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16권, 광해 9년 1617년 6월

싸라리리 2026. 1. 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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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갑오

전교하였다. "새문궁(塞門宮) 근처에 사는 조관(朝官)과 사서인(士庶人)들이 전일에 전교한 뜻을 무시하고 지레 자신들의 집을 철거하니, 듣기에 몹시 놀랍다. 속히 도감 및 한성부로 하여금 방문(榜文)을 걸어 알리게 하고, 당해 부(部)의 관원으로 하여금 각별히 개유하게 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집을 철거하고 나가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중하게 다스릴 일을 명백하게 개유하고, 이미 철거한 사람들의 이름을 속히 상세하게 서계하여 십분 엄하게 금지시켜서 가사(家舍)를 철거하지 못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영건 도감에 말하라."
"새문궁(塞門宮) 근처에 사는 조관(朝官)과 사서인(士庶人)들이 전일에 전교한 뜻을 무시하고 지레 자신들의 집을 철거하니, 듣기에 몹시 놀랍다. 속히 도감 및 한성부로 하여금 방문(榜文)을 걸어 알리게 하고, 당해 부(部)의 관원으로 하여금 각별히 개유하게 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집을 철거하고 나가는 자가 있으면 일일이 중하게 다스릴 일을 명백하게 개유하고, 이미 철거한 사람들의 이름을 속히 상세하게 서계하여 십분 엄하게 금지시켜서 가사(家舍)를 철거하지 못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영건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새문궁에서 도감의 당상들이 모여서 의논해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의논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 이 궁 근처에 사는 조관과 하인들이 점차 집을 헐고 이사하고 있다고 한다. 반드시 원망과 고통이 많을 것이니, 제조 등은 우선은 가서 보지 말고 의논해 처리할 일이 있을 경우에는 신궐에서 회의하라. 그리고 다만 감역관으로 하여금 차지 내관의 말을 듣고서 편의에 따라 수리하는 일을 살펴서 하라는 뜻으로 영건 도감에 말하라."
"새문궁에서 도감의 당상들이 모여서 의논해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의논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 이 궁 근처에 사는 조관과 하인들이 점차 집을 헐고 이사하고 있다고 한다. 반드시 원망과 고통이 많을 것이니, 제조 등은 우선은 가서 보지 말고 의논해 처리할 일이 있을 경우에는 신궐에서 회의하라. 그리고 다만 감역관으로 하여금 차지 내관의 말을 듣고서 편의에 따라 수리하는 일을 살펴서 하라는 뜻으로 영건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대내에 비록 요망스러운 변고가 있었으나 바깥으로 이어(移御)하는 것은 가벼이 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합당한 곳을 수리해서 형세를 보아 처리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없게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각 해사에서 위의 전교를 준행하지 않고 앞다투어 여염집에다가 부표(付標)하여, 사람들이 놀라 집을 헐고 앞다투어 피해 가니 몹시 놀랍다. 나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속히 영건 도감으로 하여금 각 해사에 말하여 이와 같이 해서 나의 죄를 무겁게 하지 말도록 하라. 이 뜻으로 본 도감에 말하라."
"대내에 비록 요망스러운 변고가 있었으나 바깥으로 이어(移御)하는 것은 가벼이 할 수 없기 때문에 단지 합당한 곳을 수리해서 형세를 보아 처리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없게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각 해사에서 위의 전교를 준행하지 않고 앞다투어 여염집에다가 부표(付標)하여, 사람들이 놀라 집을 헐고 앞다투어 피해 가니 몹시 놀랍다. 나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속히 영건 도감으로 하여금 각 해사에 말하여 이와 같이 해서 나의 죄를 무겁게 하지 말도록 하라. 이 뜻으로 본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제조 이충(李沖)은 영선하는 일에 있어서 그 과정을 모두 잘 알고 있으니, 맡고 있는 일을 다른 제조에게 옮겨 정하여서 대신 살피게 하지 말라고 도감에 말하라."
"제조 이충(李沖)은 영선하는 일에 있어서 그 과정을 모두 잘 알고 있으니, 맡고 있는 일을 다른 제조에게 옮겨 정하여서 대신 살피게 하지 말라고 도감에 말하라."

 

오시에 태백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6월 2일 을미

전교하였다. "신궐의 후원에 새로 들어간 집의 주인인 한순(韓淳)·이상준(李尙俊)·정승택(鄭承澤)은 가자하고, 생원 안호학(安好學), 유학(幼學) 정홍택(鄭弘澤)·한사일(韓師一)·정상해(鄭象海)·유대이(兪大儞)는 실직(實職)에 제수하되, 마땅한 빈 자리가 없을 경우에는 먼저 군직(軍職)에 부쳤다가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라."
"신궐의 후원에 새로 들어간 집의 주인인 한순(韓淳)·이상준(李尙俊)·정승택(鄭承澤)은 가자하고, 생원 안호학(安好學), 유학(幼學) 정홍택(鄭弘澤)·한사일(韓師一)·정상해(鄭象海)·유대이(兪大儞)는 실직(實職)에 제수하되, 마땅한 빈 자리가 없을 경우에는 먼저 군직(軍職)에 부쳤다가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서 제수하라."

 

최관(崔瓘)을 호조 판서로 【특지(特旨)이다.,.】 이덕형(李德泂)을 병조 참판으로, 박자흥(朴自興)을 형조 참판으로, 경섬(慶暹)을 호조 참판으로, 이호신(李好信)을 부제학으로, 이대엽(李大燁)을 대사간으로 삼았다.

 

6월 3일 병신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사직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모두 똑같습니다. 그러나 궁궐의 담장을 안쪽으로 들여 쌓을 경우에는 지세가 아주 좁아서 모양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득이 대원군의 사우(祠宇)를 옮겨 설치한 다음에야 순라길을 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신들이 대원군 댁의 형세를 살펴보니, 터가 툭 튀어나와서 사직을 굽어보고 있어 역시 온당치 않은 듯하였습니다. 동쪽편의 평지에다 사우를 옮겨 설치할 경우, 대원군의 사우를 옛집에다 옮기지 않고도 순라길을 통할 수 있으니, 편리하고도 마땅할 듯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대원군 댁은 바로 선왕(先王)의 잠저(潛邸)이다. 왕이 나신 옛집을 갑자기 철거하여 옮기는 것은 역시 온당치 못하다.’고 합니다. 신들 역시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사우를 옮겨 설치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듯하다. 만약 풍수(風水)에 무방하다면 이미 제사를 지내 고하였으니, 사직의 담장을 조금 들여 쌓는 것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하다. 이 이외에는 다시 할 만한 일이 없으니, 다시 시문용(施文用)과 성지(性智) 등에게 물어서 좋은 쪽으로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사직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모두 똑같습니다. 그러나 궁궐의 담장을 안쪽으로 들여 쌓을 경우에는 지세가 아주 좁아서 모양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득이 대원군의 사우(祠宇)를 옮겨 설치한 다음에야 순라길을 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신들이 대원군 댁의 형세를 살펴보니, 터가 툭 튀어나와서 사직을 굽어보고 있어 역시 온당치 않은 듯하였습니다. 동쪽편의 평지에다 사우를 옮겨 설치할 경우, 대원군의 사우를 옛집에다 옮기지 않고도 순라길을 통할 수 있으니, 편리하고도 마땅할 듯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대원군 댁은 바로 선왕(先王)의 잠저(潛邸)이다. 왕이 나신 옛집을 갑자기 철거하여 옮기는 것은 역시 온당치 못하다.’고 합니다. 신들 역시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사우를 옮겨 설치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듯하다. 만약 풍수(風水)에 무방하다면 이미 제사를 지내 고하였으니, 사직의 담장을 조금 들여 쌓는 것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하다. 이 이외에는 다시 할 만한 일이 없으니, 다시 시문용(施文用)과 성지(性智) 등에게 물어서 좋은 쪽으로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6월 4일 정유

예조 좌랑 유약(柳瀹)을 보내어 우윤(右尹) 곽재우(郭再祐)에게 치제(致祭)하였다.

 

