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정해
전교하였다. "비변사 당상 이경전(李慶全)이 의주로 내려갈 때 경유하는 일로에 마부와 말을 급급히 조발하여 정돈해 두고 즉각 교대하게 할 일을 삼도(三道)의 감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라. 또 선전관 한 사람을 같이 내려 보내서 이경전이 강을 건넌 뒤에 올라오게 할 일을 살펴 시행하라."
"비변사 당상 이경전(李慶全)이 의주로 내려갈 때 경유하는 일로에 마부와 말을 급급히 조발하여 정돈해 두고 즉각 교대하게 할 일을 삼도(三道)의 감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라. 또 선전관 한 사람을 같이 내려 보내서 이경전이 강을 건넌 뒤에 올라오게 할 일을 살펴 시행하라."
전교하였다. "대장군전(大將軍箭)·진천뢰(震天雷)·독시(毒矢)·석류화전(石榴火箭)이 모두 전쟁에 쓰기에 합당한데 어찌하여 만들어 쓰지 않는가. 군기시와 훈련 도감으로 하여금 속히 넉넉한 수를 만들어 쓰게 하라."
"대장군전(大將軍箭)·진천뢰(震天雷)·독시(毒矢)·석류화전(石榴火箭)이 모두 전쟁에 쓰기에 합당한데 어찌하여 만들어 쓰지 않는가. 군기시와 훈련 도감으로 하여금 속히 넉넉한 수를 만들어 쓰게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조종조의 옛 전례를 신들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만, 일군(一軍) 가운데 부원수가 두 사람인 것은 이상한 듯합니다. 신들의 뜻은, 무신 가운데 명망이 있는 자를 가려 순변사로 삼아서 남·북도 방비를 일체 순회하며 살피게 하여 유사시에는 지키기도 하고 싸우기도 해서 그때그때의 처한 형편에 따라 책응(策應)하게 하는 것이 기의(機宜)에 맞는 것 같습니다. 또 당초에 평안 병사를 의논하여 천거할 때에 부원수로 합당한 사람을 모여 추천하여 아뢴 것은 본래 징병하여 들여 보낼 때 총병 대장을 삼을 계획에서였지 본도 병사를 겸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군병을 극히 가려 뽑더라도 틀림없이 정병(精兵)을 가려 뽑기가 어려울 것이고 행장을 정리하더라도 틀림없이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수하에 직접 거느린 병사에 보충병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또 생각건대 금일 무장 가운데 전쟁의 경험이 많으며 용감히 많은 무리를 막아낼 인재로는 오직 이시언(李時言)과 김경서(金景瑞)가 있을 뿐인데, 상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시언은 새로이 중병에 걸려 말 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니, 지금의 군사를 거느리는 직임은 경서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본도를 방어하는 일은 이미 순찰사가 있고 또 순변사도 있으며 그밖에도 파수하는 각 장수를 임시로 뽑아 보내서 후금이 패하여 조선을 침입하는 우환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전진에 임하여 장수를 바꾸어서 병가(兵家)의 큰 금기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경서의 이름은 일찍이 중국에 가는 사신 편에 성교(聖敎)에 의하여 틀림없이 각 아문에 전파되었을 것이니 사세가 더욱 보내지 않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후는 명호가 중하지 않으니 통제하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신들의 뜻이 그럴 뿐만 아니라 원수에게 물어봐도 그 말이 또한 이와 같았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북도 순변사로 합당한 사람을 의논하여 천거하라. 김경서를 들여보내는 일은 나는 아직 어떨지를 알지 못하겠다. 다만 내가 《정토록(征討錄)》을 보니, 한계미(韓繼美)와 김교(金嶠)가 비록 평안 병사로서 적호(賊胡)를 정벌하기는 했으나, 다만 두 차례뿐이었다. 이 외에 오랑캐를 친 때에는 윤필상(尹弼商)·어유소(魚有沼)·강순(康純)·남이(南怡) 및 다른 여러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쳤으나 모두 본도 병사가 아니었고 서울로부터 뽑아 보낸 병사였다. 내 생각으로는 관서로부터 강변으로 가서 친다면 조종조 구례에 따라서 경서로 하여금 가서 치게 하는 것이 옳겠다. 그렇게 하지 않고 요하를 건너서 들어간다면 이 적이 반드시 빈 틈을 타 쳐들어올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본도의 병사·방어사·조방장 등의 여러 장수는 우리 나라를 한치도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 이경전으로 하여금 상세하게 비밀리에 정탐하여 우선 치계하게 한 후에 처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이것은 전진에 임하여 장수를 바꾸는 데 비할 일이 아니다. 자세히 의논을 더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조종조의 옛 전례를 신들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만, 일군(一軍) 가운데 부원수가 두 사람인 것은 이상한 듯합니다. 신들의 뜻은, 무신 가운데 명망이 있는 자를 가려 순변사로 삼아서 남·북도 방비를 일체 순회하며 살피게 하여 유사시에는 지키기도 하고 싸우기도 해서 그때그때의 처한 형편에 따라 책응(策應)하게 하는 것이 기의(機宜)에 맞는 것 같습니다.
