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경술
서울에 큰바람이 불고 낮이 밤처럼 어두웠다.
2월 2일 신해
태백이 낮에 나타났다.
이진(李𥘼)을 사간으로, 원만석(元萬石)을 필선(弼善)으로, 박증휘(朴增輝)를 사서(司書)로 삼았다.
상이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영돈녕부사 김육(金堉)이 아뢰기를,
"요즘 천재가 매우 심하여 성상께서 직언(直言)을 구하는 분부를 내리셨는데, 신의 뜻으로는 상소문으로 진달하게 할 필요없이 입시(入侍)하는 신하들이 각자 생각하는 바를 진달하여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책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금의 급선무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백성을 편안하게 한 뒤에야 하늘의 뜻을 기쁘게 할 수 있는데, 전하께서는 오늘날의 백성들이 편안하다고 여기십니까. 영남의 속오군(束伍軍)에게 보인(保人)을 주는 조처는 혁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도의 인심도 모두 불안해하여 대부분 흩어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하니, 상이 답하지 않았다. 김육이 또 아뢰기를,
"그 다음으로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추쇄(推刷)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모든 일은 오래 유지하지 못하여 마치 아이들 장난과 같으니, 이것이 탄식할 만한 일이다."
하였다. 김육이 또 아뢰기를,
"신에게 또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안흥(安興)과 격포(格浦)에 진(鎭)을 설치할 계획을 이미 정하였는데, 신이 일찍이 충청 감사가 되어 안흥의 형세를 익히 본 바로는 실로 성을 쌓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조정이 경솔히 민력(民力)을 사용하려 하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호서(湖西)의 민력이 이미 탕진하여 원망과 고통이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지난번의 지진은 반드시 이에 연유한 것입니다."
하니, 상이 기뻐하지 않으면서 이르기를,
"하는 바 없이 속수무책으로 그냥 있다가 혹 화란이라도 있으면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하였다. 병조 판서 원두표(元斗杓)가 아뢰기를,
"김육이 황해도와 평안도의 추쇄(推刷)를 중지시키자고 청한 것은 신의 뜻도 그러하며, 또한 충분히 민심을 위로하는 한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중지하라."
하였다.
자의(咨議) 윤휴(尹鑴)가 상소하여 사직하니, 너그러이 비답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2월 3일 임자
상이 주강에 나아가 《시전》 사간(斯干)장을 강론하였다. 참찬관 채충원(蔡忠元)이 아뢰기를,
"여왕(慮王)은 포학하여 백성에게 쫓겨나고 선왕(宣王)이 중흥(中興)하여 궁실을 고쳐 지었으니, 이것이 이 시가 지어진 까닭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선왕(宣王)이 겨우 중흥시킬 수 있었는데 또 유왕(幽王)을 낳았으니, 하늘의 뜻을 알 수가 없다."
하였다. 충원이 아뢰기를,
"실로 기수(氣數)에 관계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기수의 설(說)은 군자가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2월 4일 계축
홍명하(洪命夏)를 형조 판서로 탁배하고, 이일상(李一相)을 대사성으로, 곽성귀(郭聖龜)를 장령으로 삼았다. 홍무적(洪茂績)은 정헌(正憲)의 품계를, 신계영(辛啓榮)은 가의(嘉義)의 품계를 더하니, 모두 나이가 80에 찼기 때문이다. 송준길(宋浚吉)을 이조 참의 겸 찬선으로 삼았다.
2월 5일 갑인
태백이 낮에 나타났다.
간원이 【헌납 이시술(李時術), 정언 오두인(吳斗寅)·박세성(朴世城).】 상차하기를,
"근년 이래로 천심(天心)이 편치 않아 꾸짖어 고해줌이 계속 나타나고 흰 무지개의 변고가 또 연초에 일어나니 위망의 형상이 또한 참혹합니다. 신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자로서 언관으로 있으면서 일찍이 한 가지 일이라도 논하고 한 가지 말이라도 진달하여 수성(修省)의 도를 돕지 못함으로써 전하로 하여금 구언(求言)하시게까지 하였으니, 신들은 죽을 죄를 졌습니다. 생각건대 하늘은 저 멀리 높이 위에 있어 말로 곡진하게 경고하지 않으므로 신들은 견문이 적어서 비록 상천(上天)의 재앙이 오늘날의 어떤 일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모릅니다만, 물건에 비유하면 인사(人事)는 형체이고 천재(天災)는 그림자인데 그림자에서 살피면 아득하여 알기 어려워도 형체에서 징험하면 뚜렷하여 알기 쉬우니, 신들은 인사의 잘못을 가지고 진달하고자 합니다.
《서전》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하였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원망하지 않도록 해야 함이 명백합니다. 대저 백성들은 편안하고자 하고 수고로움을 싫어하며 조용함을 좋아하고 동요됨을 싫어합니다. 지금 나라가 불행하여 이같은 어려움을 만났으니 모든 시설하는 것이 비록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온갖 부역을 함께 일으켜 원성이 길에 가득하니 나라의 근본이 쇠약함이 오늘날과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우선 추쇄(推刷) 한 가지 일로 말해보더라도, 수령은 그 명령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죄를 얻게 되는 것만을 면하려 꾀하고 숫자를 많게 하기에만 힘써, 비록 사천(私賤)으로서 그 속에 섞여 들어간 자가 있어도 일일이 분석하려 하지 아니하고, 심지어 어사에게 정변(呈辨)하지 못하게 하기까지 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또 기한을 정해놓고 그 후의 소송 심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세 번 송사하여 판결하는 법과 또한 서로 어긋날 듯합니다. 아, 공천(公賤)을 쇄출(刷出)하는 것은 비록 부득이한 조처이지만 백성의 원망 또한 풀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도감(都監)에게 특별히 명하여, 기한에 구애받지 말고 비록 어사가 조정에 돌아온 뒤에라도 만약 원통함을 품고 소장(訴狀)을 올리는 자가 있으면 다시 상세히 조사하여 명백히 처리하도록 하소서. 그러면 거의 사천(私賤)이 모입(冒入)되는 폐단이 없을 것이고 백성들의 원망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서북(西北)의 삼로(三路)는 사세가 여러 도와 다를 뿐만 아니라 수령도 무관이 많아 백성을 침해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폐단이 다른 도에 비해 더욱 심하다고 합니다. 속히 관찰사로 하여금, 혹독한 형벌을 사용하여 멋대로 집행한 일이 가장 많은 자를 조사하여 즉시 계문하게 하여 중률로 논한다면 여러 읍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을 것이며 변방 백성들의 마음도 크게 잃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전》에 이르기를 ‘형벌을 신중히 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니, 형벌은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명백합니다. 근년 이래로 형벌이 대부분 형평을 잃어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할 바에 법을 따르지 않아 인심이 불만스럽게 여긴 지 오래입니다. 최근의 일로 말하더라도 해조가 정석(丁晳)을 헐장(歇杖)004) 한 것은 다만 엄한 형벌에 곧바로 죽어 성상의 살리기 좋아하는 지극한 덕에 누를 끼칠까 염려해서였는데, 사구(司寇)는 이에 좌죄되어 쫓겨났고 형졸은 이 때문에 곤장을 맞아 죽었습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김유도(金有道) 등으로 하여금 원래 죽을 죄가 아니었는데 잇따라 곤장을 맞다가 죽게까지 하였습니다. 비록 형관(刑官)의 자급을 강등시키라는 명령이 있었으나 이미 죽은 사람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측은히 여기고 경외하라는 훈계를 본받아 멋대로 하는 잘못이 없게 하소서.
또 생각건대 원통한 옥사(獄事)를 심리하는 것은 재앙을 당할 때마다 하는 전례인데, 지금 지방의 여러 감옥에는 비록 너그러이 처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나, 금부와 해조에서는 아직까지 죄를 용서하자는 의논이 없습니다. 마땅히 유사(攸司)로 하여금 전후의 죄적(罪籍)을 모두 가져다가 죄의 경중을 논하지 말고 실정이 용서할 만한 자는 모두 너그러이 처리하게 하여, 성상이 내리신 명령의 은택을 크게 보여주시고 지난날처럼 가벼운 죄만을 풀어주어 한갓 형식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으면,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도에 어찌 도움이 적겠습니까.
《서전》에 이르기를 ‘임금은 간하는 말을 따르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임금이 마땅히 본받아 행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도량이 넓지 못하고 남의 말을 따르는 데 부족하여 아랫사람들의 말이 조금이라도 성상의 마음을 거스르면 그때마다 엄준한 비답에 우레와 같은 위엄을 더하시고 실정 밖의 분부가 간혹 죄에 빠뜨리려는 데에서 나오기도 하여, 큰 경우에는 죄를 받고 작은 경우에는 지방으로 좌천되어 신하들로 하여금 예예하며 따르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 여기게 함으로써 바른 말 하는 것은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 설령 임금의 덕이 날로 실추되고 나랏일이 날로 잘못된다 하더라도 누가 전하를 위하여 뜻을 거슬려가며 간쟁하려 하겠습니까. 생각이 이에 이르르니 어찌 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안으로 정성을 베풀고 밖으로 간쟁하는 신하가 오게 하며, 전하의 뜻에 거슬린다고 성을 내거나 순응한다고 기뻐하지 말아, 충간(忠諫)의 길을 넓히소서.
