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12권, 광해 9년 1617년 2월

싸라리리 2026. 1. 1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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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병신

도적이 강화(江華)의 사고(史庫)에 불을 질렀는데, 부사(府使) 권반(權盼)이 불을 껐다.

 

행 사용(司勇) 민인길(閔仁佶)이 상소하기를, "신이 오늘 아침에 별장(別將)의 직소(直所)에 있었는데, 학관(學官) 이원형(李元亨)이 와서 신을 보고는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을 이재영(李再榮)이 지은 일을 교산(蛟山)이 영공(令公)에게 말하였는데, 영공이 명가(名家)에 전하였다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하였다. 영공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그 말을 비록 듣지 못하였으나, 이미 그런 말이 있다. 너는 어느 곳에서 그 말을 들었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원형이 말이 나온 곳을 말하지 않고 다만 말하기를 ‘나에게 말해 준 사람에게 다시 물어서 말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서는 심신이 놀라서 안정할 수가 없어서 곧바로 이원형의 집으로 뒤쫓아가서 누가 말하였는지를 묻자, 또 명확히 말하지 않으면서 ‘오늘 저녁에 그 곳에 가서 상세히 들어보고서 다시 통보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서는 이어 생각하기를, 흉격을 지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에 일각도 입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신이 오늘 아침에 별장(別將)의 직소(直所)에 있었는데, 학관(學官) 이원형(李元亨)이 와서 신을 보고는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을 이재영(李再榮)이 지은 일을 교산(蛟山)이 영공(令公)에게 말하였는데, 영공이 명가(名家)에 전하였다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하였다. 영공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그 말을 비록 듣지 못하였으나, 이미 그런 말이 있다. 너는 어느 곳에서 그 말을 들었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원형이 말이 나온 곳을 말하지 않고 다만 말하기를 ‘나에게 말해 준 사람에게 다시 물어서 말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서는 심신이 놀라서 안정할 수가 없어서 곧바로 이원형의 집으로 뒤쫓아가서 누가 말하였는지를 묻자, 또 명확히 말하지 않으면서 ‘오늘 저녁에 그 곳에 가서 상세히 들어보고서 다시 통보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서는 이어 생각하기를, 흉격을 지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에 일각도 입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2월 2일 정유

훈련 도정 성우길(成佑吉)이 상소하기를, "정월 26일에 신이 문창 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을 만나보니, 유희분이 신에게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을 이재영이 지었다는 설을, 민인길(閔仁佶)이 허균의 집에서 듣고서 그와 친한 사람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이재영 역시 혈기가 있는 사람인데, 그가 어찌 이처럼 패역스런 말을 얽어서 임금을 욕하기를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할 리가 있겠는가. 영공은 이재영과 친척이니 모름지기 번거롭게 여기지 말고 상세히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이재영을 불러서 그 곡절을 물어보자, 이재영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나를 모함하는 말에 불과하다. 마땅히 이원형을 시켜서 가서 민인길을 만나보고 말을 만들어 낸 자를 상세히 캐내어 와서 알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이재영이 와서 알려 주기를 기다려서 사유를 갖추어 상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듣건대 민인길이 이원형이 와서 물어본 일로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이재영이 신의 말을 듣고서 이원형을 시켜서 가서 물어보았기 때문에 상소를 올린 것으로,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에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황공해 하지 말라." 하였다.】
"정월 26일에 신이 문창 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을 만나보니, 유희분이 신에게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을 이재영이 지었다는 설을, 민인길(閔仁佶)이 허균의 집에서 듣고서 그와 친한 사람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이재영 역시 혈기가 있는 사람인데, 그가 어찌 이처럼 패역스런 말을 얽어서 임금을 욕하기를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할 리가 있겠는가. 영공은 이재영과 친척이니 모름지기 번거롭게 여기지 말고 상세히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이재영을 불러서 그 곡절을 물어보자, 이재영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나를 모함하는 말에 불과하다. 마땅히 이원형을 시켜서 가서 민인길을 만나보고 말을 만들어 낸 자를 상세히 캐내어 와서 알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이재영이 와서 알려 주기를 기다려서 사유를 갖추어 상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듣건대 민인길이 이원형이 와서 물어본 일로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이재영이 신의 말을 듣고서 이원형을 시켜서 가서 물어보았기 때문에 상소를 올린 것으로,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에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황공해 하지 말라." 하였다.】

 

부사직 허균이 상소하였다. "오늘 새벽에 민인길이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제 이원형이 와서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은 이재영(李再榮)이 지었는데, 그것을 교산(蛟山)이 듣고서 영공(令公)에게 말하자, 영공이 명가(名家)에 말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을 알고 있는가?」 하기에, 내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촌 조카사위인 유충립(柳忠立)이 와서 말하기를 「이 일을 기수발(奇秀發)이 삼촌인 문창 부원군 유희분의 집에서 말하였으니 형세상 감추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이에 내가 이원형이 먼저 고할까 염려되어 즉시 어제 저녁에 상소를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는 몹시 놀라워서 그 까닭을 헤아릴 수 없었는데, 이 말이 기수발을 통해서 발단되었으니 말이 나온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신은 이 일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하였고 또한 민인길에게도 말한 적이 없으니, 그 말이 허망하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신하로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급급히 상달하여야 마땅하지, 어찌 말을 민인길에게 전하고는 곧바로 진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민인길의 상소에서 이른바 교산이라 한 것은 바로 신의 별호(別號)입니다. 신은 이미 그 상소 안에 이름이 들어 있기에, 불가불 그 곡절을 진달드려서, 그 말이 근거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오늘 새벽에 민인길이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제 이원형이 와서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은 이재영(李再榮)이 지었는데, 그것을 교산(蛟山)이 듣고서 영공(令公)에게 말하자, 영공이 명가(名家)에 말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을 알고 있는가?」 하기에, 내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촌 조카사위인 유충립(柳忠立)이 와서 말하기를 「이 일을 기수발(奇秀發)이 삼촌인 문창 부원군 유희분의 집에서 말하였으니 형세상 감추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이에 내가 이원형이 먼저 고할까 염려되어 즉시 어제 저녁에 상소를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는 몹시 놀라워서 그 까닭을 헤아릴 수 없었는데, 이 말이 기수발을 통해서 발단되었으니 말이 나온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신은 이 일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하였고 또한 민인길에게도 말한 적이 없으니, 그 말이 허망하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신하로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급급히 상달하여야 마땅하지, 어찌 말을 민인길에게 전하고는 곧바로 진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민인길의 상소에서 이른바 교산이라 한 것은 바로 신의 별호(別號)입니다. 신은 이미 그 상소 안에 이름이 들어 있기에, 불가불 그 곡절을 진달드려서, 그 말이 근거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문창 부원군 유희분이 상소하기를, "어느날 신의 삼촌 조카 유충립이 신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나의 처삼촌 아재비 민인길이 일찍이 허균의 집에 출입하면서 이번의 흉격은 이재영이 지었다고 들었다고 하였다.’ 하기에, 신이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이재영은 죄를 깨끗이 씻어주는 성대(聖代)의 은혜를 외람되이 입어서 과거에 급제해 벼슬까지 하였다. 그러니 성상께서 그에게 무슨 저버린 일이 있어서, 감히 이러한 흉역스런 글을 지어서 임금을 욕하며 역적 모의를 하였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달 27일에 신이 도감의 제조로서 호위하는 곳에서 직숙(直宿)하였는데, 신과 사돈관계가 되는 대장(大將) 성우길(成佑吉)이 신을 찾아왔습니다. 이에 신이 성우길에게 묻기를 ‘일찍이 듣건대 대장은 이재영과 친척관계라고 하는데, 그런가?’ 하자, 성우길이 말하기를 ‘과연 친척관계에 있으며, 또한 서로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전에 들은 말을 가지고 성우길을 설득하며 말하기를 ‘이재영 역시 혈기(血氣)가 있는 사람인데, 그가 어찌 차마 이런 흉역스럽고 부도한 글을 지어서 임금을 욕하기를 이처럼 심하게 하였겠는가. 이 글을 지은 역적을 적발해내지 않을 수 없으니, 영공이 한번 이재영을 불러서 비밀히 물어보면서 그의 기색을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성우길 역시 놀라면서 그러겠다고 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전해 듣건대,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해명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신은 그 사이의 곡절을 잘 알고 있기에 번거롭게 아룀을 피하지 않고 감히 이렇게 다 진달드립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마땅히 의논해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어느날 신의 삼촌 조카 유충립이 신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나의 처삼촌 아재비 민인길이 일찍이 허균의 집에 출입하면서 이번의 흉격은 이재영이 지었다고 들었다고 하였다.’ 하기에, 신이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이재영은 죄를 깨끗이 씻어주는 성대(聖代)의 은혜를 외람되이 입어서 과거에 급제해 벼슬까지 하였다. 그러니 성상께서 그에게 무슨 저버린 일이 있어서, 감히 이러한 흉역스런 글을 지어서 임금을 욕하며 역적 모의를 하였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달 27일에 신이 도감의 제조로서 호위하는 곳에서 직숙(直宿)하였는데, 신과 사돈관계가 되는 대장(大將) 성우길(成佑吉)이 신을 찾아왔습니다. 이에 신이 성우길에게 묻기를 ‘일찍이 듣건대 대장은 이재영과 친척관계라고 하는데, 그런가?’ 하자, 성우길이 말하기를 ‘과연 친척관계에 있으며, 또한 서로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전에 들은 말을 가지고 성우길을 설득하며 말하기를 ‘이재영 역시 혈기(血氣)가 있는 사람인데, 그가 어찌 차마 이런 흉역스럽고 부도한 글을 지어서 임금을 욕하기를 이처럼 심하게 하였겠는가. 이 글을 지은 역적을 적발해내지 않을 수 없으니, 영공이 한번 이재영을 불러서 비밀히 물어보면서 그의 기색을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성우길 역시 놀라면서 그러겠다고 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전해 듣건대,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해명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신은 그 사이의 곡절을 잘 알고 있기에 번거롭게 아룀을 피하지 않고 감히 이렇게 다 진달드립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마땅히 의논해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도감의 군사가 들어가 있을 가가(假家)를 이미 다 조성하였는가? 지금까지 조성하지 못하였다면, 당해 관원을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고, 하루 안에 급급히 독촉해서 조성해 주는 일을, 병조와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하게 하라."
"도감의 군사가 들어가 있을 가가(假家)를 이미 다 조성하였는가? 지금까지 조성하지 못하였다면, 당해 관원을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고, 하루 안에 급급히 독촉해서 조성해 주는 일을, 병조와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도감의 초군(哨軍) 가운데 하번(下番)인 자를 이달부터 예전대로 교대로 교체하며 호위하게 하라."
"도감의 초군(哨軍) 가운데 하번(下番)인 자를 이달부터 예전대로 교대로 교체하며 호위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도감 군사에게 지급하는 요미(料米)를 어찌하여 도감에서 요리해서 전과 같이 나누어주지 않는가? 한결같이 전례에 의거해서 급급히 마련해서 처치하라."
"도감 군사에게 지급하는 요미(料米)를 어찌하여 도감에서 요리해서 전과 같이 나누어주지 않는가? 한결같이 전례에 의거해서 급급히 마련해서 처치하라."

 

전교하였다. "도감 군병에게 주는 요식(料食)을 이미 정해진 수대로 나누어 주었는가?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잡곡으로 나누어주지 말고 쌀로 나누어주는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도감 군병에게 주는 요식(料食)을 이미 정해진 수대로 나누어 주었는가?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잡곡으로 나누어주지 말고 쌀로 나누어주는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전교하였다. "존호를 올리는 것은 크나큰 예이니, 수상(首相)이 참여하여서 존호를 의논하고 전문(箋文)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택일하여 뒤로 물려서 영상이 출사하기를 기다리라."
"존호를 올리는 것은 크나큰 예이니, 수상(首相)이 참여하여서 존호를 의논하고 전문(箋文)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택일하여 뒤로 물려서 영상이 출사하기를 기다리라."

 

전교하였다. "요즈음 대신의 유고로 인해 추국(推鞫)이 오랫동안 정지되었다. 병든 죄인들을 일일이 살펴서 서계하라. 그리고 날씨 역시 추우니 병을 구완하는 등의 일을 색승지가 각별히 신칙해서 하라."
"요즈음 대신의 유고로 인해 추국(推鞫)이 오랫동안 정지되었다. 병든 죄인들을 일일이 살펴서 서계하라. 그리고 날씨 역시 추우니 병을 구완하는 등의 일을 색승지가 각별히 신칙해서 하라."

 

전교하였다. "호위한 날이 오래되어 해이한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직숙하는 당상과 제조가 각별히 살펴서 신칙하라. 그리고 야간에 지키는 군병들 역시 교대로 기찰하도록 해서 졸거나 태만히 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 이상의 일을 병조와 훈련 도감에 말하라."
"호위한 날이 오래되어 해이한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직숙하는 당상과 제조가 각별히 살펴서 신칙하라. 그리고 야간에 지키는 군병들 역시 교대로 기찰하도록 해서 졸거나 태만히 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 이상의 일을 병조와 훈련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경복궁의 성을 쌓은 뒤 군사를 많이 배정해서 십분 엄하게 지키도록 병조에 말하라."
"경복궁의 성을 쌓은 뒤 군사를 많이 배정해서 십분 엄하게 지키도록 병조에 말하라."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계하여 귀천군 수와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홍문관 잇달아 차자를 올려 세 역적에 대해 시원스레 공론을 따르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허욱(許頊) 등은 이미 참작해서 조처하였으니, 억지로 다투지 말라." 하였다.
"허욱(許頊) 등은 이미 참작해서 조처하였으니, 억지로 다투지 말라."
하였다.

 

또 잇달아 차자를 올려서 귀천군 이수와 박홍도에 대해 시원스레 공론을 따르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박홍도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 마땅히 처치할 것이다. 억지로 다투지 말라." 하였다.
"박홍도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 마땅히 처치할 것이다. 억지로 다투지 말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다섯 번째 정사(呈辭)하니, 답하기를, "안심하고 조리하라고 유시하라." 하였다.
"안심하고 조리하라고 유시하라."
하였다.

 

2월 3일 무술

봉상시 주부 이재영이 상소하기를, "신이 갑작스레 무고를 당한 정상에 대해서는 우선 감히 번거롭게 아뢰지 않더라도 저절로 판별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 아주 괴이한 일은, 민인길이 당초에 이 말을 과연 들었다면 의리상 마땅히 급급하게 상변(上變)하기에 겨를이 없었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떠한 일인데 이에 범연히 친한 사람에게 말을 전하면서 마치 한가한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하였다면, 이원형이 물었을 때 대답하면서는 또 어찌하여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하였다고 말을 하며, 상소에서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여, 스스로 임금을 속이는 죄에 빠진단 말입니까. 신이 삼가 생각건대, 신하로서 이러한 막대한 악명(惡名)을 들었다면, 잠시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고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역적을 토벌하는 국가의 법에 있어서 더욱더 잠시도 내버려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히 법부(法府)에 명하여 엄하게 국문해서 조처하도록 하여, 죄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억울하게 당하는 원통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신이 갑작스레 무고를 당한 정상에 대해서는 우선 감히 번거롭게 아뢰지 않더라도 저절로 판별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 아주 괴이한 일은, 민인길이 당초에 이 말을 과연 들었다면 의리상 마땅히 급급하게 상변(上變)하기에 겨를이 없었어야 합니다. 이것이 어떠한 일인데 이에 범연히 친한 사람에게 말을 전하면서 마치 한가한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하였다면, 이원형이 물었을 때 대답하면서는 또 어찌하여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하였다고 말을 하며, 상소에서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여, 스스로 임금을 속이는 죄에 빠진단 말입니까. 신이 삼가 생각건대, 신하로서 이러한 막대한 악명(惡名)을 들었다면, 잠시도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고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역적을 토벌하는 국가의 법에 있어서 더욱더 잠시도 내버려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히 법부(法府)에 명하여 엄하게 국문해서 조처하도록 하여, 죄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억울하게 당하는 원통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신급제(新及第) 기수발(奇秀發)이 상소하기를, "이번에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진달드린 일로 인하여 허균이 신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말하기를 ‘기수발이 문창 부원군 유희분에게 말하였다.’고 하였는데, 유희분이 만약 신에게서 그 말을 들었다면 그의 차자에서 반드시 신의 이름을 거명하여 증거로 삼았을 것으로, 신이 비록 가리우고자 하더라도 가리울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는데 허균이 만들어내었음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은 나이 어린 사람으로서 일찍이 한번도 유희분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허균이 말을 조작하기를 이렇게까지 하였으니,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신이 만약 흉격이 이재영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처럼 임금이 치욕을 당해서 신하가 목숨을 바칠 날을 당하여, 어찌 분주히 달려가 곧장 임금에게 진달하지 않고, 이에 감히 일찍이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재신(宰臣)에게 말을 전하여서, 스스로 말을 전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신이 무고를 당한 사정을 밝은 태양 아래에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이번에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진달드린 일로 인하여 허균이 신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말하기를 ‘기수발이 문창 부원군 유희분에게 말하였다.’고 하였는데, 유희분이 만약 신에게서 그 말을 들었다면 그의 차자에서 반드시 신의 이름을 거명하여 증거로 삼았을 것으로, 신이 비록 가리우고자 하더라도 가리울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는데 허균이 만들어내었음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은 나이 어린 사람으로서 일찍이 한번도 유희분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허균이 말을 조작하기를 이렇게까지 하였으니,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신이 만약 흉격이 이재영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처럼 임금이 치욕을 당해서 신하가 목숨을 바칠 날을 당하여, 어찌 분주히 달려가 곧장 임금에게 진달하지 않고, 이에 감히 일찍이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재신(宰臣)에게 말을 전하여서, 스스로 말을 전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신이 무고를 당한 사정을 밝은 태양 아래에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사복시 정 유충립이 상소하여 비밀히 고하였는데, 소장을 안으로 들였으나 내리지 않고,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하였다.】

 

의정부 검상 이정원(李挺元)이 상소하기를, "삼가 듣건대, 유충립의 상소 안에 ‘이정원이 흉격을 지을 즈음에 마침 그곳에 들어가서 보았다.’고 하였다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들은 이후로 간담이 모두 찢어졌습니다. 흉격이 이 어떠한 글입니까. 그것을 지은 자는 필시 대역부도한 자입니다. 대역부도의 모의를 하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 참여하여 보게 하겠으며, 신이 참으로 어떠한 사람인데 역시 어찌 참가하여 볼 리가 있겠습니까.  유충립이 근거도 없는 망측한 말로 반드시 죽을 곳에다 신을 빠뜨리려고 하는 것은, 그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신이 지난해에 지평으로 있을 때 유충립이 박이서(朴彛叙)에게 달라붙어서 전조(銓曹)를 공격하면서 스스로 거기에 들어갈 계획을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는, 신이 이를 이유로 인피하면서 유충립의 죄상을 힘껏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사간으로 있던 때에는 유충립의 형인 유효립이 처음으로 정언에 제수되어 감히 완석(完席)에서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반대파를 치는 논의를 앞장서서 발론하였는데, 신이 감히 구차스럽게 의견을 같이하지 못하고, 피혐하는 계사 중에 심지어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에 가슴속에 쌓은 것은 상대방을 해치려는 마음뿐이다.’는 등의 말로, 온 힘을 다하여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유충립과 효립이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서 몰래 틈을 엿보면서 반드시 신을 죽이고야 말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음험하고 망극하기는 하지만, 어찌 이처럼 형체도 그림자도 없는 말을 만들어내어 신을 난역(亂逆)의 지경에다 빠뜨릴 줄을 헤아렸겠습니까. 이것은 한갓 신을 해치는 일이 급한 것인 줄만 알고 스스로 무고죄(誣告罪)에 빠지는 것은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만약 스스로 이 말을 지어내지 않았다면 또한 반드시 들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신하로서 어찌 감히 이러한 이름을 얻고서도 구차히 살아가겠습니까. 그 역시 신하이니, 어찌 감히 이런 말을 지어내어 임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미 허균과 서로 상종하지 않아서 한번도 그의 집에 가보지 않았으니, 어떻게 글을 지을 때 볼 수가 있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을 의금부에 내려서 유충립과 더불어 따져보게 하소서. 그러면 죄가 있는 자가 죽게 될 것입니다. 신은 절박하고도 통분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고 답하였다.
"삼가 듣건대, 유충립의 상소 안에 ‘이정원이 흉격을 지을 즈음에 마침 그곳에 들어가서 보았다.’고 하였다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들은 이후로 간담이 모두 찢어졌습니다. 흉격이 이 어떠한 글입니까. 그것을 지은 자는 필시 대역부도한 자입니다. 대역부도의 모의를 하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 참여하여 보게 하겠으며, 신이 참으로 어떠한 사람인데 역시 어찌 참가하여 볼 리가 있겠습니까.
유충립이 근거도 없는 망측한 말로 반드시 죽을 곳에다 신을 빠뜨리려고 하는 것은, 그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신이 지난해에 지평으로 있을 때 유충립이 박이서(朴彛叙)에게 달라붙어서 전조(銓曹)를 공격하면서 스스로 거기에 들어갈 계획을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는, 신이 이를 이유로 인피하면서 유충립의 죄상을 힘껏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사간으로 있던 때에는 유충립의 형인 유효립이 처음으로 정언에 제수되어 감히 완석(完席)에서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반대파를 치는 논의를 앞장서서 발론하였는데, 신이 감히 구차스럽게 의견을 같이하지 못하고, 피혐하는 계사 중에 심지어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에 가슴속에 쌓은 것은 상대방을 해치려는 마음뿐이다.’는 등의 말로, 온 힘을 다하여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유충립과 효립이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서 몰래 틈을 엿보면서 반드시 신을 죽이고야 말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음험하고 망극하기는 하지만, 어찌 이처럼 형체도 그림자도 없는 말을 만들어내어 신을 난역(亂逆)의 지경에다 빠뜨릴 줄을 헤아렸겠습니까. 이것은 한갓 신을 해치는 일이 급한 것인 줄만 알고 스스로 무고죄(誣告罪)에 빠지는 것은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만약 스스로 이 말을 지어내지 않았다면 또한 반드시 들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신하로서 어찌 감히 이러한 이름을 얻고서도 구차히 살아가겠습니까. 그 역시 신하이니, 어찌 감히 이런 말을 지어내어 임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미 허균과 서로 상종하지 않아서 한번도 그의 집에 가보지 않았으니, 어떻게 글을 지을 때 볼 수가 있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을 의금부에 내려서 유충립과 더불어 따져보게 하소서. 그러면 죄가 있는 자가 죽게 될 것입니다. 신은 절박하고도 통분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고 답하였다.

