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13권, 광해 9년 1617년 3월

싸라리리 2026. 1. 1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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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병인

검열 김주하(金奏夏)가 아뢰기를, "신이 차자에 대한 비답을 가지고 영의정 기자헌에게 가서 유시하니, 기자헌이 글을 지어서 신에게 주었는데, 거기에 말하기를 ‘신은 대신의 반열에 있으면서 이미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는 일을 당하였으니, 대간이 정론(停論)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 스스로 대신인 체하면서 얼굴을 들고 공무를 집행하기에는 끝내 마땅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옛날의 일에서 살펴보더라도 어찌 이와 같은 상신(相臣)이 있었겠습니까. 성상의 분부가 이와 같으니 참으로 황공스럽습니다. 그러나 갖가지 병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침 학질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2, 3일 조리한 뒤에 나아가서 사은 숙배하고 명을 기다리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차자에 대한 비답을 가지고 영의정 기자헌에게 가서 유시하니, 기자헌이 글을 지어서 신에게 주었는데, 거기에 말하기를 ‘신은 대신의 반열에 있으면서 이미 잡아다가 국문하기를 청하는 일을 당하였으니, 대간이 정론(停論)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 스스로 대신인 체하면서 얼굴을 들고 공무를 집행하기에는 끝내 마땅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옛날의 일에서 살펴보더라도 어찌 이와 같은 상신(相臣)이 있었겠습니까. 성상의 분부가 이와 같으니 참으로 황공스럽습니다. 그러나 갖가지 병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침 학질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2, 3일 조리한 뒤에 나아가서 사은 숙배하고 명을 기다리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훈련도감이 아뢰기를, "대궐문 밖의 야직(夜直)을 지난번 성상의 분부로 인하여 유희분·이이첨·이충(李沖)이 지금까지 번갈아가면서 교대로 숙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유희분이 정사(呈辭)하고 말미를 받아서 이이첨과 이충이 날마다 교대로 숙직하게 되었는데, 질병과 사고를 미리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도청(都廳) 박정길(朴鼎吉) 역시 번갈아 가면서 숙직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대궐문 밖의 야직(夜直)을 지난번 성상의 분부로 인하여 유희분·이이첨·이충(李沖)이 지금까지 번갈아가면서 교대로 숙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유희분이 정사(呈辭)하고 말미를 받아서 이이첨과 이충이 날마다 교대로 숙직하게 되었는데, 질병과 사고를 미리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도청(都廳) 박정길(朴鼎吉) 역시 번갈아 가면서 숙직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3월 2일 정묘

병조 판서 박승종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의 간절한 뜻을 모두 알았다. 다만 이처럼 위급한 때를 당하여서는 병무(兵務)를 주관하고 옥사를 처리하는 일에 대해서 경이 실로 익숙하므로 결단코 체차하여 바꿀 수가 없다. 그러니 굳이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직무를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차자를 보고 경의 간절한 뜻을 모두 알았다. 다만 이처럼 위급한 때를 당하여서는 병무(兵務)를 주관하고 옥사를 처리하는 일에 대해서 경이 실로 익숙하므로 결단코 체차하여 바꿀 수가 없다. 그러니 굳이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직무를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3월 3일 무진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을 모사하여 그린 그림의 점정(點縺)을 13일 진시에 잘 살펴서 하라는 뜻으로 승지와 예관 등에게 하유하라. 그리고 미처 갖추지 못한 물품을 상방(尙方)에서 아무리 급하게 만들어 보낸다 하더라도 18일에 출발시키기는 반드시 어려울 것이며, 또 나 역시 병을 앓고 있으니 20일 뒤에 출발시키라. 그리고 4월 초순에 경성(京城)을 지날 때 지영(祗迎)하고 4월 10일 뒤에 봉안하도록 하라. 이상의 일을 날짜를 고쳐서 차차로 뒤로 물려 정하라는 뜻으로 해조에 말해 주라."
"영정(影幀)을 모사하여 그린 그림의 점정(點縺)을 13일 진시에 잘 살펴서 하라는 뜻으로 승지와 예관 등에게 하유하라. 그리고 미처 갖추지 못한 물품을 상방(尙方)에서 아무리 급하게 만들어 보낸다 하더라도 18일에 출발시키기는 반드시 어려울 것이며, 또 나 역시 병을 앓고 있으니 20일 뒤에 출발시키라. 그리고 4월 초순에 경성(京城)을 지날 때 지영(祗迎)하고 4월 10일 뒤에 봉안하도록 하라. 이상의 일을 날짜를 고쳐서 차차로 뒤로 물려 정하라는 뜻으로 해조에 말해 주라."

 

3월 4일 기사

전교하였다. "침의(針醫) 안언길(安彦吉)을 직책에 제수하라."
"침의(針醫) 안언길(安彦吉)을 직책에 제수하라."

 

미시(未時)에 태백이 오지(午地)에 나타났다.

 

3월 5일 경오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경이 들어온다고 듣고는 참으로 기뻤는데, 지금 이 글을 보니, 몹시 실망이 된다. 다만 대간의 논계가 이미 정지되었으니, 경은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국문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경이 들어온다고 듣고는 참으로 기뻤는데, 지금 이 글을 보니, 몹시 실망이 된다. 다만 대간의 논계가 이미 정지되었으니, 경은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국문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각도의 감사·병사·수사를 주의(注擬)하여 차출하는 것은 바로 해조의 책임인 것으로, 난리 뒤에 비록 비국(備局)에서 천망(薦望)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것은 원래 예전 규례가 아닙니다. 더구나 지금은 대신이 현재 출사하지 않고 있어서 비록 여러 당상들이 있기는 하나 마감(磨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병조로 하여금 차출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신이 이미 서울로 들어왔으니 출사한 뒤에 속히 의논하여 천거하라." 하였다.
"각도의 감사·병사·수사를 주의(注擬)하여 차출하는 것은 바로 해조의 책임인 것으로, 난리 뒤에 비록 비국(備局)에서 천망(薦望)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것은 원래 예전 규례가 아닙니다. 더구나 지금은 대신이 현재 출사하지 않고 있어서 비록 여러 당상들이 있기는 하나 마감(磨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병조로 하여금 차출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신이 이미 서울로 들어왔으니 출사한 뒤에 속히 의논하여 천거하라."
하였다.

 

미시(未時)에 태백이 오지(午地)에 나타났다.

 

3월 6일 신미

우의정 한효순이 열 번째 정사(呈辭)하니, 답하기를, "이러한 때 대신이 물러가 있어서는 안된다. 안심하고 조리하여 행공(行公)하라." 하였다.
"이러한 때 대신이 물러가 있어서는 안된다. 안심하고 조리하여 행공(行公)하라."
하였다.

 

병조 판서 박승종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지금 추국할 것이니 우선은 조리하고서 억지로라도 출사하여 옥사를 완결지으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지금 추국할 것이니 우선은 조리하고서 억지로라도 출사하여 옥사를 완결지으라."
하였다.

 

3월 7일 임신

관학 유생(館學儒生) 임기지(任器之) 등이 상소하여 문묘(文廟)의 비석을 다시 세워서 많은 선비들의 소망을 따라주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마땅히 유사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겠다."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이 태학(太學)의 상소를 해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마땅히 유사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겠다."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이 태학(太學)의 상소를 해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하였다.

 

3월 8일 계유

전교하였다. "평양에 영정을 봉안한 뒤 문과(文科)와 무과(武科) 시험을 한결같이 전주에서 영정을 봉안한 뒤 과거를 베푼 규례에 의거하여 살펴서 거행하라."
"평양에 영정을 봉안한 뒤 문과(文科)와 무과(武科) 시험을 한결같이 전주에서 영정을 봉안한 뒤 과거를 베푼 규례에 의거하여 살펴서 거행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각사의 외공(外貢)을 난리 뒤에 상정(詳定)할 때 눈앞에 당장 쓸 것만 계산하고 뒷날에 늘어날 것은 미처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외방의 공물이 일제히 한꺼번에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각사의 지용(支用)이 태반이나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다 가도록 납부하지 않고 있는 자가 있는데, 이에 공문을 보내어 독촉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팔도가 모두 마찬가지이니,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일제히 조사해서 3년이 지나도록 공물을 납부하지 않은 수령은 일일이 파직하되, 사면령을 내리기 전의 일이더라도 구분하지 말고 파직하여 뒷사람들을 징계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지난날에 난리가 끝난 지 얼마 안되어서 각 해사가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 마침 조사(詔使)가 나옴에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될까 염려되어, 본조에서 각사의 공물을 모두 거두어들여서 호조로 곧장 봉입(捧入)하여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변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분호조(分戶曹)’라고 이름하였는데, 부족한 것을 옮겨 쓰면서 그대로 설치해 두고 철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뒤로는 이른바 ‘분호조’란 것이 하나의 시장으로 되었습니다. 이에 좌아(坐衙)하고 있을 때에는 시정의 무뢰배들이 각자 물화(物貨)를 가지고 와 관아의 뜰을 가득 메운 채, 서로 이끗을 다투느라 뒤섞여서 떠들어대는데, 차마 보고 들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담당 낭관을 적임자를 뽑지 못해서, 연줄을 타고 청탁을 해 놀랄 만하고 침뱉을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 각사의 하인들은 공물의 수취권을 빼앗긴 뒤로는 살아갈 길이 없어서 날마다 와서 하소연하는데, 그 정상 역시 가련합니다. 성상께서 갖가지 폐단을 모두 통찰하시고 여러 차례 정파(停罷)하라는 하교를 내리셨습니다. 지난해 송순(宋諄)이 본조의 판서가 되었을 때 폐단의 정상에 대해 통렬히 진달하면서 정파하기를 청하여 입계해서 윤허를 받았는데, 그 뒤에 송순이 마침 체차당하여서 정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신 이충(李沖)이 본조의 판서가 된 뒤에 더욱더 각사가 감당할 수 없고 하리(下吏)들이 이끗을 노리는 것을 보고는, 전에 이루어진 공사(公事)를 준행해서 각사에 소속된 물품을 하나하나 도로 내려보낸 지 이미 여러 달이 되었습니다. 각사의 공물을 본조에서 한 데 거두어 모을 때에는 지공하기에 부족한 각사의 모든 물품을 본조에 요청하는 것이 마땅하며, 본조에서도 사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해사의 잡물(雜物)을 모두 도로 내려준 뒤에도 부족한 물품을 그대로 본조에 요청할 경우, 본조에서 무엇을 가지고 해사의 일을 대신 행할 수 있겠습니까. 비단 사체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단코 계속해서 시행할 만한 방법이 아닙니다. 1년 원공(元貢)의 숫자가 1년의 지공(支供)에 부족할 경우에는 긴요치 않은 공물을 줄여도 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더 정해도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난해의 잘못된 규례로 인하여 도로 내려준 것을 생각지 않고 전과 같이 진배(進排)하게 한다면, 호조에서도 역시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공물을 작미(作米)하는 일에 있어서는, 이번에 본 호조에서 각사를 취사 선택해서 작미하거나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체 전의 규정에 의거해서 하였으며, 제향(祭享)과 어공(御供)에 관계되는 것은, 성상의 분부에 따라서 작미하는 가운데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의 규례에서 상고해 보니, 봉상시(奉常寺)·전생서(典牲署)는 제향에 관계되고, 상의원(尙衣院)·사도시(司䆃寺)·사재감(司宰監)·장원서(掌苑署) 및 장흥고(長興庫)의 공상지(供上紙)는 어공에 관계되는데, 내섬시는 어공하는 각사 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초출(抄出)해서 본시에 행회(行會)하였습니다. 어공하는 각사로 논할 것 같으면, 내자시(內資寺)·사포서(司圃署)·제용감(濟用監)·의영고(義盈庫) 등 각사는 모두 어공을 진배하는 각사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만약 내섬시를 제외할 경우에는 이들 각사 역시 아울러 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모르겠습니다만 아무 탈 없이 작미할 수 있는 각사가 유독 어느 각사이겠습니까. 더구나 이들 각사의 공물은, 전에 모리배들이 방납(防納)할 때에는 이른바 사주인(私主人)이라고 하는 자들이 아무말없이 있었는데, 본조가 국가의 경비가 부족해서 사유를 갖추어 입계해 우연찮게 성사시킨 뒤에 미쳐서는 떠들어 대는 바가 있으니, 몹시 온당치 않습니다. 방납하는 사람들이 ‘본색(本色)의 숫자 역시 맞추어서 지급해 주지 않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조에서는 각종 공물에 대한 대가(代價)를 한결같이 그들의 말에 따라서 맞추어서 지급해 준 뒤에, 인정(人情)과 작지가(作紙價)에 이르러서도 다 지급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슨 그들의 뜻에 차지 않는 점이 있기에 반드시 그들의 마음에 맞게 된 연후에 그만두려고 한단 말입니까. 이 일은 또한 해마다 그대로 시행할 규정이 아니라, 금년에만 그렇게 하고 그만둘 것입니다. 이미 거두어들여서 반 정도를 구처(區處)하였으니, 지금 다시 합하여서 도로 줄 수 없습니다. 다른 각사의 예에 의거해 시행하소서. 그리고 시급히 써야 할 부족한 물품이 있을 경우에는 상규(常規)에 의거해서 여유가 있는 다른 각사에서 차하(上下)해 주도록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어찌 그 사에 보탬이 됨이 적겠습니까.  봉자전(奉慈殿)의 제향조(祭享條)에 이르러서는, 참깨·찹쌀·꿀 등의 물품을, 이러한 물품이 항상 부족할까 걱정되는 내자시·예빈시·내섬시 등 각사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내섬시 제조의 계사가 이와 같은데, 본시의 어공은 과연 다른 각사에 비해서 배는 됩니다. 그러니 수량 전부를 내섬시에 옮겨주도록 각도의 감사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번의 작미에 대한 곡절을 상세히는 알지 못하겠으나, 공물을 상납하는 것은 2백 년 동안 해내려온 규례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작미하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다. 금년에는 하되, 내년에는 절대로 작미하지 말라. 그리고 지난해에 이미 납부한 공물과 각사의 어공은 다른 사도 아울러 작미하지 말라. 이상의 일을 착실하게 거행하라." 하였다.
각사의 외공(外貢)을 난리 뒤에 상정(詳定)할 때 눈앞에 당장 쓸 것만 계산하고 뒷날에 늘어날 것은 미처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외방의 공물이 일제히 한꺼번에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각사의 지용(支用)이 태반이나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다 가도록 납부하지 않고 있는 자가 있는데, 이에 공문을 보내어 독촉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팔도가 모두 마찬가지이니,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일제히 조사해서 3년이 지나도록 공물을 납부하지 않은 수령은 일일이 파직하되, 사면령을 내리기 전의 일이더라도 구분하지 말고 파직하여 뒷사람들을 징계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지난날에 난리가 끝난 지 얼마 안되어서 각 해사가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 마침 조사(詔使)가 나옴에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될까 염려되어, 본조에서 각사의 공물을 모두 거두어들여서 호조로 곧장 봉입(捧入)하여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변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분호조(分戶曹)’라고 이름하였는데, 부족한 것을 옮겨 쓰면서 그대로 설치해 두고 철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뒤로는 이른바 ‘분호조’란 것이 하나의 시장으로 되었습니다. 이에 좌아(坐衙)하고 있을 때에는 시정의 무뢰배들이 각자 물화(物貨)를 가지고 와 관아의 뜰을 가득 메운 채, 서로 이끗을 다투느라 뒤섞여서 떠들어대는데, 차마 보고 들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담당 낭관을 적임자를 뽑지 못해서, 연줄을 타고 청탁을 해 놀랄 만하고 침뱉을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 각사의 하인들은 공물의 수취권을 빼앗긴 뒤로는 살아갈 길이 없어서 날마다 와서 하소연하는데, 그 정상 역시 가련합니다.
성상께서 갖가지 폐단을 모두 통찰하시고 여러 차례 정파(停罷)하라는 하교를 내리셨습니다. 지난해 송순(宋諄)이 본조의 판서가 되었을 때 폐단의 정상에 대해 통렬히 진달하면서 정파하기를 청하여 입계해서 윤허를 받았는데, 그 뒤에 송순이 마침 체차당하여서 정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신 이충(李沖)이 본조의 판서가 된 뒤에 더욱더 각사가 감당할 수 없고 하리(下吏)들이 이끗을 노리는 것을 보고는, 전에 이루어진 공사(公事)를 준행해서 각사에 소속된 물품을 하나하나 도로 내려보낸 지 이미 여러 달이 되었습니다.
각사의 공물을 본조에서 한 데 거두어 모을 때에는 지공하기에 부족한 각사의 모든 물품을 본조에 요청하는 것이 마땅하며, 본조에서도 사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해사의 잡물(雜物)을 모두 도로 내려준 뒤에도 부족한 물품을 그대로 본조에 요청할 경우, 본조에서 무엇을 가지고 해사의 일을 대신 행할 수 있겠습니까. 비단 사체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단코 계속해서 시행할 만한 방법이 아닙니다. 1년 원공(元貢)의 숫자가 1년의 지공(支供)에 부족할 경우에는 긴요치 않은 공물을 줄여도 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더 정해도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난해의 잘못된 규례로 인하여 도로 내려준 것을 생각지 않고 전과 같이 진배(進排)하게 한다면, 호조에서도 역시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공물을 작미(作米)하는 일에 있어서는, 이번에 본 호조에서 각사를 취사 선택해서 작미하거나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체 전의 규정에 의거해서 하였으며, 제향(祭享)과 어공(御供)에 관계되는 것은, 성상의 분부에 따라서 작미하는 가운데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의 규례에서 상고해 보니, 봉상시(奉常寺)·전생서(典牲署)는 제향에 관계되고, 상의원(尙衣院)·사도시(司䆃寺)·사재감(司宰監)·장원서(掌苑署) 및 장흥고(長興庫)의 공상지(供上紙)는 어공에 관계되는데, 내섬시는 어공하는 각사 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초출(抄出)해서 본시에 행회(行會)하였습니다. 어공하는 각사로 논할 것 같으면, 내자시(內資寺)·사포서(司圃署)·제용감(濟用監)·의영고(義盈庫) 등 각사는 모두 어공을 진배하는 각사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만약 내섬시를 제외할 경우에는 이들 각사 역시 아울러 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모르겠습니다만 아무 탈 없이 작미할 수 있는 각사가 유독 어느 각사이겠습니까. 더구나 이들 각사의 공물은, 전에 모리배들이 방납(防納)할 때에는 이른바 사주인(私主人)이라고 하는 자들이 아무말없이 있었는데, 본조가 국가의 경비가 부족해서 사유를 갖추어 입계해 우연찮게 성사시킨 뒤에 미쳐서는 떠들어 대는 바가 있으니, 몹시 온당치 않습니다.
방납하는 사람들이 ‘본색(本色)의 숫자 역시 맞추어서 지급해 주지 않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조에서는 각종 공물에 대한 대가(代價)를 한결같이 그들의 말에 따라서 맞추어서 지급해 준 뒤에, 인정(人情)과 작지가(作紙價)에 이르러서도 다 지급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슨 그들의 뜻에 차지 않는 점이 있기에 반드시 그들의 마음에 맞게 된 연후에 그만두려고 한단 말입니까. 이 일은 또한 해마다 그대로 시행할 규정이 아니라, 금년에만 그렇게 하고 그만둘 것입니다. 이미 거두어들여서 반 정도를 구처(區處)하였으니, 지금 다시 합하여서 도로 줄 수 없습니다. 다른 각사의 예에 의거해 시행하소서. 그리고 시급히 써야 할 부족한 물품이 있을 경우에는 상규(常規)에 의거해서 여유가 있는 다른 각사에서 차하(上下)해 주도록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어찌 그 사에 보탬이 됨이 적겠습니까.
봉자전(奉慈殿)의 제향조(祭享條)에 이르러서는, 참깨·찹쌀·꿀 등의 물품을, 이러한 물품이 항상 부족할까 걱정되는 내자시·예빈시·내섬시 등 각사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내섬시 제조의 계사가 이와 같은데, 본시의 어공은 과연 다른 각사에 비해서 배는 됩니다. 그러니 수량 전부를 내섬시에 옮겨주도록 각도의 감사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번의 작미에 대한 곡절을 상세히는 알지 못하겠으나, 공물을 상납하는 것은 2백 년 동안 해내려온 규례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작미하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다. 금년에는 하되, 내년에는 절대로 작미하지 말라. 그리고 지난해에 이미 납부한 공물과 각사의 어공은 다른 사도 아울러 작미하지 말라. 이상의 일을 착실하게 거행하라."
하였다.

