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병술
병술149) 정원이 아뢰기를, "근래에 직무를 맡은 관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일을 회피하려고 청탁을 넣어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 전후로 잇따랐으니, 이미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요즈음 경략(經略)이 우리 나라에서 보내 주는 전마(戰馬)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자문(咨文)을 수령해 가지고 갈 재자관(齎咨官)이 교체된 것이 무려 7명이나 되어 일에 차질이 생기고 지체되었으니, 그들이 필시 의아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 일은 무기를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일도 아닌데 이와 같이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나랏일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조로 하여금 병에 걸린 향생(鄕生), 시종신(侍從臣), 병조 낭관을 제외한 그 밖의 사람들 가운데 합당한 자를 차출해서 오늘내일 안으로 출발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註 149] 병술 : 원문에 정사(丁巳)로 되어 있는 것을 바로 잡았다.
정원이 아뢰기를, "근래에 직무를 맡은 관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일을 회피하려고 청탁을 넣어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 전후로 잇따랐으니, 이미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요즈음 경략(經略)이 우리 나라에서 보내 주는 전마(戰馬)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자문(咨文)을 수령해 가지고 갈 재자관(齎咨官)이 교체된 것이 무려 7명이나 되어 일에 차질이 생기고 지체되었으니, 그들이 필시 의아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 일은 무기를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일도 아닌데 이와 같이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나랏일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조로 하여금 병에 걸린 향생(鄕生), 시종신(侍從臣), 병조 낭관을 제외한 그 밖의 사람들 가운데 합당한 자를 차출해서 오늘내일 안으로 출발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註 149] 병술 : 원문에 정사(丁巳)로 되어 있는 것을 바로 잡았다.
"근래에 직무를 맡은 관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일을 회피하려고 청탁을 넣어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 전후로 잇따랐으니, 이미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요즈음 경략(經略)이 우리 나라에서 보내 주는 전마(戰馬)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자문(咨文)을 수령해 가지고 갈 재자관(齎咨官)이 교체된 것이 무려 7명이나 되어 일에 차질이 생기고 지체되었으니, 그들이 필시 의아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 일은 무기를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일도 아닌데 이와 같이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나랏일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조로 하여금 병에 걸린 향생(鄕生), 시종신(侍從臣), 병조 낭관을 제외한 그 밖의 사람들 가운데 합당한 자를 차출해서 오늘내일 안으로 출발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이시언(李時言)에 대해서 파직시키거나 체차하라고만 죄율을 단안함으로써 여론이 모두 비난하고 있다는 이유로 양사가 인피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비밀의 일을 입계하고 【서궁(西宮)을 폄손하는 것에 관한 절목을 속히 묘당에 내려 미진한 조목을 첨가해 결정함으로써 폐출하는 형전을 마무리 짓기를 청한 것으로, 아래도 마찬가지이다.】 또 아뢰어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에 대해 빨리 명을 내려 법에 따라 죄를 결정하라고 청했는데,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비밀의 일에 대해서는 비답을 봉해서 내렸다. 재차 아뢰고 세 번째 아뢰었으나, 모두 따르지 않았다.
합계하여 아뢰기를, "이시언은 교만하고 사나운 일개 무신에 지나지 않는 자인데, 숭품(崇品)의 반열을 훔쳐 차지하여 병권을 가지고 놀면서 난을 진압할 생각은 없이 항상 화를 일으킬 마음만 품고 있었습니다. 역적 허균이 일을 일으켰다면 이와 같은 무리가 어찌 그의 형세를 돕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외부의 말이 자자한 게 마땅합니다. 비국의 여러 재신(宰臣)들이 은연중 국청을 무함하였는데, 시언은 어떤 작자이길래 자신 또한 대신과 양사를 공격하는 데에 참여한단 말입니까. 삼사의 논핵이 조만간 터질 상황인데 조금도 징계하여 조심하지도 않고 대죄도 하지 않으니, 그의 조정을 멸시하고 공론을 무시하면서 방자하게 날뛰는 작태가 이미 환히 드러난 것입니다. 요즈음과 같은 시기에 서울의 친위병을 어떻게 간교한 이 자의 손에 맡겨둘 수 있겠습니까. 비록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던 석수신(石守信)이었지만 송 태조(宋太祖)는 그에게 병권을 주지 않았는데150) , 하물며 늙어빠진 이 무부는 십여 년이나 병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은퇴할 줄을 모른 채 집안에 무기를 보관하고 또 왜인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 마음의 소재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관작을 삭탈할 것을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시언을 어찌 굳이 삭탈할 필요가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註 150] 비록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던 석수신(石守信)이었지만 송 태조(宋太祖)는 그에게 병권을 주지 않았는데 : 송 태조가 천하를 평정한 뒤 공이 큰 공신들에게 병권을 내놓고 은퇴하여 부귀나 누리라고 권하자 석수신 등 무신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그 다음날 병권을 내놓고 물러났음. 《송사(宋史)》 권250 석수신열전(石守信列傳).
