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22권, 현종 15년 1674년 8월

싸라리리 2025. 12. 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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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임진


 

 

 

 

 

판윤 김우형이 소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신의 직책이 재신의 반열에 있으므로 빈청의 회의 때 말석에 참여하였습니다만, 이튿날 북교(北郊)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제사를 끝마치고 돌아와 보니 엄한 분부가 이미 내려져 있었습니다. 신은 말하지 아니하였지만 여러 신하와 다름없고 말은 여러 신하가 꺼냈지만 신과 똑같습니다. 신이 어떻게 감히 태연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을 형관에게 회부하여 신의 죄를 다스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이 사람들을 따라 시끄럽게 하니 내 매우 불쾌하다. 다시는 이러한 짓을 하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혀 직무를 살피라."

 

 

 

8월 2일 계사

상이 하교하기를,
"도목 대정을 지금까지 열지 못하여 수령을 먼저 차출하라고 전교한 뒤에도 아직까지도 거행하지 않고 있으니 매우 옳지 않다. 이조 판서 홍처량을 오늘 패초하여 도목정을 열게 하라."
하였다. 홍처량이 빈청의 예 의논에 참여하였다고 하여 성 밖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다가 패초를 받고 대궐에 나와 소를 올리고 명을 받들지 않은 채 도로 물러가자, 하교하였다.

 

 

 

 

 

8월 3일 갑오

상이 정원에 하교하기를,
"비국에서 공무를 보고 있는 당상관을 패초하고 유창도 와서 기다리게 하라."
하였다.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니, 우참찬 권대운, 공조 판서 이정영, 예조 판서 장선징, 지사 유혁연, 우윤 신여철, 우승지 김석주, 부호군 유창, 이조 참의 이단하, 응교 이헌이 입시하였다. 상이 유창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북경에서 돌아왔는데 그곳 사정 중 들어볼 만한 것이 있던가?"
하니, 유창이 대답하기를,
"북경에 유언 비어가 나돌아 우리 나라가 정금(鄭錦)과 합세하여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다는데 신들이 들어간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의심이 풀렸다고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혹은 정경(鄭經)이라고 말하였다는데 무엇 때문인가?"
하니, 유창이 아뢰기를,
"금과 경은 중국 말로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이헌이 아뢰기를,
"요즈음 삼공과 육경의 자리가 모두 비어 있는데 전하께서 빨리 수습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너희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일이 없으면 쉽게 풀릴 것이다."
하자, 이헌이 아뢰기를,
"대신이 어찌 임금을 잊거나 나라를 저버리려는 뜻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자신의 견해만 가지고 대공복으로 결정지으려고 하는게 무슨 마음에서인가?"
하니, 이단하가 아뢰기를,
"빈청이 올린 계사는 예에 대해서만 논한 것뿐이지 대공복으로 결정하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였다. 이헌이 아뢰기를,
"간관이 벌을 받은 것이 어찌 성스러운 세상의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간관은 바른 말을 하는 것이 귀중하다. 그런데 남이성의 상소는 말이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았으나 주된 뜻은 깊었으니 분명히 대공복으로 하는 것을 옳게 여긴 것이다. 그가 어떻게 감히 이처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김석주가 아뢰기를,
"어려움은 날로 심해지고 있는데 신임하는 신하들이 모두 황송하여 벌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국사가 점점 해이해지고 있으니 신은 정말 근심스럽고 딱하게 여깁니다. 전후로 내린 성상의 비답에 임금을 박하게 한다느니 선왕을 잊었다느니 하는 등등의 말씀은 신하로서는 차마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전에도 더러 이러한 분부가 있긴 하였으나 뒤이어 즉시 도로 거두셨습니다. 지금 도로 거두지 않으신다면 여러 신하들이 필시 스스로 처신할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요즈음 여러 신하들이 물러나가 소를 올리고는 반드시 내가 고치기를 기다렸다가 나오려고 하고 있다. 내가 체차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계포(季布)의 일처럼 할 것인가? 김우형이 한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막판에 올린 계사에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소를 올릴 일이 뭐가 있어서 간곡히 청한 다음에 공무를 보려고 한단 말인가. 절개와 염치가 너무나 고상하다."