 

활인서 별제(活人署別提) 이사성(李士星)이 상소하기를, "신이 삼가 듣건대 유충립과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서로 고발하여 끌어들이는 즈음에 신의 이름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들으면서 놀랍고 괴이함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민인길은 장인의 먼 친족으로 가끔씩 처가에 왕래하였으나, 신은 본디 서로 절친하지 않아 하찮은 일도 일찍이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같이 살고 있는 장인의 있지도 않은 일을 어찌 친하지도 않은 무부(武夫)에게 언급할 리가 있겠습니까. 민인길이 그 말을 신에게서 들었다면 마땅히 급급히 상변(上變)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것인데 어찌 한만한 낭설처럼 유충립에게 전하였겠으며, 또 유충립이 만약 이 말을 들었다면 역시 마땅히 상변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것인데 단지 그 일가 사람에게 말해서 여러 사람에게 전달만 하고 말았겠습니까.  민인길의 상소 안에서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다.’고 상달한 다음에 미쳐서는, 유충립은 이에 감히 민인길의 상소 안에 없었던 말로서 상대편을 모함하고자 이처럼 날조하였으니, 역시 참혹하지 않습니까. 민인길이 실로 이 말을 들었다면 지난번에 올린 상소에서 어찌 거론하지 않았겠습니까. 수상이 신의 장인을 죽이고자 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피해 내려갈 때 신의 장인을 몰래 지적하고자 해서 신이 항상 통분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 말이 또 신의 몸에 미칠 줄을 헤아렸겠습니까. 신은 갑자기 악언(惡言)을 받았으므로 상세히 곡절을 진달하여서 근거가 없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살펴주소서." 하였다.【 【이사성(李士星)은 허균이 흉격을 지은 자취를 알고서 슬쩍 민인길에게 드러내어 말하면서 ‘장인이 이 불측한 말을 들었으니, 조만간에 이 집이 파가 저택(破家瀦澤)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 들은 바의 곡절을 말하였는데, 이정원(李挺元)과 이재영(李再榮)이 동참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민인길이 유충립의 아내에게 말하여 그 말이 새어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상소를 올림에 미쳐서는 민인길이 도리어 숨기고 말하지 않자, 유충립이 드디어 상소하여 말하였다. 왕은 허균이 폐론(廢論)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모의를 한 것을 알고, 드디어 이 일을 폐기하고 그 상소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림이 이로 인하여 보전될 수 있었다.】 】
"신이 삼가 듣건대 유충립과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서로 고발하여 끌어들이는 즈음에 신의 이름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들으면서 놀랍고 괴이함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민인길은 장인의 먼 친족으로 가끔씩 처가에 왕래하였으나, 신은 본디 서로 절친하지 않아 하찮은 일도 일찍이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같이 살고 있는 장인의 있지도 않은 일을 어찌 친하지도 않은 무부(武夫)에게 언급할 리가 있겠습니까. 민인길이 그 말을 신에게서 들었다면 마땅히 급급히 상변(上變)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것인데 어찌 한만한 낭설처럼 유충립에게 전하였겠으며, 또 유충립이 만약 이 말을 들었다면 역시 마땅히 상변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것인데 단지 그 일가 사람에게 말해서 여러 사람에게 전달만 하고 말았겠습니까.
민인길의 상소 안에서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다.’고 상달한 다음에 미쳐서는, 유충립은 이에 감히 민인길의 상소 안에 없었던 말로서 상대편을 모함하고자 이처럼 날조하였으니, 역시 참혹하지 않습니까. 민인길이 실로 이 말을 들었다면 지난번에 올린 상소에서 어찌 거론하지 않았겠습니까. 수상이 신의 장인을 죽이고자 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피해 내려갈 때 신의 장인을 몰래 지적하고자 해서 신이 항상 통분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 말이 또 신의 몸에 미칠 줄을 헤아렸겠습니까. 신은 갑자기 악언(惡言)을 받았으므로 상세히 곡절을 진달하여서 근거가 없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살펴주소서."
하였다.【 【이사성(李士星)은 허균이 흉격을 지은 자취를 알고서 슬쩍 민인길에게 드러내어 말하면서 ‘장인이 이 불측한 말을 들었으니, 조만간에 이 집이 파가 저택(破家瀦澤)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 들은 바의 곡절을 말하였는데, 이정원(李挺元)과 이재영(李再榮)이 동참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민인길이 유충립의 아내에게 말하여 그 말이 새어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상소를 올림에 미쳐서는 민인길이 도리어 숨기고 말하지 않자, 유충립이 드디어 상소하여 말하였다. 왕은 허균이 폐론(廢論)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모의를 한 것을 알고, 드디어 이 일을 폐기하고 그 상소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림이 이로 인하여 보전될 수 있었다.】 】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마땅히 처리할 것이다. 지나치게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마땅히 처리할 것이다. 지나치게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역적을 정형(正刑)에 처한 뒤에 파가 저택(破家瀦澤)함에 있어서, 본조는 단지 재목과 기와 및 재산을 적몰한 숫자를 파악하는 것만 관할하고 있습니다. 유영경(柳永慶)·김대래(金大來)·오윤남(吳允男)·서응상(徐應祥)·서순창(徐順昌) 등의 집은 의금부를 옛터에 새로 지을 때 이미 내려주어서 썼고, 최기(崔沂)·유성(柳惺) 등의 집은 사헌부 구기조성소(司憲府舊基造成所)에 제급하였으며, 기타 자질구레한 초가집 등의 재목은 공해(公廨)에서 가가(假家)를 짓는 곳에 이미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김제남(金悌男)의 집은 그의 아내가 들어가 살고 있어서 별장(別將)을 정해 수직하고 있으므로 아직 철거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역적의 집은 전부터 공신(功臣)들에게 내려주었는데 근래에 마음대로 철거하여서 임의대로 쓰니 몹시 불가하다. 지금 이후로는 일일이 아뢰라. 그리고 이미 철거한 집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역적을 정형(正刑)에 처한 뒤에 파가 저택(破家瀦澤)함에 있어서, 본조는 단지 재목과 기와 및 재산을 적몰한 숫자를 파악하는 것만 관할하고 있습니다. 유영경(柳永慶)·김대래(金大來)·오윤남(吳允男)·서응상(徐應祥)·서순창(徐順昌) 등의 집은 의금부를 옛터에 새로 지을 때 이미 내려주어서 썼고, 최기(崔沂)·유성(柳惺) 등의 집은 사헌부 구기조성소(司憲府舊基造成所)에 제급하였으며, 기타 자질구레한 초가집 등의 재목은 공해(公廨)에서 가가(假家)를 짓는 곳에 이미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김제남(金悌男)의 집은 그의 아내가 들어가 살고 있어서 별장(別將)을 정해 수직하고 있으므로 아직 철거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역적의 집은 전부터 공신(功臣)들에게 내려주었는데 근래에 마음대로 철거하여서 임의대로 쓰니 몹시 불가하다. 지금 이후로는 일일이 아뢰라. 그리고 이미 철거한 집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조관(朝官)들이 여염집을 빼앗아 점유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아주 심하다. 해사(該司)로 하여금 엄하게 금지시킬 것으로 앞뒤로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폐습이 이미 고질화되었으니 몹시 한심스럽다. 초관(哨官) 김충일(金忠一)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달 1일에 내인(內人)들이 병들었을 때 나가 있는 집을 빼앗아 차지하고는 들어가서 그 내인의 골육과 노비들을 모두 가두었다고 하니, 듣기에 몹시 놀랍다. 이것은 참으로 전고에 없던 일이다. 김충일은 각별히 추고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비단 내인들의 집뿐만 아니라 힘없는 백성들의 집도 절대로 빼앗지 말도록 하는 일을, 한성부로 하여금 거듭 밝혀서 알려 이 폐단을 통렬히 금하게 하라."
"조관(朝官)들이 여염집을 빼앗아 점유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아주 심하다. 해사(該司)로 하여금 엄하게 금지시킬 것으로 앞뒤로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폐습이 이미 고질화되었으니 몹시 한심스럽다. 초관(哨官) 김충일(金忠一)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달 1일에 내인(內人)들이 병들었을 때 나가 있는 집을 빼앗아 차지하고는 들어가서 그 내인의 골육과 노비들을 모두 가두었다고 하니, 듣기에 몹시 놀랍다. 이것은 참으로 전고에 없던 일이다. 김충일은 각별히 추고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비단 내인들의 집뿐만 아니라 힘없는 백성들의 집도 절대로 빼앗지 말도록 하는 일을, 한성부로 하여금 거듭 밝혀서 알려 이 폐단을 통렬히 금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근래에 외방의 신하들이 향상(享上)하는 예가 날이 갈수록 점차 해이해지고 있다. 경상 감사가 해마다 잡아보내는 호피(虎皮) 두 장을 아무 까닭없이 봉진하지 않고 있으니, 추고하고, 그로 하여금 전례대로 봉진하게 하라. 그리고 경상 좌우 병사와 황연 병사(黃延兵使)도 다른 도의 규례에 의거해서 아울러 봉진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로 하여금 상세하게 행회(行會)하게 하라."
"근래에 외방의 신하들이 향상(享上)하는 예가 날이 갈수록 점차 해이해지고 있다. 경상 감사가 해마다 잡아보내는 호피(虎皮) 두 장을 아무 까닭없이 봉진하지 않고 있으니, 추고하고, 그로 하여금 전례대로 봉진하게 하라. 그리고 경상 좌우 병사와 황연 병사(黃延兵使)도 다른 도의 규례에 의거해서 아울러 봉진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로 하여금 상세하게 행회(行會)하게 하라."

 

2월 4일 기해

전교하였다. "귀천군 이수를 원찬하는 일은 일찍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을 내렸는데, 지레 먼저 승전을 받들었으니, 그 까닭을 모르겠다. 우선 다시 전교하기를 기다린 뒤에 받들어라."
"귀천군 이수를 원찬하는 일은 일찍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을 내렸는데, 지레 먼저 승전을 받들었으니, 그 까닭을 모르겠다. 우선 다시 전교하기를 기다린 뒤에 받들어라."

 

좌승지 임취정(任就正)이 아뢰기를, "국가에서 역적을 토벌하는 것을 급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종묘 사직을 위해서입니다.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역적에 대해서는 고묘(告廟)하고 진하(陳賀)하는 것을 어찌 잠시인들 늦출 수 있겠습니까. 해서(海西)의 역적을 정형(正刑)에 처한 뒤 고묘하고 진하하는 예를 지금까지 지내지 않아 사람들이 울적해 하고 있으니, 사체에 있어서 아주 온당치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신(大臣)이 올라오지 않고 출사하지 않은 탓으로 또 뒤로 날짜를 물리었습니다. 대신이 오는 것과 출사하는 것이 언제 그렇게 할지 모르겠으니 역적을 토벌한 것을 고묘하는 예 역시 언제나 거행할지 모르겠습니다. 바라건대 그대로 이달 6일에 행하여서 신인(神人)의 바람에 답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모든 조정의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구차하고 간략하게 하는 폐단이 많다. 더구나 진하(陳賀)하는 것이 이 얼마만큼 큰 예인가. 그런데 대신들이 한 사람도 조정에 없으니, 강행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아무런 까닭없이 날짜를 뒤로 물리는 것이 아니다. 일의 형세가 이와 같고 일의 체모 역시 중하니, 우선은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려서 거행하는 것이 옳다. 전의 전교대로 뒤로 물려서 거행하라." 하였다.
"국가에서 역적을 토벌하는 것을 급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종묘 사직을 위해서입니다.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역적에 대해서는 고묘(告廟)하고 진하(陳賀)하는 것을 어찌 잠시인들 늦출 수 있겠습니까. 해서(海西)의 역적을 정형(正刑)에 처한 뒤 고묘하고 진하하는 예를 지금까지 지내지 않아 사람들이 울적해 하고 있으니, 사체에 있어서 아주 온당치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신(大臣)이 올라오지 않고 출사하지 않은 탓으로 또 뒤로 날짜를 물리었습니다. 대신이 오는 것과 출사하는 것이 언제 그렇게 할지 모르겠으니 역적을 토벌한 것을 고묘하는 예 역시 언제나 거행할지 모르겠습니다. 바라건대 그대로 이달 6일에 행하여서 신인(神人)의 바람에 답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모든 조정의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구차하고 간략하게 하는 폐단이 많다. 더구나 진하(陳賀)하는 것이 이 얼마만큼 큰 예인가. 그런데 대신들이 한 사람도 조정에 없으니, 강행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아무런 까닭없이 날짜를 뒤로 물리는 것이 아니다. 일의 형세가 이와 같고 일의 체모 역시 중하니, 우선은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려서 거행하는 것이 옳다. 전의 전교대로 뒤로 물려서 거행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합계하여 연계해서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우선은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우선은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이번 이 흉격의 변고에 있어서 신하들치고 그 누가 죄인을 잡아서 살점을 씹어먹고 가죽을 베고 자고 싶지 않겠습니까. 민인길(閔仁佶)이 비밀리에 고변한 뒤로 서로 잇달아 상소를 바쳐 서로 다투면서 따지는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떠한 일인데 상께서 시일을 끌면서 역시 처치하지 않고 계십니까. 인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 뭐가 뭔지 몰라 하고 있습니다. 역적을 국문하는 체모는 아마도 이와 같아서는 안될 듯합니다. 바라건대 속히 추국하여 사실을 조사해내어 처단하소서." 하니, 의논하여 처치하겠다고 답하였다.
"이번 이 흉격의 변고에 있어서 신하들치고 그 누가 죄인을 잡아서 살점을 씹어먹고 가죽을 베고 자고 싶지 않겠습니까. 민인길(閔仁佶)이 비밀리에 고변한 뒤로 서로 잇달아 상소를 바쳐 서로 다투면서 따지는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떠한 일인데 상께서 시일을 끌면서 역시 처치하지 않고 계십니까. 인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 뭐가 뭔지 몰라 하고 있습니다. 역적을 국문하는 체모는 아마도 이와 같아서는 안될 듯합니다. 바라건대 속히 추국하여 사실을 조사해내어 처단하소서."
하니, 의논하여 처치하겠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요즈음 들어 수령과 변장들이 탐욕스러워 폐단을 일으킴이 팔도가 모두 마찬가지이니, 그 사이에 비록 공정하고 청렴하게 봉직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흐린 웅덩이에 맑은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바, 도움되는 바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백성들의 삶이 초췌하고 변방의 방비가 허술한 것은 실로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간의 논계가 도리어 사핵(査覈)하는 데서 가로막히고 방백(方伯)의 출척(黜陟)이 으레 사정(私情)을 따르는 데서 나오고 있으며, 암행 어사를 보내어 염탐해 보라는 명령을 오래도록 폐하고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임금이 계신 곳이 천리나 멀어서 아랫사람들의 사정이 전달되지 않고 있으며, 수령들의 현부(賢否)와 백성들의 휴척(休戚)이 전달될 길이 없어, 폐단이 이미 고질화되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역적이 잇달아 일어나 해를 넘겨 체포하느라고 역졸들이 이미 몹시 잔폐되었고 평민들 역시 몹시도 곤궁해졌습니다. 역적질을 하였으나 사형을 감면받은 여러 역적들 및 연루된 역적의 무리들을 사방에 정배(定配)하여 먼 변방에 가득 차있으니 이들이 밤낮없이 원망하고 있는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의외의 변고가 있을 것 역시 몹시 염려됩니다. 그런데도 삼가 성상께서는 혹 이점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못하신 듯합니다. 백성들의 고질적인 폐단에 대해 두루 묻고 군대를 점열(點閱)하며, 수령들의 현부에 대해 안찰하고 유배한 자의 존망(存亡)에 대해 점검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로, 조금도 늦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간이나 시종 중에서 감당할 만한 자를 잘 가려 뽑아서 순무사(巡撫使)라고 칭하고 팔도에 나누어 보내어 감사와 변장들의 불법 사실을 겸하여 살피게 하소서.  안주(安州)는 서방의 큰 고을인데다 방어사(防禦使)를 겸하여 한 도를 호령하니,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새로 제수된 목사 이문빈(李文賓)은 본디 서얼이며, 또 미출신(未出身)이어서, 본직을 제수받음에 미쳐서는 물정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시고 그 대임자는 각별히 가려 뽑아 보내소서." 하니, 답하기를, "어사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이문빈에 대한 일은 비국(備局)에서 의논하여 추천하였으니, 한번 보내보는 것도 괜찮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요즈음 들어 수령과 변장들이 탐욕스러워 폐단을 일으킴이 팔도가 모두 마찬가지이니, 그 사이에 비록 공정하고 청렴하게 봉직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흐린 웅덩이에 맑은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바, 도움되는 바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백성들의 삶이 초췌하고 변방의 방비가 허술한 것은 실로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간의 논계가 도리어 사핵(査覈)하는 데서 가로막히고 방백(方伯)의 출척(黜陟)이 으레 사정(私情)을 따르는 데서 나오고 있으며, 암행 어사를 보내어 염탐해 보라는 명령을 오래도록 폐하고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임금이 계신 곳이 천리나 멀어서 아랫사람들의 사정이 전달되지 않고 있으며, 수령들의 현부(賢否)와 백성들의 휴척(休戚)이 전달될 길이 없어, 폐단이 이미 고질화되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역적이 잇달아 일어나 해를 넘겨 체포하느라고 역졸들이 이미 몹시 잔폐되었고 평민들 역시 몹시도 곤궁해졌습니다.
역적질을 하였으나 사형을 감면받은 여러 역적들 및 연루된 역적의 무리들을 사방에 정배(定配)하여 먼 변방에 가득 차있으니 이들이 밤낮없이 원망하고 있는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의외의 변고가 있을 것 역시 몹시 염려됩니다. 그런데도 삼가 성상께서는 혹 이점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못하신 듯합니다.
백성들의 고질적인 폐단에 대해 두루 묻고 군대를 점열(點閱)하며, 수령들의 현부에 대해 안찰하고 유배한 자의 존망(存亡)에 대해 점검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로, 조금도 늦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간이나 시종 중에서 감당할 만한 자를 잘 가려 뽑아서 순무사(巡撫使)라고 칭하고 팔도에 나누어 보내어 감사와 변장들의 불법 사실을 겸하여 살피게 하소서.
안주(安州)는 서방의 큰 고을인데다 방어사(防禦使)를 겸하여 한 도를 호령하니,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새로 제수된 목사 이문빈(李文賓)은 본디 서얼이며, 또 미출신(未出身)이어서, 본직을 제수받음에 미쳐서는 물정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시고 그 대임자는 각별히 가려 뽑아 보내소서."
하니, 답하기를,
"어사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이문빈에 대한 일은 비국(備局)에서 의논하여 추천하였으니, 한번 보내보는 것도 괜찮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 전라 감사 이덕형(李德泂), 전 고부 군수(古阜郡守) 이승형(李升亨)이 호랑이를 잡은 것에 대해 조사하는 일로 새 감사 박자흥(朴自興)의 장계를 가져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부안(扶安)의 교생(校生) 최처중(崔處中)이 부안 땅에서 쏘아 죽였는데, 마침 본현의 수령이 공석중이어서 호피(虎皮)를 처치하기가 곤란하였습니다. 그래서 겸관(兼官)에게 알리자, 이승형이 감히 상을 타려는 교묘한 계책을 세워 극도로 과장해서 마치 큰 공을 세운 것처럼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방백을 속이고 조정을 모욕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속히 가자하라고 한 명을 도로 거두고 사판(仕版)에서 삭제하소서.  이덕형 역시 직급이 높은 외방의 신하로서 이승형의 보고를 그대로 믿고 과장해서 장계하였으니, 개정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본도에서 이미 조사해 보고하여 상을 베풀었으니 별로 부당한 점이 없다.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전 전라 감사 이덕형(李德泂), 전 고부 군수(古阜郡守) 이승형(李升亨)이 호랑이를 잡은 것에 대해 조사하는 일로 새 감사 박자흥(朴自興)의 장계를 가져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부안(扶安)의 교생(校生) 최처중(崔處中)이 부안 땅에서 쏘아 죽였는데, 마침 본현의 수령이 공석중이어서 호피(虎皮)를 처치하기가 곤란하였습니다. 그래서 겸관(兼官)에게 알리자, 이승형이 감히 상을 타려는 교묘한 계책을 세워 극도로 과장해서 마치 큰 공을 세운 것처럼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방백을 속이고 조정을 모욕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속히 가자하라고 한 명을 도로 거두고 사판(仕版)에서 삭제하소서.
이덕형 역시 직급이 높은 외방의 신하로서 이승형의 보고를 그대로 믿고 과장해서 장계하였으니, 개정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본도에서 이미 조사해 보고하여 상을 베풀었으니 별로 부당한 점이 없다.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우부승지 윤인(尹訪)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비망기를 보니 ‘내인이 병들었을 때 나가 있는 집을 사람들을 몰아내고 빼앗아 차지하였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신이 집을 빌린 일을 두고 한 전교로, 신이 한번 그 곡절에 대해 진달드려 보겠습니다. 신은 본디 집이 없어서 세들어 살면서 벼슬살이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신이 선공감(繕工監) 근처에 사는 오금금(吳今金)에게 집이 두 채가 있다고 듣고는, 사람을 보내어 그것을 빌리자, 오금금이 허락하였습니다. 이에 신의 가속이 그 집에다가 잡물(雜物)을 보내었고 신은 정원에 입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의 늙은 여종이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내인이 오금금의 집에 와 있다.’고 하여서 신이 비로소 오금금이 내인과 연관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이에 크게 놀라서 즉시 늙은 여종을 보내어 잡물을 도로 실어올 즈음에, 오금금의 일가 사람이 신의 늙은 여종을 쫓아내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또 따라서 신을 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는 몹시 괴이하게 여겨 오금금을 불러 책하기를 ‘너는 당초에 어찌하여 내인이 나온다는 기별을 말하지 않고 허락하였는가. 그리고 이미 허락해 놓고는 도리어 욕을 하다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하고는, 차지(次知)를 잡아가두었는데, 대개 사대부를 능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신이 비록 형편없기는 하지만 조금은 사리를 알고 있는데, 어찌 내인을 쫓아내고 그 집을 빼앗아 들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전부터 내인의 집은 절대 침탈하는 일이 없었다. 대죄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며, 다시는 침탈하지 말라." 하였다.
"신이 삼가 비망기를 보니 ‘내인이 병들었을 때 나가 있는 집을 사람들을 몰아내고 빼앗아 차지하였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신이 집을 빌린 일을 두고 한 전교로, 신이 한번 그 곡절에 대해 진달드려 보겠습니다.
신은 본디 집이 없어서 세들어 살면서 벼슬살이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신이 선공감(繕工監) 근처에 사는 오금금(吳今金)에게 집이 두 채가 있다고 듣고는, 사람을 보내어 그것을 빌리자, 오금금이 허락하였습니다. 이에 신의 가속이 그 집에다가 잡물(雜物)을 보내었고 신은 정원에 입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의 늙은 여종이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내인이 오금금의 집에 와 있다.’고 하여서 신이 비로소 오금금이 내인과 연관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이에 크게 놀라서 즉시 늙은 여종을 보내어 잡물을 도로 실어올 즈음에, 오금금의 일가 사람이 신의 늙은 여종을 쫓아내면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또 따라서 신을 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는 몹시 괴이하게 여겨 오금금을 불러 책하기를 ‘너는 당초에 어찌하여 내인이 나온다는 기별을 말하지 않고 허락하였는가. 그리고 이미 허락해 놓고는 도리어 욕을 하다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하고는, 차지(次知)를 잡아가두었는데, 대개 사대부를 능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신이 비록 형편없기는 하지만 조금은 사리를 알고 있는데, 어찌 내인을 쫓아내고 그 집을 빼앗아 들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전부터 내인의 집은 절대 침탈하는 일이 없었다. 대죄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며, 다시는 침탈하지 말라."
하였다.

 

2월 5일 경자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연계하여 이문빈(李文賓)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계하여 연계해서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또 아뢰기를, "흉격이 이 어떠한 변고입니까. 신민들이 죄인을 잡는 것을 하루가 급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민인길 등이 이미 고변하였으니, 증인으로 들어간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죄인인 것입니다. 죄인이 된 자가 어떻게 국문하기도 전에 분분하게 상소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 정원에서는 사체가 중함을 돌아보지 않아서, 이미 고변한 민인길을 잡아가두라고 청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끌어대면서 자신에 대해 변명한 비밀소(秘密疏)를 받아들여 속속 입계하여, 여러 사람들이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하였으며, 옥사가 늦춰지게 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당해 승지를 파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민인길 등을 처치하기 전에 승지가 비밀소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안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흉격이 이 어떠한 변고입니까. 신민들이 죄인을 잡는 것을 하루가 급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민인길 등이 이미 고변하였으니, 증인으로 들어간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죄인인 것입니다. 죄인이 된 자가 어떻게 국문하기도 전에 분분하게 상소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 정원에서는 사체가 중함을 돌아보지 않아서, 이미 고변한 민인길을 잡아가두라고 청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끌어대면서 자신에 대해 변명한 비밀소(秘密疏)를 받아들여 속속 입계하여, 여러 사람들이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하였으며, 옥사가 늦춰지게 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당해 승지를 파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민인길 등을 처치하기 전에 승지가 비밀소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안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하여 이승형(李升亨)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李德泂)을 개정하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국가에 일이 많은데 영상과 좌상은 외방에 나가 있고 우상은 출사하지 않고 있으니, 나라 일이 몹시 한심스럽다. 우상에게 다시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해서 그로 하여금 속히 출사하게 하라."
"국가에 일이 많은데 영상과 좌상은 외방에 나가 있고 우상은 출사하지 않고 있으니, 나라 일이 몹시 한심스럽다. 우상에게 다시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해서 그로 하여금 속히 출사하게 하라."

