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35권, 광해 10년 1618년 12월

싸라리리 2026. 1. 1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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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병진

시약청(侍藥廳)이 아뢰기를, "중전의 증상이 이렇게 차도가 없어 신하된 자로서 답답한 심정을 견딜 수 없었는데, 상께서 특별히 근심하는 마음으로 약을 의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면하라는 교지를 크게 반포하셨으니, 내전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복을 맞이하려는 뜻이 지극합니다. 무릇 보고 듣는 사람으로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번 대사면의 성대한 은전은 실로 비상한 조치이니, 신들은 진실로 성상의 의도하는 바를 알겠습니다. 그러나 죽을 죄를 지어 일반적인 사면으로 용서받지 못할 자들에 대해서도 모두 용서해 주어서 잘 분별하여 처리하여야만 덕을 베푸는 뜻에 맞는 동시에 많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청(鞫廳)이 죄수들까지도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들이 이미 대략 소견을 진달하였습니다만, 미처 의논하여 아뢰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허국(許國)과 조직(趙溭) 두 사람의 무지하고 망령된 죄는 처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만, 이미 모두 형벌을 받았으며 또 이들과 같은 죄를 지은 자들도 이미 용서받았으니, 지금은 마찬가지로 시행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임휘지(任徽之)의 죄상은 근거가 될 만한 단서가 없으며, 역적 허균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뜻이 같은 사람과 함께 황적(黃賊)을 공격하는 데에 무척 힘을 기울였으니, 그 역시 역적을 토벌하는 무리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홀로 정배되는 벌을 받았으니, 죄인을 신중히 처벌하고 불쌍히 여기시는 성상의 처사에 원통함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들이 전에 의논하여 아뢴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금부 및 해조의 단자를 모두 입계하였으나, 죄의 경중에 따라서 흔쾌히 지혜로운 결단을 내림으로써 감옥이 비는 경지에 이른다면 죄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모두 크나큰 은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은택이 내려지는 가운데 온화한 기상이 상서를 불러들여, 약을 쓰지 않아도 낫는 기쁨을 머지 않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들이 이미 추국에 동참하였으므로 옥사(獄事)의 곡절에 대하여 대략은 알고 있는데다가, 지금 또 시약(侍藥)에 동참하였으므로 약을 살피는 걱정이 간절합니다. 죄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풂으로써 장수를 하늘에 비는 우리 성상의 성스러운 뜻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분수를 생각하지 않고 재차 전하께 아룁니다. 지극히 황공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뜻은 잘 알겠다. 황공스러워 할 것 없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중전의 증상이 이렇게 차도가 없어 신하된 자로서 답답한 심정을 견딜 수 없었는데, 상께서 특별히 근심하는 마음으로 약을 의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면하라는 교지를 크게 반포하셨으니, 내전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복을 맞이하려는 뜻이 지극합니다. 무릇 보고 듣는 사람으로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번 대사면의 성대한 은전은 실로 비상한 조치이니, 신들은 진실로 성상의 의도하는 바를 알겠습니다. 그러나 죽을 죄를 지어 일반적인 사면으로 용서받지 못할 자들에 대해서도 모두 용서해 주어서 잘 분별하여 처리하여야만 덕을 베푸는 뜻에 맞는 동시에 많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청(鞫廳)이 죄수들까지도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들이 이미 대략 소견을 진달하였습니다만, 미처 의논하여 아뢰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허국(許國)과 조직(趙溭) 두 사람의 무지하고 망령된 죄는 처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만, 이미 모두 형벌을 받았으며 또 이들과 같은 죄를 지은 자들도 이미 용서받았으니, 지금은 마찬가지로 시행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임휘지(任徽之)의 죄상은 근거가 될 만한 단서가 없으며, 역적 허균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뜻이 같은 사람과 함께 황적(黃賊)을 공격하는 데에 무척 힘을 기울였으니, 그 역시 역적을 토벌하는 무리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홀로 정배되는 벌을 받았으니, 죄인을 신중히 처벌하고 불쌍히 여기시는 성상의 처사에 원통함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들이 전에 의논하여 아뢴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금부 및 해조의 단자를 모두 입계하였으나, 죄의 경중에 따라서 흔쾌히 지혜로운 결단을 내림으로써 감옥이 비는 경지에 이른다면 죄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모두 크나큰 은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은택이 내려지는 가운데 온화한 기상이 상서를 불러들여, 약을 쓰지 않아도 낫는 기쁨을 머지 않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들이 이미 추국에 동참하였으므로 옥사(獄事)의 곡절에 대하여 대략은 알고 있는데다가, 지금 또 시약(侍藥)에 동참하였으므로 약을 살피는 걱정이 간절합니다. 죄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풂으로써 장수를 하늘에 비는 우리 성상의 성스러운 뜻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분수를 생각하지 않고 재차 전하께 아룁니다. 지극히 황공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뜻은 잘 알겠다. 황공스러워 할 것 없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12월 2일 정사

의금부가 아뢰기를, "죄인 홍연기(洪衍箕)를 참작하여 정배하라는 명을 내리셨는데, 참작하여 정배할 경우에는 으레 중도(中道)에 정배해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강(李茳)을 정배하던 때에는, 참작하여 정배하라는 전교에 따라 중도에 정배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멀리 울진(蔚珍)에 정배하였습니다. 이미 중도에 정배하는 예(例)에는 어긋나는 것인데도 여론은 오리려 당연하다고 여기므로 본부는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기(衍箕)의 정배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멀리 정배하라고 전교하였다.
"죄인 홍연기(洪衍箕)를 참작하여 정배하라는 명을 내리셨는데, 참작하여 정배할 경우에는 으레 중도(中道)에 정배해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강(李茳)을 정배하던 때에는, 참작하여 정배하라는 전교에 따라 중도에 정배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멀리 울진(蔚珍)에 정배하였습니다. 이미 중도에 정배하는 예(例)에는 어긋나는 것인데도 여론은 오리려 당연하다고 여기므로 본부는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기(衍箕)의 정배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멀리 정배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로 인하여 연계(連啓)를 우선 중지하였다.

 

박정길(朴鼎吉)을 부제학으로, 정조(鄭造)를 대사성으로, 이사경(李士慶)을 좌부승지로, 조찬한(趙纘韓)을 분병조 참의로, 황익중(黃益中)을 교리로, 박종주(朴宗胄)를 겸문학(兼文學)으로, 임흥후(任興後)를 사서로, 한명욱(韓明勖)을 봉상시 정으로, 남이웅(南以雄)을 군자감 정으로, 박로(朴𥶇)를 사예로, 목서흠(睦敍欽)을 병조 정랑으로, 민기(閔機)를 형조 정랑으로, 정문회(鄭文晦)를 호조 좌랑으로 삼았다.

 

전교하였다. "무릇 병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위급해지기 전에 잘 구완해야만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조종조(祖宗朝) 때부터 시약청이 약을 쓰는 데 지나치게 조심하느라고 증상에 대한 약의 조제를 병의 초기에는 쓰지 않다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썼으므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는 실로 일반적인 폐단이다. 나는 이 점을 항상 마음 아파해 왔었다. 이는 비록 신중을 기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병을 낫게 하지 못한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습관을 답습하지 말고 모든 힘을 기울여 숙의하여 반드시 증상에 대한 약을 쓰도록 하라. 그리고 약을 조제하거나 달일 때에 어의가 직접 약제를 감독하고, 제조도 약의 감독을 철저히하여 직접 봉표(封標)하고 검사하여 들여보내도록 하라."
"무릇 병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위급해지기 전에 잘 구완해야만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조종조(祖宗朝) 때부터 시약청이 약을 쓰는 데 지나치게 조심하느라고 증상에 대한 약의 조제를 병의 초기에는 쓰지 않다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썼으므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는 실로 일반적인 폐단이다. 나는 이 점을 항상 마음 아파해 왔었다. 이는 비록 신중을 기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병을 낫게 하지 못한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습관을 답습하지 말고 모든 힘을 기울여 숙의하여 반드시 증상에 대한 약을 쓰도록 하라. 그리고 약을 조제하거나 달일 때에 어의가 직접 약제를 감독하고, 제조도 약의 감독을 철저히하여 직접 봉표(封標)하고 검사하여 들여보내도록 하라."

 

12월 3일 무오

정원이 아뢰기를, "삼가 평안 감사 박엽(朴燁)의 장계를 보건대, 접반관 이지화(李之華)가 소란을 일으켜 폐를 끼친 정상은 너무나 가증스럽습니다. 대개 시골 애숭이가 명을 받들고 지방으로 나가는 사대부의 체면을 알지 못하여 여러 읍을 돌아다니며 놀이와 주육(酒肉)에 빠진 것이니, 그가 박엽에게 탄핵당한 것은 실로 스스로 취한 일입니다. 그러나 번신(藩臣)의 직분은 예모를 갖추어 왕이 보낸 관원을 공손하게 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감히 자기의 사설을 늘어놓고 조정의 관원을 노예처럼 다루었으며, 엄연하게 대간처럼 탄핵문을 지어 외람되게 진달하였습니다. 분수를 모르고 당돌하게 행동한 정상은 실로 거론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위인이 혈기가 넘쳐 이렇게 되었는데도 징계하지 않는다면 훗날의 여러 가지 교만 방자한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이지화와 박엽을 모두 추고하소서." 하니, 따랐다.
"삼가 평안 감사 박엽(朴燁)의 장계를 보건대, 접반관 이지화(李之華)가 소란을 일으켜 폐를 끼친 정상은 너무나 가증스럽습니다. 대개 시골 애숭이가 명을 받들고 지방으로 나가는 사대부의 체면을 알지 못하여 여러 읍을 돌아다니며 놀이와 주육(酒肉)에 빠진 것이니, 그가 박엽에게 탄핵당한 것은 실로 스스로 취한 일입니다. 그러나 번신(藩臣)의 직분은 예모를 갖추어 왕이 보낸 관원을 공손하게 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감히 자기의 사설을 늘어놓고 조정의 관원을 노예처럼 다루었으며, 엄연하게 대간처럼 탄핵문을 지어 외람되게 진달하였습니다. 분수를 모르고 당돌하게 행동한 정상은 실로 거론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위인이 혈기가 넘쳐 이렇게 되었는데도 징계하지 않는다면 훗날의 여러 가지 교만 방자한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이지화와 박엽을 모두 추고하소서."
하니, 따랐다.