"이시언은 교만하고 사나운 일개 무신에 지나지 않는 자인데, 숭품(崇品)의 반열을 훔쳐 차지하여 병권을 가지고 놀면서 난을 진압할 생각은 없이 항상 화를 일으킬 마음만 품고 있었습니다. 역적 허균이 일을 일으켰다면 이와 같은 무리가 어찌 그의 형세를 돕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외부의 말이 자자한 게 마땅합니다.
비국의 여러 재신(宰臣)들이 은연중 국청을 무함하였는데, 시언은 어떤 작자이길래 자신 또한 대신과 양사를 공격하는 데에 참여한단 말입니까. 삼사의 논핵이 조만간 터질 상황인데 조금도 징계하여 조심하지도 않고 대죄도 하지 않으니, 그의 조정을 멸시하고 공론을 무시하면서 방자하게 날뛰는 작태가 이미 환히 드러난 것입니다. 요즈음과 같은 시기에 서울의 친위병을 어떻게 간교한 이 자의 손에 맡겨둘 수 있겠습니까. 비록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던 석수신(石守信)이었지만 송 태조(宋太祖)는 그에게 병권을 주지 않았는데150) , 하물며 늙어빠진 이 무부는 십여 년이나 병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은퇴할 줄을 모른 채 집안에 무기를 보관하고 또 왜인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 마음의 소재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관작을 삭탈할 것을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시언을 어찌 굳이 삭탈할 필요가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이광의 일에 대해서 아뢰니, 답하기를,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여 사사로운 싸움이 나날이 깊어만 가는구나. 광의 일은 재촉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여 사사로운 싸움이 나날이 깊어만 가는구나. 광의 일은 재촉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백관이 다시 아뢰어, 이광의 일에 대해서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익위사가 역적 이광에 대해 율을 적용하라고 청했는데, 이미 조정에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홍문관이 비밀리에 차자를 올려 역적 이광에 대해 율을 적용하라고 청했는데,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재차 차자를 올렸으나, 따르지 않았다.
정원이 아뢰기를, "판의금이 국청에 나왔다가 도로 나갔고, 도승지 한찬남도 나갔습니다." 하니,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판의금이 국청에 나왔다가 도로 나갔고, 도승지 한찬남도 나갔습니다."
하니,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병조 판서 유희분이 아뢰기를, "삼가 이이첨이 진달한 계사를 보건대, 전적으로 소신을 공격하면서 언어를 매우 빈틈없이 구사하였습니다. 신이 만약 조목조목 밝혀 변명한다면 쟁송하는 듯하겠지만, 만약 묵묵히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겠기에, 신은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그 대강이나마 진술하겠습니다. 국운이 장구하여 역적의 우두머리를 잡았으니 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캐어내 법에 따라 시원스레 시행하는 것은 옥사의 체모에 있어서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역적 허균에 있어서는 처음 국문할 때 신문하지도 않고 지레 형을 시행하였으므로 내외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에 어긋났다고 말하였습니다. 신도 이런 말을 듣고는 또한 의아하게 여겨 오다 비국에 출근해서 양사가 아뢴 내용을 처음 보았는데, 김개(金闓)·원종(元悰)·김우성(金佑成)에 대해 또 형을 시행하라고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이 나름대로 괴이하게 여겨 동료와 말하기를 ‘역적 허균을 신문하지도 않고 지레 형을 시행하여 이미 옥사의 체모를 잃었는데, 역적 허균과 친밀히 한 무리가 되었던 신문해야 할 자들을 또 신문하지 않고 지레 처단하고자 하니, 국청과 대간의 뜻을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동료의 의견도 역시 그러하였으므로 신이 감히 계사로 아뢰었던 것이니, 이는 나라의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가 옛 규례를 잃지 않게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상고해 보건대, 조종조 이래로 반드시 모든 역적에 대해서 엄하게 신문하여 자복을 받은 뒤 전형을 시행하였습니다. 역적배들이 죽음에 임박해서는 살기를 도모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지난해 신경희(申景禧)가 아무 아무가 역모를 도모했다고 고발했는데, 모두 엄하게 신문하여 죄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허균의 고변(告變)에 대해서는 제쳐두고 신문하지 않으니 너무나 온당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앞으로 나라에 역옥이 없다면 그만이겠으나 불행하게 다시 역옥이 있어 역적배들이 고변을 요청한다면 그 때에도 허균의 구례를 원용하여 묻지 않을 것입니까. 성상의 조정에 현재는 권세를 휘두르는 행신(幸臣)이 없습니다만, 불행하게 권세를 휘두르는 행신이 한 명이라도 있어 모든 고변인에 대해서 번번이 허균의 구례를 원용하여 신문하지 않게 된다면, 끝없는 폐단은 진실로 여기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신의 망령된 뜻에 이것이 염려되었기에 충심을 다 토로했던 것입니다. 