 

합사하여 재계(再啓)해서 속히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 일에 대해 어찌 재계하기까지 하는가.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이 일에 대해 어찌 재계하기까지 하는가.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강원 감사 박정현(朴鼎賢)이 장계하였다. "홍천(洪川)에 사는 전 목사 이방좌(李邦佐)의 첩 운지(雲之)를 옥에 가두어 두었는데, 정월달이 다 지나갔는데도 아직 아이를 낳을 기약이 없고,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서 병이 위중해졌습니다. 이에 앞에다 잡아다놓고 부비(府婢)를 시켜서 상세히 살펴보게 하니, 별로 임신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뱃속에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 것은 너무도 요망하니,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다시 열흘이나 보름 정도 기다렸다가 율에 의거하여 처단하소서."
"홍천(洪川)에 사는 전 목사 이방좌(李邦佐)의 첩 운지(雲之)를 옥에 가두어 두었는데, 정월달이 다 지나갔는데도 아직 아이를 낳을 기약이 없고,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서 병이 위중해졌습니다. 이에 앞에다 잡아다놓고 부비(府婢)를 시켜서 상세히 살펴보게 하니, 별로 임신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뱃속에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 것은 너무도 요망하니,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다시 열흘이나 보름 정도 기다렸다가 율에 의거하여 처단하소서."

 

2월 6일 신축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다시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하여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을 개정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난을 겪은 지 30년이 다 되어 대소의 각 아문이 옛터에다 거의 다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본 아문은 다른 각사(各司)와는 비할 바가 아닌데도 국가에 일이 많고 대론(大論)이 계속해서 나온데다 동료들이 수시로 바뀜으로 인해서 여염집에 임시로 설치해 두었으니 몹시도 구차스럽습니다. 다행히 지금 재목과 기와가 조금 모였으며, 또 해도 점점 길어져서 공사를 일으켜 조성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그런데 공사 비용을 마련해 낼 길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해조로 하여금 사간원의 전례에 의거해서 적당히 헤아려 제급하게 해서 공사를 마칠 수 있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난을 겪은 지 30년이 다 되어 대소의 각 아문이 옛터에다 거의 다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본 아문은 다른 각사(各司)와는 비할 바가 아닌데도 국가에 일이 많고 대론(大論)이 계속해서 나온데다 동료들이 수시로 바뀜으로 인해서 여염집에 임시로 설치해 두었으니 몹시도 구차스럽습니다. 다행히 지금 재목과 기와가 조금 모였으며, 또 해도 점점 길어져서 공사를 일으켜 조성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그런데 공사 비용을 마련해 낼 길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해조로 하여금 사간원의 전례에 의거해서 적당히 헤아려 제급하게 해서 공사를 마칠 수 있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미시(未時)에 태백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2월 7일 임인

영의정 기자헌이 강릉(江陵)에 있으면서 상차하기를, "신이 지난번에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아보니 ‘어려움에 임하여 도피하였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이에 황공스럽고 몸이 떨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여러 날 동안 생각해 봄에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흉서 가운데에 ‘강제한다.’고 하였으며, 또 ‘대신에게 밀부를 내어준다.’고 하였으니, 비록 은하수를 끌어대어 씻는다 하더라도 그 죄를 씻을 길이 없으며, 목숨을 끊더라도 치욕을 씻을 길이 없어서 산골짜기에서 원통해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먼 시골로 내려와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으면서 감히 다시 사람들 사이에 끼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왕조에서 어떤 간사한 자가 신이 장차 동궁을 모함한 사람들을 멀리 내쫓을 것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는 동궁을 모함한 사람이라고 하며 의기양양하게 나대며 장차 큰 옥사를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만약 큰 옥사가 일어났다면 장차 전하를 어느 곳에다 놓아두려고 하였겠습니까. 다행히 선왕의 밝으심에 힘입어 신이 형벌을 면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간사한 자가 신을 두려워하여 신에게 애걸하는 편지를 보내었는데, 거기에 ‘저를 살려준 은혜는 저를 낳아준 것과 같습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신을 그의 아비와 같이 본 것입니다. 만약에 또다시 신을 해치려고 한다면 이것은 아비를 죽이는 역적인 것입니다. 지금 그 편지 및 다른 편지가 모두 신의 집에 있습니다. 무신년에 신과 아주 친한 사람이, 신이 정인홍(鄭仁弘)과 통하였다고 진소해서 장차 잡아다 국문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일찍이 정인홍과 통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준구(成俊耉)가 무인(武人) 강원(康遠)을 시켜서 말을 전하기를 ‘선수공사(繕修公事)로 두루 돌아다니다가 마침 이유홍(李惟弘)의 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김대래(金大來)가 와서 「반드시 기자헌을 잡아다 국문할 것이다.」고 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비로소 이런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또 근근이 그 화를 면하였습니다. 강원은 바로 여우길(呂佑吉)의 이성 사촌(異姓四寸)입니다. 지금 이 간사한 자가 신이 장차 강제당할 것이라고 하고, 또 장차 밀부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다행히 성상께서 위에 계심에 힘입어 죽음을 면해 해골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성은이 망극하여 천지와 같이 큽니다. 신이 아무리 형편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어찌 다른 사람에게 코가 꿰어 그의 지시에 따르는 자이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근거없는 말을 날조하니, 이것은 바로 신의 입을 다물게 하고자 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는 이미 진달드렸는데, 성상을 끌어들여서 속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국사에 진력하여 나라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기를 도모해서입니다. 성상의 분부가 지극히 엄하니, 어찌 당장에 달려가서 태만히 한 죄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흉서에 쓰여진 말을 나라 사람들이 필시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니, 신이 비록 성상의 은혜를 탐내어 도로 대궐문 안으로 들어가 얼굴을 들고 직무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나라 사람들이 장차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이 사람은 이와 같은 말을 듣고서도 물러갈 줄 모르고 스스로 대신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그의 형편없음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또한 조정을 가볍게 여기고 당대 선비들에게 수치를 끼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이 단지 성상만을 우러러보며 혼백이 다 달아나서 스스로 적막하고 한가한 곳으로 물러나와,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것입니다. 계축년에 원임 대신(原任大臣)으로 있을 때 의주 부윤(義州府尹)에 대한 일로 대간이 그르다고 하였는데도, 오히려 몸을 편안히 하고자 물러감을 면치 못하였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지금 무고당한 말이 이 어떠한 죄명(罪名)인데, 태연스레 마음을 동요치 않으면서 마치 그 말이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라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수상의 자리에 있어서 다른 일반 재상들과는 경우가 다를 듯한데, 이와 같은 흉악한 말이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그대로 무릅쓰고 있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놀란 새처럼 쾌히 물러가서 차라리 먼 변방에서 말라 죽을지언정, 감히 대신으로 자처할 수 없는 것은, 이치와 형세가 참으로 그러한 것입니다. 선왕조 무신년부터 지금까지 불측한 죄에 빠질 뻔한 것이 무릇 세 번이나 됩니다. 그러니 두 성상의 신성스러움이 아니었다면 신이 어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외롭고 외로운 몸으로서 오래도록 간사한 자가 죽이고자 노리는 가운데 들어가 있으니, 또한 괴롭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의자가 부러져 낙상(落傷)하였을 때에도 어떤 간사한 자가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모함하고자 하였습니다. 신은 낙상하여 병을 얻는 것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리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필시 이렇게 떠나온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이빨을 갈고 혀를 날름거리며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니, 신은 또 무슨 귀신 도깨비 같은 말들을 만들어 낼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부경(赴京)하여 서신을 보내어 시골로 내려가기를 권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것으로 죄목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의 말을 듣고서 내려올 리가 있겠습니까. 그의 계략이 교묘한 듯하나, 실은 어리석고 망령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내려왔다면 비록 이렇게 말을 해서 죄를 주어도 되겠지만, 낙상하여 병을 얻은 것과 죄명(罪名)을 지고서 내려온 경우에도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렸다는 것으로 죄를 준다면, 간사한 자는 비록 기뻐서 웃겠지만 곁에서 보는 자가 어찌 괴이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이번 해에는 비단 신의 성(姓)을 곧장 지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반드시 밀부를 내줄 것이라고 말을 하였으니, 그 말은 배척한 것에 그칠 뿐만이 아닙니다. 신을 향해 하는 말이 갈수록 더더욱 독살스러워지니, 비록 고인(古人)이라 하더라도 어찌 사갈(蛇蝎) 같은 자와 서로 다투면서 구차스럽게 모면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무신년에도 여러 차례 사직하였으나 체직의 명을 받지 못하여서 끝내 중론(重論)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체직해야 되는데 체직하지 않는 것 역시 신하를 보호해 주는 도리가 아닙니다. 신이 재주와 덕이 없어서 단지 일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신하임을 성상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알아보는 방도에는 요체가 있는 법입니다. 안진경(顔眞卿)은 안록산(安菉山)의 난에 거의 죽을 뻔하였었는데 끝내는 이희열(李希烈)의 반란 때 지조를 지키다 죽임을 당하였으며, 강충(江充)은 조(趙)나라에 있을 때에 그 태자(太子)를 죽였는데 한(漢)에 와서도 그 태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니 착한 자는 매번 착하고 악한 자는 매번 악하기만 한 것으로 백이(伯夷)를 도척(盜茆)으로 의심해서도 안되고 도척에게 백이이기를 바라서도 안되는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현재 좌의정 정인홍은 무신년에 거의 죽을 뻔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수상이 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이번의 이 일이 비록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석(木石)의 변괴나 호리(狐狸)의 요망함과 차이가 없습니다.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법전 안에 ‘익명서는 부자간에도 서로 전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국가에는 자연 규례와 체면이 있으니, 신이 어찌 감히 그 사람을 곧장 지적해 말하겠으며, 자신이 대신으로 있으면서 먼저 법전에도 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만약 반드시 누가 한 짓인지 적발해 내고자 한다면, 반드시 흉서를 스스로 던져넣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던져넣었을 것이니 끝내는 적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자수(自首)하지 않을 경우에는 던져넣은 자 역시 반드시 죄를 받을 것이니, 높은 관직과 중한 상으로 현상금을 걸어 찾는다면, 비록 흉서를 쓴 자가 재물을 써가면서 자수하지 말기를 애걸하더라도 곧장 발각될 것입니다. 대개 이와 같은 일은 흉서를 쓴 자는 반드시 그 모의를 알고 있을 것이며, 이 흉서를 던져넣은 자 역시 반드시 모의한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것이니, 어찌 끝까지 적발해 내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익명서의 내용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알아내고자 하면 익명서를 만든 자가 반드시 괴롭고 답답해 할 것이니, 역시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일에 사관(史官)이 와서 성상의 비답을 전할 때, 신은 병을 무릅쓰고 먼길을 와서 온갖 병이 들어 있던 가운데 한밤중에 놀라 일어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진달드린 말이 반드시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몹시 미안하여서 이에 감히 또다시 아뢰는 바입니다. 이어 생각건대 본직에 대해서는 반드시 체차하라는 명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아직도 체차하지 않으셨다면,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체차하고 어진 사람을 다시 뽑으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훈련 도감이나 봉상시, 종묘의 도제조는 모두 군무(軍務)와 제향(祭享)에 관계가 있는 중요한 자리이니, 아울러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역적에 대한 국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흉격이 또 나왔다. 내가 치욕을 당하는 것이야 비록 말할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종사의 위태로움이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이다. 경은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을 국가와 함께하는 왕실의 지친이자 훈구의 대신이다. 그런데 한갓 간사한 자가 모함한 것에 놀라서 국가를 우선하는 의리를 잊은 채, 지레 멀리 달아나고는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아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밤낮없이 달려와서, 충분히 의논하고 분명히 형신하여 죄인을 잡아내어, 나의 깊은 수치를 설욕하고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라." 하였다.
"신이 지난번에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아보니 ‘어려움에 임하여 도피하였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이에 황공스럽고 몸이 떨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여러 날 동안 생각해 봄에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흉서 가운데에 ‘강제한다.’고 하였으며, 또 ‘대신에게 밀부를 내어준다.’고 하였으니, 비록 은하수를 끌어대어 씻는다 하더라도 그 죄를 씻을 길이 없으며, 목숨을 끊더라도 치욕을 씻을 길이 없어서 산골짜기에서 원통해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먼 시골로 내려와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으면서 감히 다시 사람들 사이에 끼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왕조에서 어떤 간사한 자가 신이 장차 동궁을 모함한 사람들을 멀리 내쫓을 것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는 동궁을 모함한 사람이라고 하며 의기양양하게 나대며 장차 큰 옥사를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만약 큰 옥사가 일어났다면 장차 전하를 어느 곳에다 놓아두려고 하였겠습니까. 다행히 선왕의 밝으심에 힘입어 신이 형벌을 면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간사한 자가 신을 두려워하여 신에게 애걸하는 편지를 보내었는데, 거기에 ‘저를 살려준 은혜는 저를 낳아준 것과 같습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신을 그의 아비와 같이 본 것입니다. 만약에 또다시 신을 해치려고 한다면 이것은 아비를 죽이는 역적인 것입니다. 지금 그 편지 및 다른 편지가 모두 신의 집에 있습니다.
무신년에 신과 아주 친한 사람이, 신이 정인홍(鄭仁弘)과 통하였다고 진소해서 장차 잡아다 국문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일찍이 정인홍과 통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준구(成俊耉)가 무인(武人) 강원(康遠)을 시켜서 말을 전하기를 ‘선수공사(繕修公事)로 두루 돌아다니다가 마침 이유홍(李惟弘)의 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김대래(金大來)가 와서 「반드시 기자헌을 잡아다 국문할 것이다.」고 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비로소 이런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또 근근이 그 화를 면하였습니다. 강원은 바로 여우길(呂佑吉)의 이성 사촌(異姓四寸)입니다.
지금 이 간사한 자가 신이 장차 강제당할 것이라고 하고, 또 장차 밀부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다행히 성상께서 위에 계심에 힘입어 죽음을 면해 해골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성은이 망극하여 천지와 같이 큽니다. 신이 아무리 형편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어찌 다른 사람에게 코가 꿰어 그의 지시에 따르는 자이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근거없는 말을 날조하니, 이것은 바로 신의 입을 다물게 하고자 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는 이미 진달드렸는데, 성상을 끌어들여서 속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국사에 진력하여 나라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기를 도모해서입니다.
성상의 분부가 지극히 엄하니, 어찌 당장에 달려가서 태만히 한 죄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흉서에 쓰여진 말을 나라 사람들이 필시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니, 신이 비록 성상의 은혜를 탐내어 도로 대궐문 안으로 들어가 얼굴을 들고 직무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나라 사람들이 장차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이 사람은 이와 같은 말을 듣고서도 물러갈 줄 모르고 스스로 대신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그의 형편없음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또한 조정을 가볍게 여기고 당대 선비들에게 수치를 끼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이 단지 성상만을 우러러보며 혼백이 다 달아나서 스스로 적막하고 한가한 곳으로 물러나와,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것입니다.
계축년에 원임 대신(原任大臣)으로 있을 때 의주 부윤(義州府尹)에 대한 일로 대간이 그르다고 하였는데도, 오히려 몸을 편안히 하고자 물러감을 면치 못하였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지금 무고당한 말이 이 어떠한 죄명(罪名)인데, 태연스레 마음을 동요치 않으면서 마치 그 말이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라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수상의 자리에 있어서 다른 일반 재상들과는 경우가 다를 듯한데, 이와 같은 흉악한 말이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그대로 무릅쓰고 있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놀란 새처럼 쾌히 물러가서 차라리 먼 변방에서 말라 죽을지언정, 감히 대신으로 자처할 수 없는 것은, 이치와 형세가 참으로 그러한 것입니다.
선왕조 무신년부터 지금까지 불측한 죄에 빠질 뻔한 것이 무릇 세 번이나 됩니다. 그러니 두 성상의 신성스러움이 아니었다면 신이 어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외롭고 외로운 몸으로서 오래도록 간사한 자가 죽이고자 노리는 가운데 들어가 있으니, 또한 괴롭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의자가 부러져 낙상(落傷)하였을 때에도 어떤 간사한 자가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모함하고자 하였습니다. 신은 낙상하여 병을 얻는 것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리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필시 이렇게 떠나온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이빨을 갈고 혀를 날름거리며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니, 신은 또 무슨 귀신 도깨비 같은 말들을 만들어 낼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부경(赴京)하여 서신을 보내어 시골로 내려가기를 권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것으로 죄목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의 말을 듣고서 내려올 리가 있겠습니까. 그의 계략이 교묘한 듯하나, 실은 어리석고 망령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내려왔다면 비록 이렇게 말을 해서 죄를 주어도 되겠지만, 낙상하여 병을 얻은 것과 죄명(罪名)을 지고서 내려온 경우에도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렸다는 것으로 죄를 준다면, 간사한 자는 비록 기뻐서 웃겠지만 곁에서 보는 자가 어찌 괴이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이번 해에는 비단 신의 성(姓)을 곧장 지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반드시 밀부를 내줄 것이라고 말을 하였으니, 그 말은 배척한 것에 그칠 뿐만이 아닙니다. 신을 향해 하는 말이 갈수록 더더욱 독살스러워지니, 비록 고인(古人)이라 하더라도 어찌 사갈(蛇蝎) 같은 자와 서로 다투면서 구차스럽게 모면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무신년에도 여러 차례 사직하였으나 체직의 명을 받지 못하여서 끝내 중론(重論)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체직해야 되는데 체직하지 않는 것 역시 신하를 보호해 주는 도리가 아닙니다.
신이 재주와 덕이 없어서 단지 일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신하임을 성상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알아보는 방도에는 요체가 있는 법입니다. 안진경(顔眞卿)은 안록산(安菉山)의 난에 거의 죽을 뻔하였었는데 끝내는 이희열(李希烈)의 반란 때 지조를 지키다 죽임을 당하였으며, 강충(江充)은 조(趙)나라에 있을 때에 그 태자(太子)를 죽였는데 한(漢)에 와서도 그 태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니 착한 자는 매번 착하고 악한 자는 매번 악하기만 한 것으로 백이(伯夷)를 도척(盜茆)으로 의심해서도 안되고 도척에게 백이이기를 바라서도 안되는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현재 좌의정 정인홍은 무신년에 거의 죽을 뻔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수상이 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이번의 이 일이 비록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석(木石)의 변괴나 호리(狐狸)의 요망함과 차이가 없습니다.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법전 안에 ‘익명서는 부자간에도 서로 전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국가에는 자연 규례와 체면이 있으니, 신이 어찌 감히 그 사람을 곧장 지적해 말하겠으며, 자신이 대신으로 있으면서 먼저 법전에도 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만약 반드시 누가 한 짓인지 적발해 내고자 한다면, 반드시 흉서를 스스로 던져넣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던져넣었을 것이니 끝내는 적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자수(自首)하지 않을 경우에는 던져넣은 자 역시 반드시 죄를 받을 것이니, 높은 관직과 중한 상으로 현상금을 걸어 찾는다면, 비록 흉서를 쓴 자가 재물을 써가면서 자수하지 말기를 애걸하더라도 곧장 발각될 것입니다.
대개 이와 같은 일은 흉서를 쓴 자는 반드시 그 모의를 알고 있을 것이며, 이 흉서를 던져넣은 자 역시 반드시 모의한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것이니, 어찌 끝까지 적발해 내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익명서의 내용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알아내고자 하면 익명서를 만든 자가 반드시 괴롭고 답답해 할 것이니, 역시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일에 사관(史官)이 와서 성상의 비답을 전할 때, 신은 병을 무릅쓰고 먼길을 와서 온갖 병이 들어 있던 가운데 한밤중에 놀라 일어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진달드린 말이 반드시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몹시 미안하여서 이에 감히 또다시 아뢰는 바입니다. 이어 생각건대 본직에 대해서는 반드시 체차하라는 명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아직도 체차하지 않으셨다면,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체차하고 어진 사람을 다시 뽑으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훈련 도감이나 봉상시, 종묘의 도제조는 모두 군무(軍務)와 제향(祭享)에 관계가 있는 중요한 자리이니, 아울러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역적에 대한 국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흉격이 또 나왔다. 내가 치욕을 당하는 것이야 비록 말할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종사의 위태로움이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이다. 경은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을 국가와 함께하는 왕실의 지친이자 훈구의 대신이다. 그런데 한갓 간사한 자가 모함한 것에 놀라서 국가를 우선하는 의리를 잊은 채, 지레 멀리 달아나고는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아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밤낮없이 달려와서, 충분히 의논하고 분명히 형신하여 죄인을 잡아내어, 나의 깊은 수치를 설욕하고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나라에 대신이 없어서 한심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국의 당상관들이 자주 모여서 변방의 일을 헤아려 처리하되, 착실하게 거행하라는 뜻으로 비변사에 말하라."
"나라에 대신이 없어서 한심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국의 당상관들이 자주 모여서 변방의 일을 헤아려 처리하되, 착실하게 거행하라는 뜻으로 비변사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대신들이 국가의 일에 대해 생각지 않은 채 도망해 가거나 병으로 사직하여서, 국가의 크고 작은 일들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존호(尊號)를 올리는 것이 이 어떠한 대례(大禮)인데 수상이 없이 치를 수 있겠는가. 우선은 4월 초순 전으로 물려서 날짜를 택일하고 급급히 파발마를 보내어 외방에 행회(行會)하여서 전도되는 폐단이 없게 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하라."
"대신들이 국가의 일에 대해 생각지 않은 채 도망해 가거나 병으로 사직하여서, 국가의 크고 작은 일들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존호(尊號)를 올리는 것이 이 어떠한 대례(大禮)인데 수상이 없이 치를 수 있겠는가. 우선은 4월 초순 전으로 물려서 날짜를 택일하고 급급히 파발마를 보내어 외방에 행회(行會)하여서 전도되는 폐단이 없게 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하라."

 

우의정 한효순이 여섯 번째 정사하니, 답하기를, "황공해 하지 말고 안심하고서 잘 조리하여 차도가 있기를 기다려서 출사하라." 하였다.
"황공해 하지 말고 안심하고서 잘 조리하여 차도가 있기를 기다려서 출사하라."
하였다.

 

2월 8일 계묘

도승지 한찬남(韓纘男)이 아뢰기를, "금부도사 박제생(朴齊生)이 와서 말하기를 ‘감옥을 감독할 적에 역적 정인형(鄭仁馨)이 말하기를 「나에게 상달(上達)할 일이 있어서 비밀 상소를 올리고 싶으나 의금부의 감옥이 극히 엄하여서 지필묵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죽음 속에서 살기를 구하거나 혹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비록 힐문할 것도 없겠으나 뒷폐단을 열게 될 것이고 이미 도사가 한 말을 전해들었기에 감히 진달드립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상소와 그가 말한 것을 일일이 상세하게 써서 들이라고 박제생에게 말하라." 하였다.
"금부도사 박제생(朴齊生)이 와서 말하기를 ‘감옥을 감독할 적에 역적 정인형(鄭仁馨)이 말하기를 「나에게 상달(上達)할 일이 있어서 비밀 상소를 올리고 싶으나 의금부의 감옥이 극히 엄하여서 지필묵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죽음 속에서 살기를 구하거나 혹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비록 힐문할 것도 없겠으나 뒷폐단을 열게 될 것이고 이미 도사가 한 말을 전해들었기에 감히 진달드립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상소와 그가 말한 것을 일일이 상세하게 써서 들이라고 박제생에게 말하라."
하였다.

 

금부에서 보방(保放)한 죄인 장응복(莊應福)이 도망하였다. 이에 팔도의 감사와 병사·수사에게 수색해 체포하라고 유시하였다.

