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7권, 효종 2년 1651년 10월

싸라리리 2025. 12. 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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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을사

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書傳)》 열명편(說命篇)을 강하였다. 강을 마치고 제사(諸司)의 윤대관(輪對官)을 불러보았다.

 

10월 2일 병오

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 고종융일편(高宗肜日篇)을 강하였다.

 

10월 3일 정미

김홍욱(金弘郁)을 홍청 감사(洪淸監司)로, 이응시(李應蓍)를 승지로 삼았다.

 

10월 4일 무신

조형(趙珩)을 승지로, 오정일(吳挺一)을 경기 감사로, 좌의정 이시백을 사은사로, 황감(黃㦿)을 부사(副使)로 삼았다.

 

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 서백감려편(西伯戡黎篇)을 강하였다. 상이 강관(講官)에게 일렀다.
"후세에서 악한 임금을 말할 경우에는 반드시 걸(桀) 주(紂)를 언급한다. 그런데 조이(祖伊)는 ‘하늘이 이미 우리 나라의 국명(國命)을 끊었다.’고 하고, 또 ‘왕께서는 음란한 짓을 하여 스스로 천명을 끊었다.’고 하였다. 조이가 이와 같이 꺼려하지 않고 직언하였는데도 능히 받아들였으니, 이로 본다면 주의 악함이 심한 데에는 이르지 않은 것이다."

 

10월 6일 경술

제주 안핵 어사(濟州按覈御史) 이경억(李慶億)이 치계하였는데, 그 대략에,
"전 목사 김수익(金壽翼)이 과연 정의 현감(旌義縣監) 안집(安緝)과 서로 잘 지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익이 폐첩(嬖妾) 및 데리고 간 편비(褊裨)의 말을 듣고서 진주(眞珠)·대모(玳琩)·앵무치(鸚鵡巵)·노실배(蘆實杯) 등의 물품을 백성들에게서 긁어 모으니, 백성들이 논밭을 팔아 그것을 사서 바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안집이 망궐례(望闕禮)를 하는 날 병을 칭탁하고 참가하지 않았는데, 수익이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안집이 다 떨어진 모자에 더러운 옷을 입고 칼을 차고는 곧바로 부(府)로 들어가 뜨락 가운데 서서 수익의 삼가지 않은 죄상을 수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칼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오자 수익이 놀라 피하였습니다. 휘하들이 그 칼을 빼앗자 안집이 이내 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당초 수익의 계문 중에 ‘안집이 정의현의 곡식을 원장부에서 축냈다.’고 한 것은, 날조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하고, 이어 제주의 고질적인 폐해를 조목별로 나열해 아뢰었다. 상이 수익을 가두고 장법(贓法)으로 다스리라고 명하였다. 해를 넘기도록 국문하여 울산(蔚山)에 유배하였다. 안집 역시 옥에 내려 유배하였다.

 

10월 7일 신해

예안 현감(禮安縣監) 홍우원(洪宇遠)이 구언 전지에 응하여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이어받았으나 어려움이 많은 때를 만났습니다. 천지신명에 답하는 정성은 밤낮으로 해이하지 않았고, 백성들을 품어주는 인자함은 잠깐 동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천심(天心)이 편치 못해 홍수와 가뭄을 연이어 내리니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이 장차 끊어지려 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이렇게까지 허물을 인책하고 자신을 반성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이 일찍이 보건대, 장석지(張釋之)가 진(秦)나라가 망한 까닭을 설명하면서 ‘한갓 형식적일 뿐 실상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신 역시 ‘형식적으로 되는 폐단은 바로 성경(誠敬)이 부족한 탓이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생각건대, 언로가 막히느냐 열리느냐 하는 것은 실로 국가의 흥망에 관계됩니다. 심대부(沈大孚)와 유계(兪棨)가 선왕(先王)께 시호(諡號)를 올릴 당시에는 마음에 품은 생각이 있어서 감히 봉장(封章)을 올렸으니, 능히 그 직분을 다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찬축하셨습니다. 심대부는 비록 사유(赦宥)를 받았으나 아직 완전히 석방되지 못하였고, 유계는 이제 비로소 양이(量移)되었지만 오히려 완전히 석방되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감히 모르겠습니다만, 이 두 신하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전하께서 그들을 이처럼 심하게 허물하십니까.
아, 내수사의 폐단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간교한 저 소인들이 성상의 위엄을 등에 업고 간사한 짓을 해 백성들을 해롭게 합니다. 이 때문에 그들에 대한 송사(訟事)를 처리하는 관리들조차도 역시 전하의 위세에 겁먹어 백성들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사치의 폐해는 천재(天災)보다도 심합니다. 현재 제택(第宅)의 참람함과 복식(服飾)의 사치스러움, 혼인의 과분함, 음식의 지나침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넓은 눈썹을 좋아하면 아래에선 더욱 크게 그리고 위에서 넓은 소매를 즐기면 아래에서는 더욱 넓게 드리워서 위에서 좋아하는 것을 아래에서 더욱 좋아하니 백성들의 마음을 알 만합니다. 그러니 화를 복으로 바꾸는 기틀이 단연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이 또 듣건대 ‘모든 백성은 음붕(淫朋)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임금들치고 이를 몹시 미워하여 없애기를 힘쓰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없애지 못했던 것은, 법도를 세우는 도리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 조정이 바르지 못하고 사대부들이 이심(異心)을 품고 있는 것이 요즈음 들어 더욱 심합니다. 전하께서 당파(黨派)를 제거함에 있어서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만 더욱더 시끄럽게만 되었습니다. 이에 자신의 당파가 아닌 경우에는 비록 어질고 재능이 있는 자라도 낱낱이 허물을 찾아내 반드시 배척하고, 자신의 당파인 경우에는 아무리 어리석고 불초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진출시키고서야 그만두니, 비록 임금을 기만하는 데 이르더라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두세 훈구 대신에 이르러서는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같이할 의리가 있는데도 이처럼 어렵고 걱정스러운 때를 당하여 국가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한갓 사사로운 혐의나 원망을 품고서 칼을 어루만지면서 서로 노려보는 자가 있습니다. 이에 인심이 흉흉하고 위태로움이 날마다 닥쳐옵니다. 말이 이에 미치니 참으로 가슴아픕니다.
아, 전하께서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는 때를 만났으니, 옥사가 의논할 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듣건대, 승문원 정자 이명익(李溟翼)을 경연에서 한 말을 누설하였다는 이유로 옥에 내리고 형신을 가하도록 명하였는데, 대신과 대간들이 굳게 간쟁하여서 형신을 면하였으나 끝내 유배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명익의 관직이 비록 임시직이긴 하나 역시 근신(近臣)입니다. 대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어찌 근신에게 문득 형신을 가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 뇌물을 받지 못하게 하고 청탁이 행해지지 못하게 하며, 사사로운 길을 막고 공도(公道)를 확장시키는 것이 재상의 직분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는 참으로 하는 일 없이 녹이나 축내는 자입니다. 그리고 결단성없이 머뭇거리며 구차하게 영합하여 용납되기를 바라는 자는, 공자가 이른바 ‘저런 재상을 어디다 쓰겠는가.’라고 한 말이 바로 이런 자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하고, 이어 민폐에 대해 많은 말을 하였는데, 답하기를,
"너의 소장을 보았다. 충성스럽고 곧은 말을 이와 같이 많이 하였으니,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내가 몹시 가상하게 여긴다. 조목별로 진달한 폐단에 대해서는 묘당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10월 8일 임자

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 서백감려편(西伯戡黎篇)을 강하였다. 강을 마치고 동지경연사 조석윤(趙錫胤)이 나아가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시원(試院)에 들어가 유생들이 지은 글을 보니,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이는 모두가 독서에 힘쓰지 않은 탓입니다. 변려문은 외교 문서에 가장 관계가 큰데 이와 같이 거치니, 반드시 국가에서 권장한 다음에야 성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권장하는 방도는 단지 과거(科擧)에 달려 있습니다. 잠(箴)·명(銘)·송(頌)은 비록 공부가 없더라도 글을 지을 수 있으나, 변려문은 공부가 없으면 실로 글을 짓기가 어렵습니다. 이 경우 고관(考官)이 우열을 평가하기도 쉬울 듯합니다."
하니, 상이 그렇다고 하였다.