 

12월 4일 기미

영건 도감(營建都監)이 아뢰기를, "대간이 아뢴 것으로 인하여 비망기에 ‘김종진(金宗振)의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였습니다. 지난 2월 그믐날 재목이 떠내려간 후에 양천 현령(陽川縣令) 김종진이 재목 1백 22조(條)를 건져서 곧장 도감에 보고하였는데, 그 후에 감역관 박기준(朴耆俊)이 거두어온 재목은 1백 37조였으니, 종진이 보고하면서 빠뜨린 수는 단지 15조에 불과합니다. 갯벌에서 건지는 경우 간혹 선후 피차지간에 수량에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1백여 조를 종진(宗振)이 훔쳤다고 하는 일은 그 당시 감역관 박기준이 언급한 바가 없었는데, 지금은 기준이 상을 치르느라 지방에 있으므로 도감은 달리 사실을 조사할 길이 없습니다." 하니, 김종진을 추고하라고 전교하였다.
"대간이 아뢴 것으로 인하여 비망기에 ‘김종진(金宗振)의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였습니다. 지난 2월 그믐날 재목이 떠내려간 후에 양천 현령(陽川縣令) 김종진이 재목 1백 22조(條)를 건져서 곧장 도감에 보고하였는데, 그 후에 감역관 박기준(朴耆俊)이 거두어온 재목은 1백 37조였으니, 종진이 보고하면서 빠뜨린 수는 단지 15조에 불과합니다. 갯벌에서 건지는 경우 간혹 선후 피차지간에 수량에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1백여 조를 종진(宗振)이 훔쳤다고 하는 일은 그 당시 감역관 박기준이 언급한 바가 없었는데, 지금은 기준이 상을 치르느라 지방에 있으므로 도감은 달리 사실을 조사할 길이 없습니다."
하니, 김종진을 추고하라고 전교하였다.

 

12월 5일 경신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내전이 침을 맞은 후에 약방·정원·옥당의 2품 이상의 관원과 육조·양사의 장관이 문안을 드렸다.

 

12월 6일 신유

평안 병사가 치계하였다. "교 유격(喬遊擊)의 가정(家丁) 송조립(宋朝立)과 우 유격(于遊擊)의 가정 등이 적로(賊路)를 정탐하기 위하여 만포(滿浦)에까지 이르렀다가 폭설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교 유격(喬遊擊)의 가정(家丁) 송조립(宋朝立)과 우 유격(于遊擊)의 가정 등이 적로(賊路)를 정탐하기 위하여 만포(滿浦)에까지 이르렀다가 폭설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천추사(千秋使) 이사경(李士慶)과 서장관 이중길(李重吉)이 들어왔다.

 

12월 7일 임술

전교하였다. "내년에는 거처를 옮기지 않을 수 없는데, 해조의 서계를 보니 수리에 필요한 물건이 매우 적다. 만약 수일 내로 준비하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때에 민폐가 적지 않을 것이니, 내년 여름이나 가을을 기한으로 정해서 수리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일일이 참작하여 마련한 다음 개록(開錄)해서 계하받도록 미리 행회(行會)하라."
"내년에는 거처를 옮기지 않을 수 없는데, 해조의 서계를 보니 수리에 필요한 물건이 매우 적다. 만약 수일 내로 준비하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때에 민폐가 적지 않을 것이니, 내년 여름이나 가을을 기한으로 정해서 수리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일일이 참작하여 마련한 다음 개록(開錄)해서 계하받도록 미리 행회(行會)하라."

 

12월 8일 계해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전교하였다. "며칠 전 서북(西北) 지방에 들어가 대비하고 있는 군병들에게 목면을 내려 보내 나누어 주도록 계청(啓請)한 일을 어찌하여 아직까지 처리하지 않고 있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빨리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며칠 전 서북(西北) 지방에 들어가 대비하고 있는 군병들에게 목면을 내려 보내 나누어 주도록 계청(啓請)한 일을 어찌하여 아직까지 처리하지 않고 있는가? 비변사로 하여금 빨리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12월 9일 갑자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호조가 아뢰기를, "수비하는 병졸의 수는 3만 명이나 되는데, 조관(朝官)과 종실 이하 군직 인원 및 공신의 적장자, 삼의사(三醫司)의 녹관(祿官)을 통틀어 계산하면 1천 8백여 명이니, 거둘 옷의 수는 1천 8백여 벌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밖의 납의(衲衣) 2만 8천여 벌은 대간의 도성의 방민(坊民) 및 개성부(開城府) 방민에게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다만 대간은 옷을 거두자고 청하였고, 주상께서는 목필(木匹)을 수합하여 보내라고 전교하셨으니, 옷을 거둘 것인지 목면을 거둘 것인지를 묘당으로 하여금 하나로 지정하여 복계(覆啓)하여 결정 짓도록 한 후에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수비하는 병졸의 수는 3만 명이나 되는데, 조관(朝官)과 종실 이하 군직 인원 및 공신의 적장자, 삼의사(三醫司)의 녹관(祿官)을 통틀어 계산하면 1천 8백여 명이니, 거둘 옷의 수는 1천 8백여 벌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밖의 납의(衲衣) 2만 8천여 벌은 대간의 도성의 방민(坊民) 및 개성부(開城府) 방민에게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다만 대간은 옷을 거두자고 청하였고, 주상께서는 목필(木匹)을 수합하여 보내라고 전교하셨으니, 옷을 거둘 것인지 목면을 거둘 것인지를 묘당으로 하여금 하나로 지정하여 복계(覆啓)하여 결정 짓도록 한 후에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12월 10일 을축

전교하였다. "세시(歲時)에 영상의 거처에 장리(長吏)를 보내어 안부를 묻고, 음식물을 넉넉히 보내도록 하라."
"세시(歲時)에 영상의 거처에 장리(長吏)를 보내어 안부를 묻고, 음식물을 넉넉히 보내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죄인 문희현(文希賢)에 대해서는 형을 정지한 지가 이미 오래이며, 성여권(成汝權)은 별로 형을 받은 일이 없다. 그런데도 병이 중하다고 입계하였으니, 근래 금부의 모든 일처리가 날로 해이해져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당해 도사와 월령의(月令醫)를 각별히 추고하고, 지금 이후로 모든 죄인을 빈틈없이 착실히 치료하게 하라."
"죄인 문희현(文希賢)에 대해서는 형을 정지한 지가 이미 오래이며, 성여권(成汝權)은 별로 형을 받은 일이 없다. 그런데도 병이 중하다고 입계하였으니, 근래 금부의 모든 일처리가 날로 해이해져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당해 도사와 월령의(月令醫)를 각별히 추고하고, 지금 이후로 모든 죄인을 빈틈없이 착실히 치료하게 하라."

 

병조 판서 유희분(柳希奮)이 상차하여 체직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뜻은 잘 알겠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사마(司馬)의 장이 어찌 사퇴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병이 있더라도 조리하여 일을 봐야 할 것이다. 다시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뜻은 잘 알겠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사마(司馬)의 장이 어찌 사퇴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병이 있더라도 조리하여 일을 봐야 할 것이다. 다시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지사 장만(張晩)이 상차하여 비변사 유사 당상의 직을 체차시켜 줄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경은 부체찰사(副體察使)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어찌 비국 유사를 사직하려 하는가. 혹시 병이 있더라도 조리하여 일을 보도록 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경은 부체찰사(副體察使)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어찌 비국 유사를 사직하려 하는가. 혹시 병이 있더라도 조리하여 일을 보도록 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12월 11일 병인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양궁(兩宮)의 역사를 중지할 수 없다면, 거기에 쓰여질 군인과 장인의 역가(役價)를 백성들에게서 거두지 않고는 마련할 곳이 없습니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여 전국이 한창 소란스럽지만, 수합(收合)의 영을 재차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백관의 조공(助工)은 기간을 정해놓고 납입을 독촉하였지만, 초운(初運)조차도 납입하지 않은 자가 있는가 하면, 재운(再運)의 경우는 태반이 납입하지 않았으니, 극히 미안한 일입니다. 각 해사(該司)로 하여금 일일이 납입을 독촉하도록 하고, 끝까지 납입하지 않는 자는 지명하여 입계하도록 하여 추고하여 엄중히 다스리소서." 하니, 따랐다.
"양궁(兩宮)의 역사를 중지할 수 없다면, 거기에 쓰여질 군인과 장인의 역가(役價)를 백성들에게서 거두지 않고는 마련할 곳이 없습니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여 전국이 한창 소란스럽지만, 수합(收合)의 영을 재차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백관의 조공(助工)은 기간을 정해놓고 납입을 독촉하였지만, 초운(初運)조차도 납입하지 않은 자가 있는가 하면, 재운(再運)의 경우는 태반이 납입하지 않았으니, 극히 미안한 일입니다. 각 해사(該司)로 하여금 일일이 납입을 독촉하도록 하고, 끝까지 납입하지 않는 자는 지명하여 입계하도록 하여 추고하여 엄중히 다스리소서."
하니, 따랐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죄인 문희현(文希賢)을 보방(保放)하라는 명을 내리셨는데, 문희현은 극악 무도한 죄를 짓고 북도(北道)에 정배되었었고, 지금 또 노추(奴酋)와 밀통한 일로 경옥(京獄)으로 잡혀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죄상을 자백하기도 전에 죽어 버린다면 실형(失刑)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선 보방하는 것은 진실로 해롭지 않겠으나, 보방한 후에 오래도록 다시 가두지 않는다면 도리어 죄인에게 요행이 될 것이니, 문희현을 10일 동안만 보방한 후 다시 가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다고 전교하였다.
"죄인 문희현(文希賢)을 보방(保放)하라는 명을 내리셨는데, 문희현은 극악 무도한 죄를 짓고 북도(北道)에 정배되었었고, 지금 또 노추(奴酋)와 밀통한 일로 경옥(京獄)으로 잡혀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죄상을 자백하기도 전에 죽어 버린다면 실형(失刑)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선 보방하는 것은 진실로 해롭지 않겠으나, 보방한 후에 오래도록 다시 가두지 않는다면 도리어 죄인에게 요행이 될 것이니, 문희현을 10일 동안만 보방한 후 다시 가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다고 전교하였다.