 

일본(日本)이 화친을 청하였으므로 장차 오윤겸(吳允謙) 등을 보내어 회답하려 하면서 ‘위정이덕지보(爲政以德之寶)’를 다시 만들었다. 【이 보(寶)는 상서원에서 보관하고 있으면서 일본과 수답(酬答)할 때 으레 사용하였는데 전란에 잃어버렸다. 이 때에 이르러 공조가 다시 주조하기를 청하였으므로 예조에서 의논을 정해 주조한 것이다.】

 

옥당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참작해서 처치하여 각자 그 죄에 합당하게 하였으니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참작해서 처치하여 각자 그 죄에 합당하게 하였으니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또 잇달아 차자를 올려서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마땅하게 참작해서 처치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마땅하게 참작해서 처치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미시에 태백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2월 9일 갑진

팔도 감사에게 유시하였다. "정배(定配)한 죄인들 중에 도망친 자가 없지 않을 것인데도 각 고을에서 숨기고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일이 아주 놀랍다. 전후로 정배한 죄인을 십분 엄하게 신칙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아무 고을의 아무 죄인이 분명하게 배소(配所)에 있는지의 여부를 각별히 상세하게 조사해서 사실대로 치계하여, 대신 점고하는 폐단이 없게 하라. 그리고 만약 대신 점고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도 상세히 조사해 치계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모든 정배 죄인에 대해서 다시금 굳게 잘 지켜서 도망치는 것을 막도록 하라."
"정배(定配)한 죄인들 중에 도망친 자가 없지 않을 것인데도 각 고을에서 숨기고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일이 아주 놀랍다. 전후로 정배한 죄인을 십분 엄하게 신칙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아무 고을의 아무 죄인이 분명하게 배소(配所)에 있는지의 여부를 각별히 상세하게 조사해서 사실대로 치계하여, 대신 점고하는 폐단이 없게 하라. 그리고 만약 대신 점고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도 상세히 조사해 치계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모든 정배 죄인에 대해서 다시금 굳게 잘 지켜서 도망치는 것을 막도록 하라."

 

2월 10일 을사

대사간 정조(鄭造), 집의 김질간(金質幹), 장령 임건(林健)·정도(鄭道), 지평 김호(金昈), 정언 홍요검(洪堯儉)·채승선(蔡承先)이 아뢰기를, "신들이 흉격에 대한 일로 신계(新啓)하고자 해서 양사(兩司)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완의(完議)할 즈음에 지평 남궁경(南宮㯳)이 갑자기 병을 칭탁하고는 협방(夾房)으로 들어갔으므로 재삼 강청하였으나 끝내 나가 버렸습니다. 전부터 대간이 발언한 뒤에는 비록 한 관원이 불참하더라도 논계하지 못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이미 나온 논의를 도리어 중간에 저지되게 하였는바, 이것은 모두가 신들이 못난 탓입니다. 신들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흉격에 대한 일로 신계(新啓)하고자 해서 양사(兩司)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완의(完議)할 즈음에 지평 남궁경(南宮㯳)이 갑자기 병을 칭탁하고는 협방(夾房)으로 들어갔으므로 재삼 강청하였으나 끝내 나가 버렸습니다. 전부터 대간이 발언한 뒤에는 비록 한 관원이 불참하더라도 논계하지 못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이미 나온 논의를 도리어 중간에 저지되게 하였는바, 이것은 모두가 신들이 못난 탓입니다. 신들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예조가 아뢰기를, "존호를 올리는 날을 4월로 물려서 택일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그런데 4월 초순에는 길한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그리고 막중한 성례(盛禮)를 지난해에 진작 치루지 못하여서 여러 사람들이 몹시 울적해 하고 있는데, 어찌 매번 뒤로 물려서 한 나라의 큰 경사를 점점 지체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전에 정한 날짜에 그대로 행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하례(賀禮)도 대신이 없이는 강행할 수 없는데, 더구나 존호를 올리는 것이 이 어떠한 대례인데 수상이 없이 구차하게 치를 수 있겠는가. 결단코 그대로 치러서는 안되는 것이 명백하다. 한 달을 뒤로 늦추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4월 20일로 고쳐 정하라." 하였다.
"존호를 올리는 날을 4월로 물려서 택일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그런데 4월 초순에는 길한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그리고 막중한 성례(盛禮)를 지난해에 진작 치루지 못하여서 여러 사람들이 몹시 울적해 하고 있는데, 어찌 매번 뒤로 물려서 한 나라의 큰 경사를 점점 지체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전에 정한 날짜에 그대로 행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하례(賀禮)도 대신이 없이는 강행할 수 없는데, 더구나 존호를 올리는 것이 이 어떠한 대례인데 수상이 없이 구차하게 치를 수 있겠는가. 결단코 그대로 치러서는 안되는 것이 명백하다. 한 달을 뒤로 늦추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4월 20일로 고쳐 정하라."
하였다.

 

미시(未時)에 태백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2월 11일 병오

대궐 안에서 장표(章標)가 없는 자를 금지시키고 위사(衛士)들로 하여금 활과 칼을 차게 하였다.

 

지평 남궁경이 아뢰기를, "신이 비록 형편없으나 직무를 봄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배는 부지런합니다. 마침 어제 느닷없이 가슴의 통증이 일어났는데 명패(命牌)가 갑자기 왔으므로 아픔을 무릅쓰고 대궐에 나아갔습니다. 대사간 정조(鄭造)가 가장 늦게 와서 집의 김질간(金質幹)에게 말하기를 ‘어제 보여준 일을 논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자, 김질간이 대답하기를 ‘우선은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은 그 말을 범연히 듣고 넘겨서 그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하였으며, 흉격의 일에 이르러서는 이미 분명히 말해주지 않았으니, 신이 어떻게 억측으로 헤아려 알 수 있었겠습니까.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서 겨우겨우 밖으로 나왔는데, 동료가 사람을 보내어서 다시 들어오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밖으로 나와서 그대로 대궐 바깥의 인가(人家)에 누워 있었으므로 하리(下吏)를 시켜서 간통(簡通)을 보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또 답하기를 ‘만약 도로 들어오면 피혐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대궐문을 나왔으므로 형세상 다시 들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관원들이 인피하였고 비로소 중론(重論)이 신으로 인해 아뢰어지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신 역시 대간이니 마땅히 참여해서 들었을 것인데도 어둑하여서 분명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말이 믿음을 받지 못하고 마음이 허명(虛明)하지 못한 탓입니다.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비록 형편없으나 직무를 봄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배는 부지런합니다. 마침 어제 느닷없이 가슴의 통증이 일어났는데 명패(命牌)가 갑자기 왔으므로 아픔을 무릅쓰고 대궐에 나아갔습니다. 대사간 정조(鄭造)가 가장 늦게 와서 집의 김질간(金質幹)에게 말하기를 ‘어제 보여준 일을 논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자, 김질간이 대답하기를 ‘우선은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은 그 말을 범연히 듣고 넘겨서 그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하였으며, 흉격의 일에 이르러서는 이미 분명히 말해주지 않았으니, 신이 어떻게 억측으로 헤아려 알 수 있었겠습니까.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서 겨우겨우 밖으로 나왔는데, 동료가 사람을 보내어서 다시 들어오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밖으로 나와서 그대로 대궐 바깥의 인가(人家)에 누워 있었으므로 하리(下吏)를 시켜서 간통(簡通)을 보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또 답하기를 ‘만약 도로 들어오면 피혐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대궐문을 나왔으므로 형세상 다시 들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관원들이 인피하였고 비로소 중론(重論)이 신으로 인해 아뢰어지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신 역시 대간이니 마땅히 참여해서 들었을 것인데도 어둑하여서 분명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말이 믿음을 받지 못하고 마음이 허명(虛明)하지 못한 탓입니다.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홍문관 부교리 임성지(任性之), 부수찬 황덕부(黃德符), 저작 박종주(朴宗胄)가 상차하기를, "양사가 모두 인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국가가 불행하여서 역적이 잇달아 일어나고 괴귀(怪鬼)가 거듭 나타났으며, 흉격이 또 일어나서 임금을 욕하였는데, 말이 몹시 흉악하고도 참혹하였습니다. 그러니 신하된 자 치고 그 누가 그 자를 잡아서 그의 살점을 씹어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고변(告變)한 뒤로 이미 보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잡아다가 국문하지 않고 있어서 크게 옥사의 체모를 잃어 여러 사람들이 몹시 분해 하고 있습니다. 양사가 항의(抗議)하여 장차 논계하고자 할 때, 발언한 뒤에는 비록 한 관원이 참여하지 않아도 으레 입계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니 인피한 것은 바로 체면을 중하게 한 것입니다. 논의가 이미 발론되었으나 미처 분명히 알지 못하였고 병이 점점 심해져 겨우겨우 나갔으며, 뒤미처 들어가는 것이 구차스러워 간통을 보내주기를 청하였으니, 실로 일을 회피하려는 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두 출사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양사가 모두 인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국가가 불행하여서 역적이 잇달아 일어나고 괴귀(怪鬼)가 거듭 나타났으며, 흉격이 또 일어나서 임금을 욕하였는데, 말이 몹시 흉악하고도 참혹하였습니다. 그러니 신하된 자 치고 그 누가 그 자를 잡아서 그의 살점을 씹어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고변(告變)한 뒤로 이미 보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잡아다가 국문하지 않고 있어서 크게 옥사의 체모를 잃어 여러 사람들이 몹시 분해 하고 있습니다.
양사가 항의(抗議)하여 장차 논계하고자 할 때, 발언한 뒤에는 비록 한 관원이 참여하지 않아도 으레 입계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니 인피한 것은 바로 체면을 중하게 한 것입니다. 논의가 이미 발론되었으나 미처 분명히 알지 못하였고 병이 점점 심해져 겨우겨우 나갔으며, 뒤미처 들어가는 것이 구차스러워 간통을 보내주기를 청하였으니, 실로 일을 회피하려는 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두 출사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2월 12일 정미

대사간 정조가 아뢰기를, "신이 외람되이 간원의 장관으로 있은 지 이미 1년이 지났는데도, 말은 보잘것 없어 책임만 때우고 있으며, 몸에는 병이 많습니다. 직무를 봄에 있어서 부지런함이 다른 사람만 못하고, 병을 칭탁하지 않음도 다른 사람만 못하고, 본래 일을 회피하지 않음도 다른 사람만 못하였습니다. 이상 세 가지가 모두 남만 못한 탓에 억지로 직무를 수행하면서 항상 두렵고 황공하였습니다. 지금 지평 남궁경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남을 공격하는 뜻이 말 밖에 넘쳐흐릅니다. 거기에서 말한 ‘가장 늦게 왔다.’느니, ‘작은 쪽지를 주고받았다.’느니, ‘혹 그 일을 가리킨다.’느니 하는 등의 말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반드시 이를 제기하여 말한 것은, 신을 그 논의를 처음으로 발한 자로 만들고 또 자기가 고의로 회피한 형적을 보이어서 자기와 친한 자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야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동료들이야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또 동료들이야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임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임금을 만약 속인다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무릇 대간의 논계는 비록 대간의 입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이것은 바로 나라 사람들의 공공의 의논입니다. 지금 이 흉격은 실로 만고에 없던 변고로, 나라 사람치고 그 누가 죄인을 잡아서 그 살점을 씹어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것은 익명서이기 때문에 비록 몹시 통분스럽기는 하지만 처치할 방도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앞뒤로 고변한 사람이 있으며, 또 이름이 흉서에 나온 사람이 여러 명 있습니다. 더구나 영의정 기자헌의 차자 안에는 간인을 분명하게 지적하여 환하게 단서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니 일이 역적을 국문하는 데 관계되어 추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나라 사람들의 공공의 의논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이런 내용으로 양사에 통의(通議)하여서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였는데, 비록 가까이 앉아 있는 집의와 잠시 동안 말을 하였다 하더라도, 이것이 남궁경에게 있어서 무슨 혐의스러운 점이 있겠습니까. 남궁경으로서는 다만 완의에 들어가 참여해서 그 논의에 대해 가부만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사가 취직(就職)한 뒤에 즉시 합사(合司)하여 완의하기를 청하자, 남궁경이 갑자기 병을 칭탁하면서 곧장 협방(夾房)으로 들어갔으며, 이어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재삼 들어오도록 간청하였으나 끝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안으로는 기미를 살펴 회피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고 실제로는 공론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에 하리(下吏)를 보내어 간통을 보내주기를 청하면서 ‘신계(新啓)가 있으면 마땅히 근실(謹悉)이라고 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취직하여서는 완의에 참여하지 않고 대궐에서 나가서는 근실이라 쓰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란 말입니까? 일찍이 직무를 수행함에 부지런하였다고 하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더구나 동료 관원에게 들으니, 남궁경이 합청(合廳)한 동료 관원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의 신계는 대사헌이 출사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하자, 정언 홍요검이 답하기를 ‘대론(大論)이 있을 것 같으면 비록 한 명이 하더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인데 어찌 대사헌이 나오기를 기다리겠는가.’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론이 나왔다는 것을 남궁경이 이미 앞서서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논의가 한번 나오자 국언(國言)이 자자하였으니, 남궁경이 이목(耳目)의 관원으로서 어찌 듣거나 알지 못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가 말한 ‘어떻게 미리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라고 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속인 것입니다. 이미 이 논의가 완석(完席)에서 나왔음을 알고서도 곧바로 병을 핑계대고 도피하여 참여하지 않고는, 이에 말하기를 ‘지금 여러 관원들이 인피한 것을 보고서 비로소 대론(大論)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 것은, 더욱더 동료들을 속이는 것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본디 일을 회피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지척간에 있는 대청(臺廳)에서 억지로 청하여도 들어오지 않고, 한번 대궐을 나가서는 곧장 사삿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깊은 밤중에 출입한 것에 대해서 비록 알지 못할 것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없는 것이고 사람들의 말은 두려운 법입니다. 일찍이 ‘한번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그가 화복(禍福)에 겁을 먹고 일에 임하여 교묘하게 회피한 상황이 불을 보듯 환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또한 자신을 훌륭하게 여기면서 물러가서는 뒷말을 하면서 피혐하는 말을 꾸며대었습니다. 이어 허물을 가리우고자 의기양양하게 태양 아래에서 큰소리치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비단 마음을 속이고 임금을 속이는 것일 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천지와 귀신을 속인 죄가 이에 이르러 도망할 길이 없는바, 그 속셈을 환히 알 수 있으니 따질 것도 없습니다. 다만 신은 어리석고 형편없으며 직무를 수행함이 보잘것없어서, 드러나게 헐뜯음을 당함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구차하게 용납되어 합사와 합계의 논의를 조절할 수 있겠습니까.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외람되이 간원의 장관으로 있은 지 이미 1년이 지났는데도, 말은 보잘것 없어 책임만 때우고 있으며, 몸에는 병이 많습니다. 직무를 봄에 있어서 부지런함이 다른 사람만 못하고, 병을 칭탁하지 않음도 다른 사람만 못하고, 본래 일을 회피하지 않음도 다른 사람만 못하였습니다. 이상 세 가지가 모두 남만 못한 탓에 억지로 직무를 수행하면서 항상 두렵고 황공하였습니다.
지금 지평 남궁경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남을 공격하는 뜻이 말 밖에 넘쳐흐릅니다. 거기에서 말한 ‘가장 늦게 왔다.’느니, ‘작은 쪽지를 주고받았다.’느니, ‘혹 그 일을 가리킨다.’느니 하는 등의 말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반드시 이를 제기하여 말한 것은, 신을 그 논의를 처음으로 발한 자로 만들고 또 자기가 고의로 회피한 형적을 보이어서 자기와 친한 자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야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동료들이야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또 동료들이야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임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임금을 만약 속인다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무릇 대간의 논계는 비록 대간의 입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이것은 바로 나라 사람들의 공공의 의논입니다. 지금 이 흉격은 실로 만고에 없던 변고로, 나라 사람치고 그 누가 죄인을 잡아서 그 살점을 씹어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것은 익명서이기 때문에 비록 몹시 통분스럽기는 하지만 처치할 방도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앞뒤로 고변한 사람이 있으며, 또 이름이 흉서에 나온 사람이 여러 명 있습니다. 더구나 영의정 기자헌의 차자 안에는 간인을 분명하게 지적하여 환하게 단서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니 일이 역적을 국문하는 데 관계되어 추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나라 사람들의 공공의 의논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이런 내용으로 양사에 통의(通議)하여서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였는데, 비록 가까이 앉아 있는 집의와 잠시 동안 말을 하였다 하더라도, 이것이 남궁경에게 있어서 무슨 혐의스러운 점이 있겠습니까. 남궁경으로서는 다만 완의에 들어가 참여해서 그 논의에 대해 가부만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사가 취직(就職)한 뒤에 즉시 합사(合司)하여 완의하기를 청하자, 남궁경이 갑자기 병을 칭탁하면서 곧장 협방(夾房)으로 들어갔으며, 이어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재삼 들어오도록 간청하였으나 끝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안으로는 기미를 살펴 회피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고 실제로는 공론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에 하리(下吏)를 보내어 간통을 보내주기를 청하면서 ‘신계(新啓)가 있으면 마땅히 근실(謹悉)이라고 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취직하여서는 완의에 참여하지 않고 대궐에서 나가서는 근실이라 쓰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란 말입니까? 일찍이 직무를 수행함에 부지런하였다고 하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더구나 동료 관원에게 들으니, 남궁경이 합청(合廳)한 동료 관원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의 신계는 대사헌이 출사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하자, 정언 홍요검이 답하기를 ‘대론(大論)이 있을 것 같으면 비록 한 명이 하더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인데 어찌 대사헌이 나오기를 기다리겠는가.’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론이 나왔다는 것을 남궁경이 이미 앞서서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논의가 한번 나오자 국언(國言)이 자자하였으니, 남궁경이 이목(耳目)의 관원으로서 어찌 듣거나 알지 못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가 말한 ‘어떻게 미리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라고 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속인 것입니다. 이미 이 논의가 완석(完席)에서 나왔음을 알고서도 곧바로 병을 핑계대고 도피하여 참여하지 않고는, 이에 말하기를 ‘지금 여러 관원들이 인피한 것을 보고서 비로소 대론(大論)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 것은, 더욱더 동료들을 속이는 것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본디 일을 회피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지척간에 있는 대청(臺廳)에서 억지로 청하여도 들어오지 않고, 한번 대궐을 나가서는 곧장 사삿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깊은 밤중에 출입한 것에 대해서 비록 알지 못할 것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없는 것이고 사람들의 말은 두려운 법입니다. 일찍이 ‘한번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그가 화복(禍福)에 겁을 먹고 일에 임하여 교묘하게 회피한 상황이 불을 보듯 환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또한 자신을 훌륭하게 여기면서 물러가서는 뒷말을 하면서 피혐하는 말을 꾸며대었습니다. 이어 허물을 가리우고자 의기양양하게 태양 아래에서 큰소리치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비단 마음을 속이고 임금을 속이는 것일 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천지와 귀신을 속인 죄가 이에 이르러 도망할 길이 없는바, 그 속셈을 환히 알 수 있으니 따질 것도 없습니다.
다만 신은 어리석고 형편없으며 직무를 수행함이 보잘것없어서, 드러나게 헐뜯음을 당함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구차하게 용납되어 합사와 합계의 논의를 조절할 수 있겠습니까.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집의 김질간이 아뢰기를, "이달 9일에 취직하여서 대청(臺廳)에 나아가니, 대사간 정조가 작은 쪽지를 신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 일을 오늘 아뢰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열어보니 바로 흉격에 대해 고변한 것을 속히 국문하여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신이 아뢰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마침 피혐관계로 해서 의계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또 취직해서 대청에 나아가 신이 정조에게 말하기를 ‘어제 아뢰고자 하던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자, 정조가 답하기를 ‘취직한 뒤에 완의(完議)하고서 아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양사가 취직하여서 장차 완의하려고 하였는데, 지평 남궁경이 병을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재삼 강청하여도 끝내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관원들이 이 일로 인해 사유를 갖추어 아뢰고 인피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정조가 남궁경에게 드러나게 배척을 당했다는 이유로 인피하였습니다. 신은 정조와 더불어 서로 문답하고 논의한 자이어서 유독 혼자서만 구차스럽게 모면할 수 없습니다.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이달 9일에 취직하여서 대청(臺廳)에 나아가니, 대사간 정조가 작은 쪽지를 신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 일을 오늘 아뢰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열어보니 바로 흉격에 대해 고변한 것을 속히 국문하여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신이 아뢰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마침 피혐관계로 해서 의계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또 취직해서 대청에 나아가 신이 정조에게 말하기를 ‘어제 아뢰고자 하던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자, 정조가 답하기를 ‘취직한 뒤에 완의(完議)하고서 아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양사가 취직하여서 장차 완의하려고 하였는데, 지평 남궁경이 병을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재삼 강청하여도 끝내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관원들이 이 일로 인해 사유를 갖추어 아뢰고 인피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정조가 남궁경에게 드러나게 배척을 당했다는 이유로 인피하였습니다. 신은 정조와 더불어 서로 문답하고 논의한 자이어서 유독 혼자서만 구차스럽게 모면할 수 없습니다.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장령 임건·정도, 지평 김호, 정언 채승선이 아뢰기를, "신들이 엊그제 취직하는 일로 대청에 나갔는데, 취직하기 전에 집의 김질간이 대사간 정조에게 말하기를 ‘어제 아뢰고자 하던 일을 오늘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정조가 답하기를 ‘취직한 뒤에 완의하여서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자, 지평 남궁경이 말하기를 ‘신계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대사헌이 출사한 뒤에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이런 말을 신들 역시 참여하여 들었습니다. 취직한 뒤 완의할 때 미쳐서 남궁경이 갑자기 병을 칭탁하고는 끝내 그대로 밖으로 나갔는데, 이 때문에 양사가 모두 피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지금 정조가 인피한 내용을 보니 ‘드러나게 남궁경에게 배척을 당하여서 구차스럽게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들 역시 이미 완의하는 데 참여하였고 또 함께 피혐하였으니, 배척을 당한 것이 정조와 더불어 차이가 없습니다.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엊그제 취직하는 일로 대청에 나갔는데, 취직하기 전에 집의 김질간이 대사간 정조에게 말하기를 ‘어제 아뢰고자 하던 일을 오늘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정조가 답하기를 ‘취직한 뒤에 완의하여서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자, 지평 남궁경이 말하기를 ‘신계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대사헌이 출사한 뒤에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이런 말을 신들 역시 참여하여 들었습니다. 취직한 뒤 완의할 때 미쳐서 남궁경이 갑자기 병을 칭탁하고는 끝내 그대로 밖으로 나갔는데, 이 때문에 양사가 모두 피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지금 정조가 인피한 내용을 보니 ‘드러나게 남궁경에게 배척을 당하여서 구차스럽게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들 역시 이미 완의하는 데 참여하였고 또 함께 피혐하였으니, 배척을 당한 것이 정조와 더불어 차이가 없습니다.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언 홍요검이 아뢰기를, "흉격에서 이끌어 댄 자들을 속히 국문하여 조사하라는 일로 장차 논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잇달아 피혐하는 거조가 있어서 비록 석상에서 완의하지는 못하였으나 물의가 발론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니 양사의 관원치고 그 누가 들어서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신이 엊그제 취직하는 일로 대궐에 나아가 대청에 모두 모였었는데, 지평 남궁경이 말하기를 ‘신계는 대사헌이 출사하기를 기다려서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참으로 아뢸 만한 일이 있으면 어찌 대사헌이 출사하기를 기다린 뒤에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취직하여 완의할 즈음에 미쳐서 남궁경이 병을 핑계로 나가서 이 때문에 양사가 모두 피혐하였습니다. 지금 정조가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드러나게 배척을 당한 것이 정조와 더불어 차이가 없습니다.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흉격에서 이끌어 댄 자들을 속히 국문하여 조사하라는 일로 장차 논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잇달아 피혐하는 거조가 있어서 비록 석상에서 완의하지는 못하였으나 물의가 발론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니 양사의 관원치고 그 누가 들어서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신이 엊그제 취직하는 일로 대궐에 나아가 대청에 모두 모였었는데, 지평 남궁경이 말하기를 ‘신계는 대사헌이 출사하기를 기다려서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참으로 아뢸 만한 일이 있으면 어찌 대사헌이 출사하기를 기다린 뒤에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취직하여 완의할 즈음에 미쳐서 남궁경이 병을 핑계로 나가서 이 때문에 양사가 모두 피혐하였습니다. 지금 정조가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드러나게 배척을 당한 것이 정조와 더불어 차이가 없습니다.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지평 남궁경이 아뢰기를, "신이 마침 불행스럽게도 병에 걸려서 많은 관원들이 피혐하게 하였는바, 그 곡절에 대해 진달드리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던 중에 들은 것은 대략 전의 피혐한 내용과 같습니다. 지금 이 흉격의 변고는 삼척동자라도 오히려 골수에 사무치는데, 신이 어떠한 사람이라고 유독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신이 본디 영의정 기자헌과 같은 동리에 살아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몇 달 동안에는 혹 서로 만나기는 하였으나 특별히 사사로이 후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역적을 국문하는 대론(大論)에 대해서, 신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 추호라도 사사로운 뜻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설령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석상(席上)에서 사의(私意)를 쓰는 것과 간통에 답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진상을 감춘 말을 슬쩍 해놓고는 그 말을 깨닫지 못한 자를 책하면서 마음을 속였다느니, 동료를 속였다느니 하고 있으니, 역시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신계(新啓)로 논할 만한 것이 아직도 많은 가운데 단지 신계이고 대론(大論)이라고만 말해놓았는데, 그것이 반드시 흉격에 대해 논하는 것인 줄 아는 것은, 신의 머리로는 미칠 수 없습니다. 혹 병이 차도가 있었을 때 밤중에 출입하였다고 한 것은, 만약 이것으로 반드시 죄목(罪目)을 삼고자 한다면, 어찌 신만이 유독 그것을 범하였겠습니까. 병이 드는 것은 무상한 것으로, 만약 병이 있다고 해서 모두 임금을 속였다고 지목한다면, 그런 논의는 아마도 폐단이 있을 듯합니다. 신이 앞서 피혐하면서도 단지 신의 생각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만 진달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저 자신을 지척하기에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간원의 장관을 배척한 것처럼 되어, 그가 이미 ‘구차스럽게 용납되어서 합사의 논의를 조절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혐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마침 불행스럽게도 병에 걸려서 많은 관원들이 피혐하게 하였는바, 그 곡절에 대해 진달드리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던 중에 들은 것은 대략 전의 피혐한 내용과 같습니다. 지금 이 흉격의 변고는 삼척동자라도 오히려 골수에 사무치는데, 신이 어떠한 사람이라고 유독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신이 본디 영의정 기자헌과 같은 동리에 살아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몇 달 동안에는 혹 서로 만나기는 하였으나 특별히 사사로이 후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역적을 국문하는 대론(大論)에 대해서, 신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 추호라도 사사로운 뜻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설령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석상(席上)에서 사의(私意)를 쓰는 것과 간통에 답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진상을 감춘 말을 슬쩍 해놓고는 그 말을 깨닫지 못한 자를 책하면서 마음을 속였다느니, 동료를 속였다느니 하고 있으니, 역시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신계(新啓)로 논할 만한 것이 아직도 많은 가운데 단지 신계이고 대론(大論)이라고만 말해놓았는데, 그것이 반드시 흉격에 대해 논하는 것인 줄 아는 것은, 신의 머리로는 미칠 수 없습니다. 혹 병이 차도가 있었을 때 밤중에 출입하였다고 한 것은, 만약 이것으로 반드시 죄목(罪目)을 삼고자 한다면, 어찌 신만이 유독 그것을 범하였겠습니까. 병이 드는 것은 무상한 것으로, 만약 병이 있다고 해서 모두 임금을 속였다고 지목한다면, 그런 논의는 아마도 폐단이 있을 듯합니다.
신이 앞서 피혐하면서도 단지 신의 생각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만 진달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저 자신을 지척하기에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간원의 장관을 배척한 것처럼 되어, 그가 이미 ‘구차스럽게 용납되어서 합사의 논의를 조절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혐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유학(幼學) 손활(孫活)·박문근(朴文謹)이 상변(上變)하여 고하기를, "신점(申漸)은 바로 원이곤(元以坤)의 삼촌 조카인데, 박문근과는 사촌간이며, 손활과 박문근이 또한 사촌간이어서 세 사람이 한곳에 같이 산 지 수십 일이 되었습니다. 화살에 글을 묶어서 투서한 다음날 가서 신점을 보니, 그가 묻기를 ‘요즈음 나라에 무슨 일이 있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별다른 일은 없다. 다만 어제 경운궁(慶運宮) 뜰안에 화살에 묶어서 투서한 변고가 있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점이 막 밥을 먹으려다가 숟가락을 내던지며 눈을 치켜뜨고 크게 놀라면서 부지불식간에 말하기를 ‘이 일은 지난 겨울에 발생되었어야 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발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박문근이 찬찬히 묻기를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하자, 신점이 비로소 깨닫고는 말을 바꾸어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박문근이 굳이 그 까닭을 묻자, 말하기를 ‘자네와 나 사이는 형제와 같이 친하니 비록 큰일이 있더라도 어찌 누설할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손공(孫公)과 나는 이름은 비록 4촌간이라 하지만 사실은 형제와 같으니 또 어찌 누설할 리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말을 듣기를 원하자, 신점이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이런 일이 어찌 일조일석에 나왔겠는가. 나의 친척이 지난 겨울에 분병조(分兵曹)의 관원이 되었는데 이런 일이 장차 일어날 것이라고 비밀히 듣고는 백방으로 체칙되기를 꾀하였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신점에게 묻기를 ‘이 일이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가?’ 하니, 신점이 말하기를 ‘어떻게 알겠는가마는 옥중에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듯하다.’ 하기에, ‘옥중의 누가 글을 잘 짓는가?’ 하니, 답하기를 ‘유생 안신언(安愼言)이란 자가 있는데, 가장 글을 잘 지으므로 지난번에 아저씨뻘인 원이곤(元以坤)이 상소할 때에도 이 사람이 지었다. 그리고 근래의 상소가 모두 이 사람의 솜씨에서 나왔으며, 이러한 따위의 글을 능히 지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손활이 그 곡절에 대해 다 들은 뒤에 박문근과 신점에게 말하기를 ‘신하로서 이런 말을 들은 뒤에는 일각이라도 지체시켜 아뢰지 않아서는 안된다. 나는 상변하고 싶다.’고 하자, 박문근이 몹시 놀라면서 말하기를 ‘신점이 우리와 서로 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런데 네가 만약 고변한다면, 그것은 인정상 차마 하지 못할 바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점이 아무말없이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하기를 ‘어찌 지금 말한 그런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옥중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 다음에야 나 역시 처치할 수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신점이 주인(主人)이 보는 그 자리에서 즉시 옥중으로 갔는데, 이른 아침에 갔다가 오후 늦게야 돌아와서는 노기가 등등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큰소리로 말하기를 ‘너희들의 목숨은 나의 손에 달려 있으며, 나의 목숨은 너희들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만약 끝까지 승복하지 않고 죽으면, 너희들은 무고죄(誣告罪)에 반좌(反坐)되어 죽을 것이니, 어찌 너희들의 목숨이 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너희들이 만약 나를 고발한다면, 내가 승복하지 않는 가운데 반드시 곤장을 맞다가 죽을 것이니, 어찌 나의 목숨이 너희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나 역시 고변하면 부귀와 영화가 당장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번옥(飜獄)되면 반드시 멸족의 화를 당할 것이다. 그러니 몇 달의 부귀영화가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너희들이 지금 비록 나를 죽이더라도 내년 봄쯤에 너희들 역시 멸족당하여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면서, 조금도 고변할 뜻이 없었습니다. 신들은 이미 이런 말을 들었으므로 감히 입다물고 있지 못하고 연명(聯名)으로 고변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 두 사람은 우선 대궐문 밖에서 명을 기다리게 하라. 그리고 신점·원이곤·안신언은 금부 도사를 보내어 잡아가두라." 하였다.
"신점(申漸)은 바로 원이곤(元以坤)의 삼촌 조카인데, 박문근과는 사촌간이며, 손활과 박문근이 또한 사촌간이어서 세 사람이 한곳에 같이 산 지 수십 일이 되었습니다. 화살에 글을 묶어서 투서한 다음날 가서 신점을 보니, 그가 묻기를 ‘요즈음 나라에 무슨 일이 있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별다른 일은 없다. 다만 어제 경운궁(慶運宮) 뜰안에 화살에 묶어서 투서한 변고가 있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점이 막 밥을 먹으려다가 숟가락을 내던지며 눈을 치켜뜨고 크게 놀라면서 부지불식간에 말하기를 ‘이 일은 지난 겨울에 발생되었어야 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발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박문근이 찬찬히 묻기를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하자, 신점이 비로소 깨닫고는 말을 바꾸어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박문근이 굳이 그 까닭을 묻자, 말하기를 ‘자네와 나 사이는 형제와 같이 친하니 비록 큰일이 있더라도 어찌 누설할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손공(孫公)과 나는 이름은 비록 4촌간이라 하지만 사실은 형제와 같으니 또 어찌 누설할 리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말을 듣기를 원하자, 신점이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이런 일이 어찌 일조일석에 나왔겠는가. 나의 친척이 지난 겨울에 분병조(分兵曹)의 관원이 되었는데 이런 일이 장차 일어날 것이라고 비밀히 듣고는 백방으로 체칙되기를 꾀하였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신점에게 묻기를 ‘이 일이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가?’ 하니, 신점이 말하기를 ‘어떻게 알겠는가마는 옥중에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듯하다.’ 하기에, ‘옥중의 누가 글을 잘 짓는가?’ 하니, 답하기를 ‘유생 안신언(安愼言)이란 자가 있는데, 가장 글을 잘 지으므로 지난번에 아저씨뻘인 원이곤(元以坤)이 상소할 때에도 이 사람이 지었다. 그리고 근래의 상소가 모두 이 사람의 솜씨에서 나왔으며, 이러한 따위의 글을 능히 지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손활이 그 곡절에 대해 다 들은 뒤에 박문근과 신점에게 말하기를 ‘신하로서 이런 말을 들은 뒤에는 일각이라도 지체시켜 아뢰지 않아서는 안된다. 나는 상변하고 싶다.’고 하자, 박문근이 몹시 놀라면서 말하기를 ‘신점이 우리와 서로 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런데 네가 만약 고변한다면, 그것은 인정상 차마 하지 못할 바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점이 아무말없이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하기를 ‘어찌 지금 말한 그런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옥중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 다음에야 나 역시 처치할 수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신점이 주인(主人)이 보는 그 자리에서 즉시 옥중으로 갔는데, 이른 아침에 갔다가 오후 늦게야 돌아와서는 노기가 등등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큰소리로 말하기를 ‘너희들의 목숨은 나의 손에 달려 있으며, 나의 목숨은 너희들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만약 끝까지 승복하지 않고 죽으면, 너희들은 무고죄(誣告罪)에 반좌(反坐)되어 죽을 것이니, 어찌 너희들의 목숨이 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너희들이 만약 나를 고발한다면, 내가 승복하지 않는 가운데 반드시 곤장을 맞다가 죽을 것이니, 어찌 나의 목숨이 너희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나 역시 고변하면 부귀와 영화가 당장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번옥(飜獄)되면 반드시 멸족의 화를 당할 것이다. 그러니 몇 달의 부귀영화가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너희들이 지금 비록 나를 죽이더라도 내년 봄쯤에 너희들 역시 멸족당하여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면서, 조금도 고변할 뜻이 없었습니다. 신들은 이미 이런 말을 들었으므로 감히 입다물고 있지 못하고 연명(聯名)으로 고변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 두 사람은 우선 대궐문 밖에서 명을 기다리게 하라. 그리고 신점·원이곤·안신언은 금부 도사를 보내어 잡아가두라."
하였다.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죄인 신점을 체포할 즈음에 가지고 있던 문서가 옷소매 속에서 떨어졌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몰래 이를 주워서 도망가려 할 때 뒤미처 붙잡아 그의 성명을 물어보니, 바로 죄인 안신언의 아들 효업(孝業)이었습니다. 그 문서를 보니, 바로 언서(諺書) 두 통이었는데, 이는 이미 봉하여 들였으며, 효업도 아울러 체포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잡아다가 가두라." 하였다.
"죄인 신점을 체포할 즈음에 가지고 있던 문서가 옷소매 속에서 떨어졌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몰래 이를 주워서 도망가려 할 때 뒤미처 붙잡아 그의 성명을 물어보니, 바로 죄인 안신언의 아들 효업(孝業)이었습니다. 그 문서를 보니, 바로 언서(諺書) 두 통이었는데, 이는 이미 봉하여 들였으며, 효업도 아울러 체포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잡아다가 가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요즈음 대신들 때문에 추국이 오랫동안 중지되었으니, 병든 죄인을 모두 일일이 살펴서 서계하라. 그리고 날씨도 추우니 구료(救療)하는 등의 일을 색승지가 각별히 신칙하여 하라."
"요즈음 대신들 때문에 추국이 오랫동안 중지되었으니, 병든 죄인을 모두 일일이 살펴서 서계하라. 그리고 날씨도 추우니 구료(救療)하는 등의 일을 색승지가 각별히 신칙하여 하라."

