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11권, 광해 9년 1617년 1월

싸라리리 2026. 1. 1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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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정묘

전교하였다. "이번의 춘번자(春幡子)는 품질이 비할 데 없이 거칠어 보기에 매우 형편없다. 색관원과 하인을 각별히 중한 쪽으로 조사하고 제조도 아울러 조사하라."
"이번의 춘번자(春幡子)는 품질이 비할 데 없이 거칠어 보기에 매우 형편없다. 색관원과 하인을 각별히 중한 쪽으로 조사하고 제조도 아울러 조사하라."

 

1월 2일 무진

예조 판서 이이첨이 아뢰기를, "소신은 일생 동안에 많은 비방을 받았는데 지금 망극한 무고(誣誥)를 받았는바,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공손히 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몰래 사주함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간사하게 죄를 얽음이 계속되어 소장을 올림이 그치지 않는바, 창칼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다투겠습니까. 스스로 물러나느니만 못합니다. 지금 만약 성상의 은혜를 탐하여서 즉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혐의와 투기를 불어나게 해서 그 화가 더욱더 혹독할 것입니다. 신은 이러한 비방을 받은 뒤로 낮에는 잡인(雜人)을 경계하고 밤이면 자객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당나라의 무원형(武元衡)·배도(裵度)·이석(李石)과, 송나라의 한기(韓琦)는 모두 재덕과 명망이 있었는데도 오히려 이러한 변고를 만나 혹 죽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신과 같이 형편없는 자가 도적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나라에는 보탬이 없고 자신에게는 해만 있으니, 목숨을 보전하는 계책은 한 번 떠나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저의 하찮은 정성을 굽어살피시어 신의 본직과 겸직을 모두 체차하도록 명하여서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게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다 유시하였다. 경은 떠나가야 할 의리가 없으니 굳이 사양하지 말고 마음 편히 먹고 직무를 다하라." 하였다. 【물러나는 척하면서 진출하기를 꾀하는 것은 소인(小人)이 항상 하는 짓이다. 이이첨은 초야의 선비가 올린 항장(抗章)에 대해 분하게 여기고 임금이 혹 깨닫게 될까 염려하여 창칼이니 자객이니 하는 등의 말로 임금을 두렵게 하면서 은연중에 자신을 배도나 한기에게 비교하였다. 그러나 임금이야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나라 사람들이야 속일 수 있겠는가.】
"소신은 일생 동안에 많은 비방을 받았는데 지금 망극한 무고(誣誥)를 받았는바,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공손히 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몰래 사주함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간사하게 죄를 얽음이 계속되어 소장을 올림이 그치지 않는바, 창칼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다투겠습니까. 스스로 물러나느니만 못합니다. 지금 만약 성상의 은혜를 탐하여서 즉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혐의와 투기를 불어나게 해서 그 화가 더욱더 혹독할 것입니다.
신은 이러한 비방을 받은 뒤로 낮에는 잡인(雜人)을 경계하고 밤이면 자객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당나라의 무원형(武元衡)·배도(裵度)·이석(李石)과, 송나라의 한기(韓琦)는 모두 재덕과 명망이 있었는데도 오히려 이러한 변고를 만나 혹 죽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신과 같이 형편없는 자가 도적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나라에는 보탬이 없고 자신에게는 해만 있으니, 목숨을 보전하는 계책은 한 번 떠나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저의 하찮은 정성을 굽어살피시어 신의 본직과 겸직을 모두 체차하도록 명하여서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게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다 유시하였다. 경은 떠나가야 할 의리가 없으니 굳이 사양하지 말고 마음 편히 먹고 직무를 다하라."
하였다. 【물러나는 척하면서 진출하기를 꾀하는 것은 소인(小人)이 항상 하는 짓이다. 이이첨은 초야의 선비가 올린 항장(抗章)에 대해 분하게 여기고 임금이 혹 깨닫게 될까 염려하여 창칼이니 자객이니 하는 등의 말로 임금을 두렵게 하면서 은연중에 자신을 배도나 한기에게 비교하였다. 그러나 임금이야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나라 사람들이야 속일 수 있겠는가.】

 

도승지 한찬남(韓纘男)이 아뢰기를, "적호(賊胡) 등을 지금 유배지로 출발시켜 보내려고 하는데, 경기·공홍·전라·경상도 등을 지나갈 때 가도사(假都事)의 숫자를 적게 하여 압송해 간다면 그들이 뜻밖에 도망칠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4도의 감사에게 군인을 많이 배정하여서 경계 지점에서 서로 인수 인계를 받아 압송해 가게 하도록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 적호들을 족쇄를 채워 압송해 가되, 각 유배지에 따라 선전관(宣傳官) 및 금군(禁軍) 몇 사람을 아울러 배정해서 압송하고, 각도의 군사를 조발하여서 경계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압송해 가게 하라." 하였다.
"적호(賊胡) 등을 지금 유배지로 출발시켜 보내려고 하는데, 경기·공홍·전라·경상도 등을 지나갈 때 가도사(假都事)의 숫자를 적게 하여 압송해 간다면 그들이 뜻밖에 도망칠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4도의 감사에게 군인을 많이 배정하여서 경계 지점에서 서로 인수 인계를 받아 압송해 가게 하도록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 적호들을 족쇄를 채워 압송해 가되, 각 유배지에 따라 선전관(宣傳官) 및 금군(禁軍) 몇 사람을 아울러 배정해서 압송하고, 각도의 군사를 조발하여서 경계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압송해 가게 하라."
하였다.

 

1월 3일 기사

유학(幼學) 이인미(李仁美)가 상소하기를, "공로에 보답하는 것은 국가의 큰 정사로, 공이 없는 자가 외람되이 녹공되고 공이 있는 자가 녹공되지 못한다면 후세의 기롱을 면키가 어렵습니다. 계축년의 변고 때 원흉이 복주되고 잔당들이 죄를 받았는바, 중흥을 이룩한 성대한 공렬은 전고에 없던 것이니, 논공행상을 어찌 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김응서(金應犀)가 옥에 갇혔을 때 명문가의 자제라는 핑계로 변방으로 유배보내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이이첨과 박승종의 말에 힘입어 이 옥사를 이룰 수가 있었으니, 이 두 사람의 공은 다시 의논할 것도 없습니다. 당초에 은(銀)을 훔친 도적이 조령(鳥嶺)에 출몰하였을 때 감사 윤휘(尹暉)가 문경 현감(聞慶縣監)의 보고를 인하여서 서양갑(徐羊甲) 무리가 한 짓임을 알았고, 그들의 용모와 성명을 모두 기록해서 공문을 보내어 현상금을 걸고 체포할 즈음에 은주인(銀主人)의 동료로서 부산(釜山)에 남아 있던 자가 이를 인해서 알아차리고 대장에게 말하여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풀어 지휘한 공로가 작지 않은 듯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군관 및 은주인의 동료가 있으니, 신이 감히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김개(金闓)의 경우, 이 사람은 바로 은주인과 전부터 잘 아는 사람인데, 은주인이 피살된 뒤에 그 집 사람들이 포도청에 정소(呈訴)할 때 매번 김개에게 의논하고서 하였습니다. 이것은 은주인의 친척들이 있으니, 신이 감히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외에 박자흥(朴自興)·박안현(朴顔賢)·한찬남(韓纘男)·이창후(李昌後)·박이서(朴彛叙) 등 여러 사람들은 혹 주선한 힘이 있기도 하고 부탁한 일이 있기도 하여, 모두 공을 논의할 만한 대상입니다. 이 일은 대장 한희길(韓希吉)이 마땅히 알 것이니, 신이 감히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공훈을 감정할 때 십분 공정하게 해서 피차를 따지지 않고 애오(愛惡)에 구애됨이 없다면 중외의 사람들이 눈을 씻고 다시 볼 것입니다. 아, 무신년 이후로 녹훈에 참여된 사람이 몹시 많아서 이 뒤로부터는 국가에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사람들마다 스스로 공신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 사대부들의 무례함이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논공하면서 어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 뒷날의 비웃음을 사서야 되겠습니까. 삼가 성상께서는 잘 생각하시어 결단을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 상소는 녹훈을 감정할 때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한때의 군흉(群兇)들이 큰 옥사를 얽어 만들고는 끝내 녹훈되고자 해서 초야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거짓으로 상소를 올리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공로에 보답하는 것은 국가의 큰 정사로, 공이 없는 자가 외람되이 녹공되고 공이 있는 자가 녹공되지 못한다면 후세의 기롱을 면키가 어렵습니다. 계축년의 변고 때 원흉이 복주되고 잔당들이 죄를 받았는바, 중흥을 이룩한 성대한 공렬은 전고에 없던 것이니, 논공행상을 어찌 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김응서(金應犀)가 옥에 갇혔을 때 명문가의 자제라는 핑계로 변방으로 유배보내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이이첨과 박승종의 말에 힘입어 이 옥사를 이룰 수가 있었으니, 이 두 사람의 공은 다시 의논할 것도 없습니다. 당초에 은(銀)을 훔친 도적이 조령(鳥嶺)에 출몰하였을 때 감사 윤휘(尹暉)가 문경 현감(聞慶縣監)의 보고를 인하여서 서양갑(徐羊甲) 무리가 한 짓임을 알았고, 그들의 용모와 성명을 모두 기록해서 공문을 보내어 현상금을 걸고 체포할 즈음에 은주인(銀主人)의 동료로서 부산(釜山)에 남아 있던 자가 이를 인해서 알아차리고 대장에게 말하여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풀어 지휘한 공로가 작지 않은 듯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군관 및 은주인의 동료가 있으니, 신이 감히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김개(金闓)의 경우, 이 사람은 바로 은주인과 전부터 잘 아는 사람인데, 은주인이 피살된 뒤에 그 집 사람들이 포도청에 정소(呈訴)할 때 매번 김개에게 의논하고서 하였습니다. 이것은 은주인의 친척들이 있으니, 신이 감히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외에 박자흥(朴自興)·박안현(朴顔賢)·한찬남(韓纘男)·이창후(李昌後)·박이서(朴彛叙) 등 여러 사람들은 혹 주선한 힘이 있기도 하고 부탁한 일이 있기도 하여, 모두 공을 논의할 만한 대상입니다. 이 일은 대장 한희길(韓希吉)이 마땅히 알 것이니, 신이 감히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공훈을 감정할 때 십분 공정하게 해서 피차를 따지지 않고 애오(愛惡)에 구애됨이 없다면 중외의 사람들이 눈을 씻고 다시 볼 것입니다.
아, 무신년 이후로 녹훈에 참여된 사람이 몹시 많아서 이 뒤로부터는 국가에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사람들마다 스스로 공신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 사대부들의 무례함이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논공하면서 어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 뒷날의 비웃음을 사서야 되겠습니까. 삼가 성상께서는 잘 생각하시어 결단을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 상소는 녹훈을 감정할 때 의논해 처리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한때의 군흉(群兇)들이 큰 옥사를 얽어 만들고는 끝내 녹훈되고자 해서 초야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거짓으로 상소를 올리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사신은 논한다. 한때의 군흉(群兇)들이 큰 옥사를 얽어 만들고는 끝내 녹훈되고자 해서 초야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거짓으로 상소를 올리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남자신(南自新)의 상소에 답하였다. 【병진년 12월 24일에 상소하여, 먼저 윤유기(尹惟幾)가 파당을 결성하고 어진이를 모함한 죄를 다스리고, 다음으로 윤선도(尹善道)가 무고하여 임금을 속인 죄를 바룰 것을 청하였었다.】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조정에서 마땅히 조처할 것이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조정에서 마땅히 조처할 것이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호조가 아뢰기를, "을사년에 공안(貢案)을 고쳐 상정(詳定)할 때 간략하게 마련하였는데, 그 뒤에 용도가 날로 넓어져 1년 동안 받아들인 것을 가지고 반년도 대지 못합니다. 심지어 장흥고(長興庫)·풍저창(豊儲倉)의 각종 종이에 이르러서는, 원공(元貢)의 숫자로 몇 달의 지공(支供)도 대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러 아문의 진배(進排)는 각각 정해진 숫자가 있는데, 정해진 수 외의 진배가 끝이 없으며,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마구 매질을 가하여서, 얼마 안 되는 하인들이 가재도구를 모두 팔아서 대는데도 끝내 지탱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가고 맙니다. 이에 장흥고에는 한 장의 종이도 저축해 둔 것이 없고 사(司)에는 한 명의 하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난 7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6, 7개월 동안에 상사(上司)에 지공하는 것을 모두 본 호조에서 갖추어 납입하였는데, 전후의 것을 모두 합하면 거의 1만여 권에 이르고, 시장 사람들에게 빚을 진 종이도 얼마나 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신들이 각 고을의 공물 지가 목동(貢物紙價木同)을 가져다가 지전(紙梠)의 시장 가격으로 비교해 보니, 두 배로 마련한 외에 남은 목면이 오히려 50, 60동이나 되어 각 아문에 인정(人情)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에 신들이 지전을 방납(防納)하는 두두인(頭頭人)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양사(兩司)001)  의 공물을 너희들이 다 받아서 전과 같이 납입하고 나머지 목면을 나누어 먹으라.’고 하자, 모두들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뜻이 있었는데, 그들 중 한두 사람이 그 무리들을 금지시키면서 물러갔습니다. 대개 그들의 뜻은 공물에 대한 이익은 그들이 중간에서 독차지하고 각 아문에게 침해당하는 것은 해사(該司)가 받게 하려는 것인바, 참으로 몹시도 가증스럽습니다. 부득이 근년에 인삼을 진헌하는 규례에 의거하여 공물가목(貢物價木)을 본조에서 받아들이고, 각종의 종이를 팔기 원하는 사람에게서 사들여서 각 아문의 수요에 응한다면, 부족할 걱정이 없을 듯합니다. 이 내용으로 각도에 공문을 보내소서. 다만 방납을 하는 이러한 간사한 무리들이 이미 양쪽에게 모두 편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 이익을 독차지하지 못한 데 대해 분해 하고 있으니, 연줄을 타고 청탁을 해서 일을 무너뜨리고 저지시키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자가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적발하여 전가 정배(全家定配)시킬 것으로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또 아뢰기를, 【비변사가 복계(覆啓)한, 양호(兩湖)와 황연도(黃延道)의 월과 군기(月課軍器)를 사는 데 쓸 가미(價米)를 금년에 한해서 가져다 쓰는 데 대한 일이다.】 "허다한 쌀과 포목을 거두어 들여서 운반해 오는 등의 일은, 모름지기 특별히 경관(京官)을 파견하고 전심전력하여 감독하게 한 다음에야 능히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상호군 심눌(沈訥)은 사람됨이 부지런해서 지난해 관서(關西)에 차임해 보내었을 때 곡식을 운반한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심눌을 양호(兩湖)에 보내어 전담하여 관할하게 하되, 차관(差官)의 칭호를 주고 그대로 군직(軍職)에 부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황연도에도 부지런해서 일을 완수할 만한 사람을 가려 뽑아 심눌의 예에 의거해 출발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심눌은 거칠고 교활한 일개 천얼(賤孼)이다. 그런데 부지런하다고 칭하면서 감독하는 임무를 맡겼으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이 역시 당연하지 않겠는가.】


[註 001] 양사(兩司) : 여기서는 장흥고와 풍저창을 가리킴.
"을사년에 공안(貢案)을 고쳐 상정(詳定)할 때 간략하게 마련하였는데, 그 뒤에 용도가 날로 넓어져 1년 동안 받아들인 것을 가지고 반년도 대지 못합니다. 심지어 장흥고(長興庫)·풍저창(豊儲倉)의 각종 종이에 이르러서는, 원공(元貢)의 숫자로 몇 달의 지공(支供)도 대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러 아문의 진배(進排)는 각각 정해진 숫자가 있는데, 정해진 수 외의 진배가 끝이 없으며,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마구 매질을 가하여서, 얼마 안 되는 하인들이 가재도구를 모두 팔아서 대는데도 끝내 지탱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가고 맙니다. 이에 장흥고에는 한 장의 종이도 저축해 둔 것이 없고 사(司)에는 한 명의 하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난 7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6, 7개월 동안에 상사(上司)에 지공하는 것을 모두 본 호조에서 갖추어 납입하였는데, 전후의 것을 모두 합하면 거의 1만여 권에 이르고, 시장 사람들에게 빚을 진 종이도 얼마나 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신들이 각 고을의 공물 지가 목동(貢物紙價木同)을 가져다가 지전(紙梠)의 시장 가격으로 비교해 보니, 두 배로 마련한 외에 남은 목면이 오히려 50, 60동이나 되어 각 아문에 인정(人情)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에 신들이 지전을 방납(防納)하는 두두인(頭頭人)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양사(兩司)001)  의 공물을 너희들이 다 받아서 전과 같이 납입하고 나머지 목면을 나누어 먹으라.’고 하자, 모두들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뜻이 있었는데, 그들 중 한두 사람이 그 무리들을 금지시키면서 물러갔습니다. 대개 그들의 뜻은 공물에 대한 이익은 그들이 중간에서 독차지하고 각 아문에게 침해당하는 것은 해사(該司)가 받게 하려는 것인바, 참으로 몹시도 가증스럽습니다.
부득이 근년에 인삼을 진헌하는 규례에 의거하여 공물가목(貢物價木)을 본조에서 받아들이고, 각종의 종이를 팔기 원하는 사람에게서 사들여서 각 아문의 수요에 응한다면, 부족할 걱정이 없을 듯합니다. 이 내용으로 각도에 공문을 보내소서. 다만 방납을 하는 이러한 간사한 무리들이 이미 양쪽에게 모두 편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 이익을 독차지하지 못한 데 대해 분해 하고 있으니, 연줄을 타고 청탁을 해서 일을 무너뜨리고 저지시키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자가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적발하여 전가 정배(全家定配)시킬 것으로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또 아뢰기를, 【비변사가 복계(覆啓)한, 양호(兩湖)와 황연도(黃延道)의 월과 군기(月課軍器)를 사는 데 쓸 가미(價米)를 금년에 한해서 가져다 쓰는 데 대한 일이다.】 "허다한 쌀과 포목을 거두어 들여서 운반해 오는 등의 일은, 모름지기 특별히 경관(京官)을 파견하고 전심전력하여 감독하게 한 다음에야 능히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상호군 심눌(沈訥)은 사람됨이 부지런해서 지난해 관서(關西)에 차임해 보내었을 때 곡식을 운반한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심눌을 양호(兩湖)에 보내어 전담하여 관할하게 하되, 차관(差官)의 칭호를 주고 그대로 군직(軍職)에 부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황연도에도 부지런해서 일을 완수할 만한 사람을 가려 뽑아 심눌의 예에 의거해 출발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심눌은 거칠고 교활한 일개 천얼(賤孼)이다. 그런데 부지런하다고 칭하면서 감독하는 임무를 맡겼으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이 역시 당연하지 않겠는가.】


[註 001] 양사(兩司) : 여기서는 장흥고와 풍저창을 가리킴.
"허다한 쌀과 포목을 거두어 들여서 운반해 오는 등의 일은, 모름지기 특별히 경관(京官)을 파견하고 전심전력하여 감독하게 한 다음에야 능히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상호군 심눌(沈訥)은 사람됨이 부지런해서 지난해 관서(關西)에 차임해 보내었을 때 곡식을 운반한 것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심눌을 양호(兩湖)에 보내어 전담하여 관할하게 하되, 차관(差官)의 칭호를 주고 그대로 군직(軍職)에 부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황연도에도 부지런해서 일을 완수할 만한 사람을 가려 뽑아 심눌의 예에 의거해 출발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심눌은 거칠고 교활한 일개 천얼(賤孼)이다. 그런데 부지런하다고 칭하면서 감독하는 임무를 맡겼으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이 역시 당연하지 않겠는가.】


[註 001] 양사(兩司) : 여기서는 장흥고와 풍저창을 가리킴.
【사신은 논한다. 심눌은 거칠고 교활한 일개 천얼(賤孼)이다. 그런데 부지런하다고 칭하면서 감독하는 임무를 맡겼으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이 역시 당연하지 않겠는가.】

 

호조가 아뢰기를, 【호조 참의 장세철(張世哲)의 상소를 지난 병진년 4월 4일에 특별 전교를 인하여 입계하였었는데, 정사년 1월 3일에 비로소 내리면서 점련(粘連)하여 비변사에 계하해서 대신에게 의논하라고 판하(判下)하였다.】 "영의정은 의논드리기를 ‘나라의 재정이 이때보다 더 심하게 탕진된 적이 없는데, 선혜청이 이미 성과가 있었으니, 이 상소의 내용 역시 선혜청과 마찬가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만약 혹시라도 자질구레하게 방해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그때 가서 처리해도 됩니다. 다만 지금은 대신이 혹 외방에 있기도 하고 혹 정고(呈告) 중에 있기도 한데, 이와 같이 크게 경장(更張)하는 일은 수의(收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널리 조정의 의견을 거두어서 결정하소서. 삼가 상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은 대신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서 널리 의논을 모아 처리하라." 하였다.
"영의정은 의논드리기를 ‘나라의 재정이 이때보다 더 심하게 탕진된 적이 없는데, 선혜청이 이미 성과가 있었으니, 이 상소의 내용 역시 선혜청과 마찬가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만약 혹시라도 자질구레하게 방해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그때 가서 처리해도 됩니다. 다만 지금은 대신이 혹 외방에 있기도 하고 혹 정고(呈告) 중에 있기도 한데, 이와 같이 크게 경장(更張)하는 일은 수의(收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널리 조정의 의견을 거두어서 결정하소서. 삼가 상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은 대신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서 널리 의논을 모아 처리하라." 하였다.
하니, 전교하기를,
"우선은 대신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서 널리 의논을 모아 처리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번의 이 춘번자(春幡子)는 비단 거칠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날이 저문 후에 진배(進排)하였으며, 내전(內殿)의 소춘번자(小春幡子)는 다음날에야 비로소 들였다. 요즈음 들어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져 온갖 일이 태만스럽게 되어 절일(節日)에 진상하는 물품도 공공연히 다음날에야 진배하니, 이것은 전고에 없었던 일로 오늘날에 비로소 보게 되었는바, 몹시 놀랍고 경악스럽다. 관원들이 직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인들이 태만하여 느슨하기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으니, 당해 관원은 파직하고 하인은 수금하여 엄중하게 다스리라."
"이번의 이 춘번자(春幡子)는 비단 거칠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날이 저문 후에 진배(進排)하였으며, 내전(內殿)의 소춘번자(小春幡子)는 다음날에야 비로소 들였다. 요즈음 들어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져 온갖 일이 태만스럽게 되어 절일(節日)에 진상하는 물품도 공공연히 다음날에야 진배하니, 이것은 전고에 없었던 일로 오늘날에 비로소 보게 되었는바, 몹시 놀랍고 경악스럽다. 관원들이 직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인들이 태만하여 느슨하기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으니, 당해 관원은 파직하고 하인은 수금하여 엄중하게 다스리라."

 

1월 4일 경오

002)  평안도 관찰사 김신국(金藎國)이 장계하였다. "강변(江邊) 일대는 병영(兵營)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수령과 변장들이 마구 불법을 자행하면서 거리끼는 바가 없습니다. 예로부터 강계 부사(江界府使)와 만포 첨사(滿浦僉使)에 문관(文官)을 뽑아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억누르게 한 것은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강계 부사 안륵(安玏)의 임기가 정월에 만료되니 그 대임자를 문관 가운데 청렴하며 재간이 있는 자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동지사(冬至使) 권경우(權慶祐)가 강 건너편 수십 리 되는 곳에서 죽었으니 따라간 군관(軍官)과 자제(子弟)들은 마땅히 뒤떨어져 있다가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군관 변응관(卞應寬)·윤경인(尹敬仁)·김태영(金泰榮)과 타각 자제(打角子弟)003) 김응내(金應鼐) 등은 북경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을 이롭게 여겨, 사신의 상구(喪柩)를 내팽개친 채 부사를 따라서 무단히 들어갔으니, 몹시 놀랍습니다. 유사로 하여금 조사하여 처치하게 하소서."


[註 002]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03] 타각 자제(打角子弟) : 중국에 가는 사신 행차의 모든 물품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함. 타각부(打角夫).
평안도 관찰사 김신국(金藎國)이 장계하였다.
"강변(江邊) 일대는 병영(兵營)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수령과 변장들이 마구 불법을 자행하면서 거리끼는 바가 없습니다. 예로부터 강계 부사(江界府使)와 만포 첨사(滿浦僉使)에 문관(文官)을 뽑아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억누르게 한 것은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강계 부사 안륵(安玏)의 임기가 정월에 만료되니 그 대임자를 문관 가운데 청렴하며 재간이 있는 자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동지사(冬至使) 권경우(權慶祐)가 강 건너편 수십 리 되는 곳에서 죽었으니 따라간 군관(軍官)과 자제(子弟)들은 마땅히 뒤떨어져 있다가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군관 변응관(卞應寬)·윤경인(尹敬仁)·김태영(金泰榮)과 타각 자제(打角子弟)003) 김응내(金應鼐) 등은 북경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을 이롭게 여겨, 사신의 상구(喪柩)를 내팽개친 채 부사를 따라서 무단히 들어갔으니, 몹시 놀랍습니다. 유사로 하여금 조사하여 처치하게 하소서."

 

004)  영의정 기자헌이 아뢰기를, "신은 병세가 점점 심해져서 정사(呈辭)하고자 하였으나 대례(大禮)가 목전에 당해 있어서 감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이조의 관원이 회답사(回答使)를 차출하는 일로 왔는데, 병이 심하여서 마주 대하여 의논하지 못하고, 이조로 하여금 차출하게 할 것을 사인(舍人)을 시켜서 입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윤선도(尹善道)의 일에 있어서는, 병중에 조보(朝報) 역시 상세히 보지 못하였고, 신이 지금 병들어 죽게 되어서 또 헌의드리지 못하니, 더욱 황공스러워 두려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하여 미안스럽게 여기지 말라. 국사가 더욱 어려워지고 나 역시 병이 낫지 않고 있으니, 경은 의당 속히 조리하고서 출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영상에게 사관을 보내어 유시하라." 하였다.


[註 004]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7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영의정 기자헌이 아뢰기를,
"신은 병세가 점점 심해져서 정사(呈辭)하고자 하였으나 대례(大禮)가 목전에 당해 있어서 감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이조의 관원이 회답사(回答使)를 차출하는 일로 왔는데, 병이 심하여서 마주 대하여 의논하지 못하고, 이조로 하여금 차출하게 할 것을 사인(舍人)을 시켜서 입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윤선도(尹善道)의 일에 있어서는, 병중에 조보(朝報) 역시 상세히 보지 못하였고, 신이 지금 병들어 죽게 되어서 또 헌의드리지 못하니, 더욱 황공스러워 두려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하여 미안스럽게 여기지 말라. 국사가 더욱 어려워지고 나 역시 병이 낫지 않고 있으니, 경은 의당 속히 조리하고서 출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영상에게 사관을 보내어 유시하라."
하였다.

 

005) 호조가 아뢰기를, 【본조의 계사에 ‘국가의 경비를 오로지 전세(田稅)에만 의지하고 있으니, 조도사(調度使)를 나누어 보내어 성과를 이룩하도록 하라.’고 한 데 대한 것이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기자헌은 ‘전에 듣건대 조도사를 보내면 몹시 폐단이 있다고 하였는바, 신은 감히 가벼이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해조에서 경비가 고갈되어 이렇게 부득이한 청을 하는 것이니, 만약 행할 만한 일을 가지고 시험해 본다면 아마도 무방할 듯합니다. 대개 이것은 전곡(錢穀)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마땅히 내사(內史)에게 따져야 한다.006)  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은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정창연과 【신병을 핑계로 한번도 수의에 응하지 않았다.】 한효순(韓孝純)은 【시세에 따라 부침하였으며 건의한 바가 없었다.】  병으로 인해 수의하지 못하였습니다. 상께서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조도사를 만약 가려 뽑아 보내지 않는다면 그 폐단이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니, 청렴하고 신중하며 계려가 있는 자를 잘 가려 뽑아 보내는 것이 옳다. 다시 영상에게 물어서 잘 처리하라. 그리고 들판이 황폐된 곳은 각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친히 상세히 살펴보고 일일이 경작을 권면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개간하게 하라." 하였다.


[註 005]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8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06] 전곡(錢穀)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마땅히 내사(內史)에게 따져야 한다. : 한(漢)나라 효문 황제(孝文皇帝)가 조회 석상에서 우승상 주발(周勃)에게 "1년에 처결하는 옥사(獄事)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자, 주발이 모른다고 대답하고, 또 "1년에 전곡의 출입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자, 주발이 또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진평(陳平)에게 똑같은 내용을 묻자, 진평이 "각자 주관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다시 황제가 "주관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니, 진평이 "폐하께서 옥사를 처결하는 것을 알고자 하면 정위(廷尉)에게 물으면 되고, 전곡에 대해 알고자 하면 치속 내사(治粟內史)에게 물으면 됩니다." 하였다. 재상은 대체적인 것만 알고 있으니 세세한 것을 알고자 하면 담당관원에게 물으라는 뜻으로 쓰임. 《사기(史記)》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호조가 아뢰기를, 【본조의 계사에 ‘국가의 경비를 오로지 전세(田稅)에만 의지하고 있으니, 조도사(調度使)를 나누어 보내어 성과를 이룩하도록 하라.’고 한 데 대한 것이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기자헌은 ‘전에 듣건대 조도사를 보내면 몹시 폐단이 있다고 하였는바, 신은 감히 가벼이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해조에서 경비가 고갈되어 이렇게 부득이한 청을 하는 것이니, 만약 행할 만한 일을 가지고 시험해 본다면 아마도 무방할 듯합니다. 대개 이것은 전곡(錢穀)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마땅히 내사(內史)에게 따져야 한다.006)  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은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정창연과 【신병을 핑계로 한번도 수의에 응하지 않았다.】 한효순(韓孝純)은 【시세에 따라 부침하였으며 건의한 바가 없었다.】  병으로 인해 수의하지 못하였습니다. 상께서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조도사를 만약 가려 뽑아 보내지 않는다면 그 폐단이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니, 청렴하고 신중하며 계려가 있는 자를 잘 가려 뽑아 보내는 것이 옳다. 다시 영상에게 물어서 잘 처리하라. 그리고 들판이 황폐된 곳은 각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친히 상세히 살펴보고 일일이 경작을 권면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개간하게 하라." 하였다.


[註 005]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8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06] 전곡(錢穀)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마땅히 내사(內史)에게 따져야 한다. : 한(漢)나라 효문 황제(孝文皇帝)가 조회 석상에서 우승상 주발(周勃)에게 "1년에 처결하는 옥사(獄事)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자, 주발이 모른다고 대답하고, 또 "1년에 전곡의 출입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자, 주발이 또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진평(陳平)에게 똑같은 내용을 묻자, 진평이 "각자 주관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다시 황제가 "주관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니, 진평이 "폐하께서 옥사를 처결하는 것을 알고자 하면 정위(廷尉)에게 물으면 되고, 전곡에 대해 알고자 하면 치속 내사(治粟內史)에게 물으면 됩니다." 하였다. 재상은 대체적인 것만 알고 있으니 세세한 것을 알고자 하면 담당관원에게 물으라는 뜻으로 쓰임. 《사기(史記)》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대신에게 의논하니, 기자헌은 ‘전에 듣건대 조도사를 보내면 몹시 폐단이 있다고 하였는바, 신은 감히 가벼이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해조에서 경비가 고갈되어 이렇게 부득이한 청을 하는 것이니, 만약 행할 만한 일을 가지고 시험해 본다면 아마도 무방할 듯합니다. 대개 이것은 전곡(錢穀)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마땅히 내사(內史)에게 따져야 한다.006)  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은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정창연과 【신병을 핑계로 한번도 수의에 응하지 않았다.】 한효순(韓孝純)은 【시세에 따라 부침하였으며 건의한 바가 없었다.】  병으로 인해 수의하지 못하였습니다. 상께서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조도사를 만약 가려 뽑아 보내지 않는다면 그 폐단이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니, 청렴하고 신중하며 계려가 있는 자를 잘 가려 뽑아 보내는 것이 옳다. 다시 영상에게 물어서 잘 처리하라. 그리고 들판이 황폐된 곳은 각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친히 상세히 살펴보고 일일이 경작을 권면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개간하게 하라." 하였다.


[註 005]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8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06] 전곡(錢穀)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마땅히 내사(內史)에게 따져야 한다. : 한(漢)나라 효문 황제(孝文皇帝)가 조회 석상에서 우승상 주발(周勃)에게 "1년에 처결하는 옥사(獄事)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자, 주발이 모른다고 대답하고, 또 "1년에 전곡의 출입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자, 주발이 또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진평(陳平)에게 똑같은 내용을 묻자, 진평이 "각자 주관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다시 황제가 "주관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니, 진평이 "폐하께서 옥사를 처결하는 것을 알고자 하면 정위(廷尉)에게 물으면 되고, 전곡에 대해 알고자 하면 치속 내사(治粟內史)에게 물으면 됩니다." 하였다. 재상은 대체적인 것만 알고 있으니 세세한 것을 알고자 하면 담당관원에게 물으라는 뜻으로 쓰임. 《사기(史記)》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하니, 전교하기를,
"조도사를 만약 가려 뽑아 보내지 않는다면 그 폐단이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니, 청렴하고 신중하며 계려가 있는 자를 잘 가려 뽑아 보내는 것이 옳다. 다시 영상에게 물어서 잘 처리하라. 그리고 들판이 황폐된 곳은 각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친히 상세히 살펴보고 일일이 경작을 권면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개간하게 하라."
하였다.

 

007) 전교하기를, "윤선도를 절도(絶島)에 안치하라. 윤유기(尹惟幾)는 윤선도와는 차이가 있으니, 단지 관직만 삭탈하고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라." 하였다. 【전일의 합계(合啓)에 대해 답한 것이다.】


[註 007]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9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전교하기를, "윤선도를 절도(絶島)에 안치하라. 윤유기(尹惟幾)는 윤선도와는 차이가 있으니, 단지 관직만 삭탈하고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라." 하였다. 【전일의 합계(合啓)에 대해 답한 것이다.】


[註 007]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9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윤선도를 절도(絶島)에 안치하라. 윤유기(尹惟幾)는 윤선도와는 차이가 있으니, 단지 관직만 삭탈하고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라."
하였다. 【전일의 합계(合啓)에 대해 답한 것이다.】


[註 007]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9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008)  유학 이형(李泂)이 상소하였다. 【이형은 뒤에 이한(李瀚)으로 이름을 고쳤다.】 "삼가 신은 성세(聖世)에 태어나 맑은 교화에 흠뻑 젖어들었으니 참으로 조금이라도 보답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무릇 종묘 사직의 안위에 관계되는 일이 있는데도 조정에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으면, 그 책임은 마땅히 초야에 있는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입니다. 어찌 벼슬자리에서 떠나갔다는 핑계로 아무말도 하지 않아 우리 임금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구 주무르고 있는데, 권세가 온 나라를 기울이고 위세가 임금과 같아서 사람들이 눈짓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윤선도는 일개 서생으로서 눈으로 종사가 위태로운 것을 목격하고는 감히 피를 토하는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자 치고 그 누가 고무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모두들 성상께서 크게 용단을 내리시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이첨은 석고대죄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의 심복이 되고 도당이 된 자들 역시 두려워 떨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은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더욱더 흉악한 기세를 돋우고 있으며, 정원과 삼사의 관원 및 반궁(泮宮)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의 경우는 오로지 이이첨이 있는 줄만 알고 임금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눈을 부릅뜨고 팔을 휘두르며 거짓을 날조해 반드시 윤선도를 죽을 곳으로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는데, 급급해 하면서 혹시라도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그 마음씀씀이를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도승지 한찬남(韓纘男)과 같은 자는 그 자식이 글을 잘 못하는데도 과거에 급제하여 사람들의 말이 자자한데 또 다른 자식이 작년의 식년시(式年試)에서 급제하였으니, 이른바 ‘자표(字標)로 서로 응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두려워하며 인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그대로 있으면서도 흉억을 자행하여, 성상의 비답이 내리기도 전에 감히 흉악한 계사를 올려, 위로 임금의 뜻을 시험해보고 아래로 기치를 세울 터전을 마련하였는바, 지난날 선왕께서 ‘뒷날 조정에 서면 마음씀씀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고 하신 전교가 이에 이르러 징험된 것입니다. 아, 오늘날의 정원과 삼사는 전하의 정원과 삼사가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정원과 삼사이며, 오늘날의 반궁과 사학은 전하의 반궁과 사학이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반궁과 사학입니다. 윤선도가 이른바 ‘지금 이미 만연되었다.’고 한 것이 역시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일찌감치 도모하지 않으면 형세가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말과 생각이 이에 이르니 춥지 않은데도 몸이 떨립니다. 저 윤선도를 얽어넣으려는 자들은 비록 많은 말을 늘어놓고 있으나 그 요체는 세 가지로, 역적을 비호하였다는 것과, 행실이 더럽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릇 역적을 비호한 자는 바로 역적인 것이니, 어찌 나라를 걱정하느라 집을 잊고 임금을 사랑하느라 자신을 잊은 윤선도와 같은 자가 할 짓이겠습니까. 장식(張栻)이 말하기를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하게 간하는 자 중에서 절개를 지키고 의에 죽을 신하를 찾으라.’ 하였습니다. 윤선도는 위엄을 범하면서 권간(權奸)에 대해 과감히 말하였으니,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히 간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역적을 비호하는 짓을 어찌 이 사람이 할 바이겠습니까. 저들이 이른바 ‘역당(逆黨)에게 큰 공을 세웠다.’느니, ‘유영경을 위하여 보복할 바탕을 마련하고 김제남을 위하여 옥사를 뒤집을 계획을 꾸몄다.’느니 하는 것은, 대개 성상의 총명을 어지럽혀서 반드시 언자(言者)를 불측한 지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옛사람이 이른바 ‘임금의 허물은 말하기가 쉽지만 권신(權臣)의 허물은 말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말이 믿을 만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삼사와 정원과 관학(館學)이 이이첨을 대우하는 것이 임금을 대우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할 만하며, 이이첨의 권세가 임금의 권세보다 더하다고 할 만합니다.  이이첨의 당여들은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부려 과장(科場)에서 사사로운 짓을 한 일 등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고서 매번 ‘효우스럽고 청렴 결백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하였다.’고 하는데, 신은 몹시 괴이하게 여깁니다. 무릇 효(孝)란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데에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데에 이르는 것이니, 그의 임금 섬김이 이와 같은즉,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청렴하다는 것은 권세를 탐하지 않고 위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그의 권세를 휘두르기가 이와 같은즉, 청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 할 말이 있습니다. 설령 그가 참으로 효성스러운 행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뒤에 그것을 기릴 날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죽지도 않았는데 먼저 정문(旌門)을 세우고, 종백(宗伯)의 자리에 있으면서 또 자기의 효행을 찬술하였으니, 효란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그의 네 아들이 문명(文名)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잇달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집안이 대대로 가난하였는데 커다란 집이 줄지어 늘어섰으니, 청렴이라는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더구나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법이며 신하의 큰 의리이니, 신하로서 그 누가 정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그들이 홀로 토벌하기를 청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호역(護逆)’ 두 자로 다른 사람을 빠뜨리는 함정을 삼았습니다. 그러니 그가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 계책이라고 하면서 몰래 자기의 당파가 아닌 사람을 배척한 꾀가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신경희(申景禧)가 몰래 모의하여 역적질을 한 상황은 소명국(蘇鳴國)의 초사(招辭)에서 모두 드러났고, 대질하여 따질 때 제대로 답변을 못했으니, 그가 호역한 것은 다른 여러 역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비호해 구원해 주고 삼사가 아무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대개 이이첨이 신경희와 본디 친밀하게 지냈고, 이이첨의 아들 이름이 역적의 초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 한번 윤선도가 권간에 대해 극력 논하자 간당(姦黨)들이 죽기로 맹서하고 벌떼처럼 일어나 떠들어 대어 참혹스럽게 얽어넣음이 저와 같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성상께서 밝게 알아보심에 힘입어서 그들이 흉계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중외의 사람들이 모두들 전하께서 이미 이이첨의 죄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하면서 기쁜 낯을 하고는 서로 고하기를 ‘우리 나라가 이제 가망성이 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신의 걱정과 두려움은 전보다 더 심하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예로부터 권간은 자신의 정상에 대해 임금이 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살아날 방도를 강구해 하지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 이미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윤선도에게 죄를 내리지 않았으니, 간당의 마음이 지금 어떠하겠습니까. 신의 걱정과 두려움이 전일보다 더 심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신은 참으로 간당들이 신을 얽어넣음이 반드시 윤선도에게 한 것과 같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말하여 거리끼는 바가 없는 것은, 대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스스로 멈출 수 없고 또한 성상께서 위에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의 간절한 마음을 굽어살피시고 윤선도의 충성스러운 말을 통촉하시어, 속히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하고 흉한 기염을 더욱 돋운 죄를 바루고, 삼사와 정원·관학이 악인을 편든 죄를 다스려서 종묘 사직의 억만년토록 무궁한 아름다움이 되게 하소서."


[註 008]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0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유학 이형(李泂)이 상소하였다. 【이형은 뒤에 이한(李瀚)으로 이름을 고쳤다.】 "삼가 신은 성세(聖世)에 태어나 맑은 교화에 흠뻑 젖어들었으니 참으로 조금이라도 보답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무릇 종묘 사직의 안위에 관계되는 일이 있는데도 조정에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으면, 그 책임은 마땅히 초야에 있는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입니다. 어찌 벼슬자리에서 떠나갔다는 핑계로 아무말도 하지 않아 우리 임금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구 주무르고 있는데, 권세가 온 나라를 기울이고 위세가 임금과 같아서 사람들이 눈짓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윤선도는 일개 서생으로서 눈으로 종사가 위태로운 것을 목격하고는 감히 피를 토하는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자 치고 그 누가 고무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모두들 성상께서 크게 용단을 내리시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이첨은 석고대죄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의 심복이 되고 도당이 된 자들 역시 두려워 떨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은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더욱더 흉악한 기세를 돋우고 있으며, 정원과 삼사의 관원 및 반궁(泮宮)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의 경우는 오로지 이이첨이 있는 줄만 알고 임금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눈을 부릅뜨고 팔을 휘두르며 거짓을 날조해 반드시 윤선도를 죽을 곳으로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는데, 급급해 하면서 혹시라도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그 마음씀씀이를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도승지 한찬남(韓纘男)과 같은 자는 그 자식이 글을 잘 못하는데도 과거에 급제하여 사람들의 말이 자자한데 또 다른 자식이 작년의 식년시(式年試)에서 급제하였으니, 이른바 ‘자표(字標)로 서로 응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두려워하며 인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그대로 있으면서도 흉억을 자행하여, 성상의 비답이 내리기도 전에 감히 흉악한 계사를 올려, 위로 임금의 뜻을 시험해보고 아래로 기치를 세울 터전을 마련하였는바, 지난날 선왕께서 ‘뒷날 조정에 서면 마음씀씀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고 하신 전교가 이에 이르러 징험된 것입니다. 아, 오늘날의 정원과 삼사는 전하의 정원과 삼사가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정원과 삼사이며, 오늘날의 반궁과 사학은 전하의 반궁과 사학이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반궁과 사학입니다. 윤선도가 이른바 ‘지금 이미 만연되었다.’고 한 것이 역시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일찌감치 도모하지 않으면 형세가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말과 생각이 이에 이르니 춥지 않은데도 몸이 떨립니다. 저 윤선도를 얽어넣으려는 자들은 비록 많은 말을 늘어놓고 있으나 그 요체는 세 가지로, 역적을 비호하였다는 것과, 행실이 더럽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릇 역적을 비호한 자는 바로 역적인 것이니, 어찌 나라를 걱정하느라 집을 잊고 임금을 사랑하느라 자신을 잊은 윤선도와 같은 자가 할 짓이겠습니까. 장식(張栻)이 말하기를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하게 간하는 자 중에서 절개를 지키고 의에 죽을 신하를 찾으라.’ 하였습니다. 윤선도는 위엄을 범하면서 권간(權奸)에 대해 과감히 말하였으니,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히 간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역적을 비호하는 짓을 어찌 이 사람이 할 바이겠습니까. 저들이 이른바 ‘역당(逆黨)에게 큰 공을 세웠다.’느니, ‘유영경을 위하여 보복할 바탕을 마련하고 김제남을 위하여 옥사를 뒤집을 계획을 꾸몄다.’느니 하는 것은, 대개 성상의 총명을 어지럽혀서 반드시 언자(言者)를 불측한 지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옛사람이 이른바 ‘임금의 허물은 말하기가 쉽지만 권신(權臣)의 허물은 말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말이 믿을 만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삼사와 정원과 관학(館學)이 이이첨을 대우하는 것이 임금을 대우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할 만하며, 이이첨의 권세가 임금의 권세보다 더하다고 할 만합니다.  이이첨의 당여들은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부려 과장(科場)에서 사사로운 짓을 한 일 등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고서 매번 ‘효우스럽고 청렴 결백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하였다.’고 하는데, 신은 몹시 괴이하게 여깁니다. 무릇 효(孝)란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데에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데에 이르는 것이니, 그의 임금 섬김이 이와 같은즉,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청렴하다는 것은 권세를 탐하지 않고 위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그의 권세를 휘두르기가 이와 같은즉, 청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 할 말이 있습니다. 설령 그가 참으로 효성스러운 행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뒤에 그것을 기릴 날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죽지도 않았는데 먼저 정문(旌門)을 세우고, 종백(宗伯)의 자리에 있으면서 또 자기의 효행을 찬술하였으니, 효란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그의 네 아들이 문명(文名)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잇달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집안이 대대로 가난하였는데 커다란 집이 줄지어 늘어섰으니, 청렴이라는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더구나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법이며 신하의 큰 의리이니, 신하로서 그 누가 정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그들이 홀로 토벌하기를 청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호역(護逆)’ 두 자로 다른 사람을 빠뜨리는 함정을 삼았습니다. 그러니 그가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 계책이라고 하면서 몰래 자기의 당파가 아닌 사람을 배척한 꾀가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신경희(申景禧)가 몰래 모의하여 역적질을 한 상황은 소명국(蘇鳴國)의 초사(招辭)에서 모두 드러났고, 대질하여 따질 때 제대로 답변을 못했으니, 그가 호역한 것은 다른 여러 역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비호해 구원해 주고 삼사가 아무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대개 이이첨이 신경희와 본디 친밀하게 지냈고, 이이첨의 아들 이름이 역적의 초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 한번 윤선도가 권간에 대해 극력 논하자 간당(姦黨)들이 죽기로 맹서하고 벌떼처럼 일어나 떠들어 대어 참혹스럽게 얽어넣음이 저와 같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성상께서 밝게 알아보심에 힘입어서 그들이 흉계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중외의 사람들이 모두들 전하께서 이미 이이첨의 죄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하면서 기쁜 낯을 하고는 서로 고하기를 ‘우리 나라가 이제 가망성이 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신의 걱정과 두려움은 전보다 더 심하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예로부터 권간은 자신의 정상에 대해 임금이 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살아날 방도를 강구해 하지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 이미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윤선도에게 죄를 내리지 않았으니, 간당의 마음이 지금 어떠하겠습니까. 신의 걱정과 두려움이 전일보다 더 심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신은 참으로 간당들이 신을 얽어넣음이 반드시 윤선도에게 한 것과 같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말하여 거리끼는 바가 없는 것은, 대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스스로 멈출 수 없고 또한 성상께서 위에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의 간절한 마음을 굽어살피시고 윤선도의 충성스러운 말을 통촉하시어, 속히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하고 흉한 기염을 더욱 돋운 죄를 바루고, 삼사와 정원·관학이 악인을 편든 죄를 다스려서 종묘 사직의 억만년토록 무궁한 아름다움이 되게 하소서."