6월 5일 무술

호조 판서 최관(崔瓘)이 상차하기를, "삼가 이달 2일의 정사(政事)에서 은혜를 받아 신이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심돈(沈惇) 등 세 사람과 함께 같은 날에 발탁되었는데, 저들 세 신하는 도감에서 오랫동안 수고하였는바, 은혜와 전례로 헤아려 볼 때 참으로 헛되이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욱하기가 신과 같은 자는 백에 하나도 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도 없이 상을 받고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에 있는 것은, 이것은 모두 특이한 은전으로 총애가 지나친 것입니다. 성상의 은혜가 하늘과 같이 커서 골수에 사무치나, 저 자신을 돌아봄에 걸맞지 않아서 몸둘 곳이 없는 듯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 탁지(度支)의 직임이 그 얼마나 중요한데, 신과 같은 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을 가지고 말해 보겠습니다. 신이 무신년 이래로 세 번이나 참판이 되었는데, 재용(財用)의 부족함이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달아서 무너질 형세가 되었음은 어리석은 자라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호조 판서의 직임은 비록 신중히 가려서 적임자를 앉히더라도 오히려 난국을 헤쳐나가기가 어려운 걱정이 있습니다. 더구나 신은 계려가 짧고 정신이 쇠약해졌으며, 오랫동안 변방지역에 있었던 탓에 풍기(風氣)에 손상되어 병이 전신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 비록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성상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더라도, 재주와 기량이 미치지 못하는 데야 어쩌겠습니까. 신의 몸에 견책이 미치는 것이야 돌아볼 것도 없지만, 아마도 성상의 사람을 알아보는 밝음에 누가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삼사(三司)의 관원이 갖추어져 있고 나라에는 공론이 있는 법이니, 신이 비록 굳이 사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참으로 처치할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고요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신은 실로 낭패스럽고 더욱더 황공스럽습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여서 공사간에 모두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다. 경은 실로 합당하니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다하라. 새 궁궐의 큰 역사가 현재 한창이니 다시금 요리해서 그 공사를 끝마치라." 하였다.
"삼가 이달 2일의 정사(政事)에서 은혜를 받아 신이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심돈(沈惇) 등 세 사람과 함께 같은 날에 발탁되었는데, 저들 세 신하는 도감에서 오랫동안 수고하였는바, 은혜와 전례로 헤아려 볼 때 참으로 헛되이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욱하기가 신과 같은 자는 백에 하나도 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도 없이 상을 받고 차지해서는 안될 자리에 있는 것은, 이것은 모두 특이한 은전으로 총애가 지나친 것입니다. 성상의 은혜가 하늘과 같이 커서 골수에 사무치나, 저 자신을 돌아봄에 걸맞지 않아서 몸둘 곳이 없는 듯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 탁지(度支)의 직임이 그 얼마나 중요한데, 신과 같은 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을 가지고 말해 보겠습니다.
신이 무신년 이래로 세 번이나 참판이 되었는데, 재용(財用)의 부족함이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달아서 무너질 형세가 되었음은 어리석은 자라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호조 판서의 직임은 비록 신중히 가려서 적임자를 앉히더라도 오히려 난국을 헤쳐나가기가 어려운 걱정이 있습니다. 더구나 신은 계려가 짧고 정신이 쇠약해졌으며, 오랫동안 변방지역에 있었던 탓에 풍기(風氣)에 손상되어 병이 전신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 비록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성상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더라도, 재주와 기량이 미치지 못하는 데야 어쩌겠습니까.
신의 몸에 견책이 미치는 것이야 돌아볼 것도 없지만, 아마도 성상의 사람을 알아보는 밝음에 누가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삼사(三司)의 관원이 갖추어져 있고 나라에는 공론이 있는 법이니, 신이 비록 굳이 사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참으로 처치할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고요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신은 실로 낭패스럽고 더욱더 황공스럽습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여서 공사간에 모두 편안케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다. 경은 실로 합당하니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다하라. 새 궁궐의 큰 역사가 현재 한창이니 다시금 요리해서 그 공사를 끝마치라."
하였다.

 

6월 6일 기해

상이 손가락이 아파서 오시(午時)에 야대청(夜對廳)에 나아가 침을 맞았다. 왕세자가 입시하였으며, 내의원 도제조 이하와 사관(史官) 및 의관 등이 입시하였다. 미시(未時) 초에 파하고 나갔는데, 선정문(宣政門) 안에서 선온(宣醞)하였다.

 

6월 7일 경자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사직을 설치한 것은 제도가 아주 잘 갖추어져서, 동서 남북에 각각 보수(步數)가 있어 분명하게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니 비록 한 치의 땅이라도 침범해서는 안됨이 분명합니다. 현재 외간의 물의가 모두 ‘사직의 담장을 안쪽으로 들여 쌓는 것이나 사우를 이설하는 것이 모두 온당치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그 사이에 어찌 경중이 없겠습니까.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성상의 뜻이 지당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생각해 보건대, 사직의 담장을 들여 쌓는 것이 대원군의 사우를 옮기는 것보다 훨씬 더 온당치 못합니다. 더구나 소빈댁(昭嬪宅)은 바로 대원군의 양댁(養宅)입니다. 임진년 난리 뒤에 대원군의 신주를 여러 해 동안 이곳에다 봉안(奉安)하였으며, 그 집의 동산은 넓고 툭 트였으며 높고 습기가 없어서 사우를 세우기에 아주 마땅합니다. 그리고 성지(性智) 역시 조용하고 평온하여서 옛 사우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하는 바, 대원군을 떠받드는 예에 있어서 조금도 흠이 없을 듯합니다.  성지와 시문용(施文用)은 비록 들여 쌓고자 하나, 풍수에 무방한데 어찌 이처럼 편리한 계책을 버려두고 억지로 침범해서는 안 될 지역에 들여 쌓겠습니까.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두 가지 일이 다 타당치 못한 듯하다. 널리 조정의 의견을 모아서 정하라." 하였다.
"사직을 설치한 것은 제도가 아주 잘 갖추어져서, 동서 남북에 각각 보수(步數)가 있어 분명하게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니 비록 한 치의 땅이라도 침범해서는 안됨이 분명합니다. 현재 외간의 물의가 모두 ‘사직의 담장을 안쪽으로 들여 쌓는 것이나 사우를 이설하는 것이 모두 온당치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그 사이에 어찌 경중이 없겠습니까.
지금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성상의 뜻이 지당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생각해 보건대, 사직의 담장을 들여 쌓는 것이 대원군의 사우를 옮기는 것보다 훨씬 더 온당치 못합니다. 더구나 소빈댁(昭嬪宅)은 바로 대원군의 양댁(養宅)입니다. 임진년 난리 뒤에 대원군의 신주를 여러 해 동안 이곳에다 봉안(奉安)하였으며, 그 집의 동산은 넓고 툭 트였으며 높고 습기가 없어서 사우를 세우기에 아주 마땅합니다. 그리고 성지(性智) 역시 조용하고 평온하여서 옛 사우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하는 바, 대원군을 떠받드는 예에 있어서 조금도 흠이 없을 듯합니다.
성지와 시문용(施文用)은 비록 들여 쌓고자 하나, 풍수에 무방한데 어찌 이처럼 편리한 계책을 버려두고 억지로 침범해서는 안 될 지역에 들여 쌓겠습니까.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두 가지 일이 다 타당치 못한 듯하다. 널리 조정의 의견을 모아서 정하라."
하였다.

 

6월 8일 신축

분정원(分政院)이 아뢰기를, "오늘 이른 아침에 대비전 안에서 곡소리가 들리기에 하인을 시켜서 탐문해 오게 하였더니, 상궁(尙宮)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날씨가 무더운 때를 당하여서 시신을 오래도록 대내에 둘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소동문(小東門)을 개문(開門)하라는 표신을 내어 주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오늘 이른 아침에 대비전 안에서 곡소리가 들리기에 하인을 시켜서 탐문해 오게 하였더니, 상궁(尙宮)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날씨가 무더운 때를 당하여서 시신을 오래도록 대내에 둘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소동문(小東門)을 개문(開門)하라는 표신을 내어 주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을 7월 29일에 옮겨 봉안하라고 하교하였다. 다만 추수하는 일이 한창 급하여 농민들에게 폐단이 있으니 8월 초순에 전주에서 출발시키는 것이 무방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영정(影幀)을 7월 29일에 옮겨 봉안하라고 하교하였다. 다만 추수하는 일이 한창 급하여 농민들에게 폐단이 있으니 8월 초순에 전주에서 출발시키는 것이 무방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분정원(分政院)이 아뢰기를, "오늘 사약(司鑰)의 수본(手本) 안에 ‘소동문(小東門)을 열고 닫을 때 보니 자물쇠를 만든 지 오래 되어서 삭고 부서진 곳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대궐의 문에 허술한 폐단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고치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오늘 사약(司鑰)의 수본(手本) 안에 ‘소동문(小東門)을 열고 닫을 때 보니 자물쇠를 만든 지 오래 되어서 삭고 부서진 곳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대궐의 문에 허술한 폐단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고치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6월 10일 계묘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사직의 담장을 들여 쌓는 것과 대원군의 사우를 옮겨 설치하는 것이 모두 타당치 않아 널리 조정의 의논을 모으는 일을, 내일 11일에 대궐 아래에 모두 모여서 의논을 올려야 합니다. 다만 반드시 형세를 살펴본 다음에야 의논을 드릴 수 있는데, 의논해야 할 신하들 가운데 형세를 직접 보지 못한 자가 많습니다. 그러니 도감에 모두 모여서 살펴본 다음에 의논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사직의 담장을 들여 쌓는 것과 대원군의 사우를 옮겨 설치하는 것이 모두 타당치 않아 널리 조정의 의논을 모으는 일을, 내일 11일에 대궐 아래에 모두 모여서 의논을 올려야 합니다. 다만 반드시 형세를 살펴본 다음에야 의논을 드릴 수 있는데, 의논해야 할 신하들 가운데 형세를 직접 보지 못한 자가 많습니다. 그러니 도감에 모두 모여서 살펴본 다음에 의논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영변(寧邊)은 관서 지방의 거진(巨鎭)으로, 심지어 병사로 하여금 목사를 겸하게 하고 또 문관 판관(文官判官)을 두어 보좌하게 하고 있으니,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사 성우길(成佑吉)은 당초에 관아에 나가던 날에 공청(公廳)에 앉아 있지 않고 곧장 사아(私衙)로 가 앉아 있으면서 판관으로 하여금 지영(龐迎)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판관 민성징(閔聖徵)이 사아는 예연(禮宴)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상하가 서로 용납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와서 공사간에 구애되는 점이 많습니다. 무지한 무부(武夫)야 참으로 책할 것도 못 되지만, 민성징은 아랫 관원으로서 자신의 견해만 고집하고 관사(官事)를 전폐하였는바, 그 교만하여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폐단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성우길은 추고하고 민성징은 파직하소서. 그리고 그 대임자로는 일찍이 대간이나 시종을 지낸 자로 각별하게 뽑아서 보내소서.  의흥 현감(義興縣監) 이유청(李幼淸)은 사람됨이 어리석은 데다가 탐오스럽기까지 하여 몇 가구 안되는 잔약한 고을이 날로 쇠락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루도 관직에 있게 할 수가 없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영변(寧邊)은 관서 지방의 거진(巨鎭)으로, 심지어 병사로 하여금 목사를 겸하게 하고 또 문관 판관(文官判官)을 두어 보좌하게 하고 있으니,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사 성우길(成佑吉)은 당초에 관아에 나가던 날에 공청(公廳)에 앉아 있지 않고 곧장 사아(私衙)로 가 앉아 있으면서 판관으로 하여금 지영(龐迎)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판관 민성징(閔聖徵)이 사아는 예연(禮宴)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상하가 서로 용납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와서 공사간에 구애되는 점이 많습니다. 무지한 무부(武夫)야 참으로 책할 것도 못 되지만, 민성징은 아랫 관원으로서 자신의 견해만 고집하고 관사(官事)를 전폐하였는바, 그 교만하여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폐단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성우길은 추고하고 민성징은 파직하소서. 그리고 그 대임자로는 일찍이 대간이나 시종을 지낸 자로 각별하게 뽑아서 보내소서.
의흥 현감(義興縣監) 이유청(李幼淸)은 사람됨이 어리석은 데다가 탐오스럽기까지 하여 몇 가구 안되는 잔약한 고을이 날로 쇠락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루도 관직에 있게 할 수가 없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6월 11일 갑진