 

한옥(韓玉)을 헌납으로, 윤수민(尹壽民)을 예조 참판으로, 이안눌(李安訥)을 예조 참의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영평 현령(永平縣令) 허임(許任)을 양주 목사(楊州牧使)에 제수하라." 하였다.【이 때에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져 궁궐문이 시장바닥 같았으며, 내외의 관직에 빈 자리가 있으면 반드시 뇌물의 다소를 보아서 벼슬을 올리고 낮추고 하였다. 이에 이문빈(李文賓)은 서얼로서 음직(蔭職)을 받아 안주 목사(安州牧使)에 제수되었으며, 허임(許任)은 천출(賤出)로서 양주 목사에 제수되었다. 심지어는 값의 경중을 다투어, 의망한 지 한 해가 지나도록 내리지 않는 경우까지 있었는바,   동취(銅臭)의 기롱025) 이야 말할 것도 못 되었다.】


[註 025] 동취(銅臭)의 기롱 :  뇌물을 주고서 벼슬자리를 샀다는 기롱을 말함.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 최열(崔烈)이 돈을 가지고 사도(司徒)의 벼슬을 샀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미워해서 ‘동취(銅臭)’라고 칭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52 최인전(崔駰傳).
"영평 현령(永平縣令) 허임(許任)을 양주 목사(楊州牧使)에 제수하라."
하였다.【이 때에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져 궁궐문이 시장바닥 같았으며, 내외의 관직에 빈 자리가 있으면 반드시 뇌물의 다소를 보아서 벼슬을 올리고 낮추고 하였다. 이에 이문빈(李文賓)은 서얼로서 음직(蔭職)을 받아 안주 목사(安州牧使)에 제수되었으며, 허임(許任)은 천출(賤出)로서 양주 목사에 제수되었다. 심지어는 값의 경중을 다투어, 의망한 지 한 해가 지나도록 내리지 않는 경우까지 있었는바,   동취(銅臭)의 기롱025) 이야 말할 것도 못 되었다.】


[註 025] 동취(銅臭)의 기롱 :  뇌물을 주고서 벼슬자리를 샀다는 기롱을 말함.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 최열(崔烈)이 돈을 가지고 사도(司徒)의 벼슬을 샀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미워해서 ‘동취(銅臭)’라고 칭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52 최인전(崔駰傳).

 

2월 13일 무신

홍문관 전한 박정길, 교리 강인, 저작 박종주, 정자 조유선이 상차하기를, "양사가 모두 인피하고서 물러갔습니다. 지금의 이 흉격은 실로 만고에 없던 변고로, 이미 고발하여 끌어들인 사람이 있고 보면, 속히 조사해서 역모를 국문하는 체모를 중하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나라 사람들의 공공의 의논인 것입니다. 그러니 대간으로 있는 자 치고 그 누가 논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임시(臨時)하여 회피한 것은 책임이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꾸며댄 말을 가지고 자신을 지척한 것이라고 하면서 인피해서야 되겠습니까. 흉격으로 인해 국문해 조사하는 일로 서로 응답하고, 완의에 동참하여 속히 논계하고자 한 것은 깊이 언관이 논사(論事)하는 체모를 얻은 것이니, 무슨 피할 만한 혐의가 있겠습니까. 취직한 뒤에 갑자기 병을 칭탁하고 완의에 참가하지 않은 것도 이미 몹시 근거가 없는 것이며, 피혐하는 가운데 애매하고 구차스럽게 한 어긋나는 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조·김질간·임건·정도·김호·채승선·홍요검은 모두 출사시키도록 명하고, 남궁경은 체차시키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양사가 모두 인피하고서 물러갔습니다. 지금의 이 흉격은 실로 만고에 없던 변고로, 이미 고발하여 끌어들인 사람이 있고 보면, 속히 조사해서 역모를 국문하는 체모를 중하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나라 사람들의 공공의 의논인 것입니다. 그러니 대간으로 있는 자 치고 그 누가 논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임시(臨時)하여 회피한 것은 책임이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꾸며댄 말을 가지고 자신을 지척한 것이라고 하면서 인피해서야 되겠습니까.
흉격으로 인해 국문해 조사하는 일로 서로 응답하고, 완의에 동참하여 속히 논계하고자 한 것은 깊이 언관이 논사(論事)하는 체모를 얻은 것이니, 무슨 피할 만한 혐의가 있겠습니까. 취직한 뒤에 갑자기 병을 칭탁하고 완의에 참가하지 않은 것도 이미 몹시 근거가 없는 것이며, 피혐하는 가운데 애매하고 구차스럽게 한 어긋나는 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조·김질간·임건·정도·김호·채승선·홍요검은 모두 출사시키도록 명하고, 남궁경은 체차시키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도승지 한찬남(韓纘男)이 비밀히 아뢰고, 대죄하기를, "어제 고변한 사람인 손활(孫活)은 신의 여동생의 사위로 신의 조카 사위입니다. 신의 조카딸이 일찍 죽었고 손활은 공주에 살고 있어서 소식을 서로 통하지 못한 지가 5, 6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찾아와서는 얼굴빛을 바꾸고 비밀히 말하기를 ‘화살에 글을 묶어서 투서한 일에 대해 내가 박문근과 함께 무인(武人) 신점(申漸)에게서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몹시 놀라서 꾸짖기를 ‘너희들이 만약 근거없는 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모함한다면 반드시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들은 일이 십분 의심이 없다면, 너희들은 신하로서 임금을 위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 일인데, 어찌하여 고할 곳에 곧장고하지 않고 나에게 먼저 고하는가? 이 뒤로는 너와 박문근이 스스로 처리하라.’ 하였는데, 손활이 간 뒤에 이런 상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은 출신(出身)한 뒤로 십여 년 동안에 삼사(三司)에 출입하여 문사 낭청(問事郞廳)이 된 것이 1년 반이며, 해방(該房)이 된 것이 지금까지 3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유영경에서 역적 최기(崔沂)에 이르기까지 토벌한 역적이 몇 명이나 되겠으며, 여러 역적의 잔당들중에 신을 해치고자 하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지금 또 손활과 박문근이 고변하였는데, 박문근은 신이 본디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손활은 조카 사위로서 고변하였고 신은 처삼촌으로서 받아 들였으며, 또 신점의 언서(諺書)에 신의 이름을 거론하였습니다. 그러니 뒷날 신문할 즈음에 신이 손활을 추문한다면, 이것은 아저씨로서 조카를 신문하는 것이며, 조카로서 아저씨에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비단 사체가 온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뒷날에 신을 모함하는 자가 반드시 이것으로써 억지로 흠을 잡을 것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수고로운 것을 꺼려서 교묘하게 체차되고자 하는 말을 하겠습니까. 안옥(按獄)하는 사체는 지극히 엄하고도 중한 것입니다. 신은 잠시라도 그대로 해방(該房)에 있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속히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흉서에서 여러 차례 신의 이름을 거명하였기에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대의는 지극히 엄한 것이다. 안심하고 대죄하지 말고 다시 직무에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어제 고변한 사람인 손활(孫活)은 신의 여동생의 사위로 신의 조카 사위입니다. 신의 조카딸이 일찍 죽었고 손활은 공주에 살고 있어서 소식을 서로 통하지 못한 지가 5, 6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찾아와서는 얼굴빛을 바꾸고 비밀히 말하기를 ‘화살에 글을 묶어서 투서한 일에 대해 내가 박문근과 함께 무인(武人) 신점(申漸)에게서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몹시 놀라서 꾸짖기를 ‘너희들이 만약 근거없는 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모함한다면 반드시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들은 일이 십분 의심이 없다면, 너희들은 신하로서 임금을 위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 일인데, 어찌하여 고할 곳에 곧장고하지 않고 나에게 먼저 고하는가? 이 뒤로는 너와 박문근이 스스로 처리하라.’ 하였는데, 손활이 간 뒤에 이런 상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은 출신(出身)한 뒤로 십여 년 동안에 삼사(三司)에 출입하여 문사 낭청(問事郞廳)이 된 것이 1년 반이며, 해방(該房)이 된 것이 지금까지 3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유영경에서 역적 최기(崔沂)에 이르기까지 토벌한 역적이 몇 명이나 되겠으며, 여러 역적의 잔당들중에 신을 해치고자 하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지금 또 손활과 박문근이 고변하였는데, 박문근은 신이 본디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손활은 조카 사위로서 고변하였고 신은 처삼촌으로서 받아 들였으며, 또 신점의 언서(諺書)에 신의 이름을 거론하였습니다. 그러니 뒷날 신문할 즈음에 신이 손활을 추문한다면, 이것은 아저씨로서 조카를 신문하는 것이며, 조카로서 아저씨에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비단 사체가 온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뒷날에 신을 모함하는 자가 반드시 이것으로써 억지로 흠을 잡을 것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수고로운 것을 꺼려서 교묘하게 체차되고자 하는 말을 하겠습니까. 안옥(按獄)하는 사체는 지극히 엄하고도 중한 것입니다. 신은 잠시라도 그대로 해방(該房)에 있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속히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흉서에서 여러 차례 신의 이름을 거명하였기에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 대죄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대의는 지극히 엄한 것이다. 안심하고 대죄하지 말고 다시 직무에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평안병사 이시언(李時言)이 치계하였다. "건주위(建州衛)에 사는 오랑캐 나가다(羅可多) 등 11명이 귀순하여 왔습니다. 여진훈도(女眞訓導) 하세국(河世國)이 탐문해 보니, 말하기를 ‘중국인 50명이 애양보(曖陽堡) 근처에서 주철(鑄鐵)하였는데, 노추(奴酋)가 이 사실을 알고서 군사를 보내어 잡아죽였다. 이에 천조(天朝)에서도 화를 내어 향화인(向化人)을 구류시켰으며 시장(市場)을 폐지시켜버렸다. 그러자 노추가 도리어 뜻을 낮추어서 호인(胡人) 40여 명을 대신 보냈었으므로 다시 개시(開市)하도록 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지난해의 홍수는 오랑캐 지방이 더욱 심해 몹시 굶주려서 노약자들이 굶어죽었다. 이에 노추가 그들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아 떠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숫자의 오랑캐가 날마다 나올 경우 그들에게 공급해 주는 물품이 반드시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해마다 받아들이는 것도 다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니, 그간의 수용(需用)을 형세상 계속 지급해 주기 어려울 것인바, 이것이 염려됩니다. 그리고 맨몸으로 와 구걸하는 그 정상이 비록 애처롭기는 하나, 그들의 사나운 마음은 굶주린 매와 같으니, 우리가 방비하는 도리를 조금도 느슨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는 잡물(雜物)도 미리 산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지시하게 하소서."
"건주위(建州衛)에 사는 오랑캐 나가다(羅可多) 등 11명이 귀순하여 왔습니다. 여진훈도(女眞訓導) 하세국(河世國)이 탐문해 보니, 말하기를 ‘중국인 50명이 애양보(曖陽堡) 근처에서 주철(鑄鐵)하였는데, 노추(奴酋)가 이 사실을 알고서 군사를 보내어 잡아죽였다. 이에 천조(天朝)에서도 화를 내어 향화인(向化人)을 구류시켰으며 시장(市場)을 폐지시켜버렸다. 그러자 노추가 도리어 뜻을 낮추어서 호인(胡人) 40여 명을 대신 보냈었으므로 다시 개시(開市)하도록 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지난해의 홍수는 오랑캐 지방이 더욱 심해 몹시 굶주려서 노약자들이 굶어죽었다. 이에 노추가 그들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아 떠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숫자의 오랑캐가 날마다 나올 경우 그들에게 공급해 주는 물품이 반드시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해마다 받아들이는 것도 다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니, 그간의 수용(需用)을 형세상 계속 지급해 주기 어려울 것인바, 이것이 염려됩니다. 그리고 맨몸으로 와 구걸하는 그 정상이 비록 애처롭기는 하나, 그들의 사나운 마음은 굶주린 매와 같으니, 우리가 방비하는 도리를 조금도 느슨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는 잡물(雜物)도 미리 산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지시하게 하소서."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또 아뢰기를, "화살에 묶어서 투서한 변고는 전고에 없던 것으로, 오늘날 신민들이 반드시 죄인을 잡아서 그 살점을 씹어먹고자 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것은 익명서에 관계되기 때문에, 신들이 비록 속이 썩고 골수에 사무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앞뒤로 고변한 사람이 있으며, 또 이름이 나온 사람이 여러 명 있으니, 내버려 둔 채 캐묻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영의정 기자헌이 올린 차자 중에는 간인의 이름을 분명히 지적하여 이미 단서를 발하였으니, 어찌 감히 이름을 숨기겠습니까. 그리고 중한 상을 준다는 명이 이미 내려 고변이 잇따르고 있으니, 역적을 국문하는 중대한 일을 어찌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겠습니까. 더이상 시간을 지체시켜서 간사한 모의가 더욱 불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모두 잡아다 국문하도록 명하여, 속히 조사해서 죄인을 잡아내어 여러 사람들의 분노를 시원하게 씻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화살에 묶어서 투서한 변고는 전고에 없던 것으로, 오늘날 신민들이 반드시 죄인을 잡아서 그 살점을 씹어먹고자 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것은 익명서에 관계되기 때문에, 신들이 비록 속이 썩고 골수에 사무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앞뒤로 고변한 사람이 있으며, 또 이름이 나온 사람이 여러 명 있으니, 내버려 둔 채 캐묻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영의정 기자헌이 올린 차자 중에는 간인의 이름을 분명히 지적하여 이미 단서를 발하였으니, 어찌 감히 이름을 숨기겠습니까. 그리고 중한 상을 준다는 명이 이미 내려 고변이 잇따르고 있으니, 역적을 국문하는 중대한 일을 어찌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겠습니까. 더이상 시간을 지체시켜서 간사한 모의가 더욱 불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모두 잡아다 국문하도록 명하여, 속히 조사해서 죄인을 잡아내어 여러 사람들의 분노를 시원하게 씻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해서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을 개정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2월 14일 기유