《서전》에 이르기를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려야 한다.’고 하였으니, 또한 어찌 임금이 마땅히 본받아 행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신들이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영특함이 너무 지나쳐 기뻐하고 성냄이 온당함을 잃어 함부로 꾸짖음이 혹은 재상에게 더해지고 매질이 또한 대부에게 미쳤습니다. 부황(付黃)한 일과 군직(軍職)에 붙이지 말라는 분부의 경우는 이미 선왕의 상법(常法)이 아닌데 전후 계속하였으니, 이는 전하께서 벼슬로 주었다 빼앗았다 하는 것이며 성상께서 신하를 대우하심이 또한 너무 야박한 듯합니다. 신들은 삼가 뜻있는 선비들은 모두 자신을 지킬 생각으로 물러가고 스스로 깨끗이 하려는 무리들은 반드시 조정에 서기를 원치 않을까 염려됩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으로 백성의 법이 될 수 있게 하는 공부에 힘쓰고 아랫사람을 대할 때 공손히 할 것을 생각하는 도리를 다하소서.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지극한 효심이 백왕(百王) 가운데 뛰어나 여러 능침(陵寢)의 배알을 봄가을 모두 폐하지 않으니, 모든 백성과 신하들 가운데 누가 흠앙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지금 능침을 배알하는 예가 마침 재앙을 만난 때에 치뤄지게 되었으니, 신들은 삼가 전하께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신 것인가 염려됩니다. 지난번 수리하는 역사와 풍정(豊呈)의 일은 바로 모후(母后)를 봉양하려는 지극한 뜻이었는데도 모두 특별히 파하여 하늘의 뜻에 응하고 재앙을 소멸하는 소지로 삼았는데, 더구나 능침 배알하는 것을 때에 따라 앞당기기도 하고 물리기도 하는 것에 무슨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잠깐 갔다가 돌아오는 것에 비록 대단한 민폐는 없으나 수많은 말들을 몰며 달리는 것은 아마도 재앙을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하는 도가 아닐 듯싶습니다. 또 옛 사람들은 임금이 재앙을 만난 것을 자식이 아비에게 허물을 지은 것에 비유하였으니, 진실로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기뻐하시게 되기를 바래야하는 것이고 보면 하늘을 감동시키는 도는 오직 정성과 공경을 다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시전》에 이르기를 ‘하늘의 변고를 경외하여 말을 달리지 말라.’고 하였으니, 삼가 전하께서는 다시 재삼 생각하소서.
신들이 삼가 보건대 근래 서울이 흉흉하여 장차 위급함이 조석간에 있을 것처럼 여기는데, 태복시(太僕寺) 입마(立馬)의 조처가 또 이런 때 취해지게 되어 여러 곳을 수색,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한층 소란을 더하였으니, 자못 진정시키는 방도가 아닙니다. 아, 인심의 아름답지 못함이 오늘날보다 더 심한 적이 없어 조정의 거조가 혹 정당함을 잃으면 허실을 살피지 않고 서로 거짓말을 부추겨 원근(遠近)의 전하는 말들이 진정되지 않게 하니, 이는 비록 이미 지난 일이지만 앞으로 오는 일은 경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난번에 나인을 뽑아 들여간 조처는 더욱 혼란스러운 단서를 일으켜 나이가 10세도 되지 않았는데 앞다투어 혼인시키는 경우까지 있어 민간의 모습과 분위기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신들이 삼가 듣건대 이번의 선입(選入)은 그 수가 비록 적으나 액정(掖庭)의 하배(下輩)들이 민가에 출입하며 중간에서 조종한 폐단이 자자하게 전하니, 조사해내어 추궁함으로써 뒷날의 폐단을 막아야 합니다.
아, 이 몇 가지는 오직 성상께서 유념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만, 다스리는 도는 비록 총명함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 운영할 수 없으므로 상하가 협심해야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금의 통론이고 이치상의 필연인데, 오늘날의 조정 신하들 중에 직분을 다하는 사람이 없어 나라를 위해 도모하는 것이 자신을 도모하는 것만 못하고 나라를 염려하는 것이 가정을 염려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에 한마음으로 함께 이루는 아름다움이 없고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이룩된 실제가 없으니, 나라의 형세가 날로 쇠퇴해짐이 바로 이로 인한 것입니다. 진실로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위에서 분발하여 모범을 보이시고 뭇 신하들을 격려하여 각각 그 직분을 다하게 하며, 조치를 취할 때에는 허위를 제거하는 데 힘쓰고 상하간에 성의가 서로 맺어지게 하여 피폐한 정치를 과감히 개혁함으로써 실효를 거두도록 하소서. 그렇게 한다면 오늘날 나랏일이 어찌 구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충직한 말이 매우 간절하여 간신(諫臣)의 체제를 깊이 터득하였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 마음 공부에 힘쓰라는 경계는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조정 신하 중에 직분을 다하는 자가 없다는 말은 실로 현재의 병통을 잘 지적한 것이다. 직분을 다하는 것이 삼사(三司)로부터 시작된다면 어찌 임금이 혼자서 운영하는 걱정이 있겠는가. 그대들에게 깊이 기대하고 있다."
하였다.
상이 조강(朝講)에 나아가 《시전》의 사간(斯干)장을 강론하였다.
2월 6일 을묘
윤집(尹鏶)을 집의로, 서필원(徐必遠)을 교리로, 홍위(洪葳)를 수찬으로, 이일상(李一相)을 예문관 제학으로 삼았다.
필선(弼善) 원만석(元萬石)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옛날의 나라를 일으킨 임금은 기울어져가는 국가를 다스릴 때에 혹은 한마디 말이 부합됨을 이유로 그 사람을 경상(卿相)에 발탁하였으니, 영특한 임금이 세상을 다스림에 묵묵히 마음속으로 궁리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옛적에, 죽은 말의 뼈를 사가지고 오자 천리마가 이르렀고 곽외(郭隗)를 스승으로 삼자 악의(樂毅)처럼 어진 자가 왔으니, 백금(百金)의 보배가 아깝기는 하지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쓸데없는 뼈를 사는 데라도 사용하였고 집을 지어주는 예가 중한 것이지만 찾는 인물이 있으면 이를 위해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도 시행하였습니다.
인정은 일상적인 데에는 덤덤하고 변칙적인 데에는 움직이는 법이니, 똑같이 귀한 벼슬인데도 차례를 기다려 승진하면 심상하게 보고 갑자기 승진하게 되면 일찍이 분발하고 힘을 떨쳐 그 직분에 충실하기를 생각지 않음이 없습니다. 지금은 사람을 임용하는 데 이력만을 근거로 하여 직급을 따라 차츰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하니, 덕이 있는 사람을 발탁 임명하는 본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젊었을 때엔 남이 하는 대로만 따르고 거역하지 않는 데 오로지 마음을 써서 모나게 행동함이 없도록 힘쓰다가 이력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나이도 이미 늙었고 기력도 시들었으니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사람을 쓰는 법은 나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실로 쓸 만한 사람이라면 젊다는 것이 병통이 되지 않고 만약 쓸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늙었다는 것이 또한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한 고조(漢高祖)가 뜻을 잃고 촉(蜀)으로 옮겼을 적에 사람 하나 임용하고 벼슬 하나 제수할 때 그 마음을 다하지 않은 바가 없었을 것인데, 한신(韓信)은 일개 도망친 천한 포로였을 뿐이고 평소 아는 바도 없었으나 오직 소하(蕭何)의 말 한 마디로 단을 쌓고서 대장에 임명하였으니, 그 큰 도량과 뛰어난 계략이 어떠합니까.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무궁한 대업을 수립한 것이 당연합니다.
아, 한 사람에게 상을 주어 온 나라를 모두 따르도록 할 수 있고 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온 나라를 모두 징계토록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쓰는 방도도 이와 같으니, 어찌 반드시 각자에게 특전(特典)을 내린 뒤에야 온 세상 사람을 고무시키는 것이겠습니까.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마땅히 천거한 글 중에 칭찬이 더욱 성한 자 한두 명을 뽑아 곧바로 높은 벼슬과 직급을 주어 성과를 내도록 책임지워야 할 것입니다. 대저 사람은 자처함이 귀중한 것이니, 보통 사람이 되거나 어진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떻게 자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온 세상의 선비로 하여금 분발하고 흥기하여 모두 재능으로 스스로 기약하도록 하는 것이 전하의 손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옛 사람은 인재를 동량(棟樑)에 비유하였습니다. 집을 짓는 자가 재목이 없으면 짓지 못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어진 사람이 없으면 이루지 못하니, 한 소열(漢昭烈)이 공명(孔明)을 얻은 것과 부견(苻堅)이 왕맹(王猛)을 얻은 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한 고을의 땅으로서 적제(赤帝)005) 의 제사를 누리고 혹은 오랑캐의 우두머리로서 천하의 반을 소유할 수 있었으니,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진 사람을 얻지 못하고서 그 대업(大業)을 성취할 수 있었던 자는 없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조정에는 실상을 조사하는 정치가 없고 세상은 화려한 허울을 숭상하여 술자리에 초청하고 쫓아다니는 것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제를 삼고 한갓 형식이나 빈말로 임금 섬기는 밑천을 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입으로는 요(堯) 순(舜)을 말하면서도 손은 청소하는 예절조차 서투르고, 부국 강병에 대해 말하기를 부끄러워 하면서도 세상은 그보다도 못한 매우 쇠란한 곳으로 빠져들며, 관리의 일에 노력하고 전곡(錢穀)에 마음을 쓰는 자가 있으면 따로 구별하여 노예처럼 여깁니다. 풍속이 이와 같으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습니까."
