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을미
사간원이 연계하여 승전색(承傳色) 김천림(金天霖)을 잡아다가 추고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나의 증세가 불행스럽게도 오래도록 낫지 않아서 영정(影幀)을 받들어 옮기는 날짜를 점점 뒤로 물리니 몹시 답답하고 절박하다. 듣건대 금강(錦江)·경강(京江)·임진강(臨津江) 등 여러 나루에다 선척을 끌어 모아서 부교(浮橋)를 만들어서 백성들이 생업을 잃어 그 폐해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갑인년에 영정을 받들어 옮길 때에는 몸체가 큰 배로 결선(結船)하여 건넜다. 그러니 이번에도 이 전례에 의거해서 부교를 설치하지 말아 선척들을 모두 풀어보내고, 단지 튼튼한 대선(大船) 몇 척만으로 참작하여 결선해서 받들어 옮기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해 주라."
"나의 증세가 불행스럽게도 오래도록 낫지 않아서 영정(影幀)을 받들어 옮기는 날짜를 점점 뒤로 물리니 몹시 답답하고 절박하다. 듣건대 금강(錦江)·경강(京江)·임진강(臨津江) 등 여러 나루에다 선척을 끌어 모아서 부교(浮橋)를 만들어서 백성들이 생업을 잃어 그 폐해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갑인년에 영정을 받들어 옮길 때에는 몸체가 큰 배로 결선(結船)하여 건넜다. 그러니 이번에도 이 전례에 의거해서 부교를 설치하지 말아 선척들을 모두 풀어보내고, 단지 튼튼한 대선(大船) 몇 척만으로 참작하여 결선해서 받들어 옮기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해 주라."
예조가 전대년(田大年)이 목청전(穆淸殿)을 중건하라고 청한 상소에 대해 회계하기를, "용잠(龍潛)의 옛터에다 아직까지 진전(眞殿)을 중건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온당치 않습니다. 지난해에 본조에서 사유를 갖추어 입계해서 윤허를 받았는데, 해조의 공사(公事)로 인하여 지금까지 질질 끌어서 태조 고향의 옛터로 하여금 오랫동안 쑥대 우거진 폐허가 되게 하였으니, 어찌 흠전(欠典)이 아니겠습니까. 이 상소 안의 일을 해사로 하여금 속히 회계해서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올해는 일이 많으니 우선은 후년을 기다려서 다시 의논하여 중건하라." 하였다.
"용잠(龍潛)의 옛터에다 아직까지 진전(眞殿)을 중건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온당치 않습니다. 지난해에 본조에서 사유를 갖추어 입계해서 윤허를 받았는데, 해조의 공사(公事)로 인하여 지금까지 질질 끌어서 태조 고향의 옛터로 하여금 오랫동안 쑥대 우거진 폐허가 되게 하였으니, 어찌 흠전(欠典)이 아니겠습니까. 이 상소 안의 일을 해사로 하여금 속히 회계해서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올해는 일이 많으니 우선은 후년을 기다려서 다시 의논하여 중건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함경 감사의 서장에 대해서 회계하기를, "호인(胡人)들이 와서 초피(貂皮)를 바치고서 녹봉을 받아가지고 가는 일은 홀추(忽酋)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홀추가 우리 나라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탓에 조정에서 한때의 권도(權道)를 써서 이들을 묶어두어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바탕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 뒤 노추(老酋)가 홀추의 뒤를 이어 청하였는데, 그 뜻이 아주 간절해서 조정에서 또 부득이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이 고식적인 데서 나온 것으로, 제대로 된 계책이 아닙니다. 더구나 만포(滿浦)는 중국과 가까워서 이 길이 열릴 경우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됨이 실로 장계에서 진달한 바와 같습니다. 평안 감사에게 하유하여, 호서(胡書)를 돌려주면서 감히 전계(轉啓)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유시하도록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호인(胡人)들이 와서 초피(貂皮)를 바치고서 녹봉을 받아가지고 가는 일은 홀추(忽酋)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홀추가 우리 나라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탓에 조정에서 한때의 권도(權道)를 써서 이들을 묶어두어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바탕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 뒤 노추(老酋)가 홀추의 뒤를 이어 청하였는데, 그 뜻이 아주 간절해서 조정에서 또 부득이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이 고식적인 데서 나온 것으로, 제대로 된 계책이 아닙니다. 더구나 만포(滿浦)는 중국과 가까워서 이 길이 열릴 경우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됨이 실로 장계에서 진달한 바와 같습니다. 평안 감사에게 하유하여, 호서(胡書)를 돌려주면서 감히 전계(轉啓)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유시하도록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2일 병신
호조가, 황연 감사(黃延監司)가 박로(朴𥶇) 등이 제방을 쌓은 일에 대해 조사한 장계를 가지고서 회계하기를, "권엽(權曄) 등이 노전(蘆田)을 차지하였는지의 여부와 제방을 쌓은 곡절 및 결부(結負)에 대해서는 모두 차사원(差使員)이 보고한 바에 들어 있습니다. 대간이 논계한 일을 해조에서 감히 의논하지 못하겠습니다. 상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본도에서 이미 복계(覆啓)하였는데, 별로 깊이 다스릴 만한 죄가 없다. 분간(分揀)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박로는 바로 박이서의 아들이다. 부자가 모두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탐학스럽고 비루한 짓을 하였으며, 장물(贓物)이 낭자하였다. 박로의 장인인 권엽은 바로 정창연(鄭昌衍)과 허물이 없는 친구 사이인데, 발탁되어 재령 군수(載寧郡守)로 있었다. 박로가 전 수찬(修撰)으로서 그에게 가서 관아에 머물러 있으면서 국가의 노전(蘆田) 가운데서 몰래 떼어내었다. 그런 다음 백성들을 동원해서 제방을 쌓고 수전(水田)을 개간하였는데, 1백 곡(斛) 정도를 씨부릴 만큼 넓었다. 박로는 유희분과 박승종에게 달라붙었으므로 이이첨의 당파에서 그를 공격하였는데, 박로는 밖으로는 감사와 결탁하고 안으로는 궁금(宮禁)과 내통해서 무사할 수 있었다.】
"권엽(權曄) 등이 노전(蘆田)을 차지하였는지의 여부와 제방을 쌓은 곡절 및 결부(結負)에 대해서는 모두 차사원(差使員)이 보고한 바에 들어 있습니다. 대간이 논계한 일을 해조에서 감히 의논하지 못하겠습니다. 상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본도에서 이미 복계(覆啓)하였는데, 별로 깊이 다스릴 만한 죄가 없다. 분간(分揀)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박로는 바로 박이서의 아들이다. 부자가 모두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탐학스럽고 비루한 짓을 하였으며, 장물(贓物)이 낭자하였다. 박로의 장인인 권엽은 바로 정창연(鄭昌衍)과 허물이 없는 친구 사이인데, 발탁되어 재령 군수(載寧郡守)로 있었다. 박로가 전 수찬(修撰)으로서 그에게 가서 관아에 머물러 있으면서 국가의 노전(蘆田) 가운데서 몰래 떼어내었다. 그런 다음 백성들을 동원해서 제방을 쌓고 수전(水田)을 개간하였는데, 1백 곡(斛) 정도를 씨부릴 만큼 넓었다. 박로는 유희분과 박승종에게 달라붙었으므로 이이첨의 당파에서 그를 공격하였는데, 박로는 밖으로는 감사와 결탁하고 안으로는 궁금(宮禁)과 내통해서 무사할 수 있었다.】
왕이 대간의 전계(前啓)인 포목을 거두는 일에 대해 전교하기를, "이러한 때에 또 큰 역사를 일으키게 되어 나의 마음이 몹시 편안치 않다. 그러나 이는 실로 사세상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전결수에 따라 포목을 거두는 일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아뢰니 선수 도감으로 하여금 좋은 쪽으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이러한 때에 또 큰 역사를 일으키게 되어 나의 마음이 몹시 편안치 않다. 그러나 이는 실로 사세상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전결수에 따라 포목을 거두는 일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아뢰니 선수 도감으로 하여금 좋은 쪽으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우찬성 유희분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덕화를 널리 펴는 찬성의 직임에는 경이 실로 합당하니, 굳이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국사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차자를 보고 모두 알았다. 덕화를 널리 펴는 찬성의 직임에는 경이 실로 합당하니, 굳이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국사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사간원이 연계해서 김천림(金天霖)을 국문하기를 청하였는데,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전교하기를, "이충(李沖)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중병을 얻었으니, 내가 몹시 염려된다. 그의 동생 이명(李溟)이 현재 죄적(罪籍)에 들어 있으니, 반드시 와서 병구완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충의 병이 이와 같으니 이명을 방송(放送)해서 그로 하여금 와서 구완하게 하라." 하였다.【 【이충은 간신(奸臣)인 이량(李樑)의 손자이며 이정빈(李廷賓)의 아들이다. 천성이 흉악하고 험살궂은데다가 조상들의 허물이 있어서 선조(先祖)에서 비록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사판(仕版)에 끼이지 못하였다. 정사가 혼란스러워진 뒤에 궁금(宮禁)에 연줄을 대었으며, 사람됨이 간사스러워 임금의 뜻을 잘 살펴서 기묘하고 음란한 수완을 부려 기쁘게 하였는데, 조석으로 맛진 반찬을 올려 왕이 반드시 그가 올리는 반찬이 도착한 뒤에야 식사를 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시를 지어서 그것을 조롱하였는데, 그 시에 ‘잡채 상서의 세력을 당할 수 없다.[雜菜尙書勢莫當]’고 하였다. 새 궁궐을 짓는 역사가 일어나자 주상에게 아부하여 그 일을 담당하고는 여기저기서 재물을 긁어들이면서 반드시 쓰고 남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권세와 총애가 날로 융성해져서 갑자기 1품에 뛰어올랐다. 그의 동생 이명은 음험하고 사악하며 잘 해쳤다. 처음에는 이이첨이 돌봐주어서 청현직(淸顯職)을 역임하였는데, 뒤에 정형(政衡)을 다투었으므로 드디어 틈이 벌어졌다. 그러자 정창연에게 달아붙어서 별도로 한 당파를 세웠다. 이에 이이첨이 크게 노하여 대각(臺閣)을 사주하여 논핵하게 해서 내쫓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뇌물을 주고 석방된 것이다. 대개 이량이 정권을 잡았을 때 정창연의 아비인 정유길(鄭惟吉)이 이량에게 아부해서 이조 판서가 되었는데, 사림이 비루하게 여기었다. 이량이 실각함에 미쳐서 정유길이 권간에게 달라붙었다는 이유로 중하게 논핵을 당하였다. 정창연은 이충·이명과 집안 대대로 친분이 있었으므로, 그가 이조 판서가 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주었다고 한다.】 】
"이충(李沖)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중병을 얻었으니, 내가 몹시 염려된다. 그의 동생 이명(李溟)이 현재 죄적(罪籍)에 들어 있으니, 반드시 와서 병구완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충의 병이 이와 같으니 이명을 방송(放送)해서 그로 하여금 와서 구완하게 하라."
하였다.【 【이충은 간신(奸臣)인 이량(李樑)의 손자이며 이정빈(李廷賓)의 아들이다. 천성이 흉악하고 험살궂은데다가 조상들의 허물이 있어서 선조(先祖)에서 비록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사판(仕版)에 끼이지 못하였다. 정사가 혼란스러워진 뒤에 궁금(宮禁)에 연줄을 대었으며, 사람됨이 간사스러워 임금의 뜻을 잘 살펴서 기묘하고 음란한 수완을 부려 기쁘게 하였는데, 조석으로 맛진 반찬을 올려 왕이 반드시 그가 올리는 반찬이 도착한 뒤에야 식사를 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시를 지어서 그것을 조롱하였는데, 그 시에 ‘잡채 상서의 세력을 당할 수 없다.[雜菜尙書勢莫當]’고 하였다. 새 궁궐을 짓는 역사가 일어나자 주상에게 아부하여 그 일을 담당하고는 여기저기서 재물을 긁어들이면서 반드시 쓰고 남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권세와 총애가 날로 융성해져서 갑자기 1품에 뛰어올랐다. 그의 동생 이명은 음험하고 사악하며 잘 해쳤다. 처음에는 이이첨이 돌봐주어서 청현직(淸顯職)을 역임하였는데, 뒤에 정형(政衡)을 다투었으므로 드디어 틈이 벌어졌다. 그러자 정창연에게 달아붙어서 별도로 한 당파를 세웠다. 이에 이이첨이 크게 노하여 대각(臺閣)을 사주하여 논핵하게 해서 내쫓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뇌물을 주고 석방된 것이다. 대개 이량이 정권을 잡았을 때 정창연의 아비인 정유길(鄭惟吉)이 이량에게 아부해서 이조 판서가 되었는데, 사림이 비루하게 여기었다. 이량이 실각함에 미쳐서 정유길이 권간에게 달라붙었다는 이유로 중하게 논핵을 당하였다. 정창연은 이충·이명과 집안 대대로 친분이 있었으므로, 그가 이조 판서가 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주었다고 한다.】 】
【전교하였다. "황신(黃愼)은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인데 적소(謫所)에서 죽었으니, 몹시 불쌍하다. 그의 관작을 회복시키고 예장(禮葬)하라."】
4월 3일 정유
홍문관 부제학 유희량(柳希亮)이 상소하여 체직시켜 주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힘을 다해 나의 덕을 보필하라." 하였다.
"사직하지 말고 힘을 다해 나의 덕을 보필하라."
하였다.
경상도 관찰사 윤훤(尹喧)이 배사(拜辭)하니, 전교하기를, "본도의 인심이 근래 들어 좋지 않아서 흉역의 변고가 서로 잇달아 발생하는바, 일이 몹시 한심스럽다. 동래와 부산에 출몰하는 잠상(潛商)의 무리들로 말하면, 반드시 황당하고 교활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찰하고 방비하는 것을 엄하게 신칙해서 착실하게 하라. 그리고 도망 중에 있는 역적들 역시 마음을 다해 체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또 전교하기를, "요즈음 들어 왜인들이 진상(進上)하는 물품을 본도에서 가지고 올라오는 사람이 오랫동안 와서 바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으레 축내고 있다. 경이 지금 내려가거든 각별히 신칙해서 이와 같이 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또 이궁을 짓는 큰 역사가 장차 있을 것이니, 본도에서 납부해야 할 물품을, 차원(差員)을 잘 뽑아서 속히 올려보내어 선수(繕修)하는 데 보태어 쓰게 하라." 하였다.