[註 008]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0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삼가 신은 성세(聖世)에 태어나 맑은 교화에 흠뻑 젖어들었으니 참으로 조금이라도 보답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무릇 종묘 사직의 안위에 관계되는 일이 있는데도 조정에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으면, 그 책임은 마땅히 초야에 있는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입니다. 어찌 벼슬자리에서 떠나갔다는 핑계로 아무말도 하지 않아 우리 임금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구 주무르고 있는데, 권세가 온 나라를 기울이고 위세가 임금과 같아서 사람들이 눈짓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윤선도는 일개 서생으로서 눈으로 종사가 위태로운 것을 목격하고는 감히 피를 토하는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자 치고 그 누가 고무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모두들 성상께서 크게 용단을 내리시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이첨은 석고대죄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의 심복이 되고 도당이 된 자들 역시 두려워 떨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은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더욱더 흉악한 기세를 돋우고 있으며, 정원과 삼사의 관원 및 반궁(泮宮)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의 경우는 오로지 이이첨이 있는 줄만 알고 임금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눈을 부릅뜨고 팔을 휘두르며 거짓을 날조해 반드시 윤선도를 죽을 곳으로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는데, 급급해 하면서 혹시라도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그 마음씀씀이를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도승지 한찬남(韓纘男)과 같은 자는 그 자식이 글을 잘 못하는데도 과거에 급제하여 사람들의 말이 자자한데 또 다른 자식이 작년의 식년시(式年試)에서 급제하였으니, 이른바 ‘자표(字標)로 서로 응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두려워하며 인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그대로 있으면서도 흉억을 자행하여, 성상의 비답이 내리기도 전에 감히 흉악한 계사를 올려, 위로 임금의 뜻을 시험해보고 아래로 기치를 세울 터전을 마련하였는바, 지난날 선왕께서 ‘뒷날 조정에 서면 마음씀씀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고 하신 전교가 이에 이르러 징험된 것입니다. 아, 오늘날의 정원과 삼사는 전하의 정원과 삼사가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정원과 삼사이며, 오늘날의 반궁과 사학은 전하의 반궁과 사학이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반궁과 사학입니다. 윤선도가 이른바 ‘지금 이미 만연되었다.’고 한 것이 역시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일찌감치 도모하지 않으면 형세가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말과 생각이 이에 이르니 춥지 않은데도 몸이 떨립니다. 저 윤선도를 얽어넣으려는 자들은 비록 많은 말을 늘어놓고 있으나 그 요체는 세 가지로, 역적을 비호하였다는 것과, 행실이 더럽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릇 역적을 비호한 자는 바로 역적인 것이니, 어찌 나라를 걱정하느라 집을 잊고 임금을 사랑하느라 자신을 잊은 윤선도와 같은 자가 할 짓이겠습니까. 장식(張栻)이 말하기를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하게 간하는 자 중에서 절개를 지키고 의에 죽을 신하를 찾으라.’ 하였습니다. 윤선도는 위엄을 범하면서 권간(權奸)에 대해 과감히 말하였으니,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히 간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역적을 비호하는 짓을 어찌 이 사람이 할 바이겠습니까. 저들이 이른바 ‘역당(逆黨)에게 큰 공을 세웠다.’느니, ‘유영경을 위하여 보복할 바탕을 마련하고 김제남을 위하여 옥사를 뒤집을 계획을 꾸몄다.’느니 하는 것은, 대개 성상의 총명을 어지럽혀서 반드시 언자(言者)를 불측한 지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옛사람이 이른바 ‘임금의 허물은 말하기가 쉽지만 권신(權臣)의 허물은 말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말이 믿을 만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삼사와 정원과 관학(館學)이 이이첨을 대우하는 것이 임금을 대우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할 만하며, 이이첨의 권세가 임금의 권세보다 더하다고 할 만합니다.  이이첨의 당여들은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부려 과장(科場)에서 사사로운 짓을 한 일 등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고서 매번 ‘효우스럽고 청렴 결백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하였다.’고 하는데, 신은 몹시 괴이하게 여깁니다. 무릇 효(孝)란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데에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데에 이르는 것이니, 그의 임금 섬김이 이와 같은즉,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청렴하다는 것은 권세를 탐하지 않고 위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그의 권세를 휘두르기가 이와 같은즉, 청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 할 말이 있습니다. 설령 그가 참으로 효성스러운 행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뒤에 그것을 기릴 날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죽지도 않았는데 먼저 정문(旌門)을 세우고, 종백(宗伯)의 자리에 있으면서 또 자기의 효행을 찬술하였으니, 효란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그의 네 아들이 문명(文名)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잇달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집안이 대대로 가난하였는데 커다란 집이 줄지어 늘어섰으니, 청렴이라는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더구나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법이며 신하의 큰 의리이니, 신하로서 그 누가 정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그들이 홀로 토벌하기를 청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호역(護逆)’ 두 자로 다른 사람을 빠뜨리는 함정을 삼았습니다. 그러니 그가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 계책이라고 하면서 몰래 자기의 당파가 아닌 사람을 배척한 꾀가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신경희(申景禧)가 몰래 모의하여 역적질을 한 상황은 소명국(蘇鳴國)의 초사(招辭)에서 모두 드러났고, 대질하여 따질 때 제대로 답변을 못했으니, 그가 호역한 것은 다른 여러 역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비호해 구원해 주고 삼사가 아무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대개 이이첨이 신경희와 본디 친밀하게 지냈고, 이이첨의 아들 이름이 역적의 초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 한번 윤선도가 권간에 대해 극력 논하자 간당(姦黨)들이 죽기로 맹서하고 벌떼처럼 일어나 떠들어 대어 참혹스럽게 얽어넣음이 저와 같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성상께서 밝게 알아보심에 힘입어서 그들이 흉계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중외의 사람들이 모두들 전하께서 이미 이이첨의 죄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하면서 기쁜 낯을 하고는 서로 고하기를 ‘우리 나라가 이제 가망성이 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신의 걱정과 두려움은 전보다 더 심하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예로부터 권간은 자신의 정상에 대해 임금이 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살아날 방도를 강구해 하지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 이미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윤선도에게 죄를 내리지 않았으니, 간당의 마음이 지금 어떠하겠습니까. 신의 걱정과 두려움이 전일보다 더 심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신은 참으로 간당들이 신을 얽어넣음이 반드시 윤선도에게 한 것과 같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말하여 거리끼는 바가 없는 것은, 대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스스로 멈출 수 없고 또한 성상께서 위에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의 간절한 마음을 굽어살피시고 윤선도의 충성스러운 말을 통촉하시어, 속히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하고 흉한 기염을 더욱 돋운 죄를 바루고, 삼사와 정원·관학이 악인을 편든 죄를 다스려서 종묘 사직의 억만년토록 무궁한 아름다움이 되게 하소서."


[註 008]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0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예조 판서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구 주무르고 있는데, 권세가 온 나라를 기울이고 위세가 임금과 같아서 사람들이 눈짓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윤선도는 일개 서생으로서 눈으로 종사가 위태로운 것을 목격하고는 감히 피를 토하는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자 치고 그 누가 고무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모두들 성상께서 크게 용단을 내리시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이첨은 석고대죄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의 심복이 되고 도당이 된 자들 역시 두려워 떨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첨은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더욱더 흉악한 기세를 돋우고 있으며, 정원과 삼사의 관원 및 반궁(泮宮)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의 경우는 오로지 이이첨이 있는 줄만 알고 임금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눈을 부릅뜨고 팔을 휘두르며 거짓을 날조해 반드시 윤선도를 죽을 곳으로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는데, 급급해 하면서 혹시라도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그 마음씀씀이를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도승지 한찬남(韓纘男)과 같은 자는 그 자식이 글을 잘 못하는데도 과거에 급제하여 사람들의 말이 자자한데 또 다른 자식이 작년의 식년시(式年試)에서 급제하였으니, 이른바 ‘자표(字標)로 서로 응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두려워하며 인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그대로 있으면서도 흉억을 자행하여, 성상의 비답이 내리기도 전에 감히 흉악한 계사를 올려, 위로 임금의 뜻을 시험해보고 아래로 기치를 세울 터전을 마련하였는바, 지난날 선왕께서 ‘뒷날 조정에 서면 마음씀씀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고 하신 전교가 이에 이르러 징험된 것입니다.
아, 오늘날의 정원과 삼사는 전하의 정원과 삼사가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정원과 삼사이며, 오늘날의 반궁과 사학은 전하의 반궁과 사학이 아니라, 바로 이이첨의 반궁과 사학입니다. 윤선도가 이른바 ‘지금 이미 만연되었다.’고 한 것이 역시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일찌감치 도모하지 않으면 형세가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말과 생각이 이에 이르니 춥지 않은데도 몸이 떨립니다.
저 윤선도를 얽어넣으려는 자들은 비록 많은 말을 늘어놓고 있으나 그 요체는 세 가지로, 역적을 비호하였다는 것과, 행실이 더럽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릇 역적을 비호한 자는 바로 역적인 것이니, 어찌 나라를 걱정하느라 집을 잊고 임금을 사랑하느라 자신을 잊은 윤선도와 같은 자가 할 짓이겠습니까. 장식(張栻)이 말하기를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하게 간하는 자 중에서 절개를 지키고 의에 죽을 신하를 찾으라.’ 하였습니다. 윤선도는 위엄을 범하면서 권간(權奸)에 대해 과감히 말하였으니, 임금의 위엄을 범하면서 과감히 간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역적을 비호하는 짓을 어찌 이 사람이 할 바이겠습니까.
저들이 이른바 ‘역당(逆黨)에게 큰 공을 세웠다.’느니, ‘유영경을 위하여 보복할 바탕을 마련하고 김제남을 위하여 옥사를 뒤집을 계획을 꾸몄다.’느니 하는 것은, 대개 성상의 총명을 어지럽혀서 반드시 언자(言者)를 불측한 지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옛사람이 이른바 ‘임금의 허물은 말하기가 쉽지만 권신(權臣)의 허물은 말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말이 믿을 만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삼사와 정원과 관학(館學)이 이이첨을 대우하는 것이 임금을 대우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할 만하며, 이이첨의 권세가 임금의 권세보다 더하다고 할 만합니다.
이이첨의 당여들은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부려 과장(科場)에서 사사로운 짓을 한 일 등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고서 매번 ‘효우스럽고 청렴 결백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하였다.’고 하는데, 신은 몹시 괴이하게 여깁니다.
무릇 효(孝)란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데에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데에 이르는 것이니, 그의 임금 섬김이 이와 같은즉,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청렴하다는 것은 권세를 탐하지 않고 위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그의 권세를 휘두르기가 이와 같은즉, 청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 할 말이 있습니다. 설령 그가 참으로 효성스러운 행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뒤에 그것을 기릴 날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죽지도 않았는데 먼저 정문(旌門)을 세우고, 종백(宗伯)의 자리에 있으면서 또 자기의 효행을 찬술하였으니, 효란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그의 네 아들이 문명(文名)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잇달아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집안이 대대로 가난하였는데 커다란 집이 줄지어 늘어섰으니, 청렴이라는 것이 정녕 이와 같은 것입니까.
더구나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법이며 신하의 큰 의리이니, 신하로서 그 누가 정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그들이 홀로 토벌하기를 청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호역(護逆)’ 두 자로 다른 사람을 빠뜨리는 함정을 삼았습니다. 그러니 그가 겉으로는 나라를 위한 계책이라고 하면서 몰래 자기의 당파가 아닌 사람을 배척한 꾀가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신경희(申景禧)가 몰래 모의하여 역적질을 한 상황은 소명국(蘇鳴國)의 초사(招辭)에서 모두 드러났고, 대질하여 따질 때 제대로 답변을 못했으니, 그가 호역한 것은 다른 여러 역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이첨이 비호해 구원해 주고 삼사가 아무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대개 이이첨이 신경희와 본디 친밀하게 지냈고, 이이첨의 아들 이름이 역적의 초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 한번 윤선도가 권간에 대해 극력 논하자 간당(姦黨)들이 죽기로 맹서하고 벌떼처럼 일어나 떠들어 대어 참혹스럽게 얽어넣음이 저와 같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성상께서 밝게 알아보심에 힘입어서 그들이 흉계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중외의 사람들이 모두들 전하께서 이미 이이첨의 죄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하면서 기쁜 낯을 하고는 서로 고하기를 ‘우리 나라가 이제 가망성이 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신의 걱정과 두려움은 전보다 더 심하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예로부터 권간은 자신의 정상에 대해 임금이 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살아날 방도를 강구해 하지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 이미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윤선도에게 죄를 내리지 않았으니, 간당의 마음이 지금 어떠하겠습니까. 신의 걱정과 두려움이 전일보다 더 심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신은 참으로 간당들이 신을 얽어넣음이 반드시 윤선도에게 한 것과 같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말하여 거리끼는 바가 없는 것은, 대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을 스스로 멈출 수 없고 또한 성상께서 위에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의 간절한 마음을 굽어살피시고 윤선도의 충성스러운 말을 통촉하시어, 속히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하고 흉한 기염을 더욱 돋운 죄를 바루고, 삼사와 정원·관학이 악인을 편든 죄를 다스려서 종묘 사직의 억만년토록 무궁한 아름다움이 되게 하소서."

 

009)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이형(李泂)의 상소를 보건대, 신과 신의 두 아들을 무함하면서 못하는 말이 없었는 바, 성상께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한희(韓暿)와 한급(韓昅)입니다. 겨우 약관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그것을 일러 요행이라고 한다면 가하지만, 자표(字標)를 하였다는 설에 이르러서는, 신은 그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이첨을 무함하려고 하면서는 그의 네 아들을 아울러 거론하고 신을 무함하려 하면서는 또 두 아들에 대해 언급하니, 참으로 죄를 가하려고만 하면 어찌 할 말이 없을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신의 마음씀씀이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유영경과 같이 국본(國本)을 위태롭게 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고자 하고, 김제남처럼 임금을 해치려는 자를 반드시 찢어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단단한 일념은 푸른 하늘에 징험하고 밝은 해를 꿰뚫을 수 있는 바, 귀신에게 물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흉악한 자가 말한 것을 따질 것은 없으나, 단지 미천한 신으로 인하여 흉악한 자가 선왕(先王)의 하교를 거짓 끌어들여 상소 안에다 썼으니, 신은 몹시 통분스럽습니다. 아, 흉악한 자가 신을 무함할 줄만 알았지 그것이 하교를 거짓으로 꾸며댄 죄가 됨을 몰라 한갓 간인(奸人)의 사주만을 듣고 나라를 텅 비게 할 꾀를 더욱 방자히 하였으니, 이것을 차마 한다면 무슨 짓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삼가 소장이 그치지 않고 계속 올라온다면 칼날이 반드시 닥쳐올까 두려우니, 신은 어느 곳에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풀을 제거하면서 부리를 제거하지 않아 화를 입은 오왕(五王)010)  을 거울 삼을 수 있습니다. 신은 거듭 모함을 입어 뻔뻔스럽게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신을 파직하여 간사한 자의 사주를 받아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계사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註 009]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1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10] 오왕(五王) : 오왕은 당나라 중종(中宗) 때 측천무후가 병이 든 사이 거의(擧義)하여 중종을 복위시켰다가 간신 무삼사(武三思) 등을 마저 제거하지 못해 결국 이들에게 쫓겨나 죽게 된 사람들이다. 평양왕(平陽王) 경휘(敬暉), 부양왕(扶陽王) 환언범(桓彦範), 한양왕(漢陽王) 장간지(張柬之), 남양왕(南陽王) 원서기(袁恕己), 박릉왕(朴陵王) 최현휘(崔玄暉)를 말함. 《구당서(舊唐書)》 권91 열전(列傳) 제41.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이형(李泂)의 상소를 보건대, 신과 신의 두 아들을 무함하면서 못하는 말이 없었는 바, 성상께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한희(韓暿)와 한급(韓昅)입니다. 겨우 약관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그것을 일러 요행이라고 한다면 가하지만, 자표(字標)를 하였다는 설에 이르러서는, 신은 그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이첨을 무함하려고 하면서는 그의 네 아들을 아울러 거론하고 신을 무함하려 하면서는 또 두 아들에 대해 언급하니, 참으로 죄를 가하려고만 하면 어찌 할 말이 없을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신의 마음씀씀이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유영경과 같이 국본(國本)을 위태롭게 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고자 하고, 김제남처럼 임금을 해치려는 자를 반드시 찢어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단단한 일념은 푸른 하늘에 징험하고 밝은 해를 꿰뚫을 수 있는 바, 귀신에게 물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흉악한 자가 말한 것을 따질 것은 없으나, 단지 미천한 신으로 인하여 흉악한 자가 선왕(先王)의 하교를 거짓 끌어들여 상소 안에다 썼으니, 신은 몹시 통분스럽습니다. 아, 흉악한 자가 신을 무함할 줄만 알았지 그것이 하교를 거짓으로 꾸며댄 죄가 됨을 몰라 한갓 간인(奸人)의 사주만을 듣고 나라를 텅 비게 할 꾀를 더욱 방자히 하였으니, 이것을 차마 한다면 무슨 짓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삼가 소장이 그치지 않고 계속 올라온다면 칼날이 반드시 닥쳐올까 두려우니, 신은 어느 곳에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풀을 제거하면서 부리를 제거하지 않아 화를 입은 오왕(五王)010)  을 거울 삼을 수 있습니다. 신은 거듭 모함을 입어 뻔뻔스럽게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신을 파직하여 간사한 자의 사주를 받아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계사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註 009]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1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10] 오왕(五王) : 오왕은 당나라 중종(中宗) 때 측천무후가 병이 든 사이 거의(擧義)하여 중종을 복위시켰다가 간신 무삼사(武三思) 등을 마저 제거하지 못해 결국 이들에게 쫓겨나 죽게 된 사람들이다. 평양왕(平陽王) 경휘(敬暉), 부양왕(扶陽王) 환언범(桓彦範), 한양왕(漢陽王) 장간지(張柬之), 남양왕(南陽王) 원서기(袁恕己), 박릉왕(朴陵王) 최현휘(崔玄暉)를 말함. 《구당서(舊唐書)》 권91 열전(列傳) 제41.
"신이 삼가 이형(李泂)의 상소를 보건대, 신과 신의 두 아들을 무함하면서 못하는 말이 없었는 바, 성상께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한희(韓暿)와 한급(韓昅)입니다. 겨우 약관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그것을 일러 요행이라고 한다면 가하지만, 자표(字標)를 하였다는 설에 이르러서는, 신은 그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이첨을 무함하려고 하면서는 그의 네 아들을 아울러 거론하고 신을 무함하려 하면서는 또 두 아들에 대해 언급하니, 참으로 죄를 가하려고만 하면 어찌 할 말이 없을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신의 마음씀씀이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유영경과 같이 국본(國本)을 위태롭게 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고자 하고, 김제남처럼 임금을 해치려는 자를 반드시 찢어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단단한 일념은 푸른 하늘에 징험하고 밝은 해를 꿰뚫을 수 있는 바, 귀신에게 물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흉악한 자가 말한 것을 따질 것은 없으나, 단지 미천한 신으로 인하여 흉악한 자가 선왕(先王)의 하교를 거짓 끌어들여 상소 안에다 썼으니, 신은 몹시 통분스럽습니다. 아, 흉악한 자가 신을 무함할 줄만 알았지 그것이 하교를 거짓으로 꾸며댄 죄가 됨을 몰라 한갓 간인(奸人)의 사주만을 듣고 나라를 텅 비게 할 꾀를 더욱 방자히 하였으니, 이것을 차마 한다면 무슨 짓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삼가 소장이 그치지 않고 계속 올라온다면 칼날이 반드시 닥쳐올까 두려우니, 신은 어느 곳에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풀을 제거하면서 부리를 제거하지 않아 화를 입은 오왕(五王)010)  을 거울 삼을 수 있습니다. 신은 거듭 모함을 입어 뻔뻔스럽게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신을 파직하여 간사한 자의 사주를 받아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계사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011)  대사헌 남근(南瑾), 집의 김질간(金質幹), 장령 임건(林健)·정도(鄭道), 지평 김호(金昈)·남궁경(南宮㯳), 대사간 정조(鄭造), 사간 오여온(吳汝穩), 헌납 유여각(柳汝恪), 정언 홍요검(洪堯儉)·한희(韓暿)가 아뢰기를, "윤유기(尹惟幾) 부자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모함하고 왕법을 깔보고 역적을 비호한 흉악한 계책은 불을 보듯 환하기 때문에 안치(安置)하기를 청한 것도 역시 말감(末減)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상께서는 즉시 시원스럽게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간악한 꾀를 더욱 부려서, 이형이 계속해서 상소를 올려 숫자로 밀어붙여 이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대개를 보면 간인을 편들고 임금을 속였다는 것으로 삼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나라에 충성을 바쳐 자신을 잊고 역적을 토벌한 이이첨이 무슨 나라를 저버린 일이 있기에 간인으로 지목하고, 대의를 부지하고 정론(正論)을 확장시킨 삼사가 무슨 죄줄 만한 일이 있기에 간인을 비호하고 임금을 속였다고 배척한단 말입니까. 이이첨은 역적을 토벌한 신하요 신들 역시 역적을 토벌한 신하입니다. 신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이 자들의 상소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길거리에 떠도는 말이, 대오를 나누고 시기를 조정해서 서로 잇달아 상소를 올릴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외방 사람들을 불러모아 차례대로 칠 것이라는 말도 헛말이 아닐 듯합니다. 여러 차례 추한 욕을 당하여서 성스러운 조정에 수치를 끼쳤으니, 신들을 파직하여 조정의 시끄러움을 진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요즈음 이 일로 인해 계사와 소장을 몸이 불편한 중인데도 분분하게 입계하여, 조섭조차도 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흉악한 상소는 다시는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註 011]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2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대사헌 남근(南瑾), 집의 김질간(金質幹), 장령 임건(林健)·정도(鄭道), 지평 김호(金昈)·남궁경(南宮㯳), 대사간 정조(鄭造), 사간 오여온(吳汝穩), 헌납 유여각(柳汝恪), 정언 홍요검(洪堯儉)·한희(韓暿)가 아뢰기를, "윤유기(尹惟幾) 부자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모함하고 왕법을 깔보고 역적을 비호한 흉악한 계책은 불을 보듯 환하기 때문에 안치(安置)하기를 청한 것도 역시 말감(末減)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상께서는 즉시 시원스럽게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간악한 꾀를 더욱 부려서, 이형이 계속해서 상소를 올려 숫자로 밀어붙여 이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대개를 보면 간인을 편들고 임금을 속였다는 것으로 삼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나라에 충성을 바쳐 자신을 잊고 역적을 토벌한 이이첨이 무슨 나라를 저버린 일이 있기에 간인으로 지목하고, 대의를 부지하고 정론(正論)을 확장시킨 삼사가 무슨 죄줄 만한 일이 있기에 간인을 비호하고 임금을 속였다고 배척한단 말입니까. 이이첨은 역적을 토벌한 신하요 신들 역시 역적을 토벌한 신하입니다. 신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이 자들의 상소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길거리에 떠도는 말이, 대오를 나누고 시기를 조정해서 서로 잇달아 상소를 올릴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외방 사람들을 불러모아 차례대로 칠 것이라는 말도 헛말이 아닐 듯합니다. 여러 차례 추한 욕을 당하여서 성스러운 조정에 수치를 끼쳤으니, 신들을 파직하여 조정의 시끄러움을 진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요즈음 이 일로 인해 계사와 소장을 몸이 불편한 중인데도 분분하게 입계하여, 조섭조차도 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흉악한 상소는 다시는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註 011]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2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윤유기(尹惟幾) 부자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모함하고 왕법을 깔보고 역적을 비호한 흉악한 계책은 불을 보듯 환하기 때문에 안치(安置)하기를 청한 것도 역시 말감(末減)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상께서는 즉시 시원스럽게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간악한 꾀를 더욱 부려서, 이형이 계속해서 상소를 올려 숫자로 밀어붙여 이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대개를 보면 간인을 편들고 임금을 속였다는 것으로 삼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나라에 충성을 바쳐 자신을 잊고 역적을 토벌한 이이첨이 무슨 나라를 저버린 일이 있기에 간인으로 지목하고, 대의를 부지하고 정론(正論)을 확장시킨 삼사가 무슨 죄줄 만한 일이 있기에 간인을 비호하고 임금을 속였다고 배척한단 말입니까. 이이첨은 역적을 토벌한 신하요 신들 역시 역적을 토벌한 신하입니다. 신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이 자들의 상소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길거리에 떠도는 말이, 대오를 나누고 시기를 조정해서 서로 잇달아 상소를 올릴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외방 사람들을 불러모아 차례대로 칠 것이라는 말도 헛말이 아닐 듯합니다.
여러 차례 추한 욕을 당하여서 성스러운 조정에 수치를 끼쳤으니, 신들을 파직하여 조정의 시끄러움을 진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요즈음 이 일로 인해 계사와 소장을 몸이 불편한 중인데도 분분하게 입계하여, 조섭조차도 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흉악한 상소는 다시는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012) 종실인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금계군 이인수(錦溪君仁壽)·낭성군(琅城君) 이성윤(李聖胤)·춘계 도정 이원(春溪都李正黿)·선성도정(宣城都正) 이신윤(李愼胤)·회은 부수(懷恩副守) 이덕인(李德仁)·금평령(錦平令) 이의수(李義壽)·능성정 이명윤(綾城正明胤)·금릉정(金陵正) 이득수(李得壽)·부림수(富林守) 이창윤(李昌胤)·창림 부수(昌林副守) 이세지(李世智)·덕원령(德原令) 이혼(李渾)·회의령(懷義令) 이철남(李哲男)·숭림령(崇林令) 이방윤(李芳胤)·금림령(錦林令) 이개윤(李乾胤)·의산 부령(宜山副令) 이인윤(李仁胤)·견성 부령(甄城副令) 이현윤(李賢胤)·성산령(星山令) 이의윤(李義胤) 등 19인이 상소하기를, "신들은 모두 종척(宗戚)의 신하들로 조정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아서 백에 하나도 알지 못하며, 간혹 한두 가지 들은 것이 있더라도 그 해가 종사를 위태롭게 하는 데 이르는 것이 아니면 신들이 감히 말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시비와 득실이 종사를 위태롭게 하는 데 크게 관계될 경우, 신들은 모두 나라가 살면 함께 살고 나라가 망하면 함께 망하는 사람들이니, 어떻게 종사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 보면서 마치 소가 닭보듯 할 수 있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은 간사하고 악독하며 괴팍하고 교활하여, 사당(私黨)을 널리 심고 충신들을 모두 내쫓았으며 국권을 농락하여 위세가 날로 성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붙좇는 자는 아무리 완악하고 염치 없으며 언행이 패려한 자라도 반드시 이끌어 주어 승진시키고,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는 아무리 학문이 높고 행실이 뛰어나서 세상 사람들이 떠받드는 자라도 반드시 배척해서 물리쳤습니다. 기염이 하늘까지 치솟아 길가는 사람들이 눈짓들만 하고 있으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움추리고 있고 간사하고 사특한 자들이 팔을 휘두르며 몰려들고 있습니다. 조정의 대소 신하들 가운데 비록 혹 그의 형세에 붙좇지 않는 자가 있더라도, 끝까지 그의 집에 찾아가지 않을 경우에는 능히 보전하는 자가 드무니 밤에는 천장을 쳐다보며 탄식하고 낮에는 그의 집 문 앞에서 설설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함께 어울리는 사람에 이르러서도 혹 한두 가지 일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으면 온갖 계책으로 중상하여 반드시 배척한 연후에야 그만둡니다.  이이첨의 위세는 날로 아래에서 성해지고 전하의 위세는 날로 위에서 고립되고 있으니, 위망의 화가 조석에 박두하였습니다. 비록 충신과 의사가 있어서 이와 같은 정상을 진달하고자 하더라도 입밖으로 말을 내기만 하면 큰 화가 그 즉시 이릅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형제가 함께 같은 방에 있으면서 이이첨에 대해서 말이 나오면 입을 가리고 손을 내저으면서 멸족(滅族)된다고 서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 국세가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야에 있는 신하 윤선도가 강개하여 상소를 올려서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바를 감히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송나라의 호전(胡銓)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원에서 먼저 일어나자 삼사가 잇따라 일어나고 사학(四學)과 반궁(泮宮)이 이구동성으로 호응하여, 한편으로는 역적을 편들었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진이를 모함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른바 역적이라고 하는 것은 전하에게 거역했다는 것입니까, 이이첨에게 거역했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들이 이른바 어진이라고 하는 자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만약 그들을 공격하는 말을 한 것을 가지고 역적질을 했다고 지적한다면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이에 이르러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 위복의 권한을 마구 농락하는 것은 신하로서 극악대죄를 짓는 것으로, 이 죄명이 한번 가해졌으면, 이이첨으로서는 마땅히 석고대죄하고 반성하면서 형벌이 내리기를 기다리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태연스럽게 집에 있으면서 더욱 그 독기를 뿜어 삼사를 불러모으고 관학(館學)을 지휘하였으며, 조금도 거리낌없이 자신을 스스로 찬양하여 배도(裵度)와 한기(韓琦)에게 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 이이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삼사는 전하의 눈과 귀이고 관학은 공론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서로 도와 악한 짓을 하면서 이이첨을 칭송하여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니, 오늘날의 삼사가 전하의 삼사인지 이이첨의 삼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정권이 이이첨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이에 근거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왕망(王款)이 태아검(太阿劍)을 거꾸로 잡았을 때013) 장우(張禹)·공광(孔光)·두흠(杜歆)·곡영(谷永) 등의 무리가 서로 더불어 찬성(贊成)하였고, 글을 올려서 왕망을 찬양한 자가 무려 50,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간신이 나라를 멋대로 하여 위권(威權)이 아래로 돌아가면 아첨하는 풍조가 만연되는 것은 고금이 같은 이치인 것으로, 찬양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그것을 공론이라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도 분명합니다. 어찌하여 삼사와 관학은 도리어 직언을 한 사람을 배척하고, 간사한 이이첨을 찬양하기를 이렇게까지 극도로 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은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 뒷날의 화가 헤아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소서. 무릇 임금이 간언을 듣는 방도는 그 말이 쓸만하면 쓰고 그 말이 쓸만하지 못하면 버려두는 것입니다. 말한 자가 논한 바가 만약 시의(時議)에 합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곧바로 배척하고 심하게 다스린다면 간사한 자가 국권을 잡게 되어 진언하는 말은 모두 아첨하는 말들 뿐이고 충직한 논의는 나올 길이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대간(大奸)은 충성스러운 듯하고, 대사(大詐)는 미더운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이첨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의심치 않는 것은 총명이 가려진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지금 이이첨을 구원하는 자들은 그를 두고 역적을 토벌한 신하라고 하는데,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하의 대의(大義)이고 고금의 상경(常經)입니다. 그러니 전하의 조정에 그 누가 역적을 토벌한 신하가 아니겠으며 그 누가 역적을 토벌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가령 어떤 사람이 여기 있는데 아침에 녹훈할 만한 공을 세우고 저녁에 용서하기 어려운 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를 두고 공이 있다고 하면서 그 죄를 다스리지 않겠습니까? 이이첨이 간사함이 이와 같고 위권이 이와 같고 국권을 마구 농단하기가 이와 같으며, 국세가 위급하기가 이와 같고 사람들이 울분을 품기가 이와 같은데도, 종사(宗社)에 해가 없다는 것을 신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 이이첨이 헛말을 날조하여 자기의 반대파를 축출하고, 과거시험과 관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형세를 좇고 이익을 탐내는 무리들이 요직에 가득 들어차 있으니, 식자들이 한심해 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아, 이익을 좇음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 데 이르며, 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심해지면 반드시 임금과 아비를 시해하는 데 이르는 법이니, 성인(聖人)이 미리 경계하신 것이 엄하고도 절실합니다. 전하께서 윤선도의 일 때문에 대신들에게 수의(收議)한 것은 여론이 어떠한가를 알고자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영상 기자헌은 이이첨의 기세에 겁을 집어먹어 병을 칭탁하고 의논드리지 않았으며, 우의정 한효순 역시 그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기가 꺾이고 말을 더듬으면서 ‘언로(言路)’니 뭐니 하면서 몇 글자만 대략 진달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삼사는 공격하면서 여력을 남기지 않았으니, 임금을 잊고 역당을 비호하기를 어찌 이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지금 윤선도의 상소가 한번 전하께 진달되었으니 이이첨이 국권을 농락한 죄를 성상께서 반드시 이미 통촉하시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결단을 내리셔서 멀리 내쫓지 않으시니, 뒷날의 근심이 오늘날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송나라 신하 사마광(司馬光)이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에 대해서 그의 간악함을 모르는 데 걱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혹 알고서도 다시 용서해 준다면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낫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가 혹 간사한 짓을 하였는데 위에서 그것을 모를 경우에는 오히려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나, 이미 알고서도 토벌하지 못하여서 그가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방종하게 굴면서 돌아보는 바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선한 줄 알고서도 쓰지 않거나 악한 줄 알면서도 제거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임금이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사마광의 이 말이 바로 오늘날을 위하여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들은 이이첨과 본디 원수진 일이 없으며, 또 권세를 다투어 서로 알력을 일으킬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가 비록 뜻을 얻는다 할지라도 신들에게 있어서 무슨 해가 있겠으며, 그가 비록 세력을 잃는다 하더라도 신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다만 신들은 모두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신하로서 종사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종친(宗親)이 되고 왕족(王族)이 된 의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들은 참으로 아침에 이 상소를 올릴 경우 저녁에 삼사에서 죄주기를 청하는 것이 윤선도에 대해서 한 것보다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忠憤)이 격발되어 말을 가려서 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권간을 축출하여 종사를 안정시키고, 그 다음으로 삼사가 악인을 편든 죄를 다스리소서." 하였는데, 【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의 계사이다.】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다만 조정의 대체(大體)는 종척의 여러 경(卿)들이 간여할 일이 아닌데, 조섭하고 있는 이때 이렇게 번거롭게 아뢰니,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 상소를 올린 것인가? 밝은 해가 하늘에 있으니 곧이곧대로 대답하라." 하였다.


[註 012]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3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13] 왕망(王款)이 태아검(太阿劍)을 거꾸로 잡았을 때 : 태아(太阿)는 보검의 이름. 《한서(漢書)》 매복전(梅福傳)에 "태아를 거꾸로 쥐고 자루는 초(楚)에 주었다."고 하였음. 이에 후인들이 임금이 신하에게 권병(權柄)을 빼앗긴 것을 두고 "태아검을 거꾸로 잡았다."고 함. 여기서는 왕망이 권세를 잡았을 때를 말함.
종실인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금계군 이인수(錦溪君仁壽)·낭성군(琅城君) 이성윤(李聖胤)·춘계 도정 이원(春溪都李正黿)·선성도정(宣城都正) 이신윤(李愼胤)·회은 부수(懷恩副守) 이덕인(李德仁)·금평령(錦平令) 이의수(李義壽)·능성정 이명윤(綾城正明胤)·금릉정(金陵正) 이득수(李得壽)·부림수(富林守) 이창윤(李昌胤)·창림 부수(昌林副守) 이세지(李世智)·덕원령(德原令) 이혼(李渾)·회의령(懷義令) 이철남(李哲男)·숭림령(崇林令) 이방윤(李芳胤)·금림령(錦林令) 이개윤(李乾胤)·의산 부령(宜山副令) 이인윤(李仁胤)·견성 부령(甄城副令) 이현윤(李賢胤)·성산령(星山令) 이의윤(李義胤) 등 19인이 상소하기를, "신들은 모두 종척(宗戚)의 신하들로 조정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아서 백에 하나도 알지 못하며, 간혹 한두 가지 들은 것이 있더라도 그 해가 종사를 위태롭게 하는 데 이르는 것이 아니면 신들이 감히 말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시비와 득실이 종사를 위태롭게 하는 데 크게 관계될 경우, 신들은 모두 나라가 살면 함께 살고 나라가 망하면 함께 망하는 사람들이니, 어떻게 종사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 보면서 마치 소가 닭보듯 할 수 있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은 간사하고 악독하며 괴팍하고 교활하여, 사당(私黨)을 널리 심고 충신들을 모두 내쫓았으며 국권을 농락하여 위세가 날로 성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붙좇는 자는 아무리 완악하고 염치 없으며 언행이 패려한 자라도 반드시 이끌어 주어 승진시키고,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는 아무리 학문이 높고 행실이 뛰어나서 세상 사람들이 떠받드는 자라도 반드시 배척해서 물리쳤습니다. 기염이 하늘까지 치솟아 길가는 사람들이 눈짓들만 하고 있으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움추리고 있고 간사하고 사특한 자들이 팔을 휘두르며 몰려들고 있습니다. 조정의 대소 신하들 가운데 비록 혹 그의 형세에 붙좇지 않는 자가 있더라도, 끝까지 그의 집에 찾아가지 않을 경우에는 능히 보전하는 자가 드무니 밤에는 천장을 쳐다보며 탄식하고 낮에는 그의 집 문 앞에서 설설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함께 어울리는 사람에 이르러서도 혹 한두 가지 일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으면 온갖 계책으로 중상하여 반드시 배척한 연후에야 그만둡니다.  이이첨의 위세는 날로 아래에서 성해지고 전하의 위세는 날로 위에서 고립되고 있으니, 위망의 화가 조석에 박두하였습니다. 비록 충신과 의사가 있어서 이와 같은 정상을 진달하고자 하더라도 입밖으로 말을 내기만 하면 큰 화가 그 즉시 이릅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형제가 함께 같은 방에 있으면서 이이첨에 대해서 말이 나오면 입을 가리고 손을 내저으면서 멸족(滅族)된다고 서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 국세가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야에 있는 신하 윤선도가 강개하여 상소를 올려서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바를 감히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송나라의 호전(胡銓)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원에서 먼저 일어나자 삼사가 잇따라 일어나고 사학(四學)과 반궁(泮宮)이 이구동성으로 호응하여, 한편으로는 역적을 편들었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진이를 모함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른바 역적이라고 하는 것은 전하에게 거역했다는 것입니까, 이이첨에게 거역했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들이 이른바 어진이라고 하는 자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만약 그들을 공격하는 말을 한 것을 가지고 역적질을 했다고 지적한다면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이에 이르러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 위복의 권한을 마구 농락하는 것은 신하로서 극악대죄를 짓는 것으로, 이 죄명이 한번 가해졌으면, 이이첨으로서는 마땅히 석고대죄하고 반성하면서 형벌이 내리기를 기다리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태연스럽게 집에 있으면서 더욱 그 독기를 뿜어 삼사를 불러모으고 관학(館學)을 지휘하였으며, 조금도 거리낌없이 자신을 스스로 찬양하여 배도(裵度)와 한기(韓琦)에게 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 이이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삼사는 전하의 눈과 귀이고 관학은 공론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서로 도와 악한 짓을 하면서 이이첨을 칭송하여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니, 오늘날의 삼사가 전하의 삼사인지 이이첨의 삼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정권이 이이첨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이에 근거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왕망(王款)이 태아검(太阿劍)을 거꾸로 잡았을 때013) 장우(張禹)·공광(孔光)·두흠(杜歆)·곡영(谷永) 등의 무리가 서로 더불어 찬성(贊成)하였고, 글을 올려서 왕망을 찬양한 자가 무려 50,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간신이 나라를 멋대로 하여 위권(威權)이 아래로 돌아가면 아첨하는 풍조가 만연되는 것은 고금이 같은 이치인 것으로, 찬양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그것을 공론이라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도 분명합니다. 어찌하여 삼사와 관학은 도리어 직언을 한 사람을 배척하고, 간사한 이이첨을 찬양하기를 이렇게까지 극도로 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은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 뒷날의 화가 헤아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소서. 무릇 임금이 간언을 듣는 방도는 그 말이 쓸만하면 쓰고 그 말이 쓸만하지 못하면 버려두는 것입니다. 말한 자가 논한 바가 만약 시의(時議)에 합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곧바로 배척하고 심하게 다스린다면 간사한 자가 국권을 잡게 되어 진언하는 말은 모두 아첨하는 말들 뿐이고 충직한 논의는 나올 길이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대간(大奸)은 충성스러운 듯하고, 대사(大詐)는 미더운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이첨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의심치 않는 것은 총명이 가려진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지금 이이첨을 구원하는 자들은 그를 두고 역적을 토벌한 신하라고 하는데,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하의 대의(大義)이고 고금의 상경(常經)입니다. 그러니 전하의 조정에 그 누가 역적을 토벌한 신하가 아니겠으며 그 누가 역적을 토벌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가령 어떤 사람이 여기 있는데 아침에 녹훈할 만한 공을 세우고 저녁에 용서하기 어려운 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를 두고 공이 있다고 하면서 그 죄를 다스리지 않겠습니까? 이이첨이 간사함이 이와 같고 위권이 이와 같고 국권을 마구 농단하기가 이와 같으며, 국세가 위급하기가 이와 같고 사람들이 울분을 품기가 이와 같은데도, 종사(宗社)에 해가 없다는 것을 신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 이이첨이 헛말을 날조하여 자기의 반대파를 축출하고, 과거시험과 관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형세를 좇고 이익을 탐내는 무리들이 요직에 가득 들어차 있으니, 식자들이 한심해 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아, 이익을 좇음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 데 이르며, 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심해지면 반드시 임금과 아비를 시해하는 데 이르는 법이니, 성인(聖人)이 미리 경계하신 것이 엄하고도 절실합니다. 전하께서 윤선도의 일 때문에 대신들에게 수의(收議)한 것은 여론이 어떠한가를 알고자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영상 기자헌은 이이첨의 기세에 겁을 집어먹어 병을 칭탁하고 의논드리지 않았으며, 우의정 한효순 역시 그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기가 꺾이고 말을 더듬으면서 ‘언로(言路)’니 뭐니 하면서 몇 글자만 대략 진달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삼사는 공격하면서 여력을 남기지 않았으니, 임금을 잊고 역당을 비호하기를 어찌 이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지금 윤선도의 상소가 한번 전하께 진달되었으니 이이첨이 국권을 농락한 죄를 성상께서 반드시 이미 통촉하시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결단을 내리셔서 멀리 내쫓지 않으시니, 뒷날의 근심이 오늘날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송나라 신하 사마광(司馬光)이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에 대해서 그의 간악함을 모르는 데 걱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혹 알고서도 다시 용서해 준다면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낫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가 혹 간사한 짓을 하였는데 위에서 그것을 모를 경우에는 오히려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나, 이미 알고서도 토벌하지 못하여서 그가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방종하게 굴면서 돌아보는 바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선한 줄 알고서도 쓰지 않거나 악한 줄 알면서도 제거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임금이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사마광의 이 말이 바로 오늘날을 위하여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들은 이이첨과 본디 원수진 일이 없으며, 또 권세를 다투어 서로 알력을 일으킬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가 비록 뜻을 얻는다 할지라도 신들에게 있어서 무슨 해가 있겠으며, 그가 비록 세력을 잃는다 하더라도 신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다만 신들은 모두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신하로서 종사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종친(宗親)이 되고 왕족(王族)이 된 의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들은 참으로 아침에 이 상소를 올릴 경우 저녁에 삼사에서 죄주기를 청하는 것이 윤선도에 대해서 한 것보다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忠憤)이 격발되어 말을 가려서 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권간을 축출하여 종사를 안정시키고, 그 다음으로 삼사가 악인을 편든 죄를 다스리소서." 하였는데, 【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의 계사이다.】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다만 조정의 대체(大體)는 종척의 여러 경(卿)들이 간여할 일이 아닌데, 조섭하고 있는 이때 이렇게 번거롭게 아뢰니,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 상소를 올린 것인가? 밝은 해가 하늘에 있으니 곧이곧대로 대답하라." 하였다.


[註 012]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3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13] 왕망(王款)이 태아검(太阿劍)을 거꾸로 잡았을 때 : 태아(太阿)는 보검의 이름. 《한서(漢書)》 매복전(梅福傳)에 "태아를 거꾸로 쥐고 자루는 초(楚)에 주었다."고 하였음. 이에 후인들이 임금이 신하에게 권병(權柄)을 빼앗긴 것을 두고 "태아검을 거꾸로 잡았다."고 함. 여기서는 왕망이 권세를 잡았을 때를 말함.
"신들은 모두 종척(宗戚)의 신하들로 조정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아서 백에 하나도 알지 못하며, 간혹 한두 가지 들은 것이 있더라도 그 해가 종사를 위태롭게 하는 데 이르는 것이 아니면 신들이 감히 말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시비와 득실이 종사를 위태롭게 하는 데 크게 관계될 경우, 신들은 모두 나라가 살면 함께 살고 나라가 망하면 함께 망하는 사람들이니, 어떻게 종사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 보면서 마치 소가 닭보듯 할 수 있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은 간사하고 악독하며 괴팍하고 교활하여, 사당(私黨)을 널리 심고 충신들을 모두 내쫓았으며 국권을 농락하여 위세가 날로 성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붙좇는 자는 아무리 완악하고 염치 없으며 언행이 패려한 자라도 반드시 이끌어 주어 승진시키고,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는 아무리 학문이 높고 행실이 뛰어나서 세상 사람들이 떠받드는 자라도 반드시 배척해서 물리쳤습니다. 기염이 하늘까지 치솟아 길가는 사람들이 눈짓들만 하고 있으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움추리고 있고 간사하고 사특한 자들이 팔을 휘두르며 몰려들고 있습니다.
조정의 대소 신하들 가운데 비록 혹 그의 형세에 붙좇지 않는 자가 있더라도, 끝까지 그의 집에 찾아가지 않을 경우에는 능히 보전하는 자가 드무니 밤에는 천장을 쳐다보며 탄식하고 낮에는 그의 집 문 앞에서 설설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함께 어울리는 사람에 이르러서도 혹 한두 가지 일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으면 온갖 계책으로 중상하여 반드시 배척한 연후에야 그만둡니다.
이이첨의 위세는 날로 아래에서 성해지고 전하의 위세는 날로 위에서 고립되고 있으니, 위망의 화가 조석에 박두하였습니다. 비록 충신과 의사가 있어서 이와 같은 정상을 진달하고자 하더라도 입밖으로 말을 내기만 하면 큰 화가 그 즉시 이릅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형제가 함께 같은 방에 있으면서 이이첨에 대해서 말이 나오면 입을 가리고 손을 내저으면서 멸족(滅族)된다고 서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 국세가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야에 있는 신하 윤선도가 강개하여 상소를 올려서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바를 감히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송나라의 호전(胡銓)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원에서 먼저 일어나자 삼사가 잇따라 일어나고 사학(四學)과 반궁(泮宮)이 이구동성으로 호응하여, 한편으로는 역적을 편들었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진이를 모함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른바 역적이라고 하는 것은 전하에게 거역했다는 것입니까, 이이첨에게 거역했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들이 이른바 어진이라고 하는 자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만약 그들을 공격하는 말을 한 것을 가지고 역적질을 했다고 지적한다면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이에 이르러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 위복의 권한을 마구 농락하는 것은 신하로서 극악대죄를 짓는 것으로, 이 죄명이 한번 가해졌으면, 이이첨으로서는 마땅히 석고대죄하고 반성하면서 형벌이 내리기를 기다리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태연스럽게 집에 있으면서 더욱 그 독기를 뿜어 삼사를 불러모으고 관학(館學)을 지휘하였으며, 조금도 거리낌없이 자신을 스스로 찬양하여 배도(裵度)와 한기(韓琦)에게 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 이이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삼사는 전하의 눈과 귀이고 관학은 공론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서로 도와 악한 짓을 하면서 이이첨을 칭송하여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니, 오늘날의 삼사가 전하의 삼사인지 이이첨의 삼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정권이 이이첨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이에 근거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왕망(王款)이 태아검(太阿劍)을 거꾸로 잡았을 때013) 장우(張禹)·공광(孔光)·두흠(杜歆)·곡영(谷永) 등의 무리가 서로 더불어 찬성(贊成)하였고, 글을 올려서 왕망을 찬양한 자가 무려 50,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간신이 나라를 멋대로 하여 위권(威權)이 아래로 돌아가면 아첨하는 풍조가 만연되는 것은 고금이 같은 이치인 것으로, 찬양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그것을 공론이라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도 분명합니다. 어찌하여 삼사와 관학은 도리어 직언을 한 사람을 배척하고, 간사한 이이첨을 찬양하기를 이렇게까지 극도로 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은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 뒷날의 화가 헤아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소서.
무릇 임금이 간언을 듣는 방도는 그 말이 쓸만하면 쓰고 그 말이 쓸만하지 못하면 버려두는 것입니다. 말한 자가 논한 바가 만약 시의(時議)에 합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곧바로 배척하고 심하게 다스린다면 간사한 자가 국권을 잡게 되어 진언하는 말은 모두 아첨하는 말들 뿐이고 충직한 논의는 나올 길이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대간(大奸)은 충성스러운 듯하고, 대사(大詐)는 미더운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이첨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의심치 않는 것은 총명이 가려진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지금 이이첨을 구원하는 자들은 그를 두고 역적을 토벌한 신하라고 하는데,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하의 대의(大義)이고 고금의 상경(常經)입니다. 그러니 전하의 조정에 그 누가 역적을 토벌한 신하가 아니겠으며 그 누가 역적을 토벌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가령 어떤 사람이 여기 있는데 아침에 녹훈할 만한 공을 세우고 저녁에 용서하기 어려운 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를 두고 공이 있다고 하면서 그 죄를 다스리지 않겠습니까? 이이첨이 간사함이 이와 같고 위권이 이와 같고 국권을 마구 농단하기가 이와 같으며, 국세가 위급하기가 이와 같고 사람들이 울분을 품기가 이와 같은데도, 종사(宗社)에 해가 없다는 것을 신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 이이첨이 헛말을 날조하여 자기의 반대파를 축출하고, 과거시험과 관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형세를 좇고 이익을 탐내는 무리들이 요직에 가득 들어차 있으니, 식자들이 한심해 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아, 이익을 좇음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 데 이르며, 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심해지면 반드시 임금과 아비를 시해하는 데 이르는 법이니, 성인(聖人)이 미리 경계하신 것이 엄하고도 절실합니다.
전하께서 윤선도의 일 때문에 대신들에게 수의(收議)한 것은 여론이 어떠한가를 알고자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영상 기자헌은 이이첨의 기세에 겁을 집어먹어 병을 칭탁하고 의논드리지 않았으며, 우의정 한효순 역시 그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기가 꺾이고 말을 더듬으면서 ‘언로(言路)’니 뭐니 하면서 몇 글자만 대략 진달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삼사는 공격하면서 여력을 남기지 않았으니, 임금을 잊고 역당을 비호하기를 어찌 이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지금 윤선도의 상소가 한번 전하께 진달되었으니 이이첨이 국권을 농락한 죄를 성상께서 반드시 이미 통촉하시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결단을 내리셔서 멀리 내쫓지 않으시니, 뒷날의 근심이 오늘날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송나라 신하 사마광(司馬光)이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에 대해서 그의 간악함을 모르는 데 걱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혹 알고서도 다시 용서해 준다면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낫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가 혹 간사한 짓을 하였는데 위에서 그것을 모를 경우에는 오히려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나, 이미 알고서도 토벌하지 못하여서 그가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방종하게 굴면서 돌아보는 바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선한 줄 알고서도 쓰지 않거나 악한 줄 알면서도 제거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임금이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사마광의 이 말이 바로 오늘날을 위하여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들은 이이첨과 본디 원수진 일이 없으며, 또 권세를 다투어 서로 알력을 일으킬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가 비록 뜻을 얻는다 할지라도 신들에게 있어서 무슨 해가 있겠으며, 그가 비록 세력을 잃는다 하더라도 신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다만 신들은 모두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신하로서 종사가 망하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종친(宗親)이 되고 왕족(王族)이 된 의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들은 참으로 아침에 이 상소를 올릴 경우 저녁에 삼사에서 죄주기를 청하는 것이 윤선도에 대해서 한 것보다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忠憤)이 격발되어 말을 가려서 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권간을 축출하여 종사를 안정시키고, 그 다음으로 삼사가 악인을 편든 죄를 다스리소서."
하였는데, 【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의 계사이다.】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다만 조정의 대체(大體)는 종척의 여러 경(卿)들이 간여할 일이 아닌데, 조섭하고 있는 이때 이렇게 번거롭게 아뢰니,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 상소를 올린 것인가? 밝은 해가 하늘에 있으니 곧이곧대로 대답하라."
하였다.