 

10월 9일 계축

홍청도 은산현(恩山縣)에 크게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다.

 

조수익(趙壽翼)을 이조 참의로, 장응일(張應一)을 부수찬으로, 조석윤을 대사헌으로, 이해창(李海昌)을 사간으로, 정두경(鄭斗卿)을 부수찬으로 삼고, 우의정 한흥일(韓興一)을 체직하여 판중추부사에 제수하였다.

 

10월 12일 병진

권우(權堣)를 사간으로, 정유(鄭攸)를 승지로, 이해창(李海昌)을 부응교로 삼고, 특별히 영신정(靈愼正) 이형(李瀅)을 사옹원 부제조로 삼았다. 이조가 자급이 맞지 않는다고 아뢰니, 하교하기를,
"숙부의 나이가 많은데 내가 기쁘게 위로해줄 길이 없으니, 특별히 가자하고 이 직을 제수하라."
하였다. 형(瀅)은 능원대군(綾原大君) 이보(李俌)의 서자이다. 대군은 바로 인조 대왕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인헌 왕후(仁獻王后)의 상에 예에 지나치게 슬퍼하였으며, 상의 숙부인 의창군(義昌君)을 섬김에 있어서 몹시 근실하였다. 겸손하고 공손하며 말이 없었다. 인조가 몹시 사랑하여 자주 물품을 하사하였으며, 제도(諸道)에서 진헌하는 것이 있으면 반을 그에게 주었다. 간혹 외간의 일에 대해 왕이 물으면 문득 머뭇거리면서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가끔가다 입시(入侍)할 때 상이 집안 사람의 예로써 대하였으나 일찍이 머리를 쳐들고 편하게 앉지 않았다.

 

10월 13일 정사

상이 도승지 윤강을 불러 보고 그에게 이르기를,
"지금 대신으로 사신을 보내야겠는데, 영상은 갔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좌상은 노병(老病) 중에 있다. 전 좌상 정태화가 나이도 젊고 근력도 있어서 갔다 올 수 있으나, 아직 상(喪)을 마치지 못하여 독촉해 들여보낼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윤강이 아뢰기를,
"상을 마치고 이달 19일에 가려고 한다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출발할 날짜가 멀지 않았으니 이 뜻을 대신에게 말하라."
하였다. 윤강이 물러나와 영상 김육과 좌상 이시백에게 상의 전교를 전하였다. 김육 등이 회계하기를,
"성상께서 신들의 노병을 진념하시어 상중에 있는 신하에게 보내려는 뜻을 두고 계시니, 신들은 몹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비록 멀리 간다 하더라도 그곳이 어찌 반드시 죽을 곳이겠습니까. 신들 중 한 사람이 명을 받들고 가겠습니다. 성상께서 만약 차마 윤허하지 못하시겠다면, 나이 젊고 명망이 있는 사람으로 다시 정승을 뽑더라도 불가하지 않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대사헌 조석윤이 인피하면서 아뢰기를,
"신이 지난번에 간원에 있을 때 이해(李澥)가 악공(樂工)을 구사(丘史)로 삼은 일에 대해 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해의 함사(緘辭) 중에 대간을 몹시 헐뜯으면서 조금도 여력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는 ‘그간의 계사의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고 하였고, 또 ‘남을 모함하는 데 급급하여 내용을 중하게 하고자 하였다.’ 하였으며, 또 ‘단지 희미한 그림자를 인하여 남을 재앙에 빠뜨리기를 몹시 급하게 하였으니, 전혀 아름다운 뜻이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의 논계는 단지 묘악(廟樂)을 중하게 하고 뒤폐단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어찌 추호라도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말하니, 신은 몹시 애석합니다. 다만 신이 일을 논하면서 자세히 살피지 못하여 사실대로 하지 못한 잘못을 면치 못하였으니, 어찌 감히 직위에 그대로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10월 15일 기미

상이 서교(西郊)에 행행하여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인정전에서 접견하였다. 칙서에,
"짐은 생각건대, 제왕(帝王)이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존양(尊養)을 모두 융성하게 하고 홍장(鴻章)과 현호(顯號)를 일을 인해서 올리는 법이다. 이는 자식된 자의 지극한 정이고 고금에 통하는 의리이다. 짐이 크나큰 명을 이어받아 만방을 소유하였으니 그 까닭을 헤아려보면 실로 아름다운 훈계를 이어받아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황태후께서 짐을 위하여 정숙한 비(妃)를 신중히 가리어 궁위(宮闈)의 모범이 되게 하셨으니 가례(嘉禮)를 올린 처음에 성모께서 크나큰 자애를 베풀어 주심이 가이없음을 깊이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전례(典禮)를 상고해 보니,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합당하였다. 이에 삼가 순치(順治)161)   8년 8월 20일에 천지의 신과 종묘 사직에 고한 다음, 여러 왕의 자손들과 문무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공손히 책보(冊寶)를 올리고, 성모(聖母)의 존호(尊號)를 소성 자수 황태후(昭聖慈壽皇太后)에서 소성 자수 공간 황태후(昭聖慈壽恭簡皇太后)로 올린다. 이는 진실로 여러 백성들의 심정을 따른 것으로, 즐겁고 기쁜 뜻을 널리 펴는 바이다. 은유(恩宥)가 있는 것이 일에 있어서 마땅하겠기에 뒤에다 열거하니, 은사(恩賜)와 사유(赦宥)가 있을 것이다.
아, 집안을 바르게 하여 나라를 바르게 하고, 친족을 사랑하여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우리 성모께서는 거듭거듭 보우하시어 능히 뛰어난 덕을 다하시었다. 모든 신하들은 마땅히 하늘이 내리는 복을 공경히 이어받아, 성수(聖壽)가 길고 길기를 축원하고 태평 시대가 오기를 축원해야 할 것이다. 이에 중외에 포고하니, 모두들 알라."
하고, 또 이르기를,
"짐은 생각건대, 성스러운 교화는 이남(二南)162)  에서 시작되는바, 짝을 이룸은 봉명(鳳鳴)의 성대함163)  에 합하는 것이다. 하늘의 아름다운 복은 만세에 드리우는바, 시집옴은 인지(麟趾)의 상서164)  를 넓히는 것이다. 이에 중궁(中宮)의 자리를 바르게 하여 삼가 풍교(風敎)를 펴노라. 짐이 크나큰 통서(統緖)를 이어받아, 삼가 크나큰 기업(基業)을 맡게 되었다. 이에 현숙한 여인을 신중히 가리어 후사(後嗣)가 뻗쳐 이어지게 하노라.
지난번에 소성 자수 황태후께서 특별히 황후를 간택하시어 궁위(宮闈)의 모범이 되게 하시었다. 우러러 자애로운 분부를 받들어 삼가 분명하게 천지의 신과 종묘에 고하고 순치(順治) 8년 8월 13일에 확아심국 초릉토친왕(廓兒沁國招凌兎親王) 오상(吳商)의 딸을 책립하여 황후로 삼는다.
정숙하고 온순함을 영원히 밝혀서 존양(尊養)의 법을 봉행하며, 공경함을 게을리하지 않아 천지의 융성한 베풀음에 응할 것이다. 이에 음과 양에 덕을 합하여 어질고 효성스러운 자손이 있기를 기약하노라. 분명하게 천하에 포고하니, 모두들 알라."
하고, 또 이르기를,
"반사하는 예물을 공경히 받으라."
하였다.