 

장악원이 아뢰기를, "조종조 때부터 악공(樂工)을 설치한 것은 오로지 중대한 일인 종묘의 제향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평상시에는 악공의 숫자가 8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난리 뒤에는 겨우 3백여 명뿐이며, 그 가운데 나이 어린 아동이 40여 명이나 됩니다. 양전(兩殿)이 제사지낼 때에 나오지 않은 자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혹 어린 아이로 구차스럽게 숫자를 채워서 춤의 줄이 가지런하지 않아 보기에 들쑥날쑥하였으니, 참으로 온당치 않습니다. 특히 심하게 나오지 않은 각 고을에 대해서는 본원에서 독촉해 보내도록 공문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각 고을에서는 제향의 중대한 예를 돌아보지 않고 그들을 부리기를 달갑게 여긴 채, 전혀 올려보내지 않고 있으니, 일이 몹시 놀랍습니다. 특히 심하게 보내지 않은 고을을 중하게 추고하고 그들로 하여금 독촉해 보내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조종조 때부터 악공(樂工)을 설치한 것은 오로지 중대한 일인 종묘의 제향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평상시에는 악공의 숫자가 8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난리 뒤에는 겨우 3백여 명뿐이며, 그 가운데 나이 어린 아동이 40여 명이나 됩니다. 양전(兩殿)이 제사지낼 때에 나오지 않은 자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혹 어린 아이로 구차스럽게 숫자를 채워서 춤의 줄이 가지런하지 않아 보기에 들쑥날쑥하였으니, 참으로 온당치 않습니다. 특히 심하게 나오지 않은 각 고을에 대해서는 본원에서 독촉해 보내도록 공문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각 고을에서는 제향의 중대한 예를 돌아보지 않고 그들을 부리기를 달갑게 여긴 채, 전혀 올려보내지 않고 있으니, 일이 몹시 놀랍습니다. 특히 심하게 보내지 않은 고을을 중하게 추고하고 그들로 하여금 독촉해 보내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3월 9일 갑술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도적을 체포한다고 칭탁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인 김계남(金季男)을 체포해서 추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전날 도적으로 수금될 때 함께 갇혔던 죄수 문순민(文順民)과 옥중에서 함께 모의해서 여러 곳을 출입하면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일일이 납초(納招)하였습니다. 그러니 수인(囚人) 문순민을 한곳에서 추문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도적을 체포한다고 칭탁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인 김계남(金季男)을 체포해서 추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전날 도적으로 수금될 때 함께 갇혔던 죄수 문순민(文順民)과 옥중에서 함께 모의해서 여러 곳을 출입하면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일일이 납초(納招)하였습니다. 그러니 수인(囚人) 문순민을 한곳에서 추문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형조의 전후 당상은 추고하고, 색낭청과 전옥관(典獄官)은 먼저 파직한 뒤 추고하며, 옥리(獄吏)는 수금하고서 끝까지 캐물으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모든 죄인을 각별히 잘 수금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허술한 틈을 타 도망가는 폐단이 없게끔 하라."
"형조의 전후 당상은 추고하고, 색낭청과 전옥관(典獄官)은 먼저 파직한 뒤 추고하며, 옥리(獄吏)는 수금하고서 끝까지 캐물으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모든 죄인을 각별히 잘 수금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허술한 틈을 타 도망가는 폐단이 없게끔 하라."

 

전교하였다. "경운궁(慶運宮)에 뒷날 이어(移御)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훼손되는 곳이 있으면 즉시 수리하지 않을 수 없다. 훼손된 곳을 궁을 지키는 내관(內官)의 말을 들어보고서 급급히 수리하라. "
"경운궁(慶運宮)에 뒷날 이어(移御)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훼손되는 곳이 있으면 즉시 수리하지 않을 수 없다. 훼손된 곳을 궁을 지키는 내관(內官)의 말을 들어보고서 급급히 수리하라. "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의 군사들 중 각영(各營)에 입번(入番)하는 자를 제외한 별무사(別武士)나 별대군(別隊軍) 등을 대궐문 밖 근처에서 교대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들어가 있을 곳이 없어서 부득이 일반 여염집을 빌려서 들어가 있으니, 사정이 참으로 딱합니다. 남영(南營) 근처에 사는 이영철(李英哲)은 그의 집을 빌려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몽둥이를 들고 내쫓았으며, 심지어는 군영 안으로 뛰어들어 와서는 초관(哨官)에게 욕설을 퍼붓기까지 하였는바,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이영철을 유사로 하여금 잡아가두고서 치죄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는 안에서 부리는 궁인(弓人)의 집이니 수금하지 말고 단지 추고만 하여 치죄하라. 대개 대궐문 밖에 이미 군영을 설치했으니 별도로 인가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지금 이후로는 잘 살펴서 조처하라." 하였다.
"도감의 군사들 중 각영(各營)에 입번(入番)하는 자를 제외한 별무사(別武士)나 별대군(別隊軍) 등을 대궐문 밖 근처에서 교대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들어가 있을 곳이 없어서 부득이 일반 여염집을 빌려서 들어가 있으니, 사정이 참으로 딱합니다. 남영(南營) 근처에 사는 이영철(李英哲)은 그의 집을 빌려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몽둥이를 들고 내쫓았으며, 심지어는 군영 안으로 뛰어들어 와서는 초관(哨官)에게 욕설을 퍼붓기까지 하였는바,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이영철을 유사로 하여금 잡아가두고서 치죄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는 안에서 부리는 궁인(弓人)의 집이니 수금하지 말고 단지 추고만 하여 치죄하라. 대개 대궐문 밖에 이미 군영을 설치했으니 별도로 인가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지금 이후로는 잘 살펴서 조처하라."
하였다.

 

이이첨·박승종·유희분이 장원서(掌苑署)에 모여서 향을 피우고 시를 지어서 맹세하였는데, 왕이 중사(中使)를 보내어서 궁중의 술을 하사하고 장려하였다. 이 당시에 이들 세 집안이 모두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은 권세를 끼고 각자 도당(徒黨)을 세워 서로 알력이 있었는데, 이이첨이 폐모론(廢母論)을 주도하면서부터는 기세가 몹시 치성하여서 유희분과 박승종이 대적할 수가 없었다. 이이첨이 허균(許筠)을 사주하여 화살에 묶어서 격문(檄文)을 쏘아넣은 데 미쳐서는, 격문 안의 말이 몹시 흉패스러워서 심지어는 ‘위얼(僞孽)이 외람되이 왕위에 올랐으며,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를 잡아가두었으며, 형을 죽이고 동생을 죽였다.’는 등의 말이 있기까지 하였다. 영상 기자헌이 이에 대한 단서를 발하고 민인길(閔仁佶) 등이 서로 이어서 고변하여, 왕이 허균이 한 짓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하여 대비(大妃)를 폐하는 일을 성사시키고자 해서 내버려 둔 채 불문에 붙였다. 그러나 박승종과 유희분 등이 몹시 몰아붙여 이이첨의 처지가 크게 궁색하게 되었다. 이에 감언이설로 유희분과 박승종을 꾀어 동맹을 맺어서, 대북(大北)과 【이이첨의 당파이다.】  중북(中北)과 【정창연(鄭昌衍)의 당파이다.】  소북(小北)을 【유희분·박승종의 당파이다.】  균등하게 등용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날 장원서의 모임에 이들 세 사람과 이병(李覮)  【정창연의 도당이다.】 ·이창후(李昌後)·유희발(柳希發) 등이 모두 모였으며, 무인인 성우길(成佑吉)이 【유희분과 인척관계에 있다.】  여기저기 오가면서 말을 전하였고, 이응해(李應獬)가 【박승종의 가신(家臣)이다.】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함께 참석하였으며, 시를 지어서 맹세하였는데, 왕이 이 사실을 듣고는 몹시 기뻐하여 수서(手書)를 내렸다. 거기에 ‘병중에 경들의 모임에 대해 들었는바, 이는 종사의 복이다. 내가 몹시 기쁘고 가상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이이첨은 시를 짓기를, 이 모임은 봄놀이를 즐기려 함 아니라 서로 모여 속마음을 토로코자 함이네 매화꽃도 역시나 우리들의 뜻 알고서 봄기운 먼저 알고 맑은 향기 풍겨오네 하고, 박승종은 시를 짓기를, 구일 동안 바쁘다가 십일 만에 만나니 그 동안에 쌓인 회포 얼마나 애달팠나 찬 매화 꼿꼿한 대 맑은 운치 같이 하니 향기로운 내온 술에 모두가 취하누나 하고, 유희분은 시를 짓기를, 그대여 말을 말라 한망(閑忙)이 다르다고 철석 간장 더욱더 굳세기만 원할 뿐 오얏 복사 희고 붉음 나와는 상관없어 한겨울 송백(松柏) 간은 절개보전 기약하네 하고, 이병은 시를 짓기를, 아전들아 말을 말라 숙직에 바쁘다고 우리들의 이 담론은 흉금을 다 쏟는다네 뜨락 가득 저 꽃들은 볼수록 더 좋은데 한스런 건 내 곁에 해어향(解語香)이 없는 걸세   【해어향(解語香)은 이경전(李慶全)을 가리킨다. 이경전은 정창연의 당파로 떨어져 나와 중북(中北)이 되었다.】 하고, 이창후(李昌後)는 시를 짓기를, 서연(書筵)이 끝난 뒤에 바쁘게 문을 나서 신선의 차를 구해 뱃속을 씻어냈네 오늘 모임 우연 아님 분명히 알 것이니 이곳에 핀 매화 향기 모름지기 기억하소서 하고, 유희발은 시를 짓기를, 뜬 세상의 세월은 섬광 같이 흐르는데 어찌하여 외물에 마음을 끌리리오 마음 합해 협력해서 무위지치 이룩하여 요순 시대 어진 정치 그 향기를 맡아보세 하였다. 이이첨이 또 고시(古詩)를 지었는데, 그 시에, 세 사람이 이 모임 주선했으니 그 뜻을 어이하여 잊으오리오 형제간에 서로 다퉈 의가 상하면 부모가 걱정 속에 속이 썩는 법 우리들이 마음 합해 한몸됐으니 간교한 말 나불대며 떠들어대리 지금부턴 서로간에 의심을 말고 나라와 우리 운명 함께 하세나 대의는 역적 토벌 하는 데 있고 공도는 어진이의 등용에 있네 황천이 이 땅 위에 임하여 있고 귀신 역시 우리 곁에 임해 있다녜 각자가 빛난 이름 보전하면서 힘을 다해 우리 임금 섬기어보세 하였다. 이 모임에서 이이첨이 정조(鄭造) 형제를 버리기로 약속하였는데, 정조가 분을 품고 이이첨의 집에다가 시를 써붙이기를, 서로 친해 오가면서 일마다 바쁘더니 바쁜 중의 일들이라 모두가 꼬였다네 정원에 핀 저 꽃은 봄날에만 꽃피는 법 가지에서 떨어지면 향기 절로 끊기리라 하였다. 그 뒤에 세 집안이 끝내 서로 화합하지 못하여서 대비(大妃)를 폐위하기를 청하는 정청(庭請)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이들 세 집안이 모두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은 권세를 끼고 각자 도당(徒黨)을 세워 서로 알력이 있었는데, 이이첨이 폐모론(廢母論)을 주도하면서부터는 기세가 몹시 치성하여서 유희분과 박승종이 대적할 수가 없었다. 이이첨이 허균(許筠)을 사주하여 화살에 묶어서 격문(檄文)을 쏘아넣은 데 미쳐서는, 격문 안의 말이 몹시 흉패스러워서 심지어는 ‘위얼(僞孽)이 외람되이 왕위에 올랐으며,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를 잡아가두었으며, 형을 죽이고 동생을 죽였다.’는 등의 말이 있기까지 하였다. 영상 기자헌이 이에 대한 단서를 발하고 민인길(閔仁佶) 등이 서로 이어서 고변하여, 왕이 허균이 한 짓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하여 대비(大妃)를 폐하는 일을 성사시키고자 해서 내버려 둔 채 불문에 붙였다. 그러나 박승종과 유희분 등이 몹시 몰아붙여 이이첨의 처지가 크게 궁색하게 되었다. 이에 감언이설로 유희분과 박승종을 꾀어 동맹을 맺어서, 대북(大北)과 【이이첨의 당파이다.】  중북(中北)과 【정창연(鄭昌衍)의 당파이다.】  소북(小北)을 【유희분·박승종의 당파이다.】  균등하게 등용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날 장원서의 모임에 이들 세 사람과 이병(李覮)  【정창연의 도당이다.】 ·이창후(李昌後)·유희발(柳希發) 등이 모두 모였으며, 무인인 성우길(成佑吉)이 【유희분과 인척관계에 있다.】  여기저기 오가면서 말을 전하였고, 이응해(李應獬)가 【박승종의 가신(家臣)이다.】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함께 참석하였으며, 시를 지어서 맹세하였는데, 왕이 이 사실을 듣고는 몹시 기뻐하여 수서(手書)를 내렸다. 거기에 ‘병중에 경들의 모임에 대해 들었는바, 이는 종사의 복이다. 내가 몹시 기쁘고 가상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이이첨은 시를 짓기를,
이 모임은 봄놀이를 즐기려 함 아니라
서로 모여 속마음을 토로코자 함이네
매화꽃도 역시나 우리들의 뜻 알고서
봄기운 먼저 알고 맑은 향기 풍겨오네
하고, 박승종은 시를 짓기를,
구일 동안 바쁘다가 십일 만에 만나니
그 동안에 쌓인 회포 얼마나 애달팠나
찬 매화 꼿꼿한 대 맑은 운치 같이 하니
향기로운 내온 술에 모두가 취하누나
하고, 유희분은 시를 짓기를,
그대여 말을 말라 한망(閑忙)이 다르다고
철석 간장 더욱더 굳세기만 원할 뿐
오얏 복사 희고 붉음 나와는 상관없어
한겨울 송백(松柏) 간은 절개보전 기약하네
하고, 이병은 시를 짓기를,
아전들아 말을 말라 숙직에 바쁘다고
우리들의 이 담론은 흉금을 다 쏟는다네
뜨락 가득 저 꽃들은 볼수록 더 좋은데
한스런 건 내 곁에 해어향(解語香)이 없는 걸세
【해어향(解語香)은 이경전(李慶全)을 가리킨다. 이경전은 정창연의 당파로 떨어져 나와 중북(中北)이 되었다.】 하고, 이창후(李昌後)는 시를 짓기를, 서연(書筵)이 끝난 뒤에 바쁘게 문을 나서 신선의 차를 구해 뱃속을 씻어냈네 오늘 모임 우연 아님 분명히 알 것이니 이곳에 핀 매화 향기 모름지기 기억하소서 하고, 유희발은 시를 짓기를, 뜬 세상의 세월은 섬광 같이 흐르는데 어찌하여 외물에 마음을 끌리리오 마음 합해 협력해서 무위지치 이룩하여 요순 시대 어진 정치 그 향기를 맡아보세 하였다. 이이첨이 또 고시(古詩)를 지었는데, 그 시에, 세 사람이 이 모임 주선했으니 그 뜻을 어이하여 잊으오리오 형제간에 서로 다퉈 의가 상하면 부모가 걱정 속에 속이 썩는 법 우리들이 마음 합해 한몸됐으니 간교한 말 나불대며 떠들어대리 지금부턴 서로간에 의심을 말고 나라와 우리 운명 함께 하세나 대의는 역적 토벌 하는 데 있고 공도는 어진이의 등용에 있네 황천이 이 땅 위에 임하여 있고 귀신 역시 우리 곁에 임해 있다녜 각자가 빛난 이름 보전하면서 힘을 다해 우리 임금 섬기어보세 하였다. 이 모임에서 이이첨이 정조(鄭造) 형제를 버리기로 약속하였는데, 정조가 분을 품고 이이첨의 집에다가 시를 써붙이기를, 서로 친해 오가면서 일마다 바쁘더니 바쁜 중의 일들이라 모두가 꼬였다네 정원에 핀 저 꽃은 봄날에만 꽃피는 법 가지에서 떨어지면 향기 절로 끊기리라 하였다. 그 뒤에 세 집안이 끝내 서로 화합하지 못하여서 대비(大妃)를 폐위하기를 청하는 정청(庭請)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고, 이창후(李昌後)는 시를 짓기를,
서연(書筵)이 끝난 뒤에 바쁘게 문을 나서
신선의 차를 구해 뱃속을 씻어냈네
오늘 모임 우연 아님 분명히 알 것이니
이곳에 핀 매화 향기 모름지기 기억하소서
하고, 유희발은 시를 짓기를,
뜬 세상의 세월은 섬광 같이 흐르는데
어찌하여 외물에 마음을 끌리리오
마음 합해 협력해서 무위지치 이룩하여
요순 시대 어진 정치 그 향기를 맡아보세
하였다. 이이첨이 또 고시(古詩)를 지었는데, 그 시에,
세 사람이 이 모임 주선했으니
그 뜻을 어이하여 잊으오리오
형제간에 서로 다퉈 의가 상하면
부모가 걱정 속에 속이 썩는 법
우리들이 마음 합해 한몸됐으니
간교한 말 나불대며 떠들어대리
지금부턴 서로간에 의심을 말고
나라와 우리 운명 함께 하세나
대의는 역적 토벌 하는 데 있고
공도는 어진이의 등용에 있네
황천이 이 땅 위에 임하여 있고
귀신 역시 우리 곁에 임해 있다녜
각자가 빛난 이름 보전하면서
힘을 다해 우리 임금 섬기어보세
하였다.
이 모임에서 이이첨이 정조(鄭造) 형제를 버리기로 약속하였는데, 정조가 분을 품고 이이첨의 집에다가 시를 써붙이기를,
서로 친해 오가면서 일마다 바쁘더니
바쁜 중의 일들이라 모두가 꼬였다네
정원에 핀 저 꽃은 봄날에만 꽃피는 법
가지에서 떨어지면 향기 절로 끊기리라
하였다. 그 뒤에 세 집안이 끝내 서로 화합하지 못하여서 대비(大妃)를 폐위하기를 청하는 정청(庭請)이 일어나게 되었다.

 

박정길(朴鼎吉)을 직제학으로, 이창정(李昌廷)을 지평으로, 조유도(趙有道)를 사인으로, 이창후(李昌後)를 검상으로, 남이준(南以俊)을 사간으로, 정광경(鄭廣敬)을 전한으로, 윤인(尹訪)을 동부승지로, 조정립(曺挺立)을 교리로, 윤지경(尹知敬)을 병조 좌랑으로, 오여온(吳汝穩)을 상의원 정으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양주 목사 허임(許任)과 부평 부사 이익빈(李翼賓)을 서로 바꾸라." 하였다.
"양주 목사 허임(許任)과 부평 부사 이익빈(李翼賓)을 서로 바꾸라."
하였다.

