을 혐의로 삼을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순변사(巡邊使)의 경우는 그 도(道)에 들어간 뒤에 적로(賊路)의 긴밀하고 헐한 여부를 헤아려서 진퇴해야 하겠습니다만, 귀성(龜城)이나 창성(昌城)·삭주(朔州) 등 중앙 지역에 가 주둔하면서 기미를 보아가며 책응케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우리 나라는 인심이 본래 지극히 경박해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으레 전파시키곤 하는데, 가령 증강시켜 방어하게 하는 군사의 숫자가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저 적이 어찌 의심을 내지 않겠는가. 내 생각으로는 증강시켜 방어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김경서(金景瑞)의 계사(啓辭) 역시 소견이 없지 않으니 절대로 나오는 호인(胡人)의 귀에 누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나오는 호인이 혹시라도 우리 나라의 일을 묻거든 ‘우리 나라는 너희 추장과 본래 원한이 없는데 너희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서 의심할 일이 뭐가 있는가. 모든 일을 일체 전례에 따라 할 뿐 별로 달리하는 일은 없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개유(開諭)함으로써 의심할 것이 없다는 기색을 보여주어라. 이 뜻을 김경서에게 상세히 하유하고 순변사 이하 여러 장관들이 내려갈 때에도 모두 이러한 내용으로 일일이 가르쳐주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로 ‘적이 경내를 침범해 오지도 않았는데 조방장 등을 미리 강변에 들여보낸다면 저 적이 필시 먼저 우리를 의심하는 마음을 낼 것이다. 비변사로 하여금 살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강변의 고을들은 적경(賊境)과 단지 강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외롭고 위태로운 정상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만약 적이 침입해 온 뒤에야 비로소 군병을 들여보내 지키게 한다면 제때에 응원할 수가 전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증강시켜 방어하게 하는 군졸이라고 해야 1백 명에도 차지 않는 숫자에 불과하고 적은 경우에는 기껏 3, 4십 명밖에 안되는 곳도 있는데, 이렇게 보잘것없는 군졸을 보낸다고 해서 저 적들이 의심을 내지는 않을 것이고, 한두 명의 장관(將官)이 출입하는 것은 더더욱 대단한 일이 못되니, 이것을 혐의로 삼을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순변사(巡邊使)의 경우는 그 도(道)에 들어간 뒤에 적로(賊路)의 긴밀하고 헐한 여부를 헤아려서 진퇴해야 하겠습니다만, 귀성(龜城)이나 창성(昌城)·삭주(朔州) 등 중앙 지역에 가 주둔하면서 기미를 보아가며 책응케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우리 나라는 인심이 본래 지극히 경박해서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으레 전파시키곤 하는데, 가령 증강시켜 방어하게 하는 군사의 숫자가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저 적이 어찌 의심을 내지 않겠는가. 내 생각으로는 증강시켜 방어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김경서(金景瑞)의 계사(啓辭) 역시 소견이 없지 않으니 절대로 나오는 호인(胡人)의 귀에 누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나오는 호인이 혹시라도 우리 나라의 일을 묻거든 ‘우리 나라는 너희 추장과 본래 원한이 없는데 너희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서 의심할 일이 뭐가 있는가. 모든 일을 일체 전례에 따라 할 뿐 별로 달리하는 일은 없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개유(開諭)함으로써 의심할 것이 없다는 기색을 보여주어라. 이 뜻을 김경서에게 상세히 하유하고 순변사 이하 여러 장관들이 내려갈 때에도 모두 이러한 내용으로 일일이 가르쳐주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6월 17일 갑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營建都監)의 낭청과 감역관(監役官)을 대상으로 포폄하여 등급을 매기는 일은 고례(古例)가 아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이번에 전최(殿最)한 것을 보면 성적이 중(中)과 하(下)인 자가 거의 10인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공사를 급히 서둘러야 할 때를 당하여 매번 생소한 사람으로 메워 임명하게 되니 더욱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해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어제는 어전에서 개탁(開坼)119)  하는 날이라고 해서 양궁(兩宮)의 낭청과 감역관이 한 사람도 출근하여 감독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루종일 아무 까닭없이 공사를 정지하다니 가슴아프기 그지없다. 지금 이후로 다시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각별히 착실하게 공사를 감독해야 할 것이며, 부질없이 공사를 중단하라는 의논을 내어 더욱 인심을 분열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註 119] 개탁(開坼) : 포폄 계본(褒貶啓本)을 개봉하는 것.
"영건 도감(營建都監)의 낭청과 감역관(監役官)을 대상으로 포폄하여 등급을 매기는 일은 고례(古例)가 아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이번에 전최(殿最)한 것을 보면 성적이 중(中)과 하(下)인 자가 거의 10인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공사를 급히 서둘러야 할 때를 당하여 매번 생소한 사람으로 메워 임명하게 되니 더욱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해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어제는 어전에서 개탁(開坼)119)  하는 날이라고 해서 양궁(兩宮)의 낭청과 감역관이 한 사람도 출근하여 감독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루종일 아무 까닭없이 공사를 정지하다니 가슴아프기 그지없다. 지금 이후로 다시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각별히 착실하게 공사를 감독해야 할 것이며, 부질없이 공사를 중단하라는 의논을 내어 더욱 인심을 분열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의 낭청과 감역관에 빈 자리가 많다. 묘궐(廟闕)과 창경궁(昌慶宮)을 조성할 당시의 낭청과 감역관 중에서 골라 임명하여 감독케 하라."
"영건 도감의 낭청과 감역관에 빈 자리가 많다. 묘궐(廟闕)과 창경궁(昌慶宮)을 조성할 당시의 낭청과 감역관 중에서 골라 임명하여 감독케 하라."

 

우승지 이위경(李偉卿)이 아뢰기를, "근일 국가가 삼청동(三淸洞)에서 제사를 지내는 만큼 그곳에서 떠들며 노는 사람들을 금지하라고 재삼 전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동네에서 떼거리로 창기를 끼고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며 춤을 추기까지 하였는 데도 이를 꾸짖어 단속하는 군사나 부장(部將)이 없었으므로 동네 사람들 모두가 분하다고 얘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오늘 그곳의 부장 등을 패(牌)를 내어 불렀더니 충찬위(忠贊衛) 등 4인은 직소(直所)에 있었던 반면 포도 군관 양응도(梁應渡)와 방진핵(方振翮) 등은 교대로 입번하며 수직해야 할 사람인데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만하여 직무를 수행치 않은 그 죄가 말할 수도 없으니 가두어 중하게 다스리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위경의 집이 그 동네에 있었는데 노는 자들을 막을 목적으로 이렇게 아뢴 것이었다.】
"근일 국가가 삼청동(三淸洞)에서 제사를 지내는 만큼 그곳에서 떠들며 노는 사람들을 금지하라고 재삼 전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동네에서 떼거리로 창기를 끼고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며 춤을 추기까지 하였는 데도 이를 꾸짖어 단속하는 군사나 부장(部將)이 없었으므로 동네 사람들 모두가 분하다고 얘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오늘 그곳의 부장 등을 패(牌)를 내어 불렀더니 충찬위(忠贊衛) 등 4인은 직소(直所)에 있었던 반면 포도 군관 양응도(梁應渡)와 방진핵(方振翮) 등은 교대로 입번하며 수직해야 할 사람인데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만하여 직무를 수행치 않은 그 죄가 말할 수도 없으니 가두어 중하게 다스리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위경의 집이 그 동네에 있었는데 노는 자들을 막을 목적으로 이렇게 아뢴 것이었다.】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강원 도사(江原都事) 신익수(申翼壽)의 장계를 보건대, 전 감사 이욱(李稶)이 밀부(密符)를 도사에게 전해주었는데 도사가 흐리멍덩하게 전해받아 올려 보냈습니다. 대개 밀부라는 물건은 방백의 신하가 임금으로부터 직접 받은 뒤 혹시 사변이 발생하면 이를 가지고 주선하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이욱이 비록 감사에서 체차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본도에 있으면서 신임 감사와 직접 교대하는 예를 행하지 않았고 보면 역시 하나의 감사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대하고 막중한 물건을 주어서는 안될 사람에게 전해준 채 빈손으로 경내에 앉아 있으니, 이렇듯 신임 감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날을 당하여 급한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장차 어떻게 일을 조처하겠습니까. 사리에 어두워 졸렬하게 처리한 잘못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익수도 받아서는 안될 물건을 받아 태연히 아뢰며 보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지금 강원 도사(江原都事) 신익수(申翼壽)의 장계를 보건대, 전 감사 이욱(李稶)이 밀부(密符)를 도사에게 전해주었는데 도사가 흐리멍덩하게 전해받아 올려 보냈습니다. 대개 밀부라는 물건은 방백의 신하가 임금으로부터 직접 받은 뒤 혹시 사변이 발생하면 이를 가지고 주선하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이욱이 비록 감사에서 체차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본도에 있으면서 신임 감사와 직접 교대하는 예를 행하지 않았고 보면 역시 하나의 감사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대하고 막중한 물건을 주어서는 안될 사람에게 전해준 채 빈손으로 경내에 앉아 있으니, 이렇듯 신임 감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날을 당하여 급한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장차 어떻게 일을 조처하겠습니까. 사리에 어두워 졸렬하게 처리한 잘못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익수도 받아서는 안될 물건을 받아 태연히 아뢰며 보내었습니다. 두 사람 다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조 정랑 정준(鄭遵)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검찰사(檢察使) 심돈(沈惇)이 신을 자신의 종사관으로 청했는데, 정원이 ‘안이 중하고 밖은 가볍다.’느니 ‘전랑으로서 서연(書筵)에 겸하여 참석하고 있다.’느니 하는 등의 말을 계달하면서 머물게 하기를 청하였으니, 신이 실로 미안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특별히 잉대(仍帶)하는 명을 내리시어 좌막(佐幕)의 임무를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그러면 신이 보잘것없는 힘이나마 모두 바쳐 성은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가 평소부터 화증(火症)이 많은데 요즈음 상소와 차자가 번잡하게 올라오는 탓으로 광증(狂症)이 더욱 심해져 살펴볼 수가 없다. 더구나 이 종사관은 다른 사람으로 이미 계하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검찰사(檢察使) 심돈(沈惇)이 신을 자신의 종사관으로 청했는데, 정원이 ‘안이 중하고 밖은 가볍다.’느니 ‘전랑으로서 서연(書筵)에 겸하여 참석하고 있다.’느니 하는 등의 말을 계달하면서 머물게 하기를 청하였으니, 신이 실로 미안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특별히 잉대(仍帶)하는 명을 내리시어 좌막(佐幕)의 임무를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그러면 신이 보잘것없는 힘이나마 모두 바쳐 성은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가 평소부터 화증(火症)이 많은데 요즈음 상소와 차자가 번잡하게 올라오는 탓으로 광증(狂症)이 더욱 심해져 살펴볼 수가 없다. 더구나 이 종사관은 다른 사람으로 이미 계하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의주 부윤(義州府尹)의 장계를 보건대, 우리 나라의 군병을 만약 중국 장수로 하여금 관장하게 할 경우 조목조목 사단이 일어날 우려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구 참장(丘參將)이 우리 나라로 하여금 군문(軍門) 등 아문에 자문(咨文)을 보내 자기를 그 직책에 임명하도록 청하게 하려 하고 있는데, 그 뜻이 매우 근실하긴 합니다. 다만 그는 우리 나라에 대해 예전부터 유감을 품고 헛소문을 많이 지어내어 우리 나라를 모함해 빠뜨리는데 있는 힘을 다했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문으로 청하여 그가 우리 나라 군병을 관장하게까지 한다면 혹 그 인연으로 일을 낼 염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의 청을 따라주지 않으면 더욱 심각하게 틈이 벌어질 것이니, 지금 응당 ‘노야(老爺)가 오래도록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지역에 있어 우리 나라 사정을 익히 알고 있으니, 만약 이 임무를 맡아 우리 나라 병마를 관장하게만 된다면 우리 나라 입장에서야 어찌 그런 다행이 있겠는가. 그러나 군문·경략 등 아문의 체면이 삼엄하고 군기(軍機) 또한 지극히 중하니 우리 나라에서 이래라저래라 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자보(咨報) 사이에 드러내는 일은 정말 감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관이 도착하는 날을 기다려 형세를 살펴가며 주선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곡진하게 말을 만들어 그가 성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겠습니다. 인하여 생각건대, 구 참장이 말한 것을 보면 군대를 지휘하는 장관 한 명이 역시 조만간 나올 것이 분명한데 장관의 직질이 참장이나 유격(遊擊)·부총(副摠) 사이를 벗어나지는 않을 듯하니, 그에 따른 접반관도 한 사람 미리 차출하여 준비하고 대기하게 함으로써 그때에 가서 전도되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차관이 처음 도착했을 때 군병의 일로 문답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부윤이 장계에서 진달한 것이 매우 사리에 합당하니 그대로 하게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일단 본국의 사정을 가지고 이미 진주(陳奏)했고 보면 어찌 조정의 처치를 기다리지도 않고 미리 앞서 들여보내 징병할 수가 있겠는가. 설혹 경략이 뭐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성지(聖旨)를 받든 일이 아닌 이상 어찌 경솔하게 쾌히 따라줄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구 참장에게도 ‘이미 주문(奏聞)을 한 이상 우선은 조정의 처치를 기다려야 하니 감히 미리 앞서서 진퇴하지는 못하겠다. 형세를 보아 가면서 조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설혹 들여보낸다 하더라도 성지를 기다리지도 않고 들여보내겠는가. 더 자세히 의논하여 선처토록 하라. 접반사는 차출해서 대기만 하도록 하고 들여보내지는 말라." 하였다.
"삼가 의주 부윤(義州府尹)의 장계를 보건대, 우리 나라의 군병을 만약 중국 장수로 하여금 관장하게 할 경우 조목조목 사단이 일어날 우려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구 참장(丘參將)이 우리 나라로 하여금 군문(軍門) 등 아문에 자문(咨文)을 보내 자기를 그 직책에 임명하도록 청하게 하려 하고 있는데, 그 뜻이 매우 근실하긴 합니다. 다만 그는 우리 나라에 대해 예전부터 유감을 품고 헛소문을 많이 지어내어 우리 나라를 모함해 빠뜨리는데 있는 힘을 다했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문으로 청하여 그가 우리 나라 군병을 관장하게까지 한다면 혹 그 인연으로 일을 낼 염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의 청을 따라주지 않으면 더욱 심각하게 틈이 벌어질 것이니, 지금 응당 ‘노야(老爺)가 오래도록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지역에 있어 우리 나라 사정을 익히 알고 있으니, 만약 이 임무를 맡아 우리 나라 병마를 관장하게만 된다면 우리 나라 입장에서야 어찌 그런 다행이 있겠는가. 그러나 군문·경략 등 아문의 체면이 삼엄하고 군기(軍機) 또한 지극히 중하니 우리 나라에서 이래라저래라 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자보(咨報) 사이에 드러내는 일은 정말 감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관이 도착하는 날을 기다려 형세를 살펴가며 주선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곡진하게 말을 만들어 그가 성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겠습니다.
인하여 생각건대, 구 참장이 말한 것을 보면 군대를 지휘하는 장관 한 명이 역시 조만간 나올 것이 분명한데 장관의 직질이 참장이나 유격(遊擊)·부총(副摠) 사이를 벗어나지는 않을 듯하니, 그에 따른 접반관도 한 사람 미리 차출하여 준비하고 대기하게 함으로써 그때에 가서 전도되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차관이 처음 도착했을 때 군병의 일로 문답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부윤이 장계에서 진달한 것이 매우 사리에 합당하니 그대로 하게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일단 본국의 사정을 가지고 이미 진주(陳奏)했고 보면 어찌 조정의 처치를 기다리지도 않고 미리 앞서 들여보내 징병할 수가 있겠는가. 설혹 경략이 뭐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성지(聖旨)를 받든 일이 아닌 이상 어찌 경솔하게 쾌히 따라줄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구 참장에게도 ‘이미 주문(奏聞)을 한 이상 우선은 조정의 처치를 기다려야 하니 감히 미리 앞서서 진퇴하지는 못하겠다. 형세를 보아 가면서 조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설혹 들여보낸다 하더라도 성지를 기다리지도 않고 들여보내겠는가. 더 자세히 의논하여 선처토록 하라. 접반사는 차출해서 대기만 하도록 하고 들여보내지는 말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평안 병사(平安兵使)의 장계에 대해 회계하자 ‘본도 수령 가운데 체차시켜야 할 문남(文南)120)  은 우선적으로 모조리 체차시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본도는 문남 수령이 있는 고을이 수십여 개에 이르고 있으니 만약 한꺼번에 모조리 체차시킨다면 소요스럽게 될 듯합니다. 변방에 가까운 고을로서 희천 군수(熙川郡守)·강계 판관(江界判官)·태천 현감(泰川縣監)·가산 군수(嘉山郡守) 및 더욱 심하게 늙고 병든 숙천 부사(肅川府使)와 함경도 정평(定平) 등 관원을 우선 체차시키고 다시 사세를 보아가면서 점차적으로 체차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3현(縣)의 각 고을은 비록 내지(內地)라고는 하나 평소부터 무관을 교대로 차임했는데, 이는 대체로 물력(物力)이 있는 곳이라서 강변에 들어가 방어할 때 편리한 일이 많기 때문이었으니, 지금 역시 이 예에 따라 명망이 있는 무변(武弁)을 엄선하여 번갈아 임명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함경도 경성(鏡城)과 북청(北靑)은 모두 남병사와 북병사의 본영인데 변경에 경보가 울릴 경우 병사가 반드시 진주(進駐)할 것이니 본영을 지키는 일은 판관에게 전담시켜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온성 판관(穩城判官) 역시 변방의 긴요한 방어 지역을 맡고 있으므로 뭇 의논들이 모두 급히 처치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남이준(南以俊)·조정립(曺挺立)·김호(金昈) 등은 모두가 백면 서생(白面書生)이라서 결코 이 임무를 책임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들은 해조가 전례에 따라 차견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신들이 감히 멋대로 바꾸자고 청하지 못하겠기에 감히 이렇게 우러러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도의 수령들은 타도의 수령들과 서로 자리를 바꿔 주도록 하되, 가산 군수는 곡산 군수(谷山郡守)와 맞바꾸고, 남이준은 다른 도의 판관이나 수령과 맞바꾸도록 하라." 하였다.


[註 120] 문남(文南) : 문관과 음관(蔭官).
"평안 병사(平安兵使)의 장계에 대해 회계하자 ‘본도 수령 가운데 체차시켜야 할 문남(文南)120)  은 우선적으로 모조리 체차시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본도는 문남 수령이 있는 고을이 수십여 개에 이르고 있으니 만약 한꺼번에 모조리 체차시킨다면 소요스럽게 될 듯합니다. 변방에 가까운 고을로서 희천 군수(熙川郡守)·강계 판관(江界判官)·태천 현감(泰川縣監)·가산 군수(嘉山郡守) 및 더욱 심하게 늙고 병든 숙천 부사(肅川府使)와 함경도 정평(定平) 등 관원을 우선 체차시키고 다시 사세를 보아가면서 점차적으로 체차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3현(縣)의 각 고을은 비록 내지(內地)라고는 하나 평소부터 무관을 교대로 차임했는데, 이는 대체로 물력(物力)이 있는 곳이라서 강변에 들어가 방어할 때 편리한 일이 많기 때문이었으니, 지금 역시 이 예에 따라 명망이 있는 무변(武弁)을 엄선하여 번갈아 임명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함경도 경성(鏡城)과 북청(北靑)은 모두 남병사와 북병사의 본영인데 변경에 경보가 울릴 경우 병사가 반드시 진주(進駐)할 것이니 본영을 지키는 일은 판관에게 전담시켜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온성 판관(穩城判官) 역시 변방의 긴요한 방어 지역을 맡고 있으므로 뭇 의논들이 모두 급히 처치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남이준(南以俊)·조정립(曺挺立)·김호(金昈) 등은 모두가 백면 서생(白面書生)이라서 결코 이 임무를 책임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들은 해조가 전례에 따라 차견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신들이 감히 멋대로 바꾸자고 청하지 못하겠기에 감히 이렇게 우러러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도의 수령들은 타도의 수령들과 서로 자리를 바꿔 주도록 하되, 가산 군수는 곡산 군수(谷山郡守)와 맞바꾸고, 남이준은 다른 도의 판관이나 수령과 맞바꾸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가산(嘉山)은 곡산(谷山)과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고 군수 이상안(李尙安)도 또한 무반(武班) 중에 쓸 만한 자이니 비록 맞바꾼다 하더라도 방해될 것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기타 각읍의 경우 다른 도의 수령과 맞바꾸노라면 자칫 시일이 많이 걸릴텐데 이렇듯 변방의 사태가 심각한 날을 당하여 필시 제때에 미치지 못하고 느슨해지는 걱정이 있게 될 것이니 정말 염려됩니다. 더구나 경성과 북청 등 지역의 경우는 판관이 수성 대장(守城大將)의 임무를 대행케 되는 만큼 그 책임이 막중한데 만약 서로 맞바꾼다는 것에만 구애를 받게 되면 교환된 수령 모두가 적임자라는 보장이 없으니 정말 작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무신 가운데 현저히 드러나 그 자리에 걸맞는 자를 엄선해서 차송하고, 체차된 수령은 이조로 하여금 다른 도의 수령 자리가 빌 때를 기다렸다가 제수하게 하는 것이 실로 온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가산(嘉山)은 곡산(谷山)과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고 군수 이상안(李尙安)도 또한 무반(武班) 중에 쓸 만한 자이니 비록 맞바꾼다 하더라도 방해될 것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기타 각읍의 경우 다른 도의 수령과 맞바꾸노라면 자칫 시일이 많이 걸릴텐데 이렇듯 변방의 사태가 심각한 날을 당하여 필시 제때에 미치지 못하고 느슨해지는 걱정이 있게 될 것이니 정말 염려됩니다. 더구나 경성과 북청 등 지역의 경우는 판관이 수성 대장(守城大將)의 임무를 대행케 되는 만큼 그 책임이 막중한데 만약 서로 맞바꾼다는 것에만 구애를 받게 되면 교환된 수령 모두가 적임자라는 보장이 없으니 정말 작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무신 가운데 현저히 드러나 그 자리에 걸맞는 자를 엄선해서 차송하고, 체차된 수령은 이조로 하여금 다른 도의 수령 자리가 빌 때를 기다렸다가 제수하게 하는 것이 실로 온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경략(經略)의 차관(差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 군병은 요동(遼東)으로 건너갈 필요가 없다고 하니 조금은 다행이다. 채승선(蔡承先)이 내려가서 차관을 보거든 ‘우리 나라는 3면의 변방을 방비해야 하는데 엉성하기 짝이 없어 스스로 지키기에도 겨를이 없다. 게다가 훈련되지 않은 약졸이라서 중국 군대의 위명을 손상시킬까 두렵다. 만약 강변을 굳게 지키면서 사태의 진전을 보아가며 진퇴한다면 그런대로 이익되는 바가 있을 것이다.’는 내용으로 극력 진달하면서 좋은 말로 간절히 타일러 양 대인(楊大人) 앞에 가서 잘 도모하게 하라. 그리고 각별히 잘 대접하여 환심을 얻도록 하라. "
"경략(經略)의 차관(差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 군병은 요동(遼東)으로 건너갈 필요가 없다고 하니 조금은 다행이다. 채승선(蔡承先)이 내려가서 차관을 보거든 ‘우리 나라는 3면의 변방을 방비해야 하는데 엉성하기 짝이 없어 스스로 지키기에도 겨를이 없다. 게다가 훈련되지 않은 약졸이라서 중국 군대의 위명을 손상시킬까 두렵다. 만약 강변을 굳게 지키면서 사태의 진전을 보아가며 진퇴한다면 그런대로 이익되는 바가 있을 것이다.’는 내용으로 극력 진달하면서 좋은 말로 간절히 타일러 양 대인(楊大人) 앞에 가서 잘 도모하게 하라. 그리고 각별히 잘 대접하여 환심을 얻도록 하라. "

 

비변사가 아뢰기를, "근래 서쪽과 북쪽 변방의 보고를 보건대 저 적이 전쟁을 일으킬 환란이 아침에 일어날지 저녁에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걱정스럽습니다. 사변이 한번 일어나면 양남(兩南)의 군병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게 될텐데 이들의 군량을 보급할 대책을 미리 요리해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병이 지나가는 일로(一路)에서 먹일 일을 호조로 하여금 별도로 조치하고 기다리게 하여 군중(軍中)에서 배고픔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뜻을 아울러 급히 분호조(分戶曹) 참판과 참의 및 황연·공홍·전라·경상도 관찰사에게 하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근래 서쪽과 북쪽 변방의 보고를 보건대 저 적이 전쟁을 일으킬 환란이 아침에 일어날지 저녁에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걱정스럽습니다. 사변이 한번 일어나면 양남(兩南)의 군병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게 될텐데 이들의 군량을 보급할 대책을 미리 요리해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병이 지나가는 일로(一路)에서 먹일 일을 호조로 하여금 별도로 조치하고 기다리게 하여 군중(軍中)에서 배고픔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뜻을 아울러 급히 분호조(分戶曹) 참판과 참의 및 황연·공홍·전라·경상도 관찰사에게 하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6월 18일 을해

비변사의 초기(草記)에 따라 숙천 부사(肅川府使) 이이경(李頤慶), 정평 부사(定平府使) 심언명(沈彦明), 희천 군수(熙川郡守) 정유번(鄭惟藩), 강계 판관(江界判官) 양몽렬(梁夢說), 태천 현감(泰川縣監) 이창원(李昌源), 경성 판관(鏡城判官) 남이준(南以俊), 북청 판관(北靑判官) 조정립(曺挺立), 온성 판관(穩城判官) 김호(金昈)를 모두 체차시키고, 가산 군수(嘉山郡守) 이정신(李廷紳)과 곡산 군수(谷山郡守) 이상안(李尙安)을 맞바꾸었다.

 

전교하였다. "이 적이 일찍이 우리 나라와는 아무런 원한 관계도 맺지 않았는데 어찌 갑자기 침범해 올 리가 있겠는가. 더구나 중관(重關)과 대진(大鎭)이 서로 잇달아 설치되어 있으니 추잡한 무리들이 어떻게 이를 뛰어넘어 올 수가 있겠는가. 혹시라도 만에 하나 차질이 생기면 내가 직접 삼군(三軍)을 이끌고서 성을 등진 채 일전을 벌일 것이요, 불행하게 또 임진년과 같은 일이 있게 되더라도 사민(士民)을 모두 이끌고 조용히 조치를 취할 것이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내가 유시한 뜻을 몸받도록 하라. 그리하여 경솔하게 움직여 엎어지고 떠돌아다니게 되는 일을 자초하지 말도록 하라.’는 내용으로 한성부로 하여금 방(榜)을 내걸어 알림으로써 힘껏 진정시키도록 하라."
"이 적이 일찍이 우리 나라와는 아무런 원한 관계도 맺지 않았는데 어찌 갑자기 침범해 올 리가 있겠는가. 더구나 중관(重關)과 대진(大鎭)이 서로 잇달아 설치되어 있으니 추잡한 무리들이 어떻게 이를 뛰어넘어 올 수가 있겠는가. 혹시라도 만에 하나 차질이 생기면 내가 직접 삼군(三軍)을 이끌고서 성을 등진 채 일전을 벌일 것이요, 불행하게 또 임진년과 같은 일이 있게 되더라도 사민(士民)을 모두 이끌고 조용히 조치를 취할 것이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내가 유시한 뜻을 몸받도록 하라. 그리하여 경솔하게 움직여 엎어지고 떠돌아다니게 되는 일을 자초하지 말도록 하라.’는 내용으로 한성부로 하여금 방(榜)을 내걸어 알림으로써 힘껏 진정시키도록 하라."

 

전교하기를, "서궁(西宮)의 존호(尊號)를 3도 감사가 모두 써서 아뢰었는지 자세히 살펴 아뢰어라." 하였는데, 정원이 아뢰기를, "일기(日記)를 가져다 상고해 보니 경상·공홍·강원도의 진상 단자(進上單子)에 모두 ‘소성정의(昭聖貞懿)’라는 네 글자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서궁(西宮)의 존호(尊號)를 3도 감사가 모두 써서 아뢰었는지 자세히 살펴 아뢰어라."
하였는데, 정원이 아뢰기를,
"일기(日記)를 가져다 상고해 보니 경상·공홍·강원도의 진상 단자(進上單子)에 모두 ‘소성정의(昭聖貞懿)’라는 네 글자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보장(保障)으로 삼을 곳을 미리 의논해 정해두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도성을 방어하는 절목이라든가 대동·임진강을 차단하고 수어하는 절목에 대해서는 깜깜 무소식이다. 그리고 의주를 막아 지킬 일을 누차 분부했는 데도 시행을 하지 않고 있다. 저 적이 요동(遼東)·광령(廣寧)·애양(靉陽)·장전(長奠) 등 지역을 침범할 경우에 대비해서 압강(鴨江)의 파수 또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조치해두지 않을 수 없으니 다시 더 철저히 살펴 급히 의논해 처리하고, 대동·임진·경강(京江)을 파수할 장령(將領)을 앞서 가려 차출하라."
"보장(保障)으로 삼을 곳을 미리 의논해 정해두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도성을 방어하는 절목이라든가 대동·임진강을 차단하고 수어하는 절목에 대해서는 깜깜 무소식이다. 그리고 의주를 막아 지킬 일을 누차 분부했는 데도 시행을 하지 않고 있다. 저 적이 요동(遼東)·광령(廣寧)·애양(靉陽)·장전(長奠) 등 지역을 침범할 경우에 대비해서 압강(鴨江)의 파수 또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조치해두지 않을 수 없으니 다시 더 철저히 살펴 급히 의논해 처리하고, 대동·임진·경강(京江)을 파수할 장령(將領)을 앞서 가려 차출하라."

 

6월 19일 병자

왕이 인경궁(仁慶宮)에 가서 공사의 진행 과정을 살피고 형세를 두루 훑어보면서 공사 일정을 독촉하였다.

 

영건 도감(營建都監)이 아뢰기를, "임시로 설치된 아문에는 본래 포폄하는 규정이 없습니다만 도감의 계사를 인하여 일단 등급을 매기기로 한 이상 엄정하게 전최(殿最)를 매기는 것이 마땅하기에 그대로 시행하였습니다. 중(中)의 점수를 맞은 낭청 조계한(趙繼韓)·조경진(趙景禛)·유식(兪湜)과 감역관(監役官) 최응두(崔應斗) 등은 출근한 날짜의 다소를 조사한 뒤에 그렇게 적용하였고, 감역관 신득의(愼得義)는 포폄 예수(禮數)에 끼이지 않아 중의 점수를 맞았는데, 이들의 경우는 평상시 포폄 공사를 할 때 관례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조정순(趙廷純)의 경우는 방납인(防納人) 정막동(鄭莫同)과 한통속이 되어 이익을 독점하려 한 계책이 의심할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에 하(下)를 맞았고, 정희주(鄭熙周)는 지난해에 누각을 세울 땅을 고르던 날 축대 공사를 성실치 못하게 해 준공이 되기도 전에 누각이 먼저 기울었기 때문에 하를 맞았고, 윤형임(尹衡任)은 그가 한 일을 보건대 대부분 두서가 없을 뿐 아니라 삽선(翣扇)과 같은 흉한 물건을 늠료(廩料)를 받는 장인(匠人)을 시켜 공공연히 만들게 하였기 때문에 중을 맞았고, 윤상립(尹商立)은 제조(提調) 중 한 사람이 그의 불성실한 행동을 보았기 때문에 중을 맞았습니다. 대개 조계한 등 5인은 모두 포폄 공사를 벌일 때 관례적으로 처리하는 데에 적용되었고, 조정순 등 3인은 제멋대로 방납한 죄를 지었고 개인적인 일을 시켰으며 직무에 충실치 않았기 때문에 징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전최와 관련된 곡절을 따진 것이 아니다. 단지 어전에서 포폄 공사를 개봉하던 날이라고 해서 아무 이유없이 공사를 중단한 것은 안될 일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뿐이다." 하였다.
"임시로 설치된 아문에는 본래 포폄하는 규정이 없습니다만 도감의 계사를 인하여 일단 등급을 매기기로 한 이상 엄정하게 전최(殿最)를 매기는 것이 마땅하기에 그대로 시행하였습니다. 중(中)의 점수를 맞은 낭청 조계한(趙繼韓)·조경진(趙景禛)·유식(兪湜)과 감역관(監役官) 최응두(崔應斗) 등은 출근한 날짜의 다소를 조사한 뒤에 그렇게 적용하였고, 감역관 신득의(愼得義)는 포폄 예수(禮數)에 끼이지 않아 중의 점수를 맞았는데, 이들의 경우는 평상시 포폄 공사를 할 때 관례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조정순(趙廷純)의 경우는 방납인(防納人) 정막동(鄭莫同)과 한통속이 되어 이익을 독점하려 한 계책이 의심할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에 하(下)를 맞았고, 정희주(鄭熙周)는 지난해에 누각을 세울 땅을 고르던 날 축대 공사를 성실치 못하게 해 준공이 되기도 전에 누각이 먼저 기울었기 때문에 하를 맞았고, 윤형임(尹衡任)은 그가 한 일을 보건대 대부분 두서가 없을 뿐 아니라 삽선(翣扇)과 같은 흉한 물건을 늠료(廩料)를 받는 장인(匠人)을 시켜 공공연히 만들게 하였기 때문에 중을 맞았고, 윤상립(尹商立)은 제조(提調) 중 한 사람이 그의 불성실한 행동을 보았기 때문에 중을 맞았습니다.
대개 조계한 등 5인은 모두 포폄 공사를 벌일 때 관례적으로 처리하는 데에 적용되었고, 조정순 등 3인은 제멋대로 방납한 죄를 지었고 개인적인 일을 시켰으며 직무에 충실치 않았기 때문에 징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전최와 관련된 곡절을 따진 것이 아니다. 단지 어전에서 포폄 공사를 개봉하던 날이라고 해서 아무 이유없이 공사를 중단한 것은 안될 일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뿐이다."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요즘 듣건대, 내삼청(內三廳)121)  에서 임기가 만료되었는 데도 계속 그 자리에 근무하고 훈련 도감에서 근무하는 임무에 부지런히 힘쓰는 장관(將官)들이 천전(遷轉)되지 않기 때문에 늘 미관 말직에 있다는 원한[積薪之怨]이 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어제 내삼청의 하인과 도감의 서자지(書字知)122)   등을 불러다 물어 보았더니 ‘실선전관(實宣傳官)은 20개월, 겸선전관(兼宣傳官)은 15개월에 임기가 만료되는데, 박곤원(朴坤元) 등은 실선전관으로 본청에 근무한 지 45개월이 되었고 이확(李廓)은 겸선전관으로 본청에 근무한 지 22개월이 되었으며 한응남(韓應男)은 파총(把摠)으로 1백 8개월이 되었고 이종길(李宗吉)은 수문장으로 51개월을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고 보면 충실히 근무한 사람에 대해 사기를 진작시켜 주어야 하는 도리로 볼 때 어찌 소홀한 점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당장 서·북·남 세 곳의 변경 지역 수령에 빈 곳이 있으면 이 사람들을 의망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註 121] 내삼청(內三廳) : 내금위(內禁衛)·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註 122] 서자지(書字知) : 군총(軍摠)의 하나.
"요즘 듣건대, 내삼청(內三廳)121)  에서 임기가 만료되었는 데도 계속 그 자리에 근무하고 훈련 도감에서 근무하는 임무에 부지런히 힘쓰는 장관(將官)들이 천전(遷轉)되지 않기 때문에 늘 미관 말직에 있다는 원한[積薪之怨]이 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어제 내삼청의 하인과 도감의 서자지(書字知)122)   등을 불러다 물어 보았더니 ‘실선전관(實宣傳官)은 20개월, 겸선전관(兼宣傳官)은 15개월에 임기가 만료되는데, 박곤원(朴坤元) 등은 실선전관으로 본청에 근무한 지 45개월이 되었고 이확(李廓)은 겸선전관으로 본청에 근무한 지 22개월이 되었으며 한응남(韓應男)은 파총(把摠)으로 1백 8개월이 되었고 이종길(李宗吉)은 수문장으로 51개월을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고 보면 충실히 근무한 사람에 대해 사기를 진작시켜 주어야 하는 도리로 볼 때 어찌 소홀한 점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지금 당장 서·북·남 세 곳의 변경 지역 수령에 빈 곳이 있으면 이 사람들을 의망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대사헌 남근(南瑾)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삼가 어제 내리신 비망기를 보건대 방(榜)을 내걸어 주지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비국의 공사(公事)를 보면 도성을 나가 피난하는 계책에 대해서는 강구하여 정하지 않는 것이 없으면서도 유독 피난을 간 뒤에 도성을 지키는 방책에 대해서만은 강구하지 않고 있으니, 유도 대신(留都大臣)을 미리 정하도록 하소서. 신은 나이가 70에 가까워 이미 죽을 날이 박두한 탓으로 귀도 안들리고 눈도 어두우며 정신이 흐릿하기만 한데 요즘 들어 무더위에 건강을 중하게 상한 나머지 입으로 먹을 생각도 나지 않고 누워서는 일어날 수도 없어 전일 추국하는 자리에도 두세 차례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병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을 체직하여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충분히 알았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삼가 어제 내리신 비망기를 보건대 방(榜)을 내걸어 주지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비국의 공사(公事)를 보면 도성을 나가 피난하는 계책에 대해서는 강구하여 정하지 않는 것이 없으면서도 유독 피난을 간 뒤에 도성을 지키는 방책에 대해서만은 강구하지 않고 있으니, 유도 대신(留都大臣)을 미리 정하도록 하소서.
신은 나이가 70에 가까워 이미 죽을 날이 박두한 탓으로 귀도 안들리고 눈도 어두우며 정신이 흐릿하기만 한데 요즘 들어 무더위에 건강을 중하게 상한 나머지 입으로 먹을 생각도 나지 않고 누워서는 일어날 수도 없어 전일 추국하는 자리에도 두세 차례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병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을 체직하여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충분히 알았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성균관 관원이 지관사(知館事)의 뜻으로 아뢰기를, "중외의 유생들이 문묘(文廟)에 비석을 중건하는 일로 도합 35동(同)의 목포(木布)를 거두어 모아서 역가(役價)를 지급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국가에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 공사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으므로 장차 무용지물이 되게 되었는데, 제생(諸生)들 모두가 처치하는 것을 곤란하게 여기면서 ‘이렇듯 해조의 물력(物力)이 고갈된 때를 당하여 해조로 하여금 그것을 가져다 쓰도록 하고 뒤에 비석을 세우는 일을 할 때에 그 숫자대로 마련해 보내주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고 하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영건 도감으로 수송토록 하라." 하였다.
"중외의 유생들이 문묘(文廟)에 비석을 중건하는 일로 도합 35동(同)의 목포(木布)를 거두어 모아서 역가(役價)를 지급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국가에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 공사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으므로 장차 무용지물이 되게 되었는데, 제생(諸生)들 모두가 처치하는 것을 곤란하게 여기면서 ‘이렇듯 해조의 물력(物力)이 고갈된 때를 당하여 해조로 하여금 그것을 가져다 쓰도록 하고 뒤에 비석을 세우는 일을 할 때에 그 숫자대로 마련해 보내주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고 하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영건 도감으로 수송토록 하라."
하였다.

