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17권, 효종 7년 1656년 11월

싸라리리 2025. 12. 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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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병오

함경 감사 민응협(閔應恊)이 치계하기를,
"육진(六鎭)의 형세는 남관(南關)027)  과 달라 목화(木花)가 생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 매년 유지의(襦紙衣)를 나누어 지급하니 실로 이는 훈훈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많은 곤궁한 백성들에게 두루 공급하기는 어려운 형세입니다. 곤궁한 백성들이 목면 얻기를 원하는 것이 어린아이가 어미를 그리워하는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해조로 하여금 목면을 넉넉하게 보내도록 하여 변방의 백성이 몸을 가리는 도구로 삼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11월 3일 정미

이응시(李應蓍)를 도승지로, 정유성(鄭維城)을 대사헌으로, 남노성(南老星)을 대사간으로, 오두인(吳斗寅)·홍여하(洪汝河)를 정언으로, 이재(李梓)를 보덕으로 삼았다.

 

영의정 정태화가 상소하기를,
"신이 간원에 회계할 때에 생각하기를, 이는 바로 지난 날에 이미 진달한 일로 애초 말 외에는 다른 의논이 없다고 여기고, 이것으로 말을 만들었습니다. 신이 잘못 요량한 것으로 인하여 동료 재상이 사직하기까지 하였으니, 신의 마음 불안하기가 다시 어떠하겠습니까. 신이 글을 잘 구사하여 논한 바를 칭찬함으로써 그의 곧은 기개를 드날리게 하지 못하였으니 배척이 닥침은 진실로 마땅합니다. 다만 간관의 말은 바로 탄핵입니다. 그런데도 멍청하게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다면 후일에 신을 논하는 자들이 틀림없이 기탄(忌憚)이 없고 염치(廉恥)가 없다는 것으로 신의 죄안(罪案)에 보탤 것이니, 신이 무슨 말로 자신을 해명하겠습니까. 마침내는 국가의 체면에 해로움이 있고 명기(名器)에 욕을 끼치게 될 것이니 어찌 신 자신의 사사로운 두려움거리가 될 뿐이겠습니까. 신의 직임을 삭탈하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경의 이 말은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신의 체모는 자연 자잘한 관리와 같지 않다. 대체(大體)를 보존하도록 힘써야 주석(柱石)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필이면 뭇소인들에게 화를 내면서 발끈하여 떠나기를 구하겠는가. 경은 모름지기 나랏일을 생각하고 빨리 출사해서 도를 논함으로써 조야(朝野)의 소망에 부응하도록 하라."
하였다.

 

11월 4일 무신

우의정 심지원(沈之源)이 또 상소하여 사직하니, 상이 승지를 보내어 유시하였다.

 

11월 9일 계축

이무(李袤)를 필선으로, 권시(權諰)를 장령으로, 권대운(權大運)을 집의로, 윤문거(尹文擧)를 이조 참의로, 조한영(曺漢英)을 대사성으로, 김수흥(金壽興)을 설서로 삼았다.

 

11월 10일 갑인

상이 옥당의 강관(講官)을 소대하여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독하였다. 강독을 마치고 사조(辭朝)하는 수령을 불러 보았다.

 

11월 11일 을묘

상이 사조하는 수령을 불러 보았다.

 

11월 13일 정사

상이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대사헌 정유성(鄭維城)이 아뢰기를,
"민유중의 말이 비록 중도에 지나쳤다 하더라도 성상께서 일단 대각에 두셨는데 어떻게 갑자기 뭇소인이란 등의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이 끌고 들어간 것도 포용하는 아량이 없는 것입니다."
하니, 대사간 남노성(南老星)이 아뢰기를,
"왕의 말은 한 번 나가면 네마리가 끄는 수레도 뒤쫓기 어렵습니다.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닥칠 일은 오히려 조심해서 할 수 있습니다."
하고, 교리 이경억(李慶億)이 아뢰기를,
"민유중의 말이 진실로 지나칩니다. 지나치지만 용납할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입니다."
하고, 부호군 민응형(閔應亨)이 아뢰기를,
"임금의 도리는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하늘에 대응하기를 성실함으로 하지 않고 백성을 부리는 데 있어 그 도리를 상실하였습니다. 하늘의 재변이 닥치는 것은 모두 사람이 불러들이는 바이며, 재변이 있는데도 그 반응이 없는 경우를 신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화란이 닥칠지 모르는데 대각은 입을 봉한 채 말을 하지 않고 재상은 일을 다잡아 아니하고 날짜만 보내니, 앞으로 국가가 어느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지난 해에는 동해에 얼음이 얼고 올해에는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으며, 그 밖에 낮이 어둡고 태백성이 나타난 변고와 성묘(聖廟)에 우레가 친 재해가 겹겹으로 출현하였으니, 이 무슨 좋지 않은 조짐입니까. 전하께서 자전을 위하여 크게 토목의 역사를 일으키셨는데, 비록 천 칸의 넓은 집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이 곤궁해서 난리를 일으키려 생각한다면 전하께서 혼자 즐길 수 있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머리가 허옇게 센 노신이 와서 간절한 충성심으로 진달하니 내가 의당 깊이 생각하겠다."
하였다.