"본도의 인심이 근래 들어 좋지 않아서 흉역의 변고가 서로 잇달아 발생하는바, 일이 몹시 한심스럽다. 동래와 부산에 출몰하는 잠상(潛商)의 무리들로 말하면, 반드시 황당하고 교활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찰하고 방비하는 것을 엄하게 신칙해서 착실하게 하라. 그리고 도망 중에 있는 역적들 역시 마음을 다해 체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또 전교하기를,
"요즈음 들어 왜인들이 진상(進上)하는 물품을 본도에서 가지고 올라오는 사람이 오랫동안 와서 바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으레 축내고 있다. 경이 지금 내려가거든 각별히 신칙해서 이와 같이 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또 이궁을 짓는 큰 역사가 장차 있을 것이니, 본도에서 납부해야 할 물품을, 차원(差員)을 잘 뽑아서 속히 올려보내어 선수(繕修)하는 데 보태어 쓰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근래에 금부에서 신도사(新都事)를 숙직하게 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니 신도사는 혹 숙직시키되 전옥서 등처에 당직하게 하고, 본부에는 일을 잘 아는 도사가 입직해서 병이 난 죄인들을 상세히 살펴서 구료하라. 그리고 금부의 문 밖과 담장 바깥에 잡인을 일체 금지시키라. 이상의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색승지 역시 각별히 살펴서 하라."
"근래에 금부에서 신도사(新都事)를 숙직하게 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니 신도사는 혹 숙직시키되 전옥서 등처에 당직하게 하고, 본부에는 일을 잘 아는 도사가 입직해서 병이 난 죄인들을 상세히 살펴서 구료하라. 그리고 금부의 문 밖과 담장 바깥에 잡인을 일체 금지시키라. 이상의 일을 착실히 거행하라. 색승지 역시 각별히 살펴서 하라."
한성부(漢城府)가 아뢰기를, "요즈음 들어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져서 사람들이 대부분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시장의 각 전(廛)은 자연 정해진 곳이 있어서 어지럽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뢰배들이 서로 모여 무리를 이룬 채 종루(鍾樓)의 옛 터에 빙둘러 늘어서 있는 자가 무려 1백여 명이나 됩니다. 그러고는 담비가죽이니 비단이니 명주니 하는 것들과 각종 물품을 궤 속에 넣어서 주위의 집에다가 숨겨두고, 목면은 공공연히 초석(礎石) 위에 진열해 두고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팔고 있습니다. 또 재신(宰臣)이나 명관(名官)이 지나가더라도 그대로 선 채 바라보면서 조금도 피하려는 뜻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근래에 경비가 부족함으로 인하여 갑작스런 일이 생길 경우 모두 시장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여 마련하고 있으므로, 시장 백성들의 고생이 지금 같은 때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자들은 시장 백성으로서 내야 할 역(役)은 모두 피하고서 그 이익은 모조리 차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른바 법을 어지럽히는 백성입니다. 어둠을 틈타 마구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가로막고 재물을 빼앗는 자들이 반드시 이들일 것입니다. 본부에서 비록 여러 차례 금단하였으나 심상하게 매나 때리는 형벌만 내렸으니, 어찌 완악한 이들을 징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후로는 그들의 우두머리 몇 명을 적발하여 법을 어지럽힌 것으로 논죄하여 중한 쪽으로 죄를 주소서. 그리고 평시서의 관원 역시 전과 같이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둔 채 금지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모두 파직시키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요즈음 들어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져서 사람들이 대부분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시장의 각 전(廛)은 자연 정해진 곳이 있어서 어지럽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뢰배들이 서로 모여 무리를 이룬 채 종루(鍾樓)의 옛 터에 빙둘러 늘어서 있는 자가 무려 1백여 명이나 됩니다. 그러고는 담비가죽이니 비단이니 명주니 하는 것들과 각종 물품을 궤 속에 넣어서 주위의 집에다가 숨겨두고, 목면은 공공연히 초석(礎石) 위에 진열해 두고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팔고 있습니다. 또 재신(宰臣)이나 명관(名官)이 지나가더라도 그대로 선 채 바라보면서 조금도 피하려는 뜻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근래에 경비가 부족함으로 인하여 갑작스런 일이 생길 경우 모두 시장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여 마련하고 있으므로, 시장 백성들의 고생이 지금 같은 때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자들은 시장 백성으로서 내야 할 역(役)은 모두 피하고서 그 이익은 모조리 차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른바 법을 어지럽히는 백성입니다. 어둠을 틈타 마구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가로막고 재물을 빼앗는 자들이 반드시 이들일 것입니다. 본부에서 비록 여러 차례 금단하였으나 심상하게 매나 때리는 형벌만 내렸으니, 어찌 완악한 이들을 징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후로는 그들의 우두머리 몇 명을 적발하여 법을 어지럽힌 것으로 논죄하여 중한 쪽으로 죄를 주소서. 그리고 평시서의 관원 역시 전과 같이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둔 채 금지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모두 파직시키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이충(李沖)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한 사람이다. 뜻밖에 병이 난 것은 흠경각(欽敬閣)과 선수 도감(繕修都監)의 제조로서 공사를 감독한 수고 때문이니, 먼저 자급을 올려주어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라."
"이충(李沖)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한 사람이다. 뜻밖에 병이 난 것은 흠경각(欽敬閣)과 선수 도감(繕修都監)의 제조로서 공사를 감독한 수고 때문이니, 먼저 자급을 올려주어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라."
【 【왕이 화와 복을 점치는 일을 몹시 좋아하였다. 이에 맹인 점장이인 신경달(申景達)·함충헌(咸忠獻)·장순명(張順命) 등이 대궐 안을 출입하면서 밤낮없이 명을 받아 절제가 없었으며, 술사(術士)인 이응두(李應斗)·정사륜(鄭思倫) 등이 모두 왕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리하여 비록 세세한 정무(政務)라도 반드시 점을 쳐서 미리 성패를 따져보았다. 장순명은 저주(咀呪)의 옥사에 연루되어서 바닷섬에 유배되어 있었는데 왕이 자주 사신을 보내어 점을 쳤으며, 신경달은 이이첨의 처족(妻族)으로서 정사(政事)에 간여하기도 하였다.】 】
4월 4일 무술
사간원이 아뢰기를, 안서(安西)는 황연도의 거진(巨鎭)으로서 물산이 풍부하고 땅이 넓으며, 아전들은 교활하고 백성들은 억세서 본디부터 다스리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새 현감 유도(柳塗)는 본디 명망이 없고 처사가 전도되었으니 결단코 직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그 대임자를 명망이 있는 문관으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안서(安西)는 황연도의 거진(巨鎭)으로서 물산이 풍부하고 땅이 넓으며, 아전들은 교활하고 백성들은 억세서 본디부터 다스리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새 현감 유도(柳塗)는 본디 명망이 없고 처사가 전도되었으니 결단코 직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그 대임자를 명망이 있는 문관으로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공조가 회계하기를, "신들이 삼가 듣건대 부교(浮橋)를 만드는 한 가지 일로 인해 서남(西南) 지방의 선척들이 기일에 앞서서 기다리고 있은 지 이미 몇 달이 지나서 각처의 뱃사람들이 모두 생업을 잃고 있다고 합니다. 신들 역시 이 폐단에 대해 염려하였으나 영정을 받들어 옮기는 일에 관계되어서 감히 계청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백성들 보기를 상처입은 사람 보듯이 하는 뜻이 선조를 받들어 효(孝)를 생각하는 날에 무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임금의 말이 한번 퍼짐에 누구인들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갑인년에 시행하였던 규정에 의거해서 참작하여 결선(結船)하여 받들어 옮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조처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신들이 삼가 듣건대 부교(浮橋)를 만드는 한 가지 일로 인해 서남(西南) 지방의 선척들이 기일에 앞서서 기다리고 있은 지 이미 몇 달이 지나서 각처의 뱃사람들이 모두 생업을 잃고 있다고 합니다. 신들 역시 이 폐단에 대해 염려하였으나 영정을 받들어 옮기는 일에 관계되어서 감히 계청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백성들 보기를 상처입은 사람 보듯이 하는 뜻이 선조를 받들어 효(孝)를 생각하는 날에 무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임금의 말이 한번 퍼짐에 누구인들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갑인년에 시행하였던 규정에 의거해서 참작하여 결선(結船)하여 받들어 옮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조처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5일 기해
왕이 최덕명(崔德明) 등의 일에 대해 전교하였다. "들여와서 본 뒤에 해사(該司)에 보관해 두라. 최덕명 등에게는 해조로 하여금 쌀과 포목을 제급해 주게 하라."
"들여와서 본 뒤에 해사(該司)에 보관해 두라. 최덕명 등에게는 해조로 하여금 쌀과 포목을 제급해 주게 하라."
경상도 관찰사 성진선(成晉善)이, 곽운익(郭雲翼)이 얻은 익명서 원본과 곽운익이 평소에 쓴 수적(手迹)을 가지고 장계하였다. 대개 익명서는 역모(逆謀)를 고변한 것이었는데, 곽운익이 얻은 것이 공적으로 얻은 것인지 사적으로 얻은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왕이 그 글자의 모양새가 서로 같은지를 따져보고자 하여 선전관(宣傳官)을 보내어 원본과 수적을 올려보내도록 유시하였다. 이에 성진선이 이를 아뢴 것이다.
4월 6일 경자
이조가 아뢰기를, "비변사의 계사로 인해서, 함경도에 구황(救荒)하는 일로 일을 잘 아는 경관(京官)을 급속히 보내어 그로 하여금 담당하여 처리하게 하는 일에 대해 윤허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명칭이 없을 경우 호령할 수가 없습니다. 어사(御史)와 경차관(敬差官) 중에서 어떤 것으로 칭호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어사로 칭호해서 떠나보내라." 하였다.
"비변사의 계사로 인해서, 함경도에 구황(救荒)하는 일로 일을 잘 아는 경관(京官)을 급속히 보내어 그로 하여금 담당하여 처리하게 하는 일에 대해 윤허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명칭이 없을 경우 호령할 수가 없습니다. 어사(御史)와 경차관(敬差官) 중에서 어떤 것으로 칭호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어사로 칭호해서 떠나보내라."
하였다.
4월 7일 신축
이날 내궁방(內弓房)에서 떠들썩하게 노래부르는 소리가 나 정원에까지 들려왔다. 기사관(記事官)들이 사람을 시켜 탐문해 보니, 사약(司鑰) 장수남(張壽男), 궁인(弓人) 이천룡(李天龍) 등 세 사람이 기생을 끼고 마음껏 술을 마시면서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이에 기사관들이 즉시 승지에게 통지해서 아뢰기를, "오늘은 바로 가까운 조상의 국기일(國忌日)입니다.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부르는 것은 몹시 지나친 일이니, 모두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오늘은 바로 가까운 조상의 국기일(國忌日)입니다.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부르는 것은 몹시 지나친 일이니, 모두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차비(差備)가 없는 여인들은 대궐 안에 출입할 수 없는 법입니다. 더구나 궁방(弓房)은 대내(大內)에서 가까운 곳이고 오늘은 바로 가까운 조상의 국기일입니다. 그런데 기생이라고 이름하는 자가 궁방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면서 술을 마시었으니, 몹시 경악스럽습니다. 기생은 본조에서 이미 잡아 가두었으니, 유사로 하여금 법에 의거해 중하게 따지게 하소서. 그리고 수문장 역시 금지시키지 못하여 거리낌없이 방자하게 행동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두 추고하고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근래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나라의 법이 무너져, 외간의 여인이 마치 여염집에서 하듯이 멋대로 행동을 하였고 가아(歌兒)와 무녀(舞女)를 마치 사삿집과 다름없이 대내로 불러들여왔으니, 사약(司鑰)이 기생을 끼고 국기일에 노래를 부른 것은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다.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차비(差備)가 없는 여인들은 대궐 안에 출입할 수 없는 법입니다. 더구나 궁방(弓房)은 대내(大內)에서 가까운 곳이고 오늘은 바로 가까운 조상의 국기일입니다. 그런데 기생이라고 이름하는 자가 궁방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면서 술을 마시었으니, 몹시 경악스럽습니다. 기생은 본조에서 이미 잡아 가두었으니, 유사로 하여금 법에 의거해 중하게 따지게 하소서. 그리고 수문장 역시 금지시키지 못하여 거리낌없이 방자하게 행동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두 추고하고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근래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나라의 법이 무너져, 외간의 여인이 마치 여염집에서 하듯이 멋대로 행동을 하였고 가아(歌兒)와 무녀(舞女)를 마치 사삿집과 다름없이 대내로 불러들여왔으니, 사약(司鑰)이 기생을 끼고 국기일에 노래를 부른 것은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다.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사신은 논한다. 근래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나라의 법이 무너져, 외간의 여인이 마치 여염집에서 하듯이 멋대로 행동을 하였고 가아(歌兒)와 무녀(舞女)를 마치 사삿집과 다름없이 대내로 불러들여왔으니, 사약(司鑰)이 기생을 끼고 국기일에 노래를 부른 것은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다.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밤 5경(更)에 유성(流星)이 점대성(漸臺星) 아래에서 나와 구감성(九坎星) 위로 들어갔는데, 모양이 바리때와 같고 꼬리의 길이가 7척 가량 되었으며, 색은 붉고 빛이 땅을 비추었다.
4월 8일 임인
경상도 관찰사 성진선(成晉善)이 이창록(李昌菉)의 흉서(兇書)를 고변할 때 공을 세운 정활(鄭活) 등 17인을 뽑아 아뢰었다. 이보다 앞서서 성진선이 공이 있는 자 17인을 서계하였는데, 상이 ‘다시금 상세히 살펴서 등급을 나누어 뽑아 아뢰라.’고 명하였다. 이때에 이르러서 뽑아 아뢴 것이다.
전교하였다. "유계룡(柳季龍)에 대해서 본도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유계룡(柳季龍)에 대해서 본도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게 하라."
전교하였다. "선수(繕修)하는 긴급한 일에 관계되는 것은 옥사(獄事)와는 차이가 있으니, 비록 국기일이더라도 즉시 입계하라."
"선수(繕修)하는 긴급한 일에 관계되는 것은 옥사(獄事)와는 차이가 있으니, 비록 국기일이더라도 즉시 입계하라."
전교하였다. "이궁을 짓는 큰 역사를 장차 일으킬 것이니, 도내에 사는 시문용(施文用)을 속히 올려보내라고 경상 감사에게 하유하라." 【사신은 논한다.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킴에 괴귀(怪鬼)한 무리들이 나왔다. 성지(性智)와 일용(馹龍)이 사설(邪說)을 떠들어대고 자우(子羽)와 문용(文用)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에 하유해서 부르기까지 하였으니, 통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이궁을 짓는 큰 역사를 장차 일으킬 것이니, 도내에 사는 시문용(施文用)을 속히 올려보내라고 경상 감사에게 하유하라."
