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병자
장령(掌令) 윤반(尹攀)과 지평(持平) 이선보(李善溥) 등이 좌윤(左尹) 김익훈(金益勳)의 직임(職任)을 파면하도록 계청(啓請)하였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김익훈이 역적(逆賊) 허적(許積)의 가사(家舍)를 절수(折受)한 뒤에 그 기와를 도둑맞았는데, 김익훈이 그 동리 안의 사람들에게 거둬들이도록 독촉하여, 동리 사람들이 거둬 모으고 빌리고 하여 모두 다시 덮었습니다. 그런데 잃어 버렸던 것에 비교해 그 숫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동리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가면서 지키고 간수(看守)하도록 하여 사람들의 말이 자자(藉藉)하고, 놀랍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의 민간(民間)에 폐단을 끼치는 풍습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훈신(勳臣)은 일의 체모가 특별하니 빨리 정지시키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것으로 답(答)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익훈(金益勳)이 비록 법가(法家)의 후손으로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사람됨이 비루하고 사리에 어긋나 한 가지의 행실이나 능력도 없어 세상에서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한갓 조상의 공덕(功德)을 의뢰하여 그것을 인연하여 진출하는 매개로 삼아 곤수(閫帥)033) 에 임명되기에 이르렀으며, 여러번 군사를 거느리는 직임에 의망(擬望)되었고, 늦게는 또 훈봉(勳封)에 참여하도록 도모하여 교만 방자함이 날로 심하였으므로, 당시의 의논이 그것을 분(憤)하게 여겼다. 대신(臺臣)이 논한 것은 특별히 그의 미미한 죄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1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75면
【분류】역사-편사(編史)
[註 033] 곤수(閫帥) : 병사(兵使)와 수사(水使)의 이칭.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익훈(金益勳)이 비록 법가(法家)의 후손으로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사람됨이 비루하고 사리에 어긋나 한 가지의 행실이나 능력도 없어 세상에서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한갓 조상의 공덕(功德)을 의뢰하여 그것을 인연하여 진출하는 매개로 삼아 곤수(閫帥)033) 에 임명되기에 이르렀으며, 여러번 군사를 거느리는 직임에 의망(擬望)되었고, 늦게는 또 훈봉(勳封)에 참여하도록 도모하여 교만 방자함이 날로 심하였으므로, 당시의 의논이 그것을 분(憤)하게 여겼다. 대신(臺臣)이 논한 것은 특별히 그의 미미한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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