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정사
전교하였다. "소훈(昭訓)의 처녀 단자를 많은 수로 봉입할 것을 여러 번 하교하였는데, 단지 10여 명만으로 구차하게 충당시켜 봉입하여 책임을 메꾸려 하다니 매우 놀랍다. 한성부와 오부의 해당 관리를 추고하여 다시 더 봉입하도록 독촉하고, 처녀를 내놓지 않는 집의 가장은 조사하여 다스리라."
"소훈(昭訓)의 처녀 단자를 많은 수로 봉입할 것을 여러 번 하교하였는데, 단지 10여 명만으로 구차하게 충당시켜 봉입하여 책임을 메꾸려 하다니 매우 놀랍다. 한성부와 오부의 해당 관리를 추고하여 다시 더 봉입하도록 독촉하고, 처녀를 내놓지 않는 집의 가장은 조사하여 다스리라."
주사청(舟師廳)이 아뢰었다. "이번 주사(舟師)의 일은 사람들마다 모두 그것이 커다란 폐단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각도에 사명을 받들고 내려간 판원 및 병사와 수사들도 본청에 이문하여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을 극력 진술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현재 남아 있는 20척과 호조의 배 20여척을 경강에 남겨 정박시키고 나서 경기·공홍·강원 3도의 각진(各鎭)과 포(浦)의 배를 때맞춰 모이게 해서 기한을 어기지 않도록 한 뒤 각도에 나누어 정한 배는 우선 중지하고, 만약 부족한 걱정이 있더라도 민력이 여유가 생길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형편을 봐가며 조치한다면 미치지 못할 근심이 없을 것으로 여깁니다. 이렇게 한다면 거의 소요스런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주사(舟師)의 일은 사람들마다 모두 그것이 커다란 폐단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각도에 사명을 받들고 내려간 판원 및 병사와 수사들도 본청에 이문하여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을 극력 진술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현재 남아 있는 20척과 호조의 배 20여척을 경강에 남겨 정박시키고 나서 경기·공홍·강원 3도의 각진(各鎭)과 포(浦)의 배를 때맞춰 모이게 해서 기한을 어기지 않도록 한 뒤 각도에 나누어 정한 배는 우선 중지하고, 만약 부족한 걱정이 있더라도 민력이 여유가 생길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형편을 봐가며 조치한다면 미치지 못할 근심이 없을 것으로 여깁니다. 이렇게 한다면 거의 소요스런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8월 2일 무오
이홍사(李弘嗣)에게 가자하라고 전교하였다.
사간 신광업(辛光業), 장령 한명욱(韓明勖), 정언 이원여(李元輿)·서국정(徐國楨)이 아뢰기를, "합사한 논의는 일각이라도 늦춰서는 안되는데 매번 전교로 인하여 일단 정지하니, 이것이 비록 부득이한 사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물의는 아뢰었다 정지했다 한다고 시끄럽게 비난합니다. 이는 모두 신들의 성의가 부족하여 성상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오랫동안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또 오늘 천추 성절(千秋聖節)의 망궐례를 재차 습의(習儀)할 적에 신들은 일찍 남별궁(南別宮)에 나와서 오랫동안 예를 행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참할 승지를 정원이 미리 정하지 않고 때에 임박해서야 계품하였으며, 집에 있는 승지는 명을 받고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저물게 되어서 막중한 대례를 끝내 설행하지 못하고 대소의 많은 관원들이 모였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색승지가 일을 살피는 도리가 과연 이와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실로 신들이 멸시받은 소치이니 결코 그대로 관직에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모두 물러나서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합사한 논의는 일각이라도 늦춰서는 안되는데 매번 전교로 인하여 일단 정지하니, 이것이 비록 부득이한 사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물의는 아뢰었다 정지했다 한다고 시끄럽게 비난합니다. 이는 모두 신들의 성의가 부족하여 성상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오랫동안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또 오늘 천추 성절(千秋聖節)의 망궐례를 재차 습의(習儀)할 적에 신들은 일찍 남별궁(南別宮)에 나와서 오랫동안 예를 행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참할 승지를 정원이 미리 정하지 않고 때에 임박해서야 계품하였으며, 집에 있는 승지는 명을 받고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저물게 되어서 막중한 대례를 끝내 설행하지 못하고 대소의 많은 관원들이 모였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색승지가 일을 살피는 도리가 과연 이와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실로 신들이 멸시받은 소치이니 결코 그대로 관직에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모두 물러나서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관학 유생 이국량(李國亮) 등이 비밀 상소를 올리니,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8월 3일 기미
전교하였다. "근래에 도성이 극히 소란스러워 도성을 나가는 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데 무슨 일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변방은 지금 침범해 들어올 위험이 없는데 인심의 소란은 날로 더해가니, 혹시 간특한 사람의 선동으로 놀라고 미혹되어 어지러이 흩어지는 것은 아닌가. 매우 통탄스럽다. 비변사로 하여금 각별히 강구하여 빨리 민심을 진정시키도록 하라."