 

3월 10일 을해

좌변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범죄를 저지른 자인 김계남(金季男)과 문순민(文順民) 등을 추문하니, 수인(囚人) 이제신(李齊信)과 결당(結黨)하여 몰래 옥문(獄門)을 나가서, 도적을 체포한다고 핑계대고 여러 곳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에 대해, 낱낱이 승복하였습니다. 이들의 초사(招辭)에 의거해서 이제신을 추문하니, 수인들의 밥을 담당하는 여종을 옥중에서 겁탈하고 몰래 옥문을 나가서 민가에서 범죄를 저지른 짓에 대해서는 이미 승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김계남 등과 결당하여 도적을 잡는다고 핑계대고 범죄를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중률(重律)을 면하고자 하여 숨긴 채 곧바로 공초하지 않고 있으니 몹시 흉악합니다. 이미 승복한 김계남과 문순민에 대해서는 해조로 하여금 율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리고, 이제신에 대해서는 특별히 엄하게 국문을 가해서 사실을 알아내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범죄를 저지른 자인 김계남(金季男)과 문순민(文順民) 등을 추문하니, 수인(囚人) 이제신(李齊信)과 결당(結黨)하여 몰래 옥문(獄門)을 나가서, 도적을 체포한다고 핑계대고 여러 곳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에 대해, 낱낱이 승복하였습니다. 이들의 초사(招辭)에 의거해서 이제신을 추문하니, 수인들의 밥을 담당하는 여종을 옥중에서 겁탈하고 몰래 옥문을 나가서 민가에서 범죄를 저지른 짓에 대해서는 이미 승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김계남 등과 결당하여 도적을 잡는다고 핑계대고 범죄를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중률(重律)을 면하고자 하여 숨긴 채 곧바로 공초하지 않고 있으니 몹시 흉악합니다. 이미 승복한 김계남과 문순민에 대해서는 해조로 하여금 율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리고, 이제신에 대해서는 특별히 엄하게 국문을 가해서 사실을 알아내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3월 11일 병자

전교하였다. "역적의 변고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으니, 형방 승지는 비록 추국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날마다 일찍 출사하라. 그리고 또 일찍 퇴근하지 말라."
"역적의 변고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으니, 형방 승지는 비록 추국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날마다 일찍 출사하라. 그리고 또 일찍 퇴근하지 말라."

 

호조가 아뢰기를, "근년 들어서 경비가 점점 많아져서 국가의 저축이 고갈됨이 이미 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보충할 계책이 없었습니다. 이에 전의 규례를 상고해보니, 지난 경술년과 신해년 등의 해에 공물(貢物)을 작미(作米)하고 작은(作銀)한 일이 있었으므로, 신들이 계청해서 윤허를 받아 각도에 공문을 보내었습니다.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2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예전 규례인데 하루아침에 뜻하지 않게 작미하였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신들은 몹시도 황공하고 미안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번의 이 작미는 어공(御供)하는 물품을 감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물 본색(本色)과 인정(人情) 및 작지가(作紙價)는 끊임없이 각사(各司)에 제급해 주고, 본조에서는 단지 민간에게서 지나치게 거두어 방납(防納)하는 데 소비하는 각 고을의 자금을 가져다가 써서 국가의 경비에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사의 하인들이 전날 세가(勢家)들이 방납할 때에는 본색(本色)에 이르러서도 절반도 주지 않았는데도 아무말없이 있다가, 본조에서 입계하여 작미한 뒤에 미쳐서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몹시 가증스럽습니다. 성상의 분부대로 단지 금년에만 시행하고, 또 지난해에 이미 납부한 내섬시 및 기타 각사의 공물을 작미하지 말도록 양호(兩湖) 관찰사에게 공문을 보내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근년 들어서 경비가 점점 많아져서 국가의 저축이 고갈됨이 이미 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보충할 계책이 없었습니다. 이에 전의 규례를 상고해보니, 지난 경술년과 신해년 등의 해에 공물(貢物)을 작미(作米)하고 작은(作銀)한 일이 있었으므로, 신들이 계청해서 윤허를 받아 각도에 공문을 보내었습니다.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2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예전 규례인데 하루아침에 뜻하지 않게 작미하였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신들은 몹시도 황공하고 미안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번의 이 작미는 어공(御供)하는 물품을 감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물 본색(本色)과 인정(人情) 및 작지가(作紙價)는 끊임없이 각사(各司)에 제급해 주고, 본조에서는 단지 민간에게서 지나치게 거두어 방납(防納)하는 데 소비하는 각 고을의 자금을 가져다가 써서 국가의 경비에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사의 하인들이 전날 세가(勢家)들이 방납할 때에는 본색(本色)에 이르러서도 절반도 주지 않았는데도 아무말없이 있다가, 본조에서 입계하여 작미한 뒤에 미쳐서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몹시 가증스럽습니다.
성상의 분부대로 단지 금년에만 시행하고, 또 지난해에 이미 납부한 내섬시 및 기타 각사의 공물을 작미하지 말도록 양호(兩湖) 관찰사에게 공문을 보내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이 서울을 지나갈 때 숭례문(崇禮門)에도 결채(結綵)를 하는가? 특별히 잘 살펴서 하라. 그리고 또 친제(親祭)를 지낼 때 집례(執禮)를 차출해서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니,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서 조처하게 하라."
"영정(影幀)이 서울을 지나갈 때 숭례문(崇禮門)에도 결채(結綵)를 하는가? 특별히 잘 살펴서 하라. 그리고 또 친제(親祭)를 지낼 때 집례(執禮)를 차출해서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니,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서 조처하게 하라."

 

선수 도감(繕修都監)이 아뢰기를, "조정순(趙廷純)에 대해서 도감에서 조사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조정순은 당초에 부석감역(浮石監役)으로 차임되었다가 중간에 명정전 감조관(明政殿監造官)이 되었으며, 그 뒤에 또 사옹원을 영조(營造)하는 공사를 감독하였습니다. 이번에 대간의 계사에서 ‘관가의 물품을 훔쳤으며 공공연히 방납하였다.’고 논하였는데, 훔쳐낸 물품을 미처 알지 못하여서 적발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간이 논계한 것은 반드시 들은 바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니 부석소(浮石所)와 명정전·사옹원 등처의 서원(書員)과 고직(庫直)을 유사로 하여금 모두 가두고서 추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 하인들은 추문하지 말라. 조정순은 추고하라." 하였다.
"조정순(趙廷純)에 대해서 도감에서 조사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조정순은 당초에 부석감역(浮石監役)으로 차임되었다가 중간에 명정전 감조관(明政殿監造官)이 되었으며, 그 뒤에 또 사옹원을 영조(營造)하는 공사를 감독하였습니다. 이번에 대간의 계사에서 ‘관가의 물품을 훔쳤으며 공공연히 방납하였다.’고 논하였는데, 훔쳐낸 물품을 미처 알지 못하여서 적발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간이 논계한 것은 반드시 들은 바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니 부석소(浮石所)와 명정전·사옹원 등처의 서원(書員)과 고직(庫直)을 유사로 하여금 모두 가두고서 추고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 하인들은 추문하지 말라. 조정순은 추고하라."
하였다.

 

3월 12일 정축

정언 채승선(蔡承先)이 아뢰기를, "사간 남이준(南以俊)이 ‘대사헌 남근(南瑾)은 신의 삼촌 숙부입니다. 양사(兩司)는 일체이므로 통피(通避)하는데, 아래 자리에 있는 자가 체차되는 법입니다.’ 하고 인혐하여 물러갔습니다. 양사가 상피(相避)하지 않는 것이 이미 규례화되었으니, 피혐할 만한 혐의스러움이 없습니다. 사간 남이준을 출사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간 남이준(南以俊)이 ‘대사헌 남근(南瑾)은 신의 삼촌 숙부입니다. 양사(兩司)는 일체이므로 통피(通避)하는데, 아래 자리에 있는 자가 체차되는 법입니다.’ 하고 인혐하여 물러갔습니다. 양사가 상피(相避)하지 않는 것이 이미 규례화되었으니, 피혐할 만한 혐의스러움이 없습니다. 사간 남이준을 출사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대간이 아뢴바 작산(作散)된 수령들은, 경직(京職)과 수령 중에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되, 상세히 살펴서 일일이 거행하라."
"대간이 아뢴바 작산(作散)된 수령들은, 경직(京職)과 수령 중에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되, 상세히 살펴서 일일이 거행하라."

 

전교하였다. "지난번의 이조 당상과 낭청을 추고하는 일과 수령 등에 대한 일은, 모두 아뢴 대로 하라는 뜻으로 양사에 말하라."
"지난번의 이조 당상과 낭청을 추고하는 일과 수령 등에 대한 일은, 모두 아뢴 대로 하라는 뜻으로 양사에 말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지난번에 양사에서 ‘전함(前亡)으로 차출해서 채우지 말라.’고 아뢴 것은, 실로 온 나라의 공공(公共)의 의논에서 나온 것인데도, 오래도록 윤허하지 않아 여정(輿情)이 바야흐로 우울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특별히 ‘모두 아뢴 대로 하라.’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이에 비단 공로를 쌓고 임기가 만료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기뻐서 춤을 출 뿐만 아니라, 국법(國法)을 지키고 대론(臺論)을 중하게 여기는 성상의 생각이 지극하고도 지극하여서, 언로(言路)에 다행이고 공도(公道)에 다행이니, 이를 듣는 사람치고 그 누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도목정(都目政)은 그것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불행히도 근래에 국가에 일이 많아서 세 달이나 늦추게 되었습니다. 이에 천전(遷轉)하는 길이 막혀서 사람들이 자못 맥이 빠져 있고, 거하(居下)된 고을의 수령 자리가 비어서 백성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으며, 심지어는 요행히 자리를 얻을 마음을 내어 인사청탁을 하며 다니고 있으니, 또한 한심스럽습니다. 바라건대, 도목정을 되도록 속히 시행해서 지난날과 같은 폐단이 없게 하소서. 신들은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에 있기에 구구한 소회를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지난번에 양사에서 ‘전함(前亡)으로 차출해서 채우지 말라.’고 아뢴 것은, 실로 온 나라의 공공(公共)의 의논에서 나온 것인데도, 오래도록 윤허하지 않아 여정(輿情)이 바야흐로 우울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특별히 ‘모두 아뢴 대로 하라.’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이에 비단 공로를 쌓고 임기가 만료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기뻐서 춤을 출 뿐만 아니라, 국법(國法)을 지키고 대론(臺論)을 중하게 여기는 성상의 생각이 지극하고도 지극하여서, 언로(言路)에 다행이고 공도(公道)에 다행이니, 이를 듣는 사람치고 그 누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도목정(都目政)은 그것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불행히도 근래에 국가에 일이 많아서 세 달이나 늦추게 되었습니다. 이에 천전(遷轉)하는 길이 막혀서 사람들이 자못 맥이 빠져 있고, 거하(居下)된 고을의 수령 자리가 비어서 백성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으며, 심지어는 요행히 자리를 얻을 마음을 내어 인사청탁을 하며 다니고 있으니, 또한 한심스럽습니다. 바라건대, 도목정을 되도록 속히 시행해서 지난날과 같은 폐단이 없게 하소서.
신들은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에 있기에 구구한 소회를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지난해에 성균관에 귤을 하사하고 유생들에게 제술하게 하여 과차(科次)한 뒤 내린 상격(賞格)에 대한 전례를 고찰하여 아뢰라."
"지난해에 성균관에 귤을 하사하고 유생들에게 제술하게 하여 과차(科次)한 뒤 내린 상격(賞格)에 대한 전례를 고찰하여 아뢰라."

 

3월 13일 무인

전교하였다. "황학령(黃鶴齡) 등의 일을 고묘(告廟)한다면 반교(頒敎)하여야 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 조처하게 하라."
"황학령(黃鶴齡) 등의 일을 고묘(告廟)한다면 반교(頒敎)하여야 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 조처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유광(柳洸)의 일을 본도 감사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유광(柳洸)의 일을 본도 감사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병조 판서 박승종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위에서 현재 몸이 편치 않아 조섭하는 중에 있는데, 경은 왕실과 인척관계에 있으면서 어찌 차마 이러한 때 스스로 편안히 지내려 하는가. 우선은 번거롭게 하지 말고 애써 나와서 마음을 다해 직무를 살피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위에서 현재 몸이 편치 않아 조섭하는 중에 있는데, 경은 왕실과 인척관계에 있으면서 어찌 차마 이러한 때 스스로 편안히 지내려 하는가. 우선은 번거롭게 하지 말고 애써 나와서 마음을 다해 직무를 살피라."
하였다.

 

3월 14일 기묘

한찬남이 아뢰기를, "공훈을 감정하는 한 가지 일에 대해 예로부터 반드시 비밀스럽게 하면서 시일을 끌지 않았던 것은, 거짓으로 속이고 서로 공을 다투는 것을 막고자 해서 그런 것입니다. 계축년 이후에 응당 감정해야 할 각종 공훈을 지금까지 감정하지 않고 있는데, 비단 사체에 있어서 온당치 못할 뿐만 아니라, 공을 노리고 상을 바라는 무리들이 간교하게 술수를 부려서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 성상께 상소를 올림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길거리에 떠도는 말이 몹시도 분분하니, 지금에 와서는 그에 대한 조처를 참으로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대례(大禮)를 이미 물리었고 상신(相臣)이 이미 나왔는데, 이달 안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니, 대신을 명초해서 속히 공훈을 감정하는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위에서 요즈음 병환이 자못 중하여서 부득이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긴급한 일일 경우에만 병을 무릅쓰고 처리하고 있다. 공훈을 감정하는 일이 비록 중한 일이기는 하나 나의 건강 상태가 이와 같으니, 우선은 10여 일을 기다려서 내 병이 차도가 있은 뒤에 마땅히 의논해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공훈을 감정하는 한 가지 일에 대해 예로부터 반드시 비밀스럽게 하면서 시일을 끌지 않았던 것은, 거짓으로 속이고 서로 공을 다투는 것을 막고자 해서 그런 것입니다. 계축년 이후에 응당 감정해야 할 각종 공훈을 지금까지 감정하지 않고 있는데, 비단 사체에 있어서 온당치 못할 뿐만 아니라, 공을 노리고 상을 바라는 무리들이 간교하게 술수를 부려서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 성상께 상소를 올림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길거리에 떠도는 말이 몹시도 분분하니, 지금에 와서는 그에 대한 조처를 참으로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대례(大禮)를 이미 물리었고 상신(相臣)이 이미 나왔는데, 이달 안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니, 대신을 명초해서 속히 공훈을 감정하는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위에서 요즈음 병환이 자못 중하여서 부득이 군국(軍國)에 관계되는 긴급한 일일 경우에만 병을 무릅쓰고 처리하고 있다. 공훈을 감정하는 일이 비록 중한 일이기는 하나 나의 건강 상태가 이와 같으니, 우선은 10여 일을 기다려서 내 병이 차도가 있은 뒤에 마땅히 의논해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숭전(永崇殿) 중건(重建)에 대한 상격(賞格)은, 감사 김신국(金藎國)은 가자(加資)하고, 도차사원(都差使員)에서 공장이들에 이르기까지 공이 있는 자를 상세히 서계하도록 평안감사에게 하유하라."
"영숭전(永崇殿) 중건(重建)에 대한 상격(賞格)은, 감사 김신국(金藎國)은 가자(加資)하고, 도차사원(都差使員)에서 공장이들에 이르기까지 공이 있는 자를 상세히 서계하도록 평안감사에게 하유하라."

 

군공주부(軍功主簿) 강로(姜簵)가 상소하여 공덕을 칭송하면서 격양가(擊壤歌)를 바쳤다. 【이이첨의 무리가 사주한 것이다.】

 

전 판서 황신(黃愼)이 유배지인 옹진(甕津)의 적소(謫所)에서 졸하였다.【【황신의 자는 사숙(思叔)이고 호는 추포(秋浦)이며, 굳세고 모가 나서 다른 사람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어려서 성혼(成渾)에게 사사하였으며, 무자년의 과거에 장원으로 뽑혔다. 임진년 난리 때 궁료(宮僚)로서 오랫동안 분조(分朝)에 있었는데, 바로 잡아주고 도와준 바가 많았다. 유격(遊擊) 심유경(沈惟敬)의 접반관(接伴官)이 되어 2년 동안을 적진에 있었다. 중국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어 왜추(倭酋)를 책봉(冊封)하면서 화친을 맺고자 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신사(信使)와 함께 가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황신을 사신으로 뽑았다. 당시에 왜적이 우리 나라의 변경에 주둔해 있어서 정황이 날마다 변하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들 하였다. 그런데도 황신은 의연한 태도로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바다를 건너가다가 바람을 만나 뱃사람들이 모두 엎드려 있었는데, 황신이 글을 지어 맹세하기를, "늑대와 범이 우글거리는 속에서 2년 동안이나 절개를 지키고 있었는데, 교룡(蛟龍)의 소굴 위에서 또 8월에 사신 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에 몸바치기를 달갑게 여기어, 머리를 조아려 스스로 맹세하였습니다. 저 황신은 나라가 판탕된 때를 만나 나랏일에 몸바쳐 분주하느라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모두 겪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언행이 오랑캐 땅에서 행세할 정도로 독실하기야 하겠습니까. 변하지 않는 단심(丹心)이 있는 것을 힘입어 하늘에 물어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니, 4천 리 사신길의 노고를 어찌 감히 추호라도 꺼리겠습니까. 30년 동안 쌓은 공부를 바로 오늘에 시험해 볼 때입니다. 참으로 힘쓰지 않아서는 안될 임금의 일인 데다가 또한 신하로서의 당연한 직분이기에 바로 바람에 돛을 달고 멀리 일본 땅으로 갑니다. 참으로 사직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이롭게만 할 수 있다면 죽음 또한 사양하지 않겠지만,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고 신의 지조를 잃게 된다면 산다고 한들 또한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신령께서는 이 정성을 굽어 살피소서. 행여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하늘이 알아주시려니와, 만약 한 생각이 혹시라도 게을러진다면 신(神)은 나를 죽이소서." 하였다. 일본에 도착하여서는 적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능욕하고 핍박하였으므로 일행이 겁을 내어 어찌할 줄을 몰랐으나, 황신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자 말하는 자들이   소무(蘇武)에 비하였다.029)  일본에서 돌아와서는 전라 감사에 제수되었다. 왜구가 물러감에 미쳐서는 상소를 올려서 주사(舟師)로 그들의 뒤를 쳐서 나라의 수치를 씻기를 청하고, 이어서 자신이 선봉장이 되기를 청하였다. 그 일이 비록 시행되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이 바른 의논을 하였다고 하였다. 당초에 기축년의 옥사가 일어났을 때 처사(處士) 최영경(崔永慶)이 원통하게 죽었는데, 신축년에 이르러서 남쪽 지방 사람인 문경호(文景虎)가 상소하여 성혼(成渾)을 추론(追論)하면서 ‘착한 선비를 죄에 얽어 죽여 사림(士林)을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려 했다.’고 하였다. 이 때 황신이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그것이 무함임을 극력 말하였다가 드디어 죄를 얻어 쫓겨났다. 그뒤 8년 뒤에 다시 호조 판서로 서용되었다. 그 당시에 조사(詔使)가 자주 나와 경비가 날로 불어났는데, 황신은 6년 동안 자리에 있으면서 치재(治財)를 잘하였고, 또 균전사(均田使)를 내보내어 토지구획을 잘하는 등 시행한 일이 많았다. 계축년에 박응서(朴應犀)의 옥사가 일어나 정협(鄭浹)이 간흉의 사주를 받아 당시의 명류(名流)들을 무고하였는데, 황신 역시 붙잡혀서 옹진현에 유배되었다. 당초에 정사호(鄭賜湖)가 이조 참판이 되어 이이첨을 간장(諫長)에 주의하고자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황신이 고집을 부리고 허락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정사호가 누설하자 이이첨이 크게 원망하여 드디어 이 화를 받게 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58세였다. 자식은 없다. 황신은 고금의 자사(子史)에 통달하여 다른 사람들이 미칠 수가 없었다. 글을 지음에 있어서는 변려문(叴儷文)에 뛰어났다. 일찍이 세자 책봉(冊封)을 청하는 표문(表文)을 지으면서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임무를 맡기려고 지성스레 명하였다. 일은 반드시 기다림이 있은 후에 그리 되는 것이니 우선은 천천히 하라고 할 뿐이다.’ 하였는데, 세상에서 절묘한 글이라고 칭한다. 뒤에 문민공(文敏公)에 증시(贈覬)되었다.】 .】


[註 029] 소무(蘇武)에 비하였다. :  사신으로 가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는 뜻임. 소무는 한 무제 때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있으면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절개를 지키다 19년이 지난 뒤에 한소제(漢昭帝)가 흉노와 화친을 맺음으로써 돌아왔다.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

 

3월 15일 경진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에 친제(親祭)지낼 때 전상(殿上)과 전정(殿庭)의 악(樂)과 악장(樂章)을 어떤 악장으로 쓰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영정(影幀)에 친제(親祭)지낼 때 전상(殿上)과 전정(殿庭)의 악(樂)과 악장(樂章)을 어떤 악장으로 쓰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미시에 태백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3월 16일 신사

전교하였다. "이창록(李昌菉)의 일에 있어서 공이 있는 사람을 서계한 가운데 다시금 상세히 살펴서 등급을 나누어 뽑아서 아뢰라고 경상 감사에게 하유하라."
"이창록(李昌菉)의 일에 있어서 공이 있는 사람을 서계한 가운데 다시금 상세히 살펴서 등급을 나누어 뽑아서 아뢰라고 경상 감사에게 하유하라."