 

이날 인견할 때에 지사 유혁연이 아뢰기를,
"근년에 흉년으로 인하여 잠시 동안 조련과 순력(巡歷) 등의 일을 중지하고 있으므로 각 고을이 영장을 마치 쓸데없는 관원같이 보아 명령을 이행하려 하지 않고 있으니 자못 본디 설립한 의도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별도로 거듭 주의시켜 그전처럼 하지 말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명령을 따르지 않은 수령에게 벌을 줄 뿐만 아니라,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영장도 죄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8월 4일 을미

해남의 유학 윤이후(尹爾厚)가, 그의 할아버지인 윤선도(尹善道)가 경자년에 올렸다가 정원이 불태워버린 소 및 선도가 지은 예설(禮說) 두 편을 써서 올리니, 상이 하교하였다.

 

우의정 김수항이 또 사직하는 소를 올리니 답하였다.

 

8월 5일 병신

정원이 아뢰기를,
"이전에 도목 대정을 뒤로 물려 거행한 적이 있었으나 8월 안에 하지 않은 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조와 병조의 두 전관(銓官)이 인피하고 들어간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아득히 도목 대정을 열 기한이 없으니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이조와 병조의 판서를 모두 즉시 패초하여 빨리 도목 대정을 열게 하소서."

 

 

 

8월 7일 무술


 

8월 8일 기해


 

 

 

 

 

8월 9일 경자


 

8월 10일 신축

간원이 아뢰기를,
"각영(各營)에 한가로이 노는 장인 무리에 대해서 각도에 공문을 보내 문안을 만들어 올려 보내게 하여 도망갔거나 죽어서 비어 있는 인원을 채우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묘당으로 하여금 지휘하라고 분부하라."

 

8월 13일 갑진

장선징이 아뢰기를,
"수영(水營)에서는 소나무를 해치지 않도록 금지하는 일을 위주로 하고 감목관(監牧官)은 말을 기르는 일을 위주로 하다 보니 매양 서로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에 일찍이 도랑을 파고 돌을 세워서 경계를 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시 태복관을 파견하여 접대에 따르는 폐단을 끼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소나무를 길러야 적합할 것 같으면 목장을 폐지하고 사복 관원을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날 인견할 때 상이 이르기를,
"좌승지 는 승정원에 들어왔는가?"
하니, 김석주가 대답하기를,
"들어왔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좌승지 이합을 불러 입시하게 하라."
하였다. 상이 이합에게 이르기를,
"영의정 허적에게 그대가 가서 ‘상소의 내용은 잘 알았다. 나의 병이 이와 같아 글로 비답하지 못하겠기에 승지를 보낸다. 지금 내국의 임무야말로 매우 긴요하고 중대한데 경은 어찌 일신만 돌아본 채 굳이 사양하고 나서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번에 내려간 승지와 꼭 같이 올라와야 할 것이다.’고 전유하라."
하니, 이합이 분부를 듣고 물러갔다. 여러 신하가 나갈 무렵에 상이 이르기를,
"내 뜻을 영상에게 자세히 전하라고 다시 이합에게 말하여야 할 것이다."

 

8월 14일 을사

상의 몸이 더욱 편찮아지자 진시에 들어가 진찰하였다. 창성군 이필이 김석주·정유악과 함께 나아가 진찰한 다음 아뢰었다.

 

 

 

헌부가 아뢰기를,
"고부사 유창과 서장관 권해가 모두 공적인 일로 인해 엉뚱하게 사적인 틈이 생겨 만리길을 동행하는 처지에 둘이 서로 용납하지 못하였으므로 가부 간에 서로 도와 주는 의리가 없었고 듣기에 놀라운 일만 있었습니다. 모두 파직하소서."