 

사면하였다.

 

10월 17일 신유

세자의 납징례(納徵禮)를 행하였다.

 

상이 남별관(南別館)에 행차하여 청나라 사신을 접견하고 하마연을 행하였다.

 

10월 18일 임술

연접 도감(延接都監)이 아뢰기를,
"정명수(鄭命守)가 말하기를 ‘사은사는 반드시 국왕의 지친인 사람으로 차출해 보내 국왕이 친히 조회하지 못하는 뜻을 보이라.’ 하였습니다."
하니, 인평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를 차출해 보내라고 명하였다.

 

영의정 김육과 좌의정 이시백 등이, 홍우원(洪宇遠)의 상소 가운데 묘당을 기롱하며 배척한 말이 있다는 이유로 차자를 올려 면직시켜 줄 것을 청하니, 답하였다.
"광망하여 마구 한 말을 어찌 가슴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겠는가. 경들은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그리고 그 밖의 말은 더욱더 지나친 말이다. 그러나 나의 잘못을 말했으므로 포용하여 받아들인 것이다."

 

평안도 가산(嘉山) 사람 서양수(徐良守)의 여종 고음생(古音生)이 그의 남편과 함께 양수를 살해하였다. 도신(道臣)이 아뢰니 경차관을 파견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금부에 잡아오자 삼성 추국(三省推鞫)하라고 명하였다. 고음생이 이내 승복하여 주살하였다.

 

10월 19일 계해

정태화(鄭太和)를 판중추부사로, 한흥일(韓興一)을 판돈녕부사로, 원두표(元斗杓)를 좌참찬으로, 심액(沈詻)을 우참찬으로, 김익희(金益熙)를 강원 감사로 삼았다.

 

이조가 아뢰기를,
"각도의 제독(提督)과 교수관(敎授官) 등을 지금 차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전의 제수조(除授條)를 상고해 보니 ‘직차(職次)가 상당하는 문신이 부족할 경우에는 성균관과 교서관의 참하관(參下官) 및 회강(會講)에 입격한 생원, 진사 중에서 품계에 따라 제수하고, 하등(下等)을 맞은 문신으로 해가 경과하지 않았더라도 역시 차출해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5품이나 6품 가운데 합당한 사람이 드뭅니다. 그러니 옛 법대로 성균관과 교서관의 참하관으로써 가려 뽑아보내되 30개월 동안 옮기지 말고, 서북 지방의 교양관(敎養官)의 예에 의하여 근만을 고찰하여 기간이 차면 천전(遷轉)시켜 성과가 있도록 책임지우소서. 그리고 제수된 뒤에 회피하려고 하는 자는 일정한 기간 동안 서용하지 마소서."
하니, 따랐다.

 

10월 20일 갑자

헌부가 전 감사 유철(兪㯙)의 추고 함사(推考緘辭)로써 장 팔십(杖八十) 공죄(公罪)로 조율하니, 하교하였다.
"적용한 율이 죄에 맞지 않으니, 이 공사를 도로 내어주라."

 

헌부가 【대사헌 조석윤(趙錫胤), 집의 서상리(徐祥履).】  아뢰기를,
"행 호군(行護軍) 이완(李浣)은 한때의 이름난 무인으로 특별히 조정의 쓰임을 받았으니, 더욱더 스스로 감격하여 삼가고 신칙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집을 지으면서 법을 어기고 웅대하게 지어 여염에까지 확장하였으며, 심지어는 근처의 집터를 침탈하였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신들이 송사를 제기한 사람의 소장(訴狀)을 보니, 그 곡절을 아주 상세히 말했습니다. 한쪽편의 말을 다 믿기는 참으로 어려우나 해조의 문서를 가져다 상고해 보니, 원통하다고 말한 것이 역시 명백한 듯했습니다. 국법은 지엄한 것이고 공론은 두려운 것입니다. 만약 강한 자로 하여금 약한 자를 침범케 하고 귀한 자로 하여금 천한 자를 능멸케 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수족을 움직이겠습니까. 그의 탐욕스럽고 방자하며 거리낌없는 정상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완을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 그 당시에 송사를 판결한 관원 역시 사사로움을 따르고 법을 잘못 적용한 잘못이 있으니, 해조의 당상과 낭청을 되도록 중하게 추고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은 추고하지 말고, 다른 관서로 하여금 다시 조사하게 한 뒤에 처리하라."
하였다.

 

10월 21일 을축

대사헌 조석윤, 지평 남중회(南重晦)가 인피하기를,
"신들이 어제 유철을 추고하여 조율할 때 율관으로 하여금 율문을 상고해 내게 하였는데, 적당한 율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임금이 탈 배를 잘못하여 견고하지 못하게 하였을 경우 감독한 제조관은 공장(工匠)의 죄에서 2등을 감한다.’고 한 것이 가장 서로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비의(比擬)하여 조율하여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공죄(公罪)냐 사죄(私罪)냐를 분간하면서는, 신들의 생각으로는 ‘도주(道主)로 있으면서 행행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제대로 검칙하지 못한 죄는 참으로 막중하다. 그러나 그 정상으로 말한다면, 신하가 되어서 어찌 감히 임금이 능소에 참배하는 날에 직무를 태만하게 하여 스스로 엄한 불경죄에 빠져들겠는가. 이로써 본다면 사죄로 단정할 경우에는 억울함이 있을 듯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감히 공죄로 조율하여 들인 것입니다. 지금 엄한 분부를 받았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체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공죄냐 사죄냐를 비록 따질 필요는 없다마는, 사체로 볼 때 수령이 이미 찬축된 뒤에 감사를 수속(收贖)만 하고 마는 것이 옳겠는가. 자신이 방백으로 있었으니,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겠는가. 지금 논한 바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간원이 【대사간 신면(申冕), 사간 권우(權堣), 헌납 정언벽(丁彦璧), 정언 서필원(徐必遠).】  아뢰기를,
"좌참찬 원두표는 비록 훈적에 이름이 올라 있지만 본디 명망이 없어서 일찍이 호조를 맡았을 적에 사람들의 말이 많았습니다. 국량을 참작하여 맡길 경우 어찌 보낼 만한 곳이 없겠습니까. 이번의 이 새로운 제수는 보고 듣기에 놀랍습니다. 제목(除目)이 한번 내려지자 식자들이 한심해 합니다. 체차하소서. 해조 역시 잘 가려 의망하지 못한 잘못이 있습니다. 해당 당상과 낭청을 추고하소서."
하니, 【신면의 논계이다.】  답하기를,
"원두표의 재주와 명망이 어찌 합당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10월 22일 병인

정언벽(丁彦璧)을 수찬으로, 홍처량(洪處亮)을 사간으로, 채충원(蔡忠元)을 헌납으로, 오핵(吳翮)을 정언으로, 서필문(徐弼文)을 경상 좌병사로 삼았다.