 

흠차 순무 요동 지방 찬리 군무 겸 관비왜(欽差巡撫遼東地方贊理軍務兼官備倭) 도찰원 우첨도어사(都察院右僉都御史) 이(李)가 오랑캐에 관한 일로 자문(咨文)을 보내기를, "본원에 도착한 귀국의 자문을 받아 보건대 본원의 자문을 잘 받았다 운운 하였습니다. 살펴 보건대, 노추(奴酋)가 대국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았으니 그 죄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 황상(皇上)께서 크게 한번 노하는 위엄을 떨치시어 3백 만의 탕금(帑金)을 내시고 10여 만 정병(精兵)을 동원하신 뒤 특별히 경략(經略)을 보내 정벌하는 일을 전담시키셨습니다. 저 보잘것없는 조무라기들이야 우리의 칼에 기름칠할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귀국이 우리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보전하여 지키지 않을 수 없고 노추가 근접거리에 있는 만큼 방비책을 세워두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되기에, 부득불 자문을 보내 알려드리는 것일 따름입니다. 지금 도착한 자문 및 배신(陪臣)이 품정(稟呈)한 것을 보건대 충의(忠義)의 마음이 모두 인정될 뿐더러 신중하게 하려는 뜻을 더욱 알겠습니다. 귀국의 병마는 우선 의주(義州)에 주둔시켜 멀리서 성원을 하도록 하십시오. 일체의 진지(進止)에 관한 기의(機宜)는 사태의 진전을 조금 기다려 보면서 다시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귀국의 이자(移咨)를 받은 이상 회답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부디 검토하시어 그대로 시행하십시오. " 하였다.
"본원에 도착한 귀국의 자문을 받아 보건대 본원의 자문을 잘 받았다 운운 하였습니다. 살펴 보건대, 노추(奴酋)가 대국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았으니 그 죄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 황상(皇上)께서 크게 한번 노하는 위엄을 떨치시어 3백 만의 탕금(帑金)을 내시고 10여 만 정병(精兵)을 동원하신 뒤 특별히 경략(經略)을 보내 정벌하는 일을 전담시키셨습니다. 저 보잘것없는 조무라기들이야 우리의 칼에 기름칠할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귀국이 우리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보전하여 지키지 않을 수 없고 노추가 근접거리에 있는 만큼 방비책을 세워두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되기에, 부득불 자문을 보내 알려드리는 것일 따름입니다. 지금 도착한 자문 및 배신(陪臣)이 품정(稟呈)한 것을 보건대 충의(忠義)의 마음이 모두 인정될 뿐더러 신중하게 하려는 뜻을 더욱 알겠습니다. 귀국의 병마는 우선 의주(義州)에 주둔시켜 멀리서 성원을 하도록 하십시오. 일체의 진지(進止)에 관한 기의(機宜)는 사태의 진전을 조금 기다려 보면서 다시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귀국의 이자(移咨)를 받은 이상 회답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부디 검토하시어 그대로 시행하십시오. "
하였다.

 

재자관(齎咨官) 이잠(李埁)이 장계를 올리기를, "신이 지난달 25일 요동(遼東)에서 장계 2통을 의주의 소통사(小通事)에게 부쳐 비밀히 올려 보낸 뒤 26일에 소로를 경유하여 우가장(牛家莊)으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29일 고평(高平)에 도착했을 때 소통사 김태정(金太丁)이 어첩(御帖) 1통을 가져왔기에 공손히 받았습니다. 30일에 광령(廣寧)에 도착해서 업남(業男) 등으로 하여금 찰원(察院) 아문에 나아가 정탐하게 하였더니, 찰원이 현재 탄핵을 받고 있는 중이라서 조그만 문 하나만 열어놓고 긴급한 군무(軍務)만 처리하고 있으며, 경략은 3일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1일에 신이 업남 등과 함께 아문에 나아갔더니 찰원이 신들을 인견하였습니다. 예를 행한 뒤에 자문을 올렸더니 찰원이 훑어보고 나서 말하기를 ‘너희 나라에서는 군마(軍馬)를 얼마나 조발했는가?’ 하였는데 목소리와 안색이 모두 엄하였습니다. 신이 업남을 시켜 대답하게 하기를 ‘노야(老爺)의 자문에 의거하여 7천 명을 간신히 조발했다.’ 하였더니, 찰원이 다시 안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당초에는 변방의 사태가 급하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병력 수를 7천으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노적(奴賊)의 세력이 성대해져서 바야흐로 천하의 군대를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정벌을 행하려 하고 있으니, 너희 나라로서는 마땅히 독부(督府)의 자문에 따라 급히 수만 군병을 징발한 뒤 기약한 대로 지휘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작 7천 명으로 책임을 때울 계책을 꾸미려 하다니 너희 나라의 분의(分義)로 볼 때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는가.’ 하였는데 목소리와 안색이 매우 준엄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마루 아래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는 재삼 머리를 조아리면서 업남을 시켜 대답하게 하기를 ‘소방이 병란을 겪은 뒤로 민생이 안정되지 못하고 물력이 빈약하기만 한데 군졸을 훈련시키면서 날마다 새롭게 부지런히 힘써도 병력이 워낙 취약하여 강성하게 만들 수가 없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왜적을 방어하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오랑캐에 대비하고 있는 만큼 각 변진(邊鎭)의 원래 조련된 군병을 사리상 조발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지의 군병을 뽑아 간신히 그 숫자를 채울 수밖에 없었으니 수만의 병력을 조발해내기는 정말 어렵다.’ 하였습니다. 업남이 이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소방이 2백 년 동안 지성으로 대국을 섬기며 성실한 자세로 충성스럽게 따른 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임진년에 은혜를 베풀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왕이 계승한 이후로도 특별히 성상께서 돌보아 주셨으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소방에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었고 아뢰면 반드시 들어주셨으니 소방과 중국은 의리상으로는 군신이지만 은혜로 보면 실로 부자와 같다. 이렇듯 천조에서 대대적으로 토벌을 행하는 날을 당하여 어찌 차마 조금이라도 태만하여 사기(事機)를 그르치겠는가. 우리 임금이 자문을 받은 뒤로 충분(忠憤)을 억제할 수 없으면서도 세력이 미칠 수 없어 온 나라와 더불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데 이는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찰원이 또 말하기를 ‘병가(兵家)의 사기(事機)는 성화보다도 급한 것이다. 본국에 자문을 보낸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무슨 연유로 이렇게 뒤쳐졌는가?’ 하였는데, 업남이 대답하기를 ‘본국의 군병은 잘 훈련된 상국의 군병과는 비할 바가 못된다. 병(兵)과 농(農)을 구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임시방편으로 농사짓는 백성들을 강제 동원하려니 형세상 아침에 명령을 내려 저녁에 모을 수 없었는데, 그래도 각 지역에서 취합하여 겨우 해당되는 숫자를 채웠다. 따라서 뒤쳐지게 된 데 따르는 질책을 형세상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면서 병력이 잔약하고 훈련시킬 방도가 없는 점을 다방면으로 간곡하게 호소하였으며, 신 역시 오래도록 마루 아래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려 마지않았습니다. 이에 찰원이 말하기를 ‘노적이 만약 너희 나라를 침범한다면 너희가 7천 명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하니, 업남이 대답하기를 ‘양계(兩界)의 강 연안에는 각각 해진(該鎭)에 속한 군병이 있는데 이 군병은 하루도 관할 지역을 이탈하게 할 수 없다. 이들 군병을 제외하고 별도로 징발하자니 7천이라는 숫자도 쉽사리 동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소방의 군병은 훈련되지 않아 취약하기만 하니 군량을 수송하며 멀리 내보낸다 하더라도 실제로 효과를 볼 수는 절대 없다. 소방으로 하여금 국경에서 정비하여 대기하고 있으면서 중국 군대의 성세를 도와 떨치게 하고 아울러 우리의 강토를 스스로 지키게끔 허락해 준다면 농민을 모조리 동원할 경우 그런 대로 1만 명의 숫자를 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멀리 군전(軍前)에 나아가게 할 경우 응원하는 데 아무 도움을 줄 수 없게 될 뿐더러 오히려 중국의 위엄을 손상시킬까 두렵다.’고 하면서 소리높여 간절히 설명을 하자, 찰원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기를 ‘양야(楊爺)를 기다려 의논해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우선 물러가 기다려라. 이런 이야기는 역시 양야에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 신 등이 업남 등과 함께 물러나 문밖으로 나오니, 기고관(旗鼓官)이 말하기를 ‘노야가 너희 나라 서북 방면의 지도를 보았으면 한다…….’ 하기에, 서북 방면 강 연안의 군읍을 대략적으로 작은 종이에 그려서 기고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학관(學官) 이원형(李元亨)과 함께 정문(呈文)을 만들어 저녁에 아문에 가서 바쳤더니, 찰원이 조용히 살펴보고 나서 말하기를 ‘너희 나라의 지형과 사정을 내가 알았으니 양야와 함께 상의해서 처리하겠다. 너희들은 며칠만 기다려라.’ 하였습니다. 3일에 경략이 성에 들어왔기에 신이 업남으로 하여금 무원(撫院)에 보내는 자문을 등사하여 경략에게 바치게 하고 이어 재자 배신(齎咨陪臣)이 이곳에 온 연유를 진달케 하였는데, 경략이 묻기를 ‘나에게도 너희 나라에서 줄 문서가 있는가?’ 하니, 업남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요동에 도착해서야 노야가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했다는 기별을 들었다. 그래서 이미 국왕에게 치계하였으니 필시 차관이 아침 저녁 사이에 이곳에 이르러 문안을 여쭈리라고 여겨진다.’ 하였습니다. 4일 새벽에 신이 아문에 나아가 정문을 올렸더니 경략이 즉시 신을 불러들여 만났습니다. 신을 불러 앞으로 나아오게 하고는 말하기를 ‘너희 국왕께서는 평안하신가?’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겨울에서 봄까지는 건강이 좋지 못하셨는데 지금은 나아가는 중이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의정(議政)과 병판(兵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기에, 신이 각각 성명을 대주었더니, 경략이 묻기를 ‘배신은 무슨 관작에 있는가?’ 하였는데, 업남이 대답하기를 ‘홍문관 교리이다.’ 하였습니다. 경략이 정문을 훑어보고 나서 말하기를 ‘이 글은 본국에서 지어 보낸 것인가?’ 하자, 업남이 말하기를 ‘마침 노야(老爺)께서 도착하셨으므로 본국의 사정을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기에 배신이 즉시 작성하여 올린 것이다.’ 하였는데, 경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 정문의 뜻이 역시 국왕의 뜻인가?’ 하니, 업남이 말하기를 ‘그렇다. 소방의 사정에 대해서는 꼭 자질구레하게 조목별로 나열할 필요도 없이 대체적인 내용을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이다. 남쪽으로는 교활한 왜적이 때도 없이 도발해오고 있고 서쪽과 북쪽 변경의 근심은 눈썹에 불이 붙듯 절박한 상태이다. 이 도야(李都爺)가 7천 병력을 요동 지경으로 들여보내라고 자문을 보냈는데 그것은 소방의 형세로는 결코 감당해내기 어렵다. 그런데 군문(軍門)이 수만 군대를 동원하라고 분부하였으니 이는 더더욱 마련해내기가 어렵다. 감히 이처럼 구구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노야로부터 시종 보전될 수 있는 계책을 힘입기 위해서이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경략이 말하기를 ‘어제 이 도야가 조선 군대를 처치할 일을 나에게 묻기에, 내가 그 나라는 우선 놔두자는 뜻으로 대답하였다. 조선 병사가 쓸모가 없다는 것은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도 동쪽 변방에서 협공할 일이 있었을 때 내가 응원군으로 조발해 쓰려하지 않고 그저 천병(天兵)의 성세만 돕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듣건대 노적이 조선(槽船)을 많이 만들고 있다 하니 너희 나라에 충돌할 환란이 있을까 염려된다. 수만 명은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7천 병력 외에 다시 3천 명을 더 조발하여 강 연안의 노적 소굴과 아주 가까운 지역에 주둔시키고 이를 통령(統領)하는 장수의 성명을 군전(軍前)에 보고토록 하라. 이는 중국을 위한 일이 아니고 실제로 너희 나라를 위하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니 너희 나라가 어찌 기꺼이 준수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번에 정벌하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지휘하기에 달려 있는데 내가 어찌 돌볼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너희 나라의 군병을 요동에 데려다 쓸 리는 절대로 없다. 더구나 너희 나라에 일이 있게 되면 그날이 바로 중국에 일이 있게 되는 날인데 내가 어찌 방관을 하겠는가.’ 하였으므로, 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드리고 나서 이어 말하기를 ‘군문에 회자(回咨)를 올리는 일이 한 시각이 급하니 오늘 작별하고 떠날까 한다.’ 하였더니, 경략이 말하기를 ‘너희는 회자를 가지고 오라. 군기(軍機)에 관한 일은 매우 긴급하니 내가 파발마로 전해주겠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며 기다리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업남이 회자를 바치자 경략이 훑어보고 나서 말하기를 ‘이 회자의 내용은 지극히 타당치 못하다. 지금 이 거조는 성지(聖旨)를 받들어 그대로 준수하고 있는 일이다. 군문은 너희 나라의 형세를 모르고 있는데 만약 7천 병력을 조발했다는 보고를 받으면 필시 병력이 적은 것에 성을 내면서 천조(天朝)에 제본(題本)을 올려 조정의 논의가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니 너희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많게 될 것이다. 내가 조정을 하직할 때 묘당(廟堂)의 의논이 어떠한지 상세히 알고 나왔는데 내가 어찌 너희를 속이겠는가. 급히 국왕에게 알려 수만 병력은 마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1만 군사를 정돈시켜 국경에서 명을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자문을 갖춰 회보토록 하라…….’ 하였으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내가 명을 받들어 위임을 받고 온 이상 마음대로 중지할 수는 없다.’고 하였더니, 경략이 말하기를 ‘내가 이런 내용으로 사유를 갖추어 너희 나라에 자문을 보낼 것이니 회자는 우선 여기에 두도록 하라…….’ 하면서 회자를 도로 내주지 않고 말하기를 ‘왕야(汪爺)가 너희 나라의 사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너희 나라에서는 그저 내가 지휘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내가 너희 국왕의 문서와 배신(陪臣)이 올린 글을 보건대 그 내용은 모두 요동으로 병력을 내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너희 나라가 비록 정병(精兵) 1만을 징발하겠다고 군문에게 자문으로 보고한다 하더라도 알아서 지휘하는 것은 모두 내 손에 달려 있다. 너희 나라 강 연안의 주둔할 만한 곳을 속히 자문으로 보고하면 내가 너희 소원대로 들어주겠다…….’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회자를 올리는 일을 중지하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지기에 업남으로 하여금 재차 품(稟)하게 하기를 ‘우리가 무원(撫院)에 정문(呈文)했을 때 날짜를 지체시켰기 때문에 이 도야로부터 재삼 질책을 받았다. 이번에 자문의 내용을 고치기 위해 갔다가 돌아오노라면 길이 멀기 때문에 날짜가 소요될텐데 그러면 군문(軍門)이 필시 의아하게 여길 것이니 이 점이 염려된다.’ 하였더니, 경략이 말하기를 ‘내가 여기에서 군문에게 이문(移文)해 줄테니 너희는 마음을 놓아도 좋다.’ 하였습니다. 업남이 또 묻기를 ‘나름대로 듣건대 노야께서 소방에 차인을 보낸다고 하는데 그런가?’ 하니, 경략이 말하기를 ‘너희 지방이 노적의 소굴과 근접해 있으므로 거리가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알고 싶고 또 좋은 말[馬]을 무역하고 싶기도 하다.’ 하자, 업남이 대답하기를 ‘소방에 거세하지 않은 아마(兒馬)가 있긴 하지만 어찌 전장에 적합하겠는가. 소방 사람들도 좋은 말을 구하려면 꼭 상국의 지방에서 무역해 오곤 한다.’ 하였습니다. 경략이 말하기를 ‘너희가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렀는데 반전(飯錢)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은가?’ 하고는 즉시 수역관(守驛官)에게 명하여 배신과 역관 등에게 1일마다 각각 은자(銀子) 1전(錢)씩을 지급토록 하였으므로 신과 업남이 사례하고 물러나왔는데 해가 지고 난 뒤에도 회자를 성급(成給)해 주지 않았습니다. 5일에 품첩(稟帖)을 만들어 바쳤더니, 경략이 업남을 불러 앞으로 나아오게 하고 분부하기를 ‘내가 너희 나라로 하여금 군문에 보내는 자문을 고치게 한 것은 너희 나라를 돌봐주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鎭江)에서 북경(北京)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데 이 문제는 구태여 논할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북관(北關)의 달자(㺚子)마저 바야흐로 정병 1만을 동원하여 천병의 성세를 돕고 있는 판에 너희 나라의 분의(分義)로 볼 때 어찌 고작 7천 명의 군병만을 조발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서 중국을 변경에서 응원하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면 매우 부당한 일이다. 지금 1만 명의 숫자를 채워 변경에서 정비하고 대기토록 한다면 앞으로 반드시 좋은 얘기들이 나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업남이 응답하기를 ‘이 도야가 이미 7천 명으로 분부했는데 노야께서는 무슨 연유로 다시 3천 명을 추가시키는가?’ 하니, 경략이 말하기를 ‘이 도야는 이쪽과 저쪽의 정세를 모르고 있다. 정벌할 때 내가 알아서 지휘할 것이니 너희는 급히 돌아가도록 하라. 작전 시기는 8, 9월이 될 예정인데 10일 사이에 끝날 것이다. 그곳의 군병을 가려 조발한 뒤에 통령(統領)하는 장관(將官)의 성명과 편비(褊裨)의 성명, 모지(某地)에 주둔시킨 연유 등을 일일이 작성하여 자문으로 보고하라. 군기(軍機)가 매우 급한 만큼 내가 아문의 하인을 시켜 성화같이 갔다가 오게 하고 싶지만 너희 나라 지방에 소요를 끼칠까 염려되기 때문에 너희 배신(陪臣)을 수고하게 하는 것이니 하루도 지체하지 말고 즉시 돌아가 보고하라.’ 하였습니다.  업남이 다시 품하기를 ‘진강의 유언비어라는 것은 내용이 무엇인가?’ 하고, 이어 구 유격(丘遊擊)이 허위로 날조하여 본국을 무함한 정상을 개진하니, 경략이 말하기를 ‘구는 이미 체차되었으니 지금 따질 필요가 없다. 북경과 군문에 내가 이미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였습니다.
"신이 지난달 25일 요동(遼東)에서 장계 2통을 의주의 소통사(小通事)에게 부쳐 비밀히 올려 보낸 뒤 26일에 소로를 경유하여 우가장(牛家莊)으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29일 고평(高平)에 도착했을 때 소통사 김태정(金太丁)이 어첩(御帖) 1통을 가져왔기에 공손히 받았습니다. 30일에 광령(廣寧)에 도착해서 업남(業男) 등으로 하여금 찰원(察院) 아문에 나아가 정탐하게 하였더니, 찰원이 현재 탄핵을 받고 있는 중이라서 조그만 문 하나만 열어놓고 긴급한 군무(軍務)만 처리하고 있으며, 경략은 3일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1일에 신이 업남 등과 함께 아문에 나아갔더니 찰원이 신들을 인견하였습니다. 예를 행한 뒤에 자문을 올렸더니 찰원이 훑어보고 나서 말하기를 ‘너희 나라에서는 군마(軍馬)를 얼마나 조발했는가?’ 하였는데 목소리와 안색이 모두 엄하였습니다. 신이 업남을 시켜 대답하게 하기를 ‘노야(老爺)의 자문에 의거하여 7천 명을 간신히 조발했다.’ 하였더니, 찰원이 다시 안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당초에는 변방의 사태가 급하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병력 수를 7천으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노적(奴賊)의 세력이 성대해져서 바야흐로 천하의 군대를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정벌을 행하려 하고 있으니, 너희 나라로서는 마땅히 독부(督府)의 자문에 따라 급히 수만 군병을 징발한 뒤 기약한 대로 지휘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작 7천 명으로 책임을 때울 계책을 꾸미려 하다니 너희 나라의 분의(分義)로 볼 때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는가.’ 하였는데 목소리와 안색이 매우 준엄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마루 아래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는 재삼 머리를 조아리면서 업남을 시켜 대답하게 하기를 ‘소방이 병란을 겪은 뒤로 민생이 안정되지 못하고 물력이 빈약하기만 한데 군졸을 훈련시키면서 날마다 새롭게 부지런히 힘써도 병력이 워낙 취약하여 강성하게 만들 수가 없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왜적을 방어하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오랑캐에 대비하고 있는 만큼 각 변진(邊鎭)의 원래 조련된 군병을 사리상 조발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지의 군병을 뽑아 간신히 그 숫자를 채울 수밖에 없었으니 수만의 병력을 조발해내기는 정말 어렵다.’ 하였습니다. 업남이 이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소방이 2백 년 동안 지성으로 대국을 섬기며 성실한 자세로 충성스럽게 따른 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임진년에 은혜를 베풀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왕이 계승한 이후로도 특별히 성상께서 돌보아 주셨으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소방에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었고 아뢰면 반드시 들어주셨으니 소방과 중국은 의리상으로는 군신이지만 은혜로 보면 실로 부자와 같다. 이렇듯 천조에서 대대적으로 토벌을 행하는 날을 당하여 어찌 차마 조금이라도 태만하여 사기(事機)를 그르치겠는가. 우리 임금이 자문을 받은 뒤로 충분(忠憤)을 억제할 수 없으면서도 세력이 미칠 수 없어 온 나라와 더불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데 이는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찰원이 또 말하기를 ‘병가(兵家)의 사기(事機)는 성화보다도 급한 것이다. 본국에 자문을 보낸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무슨 연유로 이렇게 뒤쳐졌는가?’ 하였는데, 업남이 대답하기를 ‘본국의 군병은 잘 훈련된 상국의 군병과는 비할 바가 못된다. 병(兵)과 농(農)을 구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임시방편으로 농사짓는 백성들을 강제 동원하려니 형세상 아침에 명령을 내려 저녁에 모을 수 없었는데, 그래도 각 지역에서 취합하여 겨우 해당되는 숫자를 채웠다. 따라서 뒤쳐지게 된 데 따르는 질책을 형세상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면서 병력이 잔약하고 훈련시킬 방도가 없는 점을 다방면으로 간곡하게 호소하였으며, 신 역시 오래도록 마루 아래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려 마지않았습니다. 이에 찰원이 말하기를 ‘노적이 만약 너희 나라를 침범한다면 너희가 7천 명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하니, 업남이 대답하기를 ‘양계(兩界)의 강 연안에는 각각 해진(該鎭)에 속한 군병이 있는데 이 군병은 하루도 관할 지역을 이탈하게 할 수 없다. 이들 군병을 제외하고 별도로 징발하자니 7천이라는 숫자도 쉽사리 동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소방의 군병은 훈련되지 않아 취약하기만 하니 군량을 수송하며 멀리 내보낸다 하더라도 실제로 효과를 볼 수는 절대 없다. 소방으로 하여금 국경에서 정비하여 대기하고 있으면서 중국 군대의 성세를 도와 떨치게 하고 아울러 우리의 강토를 스스로 지키게끔 허락해 준다면 농민을 모조리 동원할 경우 그런 대로 1만 명의 숫자를 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멀리 군전(軍前)에 나아가게 할 경우 응원하는 데 아무 도움을 줄 수 없게 될 뿐더러 오히려 중국의 위엄을 손상시킬까 두렵다.’고 하면서 소리높여 간절히 설명을 하자, 찰원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기를 ‘양야(楊爺)를 기다려 의논해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우선 물러가 기다려라. 이런 이야기는 역시 양야에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
신 등이 업남 등과 함께 물러나 문밖으로 나오니, 기고관(旗鼓官)이 말하기를 ‘노야가 너희 나라 서북 방면의 지도를 보았으면 한다…….’ 하기에, 서북 방면 강 연안의 군읍을 대략적으로 작은 종이에 그려서 기고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학관(學官) 이원형(李元亨)과 함께 정문(呈文)을 만들어 저녁에 아문에 가서 바쳤더니, 찰원이 조용히 살펴보고 나서 말하기를 ‘너희 나라의 지형과 사정을 내가 알았으니 양야와 함께 상의해서 처리하겠다. 너희들은 며칠만 기다려라.’ 하였습니다.
3일에 경략이 성에 들어왔기에 신이 업남으로 하여금 무원(撫院)에 보내는 자문을 등사하여 경략에게 바치게 하고 이어 재자 배신(齎咨陪臣)이 이곳에 온 연유를 진달케 하였는데, 경략이 묻기를 ‘나에게도 너희 나라에서 줄 문서가 있는가?’ 하니, 업남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요동에 도착해서야 노야가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했다는 기별을 들었다. 그래서 이미 국왕에게 치계하였으니 필시 차관이 아침 저녁 사이에 이곳에 이르러 문안을 여쭈리라고 여겨진다.’ 하였습니다.
4일 새벽에 신이 아문에 나아가 정문을 올렸더니 경략이 즉시 신을 불러들여 만났습니다. 신을 불러 앞으로 나아오게 하고는 말하기를 ‘너희 국왕께서는 평안하신가?’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겨울에서 봄까지는 건강이 좋지 못하셨는데 지금은 나아가는 중이다.’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의정(議政)과 병판(兵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기에, 신이 각각 성명을 대주었더니, 경략이 묻기를 ‘배신은 무슨 관작에 있는가?’ 하였는데, 업남이 대답하기를 ‘홍문관 교리이다.’ 하였습니다.
경략이 정문을 훑어보고 나서 말하기를 ‘이 글은 본국에서 지어 보낸 것인가?’ 하자, 업남이 말하기를 ‘마침 노야(老爺)께서 도착하셨으므로 본국의 사정을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기에 배신이 즉시 작성하여 올린 것이다.’ 하였는데, 경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 정문의 뜻이 역시 국왕의 뜻인가?’ 하니, 업남이 말하기를 ‘그렇다. 소방의 사정에 대해서는 꼭 자질구레하게 조목별로 나열할 필요도 없이 대체적인 내용을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이다. 남쪽으로는 교활한 왜적이 때도 없이 도발해오고 있고 서쪽과 북쪽 변경의 근심은 눈썹에 불이 붙듯 절박한 상태이다. 이 도야(李都爺)가 7천 병력을 요동 지경으로 들여보내라고 자문을 보냈는데 그것은 소방의 형세로는 결코 감당해내기 어렵다. 그런데 군문(軍門)이 수만 군대를 동원하라고 분부하였으니 이는 더더욱 마련해내기가 어렵다. 감히 이처럼 구구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노야로부터 시종 보전될 수 있는 계책을 힘입기 위해서이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경략이 말하기를 ‘어제 이 도야가 조선 군대를 처치할 일을 나에게 묻기에, 내가 그 나라는 우선 놔두자는 뜻으로 대답하였다. 조선 병사가 쓸모가 없다는 것은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도 동쪽 변방에서 협공할 일이 있었을 때 내가 응원군으로 조발해 쓰려하지 않고 그저 천병(天兵)의 성세만 돕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듣건대 노적이 조선(槽船)을 많이 만들고 있다 하니 너희 나라에 충돌할 환란이 있을까 염려된다. 수만 명은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7천 병력 외에 다시 3천 명을 더 조발하여 강 연안의 노적 소굴과 아주 가까운 지역에 주둔시키고 이를 통령(統領)하는 장수의 성명을 군전(軍前)에 보고토록 하라. 이는 중국을 위한 일이 아니고 실제로 너희 나라를 위하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니 너희 나라가 어찌 기꺼이 준수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번에 정벌하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지휘하기에 달려 있는데 내가 어찌 돌볼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너희 나라의 군병을 요동에 데려다 쓸 리는 절대로 없다. 더구나 너희 나라에 일이 있게 되면 그날이 바로 중국에 일이 있게 되는 날인데 내가 어찌 방관을 하겠는가.’ 하였으므로, 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드리고 나서 이어 말하기를 ‘군문에 회자(回咨)를 올리는 일이 한 시각이 급하니 오늘 작별하고 떠날까 한다.’ 하였더니, 경략이 말하기를 ‘너희는 회자를 가지고 오라. 군기(軍機)에 관한 일은 매우 긴급하니 내가 파발마로 전해주겠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며 기다리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업남이 회자를 바치자 경략이 훑어보고 나서 말하기를 ‘이 회자의 내용은 지극히 타당치 못하다. 지금 이 거조는 성지(聖旨)를 받들어 그대로 준수하고 있는 일이다. 군문은 너희 나라의 형세를 모르고 있는데 만약 7천 병력을 조발했다는 보고를 받으면 필시 병력이 적은 것에 성을 내면서 천조(天朝)에 제본(題本)을 올려 조정의 논의가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니 너희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많게 될 것이다. 내가 조정을 하직할 때 묘당(廟堂)의 의논이 어떠한지 상세히 알고 나왔는데 내가 어찌 너희를 속이겠는가. 급히 국왕에게 알려 수만 병력은 마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1만 군사를 정돈시켜 국경에서 명을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자문을 갖춰 회보토록 하라…….’ 하였으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내가 명을 받들어 위임을 받고 온 이상 마음대로 중지할 수는 없다.’고 하였더니, 경략이 말하기를 ‘내가 이런 내용으로 사유를 갖추어 너희 나라에 자문을 보낼 것이니 회자는 우선 여기에 두도록 하라…….’ 하면서 회자를 도로 내주지 않고 말하기를 ‘왕야(汪爺)가 너희 나라의 사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너희 나라에서는 그저 내가 지휘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내가 너희 국왕의 문서와 배신(陪臣)이 올린 글을 보건대 그 내용은 모두 요동으로 병력을 내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너희 나라가 비록 정병(精兵) 1만을 징발하겠다고 군문에게 자문으로 보고한다 하더라도 알아서 지휘하는 것은 모두 내 손에 달려 있다. 너희 나라 강 연안의 주둔할 만한 곳을 속히 자문으로 보고하면 내가 너희 소원대로 들어주겠다…….’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회자를 올리는 일을 중지하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지기에 업남으로 하여금 재차 품(稟)하게 하기를 ‘우리가 무원(撫院)에 정문(呈文)했을 때 날짜를 지체시켰기 때문에 이 도야로부터 재삼 질책을 받았다. 이번에 자문의 내용을 고치기 위해 갔다가 돌아오노라면 길이 멀기 때문에 날짜가 소요될텐데 그러면 군문(軍門)이 필시 의아하게 여길 것이니 이 점이 염려된다.’ 하였더니, 경략이 말하기를 ‘내가 여기에서 군문에게 이문(移文)해 줄테니 너희는 마음을 놓아도 좋다.’ 하였습니다. 업남이 또 묻기를 ‘나름대로 듣건대 노야께서 소방에 차인을 보낸다고 하는데 그런가?’ 하니, 경략이 말하기를 ‘너희 지방이 노적의 소굴과 근접해 있으므로 거리가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알고 싶고 또 좋은 말[馬]을 무역하고 싶기도 하다.’ 하자, 업남이 대답하기를 ‘소방에 거세하지 않은 아마(兒馬)가 있긴 하지만 어찌 전장에 적합하겠는가. 소방 사람들도 좋은 말을 구하려면 꼭 상국의 지방에서 무역해 오곤 한다.’ 하였습니다. 경략이 말하기를 ‘너희가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렀는데 반전(飯錢)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은가?’ 하고는 즉시 수역관(守驛官)에게 명하여 배신과 역관 등에게 1일마다 각각 은자(銀子) 1전(錢)씩을 지급토록 하였으므로 신과 업남이 사례하고 물러나왔는데 해가 지고 난 뒤에도 회자를 성급(成給)해 주지 않았습니다.
5일에 품첩(稟帖)을 만들어 바쳤더니, 경략이 업남을 불러 앞으로 나아오게 하고 분부하기를 ‘내가 너희 나라로 하여금 군문에 보내는 자문을 고치게 한 것은 너희 나라를 돌봐주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鎭江)에서 북경(北京)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데 이 문제는 구태여 논할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북관(北關)의 달자(㺚子)마저 바야흐로 정병 1만을 동원하여 천병의 성세를 돕고 있는 판에 너희 나라의 분의(分義)로 볼 때 어찌 고작 7천 명의 군병만을 조발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서 중국을 변경에서 응원하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면 매우 부당한 일이다. 지금 1만 명의 숫자를 채워 변경에서 정비하고 대기토록 한다면 앞으로 반드시 좋은 얘기들이 나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업남이 응답하기를 ‘이 도야가 이미 7천 명으로 분부했는데 노야께서는 무슨 연유로 다시 3천 명을 추가시키는가?’ 하니, 경략이 말하기를 ‘이 도야는 이쪽과 저쪽의 정세를 모르고 있다. 정벌할 때 내가 알아서 지휘할 것이니 너희는 급히 돌아가도록 하라. 작전 시기는 8, 9월이 될 예정인데 10일 사이에 끝날 것이다. 그곳의 군병을 가려 조발한 뒤에 통령(統領)하는 장관(將官)의 성명과 편비(褊裨)의 성명, 모지(某地)에 주둔시킨 연유 등을 일일이 작성하여 자문으로 보고하라. 군기(軍機)가 매우 급한 만큼 내가 아문의 하인을 시켜 성화같이 갔다가 오게 하고 싶지만 너희 나라 지방에 소요를 끼칠까 염려되기 때문에 너희 배신(陪臣)을 수고하게 하는 것이니 하루도 지체하지 말고 즉시 돌아가 보고하라.’ 하였습니다.
업남이 다시 품하기를 ‘진강의 유언비어라는 것은 내용이 무엇인가?’ 하고, 이어 구 유격(丘遊擊)이 허위로 날조하여 본국을 무함한 정상을 개진하니, 경략이 말하기를 ‘구는 이미 체차되었으니 지금 따질 필요가 없다. 북경과 군문에 내가 이미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였습니다.

