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10권, 광해 8년 1616년 12월

싸라리리 2026. 1. 1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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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정유

대사간 정조(鄭造)가 아뢰기를, "신들이 그저께 삼가 원이곤(元以坤)의 상소를 보았더니, 대개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며 대간이 자기 당파를 비호한다.’고 하였으며, 또 형효갑(邢孝甲)에 대해 논계하는 일을 가지고 시세를 타서 교묘히 임금의 뜻에 맞추는 계책을 삼았습니다. 게다가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참소꾼들의 말을 불러오게 된다.’는 등의 말을 집어내어 신들의 죄안(罪案)을 삼았습니다. 사람의 괴이하기가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신들이 지난번에 성상의 비답을 보았더니, ‘근래에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을 나도 들었다.’라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사람들의 의논이 여러 갈래이고 조정이 대립하고 있는 때에, 반드시 이러한 망극한 참소꾼이 있어서 교묘히 참소하는 말을 지어내어 로 성상을 혼란시키고 아래로 조정을 함정에 빠뜨려 일망타진할 조짐이 나타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에 지난달 2일의 연계하는 계사에 ‘성상의 비답이 한 번 내리자 온 나라가 놀라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참소꾼이 와서 참소를 하게 된다.」고 하였으니, 신은 시세를 타고 엿보는 무리들이 혹 이것을 인하여 함정을 파는 자가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원이곤이 틈을 엿보다가 기회를 타고 간사하고 교묘한 술수를 부려, 온 힘을 기울여 대간을 비난해서 반드시 모함하여 내쫓고 사류(士類)들에게 화를 전가하여 나라를 텅 비게 만든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니, 이는 참으로 신들이 앞서 염려했던 바이며 성상께서도 통촉하시는 바입니다. 그가 감히 대간이 임금을 속이고 있다고 하였으니, 통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이 이전부터 간혹 있었으나, 고시관은 그 글의 수준만을 따져서 등급을 매기니, 설령 차술(借述)하거나 대술(代述)한 글이 있더라도 고시관이 어찌 그 참과 거짓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거자가 사사로이 고시관과 통하여 사사로움을 따르는 비밀스러운 일들을 대간이 무엇을 근거로 적발해 내겠습니까. 이러한 이치도 없고 이러한 일도 없는데, 이토록 비난을 하였습니다. 얽어 모함한 일은 따질 것도 없는 것입니다만,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재직할 수가 없습니다. 신을 체직하라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그저께 삼가 원이곤(元以坤)의 상소를 보았더니, 대개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며 대간이 자기 당파를 비호한다.’고 하였으며, 또 형효갑(邢孝甲)에 대해 논계하는 일을 가지고 시세를 타서 교묘히 임금의 뜻에 맞추는 계책을 삼았습니다. 게다가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참소꾼들의 말을 불러오게 된다.’는 등의 말을 집어내어 신들의 죄안(罪案)을 삼았습니다. 사람의 괴이하기가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신들이 지난번에 성상의 비답을 보았더니, ‘근래에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을 나도 들었다.’라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사람들의 의논이 여러 갈래이고 조정이 대립하고 있는 때에, 반드시 이러한 망극한 참소꾼이 있어서 교묘히 참소하는 말을 지어내어 로 성상을 혼란시키고 아래로 조정을 함정에 빠뜨려 일망타진할 조짐이 나타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이에 지난달 2일의 연계하는 계사에 ‘성상의 비답이 한 번 내리자 온 나라가 놀라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참소꾼이 와서 참소를 하게 된다.」고 하였으니, 신은 시세를 타고 엿보는 무리들이 혹 이것을 인하여 함정을 파는 자가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원이곤이 틈을 엿보다가 기회를 타고 간사하고 교묘한 술수를 부려, 온 힘을 기울여 대간을 비난해서 반드시 모함하여 내쫓고 사류(士類)들에게 화를 전가하여 나라를 텅 비게 만든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니, 이는 참으로 신들이 앞서 염려했던 바이며 성상께서도 통촉하시는 바입니다. 그가 감히 대간이 임금을 속이고 있다고 하였으니, 통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이 이전부터 간혹 있었으나, 고시관은 그 글의 수준만을 따져서 등급을 매기니, 설령 차술(借述)하거나 대술(代述)한 글이 있더라도 고시관이 어찌 그 참과 거짓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거자가 사사로이 고시관과 통하여 사사로움을 따르는 비밀스러운 일들을 대간이 무엇을 근거로 적발해 내겠습니까. 이러한 이치도 없고 이러한 일도 없는데, 이토록 비난을 하였습니다. 얽어 모함한 일은 따질 것도 없는 것입니다만,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재직할 수가 없습니다. 신을 체직하라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대사헌 남근(南瑾)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원이곤의 상소를 보니, 대개 ‘과거가 공정하지 않고 대간이 당파를 비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반드시, 형효갑을 복과(復科)시키자는 대간의 논계를 꼬투리로 삼아 언론을 맡은 관원에게 허물을 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들이 어찌 형효갑에게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을 두고 논계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출방(出榜)을 한 뒤에 과방에서 이름을 빼는 일은 근거할 만한 이전의 규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간이 일을 논하는 것을 가리켜 사심을 부리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는 그 입을 막아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진(李進)과 변헌(卞獻)의 무리들은 이미 대술(代述)을 했다는 말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잡아다가 여러 날째 가두어 두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고 논죄하고자 하는 것이 참으로 신들의 생각입니다. 대개 과거 시험장에서 사사로움을 부리는 일들은 은미하여 알기가 어려운데, 시험에 떨어진 부박한 무리들이 혹 그 고시관을 미워하거나 혹 그 거자를 미워하여 유언비어를 만들어서 중상모략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 혹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보고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율문(律文)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는 일도 또한 근거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말에 ‘당파를 비호한다.’고 하였으니, 또한 교묘하고 참담하지 않습니까. 이미 비난을 받았으니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을 체직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삼가 원이곤의 상소를 보니, 대개 ‘과거가 공정하지 않고 대간이 당파를 비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반드시, 형효갑을 복과(復科)시키자는 대간의 논계를 꼬투리로 삼아 언론을 맡은 관원에게 허물을 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들이 어찌 형효갑에게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을 두고 논계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출방(出榜)을 한 뒤에 과방에서 이름을 빼는 일은 근거할 만한 이전의 규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간이 일을 논하는 것을 가리켜 사심을 부리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는 그 입을 막아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진(李進)과 변헌(卞獻)의 무리들은 이미 대술(代述)을 했다는 말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잡아다가 여러 날째 가두어 두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고 논죄하고자 하는 것이 참으로 신들의 생각입니다.
대개 과거 시험장에서 사사로움을 부리는 일들은 은미하여 알기가 어려운데, 시험에 떨어진 부박한 무리들이 혹 그 고시관을 미워하거나 혹 그 거자를 미워하여 유언비어를 만들어서 중상모략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 혹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보고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율문(律文)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는 일도 또한 근거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말에 ‘당파를 비호한다.’고 하였으니, 또한 교묘하고 참담하지 않습니까. 이미 비난을 받았으니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을 체직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근래에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난적이 잇따라 일어나고 인심은 헤아릴 수가 없어 역적을 비호하는 일이 풍습을 이루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해 역적을 토벌한 사람을 두고 한 세상의 나쁜 무리들이 원수로 여기며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엿보아 해꼬지를 하려고 못하는 짓이 없으며, 반드시 모두 제거한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니, 아, 또한 참혹합니다. 지난번에 상께서 고관(考官)들의 대죄에 답하시면서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나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성상의 의도는 참으로 한 번 경계하고 신칙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착하지 못한 무리들이 귀를 세우고 듣고는 이것을 가지고 화란을 불러올 바탕을 삼아 과거에 대한 한 가지 일로 사류(士類)를 일망타진하기 위하여, 혹 고관을 모함하고 혹 언관(言官)을 비난하며 이토록 유언비어를 꾸며대니, 아, 또한 참혹합니다. 신들이 이 상소를 자세히 보았더니, 그 말이 모두가 없는 일을 날조한 것인데, 그 가운데에 권의(權誼)에 대한 한 가지 일은 더더욱 거짓된 말이었습니다. 신들이 이미 권의의 시권(試券)을 갖다가 보았는데, 시권 가운데에는 본래 ‘명예를 훔친 낙양의 소년[名竊洛陽之少年]’이라는 일곱 글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원이곤이 임금을 기망하는 한 가지 단서가 됩니다. 진달한 말이 이토록 음험하고 교묘하니, 이는 결코 시골 서생이 지은 글이 아닙니다. 반드시 글을 잘 짓는 큰 간인(奸人)의 솜씨입니다. 《시경》에 ‘더없이 나쁜 참소꾼이 온 나라를 어지럽히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들이 근밀의 직임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이러한 걱정스러운 일을 보았으므로 부득이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나라의 기일(忌日)이므로 소장(疏章)을 봉입(奉入)해서는 안 됩니다만, 만약 이것 때문에 지체시키면 괴망한 무리들이 반드시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에 감히 봉입합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알았다. 권의(權誼)의 시권을 들여오라." 하였다.
"근래에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난적이 잇따라 일어나고 인심은 헤아릴 수가 없어 역적을 비호하는 일이 풍습을 이루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해 역적을 토벌한 사람을 두고 한 세상의 나쁜 무리들이 원수로 여기며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엿보아 해꼬지를 하려고 못하는 짓이 없으며, 반드시 모두 제거한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니, 아, 또한 참혹합니다.
지난번에 상께서 고관(考官)들의 대죄에 답하시면서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나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성상의 의도는 참으로 한 번 경계하고 신칙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착하지 못한 무리들이 귀를 세우고 듣고는 이것을 가지고 화란을 불러올 바탕을 삼아 과거에 대한 한 가지 일로 사류(士類)를 일망타진하기 위하여, 혹 고관을 모함하고 혹 언관(言官)을 비난하며 이토록 유언비어를 꾸며대니, 아, 또한 참혹합니다.
신들이 이 상소를 자세히 보았더니, 그 말이 모두가 없는 일을 날조한 것인데, 그 가운데에 권의(權誼)에 대한 한 가지 일은 더더욱 거짓된 말이었습니다. 신들이 이미 권의의 시권(試券)을 갖다가 보았는데, 시권 가운데에는 본래 ‘명예를 훔친 낙양의 소년[名竊洛陽之少年]’이라는 일곱 글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원이곤이 임금을 기망하는 한 가지 단서가 됩니다. 진달한 말이 이토록 음험하고 교묘하니, 이는 결코 시골 서생이 지은 글이 아닙니다. 반드시 글을 잘 짓는 큰 간인(奸人)의 솜씨입니다. 《시경》에 ‘더없이 나쁜 참소꾼이 온 나라를 어지럽히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들이 근밀의 직임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이러한 걱정스러운 일을 보았으므로 부득이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나라의 기일(忌日)이므로 소장(疏章)을 봉입(奉入)해서는 안 됩니다만, 만약 이것 때문에 지체시키면 괴망한 무리들이 반드시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에 감히 봉입합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알았다. 권의(權誼)의 시권을 들여오라."
하였다.

 

양사가 세 역적과 네 흉도에게 죄를 더주기를 합계하니, 이미 하유하였다고 답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형효갑을 과방에서 삭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요즈음 사론(士論)이 두 갈래로 나뉘어 조정에서 의견이 대립되고 있습니다. 전후로 과거에 오른 사람을 두고, 아무개를 대신하여 아무개가 지었다고 하기도 하고, 시험장에서 사사로움을 통하였다고 하기도 하니, 거자(擧子)들의 수치가 될 뿐만 아니라, 고시관들에게 불행이 됨을 이루 말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원이곤의 상소는 대개 그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여 마치 직접 본 일인 것처럼 하였습니다. 신들이 소문으로 이진(李進)과 변헌(卞獻) 등이 뇌물을 받고 대술(代述)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분부하여 잡아다 가둔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아직 그 정상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원이곤이 시험장의 은밀한 일에 대해서 상소로 진달하였으니, 그는 모르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원이곤을 유사에게 내려 상세히 조사하여 실정을 알아내게 하소서." 하니,【답하기를,"아뢴 대로 하라. 형효갑에 대한 일은 이미 하유하였다."하였다.】
"형효갑을 과방에서 삭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요즈음 사론(士論)이 두 갈래로 나뉘어 조정에서 의견이 대립되고 있습니다. 전후로 과거에 오른 사람을 두고, 아무개를 대신하여 아무개가 지었다고 하기도 하고, 시험장에서 사사로움을 통하였다고 하기도 하니, 거자(擧子)들의 수치가 될 뿐만 아니라, 고시관들에게 불행이 됨을 이루 말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원이곤의 상소는 대개 그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여 마치 직접 본 일인 것처럼 하였습니다. 신들이 소문으로 이진(李進)과 변헌(卞獻) 등이 뇌물을 받고 대술(代述)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분부하여 잡아다 가둔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아직 그 정상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원이곤이 시험장의 은밀한 일에 대해서 상소로 진달하였으니, 그는 모르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원이곤을 유사에게 내려 상세히 조사하여 실정을 알아내게 하소서."
하니,【답하기를,"아뢴 대로 하라. 형효갑에 대한 일은 이미 하유하였다."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거인 형효갑을 과방에서 삭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그리고 요즘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이 낙방한 거자들의 시기하는 말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신들은 의혹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적발하여 이러한 폐단을 통렬히 개혁하려고 하나 누구누구가 대술(代述)을 하였고 누구누구가 사통(私通)을 하였고 누구누구가 사정(私情)을 따랐고 누구누구가 차작(借作)을 하였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 원이곤의 상소에 바로 지적하여 하나하나 거론하였는데, 이들은 참으로 신들이 듣고서 다스리기를 바라던 자들입니다. 그가 이미 단서를 꺼냈으니, 그는 반드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듣건대, 원이곤은 문인도 무인도 아니며 한 글자도 모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임을 모든 사람들이 아는 바라고 하니, 큰 간인(奸人)이 숨어서 몰래 사주하여 함정에 빠뜨릴 계책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뜻이 비록 과거의 폐습을 개혁하려는 데에 있더라도 추문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고, 만약 남의 사주를 받고 조정을 함정에 빠뜨리고 사류들에게 화를 전가시키려고 한 것이라면 추문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나 저것으로 보나 끝까지 추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사에게 내려서 사실대로 추문 조사하도록 해서 시험장에서 사심을 쓰는 폐단을 막도록 하 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형효갑의 일은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거인 형효갑을 과방에서 삭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그리고 요즘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이 낙방한 거자들의 시기하는 말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신들은 의혹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적발하여 이러한 폐단을 통렬히 개혁하려고 하나 누구누구가 대술(代述)을 하였고 누구누구가 사통(私通)을 하였고 누구누구가 사정(私情)을 따랐고 누구누구가 차작(借作)을 하였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 원이곤의 상소에 바로 지적하여 하나하나 거론하였는데, 이들은 참으로 신들이 듣고서 다스리기를 바라던 자들입니다. 그가 이미 단서를 꺼냈으니, 그는 반드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듣건대, 원이곤은 문인도 무인도 아니며 한 글자도 모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임을 모든 사람들이 아는 바라고 하니, 큰 간인(奸人)이 숨어서 몰래 사주하여 함정에 빠뜨릴 계책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뜻이 비록 과거의 폐습을 개혁하려는 데에 있더라도 추문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고, 만약 남의 사주를 받고 조정을 함정에 빠뜨리고 사류들에게 화를 전가시키려고 한 것이라면 추문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나 저것으로 보나 끝까지 추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사에게 내려서 사실대로 추문 조사하도록 해서 시험장에서 사심을 쓰는 폐단을 막도록 하 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형효갑의 일은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예조 판서 이이첨이 계사(啓辭)를 올렸는데, 대개 원이곤의 상소에서 말한, 과거에 사사로움을 부리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해명하는 일이었다. 답하기를, "계사(啓辭)를 살펴보고 모두 잘 알았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계사(啓辭)를 살펴보고 모두 잘 알았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12월 2일 무술

양사가 합계하였는데, 세 역적과 네 흉도에게 죄를 더주라는 내용이었다. 윤허하지 않았다.

 

간원이 형효갑(邢孝甲)의 일을 아뢰어, 과방(科榜)에서 이름을 삭제하라고 한 명을 거두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옥당이 차자를 올렸는데, 대개 세 역적과 세 흉도에 대한 일과 형효갑의 일에 대해서 흔쾌히 공론을 따르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윤허하지 않았다.

 

전 대사헌 김륵(金玏)이 죽었다. 【김륵은 자(字)는 희옥(希玉)이고 호는 백암(栢巖)이다. 단정하고 중후하였으며 경학(經學)에 밝았는데,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청현직을 두루 거쳤다. 광해 신해년에 장차 생모(生母)를 추숭(追崇)하려고 하자, 김륵이 도헌(都憲)으로 있으면서 비례(非禮)임을 극력 말하다가 마침내 죄를 얻어 물러나 영천(榮川)으로 돌아왔다. 시냇가에다 정자를 하나 짓고 귀학정(龜鶴亭)이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세상을 떠났다. 고을 사람들이 향현사(鄕賢祠)에서 제사를 모셨다.】

 

12월 3일 기해

전교하였다. "곤수가 근친(覲親)을 위해 상소를 하는 것이 전례가 있는 일인지를 선왕조의 실록을 상고하여 아뢰라."
"곤수가 근친(覲親)을 위해 상소를 하는 것이 전례가 있는 일인지를 선왕조의 실록을 상고하여 아뢰라."

 

전교하였다. "자녀는 숨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최응허(崔應虛)·박정길(朴鼎吉)·조정립(曺挺立) 등은 자녀가 있으면서도 지난번 처녀 간택(處女揀擇)을 할 때에 굳게 숨기고는 내놓지 않았으니, 신하로서의 의리가 전혀 없다. 마땅히 무겁게 다스려 뒷사람들을 경계해야 하겠으나, 지금 우선 추고만 하라. 처녀 단자(處女單子)를 전례대로 봉입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자녀는 숨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최응허(崔應虛)·박정길(朴鼎吉)·조정립(曺挺立) 등은 자녀가 있으면서도 지난번 처녀 간택(處女揀擇)을 할 때에 굳게 숨기고는 내놓지 않았으니, 신하로서의 의리가 전혀 없다. 마땅히 무겁게 다스려 뒷사람들을 경계해야 하겠으나, 지금 우선 추고만 하라. 처녀 단자(處女單子)를 전례대로 봉입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실록청의 전후 제조·낭청·하인(下人)·공장(工匠) 등을 모두 일일이 서계하라."
"실록청의 전후 제조·낭청·하인(下人)·공장(工匠) 등을 모두 일일이 서계하라."

 

양사가 합계하였는데, 세 역적과 네 흉도에게 죄를 더주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윤허하지 않았다.

 

헌부와 간원이 아뢰어, 형효갑을 과방에서 삭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기를 청하였는데, 윤허하지 않았다.

 

12월 4일 경자

전교하였다. "부경 사신은 60세 늙고 병든 사람은 차송하지 말 일을 한두 번 전교한 것이 아닌데, 감히 노쇠한 권경우(權慶祐)를 의망 차송해서 마침내 중도에서 병들어 죽게 하여 사행(使行)의 일을 전도되게 하였으니, 매우 잘못되었다. 이조의 당상과 낭청을 추고하라."
"부경 사신은 60세 늙고 병든 사람은 차송하지 말 일을 한두 번 전교한 것이 아닌데, 감히 노쇠한 권경우(權慶祐)를 의망 차송해서 마침내 중도에서 병들어 죽게 하여 사행(使行)의 일을 전도되게 하였으니, 매우 잘못되었다. 이조의 당상과 낭청을 추고하라."

 

양사가 합계하였는데, 세 역적과 네 흉도에게 죄를 더주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윤허하지 않았다.

 

헌부가 아뢰어, 형효갑을 과방에서 삭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기를 거듭 청하였는데, 윤허하지 않았다.

 

간원이 아뢰어, 형효갑을 과방에서 삭제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기를 거듭 청하고, 또 아뢰기를, "용천 군수(龍川郡守) 신성(申晟)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용렬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관원에는 적합지 않습니다. 파직하라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신성의 일은 천천히 결정을 내리겠다." 하였다.
"용천 군수(龍川郡守) 신성(申晟)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용렬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관원에는 적합지 않습니다. 파직하라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신성의 일은 천천히 결정을 내리겠다."
하였다.

 

원이곤(元以坤)의 상소를 계(啓) 자를 찍지 않고 내렸다.

 

12월 5일 신축

전교하였다. "우승지 유대건(兪大建)이 영정(影幀)을 베껴 그려서 받들어 옮길 일로 지금 막 전주(全州)로 내려갈 참이다. 승지는 외방에 오래 있어서는 안 되니 예관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하여 참작해서 내려 보내도록 하라."
"우승지 유대건(兪大建)이 영정(影幀)을 베껴 그려서 받들어 옮길 일로 지금 막 전주(全州)로 내려갈 참이다. 승지는 외방에 오래 있어서는 안 되니 예관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하여 참작해서 내려 보내도록 하라."

 

12월 6일 임인

가도사(假都事) 김세구(金世球)가 죄인 막개(莫介) 등 16명을 잡아왔다.【이성업(李成業)이 도망쳤다.】

 

전교하였다. "지금 이후로는 가도사를 정밀히 선발할 것을 이조에 말하라."
"지금 이후로는 가도사를 정밀히 선발할 것을 이조에 말하라."

 

경상 감사가 장수 찰방(長水察訪) 조응순(趙應純)을 조사하여 장계를 올리니, 전교하기를, "방백(方伯)이 만약 분명한 사실이라고 하였다면 어찌하여 일찍 처치하지 않는가? 이것을 알 수가 없다. 조응순을 추고하라." 하였다.
"방백(方伯)이 만약 분명한 사실이라고 하였다면 어찌하여 일찍 처치하지 않는가? 이것을 알 수가 없다. 조응순을 추고하라."
하였다.

 

정원이 비밀 계사(啓辭)를 입계하니, 전교하기를, "김세구(金世球)를 잡아다가 국문하라." 하였다.
"김세구(金世球)를 잡아다가 국문하라."
하였다.

