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40권, 정조 18년 1794년 7월

싸라리리 2025. 8. 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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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병술

이조가 서울과 지방의 노직(老職)으로 추은(推恩)할 사람 7만 5천 1백 45인을 천거하니, 전교하기를,
"승지와 관찰사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드러내는 데 성실하였다. 승지에게는 사슴 가죽 한 장씩을 주고 관찰사에게는 좋은 활을 주도록 하라."
하였다.

 

7월 3일 무자

상이 봉상시에서 오래 근무한 낭청 유사모(柳師模)를 불러보고 이르기를,
"내가 늘 걱정하는 것은 오직 제사인데, 날씨가 이렇게 무더우니 제물이 상하지 않겠는가. 빙고 제조(冰庫提調)와 함께 각별히 얼음을 채워넣는 기구를 갖추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 태묘(太廟)의 가을 제사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전교가 있었다.

 

7월 5일 경인

장악원 제조에게 명하여 더위를 가시게 하는 약을 춤추는 공인(工人)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7월 6일 신묘

전교하기를,
"근일의 찌는 듯한 더위는 근년에 처음 있는 일이고 어제 오늘의 따가운 햇볕은 근일에 처음 보는 일이다. 성을 쌓는 수고를 생각하면 자나깨나 먹을 때나 쉴 때나 매우 걱정이 된다. 전번에 더위 식히는 약을 준 것은 특별히 투료(投醪)의 의미064)  를 부친 것뿐이니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번 성을 쌓는 일은 소중함이 어떠한가. 비록 한 사람의 인부나 한 사람의 장인(匠人)이라도 혹 더위를 먹고 갈증이 난다면 이것이 어찌 성을 쌓는 일로 인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조정에서는 근래 가슴이 답답한 증세로 날마다 양제(凉劑)를 복용하는 일을 일과로 삼은 지 한 달이 넘는다. 이런 증세에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가장 좋은데, 무더운 날에 부역에 종사하는 장인과 인부를 염려하다보니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마음을 고달프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 경들은 이러한 때에 다른 것은 돌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성을 쌓는 공사장 중 돌을 뜨고 기와를 굽는 여러 곳에서는 뙤약볕 가운데 서있게 되므로 부역하는 일은 서늘한 기운이 생길 때까지 멈추도록 하라. 처서(處暑) 전에라도 서늘한 기운이 생기면 형세를 보아 일을 독촉할 것이다. 더구나 이 성쌓는 문제는 일마다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백성들의 힘을 펴게 하는데 힘써야 한다. 한 가지라도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설사 공사가 며칠 안에 이루어지는 효과가 있더라도 나의 본뜻은 아니다."
하였다.

 

7월 7일 임진

진하 정사 김이소(金履素)가 상소를 올려 면직되자, 박종악(朴宗岳)으로 대신하고, 홍양호(洪良浩)로 동지 겸 사은 정사로 삼았다.

 

7월 10일 을미

이때에 달포 동안 계속 가물자 전교하기를,
"가물이 이토록 심하니 걱정스러워 마음이 타는 듯할 뿐만이 아니다. 일찍이 폐백을 가지고 여러 제사를 두루 지냈으니 어찌 혹시라도 지금까지 소홀히 한 것이 있겠는가. 경기와 호남·영남에 비가 그친 지가 10여 일 남짓 되었고 며칠 동안 무덥던 날씨도 비 올 가망이 있었다. 어제 대신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아직 잠자코 기다리자고 하였는데, 석양이 되자 또 바람이 불어 말린 듯이 개이니 삼농(三農)에 대한 염려를 무어라고 형언할 길이 없다. 금년에는 비오고 개이는 것이 적절한가 했더니 요즘 들어 가물이 극심하니 재해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책하느라 밤마다 날을 지새운 지가 오래되었다. 내가 진실로 부덕한 탓이지 백성들이야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이번에는 정성을 다하여 기우제를 지내는 일을 잠시도 늦출 수 없다. 그래서 날을 가리지 말고 기우제를 행하도록 명하는 것이니, 재계하는 제관은 재계를 충실히 하여 제사를 끝내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말게 하라."
하였다.

 

7월 11일 병신

전교하였다.
"향과 축문을 대신 전하게 하여 마음속으로 신(神)이 감격하기를 바랬는데, 지금 보건대 비 올 가망이 막연하니 애타는 마음은 농부보다 10배나 더하다. 어제 도움을 구하는 뜻을 전교 속에 아울러 열거하려 하였으나 곡절이 많아 아직 시행하지 못하였다.
다시 생각건대, 입추(立秋)가 내일이므로 전례를 끌어다가 제사를 지내야 하겠다. 더구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재해를 없애고 하늘의 뜻을 바꾸는 방법에 도움이 된다면 하루라도 지연시켜서야 되겠는가. 대체로 사람의 일이 아래에서 잘 다스려지지 않기 때문에 무더운 날씨가 가물게 된 것이다. 임금이 정사를 잘못하거나 벼슬아치가 농간을 부려 백성들의 숨은 고통이 되는 것이 사람의 일 가운데에 한 가지가 되고 있으니 사람의 일이 다스려지지 않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근자에 언로(言路)가 열리지 않는 것을 역사에는 없던 일이라고 하지 말라.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이다. 지금 내린 금지령을 가지고 원칙으로 삼지 말라. 대체로 지금 임금을 위하여 의논하고 생각하며 바른 말을 하는 반열에 있는 자들은 말할 만한 일은 숨김없이 의논하여 내 마음의 선한 발단을 채우도록 하라. 지금 명목상으로는 전지에 응한다고 하면서 말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어찌 사실을 가지고 대응하는 도리라고 하겠는가. 말은 간절해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한 번 막대기로 치면 한 줄기의 흔적이 나고 한 번 주먹으로 치면 한 번 손바닥에 피가 맺힌다.’065)  는 말은 옛사람들이 비유한 격언이니, 삼사의 신하들을 위하여 이 말을 외워 본다."

 

충청도 관찰사 이형원(李亨元)이 기우제를 지낸 일로 급히 아뢰니, 전교하기를,
"경의 장계를 보건대 두 번이나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하늘의 감응이 더디니, 다만 나의 성의가 하늘을 감격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어찌 멀고 가까운 차이가 있겠는가. 농삿일을 생각하니 애타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입추가 지나 절후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성을 다하여 빌면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다시 정성껏 기우제를 실시하여 하늘의 도움을 기다리도록 하라. 이렇게 된 이유를 조용히 생각건대, 필시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의 고통과 풀리지 않은 원한이 있어서 그것이 단단히 맺혀 그렇게 된 듯하다. 경들은 나의 이 유시를 본받아 마음을 다해서 살펴 보고하되, 경상도 관찰사와 전라도 관찰사에게도 똑같이 유시하라."
하였다.

 

수원부 유수 조심태(趙心泰)가 기우제를 지내는 일로 급히 아뢰니, 전교하기를,
"성을 쌓는 일도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많은 사람을 부려서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근일의 불볕더위는 감히 여기에 부연시킬 것은 아니지만 일찍이 옛사람들의 오행(五行)에 부연시키는 말을 보건대 ‘많은 사람을 부려서 백성을 수고롭게 하여 성읍(城邑)을 일으키면 양기(陽氣)가 성하기 때문에 가물이 든다.’고 하니, 또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괴롭히는 것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여 이런 가물이 생기게 되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비록 볕을 가린 곳이거나 탁 트인 곳에서 일을 하는 인부일지라도 본인의 원하는 바에 따라 부역을 정지시켜 비가 오거나 서늘한 기운이 생기기를 기다리도록 하라."
하였다.

 

7월 12일 정유

삼각산(三角山)과 목멱산(木覓山), 한강에 기우제를 지냈다.

 

홍문관이 【교리 이의갑(李義甲), 부교리 박종순(朴鍾淳)·강빈(姜儐), 수찬 윤익렬(尹益烈)·부수찬 박길원(朴吉源).】  상차하기를,
"근일 이래로 역적을 징계하고 토벌하는 일에 관계되면 기피하는 현상이 있어서 역적들과 하늘을 함께 이고 사는 원통함만 있고 국법은 시행될 가망이 없습니다. 대간으로 있는 사람들은 말하기도 어렵고 안하기도 어려워 임금이 부르면 걸핏하면 어기고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여러 대간들은 먼 바닷가로 귀양보내고 정승들은 접견하는 첫 자리에서 견책을 받아 여지없이 기가 꺾이었으므로 분위기가 막히고 비록 다행히 얼마 안 되어 회복되더라도 견제가 여전합니다. 승정원에 있어서는 상소를 올려 아뢰는 글에 일언 반구라도 눈앞의 의리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대뜸 격식에 어긋난다고 기각합니다. 시험삼아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귀와 눈을 가리고 목구멍과 혀를 버리면 병들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김종수가 범한 죄는 이미 삼사가 올린 글에 실려 있는데도, 특별히 방면하라는 명령이 대간들의 상소가 윤허를 받은 뒤에 내렸으니, 형정(刑政)의 도치됨이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공자가 이르기를 ‘절약하여 쓰고 백성을 사랑하라.’고 하였으니, 대체로 절약하여 쓰지 않으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백성을 사랑하는 정사를 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재정으로 말하면 벼슬아치들의 1년 녹봉도 지탱하지 못하여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면 혹 빌려다가 쓰는 판입니다. 더구나 가물이 재해가 되어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 판단이 서지 않으니 명년의 백성들에 대한 걱정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전하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도 비용을 절약하지 않는다면 아마 유명 무실한 결과만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이래로 궁이나 원유(苑囿)를 넓힌 바도 없고 복식이나 기용(器用)에 있어서도 소박함을 애써 따랐는데, 어찌하여 위에서는 검소함을 좋아하는데도 아래에서 본받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상들의 집은 나라에서 정한 규정보다 크고 여항에서의 옷차림은 지나치게 사치스럽습니다. 그리하여 병사나 수사·감사를 지내면 모두 큰 집을 차지하여 점점 돈과 재물이 있게 되고 모두 화려한 옷을 입으니 이같이 하고 재정이 어떻게 궁핍하지 않으며 백성들이 어떻게 곤궁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더욱 검소하기를 힘써 몸소 솔선하고 모범이 되게 하여 풍속을 크게 변화시키는 길이 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진술한 내용은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명년 과거 시험 합격자를 발표할 때, 대정현(大靜縣)에서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한 유생 김명헌(金命獻)을 명단 끝에 넣고 어사화와 홍패(紅牌)를 내려보내어 이름을 부른 다음 제주 객사(客舍)의 뜰에서 사은 숙배하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명헌은 나이가 81세이었으므로 늙어서 바다를 건널 수 없다고 제주 목사 심낙수(沈樂洙)가 장계를 올렸기 때문에 이 명령을 내린 것이다.

 

7월 13일 무술

상께서 부스럼이 났는데 달포 동안 회복되지 않았다. 내의원에서 숙직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내의원 제조를 불러보고 상이 이르기를,
"머리의 부스럼은 하찮은 일이다마는 5월 20일 후부터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며칠 전부터 두통이 점점 심하고 진독이 뻗친 데다가 이질 증세까지 있다."
하였다. 도제조 홍낙성(洪樂性)이 의관을 불러들여 진찰하고 창름산(倉廩散)을 의논하여 정할 것을 청하고, 제조 정창순(鄭昌順)이 숙직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내의원이 숙직하기를 다시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집의 이우제(李遇濟)가 상소하기를,
"오늘날의 제일 의리는 바로 역적을 치는 일입니다. 역적을 치는 일이 저지되는 것은 지난 역사에 없었습니다. 대간에 나아가 아뢰었으나 어찌할 수 없었고 경연에 나아가 진술하였으나 역시 분수에 넘는 일이었으니 의리가 막혀 어두워지고 인륜과 질서가 끊어졌으니, 재변을 초래하는 첫째 단서입니다.
임금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어찌 도와야 할 결점이 없겠으며 세상이 아무리 잘 다스려졌다고 하더라도 어찌 언급할 만한 시정(時政)이 없겠습니까. 임금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임금의 잘못을 논할 것이 없고, 나라의 역적을 치지 못했으면 현재의 정사는 부차적인 것에 속합니다. 대각의 청사가 오래도록 잠겨 있으니 언로가 영영 끊어졌습니다. 오늘날의 조정은 설사 대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하니, 재변을 초래하는 둘째 단서입니다.
간사한 무리가 멋대로 횡행하여 서울과 지방이 연달아 소란스럽고 상놈이 권세있는 사람을 믿고 사대부를 욕보이며 옛날에 수령을 지낸 자들이 나라의 재물을 겁탈함에 조금도 기탄없이 하며 미천한 장교들이 길에서 중신(重臣)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을 예사로이 여겨 법과 기강이 전혀 없고 명분도 쓸어버린 듯하니, 재변을 초래하는 셋째 단서입니다.
백성들의 고락은 수령에게 달려 있고 수령들의 승진과 강등은 관찰사에게 달려 있는데, 8도의 고과 평점에서 하등을 맞은 사람이 한 사람 뿐이니 허다한 수령들이 모두 청렴한 관리입니다. 창고의 저축은 항상 반을 남겨두는 것이 더없이 엄한 국법인데 제멋대로 농간을 부리는 것이 전례가 되었으며, 읍민들의 많은 폐단은 고치는 것이 더없이 급한데 그럭저럭 지내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백성은 입을 옷이 없어서 추위에 떨고 있는데도 돈과 비단은 모두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며, 백성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데도 도리어 하인들은 기장과 고기를 먹어 배부르니 울부짖는 백성들은 안정될 곳이 없으니, 재변을 초래하는 넷째 단서입니다.
재변이 발생하는 것은 반드시 해결되지 않은 억울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떤 여자가 대궐 밖에서 울부짖고 있는데 듣고 보기에 참혹합니다. 벌써 4개월이 지났으니 반드시 원통하고 잘못된 사연이 있겠지만 끝내 위에 호소할 길이 없어 그럴 것이니, 재변을 초래하는 다섯째 단서입니다.
아, 국가의 만사는 오직 전하의 몸을 보호하고 조섭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은 각각 유사가 맡아 하는데도 온갖 일을 몸소 집행하며 작은 일까지도 남김없이 하시니 몸을 조리하는 데 어그러지고 전하의 건강에 손상을 줍니다. 근일 전하의 몸이 편치 않음은 바로 이런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원컨대 유의하소서.
김종수의 죄로 말하면 죄과가 어떠하며 관계가 어떠합니까. 대간이 아뢰어 윤허를 받은 뒤에 갑자기 특사의 명령을 내려 심상한 죄를 짓고 특사를 받아 풀려난 것처럼 하니 형정의 잘못됨은 말할 수 없고 후일에 있을 걱정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원컨대 내린 명령을 속히 거두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한 번 금지령을 내린 문제를 어찌 철회할 수 있겠는가. 여러 조항 중에서 조사하여 처리하여야 할 일은 묘당으로 보내 바로잡도록 하고 궐 밖의 여인의 일은 반드시 원통하고 억울하여 그럴 것이니 묘당으로 하여금 곧 자세히 물어 초기(草記)를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장령 한용탁(韓用鐸)이 상소하기를,
"현재의 모든 일은 역적을 토벌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백성들의 심정은 풀 길이 없고 국법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공론을 막는 것으로 일을 삼고 계시니 간관들은 할 말을 하였다가 섬으로 귀양갔고 대신들은 바른 말을 하다가 경연의 자리에서 파직되었습니다.
대체로 나라에 법이 있는 것은 간사한 백성을 견제하기 위한 것인데 요즘은 이것을 가지고 바른 말을 거부하는 바탕으로 삼고 있으니 지나간 역사에서 이런 일이 과연 있었습니까. 또 김종수의 일로 말하면 여러 신료가 함께 상소를 올려 윤허를 받았는데 갑자기 석방을 명하였습니다. 아, 그가 저지른 죄는 삼사에서 자세히 열거하였으니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하루만 지연되어도 귀신과 사람들의 통분함이 간절할 것인데 더구나 중대한 의논이 한창 일어나는 때에 쉽사리 사면시켜서야 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면령이 내렸더라도 대간들의 상소가 계속되고 있는데 버젓이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면서 저렇게 기강을 멸시하고 있으니 속히 명령을 철회하소서.
또 그때 전교 가운데 격(激)이라는 한 글자는 사실상 큰 성인의 중화(中和)의 덕에 흠이 되니, 신은 어리석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만, 삼가 전하께서 평소 덕을 닦는 공부에 흠이 있는 바라고 여겨집니다.
대체로 사리란 천하가 함께 하는 공적인 것입니다. 임금이 옳다고 하더라도 온 세상이 그르다고 하는 경우가 있으며 임금이 그르다고 하더라도 온 세상이 옳다고 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그 정당한 이치를 연구하여 이치를 깨달으면 혹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남의 뜻을 따르며 혹 적은 편을 버리고 많은 쪽을 따르는 것은 바로 올바른 이치가 있음에 자기는 관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근일에 과연 이렇게 행하십니까.
그리고 지금 전하의 몸이 편치 않으신 때에 원기를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만큼, 삼가 원컨대 덕을 닦는 방도를 생각하여 몸을 조리하는 데 힘쓰소서. 우리 원자궁(元子宮)께서는 지혜가 한창 열려 사물을 점점 분변하니 어렸을 때 올바르게 길러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므로 서연(書筵)에서 바른 말로 깨우쳐 주는 일은 뒷날 신자들의 책임이요 지금 눈앞에서 깨우쳐 주고 인도하는 일은 오로지 전하의 가르침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일과 사물은 언제나 뒷날에 경계해야 할 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반드시 그 단서를 살펴서 노리개 같은 물건이라도 혹 사치스러운 것이 있으면 배척해 버려 가까이하지 말게 해서 지극히 착한 것과 도리를 깨달아 지혜와 함께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전하께서도 한 가지의 처사나 한 가지의 일에 있어 꼭 후손들의 안녕을 염려하는 계책을 생각하여, 보고 감동하게 하면서 점차 몸에 배게한다면 어찌 한두 사람의 궁료(宮僚)들이 때때로 도와 인도하는 것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팔도의 백성들은 여러 번 흉년을 겪었지만 풍속은 사치한 데로 나아가 재원이 날마다 바닥이 나고 있습니다. 만일 다시 흉년이 들면 어떻게 정착하여 살겠습니까. 각도에 알려 경계시켜서 미리 곡식을 모을 방법을 생각하고 묘당과 재정을 맡아보는 신하로 하여금 헤아려 계획해서 구차스러운 일이 되지 말고 장구한 방도를 깊이 생각하도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여러 조항 중에 유의할 것은 마땅히 유의하겠다."
하였다.