【새 궁궐을 새문동(塞門洞)에다 건립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였다. 【성지(性智)가 이미 인왕산 아래에다 신궐을 짓게 하고, 술인(術人) 김일룡(金馹龍)이 또 이궁(離宮)을 새문동에다 건립하기를 청하였는데, 바로 정원군(定遠君)의 옛집이다. 왕이 그곳에 왕기(王氣)가 있음을 듣고 드디어 그 집을 빼앗아 관가로 들였는데, 김일룡이 왕의 뜻에 영합하여 이 의논이 있게 된 것이다. 인왕산의 터는 두 구역이 있는데, 하나는 사직 담장의 동쪽에 있고 또 하나는 인왕동(仁王洞)에 있는 바, 바로 소세양(蘇世讓)의 청심당(淸心堂) 터이다. 성의 담장은 양쪽이 함께 하였으나 전우(殿宇)는 서로 달라서 실로 두 개의 대궐이었는데, 새문동에 또 하나의 대궐을 지어서 셋째 대궐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한꺼번에 공사를 시작하여서 제조와 낭청이 수백 명이나 되었으며, 헐어버린 민가가 수천 채나 되었다. 여러 신하들이 먼저 한 궁궐을 지어 이어(移御)한 뒤에 차례차례 공사를 일으키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들지 않았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모두들 성지를 허물하여 그의 살점을 먹고자 하였다. 그러자 성지가 노하여 조사(朝士)들에게 말하기를 "이 한 중놈의 모가지는 조만간에 짤려서 도랑에 내던져 질 것이다. 다만 나는 인왕산의 새 터만 정하였을 뿐으로, 지금 세 대궐의 역사를 한꺼번에 일으키는 것은 본래 나의 뜻이 아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어찌하여 한 마디 간언이라도 올려 중지시키지는 않고 한갓 나만 탓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듣는 자들이 이말을 듣고는 부끄러워하였다.】 】

 

6월 12일 을사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각도의 감사와 병사·수사·수령들의 조공 미포(助工米布) 중 이미 올라온 숫자를 별단(別單)으로 서계하게 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외방의 조공목(助工木)이 아주 거칠다고 하니, 각별히 추고하라. 그리고 올라오지 않은 조공목은 일일이 표시를 해서 올려보내라고 상세히 하유하라." 하였다.
"각도의 감사와 병사·수사·수령들의 조공 미포(助工米布) 중 이미 올라온 숫자를 별단(別單)으로 서계하게 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외방의 조공목(助工木)이 아주 거칠다고 하니, 각별히 추고하라. 그리고 올라오지 않은 조공목은 일일이 표시를 해서 올려보내라고 상세히 하유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새문궁의 궁호(宮號)를 서계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 궁은 여경방(餘慶坊)에 있으니 경녕궁(慶寧宮)으로 부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다만 이어하기 이전에는 범범히 서별궁(西別宮)으로 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비망기로 새문궁의 궁호(宮號)를 서계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 궁은 여경방(餘慶坊)에 있으니 경녕궁(慶寧宮)으로 부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다만 이어하기 이전에는 범범히 서별궁(西別宮)으로 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기를, "이충(李沖)이 마련한 목면 5백 동과 쌀 1만 석은 이미 도감으로 보내었다. 이 외에 남아 있는 목면 3백 동과 쌀 3만 석 역시 경비(經費) 이외에 별도로 마련한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속히 납부하도록 독촉해서 영건 도감으로 보내게 하라." 하였다. 【이충이 스스로 원하여 호조 판서가 되어서 궁궐을 영건하면서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이면서 숫자와 명목을 거짓으로 불려서 위로는 임금을 속이고 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탄에 빠지게 하였다. 예전에 이른바 ‘백성들에게 마구 거두어들이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것이 더 낫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충(李沖)이 마련한 목면 5백 동과 쌀 1만 석은 이미 도감으로 보내었다. 이 외에 남아 있는 목면 3백 동과 쌀 3만 석 역시 경비(經費) 이외에 별도로 마련한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속히 납부하도록 독촉해서 영건 도감으로 보내게 하라."
하였다. 【이충이 스스로 원하여 호조 판서가 되어서 궁궐을 영건하면서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이면서 숫자와 명목을 거짓으로 불려서 위로는 임금을 속이고 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탄에 빠지게 하였다. 예전에 이른바 ‘백성들에게 마구 거두어들이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것이 더 낫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6월 13일 병오

전교하였다. "정전의 바깥 담장을 들여 쌓아서 순라길을 만들면 지세가 아주 좁은가?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하게 살펴서 아뢰게 하라."
"정전의 바깥 담장을 들여 쌓아서 순라길을 만들면 지세가 아주 좁은가?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하게 살펴서 아뢰게 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배를 만드는 한 가지 일은 몹시 긴요하고도 급합니다. 그러니 황해도 조도사(黃海道調度使)와 해운 판관(海運判官)으로 하여금 황연도·공홍도·전라도의 대들보나 기둥으로 쓰기에 적당치 못한 차재목(次材木) 및 말단목(末端木) 중에 조금 큰 것을 끌어모아서 배를 만들게 하되, 각도마다 7, 8척이 넘지 않도록 하여 급급히 만들게 하소서. 그리고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인과 물품 및 공임으로 지급할 자본은 본사에서 마련하여 지급하는 것이 마땅하며, 혹 여러 도에서 본조에 응당 납부해야 할 물품을 옮겨서 차하(上下)해 주면 일은 성사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는 비단 쌀을 운반하는 데 쓸 뿐만 아니라 또한 재목을 운반하는 데도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7월 그믐 안으로 다 만들 수 있도록 감사와 병사·수사로 하여금 여러 가지 물품들을 미리 조처하게 하소서. 그리고 황연도에서 만든 배는 차사원(差使員)이 압송해 와 8월 초순 전에 경강(京江)에 정박시키게 하고, 양호(兩湖)에서 만든 배는 해운 판관이 담당하여 쌀을 운반하게 하소서. 격군(格軍)은 혹 하번(下番)인 조군(漕軍)으로 충정하여서 수송해 와야만 할 각종의 미곡을 9월 보름 전까지 남김없이 경강까지 다 운송해 오게 하소서. 이상의 내용으로 황연도의 조도사·관찰사·병사 및 양호의 관찰사·병사·수사·해운 판관에게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배를 만드는 한 가지 일은 몹시 긴요하고도 급합니다. 그러니 황해도 조도사(黃海道調度使)와 해운 판관(海運判官)으로 하여금 황연도·공홍도·전라도의 대들보나 기둥으로 쓰기에 적당치 못한 차재목(次材木) 및 말단목(末端木) 중에 조금 큰 것을 끌어모아서 배를 만들게 하되, 각도마다 7, 8척이 넘지 않도록 하여 급급히 만들게 하소서. 그리고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인과 물품 및 공임으로 지급할 자본은 본사에서 마련하여 지급하는 것이 마땅하며, 혹 여러 도에서 본조에 응당 납부해야 할 물품을 옮겨서 차하(上下)해 주면 일은 성사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는 비단 쌀을 운반하는 데 쓸 뿐만 아니라 또한 재목을 운반하는 데도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7월 그믐 안으로 다 만들 수 있도록 감사와 병사·수사로 하여금 여러 가지 물품들을 미리 조처하게 하소서. 그리고 황연도에서 만든 배는 차사원(差使員)이 압송해 와 8월 초순 전에 경강(京江)에 정박시키게 하고, 양호(兩湖)에서 만든 배는 해운 판관이 담당하여 쌀을 운반하게 하소서. 격군(格軍)은 혹 하번(下番)인 조군(漕軍)으로 충정하여서 수송해 와야만 할 각종의 미곡을 9월 보름 전까지 남김없이 경강까지 다 운송해 오게 하소서. 이상의 내용으로 황연도의 조도사·관찰사·병사 및 양호의 관찰사·병사·수사·해운 판관에게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6월 14일 정미