 

12월 7일 계묘

정원이 아뢰기를, "삼가 비망기를 보건대, ‘곤수가 근친(覲親)을 하기 위해 상소하는 일이 전례가 있는 일인지를 선왕조의 실록을 고찰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변장(邊將)이나 변수(邊帥)는 비록 늙고 병든 어버이가 있더라도 마음대로 정소(呈疏)하고 출입하지 못하는 것은, 관방(關防)의 중지(重地)를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법금(法禁)이 매우 엄하니, 대간이 논계한 바는 반드시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더없이 중대한 실록을 이 하찮은 일 때문에 경솔하게 열어볼 수는 없습니다. 살펴 아뢰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다른 일을 상고해 낼 때에 아울러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삼가 비망기를 보건대, ‘곤수가 근친(覲親)을 하기 위해 상소하는 일이 전례가 있는 일인지를 선왕조의 실록을 고찰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변장(邊將)이나 변수(邊帥)는 비록 늙고 병든 어버이가 있더라도 마음대로 정소(呈疏)하고 출입하지 못하는 것은, 관방(關防)의 중지(重地)를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법금(法禁)이 매우 엄하니, 대간이 논계한 바는 반드시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더없이 중대한 실록을 이 하찮은 일 때문에 경솔하게 열어볼 수는 없습니다. 살펴 아뢰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다른 일을 상고해 낼 때에 아울러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죄인을 잡아오는 일은 체모가 매우 중대한 일인데, 어찌 형편없는 김세구 같은 자를 차임해 보내어 죄인이 도망하는 일이 생기게 하였단 말인가. 지금 이후로는 색승지가 각별히 살펴서 시행하라."
"죄인을 잡아오는 일은 체모가 매우 중대한 일인데, 어찌 형편없는 김세구 같은 자를 차임해 보내어 죄인이 도망하는 일이 생기게 하였단 말인가. 지금 이후로는 색승지가 각별히 살펴서 시행하라."

 

전교하였다. "외방에 있는 처녀(處女)들을 이달 20일 이전에 서울에 도착하게 할 일을 해조로 하여금 신칙하게 하라."
"외방에 있는 처녀(處女)들을 이달 20일 이전에 서울에 도착하게 할 일을 해조로 하여금 신칙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죄인 권도(權韜)는 석방하고, 현금(玄今)과 옥선(玉善)은 율문대로 노비를 만들어서 석방하고, 정충남(鄭忠男)·신효업(申孝業)·고대관(高大觀)은 모두 외딴 섬에 안치(安置)시키고, 나머지 끌어들인 자들은 모두 참작하여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권도는 권필의 동생이다. 심우영(沈友英)과 친구로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남방으로 귀양을 갔다가 정인홍을 찾아뵙고 정인홍에게 총애를 받았다. 정인홍이 그가 억울하다고 힘껏 진달하였기 때문에 석방되었다.】
"죄인 권도(權韜)는 석방하고, 현금(玄今)과 옥선(玉善)은 율문대로 노비를 만들어서 석방하고, 정충남(鄭忠男)·신효업(申孝業)·고대관(高大觀)은 모두 외딴 섬에 안치(安置)시키고, 나머지 끌어들인 자들은 모두 참작하여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권도는 권필의 동생이다. 심우영(沈友英)과 친구로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남방으로 귀양을 갔다가 정인홍을 찾아뵙고 정인홍에게 총애를 받았다. 정인홍이 그가 억울하다고 힘껏 진달하였기 때문에 석방되었다.】

 

【당흥 부원군(唐興府院君) 홍진(洪進)이 죽었다. 홍진은 자는 희고(希古)이고 명유(名儒) 홍인우(洪仁佑)의 아들이다. 동생 홍적(洪迪)과 더불어 명망이 있었다. 방정하고 강개(剛介)하였으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서는 즉시 홍문관에 뽑혀 들어가 정자(正字)가 되었고, 청현직을 두루 거쳐 사림의 추중을 받았다. 임진년 변란 때에 어려운 길을 임금을 수행하여 충성과 노고가 가장 현저하였다. 당시에 중국으로 들어가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선묘(宣廟)께서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으로 하여금 임금을 따라 요동으로 들어갈 사람을 모집하게 하자, 홍진이 강개한 마음으로 앞장서서 명에 응하였다. 선묘 갑진년에 호성 공신(扈聖功臣)으로 부원군에 책봉되었다. 이조 판서를 네 번이나 거쳤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성품을 하늘로부터 타고 났다. 광해군 때에 정치가 어지럽자, 겸대한 직책을 모두 버리고 문을 닫아걸고 들어앉아 손님도 받지 않고 지내면서 오직 서사(書史)로 스스로 즐겼다. 다만 성품이 치우치고 급하여 남을 포용하지 못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죽었다.】

 

12월 8일 갑진

금부 죄인 정충남(鄭忠男)은 대정(大靜)에, 신효업(申孝業)은 진도(珍島)에, 고대관(高大觀)은 남해(南海)에, 순경(順慶)은 정의(旌義)에 정배(定配)하였다.

 

경상 감사가 장계하기를, "장수 찰방 조응순(趙應純)은 사람됨이 과연 어리석고 용렬하여, 올해의 춘등(春等)과 하등(夏等)의 포폄에서 이미 벌을 시행하였습니다. 대간의 계사가 모두 사실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장수 찰방 조응순(趙應純)은 사람됨이 과연 어리석고 용렬하여, 올해의 춘등(春等)과 하등(夏等)의 포폄에서 이미 벌을 시행하였습니다. 대간의 계사가 모두 사실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12월 9일 을사

금부가 아뢰기를, "사사(賜死)의 명은 성화(星火)보다 급한 것이니, 이 명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바로 그의 직분입니다. 그런데 도사(都事) 이정신(李鼎臣)은 왕명을 받은 지 7일이 지나서야 북청(北靑)에 도착하였고, 또 눈길을 뚫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칭탁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가 신들 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입니다. 지금 이후로는 금부 도사는 명망 이 있는 생원 진사로 갖추어 의망할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정신은 먼저 파직하고 나서 추고하라." 하였다.
"사사(賜死)의 명은 성화(星火)보다 급한 것이니, 이 명을 받들어 행하는 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 바로 그의 직분입니다. 그런데 도사(都事) 이정신(李鼎臣)은 왕명을 받은 지 7일이 지나서야 북청(北靑)에 도착하였고, 또 눈길을 뚫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칭탁하고 있으니, 이는 모두가 신들 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입니다. 지금 이후로는 금부 도사는 명망 이 있는 생원 진사로 갖추어 의망할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정신은 먼저 파직하고 나서 추고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새로 받들어 올린 단자(單子)의 처녀들을 오는 22일에 대궐로 나오게 하여 간택(揀擇)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새로 받들어 올린 단자(單子)의 처녀들을 오는 22일에 대궐로 나오게 하여 간택(揀擇)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침의(針醫) 안언길(安彦吉)은 내가 침을 맞는 동안 여러 차례 입시하였으니, 상당한 직책을 제수하라."
"침의(針醫) 안언길(安彦吉)은 내가 침을 맞는 동안 여러 차례 입시하였으니, 상당한 직책을 제수하라."

 

유학(幼學) 박곤(朴坤)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팔도에 선혜(宣惠)의 제도(制度)를 시행하여 성상의 은택을 골고루 받도록 해서 훌륭한 정치를 이루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좌우 포도 대장이 비밀히 전교를 듣고 나갔다.

 

12월 10일 병오

형방 승지가 아뢰기를, "어제 연좌 죄인(緣坐罪人)을 날이 저물어 교형(絞刑)에 처하지 못했으므로 오늘 교형을 시행해야 하겠는데, 이전부터 대제(大祭)의 재계일(齋戒日)에는 추국을 하지 않았으니, 연좌 죄인을 교형에 처하는 일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침을 맞지 않는 날에 시행하라." 하였다.
"어제 연좌 죄인(緣坐罪人)을 날이 저물어 교형(絞刑)에 처하지 못했으므로 오늘 교형을 시행해야 하겠는데, 이전부터 대제(大祭)의 재계일(齋戒日)에는 추국을 하지 않았으니, 연좌 죄인을 교형에 처하는 일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침을 맞지 않는 날에 시행하라."
하였다.

 

12월 11일 정미

진사 이극건(李克健)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자기들도 원이곤이 받은 죄와 같은 죄를 받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이극건은 이극신(李克信)의 동생이다. 원이곤이 상소할 때에 이극신이 권하였는데, 원이곤이 죄를 입었기 때문에 이 상소를 올린 것이다.】

 

전교하였다. "세시(歲時)에 장리(長吏)를 보내어 좌상이 있는 곳에 가서 존문(存問)하고 먹을 거리를 넉넉하게 지급해 주라고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라."
"세시(歲時)에 장리(長吏)를 보내어 좌상이 있는 곳에 가서 존문(存問)하고 먹을 거리를 넉넉하게 지급해 주라고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라."

 

정충남(鄭忠男)과 신효업(申孝業)을 정배하는 일에 대한 금부의 단자를 가지고 위리 안치하라고 전교하였다.

 

이조가 아뢰기를, "내의원 도제조를 속히 차출할 일로 하명하셨습니다. 정사(政事)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였는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내의원 도제조를 속히 차출할 일로 하명하셨습니다. 정사(政事)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였는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12월 12일 무신

금부 죄인 개동(介同)은 명천(明川)에, 득개(得鎧)는 길주(吉州)에, 율이(慄伊)는 단천(端川)에, 분이(粉伊)는 이성(利城)에, 소득(小得)은 남해(南海)에, 희달(希達)과 희민(希敏)은 광양(光陽)에, 최유점(崔有漸)은 진주(晉州)에, 호눌(好訥)과 호철(好哲)과 순이(順伊)는 용천(龍川)에, 오의훈(吳義勳)은 부안(扶安)에, 오여원(吳汝源)은 만경(萬頃)에, 오여택(吳汝澤)은 임피(臨陂)에, 윤희인(尹希仁)은 박천(博川)에, 오성로(吳誠老)는 가산(嘉山)에, 오언학(吳彦鶴)은 순천(順川)에, 이유경(李有慶)은 용궁(龍宮)에, 법진(法軫)은 예천(醴泉)에, 신예붕(申禮鵬)은 금산(金山)에, 오의민(吳義民)은 덕원(德源)에, 신적(申績)은 상원(祥原)에, 유숙(柳琡)은 문천(文川)에, 권이(權廙)는 거제(巨濟)에, 원덕계(元德溪)는 종성(鍾城)에, 원침(元琛)은 온성(穩城)에 정배(定配)하였다.

 

좌상 정인홍의 차자에 답하였다. "차자를 살펴보고 모두 잘 알았다. 나라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나도 또한 병이 들었다. 경은 마음을 편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고 날씨가 따뜻해지거든 즉시 올라오라."
"차자를 살펴보고 모두 잘 알았다. 나라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나도 또한 병이 들었다. 경은 마음을 편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고 날씨가 따뜻해지거든 즉시 올라오라."

 

한찬남이 아뢰었다. "신이 형옥서(刑獄署) 제조(提調)를 예겸(例兼)하고 있습니다. 무릇 새로 들어오는 중죄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옥관(獄官)을 불러 신칙하여, 칼과 고랑을 벗지 못하게 하고 잡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이 전례입니다. 지난번에 원이곤(元以坤)을 수금할 때에 신이 옥관을 불렀더니 주부 이중현(李重顯)이 왔기에 신이 전례대로 신칙하여 보냈습니다. 그 뒤에 신이 들으니, 이중현이 원이곤의 매부(妹夫)인 전 군수 이수경(李守慶)을 만나서 귓속말로 말하기를 ‘형방 승지가 나를 시켜 원이곤을 죽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찌 차마 죽이겠는가.’라고 하였답니다. 신은 그 말을 듣고 경악스러움을 못하고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이중현은 신과는 평소 교분이 없는데, 신이 반드시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입니까. 신 또한 어찌 불측한 말을 교분도 없는 사람에게 말하였겠습니까. 지금 만약 원이곤이 지레 죽어서 입을 열지 못하게 되면 상소를 지어서 몰래 사주한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몰래 사주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면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분하게 여길 것인데, 어찌 인심이 흔쾌하겠습니까. 몰래 사주한 자가 애초에 부탁을 했다가 이제 원이곤의 입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으니, 꼭 죽이려고 하는 자는 몰래 사주한 자일 것입니다.  원이곤의 죄목은 절로 그 해당 율문이 있으니, 신이 어찌 그 사이에 간여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중현의 말이 이토록 음참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신이 즉시 이수경과 이중현을 공청(公廳)에 불러다 놓고 물었더니, 이수경은 들은 바를 하나하나 말하였는데, 이중현은 명쾌히 해명하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말이 궁하여 그러한 것입니다. 오늘 형조와 함께 의논하여 포폄을 해야 하는데, 신은 아랫관원의 모함을 무겁게 당했으니, 신이 무슨 낯으로 옥관의 전최(殿最)에 간여하겠습니까. 형조와 함께 의논하여 마감할 수 없다는 뜻을 황송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
"신이 형옥서(刑獄署) 제조(提調)를 예겸(例兼)하고 있습니다. 무릇 새로 들어오는 중죄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옥관(獄官)을 불러 신칙하여, 칼과 고랑을 벗지 못하게 하고 잡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이 전례입니다. 지난번에 원이곤(元以坤)을 수금할 때에 신이 옥관을 불렀더니 주부 이중현(李重顯)이 왔기에 신이 전례대로 신칙하여 보냈습니다.
그 뒤에 신이 들으니, 이중현이 원이곤의 매부(妹夫)인 전 군수 이수경(李守慶)을 만나서 귓속말로 말하기를 ‘형방 승지가 나를 시켜 원이곤을 죽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찌 차마 죽이겠는가.’라고 하였답니다. 신은 그 말을 듣고 경악스러움을 못하고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이중현은 신과는 평소 교분이 없는데, 신이 반드시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입니까. 신 또한 어찌 불측한 말을 교분도 없는 사람에게 말하였겠습니까.
지금 만약 원이곤이 지레 죽어서 입을 열지 못하게 되면 상소를 지어서 몰래 사주한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몰래 사주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면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분하게 여길 것인데, 어찌 인심이 흔쾌하겠습니까. 몰래 사주한 자가 애초에 부탁을 했다가 이제 원이곤의 입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으니, 꼭 죽이려고 하는 자는 몰래 사주한 자일 것입니다.
원이곤의 죄목은 절로 그 해당 율문이 있으니, 신이 어찌 그 사이에 간여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중현의 말이 이토록 음참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신이 즉시 이수경과 이중현을 공청(公廳)에 불러다 놓고 물었더니, 이수경은 들은 바를 하나하나 말하였는데, 이중현은 명쾌히 해명하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말이 궁하여 그러한 것입니다.
오늘 형조와 함께 의논하여 포폄을 해야 하는데, 신은 아랫관원의 모함을 무겁게 당했으니, 신이 무슨 낯으로 옥관의 전최(殿最)에 간여하겠습니까. 형조와 함께 의논하여 마감할 수 없다는 뜻을 황송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

 

금부 죄인 윤진(尹震)과 초남(初男)이 연좌되어 교형에 처해졌다.

 

12월 13일 기유

전교하였다. "근래에 죄인을 정배하느라 금부에 일이 많은데, 정원이 대방(代房)으로 입계하니, 일이 매우 온당치 못하다. 옥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형방 승지는 날마다 사진하고 일찍 나가지 말 일을 착실히 살펴 시행하라."
"근래에 죄인을 정배하느라 금부에 일이 많은데, 정원이 대방(代房)으로 입계하니, 일이 매우 온당치 못하다. 옥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형방 승지는 날마다 사진하고 일찍 나가지 말 일을 착실히 살펴 시행하라."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역적의 옥사에 관계되는 공사(公事)는 모두 신을 거쳐서 출입되는데, 대방은 단지 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입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신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번거롭게 성상의 분부가 내려지게 하였으니, 황공함을 못하겠습니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한찬남이 역적의 옥사를 잘 처리하여 도승지로서 형방 승지의 일을 본 것이 전후로 6년이었다.】
"역적의 옥사에 관계되는 공사(公事)는 모두 신을 거쳐서 출입되는데, 대방은 단지 신의 이름을 대신하여 입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신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번거롭게 성상의 분부가 내려지게 하였으니, 황공함을 못하겠습니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한찬남이 역적의 옥사를 잘 처리하여 도승지로서 형방 승지의 일을 본 것이 전후로 6년이었다.】

 

12월 14일 경술

전교하였다. "사은사(謝恩使)가 압록강을 건넌 뒤 20일이 되었는데도 아직 복명(復命)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신과 서장관을 모두 추고하여 뒷사람을 경계시키라."
"사은사(謝恩使)가 압록강을 건넌 뒤 20일이 되었는데도 아직 복명(復命)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신과 서장관을 모두 추고하여 뒷사람을 경계시키라."

 

12월 15일 신해

금부도사가 치계하였다. "삼수(三水)에 정배한 죄인 유성(柳惺)을 이달 4일에 사사(賜死)하였습니다."
"삼수(三水)에 정배한 죄인 유성(柳惺)을 이달 4일에 사사(賜死)하였습니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선왕조 때에 양 경리(楊經理)에게 글을 보냈던 역적 황학령(黃鶴齡)과 이춘기(李春起)와 갯동[介叱同]은 그 죄가 같습니다. 그런데 황학령은 모두 승복을 하고도 수십 년 동안 숨을 붙이고 살고 있으며 갯동은 도망다니던 죄인으로서 체포되었습니다. 모두 추국을 할 것도 없이 죽여야 될 자들입니다. 세 역적이 지레 죽기 전에 속히 정형(正刑)을 시행하소서. 갯동을 보방(保放)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갯동은 각별히 구료하라." 하였다.
"선왕조 때에 양 경리(楊經理)에게 글을 보냈던 역적 황학령(黃鶴齡)과 이춘기(李春起)와 갯동[介叱同]은 그 죄가 같습니다. 그런데 황학령은 모두 승복을 하고도 수십 년 동안 숨을 붙이고 살고 있으며 갯동은 도망다니던 죄인으로서 체포되었습니다. 모두 추국을 할 것도 없이 죽여야 될 자들입니다. 세 역적이 지레 죽기 전에 속히 정형(正刑)을 시행하소서. 갯동을 보방(保放)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갯동은 각별히 구료하라."
하였다.

 

춘추관이 아뢰기를, "선왕조 갑신년에 온성 부사(穩城府使) 신립(申砬)이 변방의 일을 진주(陳奏)하는 일과 모친을 찾아뵐 일로 서울에 올라왔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옛 전례가 이러하니, 신경징(申景澄)과 현즙(玄楫)에게 죄줄 만한 일이 특별히 없다. 속히 부임하게 하라." 하였다.
"선왕조 갑신년에 온성 부사(穩城府使) 신립(申砬)이 변방의 일을 진주(陳奏)하는 일과 모친을 찾아뵐 일로 서울에 올라왔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옛 전례가 이러하니, 신경징(申景澄)과 현즙(玄楫)에게 죄줄 만한 일이 특별히 없다. 속히 부임하게 하라."
하였다.

 

금부 죄인 황학령과 이춘기에게 정형을 시행하였다. 갯동은 사망하였다.

 

12월 16일 임자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평안 병사 이시언(李時言)의 장계를 보건대, 이렇게 변방에 근심스런 일이 많은 때에 적지 않은 군기(軍器)를 거의 다 불타게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평소에 검칙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일입니다. 이시언을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지금 평안 병사 이시언(李時言)의 장계를 보건대, 이렇게 변방에 근심스런 일이 많은 때에 적지 않은 군기(軍器)를 거의 다 불타게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평소에 검칙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일입니다. 이시언을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였는데, 세 역적과 네 흉도에게 죄를 더주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사헌부가 아뢰었다. "내자시 정 이경운(李卿雲)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용렬하여 한 관사의 장관으로는 적합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이 자자합니다. 지난번에 장인(匠人)이 추고를 받은 일로 이경운이 함답(緘答)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연에 사실을 근거로 하여 바르게 대답하지 못하고 감히 구차스레 면하려는 계책을 내어 허물을 동료에게 돌리고는 전혀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사부(士夫)의 몸으로서 마음씀이 이러하니, 어찌 장관에 합당치 않을 뿐이겠습니까.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라고 명하소서."
"내자시 정 이경운(李卿雲)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용렬하여 한 관사의 장관으로는 적합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이 자자합니다. 지난번에 장인(匠人)이 추고를 받은 일로 이경운이 함답(緘答)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연에 사실을 근거로 하여 바르게 대답하지 못하고 감히 구차스레 면하려는 계책을 내어 허물을 동료에게 돌리고는 전혀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사부(士夫)의 몸으로서 마음씀이 이러하니, 어찌 장관에 합당치 않을 뿐이겠습니까.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라고 명하소서."

 

사간원이 아뢰었다. "괴원(槐院)의 선발은 오로지 그들의 호오(好惡)에서 나옵니다. 권점(圈點)을 할 때에 서로 간교한 계책을 내어, 비록 연소하고 총명한 자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자기들과 다른 쪽 사람이면 모두 물리쳐버립니다. 의논을 할 때에 공정하지 못함도 예전과 같습니다. 동료가 다른 의견을 내고 참여치 않았다면 권점을 할 수 없는 것이 옛 규례인데, 동료들의 의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규례를 어기고서 권점을 하여 마음대로 용심을 부려, 분관(分館)을 하는 막중한 일을 도당이 합좌한 날에 마감할 수 없도록 하였으니, 매우 경악스럽습니다. 주장(主掌)한 행수 장무관들을 모두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고, 속히 가려서 선발하소서."
"괴원(槐院)의 선발은 오로지 그들의 호오(好惡)에서 나옵니다. 권점(圈點)을 할 때에 서로 간교한 계책을 내어, 비록 연소하고 총명한 자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자기들과 다른 쪽 사람이면 모두 물리쳐버립니다. 의논을 할 때에 공정하지 못함도 예전과 같습니다. 동료가 다른 의견을 내고 참여치 않았다면 권점을 할 수 없는 것이 옛 규례인데, 동료들의 의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규례를 어기고서 권점을 하여 마음대로 용심을 부려, 분관(分館)을 하는 막중한 일을 도당이 합좌한 날에 마감할 수 없도록 하였으니, 매우 경악스럽습니다. 주장(主掌)한 행수 장무관들을 모두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고, 속히 가려서 선발하소서."

 

합계에, 이미 하유하였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헌부와 간원에,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학 유생(四學儒生) 황정필(黃廷弼)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원이곤의 죄를 먼저 바루고 이극건의 간사함을 끝까지 추문하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12월 17일 계축

한찬남이 아뢰기를, "진사 이극건 등이 상소를 이미 와서 바쳤습니다. 유생의 상소는 감히 정원에 머물려 둘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아울러 입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러한 상소는 우선 정원에 머물려 두고 전교를 내린 뒤에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진사 이극건 등이 상소를 이미 와서 바쳤습니다. 유생의 상소는 감히 정원에 머물려 둘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아울러 입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러한 상소는 우선 정원에 머물려 두고 전교를 내린 뒤에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형조가 아뢰었다. "원이곤은 형문(刑問)을 한 차례 하였습니다만, 승복하지 않습니다. 가형하소서."
"원이곤은 형문(刑問)을 한 차례 하였습니다만, 승복하지 않습니다. 가형하소서."

 

12월 18일 갑인

전교하였다. "죄인 오충립(吳忠立)·오방언(吳邦彦)·차춘령(車春齡)·차인(車仁)·오경로(吳敬老)·김대풍(金大豊)·이승춘(李承春)·최명종(崔明終)·박언준(朴彦俊)·이소군(李小君)·김의(金義)·오득철(吳得鐵)·정기남(鄭起男)을 모두 방송(放送)하라."
"죄인 오충립(吳忠立)·오방언(吳邦彦)·차춘령(車春齡)·차인(車仁)·오경로(吳敬老)·김대풍(金大豊)·이승춘(李承春)·최명종(崔明終)·박언준(朴彦俊)·이소군(李小君)·김의(金義)·오득철(吳得鐵)·정기남(鄭起男)을 모두 방송(放送)하라."