 

11월 14일 무오

김체건(金體乾)을 경상 좌수사(慶尙左水使)로, 허동립(許東岦)을 남병사(南兵使)로 삼았다.

 

11월 19일 계해

오정원(吳挺垣)을 보덕으로, 민정중(閔鼎重)을 교리로, 윤경(尹絅)을 공조 판서로, 이원로(李元老)를 충청 병사로 삼았다.

 

11월 20일 갑자

이만웅(李萬雄)을 교리로, 이경억(李慶億)을 수찬으로 삼았다.

 

11월 22일 병인

간원이 아뢰기를,
"국가의 크고 작은 관직은 각기 관장하는 바가 있으니 간혹 과오(過誤)를 범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 담당하여 규명하고 바로잡는 관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근간에 수진궁(壽進宮)의 종을 죽게 한 사건을 이유로 형조의 관리를 내수사가 형법대로 죄를 결정하도록 곧바로 청하기를 마치 법사(法司)가 규찰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내관(內官)이 법례(法例)를 뛰어넘어 마음대로 외조(外朝)를 침해하는 것은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니니 그 조짐을 자라게 해서는 안됩니다. 해당 내관을 파직하도록 명하시어 뒷날의 폐단을 막기 바랍니다."
하였다. 여러 번 아뢴 뒤에야 따랐다.

 

11월 23일 정묘

최온(崔薀)을 장령으로, 박세성(朴世城)을 지평으로, 채유후(蔡𥙿後)를 대사간으로, 남노성(南老星)을 이조 참의로, 이단상(李端相)을 수찬으로, 안후열(安後說)을 문학으로 삼았다.

 

전 군수 이문주(李文柱)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삼가 생각건대 오늘의 사세(事勢)는 열 가지 두렵게 여길 만한 것이 있습니다. 조정이 바르지 못한 것은 두렵게 여길 것이 못되고 성상의 뜻이 안정되지 못한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백료(百僚)가 게으른 것은 두렵게 여길 것이 못되고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아첨하는 풍습이 크게 성해지는 것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충성스런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법령이 무너진 것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기강이 허물어진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벼슬자리가 외람된 것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풍도(風道)가 땅을 쓴 듯 없어진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백성들이 원망하고 시름하는 것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병폐가 번거롭게 일어나는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창고가 텅빈 것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경상 비용을 낭비하는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적국(敵國)이 업신여기고 거만하게 구는 것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변경의 방비를 허술하게 하는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군사가 적고 나약함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장수가 병법을 모르는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하며, 기계의 성능이 부족한 것은 염려할 것이 못되고 군사들이 익숙하게 연습하지 않는 것이 두렵게 여길 만한 것입니다. 신이 말한 바 염려할 것이 못된다는 것은 정말로 염려할 것이 못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두렵게 여길 만한 것을 두렵게 여긴다면 염려할 것이 못되는 것은 정말로 염려가 되지 않겠지만, 두렵게 여길 만한 것을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면 염려할 것이 못되는 것도 실제로는 큰 염려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후하게 비답하였다.