 

 

 

흠차 경략 요동 등처 군무(欽差經略遼東等處軍務) 병부 좌시랑 겸 도찰원 우첨도어사(兵部左侍郞兼都察院右僉都御史) 양호(楊鎬)가 군대를 일으켜 토역(討逆)하는 일로 자문을 보내었다. "살피건대, 저 보잘것없는 노이(奴夷)가 하늘을 거역하고 위를 범하였으므로 군대를 일으켜 단호히 정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온 천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본부원(本部院)이 특별히 파견해 군무(軍務)를 경략케 하는 임무를 삼가 받들었는데, 황상의 칙서 안에 ‘조선을 고무시키도록 하라.’는 분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어찌 귀국이 급작스럽게 왜놈들의 침략을 받자 상국에서 힘껏 응원하며 수군과 육군을 무려 수십만 명이나 동원하고 수백만 석이 넘게 중국의 양식을 귀국에 옮겨 수송하면서 두 번에 걸쳐 수 년 동안 주선해 준 끝에 겨우 안정이 되었던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에 본부원이 외람되게도 경리(經理)의 임무를 맡아 몸소 전장에 나갔는데 거둔 성과는 없었어도 나름대로 걱정은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역(戰役)에서 진정 귀국에 자문으로 청하여 공동으로 원수를 갚음으로써 황상의 분부에 부응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국왕께서 독무(督撫)에 회답하는 자문을 갖고 도착한 홍문관 교리 이잠을 만났는데, 그 자문의 내용이 관망하는 듯하는 것이었고 뜻도 굳고 바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잠 또한 스스로 간절한 심정을 개진하는 정문(呈文) 하나를 바쳤는데, ‘앞뒤로 겨우 적을 막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면 ‘서울이고 지방이고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며 ‘국력이 넉넉치 못하다.’는 내용이 아니면 ‘교련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디 훈련되고 양식을 지급받는 군사들은 가만히 놔두고 단지 호미메고 쟁기잡은 농부들만 동원한 것이 교활한 왜적이 빈틈을 타 일어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데다 노적(奴賊)이 짓쳐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한 탓이기도 하지만, 호랑이 이야기만 해도 안색이 변하니 호랑이 굴 밖에서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왕의 신하들의 불충한 점을 세세히 수죄(數罪)할 것이 분명하기에 총독(總督)에게 보내는 자문을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싸들고 돌아가서 각별히 상의토록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노적을 정벌하는 일은 본조를 위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왕의 나라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국왕께서 과거에 몇 차례나 노추(奴酋)가 깔보며 업신여긴다고 보고를 해 왔고 변방의 관원이 누차에 걸쳐 역시 꾸짖었는 데도 고치지 않다가 이제 와서는 우리를 거역하고 있으니 국왕의 북쪽 변경이야 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를 도와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국왕의 봉토에서 편안한 복을 누리게 될 뿐만이 아니라 충의의 이름까지도 얻게 되는 셈인데 또 무엇을 꺼려 하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북관(北關)의 금(金)·백(白) 2추(酋)마저도 마병(馬兵) 1만을 마련하여 노적의 목을 누르고 있는데, 귀국에서는 어찌하여 그 등을 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입니까. 어쩌면 수만 병력을 갑자기 채우기가 어렵고 또 한편으로는 독자적으로 감당해내기가 난처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내가 왕에게 약속하겠습니다. 그저 1만 정병만 미리 뽑아 한 달 가량의 양식을 아울러 마련한 뒤 왕의 국경에 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작전이 벌어졌을 때 노추가 동쪽으로 충돌해 오는 것을 막아 도망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겨울철에 진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잇달아 요진(遼鎭)의 정예병과 함께 합동으로 공격해 들어가십시다. 2, 3백 리도 채 되지 않는 지역 안에서 몇 갈래 길로 공격하며 일제히 쳐들어 가면 10일 정도에 일을 끝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귀국에 알려드리는 것이 합당하겠기에 자문을 보내니 번거롭지만 앞뒤 자문의 사리를 잘 살피시어 속히 계책을 의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어디에서 뽑은 병정(兵丁)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 총령(摠領)하는 대장은 어떤 사람인지, 지휘를 분담하는 편비(褊裨)는 어떤 사람인지, 수륙의 어떤 요충지를 제압하고 있는지를 명시하고 아울러 노추와 가까운 지역의 지리 및 형세를 지도로 그려서 수고스럽지만 이잠으로 하여금 가져오게 하여 들어가 주문(奏聞)하는데 편리하도록 해 주십시오. 모쪼록 노를 두드리면서 맹세하고 책상을 쪼갠 것123)  처럼 도모하시고,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진퇴양난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병기(兵機)는 비밀 유지가 중요하고 더욱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니, 조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되 내심 단안을 내리고 하루 아침에 결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


[註 123] 노를 두드리면서 맹세하고 책상을 쪼갠 것 : 《진서(晉書)》 권62 조적전(祖逖傳)에 진(晉)나라 조적(祖逖)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도중에 노를 두드리며 중원을 평정하겠다고 강물에 맹세한 일과,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조조(曹操)를 상대로 적벽(赤壁)에서 전투를 벌이려 하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이처럼 될 것이라고 단안을 내리며 칼로 책상을 쪼갠 것을 말함.
"살피건대, 저 보잘것없는 노이(奴夷)가 하늘을 거역하고 위를 범하였으므로 군대를 일으켜 단호히 정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온 천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본부원(本部院)이 특별히 파견해 군무(軍務)를 경략케 하는 임무를 삼가 받들었는데, 황상의 칙서 안에 ‘조선을 고무시키도록 하라.’는 분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어찌 귀국이 급작스럽게 왜놈들의 침략을 받자 상국에서 힘껏 응원하며 수군과 육군을 무려 수십만 명이나 동원하고 수백만 석이 넘게 중국의 양식을 귀국에 옮겨 수송하면서 두 번에 걸쳐 수 년 동안 주선해 준 끝에 겨우 안정이 되었던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에 본부원이 외람되게도 경리(經理)의 임무를 맡아 몸소 전장에 나갔는데 거둔 성과는 없었어도 나름대로 걱정은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역(戰役)에서 진정 귀국에 자문으로 청하여 공동으로 원수를 갚음으로써 황상의 분부에 부응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국왕께서 독무(督撫)에 회답하는 자문을 갖고 도착한 홍문관 교리 이잠을 만났는데, 그 자문의 내용이 관망하는 듯하는 것이었고 뜻도 굳고 바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잠 또한 스스로 간절한 심정을 개진하는 정문(呈文) 하나를 바쳤는데, ‘앞뒤로 겨우 적을 막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면 ‘서울이고 지방이고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며 ‘국력이 넉넉치 못하다.’는 내용이 아니면 ‘교련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디 훈련되고 양식을 지급받는 군사들은 가만히 놔두고 단지 호미메고 쟁기잡은 농부들만 동원한 것이 교활한 왜적이 빈틈을 타 일어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데다 노적(奴賊)이 짓쳐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한 탓이기도 하지만, 호랑이 이야기만 해도 안색이 변하니 호랑이 굴 밖에서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왕의 신하들의 불충한 점을 세세히 수죄(數罪)할 것이 분명하기에 총독(總督)에게 보내는 자문을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싸들고 돌아가서 각별히 상의토록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노적을 정벌하는 일은 본조를 위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왕의 나라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국왕께서 과거에 몇 차례나 노추(奴酋)가 깔보며 업신여긴다고 보고를 해 왔고 변방의 관원이 누차에 걸쳐 역시 꾸짖었는 데도 고치지 않다가 이제 와서는 우리를 거역하고 있으니 국왕의 북쪽 변경이야 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를 도와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룬다면 그야말로 국왕의 봉토에서 편안한 복을 누리게 될 뿐만이 아니라 충의의 이름까지도 얻게 되는 셈인데 또 무엇을 꺼려 하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북관(北關)의 금(金)·백(白) 2추(酋)마저도 마병(馬兵) 1만을 마련하여 노적의 목을 누르고 있는데, 귀국에서는 어찌하여 그 등을 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입니까.
어쩌면 수만 병력을 갑자기 채우기가 어렵고 또 한편으로는 독자적으로 감당해내기가 난처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내가 왕에게 약속하겠습니다. 그저 1만 정병만 미리 뽑아 한 달 가량의 양식을 아울러 마련한 뒤 왕의 국경에 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작전이 벌어졌을 때 노추가 동쪽으로 충돌해 오는 것을 막아 도망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겨울철에 진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잇달아 요진(遼鎭)의 정예병과 함께 합동으로 공격해 들어가십시다. 2, 3백 리도 채 되지 않는 지역 안에서 몇 갈래 길로 공격하며 일제히 쳐들어 가면 10일 정도에 일을 끝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귀국에 알려드리는 것이 합당하겠기에 자문을 보내니 번거롭지만 앞뒤 자문의 사리를 잘 살피시어 속히 계책을 의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어디에서 뽑은 병정(兵丁)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 총령(摠領)하는 대장은 어떤 사람인지, 지휘를 분담하는 편비(褊裨)는 어떤 사람인지, 수륙의 어떤 요충지를 제압하고 있는지를 명시하고 아울러 노추와 가까운 지역의 지리 및 형세를 지도로 그려서 수고스럽지만 이잠으로 하여금 가져오게 하여 들어가 주문(奏聞)하는데 편리하도록 해 주십시오. 모쪼록 노를 두드리면서 맹세하고 책상을 쪼갠 것123)  처럼 도모하시고,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진퇴양난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병기(兵機)는 비밀 유지가 중요하고 더욱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니, 조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되 내심 단안을 내리고 하루 아침에 결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
진주사(陳奏使) 박정길(朴鼎吉)이 장계를 올리기를, "지금 재자관 이잠의 장계 초본을 보건대, 양 경략(楊經略)이 이미 관(關)을 나왔고 또 이잠으로 하여금 우리 나라로 도로 들어가 군문(軍門)에게 보내는 회자(回咨)를 고쳐서 지어 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이 가지고 가는 주본(奏本)은 호서(胡書)와 변방의 급한 보고를 아뢰는 것인 만큼 군문에 보내는 자문이 가기 전에 먼저 가도 무방할 듯싶습니다마는, 양 경략 자신이 우리 나라를 돌봐주겠다고 하면서 알아서 지휘하는 것은 모두 자기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니 곽천호(郭天豪)가 가지고 오는 후첩(候帖)은 불가불 신보다 앞서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경략의 자문이 이잠의 장계 안의 말뜻과 서로 같지 않은 만큼 이번에 진주(陳奏)하는 일과 관련하여 조정에서 다시 의논하여 처치할 일이 없지 않겠기에 머물러 지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였다.
"지금 재자관 이잠의 장계 초본을 보건대, 양 경략(楊經略)이 이미 관(關)을 나왔고 또 이잠으로 하여금 우리 나라로 도로 들어가 군문(軍門)에게 보내는 회자(回咨)를 고쳐서 지어 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이 가지고 가는 주본(奏本)은 호서(胡書)와 변방의 급한 보고를 아뢰는 것인 만큼 군문에 보내는 자문이 가기 전에 먼저 가도 무방할 듯싶습니다마는, 양 경략 자신이 우리 나라를 돌봐주겠다고 하면서 알아서 지휘하는 것은 모두 자기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니 곽천호(郭天豪)가 가지고 오는 후첩(候帖)은 불가불 신보다 앞서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경략의 자문이 이잠의 장계 안의 말뜻과 서로 같지 않은 만큼 이번에 진주(陳奏)하는 일과 관련하여 조정에서 다시 의논하여 처치할 일이 없지 않겠기에 머물러 지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평안 감사 등의 장계를 보건대 이 적이 장전보(長奠堡)·관전보(寬奠堡) 등을 침범했다는 소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서쪽 변방이 걱정되는 만큼 그야말로 급히 방어해야 할 것이니 조방장(助防將)과 우후(虞候) 등을 오늘 즉시 떠나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듣건대 각 장수가 자망(自望)한 군관들이 전장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상사(上司)에게 투탁(投託)하기도 하고 관절(關節)124)  을 바치기도 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면하려 하기 때문에 세력없는 무장들은 그 사이에서 감히 손을 쓰지 못한 채 곧바로 떠날 날이 다가와도 데리고 갈 사람이 없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군령(軍令)이 엄하지 않은 것이 이와 같으니 무슨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일 본사에서 그들을 충군(充軍)시키자고 계청하여 이미 윤허를 받았는 데도 각 해사(該司)에서 다투어 비호하면서 장차 면하게 해 줄 계책을 꾸미고 있다 하는데, 병조로 하여금 전에 본사에서 올린 계사에 따라 동요치 말고 충군만 시키도록 하고, 자망한 뒤에 비록 다른 관직에 임명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직책을 그대로 띤 채 종군토록 하고 절대로 바꾸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심하게 모면하려고 하여 그 정상이 가증스러운 자 한두 명을 적발하여 군율로 처단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고 군법이 중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삼가 듣건대 해리(該吏)들이 조종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진퇴(進退)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요즘 군관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전적으로 여기에 연유한다고 하니 더욱 통분스럽고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실이 현저하게 드러날 경우에는 전가 사변(全家徙邊)의 율을 적용함으로써 방자하게 자기 생각대로 처리하는 폐단이 없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관을 자망한 명단 한 부는 역시 본사에 보내어 문낭청(文郞廳)으로 하여금 전담하여 관장하게 함으로써 속히 보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중간에 누락되는 폐단을 막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순변사 등 무장이 문관인 종사관을 둘 수 있도록 법전에 기재되어 있는데, 아무리 경악(經幄)의 시종(侍從)이라 하더라도 예전부터 무장이 자망한 대로 허락해 주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장이 자기 생각대로 데리고 갈 수가 없으니 국가의 기강이 형편없이 무너졌다는 것을 이에 의거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평소에 장재(將才)가 있는 자들을 뽑아둔 것은 바로 오늘날과 같은 때 활용하기 위해서였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전후에 걸쳐 유장(儒將)으로 뽑힌 자들을 계하한 단자(單子)가 모두 본사에 있으니 각 장수들로 하여금 그 가운데에서 직접 임명토록 하고,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려 연소하면서도 재지(才智)가 있는 문관들을 더 뽑아 앞으로의 활용에 대비토록 하는 것이 역시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註 124] 관절(關節) : 뇌물.
"삼가 평안 감사 등의 장계를 보건대 이 적이 장전보(長奠堡)·관전보(寬奠堡) 등을 침범했다는 소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서쪽 변방이 걱정되는 만큼 그야말로 급히 방어해야 할 것이니 조방장(助防將)과 우후(虞候) 등을 오늘 즉시 떠나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듣건대 각 장수가 자망(自望)한 군관들이 전장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상사(上司)에게 투탁(投託)하기도 하고 관절(關節)124)  을 바치기도 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면하려 하기 때문에 세력없는 무장들은 그 사이에서 감히 손을 쓰지 못한 채 곧바로 떠날 날이 다가와도 데리고 갈 사람이 없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군령(軍令)이 엄하지 않은 것이 이와 같으니 무슨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일 본사에서 그들을 충군(充軍)시키자고 계청하여 이미 윤허를 받았는 데도 각 해사(該司)에서 다투어 비호하면서 장차 면하게 해 줄 계책을 꾸미고 있다 하는데, 병조로 하여금 전에 본사에서 올린 계사에 따라 동요치 말고 충군만 시키도록 하고, 자망한 뒤에 비록 다른 관직에 임명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직책을 그대로 띤 채 종군토록 하고 절대로 바꾸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심하게 모면하려고 하여 그 정상이 가증스러운 자 한두 명을 적발하여 군율로 처단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고 군법이 중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삼가 듣건대 해리(該吏)들이 조종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진퇴(進退)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요즘 군관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전적으로 여기에 연유한다고 하니 더욱 통분스럽고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실이 현저하게 드러날 경우에는 전가 사변(全家徙邊)의 율을 적용함으로써 방자하게 자기 생각대로 처리하는 폐단이 없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관을 자망한 명단 한 부는 역시 본사에 보내어 문낭청(文郞廳)으로 하여금 전담하여 관장하게 함으로써 속히 보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중간에 누락되는 폐단을 막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순변사 등 무장이 문관인 종사관을 둘 수 있도록 법전에 기재되어 있는데, 아무리 경악(經幄)의 시종(侍從)이라 하더라도 예전부터 무장이 자망한 대로 허락해 주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장이 자기 생각대로 데리고 갈 수가 없으니 국가의 기강이 형편없이 무너졌다는 것을 이에 의거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평소에 장재(將才)가 있는 자들을 뽑아둔 것은 바로 오늘날과 같은 때 활용하기 위해서였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전후에 걸쳐 유장(儒將)으로 뽑힌 자들을 계하한 단자(單子)가 모두 본사에 있으니 각 장수들로 하여금 그 가운데에서 직접 임명토록 하고,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려 연소하면서도 재지(才智)가 있는 문관들을 더 뽑아 앞으로의 활용에 대비토록 하는 것이 역시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각도의 병사를 나누어 들여보내 지키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강도(江都)야말로 보장(保障)으로 삼을 지역이고 남한 산성(南漢山城)과 파주 산성(坡州山城) 등도 꼭 지켜야 할 곳이니 군사를 나누어 들여보내 지키도록 하신 성상의 분부가 참으로 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삼각 산성(三角山城)의 경우는 그 형세가 어떠한지 공역(功役)은 얼마나 들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반드시 일을 아는 사람을 파견하여 성터를 살펴보고 그 지형을 그려오게 해서 과연 지킬 만한 곳인지를 안 다음에야 어느 지역 어느 고을의 병사를 어느 곳에 나누어 지키게 할 것인지를 상의해 조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원(水原)의 독성(禿城)과 파주(坡州)의 임진(臨津)도 꼭 지켜야 할 곳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요해처로서 파수해야 할 곳이 무려 5, 6곳이나 되는 셈인데, 군병과 기계를 나누어 보내는 것도 지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군량을 조달하는 문제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없으니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곡식을 어떻게든 확보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무인데 따로 규정을 만들어 다방면으로 곡식을 모집한다면 약간의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상 무신에게 임무를 나누어 부여하는 일 역시 성상의 분부대로 따라야 할 것이니, 광주 목사(廣州牧使)를 우선 가려 보내도록 하소서. "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각도의 병사를 나누어 들여보내 지키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강도(江都)야말로 보장(保障)으로 삼을 지역이고 남한 산성(南漢山城)과 파주 산성(坡州山城) 등도 꼭 지켜야 할 곳이니 군사를 나누어 들여보내 지키도록 하신 성상의 분부가 참으로 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삼각 산성(三角山城)의 경우는 그 형세가 어떠한지 공역(功役)은 얼마나 들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반드시 일을 아는 사람을 파견하여 성터를 살펴보고 그 지형을 그려오게 해서 과연 지킬 만한 곳인지를 안 다음에야 어느 지역 어느 고을의 병사를 어느 곳에 나누어 지키게 할 것인지를 상의해 조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원(水原)의 독성(禿城)과 파주(坡州)의 임진(臨津)도 꼭 지켜야 할 곳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요해처로서 파수해야 할 곳이 무려 5, 6곳이나 되는 셈인데, 군병과 기계를 나누어 보내는 것도 지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군량을 조달하는 문제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없으니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곡식을 어떻게든 확보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무인데 따로 규정을 만들어 다방면으로 곡식을 모집한다면 약간의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상 무신에게 임무를 나누어 부여하는 일 역시 성상의 분부대로 따라야 할 것이니, 광주 목사(廣州牧使)를 우선 가려 보내도록 하소서. "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우 차관(于差官)125)  과의 문답을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한 것을 보건대, 중국 조정에서 거사하는 시기는 가을과 겨울 사이가 될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날수를 따져 보건대, 진주하는 사신이 가서 청한 대로 될 것인지의 여부와 황제의 분부를 받들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그전에 이미 판가름날 것이 분명하니 지레 앞서서 진퇴해야 할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합니다. 다만 군병을 정비시켜두는 일이 하루가 급한데, 장수와 병졸 사이에는 반드시 얼굴을 서로 익히 알고 뜻을 서로 알아야 하며 깃발을 흔들고 꽹과리와 북을 치는 데 따라 일어나고 앉고 나아가고 물러가고 하는 일 역시 미리 연습시켜 두어야만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서로 어긋나면서 서툴게 되는 걱정을 면할 수가 있으니, 도원수를 속히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그리고 중국 조정의 장관(將官)이 불시에 나왔는데 접반사(接伴使)가 제때에 내려가지 못하게 되면 그때에 주선해야 할 일이 뒤쳐지는 걱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접반사를 일단 차출한 다음 응답할 일들을 상세히 강구해 정해서 속히 의주(義州)로 내려보내 그곳에 머물며 대기하도록 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일찍이 구 참장(丘參將)이 통지해 온 글을 보건대 산동 도사(山東都司) 주의(周義)가 군대를 조사할 일로 나올 예정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접반관을 불가불 미리 차송(差送)해야 하겠습니다. 또 우 차관이 전마(戰馬) 2, 3천 필(匹)을 보상해주고 무역해서 쓸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차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고 문서로 분명히 드러난 일은 아니지만 그 말이 경략의 뜻에서 나온 것이라면 뒷날 말을 무역하라는 명령이 꼭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본래 말이 생산되지 않는 데다 난리를 겪은 이후로는 마정(馬政)마저 폐지된 채 거행되지 않고 있으므로 진공(進貢)할 말만 간신히 충당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로써 따져본다면 전마를 마련해낼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마리의 말을 숫자대로 채워 부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미리 대비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각도의 목장에 있는 마필을 잡아오는 일로 지금 막 떠나보냈는데 말을 점검하러 내려갈 때에 가외(加外)로 숫자를 마련해서 잡아오게 한 뒤 머물러두고 기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중국 조정에서 꼭 말을 무역하려고 하면 이것을 가지고 보충해 쓰도록 하고, 혹시라도 무역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대로 우리 나라 군병의 전마로 써도 안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註 125] 우 차관(于差官) : 우승은(于承恩).
"삼가 우 차관(于差官)125)  과의 문답을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한 것을 보건대, 중국 조정에서 거사하는 시기는 가을과 겨울 사이가 될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날수를 따져 보건대, 진주하는 사신이 가서 청한 대로 될 것인지의 여부와 황제의 분부를 받들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그전에 이미 판가름날 것이 분명하니 지레 앞서서 진퇴해야 할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합니다. 다만 군병을 정비시켜두는 일이 하루가 급한데, 장수와 병졸 사이에는 반드시 얼굴을 서로 익히 알고 뜻을 서로 알아야 하며 깃발을 흔들고 꽹과리와 북을 치는 데 따라 일어나고 앉고 나아가고 물러가고 하는 일 역시 미리 연습시켜 두어야만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서로 어긋나면서 서툴게 되는 걱정을 면할 수가 있으니, 도원수를 속히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그리고 중국 조정의 장관(將官)이 불시에 나왔는데 접반사(接伴使)가 제때에 내려가지 못하게 되면 그때에 주선해야 할 일이 뒤쳐지는 걱정이 있게 될 것입니다. 접반사를 일단 차출한 다음 응답할 일들을 상세히 강구해 정해서 속히 의주(義州)로 내려보내 그곳에 머물며 대기하도록 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일찍이 구 참장(丘參將)이 통지해 온 글을 보건대 산동 도사(山東都司) 주의(周義)가 군대를 조사할 일로 나올 예정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접반관을 불가불 미리 차송(差送)해야 하겠습니다.
또 우 차관이 전마(戰馬) 2, 3천 필(匹)을 보상해주고 무역해서 쓸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차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고 문서로 분명히 드러난 일은 아니지만 그 말이 경략의 뜻에서 나온 것이라면 뒷날 말을 무역하라는 명령이 꼭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본래 말이 생산되지 않는 데다 난리를 겪은 이후로는 마정(馬政)마저 폐지된 채 거행되지 않고 있으므로 진공(進貢)할 말만 간신히 충당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로써 따져본다면 전마를 마련해낼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마리의 말을 숫자대로 채워 부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미리 대비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각도의 목장에 있는 마필을 잡아오는 일로 지금 막 떠나보냈는데 말을 점검하러 내려갈 때에 가외(加外)로 숫자를 마련해서 잡아오게 한 뒤 머물러두고 기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중국 조정에서 꼭 말을 무역하려고 하면 이것을 가지고 보충해 쓰도록 하고, 혹시라도 무역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대로 우리 나라 군병의 전마로 써도 안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6월 20일 정축

전교하였다. "제주(濟州)의 김만일(金萬鎰)이 개인적으로 말을 기르고 있는데 무려 1만여 필(匹)이나 된다고 한다. 수천 필을 잡아내 전마(戰馬)로 쓰고 만일에게는 넉넉히 상을 주도록 하라."
"제주(濟州)의 김만일(金萬鎰)이 개인적으로 말을 기르고 있는데 무려 1만여 필(匹)이나 된다고 한다. 수천 필을 잡아내 전마(戰馬)로 쓰고 만일에게는 넉넉히 상을 주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오는 25일에 훈련 도감 제조와 대장 이하 그리고 좌·우 포도 대장 이하에게 모두 선온(宣醞)할 것인데, 도감의 하인·군병 및 포도청의 하인·군사들에게 호궤(犒饋)할 물품을 미리 해조로 하여금 준비해두고 대기하게 하라."
"오는 25일에 훈련 도감 제조와 대장 이하 그리고 좌·우 포도 대장 이하에게 모두 선온(宣醞)할 것인데, 도감의 하인·군병 및 포도청의 하인·군사들에게 호궤(犒饋)할 물품을 미리 해조로 하여금 준비해두고 대기하게 하라."

 

 

 

생원 이홍순(李弘詢)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대국(大局)126)  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으로 사의(邪議)가 날로 치성하여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괴수가 정인(正人)을 해치려고 꾀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전일 병조에서 토역(討逆)을 극력 주장하는 사람의 고과(考課) 점수를 하(下)로 주었으니, 사림을 일망타진하려는 단서가 여기에서 이미 드러났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서쪽 변방에 경보가 울려 중국 장수가 오게 되어 있는데 만약 서궁(西宮)을 바깥 저택에 옮겨두고 고복(誥服)을 회수하지 않을 경우 말할 수 없는 화란이 일어날 것이니 속히 대계(大計)를 정하시어 폐출하는 형전을 마무리짓도록 하소서. 그리고 경성을 굳게 지켜 간악한 싹이 나오지 못하게 진압하시고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시어 충의로운 신하를 북돋아주소서." 하였다. 【소위 토역을 극력 주장한 사람은 원종(元悰)을 가리킨다. 유희분(柳希奮)이 병조 판서로 있으면서 그의 흉역스러움을 미워하고 통분스럽게 여긴 나머지 고과 점수를 하로 주었는데, 이는 원종이 그때 찬집 낭청(纂集郞廳)으로 군직(軍職)에 부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이첨이 본청의 당상으로서 계청하여 도로 출사시켰는데, 대개 김개와 원종은 모두가 이첨의 하수인이고 허균은 바로 그의 심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준격(奇俊格)의 옥사가 일어났을 때 김개와 원종은 그래도 잇달아 신국(訊鞫)을 받았던 반면 허균은 신문을 거치지도 않고 곧장 형이 집행되었는데, 이는 실로 그 흉모를 발설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註 126] 대국(大局) : 인목 대비를 폐출시키는 일.
"대국(大局)126)  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으로 사의(邪議)가 날로 치성하여 이론(異論)을 주장하는 괴수가 정인(正人)을 해치려고 꾀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전일 병조에서 토역(討逆)을 극력 주장하는 사람의 고과(考課) 점수를 하(下)로 주었으니, 사림을 일망타진하려는 단서가 여기에서 이미 드러났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서쪽 변방에 경보가 울려 중국 장수가 오게 되어 있는데 만약 서궁(西宮)을 바깥 저택에 옮겨두고 고복(誥服)을 회수하지 않을 경우 말할 수 없는 화란이 일어날 것이니 속히 대계(大計)를 정하시어 폐출하는 형전을 마무리짓도록 하소서. 그리고 경성을 굳게 지켜 간악한 싹이 나오지 못하게 진압하시고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시어 충의로운 신하를 북돋아주소서."
하였다. 【소위 토역을 극력 주장한 사람은 원종(元悰)을 가리킨다. 유희분(柳希奮)이 병조 판서로 있으면서 그의 흉역스러움을 미워하고 통분스럽게 여긴 나머지 고과 점수를 하로 주었는데, 이는 원종이 그때 찬집 낭청(纂集郞廳)으로 군직(軍職)에 부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이첨이 본청의 당상으로서 계청하여 도로 출사시켰는데, 대개 김개와 원종은 모두가 이첨의 하수인이고 허균은 바로 그의 심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준격(奇俊格)의 옥사가 일어났을 때 김개와 원종은 그래도 잇달아 신국(訊鞫)을 받았던 반면 허균은 신문을 거치지도 않고 곧장 형이 집행되었는데, 이는 실로 그 흉모를 발설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註 126] 대국(大局) : 인목 대비를 폐출시키는 일.
비변사 당상 박홍구·유희분·이상의·이이첨·이시언·조정·유공량·이경전·심돈·장만·우치적·강홍립·임곤·권반·박자흥 등이 아뢰기를, "삼가 바라옵건대 오늘 여러 신하들을 인대하시어 책응할 일을 요리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나를 본다 하더라도 더 알아낼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내가 안질 때문에 현재 고생하고 있으니 조리한 다음에 직접 만나 의논하겠다." 하였다.
"삼가 바라옵건대 오늘 여러 신하들을 인대하시어 책응할 일을 요리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나를 본다 하더라도 더 알아낼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내가 안질 때문에 현재 고생하고 있으니 조리한 다음에 직접 만나 의논하겠다."
하였다.