사간원이 아뢰기를,  재령 군수(載寧郡守) 권익중(權益中)은 사람됨이 교만하고 망령스러우며, 도처에서 탐학을 자행하였습니다. 이에 본군의 수령이 되어서는 오로지 백성들에게서 긁어들여 자신을 살찌우기만을 능사로 삼아, 백성들이 명을 감내하지 못하여서 서로 잇달아서 유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지난번에는 공조가 공장이들을 추쇄(推刷)하는 일로 낭관을 파견하였는데, 길가는 사람 보듯 하여 접대도 하지 않았으며, 응당 시행해야 할 사목을 전혀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삿일을 앞세우고 공적인 일을 얕본 죄를 징계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재령 군수(載寧郡守) 권익중(權益中)은 사람됨이 교만하고 망령스러우며, 도처에서 탐학을 자행하였습니다. 이에 본군의 수령이 되어서는 오로지 백성들에게서 긁어들여 자신을 살찌우기만을 능사로 삼아, 백성들이 명을 감내하지 못하여서 서로 잇달아서 유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지난번에는 공조가 공장이들을 추쇄(推刷)하는 일로 낭관을 파견하였는데, 길가는 사람 보듯 하여 접대도 하지 않았으며, 응당 시행해야 할 사목을 전혀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삿일을 앞세우고 공적인 일을 얕본 죄를 징계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시문용이 논의가 합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소하여 물러가게 해 줄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이때에 물러가기를 청해서는 안된다. 공사하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을 다해 상세히 살펴서 하라." 하였다.
"이때에 물러가기를 청해서는 안된다. 공사하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을 다해 상세히 살펴서 하라."
하였다.

 

6월 15일 무신

전교하였다. "이번의 이 신궐의 담장 안으로 들어간 집의 주인들 가운데 가자할 자와 6품에 천전(遷轉)시킬 자, 직책에 제수할 자 및 추증하고 녹용(錄用)할 자 등의 유와 허통시킬 서얼과 면역시킬 공사천(公私賤) 등의 유를 상세히 뽑아내어 일일이 서계하여 속히 시상하라. "
"이번의 이 신궐의 담장 안으로 들어간 집의 주인들 가운데 가자할 자와 6품에 천전(遷轉)시킬 자, 직책에 제수할 자 및 추증하고 녹용(錄用)할 자 등의 유와 허통시킬 서얼과 면역시킬 공사천(公私賤) 등의 유를 상세히 뽑아내어 일일이 서계하여 속히 시상하라. "

 

의금부 당상 이경함·유몽인·윤수민이 아뢰기를, "본부의 죄인 임춘일(林春一)이 지난밤에 벽을 뚫고 도망쳤으니, 몹시 놀랍습니다. 신들이 왕부(王府)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옥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십분 잘 검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변고가 있게 되었으니, 직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죄를 면키 어렵습니다. 이에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서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본부의 죄인 임춘일(林春一)이 지난밤에 벽을 뚫고 도망쳤으니, 몹시 놀랍습니다. 신들이 왕부(王府)에서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옥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십분 잘 검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변고가 있게 되었으니, 직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죄를 면키 어렵습니다. 이에 황공함을 금치 못하여서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지난밤에 금부에 숙직하였던 도사(都士)와 서리(書吏)·간직(間直)을 모두 잡아다가 추고하라."
"지난밤에 금부에 숙직하였던 도사(都士)와 서리(書吏)·간직(間直)을 모두 잡아다가 추고하라."

 

6월 16일 기유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로 ‘신궐에 들어간 집의 집주인들 가운데 이미 상을 받은 자는 제외하고 모두 속히 뽑아내어 서계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대궐 안 및 후원에 포함된 집터가, 그 숫자가 거의 2백여 채나 됩니다. 그런데 당초에 서계할 때 그 주인이 외방에 있거나 서울에 있으면서 제때에 나타나지 않은 자는 도감에서 상고할 길이 없어서 단지 고로들이 가리켜주는 데 따라서 그 집의 주인들의 성명을 기록하여 서계하였습니다. 요즈음 조정에서 논상(論賞)하는 일이 있자 이 기별을 듣고서는 집주인들이 다투어 와서 정장(呈狀)하는데, 혹 ‘우리 집터인데 잘못되어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되었다.’고 하거나, 혹 ‘내가 이미 사들인 집터인데 잘못되어 예전 주인의 이름이 올려졌다.’고 하면서 바꾸어 기록해 주기를 청하는 자가 몹시 많습니다. 그리고 전날에 서계할 때 미처 서계하지 못한 자들도 역시 많이 와서 하소연하고 있으며, 도감에서도 그들이 정소한 것을 그대로 다 믿을 수가 없어서, 각각의 문서를 가져다가 조사해 볼 즈음에 저절로 지체되어서 제때에 일일이 서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지금 우선 조사해 보아서 분명한 자만을 먼저 별단(別單)으로 서계하고, 그 나머지 미처 조사해 보지 못한 자는 조사를 끝마치기를 기다려서 마땅히 서계하겠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말세의 인심이 좋지 못해서 갖가지로 간사한 술수를 부리고 있으니, 그 사이에 은상(恩賞)을 노리고서 문기(文記)를 위조하여, 남몰래 다른 사람의 집터를 차지한 다음 자신의 소유로 해 놓은 자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뒷날 발각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법사(法司)로 하여금 먼저 속임수를 쓴 죄를 다스려서 그가 받은 상격(賞格)을 환수하게 한 뒤에야 분분하게 속이는 폐단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망기로 ‘신궐에 들어간 집의 집주인들 가운데 이미 상을 받은 자는 제외하고 모두 속히 뽑아내어 서계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대궐 안 및 후원에 포함된 집터가, 그 숫자가 거의 2백여 채나 됩니다. 그런데 당초에 서계할 때 그 주인이 외방에 있거나 서울에 있으면서 제때에 나타나지 않은 자는 도감에서 상고할 길이 없어서 단지 고로들이 가리켜주는 데 따라서 그 집의 주인들의 성명을 기록하여 서계하였습니다. 요즈음 조정에서 논상(論賞)하는 일이 있자 이 기별을 듣고서는 집주인들이 다투어 와서 정장(呈狀)하는데, 혹 ‘우리 집터인데 잘못되어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되었다.’고 하거나, 혹 ‘내가 이미 사들인 집터인데 잘못되어 예전 주인의 이름이 올려졌다.’고 하면서 바꾸어 기록해 주기를 청하는 자가 몹시 많습니다. 그리고 전날에 서계할 때 미처 서계하지 못한 자들도 역시 많이 와서 하소연하고 있으며, 도감에서도 그들이 정소한 것을 그대로 다 믿을 수가 없어서, 각각의 문서를 가져다가 조사해 볼 즈음에 저절로 지체되어서 제때에 일일이 서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지금 우선 조사해 보아서 분명한 자만을 먼저 별단(別單)으로 서계하고, 그 나머지 미처 조사해 보지 못한 자는 조사를 끝마치기를 기다려서 마땅히 서계하겠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말세의 인심이 좋지 못해서 갖가지로 간사한 술수를 부리고 있으니, 그 사이에 은상(恩賞)을 노리고서 문기(文記)를 위조하여, 남몰래 다른 사람의 집터를 차지한 다음 자신의 소유로 해 놓은 자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뒷날 발각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법사(法司)로 하여금 먼저 속임수를 쓴 죄를 다스려서 그가 받은 상격(賞格)을 환수하게 한 뒤에야 분분하게 속이는 폐단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금부 도사 민진원(閔震遠)·임뢰지(任賚之), 서리(書吏) 김경(金敬), 간직 나장(間直羅將) 계남(繼男), 수직 군사(守直軍士) 박영춘(朴永春), 장외 순라 군관(墻外巡邏軍官) 김대용(金大用)·김영희(金永希)를 잡아가두었다.

 

전교하였다. "성우길(成祐吉)·변익성(邊翼星)·권익중(權益中) 등의 일에 대해 아뢴 대로 하라고 당초에 논계한 대간들에게 말해주라. 그리고 그 나머지 논박을 받은 수령들은 다시 본도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성우길(成祐吉)·변익성(邊翼星)·권익중(權益中) 등의 일에 대해 아뢴 대로 하라고 당초에 논계한 대간들에게 말해주라. 그리고 그 나머지 논박을 받은 수령들은 다시 본도로 하여금 사실을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6월 17일 경술

전교하였다. "신궐을 이미 시문용 등의 말로 인하여 영건하였으니 좌향(坐向)을 정함에 있어서 어찌 그의 말을 버려두고서 다른 술관의 말을 따라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은 타당치 않은 듯하다. 전에 판하(判下)한 ‘시문용 등이 말한 데 따라서 속히 정하여 조성하라.’는 뜻으로 영건 도감에 말하라."
"신궐을 이미 시문용 등의 말로 인하여 영건하였으니 좌향(坐向)을 정함에 있어서 어찌 그의 말을 버려두고서 다른 술관의 말을 따라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은 타당치 않은 듯하다. 전에 판하(判下)한 ‘시문용 등이 말한 데 따라서 속히 정하여 조성하라.’는 뜻으로 영건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태묘(太廟)에 천신(薦新)하는 절물(節物)을 번번이 여염에서 산출되어 흔해진 다음에 비로소 봉진하니, 일이 몹시 온당치 못하다. 지금 이후로는 십분 신칙해서 즉시 봉진하도록 하는 일을 해조에서 살펴서 하라."
"태묘(太廟)에 천신(薦新)하는 절물(節物)을 번번이 여염에서 산출되어 흔해진 다음에 비로소 봉진하니, 일이 몹시 온당치 못하다. 지금 이후로는 십분 신칙해서 즉시 봉진하도록 하는 일을 해조에서 살펴서 하라."