"근래에 도성이 극히 소란스러워 도성을 나가는 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데 무슨 일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변방은 지금 침범해 들어올 위험이 없는데 인심의 소란은 날로 더해가니, 혹시 간특한 사람의 선동으로 놀라고 미혹되어 어지러이 흩어지는 것은 아닌가. 매우 통탄스럽다. 비변사로 하여금 각별히 강구하여 빨리 민심을 진정시키도록 하라."
비변사가 유장(儒將)으로 남궁경(南宮㯳)·안경심(安景深)·이홍망(李弘望)·박자응(朴自凝)·이민환(李民寏)·남이웅(南以雄)·변응원(邊應垣)·윤지양(尹知養)·노경임(盧景任)·조성립(趙誠立)·유진증(兪晉曾)·송방조(宋邦祖)·정문회(鄭文晦)·유효립(柳孝立)을 천거하여 아뢰었다.
헌납 홍요검(洪堯儉)이 아뢰었다. "지난번 동료가 인피한 말을 보건대 금새 아뢰었다가 금새 정지한다는 죄는 신도 면하기 어려우니 신의 직을 체차하라 명하소서."
"지난번 동료가 인피한 말을 보건대 금새 아뢰었다가 금새 정지한다는 죄는 신도 면하기 어려우니 신의 직을 체차하라 명하소서."
집의 임건(林健), 장령 한영(韓詠), 지평 신칙(申恜)·남명우(南溟羽)가 아뢰기를, "합사한 논의는 일각이라도 정지해서는 안되는데 근래 전교로 인하여 우선 며칠 동안 정계하였습니다. 비록 부득이한 사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물의가 비난하는 것은 면하기 어렵습니다. 또 어제 습의할 때 신 등은 마침 병으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만, 승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예를 행하지 못하여 동료가 이미 이를 이유로 인피하였으니, 신들이 구차하게 무릅쓰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은 그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신 등의 직을 체차하라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모두 물러나 물론을 기다렸다.
"합사한 논의는 일각이라도 정지해서는 안되는데 근래 전교로 인하여 우선 며칠 동안 정계하였습니다. 비록 부득이한 사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물의가 비난하는 것은 면하기 어렵습니다. 또 어제 습의할 때 신 등은 마침 병으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만, 승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예를 행하지 못하여 동료가 이미 이를 이유로 인피하였으니, 신들이 구차하게 무릅쓰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은 그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신 등의 직을 체차하라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모두 물러나 물론을 기다렸다.
관학 유생 이홍순(李弘詢) 등이 비밀 상소를 올렸는데,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전라도 유학 이위(李偉) 등이 상소하였다. "대국이 완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특한 의논이 날로 심해져서, 정의를 해치고 역적을 두호하는 무리들이 논의를 주도한 대현인을 모함하고 있습니다. 김봉조(金奉祖)와 권집(權潗)이 흉악한 설을 창도하여 덕의가 없다는 말로 지척하기까지 하였으니, 그 은밀히 서궁에 빌붙어서 임금을 위태롭게 하려는 실정이 현저하여 의심할 것 없습니다. 원근의 듣는 자들이 모두 놀라고 분해 하지 않는 자가 없는 데도, 양사는 이목을 맡은 관리로서 오히려 규찰해 다스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계(大計)를 빨리 정하시어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리고 봉조 등을 잡아다가 통쾌하게 전형을 바루시고, 다음으로 양사의 말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소서."
"대국이 완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특한 의논이 날로 심해져서, 정의를 해치고 역적을 두호하는 무리들이 논의를 주도한 대현인을 모함하고 있습니다. 김봉조(金奉祖)와 권집(權潗)이 흉악한 설을 창도하여 덕의가 없다는 말로 지척하기까지 하였으니, 그 은밀히 서궁에 빌붙어서 임금을 위태롭게 하려는 실정이 현저하여 의심할 것 없습니다. 원근의 듣는 자들이 모두 놀라고 분해 하지 않는 자가 없는 데도, 양사는 이목을 맡은 관리로서 오히려 규찰해 다스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계(大計)를 빨리 정하시어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리고 봉조 등을 잡아다가 통쾌하게 전형을 바루시고, 다음으로 양사의 말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소서."