 

3월 17일 임오

선수 도감(繕修都監)이 아뢰기를, "이번의 이 이궁(離宮)의 바깥 담장을 쌓는 것은 주위가 아주 넓어서 대석(臺石)과 잡석(雜石)을 운반하여 들이는 공역이 몹시 큽니다. 지난해에 창덕궁(昌德宮)을 영건할 때 이미 떠놓고서 쓰고 남은 돌이 많은데, 지금 만약 이를 가져다가 쓴다면 지세가 편하고 가까워서 공력(功力)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담장을 완전히 쌓을 동안에는 창의문(彰義門)을 열고서 운반하여 들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무신과 금군 군사를 많이 배정해서 십분 엄하게 지키라." 하였다.
"이번의 이 이궁(離宮)의 바깥 담장을 쌓는 것은 주위가 아주 넓어서 대석(臺石)과 잡석(雜石)을 운반하여 들이는 공역이 몹시 큽니다. 지난해에 창덕궁(昌德宮)을 영건할 때 이미 떠놓고서 쓰고 남은 돌이 많은데, 지금 만약 이를 가져다가 쓴다면 지세가 편하고 가까워서 공력(功力)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담장을 완전히 쌓을 동안에는 창의문(彰義門)을 열고서 운반하여 들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무신과 금군 군사를 많이 배정해서 십분 엄하게 지키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열한 번째 정사(呈辭)하니, 답하기를, "굳게 사양하는 것이 열 차례가 넘었는데, 예전의 병이 아직도 낫지 않았는가? 앞으로 대례(大禮)가 거듭 있고 국사(國事)가 날로 어려워지니, 의당 전의 전지를 준행해서 조리하고서 속히 출사하라." 하였다.
"굳게 사양하는 것이 열 차례가 넘었는데, 예전의 병이 아직도 낫지 않았는가? 앞으로 대례(大禮)가 거듭 있고 국사(國事)가 날로 어려워지니, 의당 전의 전지를 준행해서 조리하고서 속히 출사하라."
하였다.

 

병조 판서 【박승종이】 정사하니, 답하기를, "도목 대정(都目大政)이 이미 박두하였고 추국도 장차 할 것이니, 속히 출사하여 직무를 보라." 하였다.
"도목 대정(都目大政)이 이미 박두하였고 추국도 장차 할 것이니, 속히 출사하여 직무를 보라."
하였다.

 

3월 18일 계미

비변사가 아뢰기를, "요즈음 본사는 모든 의천(議薦)에 있어서 여러 당상들이 각자 세 사람씩 천거하여서 인원수가 아주 많으므로 취사하기가 어려워 넉넉한 숫자로 서계하고 있어서 사체에 타당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공홍 감사(公洪監司)를 의천할 때에는 그들로 하여금 각자 한 사람씩만 천거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본사의 당상 가운데서 정사(呈辭)하였거나 외방에 나가있는 등 탈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사고가 없이 천거한 자가 단지 9인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5인을 뽑아 아뢰었습니 다. 그런데 지금 더 천거하라는 분부를 받고서 또 각자 1인씩 천거하게 하였는데, 천거된 자가 6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3인을 뽑아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합당한 사람을 다수 더 천거하라." 하였다.
"요즈음 본사는 모든 의천(議薦)에 있어서 여러 당상들이 각자 세 사람씩 천거하여서 인원수가 아주 많으므로 취사하기가 어려워 넉넉한 숫자로 서계하고 있어서 사체에 타당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공홍 감사(公洪監司)를 의천할 때에는 그들로 하여금 각자 한 사람씩만 천거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본사의 당상 가운데서 정사(呈辭)하였거나 외방에 나가있는 등 탈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사고가 없이 천거한 자가 단지 9인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5인을 뽑아 아뢰었습니 다. 그런데 지금 더 천거하라는 분부를 받고서 또 각자 1인씩 천거하게 하였는데, 천거된 자가 6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3인을 뽑아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합당한 사람을 다수 더 천거하라."
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창경궁의 새로 짓는 각전(各殿) 및 각 아문의 수리에 필요한 잡물(雜物)을 이미 마련하였는가? 해조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는 일로 전교하시었습니다. 창경궁의 새로 짓는 각전 및 각 아문을 수리하는 잡물은 지난해에 참작하여 마련해서 각도에 나누어 정하였는데, 거의 다 상납하여서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이 많지 않아 수리하는 데 들어가는 물품을 거의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각도에서 마련하여서 납부한 숫자를 서계하라." 하였다.
"‘창경궁의 새로 짓는 각전(各殿) 및 각 아문의 수리에 필요한 잡물(雜物)을 이미 마련하였는가? 해조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는 일로 전교하시었습니다. 창경궁의 새로 짓는 각전 및 각 아문을 수리하는 잡물은 지난해에 참작하여 마련해서 각도에 나누어 정하였는데, 거의 다 상납하여서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이 많지 않아 수리하는 데 들어가는 물품을 거의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각도에서 마련하여서 납부한 숫자를 서계하라."
하였다.

 

5경에 달이 심후성(心後星)을 범하였다.

 

3월 19일 갑신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인왕산(仁王山) 아래에 선수(繕修)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당초에 마련하지 않았었는데, 일이 갑작스럽게 나와서 모을 길이 없어서 다방면으로 요리하였으나 편한 방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에 듣건대, 전라병사 조의(趙誼)가 국사에 마음을 쏟아 쌀 6백 석을 마련하여 장차 올려보내려고 한다 합니다. 바라건대 속히 배로 올려보내게 해 선수하는 공사에 보태어 쓰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인왕산(仁王山) 아래에 선수(繕修)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당초에 마련하지 않았었는데, 일이 갑작스럽게 나와서 모을 길이 없어서 다방면으로 요리하였으나 편한 방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에 듣건대, 전라병사 조의(趙誼)가 국사에 마음을 쏟아 쌀 6백 석을 마련하여 장차 올려보내려고 한다 합니다. 바라건대 속히 배로 올려보내게 해 선수하는 공사에 보태어 쓰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처럼 서쪽 변방에 걱정거리가 있는 날을 당하여 김신국(金藎國)이 병으로 인해 행공(行公)하지 못하여 책응(策應)이 허술합니다. 체차하고 그 대임자를 급속히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평안 감사는 우선 체차하지 말고 그로 하여금 조리하고서 영정(影幀)을 봉안한 뒤에 즉시 올라오게 하라. 그리고 새 감사는 미리 의천(議薦)하였다가 다음달에 차출해서 영정이 서울을 지나간 뒤에 즉시 내려보내라." 하였다.
"이처럼 서쪽 변방에 걱정거리가 있는 날을 당하여 김신국(金藎國)이 병으로 인해 행공(行公)하지 못하여 책응(策應)이 허술합니다. 체차하고 그 대임자를 급속히 내려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평안 감사는 우선 체차하지 말고 그로 하여금 조리하고서 영정(影幀)을 봉안한 뒤에 즉시 올라오게 하라. 그리고 새 감사는 미리 의천(議薦)하였다가 다음달에 차출해서 영정이 서울을 지나간 뒤에 즉시 내려보내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궁(離宮)의 역사가 한창 급하니, 도청(都廳) 조유도(趙有道)를 문사 낭청(問事郞廳)에서 체차시켜 그로 하여금 도감의 역사를 전담하여 살피게 하라."
"이궁(離宮)의 역사가 한창 급하니, 도청(都廳) 조유도(趙有道)를 문사 낭청(問事郞廳)에서 체차시켜 그로 하여금 도감의 역사를 전담하여 살피게 하라."

 

좌변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도적 이제신(李齊信)이 전루(傳漏)하는 군졸을 위협해서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곳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을 낱낱이 납초(納招)하였습니다. 도적 김계남(金季男)·문순민(文順民) 등과 마찬가지이니, 해조로 하여금 율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도적 이제신(李齊信)이 전루(傳漏)하는 군졸을 위협해서 데리고 다니면서 여러 곳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을 낱낱이 납초(納招)하였습니다. 도적 김계남(金季男)·문순민(文順民) 등과 마찬가지이니, 해조로 하여금 율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비밀히 전교하였다. "이궁(離宮)의 조하(朝賀)받는 정전(正殿)과 시사(視事)하는 각전(各殿) 및 전좌별당(殿坐別堂)을 우선 먼저 4, 5월 안에 길한 날짜를 가려서 급급히 조성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이궁(離宮)의 조하(朝賀)받는 정전(正殿)과 시사(視事)하는 각전(各殿) 및 전좌별당(殿坐別堂)을 우선 먼저 4, 5월 안에 길한 날짜를 가려서 급급히 조성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이궁(離宮)의 담장 안에 사는 백성들의 가사(家舍)와 그 구입 원가에 대해 상세히 숫자를 헤아려서 서계하라. "
"이궁(離宮)의 담장 안에 사는 백성들의 가사(家舍)와 그 구입 원가에 대해 상세히 숫자를 헤아려서 서계하라. "

 

전교하기를, "이궁을 지금 영조하려고 하니 시문용(施文用)을 속히 본도로 하여금 올려보내게 하라." 하였다.
"이궁을 지금 영조하려고 하니 시문용(施文用)을 속히 본도로 하여금 올려보내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궁을 조성할 재목과 미포(米布)를 속히 마련하게 하라. 그리고 바깥의 두 전(殿)과 전좌별당(殿坐別堂) 등 세 곳의 대문(大門)과 중문(中門) 및 정전문(正殿門)은 단청을 칠하라. 이상의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조처하게 하라."
"이궁을 조성할 재목과 미포(米布)를 속히 마련하게 하라. 그리고 바깥의 두 전(殿)과 전좌별당(殿坐別堂) 등 세 곳의 대문(大門)과 중문(中門) 및 정전문(正殿門)은 단청을 칠하라. 이상의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조처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각 아문을 초가(草家)로 조성할 경우에는 화재가 날까 염려스럽다. 그러니 보통기와를 많이 구워서 짓되, 반드시 큰 재목으로 조성할 필요는 없다. 이 뜻을 아울러 속히 의논하여 조처하라."
"각 아문을 초가(草家)로 조성할 경우에는 화재가 날까 염려스럽다. 그러니 보통기와를 많이 구워서 짓되, 반드시 큰 재목으로 조성할 필요는 없다. 이 뜻을 아울러 속히 의논하여 조처하라."

 

선수 도감(繕修都監)이 아뢰기를, "인왕산 아래의 이궁을 수보(修補)하는 일은 가까운 시일 내에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대내(大內)는 비록 옛집을 그대로 보수한다 하더라도, 평상시 궐내에서 일을 보는 아문은 몹시 많은데 담장 아래의 인가가 모두 초가집이고 또 몇 채 안되는 기와집은 모두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비좁아서 들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문들을 모름지기 제때에 조성한 다음에야 들어가 있을 수가 있어 체모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외의 성(城)을 쌓는 공사 역시 몹시 커서 요미(料米)가 장차 몇천 석이 넘게 들어가고 목면(木綿)이 몇백 동이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도감에 남아 있는 미포(米布)가 얼마 안되어 한 달 동안 쓸 것도 못 됩니다. 듣건대, 해조에 쌓아둔 것 역시 다 떨어져서 4월등(四月等)의 반록(頒菉)을 호남에서 조운(漕運)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호남 각 고을의 수령들이 모두 전주(全州)로 가서 전세(田稅)의 미두(米斗)를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므로, 반드시 제때에 올려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면의 경우에는 영남의 작목(作木)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본도의 감사 역시 왜료(倭料)를 공무역할 값으로 모두 동래로 실어보내고, 올려보낸 것이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이에 신들은 어찌할 계책이 없어서 한갓 마음만 졸이고 있습니다. 전해 듣건대, 전라 감사 박자흥(朴自興)이 일찍이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할 적에, 여러 차례 도감의 직책을 역임하여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된 것을 잘 알고는, 호남에 부임함에 미쳐서 국사에 마음을 두어 미포를 마련해 둔 것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쌓아둔 미포를 되도록 속히 넉넉하게 올려보내어서 오늘날의 급함을 늦추게 하소서. 그리고 또 평안 감사 김신국(金藎國)이 벼슬살이를 한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국사에 뜻을 기울여 영중(營中)에 마련하여 준비해 둔 물품이 다른 도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역시 그로 하여금 많고 적음에 따라 올려보내어서 급한 쓰임새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미포의 숫자를 상세히 서계하라. 그리고 중국 조정에서는 영건(營建)하는 일이 있을 경우 제왕(諸王)과 후백(侯伯) 이하가 모두 공역을 돕는다고 한다. 그러니 안으로 1품 이하로부터 바깥으로 방백과 곤수와 수령, 변장에 이르기까지 공역을 돕는 미포를 참작하여 정할 경우, 비록 조금씩만 공역을 돕더라도 도움이 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참작해서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인왕산 아래의 이궁을 수보(修補)하는 일은 가까운 시일 내에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대내(大內)는 비록 옛집을 그대로 보수한다 하더라도, 평상시 궐내에서 일을 보는 아문은 몹시 많은데 담장 아래의 인가가 모두 초가집이고 또 몇 채 안되는 기와집은 모두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비좁아서 들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문들을 모름지기 제때에 조성한 다음에야 들어가 있을 수가 있어 체모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외의 성(城)을 쌓는 공사 역시 몹시 커서 요미(料米)가 장차 몇천 석이 넘게 들어가고 목면(木綿)이 몇백 동이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도감에 남아 있는 미포(米布)가 얼마 안되어 한 달 동안 쓸 것도 못 됩니다. 듣건대, 해조에 쌓아둔 것 역시 다 떨어져서 4월등(四月等)의 반록(頒菉)을 호남에서 조운(漕運)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호남 각 고을의 수령들이 모두 전주(全州)로 가서 전세(田稅)의 미두(米斗)를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므로, 반드시 제때에 올려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면의 경우에는 영남의 작목(作木)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본도의 감사 역시 왜료(倭料)를 공무역할 값으로 모두 동래로 실어보내고, 올려보낸 것이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이에 신들은 어찌할 계책이 없어서 한갓 마음만 졸이고 있습니다.
전해 듣건대, 전라 감사 박자흥(朴自興)이 일찍이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할 적에, 여러 차례 도감의 직책을 역임하여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된 것을 잘 알고는, 호남에 부임함에 미쳐서 국사에 마음을 두어 미포를 마련해 둔 것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쌓아둔 미포를 되도록 속히 넉넉하게 올려보내어서 오늘날의 급함을 늦추게 하소서. 그리고 또 평안 감사 김신국(金藎國)이 벼슬살이를 한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국사에 뜻을 기울여 영중(營中)에 마련하여 준비해 둔 물품이 다른 도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역시 그로 하여금 많고 적음에 따라 올려보내어서 급한 쓰임새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미포의 숫자를 상세히 서계하라. 그리고 중국 조정에서는 영건(營建)하는 일이 있을 경우 제왕(諸王)과 후백(侯伯) 이하가 모두 공역을 돕는다고 한다. 그러니 안으로 1품 이하로부터 바깥으로 방백과 곤수와 수령, 변장에 이르기까지 공역을 돕는 미포를 참작하여 정할 경우, 비록 조금씩만 공역을 돕더라도 도움이 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참작해서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3월 20일 을유

정원이 아뢰기를, "열성(列聖)들의 영정(影幀)이, 변란을 겪은 뒤에는 단지 태조와 세조 두 분만 이이첨·홍여율(洪汝栗)·오희길(吳希吉) 등이 영정전의 참봉으로 있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모시고 나와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외의 열성들의 영정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난리 뒤에 어떤 사람이 왜적들 속에서 파괴된 영정 몇 조각을 얻어서 바쳤으므로 궤 하나에 담아서 종묘에 봉안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제조 유근(柳根)과 예조 판서 이이첨 등이 종묘를 봉심할 때 궤를 열고 봉심해보니 세 조각이 모두 훼손되어서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문종(文宗)의 신상(神像)만 용안이 분명하고 또 바깥 봉투에 ‘현릉(顯陵)’이란 두 글자가 쓰여져 있어서 지금 뒤미처 모사할 만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예관으로 하여금 대신들에게 의논하여 결정해서 모사하여 봉안하게 하소서. 그럴 경우 성상께서 선조를 받들고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이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은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에 있으므로 구구한 소회를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열성(列聖)들의 영정(影幀)이, 변란을 겪은 뒤에는 단지 태조와 세조 두 분만 이이첨·홍여율(洪汝栗)·오희길(吳希吉) 등이 영정전의 참봉으로 있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모시고 나와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외의 열성들의 영정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난리 뒤에 어떤 사람이 왜적들 속에서 파괴된 영정 몇 조각을 얻어서 바쳤으므로 궤 하나에 담아서 종묘에 봉안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제조 유근(柳根)과 예조 판서 이이첨 등이 종묘를 봉심할 때 궤를 열고 봉심해보니 세 조각이 모두 훼손되어서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문종(文宗)의 신상(神像)만 용안이 분명하고 또 바깥 봉투에 ‘현릉(顯陵)’이란 두 글자가 쓰여져 있어서 지금 뒤미처 모사할 만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예관으로 하여금 대신들에게 의논하여 결정해서 모사하여 봉안하게 하소서. 그럴 경우 성상께서 선조를 받들고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이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은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에 있으므로 구구한 소회를 감히 진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선혜청이 아뢰기를, "본청(本廳)을 설립하고서는 일년에 봄가을 두 차례 쌀을 거두는 외에 과외(科外)의 부역이 있더라도 백성들에게서 더 거두어들이지 않았으므로, 경기 지방의 잔약한 백성들이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서는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염치가 씻은듯이 없어져 수령으로 있는 자들이 오로지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여 자신을 살찌우기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에 대동미(大同米)를 거두어 들이는 외에 교묘하게 명목을 붙여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 들이는 것이 아주 많아 못살겠다고 원망하는 소리가 지금보다 더 심한 때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에서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을 돌보아주는 뜻이 헛된 것으로 되어버리게 하고 있으니, 몹시 마음 아픕니다. 본도의 감사로 하여금 사실에 따라 적발하여 계문하게 해서 파출(罷黜)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본청(本廳)을 설립하고서는 일년에 봄가을 두 차례 쌀을 거두는 외에 과외(科外)의 부역이 있더라도 백성들에게서 더 거두어들이지 않았으므로, 경기 지방의 잔약한 백성들이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서는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염치가 씻은듯이 없어져 수령으로 있는 자들이 오로지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여 자신을 살찌우기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에 대동미(大同米)를 거두어 들이는 외에 교묘하게 명목을 붙여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 들이는 것이 아주 많아 못살겠다고 원망하는 소리가 지금보다 더 심한 때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에서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을 돌보아주는 뜻이 헛된 것으로 되어버리게 하고 있으니, 몹시 마음 아픕니다. 본도의 감사로 하여금 사실에 따라 적발하여 계문하게 해서 파출(罷黜)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3월 21일 병술

