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55권, 숙종 40년 1714년 4월

싸라리리 2025. 11. 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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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계유

이때 오래 가물어 파종(播種)할 시기가 늦어지니, 임금이 정섭(靜攝)하는 가운데 깊이 근심하여 하늘의 기상(氣象)을 자주 바라보며 말하기를,
"하늘이 만약 비를 내린다면 내 질병이 나으리라."
하니, 이날 마침 비가 내렸다. 임금이 매우 기뻐하여 약방의 문안에 답하기를,
"운예(雲霓)026)  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갑자기 단비가 내리니, 백성의 일을 생각건대 병이 몸에서 떠나는 듯하다."
하였다.

 

충청도 각 고을이 크게 가물어 시냇물이 모두 말랐다. 전라도 구례현(求禮縣)에서는 먹구름이 마산면(馬山面) 위의 산기슭을 덮더니 천둥이 치고 싸라기눈이 함께 내렸으며, 흰 구름 한줄기가 하늘로부터 장고산(長鼓山)에 뻗치어 혹은 무지개와 같고 혹은 용(龍)의 꼬리와 같았는데, 갑자기 일어나 휘돌아 칠 즈음에 거센 바람이 일어 나무가 뽑히고 지붕이 들썩이더니 조금 있다가 바람이 닿는 곳이면 중천(中天)으로 날아 올라갔다. 이어 우박이 마구 쏟아졌는데, 모양은 중령(中鈴)027)  과 같았다. 3, 4촌이 쌓였는데, 다만 4, 5리(里) 안에만 내렸다.

 

4월 4일 을해

이관명(李觀命)을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남취명(南就明)·윤헌주(尹憲柱)를 승지(承旨)로, 정호(鄭澔)를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홍우녕(洪禹寧)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삼았다.

 

4월 8일 기묘

박사익(朴師益)을 설서(說書)로 삼았다.

 

4월 9일 경진

약방에서 입진하였다. 도제조(都提調) 이이명(李頤命)이 작은 종이에다 식치(食治)028)  에 꺼리는 찬품(饌品)을 써 두었다가 쓴 것을 소매 속에서 꺼내 올리며 말하기를,
"성상께서 기거(起居)와 음식에 있어 비록 첫 새벽과 늦은 밤을 무릅쓰고 구기(拘忌)를 범하신다 하더라도 신 등이 오랜 시간 입시하지 못하니,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왕세자(王世子)와 두 왕자 또한 감히 청하지 못할 것인데, 이제부터는 그 진달하고자 하는 바를 다하게 하시고, 궁인(宮人)과 환시(宦侍)에 이르러서도 또한 숨김이 없게 한다면, 비단 조섭(調攝)하는 도리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가까운 말을 살피는 도량(度量)을 기르는 데 어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옛날 임금에게 설어(暬御)029)  의 경계와 공사(工史)030)  의 기도(祈禱)가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니, 임금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4월 12일 계미

임금의 환후에 포만증(飽滿症)이 있고 부기(浮氣)와 창증(脹症)이 더하였다. 약방에서 어제 입진하였을 때 사옹원(司饔院)으로 옮겨 직숙(直宿)할 것을 청하자, 임금이 우선 밤 사이의 동정(動靜)을 보아 하라고 분부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또 옮겨 직숙할 것을 청하니, 윤허하였다.

 

평안도 암행 어사 여필희(呂必禧)가 들어와 개천 군수(价川郡守) 이언형(李彦馨) 등을 척출(斥黜)하였다.

 

4월 19일 경인

경기 각 고을과 개성·강화 양부(兩府)에 홍수가 나서 각종 곡식이 손상을 입었다.

 

4월 21일 임진

전교(傳敎)하기를,
"오늘 제주의 공인(貢人)을 다시 차비문(差備門)으로 불러들여 본주(本州)의 진정(賑政)과 모맥(牟麥)의 형편과 여역(癘疫)의 지식(止息) 여부를 물었더니, 이른바 여역은 염병도 아닌데 너댓새 누워 앓다가 1개월안에 4백여 명이나 죽었다 한다. 지극히 놀라우며 참혹하다. 의사(醫司)로 하여금 이에 상당한 약품을 시급히 넉넉하게 보내어 각별히 구료(救療)하도록 하라."
하였다.

 

4월 27일 무술

임금의 환후가 7개월 동안 침엄(沈淹)하고 증세가 백 가지로 변하여 활제(滑劑)를 쓰면 신기(神氣)가 허약해지고, 또 완제(緩劑)를 써서 보(補)하면 부기(浮氣)가 날로 더해지므로, 여러 어의(御醫)들은 능력이 바닥나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유천군(儒川君) 이정(李濎)은 처음부터 ‘의당 부기를 시급히 다스려야 하니 이제는 소도(疏導)031)  하는 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며 자기 의견을 극력 주장하였는데, 인하여 약방에서 입진하여 죽절초(竹節草)를 복용(服用)하여 소리(疏利)032)  하도록 하기를 청하자, 여러 어의(御醫)들이 모두 말하기를,
"죽절초는 옛 처방(處方)에 실려 있지 않고 성미(性味)가 심히 준급(峻急)한데, 어떻게 군부(君父)의 병환에 함부로 쓸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정(濎)이 힘써 다투었으나, 채납(採納)되지 않았다.

 

4월 29일 경자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가 임금의 환후가 침중하다 하여 8도(八道)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명의(名義)와 기이(奇異)한 처방을 널리 구하여 말을 주어 올려 보내도록 하였다. 혹은 방약(方藥)으로 신효(神効)를 본 자도 또한 그 증세와 처방을 상세히 기록하여 수합(收合)해 올려 보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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