홍문관이 차자를 올려 양사를 모두 출사시키기를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8월 4일 경신
비변사가 아뢰기를, "본사가 창성 부사 박난영(朴蘭英)을 평양 방수 조방장(防守助防將)으로 삼고자 하여 삼현(三縣)의 수령과 바꾸기를 청해서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처 하비하기 전에 대간이 창성 부사를 탄핵하였는데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전교로 인하여 지금 우선 정계하였습니다. 창성 부사의 자리가 빈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렇게 일이 급한 때를 당하여 실로 근심이 됩니다. 해조로 하여금 오늘 내일 안으로 급속히 차임해 보내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러한 때에 미생(微生)·효기(孝己) 같은 융통성 없는 행실이 적을 막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박난영을 그대로 보내서 스스로 공을 이루게 하라. 이 뜻을 논핵한 대간에게 말하라." 하였다.
"본사가 창성 부사 박난영(朴蘭英)을 평양 방수 조방장(防守助防將)으로 삼고자 하여 삼현(三縣)의 수령과 바꾸기를 청해서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처 하비하기 전에 대간이 창성 부사를 탄핵하였는데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전교로 인하여 지금 우선 정계하였습니다. 창성 부사의 자리가 빈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렇게 일이 급한 때를 당하여 실로 근심이 됩니다. 해조로 하여금 오늘 내일 안으로 급속히 차임해 보내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러한 때에 미생(微生)·효기(孝己) 같은 융통성 없는 행실이 적을 막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박난영을 그대로 보내서 스스로 공을 이루게 하라. 이 뜻을 논핵한 대간에게 말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근래에 도성이 더욱 텅 비었다 하니 무슨 연고로 인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관원 중에 먼저 가속을 내보내거나 짐바리를 실어내는 자는 법부로 하여금 적발해서 아뢰어 다스리게 하고, 서민은 한성부로 하여금 오가통(五家統)을 만들게 해서 만약 숨겨주고 보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통주(統主)를 중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근래에 도성이 더욱 텅 비었다 하니 무슨 연고로 인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다. 관원 중에 먼저 가속을 내보내거나 짐바리를 실어내는 자는 법부로 하여금 적발해서 아뢰어 다스리게 하고, 서민은 한성부로 하여금 오가통(五家統)을 만들게 해서 만약 숨겨주고 보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통주(統主)를 중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진사 이상길(李祥吉)이 상소하였다. "올바른 의논이 전도되고 대국이 완결되지 못하는 것은, 모두 황덕부(黃德符)가 힘써 느슨한 논의를 주장하여 은밀히 뒷날의 복을 도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초 김세렴(金世濂)의 의논이 행해졌었다면 누가 사설(邪說)을 창도하여 이렇게까지 대사를 그르쳤겠습니까. 세렴이 죄가 없다는 것은 변론하지 않아도 저절로 밝혀질 것인데, 당시 대간의 논핵은 덕부의 사주를 받고 그를 변방에 안치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덕부의 기세가 한때 치성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뜻밖의 횡액을 당하게 하였으니 어찌 참담하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빨리 대신에게 명하여 속히 대계를 정해서 모후를 폐출하는 법을 마무리하시고, 어서 세렴을 방면하여 하소연할 길이 없는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올바른 의논이 전도되고 대국이 완결되지 못하는 것은, 모두 황덕부(黃德符)가 힘써 느슨한 논의를 주장하여 은밀히 뒷날의 복을 도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초 김세렴(金世濂)의 의논이 행해졌었다면 누가 사설(邪說)을 창도하여 이렇게까지 대사를 그르쳤겠습니까. 세렴이 죄가 없다는 것은 변론하지 않아도 저절로 밝혀질 것인데, 당시 대간의 논핵은 덕부의 사주를 받고 그를 변방에 안치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덕부의 기세가 한때 치성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뜻밖의 횡액을 당하게 하였으니 어찌 참담하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빨리 대신에게 명하여 속히 대계를 정해서 모후를 폐출하는 법을 마무리하시고, 어서 세렴을 방면하여 하소연할 길이 없는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비밀의 내용을 합사하여 입계하니,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8월 5일 신유
대제학 이이첨이 아뢰기를, "당초 서당(書堂)에 뽑힌 12명 가운데 더러는 사직하여 체차되고 더러는 당상으로 오르고 어떤 이는 외직에 보임되어 현재 남아 있는 관원이 없습니다. 난리 후에 다시 설치한 이 성대한 거사가 장차 폐기될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인재를 기르고 권장하는 뜻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마땅히 빠지는 대로 더 뽑아서 궐원을 보충해야 되지만 사한(詞翰)의 중요한 자리라서 또한 쉽사리 뽑아 아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우선 평소의 이정립(李廷立)의 예에 의거해 당상인 김치·정광성·목대흠·유희발·이위경 등에게 먼저 서당의 직임을 그대로 띤 채 월 초마다 글짓고 책읽는 것을 한결같이 본당의 사목에 따라 시행해서 효과를 거두도록 책임지우소서." 하니, 따랐다.