 

지평 신칙이 아뢰기를, "보잘것없는 신은 중전이 편찮으신 때에 궁중에 저주(詛呪)의 변고가 있는데도 죄인을 찾아내지 못하는 점을 늘 애통히 여겨왔습니다. 어제 한 재상이 신에게 글을 보내왔는데 ‘방금 들으니, 저주를 잘하는 복동(福同)이라는 자가 여염에 출입하는데 종적이 비밀스럽다고 한다. 이들 무리가 내간인(內間人)과 내왕하여 이런 요괴스러운 변고를 만들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이 부(府)의 서리를 보내는 한편 포도 대장 조의(趙誼)에게 통지하여 힘을 합하여 체포하게 하였더니 복동이란 자를 즉시 체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있던 흉화(凶畫)·여복(女服)·여식(女飾) 등 많은 물건을 부의 서리와 부장(部將)이 수색해 낼 때에, 갑자기 모처(某處)의 서리와 상놈 5, 6명이 나타나서 그 중에서 가장 흉측스러운 화물(畫物)·필묵·의상 등 집기를 공공연히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신은 그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으며, 그 이유도 알 수가 없어졌습니다. 대개 복동은 바로 김제남(金悌男) 족인(族人)의 가노(家奴)인데, 그 흉측하고 괴상하여 헤아릴 수 없는 정상은 김응벽(金應璧)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어떤 도적놈이 법부(法府)의 풍헌(風憲)을 무시하고 감히 대낮에 요망한 적의 장물을 빼앗아 간단 말입니까. 본부는 근래 중전께서 편찮으심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집무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포도청으로 하여금 먼저 복동(福同)을 국문하게 하고, 장물을 빼앗아 간 사람도 포도청으로 하여금 일일이 체포하여 처치하게 하소서. 신은 법부의 관원으로서 쥐새끼 같은 무리를 위엄으로 제압하지 못하여 장물을 빼앗기는 변고를 초래하였습니다. 기력이 쇠하고 노둔하여 직책을 다하지 못한 정도가 심하니, 빨리 신을 체직시키도록 명하소서." 하자,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사직하지는 말라." 하니,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보잘것없는 신은 중전이 편찮으신 때에 궁중에 저주(詛呪)의 변고가 있는데도 죄인을 찾아내지 못하는 점을 늘 애통히 여겨왔습니다. 어제 한 재상이 신에게 글을 보내왔는데 ‘방금 들으니, 저주를 잘하는 복동(福同)이라는 자가 여염에 출입하는데 종적이 비밀스럽다고 한다. 이들 무리가 내간인(內間人)과 내왕하여 이런 요괴스러운 변고를 만들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이 부(府)의 서리를 보내는 한편 포도 대장 조의(趙誼)에게 통지하여 힘을 합하여 체포하게 하였더니 복동이란 자를 즉시 체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있던 흉화(凶畫)·여복(女服)·여식(女飾) 등 많은 물건을 부의 서리와 부장(部將)이 수색해 낼 때에, 갑자기 모처(某處)의 서리와 상놈 5, 6명이 나타나서 그 중에서 가장 흉측스러운 화물(畫物)·필묵·의상 등 집기를 공공연히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신은 그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으며, 그 이유도 알 수가 없어졌습니다. 대개 복동은 바로 김제남(金悌男) 족인(族人)의 가노(家奴)인데, 그 흉측하고 괴상하여 헤아릴 수 없는 정상은 김응벽(金應璧)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어떤 도적놈이 법부(法府)의 풍헌(風憲)을 무시하고 감히 대낮에 요망한 적의 장물을 빼앗아 간단 말입니까.
본부는 근래 중전께서 편찮으심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집무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포도청으로 하여금 먼저 복동(福同)을 국문하게 하고, 장물을 빼앗아 간 사람도 포도청으로 하여금 일일이 체포하여 처치하게 하소서. 신은 법부의 관원으로서 쥐새끼 같은 무리를 위엄으로 제압하지 못하여 장물을 빼앗기는 변고를 초래하였습니다. 기력이 쇠하고 노둔하여 직책을 다하지 못한 정도가 심하니, 빨리 신을 체직시키도록 명하소서."
하자,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사직하지는 말라."
하니,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12월 12일 정묘

전교하였다. "기협(奇協)의 집이 경덕궁터로 들어갔는데, 기협은 처벌받은 지 이미 오래이고 그 후 여러 차례 대사면령을 거쳤으니, 놓아 주도록 하라."
"기협(奇協)의 집이 경덕궁터로 들어갔는데, 기협은 처벌받은 지 이미 오래이고 그 후 여러 차례 대사면령을 거쳤으니, 놓아 주도록 하라."

 

우찬성 이충(李沖)이 상차하기를, "신이 오랫동안 병을 앓자 신의 처자가 온갖 방법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그러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요망스러운 무당과 접하게 되어 결국 대간의 계사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신은 비록 몰랐던 일이지만 한집안에서 한 일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는 없습니이다.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니 전말을 잘 알겠다. 황공해 할 것 없다." 하였다.
"신이 오랫동안 병을 앓자 신의 처자가 온갖 방법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그러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요망스러운 무당과 접하게 되어 결국 대간의 계사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신은 비록 몰랐던 일이지만 한집안에서 한 일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는 없습니이다.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니 전말을 잘 알겠다. 황공해 할 것 없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전의 증상이 아직까지 차도가 없으니, 결코 이러한 때에 직접 제사를 지낼 수는 없다. 고묘제(告廟祭)를 정월 20일 무렵으로 다시 택일하여 연기해서 지내는 일을 해조에 말하여 속히 여러 도에 하유하게 하라."
"내전의 증상이 아직까지 차도가 없으니, 결코 이러한 때에 직접 제사를 지낼 수는 없다. 고묘제(告廟祭)를 정월 20일 무렵으로 다시 택일하여 연기해서 지내는 일을 해조에 말하여 속히 여러 도에 하유하게 하라."

 

사헌부가 비밀한 내용을 입계하였다. 또 아뢰기를, "지평 신칙을 출사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따랐다.
"지평 신칙을 출사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따랐다.

 

지평 신칙이 직무를 보기 시작한 후에, 비밀리에 전교를 듣고 회계한 다음에 나갔다.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이 비밀 계사를 입계하니,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비밀리에 전교하여 헌부가 아뢴 원 계사와 형방 승지의 계사를 조보(朝報)에 내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궁첩(宮妾)이 매우 많았고, 그 중에 상궁 김씨가 우두머리였는데, 왕비를 가장 심하게 투기하여 원수처럼 대하였다. 그러다가 궁중에 저주가 크게 일어나 흉악한 물건이 침실에 가득였다. 왕비가 병이 들자 의원은 사악한 귀신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왕은 범인을 찾아내어 처벌하지 못하였다. 궁첩들이 간혹 서로 들추어내어 내정이 온통 싸움으로 가득했지만, 왕은 그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모두 묵인해 주었다. 복동이라는 자는 요사스러운 무당인데, 【본래 남성과 여성을 모두 갖춘 사람으로, 무당이 되기도 하고 박수가 되기도 하였다.】  저주를 잘 다룬다고 자칭하면서 여염에 드나들며 속임수로 사람을 현혹하였다. 간혹 남에게 흉한 짓을 하도록 시킨 다음 자기가 들추어내고는 다른 사람을 거짓으로 끌어대는 방법을 써서 원한을 갚고 이익을 취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도 의심을 해왔었는데, 헌부가 비밀히 체포하여 가두었다.
이때 궁첩(宮妾)이 매우 많았고, 그 중에 상궁 김씨가 우두머리였는데, 왕비를 가장 심하게 투기하여 원수처럼 대하였다. 그러다가 궁중에 저주가 크게 일어나 흉악한 물건이 침실에 가득였다. 왕비가 병이 들자 의원은 사악한 귀신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왕은 범인을 찾아내어 처벌하지 못하였다. 궁첩들이 간혹 서로 들추어내어 내정이 온통 싸움으로 가득했지만, 왕은 그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모두 묵인해 주었다. 복동이라는 자는 요사스러운 무당인데, 【본래 남성과 여성을 모두 갖춘 사람으로, 무당이 되기도 하고 박수가 되기도 하였다.】  저주를 잘 다룬다고 자칭하면서 여염에 드나들며 속임수로 사람을 현혹하였다. 간혹 남에게 흉한 짓을 하도록 시킨 다음 자기가 들추어내고는 다른 사람을 거짓으로 끌어대는 방법을 써서 원한을 갚고 이익을 취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도 의심을 해왔었는데, 헌부가 비밀히 체포하여 가두었다.