 

전교하였다. "날씨가 이토록 추우니, 긴요하지 않은 차지(次知)는 속히 결방(決放)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날씨가 이토록 추우니, 긴요하지 않은 차지(次知)는 속히 결방(決放)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예조 판서 이이첨이 아뢰기를, "신은 질병과 비방이 모두 극심하여 사직하여 면직을 빌었는데, 윤허를 하지 않으시니, 일이 낭패스럽게 되어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침을 맞으시는 거둥이 있으시기에 허둥지둥 대궐에 나와 입시하는 반열에 억지로 참여하였습니다. 전최(殿最)가 앞에 닥쳐 다시 사직하지도 못하고 뻔뻔스레 행공을 하자니 더더욱 미안합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원이곤이 형조에서 공초하면서, 그의 상소 안에 있는 많은 말들을 모두 길에서 들은 것이라고 핑계대고 권의(權誼)에 대한 일은 스스로 망녕되이 진달하였다고 하면서 도리어 형효갑(邢孝甲)의 책두(策頭)에 있는 정운(定運)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는 오로지 고관(考官)을 공격할 계책을 삼고 있다고 합니다. 말이 터무니없기가 와 같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신의 생각은 고관들의 계사에서 대략 진달하였으니, 단지 형효갑의 일을 가지고 우러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생으로서 정운(定運)·원종(原從)에 참여한 자가 무려 수백 명이나 되니, 이것을 가지고 혐의를 삼아서 뽑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혹 말하기를 ‘거자(擧子)가 또한 주상(周庠)이나 노반(魯泮) 등의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니, 스스로 생진(生進)이라고 했다고 해서 혐의를 삼아 뽑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신이 에 여러 사람들의 의논을 듣고 뽑았던 것입니다. 신이 끝까지 그 사이에 사사로운 뜻이 조금도 없었음을 참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이곤이 계책이 다하고 말이 궁색해지자 에 이것으로 고관을 모함할 바탕을 삼았으니, 헤아릴 수 없는 해괴한 행동이 어찌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신이, 전대의 고관으로서 비난을 받았던 자들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종 때에 남곤(南袞)이 당시의 대현(大賢)들과 함께 전시(殿試)의 고관으로 있을 때에, 거인 성수종(成守琮)의 대책(對策)이 대현들의 대단한 칭찬을 받아 급제하였는데, 남곤이 사류들을 무함하고 난 뒤에 성수종이 급제한 것은 아무개가 사심을 부린 것이라고 하며, 드디어 대관을 사주하여 논계하여 박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안국(金安國)은 한 시대의 유종(儒宗)으로서도 억울하게도 옛 친구를 위하여 사심을 부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광한(申光漢)이 이원록(李元祿)을 뽑을 때와 박순(朴淳)이 황혁(黃赫)을 뽑을 때에도 모두 사심을 부렸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만, 이원록이 마침내 사장(詞章)으로 이름이 드러나자 사람들이 비로소 그가 권간(權奸)들의 무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으며, 황혁은 비록 하고(下考)로 거수(居首)를 차지하였으나 그는 글을 잘 지었으니 꼭 사심을 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이(李珥)가 박점(朴漸)을 뽑을 때에, 소리(素履)라는 두 글자로 표식을 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이가 탑전에서 아뢰기를 ‘과연 박점의 작품인 줄을 알았습니다만 인물이 쓸 만하기 때문에 뽑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는 바로 속임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이정귀(李廷龜)가 여러 차례 고관이 되자, 사람들이 자기 파당만 치우치게 뽑는다고 하였고 심지어 ‘자기 집 문 담장에 방을 붙였다[門墻題榜]’고 비난을 하였습니다만, 는 오랫동안 문병(文柄)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 어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어서 이런 비방을 받은 것이겠습니까. 정사룡(鄭士龍)이 이헌국(李憲國)과 신사헌(愼思獻)을 뽑았는데 이헌국은 한림(翰林)의 탄핵을 받았고 신사헌은 삭직당하고 연좌되어 귀양을 갔습니다. 그 뒤에 마침내 복과(復科)되었으나 물의는 흔쾌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심희수(沈喜壽)는 신해년 별시 때에 오로지 한 쪽의 사람들만 뽑았는데 그 가운데에서 임숙영(任叔英)의 글은 유분(劉蕡)에다가 견주면서 뽑았습니다. 성영(成泳)이 송상인(宋象仁)을 뽑았을 때에는 자표(字標)를 서로 통하였다는 말이 있었고, 최천건(崔天健)이 유영경(柳永慶)의 아들과 조카 세 사람을 뽑자 책두(策頭)를 써서 들였다는 말이 있었으며, 박이서(朴彛叙)가 정문익(鄭文翼)을 뽑았을 때에는 제목을 내어 미리 글을 지었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관들 가운데에는 혹 사실과는 다르게 무함을 당한 자도 있고 혹 실제로 그런 일을 하여 비방을 들은 자도 있습니다. 참으로 잘못을 한 바가 없다면 사람들의 말을 돌아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형편없는 신이 오래도록 이 직임을 맡고 있으니, 어찌 이러한 무함을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원이곤은 어리석고 글을 못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이 상소를 올렸으니, 온 나라의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 가 없으며, 본 자는 모두 그 상소의 글이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압니다. 형조에서 공초를 받음에 미쳐서는 문리(文理)가 이어지지 않고 언어(言語)가 뒤죽박죽이 되어 무감(無憾)의 감(憾) 자를 감(感)이라고 썼으며 김원(金愿)의 원(愿) 자를 언(言) 자 아래에다 심(心) 자를 썼으니, 그가 문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극건(李克健)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하였고 하는 말이 이극건과는 아주 서로 달랐는데, 조관(曹官)과 이서(吏胥)들도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가 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들을 모함에 빠뜨리려고 한 자취는 환히 드러나 덮을 수가 없습니다.  이극건 등의 상소에는 또 ‘이번의 전시(殿試)에 고관(考官)이 자제(子弟)들을 많이 뽑았다.’고 하였는데, 예로부터 전시에는 상피(相避)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고관의 자제들이 참방(參榜)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허엽(許曄)이 허봉(許篈)을 뽑을 때와 윤두수(尹斗壽)가 윤양(尹暘)을 뽑을 때에 과연 자제라는 혐의를 피하여 뽑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와 같은 경우는 출방할 때마다 없는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극건 등은 원이곤이 한 여러 가지 말들을 모두 부박한 무리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원이곤 등이 성상을 속인 죄와 큰 간인(奸人)이 몰래 사류(士類)를 해치려 한 것은 이미 안율(按律)을 의논할 때에 드러났으니, 무슨 끝까지 조사하여 실정을 캐낼 것이 있겠습니까. 그냥 내버려 두고 묻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평생 동안 뭇사람들의 참소를 자초하여 누차 위태한 함정에 빠졌습니다. 칼을 품고 그림자를 쏘는 무리들이 반드시 잇따라 일어날 것이니, 신이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은 신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듣건대, 사학(四學)의 유생들이 글을 올려 원이곤의 처벌을 청하였다고 하니, 는 신을 신구(伸救)하고자 한 것이나, 한갓 신을 원망하는 자들을 증가시킬 뿐입니다. 이것이 어찌 유생들이 저를 위하여 쟁변할 일이겠습니까. 비방을 그치게 하고 화를 면할 계책은 오직 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신과 같은 재주 없는 자가 오랫동안 문형(文衡)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양 과거(科擧)를 당할 때마다 참소를 당하고 모함을 당하는 것이 이토록 망극한 것입니다. 아, 형효갑을 과방에서 빼지 말라는 논계를 정지하지 않으면 자기 파당을 비호한다는 말이 그치지 않을 것이며 신의 문형의 직임을 체차하지 않으면 사주하는 사람의 상소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성상께서는 신의 간절함을 굽어 살피시어 신의 본직과 겸대를 모두 개차하소서. 그러면 공사간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말은 모두 잘 알았다. 이러한 때의 사람들의 말을 무슨 마음 쓸 것이 있겠는가. 경은 다시 사직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조리하며 직무를 보도록 하라." 하였다.
"신은 질병과 비방이 모두 극심하여 사직하여 면직을 빌었는데, 윤허를 하지 않으시니, 일이 낭패스럽게 되어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침을 맞으시는 거둥이 있으시기에 허둥지둥 대궐에 나와 입시하는 반열에 억지로 참여하였습니다. 전최(殿最)가 앞에 닥쳐 다시 사직하지도 못하고 뻔뻔스레 행공을 하자니 더더욱 미안합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원이곤이 형조에서 공초하면서, 그의 상소 안에 있는 많은 말들을 모두 길에서 들은 것이라고 핑계대고 권의(權誼)에 대한 일은 스스로 망녕되이 진달하였다고 하면서 도리어 형효갑(邢孝甲)의 책두(策頭)에 있는 정운(定運)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는 오로지 고관(考官)을 공격할 계책을 삼고 있다고 합니다. 말이 터무니없기가 와 같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신의 생각은 고관들의 계사에서 대략 진달하였으니, 단지 형효갑의 일을 가지고 우러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생으로서 정운(定運)·원종(原從)에 참여한 자가 무려 수백 명이나 되니, 이것을 가지고 혐의를 삼아서 뽑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혹 말하기를 ‘거자(擧子)가 또한 주상(周庠)이나 노반(魯泮) 등의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니, 스스로 생진(生進)이라고 했다고 해서 혐의를 삼아 뽑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신이 에 여러 사람들의 의논을 듣고 뽑았던 것입니다. 신이 끝까지 그 사이에 사사로운 뜻이 조금도 없었음을 참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이곤이 계책이 다하고 말이 궁색해지자 에 이것으로 고관을 모함할 바탕을 삼았으니, 헤아릴 수 없는 해괴한 행동이 어찌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신이, 전대의 고관으로서 비난을 받았던 자들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종 때에 남곤(南袞)이 당시의 대현(大賢)들과 함께 전시(殿試)의 고관으로 있을 때에, 거인 성수종(成守琮)의 대책(對策)이 대현들의 대단한 칭찬을 받아 급제하였는데, 남곤이 사류들을 무함하고 난 뒤에 성수종이 급제한 것은 아무개가 사심을 부린 것이라고 하며, 드디어 대관을 사주하여 논계하여 박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안국(金安國)은 한 시대의 유종(儒宗)으로서도 억울하게도 옛 친구를 위하여 사심을 부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광한(申光漢)이 이원록(李元祿)을 뽑을 때와 박순(朴淳)이 황혁(黃赫)을 뽑을 때에도 모두 사심을 부렸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만, 이원록이 마침내 사장(詞章)으로 이름이 드러나자 사람들이 비로소 그가 권간(權奸)들의 무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으며, 황혁은 비록 하고(下考)로 거수(居首)를 차지하였으나 그는 글을 잘 지었으니 꼭 사심을 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이(李珥)가 박점(朴漸)을 뽑을 때에, 소리(素履)라는 두 글자로 표식을 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이가 탑전에서 아뢰기를 ‘과연 박점의 작품인 줄을 알았습니다만 인물이 쓸 만하기 때문에 뽑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는 바로 속임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이정귀(李廷龜)가 여러 차례 고관이 되자, 사람들이 자기 파당만 치우치게 뽑는다고 하였고 심지어 ‘자기 집 문 담장에 방을 붙였다[門墻題榜]’고 비난을 하였습니다만, 는 오랫동안 문병(文柄)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 어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어서 이런 비방을 받은 것이겠습니까. 정사룡(鄭士龍)이 이헌국(李憲國)과 신사헌(愼思獻)을 뽑았는데 이헌국은 한림(翰林)의 탄핵을 받았고 신사헌은 삭직당하고 연좌되어 귀양을 갔습니다. 그 뒤에 마침내 복과(復科)되었으나 물의는 흔쾌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심희수(沈喜壽)는 신해년 별시 때에 오로지 한 쪽의 사람들만 뽑았는데 그 가운데에서 임숙영(任叔英)의 글은 유분(劉蕡)에다가 견주면서 뽑았습니다. 성영(成泳)이 송상인(宋象仁)을 뽑았을 때에는 자표(字標)를 서로 통하였다는 말이 있었고, 최천건(崔天健)이 유영경(柳永慶)의 아들과 조카 세 사람을 뽑자 책두(策頭)를 써서 들였다는 말이 있었으며, 박이서(朴彛叙)가 정문익(鄭文翼)을 뽑았을 때에는 제목을 내어 미리 글을 지었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고관들 가운데에는 혹 사실과는 다르게 무함을 당한 자도 있고 혹 실제로 그런 일을 하여 비방을 들은 자도 있습니다. 참으로 잘못을 한 바가 없다면 사람들의 말을 돌아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형편없는 신이 오래도록 이 직임을 맡고 있으니, 어찌 이러한 무함을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원이곤은 어리석고 글을 못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이 상소를 올렸으니, 온 나라의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 가 없으며, 본 자는 모두 그 상소의 글이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압니다. 형조에서 공초를 받음에 미쳐서는 문리(文理)가 이어지지 않고 언어(言語)가 뒤죽박죽이 되어 무감(無憾)의 감(憾) 자를 감(感)이라고 썼으며 김원(金愿)의 원(愿) 자를 언(言) 자 아래에다 심(心) 자를 썼으니, 그가 문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극건(李克健)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하였고 하는 말이 이극건과는 아주 서로 달랐는데, 조관(曹官)과 이서(吏胥)들도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가 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들을 모함에 빠뜨리려고 한 자취는 환히 드러나 덮을 수가 없습니다.
이극건 등의 상소에는 또 ‘이번의 전시(殿試)에 고관(考官)이 자제(子弟)들을 많이 뽑았다.’고 하였는데, 예로부터 전시에는 상피(相避)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고관의 자제들이 참방(參榜)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허엽(許曄)이 허봉(許篈)을 뽑을 때와 윤두수(尹斗壽)가 윤양(尹暘)을 뽑을 때에 과연 자제라는 혐의를 피하여 뽑지 않았더란 말입니까. 와 같은 경우는 출방할 때마다 없는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극건 등은 원이곤이 한 여러 가지 말들을 모두 부박한 무리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원이곤 등이 성상을 속인 죄와 큰 간인(奸人)이 몰래 사류(士類)를 해치려 한 것은 이미 안율(按律)을 의논할 때에 드러났으니, 무슨 끝까지 조사하여 실정을 캐낼 것이 있겠습니까. 그냥 내버려 두고 묻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돌아보건대 신은 평생 동안 뭇사람들의 참소를 자초하여 누차 위태한 함정에 빠졌습니다. 칼을 품고 그림자를 쏘는 무리들이 반드시 잇따라 일어날 것이니, 신이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은 신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듣건대, 사학(四學)의 유생들이 글을 올려 원이곤의 처벌을 청하였다고 하니, 는 신을 신구(伸救)하고자 한 것이나, 한갓 신을 원망하는 자들을 증가시킬 뿐입니다. 이것이 어찌 유생들이 저를 위하여 쟁변할 일이겠습니까. 비방을 그치게 하고 화를 면할 계책은 오직 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신과 같은 재주 없는 자가 오랫동안 문형(文衡)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양 과거(科擧)를 당할 때마다 참소를 당하고 모함을 당하는 것이 이토록 망극한 것입니다. 아, 형효갑을 과방에서 빼지 말라는 논계를 정지하지 않으면 자기 파당을 비호한다는 말이 그치지 않을 것이며 신의 문형의 직임을 체차하지 않으면 사주하는 사람의 상소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성상께서는 신의 간절함을 굽어 살피시어 신의 본직과 겸대를 모두 개차하소서. 그러면 공사간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말은 모두 잘 알았다. 이러한 때의 사람들의 말을 무슨 마음 쓸 것이 있겠는가. 경은 다시 사직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조리하며 직무를 보도록 하라."
하였다.

 

12월 20일 병진

병조가 아뢰기를, "곽산 군수(郭山郡守) 조인(趙訒)은 전에 영일 현감(迎日縣監)으로 있을 때에 군량(軍糧)을 마련한 일이 확실합니다. 상께서 헤아려 처리하소서." 하였는데, 자급을 더해 주라고 계하하였다.
"곽산 군수(郭山郡守) 조인(趙訒)은 전에 영일 현감(迎日縣監)으로 있을 때에 군량(軍糧)을 마련한 일이 확실합니다. 상께서 헤아려 처리하소서."
하였는데, 자급을 더해 주라고 계하하였다.

 

금부가 아뢰기를, "황학령(黃鶴齡) 등의 당초의 조율을 상고해 보니, ‘참대시(斬待時)에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황학령 등의 원공사(元公事)를 가져다가 살펴보니, 조토리(趙土里)는 만력 25년 12월 17일에 승복받아 조율하여 29년 9월 18일에 삼복(三覆)을 하여 형을 집행하였는데, 황학령은 탈옥을 하여 도망하였다가 체포되어 다시 갇혀 35년 3월 3일에 승복하여, 결안(結案)을 한 뒤에 목숨을 연장한 것이 1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가 비록 삼복을 거치지 않았으나 이미 승복하였으니, 형을 집행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춘기(李春起)는 비록 조토리의 공초에 나오기는 하였으나 미처 추국하지 못했습니다. 정유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옥정(獄情)의 진위(眞僞)가 뒤섞인 것이 없지 않으니, 상세하게 따져 묻고 타이르고 곡절을 가지고 실상을 캐낸 뒤에 처결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후의 추안(推案)이 정원에 보관되어 있어서 형세로 보아 마음대로 갖다가 상고할 수가 없었고 승지의 계사에 대해 이미 윤허를 내리셨으므로 신들이 유사(有司)로 있으면서 이치로 보아 지연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승전에 의거하여 이춘기까지 아울러 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어제 늦게야 비로소 원추안(元推案)을 보았더니, 저희들의 처리가 사수(死囚)를 결안(結案)하고 조율(照律)하는 법례를 어긴 것이었습니다. 신들은 허둥지둥하며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죄를 면할 수 없습니다. 황공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황공해 하지 말라. 위에서도 병중에 있기 때문에 살피지 못하고 윤허를 내린 것이다. 지금 이후로는 색승지가 더욱 살펴 시행하라." 하였다.
"황학령(黃鶴齡) 등의 당초의 조율을 상고해 보니, ‘참대시(斬待時)에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황학령 등의 원공사(元公事)를 가져다가 살펴보니, 조토리(趙土里)는 만력 25년 12월 17일에 승복받아 조율하여 29년 9월 18일에 삼복(三覆)을 하여 형을 집행하였는데, 황학령은 탈옥을 하여 도망하였다가 체포되어 다시 갇혀 35년 3월 3일에 승복하여, 결안(結案)을 한 뒤에 목숨을 연장한 것이 1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가 비록 삼복을 거치지 않았으나 이미 승복하였으니, 형을 집행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춘기(李春起)는 비록 조토리의 공초에 나오기는 하였으나 미처 추국하지 못했습니다. 정유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옥정(獄情)의 진위(眞僞)가 뒤섞인 것이 없지 않으니, 상세하게 따져 묻고 타이르고 곡절을 가지고 실상을 캐낸 뒤에 처결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후의 추안(推案)이 정원에 보관되어 있어서 형세로 보아 마음대로 갖다가 상고할 수가 없었고 승지의 계사에 대해 이미 윤허를 내리셨으므로 신들이 유사(有司)로 있으면서 이치로 보아 지연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승전에 의거하여 이춘기까지 아울러 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어제 늦게야 비로소 원추안(元推案)을 보았더니, 저희들의 처리가 사수(死囚)를 결안(結案)하고 조율(照律)하는 법례를 어긴 것이었습니다. 신들은 허둥지둥하며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죄를 면할 수 없습니다. 황공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황공해 하지 말라. 위에서도 병중에 있기 때문에 살피지 못하고 윤허를 내린 것이다. 지금 이후로는 색승지가 더욱 살펴 시행하라."
하였다.

 

12월 21일 정사

이조에 답하였다. "정사(政事)를 천천히 시행하라."
"정사(政事)를 천천히 시행하라."