 

10월 23일 정묘

상이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김육이 나아가 아뢰기를,
"청나라 사신이 요구함이 끝이 없습니다. 해조가 비록 묘당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하였으나, 묘당 역시 어떻게 지휘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백성들이 결단코 감당할 만한 힘이 없으니, 수역(首譯)으로 하여금 주선하게 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김육이 또 아뢰기를,
"통제사 유정익(柳廷益)이 기한이 이미 찼으니 그 대임(代任)을 가려야 합니다. 여러 사람의 의논이 대부분 이완(李浣)이 합당하다고 하는데, 이완은 현재 중임을 맡고 있습니다. 외방으로 내보내기 어려울 것 같으면 유정익을 잉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따랐다. 대사간 신면이 나아가 아뢰기를,
"대사헌 조석윤 등이 인피하고서 물러났습니다. 그 본정(本情)으로 말하면 억울할 듯하다고 여겨 공죄로 단정한 것이 무슨 안 될 것이 있습니까. 모두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법을 농락한 대관을 그 직에 그대로 있게 할 수는 없다. 체차하라."
하였다. 신면이 인피하면서 아뢰기를,
"성상의 분부가 이와 같으니 신은 처치를 어긋나게 한 잘못이 있습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직하지 말라. 그러나 처치한 것은 구차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국법에 국문(國門)을 지나면서 내리지 않아도 오히려 죄가 있다고 하였다. 이 나라에 살면서 그가 어찌 감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몹시 노여워하며 큰소리로 이르기를,
"유철의 죄를 법을 농락한 대관으로 하여금 다시 조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삭탈 관작하고 문외 출송하라. 대사헌 이하는 조정을 보기를 아이들 장난 같이 보았다. 죄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 조석윤은 평소에 우대하던 사람이므로 우선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나를 보고 어둡고 어리석어서 알지 못한다고 하지 말라."
하였다. 이어서 헌부의 율관 임대현(林大顯)을 잡아와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정언 서필원 역시 처치한 것이 구차하였다는 이유로 인피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면 등이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헌부가 다시 전에 아뢴 것을 아뢰면서 이완을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이완이 아무리 형편없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아무런 이유 없이 침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상의 반열에 있는 사람의 말은 믿지 않고 도리어 무지한 천인(賤人)의 간교한 말만 믿으니, 어찌 사대부간에 서로 공경하는 예가 없기가 이와 같단 말인가. 내가 몹시 좋지 않게 여긴다.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여러 차례 아뢰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장계우(張繼禹)를 양덕 현감(陽德縣監)으로 삼았다. 계우는 정명수(鄭命守)의 일족이다. 당시에 서로(西路)의 변장과 수령을 대부분 정명수의 말에 따라 차출해 보내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들 분해하면서 탄식하였다.

 

상이 유철을 삭탈하고 출송하는 전지로써 잡아다 추고하라고 하교하고, 또 하교하기를,
"유철의 공사(供辭)를 해부(該府)로 하여금 오늘 안으로 개좌하여 봉입하게 하라."
하였다. 유철이 자복(自服)하였다. 율관 임대현의 공사에,
"중한 율을 적용하려고 하였으나 대관(臺官)이 장 팔십으로 조율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하교하기를,
"지금 율관의 공사를 보니 더욱더 놀랍다. 위를 속여 아래에 붙고 법을 농락하여 임금을 모욕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지평 남중회(南重晦)·유거(柳椐) 등을 아울러 잡아다 추고하라."
하였다. 승지 이응시(李應蓍)·조형(趙珩)이 아뢰기를,
"유철은 성상께서 배릉하시던 날에 도신(道臣)으로 있으면서 미리 제대로 검칙하지 못하여, 횃불이 어가 앞에서 꺼지게 하였으며 위사(衛士)의 말이 다리에서 빠지게 하였습니다. 비록 고의적인 데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죄가 참으로 큽니다. 다만 법관이 근거할 만한 율문을 찾아내지 못하여 단지 임금이 탈 배를 견고하게 만들지 못한 조항으로 경솔히 비율(比律)하여 아뢰었으니, 죄가 율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성상의 분부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법관들이 그 사이에 무슨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미 법을 농락하여 임금을 모욕했다는 전교를 내리고, 또 대관을 잡아다 추고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대관이 비록 잘못한 바가 있더라도 잡아다 추고하기까지 하는 것은, 신들이 듣고 보지 못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뇌정 같은 위엄을 조금 거두시어 잡아다 추고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답하기를,
"그대들도 한번 생각해보라. 파직하고 고신(告身)을 빼앗는 것으로 조율한 것이 무슨 대단히 미워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겠는가. 오로지 죄의 관계됨이 경중이 어떠한가를 볼 뿐이다. 그런데 이 무리들은 사사로움을 따라 임금을 속여 문득 일단의 법을 농락하여 임금을 모욕하는 짓을 하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데도 다스리지 않으면 장차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은 부득이해서 하는 것이다."
하였다. 여러 차례 아뢰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헌부가 아뢰기를,
"국가에서 죄를 논하는 법에는 반드시 공죄냐 사죄냐, 고의적인 것이냐 우발적인 것이냐를 분간하는 법입니다. 유철은 참으로 제대로 검칙하지 못한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정(本情)을 따져보면 공죄이고 우발적인 죄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본부가 참작하여 율을 적용한 것은 법을 집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갑자기 위를 속이고 아래에 붙었으며 법을 농락하여 임금을 모욕하였다는 죄를 대관에게 가하였으며, 심지어는 잡아다 추고하라는 명이 있기까지 하였습니다. 성명(聖明)한 세상에 전에 없던 이러한 거조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옛날에 한 문제(漢文帝) 때 어가 앞을 범한 사람이 있어서 승여(乘輿)의 말을 놀라게 했습니다. 장석지(張釋之)가 벌금형으로 논하자 한 문제가 이를 받아들이고서 죄주지 않았습니다. 이 어찌 성덕(盛德)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성상의 비답이 한번 내려지자 여러 사람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뇌정 같은 위엄을 조금 거두시어 남중회와 유거 등을 잡아다 추고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간원에서 헌부를 처치한 것은, 비록 대단히 잘못된 견해는 없으나, 이미 구차하다는 전교를 받았으니, 형편상 그 직에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대사간 신면, 정언 서필원을 모두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남중회 등의 일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10월 24일 무진