하니, 상이 너그러이 비답하였다.
2월 7일 병진
찬선 송준길이 상소하여 사직하였는데, 그 대략에,
"신이 삼가 생각건대 옛적에 오래도록 잘 다스려지고 또 편안히 하는 도는 세자의 보양(輔養)을 급선무로 삼았으니, 그 뜻이 참으로 깊고 범연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건대 우리 세자께서는 실로 황천(皇天)과 조종(祖宗)이 사랑하는 바이고 신민(臣民)과 만성(萬姓)이 희망을 걸고 있는 바입니다. 신이 지난해에 또한 일찍이 세자의 서연(書筵)에서 한 번 모셨었는데, 옥같은 자질이 어려서부터 드러났고 문사(文思)가 일찍부터 통달하였으니, 나라의 억만년토록 끝없는 경사가 참으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전야(田野)로 물러와서는 꿈에서도 다행으로 여기며 시골의 부로(父老)들을 대할 때마다 진진하게 자랑을 하였는데, 이제 얼마나 학문이 성취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선왕께서 가르치시던 법이 모두 경전에 실려 있으니, 상상컨대 하루에 세 번 문안드릴 때에 성상께서 부지런히 가르치시는 내용과 마음으로 전하는 묘리는 외인(外人)들이 감히 알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날로 새로워지고 날로 성취되어 덕이 빛나고 훌륭해지는 공부는 진실로 법가(法家)의 필사(拂士)와 보부(保傅)의 가르침에 힘입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궁료(宮僚)를 증설한 것이 실로 옛날을 본받고 오늘을 표준삼아 돕고 인도하려는 뜻에서 나왔다면 더욱 마땅히 황상(黃裳)이 말한 바의 제일인자와 같은 당세의 어진이를 뽑아 덕성을 훈도하고 도의에 점차 스며들게 하는 것으로 책임지워야 합니다. 그런데 곧 남들보다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를 외람되게 윗자리에 앉히려 하시니, 신이 남의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비록 걱정할 것이 못 되나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백성을 승복시켜야 하는 도리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나의 아들은 학력이 넉넉하지 못하고 덕업(德業)이 성취되지 못하였으니, 항상 군자들이 나를 위해주지 않으려 할까 염려했다. 민간의 사대부들도 오히려 스승을 가려 아들을 가르치는데 더구나 나라의 근본인 세자이겠는가. 그대가 올라오기를 내가 날마다 기다리고 있으니 번연히 마음을 고쳐 지극한 뜻에 부응하라."
하였다.
2월 9일 무오
강원도에 기근이 들었다.
전 판서 조경(趙絅)이 포천(抱川) 고을에 물러가 살면서 병 때문에 상의 부름에 나오지 못하니, 상이 하교하였다.
"조경이 오래도록 시골에 있으며 병으로 부름에 나오지 못하니, 내가 매우 딱하게 여긴다. 본도(本道) 감사로 하여금 음식물을 넉넉히 주어 내가 늙은 신하를 잊지 못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라."
2월 10일 기미
영돈녕부사 김육(金堉)이 상차하여 영남의 속오군(束伍軍)에게 보인(保人)을 주는 법을 파하고 또 안흥(安興)에 성 쌓는 역사를 중지하라고 청하니, 상이 따르지 않았다.
2월 11일 경신
유경집(柳景緝)을 승지로 삼았다.
2월 15일 갑자
조한영(曺漢英)을 대사간으로, 심세정(沈世鼎)을 교리로 삼았다.
경상도에 기근이 들어 상평청(常平廳)의 곡식을 풀어 구제하였다.
2월 17일 병인
태백이 낮에 나타났다.
2월 18일 정묘
홍명하(洪命夏)를 호조 판서 겸 지경연으로, 이일상(李一相)을 대사헌으로, 남용익(南龍翼)을 부교리로 삼고, 김익희(金益熙)를 형조 판서로 탁배하였다.
2월 19일 무진
홍문관이 【교리 민정중, 부교리 서필원, 수찬 이석, 부수찬 이단상·이경휘.】 상차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 재앙을 만나 놀라고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편치 않으시니 하늘을 경외하고 스스로를 닦는 도가 지극합니다만, 어찌하여 수개월 내에 태사(太史)가 재앙을 보고함이 잇따르고 그치지 않습니까. 하늘의 뜻은 아득하여 추측할 수 없고 민심은 결속되지 않은 채 더욱 흉흉하니, 신들은 이에 대경 실색하여 놀라고 의혹스러움이 한없습니다. 어찌 우리 전하의 어진 덕과 염려하는 성의로서 갑자기 상천(上天)에게 거절당하고 아랫 백성들에게 버림받게 된 것이겠습니까. 인애(仁愛)한 하늘의 경계가 절실하고 사랑으로 받드는 백성들의 바람이 깊은 것을 더욱 밝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처하는 방도가 또한 어찌 단정히 팔짱을 끼고 깊은 궁궐에 앉아 세월만 보내면서 재앙이 스스로 없어지길 바라는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크게 경동(警動)하고 크게 진작(振作)하기를 상 고종(商高宗)과 주 선왕(周宣王) 처럼 한 뒤에야 재앙이 상서로 바뀌어 중흥의 대업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근본을 말한다면 오직 전하께서 도(道)로써 몸을 닦고 인재를 얻어 임용하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몸을 닦는 도는 학문을 강론하는 것이 제일 먼저이고 인재를 얻는 계책은 어진 사람을 부르는 것이 급선무이니, 성청(聖聽)을 열어놓고 치도(治道)를 널리 묻는 것이 또한 오늘날 해야 할 일입니다.
요즘 옥체가 편찮으심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경연을 중지하였고 구중 궁궐이 깊숙하여 군신간이 서로 막혔으니, 실로 부시(婦寺)와 편폐(便嬖)의 걱정이 있습니다. 봄 추위가 풀리지 않은 이때에 비록 의례대로 경연을 열지는 못하더라도 때때로 따뜻한 방에 나아가 강관(講官)들을 불러 접견하고 혹은 《경서》 혹은 《사기》에 대해 자연스레 물으신다면 성상께서 학문에 힘쓰고 정치에 부지런하시는 성의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다시 군신이 드물게 대한다는 탄식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성상께서 직언을 구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여러 신하들의 소장은 끝내 한갓 겉치레가 되어버리고 있으니, 대소 신하 중 진달하고자 하는 소견이 있는 자로 하여금 모두 개강하는 날에 면대를 청하여 함께 들어와 강론이 끝난 뒤 나아와 아뢰도록 하소서. 이에 말이 쓸 만하면 의논하여 시행하고 쓸 만하지 못하면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시 거론하지 말아, 악한 것은 숨겨주고 착한 것은 드러내주던 순임금의 덕을 따른다면, 다만 말하는 자가 다 말할 것을 생각하여 아랫사람들의 실정이 상달될 뿐만 아니라 성상께서 평소에 개연(慨然)히 행하려고 하신 것이 이로 인하여 조짐이 될 것입니다.
대저 어진이를 부르는 일로 말하면 바로 전하께서 일찍이 마음을 두어오신 바이지만, 생각건대 예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있는 선비는 벼슬로 인한 얽매임을 경솔히 받으려 하지 않고 그 출처(出處)에도 정론(定論)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깊이 궁중에 거하여 일찍이 그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다만 한두 사람의 칭찬으로 벼슬을 주고 그가 분주하게 스스로 오기를 기다리며, 그 선비도 임금의 뜻을 알지 못하고 갑자기 스스로 지키던 지조를 버리고서 명예를 차지하고 관직을 담당합니다. 벼슬길에 나오고 나서 위로는 임금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아래로는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은거하여 뜻을 구하고 세상을 피해 벼슬을 사양했던 본심(本心)이 어디에 남아 있겠습니까. 이것이 정자(程子)가 ‘나아오게 하여 살피기를 먼저하고 그 다음에 벼슬을 주어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된 까닭입니다. 전하께서는 먼저 진출할 만한 길을 열어놓고 다음으로 그 능력을 살피고 끝으로 임용하는 내실을 다하소서. 이 두 가지는 비록 수신(修身)이 앞서는 것이라 하지만 수신하는 도는 또한 반드시 어진이를 얻은 뒤에야 더욱 진전되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 재변이 혹심하여 밤낮으로 걱정되지만 감기가 들어 신하들을 접견하지 못하여 매우 답답하였는데, 지금 차자의 말을 보니 나의 마음이 후련하다. 어찌 유념하지 않겠는가. 신하들을 대면하여 진달하게 하라는 말은 더욱 절실하니, 즉시 시행해야 하겠다. 정원으로 하여금 분부하여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2월 21일 경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국가의 경비가 부족한 것에 대해 언급하니, 병조 판서 원두표가 아뢰기를,
"신은 안으로 서울부터 밖으로 모든 읍에 이르기까지 1호(戶)당 베[布] 1필씩을 징수하면 군국(軍國)의 비용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은 듯하지만 이미 호패법(戶牌法)이 없으니, 필시 균일하게 거두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2월 23일 임신
상이 필선 원만석(元萬石)을 불러보았다. 상이 이르기를,
"지난번 그대의 상소를 보고서 매우 가상히 여겼다. 그대의 생각을 모두 진달하라."