"당초 서당(書堂)에 뽑힌 12명 가운데 더러는 사직하여 체차되고 더러는 당상으로 오르고 어떤 이는 외직에 보임되어 현재 남아 있는 관원이 없습니다. 난리 후에 다시 설치한 이 성대한 거사가 장차 폐기될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인재를 기르고 권장하는 뜻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마땅히 빠지는 대로 더 뽑아서 궐원을 보충해야 되지만 사한(詞翰)의 중요한 자리라서 또한 쉽사리 뽑아 아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우선 평소의 이정립(李廷立)의 예에 의거해 당상인 김치·정광성·목대흠·유희발·이위경 등에게 먼저 서당의 직임을 그대로 띤 채 월 초마다 글짓고 책읽는 것을 한결같이 본당의 사목에 따라 시행해서 효과를 거두도록 책임지우소서."
하니, 따랐다.
전교하였다. "증광시의 무과 초시에서 합격한 사람을 모두 전시에 바로 응시토록 하여 방수(防戍)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 진실로 오늘날의 급무이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는 일로 논핵한 대간에게 말하라."
"증광시의 무과 초시에서 합격한 사람을 모두 전시에 바로 응시토록 하여 방수(防戍)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 진실로 오늘날의 급무이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는 일로 논핵한 대간에게 말하라."
의주 부윤이, 노적이 청하보(淸河堡)를 함락시켰다고 치계하였다.
양사가 비밀의 내용을 합계하여 입계하고, 또 아뢰기를, "과거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국가의 막중한 일입니다. 정시(庭試)와 별시(別試)는 본래 정해진 인원이 없고 식년시(式年試)와 증광시(增廣試)는 본래 그 수가 정해져 있지만 간혹 경사가 중첩됨으로 인하여 7명을 더 뽑기도 하니 이 또한 선왕 때부터 정해진 법입니다. 이번 증광시의 무과 초시에서 합격한 사람을 모두 전시에 직부하도록 하셨는데 금석 같은 법전과 어긋나 원근의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문과와 무과를 대거(對擧)하는 규례에 있어서 한 쪽을 빠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이치입니다. 당초 성명께서 인재를 취하려고 계획하신 것은 변방의 방수(防守)를 위해서인데 이번에 정시의 대과에서 널리 취하였으므로 군대를 충족시키고 방어를 굳건히 하는 데 대책이 없을 걱정은 없습니다. 더구나 증광시 무과 초시의 무리들에 대해서는 추잡한 말들이 많이 나돌았는데 해조의 회계도 말이 매우 모호하니, 공도를 넓히고 과거를 중히 여기는 도리가 과연 이와 같은 것이겠습니까. 초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전시에 직부하도록 하신 명을 속히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비밀히 아뢴 일은 모두 파직하라." 하였다.
"과거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국가의 막중한 일입니다. 정시(庭試)와 별시(別試)는 본래 정해진 인원이 없고 식년시(式年試)와 증광시(增廣試)는 본래 그 수가 정해져 있지만 간혹 경사가 중첩됨으로 인하여 7명을 더 뽑기도 하니 이 또한 선왕 때부터 정해진 법입니다.
이번 증광시의 무과 초시에서 합격한 사람을 모두 전시에 직부하도록 하셨는데 금석 같은 법전과 어긋나 원근의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문과와 무과를 대거(對擧)하는 규례에 있어서 한 쪽을 빠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이치입니다. 당초 성명께서 인재를 취하려고 계획하신 것은 변방의 방수(防守)를 위해서인데 이번에 정시의 대과에서 널리 취하였으므로 군대를 충족시키고 방어를 굳건히 하는 데 대책이 없을 걱정은 없습니다. 더구나 증광시 무과 초시의 무리들에 대해서는 추잡한 말들이 많이 나돌았는데 해조의 회계도 말이 매우 모호하니, 공도를 넓히고 과거를 중히 여기는 도리가 과연 이와 같은 것이겠습니까. 초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전시에 직부하도록 하신 명을 속히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비밀히 아뢴 일은 모두 파직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성우길(成佑吉)은 옛날 선조 때에 북도에서 공을 세워 지금까지도 북도의 사람들이 그의 다시 살려준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국사가 위급한 날을 당하여 죄과를 용서해주고 간성의 책임을 맡기는 것이 실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계책이다. 더구나 사냥을 나간 것은 하인들의 망령된 소행이었다는 진상을 이미 다 조사해 밝혔으니 깊이 죄로 삼을 필요없다. 내 듣건대 옛날에 진·초(秦楚)의 임금은 말을 훔치고 행희(倖姬)를 희롱하다 갓끈이 끊어진 신하를 용서하여 끝내 그들의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어찌 너무 심하게 논핵하여 이러한 때에 날랜 장수를 버릴 수 있겠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고 속히 내려 보내라. 비국의 당상과 낭청이 무슨 파직하고 추고할 만한 죄가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성우길의 일과 비국 당상·낭청의 일을 논핵한 대간에게 말하라." 하였다.