또 당초에 평안 병사를 의논하여 천거할 때에 부원수로 합당한 사람을 모여 추천하여 아뢴 것은 본래 징병하여 들여 보낼 때 총병 대장을 삼을 계획에서였지 본도 병사를 겸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군병을 극히 가려 뽑더라도 틀림없이 정병(精兵)을 가려 뽑기가 어려울 것이고 행장을 정리하더라도 틀림없이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수하에 직접 거느린 병사에 보충병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또 생각건대 금일 무장 가운데 전쟁의 경험이 많으며 용감히 많은 무리를 막아낼 인재로는 오직 이시언(李時言)과 김경서(金景瑞)가 있을 뿐인데, 상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시언은 새로이 중병에 걸려 말 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니, 지금의 군사를 거느리는 직임은 경서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본도를 방어하는 일은 이미 순찰사가 있고 또 순변사도 있으며 그밖에도 파수하는 각 장수를 임시로 뽑아 보내서 후금이 패하여 조선을 침입하는 우환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전진에 임하여 장수를 바꾸어서 병가(兵家)의 큰 금기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경서의 이름은 일찍이 중국에 가는 사신 편에 성교(聖敎)에 의하여 틀림없이 각 아문에 전파되었을 것이니 사세가 더욱 보내지 않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후는 명호가 중하지 않으니 통제하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신들의 뜻이 그럴 뿐만 아니라 원수에게 물어봐도 그 말이 또한 이와 같았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북도 순변사로 합당한 사람을 의논하여 천거하라. 김경서를 들여보내는 일은 나는 아직 어떨지를 알지 못하겠다. 다만 내가 《정토록(征討錄)》을 보니, 한계미(韓繼美)와 김교(金嶠)가 비록 평안 병사로서 적호(賊胡)를 정벌하기는 했으나, 다만 두 차례뿐이었다. 이 외에 오랑캐를 친 때에는 윤필상(尹弼商)·어유소(魚有沼)·강순(康純)·남이(南怡) 및 다른 여러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쳤으나 모두 본도 병사가 아니었고 서울로부터 뽑아 보낸 병사였다. 내 생각으로는 관서로부터 강변으로 가서 친다면 조종조 구례에 따라서 경서로 하여금 가서 치게 하는 것이 옳겠다. 그렇게 하지 않고 요하를 건너서 들어간다면 이 적이 반드시 빈 틈을 타 쳐들어올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본도의 병사·방어사·조방장 등의 여러 장수는 우리 나라를 한치도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 이경전으로 하여금 상세하게 비밀리에 정탐하여 우선 치계하게 한 후에 처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이것은 전진에 임하여 장수를 바꾸는 데 비할 일이 아니다. 자세히 의논을 더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근래 병사를 징발하는 데 관해 주문을 올리는 한 가지 일을 결정하여 지금 비로소 윤허를 얻었습니다. 보장(保障)의 일은 처음에 성교(聖敎)에 따라 여러 사람의 의논을 종합했고 이 외에 서북 양변을 방비하는 방책도 이미 헤아려 처리하였습니다. 원수와 여러 장수를 차출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차례차례 출발시켜 보낼 것이며, 양호(兩湖)의 더 파견할 군사를 조발하여 정돈해서 근일에 장차 들여 보낼 것입니다. 군량에 관한 한 가지 일은 해조가 있고 또한 분호조(分戶曹)의 담당 관원이 있습니다. 경상도의 선두의 군사와 강원도의 군사는 함경도로 보내고 양호(兩湖)의 포수 2천 명은 관서로 들여보낼 것인데 출발 시기는 모두 7월입니다. 다만 지난번에 또 군병을 미리 들여 보내면 방비가 허술해질 근심이 없지 않다고 전교하셨는데, 변방 신하의 급함을 고하는 장계가 잇달아 이르렀으니 일이 일어난 뒤에 비로소 정돈하여 보내면 반드시 미치지 못하는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원수로 하여금 사세를 살펴 헤아려서 상세히 치계하게 하여 추동의 방비를 정리하는 계책을 세우는 데 참고 자료로 삼는 것이 편리하고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아뢴 뜻이 비록 이와 같으나 반드시 십분 착실히 거행한 연후에라야 실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사를 보내는 시기가 만약 늦가을이라면 얼음이 언 후 막고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 8월 그믐과 9월 초승에 미쳐서 양계에 다 들여 보내서 강변을 굳게 지키면 삼동간(三冬間)에도 방비가 허술해질 근심은 없을 것 같다. 원수로 하여금 다시 더 살펴서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신들이 근래 병사를 징발하는 데 관해 주문을 올리는 한 가지 일을 결정하여 지금 비로소 윤허를 얻었습니다. 보장(保障)의 일은 처음에 성교(聖敎)에 따라 여러 사람의 의논을 종합했고 이 외에 서북 양변을 방비하는 방책도 이미 헤아려 처리하였습니다. 원수와 여러 장수를 차출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차례차례 출발시켜 보낼 것이며, 양호(兩湖)의 더 파견할 군사를 조발하여 정돈해서 근일에 장차 들여 보낼 것입니다. 군량에 관한 한 가지 일은 해조가 있고 또한 분호조(分戶曹)의 담당 관원이 있습니다. 경상도의 선두의 군사와 강원도의 군사는 함경도로 보내고 양호(兩湖)의 포수 2천 명은 관서로 들여보낼 것인데 출발 시기는 모두 7월입니다.