【사신은 논한다.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킴에 괴귀(怪鬼)한 무리들이 나왔다. 성지(性智)와 일용(馹龍)이 사설(邪說)을 떠들어대고 자우(子羽)와 문용(文用)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에 하유해서 부르기까지 하였으니, 통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사신은 논한다.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킴에 괴귀(怪鬼)한 무리들이 나왔다. 성지(性智)와 일용(馹龍)이 사설(邪說)을 떠들어대고 자우(子羽)와 문용(文用)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에 하유해서 부르기까지 하였으니, 통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전교하였다. "이궁의 성 안에 들어간 집의 주인들에게, 숫자를 헤아려서 값을 지불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원망이 없게 하라. 이상의 일을 속히 상세하게 살펴서 일일이 서계하라고 선수 도감에 말하라."
"이궁의 성 안에 들어간 집의 주인들에게, 숫자를 헤아려서 값을 지불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원망이 없게 하라. 이상의 일을 속히 상세하게 살펴서 일일이 서계하라고 선수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지난해 동지사(冬至使)의 상통사(上通事) 장득령(張得齡)이 무슨 일을 범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사(使)와 서장관(書狀官)은 그에게 형신을 가해 마구 때리고 의주 부윤(義州府尹)은 볼기를 쳐서, 상방궁(尙方宮)에서 무역해 오도록 한 중국 물품을 다 납부하지 못하고 지레 죽게 하였다고 하니, 몹시 놀랍다. 요즈음 부경(赴京)하는 사와 서장관을 제대로 가려서 차임하지 않아 망령되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일으키게 하였다. 지금 이후로는 사와 서장관을 각별히 가려서 차임하라. 사와 서장관은 먼저 파직한 다음 추고하고 의주 부윤은 추고하라."
"지난해 동지사(冬至使)의 상통사(上通事) 장득령(張得齡)이 무슨 일을 범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사(使)와 서장관(書狀官)은 그에게 형신을 가해 마구 때리고 의주 부윤(義州府尹)은 볼기를 쳐서, 상방궁(尙方宮)에서 무역해 오도록 한 중국 물품을 다 납부하지 못하고 지레 죽게 하였다고 하니, 몹시 놀랍다. 요즈음 부경(赴京)하는 사와 서장관을 제대로 가려서 차임하지 않아 망령되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일으키게 하였다. 지금 이후로는 사와 서장관을 각별히 가려서 차임하라. 사와 서장관은 먼저 파직한 다음 추고하고 의주 부윤은 추고하라."
병조 판서 박승종이 차자를 올려 사직하니, 답하기를, "가까운 시일내에 추국을 해야 하고 도목 대정(都目大政) 역시 임박하였으니, 사직하지 말고 속히 출사(出仕)하라." 하였다.
"가까운 시일내에 추국을 해야 하고 도목 대정(都目大政) 역시 임박하였으니, 사직하지 말고 속히 출사(出仕)하라."
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에서 쓸 포목을 민결(民結)에 따라 복정(卜定)하지 않고 수령과 변장들에게 공사를 돕는 포목을 내도록 분정(分定)하여 마치 도와주기를 요청하는 것처럼 한 것은, 대개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성상의 뜻을 몸받아 관가에서 편의에 따라 조처하여 마련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나 수령과 변장들이 의뢰하여 쓰는 것은 하나하나가 모두 군민(軍民)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가운데 탐관오리들이 이를 인연해 함부로 징수하고 이를 빙자해 마구 거두어들여서 나라에 보태어주는 것은 적게 하고 이를 자신의 수입으로 삼을 경우, 본래는 백성들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실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전결수에 따라 포목을 거두어서, 함부로 거두어들여 낭비해버리는 폐단을 제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대간이 논한 바는 이 점에 주안점을 둔 것입니다. 그러니 해조로 하여금 각 고을의 전결 숫자를 헤아려서 적당히 분정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미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둔다면 장인세포(匠人稅布) 등과 같이 세세한 조목은 일체 감하여서 족린(族鄰)들에게 나누어 징수하는 폐단을 제거하는 것이 옳습니다. 아울러 대신들에게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장인세포는 징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한 조항은 전례대로 마련해서 하라." 하였다.
"도감에서 쓸 포목을 민결(民結)에 따라 복정(卜定)하지 않고 수령과 변장들에게 공사를 돕는 포목을 내도록 분정(分定)하여 마치 도와주기를 요청하는 것처럼 한 것은, 대개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성상의 뜻을 몸받아 관가에서 편의에 따라 조처하여 마련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나 수령과 변장들이 의뢰하여 쓰는 것은 하나하나가 모두 군민(軍民)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가운데 탐관오리들이 이를 인연해 함부로 징수하고 이를 빙자해 마구 거두어들여서 나라에 보태어주는 것은 적게 하고 이를 자신의 수입으로 삼을 경우, 본래는 백성들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실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전결수에 따라 포목을 거두어서, 함부로 거두어들여 낭비해버리는 폐단을 제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대간이 논한 바는 이 점에 주안점을 둔 것입니다. 그러니 해조로 하여금 각 고을의 전결 숫자를 헤아려서 적당히 분정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미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둔다면 장인세포(匠人稅布) 등과 같이 세세한 조목은 일체 감하여서 족린(族鄰)들에게 나누어 징수하는 폐단을 제거하는 것이 옳습니다. 아울러 대신들에게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장인세포는 징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한 조항은 전례대로 마련해서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윤승훈(尹承勳)의 부인과 아들·딸·손자가 모두 불에 타 죽었으니, 몹시 놀랍고 참혹스럽다. 본도로 하여금 전례에 의거해서 휼전(恤典)을 거행하게 하라."
"윤승훈(尹承勳)의 부인과 아들·딸·손자가 모두 불에 타 죽었으니, 몹시 놀랍고 참혹스럽다. 본도로 하여금 전례에 의거해서 휼전(恤典)을 거행하게 하라."
4월 9일 계묘
이천(利川)에 사는 이계명(李啓明)이란 자가 정원에 와서 고변하기를, "지난 12월에 우연히 역적 이경준(李耕俊)의 장인인 송호남(宋好男)의 흉서(兇書) 두 장을 얻었었는데, 송변(宋汴)과 송기(宋沂) 등에게 빼앗겼다. 이 사람들을 잡아다가 국문하면 역모한 곡절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형방 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이번에 이 고변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고발된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속히 잡아오되 모두 포도 대장으로 하여금 체포하게 하라. 그리고 고변한 사람은 대궐문 밖에서 명을 기다리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고변한 사람의 이름을 서계하라. 그리고 이 사람들은 모두 이천에 살고 있는가? 상세히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이천에서 잡아오는 사람들의 집에 있는 문서도 아울러 가지고 오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선전관도 아울러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변한 사람의 성명은 이계명입니다. 고발된 사람들은 모두 이천에 있다고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중사(中使)와 선전관을 한꺼번에 떠나보내라." 하였다.
"지난 12월에 우연히 역적 이경준(李耕俊)의 장인인 송호남(宋好男)의 흉서(兇書) 두 장을 얻었었는데, 송변(宋汴)과 송기(宋沂) 등에게 빼앗겼다. 이 사람들을 잡아다가 국문하면 역모한 곡절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형방 승지 한찬남이 아뢰기를,
"이번에 이 고변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고발된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속히 잡아오되 모두 포도 대장으로 하여금 체포하게 하라. 그리고 고변한 사람은 대궐문 밖에서 명을 기다리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고변한 사람의 이름을 서계하라. 그리고 이 사람들은 모두 이천에 살고 있는가? 상세히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이천에서 잡아오는 사람들의 집에 있는 문서도 아울러 가지고 오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선전관도 아울러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변한 사람의 성명은 이계명입니다. 고발된 사람들은 모두 이천에 있다고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중사(中使)와 선전관을 한꺼번에 떠나보내라."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봉산(鳳山) 고을은 관서(關西)의 큰길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땅이 넓고 인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심이 나빠 대적(大賊)이 자주 일어나 지금 비록 강호(降號)되었으나, 실제로는 웅주(雄州)·대부(大府)보다 더 낫습니다. 새 현감 이택민(李澤民)은 명망도 없고 직품도 낮은 문음관(門蔭官)입니다. 바라건대 체차하도록 명하시고 그 대임자를 명망이 있고 일찍이 대간이나 시종을 지낸 사람으로 각별히 뽑아 보내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봉산(鳳山) 고을은 관서(關西)의 큰길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땅이 넓고 인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심이 나빠 대적(大賊)이 자주 일어나 지금 비록 강호(降號)되었으나, 실제로는 웅주(雄州)·대부(大府)보다 더 낫습니다. 새 현감 이택민(李澤民)은 명망도 없고 직품도 낮은 문음관(門蔭官)입니다. 바라건대 체차하도록 명하시고 그 대임자를 명망이 있고 일찍이 대간이나 시종을 지낸 사람으로 각별히 뽑아 보내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4월 10일 갑진
한찬남이 아뢰기를, "조금 전에 당직도사(當直都事) 김극명(金克銘)이 와서 말하기를 ‘어제 고변한 자인 이계명(李啓明)이 몇 사람의 이름을 써서 나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들은 흉서 안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봉명(李奉明)은 이미 죽었고, 유진문(柳震門)은 어느 곳에 사는지 모르는데, 지난번에 흉서 가운데 쓴 것이 생각이 나서 이름을 쓴 것이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이계명을 불러다가 다시 상세히 물어보자 ‘이봉명은 이천 대양리(大陽里)에 사는데, 관명(冠名)은 이지(李贄)이다. 이봉진(李奉進)과는 형제인데, 죽은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유진문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며 사는 곳도 알지 못하는데 단지 본 바를 쓴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모두 잡아오라. 유진문은 사는 곳을 다시금 상세히 물어서 잡아오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이것으로 보면 이른바 유진문이란 자에 대해서는 힐문할 길이 없습니다. 도사를 파견할 때 유진문의 이름을 써서 주어 다방면으로 이천의 관리(官吏)들에게 비밀히 물어서 잡아오게 하소서. 그리고 경기 감사에게 하유해서 그로 하여금 각 고을에 탐문하여 체포해 잡아오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조금 전에 당직도사(當直都事) 김극명(金克銘)이 와서 말하기를 ‘어제 고변한 자인 이계명(李啓明)이 몇 사람의 이름을 써서 나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들은 흉서 안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봉명(李奉明)은 이미 죽었고, 유진문(柳震門)은 어느 곳에 사는지 모르는데, 지난번에 흉서 가운데 쓴 것이 생각이 나서 이름을 쓴 것이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이계명을 불러다가 다시 상세히 물어보자 ‘이봉명은 이천 대양리(大陽里)에 사는데, 관명(冠名)은 이지(李贄)이다. 이봉진(李奉進)과는 형제인데, 죽은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유진문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며 사는 곳도 알지 못하는데 단지 본 바를 쓴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모두 잡아오라. 유진문은 사는 곳을 다시금 상세히 물어서 잡아오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이것으로 보면 이른바 유진문이란 자에 대해서는 힐문할 길이 없습니다. 도사를 파견할 때 유진문의 이름을 써서 주어 다방면으로 이천의 관리(官吏)들에게 비밀히 물어서 잡아오게 하소서. 그리고 경기 감사에게 하유해서 그로 하여금 각 고을에 탐문하여 체포해 잡아오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안서(安西)의 전 현감은 추고하고 잉임시키라. 유도(柳塗)는 다른 수령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라. 이택민(李澤民)은 체차하고 다른 수령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라."
"안서(安西)의 전 현감은 추고하고 잉임시키라. 유도(柳塗)는 다른 수령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라. 이택민(李澤民)은 체차하고 다른 수령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라."
이조가 아뢰기를, "어사를 파견하는 것이 편리한지의 여부에 대해서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대신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들, 어사가 행장을 꾸리고 있다는 말이 멀리까지 전파되면 수령과 변장들 역시 두려워하여 삼가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사를 파견하지 않은 지 지금 이미 여러 해가 되어 수령과 변장들이 함부로 침해하여서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외방 사람들이 날마다 어사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비변사의 낭청이 평안도에 가자, 변방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어사가 오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때때로 어사를 파견한다면 원근의 백성들이 반드시 다시 소생할 것입니다. 대간이 아뢴 바에 의거해서 어사를 파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우상이 이미 출사하였으니 아울러 수의(收議)해서 아뢰라." 하였다.
"어사를 파견하는 것이 편리한지의 여부에 대해서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대신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들, 어사가 행장을 꾸리고 있다는 말이 멀리까지 전파되면 수령과 변장들 역시 두려워하여 삼가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사를 파견하지 않은 지 지금 이미 여러 해가 되어 수령과 변장들이 함부로 침해하여서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외방 사람들이 날마다 어사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비변사의 낭청이 평안도에 가자, 변방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어사가 오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때때로 어사를 파견한다면 원근의 백성들이 반드시 다시 소생할 것입니다. 대간이 아뢴 바에 의거해서 어사를 파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우상이 이미 출사하였으니 아울러 수의(收議)해서 아뢰라."
하였다.
역관(譯官) 박인상(朴仁祥)을 지중추부사로, 정문부(鄭文孚)를 병조 참판으로, 송일(宋馹)을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조즙(趙濈)을 영해 부사(寧海府使)로, 유경종(柳慶宗)을 겸동지춘추관사로, 이상길(李尙吉)을 동지사(冬至使)로, 이창정(李昌庭)을 부사(副使)로 삼았다.
4월 11일 을사
전교하였다. "요즈음 들어서 고변(告變)이 서로 이어져서 호위하는 날이 오래 되었으니 해이한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신명해서 엄하게 검칙하여 소홀한 폐단이 없게 하라고 병조와 훈련 도감에 말하라."
"요즈음 들어서 고변(告變)이 서로 이어져서 호위하는 날이 오래 되었으니 해이한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신명해서 엄하게 검칙하여 소홀한 폐단이 없게 하라고 병조와 훈련 도감에 말하라."