"성우길(成佑吉)은 옛날 선조 때에 북도에서 공을 세워 지금까지도 북도의 사람들이 그의 다시 살려준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국사가 위급한 날을 당하여 죄과를 용서해주고 간성의 책임을 맡기는 것이 실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계책이다. 더구나 사냥을 나간 것은 하인들의 망령된 소행이었다는 진상을 이미 다 조사해 밝혔으니 깊이 죄로 삼을 필요없다. 내 듣건대 옛날에 진·초(秦楚)의 임금은 말을 훔치고 행희(倖姬)를 희롱하다 갓끈이 끊어진 신하를 용서하여 끝내 그들의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어찌 너무 심하게 논핵하여 이러한 때에 날랜 장수를 버릴 수 있겠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고 속히 내려 보내라. 비국의 당상과 낭청이 무슨 파직하고 추고할 만한 죄가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성우길의 일과 비국 당상·낭청의 일을 논핵한 대간에게 말하라."
하였다.
진주사 윤휘가 치계하였다. "노추(奴酋)가 이달 21일에 청하성을 포위하고 4경에 성을 공략하여, 22일 미시에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유격 중군(游擊中軍)과 첨병 유격(添兵游擊)이 모두 피해를 입었고 군병과 거주민 5만 명이 포로가 되거나 피살되었습니다. 요동 총병과 도사는 병사를 이끌고 성으로 올라가 방비하고 있는데, 요녕·광동 지역은 소란스러워 5, 60리 정도 인적이 통하지 않습니다. 양 경리(楊經理)가 25일에 광녕에서 출발하여 요동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추(奴酋)가 이달 21일에 청하성을 포위하고 4경에 성을 공략하여, 22일 미시에 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유격 중군(游擊中軍)과 첨병 유격(添兵游擊)이 모두 피해를 입었고 군병과 거주민 5만 명이 포로가 되거나 피살되었습니다. 요동 총병과 도사는 병사를 이끌고 성으로 올라가 방비하고 있는데, 요녕·광동 지역은 소란스러워 5, 60리 정도 인적이 통하지 않습니다. 양 경리(楊經理)가 25일에 광녕에서 출발하여 요동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품획사(稟劃使) 이경전(李慶全)이 치계하였다. "노추의 군대가 청하를 공격한 뒤 머물러 있었는데 하 총병(賀摠兵)이 1천 5백 명을 거느리고 아호관(鵝虎關)에서 맞이해 싸워서 머리를 벤 것이 매우 많았고 빼앗은 말이 3백 필이나 된다는 첩보가 이르니, 요녕·광동 지역의 인심이 조금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노추의 군대가 청하를 공격한 뒤 머물러 있었는데 하 총병(賀摠兵)이 1천 5백 명을 거느리고 아호관(鵝虎關)에서 맞이해 싸워서 머리를 벤 것이 매우 많았고 빼앗은 말이 3백 필이나 된다는 첩보가 이르니, 요녕·광동 지역의 인심이 조금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박승종(朴承宗)을 좌의정으로, 박홍구(朴弘耉)를 우의정으로, 이상의(李尙毅)를 이사(貳師)로, 이이첨(李爾瞻)을 판의금부사로, 이필영(李必榮)을 좌찬성으로, 김신국(金藎國)을 우참찬으로, 이충(李沖)을 좌부빈객으로, 유희발(柳希發)을 이조 참판으로, 이대엽(李大燁)을 이조 참의로, 이홍주(李弘胄)를 형조 참의로, 김치(金緻)를 병조 참의로, 정규(鄭逵)를 참지로, 임길후(任吉後)를 광주 목사로 【길후는 왕이 총애하는 궁인의 오라비이다. 말단 음직에서 발탁되어 관직이 유수(留守)에까지 이르렀다.】 , 안응로(安應魯)를 대교로, 이필달(李必達)을 검열로, 한정국(韓正國)을 겸설서로, 유희안(柳希安)을 사복 첨정으로, 박항길(朴恒吉)을 형조 정랑으로, 권진기(權盡己)를 고산 찰방으로, 김우성(金佑成)을 공조 좌랑으로 【김우성은 거상 중에 행실이 없었고 친족들에게 행패를 부려 호남 사람들은 그를 뱀이나 전갈처럼 보았다. 일찍이 나덕윤(羅德潤) 등과 함께 상소하여 정철을 죄줄 것을 청하면서 이이(李珥)·성혼(成渾)까지 언급하였는데 이 때문에 조정의 후한 대접을 받았다. 목장흠(睦長欽)이 나주 목사가 되었을 때 직접 그의 행실을 알고는 돌아와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우성은 기록할 만한 악행은 무수히 많으나 일컬을 만한 선행은 한 가지도 없다." 하니, 그 친구가 말하기를, "그렇기는 하나 우성이 능히 성혼을 공격하였으니 우리 편에서 보자면 어찌 현인이 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때에 이이첨과 허균에게 아부하여 대론(大論)을 힘껏 주장하였으므로 발탁 등용된 것이다.】 삼았다.