 

014) 5경에 유성(流星)이 문창성(文昌星) 아래에서 나와 헌원성(軒轅星) 아래로 들어갔다. 모양이 병과 같았고 꼬리의 길이가 8, 9척 가량 되었으며, 색이 붉고 빛이 땅을 비췄으며 소리가 있었다.






[註 014]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5경에 유성(流星)이 문창성(文昌星) 아래에서 나와 헌원성(軒轅星) 아래로 들어갔다. 모양이 병과 같았고 꼬리의 길이가 8, 9척 가량 되었으며, 색이 붉고 빛이 땅을 비췄으며 소리가 있었다.






[註 014]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3일 1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4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1월 5일 신미

정원이 귀천군 이수 등의 상소에 대한 비답 내용으로 귀천군에게 물으니, 회계하기를, "어리석은 신이 단지 직급의 차서로 소두(疏頭)가 되기는 하였지만 본디 신이 혼자서 상소를 올리는 일을 마음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요즈음 들어서 대소 언자(言者)들이 모두 죄를 받았는데, 언로가 한번 막히면 국가가 망하는 화가 눈앞에 닥치더라도 누가 감히 생사를 생각지 않고 한마디 말을 하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한 상황은 상소에서 진언한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여러 종친들은 모두 말하기를 ‘만약 이 때에 말하지 않아서 무익한 곳에서 죽기보다는 어찌 성명(聖明) 아래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모두들 이런 내용으로 서로 입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같은 말을 하였으므로, 화와 복을 생각지 않고 진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엄한 전지가 내렸으니, 신은 황공하여 정신이 없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이 만약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고서 이와 같이 상소를 올렸다면 비단 자신이 불측한 지경에 빠질 뿐만이 아닌데, 어찌 감히 성상을 속이겠습니까. 밝은 해가 하늘에 있고 성상의 위엄이 지척에 있는데, 신들이 이처럼 사주를 받았다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삶과 죽음을 잊어야 하는 의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들을 만약 잡아다가 추문한다면 마땅히 다하지 못한 말을 한층 더할 것입니다. 지금 엄한 전교를 받음에 신은 혼비백산해서 다시는 진달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가 부덕한 탓으로 역변이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경들은 일찍이 상소 한 장 진달하여 역적 한 명 토벌한 적도 없으면서 윤선도와 이형 등의 여론(餘論)을 주워모아 종사를 안정시킨 중신(重臣)들을 모함하였으니, 경들이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삶과 죽음을 잊어야 하는 의리가 과연 이와 같은 것인가? 다시는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어리석은 신이 단지 직급의 차서로 소두(疏頭)가 되기는 하였지만 본디 신이 혼자서 상소를 올리는 일을 마음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요즈음 들어서 대소 언자(言者)들이 모두 죄를 받았는데, 언로가 한번 막히면 국가가 망하는 화가 눈앞에 닥치더라도 누가 감히 생사를 생각지 않고 한마디 말을 하겠습니까.
예조 판서 이이첨이 위복의 권한을 마음대로 한 상황은 상소에서 진언한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여러 종친들은 모두 말하기를 ‘만약 이 때에 말하지 않아서 무익한 곳에서 죽기보다는 어찌 성명(聖明) 아래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모두들 이런 내용으로 서로 입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같은 말을 하였으므로, 화와 복을 생각지 않고 진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엄한 전지가 내렸으니, 신은 황공하여 정신이 없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들이 만약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고서 이와 같이 상소를 올렸다면 비단 자신이 불측한 지경에 빠질 뿐만이 아닌데, 어찌 감히 성상을 속이겠습니까. 밝은 해가 하늘에 있고 성상의 위엄이 지척에 있는데, 신들이 이처럼 사주를 받았다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삶과 죽음을 잊어야 하는 의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들을 만약 잡아다가 추문한다면 마땅히 다하지 못한 말을 한층 더할 것입니다. 지금 엄한 전교를 받음에 신은 혼비백산해서 다시는 진달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가 부덕한 탓으로 역변이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경들은 일찍이 상소 한 장 진달하여 역적 한 명 토벌한 적도 없으면서 윤선도와 이형 등의 여론(餘論)을 주워모아 종사를 안정시킨 중신(重臣)들을 모함하였으니, 경들이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삶과 죽음을 잊어야 하는 의리가 과연 이와 같은 것인가? 다시는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정언 한희가 아뢰기를, "유영경과 김제남이 역모할 때를 당하여 신의 아비 한찬남은 예조 판서 이이첨과 함께 앞장서서 정론(正論)을 발하고 의리에 입각해 주벌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역적의 잔당들이 이를 갈면서 보복할 것을 생각하고 있어서, 신의 부자는 조석간에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해 온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신의 형제 세 사람 역시 계축년에 관학(館學)의 여러 선비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역적을 토벌하였다가 엄성(嚴惺) 등에게 미움을 받아 ‘국모(國母)를 동요시키고 인륜(人倫)에 죄를 얻었다.’고 지목되어 모두 정거(停擧)를 당하였으며,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었습니다. 비록 사주를 받고서 묵은 원한을 갚고자 한 흉인(兇人)의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무고를 받음이 이와 같이 흉악하고도 참혹하였으니, 간관이 이 어떠한 직책인데 뻔뻔스럽게 외람되이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신을 파직하라고 명하여서, 남몰래 사주하여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대간인(大奸人)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유영경과 김제남이 역모할 때를 당하여 신의 아비 한찬남은 예조 판서 이이첨과 함께 앞장서서 정론(正論)을 발하고 의리에 입각해 주벌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역적의 잔당들이 이를 갈면서 보복할 것을 생각하고 있어서, 신의 부자는 조석간에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해 온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신의 형제 세 사람 역시 계축년에 관학(館學)의 여러 선비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역적을 토벌하였다가 엄성(嚴惺) 등에게 미움을 받아 ‘국모(國母)를 동요시키고 인륜(人倫)에 죄를 얻었다.’고 지목되어 모두 정거(停擧)를 당하였으며,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었습니다. 비록 사주를 받고서 묵은 원한을 갚고자 한 흉인(兇人)의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무고를 받음이 이와 같이 흉악하고도 참혹하였으니, 간관이 이 어떠한 직책인데 뻔뻔스럽게 외람되이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신을 파직하라고 명하여서, 남몰래 사주하여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대간인(大奸人)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정언 한희가 인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부자가 역적을 토벌하면서 여러 차례 잔당들에게 질시를 받았으니, 여러 잔당들이 이를 갈면서 복수를 도모하는 것은, 이치상 참으로 그러한 것으로, 비록 거짓을 얽고 없는 것을 날조하여 음흉하고 참혹하게 무함했다 하더라도 또한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증오하고 질시하는 자의 말 때문에 언관을 체척해서 간사한 자가 몰래 사주하여 사람을 모함하는 술수에 빠져서는 안되니, 출사시키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정언 한희가 인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부자가 역적을 토벌하면서 여러 차례 잔당들에게 질시를 받았으니, 여러 잔당들이 이를 갈면서 복수를 도모하는 것은, 이치상 참으로 그러한 것으로, 비록 거짓을 얽고 없는 것을 날조하여 음흉하고 참혹하게 무함했다 하더라도 또한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증오하고 질시하는 자의 말 때문에 언관을 체척해서 간사한 자가 몰래 사주하여 사람을 모함하는 술수에 빠져서는 안되니, 출사시키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양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귀천군 이수와 금산군 이성윤 등이 어제 올린 상소를 보건대, 대개 삼사를 무함함에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계한 말을 봄에 미쳐서는 ‘우리 여러 종친들이 입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같은 말을 하였다.’느니, ‘한층 더할 것이다.’느니 하는 말이 있어서 몹시 흉참하였습니다. 하문(下問)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으면서 잡아다가 추문하면 마땅히 한층 더한 말을 진달하겠다고 하였으니, 그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더욱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무릇 종실들에게 과거 응시를 허락하지 않고 사로(仕路)를 허통시키지 않으며, 조정의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외방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며, 사대부들과 교유하지 못하도록 조종조에서 법을 정한 것은 크고도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귀천군과 금산군은 종실들 가운데서 재주와 명망이 있어서 일대(一隊)의 추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뜻을 잃은 무리들과 체결하여 영수(領首)가 되고, 여러 종친들 가운데서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을 이끌고서 말을 전해 불러모은 다음, 시험삼아 상소 한 장을 올려 먼저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제거하려 하였고, 다음으로는 삼사에 있는 항론(抗論)한 사람을 제거하고자 진달하였으니, 장차 무엇을 하려는 것이란 말입니까. 종사의 존망과 사류(士類)의 사생이 숨 한 번 쉴 사이에 박두해 있으니, 오늘날의 형세가 또한 급박하고도 위태롭지 않습니까. 비록 초야에 있는 자의 망령스러운 말이라도 오히려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더구나 귀근(貴近)한 종친들의 말을 어찌 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단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맑은 조정에 거듭 욕을 끼칠 수 없으니, 속히 신들을 파직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삼가 귀천군 이수와 금산군 이성윤 등이 어제 올린 상소를 보건대, 대개 삼사를 무함함에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계한 말을 봄에 미쳐서는 ‘우리 여러 종친들이 입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같은 말을 하였다.’느니, ‘한층 더할 것이다.’느니 하는 말이 있어서 몹시 흉참하였습니다. 하문(下問)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으면서 잡아다가 추문하면 마땅히 한층 더한 말을 진달하겠다고 하였으니, 그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더욱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무릇 종실들에게 과거 응시를 허락하지 않고 사로(仕路)를 허통시키지 않으며, 조정의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외방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며, 사대부들과 교유하지 못하도록 조종조에서 법을 정한 것은 크고도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귀천군과 금산군은 종실들 가운데서 재주와 명망이 있어서 일대(一隊)의 추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뜻을 잃은 무리들과 체결하여 영수(領首)가 되고, 여러 종친들 가운데서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을 이끌고서 말을 전해 불러모은 다음, 시험삼아 상소 한 장을 올려 먼저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제거하려 하였고, 다음으로는 삼사에 있는 항론(抗論)한 사람을 제거하고자 진달하였으니, 장차 무엇을 하려는 것이란 말입니까. 종사의 존망과 사류(士類)의 사생이 숨 한 번 쉴 사이에 박두해 있으니, 오늘날의 형세가 또한 급박하고도 위태롭지 않습니까. 비록 초야에 있는 자의 망령스러운 말이라도 오히려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더구나 귀근(貴近)한 종친들의 말을 어찌 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단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맑은 조정에 거듭 욕을 끼칠 수 없으니, 속히 신들을 파직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홍문관이 상차하기를, "전후로 올린 흉소(兇疏)에서 전적으로 삼사를 공격하였는데, 오늘 한 상소를 올림에 삼사가 한 번 피혐하고, 내일 한 상소를 올림에 삼사가 또 피혐하니, 삼사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는 한 이 상소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형은 더욱 흉악하고 참혹스러워, 역적을 토벌한 자가 국권을 농락하였다는 지척을 받고 올바른 논의를 주장한 자가 간인을 편들었다는 지척을 받았습니다만, 이것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니 많이 따질 것조차 없습니다. 종실들에 이르러서는, 부회(傅會)하여 상소를 올려서 번갈아가며 표리가 되었으니, 이것이 어떠한 거조인데 감히 자라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될 짓을 한단 말입니까. 신들은 모두 형편없는 자질로 경악(經奈)에 몸담고 있으면서 도움은 주지 못한 채 여러 차례 무함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군부께서 조용히 조섭하시는 이 때에 번번이 소요를 끼치면서 억울함을 신원하고 바로잡아주기를 구하는 자처럼 하였는바, 이것은 실로 신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속히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시어 조정을 맑게 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후로 올린 흉소(兇疏)에서 전적으로 삼사를 공격하였는데, 오늘 한 상소를 올림에 삼사가 한 번 피혐하고, 내일 한 상소를 올림에 삼사가 또 피혐하니, 삼사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는 한 이 상소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형은 더욱 흉악하고 참혹스러워, 역적을 토벌한 자가 국권을 농락하였다는 지척을 받고 올바른 논의를 주장한 자가 간인을 편들었다는 지척을 받았습니다만, 이것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니 많이 따질 것조차 없습니다. 종실들에 이르러서는, 부회(傅會)하여 상소를 올려서 번갈아가며 표리가 되었으니, 이것이 어떠한 거조인데 감히 자라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될 짓을 한단 말입니까.
신들은 모두 형편없는 자질로 경악(經奈)에 몸담고 있으면서 도움은 주지 못한 채 여러 차례 무함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군부께서 조용히 조섭하시는 이 때에 번번이 소요를 끼치면서 억울함을 신원하고 바로잡아주기를 구하는 자처럼 하였는바, 이것은 실로 신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속히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시어 조정을 맑게 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홍문관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서 세 역적에 대해 속히 공론을 따를 것을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흉소는 잇달아 들여 조섭하지 못하게 하면서 삼사의 계차(啓絓)는 어찌하여 유독 들이지 않는가? 삼사의 계차를 오늘부터 들이라."
"흉소는 잇달아 들여 조섭하지 못하게 하면서 삼사의 계차(啓絓)는 어찌하여 유독 들이지 않는가? 삼사의 계차를 오늘부터 들이라."

 

정원이 아뢰기를, "지난해 11월에 북병사(北兵使) 김경서(金景瑞)의 장계가 본원에 도착하였는데, 뜯어보니 그 가운데 잡서(雜書) 한 통이 있었는바, 그 내용이 몹시 흉악하고 괴이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즉시 입계하여야 했었는데, 신들이 이와 같은 잡서는 성상께 보여서는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불태워 없애자니 말세의 인심이 불측하여 어떤 흉언이 나올지 몰라서 봉함하여 보관해 두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위에 올리지도 않고 불태워 없애지도 않으면 끝내 처치하기가 곤란하겠기에 감히 이렇게 입계합니다. 이 잡서가 동봉된 장계를 올릴 때에 참여한 하인과 전달한 파발을 차례차례 명확히 조사해서 아뢰라고 북병사 및 함경 감사에게 비밀히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른바 잡서란 바로 함경 감사 유공량(柳公亮)이 뇌물을 바치고서 본직을 얻은 일을 말한 것이다. 정사가 문란해진 이후로 관직마다 모두 가격이 매겨져 있어서 곤수나 수령의 자리에 모두 크고 작음을 따져 값을 올리고 내렸다. 그러나 방백 자리의 경우, 유공량이 처음으로 백금(百金)을 주고 그 자리를 얻었으므로 북쪽 지방 사람들이 분함을 품고서 이 일을 한 것이다. 이 뒤로 방백 자리의 값이 천금(千金)에 이르게 되었다.】
"지난해 11월에 북병사(北兵使) 김경서(金景瑞)의 장계가 본원에 도착하였는데, 뜯어보니 그 가운데 잡서(雜書) 한 통이 있었는바, 그 내용이 몹시 흉악하고 괴이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즉시 입계하여야 했었는데, 신들이 이와 같은 잡서는 성상께 보여서는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불태워 없애자니 말세의 인심이 불측하여 어떤 흉언이 나올지 몰라서 봉함하여 보관해 두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위에 올리지도 않고 불태워 없애지도 않으면 끝내 처치하기가 곤란하겠기에 감히 이렇게 입계합니다.
이 잡서가 동봉된 장계를 올릴 때에 참여한 하인과 전달한 파발을 차례차례 명확히 조사해서 아뢰라고 북병사 및 함경 감사에게 비밀히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른바 잡서란 바로 함경 감사 유공량(柳公亮)이 뇌물을 바치고서 본직을 얻은 일을 말한 것이다. 정사가 문란해진 이후로 관직마다 모두 가격이 매겨져 있어서 곤수나 수령의 자리에 모두 크고 작음을 따져 값을 올리고 내렸다. 그러나 방백 자리의 경우, 유공량이 처음으로 백금(百金)을 주고 그 자리를 얻었으므로 북쪽 지방 사람들이 분함을 품고서 이 일을 한 것이다. 이 뒤로 방백 자리의 값이 천금(千金)에 이르게 되었다.】

 

1월 6일 임신

홍문관 교리 강린(姜繗), 부교리 임성지(任性之), 부수찬 황덕부(黃德符), 정자 조유선(趙裕善) 등이 상차하기를, "전후로 올린 흉악한 유생의 상소가 이미 몹시 음험하고 참혹하였습니다. 귀천군과 금산군에 이르러서는 모두 역적 이진(李珒)의 잔당으로, 대간(大奸)의 사주를 받고서 감히 불측한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리하여 전적으로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공격하여 제거시킬 꾀를 이루고자 하였으며, 드러내놓고 윤선도와 이형을 비호하였으니, 그 속마음이 무엇인지 분명하여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양사가 인피한 것은 깊이 《춘추》의 악인을 제거하고 당파를 다스리는 의리를 얻은 것으로 모두 인피할 만한 혐의가 없습니다. 모두 출사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후로 올린 흉악한 유생의 상소가 이미 몹시 음험하고 참혹하였습니다. 귀천군과 금산군에 이르러서는 모두 역적 이진(李珒)의 잔당으로, 대간(大奸)의 사주를 받고서 감히 불측한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리하여 전적으로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공격하여 제거시킬 꾀를 이루고자 하였으며, 드러내놓고 윤선도와 이형을 비호하였으니, 그 속마음이 무엇인지 분명하여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양사가 인피한 것은 깊이 《춘추》의 악인을 제거하고 당파를 다스리는 의리를 얻은 것으로 모두 인피할 만한 혐의가 없습니다. 모두 출사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승정원이 아뢰기를, "역적을 형벌에 처하였으면 고묘(告廟)하는 등의 일을 하루라도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거행하지 않아 사람들이 답답해 함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예관(禮官)이 나오지 않아서 이 막대한 거조를 뒤로 물렸으니, 예관이 어찌 마음 편할 수 있겠습니까. 정한 날짜에 거행한다면 예관이 마땅히 출사할 것입니다. 뒤로 물려 거행하지 마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대신과 예관이 출사한 뒤에 거행하라." 하였다. 【최기(崔沂)에 대해 고묘하는 일이다.】
"역적을 형벌에 처하였으면 고묘(告廟)하는 등의 일을 하루라도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거행하지 않아 사람들이 답답해 함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예관(禮官)이 나오지 않아서 이 막대한 거조를 뒤로 물렸으니, 예관이 어찌 마음 편할 수 있겠습니까. 정한 날짜에 거행한다면 예관이 마땅히 출사할 것입니다. 뒤로 물려 거행하지 마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대신과 예관이 출사한 뒤에 거행하라."
하였다. 【최기(崔沂)에 대해 고묘하는 일이다.】

 

양사가 합사하여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할 것을 연계하니, 답하기를, "허욱(許頊)과 성영(成泳)은 이미 죄를 정하였으니 논의치 않는 것이 옳다. 최천건(崔天健)은 중도(中道)에 자원부처(自願付處)하라." 하였다.
"허욱(許頊)과 성영(成泳)은 이미 죄를 정하였으니 논의치 않는 것이 옳다. 최천건(崔天健)은 중도(中道)에 자원부처(自願付處)하라."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무릇 종실을 사로(仕路)에 허통(許通)시키지 않고 조정의 논의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며, 외방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사대부들과 교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조종조에서 정한 법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국가에 관계되는 큰 일일지라도 반드시 삼공이 백관을 거느리고 아뢰어서도 허락을 받지 못한 다음에야 왕자(王子)가 여러 종친을 거느리고 복합(伏閤)하는 것이니, 이것이 전해져 내려온 예전의 규례입니다. 지금 금산군 이성윤은 재주와 명망이 있음을 믿고 그들 사이에서 추중을 받으면서 조사(朝士)들과 교유하고 무뢰배들과 체결하였는데, 서양갑(徐羊甲)과 심우영(沈友英)은 바로 그의 심복입니다. 요행스럽게 법망에서 벗어나서도 오히려 두려워할 줄 모르고 친하게 지내는 심희수의 시골집을 출입하였고, 그의 매부인 한준겸(韓浚謙)의 집을 왕래하였으니, 그가 무슨 흉모를 꾸미고 있는지 사람들이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박홍도(朴弘道)와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골육간보다 더 친하게 지내었는데, 어두운 밤이면 서로 오가기를 귀신이나 도깨비같이 하였습니다. 대개 박홍도는 죄인 허성(許檎)의 사위로, 뜻을 잃고 앙앙불락하며 항상 복수할 계책을 도모하여, 앞뒤의 흉모를 모두 사주하여 일으켰습니다. 지난번에는 서당(書堂)에 나아가 이성윤을 불러다가 며칠간 놀면서 상소의 내용에 대해 서로 의논하였고, 술을 마음껏 마시면서 시를 지었는데 ‘경운궁을 생각한다.[懷慶運宮]’는 것으로 제목을 내어 수창해 읊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그가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귀천군 이수는 왕실의 가까운 친족으로서 역적 이진이 방자하게 굴던 날을 당하여 여우처럼 아첨을 떨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역적 이진이 좋아하는 사창(私娼)인 언옥(彦玉)을 불러다가 그의 집에서 잠재우기를 거의 매일같이 하였는바, 그가 역적과 친밀하게 지내었다는 것을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역적 이진의 옥사를 다스릴 때 여러 차례 역적들의 입에서 이름이 나왔는데도 요행히 용서를 받아 오히려 종반(宗班)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상께서 살려주신 큰 은덕을 망각하고 간인이 사주한 흉악한 계책을 받아서, 도당을 거느리고 우두머리가 된 다음 이성윤·박홍도 등과 표리가 되어 서로 호응하여서 흉소(兇疏)의 여론(餘論)을 주워모아 계속해서 흉소를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무함하여 온 나라가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신들은 나라를 텅 비게 한 뒤에 장차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박홍도는 항상 종실들을 과거와 사로에 허통해야 한다는 설로써 그들의 마음을 꾀었으므로, 종실들 가운데에서 의리를 잊고 이익을 탐하는 자 및 역적의 친척으로서 역적을 비호하는 부형과 자제들이 모두 휩쓸려 기꺼이 따라서 뒤를 이어 일어났습니다. 신들은 눈앞의 불측한 화가 상소를 올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이성윤과 이수를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하고 박홍도를 먼 변방에 안치하며, 금계군(錦溪君) 이인수(李仁壽) 이하를 모두 삭탈 관작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회경운궁시(懷慶運宮詩)’를 써서 들이라." 하였다. 양사가 회계하기를, "박홍도가 호당(湖堂)에 번들러 나갔을 때 금산군 이성윤을 불러와서 여러 날 동안 같이 묵으면서 시를 지어 수창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처음에는 ‘대비를 생각한다. [憶大妃]’는 것으로 제목을 내었다가 다시 고쳐서 ‘경운궁을 생각한다.’는 것으로 제목을 고쳐서 시를 지었다는 설이 자자하게 전파되었으므로, 신들이 들은 것을 곧바로 거론하여 아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구(詩句)는 미처 듣지 못하였으므로 서계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합계에 대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수는 이성윤과 차이가 있는 듯하니, 중도(中道)에 자원부처하라. 박홍도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박홍도가 비록 금산군 이성윤과 가까이 살기는 하였지만 본디 서로 어울리지 않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아울러 논하였다. 대개 박홍도가 이이첨에 반대하여서 그 무리들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무릇 종실을 사로(仕路)에 허통(許通)시키지 않고 조정의 논의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며, 외방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사대부들과 교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조종조에서 정한 법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국가에 관계되는 큰 일일지라도 반드시 삼공이 백관을 거느리고 아뢰어서도 허락을 받지 못한 다음에야 왕자(王子)가 여러 종친을 거느리고 복합(伏閤)하는 것이니, 이것이 전해져 내려온 예전의 규례입니다.
지금 금산군 이성윤은 재주와 명망이 있음을 믿고 그들 사이에서 추중을 받으면서 조사(朝士)들과 교유하고 무뢰배들과 체결하였는데, 서양갑(徐羊甲)과 심우영(沈友英)은 바로 그의 심복입니다. 요행스럽게 법망에서 벗어나서도 오히려 두려워할 줄 모르고 친하게 지내는 심희수의 시골집을 출입하였고, 그의 매부인 한준겸(韓浚謙)의 집을 왕래하였으니, 그가 무슨 흉모를 꾸미고 있는지 사람들이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박홍도(朴弘道)와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골육간보다 더 친하게 지내었는데, 어두운 밤이면 서로 오가기를 귀신이나 도깨비같이 하였습니다. 대개 박홍도는 죄인 허성(許檎)의 사위로, 뜻을 잃고 앙앙불락하며 항상 복수할 계책을 도모하여, 앞뒤의 흉모를 모두 사주하여 일으켰습니다. 지난번에는 서당(書堂)에 나아가 이성윤을 불러다가 며칠간 놀면서 상소의 내용에 대해 서로 의논하였고, 술을 마음껏 마시면서 시를 지었는데 ‘경운궁을 생각한다.[懷慶運宮]’는 것으로 제목을 내어 수창해 읊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그가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귀천군 이수는 왕실의 가까운 친족으로서 역적 이진이 방자하게 굴던 날을 당하여 여우처럼 아첨을 떨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역적 이진이 좋아하는 사창(私娼)인 언옥(彦玉)을 불러다가 그의 집에서 잠재우기를 거의 매일같이 하였는바, 그가 역적과 친밀하게 지내었다는 것을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역적 이진의 옥사를 다스릴 때 여러 차례 역적들의 입에서 이름이 나왔는데도 요행히 용서를 받아 오히려 종반(宗班)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상께서 살려주신 큰 은덕을 망각하고 간인이 사주한 흉악한 계책을 받아서, 도당을 거느리고 우두머리가 된 다음 이성윤·박홍도 등과 표리가 되어 서로 호응하여서 흉소(兇疏)의 여론(餘論)을 주워모아 계속해서 흉소를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역적을 토벌한 신하를 무함하여 온 나라가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신들은 나라를 텅 비게 한 뒤에 장차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박홍도는 항상 종실들을 과거와 사로에 허통해야 한다는 설로써 그들의 마음을 꾀었으므로, 종실들 가운데에서 의리를 잊고 이익을 탐하는 자 및 역적의 친척으로서 역적을 비호하는 부형과 자제들이 모두 휩쓸려 기꺼이 따라서 뒤를 이어 일어났습니다. 신들은 눈앞의 불측한 화가 상소를 올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이성윤과 이수를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하고 박홍도를 먼 변방에 안치하며, 금계군(錦溪君) 이인수(李仁壽) 이하를 모두 삭탈 관작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회경운궁시(懷慶運宮詩)’를 써서 들이라."
하였다. 양사가 회계하기를,
"박홍도가 호당(湖堂)에 번들러 나갔을 때 금산군 이성윤을 불러와서 여러 날 동안 같이 묵으면서 시를 지어 수창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처음에는 ‘대비를 생각한다. [憶大妃]’는 것으로 제목을 내었다가 다시 고쳐서 ‘경운궁을 생각한다.’는 것으로 제목을 고쳐서 시를 지었다는 설이 자자하게 전파되었으므로, 신들이 들은 것을 곧바로 거론하여 아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구(詩句)는 미처 듣지 못하였으므로 서계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합계에 대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수는 이성윤과 차이가 있는 듯하니, 중도(中道)에 자원부처하라. 박홍도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박홍도가 비록 금산군 이성윤과 가까이 살기는 하였지만 본디 서로 어울리지 않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아울러 논하였다. 대개 박홍도가 이이첨에 반대하여서 그 무리들에게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전교하였다. "각도에 정배(定配)한 죄인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없지 않은데도 각 고을에서 숨기고 보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일이 몹시 놀랍다. 전후로 정배한 죄인을 금부로 하여금 뽑아내어 서계하게 하고 상세히 각도에 하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적간해서 계문하게 하되, 대신 점고받는 자가 있을 경우에도 역시 상세히 조사해 치계하게 하라. 그리고 이후로는 모든 정배한 죄인들을 다시금 잘 막고 금하여 도망치는 걱정이 없게끔 하라."
"각도에 정배(定配)한 죄인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없지 않은데도 각 고을에서 숨기고 보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일이 몹시 놀랍다. 전후로 정배한 죄인을 금부로 하여금 뽑아내어 서계하게 하고 상세히 각도에 하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적간해서 계문하게 하되, 대신 점고받는 자가 있을 경우에도 역시 상세히 조사해 치계하게 하라. 그리고 이후로는 모든 정배한 죄인들을 다시금 잘 막고 금하여 도망치는 걱정이 없게끔 하라."

 

신흠(申欽)을 춘천(春川)에, 박동량(朴東亮)을 아산(牙山)에, 한준겸(韓浚謙)을 충원(忠原)에 부처(付處)하였다.

 

1월 7일 계유

유학(幼學) 이광계(李光啓)가 상소하기를, "근래에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들이 몰래 간인을 사주하여 번갈아가며 흉한 상소를 올렸습니다. 어제 듣건대 귀천군 이수 등이 상소하여 이이첨을 힘껏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신은 원소(原疏)를 보지 못하여서 비록 주된 내용은 모르겠으나, 그 귀결점을 추구해 보면 요점은 윤선도·이형의 간사한 투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임금을 협박하고 위를 범하며, 역적을 비호하고 악인을 편든 꾀는 윤선도 등의 상소보다 더 심한 점이 있습니다. 아, 여러 종친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어찌 그 까닭이 없겠습니까. 대간인(大奸人)이 숨어서 사주하는 것은 혹 인척임을 인하기도 하고 족류(族類)임을 인하기도 하며, 혹 돌보아 길러준 것을 인하기도 하고 혹 유인하고 협박함을 인하기도 하는데, 언로(言路)의 설을 핑계대고는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들을 구원해 주어 흉한 모의를 성사시켜서 선류(善類)를 모두 죽인 다음에 망측한 꾀를 방자히 하려는 것입니다. 신이 여러 흉인들의 정상에 대해 하나하나 진달드리겠습니다. 귀천군은 바로 풍산군(豊山君)의 아들입니다. 그 아비가 몰래 왕위를 차지할 계책을 품어 선조(先朝) 때 죄를 받았습니다. 이에 그들 부자는 항상 스스로 편안치 못한 뜻이 있어서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틈을 엿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드디어 역적 이진과 아주 친하게 지내면서 몰래 흉모를 주도하여, 청림령(靑林令)과 그의 삼촌인 풍천 도정(豊川都正) 등과 체결하고는 아첨하고 아부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이진의 창첩(娼妾)인 언옥(彦玉)을 그의 집에 데려다 놓고 밤낮없이 모여서 술을 마셨으며 몰래 불궤(不軌)를 도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진을 위하여 상국(上國)에 참소를 행하고자 해서 자신이 사통한 아릿따운 여종인 기매개(其每介)를 역관(譯官) 이철(李澈)에게 주어서 그의 뜻에 맞추었으므로 그의 이름이 역노(逆奴)의 공초에서 세 번이나 나왔었는데, 그 당시에 대신이 감싸주어서 보전되었습니다. 김제남이 죽음에 미쳐서 이수(李晬)는 금산군 이성윤과 더불어 함께 정청(庭請)하는 반열에 있으면서 서로 쳐다보며 눈물을 흘려서 뜰에 가득히 있던 보는 자들이 모두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또 지난 12월 30일에 과세 문안(過歲問安)할 때 이수는 이성윤과 함께 다른 종실들에게 말하기를 ‘문무관 2품 이상이 모두 자전께 문안하는데 우리들이 어찌 가서 문안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그 종실이 괴이함을 금치 못하여 답하기를 ‘왕자(王子)도 하지 않는데 군(君)이 어떻게 새로운 규례를 창시하겠는가.’ 하자, 이수 등이 말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윤유기(尹惟幾)의 첩은 바로 수의 가까운 친족으로 윤선도가 상소를 바친 때부터 그 첩이 오랫동안 수의 집에 있었으며, 윤선도의 상소 역시 이수의 참모인 이성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수는 척리(戚里)들과 혼인을 맺고 조신(朝紳)들과 체결하였으며, 당연히 봉작(封爵)을 받아야 할 그의 여동생인 소주(小主)를 한준겸에게 주어 첩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무적(茂績)과 함께 살면서 한 몸으로 합하였으며, 이진과 이의(李㼁)가 죽자 항상 불만스러운 생각을 품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임금도 없고 국모(國母)도 없는 나라에서 내가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크게 떠들어 댔습니다. 심지어는 ‘이직(李稷)과 정항(鄭沆)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계축년에는 이에 심우영(沈友英)을 역적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과 다투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또 박홍도와 이웃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서로 마주하여 흉악한 말을 주고받았으며, 심지어 성윤 등 몇 사람과 더불어 함께 서당(書堂)에 가서 놀이를 한다고 핑계대고는 밤을 지세워 비밀히 의논하였습니다. 서당은 종실이 갈 곳이 아니며 조사(朝士)는 종실이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여 정적(情迹)이 매우 수상하였습니다.  성윤은 또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인 이병(李覮)과 사생을 함께할 친구가 되어 낮이면 모였다가 밤이면 흩어졌으며, 병무(兵務)를 주관하는 관원과 교결하였으니, 도모한 것이 무슨 일이겠습니까. 그가 만약 대간인을 믿고서 그의 사주를 받지 않았다면 흉억을 자행하는 것이 한결같이 이에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금계군(錦溪君) 이인수(李仁壽) 역시 역적 이진의 도당으로 요행히 죽임을 면하였는데, 계축년에 역적을 토벌할 때 그의 아들 이순형(李純馨)을 지휘하여 역적을 토벌한 여러 신하들을 공격하여 반드시 역적 이의를 비호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원익(李元翼)을 논죄(論罪)할 때 미쳐서는 순형으로 하여금 또 정택뢰(鄭澤雷)의 상소에 참여하게 하여 반궁(泮宮)에서 삭제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분함을 품고 원망을 쌓아 반드시 여러 역적들의 원수를 갚은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니, 어찌 통분스럽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근래에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들이 몰래 간인을 사주하여 번갈아가며 흉한 상소를 올렸습니다. 어제 듣건대 귀천군 이수 등이 상소하여 이이첨을 힘껏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신은 원소(原疏)를 보지 못하여서 비록 주된 내용은 모르겠으나, 그 귀결점을 추구해 보면 요점은 윤선도·이형의 간사한 투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임금을 협박하고 위를 범하며, 역적을 비호하고 악인을 편든 꾀는 윤선도 등의 상소보다 더 심한 점이 있습니다.
아, 여러 종친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어찌 그 까닭이 없겠습니까. 대간인(大奸人)이 숨어서 사주하는 것은 혹 인척임을 인하기도 하고 족류(族類)임을 인하기도 하며, 혹 돌보아 길러준 것을 인하기도 하고 혹 유인하고 협박함을 인하기도 하는데, 언로(言路)의 설을 핑계대고는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들을 구원해 주어 흉한 모의를 성사시켜서 선류(善類)를 모두 죽인 다음에 망측한 꾀를 방자히 하려는 것입니다. 신이 여러 흉인들의 정상에 대해 하나하나 진달드리겠습니다.
귀천군은 바로 풍산군(豊山君)의 아들입니다. 그 아비가 몰래 왕위를 차지할 계책을 품어 선조(先朝) 때 죄를 받았습니다. 이에 그들 부자는 항상 스스로 편안치 못한 뜻이 있어서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틈을 엿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드디어 역적 이진과 아주 친하게 지내면서 몰래 흉모를 주도하여, 청림령(靑林令)과 그의 삼촌인 풍천 도정(豊川都正) 등과 체결하고는 아첨하고 아부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이진의 창첩(娼妾)인 언옥(彦玉)을 그의 집에 데려다 놓고 밤낮없이 모여서 술을 마셨으며 몰래 불궤(不軌)를 도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진을 위하여 상국(上國)에 참소를 행하고자 해서 자신이 사통한 아릿따운 여종인 기매개(其每介)를 역관(譯官) 이철(李澈)에게 주어서 그의 뜻에 맞추었으므로 그의 이름이 역노(逆奴)의 공초에서 세 번이나 나왔었는데, 그 당시에 대신이 감싸주어서 보전되었습니다. 김제남이 죽음에 미쳐서 이수(李晬)는 금산군 이성윤과 더불어 함께 정청(庭請)하는 반열에 있으면서 서로 쳐다보며 눈물을 흘려서 뜰에 가득히 있던 보는 자들이 모두 괴이하게 여겼습니다.
또 지난 12월 30일에 과세 문안(過歲問安)할 때 이수는 이성윤과 함께 다른 종실들에게 말하기를 ‘문무관 2품 이상이 모두 자전께 문안하는데 우리들이 어찌 가서 문안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그 종실이 괴이함을 금치 못하여 답하기를 ‘왕자(王子)도 하지 않는데 군(君)이 어떻게 새로운 규례를 창시하겠는가.’ 하자, 이수 등이 말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윤유기(尹惟幾)의 첩은 바로 수의 가까운 친족으로 윤선도가 상소를 바친 때부터 그 첩이 오랫동안 수의 집에 있었으며, 윤선도의 상소 역시 이수의 참모인 이성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수는 척리(戚里)들과 혼인을 맺고 조신(朝紳)들과 체결하였으며, 당연히 봉작(封爵)을 받아야 할 그의 여동생인 소주(小主)를 한준겸에게 주어 첩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무적(茂績)과 함께 살면서 한 몸으로 합하였으며, 이진과 이의(李㼁)가 죽자 항상 불만스러운 생각을 품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임금도 없고 국모(國母)도 없는 나라에서 내가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크게 떠들어 댔습니다. 심지어는 ‘이직(李稷)과 정항(鄭沆)을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계축년에는 이에 심우영(沈友英)을 역적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과 다투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또 박홍도와 이웃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서로 마주하여 흉악한 말을 주고받았으며, 심지어 성윤 등 몇 사람과 더불어 함께 서당(書堂)에 가서 놀이를 한다고 핑계대고는 밤을 지세워 비밀히 의논하였습니다. 서당은 종실이 갈 곳이 아니며 조사(朝士)는 종실이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여 정적(情迹)이 매우 수상하였습니다.
성윤은 또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인 이병(李覮)과 사생을 함께할 친구가 되어 낮이면 모였다가 밤이면 흩어졌으며, 병무(兵務)를 주관하는 관원과 교결하였으니, 도모한 것이 무슨 일이겠습니까. 그가 만약 대간인을 믿고서 그의 사주를 받지 않았다면 흉억을 자행하는 것이 한결같이 이에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금계군(錦溪君) 이인수(李仁壽) 역시 역적 이진의 도당으로 요행히 죽임을 면하였는데, 계축년에 역적을 토벌할 때 그의 아들 이순형(李純馨)을 지휘하여 역적을 토벌한 여러 신하들을 공격하여 반드시 역적 이의를 비호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원익(李元翼)을 논죄(論罪)할 때 미쳐서는 순형으로 하여금 또 정택뢰(鄭澤雷)의 상소에 참여하게 하여 반궁(泮宮)에서 삭제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분함을 품고 원망을 쌓아 반드시 여러 역적들의 원수를 갚은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니, 어찌 통분스럽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여 연계하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죄를 정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죄를 정하였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여 연계하기를, "죄인 이수는 왕실의 가까운 친속으로서 지식까지 갖추고 있어서 그들 사이에서 영수가 된 지 오래입니다. 본디 역적 이진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고, 청림령(靑林令)과 그의 삼촌 풍천 도정(豊川都正) 등과 더불어 교결하고는 활쏘기를 하면서 폐단을 일으키고 아부하고 아첨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이진의 창첩(娼妾) 언옥(彦玉)을 불러다가 그의 집에서 거의 매일 묵게 하였습니다. 이진의 옥사를 다스림에 미쳐서는, 여러 차례 역적의 입에서 나오되 초사(招辭)가 몹시 긴중하여 형벌을 면키가 어려웠는데, 요행히 용서를 받아 아직도 종반(宗班)에 끼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상께서 살려주신 큰 은덕을 잊고 간인이 사주하는 흉지(兇旨)를 받아서는, 도당을 이끌고 우두머리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성윤·박홍도와 서로 표리가 되어 흉소(兇疏)의 여론(餘論)을 주워모은 다음, 계속해서 망측한 흉소를 바쳐 반드시 역적을 토벌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무함해, 온 나라가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였으니, 그 본심을 따져볼 때 과연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이수의 죄악이 이성윤과 더불어 애당초 다름이 없기 때문에 신들이 아울러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였는데, 거기에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대개 종실이 외방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법입니다. 어찌 중도(中道)에 부처하여 마음대로 출입하게 해서 의외의 걱정거리를 끼치겠습니까. 더구나 박홍도는 윤선도나 이형·이성윤 등과 더불어 이웃해 살면서 골육간보다 더 친하게 지내어, 어두운 저녁에 서로 오가기를 귀신이나 도깨비 같이 하였습니다. 그 까닭을 궁구해보면 그 속셈을 가리울 수 없습니다. 그의 평생 동안의 마음씀은 의리를 잊고 이익을 탐하며,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고, 얻은 뒤에는 잃을까 걱정하였습니다. 전조(銓曹)의 천망(薦望)을 앞다투면서는 이웃에 살아 아주 절친한 친구를 탄핵하고자 했고, 전조에 속히 들어가고자 하면서는 상피(相避) 관계에 있는 동서를 무함하였습니다. 이미 관직을 얻고서는 방자히 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였고 공론에 죄를 얻고서는 뜻을 잃은 채 앙앙불락하였습니다. 몸을 들여놓을 곳이 없자 불령스럽고 괴기스런 무리들과 몰래 결탁하여, 날마다 보복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에 처음에는 윤선도를 사주하여 그로 하여금 먼저 상소를 올리게 하고, 다음으로는 이형을 사주하여 계속 후원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이수 등과 결탁해 종실들을 과거와 관로에 허통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꾀어서, 의리를 잊고 역적을 비호하는 여러 종친들을 일어나도록 권하여 기어이 한번 휩쓸어버리고자 하였으니, 또한 흉악하고도 참혹스럽지 않습니까. 더구나 종실은 사대부가 교제할 사람이 아니고 서당(書堂)은 종친이 놀이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성윤을 불러와서 관곡(官穀)을 먹이고 여러 날 동안 놀이를 즐기면서 시를 지어 서로 화답하며 소회를 읊조렸습니다. 심지어 ‘경운궁을 생각한다.’는 제목으로 4운시를 짓고는 서로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의 말이 자자하여 듣는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박재(朴梓)의 ‘경운궁에 조회하라.’는 상소와 그 내용이 서로 부합되니,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참으로 거짓이 아닙니다. 박홍도는 바로 여러 역적들의 중개역할을 하는 자이고 화를 조성하는 씨앗이 되는 자입니다. 그가 서울에 하루를 있으면 하루의 걱정을 끼치고, 이틀을 있으면 이틀의 걱정을 끼칩니다. 그의 죄악이 이와 같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외방으로 내치는 형벌을 어찌 잠시라도 늦추어 시행할 수 있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유음을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수는 참작하여 죄를 정하였으니 위리 안치할 것까지 없다. 박홍도에 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죄인 이수는 왕실의 가까운 친속으로서 지식까지 갖추고 있어서 그들 사이에서 영수가 된 지 오래입니다. 본디 역적 이진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고, 청림령(靑林令)과 그의 삼촌 풍천 도정(豊川都正) 등과 더불어 교결하고는 활쏘기를 하면서 폐단을 일으키고 아부하고 아첨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이진의 창첩(娼妾) 언옥(彦玉)을 불러다가 그의 집에서 거의 매일 묵게 하였습니다. 이진의 옥사를 다스림에 미쳐서는, 여러 차례 역적의 입에서 나오되 초사(招辭)가 몹시 긴중하여 형벌을 면키가 어려웠는데, 요행히 용서를 받아 아직도 종반(宗班)에 끼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상께서 살려주신 큰 은덕을 잊고 간인이 사주하는 흉지(兇旨)를 받아서는, 도당을 이끌고 우두머리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성윤·박홍도와 서로 표리가 되어 흉소(兇疏)의 여론(餘論)을 주워모은 다음, 계속해서 망측한 흉소를 바쳐 반드시 역적을 토벌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무함해, 온 나라가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려고 하였으니, 그 본심을 따져볼 때 과연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이수의 죄악이 이성윤과 더불어 애당초 다름이 없기 때문에 신들이 아울러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였는데, 거기에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대개 종실이 외방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법입니다. 어찌 중도(中道)에 부처하여 마음대로 출입하게 해서 의외의 걱정거리를 끼치겠습니까.
더구나 박홍도는 윤선도나 이형·이성윤 등과 더불어 이웃해 살면서 골육간보다 더 친하게 지내어, 어두운 저녁에 서로 오가기를 귀신이나 도깨비 같이 하였습니다. 그 까닭을 궁구해보면 그 속셈을 가리울 수 없습니다. 그의 평생 동안의 마음씀은 의리를 잊고 이익을 탐하며,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고, 얻은 뒤에는 잃을까 걱정하였습니다. 전조(銓曹)의 천망(薦望)을 앞다투면서는 이웃에 살아 아주 절친한 친구를 탄핵하고자 했고, 전조에 속히 들어가고자 하면서는 상피(相避) 관계에 있는 동서를 무함하였습니다. 이미 관직을 얻고서는 방자히 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였고 공론에 죄를 얻고서는 뜻을 잃은 채 앙앙불락하였습니다. 몸을 들여놓을 곳이 없자 불령스럽고 괴기스런 무리들과 몰래 결탁하여, 날마다 보복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에 처음에는 윤선도를 사주하여 그로 하여금 먼저 상소를 올리게 하고, 다음으로는 이형을 사주하여 계속 후원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이수 등과 결탁해 종실들을 과거와 관로에 허통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꾀어서, 의리를 잊고 역적을 비호하는 여러 종친들을 일어나도록 권하여 기어이 한번 휩쓸어버리고자 하였으니, 또한 흉악하고도 참혹스럽지 않습니까. 더구나 종실은 사대부가 교제할 사람이 아니고 서당(書堂)은 종친이 놀이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성윤을 불러와서 관곡(官穀)을 먹이고 여러 날 동안 놀이를 즐기면서 시를 지어 서로 화답하며 소회를 읊조렸습니다. 심지어 ‘경운궁을 생각한다.’는 제목으로 4운시를 짓고는 서로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의 말이 자자하여 듣는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박재(朴梓)의 ‘경운궁에 조회하라.’는 상소와 그 내용이 서로 부합되니,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참으로 거짓이 아닙니다. 박홍도는 바로 여러 역적들의 중개역할을 하는 자이고 화를 조성하는 씨앗이 되는 자입니다. 그가 서울에 하루를 있으면 하루의 걱정을 끼치고, 이틀을 있으면 이틀의 걱정을 끼칩니다. 그의 죄악이 이와 같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외방으로 내치는 형벌을 어찌 잠시라도 늦추어 시행할 수 있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유음을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수는 참작하여 죄를 정하였으니 위리 안치할 것까지 없다. 박홍도에 관한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무릇 죄인이 숨기면서 곧바로 공초하지 않는 연후에야 형신하여 실정을 알아내는 것이 규례입니다. 형조의 죄인 원이곤(元以坤)이 형신을 받을 즈음에 안신언(安愼言)이 상소를 짓고 김원(金愿)이 상소를 썼다고 이미 승복하여서 이극건(李克健) 등이 자수한 상소의 내용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럴 경우 해당 관원으로서는 마땅히 율에 의거하여 형량을 결정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감히 가형(加刑)하기를 청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형조의 당상관과 색낭청을 모두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원이곤 및 자수한 사람들을 즉시 율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무릇 죄인이 숨기면서 곧바로 공초하지 않는 연후에야 형신하여 실정을 알아내는 것이 규례입니다. 형조의 죄인 원이곤(元以坤)이 형신을 받을 즈음에 안신언(安愼言)이 상소를 짓고 김원(金愿)이 상소를 썼다고 이미 승복하여서 이극건(李克健) 등이 자수한 상소의 내용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럴 경우 해당 관원으로서는 마땅히 율에 의거하여 형량을 결정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감히 가형(加刑)하기를 청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형조의 당상관과 색낭청을 모두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그리고 원이곤 및 자수한 사람들을 즉시 율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홍문관 교리 강린, 부교리 임성지·정준, 수찬 유약, 부수찬 유화·황덕부, 저작 박종주 등이 상차하기를, "박홍도는 마음이 사특하고 종적이 비밀스러워 겉으로는 청론(淸論)에 붙으면서 사류들을 해쳤습니다. 인사권을 잡으면서는 온 나라의 인사권을 마음대로 하고 역사를 감독하면서는 자신만을 살찌웠다는 비난이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불령스러운 무리들과 은밀히 결탁해서 사류를 일망타진할 계책을 성사시키려 하였고 승리를 거두어 진출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몰래 요사한 유생을 사주하여 번갈아 가며 상소를 올리게 하고, 재주와 명망이 있는 종실과 결탁하여 호당(湖堂)에 머물면서 시를 지어 서로 화답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이성윤에게 의논을 주도하게 해 종실 몇 명과 교유하면서 함께 모의해 같은 말로 임금을 협박하게 하였습니다. 죄악이 분명하게 드러나 다시는 의심할 것이 없으며, 귀신과 사람이 모두 분을 품어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행히도 하늘이 그의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유도해 스스로 임금과 끊어지도록 하였습니다. 하늘이 그를 제거하려고 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오히려 머뭇거리고 계십니다. 속히 죄를 바루소서." 하니, 답하기를,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박홍도는 마음이 사특하고 종적이 비밀스러워 겉으로는 청론(淸論)에 붙으면서 사류들을 해쳤습니다. 인사권을 잡으면서는 온 나라의 인사권을 마음대로 하고 역사를 감독하면서는 자신만을 살찌웠다는 비난이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불령스러운 무리들과 은밀히 결탁해서 사류를 일망타진할 계책을 성사시키려 하였고 승리를 거두어 진출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몰래 요사한 유생을 사주하여 번갈아 가며 상소를 올리게 하고, 재주와 명망이 있는 종실과 결탁하여 호당(湖堂)에 머물면서 시를 지어 서로 화답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이성윤에게 의논을 주도하게 해 종실 몇 명과 교유하면서 함께 모의해 같은 말로 임금을 협박하게 하였습니다.
죄악이 분명하게 드러나 다시는 의심할 것이 없으며, 귀신과 사람이 모두 분을 품어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행히도 하늘이 그의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유도해 스스로 임금과 끊어지도록 하였습니다. 하늘이 그를 제거하려고 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오히려 머뭇거리고 계십니다. 속히 죄를 바루소서."
하니, 답하기를,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예조 좌랑 채겸길(蔡謙吉)이 와서 아뢰기를, 【이때 참판 임취정(任就正)이 ‘본조의 낭청을 보내어 이이첨에게 돈독히 유시해서 그로 하여금 출사하게 하라.’고 하였다.】 "어제 하유하신 뜻으로 예조 판서 이이첨이 있는 동대문에 가서 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말하기를 ‘신은 심한 무고를 갑자기 당하여 감히 집에 있지 못하고 성 바깥으로 나와서 공손히 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따뜻한 유시를 두 번이나 내리셨으며, 패초(牌招)가 또다시 이르니, 성은이 하늘과 같아서 두렵고 떨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침을 맞을 때 입시하라는 전교를 받으니 걱정스럽고 답답함을 금치 못하겠는바,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 나가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어제부터 감기를 심하게 앓아 기동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죄만 더욱 불어나게 되었기에 진달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어제 하유하신 뜻으로 예조 판서 이이첨이 있는 동대문에 가서 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말하기를 ‘신은 심한 무고를 갑자기 당하여 감히 집에 있지 못하고 성 바깥으로 나와서 공손히 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따뜻한 유시를 두 번이나 내리셨으며, 패초(牌招)가 또다시 이르니, 성은이 하늘과 같아서 두렵고 떨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침을 맞을 때 입시하라는 전교를 받으니 걱정스럽고 답답함을 금치 못하겠는바,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 나가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어제부터 감기를 심하게 앓아 기동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죄만 더욱 불어나게 되었기에 진달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고묘(告廟)하고 진하(陳賀)하는 예는 아주 중한데 어찌 대신과 예관이 없이 강행할 수가 있겠는가. 대신과 예관이 그 전에 출사하면 그대로 거행하고 출사하지 않으면 2월 중으로 다시 날짜를 가려 뒤로 물려서 거행하라."
"고묘(告廟)하고 진하(陳賀)하는 예는 아주 중한데 어찌 대신과 예관이 없이 강행할 수가 있겠는가. 대신과 예관이 그 전에 출사하면 그대로 거행하고 출사하지 않으면 2월 중으로 다시 날짜를 가려 뒤로 물려서 거행하라."