회답사(回答使) 오윤겸(吳允謙)이 아뢰기를, "신들의 이번 사행(使行)은 실로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인 왜노(倭奴)들의 나라는 부모의 나라인 중국과는 정의(情義)가 같지 않습니다. 부경(赴京)하는 원역(員役)들은 비록 물화(物貨)를 싸가지고 가서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와도 참으로 크게 해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들의 사행에 물화를 싸가지고 가서 장사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비단 사신들이 모욕당하고 국가가 욕을 당할 뿐만 아니라, 이익을 따지면서 서로 다투는 즈음에 점점 확대되어 일을 일으키는 걱정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신들이 가는 중에 마땅히 엄하게 신칙해서 금지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동행하는 사람 중에 안면이 익숙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의 마음을 경동시킬 수가 없을 듯합니다. 바라건대 부경 행차를 수검(搜檢)하는 규례에 의거해서 경관(京官)을 파견하여 배를 탈 때 임박해서 수검하고, 적발된 사람은 잠상율(潛商律)로 논하게 하소서. 신들이 듣건대 연해(沿海)의 수수(水手)들은 대부분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자들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 무리들을 선격(船格)으로 충정할 경우, 이 무리들은 왜어에 능통하고 왜인들과 서로 친숙하므로, 바다를 건너간 뒤에 경과하는 허다한 관사(館舍)와 머무르는 허다한 시일 동안에, 몰래 서로 출입하면서 말을 누설하여, 사단을 야기시키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해사(該司)로 하여금 본도에 공문을 보내어서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일체 선격으로 충정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신들의 이번 사행(使行)은 실로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인 왜노(倭奴)들의 나라는 부모의 나라인 중국과는 정의(情義)가 같지 않습니다. 부경(赴京)하는 원역(員役)들은 비록 물화(物貨)를 싸가지고 가서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와도 참으로 크게 해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들의 사행에 물화를 싸가지고 가서 장사하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비단 사신들이 모욕당하고 국가가 욕을 당할 뿐만 아니라, 이익을 따지면서 서로 다투는 즈음에 점점 확대되어 일을 일으키는 걱정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신들이 가는 중에 마땅히 엄하게 신칙해서 금지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동행하는 사람 중에 안면이 익숙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의 마음을 경동시킬 수가 없을 듯합니다. 바라건대 부경 행차를 수검(搜檢)하는 규례에 의거해서 경관(京官)을 파견하여 배를 탈 때 임박해서 수검하고, 적발된 사람은 잠상율(潛商律)로 논하게 하소서.
신들이 듣건대 연해(沿海)의 수수(水手)들은 대부분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자들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 무리들을 선격(船格)으로 충정할 경우, 이 무리들은 왜어에 능통하고 왜인들과 서로 친숙하므로, 바다를 건너간 뒤에 경과하는 허다한 관사(館舍)와 머무르는 허다한 시일 동안에, 몰래 서로 출입하면서 말을 누설하여, 사단을 야기시키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해사(該司)로 하여금 본도에 공문을 보내어서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일체 선격으로 충정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12일 병오
추국청이 아뢰기를, "박천남(朴天男)·홍응구(洪應龜)·정석준(鄭碩儁)의 초사(招辭)로 보면, 박천남은 말하기를 ‘정인형(鄭仁馨)이 끌어들인 일은 반드시 내가 이언호(李彦豪)를 시켜서 내가 이미 판 노비를 도로 물린 데 대한 혐의 때문으로, 정인형은 은 15냥으로 사들였는데 내가 2냥을 더 주고 빼앗아 사려고 하여 이 때문에 혐의를 품고 있었다. 이에 그 당시 노비를 살 때 길을 가르쳐 준 백천수(白千壽)를 끌어들여서 증인으로 삼은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홍응구는 말하기를 ‘종을 시켜서 정인형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을 즈음에 이웃에 사는 전 현감 한계함(韓繼咸)이 「이 사람은 상놈이 아닌데 어째서 종을 시켜 욕을 보이는가. 보기에 안좋다.」고 하므로, 그가 말리는 것을 인해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정인형이 집을 철거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정석준은 말하기를 ‘백번 생각해 보아도 정인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경중에 살거나 외방에 사는 양반과 상놈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니, 6촌간이라는 말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정인형이 만약 신과 서로 안다면,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여 참방(參榜)된 일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인데도 알성시(謁聖試)에 급제하였다고 백천수에게 말하였는바, 정인형이 나와 서로 모르는 것은 이에 의거해서 알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박천남·홍응구·정석준 등을 끌어들인 일은, 혹 혐원(嫌怨) 때문이거나 혹 허탄한 데 관계됨이 분명하니, 마땅히 분간해야 할 듯합니다. 삼가 상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언호는 잡아다가 추문해야 하는가?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추국청이 회계하기를, "잡아다가 추문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박천남(朴天男)·홍응구(洪應龜)·정석준(鄭碩儁)의 초사(招辭)로 보면, 박천남은 말하기를 ‘정인형(鄭仁馨)이 끌어들인 일은 반드시 내가 이언호(李彦豪)를 시켜서 내가 이미 판 노비를 도로 물린 데 대한 혐의 때문으로, 정인형은 은 15냥으로 사들였는데 내가 2냥을 더 주고 빼앗아 사려고 하여 이 때문에 혐의를 품고 있었다. 이에 그 당시 노비를 살 때 길을 가르쳐 준 백천수(白千壽)를 끌어들여서 증인으로 삼은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홍응구는 말하기를 ‘종을 시켜서 정인형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을 즈음에 이웃에 사는 전 현감 한계함(韓繼咸)이 「이 사람은 상놈이 아닌데 어째서 종을 시켜 욕을 보이는가. 보기에 안좋다.」고 하므로, 그가 말리는 것을 인해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정인형이 집을 철거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정석준은 말하기를 ‘백번 생각해 보아도 정인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경중에 살거나 외방에 사는 양반과 상놈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니, 6촌간이라는 말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정인형이 만약 신과 서로 안다면,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여 참방(參榜)된 일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인데도 알성시(謁聖試)에 급제하였다고 백천수에게 말하였는바, 정인형이 나와 서로 모르는 것은 이에 의거해서 알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박천남·홍응구·정석준 등을 끌어들인 일은, 혹 혐원(嫌怨) 때문이거나 혹 허탄한 데 관계됨이 분명하니, 마땅히 분간해야 할 듯합니다. 삼가 상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언호는 잡아다가 추문해야 하는가?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추국청이 회계하기를,
"잡아다가 추문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양호 조도사(兩湖調度使) 이정험(李廷馦)과 강원 경상 조도사 종사관(江原慶尙調度使從事官) 이분(李芬)의 이첩(移牒) 안에 ‘백성들을 모집하고 곡식을 납부할 즈음에 노직첩(老職帖)과 추증당상직첩(追贈堂上職帖) 및 추증당상가선실직첩(追贈堂上嘉善實職帖)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적은 숫자를 싸가지고 와서 두루 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노직 당상가선첩 각 2백 장과 추증당상가선실직첩 각 1백 50장을 만들어 보내어서 곡식 얻을 길을 넓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것은 공명고신(空名告身)인가? 이 일에는 임진년 이래로 거짓되고 간사한 일이 없지 않았다. 비록 혹 내려보내더라도 상세하게 행회(行會)해서 이런 폐단이 없게 하라." 하였다.
"양호 조도사(兩湖調度使) 이정험(李廷馦)과 강원 경상 조도사 종사관(江原慶尙調度使從事官) 이분(李芬)의 이첩(移牒) 안에 ‘백성들을 모집하고 곡식을 납부할 즈음에 노직첩(老職帖)과 추증당상직첩(追贈堂上職帖) 및 추증당상가선실직첩(追贈堂上嘉善實職帖)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적은 숫자를 싸가지고 와서 두루 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노직 당상가선첩 각 2백 장과 추증당상가선실직첩 각 1백 50장을 만들어 보내어서 곡식 얻을 길을 넓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이것은 공명고신(空名告身)인가? 이 일에는 임진년 이래로 거짓되고 간사한 일이 없지 않았다. 비록 혹 내려보내더라도 상세하게 행회(行會)해서 이런 폐단이 없게 하라."
하였다.
4월 13일 정미
한찬남이 아뢰기를, "어제 보건대 죄인 신점(申漸)이 여러 차례나 신의 이름을 거명하였는데, 신 역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옥사를 처리하는 사체는 지극히 엄하고도 중합니다. 신은 결단코 추관(推官)과 함께 태연스레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기에 대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죄하지 말고 안심하고 국문에 참여하라." 하였다.【 【신점의 옥사는 한찬남이 사주하여 성사시킨 것으로, 대개 허균이 격문(檄文)을 만든 자취를 숨기고자 한 것이다.】 】
"어제 보건대 죄인 신점(申漸)이 여러 차례나 신의 이름을 거명하였는데, 신 역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옥사를 처리하는 사체는 지극히 엄하고도 중합니다. 신은 결단코 추관(推官)과 함께 태연스레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기에 대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죄하지 말고 안심하고 국문에 참여하라."
하였다.【 【신점의 옥사는 한찬남이 사주하여 성사시킨 것으로, 대개 허균이 격문(檄文)을 만든 자취를 숨기고자 한 것이다.】 】
사헌부가 아뢰기를, "순창 군수(淳昌郡守) 민기(閔機)는 국법을 무시하고 외람되이 가솔을 거느리고 갔으며, 게다가 병을 칭탁하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오래도록 고을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순창 군수(淳昌郡守) 민기(閔機)는 국법을 무시하고 외람되이 가솔을 거느리고 갔으며, 게다가 병을 칭탁하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오래도록 고을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조금 전에 금부도사가 와서 말하기를 ‘고변한 자인 이계명을 대궐문 밖의 인가에다 머무르게 하고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 그런데 말과 행동거지가 몹시 황당스러워서 도망칠 걱정이 있는 듯하였다. 이에 어제부터 비로소 군인을 정하여 수직하면서 기찰하게 하였다. 그러나 밤이 짧아 조는 틈을 타서 의외의 변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잡아 가두라고 전교하였다. 이계명이 옥으로 끌려들어 가면서 나졸을 돌아다보고 말하기를, ‘나를 장차 죽일 것인가? 나를 죽이려는 것은 아닌가? 내가 이와 같이 될 줄 알았으면 오지 않는 것이 나았겠다.’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는 자들이 모두 비웃었다.
"조금 전에 금부도사가 와서 말하기를 ‘고변한 자인 이계명을 대궐문 밖의 인가에다 머무르게 하고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 그런데 말과 행동거지가 몹시 황당스러워서 도망칠 걱정이 있는 듯하였다. 이에 어제부터 비로소 군인을 정하여 수직하면서 기찰하게 하였다. 그러나 밤이 짧아 조는 틈을 타서 의외의 변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잡아 가두라고 전교하였다.
이계명이 옥으로 끌려들어 가면서 나졸을 돌아다보고 말하기를, ‘나를 장차 죽일 것인가? 나를 죽이려는 것은 아닌가? 내가 이와 같이 될 줄 알았으면 오지 않는 것이 나았겠다.’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는 자들이 모두 비웃었다.
전교하였다. "위에서 앓고 있던 전의 증세가 오래도록 회복되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는 한질(寒疾)이 또 들었다. 그러니 영정(影幀)의 출발을 5월 8일로, 지영(祗迎)을 5월 18일로 하는 것을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가려 뽑아 아뢰라."
"위에서 앓고 있던 전의 증세가 오래도록 회복되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는 한질(寒疾)이 또 들었다. 그러니 영정(影幀)의 출발을 5월 8일로, 지영(祗迎)을 5월 18일로 하는 것을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가려 뽑아 아뢰라."
전교하였다. "역적을 잡아오는 일은 사체가 아주 중하니, 마땅히 일을 잘 아는 도사(都事)를 가려뽑아 보내어 잡아와야 한다. 이번에 새로 제수된 생소한 도사를 이천에 내려보냄으로써 송수인(宋壽仁) 등을 도망치게 만들었다. 비록 자수를 하긴 했더라도 몹시 한심스럽다. 지금 이후로는 역적을 잡아오는 일이 새로 발생할 경우 반드시 일에 익숙한 도사를 잘 가려 뽑아서 내려보내라. 이상의 일을 금부로 하여금 각별히 살펴서 거행하게 하라."
"역적을 잡아오는 일은 사체가 아주 중하니, 마땅히 일을 잘 아는 도사(都事)를 가려뽑아 보내어 잡아와야 한다. 이번에 새로 제수된 생소한 도사를 이천에 내려보냄으로써 송수인(宋壽仁) 등을 도망치게 만들었다. 비록 자수를 하긴 했더라도 몹시 한심스럽다. 지금 이후로는 역적을 잡아오는 일이 새로 발생할 경우 반드시 일에 익숙한 도사를 잘 가려 뽑아서 내려보내라. 이상의 일을 금부로 하여금 각별히 살펴서 거행하게 하라."
유경종(柳慶宗)을 대사간으로, 최립(崔岦)을 안동 부사(安東府使)로, 홍사효(洪思斅)를 춘천 부사(春川府使)로 삼았다.
4월 14일 무신
정원이 아뢰기를, "옥후가 편치 않아 여러 달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타고나신 효성심에서 영정이 서울을 지나갈 때 반드시 친히 제사지내고 지영하고자 하여 여러 차례나 날짜를 물려서 정하였습니다. 더구나 5월 10일 이후에는 바로 무더운 장마철이 되니 영정을 운반하는 도중에 강물에 가로막힐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열읍(列邑)의 농민들은 날마다 분주히 오가면서 도랑을 메우고 길을 닦느라 관개(灌漑)를 하지 못하여 생업을 잃어 원성이 자자할 것입니다. 신들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영정을 우선 전주 객사(全州客舍)에다 임시로 안치하고서 참봉으로 하여금 호위해 지키게 하고, 승지와 예조 참의 이하 및 원역(員役)들을 우선 올라오게 한 다음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수확이 끝나고 큰비가 오지 않을 시기에 다시 보내어 받들어 모시고 출발하게 하면 될 듯합니다. 그럴 경우 조섭하는 방도와 영정의 행차에 모두 마땅함을 얻을 것이며, 열읍에서 지공하는 비용과 백성들이 대기하는 폐단 역시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결정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불행하게도 나의 병이 이와 같아 여러 달 동안을 질질 끌어서 영정을 모시는 행차가 늦어지게 됨을 면치 못하여,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였었다. 우선은 어제 전교한 뜻에 의거하여 예관으로 하여금 즉시 날짜를 가려뽑아서 하유하고, 이달 말에 가서 다시 나의 증세를 보고서 처치하라." 하였다.
"옥후가 편치 않아 여러 달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타고나신 효성심에서 영정이 서울을 지나갈 때 반드시 친히 제사지내고 지영하고자 하여 여러 차례나 날짜를 물려서 정하였습니다.
더구나 5월 10일 이후에는 바로 무더운 장마철이 되니 영정을 운반하는 도중에 강물에 가로막힐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열읍(列邑)의 농민들은 날마다 분주히 오가면서 도랑을 메우고 길을 닦느라 관개(灌漑)를 하지 못하여 생업을 잃어 원성이 자자할 것입니다.
신들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영정을 우선 전주 객사(全州客舍)에다 임시로 안치하고서 참봉으로 하여금 호위해 지키게 하고, 승지와 예조 참의 이하 및 원역(員役)들을 우선 올라오게 한 다음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수확이 끝나고 큰비가 오지 않을 시기에 다시 보내어 받들어 모시고 출발하게 하면 될 듯합니다. 그럴 경우 조섭하는 방도와 영정의 행차에 모두 마땅함을 얻을 것이며, 열읍에서 지공하는 비용과 백성들이 대기하는 폐단 역시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결정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불행하게도 나의 병이 이와 같아 여러 달 동안을 질질 끌어서 영정을 모시는 행차가 늦어지게 됨을 면치 못하여,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였었다. 우선은 어제 전교한 뜻에 의거하여 예관으로 하여금 즉시 날짜를 가려뽑아서 하유하고, 이달 말에 가서 다시 나의 증세를 보고서 처치하라."
