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56권, 숙종 41년 1715년 2월

싸라리리 2025. 11. 2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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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무진

정언(正言) 조상건(趙尙健)이 논하기를,
"성천 부사(成川府使) 한영휘(韓永徽)는 비록 차마 먼 곳으로 나아가지 못할 정세(情勢)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르는 곳마다 사람이 많이 앉아 있는 가운데에서 전관(銓官)을 능멸하고 꾸짖기에 이르렀으니, 사부(士夫)의 풍습(風習)이 어찌 이와 같은 일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파직(罷職)시키소서. 이시형(李蓍亨)·이양수(李養粹)가 격고(擊鼓)한 것은 모두 어버이를 위한 일에 관계되는데, 전후의 형관(刑官)들이 너무 지나치게 인피(引避)하여 두 해를 끌어오면서 아직도 거행하지 않고 있으니, 청컨대 아울러 추고(推考)하고, 인하여 속히 핵실(覈實)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끝에 말한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2월 8일 을해

송진명(宋眞明)을 검열(檢閱)로 삼았다.

 

2월 11일 무인

민진후(閔鎭厚)를 형조 판서(刑曹判書)로, 송징은(宋徵殷)을 대사성(大司成)으로, 윤양래(尹陽來)를 장령(掌令)으로 삼았다.

 

2월 18일 을유

김흥경(金興慶)을 대사간(大司諫)으로, 김상윤(金相尹)을 정언(正言)으로 삼고, 권상유(權尙游)를 특별히 승진(陞進)시켜 형조 판서(刑曹判書)로 삼았다.

 

2월 19일 병술

신사철(申思喆)을 헌납(獻納)으로, 최석항(崔錫恒)을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이중협(李重協)을 사서(司書)로, 신정하(申靖夏)를 부수찬(副修撰)으로, 최경식(崔慶湜)을 장령(掌令)으로 삼았다.

 

2월 24일 신묘

밤에 유성(流星)이 태미원(太微垣) 위에서 나와 곤방(坤方)003)  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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