 

 

 

비변사의 여러 당상들이 아뢰기를, "삼가 경략의 자문을 보건대, 우리 나라가 기꺼이 원조하려 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면서 별도의 자문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소위 ‘받든 칙서 안에 「조선을 고무시키라.」는 성지(聖旨)가 있었다.’고 한 것은 경략이 올 때에 이미 우리 나라의 조병(調兵)에 관한 일로 성상의 조칙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내용이고, 소위 ‘내용이 관망하는 듯하고 뜻이 견고하고 바르지 못하다.’고 한 것이나 ‘만약 우리의 뜻을 도와 따른다면’ 등의 말은 전적으로 우리 나라가 중국 조정에 충성을 바치지 않는 것을 책망하는 내용이고, 소위 ‘노적을 토벌하는 일은 또한 왕이 봉토 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 어찌 그 등을 치는 것을 어려워하는가.’라고 한 말 등은 우리 나라를 이해(利害)로 타이르는 내용이고, 소위 ‘왕의 신하의 불충한 점을 세세히 수죄(數罪)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나 ‘충의로운 이름을 얻게 될텐데 무엇을 꺼리고 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 그리고 ‘속마음으로 단안을 내려 하루 아침에 결정을 지어야 할 것이다.’고 한 말 등은 우리 나라가 분의(分義)를 살피지 못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말한 내용이고, 소위 ‘온 천하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 것이나 ‘북관(北關)의 2추(酋)마저도 마병(馬兵)을 준비하였다.’고 한 말 등은 우리 나라가 오히려 다른 번방에서 정성을 바치는 것보다 못하고 저 추장들이 애써 보답하는 것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이야기한 내용이고, 소위 ‘호랑이 이야기만 해도 안색이 변한다.’고 한 것이나 ‘이쪽저쪽 기웃거리지 말라.’고 한 말 등은 또 우리 나라가 겁을 먹고 피하려 하는 것을 경계한 내용이었습니다. 신들이 모여서 이 자문을 보다가 반도 채 못가서 말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뜻이 더욱 준열해지고 있었으므로 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칼이 꼿꼿이 서고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서로 돌아보고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대국을 섬겨 온 2백 년 동안에 일찍이 이처럼 극도로 천하게 모욕을 당하고 더럽힘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였습니다. 성상께서 의도하신 바는 본래 백성에게 은택을 베풀려는 것이었고, 신들이 쟁집(爭執)한 것은 단지 의리를 따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은 중국 조정에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성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 낫다고까지 생각하였는데, 끝내 강력하게 변론하며 진달드리지 못한 결과 군신 상하로 하여금 똑같이 막대한 꾸지람을 받게끔 하고 말았습니다. 경략도 ‘왕의 신하가 불충하다.’고 말하였으니 이는 본래 신들의 죄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경략이 이잠을 처음 보자마자 묻기를 ‘너희 나라 안은 무사한가?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鎭江)에서 북경(北京)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하였는데, 그 말을 헤아릴 길이 없으니 앞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재앙을 일으키는 대단한 계기로 삼지나 않을까 더욱 두렵기만 합니다. 지금 만약 진주(陳奏)하는 행차를 중지시키고, 군문(軍門)에 보내는 자문을 고치고, 또 경략 아문에 자문을 닦아 회답을 보내면서 형세가 이와 같다는 것을 설명하는 동시에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극력 변론함으로써 지성으로 대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적개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바치고 함께 일을 하여 공을 거두겠다고 한다면, 경략의 노여움을 풀 수 있을 뿐더러 조정의 견책도 그런대로 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오랑캐 정벌하는 일을 전담하여 천도(天道)를 몸받아서 행하도록 하라.’고 한 것이 바로 경략이 받든 칙서 중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니 진퇴하고 조종하는 권한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있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말한 대로 따를 경우 국경에 머물러 주둔하는 일을 기꺼이 허락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곧바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그의 마음을 거스를 경우에는 우리 나라를 위해 주려고 하던 경략의 마음을 거꾸로 믿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그밖에 각 아문에서 없는 이야기를 날조하여 공격을 가해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또 어떻게 당해내겠습니까.  이잠이 가지고 간 군문의 자문도 오히려 경략에게 저지당했는데, 박정길(朴鼎吉)이 가지고 가는 주문(奏文)의 내용은 국경에 머물기를 원한다는 뜻이 더욱 담겨 있으니, 경략에 의해 저지되지 않을 가능성은 정말 없습니다. 설혹 허락해 보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필히 좋지 않은 의사에서 나온 것일텐데 어쩌면 직접 갖고 들어가게 해서 제과(諸科)의 탄핵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문원으로 하여금 군문에게 보내는 자문 및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을 급히 마련하게 해서 며칠 안으로 내려보내도록 하시고 또 선전관을 파견하여 급히 주문하는 행차를 정지시키도록 하소서. 그러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호서(胡書)에 관한 일은 별도로 자문을 갖추어 각 아문에 보고함으로써 전주(轉奏)할 자료를 삼게 하는 것도 무방하겠습니다. 박정길이 다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강을 건너갔다 하더라도 요동(遼東)은 지나지 않았을 테니 아직은 뒤따라가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어떤 일이든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이번에 진주하는 일도 당초 자문과 격서(檄書)가 왔을 때에 급히 들여보냈더라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난처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이제는 이미 기회를 잃었는데 내가 또한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진주하는 일은 단지 우리 나라의 안타깝고 절박한 사정을 진달한 것일 뿐이다. 어찌 백성을 보호하는 내용으로만 진주하는 것이겠는가. 박정길을 성절사(聖節使)까지 겸하게 해서 성화처럼 급히 보냈더라면 사기(事機)에 맞출 수 있었을텐데, 여러 차례 하교했어도 저지하여 마지않았고 사신을 바꿔도 또 행차를 정지시키라고 청하였으니, 도대체 그 의도가 무엇인가. 더구나 지금은 이미 곽천호(郭天豪)가 내려간 만큼 호서에 관한 일이 급해졌다. 따라서 박정길을 급히 그대로 보내되,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 가운데에 ‘호서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에 박정길을 속히 들여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보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삼가 경략의 자문을 보건대, 우리 나라가 기꺼이 원조하려 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면서 별도의 자문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소위 ‘받든 칙서 안에 「조선을 고무시키라.」는 성지(聖旨)가 있었다.’고 한 것은 경략이 올 때에 이미 우리 나라의 조병(調兵)에 관한 일로 성상의 조칙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내용이고, 소위 ‘내용이 관망하는 듯하고 뜻이 견고하고 바르지 못하다.’고 한 것이나 ‘만약 우리의 뜻을 도와 따른다면’ 등의 말은 전적으로 우리 나라가 중국 조정에 충성을 바치지 않는 것을 책망하는 내용이고, 소위 ‘노적을 토벌하는 일은 또한 왕이 봉토 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복을 누리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 어찌 그 등을 치는 것을 어려워하는가.’라고 한 말 등은 우리 나라를 이해(利害)로 타이르는 내용이고, 소위 ‘왕의 신하의 불충한 점을 세세히 수죄(數罪)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나 ‘충의로운 이름을 얻게 될텐데 무엇을 꺼리고 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 그리고 ‘속마음으로 단안을 내려 하루 아침에 결정을 지어야 할 것이다.’고 한 말 등은 우리 나라가 분의(分義)를 살피지 못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말한 내용이고, 소위 ‘온 천하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 것이나 ‘북관(北關)의 2추(酋)마저도 마병(馬兵)을 준비하였다.’고 한 말 등은 우리 나라가 오히려 다른 번방에서 정성을 바치는 것보다 못하고 저 추장들이 애써 보답하는 것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이야기한 내용이고, 소위 ‘호랑이 이야기만 해도 안색이 변한다.’고 한 것이나 ‘이쪽저쪽 기웃거리지 말라.’고 한 말 등은 또 우리 나라가 겁을 먹고 피하려 하는 것을 경계한 내용이었습니다.
신들이 모여서 이 자문을 보다가 반도 채 못가서 말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뜻이 더욱 준열해지고 있었으므로 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칼이 꼿꼿이 서고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서로 돌아보고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대국을 섬겨 온 2백 년 동안에 일찍이 이처럼 극도로 천하게 모욕을 당하고 더럽힘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였습니다.
성상께서 의도하신 바는 본래 백성에게 은택을 베풀려는 것이었고, 신들이 쟁집(爭執)한 것은 단지 의리를 따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은 중국 조정에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성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 낫다고까지 생각하였는데, 끝내 강력하게 변론하며 진달드리지 못한 결과 군신 상하로 하여금 똑같이 막대한 꾸지람을 받게끔 하고 말았습니다. 경략도 ‘왕의 신하가 불충하다.’고 말하였으니 이는 본래 신들의 죄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경략이 이잠을 처음 보자마자 묻기를 ‘너희 나라 안은 무사한가?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鎭江)에서 북경(北京)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하였는데, 그 말을 헤아릴 길이 없으니 앞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재앙을 일으키는 대단한 계기로 삼지나 않을까 더욱 두렵기만 합니다.
지금 만약 진주(陳奏)하는 행차를 중지시키고, 군문(軍門)에 보내는 자문을 고치고, 또 경략 아문에 자문을 닦아 회답을 보내면서 형세가 이와 같다는 것을 설명하는 동시에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극력 변론함으로써 지성으로 대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적개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바치고 함께 일을 하여 공을 거두겠다고 한다면, 경략의 노여움을 풀 수 있을 뿐더러 조정의 견책도 그런대로 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오랑캐 정벌하는 일을 전담하여 천도(天道)를 몸받아서 행하도록 하라.’고 한 것이 바로 경략이 받든 칙서 중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니 진퇴하고 조종하는 권한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있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말한 대로 따를 경우 국경에 머물러 주둔하는 일을 기꺼이 허락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곧바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그의 마음을 거스를 경우에는 우리 나라를 위해 주려고 하던 경략의 마음을 거꾸로 믿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그밖에 각 아문에서 없는 이야기를 날조하여 공격을 가해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또 어떻게 당해내겠습니까.
이잠이 가지고 간 군문의 자문도 오히려 경략에게 저지당했는데, 박정길(朴鼎吉)이 가지고 가는 주문(奏文)의 내용은 국경에 머물기를 원한다는 뜻이 더욱 담겨 있으니, 경략에 의해 저지되지 않을 가능성은 정말 없습니다. 설혹 허락해 보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필히 좋지 않은 의사에서 나온 것일텐데 어쩌면 직접 갖고 들어가게 해서 제과(諸科)의 탄핵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문원으로 하여금 군문에게 보내는 자문 및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을 급히 마련하게 해서 며칠 안으로 내려보내도록 하시고 또 선전관을 파견하여 급히 주문하는 행차를 정지시키도록 하소서. 그러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호서(胡書)에 관한 일은 별도로 자문을 갖추어 각 아문에 보고함으로써 전주(轉奏)할 자료를 삼게 하는 것도 무방하겠습니다. 박정길이 다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강을 건너갔다 하더라도 요동(遼東)은 지나지 않았을 테니 아직은 뒤따라가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어떤 일이든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이번에 진주하는 일도 당초 자문과 격서(檄書)가 왔을 때에 급히 들여보냈더라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난처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이제는 이미 기회를 잃었는데 내가 또한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진주하는 일은 단지 우리 나라의 안타깝고 절박한 사정을 진달한 것일 뿐이다. 어찌 백성을 보호하는 내용으로만 진주하는 것이겠는가. 박정길을 성절사(聖節使)까지 겸하게 해서 성화처럼 급히 보냈더라면 사기(事機)에 맞출 수 있었을텐데, 여러 차례 하교했어도 저지하여 마지않았고 사신을 바꿔도 또 행차를 정지시키라고 청하였으니, 도대체 그 의도가 무엇인가. 더구나 지금은 이미 곽천호(郭天豪)가 내려간 만큼 호서에 관한 일이 급해졌다. 따라서 박정길을 급히 그대로 보내되,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 가운데에 ‘호서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에 박정길을 속히 들여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보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양 경략의 자문은 우리 나라를 책망하는 것이 그렇게 엄숙할 수가 없었고 우리 나라를 꾸짖어 욕한 것이 그렇게 치욕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2백 년 동안 열성(列聖)께서 대국을 섬겨 오면서 지성으로 대의를 따라 온 것이 이에 이르러 없어지고 말았는데, 이는 실로 언책(言責)을 맡은 신들이 처음부터 강력하게 간쟁하지 못한 탓으로 끝내 오늘과 같은 부끄럽고 욕된 일을 끼치게 되었으니,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를 어떻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잠이 가지고 간 자문도 오히려 경략에게 저지당했으니 박정길이 가지고 가는 주문 역시 중국 조정에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설령 앞으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각부(閣部)와 제과(諸科)의 탄핵이 분분하게 일어날 것이니 갖가지 난처한 일이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경략이 ‘너희 나라 안은 무사한가?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에서 북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한 말 등은 더욱 불측하기만 하니 어찌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만약 그의 뜻을 따르지 않다가 중국 조정에 죄를 얻기라도 하면 온 나라의 군신(君臣)이 장차 무슨 얼굴로 천지 사이에 서겠습니까. 속히 박정길의 사행(使行)을 정지시킴으로써 일이 잘못되는 걱정이 없게 하시고, 호서에 관한 일은 왜적의 정세를 달마다 보고하는 예에 따라 따로 자문 하나를 갖추어서 각 아문에 전보(轉報)토록 하소서. 그리고 임연(任兗)은 사론(邪論)을 맨먼저 끄집어낸 사람으로서 모두들 그 혀를 저미고 싶어하는데 이러한데도 다스리지 않는다면 여론의 통분함을 풀어주기 어려우니 임연을 법대로 처단하여 임금을 함정에 빠뜨리고 나라를 그르친 죄를 바루도록 하소서. 전날 합사하여 합계하다가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중단했었는데 이 일이 국가의 존망과 관계되기에 번거롭게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의 의논은 잘못되었다. 우리 나라 군병에게 조금이라도 중국 군대의 위엄을 도울 형세가 있다면 하필 진주사를 들여보냈겠는가. 이는 그렇지 않다. 훈련되지 않은 농부들을 오랑캐 소굴로 밀어넣을 경우 싸움에 임해 먼저 동요된 나머지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킬 것이 분명하다. 만약 조정에 사람이 있어 일찍 임연의 의논을 따라서 급히 진주토록 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난처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더구나 성지(聖旨)가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군병을 들여 보내다니 이는 조종(祖宗)의 구례가 아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 나라의 사정을 진주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어찌 유독 이 일에 대해서만 이렇듯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갈수록 시끄럽게 떠들어댄단 말인가. 임연의 의논이야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의논을 드린 사람이 임연 한 사람만도 아닌데, 그대들이 유독 임연을 죄주라 청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리상 결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조용히 조섭하는 중이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양 경략의 자문은 우리 나라를 책망하는 것이 그렇게 엄숙할 수가 없었고 우리 나라를 꾸짖어 욕한 것이 그렇게 치욕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2백 년 동안 열성(列聖)께서 대국을 섬겨 오면서 지성으로 대의를 따라 온 것이 이에 이르러 없어지고 말았는데, 이는 실로 언책(言責)을 맡은 신들이 처음부터 강력하게 간쟁하지 못한 탓으로 끝내 오늘과 같은 부끄럽고 욕된 일을 끼치게 되었으니,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를 어떻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잠이 가지고 간 자문도 오히려 경략에게 저지당했으니 박정길이 가지고 가는 주문 역시 중국 조정에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설령 앞으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각부(閣部)와 제과(諸科)의 탄핵이 분분하게 일어날 것이니 갖가지 난처한 일이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경략이 ‘너희 나라 안은 무사한가?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에서 북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한 말 등은 더욱 불측하기만 하니 어찌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만약 그의 뜻을 따르지 않다가 중국 조정에 죄를 얻기라도 하면 온 나라의 군신(君臣)이 장차 무슨 얼굴로 천지 사이에 서겠습니까. 속히 박정길의 사행(使行)을 정지시킴으로써 일이 잘못되는 걱정이 없게 하시고, 호서에 관한 일은 왜적의 정세를 달마다 보고하는 예에 따라 따로 자문 하나를 갖추어서 각 아문에 전보(轉報)토록 하소서. 그리고 임연(任兗)은 사론(邪論)을 맨먼저 끄집어낸 사람으로서 모두들 그 혀를 저미고 싶어하는데 이러한데도 다스리지 않는다면 여론의 통분함을 풀어주기 어려우니 임연을 법대로 처단하여 임금을 함정에 빠뜨리고 나라를 그르친 죄를 바루도록 하소서. 전날 합사하여 합계하다가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중단했었는데 이 일이 국가의 존망과 관계되기에 번거롭게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의 의논은 잘못되었다. 우리 나라 군병에게 조금이라도 중국 군대의 위엄을 도울 형세가 있다면 하필 진주사를 들여보냈겠는가. 이는 그렇지 않다. 훈련되지 않은 농부들을 오랑캐 소굴로 밀어넣을 경우 싸움에 임해 먼저 동요된 나머지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킬 것이 분명하다. 만약 조정에 사람이 있어 일찍 임연의 의논을 따라서 급히 진주토록 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난처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더구나 성지(聖旨)가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군병을 들여 보내다니 이는 조종(祖宗)의 구례가 아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 나라의 사정을 진주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어찌 유독 이 일에 대해서만 이렇듯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갈수록 시끄럽게 떠들어댄단 말인가. 임연의 의논이야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의논을 드린 사람이 임연 한 사람만도 아닌데, 그대들이 유독 임연을 죄주라 청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리상 결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조용히 조섭하는 중이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양 경략의 자문은 우리 나라를 책망하는 것이 그렇게 엄숙할 수가 없었고 우리 나라를 꾸짖어 욕한 것이 그렇게 치욕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2백 년 동안 열성(列聖)께서 대국을 섬겨 오면서 지성으로 대의를 따라 온 것이 이에 이르러 없어지고 말았는데, 이는 실로 언책(言責)을 맡은 신들이 처음부터 강력하게 간쟁하지 못한 탓으로 끝내 오늘과 같은 부끄럽고 욕된 일을 끼치게 되었으니,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를 어떻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잠이 가지고 간 자문도 오히려 경략에게 저지당했으니 박정길이 가지고 가는 주문 역시 중국 조정에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설령 앞으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각부(閣部)와 제과(諸科)의 탄핵이 분분하게 일어날 것이니 갖가지 난처한 일이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경략이 ‘너희 나라 안은 무사한가?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에서 북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한 말 등은 더욱 불측하기만 하니 어찌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만약 그의 뜻을 따르지 않다가 중국 조정에 죄를 얻기라도 하면 온 나라의 군신(君臣)이 장차 무슨 얼굴로 천지 사이에 서겠습니까. 속히 박정길의 사행(使行)을 정지시킴으로써 일이 잘못되는 걱정이 없게 하시고, 호서에 관한 일은 왜적의 정세를 달마다 보고하는 예에 따라 따로 자문 하나를 갖추어서 각 아문에 전보(轉報)토록 하소서. 그리고 임연(任兗)은 사론(邪論)을 맨먼저 끄집어낸 사람으로서 모두들 그 혀를 저미고 싶어하는데 이러한데도 다스리지 않는다면 여론의 통분함을 풀어주기 어려우니 임연을 법대로 처단하여 임금을 함정에 빠뜨리고 나라를 그르친 죄를 바루도록 하소서. 전날 합사하여 합계하다가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중단했었는데 이 일이 국가의 존망과 관계되기에 번거롭게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의 의논은 잘못되었다. 우리 나라 군병에게 조금이라도 중국 군대의 위엄을 도울 형세가 있다면 하필 진주사를 들여보냈겠는가. 이는 그렇지 않다. 훈련되지 않은 농부들을 오랑캐 소굴로 밀어넣을 경우 싸움에 임해 먼저 동요된 나머지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킬 것이 분명하다. 만약 조정에 사람이 있어 일찍 임연의 의논을 따라서 급히 진주토록 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난처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더구나 성지(聖旨)가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군병을 들여 보내다니 이는 조종(祖宗)의 구례가 아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 나라의 사정을 진주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어찌 유독 이 일에 대해서만 이렇듯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갈수록 시끄럽게 떠들어댄단 말인가. 임연의 의논이야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의논을 드린 사람이 임연 한 사람만도 아닌데, 그대들이 유독 임연을 죄주라 청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리상 결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조용히 조섭하는 중이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양 경략의 자문은 우리 나라를 책망하는 것이 그렇게 엄숙할 수가 없었고 우리 나라를 꾸짖어 욕한 것이 그렇게 치욕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2백 년 동안 열성(列聖)께서 대국을 섬겨 오면서 지성으로 대의를 따라 온 것이 이에 이르러 없어지고 말았는데, 이는 실로 언책(言責)을 맡은 신들이 처음부터 강력하게 간쟁하지 못한 탓으로 끝내 오늘과 같은 부끄럽고 욕된 일을 끼치게 되었으니,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를 어떻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잠이 가지고 간 자문도 오히려 경략에게 저지당했으니 박정길이 가지고 가는 주문 역시 중국 조정에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설령 앞으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각부(閣部)와 제과(諸科)의 탄핵이 분분하게 일어날 것이니 갖가지 난처한 일이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경략이 ‘너희 나라 안은 무사한가? 너희 나라를 좋지 않게 말하는 유언비어가 진강에서 북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한 말 등은 더욱 불측하기만 하니 어찌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만약 그의 뜻을 따르지 않다가 중국 조정에 죄를 얻기라도 하면 온 나라의 군신(君臣)이 장차 무슨 얼굴로 천지 사이에 서겠습니까. 속히 박정길의 사행(使行)을 정지시킴으로써 일이 잘못되는 걱정이 없게 하시고, 호서에 관한 일은 왜적의 정세를 달마다 보고하는 예에 따라 따로 자문 하나를 갖추어서 각 아문에 전보(轉報)토록 하소서. 그리고 임연(任兗)은 사론(邪論)을 맨먼저 끄집어낸 사람으로서 모두들 그 혀를 저미고 싶어하는데 이러한데도 다스리지 않는다면 여론의 통분함을 풀어주기 어려우니 임연을 법대로 처단하여 임금을 함정에 빠뜨리고 나라를 그르친 죄를 바루도록 하소서. 전날 합사하여 합계하다가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중단했었는데 이 일이 국가의 존망과 관계되기에 번거롭게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의 의논은 잘못되었다. 우리 나라 군병에게 조금이라도 중국 군대의 위엄을 도울 형세가 있다면 하필 진주사를 들여보냈겠는가. 이는 그렇지 않다. 훈련되지 않은 농부들을 오랑캐 소굴로 밀어넣을 경우 싸움에 임해 먼저 동요된 나머지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킬 것이 분명하다. 만약 조정에 사람이 있어 일찍 임연의 의논을 따라서 급히 진주토록 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난처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더구나 성지(聖旨)가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군병을 들여 보내다니 이는 조종(祖宗)의 구례가 아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 나라의 사정을 진주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어찌 유독 이 일에 대해서만 이렇듯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갈수록 시끄럽게 떠들어댄단 말인가. 임연의 의논이야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의논을 드린 사람이 임연 한 사람만도 아닌데, 그대들이 유독 임연을 죄주라 청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리상 결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조용히 조섭하는 중이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안위(安衛)는 역전의 용장이니 평안도의 강변에 별장(別將)이라는 칭호로 내려보내도록 하라." 하였는데, 비국이 회계하기를, "안위가 죄로 폐고된 상태에 있긴 하지만 이렇듯 변방의 사태가 심각해지는 날을 당해서 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별장이라는 칭호를 주어 원수의 막하에 보낸 뒤 그의 지휘를 받아가면서 강변을 파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폐기된 무장이 안위 한 사람뿐만이 아니니 정말 애석합니다. 이런 때에 기폐(起廢)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일일이 서계한 뒤 거두어 쓰도록 하시고, 현재 파직된 중등(中等)·하등(下等)인 자들도 모두 씻어주시어 무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일입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안위(安衛)는 역전의 용장이니 평안도의 강변에 별장(別將)이라는 칭호로 내려보내도록 하라."
하였는데, 비국이 회계하기를,
"안위가 죄로 폐고된 상태에 있긴 하지만 이렇듯 변방의 사태가 심각해지는 날을 당해서 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별장이라는 칭호를 주어 원수의 막하에 보낸 뒤 그의 지휘를 받아가면서 강변을 파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폐기된 무장이 안위 한 사람뿐만이 아니니 정말 애석합니다. 이런 때에 기폐(起廢)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일일이 서계한 뒤 거두어 쓰도록 하시고, 현재 파직된 중등(中等)·하등(下等)인 자들도 모두 씻어주시어 무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일입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6월 21일 무인

전교하였다. "태복시에 은자(銀子)가 많이 있다고 한다. 이 은자를 도감에 보내 쓰는 데 보탬이 되게 하라. "
"태복시에 은자(銀子)가 많이 있다고 한다. 이 은자를 도감에 보내 쓰는 데 보탬이 되게 하라. "

 

대사간 유인, 집의 임건, 사간 신광업, 장령 한명욱·한영, 지평 남명우, 정언 이원여 등이 아뢰기를, "서궁(西宮)에 관한 대론은 신자의 분의(分義)로 볼 때에는 한 시각도 지체시켜서는 안되는데 지난번 전교하신 데에 따라 잠정적으로 정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물의를 듣건대 ‘시간을 지체시키고 달을 끄는 바람에 대국(大局)이 마무리될 기약이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떠들썩하게 비난하고 있는데 신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으니 신들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유인 등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서궁(西宮)에 관한 대론은 신자의 분의(分義)로 볼 때에는 한 시각도 지체시켜서는 안되는데 지난번 전교하신 데에 따라 잠정적으로 정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물의를 듣건대 ‘시간을 지체시키고 달을 끄는 바람에 대국(大局)이 마무리될 기약이 없게 되었다.’고 하면서 떠들썩하게 비난하고 있는데 신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으니 신들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유인 등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도원수가 종사관으로 정준(鄭遵)과 남이웅(南以雄)을 자벽(自辟)하니, 전교하기를, "이조 정랑과 영건 도감의 낭청은 데리고 갈 수 없다. 다른 사람으로 다시 가려 계하받도록 하라." 하였다.
"이조 정랑과 영건 도감의 낭청은 데리고 갈 수 없다. 다른 사람으로 다시 가려 계하받도록 하라."
하였다.

 