 

도승지 한찬남(韓纘男)이 아뢰기를, "조금 전에 전옥서 참봉 이정양(李正養)이 수인(囚人) 정인형(鄭仁馨)의 소지(所志)를 봉해 가지고 와서 정원에 바쳤습니다. 비록 무슨 일에 대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정인형을 금부로 옮겨 가두고서 대신을 명초하여 내가 침을 맞은 뒤에 정국(庭絓)하게 하라." 하였다. 【이날 상께서 침을 맞고자 했기 때문에 이 전교가 있게 된 것이다.】
"조금 전에 전옥서 참봉 이정양(李正養)이 수인(囚人) 정인형(鄭仁馨)의 소지(所志)를 봉해 가지고 와서 정원에 바쳤습니다. 비록 무슨 일에 대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정인형을 금부로 옮겨 가두고서 대신을 명초하여 내가 침을 맞은 뒤에 정국(庭絓)하게 하라."
하였다. 【이날 상께서 침을 맞고자 했기 때문에 이 전교가 있게 된 것이다.】

 

전교하였다. "정인형에게 즉시 공초를 받은 뒤에 각별히 구료(救療)하라."
"정인형에게 즉시 공초를 받은 뒤에 각별히 구료(救療)하라."

 

우변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큰 역적의 무리인 정인형을 체포하여 수금하였는데, 조금 전에 삼가 듣건대, 그가 고변(告變)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공초에서 끌어들인 자인 박덕윤(朴德潤)·정시형(鄭時亨)·김효충(金孝忠)·김극현(金克賢)·박중남(朴重男) 등은 수색해 체포하여 수금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백천수(白千壽)·한여신(韓汝信)·방승남(方承男)·이시영(李時永) 등은 현재 염탐하면서 체포하고 있는 중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금부로 옮겨 가두라." 하였다.
"큰 역적의 무리인 정인형을 체포하여 수금하였는데, 조금 전에 삼가 듣건대, 그가 고변(告變)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공초에서 끌어들인 자인 박덕윤(朴德潤)·정시형(鄭時亨)·김효충(金孝忠)·김극현(金克賢)·박중남(朴重男) 등은 수색해 체포하여 수금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백천수(白千壽)·한여신(韓汝信)·방승남(方承男)·이시영(李時永) 등은 현재 염탐하면서 체포하고 있는 중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금부로 옮겨 가두라."
하였다.

 

추국청이 아뢰기를, "정인형이 공초하기를 ‘지난해 8월에 이조 참판 유몽인(柳夢寅)의 편지를 가지고 대흥현(大興縣)에 가서 노비를 추심할 때 출신(出身) 백천수(白千壽)를 만나보았는데, 천수가 말하기를 「나에게는 진심으로 사귀는 친구 네 사람이 있는데, 너와 함께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들어가서 장수가 되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서 반역을 하였으면 한다.」 하였습니다. 역모한 절차에 대해서는 백천수가 상세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누설할까 두려워하여 몰래 포도 군관에게 부탁해서 잡아다가 마구 곤장을 치게 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므로, 감히 이렇게 상변(上變)하는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정인형이 공초한 바가 이와 같으니, 백천수와 함께 그 말을 들은 백천수의 종 복이(福伊)를 잡아다가 문초한 다음 처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정인형이 공초하기를 ‘지난해 8월에 이조 참판 유몽인(柳夢寅)의 편지를 가지고 대흥현(大興縣)에 가서 노비를 추심할 때 출신(出身) 백천수(白千壽)를 만나보았는데, 천수가 말하기를 「나에게는 진심으로 사귀는 친구 네 사람이 있는데, 너와 함께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들어가서 장수가 되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서 반역을 하였으면 한다.」 하였습니다. 역모한 절차에 대해서는 백천수가 상세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누설할까 두려워하여 몰래 포도 군관에게 부탁해서 잡아다가 마구 곤장을 치게 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므로, 감히 이렇게 상변(上變)하는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정인형이 공초한 바가 이와 같으니, 백천수와 함께 그 말을 들은 백천수의 종 복이(福伊)를 잡아다가 문초한 다음 처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좌변 포도 종사관 홍기남(洪奇男)이 이달 6일 한밤중에 군사 5, 6인을 데리고 공릉(恭陵)에 가서 대당적(大黨賊)인 수호군(守護軍) 이귀현(李貴玄)이라고 이름을 칭하는 사람을 수색해 체포하였습니다. 그러자 이귀현이 스스로 말하기를 ‘능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유기(錬器)와 은기(銀器)를 훔쳤다.’고 하기에, 그 집을 수색해보니 장물(贓物)이 몹시 많았습니다. 홍기남이 제기를 도둑맞았는지의 여부를 능의 서원(書員)에게 물으니 ‘지난해 3월에 도둑을 맞았는데 지금은 참봉이 여러 수호군들에게 징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제기를 도둑질하는 것은 국법에 있어서 용서하지 못할 극악한 도적인 것으로, 몹시 통분스럽고 놀랍습니다. 함께 모의한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포도청으로 하여금 속히 수색해 체포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좌변 포도 종사관 홍기남(洪奇男)이 이달 6일 한밤중에 군사 5, 6인을 데리고 공릉(恭陵)에 가서 대당적(大黨賊)인 수호군(守護軍) 이귀현(李貴玄)이라고 이름을 칭하는 사람을 수색해 체포하였습니다. 그러자 이귀현이 스스로 말하기를 ‘능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유기(錬器)와 은기(銀器)를 훔쳤다.’고 하기에, 그 집을 수색해보니 장물(贓物)이 몹시 많았습니다. 홍기남이 제기를 도둑맞았는지의 여부를 능의 서원(書員)에게 물으니 ‘지난해 3월에 도둑을 맞았는데 지금은 참봉이 여러 수호군들에게 징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제기를 도둑질하는 것은 국법에 있어서 용서하지 못할 극악한 도적인 것으로, 몹시 통분스럽고 놀랍습니다. 함께 모의한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포도청으로 하여금 속히 수색해 체포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1월 8일 갑술

접위관(接慰官) 심즙(沈諿)이 장계하기를, "신이 부산(釜山)의 귤지정(橘智正)이 머물고 있는 곳에 도착하여 위로잔치를 베풀었는데, 귤지정이 감히 대등한 예를 감당하지 못하고 위축되어서 낮은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말하기를 ‘사정이 답답하고 급박하여 거조가 전도되었으니, 존관(尊官)께서는 반드시 소인을 무지하다고 여길 것이다.’고 하였는데, 겸손해 하는 말이 입에서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이는 대개 전에 화를 내면서 장차 배를 돌릴 것처럼 한 거조를 가리켜 말한 것인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신이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하는 것을 허락하였다는 뜻으로 전유(傳諭)하니, 기쁨에 얼굴빛이 바뀌면서 거듭 감사하다고 하였으며, 좌중의 왜인들이 모두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수충(秀忠)에게 회보하는 것이 하루가 급하다.’고 하면서, 그날 바로 배를 뛰울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머물도록 권하는 말을 대략 하자 29일에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갔습니다. 역관(譯官)이 대마 도주(對馬島主)에게 주는 예조의 서계(書啓)를 전하자 귤지정뿐만 아니라 관소에 가득히 있던 왜인들이 일제히 기뻐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사신에 대한 요청을 조정에서 오랫동안 회보하지 않았으므로 마음속으로 의심하면서 밤낮없이 갈망하다가 신이 선포한 뒤에 미쳐서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기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극도로 기뻐하는 것은, 수충(秀忠)은 신사(信使)를 오게 해서 가강(家康)을 이어 나라에 과시해 보려고 해서이고, 대마도는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주어 수충에게 큰 공을 세우고자 해서이며, 귤지정은 자신이 큰일을 성사시켜 대마도에서 존중을 받고자 해서인 것으로, 역관의 무리들이 왜인들에게서 들은 것이 이와 같다고 합니다." 하였다.
"신이 부산(釜山)의 귤지정(橘智正)이 머물고 있는 곳에 도착하여 위로잔치를 베풀었는데, 귤지정이 감히 대등한 예를 감당하지 못하고 위축되어서 낮은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말하기를 ‘사정이 답답하고 급박하여 거조가 전도되었으니, 존관(尊官)께서는 반드시 소인을 무지하다고 여길 것이다.’고 하였는데, 겸손해 하는 말이 입에서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이는 대개 전에 화를 내면서 장차 배를 돌릴 것처럼 한 거조를 가리켜 말한 것인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신이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하는 것을 허락하였다는 뜻으로 전유(傳諭)하니, 기쁨에 얼굴빛이 바뀌면서 거듭 감사하다고 하였으며, 좌중의 왜인들이 모두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수충(秀忠)에게 회보하는 것이 하루가 급하다.’고 하면서, 그날 바로 배를 뛰울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머물도록 권하는 말을 대략 하자 29일에 배에 올라 바다로 나갔습니다. 역관(譯官)이 대마 도주(對馬島主)에게 주는 예조의 서계(書啓)를 전하자 귤지정뿐만 아니라 관소에 가득히 있던 왜인들이 일제히 기뻐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사신에 대한 요청을 조정에서 오랫동안 회보하지 않았으므로 마음속으로 의심하면서 밤낮없이 갈망하다가 신이 선포한 뒤에 미쳐서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기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극도로 기뻐하는 것은, 수충(秀忠)은 신사(信使)를 오게 해서 가강(家康)을 이어 나라에 과시해 보려고 해서이고, 대마도는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주어 수충에게 큰 공을 세우고자 해서이며, 귤지정은 자신이 큰일을 성사시켜 대마도에서 존중을 받고자 해서인 것으로, 역관의 무리들이 왜인들에게서 들은 것이 이와 같다고 합니다."
하였다.

 

약방 제조 이이첨이 아뢰기를, "신은 여러 차례 심한 무고를 입어 장차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었으므로 성 바깥에 엎드려 있으면서 공손히 죄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도타운 유시가 거듭 내려지고 부르는 명이 거듭 이르렀습니다. 또 듣건대, 성상의 기후가 편치 않아서 침을 맞겠다는 전교가 있었다고 하니, 신하의 분의(分義)상 약을 의논하는 것이 급함만 알고 사사로운 개인적인 일에는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에 허둥지둥 달려나와서 겨우 입시(入侍)하는 반열에 참여하였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그동안 올린 다섯 장의 상소에서 온갖 내용으로 날조해 얽어서 반드시 신을 죽인 다음에야 그만두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신이 만약 떠나지 않으면 상소 역시 끊이지 않아 조정은 평안할 기약이 없고 사류들은 모두 몰살될 걱정이 있습니다. 신이 비록 성상께서 돌보아주시는 은혜를 탐하여서 억지로나마 직무를 보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기색을 보니 이미 너무도 걱정스럽고 위태로운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신의 한 몸은 결코 여러 사람이 공격해대는 가운데서 보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성상께서 비록 끝까지 곡진하게 보전해 주려 하시더라도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천지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특별히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신의 본직과 겸대한 직책을 파하도록 명하소서. 그리하여 신으로 하여금 한산한 곳에서 여유롭게 지내면서 여년을 보내게 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다 유시하였다. 흉소(兇疏)를 어찌 개의할 것이 있겠는가. 이렇게 편치 않아 조섭하는 날에는 굳이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직무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신은 여러 차례 심한 무고를 입어 장차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었으므로 성 바깥에 엎드려 있으면서 공손히 죄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도타운 유시가 거듭 내려지고 부르는 명이 거듭 이르렀습니다. 또 듣건대, 성상의 기후가 편치 않아서 침을 맞겠다는 전교가 있었다고 하니, 신하의 분의(分義)상 약을 의논하는 것이 급함만 알고 사사로운 개인적인 일에는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에 허둥지둥 달려나와서 겨우 입시(入侍)하는 반열에 참여하였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그동안 올린 다섯 장의 상소에서 온갖 내용으로 날조해 얽어서 반드시 신을 죽인 다음에야 그만두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신이 만약 떠나지 않으면 상소 역시 끊이지 않아 조정은 평안할 기약이 없고 사류들은 모두 몰살될 걱정이 있습니다. 신이 비록 성상께서 돌보아주시는 은혜를 탐하여서 억지로나마 직무를 보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기색을 보니 이미 너무도 걱정스럽고 위태로운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신의 한 몸은 결코 여러 사람이 공격해대는 가운데서 보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성상께서 비록 끝까지 곡진하게 보전해 주려 하시더라도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천지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특별히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신의 본직과 겸대한 직책을 파하도록 명하소서. 그리하여 신으로 하여금 한산한 곳에서 여유롭게 지내면서 여년을 보내게 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다 유시하였다. 흉소(兇疏)를 어찌 개의할 것이 있겠는가. 이렇게 편치 않아 조섭하는 날에는 굳이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직무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황주(黃州)에 성을 쌓는 일은 역사를 시작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공역을 끝낼 기약이 없으니 성상께서 여기에 생각이 미치신 것이 실로 범연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역사는 반드시 역군이 있은 다음에야 일을 성사시킬 수가 있습니다. 상번군(上番軍)은, 해조에서 숙위(宿衛)하는 것을 중하게 여겨 그들로 하여금 전부 상번하게 하고 머물러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응당 조발(調發)할 수 있는 것은 전결군(田結軍)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막 역변(逆變)을 겪어서 소요스러운 때에 본도의 민결(民結)로써 군사를 내어 역사를 독촉하기는 몹시 어려운 점이 있을 듯하며, 또한 다른 도의 군사를 조발할 수도 없습니다. 그만둘 수 없다면 농사철 전에 전결군(田結軍)을 대략 발하여 처음 역사를 시작할 때에 비하여 숫자와 날짜를 감하고, 또 상번군(上番軍)에 대해 지난해에 비해 복무 연한을 5분의 3, 4 감해주어 이들을 편의에 따라 부리게 하여 공역을 끝내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이외에는 달리 선처할 계책이 없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십분 참작하고 헤아려서 품의해 결정한 다음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황주(黃州)에 성을 쌓는 일은 역사를 시작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공역을 끝낼 기약이 없으니 성상께서 여기에 생각이 미치신 것이 실로 범연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역사는 반드시 역군이 있은 다음에야 일을 성사시킬 수가 있습니다. 상번군(上番軍)은, 해조에서 숙위(宿衛)하는 것을 중하게 여겨 그들로 하여금 전부 상번하게 하고 머물러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응당 조발(調發)할 수 있는 것은 전결군(田結軍)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막 역변(逆變)을 겪어서 소요스러운 때에 본도의 민결(民結)로써 군사를 내어 역사를 독촉하기는 몹시 어려운 점이 있을 듯하며, 또한 다른 도의 군사를 조발할 수도 없습니다.
그만둘 수 없다면 농사철 전에 전결군(田結軍)을 대략 발하여 처음 역사를 시작할 때에 비하여 숫자와 날짜를 감하고, 또 상번군(上番軍)에 대해 지난해에 비해 복무 연한을 5분의 3, 4 감해주어 이들을 편의에 따라 부리게 하여 공역을 끝내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이외에는 달리 선처할 계책이 없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십분 참작하고 헤아려서 품의해 결정한 다음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역적 이성(李惺)이 이미 추형을 받았으니 파가 저택(破家瀦澤)하고 적몰(籍沒)하는 것을 율문에 의거해 시행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역적 이성(李惺)이 이미 추형을 받았으니 파가 저택(破家瀦澤)하고 적몰(籍沒)하는 것을 율문에 의거해 시행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예문관 검열 서국정(徐國楨)이 상소하여 이형(李泂)의 상소 중의 말에 대해 따지면서 이이첨을 두둔하며 구원하였는데,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백천수(白千壽)가 도망하였으니, 여러 도에 하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속히 체포하여 묶어보내도록 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백천수와 그의 종 복기(福只)를 속히 체포하도록 포도 대장에게 말하라." 하였다.
"백천수(白千壽)가 도망하였으니, 여러 도에 하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속히 체포하여 묶어보내도록 하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백천수와 그의 종 복기(福只)를 속히 체포하도록 포도 대장에게 말하라."
하였다.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해주옥사(海州獄事)의 죄인이 단지 네 사람만 남아 있으니 이번에 정국(庭絓)할 때 아울러 처치하여 옥사를 완결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묘(告廟)와 반교(頒敎)가 멀지 않았으므로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승선(尹勝先)·김동지(金同之)를 형추(刑推)하여 엄히 국문하라." 하였다.
"해주옥사(海州獄事)의 죄인이 단지 네 사람만 남아 있으니 이번에 정국(庭絓)할 때 아울러 처치하여 옥사를 완결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묘(告廟)와 반교(頒敎)가 멀지 않았으므로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승선(尹勝先)·김동지(金同之)를 형추(刑推)하여 엄히 국문하라."
하였다.

 

1월 9일 을해

왕이 가도사(假都事)에게 명하여 윤선도(尹善道)를 압송하게 하였다.

 

전교하였다. "역적 최기(崔沂)가 만약 모역(謀逆)하였다면, 오응빙(吳應聘)은 그가 신임하는 늙은 아전이었으니, 반드시 그 정상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형추하여 엄히 국문해서 정상을 캐내라."
"역적 최기(崔沂)가 만약 모역(謀逆)하였다면, 오응빙(吳應聘)은 그가 신임하는 늙은 아전이었으니, 반드시 그 정상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형추하여 엄히 국문해서 정상을 캐내라."

 

남병사(南兵使) 현즙(玄楫)이 배사(拜辭)하니, 전교하기를, "도망 중에 있는 역적 및 죄인을 일일이 마음을 다하여 체포하라. 그리고 오랑캐 땅 근처와 경유하는 일로(一路)의 의심스러운 황당인(荒唐人)과 나다니는 향화호인(向化胡人)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상세히 기찰하라." 하였다.
"도망 중에 있는 역적 및 죄인을 일일이 마음을 다하여 체포하라. 그리고 오랑캐 땅 근처와 경유하는 일로(一路)의 의심스러운 황당인(荒唐人)과 나다니는 향화호인(向化胡人)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상세히 기찰하라."
하였다.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의금부 죄인 이성윤(李誠胤)을 정배(定配)한 단자를 보니 남해(南海)를 배소로 정하였습니다. 남해가 비록 절도(絶島)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인심이 헤아리기 어려운 때를 당하여서 이성윤과 같이 품계가 높고 재주가 뛰어나며 마음이 흉측한 자를 헐한 곳에 두어서 뒷걱정을 끼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제주(濟州) 등의 곳으로 옮겨 위리 안치해서 굳게 지키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미 정배하였으니 그대로 보내는 것이 옳다. 어찌 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다.
"신이 삼가 의금부 죄인 이성윤(李誠胤)을 정배(定配)한 단자를 보니 남해(南海)를 배소로 정하였습니다. 남해가 비록 절도(絶島)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인심이 헤아리기 어려운 때를 당하여서 이성윤과 같이 품계가 높고 재주가 뛰어나며 마음이 흉측한 자를 헐한 곳에 두어서 뒷걱정을 끼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제주(濟州) 등의 곳으로 옮겨 위리 안치해서 굳게 지키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미 정배하였으니 그대로 보내는 것이 옳다. 어찌 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다.

 

1월 10일 병자

양사가 아뢰기를, "이번의 이 종실들의 일은 참으로 근래에 없던 변고입니다. 귀천군 이수는 우두머리인 자로서 하문(下問)을 받고 회계할 때 말하기를 ‘우리 여러 종친들은 입을 맞추지 않고도 말이 같았다.’고 하여 마치 격문(檄文)을 내어 역적을 토벌하는 자처럼 하였으니, 이미 몹시 놀랍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마땅히 다하지 못한 말을 더한층 진달드릴 것이다.’고 하였는바, 그 말이 음흉하고 헤아릴 수 없기가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상께서는 그의 말대로 잡아다가 캐물은 후 처치하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신들 역시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곧장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여서, 마치 그의 입을 막아 그로 하여금 품은 생각을 진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하여 여론이 시끄럽게 일어나게 하였으니, 신들의 잘못이 큽니다. 신들을 체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이번의 이 종실들의 일은 참으로 근래에 없던 변고입니다. 귀천군 이수는 우두머리인 자로서 하문(下問)을 받고 회계할 때 말하기를 ‘우리 여러 종친들은 입을 맞추지 않고도 말이 같았다.’고 하여 마치 격문(檄文)을 내어 역적을 토벌하는 자처럼 하였으니, 이미 몹시 놀랍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마땅히 다하지 못한 말을 더한층 진달드릴 것이다.’고 하였는바, 그 말이 음흉하고 헤아릴 수 없기가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상께서는 그의 말대로 잡아다가 캐물은 후 처치하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신들 역시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곧장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여서, 마치 그의 입을 막아 그로 하여금 품은 생각을 진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하여 여론이 시끄럽게 일어나게 하였으니, 신들의 잘못이 큽니다. 신들을 체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서 세 역적을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여 아뢰기를, "죄인 이수의 전후의 죄상을 이미 모두 다 논열하였는데도 아직까지 윤허를 내리시지 않고 계시면서 단지 중도 부처(中道付處)만을 명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이성윤을 절도에 위리 안치하였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수가 혼자서만 위리 안치의 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죄는 같은데 벌이 다르니, 신들은 몹시 의혹스럽습니다.  이수는 지난번에 상께서 하문하셨을 때 사주한 사람을 곧장 불지 않았으며 ‘만약 잡아다 문초한다면 마땅히 다하지 못한 말을 더한층 진달드릴 것이다.’고 하였으니, 그 속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할 점이 있습니다. 지금 만약 잡아다가 문초하지 않고 곧장 안치한다면, 뒤에 반드시 죄인의 입을 막아 그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비난이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수를 잡아다가 가두고서 엄하게 문초한 다음 정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수는 멀리 유배보냈으니 잡아다 문초할 것 없다." 하였다.
"죄인 이수의 전후의 죄상을 이미 모두 다 논열하였는데도 아직까지 윤허를 내리시지 않고 계시면서 단지 중도 부처(中道付處)만을 명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이성윤을 절도에 위리 안치하였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수가 혼자서만 위리 안치의 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죄는 같은데 벌이 다르니, 신들은 몹시 의혹스럽습니다.
이수는 지난번에 상께서 하문하셨을 때 사주한 사람을 곧장 불지 않았으며 ‘만약 잡아다 문초한다면 마땅히 다하지 못한 말을 더한층 진달드릴 것이다.’고 하였으니, 그 속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할 점이 있습니다. 지금 만약 잡아다가 문초하지 않고 곧장 안치한다면, 뒤에 반드시 죄인의 입을 막아 그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비난이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수를 잡아다가 가두고서 엄하게 문초한 다음 정죄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수는 멀리 유배보냈으니 잡아다 문초할 것 없다."
하였다.

 

합계하여 연계해서 박홍도는 잠시도 내버려둘 수 없으니,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윤허를 내릴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경운궁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시를 서계한 뒤에 헤아려 처리하겠다." 하였다. 회계하기를, "‘경운궁을 그리워한다.’는 제목의 시에 이르기를, 묵직한 자물쇠가 서궁에 잠겼는데 사자대엔 공연히 저녁바람 부누나 임금께서 승하함에 붙잡지 못하고서 외로운 신하 눈물을 목릉 가에 흩부리네 하였고, 또, 대들보감 만들려고 소나무를 심었더니 가지가 뒤엉켜서 점대를 가리우네 어찌하면 도끼로 가지를 모두 쳐내  창 가득 쏟아지는 달빛을 맞이할꼬 하였으며, 또, 통곡하며 애오라지 사자대에 오르니  목릉의 송백은 저녁구름에 서글프네 하였으며, 또, 흰구름 바라봄에 눈물만이 흐르누나 하였는데, 위의 두 수는 전편(全篇)을 알아내었으나, 아래 세 구는 단지 알아낸 구절만 써서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이 시는 모두 허균이 지은 것인데 박홍도가 지은 시라고 지적하여서 모함할 계책을 꾸민 것이다. 박홍도는 【본디 시를 지을 줄 몰랐으니】 어떻게 이와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겠는가.】
"‘경운궁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시를 서계한 뒤에 헤아려 처리하겠다."
하였다. 회계하기를,
"‘경운궁을 그리워한다.’는 제목의 시에 이르기를,
묵직한 자물쇠가 서궁에 잠겼는데
사자대엔 공연히 저녁바람 부누나
임금께서 승하함에 붙잡지 못하고서
외로운 신하 눈물을 목릉 가에 흩부리네
하였고, 또,
대들보감 만들려고 소나무를 심었더니
가지가 뒤엉켜서 점대를 가리우네
어찌하면 도끼로 가지를 모두 쳐내
창 가득 쏟아지는 달빛을 맞이할꼬
하였으며, 또,
통곡하며 애오라지 사자대에 오르니
목릉의 송백은 저녁구름에 서글프네
하였으며, 또,
흰구름 바라봄에 눈물만이 흐르누나
하였는데, 위의 두 수는 전편(全篇)을 알아내었으나, 아래 세 구는 단지 알아낸 구절만 써서 감히 아룁니다."
하였다.
【이 시는 모두 허균이 지은 것인데 박홍도가 지은 시라고 지적하여서 모함할 계책을 꾸민 것이다. 박홍도는 【본디 시를 지을 줄 몰랐으니】 어떻게 이와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겠는가.】
【이 시는 모두 허균이 지은 것인데 박홍도가 지은 시라고 지적하여서 모함할 계책을 꾸민 것이다. 박홍도는 【본디 시를 지을 줄 몰랐으니】 어떻게 이와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겠는가.】

 

1월 11일 정축

박홍도가 상소하였다. "신은 석고대죄하고 있는 중에 삼가 대간이 회계한 시를 보았는데, 몹시 흉악하고 참혹해서 곧장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신하로서 어찌 이와 같은 시를 지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을 모함하는 자가 한갓 신을 모함할 줄만 알고서 지은 것으로, 실로 스스로 큰 죄에 빠지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대간이 들은 것은 귀신이 전하는 말을 들은 것은 아닐 터이니, 반드시 본 자와 전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처음에는 미처 듣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대답하지 못하고서 지금 비로소 회계하였으니, 반드시 다시 들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은 신만이 무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또한 국가가 무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정원에서도 반드시 신의 말을 듣고서 급급히 아뢸 것인데, 신이 어떻게 현재 대죄하고 있는 중이라는 이유로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을 옥에 가두고서 발언한 대간 및 이성윤과 함께 일시에 면질(面質)하게 해서, 한편으로는 국가의 무고를 씻고 한편으로는 미천한 신의 망극한 원통함을 풀게 하소서."
"신은 석고대죄하고 있는 중에 삼가 대간이 회계한 시를 보았는데, 몹시 흉악하고 참혹해서 곧장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신하로서 어찌 이와 같은 시를 지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을 모함하는 자가 한갓 신을 모함할 줄만 알고서 지은 것으로, 실로 스스로 큰 죄에 빠지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대간이 들은 것은 귀신이 전하는 말을 들은 것은 아닐 터이니, 반드시 본 자와 전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처음에는 미처 듣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대답하지 못하고서 지금 비로소 회계하였으니, 반드시 다시 들은 곳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은 신만이 무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또한 국가가 무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정원에서도 반드시 신의 말을 듣고서 급급히 아뢸 것인데, 신이 어떻게 현재 대죄하고 있는 중이라는 이유로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을 옥에 가두고서 발언한 대간 및 이성윤과 함께 일시에 면질(面質)하게 해서, 한편으로는 국가의 무고를 씻고 한편으로는 미천한 신의 망극한 원통함을 풀게 하소서."

 

정원이 아뢰기를, "삼사가 현재 박홍도가 시를 지은 일을 논하고 있으니, 끝내는 반드시 차례대로 신문하는 일이 있을 것으로, 어찌 박홍도가 스스로 대질해서 따지기를 청하는 말을 기다리겠습니까. 박홍도는 중론(重論)이 일어난 이 때에 스스로 대죄하고 있는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 자신을 변명하는 상소를 올려 마치 삼사와 더불어 서로 다투는 자처럼 하였는데, 이것은 수백 년 이래에 없던 일입니다. 대개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장차 사형당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혹 스스로 변명하는 자는 있으나, 자신이 죄인이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 상소를 올려 대간과 더불어 서로 버티는 자는 박홍도 한 사람뿐입니다. 신들이 우선 본원에 보관해 두었으나 감히 규례를 깨뜨릴 수 없어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그 상소를 들이라." 하였다.
"삼사가 현재 박홍도가 시를 지은 일을 논하고 있으니, 끝내는 반드시 차례대로 신문하는 일이 있을 것으로, 어찌 박홍도가 스스로 대질해서 따지기를 청하는 말을 기다리겠습니까. 박홍도는 중론(重論)이 일어난 이 때에 스스로 대죄하고 있는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 자신을 변명하는 상소를 올려 마치 삼사와 더불어 서로 다투는 자처럼 하였는데, 이것은 수백 년 이래에 없던 일입니다.
대개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장차 사형당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혹 스스로 변명하는 자는 있으나, 자신이 죄인이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 상소를 올려 대간과 더불어 서로 버티는 자는 박홍도 한 사람뿐입니다. 신들이 우선 본원에 보관해 두었으나 감히 규례를 깨뜨릴 수 없어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그 상소를 들이라."
하였다.

 

1월 12일 무인

양사가 아뢰기를, "무릇 상소에 대한 규례는 국가의 큰일과 시폐에 절실한 것이면 누구나 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사사로이 변명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본인이 감히 바치지 못하는 것이고 정원에서도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정 대부 이하는 반드시 자신이 상소를 올리는 것이니, 더구나 당하관으로 있는데다가 멀리 유배보내라고 논열하고 있는 중에 있는 자이겠습니까.  박홍도는 자신이 지은 죄에서 벗어나고자 해서 감히 임금을 속이고 대간을 무함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심지어 다른 사람을 시켜서 상소를 바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정원 역시 마땅히 놀라워하면서 물리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서 또 이어 규례를 깨뜨리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말을 만들어서 먼저 아뢰어, 박홍도의 죄를 논한 삼사를 마치 맞서서 변론하는 것처럼 만들어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열어놓았습니다. 신들은 모두 형편없는 자질로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박홍도에게 날조된 무함을 드러나게 당하였고 또 정원에게 경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으면서 다시 박홍도의 죄를 논하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무릇 상소에 대한 규례는 국가의 큰일과 시폐에 절실한 것이면 누구나 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사사로이 변명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본인이 감히 바치지 못하는 것이고 정원에서도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정 대부 이하는 반드시 자신이 상소를 올리는 것이니, 더구나 당하관으로 있는데다가 멀리 유배보내라고 논열하고 있는 중에 있는 자이겠습니까.
박홍도는 자신이 지은 죄에서 벗어나고자 해서 감히 임금을 속이고 대간을 무함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심지어 다른 사람을 시켜서 상소를 바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정원 역시 마땅히 놀라워하면서 물리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서 또 이어 규례를 깨뜨리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말을 만들어서 먼저 아뢰어, 박홍도의 죄를 논한 삼사를 마치 맞서서 변론하는 것처럼 만들어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열어놓았습니다.
신들은 모두 형편없는 자질로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박홍도에게 날조된 무함을 드러나게 당하였고 또 정원에게 경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으면서 다시 박홍도의 죄를 논하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박홍도의 상소를 들이지도 않고 물리치지도 않은 채 머물려 둔 것은 일이 부도(不道)에 관계된 것이라 뒷날에 상고할 수 있는 글로 삼고자 해서입니다. 신들이 박홍도가 함부로 바친 죄를 극력 논하면서 상달하기까지 한 것 역시 공의(公議)를 확장시켜서 양사의 논의를 중하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런데 대간은 ‘경시하였다.’고 허물하고 있으니, 악인을 제거하는 데 급하여서 신들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들은 대간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였는바, 이러한 죄를 지고서 무슨 얼굴로 후설(喉舌)의 중한 자리에 무릅쓰고 앉아 있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신들이 어제 박홍도의 상소를 들이지도 않고 물리치지도 않은 채 머물려 둔 것은 일이 부도(不道)에 관계된 것이라 뒷날에 상고할 수 있는 글로 삼고자 해서입니다. 신들이 박홍도가 함부로 바친 죄를 극력 논하면서 상달하기까지 한 것 역시 공의(公議)를 확장시켜서 양사의 논의를 중하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런데 대간은 ‘경시하였다.’고 허물하고 있으니, 악인을 제거하는 데 급하여서 신들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들은 대간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였는바, 이러한 죄를 지고서 무슨 얼굴로 후설(喉舌)의 중한 자리에 무릅쓰고 앉아 있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사간 오여온(吳汝穩)이 아뢰기를, "박홍도에게 드러나게 무함을 당하고 또 정원에게 경시를 받았음은 동료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은 강원(講院)의 겸관(兼官)으로서 서연(書筵)에 진강(進講)하느라, 동료들과 함께 일시에 피혐하지 못하였는바, 그 잘못이 더욱 큽니다.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으면서 다시금 박홍도의 죄를 논할 수 없으니,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박홍도에게 드러나게 무함을 당하고 또 정원에게 경시를 받았음은 동료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은 강원(講院)의 겸관(兼官)으로서 서연(書筵)에 진강(進講)하느라, 동료들과 함께 일시에 피혐하지 못하였는바, 그 잘못이 더욱 큽니다. 뻔뻔스럽게 그대로 있으면서 다시금 박홍도의 죄를 논할 수 없으니,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호조가 아뢰기를, "경비가 부족한 것은 세입이 많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고, 세입이 많지 않은 것은 경계(經界)가 바르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으니, 양전(量田)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상께서 백성들의 고충을 생각해서 내년으로 미루고, 단지 땅을 개간하고 농사짓도록 권하는 일을 가지고 수령들을 전최(殿最)하는 근거로 삼으라고 전교하시었는데, 이것은 농업을 중히 여기고 근본을 힘쓰는 성대한 뜻이기는 합니다. 다만 지금은 기강이 완전히 없어져 명령해도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별도로 과조(科條)를 세워 권장하고 징계하는 방도로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전토(田土)는 평시에 비하여 기경(起耕)하지 않은 것이 응당 5분의 1에도 차지 않을 것인데, 세금을 거둔 숫자는 겨우 10분의 1이니, 이는 마땅히 조만간 양전(量田)을 할 때 밝혀질 것입니다. 비록 이를 근거로 해서 정할 수 없기는 하나, 금년에는 팔도의 각 고을을 그 원수(元數)에 따라 5분의 1로 규식을 정해서, 기경한 원전결(元田結)이 5천 결에 차면 가기전(加起田)이 1천 결이고, 단지 1천 결이면 가기전이 2백 결인 것으로 정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수외(數外)에 가기한 것은 다소와 경중에 따라 논상하는데 숫자를 줄인 자는 영원히 서용하지 말되 물간 사전(勿訶赦前)하며, 숫자에 맞춘 자는 상도 주지 않고 벌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허다한 고을 수령들이 처음에는 경작을 권장하지 않다가 복심(覆審)할 때 미쳐서 죄책을 모면하고자 해서 원결(元結) 안에다가 더 첨가해 넣어 숫자를 채울 계책을 꾸밀 것입니다. 이럴 경우 오늘날 경작을 권장하는 본래의 뜻이 전혀 아니며, 하호(下戶)의 백성들이 반드시 땅은 적은데 부역은 많다는 원망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경관(京官)이 내려갈 때 사목(事目)을 첨입하여, 만약 이와 같은 폐단이 있을 경우 전주(田主)로 하여금 고소하게 해서, 1결을 타량(打量)한 안에 5부(負) 이상을 함부로 끼워넣은 경우, 수령은 파직하고 감관(監官)·위관(委官)·권농(勸農)·서원(書員) 등은 공사천(公私賤)을 구분하지 말고 전가 사변(全家徙邊)할 것으로 각도 관찰사에게 행이(行移)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경비가 부족한 것은 세입이 많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고, 세입이 많지 않은 것은 경계(經界)가 바르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으니, 양전(量田)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상께서 백성들의 고충을 생각해서 내년으로 미루고, 단지 땅을 개간하고 농사짓도록 권하는 일을 가지고 수령들을 전최(殿最)하는 근거로 삼으라고 전교하시었는데, 이것은 농업을 중히 여기고 근본을 힘쓰는 성대한 뜻이기는 합니다. 다만 지금은 기강이 완전히 없어져 명령해도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별도로 과조(科條)를 세워 권장하고 징계하는 방도로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전토(田土)는 평시에 비하여 기경(起耕)하지 않은 것이 응당 5분의 1에도 차지 않을 것인데, 세금을 거둔 숫자는 겨우 10분의 1이니, 이는 마땅히 조만간 양전(量田)을 할 때 밝혀질 것입니다. 비록 이를 근거로 해서 정할 수 없기는 하나, 금년에는 팔도의 각 고을을 그 원수(元數)에 따라 5분의 1로 규식을 정해서, 기경한 원전결(元田結)이 5천 결에 차면 가기전(加起田)이 1천 결이고, 단지 1천 결이면 가기전이 2백 결인 것으로 정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수외(數外)에 가기한 것은 다소와 경중에 따라 논상하는데 숫자를 줄인 자는 영원히 서용하지 말되 물간 사전(勿訶赦前)하며, 숫자에 맞춘 자는 상도 주지 않고 벌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허다한 고을 수령들이 처음에는 경작을 권장하지 않다가 복심(覆審)할 때 미쳐서 죄책을 모면하고자 해서 원결(元結) 안에다가 더 첨가해 넣어 숫자를 채울 계책을 꾸밀 것입니다. 이럴 경우 오늘날 경작을 권장하는 본래의 뜻이 전혀 아니며, 하호(下戶)의 백성들이 반드시 땅은 적은데 부역은 많다는 원망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경관(京官)이 내려갈 때 사목(事目)을 첨입하여, 만약 이와 같은 폐단이 있을 경우 전주(田主)로 하여금 고소하게 해서, 1결을 타량(打量)한 안에 5부(負) 이상을 함부로 끼워넣은 경우, 수령은 파직하고 감관(監官)·위관(委官)·권농(勸農)·서원(書員) 등은 공사천(公私賤)을 구분하지 말고 전가 사변(全家徙邊)할 것으로 각도 관찰사에게 행이(行移)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1월 13일 기묘

홍문관 교리 강린(姜繗), 부교리 임성지(任性之), 수찬 유약(柳鑰), 부수찬 황덕부(黃德符), 정자 조유선(趙裕善) 등이 상차하기를, "박홍도는 본디 사악하고 이상야릇한 사람으로서 청론(淸論)에 죄를 얻고 여러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에 남몰래 보복할 계략을 꾸미고 감히 뱀이나 전갈 같은 독을 마구 내뿜으면서, 대간(大奸)에게 들러붙어 그의 사주를 받았으며, 무뢰배들과 결탁하여 부도(不道)한 내용의 시를 지어 화답하였으며, 귀신과 같은 무리들을 부추겨서 사류를 일망타진하는 상소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흉악하고 사악한 속셈이 분명하게 드러나 의심할 것이 없으므로, 삼사가 항론(抗論)하여 글을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는 의당 두손을 모으고 죄에 승복하여 하늘의 주벌을 기다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감히 거짓 상소를 지어 자신이 지은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며,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이를 올리게 해 위로는 임금의 마음을 시험하였고, 면질(面質)하고자 하여 아래로 대각의 신하들을 모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가령 유영경과 김제남이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변명할 경우에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역적이 아니라고 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수백 년 이래로 없던 변고입니다. 그러니 정원에서는 급급히 내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였는데, 도리어 예전 규례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말을 만들어 아뢰어서 그 흉소가 성상께 올려지게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수백 년 이래로 없던 일입니다. 양사가 인피한 것은 바로 그 일을 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서연(書筵)에 입시하여 동료들과 함께 피혐하지 못한 것은, 형세상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모두 인피할 만한 혐의가 없으니, 모두 출사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박홍도는 본디 사악하고 이상야릇한 사람으로서 청론(淸論)에 죄를 얻고 여러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에 남몰래 보복할 계략을 꾸미고 감히 뱀이나 전갈 같은 독을 마구 내뿜으면서, 대간(大奸)에게 들러붙어 그의 사주를 받았으며, 무뢰배들과 결탁하여 부도(不道)한 내용의 시를 지어 화답하였으며, 귀신과 같은 무리들을 부추겨서 사류를 일망타진하는 상소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흉악하고 사악한 속셈이 분명하게 드러나 의심할 것이 없으므로, 삼사가 항론(抗論)하여 글을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는 의당 두손을 모으고 죄에 승복하여 하늘의 주벌을 기다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감히 거짓 상소를 지어 자신이 지은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였으며,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이를 올리게 해 위로는 임금의 마음을 시험하였고, 면질(面質)하고자 하여 아래로 대각의 신하들을 모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가령 유영경과 김제남이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변명할 경우에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역적이 아니라고 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수백 년 이래로 없던 변고입니다. 그러니 정원에서는 급급히 내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였는데, 도리어 예전 규례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말을 만들어 아뢰어서 그 흉소가 성상께 올려지게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수백 년 이래로 없던 일입니다.
양사가 인피한 것은 바로 그 일을 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서연(書筵)에 입시하여 동료들과 함께 피혐하지 못한 것은, 형세상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모두 인피할 만한 혐의가 없으니, 모두 출사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도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옥당이 정원의 아룀에 대해 수백 년 이래로 없던 일이라고 하였는데, 신은 몹시 의혹스럽습니다. 박홍도의 상소는 실로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인데, 정원이 상소를 머물려 둔 것은 단지 박홍도가 부도(不道)의 죄에 관련되었기 때문에 뒷날에 증거 자료로 삼고자 해서이지, 박홍도가 자신을 위해 조목조목 해명할 터전을 마련해 주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옥당은 박홍도의 죄를 드러낸 정원의 계사를 보지 못하였단 말입니까. 수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였는데, 신은 옥당이 정원을 너무 심하게 공격한 것 역시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이라고 여깁니다.  송나라 유신 정호(程顥)가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한 집안의 일과 같지 않으니 평온한 생각으로 살피기 바란다.’고 하였는데, 옥당의 차자는 아마도 평온한 생각에서 한 말이 아닌 듯합니다. 신은 문사 낭청(問事郞廳)이 된 지 1년 반이 되었고 해방(該房) 승지가 된 지 지금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부도문서(不道文書)는 마음대로 물리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옥당이 공격하는 것이 양사가 공격하는 것보다 더 심합니다. 신이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무슨 대단하게 범한 바가 있어서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죄라고까지 한단 말입니까. 신은 2백 년 이래에 없던 죄를 지고 있으니 하루도 정원의 장관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속히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여서 공론을 시원하게 하소서. 신은 상소를 머물려 두자는 의논을 주장하였으므로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드립니다."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옥당이 정원의 아룀에 대해 수백 년 이래로 없던 일이라고 하였는데, 신은 몹시 의혹스럽습니다. 박홍도의 상소는 실로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인데, 정원이 상소를 머물려 둔 것은 단지 박홍도가 부도(不道)의 죄에 관련되었기 때문에 뒷날에 증거 자료로 삼고자 해서이지, 박홍도가 자신을 위해 조목조목 해명할 터전을 마련해 주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옥당은 박홍도의 죄를 드러낸 정원의 계사를 보지 못하였단 말입니까. 수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였는데, 신은 옥당이 정원을 너무 심하게 공격한 것 역시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이라고 여깁니다.
송나라 유신 정호(程顥)가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한 집안의 일과 같지 않으니 평온한 생각으로 살피기 바란다.’고 하였는데, 옥당의 차자는 아마도 평온한 생각에서 한 말이 아닌 듯합니다.
신은 문사 낭청(問事郞廳)이 된 지 1년 반이 되었고 해방(該房) 승지가 된 지 지금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부도문서(不道文書)는 마음대로 물리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옥당이 공격하는 것이 양사가 공격하는 것보다 더 심합니다. 신이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무슨 대단하게 범한 바가 있어서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죄라고까지 한단 말입니까.
신은 2백 년 이래에 없던 죄를 지고 있으니 하루도 정원의 장관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속히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여서 공론을 시원하게 하소서. 신은 상소를 머물려 두자는 의논을 주장하였으므로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드립니다."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전교하였다.