영의정 기자헌이 강릉(江陵)에 있으면서 상차하였다. 신은 갑자기 망극한 말을 입었는데, 일반 관원과는 처지가 다르니, 잠시도 평인과 같이 마음 편히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또 거듭해서 의논해 아뢰라고 하셨기 때문에 부득이 적막한 시골로 내려와 목숨을 마치고자 해서, 험난한 길을 헤치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루 말할 수도 없이 갖가지 병이 일어나 형세상 이 세상에 오래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례를 치루고 나서, 좌상이 떠나간 것처럼 목욕하러 내려가겠다는 일에 대해서는, 지난 겨울에 이미 차자를 올려 진달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간인이 ‘기씨를 강제한다.’는 글을 던져 넣었는데, 이에 대해 태연스레 의계하였다가는 끝내 반드시 물의가 있겠기에 백번 생각해 보아도 온당치 못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에 그날 밤에 ‘깊은 산골짜기로 물러가 있겠다.’는 내용으로 계달하고는, 감히 그대로 있지 못하고 물러나온 것입니다. 지금 엄한 분부를 받들었으니, 대례를 치른 뒤에 비록 전날에 차자를 올린 것과 같이 다시 내려올지라도, 감히 그대로 이곳에 있지 못하겠는바, 신이 차차 올라가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좌상에게 수상 자리를 양보하는 일에 대해서 지난번에 또 상차하였기에, 현재 윤허한다는 명을 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은 갑자기 망극한 말을 입었는데, 일반 관원과는 처지가 다르니, 잠시도 평인과 같이 마음 편히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또 거듭해서 의논해 아뢰라고 하셨기 때문에 부득이 적막한 시골로 내려와 목숨을 마치고자 해서, 험난한 길을 헤치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루 말할 수도 없이 갖가지 병이 일어나 형세상 이 세상에 오래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례를 치루고 나서, 좌상이 떠나간 것처럼 목욕하러 내려가겠다는 일에 대해서는, 지난 겨울에 이미 차자를 올려 진달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간인이 ‘기씨를 강제한다.’는 글을 던져 넣었는데, 이에 대해 태연스레 의계하였다가는 끝내 반드시 물의가 있겠기에 백번 생각해 보아도 온당치 못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에 그날 밤에 ‘깊은 산골짜기로 물러가 있겠다.’는 내용으로 계달하고는, 감히 그대로 있지 못하고 물러나온 것입니다.
지금 엄한 분부를 받들었으니, 대례를 치른 뒤에 비록 전날에 차자를 올린 것과 같이 다시 내려올지라도, 감히 그대로 이곳에 있지 못하겠는바, 신이 차차 올라가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좌상에게 수상 자리를 양보하는 일에 대해서 지난번에 또 상차하였기에, 현재 윤허한다는 명을 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죄인 원이곤(元以坤) 등을 정배(定配)하라는 명이 내린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엊그제야 비로소 곤장을 치고 출발시켰습니다. 형조 당상과 색낭청이 몹시 그르니, 모두 추고하소서. 차사원(差使員)은 죄인을 압송해 감에 있어서 마땅히 급급히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적거리며 가지 않아서 죄인으로 하여금 며칠 동안 동대문 밖에 머물러 있으면서 멋대로 술을 퍼마시며 지내게 하였으니, 더더욱 놀랍습니다. 차사원을 중한 쪽으로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하다고 전교하였다.
"죄인 원이곤(元以坤) 등을 정배(定配)하라는 명이 내린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엊그제야 비로소 곤장을 치고 출발시켰습니다. 형조 당상과 색낭청이 몹시 그르니, 모두 추고하소서. 차사원(差使員)은 죄인을 압송해 감에 있어서 마땅히 급급히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적거리며 가지 않아서 죄인으로 하여금 며칠 동안 동대문 밖에 머물러 있으면서 멋대로 술을 퍼마시며 지내게 하였으니, 더더욱 놀랍습니다. 차사원을 중한 쪽으로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죄인을 정배하도록 계하(啓下)한 뒤 해조에서는 어찌 감히 여러 날 동안을 도성에 있게 내버려 두었는가. 나라에 기강이 없음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다. 형조의 색낭청을 파직하고 차사원은 잡아다 추고하라."
"죄인을 정배하도록 계하(啓下)한 뒤 해조에서는 어찌 감히 여러 날 동안을 도성에 있게 내버려 두었는가. 나라에 기강이 없음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다. 형조의 색낭청을 파직하고 차사원은 잡아다 추고하라."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사헌부가 연계하여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에 대해 개정하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동부승지 이홍주(李弘胄)가 강릉에 내려가서 영의정 기자헌에게 유시하고 회계하기를, "기자헌이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하기까지 하시니, 몹시도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신은 부득이 병을 무릅쓰고 올라가겠습니다.’고 하였는데, 차자를 갖추어서 올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신이 명을 받들고 내려오면서 거쳐온 열읍(列邑)들 중에 평창군(平昌郡)이 더욱 심하게 잔폐되었습니다. 군의 경내는 모두 큰 산과 깊은 골짜기로 온 종일 길을 가도 인적을 볼 수가 없었으니, 참으로 영서 지방의 궁벽한 곳입니다. 그 고을 백성 10여 명이 길을 막고 하소연하기를 ‘본군은 평상시에도 꼴이 말이 아닌데, 난리를 겪은 뒤로는 온 경내가 텅 비어서, 전결이 겨우 60여 결이고, 백성이 17호 밖에 안된다. 그런데 근래에 여러 도감의 별복정(別卜定)026)  이 전후로 잇달아 있어서 몇 안 되는 잔약한 백성이 형세상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답답한 정상을 성상께 진달해 주기 바란다.’ 하였습니다. 산골짜기 백성들의 정상이 참으로 가련합니다. 그리고 관가의 일을 가지고 말해보면, 원주(原州)와 강릉(江陵)은 모두 영동과 영서의 바탕이 되는 큰 고을입니다. 그런데 관속(官屬)들 가운데 조금 실한 자는 모두 공신들의 구사(丘史)에 소속되고, 단지 노약자 몇 명만 남아 있으면서 분주하게 복역(服役)하고 있어서 관가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두 고을에 의거해서 그 나머지 고을도 알 만합니다. 앞으로 또 녹훈(錄勳)하는 거조가 있을 것인데, 만약 전과 같이 정해주면 주(州)와 부(府)에 필시 일할 사람이 전혀 없게 될 것입니다. 이상의 몇 가지 조항은 연로의 가장 큰 폐단으로, 듣고본 바가 있기에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각 고을의 민폐 등에 대한 일은 각 해사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註 026] 별복정(別卜定) :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토산물(土産物)을 정례(定例)로 정해 놓고서 서울의 각 관아와 각도·각군에 바치는 것 이외에 별도로 더 바치는 것.
"기자헌이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하기까지 하시니, 몹시도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신은 부득이 병을 무릅쓰고 올라가겠습니다.’고 하였는데, 차자를 갖추어서 올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신이 명을 받들고 내려오면서 거쳐온 열읍(列邑)들 중에 평창군(平昌郡)이 더욱 심하게 잔폐되었습니다. 군의 경내는 모두 큰 산과 깊은 골짜기로 온 종일 길을 가도 인적을 볼 수가 없었으니, 참으로 영서 지방의 궁벽한 곳입니다. 그 고을 백성 10여 명이 길을 막고 하소연하기를 ‘본군은 평상시에도 꼴이 말이 아닌데, 난리를 겪은 뒤로는 온 경내가 텅 비어서, 전결이 겨우 60여 결이고, 백성이 17호 밖에 안된다. 그런데 근래에 여러 도감의 별복정(別卜定)026)  이 전후로 잇달아 있어서 몇 안 되는 잔약한 백성이 형세상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답답한 정상을 성상께 진달해 주기 바란다.’ 하였습니다. 산골짜기 백성들의 정상이 참으로 가련합니다.
그리고 관가의 일을 가지고 말해보면, 원주(原州)와 강릉(江陵)은 모두 영동과 영서의 바탕이 되는 큰 고을입니다. 그런데 관속(官屬)들 가운데 조금 실한 자는 모두 공신들의 구사(丘史)에 소속되고, 단지 노약자 몇 명만 남아 있으면서 분주하게 복역(服役)하고 있어서 관가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두 고을에 의거해서 그 나머지 고을도 알 만합니다. 앞으로 또 녹훈(錄勳)하는 거조가 있을 것인데, 만약 전과 같이 정해주면 주(州)와 부(府)에 필시 일할 사람이 전혀 없게 될 것입니다.
이상의 몇 가지 조항은 연로의 가장 큰 폐단으로, 듣고본 바가 있기에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각 고을의 민폐 등에 대한 일은 각 해사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2월 15일 경술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해서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에 대해 개정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유여각(柳汝恪)을 지평으로, 이명남(李命男)을 예조 참의로 삼았다.

 

2월 16일 신해

유학 조흡(趙洽)이 상소하여, 기자헌이 임금을 버리고 나라를 저버린 채 어려움에 임하여 도망간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고, 또 삼사가 기자헌을 비호하여 입다물고 말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였다.

 

2월 17일 임자

영의정 기자헌의 차자에 대해 답하였다. "지금 승지가 싸가지고 온 경의 차자를 보고는 경이 병을 무릅쓰고 올라온다는 것을 알았는바, 참으로 기쁘다. 경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속히 달려와서 나의 바람에 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 승지가 싸가지고 온 경의 차자를 보고는 경이 병을 무릅쓰고 올라온다는 것을 알았는바, 참으로 기쁘다. 경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속히 달려와서 나의 바람에 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2월 18일 계축

홍문관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서 세 역적 및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였다.

 

합계하여 연계해서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헤아려서 처리하였다. 굳이 고집부리지 말라. 박홍도에 대한 일은 내가 병이 회복된 뒤에 마땅히 헤아려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이미 헤아려서 처리하였다. 굳이 고집부리지 말라. 박홍도에 대한 일은 내가 병이 회복된 뒤에 마땅히 헤아려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합사해서 다시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해서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에 대해 개정하기를 청하였다. 또 아뢰기를, "양주(楊州)는 수도(首都)를 돕는 세 곳 중의 하나입니다. 지역이 넓고 사람은 많아 다스리기가 어려운 곳이어서 전부터 반드시 감당할 만한 자를 가려뽑아서 보내었는데, 이것은 나름대로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새 목사 허임(許任)은 아비는 관노(官奴)이고 어미는 사비(私婢)로, 비천한 자 중에서도 더욱 비천한 자입니다. 그런데 침술(針術)로 발신(發身)하여 녹훈되고 봉군(封君)되기까지 하였으니, 분수에 이미 넘친 것으로, 국가에서 공로에 보답함이 너무 지극한 것입니다. 선조(先祖) 때에도 마전 군수(麻田郡守)에 제수되자, 본군의 하리(下吏)들이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한 사람도 와서 맞이해 가는 사람이 없어서, 이 때문에 아뢰어 체직시켰습니다. 영평(永平)의 수령이 되어서도 제대로 하리들을 장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서울의 팔다리가 되는 이 중요한 지역이겠습니까. 속히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양근 군수(楊根郡守) 권곤(權鵾)은 사람됨이 외람되어 조금도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내려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거두어들이기에 급급해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서 갖가지로 침학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여서 서로 잇달아 흩어져 떠돌고 있습니다. 속히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근래에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사정(私情)이 기승을 부려서, 법부(法府)에서 잡아가둔 중한 죄를 지은 자를 마음대로 내놓아서 도망치게 하였으니, 몹시 한심합니다. 당초에 함부로 내보낸 전옥서 봉사 남궁명(南宮蓂)을 먼저 파직한 뒤 추고해서 뒷폐단을 막으소서.  강계(江界)는 서관(西關)의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관방(關防)의 기무가 아주 긴중한 곳입니다. 지난번에 본도의 감사가 본부(本府)가 잔폐된 것이 오로지 무장(武將)들만 차임한 데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알고서 문관을 부사로, 무관을 판관으로 차임하고자 해서 사유를 갖추어 장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사와 판관을 모두 무관으로 차출하였는바, 서로 견제해서 폐단을 바로잡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본도의 장계대로 부사를 문관으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승형(李升亨) 등의 일은 본도가 조사해서 아뢰었으며, 백성들을 위하여 맹수를 잡아죽인 공을 포상하지 않을 수 없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허임은 공이 있는 사람이고 직질도 이미 높으니 차임해 보내어도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권곤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남궁명에 대한 일은 아뢴 대로 하라. 강계 부사는 이미 가려뽑은 것이니, 그대로 보내는 것이 옳다." 하였다.
"양주(楊州)는 수도(首都)를 돕는 세 곳 중의 하나입니다. 지역이 넓고 사람은 많아 다스리기가 어려운 곳이어서 전부터 반드시 감당할 만한 자를 가려뽑아서 보내었는데, 이것은 나름대로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새 목사 허임(許任)은 아비는 관노(官奴)이고 어미는 사비(私婢)로, 비천한 자 중에서도 더욱 비천한 자입니다. 그런데 침술(針術)로 발신(發身)하여 녹훈되고 봉군(封君)되기까지 하였으니, 분수에 이미 넘친 것으로, 국가에서 공로에 보답함이 너무 지극한 것입니다. 선조(先祖) 때에도 마전 군수(麻田郡守)에 제수되자, 본군의 하리(下吏)들이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한 사람도 와서 맞이해 가는 사람이 없어서, 이 때문에 아뢰어 체직시켰습니다. 영평(永平)의 수령이 되어서도 제대로 하리들을 장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서울의 팔다리가 되는 이 중요한 지역이겠습니까. 속히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양근 군수(楊根郡守) 권곤(權鵾)은 사람됨이 외람되어 조금도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내려간 지 얼마 안 되어서 거두어들이기에 급급해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서 갖가지로 침학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하여서 서로 잇달아 흩어져 떠돌고 있습니다. 속히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근래에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사정(私情)이 기승을 부려서, 법부(法府)에서 잡아가둔 중한 죄를 지은 자를 마음대로 내놓아서 도망치게 하였으니, 몹시 한심합니다. 당초에 함부로 내보낸 전옥서 봉사 남궁명(南宮蓂)을 먼저 파직한 뒤 추고해서 뒷폐단을 막으소서.
강계(江界)는 서관(西關)의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관방(關防)의 기무가 아주 긴중한 곳입니다. 지난번에 본도의 감사가 본부(本府)가 잔폐된 것이 오로지 무장(武將)들만 차임한 데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알고서 문관을 부사로, 무관을 판관으로 차임하고자 해서 사유를 갖추어 장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사와 판관을 모두 무관으로 차출하였는바, 서로 견제해서 폐단을 바로잡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본도의 장계대로 부사를 문관으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승형(李升亨) 등의 일은 본도가 조사해서 아뢰었으며, 백성들을 위하여 맹수를 잡아죽인 공을 포상하지 않을 수 없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허임은 공이 있는 사람이고 직질도 이미 높으니 차임해 보내어도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권곤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남궁명에 대한 일은 아뢴 대로 하라. 강계 부사는 이미 가려뽑은 것이니, 그대로 보내는 것이 옳다."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상주 목사(尙州牧使) 허민(許旻)은 문음(門蔭)으로 발신(發身)하여 별로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본직에 제수되었으므로 물정이 놀랍고 괴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본주는 영남의 큰 고을로 평소에 인재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칭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관(蔭官)이 다스려서는 촉군(蜀郡)의 다스림과 같은 치적027)  을 볼 수 없으니, 인재를 기르고 성취(成就)시키는 책임을 더욱 이 사람에게 맡겨둘 수 없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그 대임자는 명망이 있는 문관으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사옹원 주부 조정순(趙廷純)은 사람됨이 간사하고 외람되어 하는 행동이 아전들과 같고 직무에 부지런하지 못해 도처에서 탐오한 짓을 하였습니다. 일찍이 선수청(繕修廳)의 감조관(監造官)이 되어서는 관가의 물품을 훔쳐내었으며, 공공연히 방납(防納)하였습니다. 벼슬아치의 반열에 그대로 끼워둘 수 없으니, 사판(仕版)에서 삭제시키소서. 북평사 오전(吳晪)은 사람됨이 조급하고 경망스러우며, 처사가 전도되었습니다. 본직을 제수받음에 미쳐서는 물정이 해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개정하도록 명하시고 그 대임자를 각별히 가려뽑아서 보내소서.  병조 좌랑 이사맹(李師孟)은 사람됨이 용렬하고 행위가 비루합니다. 전에 성균관의 장무관(掌務官)으로 있을 때 관가의 물품을 함부로 썼다가 중하게 대간의 논핵을 당하였습니다. 본직을 제수받음에 미쳐서는 물정이 해괴하게 여기고 있으니, 파직하고 천망(薦望)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사맹은 체차만 하라. 허민은 부지런하고 재주가 있으며, 이미 한 번 시험해 보아서 성과가 있었으니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조정순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오전에 대한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註 027] 치적 : 한경제(漢景帝) 때 촉군 태수(蜀郡太守)를 지낸 문옹(文翁)의 교화(敎化)를 말함. 문옹은 촉군의 태수가 되어 교화를 펼치고 학교를 일으켜 문풍(文風)을 크게 떨쳤는데, 무제(武帝) 때 온 천하에 학교를 설립한 것은 문옹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서(漢書)》 순리(循吏) 문옹전(文翁傳).
"상주 목사(尙州牧使) 허민(許旻)은 문음(門蔭)으로 발신(發身)하여 별로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본직에 제수되었으므로 물정이 놀랍고 괴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본주는 영남의 큰 고을로 평소에 인재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칭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관(蔭官)이 다스려서는 촉군(蜀郡)의 다스림과 같은 치적027)  을 볼 수 없으니, 인재를 기르고 성취(成就)시키는 책임을 더욱 이 사람에게 맡겨둘 수 없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그 대임자는 명망이 있는 문관으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사옹원 주부 조정순(趙廷純)은 사람됨이 간사하고 외람되어 하는 행동이 아전들과 같고 직무에 부지런하지 못해 도처에서 탐오한 짓을 하였습니다. 일찍이 선수청(繕修廳)의 감조관(監造官)이 되어서는 관가의 물품을 훔쳐내었으며, 공공연히 방납(防納)하였습니다. 벼슬아치의 반열에 그대로 끼워둘 수 없으니, 사판(仕版)에서 삭제시키소서.
북평사 오전(吳晪)은 사람됨이 조급하고 경망스러우며, 처사가 전도되었습니다. 본직을 제수받음에 미쳐서는 물정이 해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개정하도록 명하시고 그 대임자를 각별히 가려뽑아서 보내소서.
병조 좌랑 이사맹(李師孟)은 사람됨이 용렬하고 행위가 비루합니다. 전에 성균관의 장무관(掌務官)으로 있을 때 관가의 물품을 함부로 썼다가 중하게 대간의 논핵을 당하였습니다. 본직을 제수받음에 미쳐서는 물정이 해괴하게 여기고 있으니, 파직하고 천망(薦望)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사맹은 체차만 하라. 허민은 부지런하고 재주가 있으며, 이미 한 번 시험해 보아서 성과가 있었으니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조정순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오전에 대한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지금 이후로는 삼사의 계차(啓絓)는 유문(留門)하지 말고 일찍 입계하라. 만약 날이 저물어서 할 수가 없으면 다음날 입계하라. 이상의 일을 신명하여 거행하라."
"지금 이후로는 삼사의 계차(啓絓)는 유문(留門)하지 말고 일찍 입계하라. 만약 날이 저물어서 할 수가 없으면 다음날 입계하라. 이상의 일을 신명하여 거행하라."

 

2월 19일 갑인

우의정 한효순이 여덟 번째 정사(呈辭)하니, 답하기를, "영상이 떠나가서 국사가 위급하다. 전의 전지를 준행해서 고집부리지 말고 조리하고서 출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영상이 떠나가서 국사가 위급하다. 전의 전지를 준행해서 고집부리지 말고 조리하고서 출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사헌부가 잇달아 아뢰어, 허임을 체차하고 강계 부사(江界府使)를 문관으로 차임하고 판관을 무관으로 차임해 보내기를 청하고,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에 대해 개정하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잇달아 아뢰어 허민(許旻)을 체차하기를 청하고, 또 허임(許任)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굳이 고집부리지 말라. 허임은 공이 있는 사람이고 직질도 높으니 차임해 보내어도 무슨 손상이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굳이 고집부리지 말라. 허임은 공이 있는 사람이고 직질도 높으니 차임해 보내어도 무슨 손상이 있겠는가.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다시 아뢰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다시 아뢰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2월 20일 을묘

생원(生員) 이명(李明)이 상소하여, 속히 대계(大計)를 정하여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도망친 재상을 토죄하고 어진 정승을 불러서 어려운 시국을 타개하기를 청하였다.

