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신묘
태백성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7월 8일 정유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어지고 가옥(家屋)이 뽑혔다.
7월 12일 신축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의현(李宜顯)이 면직되고 최석항(崔錫恒)이 대신하였다.
7월 15일 갑진
태백성(太白星)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7월 24일 계축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김주신(金柱臣)이 졸(卒)하였다. 김주신의 자(字)는 하경(廈卿)으로, 인원 왕비(仁元王妃)의 아버지이다. 숙종 22년(1696)에 생원(生員)에 합격되어 순안 현령(順安縣令)이 되었다가 인원 왕비가 중궁(中宮)에 정위(正位)되자 김주신이 영돈녕부사로 승진되고 경은 부원군(慶恩府院君)에 봉해졌다. 몸가짐이 근밀(謹密)하였고, 지성으로 나라를 위하였다. 성상이 즉위하여 환관(宦官)이 용사(用事)하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 일찍이 김주신과 더불어 말하기를,
"왕실(王室)이 조석(朝夕)에 장차 망할 것입니다."
하고, 인하여 눈물을 흘리니, 김주신도 울었다. 김창집이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개자(介子)087) 인 연잉군(延礽君)이 어질고 효성스러워 덕행이 있으니, 공(公)이 만약 왕대비(王大妃)께 아뢰어 저사(儲嗣)로 삼는다면 환관을 베어 죽일 수 있고, 종국(宗國)도 또한 편안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김주신이 말하기를,
"감히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조금 후에 김주신이 졸(卒)하니, 나이 61세였다. 임금이 발애(發哀)하고, 소선(素膳)을 들었으며, 시호(諡號)를 ‘효간(孝簡)’이라 하였다. 김주신이 이미 졸(卒)한 지 26일 만에 왕대비가 연잉군을 세워 세제(世弟)로 삼았다. 아! 종사(宗社)가 오늘날에 이르러 억만년(億萬年) 왕업의 기초(基礎)를 세우게 된 것은 모두 김주신의 힘이다.
7월 29일 무오
판부사(判府事) 이유(李濡)가 졸(卒)하였다. 이유의 자(字)는 자우(子雨)이니, 장헌왕(莊憲王)088) 의 후손(後孫)이다. 젊어서 과거에 합격하였는데, 강개(慷慨)하여 시무(時務)를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이조 좌랑(吏曹佐郞)으로 있으면서 연도(燕都)에 사신으로 나갔는데, 이때에 왜노(倭奴)가 트집잡아 일을 꾸미려하므로 숙종이 성(城)을 수축하여 왜구를 대비하였다. 청나라 군주[淸主]가 과연 성을 수축한 일을 묻자 이유가 상세히 사실대로 대답하니, 연중(燕中)의 사람들이 그의 잘 대답한 것을 치하하였다. 영의정 이단하(李端夏)가 천거하여 비변사 부제조(備邊司副提調)로 삼았고,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발탁되었으며, 내직(內職)으로 들어와 호조 판서가 되었다가 이조(吏曹)로 옮긴 뒤 북한산성(北漢山城)을 경리(經理)하여 우의정에 발탁되었으며, 영의정에 이르러 기사(耆社)089) 에 들어갔다. 병(病)으로 졸(卒)하니, 나이가 77세였다. 시호를 혜정(惠定)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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