 

진사(進士)        윤선도(尹善道)가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임금이 아랫사람들을 통제하는 방도로는 권강(權綱)을 모두 쥐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도 이르기를 ‘오직 임금만이 상도 줄 수가 있고 벌도 줄 수가 있다.’고 하였으며, 송(宋)나라의 진덕수(眞德秀)도 말하기를 ‘임금된 자가 어찌 하루라도 권위의 칼자루를 놓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뜻깊은 말입니다. 신하된 자가 참으로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쥐게 되면 자기의 복심(腹心)을 요직에 포열(布列)시켜 상과 벌[威福]을 자기에게서 나오게 합니다. 설령 어진 자가 이렇게 해도 안 될 일인데, 만약 어질지 못한 자가 이와 같이 한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훌륭하신 상께서 에 계시어 임금과 신하가 각기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있으니 이러한 자가 없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신이 삼가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의 하는 짓을 보니 불행히도 이에 가까우므로 신은 삼가 괴이하게 생각합니다. 신은 하찮은 일개 유자(儒者)로서 어리석고 천박하여, 비록 도성 안에 살지만 외방에 사는 몽매한 백성과 다를 바가 없으니, 조정의 일에 대해서는 백 가지 가운데 가지도 알지를 못하지만,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가지고 성상께 우러러 진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유념해 주소서. 신이 삼가 보건대, 근래의 고굉(股肱)·이목(耳目)·후설(喉舌)을 맡은 관원들과 논사(論思)·풍헌(風憲)·전선(銓選)을 담당하고 있는 관원들은 이이첨의 복심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간혹 그들의 무리가 아니면서 한두 사람 그 사이에 섞여 있는 자들은, 반드시 그 사람됨이 무르고 행실이 줏대가 없으며 시세를 살펴 아첨이나 하며 세상 되는 대로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대각의 계사에 대해서 전하께서는 반드시 대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시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이며, 옥당의 차자를 전하께서는 반드시 옥당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시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이며, 전조(銓曹)의 주의(注擬)를 전하께서는 반드시 전조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시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풍지(風旨)를 받들어 그렇게 하기도 하고 그의 지휘를 받아서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비록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에게 물어본 뒤에 시행합니다. 관학 유생(館學儒生)에 이르러서도 그의 파당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관학의 소장(疏章)이 또한 겉으로는 곧고 격렬하지만 속은 실제로 아첨하며 빌붙는 내용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 편이 아닌 자는 비록 사람들의 중망을 받고 있는 자라도 반드시 배척하고, 자기와 뜻이 같은 자는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기는 자라도 반드시 등용합니다. 모든 일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비록 하나하나 거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미루어 보면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권세를 멋대로 부리고 있는 것이 또한 극도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비록 보필(輔弼)의 임무를 맡은 지위에 있지는 않으나 전하께서 믿고 맡기셨다면, 그는 마땅히 나라에 충성을 다하기를 당(唐)나라의 이필(李泌)이나 육지(陸贄)와 같이 해야 하는데, 도리어 나라를 저버리기를 이렇게 하니, 신은 매우 통분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상께서는 깊은 궁궐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가 이토록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가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어질다고 여겨서 맡겨 의심을 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까? 만약 어질다고 여겨서 의심을 하지 않으신다면,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분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신이 들으니, 임금은 어진이가 없으면 정치를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훌륭한 임금이 에 있더라도 임용된 신하가 불초한 사람이면 정치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堯)가 임금으로 있는데도 곤(鯀)의 치수(治水)가 공적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면 임용된 신하가 어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임용된 신하가 불초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날을 잘 다스려지는 때라고 보십니까, 혼란한 때라고 보십니까? 지난번에 해의 이변이 거듭 나타나고 지진이 누차 발생하였으며 겨울 안개가 사방에 가득했었으니, 이는 모두 재변 가운데에서도 큰 재변이었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그 형체가 보이지 않으면 그 그림자를 살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런 재변이 오늘날의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은 모든 양(陽)의 종주(宗主)로서 임금의 표상이기 때문에, 일식(日食)이 하늘 운행의 상도(常度)인데도 《춘추(春秋)》에 일식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기록하였고, 전(傳)에는 ‘첩부(妾婦)가 그 지아비를 누르거나 신하가 임금을 저버리거나 정권(政權)이 신하에게 있거나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는 형상이니, 모두가 음(陰)이 왕성하고 양(陽)이 미약한 증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흰무지개가 해를 궤뚫는 참혹함은 일식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재변은 까닭없이 생기지 않는 것이니, 어찌 그 이유가 없겠습니까.  진덕수(眞德秀)가 《대학연의(大學衍義)》에서 ‘충신의 마음은 오히려 임금이 재변을 두려워하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것이니 위상(魏相)이 역적(逆賊)의 발생과 풍우(風雨)의 재변을 한 선제(漢宣帝)에게 고한 것이 이것이고, 간신의 마음은 오히려 임금이 재변을 두려워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니 양국충(楊國忠)이 장맛비가 농사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여 당 명황(唐明皇)을 속인 것이 이것이다. 대개 임금이 하늘의 재변을 두렵게 여기면 반드시 자신의 허물을 찾아보고 반드시 폐정(弊政)을 반성하여 고치며 반드시 소인을 제거하니 이것은 충신에게는 즐거운 일이고 간신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씀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근래에 왕안석(王安石)이 드디어 하늘의 재변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말을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령 이이첨이 충신이라면 그만이거니와, 만약 이이첨이 간신이라면 오늘날의 재변을 혹 다른 나라에 전가시키거나 혹 다른 일의 증험이라고 하거나 혹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일이라고 곧바로 말할 것입니다. 신도 또한 높고 멀어 알기 어려운 일을 가지고 그에게 책임을 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신은 많은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날 변방의 방비가 허술한 점이 많아 나라의 형세가 매우 위태롭고 아랫백성들이 원망을 품어 방본(邦本)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심이 매우 투박해져서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고 풍속이 아주 무너져 염치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로는 벼슬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아래로 시정배에 이르기까지 신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비들에 대해서는 신이 함께 지내며 함께 만나는 자들이니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책과 붓을 가지고 공부를 하러 다니는 자들이 한갓 이록(利祿)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고 인의(仁義)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과거(科擧)는 선비들이 처음으로 벼슬에 나가는 길인데, 모두들 빨리 진출할 마음을 품고 서로들 구차하게 합격할 꾀를 씁니다. 차술(借述)을 하여 권세있는 자에게 빌붙고 주사(主司)에 교통하였다는 말을 사람들이 모두 공공연하게 꺼리지 않고 하고들 있습니다. 아비는 아들을 가르치고 형은 동생을 면려하며 친구들끼리 서로 불러다가 온통 이렇게 하고들 있으면서 돌이킬 줄을 모릅니다. 간혹 백 명 가운데에 한두 명이 이와 반대로 하면 도리어 비웃고 비난을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와 다르게 한다고 화를 내어 욕하고 헐뜯는 자도 있습니다. 아, 사기(士氣)는 나라의 원기(元氣)인데 이 지경이 되었으니, 통탄스러움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처음 임금을 뵐 때에 이와 같다면 뒷날 조정에 벼슬을 하게 되었을 때에 벼슬을 얻고자 근심하고 그 벼슬을 잃을까 근심하는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삼가 생각건대,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역적이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있다면 반드시 이 무리에게서 나올 것이며, 자신을 버리고 나라에 몸바칠 신하가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있다면 반드시 이 무리에게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선유(先儒)의 시에 이르기를 ‘이런 사람을 등용하고 이런 도를 시행하니 어느날 태평의 시대가 올지 알지 못하겠구나.[所用是人行是道 不知何日可昇平]’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일찍이 이 시를 읊으며 천장을 쳐다보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이첨이 임금의 총애를 저토록 오로지 차지하고 있고 나라의 정치를 저토록 오래도록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변이 저러하고 나라의 형세가 저러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저러하고 풍속이 저러하고 선비들의 습속이 저러하니, 이자가 과연 어진 자입니까, 어질지 못한 자입니까? 옛날 한 원제(漢元帝) 때에 석현(石顯)이 권세를 멋대로 휘둘렀는데 경방(京房)이 한가한 여가에 원제를 뵙고 묻기를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은 왜 위태해졌으며 등용한 사람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임금이 밝지 못하였고 등용한 자들은 간교한 아첨꾼들이었다.’ 하였습니다. 경방이 묻기를 ‘간교한 아첨꾼인 줄을 알고서 등용하였습니까, 아니면 어질다고 여긴 것이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질다고 여긴 것이다.’ 하였는데, 경방이 묻기를, ‘그렇다면 오늘날 어떻게 그들이 어질지 못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라가 혼란스럽고 임금이 위태했었던 것을 가지고 알 수가 있다.’ 하였습니다. 경방이 아뢰기를 ‘그렇다면 어진이를 임용하면 반드시 잘 다스려지고 어질지 못한 이를 등용하면 반드시 혼란이 오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유왕과 여왕이 어찌하여 이를 깨닫고서 다시 어진이를 구하지 아니했으며 어찌하여 끝내 불초한 사람을 임용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지러운 시대의 임금은 자기의 신하를 모두 어질다고 여긴다. 만약 모두 깨닫는다면 천하에 어찌 망하는 임금이 있겠는가.’ 하자, 경방이 아뢰기를, ‘제 환공(齊桓公)과 진 이세(秦二世)도 또한 일찍이 이런 임금에 대해서 듣고는 비난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렇다면 수조(竪刁)와 조고(趙高)에게 정치를 맡겨 정치가 날로 어지러워졌는데도 어찌하여 유왕과 여왕의 경우를 가지고 헤아려서 깨닫지를 못하였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직 도(道)가 있는 자라야 지난 일을 가지고 앞날의 일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경방이 인하여 관(冠)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그 당시의 재변에 대한 일 및 도적을 금하지 않고 있는 일과 형벌받은 사람이 시장에 가득한 일 등을 모두 말하고, 아뢰기를 ‘폐하께서 보시기에 오늘날이 다스려지는 시대입니까, 혼란한 시대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매우 혼란한 때이다.’ 하자, 경방이 아뢰기를 ‘현재 임용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러나 다행히 저 시대보다는 낫다. 또한 이 사람 때문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하였는데, 경방이 아뢰기를 ‘지난 시대의 임금들도 또한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아마도 뒷시대에서 오늘날을 보는 것도 오늘날 옛 시대를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도 또한 ‘다행히 저 시대보다는 낫다. 또한 이 사람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실 것입니까? 신은 밝으신 전하께서는 반드시 한 원제의 소견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이미 불초하기가 이와 같고 권세를 독차지하고 멋대로 휘두른 것이 저러하니 말류의 폐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화란이 이를 바를 신은 감히 점치지 못하겠습니다.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은 오늘날 피할 수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또한 감히 변명을 하고 있으니 신은 삼가 통분스럽게 생각합니다. 자표(字標)로 서로 호응하였다거나 시권(試券)에 표식을 하였다거나 장옥(場屋)에 두사(頭辭)를 통하였다거나 시험의 제목을 미리 누출하였다는 등의 말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어찌 다 믿을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난해 식년시의 강경(講經) 시험에는 높은 점수를 받은 자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획을 넘고도 과거에 떨어진 자까지 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러한 때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지난 시대에 공부를 하던 자들은 힘을 다하지 않는 때가 없었는데도, 높은 점수를 받은 자가 이렇게 많은 때가 있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선비들의 습속이 옛날과 달라서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읽는 때가 적은데도 도리어 이와 같으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자표로 서로 호응하였다는 일은 반드시 없었으리라고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올해의 별시 전시(別試殿試)의 급제자 가운데에는 고관(考官)의 형제와 아들과 조카 및 그들의 족속으로서 참방한 자가 1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전시가 비록 상피하는 법규가 없다고는 하나 예로부터 어찌 과방 안에 상피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합격한 자가 이렇게 많은 때가 있었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이이첨과 황정필(黃廷弼)이 비록 말을 잘한다고는 하나, 상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급제한 시대를 찾아서 증거를 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시권에 표식을 했거나 장옥에 두사를 통한 일이 또한 반드시 없었으리라고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반궁(泮宮)의 시험은 정해진 시각이 있어서 성화와 같이 급하므로, 예로부터 비록 재능이 출중하고 공부를 가장 많이 하여 물이 솟구치고 산이 솟아나는듯이 글을 지어 마치 누군가 도와주는 자가 있는듯이 빠른 자라고 하더라도 으레 대부분은 편의 글을 간신히 지어내고, 혹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마무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당대에 재능이 있다는 이름을 독차지하고 과방의 장원이 되는 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지은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에 차지 않으며 혹 염(簾)을 어긴 구절도 많고 혹 지우고 고친 글자가 많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이 금년의 반시(泮試)를 보니, 글제를 내걸었다가 금방 파하였는데도 명지(名紙)에 즉시 글을 지은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오늘날의 시험장에 일찍이 예전에 없었던 이토록 탁월한 인재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듣지 못하였으며, 설령 밖에서 때에 임하여 지어서 들여왔다면, 귀신이 도와주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렇게 민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뒤에 들으니, 그 작품들이 자못 훌륭하여 논란을 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치로 헤아려 보건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글제를 미리 유출시켜 집에서 지어오게 하였다는 말이 또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진사 민심(閔𦸂)은 바로 신의 아비와 같이 급제한 사람의 아들인데, 이이첨의 당류이며 신은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자입니다. 반시(泮試)가 있기 며칠 에 신의 친구 송희업(宋熙業)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는 신의 《사문유취(事文類聚)》를 빌려보고자 하였습니다. 신이 전체를 빌려주고 싶지가 않아서 몇째 권을 보고자 하는지를 물었더니, 청명절(淸明節)이 들어 있는 권이었습니다. 그 권이 마침 신의 서실(書室)에 있었기 때문에 갖다가 주었습니다. 민심이 말하기를 ‘다른 권도 보고자 합니다. 전질을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기에 신이 그 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굳이 물었더니, 민심이 말하기를 ‘등촉부(燈燭部)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것이 들어 있는 권은 친가(親家)에 있으니 어떻게 합니까?’ 하였더니, 민심이 ‘사람을 시켜서 갖다 주십시오.’ 하였는데, 신이 ‘찾으러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고 하자, 민심이 ‘가 가서 찾아 오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안방에 보관되어 있어서 외부 사람이 찾을 수가 없습니다.’고 하니, 민심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대가 내 말을 타고 가서 가져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신이 ‘지금 다른 손님을 대하고 있으므로 갈 수가 없습니다.’고 하였더니, 민심이 이에 망연자실하여 일어나서 가려고 하지를 않더니 오랜 뒤에 어찌할 수가 없자 단지 그 권만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에 간신히 가져올 수가 있었는데, 뒷날 반궁의 시험장에 들어갔더니, 바로 유류화(楡柳火)라는 제목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문유취》에서 찾아보니 이것은 청명절에 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등촉부에도 볼 만한 글이 많이 있었습니다. 신이 비로소 이상하게 여기며 마음 속으로 말하기를 ‘성상께서 친림하시어 임금의 위엄이 지척에 있는데도 감히 미리 유출했던 제목을 출제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이첨이 이렇게까지 되었단 말인가.’ 하였습니다. 시험장에 들른 일이 있은 뒤에 신이 신의 7촌 아저씨인 유학(幼學)        윤유겸(尹唯謙)을 만났는데 민심의 일에 대한 말이 나오니, 유겸이 말하기를 ‘반시를 시행하기 며칠 에 어떤 친구가 나에게서 이 두 권을 빌려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명을 물어 보았더니, 역시 이이첨의 당류였습니다. 신은 성품이 소루하고 게을러 교유(交遊)를 끊고 출입을 삼가고 있으므로 세간의 일에 대해서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은데도 신이 들어서 아는 바가 이와 같고 보면,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일들을 보았겠습니까. 그리고 이 가지 일을 가지고 미루어 본다면 길에 나도는 말들이 또한 근거가 있는 말일 듯합니다.  이이첨의 네 아들이 모두 미리 시험 문제를 알아내거나 차작(借作)을 하여 과거에 오른 일에 대해서,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개 그 네 아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재주와 명망이 없는데도 잇따라 장원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혹은 전혀 문장을 짓는 실력이 없는데도 과거에 너무 쉽게 오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이첨의 도당들이 이미 과거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삼았다면, 이이첨의 아들들에 대한 일은 많은 말로 논변할 것도 없기 때문에 신은 다시 운운하지 않겠습니다. 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인정상 박절함을 면치 못하고 또한 잗단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만, 과거가 이토록 공정치 못한 것은 국가에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이이첨이 관작(官爵)으로써 벼슬아치들을 끌어모으고 과거로써 유생들을 거두어들여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므로 온 세상이 그에게로 쏠려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옛날에 제(齊)나라의 전씨(田氏)가 큰 덕(德)은 없어도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일이 있자029) 안자(晏子)가 경공(景公)에게 간하기를 ‘대부의 집안에서 베푸는 혜택은 나라 전체에 미쳐서는 안 되고, 대부는 군주의 이익을 자신이 취하지 않는 법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관작과 과거를 가지고 혜택을 베푸는 것이 어찌 쌀을 나누어주며 혜택을 베푸는 것과 같겠으며, 벼슬아치와 유사(儒士)들이 귀의하는 것이 어찌 일반 백성들이 귀의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진덕수(眞德秀)가 《대학연의》에서 말하기를 ‘전씨의 화근은 경공의 시대에는 그래도 막을 수가 있었지만 이미 세월이 오래 지나게 되어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분변해야 옳은 일을 어찌 일찍 분변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아,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이원익(李元翼)은 우리 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며, 이덕형(李德馨)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친 사람이며, 심희수(沈喜壽)는 비록 대단한 재능과 덕망은 없습니다만 우뚝하게 소신을 가지고 굽히지 않은 사람이니 또한 종묘 사직에 공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이 모두 삼사(三司)를 사주하여 끊임없이 논집해서 잇따라 귀양을 보내고 내쫓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성상께서 온전하게 돌보아 주시어 금부에 내리려던 계책을 이루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유희분(柳希奮)과 박승종(朴承宗)은 집안을 단속하지 못하고 몸가짐을 엄하게 하지 않으니 참으로 하찮고 용렬한 자들입니다. 이이첨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바른 말로 논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쟁집하지 아니하니, 참으로 겁많고 나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모두 나라의 훈척(勳戚) 중신(重臣)으로서 국가와 휴척(休戚)을 함께하고 안위(安危)를 함께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이 원수처럼 보고서 반드시 중상(中傷)을 하려고 하니, 그 의도가 흉참합니다. 그가 겉으로 화호(和好)를 하면서 혼인을 맺고자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가 박승종과는 본디 혼인(婚姻)한 집안인데도 서로 잘 지내지 못하니 어찌 이익이 없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대개 유희분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는 권세가 없어서 유희분을 두렵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하여 우호를 맺으려는 태도를 보이려는 것입니다. 그 계책이 참으로 교묘합니다. 옛날에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쥐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세신(世臣)과 공족(公族) 및 재능과 공덕(功德)이 자기보다 나은 자를 제거한 뒤에 감히 자기 마음대로 권세를 부렸습니다. 전항(田恒)과 조고(趙高)와 이임보(李林甫) 및 기타 소인들의 일에서 분명하게 상고할 수가 있습니다.  김제남은 반역을 정상이 분명하여 덮어 가릴 수가 없었으니,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이 모두 함께 죽인 자입니다. 이원익 등이 풍병이 들어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무슨 마음으로 역적을 비호하고 우리 성상을 저버리겠습니까. 이이첨 등이 호역(護逆)이라는 두 글자로 하나의 큰 그물을 만들어서, 나라에 충성하고 임금을 사랑하며 그들과 더불어 함께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을 가지고 때려잡았습니다. 이 이름이 한번 더해지면 해명할 말이 없으며 벗어날 계책이 없게 됩니다. 소인(小人)이 선류(善類)를 함정에 밀어넣는 것은 그 계책을 씀이 대개 이와 같습니다. 아, 두려운 일입니다.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 등도 이 그물에 걸려 세상에 큰 누(累)가 되었고 영원히 언로(言路)가 막혔습니다.  원이곤(元以坤)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의 기휘(忌諱)를 범하면서 남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히 말한 자입니다. 그러나 신이 그 상소의 사연을 보았더니, 그의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움에 차 있었고 패기도 없고 정신도 나약하여, 강직한 자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닌 듯하였습니다. 더구나 ‘명예를 훔친 낙양의 소년’이라는 말은 길에 흘러다니는 말인데, 성상께 진달하기까지 하였으니, 그것이 이이첨이 말을 꾸며 스스로 해명을 할 기화가 된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시사를 말한 초야의 사람이 형장을 받기까지 한다면 뒷날 위망이 눈앞에 닥치는 일이 있더라도 누가 목숨을 버려가면서 말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언자(言者)에게 비록 광망(狂妄)한 잘못이 있더라도 성인(聖人)은 죄를 다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대(銀臺)의 계사와 대간의 논열이 마침내 형구를 씌워 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여 형장을 받게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이임보(李林甫)가 어사(御史)에게 넌지시 일러 봉장(奉璋)을 죽이게 것030)                  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신이 이른바 후설과 이목을 맡은 관원이 모두 그의 복심이라고 것을 이것을 가지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복심을 요직에 포진시킨 것은 어떤 방법으로 하였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옛 전례에 당하관의 청망(淸望)은 모두 전랑(銓郞)의 손에서 나오며, 당상관의 청망도 완전히 전랑의 손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전랑이 막으면 의망할 수가 없습니다. 전랑의 직임이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기 때문에 반드시 널리 공론을 모아서, 시대의 명류(名流)로서 명망과 실상을 함께 갖춘 자를 힘써 얻어서 전랑을 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아무도 사사로움을 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홍도(朴弘道)와 박정길(朴鼎吉)은 이이첨에게는 골육과 같은 자들이고 대엽(大燁)에게는 천륜(天倫)을 함께한 형제와 같은 자들인데, 이이첨이 이 두 사람을 전랑에 배치하였습니다. 박홍도는 조금이라도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물리쳤습니다. 또 그의 아들 대엽과 익엽(益燁)을 잇따라 전랑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전랑의 중요성은 앞에서 진달한 바와 같은데, 참으로 이이첨의 골육과 같은 자 및 진짜 골육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본다면 전후의 전랑들은 반드시 모두 그의 골육과 같은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박홍도와 박정길이 골육과 같고 형제와 같은데 전랑에 배치하였다는 말은 신이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이대엽이 집의로 있을 때에 올린 계사 가운데에 이러한 말이 있었으니 이는 성상께서도 보신 바입니다. 전랑들이 모두 그의 골육과 같은 자들이거나 진짜 골육이라면 전조(銓曹)가 주의(注擬)한 사람들이 모두 그의 복심이라는 것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보건대, 무릇 과거의 고관(考官)들도 또한 모두 자기의 복심으로 임명하였을 것입니다. 관학의 유생들이 모두 그의 도당이 된 것은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과거로 그들을 수합하였기 때문입니다. 황정필(黃廷弼)의 상소의 사연은 한(漢)나라 사람들이 왕망(王莽)의 공덕을 찬양한 것과 다름이 없을 듯합니다. 신은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아, 이이첨의 도당이 날로 아래에서 번성하고 전하의 형세는 날로 위에서 고립되고 있으니, 어찌 참으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전하를 위하여 말을 하는 자가 없습니다. 아, 우리 나라의 3백여 개의 군(郡)에 의로운 선비가 사람 도 없단 말입니까. 유희분과 박승종과 같은 자들은 의리상 휴척을 함께해야 하는데도 오로지 몸을 온전히 하고 처자를 보호할 마음으로, 임금의 위망을 먼 산 보듯이 보며 구제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가 큽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야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이 앞뒤로 올린 글을 자세히 살피시고 더욱 깊이 생각하시어, 먼저 이이첨이 위복을 멋대로 농단한 죄를 다스리시고 다음에 유희분과 박승종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소서. 그 나머지 이이첨의 복심과 도당들에 대해서는, 혹 당여를 모조리 제거하는 율법을 시용하기도 하고 혹 위협에 못이겨 따른 자들을 용서하는 율법을 사용하기도 하소서. 그러면 종묘 사직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러나 《춘추》 전(傳)에 이르기를 ‘만연되면 제거하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지금 이미 만연되었으니 제거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조심하고 조심하소서.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흰색과 검은 색도 분변 못하는 자는 아니니, 어찌 이런 말을 하면 앙화가 뒤따른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더구나 홍무적(洪茂績) 등은 이이첨의 죄상을 조금도 지적하지 않았는데도 바다 밖으로 귀양을 갔고, 원이곤(元以坤)은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조금 진달하였다가 화를 당하여 옥에 갇혔습니다. 신이 말한 것은 모두 선배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서 온 나라에서 사람도 감히 말하지 않은 것이니, 신이 당할 앙화의 경중은 앉아서 알 수가 있습니다.  진덕수가 《대학연의》에서 말하기를 ‘간신(奸臣)이 나라의 권세를 독차지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언로(言路)를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위에서 고립되어 밖의 일을 보지 못하게 뒤에 그 욕망을 멋대로 부리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는 나라를 찬탈하고 작게는 권세를 잡고 정치를 멋대로 하여 못하는 짓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선(正先)이 죽자 조고(趙高)가 정치를 멋대로 하였고031) 왕장(王章)이 죽음을 당하자 왕봉(王鳳)의 권세가 더욱 치성해졌으며032) 두진(杜璡)이 쫓겨나자 이임보(李林甫)가 전횡을 하였다.’033)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신이 평소 알고 있던 바입니다. 옛날에 일을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임금이 용납을 하고 죄를 주지 않으면 간신이 반드시 간교한 꾀로 모함을 하여, 혹 다른 일을 가지고 몰래 중상을 하여 죽이기도 하고 혹 귀양을 보내놓고는 그곳 수령을 시켜서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신이 평소 염려하던 바입니다. 성인(聖人)께서 말을 공손하게 하라는 경계를 하셨고 몸을 보전하는 방도를 일렀으니, 이 뜻을 신이 또한 조금은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위태한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신의 집안은 3대 동안 국가의 녹을 먹었고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만약 나라에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국난(國難)에 달려나가 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간신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이 이러하고 나라가 위태롭기가 이러한데, 남쪽과 북쪽의 오랑캐들이 이런 틈을 타서 침입해 온다면, 비록 난리를 피하여 구차스럽게 살고자 하더라도 또한 좋은 방책이 없을 것이며 꼼짝없이 어디 도망갈 곳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보탬도 없는 곳에서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늘날 전하를 위해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신의 말을 옳게 여기신다면 종묘 사직의 복이요 백성들의 다행일 것이며, 비록 옳지 않다고 여기시어 신이 죽게 되더라도 사책(史冊)에는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신은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다만 신에게는 노쇠하고 병든 늙은 아비가 있는데, 이 상소를 올리는 신을 민망하게 여겨서 온갖 말로 중지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신이,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치를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또한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의 아비는 금지시키고자 하면 나라를 저버리게 될까 염려되고 그대로 들어주자니 아들이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쌍하여 우두커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상소를 올림에 미쳐서는 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용감하게 결단을 내리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 보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인자하신 성상께서는 비록 신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리시더라도 신의 늙은 아비에게까지는 미치지 않도록 하시어, 길이 천하 후세의 충신과 효자들의 귀감이 되게 하소서. 참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바라는 바입니다. 신이 진달할 말은 이것뿐만이 아니나 글로는 뜻을 다 말씀드리지 못하여 만분의 일이나마 아뢰는 바입니다. 전하께서 왕좌에 계시면서 조용한 시간에 《대학연의》의 변인재(辨人才) 등의 조항을 가져다가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읽어보시면 군자와 소인의 정상에 대해서 더욱 분명하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조정의 격례(格例)를 알지 못하여 말이 대부분 차서가 없으니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그 뒤에 양사의 합계로 전교하기를, "윤선도를 외딴 섬에 안치(安置)하라. 윤유기(尹惟幾)는 윤선도와는 전혀 다르니 단지 관작을 삭탈하기만 하여 시골로 내려보내라." 하였다.