 

7월 14일 기해

내의원의 여러 신하들을 불러보았다. 소서패독산(消暑敗毒散)을 올렸다.

 

용산강과 저자도에서 두 번째 기우제를 지냈다.

 

전교하였다.
"전번에 전 예조 판서 민종현(閔鍾顯)이 조흘강(照訖講)에 대하여 엄한 경계를 거듭 밝히는 일에 관한 초기(草記) 중에서 ‘시골 선비가 서울의 시험에 응시하기를 원하는 자는 한성시에 응시하기를 허락한다.’는 말로 인하여 시골 선비들이 서울에 와서 응시하면 전과 같이 융통이 되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예조 판서의 말을 들으니 해조에서 거행하는 것이 초기와 크게 상반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시골 선비로 이름이 기재된 자는 공문이 있더라도 한성시에 응시할 수 없다고 하니 어찌 말도 안되는 그런 규정이 있으며, 어찌 초기에는 이같이 하고 행회(行會)에서는 저와 같이 하였는가. ‘서울 부근 1천 리에 백성이 산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서울은 팔방의 근본이 된다. 지금 서울과 시골을 갈라서 구별하고 서로 섞이지 못하게 하니, 어찌 이같은 현상이 있다는 말인가.
만일 내가 오늘 깨닫지 못했으면 시골 선비들은 새 규정에 구애되어 서울 시험에 와서 보지도 못할 것이니 저들의 허탈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정의 처사가 어떻다 하겠는가. 전 예조 판서가 시행한 것이 이같이 모순되니 변명할 말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 예조 판서 민종현에게는 속히 등용하지 않는 법을 시행하며 시골 선비로 서울의 시험을 보지 말라는 초기와 행회는 모두 시행하지 말라."

 

지평 남이익(南履翼)이 상소하기를,
"오늘이 참으로 어떤 때입니까. 임금의 원수와 나라의 역적들과 함께 하늘을 이고 사는데 한 번 금지령을 내려 법으로 만드니, 삼사에 벼슬하는 사람들이 나아가서는 상소를 올려 토죄하지 못하고 물러나와서는 의리를 들어 혐의를 피함이 없이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면서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근일의 바른 말을 하는 길은 전하께서 스스로 막은 것입니다. 이번 하늘의 경고에서 혹독한 가물을 내려 뜻을 보였으니 재변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며 천재가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우리 전하께서 정성을 다하여 마음속으로 빌고 몸조리하는 가운데에도 백성을 걱정하여 폐백을 드려 기우제를 지내고 교서를 여러 번 내려 도움을 구하는 덕을 성대하게 보이고 재변을 막기 위한 방법을 널리 물으시니 진실로 신들이 숨기지 말고 말을 다할 때입니다. 오늘날 바른 말이 들어오는 길은 곧 전하께서 스스로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토죄할 것도 토죄하지 못하고 바른 말을 올려도 채용되지 아니하니 오늘의 언로(言路)를 연 것은 옛날의 닫힌 것과 같습니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두렵게 여겨 잘못을 깨우치고 바른 말을 하는 길을 활짝 열어서 의리가 펴지도록 한다면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되고 음양이 조화되어 장차 어떤 재변인들 사라지지 않겠으며 어떤 상서로움인들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또 신은 지난날 김종수를 특별히 석방하라는 명령에 대하여 가슴에서 우러나는 탄식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아, 저와 같이 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 대간의 탄핵을 윤허받자마자 곧 사면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니 형정의 도치와 국법의 붕괴됨이 여지없이 되었으니 나라에 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속히 명령을 철회하여 나라의 법을 엄히 하소서.
아, 나라에서 기강이 혹 한 번이라도 떨어져 문란하게 되면 나라는 나라의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기강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전하께서 일찍이 이것으로 여러 번 대궐 안에서 탄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행차 중에 하소연하는 자질구레한 문제는 혹 저자 사람들의 폐단을 뒤섞어 아뢰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미련한 백성들이 관청에 나와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문득 상부에 올리는 말이라고 칭하며 미천한 사람들이 사대부를 욕보이는 것을 능한 일로 간주하고 있으니 식자들의 걱정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속히 폐단을 정돈하고 사기를 진작시킬 대책을 강구하소서.
천재를 만나면 억울한 일이 없는가를 살피는 일 같은 것은 주(周)나라의 책066)  에 실려 있고, 선량한 관리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것에 대하여는 한(漢)나라의 제도에서 상고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풍속이 좋지 않아 의심스러운 옥사가 점점 불어나고 관원들의 지켜야 할 도리는 이미 쇠퇴하여 청렴하고 검소하다는 소문은 적으니 먼 시골에 사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억울한 한을 품고 곤욕을 당하면서 침해를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빨리 법관에 명하여 옥사를 깨끗이 다스리고 백성들의 숨은 고통을 묻고 살펴서 재변을 막는 방도로 삼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여러 조항에 대해서 유의하겠다. 그중에 옥사를 밝게 다스리며 백성들의 고통을 묻고 살펴야 한다는 두 가지의 조항은 묘당에 부쳐 상의하고 아뢰도록 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7월 15일 경자

내의원의 제조와 대신·규장각의 신하들을 접견하였다.

 

내의원에서 숙직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평 남이익의 상소문에 옥사를 밝게 다스리고 백성들의 고통을 묻고 살펴야 한다는 두 가지 조항에 대하여 묘당에 부쳐 상의하여 처리한다는 명이 있으셨습니다.
조정에서 죄인을 신중히 처리하는 덕이 백성들의 마음에 흡족하게 되는 것은 이미 송(宋)나라 조정의 아름다운 제도를 본받고, 형구를 벗겨주고 옥을 소제하는 등의 절차는 하(夏)나라의 법에 나타나 있습니다. 중앙과 지방에 조서를 분명히 내리고 심리가 부족한 것은 또 새로 부임한 관찰사에게 명하여 3개월 안에 심사하여 보고하라고 하였으니 억울한 옥사가 화기(和氣)를 저해할 것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한재(旱災)를 만나 막아내는 방책은 여러 옥사를 잘 다스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대간이 논한 것도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니 중앙의 형조와 지방의 여러 도에서 옥사에 대한 문안을 친히 심사하고 기록하여 상부의 관청에 보고할 것은 기록하여 보고하고 처결하여 석방할 것은 석방하게 하소서. 그리고 형구를 벗겨줄 것과 옥을 소제할 것으로 거듭 엄하게 지시하여 답답한 기운을 사라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백성의 고통을 묻고 살피는 데 있어서는 암행 어사가 몰래 다니기도 하고 혹 들이나 물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두루 묻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정사가 시행되는 데 달려 있고 감히 청할 것은 아닙니다만, 그 근본을 궁리해 보면 대간이 상소하여 진술한 선량한 관리를 골라 등용하는 데 불과합니다.
근래의 인사에 대한 법은 항상 사람을 위하여 벼슬자리를 고르는 것을 걱정하지 벼슬자리를 위하여 사람을 고르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가령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을 진작시키는 경우 다만 정체됨을 진작시킨다는 이름만 취할 뿐이요 정체되어 있는 사람 중에 수령을 지낼 만한 인재가 있는가는 찾아보지도 않았으니, 설사 지공무사하다고 한들 생민들의 고락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이제부터 관리를 천거하는 법은 각각 그 사람의 능부(能否)와 장단점을 가지고 이름 아래에 주를 달아 인사를 담당한 관리가 참고하는 자료로 삼도록 하소서. 만일 천거된 사람이 고의로 죄를 범하거나 세력을 믿고 재범한 죄가 있다면 천거한 사람도 강등시키는 법으로 논한다면 혹 선량한 관리를 고르고 백성의 고통을 살피는 방도에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만 일이 변통하는 데 관계되니 상께서 결재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바답하기를,
"천거한 사람을 법에 적용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국법이 있으니 다시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는 없다."
하였다.

 

7월 16일 신축

내의원 제조와 대신, 규장각 대신을 접견하였다.

 

유의(柳誼)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홍수보(洪秀輔)를 판의금부사로 삼았다.

 

전교하였다.
"효자와 열녀를 선발하여 보고하는 일은 해마다 연초에 예조가 정부와 의논한 다음 등급을 나누어 보고하는 것이 지금까지 시행해 온 방식이다. 아침 조회에서 예조 판서의 말을 들으니 쌓아두고 있은 지 이미 6년이나 된다고 하였다. 전 예조 판서 민종현이 선발한 것이 매우 정밀하였으니 이미 기록한 명단대로 결재하여 내렸다. 이렇게 가물 때에 이 또한 좋은 행실을 찬양하고 감추어져 있는 것을 나타내는 한 가지의 일에 속한다. 정려(旌閭)를 내리거나 부역을 면제시키거나 음식물을 주는 일은 묘당에서 거듭 서울과 지방에 타일러 곧 거행하도록 하라."

 

7월 17일 임인

세 번째로 북쪽 교외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내의원의 세 제조와 대신과 규장각 대신을 소견하였다. 도제조 홍낙성은 선비 출신의 의원 홍욱호(洪旭浩)를 추천하고 영중추부사 채제공은 이세연(李世延)을 추천하여 들어와 진찰하고 약을 의논하게 하였다.

 

영중추부사 채제공이 아뢰기를,
"고성(高城)의 삼일포(三日浦)는 관동의 제일가는 명승지로서 선배들은 모두 신선이 산다는 십주(十洲)와 삼도(三島)에 비교하였으니 그 곳을 등한히 볼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듣건대 어떤 무뢰배가 중앙 관청의 공문을 얻어가지고 삼일포를 개간한 다음 논을 만들려고 이미 공사를 시작하여 먼저 바닷가 명사(鳴沙)의 낙낙 장송을 베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비록 비변사에서 공문을 보내 엄하게 금지시켜 그 공사는 중지되었으나 이미 벤 소나무는 전대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당초에 무뢰배들이 설혹 이같이 전혀 헤아릴 수 없는 계획을 세웠더라도 지방관이 엄금하였다면 저들이 어떻게 방자하게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더구나 삼일포는 고을에서 10리도 되지 않습니다. 사세로 말하자면 본관이 그 공사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뢰배의 죄가 될 뿐만 아니라 실상은 본관의 죄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실리만을 탐하고 다른 것은 보지 못한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이 일은 비록 미세한 듯하지만 관계되는 바가 막중하니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해도의 무뢰배 중에서 계책을 꾸며 앞장서 일한 자를 엄히 조사하여 각별히 법에 비추어 다스리게 하소서. 또 중앙에서 만일 진짜 공문을 내준 자가 있으면 해당 관원은 품계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것 없이 엄하게 꾸짖고 해당 지방관도 찾아내어 귀양 보내는 법조문을 적용하고 그를 금고시켜 다시는 수령이 되지 못하게 한 연후에야 조금이라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징계시키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삼일포는 관동 명승지 중에서도 제일가는 명승지이다. 이런 꾀를 내고 이런 계획을 꾸며 소나무 숲을 베어내고 그 토지를 개간하려고 한 사람일지라도 나라에 조금이라도 법과 질서가 있었다면 어떻게 감히 중앙의 공문을 얻어내기를 도모하여 마음먹은 대로 공사를 하여 토지 신고를 하려는 간사한 계책을 실현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여러 해 전부터 엄하게 규정을 세워 안으로 궁방으로부터 밖으로 각 영이나 관청의 토지 신고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을 폐지하였으니 결재를 받아 통지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 마음대로 개간할 수 있겠는가. 먼저 본사로부터 공문을 내준 곡절을 상세히 조사해서 초기(草記)를 올리도록 하고 지방관은 의금부로 하여금 엄하게 문초하여 신문을 받고 경이 아뢴 대로 조사하여 처리하게 하라. 금지시키지 않아서 금지령을 범한 관찰사는 엄중히 문책하고 간교한 짓을 꾸민 사람들은 해조와 해도로 하여금 엄한 형벌을 가하여 공초를 받은 다음 보고하여 오면 본사로부터 등급을 나누어 초기를 올리고 엄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영중추부사 채제공이 아뢰기를,
"작년 겨울 회령에서 여진과 무역을 할 때 팔고 사는 데 있어서 규정을 따르지 않은 폐단이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체로 그 규정은 이미 고인이 된 재상 이이장(李彝章)이 특별히 마음과 힘을 기울여 물샐틈없이 만든 것으로 30, 40년간 시행해왔는데 북쪽 변방에서 무역의 폐단이 바로잡히고 백성들이 생계를 보존하게 된 것은 사실상 여기에 힘입은 것입니다. 이번에 한두 가지의 일이라고는 하나 이 규정을 따르지 않았는데도 어사가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조정에서도 어떻게 된 것인지를 묻지 않았으니 몇 해가 안되어 규정이 무너질 것은 뻔한 일입니다. 담당 감시 어사(監市御史)의 죄가 어찌 없다고 하겠으며 지방관과 병사도 어찌 집에 있어서 잘 몰랐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금년의 어사는 꼭 위엄과 인망이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 엄하게 단속을 한 뒤라야 작년 겨울에 뚫어진 구멍을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역을 관장하는 감시 어사를 잡아다가 국문하여 처리하고 지방관은 이미 죽었다고 하니 검열하여 단속하지 못한 병사를 중한 벌칙에 따라 추고하라. 정한 법을 잘 밝혀 어기지 않고 지키는 일은 전적으로 금년에 달려 있으니 나이가 적고 강직하며 법에 밝은 어사를 특별히 가려 보내도록 해조에 명하라."
하였다.

 

7월 18일 계묘

내의원 제조를 소견하였다. 가감한 이향산(二香散)을 올렸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돈령부의 관리를 심문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지난해 10월에 낭천(狼川)에 사는 김락(金洛)이란 사람이 저에게 말하기를 「고성 삼일포 아래 공한지에 3년 전에 낭천 등의 가까운 읍민들이 제방을 쌓고 만든 논이 10여 말의 씨를 심을 만한 땅이 되었고, 물을 저장한 곳에 소나무 수십 그루가 있어 그때의 군수 김복근(金復根)이 객사를 보수하기 위하여 감영에 보고하고 문권을 받아 베어내도록 하였다. 그런데 물이 깊기 때문에 제방을 헐고 물을 뺀 다음에 베려고 한다.」 하기에, 이런 사유로 참봉 원유붕(元有朋)에게 고하고 당상관에게 문권을 올려 공문을 내도록 하고 다시 공문을 발송하였다.’고 합니다.
서울과 지방의 무뢰배들이 개간할 만한 토지라고 칭탁하고 서울의 관청에 신고하여 공문의 발급을 도모한 사람은 연전에 엄히 경계시켰습니다. 돈령부 당상 이민보(李敏輔)가 아전의 말을 잘못 듣고 경솔하게 공문을 발급한 것은 그 잘못이 작지 않으니 빨리 삭직하고 참봉 원유붕은 해부에서 잡아다가 신문하여 처리하고 그때 개간을 허락한 담당 군수는 귀양보내고 이 일을 금하지 못한 관찰사와 감영에 보고하여 소나무를 베게한 수령과 문권을 발급하여 승인한 감사는 견책하여 파직시켜야 합니다. 현재의 감사는 파직하고 돈령부의 허수아비 같은 아전은 법조에 이송하여 엄하게 고문하고 법에 적용시킬 것이며 시골 백성으로 간사한 짓을 한 사람과 전후 소나무를 벤 숫자를 도에서 조사한 다음에 초기하여 조사하고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7월 19일 갑진

전교하였다.
"가물의 피해가 매우 혹독하니 병든 속이 타는 듯하여 차라리 움직이지 않고자 한다. 나는 내 몸을 탓하고 내 몸을 책망하는 일을 시급한 일로 여기니 오늘부터 비가 내릴 때까지 반찬 수를 줄이고 정식 음악을 철회하라."

 

개성부 유수 이면응(李冕膺)이 개성부 남부의 민가 1백 33호가 불에 탄 것을 아뢰니, 선전관을 보내어 위로하고 타이르게 하였다.

 

7월 20일 을사

남단(南壇)과 우사단에서 네 번째로 기우제를 지냈다.

 

내의원에서 진찰하기를 청하니, 전교하기를,
"가물이 이렇게 심하니 병든 마음이 타는 듯하여 밤에는 답답한 증세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고 아침이 되어도 여러 증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이런 민망한 가물로 타는 듯한 때를 당하여 탕제를 물리치는 것은 분수에 지나치기 때문에 부득이 억지로 마시기는 하지만 규례를 갖추어 진찰하는 자리에 대하여는 무슨 마음으로 규례대로 접할 수 있겠는가. 탕제는 입시한 의관(醫官)에게 물어서 의논하여 정하라."
하였다.