부체찰사(副體察使)가 아뢰기를, "삼가 ‘도체찰사와 상의하라.’는 분부를 받들고, 어제 도체찰사의 집에 가서 전후로 성상께서 내리신 분부 및 상황이 위태로운 만큼 제때에 조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설명하였더니, 거상(居喪) 중에 있는 몸이라서 감히 군무(軍務)를 의논할 수 없다고 사양하면서 수응(酬應)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건대 ‘서쪽 변방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기필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일단 성상께서 명하신 이상 대략적으로라도 막부를 설치해 모든 일을 요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종사관도 데리고 가지 않을 수 없으며 아문의 모양도 대충 꾸며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는데, 인하여 의논해 정한 몇 조목의 일이 있기에 별지에 써서 올리니 성상께서 재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적이 중국 군대와 접전하고 난 뒤에는 필시 마구 무너질 걱정이 없지 않을 것이니 각도의 감사와 병사 가운데 한 사람은 표신(標信)을 갖고서 즉시 군대를 이끌고 올라와 도성에 들어와서 응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얼음이 언 뒤에는 적이 언제쯤 움직이기 시작할지 알기가 어려우니 두 달간 혹은 부대를 나누어 올라와서 응원토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한데 비변사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해 정하도록 하라. 그리고 하삼도(下三道)의 감사와 병사가 들어와 응원하게 되면 이렇듯 인심이 불측한 때를 당하여 지극히 염려스러우니 각도의 병사는 본도를 굳게 지키게 하고 우후(虞候)를 가려보내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응원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일도 아울러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삼가 ‘도체찰사와 상의하라.’는 분부를 받들고, 어제 도체찰사의 집에 가서 전후로 성상께서 내리신 분부 및 상황이 위태로운 만큼 제때에 조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설명하였더니, 거상(居喪) 중에 있는 몸이라서 감히 군무(軍務)를 의논할 수 없다고 사양하면서 수응(酬應)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건대 ‘서쪽 변방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기필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일단 성상께서 명하신 이상 대략적으로라도 막부를 설치해 모든 일을 요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종사관도 데리고 가지 않을 수 없으며 아문의 모양도 대충 꾸며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는데, 인하여 의논해 정한 몇 조목의 일이 있기에 별지에 써서 올리니 성상께서 재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적이 중국 군대와 접전하고 난 뒤에는 필시 마구 무너질 걱정이 없지 않을 것이니 각도의 감사와 병사 가운데 한 사람은 표신(標信)을 갖고서 즉시 군대를 이끌고 올라와 도성에 들어와서 응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얼음이 언 뒤에는 적이 언제쯤 움직이기 시작할지 알기가 어려우니 두 달간 혹은 부대를 나누어 올라와서 응원토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한데 비변사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해 정하도록 하라. 그리고 하삼도(下三道)의 감사와 병사가 들어와 응원하게 되면 이렇듯 인심이 불측한 때를 당하여 지극히 염려스러우니 각도의 병사는 본도를 굳게 지키게 하고 우후(虞候)를 가려보내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응원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일도 아울러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지극히 감격스러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의 뜻 역시 칙유(敕諭)를 기다릴 필요 없이 지레 먼저 군병을 보내자고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략(經略)의 자문 안에 일단 칙서를 받들었다고 했으니 칙서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그때 임해서 별도로 칙서가 있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더구나 자문 가운데에 또 ‘군병을 이끄는 장령(將領)과 지형을 지도로 그려 가지고 옴으로써 입주(入奏)하는 데에 편리하게 하라.’는 말이 있고 보면 경략이 주문하는 데에 따라 황제의 칙서가 내려오리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도원수를 떠나보내는 일과 대동(大同)·임진(臨津)·경성 등 지역을 방어하는 일을 차례로 강구해 정해야 하겠습니다만, 오늘 안으로 먼저 거행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진주사 박정길(朴鼎吉)로 하여금 주문을 갖고 도로 올라오게 하는 일, 성절사 윤휘로 하여금 성절과 관련된 문서만 가지고 그대로 강을 건너가게 하는 한편 병력 조발(調發)과 관련된 주문을 도로 올려보내게 하는 일, 곽천호(郭天豪)는 그대로 경략의 아문에 보내되 게첩(揭帖)과 예물만 올리게 하고 기타 병력 조발에 관한 별첩(別帖) 및 호서(胡書)에 관련된 자문을 모두 도로 보내게 하는 일 등이 그것이니, 오늘 안으로 선전관을 파견하여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급히 달려가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문(軍門)에게 보내는 자문을 개작하고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을 마련하여 이잠으로 하여금 도로 나아가 두 아문에 올리게 하고, 호서에 관한 자문을 개작한 뒤 진강(鎭江) 및 요동 도사(遼東都事)에게 보고하여 전주(轉奏)하게 해야 할 것이니, 이들 항목들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며칠 안으로 급히 거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내 생각에 박정길과 윤휘와 곽천호 등은 모두 보내 경략의 처치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왕 군문(汪軍門)이 이자(移咨)한 7천 명에 대한 일을 상세히 자문으로 회답하면서 ‘소방(小邦)에서 마음대로 가감할 수 있겠는가.’ 하고 개진해야 할 것이다. 또 ‘호서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 때문에 소방의 사정상 사신을 이미 보내었는데 미처 소환하지 못했으니 삼가 바라건대 대인께서는 죄를 주지 마시고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헤아려 선처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회답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편할 듯하고 계책에 맞을 듯도 하다. 예전부터 강을 건너간 사신을 도로 불러 온 예가 없을 뿐 아니라 중국인이 보더라도 매우 온당치 못하니 지금은 우선 이렇게 하면서 다시 형세를 살펴 별도로 의논해 조처토록 하라." 하였다.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지극히 감격스러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의 뜻 역시 칙유(敕諭)를 기다릴 필요 없이 지레 먼저 군병을 보내자고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략(經略)의 자문 안에 일단 칙서를 받들었다고 했으니 칙서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그때 임해서 별도로 칙서가 있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더구나 자문 가운데에 또 ‘군병을 이끄는 장령(將領)과 지형을 지도로 그려 가지고 옴으로써 입주(入奏)하는 데에 편리하게 하라.’는 말이 있고 보면 경략이 주문하는 데에 따라 황제의 칙서가 내려오리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도원수를 떠나보내는 일과 대동(大同)·임진(臨津)·경성 등 지역을 방어하는 일을 차례로 강구해 정해야 하겠습니다만, 오늘 안으로 먼저 거행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진주사 박정길(朴鼎吉)로 하여금 주문을 갖고 도로 올라오게 하는 일, 성절사 윤휘로 하여금 성절과 관련된 문서만 가지고 그대로 강을 건너가게 하는 한편 병력 조발(調發)과 관련된 주문을 도로 올려보내게 하는 일, 곽천호(郭天豪)는 그대로 경략의 아문에 보내되 게첩(揭帖)과 예물만 올리게 하고 기타 병력 조발에 관한 별첩(別帖) 및 호서(胡書)에 관련된 자문을 모두 도로 보내게 하는 일 등이 그것이니, 오늘 안으로 선전관을 파견하여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급히 달려가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문(軍門)에게 보내는 자문을 개작하고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을 마련하여 이잠으로 하여금 도로 나아가 두 아문에 올리게 하고, 호서에 관한 자문을 개작한 뒤 진강(鎭江) 및 요동 도사(遼東都事)에게 보고하여 전주(轉奏)하게 해야 할 것이니, 이들 항목들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며칠 안으로 급히 거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내 생각에 박정길과 윤휘와 곽천호 등은 모두 보내 경략의 처치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왕 군문(汪軍門)이 이자(移咨)한 7천 명에 대한 일을 상세히 자문으로 회답하면서 ‘소방(小邦)에서 마음대로 가감할 수 있겠는가.’ 하고 개진해야 할 것이다. 또 ‘호서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 때문에 소방의 사정상 사신을 이미 보내었는데 미처 소환하지 못했으니 삼가 바라건대 대인께서는 죄를 주지 마시고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헤아려 선처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회답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편할 듯하고 계책에 맞을 듯도 하다. 예전부터 강을 건너간 사신을 도로 불러 온 예가 없을 뿐 아니라 중국인이 보더라도 매우 온당치 못하니 지금은 우선 이렇게 하면서 다시 형세를 살펴 별도로 의논해 조처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지극히 감격스러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의 뜻 역시 칙유(敕諭)를 기다릴 필요 없이 지레 먼저 군병을 보내자고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략(經略)의 자문 안에 일단 칙서를 받들었다고 했으니 칙서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그때 임해서 별도로 칙서가 있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더구나 자문 가운데에 또 ‘군병을 이끄는 장령(將領)과 지형을 지도로 그려 가지고 옴으로써 입주(入奏)하는 데에 편리하게 하라.’는 말이 있고 보면 경략이 주문하는 데에 따라 황제의 칙서가 내려오리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도원수를 떠나보내는 일과 대동(大同)·임진(臨津)·경성 등 지역을 방어하는 일을 차례로 강구해 정해야 하겠습니다만, 오늘 안으로 먼저 거행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진주사 박정길(朴鼎吉)로 하여금 주문을 갖고 도로 올라오게 하는 일, 성절사 윤휘로 하여금 성절과 관련된 문서만 가지고 그대로 강을 건너가게 하는 한편 병력 조발(調發)과 관련된 주문을 도로 올려보내게 하는 일, 곽천호(郭天豪)는 그대로 경략의 아문에 보내되 게첩(揭帖)과 예물만 올리게 하고 기타 병력 조발에 관한 별첩(別帖) 및 호서(胡書)에 관련된 자문을 모두 도로 보내게 하는 일 등이 그것이니, 오늘 안으로 선전관을 파견하여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급히 달려가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문(軍門)에게 보내는 자문을 개작하고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을 마련하여 이잠으로 하여금 도로 나아가 두 아문에 올리게 하고, 호서에 관한 자문을 개작한 뒤 진강(鎭江) 및 요동 도사(遼東都事)에게 보고하여 전주(轉奏)하게 해야 할 것이니, 이들 항목들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며칠 안으로 급히 거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내 생각에 박정길과 윤휘와 곽천호 등은 모두 보내 경략의 처치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왕 군문(汪軍門)이 이자(移咨)한 7천 명에 대한 일을 상세히 자문으로 회답하면서 ‘소방(小邦)에서 마음대로 가감할 수 있겠는가.’ 하고 개진해야 할 것이다. 또 ‘호서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 때문에 소방의 사정상 사신을 이미 보내었는데 미처 소환하지 못했으니 삼가 바라건대 대인께서는 죄를 주지 마시고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헤아려 선처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회답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편할 듯하고 계책에 맞을 듯도 하다. 예전부터 강을 건너간 사신을 도로 불러 온 예가 없을 뿐 아니라 중국인이 보더라도 매우 온당치 못하니 지금은 우선 이렇게 하면서 다시 형세를 살펴 별도로 의논해 조처토록 하라." 하였다.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지극히 감격스러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의 뜻 역시 칙유(敕諭)를 기다릴 필요 없이 지레 먼저 군병을 보내자고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략(經略)의 자문 안에 일단 칙서를 받들었다고 했으니 칙서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그때 임해서 별도로 칙서가 있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더구나 자문 가운데에 또 ‘군병을 이끄는 장령(將領)과 지형을 지도로 그려 가지고 옴으로써 입주(入奏)하는 데에 편리하게 하라.’는 말이 있고 보면 경략이 주문하는 데에 따라 황제의 칙서가 내려오리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도원수를 떠나보내는 일과 대동(大同)·임진(臨津)·경성 등 지역을 방어하는 일을 차례로 강구해 정해야 하겠습니다만, 오늘 안으로 먼저 거행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진주사 박정길(朴鼎吉)로 하여금 주문을 갖고 도로 올라오게 하는 일, 성절사 윤휘로 하여금 성절과 관련된 문서만 가지고 그대로 강을 건너가게 하는 한편 병력 조발(調發)과 관련된 주문을 도로 올려보내게 하는 일, 곽천호(郭天豪)는 그대로 경략의 아문에 보내되 게첩(揭帖)과 예물만 올리게 하고 기타 병력 조발에 관한 별첩(別帖) 및 호서(胡書)에 관련된 자문을 모두 도로 보내게 하는 일 등이 그것이니, 오늘 안으로 선전관을 파견하여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급히 달려가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문(軍門)에게 보내는 자문을 개작하고 경략에게 회답하는 자문을 마련하여 이잠으로 하여금 도로 나아가 두 아문에 올리게 하고, 호서에 관한 자문을 개작한 뒤 진강(鎭江) 및 요동 도사(遼東都事)에게 보고하여 전주(轉奏)하게 해야 할 것이니, 이들 항목들을 승문원으로 하여금 며칠 안으로 급히 거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내 생각에 박정길과 윤휘와 곽천호 등은 모두 보내 경략의 처치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왕 군문(汪軍門)이 이자(移咨)한 7천 명에 대한 일을 상세히 자문으로 회답하면서 ‘소방(小邦)에서 마음대로 가감할 수 있겠는가.’ 하고 개진해야 할 것이다. 또 ‘호서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 때문에 소방의 사정상 사신을 이미 보내었는데 미처 소환하지 못했으니 삼가 바라건대 대인께서는 죄를 주지 마시고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헤아려 선처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회답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편할 듯하고 계책에 맞을 듯도 하다. 예전부터 강을 건너간 사신을 도로 불러 온 예가 없을 뿐 아니라 중국인이 보더라도 매우 온당치 못하니 지금은 우선 이렇게 하면서 다시 형세를 살펴 별도로 의논해 조처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도승지 한찬남(韓纘男)의 계사를 가지고 회계하기를, "한찬남이 아뢴바 적을 헤아려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계책과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무비(武備)를 닦을 수 있는 방책을 보건대 약간 사람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함흥(咸興) 등 네 성(城)을 방어하여 지키는 일과 공명 고신(空名告身)을 널리 배포하여 곡식을 모집하는 일과 먼저 관서(關西)의 군병을 거느리고 용만(龍灣)129)  에 나아가 진을 치는 일 등은 체찰사와 도원수로 하여금 상의하여 계획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강도(江都)의 형세로 말하면 진정 하늘이 만들어준 금성 탕지(金城湯池)로서 우리 나라에서 보장(保障)을 삼을 지역으로는 이보다 나은 곳이 없는데 아랫사람들도 모두 마음속으로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요리하고 조치하는 일들을 이제 바야흐로 강구해야 할 것이니 검찰사(檢察使)로 하여금 일에 따라 계획을 세워 계문(啓聞)한 뒤에 시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또 부교(浮橋)를 만들어 도성 백성이 건널 수 있게 하는 일은 그야말로 백성을 인자하게 대하고 만물을 동일하게 대하는 제왕의 마음으로 볼 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주사(舟師) 차지 당상(次知堂上)으로 하여금 그때에 가서 혹 부교를 만들거나 배를 많이 모아 건너는 데 편리하게 함으로써 물에 빠져 죽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밖에 백성을 사랑하고, 언로(言路)를 열고, 탐욕스럽고 포악한 자를 제거하고, 공물(貢物)을 견감하는 등의 일은 더욱 오늘날 행해야 할 절실한 일들입니다. 상께서 명심하시어 시행해 나가신다면 그런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강도의 해상에 부교를 설치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니 철저를 기해 착실히 살펴 하도록 하라. 그리고 듣건대 근일 도성의 백성들이 나가기만 하면 모조리 적도에게 약탈을 당한다고 한다. 법을 만들어 엄히 다스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일찍이 임진년 난리 때에는 군율이 엄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가(大駕)가 성을 나가기도 전에 우리 나라의 적도가 이미 궐내로 난입했었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만약 철저하게 엄히 단속했더라면 어찌 그런 환란이 있었겠는가. 지금은 의당 미리부터 각별히 엄하게 단속하여 도성 내외에 조금이라도 약탈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시 더 요리하여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註 129] 용만(龍灣) : 의주(義州).
"한찬남이 아뢴바 적을 헤아려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계책과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무비(武備)를 닦을 수 있는 방책을 보건대 약간 사람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함흥(咸興) 등 네 성(城)을 방어하여 지키는 일과 공명 고신(空名告身)을 널리 배포하여 곡식을 모집하는 일과 먼저 관서(關西)의 군병을 거느리고 용만(龍灣)129)  에 나아가 진을 치는 일 등은 체찰사와 도원수로 하여금 상의하여 계획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강도(江都)의 형세로 말하면 진정 하늘이 만들어준 금성 탕지(金城湯池)로서 우리 나라에서 보장(保障)을 삼을 지역으로는 이보다 나은 곳이 없는데 아랫사람들도 모두 마음속으로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요리하고 조치하는 일들을 이제 바야흐로 강구해야 할 것이니 검찰사(檢察使)로 하여금 일에 따라 계획을 세워 계문(啓聞)한 뒤에 시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또 부교(浮橋)를 만들어 도성 백성이 건널 수 있게 하는 일은 그야말로 백성을 인자하게 대하고 만물을 동일하게 대하는 제왕의 마음으로 볼 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주사(舟師) 차지 당상(次知堂上)으로 하여금 그때에 가서 혹 부교를 만들거나 배를 많이 모아 건너는 데 편리하게 함으로써 물에 빠져 죽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밖에 백성을 사랑하고, 언로(言路)를 열고, 탐욕스럽고 포악한 자를 제거하고, 공물(貢物)을 견감하는 등의 일은 더욱 오늘날 행해야 할 절실한 일들입니다. 상께서 명심하시어 시행해 나가신다면 그런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강도의 해상에 부교를 설치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니 철저를 기해 착실히 살펴 하도록 하라. 그리고 듣건대 근일 도성의 백성들이 나가기만 하면 모조리 적도에게 약탈을 당한다고 한다. 법을 만들어 엄히 다스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일찍이 임진년 난리 때에는 군율이 엄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가(大駕)가 성을 나가기도 전에 우리 나라의 적도가 이미 궐내로 난입했었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만약 철저하게 엄히 단속했더라면 어찌 그런 환란이 있었겠는가. 지금은 의당 미리부터 각별히 엄하게 단속하여 도성 내외에 조금이라도 약탈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시 더 요리하여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화수(火手)와 영장(領將)을 올려보내라고 하유하고, 포수(砲手) 수천 명을 영변(寧邊) 등 지역에 들여보내라고 하교하셨습니다. 당초 회계할 때 양호(兩湖)에서 각각 화수 5백 명씩을 뽑자고 청했었는데, 그럴 경우 나누어 파수하게 하는 데에 충분치 못하리라는 것을 신들이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쪽과 북쪽에서 기예가 완성된 포수가 얼마나 되는지 상세히 알기가 어려웠고 또 군병을 얻기는 어렵지 않은 반면 군량을 계속 조달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사태를 살펴보면서 점차적으로 들여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변방 소식이 날로 급해지는 데다 또 성상께서 이처럼 분부를 내리셨으니, 양호에서 각각 포수 1천 명씩을 뽑아내고 영장을 엄선하여 원수에게 보내 그로 하여금 사태의 추이를 참작해서 나누어 방어하며 변고에 대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현재 당면한 서쪽과 북쪽의 근심이 어디가 좀 낫고 못한 차이가 없습니다. 관동(關東)의 군병 1천 명을 이미 북로(北路)에 들여보내 응원하게 하였다 하더라도 그 숫자가 많지 않으니, 영남의 화수 5백 명을 또 뽑아내어 함경 감사에게 들여보냄으로써 일체로 방어에 투입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시언(李時言)이 탑전에서 아뢴 말을 듣건대 서쪽 변방이 더욱 급하다고 하였다. 서쪽 변방의 방비책을 철저히 조치하여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는 일이 없게끔 하라." 하였다.
"화수(火手)와 영장(領將)을 올려보내라고 하유하고, 포수(砲手) 수천 명을 영변(寧邊) 등 지역에 들여보내라고 하교하셨습니다. 당초 회계할 때 양호(兩湖)에서 각각 화수 5백 명씩을 뽑자고 청했었는데, 그럴 경우 나누어 파수하게 하는 데에 충분치 못하리라는 것을 신들이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쪽과 북쪽에서 기예가 완성된 포수가 얼마나 되는지 상세히 알기가 어려웠고 또 군병을 얻기는 어렵지 않은 반면 군량을 계속 조달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사태를 살펴보면서 점차적으로 들여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변방 소식이 날로 급해지는 데다 또 성상께서 이처럼 분부를 내리셨으니, 양호에서 각각 포수 1천 명씩을 뽑아내고 영장을 엄선하여 원수에게 보내 그로 하여금 사태의 추이를 참작해서 나누어 방어하며 변고에 대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현재 당면한 서쪽과 북쪽의 근심이 어디가 좀 낫고 못한 차이가 없습니다. 관동(關東)의 군병 1천 명을 이미 북로(北路)에 들여보내 응원하게 하였다 하더라도 그 숫자가 많지 않으니, 영남의 화수 5백 명을 또 뽑아내어 함경 감사에게 들여보냄으로써 일체로 방어에 투입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시언(李時言)이 탑전에서 아뢴 말을 듣건대 서쪽 변방이 더욱 급하다고 하였다. 서쪽 변방의 방비책을 철저히 조치하여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는 일이 없게끔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이시언이 탑전에서 아뢴 계사를 가지고 회계하기를, "이 계사 가운데 어느 것도 현재 당면한 급무가 아닌 것이 없으니, 나라를 위해 계책을 세우는 노장(老將) 구신(舊臣)의 정성을 여기에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조정에서 군병을 징발토록 하였으니 속히 가서 응원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조정이 이미 양서(兩西)에서 뽑아내어 행장을 꾸리고서 대기토록 하고 있습니다. 도감의 포수들이 쇠약한 자들로 구차하게 채워져 있고 휴식을 취할 틈이 없는 것은 과연 그가 진달드린 바와 같으니, 더욱 심하게 늙고 쇠약한 자들을 도태시키고 그 대신 별도로 뽑아 충원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련시키는 일은 일체 구례(舊例)에 의거하여 상벌 규정을 다시 밝히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군사를 호궤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일 역시 그만둘 수 없는데, 이는 특명과 관계된 일이라서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겠습니다.  평안 감사의 군사 및 병사(兵使)에 소속된 부대를 동원하여 강변을 파수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본도의 주장(主將)이 이미 요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계사의 내용을 또 본도에 행회(行會)하여 형편에 따라 선처하게 함으로써 제때에 미치지 못하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적을 막는 계책으로는 성을 지키는 것이 으뜸이고 또 적임자를 얻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한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인데, 다만 적임자를 얻기가 어려운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신(韓信)을 천거한 것은 소하(簫何)에게서 나왔고 제갈량(諸葛亮)을 얻은 것은 서서(徐庶)를 통해서였습니다. 이시언이야말로 당대 무장의 종장(宗匠)이니 필시 소견이 있고 얻은 바가 있을텐데 사람을 얻는 것에 관한 그의 설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벽동은 강변의 요해지로서 성지(城池)가 견고하니 그야말로 오늘날 사수해야 할 곳인데 지금 이곳의 임무를 맡은 자가 사람들의 뜻에 차지 않기 때문에 시언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군수 이호원(李好元)을 체차하고 본도 조방장 한 사람을 겸차(兼差)하여 성화같이 내려보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강도(江都)를 보장(保障)으로 삼는 일에 대해서는 조정에서 현재 요리하고 있습니다. 영남의 인심이 순박하다는 말은 과연 그가 진달한 대로인데 그것도 조정에서 요리하는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변란을 당해 도감의 포수들만 독신으로 대가(大駕)를 따르게 한다면 버리고 도망칠 염려가 없지 않다고 하였는데 그의 소견이 과연 보통 사람을 뛰어 넘는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께서 이미 처자들도 함께 배에 태우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므로 주사(舟師)에 소속된 군사들은 필시 감격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텐데, 그밖에 초군(哨軍)에 대해서도 이 규정을 적용하여 주사 차지 당상으로 하여금 난리를 당한 날 그들의 부모와 처자를 먼저 배에 태울 것이라고 미리 효유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양료(糧料)를 넉넉하게 지급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일은 도감으로 하여금 각별히 거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계사에서 진달한 일들을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이 계사 가운데 어느 것도 현재 당면한 급무가 아닌 것이 없으니, 나라를 위해 계책을 세우는 노장(老將) 구신(舊臣)의 정성을 여기에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조정에서 군병을 징발토록 하였으니 속히 가서 응원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일에 대해서는 조정이 이미 양서(兩西)에서 뽑아내어 행장을 꾸리고서 대기토록 하고 있습니다. 도감의 포수들이 쇠약한 자들로 구차하게 채워져 있고 휴식을 취할 틈이 없는 것은 과연 그가 진달드린 바와 같으니, 더욱 심하게 늙고 쇠약한 자들을 도태시키고 그 대신 별도로 뽑아 충원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련시키는 일은 일체 구례(舊例)에 의거하여 상벌 규정을 다시 밝히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군사를 호궤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일 역시 그만둘 수 없는데, 이는 특명과 관계된 일이라서 아래에서 감히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겠습니다.
평안 감사의 군사 및 병사(兵使)에 소속된 부대를 동원하여 강변을 파수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본도의 주장(主將)이 이미 요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계사의 내용을 또 본도에 행회(行會)하여 형편에 따라 선처하게 함으로써 제때에 미치지 못하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적을 막는 계책으로는 성을 지키는 것이 으뜸이고 또 적임자를 얻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한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인데, 다만 적임자를 얻기가 어려운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신(韓信)을 천거한 것은 소하(簫何)에게서 나왔고 제갈량(諸葛亮)을 얻은 것은 서서(徐庶)를 통해서였습니다. 이시언이야말로 당대 무장의 종장(宗匠)이니 필시 소견이 있고 얻은 바가 있을텐데 사람을 얻는 것에 관한 그의 설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벽동은 강변의 요해지로서 성지(城池)가 견고하니 그야말로 오늘날 사수해야 할 곳인데 지금 이곳의 임무를 맡은 자가 사람들의 뜻에 차지 않기 때문에 시언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군수 이호원(李好元)을 체차하고 본도 조방장 한 사람을 겸차(兼差)하여 성화같이 내려보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강도(江都)를 보장(保障)으로 삼는 일에 대해서는 조정에서 현재 요리하고 있습니다. 영남의 인심이 순박하다는 말은 과연 그가 진달한 대로인데 그것도 조정에서 요리하는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변란을 당해 도감의 포수들만 독신으로 대가(大駕)를 따르게 한다면 버리고 도망칠 염려가 없지 않다고 하였는데 그의 소견이 과연 보통 사람을 뛰어 넘는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께서 이미 처자들도 함께 배에 태우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므로 주사(舟師)에 소속된 군사들은 필시 감격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텐데, 그밖에 초군(哨軍)에 대해서도 이 규정을 적용하여 주사 차지 당상으로 하여금 난리를 당한 날 그들의 부모와 처자를 먼저 배에 태울 것이라고 미리 효유케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양료(糧料)를 넉넉하게 지급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일은 도감으로 하여금 각별히 거행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계사에서 진달한 일들을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검찰사(檢察使) 심돈(沈惇)이 아뢰기를, "신이 외람되게 검찰사의 명을 받고 내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만 검찰사라는 직임이 당초에 전적으로 강도(江都)를 요리하기 위해 설치되었고 보면 계획을 강구하고 조치함에 있어 강도를 위주로 해야 마땅할 것이니, 신은 먼저 강도에 가서 형세를 자세히 살핀 뒤에 행해야 할 일을 장계하여 결재를 얻은 뒤에 거행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계획을 강구하고 조치하는 일은 단시일 내에 마무리지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 이상 반드시 한곳에 전력하여 경영하고 감독해야만 일이 두서가 잡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호남의 나주(羅州) 등 지역을 적간(摘奸)하는 일이 점차 지연되고 말텐데, 먼저 종사관을 보내 적간해야 합니까, 아니면 시일이 지체되더라도 신이 직접 가서 간심(看審)해야 합니까? 그리고 안동(安東)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형세상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마치 바람난 말과 소가 서로 짝을 찾아도 미칠 수 없는 것과 같은 만큼 이쪽저쪽을 다 주선할 수 없는 형편이니, 별도로 다른 사람을 파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이 두 조목에 대해 비변사로 하여금 좋은 쪽으로 의논해서 조처하게 하소서. 그리고 한 달 사이에 갔다가 돌아오기는 형세상 어려운데, 이렇듯 군국(軍國)의 일이 많은 시기를 당하여 비국 유사의 직임을 하루라도 비워둘 수는 없으니, 신이 겸대(兼帶)한 비변사 유사 당상을 체차하도록 명하시고 서울에 있는 자로서 사고가 없는 사람에게 제수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신이 외람되게 검찰사의 명을 받고 내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만 검찰사라는 직임이 당초에 전적으로 강도(江都)를 요리하기 위해 설치되었고 보면 계획을 강구하고 조치함에 있어 강도를 위주로 해야 마땅할 것이니, 신은 먼저 강도에 가서 형세를 자세히 살핀 뒤에 행해야 할 일을 장계하여 결재를 얻은 뒤에 거행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계획을 강구하고 조치하는 일은 단시일 내에 마무리지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 이상 반드시 한곳에 전력하여 경영하고 감독해야만 일이 두서가 잡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호남의 나주(羅州) 등 지역을 적간(摘奸)하는 일이 점차 지연되고 말텐데, 먼저 종사관을 보내 적간해야 합니까, 아니면 시일이 지체되더라도 신이 직접 가서 간심(看審)해야 합니까? 그리고 안동(安東)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형세상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마치 바람난 말과 소가 서로 짝을 찾아도 미칠 수 없는 것과 같은 만큼 이쪽저쪽을 다 주선할 수 없는 형편이니, 별도로 다른 사람을 파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이 두 조목에 대해 비변사로 하여금 좋은 쪽으로 의논해서 조처하게 하소서. 그리고 한 달 사이에 갔다가 돌아오기는 형세상 어려운데, 이렇듯 군국(軍國)의 일이 많은 시기를 당하여 비국 유사의 직임을 하루라도 비워둘 수는 없으니, 신이 겸대(兼帶)한 비변사 유사 당상을 체차하도록 명하시고 서울에 있는 자로서 사고가 없는 사람에게 제수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6월 22일 기묘

지평 신칙(申恜), 정언 서국정(徐國楨)이 아뢰기를, "이렇듯 염려스러운 날을 당하여서는 대론을 마무리짓는 일이 한 시각이 급한데, 다만 전일 전교하신 것 때문에 지금까지 지연시키게 되었으니 물의가 분분하게 일어나는 것은 본래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어제 동료와 함께 인피했어야 마땅한데 마침 질병에 걸린 탓으로 이제야 와서 인피하게 되었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遞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이렇듯 염려스러운 날을 당하여서는 대론을 마무리짓는 일이 한 시각이 급한데, 다만 전일 전교하신 것 때문에 지금까지 지연시키게 되었으니 물의가 분분하게 일어나는 것은 본래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어제 동료와 함께 인피했어야 마땅한데 마침 질병에 걸린 탓으로 이제야 와서 인피하게 되었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신들의 직을 체척(遞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호조가 아뢰기를, "부상 대고(富商大賈)에게서 은(銀)을 거두어 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기 때문에 본조에서 복계한 다음 한성부에 행회(行會)하여 근래의 예를 살펴서 거행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각부의 관원이 더욱 심히 용렬스럽게 된 나머지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을 뽑아낼 때에 강한 자는 두려워하고 약한 자는 깔보아 한결같이 청탁을 받아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수천의 은을 쌓아놓은 사람을 공공연히 빠뜨리는가 하면 세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까지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날을 당하여 각부 관원이 형편없이 일을 처리하고 있는 탓으로 원망하는 소리가 떼 지어 일어나고 있으니 지극히 경악스러운 일입니다. 각부 관원을 중하게 추고하고 한성부의 당해 낭청도 아울러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부상 대고(富商大賈)에게서 은(銀)을 거두어 쓰도록 하라고 전교하셨기 때문에 본조에서 복계한 다음 한성부에 행회(行會)하여 근래의 예를 살펴서 거행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각부의 관원이 더욱 심히 용렬스럽게 된 나머지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을 뽑아낼 때에 강한 자는 두려워하고 약한 자는 깔보아 한결같이 청탁을 받아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수천의 은을 쌓아놓은 사람을 공공연히 빠뜨리는가 하면 세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까지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날을 당하여 각부 관원이 형편없이 일을 처리하고 있는 탓으로 원망하는 소리가 떼 지어 일어나고 있으니 지극히 경악스러운 일입니다. 각부 관원을 중하게 추고하고 한성부의 당해 낭청도 아울러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라도 유학(幼學) 신상연(申尙淵)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렇듯 변경에 경보가 울린 때를 당하여서는 서궁을 폐출하고 요해지에 방비 시설을 갖추어 보장(保障)을 삼고 군병을 조발하며 곡식을 모집하고 죄인을 너그럽게 처결해 놓아주는 일을 하루가 급하게 행해야 하니, 속히 의논해 조처토록 하여 인심을 위로하소서."
"이렇듯 변경에 경보가 울린 때를 당하여서는 서궁을 폐출하고 요해지에 방비 시설을 갖추어 보장(保障)을 삼고 군병을 조발하며 곡식을 모집하고 죄인을 너그럽게 처결해 놓아주는 일을 하루가 급하게 행해야 하니, 속히 의논해 조처토록 하여 인심을 위로하소서."

 

이조가 아뢰기를, "관례에 따라 도목 정사(都目政事)를 이달 안으로 행해야 하는데, 판서가 차임되지 않았고 참판도 현재 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기한 내에 할 수 없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 판서와 참판이 처치될 때까지 기다리되 다음날에 다시 품하여 하도록 하라." 하였다.
"관례에 따라 도목 정사(都目政事)를 이달 안으로 행해야 하는데, 판서가 차임되지 않았고 참판도 현재 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기한 내에 할 수 없게 된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 판서와 참판이 처치될 때까지 기다리되 다음날에 다시 품하여 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김태허(金太虛)와 홍대방(洪大邦)은 역전의 장수들이고 김경운(金慶雲)은 용감한 인물이니, 이 세 사람을 양계(兩界)의 어떤 읍이든 수령으로 제수하고 조방장을 겸해 보낼 일을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이외에 종2품 이하 무신들을 7월 안으로 빠짐없이 불러모아 급할 때 대비토록 하는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김태허(金太虛)와 홍대방(洪大邦)은 역전의 장수들이고 김경운(金慶雲)은 용감한 인물이니, 이 세 사람을 양계(兩界)의 어떤 읍이든 수령으로 제수하고 조방장을 겸해 보낼 일을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이외에 종2품 이하 무신들을 7월 안으로 빠짐없이 불러모아 급할 때 대비토록 하는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전교하였다. "근일의 사태는 과거와 다른 만큼 조정에서 비밀로 해야 할 일은 모두 조보(朝報)에 내면 안된다. 그런데 이홍순(李弘詢) 등이 올린 상소의 내용 및 양사의 계사를 감히 조보에 기록해 중외에 전파시켰으니 부당하기 그지없다. 지금 이후로 대론(大論)이나 영건(營建) 등에 관한 일은 조보에 나오지 않도록 하라."
"근일의 사태는 과거와 다른 만큼 조정에서 비밀로 해야 할 일은 모두 조보(朝報)에 내면 안된다. 그런데 이홍순(李弘詢) 등이 올린 상소의 내용 및 양사의 계사를 감히 조보에 기록해 중외에 전파시켰으니 부당하기 그지없다. 지금 이후로 대론(大論)이나 영건(營建) 등에 관한 일은 조보에 나오지 않도록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본사가 계사를 올려 양호(兩湖)에서 포수(砲手)를 각각 1천 명씩 조발해 평안도로 들여보내고 경상도에서 포수 5백 명을 조발해 함경도로 들여보내는 일을 윤허받았습니다. 서쪽과 북쪽 변경의 정세가 날이 갈수록 더욱 위급해지고 있으니 병력을 증강시키는 일을 급히 시행해야 하겠습니다. 각도의 감사와 병사로 하여금 정밀히 가리는 일을 철저히 하여 군병들의 의복을 선명하게 하고 기계를 완전히 정비하게 하는 동시에 영장(領將)을 가려 정해 엄히 단속하게 하면서 멋대로 돌아다니거나 도로에서 난동을 피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 조금이라도 이를 범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영장 이하를 군령으로 처단할 것이라는 뜻을 병조로 하여금 품지(稟旨)한 뒤 하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본사가 계사를 올려 양호(兩湖)에서 포수(砲手)를 각각 1천 명씩 조발해 평안도로 들여보내고 경상도에서 포수 5백 명을 조발해 함경도로 들여보내는 일을 윤허받았습니다. 서쪽과 북쪽 변경의 정세가 날이 갈수록 더욱 위급해지고 있으니 병력을 증강시키는 일을 급히 시행해야 하겠습니다. 각도의 감사와 병사로 하여금 정밀히 가리는 일을 철저히 하여 군병들의 의복을 선명하게 하고 기계를 완전히 정비하게 하는 동시에 영장(領將)을 가려 정해 엄히 단속하게 하면서 멋대로 돌아다니거나 도로에서 난동을 피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 조금이라도 이를 범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영장 이하를 군령으로 처단할 것이라는 뜻을 병조로 하여금 품지(稟旨)한 뒤 하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어제 본사의 계사에 대해 비답하시면서 ‘도원수를 며칠 안으로 떠나보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서쪽과 북쪽을 막아 지킬 대책과 경략(經略)이 분부한 대로 1만 병력을 정비하여 대기시키는 일 등은 원수가 반드시 먼저 내려간 뒤에야 모두 요리하고 책응할 수 있으니,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급히 떠나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순변사(巡邊使)·방어사(防禦使)·우후(虞候)·조방장(助防將) 등의 장수가 먼저 떠나간 뒤에 원수가 잇달아 길을 떠나는 것이 사리로 볼 때 당연합니다. 그런데 조방장 이일원(李一元)은 종기가 아직 낫지 않았으니 우선 며칠 기다렸다가 떠나보내고, 김응하(金應河)는 내일 먼저 떠나보내고, 문희성(文希聖)과 고경민(高敬民)의 경우는 또한 내일 정사(政事)를 해서 모레 떠나보내고, 함경도의 방어사와 조방장도 모두 원수가 내려가기 전에 내려보내고, 남도(南道)의 조방장 한 사람도 차출해서 한꺼번에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그리고 북도(北道)의 경우는 길주 목사(吉州牧使)가 이미 방어사를 겸하고 있는데, 아무리 객장(客將)이 없다고 하더라도 급한 사태가 벌어지면 주장이 반드시 병력을 조발해 육진(六鎭)에 들여보냄으로써 응원할 계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남도의 경우는 원래 방어사가 없는데, 모두의 의논이 ‘유몽룡(劉夢龍)을 방어사로 삼아 지금 들어가게 하되 평안도의 예에 따라 정평 부사(定平府使)에 차임해서 방어사를 겸하게 하고 순찰사의 지휘를 받아 진퇴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남도와 북도에 모두 방어사가 있게 되니 사리상으로도 타당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관서(關西)에는 원수가 내려가는데 북도의 경우는 갈 만한 사람이 없다. 2품인 문·무신 중에서 가려 부원수의 칭호를 부여한 뒤 북도에 내려보내 막아 지키는 일을 살피도록 하라. 평안 병사 김경서(金景瑞)는 노적(奴賊)이 무너져 내려올 경우 본도를 그대로 지켜야 마땅하니 다른 2품 무장을 가려 보내는 것이 좋겠다. 만약 관서의 장령(將領)을 보낼 수밖에 없다면 2품 무신을 우후로 차임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모두 자세히 의논하여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어제 본사의 계사에 대해 비답하시면서 ‘도원수를 며칠 안으로 떠나보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서쪽과 북쪽을 막아 지킬 대책과 경략(經略)이 분부한 대로 1만 병력을 정비하여 대기시키는 일 등은 원수가 반드시 먼저 내려간 뒤에야 모두 요리하고 책응할 수 있으니,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급히 떠나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순변사(巡邊使)·방어사(防禦使)·우후(虞候)·조방장(助防將) 등의 장수가 먼저 떠나간 뒤에 원수가 잇달아 길을 떠나는 것이 사리로 볼 때 당연합니다. 그런데 조방장 이일원(李一元)은 종기가 아직 낫지 않았으니 우선 며칠 기다렸다가 떠나보내고, 김응하(金應河)는 내일 먼저 떠나보내고, 문희성(文希聖)과 고경민(高敬民)의 경우는 또한 내일 정사(政事)를 해서 모레 떠나보내고, 함경도의 방어사와 조방장도 모두 원수가 내려가기 전에 내려보내고, 남도(南道)의 조방장 한 사람도 차출해서 한꺼번에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그리고 북도(北道)의 경우는 길주 목사(吉州牧使)가 이미 방어사를 겸하고 있는데, 아무리 객장(客將)이 없다고 하더라도 급한 사태가 벌어지면 주장이 반드시 병력을 조발해 육진(六鎭)에 들여보냄으로써 응원할 계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남도의 경우는 원래 방어사가 없는데, 모두의 의논이 ‘유몽룡(劉夢龍)을 방어사로 삼아 지금 들어가게 하되 평안도의 예에 따라 정평 부사(定平府使)에 차임해서 방어사를 겸하게 하고 순찰사의 지휘를 받아 진퇴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남도와 북도에 모두 방어사가 있게 되니 사리상으로도 타당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관서(關西)에는 원수가 내려가는데 북도의 경우는 갈 만한 사람이 없다. 2품인 문·무신 중에서 가려 부원수의 칭호를 부여한 뒤 북도에 내려보내 막아 지키는 일을 살피도록 하라. 평안 병사 김경서(金景瑞)는 노적(奴賊)이 무너져 내려올 경우 본도를 그대로 지켜야 마땅하니 다른 2품 무장을 가려 보내는 것이 좋겠다. 만약 관서의 장령(將領)을 보낼 수밖에 없다면 2품 무신을 우후로 차임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모두 자세히 의논하여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보장(保障)으로 삼을 곳을 미리 강구해 정하고 도성 수어 대장(守禦大將) 및 대동(大同)·임진(臨津)을 파수할 장수를 먼저 선출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경성을 수어하는 일에 대해서는 일찍이 성상께서 분부하였을 때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려 대장 이하 장령들을 차임하고 차례로 계책을 강구하겠다는 내용으로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청천·대동 등 강에 별도로 대장을 선출해 내려보낼 경우, 조정에서 내보낸 사명(使命)이 한 도에 꽉차게 된 나머지 그들을 접대하고 맞으면서 분주히 명을 좇느라 피곤해질 뿐만 아니라 거느리는 군병 또한 멀리서 지휘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신들의 의견으로는, 원수가 지금 당장 내려갈 때 2품 이하의 무신 3, 4인을 엄선해 데리고 가면서 별장(別將)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그 도에 들어가서 군병이 있고 없는 것과 적로(賊路)의 긴급하고 헐한 곳과 도하(渡河) 지점의 깊고 얕은 것 등을 미리 헤아리고, 이 별장들을 수어 대장으로 파견하면서 부근 고을의 군병을 이끌게 하여 강 연안을 파수할 계책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일의 기틀에 합당할 듯합니다. 그리고 임진의 경우는 경성에 있는 무장을 역시 대장으로 미리 정해놓고 앞으로 사태가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중병(重兵)을 그에게 준 뒤 경기 좌방어사와 분담하여 대탄(大灘)·임진 등 강 연안의 요해처를 지키게 하는 동시에 수어하는 곳을 많이 설치하여 경계망이 서로 이어지고 정기(旌旗)가 서로 잇따르게 하는 등 경성으로 오는 길목을 차단하는 계책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다만 인재는 관작의 높고 낮음에 있지 않다. 당상 무신(堂上武臣)도 충분히 막아 지킬 수 있는데 어찌 꼭 2품인 무신을 데려가야 하는가. 더구나 경성을 호위하는 일이라든가 여기서 뽑아 쓸 일도 많다. 원수는 당상 무신 가운데 재략이 있고 용감한 4, 5인을 엄선하여 데리고 가도록 하라." 하였다.
"보장(保障)으로 삼을 곳을 미리 강구해 정하고 도성 수어 대장(守禦大將) 및 대동(大同)·임진(臨津)을 파수할 장수를 먼저 선출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경성을 수어하는 일에 대해서는 일찍이 성상께서 분부하였을 때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려 대장 이하 장령들을 차임하고 차례로 계책을 강구하겠다는 내용으로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청천·대동 등 강에 별도로 대장을 선출해 내려보낼 경우, 조정에서 내보낸 사명(使命)이 한 도에 꽉차게 된 나머지 그들을 접대하고 맞으면서 분주히 명을 좇느라 피곤해질 뿐만 아니라 거느리는 군병 또한 멀리서 지휘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신들의 의견으로는, 원수가 지금 당장 내려갈 때 2품 이하의 무신 3, 4인을 엄선해 데리고 가면서 별장(別將)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그 도에 들어가서 군병이 있고 없는 것과 적로(賊路)의 긴급하고 헐한 곳과 도하(渡河) 지점의 깊고 얕은 것 등을 미리 헤아리고, 이 별장들을 수어 대장으로 파견하면서 부근 고을의 군병을 이끌게 하여 강 연안을 파수할 계책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일의 기틀에 합당할 듯합니다.
그리고 임진의 경우는 경성에 있는 무장을 역시 대장으로 미리 정해놓고 앞으로 사태가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중병(重兵)을 그에게 준 뒤 경기 좌방어사와 분담하여 대탄(大灘)·임진 등 강 연안의 요해처를 지키게 하는 동시에 수어하는 곳을 많이 설치하여 경계망이 서로 이어지고 정기(旌旗)가 서로 잇따르게 하는 등 경성으로 오는 길목을 차단하는 계책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다만 인재는 관작의 높고 낮음에 있지 않다. 당상 무신(堂上武臣)도 충분히 막아 지킬 수 있는데 어찌 꼭 2품인 무신을 데려가야 하는가. 더구나 경성을 호위하는 일이라든가 여기서 뽑아 쓸 일도 많다. 원수는 당상 무신 가운데 재략이 있고 용감한 4, 5인을 엄선하여 데리고 가도록 하라."
하였다.