[註 029]          옛날에 제(齊)나라의 전씨(田氏)가 큰 덕(德)은 없어도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일이 있자 : 제나라 때에 이자(釐子) 전걸(田乞)이 제 경공을 섬겨 대부가 되었는데,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둘 때에는 작은 말[斗]을 사용하고 창고의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줄 때에는 큰 말을 사용하여 백성들에게 덕(德)을 베풀어 민심을 얻었다. 안자(晏子)가 그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간하였으나 경공은 따르지 않았다. 마침내 제나라는 전씨 집안의 후손인 전화(田和)라는 사람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나라를 잃었다. 《사기(史記)》 권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좌전(左傳)》 소공(昭公) 26년.[註 030]          봉장(奉璋)을 죽이게 것 :             당 현종(唐玄宗) 때에 함녕 태수(咸寧太守) 조봉장(趙奉璋)이 간신 이임보의 숨겨진 악행 20조목을 찾아내어 현종에게 아뢰려고 하였는데, 이임보가 어사(御史)에게 넌지시 일러, 조봉장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요망한 말을 한다고 탄핵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당서(唐書)》 권223 간신전(姦臣傳).[註 031]          정선(正先)이 죽자 조고(趙高)가 정치를 멋대로 하였고 : 《한서(漢書)》 권75 경방전(京房傳)에 "정선(正先)은 진(秦)나라 때의 박사(博士)로서 조고(趙高)의 전횡을 비판하다가 죽었다."고 하였다.[註 032]          왕장(王章)이 죽음을 당하자 왕봉(王鳳)의 권세가 더욱 치성해졌으며 : 《한서(漢書)》 권76 왕장전(王章傳)에 "경조윤(京兆尹) 왕장(王章)은 성품이 강직하고 바른 말을 잘하였는데, 왕봉(王鳳)의 전횡을 비판하며 글을 올려, ‘일식(日食)의 재변은 왕봉이 정권을 독차지하고 임금의 이목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하였다가, 결국 왕봉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옥중에서 죽었다."고 하였다.[註 033]          두진(杜璡)이 쫓겨나자 이임보(李林甫)가 전횡을 하였다.’ : 《당서(唐書)》 권223 열전(列傳) 간신(姦臣)에 "이임보(李林甫)가 전횡을 할 때에 보궐(補闕) 두진(杜璡)이 거듭 글을 올려 정치에 대해서 간쟁하였는데, 곧바로 이임보에 의하여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 이로부터 간쟁하는 일이 끊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런 내용들은 모두 《대학연의》에 편집되어 있다.
"삼가 아룁니다.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임금이 아랫사람들을 통제하는 방도로는 권강(權綱)을 모두 쥐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도 이르기를 ‘오직 임금만이 상도 줄 수가 있고 벌도 줄 수가 있다.’고 하였으며, 송(宋)나라의 진덕수(眞德秀)도 말하기를 ‘임금된 자가 어찌 하루라도 권위의 칼자루를 놓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뜻깊은 말입니다. 신하된 자가 참으로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쥐게 되면 자기의 복심(腹心)을 요직에 포열(布列)시켜 상과 벌[威福]을 자기에게서 나오게 합니다. 설령 어진 자가 이렇게 해도 안 될 일인데, 만약 어질지 못한 자가 이와 같이 한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훌륭하신 상께서 에 계시어 임금과 신하가 각기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있으니 이러한 자가 없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신이 삼가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의 하는 짓을 보니 불행히도 이에 가까우므로 신은 삼가 괴이하게 생각합니다.
신은 하찮은 일개 유자(儒者)로서 어리석고 천박하여, 비록 도성 안에 살지만 외방에 사는 몽매한 백성과 다를 바가 없으니, 조정의 일에 대해서는 백 가지 가운데 가지도 알지를 못하지만,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가지고 성상께 우러러 진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유념해 주소서.
신이 삼가 보건대, 근래의 고굉(股肱)·이목(耳目)·후설(喉舌)을 맡은 관원들과 논사(論思)·풍헌(風憲)·전선(銓選)을 담당하고 있는 관원들은 이이첨의 복심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간혹 그들의 무리가 아니면서 한두 사람 그 사이에 섞여 있는 자들은, 반드시 그 사람됨이 무르고 행실이 줏대가 없으며 시세를 살펴 아첨이나 하며 세상 되는 대로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대각의 계사에 대해서 전하께서는 반드시 대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시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이며, 옥당의 차자를 전하께서는 반드시 옥당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시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이며, 전조(銓曹)의 주의(注擬)를 전하께서는 반드시 전조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기시지만 사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풍지(風旨)를 받들어 그렇게 하기도 하고 그의 지휘를 받아서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비록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에게 물어본 뒤에 시행합니다.
관학 유생(館學儒生)에 이르러서도 그의 파당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관학의 소장(疏章)이 또한 겉으로는 곧고 격렬하지만 속은 실제로 아첨하며 빌붙는 내용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 편이 아닌 자는 비록 사람들의 중망을 받고 있는 자라도 반드시 배척하고, 자기와 뜻이 같은 자는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기는 자라도 반드시 등용합니다. 모든 일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비록 하나하나 거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미루어 보면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권세를 멋대로 부리고 있는 것이 또한 극도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비록 보필(輔弼)의 임무를 맡은 지위에 있지는 않으나 전하께서 믿고 맡기셨다면, 그는 마땅히 나라에 충성을 다하기를 당(唐)나라의 이필(李泌)이나 육지(陸贄)와 같이 해야 하는데, 도리어 나라를 저버리기를 이렇게 하니, 신은 매우 통분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상께서는 깊은 궁궐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가 이토록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가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어질다고 여겨서 맡겨 의심을 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까? 만약 어질다고 여겨서 의심을 하지 않으신다면,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분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신이 들으니, 임금은 어진이가 없으면 정치를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훌륭한 임금이 에 있더라도 임용된 신하가 불초한 사람이면 정치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堯)가 임금으로 있는데도 곤(鯀)의 치수(治水)가 공적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면 임용된 신하가 어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임용된 신하가 불초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날을 잘 다스려지는 때라고 보십니까, 혼란한 때라고 보십니까?
지난번에 해의 이변이 거듭 나타나고 지진이 누차 발생하였으며 겨울 안개가 사방에 가득했었으니, 이는 모두 재변 가운데에서도 큰 재변이었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그 형체가 보이지 않으면 그 그림자를 살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런 재변이 오늘날의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은 모든 양(陽)의 종주(宗主)로서 임금의 표상이기 때문에, 일식(日食)이 하늘 운행의 상도(常度)인데도 《춘추(春秋)》에 일식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기록하였고, 전(傳)에는 ‘첩부(妾婦)가 그 지아비를 누르거나 신하가 임금을 저버리거나 정권(政權)이 신하에게 있거나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는 형상이니, 모두가 음(陰)이 왕성하고 양(陽)이 미약한 증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흰무지개가 해를 궤뚫는 참혹함은 일식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재변은 까닭없이 생기지 않는 것이니, 어찌 그 이유가 없겠습니까.
진덕수(眞德秀)가 《대학연의(大學衍義)》에서 ‘충신의 마음은 오히려 임금이 재변을 두려워하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것이니 위상(魏相)이 역적(逆賊)의 발생과 풍우(風雨)의 재변을 한 선제(漢宣帝)에게 고한 것이 이것이고, 간신의 마음은 오히려 임금이 재변을 두려워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니 양국충(楊國忠)이 장맛비가 농사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여 당 명황(唐明皇)을 속인 것이 이것이다. 대개 임금이 하늘의 재변을 두렵게 여기면 반드시 자신의 허물을 찾아보고 반드시 폐정(弊政)을 반성하여 고치며 반드시 소인을 제거하니 이것은 충신에게는 즐거운 일이고 간신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씀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근래에 왕안석(王安石)이 드디어 하늘의 재변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말을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령 이이첨이 충신이라면 그만이거니와, 만약 이이첨이 간신이라면 오늘날의 재변을 혹 다른 나라에 전가시키거나 혹 다른 일의 증험이라고 하거나 혹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일이라고 곧바로 말할 것입니다. 신도 또한 높고 멀어 알기 어려운 일을 가지고 그에게 책임을 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신은 많은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날 변방의 방비가 허술한 점이 많아 나라의 형세가 매우 위태롭고 아랫백성들이 원망을 품어 방본(邦本)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심이 매우 투박해져서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고 풍속이 아주 무너져 염치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로는 벼슬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아래로 시정배에 이르기까지 신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비들에 대해서는 신이 함께 지내며 함께 만나는 자들이니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책과 붓을 가지고 공부를 하러 다니는 자들이 한갓 이록(利祿)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고 인의(仁義)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과거(科擧)는 선비들이 처음으로 벼슬에 나가는 길인데, 모두들 빨리 진출할 마음을 품고 서로들 구차하게 합격할 꾀를 씁니다. 차술(借述)을 하여 권세있는 자에게 빌붙고 주사(主司)에 교통하였다는 말을 사람들이 모두 공공연하게 꺼리지 않고 하고들 있습니다. 아비는 아들을 가르치고 형은 동생을 면려하며 친구들끼리 서로 불러다가 온통 이렇게 하고들 있으면서 돌이킬 줄을 모릅니다. 간혹 백 명 가운데에 한두 명이 이와 반대로 하면 도리어 비웃고 비난을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와 다르게 한다고 화를 내어 욕하고 헐뜯는 자도 있습니다. 아, 사기(士氣)는 나라의 원기(元氣)인데 이 지경이 되었으니, 통탄스러움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처음 임금을 뵐 때에 이와 같다면 뒷날 조정에 벼슬을 하게 되었을 때에 벼슬을 얻고자 근심하고 그 벼슬을 잃을까 근심하는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삼가 생각건대,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역적이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있다면 반드시 이 무리에게서 나올 것이며, 자신을 버리고 나라에 몸바칠 신하가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있다면 반드시 이 무리에게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선유(先儒)의 시에 이르기를 ‘이런 사람을 등용하고 이런 도를 시행하니 어느날 태평의 시대가 올지 알지 못하겠구나.[所用是人行是道 不知何日可昇平]’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일찍이 이 시를 읊으며 천장을 쳐다보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이첨이 임금의 총애를 저토록 오로지 차지하고 있고 나라의 정치를 저토록 오래도록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변이 저러하고 나라의 형세가 저러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저러하고 풍속이 저러하고 선비들의 습속이 저러하니, 이자가 과연 어진 자입니까, 어질지 못한 자입니까?
옛날 한 원제(漢元帝) 때에 석현(石顯)이 권세를 멋대로 휘둘렀는데 경방(京房)이 한가한 여가에 원제를 뵙고 묻기를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은 왜 위태해졌으며 등용한 사람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임금이 밝지 못하였고 등용한 자들은 간교한 아첨꾼들이었다.’ 하였습니다. 경방이 묻기를 ‘간교한 아첨꾼인 줄을 알고서 등용하였습니까, 아니면 어질다고 여긴 것이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질다고 여긴 것이다.’ 하였는데, 경방이 묻기를, ‘그렇다면 오늘날 어떻게 그들이 어질지 못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라가 혼란스럽고 임금이 위태했었던 것을 가지고 알 수가 있다.’ 하였습니다. 경방이 아뢰기를 ‘그렇다면 어진이를 임용하면 반드시 잘 다스려지고 어질지 못한 이를 등용하면 반드시 혼란이 오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유왕과 여왕이 어찌하여 이를 깨닫고서 다시 어진이를 구하지 아니했으며 어찌하여 끝내 불초한 사람을 임용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지러운 시대의 임금은 자기의 신하를 모두 어질다고 여긴다. 만약 모두 깨닫는다면 천하에 어찌 망하는 임금이 있겠는가.’ 하자, 경방이 아뢰기를, ‘제 환공(齊桓公)과 진 이세(秦二世)도 또한 일찍이 이런 임금에 대해서 듣고는 비난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렇다면 수조(竪刁)와 조고(趙高)에게 정치를 맡겨 정치가 날로 어지러워졌는데도 어찌하여 유왕과 여왕의 경우를 가지고 헤아려서 깨닫지를 못하였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직 도(道)가 있는 자라야 지난 일을 가지고 앞날의 일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경방이 인하여 관(冠)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그 당시의 재변에 대한 일 및 도적을 금하지 않고 있는 일과 형벌받은 사람이 시장에 가득한 일 등을 모두 말하고, 아뢰기를 ‘폐하께서 보시기에 오늘날이 다스려지는 시대입니까, 혼란한 시대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매우 혼란한 때이다.’ 하자, 경방이 아뢰기를 ‘현재 임용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러나 다행히 저 시대보다는 낫다. 또한 이 사람 때문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하였는데, 경방이 아뢰기를 ‘지난 시대의 임금들도 또한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아마도 뒷시대에서 오늘날을 보는 것도 오늘날 옛 시대를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도 또한 ‘다행히 저 시대보다는 낫다. 또한 이 사람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실 것입니까? 신은 밝으신 전하께서는 반드시 한 원제의 소견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이미 불초하기가 이와 같고 권세를 독차지하고 멋대로 휘두른 것이 저러하니 말류의 폐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화란이 이를 바를 신은 감히 점치지 못하겠습니다.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은 오늘날 피할 수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또한 감히 변명을 하고 있으니 신은 삼가 통분스럽게 생각합니다. 자표(字標)로 서로 호응하였다거나 시권(試券)에 표식을 하였다거나 장옥(場屋)에 두사(頭辭)를 통하였다거나 시험의 제목을 미리 누출하였다는 등의 말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어찌 다 믿을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난해 식년시의 강경(講經) 시험에는 높은 점수를 받은 자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획을 넘고도 과거에 떨어진 자까지 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러한 때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지난 시대에 공부를 하던 자들은 힘을 다하지 않는 때가 없었는데도, 높은 점수를 받은 자가 이렇게 많은 때가 있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선비들의 습속이 옛날과 달라서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읽는 때가 적은데도 도리어 이와 같으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자표로 서로 호응하였다는 일은 반드시 없었으리라고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올해의 별시 전시(別試殿試)의 급제자 가운데에는 고관(考官)의 형제와 아들과 조카 및 그들의 족속으로서 참방한 자가 1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전시가 비록 상피하는 법규가 없다고는 하나 예로부터 어찌 과방 안에 상피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합격한 자가 이렇게 많은 때가 있었겠습니까. 신의 생각으로는, 이이첨과 황정필(黃廷弼)이 비록 말을 잘한다고는 하나, 상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급제한 시대를 찾아서 증거를 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시권에 표식을 했거나 장옥에 두사를 통한 일이 또한 반드시 없었으리라고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반궁(泮宮)의 시험은 정해진 시각이 있어서 성화와 같이 급하므로, 예로부터 비록 재능이 출중하고 공부를 가장 많이 하여 물이 솟구치고 산이 솟아나는듯이 글을 지어 마치 누군가 도와주는 자가 있는듯이 빠른 자라고 하더라도 으레 대부분은 편의 글을 간신히 지어내고, 혹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마무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당대에 재능이 있다는 이름을 독차지하고 과방의 장원이 되는 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지은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에 차지 않으며 혹 염(簾)을 어긴 구절도 많고 혹 지우고 고친 글자가 많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이 금년의 반시(泮試)를 보니, 글제를 내걸었다가 금방 파하였는데도 명지(名紙)에 즉시 글을 지은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오늘날의 시험장에 일찍이 예전에 없었던 이토록 탁월한 인재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듣지 못하였으며, 설령 밖에서 때에 임하여 지어서 들여왔다면, 귀신이 도와주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렇게 민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뒤에 들으니, 그 작품들이 자못 훌륭하여 논란을 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치로 헤아려 보건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글제를 미리 유출시켜 집에서 지어오게 하였다는 말이 또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진사 민심(閔𦸂)은 바로 신의 아비와 같이 급제한 사람의 아들인데, 이이첨의 당류이며 신은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자입니다. 반시(泮試)가 있기 며칠 에 신의 친구 송희업(宋熙業)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는 신의 《사문유취(事文類聚)》를 빌려보고자 하였습니다. 신이 전체를 빌려주고 싶지가 않아서 몇째 권을 보고자 하는지를 물었더니, 청명절(淸明節)이 들어 있는 권이었습니다. 그 권이 마침 신의 서실(書室)에 있었기 때문에 갖다가 주었습니다. 민심이 말하기를 ‘다른 권도 보고자 합니다. 전질을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기에 신이 그 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굳이 물었더니, 민심이 말하기를 ‘등촉부(燈燭部)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것이 들어 있는 권은 친가(親家)에 있으니 어떻게 합니까?’ 하였더니, 민심이 ‘사람을 시켜서 갖다 주십시오.’ 하였는데, 신이 ‘찾으러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고 하자, 민심이 ‘가 가서 찾아 오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안방에 보관되어 있어서 외부 사람이 찾을 수가 없습니다.’고 하니, 민심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대가 내 말을 타고 가서 가져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신이 ‘지금 다른 손님을 대하고 있으므로 갈 수가 없습니다.’고 하였더니, 민심이 이에 망연자실하여 일어나서 가려고 하지를 않더니 오랜 뒤에 어찌할 수가 없자 단지 그 권만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에 간신히 가져올 수가 있었는데, 뒷날 반궁의 시험장에 들어갔더니, 바로 유류화(楡柳火)라는 제목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문유취》에서 찾아보니 이것은 청명절에 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등촉부에도 볼 만한 글이 많이 있었습니다. 신이 비로소 이상하게 여기며 마음 속으로 말하기를 ‘성상께서 친림하시어 임금의 위엄이 지척에 있는데도 감히 미리 유출했던 제목을 출제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이첨이 이렇게까지 되었단 말인가.’ 하였습니다.
시험장에 들른 일이 있은 뒤에 신이 신의 7촌 아저씨인 유학(幼學)        윤유겸(尹唯謙)을 만났는데 민심의 일에 대한 말이 나오니, 유겸이 말하기를 ‘반시를 시행하기 며칠 에 어떤 친구가 나에게서 이 두 권을 빌려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명을 물어 보았더니, 역시 이이첨의 당류였습니다.
신은 성품이 소루하고 게을러 교유(交遊)를 끊고 출입을 삼가고 있으므로 세간의 일에 대해서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은데도 신이 들어서 아는 바가 이와 같고 보면,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일들을 보았겠습니까. 그리고 이 가지 일을 가지고 미루어 본다면 길에 나도는 말들이 또한 근거가 있는 말일 듯합니다.
이이첨의 네 아들이 모두 미리 시험 문제를 알아내거나 차작(借作)을 하여 과거에 오른 일에 대해서,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개 그 네 아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재주와 명망이 없는데도 잇따라 장원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혹은 전혀 문장을 짓는 실력이 없는데도 과거에 너무 쉽게 오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이첨의 도당들이 이미 과거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삼았다면, 이이첨의 아들들에 대한 일은 많은 말로 논변할 것도 없기 때문에 신은 다시 운운하지 않겠습니다.
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인정상 박절함을 면치 못하고 또한 잗단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만, 과거가 이토록 공정치 못한 것은 국가에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이이첨이 관작(官爵)으로써 벼슬아치들을 끌어모으고 과거로써 유생들을 거두어들여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므로 온 세상이 그에게로 쏠려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옛날에 제(齊)나라의 전씨(田氏)가 큰 덕(德)은 없어도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일이 있자029) 안자(晏子)가 경공(景公)에게 간하기를 ‘대부의 집안에서 베푸는 혜택은 나라 전체에 미쳐서는 안 되고, 대부는 군주의 이익을 자신이 취하지 않는 법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관작과 과거를 가지고 혜택을 베푸는 것이 어찌 쌀을 나누어주며 혜택을 베푸는 것과 같겠으며, 벼슬아치와 유사(儒士)들이 귀의하는 것이 어찌 일반 백성들이 귀의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진덕수(眞德秀)가 《대학연의》에서 말하기를 ‘전씨의 화근은 경공의 시대에는 그래도 막을 수가 있었지만 이미 세월이 오래 지나게 되어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분변해야 옳은 일을 어찌 일찍 분변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아,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이원익(李元翼)은 우리 나라의 사마광(司馬光)이며, 이덕형(李德馨)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친 사람이며, 심희수(沈喜壽)는 비록 대단한 재능과 덕망은 없습니다만 우뚝하게 소신을 가지고 굽히지 않은 사람이니 또한 종묘 사직에 공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이 모두 삼사(三司)를 사주하여 끊임없이 논집해서 잇따라 귀양을 보내고 내쫓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성상께서 온전하게 돌보아 주시어 금부에 내리려던 계책을 이루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유희분(柳希奮)과 박승종(朴承宗)은 집안을 단속하지 못하고 몸가짐을 엄하게 하지 않으니 참으로 하찮고 용렬한 자들입니다. 이이첨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바른 말로 논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쟁집하지 아니하니, 참으로 겁많고 나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모두 나라의 훈척(勳戚) 중신(重臣)으로서 국가와 휴척(休戚)을 함께하고 안위(安危)를 함께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이 원수처럼 보고서 반드시 중상(中傷)을 하려고 하니, 그 의도가 흉참합니다. 그가 겉으로 화호(和好)를 하면서 혼인을 맺고자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가 박승종과는 본디 혼인(婚姻)한 집안인데도 서로 잘 지내지 못하니 어찌 이익이 없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대개 유희분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는 권세가 없어서 유희분을 두렵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하여 우호를 맺으려는 태도를 보이려는 것입니다. 그 계책이 참으로 교묘합니다.
옛날에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쥐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세신(世臣)과 공족(公族) 및 재능과 공덕(功德)이 자기보다 나은 자를 제거한 뒤에 감히 자기 마음대로 권세를 부렸습니다. 전항(田恒)과 조고(趙高)와 이임보(李林甫) 및 기타 소인들의 일에서 분명하게 상고할 수가 있습니다.
김제남은 반역을 정상이 분명하여 덮어 가릴 수가 없었으니,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이 모두 함께 죽인 자입니다. 이원익 등이 풍병이 들어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무슨 마음으로 역적을 비호하고 우리 성상을 저버리겠습니까. 이이첨 등이 호역(護逆)이라는 두 글자로 하나의 큰 그물을 만들어서, 나라에 충성하고 임금을 사랑하며 그들과 더불어 함께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을 가지고 때려잡았습니다. 이 이름이 한번 더해지면 해명할 말이 없으며 벗어날 계책이 없게 됩니다. 소인(小人)이 선류(善類)를 함정에 밀어넣는 것은 그 계책을 씀이 대개 이와 같습니다. 아, 두려운 일입니다.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 등도 이 그물에 걸려 세상에 큰 누(累)가 되었고 영원히 언로(言路)가 막혔습니다.
원이곤(元以坤)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의 기휘(忌諱)를 범하면서 남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히 말한 자입니다. 그러나 신이 그 상소의 사연을 보았더니, 그의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움에 차 있었고 패기도 없고 정신도 나약하여, 강직한 자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닌 듯하였습니다. 더구나 ‘명예를 훔친 낙양의 소년’이라는 말은 길에 흘러다니는 말인데, 성상께 진달하기까지 하였으니, 그것이 이이첨이 말을 꾸며 스스로 해명을 할 기화가 된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시사를 말한 초야의 사람이 형장을 받기까지 한다면 뒷날 위망이 눈앞에 닥치는 일이 있더라도 누가 목숨을 버려가면서 말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언자(言者)에게 비록 광망(狂妄)한 잘못이 있더라도 성인(聖人)은 죄를 다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대(銀臺)의 계사와 대간의 논열이 마침내 형구를 씌워 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여 형장을 받게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이임보(李林甫)가 어사(御史)에게 넌지시 일러 봉장(奉璋)을 죽이게 것030)                  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신이 이른바 후설과 이목을 맡은 관원이 모두 그의 복심이라고 것을 이것을 가지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복심을 요직에 포진시킨 것은 어떤 방법으로 하였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옛 전례에 당하관의 청망(淸望)은 모두 전랑(銓郞)의 손에서 나오며, 당상관의 청망도 완전히 전랑의 손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전랑이 막으면 의망할 수가 없습니다. 전랑의 직임이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기 때문에 반드시 널리 공론을 모아서, 시대의 명류(名流)로서 명망과 실상을 함께 갖춘 자를 힘써 얻어서 전랑을 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아무도 사사로움을 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홍도(朴弘道)와 박정길(朴鼎吉)은 이이첨에게는 골육과 같은 자들이고 대엽(大燁)에게는 천륜(天倫)을 함께한 형제와 같은 자들인데, 이이첨이 이 두 사람을 전랑에 배치하였습니다. 박홍도는 조금이라도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물리쳤습니다. 또 그의 아들 대엽과 익엽(益燁)을 잇따라 전랑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전랑의 중요성은 앞에서 진달한 바와 같은데, 참으로 이이첨의 골육과 같은 자 및 진짜 골육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본다면 전후의 전랑들은 반드시 모두 그의 골육과 같은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박홍도와 박정길이 골육과 같고 형제와 같은데 전랑에 배치하였다는 말은 신이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이대엽이 집의로 있을 때에 올린 계사 가운데에 이러한 말이 있었으니 이는 성상께서도 보신 바입니다. 전랑들이 모두 그의 골육과 같은 자들이거나 진짜 골육이라면 전조(銓曹)가 주의(注擬)한 사람들이 모두 그의 복심이라는 것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보건대, 무릇 과거의 고관(考官)들도 또한 모두 자기의 복심으로 임명하였을 것입니다. 관학의 유생들이 모두 그의 도당이 된 것은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과거로 그들을 수합하였기 때문입니다. 황정필(黃廷弼)의 상소의 사연은 한(漢)나라 사람들이 왕망(王莽)의 공덕을 찬양한 것과 다름이 없을 듯합니다. 신은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아, 이이첨의 도당이 날로 아래에서 번성하고 전하의 형세는 날로 위에서 고립되고 있으니, 어찌 참으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전하를 위하여 말을 하는 자가 없습니다. 아, 우리 나라의 3백여 개의 군(郡)에 의로운 선비가 사람 도 없단 말입니까. 유희분과 박승종과 같은 자들은 의리상 휴척을 함께해야 하는데도 오로지 몸을 온전히 하고 처자를 보호할 마음으로, 임금의 위망을 먼 산 보듯이 보며 구제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가 큽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야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이 앞뒤로 올린 글을 자세히 살피시고 더욱 깊이 생각하시어, 먼저 이이첨이 위복을 멋대로 농단한 죄를 다스리시고 다음에 유희분과 박승종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소서. 그 나머지 이이첨의 복심과 도당들에 대해서는, 혹 당여를 모조리 제거하는 율법을 시용하기도 하고 혹 위협에 못이겨 따른 자들을 용서하는 율법을 사용하기도 하소서. 그러면 종묘 사직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러나 《춘추》 전(傳)에 이르기를 ‘만연되면 제거하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지금 이미 만연되었으니 제거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조심하고 조심하소서.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흰색과 검은 색도 분변 못하는 자는 아니니, 어찌 이런 말을 하면 앙화가 뒤따른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더구나 홍무적(洪茂績) 등은 이이첨의 죄상을 조금도 지적하지 않았는데도 바다 밖으로 귀양을 갔고, 원이곤(元以坤)은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조금 진달하였다가 화를 당하여 옥에 갇혔습니다. 신이 말한 것은 모두 선배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서 온 나라에서 사람도 감히 말하지 않은 것이니, 신이 당할 앙화의 경중은 앉아서 알 수가 있습니다.
진덕수가 《대학연의》에서 말하기를 ‘간신(奸臣)이 나라의 권세를 독차지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언로(言路)를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위에서 고립되어 밖의 일을 보지 못하게 뒤에 그 욕망을 멋대로 부리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는 나라를 찬탈하고 작게는 권세를 잡고 정치를 멋대로 하여 못하는 짓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선(正先)이 죽자 조고(趙高)가 정치를 멋대로 하였고031) 왕장(王章)이 죽음을 당하자 왕봉(王鳳)의 권세가 더욱 치성해졌으며032) 두진(杜璡)이 쫓겨나자 이임보(李林甫)가 전횡을 하였다.’033)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신이 평소 알고 있던 바입니다. 옛날에 일을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임금이 용납을 하고 죄를 주지 않으면 간신이 반드시 간교한 꾀로 모함을 하여, 혹 다른 일을 가지고 몰래 중상을 하여 죽이기도 하고 혹 귀양을 보내놓고는 그곳 수령을 시켜서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신이 평소 염려하던 바입니다. 성인(聖人)께서 말을 공손하게 하라는 경계를 하셨고 몸을 보전하는 방도를 일렀으니, 이 뜻을 신이 또한 조금은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위태한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신의 집안은 3대 동안 국가의 녹을 먹었고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만약 나라에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국난(國難)에 달려나가 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간신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이 이러하고 나라가 위태롭기가 이러한데, 남쪽과 북쪽의 오랑캐들이 이런 틈을 타서 침입해 온다면, 비록 난리를 피하여 구차스럽게 살고자 하더라도 또한 좋은 방책이 없을 것이며 꼼짝없이 어디 도망갈 곳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보탬도 없는 곳에서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늘날 전하를 위해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신의 말을 옳게 여기신다면 종묘 사직의 복이요 백성들의 다행일 것이며, 비록 옳지 않다고 여기시어 신이 죽게 되더라도 사책(史冊)에는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신은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다만 신에게는 노쇠하고 병든 늙은 아비가 있는데, 이 상소를 올리는 신을 민망하게 여겨서 온갖 말로 중지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신이,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치를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또한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의 아비는 금지시키고자 하면 나라를 저버리게 될까 염려되고 그대로 들어주자니 아들이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쌍하여 우두커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상소를 올림에 미쳐서는 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용감하게 결단을 내리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 보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인자하신 성상께서는 비록 신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리시더라도 신의 늙은 아비에게까지는 미치지 않도록 하시어, 길이 천하 후세의 충신과 효자들의 귀감이 되게 하소서. 참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바라는 바입니다.
신이 진달할 말은 이것뿐만이 아니나 글로는 뜻을 다 말씀드리지 못하여 만분의 일이나마 아뢰는 바입니다. 전하께서 왕좌에 계시면서 조용한 시간에 《대학연의》의 변인재(辨人才) 등의 조항을 가져다가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읽어보시면 군자와 소인의 정상에 대해서 더욱 분명하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조정의 격례(格例)를 알지 못하여 말이 대부분 차서가 없으니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그 뒤에 양사의 합계로 전교하기를,
"윤선도를 외딴 섬에 안치(安置)하라. 윤유기(尹惟幾)는 윤선도와는 전혀 다르니 단지 관작을 삭탈하기만 하여 시골로 내려보내라."
하였다.