 

내의원이 아뢰기를,
"몸을 닦고 반성하는 일과 병을 조섭하는 방안은 두 가지를 병행하여 어그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전하의 몸이 평안하고 전하의 마음이 즐거우면 하늘과 땅의 화기도 응할 것인데 어찌 재변을 막는 정성 때문에 도리어 조섭하는 방책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이미 들어가 진찰하지 못하고 의원과 함께 의논하여 탕제만 정하였으므로 결국 신중하게 할 일에 흠이 되어 다시 이렇게 아뢰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잠깐 불러 접견을 허락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절대로 규례대로 불러 접견하기는 어렵다. 경들 가운데 한 사람만 약을 의논해서 입시하라."
하였다.

 

내의원 제조를 불러 접견하였다.

 

가감한 정기산(正氣散)을 올렸다.

 

도성 안의 크고 작은 개울과 도랑의 오물을 제거하라고 명하였다. 하교하기를,
"명당의 물을 맑게 하는 일은 곧 가물을 만나 시행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이다. 도성안에 크고 작은 개울과 마을의 도랑은 하나하나 엄하게 훈계시켜 깨끗하게 소제하도록 하라. 묘당에서도 살피고 훈계시켰는가?"
하였다.

 

이병정(李秉鼎)을 수어사로 삼았다.

 

7월 21일 병오

내의원에서 진찰하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밤 사이에 여러 증세가 더하여 지금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비가 올 가망은 막연하고 뜨거운 햇볕만 더욱 심하니 규례를 갖추어 접견하는 일은 논할 바가 아니다. 애타는 마음 같아서는 실로 아무것도 모르고 싶다. 의관 등과 함께 탕제를 의논하여 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이 접견을 청하니, 전교하기를,
"오늘의 가물이 어떻게 생긴 것인가. 덕이 없는 내가 왕위에 있으면서 허물을 많이 쌓다보니 하늘의 노여움과 백성들의 원망이 이러한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대체로 재변과 상서로운 일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 자신이 초래하는 것이다. 아래에서 인사가 잘 닦여지는데도 재변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치라고 볼 수 있겠는가. 재변을 사라지게 하여 정상으로 돌리고 덕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어 백성들의 즐거움을 이루게 하는 도리에 힘써서 좋은 반응을 기다리는 데는 꼭 방법이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속이 병들고, 생각이 거칠어져 스스로 헤아릴 수 없으니 경들은 물러가 육조의 판서와 비변사의 여러 신하들과 함께 묘당에 모여 충분히 토론하여 보고하고 승정원에서는 내가 전교한 초고(草稿)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어서 바른 말을 서울과 지방에 널리 구하여 보라."
하니, 승정원이 아뢰기를,
"우리 전하께서는 가물을 민망하게 여기는 한마음으로 밤잠을 못 이루십니다. 이렇듯 날마다 밤마다 뜬 눈으로 지새면서 하늘에 대한 공경으로 음식을 대하지 않다보니 병세가 이 때문에 더해졌지만 진찰하는 일도 이 때문에 굳게 거절하고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라는 명령을 조용히 조섭하는 가운데에 내리시기까지 하여 대소 신료들이 애타고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습니다. 바로 대신들의 접견을 청하는 계달로 인하여 또 서울과 지방에 바른 말을 구해 올리라는 교서를 내려 자신을 책망하고 도움을 구함이 간곡하고 정성스러워 신명을 감격시키고 천심을 돌리기에 충분하니 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받들어 읽노라니 감격의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비록 전하는 겸손하게 자신의 몸을 낮추고 덕을 수양하면서 전교 초고를 대신 지으라는 명을 내렸다 할지라도 내리신 초고의 1백여 마디의 말은 말마다 측은하고 글자마다 간절하여 내의원의 접견도 윤허하지 않고 계책을 충분히 토론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하시니 하늘에 순응하는 도리는 오직 실질적인 일을 힘쓰는 데 있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말이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들과 같은 사람은 짐작하여 그려 낼 만한 것이 아니니 이 비지(批旨)를 가지고 서울과 지방에 널리 포고하겠습니다."
하였다.

 

향라음(香蘿飮)을 올렸다.

 

수라상에서 반찬의 가짓수를 감할 때 각 관아에서는 공무를 중지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하교하기를,
"수라상에 반찬의 가짓수를 감할 때 일을 보지 않는 것은 그릇된 규례인 듯하다. 모든 관리들이 배로 부지런히 힘써야 할 때 도리어 일을 보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이 어찌 말이나 되는가. 이후로는 그릇된 규례를 없애도록 하라."
하였다.

 

임제원(林濟遠)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이면긍(李勉兢)을 강원도 관찰사로 삼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우리 전하는 10여 일을 조섭하는 가운데 달포가 넘는 모진 가물의 재변을 만나 걱정스러운 생각이 밤낮으로 안정되지 않아 폐백으로 여러 곳에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을 공경하는 정성을 더욱 도탑게 하고 수라상에는 특별히 반찬 수를 감하며 계속 덕을 닦고 자기를 반성하는 전교를 내렸습니다.
이 때문에 병세가 악화되었으나 진찰하는 자리도 규례를 갖추지 않으시고 재해를 막는 계책을 묘당에까지 물으시니 신들은 머리를 모아 받들어 읽고 감격하였습니다. 하찮은 사람에게도 물으라는 교서가 내림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어 삼가 몇 가지의 조항을 가지고 우러러 아룁니다.
첫째는 명분과 의리를 내세우는 일입니다.
근래 명분과 의리가 완전히 없어짐에 따라 흉악한 역적들이 횡행하고 있으니 삼강(三綱)은 무너지고 구법(九法)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어떻게 나라 구실을 하며 사람이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겠습니까. 이렇게 풍속이 잘못 굴러 수습할 수 없게 된 마당에 전하께서 명분과 의리를 부각시켜 온 세상 사람들을 연마시킨다 해도 오히려 갑자기 바른 풍속으로 돌이키기가 어려울 터인데 도리어 역적을 토벌하는 데 관계된 말이면 꺾어버리고 입을 다물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점점 기개를 위축시키고 사라지게 하며 실오라기 같이 겨우 끊어지지는 않는 의리를 더욱더 어두워지게 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말을 해야 할 것인데도 말을 하지 않아 처음에는 부끄러움이 있는 듯하였으나 죄를 면하여 구차하게 용납되기만 하면 끝에는 편안하여 일이 없는 사람처럼 됩니다. 거기서 흐르는 폐단은 심지어 염치를 내어버리고 의리를 팽개쳐 세상에 명분과 의리란 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풍속은 박해져서 날로 더욱 심하고 조정의 관료들은 우유부단한 데 빠져 더럽고 속된 일만을 숭상하며 학교에서는 방종을 즐기고 단속하는 일을 천하게 여깁니다. 전하께서는 비록 궐 안에서 염려하고 계시겠지만 퇴폐 풍조는 바람 앞에 풀이 쓰러지듯 진작시키지 못하니 눈앞의 가장 걱정스럽고 급한 일로 이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만일 바로잡아 구제할 방도를 논한다면 숨김없이 바른 말을 하게 문을 열고 절의를 숭상하는 사람을 등용하는 데 있으니, 그 말이 명분과 의리에 관계된다면 혹 과격할지라도 반드시 용서하여 용납하고 그 자취가 비위나 맞추는 데로 돌아가면 혹 미봉한 것이라도 시비를 밝게 분변하여 통렬히 배척해서 곧은 사람을 맞아주고 굽은 사람을 버려 착한 사람을 좋아하고 악한 사람을 싫어함을 분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방법을 알 것이며 세상에는 못된 버릇이 없어져서 명분과 의리의 장려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세상 인심은 저절로 크게 변할 것입니다.
둘째는 기강을 진작시키고 가다듬는 일입니다.
근래에는 기강이 해이해져서 마루와 섬돌의 한계가 엄격하지 못합니다. 정식 경연에서도 엄숙하고 공경스러운 행동을 볼 수 없고 동료 관리들 사이에도 잡스러운 일이 많으니 이것이 한심합니다. 옷의 문양과 색깔은 귀천을 표시하는 것인데 참람하고 분수에 넘어도 절제가 없으며 명분은 상하를 구별하는 것인데 등급이 무너짐이 날로 심해집니다.
법이란 지키기를 엄히 하여야 하는 것인데 법을 맡은 유사들도 예사롭게 버리며, 삼상·육경[槐棘]은 관리 중에 중요한 위치인데도 일반 관리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멸시하며, 조정은 사방의 표준이 되는데도 조정에서 보낸 감사를 수령들이 무시하고 아전들은 수령을 마구 침범합니다. 사대부들은 일반 백성들의 모범인데도 천민들이 양반을 헐뜯고 욕하며 젊은 사람들이 어른이나 노인을 경멸하는 일까지 있습니다. 전후에 경계시킨 전교는 지극히 간곡하였는데도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삼가는 듯하다가 끝에 가서는 머뭇거리면서 구습을 버리지 않으니 품계에 따른 위엄은 날로 저하되고 금지령은 날로 해이해지니 이것이 어찌 나라의 소소한 근심이겠습니까.
오늘날 이렇게 된 이유를 논하면 신들이 바르게 통솔하지 못한 죄에서 온 것입니다. 이제부터 특별히 서울과 지방의 법을 맡은 관리를 단속시켜서 이와 같이 분수를 모르고 범절을 무시하는 풍습과 임금의 명령이나 금지령을 어기는 사람들은 발견 즉시 엄하게 다스리고 동요 없이 법을 지켜서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깨우쳐 조심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게 하여 감히 나라의 법도를 벗어나거나 어기게 하지 않으면 기강이 잡히고 가다듬어지기를 기약하지 않더라도 나쁜 폐단은 저절로 엄히 고쳐질 것입니다.
셋째는 염치를 장려하고 탐욕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근래에 청렴을 권장하고 탐욕을 징계함이 없어서 백성들이 날로 곤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감사나 수사 또는 수령이 된 자는 얼핏 외면으로 보기에는 큰 불법적인 행동이나 잘못은 없는 듯하지만 그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라의 곡식을 유용하여 묘한 계책을 만들어서 모아들이는 못된 짓을 마음대로 암암리에 행하며 큰 도의 수령들은 체직된 뒤에도 국가의 채무는 남겨두고 있지만 잔약한 군이나 현에서는 규정 이외의 조세를 마구 거두어들이는 일이 많습니다.
좋은 토지를 많이 점령한 자는 재주가 있다고 하여 해마다 벼슬이 제수되거나 좋은 자리로 옮기나, 벼슬한 자로서 청렴하여 주머니가 씻은 듯이 깨끗한 사람은 무능하다고 비난하고 끝내 배척하여 다시 등용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탐욕을 징계하는 법은 엄하지만 요행으로 벗어나는 일이 많고 염치를 장려하는 전교는 부지런히 내리지만 선발됨은 더디게 되어 암행 어사들의 조사는 한결같이 실상이 없으며 가난한 백성들의 원성은 구중 궁궐에까지 전해지기 어려우니 이러고서 사람들이 어찌 법을 두려워하겠으며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것을 바로잡는 방도를 논한다면 염치를 권장하고 탐욕을 징계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이후에는 감사나 수사·수령들을 막론하고 탐오의 자취가 나타나는 자가 있으면 조금도 용서하지 말고 아 대부(阿大夫)를 삶아 죽이는 법을 시행할 것이며 청렴한 사람에게는 전에 내린 명령에 의하여 물어서 찾아가 특별히 장려하고 등용하면 청렴하고 탐욕스러운 일은 장려나 징계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백성들은 저절로 편안히 살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옥사를 다스리고 형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근래에 옥사에 대한 심리를 여러 번 행하여 억울하고 잘못된 판결이 없는 것 같지만 중대한 옥사와 신문고를 두드린 것 외에 어찌 죄수들의 판결에 잘못되고 지체되는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형옥을 관대하게 처리하라는 명령은 비록 지극한 은혜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서울과 지방에서 거기에 부응하여 실시하는 데는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죄수들의 문안이 작성되면 다시는 따져보지도 않기 때문에 함께 모여 심리한다는 일은 한갖 형식적인 문서로 돌아가고 간추린 내용의 요긴한 말은 옥사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의혹됨이 많아 의논하는 마당에 혹 그 실정과 맞지 않는 일도 있으니 이것이 어찌 법을 맡은 신하들이 옥사를 취급하는 체통이겠습니까. 심지어 개인적인 유감을 품고 분풀이를 자행하여 지나치게 매를 때려 목숨을 잃게 하는 자도 있으며 죄명을 억지로 씌워 거짓으로 감사에게 보고하여 끝내는 범죄의 자취를 날조하려고 꾀하는 자도 있으니 이같이 하고서야 함부로 죽인 자에 대한 법령을 어느 곳에 시행하며 억울한 내용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뜻을 펼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것을 바로잡는 방도를 논한다면 심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중앙의 형조와 지방의 여러 도에 특별히 엄하게 경계시켜 전날의 투식을 답습하지 말고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말며 문안은 상세히 갖추어 실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스러운 바가 없게 하여야 합니다. 형장을 치는 데 대하여는 그 범죄를 잘 헤아려서 감히 법을 어기거나 넘치게 하는 일이 없으면 형벌이나 옥사는 자연 공정하게 다스려질 것이며 죄수들은 자연 원망을 품게 되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다섯째는 벼슬자리를 신중히 하고 아끼는 일입니다.
근래에 벼슬을 외람되게 마구 주기 때문에 인사 행정에서 추천하는 일이 혼잡하게 되었습니다. 문무 관리의 추천과 선발에 있어서는 이미 과거 시험에 합격한 첫 단계부터 무너지고 이조와 병조의 추천은 6품에 오른 뒤에까지도 외람되게 하고 있으므로 벼슬을 주는 자도 스스로 어려움이 없고 받는 자도 영광으로 여기지 않으며, 심지어 뇌물을 바치는 수령이 계속 이어지며 무과 급제자나 잡과로 벼슬에 오른 자들을 임기가 차면 문득 자리를 옮겨주니 인사 행정의 문란함이 여기에 이르러 더욱 할 말이 없습니다.
만일 바로잡는 방도를 논한다면 인재의 선발을 신중히 하고 잡스러운 벼슬자리는 도태시키는 것보다 좋은 방도가 없습니다. 이조와 병조의 신료들을 엄히 경계시켜 속히 올바른 인사 행정을 행하소서. 그러므로 후보자를 추천하는 벼슬에 대하여는 한결같이 공론을 따르고 사정을 쓰게 하지 말며 잡과로 벼슬에 오른 사람은 임기가 차더라도 절대로 제멋대로 옮겨가지 말게 하고 벼슬자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적발하여 도태시키면 벼슬자리를 아끼거나 신중을 기하지 않더라도 벼슬길은 절로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런 한재(旱災)를 만나 덕을 닦고 두려워하는 날에 몇 가지의 하찮은 조항은 높고 낮은 관리들이 서로 덕을 함양하는 방도가 되기는 부족하지만 만일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실속 있는 정사를 시행하여 백성과 나라에 유익함이 있게 한다면 혹 재변을 돌려 상서로운 일이 되게 하는 데 한 가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서울과 지방의 여러 신하에게 엄하게 경계시켜 착실하게 거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병중에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심하였지만 저녁 내내 눈이 빠지도록 앉아 기다린 것은 이 초기(草記) 한 장이었으니 앞으로 목과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청량산(淸凉散)으로 삼으려고 한다. 진술한 다섯 가지 조항을 보니 평범한 말 같지만 역시 일리가 있다. 빈 말만 써 놓은 것보다는 모든 행사에서 절실함이 잘 나타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매우 부덕하여 다섯 가지 조항을 잘 닦아 처리하지 못하였고 전날에도 그런 일이 많아 오늘날의 한재를 초래하였다. 경들이 나를 멀리하지도 않고 낮추어 보지도 않으며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어 나로 하여금 그 허물과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한 것은 바로 이 다섯 가지 조항에 이같이 하면 병이 되고 이같이 하지 않으면 약이 되는 요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올린 말이 과연 합당하여 혹 몸을 기울여 덕을 닦고 행하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묻지 않았다면 모르겠거니와 이미 물었는데 다만 규정에 따라 비답만 주고 말면 이것을 과연 성의가 있는 처사라고 하겠는가. 바라건대 다섯 가지의 조목을 자기고 오늘 이전에 잘 수행하지 못한 이유와 오늘 이후에는 잘 수행할 방도를 다시 경들에게 물으니 경들은 차자나 상소를 올려 나를 위하여 말을 해 달라."
하였다.

 

향라음(香蘿飮)을 올렸다.

 

7월 22일 정미

다섯 번째로 사직단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내의원에서 진찰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조 판서 김재찬(金載瓚)이 상소하기를,
"신이 일전에 전적 한석인(韓錫仁)을 감찰에 두 번째로 추천하였습니다. 한석인이 한효순(韓孝純)의 손자인 줄을 신은 전혀 몰랐습니다. 임명하는 문안이 나오자 사람들은 의심하는 일이 많았는데 신이 뒤늦게 들어서 뉘우쳐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한 가지 일로 나머지 일을 알 수 있으니 만일 일찍이 체직시키거나 면직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일마다 실패할 것입니다. 신이 안타깝게 여길 것은 아니지만 조정을 욕되게 하고 당대에 수치를 끼친 데 대하여는 어찌합니까. 삼가 바라건대 속히 교체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런 것이 경에게는 모두 장점이 되는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일을 보도록 하라."
하였다.