하였다.
4월 16일 경술
사간원이 아뢰기를, "실록을 나누어 보관하는 것은 사체가 중대하여서 봉안하는 거조를 조금이라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삼가 본청에서 택일(擇日)한 단자(單子)에 대해 판부(判付)한 것을 보건대 ‘장마철이 멀지 않았고 나라에도 일이 많으니 8월 중으로 고쳐 택일해서 봉안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설령 장마가 지더라도 궤속에 넣고 단단하게 봉하면 습기가 스며들 걱정은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라에 요즈음 일이 많지 않은데, 사신을 보내어 봉안함에 있어서 무슨 방해되는 것이 있어서 다시 여러 달을 지연시킨단 말입니까. 사체로 살펴볼 때 몹시 온당치 않습니다. 강원도·경상도·평안도 등에 실록을 봉안하는 것을 경기에 봉안한 예에 의거해서 속히 날짜를 가려 한꺼번에 시행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실록을 나누어 보관하는 것은 사체가 중대하여서 봉안하는 거조를 조금이라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삼가 본청에서 택일(擇日)한 단자(單子)에 대해 판부(判付)한 것을 보건대 ‘장마철이 멀지 않았고 나라에도 일이 많으니 8월 중으로 고쳐 택일해서 봉안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설령 장마가 지더라도 궤속에 넣고 단단하게 봉하면 습기가 스며들 걱정은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라에 요즈음 일이 많지 않은데, 사신을 보내어 봉안함에 있어서 무슨 방해되는 것이 있어서 다시 여러 달을 지연시킨단 말입니까. 사체로 살펴볼 때 몹시 온당치 않습니다. 강원도·경상도·평안도 등에 실록을 봉안하는 것을 경기에 봉안한 예에 의거해서 속히 날짜를 가려 한꺼번에 시행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4월 17일 신해
전교하였다. "회답사(回答使)는 우리 나라에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그에 대한 회답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서 출발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너희들이 이와 같이 간절히 바라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주문하고 한편으로는 출발시킨다.’는 뜻으로 왜인들에게 말을 잘 만들어서 상세하게 개유(開諭)하는 일을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성상의 분부대로, 한편으로는 주문하고 한편으로는 사신을 파견해서 너희들의 간절한 바람에 부응한다는 뜻으로 말을 잘 만들어서, 사신을 출발시키기를 독촉하고 있는 왜인에게 개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이런 내용으로 경상 감사와 동래 부사(東萊府使) 등의 관원들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회답사(回答使)는 우리 나라에서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여 그에 대한 회답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서 출발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너희들이 이와 같이 간절히 바라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주문하고 한편으로는 출발시킨다.’는 뜻으로 왜인들에게 말을 잘 만들어서 상세하게 개유(開諭)하는 일을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성상의 분부대로, 한편으로는 주문하고 한편으로는 사신을 파견해서 너희들의 간절한 바람에 부응한다는 뜻으로 말을 잘 만들어서, 사신을 출발시키기를 독촉하고 있는 왜인에게 개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이런 내용으로 경상 감사와 동래 부사(東萊府使) 등의 관원들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회답사의 군관을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되 죄인의 족속은 절대로 구전(口傳)으로 차임하여 보내지 말라는 뜻으로 병조와 사신에게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착실하게 거행하게 하라."
"회답사의 군관을 각별히 가려뽑아 보내되 죄인의 족속은 절대로 구전(口傳)으로 차임하여 보내지 말라는 뜻으로 병조와 사신에게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착실하게 거행하게 하라."
이창후(李昌後)를 사간으로, 황덕부(黃德符)를 정언으로 삼았다.
4월 18일 임자
전교하였다. "시문용(施文用)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고 이충(李沖)은 병세가 아직도 중하다고 한다. 이궁(離宮)에 현재 담장을 쌓고 있는데, 대문을 만들 곳에 살문[箭門]을 우선 만들어 배치하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시문용(施文用)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고 이충(李沖)은 병세가 아직도 중하다고 한다. 이궁(離宮)에 현재 담장을 쌓고 있는데, 대문을 만들 곳에 살문[箭門]을 우선 만들어 배치하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이궁의 역사를 시작하는 곳에 여러 술관들과 성지(性智) 등을 창경궁을 지을 때의 전례대로 도감에서 대기하게 하고, 물을 만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물어서 하라. 이상의 일을 선수 도감에 말하라."
"이궁의 역사를 시작하는 곳에 여러 술관들과 성지(性智) 등을 창경궁을 지을 때의 전례대로 도감에서 대기하게 하고, 물을 만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물어서 하라. 이상의 일을 선수 도감에 말하라."
사간원에 아뢰기를, "수령들이 함부로 가솔을 거느리고 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기강이 해이해져서 마구 불법을 행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이미 결혼한 자녀도 공공연히 거느리고 가기까지 하여 폐습이 이미 고질화되었습니다. 관곡이 축나고 백성들이 초췌해지는 것이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는 것인 바,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니 감사가 된 자는 마땅히 드러나는 대로 적발하여 치죄하여야 되는데, 인정에 끌려 덮어둔 채 즉시 조사해 아뢰지 않고 있으니, 몹시 그릅니다. 각도의 감사로 하여금 각별히 조사해서 금지시키게 하되, 범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법에 의거해서 파출(罷黜)하라고 하유해서 신칙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수령들이 함부로 가솔을 거느리고 가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기강이 해이해져서 마구 불법을 행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이미 결혼한 자녀도 공공연히 거느리고 가기까지 하여 폐습이 이미 고질화되었습니다. 관곡이 축나고 백성들이 초췌해지는 것이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는 것인 바,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니 감사가 된 자는 마땅히 드러나는 대로 적발하여 치죄하여야 되는데, 인정에 끌려 덮어둔 채 즉시 조사해 아뢰지 않고 있으니, 몹시 그릅니다.
각도의 감사로 하여금 각별히 조사해서 금지시키게 하되, 범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일일이 법에 의거해서 파출(罷黜)하라고 하유해서 신칙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조정에 이미 궁궐을 짓는 큰 역사가 있으니 백성들이 포목을 내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묵은 곡식이 다 떨어져서 백성들은 곤궁하고 재물은 고갈되어 조석조차도 급급합니다. 그러니 만약 달리 조치할 만한 형세가 있다면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두는 것을 정지하여 성상의 뜻을 받들어 따르는 것보다 나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서는 세입(稅入)이 1년의 쓰임새를 다 대지 못하여서 10월등(十月等)의 반록(頒菉)과 다음해 정월등(正月等)의 반록은 매년 계속해서 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부득이 계청해서 경기와 공홍도의 전세(田稅)를 미리 끌어다가 썼습니다. 금년에는 신들이 이에 대해 미리 염려하여, 애써 수합한 여러 가지의 작미(作米)와 작목(作木)을 이미 받아들인 것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통계내어 보니, 금년부터 내년까지 쓸 잡차하(雜上下)와 녹봉으로 반급(頒給)할 것을 제외하고도 상수(常數) 외에서 나온 나머지가 마땅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포목 5백 동과 쌀 1만 석을 선수 도감으로 이송(移送)해서 조금이나마 보태어 써서 백성들의 힘을 늦추어 주고, 그 이외에 부족한 숫자에 대해서는 천천히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조정에 이미 궁궐을 짓는 큰 역사가 있으니 백성들이 포목을 내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묵은 곡식이 다 떨어져서 백성들은 곤궁하고 재물은 고갈되어 조석조차도 급급합니다. 그러니 만약 달리 조치할 만한 형세가 있다면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두는 것을 정지하여 성상의 뜻을 받들어 따르는 것보다 나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서는 세입(稅入)이 1년의 쓰임새를 다 대지 못하여서 10월등(十月等)의 반록(頒菉)과 다음해 정월등(正月等)의 반록은 매년 계속해서 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부득이 계청해서 경기와 공홍도의 전세(田稅)를 미리 끌어다가 썼습니다.
금년에는 신들이 이에 대해 미리 염려하여, 애써 수합한 여러 가지의 작미(作米)와 작목(作木)을 이미 받아들인 것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통계내어 보니, 금년부터 내년까지 쓸 잡차하(雜上下)와 녹봉으로 반급(頒給)할 것을 제외하고도 상수(常數) 외에서 나온 나머지가 마땅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포목 5백 동과 쌀 1만 석을 선수 도감으로 이송(移送)해서 조금이나마 보태어 써서 백성들의 힘을 늦추어 주고, 그 이외에 부족한 숫자에 대해서는 천천히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4월 19일 계축
경상도의 겸사복(兼司僕) 정신도(鄭信道)가 상소하기를, "신이 지난 신해년 봄에 포로로 잡혀간 전이생(全以生) 등의 편지를 얻어 보았는데, 그 가운데 국가에 있어 중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신이 그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보겠습니다. 전이생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로서 살마주(薩摩州)에 잡혀 있는 자가 3만 7백여 명이나 되는데, 별도로 한 구역에 모여 사는 지 장차 24년이 되어갑니다. 이들은 배운 것이라고는 창이나 칼을 쓰는 법이며, 연습한 것이라고는 싸움터에서 진을 치는 법뿐이어서 모두가 한 사람이 만명을 당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서 돌아가기가 이미 글렀으므로, 한갓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서, 쇄환시켜 달라는 한 마디 말을 만리 먼 길에 보내왔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고향을 그리는 정성이 애처로운 뿐만 아니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바닷물을 내뿜는 큰 고래와 같은 자들이 안집되었다고는 하지만 배를 타고 오가면서 행상(行商)한다고 핑계대고는 몰래 허실을 엿보면서 다시 꿈틀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쪽 변방에 대한 걱정을 어찌 하루인들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국가의 이해(利害)에 대해 두루 알고 있으며, 또 진을 치는 법과 창칼 쓰는 법에 뛰어납니다. 만약 그들을 쇄환해서 돌아오게 하고 잘 어루만져 주면서 쓴다면, 국가에 보탬이 됨이 어찌 적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번 회답사의 행차에 그들을 쇄환해 오라는 명을 함께 내려 보내소서. 그럴 경우 한 가족이 서로 상봉하게 되어 어찌 마음속에서만 감격스러워하겠습니까. 국가에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것이 10년 동안 충성하라고 가르친 것보다 더할 것입니다. 전이생 등의 편지 역시 봉하여 올리니, 그들의 사정은 그 안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감히 이상과 같이 아룁니다." 하였다.
"신이 지난 신해년 봄에 포로로 잡혀간 전이생(全以生) 등의 편지를 얻어 보았는데, 그 가운데 국가에 있어 중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신이 그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보겠습니다.
전이생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로서 살마주(薩摩州)에 잡혀 있는 자가 3만 7백여 명이나 되는데, 별도로 한 구역에 모여 사는 지 장차 24년이 되어갑니다. 이들은 배운 것이라고는 창이나 칼을 쓰는 법이며, 연습한 것이라고는 싸움터에서 진을 치는 법뿐이어서 모두가 한 사람이 만명을 당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서 돌아가기가 이미 글렀으므로, 한갓 눈물만 흘리고 있으면서, 쇄환시켜 달라는 한 마디 말을 만리 먼 길에 보내왔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고향을 그리는 정성이 애처로운 뿐만 아니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바닷물을 내뿜는 큰 고래와 같은 자들이 안집되었다고는 하지만 배를 타고 오가면서 행상(行商)한다고 핑계대고는 몰래 허실을 엿보면서 다시 꿈틀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쪽 변방에 대한 걱정을 어찌 하루인들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국가의 이해(利害)에 대해 두루 알고 있으며, 또 진을 치는 법과 창칼 쓰는 법에 뛰어납니다. 만약 그들을 쇄환해서 돌아오게 하고 잘 어루만져 주면서 쓴다면, 국가에 보탬이 됨이 어찌 적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번 회답사의 행차에 그들을 쇄환해 오라는 명을 함께 내려 보내소서. 그럴 경우 한 가족이 서로 상봉하게 되어 어찌 마음속에서만 감격스러워하겠습니까. 국가에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것이 10년 동안 충성하라고 가르친 것보다 더할 것입니다. 전이생 등의 편지 역시 봉하여 올리니, 그들의 사정은 그 안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감히 이상과 같이 아룁니다."
하였다.
4월 20일 갑인
전교하였다. "시문용이 지금까지 올라오지 않고 있으니, 경상 감사에게 하유해서 그로 하여금 이달 안으로 속히 올려보내게 하라."
"시문용이 지금까지 올라오지 않고 있으니, 경상 감사에게 하유해서 그로 하여금 이달 안으로 속히 올려보내게 하라."
전교하였다. "이궁을 짓는 일이 하루가 급하다. 여러 제조들이 도감에 부지런히 출사해서 마음을 다하여 감독하라."
"이궁을 짓는 일이 하루가 급하다. 여러 제조들이 도감에 부지런히 출사해서 마음을 다하여 감독하라."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포목을 거두는 일로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영의정 기자헌은 ‘대간이 올린 계사의 뜻이 마땅합니다. 전에 창덕궁을 지을 때 매 2결당 1필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4결당 1필씩을 거두면 크게 어려운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듯합니다.’ 하고, 우의정 한효순은 ‘이궁을 새로 짓는 역사를 지금 막 일으켰으니, 전결에서 포목을 거두는 것은 그만 둘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창덕궁을 지을 때에는 매 2결당 1필씩을 거두었으니, 지금은 반감해서 단지 4결당 1필씩을 거두어서 쓰임새에 대고 백성들의 부역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듯합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창덕궁을 지을 때 포목을 거둔 것은 선조(先朝) 때 하였는가, 내가 즉위한 무신년 이후에 하였는가? 살펴서 아뢰라." 하였다.
"포목을 거두는 일로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영의정 기자헌은 ‘대간이 올린 계사의 뜻이 마땅합니다. 전에 창덕궁을 지을 때 매 2결당 1필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4결당 1필씩을 거두면 크게 어려운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듯합니다.’ 하고, 우의정 한효순은 ‘이궁을 새로 짓는 역사를 지금 막 일으켰으니, 전결에서 포목을 거두는 것은 그만 둘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창덕궁을 지을 때에는 매 2결당 1필씩을 거두었으니, 지금은 반감해서 단지 4결당 1필씩을 거두어서 쓰임새에 대고 백성들의 부역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 아마도 마땅할 듯합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창덕궁을 지을 때 포목을 거둔 것은 선조(先朝) 때 하였는가, 내가 즉위한 무신년 이후에 하였는가? 살펴서 아뢰라."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외방 수령들에 대한 전최(殿最)는 한결같이 본도의 방백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방백들이 등급을 나누어 계문한 뒤에는 고치는 바가 있어서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끼쳐서는 안 됩니다. 지난번에 경상 감사의 계본 안에 사천 현감(泗川縣監) 양극(梁𧩦)을 하등(下等)으로 하였는데, 교체해서 차임한 뒤에 이르러서 곧바로 고을 백성들 몇 명이 정장(呈狀)함으로 인하여 즉시 잉임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것은 실로 근고에 없던 일입니다. 설령 감사가 등급을 매긴 것이 50일 이전에 있었다 하더라도, 양극이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상황이 50일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분명하게 드러났으니, 어찌 50일이 넘어야만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규정에 구애되어 등급을 매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현감을 잉임시키고 체차시키는 것은 관계됨이 심히 중하지는 않으나, 다만 염려되는 것은 조정에서 방백에게 위임하여 보내어 그로 하여금 출척(黜陟)을 전담하게 한 뜻이 오늘부터 무너질까 하는 점입니다. 물정이 모두들 괴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양극을 잉임시키라고 한 공사(公事)를 거행하지 마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외방 수령들에 대한 전최(殿最)는 한결같이 본도의 방백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방백들이 등급을 나누어 계문한 뒤에는 고치는 바가 있어서 뒷날의 무궁한 폐단을 끼쳐서는 안 됩니다.
