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정묘
시약청(侍藥廳)에서 입진(入診)하였다.
5월 3일 기사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5월 5일 신미
평안도(平安道)의 박천(博川)·태천(泰川)·귀성(龜城)·운산(雲山) 등의 고을에 우박이 내렸다.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5월 6일 임신
황귀하(黃龜河)를 대사성(大司成)으로 삼았다.
5월 7일 계유
달무리가 져서 목성(木星)을 빙 둘렀다.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이때 성상의 환후는 복부가 날이 갈수록 더욱 팽창하여 배꼽이 불룩하게 튀어 나오고, 하루에 드는 미음이나 죽의 등속이 몇 흡도 안되었으며, 호흡이 고르지 못하고 정신이 때때로 혼수 상태에 빠지니, 중외(中外)에서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5월 9일 을해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5월 11일 정축
유성(流星)이 대각성(大角星) 밑에서 나와 간방(艮方)으로 들어갔다.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일본(日本)의 관백(關白)이 송골매를 구하니,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아뢰었다. 비국(備局)에서 복주(覆奏)하니, 허락하였다.
5월 12일 무인
달이 저성(氐星)으로 들어갔다.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5월 13일 기묘
평안도(平安道) 은산(殷山)에 우박이 내려 며칠이 지나도 녹지 않았다.
개성 유수(開城留守) 민진후(閔鎭厚)가 졸(卒)하였다. 민진후는 집안에 있을 때는 몸가짐을 단속하였고, 조정에 나와서는 사무(事務)에 숙달하여 부지런히 노력하며 게을리하지 않았다. 안팎으로 유자(儒子)의 업(業)을 이어서 다만 사기(士氣)를 부지하고 사문(斯文)을 보위하는 것을 주무(主務)로 삼고, 척완(戚畹)086) 이나 호귀(豪貴)의 버릇은 전혀 없었으니, 선류(善類)들이 자못 의중(倚重)하였다. 비록 그와 뜻을 달리하는 자일지라도 또한 그가 성심(誠心)으로 나라를 위함을 칭찬하여, ‘옛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였다. 지난해에 대신(大臣)이 ‘그가 몸이 고달파서 병이 났다.’고 임금에게 아뢰어 중요한 임무에서 풀려났고 이어서 개성 유수로 부임하였다가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는 62세였다. 뒤에 충문(忠文)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며, 경종(景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 민진원(閔鎭遠)이 그 형 민진후(閔鎭厚)의 상(喪)을 당하여 경출(徑出)087) 하니, 조태구(趙泰耉)로 대신하였다.
시약청(侍藥廳)에서 입진(入診)하였다. 임금이 중완혈(中脘穴)에 뜸 열네 방을 떴는데, 원기(元氣)가 허약하고 지쳐서 쑥을 다 사르지 않고 단지 쑥기운만 들여보냈다.
5월 15일 신사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이건명(李健命)이 같이 들어가, ‘전라(全羅)·경상(慶尙) 양도(兩道)의 수사(水使)를 모두 구전(口傳)으로 차출(差出)하도록 할 것’과, ‘이 뒤에는 병조(兵曹)의 긴요한 자리도 이비(吏批)088) 와 함께 똑같이 구전으로 의입(擬入)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5월 17일 계미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임금이 좌우(左右) 삼리혈(三里穴)에 뜸을 떴다.
5월 18일 갑신
시약청에서 진찰하러 들어가니,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이 같이 들어갔다. 임금이 좌우의 삼리혈에 뜸뜨기를 끝마치고 나니, 김창집이 말하기를,
"시약청을 설치한 뒤로 각사(各司)에서 집무를 정지하였는데, 형옥(刑獄)이 많이 지체되어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무진년089) 에 장렬 왕후(莊烈王后)가 편찮으실 때도 시약청을 설치한 것이 또한 여러 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시급한 공사(公事)는 집무를 보아 거행하도록 허락할 것을 품의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전례에 의거하여 형(刑)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무를 보도록 허락하신다면, 옥사(獄事)를 지체시키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하자, 임금이 허락하였다. 도제조(都提調) 이이명(李頤命)이 말하기를,
"여러 각사(各司)도 똑같이 집무를 보도록 할 것입니까?"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5월 20일 병술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임금이 좌우의 삼리혈에 뜸을 떴다.
5월 22일 무자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임금이 말소리가 빨라서 음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여러 신하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환시(宦侍)가 베갯가에 엎드려 대신 전달하였으나, 역시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5월 24일 경인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임금이 정신이 혼미하고 복부(腹部)가 가득 부풀어 오르며 혀가 마르고 말을 더듬거리는 등의 증상이 더욱 심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병의 증세를 물으니, 혹은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가느다란 소리로 답하기도 하였는데, 태반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5월 26일 임진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5월 28일 갑오
시약청에서 입진하였다.
5월 29일 을미
유성(流星)이 벽성(壁星) 아래서 나와 간방(艮方)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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