 

사학 유생 황정필 등의 상소에 답하였다. "상소를 살펴보고 모두 잘 알았다. 조정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상소를 살펴보고 모두 잘 알았다. 조정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전교하였다. "처녀(處女)들을 28일에 대궐로 나오게 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처녀(處女)들을 28일에 대궐로 나오게 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함경 감사의 서장(書狀)에 운운하였습니다. 전임 영흥 부사(永興府使) 김입신(金立信)은 각별히 군량(軍糧)을 조치해 마련하여 전미(田米)와 피곡(皮穀)이 모두 1천 2백 40석이나 되므로 을 내려야 하겠는데, 상격(賞格)에 대한 일은 은명(恩命)에 관계되는 일이니 상께서 재량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자급을 더해 주라고 계하하였다.
"함경 감사의 서장(書狀)에 운운하였습니다. 전임 영흥 부사(永興府使) 김입신(金立信)은 각별히 군량(軍糧)을 조치해 마련하여 전미(田米)와 피곡(皮穀)이 모두 1천 2백 40석이나 되므로 을 내려야 하겠는데, 상격(賞格)에 대한 일은 은명(恩命)에 관계되는 일이니 상께서 재량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자급을 더해 주라고 계하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진사 윤선도가 상소를 올렸는데, 본원이 그 상소를 살펴보니, 의도가 오로지 원이곤을 구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훈척 중신들이 모두 모함을 당하였는데 말이 매우 흉참합니다. 마땅히 즉시 입계해야 하겠으나 이 때문에 우선 정원에 머물려 두고 감히 입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들이라고 전교하였다.
"진사 윤선도가 상소를 올렸는데, 본원이 그 상소를 살펴보니, 의도가 오로지 원이곤을 구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훈척 중신들이 모두 모함을 당하였는데 말이 매우 흉참합니다. 마땅히 즉시 입계해야 하겠으나 이 때문에 우선 정원에 머물려 두고 감히 입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들이라고 전교하였다.

 

12월 22일 무오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번에 조토리(趙土里)·황학령(黃鶴齡)·이춘기(李春起)·갯동[介叱同] 등이 조정을 비난하는 내용의 서간(書簡)을 화살에 묶어 쏘아 전달한 죄상을 보았더니, 참으로 선왕조에 대한 역적이었습니다. 조토리가 말하기를 ‘이춘기가 문장(文狀)을 써서 주면서 나로 하여금 양 경리(楊經理)에게 올리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춘기가 바로 역적의 우두머리입니다.  조토리는 승복을 하고 죽음을 당하였으나, 황학령과 갯동이는 탈옥을 하여 도망쳤고 이춘기는 잡아오는 도중에 도망쳤으니, 이들은 모두 망명한 역적인데, 그 가운데에서 이춘기가 가장 큰 역적입니다. 그 뒤에 황학령은 체포되어 승복하였고, 갯동이와 이춘기는 올해 봄에 체포하였는데 또한 모두 하나하나 승복하였습니다. 이들은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 역적입니다.  《춘추》에 ‘시역(弑逆)의 조짐도 있어서는 안 된다[無將]’라고 하였으니, 장차 시역을 할 조짐만 있어도 역적입니다.034)   그리고 ‘그 임금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보면 새매가 참새를 낚아채어 죽이듯이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임금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도 역적입니다. 또한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자도 역적입니다. 역적질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지만 역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춘기의 공초에 ‘을 내리는 것이 고르지 않았으니, 뒷날 비록 변고가 생기더라도 나아가 적을 막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황학령 등 세 역적은 임금을 해치려고 크게 역모를 꾀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또 선왕조의 전교를 상고해 보았더니, 황학령 등을 잡기 위해 내건 현상금이 역적 권룡(權龍)을 잡기 위해 내건 것과 같은 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에서 이 세 적도들을 역적으로 본 지가 오래된 것입니다. 이미 역적이라고 여겼고 또한 승복까지 하였다면 물어볼 만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때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목을 베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옥관(獄官)이 의리(義理)에 밝지 못하여, 임금을 모해(謀害)한 것을 난언(亂言)을 한 것이라고 하여 삼복(三覆)의 율문을 써서 비로소 조토리를 사형시키고, 황학령 등으로 하여금 수십 년 동안이나 살아 있게 하였습니다. 삼복이라는 것은 의심스러운 옥사에 대해서 하는 것입니다. 황학령 등에게 무슨 의심스러운 일이 있단 말입니까. 이미 승복을 하였다면 금부의 관원으로 있는 자는 속히 처치하여 잠시도 지체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원에 있는 추안도 가져다가 상고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이 역도들에 대해서 무슨 비호해서 지연시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지금 금부의 계사를 보니, ‘이춘기는 20년 동안의 옥정(獄情)의 진위가 서로 뒤섞인 것이 없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춘기의 죄상에 분변하기 어려운 것이 있단 말입니까? 역적의 우두머리인데도 도리어 죄가 의심스럽다고 하고 있으니, 신은 유사(有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말하기를 ‘추안이 정원에 있어서 마음대로 갖다가 상고해 볼 수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추안은 바로 당초의 금부의 문서입니다. 정원의 관원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감히 막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신이 어찌 상고하고자 한 금부의 애초의 마음을 알았겠습니까. 금부가 두려워하는 바는 오직 법률을 어기는 데에 있는데, 이미 옥사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서 한갓 신에게 죄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사에는 은연중에 미안한 뜻이 있습니다. 신은 태연하게 직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신을 체직하여 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註 034] 《춘추》에 ‘시역(弑逆)의 조짐도 있어서는 안 된다[無將]’라고 하였으니, 장차 시역을 할 조짐만 있어도 역적입니다. :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장공(莊公) 32년, 소공(昭公) 원년에 ‘임금과 어버이에 대해서는 장차 시역을 할 조짐만 있어도 안 되니, 그런 조짐만 있더라도 그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君親無將 將而必誅焉]’라고 하였고, 《춘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18년에 ‘그 임금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보면 새매가 참새를 낚아채어 죽이듯이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신이 지난번에 조토리(趙土里)·황학령(黃鶴齡)·이춘기(李春起)·갯동[介叱同] 등이 조정을 비난하는 내용의 서간(書簡)을 화살에 묶어 쏘아 전달한 죄상을 보았더니, 참으로 선왕조에 대한 역적이었습니다. 조토리가 말하기를 ‘이춘기가 문장(文狀)을 써서 주면서 나로 하여금 양 경리(楊經理)에게 올리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춘기가 바로 역적의 우두머리입니다.
조토리는 승복을 하고 죽음을 당하였으나, 황학령과 갯동이는 탈옥을 하여 도망쳤고 이춘기는 잡아오는 도중에 도망쳤으니, 이들은 모두 망명한 역적인데, 그 가운데에서 이춘기가 가장 큰 역적입니다. 그 뒤에 황학령은 체포되어 승복하였고, 갯동이와 이춘기는 올해 봄에 체포하였는데 또한 모두 하나하나 승복하였습니다. 이들은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 역적입니다.
《춘추》에 ‘시역(弑逆)의 조짐도 있어서는 안 된다[無將]’라고 하였으니, 장차 시역을 할 조짐만 있어도 역적입니다.034)   그리고 ‘그 임금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보면 새매가 참새를 낚아채어 죽이듯이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임금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도 역적입니다. 또한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자도 역적입니다. 역적질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지만 역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춘기의 공초에 ‘을 내리는 것이 고르지 않았으니, 뒷날 비록 변고가 생기더라도 나아가 적을 막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황학령 등 세 역적은 임금을 해치려고 크게 역모를 꾀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또 선왕조의 전교를 상고해 보았더니, 황학령 등을 잡기 위해 내건 현상금이 역적 권룡(權龍)을 잡기 위해 내건 것과 같은 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에서 이 세 적도들을 역적으로 본 지가 오래된 것입니다. 이미 역적이라고 여겼고 또한 승복까지 하였다면 물어볼 만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때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목을 베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옥관(獄官)이 의리(義理)에 밝지 못하여, 임금을 모해(謀害)한 것을 난언(亂言)을 한 것이라고 하여 삼복(三覆)의 율문을 써서 비로소 조토리를 사형시키고, 황학령 등으로 하여금 수십 년 동안이나 살아 있게 하였습니다. 삼복이라는 것은 의심스러운 옥사에 대해서 하는 것입니다. 황학령 등에게 무슨 의심스러운 일이 있단 말입니까. 이미 승복을 하였다면 금부의 관원으로 있는 자는 속히 처치하여 잠시도 지체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원에 있는 추안도 가져다가 상고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이 역도들에 대해서 무슨 비호해서 지연시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지금 금부의 계사를 보니, ‘이춘기는 20년 동안의 옥정(獄情)의 진위가 서로 뒤섞인 것이 없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춘기의 죄상에 분변하기 어려운 것이 있단 말입니까? 역적의 우두머리인데도 도리어 죄가 의심스럽다고 하고 있으니, 신은 유사(有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말하기를 ‘추안이 정원에 있어서 마음대로 갖다가 상고해 볼 수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추안은 바로 당초의 금부의 문서입니다. 정원의 관원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감히 막는단 말입니까. 그리고 신이 어찌 상고하고자 한 금부의 애초의 마음을 알았겠습니까. 금부가 두려워하는 바는 오직 법률을 어기는 데에 있는데, 이미 옥사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서 한갓 신에게 죄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사에는 은연중에 미안한 뜻이 있습니다. 신은 태연하게 직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신을 체직하여 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보건대, 윤선도가 선류들을 일망타진하려고 올린 상소는 종이 가득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들이 온통 무함하고 날조하여 간사한 의논을 일으켜 세우고 바른 공론을 해치려는 계책이었습니다. 흉인(兇人)의 망극함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입니까.  이이첨(李爾瞻)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쳐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역적을 토벌하였습니다. 유영경(柳永慶)·이진(李珒)·김직재(金直哉)·김제남(金悌男) 등의 역적들을 전후로 토벌하였으니, 그가 임금을 보위한 충성과 사직을 안정시킨 공로는 해와 별처럼 환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역적들의 잔당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참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원이곤(元以坤)이 본래 글자도 모르는 자로서 남의 사주를 받아, 일망타진하려는 상소를 먼저 올렸고, 지금 윤선도가 이곤과 이극건(李克健)의 도당으로서 대간인(大奸人)의 풍지(風旨)를 받들어, 도리어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가리켜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농단하고 있다고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모함에 빠뜨리려고 하였고, 심지어는 고굉(股肱)·이목(耳目)·논사(論思)·전선(銓選)과 관학 유생(館學儒生) 및 후설(喉舌)의 관원을 가리켜 이이첨의 복심이요 도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정을 모욕하고 사류를 해치려고 한 것이 이토록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신들이 임금과 가까이 지내는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이토록 큰 모함을 받아 장차 어떤 화가 닥칠지 모르게 되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직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흉악한 상소를 가지고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직하지 말고 직무에 마음을 다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들이 삼가 보건대, 윤선도가 선류들을 일망타진하려고 올린 상소는 종이 가득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들이 온통 무함하고 날조하여 간사한 의논을 일으켜 세우고 바른 공론을 해치려는 계책이었습니다. 흉인(兇人)의 망극함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입니까.
이이첨(李爾瞻)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쳐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역적을 토벌하였습니다. 유영경(柳永慶)·이진(李珒)·김직재(金直哉)·김제남(金悌男) 등의 역적들을 전후로 토벌하였으니, 그가 임금을 보위한 충성과 사직을 안정시킨 공로는 해와 별처럼 환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역적들의 잔당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참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원이곤(元以坤)이 본래 글자도 모르는 자로서 남의 사주를 받아, 일망타진하려는 상소를 먼저 올렸고, 지금 윤선도가 이곤과 이극건(李克健)의 도당으로서 대간인(大奸人)의 풍지(風旨)를 받들어, 도리어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가리켜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농단하고 있다고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모함에 빠뜨리려고 하였고, 심지어는 고굉(股肱)·이목(耳目)·논사(論思)·전선(銓選)과 관학 유생(館學儒生) 및 후설(喉舌)의 관원을 가리켜 이이첨의 복심이요 도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정을 모욕하고 사류를 해치려고 한 것이 이토록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신들이 임금과 가까이 지내는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이토록 큰 모함을 받아 장차 어떤 화가 닥칠지 모르게 되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직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파직을 명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흉악한 상소를 가지고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직하지 말고 직무에 마음을 다하도록 하라."
하였다.

 

12월 23일 기미

예조 판서 이이첨이 사직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지금 병환을 앓고 있으니 이러한 때에 약방 제조는 출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들어가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속히 나와 직무를 보도록 하라." 하였다.
"내가 지금 병환을 앓고 있으니 이러한 때에 약방 제조는 출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들어가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속히 나와 직무를 보도록 하라."
하였다.