8월 6일 임술
비변사가 아뢰기를, "영평(永平)과 포천(抱川)을 합해서 한 부(府)로 만들고 그대로 감영을 설치하여 북로에 대비하는 것은, 일이 관계된 것이 중하므로 판관만을 내보내서는 안되고 마땅히 감사로서 부윤을 겸하게 해야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부윤이란 칭호는 반드시 옛 도읍이거나 한때 주필처(駐蹕處)였던 곳인 뒤에야 읍호를 올릴 수 있습니다. 지난해 대구와 공주에 감영을 설치할 때 모두 감사로서 목사나 부사의 직임을 겸하게 했습니다. 이번 영평에 새로 설치하는 부도 대도호부(大都護府)라고 칭하여 그 체면을 중하게 해서 본도 감사로서 겸하게 하고, 판관은 이번 정사에서 시종 문관 중에 재망(才望)이 있는 자를 급히 가려서 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기 감사는 예로부터 도성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 만약 영평부로 나가 주둔한다면 급한 일이 있을 때에 매우 염려스러울 것이다. 무신을 부사로 삼을 경우에는 문신 판관을 차출해 보내고, 문신을 부사로 삼을 경우에는 무신 판관을 골라 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다시 상의해서 처리하라." 하였다.
"영평(永平)과 포천(抱川)을 합해서 한 부(府)로 만들고 그대로 감영을 설치하여 북로에 대비하는 것은, 일이 관계된 것이 중하므로 판관만을 내보내서는 안되고 마땅히 감사로서 부윤을 겸하게 해야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부윤이란 칭호는 반드시 옛 도읍이거나 한때 주필처(駐蹕處)였던 곳인 뒤에야 읍호를 올릴 수 있습니다. 지난해 대구와 공주에 감영을 설치할 때 모두 감사로서 목사나 부사의 직임을 겸하게 했습니다. 이번 영평에 새로 설치하는 부도 대도호부(大都護府)라고 칭하여 그 체면을 중하게 해서 본도 감사로서 겸하게 하고, 판관은 이번 정사에서 시종 문관 중에 재망(才望)이 있는 자를 급히 가려서 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기 감사는 예로부터 도성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 만약 영평부로 나가 주둔한다면 급한 일이 있을 때에 매우 염려스러울 것이다. 무신을 부사로 삼을 경우에는 문신 판관을 차출해 보내고, 문신을 부사로 삼을 경우에는 무신 판관을 골라 보내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다시 상의해서 처리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서북에 정배한 기자헌 이하의 사람들을 속히 다른 도로 옮겨 정배하라."
"서북에 정배한 기자헌 이하의 사람들을 속히 다른 도로 옮겨 정배하라."
도원수 강홍립이 차자를 올려 사직하니, 답하기를, "국사가 위급하니 사직하지 말고 몸조리한 뒤 속히 내려가서 삼군을 통솔하여 장대한 계책을 이루어 나의 근심을 덜어주도록 하라." 하였다.
"국사가 위급하니 사직하지 말고 몸조리한 뒤 속히 내려가서 삼군을 통솔하여 장대한 계책을 이루어 나의 근심을 덜어주도록 하라."
하였다.