 

합사로 연계하여 세 역적을 위리 안치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조섭하고 있는 때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조섭하고 있는 때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계로 연계하여 이수를 잡아다 추문하여 죄를 정하고 박홍도를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양사가 합계로 아뢰기를, "이형(李泂)은 바로 역적 양림(楊林)과 부림(富林)의 조카이고 죄인 이수의 종제(從第)이니, 이 역시 역적의 종자입니다. 그러니 연좌율(緣坐律)을 면한 것만도 역시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을 쳐들고 사류(士類)에 이름을 끼어넣는단 말입니까. 이에 박홍도·윤선도 등과 더불어 서로 결탁해 복심이 되고 번갈아 가며 꼬리가 되고 머리가 되어, 방자하게 상소를 올리면서 조금도 돌아보거나 꺼려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선왕께서 내리시지 않은 전지를 거짓으로 꾸며 성상을 속여서 반드시 조정을 위태로운 지경으로 빠뜨리고 사류를 몰살시켜서 여러 역적들을 위하여 보복할 계책을 세웠습니다. 그의 죄악이 실로 윤선도보다 더 크니 홀로 국법을 면할 수 없습니다. 먼 변방에 안치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이형(李泂)은 바로 역적 양림(楊林)과 부림(富林)의 조카이고 죄인 이수의 종제(從第)이니, 이 역시 역적의 종자입니다. 그러니 연좌율(緣坐律)을 면한 것만도 역시 다행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을 쳐들고 사류(士類)에 이름을 끼어넣는단 말입니까. 이에 박홍도·윤선도 등과 더불어 서로 결탁해 복심이 되고 번갈아 가며 꼬리가 되고 머리가 되어, 방자하게 상소를 올리면서 조금도 돌아보거나 꺼려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선왕께서 내리시지 않은 전지를 거짓으로 꾸며 성상을 속여서 반드시 조정을 위태로운 지경으로 빠뜨리고 사류를 몰살시켜서 여러 역적들을 위하여 보복할 계책을 세웠습니다. 그의 죄악이 실로 윤선도보다 더 크니 홀로 국법을 면할 수 없습니다. 먼 변방에 안치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삼사가 온 나라의 공론을 가지고 함께 박홍도의 죄악을 논하고 있는데도 박홍도는 조금도 두려워하여 꺼리지 않고 상소를 대신 바치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언관과 면질하려고까지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전고에 없던 변입니다. 정원은 후설의 자리에 있으면서 대신 바치는 것이 규례에 어긋나고, 자신에 대해 밝히는 것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물리치는 것을 혐의쩍어 해 말을 만들어 먼저 아뢰기까지 하여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열어놓았습니다. 그 생각하지 못하고 망령되이 한 잘못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색승지와 동참한 승지를 모두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다.
"삼사가 온 나라의 공론을 가지고 함께 박홍도의 죄악을 논하고 있는데도 박홍도는 조금도 두려워하여 꺼리지 않고 상소를 대신 바치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언관과 면질하려고까지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전고에 없던 변입니다. 정원은 후설의 자리에 있으면서 대신 바치는 것이 규례에 어긋나고, 자신에 대해 밝히는 것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물리치는 것을 혐의쩍어 해 말을 만들어 먼저 아뢰기까지 하여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열어놓았습니다. 그 생각하지 못하고 망령되이 한 잘못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색승지와 동참한 승지를 모두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삼사가 임금을 속이고 부도한 짓을 한 박홍도의 죄를 논하고 있으니, 이는 온 나라의 공론입니다. 박홍도는 현재 유배보내기를 청하고 있는 중에 있는데도 방자하게 임금을 속이고 자신을 변명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는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말입니다. 더구나 박홍도가 대간과 더불어 대질해서 따지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재신(宰臣)이 아니면서 사람을 시켜서 대신 바치었으니, 이것이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 상소의 내용은 전적으로 자신이 지은 죄에서 도망치려고 한 것으로, 모두가 거짓을 꾸며 자신을 변명하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이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정원은 이미 전례에 비추어서 물리치지 못하고, 이에 감히 많은 말을 늘어놓으면서 먼저 아뢰고 뒤에 상소를 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을 무함한 박홍도로 하여금 더욱더 간악한 계책을 꾸미게 하고, 항론(抗論)하여 간악한 자를 토죄한 대간으로 하여금 곧은 기상이 꺾이도록 하여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열어놓았습니다. 일찍이 정원은 출납(出納)을 오로지 진실되게 해야 한다고 한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대간을 경시하고 공론을 멸시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날 동참한 승지를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정원이 들여서는 안된다는 뜻을 갖추어 진달하였는데, 내가 들이도록 한 것이다. 정원은 논할 만한 잘못이 없으니,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삼사가 임금을 속이고 부도한 짓을 한 박홍도의 죄를 논하고 있으니, 이는 온 나라의 공론입니다. 박홍도는 현재 유배보내기를 청하고 있는 중에 있는데도 방자하게 임금을 속이고 자신을 변명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는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말입니다. 더구나 박홍도가 대간과 더불어 대질해서 따지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2백 년 이래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재신(宰臣)이 아니면서 사람을 시켜서 대신 바치었으니, 이것이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 상소의 내용은 전적으로 자신이 지은 죄에서 도망치려고 한 것으로, 모두가 거짓을 꾸며 자신을 변명하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이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정원은 이미 전례에 비추어서 물리치지 못하고, 이에 감히 많은 말을 늘어놓으면서 먼저 아뢰고 뒤에 상소를 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을 무함한 박홍도로 하여금 더욱더 간악한 계책을 꾸미게 하고, 항론(抗論)하여 간악한 자를 토죄한 대간으로 하여금 곧은 기상이 꺾이도록 하여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열어놓았습니다. 일찍이 정원은 출납(出納)을 오로지 진실되게 해야 한다고 한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대간을 경시하고 공론을 멸시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날 동참한 승지를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정원이 들여서는 안된다는 뜻을 갖추어 진달하였는데, 내가 들이도록 한 것이다. 정원은 논할 만한 잘못이 없으니,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홍문관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죄를 정하였다. 어찌 번거롭게 다시 논하겠는가." 하였다.
"이미 죄를 정하였다. 어찌 번거롭게 다시 논하겠는가."
하였다.

 

또 잇달아 차자를 올려 박홍도의 일에 대해 시원하게 공론을 따를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양사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이미 양사에게 유시하였다."
하였다.

 

유학(幼學) 임이중(任以重) 등이 상소하여 이이첨을 힘껏 구원하면서 이윤(伊尹)과 제갈공명(諸葛孔明)에게 비교하였다. 【한찬남(韓纘男)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예조가 아뢰기를,  【이보다 앞서 유생 남인이 성상의 중흥 공덕비(中興功德碑)를 평양과 전라도·경상도 사이에 세우기를 청하였는데, 왕이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기자헌은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황산 대첩지비(荒山大捷之碑)가 전례가 되는데 만약 평양 및 전라도·경상도 사이에 비석을 세워서 전후 성상의 공렬을 찬양한다면 편리하고 온당할 듯합니다.’ 하였고, 한효순(韓孝純)은 말하기를 ‘전후 성상의 공렬을 찬양하여 비석에 새겨 기리는 것은 참으로 사의(事宜)에 합당합니다. 해조의 공사(公事)에 의거해서 시행하소서.’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의논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기자헌은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서는 황산 대첩지비(荒山大捷之碑)가 전례가 되는데 만약 평양 및 전라도·경상도 사이에 비석을 세워서 전후 성상의 공렬을 찬양한다면 편리하고 온당할 듯합니다.’ 하였고, 한효순(韓孝純)은 말하기를 ‘전후 성상의 공렬을 찬양하여 비석에 새겨 기리는 것은 참으로 사의(事宜)에 합당합니다. 해조의 공사(公事)에 의거해서 시행하소서.’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의논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하니, 전교하기를,
"의논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성균관 생원 이전방(李傳芳) 등이 상소하기를, "신이 삼가 윤선도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먼저 이이첨이 위복(威福)의 권한을 마구 휘두른 죄를 다스리고, 다음으로 유희분·박승종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근래에 나라가 불행히도 붕당이 서로 대립하고 시비(是非)가 정해지지 않아 대의가 분명하지 않으니, 이것은 필시 조정 사이에서 서로 배제하고 모함하는 예사로운 작태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정원의 아룀과 삼사가 피혐한 말을 보니, 윤선도가 상소 중에서 관학유생(館學儒生)을 지적하여 이이첨의 심복이자 도당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신들을 보고 이이첨의 심복과 도당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역적을 토벌한 부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어느 역적의 심복이자 도당이란 말입니까.  유영경이 역모를 꾸며 위태롭게 한 뒤로 역적을 토벌함이 엄하지 않아,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잇달아 나왔습니다. 이에 역적 이진이 상중(喪中)에 역모를 꾸몄고 김직재(金直裁)가 해서(海西)에서 역적 모의를 하였으며, 김제남에 이르러서는 국구(國舅)의 위세를 믿고 궁위(宮闈)들과 체결하여 변고가 바로 좌우(左右)에서 발생해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까지 되었습니다. 이에 ‘전은(全恩)’, ‘양본(讓本)’, ‘수모(讐母)’, ‘절모(絶母)’, ‘연급대비(延及大妃)’, ‘엄폐성공(掩蔽聖功)’ 등의 말이 천지간에 가득차 의리가 희미해져서, 성상의 안위가 마치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웠고 종사의 존망이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군신 상하가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잘 겨를도 없이 역모를 한 자를 토벌하여 나라 안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역적들의 싹이 남아 있어서 사의(邪議)가 마구 발생하였습니다.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 등 역적들이 임금을 마구 욕하며 조정을 위협하여, 스스로 죄에 빠져들었는데, 특별히 너그러운 법으로 다스렸습니다. 지금 윤선도가 하늘을 속일 수 있다고 여기며 더욱더 간교한 계략을 부렸고,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아 감히 흉소(兇疏)를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이이첨을 공격하면서 안으로는 여러 역적들을 구원하여, 이원익을 사마광(司馬光)에게 비교하기까지 하였고, 이덕형은 역적 이의(李㼁)를 힘껏 비호하며 정청(廷請)을 정지하기를 주장하였는데도 순국(循國)하였다고 하였으며, 심희수는 정경세(鄭經世)에게 글을 보내어 임금을 헐뜯고 성상의 공을 가리우고자 감히 사의(邪議)를 주창하였는데도 지조를 지켜서 요동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그 상소가 과연 국가를 위하는 데서 나와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사당(私黨)을 위하는 데서 나와 그런 것입니까? 역적을 역적이 아니라고 하고 역적을 토벌한 것으로 죄안(罪案)을 삼는다면, 이것은 한갓 역적을 토벌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역적은 편드는 것보다 심한 점이 있습니다. 왕법(王法)에서 헤아려 볼 때 이치상 면키 어려운 것으로, 성상께서 통촉하고 계실 것인바, 신이 감히 입을 놀리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이첨이 이들에게 무함을 받는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영경을 우두머리로 삼고 있었는데 이이첨이 성상을 떠받들고 토벌하였으며, 이들은 역적 이진에 대해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 하고 김직재에 대해 살려주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이첨이 성상을 도와 토벌하였기 때문입니다. 김제남이 역모를 함에 있어서는 기미를 밝게 살펴 토벌하였고, 간신이 역적을 비호하자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설을 힘껏 배척하였으며, 사신(使臣)이 중국에 가서 대답을 잘못하자 양본(讓本)의 설을 깊이 억눌렀습니다. 사설(邪說)을 배척하고서 성효(聖孝)를 드러내었고, 이단을 공격하여서 성렬(聖烈)을 드날렸습니다. 이에 성상을 보호한 충성과 사직을 안정시킨 공은 해와 별같이 분명하게 빛나 사람들의 이목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성상께서 알고 계시는 바이고 나라 사람들이 감복하는 바입니다. 여러 차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고 거의 헤아리지 못할 지경에 빠지게 되어서, 윤원형(尹元衡)의 화(禍)와 같은 일이 장차 박두하였는데도 회서(淮西)를 평정했던 배도(裵度)와 같은 뜻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난적(亂賊)의 남은 잔당들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원한을 품어 손바닥을 치면서 복수를 도모하여 반드시 죽이고야 말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들이 이이첨을 먼저 친 것은, 먼저 역적을 토벌한 사람을 제거하여, 한때의 고굉대신과 정원·삼사로 하여금 아무 소리 못한 채 목을 늘이고 죽음을 받게 해서, 여러 역적의 원수를 갚고 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펴려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성상으로 하여금 어질고 충성스런 신하를 모두 죽이고 간사하고 사특한 자들을 기르게 해, 끝내는 사류(士類)에게 화를 전가시키려는 것입니다. 신들이 죽는 것이야 참으로 애석할 것이 없지만 어찌 차마 성대(聖代)에 다시 진동(陳東)이 원통함을 품었던 것과 같은 일015)  이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예로부터 간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을 해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얽어넣는 화가 초야의 가난한 선비에게까지 미쳤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신들이 무고를 당한 데에서 이이첨이 무고를 당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신하로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자도 오히려 감히 하지 않는데, 더구나 효성을 옮겨 충성을 바치고 나라가 존재하면 함께 존재하고 나라가 망하면 함께 망하여 종시토록 지조를 지키는 이이첨이겠습니까. 위권을 함부로 농락한 일을 지적하면서 멋대로 위험한 지경에 빠뜨린 것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그 말이 임금을 속이는 데 빠져들어간다는 것을 몰랐으니, 참으로 통분스럽습니다. 신들은 감히 터럭만큼도 사사로운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군신간의 대의(大義)는 개나 말 역시 그러한 것으로, 구구한 충의(忠義)의 마음에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는 바가 있어서인 것입니다. 전후로 역적을 토벌하면서 뜻이 저절로 합해져서 실로 목욕하고 역적을 토벌하기를 청한 의리를 함께 얻었습니다. 그가 참소하는 말이 비록 여기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신들은 이를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윤선도는 남쪽 변방의 괴이한 종자로서 나쁜 기운만을 품부받았는바, 윤의중(尹毅中)이 할아비가 되고 윤유기(尹惟幾)가 그 아비입니다. 윤의중은 윤원형(尹元衡)의 풍지(風旨)를 받아 윤원형의 형인 윤원로(尹元老)를 죽이려고 모의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자기가 형을 죽이는 데 대한 전례로 원용하고자 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일을 성공하지 못하자, 그의 형인 윤홍중(尹弘中)의 아들이 아비의 첩을 간음했다고 하면서 소문이 나도록 해 엄한 형신을 가하여 때려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적종(嫡宗)을 빼앗고자 꾀하여 형이 없으면 동생이 종손이 되는 계책을 성사시켜서 윤유기에게 적통을 전해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선왕께서 ‘이 옥사(獄事)는 아주 원통한 듯하다.’는 전교를 내리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윤유기는 그 후사(後嗣)가 되면서부터 집안의 재산을 다 차지하여 그 제사를 모셨는데, 사론(士論)이 심지어는 ‘홍중의 귀신이 윤유기가 지내는 제사를 받아먹지 않을 것이다.’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임진 왜란이 일어나자 토산(兎山)에서 난리를 피하였는데, 어미가 죽자 초장(草葬)을 지내어 해골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서 새들이 쪼아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난리가 평정된 뒤 즉시 개장(改葬)하지 않았으므로 최유원(崔有源)이 매번 대간(臺諫)이 될 때마다 반드시 ‘어미를 장사지내지 않고 재물을 탐하여 형을 죽였다.’는 것으로 탄핵하였습니다. 또 그의 4촌 처남의 첩의 딸을 간음하여 몰래 그의 집에 데리고 살았습니다. 이에 그의 아내가 매번 친척들을 볼 때마다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면서 ‘세상에 비록 투기하는 부인이 있기는 하지만 어찌 조카딸과 한집에 같이 살면서 그와 투기하는 경우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윤유기는 자식이 없어서 윤선도를 양자로 들여 후사로 삼았는데, 이 역시 인간의 윤리를 어지럽힌 악행이 있었습니다. 이에 그 할아비부터 자식, 손자에 이르기까지 윤기(倫紀)를 어지럽혀서 금수조차도 나란히 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음란한 행실과 추잡한 말이 나라 안에 자자합니다. 이것이 사류들에게 용납되지 못하고 선인(善人)들에게 독기를 품고서 이와 같이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못하는 짓이 없게 된 이유입니다. 이것은 《주역(周易)》에서 이른바 ‘어린 송아지를 매어두지 않았다.’는 것과 ‘여윈 돼지가 사로잡히어 깡총깡총 뛴다.’는 것016)  으로, 성인이 한계를 넘는 데 대해 염려한 것이 지극하고도 극진합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늙은 소가 송아지를 혀로 핥을 때에도 사랑을 오히려 볼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아비가 자식을 협박하여 흉소를 올리도록 종용해서 자식으로 하여금 사론(士論)에 죄를 얻게 하고서 자신만 유독 면하였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부자간에 서로 해치는 것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더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선도가 아비의 첩을 간통하자 윤유기가 내쫓은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지금 이 상소를 그로 하여금 바치라고 윽박지르면서 말하기를 「네가 이 상소를 바치면 너의 잘못을 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윤선도가 어쩔 수 없어서 이 상소를 와서 바친 것이다.’고 하는데, 이 말이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노간(老奸)인 윤유기가 스스로 한 것이겠습니까. 그 역시 대간인(大奸人)의 사주를 받고서 그의 아들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 그가 조정을 위태롭게 만들고 사류를 일망타진하려는 흉악한 모의가 여기에 이르러 다 드러나 다시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신들의 한두 마디 말이 없더라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신들은 참으로 성상께서 비록 백 명의 윤선도가 있더라도 역적을 토벌한 여러 선비들에 대해서 의심을 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분스러운 생각을 스스로 억누를 수가 없어서, 이 무리들과 함께 같은 나라에 있지 않으리라고 맹세하였는바, ‘북방(北方)에 내던지리라.’는 시017)  가 바로 윤유기 부자를 두고 한 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는 신들이 무고당한 원통함을 살피시어 「주역」에서 엄하게 토죄하는 의리를 다하여 속히 흉소를 불태우고 분명하게 호오(好惡)를 보이심으로써, 조정을 평안하게 하고 사류를 안심시키소서." 하였다. 【입계한 지 20여 일 만에 비로소 내렸다.】


[註 015] 진동(陳東)이 원통함을 품었던 것과 같은 일 : 진동은 송나라 때의 태학생(太學生)임. 송흠종(宋欽宗)이 즉위하자 상소를 올려서 채경(蔡京)·동관(童貫)·왕보(王黼)·이언(李彦)·양사성(梁師成)·주면(朱勔) 등 6인을 육적(六賊)으로 지칭하고 이들을 목베어 천하의 공론에 사죄하라고 하였다. 그 뒤에 황잠선(黃潛善)의 참소로 인해 저자에서 참수(斬首)당하였다. 《송사(宋史)》 권455 《진동전(陳東傳)》.[註 016] ‘어린 송아지를 매어두지 않았다.’는 것과 ‘여윈 돼지가 사로잡히어 깡총깡총 뛴다.’는 것 : 전자는 《주역(周易)》 대축괘(大畜卦)의 ‘童牛之牿 元吉’을, 후자는 《주역(周易)》 구괘(姤卦)의 ‘嬴豕孚蹢躅’을 변형하여 쓴 것임. 여기에서 매어두지 않은 송아지나 야윈 돼지는 모두 윤선도의 행실을 비유하여 쓴 것임.[註 017] ‘북방(北方)에 내던지리라.’는 시 : 《시경(詩經)》 소아(小雅) 기부지습(祈父之什) 권백에 나오는 구절임. 남을 참소하는 이를 미워하여 지은 시인데, 그를 북방으로 내던져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 죽게 하고자 한다고 읊은 것임.
"신이 삼가 윤선도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 ‘먼저 이이첨이 위복(威福)의 권한을 마구 휘두른 죄를 다스리고, 다음으로 유희분·박승종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근래에 나라가 불행히도 붕당이 서로 대립하고 시비(是非)가 정해지지 않아 대의가 분명하지 않으니, 이것은 필시 조정 사이에서 서로 배제하고 모함하는 예사로운 작태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정원의 아룀과 삼사가 피혐한 말을 보니, 윤선도가 상소 중에서 관학유생(館學儒生)을 지적하여 이이첨의 심복이자 도당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신들을 보고 이이첨의 심복과 도당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역적을 토벌한 부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어느 역적의 심복이자 도당이란 말입니까.
유영경이 역모를 꾸며 위태롭게 한 뒤로 역적을 토벌함이 엄하지 않아,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잇달아 나왔습니다. 이에 역적 이진이 상중(喪中)에 역모를 꾸몄고 김직재(金直裁)가 해서(海西)에서 역적 모의를 하였으며, 김제남에 이르러서는 국구(國舅)의 위세를 믿고 궁위(宮闈)들과 체결하여 변고가 바로 좌우(左右)에서 발생해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까지 되었습니다. 이에 ‘전은(全恩)’, ‘양본(讓本)’, ‘수모(讐母)’, ‘절모(絶母)’, ‘연급대비(延及大妃)’, ‘엄폐성공(掩蔽聖功)’ 등의 말이 천지간에 가득차 의리가 희미해져서, 성상의 안위가 마치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웠고 종사의 존망이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군신 상하가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잘 겨를도 없이 역모를 한 자를 토벌하여 나라 안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역적들의 싹이 남아 있어서 사의(邪議)가 마구 발생하였습니다.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 등 역적들이 임금을 마구 욕하며 조정을 위협하여, 스스로 죄에 빠져들었는데, 특별히 너그러운 법으로 다스렸습니다.
지금 윤선도가 하늘을 속일 수 있다고 여기며 더욱더 간교한 계략을 부렸고,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아 감히 흉소(兇疏)를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이이첨을 공격하면서 안으로는 여러 역적들을 구원하여, 이원익을 사마광(司馬光)에게 비교하기까지 하였고, 이덕형은 역적 이의(李㼁)를 힘껏 비호하며 정청(廷請)을 정지하기를 주장하였는데도 순국(循國)하였다고 하였으며, 심희수는 정경세(鄭經世)에게 글을 보내어 임금을 헐뜯고 성상의 공을 가리우고자 감히 사의(邪議)를 주창하였는데도 지조를 지켜서 요동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그 상소가 과연 국가를 위하는 데서 나와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사당(私黨)을 위하는 데서 나와 그런 것입니까?
역적을 역적이 아니라고 하고 역적을 토벌한 것으로 죄안(罪案)을 삼는다면, 이것은 한갓 역적을 토벌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역적은 편드는 것보다 심한 점이 있습니다. 왕법(王法)에서 헤아려 볼 때 이치상 면키 어려운 것으로, 성상께서 통촉하고 계실 것인바, 신이 감히 입을 놀리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이첨이 이들에게 무함을 받는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유영경을 우두머리로 삼고 있었는데 이이첨이 성상을 떠받들고 토벌하였으며, 이들은 역적 이진에 대해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 하고 김직재에 대해 살려주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이첨이 성상을 도와 토벌하였기 때문입니다. 김제남이 역모를 함에 있어서는 기미를 밝게 살펴 토벌하였고, 간신이 역적을 비호하자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설을 힘껏 배척하였으며, 사신(使臣)이 중국에 가서 대답을 잘못하자 양본(讓本)의 설을 깊이 억눌렀습니다. 사설(邪說)을 배척하고서 성효(聖孝)를 드러내었고, 이단을 공격하여서 성렬(聖烈)을 드날렸습니다. 이에 성상을 보호한 충성과 사직을 안정시킨 공은 해와 별같이 분명하게 빛나 사람들의 이목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성상께서 알고 계시는 바이고 나라 사람들이 감복하는 바입니다.
여러 차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고 거의 헤아리지 못할 지경에 빠지게 되어서, 윤원형(尹元衡)의 화(禍)와 같은 일이 장차 박두하였는데도 회서(淮西)를 평정했던 배도(裵度)와 같은 뜻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난적(亂賊)의 남은 잔당들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원한을 품어 손바닥을 치면서 복수를 도모하여 반드시 죽이고야 말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들이 이이첨을 먼저 친 것은, 먼저 역적을 토벌한 사람을 제거하여, 한때의 고굉대신과 정원·삼사로 하여금 아무 소리 못한 채 목을 늘이고 죽음을 받게 해서, 여러 역적의 원수를 갚고 가슴속에 품은 생각을 펴려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성상으로 하여금 어질고 충성스런 신하를 모두 죽이고 간사하고 사특한 자들을 기르게 해, 끝내는 사류(士類)에게 화를 전가시키려는 것입니다. 신들이 죽는 것이야 참으로 애석할 것이 없지만 어찌 차마 성대(聖代)에 다시 진동(陳東)이 원통함을 품었던 것과 같은 일015)  이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예로부터 간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을 해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얽어넣는 화가 초야의 가난한 선비에게까지 미쳤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신들이 무고를 당한 데에서 이이첨이 무고를 당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신하로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자도 오히려 감히 하지 않는데, 더구나 효성을 옮겨 충성을 바치고 나라가 존재하면 함께 존재하고 나라가 망하면 함께 망하여 종시토록 지조를 지키는 이이첨이겠습니까. 위권을 함부로 농락한 일을 지적하면서 멋대로 위험한 지경에 빠뜨린 것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그 말이 임금을 속이는 데 빠져들어간다는 것을 몰랐으니, 참으로 통분스럽습니다.
신들은 감히 터럭만큼도 사사로운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군신간의 대의(大義)는 개나 말 역시 그러한 것으로, 구구한 충의(忠義)의 마음에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는 바가 있어서인 것입니다. 전후로 역적을 토벌하면서 뜻이 저절로 합해져서 실로 목욕하고 역적을 토벌하기를 청한 의리를 함께 얻었습니다. 그가 참소하는 말이 비록 여기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신들은 이를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윤선도는 남쪽 변방의 괴이한 종자로서 나쁜 기운만을 품부받았는바, 윤의중(尹毅中)이 할아비가 되고 윤유기(尹惟幾)가 그 아비입니다. 윤의중은 윤원형(尹元衡)의 풍지(風旨)를 받아 윤원형의 형인 윤원로(尹元老)를 죽이려고 모의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자기가 형을 죽이는 데 대한 전례로 원용하고자 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일을 성공하지 못하자, 그의 형인 윤홍중(尹弘中)의 아들이 아비의 첩을 간음했다고 하면서 소문이 나도록 해 엄한 형신을 가하여 때려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적종(嫡宗)을 빼앗고자 꾀하여 형이 없으면 동생이 종손이 되는 계책을 성사시켜서 윤유기에게 적통을 전해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선왕께서 ‘이 옥사(獄事)는 아주 원통한 듯하다.’는 전교를 내리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윤유기는 그 후사(後嗣)가 되면서부터 집안의 재산을 다 차지하여 그 제사를 모셨는데, 사론(士論)이 심지어는 ‘홍중의 귀신이 윤유기가 지내는 제사를 받아먹지 않을 것이다.’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임진 왜란이 일어나자 토산(兎山)에서 난리를 피하였는데, 어미가 죽자 초장(草葬)을 지내어 해골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서 새들이 쪼아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난리가 평정된 뒤 즉시 개장(改葬)하지 않았으므로 최유원(崔有源)이 매번 대간(臺諫)이 될 때마다 반드시 ‘어미를 장사지내지 않고 재물을 탐하여 형을 죽였다.’는 것으로 탄핵하였습니다. 또 그의 4촌 처남의 첩의 딸을 간음하여 몰래 그의 집에 데리고 살았습니다. 이에 그의 아내가 매번 친척들을 볼 때마다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면서 ‘세상에 비록 투기하는 부인이 있기는 하지만 어찌 조카딸과 한집에 같이 살면서 그와 투기하는 경우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윤유기는 자식이 없어서 윤선도를 양자로 들여 후사로 삼았는데, 이 역시 인간의 윤리를 어지럽힌 악행이 있었습니다. 이에 그 할아비부터 자식, 손자에 이르기까지 윤기(倫紀)를 어지럽혀서 금수조차도 나란히 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음란한 행실과 추잡한 말이 나라 안에 자자합니다. 이것이 사류들에게 용납되지 못하고 선인(善人)들에게 독기를 품고서 이와 같이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못하는 짓이 없게 된 이유입니다. 이것은 《주역(周易)》에서 이른바 ‘어린 송아지를 매어두지 않았다.’는 것과 ‘여윈 돼지가 사로잡히어 깡총깡총 뛴다.’는 것016)  으로, 성인이 한계를 넘는 데 대해 염려한 것이 지극하고도 극진합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늙은 소가 송아지를 혀로 핥을 때에도 사랑을 오히려 볼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아비가 자식을 협박하여 흉소를 올리도록 종용해서 자식으로 하여금 사론(士論)에 죄를 얻게 하고서 자신만 유독 면하였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부자간에 서로 해치는 것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더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선도가 아비의 첩을 간통하자 윤유기가 내쫓은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지금 이 상소를 그로 하여금 바치라고 윽박지르면서 말하기를 「네가 이 상소를 바치면 너의 잘못을 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윤선도가 어쩔 수 없어서 이 상소를 와서 바친 것이다.’고 하는데, 이 말이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노간(老奸)인 윤유기가 스스로 한 것이겠습니까. 그 역시 대간인(大奸人)의 사주를 받고서 그의 아들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
그가 조정을 위태롭게 만들고 사류를 일망타진하려는 흉악한 모의가 여기에 이르러 다 드러나 다시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신들의 한두 마디 말이 없더라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신들은 참으로 성상께서 비록 백 명의 윤선도가 있더라도 역적을 토벌한 여러 선비들에 대해서 의심을 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분스러운 생각을 스스로 억누를 수가 없어서, 이 무리들과 함께 같은 나라에 있지 않으리라고 맹세하였는바, ‘북방(北方)에 내던지리라.’는 시017)  가 바로 윤유기 부자를 두고 한 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는 신들이 무고당한 원통함을 살피시어 「주역」에서 엄하게 토죄하는 의리를 다하여 속히 흉소를 불태우고 분명하게 호오(好惡)를 보이심으로써, 조정을 평안하게 하고 사류를 안심시키소서."
하였다. 【입계한 지 20여 일 만에 비로소 내렸다.】


[註 015] 진동(陳東)이 원통함을 품었던 것과 같은 일 : 진동은 송나라 때의 태학생(太學生)임. 송흠종(宋欽宗)이 즉위하자 상소를 올려서 채경(蔡京)·동관(童貫)·왕보(王黼)·이언(李彦)·양사성(梁師成)·주면(朱勔) 등 6인을 육적(六賊)으로 지칭하고 이들을 목베어 천하의 공론에 사죄하라고 하였다. 그 뒤에 황잠선(黃潛善)의 참소로 인해 저자에서 참수(斬首)당하였다. 《송사(宋史)》 권455 《진동전(陳東傳)》.[註 016] ‘어린 송아지를 매어두지 않았다.’는 것과 ‘여윈 돼지가 사로잡히어 깡총깡총 뛴다.’는 것 : 전자는 《주역(周易)》 대축괘(大畜卦)의 ‘童牛之牿 元吉’을, 후자는 《주역(周易)》 구괘(姤卦)의 ‘嬴豕孚蹢躅’을 변형하여 쓴 것임. 여기에서 매어두지 않은 송아지나 야윈 돼지는 모두 윤선도의 행실을 비유하여 쓴 것임.[註 017] ‘북방(北方)에 내던지리라.’는 시 : 《시경(詩經)》 소아(小雅) 기부지습(祈父之什) 권백에 나오는 구절임. 남을 참소하는 이를 미워하여 지은 시인데, 그를 북방으로 내던져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 죽게 하고자 한다고 읊은 것임.

 

【이정귀(李廷龜)를 지중추부사로, 정광성(鄭廣成)을 병조 참지로, 이홍주(李弘胄)를 동부승지로, 한영(韓泳)을 문학으로, 기준격(奇俊格)을 정언으로 삼았다.】

 

1월 15일 신사

전교하기를, "박적(朴賊)을 체포하라는 명이 해이해져 도성에 출입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좌우 포도 대장을 명초(命招)하여 신칙해서 그들로 하여금 날짜를 정해 두고 체포하게 하라. 그리고 다시금 상세히 팔도에 하유하여 한결같이 조정의 사목(事目)에 의거해서 각별히 현상금을 걸어 체포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추국청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해 계책을 세워서 상세하게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박적(朴賊)은 박치의(朴致毅)이다. 박치의는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해마다 현상금을 걸어 체포하여서 중외가 시끌시끌하였다. 이에 ‘양근 태수(楊根太守)가 흰구름을 체포한다.’는 말까지 있었다.】
"박적(朴賊)을 체포하라는 명이 해이해져 도성에 출입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좌우 포도 대장을 명초(命招)하여 신칙해서 그들로 하여금 날짜를 정해 두고 체포하게 하라. 그리고 다시금 상세히 팔도에 하유하여 한결같이 조정의 사목(事目)에 의거해서 각별히 현상금을 걸어 체포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추국청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해 계책을 세워서 상세하게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박적(朴賊)은 박치의(朴致毅)이다. 박치의는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해마다 현상금을 걸어 체포하여서 중외가 시끌시끌하였다. 이에 ‘양근 태수(楊根太守)가 흰구름을 체포한다.’는 말까지 있었다.】

 

 

 

전교하였다. "얼음이 풀릴 날이 멀지 않았으니 선수 도감(繕修都監)의 재목(材木) 중 외방에서 아직까지 상납하지 않은 것을 다시금 독촉해서 경강(京江)에 납입하게 하라. 그리고 미처 실어들이지 못한 재목은 속히 실어들이라. "
"얼음이 풀릴 날이 멀지 않았으니 선수 도감(繕修都監)의 재목(材木) 중 외방에서 아직까지 상납하지 않은 것을 다시금 독촉해서 경강(京江)에 납입하게 하라. 그리고 미처 실어들이지 못한 재목은 속히 실어들이라. "
1월 16일 임오

018) 전교하였다. "회답사(回答使)의 역관(譯官)과 군관(軍官)을 미리 서계하게 해서 역적의 족속을 데리고 가는 일이 없게 하라."


[註 018]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3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전교하였다. "회답사(回答使)의 역관(譯官)과 군관(軍官)을 미리 서계하게 해서 역적의 족속을 데리고 가는 일이 없게 하라."


[註 018]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3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회답사(回答使)의 역관(譯官)과 군관(軍官)을 미리 서계하게 해서 역적의 족속을 데리고 가는 일이 없게 하라."


 

 

 

019) 양사가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박홍도(朴弘道)는 윤선도와 이형이 상소를 올리도록 사주하였는데, 윤선도와 이형은 이미 죄를 받았는데도, 박홍도만 홀로 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성윤(李誠胤)을 불러다가 서당(書堂)에서 시를 지어 화답하였는데 금성군 이성윤은 이미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되었는데도 박홍도만 홀로 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윤선도·이형·이성윤은 모두 조정의 일에 간여하지 않는 자들로, 박홍도가 부추기지만 않았다면 반드시 이런 흉소를 올려서 스스로 불측한 지경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박홍도의 속마음은 길가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초에 김제남을 토죄하기 위해 간통을 보냈을 적에 박홍도는 단지 ‘근실(謹悉)’이라고만 써서 보냈으니, 그 논의가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김제남이 정형(正刑)을 받은 뒤에는 그의 이름을 발론한 대간의 이름 사이에 써넣어 자신의 공으로 삼아 진신들에게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집안 사람을 사주하여 감히 녹훈되기를 도모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늘이야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기타 다른 사람을 중상하고 모해한 마음과 간사하고도 탐욕스런 상황을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가 부도(不道)한 내용으로 화답한 시는 사람들이 자자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그는 감히 귀신이 한 말이라고 하며 국가가 무고를 받은 것이라고 돌리면서, 대간과 더불어 면질(面質)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공(公共)의 논의를 돌아보지 않고 흉악하고 거짓스러운 자취를 가리우려 하였으니, 그 마음씀이 교묘하고도 참혹하지 않습니까. 옛날에 중묘조(中廟朝) 때 간신 이항(李沆)이 찬성(贊成)으로 있다가 파직되어서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해명하였는데, 양사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멸시했다.’는 이유로 율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기를 청하여서, 유배보냈다가 사사(賜死)하였습니다. 소인의 정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박홍도와 같은 자는 여러 역적들의 중개역할을 한 자이고 화를 조성한 바탕이 된 자로, 죄악이 더욱 드러나고 공론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상께서는 번번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를 내리시어 공론이 날로 꺾이게 되고 간계한 모의가 날로 불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간흉이 어느 때 없어지겠으며 조정이 어느 때 평안해지겠습니까. 바라건대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먼 변방에다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소서. 귀천군 이수(李晬)의 죄악은 이성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성윤은 이미 절도에 위리 안치되었는데, 귀천군 이수는 멀리 유배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미 위리 안치하지 않고서 또 잡아다가 추문하지 않은 채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하시어서 공론이 날로 격렬해지고 여정(輿情)이 날로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결단을 내리소서."하니, 답하기를, "무릇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것은 대개 장차 처치하겠다는 뜻이다. 위에서 이미 이런 전교를 내렸으면 우선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지, 잇달아 글을 올려 억지로 다투어서는 안 된다. 한결같이 전례에 의거해서 상세히 살펴서 준행하라." 하였다.【 【이항(李沆)의 죽음은 김안로(金安老)가 한 짓이다. 가령 억울한 일이 있을 경우 자신이 변명하는 것이 무슨 해가 있어서 반드시 죽인단 말인가. 이 때에 대각에서 인용하는 고사가 모두 이와 같았다.】 】


[註 019]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양사가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박홍도(朴弘道)는 윤선도와 이형이 상소를 올리도록 사주하였는데, 윤선도와 이형은 이미 죄를 받았는데도, 박홍도만 홀로 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성윤(李誠胤)을 불러다가 서당(書堂)에서 시를 지어 화답하였는데 금성군 이성윤은 이미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되었는데도 박홍도만 홀로 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윤선도·이형·이성윤은 모두 조정의 일에 간여하지 않는 자들로, 박홍도가 부추기지만 않았다면 반드시 이런 흉소를 올려서 스스로 불측한 지경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박홍도의 속마음은 길가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초에 김제남을 토죄하기 위해 간통을 보냈을 적에 박홍도는 단지 ‘근실(謹悉)’이라고만 써서 보냈으니, 그 논의가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김제남이 정형(正刑)을 받은 뒤에는 그의 이름을 발론한 대간의 이름 사이에 써넣어 자신의 공으로 삼아 진신들에게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집안 사람을 사주하여 감히 녹훈되기를 도모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늘이야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기타 다른 사람을 중상하고 모해한 마음과 간사하고도 탐욕스런 상황을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가 부도(不道)한 내용으로 화답한 시는 사람들이 자자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그는 감히 귀신이 한 말이라고 하며 국가가 무고를 받은 것이라고 돌리면서, 대간과 더불어 면질(面質)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공(公共)의 논의를 돌아보지 않고 흉악하고 거짓스러운 자취를 가리우려 하였으니, 그 마음씀이 교묘하고도 참혹하지 않습니까. 옛날에 중묘조(中廟朝) 때 간신 이항(李沆)이 찬성(贊成)으로 있다가 파직되어서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해명하였는데, 양사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멸시했다.’는 이유로 율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기를 청하여서, 유배보냈다가 사사(賜死)하였습니다. 소인의 정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박홍도와 같은 자는 여러 역적들의 중개역할을 한 자이고 화를 조성한 바탕이 된 자로, 죄악이 더욱 드러나고 공론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상께서는 번번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를 내리시어 공론이 날로 꺾이게 되고 간계한 모의가 날로 불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간흉이 어느 때 없어지겠으며 조정이 어느 때 평안해지겠습니까. 바라건대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먼 변방에다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소서. 귀천군 이수(李晬)의 죄악은 이성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성윤은 이미 절도에 위리 안치되었는데, 귀천군 이수는 멀리 유배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미 위리 안치하지 않고서 또 잡아다가 추문하지 않은 채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하시어서 공론이 날로 격렬해지고 여정(輿情)이 날로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결단을 내리소서."하니, 답하기를, "무릇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것은 대개 장차 처치하겠다는 뜻이다. 위에서 이미 이런 전교를 내렸으면 우선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지, 잇달아 글을 올려 억지로 다투어서는 안 된다. 한결같이 전례에 의거해서 상세히 살펴서 준행하라." 하였다.【 【이항(李沆)의 죽음은 김안로(金安老)가 한 짓이다. 가령 억울한 일이 있을 경우 자신이 변명하는 것이 무슨 해가 있어서 반드시 죽인단 말인가. 이 때에 대각에서 인용하는 고사가 모두 이와 같았다.】 】


[註 019]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박홍도(朴弘道)는 윤선도와 이형이 상소를 올리도록 사주하였는데, 윤선도와 이형은 이미 죄를 받았는데도, 박홍도만 홀로 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성윤(李誠胤)을 불러다가 서당(書堂)에서 시를 지어 화답하였는데 금성군 이성윤은 이미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되었는데도 박홍도만 홀로 면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윤선도·이형·이성윤은 모두 조정의 일에 간여하지 않는 자들로, 박홍도가 부추기지만 않았다면 반드시 이런 흉소를 올려서 스스로 불측한 지경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박홍도의 속마음은 길가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초에 김제남을 토죄하기 위해 간통을 보냈을 적에 박홍도는 단지 ‘근실(謹悉)’이라고만 써서 보냈으니, 그 논의가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김제남이 정형(正刑)을 받은 뒤에는 그의 이름을 발론한 대간의 이름 사이에 써넣어 자신의 공으로 삼아 진신들에게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집안 사람을 사주하여 감히 녹훈되기를 도모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늘이야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기타 다른 사람을 중상하고 모해한 마음과 간사하고도 탐욕스런 상황을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가 부도(不道)한 내용으로 화답한 시는 사람들이 자자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그는 감히 귀신이 한 말이라고 하며 국가가 무고를 받은 것이라고 돌리면서, 대간과 더불어 면질(面質)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공(公共)의 논의를 돌아보지 않고 흉악하고 거짓스러운 자취를 가리우려 하였으니, 그 마음씀이 교묘하고도 참혹하지 않습니까.
옛날에 중묘조(中廟朝) 때 간신 이항(李沆)이 찬성(贊成)으로 있다가 파직되어서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해명하였는데, 양사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멸시했다.’는 이유로 율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기를 청하여서, 유배보냈다가 사사(賜死)하였습니다. 소인의 정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박홍도와 같은 자는 여러 역적들의 중개역할을 한 자이고 화를 조성한 바탕이 된 자로, 죄악이 더욱 드러나고 공론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상께서는 번번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를 내리시어 공론이 날로 꺾이게 되고 간계한 모의가 날로 불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간흉이 어느 때 없어지겠으며 조정이 어느 때 평안해지겠습니까. 바라건대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먼 변방에다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소서.
귀천군 이수(李晬)의 죄악은 이성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성윤은 이미 절도에 위리 안치되었는데, 귀천군 이수는 멀리 유배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미 위리 안치하지 않고서 또 잡아다가 추문하지 않은 채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하시어서 공론이 날로 격렬해지고 여정(輿情)이 날로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결단을 내리소서."하니, 답하기를,
"무릇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것은 대개 장차 처치하겠다는 뜻이다. 위에서 이미 이런 전교를 내렸으면 우선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지, 잇달아 글을 올려 억지로 다투어서는 안 된다. 한결같이 전례에 의거해서 상세히 살펴서 준행하라."
하였다.【 【이항(李沆)의 죽음은 김안로(金安老)가 한 짓이다. 가령 억울한 일이 있을 경우 자신이 변명하는 것이 무슨 해가 있어서 반드시 죽인단 말인가. 이 때에 대각에서 인용하는 고사가 모두 이와 같았다.】 】


[註 019]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020)  병조 참판 이병(李覮)이 상소하기를, "지금 신의 이름이 이광계(李光啓)의 상소에 언급되었고, 또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듣건대, 신을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이라고 하였으며, 이성윤이 신과 체결하여 낮이면 흩어지고 밤이면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이홍로는 역적입니다. 신하로서 역적과 더불어 복심이 되었다면 죄가 같은 것이니, 만번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어찌 죄에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이 상소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신은 고 상신 이산해(李山海)의 문하생으로, 좋아하고 미워함을 한결같이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 이홍로가 이산해에게 절교를 당한 것은 나라 사람들이 분명하게 아는 바이며, 성상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이 만약 이홍로와 끊지 않았다면 이산해가 신과 더불어 끝까지 사생(師生)의 의리를 보전하려 하였겠습니까. 그리고 먼저 알아보고서 배척해 절교한 밝음에 대해 논한다면 신 역시 참여하여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감히 복심으로 신을 지적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많은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저 이성윤은 이미 조정 신하들과는 차이가 있으며 사는 곳도 역시 멉니다. 그런데 어찌 서로 알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서로(西路)에서 호종(扈從)할 때 대충 얼굴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뒤로는 그 역시 일찍이 한번도 신의 집에 오지 않았으며, 신 역시 그의 집 대문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 망극스럽기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마음의 소재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께서는 즉위하신 초기에 당파를 나누는 습관을 제거하고자 하여 가장 먼저 서로 화합하라는 전교를 내렸으나, 조정의 신하들은 성상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다른 마음을 품어 알력이 심해졌습니다. 이에 박승종·유희분·이이첨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훈척(勳戚)의 중신(重臣)으로서, 그 재주를 논하면 모두 버리기 아까운바, 함께 숭반(崇班)에 올라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국가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의리를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풍색(風色)이 아름답지 않고 기상이 같지 않기가 도리어 이와 같아서, 세 신하가 화합하지 못하고 시세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국사가 날로 그르게 되는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이에 신은 일찍이 천장을 쳐다보고 혀를 차면서 항상 생각하기를 ‘이 세 사람은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며, 이이첨은 이산해의 문하에서 함께 배워 정분이 더욱 두텁다. 만약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의리를 가지고 지성껏 간절히 말한다면 어찌 들어주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뒤부터 박승종을 보면 말하고 유희분을 보면 말하고 이이첨을 보면 말하였는데, 세 사람이 과연 기꺼이 들어주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의 서로 잘 화합하자는 논의는 실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세 사람이 화합하면 논의가 일치되고 논의가 일치되면 사로(仕路)가 공정해집니다. 사로가 공정해지는 것이 비록 국가에 이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는 법입니다. 이에 심지어는 신이 양쪽 편 사이에서 유세하여 시비(是非)를 교란시킨다고 하면서 쪼아대기를 그치지 않고 공격함이 날로 심해졌는데, 이광계의 상소가 갑자기 오늘날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세 신하가 보합(保合)해야 한다는 논의가 신이 화를 일으킨 빌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세로 살펴보면 진정시키고 구제하는 계책으로는 세 신하가 보합하는 것보다 나은 방도가 없습니다. 신은 보합하라는 논의를 하여 몸에 화를 불러들였으나, 오히려 이 논의를 중지할 줄 모르겠으며, 역시 스스로 헤아리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국론이 날로 분열되어 분분함이 그치지 않고 선동하는 자가 더욱 일어날 것이어서, 끝내 일을 망쳐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아, 이이첨의 행실과 재주는 신이 평소에 사랑하는 바이고, 이이첨이 원망을 받으면서도 역적을 토벌한 것 역시 신이 일찍이 감복하였던 바입니다. 불행하게도 요즈음 여러 차례 의외의 변고를 만났는데, 버러지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야 비록 말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신은 삼가 세도(世道)를 위하여 탄식합니다. 이번의 이 소요스러운 단서야 비록 세 신하가 화합하고 안 하고에 관계되지 않으나, 만약 세 신하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여서 각자 자신의 임무를 다하게 한다면, 조정이 화목해지고 논의가 균평하게 되어 저절로 안정되지 않을 틈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럴 경우 비록 세 신하를 좋아하지 않아 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자가 있더라도 어느 틈을 엿볼 수 있겠으며, 어느 기회를 탈 수 있겠으며, 어떤 소요가 염려되겠습니까. 지금 비록 이미 늦었지만 오히려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이 종시토록 간절해 하면서, 차라리 이 논(論)으로 죄를 얻을지언정, 사이에서 오가면서 일을 무너뜨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은 지금 나이가 이미 예순이 다 되어서 걸음걸이나 기동을 뜻대로 하지 못하니 힘을 다하여 반열에 나간다 하더라도 며칠이나 나갈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을 체직하여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게 하고, 또 신의 죄를 바루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답하소서." 하였다.【 【이병은 이산해의 심복이다. 사람됨이 음험하고 지모가 많아 그 무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이다. 그런데 마음씀이 전일하지 못하고 수시로 변환하였으므로 이이첨에게 의심을 받았고 때때로 다르게 행동하였다. 대개 이산해의 술수를 배웠으나 정미하지 못한 자이다.】 】