사헌부가 아뢰기를, "비변사 낭청 이경여(李慶餘)는 신진무부(新進武夫)로서 한갓 자신의 편함만을 알고 사체를 알지 못합니다. 이에 역말을 타고 여러 곳에 마구 나다니면서 계하된 공사(公事)를 치지도외하고 있습니다. 당상(堂上)이 태만하여 직무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을 책망하자, 큰소리를 지르면서 대들었는바, 더할 수 없이 패만스럽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통렬히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라고 명하소서. 요즈음 들어서 수령으로 있는 자들이 걱정을 나누어 맡긴 중한 부탁은 생각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을 살찌우기만을 일삼고 있으니 몹시도 한심스럽습니다. 선혜청을 설립한 것은, 오로지 조금이나마 백성들의 힘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각 고을의 결복(結卜)의 숫자에 따라 봄가을로 쌀을 거두어서 모든 지공에 응하고 있습니다. 이에 경기 지방의 백성들이 모두들 편안히 쉬고 본청 역시도 지용(支用)을 감당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을 세운 지 이미 오래 되어 사람들이 대부분 태만스러워져서, 거두어들인 쌀을 공공연히 자기가 차지하고 올려보낼 뜻이 없습니다. 그러니 허다한 불시의 수요를 장차 어떻게 댈 수 있겠습니까. 본청에서는 이에 부득이하여서 공사(公事)를 만들어서 미납한 각 고을의 수령들을 파직시키라고 입계하였습니다. 그런데 단지 추고하라고만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들 염치없는 무리들은 반드시 터럭 하나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명백하게 드러난 일에 대해서도 중하게 죄를 다스리지 않을 경우에 사람들이 누가 법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리고 본청은 대신이 관장하고 있어서 체모가 몹시 중합니다. 그런데 하찮은 수령을 죄 주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본청의 공사에 의거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수령을 파직하는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비변사 낭청 이경여(李慶餘)는 신진무부(新進武夫)로서 한갓 자신의 편함만을 알고 사체를 알지 못합니다. 이에 역말을 타고 여러 곳에 마구 나다니면서 계하된 공사(公事)를 치지도외하고 있습니다. 당상(堂上)이 태만하여 직무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을 책망하자, 큰소리를 지르면서 대들었는바, 더할 수 없이 패만스럽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통렬히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라고 명하소서.
요즈음 들어서 수령으로 있는 자들이 걱정을 나누어 맡긴 중한 부탁은 생각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을 살찌우기만을 일삼고 있으니 몹시도 한심스럽습니다. 선혜청을 설립한 것은, 오로지 조금이나마 백성들의 힘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각 고을의 결복(結卜)의 숫자에 따라 봄가을로 쌀을 거두어서 모든 지공에 응하고 있습니다. 이에 경기 지방의 백성들이 모두들 편안히 쉬고 본청 역시도 지용(支用)을 감당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을 세운 지 이미 오래 되어 사람들이 대부분 태만스러워져서, 거두어들인 쌀을 공공연히 자기가 차지하고 올려보낼 뜻이 없습니다. 그러니 허다한 불시의 수요를 장차 어떻게 댈 수 있겠습니까.
본청에서는 이에 부득이하여서 공사(公事)를 만들어서 미납한 각 고을의 수령들을 파직시키라고 입계하였습니다. 그런데 단지 추고하라고만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들 염치없는 무리들은 반드시 터럭 하나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명백하게 드러난 일에 대해서도 중하게 죄를 다스리지 않을 경우에 사람들이 누가 법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리고 본청은 대신이 관장하고 있어서 체모가 몹시 중합니다. 그런데 하찮은 수령을 죄 주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본청의 공사에 의거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수령을 파직하는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의 유사 제조(有司提調) 4원이 처음부터 번갈아 가면서 사진(仕進)하였는데, 제조 장만(張晩)이 논박을 받은 뒤에 그 대임자를 차출했어야 하나, 그 당시에 역사가 끝나게 되었으므로 차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큰 역사가 또 시작되었는데, 유사 제조가 단지 이충(李沖)과 심돈(沈惇)·이병(李覮) 세 사람만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충의 경우에는, 본조(本曹)의 업무가 많은 가운데 전부터 권설아문(權設衙門)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으레 겸하는 것이고, 또 훈련 도감의 순검(巡檢)과 상직(上直)의 임무를 겸하고 있으며, 존숭 도감(尊崇都監)을 머지 않아 다시 설치할 것이어서, 이곳저곳에서 분주하느라 아마도 본도감의 임무를 제대로 살필 수가 없을 듯합니다. 이와 같이 중대한 역사는 결단코 두세 제조가 두루 살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난해 장만 대신 차임하지 않은 것을 급속히 차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제조 이충은 창덕궁을 지을 때부터 도감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의례적으로 겸하여서 대충 참여하지 말고 실제조(實提調)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다해 공사를 감독하라." 하였다.
"도감의 유사 제조(有司提調) 4원이 처음부터 번갈아 가면서 사진(仕進)하였는데, 제조 장만(張晩)이 논박을 받은 뒤에 그 대임자를 차출했어야 하나, 그 당시에 역사가 끝나게 되었으므로 차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큰 역사가 또 시작되었는데, 유사 제조가 단지 이충(李沖)과 심돈(沈惇)·이병(李覮) 세 사람만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충의 경우에는, 본조(本曹)의 업무가 많은 가운데 전부터 권설아문(權設衙門)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으레 겸하는 것이고, 또 훈련 도감의 순검(巡檢)과 상직(上直)의 임무를 겸하고 있으며, 존숭 도감(尊崇都監)을 머지 않아 다시 설치할 것이어서, 이곳저곳에서 분주하느라 아마도 본도감의 임무를 제대로 살필 수가 없을 듯합니다.
이와 같이 중대한 역사는 결단코 두세 제조가 두루 살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난해 장만 대신 차임하지 않은 것을 급속히 차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제조 이충은 창덕궁을 지을 때부터 도감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의례적으로 겸하여서 대충 참여하지 말고 실제조(實提調)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다해 공사를 감독하라."
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인왕산(仁王山) 아래 영조하는 곳에 대내(大內)를 수리하는 것과 새로 조성하는 전당(殿堂) 외에 응당 조성해야 될 각 아문이 40여 곳이나 됩니다. 간가(間架)의 실제 숫자에 대해서는 비록 정확하게 마련하지 못하였으나, 대개 응당 들어가야 할 재목과 기와가 극히 많습니다. 비록 창경궁에 쓰고 남은 재목이 7백여 조(條)가 있기는 하나, 이것은 재목이 크고 숫자 또한 많지 않아서 전당(殿堂)을 짓는 데 쓰기에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각 아문을 짓는 데 쓸 수 있겠습니까. 각 아문의 간가(間架)를 아무리 약소하게 하기를 힘쓰고, 집을 짓는 재목을 비록 작은 것으로 사서 쓰고자 하더라도, 이처럼 물이 줄어들고 절기가 어긋날 때에는 경강(京江) 근처에 재목이 전혀 없어서 아무리 값을 많이 주더라도 사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에 백번 생각해보아도 어찌할 계책이 없습니다. 부득이 전례에 의거해서 재목이 생산되는 곳에 감역관(監役官)을 파견해서 값을 주고 베어내게 하고, 또 시목(柴木) 장사꾼에게 가목(價木)을 주어 그로 하여금 마련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서까래감을 벨 때 잘못하여 너무 굵은 나무를 서까래감으로 베어 와서 전당을 짓는 데에는 쓰기가 알맞았지만 아문을 짓는 데에는 쓰기가 적당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안면곶(安眠串)에서 서까래감을 벨 때 모두 여염집을 지을 때 쓰는 것과 같이 너무 굵지 않은 것을 베어오되, 배를 조발해서 우선 먼저 급급히 운반해 오도록 내려가는 감역관에게 분부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마련해 두었던 철물(鐵物)을 이미 다 내주어서 지난해에 공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가까스로 여기저기서 끌어다가 썼으며, 또 무고(武庫)에서 가져다가 썼습니다. 쓰고 남은 철물이 비록 5백여 근이 있었으나 잇달아서 내려주었습니다. 이에 이번의 이 이궁을 짓는 큰 역사에는 별도로 조처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이 몹시 급박해서 계책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황연도에서는 본디 철이 생산된다고 하니, 본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반드시 영저(營儲)의 정철(正鐵)이 있을 것입니다. 각각 5천 근씩을 분정하소서. 그리고 전라·공홍·평안도 등의 감사와 병사에게는 각각 2천 근씩 분정하여 이를 가져다가 쓰는 것이 부득이한 일일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전부터 재목을 베어 올 때 잘못 큰 재목을 베어 와서 끝내 깎아내고서 씀을 면치 못하였으니, 몹시 아깝다. 앞으로 법궁(法宮)을 중건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대들보감이 될 큰 나무를 마구 베어서는 안된다. 내려 보내는 감역관을 잘 가려뽑아 내려 보내되, 한결같이 사대부집에서 쓰는 재목과 같은 것으로 베어오도록 각별히 신칙하여 말해 보내라. 조하(朝賀)받는 정전(正殿) 및 담장을 쌓는 것은 다음달부터 역사를 시작하라." 하였다.
"인왕산(仁王山) 아래 영조하는 곳에 대내(大內)를 수리하는 것과 새로 조성하는 전당(殿堂) 외에 응당 조성해야 될 각 아문이 40여 곳이나 됩니다. 간가(間架)의 실제 숫자에 대해서는 비록 정확하게 마련하지 못하였으나, 대개 응당 들어가야 할 재목과 기와가 극히 많습니다. 비록 창경궁에 쓰고 남은 재목이 7백여 조(條)가 있기는 하나, 이것은 재목이 크고 숫자 또한 많지 않아서 전당(殿堂)을 짓는 데 쓰기에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각 아문을 짓는 데 쓸 수 있겠습니까.
각 아문의 간가(間架)를 아무리 약소하게 하기를 힘쓰고, 집을 짓는 재목을 비록 작은 것으로 사서 쓰고자 하더라도, 이처럼 물이 줄어들고 절기가 어긋날 때에는 경강(京江) 근처에 재목이 전혀 없어서 아무리 값을 많이 주더라도 사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에 백번 생각해보아도 어찌할 계책이 없습니다.
부득이 전례에 의거해서 재목이 생산되는 곳에 감역관(監役官)을 파견해서 값을 주고 베어내게 하고, 또 시목(柴木) 장사꾼에게 가목(價木)을 주어 그로 하여금 마련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서까래감을 벨 때 잘못하여 너무 굵은 나무를 서까래감으로 베어 와서 전당을 짓는 데에는 쓰기가 알맞았지만 아문을 짓는 데에는 쓰기가 적당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안면곶(安眠串)에서 서까래감을 벨 때 모두 여염집을 지을 때 쓰는 것과 같이 너무 굵지 않은 것을 베어오되, 배를 조발해서 우선 먼저 급급히 운반해 오도록 내려가는 감역관에게 분부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마련해 두었던 철물(鐵物)을 이미 다 내주어서 지난해에 공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가까스로 여기저기서 끌어다가 썼으며, 또 무고(武庫)에서 가져다가 썼습니다. 쓰고 남은 철물이 비록 5백여 근이 있었으나 잇달아서 내려주었습니다. 이에 이번의 이 이궁을 짓는 큰 역사에는 별도로 조처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이 몹시 급박해서 계책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황연도에서는 본디 철이 생산된다고 하니, 본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반드시 영저(營儲)의 정철(正鐵)이 있을 것입니다. 각각 5천 근씩을 분정하소서. 그리고 전라·공홍·평안도 등의 감사와 병사에게는 각각 2천 근씩 분정하여 이를 가져다가 쓰는 것이 부득이한 일일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전부터 재목을 베어 올 때 잘못 큰 재목을 베어 와서 끝내 깎아내고서 씀을 면치 못하였으니, 몹시 아깝다. 앞으로 법궁(法宮)을 중건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대들보감이 될 큰 나무를 마구 베어서는 안된다. 내려 보내는 감역관을 잘 가려뽑아 내려 보내되, 한결같이 사대부집에서 쓰는 재목과 같은 것으로 베어오도록 각별히 신칙하여 말해 보내라. 조하(朝賀)받는 정전(正殿) 및 담장을 쌓는 것은 다음달부터 역사를 시작하라."
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전부터 큰 공사가 있을 경우에는 외방의 중들을 불러모아 부역시키는 것이 규례입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선수(繕修)하는 역사가 크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마침 쌀과 포목이 조금 여유가 있음으로 인하여 역군(役軍)을 모집하여 부역하게 했습니다. 이번에 인왕산 아래에서 하는 역사는 그 규모가 지난해 선수하였던 역사에 비해 더 크면 컸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쌀과 포목이 아주 적어서 몇 달의 쓰임도 지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농사가 조금 풍년이 들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먹고 살 수가 있어서 전날에 주었던 값을 주어도 모두 부역에 나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앞으로 각처에서 부릴 역군의 숫자를 대략 헤아려보면, 내외의 담장을 쌓는 데 드는 역군이 적어도 5백 명을 밑돌지 않을 것이고, 각처에서 부릴 역군 역시 5, 6백 명을 밑돌지 않을 것으로, 합하면 1천여 명이나 되니 어느 곳에서 고용해 부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몹시 염려되는 일입니다. 놀고 먹는 무리들을 불러다가 부역시키는 것은 분명하게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중들에게서 포목을 징수하라는 유생들의 호소로 인하여, 도감에서 ‘포목을 거두는 것은 명분이 없으니, 뒷날 국가의 역사가 있을 경우 전례에 의거해서 스스로 자신이 먹을 양식을 마련해 가지고 와 한 달 동안 부역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회계하여서 윤허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마침 이렇게 큰 역사가 있으니, 외방에 있는 중의 원수(元數) 총 1천 명을 4 번(番)으로 나누어서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차례차례 올려보내라는 뜻으로 각도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역사가 많지 않을 때 몇 백 명이나 되는 중들을 한꺼번에 올려보낼 필요는 없다. 다시금 참작하여서 하라." 하였다.
"전부터 큰 공사가 있을 경우에는 외방의 중들을 불러모아 부역시키는 것이 규례입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선수(繕修)하는 역사가 크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마침 쌀과 포목이 조금 여유가 있음으로 인하여 역군(役軍)을 모집하여 부역하게 했습니다. 이번에 인왕산 아래에서 하는 역사는 그 규모가 지난해 선수하였던 역사에 비해 더 크면 컸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쌀과 포목이 아주 적어서 몇 달의 쓰임도 지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농사가 조금 풍년이 들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먹고 살 수가 있어서 전날에 주었던 값을 주어도 모두 부역에 나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앞으로 각처에서 부릴 역군의 숫자를 대략 헤아려보면, 내외의 담장을 쌓는 데 드는 역군이 적어도 5백 명을 밑돌지 않을 것이고, 각처에서 부릴 역군 역시 5, 6백 명을 밑돌지 않을 것으로, 합하면 1천여 명이나 되니 어느 곳에서 고용해 부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몹시 염려되는 일입니다.
놀고 먹는 무리들을 불러다가 부역시키는 것은 분명하게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중들에게서 포목을 징수하라는 유생들의 호소로 인하여, 도감에서 ‘포목을 거두는 것은 명분이 없으니, 뒷날 국가의 역사가 있을 경우 전례에 의거해서 스스로 자신이 먹을 양식을 마련해 가지고 와 한 달 동안 부역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회계하여서 윤허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마침 이렇게 큰 역사가 있으니, 외방에 있는 중의 원수(元數) 총 1천 명을 4 번(番)으로 나누어서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차례차례 올려보내라는 뜻으로 각도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역사가 많지 않을 때 몇 백 명이나 되는 중들을 한꺼번에 올려보낼 필요는 없다. 다시금 참작하여서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법을 어기고 몰래 상거래를 하는 잠상(潛商)은 그 죄가 사형에 해당되는데도 국가의 기강이 완전히 무너져서 심지어는 밤에 몰래 수책(水柵)을 열고 미선(米船)을 끌어들인다는 소문이 파다하기까지 하니, 몹시 경악스럽습니다. 동래(東萊)와 부산(釜山) 등의 수령을 추고하고, 지금 이후로는 각별히 신명하여 금지시키라는 뜻으로 하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지금 이후로는 잠상이 함부로 들어오는 일이 있을 경우, 동래 부사와 부산 첨사를 모두 잡아다가 국문하여 중하게 다스리고, 감사 역시 파직시키는 일을 신칙하여 하유하라." 하였다.
"법을 어기고 몰래 상거래를 하는 잠상(潛商)은 그 죄가 사형에 해당되는데도 국가의 기강이 완전히 무너져서 심지어는 밤에 몰래 수책(水柵)을 열고 미선(米船)을 끌어들인다는 소문이 파다하기까지 하니, 몹시 경악스럽습니다. 동래(東萊)와 부산(釜山) 등의 수령을 추고하고, 지금 이후로는 각별히 신명하여 금지시키라는 뜻으로 하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지금 이후로는 잠상이 함부로 들어오는 일이 있을 경우, 동래 부사와 부산 첨사를 모두 잡아다가 국문하여 중하게 다스리고, 감사 역시 파직시키는 일을 신칙하여 하유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훈련 도감 제조는 직숙(直宿)하고 순찰하는 일이 있으니, 제조를 더 뽑되 이경전(李慶全)을 제수해서 그로 하여금 번갈아가며 직숙하고 순찰하게 하라."
"훈련 도감 제조는 직숙(直宿)하고 순찰하는 일이 있으니, 제조를 더 뽑되 이경전(李慶全)을 제수해서 그로 하여금 번갈아가며 직숙하고 순찰하게 하라."

 

우변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복병군관(伏兵軍官) 송기상(宋起祥)이 이달 19일 밤 2경에 공조의 담장 세 곳에 불을 지르는 사람을 잡아와서 고발하였습니다. 이에 이름을 물어보니 김대수(金大水)라고 하는 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심상하게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해조로 하여금 캐묻고서 율을 적용해 죄를 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지금 이후로도 역시 상세하고 엄하게 기찰해서 이와 같이 잡아 아뢸 일을 신칙하여 거행하라." 하였다.
"복병군관(伏兵軍官) 송기상(宋起祥)이 이달 19일 밤 2경에 공조의 담장 세 곳에 불을 지르는 사람을 잡아와서 고발하였습니다. 이에 이름을 물어보니 김대수(金大水)라고 하는 자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심상하게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해조로 하여금 캐묻고서 율을 적용해 죄를 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지금 이후로도 역시 상세하고 엄하게 기찰해서 이와 같이 잡아 아뢸 일을 신칙하여 거행하라."
하였다.