중간 일의 상황에 대한 설은 더욱 이치에 가깝지 않습니다. 역적 허균을 신문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삼척 동자도 모두 그 시비를 알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자라면 누군들 울분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역적의 우두머리는 이미 끝났으나 나머지 남아 있는 같은 패거리들을 끝까지 국문하여 실정을 캐내자는 계사를 어찌 굳이 내전(內殿)의 힘을 빌린 연후에야 의견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신이 조금은 숙맥을 구분할 줄 알고 또한 풍병(風病)을 앓지도 않았으니, 이런 말은 했을 리가 없습니다. 이는 하늘에 있는 해가 내려다 보고 동료들이 모두 있으니 많은 말로 분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비국의 연명했던 관원들은 한때의 중신들이니, 일이 만약 옳지 않은 것이었다면 어찌 신의 지시에 따라 온순한 양처럼 말을 들으려고 했겠습니까. 이시언(李時言)이 비록 무신이라 하더라도 지위가 1품의 반열에 있고 이름이 비국에 끼어 있으니, 국정에 참여하여 듣는 것은 바로 그의 직분인 것입니다. 어떻게 머리를 흔들고 먼저 나갈 수 있습니까. 동참한 재신들이 많았은데 굳이 시언 한 명만을 거론하여 은연중 상의 귀를 현혹시킬 터전으로 삼으려 하니, 이른바 사람을 불측한 지경으로 빠뜨린다는 것은 과연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습니까. 역적 허균이 이른바 ‘두세 명의 재신과 수십 명의 무신’이라는 설에 있어서, 이첨은 ‘과연 누구를 지적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고, 어느 대간은 또 ‘설령 고발했다 하더라도 무사와 많이 결탁한 자가 해당할 것이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설이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신들이 허균을 신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를 크게 잃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첨은 일생 동안 나라에 몸을 바치고 십 년 동안이나 역적을 토벌하면서 그것으로 사업을 삼아 왔으니, 어찌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에 익숙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반역한 실상은 신문하지 않고 뒷말을 추후에 조장하여 사람들의 귀를 어지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입니까. 일찍이 계축년에 옥사가 있었을 때 상신 이항복이 역적 정협(鄭浹)을 선발해서 육진(六鎭)의 한 판관으로 삼았었기 때문에 대간 유활(柳活)은 항복을 역적으로 논핵하면서 무거운 죄율을 적용하고자 하였는데, 상께서 부드럽게 용납하시고 단지 말감(末減)으로 처리하셨으니, 그 당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는 엄격했다고 할 만합니다. 만약 유활이 오늘날 언로를 맡은 자리에 앉아 있다면 역적 허균이 성장한 터전에 대해서 반드시 용서하지 않고 곧장 배척하였을 것입니다. 초봄 정신(廷臣)이 복합(伏閤)하던 날, 신이 상신 한효순에게 역적 허균의 부도한 죄를 힘껏 말하였지만 시론(時論)이 힘껏 구제하였고 성상께서도 막연하게 여기고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감히 다시 귀찮게 해드리지 못하고 묵묵히 물러나왔습니다. 그 뒤 병조 판서로 있으면서 전최(殿最)할 때 신이 원종(元悰)의 이름을 보고서, 상등의 차례에 차마 두지 못하고 하등으로 심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찬집청(撰集廳)이 원종을 도로 근무시키라고 서둘러 계청했는데, 무슨 의도였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두 역적들이 역모한 상황을 신이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겠습니까. 단지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천성에서 타고났기 때문에 원한을 맺을 것을 따지지 않고 이런 경솔한 행동을 했으니, 신의 치밀하지 못했던 행동은 어리석다고 할 만합니다. 지금 일어난 역옥에 있어서 허균이 우두머리이고 원종이 심복이었는데, 허균의 첩이 허균의 역모는 벌써 삼 년이 되었다고 공초했으니, 신의 어리석은 견해가 불행하게도 적중한 것입니다. 혹시 그 당시에 허균의 도당들을 내쫓았다면 그가 비록 악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오늘날과 같은 큰 반란에까지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지난해 해주에서 옥사가 일어났을 때, 최기(崔沂)의 공초에 이름이 나왔던 사람들은 대신 이하로부터 모두 대궐문 밖에서 석고 대죄했었는데, 성상의 하교가 누차 내렸지만 역시 감히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심정이 어찌 석고 대죄를 영광으로 여겨서였겠습니까. 단지 역옥의 의리는 지극히 엄하고도 중대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단지 일의 체모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그 사이에 무슨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이첨이 국정을 잡은 것이 지금 여러 해째인데, 그가 친절하게 대해 주며 심복으로 삼은 자들은 신경희·허균·김개와 같은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허균과 김개가 증오하는 자들은 이첨 역시 배척하여 내쫓아 허균과 김개의 기세를 도왔으니, 참으로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모든 크고 작은 국정을 한 가지도 신들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은 채 조금이라도 시비를 아는 자에 대해서는 조정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신을 도리어 배척한다고 성상께 무함하였습니다. 