[註 020]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5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병조 참판 이병(李覮)이 상소하기를, "지금 신의 이름이 이광계(李光啓)의 상소에 언급되었고, 또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듣건대, 신을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이라고 하였으며, 이성윤이 신과 체결하여 낮이면 흩어지고 밤이면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이홍로는 역적입니다. 신하로서 역적과 더불어 복심이 되었다면 죄가 같은 것이니, 만번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어찌 죄에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이 상소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신은 고 상신 이산해(李山海)의 문하생으로, 좋아하고 미워함을 한결같이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 이홍로가 이산해에게 절교를 당한 것은 나라 사람들이 분명하게 아는 바이며, 성상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이 만약 이홍로와 끊지 않았다면 이산해가 신과 더불어 끝까지 사생(師生)의 의리를 보전하려 하였겠습니까. 그리고 먼저 알아보고서 배척해 절교한 밝음에 대해 논한다면 신 역시 참여하여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감히 복심으로 신을 지적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많은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저 이성윤은 이미 조정 신하들과는 차이가 있으며 사는 곳도 역시 멉니다. 그런데 어찌 서로 알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서로(西路)에서 호종(扈從)할 때 대충 얼굴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뒤로는 그 역시 일찍이 한번도 신의 집에 오지 않았으며, 신 역시 그의 집 대문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 망극스럽기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마음의 소재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께서는 즉위하신 초기에 당파를 나누는 습관을 제거하고자 하여 가장 먼저 서로 화합하라는 전교를 내렸으나, 조정의 신하들은 성상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다른 마음을 품어 알력이 심해졌습니다. 이에 박승종·유희분·이이첨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훈척(勳戚)의 중신(重臣)으로서, 그 재주를 논하면 모두 버리기 아까운바, 함께 숭반(崇班)에 올라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국가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의리를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풍색(風色)이 아름답지 않고 기상이 같지 않기가 도리어 이와 같아서, 세 신하가 화합하지 못하고 시세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국사가 날로 그르게 되는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이에 신은 일찍이 천장을 쳐다보고 혀를 차면서 항상 생각하기를 ‘이 세 사람은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며, 이이첨은 이산해의 문하에서 함께 배워 정분이 더욱 두텁다. 만약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의리를 가지고 지성껏 간절히 말한다면 어찌 들어주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뒤부터 박승종을 보면 말하고 유희분을 보면 말하고 이이첨을 보면 말하였는데, 세 사람이 과연 기꺼이 들어주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의 서로 잘 화합하자는 논의는 실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세 사람이 화합하면 논의가 일치되고 논의가 일치되면 사로(仕路)가 공정해집니다. 사로가 공정해지는 것이 비록 국가에 이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는 법입니다. 이에 심지어는 신이 양쪽 편 사이에서 유세하여 시비(是非)를 교란시킨다고 하면서 쪼아대기를 그치지 않고 공격함이 날로 심해졌는데, 이광계의 상소가 갑자기 오늘날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세 신하가 보합(保合)해야 한다는 논의가 신이 화를 일으킨 빌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세로 살펴보면 진정시키고 구제하는 계책으로는 세 신하가 보합하는 것보다 나은 방도가 없습니다. 신은 보합하라는 논의를 하여 몸에 화를 불러들였으나, 오히려 이 논의를 중지할 줄 모르겠으며, 역시 스스로 헤아리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국론이 날로 분열되어 분분함이 그치지 않고 선동하는 자가 더욱 일어날 것이어서, 끝내 일을 망쳐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아, 이이첨의 행실과 재주는 신이 평소에 사랑하는 바이고, 이이첨이 원망을 받으면서도 역적을 토벌한 것 역시 신이 일찍이 감복하였던 바입니다. 불행하게도 요즈음 여러 차례 의외의 변고를 만났는데, 버러지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야 비록 말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신은 삼가 세도(世道)를 위하여 탄식합니다. 이번의 이 소요스러운 단서야 비록 세 신하가 화합하고 안 하고에 관계되지 않으나, 만약 세 신하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여서 각자 자신의 임무를 다하게 한다면, 조정이 화목해지고 논의가 균평하게 되어 저절로 안정되지 않을 틈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럴 경우 비록 세 신하를 좋아하지 않아 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자가 있더라도 어느 틈을 엿볼 수 있겠으며, 어느 기회를 탈 수 있겠으며, 어떤 소요가 염려되겠습니까. 지금 비록 이미 늦었지만 오히려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이 종시토록 간절해 하면서, 차라리 이 논(論)으로 죄를 얻을지언정, 사이에서 오가면서 일을 무너뜨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은 지금 나이가 이미 예순이 다 되어서 걸음걸이나 기동을 뜻대로 하지 못하니 힘을 다하여 반열에 나간다 하더라도 며칠이나 나갈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을 체직하여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게 하고, 또 신의 죄를 바루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답하소서." 하였다.【 【이병은 이산해의 심복이다. 사람됨이 음험하고 지모가 많아 그 무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이다. 그런데 마음씀이 전일하지 못하고 수시로 변환하였으므로 이이첨에게 의심을 받았고 때때로 다르게 행동하였다. 대개 이산해의 술수를 배웠으나 정미하지 못한 자이다.】 】


[註 020]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5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지금 신의 이름이 이광계(李光啓)의 상소에 언급되었고, 또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듣건대, 신을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이라고 하였으며, 이성윤이 신과 체결하여 낮이면 흩어지고 밤이면 모였다고 하였습니다. 이홍로는 역적입니다. 신하로서 역적과 더불어 복심이 되었다면 죄가 같은 것이니, 만번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어찌 죄에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이 상소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신은 고 상신 이산해(李山海)의 문하생으로, 좋아하고 미워함을 한결같이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 이홍로가 이산해에게 절교를 당한 것은 나라 사람들이 분명하게 아는 바이며, 성상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이 만약 이홍로와 끊지 않았다면 이산해가 신과 더불어 끝까지 사생(師生)의 의리를 보전하려 하였겠습니까. 그리고 먼저 알아보고서 배척해 절교한 밝음에 대해 논한다면 신 역시 참여하여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감히 복심으로 신을 지적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많은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저 이성윤은 이미 조정 신하들과는 차이가 있으며 사는 곳도 역시 멉니다. 그런데 어찌 서로 알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서로(西路)에서 호종(扈從)할 때 대충 얼굴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뒤로는 그 역시 일찍이 한번도 신의 집에 오지 않았으며, 신 역시 그의 집 대문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 망극스럽기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마음의 소재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상께서는 즉위하신 초기에 당파를 나누는 습관을 제거하고자 하여 가장 먼저 서로 화합하라는 전교를 내렸으나, 조정의 신하들은 성상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다른 마음을 품어 알력이 심해졌습니다. 이에 박승종·유희분·이이첨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훈척(勳戚)의 중신(重臣)으로서, 그 재주를 논하면 모두 버리기 아까운바, 함께 숭반(崇班)에 올라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국가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의리를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풍색(風色)이 아름답지 않고 기상이 같지 않기가 도리어 이와 같아서, 세 신하가 화합하지 못하고 시세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국사가 날로 그르게 되는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이에 신은 일찍이 천장을 쳐다보고 혀를 차면서 항상 생각하기를 ‘이 세 사람은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며, 이이첨은 이산해의 문하에서 함께 배워 정분이 더욱 두텁다. 만약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의리를 가지고 지성껏 간절히 말한다면 어찌 들어주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뒤부터 박승종을 보면 말하고 유희분을 보면 말하고 이이첨을 보면 말하였는데, 세 사람이 과연 기꺼이 들어주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의 서로 잘 화합하자는 논의는 실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세 사람이 화합하면 논의가 일치되고 논의가 일치되면 사로(仕路)가 공정해집니다. 사로가 공정해지는 것이 비록 국가에 이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는 법입니다. 이에 심지어는 신이 양쪽 편 사이에서 유세하여 시비(是非)를 교란시킨다고 하면서 쪼아대기를 그치지 않고 공격함이 날로 심해졌는데, 이광계의 상소가 갑자기 오늘날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세 신하가 보합(保合)해야 한다는 논의가 신이 화를 일으킨 빌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세로 살펴보면 진정시키고 구제하는 계책으로는 세 신하가 보합하는 것보다 나은 방도가 없습니다. 신은 보합하라는 논의를 하여 몸에 화를 불러들였으나, 오히려 이 논의를 중지할 줄 모르겠으며, 역시 스스로 헤아리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국론이 날로 분열되어 분분함이 그치지 않고 선동하는 자가 더욱 일어날 것이어서, 끝내 일을 망쳐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아, 이이첨의 행실과 재주는 신이 평소에 사랑하는 바이고, 이이첨이 원망을 받으면서도 역적을 토벌한 것 역시 신이 일찍이 감복하였던 바입니다. 불행하게도 요즈음 여러 차례 의외의 변고를 만났는데, 버러지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야 비록 말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신은 삼가 세도(世道)를 위하여 탄식합니다.
이번의 이 소요스러운 단서야 비록 세 신하가 화합하고 안 하고에 관계되지 않으나, 만약 세 신하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여서 각자 자신의 임무를 다하게 한다면, 조정이 화목해지고 논의가 균평하게 되어 저절로 안정되지 않을 틈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럴 경우 비록 세 신하를 좋아하지 않아 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자가 있더라도 어느 틈을 엿볼 수 있겠으며, 어느 기회를 탈 수 있겠으며, 어떤 소요가 염려되겠습니까. 지금 비록 이미 늦었지만 오히려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이 종시토록 간절해 하면서, 차라리 이 논(論)으로 죄를 얻을지언정, 사이에서 오가면서 일을 무너뜨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은 지금 나이가 이미 예순이 다 되어서 걸음걸이나 기동을 뜻대로 하지 못하니 힘을 다하여 반열에 나간다 하더라도 며칠이나 나갈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을 체직하여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게 하고, 또 신의 죄를 바루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답하소서."
하였다.【 【이병은 이산해의 심복이다. 사람됨이 음험하고 지모가 많아 그 무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이다. 그런데 마음씀이 전일하지 못하고 수시로 변환하였으므로 이이첨에게 의심을 받았고 때때로 다르게 행동하였다. 대개 이산해의 술수를 배웠으나 정미하지 못한 자이다.】 】


[註 020]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5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021)  부사직 허균이 상소하기를, "신이 이달 8일에 집에 있으면서 전 부정(副正) 홍연기(洪衍箕)와 함께 앉아 대화하던 중에 신의 삼촌 조카딸의 남편인 박홍도(朴弘道)의 여종이 작은 쪽지의 봉서(封書)를 와서 바쳤습니다. 이에 신이 즉시 좌중에서 뜯어보니, 바로 절구(絶句) 두 수였습니다. 끝에는 ‘이것은 바로 이성윤(李誠胤)이 지은 것이지 박홍도가 지은 것이 아니니, 대감께서 이것을 가지고 쌍문동(雙門洞)에 가서 해명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등의 말이 있었는데, 이른바 쌍문동은 바로 이이첨이 살고 있는 동입니다. 이에 신이 말하기를 ‘박홍도가 이미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져서 이성윤에게 죄를 돌리려 하고 있는데, 감히 스스로 이이첨에게 변명하지 못하고 나로 하여금 전하게 한 것이다.’고 하자, 홍연기가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박홍도가 살아나기를 구하는 계책이다. 두 수의 시가 이성윤이 지은 것이라면 박홍도가 이성윤 대신 큰죄를 받는 것이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인하여 이 시를 시험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자, 모두들 말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이성윤이 지은 것이다. 박홍도는 비록 열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반드시 이 시의 한 구절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것을 이이첨에게 보내었는데, 이이첨 역시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 뒤에 상께서 ‘경운궁(慶運宮)’ 시(詩)를 써서 들이라고 전교하심으로 인하여 대간이 이 두 절구와 다른 시 세 구절을 아울러 써서 들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박홍도가 도리어 스스로 정소(呈疏)하여 변명하였는데, 이것은 서당(書堂)에서 시를 지은 일을 숨기고자 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쓴 글씨가 남아 있으니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대간이 써서 들인 세 귀절은 사람들이 전해가면서 읊고 있고 모두 언근(言根)이 있으며 여종이 시를 전해왔을 때 본 것이 분명합니다. 신은 박홍도가 무슨 곡절로 인해서 이성윤을 곡진히 비호하기를 이처럼 극진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이 흉시(兇詩)를 보고서는 즉시 상께 아뢰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파산(罷散) 중에 있어서 감히 글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잘못 거두어 서용하는 은혜를 받아 다시금 관직에 있게 되었으므로, 지금 비로소 그 곡절을 상세히 진달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사람들이 모두들 이성윤이 지은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박홍도 역시 스스로 벗어날 길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굽어살펴 주소서." 하였다.  【  권필(權韠)은 ‘궁류(宮柳)’라는 두 글자를 시에 써서 정국(庭鞫)당하고 형을 받아 죽기까지 하였다.022)  더구나 이른바 이성윤의 시라는 것은 당시에 크게 기휘(忌諱)하는 말이었고 또한 신하로서 말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간은 국문하기를 청하지 않았고 왕 역시 용서해주어 박홍도의 일이 마침내 정지되었으니, 그것이 허균이 스스로 한 데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


[註 021]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22] 권필(權韠)은 ‘궁류(宮柳)’라는 두 글자를 시에 써서 정국(庭鞫)당하고 형을 받아 죽기까지 하였다. :  광해군 3년(1611)에 임숙영(任叔英)이 책문시(策問試)에서 당시의 정사가 어지러움을 풍자하여 글을 지었는데, 내용이 매우 간절하고도 곧았다. 그러자 광해가 그 글을 보고는 몹시 노하여 방(榜)에서 임숙영의 이름을 빼도록 명하였다. 권필이 그 소문을 듣고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궁류(宮柳)는 푸르른데 꾀꼬리 펄펄 나는구나. 성안 가득 벼슬아치들 봄볕에 상긋거리네. 조정에서 모두들 태평성대 하례하는데, 그 누가 포의(布衣)로 하여금 위태로운 말 하게 했나." 하였다. 여기서 ‘궁류’는 대개 임금의 외척인 유씨(柳氏)들을 가리킨 것이고 ‘포의’는 임숙영을 가리킨 것이다. 광해가 이 시를 보고는 노하여 권필을 잡아다가 형신하고 북쪽 변방으로 귀양보내었는데 귀양가는 도중에 권필이 죽었다.
부사직 허균이 상소하기를, "신이 이달 8일에 집에 있으면서 전 부정(副正) 홍연기(洪衍箕)와 함께 앉아 대화하던 중에 신의 삼촌 조카딸의 남편인 박홍도(朴弘道)의 여종이 작은 쪽지의 봉서(封書)를 와서 바쳤습니다. 이에 신이 즉시 좌중에서 뜯어보니, 바로 절구(絶句) 두 수였습니다. 끝에는 ‘이것은 바로 이성윤(李誠胤)이 지은 것이지 박홍도가 지은 것이 아니니, 대감께서 이것을 가지고 쌍문동(雙門洞)에 가서 해명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등의 말이 있었는데, 이른바 쌍문동은 바로 이이첨이 살고 있는 동입니다. 이에 신이 말하기를 ‘박홍도가 이미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져서 이성윤에게 죄를 돌리려 하고 있는데, 감히 스스로 이이첨에게 변명하지 못하고 나로 하여금 전하게 한 것이다.’고 하자, 홍연기가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박홍도가 살아나기를 구하는 계책이다. 두 수의 시가 이성윤이 지은 것이라면 박홍도가 이성윤 대신 큰죄를 받는 것이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인하여 이 시를 시험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자, 모두들 말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이성윤이 지은 것이다. 박홍도는 비록 열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반드시 이 시의 한 구절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것을 이이첨에게 보내었는데, 이이첨 역시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 뒤에 상께서 ‘경운궁(慶運宮)’ 시(詩)를 써서 들이라고 전교하심으로 인하여 대간이 이 두 절구와 다른 시 세 구절을 아울러 써서 들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박홍도가 도리어 스스로 정소(呈疏)하여 변명하였는데, 이것은 서당(書堂)에서 시를 지은 일을 숨기고자 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쓴 글씨가 남아 있으니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대간이 써서 들인 세 귀절은 사람들이 전해가면서 읊고 있고 모두 언근(言根)이 있으며 여종이 시를 전해왔을 때 본 것이 분명합니다. 신은 박홍도가 무슨 곡절로 인해서 이성윤을 곡진히 비호하기를 이처럼 극진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이 흉시(兇詩)를 보고서는 즉시 상께 아뢰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파산(罷散) 중에 있어서 감히 글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잘못 거두어 서용하는 은혜를 받아 다시금 관직에 있게 되었으므로, 지금 비로소 그 곡절을 상세히 진달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사람들이 모두들 이성윤이 지은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박홍도 역시 스스로 벗어날 길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굽어살펴 주소서." 하였다.  【  권필(權韠)은 ‘궁류(宮柳)’라는 두 글자를 시에 써서 정국(庭鞫)당하고 형을 받아 죽기까지 하였다.022)  더구나 이른바 이성윤의 시라는 것은 당시에 크게 기휘(忌諱)하는 말이었고 또한 신하로서 말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간은 국문하기를 청하지 않았고 왕 역시 용서해주어 박홍도의 일이 마침내 정지되었으니, 그것이 허균이 스스로 한 데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


[註 021]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22] 권필(權韠)은 ‘궁류(宮柳)’라는 두 글자를 시에 써서 정국(庭鞫)당하고 형을 받아 죽기까지 하였다. :  광해군 3년(1611)에 임숙영(任叔英)이 책문시(策問試)에서 당시의 정사가 어지러움을 풍자하여 글을 지었는데, 내용이 매우 간절하고도 곧았다. 그러자 광해가 그 글을 보고는 몹시 노하여 방(榜)에서 임숙영의 이름을 빼도록 명하였다. 권필이 그 소문을 듣고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궁류(宮柳)는 푸르른데 꾀꼬리 펄펄 나는구나. 성안 가득 벼슬아치들 봄볕에 상긋거리네. 조정에서 모두들 태평성대 하례하는데, 그 누가 포의(布衣)로 하여금 위태로운 말 하게 했나." 하였다. 여기서 ‘궁류’는 대개 임금의 외척인 유씨(柳氏)들을 가리킨 것이고 ‘포의’는 임숙영을 가리킨 것이다. 광해가 이 시를 보고는 노하여 권필을 잡아다가 형신하고 북쪽 변방으로 귀양보내었는데 귀양가는 도중에 권필이 죽었다.
"신이 이달 8일에 집에 있으면서 전 부정(副正) 홍연기(洪衍箕)와 함께 앉아 대화하던 중에 신의 삼촌 조카딸의 남편인 박홍도(朴弘道)의 여종이 작은 쪽지의 봉서(封書)를 와서 바쳤습니다. 이에 신이 즉시 좌중에서 뜯어보니, 바로 절구(絶句) 두 수였습니다. 끝에는 ‘이것은 바로 이성윤(李誠胤)이 지은 것이지 박홍도가 지은 것이 아니니, 대감께서 이것을 가지고 쌍문동(雙門洞)에 가서 해명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등의 말이 있었는데, 이른바 쌍문동은 바로 이이첨이 살고 있는 동입니다. 이에 신이 말하기를 ‘박홍도가 이미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져서 이성윤에게 죄를 돌리려 하고 있는데, 감히 스스로 이이첨에게 변명하지 못하고 나로 하여금 전하게 한 것이다.’고 하자, 홍연기가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박홍도가 살아나기를 구하는 계책이다. 두 수의 시가 이성윤이 지은 것이라면 박홍도가 이성윤 대신 큰죄를 받는 것이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인하여 이 시를 시험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자, 모두들 말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이성윤이 지은 것이다. 박홍도는 비록 열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반드시 이 시의 한 구절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것을 이이첨에게 보내었는데, 이이첨 역시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 뒤에 상께서 ‘경운궁(慶運宮)’ 시(詩)를 써서 들이라고 전교하심으로 인하여 대간이 이 두 절구와 다른 시 세 구절을 아울러 써서 들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도 박홍도가 도리어 스스로 정소(呈疏)하여 변명하였는데, 이것은 서당(書堂)에서 시를 지은 일을 숨기고자 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쓴 글씨가 남아 있으니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대간이 써서 들인 세 귀절은 사람들이 전해가면서 읊고 있고 모두 언근(言根)이 있으며 여종이 시를 전해왔을 때 본 것이 분명합니다. 신은 박홍도가 무슨 곡절로 인해서 이성윤을 곡진히 비호하기를 이처럼 극진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이 흉시(兇詩)를 보고서는 즉시 상께 아뢰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파산(罷散) 중에 있어서 감히 글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잘못 거두어 서용하는 은혜를 받아 다시금 관직에 있게 되었으므로, 지금 비로소 그 곡절을 상세히 진달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사람들이 모두들 이성윤이 지은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박홍도 역시 스스로 벗어날 길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굽어살펴 주소서."
하였다.  【  권필(權韠)은 ‘궁류(宮柳)’라는 두 글자를 시에 써서 정국(庭鞫)당하고 형을 받아 죽기까지 하였다.022)  더구나 이른바 이성윤의 시라는 것은 당시에 크게 기휘(忌諱)하는 말이었고 또한 신하로서 말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간은 국문하기를 청하지 않았고 왕 역시 용서해주어 박홍도의 일이 마침내 정지되었으니, 그것이 허균이 스스로 한 데서 나온 것임이 분명하다.】 】


[註 021]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월15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월 1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註 022] 권필(權韠)은 ‘궁류(宮柳)’라는 두 글자를 시에 써서 정국(庭鞫)당하고 형을 받아 죽기까지 하였다. :  광해군 3년(1611)에 임숙영(任叔英)이 책문시(策問試)에서 당시의 정사가 어지러움을 풍자하여 글을 지었는데, 내용이 매우 간절하고도 곧았다. 그러자 광해가 그 글을 보고는 몹시 노하여 방(榜)에서 임숙영의 이름을 빼도록 명하였다. 권필이 그 소문을 듣고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궁류(宮柳)는 푸르른데 꾀꼬리 펄펄 나는구나. 성안 가득 벼슬아치들 봄볕에 상긋거리네. 조정에서 모두들 태평성대 하례하는데, 그 누가 포의(布衣)로 하여금 위태로운 말 하게 했나." 하였다. 여기서 ‘궁류’는 대개 임금의 외척인 유씨(柳氏)들을 가리킨 것이고 ‘포의’는 임숙영을 가리킨 것이다. 광해가 이 시를 보고는 노하여 권필을 잡아다가 형신하고 북쪽 변방으로 귀양보내었는데 귀양가는 도중에 권필이 죽었다.

 

 

 

1월 17일 계미

금부가 아뢰기를, "이형을 지금 배소(配所)로 출발시키려고 하는데, 예전 규례대로 나장(羅將)이 압송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가도사(假都事)가 압송하라." 하였다.
"이형을 지금 배소(配所)로 출발시키려고 하는데, 예전 규례대로 나장(羅將)이 압송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가도사(假都事)가 압송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조도사(調度使)를 한덕원(韓德遠)·윤수겸(尹守謙)·이정험(李廷馦)으로 차임해 보내라."
"조도사(調度使)를 한덕원(韓德遠)·윤수겸(尹守謙)·이정험(李廷馦)으로 차임해 보내라."


 

오윤겸(吳允謙)을 회답사로, 박재(朴梓)를 부사로, 이경직(李景稷)을 종사관으로 삼았다.

 

 

 

전 부정(副正) 홍연기(洪衍箕)가 상소하기를, "신이 이달 8일에 허균의 집에 가서 대화하던 사이에 봉서(封書) 한 통이 허균에게 전해졌는데, 허균이 즉시 좌중에서 뜯어보면서 말하기를 ‘박홍도의 일이 급하게 되었다. 예조 판서에게 스스로 진달하지 못하고 나로 하여금 전해주게 하였으니, 참으로 애처롭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좌객들과 함께 보니 바로 칠언소시(七言小詩) 두 수였습니다. 신은 무부(武夫)라서 비록 시를 해석하지는 못하나, 신하로서는 차마 보지 못할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신 역시 허균에게 말하기를 ‘이 시는 예조 판서에게 보내는 것이 심히 마땅하다. 박홍도는 이이첨에 대해서 자제와 같은 정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을 보면 반드시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반드시 이성윤이 지은 것이니 죄가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다. 공은 친척 어른으로서 이러한 때 말하지 않는다면 박홍도가 어찌 유감이 없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허균이 말하기를 ‘이 두 수의 시는 이성윤의 죄안(罪案)이 될 것이고 박홍도가 죄를 면할 바탕이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지금 듣건대, 대간의 아룀으로 인하여 허균이 진소하였는데, 신의 이름도 역시 그 속에 들어 있다고 하니, 황공함을 금치 못하고 감히 시말을 진달드립니다." 하였다.
"신이 이달 8일에 허균의 집에 가서 대화하던 사이에 봉서(封書) 한 통이 허균에게 전해졌는데, 허균이 즉시 좌중에서 뜯어보면서 말하기를 ‘박홍도의 일이 급하게 되었다. 예조 판서에게 스스로 진달하지 못하고 나로 하여금 전해주게 하였으니, 참으로 애처롭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좌객들과 함께 보니 바로 칠언소시(七言小詩) 두 수였습니다. 신은 무부(武夫)라서 비록 시를 해석하지는 못하나, 신하로서는 차마 보지 못할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신 역시 허균에게 말하기를 ‘이 시는 예조 판서에게 보내는 것이 심히 마땅하다. 박홍도는 이이첨에 대해서 자제와 같은 정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을 보면 반드시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반드시 이성윤이 지은 것이니 죄가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다. 공은 친척 어른으로서 이러한 때 말하지 않는다면 박홍도가 어찌 유감이 없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허균이 말하기를 ‘이 두 수의 시는 이성윤의 죄안(罪案)이 될 것이고 박홍도가 죄를 면할 바탕이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지금 듣건대, 대간의 아룀으로 인하여 허균이 진소하였는데, 신의 이름도 역시 그 속에 들어 있다고 하니, 황공함을 금치 못하고 감히 시말을 진달드립니다."
하였다.
1월 18일 갑신

전교하였다. "흠경각(欽敬閣)을 춘분 이후부터 관상감 제조 이하가 상세히 교정해서 착오나지 않게 하라."
"흠경각(欽敬閣)을 춘분 이후부터 관상감 제조 이하가 상세히 교정해서 착오나지 않게 하라."


 

 

 

원이곤(元以坤)을 삼수(三水)에, 【이극계(李克繼)를 종성(鍾城)에】 정배(定配)하였는데, 【모두 장 1백을 쳐서 거의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현재 쓰고 있는 법궁(法宮)에 혹 사고가 있을 경우 옮겨갈 곳을 미리 강정해 두는 것이 옳다. 경복궁(景福宮)은 공사가 아주 커서 오늘날의 물력을 가지고는 결단코 쉽사리 조성을 의논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인왕산(仁王山) 아래에다 잘 요리해서 지나치게 높고 크게 하지 말고 시원하고 깔끔하게 짓는다면 편리할 듯하다. 속히 긴 담장을 쌓고 남아 있는 재목을 가지고 조하(朝賀)를 받을 정전(正殿)을 짓기만 한 다음 다시 형세를 살펴서 다 짓는 것이 더욱 좋을 듯하다. 선수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살펴서 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도감의 제조인 호조 판서 이충, 예조 판서 심돈, 병조 참판 이병이 모두 정고(呈告) 중에 있어서 좌기(坐起)할 수가 없습니다. 제조인 이충·심돈·이병을 명초(命招)하여 출사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같이 의논하여 처치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것이 인경궁(仁慶宮)의 역사를 일으키는 시초였는데, 당초에는 단지 이궁(離宮)만 짓도록 명한 것이었다.】 】
"비망기로 ‘현재 쓰고 있는 법궁(法宮)에 혹 사고가 있을 경우 옮겨갈 곳을 미리 강정해 두는 것이 옳다. 경복궁(景福宮)은 공사가 아주 커서 오늘날의 물력을 가지고는 결단코 쉽사리 조성을 의논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인왕산(仁王山) 아래에다 잘 요리해서 지나치게 높고 크게 하지 말고 시원하고 깔끔하게 짓는다면 편리할 듯하다. 속히 긴 담장을 쌓고 남아 있는 재목을 가지고 조하(朝賀)를 받을 정전(正殿)을 짓기만 한 다음 다시 형세를 살펴서 다 짓는 것이 더욱 좋을 듯하다. 선수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살펴서 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도감의 제조인 호조 판서 이충, 예조 판서 심돈, 병조 참판 이병이 모두 정고(呈告) 중에 있어서 좌기(坐起)할 수가 없습니다. 제조인 이충·심돈·이병을 명초(命招)하여 출사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같이 의논하여 처치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것이 인경궁(仁慶宮)의 역사를 일으키는 시초였는데, 당초에는 단지 이궁(離宮)만 짓도록 명한 것이었다.】 】


 

 

 

1월 19일 을유

금부가 박진남(朴鎭男)·정석준(鄭錫儁)·홍응귀(洪應龜)를 잡아 가두었다.
정국(庭絓)하였다. 죄인 윤승선(尹承先)·김동지(金同之)·오응빈(吳應賓)에게 압슬형을 가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백천수(白千壽)를 국문하였는데, 그가 공초하기를, "지난해 정인형(鄭仁馨)과 충청도 길에서 만났는데, 중국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을 정인형이 먼저하였으나 특별히 모역(謀逆)에 대한 말은 없었습니다. 지금 정인형이 다른 사람의 노비를 훔쳐 팔다가 포도청에 잡혀서 추고당하였는데, 곤장을 맞아 죽게 되자 예전의 혐의를 인하여 거짓으로 끌어들여 무고해서 죽음을 면할 계책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찌 참여하여 알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형문(刑問)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지난해 정인형(鄭仁馨)과 충청도 길에서 만났는데, 중국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을 정인형이 먼저하였으나 특별히 모역(謀逆)에 대한 말은 없었습니다. 지금 정인형이 다른 사람의 노비를 훔쳐 팔다가 포도청에 잡혀서 추고당하였는데, 곤장을 맞아 죽게 되자 예전의 혐의를 인하여 거짓으로 끌어들여 무고해서 죽음을 면할 계책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찌 참여하여 알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형문(刑問)하였으나, 자복하지 않았다.


 

1월 20일 병술

분병조(分兵曹)가 아뢰기를, "해가 막 뜰 때쯤 동소(東所)에 입번(入番)한 겸사복(兼司僕) 김윤황(金胤黃)이, 어제 내약방(內藥房) 동쪽 뜰에 백지(白紙)에 쌓인 장전(長箭)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가지고 와서 고하였습니다. 그 장전을 살펴보니 과연 백지 한 조각을 찢어서 붙였는데, 그 안에 무슨 물건이 들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감히 열어보지 못하고 감봉(監封)하여 계달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그 격문(檄文)은 글 내용과 자획이 아주 정교하였으며, 글 중에는 가끔 은어(隱語)를 사용하였다. 또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를 사용하여 구별지웠으며, 주상(主上)의 허물을 나열하면서는 ‘서자로 외람되이 왕위에 올랐으며, 아비를 죽이고 형을 죽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산(山)과 천(川)은 이미 끝났고 원해가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山川巳矣 原海將成]’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산(山)은 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을 가리키고, 천(川)은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를 가리키며, 원해(原海)라는 글자 역시 종실인 원해군(原海君)을 가리킨다. 또 ‘유씨를 협박하고 박씨를 몰아치고 기씨를 강제한다. [脅柳驅朴勒奇]’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는 대개 이달 28일에 거병하고자 하면서, 대비에게 밀부(密符)를 내주기를 청하여 서로 호응하게 하려는 뜻이다.】 】
"해가 막 뜰 때쯤 동소(東所)에 입번(入番)한 겸사복(兼司僕) 김윤황(金胤黃)이, 어제 내약방(內藥房) 동쪽 뜰에 백지(白紙)에 쌓인 장전(長箭)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가지고 와서 고하였습니다. 그 장전을 살펴보니 과연 백지 한 조각을 찢어서 붙였는데, 그 안에 무슨 물건이 들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감히 열어보지 못하고 감봉(監封)하여 계달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그 격문(檄文)은 글 내용과 자획이 아주 정교하였으며, 글 중에는 가끔 은어(隱語)를 사용하였다. 또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를 사용하여 구별지웠으며, 주상(主上)의 허물을 나열하면서는 ‘서자로 외람되이 왕위에 올랐으며, 아비를 죽이고 형을 죽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산(山)과 천(川)은 이미 끝났고 원해가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山川巳矣 原海將成]’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산(山)은 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을 가리키고, 천(川)은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를 가리키며, 원해(原海)라는 글자 역시 종실인 원해군(原海君)을 가리킨다. 또 ‘유씨를 협박하고 박씨를 몰아치고 기씨를 강제한다. [脅柳驅朴勒奇]’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는 대개 이달 28일에 거병하고자 하면서, 대비에게 밀부(密符)를 내주기를 청하여 서로 호응하게 하려는 뜻이다.】 】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분병조(分兵曹)의 초기(草記)를 보건대, 경운궁(慶運宮)을 지키면서 기찰하는 것이 이와 같이 허술하니, 몹시 경악스럽습니다. 지난밤에 입번(入番)한 분병조의 당상과 낭청, 4소(四所)의 위장(衛將), 담장 바깥의 요령장(搖鈴將)을 모두 중한 쪽으로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지금 분병조(分兵曹)의 초기(草記)를 보건대, 경운궁(慶運宮)을 지키면서 기찰하는 것이 이와 같이 허술하니, 몹시 경악스럽습니다. 지난밤에 입번(入番)한 분병조의 당상과 낭청, 4소(四所)의 위장(衛將), 담장 바깥의 요령장(搖鈴將)을 모두 중한 쪽으로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오늘은 추국(推鞫)을 하지 말라. 그리고 대신, 금부 당상, 양사 장관을 급히 명초하라."
"오늘은 추국(推鞫)을 하지 말라. 그리고 대신, 금부 당상, 양사 장관을 급히 명초하라."

 

전교하였다. "도성 내외와 성문, 산골짜기 사이를 순시하면서 기찰하는 등의 일을 십분 엄밀하게 하라는 뜻을 좌우 포도 대장을 명초하여 말해 주고, 군사 수십 명을 오늘 안으로 급하게 정해 보내라고 병조에 말하라."
"도성 내외와 성문, 산골짜기 사이를 순시하면서 기찰하는 등의 일을 십분 엄밀하게 하라는 뜻을 좌우 포도 대장을 명초하여 말해 주고, 군사 수십 명을 오늘 안으로 급하게 정해 보내라고 병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궁궐 담 바깥과 경운궁 담장 바깥 및 남별궁(南別宮) 근처, 삼청동(三淸洞) 등에 순라돌며 기찰하는 등의 일을 더욱더 엄하게 하라고 포도 대장에게 말하라."
"궁궐 담 바깥과 경운궁 담장 바깥 및 남별궁(南別宮) 근처, 삼청동(三淸洞) 등에 순라돌며 기찰하는 등의 일을 더욱더 엄하게 하라고 포도 대장에게 말하라."


 

전교하였다. "경운궁의 각 문을 굳게 지키고, 야간에는 사면의 담장 바깥에 군사를 많이 배정해서 숙직하여 순라를 돌면서 잡인을 기찰하며, 경운궁의 요령장(搖鈴將)을 잘 뽑아 보내라고 병조와 분병조에 말하라."
"경운궁의 각 문을 굳게 지키고, 야간에는 사면의 담장 바깥에 군사를 많이 배정해서 숙직하여 순라를 돌면서 잡인을 기찰하며, 경운궁의 요령장(搖鈴將)을 잘 뽑아 보내라고 병조와 분병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분병조의 당상과 낭청, 분총관(分摠管), 분승지(分承旨), 가위장(假衛將)을 각별히 가려 뽑아 보내라고 이조와 병조에 말하라."
"분병조의 당상과 낭청, 분총관(分摠管), 분승지(分承旨), 가위장(假衛將)을 각별히 가려 뽑아 보내라고 이조와 병조에 말하라."

 

분병조가 아뢰기를, "경운궁 안에 종이로 싼 장전이 땅에 떨어진 곡절의 대개에 대해서는 이미 입계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지점을 분총부(分摠府)와 함께 친히 조사해 보니, 내약방이 아니라 바로 내의원 앞뜰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살이 떨어진 곳은 동쪽 담장과 서로 가까웠으며, 화살이 날아온 곳은 비록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가까운 곳을 수직(守直)한 군사에 대해서는 기찰을 삼가지 않은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동쪽 담장 바깥의 군보(軍堡)를 수직한 군사 2명을 본조에서 먼저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러니 유사로 하여금 추고하여 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잡아다가 추고하라. 지금 이후로 담장 바깥 사방을 야간에 각별히 기찰하라." 하였다.
"경운궁 안에 종이로 싼 장전이 땅에 떨어진 곡절의 대개에 대해서는 이미 입계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지점을 분총부(分摠府)와 함께 친히 조사해 보니, 내약방이 아니라 바로 내의원 앞뜰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살이 떨어진 곳은 동쪽 담장과 서로 가까웠으며, 화살이 날아온 곳은 비록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가까운 곳을 수직(守直)한 군사에 대해서는 기찰을 삼가지 않은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동쪽 담장 바깥의 군보(軍堡)를 수직한 군사 2명을 본조에서 먼저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러니 유사로 하여금 추고하여 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잡아다가 추고하라. 지금 이후로 담장 바깥 사방을 야간에 각별히 기찰하라."
하였다.

 

흉한 격문을 화살에 매어 경운궁에 쏘아넣은 일에 관하여 비밀히 비망기로 이르기를, "이 흉소를 상세히 살펴서 의논해 아뢰라." 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이 의논드리기를, "지난 가을에 신의 집에서도 이와 같이 화살에 매어 쏘아넣은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신 한 사람만 지적하였기에 익명서라 치부하고서 내버려두었습니다. 지금 삼가 화살에 매어진 글을 보니, 그 말이 흉악하고 참혹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참말이라면 그가 어찌하여 드러내놓고 상변(上變)하지 않고서 이와 같이 익명으로 하겠습니까. 신이 지난번에 헌의하면서 이른바 ‘그의 뜻으로 말하자면 차마 아뢰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무릇 드러내놓고 고하는 경우에도 사실이 아닌 경우가 오히려 많은데, 더구나 이런 익명서이겠습니까. 신과 관련해서는 흉서에 ‘기씨를 강제한다[勒奇]’고 하였는바, 이것은 신을 모함하고자 하다가 성공치 못하자, 이에 감히 이와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신은 감히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판의금부사 박승종(朴承宗)은 의논드리기를, "이번의 이 흉서는 말이 아주 흉악하고 참혹하여서 반도 채 읽기 전에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심이 이와 같으니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그 가운데 ‘구박(驅朴)’ 두 자가 있는데, 비록 어떤 사람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상신(相臣)이 이미 ‘늑기(勒奇)’라는 말이 있다는 이유로 감히 헌의하지 못하였는바, 생각건대 흉인이 반드시 신을 모함하고자 해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신 역시 감히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동지의금부사 이경함(李慶涵)·유몽인(柳夢寅)·윤수민(尹壽民)은 의논드리기를, "신들이 삼가 흉서의 내용을 보건대, 몹시 흉악하고도 참혹해서 뼈가 시리고 간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이것은 바로 익명서인데, 영의정 기자헌, 판의금부사 박승종이 모두 혐의쩍은 바가 있어서 의계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들은 단지 의금부에 인원수나 채우고 있으니, 추국하고 의계하는 외에, 이와 같이 격례 외의 크나큰 일에 대해서는 감히 경솔하게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대사헌 남근(南瑾), 대사간 정조(鄭造)가 의논드리기를, "신들이 흉서를 보건대 말이 몹시 흉악하고도 참혹하니, 이는 바로 임금이 욕을 당함에 신하가 죽을 날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자신을 잊고 마음을 다하여 의논하여 아뢰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것은 익명서이니 감히 누가 한 짓이라고 지적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약 이로 인하여 놀라서 동요한다면 바로 그의 흉계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화를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간인(奸人)이 나라에 화를 떠넘기려고 하여 심사숙고해서 만들어낸 것으로, 일조일석에 만들어낸 것이 아니므로 무명서(無名書)라 하여 소홀하게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기찰하여 기어이 죄인을 잡아내어 조용히 처치해서 놀라 동요하는 뜻을 보이지 마소서." 하였다.
"이 흉소를 상세히 살펴서 의논해 아뢰라."
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이 의논드리기를,
"지난 가을에 신의 집에서도 이와 같이 화살에 매어 쏘아넣은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신 한 사람만 지적하였기에 익명서라 치부하고서 내버려두었습니다. 지금 삼가 화살에 매어진 글을 보니, 그 말이 흉악하고 참혹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참말이라면 그가 어찌하여 드러내놓고 상변(上變)하지 않고서 이와 같이 익명으로 하겠습니까. 신이 지난번에 헌의하면서 이른바 ‘그의 뜻으로 말하자면 차마 아뢰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무릇 드러내놓고 고하는 경우에도 사실이 아닌 경우가 오히려 많은데, 더구나 이런 익명서이겠습니까. 신과 관련해서는 흉서에 ‘기씨를 강제한다[勒奇]’고 하였는바, 이것은 신을 모함하고자 하다가 성공치 못하자, 이에 감히 이와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신은 감히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판의금부사 박승종(朴承宗)은 의논드리기를,
"이번의 이 흉서는 말이 아주 흉악하고 참혹하여서 반도 채 읽기 전에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심이 이와 같으니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그 가운데 ‘구박(驅朴)’ 두 자가 있는데, 비록 어떤 사람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상신(相臣)이 이미 ‘늑기(勒奇)’라는 말이 있다는 이유로 감히 헌의하지 못하였는바, 생각건대 흉인이 반드시 신을 모함하고자 해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신 역시 감히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동지의금부사 이경함(李慶涵)·유몽인(柳夢寅)·윤수민(尹壽民)은 의논드리기를,
"신들이 삼가 흉서의 내용을 보건대, 몹시 흉악하고도 참혹해서 뼈가 시리고 간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이것은 바로 익명서인데, 영의정 기자헌, 판의금부사 박승종이 모두 혐의쩍은 바가 있어서 의계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들은 단지 의금부에 인원수나 채우고 있으니, 추국하고 의계하는 외에, 이와 같이 격례 외의 크나큰 일에 대해서는 감히 경솔하게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대사헌 남근(南瑾), 대사간 정조(鄭造)가 의논드리기를,
"신들이 흉서를 보건대 말이 몹시 흉악하고도 참혹하니, 이는 바로 임금이 욕을 당함에 신하가 죽을 날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자신을 잊고 마음을 다하여 의논하여 아뢰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것은 익명서이니 감히 누가 한 짓이라고 지적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약 이로 인하여 놀라서 동요한다면 바로 그의 흉계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화를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간인(奸人)이 나라에 화를 떠넘기려고 하여 심사숙고해서 만들어낸 것으로, 일조일석에 만들어낸 것이 아니므로 무명서(無名書)라 하여 소홀하게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기찰하여 기어이 죄인을 잡아내어 조용히 처치해서 놀라 동요하는 뜻을 보이지 마소서."
하였다.

 

전교하였다. "대비(大妃)를 받들어 대사(大事)를 거행하는 것이 어떠한 일인데 경들은 의계하지 않는가. 경들은 안심하여 피혐하지 말고 속히 의계하라."
"대비(大妃)를 받들어 대사(大事)를 거행하는 것이 어떠한 일인데 경들은 의계하지 않는가. 경들은 안심하여 피혐하지 말고 속히 의계하라."

 

영의정 기자헌, 판의금부사 박승종이 의논드리기를, "이번의 이 흉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혜로운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얽어서 성상께 욕을 끼침에 있어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사악하고 화를 즐기며 나라에 일을 만들어 낸 정상이 갖가지여서 가리우기가 어렵습니다. 글은 비록 교묘하지만 더더욱 그 속마음을 볼 수 있는바, 그 이름을 감춘 자를 잡아내어서 만 토막으로 저미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로 인하여 추호라도 놀라 동요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신들은 이 외에는 다시 더 진달드릴 바가 없습니다. 가령 큰 변고가 있을 경우, 유(柳)·박(朴)·기(奇)에게 무슨 조그만치라도 의지할 것이 있어서, 반드시 협박하고 몰아치고 강제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세 신하를 제거하려는 계책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악하고 형편없음을 여기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내몰리고 강제될 대상으로 역서(逆書)에 이름이 쓰여졌으니, 신하로서의 악이 이에 이르러서는 더 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천지 사이에 얼굴을 들 수가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물러가지 않았으니 죽이려고 드는 것이 이처럼 극도에 이른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허겁지겁 달려가 깊은 산골짜기로 몸을 숨기는 것이 마땅한데, 어찌 감히 태연스레 행공(行公)하면서 보통 사람과 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화살에 매어 투서(投書)하는 것은 익명서인 것으로, 오늘 양사 장관이 한 논의가 참으로 적당합니다. 신들의 뜻도 역시 그러하니, 내일 다른 대신을 명초하여 다시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이 때 이이첨이 윤선도 등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왕이 비록 윤선도 등을 죄주기는 하였으나, 역시 그들의 말에 의심이 없을 수 없었다. 이에 이이첨이 그것을 걱정하여 주상의 뜻을 받들어 대비(大妃)를 폐하기를 청하여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다만 전에 폐론(廢論)을 굳게 숨기고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키어 대신을 내쫓기까지 하면서, 모두 ‘대비를 폐위시키자는 설을 얽어내어 임금을 무함하고 사림을 모해하였다.’는 것으로 죄목(罪目)을 삼았은즉, 스스로 이 논의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합당치 않았다. 이에 몰래 허균을 꾀어서 이 격문을 만들게 해, 마치 큰 역적이 장차 일어나고 대비가 거기에 호응하려는 것처럼 꾸며서 다시 논의를 일으킬 계획을 하였다. 이것이 거짓 격문을 던져넣은 본 뜻이다.】 】
"이번의 이 흉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혜로운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얽어서 성상께 욕을 끼침에 있어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사악하고 화를 즐기며 나라에 일을 만들어 낸 정상이 갖가지여서 가리우기가 어렵습니다. 글은 비록 교묘하지만 더더욱 그 속마음을 볼 수 있는바, 그 이름을 감춘 자를 잡아내어서 만 토막으로 저미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로 인하여 추호라도 놀라 동요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신들은 이 외에는 다시 더 진달드릴 바가 없습니다.
가령 큰 변고가 있을 경우, 유(柳)·박(朴)·기(奇)에게 무슨 조그만치라도 의지할 것이 있어서, 반드시 협박하고 몰아치고 강제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세 신하를 제거하려는 계책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악하고 형편없음을 여기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내몰리고 강제될 대상으로 역서(逆書)에 이름이 쓰여졌으니, 신하로서의 악이 이에 이르러서는 더 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천지 사이에 얼굴을 들 수가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물러가지 않았으니 죽이려고 드는 것이 이처럼 극도에 이른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허겁지겁 달려가 깊은 산골짜기로 몸을 숨기는 것이 마땅한데, 어찌 감히 태연스레 행공(行公)하면서 보통 사람과 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화살에 매어 투서(投書)하는 것은 익명서인 것으로, 오늘 양사 장관이 한 논의가 참으로 적당합니다. 신들의 뜻도 역시 그러하니, 내일 다른 대신을 명초하여 다시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이 때 이이첨이 윤선도 등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왕이 비록 윤선도 등을 죄주기는 하였으나, 역시 그들의 말에 의심이 없을 수 없었다. 이에 이이첨이 그것을 걱정하여 주상의 뜻을 받들어 대비(大妃)를 폐하기를 청하여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다만 전에 폐론(廢論)을 굳게 숨기고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키어 대신을 내쫓기까지 하면서, 모두 ‘대비를 폐위시키자는 설을 얽어내어 임금을 무함하고 사림을 모해하였다.’는 것으로 죄목(罪目)을 삼았은즉, 스스로 이 논의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합당치 않았다. 이에 몰래 허균을 꾀어서 이 격문을 만들게 해, 마치 큰 역적이 장차 일어나고 대비가 거기에 호응하려는 것처럼 꾸며서 다시 논의를 일으킬 계획을 하였다. 이것이 거짓 격문을 던져넣은 본 뜻이다.】 】

 

영의정 기자헌, 판의금부사 박승종이 의논드리기를, "이번의 이 흉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혜로운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얽어서 성상께 욕을 끼침에 있어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사악하고 화를 즐기며 나라에 일을 만들어 낸 정상이 갖가지여서 가리우기가 어렵습니다. 글은 비록 교묘하지만 더더욱 그 속마음을 볼 수 있는바, 그 이름을 감춘 자를 잡아내어서 만 토막으로 저미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로 인하여 추호라도 놀라 동요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신들은 이 외에는 다시 더 진달드릴 바가 없습니다. 가령 큰 변고가 있을 경우, 유(柳)·박(朴)·기(奇)에게 무슨 조그만치라도 의지할 것이 있어서, 반드시 협박하고 몰아치고 강제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세 신하를 제거하려는 계책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악하고 형편없음을 여기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내몰리고 강제될 대상으로 역서(逆書)에 이름이 쓰여졌으니, 신하로서의 악이 이에 이르러서는 더 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천지 사이에 얼굴을 들 수가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물러가지 않았으니 죽이려고 드는 것이 이처럼 극도에 이른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허겁지겁 달려가 깊은 산골짜기로 몸을 숨기는 것이 마땅한데, 어찌 감히 태연스레 행공(行公)하면서 보통 사람과 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화살에 매어 투서(投書)하는 것은 익명서인 것으로, 오늘 양사 장관이 한 논의가 참으로 적당합니다. 신들의 뜻도 역시 그러하니, 내일 다른 대신을 명초하여 다시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이 때 이이첨이 윤선도 등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왕이 비록 윤선도 등을 죄주기는 하였으나, 역시 그들의 말에 의심이 없을 수 없었다. 이에 이이첨이 그것을 걱정하여 주상의 뜻을 받들어 대비(大妃)를 폐하기를 청하여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다만 전에 폐론(廢論)을 굳게 숨기고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키어 대신을 내쫓기까지 하면서, 모두 ‘대비를 폐위시키자는 설을 얽어내어 임금을 무함하고 사림을 모해하였다.’는 것으로 죄목(罪目)을 삼았은즉, 스스로 이 논의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합당치 않았다. 이에 몰래 허균을 꾀어서 이 격문을 만들게 해, 마치 큰 역적이 장차 일어나고 대비가 거기에 호응하려는 것처럼 꾸며서 다시 논의를 일으킬 계획을 하였다. 이것이 거짓 격문을 던져넣은 본 뜻이다.】 】
"이번의 이 흉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혜로운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얽어서 성상께 욕을 끼침에 있어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사악하고 화를 즐기며 나라에 일을 만들어 낸 정상이 갖가지여서 가리우기가 어렵습니다. 글은 비록 교묘하지만 더더욱 그 속마음을 볼 수 있는바, 그 이름을 감춘 자를 잡아내어서 만 토막으로 저미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로 인하여 추호라도 놀라 동요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신들은 이 외에는 다시 더 진달드릴 바가 없습니다.
가령 큰 변고가 있을 경우, 유(柳)·박(朴)·기(奇)에게 무슨 조그만치라도 의지할 것이 있어서, 반드시 협박하고 몰아치고 강제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세 신하를 제거하려는 계책에 불과합니다. 그의 사악하고 형편없음을 여기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내몰리고 강제될 대상으로 역서(逆書)에 이름이 쓰여졌으니, 신하로서의 악이 이에 이르러서는 더 더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천지 사이에 얼굴을 들 수가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물러가지 않았으니 죽이려고 드는 것이 이처럼 극도에 이른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허겁지겁 달려가 깊은 산골짜기로 몸을 숨기는 것이 마땅한데, 어찌 감히 태연스레 행공(行公)하면서 보통 사람과 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화살에 매어 투서(投書)하는 것은 익명서인 것으로, 오늘 양사 장관이 한 논의가 참으로 적당합니다. 신들의 뜻도 역시 그러하니, 내일 다른 대신을 명초하여 다시 의논해 처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이 때 이이첨이 윤선도 등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왕이 비록 윤선도 등을 죄주기는 하였으나, 역시 그들의 말에 의심이 없을 수 없었다. 이에 이이첨이 그것을 걱정하여 주상의 뜻을 받들어 대비(大妃)를 폐하기를 청하여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다만 전에 폐론(廢論)을 굳게 숨기고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키어 대신을 내쫓기까지 하면서, 모두 ‘대비를 폐위시키자는 설을 얽어내어 임금을 무함하고 사림을 모해하였다.’는 것으로 죄목(罪目)을 삼았은즉, 스스로 이 논의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합당치 않았다. 이에 몰래 허균을 꾀어서 이 격문을 만들게 해, 마치 큰 역적이 장차 일어나고 대비가 거기에 호응하려는 것처럼 꾸며서 다시 논의를 일으킬 계획을 하였다. 이것이 거짓 격문을 던져넣은 본 뜻이다.】 】

 

1월 21일 정해

전교하였다. "찬집청 도제조 이하 하인과 공장들에 이르기까지 사진(仕進)하고 입역(立役)한 날짜수를 상세히 살펴서 서계하라."
"찬집청 도제조 이하 하인과 공장들에 이르기까지 사진(仕進)하고 입역(立役)한 날짜수를 상세히 살펴서 서계하라."