전 대사헌 조석윤이 상소하기를,
"유철을 조율하던 날을 당하여 한갓 용서하여야 할 정상이 있다는 것만 알고 죄명이 중하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율을 잘못 적용한 책임은 신이 진실로 달갑게 받겠습니다. 전후의 성상의 비답이 모두가 신하로서는 더할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니, 신이 비록 만번 죽더라도 속할 길이 없습니다. 신이 장관 자리에 있으면서 율을 적용하는 것을 주도하였는데, 잡아다 추고하라는 명이 동료들에게만 미쳤습니다. 신은 의금부에서 석고 대죄하면서 공경히 엄명을 기다립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상소의 말이 이와 같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영의정 김육, 좌의정 이시백이 차자를 올리기를,
"유철에게 율을 잘못 적용하였다는 이유로 특별히 대관을 잡아다 추문하라고 명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놀랍고 떨리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대관이 율을 잘못 적용한 것은 죄가 참으로 중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대관을 대우함에 있어서 예로써 대우하는 도를 잃을까 염려됩니다. 율관이 자신의 죄를 모면하고자 대관에게 죄를 돌리는 것인데, 어찌 그의 말을 믿고서 깊이 죄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몹시 노망하였기는 하지만 결단코 감히 아래에 붙어서 위를 속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각(臺閣)이 기운을 잃는 것은 크게 성대한 조정의 흠이 되는 일이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하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가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기강이 이 지경이 되게 하였으니, 그 누구를 탓하겠는가. 헌부의 장관은 다른 관원과 다르므로 그의 소를 경들에게 내린 것이다. 되도록 속히 헌의하라."
하였다. 김육과 이시백이 의계하기를,
"유철이 범한 바는, 그 정상은 용서할 만하나, 죄명은 수령과 차이가 없는데 조율은 같지 않았습니다. 조석윤이 동료들과 같은 죄를 받기를 청한 것은 참으로 마땅합니다. 다만 법을 농락하고 임금을 속였다는 것으로 죄안(罪案)을 삼는다면 아마도 본정(本情)이 아닐 듯합니다. 양 대관을 옥에 내리는 것은 신들 역시 성대의 흠이 되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차자를 올려 진달한 것은 엄한 위엄을 거두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이 소에 이르러서 다시 무슨 의논드릴 것이 있겠습니까. 오직 성상께서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생각하시어 포용하는 도리를 넓혀, 조종들께서 대간을 중하게 대우한 뜻을 따르시기만을 바랍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도승지 윤강 등이 면대를 청하니, 상이 허락하지 않고 이어서 생각하는 바를 글로 써서 올리라고 명하였다. 윤강 등이 아뢰기를,
"유철이 제대로 검칙하지 못한 것은 죄가 있습니다. 헌부가 잘못 조율하여 성상께서 거듭 노여워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본정을 따져본다면, 반드시 유철이 범한 것은 우발적인 것이라고 여겨서 공죄로 조율한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일러 잘못 율을 적용하였다고 한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어찌 추호라도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사사로움을 따라서 위를 속였고 법을 농락하여 임금을 모욕하였다는 전교는 이미 몹시 온당치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상의 노여움이 점차 격발되어 붙잡아다 추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어쩔 줄 모르고 있고 기상이 참담합니다. 바라건대, 속히 뇌정 같은 위엄을 거두시어 즉시 석방하라는 명을 내리소서."
하니, 상이 따르지 않았다. 옥당이 【부응교 이해창(李海昌), 교리 오정위(吳挺緯), 수찬 정언벽(丁彦璧).】  차자를 올리기를,
"임금이 벌을 내리는 도리는 오직 그 정상을 살펴서 중도를 얻는 데 있는 것으로, 그런 다음에야 여러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승복하고 죄를 지은 자도 징계되는 법입니다. 만약 혹시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승복시키고 죄를 징계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들이 헌부가 율을 적용한 것을 보건대, 과연 마땅함을 잃었습니다. 유철은 배릉하는 날을 당하여 관찰사로 있으면서 제대로 교량을 검칙하지 못하였으니, 그 죄가 참으로 가볍지 않습니다. 그런데 헌부는 율을 적용할 즈음에 단지 그 정상이 임금을 깔본 데서 나온 것이 아님만 따져 공죄로 단정하면서, 끝내는 율을 시행하는 것이 지나치게 가벼웠다는 것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을 일러 법을 농락하여 임금을 모욕하였다고 하면서 옥리(獄吏)에게 내리기까지 한다면, 아마도 성인이 정상을 살피고 중도에 맞게 하는 도리가 아닐 듯합니다.
유철의 죄를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그 당시에 다스리지 아니하고 오늘날에 이르러서 점점 확대하여 이지경에 이르게 하십니까. 헌부가 율을 적용한 것은 공죄냐 사죄냐를 분간하는 데 차이가 있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찌 아래에 붙어서 위를 속이려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특별히 체직하라는 명이면 그 잘못을 징계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차분한 마음으로 따져보지 않고 도리어 실정 밖의 전교를 내렸으며, 심지어는 잡아다 추고하라는 명이 있기까지 하였습니다. 대관을 옥에 내리는 것은 실로 전에 없던 일입니다. 설사 율을 잘못 적용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장관은 내버려두고 유독 차관만 벌을 주는 것은, 역시 벌을 줌에 있어서 중도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사람의 정(情)에 있어서 발하기는 쉽고 억제하기는 어려운 것은 노여움이 가장 심하다.’ 하였습니다. 무릇 사람의 정은 노여움이 일어나는 처음에 이치를 따져서 잘 살피지 않으면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대부분 과격하게 되는 법입니다. 선유(先儒)가 논한 바가 어찌 지당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어찌하여 전하께선 황잡한 것을 포용하는 천지와 같은 도량으로 두세 대신(臺臣)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런 잘못된 거조를 하신단 말입니까. 신들은 전하를 위하여 몹시 애석하게 여깁니다. 바라건대, 뇌정과 같은 위엄을 조금 거두시어 속히 대관을 잡아다 추고하라는 명을 거두소서."
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10월 25일 기사

이후원(李厚源)을 대사헌으로, 황감(黃㦿)을 대사간으로 삼았다.

 

상이 하교하였다.
"무신의 삭시사(朔試射)와 무과(武科)에서 시취(試取)할 때 철전(鐵箭)을 쓰지 말고 유엽전(柳葉箭)을 대신 쓰라."

 

10월 26일 경오

간원이, 전에 아뢴 것을 다시 아뢰면서 남중회와 유거를 석방할 것을 청하니, 상이 따르지 않았다.

 

헌부가 또 남중회 등을 석방할 것을 청하니, 상이 답하기를,
"그대들은 사사로움을 품고 위를 속인 무리들을 장석지(張釋之)에 비유하니, 방자하고 거리낌 없음이 심하다."
하였다. 장령 윤성(尹珹)이 이를 이유로 인피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윤성이 물러가 물론(物論)을 기다렸다. 이어서 하교하기를,
"오늘 안으로 처치하라."
하였다.

 

대사헌 이후원이 아뢰기를,
"대각의 신하들이 머리를 나란히 하여 옥에 나아갔으니 성상의 지나친 거조가 될까 염려됩니다. 연일 논계하는 것은 바르게 구제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른바 장석지에 대한 일은, 단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죄는 용서해야 한다는 본뜻을 말한 것입니다. 어찌 장석지를 오늘날 율을 적용한 대관에다 비유하였겠습니까. 황잡한 것까지 포용하는 천지와 같은 도량으로써 어찌 용납해 주는 도리는 생각지 않고, 신하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이러한 분부를 내리신단 말입니까. 구구한 저의 정성은 오로지 특별히 뇌정 같은 위엄을 거두시어 화평한 기상을 회복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글과 말 때문에 언관을 가볍게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 장령 윤성을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로(雨露)와 상설(霜雪)은 각각 때가 있는 법이다. 어찌 한결같이 머뭇거리며 한갓 아랫사람에게 황잡한 것까지 포용한다는 추킴만을 받고서 국사가 날로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윤성은 별다른 말을 만들어 내어 드러나게 기롱하고 꼬집은 정상이 있으니, 어찌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체차하라."
하였다. 대사헌 이후원이 인피하여 아뢰기를,
"신이 윤성을 출사시키기를 청한 것은 단지 전하로 하여금 천지와 같은 도량을 넓히고 언로를 넓히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지금 성비를 받들건대, 특별히 체차하라는 명을 내렸으니, 신의 처치가 마땅함을 잃은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건대, 처음에는 아주 하찮던 일이 점차 확대되어 이에 이른 것으로, 한 단계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에 아래와 위가 꽉 막혀 정의(情意)가 미덥지 못하게 되어, 보고 듣기에 놀라우며 기상이 참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신들의 죄입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세세하게 언급하여 나를 이렇게까지 아껴주니, 가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은 사직하지 말라."
하고, 하교하기를,
"전 대사헌 조석윤을 파직하라. 남중회와 유거 등은, 그들이 자신을 변명한 꾸며댄 공사(供辭)를 볼 필요가 없으니, 역시 파직하고 풀어주게 하라. 내일 정사(政事) 때에 대제학을 차출하라."
하였다. 조석윤을 파직하였기 때문이다.