하늘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유독 부끄럽지 않단 말입니까. 어리석은 신이 충성하고 싶은 바는 오직 나라일 뿐입니다. 흉악한 격문이 역적 허균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을 듣고 정청하던 날에 급히 죄주기를 청하다가 시휘(時諱)를 크게 건드리고 물러나왔으며, 지금은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를 바로잡고자 하다가 또 이 무리들에게 모욕을 당하였으니, 진퇴 양난의 상황이라 얼굴을 들 낯이 없습니다. 이 뒤로는 비록 역적 허균과 같은 흉악한 역적이 나온다 하더라도 신은 입을 다문 채 죽음만을 기다릴 것이니,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감정이 격하다 보니 문사가 졸렬해져 말이 조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황공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나랏일이 바야흐로 급하니 나의 뜻을 유념하여, 함께 화합하고 공경하면서 힘껏 노력하여 왕실을 안정시킴으로써 나의 바람에 부응하라." 하였다.
"삼가 이이첨이 진달한 계사를 보건대, 전적으로 소신을 공격하면서 언어를 매우 빈틈없이 구사하였습니다. 신이 만약 조목조목 밝혀 변명한다면 쟁송하는 듯하겠지만, 만약 묵묵히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겠기에, 신은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그 대강이나마 진술하겠습니다.
국운이 장구하여 역적의 우두머리를 잡았으니 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캐어내 법에 따라 시원스레 시행하는 것은 옥사의 체모에 있어서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역적 허균에 있어서는 처음 국문할 때 신문하지도 않고 지레 형을 시행하였으므로 내외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에 어긋났다고 말하였습니다. 신도 이런 말을 듣고는 또한 의아하게 여겨 오다 비국에 출근해서 양사가 아뢴 내용을 처음 보았는데, 김개(金闓)·원종(元悰)·김우성(金佑成)에 대해 또 형을 시행하라고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이 나름대로 괴이하게 여겨 동료와 말하기를 ‘역적 허균을 신문하지도 않고 지레 형을 시행하여 이미 옥사의 체모를 잃었는데, 역적 허균과 친밀히 한 무리가 되었던 신문해야 할 자들을 또 신문하지 않고 지레 처단하고자 하니, 국청과 대간의 뜻을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동료의 의견도 역시 그러하였으므로 신이 감히 계사로 아뢰었던 것이니, 이는 나라의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가 옛 규례를 잃지 않게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상고해 보건대, 조종조 이래로 반드시 모든 역적에 대해서 엄하게 신문하여 자복을 받은 뒤 전형을 시행하였습니다. 역적배들이 죽음에 임박해서는 살기를 도모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지난해 신경희(申景禧)가 아무 아무가 역모를 도모했다고 고발했는데, 모두 엄하게 신문하여 죄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허균의 고변(告變)에 대해서는 제쳐두고 신문하지 않으니 너무나 온당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앞으로 나라에 역옥이 없다면 그만이겠으나 불행하게 다시 역옥이 있어 역적배들이 고변을 요청한다면 그 때에도 허균의 구례를 원용하여 묻지 않을 것입니까. 성상의 조정에 현재는 권세를 휘두르는 행신(幸臣)이 없습니다만, 불행하게 권세를 휘두르는 행신이 한 명이라도 있어 모든 고변인에 대해서 번번이 허균의 구례를 원용하여 신문하지 않게 된다면, 끝없는 폐단은 진실로 여기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신의 망령된 뜻에 이것이 염려되었기에 충심을 다 토로했던 것입니다. 중간 일의 상황에 대한 설은 더욱 이치에 가깝지 않습니다. 역적 허균을 신문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삼척 동자도 모두 그 시비를 알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자라면 누군들 울분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역적의 우두머리는 이미 끝났으나 나머지 남아 있는 같은 패거리들을 끝까지 국문하여 실정을 캐내자는 계사를 어찌 굳이 내전(內殿)의 힘을 빌린 연후에야 의견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신이 조금은 숙맥을 구분할 줄 알고 또한 풍병(風病)을 앓지도 않았으니, 이런 말은 했을 리가 없습니다. 이는 하늘에 있는 해가 내려다 보고 동료들이 모두 있으니 많은 말로 분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비국의 연명했던 관원들은 한때의 중신들이니, 일이 만약 옳지 않은 것이었다면 어찌 신의 지시에 따라 온순한 양처럼 말을 들으려고 했겠습니까. 이시언(李時言)이 비록 무신이라 하더라도 지위가 1품의 반열에 있고 이름이 비국에 끼어 있으니, 국정에 참여하여 듣는 것은 바로 그의 직분인 것입니다. 어떻게 머리를 흔들고 먼저 나갈 수 있습니까. 동참한 재신들이 많았은데 굳이 시언 한 명만을 거론하여 은연중 상의 귀를 현혹시킬 터전으로 삼으려 하니, 이른바 사람을 불측한 지경으로 빠뜨린다는 것은 과연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습니까.