다만 지난번에 또 군병을 미리 들여 보내면 방비가 허술해질 근심이 없지 않다고 전교하셨는데, 변방 신하의 급함을 고하는 장계가 잇달아 이르렀으니 일이 일어난 뒤에 비로소 정돈하여 보내면 반드시 미치지 못하는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원수로 하여금 사세를 살펴 헤아려서 상세히 치계하게 하여 추동의 방비를 정리하는 계책을 세우는 데 참고 자료로 삼는 것이 편리하고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아뢴 뜻이 비록 이와 같으나 반드시 십분 착실히 거행한 연후에라야 실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사를 보내는 시기가 만약 늦가을이라면 얼음이 언 후 막고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 8월 그믐과 9월 초승에 미쳐서 양계에 다 들여 보내서 강변을 굳게 지키면 삼동간(三冬間)에도 방비가 허술해질 근심은 없을 것 같다. 원수로 하여금 다시 더 살펴서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대관 명사로서 가속을 내보내고 짐을 옮겨 나르며 상여를 따라서 나간 사람까지 있다는 데 대하여 지금 상의 전교를 받고 나니 너무나 놀랍습니다. 먼저 개유(開諭)하고 나중에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의정부로 하여금 백관에게 일러서 주의시키게 하고 한성부·오부로 하여금 방민(坊民)들을 효유하게 하여 착실히 거행하게 하소서. 만약에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좌·우 포청으로 하여금 통렬히 금지하여 단속하고, 범하는 사람이 보이는 즉시 잡아서 고하게 하여 엄중하게 다스려 용서해 주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많은 사람이 보는 바이니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소민이 경동하여 피난가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 비록 본사 당상이라도 통렬히 일가(一家)가 놀라 피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한다면 소민이 스스로 마땅히 안정할 것이다. 다시 더욱 착실히 거행하라." 하였다.
"대관 명사로서 가속을 내보내고 짐을 옮겨 나르며 상여를 따라서 나간 사람까지 있다는 데 대하여 지금 상의 전교를 받고 나니 너무나 놀랍습니다. 먼저 개유(開諭)하고 나중에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의정부로 하여금 백관에게 일러서 주의시키게 하고 한성부·오부로 하여금 방민(坊民)들을 효유하게 하여 착실히 거행하게 하소서. 만약에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좌·우 포청으로 하여금 통렬히 금지하여 단속하고, 범하는 사람이 보이는 즉시 잡아서 고하게 하여 엄중하게 다스려 용서해 주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많은 사람이 보는 바이니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소민이 경동하여 피난가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 비록 본사 당상이라도 통렬히 일가(一家)가 놀라 피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한다면 소민이 스스로 마땅히 안정할 것이다. 다시 더욱 착실히 거행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번에 우 차관(于差官)이 창성(昌城)을 경유하여 곧장 돌아간 것은 극히 놀랄 만한 일이다. 금후 이 길에 만약 혹시 중국 사람이나 간첩이 왕래하는 일이 있으면 일일이 자세히 심문하고 기찰하여 감사에게 빨리 보고하여 급급히 계문하게 할 것이고, 또 중원과 호지(胡地)의 근처에 의외의 돌아다니는 황당인(荒唐人)이 있으면 일일이 엄밀하게 기찰할 일을 수령과 변장들이 십분 살펴서 조심하게 하여 털끝만큼도 허소(虛疎)한 근심이 없게 할 것을 평안·함경 감사가 있는 곳에 상세히 하유하라."