하니, 아뢰기를,
"지난날 특별히 천거하도록 한 조처는 뜻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 중 한두 사람을 자급을 뛰어넘어 임용한다면, 너나없이 본받게 하는 일이고 또한 일을 이루는 근본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에서 사람을 임용함에 자급에 따라 승진시키는 것은 통정의 체제를 잘 알고 관리의 실무를 잘 익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조종(祖宗)의 법을 경솔히 고칠 수 없으나 지금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건대 별도의 조처가 있어야 할 듯하다."
하니, 만석이 아뢰기를,
"신의 뜻 또한 어찌 조종의 법을 다 고치려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그 중 가장 뛰어난 자를 선발하기를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하였다.
2월 24일 계유
상평청에 명하여 동·서 활인서(活人署)의 병자들에게 식량과 반찬을 주도록 하였다.
2월 25일 갑술
상이 사헌부 집의 윤집(尹鏶), 장령 권집(權諿), 지평 김우석(金禹錫)·홍주삼(洪柱三) 등을 불러보았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옛 규정으로는 승정원과 홍문관의 관원이 아니면 경연에 입시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대들이 비록 대각에 오래 있었으나 또한 일찍이 얼굴을 알지 못하는 자도 있으니, 군신간에 성의가 돈독하지 못한 것은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요즘 천재지변이 놀랄 만큼 참혹스러우니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겠는가."
하니, 윤집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외람되게 대각에 있으니, 진실로 생각한 바가 있으면 어찌 성상의 물음을 기다린 뒤에 진달하겠습니까."
하고, 곧 법금(法禁)을 행하기 어려운 폐단에 대하여 진달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헌부의 관리들이 법을 집행함에 흔들리지 않고 또 자주 체직되는 폐단이 없으면 서울의 백성들이 반드시 두려워 복종할 것이다. 요즘은 앉은 자리가 따뜻해지기도 전에 곧바로 체직시키니, 법이 어찌 시행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윤집 등이 나가려고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대들은 나의 이목(耳目)이니 각자 직분에 힘써 나의 바람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2월 27일 병자
상이 사간원 헌납 이시술(李時術), 정언 오두인(吳斗寅)·박세성(朴世城) 등을 불러보았다. 상이 이르기를,
"지난번 그대들의 차자를 보았는데 매우 가상했다."
하니, 시술 등이 아뢰기를,
"재변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다만 성상께서 위에서 걱정하는 것뿐이겠습니까. 조정에 있는 신하들도 또한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신들이 차자를 올린 것은 실로 구구한 충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재주도 없고 학식도 천박하며 시의(時宜)를 알지 못하여 끝내 성상의 마음에 들지 못하게 하였으니, 신들은 실로 매우 황공합니다. 요즘 성상께서 지성으로 구언하시는데, 대소 신하들 중에 진언하는 자가 하나도 없으니, 이는 진실로 신하들의 책임이지만 또한 조정에서 채용하는 실제가 없는 데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대 말이 참으로 옳으니, 이는 내가 마땅히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하였다. 시술이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내사복시의 말을 때때로 후원에서 조련시킨다고 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말을 달리는 자가 어떤 사람이며 또한 성상께서도 친히 임하여 보셨습니까. 이처럼 위태로운 때에 군마에 마음을 쓰는 것이 실로 안 될 것은 없으나, 다만 실제적인 일에 무익하고 보고 듣는 자들을 놀라게 하니, 신은 그리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헛말이 아니다. 낮은 환관으로 하여금 조련시키도록 하고 때때로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지금 그대의 말을 들으니 도움이 많다."
하였다.
이조 정랑 김수항(金壽恒)이 상소하기를,
"아,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시대인들 없겠습니까마는 어찌 요즘처럼 참혹한 적이 있었겠습니까. 천인(天人)이 감응(感應)하는 즈음은 그 이치가 지극히 미묘하고 그 효험이 지극히 빠릅니다. 옛날 사기에 실린 바와 근래의 일 가운데 징험할 수 있습니다. 명백히 어긋나지 않음이 마치 부절(符節)이 꼭 맞는 것과 같으니, 어찌 매우 두려워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 조심조심 두려워하여 특별히 풍정(豊呈)과 수리하는 일을 파하고 친히 옥음(玉音)을 내려 정직한 말을 구하셨으니, 하늘의 뜻에 응하는 실상에 있어 지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 보고 아래로 살펴도 오히려 지난 일과 다름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천심(天心)이 감동하지 않아 꾸짖음이 날로 더하고 민심이 흉흉하여 거짓말이 날로 일어나 마치 불측한 화가 조석간에 박두한 듯함이 있으니, 목격하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통곡하며 눈물을 흘릴 만합니다.
아,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데, 신은 전하께서 다만 한두 가지를 중지시키고 폐지한 것으로서 스스로 만족히 여겨 다시 수성(修省)의 도에 뜻을 더하지 않고 정령이나 조치를 내는 데 있어 낡은 습관을 따르고 그럭저럭 처리하는 잘못을 면치 못할까 염려됩니다. 옛날 임금으로서 비상한 재앙을 만나고 위급한 시기를 당한 자는 반드시 크게 경동(警動)하고 변혁하여 장차 망하려는 운명을 지속시키고 이미 전도된 형세를 회복시켰으니, 어찌 일찍이 오늘날처럼 태만스레 팔짱을 끼고 망하기를 기다린 경우가 있었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총명과 예지가 백왕(百王) 가운데 뛰어나서 부지런히 힘쓰며 정신을 가다듬어 선치(善治)를 도모한 것이 이제 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치의 효과는 더욱 막막하고 타락한 정치는 날로 불어나 지금에 이르러 위급함이 박두하려 하니 그 까닭이 또한 무엇이겠습니까. 신은 학식이 얕고 평소 시무(時務)에 어두워 비록 어떤 일이 선치를 해치고 어떤 폐단이 마땅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구구하게 천 번 생각하여 겨우 하나를 알 수 있는 어리석은 신에게도 또한 평일에 걱정한 바가 없지 않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성상께서 학문을 강구하심은 비록 부지런하나 덕을 닦아 향상시키는 데에 보탬이 없고, 성상의 뜻은 비록 섰지만 물욕에 흔들림을 면치 못하며, 어진이를 구하는 것이 간절하지만 정성과 예의가 극진하지 못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지극하지만 침탈이 자주 일어나며, 건도(乾道)가 날로 높아져 상하가 서로 막히고, 언로(言路)가 두절되어 아첨이 풍습을 이루며, 사기(士氣)를 손상시켜 세상은 명절(名節)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형법을 엄하고 각박하게 하여 사람들이 수족을 둘 곳이 없게 한 것이니, 이 여덟 가지는 모두가 절실하고도 위급한 폐단입니다. 신은 정성껏 조목조목 진달하여 전하께서 채택하기를 기다리고자 합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자주 경연에 나아가 유신(儒臣)들을 접견하고 경사(經史)를 토론하며 치도(治道)를 자문하니 학문을 강구하심이 부지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상의 자질이 고명하고 지나치게 뛰어나 경연에 임하여 강독할 때에 마음을 비우고 뜻을 낮추려 하지 않고 항상 빨리 달리며 섭렵하려는 뜻이 있으니 격물 치지(格物致知)와 성의 정심(誠意正心)의 공부에 있어 자신에게 절실하고 또 체험해보는 실상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학문에 힘쓴 공이 적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의 찌꺼기가 아직 정화되지 않았고 기뻐하거나 노여워할 때에 혈기(血氣)가 항상 이겨 일을 조처하고 명령을 내는 것에 의리의 원칙을 잃는 것이 많습니다. 제왕(帝王)의 학문은 필부(匹夫)와 다릅니다. 만약 한갓 말단적인 장구(章句) 해설만을 일삼고 본원(本源)의 바탕에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하루에 세 번 경연을 열고 만 권의 책을 강론하더라도 또한 몸과 마음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삼가 성상의 뜻을 엿보건대 어려운 시기에는 사공(事功)이 급무이므로 성의 정심의 학문에는 힘을 쓸 겨를이 없다고 여기시어, 이러한 종류의 의논을 들을 때마다 고루한 선비의 케케묵은 말로 보아 마치 실정에 어두워 행하기 어려운 듯이 여기시니, 아, 이것이 어찌 국가의 복(福)이겠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도에는 본말(本末)이 있으니, 성의 정심이 근본이고 사공이 말단입니다. 어찌 그 근본을 버리고서 말단을 다스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설령 이 당연한 도를 버려두고 공리(功利)를 추구하여 일시적인 부강(富强)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 다스림은 오히려 귀할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근본이 혼란한데 말단이 다스려진다는 것은 절대 그런 이치가 없습니다.