역적 허균이 이른바 ‘두세 명의 재신과 수십 명의 무신’이라는 설에 있어서, 이첨은 ‘과연 누구를 지적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고, 어느 대간은 또 ‘설령 고발했다 하더라도 무사와 많이 결탁한 자가 해당할 것이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설이 어찌 참혹하지 않습니까. 신들이 허균을 신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를 크게 잃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첨은 일생 동안 나라에 몸을 바치고 십 년 동안이나 역적을 토벌하면서 그것으로 사업을 삼아 왔으니, 어찌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에 익숙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반역한 실상은 신문하지 않고 뒷말을 추후에 조장하여 사람들의 귀를 어지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입니까. 일찍이 계축년에 옥사가 있었을 때 상신 이항복이 역적 정협(鄭浹)을 선발해서 육진(六鎭)의 한 판관으로 삼았었기 때문에 대간 유활(柳活)은 항복을 역적으로 논핵하면서 무거운 죄율을 적용하고자 하였는데, 상께서 부드럽게 용납하시고 단지 말감(末減)으로 처리하셨으니, 그 당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는 엄격했다고 할 만합니다. 만약 유활이 오늘날 언로를 맡은 자리에 앉아 있다면 역적 허균이 성장한 터전에 대해서 반드시 용서하지 않고 곧장 배척하였을 것입니다.
초봄 정신(廷臣)이 복합(伏閤)하던 날, 신이 상신 한효순에게 역적 허균의 부도한 죄를 힘껏 말하였지만 시론(時論)이 힘껏 구제하였고 성상께서도 막연하게 여기고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감히 다시 귀찮게 해드리지 못하고 묵묵히 물러나왔습니다. 그 뒤 병조 판서로 있으면서 전최(殿最)할 때 신이 원종(元悰)의 이름을 보고서, 상등의 차례에 차마 두지 못하고 하등으로 심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찬집청(撰集廳)이 원종을 도로 근무시키라고 서둘러 계청했는데, 무슨 의도였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두 역적들이 역모한 상황을 신이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겠습니까. 단지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천성에서 타고났기 때문에 원한을 맺을 것을 따지지 않고 이런 경솔한 행동을 했으니, 신의 치밀하지 못했던 행동은 어리석다고 할 만합니다. 지금 일어난 역옥에 있어서 허균이 우두머리이고 원종이 심복이었는데, 허균의 첩이 허균의 역모는 벌써 삼 년이 되었다고 공초했으니, 신의 어리석은 견해가 불행하게도 적중한 것입니다. 혹시 그 당시에 허균의 도당들을 내쫓았다면 그가 비록 악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오늘날과 같은 큰 반란에까지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지난해 해주에서 옥사가 일어났을 때, 최기(崔沂)의 공초에 이름이 나왔던 사람들은 대신 이하로부터 모두 대궐문 밖에서 석고 대죄했었는데, 성상의 하교가 누차 내렸지만 역시 감히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심정이 어찌 석고 대죄를 영광으로 여겨서였겠습니까. 단지 역옥의 의리는 지극히 엄하고도 중대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단지 일의 체모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그 사이에 무슨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이첨이 국정을 잡은 것이 지금 여러 해째인데, 그가 친절하게 대해 주며 심복으로 삼은 자들은 신경희·허균·김개와 같은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허균과 김개가 증오하는 자들은 이첨 역시 배척하여 내쫓아 허균과 김개의 기세를 도왔으니, 참으로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모든 크고 작은 국정을 한 가지도 신들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은 채 조금이라도 시비를 아는 자에 대해서는 조정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신을 도리어 배척한다고 성상께 무함하였습니다. 하늘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유독 부끄럽지 않단 말입니까.