 

12월 13일 무진

비변사가 아뢰기를, "양 경략(楊經略)이 상서(尙書)로 승진했다는 말이 과연 사실이라면 우리 나라로서는 사신을 보내어 치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물을 미리 마련해 두고, 사신도 차출하여 짐을 꾸려 대기하고 있다가 확실한 보고가 들어오면 즉시 출발하게 해야겠으니, 해조로 하여금 살펴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양 경략(楊經略)이 상서(尙書)로 승진했다는 말이 과연 사실이라면 우리 나라로서는 사신을 보내어 치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물을 미리 마련해 두고, 사신도 차출하여 짐을 꾸려 대기하고 있다가 확실한 보고가 들어오면 즉시 출발하게 해야겠으니, 해조로 하여금 살펴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약방 제조 3명에게 초피(貂皮)와 모포(帽包) 한 벌씩을 하사하니, 사양하지 말도록 하라."
"약방 제조 3명에게 초피(貂皮)와 모포(帽包) 한 벌씩을 하사하니, 사양하지 말도록 하라."

 

검열 권의(權誼)가 비밀 상소를 입계하니,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12월 14일 기사

공홍(公洪) 등도의 순검사 이경전(李慶全)이 치계하였다. "경상 좌수사 김기명(金基命)은 군졸을 돌보지 않고 가렴 주구만을 일삼고 있으니 조정에서 처치하소서. 또 김기명이 경강선(京江船)을 모집하면서 제멋대로 많이 받은 가목(價木)도 모군(募軍)에게 돌려 주게 하소서."
"경상 좌수사 김기명(金基命)은 군졸을 돌보지 않고 가렴 주구만을 일삼고 있으니 조정에서 처치하소서. 또 김기명이 경강선(京江船)을 모집하면서 제멋대로 많이 받은 가목(價木)도 모군(募軍)에게 돌려 주게 하소서."

 

대사간 윤인이 아뢰기를 전에 정읍 현감(井邑縣監) 김출(金秫)을 논계하던 때에 동료가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고 논의를 제기하였는데, 신도 거기에 동참하였습니다. 삼가 전라 감사가 조사한 장계를 보니, 김출의 부모는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일을 논한 것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으니 신의 직을 체척하라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사간원이 출사시킬 것을 계청하니, 따랐다.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사간원이 출사시킬 것을 계청하니, 따랐다.

 

12월 15일 경오

유학 이홍달(李弘達)이 상소하여 존호(尊號)를 올리기 위하여 속히 국(局)을 설치할 것을 청하니, 소를 예조에 내렸다. 회계하기를, "만고의 흉악한 역적 중에 어찌 허균과 같은 자가 있었겠습니까. 만약 시간을 지체하였더라면 차마 말 못할 끔찍한 화를 당하였을 것입니다. 성상께서 모든 것을 통촉하는 명철함과 능히 난을 평정하는 무용(武勇)으로, 기미가 드러나기도 전에 화를 알아차려 은밀히 결탁한 흉악한 무리를 처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종묘 사직과 국가가 안녕을 되찾았으니, 이는 실로 전하의 비할 데 없는 공렬이 하늘처럼 크나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하된 자가 앞을 다투어 만세에 공을 드날리고자 함은 모두 지극한 정성에서 나와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날 유생 및 삼사·정원·본조가 이미 다 계달하였고, 대신(大臣)의 수의도 모두 공을 드러내는 휘호를 올리기를 청하였던 것인데, 전하께서는 겸양을 고수하여 도리어 감훈(勘勳)한 후에 의논하여 처리하겠다고 전교하셨는데, 어찌 훌륭한 덕이 드러나는 휘호를 먼저하지 않고 녹훈을 먼저 거론하겠습니까. 이번 이홍달(李弘達)이 상소한 뜻은 실로 사람들의 마음과 합치하는 것이니, 그대로 빨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못난 내가 자리에 오른 후 여러 차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휘호를 받았다. 나라일은 위태롭기만 하고 천재지변은 날로 심해가기만 하므로 나는 근심으로 마음이 편치 않아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그런데 감히 또 이 청을 윤허하여 나의 죄를 더 크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반복하여 아뢰니, 우선 감훈을 한 후에 따르도록 힘써 보겠다. 나의 뜻을 살펴 이대로 행하라." 하였다.
"만고의 흉악한 역적 중에 어찌 허균과 같은 자가 있었겠습니까. 만약 시간을 지체하였더라면 차마 말 못할 끔찍한 화를 당하였을 것입니다. 성상께서 모든 것을 통촉하는 명철함과 능히 난을 평정하는 무용(武勇)으로, 기미가 드러나기도 전에 화를 알아차려 은밀히 결탁한 흉악한 무리를 처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종묘 사직과 국가가 안녕을 되찾았으니, 이는 실로 전하의 비할 데 없는 공렬이 하늘처럼 크나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하된 자가 앞을 다투어 만세에 공을 드날리고자 함은 모두 지극한 정성에서 나와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날 유생 및 삼사·정원·본조가 이미 다 계달하였고, 대신(大臣)의 수의도 모두 공을 드러내는 휘호를 올리기를 청하였던 것인데, 전하께서는 겸양을 고수하여 도리어 감훈(勘勳)한 후에 의논하여 처리하겠다고 전교하셨는데, 어찌 훌륭한 덕이 드러나는 휘호를 먼저하지 않고 녹훈을 먼저 거론하겠습니까. 이번 이홍달(李弘達)이 상소한 뜻은 실로 사람들의 마음과 합치하는 것이니, 그대로 빨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못난 내가 자리에 오른 후 여러 차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휘호를 받았다. 나라일은 위태롭기만 하고 천재지변은 날로 심해가기만 하므로 나는 근심으로 마음이 편치 않아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그런데 감히 또 이 청을 윤허하여 나의 죄를 더 크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반복하여 아뢰니, 우선 감훈을 한 후에 따르도록 힘써 보겠다. 나의 뜻을 살펴 이대로 행하라."
하였다.

 

12월 16일 신미

정원이 아뢰기를, "삼가 보건대, 평안 감사 박엽은 이번 무오년 추동(秋冬) 근무 성적 등급을 매길 때에, 구성 부사(龜城府使) 이흘(李訖)의 이름 아래에 서전(書塡)을 하지 않고 장계를 올려 ‘대론(臺論)으로 인해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였습니다. 근무 성적의 평가는 조종조(祖宗朝) 때에 상세하게 정해져 2백 년 동안 행해오던 법전이니, 진실로 번신(藩臣)이 그 사이에 멋대로 고치거나 취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대론은 대간이 하는 것이고, 근무 성적의 평가는 감사와 병사가 하는 것이니, 자기의 직책만 다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대간이 조사하는 일을 가지고 농간을 부리는 단서로 삼고 은혜를 베푸는 마음을 보임으로써 국가의 금석과 같은 법전을 훼손시킨단 말입니까. 그러한 조짐을 자라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일이 지극히 놀라우니 박엽을 추고하소서." 하니, 따랐다.
"삼가 보건대, 평안 감사 박엽은 이번 무오년 추동(秋冬) 근무 성적 등급을 매길 때에, 구성 부사(龜城府使) 이흘(李訖)의 이름 아래에 서전(書塡)을 하지 않고 장계를 올려 ‘대론(臺論)으로 인해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였습니다. 근무 성적의 평가는 조종조(祖宗朝) 때에 상세하게 정해져 2백 년 동안 행해오던 법전이니, 진실로 번신(藩臣)이 그 사이에 멋대로 고치거나 취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대론은 대간이 하는 것이고, 근무 성적의 평가는 감사와 병사가 하는 것이니, 자기의 직책만 다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대간이 조사하는 일을 가지고 농간을 부리는 단서로 삼고 은혜를 베푸는 마음을 보임으로써 국가의 금석과 같은 법전을 훼손시킨단 말입니까. 그러한 조짐을 자라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일이 지극히 놀라우니 박엽을 추고하소서."
하니, 따랐다.

 