 

권진(權耒)을 함경 감사로, 남명우(南溟羽)·한급(韓昅)을 봉교로, 이경익(李慶益)·오익환(吳益煥)을 대교로, 이점(李蒧)을 검열로, 한희(韓暿)를 부수찬으로, 정세구(鄭世矩)를 병조 좌랑으로, 정산뢰(鄭山雷)를 안주 목사(安州牧使)로 삼았다.

 

6월 18일 신해

검상(檢詳)이 영상의 뜻으로 아뢰기를, "겨울과 여름 양 도목 정사는 6월 20일 안에 하는 것이 이제까지 전해져온 규례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국가에 일이 많아서 혹 몇 달 뒤로 물려서 시행하고 있는바, 사체로 헤아려볼 때 온당치 못한 듯합니다. 해조로 하여금 이달 안으로 시행하게 해서 군직(軍職)들로 하여금 과내(科內)에 녹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또 외방에 내려가 있는 군읍(郡邑)의 인마(人馬)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서 양식이 떨어져 고생하는 폐단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겨울과 여름 양 도목 정사는 6월 20일 안에 하는 것이 이제까지 전해져온 규례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국가에 일이 많아서 혹 몇 달 뒤로 물려서 시행하고 있는바, 사체로 헤아려볼 때 온당치 못한 듯합니다. 해조로 하여금 이달 안으로 시행하게 해서 군직(軍職)들로 하여금 과내(科內)에 녹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또 외방에 내려가 있는 군읍(郡邑)의 인마(人馬)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서 양식이 떨어져 고생하는 폐단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상인(喪人) 김자점(金自點)이 그의 아비의 분묘가 다른 사람에게 파헤쳐지자 상소하여 원통하다고 하소연하였다.

 

6월 19일 임자

전교하였다. "요즈음 들어서 도감의 역사가 자못 느슨하고 해이해졌다. 지금부터는 십분 부지런히 출사해서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라고 영건 도감에 말하라."
"요즈음 들어서 도감의 역사가 자못 느슨하고 해이해졌다. 지금부터는 십분 부지런히 출사해서 감독하여 속히 공사를 끝내라고 영건 도감에 말하라."

 

사간원이 아뢰기를, "과거(科擧)의 설치는 지극히 공정하여야 하는 법입니다. 향시(鄕試)의 시관(試官)을 으레 도사로 하게 하고 있는데, 도사가 혹 본도의 사람이어서 도내의 거자(擧子)들이 모두 얼굴을 알아 사정을 따르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이에 선비들이 얕잡아 보아 매번 소란을 떨어 혹 과거장에 들어갔다가 난장판을 만들기도 하고, 방목(榜目)을 내걸었다가 방목을 삭제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탓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전라도·경상도·공홍도 세 도의 도사는 모두 본도의 사람이니 고관(考官)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증광시(曾廣試)의 시관은 경관(京官) 중에서 급급히 차임하여 보내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과거(科擧)의 설치는 지극히 공정하여야 하는 법입니다. 향시(鄕試)의 시관(試官)을 으레 도사로 하게 하고 있는데, 도사가 혹 본도의 사람이어서 도내의 거자(擧子)들이 모두 얼굴을 알아 사정을 따르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이에 선비들이 얕잡아 보아 매번 소란을 떨어 혹 과거장에 들어갔다가 난장판을 만들기도 하고, 방목(榜目)을 내걸었다가 방목을 삭제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탓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전라도·경상도·공홍도 세 도의 도사는 모두 본도의 사람이니 고관(考官)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증광시(曾廣試)의 시관은 경관(京官) 중에서 급급히 차임하여 보내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6월 20일 계축

예조의 계목에, "임진 왜란 이후에 향시(鄕試)를 정폐한 지 이미 20여 년이나 되어 일이 몹시 구차스럽습니다. 그러니 유생들이 매번 상소하여서 도로 설치하기를 청하는 것은 이치와 형세상 당연한 것입니다. 올봄 초에 다시 설치하라고 판하(判下)한 공사가 있어서 본도에 이문(移文)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때가 임박해서 고칠 수 없으며, 또 잘못된 규례를 그대로 따라서 외방 선비들의 원망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열읍(列邑)이 비록 피폐되기는 하였으나 이미 관가(官家)의 모양을 갖춘 곳이 자못 많으니, 어찌 과거장을 베풀 곳이 없겠습니까. 전의 수교(受敎)에 의거해서 시행하라고 행이하였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임진 왜란 이후에 향시(鄕試)를 정폐한 지 이미 20여 년이나 되어 일이 몹시 구차스럽습니다. 그러니 유생들이 매번 상소하여서 도로 설치하기를 청하는 것은 이치와 형세상 당연한 것입니다. 올봄 초에 다시 설치하라고 판하(判下)한 공사가 있어서 본도에 이문(移文)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때가 임박해서 고칠 수 없으며, 또 잘못된 규례를 그대로 따라서 외방 선비들의 원망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열읍(列邑)이 비록 피폐되기는 하였으나 이미 관가(官家)의 모양을 갖춘 곳이 자못 많으니, 어찌 과거장을 베풀 곳이 없겠습니까. 전의 수교(受敎)에 의거해서 시행하라고 행이하였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사과(司果) 허직(許稷)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김자점(金自點)의 무망(誣罔)한 상소에 대해서 김자점과 함께 형관(刑官) 앞에 나아가서 대면하여 허실을 따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6월 21일 갑인

부평 부사(富平府使) 허임(許任)이 사조(辭朝)하였다. 대개 상이 침을 맞은 뒤에, 임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허임은 악공(樂工) 허억복(許億福)의 아들이다. 침술이 뛰어나 임금의 총애를 받아서 2품의 관직에 뛰어올랐다.】
【허임은 악공(樂工) 허억복(許億福)의 아들이다. 침술이 뛰어나 임금의 총애를 받아서 2품의 관직에 뛰어올랐다.】
【허임은 악공(樂工) 허억복(許億福)의 아들이다. 침술이 뛰어나 임금의 총애를 받아서 2품의 관직에 뛰어올랐다.】

 

요동의 유격장 구탄(丘坦)이 중강개시(中江開市)에 관한 일로 재차 자문(咨文)을 보내왔다. 구탄이 인삼과 부채 등의 물품을 요구하였는데, 상이 후하게 싸서 보내었다. 구탄은 부채만 받고 인삼은 사양하였다.

 

대마도주(對馬島主)와 조흥(調興) 등이 재차 배 한 척과 왜인 9명을 보내어서 회답사(回答使)의 행지(行止)를 탐문하였다. 통제사 정기룡(鄭起龍)이 장계를 올려서 아뢰었다.

 

송화 현감(松禾縣監) 김위(金緯)가 일찍이 동복 현감(同福縣監)으로 있을 때 군기와 군량을 많이 마련하였는데, 이 때문에 가자(加資)하라는 유지(有旨)가 있었는바, 그 노고에 대해 상을 준 것이다. 희천 군수(熙川郡守) 양응락(梁應洛), 정주 목사(定州牧使) 김수현(金壽賢)에게 가자하여 통정 대부로 삼았는데, 선치(善治)에 대해 포상한 것이다.

 

영건 도감이 도감에 1개월 치로 내려준 쌀과 포목의 숫자를 서계하니, 전교하기를, "이미 쓴 쌀과 포목이 지나치게 많은 듯하다. 도감의 낭청으로 하여금 십분 상세히 살펴서 하게 하라. 그리고 결포(結布)를 어떻게 3년간이나 해야 하는 큰 역사에 계속해서 쓸 수 있겠는가. 쌀과 포목을 조처하여 마련하는 일을 다시금 편리한 방도를 찾아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이미 쓴 쌀과 포목이 지나치게 많은 듯하다. 도감의 낭청으로 하여금 십분 상세히 살펴서 하게 하라. 그리고 결포(結布)를 어떻게 3년간이나 해야 하는 큰 역사에 계속해서 쓸 수 있겠는가. 쌀과 포목을 조처하여 마련하는 일을 다시금 편리한 방도를 찾아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30리 바깥에서 돌을 뜰 경우 시급한 역사를 결단코 완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영조할 때 이미 창의문(彰義門) 밖의 돌을 떠다가 썼으며, 신궐로부터 건방(乾方)이 되니 더욱더 무방하다. 그러니 이제 창의문 밖에서 돌을 떠다가 쓰라. 그리고 우이동(牛耳洞)의 돌을 떠올 것은 전각을 조성할 대석(大石)인데, 봉교(鳳橋)가 석교(石橋)이니 이에서 골라 쓰되, 이러한 돌들은 지금 별도로 감역관(監役官)을 정하고 수레를 나누어 보내어, 적당히 헤아려서 뜬 다음 실어들이라. 그리고 전각을 짓는 데 쓰는 돌이외에도 써야 할 돌이 반드시 많을 것이니, 이것은 창의문 밖의 돌을 그대로 떠다가 실어와서 쓰라."
"30리 바깥에서 돌을 뜰 경우 시급한 역사를 결단코 완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영조할 때 이미 창의문(彰義門) 밖의 돌을 떠다가 썼으며, 신궐로부터 건방(乾方)이 되니 더욱더 무방하다. 그러니 이제 창의문 밖에서 돌을 떠다가 쓰라. 그리고 우이동(牛耳洞)의 돌을 떠올 것은 전각을 조성할 대석(大石)인데, 봉교(鳳橋)가 석교(石橋)이니 이에서 골라 쓰되, 이러한 돌들은 지금 별도로 감역관(監役官)을 정하고 수레를 나누어 보내어, 적당히 헤아려서 뜬 다음 실어들이라. 그리고 전각을 짓는 데 쓰는 돌이외에도 써야 할 돌이 반드시 많을 것이니, 이것은 창의문 밖의 돌을 그대로 떠다가 실어와서 쓰라."