"이번에 우 차관(于差官)이 창성(昌城)을 경유하여 곧장 돌아간 것은 극히 놀랄 만한 일이다. 금후 이 길에 만약 혹시 중국 사람이나 간첩이 왕래하는 일이 있으면 일일이 자세히 심문하고 기찰하여 감사에게 빨리 보고하여 급급히 계문하게 할 것이고, 또 중원과 호지(胡地)의 근처에 의외의 돌아다니는 황당인(荒唐人)이 있으면 일일이 엄밀하게 기찰할 일을 수령과 변장들이 십분 살펴서 조심하게 하여 털끝만큼도 허소(虛疎)한 근심이 없게 할 것을 평안·함경 감사가 있는 곳에 상세히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심돈(沈惇)이 강도(江都)에 내려가니 고궁궐(古宮闕)의 터와 칸수, 진강장(鎭江場) 형세의 길이와 넓이를 일일이 상세히 그려서 올려 보낼 일을 일러 주어라."
"심돈(沈惇)이 강도(江都)에 내려가니 고궁궐(古宮闕)의 터와 칸수, 진강장(鎭江場) 형세의 길이와 넓이를 일일이 상세히 그려서 올려 보낼 일을 일러 주어라."
예조가 아뢰기를, "임진년에 친히 종묘와 사직을 받들고 험난한 길을 지나 업은 중흥을 이루고 공은 조종(祖宗)을 빛내셨으니 존호를 올릴 때에 마땅히 행하여야 할 절목을 전례에 따라 거행하소서." 하니, 따랐다.
"임진년에 친히 종묘와 사직을 받들고 험난한 길을 지나 업은 중흥을 이루고 공은 조종(祖宗)을 빛내셨으니 존호를 올릴 때에 마땅히 행하여야 할 절목을 전례에 따라 거행하소서."
하니, 따랐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중국인이 창성을 지나 들어간 것은 극히 놀라운 일이니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지금 안응형(安應亨)의 장계를 보니, 경략 차관이 돌아가는 길이 급해서 창성을 경유하여 강을 건너서 곧바로 관전(寬奠)을 향하였는데 부사 등이 개유하며 막았으나 듣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피차의 경계가 절연히 따로 있어서 금법을 어기며 출입하지 못하게 한 것은 대개 의외의 일이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차관이 만약 억지로 이 길을 경유하여 들어가려 했다면 변신이 형세상 막고 금지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만, 이 길이 한번 열리면 후환이 가볍지 않은 것이 과연 성상의 분부와 같습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경략에게 자문을 보내게 하여 막고 금하는 것이 무방하겠으나, 다만 중국 관리의 행동거지를 지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연이어서 자문을 보내는 것은 일이 번거롭습니다. 전의 비망기에서, 호인(胡人)이 중국 사람의 옷차림으로 변장하고 나온다면 우리 나라의 근심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으로 이경전이 갔을 때에 경략과 의논하여 정하고자 하였었습니다. 지금 또한 이 뜻으로 경전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 경략을 만나 말씀드려 결정지어 오게 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조종조 2백여 년 이래로 무릇 여러 중국 관원들이 출입하거나 왕래할 때는 다 압록강 길을 경유하였으니, 이번에 우 차관(于差官)이 창성을 경유하여 서둘러 돌아간 것은 극히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의외의 간첩이 혹 이 길을 경유하여 다니는 일이 없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 관계된 바가 극히 중하니 이 같은 일을 어찌 다만 경략을 두려워해서 자문을 보내어 금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경전이 비록 한번 가서 진언하더라도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자문에 자세히 곡진하게 기록하여 보내서 이전과 같이 경전으로 하여금 구례를 통렬히 진언하게 하는 것이 옳다. 또 창성은 중국 지역과 매우 가까운데 부사 이응기(李應麒)는 노련한 자가 아니니 응기는 관서 모읍의 수령으로 옮겨 제수하고 창성은 당상 무신 가운데서 용맹스럽고 건장하며 계려가 있는 사람을 극히 가려서 차출하여 보내는 것이 사기(事機)에 꼭 맞을 것 같다. 본사가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중국인이 창성을 지나 들어간 것은 극히 놀라운 일이니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지금 안응형(安應亨)의 장계를 보니, 경략 차관이 돌아가는 길이 급해서 창성을 경유하여 강을 건너서 곧바로 관전(寬奠)을 향하였는데 부사 등이 개유하며 막았으나 듣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피차의 경계가 절연히 따로 있어서 금법을 어기며 출입하지 못하게 한 것은 대개 의외의 일이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차관이 만약 억지로 이 길을 경유하여 들어가려 했다면 변신이 형세상 막고 금지시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만, 이 길이 한번 열리면 후환이 가볍지 않은 것이 과연 성상의 분부와 같습니다. 승문원으로 하여금 경략에게 자문을 보내게 하여 막고 금하는 것이 무방하겠으나, 다만 중국 관리의 행동거지를 지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연이어서 자문을 보내는 것은 일이 번거롭습니다.