형조와 좌우 포도청이 아뢰기를, "정원의 계사로 인하여 죄인 복동(福同)을 형조와 좌우 포도청이 함께 추국하였는데, 지금 무녀 막개(莫介)의 공초에 ‘궐하(闕下)의 저주는 무녀 애개(愛介)가 한 짓이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애개를 추국하자 단서가 드러났으니, 이는 바로 반역에 관계되는 사건입니다. 반역에 관계되는 사건을 어찌 해조에서 추국할 수 있겠습니까. 일의 체모로 보아 무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옥(典獄)이 허술하고 담장이 무너져 평소에도 탈옥한 죄인이 있었으니, 이렇게 인심을 헤아릴 수 없을 때에 달아나도록 꾀어내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의금부로 옮겨 추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하니, 답하기를, "우선 본청에서 다시 반복하여 캐물어서 실제 적을 반드시 찾아내어 분명히 조사하여 처치하도록 하라." 하였다.
"정원의 계사로 인하여 죄인 복동(福同)을 형조와 좌우 포도청이 함께 추국하였는데, 지금 무녀 막개(莫介)의 공초에 ‘궐하(闕下)의 저주는 무녀 애개(愛介)가 한 짓이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애개를 추국하자 단서가 드러났으니, 이는 바로 반역에 관계되는 사건입니다. 반역에 관계되는 사건을 어찌 해조에서 추국할 수 있겠습니까. 일의 체모로 보아 무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옥(典獄)이 허술하고 담장이 무너져 평소에도 탈옥한 죄인이 있었으니, 이렇게 인심을 헤아릴 수 없을 때에 달아나도록 꾀어내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의금부로 옮겨 추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하니, 답하기를,
"우선 본청에서 다시 반복하여 캐물어서 실제 적을 반드시 찾아내어 분명히 조사하여 처치하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 판서 이이첨이 아뢰기를, "지금 형조의 계사를 보니, 요망한 적 복동이 ‘저주한 물건이 아직 궐내에 있는데 그것을 다 파낼 수 있으며, 내전의 증상도 기도하여 회복시킬 수 있다. 만약 효험이 없으면 나를 죽여도 좋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 적의 흉악한 속임수를 진실로 믿을 수는 없으나, 이렇게 중전의 병이 차도가 없는 때를 당하여 무릇 신하된 자의 조급하고 허둥대는 마음에는 조금이라도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면 못할 일이 없으니, 요망한 적의 괴이하고 허탄함에 관해서는 말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요망한 적이 하는 행동은 산천에 기도하는 것에 비길 수 없으므로 본조가 감히 행하도록 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하는 관원이 진실로 그 정상을 밝혀냈다면, 우선 형틀을 풀어준 뒤 여러 명의 수졸(戍卒)을 정하고, 먼저 그가 내간의 저주한 물건을 파내는 것을 시험해 보고, 그런 다음에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였는데도 끝내 효과가 없다면 요망한 정상을 끝까지 조사하여 법률대로 처치하는 것은 또한 형관(刑官)의 책임이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저주의 변고는 지난달 초순경에 일어났는데 내전은 7일부터 편찮았으니, 비록 흉악하고 요망한 일이라 하더라도 어찌 곧바로 병이 나게 할 수야 있겠는가. 그러나 형조의 계사도 소견이 없지 않으니, 본조의 계사대로 급히 시행하되, 중사(中使)가 직접 참석한 가운데 파내도록 하라. 기도하는 일도 해보도록 하라." 하였다.
"지금 형조의 계사를 보니, 요망한 적 복동이 ‘저주한 물건이 아직 궐내에 있는데 그것을 다 파낼 수 있으며, 내전의 증상도 기도하여 회복시킬 수 있다. 만약 효험이 없으면 나를 죽여도 좋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 적의 흉악한 속임수를 진실로 믿을 수는 없으나, 이렇게 중전의 병이 차도가 없는 때를 당하여 무릇 신하된 자의 조급하고 허둥대는 마음에는 조금이라도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면 못할 일이 없으니, 요망한 적의 괴이하고 허탄함에 관해서는 말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만 요망한 적이 하는 행동은 산천에 기도하는 것에 비길 수 없으므로 본조가 감히 행하도록 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하는 관원이 진실로 그 정상을 밝혀냈다면, 우선 형틀을 풀어준 뒤 여러 명의 수졸(戍卒)을 정하고, 먼저 그가 내간의 저주한 물건을 파내는 것을 시험해 보고, 그런 다음에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였는데도 끝내 효과가 없다면 요망한 정상을 끝까지 조사하여 법률대로 처치하는 것은 또한 형관(刑官)의 책임이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저주의 변고는 지난달 초순경에 일어났는데 내전은 7일부터 편찮았으니, 비록 흉악하고 요망한 일이라 하더라도 어찌 곧바로 병이 나게 할 수야 있겠는가. 그러나 형조의 계사도 소견이 없지 않으니, 본조의 계사대로 급히 시행하되, 중사(中使)가 직접 참석한 가운데 파내도록 하라. 기도하는 일도 해보도록 하라."
하였다.

 

복동이 처음에는 저주를 한 것 때문에 국문을 당하였는데, 궁에 들어가 저주한 물건을 파내고 기도를 하기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왕에게 총애를 받았다. 이현궁(梨峴宮)에 기도하는 곳을 설치하고 귀신을 그려 놓았으며, 또 열성위(列聖位)를 설치하고 노부(鹵簿)·의장·의복을 극도로 사치스럽게 갖추어 놓았다. 복동은 밤낮으로 가무를 벌여 귀신을 즐겁게 하였으며, 또 국내의 산천에 두루 기도하느라고 수만 금의 비용을 낭비하였다. 복동을 성인방(聖人房)이라고 부르면서 의심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성인방에 내려 보내 점치게 하고 셀 수도 없는 많은 상을 내리니, 한 달 남짓 만에 권세가 조야(朝野)를 흔들었다.

 

12월 17일 임신

우승지 이위경(李偉卿)이 아뢰기를, "신이 주사(舟師)에 대한 한두 가지 계획을 가지고 성상을 번거롭게 해드렸는데, 중간에 간혹 그 설에 대해 입방아를 찧으면서 비난하는 자도 있었습니다만, 성상께서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근래 본청의 일은 바닷가 백성들의 힘을 고갈시켜 마련한 배를 헛되이 도랑에다 버려둔 채 앉아서 썩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당초 청을 설치하여 일을 주선했던 본의와는 너무도 다르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미 모아 놓은 선척이 강어귀에서 그대로 비바람을 맞아서 조각조각 썩은 나무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있으니 애통하게도 나랏일은 글러 버린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강가의 희우정(喜雨亭)·현량(玄梁)·서강(西江)·마포(麻浦)·용산(龍山)·서빙고(西氷庫)·한강(漢江)·두모포(豆毛浦) 등 7, 8촌의 어민과 상인(商人) 중 자원하는 자에게 배 한 척씩을 맡기고, 그 나머지 용주(龍舟) 및 대맹선(大艋船)과, 귀선(龜船) 몇 척도 주사청으로 하여금 풀을 덮어두고 늘 곁에서 살피게 하소서. 그리고 배를 맡은 어민과 상인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 본청이 매달 그믐과 초하루에 점검하여, 봄에는 고기를 잡아 팔고, 여름에는 소금을 실어다 팔고, 간혹 하삼도(下三道)의 사곡(私穀)을 조운(漕運)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해 준 후에 1할의 세를 거두고 8, 9할의 이익을 인정하여 주소서. 그러면 교역을 통해 끝없이 순환하게 될 것이니, 필시 백성들이 생업을 즐거워하게 됨과 아울러 공사(公私)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입니다. 그렇게 4, 5년이 지나 본청이 나라 안에서 가장 풍요로워지게 되면 거기에서 십분의 1, 2를 떼어 백성들에게 맡겼던 각배의 장비를 개수하소서. 그리한다면 주사는 늘상 새롭고 닻과 키는 결함이 없을 것이며, 한 번 수리를 거친 배는 10년은 탈이 없을 것입니다. 또 2년 동안의 선세를 모아 지부(地部)로 돌린다면 조금의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한다면 이 청의 설치로 인해 무사한 때에는 국가가 그 이로움을 누리고,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백성들이 침어를 면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먼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빨리 신의 논의를 본청에 내려 여러 당상들로 하여금 속히 처치하게 함으로써 애써 마련한 배를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채 그냥 썩도록 방치한다는 비난을 면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신이 주사(舟師)에 대한 한두 가지 계획을 가지고 성상을 번거롭게 해드렸는데, 중간에 간혹 그 설에 대해 입방아를 찧으면서 비난하는 자도 있었습니다만, 성상께서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근래 본청의 일은 바닷가 백성들의 힘을 고갈시켜 마련한 배를 헛되이 도랑에다 버려둔 채 앉아서 썩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당초 청을 설치하여 일을 주선했던 본의와는 너무도 다르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미 모아 놓은 선척이 강어귀에서 그대로 비바람을 맞아서 조각조각 썩은 나무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있으니 애통하게도 나랏일은 글러 버린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강가의 희우정(喜雨亭)·현량(玄梁)·서강(西江)·마포(麻浦)·용산(龍山)·서빙고(西氷庫)·한강(漢江)·두모포(豆毛浦) 등 7, 8촌의 어민과 상인(商人) 중 자원하는 자에게 배 한 척씩을 맡기고, 그 나머지 용주(龍舟) 및 대맹선(大艋船)과, 귀선(龜船) 몇 척도 주사청으로 하여금 풀을 덮어두고 늘 곁에서 살피게 하소서. 그리고 배를 맡은 어민과 상인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 본청이 매달 그믐과 초하루에 점검하여, 봄에는 고기를 잡아 팔고, 여름에는 소금을 실어다 팔고, 간혹 하삼도(下三道)의 사곡(私穀)을 조운(漕運)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해 준 후에 1할의 세를 거두고 8, 9할의 이익을 인정하여 주소서. 그러면 교역을 통해 끝없이 순환하게 될 것이니, 필시 백성들이 생업을 즐거워하게 됨과 아울러 공사(公私)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입니다. 그렇게 4, 5년이 지나 본청이 나라 안에서 가장 풍요로워지게 되면 거기에서 십분의 1, 2를 떼어 백성들에게 맡겼던 각배의 장비를 개수하소서. 그리한다면 주사는 늘상 새롭고 닻과 키는 결함이 없을 것이며, 한 번 수리를 거친 배는 10년은 탈이 없을 것입니다. 또 2년 동안의 선세를 모아 지부(地部)로 돌린다면 조금의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한다면 이 청의 설치로 인해 무사한 때에는 국가가 그 이로움을 누리고,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에는 백성들이 침어를 면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먼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빨리 신의 논의를 본청에 내려 여러 당상들로 하여금 속히 처치하게 함으로써 애써 마련한 배를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채 그냥 썩도록 방치한다는 비난을 면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형조 판서 심돈(沈惇)과 좌우 포도 대장이 비밀리에 계사를 입계하였는데,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12월 18일 계유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다.

 

형조의 계목에, "점련한 경상 감사의 서장에 운운하였습니다. 지난번 신안 현감(新安縣監) 김중청(金中淸)은 명화적(明火賊) 패거리인 백가미(白加未) 등 2명을 체포했고, 삼가 현감(三嘉縣監) 신경진(申景珍)은 백가미와 같은 패거리를 체포했다 합니다. 전례대로 논상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니, 상께서 재가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법전대로 가자하게 하였다.
"점련한 경상 감사의 서장에 운운하였습니다. 지난번 신안 현감(新安縣監) 김중청(金中淸)은 명화적(明火賊) 패거리인 백가미(白加未) 등 2명을 체포했고, 삼가 현감(三嘉縣監) 신경진(申景珍)은 백가미와 같은 패거리를 체포했다 합니다. 전례대로 논상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니, 상께서 재가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법전대로 가자하게 하였다.

 

헌납 황준윤과 대사간 윤인이 피혐하였는데, 정원의 분부로 인하여 비밀에 부치고 조보에 내지 않았다.