 

전교하였다. "흠경각의 당초 도제조 이하가 사진한 날짜수와 하인들이 입역한 날짜수 및 지난해의 교정 제조(校正提調) 이하를 모두 일일이 상세히 써서 들이라."
"흠경각의 당초 도제조 이하가 사진한 날짜수와 하인들이 입역한 날짜수 및 지난해의 교정 제조(校正提調) 이하를 모두 일일이 상세히 써서 들이라."

 

전교하였다. "녹훈 도감 당상 이하에서 하인에 이르기까지 사진하고 입역한 날짜수를 다시 상세히 살펴서 써서 들이라."
"녹훈 도감 당상 이하에서 하인에 이르기까지 사진하고 입역한 날짜수를 다시 상세히 살펴서 써서 들이라."

 

전교하였다. "영상과 판의금을 명초하라."
"영상과 판의금을 명초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과 판의금부사를 명초하니, 영상은 ‘병으로 막 상차하여서 나갈 수 없다.’고 하고, 판의금부사는 나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영상과 판의금부사를 명초하니, 영상은 ‘병으로 막 상차하여서 나갈 수 없다.’고 하고, 판의금부사는 나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은 병이 깊어서 오래 전부터 정사(呈辭)하고서 목욕하러 가고자 하였으나, 대례(大禮)가 목전에 당도하였으므로 억지로 행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간사한 자가 화살에 글을 묶어 투서하였는데, 비록 누가 한 짓이라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허다한 내용이 문장가(文章家)가 아니면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구상을 세우고 말을 만들어 나열한 것이 역적이 하는 것인 양하였으니, 이것은 참으로 대역(大逆)이 한 짓입니다. 심지어는 역적에게 강제당할 대상으로 신의 이름이 쓰여져 있으니, 신하의 죄로서 이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그러니 장차 어떻게 천지간에 얼굴을 들고 보통 사람과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흉서의 끝에 ‘대신에게 부(符)를 내어준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오로지 신을 공격하는 말인 듯합니다. 신은 외람되이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 이미 4년이나 되었는데도 스스로 물러갈 줄 모르고 있으니, 이렇께까지 심하게 사람들이 꺼리고 질시하면서 죽이고자 하는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신하로서 이런 강제를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도 대례(大禮)를 기다린 채 태연스레 행공(行公)하면서 물러갈 줄 모르고 있으니, 그 죄악이 더욱더 커서 죽어도 남은 죄가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파하여 신으로 하여금 물러갈 수 있게 하고, 다시 덕이 있는 사람을 뽑아 나랏일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는 바로 대비전(大妃殿)에 쏘아 넣으려다가 미치지 못하여 발각된 것이다. 경은 조금도 관계가 없으니,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병이 깊어서 오래 전부터 정사(呈辭)하고서 목욕하러 가고자 하였으나, 대례(大禮)가 목전에 당도하였으므로 억지로 행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간사한 자가 화살에 글을 묶어 투서하였는데, 비록 누가 한 짓이라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허다한 내용이 문장가(文章家)가 아니면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구상을 세우고 말을 만들어 나열한 것이 역적이 하는 것인 양하였으니, 이것은 참으로 대역(大逆)이 한 짓입니다. 심지어는 역적에게 강제당할 대상으로 신의 이름이 쓰여져 있으니, 신하의 죄로서 이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그러니 장차 어떻게 천지간에 얼굴을 들고 보통 사람과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흉서의 끝에 ‘대신에게 부(符)를 내어준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오로지 신을 공격하는 말인 듯합니다.
신은 외람되이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 이미 4년이나 되었는데도 스스로 물러갈 줄 모르고 있으니, 이렇께까지 심하게 사람들이 꺼리고 질시하면서 죽이고자 하는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신하로서 이런 강제를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도 대례(大禮)를 기다린 채 태연스레 행공(行公)하면서 물러갈 줄 모르고 있으니, 그 죄악이 더욱더 커서 죽어도 남은 죄가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파하여 신으로 하여금 물러갈 수 있게 하고, 다시 덕이 있는 사람을 뽑아 나랏일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는 바로 대비전(大妃殿)에 쏘아 넣으려다가 미치지 못하여 발각된 것이다. 경은 조금도 관계가 없으니,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을 다시 명초하니, 영상이 ‘성안에 있는 것은 온당치 않아서 성 바깥으로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추국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이 어떤 때인데 대신이 감히 문 밖으로 나간단 말인가. 전혀 대신으로서의 의리가 없으니, 명패(命牌)를 연속해서 보내라." 하였다.
"영상을 다시 명초하니, 영상이 ‘성안에 있는 것은 온당치 않아서 성 바깥으로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추국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이 어떤 때인데 대신이 감히 문 밖으로 나간단 말인가. 전혀 대신으로서의 의리가 없으니, 명패(命牌)를 연속해서 보내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을 다시 명초하였으나 왕십리(往十里)로 나가서 현재 대죄하고 있는 중이므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영상을 다시 명초하였으나 왕십리(往十里)로 나가서 현재 대죄하고 있는 중이므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판의금부사가 ‘신은 장차 명을 받고 대궐로 나오려다가 「상신이 흉서에 이름이 쓰여졌다는 이유로 황공하여 성을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소신 역시 황공하여 감히 입궐하지 못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안심하고 들어와서 국문에 참여하라고 유시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에게 명패를 연속해서 보내라고 전교하시었으므로 또 명패를 보내자 ‘지금 장차 상차할 것이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판의금부사가 ‘신은 장차 명을 받고 대궐로 나오려다가 「상신이 흉서에 이름이 쓰여졌다는 이유로 황공하여 성을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소신 역시 황공하여 감히 입궐하지 못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안심하고 들어와서 국문에 참여하라고 유시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에게 명패를 연속해서 보내라고 전교하시었으므로 또 명패를 보내자 ‘지금 장차 상차할 것이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 세 역적을 위리 안치하라고 청하자,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천지가 조화되어 만물이 이루어지고 군신이 서로 믿어 뭇 공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임금들은 모두들 날마다 세 번씩 신료들을 접하여서 옳으니 그르니 서로 논란하였고, 눈과 귀를 활짝 열어서 아름다운 말이 모두 아뢰어지고 뭇사람의 심정이 막히지 않게 하였으며, 모자라는 점을 서로 닦으면서 지치(至治)를 이루었습니다. 근년 이래로 경연을 오래도록 폐하여 신료들을 드물게 접하였으며, 언로가 넓지 않아 간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어 뭇사람의 심정이 막혀 있습니다. 변방에 걱정거리가 많은데도 계책을 세웠다고는 듣지 못하겠고, 조정 신하들은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데도 진정시키는 데는 뜻이 없습니다. 얼음과 숯이 한그릇 안에 함께 들어 있어 화란이 담장 안에서 조성되고 있으며, 깊은 구중궁궐 속에 있어서 정사에 있어서는 은혜가 많아 악은 징계되는 바가 없고 선은 권장되는 바가 없습니다. 변괴가 갖가지로 나오고 위망이 장차 박두하였습니다. 흉악한 내용의 시를 서로 화답한 참혹함과 화살에 흉서를 묶어 궁중 안으로 쏘아 넣은 변고가 오늘날에 거듭 닥치어, 장래의 헤아리지 못할 화가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군신 상하가 협심하고 화합해서 하늘의 명을 맞이하여 이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상께서 접하시는 자가 누구이며, 친하게 지내는 자가 누구이며, 자문을 받는 자가 누구입니까? 비록 평소의 일이 없는 때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하루도 신료들을 접하지 않아서는 안되는데, 더구나 이처럼 어렵고 일이 많은 때이겠습니까. 바라건대 지금 이후로는 편전에 납시어 여러 신하들을 만나서 크고 작은 계책을 마음을 열어놓고 물으소서. 그리하여 더욱더 총명을 넓혀서 청명한 다스림을 이루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가 현재 병중에 있으니 조리하고서 하겠다." 하였다.
"천지가 조화되어 만물이 이루어지고 군신이 서로 믿어 뭇 공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임금들은 모두들 날마다 세 번씩 신료들을 접하여서 옳으니 그르니 서로 논란하였고, 눈과 귀를 활짝 열어서 아름다운 말이 모두 아뢰어지고 뭇사람의 심정이 막히지 않게 하였으며, 모자라는 점을 서로 닦으면서 지치(至治)를 이루었습니다. 근년 이래로 경연을 오래도록 폐하여 신료들을 드물게 접하였으며, 언로가 넓지 않아 간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어 뭇사람의 심정이 막혀 있습니다. 변방에 걱정거리가 많은데도 계책을 세웠다고는 듣지 못하겠고, 조정 신하들은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데도 진정시키는 데는 뜻이 없습니다. 얼음과 숯이 한그릇 안에 함께 들어 있어 화란이 담장 안에서 조성되고 있으며, 깊은 구중궁궐 속에 있어서 정사에 있어서는 은혜가 많아 악은 징계되는 바가 없고 선은 권장되는 바가 없습니다. 변괴가 갖가지로 나오고 위망이 장차 박두하였습니다. 흉악한 내용의 시를 서로 화답한 참혹함과 화살에 흉서를 묶어 궁중 안으로 쏘아 넣은 변고가 오늘날에 거듭 닥치어, 장래의 헤아리지 못할 화가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군신 상하가 협심하고 화합해서 하늘의 명을 맞이하여 이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상께서 접하시는 자가 누구이며, 친하게 지내는 자가 누구이며, 자문을 받는 자가 누구입니까? 비록 평소의 일이 없는 때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하루도 신료들을 접하지 않아서는 안되는데, 더구나 이처럼 어렵고 일이 많은 때이겠습니까. 바라건대 지금 이후로는 편전에 납시어 여러 신하들을 만나서 크고 작은 계책을 마음을 열어놓고 물으소서. 그리하여 더욱더 총명을 넓혀서 청명한 다스림을 이루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가 현재 병중에 있으니 조리하고서 하겠다."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근래에 역변(逆變)이 잇달아 일어나고 무고가 계속 일어나서 끝내는 익명으로 투서하기에 이르렀는데, 말이 몹시 흉악하고 참혹하였습니다. 인심이 아름답지 못하고 국가가 불행하기가 어찌하여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이것은 오로지 역적을 다스리는 법이 엄하지 않고 반좌(反坐)시키는 법을 거행하지 않아서, 간사한 자가 징계되는 바가 없이 마음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는 데에서 말미암아 그런 것입니다. 지금 만약 이로 인하여서 놀라 동요한다면 기회를 틈타고 혼란을 다행으로 여기는 그들의 술수에 떨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으면 뭇 귀신들이 저절로 숨을 죽이고 숨는 법입니다. 현재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고 해가 점차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폐하였던 경연을 열어 물어보는 길을 넓히며, 신료들을 인접하고 상하가 서로 믿어서 말이 모두 진달되게 한다면, 비록 천백 명의 간인이 있더라도 어찌 감히 틈을 타서 못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지금 이후로는 경연에 납시어 강론을 게을리하지 말아서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계책을 극진히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가 현재 병을 앓고 있으니, 조리하고서 하겠다." 하였다.
"근래에 역변(逆變)이 잇달아 일어나고 무고가 계속 일어나서 끝내는 익명으로 투서하기에 이르렀는데, 말이 몹시 흉악하고 참혹하였습니다. 인심이 아름답지 못하고 국가가 불행하기가 어찌하여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이것은 오로지 역적을 다스리는 법이 엄하지 않고 반좌(反坐)시키는 법을 거행하지 않아서, 간사한 자가 징계되는 바가 없이 마음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는 데에서 말미암아 그런 것입니다. 지금 만약 이로 인하여서 놀라 동요한다면 기회를 틈타고 혼란을 다행으로 여기는 그들의 술수에 떨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으면 뭇 귀신들이 저절로 숨을 죽이고 숨는 법입니다. 현재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고 해가 점차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폐하였던 경연을 열어 물어보는 길을 넓히며, 신료들을 인접하고 상하가 서로 믿어서 말이 모두 진달되게 한다면, 비록 천백 명의 간인이 있더라도 어찌 감히 틈을 타서 못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지금 이후로는 경연에 납시어 강론을 게을리하지 말아서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계책을 극진히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가 현재 병을 앓고 있으니, 조리하고서 하겠다."
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이 다시 상차하기를, "신하로서 역적에게 강제당한 죄를 지었을 경우, 스스로 처신하는 도리에 있어서 조금도 간여되지 않았다고 핑계대면서 염두에 두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루도 태연히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상께서 너그럽게 포용해 주시어 즉시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명(召命)을 여러 차례 내리기까지 하였으니, 성은이 넓고도 커서 하늘과 땅으로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명(罪命)이 이미 이와 같아서 얼굴을 쳐들고 다시 대궐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깊은 산골짜기로 달려가서 물의(物議)를 기다리고 여생을 마치고자 합니다. 삼가 보건대 조정에 가득 찬 신하들 중에 재상감으로 합당한 자가 적지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직을 파척하시어 신하로서 죄를 진 자의 경계로 삼으시고, 속히 어진이를 뽑아서 국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지나치다. 전의 전지를 따라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서 역적을 토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신하로서 역적에게 강제당한 죄를 지었을 경우, 스스로 처신하는 도리에 있어서 조금도 간여되지 않았다고 핑계대면서 염두에 두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루도 태연히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상께서 너그럽게 포용해 주시어 즉시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명(召命)을 여러 차례 내리기까지 하였으니, 성은이 넓고도 커서 하늘과 땅으로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명(罪命)이 이미 이와 같아서 얼굴을 쳐들고 다시 대궐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깊은 산골짜기로 달려가서 물의(物議)를 기다리고 여생을 마치고자 합니다. 삼가 보건대 조정에 가득 찬 신하들 중에 재상감으로 합당한 자가 적지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직을 파척하시어 신하로서 죄를 진 자의 경계로 삼으시고, 속히 어진이를 뽑아서 국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지나치다. 전의 전지를 따라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서 역적을 토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상을 내일 일찍 다시 명초하라."
"영상을 내일 일찍 다시 명초하라."

 

홍문관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서, 세 역적과 귀천군 이수·박홍도에 대해 시원스럽게 공론을 따르기를 청하니, 이미 양사에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홍문관이 차자를 올려 널리 경연을 열고 자주 신료들을 접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니, 참으로 가상하다. 내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차자를 보니, 참으로 가상하다. 내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이 사직 차자를 바치고 또 밀부(密符)를 본원에 보내왔는데, 차자는 즉시 입계하였습니다. 밀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밀부는 도로 보내라." 하였다.
"영상이 사직 차자를 바치고 또 밀부(密符)를 본원에 보내왔는데, 차자는 즉시 입계하였습니다. 밀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밀부는 도로 보내라."
하였다.

 

1월 22일 무자

정원이 아뢰기를,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판의금부사가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악하고도 헤아릴 수 없는 일은 참으로 천고에 없었던 큰 변고입니다. 신은 흉서를 본 이래로 침식을 모두 잊은 채 진짜 역적을 잡아서 씹어먹고 싶었습니다. 다만 대신이 유고한데 신은 성(姓)이 흉서에서 나온 사람으로서 태연스레 홀로 국청(鞫廳)에 참여하는 것은 결단코 하기가 어렵습니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영상이 들어온 뒤에 하라." 하였다.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판의금부사가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악하고도 헤아릴 수 없는 일은 참으로 천고에 없었던 큰 변고입니다. 신은 흉서를 본 이래로 침식을 모두 잊은 채 진짜 역적을 잡아서 씹어먹고 싶었습니다. 다만 대신이 유고한데 신은 성(姓)이 흉서에서 나온 사람으로서 태연스레 홀로 국청(鞫廳)에 참여하는 것은 결단코 하기가 어렵습니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영상이 들어온 뒤에 하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두 차례 정사(呈辭)하니, 불윤 비답을 내렸다.

 

전교하였다. "영상이 오지 않을 경우 우상을 명초해서 정국(庭鞫)하라."
"영상이 오지 않을 경우 우상을 명초해서 정국(庭鞫)하라."

 

검열 오익환(吳益煥)이 영상에게 도타이 유시하러 나갔다.

 

정원이 아뢰기를, "우의정을 명초하니, 병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일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우의정을 명초하니, 병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일 다시 명초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영상이 오늘 새벽에 강원도로 갔다고 하는데, 신이 전해 들으니 현재 망우리(忘憂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명초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영상이 오늘 새벽에 강원도로 갔다고 하는데, 신이 전해 들으니 현재 망우리(忘憂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명초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명초하라고 전교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명패(命牌)를 망우리로 보낸즉 영상이 이미 망우리를 떠나 평구(平丘)로 갔습니다. 그런데 평구는 10리 바깥에 있으므로 명패를 그대로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명패(命牌)를 망우리로 보낸즉 영상이 이미 망우리를 떠나 평구(平丘)로 갔습니다. 그런데 평구는 10리 바깥에 있으므로 명패를 그대로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1월 23일 기축

정원이 아뢰었다. "우상을 명초하니 ‘산증(疝症)이 지금 막 치솟아서 운신할 수가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시 상차하여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을 진달드리고자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명초하니 ‘산증(疝症)이 지금 막 치솟아서 운신할 수가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시 상차하여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을 진달드리고자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영의정 기자헌이 세 번째 상차하여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몹시도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당당한 국가에 무슨 대단한 걱정이야 있겠습니까. 단지 간사한 자가 화살에 격문을 묶어 투서하여 나라에 일을 만들어 내려고 한 것이니, 염려할 것은 없을 듯합니다. 신은 지금 즉시 물러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간사한 자가 흉서에서 신의 성을 들먹이면서 강제할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또 ‘대신에게 부(符)를 내어준다.’고 말을 하였기 때문에, 신은 황공스러워 죽고 싶을 뿐 몸둘 곳이 없어서, 이에 감히 태연스레 직에 있지 못하고 부득불 물러나서 멀리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밀부를 도로 내려 보내었기에 더욱 몸이 떨리고 두려우며 가슴이 떨리고 편치 않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기력이 다 떨어져서 잠시만 말을 하면 입이 타 흙을 십는 듯하고, 가슴이 말라서 먼지가 나는 듯하여 죽을 기일 역시 멀지 않으니, 몹시 답답하고 염려됩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고 다시 어진이를 뽑아서 국사를 다스려 나가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지금 이 흉격(兇檄)은 고변하는 글이 아닌 듯하다. 간사한 자가 하는 짓을 경이 만약 상세히 안다면 어찌하여 곧장 그 사람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는 이처럼 위급한 날을 당하여 수상(首相)으로 있으면서 국은을 후하게 받은 것은 생각지 않고 한갓 번거롭게 사직만 하면서 난에 임하여 도피하려고만 하는가. 이것이 과연 대신이 나랏일에 온 힘을 다하는 의리인가? 굳이 사직하지 말고 속히 들어와서 온 정성을 다해 역적을 토벌해 사직을 편안케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몹시도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당당한 국가에 무슨 대단한 걱정이야 있겠습니까. 단지 간사한 자가 화살에 격문을 묶어 투서하여 나라에 일을 만들어 내려고 한 것이니, 염려할 것은 없을 듯합니다.
신은 지금 즉시 물러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간사한 자가 흉서에서 신의 성을 들먹이면서 강제할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또 ‘대신에게 부(符)를 내어준다.’고 말을 하였기 때문에, 신은 황공스러워 죽고 싶을 뿐 몸둘 곳이 없어서, 이에 감히 태연스레 직에 있지 못하고 부득불 물러나서 멀리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밀부를 도로 내려 보내었기에 더욱 몸이 떨리고 두려우며 가슴이 떨리고 편치 않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기력이 다 떨어져서 잠시만 말을 하면 입이 타 흙을 십는 듯하고, 가슴이 말라서 먼지가 나는 듯하여 죽을 기일 역시 멀지 않으니, 몹시 답답하고 염려됩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고 다시 어진이를 뽑아서 국사를 다스려 나가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지금 이 흉격(兇檄)은 고변하는 글이 아닌 듯하다. 간사한 자가 하는 짓을 경이 만약 상세히 안다면 어찌하여 곧장 그 사람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는 이처럼 위급한 날을 당하여 수상(首相)으로 있으면서 국은을 후하게 받은 것은 생각지 않고 한갓 번거롭게 사직만 하면서 난에 임하여 도피하려고만 하는가. 이것이 과연 대신이 나랏일에 온 힘을 다하는 의리인가? 굳이 사직하지 말고 속히 들어와서 온 정성을 다해 역적을 토벌해 사직을 편안케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정원에 답하였다. "지금이 어찌 대신이 다투어 사장(辭章)을 올려 병을 이유로 사직하면서 나오지 않을 때인가. 다시 명초하라."
"지금이 어찌 대신이 다투어 사장(辭章)을 올려 병을 이유로 사직하면서 나오지 않을 때인가. 다시 명초하라."

 

우의정 한효순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영상이 바깥으로 나가서 국사가 위태롭다. 경은 대신으로서 어찌 작은 혐의에 구애되는가.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출사하여 온 마음을 다해 역적을 토벌해 사직을 안정시키라." 하였다.
"영상이 바깥으로 나가서 국사가 위태롭다. 경은 대신으로서 어찌 작은 혐의에 구애되는가.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출사하여 온 마음을 다해 역적을 토벌해 사직을 안정시키라."
하였다.

 

문창 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이 상차하기를, "신은 늦게서야 경운궁의 뜰에 격문을 화살에 묶어 투서한 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신의 성 역시 흉서에서 얽어넣은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합니다. 신은 두렵고 떨려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전문(全文)을 보지 못하여 날조한 것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간사한 역적이 성(姓)을 거론하면서 모함하려 하였으니, 신하의 의리에 있어서 결단코 얼굴을 들고 반열에 나아가기를 보통 사람과 같이 해서는 안되고, 마땅히 답답함을 하소연하면서 체직시켜 주기를 청하고는 즉시 떠났어야만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조용히 조섭하고 계신 중이어서 번거롭게 아뢰기가 두려워 며칠 동안 머뭇거리면서 감히 외람스럽게 진달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대신이 이로 인하여 서둘러 물러가고 뭇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 유독 어떤 사람이라고 완연히 움직이지 않으면서, 위로는 청명한 조정에 수치를 끼치고 아래로는 자신의 죄를 중하게 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의 위태롭고 절박한 정을 곡진히 살피시어 속히 신을 체직시키도록 명하여서, 시골로 돌아가 엎드려 있으면서 여생을 보전할 수 있게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023) "상소를 살펴보고 모두 알았다. 이것은 바로 대비전(大妃殿)에 쏘아 넣어 먼저 거사하는 뜻을 고하려고 하다가 미치지 못하여서 발각된 것이다. 경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간여된 사실이 없으니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다만 이미 모함하기를 도모한 간사한 역적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면 곧장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여서 나라에 일을 만들어낸 죄를 바루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註 023] 답하기를, : ‘답하기를,’부터 아래의 ‘마땅하다.’의 이 부분은 24일 기사로 들어있던 것인데, 이리로 옮기도록 지시되어 있으므로 편의상 정족산본을 따라 옮긴 대로 번역해 넣었다.
"신은 늦게서야 경운궁의 뜰에 격문을 화살에 묶어 투서한 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신의 성 역시 흉서에서 얽어넣은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합니다. 신은 두렵고 떨려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전문(全文)을 보지 못하여 날조한 것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간사한 역적이 성(姓)을 거론하면서 모함하려 하였으니, 신하의 의리에 있어서 결단코 얼굴을 들고 반열에 나아가기를 보통 사람과 같이 해서는 안되고, 마땅히 답답함을 하소연하면서 체직시켜 주기를 청하고는 즉시 떠났어야만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조용히 조섭하고 계신 중이어서 번거롭게 아뢰기가 두려워 며칠 동안 머뭇거리면서 감히 외람스럽게 진달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대신이 이로 인하여 서둘러 물러가고 뭇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 유독 어떤 사람이라고 완연히 움직이지 않으면서, 위로는 청명한 조정에 수치를 끼치고 아래로는 자신의 죄를 중하게 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의 위태롭고 절박한 정을 곡진히 살피시어 속히 신을 체직시키도록 명하여서, 시골로 돌아가 엎드려 있으면서 여생을 보전할 수 있게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023) "상소를 살펴보고 모두 알았다. 이것은 바로 대비전(大妃殿)에 쏘아 넣어 먼저 거사하는 뜻을 고하려고 하다가 미치지 못하여서 발각된 것이다. 경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간여된 사실이 없으니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다만 이미 모함하기를 도모한 간사한 역적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면 곧장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여서 나라에 일을 만들어낸 죄를 바루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註 023] 답하기를, : ‘답하기를,’부터 아래의 ‘마땅하다.’의 이 부분은 24일 기사로 들어있던 것인데, 이리로 옮기도록 지시되어 있으므로 편의상 정족산본을 따라 옮긴 대로 번역해 넣었다.
"상소를 살펴보고 모두 알았다. 이것은 바로 대비전(大妃殿)에 쏘아 넣어 먼저 거사하는 뜻을 고하려고 하다가 미치지 못하여서 발각된 것이다. 경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간여된 사실이 없으니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다만 이미 모함하기를 도모한 간사한 역적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면 곧장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여서 나라에 일을 만들어낸 죄를 바루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1월 24일 경인

우의정이 세 번째 정사하니, 답하기를, "대신들 중 한 사람도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어서 온 나라가 놀라고 있으며 일이 한심하게 되어가니 어찌 국가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경은 사직하지 말고 속히 출사하여 국사를 돕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대신들 중 한 사람도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어서 온 나라가 놀라고 있으며 일이 한심하게 되어가니 어찌 국가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경은 사직하지 말고 속히 출사하여 국사를 돕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영경문(永景門) 수직군사 및 수종군사(守鍾軍士)를 아울러 더 배정하라. 그리고 창덕궁과 경운궁 담장 바깥의 대장(大將)과 각 별장(別將) 및 수종장(守鍾將)을 모두 각별히 가려 뽑으라." 하였다. 【흉서 가운데 ‘종루(鍾樓)의 종을 울림과 동시에 거사한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특별히 수종장을 배정해서 지키도록 명한 것이다.】
"영경문(永景門) 수직군사 및 수종군사(守鍾軍士)를 아울러 더 배정하라. 그리고 창덕궁과 경운궁 담장 바깥의 대장(大將)과 각 별장(別將) 및 수종장(守鍾將)을 모두 각별히 가려 뽑으라."
하였다. 【흉서 가운데 ‘종루(鍾樓)의 종을 울림과 동시에 거사한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특별히 수종장을 배정해서 지키도록 명한 것이다.】

 

전교하기를, "각 문의 자물쇠가 저절로 열리는 곳은 병조 낭청과 선전관이 함께 적간하여 일일이 살펴보고 속히 다시 만들라." 하였는데, 어젯밤에 선인문(宣仁門) 수문장이 자물쇠가 저절로 열렸다고 계달하였기 때문이다.
"각 문의 자물쇠가 저절로 열리는 곳은 병조 낭청과 선전관이 함께 적간하여 일일이 살펴보고 속히 다시 만들라."
하였는데, 어젯밤에 선인문(宣仁門) 수문장이 자물쇠가 저절로 열렸다고 계달하였기 때문이다.

 

전교하였다. "동서 교외의 별장(別將)을 가려 뽑아 정할 때 본조의 낭관을 보내어 적간하고, 강어귀와 나루를 떠나지 말고 굳게 지키라고 병조에 말하라."
"동서 교외의 별장(別將)을 가려 뽑아 정할 때 본조의 낭관을 보내어 적간하고, 강어귀와 나루를 떠나지 말고 굳게 지키라고 병조에 말하라."

 

전교하기를, "내일부터 삼청동(三淸洞) 및 산골짜기 계곡에서 모여 술마시고 활쏘는 사람을 엄히 금하되, 착실히 거행하는 일을 병조로 하여금 살펴서 하게 하라." 하였다. 【이러한 따위의 전교는 모두 흉서에 홀려서 내린 것이다.】
"내일부터 삼청동(三淸洞) 및 산골짜기 계곡에서 모여 술마시고 활쏘는 사람을 엄히 금하되, 착실히 거행하는 일을 병조로 하여금 살펴서 하게 하라."
하였다. 【이러한 따위의 전교는 모두 흉서에 홀려서 내린 것이다.】

 

1월 25일 신묘

우승지 유대건(兪大建)이 아뢰기를, "총재(冡宰)를 의망한 지 이미 한 해가 지났고 대간이 체직된 지 또한 얼마가 지났습니다. 태평한 시절이었던 선조 때에도 대간에 빈 자리가 있을 경우에는 깊은 밤에 이르더라도 반드시 정사(政事)를 하여 차출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이목(耳目)의 관원은 잠시도 비워둘 수 없어서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역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흉격(兇檄)이 또 나왔으니, 이는 바로 전장(銓長)을 선임하여 인재(人才)를 수습하고 간관을 임명하여 사악한 자를 바로잡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세월만 보내면서 앉아서 기회를 잃어 온갖 일이 무너져서 장차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으니, 몹시 한심합니다. 신은 해방(該房)에 재직하고 있으면서 눈으로 대신이 자리를 떠나고 인심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조 판서와 대간의 선임이 하루가 급하며, 기타 회답사(回答使)와 수령들 역시 속히 차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위에서 앓고 있는 여러 가지 병이 지금 몇 달이 지났는데도 침과 약이 모두 효험이 없는 채 날이 갈수록 고질화되고 있다. 그리고 또 흉격을 본 뒤로 마음이 불안해서 밤에도 잠을 못 이룬 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그러니 아무 일이 없었던 선조 때와는 같지 않다. 지금 이 계사를 보건대, 정원은 참으로 나의 실정을 모르고 있다. 내가 어찌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스스로 즐기면서 그러고 있겠는가. 사악한 자를 바로잡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큰 계책에 이르러서는, 현재 있는 대간 역시 적지 않으니, 어찌 반드시 결원을 다 채운 뒤에야 바야흐로 할 수 있겠는가. 내 스스로 참작해서 조처할 것이니, 고요히 조섭하는 이 때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총재(冡宰)를 의망한 지 이미 한 해가 지났고 대간이 체직된 지 또한 얼마가 지났습니다. 태평한 시절이었던 선조 때에도 대간에 빈 자리가 있을 경우에는 깊은 밤에 이르더라도 반드시 정사(政事)를 하여 차출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이목(耳目)의 관원은 잠시도 비워둘 수 없어서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역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흉격(兇檄)이 또 나왔으니, 이는 바로 전장(銓長)을 선임하여 인재(人才)를 수습하고 간관을 임명하여 사악한 자를 바로잡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세월만 보내면서 앉아서 기회를 잃어 온갖 일이 무너져서 장차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으니, 몹시 한심합니다.
신은 해방(該房)에 재직하고 있으면서 눈으로 대신이 자리를 떠나고 인심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조 판서와 대간의 선임이 하루가 급하며, 기타 회답사(回答使)와 수령들 역시 속히 차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위에서 앓고 있는 여러 가지 병이 지금 몇 달이 지났는데도 침과 약이 모두 효험이 없는 채 날이 갈수록 고질화되고 있다. 그리고 또 흉격을 본 뒤로 마음이 불안해서 밤에도 잠을 못 이룬 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그러니 아무 일이 없었던 선조 때와는 같지 않다. 지금 이 계사를 보건대, 정원은 참으로 나의 실정을 모르고 있다. 내가 어찌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스스로 즐기면서 그러고 있겠는가. 사악한 자를 바로잡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큰 계책에 이르러서는, 현재 있는 대간 역시 적지 않으니, 어찌 반드시 결원을 다 채운 뒤에야 바야흐로 할 수 있겠는가. 내 스스로 참작해서 조처할 것이니, 고요히 조섭하는 이 때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우상을 명초하였는데, 병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우상을 명초하였는데, 병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대간은 임금의 눈과 귀이니 비록 대간이 있더라도 아무말 않고 있으면 이는 눈과 귀가 없는 것입니다. 눈과 귀가 없으면 장차 보고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니, 국가가 망하는 것은 결판난 것입니다. 요즈음 상께서 바야흐로 조섭하시는 중에 있어서 삼사(三司)가 계차(啓箚)를 정지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이 이 어떠한 때입니까? 역적의 옥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흉격(兇檄)이 계속 일어나고, 이조 판서 자리가 비어 온갖 법이 해이해지고, 대신이 자리에서 떠나 인심이 두려워하고 있으며, 흉역의 무리가 징계되지 않고 부도한 무리들을 금지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대론(大論)이 신장되지 못하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군신 상하가 두려워 경계하고 힘을 합쳐서 아랫사람들의 심정을 통하고 사직을 안정시킬 때입니다. 어찌 그럭저럭 보내면서 평소의 일이 없는 때와 같이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삼사의 차자를 정지시키지 말아서 언로를 여소서. 신들은 후설(喉舌)의 직에 있으면서 현재의 어려움을 목격하고는 위태롭고 절박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겠다고 답하였다.
"대간은 임금의 눈과 귀이니 비록 대간이 있더라도 아무말 않고 있으면 이는 눈과 귀가 없는 것입니다. 눈과 귀가 없으면 장차 보고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니, 국가가 망하는 것은 결판난 것입니다. 요즈음 상께서 바야흐로 조섭하시는 중에 있어서 삼사(三司)가 계차(啓箚)를 정지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이 이 어떠한 때입니까? 역적의 옥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흉격(兇檄)이 계속 일어나고, 이조 판서 자리가 비어 온갖 법이 해이해지고, 대신이 자리에서 떠나 인심이 두려워하고 있으며, 흉역의 무리가 징계되지 않고 부도한 무리들을 금지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대론(大論)이 신장되지 못하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군신 상하가 두려워 경계하고 힘을 합쳐서 아랫사람들의 심정을 통하고 사직을 안정시킬 때입니다. 어찌 그럭저럭 보내면서 평소의 일이 없는 때와 같이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삼사의 차자를 정지시키지 말아서 언로를 여소서. 신들은 후설(喉舌)의 직에 있으면서 현재의 어려움을 목격하고는 위태롭고 절박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겠다고 답하였다.

 

대사헌 남근(南瑾), 대사간 정조(鄭造), 집의 김질간(金質幹), 사간 오여온(吳汝穩), 장령 임건(林健)·정도(鄭道), 지평 남궁경(南宮㯳)·김호(金昈), 정언 홍요검(洪堯儉)이 아뢰기를, "신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면서 단지 죄만 불러들였기에 차라리 한마디 하고 죽을지언정 역적과 더불어 함께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형세를 한번 보면 참으로 위급하고도 위태롭습니다. 화살에 매어서 격문을 쏘아넣은 것은 실로 전고에 없던 변란이며, 그 내용의 흉악하고도 참혹함은 차마 볼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속셈이 아주 비밀스럽고 일을 꾸민 것이 또한 아주 은밀하여 일개 간인이 임금을 비방하고 조정을 모해하는 데 비할 것이 아닙니다. 모의를 꾸미고 악심을 모은 것이 하루아침에 한 것이 아니어서 아주 간사하고 불측합니다. 화란의 기미가 아득한 가운데 잠복해 있고 우려스러운 기상이 이미 밝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군신 상하가 두려워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방비하는 계책을 물어보고 체포할 꾀를 강구하여 모자라는 점을 서로 닦아서 위태로움을 전환시켜 안정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대신이 도피하거나 위축되어 있으며, 중신(重臣)이 인혐하거나 사직 차자를 올려서 관망하면서 배회하는 자처럼 하고 있습니다. 안위(安危)가 달린 바에 대해 참으로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일찍이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느슨하게 풀어져 그럭저럭 지내면서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린 채, 한 사람도 사직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며 임금의 어려움을 급하게 여기지 않으니, 시대 탓입니까, 운수 탓입니까?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까닭을 따져보면 모두가 의리가 밝지 않고 조정이 각립(角立)하고 있어서입니다. 이에 역적을 토벌하는 법이 엄하지 않고 화를 두려워하는 습성이 이미 고질화되어, 서로 다투어 역적을 감싸는 것으로 스스로 계책을 얻었다고 하고 있으며, 임금을 잊고 사당을 비호하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아래에서 이반되게 하고 임금의 형세가 위에서 날로 고립되게 하여, 충성스럽고 올바른 논의가 끝내 도움되는 바가 없으며, 종묘 사직의 망함이 터럭 하나 사이도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성상께서는 모르시고 계실 뿐입니다. 변방의 방비가 허술하고 백성들의 삶이 초췌한 것이 참으로 모두 오늘날의 염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크게 염려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무신년 역적 잔당들의 부리가 아직 남아 있고 계축년 흉당들의 무리가 퍼져나가, 몰래 틈을 엿보면서 흉계를 이루려고 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앞서는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의 상소가, 뒤에는 이형(李泂)·윤선도(尹善道)·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 등의 상소가 일맥(一脈)을 서로 전하였음이 불을 보듯 훤합니다. 그러므로 삼사가 논하면서 ‘역적을 토벌하는 거조는 반드시 먼저 그 부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면서 허욱(許頊)·최천건(崔天健)·성영(成泳)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고, 금산군 이성윤·귀천군 이수·박홍도 역시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한 것은, 모두가 임금과 종묘 사직을 위하는 계책에서 나온 것으로, 참으로 오늘날의 약석(藥石)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도 즉시 시원스레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이미 유시하였다. 따르지 않는다.’ 하거나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매번 전교하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곧은 기상이 날로 저상되고 역적을 비호하는 간계한 모의가 날로 불어나서, 끝내는 화살에 글을 묶어 서로 통하여 화란이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이 이에 이르니 차라리 죽고만 싶을 뿐입니다. 기타 이조 판서 자리가 비어 있은 지 이미 한 해가 넘었고 대간 자리가 비어 있은 지 며칠이 지났으며, 도목 정사(都目政事)가 기한을 넘겨 뭇관원이 적체되었고 수령 자리가 오래 비어서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으며, 그럭저럭 지냄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 장차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신들의 봉직(奉職)이 형편없어서 이미 역적을 토벌하여 죽이지 못하였고, 또 잘못된 정사를 크게 구제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단지 성지(聖旨)를 받들어 따르기만 하면서 머뭇거려 스스로 풍채를 손상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언책(言責)이 도리어 정원에게 돌아가게 하였으니, 장차 무슨 얼굴로 외람되이 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속히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흉당들이 점차 퍼져나가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해 역적을 토벌하여 사직을 안정시키라." 하였다. 물러가서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면서 단지 죄만 불러들였기에 차라리 한마디 하고 죽을지언정 역적과 더불어 함께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형세를 한번 보면 참으로 위급하고도 위태롭습니다. 화살에 매어서 격문을 쏘아넣은 것은 실로 전고에 없던 변란이며, 그 내용의 흉악하고도 참혹함은 차마 볼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속셈이 아주 비밀스럽고 일을 꾸민 것이 또한 아주 은밀하여 일개 간인이 임금을 비방하고 조정을 모해하는 데 비할 것이 아닙니다. 모의를 꾸미고 악심을 모은 것이 하루아침에 한 것이 아니어서 아주 간사하고 불측합니다. 화란의 기미가 아득한 가운데 잠복해 있고 우려스러운 기상이 이미 밝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군신 상하가 두려워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방비하는 계책을 물어보고 체포할 꾀를 강구하여 모자라는 점을 서로 닦아서 위태로움을 전환시켜 안정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대신이 도피하거나 위축되어 있으며, 중신(重臣)이 인혐하거나 사직 차자를 올려서 관망하면서 배회하는 자처럼 하고 있습니다. 안위(安危)가 달린 바에 대해 참으로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일찍이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 것입니까. 느슨하게 풀어져 그럭저럭 지내면서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린 채, 한 사람도 사직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며 임금의 어려움을 급하게 여기지 않으니, 시대 탓입니까, 운수 탓입니까?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까닭을 따져보면 모두가 의리가 밝지 않고 조정이 각립(角立)하고 있어서입니다. 이에 역적을 토벌하는 법이 엄하지 않고 화를 두려워하는 습성이 이미 고질화되어, 서로 다투어 역적을 감싸는 것으로 스스로 계책을 얻었다고 하고 있으며, 임금을 잊고 사당을 비호하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아래에서 이반되게 하고 임금의 형세가 위에서 날로 고립되게 하여, 충성스럽고 올바른 논의가 끝내 도움되는 바가 없으며, 종묘 사직의 망함이 터럭 하나 사이도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성상께서는 모르시고 계실 뿐입니다.
변방의 방비가 허술하고 백성들의 삶이 초췌한 것이 참으로 모두 오늘날의 염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크게 염려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무신년 역적 잔당들의 부리가 아직 남아 있고 계축년 흉당들의 무리가 퍼져나가, 몰래 틈을 엿보면서 흉계를 이루려고 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앞서는 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의 상소가, 뒤에는 이형(李泂)·윤선도(尹善道)·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 등의 상소가 일맥(一脈)을 서로 전하였음이 불을 보듯 훤합니다. 그러므로 삼사가 논하면서 ‘역적을 토벌하는 거조는 반드시 먼저 그 부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면서 허욱(許頊)·최천건(崔天健)·성영(成泳)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고, 금산군 이성윤·귀천군 이수·박홍도 역시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한 것은, 모두가 임금과 종묘 사직을 위하는 계책에서 나온 것으로, 참으로 오늘날의 약석(藥石)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도 즉시 시원스레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이미 유시하였다. 따르지 않는다.’ 하거나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매번 전교하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곧은 기상이 날로 저상되고 역적을 비호하는 간계한 모의가 날로 불어나서, 끝내는 화살에 글을 묶어 서로 통하여 화란이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이 이에 이르니 차라리 죽고만 싶을 뿐입니다.
기타 이조 판서 자리가 비어 있은 지 이미 한 해가 넘었고 대간 자리가 비어 있은 지 며칠이 지났으며, 도목 정사(都目政事)가 기한을 넘겨 뭇관원이 적체되었고 수령 자리가 오래 비어서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으며, 그럭저럭 지냄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 장차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신들의 봉직(奉職)이 형편없어서 이미 역적을 토벌하여 죽이지 못하였고, 또 잘못된 정사를 크게 구제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단지 성지(聖旨)를 받들어 따르기만 하면서 머뭇거려 스스로 풍채를 손상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언책(言責)이 도리어 정원에게 돌아가게 하였으니, 장차 무슨 얼굴로 외람되이 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습니까. 속히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흉당들이 점차 퍼져나가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해 역적을 토벌하여 사직을 안정시키라."
하였다. 물러가서 물론을 기다렸다.

 

홍문관이 잇달아 차자를 올려 세 역적과 귀천군 이수·박홍도에 대해 속히 공론을 시원스레 따르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1월 26일 임진

헌납 유여각(柳汝恪)이 아뢰기를, "지난번에 신이 귀천군 이수를 논핵한 죄목을 잘못 쓴 일을 이유로 인혐하고서 물러갔었습니다. 그런데 옥당에서 출사를 청하였기에 억지로 행공하였습니다. 그 뒤에 듣건대, 옥당이 모두 모여 처치하면서 완의(完議)할 때 옥당의 관원 중에 혹 신이 고의로 잘못하여 교묘히 피하려 하였다고 지목하는 자도 있었고, 혹 신을 출사시켜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가기도 하고, 혹 집에 있으면서 글을 보내어 체차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옥당을 바로 공론(公論)이 있는 곳이며 간관의 직은 일반 관원에 비할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은 이러한 따위의 논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또 양사가 인혐한 내용을 보건대, 이는 바로 신이 평소에 하고 싶으면서도 감히 하지 못하였던 말입니다. 신이 여러 대간들보다 무슨 뒤쳐질 까닭이 있겠습니까. 단지 병으로 인하여 조금 늦게 와서 피혐하였으니, 신의 잘못이 더욱더 큽니다. 이것으로나 저것으로나 결단코 그대로 있기가 어려우니 속히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지난번에 신이 귀천군 이수를 논핵한 죄목을 잘못 쓴 일을 이유로 인혐하고서 물러갔었습니다. 그런데 옥당에서 출사를 청하였기에 억지로 행공하였습니다. 그 뒤에 듣건대, 옥당이 모두 모여 처치하면서 완의(完議)할 때 옥당의 관원 중에 혹 신이 고의로 잘못하여 교묘히 피하려 하였다고 지목하는 자도 있었고, 혹 신을 출사시켜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가기도 하고, 혹 집에 있으면서 글을 보내어 체차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옥당을 바로 공론(公論)이 있는 곳이며 간관의 직은 일반 관원에 비할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신은 이러한 따위의 논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또 양사가 인혐한 내용을 보건대, 이는 바로 신이 평소에 하고 싶으면서도 감히 하지 못하였던 말입니다. 신이 여러 대간들보다 무슨 뒤쳐질 까닭이 있겠습니까. 단지 병으로 인하여 조금 늦게 와서 피혐하였으니, 신의 잘못이 더욱더 큽니다. 이것으로나 저것으로나 결단코 그대로 있기가 어려우니 속히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원이 아뢰기를,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판의금부사가 「대간의 한마디 말은 아주 중한 것인데 인혐하는 계사에서 드러나게 비난을 받았다. 이에 땅에 엎드린 채 황공하여 결단코 나아가기 어렵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해 하지 말고 안심하고 국문에 참여하라고 유시하라." 하였다.
"금부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판의금부사가 「대간의 한마디 말은 아주 중한 것인데 인혐하는 계사에서 드러나게 비난을 받았다. 이에 땅에 엎드린 채 황공하여 결단코 나아가기 어렵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해 하지 말고 안심하고 국문에 참여하라고 유시하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네 번째 정사하니, 답하기를, "영상이 물러가고 나라의 일이 한심스럽다. 다시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속히 출사하라." 하였다.
"영상이 물러가고 나라의 일이 한심스럽다. 다시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속히 출사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 아직까지도 쾌차하지 않았는데, 이 달이 장차 다 가려 하니, 앞으로의 친경(親耕)과 친잠(親蠶)의 대례를 무오년 3월로 물려서 거행하라. 그리고 방물(方物)의 물선(物膳)도 봉진하지 말라고 속히 파발마를 보내어 행회(行會)하라. 그리고 선농(先農)과 선잠(先蠶)은 전례대로 행하라. 이상의 일들을 해조에 말하라."
"내가 앓고 있는 병이 아직까지도 쾌차하지 않았는데, 이 달이 장차 다 가려 하니, 앞으로의 친경(親耕)과 친잠(親蠶)의 대례를 무오년 3월로 물려서 거행하라. 그리고 방물(方物)의 물선(物膳)도 봉진하지 말라고 속히 파발마를 보내어 행회(行會)하라. 그리고 선농(先農)과 선잠(先蠶)은 전례대로 행하라. 이상의 일들을 해조에 말하라."