 

대사헌 이후원이 아뢰기를,
"대각의 신하들이 머리를 나란히 하여 옥에 나아갔으니 성상의 지나친 거조가 될까 염려됩니다. 연일 논계하는 것은 바르게 구제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른바 장석지에 대한 일은, 단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죄는 용서해야 한다는 본뜻을 말한 것입니다. 어찌 장석지를 오늘날 율을 적용한 대관에다 비유하였겠습니까. 황잡한 것까지 포용하는 천지와 같은 도량으로써 어찌 용납해 주는 도리는 생각지 않고, 신하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이러한 분부를 내리신단 말입니까. 구구한 저의 정성은 오로지 특별히 뇌정 같은 위엄을 거두시어 화평한 기상을 회복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글과 말 때문에 언관을 가볍게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 장령 윤성을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로(雨露)와 상설(霜雪)은 각각 때가 있는 법이다. 어찌 한결같이 머뭇거리며 한갓 아랫사람에게 황잡한 것까지 포용한다는 추킴만을 받고서 국사가 날로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윤성은 별다른 말을 만들어 내어 드러나게 기롱하고 꼬집은 정상이 있으니, 어찌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체차하라."
하였다. 대사헌 이후원이 인피하여 아뢰기를,
"신이 윤성을 출사시키기를 청한 것은 단지 전하로 하여금 천지와 같은 도량을 넓히고 언로를 넓히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지금 성비를 받들건대, 특별히 체차하라는 명을 내렸으니, 신의 처치가 마땅함을 잃은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건대, 처음에는 아주 하찮던 일이 점차 확대되어 이에 이른 것으로, 한 단계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에 아래와 위가 꽉 막혀 정의(情意)가 미덥지 못하게 되어, 보고 듣기에 놀라우며 기상이 참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신들의 죄입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세세하게 언급하여 나를 이렇게까지 아껴주니, 가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은 사직하지 말라."
하고, 하교하기를,
"전 대사헌 조석윤을 파직하라. 남중회와 유거 등은, 그들이 자신을 변명한 꾸며댄 공사(供辭)를 볼 필요가 없으니, 역시 파직하고 풀어주게 하라. 내일 정사(政事) 때에 대제학을 차출하라."
하였다. 조석윤을 파직하였기 때문이다.

 

대사헌 이후원이 아뢰기를,
"대각의 신하들이 머리를 나란히 하여 옥에 나아갔으니 성상의 지나친 거조가 될까 염려됩니다. 연일 논계하는 것은 바르게 구제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른바 장석지에 대한 일은, 단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죄는 용서해야 한다는 본뜻을 말한 것입니다. 어찌 장석지를 오늘날 율을 적용한 대관에다 비유하였겠습니까. 황잡한 것까지 포용하는 천지와 같은 도량으로써 어찌 용납해 주는 도리는 생각지 않고, 신하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이러한 분부를 내리신단 말입니까. 구구한 저의 정성은 오로지 특별히 뇌정 같은 위엄을 거두시어 화평한 기상을 회복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글과 말 때문에 언관을 가볍게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 장령 윤성을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로(雨露)와 상설(霜雪)은 각각 때가 있는 법이다. 어찌 한결같이 머뭇거리며 한갓 아랫사람에게 황잡한 것까지 포용한다는 추킴만을 받고서 국사가 날로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윤성은 별다른 말을 만들어 내어 드러나게 기롱하고 꼬집은 정상이 있으니, 어찌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체차하라."
하였다. 대사헌 이후원이 인피하여 아뢰기를,
"신이 윤성을 출사시키기를 청한 것은 단지 전하로 하여금 천지와 같은 도량을 넓히고 언로를 넓히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지금 성비를 받들건대, 특별히 체차하라는 명을 내렸으니, 신의 처치가 마땅함을 잃은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건대, 처음에는 아주 하찮던 일이 점차 확대되어 이에 이른 것으로, 한 단계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에 아래와 위가 꽉 막혀 정의(情意)가 미덥지 못하게 되어, 보고 듣기에 놀라우며 기상이 참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신들의 죄입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세세하게 언급하여 나를 이렇게까지 아껴주니, 가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은 사직하지 말라."
하고, 하교하기를,
"전 대사헌 조석윤을 파직하라. 남중회와 유거 등은, 그들이 자신을 변명한 꾸며댄 공사(供辭)를 볼 필요가 없으니, 역시 파직하고 풀어주게 하라. 내일 정사(政事) 때에 대제학을 차출하라."
하였다. 조석윤을 파직하였기 때문이다.

 

10월 27일 신미

정언 이경억(李慶億)이 인피하여 아뢰기를,
"헌부에 내린 비답을 보건대, 방자하여 거리낌이 없다고 전교하셨으니, 신은 참으로 두렵고 의혹스럽습니다. 계속해서 듣건대, 여러 신하를 파직하고 석방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말이 엄하여 오히려 화평한 기운을 상실하였다고 합니다. 전하께서 만약 두세 대간들에게 아래에 붙어서 위를 속인 죄가 있다고 여기신다면 자연 마땅히 시행해야 할 율이 있는 것으로, 파직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가 없을 경우에는 어찌 한때의 노여움으로 인하여 이러한 죄목(罪目)을 억지로 가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초에 율을 적용한 것이 지나치게 가벼웠던 것은 고의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니, 깊이 허물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착오나게 한 잘못은 책임이 장관에게 있는 것이니, 전하께서 먼저 두 신하를 가두었다고 하더라도 성상께서 미워하는 바는 역시 장관에게 있는 것입니다. 신이 평소에 듣건대, 조석윤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주는 없으나, 평소의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일찍이 행신과 처사를 잘못한다고 동료들 사이에 소문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벼슬길에 오른 이후로 세상에서 존중을 받아 일찍이 선조(先朝) 때에는 유별난 총애를 받았습니다. 성상을 섬기면서부터는 경연에 출입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전하께서도 일찍이 그의 사람됨을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과연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임금을 속이고, 법조문을 마음대로 해석해 법을 농락하는 자였습니까. 비록 석윤보다 한 등급이 아래인 자라도 전하께서는 역시 이것으로 의심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문득 한 가지 일을 착오나게 하였다는 이유로 그로 하여금 조정에 서지 못하게 하였으니, 성상의 오늘날의 거조는 생각지도 못했던 바입니다.
돌아보건대, 조정에 가득 찬 전하의 신하 중에 능히 조금이나마 의리를 알아 소회가 있으면, 반드시 진달하기를 석윤과 같이 하는 자가 다시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신이 추호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어 석윤을 위하여 유세한다면, 목이 매달리는 형벌을 받더라도 마음에 달갑게 여길 것입니다. 신이 논한 바는 헌부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장령 윤성은 이미 특별히 체직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비유가 적당하지 못했던 것을 헌부에게 돌리고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직위에 있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율관의 공사가 분명하게 금부에 있다. 고의성이 없다는 말이 가한 말인가. 그대가 영구(營救)하는 것은 몹시 경솔한 듯하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10월 28일 임신

구인후(具仁垕)를 공조 판서로, 민응협(閔應協)을 대사성으로, 심노(沈𢋡)를 사간으로, 유준창(柳俊昌)·안방준(安邦俊)을 장령으로, 홍처대(洪處大)를 부수찬으로 삼았다.