 

사간 정도(鄭道)가, 황중윤의 피혐하는 내용 중에, ‘전에 합사(合司)한 비밀’ 등의 말이 있다는 이유로 피혐하였는데, 전에 내린 전교에 따라 원 계사를 조보에 내지 않았다. 【계사의 내용이 저주에 관한 일을 말한 것이었으므로 비밀에 부친 것이다.】

 

12월 19일 갑술

대사헌 유경종(柳慶宗), 장령 곽천호(郭天豪), 지평 신칙(申恜)·남명우(南溟羽), 정언 이경익(李慶益) 등이 비밀에 관한 일로 피혐하여 입계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이에 모두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홍문관이 상차하기를, "유경종 이하는 모두 출사시키고 이경익은 체차시키소서." 하니, 따랐다.
"유경종 이하는 모두 출사시키고 이경익은 체차시키소서."
하니, 따랐다.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치계하였다. "교 유격(喬遊擊)이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또 금년 11월 26일에 두 총병(杜摠兵)과 마 총병(馬摠兵)이 금(金)·백(白) 양 추장의 병마를 대동하고 노추(奴酋)의 외책(外柵)을 공격하여 적의 수급 87급(級)을 베고 4백 14명을 생포한 다음 개원(開原)에서 방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 총병의 전첩(傳帖)이 진강(鎭江)에 도착했습니다."
"교 유격(喬遊擊)이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또 금년 11월 26일에 두 총병(杜摠兵)과 마 총병(馬摠兵)이 금(金)·백(白) 양 추장의 병마를 대동하고 노추(奴酋)의 외책(外柵)을 공격하여 적의 수급 87급(級)을 베고 4백 14명을 생포한 다음 개원(開原)에서 방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 총병의 전첩(傳帖)이 진강(鎭江)에 도착했습니다."

 

문희현(文希賢)을 다시 가두었다.

 

12월 21일 병자

판중추부사 노직(盧稷)이 죽었다. 【노직은 본래 탐욕스럽고 비루한 자이다. 경상(卿相)의 자리에 오르고 양전(兩銓)의 장관이 되어서는 남의 청탁을 받아 뇌물이 문을 메웠으므로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부자가 되었다.】

 

병조 참판 이성(李𢜫)이 상차하여, 궁중에 저주를 한 적의 주범을 끝까지 국문하여 분명히 그 죄를 처벌함으로써 그러한 일을 근절시키기를 청하니, 비답을 봉하여 내렸다.

 

필선 채겸길(蔡謙吉)이 동궁의 명을 받고 합천(陜川)으로 가서 영상 정인홍(鄭仁弘)을 문안하였다.

 

12월 22일 정축

우승지 이위경(李偉卿)이 아뢰기를, "근래에 폐단이 구름처럼 쌓여 있는데, 그중에서 하호(下戶) 백성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형옥에 관한 일입니다. 대개 죄수를 직접 구금할 권한이 있는 아문의 관원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바로 형구를 채워서 가두는데, 심지어 열흘씩 두어 달씩 가두어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남의 청탁을 받거나 남의 빚 독촉을 위해 가두기도 하는데, 첩지가 한 번 날았다 하면 차지(次知)가 감옥에 가득 차 슬피 울부짖고 괴로워하니, 억울한 정상은 진실로 다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성상의 덕이 온 나라를 덮고 있는 이러한 때에 어찌 한두 가지 폐단 때문에 맑은 교화가 가로막히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천지에 양기(陽氣)가 회복되어 만물이 다 온화함을 머금고 있는 때이니, 만물은 생성시키려는 마음을 확연하게 잡을 수 있을 듯합니다. 섣달이 거의 다 가고 새해가 다가오자 앞집 뒷집 이웃끼리 함께 고기와 술을 마련하여 한 해를 무사히 보낸 기쁨을 함께 하고 있는데, 홀로 형구에 묶여 있으면서 억울하게 갇혔음을 성상을 향해 울부짖으니, 인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진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는 일입니다. 속히 전옥서(典獄署)로 하여금 죄수를 분간하여 역옥에 관계되는 죄수 및 무거운 죄를 지은 사형수를 제외한 나머지 차지 등은 모두 풀어주게 함으로써 양춘(陽春)에 덕을 베푸는 뜻을 본받도록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근래에 폐단이 구름처럼 쌓여 있는데, 그중에서 하호(下戶) 백성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형옥에 관한 일입니다. 대개 죄수를 직접 구금할 권한이 있는 아문의 관원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바로 형구를 채워서 가두는데, 심지어 열흘씩 두어 달씩 가두어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남의 청탁을 받거나 남의 빚 독촉을 위해 가두기도 하는데, 첩지가 한 번 날았다 하면 차지(次知)가 감옥에 가득 차 슬피 울부짖고 괴로워하니, 억울한 정상은 진실로 다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성상의 덕이 온 나라를 덮고 있는 이러한 때에 어찌 한두 가지 폐단 때문에 맑은 교화가 가로막히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천지에 양기(陽氣)가 회복되어 만물이 다 온화함을 머금고 있는 때이니, 만물은 생성시키려는 마음을 확연하게 잡을 수 있을 듯합니다. 섣달이 거의 다 가고 새해가 다가오자 앞집 뒷집 이웃끼리 함께 고기와 술을 마련하여 한 해를 무사히 보낸 기쁨을 함께 하고 있는데, 홀로 형구에 묶여 있으면서 억울하게 갇혔음을 성상을 향해 울부짖으니, 인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진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는 일입니다. 속히 전옥서(典獄署)로 하여금 죄수를 분간하여 역옥에 관계되는 죄수 및 무거운 죄를 지은 사형수를 제외한 나머지 차지 등은 모두 풀어주게 함으로써 양춘(陽春)에 덕을 베푸는 뜻을 본받도록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약방 제조 이이첨(李爾瞻)의 병이 중하다고 하니, 내일 나가서 조리하도록 하라."
"약방 제조 이이첨(李爾瞻)의 병이 중하다고 하니, 내일 나가서 조리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장응기(張應箕)를 보방(保放)하라."
"장응기(張應箕)를 보방(保放)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참판 강홍립(姜弘立)을 체차하라는 명을 내리셨는데, 강홍립이 국가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밖에 나가 있으니, 지금 만약 본직을 체직한다면 당초에 준 교서를 반드시 고쳐 써야 할 것입니다. 선조(先朝) 때에 한준겸(韓浚謙)은 이조 참판으로서 원수의 직책에 제수되었으나 본직을 체직하지 않았습니다. 또 중국 조정이 양 경략을 대우하는 사례를 보더라도 강홍립을 체차하는 것이 일의 체모상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황공하오나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강홍립을 초자(超資)하여 지중추에 제수하라." 하였다.
"참판 강홍립(姜弘立)을 체차하라는 명을 내리셨는데, 강홍립이 국가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밖에 나가 있으니, 지금 만약 본직을 체직한다면 당초에 준 교서를 반드시 고쳐 써야 할 것입니다. 선조(先朝) 때에 한준겸(韓浚謙)은 이조 참판으로서 원수의 직책에 제수되었으나 본직을 체직하지 않았습니다. 또 중국 조정이 양 경략을 대우하는 사례를 보더라도 강홍립을 체차하는 것이 일의 체모상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황공하오나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강홍립을 초자(超資)하여 지중추에 제수하라."
하였다.

 

12월 23일 무인

대사헌 유경종과 대사간 윤인 이하가 출사하였다.

 

전교하기를, "오익(吳翊)이 죽었다고 하니, 별도로 부의를 전하는 것을 의례대로 거행하라." 하였다. 【오익은 억령(億齡)의 아들이다. 관직이 승지에까지 이르렀는데, 아비의 상을 당해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장례도 채 치르지 못하고 죽었다.】
"오익(吳翊)이 죽었다고 하니, 별도로 부의를 전하는 것을 의례대로 거행하라."
하였다. 【오익은 억령(億齡)의 아들이다. 관직이 승지에까지 이르렀는데, 아비의 상을 당해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장례도 채 치르지 못하고 죽었다.】

 

함경 감사가 치계하였다. "온성 부사(穩城府使) 박성룡(朴成龍)은 관곡(官穀)을 훔쳐내어 널리 피혁을 사들이고, 토병(土兵)의 소와 말을 공공연하게 빼앗았으며, 날마다 사냥을 하느라고 말을 타고 변경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심상하게 처벌해서는 그 잘못을 징계하지 못할 것이니, 조정에서 잡아들여 엄히 국문하여 법대로 처벌하소서."
"온성 부사(穩城府使) 박성룡(朴成龍)은 관곡(官穀)을 훔쳐내어 널리 피혁을 사들이고, 토병(土兵)의 소와 말을 공공연하게 빼앗았으며, 날마다 사냥을 하느라고 말을 타고 변경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심상하게 처벌해서는 그 잘못을 징계하지 못할 것이니, 조정에서 잡아들여 엄히 국문하여 법대로 처벌하소서."

 

합사하여 전계한 비밀 내용을 아뢰었는데, 서궁(西宮)과 역적 이광(李珖)에 관한두 가지 일, 역적 원종(元悰)을 엄히 국문하여 처형할 것을 청한 일, 존호를 올릴 것을 청한 일이었다. 비밀에 관계된 일을 새로 아뢰어 입계하고, 합계하여 이강(李茳)을 변방에 위리 안치할 것을 청하였는데, 원 계사를 조보(朝報)에 내지 않았다.

 

합사와 합계에 대하여 답하였는데, 비답을 봉해서 내렸다.

 

전교하였다. "중국 칙사가 교외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으니 매우 미안하다. 정월 초순 전으로 날을 고쳐잡도록 속히 하유하라."
"중국 칙사가 교외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으니 매우 미안하다. 정월 초순 전으로 날을 고쳐잡도록 속히 하유하라."

 

12월 24일 기묘

전교하였다. "전 병사 정항(鄭沆)을 서용하라."
"전 병사 정항(鄭沆)을 서용하라."

 

예조가 아뢰었다. "두 칙사를 맞이하는 길일을 정월 11일로 고쳐 잡았습니다."
"두 칙사를 맞이하는 길일을 정월 11일로 고쳐 잡았습니다."