지난번에 경상 감사의 계본 안에 사천 현감(泗川縣監) 양극(梁𧩦)을 하등(下等)으로 하였는데, 교체해서 차임한 뒤에 이르러서 곧바로 고을 백성들 몇 명이 정장(呈狀)함으로 인하여 즉시 잉임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것은 실로 근고에 없던 일입니다. 설령 감사가 등급을 매긴 것이 50일 이전에 있었다 하더라도, 양극이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상황이 50일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분명하게 드러났으니, 어찌 50일이 넘어야만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규정에 구애되어 등급을 매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현감을 잉임시키고 체차시키는 것은 관계됨이 심히 중하지는 않으나, 다만 염려되는 것은 조정에서 방백에게 위임하여 보내어 그로 하여금 출척(黜陟)을 전담하게 한 뜻이 오늘부터 무너질까 하는 점입니다. 물정이 모두들 괴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양극을 잉임시키라고 한 공사(公事)를 거행하지 마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4월 21일 을묘
공홍도 관찰사 경섬(慶暹)이 박기현(朴耆賢)에 대해서 조사한 일로 장계하기를, "박기현은 사람됨이 부지런하고 강포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사에 마음을 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본현의 여러 해 동안 거두어들이지 못한 공물(貢物)을 거의 다 상납하였고, 거두어들이지 못한 환자곡을 모두다 숫자를 채워넣었습니다. 이와 같이 거두어들이는 즈음에 어찌 부역을 피하고 고통을 싫어하는 무리가 한두 사람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재간이 있어 치적을 쌓은 것은 한 도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나 대간이 풍문으로 들은 것은 반드시 근거가 있을 것이고, 신이 듣고 본 것이 어찌 다 사실일 수 있겠습니까. 수령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대해서 신은 이미 명백하게 출척을 가하지 못하였고, 대간이 논계한 바에 대해서도 상세히 조사하여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몹시 황공스럽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황공해 하지 말라고 회답하여 유시하라. 박기현은 추고하라." 하였다.
"박기현은 사람됨이 부지런하고 강포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사에 마음을 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본현의 여러 해 동안 거두어들이지 못한 공물(貢物)을 거의 다 상납하였고, 거두어들이지 못한 환자곡을 모두다 숫자를 채워넣었습니다. 이와 같이 거두어들이는 즈음에 어찌 부역을 피하고 고통을 싫어하는 무리가 한두 사람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재간이 있어 치적을 쌓은 것은 한 도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나 대간이 풍문으로 들은 것은 반드시 근거가 있을 것이고, 신이 듣고 본 것이 어찌 다 사실일 수 있겠습니까. 수령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대해서 신은 이미 명백하게 출척을 가하지 못하였고, 대간이 논계한 바에 대해서도 상세히 조사하여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몹시 황공스럽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황공해 하지 말라고 회답하여 유시하라. 박기현은 추고하라."
하였다.
우부승지 이원(李瑗)이 아뢰기를, "작상(爵賞)은 임금의 권한인 것으로, 비록 번신(藩臣)이나 곤수(閫帥)라 하더라도 지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수령이겠습니까. 이번에 제주 목사(濟州牧使) 이괄(李适)이, 정의 현감(旌義縣監) 조양보(趙良漙)가 군량과 군기를 별도로 마련한 일을 가지고 태연스레 포계(褒啓)하였습니다. 제주가 비록 세 고을의 주진(主鎭)이기는 하지만, 포폄 등에 대한 일은 반드시 감사에게 보고하여 그로 하여금 전계(轉啓)하게 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그런데 이괄은 사체를 제대로 모르고 수령으로서 수령을 포계하여 근고에 없던 일을 열어놓았으니, 몹시 외람스럽습니다. 중한 쪽으로 추고하여서 무부들의 방자한 습관을 징계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바다 바깥의 고을에서 마련한 물품을 만약 포계하지 않을 경우 조정에서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추고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반드시 전례가 있을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상세히 상고하여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작상(爵賞)은 임금의 권한인 것으로, 비록 번신(藩臣)이나 곤수(閫帥)라 하더라도 지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수령이겠습니까. 이번에 제주 목사(濟州牧使) 이괄(李适)이, 정의 현감(旌義縣監) 조양보(趙良漙)가 군량과 군기를 별도로 마련한 일을 가지고 태연스레 포계(褒啓)하였습니다. 제주가 비록 세 고을의 주진(主鎭)이기는 하지만, 포폄 등에 대한 일은 반드시 감사에게 보고하여 그로 하여금 전계(轉啓)하게 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그런데 이괄은 사체를 제대로 모르고 수령으로서 수령을 포계하여 근고에 없던 일을 열어놓았으니, 몹시 외람스럽습니다. 중한 쪽으로 추고하여서 무부들의 방자한 습관을 징계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바다 바깥의 고을에서 마련한 물품을 만약 포계하지 않을 경우 조정에서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추고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반드시 전례가 있을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상세히 상고하여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4월 22일 병진
사간원이 아뢰기를, "약방(藥房)은 바로 어약(御藥)을 조제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서 심상한 일반 한국(閑局)과는 같지 않습니다. 전부터 제조를 세 사람 차출하여서 의약(議藥)하고 문안(問安)하게 한 것은 사체가 아주 중한 것인 바, 참으로 한 관원이라도 자리가 비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도제조 한 사람을 오래도록 차임하지 않은 채 비워두고 있습니다. 약방에서 여러 차례 차출하기를 청하였는데도 상께서는 천천히 차출하겠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비록 현재 있는 두 사람의 제조만으로도 의약하고 문안하는 일에 있어서 참으로 조금도 미진한 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염려되는 것은, 이처럼 성상께서 편찮으시어 시원스레 회복되지 않으신 때에, 사체가 몹시 타당치 않다고 하는 점입니다. 도제조를 되도록 속히 차출하여서 내국(內局)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 하였다.
"약방(藥房)은 바로 어약(御藥)을 조제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서 심상한 일반 한국(閑局)과는 같지 않습니다. 전부터 제조를 세 사람 차출하여서 의약(議藥)하고 문안(問安)하게 한 것은 사체가 아주 중한 것인 바, 참으로 한 관원이라도 자리가 비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도제조 한 사람을 오래도록 차임하지 않은 채 비워두고 있습니다. 약방에서 여러 차례 차출하기를 청하였는데도 상께서는 천천히 차출하겠다고 전교하시었습니다. 비록 현재 있는 두 사람의 제조만으로도 의약하고 문안하는 일에 있어서 참으로 조금도 미진한 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염려되는 것은, 이처럼 성상께서 편찮으시어 시원스레 회복되지 않으신 때에, 사체가 몹시 타당치 않다고 하는 점입니다. 도제조를 되도록 속히 차출하여서 내국(內局)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사(內司)에 바치는 제주(濟州)의 노비공물(奴婢貢物)을 서산(瑞山)과 보령(保寧) 등 고을의 수령들이 서로 미룬 채 배를 내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상납하지 못하게 하였는 바, 완악하고 태만한 꼴이 극도에 이르렀다. 마땅히 중하게 따져야 하겠으나 지금은 우선 추고만 하라. 그리고 본도의 감사에게 하유하여 다음달 초순 전에 속히 올려보내게 하라."
"내사(內司)에 바치는 제주(濟州)의 노비공물(奴婢貢物)을 서산(瑞山)과 보령(保寧) 등 고을의 수령들이 서로 미룬 채 배를 내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상납하지 못하게 하였는 바, 완악하고 태만한 꼴이 극도에 이르렀다. 마땅히 중하게 따져야 하겠으나 지금은 우선 추고만 하라. 그리고 본도의 감사에게 하유하여 다음달 초순 전에 속히 올려보내게 하라."
전교하였다. "안산(安山)의 어전(漁箭)에서 올리는 일차진상(日次進上)을 단지 각 고기의 종류별로 몇마리씩만 올려 책임이나 때우듯이 봉진하고 있으니, 선조(先朝)의 규례와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감착관(監捉官)을 각별히 추고하라. 그리고 일체 선조 때의 예전 규례에 따라 상세히 살펴서 봉진하도록 각별히 신칙하여 착실하게 거행하게 하라."
"안산(安山)의 어전(漁箭)에서 올리는 일차진상(日次進上)을 단지 각 고기의 종류별로 몇마리씩만 올려 책임이나 때우듯이 봉진하고 있으니, 선조(先朝)의 규례와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감착관(監捉官)을 각별히 추고하라. 그리고 일체 선조 때의 예전 규례에 따라 상세히 살펴서 봉진하도록 각별히 신칙하여 착실하게 거행하게 하라."
4월 23일 정사
평안도 관찰사 김신국이 장계하기를, "본도는 지난해에 흉년이 들었으며 공사곡(公私穀)을 이전(移轉)하여 내어간 숫자 역시 몇만 석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금년에는 백성들이 굶주리는 걱정이 근고에 없던 바여서 길거리에 유리하고 있으며, 굶어죽은 시체가 즐비합니다. 현재 비가 흡족하게 내려서 백성들이 농사를 짓고는 있으나, 종자곡과 농량(農糧)이 모두 부족해서 심지어는 농기구를 끌어안은 채 들판에서 굶어죽는 자가 있기까지 하니, 몹시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진구(賑救)하는 계책으로는 요역을 견감시켜 주는 것만한 것이 없는데, 조도(調度)하고 징발(徵發)하는 번거로움이 지난날보다 배는 됩니다. 이에 서로(西路)의 관방(關防)으로 국가의 근본이 되는 지역이 장차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지난해에 양호(兩湖)에서 시행한 예에 의거해서 각별히 너그럽게 처치해 주소서." 하였다.
"본도는 지난해에 흉년이 들었으며 공사곡(公私穀)을 이전(移轉)하여 내어간 숫자 역시 몇만 석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금년에는 백성들이 굶주리는 걱정이 근고에 없던 바여서 길거리에 유리하고 있으며, 굶어죽은 시체가 즐비합니다. 현재 비가 흡족하게 내려서 백성들이 농사를 짓고는 있으나, 종자곡과 농량(農糧)이 모두 부족해서 심지어는 농기구를 끌어안은 채 들판에서 굶어죽는 자가 있기까지 하니, 몹시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진구(賑救)하는 계책으로는 요역을 견감시켜 주는 것만한 것이 없는데, 조도(調度)하고 징발(徵發)하는 번거로움이 지난날보다 배는 됩니다. 이에 서로(西路)의 관방(關防)으로 국가의 근본이 되는 지역이 장차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지난해에 양호(兩湖)에서 시행한 예에 의거해서 각별히 너그럽게 처치해 주소서."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국가에서 추쇄법(推刷法)을 중하게 여겨, 본사로 하여금 구관(句管)하게 하고 수령이 체임되어 온 뒤에 이를 상고하여 해유(解由)를 내주게 한 것은, 그 뜻이 참으로 범연한 것이 아닙니다. 전 영변 군수(寧邊郡守) 임의(任義)는 2구(口)를 쇄환하였다는 도부(到付)를 와서 바쳤으므로 해유장을 이미 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추쇄한 사민(徙民)을 함경 도사에게 물어보니, 이른바 사민이라고 한 자는 와서 얼굴을 보인 적이 없으며, 도부 역시 일찍이 내어준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임의가 어디에서 도부를 얻어 와서 바쳤단 말입니까? 그 사이의 곡절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추고해 중간에서 속임수를 쓰는 폐단을 방지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국가에서 추쇄법(推刷法)을 중하게 여겨, 본사로 하여금 구관(句管)하게 하고 수령이 체임되어 온 뒤에 이를 상고하여 해유(解由)를 내주게 한 것은, 그 뜻이 참으로 범연한 것이 아닙니다.
전 영변 군수(寧邊郡守) 임의(任義)는 2구(口)를 쇄환하였다는 도부(到付)를 와서 바쳤으므로 해유장을 이미 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추쇄한 사민(徙民)을 함경 도사에게 물어보니, 이른바 사민이라고 한 자는 와서 얼굴을 보인 적이 없으며, 도부 역시 일찍이 내어준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임의가 어디에서 도부를 얻어 와서 바쳤단 말입니까? 그 사이의 곡절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추고해 중간에서 속임수를 쓰는 폐단을 방지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일에 헌부에서 아뢴 것에 대해 답하였다. "민기(閔機)를 체차하도록 헌부에 말하라."
"민기(閔機)를 체차하도록 헌부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요즈음 들어 사옹원에서 올리는 경기의 진상생물(進上生物)과 일차진상생물(日次進上生物)이 모두 심하게 썩어서 사람이 입을 댈 수가 없었다. 봉진한 관리 및 사옹원의 담당 관리를 모두 추고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사옹원 제조로 하여금 전과 같이 하지 말고 별도로 살펴서 봉입(捧入)하게 하라."
"요즈음 들어 사옹원에서 올리는 경기의 진상생물(進上生物)과 일차진상생물(日次進上生物)이 모두 심하게 썩어서 사람이 입을 댈 수가 없었다. 봉진한 관리 및 사옹원의 담당 관리를 모두 추고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사옹원 제조로 하여금 전과 같이 하지 말고 별도로 살펴서 봉입(捧入)하게 하라."
요동진강유격(遼東鎭江遊擊) 구탄(丘坦)이 낙타와 채단(彩段) 및 버선·신발 등을 보내고, 또 채단(綵段) 30여 필을 보내고는 몇가지 방물(方物)을 받고자 하였다.