 

전교하였다. "권곤에 대한 일은 본도 감사로 하여금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조정순에 대한 일은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권곤에 대한 일은 본도 감사로 하여금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조정순에 대한 일은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사헌부가 연계하여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을 개정하며, 허임을 체차하고, 강계 부사를 문관으로 차임하고 판관을 무관으로 차임하여 보내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간원이 연계하여 허민과 허임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다시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다시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2월 21일 병진

홍문관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서 세 역적과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연계하여 허임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하여,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에 대해 개정하며 허임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고, 또 이를 재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아울러 답하였다.

 

장악원(掌樂院)이 상사 아문(上司衙門)에서 기생과 악공을 침책(侵責)하는 것을 금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윤허한다. 시사(時事)가 이와 같아서 대례(大禮) 외에는 국가에서도 잔치를 벌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대부가 어찌 감히 방자하게 잔치판을 벌이는가. 일체 엄금하라. 그리고 상사 아문에서 절대로 정해 보내지 말라. 그리고 또 기생들을 면천(免賤)시키고 면역(免役)시키는 등의 일은 함부로 하지 말고 일일이 아뢴 후에 처치할 것이며, 평상시의 옛 법과 같이 착실하게 전습(傳習)시키라. 이상의 일을 상세히 살펴서 하라." 하였다.
"윤허한다. 시사(時事)가 이와 같아서 대례(大禮) 외에는 국가에서도 잔치를 벌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대부가 어찌 감히 방자하게 잔치판을 벌이는가. 일체 엄금하라. 그리고 상사 아문에서 절대로 정해 보내지 말라. 그리고 또 기생들을 면천(免賤)시키고 면역(免役)시키는 등의 일은 함부로 하지 말고 일일이 아뢴 후에 처치할 것이며, 평상시의 옛 법과 같이 착실하게 전습(傳習)시키라. 이상의 일을 상세히 살펴서 하라."
하였다.

 

2월 22일 정사

전교하였다. "조정순을 조사하여 처리할 동안에 후원(後苑)의 등촉방(燈燭房)에서 기다리게 하고, 감역관은 다른 관원으로 속히 차임해서 그로 하여금 역사를 끝내게 하라."
"조정순을 조사하여 처리할 동안에 후원(後苑)의 등촉방(燈燭房)에서 기다리게 하고, 감역관은 다른 관원으로 속히 차임해서 그로 하여금 역사를 끝내게 하라."

 

성균관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조종(祖宗)들께서 유학을 숭상하고 도를 중하게 여겨, 문묘(文廟)의 비석을 세우고 또 비각을 지어서 비바람을 가리우게 하였으니, 그 사문(斯文)을 키워준 성대한 뜻이 극진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임진년 난리에 성묘(聖廟)가 모두 불타고 비석이 부서졌는데 아직도 중건하지 못하여 이제 24년이 되었습니다. 이에 유림(儒林)이 분을 품고 있고 사기(士氣)가 삭막하니, 어찌 오늘날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유학(儒學)의 여러 생도들이 각도에 통문(通文)을 보내어 포목(布木)을 끌어모았습니다. 비록 쓰기에 충분한 양은 못 됩니다만,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하루가 급합니다. 조종조에서 창건한 본뜻을 따라서 여러 선비들의 바람을 위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현재 국가에 일이 많고 경비가 고갈되었으니 우선은 여러 도감이 정파되기를 기다려서 청(廳)을 설치해 지으라." 하였다.】
"우리 나라의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조종(祖宗)들께서 유학을 숭상하고 도를 중하게 여겨, 문묘(文廟)의 비석을 세우고 또 비각을 지어서 비바람을 가리우게 하였으니, 그 사문(斯文)을 키워준 성대한 뜻이 극진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임진년 난리에 성묘(聖廟)가 모두 불타고 비석이 부서졌는데 아직도 중건하지 못하여 이제 24년이 되었습니다. 이에 유림(儒林)이 분을 품고 있고 사기(士氣)가 삭막하니, 어찌 오늘날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유학(儒學)의 여러 생도들이 각도에 통문(通文)을 보내어 포목(布木)을 끌어모았습니다. 비록 쓰기에 충분한 양은 못 됩니다만,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하루가 급합니다. 조종조에서 창건한 본뜻을 따라서 여러 선비들의 바람을 위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현재 국가에 일이 많고 경비가 고갈되었으니 우선은 여러 도감이 정파되기를 기다려서 청(廳)을 설치해 지으라." 하였다.】

 

대사헌        남근(南瑾), 집의        김질간(金質幹), 장령        정도(鄭道)·임건(林健), 지평        변응원(邊應垣)·유여각(柳汝恪), 대사간        정조(鄭造), 사간        윤인(尹訒), 헌납        한옥(韓玉), 정언        정양윤(鄭良胤)·채승선(蔡承先)이 아뢰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국가의 대의(大義)이고 만세의 대법(大法)으로, 공론이 한번 일어나면 비록 임금이라도 그 사이에서 용서해 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세 역적이 역모를 꾸민 것이 여러 역적들의 부리가 되었는데, 합사하여 한 해가 지나도록 아뢰었으나 아직까지 윤허하지 않고 계십니다. 그리고 흉격을 던져 넣은 데 대해 고변(告變)이 잇따르고 있는데, 잡아다가 추문하기를 다시 청하였으나 아직까지 끝까지 캐묻지 않고 있습니다.  박홍도는 흉시(兇詩)를 지어 서로 화답하고 간사한 자로 하여금 상소하도록 사주하였으며, 관가의 물품을 훔쳐내었으니, 죄악이 몹시 큽니다. 그런데도 매번 천천히 결정하겠다느니 참작하여 조처하겠다느니 하는 전교를 내리십니다. 귀천군 이수의 죄악은 금산군 이성윤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며, 한층 더한 말을 하겠다는 것은 더욱더 흉악합니다. 그런데 이미 멀리 내쫓도록 명령하고서도 중지한 채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처럼 형편없는 자가 함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작상(爵賞)이 외람되고 간장(奸贓)이 낭자하기가 오늘날보다 더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도랑을 파고, 호랑이를 잡고, 도적을 잡고, 군량과 군기를 약간 마련한 무리들이, 거짓으로 속여 금관자와 옥관자로 몸을 꾸미고 있는데, 규핵(糾劾)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군졸을 침학한 변장들과 생민들을 수탈한 수령들이 공가(公家)의 물품을 빼내어 자신을 살찌우는 것이 십중 팔구인데, 비록 한둘을 들어 탄핵하지만 부질없는 말일 뿐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 같이 형편없는 자가 무릅쓰고 있는 탓입니다. 도목정(都目政)은 반드시 겨울과 여름의 마지막 달에 하도록 법전에 실려 있는바, 앞당기거나 뒤로 물려서는 안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 해가 넘도록 거행하지 않아 공로를 쌓은 사람으로 하여금 승천(陞遷)되지 못하여 답답해 하게 하고, 전최(殿最)에서 하(下)를 맞은 고을들로 하여금 수령이 없어서 폐단이 생기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조 판서는 백관(百官)을 총괄적으로 다스리고 인물을 진퇴시키니,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비워두고 차임하지 않은 지가 지금 8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또 어사(御史)는 백성들의 폐단에 대해 묻고 비리를 살피는바, 조종조 때에는 반드시 봄가을에 으레 보내었으며, 혹 수시로 보내면서 ‘순무(巡撫)’니 ‘암행(暗行)’이니 칭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고 보내지 않은 지 지금 9년이나 되었습니다. 책임상 이에 대해 진달드렸으나 역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과 같이 형편없는 자들이 무릅쓰고 자리에 있는 탓입니다.         경연(經筵)을 설치한 것은 비단 장구(章句)에 대해서 토론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반드시 의리(義理)를 강구해 연마하고 군덕(君德)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시정(時政)의 득실과 인물의 현부(賢否) 및 고금의 치란과 생민의 휴척 등에 대해 모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강(朝講)으로는 부족하여서 주강(晝講)이 있고 주강으로는 부족하여서 석강(夕講)이 있으며, 그러고도 부족하여 불시에 하는 소대(召對)와 아무 때고 하는 야대(夜對)가 있으며, 그러고서도 또 아랫사람들의 생각이 혹 전달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윤대(輪對)의 예가 있습니다. 우리 열조(列祖)들께서 종시토록 학문에 힘쓰는 생각과 치도(治道)를 묻는 정성은 참으로 후세의 임금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바입니다. 그런데 경연을 오래도록 폐지하고 신하들을 접견하는 때가 없어서 신들이 책임상 진달드려도 말이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같이 형편없는 자가 무릅쓰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기타 말할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감사·병사·수령 중에 체임된 자는 그 대임자를 마땅히 급급히 차임해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천망(薦望)된 사람을 혹 반년이 지나거나 혹 여러 달이 지나도록 안에다 머물러 두고 내리지 않아, 온갖 폐단을 말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임금은 하늘을 본받아 정사를 시행하는 법으로, 모든 거동과 호령이 반드시 사시(四時)가 일정하여서 뒤바뀌지 않는 것처럼 미더운 다음에야 백성들이 믿습니다. 그런데 정사에 고식적인 것이 많고 일 또한 구차스러우며, 거동에 일정한 규례가 없고 호령을 제때에 내리지 않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호민(李好閔)이 사신으로 가서 대답을 잘못한 데 대한 논계와 박이서(朴彛叙) 등을 조사하라는 공사에 대해 지금 3년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 이현문(李顯門)·허국(許國)·조직(趙溭) 등에 대한 옥사 역시 지금 3년이 되었는데도 처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일은 반드시 말했어야 하는 일인데도 입다물고 날짜만 보내었으니, 신들의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큽니다. 그리고 지금 조흡(趙洽)과 이명(李明)의 상소에서 잇달아 지척을 받았으니, 역시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국가의 대의(大義)이고 만세의 대법(大法)으로, 공론이 한번 일어나면 비록 임금이라도 그 사이에서 용서해 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세 역적이 역모를 꾸민 것이 여러 역적들의 부리가 되었는데, 합사하여 한 해가 지나도록 아뢰었으나 아직까지 윤허하지 않고 계십니다. 그리고 흉격을 던져 넣은 데 대해 고변(告變)이 잇따르고 있는데, 잡아다가 추문하기를 다시 청하였으나 아직까지 끝까지 캐묻지 않고 있습니다.
박홍도는 흉시(兇詩)를 지어 서로 화답하고 간사한 자로 하여금 상소하도록 사주하였으며, 관가의 물품을 훔쳐내었으니, 죄악이 몹시 큽니다. 그런데도 매번 천천히 결정하겠다느니 참작하여 조처하겠다느니 하는 전교를 내리십니다. 귀천군 이수의 죄악은 금산군 이성윤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며, 한층 더한 말을 하겠다는 것은 더욱더 흉악합니다. 그런데 이미 멀리 내쫓도록 명령하고서도 중지한 채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처럼 형편없는 자가 함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작상(爵賞)이 외람되고 간장(奸贓)이 낭자하기가 오늘날보다 더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도랑을 파고, 호랑이를 잡고, 도적을 잡고, 군량과 군기를 약간 마련한 무리들이, 거짓으로 속여 금관자와 옥관자로 몸을 꾸미고 있는데, 규핵(糾劾)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군졸을 침학한 변장들과 생민들을 수탈한 수령들이 공가(公家)의 물품을 빼내어 자신을 살찌우는 것이 십중 팔구인데, 비록 한둘을 들어 탄핵하지만 부질없는 말일 뿐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 같이 형편없는 자가 무릅쓰고 있는 탓입니다.
도목정(都目政)은 반드시 겨울과 여름의 마지막 달에 하도록 법전에 실려 있는바, 앞당기거나 뒤로 물려서는 안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 해가 넘도록 거행하지 않아 공로를 쌓은 사람으로 하여금 승천(陞遷)되지 못하여 답답해 하게 하고, 전최(殿最)에서 하(下)를 맞은 고을들로 하여금 수령이 없어서 폐단이 생기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조 판서는 백관(百官)을 총괄적으로 다스리고 인물을 진퇴시키니,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비워두고 차임하지 않은 지가 지금 8개월이나 되었습니다. 또 어사(御史)는 백성들의 폐단에 대해 묻고 비리를 살피는바, 조종조 때에는 반드시 봄가을에 으레 보내었으며, 혹 수시로 보내면서 ‘순무(巡撫)’니 ‘암행(暗行)’이니 칭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고 보내지 않은 지 지금 9년이나 되었습니다. 책임상 이에 대해 진달드렸으나 역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과 같이 형편없는 자들이 무릅쓰고 자리에 있는 탓입니다.
경연(經筵)을 설치한 것은 비단 장구(章句)에 대해서 토론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반드시 의리(義理)를 강구해 연마하고 군덕(君德)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시정(時政)의 득실과 인물의 현부(賢否) 및 고금의 치란과 생민의 휴척 등에 대해 모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강(朝講)으로는 부족하여서 주강(晝講)이 있고 주강으로는 부족하여서 석강(夕講)이 있으며, 그러고도 부족하여 불시에 하는 소대(召對)와 아무 때고 하는 야대(夜對)가 있으며, 그러고서도 또 아랫사람들의 생각이 혹 전달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윤대(輪對)의 예가 있습니다. 우리 열조(列祖)들께서 종시토록 학문에 힘쓰는 생각과 치도(治道)를 묻는 정성은 참으로 후세의 임금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바입니다. 그런데 경연을 오래도록 폐지하고 신하들을 접견하는 때가 없어서 신들이 책임상 진달드려도 말이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신들같이 형편없는 자가 무릅쓰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기타 말할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감사·병사·수령 중에 체임된 자는 그 대임자를 마땅히 급급히 차임해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천망(薦望)된 사람을 혹 반년이 지나거나 혹 여러 달이 지나도록 안에다 머물러 두고 내리지 않아, 온갖 폐단을 말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임금은 하늘을 본받아 정사를 시행하는 법으로, 모든 거동과 호령이 반드시 사시(四時)가 일정하여서 뒤바뀌지 않는 것처럼 미더운 다음에야 백성들이 믿습니다. 그런데 정사에 고식적인 것이 많고 일 또한 구차스러우며, 거동에 일정한 규례가 없고 호령을 제때에 내리지 않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호민(李好閔)이 사신으로 가서 대답을 잘못한 데 대한 논계와 박이서(朴彛叙) 등을 조사하라는 공사에 대해 지금 3년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 이현문(李顯門)·허국(許國)·조직(趙溭) 등에 대한 옥사 역시 지금 3년이 되었는데도 처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일은 반드시 말했어야 하는 일인데도 입다물고 날짜만 보내었으니, 신들의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큽니다. 그리고 지금 조흡(趙洽)과 이명(李明)의 상소에서 잇달아 지척을 받았으니, 역시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2월 23일 무오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를 모두 출사시키도록 명하기를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미시에 태백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2월 24일 기미

양사가 다시 아뢰기를, "신들이 있는 곳은 언지(言地)이고 맡고 있는 일은 언책(言責)이니, 어찌 말하는 것이 직분을 다하는 것이고, 말하지 않는 것이 직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임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성의가 부족하고 지기(志氣)가 약해서, 이미 말하였어도 과감히 말하는 충성이 없었고,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이에 명예를 탐한다는 비난과 직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기롱이 자자하기 그지없어서, 엊그제 사유를 갖추어 자핵(自劾)하여 반드시 체직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옥당에서 출사시키기를 청하여 소명(召命)이 이미 이르렀으니, 신하의 분의(分義)상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대간의 거취는 반드시 공론을 따라야 하는 법입니다.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이 모두 직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니, 물의가 시끄럽게 일어난 것이 실로 공공(公共)의 의논입니다. 신들이 아무리 얼굴을 쳐들고 취직하고자 하더라도 물의에 대해서는 어쩌겠습니까. 결단코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속히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옛사람 중에는 간초(諫草)를 불태운 자028)  도 있다. 이것은 실로 충성스러운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양사가 논한 바는, 만약 정지할 만한 것이면 나의 뜻을 잘 체득해서 정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만약 부득이해서 정지하기 어려운 일이면, 정성을 다해서 격렬히 논계하여 윤허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간 역시 신하이다. 그런데 어찌 감히 임금의 허물을 낱낱이 거론하여 하나하나 따지며 기롱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단 말인가. 내가 비록 못났기는 하지만 앉아 있는 자리가 임금자리이다. 군신간에 서로 보완해 주는 의리는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는데,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註 028] 간초(諫草)를 불태운 자 : 남조(南朝)의 송(宋)나라 사람 사홍미(謝弘微)를 말한다. 그는 왕에게 선을 권장하고 악을 못하도록 하는 때나 시사에 대해 진언할 때마다 반드시 직접 간초를 쓰고 또 그 초본을 태워버려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였다. 《남사(南史)》 권20 《사홍미전(謝弘微傳)》.
"신들이 있는 곳은 언지(言地)이고 맡고 있는 일은 언책(言責)이니, 어찌 말하는 것이 직분을 다하는 것이고, 말하지 않는 것이 직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임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성의가 부족하고 지기(志氣)가 약해서, 이미 말하였어도 과감히 말하는 충성이 없었고, 말해야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이에 명예를 탐한다는 비난과 직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기롱이 자자하기 그지없어서, 엊그제 사유를 갖추어 자핵(自劾)하여 반드시 체직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옥당에서 출사시키기를 청하여 소명(召命)이 이미 이르렀으니, 신하의 분의(分義)상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대간의 거취는 반드시 공론을 따라야 하는 법입니다.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이 모두 직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니, 물의가 시끄럽게 일어난 것이 실로 공공(公共)의 의논입니다. 신들이 아무리 얼굴을 쳐들고 취직하고자 하더라도 물의에 대해서는 어쩌겠습니까. 결단코 뻔뻔스럽게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속히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옛사람 중에는 간초(諫草)를 불태운 자028)  도 있다. 이것은 실로 충성스러운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양사가 논한 바는, 만약 정지할 만한 것이면 나의 뜻을 잘 체득해서 정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만약 부득이해서 정지하기 어려운 일이면, 정성을 다해서 격렬히 논계하여 윤허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간 역시 신하이다. 그런데 어찌 감히 임금의 허물을 낱낱이 거론하여 하나하나 따지며 기롱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단 말인가. 내가 비록 못났기는 하지만 앉아 있는 자리가 임금자리이다. 군신간에 서로 보완해 주는 의리는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는데,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교하였다. "대간의 계사는 신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귀천군 이수에 대해서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였기에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을 내렸다. 그런데 피혐한 계사 가운데 ‘이미 멀리 내쫓도록 명하고서 중지한 채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는바, 앞뒤의 계사가 같지 않으니, 그 까닭을 모르겠다. 그 사유를 상세히 물어서 아뢰라."
"대간의 계사는 신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귀천군 이수에 대해서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였기에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을 내렸다. 그런데 피혐한 계사 가운데 ‘이미 멀리 내쫓도록 명하고서 중지한 채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하였는바, 앞뒤의 계사가 같지 않으니, 그 까닭을 모르겠다. 그 사유를 상세히 물어서 아뢰라."

 

전교하였다. "영상에 대해서는 곧바로 성명을 지적해 고변한 일이 별로 없으니, 무슨 잡아다가 국문할 일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아서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들어와서 직무를 보게 해 국가의 체모를 높이라는 뜻으로 양사(兩司)에 말하라."
"영상에 대해서는 곧바로 성명을 지적해 고변한 일이 별로 없으니, 무슨 잡아다가 국문할 일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아서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들어와서 직무를 보게 해 국가의 체모를 높이라는 뜻으로 양사(兩司)에 말하라."

 

동궁이 하령(下令)하기를, "사(師)가 문 밖에 와 있다고 하니 궁관(宮官)을 보내어 위문하고, 잘 올라와서 몹시 기뻐하고 있다는 뜻을 말해 주라." 하였다. 이에 필선 유효립(柳孝立)이 즉시 하령받은 뜻으로 영의정에게 가서 전하니, 기자헌이 아뢰기를, "조금 전에 궁관을 보내어 잘 올라와서 몹시 기뻐하고 있다는 뜻으로 하령하시었는바, 신은 감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왕래하다가 마침 여러 차례 낙상(落傷)하여 원주(原州)에 도착해서는 배를 타고 올라왔으며, 잡아다가 국문하도록 청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밤낮없이 올라가서 속히 명을 기다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바람이 거꾸로 불어 배를 전진시키지 못하여 여러 날을 물 위에서 묵은 탓에 더욱더 몸을 손상시켜 현재 자리에 누워 신음하면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였는데, 알았다고 답하였다.
"사(師)가 문 밖에 와 있다고 하니 궁관(宮官)을 보내어 위문하고, 잘 올라와서 몹시 기뻐하고 있다는 뜻을 말해 주라."
하였다. 이에 필선 유효립(柳孝立)이 즉시 하령받은 뜻으로 영의정에게 가서 전하니, 기자헌이 아뢰기를,
"조금 전에 궁관을 보내어 잘 올라와서 몹시 기뻐하고 있다는 뜻으로 하령하시었는바, 신은 감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왕래하다가 마침 여러 차례 낙상(落傷)하여 원주(原州)에 도착해서는 배를 타고 올라왔으며, 잡아다가 국문하도록 청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밤낮없이 올라가서 속히 명을 기다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바람이 거꾸로 불어 배를 전진시키지 못하여 여러 날을 물 위에서 묵은 탓에 더욱더 몸을 손상시켜 현재 자리에 누워 신음하면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였는데, 알았다고 답하였다.

 

2월 25일 경신

개성부(開城府)에 사는 진사 전대년(田大年) 등이 상소하여 목청전(穆淸殿)을 중건하기를 청하였다.

 

홍문관이 상차하여 세 역적 및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고, 양사를 모두 출사시키라고 명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출사시키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박홍도에 대한 일은 마땅하게 처치할 것이니 우선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허욱 등에 대한 일은 이미 정죄(定罪)하였으니 지나치게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출사시키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박홍도에 대한 일은 마땅하게 처치할 것이니 우선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허욱 등에 대한 일은 이미 정죄(定罪)하였으니 지나치게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아홉 번째 정사하니, 답하기를, "사직장이 아홉 번째 이르니 몹시 서운하다. 대례(大禮)가 눈앞에 있고 국옥(鞫獄)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조리하고서 속히 출사해서 다시 사직하지 말아 나의 바람에 부응하라." 하였다.
"사직장이 아홉 번째 이르니 몹시 서운하다. 대례(大禮)가 눈앞에 있고 국옥(鞫獄)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조리하고서 속히 출사해서 다시 사직하지 말아 나의 바람에 부응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고 사부(師傅) 하락(河洛)의 손자 하선(河瑄)과 박광전(朴光前)의 손자 박춘수(朴春秀)에게 상당한 직을 제수하라."
"고 사부(師傅) 하락(河洛)의 손자 하선(河瑄)과 박광전(朴光前)의 손자 박춘수(朴春秀)에게 상당한 직을 제수하라."