 

영의정 김육과 좌의정 이시백이 아뢰기를,
"대제학의 천망(薦望)에 대해 조석윤에게 물었더니, 석윤이 ‘바야흐로 파산(罷散)되어 있는 사람이니, 천망하는 예가 있더라도 자신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감히 천망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사관이 두세 번 말하여도 고사하면서 천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전임 대제학이 한두 사람이 아닌데 어찌 구차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다. 김육 등이 다시 아뢰기를,
"전임 대제학이 단지 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돈녕부사 김상헌(金尙憲)은 몹시 늙었고 병이 위독해 전에 천망할 때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고사했었고, 전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은 목욕하기 위해 외방에 나가 있으며, 전 판서 조경(趙絅)은 외방에 있습니다. 전 대제학이 서울에 있을 경우 다른 곳에 묻지 않는 것이 바로 고례(古例)입니다. 다시 가서 묻도록 한다면 반드시 황공하여 명을 따를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사체로 헤아려 보아도 역시 지나친 듯하다. 조경에게 가서 물으라."
하였다.

 

정언 이경억이 인피하여 아뢰기를,
"율관의 공사를 신이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고의성이 없다고 한 것은 우연히 착오나게 하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혹 한때의 소견이 편벽되고 꽉 막혀서 참작하여 율을 적용하지 못하였을까 염려한 것일 뿐입니다. 그 본래의 정상을 따져보면, 두세 대간들이 반드시 유철 하나에게 가벼운 벌을 내리기 위해 스스로 사사로움을 따르고 임금을 속이는 죄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현재 인물이 부족하여 조석윤만큼 국사에 마음을 두고 있어서 선비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자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은 실로 평소에 그의 사람됨을 훌륭하게 여겨 그가 폐기되어 버리는 것이 애석하였습니다. 이에 한갓 구구한 정성으로써 감히 전하께서 간언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라 품고 있는 생각을 모두 진달하였는데, 도리어 지리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제하고자 힘쓴 자취를 신 역시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의 본뜻은 분명하여 질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비(聖批)가 내렸으니 감히 태연히 있지 못하겠습니다. 신의 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이경억이 물러가 물론을 기다리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13면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한국고전번역원

 

간원이 【정언 이경억.】  아뢰기를,
"병조 판서 박서는 정초군(精抄軍)165)  을 다른 곳에 옮겨 쓰지 말라는 전교를 친히 받고서도 술에 취해 잊어버리고 전선(傳宣)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터진 뒤에는 하리에게 책임을 미뤘습니다. 그러자 하리가 형세에 눌려서 이실직고하지 못하고 형신을 받기까지 하였으니, 일이 몹시 놀랍습니다. 병조 판서 박서를 잡아다 조사해 처리하소서.
헌부가 지나치게 가볍게 율을 적용한 것은, 비록 잘못한 바가 있기는 하지만, 본정을 따져보면 반드시 유철에게 가벼운 벌을 내리기 위해 그 사이에 농간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특별히 체직하여 옥리에게 내리는 것만으로도 그 잘못을 징계하기에 충분합니다. 더구나 선왕의 실록을 수찬하는 일을 대학사(大學士)가 전담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 완성되어 가는 때에 이르러 새로운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전 대사헌 조석윤 등을 파직하라는 명과 대제학을 차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선왕의 실록은 만세의 공론으로 한 사람이 혼자서 전담할 바가 아니다.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형편없는 논계를 하는가. 내가 그대의 하는 바를 보건대, 고의적으로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내어 거듭 인피하면서 한 번도 물러가 물론을 기다리지 않았으며, 들고 나는 것을 관망하면서 드러나게 홀리려는 짓을 하고 있는바, 내가 이미 괴이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대제학을 체직하지 말라고 말하다니, 이것이 공론인가. 반드시 당파를 비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몹시 한심하게 여긴다. 그대는 그만 그치라. 차마 바로 보지 못하겠다."
하였다.

 

상이 승지 윤강 등을 불러 보고 이르기를,
"지난번에 경들이 면대를 청하였는데, 내가 마침 병이 있어서 인견하지 못하였다."
하니, 윤강이 아뢰기를,
"유철의 죄는 삭탈 관작에 불과한 것으로 본래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헌부의 조율이 마땅함을 잃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말과 안색에 나타내는 것을 내가 어찌 그렇게 하고 싶겠는가. 내가 유철의 죄를 고의적으로 범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국사가 잘못되는 것은 모두 임금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그러나 방백으로 있으면서 제대로 검칙하지 못하였으니 유철이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경억은 인피한 후에 한 번도 물러가 물론을 기다리지 않고, 또 어찌 감히 조석윤의 파직을 환수하는 일을 논계한단 말인가. 동료 관원이 한 사람도 없는데 이에 감히 독계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경억의 뜻을 알고자 해서 경들을 부른 것이다."
하니, 윤강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과연 경솔히 한 잘못이 있습니다."
하고, 엄정구(嚴鼎耉)도 아뢰기를,
"그것은 생소한 소치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것이 어찌 무식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물러가 물론을 기다리지 않은 것은 반드시 논계하는 데 급급해서 그런 것이다. 이와 같은 자를 시종의 반열에다 두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하니, 윤강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경억이 제주(濟州)를 안핵할 때 사람들이 모두들 강명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논한 것은 잘못이 없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박서를 논핵한 것도 몹시 놀랍고 이상하다."
하니, 정구가 아뢰기를,
"하찮은 일개 대관이니 단지 체직하여 내치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경억을 체직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윤성 역시 장석지로써 대관에게 비교하였으니 매우 어리석고 외람되다. 이 사람에게 형제가 있고, 이 사람이 혀가 짧아 말을 더듬거리는 자인가?"
하니, 정구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본디 인사(人事)를 모르는 자이다."
하니, 정구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죄가 있을 경우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 주는 것이 불가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10월 29일 계유