옛적의 제왕들은 비록 위급하고 전복되는 시기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동심 인성(動心忍性)과 진덕 수업(進德修業)에 잠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지치(至治)를 이루게 된 원인입니다. 그러나 임금의 한 몸은 안으로 가무와 여색의 즐거움이 있고 밖으로 복잡한 사무를 처리해야 하니,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살피는 공부에 백배 노력하지 않는다면 혼란에 빠지지 않는 자가 드물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학문을 강구하여 이치를 밝히고 마음을 바로 잡아 근본을 단정히 하여 사욕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여 끊임없는 순일함에 이르기를 기약하소서.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비운(否運)을 만나 쇠란을 부흥시키기에 뜻을 열중하고 권세와 기강을 모두 잡아 퇴폐한 정치를 개혁하려 하시니, 세운 뜻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동안의 편안함에 익숙하고 사사로운 물욕에 얽매여 혹은 적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소홀히 여겨 자못 태평스레 헛되이 세월만 보내던 때와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공주의 저택을 잇따라 짓는데 매우 사치스럽게 하기를 힘쓰며 토지와 노복을 증식하고 산택(山澤)을 멋대로 점거하는 것이 날로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이 어떤 때라 여기시고 궁가의 생산을 위한 계획을 하십니까. 만약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이 편안하다면 궁가가 그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집이 넓지 못하고 토지와 노복이 풍족하지 못함을 근심하겠습니까. 혹 그렇지 않아 백성을 병들게 하고 나라를 해쳐 보전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찌 홀로 그 부귀를 보존하겠습니까.
나인을 선발하여 들이는 것은 비록 상례(常例)라고 하지만 해마다 수색하여 모집하는 것이 양가(良家)에까지 미치고 액정서의 하인배들이 이를 빙자하고 조종하는 폐단을 조금도 막지 않아 민간이 소란하고 혼인시키느라 분분하니, 아름답지 못한 모습과 분위기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삼가 듣건대 경연의 신하들이 진달하여 도로 돌려줄 것을 청하였으나 전하께서 처음에는 본래 이런 일이 없다 전교하시고 이어 숫자가 적다고 윤허를 아끼셨다 합니다. 옛날 송 인종(宋仁宗)은 처음에 왕덕용(王德用)이 바친 여자를 받아들여 곁에 두고 심부름을 시키다가 왕소(王素)의 한 마디 말에 눈물을 가리고 내보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며 미담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어찌 이를 아깝게 여겨 이에 수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논하십니까. 오늘날 비록 궁녀를 내보낸 덕을 본받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나인이 부족한 것을 가지고 근심하실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급암(汲黯)이 무제(武帝)에게 ‘마음 속에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는 인의(仁義)를 베푸는 척한다.’고 말하였는데, 신도 ‘전하께서는 외물(外物)로 인한 누를 벗어버리지 못하면서 대업(大業)을 이루려고 하시니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겠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더욱 분발하고 노력하여 대업을 이루겠다는 뜻에 더욱 힘쓰며, 궁가(宮家) 입안(立案)의 규정을 혁파하여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내탕(內帑)에 사적으로 저축한 재물을 꺼내어 군국(軍國)을 넉넉하게 하소서. 나아가 마음을 고혹시키고 정치를 해치는 모든 것을 일체 제거하여 끝없는 대업의 기반으로 삼으소서.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조정에 임하여 상석(上席)을 비워놓고 옆자리에 앉아 어진 인재 얻기를 생각하며 미천한 사람을 밝게 드러내고 재야의 어진이들을 널리 구하시니, 어진이 구하는 것이 부지런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의가 쉽게 해이해지고 은례(恩禮)에 부족함이 많아 간혹 처음처럼 하지 못한다는 탄식이 있습니다. 지난번 초야의 여러 선비는 【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를 말한다.】 전하께서 진실로 일찍이 두터이 예우하고 신용하셨습니다. 불행하게 시세가 크게 잘못되어 그들로 하여금 낭패를 당하고 돌아가게 하여 전하께서 처음 가지셨던 뜻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상의 마음이 스스로 저상되어 정성과 예의가 점차 해이해졌고, 뭇 어진이들도 또한 지난날의 일로 경계를 삼아 다시 이 세상에 뜻을 두지 않으므로써 전하의 조정에 어진이의 자취가 영영 끊기게 되었으니, 비록 전하의 본뜻이 아니라 하더라도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조정에 조심스러운 바가 있어 비록 직무를 맡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방편적으로 대우할 길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성으로 타일러 서울 안에 불러두고서 식량을 대주고 때로 자문을 구한다면, 조정에 크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온 나라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앞에서 언급한 어진이들은 스스로를 지키려는 뜻이 비록 견고하더라도 자신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 인륜을 어지럽히는 부류가 아니어서, 초야로 멀리 은둔한 것은 그들의 본래 소원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정성과 예를 곡진히 더하여 나올 때까지 계속 부르신다면 어찌 끝까지 피할 리가 있겠습니까.
최근 궁료(宮僚)들의 건의에 따라 특별히 지방에 있는 여러 선비들을 불러 장차 세자 보도(輔導)의 임무를 맡기려 하였으므로 서울과 지방 사람들이 눈을 씻고 서로 경축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거의 큰 선비와 일사(逸士)들이 한 조정에 이르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진선(進善)의 의망 단자를 되돌려 보내라는 명령이 내리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여 모두들 ‘전하께서 어진이를 박대함이 이와 같다.’고 말하며 원근(遠近)에 전파하니 관계된 바가 작지 않습니다. 신은 부름을 받았던 여러 사람들이 또한 이로 인하여 진출하려던 마음이 꺾이게 될까 염려됩니다.
지난번에 듣건대 전하께서 경연 신하들이 진달한 바로 인하여 이유태(李惟泰)를 부르려는 뜻이 있었다고 하는데, 며칠 되지 않아 도리어 이런 조처가 있었으니 한결같아야 할 마음이 어쩌면 이와 같이 자주 변합니까. 이로 말미암아 보면 전하에게 본래 어진이를 좋아하는 성의가 없고 말과 예모로만 억지로 힘쓴 것이었을 뿐입니다.
어진 사람의 출처(出處)는 시기의 가부(可否)를 헤아려 거취를 정하는 것이니, 만약 임금의 부름이 성심에서 나오지 않고 거조가 인정상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이라면 비록 편안한 수레와 폐백이 길에 잇따라도 끝내 구차스럽게 그 뜻을 굽히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등용하는 즈음에 취사(取舍)가 전도되고 공론을 따르지 않으며 전에 등용한 사람이 지금은 물러간 줄도 모르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함께 길러 호오(好惡)에 정해진 것이 없으니, 과연 인정(人情)을 승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매번 인재를 얻기 어렵다고 탄식하시는데, 지금 인재가 참으로 적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생각으로는 비록 어진 인재가 옛날처럼 많다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또한 등용하지 못하실 것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진출시킬 때에는 무릎 위에 올려놓을 듯하다가 물러가게 할 때에는 마치 깊은 연못에 떨어뜨리듯이 하며 정직한 자는 물리치고 용감한 자는 내쫓아, 조석윤(趙錫胤)처럼 충직한 자로서도 끝내 내쫓겨 죽었고 유계(兪棨)처럼 재능과 학식이 있는 자로서도 영영 폐고(廢錮)된 사람이 되었으며, 그 밖의 등용할 만한 자로서 오래 죄적(罪籍)에 실린 채 버려두고 수용하지 않은 자가 한둘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등용하고 버리는 것이 이와 같으니 비록 어진 인재가 있다 하더라도 누가 조정에 서고자 하겠으며 임용되는 것을 즐거워하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유현(儒賢)을 높이고 믿어 더욱 정성과 예를 다하며 인재를 수습하여 어진이의 등용길을 넓히기에 힘써 이들이 함께 조정에 나아오는 아름다움을 이루소서.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백성의 고통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 차례 측은히 여기는 교서를 내려 기황(饑荒)을 구제하고 늘상 올리던 물품들의 공급까지 중지하도록 하셨으니, 백성을 사랑함이 지극하지 않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은혜가 두루 미치지 못하고 부역이 번거로워 떠돌거나 곤궁한 백성들 가운데 위에 원망을 돌리는 자가 실로 이미 많습니다. 이런 때에 많은 부역이 아울러 일어나 백성들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들의 원망을 생각하지 않으며 농사철을 빼앗아가면서 구박하고 독촉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부득이한 일이니 어느 겨를에 백성을 구제하겠는가라고 여기시어 혹 백성들의 폐단을 언급하는 자가 있으면 듣기 싫어하여 배척하고 시요(時要)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에 서울과 지방에서 일을 맡은 신하들은 다투어 자기 능력의 자랑만을 일삼고 차라리 백성을 학대할지언정 감히 상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여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꺼리는 것이 되었으니, 예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고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사전에 대책을 준비하는 것은 나라의 급선무인데 더구나 지금처럼 위태롭고 혼란한 때에는 조두를 치며 포악한 자를 막지 않을 수 없으니, 진실로 일을 점차적으로 해나가고 백성들을 농사철을 피해 부려 소란스러운 데 이르지 않게 한다면 누가 불가하다고 하겠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성을 쌓고 조련시키는 일과 무기와 화약을 만드는 역사가 일시에 모두 거행되어 여러 도가 모두 그러한 상황입니다. 영장(營將)을 설치하는 데 이르러서는 그 폐단이 수없이 많습니다. 군사를 불러 모아 쉬지 않고 연습시키니 한 몸에 두 가지 부역을 진 백성들의 경우는 농사를 폐하게 되고 관문(官門)에서 오래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굶주리고 고달퍼 처자와 서로 보전하지 못하니 떠들썩하게 반란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설령 기예의 정예로움이 지난날보다 백배가 된다 하더라도 인심을 잃음이 이와 같다면 창졸간 난리에 임하여 윗사람을 친히 여기고 그를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난 겨울에 호서(湖西)를 왕래하며 연로(沿路)의 각읍들을 직접 보았는데 한편으로는 무기를 수리, 제조하고 한편으로는 화약을 구워 만들며, 내포(內浦)에 성을 쌓느라 승병을 징발하여 사찰들이 거의 한꺼번에 텅 빌 정도였고, 영장(營將)의 순찰이 매월 실시되어 주현(州縣)들이 음식과 거마의 제공으로 인해 지쳐 있었습니다. 지방을 지키는 관리는 죄책을 두려워하여 기한에 맞추기 위해 분주히 다니면서 힘을 다하고 요량하는 것은 모두가 백성을 부리는 일뿐이고, 백성을 어루만지고 보호하려는 정치는 도리어 도외시합니다. 또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조정의 명령에 핍박되어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민정(民情)을 살펴보니 서로 걱정하며 떠들썩한 모습은 마치 기름불에 놓여 있는 것 같고 눈을 흘기며 하는 참소는 국가를 원수처럼 봅니다. 신이 보고 들은 바는 몇 읍에 불과한데 오히려 이와 같으니, 그 나머지는 추측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구중 궁궐에 깊이 거하여 멀리 백성들의 표정을 살피지 못하고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정사에 힘쓰며 갖는 일념(一念)은 오직 성지(城池)가 수리되지 않을까 무기가 정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거듭 경계하는 것이고 또 이렇게 하는 것이 계책이라고 여기고 계십니다. 나라의 근본은 한번 흔들리면 다시 견고해질 수 없고 민심은 한번 흩어지면 다시 모을 수 없는데, 비록 훌륭하고 튼튼한 성지(城池)와 견고하고 날카로운 갑병(甲兵)이 있다 하더라도 전하께서 누구와 더불어 지키며 누구와 더불어 싸우실지 신은 모르겠습니다.