 

전교하였다. "내가 부족한 자질로 외람되이 임금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복이 지나쳐서 화가 닥치고 이어 병이 났으며, 그런데다가 국가가 불행하여 변란이 갖가지로 일어나고 있어서 한밤중에도 이를 걱정하느라 갖가지 병이 점점 더 심해지며, 약과 침이 소용이 없어서 여러 날 동안을 앓아 누워 있다. 이에 문밖 출입을 하지 못한 채 약탕관만 바라보고 있으며, 사방을 돌아봄에 스스로 불쌍하기만 할 뿐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이 조금도 없다. 일찍이 듣건대 질병은 사람이 면키 어려운 바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양사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였으며, 심지어는 죄를 나열하면서 나의 허물을 드러내기까지 하였는바, 내가 몹시 두렵다. 그러니 참으로 입다물고 아무말없이 있는 채 나 자신을 닦으려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을 경우 정의(情宜)가 서로 미더웁게 되지 않겠기에 대략 한두 가지만 들어서 말하고자 한다. 경연을 열지 않고 대정(大政)을 지체한 것 역시 추국으로 인해 일이 많고 여러 날 동안을 앓아 눕느라 번거로움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이조 판서는 그 임무가 막중하니, 신중히 간택한들 어떻겠는가. 이것은 급박한 일이 아니다. 수령과 변장에 대한 논계는, 비록 공의(公議)라고는 하지만, 예로부터 풍문(風聞)은 으레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상세히 조사하여 처리하는 것 역시 대단한 잘못이 아니다. 세 역적이 모의한 것이 설령 죄가 중하다 하더라도 지금 이미 10년이나 지났으니 천도(天道) 역시 변하였다. 그런데 죄를 더 주자는 논의를 어디로 가 있다가 오늘날에야 비로소 발하는가. 더구나 이미 참작하여 그 죄를 더하였으니 반드시 나를 이기려는 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 심히 사의(事宜)에 합당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더욱더 격렬해져서 마치 사사로운 원수를 갚듯이 하고 있으니, 어찌 사람들의 의심이 없겠는가. 귀천군 이수와 박홍도 및 흉격(兇檄) 등에 대한 일은, 자리에 있는 대신이 없으니 위에서 비록 속히 조처하고자 하더라도 누구와 더불어 하겠는가. 도랑을 판 자 등에 대한 상은 혹 법전(法典)에 분명하게 실려 있기도 하고 혹 선조(先祖)의 옛 규례가 분명하게 있기도 하다. 그러니 공로에 보답하는 은전을 내가 어찌 아끼겠는가. 혹 사실에 어둡다는 기롱이 있더라도 거짓으로 속인 죄는 그 죄를 받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호민(李好閔)과 박이서(朴彛叙) 등에 대한 일은, 비단 추국해야 할 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근래에 나의 병으로 인하여 미처 처치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는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급한 일이 아니다. 번신(藩臣)의 천망단자(薦望單子)를 입계한 뒤, 감당할 만한 자를 잘 생각해서 가려 뽑느라 비록 지체되었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이 무심하게 그대로 지나쳐버린 것이겠는가. 어사를 보내고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천천히 의논해도 늦지 않다. 이와 같이 일이 많은 때를 당해서 이미 조도사(調度使)를 보내놓고서 또 어사를 파견할 경우, 외방(外方)에서 어떻게 수족을 놀리겠는가. 나 역시 생각이 있는 것이다. 내가 못나고 병이 많아서 일에 대해 잘못 조처하는 것이 많으니, 법을 지키고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바로잡아주는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의 사정에 대해서는 조그만치도 용서해 주지 않아서, 죄를 나열하면서 용서하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임금과 신하가 서로 아껴주는 뜻이 아닌 듯하다. 정원은 가까이 있는 신하이니, 의당 나의 사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내가 부족한 자질로 외람되이 임금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복이 지나쳐서 화가 닥치고 이어 병이 났으며, 그런데다가 국가가 불행하여 변란이 갖가지로 일어나고 있어서 한밤중에도 이를 걱정하느라 갖가지 병이 점점 더 심해지며, 약과 침이 소용이 없어서 여러 날 동안을 앓아 누워 있다. 이에 문밖 출입을 하지 못한 채 약탕관만 바라보고 있으며, 사방을 돌아봄에 스스로 불쌍하기만 할 뿐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이 조금도 없다. 일찍이 듣건대 질병은 사람이 면키 어려운 바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양사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였으며, 심지어는 죄를 나열하면서 나의 허물을 드러내기까지 하였는바, 내가 몹시 두렵다. 그러니 참으로 입다물고 아무말없이 있는 채 나 자신을 닦으려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을 경우 정의(情宜)가 서로 미더웁게 되지 않겠기에 대략 한두 가지만 들어서 말하고자 한다.
경연을 열지 않고 대정(大政)을 지체한 것 역시 추국으로 인해 일이 많고 여러 날 동안을 앓아 눕느라 번거로움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이조 판서는 그 임무가 막중하니, 신중히 간택한들 어떻겠는가. 이것은 급박한 일이 아니다. 수령과 변장에 대한 논계는, 비록 공의(公議)라고는 하지만, 예로부터 풍문(風聞)은 으레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상세히 조사하여 처리하는 것 역시 대단한 잘못이 아니다.
세 역적이 모의한 것이 설령 죄가 중하다 하더라도 지금 이미 10년이나 지났으니 천도(天道) 역시 변하였다. 그런데 죄를 더 주자는 논의를 어디로 가 있다가 오늘날에야 비로소 발하는가. 더구나 이미 참작하여 그 죄를 더하였으니 반드시 나를 이기려는 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 심히 사의(事宜)에 합당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더욱더 격렬해져서 마치 사사로운 원수를 갚듯이 하고 있으니, 어찌 사람들의 의심이 없겠는가.
귀천군 이수와 박홍도 및 흉격(兇檄) 등에 대한 일은, 자리에 있는 대신이 없으니 위에서 비록 속히 조처하고자 하더라도 누구와 더불어 하겠는가. 도랑을 판 자 등에 대한 상은 혹 법전(法典)에 분명하게 실려 있기도 하고 혹 선조(先祖)의 옛 규례가 분명하게 있기도 하다. 그러니 공로에 보답하는 은전을 내가 어찌 아끼겠는가. 혹 사실에 어둡다는 기롱이 있더라도 거짓으로 속인 죄는 그 죄를 받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호민(李好閔)과 박이서(朴彛叙) 등에 대한 일은, 비단 추국해야 할 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근래에 나의 병으로 인하여 미처 처치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는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급한 일이 아니다. 번신(藩臣)의 천망단자(薦望單子)를 입계한 뒤, 감당할 만한 자를 잘 생각해서 가려 뽑느라 비록 지체되었다 하더라도, 어찌 이것이 무심하게 그대로 지나쳐버린 것이겠는가. 어사를 보내고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천천히 의논해도 늦지 않다. 이와 같이 일이 많은 때를 당해서 이미 조도사(調度使)를 보내놓고서 또 어사를 파견할 경우, 외방(外方)에서 어떻게 수족을 놀리겠는가. 나 역시 생각이 있는 것이다.
내가 못나고 병이 많아서 일에 대해 잘못 조처하는 것이 많으니, 법을 지키고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바로잡아주는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의 사정에 대해서는 조그만치도 용서해 주지 않아서, 죄를 나열하면서 용서하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임금과 신하가 서로 아껴주는 뜻이 아닌 듯하다. 정원은 가까이 있는 신하이니, 의당 나의 사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양사가 아뢰기를, "신들은 모두 형편없는 자질로 오랫동안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단지 성상만을 믿고서 일에 따라 논열하였는데, 간혹 윤허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엊그제 번거롭게 아뢰면서 인피한 것은, 실로 구구한 충성과 애정에서 나온 것으로, 단연코 다른 속셈은 없습니다. 엄한 전지(傳旨)가 이미 내리고, 또 계속해서 내린 비망기가 모두 온당치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바, 신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돌아봄에 스스로 탄핵할 길조차 없습니다. 정성이 깊지 못하여서 이미 성상의 뜻을 돌리지 못하였으며, 말이 많아서 성상의 분부가 내리게 하였으니, 신들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서 더욱더 큽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은 모두 형편없는 자질로 오랫동안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단지 성상만을 믿고서 일에 따라 논열하였는데, 간혹 윤허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엊그제 번거롭게 아뢰면서 인피한 것은, 실로 구구한 충성과 애정에서 나온 것으로, 단연코 다른 속셈은 없습니다. 엄한 전지(傳旨)가 이미 내리고, 또 계속해서 내린 비망기가 모두 온당치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바, 신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돌아봄에 스스로 탄핵할 길조차 없습니다. 정성이 깊지 못하여서 이미 성상의 뜻을 돌리지 못하였으며, 말이 많아서 성상의 분부가 내리게 하였으니, 신들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서 더욱더 큽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연계하여 허임(許任)을 체차시키기를 청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사가 회계하기를, "정사년 정월 10일에 귀천군 이수에 대한 일을 합계하였는데, 그에 대한 비답에서 ‘귀천군 이수는 이미 멀리 내쫓았으니 잡아다가 국문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잡아다가 국문하는 일에 대해 정계(停啓)한 뒤 잡아다가 국문하지 않고 또 멀리 내쫓지도 않았기 때문에 피혐하는 계사 중에 언급한 것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정사년 정월 10일에 귀천군 이수에 대한 일을 합계하였는데, 그에 대한 비답에서 ‘귀천군 이수는 이미 멀리 내쫓았으니 잡아다가 국문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잡아다가 국문하는 일에 대해 정계(停啓)한 뒤 잡아다가 국문하지 않고 또 멀리 내쫓지도 않았기 때문에 피혐하는 계사 중에 언급한 것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하여 허임을 체차하고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며 이덕형에 대해 개정하기를 청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고, 재계하니, 아울러서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윤훤(尹暄)을 경상 감사로, 유진증(兪晉曾)을 병조 정랑으로, 유여항(柳汝恒)을 병조 좌랑으로, 박종주(朴宗胄)를 겸설서(兼說書)로, 황뉴(黃紐)를 주서로, 강수(姜燧)를 예조 좌랑으로, 정호선(丁好善)을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윤효전(尹孝全)을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삼았다.

 

2월 26일 신유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경은 훈척(勳戚)의 대신(大臣)이니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서 무슨 혐의스러워 할 일이 있겠는가.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그리고 속히 들어와서 국사에 정성을 다하여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라." 하였다.
"경은 훈척(勳戚)의 대신(大臣)이니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서 무슨 혐의스러워 할 일이 있겠는가.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그리고 속히 들어와서 국사에 정성을 다하여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라."
하였다.

 

사헌부가 연계하여 이승형을 사판에서 삭제하고 이덕형에 대해 개정하며, 허임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승형은 사판에서 삭제할 만한 무슨 죄가 있는가. 상가(賞加)만을 도로 거두라. 허임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아뢴 대로 하라. 이승형은 사판에서 삭제할 만한 무슨 죄가 있는가. 상가(賞加)만을 도로 거두라. 허임에 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참작하여 정죄하였으며, 또한 이미 상세하게 살폈다. 여러 달 동안 버티고 있으면서 거듭 번거롭게 하니,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논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재계하니, 윤허하지 않았다.
"참작하여 정죄하였으며, 또한 이미 상세하게 살폈다. 여러 달 동안 버티고 있으면서 거듭 번거롭게 하니,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논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재계하니, 윤허하지 않았다.

 

사간원이 연계하여 허임을 체차하기를 청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좌우 포도 대장이 비밀히 전교를 듣고 나갔는데, 기찰하고 체포하는 등의 일 때문이었다.

 

2월 27일 임술

시강원이 아뢰기를, "오늘 아침 왕세자가 본원에 하령(下令)하기를 ‘성상께서 이미 화란(禍亂)을 평정하였고 공성왕후(恭聖王后)를 추존(追尊)하여 이미 태묘(太廟)에 부묘(祔廟)하였으며, 또 종계(宗系)를 변무(辨誣)한 큰 경사가 있고 다시 휘호(徽號)를 받았으니, 전무후무한 신민들의 경사이다. 삼가 듣건대 옛날 중묘조(中廟朝) 때 인묘(仁廟)께서 동궁(東宮)으로 있으면서 나라의 경사를 이유로 진풍정(進豊呈)의 예를 올리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에도 이 예를 따라서 양전(兩殿)께 진하하는 것이 참으로 인정과 예문에 합당하다. 시강원에서는 나의 뜻으로 입계해서 품정(稟定)하여 거행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령(下令)한 뜻은 실로 성효(誠孝)에서 나온 것이며, 또 선조의 예전 규례도 있습니다. 그러니 양전에 진하하는 것을 예관으로 하여금 정탈해서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오늘 아침 왕세자가 본원에 하령(下令)하기를 ‘성상께서 이미 화란(禍亂)을 평정하였고 공성왕후(恭聖王后)를 추존(追尊)하여 이미 태묘(太廟)에 부묘(祔廟)하였으며, 또 종계(宗系)를 변무(辨誣)한 큰 경사가 있고 다시 휘호(徽號)를 받았으니, 전무후무한 신민들의 경사이다. 삼가 듣건대 옛날 중묘조(中廟朝) 때 인묘(仁廟)께서 동궁(東宮)으로 있으면서 나라의 경사를 이유로 진풍정(進豊呈)의 예를 올리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번에도 이 예를 따라서 양전(兩殿)께 진하하는 것이 참으로 인정과 예문에 합당하다. 시강원에서는 나의 뜻으로 입계해서 품정(稟定)하여 거행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령(下令)한 뜻은 실로 성효(誠孝)에서 나온 것이며, 또 선조의 예전 규례도 있습니다. 그러니 양전에 진하하는 것을 예관으로 하여금 정탈해서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허욱(許頊)은 선조 때의 대신으로 원흉과는 차이가 있다. 최천건(崔天健)은 기록할 만한 충성이 드러나게 있음을 내가 그 당시에 이미 알고 있었다. 별로 깊이 다스릴 만한 죄가 없다. 성영(成泳)은 이미 멀리 내쫓았으니 어찌 위리 안치까지 할 것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소요를 일으키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허욱(許頊)은 선조 때의 대신으로 원흉과는 차이가 있다. 최천건(崔天健)은 기록할 만한 충성이 드러나게 있음을 내가 그 당시에 이미 알고 있었다. 별로 깊이 다스릴 만한 죄가 없다. 성영(成泳)은 이미 멀리 내쫓았으니 어찌 위리 안치까지 할 것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소요를 일으키지 말라."
하였다. 재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요즈음 들어서 사정(私情)이 크게 승하고 공도(公道)가 씻은 듯이 없어졌는데, 이것은 오로지 조종조의 금석과 같은 법전이 한결같이 무너져서 그런 것입니다. 겨울과 여름에 전최(殿最)한 뒤 반드시 크게 정사를 행하면서 그것을 도목(都目)이라고 부른 것은 그 유래가 오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조(銓曹)에서는 으레 여러 빈 자리에 반드시 공로를 쌓고 차례가 된 자로 차례차례 천전(遷轉)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적체된 원망이 없게 하는 법입니다. 지난번의 정사(政事)에서 상께서 거하(居下)된 수령들을 모두 차출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전조에서는 혹 외관(外官)이나 전함(前亡)으로 차출하여 채워서 천전되어야 할 자가 도목 정사를 고대하고 있는데, 빈 자리가 다 차서 한 사람도 의망된 자가 없습니다. 이에 비단 오랫동안 적체되어 있는 자가 답답해 할 뿐만 아니라, 법전의 본뜻을 크게 어긴 것이니,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니 전함 및 수령으로서 외람되이 승천된 자를 일체 개정하고, 차례가 되어 마땅히 천전되어야 할 자를 시사(時仕) 날짜의 멀고 가까움을 계산해서 차차로 천전시키게 하되, 일체 유래해 온 예전 규례를 따르게 하소서. 해조(該曹)는 옛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서 정사의 체모가 전도되게 하였으니, 몹시 잘못입니다. 바라건대 당상과 색낭청을 모두 추고하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요즈음 들어서 사정(私情)이 크게 승하고 공도(公道)가 씻은 듯이 없어졌는데, 이것은 오로지 조종조의 금석과 같은 법전이 한결같이 무너져서 그런 것입니다. 겨울과 여름에 전최(殿最)한 뒤 반드시 크게 정사를 행하면서 그것을 도목(都目)이라고 부른 것은 그 유래가 오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조(銓曹)에서는 으레 여러 빈 자리에 반드시 공로를 쌓고 차례가 된 자로 차례차례 천전(遷轉)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적체된 원망이 없게 하는 법입니다.
지난번의 정사(政事)에서 상께서 거하(居下)된 수령들을 모두 차출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전조에서는 혹 외관(外官)이나 전함(前亡)으로 차출하여 채워서 천전되어야 할 자가 도목 정사를 고대하고 있는데, 빈 자리가 다 차서 한 사람도 의망된 자가 없습니다. 이에 비단 오랫동안 적체되어 있는 자가 답답해 할 뿐만 아니라, 법전의 본뜻을 크게 어긴 것이니,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니 전함 및 수령으로서 외람되이 승천된 자를 일체 개정하고, 차례가 되어 마땅히 천전되어야 할 자를 시사(時仕) 날짜의 멀고 가까움을 계산해서 차차로 천전시키게 하되, 일체 유래해 온 예전 규례를 따르게 하소서.
해조(該曹)는 옛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서 정사의 체모가 전도되게 하였으니, 몹시 잘못입니다. 바라건대 당상과 색낭청을 모두 추고하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1년에 겨울과 여름으로 양 도목(兩都目)을 하는 것은 대개 공로를 쌓고 임기가 만료된 자를 차례차례 천전시키기 위해서 설치한 것으로, 조종조의 법전은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최에서 거하(居下)된 중외의 빈자리를 한 데 모아서 대정(大政)을 하는 것을 2백 년 이래로 폐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상께서 수령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 백성들이 원망이 많은 것을 진념하여 거하(居下)된 수령들을 차출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그랬으면 해조에서는 마땅히 직책에 있는 자로 차출해서 빈 자리를 내고 이를 모아둔 채 쓰지 말았다가 차례차례 천전시키는 데 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쓰는 데 급급해서 거하된 수령뿐만 아니라 대부분 전함관(前亡官)으로 주의해서 차출하여 제수하였으며, 6품의 빈 자리도 역시 많이 차출하고서 남겨두지 않아, 임기가 만료된 참하관(參下官)으로 하여금 천전될 길이 없어서 적체된 속에서 원망을 품게 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바라건대 이조의 당상과 색낭청을 모두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1년에 겨울과 여름으로 양 도목(兩都目)을 하는 것은 대개 공로를 쌓고 임기가 만료된 자를 차례차례 천전시키기 위해서 설치한 것으로, 조종조의 법전은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최에서 거하(居下)된 중외의 빈자리를 한 데 모아서 대정(大政)을 하는 것을 2백 년 이래로 폐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상께서 수령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서 백성들이 원망이 많은 것을 진념하여 거하(居下)된 수령들을 차출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그랬으면 해조에서는 마땅히 직책에 있는 자로 차출해서 빈 자리를 내고 이를 모아둔 채 쓰지 말았다가 차례차례 천전시키는 데 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쓰는 데 급급해서 거하된 수령뿐만 아니라 대부분 전함관(前亡官)으로 주의해서 차출하여 제수하였으며, 6품의 빈 자리도 역시 많이 차출하고서 남겨두지 않아, 임기가 만료된 참하관(參下官)으로 하여금 천전될 길이 없어서 적체된 속에서 원망을 품게 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바라건대 이조의 당상과 색낭청을 모두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2월 28일 계해

전교하였다. "황학령(黃鶴齡)과 이춘기(李春起) 등은 바로 선조(先祖) 때 양경리(楊經理)가 나왔을 때 투서(投書)한 죄인이다. 그런데 지금 이미 정형(正刑)에 처하였으니 선묘(宣廟)에 고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황학령(黃鶴齡)과 이춘기(李春起) 등은 바로 선조(先祖) 때 양경리(楊經理)가 나왔을 때 투서(投書)한 죄인이다. 그런데 지금 이미 정형(正刑)에 처하였으니 선묘(宣廟)에 고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대제학 이이첨이 아뢰기를, "신은 원이곤(元以坤)과 윤선도(尹善道)의 헐뜯음을 당한 이래로 즉시 대제학에서 해임되고자 하였으며, 붓과 벼루를 불사르고 다시는 고관(考官)이 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차례 굳게 사직하였으나 모두 윤허받지 못하여서 여전히 얼굴을 들고 직무를 수행한 지 이미 몇 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지금 또 소명(召命)을 받들건대, 글의 제목을 출제하라고 하셨는바, 심혼(心魂)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간절한 마음을 굽어살피시어, 속히 문형(文衡)의 직임을 체차해서 무함하는 말이 없어지게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서 서계(書啓)하라."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절박한 심정은 이미 진달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성명(成命)을 도로 거두지 않고 계시니, 신의 답답한 마음은 더더욱 심해집니다. 바라건대 제학(提學)을 명초(命招)해서 함께 의논하여 출제하게 해 누적된 비방을 면할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이 당시에 감귤을 성균관에 하사하고서 유생들에게 제술 시험을 보인 일이 있었다.】
"신은 원이곤(元以坤)과 윤선도(尹善道)의 헐뜯음을 당한 이래로 즉시 대제학에서 해임되고자 하였으며, 붓과 벼루를 불사르고 다시는 고관(考官)이 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차례 굳게 사직하였으나 모두 윤허받지 못하여서 여전히 얼굴을 들고 직무를 수행한 지 이미 몇 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지금 또 소명(召命)을 받들건대, 글의 제목을 출제하라고 하셨는바, 심혼(心魂)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간절한 마음을 굽어살피시어, 속히 문형(文衡)의 직임을 체차해서 무함하는 말이 없어지게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서 서계(書啓)하라."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절박한 심정은 이미 진달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성명(成命)을 도로 거두지 않고 계시니, 신의 답답한 마음은 더더욱 심해집니다. 바라건대 제학(提學)을 명초(命招)해서 함께 의논하여 출제하게 해 누적된 비방을 면할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이 당시에 감귤을 성균관에 하사하고서 유생들에게 제술 시험을 보인 일이 있었다.】

 

삼청동(三淸洞)을 척간한 단자를 가지고 전교하기를, "비록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산골짜기에 잡인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으니, 어찌 활쏘기를 연습할 다른 장소가 없어서 하필 금법을 범하면서 이곳에서 활쏘기를 연습한단 말인가. 몹시 그르다. 이수생(李秀生) 등을 추고하라. 포도 군관은 금지시키지 못하였으니, 역시 몹시 마땅치 않다. 아울러 추고하라." 하였다. 【삼청동에 군사를 숨겨두었다는 설 때문에 특별히 수색해 체포하도록 한 것이다.】
"비록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산골짜기에 잡인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으니, 어찌 활쏘기를 연습할 다른 장소가 없어서 하필 금법을 범하면서 이곳에서 활쏘기를 연습한단 말인가. 몹시 그르다. 이수생(李秀生) 등을 추고하라. 포도 군관은 금지시키지 못하였으니, 역시 몹시 마땅치 않다. 아울러 추고하라."
하였다. 【삼청동에 군사를 숨겨두었다는 설 때문에 특별히 수색해 체포하도록 한 것이다.】

 

2월 29일 갑자

예조가 아뢰기를, "삼가 왕세자가 하령한 뜻을 보건대, 이처럼 전에 없던 막대한 경사를 당하여 선조조의 예전 규례에 의거하여 양전(兩殿)에게 특별히 잔치를 베풀어 주고자 하는 것은, 효성이 천성에서 나온 것이고 정례(情禮)가 모두 극진한 것입니다. 그러니 보고 듣는 자 치고 그 누가 감격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변무(卞誣)한 데 대한 상수연(上壽宴)을 5월 4일로 물려 정하였으니, 이 잔치는 그 뒤에 치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만약 제때에 거행하지 않으면 날씨가 점차 더워질 것이니 몹시 염려됩니다. 날짜를 당기고 늦추는 것을 상께서 결정해서 시행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현재 국사가 어렵고 대신이 따라주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잔치를 베풀어 즐길 때가 아닌 듯하다. 다만 생각건대, 세자가 잔치를 베풀고자 하는 것 역시 지극한 효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아뢴 대로 시행하되, 날짜는 8월 중에 가려 뽑으라." 하였다.
"삼가 왕세자가 하령한 뜻을 보건대, 이처럼 전에 없던 막대한 경사를 당하여 선조조의 예전 규례에 의거하여 양전(兩殿)에게 특별히 잔치를 베풀어 주고자 하는 것은, 효성이 천성에서 나온 것이고 정례(情禮)가 모두 극진한 것입니다. 그러니 보고 듣는 자 치고 그 누가 감격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변무(卞誣)한 데 대한 상수연(上壽宴)을 5월 4일로 물려 정하였으니, 이 잔치는 그 뒤에 치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만약 제때에 거행하지 않으면 날씨가 점차 더워질 것이니 몹시 염려됩니다. 날짜를 당기고 늦추는 것을 상께서 결정해서 시행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현재 국사가 어렵고 대신이 따라주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잔치를 베풀어 즐길 때가 아닌 듯하다. 다만 생각건대, 세자가 잔치를 베풀고자 하는 것 역시 지극한 효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아뢴 대로 시행하되, 날짜는 8월 중에 가려 뽑으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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