 

대사간 임제원(林濟遠)이 상소하기를,
"삼가 보건대 전하의 총명함은 모든 임금보다 뛰어나고 슬기로운 지혜는 만물을 두루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모든 일을 명백하게 깨달아 살피셨고 아래에서 행하는 유사의 일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신하가 수고하고 임금이 편안하면 더욱 논할 것이 아니지만 정신이 피폐해진 것은 여기에 기인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여러 가지의 잡된 일이 뒤엉켜서 한밤에도 온갖 걱정이 모여드니 심기가 불화한 것은 형세상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질병이 밖으로부터 침입하는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전하께서 하찮은 일들을 걷어치우고 다소 복잡한 생각도 물리쳐버려서 항상 마음을 맑고 깨끗한 곳에 두신다면 병을 치료하는 처방에 있어서 몇 첩의 청량제를 복용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며 세상 일에 적응하는 방도에도 하나의 요결이 될 것입니다.
가뭄의 재해가 끝내 큰 흉년을 면치 못하게 한다면 백성들을 돌보아주는 방도와 구제하는 계책은 모두 우리 전하가 사리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때문에 전하께서 속히 건강을 회복한 연후에야 백성들이 곤궁에 빠져도 구제하여 살릴 수 있고 흉년이 들어도 가난한 이들이 의지할 곳이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가 오면 전하의 건강이 회복될 것이다.’고 하는데, 신도 ‘내일이라도 건강이 회복되면 단비가 꼭 내릴 것이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일이 감응의 빠르기가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습니다. 이것이 신이 항상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일을 살피는 것으로 급선무를 삼아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바른 말 하기를 꺼리는 폐단은 요즘이 가장 심합니다. 사람마다 서로 경계해야 할 것을 말하고 모든 일은 침묵하는 대로 놔두었다가 오늘과 같은 재변을 만나 바른 말을 구하는 때를 당하면, 바른 말을 하는 책임을 진 사람이 그때서야 부득이 모서리를 없애버리고 두루뭉실한 호리병처럼 하여 마치 과장 응시자가 다른 사람을 따라 답안지를 올리듯 하고 전하도 역시 신기한 것이 없는 줄을 미리 알고 예에 따라 몇 글자의 비답으로 숫자만 맞추어 비답을 내립니다. 위에서 바른 말을 구하는 것과 아래에서 응하는 것은 결국 형식적인 것으로 되고 말 뿐이니 어찌 하늘의 뜻에 성실하게 응하는 본의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성인이 문왕의 신하된 도리를 말하면서 충(忠)을 말하지 않고 반드시 경(敬)을 말했으니 대체로 예예하고 대답을 하는 것도 충성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임금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만 비로소 경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맹자가 말한 바 ‘제 나라 사람은 내가 왕을 공경하는 것만큼 못한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대체로 오늘날 대소 신료들은 혹 말하기도 하고 혹 침묵을 지키면서 자기의 주장도 없이 ‘죽여야 한다.’ 또는 ‘용서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임금의 처분만을 봅니다. 김종수의 일로 보더라도 동일한 종수인데 처음에는 목소리를 같이하여 성토하다가 끝에 가서는 서로 돌아보고 침묵만을 지키니 성토한 것이 본심에서 우러나왔다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설사 이보다 더 큰 일이라도 반드시 임금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지고 기준을 삼을 따름이니 전하가 앞으로 무엇을 믿고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다만 오늘날 여러 신하들의 죄이겠습니까. 전하의 탓이기도 합니다.
대체로 전하 한 분의 마음을 가지고 온 세상의 마음이라고 여겨 죽이고 살리는 일을 조종하면서 나의 마음은 어길 수 없다고 한다면 대신과 삼사의 신하들은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옛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경내에 들어가면 먼저 큰 금지령을 물었으니, 대체로 금지령이란 것은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말이 들어오는 길에 대하여는 애초부터 금지령을 만든 것이 아니니 나라의 역사에 써넣고 후세에 전해진다면 장차 어떤 때라고 여기겠습니까. 전하는 바른 말을 올린 글이 조금이라도 전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관여된 문장이나 상소문을 문을 지키는 장수에게 막게 하고 병조에서 살피도록 하며 승정원에게 기각시켜 물리치게 하니, 막중한 관계가 있는 일을 가지고 첫째가는 금지 조항으로 만들어서 이것은 버리고 저것만을 논하게 하여 사실상 경중과 선후의 구별이 있게 하니 한결같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금지령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바른 말이 들어오는 길은 열릴 날이 없고 바른 말이 들어오는 길이 열리지 않으면 나랏일이 다스려질 가망이 없을 것이니, 신이 어떻게 감히 억측으로 단정하여 전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인재를 등용하는 방도는 반드시 널리 취하고 정하게 가린 연후에야 비로소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훌륭한 벼슬자리와 품계가 높은 벼슬은 서울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권세가 높고 세력 있는 문벌은 모두 조정에 벌려 있으니 먼 지방에 사는 사람은 모두 때를 만나지 못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과거 시험은 점차 잦아지고 조상의 덕으로 벼슬하는 길도 갈수록 난잡해지니 한계가 있는 벼슬자리로 많은 관료들을 처리할 방법이 없음에 중앙에서는 윤번으로 임명하는 폐단이 있고 지방에는 자주 체직되는 폐해가 있습니다.
서경(西京)의 정사에서는 순수하게 관리들의 공적을 가지고 관리를 삼음에 장손의 집에서는 미담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군과 현은 마치 역관(驛館)과도 같아 오가는 관리들의 행렬이 길에 서로 끊이지 않아 고을에서는 정사를 펼 겨를이 없고 백성들은 원을 맞아오고 보내는 폐단만 있습니다. 조정에서 이러한 벼슬자리를 마련한 것은 당초에 많은 관리들이 정체된 것을 소통시키려는 바탕으로 삼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실속 없는 일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오래 맡겨서 효과를 거두는 것이 사실상 오늘의 급선무가 된다고 여깁니다.
정기적인 과거 시험은 기한이 정해져 있으므로 뒤로 미루자는 말은 경솔하게 의논할 수 없지만 비용을 축내는 폐해가 과거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이틀 동안 과장에서 소비하는 물자와 먼 지방에서 오가는 데 드는 비용은 궁핍한 선비의 1년 동안 살아갈 밑천입니다. 흉년으로 인하여 과거 시험을 뒤로 늦춘 일은 전례가 분명하니, 지난 임자년과 이번 임인년에서 증거가 될 만합니다. 우선 며칠 동안 비 내리는 정도를 보고 또 여러 도의 농사 형편에 대한 보고서를 기다려서 멀고 가까운 데 있는 시험을 맡은 관리에게 비로소 하직 인사를 하고 내려가도록 하는 것도 불가하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수원의 성을 쌓는 공사는 원래 중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품팔이하는 인부들을 모집하는 것은 농삿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공사를 벌리는 것은 흉년을 구제하는 정사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마침 전에 없던 더위를 만나 이런 막대한 공사를 벌림에 있어 재목과 돌을 운반하면서 불꽃 같은 더위를 무릅쓰고 일을 한다면 사람이나 짐승들이 지쳐 상할 염려가 없지 않으니 요전에 전하의 전교 중에 공사를 중지하고자 한다는 것은 참으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수령의 ‘시작한 공사를 중지시키기가 어렵다.’는 말은 그 사정을 헤아려보면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에서 하는 일은 먼저 대세를 보아야 합니다. 어떤 곳에 성을 쌓고는 어느 달이라고 쓴 것은 《춘추》의 은미한 뜻이니, 한결같이 당초 전하의 전교에 의하여 우선 며칠 안 가서 시원한 기운이 생길 때를 기다리는 것이 하늘의 견책에 보답하고 농사철에 순응하는 도리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원컨대 전하는 망령된 말을 용서하시고 어리석을 뜻을 채택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교지에 응답한 말이 대중의 말을 따르지 않고 가끔 절실한 말이 많으니 매우 가상히 여긴다. 마땅히 유념하겠다. 생원·진사 시험의 시일을 늦추는 일은 시험 날짜가 멀지 않았는데 장애되는 일이 없겠는가. 우선 며칠 형편을 보아 시험을 미루자는 문제는 시험 날짜에 닥쳐서 되돌리기가 더욱 어렵다. 경이 상소한 말을 대신에게 물어 묘당으로 하여금 간단히 보고하게 하라. 수원성의 공사에 대한 일은 어찌 경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항상 걱정되는 마음이 있다. 요전에 수령이 기우제를 지내자고 아뢴 일로 인해 심지어 홍범(洪範) 오행설(五行說)을 끌어다 붙인 말을 인용하여 타이르기까지 하였다.
더구나 그 공사를 본래 독촉하여 속히 끝내고자 하지 않은 것은 이 성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시 총괄하여 맡아보는 대신과 유수에게 나의 이 뜻을 알려서 혹 미처 중지하지 않은 곳은 시원한 기운이 날 때까지 중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집의 이우제(李遇濟)가 상소하기를,
"신이 보건대 전하의 총명과 슬기는 천고에 으뜸이고 정사와 교화는 여러 임금보다 뛰어납니다. 그렇지만 요·순의 정치로써 전하에게 기대한다면 할 말이 없지 않습니다.
바른 말이 들어오는 길을 가지고 말한다면 대간에서 아뢰는 일이 얼마나 중대합니까. 그러나 전하의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문득 올리는 말을 고쳐 올리게 합니다. 역적을 징계하고 성토하는 것은 얼마나 의리가 엄한 일입니까. 그러나 전하가 사은을 베풀고자 하면 곧바로 원본을 불사르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리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가 서로 막히고 마음과 뜻이 통하지 않으니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도대체 무슨 세상입니까.
시국 정사로 말한다면 경서의 한 대목의 대문(大文)만 통한 사람을 대뜸 전시(殿試)에 부치고 월과(月課)로 보이는 시험에서 혹 높은 등급을 받은 자에게는 특별히 진사를 주기도 하니, 이것이 비록 임금이 만들어내는 권한이지만 사실 전에는 없던 예입니다. 요행수로 합격되는 문이 열리고 선비들의 습관이 날로 더러워지고 있으니 오늘의 과거 제도를 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6품에 오르지 못한 자를 특별히 5품의 자리로 임명하며 벼슬길에 나서지도 못한 자를 곧바로 직장(直長)에 붙여주니 오늘날의 벼슬길은 난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정의 광경으로 말하면 관리를 추천할 때에 오직 전하의 뜻만을 보고 조정의 계획은 모두 위에서 만들어내며 늙은 재상들은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서 녹만 축내는 혐의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리병을 앓는 좌상은 차자도 올리기 전에 벌써 사신(使臣)으로 임명되니, 의정부는 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되고 나랏일은 적체되는 탄식만 있으니 한(漢)나라 정승이 소를 보고 까닭을 물은 것은 논할 것도 없지만 앉아 있는 봉황과 같던 송(宋)나라의 신하와 같은 비난이야 어찌 없겠습니까.067) 진실로 전하께서 참되 마음으로 참된 정사를 행하고 참된 정사로 참된 성과를 거두어 하늘에 순응하는 방도로 삼는다면 설사 오늘의 바른 말을 올리라는 일이 없더라도 은근히 감응하여 빠른 이치는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메아리가 울려오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전하는 유의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재변을 만나 말을 구한 것은 곧은 말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대의 상소문 중에 두 정승을 무시하고 무진 애를 써가며 욕하고 헐뜯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간과 재상들이 서로 가타부타하다가 진실로 허물이 있으면 문제에 따라 추궁하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어 당한 사람도 또한 기뻐하면서 즐겨 들을 것이니 성실하게 추궁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네가 말한 것은 특별히 지적한 사실도 없고 예로 대접하는 후한 풍도도 없으면서 일필로 단정하니 너무도 여유가 없다. 의정부의 여러 자리를 거쳐 영의정에 오르게 되면 나이가 많아 90세에 이르러 다리가 아파 가마를 타고 관청에 나와 일을 보는 것이 고사(故事)에서 명백하게 증거할 만한 곳이 있다. 바른 말을 구하는 것은 바른 말을 구하는 것이고 조정은 조정이다. 명색이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옳고 그른 것을 흐리게 하고 둘러대기만 일삼으며 법에 대한 일을 맡겼더니 호통이나 치면서 휴지 조각 전하듯 한다면 참소하는 말이 나돌지 못하게 근절시켰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밖에 여러 조항은 마땅히 유의할 것이다. 상임(庠任)을 급제시켜 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데 가깝지만 이와 같이 과거 제도를 조절하는 것은 때에 맞게 조치하는 임시 방편에서 나온 것이니 만일 폐단이 생긴다면 중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월과(月課)에서 혹 진사 자격을 주는 일은 나라의 법에 익숙하지 못하였다가 요즈음에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찌 다만 월과뿐이겠는가. 대체로 유학(幼學)으로 입격되고 임금이 낸 출제에서 높은 점수를 차지한 사람도 이 뒤에는 자주 이런 예를 쓰고자 하니 그대는 모름지기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보도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87면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註 067] 한(漢)나라 정승이 소를 보고 까닭을 물은 것은 논할 것도 없지만 앉아 있는 봉황과 같던 송(宋)나라의 신하와 같은 비난이야 어찌 없겠습니까. : 훌륭한 정승이기는 바랄 수도 없지만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는 뜻. 한나라 어진 정승 병길(丙吉)이, 무덥지 않은 계절에 소가 헐떡이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는데, 이는 재상의 직무가 음양을 잘 조화하는 데 있기 때문이었고《한서(漢書)》 권74 병길전(丙吉傳), 송나라 때 정승 증공량(曾公亮)이 노쇠하도록 정승 자리에 있자 이복규(李復圭)가 "늙은 봉이 못가에 버티고 떠나지 않네……."라고 시를 지어 비난하자 치사(致仕)하고 떠났다는 고사.《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후집(後集) 권6.
진실로 전하께서 참되 마음으로 참된 정사를 행하고 참된 정사로 참된 성과를 거두어 하늘에 순응하는 방도로 삼는다면 설사 오늘의 바른 말을 올리라는 일이 없더라도 은근히 감응하여 빠른 이치는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메아리가 울려오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전하는 유의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재변을 만나 말을 구한 것은 곧은 말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대의 상소문 중에 두 정승을 무시하고 무진 애를 써가며 욕하고 헐뜯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간과 재상들이 서로 가타부타하다가 진실로 허물이 있으면 문제에 따라 추궁하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어 당한 사람도 또한 기뻐하면서 즐겨 들을 것이니 성실하게 추궁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네가 말한 것은 특별히 지적한 사실도 없고 예로 대접하는 후한 풍도도 없으면서 일필로 단정하니 너무도 여유가 없다. 의정부의 여러 자리를 거쳐 영의정에 오르게 되면 나이가 많아 90세에 이르러 다리가 아파 가마를 타고 관청에 나와 일을 보는 것이 고사(故事)에서 명백하게 증거할 만한 곳이 있다. 바른 말을 구하는 것은 바른 말을 구하는 것이고 조정은 조정이다. 명색이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옳고 그른 것을 흐리게 하고 둘러대기만 일삼으며 법에 대한 일을 맡겼더니 호통이나 치면서 휴지 조각 전하듯 한다면 참소하는 말이 나돌지 못하게 근절시켰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밖에 여러 조항은 마땅히 유의할 것이다. 상임(庠任)을 급제시켜 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데 가깝지만 이와 같이 과거 제도를 조절하는 것은 때에 맞게 조치하는 임시 방편에서 나온 것이니 만일 폐단이 생긴다면 중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월과(月課)에서 혹 진사 자격을 주는 일은 나라의 법에 익숙하지 못하였다가 요즈음에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찌 다만 월과뿐이겠는가. 대체로 유학(幼學)으로 입격되고 임금이 낸 출제에서 높은 점수를 차지한 사람도 이 뒤에는 자주 이런 예를 쓰고자 하니 그대는 모름지기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보도록 하라."
하였다.