4월 24일 무오
병조가 아뢰기를, "녹미(菉米)는 한 톨 한 톨이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송(宋)나라 때에 사록관(祠菉官)이 있었는데, 후세에 구준(丘濬)과 같은 무리들이 하는 일 없이 녹만 축낸다고 기롱하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경비가 고갈되고 민력(民力)이 다한 때인데이겠습니까. 응당 군직(軍職)에 붙여야 할 자로 서울에 있으면서 노병(老病)으로 운신할 수 없는 자 이외에는 날마다 순장(巡將)으로 계하(啓下)해서 호위에 갖추게 하소서. 그리고 고의적으로 외방에 있으면서 오래도록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직질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부록(付菉)하지 말도록 하소서. 이상의 일을 승전을 받들어서 신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녹미(菉米)는 한 톨 한 톨이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송(宋)나라 때에 사록관(祠菉官)이 있었는데, 후세에 구준(丘濬)과 같은 무리들이 하는 일 없이 녹만 축낸다고 기롱하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경비가 고갈되고 민력(民力)이 다한 때인데이겠습니까. 응당 군직(軍職)에 붙여야 할 자로 서울에 있으면서 노병(老病)으로 운신할 수 없는 자 이외에는 날마다 순장(巡將)으로 계하(啓下)해서 호위에 갖추게 하소서. 그리고 고의적으로 외방에 있으면서 오래도록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직질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부록(付菉)하지 말도록 하소서. 이상의 일을 승전을 받들어서 신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호조에 이송해 올 쌀 1만 석이 각도의 각 고을에 흩어져 있는데, 필시 별도로 도감의 낭청을 차임하여 그들로 하여금 감독해서 받아들이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감역관(監役官)들이 다수 나가서 감독하느라 현재 부족한 걱정이 있어서 지금 또다시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풍력(風力)이 있는 문관 한 사람을 해조로 하여금 가려뽑게 해서 도감 낭청의 칭호를 주어 내려보내고, 황연도(黃延道)의 경우는 그 도의 도사로 하여금 전적으로 관할하여 독촉해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리고 가까운 도는 다음달 20일까지 먼 도는 30일 안으로 일제히 배를 이용해 올려보내게 하되, 그 가운데 제때에 거행하지 못하는 수령에 대해서는 계문하여 파출하게 하고, 도사가 태만하여 거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먼저 파직한 다음 추고하게 하소서. 이상의 일을 황연도와 공홍도·전라도 감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호조에 이송해 올 쌀 1만 석이 각도의 각 고을에 흩어져 있는데, 필시 별도로 도감의 낭청을 차임하여 그들로 하여금 감독해서 받아들이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감역관(監役官)들이 다수 나가서 감독하느라 현재 부족한 걱정이 있어서 지금 또다시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풍력(風力)이 있는 문관 한 사람을 해조로 하여금 가려뽑게 해서 도감 낭청의 칭호를 주어 내려보내고, 황연도(黃延道)의 경우는 그 도의 도사로 하여금 전적으로 관할하여 독촉해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리고 가까운 도는 다음달 20일까지 먼 도는 30일 안으로 일제히 배를 이용해 올려보내게 하되, 그 가운데 제때에 거행하지 못하는 수령에 대해서는 계문하여 파출하게 하고, 도사가 태만하여 거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먼저 파직한 다음 추고하게 하소서. 이상의 일을 황연도와 공홍도·전라도 감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4월 25일 기미
사간원이 아뢰기를, "영정이 서울을 지나갈 때 상께서 인정전(仁政殿)에서 친히 제사지내고자 하시었습니다. 성상의 조상을 떠받드는 정성과 선조를 받드는 효성으로서는 의당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해야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인정전은 법전(法殿)으로 바로 임금이 자리에 앉아서 다스림을 내는 곳입니다. 예전부터 상수(上壽)와 음복(飮福)의 예를 반드시 이곳에서 베풀었으니, 제사를 받는 행전(行殿)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지난해에 황제께서 사신을 보내어 치제(致祭)할 때에도 의논하는 자들이 법전에서 제사를 받는 것을 그르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영정에 친히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어찌 다시금 잘못된 전례를 따라서 실례하는 규례를 만들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제사에 있어서는 정성과 공경이 귀한 것이지 형식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오르내리는 성조(聖祖)의 영혼이 반드시 법전이냐 교외냐에 대해 구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 한 조항에 대해서 정문(情文)이 지극하지 못한가 의문을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전과 같이 교외에서 친히 제사지내는 일을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다시 강정해서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영정이 서울을 지나갈 때 상께서 인정전(仁政殿)에서 친히 제사지내고자 하시었습니다. 성상의 조상을 떠받드는 정성과 선조를 받드는 효성으로서는 의당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해야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인정전은 법전(法殿)으로 바로 임금이 자리에 앉아서 다스림을 내는 곳입니다. 예전부터 상수(上壽)와 음복(飮福)의 예를 반드시 이곳에서 베풀었으니, 제사를 받는 행전(行殿)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지난해에 황제께서 사신을 보내어 치제(致祭)할 때에도 의논하는 자들이 법전에서 제사를 받는 것을 그르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영정에 친히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어찌 다시금 잘못된 전례를 따라서 실례하는 규례를 만들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제사에 있어서는 정성과 공경이 귀한 것이지 형식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오르내리는 성조(聖祖)의 영혼이 반드시 법전이냐 교외냐에 대해 구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 한 조항에 대해서 정문(情文)이 지극하지 못한가 의문을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전과 같이 교외에서 친히 제사지내는 일을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다시 강정해서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영상 기자헌이 상차하기를,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죽을 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속히 본직을 체차하고,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 다시 뽑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다. 이때는 경이 물러나기를 청할 때가 아니니,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행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 전교하기를, "내의(內醫)를 보내어 병세를 살펴보게 하라." 하였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죽을 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속히 본직을 체차하고,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 다시 뽑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다. 이때는 경이 물러나기를 청할 때가 아니니,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조리하고서 행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 전교하기를,
"내의(內醫)를 보내어 병세를 살펴보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떠낸 돌을 실어올 때와 그 일을 하러 나아갈 때 찬찬히 살펴 실어와 깔려 부상 당하는 일이 없게 하라. "
"떠낸 돌을 실어올 때와 그 일을 하러 나아갈 때 찬찬히 살펴 실어와 깔려 부상 당하는 일이 없게 하라. "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창덕궁을 지을 때의 의궤(儀軌)에는, 그 당시에 도감이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두는 일을 을사년 12월에 입계해 윤허받아서 병오년과 정미년에 거두어들여서 썼습니다. 그런데 무신년 이후에는 포목을 거둔 일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궁을 짓는 역사가 비록 부득이한 데서 나왔으나 나의 마음에 항상 미안하였었다. 그런데 어찌 백성들에게서 포목을 거두어서 나의 부덕함을 더하겠는가. 그만둘 수 없다면 먼저 장인세포(匠人稅布)와 경외의 공사를 돕는 미포(米布)를 거두어모아서 쓰고 우선은 가을을 기다려 8결당 1필을 거두어서 쓰는 것이 편할 듯하다. 다시 의논하여서 조처하라." 하였다.
"창덕궁을 지을 때의 의궤(儀軌)에는, 그 당시에 도감이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두는 일을 을사년 12월에 입계해 윤허받아서 병오년과 정미년에 거두어들여서 썼습니다. 그런데 무신년 이후에는 포목을 거둔 일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궁을 짓는 역사가 비록 부득이한 데서 나왔으나 나의 마음에 항상 미안하였었다. 그런데 어찌 백성들에게서 포목을 거두어서 나의 부덕함을 더하겠는가. 그만둘 수 없다면 먼저 장인세포(匠人稅布)와 경외의 공사를 돕는 미포(米布)를 거두어모아서 쓰고 우선은 가을을 기다려 8결당 1필을 거두어서 쓰는 것이 편할 듯하다. 다시 의논하여서 조처하라."
하였다.
유경종(柳慶宗)을 대사헌으로, 정광성(鄭廣成)을 대사간으로, 정조(鄭造)를 병조 참지로, 남이준(南以俊)을 봉상시 정으로, 오윤겸(吳允謙)을 첨지중추부사로, 이유록(李綏綏菉)을 사인으로, 정광경(鄭廣敬)을 사성으로, 심즙(沈諿)을 검상으로, 윤지경(尹知敬)을 병조 정랑으로, 이경여(李敬輿)를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삼았다.
4월 26일 경신
전교하였다. "만약 이충(李沖)이 출사한 뒤에야 의논해 정한다면 날짜가 점점 늦추어질 듯하다. 5월 초순에 무고(無故)한 날을 택하여 도제조 이하가 중사(中使)와 시문용(施文用)·성지(性智) 및 여러 술관들과 회동하여 외정전(外正殿)·시사전(視事殿)·침전(寢殿)·별당(別堂)·야대청(夜對廳) 등처를 조성할 형지(形止)를 상세하게 물어서 일일이 상의한 다음 그림으로 그려서 들이라. "
"만약 이충(李沖)이 출사한 뒤에야 의논해 정한다면 날짜가 점점 늦추어질 듯하다. 5월 초순에 무고(無故)한 날을 택하여 도제조 이하가 중사(中使)와 시문용(施文用)·성지(性智) 및 여러 술관들과 회동하여 외정전(外正殿)·시사전(視事殿)·침전(寢殿)·별당(別堂)·야대청(夜對廳) 등처를 조성할 형지(形止)를 상세하게 물어서 일일이 상의한 다음 그림으로 그려서 들이라. "
전교하였다. "어전방물(御前方物) 가운데 백선(白扇)의 품질이 나빠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 지금 이후로는 미리 양남(兩南)에 복정(卜定)하여서 각별히 정교하게 만들어서 쓰라. "
"어전방물(御前方物) 가운데 백선(白扇)의 품질이 나빠서 보기에 좋지 않았다. 지금 이후로는 미리 양남(兩南)에 복정(卜定)하여서 각별히 정교하게 만들어서 쓰라. "
4월 27일 신유
개성부 경내의 북·동·중·서면 등지에 우레가 치면서 우박이 내려 곳곳에 쌓였는데, 양맥(兩麥)과 모내기를 한 벼가 모두 손상되었다. 【유수 이준(李準)이 치계하여 아뢰었다.】
공홍도 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이 배사(拜辭)하였다. 전교하기를, "공홍 감사에게 ‘내가 병에 시달리고 있음으로 면대해서 유시하지 못한다. 본도는 인심이 예로부터 좋지 않아 역변(逆變)이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지금 또 화적(火賊)이 날로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미리 방비하여 걱정거리를 해소하고 백성들을 어루만져주어 잘 인도하는 방책과 기찰하여 체포하는 계책을 십분 착실하게 하여 좋은 쪽으로 선처하라. 그리고 도망 중에 있는 역적과 죄인들을 각별히 마음을 다하여 체포하라.’고 말해 보내라." 하였다.
"공홍 감사에게 ‘내가 병에 시달리고 있음으로 면대해서 유시하지 못한다. 본도는 인심이 예로부터 좋지 않아 역변(逆變)이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지금 또 화적(火賊)이 날로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미리 방비하여 걱정거리를 해소하고 백성들을 어루만져주어 잘 인도하는 방책과 기찰하여 체포하는 계책을 십분 착실하게 하여 좋은 쪽으로 선처하라. 그리고 도망 중에 있는 역적과 죄인들을 각별히 마음을 다하여 체포하라.’고 말해 보내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궁(離宮)의 침전을 둥근 기둥으로 조성하였는가, 각진 기둥으로 조성하였는가?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침전은 창덕궁의 경춘전(景春殿)과 명광전(明光殿) 두 전의 제도에 의거하여 조성하라. 재목은 옮겨다가 쓰라. 그리고 제도의 대소(大小)는 그때 가서 도형을 그려 계품해서 정하는 일을 상세히 살펴서 거행하라. "
"이궁(離宮)의 침전을 둥근 기둥으로 조성하였는가, 각진 기둥으로 조성하였는가?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침전은 창덕궁의 경춘전(景春殿)과 명광전(明光殿) 두 전의 제도에 의거하여 조성하라. 재목은 옮겨다가 쓰라. 그리고 제도의 대소(大小)는 그때 가서 도형을 그려 계품해서 정하는 일을 상세히 살펴서 거행하라. "
전교하였다. "이궁의 터가 크지 않으니 적당한 크기의 재목을 쓰는 것이 옳다. 일찍이 사대부의 집을 조성하는 재목과 같은 크기의 재목을 베어오는 일 및 안에서 내려준 포목으로 관동(關東)의 재목을 무역하는 일에 대해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며, 심지어는 중사(中使)가 나아갈 때 안에서도 누누이 전교하였다. 그런데 도감에서는 전교를 무시하고 감히 감역관(監役官)이 내려가기 전에 먼저 공문을 보내어 재목을 베게 하였다. 완도(莞島)의 경우에는 2백 16조(條)가 모두 대목(大木)으로, 비록 끌어내리고자 하더라도 한달 안에 역사를 끝낼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며, 변산(邊山)의 경우는 3천 2백 20여 조나 되는 바, 함부로 벤 것이 이처럼 많으니, 몹시 놀랍다. 앞으로 법궁(法宮)은 형세상 조성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재목을 베어내는 중대한 일을 어찌 범연히 공문을 보내어서 이 지경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도감의 당해 제조와 도청·낭청을 모두 행공 추고(行公推考)하라. 그리고 이 서장을 급급히 의논해 처리하고, 일을 잘 아는 문낭청(文郞廳)을 내일 안으로 말을 주어 내려보내어 속히 가지고 오게 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굵은 재목은 절대로 베어내지 말고, 비록 혹 베어오더라도 반드시 문낭청을 보내어 상세히 살펴 베어 오는 일을 유념해서 착실히 거행하라. "
"이궁의 터가 크지 않으니 적당한 크기의 재목을 쓰는 것이 옳다. 일찍이 사대부의 집을 조성하는 재목과 같은 크기의 재목을 베어오는 일 및 안에서 내려준 포목으로 관동(關東)의 재목을 무역하는 일에 대해 하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며, 심지어는 중사(中使)가 나아갈 때 안에서도 누누이 전교하였다. 그런데 도감에서는 전교를 무시하고 감히 감역관(監役官)이 내려가기 전에 먼저 공문을 보내어 재목을 베게 하였다. 완도(莞島)의 경우에는 2백 16조(條)가 모두 대목(大木)으로, 비록 끌어내리고자 하더라도 한달 안에 역사를 끝낼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며, 변산(邊山)의 경우는 3천 2백 20여 조나 되는 바, 함부로 벤 것이 이처럼 많으니, 몹시 놀랍다. 앞으로 법궁(法宮)은 형세상 조성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재목을 베어내는 중대한 일을 어찌 범연히 공문을 보내어서 이 지경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도감의 당해 제조와 도청·낭청을 모두 행공 추고(行公推考)하라. 그리고 이 서장을 급급히 의논해 처리하고, 일을 잘 아는 문낭청(文郞廳)을 내일 안으로 말을 주어 내려보내어 속히 가지고 오게 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굵은 재목은 절대로 베어내지 말고, 비록 혹 베어오더라도 반드시 문낭청을 보내어 상세히 살펴 베어 오는 일을 유념해서 착실히 거행하라. "
전교하였다. "호남에 이문(移文)하여 먼저 재목을 베도록 한 것이 누가 시킨 것인가?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살펴서 아뢰게 하라."