 

6월 23일 경진

전교하기를, "날이 가면 갈수록 국가의 형세가 더욱 위급해지고 있는데 안타깝게 걱정하고 애만 태울 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경은 지극한 슬픔을 억지로라도 누르고 급히 나와 직무에 임함으로써 나의 기대하는 뜻에 부응하라." 하고, 승지를 보내 우상에게 돈독히 유시하였는데, 우승지 이위경(李偉卿)이 가서 유시한 뒤에 아뢰기를, "박승종이 말하기를 ‘엄한 명이 재차 내려왔으므로 놀랍고 황공하여 죽고만 싶습니다.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고 했습니다." 하였다.
"날이 가면 갈수록 국가의 형세가 더욱 위급해지고 있는데 안타깝게 걱정하고 애만 태울 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경은 지극한 슬픔을 억지로라도 누르고 급히 나와 직무에 임함으로써 나의 기대하는 뜻에 부응하라."
하고, 승지를 보내 우상에게 돈독히 유시하였는데, 우승지 이위경(李偉卿)이 가서 유시한 뒤에 아뢰기를,
"박승종이 말하기를 ‘엄한 명이 재차 내려왔으므로 놀랍고 황공하여 죽고만 싶습니다.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고 했습니다."
하였다.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대사간 윤인이 군관을 불러 말하기를 ‘탈옥 죄인인 풍저창(豊儲倉) 서원(書員) 김엇손[金於叱孫]이 남대문 밖 상인(常人)의 집에 숨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를 붙잡아 추문(推問)하였더니, 본창의 미곡 70여 석을 훔쳐먹은 사연과 탈옥해서 도망한 연유를 승복하였습니다. 그러니 형조로 도로 보내 율대로 죄를 정하게 하소서. "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대사간 윤인이 군관을 불러 말하기를 ‘탈옥 죄인인 풍저창(豊儲倉) 서원(書員) 김엇손[金於叱孫]이 남대문 밖 상인(常人)의 집에 숨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를 붙잡아 추문(推問)하였더니, 본창의 미곡 70여 석을 훔쳐먹은 사연과 탈옥해서 도망한 연유를 승복하였습니다. 그러니 형조로 도로 보내 율대로 죄를 정하게 하소서. "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정대해를 모은포조도 경차관으로 삼았다.】

 

전교하였다. "소훈(昭訓)으로 간택할 처녀의 단자(單子)를 들이라고 명을 내린 지 며칠이 지났는 데도 각부(各部)의 관원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채 널리 유시하면서 내놓도록 독촉하지는 않고 단지 10장(張)만 들이면서 책임을 때울 계책을 하고 있다. 각별히 추고하고 다시 독촉해 더 들이도록 하라. "
"소훈(昭訓)으로 간택할 처녀의 단자(單子)를 들이라고 명을 내린 지 며칠이 지났는 데도 각부(各部)의 관원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채 널리 유시하면서 내놓도록 독촉하지는 않고 단지 10장(張)만 들이면서 책임을 때울 계책을 하고 있다. 각별히 추고하고 다시 독촉해 더 들이도록 하라. "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번의 회자(回咨)가 지극히 중대하고 긴급한 것인 데도 지금까지 지어 올리지 않고 있다. 대제학이 침맞고 뜸뜨는 일로 정사(呈辭) 중에 있다 하더라도 비변사와 자세히 의논해 속히 지어 올린 다음 계하(啓下)를 받아 급히 내려보내도록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군문(軍門)과 경략(經略)에 보내는 회자를 마련해 정하려고 본사에 모였는데, 예조 판서 이이첨이 정사하여 말미를 받고 있는 상태이니, 명초(命招)하시어 자리에 동참시켜 상의한 뒤 결정하게 해 주셨으면 하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이번의 회자(回咨)가 지극히 중대하고 긴급한 것인 데도 지금까지 지어 올리지 않고 있다. 대제학이 침맞고 뜸뜨는 일로 정사(呈辭) 중에 있다 하더라도 비변사와 자세히 의논해 속히 지어 올린 다음 계하(啓下)를 받아 급히 내려보내도록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군문(軍門)과 경략(經略)에 보내는 회자를 마련해 정하려고 본사에 모였는데, 예조 판서 이이첨이 정사하여 말미를 받고 있는 상태이니, 명초(命招)하시어 자리에 동참시켜 상의한 뒤 결정하게 해 주셨으면 하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수찬 이강(李茳)·이모(李慕), 부수찬 한정국(韓定國)이 아뢰기를, "신들도 외람되게 삼사의 일원으로 있는 만큼 물의를 초래한 것은 양사와 다름이 없다고 할 것인데 어떻게 감히 거만스럽게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많은 관원들을 처치하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갈아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도 외람되게 삼사의 일원으로 있는 만큼 물의를 초래한 것은 양사와 다름이 없다고 할 것인데 어떻게 감히 거만스럽게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많은 관원들을 처치하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갈아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이번에 군병을 징집하여 보내느냐 안보내느냐 하는 것은 우리 국가의 성패와 화복이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응당 요동 어사(遼東御史)와 군문으로부터 자문(咨文)과 격서(檄書)가 왔을 때 즉각 주본(奏本) 하나를 갖춘 뒤 사신을 가려내어 급히 달려가 호소하게 함으로써 성지(聖旨)를 받들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경략이 백 명이 있다 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애석하게도 경들이 나라의 계책을 치밀하게 세우지 못한 채 내가 혼미하고 병든 가운데에서도 애써 분부한 것을 생각지도 않고 온갖 방법으로 저지하며 고의로 지연시킨 나머지 오늘날 앉아서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내가 가슴이 아프고 정신이 멍해 살아갈 의욕이 없다. 어떤 일이든 한번 기회를 놓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더구나 이토록 중차대한 징병에 관한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박정길(朴鼎吉)로 바꿀 때부터 나는 이미 나랏일이 엉망이 될 줄 알았다. 아, 예로부터 임금과 신하가 가부간에 서로 돕고나서야 위태로운 처지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었고 어려운 상황을 크게 극복할 수 있었다. 하물며 이렇듯 국정이 어지러운 때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비록 대신이 없다 하더라도 경들이 일찍 내 말을 따라 급히 말을 달려가게 했더라면 거의 베개를 높이 하고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을텐데, 내가 병중에 계책을 짜내어 말해준 것을 전혀 따르지 않아 결국에는 나라가 화란을 당하게 만들었으니, 누가 그 책임을 지겠는가. 나처럼 병든 몸이 일찍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사태가 이미 바뀌었으니 경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나 역시 진주(陳奏)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략이 이미 광령(廣寧)에 와 주둔하면서 못할 말이 없이 협박하고 모욕을 가해 오고 있으니, 오늘날 취할 도리로서는 뜻을 굽히고 애써 따라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참으로 당연할 것이다. 다만 회자(回咨) 가운데에 우리 나라의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호서(胡書)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에 신하의 분의상(分義上) 치주(馳奏)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로지 그 일로 사신을 차견하여 이미 들여보냈던 것인데 대인의 분부가 이러하시니 중지시킬 수도 있다. 다만 생각건대 소방의 사신이 일단 중원 지방에 들어간 뒤에는 불러오는 예가 없기에 황송할 따름이다. 그러나 군무(軍務)에 관한 일은 일체 대인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등의 말로 마무리하여 보내는 것이 온당할 듯하다. 이처럼 중대한 일은 반복해서 상의하는 것이 좋으니 철저히 다시 의논해 선처토록 하고 회자 역시 속히 마련해 보내라."
"이번에 군병을 징집하여 보내느냐 안보내느냐 하는 것은 우리 국가의 성패와 화복이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응당 요동 어사(遼東御史)와 군문으로부터 자문(咨文)과 격서(檄書)가 왔을 때 즉각 주본(奏本) 하나를 갖춘 뒤 사신을 가려내어 급히 달려가 호소하게 함으로써 성지(聖旨)를 받들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경략이 백 명이 있다 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애석하게도 경들이 나라의 계책을 치밀하게 세우지 못한 채 내가 혼미하고 병든 가운데에서도 애써 분부한 것을 생각지도 않고 온갖 방법으로 저지하며 고의로 지연시킨 나머지 오늘날 앉아서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내가 가슴이 아프고 정신이 멍해 살아갈 의욕이 없다.
어떤 일이든 한번 기회를 놓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더구나 이토록 중차대한 징병에 관한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박정길(朴鼎吉)로 바꿀 때부터 나는 이미 나랏일이 엉망이 될 줄 알았다. 아, 예로부터 임금과 신하가 가부간에 서로 돕고나서야 위태로운 처지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었고 어려운 상황을 크게 극복할 수 있었다. 하물며 이렇듯 국정이 어지러운 때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비록 대신이 없다 하더라도 경들이 일찍 내 말을 따라 급히 말을 달려가게 했더라면 거의 베개를 높이 하고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을텐데, 내가 병중에 계책을 짜내어 말해준 것을 전혀 따르지 않아 결국에는 나라가 화란을 당하게 만들었으니, 누가 그 책임을 지겠는가. 나처럼 병든 몸이 일찍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사태가 이미 바뀌었으니 경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나 역시 진주(陳奏)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략이 이미 광령(廣寧)에 와 주둔하면서 못할 말이 없이 협박하고 모욕을 가해 오고 있으니, 오늘날 취할 도리로서는 뜻을 굽히고 애써 따라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참으로 당연할 것이다. 다만 회자(回咨) 가운데에 우리 나라의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호서(胡書)에 관한 일이 매우 급하기에 신하의 분의상(分義上) 치주(馳奏)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로지 그 일로 사신을 차견하여 이미 들여보냈던 것인데 대인의 분부가 이러하시니 중지시킬 수도 있다. 다만 생각건대 소방의 사신이 일단 중원 지방에 들어간 뒤에는 불러오는 예가 없기에 황송할 따름이다. 그러나 군무(軍務)에 관한 일은 일체 대인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등의 말로 마무리하여 보내는 것이 온당할 듯하다. 이처럼 중대한 일은 반복해서 상의하는 것이 좋으니 철저히 다시 의논해 선처토록 하고 회자 역시 속히 마련해 보내라."

 

전교하였다. "국가의 형세가 위급하기만 한데 이잠이 향생(鄕生)으로서 잘 아는 일이 뭐가 있기에 해조에서는 인물을 가리지 않고 구차하게 그를 채워 보내 도중에서 은자(銀子)를 도둑맞는 변고가 있게 하였는가. 그런 자가 아문에 도착하면 잘못 대답하는 말도 필시 많을 것이니 이 사람은 곧장 군문에게 보내고, 본사 당상 한 사람으로 하여금 급히 경략에게 보내는 회자를 갖고서 밤낮으로 말을 달려가 우리 나라의 사정을 정성을 다해 진달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니, 이 일을 급히 의논해 조처토록 하라. 나랏일이 지극히 위급한데 존망과 성패가 이번 일 하나에 달려 있기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막지 말고 속히 의논해 처리하라."
"국가의 형세가 위급하기만 한데 이잠이 향생(鄕生)으로서 잘 아는 일이 뭐가 있기에 해조에서는 인물을 가리지 않고 구차하게 그를 채워 보내 도중에서 은자(銀子)를 도둑맞는 변고가 있게 하였는가. 그런 자가 아문에 도착하면 잘못 대답하는 말도 필시 많을 것이니 이 사람은 곧장 군문에게 보내고, 본사 당상 한 사람으로 하여금 급히 경략에게 보내는 회자를 갖고서 밤낮으로 말을 달려가 우리 나라의 사정을 정성을 다해 진달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니, 이 일을 급히 의논해 조처토록 하라. 나랏일이 지극히 위급한데 존망과 성패가 이번 일 하나에 달려 있기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막지 말고 속히 의논해 처리하라."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성상의 생각이 지극히 타당합니다. 이잠은 그냥 군문에게 곧장 보내고, 본사의 당상으로 하여금 회자를 갖고 경략에게 나아가 우리 나라의 사정을 곡진하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실로 기의(機宜)에 맞습니다. 본사의 제조를 빠짐없이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이니 이 중에서 성상께서 고르시어 며칠 안으로 떠나보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김신국을 차임해 보내라." 하였다.
"성상의 생각이 지극히 타당합니다. 이잠은 그냥 군문에게 곧장 보내고, 본사의 당상으로 하여금 회자를 갖고 경략에게 나아가 우리 나라의 사정을 곡진하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실로 기의(機宜)에 맞습니다. 본사의 제조를 빠짐없이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이니 이 중에서 성상께서 고르시어 며칠 안으로 떠나보냈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김신국을 차임해 보내라."
하였다.

 

홍문관 수찬 이모, 부수찬 한정국이 상차하기를,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장령 한명욱·한영, 지평 남명우·신칙, 정언 이원여·서국정 등이 모두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군부의 원수와는 하루도 같은 하늘 아래 살 수가 없는데 서궁(西宮)에 대한 대론을 여태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사론(邪論)이 멋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변방의 사태가 위급해지고 국가의 형세가 위태로워지고 있으니 혈기가 있고 우리 임금 덕택으로 생활하는 자로서 그 누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가슴을 치면서 언책(言責)이 있는 데도 말하지 않는 자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나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라서 감히 번거롭게 해드리지 못하고 누차의 전교로 인해서 우선 정지하기로 한 것이고 보면, 양사의 관원들이 혐의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모두에게 출사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장령 한명욱·한영, 지평 남명우·신칙, 정언 이원여·서국정 등이 모두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군부의 원수와는 하루도 같은 하늘 아래 살 수가 없는데 서궁(西宮)에 대한 대론을 여태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사론(邪論)이 멋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변방의 사태가 위급해지고 국가의 형세가 위태로워지고 있으니 혈기가 있고 우리 임금 덕택으로 생활하는 자로서 그 누가 팔뚝을 걷어붙이고 가슴을 치면서 언책(言責)이 있는 데도 말하지 않는 자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나 조용히 조섭하시는 중이라서 감히 번거롭게 해드리지 못하고 누차의 전교로 인해서 우선 정지하기로 한 것이고 보면, 양사의 관원들이 혐의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모두에게 출사를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1만 병력을 징발하여 들여보낸다면 선봉장(先鋒將)·위부(衛部)130)  ·척후(斥候)·한후(捍後)·중군(中軍) 및 각 장관(將官) 등을 일일이 의정(議定)하고 약속해서 계하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군량을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군기(軍器)는 얼마나 가지고 갈 것인지 원수는 어느 곳에 주둔할 것인지 어떤 장수들이 지휘할 것인지 등의 일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미리 정해 두도록 함으로써 때에 당해 전도되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만약 미리부터 정해두지 않을 경우 반드시 갑옷을 벗어버리고 무기를 질질 끌며 도망치는 일이 일어나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킴은 물론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징병해서 들여 보내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한다만 본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본사와 대제학이 본국의 사정을 자세히 헤아려서 급히 상의해 선처토록 하라."


[註 130] 위부(衛部) : 각영(各營).
"1만 병력을 징발하여 들여보낸다면 선봉장(先鋒將)·위부(衛部)130)  ·척후(斥候)·한후(捍後)·중군(中軍) 및 각 장관(將官) 등을 일일이 의정(議定)하고 약속해서 계하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군량을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군기(軍器)는 얼마나 가지고 갈 것인지 원수는 어느 곳에 주둔할 것인지 어떤 장수들이 지휘할 것인지 등의 일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미리 정해 두도록 함으로써 때에 당해 전도되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만약 미리부터 정해두지 않을 경우 반드시 갑옷을 벗어버리고 무기를 질질 끌며 도망치는 일이 일어나 중국 군대의 위엄을 손상시킴은 물론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징병해서 들여 보내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한다만 본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본사와 대제학이 본국의 사정을 자세히 헤아려서 급히 상의해 선처토록 하라."

 

전교하였다. "경략에게 회자하는 일이 긴급한데 자문이 도착한 지 5일이 지나도록 지어 바치지 않고 있으니 필시 큰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속히 대제학으로 하여금 지어 바치게 한 뒤 급히 정서하여 내려보내도록 하라."
"경략에게 회자하는 일이 긴급한데 자문이 도착한 지 5일이 지나도록 지어 바치지 않고 있으니 필시 큰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속히 대제학으로 하여금 지어 바치게 한 뒤 급히 정서하여 내려보내도록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오늘날의 일을 보건대 변이 창졸간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형세를 살펴 보건대 노적(奴賊)이 중국 조정과 서로 대치하여 세월을 보내며 오래 끌어갈 것이 분명하니, 대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때에 대책을 잘 강구해 나간다면 그런대로 제때에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이 엿보는 점에 있어서는 서쪽과 북쪽 변방이 본래 차이가 없습니다만 오늘날의 사세로 보면 서쪽 변방이 더 급합니다. 그런데 객장(客將)을 내려보내 왕래를 빈번하게 할 경우 그에 따른 접대의 폐단과 역로(驛路)의 소란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내려갈 조방장(助防將) 등을 도내의 수령으로 겸차(兼差)한 다음, 일이 급할 때에는 본읍의 군병을 인솔하고 변경에 나가 주둔하면서 수어(守禦)할 계책을 세우게 하고, 일이 급하지 않을 때에는 본읍으로 물러가 민정(民政)을 살피게 한다면, 그야말로 두 가지 일이 모두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본도 좌조방장 김응하(金應河)를 선천 군수(宣川郡守)로 삼고 우조방장 이일원(李一元)을 벽동 군수(碧潼郡守)로 삼는다면 일이 매우 타당하게 될 것입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오늘날의 일을 보건대 변이 창졸간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형세를 살펴 보건대 노적(奴賊)이 중국 조정과 서로 대치하여 세월을 보내며 오래 끌어갈 것이 분명하니, 대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때에 대책을 잘 강구해 나간다면 그런대로 제때에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이 엿보는 점에 있어서는 서쪽과 북쪽 변방이 본래 차이가 없습니다만 오늘날의 사세로 보면 서쪽 변방이 더 급합니다. 그런데 객장(客將)을 내려보내 왕래를 빈번하게 할 경우 그에 따른 접대의 폐단과 역로(驛路)의 소란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내려갈 조방장(助防將) 등을 도내의 수령으로 겸차(兼差)한 다음, 일이 급할 때에는 본읍의 군병을 인솔하고 변경에 나가 주둔하면서 수어(守禦)할 계책을 세우게 하고, 일이 급하지 않을 때에는 본읍으로 물러가 민정(民政)을 살피게 한다면, 그야말로 두 가지 일이 모두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본도 좌조방장 김응하(金應河)를 선천 군수(宣川郡守)로 삼고 우조방장 이일원(李一元)을 벽동 군수(碧潼郡守)로 삼는다면 일이 매우 타당하게 될 것입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서쪽과 북쪽 변방의 지켜야 할 각 성(城) 외에 함경도 경성(鏡城)의 읍성(邑城), 명천(明川)의 재덕 산성(在德山城), 길주(吉州)의 성진 산성(城津山城), 북청(北靑)의 읍성과, 황연도(黃延道)의 경우 황주성(黃州城), 평산 산성(平山山城), 해주성(海州城), 수양 산성(首陽山城) 중 한 곳 및 기타 도내의 수어(守禦)해야 할 지역과 본도의 일을 담당한 신하가 혹 요리하여 수선해 둘 곳 등에 대하여 선전관을 가려 보내 성지(城池)·기계 및 어떻게 거행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오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도가 더욱 심하게 유념하지 않고 있는 자를 먼저 잡아와 중하게 다스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군령을 엄숙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적의 장기(長技)가 잘 훈련된 병사와 철마(鐵馬)에 있는 만큼 아무리 싸워보고 싶어도 우리 보졸로는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에서 지키지 않으면 적을 막아낼 수가 없는 만큼 수성책(守城策)을 마련하는 것이 첫째가는 급무이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서쪽과 북쪽 변방의 지켜야 할 각 성(城) 외에 함경도 경성(鏡城)의 읍성(邑城), 명천(明川)의 재덕 산성(在德山城), 길주(吉州)의 성진 산성(城津山城), 북청(北靑)의 읍성과, 황연도(黃延道)의 경우 황주성(黃州城), 평산 산성(平山山城), 해주성(海州城), 수양 산성(首陽山城) 중 한 곳 및 기타 도내의 수어(守禦)해야 할 지역과 본도의 일을 담당한 신하가 혹 요리하여 수선해 둘 곳 등에 대하여 선전관을 가려 보내 성지(城池)·기계 및 어떻게 거행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오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도가 더욱 심하게 유념하지 않고 있는 자를 먼저 잡아와 중하게 다스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군령을 엄숙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적의 장기(長技)가 잘 훈련된 병사와 철마(鐵馬)에 있는 만큼 아무리 싸워보고 싶어도 우리 보졸로는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에서 지키지 않으면 적을 막아낼 수가 없는 만큼 수성책(守城策)을 마련하는 것이 첫째가는 급무이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권의(權誼)를 검열로, 문희성(文希聖)을 정주 목사(定州牧使)로, 유몽룡(劉夢龍)을 정평 부사(定平府使)로, 유응형(柳應泂)을 숙천 부사(肅川府使)로, 김성옥(金成玉)을 서산 군수(瑞山郡守)로, 김응하(金應河)를 선천 군수(宣川郡守)로, 이일원(李一元)을 벽동 군수(碧潼郡守)로, 이정신(李廷紳)을 곡산 군수(谷山郡守)로, 이상안(李尙安)을 가산 군수(嘉山郡守)로, 권형(權恫)을 희천 군수(熙川郡守)로, 조유정(趙惟精)을 개천 군수(价川郡守)로, 고경민(高敬民)을 평안 우후(平安虞候)로, 정희현(鄭希玄)을 백령 첨사(白翎僉使)로, 허계영(許啓英)을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한응남(韓應男)을 북청 판관(北靑判官)으로, 정원필(鄭元弼)을 온성 판관(穩城判官)으로, 박곤원(朴坤元)을 강계 판관(江界判官)으로, 신훤(申萱)을 태천 현감(泰川縣監)으로, 이경호(李景湖)를 수성 찰방(輸城察訪)으로, 오중립(吳中立)을 어천 찰방(魚川察訪)으로 삼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현재 서쪽과 북쪽 변방의 일이 날이 갈수록 더욱 위급해지고 있으니 변장과 수령 자리를 하루라도 비워둘 수 없습니다. 이번의 춘등(春等)과 하등(夏等) 포폄 때에 하(下) 점수를 맞은 수령과 변장들을 도목 정사(都目政事)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이번의 정사에서 빠짐없이 차출하여 2, 3일 안으로 일제히 떠나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오늘은 이미 밤이 깊었다. 뒤에 정사를 행하여 차출토록 하라." 하였다.
"현재 서쪽과 북쪽 변방의 일이 날이 갈수록 더욱 위급해지고 있으니 변장과 수령 자리를 하루라도 비워둘 수 없습니다. 이번의 춘등(春等)과 하등(夏等) 포폄 때에 하(下) 점수를 맞은 수령과 변장들을 도목 정사(都目政事)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이번의 정사에서 빠짐없이 차출하여 2, 3일 안으로 일제히 떠나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오늘은 이미 밤이 깊었다. 뒤에 정사를 행하여 차출토록 하라."
하였다.

 

6월 24일 신사

비변사가 아뢰기를, "진주사 일행이 일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은 상께서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경략의 뜻을 거스르면서 보내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사신이 중원(中原) 지방에 들어갔다가 혹 되돌아 온 때도 있었습니다. 신들이 승문원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해 보건대, 계사년131)  에 황진(黃璡)이 중국군의 체류를 요청하는 일로 들어갔다가 송응창(宋應昌)에게 저지당해 돌아왔고, 갑오년132)  에는 허성(許筬)이 강화(講和)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일로 들어갔는데 선왕께서 곧바로 돌아오라고 명하셨고, 그 해 가을에는 허욱(許頊)이 요동(遼東)에 있었는데 선왕께서 또 돌아오게 하셨으니, 사신을 도중에 소환한 전례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략의 자문 속에 나오는 말을 살펴보건대, 중국 조정에서 혹 유언비어로 인하여 그 사이에 의심을 두는 일이 없지도 않은데, 더구나 진주하는 문서를 직접 보고나면 과관(科官)이 준엄하게 탄핵할 것은 의심할 것도 없습니다. 경략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나라 입장을 위해 준다면 박정길(朴鼎吉)의 행차도 필시 황진의 경우처럼 저지당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불행히도 경략이 일부러 계속 나아가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제본(題本)을 올려 본국을 마구 헐뜯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황상(皇上)이 노발대발하고 과관의 논의가 분분하게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 어떻게 잘 마무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박정길의 사행을 소환하기가 난처하시다면, 그저 호서(胡書) 문제로 급히 아뢰는 주문(奏文) 1통만 갖추어 그의 사행에 추가로 부쳐준 뒤 고급사(告急使)라는 이름으로 그냥 계속 나아가게 하고, 징병에 관한 한 안건을 가지고 경략에게 가서 주선토록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할 경우에는 일이 혹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후환은 없을 듯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 다시 더 깊이 생각하시어 사기(事機)를 놓치지 않는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그동안 중국 조정의 사정을 헤아려 보건대 반드시 난처해질 걱정이 있을 듯하기에 하정(下情)을 진달하면서 반복하여 상의해 확정하려다보니 자연 시일을 조금 넘기게 되었던 것이지 어찌 감히 온갖 방법으로 저지하며 고의로 지연시킨 것이겠습니까. 오늘날 사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대의의 소재에 대해서는 우선 놔두고 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적과 틈이 생길 경우의 걱정거리는 가벼운 반면 중국 조정에 죄를 질 경우의 화란은 크기만 합니다. 그 무겁고 중한 차이가 본래 이러하기 때문에 신들이 두세 번 하소연하며 그칠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속히 선전관을 보내 먼저 박정길의 사행을 멈추게 하고 1, 2일 안으로 별도로 위급함을 보고하는 문서를 갖추어 뒤따라 보내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호서 문제로 위급함을 아뢰는 주문 가운데에 호서의 곡절을 곧이곧대로 진달하고, 끝 부분에는 단지 본국의 절박한 사정을 첨가해 넣으면서 스스로 지키기에도 겨를이 없다는 뜻을 언급하여 황상께서 들어줄 여지를 만들도록 하라. 너무 아프면 호소하게 된다는 의리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니 다시 더 상의하여 선처토록 하라." 하였다.


[註 131] 계사년 : 1593 선조 26년.[註 132] 갑오년 : 1594 선조 27년.
"진주사 일행이 일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은 상께서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경략의 뜻을 거스르면서 보내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사신이 중원(中原) 지방에 들어갔다가 혹 되돌아 온 때도 있었습니다. 신들이 승문원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해 보건대, 계사년131)  에 황진(黃璡)이 중국군의 체류를 요청하는 일로 들어갔다가 송응창(宋應昌)에게 저지당해 돌아왔고, 갑오년132)  에는 허성(許筬)이 강화(講和)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일로 들어갔는데 선왕께서 곧바로 돌아오라고 명하셨고, 그 해 가을에는 허욱(許頊)이 요동(遼東)에 있었는데 선왕께서 또 돌아오게 하셨으니, 사신을 도중에 소환한 전례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략의 자문 속에 나오는 말을 살펴보건대, 중국 조정에서 혹 유언비어로 인하여 그 사이에 의심을 두는 일이 없지도 않은데, 더구나 진주하는 문서를 직접 보고나면 과관(科官)이 준엄하게 탄핵할 것은 의심할 것도 없습니다. 경략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나라 입장을 위해 준다면 박정길(朴鼎吉)의 행차도 필시 황진의 경우처럼 저지당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불행히도 경략이 일부러 계속 나아가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제본(題本)을 올려 본국을 마구 헐뜯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황상(皇上)이 노발대발하고 과관의 논의가 분분하게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 어떻게 잘 마무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박정길의 사행을 소환하기가 난처하시다면, 그저 호서(胡書) 문제로 급히 아뢰는 주문(奏文) 1통만 갖추어 그의 사행에 추가로 부쳐준 뒤 고급사(告急使)라는 이름으로 그냥 계속 나아가게 하고, 징병에 관한 한 안건을 가지고 경략에게 가서 주선토록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할 경우에는 일이 혹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후환은 없을 듯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 다시 더 깊이 생각하시어 사기(事機)를 놓치지 않는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그동안 중국 조정의 사정을 헤아려 보건대 반드시 난처해질 걱정이 있을 듯하기에 하정(下情)을 진달하면서 반복하여 상의해 확정하려다보니 자연 시일을 조금 넘기게 되었던 것이지 어찌 감히 온갖 방법으로 저지하며 고의로 지연시킨 것이겠습니까. 오늘날 사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대의의 소재에 대해서는 우선 놔두고 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적과 틈이 생길 경우의 걱정거리는 가벼운 반면 중국 조정에 죄를 질 경우의 화란은 크기만 합니다. 그 무겁고 중한 차이가 본래 이러하기 때문에 신들이 두세 번 하소연하며 그칠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속히 선전관을 보내 먼저 박정길의 사행을 멈추게 하고 1, 2일 안으로 별도로 위급함을 보고하는 문서를 갖추어 뒤따라 보내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호서 문제로 위급함을 아뢰는 주문 가운데에 호서의 곡절을 곧이곧대로 진달하고, 끝 부분에는 단지 본국의 절박한 사정을 첨가해 넣으면서 스스로 지키기에도 겨를이 없다는 뜻을 언급하여 황상께서 들어줄 여지를 만들도록 하라. 너무 아프면 호소하게 된다는 의리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니 다시 더 상의하여 선처토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어제 비망기를 내리신 데 따라 본사의 당상 한 사람을 경략의 아문에 보내게 되었는데 김신국이 낙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김신국은 겨드랑이 아래에 난 종기 때문에 오래도록 누워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략에게 회자(回咨)하는 것은 매우 긴급한 일로서 시일을 지연시키다가 경략이 성을 내며 책망하게 해서는 안되니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이경전(李慶全)을 차송하라." 하였다.
"어제 비망기를 내리신 데 따라 본사의 당상 한 사람을 경략의 아문에 보내게 되었는데 김신국이 낙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김신국은 겨드랑이 아래에 난 종기 때문에 오래도록 누워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략에게 회자(回咨)하는 것은 매우 긴급한 일로서 시일을 지연시키다가 경략이 성을 내며 책망하게 해서는 안되니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이경전(李慶全)을 차송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원수(元帥)는 명을 받고 정벌을 전담하는 사람이니 그 체모가 본래 예사 장관들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좌막(佐幕)의 관원을 반드시 자벽(自辟)토록 허락하면서 경악(經幄)의 신하나 근밀(近密)한 위치에서 모시는 신하라 할지라도 예외를 두지 않았으니 이는 그의 체면을 중하게 해주기 위해서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군문(軍門)에서 호령하고 장수들을 제압할 즈음에는 막료(幕僚)의 경중에 따라 좌우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강홍립(姜弘立)이 남이웅(南以雄)과 정준(鄭遵)을 종사관으로 데리고 가려 했을 때 상께서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모두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사람들이 무척 낙심하였습니다. 이 뒤로는 데리고 가려는 종사관이 비록 시종(侍從)의 반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시어 원융(元戎)의 체면을 중하게 해 주시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원수의 종사관이 경악의 신하라 하더라도 자벽해서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다만 밖에서 영건(營建)하고 있는 일을 한가한 공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뢰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타당하다면 도감의 낭청이라고 해서 어찌 내보낼 수 없겠는가. 아뢴 뜻이 잘못되었다. 도감의 제조 이하 관원은 절대 다른 자리로 옮기지 말라." 하였다.
"원수(元帥)는 명을 받고 정벌을 전담하는 사람이니 그 체모가 본래 예사 장관들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좌막(佐幕)의 관원을 반드시 자벽(自辟)토록 허락하면서 경악(經幄)의 신하나 근밀(近密)한 위치에서 모시는 신하라 할지라도 예외를 두지 않았으니 이는 그의 체면을 중하게 해주기 위해서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군문(軍門)에서 호령하고 장수들을 제압할 즈음에는 막료(幕僚)의 경중에 따라 좌우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강홍립(姜弘立)이 남이웅(南以雄)과 정준(鄭遵)을 종사관으로 데리고 가려 했을 때 상께서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모두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사람들이 무척 낙심하였습니다. 이 뒤로는 데리고 가려는 종사관이 비록 시종(侍從)의 반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시어 원융(元戎)의 체면을 중하게 해 주시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원수의 종사관이 경악의 신하라 하더라도 자벽해서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다만 밖에서 영건(營建)하고 있는 일을 한가한 공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뢰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타당하다면 도감의 낭청이라고 해서 어찌 내보낼 수 없겠는가. 아뢴 뜻이 잘못되었다. 도감의 제조 이하 관원은 절대 다른 자리로 옮기지 말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경략이 일찍이 우리 나라에 와 보아 사정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자문을 보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맨 처음 과거에 은혜를 베푼 일을 언급하고는 또 ‘말을 보니 관망하는 듯하고 뜻이 굳지 못하다.’는 등의 말로 책망하였으며 금(金)·백(白) 두 추장(酋長)도 1만에 이르는 군병을 조발해 내었다고 이끌어 증거를 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말이 협박하는 듯하기는 합니다만 우리 나라의 도리로서는 부득불 뜻을 굽히고 순종하여 심하게 그를 거스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우리 나라의 일을 그가 필시 보살펴주게 될 것입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본사에 내리신 비망기의 뜻을 일일이 들어 말하게 하면서 일체 자문 안의 내용에 따라 군병을 정돈하고 대기하겠다는 내용으로 속히 말을 만들게 하여 회자(回咨)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회자의 내용 중에 본국의 위급하고 절박한 사정을 첨가해 써 넣고 ‘간절히 원하건대 대인께서 십분 참작하고 헤아리시어 우선 강변을 굳게 지키도록 허락하고 다시 사태를 보아가며 진퇴토록 해 주셨으면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중국 조정에서 번방(藩邦)을 굳게 지켜주는 뜻이 될 것이다.’는 등의 말로 잘 마무리를 하여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경략이 일찍이 우리 나라에 와 보아 사정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자문을 보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맨 처음 과거에 은혜를 베푼 일을 언급하고는 또 ‘말을 보니 관망하는 듯하고 뜻이 굳지 못하다.’는 등의 말로 책망하였으며 금(金)·백(白) 두 추장(酋長)도 1만에 이르는 군병을 조발해 내었다고 이끌어 증거를 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말이 협박하는 듯하기는 합니다만 우리 나라의 도리로서는 부득불 뜻을 굽히고 순종하여 심하게 그를 거스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우리 나라의 일을 그가 필시 보살펴주게 될 것입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본사에 내리신 비망기의 뜻을 일일이 들어 말하게 하면서 일체 자문 안의 내용에 따라 군병을 정돈하고 대기하겠다는 내용으로 속히 말을 만들게 하여 회자(回咨)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회자의 내용 중에 본국의 위급하고 절박한 사정을 첨가해 써 넣고 ‘간절히 원하건대 대인께서 십분 참작하고 헤아리시어 우선 강변을 굳게 지키도록 허락하고 다시 사태를 보아가며 진퇴토록 해 주셨으면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중국 조정에서 번방(藩邦)을 굳게 지켜주는 뜻이 될 것이다.’는 등의 말로 잘 마무리를 하여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지금이 정말 어떤 때인가. 그런데도 매번 정사하는 날 승지 3, 4인이 모두 병을 이유로 나간다고 하였으나, 지금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성실하게 직무를 살피라. 도승지는 승정원의 우두머리인 데도 전혀 단속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 역시 잘못되었다. 이렇듯 임금이 모욕을 받는 날을 당하여 신하로서 죽어야 하는 의리를 바치지 않을 것인가. 징병에 관한 소식을 들은 뒤로 내가 밥상을 대해도 먹히지가 않고 밤에도 잠을 못 이룬 지 오래되었다. 나의 뜻을 몸받아 병을 핑계대고 자주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지금이 정말 어떤 때인가. 그런데도 매번 정사하는 날 승지 3, 4인이 모두 병을 이유로 나간다고 하였으나, 지금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성실하게 직무를 살피라. 도승지는 승정원의 우두머리인 데도 전혀 단속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 역시 잘못되었다. 이렇듯 임금이 모욕을 받는 날을 당하여 신하로서 죽어야 하는 의리를 바치지 않을 것인가. 징병에 관한 소식을 들은 뒤로 내가 밥상을 대해도 먹히지가 않고 밤에도 잠을 못 이룬 지 오래되었다. 나의 뜻을 몸받아 병을 핑계대고 자주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황연도(黃延道) 조방장으로는 이경호(李景湖)를 차임해 보내고, 이인경(李寅卿)은 함경도남도 조방장으로 차임해 보내라."
"황연도(黃延道) 조방장으로는 이경호(李景湖)를 차임해 보내고, 이인경(李寅卿)은 함경도남도 조방장으로 차임해 보내라."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 사간 신광업, 장령 한명욱·한영, 지평 신칙·남명우, 정언 이원여·서국정이 아뢰기를, "서궁(西宮)의 죄악은 천리상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종묘 사직에 죄를 지은 것이 극에 이르렀고 스스로 신민(臣民)과 관계를 끊은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따라서 대의로 논하건대 결코 용서할 수가 없으니 성상께서 아무리 곡진히 보전시켜주려 하셔도 구구한 사은(私恩)은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나랏일이 급박해지고 변방의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사(邪)된 의논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흉모가 헤아릴 길이 없으니, 장래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화란이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처단해야 할 일을 처단하지 않다가 뒤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들이 언책(言責)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말씀드릴 것이 많습니다만 누차 전교를 받들었기에 우선은 모두 중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론을 마무리짓는 일만은 한 시각도 지체시킬 수 없기에 감히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리니, 속히 절목(節目)을 내리시어 묘당으로 하여금 미진한 조목들을 더 정하게 한 다음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절목은 알아서 내리겠다. 이처럼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날을 당하여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아뢰다니 그대들의 뜻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국가의 화가 서궁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다시는 소란을 떨지 말라." 하였다.
"서궁(西宮)의 죄악은 천리상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종묘 사직에 죄를 지은 것이 극에 이르렀고 스스로 신민(臣民)과 관계를 끊은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따라서 대의로 논하건대 결코 용서할 수가 없으니 성상께서 아무리 곡진히 보전시켜주려 하셔도 구구한 사은(私恩)은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나랏일이 급박해지고 변방의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사(邪)된 의논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흉모가 헤아릴 길이 없으니, 장래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화란이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처단해야 할 일을 처단하지 않다가 뒤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들이 언책(言責)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말씀드릴 것이 많습니다만 누차 전교를 받들었기에 우선은 모두 중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론을 마무리짓는 일만은 한 시각도 지체시킬 수 없기에 감히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리니, 속히 절목(節目)을 내리시어 묘당으로 하여금 미진한 조목들을 더 정하게 한 다음 폐출하는 전형(典刑)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절목은 알아서 내리겠다. 이처럼 조용히 조섭하고 있는 날을 당하여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아뢰다니 그대들의 뜻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국가의 화가 서궁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다시는 소란을 떨지 말라."
하였다.