 

장령 한용탁(韓用鐸)이 상소하기를,
"1. 조정의 기강을 떨치는 일입니다.
대체로 나라에서 재상들과 여러 관료들을 두는 것은 모두 정사를 돕고 일을 성공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의 자리에서는 항상 홀로 애쓰는 탄식만 있고 나랏일을 계획하는 관청에서는 아름다운 일을 가지고 들어와 고함이 없으며, 온 조정에서는 모두 나라를 걱정하느라 집안일을 잊은 사람을 보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당을 옹호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으며 사사로운 일을 주선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으면서 눈앞의 일을 적당히 꾸려나가고 겉모양만을 꾸며나갑니다. 조정에서의 하는 거동이 이와 같이 구차하니 신은 생각건대 해이한 기강을 독려하고 나랏일에 힘쓰도록 하는 것이 사실상 오늘날의 급무라고 하겠습니다.
1. 풍속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근래에 오면서 선비들의 추향이 더욱 나빠져 명분과 의리를 내버리고 공교롭게 벼슬길에 오르기만을 도모하며 또 별도로 경박한 무리들이 있어 시(詩)에 대해서는 명(明)나라 말기를 칭찬하고 글씨는 당(唐)나라 체를 말하면서 붓·벼루·화로·도자기 등의 유에 있어서도 좌우에 진열한 것은 중국 물건이 아닌 것이 없고 중국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본따서 사치가 날로 심하고 온갖 간사한 짓을 다합니다. 바라건대 풍속을 바로 돌리고 명분과 의리를 잡는 것을 힘쓰며 벼슬길을 다투는 버릇을 억제하고 염치를 장려하며 사치를 물리치고 교화를 진작시키도록 하소서. 이번 사신의 행사에서부터 규정을 엄하게 세워 중국 물건으로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일체 가져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사치를 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재정을 넉넉히 하는 것입니다.
풍속은 사치를 숭상하고 백성들은 말기(末技)를 붙좇는 일이 많아, 도성의 남쪽에는 화려한 집들이 이어졌으되 가난한 선비는 게딱지만한 집도 없으며 조정에는 좋은 가죽옷을 입는 풍속이 극에 달하되 궁핍한 백성들은 누더기옷도 입기를 걱정하고 부자는 진수 성찬도 배불러 마다하는데 가난한 사람은 겨로도 배를 채우지 못합니다. 재정을 넉넉하게 하는 근본은 생산을 많이 하여야 하는데 음식점에 늘어선 사람들은 밭에서 일하는 백성들보다 많으며 저자의 목로판에서 술을 파는 여자는 베틀 위에 앉은 여자보다 갑절이나 됩니다. 사람들은 잇속을 따지는 데만 익숙하고 풍속은 날로 박해지며 백성들은 농사를 게을리 하고 놀면서 먹는 사람이 날로 많아집니다. 원하건대 속히 검소를 장려하는 방도를 취하고 사치를 숭상하는 풍속을 엄하게 바로잡으며 지방의 수령으로 하여금 농사와 누에치는 일을 권하여 근본에 힘쓰도록 하여야 합니다. 은화(銀貨)에 대한 문제는 또한 크게 염려가 되는 것이 있으니, 우리 나라의 은은 중국으로 나가면 돌아올 길이 없어 실제로 이어갈 방법이 없으니 바라건대 의정부에 타일러 소상하게 상의하도록 하소서.
1. 백성들의 근심을 살펴야 합니다.
요즈음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고을마다 달라서 세세히 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곡을 주고받는 데 있어 공평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관찰사가 유용하는 데 있으므로 곡식의 값이 비싼 고을에서 이자를 챙겨 취합니다. 노비들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일은 도리어 수령들이 문서를 들추어내서 폐단을 바로잡는 날에 침해하는 데 있습니다. 대장에는 어린 아이와 노인까지 올리되 부유한 백성들은 한가히 놀고, 토지는 경계를 잃어 빼앗긴 토지도 세금을 물며 탐욕스러운 수령과 아전들이 따라서 긁어들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각도에 엄히 경계를 시켜 모두 고쳐 바로잡고 전처럼 우물쭈물 전례를 답습하지 않게 하소서. 다시 생각건대 억울한 일을 살피며 숨겨진 고통을 풀어 주는 것도 재변을 막는 요점이 됩니다. 강극성(姜克成)의 그날에 충성스러운 울분은 온 세상을 감흥시킬 만한데 전하가 벽력 같은 위엄으로 지나치게 꺾어버렸고 그 뒤 죄인들을 사면시키는 은혜에도 홀로 이 사람은 빠졌으니 특별히 가엾게 여겨서 살아 돌아오게 허락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진술한 여러 가지 조항은 마땅히 유념토록 하겠다."
하였다.

 

수찬 윤익렬(尹益烈)이 상소하기를,
"바른 말이 들어오는 길이란 나라를 유지하는 혈맥인데 도의가 위축되고 인심이 연약해져서 모두 입을 다무는 것으로 몸을 편히 하고 명을 다하는 묘한 비결로 삼고 있습니다. 혹 한두 명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평이하고 모나지 않는 말을 골라 하는 것을 오직 하루의 책임으로 삼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말을 올리는 자만의 죄이겠습니까. 또한 전하께서 반성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근래에 와서 전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합당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곧바로 돌려보내거나 혹 달이 넘도록 머물려 두고 심지어 그것으로 바른 말을 막는 법으로 만들어 바른 말을 올리는 신하들로 하여금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도록 하고 손이 있어도 둘 곳이 없게 하니, 이것은 바른 말을 올리는 관리가 없다고 하여도 가합니다.
김종수(金鍾秀)의 일에 이르러서는 무단히 특별 사면으로 석방한 뒤에는 한 사람도 이 일을 가지고 바른 말을 하는 자가 없으니, 전날에 눈을 크게 뜨고 장담하던 것이 과연 참된 마음에서 나왔으면 오늘날 입을 다무는 것은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체로 지금의 대소 신료들은 누구나 전하의 척도 속에 구속되어 나라의 급하거나 늦춰야 할 모든 일을 오직 전하의 마음으로 기준을 삼고 자기의 가슴속에는 한 푼의 주장도 없으니 이같은 풍속은 세도에 크게 관계됨으로 신은 삼가 걱정이 됩니다.
백성들의 고락은 전적으로 수령에게 달려 있는데 자주 체직되는 폐단이 근세에 심해져서 맞이하고 전송할 때에 백성들은 그 폐해를 받고 있고 교체될 때에 아전들은 간사한 짓을 마구 합니다. 고을 원은 오래 머물 뜻이 없고 백성들은 응당 체직될 사람으로 보고 있으니 비록 일반적인 일에 대하여 좋은 계획을 세워 베풀고자 하나 형편상 어찌할 수 없습니다. 중앙 관청의 소송을 맡은 관리도 자주 바뀔까 걱정하는데 더구나 먼 지방은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불 유의하여야 합니다."
하니, 마땅히 유의하겠다고 답하였다.

 

지평 홍병신(洪秉臣)이 상소하기를,
"관리들의 업적을 상고하여 추방하고 승급시키는 일은 나라의 중대한 정사입니다. 권문 귀족들은 탐욕스러운 일을 마구 행하여도 강등시키지 않고 잔약한 음관이나 무관들은 혹 훌륭한 업적이 있어도 허물이 많습니다. 위로는 중앙의 관청으로부터 아래로는 지방관에 이르기까지 전하의 마음을 본받은 사람이 없어 누추한 버릇을 통렬히 고치지 못합니다. 이 폐단을 고치고자 한다면 전하의 마음부터 시작하십시오. 우선 관리를 고르는 데 신중하게 하여 지위와 문벌로 지나치게 끌어들여 등용하지 말고 소원한 사람이라고 하여 벼슬을 주는 데 소홀하게 하지 않는다면 한편으로는 훌륭한 사람을 얻게 되어 추방과 승진이 밝아질 것이며 지방에는 적임자를 얻게 되어 송사도 공평하게 될 것입니다.
청주 목사 안정탁(安廷鐸)이 군정(軍丁)에 대한 문안을 작성할 때 한 사람의 누락된 장정(壯丁)을 조사하여 찾아내고서, 용모의 특징을 쓴 문권을 대하고 보니 나이가 겨우 5살이자, 정탁이 장정을 숨겨두고 어린 아이를 대신 보였다고 여기고 자복을 받으려고 그 아비에게 함부로 곤장을 때려서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잔혹한 정사는 사실상 화기(和氣)를 저해하는 단서가 됩니다. 속히 중하게 처결하여 필부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마땅히 유의하겠다. 안정탁의 일이 사실이라면 잘못하여 억울하게 죽인 것으로만 논할 수 없다. 엄하게 관찰사에게 지시하여 몸소 분명하게 조사하여 장계를 올리도록 한 뒤에 처리하라."
하였다.

 

여러 도의 수군과 육군을 훈련시키는 것에 대한 순조(巡操) 및 순력(巡歷)과 순점(巡點)을 중지하였다. 비변사가 아뢴 말을 따른 것이다.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이 상소하기를,
"신이 집의 이우제(李遇濟)의 상소 원본을 보았는데, 이같은 공론이 준엄하게 생겨 신은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만 나랏일과 세도를 위하여 천만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곧은 말을 맡아 하는 관청에서 오래도록 곧고 간절한 논쟁이 없어서 신과 같이 노쇠하고 무지한 사람으로 하여금 한 해가 되도록 영의정의 자리에 있게 하니 매번 스스로 반성할 때면 더욱 부끄럽고 황공하였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신의 개인적인 일에 속하는 것이나 조정의 실지를 힘쓰는 정사에 있어서는 사실상 다시 이런 말을 듣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대간의 말은 구절마다 절실하여 분명히 재변을 초래하는 근본을 알고 깊이 나라를 위하는 근본을 얻었으니 신은 이것을 받아들여 죄책으로 삼겠습니다. 신은 스스로 안 것이 분명하고 공론이 지극히 엄함에 다시 어떻게 벼슬자리를 더럽히는 줄 알면서 그대로 머물러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신의 직책을 거두어 하늘의 견책에 보답하고 사람들의 공론에 사례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침과 낮에는 정무가 매우 번다하고 저녁이면 몸이 괴로웠는데, 지금 또 경이 상소하여 이같이 혐의를 끌어대니 경으로 하여금 의정부에서 불안하게 하는 것은 어찌 이우제의 해괴하고 망령된 일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때에 우제로 하여금 이런 말을 꺼내게 한 것은 대개 임금의 정사가 신하들에게 미덥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참으로 그 이유를 따진다면 나 한 사람 때문이지 경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밤에 조금 시간을 기다려 피로가 다소라도 풀리면 승지를 보내어 미진한 말을 거듭 타이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만 줄인다. 경은 안심하여 사양치 말고 일을 보라."
하였다.

 

7월 23일 무신

내의원에서 진찰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재학(李在學)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김이익(金履翼)을 이조 참의로 삼았다.

 

 

 

내의원 제조를 접견하였다. 가미한 연교음(連翹飮)을 올렸다.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에게 돈독히 유시하기를,
"바른 말을 올리는 관원들이 일 때문에 모여서 대신을 마구 헐뜯는 것이 어찌 한이 있겠는가마는 매양 득실을 따질 때마다 공격하고 뒤흔들어 사사로이 당을 부추기고자 하니 그 말에 현혹되기 쉽고 그 계책은 시행되기가 쉽다. 지금 집의 이우제의 상소는 남의 단점을 잡으려는 데만 급하여 조리가 너무 문란하다. 그저 80에 달하여 질병을 요양하는 것으로 말을 만드는 요점을 삼아 경으로 하여금 조정에서 편안히 있을 수 없게 하니, 굳이 우제를 깊이 꾸짖고자 하지는 않는다만 조정의 체모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라에서 정승을 두되 꼭 노련한 사람을 두는 것은 전날의 역사에서도 상고할 수 있고 우리 나라 역사에도 소상하게 실려 있다. 대체로 나이가 많고 벼슬이 놓은 뒤라야 사치하고 경박한 습관을 일삼지 않고 잘 따지고 과격한 습속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 작은 일의 처리는 무미한 듯하더라도 큰 일에 대한 처리는 성과가 많다. 때문에 하위에 있으면서 하위 풍속을 바라게 되므로 감히 옛날의 제도를 고치지 못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 정승을 뽑는 규정은 더욱 노인을 중히 여겼다. 내가 경을 취한 것은 이 때문이다. 참으로 말한 자의 말과 같다면 내가 경을 취한 것은 도리어 경을 구설수에 오르게 하려는 것이었단 말인가.
내가 거듭 경을 취한 것은 다시 깊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니 경은 의정부의 한 복성(福星)이다. 경이 이 책임을 맡은 때로부터 백성과 나라에 일이 적을 뿐만 아니라 조정과 지방에는 여유가 많아졌다. 참으로 경을 만난 것은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운 운수요 경사스러운 시절이다. 임금의 명을 받아 시행하며 드날리는 공은 경이 아니고 누가 담당하겠는가. 우제 같은 사람이 열이 있더라도 내가 어찌 경을 버릴 리가 있겠는가. 내가 경을 놓고 어디로 가겠는가. 병중에 다른 사람을 불러 쓰게 하느라고 말이 뜻을 다하지 못하였다. 경은 곧바로 일어나 조정에 나오라."
하였다.


 

좌의정 김이소(金履素)가 상소하기를,
"신이 지금 상소를 올려 벼슬에서 물러나와 하늘의 견책에 답하고자 생각하였는데 이때에 대간들의 상소가 먼저 올라오니 신은 실제로 위로는 훌륭한 조정을 위하여 축하하고 아래로는 신의 몸을 위하여 기뻐합니다. 대간들이 침묵한 지 지금 몇 해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침에 우는 봉황이 진흙 속에 허덕이는 거북이를 배척했으니 앞으로 재변을 돌려 상서로움을 만드는 효과를 당장에 볼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은혜를 탐하는 염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때에 물러가게 하니 신이 어찌 우러러 하례하고 구부려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즐겨 듣고 또 기꺼이 복종하겠습니다.
사적인 것으로 말하면 마땅히 물러가야 할 것을 안 지 이미 오래였고 공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말이 이와 같이 적실하니 바라건대 신의 좌의정 벼슬을 삭직하고 소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다스리소서. 대간의 상소에서 열거한 탄핵은 모두 바로잡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전하가 특별히 대신을 공박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대간들의 풍도를 꺾어버리는 전교를 내리시니, 이미 진심으로 바른 말을 구하는 날에 바른 말이 싫어서 사람을 거절하는 빛을 띤 탄식이 있게 하였으니 신은 실로 아쉽게 여깁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비답 중에 고쳐야 할 말을 속히 고쳐서 다시 바른 말을 받아들이는 뜻을 보여 훌륭한 덕을 빛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네 자로 지목한 말은 대신을 무시함이 막심하며 그 아래의 글귀는 사실과 다르다. 더구나 질병이 온다는 것은 성인이나 일반이 같은 것인데 경이 다리를 다친 것은 정승의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를 빙자하여 경을 헐뜯는 일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으로 인하여 털끝만큼이라도 경을 버릴 뜻을 보이거나 경도 이것으로 진정으로 꼭 물러갈 단서로 삼는다면 이로부터 조정은 조정이 될 수 없고 대신은 대신이 될 수 없다. 나의 뜻은 결정하였으니 많은 말을 하지 않겠다. 경은 안심하고 사양하지 말아 몸이 나으면 일을 보도록 하라."
하였다.

 

우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상차하기를,
"신이 삼가 일전에 비변사에 내린 비답을 보니 ‘경들은 차자나 상소로 나를 위하여 극진히 말을 하라.’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개 비변사에서 진술한 다섯 가지의 조항에 대한 의논을 가리켜 말한 것이지만 진실로 마음속에 품은 것이 있으면 꼭 이 조항 안에 구애될 것이 없습니다.
옛날에 우리 세종 대왕께서는 가물로 인한 재해가 몹시 혹독하고 가을 추수 때 또 변괴가 있어서 정부와 육조에 전교하기를 ‘조용히 이 재변을 생각해보니 실지로는 과인 때문이다. 곧은 말을 들어 하늘의 견책에 응답하기를 원한다. 지난 일을 죽 보건대 태평스러운 때에도 오히려 소매를 잡고 간곡하게 간한 사람이 있으며 또 그 말이 인심을 감동시킨 것도 있었다.
지금 보건대 조금 태평스럽다고 할 수 있으나 옛날만 못한 것이 분명한데 바른 말을 하고 면전에서 쟁집하는 자를 보지 못하겠고 또 그 말이 간절하고 곧지도 못하다. 어찌하여 사람들이 옛날만 같지 못한가.’ 하였으니 세종 대왕의 이 전교는 곧 전하의 오늘날 도움을 구하는 마음과 같은데, 인심이 옛날과 같지 않음이 세종 때보다 1만 배나 될 뿐 아니라 세종 대왕의 전신을 기울여 바른 말을 구함이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생각과 같은데 어찌 서운하고 허전한 탄식이 없었겠습니까.
우리 왕조에서 잘 다스려진 시대로는 반드시 세종조를 말하는데 그 시대에도 허물이 없다고 자처하지 않고 옷깃을 잡으면서 간한 충성을 여러 신하들에게 바랐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가 몸을 조섭하는 나머지 밤 기운이 청명할 때에 지난 일을 조용히 점검해 보면 과연 모두 법도에 넘지 않았으며 허물은 뉘우칠 만한 것이 없었으며, 혹 충성스럽고 곧은 선비가 있어 옛사람과 같이 옷깃을 잡고 힘써 간한다면 과연 말이 끝나자 곧 깨달아 그대로 따르겠습니까. 신은 죽을 죄를 지으며 삼가 생각건대 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허물은 허물이 아니라고 하고 법도를 어긴 것도 법도에 합당한 것이라고 하는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는 바른 말을 구하는 헛수고를 하지 마십시오. 아, 하늘과 땅의 마음은 원래 재변을 일으키는 요사함이 없는데 기(氣)가 한 번 용사(用事)를 하면 큰 가물이 생기고, 임금의 마음은 본래부터 깨끗하고 비어 있는데 기가 한 번 용사하면 하는 일이 사리에 어긋나게 됩니다.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자주 일어나고 부스럼이 생기는 것은 모두 이것이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재변을 막는 방법을 강구하여 하늘의 뜻을 돌리기를 기대하니 신은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대개 듣건대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 기를 기르는 일은 원래 두 가지가 아닙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기가 내리고 기가 내리면 물과 불이 서로 조화되어 온 몸이 평안해지고 마음이 한 번 평온함을 잃으면 그 반응이 이와 반대로 되는 것입니다. 신이 밤낮으로 초조하게 걱정하는 것은 한때의 큰 가물에 있지 않고 전하의 마음이 혹 평온을 잃어서 기가 용사하는 일에 있습니다. 원하건대 전하는 이 어리석은 신을 가엾게 여기고 속마음을 살펴 마음을 다스리는 일로 기를 기르는 근본으로 삼고 기를 기름으로써 약을 쓰지 않아도 병이 낫는 비결로 삼으소서. 깊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쳐 하늘의 경고에 답하면 하늘에서 성실로 응하는 방도가 어찌 구구하게 시행하는 말단의 일과 비교하여 논할 수 있으며 전대의 훌륭한 치적을 오늘에 다시 보는 것이 어찌 어렵겠습니까.
다신 생각건대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전하가 예로 우대하는 마당에 영의정은 늙음으로 해서 배척을 당하였고 질병은 사람마다 면하지 못하는 것인데 좌의정은 아픈 다리 때문에 탄핵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신은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하는 일 없이 녹만 많이 축내고 있고 병도 없으면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으니 한(漢)나라에서 벼슬을 면직시키는 법을 신을 놔두고 누구에게 먼저 적용시키겠습니까. 바라건대 속히 탄핵하여 물러가게 하고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을 다시 골라 재변을 막는 데 하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차자의 말이 절실하니 경계로 삼아 들을 만하다. 깊이 생각해 보겠다. 덧붙여 진달하면서 의리를 끌어들인 말은 지나치다. 안심하고 일을 보라."
하였다.