 

병조 판서 박승종(朴承宗)이 사직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지금 앓고 있는 병이 오래도록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신하가 편안히 지낼 때가 아니다. 더구나 대정(大政)이 눈앞에 닥쳤고 옥사(獄事)도 끝맺지 못하고 있다. 우선 편안한 마음으로 조리하며 행공하도록 하라." 하였다.
"내가 지금 앓고 있는 병이 오래도록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신하가 편안히 지낼 때가 아니다. 더구나 대정(大政)이 눈앞에 닥쳤고 옥사(獄事)도 끝맺지 못하고 있다. 우선 편안한 마음으로 조리하며 행공하도록 하라."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신들이 그저께 삼가 윤선도의 상소의 대개를 보았는데, 서로들 경악하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그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 상소에 대신·삼사·후설·전조를 끝없이 비난하며 공격하였습니다. 그가 역적을 토벌한 신하에게 악명을 씌우고 사류(士類)를 모조리 죽여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망타진할 계책을 세웠으니, 참으로 음험합니다. 근래의 괴이한 무리들이 사람을 모함했던 상소에 견주어 볼 때에 윤선도의 상소는 더더욱 심합니다.  이이첨의 효우(孝友)와 청백(淸白), 충성과 절의는 나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입니다. 무신년 이래로 누차 국난(國難)을 만나 성상을 보위하였습니다. 역적을 토벌하고 사론(邪論)을 배척하였으며 임금을 애호하였습니다. 유영경(柳永慶)을 토벌하고 이홍로(李弘老)를 주벌할 때에 그 일을 떠맡아 피하지 않았고 이진(李珒)이 왕위를 사양했다는 주본(奏本)을 올려야 한다는 말을 배척하고 골육의 은혜를 보존해야 한다는 말을 공격하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하였습니다. 김제남(金悌男)의 난역을 미리 알아 분기하여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임금을 보호하였고 다 없어져 가는 강상(綱常)을 붙들어 세웠습니다. 그가 종묘 사직과 백성들을 위하여 세운 공로는 성상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나라를 위태롭게 한 자들의 잔당들과 골육의 은혜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악한 무리들과 김제남의 흉도들이 이곳 저곳에 널려 있으면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떼거리로 모여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에 대비(大妃)를 폐하려 한다는 말을 지어내어, 사람들을 모함할 하나의 함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흉악한 음모를 이루지 못하고 간악한 정상이 드러나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다시 기회를 타고 더욱 독기를 품고서 혹 유언비어를 지어내어 원근에 전파하기도 하고 혹 흉악한 상소를 올려 성상을 혼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계책과 경악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상의 총명하심에 힘입어 그 간사함을 부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형효갑의 복과(復科)를 논계하는 때를 만나 기회가 왔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삼사(三司)의 논집이 그 사이에 무슨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무리들이 손뼉을 치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잇따라 일어나서, 원이곤이 선봉이 되고 이극건이 잇따라 지원을 하였으며 윤선도가 다시 떠들어대었는데, 말이 매우 흉악하고 패려하였습니다. 심지어 위복을 멋대로 농단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이첨의 죄목을 삼았고 또 조정의 벼슬아치들과 관학의 유생들을 모두 이이첨의 복심과 도당들이라고 하며 없는 일을 날조하여 난역(亂逆)이라고 지목하였습니다. 반드시 이이첨을 먼저 제거하고, 대신 이하 삼사·후설·전조의 관원과 관학의 유생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나라를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또한 참혹하지 않습니까. 복심과 도당이라고 하는 것은 당역(黨逆)을 일컫는 말입니다. 조정의 벼슬아치들과 관학의 유생들은 전하의 신하입니다. 나라를 어지럽힌 역적을 토벌하고 바른 공론을 붙들어 세운 것은 임금을 위해서 한 일일 뿐이며, 종묘와 사직을 위해서 한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전하를 위해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가리켜 복심과 도당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어찌 조정을 욕되게 하는 데에 그치고 말 일이겠습니까. 신들이 전후로 역적을 토벌할 때에는 모두 성상께 여쭈어서 하였으며 종묘에 고하고 하였습니다. 흉악한 역도들을 깨끗이 제거하고 의리를 환히 밝혔으니 이는 성상께서도 아시는 바이며 신명(神明)도 알고 있는 바입니다. 참으로 가령 골육의 은혜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과 진이 왕위를 사양한 주본을 올려야 한다는 말과 영경과 제남의 역모가 앞뒤로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두 역적을 토벌하는 큰 의리를 알고 있다면, 신들이 비록 역적을 옹호한다는 죄목으로 사람을 공격하고자 하더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상소에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역적이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있다면 반드시 이 무리들에게서 나올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시역을 할 역적이, 역적을 토벌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오겠습니까, 역적을 옹호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오겠습니까? 다만 뒷날 역적을 토벌한 사람을 무함할 자와 사류를 해칠 앙화가 이 일을 부리로 하여 발생하게 될까 염려가 됩니다. 또 들으니, 사악한 의논을 주장한 이원익을 사마광에다 견주었고 임금을 협박하고 나라를 저버린 이덕형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몸바친 자라고 하였으며 성상의 공적을 덮어 가린 심희수를 소신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기타 홍무적(洪茂績)과 정택뢰(鄭澤雷)와 김효성(金孝誠) 등, 역적을 편들고 임금을 모함에 빠뜨린 역적들을 죄가 없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목숨을 걸고 구제하려고 하였습니다. 국가가 이미 결정한 죄안을 무시하고 하나의 시비거리를 내세워서 당장에 상황을 뒤집을 계책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역모를 꾀한 자들을 가리켜 역적이 아니라고 하고 역적을 토벌한 자들을 가리켜 파 당을 심는다고 하여, 역적을 토벌했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하였으니, 그의 속셈은 불을 보듯 분명한 것입니다. 어찌 믿는 데가 없이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이는 하찮은 일개 윤선도의 소행이 아닙니다. 또한 늙은 윤유기가 한 짓도 아닙니다. 큰 간인(奸人)이 숨어서 몰래 사주한 정상이 여기에 이르러 다 드러났습니다. 신들은 모두 하찮은 자들로서 언론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역적을 토벌하는 큰 의리를 밝히지도 못하고 도리어 여러 잔당들로부터 망극한 비난을 당하고 악명을 받았으니,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을 모두 파직하 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흉악한 상소에 대해서 무슨 더불어 따질 것이 있겠는가.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신들이 그저께 삼가 윤선도의 상소의 대개를 보았는데, 서로들 경악하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그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 상소에 대신·삼사·후설·전조를 끝없이 비난하며 공격하였습니다. 그가 역적을 토벌한 신하에게 악명을 씌우고 사류(士類)를 모조리 죽여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망타진할 계책을 세웠으니, 참으로 음험합니다. 근래의 괴이한 무리들이 사람을 모함했던 상소에 견주어 볼 때에 윤선도의 상소는 더더욱 심합니다.
이이첨의 효우(孝友)와 청백(淸白), 충성과 절의는 나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입니다. 무신년 이래로 누차 국난(國難)을 만나 성상을 보위하였습니다. 역적을 토벌하고 사론(邪論)을 배척하였으며 임금을 애호하였습니다. 유영경(柳永慶)을 토벌하고 이홍로(李弘老)를 주벌할 때에 그 일을 떠맡아 피하지 않았고 이진(李珒)이 왕위를 사양했다는 주본(奏本)을 올려야 한다는 말을 배척하고 골육의 은혜를 보존해야 한다는 말을 공격하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하였습니다. 김제남(金悌男)의 난역을 미리 알아 분기하여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임금을 보호하였고 다 없어져 가는 강상(綱常)을 붙들어 세웠습니다. 그가 종묘 사직과 백성들을 위하여 세운 공로는 성상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나라를 위태롭게 한 자들의 잔당들과 골육의 은혜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악한 무리들과 김제남의 흉도들이 이곳 저곳에 널려 있으면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떼거리로 모여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에 대비(大妃)를 폐하려 한다는 말을 지어내어, 사람들을 모함할 하나의 함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흉악한 음모를 이루지 못하고 간악한 정상이 드러나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다시 기회를 타고 더욱 독기를 품고서 혹 유언비어를 지어내어 원근에 전파하기도 하고 혹 흉악한 상소를 올려 성상을 혼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계책과 경악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상의 총명하심에 힘입어 그 간사함을 부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형효갑의 복과(復科)를 논계하는 때를 만나 기회가 왔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삼사(三司)의 논집이 그 사이에 무슨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무리들이 손뼉을 치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잇따라 일어나서, 원이곤이 선봉이 되고 이극건이 잇따라 지원을 하였으며 윤선도가 다시 떠들어대었는데, 말이 매우 흉악하고 패려하였습니다. 심지어 위복을 멋대로 농단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이첨의 죄목을 삼았고 또 조정의 벼슬아치들과 관학의 유생들을 모두 이이첨의 복심과 도당들이라고 하며 없는 일을 날조하여 난역(亂逆)이라고 지목하였습니다. 반드시 이이첨을 먼저 제거하고, 대신 이하 삼사·후설·전조의 관원과 관학의 유생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나라를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또한 참혹하지 않습니까.
복심과 도당이라고 하는 것은 당역(黨逆)을 일컫는 말입니다. 조정의 벼슬아치들과 관학의 유생들은 전하의 신하입니다. 나라를 어지럽힌 역적을 토벌하고 바른 공론을 붙들어 세운 것은 임금을 위해서 한 일일 뿐이며, 종묘와 사직을 위해서 한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전하를 위해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가리켜 복심과 도당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어찌 조정을 욕되게 하는 데에 그치고 말 일이겠습니까. 신들이 전후로 역적을 토벌할 때에는 모두 성상께 여쭈어서 하였으며 종묘에 고하고 하였습니다. 흉악한 역도들을 깨끗이 제거하고 의리를 환히 밝혔으니 이는 성상께서도 아시는 바이며 신명(神明)도 알고 있는 바입니다. 참으로 가령 골육의 은혜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과 진이 왕위를 사양한 주본을 올려야 한다는 말과 영경과 제남의 역모가 앞뒤로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두 역적을 토벌하는 큰 의리를 알고 있다면, 신들이 비록 역적을 옹호한다는 죄목으로 사람을 공격하고자 하더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상소에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역적이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있다면 반드시 이 무리들에게서 나올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시역을 할 역적이, 역적을 토벌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오겠습니까, 역적을 옹호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오겠습니까? 다만 뒷날 역적을 토벌한 사람을 무함할 자와 사류를 해칠 앙화가 이 일을 부리로 하여 발생하게 될까 염려가 됩니다.
또 들으니, 사악한 의논을 주장한 이원익을 사마광에다 견주었고 임금을 협박하고 나라를 저버린 이덕형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몸바친 자라고 하였으며 성상의 공적을 덮어 가린 심희수를 소신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기타 홍무적(洪茂績)과 정택뢰(鄭澤雷)와 김효성(金孝誠) 등, 역적을 편들고 임금을 모함에 빠뜨린 역적들을 죄가 없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목숨을 걸고 구제하려고 하였습니다. 국가가 이미 결정한 죄안을 무시하고 하나의 시비거리를 내세워서 당장에 상황을 뒤집을 계책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역모를 꾀한 자들을 가리켜 역적이 아니라고 하고 역적을 토벌한 자들을 가리켜 파 당을 심는다고 하여, 역적을 토벌했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하였으니, 그의 속셈은 불을 보듯 분명한 것입니다. 어찌 믿는 데가 없이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이는 하찮은 일개 윤선도의 소행이 아닙니다. 또한 늙은 윤유기가 한 짓도 아닙니다. 큰 간인(奸人)이 숨어서 몰래 사주한 정상이 여기에 이르러 다 드러났습니다. 신들은 모두 하찮은 자들로서 언론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역적을 토벌하는 큰 의리를 밝히지도 못하고 도리어 여러 잔당들로부터 망극한 비난을 당하고 악명을 받았으니,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을 모두 파직하 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흉악한 상소에 대해서 무슨 더불어 따질 것이 있겠는가.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윤선도(尹善道)를 절도에 안치하라. 유기와 선도는 크게 다르니, 다만 삭탈관직만하고 풀어주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라."
"윤선도(尹善道)를 절도에 안치하라. 유기와 선도는 크게 다르니, 다만 삭탈관직만하고 풀어주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라."

 

12월 24일 경신

035)  경상도 유생 남자신(南自新)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간악한 자를 편들고 어진이를 모함한 윤유기의 죄를 먼저 다스리고 다음에 무고(誣告)하여 임금을 속인 윤선도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註 035]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3일 5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경상도 유생 남자신(南自新)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간악한 자를 편들고 어진이를 모함한 윤유기의 죄를 먼저 다스리고 다음에 무고(誣告)하여 임금을 속인 윤선도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註 035]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3일 5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036)  금부 도사 정결(鄭潔)이, 추형할 죄인 유성(柳惺)의 시신을 가져올 일로 내려갔다.






[註 036]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3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금부 도사 정결(鄭潔)이, 추형할 죄인 유성(柳惺)의 시신을 가져올 일로 내려갔다.






[註 036]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3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037) 홍문관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지난번 윤선도의 상소를 보았더니, 대개 위복을 마음대로 농단한 이이첨의 죄를 먼저 다스리고 다음에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유희분과 박승종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신들은 서로들 경악스럽게 여기고 괴이하게 여기며 그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정원의 아룀과 양사의 피혐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 상소의 주된 뜻이 오로지 삼사를 공척하는 것임을 알았습 니다. 신들도 삼사의 하나입니다. 스스로 인혐을 하려고 하니 저들의 술수에 빠질까 염려되고 말없이 입을 닫고 있으려고 하니 성상을 저버리는 일이 될까 염려되어, 신들의 의견을 모두 말씀드려 성상께서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윤선도가 삼사를 요동시키고자 하는 것이 어찌 그 의도가 없겠습니까. 이이첨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어찌 그 의도가 없겠습니까. 다만 이이첨이 처음부터 끝까지 역적을 토벌하였고 삼사가 그와 더불어 역적을 토벌하였으니 이이첨을 제거하고 삼사를 요동시켜 역적 토벌하는 일을 못하게 하면, 역적의 도당들이 편안하게 될 것이고 역적의 도당들이 편안하게 되면 그는 역적의 무리들에게는 큰 공을 세우게 되고 여러 역적들의 깊은 원수를 갚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차라리 국가를 저버리더라도 이 성공하지 못할 꾀를 부리려고 하는 이유이니, 그 계책이 또한 허술하다 하겠습니다. 우선 이이첨이 전후로 토벌한 역적들을 가지고 말해 보자면, 유영경(柳永慶)과 이진(李珒)과 김직재(金直哉)와 김제남(金悌男)이며, 이이첨이 공척을 한 사론(邪論)을 가지고 말해 보자면, 호민(好閔)과 이덕형(李德馨)과 이원익(李元翼)과 남이공(南以恭)과 심희수(沈喜壽)입니다.  윤선도는 겉으로는 이이첨을 공격하면서 안으로는 여러 역적들을 구제하려 하였는데, 그는 속으로 ‘이이첨 하나를 제거하면 역적을 토벌하는 무리들이 떨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삼사의 논의도 스스로 꺾이게 될 것이다.’라고 여겼기 때문에 감히 흉악한 상소를 올려 일망타진할 계책을 삼은 것입니다. 그가 없는 일을 날조하여 선류를 모함한 정상이 귀신과 같았으나 이에 이르러 모두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이이첨의 충효와 대절은 신명이 알고 있는 바인데도 이토록 무함을 받았습니다. 신들의 구구한 뜻과 얕은 정성으로 비록 난역은 마땅히 토벌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또한 그들 무리에게 원망을 사는 데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이것으로 무함을 받는 것은 괴이할 것도 없습니다.  윤선도가 역적을 옹호할 생각으로 몰래 선류를 해칠 마음을 품고 남의 사주를 받아 기꺼이 앞장서서 혼란을 일으켰으니, 그 무식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는 책망할 거리도 못 됩니다. 자취를 감추고 숨어 있는 주모자는 아들을 부추킨 윤유기보다도 더 큰 역적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윤선도를 말하지 아니하고 윤유기를 말하며, 윤유기를 말하지 아니하고 몰래 사주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 백료들에게 화목의 풍습이 적고 조정에는 서로 다투는 습속이 있습니다. 기회를 타고 틈을 엿보아 온갖 계책으로 보복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한 사람을 사주하고 내일 한 사람을 사주하여, 유자(儒者)라는 이름을 가탁하여 무릅쓰고 상소를 올리게 하며, 독기를 품고 몰래 중상모략을 하는 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신들은 삼가 전하의 조정이 거의 안정될 날이 없어서 마침내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게 될까 염려됩니다. 신들은 경연에서 전하를 모시는 직임을 띠고 있는데, 이토록 심한 무함과 비난을 당하였으니, 무릅쓰고 있으면서 거듭 명기를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 속히 신들의 직임을 삭제하여, 역적을 편들고 임금을 저버린 자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흉악한 상소에 대해서 같이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註 037]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3일 7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홍문관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지난번 윤선도의 상소를 보았더니, 대개 위복을 마음대로 농단한 이이첨의 죄를 먼저 다스리고 다음에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유희분과 박승종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신들은 서로들 경악스럽게 여기고 괴이하게 여기며 그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정원의 아룀과 양사의 피혐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 상소의 주된 뜻이 오로지 삼사를 공척하는 것임을 알았습 니다. 신들도 삼사의 하나입니다. 스스로 인혐을 하려고 하니 저들의 술수에 빠질까 염려되고 말없이 입을 닫고 있으려고 하니 성상을 저버리는 일이 될까 염려되어, 신들의 의견을 모두 말씀드려 성상께서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윤선도가 삼사를 요동시키고자 하는 것이 어찌 그 의도가 없겠습니까. 이이첨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어찌 그 의도가 없겠습니까. 다만 이이첨이 처음부터 끝까지 역적을 토벌하였고 삼사가 그와 더불어 역적을 토벌하였으니 이이첨을 제거하고 삼사를 요동시켜 역적 토벌하는 일을 못하게 하면, 역적의 도당들이 편안하게 될 것이고 역적의 도당들이 편안하게 되면 그는 역적의 무리들에게는 큰 공을 세우게 되고 여러 역적들의 깊은 원수를 갚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차라리 국가를 저버리더라도 이 성공하지 못할 꾀를 부리려고 하는 이유이니, 그 계책이 또한 허술하다 하겠습니다. 우선 이이첨이 전후로 토벌한 역적들을 가지고 말해 보자면, 유영경(柳永慶)과 이진(李珒)과 김직재(金直哉)와 김제남(金悌男)이며, 이이첨이 공척을 한 사론(邪論)을 가지고 말해 보자면, 호민(好閔)과 이덕형(李德馨)과 이원익(李元翼)과 남이공(南以恭)과 심희수(沈喜壽)입니다.  윤선도는 겉으로는 이이첨을 공격하면서 안으로는 여러 역적들을 구제하려 하였는데, 그는 속으로 ‘이이첨 하나를 제거하면 역적을 토벌하는 무리들이 떨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삼사의 논의도 스스로 꺾이게 될 것이다.’라고 여겼기 때문에 감히 흉악한 상소를 올려 일망타진할 계책을 삼은 것입니다. 그가 없는 일을 날조하여 선류를 모함한 정상이 귀신과 같았으나 이에 이르러 모두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이이첨의 충효와 대절은 신명이 알고 있는 바인데도 이토록 무함을 받았습니다. 신들의 구구한 뜻과 얕은 정성으로 비록 난역은 마땅히 토벌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또한 그들 무리에게 원망을 사는 데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이것으로 무함을 받는 것은 괴이할 것도 없습니다.  윤선도가 역적을 옹호할 생각으로 몰래 선류를 해칠 마음을 품고 남의 사주를 받아 기꺼이 앞장서서 혼란을 일으켰으니, 그 무식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는 책망할 거리도 못 됩니다. 자취를 감추고 숨어 있는 주모자는 아들을 부추킨 윤유기보다도 더 큰 역적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윤선도를 말하지 아니하고 윤유기를 말하며, 윤유기를 말하지 아니하고 몰래 사주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 백료들에게 화목의 풍습이 적고 조정에는 서로 다투는 습속이 있습니다. 기회를 타고 틈을 엿보아 온갖 계책으로 보복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한 사람을 사주하고 내일 한 사람을 사주하여, 유자(儒者)라는 이름을 가탁하여 무릅쓰고 상소를 올리게 하며, 독기를 품고 몰래 중상모략을 하는 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신들은 삼가 전하의 조정이 거의 안정될 날이 없어서 마침내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게 될까 염려됩니다. 신들은 경연에서 전하를 모시는 직임을 띠고 있는데, 이토록 심한 무함과 비난을 당하였으니, 무릅쓰고 있으면서 거듭 명기를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 속히 신들의 직임을 삭제하여, 역적을 편들고 임금을 저버린 자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흉악한 상소에 대해서 같이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註 037]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3일 7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신들이 삼가 지난번 윤선도의 상소를 보았더니, 대개 위복을 마음대로 농단한 이이첨의 죄를 먼저 다스리고 다음에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유희분과 박승종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신들은 서로들 경악스럽게 여기고 괴이하게 여기며 그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정원의 아룀과 양사의 피혐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 상소의 주된 뜻이 오로지 삼사를 공척하는 것임을 알았습 니다.
신들도 삼사의 하나입니다. 스스로 인혐을 하려고 하니 저들의 술수에 빠질까 염려되고 말없이 입을 닫고 있으려고 하니 성상을 저버리는 일이 될까 염려되어, 신들의 의견을 모두 말씀드려 성상께서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윤선도가 삼사를 요동시키고자 하는 것이 어찌 그 의도가 없겠습니까. 이이첨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어찌 그 의도가 없겠습니까. 다만 이이첨이 처음부터 끝까지 역적을 토벌하였고 삼사가 그와 더불어 역적을 토벌하였으니 이이첨을 제거하고 삼사를 요동시켜 역적 토벌하는 일을 못하게 하면, 역적의 도당들이 편안하게 될 것이고 역적의 도당들이 편안하게 되면 그는 역적의 무리들에게는 큰 공을 세우게 되고 여러 역적들의 깊은 원수를 갚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차라리 국가를 저버리더라도 이 성공하지 못할 꾀를 부리려고 하는 이유이니, 그 계책이 또한 허술하다 하겠습니다.
우선 이이첨이 전후로 토벌한 역적들을 가지고 말해 보자면, 유영경(柳永慶)과 이진(李珒)과 김직재(金直哉)와 김제남(金悌男)이며, 이이첨이 공척을 한 사론(邪論)을 가지고 말해 보자면, 호민(好閔)과 이덕형(李德馨)과 이원익(李元翼)과 남이공(南以恭)과 심희수(沈喜壽)입니다.
윤선도는 겉으로는 이이첨을 공격하면서 안으로는 여러 역적들을 구제하려 하였는데, 그는 속으로 ‘이이첨 하나를 제거하면 역적을 토벌하는 무리들이 떨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삼사의 논의도 스스로 꺾이게 될 것이다.’라고 여겼기 때문에 감히 흉악한 상소를 올려 일망타진할 계책을 삼은 것입니다. 그가 없는 일을 날조하여 선류를 모함한 정상이 귀신과 같았으나 이에 이르러 모두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이이첨의 충효와 대절은 신명이 알고 있는 바인데도 이토록 무함을 받았습니다. 신들의 구구한 뜻과 얕은 정성으로 비록 난역은 마땅히 토벌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또한 그들 무리에게 원망을 사는 데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이것으로 무함을 받는 것은 괴이할 것도 없습니다.
윤선도가 역적을 옹호할 생각으로 몰래 선류를 해칠 마음을 품고 남의 사주를 받아 기꺼이 앞장서서 혼란을 일으켰으니, 그 무식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는 책망할 거리도 못 됩니다. 자취를 감추고 숨어 있는 주모자는 아들을 부추킨 윤유기보다도 더 큰 역적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윤선도를 말하지 아니하고 윤유기를 말하며, 윤유기를 말하지 아니하고 몰래 사주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 백료들에게 화목의 풍습이 적고 조정에는 서로 다투는 습속이 있습니다. 기회를 타고 틈을 엿보아 온갖 계책으로 보복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한 사람을 사주하고 내일 한 사람을 사주하여, 유자(儒者)라는 이름을 가탁하여 무릅쓰고 상소를 올리게 하며, 독기를 품고 몰래 중상모략을 하는 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신들은 삼가 전하의 조정이 거의 안정될 날이 없어서 마침내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게 될까 염려됩니다. 신들은 경연에서 전하를 모시는 직임을 띠고 있는데, 이토록 심한 무함과 비난을 당하였으니, 무릅쓰고 있으면서 거듭 명기를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 속히 신들의 직임을 삭제하여, 역적을 편들고 임금을 저버린 자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흉악한 상소에 대해서 같이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12월 25일 