"호남에 이문(移文)하여 먼저 재목을 베도록 한 것이 누가 시킨 것인가?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살펴서 아뢰게 하라."
전교하였다. "재목을 베는 것은 마땅히 감역관이 내려가기를 기다린 뒤에 그로 하여금 감독해서 베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감역관이 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레 굵은 재목을 베어내었는가. 속히 살펴서 아뢰라.’고 전라 감사에게 하서하라."
"재목을 베는 것은 마땅히 감역관이 내려가기를 기다린 뒤에 그로 하여금 감독해서 베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감역관이 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레 굵은 재목을 베어내었는가. 속히 살펴서 아뢰라.’고 전라 감사에게 하서하라."
전교하기를, "앞으로 법궁(法宮)을 중건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완도와 변산의 재목을 이와 같이 많이 베어 내었으니, 함부로 베어낸 제목을 선전관을 보내어 상세하게 적간해 오라." 하였다.【 【법궁은 바로 경복궁이다. 비록 들보와 기둥이 장대하기는 하였으나 칸수가 많지 않고 또 별당과 별전, 후정(後庭)의 방이 없었으므로 편안히 거처하기에 불편하였다. 이에 조종조부터 법궁에서는 대례(大禮)만 행하고 평상시에는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지금 인경궁(仁慶宮)을 짓고 계속해서 경덕궁(慶德宮)을 지었는데, 들보와 기둥은 비록 작았으나, 칸수는 법궁보다 10배는 되었고 별전이 열 채가 넘었으며, 인왕산을 휘감고 있어서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장식의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없던 바였다. 거기에 소용되는 재정은, 먼저 각도에서 부조한 쌀과 포목을 쓰고 또 중외의 군량미를 가져다가 썼다. 그러고서도 계속해서 조도사(調度使)·조도장(調度將)·조도관(調度官)·벌목관(伐木官)·매탄관(埋炭官)·취철관(吹鐵官) 등의 관원 1백여 명을 팔도에 나누어 보내어 그곳에서 긁어모아 마련하게 하였다. 혹 한두 동(同)의 포목을 한 도의 민결(民結)에다 나누어 주어, 1결에서 받는 것이 몇 촌(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을 일러 사들이는 것이라고 하면서 백배로 갚기를 요구하였다. 또 사명(使命)을 받든 사람들은 대부분 시정의 노예들을 썼는데, 거두어들인 재물은 태반을 자신이 차지하여 몇 달 사이에 큰 부자가 되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왕은 항상 말하기를 ‘내가 병이 있어서 부득이 이 역사를 하고 있으나, 모두 별도로 마련한 데서 내어 쓰는 것으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서 쓰는 것이 아니다. 조만간에 법궁을 중건할 것인데, 그 때는 민력(民力)을 써야만 하니, 중외에서는 이 점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
"앞으로 법궁(法宮)을 중건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완도와 변산의 재목을 이와 같이 많이 베어 내었으니, 함부로 베어낸 제목을 선전관을 보내어 상세하게 적간해 오라."
하였다.【 【법궁은 바로 경복궁이다. 비록 들보와 기둥이 장대하기는 하였으나 칸수가 많지 않고 또 별당과 별전, 후정(後庭)의 방이 없었으므로 편안히 거처하기에 불편하였다. 이에 조종조부터 법궁에서는 대례(大禮)만 행하고 평상시에는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지금 인경궁(仁慶宮)을 짓고 계속해서 경덕궁(慶德宮)을 지었는데, 들보와 기둥은 비록 작았으나, 칸수는 법궁보다 10배는 되었고 별전이 열 채가 넘었으며, 인왕산을 휘감고 있어서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장식의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없던 바였다. 거기에 소용되는 재정은, 먼저 각도에서 부조한 쌀과 포목을 쓰고 또 중외의 군량미를 가져다가 썼다. 그러고서도 계속해서 조도사(調度使)·조도장(調度將)·조도관(調度官)·벌목관(伐木官)·매탄관(埋炭官)·취철관(吹鐵官) 등의 관원 1백여 명을 팔도에 나누어 보내어 그곳에서 긁어모아 마련하게 하였다. 혹 한두 동(同)의 포목을 한 도의 민결(民結)에다 나누어 주어, 1결에서 받는 것이 몇 촌(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을 일러 사들이는 것이라고 하면서 백배로 갚기를 요구하였다. 또 사명(使命)을 받든 사람들은 대부분 시정의 노예들을 썼는데, 거두어들인 재물은 태반을 자신이 차지하여 몇 달 사이에 큰 부자가 되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왕은 항상 말하기를 ‘내가 병이 있어서 부득이 이 역사를 하고 있으나, 모두 별도로 마련한 데서 내어 쓰는 것으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서 쓰는 것이 아니다. 조만간에 법궁을 중건할 것인데, 그 때는 민력(民力)을 써야만 하니, 중외에서는 이 점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
【전 한성부 좌윤 곽재우(郭再祐)가 졸하였다. 【곽재우는 조식(曺植)의 사위이고 김우옹(金宇顒)·정인홍(鄭仁弘) 등과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성리학(性理學)을 알지 못하여서 진사시를 보았다가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에 즉시 학문을 버리고 가 힘써 농사지으면서 재물을 늘려 재산이 몇 만 금이나 되었다. 그러자 시골 사람들이 그가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의심하였으나, 곽재우는 태연스레 지내면서 돌아보지 않았다. 왜변(倭變)이 일어났다고 들음에 미쳐서 곽재우는 그 당시 별서(別墅)에 있었는데, 즉시 크게 통곡하고는 스스로 별서를 불태우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재물을 모두 흩어서 악소배(惡少輩) 1백여 명을 모아 왜적을 토벌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먼저 의령(宜寧)에 있는 왜적을 치고 다음으로 포위당한 진주성(晉州城)을 구원하여 여러 차례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로부터 이름이 드러나서 병사(兵使)로 발탁되었다. 기해년에 군대를 파하자 곽재우는 상소를 올려 시사(時事)에 대해 말하고 이어 병사의 직임을 버리고 떠나갔는데, 변방에 2년 동안 충군(充軍)되는 것으로 논죄(論罪)되었다. 이때부터 벼슬할 생각을 끊고 전후로 제수된 명에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상소하여 말하기를 ‘신은 왜적을 토벌하느라 관직에 제수되었는 바, 왜적이 물러갔으면 신 역시 마땅히 물러나야 합니다. 뒷날에 국가에 변란이 있을 경우 마땅히 다시 나와 사졸들의 선봉이 되겠습니다.’고 하였는데, 그 논의가 과격하여서 사람들이 정인홍과 같은 부류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계축년의 화가 일어남에 미쳐서 곽재우는 매번 윤기(倫紀)가 무너진 것에 대해 분해 하였다. 일찍이 정인홍의 도당과 말을 하다가 이야기가 7신(七臣)의 일에 미쳤는데, 그 사람이 7신을 주벌하여야 한다고 하자, 곽재우 역시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그 사람이 크게 기뻐하며 더 자세히 말해 주기를 청하자, 곽재우는 말하기를 ‘7신은 이미 선왕(先王)의 부탁을 받았으니 마땅히 의(㼁)와 함께 죽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아무말 못한 채 구차히 살고 있으니, 그 죄가 크다.’고 하니, 듣는 자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상소를 올려 영창 대군(永昌大君)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극력 진달하였으며, 또 일찍이 말하기를 ‘폐론(廢論)이 만약 행해진다면 나 역시 모종의 결단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이에 정인홍 등이 그 말을 듣고서 꺼려하였으나 그가 재간이 있다는 이름이 평소에 드러났고 현재 방외(方外)에다 몸을 의탁하고 있었으므로 감히 해치지 못하였다. 어느날 홀연히 바람과 우레가 그의 방을 감싸더니 곽재우가 그 방안에서 갑자기 죽었다. 이에 사람들이 정렬(精烈)에 감응된 것이라고 하였다.】 】
4월 28일 임술
천추사(千秋使) 윤안국(尹安國)과 서장관 안경(安璥)이 배사(拜辭)하였다. 지난해 동지사 목대흠(睦大欽)이 아뢴, 융덕전(隆德殿)과 연희궁(延喜宮)이 모두 불에 탔다고 한 데 대한 진위문서(進慰文書)를 수찬(修撰)하고 예물을 갖추어서 윤안국 등의 행차에 부쳐 보내었다.
이조가 아뢰기를, "어사를 파견하는 일로 우의정 한효순에게 의논하니, 말하기를 ‘때때로 어사를 파견하여서 수령과 변장들을 경계시켜 삼가게 하는 바탕으로 삼는 것은 바로 조종조부터 전해 내려온 고사(故事)입니다. 그러므로 대간이 아뢴 바는 실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만 일정한 규례가 없습니다. 그러니 성상께서 결단을 내려 사세를 참작하되, 시기에 구애되지 말고 혹 미리 행장을 꾸리도록 명하거나 혹 갑자기 파견하도록 명한다면, 반드시 도움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어사를 파견하는 일로 우의정 한효순에게 의논하니, 말하기를 ‘때때로 어사를 파견하여서 수령과 변장들을 경계시켜 삼가게 하는 바탕으로 삼는 것은 바로 조종조부터 전해 내려온 고사(故事)입니다. 그러므로 대간이 아뢴 바는 실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만 일정한 규례가 없습니다. 그러니 성상께서 결단을 내려 사세를 참작하되, 시기에 구애되지 말고 혹 미리 행장을 꾸리도록 명하거나 혹 갑자기 파견하도록 명한다면, 반드시 도움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곽재우에 대해 별치부(別致賻)하는 일을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본도로 하여금 장례 물품을 제급한 뒤 아뢸 일로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라. 또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는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곽재우에 대해 별치부(別致賻)하는 일을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본도로 하여금 장례 물품을 제급한 뒤 아뢸 일로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라. 또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는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주청사(奏請使)가 전후로 나갔다 올 때의 선래군관(先來軍官)들에게 모두 가자(加資)하되, 자급이 차지 않았으면 당상에 올리라. 그리고 역관들은 본 아문의 정직(正職)에 제수하고 예외적으로 잇달아 부경(赴京)하게 하라."
"주청사(奏請使)가 전후로 나갔다 올 때의 선래군관(先來軍官)들에게 모두 가자(加資)하되, 자급이 차지 않았으면 당상에 올리라. 그리고 역관들은 본 아문의 정직(正職)에 제수하고 예외적으로 잇달아 부경(赴京)하게 하라."
병조가, 북병사(北兵事) 김경서(金景瑞)의 장계로 인해 김정간(金廷幹)을 파출(罷黜)하는 일에 대해 아뢰기를, "김정간은 직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함이 이와 같은 바, 생각건대 이것은 그 자리를 맡는 것을 꺼려서 고의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전례에 따라 파직하면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꼴만 될 것이니, 방어가 긴급한 육진(六鎭)에 충군(充軍)해서 군율(軍律)을 엄숙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단지 파직만 하고 충군은 하지 말라." 하였다.
"김정간은 직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함이 이와 같은 바, 생각건대 이것은 그 자리를 맡는 것을 꺼려서 고의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전례에 따라 파직하면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꼴만 될 것이니, 방어가 긴급한 육진(六鎭)에 충군(充軍)해서 군율(軍律)을 엄숙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단지 파직만 하고 충군은 하지 말라."
하였다.
이이경(李頤慶)을 분병조 참판(分兵曹參判)으로, 박자흥(朴自興)을 형조 참판으로, 이충(李沖)을 우찬성으로, 정립(鄭岦)을 병조 참지로, 이창후(李昌後)를 동부승지로, 이홍주(李弘胄)를 전라 감사로, 정도(鄭道)를 사간으로, 황익중(黃益中)을 장령으로, 김호(金昈)를 부수찬으로, 성이민(成以敏)을 분병조 좌랑으로, 한희(韓暿)를 겸사서로, 김진(金搢)을 공홍 도사(公洪都事)로 삼았다.
4월 29일 계해
선수 도감이, 이궁(離宮)을 조성하는 데 소용되는 포목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전교한 일로 아뢰기를, "창경궁을 조성할 때 들어간 포목으로 계산해 보면 1천 1백여 동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이 이궁의 역사는 터를 닦고 돌을 뜨고 담장을 쌓는 등의 일은 창덕궁에 비하여 더욱 큽니다. 지금 만약 대간의 계사에 의거해 의논하여 결정한 대로 전결에서 포목을 거둘 경우 그 숫자가 마땅히 2천 2백여 동에 이를 것이어서, 거의 지용(支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창경궁을 지을 때 들어간 쌀과 콩은 무려 1만 6천여 석이나 되는데, 이번에 마련한 쌀과 콩은 아주 적은 숫자입니다. 만약 내려준 포목을 덜어내어 작미(作米)할 경우, 분명히 쓰기에 충분할지에 대해서는 역시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해조의 경비 외에 남아 있는 대미(大米)가 4만 석이나 되니, 1만 석을 먼저 보내고, 외방의 조공미(助工米)를 연속해서 올려온다면 쌀이 없을까는 걱정할 것이 없다. 다만 경외의 조공 목포(助工木布)를 되도록 속히 납부하도록 독촉해서 제때에 보충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다시 의논하여 잘 조처하라." 하였다.
"창경궁을 조성할 때 들어간 포목으로 계산해 보면 1천 1백여 동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이 이궁의 역사는 터를 닦고 돌을 뜨고 담장을 쌓는 등의 일은 창덕궁에 비하여 더욱 큽니다. 지금 만약 대간의 계사에 의거해 의논하여 결정한 대로 전결에서 포목을 거둘 경우 그 숫자가 마땅히 2천 2백여 동에 이를 것이어서, 거의 지용(支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창경궁을 지을 때 들어간 쌀과 콩은 무려 1만 6천여 석이나 되는데, 이번에 마련한 쌀과 콩은 아주 적은 숫자입니다. 만약 내려준 포목을 덜어내어 작미(作米)할 경우, 분명히 쓰기에 충분할지에 대해서는 역시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해조의 경비 외에 남아 있는 대미(大米)가 4만 석이나 되니, 1만 석을 먼저 보내고, 외방의 조공미(助工米)를 연속해서 올려온다면 쌀이 없을까는 걱정할 것이 없다. 다만 경외의 조공 목포(助工木布)를 되도록 속히 납부하도록 독촉해서 제때에 보충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다시 의논하여 잘 조처하라."
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법전(法殿)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이미 전례가 없으니 간원의 계사는 반드시 소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이 변례(變禮)에 관계되어 본조에서 감히 함부로 단안을 내릴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해서 시행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법전(法殿)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이미 전례가 없으니 간원의 계사는 반드시 소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이 변례(變禮)에 관계되어 본조에서 감히 함부로 단안을 내릴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해서 시행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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