비밀 내용을 합계하여 입계하고, 초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전시에 직부시키지 말 것을 청하고, 또 아뢰기를, "어제 비망기를 받들어 보니 성우길을 그대로 보내라고 하시면서 ‘북방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다시 살려준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다. 사냥을 행한 일은 하인들의 망령된 짓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전교하셨는데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예전에 김종득(金宗得)이 군대를 잃었을 적에, 성우길 자신은 우후(虞候)로서 군사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겁에 질려 속수 무책으로 목을 늘이고 적의 칼날을 받을 지경이었는데, 포수(砲手) 수십 명의 구원 덕분에 겨우 몸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사들이 직접 본 사실로, 그때 우길이 등급을 뛰어넘어 제수된 것을 지금까지도 놀랍고 이상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북방의 사람들에게 무슨 다시 살려준 은혜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에 평안 병사로 있을 때는 자신의 무뢰한 자제들을 멋대로 굴도록 놔두어 중국 지방에서 사냥을 자행하다가 구 유격(丘遊擊)에게 발각되어 구 유격이 의주 부윤에게 이자하여 조정에 알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우길이 그 기미를 알고 유격에게 뇌물을 많이 주어 겨우 거두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니, 성상의 오늘날 교시를 신들은 실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비국의 당상이란 자도 어떻게 공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대죄하고 있는 사람을 태연히 순변사에 의망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를 추천한 비변사의 당상과 색낭청을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고, 성우길을 전후 죄목에 의거해 나문하여 실정을 밝혀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비밀히 아뢴 일은 이미 그 직을 파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어제 비망기를 받들어 보니 성우길을 그대로 보내라고 하시면서 ‘북방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다시 살려준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다. 사냥을 행한 일은 하인들의 망령된 짓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전교하셨는데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예전에 김종득(金宗得)이 군대를 잃었을 적에, 성우길 자신은 우후(虞候)로서 군사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겁에 질려 속수 무책으로 목을 늘이고 적의 칼날을 받을 지경이었는데, 포수(砲手) 수십 명의 구원 덕분에 겨우 몸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사들이 직접 본 사실로, 그때 우길이 등급을 뛰어넘어 제수된 것을 지금까지도 놀랍고 이상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북방의 사람들에게 무슨 다시 살려준 은혜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에 평안 병사로 있을 때는 자신의 무뢰한 자제들을 멋대로 굴도록 놔두어 중국 지방에서 사냥을 자행하다가 구 유격(丘遊擊)에게 발각되어 구 유격이 의주 부윤에게 이자하여 조정에 알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우길이 그 기미를 알고 유격에게 뇌물을 많이 주어 겨우 거두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니, 성상의 오늘날 교시를 신들은 실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비국의 당상이란 자도 어떻게 공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대죄하고 있는 사람을 태연히 순변사에 의망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를 추천한 비변사의 당상과 색낭청을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고, 성우길을 전후 죄목에 의거해 나문하여 실정을 밝혀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비밀히 아뢴 일은 이미 그 직을 파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관학 유생 이홍순(李弘詢) 등이 비밀 상소를 올렸는데,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8월 7일 계해
비밀 내용을 합사하여 입계하니,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비밀 내용을 합계하여 입계하고, 양사에서 연계하여 성우길을 죄줄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성우길은 단지 순변사의 직만 체차하고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성우길은 단지 순변사의 직만 체차하고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변방의 경계가 급해지기도 전에 도성이 먼저 무너져 길이 막힐 정도로 성을 빠져나가는 행렬이 밤낮으로 이어지니 진정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전에 전교로 인하여 포도청의 하인과 한성부의 해당 관리를 불러다 금지하는 뜻을 자세하게 일러주었는데 전교의 내용을 삼가 거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빠져나가는 짐수레와 도망가는 사람들이 도로에 이어지고 중외가 소란스럽게 동요되고 있으니 안정시킬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좌·우 포도 종사관, 한성부 해당관, 각 성문의 별장을 모두 파직하라 명하시고, 엄중히 금지하는 뜻을 거듭 밝혀서 금법을 어긴 것이 더욱 심한 자는 효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경계를 보이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변방의 경계가 급해지기도 전에 도성이 먼저 무너져 길이 막힐 정도로 성을 빠져나가는 행렬이 밤낮으로 이어지니 진정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전에 전교로 인하여 포도청의 하인과 한성부의 해당 관리를 불러다 금지하는 뜻을 자세하게 일러주었는데 전교의 내용을 삼가 거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빠져나가는 짐수레와 도망가는 사람들이 도로에 이어지고 중외가 소란스럽게 동요되고 있으니 안정시킬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좌·우 포도 종사관, 한성부 해당관, 각 성문의 별장을 모두 파직하라 명하시고, 엄중히 금지하는 뜻을 거듭 밝혀서 금법을 어긴 것이 더욱 심한 자는 효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경계를 보이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관학 유생 이명(李明) 등이 비밀 상소를 하여, 우선 잇달아 상소 올리는 것을 중지하고 물러나 소청(疏廳)을 지키면서 대신이 출사하여 처치하기를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전교하였다. "서북의 호인들이 잇달아 변방에 이르러 와서 탐지해보는 듯한 점이 있는데 미련한 향통사(鄕通事)들이 문답하는 사이에 간혹 잘못 말하여 속임을 당한다면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니 다시 더 상세하게 분부하라. 징병하는 일 같은 것은, 병법은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는 법이니 어찌 상규에 크게 구애받겠는가. ‘명나라가 전체 군대를 동원하여 그 수가 억만뿐이 아닌데 어찌 꼭 우리 나라의 군대를 필요로 하겠는가. 우리 나라는 왜적을 방비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명나라가 우리 나라에 군대의 징발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 나라도 군대를 보낸 일이 없다.’는 이러한 내용으로 잘 대답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본사에서는 다시 더 헤아려 지시하도록 하라."