 

홍문관 직제학 이익엽, 부교리 박종주, 수찬 이강·이모, 부수찬 한정국 등이 상차하기를, "삼가 살피건대, 서궁의 죄악은 천고에 없던 일로서 온 나라 신민들이 모두 폐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도 처단해야 할 일을 처단하지 않은 채 지내온 지가 벌써 반 년이나 되었습니다. 왕법(王法)이 거행되지 않아 대의가 밝혀지지 않고 사사로운 의논이 마구 기승을 부려 바른 논의가 꺾이고 있는데, 화근이 아직도 남아있어 종묘 사직이 위태로워지려하므로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귀신도 이 일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변방의 사태가 심각해지고 나랏일이 날로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혹시 위급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그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이니, 여기에 생각이 미치노라면 그저 통곡만 나올 따름입니다. 아, 화는 큰 데에 있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모해야 할 것인데 눈썹에 불이 붙듯 절박한 이 상황을 어찌하여 통촉하지 못하십니까. 사태가 점점 잘못되어 가는데 어찌하여 서서히 하자고만 하십니까. 통쾌하게 현륙(莧陸)을 따르시는 것133)  이야말로 오늘날의 급무이니,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여론을 굽어살피시고 지금의 형세를 자세히 살피시어 폐출하는 전형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병이 나을 때까지 우선 의논을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註 133] 통쾌하게 현륙(莧陸)을 따르시는 것 : 결단을 내리는 것을 말함. 《주역(周易)》 쾌(夬) 구오효사(九五爻辭)에 "현륙이 쾌쾌하듯 하면 중도(中道)에 허물이 없으리라." 하였음. 현륙은 음기(陰氣)가 많은 잡초류로서 끊어지기가 쉽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는 비유로 사용된 것임.
"삼가 살피건대, 서궁의 죄악은 천고에 없던 일로서 온 나라 신민들이 모두 폐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도 처단해야 할 일을 처단하지 않은 채 지내온 지가 벌써 반 년이나 되었습니다. 왕법(王法)이 거행되지 않아 대의가 밝혀지지 않고 사사로운 의논이 마구 기승을 부려 바른 논의가 꺾이고 있는데, 화근이 아직도 남아있어 종묘 사직이 위태로워지려하므로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귀신도 이 일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변방의 사태가 심각해지고 나랏일이 날로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혹시 위급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그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이니, 여기에 생각이 미치노라면 그저 통곡만 나올 따름입니다. 아, 화는 큰 데에 있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모해야 할 것인데 눈썹에 불이 붙듯 절박한 이 상황을 어찌하여 통촉하지 못하십니까. 사태가 점점 잘못되어 가는데 어찌하여 서서히 하자고만 하십니까. 통쾌하게 현륙(莧陸)을 따르시는 것133)  이야말로 오늘날의 급무이니, 삼가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여론을 굽어살피시고 지금의 형세를 자세히 살피시어 폐출하는 전형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 뜻은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 병이 나을 때까지 우선 의논을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6월 25일 임오

좌·우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수원(水原)에 사는 사노(私奴) 종남(從男)은 대적(大賊)일 뿐만이 아니라 상전의 처인 과부와 몰래 간통한 뒤 데리고 도망갔다 하기에 지극히 놀라웠습니다. 이에 소위 상전의 처라고 하는 과부 여인을 붙잡아 와서 신문했더니 처음에는 승복하려 하지 않으며 자칭 춘덕(春德)이라는 이름의 천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추문(推問)하여 공초를 받은 결과, 그 아비는 바로 충의위(忠義衛) 이언용(李彦容)이고 그 조부는 달성령(達城令)이고 외조는 유학(幼學) 송일관(宋逸寬)으로서 과연 양반 여자였는데,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 즈음에 같이 살던 집주인의 삼촌 숙모 집의 종인 종남과 몰래 간통한 뒤 도망가 서소문 밖에 숨어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공초에 따라 다시 종남을 추문하였더니 춘덕의 말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강상(綱常)과 관계된 일인 만큼 의금부로 옮겨서 법대로 안문(按問)케 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수원(水原)에 사는 사노(私奴) 종남(從男)은 대적(大賊)일 뿐만이 아니라 상전의 처인 과부와 몰래 간통한 뒤 데리고 도망갔다 하기에 지극히 놀라웠습니다. 이에 소위 상전의 처라고 하는 과부 여인을 붙잡아 와서 신문했더니 처음에는 승복하려 하지 않으며 자칭 춘덕(春德)이라는 이름의 천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추문(推問)하여 공초를 받은 결과, 그 아비는 바로 충의위(忠義衛) 이언용(李彦容)이고 그 조부는 달성령(達城令)이고 외조는 유학(幼學) 송일관(宋逸寬)으로서 과연 양반 여자였는데,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 즈음에 같이 살던 집주인의 삼촌 숙모 집의 종인 종남과 몰래 간통한 뒤 도망가 서소문 밖에 숨어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공초에 따라 다시 종남을 추문하였더니 춘덕의 말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강상(綱常)과 관계된 일인 만큼 의금부로 옮겨서 법대로 안문(按問)케 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대사간 윤인이 아뢰기를, "적인(賊人) 김엇손[金於叱孫]이 탈옥해 도망가 숨어있는 곳을 신의 족인(族人)인 전 선전관 이간(李幹)이 와서 말하기에 신이 적을 놓아두고 잡지 않는 것을 분하게 여긴 나머지 즉시 포도 군관을 불러다 이간과 함께 가서 체포하게 하였습니다. 원래 도적을 잡은 것은 바로 본청의 직분이었고 계책을 써서 찾아서 잡아 온 것 또한 이간의 일이었는데, 본청에게 거꾸로 신의 이름을 입계함으로써 신이 마치 도적을 잡아 고한 것처럼 만들었으니,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두가 업신여김을 당해 나온 결과이니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파척(罷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적인(賊人) 김엇손[金於叱孫]이 탈옥해 도망가 숨어있는 곳을 신의 족인(族人)인 전 선전관 이간(李幹)이 와서 말하기에 신이 적을 놓아두고 잡지 않는 것을 분하게 여긴 나머지 즉시 포도 군관을 불러다 이간과 함께 가서 체포하게 하였습니다. 원래 도적을 잡은 것은 바로 본청의 직분이었고 계책을 써서 찾아서 잡아 온 것 또한 이간의 일이었는데, 본청에게 거꾸로 신의 이름을 입계함으로써 신이 마치 도적을 잡아 고한 것처럼 만들었으니,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두가 업신여김을 당해 나온 결과이니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파척(罷斥)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유학(幼學) 김내성(金乃成)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나랏일이 위태로운 만큼 대론(大論)을 마무리짓는 일이 하루가 급하니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나랏일이 위태로운 만큼 대론(大論)을 마무리짓는 일이 하루가 급하니 속히 폐출하는 전형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합사로 연계하여, 속히 절목을 내려 폐출하는 전형을 완결짓도록 청하니, 답하기를, "몸이 회복될 때까지만이라도 우선 이 논을 중지하라." 하였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만이라도 우선 이 논을 중지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회답사(回答使)에게 관백(關伯)이 주었던 은자(銀子) 6천여 냥을 현재 부산 왜관(倭館) 속에 놔두고 있다 한다. 이 은을 왜인이 도로 가지고 들어갈 리는 결코 없으니 혹 별인정(別人情)으로 쓰거나 영건(營建)하는 비용으로 써도 무방할 것이다. 급히 관원을 보내 가지고 오도록 해서 쓰고, 사신에게는 조정이 참작해서 상전(賞典)을 베푸는 것이 온당할 듯하니, 이 뜻을 해조에 이르라." 하였다. 【오윤겸(吳允謙) 등이 일본에서 돌아올 때 왜인이 준 은을 관소(館所)에 놔두고 돌아오자 왜인이 그 은을 부산에 보낸 것인데, 왕이 영건 도감에 명하여 그것을 가져다 쓰도록 하였다.】
"회답사(回答使)에게 관백(關伯)이 주었던 은자(銀子) 6천여 냥을 현재 부산 왜관(倭館) 속에 놔두고 있다 한다. 이 은을 왜인이 도로 가지고 들어갈 리는 결코 없으니 혹 별인정(別人情)으로 쓰거나 영건(營建)하는 비용으로 써도 무방할 것이다. 급히 관원을 보내 가지고 오도록 해서 쓰고, 사신에게는 조정이 참작해서 상전(賞典)을 베푸는 것이 온당할 듯하니, 이 뜻을 해조에 이르라."
하였다. 【오윤겸(吳允謙) 등이 일본에서 돌아올 때 왜인이 준 은을 관소(館所)에 놔두고 돌아오자 왜인이 그 은을 부산에 보낸 것인데, 왕이 영건 도감에 명하여 그것을 가져다 쓰도록 하였다.】

 

전교하였다. "본도(本道)의 인심이 착하지 못하니 어루만지고 선도하는 방책을 다방면으로 강구하여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그리고 군병을 조련시키고 군량을 비축해야 할 것이며, 적이 만약 짓쳐 들어올 경우 금강(錦江)을 파수하는 일을 십분 마음을 다해 요리하라고 공홍 감사(公洪監司)에게 말해 보내라."
"본도(本道)의 인심이 착하지 못하니 어루만지고 선도하는 방책을 다방면으로 강구하여 착실히 거행토록 하라. 그리고 군병을 조련시키고 군량을 비축해야 할 것이며, 적이 만약 짓쳐 들어올 경우 금강(錦江)을 파수하는 일을 십분 마음을 다해 요리하라고 공홍 감사(公洪監司)에게 말해 보내라."

 

전교하였다. "이런 시기에 재자관을 범상하게 차임해 보내서는 안되는데 이잠처럼 생소한 자를 구차하게 채워 차송(差送)하였다. 경략의 자문을 보면 이미 성을 내고 꾸짖는 분위기가 농후한데, 이잠은 두렵고 겁에 질린 나머지 한 마디 변명도 내놓지 못하고 어물어물 물러나오고 말았으니 나라를 욕되게 한 것이 크다. 이는 지극히 마음 아픈 일로서 이조 역시 중하게 다스려야 마땅하나 지금은 우선 놔둘 것이니, 이 뒤로 재자관을 보낼 때에는 비변사와 자세히 의논하여 적당한 사람을 엄선해서 차송토록 하라. "
"이런 시기에 재자관을 범상하게 차임해 보내서는 안되는데 이잠처럼 생소한 자를 구차하게 채워 차송(差送)하였다. 경략의 자문을 보면 이미 성을 내고 꾸짖는 분위기가 농후한데, 이잠은 두렵고 겁에 질린 나머지 한 마디 변명도 내놓지 못하고 어물어물 물러나오고 말았으니 나라를 욕되게 한 것이 크다. 이는 지극히 마음 아픈 일로서 이조 역시 중하게 다스려야 마땅하나 지금은 우선 놔둘 것이니, 이 뒤로 재자관을 보낼 때에는 비변사와 자세히 의논하여 적당한 사람을 엄선해서 차송토록 하라. "

 

전교하였다. "중국군이 정벌할 때면 필시 뜻밖의 걱정거리가 많이 생길 것이다. 요동과 광령은 길이 멀기만 한데 그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만약 노적(奴賊)에게 쫓겨나 강을 건너 피난을 오기라도 한다면, 모르겠다만 장차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또 장차 어떻게 그들을 먹여살릴 것인가. 이러한 일들에 관해 이경전(李慶全)이 들어갈 때에 경략에게 품의(稟議)하여 일일이 결정짓고 오도록 하라. 그리고 적호(賊胡)가 혹시라도 중국 사람의 모양으로 분장하고 중국 의복으로 바꿔 입고 온다면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비변사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중국군이 정벌할 때면 필시 뜻밖의 걱정거리가 많이 생길 것이다. 요동과 광령은 길이 멀기만 한데 그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만약 노적(奴賊)에게 쫓겨나 강을 건너 피난을 오기라도 한다면, 모르겠다만 장차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또 장차 어떻게 그들을 먹여살릴 것인가. 이러한 일들에 관해 이경전(李慶全)이 들어갈 때에 경략에게 품의(稟議)하여 일일이 결정짓고 오도록 하라. 그리고 적호(賊胡)가 혹시라도 중국 사람의 모양으로 분장하고 중국 의복으로 바꿔 입고 온다면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비변사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전교하였다. "병력을 징발해서 들여보내면 방비하는 일을 더욱 조금이라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서쪽과 북쪽을 방비하고 해서(海西)와 경성을 수어(守禦)하는 절목(節目)이 여태 깜깜 무소식이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급히 정리하라."
"병력을 징발해서 들여보내면 방비하는 일을 더욱 조금이라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서쪽과 북쪽을 방비하고 해서(海西)와 경성을 수어(守禦)하는 절목(節目)이 여태 깜깜 무소식이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급히 정리하라."

 

전교하였다. "박정길(朴鼎吉)을 호서 고급사(胡書告急使)로 들여보낸다면, 그 주문(奏文) 가운데에서 ‘국경에 머물러 있게 해 주기를 원한다.’는 등의 말은 빼고 단지 우리 나라의 위급하고 절박한 사정만을 진달해야 할 것이며, 성화(成化)134)   연간에 칙서를 받은 뒤에야 들어가 합동으로 토벌한 전례를 인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 ‘세 방면의 변방을 막아 지키기에도 힘이 충분치 못한데 군문(軍門)의 자문과 격서가 이러하기에 감히 성명(聖明)께 품(稟)하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명을 내려주셨으면 한다…….’고 해야 할 것인데, 그러면 취품(取稟)하는 것같은 인상만 줄 뿐이요 곧장 국경에 머물러 있게 해 주기를 청하는 말은 되지 않을 것이니, 이런 내용으로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제본(題本)을 잘 작성해서 들여보내고 박정길에게도 아울러 상세히 하유토록 하라. 그리고 경략에게도 ‘대인의 자문을 보건대 불민하게 행동한 점이 매우 두렵기에 자문의 말을 고쳐 보내니 대인께서 화패(火牌)를 띄워 차관(差官)을 전송(傳送)해 주셨으면 한다.’는 내용을 회자(回咨) 내에 아울러 포함시키는 것이 좋겠다. 이 뜻을 모두 십분 상세히 헤아려 의논해 처리하라."


[註 134] 성화(成化) : 명 헌종의 연호.
"박정길(朴鼎吉)을 호서 고급사(胡書告急使)로 들여보낸다면, 그 주문(奏文) 가운데에서 ‘국경에 머물러 있게 해 주기를 원한다.’는 등의 말은 빼고 단지 우리 나라의 위급하고 절박한 사정만을 진달해야 할 것이며, 성화(成化)134)   연간에 칙서를 받은 뒤에야 들어가 합동으로 토벌한 전례를 인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 ‘세 방면의 변방을 막아 지키기에도 힘이 충분치 못한데 군문(軍門)의 자문과 격서가 이러하기에 감히 성명(聖明)께 품(稟)하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명을 내려주셨으면 한다…….’고 해야 할 것인데, 그러면 취품(取稟)하는 것같은 인상만 줄 뿐이요 곧장 국경에 머물러 있게 해 주기를 청하는 말은 되지 않을 것이니, 이런 내용으로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제본(題本)을 잘 작성해서 들여보내고 박정길에게도 아울러 상세히 하유토록 하라. 그리고 경략에게도 ‘대인의 자문을 보건대 불민하게 행동한 점이 매우 두렵기에 자문의 말을 고쳐 보내니 대인께서 화패(火牌)를 띄워 차관(差官)을 전송(傳送)해 주셨으면 한다.’는 내용을 회자(回咨) 내에 아울러 포함시키는 것이 좋겠다. 이 뜻을 모두 십분 상세히 헤아려 의논해 처리하라."

 

전교하였다. "의주(義州)를 막아 지킬 일에 대해 누차 분부했는 데도 시행하지 않고 있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노적을 정벌할 경우 마구 무너져 우리 나라에까지 파급될 가능성에 미리 대처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의당 장수를 가려 대병력을 인솔하게 해서 압록강(鴨綠江) 변의 상하 얕은 여울 모두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엄히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인데, 그러면 뜻밖의 환란을 그런대로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징병에 관한 일을 당초 내가 말한 대로 따르지 않다가 앉아서 기회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지금와서 일마다 난처한 상황을 맞고 있는데, 압록강의 방비에 대해서도 누차 말했건만 시행하지 않고 있다. 내가 다시는 입을 벌려 묻고 싶지도 않지만 안위(安危)와 관계된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것이니 십분 상세히 살피고 속히 의논해서 처리하라."
"의주(義州)를 막아 지킬 일에 대해 누차 분부했는 데도 시행하지 않고 있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노적을 정벌할 경우 마구 무너져 우리 나라에까지 파급될 가능성에 미리 대처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의당 장수를 가려 대병력을 인솔하게 해서 압록강(鴨綠江) 변의 상하 얕은 여울 모두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엄히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인데, 그러면 뜻밖의 환란을 그런대로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징병에 관한 일을 당초 내가 말한 대로 따르지 않다가 앉아서 기회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지금와서 일마다 난처한 상황을 맞고 있는데, 압록강의 방비에 대해서도 누차 말했건만 시행하지 않고 있다. 내가 다시는 입을 벌려 묻고 싶지도 않지만 안위(安危)와 관계된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것이니 십분 상세히 살피고 속히 의논해서 처리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경략이 이자(移咨)해 온 것을 보건대 ‘적이(賊夷)가 배를 만들자 귀국이 불질러 태웠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 먼저 배 만드는 것을 한편으로 살펴보다가 한꺼번에 불살라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오랑캐가 설혹 두세 사람이 탈 수 있는 작은 배를 많이 만들고 있다 하더라도 소위 파저강(波猪江)이라고 하는 곳은 적의 소굴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는 만큼 우리 나라에서 불을 놓아 태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만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도로에서 전해 듣고 경략에게 전보(轉報)한 결과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경략이 눌렀다 추켰다 조정하면서 우리를 애써 진출시켜 감히 그렇게 하게 할 목적으로 말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응당 ‘저 적이 배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왕래하는 호인(胡人) 편에 대략 듣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신빙하기 어렵고 실제로 불사른 일 역시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자문에 부친 내용을 받들어, 변방 신하를 단속해서 임기응변의 계책을 행하게 함으로써 지시에 어긋남이 없이 만전을 도모하도록 감히 하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회답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삼가 경략이 이자(移咨)해 온 것을 보건대 ‘적이(賊夷)가 배를 만들자 귀국이 불질러 태웠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 먼저 배 만드는 것을 한편으로 살펴보다가 한꺼번에 불살라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오랑캐가 설혹 두세 사람이 탈 수 있는 작은 배를 많이 만들고 있다 하더라도 소위 파저강(波猪江)이라고 하는 곳은 적의 소굴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는 만큼 우리 나라에서 불을 놓아 태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만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도로에서 전해 듣고 경략에게 전보(轉報)한 결과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경략이 눌렀다 추켰다 조정하면서 우리를 애써 진출시켜 감히 그렇게 하게 할 목적으로 말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응당 ‘저 적이 배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왕래하는 호인(胡人) 편에 대략 듣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신빙하기 어렵고 실제로 불사른 일 역시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자문에 부친 내용을 받들어, 변방 신하를 단속해서 임기응변의 계책을 행하게 함으로써 지시에 어긋남이 없이 만전을 도모하도록 감히 하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으로 말을 잘 만들어 회답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의주에서 올린 장계를 보건대, 산동 도사(山東都司) 주의(周義)가 진강(鎭江)에 와서 주둔하고 있다 하니, 관례대로 문안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지금 의주에서 올린 장계를 보건대, 산동 도사(山東都司) 주의(周義)가 진강(鎭江)에 와서 주둔하고 있다 하니, 관례대로 문안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잠의 장계 가운데에 ‘길에서 도적을 만나 은냥(銀兩)을 많이 잃었다.’고 하였는데 소로를 경유한 잘못이 없지 않으니 돌아온 뒤에 추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경략에게 정문(呈文)한 것은 비록 조정에서 지휘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본국의 사정을 극력 진달한 것이었고, 경략의 지시를 받아 자문(咨文)을 싸가지고 돌아온 것은 형세상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군문(軍門)에 대한 회자(回咨)를 속히 고쳐 지은 뒤 급히 내려 보내고 그로 하여금 그대로 가지고 가도록 행이(行移)하여 알리는 것이 좋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어찌 행회만 할 일이겠는가. 하유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잠의 장계 가운데에 ‘길에서 도적을 만나 은냥(銀兩)을 많이 잃었다.’고 하였는데 소로를 경유한 잘못이 없지 않으니 돌아온 뒤에 추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경략에게 정문(呈文)한 것은 비록 조정에서 지휘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본국의 사정을 극력 진달한 것이었고, 경략의 지시를 받아 자문(咨文)을 싸가지고 돌아온 것은 형세상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군문(軍門)에 대한 회자(回咨)를 속히 고쳐 지은 뒤 급히 내려 보내고 그로 하여금 그대로 가지고 가도록 행이(行移)하여 알리는 것이 좋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어찌 행회만 할 일이겠는가. 하유하도록 하라."
하였다.

 

6월 26일 계미

사은사(謝恩使) 신식(申湜) 등이, 요동(遼東)에서 습격을 받아 노자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이달 18일에야 비로소 북경(北京)을 향해 출발했다고 치계하여 보고하였다.

 

비변사 낭청 안경(安璥)을 보내 중흥 산성(中興山城)을 순심(巡審)케 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전일의 삼성(三省) 죄인 수남(水男)에 대해 판의금이 유고 중인 탓으로 아직까지 형전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종남(從男)과 춘덕(春德)이 또 강상에 관한 극죄로 나수(拿囚)되었는데 대신이 아직 출사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판의금 또한 차임되지 않아 제때에 추국하지 못하게 된 것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일의 삼성(三省) 죄인 수남(水男)에 대해 판의금이 유고 중인 탓으로 아직까지 형전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종남(從男)과 춘덕(春德)이 또 강상에 관한 극죄로 나수(拿囚)되었는데 대신이 아직 출사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판의금 또한 차임되지 않아 제때에 추국하지 못하게 된 것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진주사(陳奏使) 박정길(朴鼎吉)이 장계를 올리기를, "신이 강을 건너가기 전날 밤 역관 장예충(張禮忠) 등을 시켜 진강(鎭江) 아문에 가서 자문 및 게첩(揭帖)과 예단(禮單)을 바치게 하였더니, 구 참장(丘參將)이 예충 등을 힐문하기를 ‘이번에 노적(奴賊)을 정벌하게 된 것은 황상(皇上)께서 크게 노하시어 기필코 섬멸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양 노야(楊老爺)가 이잠이 군문(軍門)에게 가지고 가는 자문을 보고서 「너희 나라가 뒤로 물러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군문이 만약 이 자문을 보게 되면 필시 좋지 않은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하고는 그 자문을 도로 보내 다시 고쳐 지어 오게 한 것이니, 이는 실로 곡진하게 너희 나라를 위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자문을 보건대 또 너희 나라의 병마(兵馬)를 도강(渡江)시키려 하지 않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를 황상에게 주문할 경우에는 양야(楊爺)가 의아하게 여길 가능성이 있을 뿐만이 아니다. 만약 과도관(科道官)이 탄핵하기라도 한다면 2백 년 동안 충성을 바치며 순종해 온 의리가 완전히 없어지고 말 것이다. 지난 임진년에 우리 조정에서 구제해 준 은덕이 망극하기만 한데, 지금 이런 식으로 한다면 보답하는 성의에 부족함이 있게 되는 일인 듯싶다. 그리고 체면으로 헤아려 보더라도 매우 좋지 않은 일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예충 등이 말하기를 ‘소방이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나려는 생각을 갖고 있겠는가. 지금 황상께서 천위(天威)를 크게 떨치시어 조무라기들을 섬멸하려 하시는 때를 당하여 군문과 무원(撫院)이 자문과 격서를 보내어 모두 합동 공격하자는 의사를 밝혔는데, 저 적이 소방의 변방에 글을 보냈으니 그 말이 지극히 흉악하고 패려스러워 서쪽과 북쪽 지방이 병화를 입게 될 걱정이 아침저녁으로 박두했다. 소방에 무슨 일이 있으면 문득 중국 조정에 보고 드리곤 하였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해 온 일이다. 더구나 이는 긴급한 변방 상황에 대한 일인만큼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이와 함께 소방의 실상도 또한 설명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하니, 참장이 말하기를 ‘변방 상황에 대한 보고라면 그렇게 보고해야 할 것인데 다만 그 속에 기꺼이 하지 않으려는 의사가 있기 때문에 내가 부득불 그렇게 말하게 된 것이다.’ 하였습니다. 구 참장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은 필시 그가 양 경략의 자문을 얻어 보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일 것입니다." 하였다.
"신이 강을 건너가기 전날 밤 역관 장예충(張禮忠) 등을 시켜 진강(鎭江) 아문에 가서 자문 및 게첩(揭帖)과 예단(禮單)을 바치게 하였더니, 구 참장(丘參將)이 예충 등을 힐문하기를 ‘이번에 노적(奴賊)을 정벌하게 된 것은 황상(皇上)께서 크게 노하시어 기필코 섬멸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양 노야(楊老爺)가 이잠이 군문(軍門)에게 가지고 가는 자문을 보고서 「너희 나라가 뒤로 물러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군문이 만약 이 자문을 보게 되면 필시 좋지 않은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하고는 그 자문을 도로 보내 다시 고쳐 지어 오게 한 것이니, 이는 실로 곡진하게 너희 나라를 위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자문을 보건대 또 너희 나라의 병마(兵馬)를 도강(渡江)시키려 하지 않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를 황상에게 주문할 경우에는 양야(楊爺)가 의아하게 여길 가능성이 있을 뿐만이 아니다. 만약 과도관(科道官)이 탄핵하기라도 한다면 2백 년 동안 충성을 바치며 순종해 온 의리가 완전히 없어지고 말 것이다. 지난 임진년에 우리 조정에서 구제해 준 은덕이 망극하기만 한데, 지금 이런 식으로 한다면 보답하는 성의에 부족함이 있게 되는 일인 듯싶다. 그리고 체면으로 헤아려 보더라도 매우 좋지 않은 일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예충 등이 말하기를 ‘소방이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나려는 생각을 갖고 있겠는가. 지금 황상께서 천위(天威)를 크게 떨치시어 조무라기들을 섬멸하려 하시는 때를 당하여 군문과 무원(撫院)이 자문과 격서를 보내어 모두 합동 공격하자는 의사를 밝혔는데, 저 적이 소방의 변방에 글을 보냈으니 그 말이 지극히 흉악하고 패려스러워 서쪽과 북쪽 지방이 병화를 입게 될 걱정이 아침저녁으로 박두했다. 소방에 무슨 일이 있으면 문득 중국 조정에 보고 드리곤 하였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해 온 일이다. 더구나 이는 긴급한 변방 상황에 대한 일인만큼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이와 함께 소방의 실상도 또한 설명드리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하니, 참장이 말하기를 ‘변방 상황에 대한 보고라면 그렇게 보고해야 할 것인데 다만 그 속에 기꺼이 하지 않으려는 의사가 있기 때문에 내가 부득불 그렇게 말하게 된 것이다.’ 하였습니다. 구 참장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은 필시 그가 양 경략의 자문을 얻어 보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일 것입니다."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경상 좌병사 이시영(李時英)의 장계를 가져다 보건대, 부산의 관소(館所)에 머물고 있는 왜인이 거의 1천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자못 불손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어떤 때는 제멋대로 출입하는 등 기세가 전일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노(倭奴)가 오래 머물고 있는 것은 실로 공무역(公貿易)에 따른 가물(價物)과 한 달마다 지급하는 양찬(糧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인데, 얻어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에 온 왜노들이 칼을 빼들고 성을 내는 때가 있는가 하면 동래(東萊)로 달려와 호소하는 때도 있다 합니다. 방백(方伯)이 된 자가 왜인을 대하는 한 가지 일을 나 몰라라 하고 놔둔 채 시일을 끌며 오래 머무르도록 한 것도 물론 부당하지만 그 지역을 지키는 신하가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것도 책임이 없지 않으니, 지금 이후로는 관소에 머물고 있는 왜인들에게 지급할 물품을 시일을 지체시키지 말고 즉시 내주어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고, 왜선(倭船)을 들여보내는 즉시 일일이 계문(啓聞)하라는 내용으로 경상 감사와 동래 부사에게 아울러 첨가해 써서 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다시 의논해 처리하소서."
"경상 좌병사 이시영(李時英)의 장계를 가져다 보건대, 부산의 관소(館所)에 머물고 있는 왜인이 거의 1천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자못 불손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어떤 때는 제멋대로 출입하는 등 기세가 전일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노(倭奴)가 오래 머물고 있는 것은 실로 공무역(公貿易)에 따른 가물(價物)과 한 달마다 지급하는 양찬(糧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인데, 얻어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에 온 왜노들이 칼을 빼들고 성을 내는 때가 있는가 하면 동래(東萊)로 달려와 호소하는 때도 있다 합니다. 방백(方伯)이 된 자가 왜인을 대하는 한 가지 일을 나 몰라라 하고 놔둔 채 시일을 끌며 오래 머무르도록 한 것도 물론 부당하지만 그 지역을 지키는 신하가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것도 책임이 없지 않으니, 지금 이후로는 관소에 머물고 있는 왜인들에게 지급할 물품을 시일을 지체시키지 말고 즉시 내주어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고, 왜선(倭船)을 들여보내는 즉시 일일이 계문(啓聞)하라는 내용으로 경상 감사와 동래 부사에게 아울러 첨가해 써서 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다시 의논해 처리하소서."

 

경략의 차관(差官) 우승은(于承恩)이 벽동(碧潼)과 창주(昌州) 등 지역에 말을 타고 달려와 도리(道里)를 살펴보고 형세를 지도로 그린 뒤 이어 창성(昌城)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번에 회자(回咨)를 가지고 가게 하는 일이 한때의 특명에서 나온 일인만큼 일의 체면이나 관직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겨를이 없긴 합니다만, 예전부터 각 아문에 보내는 재자관(齎咨官)의 경우 1품인 중신을 차임해 보낸 때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일 본사가 유생의 상소와 관련하여 회계할 때 당하관을 보내자고 청했었는데, 이는 대체로 이런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한번 이런 예를 열어놓으면 그대로 뒷날의 폐단으로 굳어질까 매우 염려스러운데 뭇 사람들의 의논도 모두 일의 체모가 과중하다고 합니다. 아랫사람들의 생각이 이와 같기에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국가가 위급하면 대신이라도 들어가서 극력 주선해야 할 것인데, 더구나 본사의 당상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2품이나 종2품 중에서 갈 만한 사람이 있다면 경전을 보낼 필요는 없다. 예전에도 또한 이처럼 망극한 일이 있었는가. 경략의 자문에 나오는 말들을 보면 통분스럽고 놀랍기 그지없으니, 더욱 그가 가서 본국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그냥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이번에 회자(回咨)를 가지고 가게 하는 일이 한때의 특명에서 나온 일인만큼 일의 체면이나 관직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겨를이 없긴 합니다만, 예전부터 각 아문에 보내는 재자관(齎咨官)의 경우 1품인 중신을 차임해 보낸 때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일 본사가 유생의 상소와 관련하여 회계할 때 당하관을 보내자고 청했었는데, 이는 대체로 이런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한번 이런 예를 열어놓으면 그대로 뒷날의 폐단으로 굳어질까 매우 염려스러운데 뭇 사람들의 의논도 모두 일의 체모가 과중하다고 합니다. 아랫사람들의 생각이 이와 같기에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국가가 위급하면 대신이라도 들어가서 극력 주선해야 할 것인데, 더구나 본사의 당상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2품이나 종2품 중에서 갈 만한 사람이 있다면 경전을 보낼 필요는 없다. 예전에도 또한 이처럼 망극한 일이 있었는가. 경략의 자문에 나오는 말들을 보면 통분스럽고 놀랍기 그지없으니, 더욱 그가 가서 본국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그냥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한평군(韓平君) 이경전이 아뢰기를, "신이 뜻밖에도 삼가 경략 아문에 차송되는 명을 받았는데 또 약품을 지급해 보내라는 명과 역관을 가려서 데리고 가라는 명이 계셨으므로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나랏일이 임금께서 걱정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수모를 당하였으니 감히 신하로서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신의 갈 길이 하루가 급하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상의해서 지휘하게 해 주소서. 그리고 그곳에 도착해서 써야 할 일이 있을 경우 노자 외에 수수료나 체면치레해야 할 물품 등이 없을 수 없으니 속히 해사(該司)로 하여금 마련하게 해 주시고, 또 이문 학관(吏文學官)과 사자관(寫字官)을 각각 1명씩 데리고 가게 해 주소서. 그리고 밤에도 말을 달려가야 할 것이니 군관 2인에게도 말[馬]을 지급하여 데리고 가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신이 뜻밖에도 삼가 경략 아문에 차송되는 명을 받았는데 또 약품을 지급해 보내라는 명과 역관을 가려서 데리고 가라는 명이 계셨으므로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나랏일이 임금께서 걱정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수모를 당하였으니 감히 신하로서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신의 갈 길이 하루가 급하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상의해서 지휘하게 해 주소서. 그리고 그곳에 도착해서 써야 할 일이 있을 경우 노자 외에 수수료나 체면치레해야 할 물품 등이 없을 수 없으니 속히 해사(該司)로 하여금 마련하게 해 주시고, 또 이문 학관(吏文學官)과 사자관(寫字官)을 각각 1명씩 데리고 가게 해 주소서. 그리고 밤에도 말을 달려가야 할 것이니 군관 2인에게도 말[馬]을 지급하여 데리고 가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6월 27일 갑신

진사 이상윤(李商尹)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조력하며 따르는 일이야말로 명하는 일이 없어도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수의(收議)하던 날 폐기된 사람이 잘난 척하려고 감히 괴이한 주장을 내놓아 의논드린 것을 막음으로써 무원(撫院)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었으니, 속히 정병을 보내 황상(皇上)의 망극한 은혜를 갚으소서. 속히 궁궐 공사를 정지하여 민폐를 덜고 오로지 방비를 일삼으소서. 수령을 잘 가려보내 탐욕스럽게 굴고 백성을 학대하는 풍조를 쇄신하소서. 금군(禁軍)의 포수(砲手)를 각별히 돌아보소서. 속히 안처인(安處仁)을 목베어 양남(兩南)에 효시(梟示)하소서."
"조력하며 따르는 일이야말로 명하는 일이 없어도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수의(收議)하던 날 폐기된 사람이 잘난 척하려고 감히 괴이한 주장을 내놓아 의논드린 것을 막음으로써 무원(撫院)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었으니, 속히 정병을 보내 황상(皇上)의 망극한 은혜를 갚으소서. 속히 궁궐 공사를 정지하여 민폐를 덜고 오로지 방비를 일삼으소서. 수령을 잘 가려보내 탐욕스럽게 굴고 백성을 학대하는 풍조를 쇄신하소서. 금군(禁軍)의 포수(砲手)를 각별히 돌아보소서. 속히 안처인(安處仁)을 목베어 양남(兩南)에 효시(梟示)하소서."