 

전교하였다. "【양 침전(寢殿)은】 대조전(大造殿)의 제도에 의거하여 조성하되, 그 사이에 고쳐야 할 곳이 있을 경우, 차지내관(次知內官)의 말을 듣고서 상세히 요리해서 각별히 잘 짓도록 하라. 이 두 전(殿)은 위에서 가서 지세를 살펴본 뒤에 기둥을 세워야 한다. 두 전(殿)은 대소와 광협(廣狹)을 똑같게 조성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그러니 다시금 시문용 등에게 물어서 상세히 의논하여 잘 지으라."
"【양 침전(寢殿)은】 대조전(大造殿)의 제도에 의거하여 조성하되, 그 사이에 고쳐야 할 곳이 있을 경우, 차지내관(次知內官)의 말을 듣고서 상세히 요리해서 각별히 잘 짓도록 하라. 이 두 전(殿)은 위에서 가서 지세를 살펴본 뒤에 기둥을 세워야 한다. 두 전(殿)은 대소와 광협(廣狹)을 똑같게 조성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그러니 다시금 시문용 등에게 물어서 상세히 의논하여 잘 지으라."

 

전교하였다. "인왕산 아래의 좌우 및 병풍암에서 소세양 집의 후원에까지 바깥 담장을 즉시 견고하고 높게 쌓으라."
"인왕산 아래의 좌우 및 병풍암에서 소세양 집의 후원에까지 바깥 담장을 즉시 견고하고 높게 쌓으라."

 

전교하였다. "담장을 쌓는 역사를 다시금 더 감독해서 8, 9월 안으로 공사를 마치게 하라."
"담장을 쌓는 역사를 다시금 더 감독해서 8, 9월 안으로 공사를 마치게 하라."

 

6월 22일 을묘

전라·공홍도 조도사 이정험(李廷馦)이 치계하기를, "신이 봄부터 여름까지 양호(兩湖) 지방을 순시하였는데, 각 고을에서 마치 원수보듯이 하여, 도처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며, 호령을 내릴 때마다 번번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부안 현감(扶安縣監) 이산배(李山培)만은 관가에서 편의에 따라 마련한 백미(白米) 1백 석을 가지고 조도(調度)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태어 쓰게 하였습니다. 그 정성이 가상하니, 논상(論賞)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다.
"신이 봄부터 여름까지 양호(兩湖) 지방을 순시하였는데, 각 고을에서 마치 원수보듯이 하여, 도처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며, 호령을 내릴 때마다 번번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부안 현감(扶安縣監) 이산배(李山培)만은 관가에서 편의에 따라 마련한 백미(白米) 1백 석을 가지고 조도(調度)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태어 쓰게 하였습니다. 그 정성이 가상하니, 논상(論賞)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다.

 

국가에서 으레 시장(試場)의 낙폭지(落幅紙)로 납의(衲衣)를 만들어서 북쪽 변방의 수졸(戍卒)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때에 이르러 비변사가 아뢰기를, "북쪽 변방에 들여보내는 낙폭지는 으레 본사에서 시관(試官)에게 알려 그로 하여금 남김없이 모아서 실어보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2, 3백 장으로 책임만 때우고 있으니 몹시 온당치 않습니다. 감시(監試) 초시(初試)의 낙폭지를 경외의 시관들이 혹 자기가 차지하거나 남에게 주는데, 이는 탐장(貪贓)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시험장에 들어왔던 사람의 숫자대로 입계해서 사사로이 쓰지 못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북쪽 변방에 들여보내는 낙폭지는 으레 본사에서 시관(試官)에게 알려 그로 하여금 남김없이 모아서 실어보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2, 3백 장으로 책임만 때우고 있으니 몹시 온당치 않습니다. 감시(監試) 초시(初試)의 낙폭지를 경외의 시관들이 혹 자기가 차지하거나 남에게 주는데, 이는 탐장(貪贓)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시험장에 들어왔던 사람의 숫자대로 입계해서 사사로이 쓰지 못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지제교 정홍익(鄭弘翼)이 정주 목사(定州牧使) 김수현(金壽賢)에게 주는 교서(敎書)를 지어 올렸는데, 전교하기를, "임금의 말은 으레 사륙문으로 간략하게 짓는 법이다. 이 교서를 그로 하여금 다시 짓게 하라." 하였다.  【정홍익의 글 중에 휘(諱)를 범한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전교한 것이다. 이때에 지제교가 황덕부(黃德符) 등과 같은 경우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데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리하여 매번 명을 받으면 어두운 밤에 여기저기 나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제술하였다.】
"임금의 말은 으레 사륙문으로 간략하게 짓는 법이다. 이 교서를 그로 하여금 다시 짓게 하라."
하였다.
【정홍익의 글 중에 휘(諱)를 범한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전교한 것이다. 이때에 지제교가 황덕부(黃德符) 등과 같은 경우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데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리하여 매번 명을 받으면 어두운 밤에 여기저기 나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제술하였다.】
【정홍익의 글 중에 휘(諱)를 범한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전교한 것이다. 이때에 지제교가 황덕부(黃德符) 등과 같은 경우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데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리하여 매번 명을 받으면 어두운 밤에 여기저기 나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제술하였다.】

 

6월 23일 병진

집의 김질간, 장령 곽천호·강린, 지평 이창정·최호가 아뢰기를, "지난번에 박문근(朴文謹)이 금부에 함부로 들어가고 임춘일(林春一)이 벽을 뚫고 도망쳤는데, 금부 당상이 즉시 자신의 죄를 말하면서 대죄하였으며, 박문근·임뢰지(任賚之)·민진원(閔震元) 등이 모두 잡아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별로 논할 만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논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판의금부사 박승종의 함답(緘答)의 말을 보니, 거기에 ‘대간은 당상과 낭청을 탄핵하여 기강을 진작시켰어야 했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어찌 그리도 적막하여 아무 말이 없었는가.’라고 하여 갖가지 말로 드러나게 기롱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신들의 직책을 파직시키라고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지난번에 박문근(朴文謹)이 금부에 함부로 들어가고 임춘일(林春一)이 벽을 뚫고 도망쳤는데, 금부 당상이 즉시 자신의 죄를 말하면서 대죄하였으며, 박문근·임뢰지(任賚之)·민진원(閔震元) 등이 모두 잡아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별로 논할 만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논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판의금부사 박승종의 함답(緘答)의 말을 보니, 거기에 ‘대간은 당상과 낭청을 탄핵하여 기강을 진작시켰어야 했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어찌 그리도 적막하여 아무 말이 없었는가.’라고 하여 갖가지 말로 드러나게 기롱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신들의 직책을 파직시키라고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영평군(鈴平君) 윤중삼(尹重三)이 상소하기를, "삼가 신이 영건 도감의 제조로 차임된 뒤부터 항상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어왔으며, 한갓 감격스런 마음만 절실하여서 근력을 다하여 만분의 일이나마 은혜에 보답하기를 생각해 왔습니다. 다만 신이 돌 뜨는 것을 나누어 맡은 것이 역사를 시작한 뒤에 있었는데, 당초의 곡절은 신이 실로 모르겠으나, 오늘날의 사세를 가지고 말을 한다면, 술(戌)과 해(亥)를 꺼리는 것은 다른 범범히 논하는 풍수(風水)에 비할 바가 아닌 것으로, 공역의 어렵고 쉬움과 도로의 멀고 가까움은 족히 말할 것도 못 됩니다. 상께서는 비록 가까운 곳에서 떠다가 쓰고자 하지만, 신의 분의(分義)로는 참으로 성상의 분부대로 따를 수가 없으며, 창덕궁을 지을 때의 일도 전례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신이 실로 무슨 마음으로 편안하게 명을 받고서, 역사를 해야 할 곳이 아닌 곳에서 태연스레 공사를 감독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속히 장소를 동도(東道)로 옮겨서 막중한 역사에 미진한 뜻이 없게 하고, 일을 담당한 신하 역시 낭패스런 걱정을 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모두 알았다. 다만 시문용(施文用) 등이 모두 무방하다고 하니, 서도(西道)에서 돌을 뜨는 것을 그대로 하여도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는가. 안심하고서 역사를 감독해서 속히 완공시키라." 하였다.【【세 대궐의 역사를 맡아서 하려고 하는 자가 적었는데, 윤중삼은 매번 팔뚝을 걷어붙이고 탄식하기를 ‘이것이 누가 들어가 살 집인데 이와 같이 구차하고 간략하게 조성하는가.’ 하였다. 그러면서 공사를 감독하는 중관(中官)과 뜻을 굽혀 맞추었는데, 왕이 듣고 좋게 여겼다. 윤중삼은 처음에는 임연(任兗)에게 달라붙어서 청현직에 올랐고, 뒤에는 유씨(柳氏)와 혼사를 맺은 다음   삼창(三昌)040) 과 교유하면서 재물을 약탈하고 재산을 불려 집이 몹시 부유하였다.】 】