"서북의 호인들이 잇달아 변방에 이르러 와서 탐지해보는 듯한 점이 있는데 미련한 향통사(鄕通事)들이 문답하는 사이에 간혹 잘못 말하여 속임을 당한다면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하니 다시 더 상세하게 분부하라. 징병하는 일 같은 것은, 병법은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는 법이니 어찌 상규에 크게 구애받겠는가. ‘명나라가 전체 군대를 동원하여 그 수가 억만뿐이 아닌데 어찌 꼭 우리 나라의 군대를 필요로 하겠는가. 우리 나라는 왜적을 방비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명나라가 우리 나라에 군대의 징발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 나라도 군대를 보낸 일이 없다.’는 이러한 내용으로 잘 대답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본사에서는 다시 더 헤아려 지시하도록 하라."
또 전교하였다. "함경남·북도의 수비가 매우 급한데 군대의 증원과 방수 등의 일이 관서(關西)나 삼수·갑산 지역만 못하니 극히 고립되어 위태롭다. 그런데도 본사에서는 여전히 요리하는 일이 없으니 너무나 한심하다. 심지어 철령(鐵嶺)의 방수에 있어서는 일각이 급하다고 누차 하교하였는 데도 아직도 조처하지 않고 있으니 만일 갑자기 적이 깊이 쳐들어오는 변란이라도 생긴다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아울러 속히 상의해서 선처하도록 하라."
"함경남·북도의 수비가 매우 급한데 군대의 증원과 방수 등의 일이 관서(關西)나 삼수·갑산 지역만 못하니 극히 고립되어 위태롭다. 그런데도 본사에서는 여전히 요리하는 일이 없으니 너무나 한심하다. 심지어 철령(鐵嶺)의 방수에 있어서는 일각이 급하다고 누차 하교하였는 데도 아직도 조처하지 않고 있으니 만일 갑자기 적이 깊이 쳐들어오는 변란이라도 생긴다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아울러 속히 상의해서 선처하도록 하라."
8월 8일 갑자
양사에 전교하였다. "오늘날 도성의 사서인들이 다투어 피난을 나가는 데도 법관이 적발하여 치죄하지 못하고는 이제 와서 다 나간 뒤에야 비로소 포도 종사관 및 성문 별장을 파직하기를 청하다니 양사도 눈귀가 달렸을 터인데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비로소 죄를 청하는가. 한바탕 웃음거리도 안된다. 저 종사관 따위가 어찌 터럭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었겠는가. 내 생각에는 법관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여 비록 고관 대작이라도 가속을 내보내거나 짐을 실어보내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사실대로 조사해서 다스려 용서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부질없이 힘없는 백성이나 다스려 책임을 메우려 하지 말라."
"오늘날 도성의 사서인들이 다투어 피난을 나가는 데도 법관이 적발하여 치죄하지 못하고는 이제 와서 다 나간 뒤에야 비로소 포도 종사관 및 성문 별장을 파직하기를 청하다니 양사도 눈귀가 달렸을 터인데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비로소 죄를 청하는가. 한바탕 웃음거리도 안된다. 저 종사관 따위가 어찌 터럭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었겠는가. 내 생각에는 법관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여 비록 고관 대작이라도 가속을 내보내거나 짐을 실어보내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사실대로 조사해서 다스려 용서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부질없이 힘없는 백성이나 다스려 책임을 메우려 하지 말라."
품획사 이경전이, 경략이 요동으로 나왔다고 치계하였다.
8월 9일 을축
전교하였다. "금년에는 절후가 빠른 듯하니 존호를 올리는 날은 물려 정하지 말고 단지 존호를 의논하는 날만을 물려 택하여 대신이 출사하거든 즉시 행하라."
"금년에는 절후가 빠른 듯하니 존호를 올리는 날은 물려 정하지 말고 단지 존호를 의논하는 날만을 물려 택하여 대신이 출사하거든 즉시 행하라."
전교하였다. "도성의 사민들이 놀라 흩어지고 다투어 나가는 데도 순복(巡伏)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입계하여 처치하는 일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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