 

검열 서국정(徐國楨)이 서계하기를, "신이 영상 기자헌에게 선유(宣諭)하는 일로 23일 저녁에 명을 받들고 뒤쫓아가서 지평(砥平)과 홍천(洪川) 사이에서 만나 비로소 명을 전하니, 기자헌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신이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었고 또 사관을 보내어 하유하시었는데, 그 내용이 정녕하고도 엄절하니, 신은 몹시 황공하고도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 흉격(兇檄)에 대해서는, 명초(命招)하여 회의하던 날에 좌중이 거의 다 ‘흉격으로 인하여 동요하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흉격의 문장 솜씨에 대해서는 말을 하다가 안색을 살펴보니 장차 말을 하려는 자가 있을 것 같았는데, 다만 익명서를 가지고 갑자기 아무가 한 짓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사체에 방해가 되는 까닭에 서로 한번 웃고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 역시 어찌 감히 갑자기 아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러한 이로움 때문에 간사한 자가 익명으로 흉격을 쓴 것입니다. 만약 참으로 그러한 일이 있다면 마땅히 만분 비밀을 지켜서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알게 될까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어찌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쏘아 넣어서 누설되게 하면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듯이 한단 말입니까. 성상께 욕을 한 것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으니, 이것이 대역(大逆)인 것으로, 무슨 다른 역적이 있겠습니까. 무릇 강제당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코가 꿰이어 그의 지시에 따른다는 말입니다. 역적에게 코가 꿰이어 그의 지시를 따른다고 지목을 받은 자가, 다른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천지간에 서서 스스로 대신이라고 여길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해 신의 집에 화살에 매어 쏘아넣은 글에 대략 말하기를 ‘너에게는 죽일 만한 죄가 있다. 만약 자리에서 물러나 시골로 돌아가지 않으면 마땅히 쏘아 죽일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혹 그 필적(筆跡)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자가 있었으나, 신은 익명서라는 이유로 그냥 놓아두었습니다. 이번의 이 대궐 안에 화살에 묶어서 쏘아넣은 글이 이미 의계(議啓)하는 가운데 들어갔으니, 수상으로 있는 자가 태연스럽고 편안하게 얼굴을 들고 행공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반드시 대신에게 부(符)를 내어준다고 말을 한 것은, 그가 해치려고 하는 마음이 더욱 신의 몸에 있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 말씀드리자면, 반드시 눈앞의 급한 난(亂)은 없을 듯합니다. 거기에 ‘28일’로 말을 한 것은 참으로 우언(寓言)이며, 또 그 끝에 ‘일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 것은 반드시 없을 일이므로 그 말이 또 반드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위협을 당하고 내몰리고 강제당할 자의 성(姓)만 말하고 누가 주장하였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또 그 끝에다가 ‘신목 신수 신산 신풍 신석 신단(臣木臣水臣山臣風臣石臣短)’이라고만 써서 마치 귀신들의 말과 같아 얼떨떨하여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허다한 사설(辭說)은 단지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키는 것으로, 한바탕 맹랑한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이를 근거로 삼아 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눈앞에 흉격에서 말한 것과 같은 난은 없을 것임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흉언(兇言)에 대해서는 불가불 멀리 물러가서 피하여야 함이 어찌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비록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신하이기는 하나 역시 일찍이 군신의 의리에 대해서는 들었으니, 극악(極惡)스런 일은 역시 하지 않을 자입니다.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물러나서 시골에서 늙는 자가 고금에 서로 잇달아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처럼 망극하고 불측한 말을 만났는데이겠습니까. 신이 비록 아주 우둔하고 하찮기는 하나,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실로 옛사람들보다 못하지가 않습니다. 지난해의 차자에서 말한 ‘대례를 치른 뒤, 좌상이 물러간 것과 같이 나가겠다.’고 한 것은, 사직서를 올려도 체차가 지연되므로, 좌상이 말미를 받지 않고서도 차자를 올리고서 떠나간 것과 같이 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속언(俗言)에 ‘정승 자리에서 3년을 지내면 반드시 일을 그르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가 지금 이미 4년이나 되었으니 진실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구나 이러한 변고가 있는데이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감히 잠시도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만약 난이 일어날 것인데도 나간다면 신이 도피한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현재 사직이 막 안정되어서 반드시 이러한 난이 없을 것이며, 상신(相臣)으로서 이러한 흉언을 만났으니, 비록 옛사람으로 하여금 처신하게 하더라도 반드시 마음을 편히 가지지 못하고 급급히 떠나갈 것입니다. 선왕조 때 어떤 간사한 자가 근거도 없는 말을 얽어내어서, 신이 장차 동궁을 모함한 사람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동궁을 모함하였다고 떠들어대며 의기양양하게 으시대고 방자하게 날뛰면서 조정의 사대부들을 모두 죽이고자 하였었습니다. 이번에 이 흉격을 쓴 사람이 비록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신이 역적에게 강제당할 것이라고 하면서 격문을 날려서 드러내었으니, 간사한 자의 하는 짓이 앞뒤가 똑같습니다. 일찍이 듣건대, 어떤 사람이 허성(許檎) 등이 역적질을 한다고 써서 대궐에 던져 넣었는데 【위에서 ‘이것은 반드시 아무가 한 짓이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전후의 간사한 자의 하는 짓이 이와 같이 서로 같으니, 이 역시 괴이한 일입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가득 차는 것이 두려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재주도 없고 덕도 없으면서 오랫동안 수상 자리에 있었으니 그 가득 찬 것이 이미 극도에 이른 것입니다. 또 일찍이 듣건대, 사시(四時)의 절서(節序)는 공을 이룬 것이 떠나가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두 번이나 훈적(勳籍)에 참여되었으니 공을 이루었다고 할 만합니다. 공이 이루어졌는데도 물러가지 않는다면 어찌 재앙이 되지 않겠습니까. 간사한 자도 필시 찼다가는 비고 없어졌다가는 다시 생기는 시운(時運)의 이치에 대해 소견이 있어서, 신의 복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이에 흉서를 만들어서 먼저 성상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또 반드시 천백 가지의 괴상한 말을 만들어 내어서 기어이 자신의 속셈을 이루고 말려는 것입니다. 모든 관료들이 다 훌륭하여 조정에 다른 신하가 없는 것도 아니니 누군들 정승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가령 신이 병들어 죽었을 경우 신의 대임자를 선출하지 않겠습니까. 좌상이 지금 이미 82세가 되어서 나이도 많고 덕도 높으니, 삼가 바라건대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고 좌상으로 하여금 수상이 되게 해서 그로 하여금 세상을 진정시키게 하소서. 그리고 신 역시 평생 동안 품어왔던 시골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이루어, 마치 동한(東漢)의 상자평(向子平)024)  의 무리와 같게 해 주는 것도 역시 한 가지 좋은 일일 것입니다. 밀부(密符)는 황공하여서 즉시 도로 올리지 못하고 공손히 체직의 명을 기다립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말하였습니다." 하였다.【 【이 당시에 그 흉격을 본 자들은 모두 허균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기자헌의 이 상소에서도 역시 은어를 써서 드러내었는데, 상소 가운데 ‘허(許)’ 자를 많이 썼으며, 또 인용한 몇 가지 일이 은연중에 허균을 지적한 것이다.】 】


[註 024] 상자평(向子平) : 자평은 후한(後漢)의 가인(歌人)인 상장(向長)의 자(字)임. 은거한 채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뒤에 오악(五岳) 명산(名山)을 두루 유람하였으며, 어디에서 죽었는지 모른다. 《후한서(後漢書)》 일민(逸民) 향장전(向長傳).
"신이 영상 기자헌에게 선유(宣諭)하는 일로 23일 저녁에 명을 받들고 뒤쫓아가서 지평(砥平)과 홍천(洪川) 사이에서 만나 비로소 명을 전하니, 기자헌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신이 삼가 성상의 비답을 받들었고 또 사관을 보내어 하유하시었는데, 그 내용이 정녕하고도 엄절하니, 신은 몹시 황공하고도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 흉격(兇檄)에 대해서는, 명초(命招)하여 회의하던 날에 좌중이 거의 다 ‘흉격으로 인하여 동요하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흉격의 문장 솜씨에 대해서는 말을 하다가 안색을 살펴보니 장차 말을 하려는 자가 있을 것 같았는데, 다만 익명서를 가지고 갑자기 아무가 한 짓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사체에 방해가 되는 까닭에 서로 한번 웃고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 역시 어찌 감히 갑자기 아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러한 이로움 때문에 간사한 자가 익명으로 흉격을 쓴 것입니다. 만약 참으로 그러한 일이 있다면 마땅히 만분 비밀을 지켜서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알게 될까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어찌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쏘아 넣어서 누설되게 하면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듯이 한단 말입니까. 성상께 욕을 한 것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으니, 이것이 대역(大逆)인 것으로, 무슨 다른 역적이 있겠습니까.
무릇 강제당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코가 꿰이어 그의 지시에 따른다는 말입니다. 역적에게 코가 꿰이어 그의 지시를 따른다고 지목을 받은 자가, 다른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천지간에 서서 스스로 대신이라고 여길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해 신의 집에 화살에 매어 쏘아넣은 글에 대략 말하기를 ‘너에게는 죽일 만한 죄가 있다. 만약 자리에서 물러나 시골로 돌아가지 않으면 마땅히 쏘아 죽일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혹 그 필적(筆跡)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자가 있었으나, 신은 익명서라는 이유로 그냥 놓아두었습니다. 이번의 이 대궐 안에 화살에 묶어서 쏘아넣은 글이 이미 의계(議啓)하는 가운데 들어갔으니, 수상으로 있는 자가 태연스럽고 편안하게 얼굴을 들고 행공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반드시 대신에게 부(符)를 내어준다고 말을 한 것은, 그가 해치려고 하는 마음이 더욱 신의 몸에 있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 말씀드리자면, 반드시 눈앞의 급한 난(亂)은 없을 듯합니다. 거기에 ‘28일’로 말을 한 것은 참으로 우언(寓言)이며, 또 그 끝에 ‘일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 것은 반드시 없을 일이므로 그 말이 또 반드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위협을 당하고 내몰리고 강제당할 자의 성(姓)만 말하고 누가 주장하였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또 그 끝에다가 ‘신목 신수 신산 신풍 신석 신단(臣木臣水臣山臣風臣石臣短)’이라고만 써서 마치 귀신들의 말과 같아 얼떨떨하여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허다한 사설(辭說)은 단지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키는 것으로, 한바탕 맹랑한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이를 근거로 삼아 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눈앞에 흉격에서 말한 것과 같은 난은 없을 것임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흉언(兇言)에 대해서는 불가불 멀리 물러가서 피하여야 함이 어찌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비록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신하이기는 하나 역시 일찍이 군신의 의리에 대해서는 들었으니, 극악(極惡)스런 일은 역시 하지 않을 자입니다.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물러나서 시골에서 늙는 자가 고금에 서로 잇달아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처럼 망극하고 불측한 말을 만났는데이겠습니까. 신이 비록 아주 우둔하고 하찮기는 하나,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실로 옛사람들보다 못하지가 않습니다. 지난해의 차자에서 말한 ‘대례를 치른 뒤, 좌상이 물러간 것과 같이 나가겠다.’고 한 것은, 사직서를 올려도 체차가 지연되므로, 좌상이 말미를 받지 않고서도 차자를 올리고서 떠나간 것과 같이 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속언(俗言)에 ‘정승 자리에서 3년을 지내면 반드시 일을 그르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가 지금 이미 4년이나 되었으니 진실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구나 이러한 변고가 있는데이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감히 잠시도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만약 난이 일어날 것인데도 나간다면 신이 도피한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현재 사직이 막 안정되어서 반드시 이러한 난이 없을 것이며, 상신(相臣)으로서 이러한 흉언을 만났으니, 비록 옛사람으로 하여금 처신하게 하더라도 반드시 마음을 편히 가지지 못하고 급급히 떠나갈 것입니다.
선왕조 때 어떤 간사한 자가 근거도 없는 말을 얽어내어서, 신이 장차 동궁을 모함한 사람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동궁을 모함하였다고 떠들어대며 의기양양하게 으시대고 방자하게 날뛰면서 조정의 사대부들을 모두 죽이고자 하였었습니다. 이번에 이 흉격을 쓴 사람이 비록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신이 역적에게 강제당할 것이라고 하면서 격문을 날려서 드러내었으니, 간사한 자의 하는 짓이 앞뒤가 똑같습니다.
일찍이 듣건대, 어떤 사람이 허성(許檎) 등이 역적질을 한다고 써서 대궐에 던져 넣었는데 【위에서 ‘이것은 반드시 아무가 한 짓이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전후의 간사한 자의 하는 짓이 이와 같이 서로 같으니, 이 역시 괴이한 일입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가득 차는 것이 두려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재주도 없고 덕도 없으면서 오랫동안 수상 자리에 있었으니 그 가득 찬 것이 이미 극도에 이른 것입니다. 또 일찍이 듣건대, 사시(四時)의 절서(節序)는 공을 이룬 것이 떠나가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두 번이나 훈적(勳籍)에 참여되었으니 공을 이루었다고 할 만합니다. 공이 이루어졌는데도 물러가지 않는다면 어찌 재앙이 되지 않겠습니까. 간사한 자도 필시 찼다가는 비고 없어졌다가는 다시 생기는 시운(時運)의 이치에 대해 소견이 있어서, 신의 복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이에 흉서를 만들어서 먼저 성상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또 반드시 천백 가지의 괴상한 말을 만들어 내어서 기어이 자신의 속셈을 이루고 말려는 것입니다.
모든 관료들이 다 훌륭하여 조정에 다른 신하가 없는 것도 아니니 누군들 정승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가령 신이 병들어 죽었을 경우 신의 대임자를 선출하지 않겠습니까. 좌상이 지금 이미 82세가 되어서 나이도 많고 덕도 높으니, 삼가 바라건대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고 좌상으로 하여금 수상이 되게 해서 그로 하여금 세상을 진정시키게 하소서. 그리고 신 역시 평생 동안 품어왔던 시골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이루어, 마치 동한(東漢)의 상자평(向子平)024)  의 무리와 같게 해 주는 것도 역시 한 가지 좋은 일일 것입니다. 밀부(密符)는 황공하여서 즉시 도로 올리지 못하고 공손히 체직의 명을 기다립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말하였습니다."
하였다.【 【이 당시에 그 흉격을 본 자들은 모두 허균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기자헌의 이 상소에서도 역시 은어를 써서 드러내었는데, 상소 가운데 ‘허(許)’ 자를 많이 썼으며, 또 인용한 몇 가지 일이 은연중에 허균을 지적한 것이다.】 】


[註 024] 상자평(向子平) : 자평은 후한(後漢)의 가인(歌人)인 상장(向長)의 자(字)임. 은거한 채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뒤에 오악(五岳) 명산(名山)을 두루 유람하였으며, 어디에서 죽었는지 모른다. 《후한서(後漢書)》 일민(逸民) 향장전(向長傳).

 

병조 판서 박승종이 상차하기를, "신이 삼가 보건대, 어제 대간이 피혐하는 가운데 인혐(引嫌)하는 말에 비록 이름을 드러내놓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신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 듯합니다. 신은 직질은 극히 외람스럽게 높으나 한 유사(有司)에 불과할 뿐입니다. 국가의 대사에 있어서는 자연 대신과 대간이 있는데, 신을 두고 ‘인혐하면서 배회한다.’고 몰아붙이니, 역시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다만 속히 죽고자 하나 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위태롭고 절박한 처지를 양찰하시어 특별히 신의 직을 체차해 주소서. 간절히 바라 마지 않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경은 왕실과 인척관계이니 무슨 배회하는 태도가 있었겠는가. 다만 그날 내가 의계하라고 두 번이나 명하였는데도 미리 방비하는 계책에 대해 끝내 의계하지 않아서 내가 몹시 괴이하게 여겼었다. 내몬다는 뜻의 ‘구(驅)’ 자 한 자는 임금의 죄를 나열한 흉언과 비교하여 볼 때 어떠한가? 이와 같은 흉악한 도당들의 말로 인피하지 말라. 그리고는 사직을 안정시킬 것으로 마음을 먹어 더욱더 역적을 토벌하는 데 힘써서 내가 의지하는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신이 삼가 보건대, 어제 대간이 피혐하는 가운데 인혐(引嫌)하는 말에 비록 이름을 드러내놓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신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 듯합니다. 신은 직질은 극히 외람스럽게 높으나 한 유사(有司)에 불과할 뿐입니다. 국가의 대사에 있어서는 자연 대신과 대간이 있는데, 신을 두고 ‘인혐하면서 배회한다.’고 몰아붙이니, 역시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다만 속히 죽고자 하나 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위태롭고 절박한 처지를 양찰하시어 특별히 신의 직을 체차해 주소서. 간절히 바라 마지 않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경은 왕실과 인척관계이니 무슨 배회하는 태도가 있었겠는가. 다만 그날 내가 의계하라고 두 번이나 명하였는데도 미리 방비하는 계책에 대해 끝내 의계하지 않아서 내가 몹시 괴이하게 여겼었다. 내몬다는 뜻의 ‘구(驅)’ 자 한 자는 임금의 죄를 나열한 흉언과 비교하여 볼 때 어떠한가? 이와 같은 흉악한 도당들의 말로 인피하지 말라. 그리고는 사직을 안정시킬 것으로 마음을 먹어 더욱더 역적을 토벌하는 데 힘써서 내가 의지하는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홍문관 상차하기를, "대사헌 이하와 대사간 이하를 모두 출사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대사헌 이하와 대사간 이하를 모두 출사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이미 화살에 묶어서 투서한 변고가 있었다. 그런데 대신은 의계하지 않고 도피하였고 금부 역시 의계하지 않고 있다. 이에 미리 방비하는 계책과 역적을 체포하는 모의에 대해 한 사람도 건의하여서 종묘 사직을 보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어찌된 연고인가? 그러니 내가 누구와 더불어 계책을 세우겠는가. 부끄럽고 애통할 뿐이다. 옛사람 중에는 천금(千金)·만가(萬家)를 현상금으로 내걸고 사들이기를 도모한 자도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중한 상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진짜 역적을 고발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러니 고시(告示)하기를 ‘이 역모를 한 자를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은 1천 냥을 상금으로 주고 1등 공신에 녹훈하며, 부원군에 봉해주고 그 자식·사위·동생·조카는 모두 실직에 제수하겠다. 만약 함께 역모를 꾸민 자가 와서 고발할 경우에는 은 1천 5백 냥을 상금으로 주고 1등 공신에 녹훈하고 부원군에 봉하며 그의 자식·사위·동생·조카는 모두 실직 당상(實職堂上)에 제수하겠다. 무고(誣告)한 자는 반좌율(反坐律)을 받을 것이다. 나는 식언(食言)을 하지 않으니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을 속인다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유시해서 분명하게 알리라. 이상의 고시문을 오늘 안으로 백패(白牌)에다 써서 급급히 종루(鍾樓)의 가로(街路)와 동대문·남대문의 길에다 세우되, 동지의금부사 윤수민(尹壽民)으로 하여금 금부 도사를 거느리고 가서 세우게 하라."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이미 화살에 묶어서 투서한 변고가 있었다. 그런데 대신은 의계하지 않고 도피하였고 금부 역시 의계하지 않고 있다. 이에 미리 방비하는 계책과 역적을 체포하는 모의에 대해 한 사람도 건의하여서 종묘 사직을 보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어찌된 연고인가? 그러니 내가 누구와 더불어 계책을 세우겠는가. 부끄럽고 애통할 뿐이다.
옛사람 중에는 천금(千金)·만가(萬家)를 현상금으로 내걸고 사들이기를 도모한 자도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중한 상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진짜 역적을 고발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러니 고시(告示)하기를 ‘이 역모를 한 자를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은 1천 냥을 상금으로 주고 1등 공신에 녹훈하며, 부원군에 봉해주고 그 자식·사위·동생·조카는 모두 실직에 제수하겠다. 만약 함께 역모를 꾸민 자가 와서 고발할 경우에는 은 1천 5백 냥을 상금으로 주고 1등 공신에 녹훈하고 부원군에 봉하며 그의 자식·사위·동생·조카는 모두 실직 당상(實職堂上)에 제수하겠다. 무고(誣告)한 자는 반좌율(反坐律)을 받을 것이다. 나는 식언(食言)을 하지 않으니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을 속인다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유시해서 분명하게 알리라. 이상의 고시문을 오늘 안으로 백패(白牌)에다 써서 급급히 종루(鍾樓)의 가로(街路)와 동대문·남대문의 길에다 세우되, 동지의금부사 윤수민(尹壽民)으로 하여금 금부 도사를 거느리고 가서 세우게 하라."

 

판의금부사 박승종, 동지의금부사 이경함(李慶涵)·유몽인(柳夢寅)·윤수민(尹壽民)이 아뢰기를, "이번의 이 흉격의 변고는 참으로 천고에 없던 일입니다. 신들이 처음 흉서를 보고는 간담이 떨리고 혼백이 놀라서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분통을 터뜨렸으며, 간담이 찢어지는 것과 같아 진짜 역적을 잡아서 천 토막 만 토막으로 저미고 싶었는바, 이 역적을 잡기 전에는 신들은 차라리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회계할 때 부질없이 통분스러운 마음만 절실한 채, 죄인을 잡을 방도를 얻지 못하여, 며칠 동안 침식을 잊고는 밤낮없이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충성스럽지 못하고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죄가 도망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성상의 분부에 의거해서 급급히 거행할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이번의 이 흉격의 변고는 참으로 천고에 없던 일입니다. 신들이 처음 흉서를 보고는 간담이 떨리고 혼백이 놀라서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분통을 터뜨렸으며, 간담이 찢어지는 것과 같아 진짜 역적을 잡아서 천 토막 만 토막으로 저미고 싶었는바, 이 역적을 잡기 전에는 신들은 차라리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회계할 때 부질없이 통분스러운 마음만 절실한 채, 죄인을 잡을 방도를 얻지 못하여, 며칠 동안 침식을 잊고는 밤낮없이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충성스럽지 못하고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죄가 도망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성상의 분부에 의거해서 급급히 거행할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이정원(李挺元)을 검상으로, 유희분(柳希奮)을 우빈객으로, 이대엽(李大燁)을 병조 참지로, 박정길(朴鼎吉)을 전한으로, 정광경(鄭廣敬)을 응교로, 한희(韓暿)를 수찬으로, 이사맹(李師孟)을 병조 좌랑으로, 채승선(蔡承先)을 정언으로, 이창후(李昌後)를 필선으로, 이강(李茳)을 사서로, 박종윤(朴宗胤)을 검열로, 유순익(柳舜翼)을 판결사로, 서국정(徐國楨)을 설서로, 정광성(鄭廣誠)을 부제학으로, 조유선(趙裕善)을 수찬으로, 【조국필(趙國弼)의 아들이다. 나이가 어려서 글을 몰랐는데, 정심(鄭沁)이 대신 지어주어 과거에 불법으로 합격하였다.】 윤선(尹銑)을 판윤으로, 이문빈(李文賓)을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서얼로 음직(蔭職)을 받은 자인데, 궁중 안에 빌붙어서 중진(重鎭)에 제수되었다.】 심즙(沈諿)을 사예로, 목취선(睦取善)을 함경 도사로 삼았다.】

 

1월 27일 계사

전교하였다. "우상에게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해서 속히 출사하게 하라."
"우상에게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해서 속히 출사하게 하라."

 

지평 남궁경, 정언 홍요검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헌납 유여각(柳汝恪)이 인피한 말을 보건대, 잘못 쓴 것을 그대로 읽은 잘못과 어리석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죄가 모두 모면키 어렵습니다. 옥당의 관원이 완의(完議)하여 처치할 즈음에, 혹 출사시켜서는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나간 자가 있었으니, 어찌 그 뜻이 없겠습니까. 더구나 신들이 직무에 나아가던 날 대청(臺廳)에서 ‘옥당에서는 잘못 쓴 관원을 체직하고자 하나 나의 뜻은 성상소(城上所)를 체직해야 마땅할 듯하다.’고 하는 말이 있어서, 신들이 즉시 사유를 갖추어 다시 피혐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섭하시는 중에 계시기에 한갓 번거롭게 아뢰는 것이 온당치 못함만 알고서 얼굴을 들고 행공한 지 이미 여러 날 되었습니다. 동료들이 이미 이를 이유로 인피하고 출사하지 않고 있으니, 신들이 아무리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자리를 탐내어 구차하게 무릅쓰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속히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삼가 헌납 유여각(柳汝恪)이 인피한 말을 보건대, 잘못 쓴 것을 그대로 읽은 잘못과 어리석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죄가 모두 모면키 어렵습니다. 옥당의 관원이 완의(完議)하여 처치할 즈음에, 혹 출사시켜서는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나간 자가 있었으니, 어찌 그 뜻이 없겠습니까. 더구나 신들이 직무에 나아가던 날 대청(臺廳)에서 ‘옥당에서는 잘못 쓴 관원을 체직하고자 하나 나의 뜻은 성상소(城上所)를 체직해야 마땅할 듯하다.’고 하는 말이 있어서, 신들이 즉시 사유를 갖추어 다시 피혐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섭하시는 중에 계시기에 한갓 번거롭게 아뢰는 것이 온당치 못함만 알고서 얼굴을 들고 행공한 지 이미 여러 날 되었습니다. 동료들이 이미 이를 이유로 인피하고 출사하지 않고 있으니, 신들이 아무리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자리를 탐내어 구차하게 무릅쓰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속히 신들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금부의 당상을 명초하라."
"금부의 당상을 명초하라."

 

양사가 합계하여 연계하기를, "귀천군 이수의 죄악은 금산군 이성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성윤은 이미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하였는데도 이수는 멀리 유배보내는 데 그쳤습니다. 이미 위리 안치하지도 않고 또 잡아다가 국문하지도 않은 채 매번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전교하시어, 공론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여론이 더욱 울적해 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결단을 내리소서.  행 사정 이광영(李光英)은 본디 흉악하고 독살스러운 자로서 이성윤과 이웃해 살면서 그의 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밤낮으로 서로 모여 음모와 밀계를 꾸미었는데, 못하는 짓이 없었으며, 이성윤의 뒤를 이어서 발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성윤이 패한 뒤에 미쳐서는 스스로 혼자만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근거없는 말을 지어내어 허다한 무사(武士)들을 동요시켜 사람마다 모두 안정치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그의 여러 아들들을 시켜서 윤선도의 말을 주워 모아서 이성윤을 구원하고자 하였으니, 그 속셈이 더욱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종실이 상소를 올리는 것은 변고가 이미 극심한 것이며, 무장(武將)이 무리를 거느리고 상소를 올리니 장차 무슨 짓을 하려는 것입니까. 나라 사람들의 말이 흉흉하여 모두들 놀랍고 괴이하게 여깁니다. 속히 절도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여서 무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소서. 급제(及第) 조희일(趙希逸)은 젊었을 때 김광욱(金光煜)과 함께 모두 역적 송유진(宋儒眞)의 옥사에 나왔었는데 요행히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김제남의 난(亂)에 죄인 심광세(沈光世)와 함께 역적 정협(鄭浹)의 초사(招辭)에 나온 것이 아주 긴요하고 중하여서, 양사가 번갈아 상소를 올려 유배보내기를 청하였는데, 광세에 대해서는 윤허를 받았으나 그만은 다행히 모면하였습니다. 이에 편안하게 도성에 살면서 오히려 악을 뉘우치지 않고 더욱더 독기를 부려서 불령스러운 무리들을 끌어모아 몰래 보복할 계획을 세웠는데,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어서 온 나라가 놀랍고 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속히 먼 변방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여서 화의 근원을 끊으소서. 박홍도는 속히 먼 변방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이광영과 조희일에 대해서는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조희일은 재주와 학식으로 당세에 이름이 났었는데, 폐기된 채 성안에 살면서 자못 글과 술로 손들을 끌어모았다. 또 그의 표제(表弟)인 이위경(李偉卿) 및 허균(許筠)과 틈이 있었다. 이광영(李光英)은 무관(武官)으로서 청렴하고 곧다는 이름이 있었고, 그의 아들 두 사람이 여러 선비들이 상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여 모두 시류(時流)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이 때에 이르러 기자헌이 흉격(兇檄)은 허균 등이 한 짓이라고 은연중에 지적하자, 허균 등이 왕이 그 사실을 알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급급히 이 논의를 내어 두 신하를 유배보내고서, 비밀히 그의 당여 40여 명에게 알려 삼청동(三淸洞)에 몰래 모이게 해, 변란을 일으켜서 차례대로 죽이고 유배보내려고 하였다. 이에 조희일과 이광영이 모두 당연히 죽을 줄 알고 떠나갔는데, 유희분(柳希奮)이 민인길(閔仁佶)의 말을 발설하여 허균의 자취가 모두 드러났으며, 대간이 도리어 변명하기를 ‘조희일은 폐기된 중에 있으면서 손들을 끌어모은 죄를 지은 데 불과할 뿐 흉격을 던져넣은 일에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허균은 오히려 크게 떠들어 대기를 ‘격문에 변려문을 쓰면서 은어(隱語)가 많으니 이것은 반드시 조찬한(趙纘韓)의 솜씨다.’고 하였는데, 이는 대개 조희일을 모주(謀主)로 삼고자 해서 조찬한이 지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
"귀천군 이수의 죄악은 금산군 이성윤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성윤은 이미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하였는데도 이수는 멀리 유배보내는 데 그쳤습니다. 이미 위리 안치하지도 않고 또 잡아다가 국문하지도 않은 채 매번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전교하시어, 공론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여론이 더욱 울적해 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머뭇거리지 마시고 속히 결단을 내리소서.
행 사정 이광영(李光英)은 본디 흉악하고 독살스러운 자로서 이성윤과 이웃해 살면서 그의 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밤낮으로 서로 모여 음모와 밀계를 꾸미었는데, 못하는 짓이 없었으며, 이성윤의 뒤를 이어서 발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성윤이 패한 뒤에 미쳐서는 스스로 혼자만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근거없는 말을 지어내어 허다한 무사(武士)들을 동요시켜 사람마다 모두 안정치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그의 여러 아들들을 시켜서 윤선도의 말을 주워 모아서 이성윤을 구원하고자 하였으니, 그 속셈이 더욱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종실이 상소를 올리는 것은 변고가 이미 극심한 것이며, 무장(武將)이 무리를 거느리고 상소를 올리니 장차 무슨 짓을 하려는 것입니까. 나라 사람들의 말이 흉흉하여 모두들 놀랍고 괴이하게 여깁니다. 속히 절도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여서 무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소서.
급제(及第) 조희일(趙希逸)은 젊었을 때 김광욱(金光煜)과 함께 모두 역적 송유진(宋儒眞)의 옥사에 나왔었는데 요행히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김제남의 난(亂)에 죄인 심광세(沈光世)와 함께 역적 정협(鄭浹)의 초사(招辭)에 나온 것이 아주 긴요하고 중하여서, 양사가 번갈아 상소를 올려 유배보내기를 청하였는데, 광세에 대해서는 윤허를 받았으나 그만은 다행히 모면하였습니다. 이에 편안하게 도성에 살면서 오히려 악을 뉘우치지 않고 더욱더 독기를 부려서 불령스러운 무리들을 끌어모아 몰래 보복할 계획을 세웠는데,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어서 온 나라가 놀랍고 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속히 먼 변방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여서 화의 근원을 끊으소서. 박홍도는 속히 먼 변방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이광영과 조희일에 대해서는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조희일은 재주와 학식으로 당세에 이름이 났었는데, 폐기된 채 성안에 살면서 자못 글과 술로 손들을 끌어모았다. 또 그의 표제(表弟)인 이위경(李偉卿) 및 허균(許筠)과 틈이 있었다. 이광영(李光英)은 무관(武官)으로서 청렴하고 곧다는 이름이 있었고, 그의 아들 두 사람이 여러 선비들이 상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여 모두 시류(時流)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이 때에 이르러 기자헌이 흉격(兇檄)은 허균 등이 한 짓이라고 은연중에 지적하자, 허균 등이 왕이 그 사실을 알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급급히 이 논의를 내어 두 신하를 유배보내고서, 비밀히 그의 당여 40여 명에게 알려 삼청동(三淸洞)에 몰래 모이게 해, 변란을 일으켜서 차례대로 죽이고 유배보내려고 하였다. 이에 조희일과 이광영이 모두 당연히 죽을 줄 알고 떠나갔는데, 유희분(柳希奮)이 민인길(閔仁佶)의 말을 발설하여 허균의 자취가 모두 드러났으며, 대간이 도리어 변명하기를 ‘조희일은 폐기된 중에 있으면서 손들을 끌어모은 죄를 지은 데 불과할 뿐 흉격을 던져넣은 일에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허균은 오히려 크게 떠들어 대기를 ‘격문에 변려문을 쓰면서 은어(隱語)가 많으니 이것은 반드시 조찬한(趙纘韓)의 솜씨다.’고 하였는데, 이는 대개 조희일을 모주(謀主)로 삼고자 해서 조찬한이 지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

 

합사해서 연계하여 세 역적을 위리 안치시키도록 청하니, 답하기를, "허욱(許頊)은 선조(先朝)의 대신으로서 스스로 죄를 지었을 리가 만무한 바, 유영경과는 차이가 있으며, 최천건(崔天健)은 기록할 만한 정성이 있으니, 결단코 위리 안치시킬 수 없다. 성영(成泳)은 이미 멀리 내쫓았으니 위리 안치시키는 것은 지나치다. 내가 이미 참작하여 죄를 정하였으니 번거롭게 고집부리지 말라." 하였다.
"허욱(許頊)은 선조(先朝)의 대신으로서 스스로 죄를 지었을 리가 만무한 바, 유영경과는 차이가 있으며, 최천건(崔天健)은 기록할 만한 정성이 있으니, 결단코 위리 안치시킬 수 없다. 성영(成泳)은 이미 멀리 내쫓았으니 위리 안치시키는 것은 지나치다. 내가 이미 참작하여 죄를 정하였으니 번거롭게 고집부리지 말라."
하였다.

 

김제남의 집, 남산(南山), 삼청동(三淸洞), 타락산(駝駱山)의 곡성(曲城) 등처를 내척간(內擲奸)하였다.

 

좌의정 정인홍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현재 국사의 위태로움이 지난해보다도 더 심한 점이 있다. 봄날씨가 따뜻해지면 길을 떠나기가 아주 편할 것이다. 경은 안심하고서 사직하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와서 국난에 달려 나와 나의 소망에 부응하라." 하였다.
"현재 국사의 위태로움이 지난해보다도 더 심한 점이 있다. 봄날씨가 따뜻해지면 길을 떠나기가 아주 편할 것이다. 경은 안심하고서 사직하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와서 국난에 달려 나와 나의 소망에 부응하라."
하였다.

 

1월 28일 갑오

검열 서국정(徐國楨)이 영상에게 가서 도타이 유시한 뒤에 서계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내용은 모두 알았다. 어려움에 임하여 임금을 버린다는 말을,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는데, 불행히도 오늘날에 경에게서 징험하게 되었다. 비록 화란(禍亂)이 숨어 있고 간사한 자가 경을 모함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의논하여 잘 대처함에 있어서 어찌 그 방도가 없겠는가. 경은 이러한 때에 어찌 차마 나를 버리고 떠나간 채 조금도 뜻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가. 역적의 옥사가 잇달아 일어나서 부득불 다스렸으니, 그 가운데 어찌 원망을 품고 반란을 생각하는 자가 없겠는가. 흉도들이 많이 퍼져 있는데 역적을 토벌함이 엄하지 않고, 변괴가 갖가지로 나와 국가의 형세가 어렵고 염려스럽다. 이에 나는 임금 노릇 하는 즐거움은 없고 항상 몸이 떨려 위태롭고 두렵다. 그런데도 경은 지금 도리어 태평시대라고 하고 있으니, 내가 삼가 의혹스럽다. 더구나 대례(大禮)가 임박하였으니, 지금이 어찌 대신이 몸을 거두어서 물러갈 시기이겠는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속히 올라오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영상에게 비답을 보내되, 승지가 가서 유시를 전하라." 하였다. 이에 동부승지 이홍주(李弘胄)가 내려갔다.
"아뢴 내용은 모두 알았다. 어려움에 임하여 임금을 버린다는 말을,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는데, 불행히도 오늘날에 경에게서 징험하게 되었다. 비록 화란(禍亂)이 숨어 있고 간사한 자가 경을 모함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의논하여 잘 대처함에 있어서 어찌 그 방도가 없겠는가. 경은 이러한 때에 어찌 차마 나를 버리고 떠나간 채 조금도 뜻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가. 역적의 옥사가 잇달아 일어나서 부득불 다스렸으니, 그 가운데 어찌 원망을 품고 반란을 생각하는 자가 없겠는가. 흉도들이 많이 퍼져 있는데 역적을 토벌함이 엄하지 않고, 변괴가 갖가지로 나와 국가의 형세가 어렵고 염려스럽다. 이에 나는 임금 노릇 하는 즐거움은 없고 항상 몸이 떨려 위태롭고 두렵다. 그런데도 경은 지금 도리어 태평시대라고 하고 있으니, 내가 삼가 의혹스럽다. 더구나 대례(大禮)가 임박하였으니, 지금이 어찌 대신이 몸을 거두어서 물러갈 시기이겠는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속히 올라오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영상에게 비답을 보내되, 승지가 가서 유시를 전하라."
하였다. 이에 동부승지 이홍주(李弘胄)가 내려갔다.

 

약방이 문안하니, 답하기를, "국사가 위급한데도 시임(時任)과 원임(原任) 대신이 떠나가거나 혹 출사하지 않아서 한 사람도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담당하여 종묘 사직을 보위하는 사람이 없으니, 대신이 나라를 위하여 마음을 다하는 의리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병중에 몹시도 마음이 아프다. 나의 증세는 마찬가지이다." 하였다.
"국사가 위급한데도 시임(時任)과 원임(原任) 대신이 떠나가거나 혹 출사하지 않아서 한 사람도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담당하여 종묘 사직을 보위하는 사람이 없으니, 대신이 나라를 위하여 마음을 다하는 의리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병중에 몹시도 마음이 아프다. 나의 증세는 마찬가지이다."
하였다.

 

이광영(李光英)을 진도(珍島)에, 조희일(趙希逸)을 이산(理山)에 위리 안치하였다.

 

전교하였다. "선수 도감의 도청(都廳) 조유도(趙有道)를 출사하게 해서 직무를 보게 하라."
"선수 도감의 도청(都廳) 조유도(趙有道)를 출사하게 해서 직무를 보게 하라."

 

사헌부가 아뢰기를, "근래에 호위하고 기찰하는 등의 일에 대해서 특히 엄밀하게 하라고 전후에 전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제 경운궁(慶運宮)을 내척간(內擲奸)할 때 대장과 별장·종사관들 가운데 한 사람도 자리에 있는 자가 없었으니, 몹시 놀랍습니다.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근래에 호위하고 기찰하는 등의 일에 대해서 특히 엄밀하게 하라고 전후에 전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제 경운궁(慶運宮)을 내척간(內擲奸)할 때 대장과 별장·종사관들 가운데 한 사람도 자리에 있는 자가 없었으니, 몹시 놀랍습니다.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해 세 역적을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계하여 연계해서 귀천군 이수와 박홍도를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우선 처치하기를 기다리고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상차하여 아뢰기를, "신이 고질병을 앓아 죽게 된 상황은 이미 앞뒤로 올린 사직 차자에서 모두 말씀드렸기에 감히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소명(召命)이 거듭 내리고, 계속해서 특별히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하기를 정녕스럽게 하였습니다. 신은 늙어 병들고 우활하여서 전혀 식견이 없으며, 벼슬에서 사퇴(仕退)한 뒤에는 상대하는 자가 처자식뿐으로, 시의(時議)와 세변(世變)에 대해서는 어떠한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수의(收議)할 때 신은 이미 그 상소의 내용을 모르고 또 어떠한 사람인지도 몰라서, 단지 옛 의리만을 들어서 언로(言路)를 열라고만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물의가 시끄럽게 일어나서 역적에 아첨하였다고 지목하였습니다. 역적질한다는 ‘역(逆)’ 한 글자는 신하와 자식의 극악대죄인 것으로, 진실로 추호라도 역적에게 아부하였다면 성스런 임금과 자애로운 아비라도 그 신하와 자식에 대해서 사사로이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이러한 죄명을 지고서는 감히 잠시도 성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으로 나가서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병이 다시 심해져서 날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노신이 비록 형편없다 하더라도 땅속으로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에, 어찌 감히 외람되고 범범한 말로 성상을 속이겠습니까. 물의야 돌아볼 겨를이 없지만 성상의 분부는 결단코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늙음과 병들음이 모두 심하여 목숨이 실낱과 같아서 침상에 누운 채 단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지 않다면 신이 목석(木石)이 아닌데 이처럼 국가가 어려운 날을 당하여서 어찌 감히 다시 하찮은 신의 병으로 성상께 아뢰겠습니까. 삼가 성상께서는 속히 본직을 체직하시어 공사간에 편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처럼 어렵고 걱정스러운 때를 당하여서 대신은 의당 국가의 급함을 앞세워야지, 어찌 작은 혐의를 따지겠는가. 모름지기 나의 뜻을 잘 체득해서 속히 출사하여서 국사에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이날 왕이 흉격(兇檄)에서 대궐을 침범하기로 약속한 날이라는 이유로 밤을 세워서 궁성을 계엄(戒嚴)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병조 판서 박승종이 친히 갑옷을 입고 말고삐를 잡고서 돈화문(敦化門)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으며, 여러 장수들이 각 문을 나누어 지키고 백관들이 대궐 밖에 나와서 변에 대비하였다. 이이첨은 장차 나가려 하면서 그의 처자식과 여러 권속들을 모아놓고는 검 하나를 주면서 말하기를 ‘오늘 역적들이 패한다면 큰 복이다. 그러나 만일 불행하게 될 경우에는 내가 목숨을 바칠 날이다. 너희들은 후원에 모여 있다가 우리 편이 패하였다고 들으면 곧 이 검으로 자결해서 역적들의 손에 죽지 말도록 하라.’ 하였는데, 그의 처자식과 권속들이 밤새도록 모여서 슬피 울다가 흩어졌다. 그가 사람들을 속이는 술수를 부림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처자식들을 속여 사람들이 믿게 하는 것이 대부분 이와 같았다.
"신이 고질병을 앓아 죽게 된 상황은 이미 앞뒤로 올린 사직 차자에서 모두 말씀드렸기에 감히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소명(召命)이 거듭 내리고, 계속해서 특별히 승지를 보내어 도타이 유시하기를 정녕스럽게 하였습니다. 신은 늙어 병들고 우활하여서 전혀 식견이 없으며, 벼슬에서 사퇴(仕退)한 뒤에는 상대하는 자가 처자식뿐으로, 시의(時議)와 세변(世變)에 대해서는 어떠한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수의(收議)할 때 신은 이미 그 상소의 내용을 모르고 또 어떠한 사람인지도 몰라서, 단지 옛 의리만을 들어서 언로(言路)를 열라고만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물의가 시끄럽게 일어나서 역적에 아첨하였다고 지목하였습니다. 역적질한다는 ‘역(逆)’ 한 글자는 신하와 자식의 극악대죄인 것으로, 진실로 추호라도 역적에게 아부하였다면 성스런 임금과 자애로운 아비라도 그 신하와 자식에 대해서 사사로이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이러한 죄명을 지고서는 감히 잠시도 성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으로 나가서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병이 다시 심해져서 날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노신이 비록 형편없다 하더라도 땅속으로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에, 어찌 감히 외람되고 범범한 말로 성상을 속이겠습니까. 물의야 돌아볼 겨를이 없지만 성상의 분부는 결단코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늙음과 병들음이 모두 심하여 목숨이 실낱과 같아서 침상에 누운 채 단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지 않다면 신이 목석(木石)이 아닌데 이처럼 국가가 어려운 날을 당하여서 어찌 감히 다시 하찮은 신의 병으로 성상께 아뢰겠습니까. 삼가 성상께서는 속히 본직을 체직하시어 공사간에 편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처럼 어렵고 걱정스러운 때를 당하여서 대신은 의당 국가의 급함을 앞세워야지, 어찌 작은 혐의를 따지겠는가. 모름지기 나의 뜻을 잘 체득해서 속히 출사하여서 국사에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이날 왕이 흉격(兇檄)에서 대궐을 침범하기로 약속한 날이라는 이유로 밤을 세워서 궁성을 계엄(戒嚴)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병조 판서 박승종이 친히 갑옷을 입고 말고삐를 잡고서 돈화문(敦化門)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으며, 여러 장수들이 각 문을 나누어 지키고 백관들이 대궐 밖에 나와서 변에 대비하였다. 이이첨은 장차 나가려 하면서 그의 처자식과 여러 권속들을 모아놓고는 검 하나를 주면서 말하기를 ‘오늘 역적들이 패한다면 큰 복이다. 그러나 만일 불행하게 될 경우에는 내가 목숨을 바칠 날이다. 너희들은 후원에 모여 있다가 우리 편이 패하였다고 들으면 곧 이 검으로 자결해서 역적들의 손에 죽지 말도록 하라.’ 하였는데, 그의 처자식과 권속들이 밤새도록 모여서 슬피 울다가 흩어졌다. 그가 사람들을 속이는 술수를 부림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처자식들을 속여 사람들이 믿게 하는 것이 대부분 이와 같았다.

 

1월 29일 을미

선수 도감(繕修都監)이 아뢰기를, "새 궁궐을 짓는 것은 더할 수 없이 큰 거조로, 예전의 임금들은 이 한 가지 일에 대해서 모두들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비단 술사(術士)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여기저기 두루 물어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귀일된 뒤에도 오히려 주저하면서, 거북점을 쳐서 길흉을 판단하였으니, 그 신중히 한 뜻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근거할 수도 없는 한두 마디의 말만 믿고서 조종조에서 논한 적이 없던 곳에다 새로 짓고 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이 경솔히 해서는 안될 듯합니다. 신들이 비록 도감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나, 모두가 풍수설(風水說)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여서, 감독이나 하는 일개 유사일 뿐이니, 결단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들 중에 어찌 풍수설에 대해 잘 알아서 능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없겠습니까. 바라건대 널리 조정의 의논을 모아 일의 체모를 중하게 해서 조그만치도 미진한 점이 없게 하소서. 비단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을묘년은 조성(造城)하기에 아주 길한 해였는데도, 단지 명정전(明政殿)의 좌향(坐向)이 목성(木星)을 범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득이 대략 수리만 하였습니다. 그 다음해인 병진년 이후로 4, 5년 동안은 조성하기에 길한 해가 아니라고 하는데, 새로 잡은 터에 또 어찌 불길한 해에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해를 이은 큰 역사에 물력(物力)이 모두 고갈되었고 이미 민결(民結)도 징수해 낼 수 없는데, 도감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쌀과 포목으로는 몇달의 지공도 지탱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전(殿) 하나를 먼저 짓고자 하더라도 반드시 터를 닦고 담장을 쌓은 뒤에야 전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이 자본으로는 반드시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몹시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집을 짓기 전에 먼저 바깥 담장을 쌓는 것은 술가(術家)에서 금하는 것으로, 여염의 일반 사람들도 오히려 꺼리는데, 더구나 제왕이 거처하는 곳이겠습니까. 이상의 몇 가지 조항들이 갖가지로 곤란한바, 구구한 신들의 뜻을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다면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의논해 조처하라." 하였다.
"새 궁궐을 짓는 것은 더할 수 없이 큰 거조로, 예전의 임금들은 이 한 가지 일에 대해서 모두들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비단 술사(術士)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여기저기 두루 물어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귀일된 뒤에도 오히려 주저하면서, 거북점을 쳐서 길흉을 판단하였으니, 그 신중히 한 뜻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근거할 수도 없는 한두 마디의 말만 믿고서 조종조에서 논한 적이 없던 곳에다 새로 짓고 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이 경솔히 해서는 안될 듯합니다. 신들이 비록 도감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나, 모두가 풍수설(風水說)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여서, 감독이나 하는 일개 유사일 뿐이니, 결단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들 중에 어찌 풍수설에 대해 잘 알아서 능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없겠습니까. 바라건대 널리 조정의 의논을 모아 일의 체모를 중하게 해서 조그만치도 미진한 점이 없게 하소서.
비단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을묘년은 조성(造城)하기에 아주 길한 해였는데도, 단지 명정전(明政殿)의 좌향(坐向)이 목성(木星)을 범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득이 대략 수리만 하였습니다. 그 다음해인 병진년 이후로 4, 5년 동안은 조성하기에 길한 해가 아니라고 하는데, 새로 잡은 터에 또 어찌 불길한 해에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해를 이은 큰 역사에 물력(物力)이 모두 고갈되었고 이미 민결(民結)도 징수해 낼 수 없는데, 도감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쌀과 포목으로는 몇달의 지공도 지탱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전(殿) 하나를 먼저 짓고자 하더라도 반드시 터를 닦고 담장을 쌓은 뒤에야 전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이 자본으로는 반드시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몹시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집을 짓기 전에 먼저 바깥 담장을 쌓는 것은 술가(術家)에서 금하는 것으로, 여염의 일반 사람들도 오히려 꺼리는데, 더구나 제왕이 거처하는 곳이겠습니까. 이상의 몇 가지 조항들이 갖가지로 곤란한바, 구구한 신들의 뜻을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다면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의논해 조처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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