 

11월 26일 경오

전남 감사        조계원(趙啓遠)이 상소하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연달아 재변이 있어서 전교를 내려 구언(求言)한 것이 한두 차례에 그치지 않았으므로 전후로 신하들이 경계를 진달하고 계책을 올린 것도 이미 많았습니다. 신이 비록 용렬하고 비루하긴 하지만 염려하고 아끼는 정성이 어찌 혼자만 남에게 뒤지겠습니까만 앞서 한 마디도 우러러 진달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 돌아보건대 말이 오활하여 모자람을 돕기에는 부족하고 계책이 졸렬하여 적용하기에 부족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모호하게 머뭇거리며 한갓 부끄러움만 절실했습니다. 그간에 제신의 상소와 차자를 가만히 보니 말과 계책이 절실하고 지극하다고 말할 만합니다. 그런데 널리 운용하는 덕이 날마다 더 진취되었다는 것이 들리지 아니하며, 시행하며 조처하는 방법이 날마다 더 좋아졌다는 것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늘의 견책과 노여움은 더욱 잦아지고 백성들의 곤궁하고 초췌함은 더욱 심해지니, 신은 진실로 두렵고 의혹되어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묻기를 좋아함이 비록 간절하다 하더라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임이 미진한 바가 있어서입니까. 아니면 널리 채택하기를 비록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다스림을 도모함이 더러 그 방법을 잃어서입니까.
전하께서는 인성(仁聖)하시어 효도하고 우애하는 행실을 근본으로 하고 거기에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덕을 보태서, 음악과 여색 및 사냥을 즐겨함이 없으며, 넓고 원대한 계책을 가지고 밤낮으로 힘써 행하면서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지극히 공정하고 분명하게 하여 조금이라도 덕을 상실하지 않아 이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고 이 백성을 부유하게 하려고 생각하여 모든 법도가 다 바르고 모든 절목이 다 펼쳐졌으니, 신이 전하의 뜻을 가만히 살피건대 아주 아름답고 융성해서 역대 왕들보다 뛰어나 온 나라의 신민이 감탄하며 기뻐하고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상서를 내리지 아니하고 재앙을 내리기를 이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이는 필시 성심(聖心)이 비록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치에 시행함이 진선하지 못해서 민심이 따르지 않고 아래에 있는 자가 불편해서 그럴 것입니다. 하늘이 어떻게 말을 하겠습니까. 오로지 재앙과 상서로 길흉을 보이는데 하늘이 우리 전하를 이와 같이 인애하시니, 이는 전하께서 두려워하고 조심하며 계책을 바꾸어 천심을 따라야 합니다.
대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목수가 재목을 다듬고 악공이 악기를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목수가 아무리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규구(規矩)가 정밀하지 않으면 방형(方形)과 원형(圓形)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다듬는 방법은 반드시 우선 그 기구를 예리하게 하며, 악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악기가 정밀하지 못하면 음률(音律)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연주하는 요령은 반드시 그 줄을 우선 고르는 것입니다. 임금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백성이 불편하게 여기면 이상적인 정치를 이룰 수 없으니 정치하는 도리는 반드시 백성의 마음을 따르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민심은 물과 같아 따르면 편안하고 거스르면 반발하는데, 반발하며 따르지 않고 어기면서 화합하지 않으면 비방하여 원망하게 되고 답답해져 재앙이 되는 것으로, 이는 이치와 형세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은 심원하고 도리는 오묘하니 신의 어리석음으로서는 무슨 일을 실수하여 이런 재해를 초래했으며 무슨 일이 감응되어 이런 이변이 있는 것인지 감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고금을 두루 관찰하건대 변고는 헛되이 발생하지 않으니 어떻게 몹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백성을 