전의 비망기에서, 호인(胡人)이 중국 사람의 옷차림으로 변장하고 나온다면 우리 나라의 근심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으로 이경전이 갔을 때에 경략과 의논하여 정하고자 하였었습니다. 지금 또한 이 뜻으로 경전으로 하여금 말을 잘 만들어 경략을 만나 말씀드려 결정지어 오게 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조종조 2백여 년 이래로 무릇 여러 중국 관원들이 출입하거나 왕래할 때는 다 압록강 길을 경유하였으니, 이번에 우 차관(于差官)이 창성을 경유하여 서둘러 돌아간 것은 극히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의외의 간첩이 혹 이 길을 경유하여 다니는 일이 없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 관계된 바가 극히 중하니 이 같은 일을 어찌 다만 경략을 두려워해서 자문을 보내어 금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경전이 비록 한번 가서 진언하더라도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자문에 자세히 곡진하게 기록하여 보내서 이전과 같이 경전으로 하여금 구례를 통렬히 진언하게 하는 것이 옳다.
또 창성은 중국 지역과 매우 가까운데 부사 이응기(李應麒)는 노련한 자가 아니니 응기는 관서 모읍의 수령으로 옮겨 제수하고 창성은 당상 무신 가운데서 용맹스럽고 건장하며 계려가 있는 사람을 극히 가려서 차출하여 보내는 것이 사기(事機)에 꼭 맞을 것 같다. 본사가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7월 2일 무자
기익헌(奇益獻)을 경상우도로, 원수남(元秀男)을 공청도로, 박유헌(朴由憲)을 전라 우수영으로, 조양부(趙良傅)를 경상 우병영으로, 이대남(李大男)을 경상좌도로 나눠 보내서 배 만든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헌납 홍요검(洪堯儉)이 아뢰기를, "지금 조용히 조섭하고 계신데 우러러 번거롭게 아뢰니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다만 신이 평소에 질병이 많았는데 지난번에 옥당의 관원으로 있을 때에는 각기병을 앓아서 거의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났고 본직에 들어와서도 이전의 병 증세가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정고(呈告)하려고 하였으나 지금은 언관이 병으로 사직할 수 있는 때가 아닌지라 억지로 봉직한 것이 이미 한 달을 넘었습니다. 지난달 18일부터 종독(腫毒)이 재발하여 부은 것이 날로 심해지는 데다 서증(暑症)이 겸하여 생겨서 병세가 극히 위중합니다. 그래서 상께서 인경궁에 거둥할 때 수행하지 못했는데 몸은 비록 병에 걸렸으나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여 잠시 병이 좀 나아지길 기다려서 장차 인피하려 하였습니다. 21일에 삼가 양사가 인피한 말을 보고 곧 같이 인피하고자 했으나 병세가 위태로워 움직일 수 없었기에 병이 조금 나으면 물러나 인피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니 많은 관원이 인피한 것을 여러 날 계류해 둘 수도 없는 형편이라 신의 일이 이에 극히 낭패스러웠습니다. 부득이 여러 가지를 무릅쓰고 정고(呈告)하고 마땅히 조리하고 곧 출사하려 했는데, 비단 신병이 나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열세살 된 외아들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아비된 마음에 기세가 꺾이고 슬픔이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비로소 부축을 받아 출사하였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형세가 그대로 직위에 있기 어려우니 신을 체직시키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지금 조용히 조섭하고 계신데 우러러 번거롭게 아뢰니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다만 신이 평소에 질병이 많았는데 지난번에 옥당의 관원으로 있을 때에는 각기병을 앓아서 거의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났고 본직에 들어와서도 이전의 병 증세가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정고(呈告)하려고 하였으나 지금은 언관이 병으로 사직할 수 있는 때가 아닌지라 억지로 봉직한 것이 이미 한 달을 넘었습니다. 지난달 18일부터 종독(腫毒)이 재발하여 부은 것이 날로 심해지는 데다 서증(暑症)이 겸하여 생겨서 병세가 극히 위중합니다.