[註 040] 삼창(三昌) :  광해군 때 정권을 잡고 권세를 부리던 광창 부원군(廣昌府院君) 이이첨(李爾瞻), 밀창 부원군(密昌府院君) 박승종(朴承宗), 문창 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 등 세 사람을 가리킴. 이들의 봉호(封號)에 모두 창(昌)자가 들어있으므로 삼창(三昌)이라고 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21 광해조상신(光海朝相臣),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5년 3월 12일조.
"삼가 신이 영건 도감의 제조로 차임된 뒤부터 항상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어왔으며, 한갓 감격스런 마음만 절실하여서 근력을 다하여 만분의 일이나마 은혜에 보답하기를 생각해 왔습니다. 다만 신이 돌 뜨는 것을 나누어 맡은 것이 역사를 시작한 뒤에 있었는데, 당초의 곡절은 신이 실로 모르겠으나, 오늘날의 사세를 가지고 말을 한다면, 술(戌)과 해(亥)를 꺼리는 것은 다른 범범히 논하는 풍수(風水)에 비할 바가 아닌 것으로, 공역의 어렵고 쉬움과 도로의 멀고 가까움은 족히 말할 것도 못 됩니다. 상께서는 비록 가까운 곳에서 떠다가 쓰고자 하지만, 신의 분의(分義)로는 참으로 성상의 분부대로 따를 수가 없으며, 창덕궁을 지을 때의 일도 전례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신이 실로 무슨 마음으로 편안하게 명을 받고서, 역사를 해야 할 곳이 아닌 곳에서 태연스레 공사를 감독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속히 장소를 동도(東道)로 옮겨서 막중한 역사에 미진한 뜻이 없게 하고, 일을 담당한 신하 역시 낭패스런 걱정을 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모두 알았다. 다만 시문용(施文用) 등이 모두 무방하다고 하니, 서도(西道)에서 돌을 뜨는 것을 그대로 하여도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는가. 안심하고서 역사를 감독해서 속히 완공시키라."
하였다.【【세 대궐의 역사를 맡아서 하려고 하는 자가 적었는데, 윤중삼은 매번 팔뚝을 걷어붙이고 탄식하기를 ‘이것이 누가 들어가 살 집인데 이와 같이 구차하고 간략하게 조성하는가.’ 하였다. 그러면서 공사를 감독하는 중관(中官)과 뜻을 굽혀 맞추었는데, 왕이 듣고 좋게 여겼다. 윤중삼은 처음에는 임연(任兗)에게 달라붙어서 청현직에 올랐고, 뒤에는 유씨(柳氏)와 혼사를 맺은 다음   삼창(三昌)040) 과 교유하면서 재물을 약탈하고 재산을 불려 집이 몹시 부유하였다.】 】


[註 040] 삼창(三昌) :  광해군 때 정권을 잡고 권세를 부리던 광창 부원군(廣昌府院君) 이이첨(李爾瞻), 밀창 부원군(密昌府院君) 박승종(朴承宗), 문창 부원군(文昌府院君) 유희분(柳希奮) 등 세 사람을 가리킴. 이들의 봉호(封號)에 모두 창(昌)자가 들어있으므로 삼창(三昌)이라고 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21 광해조상신(光海朝相臣),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5년 3월 12일조.

 

6월 24일 정사

전라 좌수사 이흥립(李興立)이 상기생(桑寄生)041)  을 올렸는데, 내의원 제조 등이 입계하여 포상하기를 청하였다. 상이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고, 인하여 비망기를 내리기를, "이흥립이 내국(內局)에 상기생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듣고서 상기생 2근을 구하여 올려보내었는데, 그 품질이 아주 좋다. 그러니 즉시 내의원 관원 손몽상(孫夢象)을 파견하여 그로 하여금 적간하게 하라. 순천(順天) 방답진(防踏鎭) 파태도(陂太島)에 뽕나무 네 그루가 있는데 겨우살이가 모든 가지에 빽빽이 나서 무성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본진(本鎭)의 예교(曳橋) 등처에 진에 소속된 차경답(借耕畓)으로 3, 4석을 씨부릴 만한 곳이 있는데, 전란 뒤에 사복시의 둔전(屯田)으로 옮겨 소속되었다. 이 논을 도로 본진에 소속시키고 수직인(守直人)에게 옮겨 준 다음 잡역을 면제해 주어 그로 하여금 전적으로 수직하게 하라. 이흥립은 가자하고 손몽상은 동반(東班)에 서용하라." 하였다.  【상기생은 일개 풀에 불과하며, 임금을 위하여 약재를 구하는 것 역시 신하의 분수 안의 일이다. 이흥립이 채집하여 진상한 것은 필시 상을 노리고서 한 것이며, 내의원에서 포상하기를 아뢴 것 역시 그의 욕심을 맞추어 준 것이다. 심지어 동반의 직책이 아래로 천한 자에게 미치게 하다니, 될 말인가.】


[註 041] 상기생(桑寄生) : 뽕나무 겨우살이를 말함.
"이흥립이 내국(內局)에 상기생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듣고서 상기생 2근을 구하여 올려보내었는데, 그 품질이 아주 좋다. 그러니 즉시 내의원 관원 손몽상(孫夢象)을 파견하여 그로 하여금 적간하게 하라. 순천(順天) 방답진(防踏鎭) 파태도(陂太島)에 뽕나무 네 그루가 있는데 겨우살이가 모든 가지에 빽빽이 나서 무성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본진(本鎭)의 예교(曳橋) 등처에 진에 소속된 차경답(借耕畓)으로 3, 4석을 씨부릴 만한 곳이 있는데, 전란 뒤에 사복시의 둔전(屯田)으로 옮겨 소속되었다. 이 논을 도로 본진에 소속시키고 수직인(守直人)에게 옮겨 준 다음 잡역을 면제해 주어 그로 하여금 전적으로 수직하게 하라. 이흥립은 가자하고 손몽상은 동반(東班)에 서용하라."
하였다.
【상기생은 일개 풀에 불과하며, 임금을 위하여 약재를 구하는 것 역시 신하의 분수 안의 일이다. 이흥립이 채집하여 진상한 것은 필시 상을 노리고서 한 것이며, 내의원에서 포상하기를 아뢴 것 역시 그의 욕심을 맞추어 준 것이다. 심지어 동반의 직책이 아래로 천한 자에게 미치게 하다니, 될 말인가.】


[註 041] 상기생(桑寄生) : 뽕나무 겨우살이를 말함.
【상기생은 일개 풀에 불과하며, 임금을 위하여 약재를 구하는 것 역시 신하의 분수 안의 일이다. 이흥립이 채집하여 진상한 것은 필시 상을 노리고서 한 것이며, 내의원에서 포상하기를 아뢴 것 역시 그의 욕심을 맞추어 준 것이다. 심지어 동반의 직책이 아래로 천한 자에게 미치게 하다니, 될 말인가.】

 

백령 첨사(白翎僉使) 김기명(金基命)이 나라에서 벌채를 금지하고 있는 상기생(桑寄生)이 난 뽕나무를 모두 베어서 판자를 만들어 사사로이 썼다. 그런데도 조정에서 죄주지 않자 공론이 모두 분하게 여겼다.

 

관복 주청사(冠服奏請使) 이정귀(李廷龜)·유간(柳澗), 서장관 장자호(張自好) 등이 ‘관복을 하사받아서 이달 12일에 북경을 출발하여 25일에 요동에 당도할 것이다.’고 치계하여 왔는데, 전교하기를, "황상의 은혜가 바다와 같아 관복을 또 내려 주시었다. 감동이 유명(幽明)에 맺히어 한갓 눈물만 흘릴 뿐이다. 사은사를 속히 가려뽑아 차임하였다가 관복을 받는 즉시 출발시키라." 하였다.
"황상의 은혜가 바다와 같아 관복을 또 내려 주시었다. 감동이 유명(幽明)에 맺히어 한갓 눈물만 흘릴 뿐이다. 사은사를 속히 가려뽑아 차임하였다가 관복을 받는 즉시 출발시키라."
하였다.

 

비변사가, 육진(六鎭)에다가 문관(文官) 한 명을 차임해 보내어서 그로 하여금 성상의 덕음을 선포하고 열진(列鎭)의 무반(武班)을 억눌러서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를 청하니, 전교하기를, "문신과 무신 가운데서 합당한 사람을 더 천거하라." 하였다.
"문신과 무신 가운데서 합당한 사람을 더 천거하라."
하였다.