 

3월 22일 정해

사간원이 아뢰기를, "외방의 관원으로서 십고 십상(十考十上)인 자에게 한 품계를 상으로 더해 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정해진 법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 법이 폐해져서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령들이 탐오스럽고 염치가 없어 조금도 꺼리거나 뒤돌아봄이 없는 것은, 모두가 조정에서 이 법을 폐지하여 권장하는 바가 없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동안 십고 십상이면서도 산지(散地)에 버려져 있던 자에 대해 해조로 하여금 일일이 법에 의거해서 거행하도록 하여, 권장하고 징계하는 방도로 삼으소서.  공조 정랑 성여벌(成汝橃)은 문음(門蔭)으로 발신(發身)하여 별로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으며, 오랫동안 본직에 있으면서 직책에 맞지 않는다는 기롱이 많이 있었습니다. 태거(汰去)시키도록 명하소서.  목천 현감(木川縣監) 박기현(朴耆賢)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망령스러우며, 글을 읽지 못합니다. 이에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어서 아전들이 간사한 짓을 하여 백성들에게서 마구 긁어들임에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여 몇 호 안되는 잔약한 고을이 거의 텅 비게 되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찬의(贊儀) 임충우(任忠佑)는 사람됨이 패려스럽고 행실이 비루하여, 사대부의 반열에 끼어 있으면서 부끄럽고 욕되는 일이 이미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본직의 임기가 끝난 지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도 녹봉받는 것을 이롭게 여겨 숨긴 채 보고하지 않고는 염치없게도 태연스레 그 자리에 있기까지 하여서 물정이 모두들 놀랍고 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박기현의 일에 대해서는 천천히 결정하겠다. 임충우는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라. 나머지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외방의 관원으로서 십고 십상(十考十上)인 자에게 한 품계를 상으로 더해 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정해진 법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 법이 폐해져서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령들이 탐오스럽고 염치가 없어 조금도 꺼리거나 뒤돌아봄이 없는 것은, 모두가 조정에서 이 법을 폐지하여 권장하는 바가 없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동안 십고 십상이면서도 산지(散地)에 버려져 있던 자에 대해 해조로 하여금 일일이 법에 의거해서 거행하도록 하여, 권장하고 징계하는 방도로 삼으소서.
공조 정랑 성여벌(成汝橃)은 문음(門蔭)으로 발신(發身)하여 별로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으며, 오랫동안 본직에 있으면서 직책에 맞지 않는다는 기롱이 많이 있었습니다. 태거(汰去)시키도록 명하소서.
목천 현감(木川縣監) 박기현(朴耆賢)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망령스러우며, 글을 읽지 못합니다. 이에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어서 아전들이 간사한 짓을 하여 백성들에게서 마구 긁어들임에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여 몇 호 안되는 잔약한 고을이 거의 텅 비게 되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찬의(贊儀) 임충우(任忠佑)는 사람됨이 패려스럽고 행실이 비루하여, 사대부의 반열에 끼어 있으면서 부끄럽고 욕되는 일이 이미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본직의 임기가 끝난 지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도 녹봉받는 것을 이롭게 여겨 숨긴 채 보고하지 않고는 염치없게도 태연스레 그 자리에 있기까지 하여서 물정이 모두들 놀랍고 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박기현의 일에 대해서는 천천히 결정하겠다. 임충우는 먼저 파직한 뒤에 추고하라. 나머지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평상시의 항식(恒式) 수용(需用)과 별례(別例)의 경비로 쓰는 목면 및 이번의 천추사(千秋使)와 성절사(聖節使)의 별행차(別行次) 때에 예물(禮物)로 쓰는 백저포(白苧布)와 흑마포(黑麻布) 등의 값과, 제각사(諸各司)에서 당물(唐物)을 무역하는 값과 사신의 반전(盤膂) 등을 모두 합하여 계산할 경우, 꼭 써야만 할 목면의 숫자가 몹시 많습니다. 그리고 또 이번의 인왕산 아래에 선수(繕修)하는 역사는 뜻하지 않게 갑작스럽게 나와서 도감에서 끌어모은 얼마 안 되는 목면을 가지고는 결단코 지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영남에서 올려보낸 포목 수백 동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서 이를 덜어내어 내려주어서 큰 역사를 마치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랑 나인(羅紉)이 보고한 바를 보니, 감사가 안동(安東) 등 10고을의 전세(田稅)를 작목(作木)해서 몇 동(同)을 올려보냈으나, 그 나머지 54개 고을의 미포(米布)는 두 운(運)으로 나누어서 전부 동래로 내려보냈으므로, 나인은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는 채 올려보낼 기약이 없어서 장차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당초에 본조에서 왜료(倭料)를 공무역(公貿易)하는 숫자를 알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각년(各年)의 세견선(歲遣船)이 오지 않아서 쓰지 않고 각 고을에 남겨둔 미포가 몹시 많아서 1년의 왜공(倭供)을 대기에 충분하였고, 부족할 경우에는 가을과 겨울에 나오는 왜(倭)에 대해서는 정사년조의 신공(身貢) 역시 많이 보태어 쓸 수가 있었습니다. 이에 전의 병진년조를 작목(作木)한 것은 전부 올려보내라는 뜻으로 계하받아 공문을 보내었으며, 심지어 두 차례나 하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 감사 성진선(成晉善)은 성상의 분부를 준행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마땅할 터인데도, 조정의 명령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저지시키면서 끝내 올려보내지 않았으니, 일이 몹시 형편없습니다. 성진선은 이미 그 직책에서 떠났으니, 비록 다시 하유하더라도 반드시 올려보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새 감사 윤훤(尹暄)을 며칠 내로 떠나보내어, 즉시 이를 올려보내도록 해서 급한 용도에 쓸 수 있게 하소서. 각 고을의 수령들에 이르러서는, 감사의 명령이라고 핑계대고는 결정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은 채 지레 동래로 실어보냈으니, 몹시도 형편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더욱 심한 수령을 적발하여 먼저 파직시키라는 뜻으로 내려간 낭청에게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새 감사가 조사하여 계문한 뒤에 처치하겠다." 하였다.
"평상시의 항식(恒式) 수용(需用)과 별례(別例)의 경비로 쓰는 목면 및 이번의 천추사(千秋使)와 성절사(聖節使)의 별행차(別行次) 때에 예물(禮物)로 쓰는 백저포(白苧布)와 흑마포(黑麻布) 등의 값과, 제각사(諸各司)에서 당물(唐物)을 무역하는 값과 사신의 반전(盤膂) 등을 모두 합하여 계산할 경우, 꼭 써야만 할 목면의 숫자가 몹시 많습니다. 그리고 또 이번의 인왕산 아래에 선수(繕修)하는 역사는 뜻하지 않게 갑작스럽게 나와서 도감에서 끌어모은 얼마 안 되는 목면을 가지고는 결단코 지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영남에서 올려보낸 포목 수백 동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서 이를 덜어내어 내려주어서 큰 역사를 마치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랑 나인(羅紉)이 보고한 바를 보니, 감사가 안동(安東) 등 10고을의 전세(田稅)를 작목(作木)해서 몇 동(同)을 올려보냈으나, 그 나머지 54개 고을의 미포(米布)는 두 운(運)으로 나누어서 전부 동래로 내려보냈으므로, 나인은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는 채 올려보낼 기약이 없어서 장차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당초에 본조에서 왜료(倭料)를 공무역(公貿易)하는 숫자를 알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각년(各年)의 세견선(歲遣船)이 오지 않아서 쓰지 않고 각 고을에 남겨둔 미포가 몹시 많아서 1년의 왜공(倭供)을 대기에 충분하였고, 부족할 경우에는 가을과 겨울에 나오는 왜(倭)에 대해서는 정사년조의 신공(身貢) 역시 많이 보태어 쓸 수가 있었습니다. 이에 전의 병진년조를 작목(作木)한 것은 전부 올려보내라는 뜻으로 계하받아 공문을 보내었으며, 심지어 두 차례나 하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 감사 성진선(成晉善)은 성상의 분부를 준행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마땅할 터인데도, 조정의 명령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저지시키면서 끝내 올려보내지 않았으니, 일이 몹시 형편없습니다. 성진선은 이미 그 직책에서 떠났으니, 비록 다시 하유하더라도 반드시 올려보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새 감사 윤훤(尹暄)을 며칠 내로 떠나보내어, 즉시 이를 올려보내도록 해서 급한 용도에 쓸 수 있게 하소서.
각 고을의 수령들에 이르러서는, 감사의 명령이라고 핑계대고는 결정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은 채 지레 동래로 실어보냈으니, 몹시도 형편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더욱 심한 수령을 적발하여 먼저 파직시키라는 뜻으로 내려간 낭청에게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새 감사가 조사하여 계문한 뒤에 처치하겠다."
하였다.

 

헌부가 아뢴 경기의 수령들에 대한 일로 전교하였다. "이 계사에 대해 경기 감사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이 계사에 대해 경기 감사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전교하였다. "후원의 별전(別殿)을 조성할 때 산원(算員)으로 있었던 진사상(秦士尙)을 본직의 높은 품계에다가 제수하라."
"후원의 별전(別殿)을 조성할 때 산원(算員)으로 있었던 진사상(秦士尙)을 본직의 높은 품계에다가 제수하라."

 

전교하였다. "선수 도감(繕修都監)의 낭청과 감역관을 지난해에 숫자를 감한 인원으로 도로 계하받아서 그들로 하여금 직무를 살피게 하고, 생소한 사람으로 구차스럽게 충원하지 말라. "
"선수 도감(繕修都監)의 낭청과 감역관을 지난해에 숫자를 감한 인원으로 도로 계하받아서 그들로 하여금 직무를 살피게 하고, 생소한 사람으로 구차스럽게 충원하지 말라. "

 

전교하였다. "외방에서 미처 올려보내지 못한 선수 도감의 미포(米布)와 미처 올려보내지 못한 재목을 일일이 독촉해서 납부하게 해 이 역사에 보태어 쓸 수 있게 하라. "
"외방에서 미처 올려보내지 못한 선수 도감의 미포(米布)와 미처 올려보내지 못한 재목을 일일이 독촉해서 납부하게 해 이 역사에 보태어 쓸 수 있게 하라. "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노야소(爐冶所)에서 쓸 숯을 먼저 마련하여야만 하는데, 들어가야 할 숫자가 몹시도 많습니다. 지난해에 창경궁의 역사 때에는 경기의 강가 각 고을 및 강원도 초입 고을에 값을 주고 숯을 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관가에서 무역하면서 비단 억지를 부리며 억누른 폐단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쌀이나 소금 등을 말이나 되로 조금씩 나누어줄 즈음에도 일일이 균등하게 나누어주지 못하여서 낭비만 하는 걱정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 강가에 사는 백성들의 말을 듣건대 대가로 주는 물품을 혹 전혀 받지 못한 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부역은 아주 무거우니, 이름은 대가를 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어거지로 정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허다한 숯을 또다시 경기의 강가 고을에서 무역할 경우 경기 백성들의 부역이 치우치게 고달프고 일은 쉽게 이루지 못할 것이니, 몹시 염려됩니다. 그러니 처음에 쓸 숯은 편리하고 가까운 곳에서 사들이고, 한편으로 부지런하고 재간이 있는 사람을 차임해 보내어서 공홍도(公洪道)의 대산곶(大山串)과 황연도(黃延道)의 백령도(白翎島)에서 숯을 구워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부릴 군인들은 본도의 수사(水使)와 감사·병사로 하여금 당번(當番)에서 덜어내어 수군 1백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한 달 동안 부역시키라고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노야소(爐冶所)에서 쓸 숯을 먼저 마련하여야만 하는데, 들어가야 할 숫자가 몹시도 많습니다. 지난해에 창경궁의 역사 때에는 경기의 강가 각 고을 및 강원도 초입 고을에 값을 주고 숯을 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관가에서 무역하면서 비단 억지를 부리며 억누른 폐단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쌀이나 소금 등을 말이나 되로 조금씩 나누어줄 즈음에도 일일이 균등하게 나누어주지 못하여서 낭비만 하는 걱정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 강가에 사는 백성들의 말을 듣건대 대가로 주는 물품을 혹 전혀 받지 못한 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부역은 아주 무거우니, 이름은 대가를 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어거지로 정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허다한 숯을 또다시 경기의 강가 고을에서 무역할 경우 경기 백성들의 부역이 치우치게 고달프고 일은 쉽게 이루지 못할 것이니, 몹시 염려됩니다.
그러니 처음에 쓸 숯은 편리하고 가까운 곳에서 사들이고, 한편으로 부지런하고 재간이 있는 사람을 차임해 보내어서 공홍도(公洪道)의 대산곶(大山串)과 황연도(黃延道)의 백령도(白翎島)에서 숯을 구워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부릴 군인들은 본도의 수사(水使)와 감사·병사로 하여금 당번(當番)에서 덜어내어 수군 1백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한 달 동안 부역시키라고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판서 박승종(朴承宗)의 병환이 여전하고 참지는 차출하지 않았으며, 참의 이욱(李稶)은 내조(內曹)에서 숙직하고 있으며 이병(李覮)은 외조(外曹)에서 숙직하고 있습니다. 인왕산 아래에 역사를 시작함이 한창 급하여 요리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이 몹시 많습니다. 그러니 우선 훈련 도감 낭청 박정길(朴鼎吉)이 제조와 교대로 숙직했던 규례에 의거해서 본조의 정랑이 본조의 당상과 교대로 숙직하고, 좌랑이 상규(常規)에 의거하여 숙직하게 하소서. 그러면 외조(外曹)에 항상 두 사람이 같이 지키면서 뜻밖의 변고에 대비할 것이니, 사세가 순하고 편리한데다 가관(假官)을 차출하는 폐단도 없을 것입니다. 감히 여쭙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판서 박승종(朴承宗)의 병환이 여전하고 참지는 차출하지 않았으며, 참의 이욱(李稶)은 내조(內曹)에서 숙직하고 있으며 이병(李覮)은 외조(外曹)에서 숙직하고 있습니다. 인왕산 아래에 역사를 시작함이 한창 급하여 요리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이 몹시 많습니다. 그러니 우선 훈련 도감 낭청 박정길(朴鼎吉)이 제조와 교대로 숙직했던 규례에 의거해서 본조의 정랑이 본조의 당상과 교대로 숙직하고, 좌랑이 상규(常規)에 의거하여 숙직하게 하소서. 그러면 외조(外曹)에 항상 두 사람이 같이 지키면서 뜻밖의 변고에 대비할 것이니, 사세가 순하고 편리한데다 가관(假官)을 차출하는 폐단도 없을 것입니다. 감히 여쭙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경평군(慶平君)과 정화옹주(貞和翁主)의 집에 더 지을 곳이 있으면, 담당 내관의 말을 들어보고서, 담장 바깥의 빈터를 많이 들이어서 더 짓도록 하라고 선수 도감에 말해 주라."
"경평군(慶平君)과 정화옹주(貞和翁主)의 집에 더 지을 곳이 있으면, 담당 내관의 말을 들어보고서, 담장 바깥의 빈터를 많이 들이어서 더 짓도록 하라고 선수 도감에 말해 주라."

 

전교하였다. "이궁(離宮)을 조성할 재목을 베어온 뒤 역사를 시작한다면 더디어서 기약하기가 어렵다. 강가에 이미 베어놓고서 올려오지 않은 사대부의 재목을 상세하게 값을 주어 속히 사서 올려보내게 한다면 조성하기가 쉬울 것이다. 내려가는 감역관에게 상세하게 말해주어 보내라. 그리고 낭청 역시 일을 잘 아는 사람으로 십분 가려뽑아서 보내라. 이상의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해서 잘 조처하게 하라."
"이궁(離宮)을 조성할 재목을 베어온 뒤 역사를 시작한다면 더디어서 기약하기가 어렵다. 강가에 이미 베어놓고서 올려오지 않은 사대부의 재목을 상세하게 값을 주어 속히 사서 올려보내게 한다면 조성하기가 쉬울 것이다. 내려가는 감역관에게 상세하게 말해주어 보내라. 그리고 낭청 역시 일을 잘 아는 사람으로 십분 가려뽑아서 보내라. 이상의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해서 잘 조처하게 하라."

 

비밀히 전교하였다. "이궁의 동·서·남·북문을 각 곳에 만들 만한 공간이 있어야만 할 듯하다.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조처하게 하라."
"이궁의 동·서·남·북문을 각 곳에 만들 만한 공간이 있어야만 할 듯하다.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조처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이궁의 역사를 시작할 길한 달과 길한 날짜를 속히 가려 뽑으라."
"이궁의 역사를 시작할 길한 달과 길한 날짜를 속히 가려 뽑으라."

 

3월 23일 무자

우의정 한효순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의 간절한 뜻을 모두 알았다. 이처럼 국사가 어려운 때를 당하여 경은 노성(老成)한 대신으로서 어찌 차마 반드시 물러가려는 계책을 하는가? 의당 전의 전지를 준행해서 조리하고서 출사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경의 간절한 뜻을 모두 알았다. 이처럼 국사가 어려운 때를 당하여 경은 노성(老成)한 대신으로서 어찌 차마 반드시 물러가려는 계책을 하는가? 의당 전의 전지를 준행해서 조리하고서 출사하라."
하였다.

 

판중추부사 이경전(李慶全)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예전에 나라를 잘 다스린 자는 반드시 세신(世臣)에게 국사를 맡기고자 도모하였다. 내가 비록 임금답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이 이치를 알고 있다. 오늘날의 세신은 경을 젖혀놓는다면 그 누구이겠는가. 나의 뜻을 체득해서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예전에 나라를 잘 다스린 자는 반드시 세신(世臣)에게 국사를 맡기고자 도모하였다. 내가 비록 임금답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이 이치를 알고 있다. 오늘날의 세신은 경을 젖혀놓는다면 그 누구이겠는가. 나의 뜻을 체득해서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김제남(金悌男)의 집을 내적간(內摘奸)한 뒤 전교하기를, "무너진 곳을 급급히 수축하되, 병조 낭관이 함께 가서 쌓는 것을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마치라." 하였다.
"무너진 곳을 급급히 수축하되, 병조 낭관이 함께 가서 쌓는 것을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마치라."
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이번의 이 이궁의 역사는 비단 일이 갑자기 나왔을 뿐만 아니라 각 아문에 이르러서는 맨땅에서 역사를 일으키므로 공력(功力)이 더욱더 큽니다. 이에 단지 서울에 있는 공장이들만 가지고는 쉽게 공사를 이룰 수가 없어서, 부득이 외방의 석수와 이장(泥匠)·목수 등을 전례에 의거해서 이미 나누어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먼 외방의 공장이들이 서울에서 복역(服役)하느라 몸을 혹사한 뒤끝에 또 이런 징발을 당하였으니, 반드시 배로 원망할 것입니다. 본도 감사로 하여금 신명하여 알려서 특별히 구휼해 주고 그들의 호역(戶役)을 감하며, 또 운(運)을 나누어 교대하게 해 그들로 하여금 치우치게 고달픈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파발마를 보내어 각도에 알리소서. 그리고 서울의 공장이들은 술수 부리기를 좋아해서 세가(勢家)에 투탁해서 한사코 피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피하여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경우 각별히 가두고서 죄를 다스린 뒤 먼 변방에 충군(充軍)할 것이라고, 한성부로 하여금 미리 알리게 하소서. 그리고 이궁의 역사가 끝날 동안에 상사 아문(上司衙門)과 여러 곳의 공해(公廨)를 영선하는 것과 사삿집을 영조하는 것을 모두 정지시키소서. 그리고 장인들이 비록 상사(上司)의 조례(皂隷)나 나장(羅將) 등에 소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아울러 사환하는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번의 이 이궁의 역사는 비단 일이 갑자기 나왔을 뿐만 아니라 각 아문에 이르러서는 맨땅에서 역사를 일으키므로 공력(功力)이 더욱더 큽니다. 이에 단지 서울에 있는 공장이들만 가지고는 쉽게 공사를 이룰 수가 없어서, 부득이 외방의 석수와 이장(泥匠)·목수 등을 전례에 의거해서 이미 나누어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먼 외방의 공장이들이 서울에서 복역(服役)하느라 몸을 혹사한 뒤끝에 또 이런 징발을 당하였으니, 반드시 배로 원망할 것입니다. 본도 감사로 하여금 신명하여 알려서 특별히 구휼해 주고 그들의 호역(戶役)을 감하며, 또 운(運)을 나누어 교대하게 해 그들로 하여금 치우치게 고달픈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파발마를 보내어 각도에 알리소서.
그리고 서울의 공장이들은 술수 부리기를 좋아해서 세가(勢家)에 투탁해서 한사코 피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피하여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경우 각별히 가두고서 죄를 다스린 뒤 먼 변방에 충군(充軍)할 것이라고, 한성부로 하여금 미리 알리게 하소서. 그리고 이궁의 역사가 끝날 동안에 상사 아문(上司衙門)과 여러 곳의 공해(公廨)를 영선하는 것과 사삿집을 영조하는 것을 모두 정지시키소서. 그리고 장인들이 비록 상사(上司)의 조례(皂隷)나 나장(羅將) 등에 소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아울러 사환하는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3월 24일 기축

통천(通川)에 정배(定配)한 윤공(尹珙)의 배소(配所)에 불이 났다. 윤공의 어미는 고 상신 윤승훈(尹承勳)의 부인인데, 역시 윤공을 따라갔다가 한밤중에 졸지에 당하여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이에 윤공 및 윤공의 여동생인 이경여(李敬輿)의 아내, 윤공의 서모가 서로 뛰어들어가 구하다가 모두 불에 타 죽었으며, 윤공의 딸 역시 죽었다. 강원 감사가 이 사실을 치계하여 아뢰었다. 금상(今上)030)  이 반정(反正)하여서 모두 정문(旌門)하도록 명하였다.






[註 030] 금상(今上) : 인조를 말함.