그래서 상께서 인경궁에 거둥할 때 수행하지 못했는데 몸은 비록 병에 걸렸으나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여 잠시 병이 좀 나아지길 기다려서 장차 인피하려 하였습니다. 21일에 삼가 양사가 인피한 말을 보고 곧 같이 인피하고자 했으나 병세가 위태로워 움직일 수 없었기에 병이 조금 나으면 물러나 인피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니 많은 관원이 인피한 것을 여러 날 계류해 둘 수도 없는 형편이라 신의 일이 이에 극히 낭패스러웠습니다. 부득이 여러 가지를 무릅쓰고 정고(呈告)하고 마땅히 조리하고 곧 출사하려 했는데, 비단 신병이 나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열세살 된 외아들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아비된 마음에 기세가 꺾이고 슬픔이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비로소 부축을 받아 출사하였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형세가 그대로 직위에 있기 어려우니 신을 체직시키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생원 이국량(李國亮) 등이 상소하여 폐출하는 일을 속히 완결하기를 청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방백(方伯)의 소임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교화를 펴고 풍속을 살피며 수령이 정치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살펴 승진시키거나 좌천시키는 것이니, 외관(外官)이라 하지만 누구나 제수될 수 있는 직위가 아닙니다. 강원 감사 김존경(金存敬)은 품계는 비록 높으나 위인이 어리석은 하류로서 결코 일도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근일에 중국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면서 탐욕스럽고 비루한 일을 많이 하여 신의립(辛義立)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본직에 제수되어서는 물의가 자자한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한번도 만나본 일 없는 대관의 집에 편복으로 가서 방문하여 그 뜻을 탐색하고 시험하였으니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함이 이처럼 극심한 데 이르렀습니다. 명하여 파직시키소서. 군사를 일으킬 때에 크게 근심할 것은 장수가 사졸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사졸이 장수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일을 망치는 데 이르는 것입니다. 본도의 장수는 마땅히 평소에 어루만지던 군사를 이끌고서 전장에 나가야 할 것인데 신들이 삼가 비국에 내린 전교를 듣건대, 다른 사람으로 부원수를 삼아서 그 무리를 대신 거느리게 하여 들여 보낸다고 하니, 장수가 사졸을 알지 못하고 사졸이 장수를 알지 못하여 바로 병가의 금기를 범하는 것입니다. 본도 병사(兵使)로 하여금 스스로 그 군사를 거느리고 여러 장수와 더불어 일시에 함께 나아가게 하여 하여금 적진에 임하여 피하기를 꾀하는 습속이 없어지도록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방백(方伯)의 소임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교화를 펴고 풍속을 살피며 수령이 정치를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살펴 승진시키거나 좌천시키는 것이니, 외관(外官)이라 하지만 누구나 제수될 수 있는 직위가 아닙니다. 강원 감사 김존경(金存敬)은 품계는 비록 높으나 위인이 어리석은 하류로서 결코 일도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근일에 중국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면서 탐욕스럽고 비루한 일을 많이 하여 신의립(辛義立)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본직에 제수되어서는 물의가 자자한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한번도 만나본 일 없는 대관의 집에 편복으로 가서 방문하여 그 뜻을 탐색하고 시험하였으니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함이 이처럼 극심한 데 이르렀습니다. 명하여 파직시키소서.
군사를 일으킬 때에 크게 근심할 것은 장수가 사졸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사졸이 장수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일을 망치는 데 이르는 것입니다. 본도의 장수는 마땅히 평소에 어루만지던 군사를 이끌고서 전장에 나가야 할 것인데 신들이 삼가 비국에 내린 전교를 듣건대, 다른 사람으로 부원수를 삼아서 그 무리를 대신 거느리게 하여 들여 보낸다고 하니, 장수가 사졸을 알지 못하고 사졸이 장수를 알지 못하여 바로 병가의 금기를 범하는 것입니다. 본도 병사(兵使)로 하여금 스스로 그 군사를 거느리고 여러 장수와 더불어 일시에 함께 나아가게 하여 하여금 적진에 임하여 피하기를 꾀하는 습속이 없어지도록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대사헌 남근, 대사간 윤인, 집의 임건(林健), 사간 신광업(辛光業), 장령 한명욱(韓明勖)·한영(韓詠), 지평 신칙(申恜)·남명우(南溟羽), 정언 이원여(李元輿)·서국정(徐國楨)이 와서 아뢰기를, "근래 국기(國忌)로 인하여 오랫동안 대론(大論)을 정지하였습니다. 절목을 내리는 일이 하루가 급한데 이토록 지연시켜 인심이 해이해지고 사의(邪議)가 점점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자(臣子)로서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가 아직도 서궁에 거처하고 있으며 호위도 전과 같고 진헌하는 것도 전과 같으니, 고금 천하에 어찌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스스로 천륜을 끊어버리고서도 이같이 명예와 지위를 보존할 수 있는 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변방의 근심이 매우 급하고 인심이 불안해 하고 의심스럽게 여기니 일찍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게 될 것입니다. 급히 절목을 내리셔서 묘당으로 하여금 미진한 조목을 더 정하게 하여 폐출하는 일을 완결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러한 때 또 이미 진언했던 불필요한 논의로 번거롭고 시끄럽게 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양사의 뜻을 알 수 없다. 번거롭게 진언하지 말라." 하였다.
"근래 국기(國忌)로 인하여 오랫동안 대론(大論)을 정지하였습니다. 절목을 내리는 일이 하루가 급한데 이토록 지연시켜 인심이 해이해지고 사의(邪議)가 점점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자(臣子)로서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가 아직도 서궁에 거처하고 있으며 호위도 전과 같고 진헌하는 것도 전과 같으니, 고금 천하에 어찌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스스로 천륜을 끊어버리고서도 이같이 명예와 지위를 보존할 수 있는 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변방의 근심이 매우 급하고 인심이 불안해 하고 의심스럽게 여기니 일찍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게 될 것입니다. 급히 절목을 내리셔서 묘당으로 하여금 미진한 조목을 더 정하게 하여 폐출하는 일을 완결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러한 때 또 이미 진언했던 불필요한 논의로 번거롭고 시끄럽게 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양사의 뜻을 알 수 없다. 번거롭게 진언하지 말라."