영남의 속오군(束伍軍)에게 보인(保人)을 주는 것은 더욱 백성들을 병들게 하는 큰일입니다. 그런데 한갓 액수 채우는 일에만 급급하여 태반이 거짓 기록입니다. 당초에 관찰사가 표창 받는 총애를 독차지하였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온 도내의 백성들이 그 침탈의 폐해를 부당하게 받고 있어, 공로는 자신에게 돌리고 피해는 백성에게 미치니 나라를 위해 도모하는 충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소 군정(群情)이 모두 그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는데 유독 전하께서만 믿지 않으실 뿐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이 폐단을 고치지 않으면 영남의 백성들이 장차 보존되지 못하리라 여겨집니다.
보장(保障)의 기반은 반드시 인심을 얻는 것으로 우선해야 합니다. 옛적에 조양자(趙襄子)가 도적을 피하여 달아날 때에 장자(長子)와 한단(邯鄲)을 버리고 굳이 진양(晋陽)으로 달아났으며, 성(城)과 부엌이 물에 잠겨 위태로움이 극에 달하였으나 백성들에게 다른 뜻이 없었으므로 적을 섬멸하고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이를 이룩하게 된 방도는 호수(戶數)를 줄여 평소에 백성의 힘을 여유있게 해준 데 불과할 뿐입니다. 만약 백성의 힘을 피곤하게 하여 성(城)을 완성시키고 백성의 피와 땀을 짜내어 창고를 채운다면 성곽이 비록 완성되고 창고가 비록 가득 차도 도리어 원망을 불러들일 소지가 되어 믿을 만한 것으로 삼기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의 보장(保障)으로는 강도(江都)와 남한(南漢)보다 나은 곳이 없습니다. 군사를 훈련시키고 식량을 비축하며 성을 수축하는 것은 실로 먼 장래를 경영하는 계책에서 나온 것인데, 백성을 동원하고 역사를 일으켜 많은 원망을 불러들인다면 위급할 때 힘을 얻는 것이 과연 조양자의 진양(晋陽)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이른바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 한 것과 ‘몽둥이로 견고한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무기를 든 적을 쳐부술 수 있다.’ 한 것이 어찌 일부러 헛말을 하여 후세 사람을 속인 것이겠습니까.
추쇄(推刷)의 조처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니 말할 필요는 없으나 나라에서 얻은 것은 공천(公賤)이고 잃은 것은 민심이니, 재물은 모였으나 백성이 흩어진 것이 어찌 걱정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추쇄를 조사하고 문서를 점검할 때에는 일가와 이웃까지 침해하여 몽둥이와 채찍으로 극심하게 매를 치니, 노약자를 이끌고 피해 나온 자들이 길에 가득했으며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자까지 있었으니, 그 원한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각읍의 수령은 엄한 사목(事目)에 겁을 내어 오직 많이 얻기만을 힘써 빼앗긴 사천(私賤)과 섞여 들어간 양민(良民)이 한이 없었는데, 어사의 사정(査正)도 또한 어떻게 모두 공명 정대했다고 보장하겠습니까. 지금 기한을 결정하여 호소할 길을 끊으니, 이 법을 끝내 변통하지 않는다면 먼 곳의 소민(小民)들 가운데 반드시 원통함을 품고 풀지 못하는 자가 많을 것입니다. 아, 민심의 험함이 두려운 것은 적국보다 더 참혹하니, 신은 아마도 나라의 걱정이 남과 북의 외세에 있지 않고 국내의 사정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자신의 상처를 살피는 듯한 마음을 미루어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우선 동원시키는 역사를 늦추어 백성들의 힘을 펴게 하고 힘써 진정시키는 계책을 강구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풀어줌으로써 기필코 백성이 견고하여 국가가 편안해지는 데에 이르게 하소서.
언로(言路)의 트임과 막힘은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나라를 망하도록 하는 길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간언(諫言)을 막음으로 인한 화(禍)보다 심한 것이 없었습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본래 수용하는 도량이 부족하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병통이 많이 있으며 남의 말을 들을 때에 일찍이 마음을 비우고 살펴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대간의 말이 성상의 뜻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번번이 하찮게 여겨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한 빛을 보이며 흑은 조어(措語)상의 조그마한 잘못을 들추어 준엄하게 꾸짖고 혹은 다른 일의 잘못을 이유로 엄하게 꾸짖으며 혹은 그것이 자기 당파를 비호하는 것이라 의심하고 혹은 남의 비밀을 들추어내는 말이라고 미워하여 억누르고 꺾어 그 소견을 다 아뢰지 못하게 합니다. 아랫사람들이 진달한 것에 이르러서는 비록 이치에 합하고 행실에 이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귀넘어들어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아, 마치 물에 돌을 던진 듯 바람이 귀에 지나는 듯이 여길 뿐이 아니어서 정직한 기운을 없애고 꺾어 대각이 쓸쓸해지도록 하였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토록 극심하지는 않았었는데, 나날이 심해져 점차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김홍욱(金弘郁)과 홍우원(洪宇遠)의 일이 있은 이후로 언로(言路)가 그로 인하여 막혀서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말하는 것을 꺼려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이를 가르치고 형은 그 아우를 경계하며, 말없이 따르는 것을 세상 살아 나가는 훌륭한 방책으로 삼고 아첨하는 것을 임금 섬기는 요령으로 삼으며 대각에서 벼슬하는 것 피하기를 마치 함정을 피하듯 하니, 이는 모두 전하께서 간언(諫言)을 막은 잘못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신은 이로부터 임금과 신하 사이에 비록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하는 간신(奸臣)이 있더라도 전하를 위하여 말해주려는 자가 없을까 염려되는데, 생각이 이에 미치니 기가 막힙니다.