 

판중추부사 김희(金憙)가 상차하기를,
"신은 외람되게 대신들의 뒤를 따라 미천한 나무꾼의 소견과 같은 글을 다섯 가지 조항으로 연명하여 올렸으나 그중에는 한 가지도 긴요한 말이 없었으므로 황공하고 부끄러워 큰 꾸지람을 기다렸습니다. 삼가 비답을 받드니 너그럽게 용납하고 용서하여 각각 다하지 못한 말을 다하게 하시니, 신이 다섯 가지 조항 중에서 다시 한 가지의 견해를 진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명분과 의리를 부추겨 세우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끝내 부추겨 세운 성과는 보지 못하였고, 전하께서 기강을 진작시키고 다듬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끝내 진작시키고 다듬은 성과는 보지 못했습니다. 염의를 장려하고 탐욕을 징계시키는 일은 곧 전하가 백성을 위해 고심한 것인데 역시 염의가 있어도 장려하지 못하며 탐욕스러워도 징계하지 못한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옥사를 잘 다스리고 형벌을 공정하게 하는 것은 곧 전하가 죄인을 신중히 다루고 가엾게 여기는 지극한 덕이었으나 어떻게 옥사는 모두 잘 다스려지고 형벌은 모두 공정했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벼슬자리와 같은 것은 전하께서 어찌 일찍이 신중을 기하지 않았겠습니까만 지나치게 벼슬을 준다는 탄식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전하의 성(誠)에 대한 공부가 미진한 바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장 눈앞의 불을 끄듯 급한 일을 수습하는 방도를 생각해보건대 한 가지 일이 있으니, 금지령을 철회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주역》의 태괘(泰卦)에는 ‘하늘과 땅이 교합하여 만물이 통한다.’고 하였고, 비괘(否卦)에는 ‘하늘과 땅이 교합하지 못하여 만물이 서로 통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금지령이 발표된 이래로 하늘과 땅이 교합이 됩니까, 교합되지 않습니까. 조정에 가득한 신하들이 입을 다물고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삼사의 신료들은 의견이 있어도 진달하지 못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막히고 바른 말을 올리는 길이 막혔습니다. 혹 전지에 응하여 글을 올리더라도 모두 말을 머뭇거리면서 얼버무리니 하늘과 땅이 비색하여 교합되지 않음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천지가 교합되지 않으면 만물이 통하지 않고 만물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재변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전하의 총명이 만리를 밝힌다하더라도 임금을 편안히 하는 계책이 대궐에 전해지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죽게 될 형편이라도 모두 살필 수가 없을 것이니, 다섯 가지 조항의 말은 평일에 쓰는 좋은 반찬이나 고기와 같고 금지령을 철회하는 일은 위급한 질병을 구제하는 약이나 침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전하가 이 다섯 가지의 조항뿐만 아니라 더욱 성실한 마음으로 수양하는 공부를 다하여 재변을 막는 실질적인 정사로 삼고 꼭 금지령을 철회하여 하늘과 땅이 교합하여 만물이 통하게 한 뒤에라야 천심을 감동시키고 백성들의 고통을 펴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말대로 했는데도 끝내 비가 오지 않는다면 신은 망령된 말을 한 죄로 견책을 받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다섯 가지 조목으로 역설한 것은 경의 정성스러운 마음속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 말이 모두 경전을 인용한 것이므로 내가 유념하고자 한다."
하였다.

 

부수찬 박길원(朴吉源)이 상소하기를,
"어진 하늘의 경고가 지금 같은 때가 없었습니다. 나라의 역적을 토벌하지 않은 탓에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뜻이 통하지 않고 변란의 근본이 없어지지 않음에 의리가 날로 꽉 막히니, 원하건대 속히 밝은 전교를 내려서 온 나라의 공정한 여론이 조금이나마 펴지게 하소서.
오늘날 재변을 초래한 단서는 신이 어떤 일에서 감응이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번 정성스럽게 빌어도 영험은 더욱 아득해지고 있습니다. 올 가을의 풍년에 대한 기쁨도 기대할 수 없으니 명년 봄 기근의 구제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여야 합니다. 지난날의 흉년에는 고을의 기근을 구제하는 수령들이 매양 스스로 비축한 곳식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여 표창을 바랐는데, 진실로 향임(鄕任)들에게 강제적으로 팔게 한 것이 아니면 곧 나라의 곡식으로 농간질을 한 것이고 탐관 오리들은 그것으로 인연하여 긁어모아 제 주머니를 채우는 밑천으로 삼았으니, 어찌 크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비축한 곡식을 가지고 표창을 논하는 법을 통렬히 고쳐서 곡식의 숫자를 허위로 늘려서 공을 세우고 상을 기대하지 못하게 하면 역시 염치를 배양하는 단서가 될 것입니다.
환자곡을 나누어 주고받아들이는 법을 실시하게 된 근본을 말하면 대개 백성들을 편하게 하기 위한 데서 나왔는데 지금은 도리어 백성들의 폐해를 만드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만일 바로잡고자 한다면 한 가지 설이 있습니다. 먼저 각 고을의 호구를 계산한 다음 온 도의 곡식 장부를 따져서 총 호수와 곡식의 총수로 많고 적은 것을 계산하고 원본과 부본의 장부에 고르게 분배하면 환자곡의 폐단이 바로잡혀질 것입니다.
기강의 퇴폐나 명분의 문란도 역시 오늘의 큰 폐단입니다. 신은 생각건대 우선 묘당에 경계시켜 꼭 기강을 세우며 명분을 바루는 일로 먼저 힘쓰게 하고 다음에는 관찰사에게 경계시켜 관리들의 업적 고과를 엄하게 하고 탐관 오리를 징계하는 일로 제일 중요한 방법을 삼으면 거의 바로잡아 회복되는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마땅히 유의하겠다. 그중에 품처할 일은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허락하겠다."
하였다.

 

지평 남이익(南履翼)이 상소하기를,
"흉악한 무관이 앞장서서 역적을 호위하여 흉측한 속마음이 모두 드러났는데도 큰 진영의 장수라고 하여 총애를 하고, 손가락의 피로 상소를 적어 올린 충신들은 특별한 충절이 빛나는데 거친 바닷가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착한 일을 권장하는 것과 악한 일을 징계하는 것이 서로 상반되고 처사와 조치가 어그러지니 지금의 이 가물은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원하건대 속히 전날의 금지령을 철회하여 징계하고 토벌하는 마음을 펴도록 하고 흉악한 무리들을 엄하게 국문하여 나라의 법을 적용하고 간관들을 불러 돌아오게 하여 곧은 기운을 장려하면 하늘이 감응하여 단비를 내리는 것이 북채로 북을 치면 소리가 나는 것보다 빠를 것입니다.
아, 필부가 원한을 품으면 화기(和氣)를 저해하는 법입니다. 수령이 함부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국법이 있습니다. 창원 부사 이여절(李汝節)은 법 이외로 매질을 혹독하게 하여 죄 없는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여 그릇되게 인명을 해친 것이 두세 번에 이르렀으니 이처럼 가물 때를 당하여 곧바로 신문하여 조사하여 엄한 처분을 내리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마땅히 유의하겠다. 이여절의 일에 대하여는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찌 중한 벌을 면할 수 있겠는가. 먼 데서 들려오는 풍문을 모두 믿기는 어려우니 관찰사에게 부쳐 상세히 조사하여 장계를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부교리 박종순(朴鍾淳)이 상소하기를,
"지금 보건대 당장 절실한 일은 그 조목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른 말을 올리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역적을 징계시키고 토벌하는 일은 나라에서 제일가는 의리인데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못하게 하니, 그 밖의 현행 정사의 잘잘못과 관료들의 교훈이나 규율 같은 것에 대하여 말을 해야 할 것이 있더라도 누가 즐겨 지적해서 말하겠습니까. 전하는 속히 내린 명령을 철회하여 바른 말을 올리는 길을 열어 의리를 펴도록 하소서.
둘째는 형벌에 관한 정사를 거행하는 일입니다. 김종수가 범한 죄는 귀신이나 사람들이 다 같이 통분하고 있습니다. 대간들의 논계가 올라가 겨우 윤허를 받았는데 사면의 명령이 곧바로 내리니 형정이 거꾸로 됨은 진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셋째로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늘이 물자를 생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사람들이 소비하는 물자는 절제가 없으니 물자가 어찌 부족하지 않으며 백성들은 어찌 가난하지 않겠습니까. 사치를 버리고 검약을 숭상하는 도리는 전하께서 솔선하여 힘쓰고 가르치는 데 있습니다.
넷째는 기강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 역시 대소 관료들이 각각 직분을 잘 지켜 조정이 먼저 바르게 하고 다음에 사방에 본받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살피도록 하소서."
하니, 마땅히 유의하겠다고 비답하였다.
정언 신귀조(申龜朝)가 상소하기를,
"오늘날 재변을 막은 계책은 변란의 근본을 제거하여 하늘과 땅을 깨끗하게 하는 일보다 먼저 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닥쳐오는 일에 대하여 경계심을 가지면 종묘와 사직이 편안하고 여러 사람들의 통분은 풀릴 것입니다. 《명의록(明義錄)》은 우리 나라의 《춘추(春秋)》입니다.068)   진실로 동요가 없이 지켜져야 하는데 근래에 와서 통제가 점점 문란해지고 있습니다. 신은 《명의록》과 관계되는 것은 일체의 법으로 고수하여 혹 흔들리거나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금년에 높은 관리들의 부모에게 증직(贈職)하는 일은 전하의 경사를 늘리고 기쁨을 꾸미는 일인데 사람을 뽑아서 아뢸 때에 외람되고 잡된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조와 병조에 엄히 신칙하여 전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오늘날의 많은 일 가운데서도 전하의 몸을 보호하고 조리하는 일과 같은 것이 없는만큼 몸을 수양하고 반성하는 속에서 마땅히 몸을 조리하는 방도를 생각하고 재변을 막을 때에도 더욱 조심하여 조섭하는 일에 힘쓰면 옛사람들이 말한 ‘마음과 기가 화평하여 하늘과 땅의 조화가 응한다.’는 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여러 가지의 조항은 마땅히 유의하겠다. 간혹 금지령에 대한 것은 이미 지워버리거나 빼버린 글귀가 있으므로 부득이 비답을 준다. 《명의록》을 밝히고 닦아 굳게 지키는 일은 어찌 그대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하였다.


 

전 전적 현재묵(玄在默)이 상소하기를,
"관서의 양전(量田)은 이미 햇수가 오래 되어 경계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다시 측량을 하게 되면 간사하고 교활한 향리들이 속임수를 쓸 수 없으므로 위로는 토지 대장에서 토지가 누락되는 실수가 없고 아래로는 이중으로 세금을 바치는 억울함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측량을 다시 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환자곡으로 인한 폐단의 원인은 각 고을의 장부에 기재된 곡식의 수량이 많고 적음이 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법칙을 정하여 만들어서 곡식을 팔 것이 있으면 곡가(穀價)의 고하를 막론하고 먼저 곡식이 가장 많은 고을에서 팔기 시작하여 차차 팔게 하면 몇 해 안 가서 각 고을의 곡식의 총액이 균일하게 될 것입니다.
관서의 각 고을에 비치된 돈의 폐해는 또한 백성들의 큰 폐단입니다. 어리석은 신의 소견으로는 다섯 집이 1통(統)이 되는 법을 엄하게 밝혀서 통마다 나누어 주면 담당 아전들이 조종하면서 뇌물을 받는 폐단은 저절로 고쳐질 것입니다.
관서의 군정에 대한 일은 다른 도에 비교하면 더욱 중대한데 일단 순찰하는 일을 중지한 뒤부터 무기가 녹슬게 되었지만 보수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편대의 사람 중에 도망친 자리를 곧바로 채워넣지 않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다시 옛 제도를 밝히도록 하소서.
서로(西路)에 파발을 두는 것은 대체로 변방 백성들의 급한 경보 때문인데 지탱하기가 어려운 문제로 말하면 황해도 같은 곳이 없고 파발꾼의 삯을 지급하는 것으로 말하면 평안도와 같지 못하기 때문에 황해도 백성들로서 한 번 파발꾼에 들어간 사람은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평안도 근래의 예에 따라 파발꾼의 삯과 잡물을 묘당으로 하여금 적중하게 헤아려 지급하도록 하소서.
영남의 연일(延日)은 고을의 터가 낮고 좋지 못한 곳이어서 임자년 큰 홍수에 거의 떠내려가고 잠겨버렸으니 백성들의 형편을 잘 살펴서 적당한 시기에 옮겨 세우도록 하소서.
삼일포에서 소나무를 베고 개간한 일은 관찰사와 수령들을 논죄하는 일까지 있기 때문에 무식한 산골의 농민들이 애써 농사를 지었다가 하루아침에 생업을 잃게 되었으니 자못 가련한 일입니다. 천천히 가을에 농사가 수확된 뒤를 기다려 시행해도 늦지 않겠습니다.
전국의 도를 팔역(八域)으로 나누고 고을을 3백 개로 구분해 놓았지만 그 폐단은 곳곳마다 다 있으니 의정부로 하여금 각도와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 각 조항에 따라 비변사에 보고하여 폐단을 바로잡으면 재변을 막고 병폐를 없애는 방도에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너는 먼 지방에 사는 문신으로 바른 말을 구하는 날에 먼저 전교에 응했으니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여러 조항에서 가려 쓸 만한 것이 많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보고하여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대사간 임제원(林濟遠)이 상소하여 생원·진사시의 초시를 늦추어 행하기를 청한 일로 인하여 초기(草記)하여 올리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가물이 이와 같으나 가을 일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만큼 식년시(式年試)를 물려 행하는 일은 갑자기 의논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기한이 이미 임박하여 시골 선비들이 객관(客館)을 차지하기 위하여 기한 수십 일 전부터 응시할 고을에 갔으니 여러 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 만일 기일을 물리면 유생들이 소비한 수고와 비용에 있어서 도리어 무익하고 해만 있을 것입니다. 원임 대신의 뜻도 같습니다. 그대로 두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7월 24일 기유

내의원에서 진찰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가미한 연교음(連翹飮)을 올렸다.