낳고 임금을 세웠으니 임금의 직분은 백성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덕교(德敎)와 예악(禮樂), 정령(政令)과 형벌(刑罰), 성지(城池)와 군민(軍民) 등 모든 문무(文武)에 관계된 설비는 모두 백성을 보호하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보위하고 외적의 침략을 막는 전술도 여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하늘에 국가의 운명을 오래도록 바라는 방법도 여기에 근본한 것이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백성을 보호하면서 왕노릇한다면 누구도 대적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다스리는 도리를 논하는 자는 반드시 ‘백성에게 어질게 하고 사랑하며, 백성을 어루만지고 기르며, 백성을 가르치고 편안하게 하며, 백성을 보호하고 백성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말하였으니, 어질게 하고 사랑하며 어루만지고 기르며 가르치고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다한 연후에야 백성들이 생업을 보전하며 그 생활을 즐겁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이 이와 같기 때문에 그 마음을 따른 뒤에야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대체로 백성의 생활은 아주 미약합니다. 경작하고 길쌈하여 입고 먹기가 해마다 넉넉하지 않습니다. 세금이 무거우면 굶주리게 되고 부역이 번거로우면 고달프게 되는데, 일단 굶주리고 고달프게 되면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령을 시행함이 매우 사리에 합당하고 크게 국가에 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몸을 수고롭게 하거나 재산을 손상시키게 되면 어리석은 백성들은 불쾌한 마음을 품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평소에 피해만 있고 어지러운 때를 당해서도 보탬이 없이 한갓 백성을 고달프게 하는 도구라면, 비록 성(城)의 높이가 10장(丈)이고 양식 쌓인 것이 언덕과 같다 하더라도 마침내 위급한 즈음에 어떻게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조 양자(趙襄子)가 말하기를 ‘백성의 힘을 피곤하게 해서 완성했고 백성의 기름을 짜서 채워놓고는 또 목숨을 바쳐서 지키게 한다면 그 누가 나와 함께 하겠는가.’ 하였으니, 양자는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위급한 즈음에 잘 보전하여 전화위복이 되었고 힘을 피곤하게 하거나 백성의 기름을 짜내지 않고서도 그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성지(城池)를 잘 보전하였습니다. 지금 국가에 일이 많아 백성들이 어깨의 짐을 내리고 쉬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팔도의 민정을 신이 두루 알지 못하지만, 호남에 대해서는 신이 근심을 나누라는 명을 받았고 직무가 바로 관찰(觀察)하는 것이므로 백성의 힘이 감당하지 못하고 백성의 뜻을 인도하지 못하는 데 대하여 삼가 자세히 보고 충분히 들었습니다. 신이 어찌 감히 가슴속에 우려를 숨긴 채 군부(君父) 앞에서 진달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를 다스리고 정치하는 방법은 태평할 때 어지러워질 것을 염려하고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으며, 미리 대비한 뒤에 수립되고 수고한 뒤에 편안하게 되는 법이니, 국가의 대사는 비록 조금 민심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대사를 폐할 수는 없습니다. 군정(軍政)을 준비하는 것은 외적의 침략을 막는 것인데 외적의 침략을 막는 것은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니, 지금 군대를 훈련시키고 기계를 정교하게 하는 것은 실로 국가의 먼 앞날을 염려하여 그만둘 수 없는 바로서 많은 백성이 약간 고생한다 하더라도 돌아볼 것이 없습니다. 지리적인 불편을 살피지 않고 민력이 감당하지 못함을 염려하지 않은 채 억지로 눈앞의 원망을 거둬들이면 반드시 뒷날의 보탬도 없어 백성들이 미워하기를 죽는 곳에 나아가는 것과 같이 여기니, 지금의 산성(山城)이 그런 것입니다. 신이 자세히 논하겠습니다.