유학 민성급(閔聖及)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존호(尊號)를 더하여 성효(誠孝)를 드러내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사헌부가 아뢰었다. "남도 병사(南道兵使) 현즙(玄楫)은 제주(濟州)에서 체직되어 온 지가 오래되었고 그동안 한산한 직책에 있었으니, 그가 만약 소묘(掃墓)를 할 정성이 있었다면 말미를 받아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병사의 직임에 제수되어서는 마땅히 서둘러 길을 나서면서 오히려 지체될까를 염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서(海西)와 북관(北關)과의 거리는 아주 먼데 어찌 감히 소분(掃墳)할 생각을 내어 무릅쓰고 외람된 상소를 올린단 말입니까. 무부(武夫)들의 교만함이 근래에 더욱 심해졌으니, 뒷날 위급한 일이 있게 되었을 때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공홍 수사(公洪水使) 신경징(申景澄)은 전에 경상수사로 있을 때에 감히 자기 아비의 일을 가지고 태연하게 상소를 하였는데, 상소에서 감히, 그의 아비가 공홍도에 있다고 하였으니, 그가 직책이 바뀌기를 바란 의도가 덮을 수 없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출(退黜)을 면하고 또한 직책을 바꾸어 주라는 특명을 받았으므로 해괴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현즙과 신경징을 모두 파직하소서."
"남도 병사(南道兵使) 현즙(玄楫)은 제주(濟州)에서 체직되어 온 지가 오래되었고 그동안 한산한 직책에 있었으니, 그가 만약 소묘(掃墓)를 할 정성이 있었다면 말미를 받아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병사의 직임에 제수되어서는 마땅히 서둘러 길을 나서면서 오히려 지체될까를 염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서(海西)와 북관(北關)과의 거리는 아주 먼데 어찌 감히 소분(掃墳)할 생각을 내어 무릅쓰고 외람된 상소를 올린단 말입니까. 무부(武夫)들의 교만함이 근래에 더욱 심해졌으니, 뒷날 위급한 일이 있게 되었을 때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공홍 수사(公洪水使) 신경징(申景澄)은 전에 경상수사로 있을 때에 감히 자기 아비의 일을 가지고 태연하게 상소를 하였는데, 상소에서 감히, 그의 아비가 공홍도에 있다고 하였으니, 그가 직책이 바뀌기를 바란 의도가 덮을 수 없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출(退黜)을 면하고 또한 직책을 바꾸어 주라는 특명을 받았으므로 해괴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현즙과 신경징을 모두 파직하소서."

 

대사헌 남근(南瑾), 대사간 정조(鄭造), 집의 김질간(金質幹), 사간 오여온(吳汝穩), 장령 임건(林健)·정도(鄭道), 지평 남궁경(南宮㯳), 헌납 유여격(柳汝格), 정언 홍요검(洪堯儉)·한희(韓暿)가 합사하여, 허욱(許頊)·최천건(崔天健)·성영(成泳)을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였다. "사과(司果) 윤유기(尹惟幾)는 본래 간사하고 사악한 인간으로서 성품이 뱀과 같고 행실이 개와 같습니다. 집안에서의 행실을 말하자면, 어미가 죽었을 때에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 아비의 첩을 팔아먹었으며 재물을 다투다 형을 죽였습니다. 그의 몸가짐을 가지고 말하자면, 백성의 전답을 겁탈하였고 벼슬살이가 탐욕스러웠으며 권세있는 자에게 빌붙어 사돈을 맺었습니다. 평생 마음씀이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는데 누차 대각의 논핵을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자 뜻을 잃고 울분을 지니고서 원한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간인의 풍지를 받들어 그의 아들 윤선도를 꾀어서 상소를 올리게 하여 조정을 함정에 빠뜨리고 사류를 일망타진하려 하였습니다. 이이첨을 공격하는 체하며 성상을 모함하였습니다. 심지어 경방(京房)과 한 원제(漢元帝)가 주고받은 말을 인용하여 멋대로 임금을 유왕과 여왕, 그리고 진(秦)나라 이세(二世)에게 비유하기까지 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하고 도리에 어그러진 마음이 드러났습 니다. 또한 임금과 아비를 시해할 자들이라는 악명을 역적을 토벌한 사류들에게 더하여 하나의 함정을 만들어서, 유영경을 복권시킬 바탕을 만들었고 김제남의 옥사를 뒤집을 계책을 만들었습니다. 사설(邪說)을 주창한 이원익을 사마광에다가 견주었고 역적 이의(李㼁)를 옹호한 이덕형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친 자라고 하였으며 사적인 편지에서 임금을 비방한 심희수를 소신을 꿋꿋이 지키며 흔들리지 않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삼간(三奸)에게 빌붙어 극도로 칭송해 마지않았습니다. 심지어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 등은 모두 윗사람을 무함하고 임금을 협박한 역적들로서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사형이 감면되어 귀양을 간 자들인데, 이토록 공공연히 옹호하고 있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옹호한 자들을 가리켜 충현(忠賢)이라고 하였고, 임금을 위하여 역적을 토벌한 자를 가리켜 도리어 당역(黨逆)이라고 하였습니다. 로 대신에서부터 아래로 유생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모두 다 없애고 나라를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그 의도가 장차 성상을 어느 곳에다 두려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임금을 무시하고 왕법(王法)을 무시하고 역당을 옹호하고 조정을 모함한 죄는 아비와 아들이 똑같습니다. 윤유기와 윤선도를 먼 변방에 안치시키소서."
"사과(司果) 윤유기(尹惟幾)는 본래 간사하고 사악한 인간으로서 성품이 뱀과 같고 행실이 개와 같습니다. 집안에서의 행실을 말하자면, 어미가 죽었을 때에 장례도 치르지 않았고 아비의 첩을 팔아먹었으며 재물을 다투다 형을 죽였습니다. 그의 몸가짐을 가지고 말하자면, 백성의 전답을 겁탈하였고 벼슬살이가 탐욕스러웠으며 권세있는 자에게 빌붙어 사돈을 맺었습니다. 평생 마음씀이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는데 누차 대각의 논핵을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자 뜻을 잃고 울분을 지니고서 원한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간인의 풍지를 받들어 그의 아들 윤선도를 꾀어서 상소를 올리게 하여 조정을 함정에 빠뜨리고 사류를 일망타진하려 하였습니다. 이이첨을 공격하는 체하며 성상을 모함하였습니다. 심지어 경방(京房)과 한 원제(漢元帝)가 주고받은 말을 인용하여 멋대로 임금을 유왕과 여왕, 그리고 진(秦)나라 이세(二世)에게 비유하기까지 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하고 도리에 어그러진 마음이 드러났습 니다.
또한 임금과 아비를 시해할 자들이라는 악명을 역적을 토벌한 사류들에게 더하여 하나의 함정을 만들어서, 유영경을 복권시킬 바탕을 만들었고 김제남의 옥사를 뒤집을 계책을 만들었습니다.
사설(邪說)을 주창한 이원익을 사마광에다가 견주었고 역적 이의(李㼁)를 옹호한 이덕형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에 몸바친 자라고 하였으며 사적인 편지에서 임금을 비방한 심희수를 소신을 꿋꿋이 지키며 흔들리지 않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삼간(三奸)에게 빌붙어 극도로 칭송해 마지않았습니다.
심지어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 등은 모두 윗사람을 무함하고 임금을 협박한 역적들로서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사형이 감면되어 귀양을 간 자들인데, 이토록 공공연히 옹호하고 있습니다.
임금을 잊고 역적을 옹호한 자들을 가리켜 충현(忠賢)이라고 하였고, 임금을 위하여 역적을 토벌한 자를 가리켜 도리어 당역(黨逆)이라고 하였습니다. 로 대신에서부터 아래로 유생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모두 다 없애고 나라를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그 의도가 장차 성상을 어느 곳에다 두려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임금을 무시하고 왕법(王法)을 무시하고 역당을 옹호하고 조정을 모함한 죄는 아비와 아들이 똑같습니다. 윤유기와 윤선도를 먼 변방에 안치시키소서."

 

유학 민준(閔濬)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비방하고 역적을 옹호하고 임금을 모함한 윤선도의 죄를 속히 바루어서, 지극히 공정한 도의와 지극히 엄한 법전을 보이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합사에 답하였다. "나의 뜻은 이미 하유하였다. 무엇 때문에 합사를 하여 번거롭게 아뢰기까지 하는가. 논계를 멈추는 것이 옳다."
"나의 뜻은 이미 하유하였다. 무엇 때문에 합사를 하여 번거롭게 아뢰기까지 하는가. 논계를 멈추는 것이 옳다."

 

합계에 대해, 천천히 결정을 내리겠다고 답하였다.

 

헌부에 답하였다. "현즙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으니 배사(拜辭)하기 전에 소분하겠다고 상소를 올린 것이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신경징의 일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현즙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으니 배사(拜辭)하기 전에 소분하겠다고 상소를 올린 것이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신경징의 일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정원이 아뢰기를, "계사(啓辭)와 차사(箚辭)를 들이지 말고 며칠 있다 전교를 한 뒤에 들이라고 하명하셨습니다만, 대간이 직접 와서 아뢰었기 때문에 입계하지 않을 수가 없습 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나의 증세가 아직도 차도가 없으니, 이와 같이 긴급하지 않은 계사는 며칠 동안은 우선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고 양사에 말하라." 하였다.
"계사(啓辭)와 차사(箚辭)를 들이지 말고 며칠 있다 전교를 한 뒤에 들이라고 하명하셨습니다만, 대간이 직접 와서 아뢰었기 때문에 입계하지 않을 수가 없습 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나의 증세가 아직도 차도가 없으니, 이와 같이 긴급하지 않은 계사는 며칠 동안은 우선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고 양사에 말하라."
하였다.

 

12월 26일 임술

정원이 아뢰기를, "이 비망기를 양사에 말했더니, 합사를 하는 대론(大論)은 감히 우선 정지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임금이 병환이 있어 누차 침을 맞고도 아직 차도가 없는데,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야 참으로 즉시 입계해야 마땅하겠으나, 긴급하지 않은 계사와 같은 것을 어찌 꼭 조용히 조섭하는 날에 굳이 논계한단 말인가. 비록 대론이라고 하더라도 일이 긴급한 것이 아니다. 대간도 또한 신하인데, 전교를 무시하고 굳이, ‘감히 정지할 수 없다.’고 하니, 일의 경중과 체모를 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회복될 때까지는 번거롭게 논계하지 말 일을 정원은 살펴 시행하라." 하였다.
"이 비망기를 양사에 말했더니, 합사를 하는 대론(大論)은 감히 우선 정지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임금이 병환이 있어 누차 침을 맞고도 아직 차도가 없는데,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야 참으로 즉시 입계해야 마땅하겠으나, 긴급하지 않은 계사와 같은 것을 어찌 꼭 조용히 조섭하는 날에 굳이 논계한단 말인가. 비록 대론이라고 하더라도 일이 긴급한 것이 아니다. 대간도 또한 신하인데, 전교를 무시하고 굳이, ‘감히 정지할 수 없다.’고 하니, 일의 경중과 체모를 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회복될 때까지는 번거롭게 논계하지 말 일을 정원은 살펴 시행하라."
하였다.

 

양사의 모든 관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허욱·최천건·성영 등 세 역적의 일로 여러 달 동안 논열하였으나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하여 사람들의 울분이 날로 커지고 있으므로 어제 비로소 합사를 하여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니, ‘어찌 합사를 하기까지 하는가. 논계를 멈추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원의 아룀에 대한 답에 ‘긴급하지 않은 이러한 계사는 우선 번거롭게 아뢰지 말 일을 양사에 말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역적을 토벌하는 일은 만세 불변의 큰 의리입니다. 비록 다른 나라에 가 있더라도 오히려 목욕을 하고 토벌을 청해야 하는 것이고 보면, 참으로 조금도 늦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들이 합사하여 호소하는 것은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신들의 정성이 성상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신들의 말이 성상께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신들이 나약하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을 파직하 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나의 증세가 차도가 있기를 기다려 논계를 해도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허욱·최천건·성영 등 세 역적의 일로 여러 달 동안 논열하였으나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하여 사람들의 울분이 날로 커지고 있으므로 어제 비로소 합사를 하여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니, ‘어찌 합사를 하기까지 하는가. 논계를 멈추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원의 아룀에 대한 답에 ‘긴급하지 않은 이러한 계사는 우선 번거롭게 아뢰지 말 일을 양사에 말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역적을 토벌하는 일은 만세 불변의 큰 의리입니다. 비록 다른 나라에 가 있더라도 오히려 목욕을 하고 토벌을 청해야 하는 것이고 보면, 참으로 조금도 늦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들이 합사하여 호소하는 것은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신들의 정성이 성상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신들의 말이 성상께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신들이 나약하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을 파직하 소서."
하니, 답하기를,
"우선 나의 증세가 차도가 있기를 기다려 논계를 해도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옥당이 차자를 올렸는데, 대개 양사를 모두 출사시키고, 허욱·최천건·성영·윤유기·윤선도에 대해서 흔쾌히 공론을 따르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관학 유생 이부방(李傅芳)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속히 윤선도가 올린 흉악한 상소를 불태우고 호오(好惡)를 분명하게 보여서 조정을 맑게 하고 사류를 편안하게 하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옥당의 차자에 답하였다. "출사시키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마땅히 참작하여 처리할 것이니, 조용히 조섭하는 날에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허욱 등의 일은, 9년이나 지난 뒤에 지금 비로소 다시 논하는 것이고 보면 회복될 때까지 논계를 정지하는 것이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출사시키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마땅히 참작하여 처리할 것이니, 조용히 조섭하는 날에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허욱 등의 일은, 9년이나 지난 뒤에 지금 비로소 다시 논하는 것이고 보면 회복될 때까지 논계를 정지하는 것이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12월 27일 계해

관학 유생의 상소에 답하였다. "상소한 말은 모두 잘 알았다. 조정에서 마땅히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 학업을 닦으라."
"상소한 말은 모두 잘 알았다. 조정에서 마땅히 처리할 것이니, 너희들은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고 물러가 학업을 닦으라."

 

예조 판서 이이첨이 사직하는 글을 올리니, 전교하기를, "경이 나라를 위하여 원망을 떠맡아 이런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흉악한 상소에 마음을 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위에서 병환을 앓고 있는 때에 경이 물러가 지내서는 안 된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경이 나라를 위하여 원망을 떠맡아 이런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흉악한 상소에 마음을 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위에서 병환을 앓고 있는 때에 경이 물러가 지내서는 안 된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사직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김호(金昈)를 지평으로, 황유(黃紐)를 주서로, 이지화(李之華)를 봉교로, 한정국(韓定國)과 한급(韓昅)을 대교로 삼았다.

 

12월 28일 갑자

합계한 윤유기 부자에 대한 일을 가지고 전교하기를,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정문익(鄭文翼)을 외딴 섬에 위리 안치하라고 하였는데, 진도(珍島)에 정배(定配)하였다. 【정문익은 이이첨 등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이첨이 이 일을 인하여 죽이려고 하였는데 기자헌(奇自獻)의 구원에 힘입어 조금 풀려났다. 정문익은 평소 가난하게 살았다. 집사람이 궁인에게 뇌물을 바치려고 5백금을 구하니, 첩부(妾父) 김씨 성을 가진 자가 슬퍼하며 말하기를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가 없는 법이다. 비록 길가는 사람이라도 인력(人力)으로 그 죽음을 구제할 수가 있다면 사람은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하는 것이거늘 더구나 내 딸을 데리고 사는 사위인 경우이겠는가."라고 하고는, 드디어 집과 전답과 노복들과 옷가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팔아서 간신히 5백 금을 만들어 주었다. 이 때문에 변방으로 유배되는 데에 그칠 수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자들이 의롭게 여기고 불쌍하게 여겼다.】

 

12월 29일 을축

정원이 아뢰었다. "윤선도의 일을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奇自獻)은 ‘감기가 매우 심하여 머리가 깨지는듯이 아파서 일을 살피지 못하므로 의논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미안함을 못하겠습니다. 삼가 성상의 재량에 맡깁니다.’라고 하였고,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은 의논드리기를 ‘윤선도의 상소를 신이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이 어떤지를 모르겠습니다. 윤유기(尹惟幾)가 지휘(指揮)하였다는 것도 신은 또한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언로(言路)에 관계되는 막대한 일은 감히 가볍게 의논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의 재량에 맡깁니다.’라고 하였고, 영돈녕 정창연(鄭昌衍)은 병이 있어서 수의(收議)하지 못하였습니다."
"윤선도의 일을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奇自獻)은 ‘감기가 매우 심하여 머리가 깨지는듯이 아파서 일을 살피지 못하므로 의논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미안함을 못하겠습니다. 삼가 성상의 재량에 맡깁니다.’라고 하였고,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은 의논드리기를 ‘윤선도의 상소를 신이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이 어떤지를 모르겠습니다. 윤유기(尹惟幾)가 지휘(指揮)하였다는 것도 신은 또한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언로(言路)에 관계되는 막대한 일은 감히 가볍게 의논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의 재량에 맡깁니다.’라고 하였고, 영돈녕 정창연(鄭昌衍)은 병이 있어서 수의(收議)하지 못하였습니다."

 

양사의 모든 관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정원이 입계한 우의정 한효순의 헌의를 보았더니, ‘윤선도의 상소를 아직 보지 못해서 그 내용이 어떠한지를 모르겠고 윤유기가 지휘를 했다는 것도 신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고, 또 ‘이와 같이 언로에 관계되는 막대한 일은 감히 가볍게 헌의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흉소(兇疏) 안에 있는 대개의 중요한 말들은 정원이 대죄한 글과 양사가 인피한 글과 옥당이 올린 차자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의 고굉(股肱)·후설(喉舌)·이목(耳目)·논사(論思)·풍헌(風憲)·전선(銓選)·관유(館儒)들이 선도에 게 무함을 당한 것은 귀가 있는 자들은 모두 들었고 눈이 있는 자들은 모두 보았으며 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말하고 있으니, 속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경방(京房)이 한 원제(漢元帝)에게 한 말을 끌어다가 임금을 비난하였고 심지어 유왕·여왕과 진(秦)나라의 이세에게 견주기까지 하였으니,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정원과 삼사가 이미 원소(原疏)의 중요한 말들을 추려내어 대죄하고 인피하였다면 보고 들은 것이 이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미 고굉의 신하로서 흉소에서 비난을 당하였고 보면 피혐을 하고 의논을 드리지 않는 것은 그래도 혹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만, 이에 상으로부터 흉소라고 배척을 당한 상소를 가지고 ‘언로에 관계되는 막대한 일이라 감히 가벼이 헌의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을 업신여기고 조정을 모함하고 왕법을 무시하고 역당을 옹호한 흉소를 도리어 언로에 관계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들이 윤선도 부자의 죄를 청한 것은 어떠한 의논이 되는 것입니까? 신들은 정성이 이미 성상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고 말도 또한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였으니,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을 파직시키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삼가 정원이 입계한 우의정 한효순의 헌의를 보았더니, ‘윤선도의 상소를 아직 보지 못해서 그 내용이 어떠한지를 모르겠고 윤유기가 지휘를 했다는 것도 신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고, 또 ‘이와 같이 언로에 관계되는 막대한 일은 감히 가볍게 헌의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흉소(兇疏) 안에 있는 대개의 중요한 말들은 정원이 대죄한 글과 양사가 인피한 글과 옥당이 올린 차자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의 고굉(股肱)·후설(喉舌)·이목(耳目)·논사(論思)·풍헌(風憲)·전선(銓選)·관유(館儒)들이 선도에 게 무함을 당한 것은 귀가 있는 자들은 모두 들었고 눈이 있는 자들은 모두 보았으며 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말하고 있으니, 속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경방(京房)이 한 원제(漢元帝)에게 한 말을 끌어다가 임금을 비난하였고 심지어 유왕·여왕과 진(秦)나라의 이세에게 견주기까지 하였으니,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정원과 삼사가 이미 원소(原疏)의 중요한 말들을 추려내어 대죄하고 인피하였다면 보고 들은 것이 이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미 고굉의 신하로서 흉소에서 비난을 당하였고 보면 피혐을 하고 의논을 드리지 않는 것은 그래도 혹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만, 이에 상으로부터 흉소라고 배척을 당한 상소를 가지고 ‘언로에 관계되는 막대한 일이라 감히 가벼이 헌의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을 업신여기고 조정을 모함하고 왕법을 무시하고 역당을 옹호한 흉소를 도리어 언로에 관계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들이 윤선도 부자의 죄를 청한 것은 어떠한 의논이 되는 것입니까?
신들은 정성이 이미 성상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고 말도 또한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였으니,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을 파직시키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12월 30일 병인

옥당이 차자를 올렸는데, 대개에, "한효순은 한준겸(韓浚謙)의 숙부로서 역당에게 잘 보이려고, 이 수의(收議)를 하는 날을 당하여 이론(異論)을 세울 여지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어찌 역당을 몰래 옹호하는 망극한 말을 혐의삼아 인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양사의 관원들을 모두 출사시키소서."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한효순은 한준겸(韓浚謙)의 숙부로서 역당에게 잘 보이려고, 이 수의(收議)를 하는 날을 당하여 이론(異論)을 세울 여지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어찌 역당을 몰래 옹호하는 망극한 말을 혐의삼아 인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양사의 관원들을 모두 출사시키소서."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예조 판서를 다시 명초하였더니, 병 때문에 나가지 못하여 황공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해하지 말고 속히 출사하여 직무를 살피라고 하유하라. 내일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예조 판서를 다시 명초하였더니, 병 때문에 나가지 못하여 황공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해하지 말고 속히 출사하여 직무를 살피라고 하유하라. 내일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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