어리석은 신이 충성하고 싶은 바는 오직 나라일 뿐입니다. 흉악한 격문이 역적 허균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을 듣고 정청하던 날에 급히 죄주기를 청하다가 시휘(時諱)를 크게 건드리고 물러나왔으며, 지금은 옥사를 처리하는 체모를 바로잡고자 하다가 또 이 무리들에게 모욕을 당하였으니, 진퇴 양난의 상황이라 얼굴을 들 낯이 없습니다. 이 뒤로는 비록 역적 허균과 같은 흉악한 역적이 나온다 하더라도 신은 입을 다문 채 죽음만을 기다릴 것이니,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감정이 격하다 보니 문사가 졸렬해져 말이 조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황공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나랏일이 바야흐로 급하니 나의 뜻을 유념하여, 함께 화합하고 공경하면서 힘껏 노력하여 왕실을 안정시킴으로써 나의 바람에 부응하라."
하였다.
9월 2일 정해
국청에 전교하였다. "조정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역적을 국문하는 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사로운 싸움이 먼저 일어나니, 조개와 물총새가 서로 물고 놓지 않는 상황이라 이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내 가슴이 매우 아프다. 만약 진계할 일이 있으면 즉시 입계하고 물러가지 말라."
"조정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역적을 국문하는 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사로운 싸움이 먼저 일어나니, 조개와 물총새가 서로 물고 놓지 않는 상황이라 이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내 가슴이 매우 아프다. 만약 진계할 일이 있으면 즉시 입계하고 물러가지 말라."
판의금 이이첨이 아뢰기를, "지난번 신이 심정을 하소연한 계사는 참으로 성상의 하교에 감격해서 화합하려는 본뜻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금 유희분이 또 묵은 원한을 찾아 내어 신을 무함하면서 ‘지난날의 계사는 터럭만큼도 배척하려는 뜻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였습니다만, 성상의 밝은 감식이 비추고 있으며 귀신이 밝게 늘어서 있는데 그 누구를 속이겠습니까. 그날 희분이 말한 것을 여러 재신들이 따르지 않자 희분은 내전(內殿)의 편지라고 거짓말하면서 끄집어내어 보여 주었는데, 말투와 안색이 모두 사나웠으므로 재신들이 이 때문에 부득이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희분은 지금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늘에 떠있는 해가 내려다 보면서 증명하고 있으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계축년의 역옥에서 이항복이 역적 정협을 뽑아 썼기 때문에 유활이 항복을 논핵했다. 유활이 만약 오늘날 살아 있다면 역적 허균이 성장한 터전에 대해서 반드시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했고, 또 ‘이첨이 친절하게 대해 주고 심복으로 삼은 자들은 모두 신경희·허균·김개와 같은 무리들이다.’고 하였습니다. 허균은 허성(許筬)의 아우로 신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자입니다. 일찍이 경자년에 헌국에게 아첨하여 붙어서 신을 교묘하게 무함했으므로 그 마음의 변화 무쌍함에 대해서 신은 익숙히 알고 있습니다. 대론이 발의된 뒤 자신의 뜻으로 흉당들을 취합하여 최심(崔沁)과 이송수(李松壽) 등으로 하여금 소장을 올려 갖은 방법을 다해 신을 죄에 얽어매려 했으며, 또 서궁(西宮)을 비호한다고 하며 신을 모함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아는 사람 및 삼사와 함께 의논해서 허균을 탄핵했으니, 이것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입니다. 김개는 신이 허균과 절교한 뒤에도 허균을 위해 신의 동정을 살폈는데, 역적 허균이 김개에게 보낸 편지에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원종은 신이 평소 아는 사람이 아닌데, 근래 찬집청 낭청으로 때때로 공사(公事)를 인해서 왕래했을 뿐이니, 무슨 서로 절친할 리가 있겠습니까. 경희는 아비의 공로로 직을 이어받아 호조 참판의 의망에 끼이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그 당시 이조 판서인 삼촌 숙부 한효순(韓孝純)이 한 짓입니다. 지난번 명국이 고변하면서 허다하게 신을 무함한 말에 대해서는 곽영(郭瓔)과 대질하던 때 모두 하나하나 밝혔는데, 현재 추안(推案)에 남아 있습니다. 명국과 같은 흉악한 자도 오히려 사실대로 공초할 줄 아는데, 사대부의 반열에 있는 자로서 명국을 빌어 신을 무함하고자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유영경을 천거하여 발탁한 자가 있고 김제남을 천거하여 발탁한 자가 있으며, 영경과 제남에게 천거 발탁된 자가 또한 많이 있는데, 어찌 이것을 가지고 사람을 무함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역적 허균 등은 본래 신을 통해 천거 발탁된 것이 아니라 단지 변무(辨誣)한 한 가지 일로 스스로 경의 지위에 오른 것입니다. 지금 그런데 정협을 천거한 일을 이끌어 신을 마구 공격해대니, 더욱 놀랍습니다. 그리고 희분은 또, 한찬남이 역적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왔는데도 석고 대죄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화를 전가할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비국의 여러 재신들 가운데도 일찍이 윤기(尹琦)의 공초에 나온 자가 있고 김응벽(金應璧)의 공초에 나온 자가 있는데, 그 당시 석고 대죄한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남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기와는 다르게 한단 말입니까. 정문익(鄭文翼) 또한 어떤 사람에게 비호를 받아 전랑이 되었으며 몸소 추대했다는 지목을 받기까지 했는데, 곤장 한 대 때리지 않고 한 마디도 질문하지 않은 채 목숨을 보존하여 편안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신이 희분에게 무함을 당한 것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만 신은 한 번도 먼저 일으키지 않았는데, 이 역변을 틈타 또 화를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군부의 전교가 있었으므로 이제는 좀 멈추어야 하겠습니다만, 이런 망극한 일을 당하고는 묵묵히 참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역적을 토벌하는 일이 바야흐로 급한 때에 누차 저의 심정을 번거롭게 아뢰니, 불초한 자식이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드리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부르시는 명이 세 번이나 이르렀으므로 황공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내용은 모두 알았다. 어찌 서로 다툴 필요가 있겠는가. 경은 안심하고 대죄하지 말라. 그리고 다시 더욱 직임을 살피라." 하였다.