 

삼사의 계차(啓箚)는 시약청을 파할 때까지 전교에 따라 우선 중지하였다.

 

12월 25일 경진

정원이 아뢰었다. "가까운 선대의 국기일을 신하로서 알지 못하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양사가 재계하는 날에 와서 아뢴 것은 오직 역적의 토벌을 급하게 여겨서였으며, 결코 그 사이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엄한 교지를 내리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끝내는 ‘국가의 기일을 베껴서 삼사에 주라.’는 교지를 내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신들은 머리를 모은 채 서로 돌아보면서 두려워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임금의 귀와 눈인 삼사의 직책은 일이 있을 때 할말을 다하는 것이니, 설령 지나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삼사를 대우하는 도리는 이와 같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신들은 가까이에서 모시는 직책을 맡고 있기에 황공함을 무릅쓰고 감히 아룁니다."
"가까운 선대의 국기일을 신하로서 알지 못하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양사가 재계하는 날에 와서 아뢴 것은 오직 역적의 토벌을 급하게 여겨서였으며, 결코 그 사이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엄한 교지를 내리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끝내는 ‘국가의 기일을 베껴서 삼사에 주라.’는 교지를 내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신들은 머리를 모은 채 서로 돌아보면서 두려워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임금의 귀와 눈인 삼사의 직책은 일이 있을 때 할말을 다하는 것이니, 설령 지나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삼사를 대우하는 도리는 이와 같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신들은 가까이에서 모시는 직책을 맡고 있기에 황공함을 무릅쓰고 감히 아룁니다."

 

양사의 전 인원이 사직하며 인피하기를, "신들이 모두 무능하여 오랫동안 언관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국가에 일이 많은 때에 할말을 다하여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현자를 가로막고 직책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처벌은 진실로 면하기 어렵습니다. 삼가 어제 전후로 내리신 비밀 비망기를 보니 미안한 전교가 많았는데, 이는 신들의 성의가 부족하여 초래된 일입니다. 신들도 재계하고 약을 시중드는 날에는 논계하지 않는 예가 간혹 있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론(大論)은 오랫동안 중지할 수 없고 적신(賊臣)은 급히 국문하여야 하겠기에 구구히 어리석은 소견으로 소란을 피운다는 혐의를 피하지 않고 외람되게 아뢰었던 것이니, 대개 신하로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중요하게 여겨서였습니다. 게다가 합사의 논의를 오랫동안 지체한 것을 물의가 비난하고 있습니다. 양사가 피혐하고 있어 즉시 와서 아뢰지 못하다가 출사하고 난 후에 공론으로 인하여 다시 아뢰었는데, 이렇게까지 엄한 전교를 받게 되니, 신들이 살피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을 체직하도록 명하소서." 하자, 답하기를, "어찌 아뢸 수 있는 날이 없겠는가. 시약청을 파할 때까지 급하지 않은 논의는 우선 중지하는 것이 옳다. 사직하지 말라." 하니, 모두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모두 무능하여 오랫동안 언관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국가에 일이 많은 때에 할말을 다하여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현자를 가로막고 직책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처벌은 진실로 면하기 어렵습니다.
삼가 어제 전후로 내리신 비밀 비망기를 보니 미안한 전교가 많았는데, 이는 신들의 성의가 부족하여 초래된 일입니다. 신들도 재계하고 약을 시중드는 날에는 논계하지 않는 예가 간혹 있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론(大論)은 오랫동안 중지할 수 없고 적신(賊臣)은 급히 국문하여야 하겠기에 구구히 어리석은 소견으로 소란을 피운다는 혐의를 피하지 않고 외람되게 아뢰었던 것이니, 대개 신하로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중요하게 여겨서였습니다. 게다가 합사의 논의를 오랫동안 지체한 것을 물의가 비난하고 있습니다. 양사가 피혐하고 있어 즉시 와서 아뢰지 못하다가 출사하고 난 후에 공론으로 인하여 다시 아뢰었는데, 이렇게까지 엄한 전교를 받게 되니, 신들이 살피지 못한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을 체직하도록 명하소서."
하자, 답하기를,
"어찌 아뢸 수 있는 날이 없겠는가. 시약청을 파할 때까지 급하지 않은 논의는 우선 중지하는 것이 옳다. 사직하지 말라."
하니, 모두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이선복(李善復)을 병조 참판으로, 윤중삼(尹重三)을 형조 참판으로, 김치(金緻)를 우부승지로, 임흥후(任興後)를 정언으로, 정광경(鄭廣敬)을 사인으로, 이성(李𢜫)을 공홍도(公洪道) 감사로, 이잠(李埁)을 예조 정랑으로, 한영(韓詠)을 장악원 첨정으로, 안응로(安應魯)를 설서로, 이필달(李必達)을 대교로, 박로(朴𥶇)를 안동 부사로, 조방보(趙邦輔)를 길주 목사(吉州牧使)로 삼았다.

 

12월 26일 신사

홍문관이 아뢰기를, "오늘 양사가 모두 인피하였으니 본관(本館)이 처치를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직제학 유충립(柳忠立)은 정사(呈辭)하였고, 전한 황덕부(黃德符)도 정사하였고, 응교 이상항(李尙恒)은 외방에 있고, 수찬 조유선(趙裕善)은 춘방(春坊)에 입직하였고, 부교리 채승선(蔡承先)과 한정국(韓定國), 수찬 오익환(吳益煥), 부수찬 한급(韓昅)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상번(上番)인 교리 황익중(黃益中)은 입직을 해야 할 관원으로서 이유없이 나갔으며, 하번(下番)인 부수찬 최호(崔濩)는 사간 정도(鄭道)와 상피해야 할 입장이어서 전체가 모이는 석상에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제학 박정길(朴鼎吉)만 종일 혼자 앉아 기다림으로써 모임의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일의 체모를 헤아려 보면 극히 놀랍고 괴이하다 하겠습니다. 대개 처치할 때에 장관이 논의를 완결지어 글을 쓰도록 허락하면 하관이 차자를 써서 정원에 보내는 것이 구례(舊例)입니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는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으니, 신정길이 비록 혼자 처치하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멋대로 직소(直所)를 버리고 나간 관원을 모두 명초(命招)하여 참석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오늘 양사가 모두 인피하였으니 본관(本館)이 처치를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직제학 유충립(柳忠立)은 정사(呈辭)하였고, 전한 황덕부(黃德符)도 정사하였고, 응교 이상항(李尙恒)은 외방에 있고, 수찬 조유선(趙裕善)은 춘방(春坊)에 입직하였고, 부교리 채승선(蔡承先)과 한정국(韓定國), 수찬 오익환(吳益煥), 부수찬 한급(韓昅)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상번(上番)인 교리 황익중(黃益中)은 입직을 해야 할 관원으로서 이유없이 나갔으며, 하번(下番)인 부수찬 최호(崔濩)는 사간 정도(鄭道)와 상피해야 할 입장이어서 전체가 모이는 석상에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제학 박정길(朴鼎吉)만 종일 혼자 앉아 기다림으로써 모임의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일의 체모를 헤아려 보면 극히 놀랍고 괴이하다 하겠습니다.
대개 처치할 때에 장관이 논의를 완결지어 글을 쓰도록 허락하면 하관이 차자를 써서 정원에 보내는 것이 구례(舊例)입니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는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으니, 신정길이 비록 혼자 처치하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멋대로 직소(直所)를 버리고 나간 관원을 모두 명초(命招)하여 참석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홍문관이 양사를 출사시키기를 청하니, 따랐다.

 

12월 27일 임오

한성부가 아뢰기를, "도료군(渡遼軍)에게 지급하기 위하여 거두는 포를 이달 25일로 기한을 정하였는데, 가을에 흩어져 나간 도성의 백성이 꽤 많으므로 호적으로 근거를 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반드시 현재 실제로 남아 있는 방민(坊民)의 수를 조사하여 개성부(開城府) 호구와 통합한 뒤에야 포의 필수를 참작하여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방방곡곡 분류하여 호구를 계산하자면 날짜를 지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성부의 호적이 아직 올라오지 않아 형편상 기한 내에 거두기 어렵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 일은 내가 비록 자세하게는 모르나 이렇게 꾸물대다가는 겨울이 다 지나가 버릴 것이니, 제대로 변방의 추위를 막도록 해줄 수 있겠는가. 다시 더 재촉하여 거두어 급히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도료군(渡遼軍)에게 지급하기 위하여 거두는 포를 이달 25일로 기한을 정하였는데, 가을에 흩어져 나간 도성의 백성이 꽤 많으므로 호적으로 근거를 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반드시 현재 실제로 남아 있는 방민(坊民)의 수를 조사하여 개성부(開城府) 호구와 통합한 뒤에야 포의 필수를 참작하여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방방곡곡 분류하여 호구를 계산하자면 날짜를 지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성부의 호적이 아직 올라오지 않아 형편상 기한 내에 거두기 어렵겠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 일은 내가 비록 자세하게는 모르나 이렇게 꾸물대다가는 겨울이 다 지나가 버릴 것이니, 제대로 변방의 추위를 막도록 해줄 수 있겠는가. 다시 더 재촉하여 거두어 급히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12월 28일 계미