본도에는 산성이 세 군데가 있으니 적상(赤裳)·금성(金城)·입암(笠巖)입니다. 적상은 깊은 산골의 뭇산봉우리 사이에 있으며 하늘이 만들어 놓은 험지로 사람이 오를 수 없는데 단지 한쪽에 좁은 길이 있어 겨우 발을 옮겨 놓을 수 있으니, 참으로 가파르고 끊어진 듯한 지역입니다. 그러나 성안에 우물이 넉넉지 않아 수천의 병마가 여러 날 주둔한다면 식량이 떨어지기도 전에 반드시 물이 먼저 고갈될 것입니다. 관방(關防)할 지역도 아니어서 견제할 형편도 바랄 수 없는데다가 외진 데 위치하여 또 적병과 꼭 싸울 형세도 없는 곳으로, 오직 필부들이 피난할 구역으로나 적합하지 국가가 전쟁을 할 땅으로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지금 몇 고을의 군사를 나누어 그곳을 지키게 하느라 속오군(束伍軍)의 숫자가 줄어들게 하고, 몇 고을의 곡식을 운반하여 거기다 쌓느라 산골 백성의 힘을 고달프게 하니, 그들의 환심은 날마다 사라지고 원망은 해마다 늘어나고, 헛 소문만 멀리 퍼져 실질적인 피해는 점차로 쌓여, 도리어 국사(國史) 비장한 곳을 한갓 도적이 엿보는 자료가 되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곳에다 군사를 모으고 곡식을 저축하는 것이 비밀을 드러내고 숨긴 것을 나타내기에 충분해서 도적의 마음을 열어주고 도적에게 길을 인도하는데 불과하니,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계책의 옹졸함이 이보다 심한 게 없다고 여깁니다.
금성과 입암 두 성은 산세가 높기는 하지만 지형이 불편한데, 또 금성은 물이 졸졸 흐를 뿐이고 입암도 물이 조금 흐를 뿐이니, 조금만 가물면 금성은 마르고 끊어질 것입니다. 만약 많은 사람이 오래 머물게 된다면 가뭄이 들지 않더라도 마를 것은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성의 주위는 모두 대단히 넓은데도 소속 고을의 군대는 도리어 수효가 적어서, 갑자기 급한 일이 닥치면 이미 성을 지키기에도 부족하니 강한 적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대항하여 싸울 수 없으니, 이 성들은 모두 요새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고 실제 쓸모가 없는 성입니다. 애당초 성을 쌓을 때에 일을 주간하는 사람이 능력을 자랑하고 공을 빨리 이루려고 해서 백성을 수고롭게 하기는 극도에 이르렀지만 역사의 감독은 성실히 하지 못하였으니, 무너짐이 잦은 것은 진실로 당연한 형세입니다. 무너지는 대로 쌓다보니 해마다 역사가 일어나 농사를 짓지 못하여 백성이 곤궁하고 초췌하게 되었으니 소속 고을의 민력(民力)이 피폐하였습니다. 각 고을의 병기를 산성에 옮겨 두었는데, 이미 본소(本所)와 떨어져 맡아 관리하기를 조심스럽게 하지 않아 1년이 못 되어 활과 화살이 모두 못 쓰게 되어 힘써 고치고 조처하느라 쉴 때가 없으니, 소속 고을의 관력(官力)도 피폐하였습니다.
봄가을의 조적(糶糴)은 해마다 불어나 가까운 곳은 2, 3백 리이고 먼 곳은 3, 4일정(日程)으로 왔다 갔다 도로에서 서로 잇따르는데, 쭉정이를 받고 알곡을 바치느라 노역(勞役)이 이미 극에 달하여 소속 고을의 민력이 또 곤궁하고 민재(民財) 또한 다 떨어졌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적상의 곡식은 7천여 석(石)이 되는데 그것을 운반하기는 3읍에서 하고, 금성의 곡식은 2만여 석이 되는데 그것을 운반하기는 11읍에서 하며, 입암의 곡식은 3만 4천여 석이 되는데 그것을 운반하기는 19읍에서 하는데, 합쳐서 계산하면 곡식이 6만여 석이고 운반하는 고을이 33개 읍입니다. 조곡(糶穀)을 나누어 줄 때에 이르러, 1석을 받아내면 묵어서 썩은 것이 태반이고 축이 난 경우도 많아 남는 것은 겨우 12, 13두가 되는데, 처음에는 주인(主人)028)                  의 연채(烟債)로 떼어주고 마지막에는 오가는 노자(路資)로 소비하게 되며, 그 사이에 색리(色吏)나 고자(庫子)에게 침탈당하게 됨을 모면하지 못하니, 집에 돌아옴에 미쳐서는 자루가 모두 비어 자기 수중에는 가진 것이 없게 됩니다. 가을이 되어 적곡(糴穀)을 바칠 무렵에는 당연히 갚아야 할 1석에다 2, 3두를 더 준비하는데, 한 짐바리를 수송하는 품값이 가까운 고을의 경우 벼는 2석을 밑돌지 않고 쌀은 1석을 밑돌지 않으며, 먼 고을의 경우는 갑절이 되는데다가 도로에서의 비용과 주인에 대한 연채는 또 그 밖에 있습니다. 산성에 도착한 뒤에도 간혹 관리의 유고(有故)로 인하여 곧장 바칠 수 없게 되고 더러는 여러 고을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차례대로 징수하게 되면 여러 날 동안 머물며 지체하게 되어 오가는 기간이 꼭 열흘이 걸리게 됩니다. 환곡(還穀)을 방출할 때는 언제나 농사철을 맞게 되어 이미 경작하는 시기를 빼앗게 되고, 수납할 때는 언제나 몹시 추운 때를 당하게 되어 고달픔이 더 심합니다. 얼어붙은 길을 달리다가 소가 죽고 말이 넘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으며, 곡식을 도둑맞아 갑절의 값으로 꾸어다 바치는 자도 더러 있으니, 가슴을 치고 하늘을 가리키며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여 산성 보기를 원수처럼 여기며 함정처럼 여기고, 심지어 산성을 지나면서 말하기를 ‘이 산성이 어느 달에나 가라앉아 연못이 될는지 내가 산성과 함께 가라 앉으리라.’ 합니다.