"지난번 신이 심정을 하소연한 계사는 참으로 성상의 하교에 감격해서 화합하려는 본뜻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금 유희분이 또 묵은 원한을 찾아 내어 신을 무함하면서 ‘지난날의 계사는 터럭만큼도 배척하려는 뜻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였습니다만, 성상의 밝은 감식이 비추고 있으며 귀신이 밝게 늘어서 있는데 그 누구를 속이겠습니까.
그날 희분이 말한 것을 여러 재신들이 따르지 않자 희분은 내전(內殿)의 편지라고 거짓말하면서 끄집어내어 보여 주었는데, 말투와 안색이 모두 사나웠으므로 재신들이 이 때문에 부득이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희분은 지금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늘에 떠있는 해가 내려다 보면서 증명하고 있으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계축년의 역옥에서 이항복이 역적 정협을 뽑아 썼기 때문에 유활이 항복을 논핵했다. 유활이 만약 오늘날 살아 있다면 역적 허균이 성장한 터전에 대해서 반드시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했고, 또 ‘이첨이 친절하게 대해 주고 심복으로 삼은 자들은 모두 신경희·허균·김개와 같은 무리들이다.’고 하였습니다.
허균은 허성(許筬)의 아우로 신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자입니다. 일찍이 경자년에 헌국에게 아첨하여 붙어서 신을 교묘하게 무함했으므로 그 마음의 변화 무쌍함에 대해서 신은 익숙히 알고 있습니다. 대론이 발의된 뒤 자신의 뜻으로 흉당들을 취합하여 최심(崔沁)과 이송수(李松壽) 등으로 하여금 소장을 올려 갖은 방법을 다해 신을 죄에 얽어매려 했으며, 또 서궁(西宮)을 비호한다고 하며 신을 모함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아는 사람 및 삼사와 함께 의논해서 허균을 탄핵했으니, 이것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입니다.
김개는 신이 허균과 절교한 뒤에도 허균을 위해 신의 동정을 살폈는데, 역적 허균이 김개에게 보낸 편지에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원종은 신이 평소 아는 사람이 아닌데, 근래 찬집청 낭청으로 때때로 공사(公事)를 인해서 왕래했을 뿐이니, 무슨 서로 절친할 리가 있겠습니까. 경희는 아비의 공로로 직을 이어받아 호조 참판의 의망에 끼이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그 당시 이조 판서인 삼촌 숙부 한효순(韓孝純)이 한 짓입니다.
지난번 명국이 고변하면서 허다하게 신을 무함한 말에 대해서는 곽영(郭瓔)과 대질하던 때 모두 하나하나 밝혔는데, 현재 추안(推案)에 남아 있습니다. 명국과 같은 흉악한 자도 오히려 사실대로 공초할 줄 아는데, 사대부의 반열에 있는 자로서 명국을 빌어 신을 무함하고자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유영경을 천거하여 발탁한 자가 있고 김제남을 천거하여 발탁한 자가 있으며, 영경과 제남에게 천거 발탁된 자가 또한 많이 있는데, 어찌 이것을 가지고 사람을 무함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역적 허균 등은 본래 신을 통해 천거 발탁된 것이 아니라 단지 변무(辨誣)한 한 가지 일로 스스로 경의 지위에 오른 것입니다. 지금 그런데 정협을 천거한 일을 이끌어 신을 마구 공격해대니, 더욱 놀랍습니다.