 

영접 도감이 아뢰기를,
"칙사가 이미 일곱 군데의 연향을 면제해 주었으니 전례에 따라 별도로 문안하는 승지를 파견하소서."

 

8월 15일 병오


 

이날 저녁에 들어가 진찰할 때 상이 이르기를,
"이합은 언제 돌아올 것인가?"
하니, 김석주가 아뢰기를,
"내일 안으로 돌아올 것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상 허적과 일시에 같이 올라오라고 한 일을 자세히 알고 갔는가?"
하자, 김석주가 아뢰기를,
"잊을까 염려되어 글로 써서 주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말을 지급하라고 할 것을 잊었구나."
하니, 김석주가 아뢰기를,
"일찍이 말을 지급하라는 분부가 계셨으므로 올라오려고 한다면 역마를 타고 오는 것을 혐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8월 16일 정미


 

이날 들어가 진찰할 때 김석주가 아뢰기를,
"신이 오늘 신후재가 충추에서 올라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14일에 이합과 충주 경내에서 만났으므로 그날 영상의 집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연원의 역마가 죄다 병참에 가 있기 때문에 말이 없을 것이니 염려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자, 윤심이 아뢰기를,
"강물이 많으므로 배편으로 오면 빠를 것입니다."
하였다. 김석주가 아뢰기를,
"이합은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안으로 꼭 올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의정이 올라올 때에 배의 곁군을 정해 보낼 일을 경기 감사에게 분부하도록 하라."

 

8월 17일 무신


 

영의정 허적이 충주에서 올라오고, 이합도 돌아왔다.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이 방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직책은 감히 받을 수 없으므로 사은 숙배는 못하고 상의 환후가 이렇게 편찮으시므로 바로 약방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부른다고 즉시 전하라."

 

이날 약방 도제조 허적이 창성군 이필과 같이 들어가 진찰하였다. 상이 의관을 갖추어 입고 앉자 허적이 나아가 아뢰기를,
"성상의 환후가 갑자기 위중하시니 그지없이 염려됩니다. 어제 오늘 사이에 설사의 증세가 조금 줄어들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줄어든 줄 모르겠다."
하자, 허적이 아뢰기를,
"약방이 들어와 진찰할 때에는 관복을 입지 말고 누워서 인접하소서. 신 역시 오늘부터 숙직하겠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좌상이 지금 비변사 근처에 와 있다고 합니다. 혹 사관을 보내 부르신다면 들어올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입시한 승지가 나가서 전유하라."

 

8월 17일 무신

영상 허적, 우상 정지화가 승언색(承言色)으로 하여금 왕세자에게 구두로 전하여, 대신과 중신을 나누어 보내 종묘 사직 및 산천에 두루 기도하게 할 것을 청하니, 왕세자가 답하기를,
"이 말을 듣고 나니 나의 마음이 조금 트인다. 반드시 오늘 안으로 지성껏 기도하면 병환에 효험이 있을 것이다."

 

약방이 아뢰기를,
"상의 병세가 이처럼 심상치 않은데 시약청을 설치하지 않으니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약방을 내반원(內班院)에다 옮겨 설치하는 것은, 시약청과 다름이 없다 하더라도 명칭이 없으니 또한 미안합니다. 오늘부터 시약청을 설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대왕 대비가 언서로 시약청에게 하교하기를,
"상이 거처한 곳에 재변이 있어서 다른 전각으로 거처를 옮기자고 권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약방은 간청하여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할 것이다."
하였다. 시약청이 이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청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잠시 1, 2일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자, 시약청이 간청해 마지 않으니, 답하기를,
"내일 옮기겠다."

 

8월 18일 기유

상의 병이 크게 위중해지더니 이날밤 해시에 창덕궁의 재려(齋廬)에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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