가을철 이래로 산성에 소속된 고을의 주민들이 수십 명으로 무리를 지어 서로 잇달아 소장을 올려 변통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들이 애처롭게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원통함을 머금은 얼굴 빛을 살펴보면 그 급박하고 절실함이 불타는데 구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신이 이러한 상황을 직접 보니 저도 모르게 민망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일반 백성들의 비통한 실정이 이와 같으니, 어찌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입암에 있어서는 바로 비국(備局)의 사목(事目)이 있어 법을 마련하기를 엄중히 한 것이 다른 산성과 비교할 바가 아니므로 소속 고을에서 애를 쓰고 백성들의 심정이 두려워하면서 의혹을 가지니, 이는 신이 민망하게 여기면서도 그 처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33 읍의 주민으로 6만여 석의 곡식을 운반해야 하니, 그 사이에 비록 조적의 많고 적음이 있기도 하고 도로의 멀고 가까움이 있기는 하지만, 민정(民情)의 고민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적으면 그래도 지탱하겠지만 많으면 지탱할 수 없으며, 가까운 경우는 그래도 감당할 수 있지만 먼 경우는 감당할 수 없고 올해에는 그래도 지탱할 수 있지만 다음 해에는 반드시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바로 형편이 그러한 것입니다.
산성이 어찌 본도뿐이겠습니까. 경기 고을이 남한 산성에 대해서도 조적에 따른 노역이 있는데 원망이 이렇게 극도에 달했다고는 듣지 못하였으니, 어찌 산성도 경중이 있고 일에도 유능하고 유능하지 못함이 있어 백성들의 고락도 따라서 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왕의 교화가 점차적으로 멀어저 호남의 백성들이 가장 착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까. 경기 백성의 경우는 선혜청(宣惠廳)에 바치는 세금과 외국 사신을 영접하고 전송하는 세금 외에는 다른 세금과 노역이 없지만 호남의 경우는 전결(田結)029)                  이 가장 무겁고 일반 세금과 특별 세금 및 공억(供億)이 헤아릴 수 없어서, 민력(民力)이 이미 다하고 민산(民産)이 이미 다 떨어져서 그런 것입니까. 원망과 비방이 극도에 이르고 시름과 상심이 지극하여 간혹 완고하게 공손하지 않은 기상이 있기도 하고, 서글프게 애처로운 모습이 있기도 하는 것은 산성이 빌미가 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 산성이 급박할 때에 힘을 얻는 곳이라면 백성들이 아무리 원망을 하더라도 논할 수가 없겠지만, 평소에 산성을 미워하고 고통스럽게 여김이 이와 같이 심하다면 그 변란을 당함에 미쳐 어떻게 이 백성으로 하여금 이 산성을 지키게 하여 외적을 막으면서 윗사람을 위해서 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가 그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달려 있으며, 장수가 그 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 군사가 있기 때문인데, 지금 성은 큰데도 군사가 적으니, 군사를 가졌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극도로 원망하고 미워하니 그 마음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속오군을 모두 지급했으니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성첩에는 태반이나 부족하며 소속 고을 백성의 원망과 고통이 바야흐로 심하니 변란에 임하더라도 반드시 몰아 넣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을 지킬 수 없음과 백성을 믿을 수 없음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차라리 군사가 적어서 끝내 지킬 수 없는 것보다는 애당초 군사를 배치하지 않는 것이 나으며 백성을 곤궁하게 한 뒤에 지탱할 수 없게 하는 것보다는 먼저 백성을 돌봐주는 것이 낫습니다. 더구나 혹시라도 급박함이 있을 경우 병사(兵使)가 통솔하여 국난에 나아가는 자들은 속오군입니다. 