그리고 희분은 또, 한찬남이 역적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왔는데도 석고 대죄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화를 전가할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비국의 여러 재신들 가운데도 일찍이 윤기(尹琦)의 공초에 나온 자가 있고 김응벽(金應璧)의 공초에 나온 자가 있는데, 그 당시 석고 대죄한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남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기와는 다르게 한단 말입니까. 정문익(鄭文翼) 또한 어떤 사람에게 비호를 받아 전랑이 되었으며 몸소 추대했다는 지목을 받기까지 했는데, 곤장 한 대 때리지 않고 한 마디도 질문하지 않은 채 목숨을 보존하여 편안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신이 희분에게 무함을 당한 것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만 신은 한 번도 먼저 일으키지 않았는데, 이 역변을 틈타 또 화를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군부의 전교가 있었으므로 이제는 좀 멈추어야 하겠습니다만, 이런 망극한 일을 당하고는 묵묵히 참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역적을 토벌하는 일이 바야흐로 급한 때에 누차 저의 심정을 번거롭게 아뢰니, 불초한 자식이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드리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부르시는 명이 세 번이나 이르렀으므로 황공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내용은 모두 알았다. 어찌 서로 다툴 필요가 있겠는가. 경은 안심하고 대죄하지 말라. 그리고 다시 더욱 직임을 살피라."
하였다.
합사로 비밀리에 입계하여 역적 이광에게 죄율을 적용하라고 청했는데,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합계하여 이시언을 삭탈 관작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이른바 남대문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흘기는 것이요, 무른 땅에 말뚝 박는 것이다. 시언이 어찌 기꺼이 승복하려 하겠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남대문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흘기는 것이요, 무른 땅에 말뚝 박는 것이다. 시언이 어찌 기꺼이 승복하려 하겠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백관과 합사가 세 번 아뢰고, 홍문관이 재차 차자를 올려, 이광에게 법을 적용하라고 청했는데, 비답을 모두 봉하여 내렸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경평군(慶平君) 이륵(李玏)·문성군(文城君) 이건(李健)이 당하관 종친들을 거느리고 아뢰기를, "신하로서 추대된 자라는 지목을 받으면 일각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역적 이광은 허균과 일가인 자로서 이런 이름을 받고 있는데도 오히려 목숨을 연장한 채 지금까지 살아 오고 있습니다. 이에 온 나라의 신민들이 모두 분하게 여기면서 경건한 자세로 토죄를 청하여 나라의 형벌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추대된 자라는 이름을 얻고서 목숨을 보존한 자는 고금 천하에 없었습니다. 신들은 진실로 성상께서 동기(同氣)라는 사사로운 은혜 때문에 차마 그의 죄를 처벌하지 못하시는 것임을 압니다만, 온 나라 신민들이 한 하늘 아래 함께 살고자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여론을 흔쾌히 따르시어 종묘와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따르지 않았다.
"신하로서 추대된 자라는 지목을 받으면 일각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역적 이광은 허균과 일가인 자로서 이런 이름을 받고 있는데도 오히려 목숨을 연장한 채 지금까지 살아 오고 있습니다. 이에 온 나라의 신민들이 모두 분하게 여기면서 경건한 자세로 토죄를 청하여 나라의 형벌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추대된 자라는 이름을 얻고서 목숨을 보존한 자는 고금 천하에 없었습니다. 신들은 진실로 성상께서 동기(同氣)라는 사사로운 은혜 때문에 차마 그의 죄를 처벌하지 못하시는 것임을 압니다만, 온 나라 신민들이 한 하늘 아래 함께 살고자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여론을 흔쾌히 따르시어 종묘와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따르지 않았다.
정국(庭鞫)하였다. 김홍원(金弘愿)·강호여(康皞如)·이거(李渠)·신보(申溥)·이희직(李希直)·양덕윤(梁德潤)·임급(任扱)·임원(任援)·김정량(金廷亮)·김윤휘(金胤輝)·정주한(鄭周翰)·이송수(李松壽)·김업량(金業良)에게서 공초를 받았는데, 왕이 의논해 아뢰게 하였다. 한의형(韓義亨)은 형신(刑訊)을 한 차례 가하였으나&n
'한국사 공부 > 조선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광해군일기[정초본]134권, 광해 10년 1618년 11월 (1) | 2026.01.15 |
|---|---|
| 광해군일기[정초본]133권, 광해 10년 1618년 10월 (0) | 2026.01.15 |
| 광해군일기[정초본]131권, 광해 10년 1618년 8월 (1) | 2026.01.15 |
| 광해군일기[정초본]130권, 광해 10년 1618년 7월 (1) | 2026.01.15 |
| 광해군일기[정초본]129권, 광해 10년 1618년 6월 (0) | 2026.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