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임진
동강(東江) 둑도(纛島)의 촌려(村閭)에 화재(火災)가 일어나 30여 호(戶)가 연이어 불타고 죽은 백성이 세 사람이었는데, 휼전(恤典)을 거행하도록 명하였다.
11월 12일 기해
달이 필성(畢星)으로 들어갔다,
11월 15일 임인
충청도(忠淸道)의 연산(連山)·은진(恩津)·부여(扶餘) 등의 고을에 지진(地震)이 나서 소리가 천둥과 같았고, 옥우(屋宇)를 뒤흔들었으며, 전라도(全羅道)의 진산(珍山) 등의 지역에는 하루에 지진이 두 차례나 일어났다.
11월 19일 병오
사형수를 진수당(進修堂)에서 초복(初覆)하였다.
11월 20일 정미
임금이 다시 진수당에 나아가 사형수를 재복(再覆)하였다.
11월 22일 기유
달이 태미 서원(西垣)으로 들어가고, 목성(木星)이 방성(房星)을 범하였다.
11월 26일 계축
하교하기를,
"내가 불초(不肖)한 몸으로 간대(艱大)한 왕업(王業)을 계승한 지 이제 2주년이 되었는데,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매월 연달아 발생하고 해마다 황무(荒蕪)하여 곡식이 여물지 않았다. 가난한 오두막집 아래에서는 시름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집이 열 채 가량 되는 작은 동네 안에도 원망하는 소리가 오히려 있다. 이것은 진실로 나의 부족한 덕에 연유한 것이나, 또한 조정에 있어서도 인협(寅協)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양월(陽月)172) 이 이미 다 지나갔는데도 납월(臘月) 이전의 세 차례에 걸쳐 내리는 눈을 반드시 기약할 수가 없다. 나는 우황(憂遑)이 더욱 간절하여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겠으니, 팔도(八道)의 방백(方伯)과 양도(兩都)의 유수(留守)는 구제(救濟)의 계책을 세밀히 다하여서 소자(小子)의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우구(憂懼)하는 뜻에 부응하도록 하고, 승지는 대초(代草)하여 널리 직언(直言)을 구하도록 하라."
하였다.
임금이 경외(京外)의 사형수들을 시민당(時敏堂)에서 삼복(三覆)하여 열 사람은 사형시키도록 하고 두 사람은 살려주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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