김홍욱이 생각한 바를 망령되이 진달한 것은 다만 직언(直言)을 해도 죄를 주지 않는다는 교서를 믿었던 것일 뿐인데 전하께서 이미 그 사람을 죽였고 또 그 자손들을 금고(禁錮)하였으니, 아, 또한 너무 심합니다. 홍욱의 죽음은 조정의 동료들로부터 민간의 백성과 천인들까지도 슬퍼하고 가엾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으며 원근(遠近)에서 보고 듣는 자들은 모두 성조(聖朝)에 직언하는 자를 죽였다는 이름이 있다 하니, 이들이 어찌 모두가 홍욱에게 사사로움을 두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성상을 위하고 언로를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전하께서 홍우원에게 끝내 죄를 주지 않아 겉으로는 잘못을 감싸주는 도량을 보이셨으나, 그를 공격한 자는 모두 표창 발탁되었고 그를 구하려고 한 자는 모두 죄를 입게 되었으니, 죄를 주지 않은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가령 우원에게 죄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죄를 주어야 할 것이고, 만약 그에게 죄를 줄 수 없다면 또한 타인에게까지 연루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조처는 아마도 중정(中正)의 도리가 아닌 듯싶으니, 신은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전하께서 해마다 재변을 만나 몇 차례나 직언을 구하셨는데, 분부를 간곡히 하여 직언하도록 인도하였고 또 망령된 말도 죄를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정스레 포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소를 올렸다는 소리는 한번도 듣지 못하였고 간혹 있더라도 가치 없는 말로 글을 지어 형식적으로 책임이나 메꾸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어찌 꼿꼿한 말과 정직한 의논을 한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모두 전에 경험한 바가 있어서 임금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직언을 구한 후에는 더욱 교서에 응하는 사람이 끊겨 윤음(綸音)이 끝내 겉치레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낙심천만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 된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번 간원에서 올린 차자에는 절실한 의논이 많이 있었는데, 전하께서는 다만 빈말로 칭찬만 하고 끝내 한 마디도 시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심리(審理)하는 일에 있어서도 성상의 하교가 자못 화평함이 부족하여 간관으로 하여금 그 직위를 불안하게 여겨 다투어 서로 인피하게 하였습니다. 재변을 만나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행하는 규정인데, 간관이 진달한 바가 그 사이에 무슨 다른 뜻이 있기에 그 뜻을 모르겠다는 하교까지 하셨습니까. 대저 대간을 경시하는 것은 바로 전하의 본래 병통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한 바에 대하여 억측하여 믿지 않음이 이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충성으로 간하는 자를 오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집에 거하면서 말하는 것이 선하지 않으면 천 리 밖의 사람들도 멀리한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가까이 있는 자이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더욱 성상의 도량을 넓혀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말며 마음을 평온히 하고 이치를 살펴 간하는 말을 물 흐르듯이 들어주소서. 그리고 사사로움을 품은 것이라 억측하지 말고 정직을 팔아먹는다고 먼저 의심하지도 말며 직분에 벗어난다 깊이 꾸짖지 말고 귀에 거슬린다고 급히 성내지 마시어, 너그러이 용서하고 기꺼이 받아들여 언로를 활짝 열어놓으소서. 또 전후 바른 말을 하다가 죄를 받은 사람은 모두 죄명을 씻어주고 서용하여 선성(先聖)이 간언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아름다움을 본받으소서.
임금과 신하가 만나는 것은 비유컨대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천지가 서로 통하지 않으면 만물이 생겨나지 않고 군신이 서로 믿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는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덕을 잡음이 광대하지 못하고 많은 의심을 제거하지 못하여, 신하들을 대할 때에 성의와 신용으로 대하지 않으면서 위엄과 형벌로 위협하고 벼슬로 조종하여 속박하고 달리게 함이 마치 견마(犬馬)를 다루는 것과 같으며, 한 마디 말이라도 성상의 뜻에 합하지 않으면 갑자기 노여움을 더하여 실정 밖의 교서에 신하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비록 높은 지위의 대신에게도 윽박지르고 함부로 꾸짖고서 다시 돌아보지 않으며 불러내고 쫓아내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십니다.
또 신하를 존중하고 임금을 억누르는 습관이 있다 하여 온 조정 신하를 의심하시는데, 신하를 존중하고 임금을 억누르는 것은 바로 신하로서의 지극한 죄이며 멋대로 날뛰는 권세 있는 간신으로서 왕위를 찬탈하려는 마음이 있는 자입니다. 오늘날의 조정 신하들에게 과연 이런 습성이 있다면 전하께서 마땅히 왕법(王法)으로 다스려야 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러한 죄명을 온 조정 신하에게 억지로 씌워 사람들마다 모두 불안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로써 건도(乾道)는 날로 높아지고 신하의 뜻은 날로 위축되어, 아랫사람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의구심을 쌓아 그림자를 굽히고 다니고 발을 움추리고 서게 되었으며, 성상의 분부가 내림에 조금이라도 평상시와 다르면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에 한 가지 일을 논하려면 먼저 성상의 뜻을 헤아려 이 말은 반드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서 마침내 말을 못하고 중지하며, 혹은 경연의 자리에 들어가서도 오직 실언이나 망발을 하여 상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하여 생각한 바가 있어도 감히 꺼내지 못하고 말할 것이 있어도 감히 다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물러나와서는 지붕을 바라보고 길게 탄식하며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임금의 잘못과 국가의 이해를 마치 진(秦)나라의 파리함을 월(越)나라가 상관없이 바라보듯 하니, 성심으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여 자신을 잊는 자가 과연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신하들을 성의와 믿음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신하들도 전하를 고식적으로 섬기는 것이니, 상하의 막힘이 이와 같고서 나랏일을 이룩할 수 있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자내(自內)에서도 또한 날마다 정사를 보는 규정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정원의 신하에게 명하여 직접 들어와 일을 아뢰게 하여 조종(祖宗)의 옛 법을 회복한다면 아랫사람들의 뜻이 이로 말미암아 성상께 전달될 것이고 여러 정사도 또한 막힘이 없을 것이니, 환관들이 가까이 모시며 문자(文字)로 수응(酬應)하는 것과 어찌 같이 놓고 논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성심을 열어 보이고 구중 궁궐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 아랫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우러러 볼 수 있게 하며, 예의로 부리는 아름다움을 극진히 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걱정을 제거하는 데 힘써, 화목한 마음으로 함께 이루는 복을 이룩하소서.
사기(士氣)는 나라의 원기(元氣)이니, 북돋아주어야지 저해해서는 안 되며 세워주어야지 꺾어서는 안 됩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선비를 대하는 도는 자못 편안하게 해주는 아름다움이 부족하여 북돋아주고 세워주는 것에는 힘쓰지 않고 도리어 꺾고 저해하여 혹은 경박하다 물리치고 혹은 교만하다 꾸짖습니다. 비록 많은 선비들의 공론이라 하더라도 엄한 말로 물리치고 뒤따라 꾸짖어 인재를 즐겁게 육성하는 훌륭함을 다시 바랄 수 없게 되었고, 사림(士林)의 삭막함이 마치 겨울을 지낸 초목과 같아 싹틀 기운이 조금도 없으니, 어찌 크게 걱정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지난번 호남 유생들의 일은 비록 과격하였지만 뜻은 성인을 존중하는 데 있었으니, 한미한 유생들의 분별없음을 어찌 깊이 죄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는 일개 무관을 사적으로 옹호하여 끝내 온 나라의 공론을 막고 기필코 성상의 뜻을 펴고야 마시어 사방이 이를 듣고 놀랐으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나라가 비록 매우 위태로워도 오히려 힘입을 바가 있어 갑자기 망하지 않는 것은 일맥(一脉)의 사기(士氣)가 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지시켜 주던 일맥마저 모두 끊긴다면 나라도 또한 따라서 망할 것입니다. 나라에 사기가 없으면 정론(正論)이 유행하지 않고 정론이 유행하지 않으면 선악(善惡)에 분별이 없고 시비가 뒤섞이어 사람들이 모두 명절(名節)을 버리고 빠른 속도로 금수와 같은 곳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오늘날 사기가 꺾인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세도(世道)가 날로 퇴폐하고 청의(淸議)가 소멸되어, 사대부의 사이에서도 명절이 무슨 일인지 몰라 방종하고 비루하여도 다시 단속함이 없고 습속(習俗)이 서로 물들어 심상하게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며, 조정에서는 선을 표창하고 악을 징계하는 조처가 없고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끊겼으니, 관중(管仲)이 이른바 ‘예의 염치가 펴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 것에 불행히도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를 구제하는 방도는 절의를 숭상하고 염치에 힘쓰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는데, 성상께서는 아랫사람을 이끄실 때에 명절(名節)로써 힘쓰게 하지 않고 다만 벼슬로 매어놓으며, 분주하게 순종하는 신하는 좋아하고 나오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가기를 쉽게 여기는 신하는 좋아하지 않으며, 예예하는 소리는 듣기 좋아하고 바른말 하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십니다. 이에 따라 아첨하고 영합(迎合)하는 풍습은 날로 성하고 결백하고 충직한 선비는 날로 멀어지게 하셨으니, 이는 좋아하고 미워함이 어그러진 전하의 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그 피해가 이에 이르른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무엇을 가지고 일세(一世)의 염치를 면려하겠습니까.
어떤 한 가지 일이 있을 때마다 뭇 의논이 격발하면 전하께서는 사론(士論)이라 지목하여 매우 미워하고 심하게 배척하니, 비록 그 논의가 반드시 다 옳지는 않으나 마땅히 그 일에 의거하여 잘못을 분별해야 하고 사론이라 하여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과연 사론이라면 전하께서 마땅히 도와서 서게 해주시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텐데 어찌 이와 같이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이 이르기를 ‘절의에 목숨을 바칠 사람은 마땅히 임금의 뜻을 거슬려가면서도 간쟁하는 사람 중에서 구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오늘날 조정 신하 가운데 평상시에도 이미 그와 같이 간쟁하는 사람이 없으니, 난리를 당하여 절의에 목숨을 바칠 사람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대저 벼슬과 명예는 사람들이 크게 욕심내는 것이고 임금의 앞에서 잘못을 간하는 어려움은 뇌정(雷霆)을 범하고 용린(龍鱗)을 건드리는 데에 비교되기까지 하는 것이니, 혹 이에 용감하게 나아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기절(氣節)은 반드시 남보다 크게 뛰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옛적의 제왕(帝王)들이 물욕에 흔들리지 않고 겸손하며 직간하는 선비를 존중하고 한갓 권세에 붙고 아첨하는 것을 충성으로 여기지 않은 이유입니다.