 

부수찬 이석하(李錫夏)가 상소하기를,
"돌아보건대 지금 나라의 일을 한마디로 말하면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의 몸에 비교하면 원기가 모두 없어지고 모진 병만 자리잡고 있어 아무리 신기한 약을 가지고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가장 위태롭고 가장 급박하여 잠시라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은 곧 역적을 징계하고 토벌하는 일이 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 병이 한참 중한 것은 두 귀신에게 걸려든 것인데 그 하나가 김종수입니다.
아, 저 종수로 말하면 천만 가지의 죄악이 종이가 다하도록 쓰더라도 다 쓰기 어려운데 개개 사람으로서는 차마 못할 말이며 차마 못할 일이요, 사람으로서는 차마 듣지 못하고 차마 감당하지 못할 지경입니다. 저 군사를 동원한 이괄·박필몽, 욕을 했던 김일경·신치운 같은 사람은 오히려 죄를 성토하여 형언할 수 있지만 김종수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차마 죄를 성토하여 형언하지 못합니다. 신하로서 지은 죄가 지금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다는 것을 알면서 도리어 털끝만큼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죄악이 차고 넘친 지가 오래되었고 품고 있는 음흉한 마음이 여러 번 탄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귀양간 지 얼마 안 되어 죽여야 한다는 의논이 한창인데 버젓이 완전 석방되어 서울의 근교에 머물고 있습니다. 흉측한 마음은 더욱 방자하고 역적 행위는 권세를 믿고 더욱 심하며 역적의 소굴에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포악하게 날뛰는 것을 의리로 여겨 마음을 붙이고 있으니 세상일을 염려하자니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은 귀양지로 다시 보내 그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봅니다. 탐신(貪臣) 한 사람을 처벌하여도 드디어 비가 온다고 하였는데069)   더구나 적신(賊臣)인 경우이겠습니까.
그의 패거리로서 시골에서 세력을 굳혀 근거지를 만든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더욱 추악스럽게 설치는 사람은 심환지(沈煥之)와 김이성(金履成)입니다. 환지의 흉악스러운 의논으로 말하면 마치 노래를 부르면 뒤에서 화답하는 것과 같았으며 대제학 추천을 중이 의발(衣鉢)을 넘겨주듯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일이 발각됨에 미쳐서는 장악원의 모임에서 은연중 기치를 세워 여러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꺾어버리고 한편으로는 눈치를 살피면서 한편으로는 발뺌을 하니, 교활한 계책과 간사한 태도는 길 가는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김이성은 역적의 소굴에서 출발하여 당파의 논의를 갈라 세상의 지목을 받은 지 오래였습니다. 지난 시기에 올린 상소는 겉으로는 역적들을 배척하는 이름을 취하고 속으로는 그들을 비호하는 계획을 시험한 것으로써 갑자기 담당하였다가 금방 변명하였으니 그 단서를 헤아릴 수 없이 은근히 비추면서 생겼다 없어졌다하며 마치 무지개를 가리킬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저 심환지와 어쩌면 서로 그렇게 같습니까. 이와 같은 무리들을 전하께서 시험삼아 물리치고 멀리하여 조정을 청명하게 하고 음사한 요기(妖氣)를 사라지게 하면 재변을 막아내는 한 가지의 도움이 충분히 될 것입니다.
아, 과거 제도는 나라의 중대한 일이며 3년의 식년시에 있어서는 더욱 온 나라 사람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고을 선비들이 실력을 저축하여 글을 다투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 권세 있는 사람이나 부잣집에서 대리로 글을 짓게 하고 대리로 쓰게 하며 책을 끼고 들어가거나 종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을 엄하게 단속하여 각각 그 실력을 다하도록 거듭 밝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연전에 조흘강(照訖講)을 시행한 일은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으므로 많은 선비들이 편리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금년에 와서는 공문을 보내는 데 어긋나는 점이 많고 나라의 법령이 해이하여 밝지 못함에 서울과 시골을 분주하게 다니면서 응시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서울과 지방을 떠들썩하게 하여 의혹을 풀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신이 예조의 당상관이 되어 상에게 보고한 것은 이와 같고 공문은 저와 같이 발송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아래에서 의혹이 생기게 하고 원망은 위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 전하가 특별히 명확한 전교를 내려서 보고 들은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교의 말뜻은 다만 시골 선비들이 서울에 와서 응시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금지하던 법이 풀렸다고 착각하여 데리고 있던 학식이 높은 사람을 무릎을 맞대로 앉아 대신 글을 지을 것을 굳게 약속하고 이미 보내버린 글씨 쓰는 사람을 급한 걸음으로 불러 돌아오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더욱 통분한 일은 각 관청에서 검역을 받은[逢點] 사람들은 《소학》을 읽게 하는 것을 성균관 강론 시험에 응하는 것으로 하는 계책을 만들었으니, 권문의 자제들은 기뻐서 춤을 추고 한미한 선비들은 걱정을 하여 ‘고려 공사는 3일이다.’는 비난이 거리에 나돌고 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당장의 급한 일은 더욱 엄밀한 법을 만들어 과거장이 깨끗해지게 하고 관리의 선발이 정밀해지게 하는 것 만한 것이 없겠습니다.
아, 급하지 않은 소비는 옛사람들이 아끼는 바였고 전례에 없던 일을 시행하는 것은 해당 관청에서 삼가던 것입니다. 저 총융청의 공사는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이같이 장황하게 하십니까. 이름난 정원까지 포함하고 큰 건물이 연이어 세워졌으며 빙 두른 담장과 높은 용마루는 곧바로 산의 중턱까지 범하고 있습니다. 봉래 궁궐이 실제로 남산을 대한 듯하여 산줄기의 원맥을 끊어버리고 대궐과 맞대고 바라보니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전부터 내려오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경비의 지나친 소비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예로부터 계획을 세울 때는 의견을 두루 수합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는데 모든 의견이 다 같아지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설사 이 일이 참으로 긴급하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가물 때에 막중한 수원성의 공사도 중지하는데 총융청의 공사가 뭐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자귀질과 톱질이 끊이지 않고 토목 공사가 한창이니 완급(緩急)과 경중의 구분에 있어서 신은 온당한 것인 줄을 모르겠습니다. 옛말에 ‘택문(澤門)에 사는 머리가 흰 늙은이가 실제로 우리의 공사를 일으켰다.’070)   하였는데 이 말이 여기에 가깝지 않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해당 총융청에 책망하고 타일러 중지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아, 인사 관계의 편중은 그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른바 후보자 추천을 정지시킨 일은 더욱 화기(和氣)를 저해하고 재변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같은 패거리이면 범한 죄가 지극히 중하여 죄과를 씻어버릴 수 없더라도 서둘러 추천하기를 제때에 못할까 두려워하고 만약 심사가 서로 같지 않고 입장이 혹 달라 한 번이라도 비위를 거스르는 일이 있으면 힘을 합하여 방해하면서 추천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옛날에 이른바 후보자 추천을 정지시킨 일은 반드시 정지시키는 이유를 가지고 인사 처리하는 문권이 표지를 써서 붙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눈짓으로 서로 통하고 귀에 대고 서로 알리며 혹 한 건의 상소라도 간사하다고 공격하는 데 연좌되거나 혹 한마디라도 권력 있는 사람을 거스르는 일이 있게 되면 일년에 5, 6차례씩 번복되다가 끝내 풀리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구중 궁궐에 계시는 임금께서 환히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위엄을 멋대로 부리고 있습니다. 다만 감히 도전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폐습을 혁파하지 않으면 나라의 체면은 높아질 날이 없고 하늘의 화기(和氣)는 이를 가망이 없을 것입니다.
아, 대간은 전하의 귀와 눈인데 오늘날처럼 체모가 타락하고 풍도가 깎인 때는 없었습니다. 일전에 임제원의 상소는 어쩌면 그렇게 망발을 하였단 말입니까. ‘가고 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去就郞當]’라는 네 글자는 자기 집안에서도 오히려 실없는 말에 속하는데, 더구나 자신이 간관의 장이 되어 상소하는 글을 올리면서 마치 대간들의 거취를 시험 삼아 임금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절실하다는 말이 진실로 이렇다는 말입니까. 생사를 가리지 않고 목숨을 내걸어 의리를 밝히는 것이 바로 간관의 직책에 있는 사람이 할 일인데 거취에 대하여 어찌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말이 한 번 나오면 마음이 연약한 대간들로 하여금 구실을 얻게 하는 것이니만큼 신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이 맞지 않는 말은 당당하게 간하는 처지에서 다시 입 밖에 내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아, 지금 재상들의 집은 전토를 널리 점령하지 않은 집이 없습니다. 여주·양주의 기름진 땅과 충청도 연해의 큰 제방은 여러 고을을 포함하고 있어 한 번 바라봄에 끝이 없습니다. 곡식이 1천 석에 차지 않으면 스스로 가난한 집이라 하고 1년에 한 전장에서 나오는 곡식을 환자곡으로 주어 그 이자로 토지를 쉽게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을 하니, 백성들이 어찌 빈곤하지 않으며 나라의 살림이 어찌 깎여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 가지의 계책이 있으니, 식구의 수에 따라 토지를 주거나 토지를 제한하는 수고로운 폐단을 없애고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방도는 곧 호적에 토지를 밝히는 일입니다. 옛날에 토지와 그에 딸리 백성을 함께 호조의 대장에 올린 것이 《시경》의 대아(大雅)에 남아 있어 일찍부터 칭찬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나라의 선대에서 만든 법도 일찍이 호적을 호조에 보관하였으니 그 본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돌아보건대, 지금의 호적법은 다만 노비만을 기재하고 토지는 기재하지 않으니 도대체 무슨 의도입니까. 지금 마침 토지 측량을 정기적으로 하는 때가 닥쳐왔고 신고를 받는 일도 가까운 시기에 있을 것이니 신의 생각으로는 중앙과 지방에 명령을 내려서 토지가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글자와 번호를 차례대로 호적에 올려 넣으면 법은 시행 되기 어려울 것이 없고 일은 매우 순조롭고 편리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첫째는 백성들의 빈부를 두루 알 수 있어서 환자곡을 나누어 주거나 부역을 분담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는 관청의 문서를 남겨둠으로써 송사의 발단을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는 청렴한 마음을 길러서 탐욕의 풍습을 징계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탐욕의 풍습이 성하게 번지는 까닭은 토지에서 생산되는 범위는 넓은데 조사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만일 한 번 큰 도의 감사나 큰 고을의 수령을 거치면 갑자기 토지가 곱절이나 불어나고 토지가 없던 자도 토지를 갖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담이 크고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라도 이런 탐욕 속에서 헤아나지 못합니다. 설사 속이는 폐단이 있더라도 한결같이 호적으로 판단하면 얼마 안 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르게 나누어질 것입니다. 어찌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어 갈수록 심해지는 것보다 낮지 않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신의 이 말에 대하여 반드시 저지시키고 훼방하는 논의가 많아 이해를 잡다하게 진술하면서 현혹시킬 계책을 만들 것입니다. 만일 전하가 결단하여 시행하면서 동의하거나 이의하는 논쟁에 대하여 조목대로 묻는다면 신은 비록 어리석으나 둔한 재주를 다하여 한(漢)나라 염철론의 반복된 변론처럼 하여 결국은 일치를 보는 성과가 있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토 이외에도 더러운 것을 탐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고 있어 외람되고 자질구레한 명색이 많습니다. 큰 고을의 경저리(京邸吏)들은 갖가지의 공물(貢物)에 대해 그 본 주인을 물으면 재상이 반이나 차지하고 점포나 가게, 해당 관청의 일년 동안 그 매출고를 조사해보면 대부(大夫)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하류의 장사치들은 모두 뒤에서 숨어 성원하는 자가 있어 명성과 위세가 높고 커서 송사가 있으면 반드시 이기고 온갖 계책을 미리 강구하므로 호소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뜻대로 됩니다.
신은 모두를 다 알 수도 없고 지적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 상소문을 보는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속으로 암암리에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전하가 진실로 어진 정사를 힘써 시행하고 탐욕의 풍습을 통렬히 고치고자 한다면 거의 근본을 다스리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삼사의 문제에 있어 금지령을 내린 것은 부득이한 것이었으니 어찌 그 직책의 경중을 모르겠는가. 남해로 귀양간 사람을 용서하여 돌아오게 한 일은 무엇 때문에 그와같이 말을 하는가. 만일 실지 사실이 그대의 말과 같다면 법을 적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찌 그대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용서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 심환지의 일에 대하여 갑자기 규탄을 하니 모두 합당하지 않다. 환지를 등용하고자 하면 그대가 감히 저지하겠는가. 김이성에 대한 일은 그의 상소를 얼핏 열람하여 넘기고 다만 여러 사람과 다른 점을 취하여 발탁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이성을 멀리한다고 어찌 재변을 막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생원·진사시의 초시 때에 간사한 폐단의 일이 참으로 그대의 말과 같다면 어찌 통렬히 금하고 엄히 다스릴 뿐이겠는가. 묘당에 부쳐 특별히 조사하도록 하겠다. 이같이 하고도 또 혹 상소에서 논한 것과 같이 한다면 이는 유사가 적임자가 못되기 때문이다.
총융청의 공사에서 산 중턱을 범했다고 하고 또는 산의 원맥을 끊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사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대궐을 나란히 바라보게 되었다고 하니 어찌 그토록 쉽게 말을 하는가. 이미 시행하는 일에 대하여 결정한 사실이 없으니 결코 총용청의 건물을 지은 것이 없는 줄로 알고 있다. 비록 하나의 정자를 지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저와 같이 정원을 포함하고 건물이 이어지는 일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수원성의 공사도 중지하였는데 총융청의 공사를 중지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은 어찌 단서만 잡으려고 한다고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가 평범하게 가부를 말하더라도 그 일을 중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일에 이조와 병조에서 추천을 정지시키는 잘못된 규례 문제에 대하여는 듣고 매우 놀랐다. 몇 해 전에 다투는 일로 인해서 그런 규정을 엄금했는데 근일에 어찌하여 다시 그런 일이 시행되는가. 묘당으로 하여금 살펴 타이르도록 하겠다. 임제원에 대한 일에서 일찍이 시험에 대하여 논한 조목과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배척은 어찌 남에게 함부로 씌우는가. 토지를 호적에 올리는 일은 시행할 수 없는 일이니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7월 25일 경술

내의원 제조를 접견하였다.

 

7월 26일 신해

여섯 번째로 사직단에 기우제를 지냈다.
내의원 제조를 접견하였다.


 

 

 

대신·재상·경연관·사간원·감사 등에게 명하여 억울한 사정을 찾고 살펴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하교하기를,
"병중에 안타깝게 가물이 들어 속이 타고 피가 마른다. 약도 효과가 없고 밤에는 갑자기 더하여 문을 열고 은하수를 바라보니 밝기만 하다. 애타는 마음이 하늘에 통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의 고대하는 정이야 통할 만도한데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지가 지금 40일이 되었다. 앞으로 5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봄 가뭄의 수십 일과 맞먹고 10일 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몇 달과 맞먹는다. 보리와 벼가 없다면 어떻게 해를 넘길 수 있겠는가. 여러 도의 상황을 보면 소나기가 지난 곳에 가끔 호미나 보습을 적실 만한 비가 내렸는데 서울의 안팎에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으니 조용히 생각해보건대 나 한 사람에게 허물이 있다. 자신을 꾸짖는 일을 의식이나 형식적인 예라 하여 등한히 하지 않고 이미 수라의 반찬 수도 줄이고 또 정식적인 음악도 폐지하였다. 다만 전각을 피하는 한 가지 일만을 공포하지 않은 것은 지금 거처하는 곳이 정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 몸을 닦고 반성하는 방도는 무엇을 급선무로 삼아야 하겠는가.
대체로 억울한 일이 쌓여서 맺혀 있는데 그것을 풀어주면 펴나갈 것이다. 혹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속에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보고하지 않아서 원망을 펴지 못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화기(和氣)를 저해하여 경고함이 오래 되었어도 내가 못 본 체하고 못 들은 체하여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인가. 아, 대신·재상·경연관·사간원·감사 등의 신하들은 각각 듣고 아는 데 따라 도움을 요청하는 생각에 답하라."
하였다.
영의정 홍낙성이 상소하기를,
"신이 노쇠하고 혼미함은 대간들의 말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신이 스스로 알고 있으며 온 조정이 아는 바입니다. 이번에 대간이 올린 말은 곧 신의 속마음에 쌓인 것이고 온 세상의 공론이기도 합니다. 전하께서 노성한 대로(大老)라고 타이르기까지 하시니 옛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을 취한 이유는 나이 때문이 아니고 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덕이 어떠한가는 따지지 않고 다만 나이 많은 것만 가지고 취한다면 강현(絳縣)의 노인071)  도 정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신으로 말하면 1년 동안이나 중임을 맡고 있으면서 죄는 쌓이고 자리는 비었는데 이번에 또 좌상이 신으로 말미암아 죄에 걸렸고 우의정은 신 때문에 홀로 수고하였으니 이것은 신이 일찍이 스스로 할 일을 못한 소치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신의 직책을 거두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경은 생각해보라. 조정에 노성한 사람이 있는 것은 나라의 다행한 일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군자는 모두 늙었다.’고 하였으니 대체로 당시의 사대부들이 군자를 위해 그 늙은 것을 애석히 여긴 것이지 모두 늙었다 하여 도리어 군자를 탓한 것이라고는 듣지 못하였다. 더구나 영의정으로 있는 사람은 예로부터 늙은 사람이 많았으니 지금 경은 나라의 정승이요 조정의 노성한 노인이다. 내가 정승을 제수한 까닭은 경이 노성하기 때문이었으니 처음에는 무슨 마음으로 정승 자리를 맡겼다가 또 무슨 마음으로 입장을 생각하여 사임을 윤허하겠는가.
또 내가 듣건대, 임금이 세상을 다스리고 많은 신하들의 도움을 받는 데 있어서는 예절과 의리·청렴과 부끄러움의 네 가지를 중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 그런데 강요하지 않을 것을 강요하여 박절하게 독촉하면서 그 지조를 잃게 하고 뜻을 굽히게 하고 ‘나의 명을 따르라.’ 하며 ‘나의 뜻을 따르라.’고 한다면 일반 관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불가한 일인데 하물며 대관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나는 비록 부덕하지만 이렇게 오활하게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경이 이번에 당한 탄핵은 경 한 사람만 당한 것이 아니라 여러 정승들이 함께 당한 것이다. 대체로 지금 대신의 반열에 있는 사람은 우의정 한 사람 이외에는 모두 60, 70세의 노인이다. 그런데 경이 늙었다고 해서 굳이 물러간다면 경을 대신하여 이 책임을 진 사람이 유독 늙은 것을 핑계하고 사양하지 않겠는가.
대신의 거취는 먼저 자중에 힘써야 한다. 대신이 중시된 뒤에라야 조정이 중시된다. 경이 만일 이런 뜻을 헤아려 이해한다면 애써 권고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뜻을 바꾸어 일어날 것이다. 경은 생각해보라. 나머지 문제는 경연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직접 대면하여 말하겠다. 바라건대 속히 전날의 고집을 돌리고 나와 일을 보도록 하라."
하였다.


 

 

 

대사간 임제원이 상소하기를,
"이석하의 상소에서는 신의 상소 끝부분에 있는 ‘의리를 지키는 데 사리에 맞지 않는다. [處義郞當]’는 데 글자를 가지고 거론하였습니다. 아, 직책이 시행되지 않으면 몸소 그 자리에 나가지 않는 것이 옛날의 의리입니다. 신은 지금 이런 뜻으로 자청한 것이고 근일에 대간들이 때로는 형편을 엿보면서 잠깐 나갔다가 곧 들어오는 데 대하여 일찍부터 개탄하여 ‘낭당(郞當)’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이미 낭당하다고 남을 논핵하였으니 낭당한 사람과 함께 빠져들어가고자 하지 않는 뜻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지금 앞뒤를 지우고 마음대로 글귀를 따서 멋대로 헐뜯으니 어찌 그렇게 말을 쉽게 한다는 말입니까. 생각건대 대간의 직책은 염치와 의리가 중한 만큼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으니 그대로 명에 응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속히 삭탈하는 명을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강제로 핍박할 수 없으니 본직은 체직을 윤허한다."
하였다.
7월 27일 임자

비가 내렸다.