 

3월 25일 경인

전교하였다.      "내 증세가 지금까지 낫지 않아 결단코 거둥하기가 어렵다. 영정(影幀)은 4월 20일 이후에 떠나보내어 지영(祗迎)하고, 친제(親祭)는 5월 5, 6일 사이로 물려서 거행할 것으로 속히 날짜를 고쳐 택해서 하유하라."
"내 증세가 지금까지 낫지 않아 결단코 거둥하기가 어렵다. 영정(影幀)은 4월 20일 이후에 떠나보내어 지영(祗迎)하고, 친제(親祭)는 5월 5, 6일 사이로 물려서 거행할 것으로 속히 날짜를 고쳐 택해서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임기가 만료되어 체직되어 올라온 수령들을 직책에 붙이지 않는 것은 일이 몹시 온당치 못하다. 지금부터는 상세히 살펴서 일일이 직책에다 붙이라."
"임기가 만료되어 체직되어 올라온 수령들을 직책에 붙이지 않는 것은 일이 몹시 온당치 못하다. 지금부터는 상세히 살펴서 일일이 직책에다 붙이라."

 

전교하였다. "요즈음 선수 도감에 하교한 일이 몹시 많은데도 여러 날 동안 회보를 볼 수가 없으니 괴이하다. 모두 일일이 살펴서 속히 회계하라."
"요즈음 선수 도감에 하교한 일이 몹시 많은데도 여러 날 동안 회보를 볼 수가 없으니 괴이하다. 모두 일일이 살펴서 속히 회계하라."

 

전교하였다. "선수 도감의 제조가 이궁을 조성하는 곳에서 자주 회좌(會坐)하여 요리해서 의논해 조처하라. 그리고 이궁의 각 아문을 지을 만한 곳을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서 들이라."
"선수 도감의 제조가 이궁을 조성하는 곳에서 자주 회좌(會坐)하여 요리해서 의논해 조처하라. 그리고 이궁의 각 아문을 지을 만한 곳을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서 들이라."

 

전교하였다. "이궁의 가위장(假衛將)이 들어가 있을 가가(假家)를 속히 도감으로 하여금 조성하게 하라. 그리고 가위장 세 사람을 당상 무신(堂上武臣)으로 가려 차임해서 그로 하여금 엄하게 지키게 하라. 그리고 각 아문을 조성할 재목과 기와가 얼마나 되는지 선수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써서 들이게 하라."
"이궁의 가위장(假衛將)이 들어가 있을 가가(假家)를 속히 도감으로 하여금 조성하게 하라. 그리고 가위장 세 사람을 당상 무신(堂上武臣)으로 가려 차임해서 그로 하여금 엄하게 지키게 하라. 그리고 각 아문을 조성할 재목과 기와가 얼마나 되는지 선수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써서 들이게 하라."

 

전교하였다. "외방에서 공사를 돕는 쌀과 포목은, 군현의 가난하고 부유한 정도가 반드시 같지 않을 것이니, 도감에서 잘 참작해서 공문을 보내어 알려, 각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정성을 다해 상납해서 이 역사를 돕게 하라."
"외방에서 공사를 돕는 쌀과 포목은, 군현의 가난하고 부유한 정도가 반드시 같지 않을 것이니, 도감에서 잘 참작해서 공문을 보내어 알려, 각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정성을 다해 상납해서 이 역사를 돕게 하라."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이번의 이 큰 역사는 뜻밖에 갑작스럽게 나왔는데, 온갖 염려 가운데 가장 급급한 것은 쌀과 포목으로, 예전의 저축이 거의 다 떨어졌는데도 계속해 잇댈 계책이 없습니다. 이에 신들은 어찌할 계책이 없어서 단지 속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외의 백관들에게서 쌀을 거두어들여 공사를 도우라는 명을 받고보니, 이는 신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라 모두들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자들치고 그 누가 앞다투어 바치어서 국가의 일을 만분의 일이나마 돕지 않겠습니까. 경외 각 관원에게 품등(品等)에 따라 분정(分定)한 것을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이번에 정한 이 숫자는 모두가 지나치게 소략하다고 하는데, 규정 이외의 일이라 감히 넉넉하게 하지 못하고 이와 같이 감히 여쭙니다. 다만 같은 주·현(州縣)이더라도 가난하고 부유한 정도가 달라서 주·부(州府) 이면서도 군·현(郡縣)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군·현이면서도 주·부보다 훨씬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변장(邊將)과 진(鎭)·포(浦)에 이르러서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도감에서 비록 감히 분별해서 가감하지 못하겠으나, 이것은 본도의 감사·병사·수사가 반드시 상세히 알고 있을 것이니, 상세히 헤아려서 분부하도록 말을 만들어서 공문을 보내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듯합니다. 감사·병사·수사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스스로 온힘을 다해 넉넉하게 도울 것이므로 숫자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포목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거두어들인 물품으로 공사를 시작하는 동안에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면(米麪)의 경우는 단지 대미(大米) 1백여 석과, 흙과 돌이 반이나 뒤섞여 있어서 쓸 수가 없는 소미(小米) 1천여 석 외에는 전혀 나올 곳이 없습니다. 지난해의 관서(關西)의 패선미(敗船米)가 무려 2천여 석이나 되지만 징수해 납부할 기약이 없습니다. 또한 도감에 응당 납부해야 할 강화(江華)의 쌀 1천 5백 석 중에 7백 석은 이미 실어다가 썼고, 그 나머지 8백 석은 현재 본부(本府)에 있는데, 이를 가져다가 쓴다면 목전의 다급함은 구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강화는 기보(畿輔)의 관방(關防)이 되는 지역으로서 상께서 지난번에 쌓아두라는 전교를 내리셨으므로, 비록 이것이 도감의 쌀이기는 하지만 감히 함부로 가져다가 쓸 수가 없습니다. 포목을 거두는 각 고을 중 뱃길이 통할 수 있는 연해(沿海)의 고을은 포목으로 올려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시가(市價)에 따라서 쌀로 바꾸어 올려보내면 저들에게 해롭지 않고 본 도감에는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품목(品木)을 올려보내는 외에 물력(物力)의 정도에 따라서 쌀을 더 보낸다면 더욱더 다행이겠습니다. 수령들이 정해놓은 한계에 구애되어서 비록 여력이 있더라도 혐의스러워 올려보내지 않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뜻도 아울러 행회(行會)하는 가운데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말예(末裔)의 종친이 어느 곳에서 마련하여 납부하겠는가. 당하(堂下)의 종친에 대해서는 혹 한두 필을 참작해서 감해주라. 그리고 감사·병사·수사 이하는 경관(京官)과 같지 않으니, 조금 넉넉하게 마련해서 그들로 하여금 납부하게 하라. 또 강화에 있는 미처 상납하지 못한 도감의 대미(大米)는 우선 상납하게 하여 보태어 쓰라." 하였다.
"이번의 이 큰 역사는 뜻밖에 갑작스럽게 나왔는데, 온갖 염려 가운데 가장 급급한 것은 쌀과 포목으로, 예전의 저축이 거의 다 떨어졌는데도 계속해 잇댈 계책이 없습니다. 이에 신들은 어찌할 계책이 없어서 단지 속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외의 백관들에게서 쌀을 거두어들여 공사를 도우라는 명을 받고보니, 이는 신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라 모두들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자들치고 그 누가 앞다투어 바치어서 국가의 일을 만분의 일이나마 돕지 않겠습니까. 경외 각 관원에게 품등(品等)에 따라 분정(分定)한 것을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이번에 정한 이 숫자는 모두가 지나치게 소략하다고 하는데, 규정 이외의 일이라 감히 넉넉하게 하지 못하고 이와 같이 감히 여쭙니다.
다만 같은 주·현(州縣)이더라도 가난하고 부유한 정도가 달라서 주·부(州府) 이면서도 군·현(郡縣)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군·현이면서도 주·부보다 훨씬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변장(邊將)과 진(鎭)·포(浦)에 이르러서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도감에서 비록 감히 분별해서 가감하지 못하겠으나, 이것은 본도의 감사·병사·수사가 반드시 상세히 알고 있을 것이니, 상세히 헤아려서 분부하도록 말을 만들어서 공문을 보내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듯합니다. 감사·병사·수사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스스로 온힘을 다해 넉넉하게 도울 것이므로 숫자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포목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거두어들인 물품으로 공사를 시작하는 동안에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면(米麪)의 경우는 단지 대미(大米) 1백여 석과, 흙과 돌이 반이나 뒤섞여 있어서 쓸 수가 없는 소미(小米) 1천여 석 외에는 전혀 나올 곳이 없습니다. 지난해의 관서(關西)의 패선미(敗船米)가 무려 2천여 석이나 되지만 징수해 납부할 기약이 없습니다. 또한 도감에 응당 납부해야 할 강화(江華)의 쌀 1천 5백 석 중에 7백 석은 이미 실어다가 썼고, 그 나머지 8백 석은 현재 본부(本府)에 있는데, 이를 가져다가 쓴다면 목전의 다급함은 구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강화는 기보(畿輔)의 관방(關防)이 되는 지역으로서 상께서 지난번에 쌓아두라는 전교를 내리셨으므로, 비록 이것이 도감의 쌀이기는 하지만 감히 함부로 가져다가 쓸 수가 없습니다.
포목을 거두는 각 고을 중 뱃길이 통할 수 있는 연해(沿海)의 고을은 포목으로 올려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시가(市價)에 따라서 쌀로 바꾸어 올려보내면 저들에게 해롭지 않고 본 도감에는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품목(品木)을 올려보내는 외에 물력(物力)의 정도에 따라서 쌀을 더 보낸다면 더욱더 다행이겠습니다. 수령들이 정해놓은 한계에 구애되어서 비록 여력이 있더라도 혐의스러워 올려보내지 않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뜻도 아울러 행회(行會)하는 가운데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말예(末裔)의 종친이 어느 곳에서 마련하여 납부하겠는가. 당하(堂下)의 종친에 대해서는 혹 한두 필을 참작해서 감해주라. 그리고 감사·병사·수사 이하는 경관(京官)과 같지 않으니, 조금 넉넉하게 마련해서 그들로 하여금 납부하게 하라. 또 강화에 있는 미처 상납하지 못한 도감의 대미(大米)는 우선 상납하게 하여 보태어 쓰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나의 증세가 아직도 쾌차하지 않았고, 대내(大內)에 현재 요사스러운 변고가 있다. 비록 옮겨갈 만한 곳이 없어서 우선 그대로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때 내전(內殿)에 상호(上號)하고 내연(內宴)하는 등의 예는 결단코 강행하기가 어렵다. 상전(上箋)과 의호(議號)는 7월 20일 이후로, 상호(上號)와 수연(壽宴)은 8월로 고쳐 택일하여 늦추어 거행하라. 이것은 단지 몇달 사이일 뿐이니, 다시 그대로 거행하기를 청하지 말고 속히 외방에 행회(行會)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해 주라."
"나의 증세가 아직도 쾌차하지 않았고, 대내(大內)에 현재 요사스러운 변고가 있다. 비록 옮겨갈 만한 곳이 없어서 우선 그대로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때 내전(內殿)에 상호(上號)하고 내연(內宴)하는 등의 예는 결단코 강행하기가 어렵다. 상전(上箋)과 의호(議號)는 7월 20일 이후로, 상호(上號)와 수연(壽宴)은 8월로 고쳐 택일하여 늦추어 거행하라. 이것은 단지 몇달 사이일 뿐이니, 다시 그대로 거행하기를 청하지 말고 속히 외방에 행회(行會)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해 주라."

 

사간원이 아뢰기를, "국가에서 선혜청을 설치한 이래로 경기 지방의 백성들이 모두들 편안히 살며 생업을 즐기면서 혹시라도 뒤늦게 쌀을 내게 될까 두려워하여 분주하는 것은, 대개 내는 것은 적고 혜택을 받는 것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을 세운 지 이미 오래되고 나라의 기강이 점차 해이해져, 수령으로 있는 자들이 제대로 봉행하지 않고 도리어 이 쌀을 혹 수입잡는 바탕으로 삼아 본청에 납부할 쌀을 많이 줄어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백성들의 죄이겠습니까. 본청에서 더욱 심하게 납부하지 않은 고을을 뽑아내어 파직하고 추고하기를 계청한 것은, 실로 국가의 재정을 중하게 하고 혜택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상께서는 시원스럽게 아뢴 바대로 시행해서 한 사람을 징계해 백 사람을 격려하는 뜻을 보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지 추고하라고만 명하였으니, 저 외람된 수령들이 어디에서 징계되겠습니까. 헌부가 사유를 갖추어 논계한 것 역시 법을 중히 여기는 구구한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시원스럽게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초에는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명을 내리고 계속해서 본도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게 하라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본청은 바로 창고에 앉아서 받아들인 것을 점고하는 곳입니다. 아무 고을이 납부하고 안 하고와, 아무 해 아무 등(等)을 다 납부하지 못한 숫자에 대해 석두승합(石斗升合)까지 모두 처리해서 일일이 감사에게 행회(行會)하였습니다. 그러니 각 고을에서 많은 숫자를 납부하지 못한 것은 그 책임이 감사에게 있습니다. 감사가 이미 납부하지 못한 각 고을을 검독(檢督)하지 못하여 역시 중한 추고를 받았으니, 어떻게 자세히 조사하기를 감사에게 다시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아무 해 아무 등을 납부하지 않은 것과 그 당시 직임에 있던 수령들을 감사가 이미 조사해서 본청에 첩보(牒報)하였으므로, 각 고을이 납부하지 않은 것의 많고 적음과 수령들을 파직하고 추고한 것의 가볍고 중함에 대해서는, 본청의 문서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감사가 그 사이에서 다시 조사할 것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감사로 하여금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고 한 명을 도로 거두소서. 그리고 더욱 심한 수령은 속히 파직하여 나머지 사람들을 경계시키소서.  전라 병영 우후(全羅兵營虞候) 이정(李謰)은 사람됨이 교활하고 행실이 패망스러워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직에 제수되어서도 오히려 악을 고치지 않고 상관을 능욕하고 하졸을 침학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어 물정이 모두 분해 하고 있습니다.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국가에서 선혜청을 설치한 이래로 경기 지방의 백성들이 모두들 편안히 살며 생업을 즐기면서 혹시라도 뒤늦게 쌀을 내게 될까 두려워하여 분주하는 것은, 대개 내는 것은 적고 혜택을 받는 것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을 세운 지 이미 오래되고 나라의 기강이 점차 해이해져, 수령으로 있는 자들이 제대로 봉행하지 않고 도리어 이 쌀을 혹 수입잡는 바탕으로 삼아 본청에 납부할 쌀을 많이 줄어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백성들의 죄이겠습니까.
본청에서 더욱 심하게 납부하지 않은 고을을 뽑아내어 파직하고 추고하기를 계청한 것은, 실로 국가의 재정을 중하게 하고 혜택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상께서는 시원스럽게 아뢴 바대로 시행해서 한 사람을 징계해 백 사람을 격려하는 뜻을 보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지 추고하라고만 명하였으니, 저 외람된 수령들이 어디에서 징계되겠습니까.
헌부가 사유를 갖추어 논계한 것 역시 법을 중히 여기는 구구한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시원스럽게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초에는 천천히 결정하겠다는 명을 내리고 계속해서 본도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게 하라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본청은 바로 창고에 앉아서 받아들인 것을 점고하는 곳입니다. 아무 고을이 납부하고 안 하고와, 아무 해 아무 등(等)을 다 납부하지 못한 숫자에 대해 석두승합(石斗升合)까지 모두 처리해서 일일이 감사에게 행회(行會)하였습니다. 그러니 각 고을에서 많은 숫자를 납부하지 못한 것은 그 책임이 감사에게 있습니다. 감사가 이미 납부하지 못한 각 고을을 검독(檢督)하지 못하여 역시 중한 추고를 받았으니, 어떻게 자세히 조사하기를 감사에게 다시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아무 해 아무 등을 납부하지 않은 것과 그 당시 직임에 있던 수령들을 감사가 이미 조사해서 본청에 첩보(牒報)하였으므로, 각 고을이 납부하지 않은 것의 많고 적음과 수령들을 파직하고 추고한 것의 가볍고 중함에 대해서는, 본청의 문서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감사가 그 사이에서 다시 조사할 것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감사로 하여금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고 한 명을 도로 거두소서. 그리고 더욱 심한 수령은 속히 파직하여 나머지 사람들을 경계시키소서.
전라 병영 우후(全羅兵營虞候) 이정(李謰)은 사람됨이 교활하고 행실이 패망스러워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직에 제수되어서도 오히려 악을 고치지 않고 상관을 능욕하고 하졸을 침학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어 물정이 모두 분해 하고 있습니다.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3월 26일 신묘

전교하였다. "경기 고을에서 납부하지 못한 숫자와 아무아무 읍의 수령인지를 선혜청으로 하여금 일일이 상세하게 서계하게 하라."
"경기 고을에서 납부하지 못한 숫자와 아무아무 읍의 수령인지를 선혜청으로 하여금 일일이 상세하게 서계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창경궁(昌慶宮)을 영조할 때 종친들도 공사를 도왔는가? 전례를 상세히 고찰하여 아뢰라."
"창경궁(昌慶宮)을 영조할 때 종친들도 공사를 도왔는가? 전례를 상세히 고찰하여 아뢰라."

 

전교하였다. "이궁(離宮)의 이름을 대제학으로 하여금 여러 개를 지어 서계하게 하라."
"이궁(離宮)의 이름을 대제학으로 하여금 여러 개를 지어 서계하게 하라."