하였다.
홍문관 수찬 이강(李茳)·이모(李慕), 부수찬 최호(崔濩)·한정국(韓定國) 등이 상차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들이 삼가 비답을 보건대 ‘내 뜻은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으니 평상시처럼 회복될 동안 이 논의를 잠시 정지하라.’고 전교하셨으므로 신들은 당혹스럽습니다. 무릇 서궁은 신민에 대하여 의리에서 볼 때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인 데도 존호와 분조(分朝)와 공헌(貢獻)과 보책(寶冊)이 전일(前日)과 같으니, 큰 의리가 분명해지려다가 분명해지지 못하고 곧바른 논의가 장차 행해지려다 행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래 지연되어 아직도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론(邪論) 때문입니다. 오늘날 변경의 소식이 급함을 알리고 국사가 날로 잘못되어가니 돌연히 의외의 변이 생긴다면 성상께서 장차 어느 곳에 계시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인륜을 멸하고 은의를 망각하고 자기 소생을 세우기를 꾀하여 하늘이 열어준 바를 반드시 바꾸고자 하였으니 그렇다면 하늘이 서궁을 폐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저주하여 흉한 일을 행하고 능침을 욕되게 하여 신이 주인삼은 바를 반드시 죽이고자 하였으니, 그렇다면 신령이 서궁을 폐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의리를 들어 죄를 성토하고 임금의 원수를 제거하기를 청하는 것이 상하가 말이 같고 원근에서 다 분하게 여기니, 사람이 서궁을 폐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하늘이 폐하고 신령이 폐하고 사람도 폐했는데 성상께서는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이토록 고심하며 망설이시는 것입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쾌히 공론을 따라 급히 폐출하는 일을 완결하셔서 신령과 백성들의 분함을 위로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신들이 삼가 비답을 보건대 ‘내 뜻은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으니 평상시처럼 회복될 동안 이 논의를 잠시 정지하라.’고 전교하셨으므로 신들은 당혹스럽습니다.
무릇 서궁은 신민에 대하여 의리에서 볼 때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인 데도 존호와 분조(分朝)와 공헌(貢獻)과 보책(寶冊)이 전일(前日)과 같으니, 큰 의리가 분명해지려다가 분명해지지 못하고 곧바른 논의가 장차 행해지려다 행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래 지연되어 아직도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론(邪論) 때문입니다. 오늘날 변경의 소식이 급함을 알리고 국사가 날로 잘못되어가니 돌연히 의외의 변이 생긴다면 성상께서 장차 어느 곳에 계시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인륜을 멸하고 은의를 망각하고 자기 소생을 세우기를 꾀하여 하늘이 열어준 바를 반드시 바꾸고자 하였으니 그렇다면 하늘이 서궁을 폐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저주하여 흉한 일을 행하고 능침을 욕되게 하여 신이 주인삼은 바를 반드시 죽이고자 하였으니, 그렇다면 신령이 서궁을 폐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의리를 들어 죄를 성토하고 임금의 원수를 제거하기를 청하는 것이 상하가 말이 같고 원근에서 다 분하게 여기니, 사람이 서궁을 폐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하늘이 폐하고 신령이 폐하고 사람도 폐했는데 성상께서는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이토록 고심하며 망설이시는 것입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쾌히 공론을 따라 급히 폐출하는 일을 완결하셔서 신령과 백성들의 분함을 위로하소서."
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본주(本州)는 호남의 큰 고을로서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믿고 의지할 만한 곳이니, 군병을 조련하고 성지(城池)를 수리하고 군량을 쌓아두고 기계를 갖추는 등의 일을 각별히 마음을 다해 착실히 거행하라고 나주 목사 임장(任章)에게 이르라."
"본주(本州)는 호남의 큰 고을로서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믿고 의지할 만한 곳이니, 군병을 조련하고 성지(城池)를 수리하고 군량을 쌓아두고 기계를 갖추는 등의 일을 각별히 마음을 다해 착실히 거행하라고 나주 목사 임장(任章)에게 이르라."