쓸모있는 속오군을 나누어다 쓸모없는 산성에 공급하는 것이 좋은 계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산성에 대한 뒷날의 성과는 기약하기 어려운데 백성들의 눈앞의 환란은 이미 급박하므로 도적이 이르기 전에 백성들이 먼저 피폐해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요새를 설치하는 것은 국가를 튼튼히 하려고 하는 것인데 백성이 먼저 피폐해진다면 국가가 튼튼해질 수 없으니 산성이 국가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이속시킨 속오군을 병사에게 되돌려 주고, 세 곳의 산성에 저축할 곡식은 본수(本數)을 헤아려 감하며, 각 고을에 나누어 준 조곡의 절반은 그 고을에 머물려 두게 하되 가까운 지역의 사람에게는 조금 덜어주고 먼 지역의 사람에게는 전부 덜어주는 것이 임시 변통으로 백성을 구제하는 적합한 방법일 듯합니다. 그리고 산성은 본 고을의 군사만을 주둔케 하여 의승(義僧)과 더불어서 우선 수호하게 하면서 뒷날을 기다려 어느 장수가 그때에 가서 살펴보고 들어가 지키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신이 삼가 생각건대 조정이 바야흐로 환란에 대한 준비를 강구하며 성지(城池)를 손질하고 가다듬는 데 있어서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니, 신의 이 말이 둥근 구멍으로 모난 자루를 헤아리는 것처럼 서로 용납되지 않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 신이 비록 사리에 어둡기는 하지만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 도를 안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백성들의 피폐함이 극도에 달한 것을 직접 보았는데, 알고서도 말하지 않으면 신에게 바로 죄가 있게 됩니다. 신이 만약 말하지 않는다면 조정이 혹시라도 외방의 형세가 이런 데 이른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변변치 못한 정성을 올린 것이 백성을 보호하는 말에 벗어나지 않으니 신은 생각하기를 산성은 즉시 혁파할 수 없다 하더라도 조적은 반드시 감해 주어야 되며 속오군은 이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만일 가하다고 윤허를 받으면 신이 삼가 몇 가지 조목을 참작하고 헤아려 성상께 재결하시도록 아뢰겠습니다. 성명께서는 신의 말을 잘못되었다고 하지 마시고 백성을 두렵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말할 만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경륜이 빈틈없고 계책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신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 군더더기 말을 덧붙이겠습니까. 도내(道內)의 일은 바로 신의 직무이기에 백성들의 폐단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열거하여 감히 진달합니다. 다만 말을 상세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속됨을 피하지 않고 의미를 매우 절실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백성을 보호하고 편안하게 하는 말을 연연해하며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신이 당초에 계문하려고 하였습니다만 감히 버젓이 바로 주청하지 못하고 이제 마음에 품었던 바를 재계하고 상소하니 성명께서 가름하시어 채택하거나 물리칠 것을 공손히 기다리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 내용을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비국이 회계하기를,
"전남 감사        조계원(趙啓遠)이 도내 세 곳의 산성에 대한 폐단을 가지고 자세히 상소하여 구언하는 하교에 응답하였는데, 백성이 원망하는 것을 직접 본 데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습니다만, 이 세 산성은 새로 창설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쌓은 것을 인하여 조금 손질을 가한 데 불과한 것으로 이미 계획하고 조치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애당초 조정이 강제로 영을 내려 시행한 일이 아니고 지난날 도를 안찰하던 신하가 헤아려 계문하고 시행하도록 청한 뒤에 윤허하신 것이니, 그 당시 본도 민정(民情)의 편리 여부를 담당한 신하가 전혀 살펴보지 않았겠습니까. 설령 지금 이 상소를 인해서 청한 대로 시행하게 한다 하더라도 뒤에 임명되는 감사의 의견이 또 어떠할는지 모르겠으며, 조정의 거조도 따라서 번번이 고치는 것은 부당하니, 경솔하게 의논할 수 없습니다."
하니, 따랐다.

 

11월 28일 임신

동래 부사(東萊府使) 원만석(元萬石)이 사조(辭朝)하니, 대면하여 유시(諭示)하고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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