대사간 윤인이 아뢰기를, "전에 동료가 김출(金秫)을 논계할 때에 본래 김출의 사람됨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본도의 복계(覆啓)만을 믿고 인피하였는데, 다시 물의를 들어 보니 김출이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는 말은 실로 근거없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또 이유를 갖추어 피혐하였으니 전도 착란한 실책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옥당은 구차스럽게 출사시킬 것을 청하니, 신이 어찌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고 직무를 보아 남의 비난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체직하도록 명하소서." 하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에 동료가 김출(金秫)을 논계할 때에 본래 김출의 사람됨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본도의 복계(覆啓)만을 믿고 인피하였는데, 다시 물의를 들어 보니 김출이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는 말은 실로 근거없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또 이유를 갖추어 피혐하였으니 전도 착란한 실책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옥당은 구차스럽게 출사시킬 것을 청하니, 신이 어찌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고 직무를 보아 남의 비난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체직하도록 명하소서."
하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언 이원여(李元輿)가 아뢰기를, "삼가 대사간 윤인이 재차 피혐하는 말을 보니, 다시 김출의 일을 거론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실로 신이 피혐한 말이 윤인이 전날 피혐한 말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동료를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또 옥당은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리이므로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는데, 입번(入番)한 관원이 개인적인 일로 마음대로 나가버려 완전히 비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식자들이 극도로 한심하게 여겨왔습니다. 양사의 전 인원이 인피하였으면 즉시 처치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한데, 그저께 양사가 모두 인피한 후에 옥당의 관원이 하나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부제학 박정길만 혼자 왔다가 그냥 돌아감으로써 처치를 못한 채 이틀을 보내었으니, 이는 모두 신이 대간에 있으나마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얼굴을 들고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을 체직하소서." 하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나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대사간 윤인이 재차 피혐하는 말을 보니, 다시 김출의 일을 거론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실로 신이 피혐한 말이 윤인이 전날 피혐한 말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동료를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또 옥당은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리이므로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는데, 입번(入番)한 관원이 개인적인 일로 마음대로 나가버려 완전히 비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식자들이 극도로 한심하게 여겨왔습니다. 양사의 전 인원이 인피하였으면 즉시 처치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한데, 그저께 양사가 모두 인피한 후에 옥당의 관원이 하나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부제학 박정길만 혼자 왔다가 그냥 돌아감으로써 처치를 못한 채 이틀을 보내었으니, 이는 모두 신이 대간에 있으나마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얼굴을 들고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을 체직하소서."
하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나 물론을 기다렸다.

 

대사헌 유경종, 집의 임건, 사간 정도, 장령 곽천호, 헌납 황중윤, 지평 신칙·남명우가 아뢰기를, "대간은 국가의 귀와 눈이니, 하루라도 대간이 없으면 이는 국가에 귀와 눈이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신들이 모두 용렬한 자질로서 외람되게 이목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길에서 크게 소리쳐대기나 하면서 약을 시중 드는 날에 번거롭게 해드리기만 하였으니, 신들의 죄가 진실로 크다 하겠습니다. 며칠 전 신들이 피혐하여 옥당이 처치하던 때에, 입번하였다가 개인적인 일로 나간 자도 있었고, 아예 참석하지 않은 자도 있어서 장관이 그냥 앉았다가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즉시 처치하지 못한 채 이틀이나 지나서 국가에 귀와 눈이 없도록 하였으니, 이는 다 신들이 있으나마나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간원의 여러 관원이 인피하는 말을 보고서 어찌 감히 태연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을 체직하소서." 하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나 물론을 기다렸다.
"대간은 국가의 귀와 눈이니, 하루라도 대간이 없으면 이는 국가에 귀와 눈이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신들이 모두 용렬한 자질로서 외람되게 이목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길에서 크게 소리쳐대기나 하면서 약을 시중 드는 날에 번거롭게 해드리기만 하였으니, 신들의 죄가 진실로 크다 하겠습니다. 며칠 전 신들이 피혐하여 옥당이 처치하던 때에, 입번하였다가 개인적인 일로 나간 자도 있었고, 아예 참석하지 않은 자도 있어서 장관이 그냥 앉았다가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즉시 처치하지 못한 채 이틀이나 지나서 국가에 귀와 눈이 없도록 하였으니, 이는 다 신들이 있으나마나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간원의 여러 관원이 인피하는 말을 보고서 어찌 감히 태연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을 체직하소서."
하자,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나 물론을 기다렸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대사헌 유경종 이하와 대사간 윤인 이하가 모두 인피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미 논의에 참석해 놓고는 논의를 제기한 동료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먼저 인피한 것은 상규에 어긋납니다. 사실을 근거로 일을 논하는 것은 간관(諫官)의 체모이니, 동료가 재차 인피한 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양사 전원이 인피하였는데도 즉시 처치하지 않았고 보면 언관(言官)의 인피는 진실로 마땅합니다. 춘방에 입직하여 함께 인피하지 못한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달리 인피할 혐의가 없습니다. 정원 이원여, 사간 정도, 헌납 황윤중, 대사헌 유경종, 장령 곽천호, 지평 신칙·남명우, 집의 임건은 모두 출사하도록 명하고, 대사헌 윤인은 체차시키소서." 하니, 따랐다.
"대사헌 유경종 이하와 대사간 윤인 이하가 모두 인피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미 논의에 참석해 놓고는 논의를 제기한 동료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먼저 인피한 것은 상규에 어긋납니다. 사실을 근거로 일을 논하는 것은 간관(諫官)의 체모이니, 동료가 재차 인피한 것이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양사 전원이 인피하였는데도 즉시 처치하지 않았고 보면 언관(言官)의 인피는 진실로 마땅합니다. 춘방에 입직하여 함께 인피하지 못한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달리 인피할 혐의가 없습니다. 정원 이원여, 사간 정도, 헌납 황윤중, 대사헌 유경종, 장령 곽천호, 지평 신칙·남명우, 집의 임건은 모두 출사하도록 명하고, 대사헌 윤인은 체차시키소서."
하니, 따랐다.

 

12월 29일 갑신

수찬 오익환(吳益煥)이 아뢰기를, "신은 늦게 두질(痘疾)을 앓아 늘 병을 달고 살았는데, 입직한 지 보름 만에 끝내 흉통(胸痛)이 생겨 집으로 나가 쉬고 있었습니다. 26일 오후에 본관의 서리가 와서 양사의 처치를 청하였으므로 곧장 병든 몸을 끌고 달려갔는데, 대궐에 도착할 즈음에 하리(下吏)가 와서 부제학이 이미 도로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실로 미안하여 이러한 일을 들어 대죄하고자 하였으나, 시약청을 파하지 못한 이러한 때에 번거롭게 해드리게 될까 염려되어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양사의 많은 관원이 인피한 말을 보건대 즉시 처치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 하였으니, 신이 어찌 논사(論思)하는 중요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체직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은 늦게 두질(痘疾)을 앓아 늘 병을 달고 살았는데, 입직한 지 보름 만에 끝내 흉통(胸痛)이 생겨 집으로 나가 쉬고 있었습니다. 26일 오후에 본관의 서리가 와서 양사의 처치를 청하였으므로 곧장 병든 몸을 끌고 달려갔는데, 대궐에 도착할 즈음에 하리(下吏)가 와서 부제학이 이미 도로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실로 미안하여 이러한 일을 들어 대죄하고자 하였으나, 시약청을 파하지 못한 이러한 때에 번거롭게 해드리게 될까 염려되어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양사의 많은 관원이 인피한 말을 보건대 즉시 처치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 하였으니, 신이 어찌 논사(論思)하는 중요한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체직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부수찬 한급이 아뢰기를, "전날 양사를 처치하던 때에 신은 어머니의 병 때문에 일찍 본관에 가지 못하고 해가 질 무렵에 들어와 보니 부제학 박정길은 이미 나가고 없었습니다. 들어오긴 했지만 장관이 나간 뒤였기에 이유를 갖추어 대죄하려 하였으나 번거롭게 해드릴까봐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또 형편상 혼자서 처치하기도 어렵겠기에 부득이 다시 나가서 이틀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내전이 편찮으신 때에 누차 인피하여 마지않으니 신의 죄가 큽니다. 신을 체직하도록 명하여 대간의 말을 중히 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날 양사를 처치하던 때에 신은 어머니의 병 때문에 일찍 본관에 가지 못하고 해가 질 무렵에 들어와 보니 부제학 박정길은 이미 나가고 없었습니다. 들어오긴 했지만 장관이 나간 뒤였기에 이유를 갖추어 대죄하려 하였으나 번거롭게 해드릴까봐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또 형편상 혼자서 처치하기도 어렵겠기에 부득이 다시 나가서 이틀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내전이 편찮으신 때에 누차 인피하여 마지않으니 신의 죄가 큽니다. 신을 체직하도록 명하여 대간의 말을 중히 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부교리 한정국(韓定國)이 아뢰기를, "26일 대간을 처치하던 때에, 신의 병든 어머니가 심한 편두통으로 고통스러워 하여 증세가 위급하였으므로 예기치 않게 침을 놓고 뜸을 뜨느라고 곁을 떠날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하리가 와서 부제학이 이미 본관에 도착했다고 말하기에 대궐로 달려갔으나 부제학이 이미 돌아가고 없었습니다. 대죄를 하자니 번거롭게 해드릴까 염려되어 부득이 입직하였는데, 지금 양사가 인혐한 말을 보니 즉시 처치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 하였습니다. 그대로 논사하는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을 체직하도록 답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26일 대간을 처치하던 때에, 신의 병든 어머니가 심한 편두통으로 고통스러워 하여 증세가 위급하였으므로 예기치 않게 침을 놓고 뜸을 뜨느라고 곁을 떠날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하리가 와서 부제학이 이미 본관에 도착했다고 말하기에 대궐로 달려갔으나 부제학이 이미 돌아가고 없었습니다. 대죄를 하자니 번거롭게 해드릴까 염려되어 부득이 입직하였는데, 지금 양사가 인혐한 말을 보니 즉시 처치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 하였습니다. 그대로 논사하는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을 체직하도록 답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부교리 채승선(蔡承先)이 아뢰기를, "며칠 전 본관이 양사를 처치하던 때에, 신은 마침 흉통을 앓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양사의 인피한 말을 보건대, 즉시 처치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 하였습니다. 형편상 논사하는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을 체직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하고 답하였다.
"며칠 전 본관이 양사를 처치하던 때에, 신은 마침 흉통을 앓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양사의 인피한 말을 보건대, 즉시 처치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 하였습니다. 형편상 논사하는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을 체직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하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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