선유(先儒)의 말에 ‘사람들은 동한(東漢)이 망한 것은 당고(黨錮)가 재촉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찍이 동한에 만약 여러 군자가 없었다면 그 망함이 더욱 빨랐을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이후로 나라 형세가 위태롭자 교활한 자들이 모두 일어나 임금의 자리를 엿보았으나 감히 즉시 취하지 못한 것은, 또한 당시 군자들이 유지한 힘이었다.’ 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광무(光武)가 중흥하여 덕과 의리가 있는 자를 존중하고 은거한 어진이들을 귀하게 여겨 사기(士氣)를 격려하였으므로 절의 있는 선비들이 흥성하여 자연히 탐욕이 있는 자를 청렴하게 만들고 나약한 자를 서게 하는 기풍이 있었는데, 당고의 화가 일어나자 거의 다 죽였으므로 건안(建安)006) 이후에는 중국의 사대부가 염치와 절의를 훼손시켜 다만 조씨(曹氏)만을 알고 한(漢)나라가 있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007) 이는 위에 있는 사람의 배양하는 도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니, 임금은 이 뜻을 알아야만 합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사기를 도와 서게 하고 절의를 숭상하여 온 세상의 선비로 하여금 격앙하고 흥기하도록 하여 세도(世道)를 유지하는 근본으로 삼으소서.
형벌이란 정치를 보조하는 도구이고 본래 상용(常用)하는 도가 아니기 때문에 성제(聖帝)와 명왕(明王)은 일찍이 형벌을 신중히 하고 가엾이 여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즉위한 이래로 퇴폐한 풍습을 진작시키려고 하여 형벌과 법을 엄하게 해서 일세(一世)를 이끄셨습니다. 이에 사소한 잘못과 작은 죄라도 그때마다 중벌에 처하며, 포승으로 묶고 매를 치는 벌이 위로 경사(卿士)에게까지 미쳐 감옥이 항상 가득하고 고문이 낭자하니, 죄의 경중을 막론하고 억울한 기운이 음양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옛말에 비록 ‘어지러운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중벌을 사용한다.’고 하였으나, 이는 다만 극심한 자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어찌 사람마다에게 모두 중벌을 사용한다는 것이겠습니까. 미치광이 같았던 진(秦)나라가 혹독한 형벌을 자행한 잘못은 실로 논할 것도 못 되고, 한 선제(漢宣帝)와 같은 경우에도 형벌을 가혹하게 하고 죽이기를 좋아하여 한나라가 마침내 이 때문에 쇠퇴하였으니, 엄한 형벌이 나라에 무익한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유성(鄭維城)이 정석(丁晳)에게 형벌을 완화시킨 것은 다만 성상의 살리기 좋아하시는 덕을 우러러 본받으려 한 것이고 선비를 죽였다는 이름이 성상께 끼쳐질까 두려워하여 그런 것이니, 그 본뜻을 따져보면 임금을 사랑함으로 인한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신하로서 시골의 일개 선비를 위하여 우리 임금을 속인 자라 하겠습니까. 전하께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갑자기 멋대로 위복(威福)을 조작했다는 것으로 죄안을 만들어 잡아가두고 벼슬을 빼앗았으며, 형리(刑吏)와 옥졸(獄卒)까지도 그 일에 좌죄되어 억울하게 죽었으므로 그 임무를 대신 한 자가 이와 같은 것을 보고 형벌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니, 김유도(金有道) 등이 죽게 된 것이 괴상할 것 없습니다. 유도의 무리에게 비록 증오할 만한 습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본래 사형당할 만한 죄도 아니었고, 더구나 그들은 비록 미천하지만 선비라는 이름을 지녔는데 잇따라 형을 받고 죽었으니, 어찌 성덕(聖德)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한 번은 무겁게 형벌을 가하고 한 번은 가볍게 형벌을 주는 것은 유사(有司)도 기준을 삼기 어려운 것이니, 아마도 전적으로 형관(刑官)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을 듯합니다. 노온서(路溫舒)가 이른바 ‘공평하게 형벌을 시행하는 자에게는 후환이 많기 때문에 옥리(獄吏)가 사람을 죽이려 한다.’고 한 것이 바로 요즈음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최근 수령 가운데 죄로 구속된 자가 매우 많아 감옥에 가득하고 심문을 많이 받았는데, 장오(贓汚)에 관련된 사건은 논할 것 없고 그중 추쇄(推刷)를 잘하지 못한 일과 화약을 만들지 못한 일의 경우는 설령 죄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그 일에 적용할 만한 법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여러 차례 형을 받고서도 사면되지 못하고 있으니, 전하께서 법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중도에 맞았다고 하겠습니까.
신은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 법과 형벌을 준엄하게 하는 것은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데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강이 바로잡히는 것은 오직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어 공정한 도를 밝히는 데에 달려 있으니, 한갓 혹독한 정치만을 숭상해서는 안 됩니다. 전하께서 장률(贓律)을 엄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전후에 처형되어 죽은 자는 다만 외롭고 지원하는 사람이 없는 권영(權榮)과 김흥조(金興祖)뿐이고 한없이 탐욕을 부린 황헌(黃瀗)과 김여수(金汝水)의 경우는 법을 굽혀가며 편벽되게 옹호하여 시종 법망(法網)에 구멍이 뚫렸으니, 이는 장률이 공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전하께서 군법(軍法)을 엄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전에는 마병(馬兵) 한 사람이 잘못으로 군법(軍法)을 범하자 사형에까지 처해졌는데, 후에는 총융청(摠戎廳)의 신하가 【구인기(具仁墍)를 말한다.】 처분한 것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대로 두고 묻지 않았으니, 이는 군법이 공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옥사(獄事)를 공평하게 하고 형벌을 삼가하여 왕도 정치를 본받고, 법을 사용함에 반드시 공정하게 하여 기강을 세움으로써 형벌을 쓰는 일이 없는 형정(刑政)에 이르도록 하소서.
아, 오늘날의 폐단은 낱낱이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이 여덟 가지 이외에 어찌 말할 만한 것이 없겠습니까마는, 망령된 생각으로는 곤직(袞職)의 잘못과 시정(時政)의 하자로 이보다 큰 것이 없다고 여겨지니, 이를 고칠 수 있으면 나머지는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유(先儒)가 이르기를 ‘이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제거할 수 있는 약이다.’ 하였으니, 전하께서 이 여덟 가지 폐단을 알지 못하신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그 잘못을 아셨다면 확실하게 분발하여 옛것을 고치고 새로운 것 도모하기를 마치 바람과 우레처럼 빠르게 하고 해와 달이 일식과 월식 이후 회복되는 것처럼 하신다면 재앙을 상서로 바꾸고 비운(否運)을 태운(泰運)으로 돌리는 기틀이 진실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아, 큰 걱정은 능력을 계발해주고 많은 어려움은 나라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세도(世道)가 낮아짐을 하늘의 운수라 돌리지 마시고, 행하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더욱 줄기차게 수양하고 은인자중함으로서 천명이 영원하기를 비는 방도로 삼으소서. 그렇게 된다면 오늘날의 위태로운 국세(國勢)와 성난 천심(天心)이 전하의 덕을 옥처럼 훌륭하게 만들어 뒷날 대업(大業)을 이룰 기반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니, 상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상소를 비국에 내렸다. 비국이 회계하여 모두 상의 재가를 청하니, 상이 답하기를,
"상소 중의 말은 모두 유념할 만한데, 이른바 ‘형벌을 너무 엄하고 각박하게 사용한다.’는 말은 참으로 몹시 놀랍다. 금오(金吾)의 죄수 중 장오죄(贓汚罪)에 관련된 이외에는 모두 형벌을 중지토록 명하고 법에 의거하여 처리하라. 정석(丁晳)과 이만영(李晩榮)은 직첩(職牒)을 도로 돌려주라."
하였다. 김수항의 상소는 수백 마디나 되는데 상의 잘못을 말한 것이 많고 나머지는 모두 당시의 병폐를 잘 지적하였으나, 상이 따른 바는 다만 죄수를 의결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뜻을 보여주고 꾸짖지 않으니 사람들이 "근래에 드문 일이다."고 하였다.
2월 28일 정축
이재(李梓)를 사간으로 삼았다.
통신사 조형(趙珩), 부사 유창(兪瑒), 종사관 남용익(南龍翼)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상이 불러보고 위로하여 말하기를,
"해외에 사신으로 갔다가 1년이 지나 돌아왔으니 아픈 곳들은 없는가?"
하니, 조형 등이 배사(拜謝)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관백(關伯)은 어떠한 사람이던가?"
하니, 조형 등이 아뢰기를,
"나이 겨우 16세이고 성품 또한 어둡고 용렬한 듯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일본이 사신들을 우대한 것은 전적으로 그대들이 사신의 임무를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하니, 조형 등이 아뢰기를,
"이는 성상의 위덕(威德)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신들이 무슨 힘을 썼겠습니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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