전교하였다. "내가 《정토록(征討錄)》을 보건대 도원수의 종사관이 혹 5, 6인에 이르렀으니 종사관 몇 명을 조종조의 예에 따라 가려 뽑아서 데려가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내가 《정토록(征討錄)》을 보건대 도원수의 종사관이 혹 5, 6인에 이르렀으니 종사관 몇 명을 조종조의 예에 따라 가려 뽑아서 데려가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왕이 선정전에 나아가 검찰사 심돈(沈惇)을 인견하였다. 우부승지 정규(鄭逵), 가주서 정양필(鄭良弼), 기사관 안응로(安應魯)·신게(申垍)가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천조가 징병하는 일은 어떠한가?" 하니, 심돈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가 오랑캐의 소굴과 가까운 까닭에 천조에서 오랑캐를 정벌하러 징병하는 일을 말할 때마다 우리 나라를 책망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지원 군대를 들여보내고자 하나, 당초의 주문에 기꺼이 응하려 하지 않는 기색을 현저히 드러냈던 까닭에 깊이 근심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박정길(朴鼎吉)이 가는 것을 잠시 정지하고 자문을 고쳐 보낸다면 이로부터 물정이 기뻐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이 적들이 양병한 지가 거의 40년 가까이 되니 비록 천하의 군사로 대적하더라도 승패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니, 심돈이 아뢰기를, "저번에 천조의 통보를 보니 또한 어렵게 여겼습니다. 비록 천조의 군사로도 섬멸을 기약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옛날에 건주위(建州衛) 이만주(李滿住)를 정벌할 때 우리 나라가 윤필상(尹弼商)·강순(康純)·어유소(魚有沼)·남이(南怡) 등을 장수로 삼았었다. 모르겠지만 지금도 이러한 장수들이 있는가?" 하니, 심돈이 아뢰기를, "이 적은 이만주와는 같지 않습니다. 이만주는 이 오랑캐들만큼 강하지 못했습니다. 이 적이 천조와 서로 겨루고 있으니 비록 한 부대가 우리의 변경을 침범하더라도 필시 깊이 들어올 리는 없습니다. 지금의 징병에 군사를 보내지 않으면 또 천조의 견책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강도(江都)를 보장(保障)으로 삼고자 하여 이미 요량해두었는데 강도 외에 보장으로서 합당한 곳이 어디인가?" 하니, 심돈이 아뢰기를, "강도는 땅이 넓고 수륙으로 길이 통하였고 종사(宗社) 판적(版籍)과 예악(禮樂) 문물(文物)도 갖출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충청 수영이 지세가 가장 좋고, 호남은 부안이 강화와 맥로가 서로 통하여 있으니 또한 예비할 만한 곳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강도는 수륙로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가. 강도로부터 수영(水營)으로 가려면 어느 길을 경유하는가?" 하니, 심돈이 아뢰기를, "강도로 가는 육행은 양천(陽川)에서 출발하여 통진(通津)을 거쳐 갑곶(甲串)에 이르며, 배를 타면 한강을 따라 김포·양천·통진을 지나서 연미정(燕尾亭)에 이릅니다. 강도에서 호서로 향하는 육행은 진위(振威)·수원(水原)·평택(平澤)·덕산(德山)을 경유하여 수영에 이르며, 뱃길로는 안흥량(安興梁)을 지나서 면천에 이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강도는 이미 헤아려 처리하였고 강도로부터 바다로 내려가는 것은 어떨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심돈이 아뢰기를, "일이 만약 이같은 데 이르면 항해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국사의 어려움과 위태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강도는 호종하는 군사들과 피난하는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니, 심돈이 아뢰기를, "만약 뱃사공의 지휘가 없다면 진흙땅과 밀물 썰물에 절대로 뛰어 넘어 건널 수가 없습니다. 또 오랑캐의 장기는 다만 말 달리기인데 그 장기를 버리고 바다를 건너는 것을 무엇 때문에 하겠습니까. 더구나 강도는 여러 섬들이 총총히 포열돼 있어 서로 도와서 성원할 수 있습니다. 진강 목장(鎭江牧場)을 백성들에게 경작하여 먹고 살 수 있도록 한다면 다만 도성 사민(士民)을 다 안집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내(畿內) 백성을 다 들어와 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경이 지금 내려가서 형세를 살펴보고서 좋은 쪽으로 처치하는 것이 좋겠다. 또 강도가 비록 보장이라 하지만 군기·군량을 미리 조처하여 갖춘 연후에야 보장이라 할 수 있다. 축성하는 공력이 반드시 어려울 것이니 목책을 먼저 만들어 세워서 난리에 임하여 의귀(依歸)할 곳으로 삼아야 한다." 하였다. 심돈이 아뢰기를, "전에 하교를 보니, 목장을 백성들에게 경작하도록 허락하는 일을 어렵게 여겼습니다. 두장(豆場)은 말을 기를 수 있고 진강장은 경작할 만하니 지금 비록 백성들이 경작하도록 허락하였다가 때를 기다려 다시 말을 기르도록 하여도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강도가 비록 보장이라 하지만 서북 관방도 불가불 갖춰 놓아야 하며 경성을 수어하는 일도 또한 헤아려 처리하여야 하는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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