 

 

 

내의원에서 진찰을 청하니, 하교하기를,
"밤이 서늘해진 뒤로 열이 나는 통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탕제는 쓰기만 하고 효과가 없으니 정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하교하기를,
"밤에 특별히 유시하는 글을 내려 몸을 닦고 반성하는 작은 생각이나마 나타내보이려고 하였는데 아침부터 단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저녁에는 큰 비가 되었다. 목이 마르도록 바라던 나머지 하늘과 땅도 기뻐하면서 사방에 구름이 함께 낮아지니 멀고 가까운 곳이 골고루 흡족한 듯하다. 비가 내린 상황을 보고하는 것은 어찌 이 하교를 기다릴까마는 애타던 나머지에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니 비가 온 뒤 농사의 형편까지도 뒤에 기록하여 여러 고을에서는 보고하도록 하라."
하였다.


 

 

 

수라의 반찬 수를 정상대로 회복하고 정상적인 음악도 종전처럼 연주하게 하였다. 이어서 사직단의 보사제(報謝祭)072)  는 시향(時享)과 함께 지낼 것을 명하였다. 하교하기를,
"오늘 내린 비는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모두 하늘에서 가만히 도와준 것이다. 예조에서 보답으로 사례하는 제사를 감히 늦추어 시행할 수 있겠는가. 하루만 지나면 8월인데 오늘 내린 비 말고도 밤이 되자 많은 비가 내리니 기우제는 정지하도록 하라. 사직단의 보사제는 특별히 길일을 가려야 할 것이나 시향이 가까이 있으니 별도로 지내면 더럽히는 것이 된다. 겸하여 행할 것으로 마련하고 희생과 폐백은 친행하는 예에 따르고 축문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하는 뜻으로 하되 대제학을 불러 지어 올리도록 하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축문에 첨가해 넣도록 하라."
하였다.
정언 신귀조가 상소하기를,
"절의를 표창하고 장려하며 억울한 것을 풀어주는 일은 사실상 재변을 막는 하나의 큰 정사입니다. 전번에 옥사를 삼가 처리하라는 전교는 신명을 감동시킬 만한데 강극성(姜克成) 한 사람만이 아직 귀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극성이 당일에 한 행동은 자기의 삶을 급한 지경에서 잊었고 위급할 때에 피를 뿌렸던만큼 비록 광망스러운 듯하지만 사실은 충분(忠憤)에서 나온 것이니 장려할 만한 것이지 죄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저 사람은 늙은 어머니가 있어서 정상이 가엾으니 용서하여 귀양살이에서 돌아오게 하여 전하의 덕을 빛나게 하소서.
부수찬 이석하의 상소는 실제로 말이 경박하고 해괴하며 망령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심환지와 김이성의 일로 말하면 조건이 각각 다른 단락이 현격하게 다른 데 일망 타진하려는 데 급급해서 억지로 한 곳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심지어 과거 시험장의 한 가지 일로 말하면 1백 사람이 말한다 할지라도 그가 어떻게 입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연전에 호남에서 시험을 관리할 때에 응시한 유생과 부정을 단속하는 군교(軍校) 수십 명을 동일에 짓밟아 가시울타리 밖으로 내쫓았으니 독살스럽고 잔인함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그가 무슨 낯으로 과거 시험장의 일을 가지고 입을 놀린다는 말입니까. 총융청의 공사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어찌 이같이 각박합니까. 산허리를 범했느니 대궐을 나란히 바라본다느니 하는 등의 말은 도리어 ‘왕덕용(王德用)의 집은 건강(乾崗)에 인접해 있다.’는 참소073)  보다 심합니다.
전 대사간의 상소문 중에 ‘거취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去就郞當]’라는 네 글자에 이르러서는 실질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삼사 관리들의 진퇴는 다 함께 어려운 일인데 그로 하여금 그런 입장에 당하게 한다면 어찌 사리에 맞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올리고 싶은 말이 막혀졌던 나머지 사실에 의하여 우러러 하소연한 것이 어찌 일찍이 털끝만큼이라도 시험해보고 부정을 비호할 뜻이 있겠습니까.
추천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한 가지 일에 대하여 말하면 이조와 병조의 권력은 전적으로 관리의 천거에 있는데, 혹 명분과 의리에 죄를 얻었더라도 나라의 법으로 다스리지 못할 경우에는 벌을 시행하는 방법이 다만 천거를 정지시키는 데 있습니다. 지금 그가 말한 것은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사람의 말 한마디로 폐지한다면 어찌 부정을 막는 엄한 뜻이 되겠습니까.
토지를 호적에 기재하여야 한다는 말에 있어서도 역시 그의 옹색하고 얕은 소견으로 무슨 큰 이해 관계가 있다고 소금이나 철을 전매하는 설까지 전하의 앞에서 진술한단 말입니까. 백성에게 앙화(殃禍)를 가져오고 나라를 병들게 할 사람은 반드시 이 사람일 것입니다.
더구나 경저리(京邸吏)의 공물(貢物)이나 서울 점포의 매상고에 대한 말은 말이 추잡합니다. 그는 재상이 반이나 참여하였다느니 사대부가 많다고 말하였는데 어떤 누추한 사나이가 이런 더러운 짓을 하는지 지적하지 않고 얼버무려 말을 해서 온 조정의 관료들로 하여금 모두 씻기 어려운 욕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경박하고 사나운 사람이 이간질을 일삼으면서 전교에 응하는 것을 구실 삼아 감히 독한 수단을 쓰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람은 경연의 대열에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속히 벼슬을 삭탈하는 법을 적용하기를 그만둘 수 없는 일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번의 전교에 응한 글에는 대관부터 논열하였는데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특히 바른 말을 요구한 때이므로 옳은 말을 한 사람을 함부로 처리할 수 없어 일례로 내가 수치를 참고 있다. 그러나 그대의 상소문의 내용도 매우 해괴하니 그대로 수치를 참는 것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였다.


 

 

 

함경남도 병마 절도사 이격(李格)이 장계를 올려 말하기를,
"후주(厚州)는 폐지된 땅인데 불법을 무릅쓰고 들어와 사는 백성이 80여 호나 되기 때문에 군관을 파견하여 불법으로 들어와 사는 백성을 쫓아내고 토지의 지형을 그려 오라고 하였습니다. 조사한 군관의 보고서 내에 이르기를 ‘후주의 연지평(蓮地坪)·상패평(祥霸坪)·도야평(都野坪) 등의 지역에 떠돌다 와서 사는 민호가 88호가 되고 인구는 1백 90명이나 됩니다. 회령·무산·길주·명천·삼수·갑산·북청 등의 읍민들이 작년 가을부터 차차 흘러 들어와서 땅을 파고 움막을 지으며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며 언덕과 들을 개간하였습니다. 그들을 한결같이 몰아냈더니 수백 명의 개가죽옷과 노끈으로 만든 갓을 쓴 사람들이 길을 막으면서 울며 호소하기를 「저희들은 모두 토지와 집이 없어 떠돌아다니다가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만일 여기를 버리고 흩어지면 어디에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질 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이 삼가 그 형편을 생각해보니 꼭 그들의 호소한 말과 같을 것입니다. 변방의 문제는 매우 엄중한 일이지만 수백 명의 백성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묘당에 보고한 뒤에 가을의 수확을 기다려 쫓아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우선 보고문을 써 보냅니다.
지금 그 고을과 진(鎭)에서 보고한 내용 중에 송전(松田)과 마전(麻田)에 사람들이 들어가 산 뒤로는 저 야인들의 전날 버릇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미 징험이 있습니다. 만일 연지평 등지에도 점차로 송전과 마전처럼 백성들을 채워 살게 한다면 저 야인들의 침입은 저절로 금지될 것이라고 합니다. 조사한 군관의 말과 도형(圖形)으로 보면 후주(厚州)의 넓이는 뻗쳐있는 둘레가 3백여 리나 되는데 토지가 기름지고 산봉우리가 겹겹이 쌓여 본래 곡식과 인삼의 산지라고 일컬어졌습니다. 그런데 넒은 지역이 황폐되어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저 야인들이 몰래 건너와 삼을 캐고 짐승을 기르기도 하였으나 엉성한 수자리 군사로는 금지시키지 못하였으니, 변방의 정사는 이미 허술해졌습니다.
본영에 있는 등록(謄錄)을 취하여 상고해 보았더니 후주에 처음 첨사를 둔 것은 강희(康熙)갑인년074)  이었고 고 상신 남구만(南九萬)이 건의한 것입니다. 그 뒤 병인년에 우리 나라 사람이 국경을 넘어간 사건이 마침 후주에서 생겼는데, 그때 묘당에서 의논하기를 ‘후주는 토지가 기름지고 곡식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곳의 사람들이 모두 후주에서 식량을 얻어 국경을 넘어서 삼을 캐는 밑천으로 삼는다.’고 하여 후주의 진을 혁파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간사한 백성의 무리들이 국경을 넘어 삼을 캐는 식량은 어느 곳에서는 얻지 못하여 꼭 후주의 곳식으로 싸가지고 가며 국경을 넘는 사고는 어느 곳인들 그러하지 않기에 홀로 후주의 지역만이 편벽되게 책임을 져야 합니까. 도대체 사리가 꼭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체로 변방에 백성들이 번성하고 곡식이 많아지는 것은 국가의 좋은 계책이며 옛사람들이 진을 설치한 것도 의도가 있는만큼 후주의 진을 부설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변방의 정사에 관한 일이어서 신이 망령스럽게 의논할 수 없습니다. 불법으로 들어온 백성들을 들어올 때에 쫓아내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이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과실이므로 황공하게 죄를 기다립니다. 후주 지형도를 비변사에 올려 보내니 묘당으로 하여금 알리도록 분부하소서."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회답하여 유시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함경남도 병사 이격의 장계 중에 후주의 형편에 대해서는 고 상신 남구만의 상소에 자세히 진술하였는데 그 가운데에 이해 관계가 분명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삼수·갑산의 형세는 극히 고립되어 있으므로 혹 급한 일이 생길 경우에는 서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후주의 땅은 들이 넓고 토지가 비옥하며 지형이 얕고 풍세도 평온하며 서리도 늦게 내려 오곡이 잘 익으니 여기에 고을을 설치하면 삼수·갑산과 서로 돕고 의탁할 만한 곳이 됩니다.
둘째로는 만일 저 야인들이 본래 자기들의 소유라고 하여 다시 버린 땅을 거점으로 하여 일단 조만령(鳥蔓嶺)을 넘어 곧바로 별해(別害)로 들어오면 묘파(廟坡) 이북의 여러 보(堡)와 삼수·갑산은 모두 적의 뒤에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별해로부터 함흥에 이르기까지는 3백여 리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는 사는 백성들이 적어서 무인지경에 들어오는 것과 같으니 이 곳에 고을을 설치하면 함흥의 굳은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는 후주를 부설한 뒤에 어면강(魚面江)의 하구를 만들면 신방(神方)과 묘파 등의 여러 진은 모두 내지(內地)가 됨에 진을 혁파하여 진민(鎭民)들의 괴로움을 덜 수 있습니다.
이 몇 가지의 조항은 모두 많이 헤아리고 따져본 데서 나온 것이요 잠깐 사이에 빈말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 하나의 진을 이미 시험한 곳에 설치하여 변방을 충실히 하고 굳게 다지는 방법으로 삼는 것도 잘못된 계책은 아닌 듯한데, 여러 재상들의 의논이 일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들어와 사는 백성들을 쫓아내지 말고 그들로 하여금 편히 농사를 짓게 하고 점차 앞으로의 형편을 볼 것입니다. 이런 뜻으로 관찰사에게 명하여 진을 설치하는 것이 어떤가를 묻고 조사하여 사리를 따져 보고한 뒤에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백성들이 사는 일이나 변방을 방위하는 데 모두 유익하고 샘물이 좋고 토지가 비옥하여 부설한 무산(茂山)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니, 하나는 그대로 두고 하나는 혁파한 것은 우연한 데서 나온 것이다. 더구나 지난 갑인년의 1백 20년 뒤에 또 이런 논의가 있으니 기다렸던 일인 듯하다.
지세가 남쪽을 향하고 있어 오곡이 잘 되므로 자발적으로 찾아온 백성들을 내쫓는 한 문제는 논할 것이 없다. 장진(長津)은 곡식도 안되고 사람도 살지 않는 곳인데 변방을 막는 요새라 하여 고을을 설치하였다. 더구나 이 땅은 일찍이 읍으로 만들어 즐겨 살면서 잘 있던 곳인데 말할 것이 있겠는가.
국경을 넘어가는 염려에 대해서는 강변 일대가 10배나 심한데 이것을 가지고 말을 하니 과연 그러한 지 모르겠다. 그러나 첨사를 먼저 옮겨 두는 일과 읍치를 부설하는 것이 어떠한가는 관찰사에게 분부하여 자세히 따지고 헤아려 형편을 진술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7월 28일 계축

비가 내렸다.


 

 

 

내의원에서 진찰을 청하니, 하교하기를,
"단비가 밤새도록 내렸으니 백성들의 일이 천만 다행이다. 입시할 때에 약을 의논하라."
하였다.
내의원 제조 서유방(徐有防)과 부제조 정대용(鄭大容)을 접견하였다.


 

 

 

가미한 소요산(逍遙散)을 올렸다.

 

사직단 기우제의 헌관 이하 여러 사람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주도록 명하였다.

 

영의정 홍낙성과 좌의정 김이소가 긴 사임 단자를 올렸는데 다시 봉하여 돌려 보냈다.

 

7월 29일 갑인

내의원의 여러 신하를 접견하였다.,
박기정(朴基正)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부수찬 이석하가 상소하기를,
"정언 신귀조의 상소문은 종이에 가득 늘어놓은 것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유리한 입장만을 택하되 원망을 품고 근본을 배반하는 유에서 발로된 것으로 어찌 떠들썩하게 따질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그 논의한 말이 윤리에 어그러지고 태도가 당파를 비호하는 데 급급한 것에 대하여는 폭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저 김종수는 그가 범한 죄과를 논한다면 관계되는 것이 어떠합니까. 음흉하고 못된 속마음은 점점 커왔고 끼친 독기는 참혹합니다. 진실로 패거리를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단호히 처결한다면 열거하여 논할 바가 어찌 심환지와 김이성의 두 사람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특히 진흙 속의 짐승처럼 자취가 드러나고 얽힌 뱀처럼 친근한 사람부터 대략 말한 것이니 일망 타진한다는 명목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단락이 다르다는 말은 한 번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올빼미가 날개로 치고 부리로 쫓는 것과 경(獍)이란 짐승이 발톱으로 움켜쥐고 어금니로 물어뜯는 것은 방법은 틀리지만 흉한 짓은 마찬가지이니 현격하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총융청의 공사는 일에 대하여 논의한데 불과하고 대사간의 상소에 대한 말은 관리들을 서로 바로잡는 데 불과하며 천거를 정지시킨다는 일은 공론을 따르지 않음을 안타까워한 데 불과합니다. 또 호적에 토지를 기재하여야 한다는 논의와 각항의 모리에 대한 말은 오활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열거하여 의논한 것이니 잘못이 있으면 고칠 줄을 알아야 하고 없으면 태연할 것이지 어찌 지명을 하면서 말을 하여야 합니까. 과장에 대한 일은 갑자기 근거 없는 말을 만들어 죄를 성토하는 단서로 삼은 것이니 날조한 말입니다. 어찌 변명할 것이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신의 현직을 삭탈하여 사사로운 본분에 맞게 지내도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어제는 바른 말을 요구하고 오늘은 말을 한 사람에게 죄를 주는 것은 으쓱거리며 말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이우제와 신귀조에게는 부득불 수치를 참았으나 끝내 한 마디의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면 누가 즐겨 이때의 대관이 되려하겠는가. 우제의 상소문은 정승이 인피하기를 기다려도 인피하지 않는다는 말이니 그대로 두겠거니와 그대의 전날 상소문 중에 말한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 상소문은 이우제가 지적한 네 가지보다 더 지나치니 그대는 어찌 그렇게 흐리멍덩한가. 근래에 풍습이 이와 같은데 규탄을 받은 사람이 어찌 일찍이 부끄러워하며 자복하겠는가. 그리고 보는 사람들은 마치 희극을 보는 것과 같이 하니 그대는 말을 하는 입장에서 살피지 않은 잘못을 면하기 어렵다.
우스운 저 신귀조는 갑자기 그대의 상소문을 규탄하면서 조항마다 따라가며 있는 힘을 다하는데 다만 위의 한 조항에서는 뜻을 누그려뜨리니 그대의 뜻과 서로 맞아 그런 것이다. 출근할 때에 대간에게 나아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조치가 있어야 하겠는데, 그대의 말이 어긋나고 과격하여 길을 막고 한결같이 사임하니 마음은 그러한데 입은 그렇지 않은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패초(牌招)로 부름을 어겨서 답(踏)의 인장을 찍어 내리니 은미한 뜻이 있다. 지금의 상소에서는 간곡히 청하더라도 예대로 비답을 주기는 어렵다. 사직하는 일은 뜻대로 받아들여 한편으로는 구호하는 사람을 편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죄를 알게 하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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