 

한영(韓詠)을 필선으로, 임성지(任性之)를 지평으로, 유효립(柳孝立)을 군기시 정으로, 신광업(辛光業)을 내자시 정으로, 이경여(李慶輿)를 이천 현감(利川縣監)으로, 정광성(鄭廣成)을 병조 참지로, 유희량(柳希亮)을 부제학으로, 이춘원(李春元)을 공홍 감사로, 이대엽(李大燁)을 공조 참의로, 박자응(朴自凝)을 부교리로, 이상항(李尙恒)을 문학으로, 박홍구(朴弘耉)를 지중추부사로, 최호(崔濩)를 직강으로, 양극선(梁克選)을 좌통례로, 【양극선은 바로 다른 사람의 종이었는데, 면천(免賤)되지 않은 채 속임수를 써서 과거(科擧)에 급제하였다. 역당(逆黨)들에게 부회하여 여러 차례 흉악한 상소를 올려 청현직을 두루 역임하고 드디어 이 직책에 오른 것이다.】 황익중(黃益中)을 우통례로, 서국정(徐國楨)을 예조 좌랑으로, 조유도(趙有道)를 응교로, 정립(鄭岦)을 분승지(分承旨)로, 심즙(沈諿)을 사성으로, 이위경(李偉卿)을 이조 정랑으로, 임성지(任性之)를 이조 좌랑으로, 한희(韓暿)를 지평으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문창 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을 찬성에 제수하라. 침의(針醫) 안언길(安彦吉)을 활인서 별좌(活人署別坐)에 제수하라. 좌통례 한회(韓懷)는 여러 차례 대례(大禮)를 치루었으니 가자하라. 금부도사와 옥관(獄官)·부관(部官)은 가려서 의망하라." 하였다. 【지난해의 도목 정사를 지금 비로소 한 것이다.】
"문창 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을 찬성에 제수하라. 침의(針醫) 안언길(安彦吉)을 활인서 별좌(活人署別坐)에 제수하라. 좌통례 한회(韓懷)는 여러 차례 대례(大禮)를 치루었으니 가자하라. 금부도사와 옥관(獄官)·부관(部官)은 가려서 의망하라."
하였다. 【지난해의 도목 정사를 지금 비로소 한 것이다.】

 

3월 27일 임진

왕세자가 백관을 거느리고 최기(崔沂)를 주벌한 것을 축하하였다. 왕이 하교하기를, "형벌을 바루어서 거리에 게시하여 이미 역적을 토평하는 법을 거행하였고, 예를 이루어 종묘에 고하고 바로 칙유(飭諭)하는 글을 반포하였다. 분함은 신인(神人)에게서 씻기었고 일은 서책에 써서 전할 만하다. 역적의 괴수 최기는 화심(禍心)을 속에 감추고 이지(異志)를 몰래 길러, 해주(海州)의 목사가 되어서는 여러 흉악한 자들과 체결하고 향토(鄕土)에 은혜를 베풀어 여러 족속들을 끌어모았다. 백사장의 정자에서 유관(遊觀)한 것은 오로지 몰래 모의하기 위해서였고, 해서 지방의 유생들이 상소한 것은 실로 군사를 일으키고자 해서였다.  김기(金錡)·신효업(申孝業)을 대장으로 삼고, 박계운(朴啓運)·박흥빈(朴興贇)을 모주(謨主)로 삼았다. 5월로 기일을 정하여서 서울의 궁궐을 범하려고 하였고, 군사 7백 명을 모아 충원(忠原)에서 합세하고자 하였다. 군사들의 대오를 나눈 성책(成冊)을 이미 간행하였고, 추대할 자의 성명을 또 드러내었다. 동요(童謠)를 지어 서로 전함에 원근의 사람들이 현혹되었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 밤에 소리치자 도성 사람들이 피난할 준비를 하였다. 악을 쌓음이 이에 이르러 화란이 장차 일어나게 되었다.  김몽호(金夢虎)·전응남(全應男)이 반대 세력을 만듦에 때려 죽였고, 박이빈(朴而彬)·박희일(朴希逸)이 상변(上變)하고자 함에 잡아가두었다. 옻나무 밭의 돌 아래에서 다시 흉서(兇書)를 얻었고, 보루(堡樓)의 문정(門庭)에서 사잇길을 취하려 하였다. 동헌(東軒)에서 촛불을 끄고 의논한 것이 무슨 일이며, 사마소(司馬所)에서 서책을 불태운 것은 그 속임수를 가리기 어렵다. 참나무 몽둥이에 붙여서 첩권(帖捲)에 뜻을 보이었고, 초오(草烏)의 약을 주어 소주에 독을 탔다. 한밤중에 흉악한 짓을 하여 바닷속에 시체를 던져넣었고, 고변하는 사람을 모두 없애 감히 입을 없앨 계획을 하였다. 선전관(宣傳官)이 와서 고하는 것을 막고자 하면서는 외손(外孫)을 보내어 뇌물로 꾀이었고, 감사의 장계를 저지시키고자 하면서는 영인(營人)을 잡아끌어 찌르도록 꾀이었다. 의금부에 잡혀온 뒤에 미쳐서는 다시 간사하고 교활한 계책을 내었고, 몰래 흉악한 무리들과 의논하여 훈신과 재신들을 무함하여 끌여들였다. 참과 거짓을 현란시켜 보고 듣기에 놀랍게 하였고, 몰래 여러 죄수들을 협박해서 그들로 하여금 똑같이 공초하게 하였다. 전후의 정적(情迹)이 끝내 모두 드러나 역모에 참여한 역적이 죄를 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함께 악을 저지른 무리가 죄를 승복한 것이 몹시 많았다. 실로 흉인의 우두머리로, 죄가 천지에 통한다.  최유석(崔有錫)·최유영(崔有泳)·최식(崔植)은 모두 원악(元惡)의 아들과 조카 및 손자로서 관아 안에서 모의를 주도하였다. 김기(金錡)·박계운(朴啓運)·박흥빈(朴興贇)·김흠(金欽)은 또 원악의 심복으로서 역적 모의에 종시토록 참여하였다. 이에 참수형에 처하는 법을 밝혀 모두에게 추륙(追戮)의 형벌을 가하였다. 오극일(吳克一)·박이문(朴而文)·이원(李源)·윤여익(尹汝翼)·정학(丁鶴) 역시 모두 원악의 지휘에 복종하였다. 그 대역부도한 상황을 일일이 직초(直招)하였는바, 상헌(常憲)으로 다스리어 왕법을 바루었다. 아, 옛것을 혁파하고 새것을 정립함에 간악한 자들이 숨을 죽이게 되었고, 형통함을 회복하고 길함을 열음에 혜택이 두루 퍼지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에 유시하니, 잘 알리라 생각한다." 하였는데, 대제학 이이첨이 지어올린 것이다. 잡범(雜犯)으로서 사죄이하(死罪以下)를 사면하고, 백관에게 가자(加資)하되, 자궁자(資窮者)는 대가(代加)하게 하였다.
"형벌을 바루어서 거리에 게시하여 이미 역적을 토평하는 법을 거행하였고, 예를 이루어 종묘에 고하고 바로 칙유(飭諭)하는 글을 반포하였다. 분함은 신인(神人)에게서 씻기었고 일은 서책에 써서 전할 만하다.
역적의 괴수 최기는 화심(禍心)을 속에 감추고 이지(異志)를 몰래 길러, 해주(海州)의 목사가 되어서는 여러 흉악한 자들과 체결하고 향토(鄕土)에 은혜를 베풀어 여러 족속들을 끌어모았다. 백사장의 정자에서 유관(遊觀)한 것은 오로지 몰래 모의하기 위해서였고, 해서 지방의 유생들이 상소한 것은 실로 군사를 일으키고자 해서였다.
김기(金錡)·신효업(申孝業)을 대장으로 삼고, 박계운(朴啓運)·박흥빈(朴興贇)을 모주(謨主)로 삼았다. 5월로 기일을 정하여서 서울의 궁궐을 범하려고 하였고, 군사 7백 명을 모아 충원(忠原)에서 합세하고자 하였다. 군사들의 대오를 나눈 성책(成冊)을 이미 간행하였고, 추대할 자의 성명을 또 드러내었다. 동요(童謠)를 지어 서로 전함에 원근의 사람들이 현혹되었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 밤에 소리치자 도성 사람들이 피난할 준비를 하였다. 악을 쌓음이 이에 이르러 화란이 장차 일어나게 되었다.
김몽호(金夢虎)·전응남(全應男)이 반대 세력을 만듦에 때려 죽였고, 박이빈(朴而彬)·박희일(朴希逸)이 상변(上變)하고자 함에 잡아가두었다. 옻나무 밭의 돌 아래에서 다시 흉서(兇書)를 얻었고, 보루(堡樓)의 문정(門庭)에서 사잇길을 취하려 하였다. 동헌(東軒)에서 촛불을 끄고 의논한 것이 무슨 일이며, 사마소(司馬所)에서 서책을 불태운 것은 그 속임수를 가리기 어렵다.
참나무 몽둥이에 붙여서 첩권(帖捲)에 뜻을 보이었고, 초오(草烏)의 약을 주어 소주에 독을 탔다. 한밤중에 흉악한 짓을 하여 바닷속에 시체를 던져넣었고, 고변하는 사람을 모두 없애 감히 입을 없앨 계획을 하였다. 선전관(宣傳官)이 와서 고하는 것을 막고자 하면서는 외손(外孫)을 보내어 뇌물로 꾀이었고, 감사의 장계를 저지시키고자 하면서는 영인(營人)을 잡아끌어 찌르도록 꾀이었다.
의금부에 잡혀온 뒤에 미쳐서는 다시 간사하고 교활한 계책을 내었고, 몰래 흉악한 무리들과 의논하여 훈신과 재신들을 무함하여 끌여들였다. 참과 거짓을 현란시켜 보고 듣기에 놀랍게 하였고, 몰래 여러 죄수들을 협박해서 그들로 하여금 똑같이 공초하게 하였다. 전후의 정적(情迹)이 끝내 모두 드러나 역모에 참여한 역적이 죄를 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함께 악을 저지른 무리가 죄를 승복한 것이 몹시 많았다. 실로 흉인의 우두머리로, 죄가 천지에 통한다.
최유석(崔有錫)·최유영(崔有泳)·최식(崔植)은 모두 원악(元惡)의 아들과 조카 및 손자로서 관아 안에서 모의를 주도하였다. 김기(金錡)·박계운(朴啓運)·박흥빈(朴興贇)·김흠(金欽)은 또 원악의 심복으로서 역적 모의에 종시토록 참여하였다. 이에 참수형에 처하는 법을 밝혀 모두에게 추륙(追戮)의 형벌을 가하였다. 오극일(吳克一)·박이문(朴而文)·이원(李源)·윤여익(尹汝翼)·정학(丁鶴) 역시 모두 원악의 지휘에 복종하였다. 그 대역부도한 상황을 일일이 직초(直招)하였는바, 상헌(常憲)으로 다스리어 왕법을 바루었다.
아, 옛것을 혁파하고 새것을 정립함에 간악한 자들이 숨을 죽이게 되었고, 형통함을 회복하고 길함을 열음에 혜택이 두루 퍼지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에 유시하니, 잘 알리라 생각한다."
하였는데, 대제학 이이첨이 지어올린 것이다. 잡범(雜犯)으로서 사죄이하(死罪以下)를 사면하고, 백관에게 가자(加資)하되, 자궁자(資窮者)는 대가(代加)하게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정(李謰)에 대해서 아뢴 대로 하라고 간원에 말해 주라."
"이정(李謰)에 대해서 아뢴 대로 하라고 간원에 말해 주라."

 

전교하였다. "선혜청의 계사에 있는, 사면령을 내리기 전의 일이더라도 구분하지 말라는 일에 대해서 아뢴 대로 하라고 말해 주라."
"선혜청의 계사에 있는, 사면령을 내리기 전의 일이더라도 구분하지 말라는 일에 대해서 아뢴 대로 하라고 말해 주라."

 

전교하였다. "허임(許任)을 이미 다른 고을로 바꾸었는데, 양사에 말해 주지 않았는가? 정원은 살펴서 처리하라. 그리고 김위(金緯) 역시 이미 고쳐 차임하였으니, 당초에 논계하였던 성상소(城上所)를 불러서 말해 주라."
"허임(許任)을 이미 다른 고을로 바꾸었는데, 양사에 말해 주지 않았는가? 정원은 살펴서 처리하라. 그리고 김위(金緯) 역시 이미 고쳐 차임하였으니, 당초에 논계하였던 성상소(城上所)를 불러서 말해 주라."

 

사간원이 아뢰기를, "승전(承傳)의 임무는 왕언(王言)을 출납하는 것으로, 왕언이 한 번 내려지면 잠깐 동안도 전함을 늦추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승전색(承傳色) 김천림(金天霖)은 전날 본원의 계사(啓辭)에 대한 비답이 이미 내려진 뒤에 즉시 전지(傳旨)를 여쭙지 않아 왕언이 중간에서 오랫동안 지체되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유문(留門)을 하기까지 하여 성상께서 분부를 내리시게끔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만약 드러나는 대로 통렬히 다스리지 않으면 뒷날의 걱정이 이루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잡아다가 국문하여 죄를 정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추고하였다. 잡아다가 국문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승전(承傳)의 임무는 왕언(王言)을 출납하는 것으로, 왕언이 한 번 내려지면 잠깐 동안도 전함을 늦추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승전색(承傳色) 김천림(金天霖)은 전날 본원의 계사(啓辭)에 대한 비답이 이미 내려진 뒤에 즉시 전지(傳旨)를 여쭙지 않아 왕언이 중간에서 오랫동안 지체되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유문(留門)을 하기까지 하여 성상께서 분부를 내리시게끔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만약 드러나는 대로 통렬히 다스리지 않으면 뒷날의 걱정이 이루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잡아다가 국문하여 죄를 정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추고하였다. 잡아다가 국문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어제 선수 도감의 계사를 보니, 거기에 ‘이궁(離宮)의 역사에 쓸 쌀과 포목을 각 고을에 분정(分定)하였는데, 같은 주(州)나 현(縣)이라도 부유하고 가난한 정도가 달라서 주·부(州府)인데도 군·현만도 못한 경우가 있고 군·현인데도 주·부보다 훨씬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령들이 정한 한계에 구애되어 여력이 있더라도 혐의쩍어서 올려보내지 않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뜻을 행회(行會) 가운데 언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이번의 이 역사는 부득이한 데서 나왔는데, 재정이 고갈되어서 형세상 백성들의 힘을 고달프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각 고을의 전결(田結) 숫자를 계산해서 적당하게 헤아려 분정(分定)해서, 수령들로 하여금 그 사이에서 가감하거나 조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감의 계사에서는 마치 사사로운 정으로 내도록 요구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포목 한 필, 쌀 한 말이라도 백성들에게서가 아니면 달리 거두어 들일 방도가 없습니다. 만약 숫자를 정해 주지 않아서 그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올리고 내리고 하게 한다면, 그 사이에서 탐관오리들이 이를 빙자해서 마구 거두어들여 백성들에게는 많이 거두어들이되 국가의 재정에는 보탬이 적을 것이며, 국고(國庫)는 텅비게 하고 자신만 살찌울 것이어서, 그 해가 점차 불어날 것입니다. 신들이 재삼 살펴보건대, 본 도감의 공사는 실로 구차스러운 듯하여 폐단을 장차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두어서 보태어 쓰도록 하는 일을 가지고 대신에게 의논한 다음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어제 선수 도감의 계사를 보니, 거기에 ‘이궁(離宮)의 역사에 쓸 쌀과 포목을 각 고을에 분정(分定)하였는데, 같은 주(州)나 현(縣)이라도 부유하고 가난한 정도가 달라서 주·부(州府)인데도 군·현만도 못한 경우가 있고 군·현인데도 주·부보다 훨씬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령들이 정한 한계에 구애되어 여력이 있더라도 혐의쩍어서 올려보내지 않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뜻을 행회(行會) 가운데 언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이번의 이 역사는 부득이한 데서 나왔는데, 재정이 고갈되어서 형세상 백성들의 힘을 고달프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각 고을의 전결(田結) 숫자를 계산해서 적당하게 헤아려 분정(分定)해서, 수령들로 하여금 그 사이에서 가감하거나 조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감의 계사에서는 마치 사사로운 정으로 내도록 요구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포목 한 필, 쌀 한 말이라도 백성들에게서가 아니면 달리 거두어 들일 방도가 없습니다. 만약 숫자를 정해 주지 않아서 그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올리고 내리고 하게 한다면, 그 사이에서 탐관오리들이 이를 빙자해서 마구 거두어들여 백성들에게는 많이 거두어들이되 국가의 재정에는 보탬이 적을 것이며, 국고(國庫)는 텅비게 하고 자신만 살찌울 것이어서, 그 해가 점차 불어날 것입니다. 신들이 재삼 살펴보건대, 본 도감의 공사는 실로 구차스러운 듯하여 폐단을 장차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두어서 보태어 쓰도록 하는 일을 가지고 대신에게 의논한 다음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여 사직하기를, "신은 수십 일 전부터 전에 앓던 구토증이 점점 심해져서 음식의 양이 갑자기 줄었으며, 때때로 기침이 나면 마치 숨이 끊어지는 것과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는데, 반드시 물을 마셔 목을 적셔준 뒤에야 겨우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례(大禮)가 눈앞에 다가왔으므로 억지로 버티면서 정고(呈告)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은 대례를 이미 7, 8월로 물렸으며, 신의 병이 이미 이지경에 이르러서 형세상 재직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좌상 정인홍은 신이 사직하지 않고 있는 탓으로 지금까지 수상(首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중신(重臣)들 가운데도 마땅히 재상이 되어야 할 사람이 많이 있는데 신이 사직하지 않고 있는 탓에 역시 등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시고 어진이를 정승으로 뽑아서 그로 하여금 다스려 나가게 하소서. 그러면 공사간에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대례는 비록 뒤로 물렸으나 역옥(逆獄)이 계속 일어나고 국사가 어려워서 구제할 방도를 모르고 있다. 경은 국사를 보필하는 대신으로서, 내가 의지하고 있는 바이다. 번거롭게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행공하면서 국사에 마음을 다해 나의 바람에 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신은 수십 일 전부터 전에 앓던 구토증이 점점 심해져서 음식의 양이 갑자기 줄었으며, 때때로 기침이 나면 마치 숨이 끊어지는 것과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는데, 반드시 물을 마셔 목을 적셔준 뒤에야 겨우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례(大禮)가 눈앞에 다가왔으므로 억지로 버티면서 정고(呈告)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은 대례를 이미 7, 8월로 물렸으며, 신의 병이 이미 이지경에 이르러서 형세상 재직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좌상 정인홍은 신이 사직하지 않고 있는 탓으로 지금까지 수상(首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중신(重臣)들 가운데도 마땅히 재상이 되어야 할 사람이 많이 있는데 신이 사직하지 않고 있는 탓에 역시 등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체차하시고 어진이를 정승으로 뽑아서 그로 하여금 다스려 나가게 하소서. 그러면 공사간에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대례는 비록 뒤로 물렸으나 역옥(逆獄)이 계속 일어나고 국사가 어려워서 구제할 방도를 모르고 있다. 경은 국사를 보필하는 대신으로서, 내가 의지하고 있는 바이다. 번거롭게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행공하면서 국사에 마음을 다해 나의 바람에 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귀천군 이수에 대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분명하게 비답을 내렸다. 그런데도 바깥에서 모르고 있으니, 중간에서 잘못 전한 것은 아닌가? 삼사에서 이미 정론(停論)하였으니, 당초의 전교대로 먼 외방으로 내쫓으라고 금부에 말해 주라."
"귀천군 이수에 대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분명하게 비답을 내렸다. 그런데도 바깥에서 모르고 있으니, 중간에서 잘못 전한 것은 아닌가? 삼사에서 이미 정론(停論)하였으니, 당초의 전교대로 먼 외방으로 내쫓으라고 금부에 말해 주라."

 

박종주(朴宗胄)를 수찬으로, 박종윤(朴宗胤)을 홍문관 저작으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형조 판서 이경전(李慶全)을 지사(知事)에 제수하고, 이정귀(李廷龜)를 판중추부사에 제수하라. 유학(幼學) 박춘수(朴春秀)를 연원찰방(連源察訪)에 제수하라." 하였다. 남이흥(南以興)을 경상 병사로, 정광경(鄭廣敬)을 필선으로, 이모(李慕)를 설서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정관(政官)은 파루(罷漏) 뒤에 나가라." 하였다.
"형조 판서 이경전(李慶全)을 지사(知事)에 제수하고, 이정귀(李廷龜)를 판중추부사에 제수하라. 유학(幼學) 박춘수(朴春秀)를 연원찰방(連源察訪)에 제수하라."
하였다. 남이흥(南以興)을 경상 병사로, 정광경(鄭廣敬)을 필선으로, 이모(李慕)를 설서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정관(政官)은 파루(罷漏) 뒤에 나가라."
하였다.

 

3월 28일 계사

전교하였다. "상호(上號)하는 것을 뒤로 물린 것을 원도(遠道)의 경우에는 혹 미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 반드시 전도되어 낭패스러울 경우가 있을 것이니, 속히 외방에 행회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미리 알게 하라."
"상호(上號)하는 것을 뒤로 물린 것을 원도(遠道)의 경우에는 혹 미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 반드시 전도되어 낭패스러울 경우가 있을 것이니, 속히 외방에 행회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미리 알게 하라."

 

전교하였다. "임예룡(林禮龍)은 앞서 부경(赴京)하라는 승전(承傳)이 있었다. 이번 천추사(千秋使)의 행차에 차송하라고 사역원에 말하라."
"임예룡(林禮龍)은 앞서 부경(赴京)하라는 승전(承傳)이 있었다. 이번 천추사(千秋使)의 행차에 차송하라고 사역원에 말하라."

 

3월 29일 갑오

한찬남이, 금부에서 귀천군 이수를 정배(定配)한 단자(單子)를 가지고 아뢰기를, "국기일(國忌日)이어서 이 단자를 입계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형옥공사(刑獄公事)에 관계되므로 입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모든 국기일에는 전부터 긴급하지 않은 공사는 입계하지 않는 것이 규례이다. 귀천군 이수에 대한 일은 역옥(逆獄)과는 차이가 있어서 긴급한 일은 아니다. 내일 입계하더라도 어찌 늦겠는가. 지금 이후로는 국기일에 긴급하지 않은 공사는 절대로 들이지 말라." 하였다
"국기일(國忌日)이어서 이 단자를 입계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형옥공사(刑獄公事)에 관계되므로 입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모든 국기일에는 전부터 긴급하지 않은 공사는 입계하지 않는 것이 규례이다. 귀천군 이수에 대한 일은 역옥(逆獄)과는 차이가 있어서 긴급한 일은 아니다. 내일 입계하더라도 어찌 늦겠는가. 지금 이후로는 국기일에 긴급하지 않은 공사는 절대로 들이지 말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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