상이 하교하기를,
"실록을 수찬하는 것은 한 사람이 전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임금을 모욕하고 법을 농락한 무리 역시 신하로서 비호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전 정언 이경억은 감히 파직만 하는 가벼운 벌을 준 것을 오히려 지나치다고 여겨 성명을 도로 거두기를 청하였다. 임금을 모욕한 자를 내치는 법이 이와 같아야 하는가. 신하의 도리가 땅을 쓴 듯이 없어졌다고 할 만하다. 선왕의 실록을 조석윤 한 사람이 전담하게 하고자 하였으니, 마음먹은 것이 실로 불측한 듯하다. 석윤을 아끼고 떠받들기를 부형과 다름없이 하였으니, 이는 인륜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간사하고 두억시니 같은 무리를 어찌 서울 안에다 놓아둘 수 있겠는가. 먼 변방으로 내쳐서 풍교(風敎)를 오염시켜 더럽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구나 이 자는 당파를 비호하여 공을 세운 용사이니, 더욱더 엄하게 다스려 이러한 습속을 끊지 않을 수 없다. 이경억을 북쪽 변방에 안치하여 국법을 중하게 하고 국가의 기강을 엄숙하게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사사로움을 품고 임금을 속이고, 임금을 모욕하고 법을 농락한 것에 대해서는, 거기에 대한 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잘 살피지 못하고 사사로이 가벼운 벌을 내렸으니, 그 당파들이 업신여기면서 기뻐 날뛰는 것이 마땅하다. 조석윤 등의 죄상을 의금부로 보내 법에 따라 처치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도승지 윤강 등이, 이경억을 안치하고 조석윤 등을 법에 따라 처치하라는 명을 도로 거둘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나의 뜻을 인견했을 때 유시하였다. 무익한 말을 하지 말고 되도록 속히 거행하라."
하였다. 헌부가 【대사헌 이후원(李厚源), 지평 정륜(鄭錀).】  아뢰기를,
"조석윤 등은 적용시킬 만한 율이 없는 듯한데, 지금 이경억의 말 때문에 또 법에 따라 처치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성인은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겠습니까. 듣고 보기에 놀라우니, 성덕에 허물이 될까 염려됩니다. 조석윤을 법에 따라 처치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국가에서 대간을 둔 것은, 그들에게 이목을 맡기고 언로를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조종조로부터 일찍이 논사(論事)를 잘못하였다는 이유로 언관을 죄준 경우는 없었습니다.
지금 이경억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서 일마다 실수를 하였는데, 나이 젊은 신진(新進)인 자가 사체를 잘 모름이 이와 같으니 몹시 애석합니다. 선왕의 실록이 다 찬수되어 가는데 주관하는 사람이 갑자기 파출되게 되었으니, 경억은 한갓 그 일이 지연되는 것만을 염려하였습니다. 이에 석윤이 율을 잘못 적용한 것은 생각지 않고 경솔하게 논계하였으니, 과연 망언을 한 듯합니다. 그러나 말하였다는 이유로 죄를 주면서 북쪽 변방에다 내치기까지 하는 것은, 이것이 어찌 성스런 조정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이경억을 북변에 안치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간원이 【사간 심노(沈𢋡), 헌납 조한영(曺漢英).】  아뢰기를,
"이경억이 논사하면서 전도되고 망녕되게 한 것은 참으로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정(本情)을 따져보면, 성상께서 너그럽게 받아들일 것을 믿고 품은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한다는 의리를 실천하려 한 것에 불과합니다. 성상께서 이를 살피지 못하시고 북쪽 변방에다 안치하라고 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거룩하고 밝은 세상에 이런 전에 없던 잘못된 거조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헌부의 관원을 전에 이미 옥리에게 내렸고 간원의 신하를 지금 또 찬축시켰습니다. 보고 듣기에 놀라우니, 이것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조석윤의 일에 이르러서는, 처음에 대신들에게 물어서 특별히 용서하였는데, 윤성이 논계하자 한 차례 가죄(加罪)하였고, 경억이 구원하려고 힘쓰자 재차 가죄하여 의금부로 하여금 조율하게까지 하였습니다. 석윤의 죄는 전후가 한결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대관의 말로 인해서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성인이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도에 부족함이 있을 듯합니다. 뇌정 같은 위엄을 조금 거두시어 이경억을 북쪽 변방에 안치하라는 명과 조석윤 등을 의금부에서 조율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금부가 이경억을 경성(鏡城)에다 유배하였는데, 상이 하교하기를,
"이경억을 압송해 가는 사람이 만약 지체하면 마땅히 중죄로 다스리겠다. 해당 부로 하여금 엄히 신칙하게 하라."
하였다. 금부가 조석윤을 해주에 유배하고, 남중회(南重晦)를 이천(伊川)에 유배하였는데, 상이 조석윤을 부안(扶安)에다 유배하는 것으로 고치도록 명하였다.

 

상평청이 아뢰기를,
"서울에서 돈[錢]을 통용시키기로 지금 이미 의정하였습니다. 다음달부터는 시중에서 돈을 쓸 것인데, 돈 값어치의 높고 낮음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동이 있습니다. 양서(兩西)에서는 쌀 1되의 값이 돈으로 3문(文)하니, 서울에서도 이에 의거하여 통용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관청에다 납부하는 길을 연 다음에야 백성들이 모두 돈을 사들일 것입니다. 먼저 여형(呂刑)166)  의 속전(贖錢)의 법을 써서 각사에서 죄를 범하거나 금법을 범한 자에게 원하는 데 따라 납속(納贖)하게 하되, 속전(贖錢)의 수량은 태장(笞杖)의 등급에 따라서 바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허통(許通)이나 면천(免賤), 노직(老職), 공명첩(空名帖) 등의 경우도 모두 돈으로 바치는 것을 허락하고, 시장의 모든 물건을 모두 돈으로 사고 팔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돈이 필요한 자는 본청에다 쌀을 바치고, 쌀이 필요한 자는 돈을 바치게 하며, 사사로이 교역하는 자도 아울러 값을 따져 통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물화가 쉬임 없이 유통되어 물가가 오르지 않아 바로 상평창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여러 관서에 분부하소서."
하니, 따랐다.

 

옥당이 【교리 오정위(吳挺緯), 부교리 채충원(蔡忠元), 수찬 정언벽(丁彦璧)·민정중(閔鼎重).】  차자를 올리기를,
"헌부의 관원이 사례를 살피지 못하고 율을 적용한 것이 마땅함을 잃었습니다. 비단 전하께서 노여워하실 뿐만이 아니라 신들 역시 잘못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이경억이 나이 젊은 사람으로서 거조를 전도되게 하여 망녕되이 도로 거두기를 청하였습니다. 그의 처사가 어긋났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임금이 만약 황잡한 것까지 포용해 주는 도량이 없이 분노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있어서, 오로지 뜻 내키는 대로 하면서 조금도 용서하지 않는다면, 임금께서 중도에 지나친 거조를 내리시더라도 누가 뇌정 같은 위엄을 범하면서 자신을 잊고 감히 말하려 하겠습니까.
조석윤에게 비록 착오를 일으킨 잘못은 있습니다마는, 이미 파직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이경억의 망언으로 인하여 위엄을 크게 떨치어 점점 더 확대시켜 죄를 가중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성상께서 예로 신하들을 대우하고 아랫사람을 관대함으로 대해야 하는 도에 어긋남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경억은 사람은 비록 보잘것없으나 직책은 바로 간관입니다. 그의 망녕된 말이 성상의 덕에 무슨 손상이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만약 포용하여 내버려둔다면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황잡한 것까지 포용하는 덕에 감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북쪽 변방에 안치하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하십니까. 재삼 생각하시어 속히 뇌성 같은 위엄을 거두소서."
하니, 답하기를,
"오늘날의 사론(士論)은 괴상도 하다. 죄의 경중은 따지지 않고 명류(名流)에 관계가 있으면 일체 손을 쓰지 못하게 한다. 나는, 이러한데도 그치지 않으면 쥐가 호랑이로 변하는 조짐이 길러질까 걱정이 되어 한밤중에도 일어나 탄식할 뿐이다."
하였다.

 

10월 30일 갑술

채단(彩段) 50필을 해조에 내려 시장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청나라 사람들이 늑매(勒買)한 값에 보충하게 하였다.

 

좌의정 이시백이 차자를 올리기를,
"조석윤 등이 율을 적용한 것이 타당성을 잃었으니 과연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참작하여 이미 파직하라는 명을 내렸으니, 천지 같이 포용해 주는 뜻을 여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리를 알지 못하고 감히 환수하기를 청하였으니, 이경억의 일은 참으로 몹시 전도되고 망녕된 것으로, 비록 중한 죄를 받더라도 애석할 바가 없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임금의 언동은 신중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전후의 성상의 전교에는 신하로서 차마 듣지 못할 말이 있으며, 분노하는 기색이 말 밖에 넘쳐 흐릅니다. 파직하라는 명이 겨우 내렸는데, 곧바로 옥리에게 내리게 하였으며, 전도되고 망녕된 죄에 대해서 북쪽 변방에다 안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대성인(大聖人)이 상대를 포용해 주는 도량에 손상됨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무엇이 불가하기에 지금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지나친 거조를 내리신단 말입니까.
아, 은대와 옥당·양사의 신하들이 어찌 두세 신하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있겠으며, 죽을 때가 가까운 노신이 어찌 두세 신하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있어서, 사설(辭說)을 늘어 놓으면서 전하를 저버리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평온하게 가져 용서하고 헤아려서 속히 조석윤 등을 조율하라는 명과 이경억을 안치하라는 명을 정지시키소서."
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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