 

전교하였다. "근래에 노적(奴賊)이 국경을 범했다는 급보도 별로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놀라고 동요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고관 명사들이 다투어 가족들과 짐을 내보내 배 위에 실어두거나 교외에 놔두는가 하면, 심한 경우 고관의 가족들이 상여를 발인하는 사람들을 따라 나가기까지 하고 있는데, 포도청에서는 이런 행위를 금지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호송하느라 겨를이 없으니, 이것이 어찌 덕화(德化)와 위형(威刑)으로 진압시키며 복종시키는 일이겠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각별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
"근래에 노적(奴賊)이 국경을 범했다는 급보도 별로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놀라고 동요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고관 명사들이 다투어 가족들과 짐을 내보내 배 위에 실어두거나 교외에 놔두는가 하면, 심한 경우 고관의 가족들이 상여를 발인하는 사람들을 따라 나가기까지 하고 있는데, 포도청에서는 이런 행위를 금지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호송하느라 겨를이 없으니, 이것이 어찌 덕화(德化)와 위형(威刑)으로 진압시키며 복종시키는 일이겠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각별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전교하기를, "병력을 징집해서 들여보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칙서가 내려 온 뒤에야 대군을 보냈던 조종조(祖宗朝)의 예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음으로써 경략으로 하여금 역시 우리 나라에도 받아 온 구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만약 경략의 말에 겁을 먹은 나머지 전례를 인용하며 명백하게 설명하지도 않은 채 지레 앞서서 들여보낸다면 뒷날 감당하기 어려운 폐단이 분명히 있게 될 듯하다. 아무리 그렇게 해야 할 일이라 하더라도 자세하고 치밀하게 의논해서 처리하는 것이 좋으니, 대제학과 충분히 의논해서 회자(回咨) 내용 속에 포함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군사 작전 시기가 늦가을 무렵쯤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만약 일찍 강변에 들여보내면 군대가 피로해질 걱정이 없지 않으니, 적당한 시기를 참작해서 들여보낼 일을 본사에서 충분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는데,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우리 나라가 병력을 조발했다 하더라도 자문이나 격문만 보고서야 어찌 들여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중국 조정에서 작전 시기를 언제로 잡을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천하의 군병을 징집하는데 어찌 쉽게 불러 모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온 자문을 보건대 가을과 겨울의 교차기에 해당될 듯한데 우리 군병을 혹 일찍 강변에 들여보낼 경우에는 군사들이 지치게 될 것이니 이 점이 또한 매우 염려됩니다. 칙서를 기다렸다가 들여보내겠다는 뜻을 회자 가운데 첨가해 넣으라는 한 조목은 성상께서 생각하신 것이 참으로 타당합니다. 다만 글을 자칫 잘못 작성하기라도 하면 이 때문에 미안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승문원으로 하여금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첨가해 넣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병력을 징집해서 들여보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칙서가 내려 온 뒤에야 대군을 보냈던 조종조(祖宗朝)의 예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음으로써 경략으로 하여금 역시 우리 나라에도 받아 온 구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만약 경략의 말에 겁을 먹은 나머지 전례를 인용하며 명백하게 설명하지도 않은 채 지레 앞서서 들여보낸다면 뒷날 감당하기 어려운 폐단이 분명히 있게 될 듯하다. 아무리 그렇게 해야 할 일이라 하더라도 자세하고 치밀하게 의논해서 처리하는 것이 좋으니, 대제학과 충분히 의논해서 회자(回咨) 내용 속에 포함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군사 작전 시기가 늦가을 무렵쯤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만약 일찍 강변에 들여보내면 군대가 피로해질 걱정이 없지 않으니, 적당한 시기를 참작해서 들여보낼 일을 본사에서 충분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는데,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우리 나라가 병력을 조발했다 하더라도 자문이나 격문만 보고서야 어찌 들여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중국 조정에서 작전 시기를 언제로 잡을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천하의 군병을 징집하는데 어찌 쉽게 불러 모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온 자문을 보건대 가을과 겨울의 교차기에 해당될 듯한데 우리 군병을 혹 일찍 강변에 들여보낼 경우에는 군사들이 지치게 될 것이니 이 점이 또한 매우 염려됩니다. 칙서를 기다렸다가 들여보내겠다는 뜻을 회자 가운데 첨가해 넣으라는 한 조목은 성상께서 생각하신 것이 참으로 타당합니다. 다만 글을 자칫 잘못 작성하기라도 하면 이 때문에 미안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승문원으로 하여금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첨가해 넣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기를, "군문과 경략 등의 회자 속에 칙서가 내려온 뒤에야 군대를 일으켜 들여보냈던 조종조의 구례를 인용하되 《고사촬요(攷事撮要)》와 《정토록(征討錄)》에 있는 곡절을 자세히 고찰하여 일일이 양 아문의 회자 속에 첨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 ‘호서(胡書) 때문에 위태롭고 절박해진 소방의 사정을 급히 고하는 중이었는데 자문과 격서가 도착한 이상 감히 호소하지도 못한 채 지금 바야흐로 1만 병력을 정돈하여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말을 개진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니, 비변사로 하여금 대제학과 함께 자세히 의논하여 이 조목을 포함시켜 짓도록 하라. 또 이 적이 마구 무너지면서 요동(遼東)·광령(廣寧) 사이로 충돌해 올지 어떻게 미리 알겠는가. 박정길(朴鼎吉)의 서장(書狀)에 나오는 내용대로 ‘진강(鎭江) 등 지역에 중국 병력 1개 부대를 보내 주둔시키면서 차단을 한다면 중국 조정에도 유익할 듯하다.’는 이 한 조목을 경략의 회자 가운데에 잘 첨가해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말들은 실제로 징병과 직결된 일이 아니니 비록 상세히 첨가해 넣은 뒤 처치를 기다린다 하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주문(奏文)과 회자는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중하니 다시 더 충분히 상의하여 처리토록 하라." 하였는데,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군문과 경략 등에게 보내는 자문 속에, 칙서가 오기를 기다려 군대를 일으키는 일 및 호서로 인해 고급(告急)하게 된 일과 1만 병력을 정돈하면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등의 일, 그리고 박정길의 서장에 나온 대로 관전(寬奠) 이하로부터 진강(鎭江)까지의 여러 보(堡)야말로 변방의 방어에 긴요한 지역이니 중국 병력 1개 부대를 주둔시켜 성원(聲援)으로 삼게 해 줄 것을 청하는 일을 성상의 분부에 따라 모두 포함시켜서 말을 만들어 지어 보내는 것이 과연 타당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군문과 경략 등의 회자 속에 칙서가 내려온 뒤에야 군대를 일으켜 들여보냈던 조종조의 구례를 인용하되 《고사촬요(攷事撮要)》와 《정토록(征討錄)》에 있는 곡절을 자세히 고찰하여 일일이 양 아문의 회자 속에 첨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 ‘호서(胡書) 때문에 위태롭고 절박해진 소방의 사정을 급히 고하는 중이었는데 자문과 격서가 도착한 이상 감히 호소하지도 못한 채 지금 바야흐로 1만 병력을 정돈하여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말을 개진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니, 비변사로 하여금 대제학과 함께 자세히 의논하여 이 조목을 포함시켜 짓도록 하라.
또 이 적이 마구 무너지면서 요동(遼東)·광령(廣寧) 사이로 충돌해 올지 어떻게 미리 알겠는가. 박정길(朴鼎吉)의 서장(書狀)에 나오는 내용대로 ‘진강(鎭江) 등 지역에 중국 병력 1개 부대를 보내 주둔시키면서 차단을 한다면 중국 조정에도 유익할 듯하다.’는 이 한 조목을 경략의 회자 가운데에 잘 첨가해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말들은 실제로 징병과 직결된 일이 아니니 비록 상세히 첨가해 넣은 뒤 처치를 기다린다 하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주문(奏文)과 회자는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중하니 다시 더 충분히 상의하여 처리토록 하라."
하였는데,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군문과 경략 등에게 보내는 자문 속에, 칙서가 오기를 기다려 군대를 일으키는 일 및 호서로 인해 고급(告急)하게 된 일과 1만 병력을 정돈하면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등의 일, 그리고 박정길의 서장에 나온 대로 관전(寬奠) 이하로부터 진강(鎭江)까지의 여러 보(堡)야말로 변방의 방어에 긴요한 지역이니 중국 병력 1개 부대를 주둔시켜 성원(聲援)으로 삼게 해 줄 것을 청하는 일을 성상의 분부에 따라 모두 포함시켜서 말을 만들어 지어 보내는 것이 과연 타당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윤휘와 박정길이 이미 강을 건너 갔으니 문서를 고쳐 보내려면 급급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당초에 이미 기회를 잃은 터에 지금 또 사신이 이미 오래 전에 강을 건넌 상황에서 문서마저 제때에 즉시 고쳐 보내지 않는다면 전도되는 일이 필시 많을 것이므로 내가 속으로 걱정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비변사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윤휘와 박정길이 이미 강을 건너 갔으니 문서를 고쳐 보내려면 급급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당초에 이미 기회를 잃은 터에 지금 또 사신이 이미 오래 전에 강을 건넌 상황에서 문서마저 제때에 즉시 고쳐 보내지 않는다면 전도되는 일이 필시 많을 것이므로 내가 속으로 걱정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비변사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전교하였다. "이경전은 내가 인견하고 보내겠다. 다음달 2, 3일 사이에 출발시키되 별인정(別人情) 은자(銀子) 및 화석(花席)·삼(蔘)·묵(墨)·부채·모자 등 물건을 모두 넉넉히 주어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근일 예단(禮單)을 보낼 곳이 매우 많으니 예단에 소용되는 물건을 급히 재촉하여 미리 마련해놓고 쓸 수 있도록 하라."
"이경전은 내가 인견하고 보내겠다. 다음달 2, 3일 사이에 출발시키되 별인정(別人情) 은자(銀子) 및 화석(花席)·삼(蔘)·묵(墨)·부채·모자 등 물건을 모두 넉넉히 주어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근일 예단(禮單)을 보낼 곳이 매우 많으니 예단에 소용되는 물건을 급히 재촉하여 미리 마련해놓고 쓸 수 있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구 참장이 그렇게 말하다니 지극히 놀랍다. 지금 ‘양 대인(楊大人)의 분부에 따라 군문에게 띄우는 자문을 이미 고쳐 보냈는데, 단지 소방의 군병이 허약하기 때문에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였을 뿐이지 어찌 감히 자문과 격서의 뜻을 따르려 하지 않은 것이겠는가.’ 하는 내용으로 잘 말을 만들어 구 참장에게 자문을 보내고 이어 이경전으로 하여금 우리 사정을 곡진하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구 참장이 그렇게 말하다니 지극히 놀랍다. 지금 ‘양 대인(楊大人)의 분부에 따라 군문에게 띄우는 자문을 이미 고쳐 보냈는데, 단지 소방의 군병이 허약하기 때문에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였을 뿐이지 어찌 감히 자문과 격서의 뜻을 따르려 하지 않은 것이겠는가.’ 하는 내용으로 잘 말을 만들어 구 참장에게 자문을 보내고 이어 이경전으로 하여금 우리 사정을 곡진하게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케 하라."

 

전교하였다. "진강(鎭江)의 자문을 고쳐서 보낸다면 요동의 자문 역시 고쳐서 보내야 할 것이니, 자세히 살펴하라."
"진강(鎭江)의 자문을 고쳐서 보낸다면 요동의 자문 역시 고쳐서 보내야 할 것이니, 자세히 살펴하라."

 

전교하였다. "중국인이 창성(昌城)을 경유해서 들어갔다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 길이 한번 열리면 후환이 적지 않을 것이니, 모나지 않게 말을 잘 만들어 경략 아문에 이자(移咨)함으로써 이런 일을 금지토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호인(胡人)이 중국인 복장을 착용하고 자칭 중국인이라고 하면서 잇달아 나올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다시 더 의논해 처리하라."
"중국인이 창성(昌城)을 경유해서 들어갔다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 길이 한번 열리면 후환이 적지 않을 것이니, 모나지 않게 말을 잘 만들어 경략 아문에 이자(移咨)함으로써 이런 일을 금지토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호인(胡人)이 중국인 복장을 착용하고 자칭 중국인이라고 하면서 잇달아 나올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다시 더 의논해 처리하라."

 

대제학이 아뢰기를, "군문과 경략의 두 아문에 보내는 회자(回咨) 속에, 칙서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군대를 일으키는 일과 호서(胡書)로 인해 고급(告急)하게 된 일과 진강에 군대를 주둔시켜 차단해주기를 청하는 일과 부산(釜山)의 왜인이 난동을 부리는 일 등의 항목 가운데 두 조항은 한결같이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모두 첨가해 넣어 제진(製進)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서와 관련된 한 조항은, 군문·경략·무원(撫院)·안원(按院)·포정(布政)·총진(摠鎭)·요동·진강 등 아문에 보내는 원래의 자문이 모두 있으니, 박정길(朴鼎吉)이 지나가면서 차례로 올리면 될 것인데, 지금 군문과 경략에게 보내는 회자 안에는 또 상께서 분부하신 데 따라 대략 호서와 관련된 몇 마디 말을 첨가해 넣었습니다. 대저 지금 작성하는 문서는 양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사자관(寫字官) 10여 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베껴 써도 3일쯤은 후딱 지나가고 마는데 그동안 네 번을 정서했다가 또 고쳤으니 날짜가 많이 걸린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이번에 경략의 자문이 서울에 들어온 뒤로 비국의 의논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가 잇달아 비망기로 분부를 받고 자주 계품(啓稟)하게 된 나머지 7일이 지나서야 소신이 비로소 회자(回咨)를 작성하였고 또 주문(奏文)을 고쳐서 그날 바로 올렸는데 어제 또다시 고쳐 짓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미 사흘째가 되는 데도 아직 정서하지 못하고 있어 사기(事機)만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데 게다가 고쳐 지은 주문에 계자(啓字)를 찍지 않고 내리셨기 때문에 도로 입계하게 되었으니 속히 결단을 내리시어 문서를 빨리 마무리짓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급히 정서해서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군문과 경략의 두 아문에 보내는 회자(回咨) 속에, 칙서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군대를 일으키는 일과 호서(胡書)로 인해 고급(告急)하게 된 일과 진강에 군대를 주둔시켜 차단해주기를 청하는 일과 부산(釜山)의 왜인이 난동을 부리는 일 등의 항목 가운데 두 조항은 한결같이 성상께서 분부하신 대로 모두 첨가해 넣어 제진(製進)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서와 관련된 한 조항은, 군문·경략·무원(撫院)·안원(按院)·포정(布政)·총진(摠鎭)·요동·진강 등 아문에 보내는 원래의 자문이 모두 있으니, 박정길(朴鼎吉)이 지나가면서 차례로 올리면 될 것인데, 지금 군문과 경략에게 보내는 회자 안에는 또 상께서 분부하신 데 따라 대략 호서와 관련된 몇 마디 말을 첨가해 넣었습니다.
대저 지금 작성하는 문서는 양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사자관(寫字官) 10여 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베껴 써도 3일쯤은 후딱 지나가고 마는데 그동안 네 번을 정서했다가 또 고쳤으니 날짜가 많이 걸린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이번에 경략의 자문이 서울에 들어온 뒤로 비국의 의논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가 잇달아 비망기로 분부를 받고 자주 계품(啓稟)하게 된 나머지 7일이 지나서야 소신이 비로소 회자(回咨)를 작성하였고 또 주문(奏文)을 고쳐서 그날 바로 올렸는데 어제 또다시 고쳐 짓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미 사흘째가 되는 데도 아직 정서하지 못하고 있어 사기(事機)만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데 게다가 고쳐 지은 주문에 계자(啓字)를 찍지 않고 내리셨기 때문에 도로 입계하게 되었으니 속히 결단을 내리시어 문서를 빨리 마무리짓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급히 정서해서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경략에게 이경전을 지금 떠나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께서 본사 당상을 보내게 하신 의도가 오로지 본국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군무(軍務)를 품의(稟議)하게 하는 데 있고 보면 자문을 가지고 가는 하나의 일에 비중을 둘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신들의 의견으로는 이 회자는 그냥 이잠 편에 부쳐 그로 하여금 올리게 하고, 이경전은 뭐든 사신의 이름을 하나 부여해 준 뒤 게첩(揭帖)을 가지고 이잠과 동시에 아문으로 달려가게 함으로써 상께서 중신(重臣)을 보내 안부를 묻고 일을 품(稟)하는 뜻을 아울러 그에게 보여주신다면 혹 온당하게 될 듯 싶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경략에게 이경전을 지금 떠나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께서 본사 당상을 보내게 하신 의도가 오로지 본국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군무(軍務)를 품의(稟議)하게 하는 데 있고 보면 자문을 가지고 가는 하나의 일에 비중을 둘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신들의 의견으로는 이 회자는 그냥 이잠 편에 부쳐 그로 하여금 올리게 하고, 이경전은 뭐든 사신의 이름을 하나 부여해 준 뒤 게첩(揭帖)을 가지고 이잠과 동시에 아문으로 달려가게 함으로써 상께서 중신(重臣)을 보내 안부를 묻고 일을 품(稟)하는 뜻을 아울러 그에게 보여주신다면 혹 온당하게 될 듯 싶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6월 28일 을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의 제조가 연속해서 사신으로 나갈 것이니 이병(李覮)의 대임자로 유정량(柳廷亮)을 차임한 뒤 그로 하여금 마음을 다해 임무를 수행케 하라."
"영건 도감의 제조가 연속해서 사신으로 나갈 것이니 이병(李覮)의 대임자로 유정량(柳廷亮)을 차임한 뒤 그로 하여금 마음을 다해 임무를 수행케 하라."

 

전교하였다. "도원수의 종사관 정호서(丁好恕)와 유위(柳韡)가 종사관으로 합당한가? 유장(儒將)으로 뽑힌 사람 중에서 가려 데리고 가도록 하라."
"도원수의 종사관 정호서(丁好恕)와 유위(柳韡)가 종사관으로 합당한가? 유장(儒將)으로 뽑힌 사람 중에서 가려 데리고 가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염초(焰硝)야말로 전투에 가장 필요한 물건인데 절사(節使)의 행차를 기다린다면 필시 늦어져 사기(事機)에 맞추지 못할 것이다. 곧바로 자문(咨文)을 보내 참작해서 무역해 오게 하는 동시에 이경전으로 하여금 극력 잘 도모해서 기필코 무역해 오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자세히 의논하라. "
"염초(焰硝)야말로 전투에 가장 필요한 물건인데 절사(節使)의 행차를 기다린다면 필시 늦어져 사기(事機)에 맞추지 못할 것이다. 곧바로 자문(咨文)을 보내 참작해서 무역해 오게 하는 동시에 이경전으로 하여금 극력 잘 도모해서 기필코 무역해 오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자세히 의논하라. "

 

비변사가 아뢰기를, "윤휘가 만약 멀리 갔을 경우에는 경략에게 이자(移咨)하여 속히 화패(火牌)를 띄워 차관(差官)을 들여보내게 함으로써 전에 마련한 주문을 즉시 가져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 하교하셨습니다. 윤휘는 성절(聖節)과 관련된 문서를 가지고 갔을 뿐만 아니라 자문과 격서에 따라 병력을 조발하게 된 사연을 황상께 아뢰는 문서까지 갖고 있는데, 만약 우리의 기대를 혹 드러나게 문서를 작성했다면 지극히 염려스러우니 뒤따라 가서 주문을 가져 오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대제학의 말을 듣건대 ‘그 주문은 박정길(朴鼎吉)이 가지고 가는 주문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온건하게 작성되어 있다. 비록 우리 나라의 사정이 어렵고 위태롭다는 것을 극력 진달하기는 하였지만 「국경에 머물게 해 주기를 청한다.」는 등의 말을 현저하게 한 곳은 없으니, 비록 뒤따라 가서 그를 붙잡지 못한 나머지 결국 전의 주문을 올린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을 듯하다. 더구나 그의 행차는 박정길의 뒤에 있으니 이렇게 보면 더욱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고쳐 지은 문서를 입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윤휘가 가지고 가는 문서도 아울러 다시 마련해서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윤휘가 만약 멀리 갔을 경우에는 경략에게 이자(移咨)하여 속히 화패(火牌)를 띄워 차관(差官)을 들여보내게 함으로써 전에 마련한 주문을 즉시 가져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 하교하셨습니다. 윤휘는 성절(聖節)과 관련된 문서를 가지고 갔을 뿐만 아니라 자문과 격서에 따라 병력을 조발하게 된 사연을 황상께 아뢰는 문서까지 갖고 있는데, 만약 우리의 기대를 혹 드러나게 문서를 작성했다면 지극히 염려스러우니 뒤따라 가서 주문을 가져 오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대제학의 말을 듣건대 ‘그 주문은 박정길(朴鼎吉)이 가지고 가는 주문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온건하게 작성되어 있다. 비록 우리 나라의 사정이 어렵고 위태롭다는 것을 극력 진달하기는 하였지만 「국경에 머물게 해 주기를 청한다.」는 등의 말을 현저하게 한 곳은 없으니, 비록 뒤따라 가서 그를 붙잡지 못한 나머지 결국 전의 주문을 올린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을 듯하다. 더구나 그의 행차는 박정길의 뒤에 있으니 이렇게 보면 더욱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고쳐 지은 문서를 입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윤휘가 가지고 가는 문서도 아울러 다시 마련해서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서쪽 변방의 방비책을 신들이 현재 강구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의주(義州)를 방어하는 일 및 압록강(鴨綠江) 강변 상하의 옅은 여울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혹 ‘진강(鎭江)에서 의심을 낼 것이다.’ 하기도 하고 또 김경서(金景瑞)는 ‘병력을 증강하여 변에 대비하면 노적(奴賊)이 필시 먼저 의심할 것이니 그 점이 염려스럽다.’ 하였습니다만, 전일 본사에서 ‘변방을 방비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줄곧 의심을 살까 두려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속히 군대를 이끌고 변방에 나아가 주둔케 해야 한다.’고 회계했었는데, 이번에 ‘몇 차례나 말해도 시행하지 않는다.’는 분부를 받들었으니 삼가 황공할 따름입니다. 도원수와 순변사가 내려갈 때 상세히 말해 보내 의주에 병력을 증강하는 일 및 압록강을 수비하는 일 등을 병사(兵使)와 상의해서 급히 대책을 강구해 시행토록 하는 것이 참으로 기의(機宜)에 맞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의주를 방어하는 일은 경략이 이미 자문을 보내 온 이상 구애받을 것이 없을 듯하다. 그리고 김경서 역시 소견이 없지는 않다만 다시 더 참작해서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서쪽 변방의 방비책을 신들이 현재 강구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의주(義州)를 방어하는 일 및 압록강(鴨綠江) 강변 상하의 옅은 여울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혹 ‘진강(鎭江)에서 의심을 낼 것이다.’ 하기도 하고 또 김경서(金景瑞)는 ‘병력을 증강하여 변에 대비하면 노적(奴賊)이 필시 먼저 의심할 것이니 그 점이 염려스럽다.’ 하였습니다만, 전일 본사에서 ‘변방을 방비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줄곧 의심을 살까 두려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속히 군대를 이끌고 변방에 나아가 주둔케 해야 한다.’고 회계했었는데, 이번에 ‘몇 차례나 말해도 시행하지 않는다.’는 분부를 받들었으니 삼가 황공할 따름입니다. 도원수와 순변사가 내려갈 때 상세히 말해 보내 의주에 병력을 증강하는 일 및 압록강을 수비하는 일 등을 병사(兵使)와 상의해서 급히 대책을 강구해 시행토록 하는 것이 참으로 기의(機宜)에 맞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의주를 방어하는 일은 경략이 이미 자문을 보내 온 이상 구애받을 것이 없을 듯하다. 그리고 김경서 역시 소견이 없지는 않다만 다시 더 참작해서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주사청(舟師廳)이 아뢰기를, "전일 각도에 선박을 분담시키는 일을 계하받았는데, 이렇듯 위급한 때를 당하여 조치하는 일이 하루가 급하기에 본청의 별장(別將) 및 군관 가운데에서 뛰어난 자들을 상의 분부에 따라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당상이거나 혹 수령의 경력이 있는 자들이니 모두 별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여 내려보냄으로써 체면을 중하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통영(統營)에 배정한 선박의 숫자가 다른 도에 비해 조금 많은 듯하긴 합니다만 이는 그곳의 물력(物力)이 다른 도의 배나 풍성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성실하게 거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별장이 감히 멋대로 단죄할 수야 없겠지만 본청에 이첩(移牒)하여 입계해서 처치토록 하라는 뜻을 분부해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별장은 반드시 8월 15일 전 바람이 거세지 않을 때 일제히 올라오도록 엄히 단속해서 보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일 각도에 선박을 분담시키는 일을 계하받았는데, 이렇듯 위급한 때를 당하여 조치하는 일이 하루가 급하기에 본청의 별장(別將) 및 군관 가운데에서 뛰어난 자들을 상의 분부에 따라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당상이거나 혹 수령의 경력이 있는 자들이니 모두 별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여 내려보냄으로써 체면을 중하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통영(統營)에 배정한 선박의 숫자가 다른 도에 비해 조금 많은 듯하긴 합니다만 이는 그곳의 물력(物力)이 다른 도의 배나 풍성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성실하게 거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별장이 감히 멋대로 단죄할 수야 없겠지만 본청에 이첩(移牒)하여 입계해서 처치토록 하라는 뜻을 분부해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별장은 반드시 8월 15일 전 바람이 거세지 않을 때 일제히 올라오도록 엄히 단속해서 보내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경략이 보낸 자문 가운데 ‘먼저 어느 곳의 병정(兵丁)을 선발했고 정확한 인원은 얼마이며 총령 대장(摠領大將)은 어떤 사람이고 분령 편비(分領褊裨)는 어떤 사람이며 수륙(水陸)의 어떤 요충을 제압하고 있는지 기록하고 아울러 노추(奴酋)와 가까운 곳의 지리와 형세를 지도로 작성한 뒤 수고스럽지만 이잠 편에 부쳐 보내 입주(入奏)하는 데 편하게 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니, 이번 회자(回咨)에서 모두 상세히 헤아려 정해 보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도원수와 부원수 외에 또 체찰사와 체찰 부사가 있는데 총령 대장은 누구로 써서 보내야 합니까? 총령이라고 말한 것은 군대를 지휘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듯합니다. 우리 나라 장수들의 칭호가 다르긴 합니다만 중국 조정과 병제(兵制)는 대략 서로 같으니, 체찰은 군문(軍門)과 비슷하고 원수는 경략과 비슷하고 부원수 이하는 총령 대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순변사는 병사가 요동(遼東)으로 건너간 뒤에 병사 대신 변방을 지키게 할 목적으로 둔 직책인 만큼 분령 편비의 대열에 소속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방어사와 조방장은 부대를 나누어 들여보내야 할 듯한데, 이번에 분령 편비로는 이 사람들을 써서 보내야 합니까? 그리고 크고 작은 장령(將領)들의 칭호를 본국에서 평상시 부르는 직명으로 써서 보냅니까? 노추와 가까운 곳의 지리와 형세 역시 지도로 작성하여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제 ‘회자 가운데 한꺼번에 기록해 보내려면 필시 시기에 대지 못할 것이니, 이것들은 나중에 상세히 적어서 보내도록 하라.’고 하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자문의 의도를 살펴보건대 입주하려고 하는 것으로서 일이 매우 중대한데 혹시라도 지체시켜 잘못될 경우에는 화를 낼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속히 크고 작은 장령들을 참작해 정하게 한 뒤 회자 속에 일일이 기록해 보냄으로써 사기(事機)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온당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대신이 요동을 건너 들어가는 것은 일의 체모가 지극히 중하니, 내 생각으로는 단지 체찰 부사 장만(張晩)과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이 군대를 이끄는 것으로 하고 무장으로는 우치적(禹致績)을 써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편비 및 중군은 체찰사와 원수로 하여금 굳세고 생각이 깊은 당상 무신을 엄선하여 선봉으로 정하고, 한후장(捍後將)과 척후장(斥候將) 역시 당상·당하 무신을 엄선하여 보내는 것이 좋겠다. 평안 병사 및 방어사·조방장은 들여보내지 말고 그들로 하여금 철저히 강변을 지키게 하여 허술해지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징병하는 일을 본사에서는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마는 나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 만약 본도 병사(兵使)와 1만 병력을 요동으로 건너보낸 결과 관서(關西)의 강 연안 일대가 아무 방비도 없이 텅 비게 된다면 필시 짓쳐 들어오는 환란이 있게 될 것이다. 우치적 역시 역전의 명장으로서 김경서(金景瑞)와 차이가 없으니, 그에게 부원수의 칭호를 부여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 그리고 관직은 예전부터 써 보낸 예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 별도로 자세히 고찰하여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회자가 가장 급하니 회자를 우선 보내고, 이 일에 대해서는 체찰사·원수와 상의하여 뒤이어 자문을 보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경솔하게 써 보내서는 안될 듯하니 다시 더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경략이 보낸 자문 가운데 ‘먼저 어느 곳의 병정(兵丁)을 선발했고 정확한 인원은 얼마이며 총령 대장(摠領大將)은 어떤 사람이고 분령 편비(分領褊裨)는 어떤 사람이며 수륙(水陸)의 어떤 요충을 제압하고 있는지 기록하고 아울러 노추(奴酋)와 가까운 곳의 지리와 형세를 지도로 작성한 뒤 수고스럽지만 이잠 편에 부쳐 보내 입주(入奏)하는 데 편하게 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니, 이번 회자(回咨)에서 모두 상세히 헤아려 정해 보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도원수와 부원수 외에 또 체찰사와 체찰 부사가 있는데 총령 대장은 누구로 써서 보내야 합니까? 총령이라고 말한 것은 군대를 지휘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듯합니다. 우리 나라 장수들의 칭호가 다르긴 합니다만 중국 조정과 병제(兵制)는 대략 서로 같으니, 체찰은 군문(軍門)과 비슷하고 원수는 경략과 비슷하고 부원수 이하는 총령 대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순변사는 병사가 요동(遼東)으로 건너간 뒤에 병사 대신 변방을 지키게 할 목적으로 둔 직책인 만큼 분령 편비의 대열에 소속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방어사와 조방장은 부대를 나누어 들여보내야 할 듯한데, 이번에 분령 편비로는 이 사람들을 써서 보내야 합니까? 그리고 크고 작은 장령(將領)들의 칭호를 본국에서 평상시 부르는 직명으로 써서 보냅니까? 노추와 가까운 곳의 지리와 형세 역시 지도로 작성하여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제 ‘회자 가운데 한꺼번에 기록해 보내려면 필시 시기에 대지 못할 것이니, 이것들은 나중에 상세히 적어서 보내도록 하라.’고 하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자문의 의도를 살펴보건대 입주하려고 하는 것으로서 일이 매우 중대한데 혹시라도 지체시켜 잘못될 경우에는 화를 낼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속히 크고 작은 장령들을 참작해 정하게 한 뒤 회자 속에 일일이 기록해 보냄으로써 사기(事機)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온당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대신이 요동을 건너 들어가는 것은 일의 체모가 지극히 중하니, 내 생각으로는 단지 체찰 부사 장만(張晩)과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이 군대를 이끄는 것으로 하고 무장으로는 우치적(禹致績)을 써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편비 및 중군은 체찰사와 원수로 하여금 굳세고 생각이 깊은 당상 무신을 엄선하여 선봉으로 정하고, 한후장(捍後將)과 척후장(斥候將) 역시 당상·당하 무신을 엄선하여 보내는 것이 좋겠다. 평안 병사 및 방어사·조방장은 들여보내지 말고 그들로 하여금 철저히 강변을 지키게 하여 허술해지는 걱정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징병하는 일을 본사에서는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마는 나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 만약 본도 병사(兵使)와 1만 병력을 요동으로 건너보낸 결과 관서(關西)의 강 연안 일대가 아무 방비도 없이 텅 비게 된다면 필시 짓쳐 들어오는 환란이 있게 될 것이다. 우치적 역시 역전의 명장으로서 김경서(金景瑞)와 차이가 없으니, 그에게 부원수의 칭호를 부여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 그리고 관직은 예전부터 써 보낸 예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 별도로 자세히 고찰하여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회자가 가장 급하니 회자를 우선 보내고, 이 일에 대해서는 체찰사·원수와 상의하여 뒤이어 자문을 보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경솔하게 써 보내서는 안될 듯하니 다시 더 의논해 처리토록 하라."
하였다.

 

6월 29일 병술

전교하였다. "두 궁궐에 돌을 다루는 공사가 엄청난데 요즈음 석재(石材)를 모집하고 무역하고 바치게 하는 일 등이 깜깜 무소식이다. 각별히 널리 유시하여 받아서 쓰도록 하라. 그리고 전일 이충원(李忠元)의 처가 진상한 재목을 어느 때나 벌채해 가져올 것인가. 이것도 아울러 자세히 살펴 아뢰라."
"두 궁궐에 돌을 다루는 공사가 엄청난데 요즈음 석재(石材)를 모집하고 무역하고 바치게 하는 일 등이 깜깜 무소식이다. 각별히 널리 유시하여 받아서 쓰도록 하라. 그리고 전일 이충원(李忠元)의 처가 진상한 재목을 어느 때나 벌채해 가져올 것인가. 이것도 아울러 자세히 살펴 아뢰라."

 

전교하였다. "두 궁궐 공사도 10월이 지나고나면 날씨가 추워지고 해도 짧아져 형세상 그대로 진행시키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면 앞으로 공사할 기간이 3개월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시간만 보내는 일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공사를 끝낼 기약이 보이지 않는다. 경덕궁(慶德宮) 대내(大內) 공사도 어려운 일이 없을 듯한데 해이해진 정도가 더욱 심하다. 신성(信城)의 집과 유파(柳坡)의 집 및 내사복을 조성하는 곳의 공사를 각별히 독촉하여 속히 일을 마무리짓도록 하라. "
"두 궁궐 공사도 10월이 지나고나면 날씨가 추워지고 해도 짧아져 형세상 그대로 진행시키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면 앞으로 공사할 기간이 3개월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시간만 보내는 일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공사를 끝낼 기약이 보이지 않는다. 경덕궁(慶德宮) 대내(大內) 공사도 어려운 일이 없을 듯한데 해이해진 정도가 더욱 심하다. 신성(信城)의 집과 유파(柳坡)의 집 및 내사복을 조성하는 곳의 공사를 각별히 독촉하여 속히 일을 마무리짓도록 하라. "

 

전교하였다. "서산 군수(瑞山郡守) 김성옥(金成玉)과 전라 수사(全羅水使) 원수신(元守身)이 내려가는 즉시 내가 탈 용주(龍舟) 각 1척과 협선(夾船) 각 1척을 정교하게 만든 뒤 군관을 가려 정해 8월 그믐 이전까지 급히 올려보내게 하라.
"서산 군수(瑞山郡守) 김성옥(金成玉)과 전라 수사(全羅水使) 원수신(元守身)이 내려가는 즉시 내가 탈 용주(龍舟) 각 1척과 협선(夾船) 각 1척을 정교하게 만든 뒤 군관을 가려 정해 8월 그믐 이전까지 급히 올려보내게 하라.

 

전교하였다. "지금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올려 보낸 도형을 보건대 오랑캐의 소굴이 이산(理山)·벽동(碧潼)·창주(昌州) 등 지역과 매우 가까우니 이 변방 지역들을 더욱 엄밀히 방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강계(江界)·영변(寧邊) 등 지역은 누구를 시켜 굳게 지키게 할 것인가. 각별히 의논해 처리하라."
"지금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올려 보낸 도형을 보건대 오랑캐의 소굴이 이산(理山)·벽동(碧潼)·창주(昌州) 등 지역과 매우 가까우니 이 변방 지역들을 더욱 엄밀히 방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강계(江界)·영변(寧邊) 등 지역은 누구를 시켜 굳게 지키게 할 것인가. 각별히 의논해 처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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