 

대사헌 유경종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판의금부사 박승종의 추고 함답(推考緘答)을 보니, 그 뜻이 대간이 박문근과 임춘일의 일에 대해 즉시 논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부의 당상이 이미 이 일로 인해 스스로 탄핵하고서 대죄하였고, 심지어 박문근과 그 당시의 낭청이 모두 잡혀와서 추고당하고 있으니, 별로 논계할 만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다시 그 문제를 제기해서 소요를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의 소견은 실로 여기에서 나온 것인데, 도리어 갖가지로 기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의 직을 체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이 어제 판의금부사 박승종의 추고 함답(推考緘答)을 보니, 그 뜻이 대간이 박문근과 임춘일의 일에 대해 즉시 논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부의 당상이 이미 이 일로 인해 스스로 탄핵하고서 대죄하였고, 심지어 박문근과 그 당시의 낭청이 모두 잡혀와서 추고당하고 있으니, 별로 논계할 만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다시 그 문제를 제기해서 소요를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의 소견은 실로 여기에서 나온 것인데, 도리어 갖가지로 기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의 직을 체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6월 25일 무오

청양현(靑陽縣)에 사는 한 백성이 그의 아들과 함께 들판에서 김을 매다가 부자가 모두 벼락을 맞아 죽었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당주홍(唐朱紅) 6백 근의 값을 헤아려보니 60동이나 되어 무역해 오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의 주홍(朱紅)으로 칠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그리고 침전(寢殿)을 어찌 반드시 모두 주홍으로 칠할 필요가 있겠는가. 단지 바깥의 두 전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아뢰니, 단지 조하(朝賀)받는 정전(正殿)의 기둥과 문을 칠할 당주홍만 무역해 올 경우 그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지를 다시금 숫자를 헤아려서 아뢰라. 그리고 바깥 세 전의 월랑(月廊)과 문, 벽 및 대내의 전당(殿堂)과 누각을 모두 우리 나라의 주홍으로 칠하는 일을 상세히 살펴 마련해서 미리 준비하였다가 상납하게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삼가 영건 도감에서 3개월 동안에 쓴 것을 살펴보니, 들어간 쌀이 6천 8백 30여 석이고 포목이 6백 10여 동이었으며, 당주홍 6백 근의 값은 포목 60동이었고 정철(正鐵)이 10만 근에 이르렀으며, 각종의 다른 물품도 이와 비슷하였다. 그런데 이를 모두 쌀과 포목으로 충당하여서 한 전각을 영조하는 데 들어가는 것이 적어도 1천여 동을 밑돌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른바 도감의 낭청이라고 하는 자들부터 아래로 장인(匠人)들에 이르기까지 그럭저럭 날짜나 보내면서 한갓 늠료(廩料)만 허비하고 있다. 이에 쌀과 포목은 한계가 있는데 공역은 끝날 기약이 없어서 백성들의 골수까지 다 뽑아 내었으므로 자식들을 내다 팔았으며, 떠도는 자가 줄을 이었고 굶어죽은 시체가 들판에 그득하였다. 심한 경우에는 왕왕 목매어 죽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저 도감에 있는 자들은 너무도 어려워서 계속할 수 없다는 뜻으로 와서 고하지는 않고, 매번 백성들에게 긁어모아서 크고 사치스럽게 하기만을 일삼고 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당주홍(唐朱紅) 6백 근의 값을 헤아려보니 60동이나 되어 무역해 오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의 주홍(朱紅)으로 칠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그리고 침전(寢殿)을 어찌 반드시 모두 주홍으로 칠할 필요가 있겠는가. 단지 바깥의 두 전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아뢰니, 단지 조하(朝賀)받는 정전(正殿)의 기둥과 문을 칠할 당주홍만 무역해 올 경우 그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지를 다시금 숫자를 헤아려서 아뢰라. 그리고 바깥 세 전의 월랑(月廊)과 문, 벽 및 대내의 전당(殿堂)과 누각을 모두 우리 나라의 주홍으로 칠하는 일을 상세히 살펴 마련해서 미리 준비하였다가 상납하게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삼가 영건 도감에서 3개월 동안에 쓴 것을 살펴보니, 들어간 쌀이 6천 8백 30여 석이고 포목이 6백 10여 동이었으며, 당주홍 6백 근의 값은 포목 60동이었고 정철(正鐵)이 10만 근에 이르렀으며, 각종의 다른 물품도 이와 비슷하였다. 그런데 이를 모두 쌀과 포목으로 충당하여서 한 전각을 영조하는 데 들어가는 것이 적어도 1천여 동을 밑돌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른바 도감의 낭청이라고 하는 자들부터 아래로 장인(匠人)들에 이르기까지 그럭저럭 날짜나 보내면서 한갓 늠료(廩料)만 허비하고 있다. 이에 쌀과 포목은 한계가 있는데 공역은 끝날 기약이 없어서 백성들의 골수까지 다 뽑아 내었으므로 자식들을 내다 팔았으며, 떠도는 자가 줄을 이었고 굶어죽은 시체가 들판에 그득하였다. 심한 경우에는 왕왕 목매어 죽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저 도감에 있는 자들은 너무도 어려워서 계속할 수 없다는 뜻으로 와서 고하지는 않고, 매번 백성들에게 긁어모아서 크고 사치스럽게 하기만을 일삼고 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사신은 논한다. 삼가 영건 도감에서 3개월 동안에 쓴 것을 살펴보니, 들어간 쌀이 6천 8백 30여 석이고 포목이 6백 10여 동이었으며, 당주홍 6백 근의 값은 포목 60동이었고 정철(正鐵)이 10만 근에 이르렀으며, 각종의 다른 물품도 이와 비슷하였다. 그런데 이를 모두 쌀과 포목으로 충당하여서 한 전각을 영조하는 데 들어가는 것이 적어도 1천여 동을 밑돌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른바 도감의 낭청이라고 하는 자들부터 아래로 장인(匠人)들에 이르기까지 그럭저럭 날짜나 보내면서 한갓 늠료(廩料)만 허비하고 있다. 이에 쌀과 포목은 한계가 있는데 공역은 끝날 기약이 없어서 백성들의 골수까지 다 뽑아 내었으므로 자식들을 내다 팔았으며, 떠도는 자가 줄을 이었고 굶어죽은 시체가 들판에 그득하였다. 심한 경우에는 왕왕 목매어 죽는 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저 도감에 있는 자들은 너무도 어려워서 계속할 수 없다는 뜻으로 와서 고하지는 않고, 매번 백성들에게 긁어모아서 크고 사치스럽게 하기만을 일삼고 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전교하였다. "이번에 관복(冠服)을 하사받은 것은 실로 막대한 경사이다. 응당 행하여야 할 예전(禮典)을 일일이 상세히 살펴서 속히 아뢰라. 그리고 오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 대례(大禮)가 겹쳐 있다. 그런데 예모관(禮貌官)들이 착용하는 조복(朝服)이 몹시 누추하고 혹 패옥(佩玉)을 갖추지 못하여서 보기에 형편없다. 도감으로 하여금 약간씩을 다시 마련해서 지급해주게 하라."
"이번에 관복(冠服)을 하사받은 것은 실로 막대한 경사이다. 응당 행하여야 할 예전(禮典)을 일일이 상세히 살펴서 속히 아뢰라. 그리고 오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 대례(大禮)가 겹쳐 있다. 그런데 예모관(禮貌官)들이 착용하는 조복(朝服)이 몹시 누추하고 혹 패옥(佩玉)을 갖추지 못하여서 보기에 형편없다. 도감으로 하여금 약간씩을 다시 마련해서 지급해주게 하라."

 

사간원이 아뢰기를, "분병조(分兵曹)가 입직(入直)하는 것을 꺼려서 사체를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좌랑 윤성임(尹聖任)에 대하여 본직에 제수된 지 6일이 채 못 되었는데도 올라올 기약이 없다는 이유로 지레 체차시키기를 청하였고, 정랑 이정(李涎)에 대해서는 경시관(京試官)으로서 배사(拜辭)하던 날 갑자기 개차(改差)하기를 청하여서 그로 하여금 제대로 출발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분병조의 당상은 추고하고 색낭청은 파직시키소서. 또 전라 도사 임기(林)는 사람됨이 어리석고 비루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분병조(分兵曹)가 입직(入直)하는 것을 꺼려서 사체를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좌랑 윤성임(尹聖任)에 대하여 본직에 제수된 지 6일이 채 못 되었는데도 올라올 기약이 없다는 이유로 지레 체차시키기를 청하였고, 정랑 이정(李涎)에 대해서는 경시관(京試官)으로서 배사(拜辭)하던 날 갑자기 개차(改差)하기를 청하여서 그로 하여금 제대로 출발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분병조의 당상은 추고하고 색낭청은 파직시키소서. 또 전라 도사 임기(林)는 사람됨이 어리석고 비루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6월 26일 기미

병조가 입계해서, 나이 어리고 약한 군사를 제외하고 송태조(宋太祖)의 고사에 의거하여 여러 도의 정예롭고 용맹한 자를 뽑아서 위(衛)에 소속시켜 금려(禁旅)를 장엄하게 하기를 청하니, 전교하기를, "두 대궐을 짓는 곳에 숙직하는 군사에 대해서는 반드시 할 만한 계책이 많이 있을 것이다. 방법을 강구해서 처리하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비망기를 내리기를 "상번하는 군사 가운데 나이가 겨우 10세 밖에 안 된 자가 있으니 몹시 놀랍다."고 하였으므로 병조에서 이렇게 계청한 것이고, 이에 대해 또 이렇게 명을 내린 것이다.
"두 대궐을 짓는 곳에 숙직하는 군사에 대해서는 반드시 할 만한 계책이 많이 있을 것이다. 방법을 강구해서 처리하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비망기를 내리기를 "상번하는 군사 가운데 나이가 겨우 10세 밖에 안 된 자가 있으니 몹시 놀랍다."고 하였으므로 병조에서 이렇게 계청한 것이고, 이에 대해 또 이렇게 명을 내린 것이다.

 

전교하였다. "서별궁 안으로 들어가게 된 민가 역시 일일이 살펴서 서계하여 논상(論賞)하는 일을 도감에서 착실히 거행하게 하라."
"서별궁 안으로 들어가게 된 민가 역시 일일이 살펴서 서계하여 논상(論賞)하는 일을 도감에서 착실히 거행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이번에 관복(冠服)을 하사받은 것은 실로 성스런 천자의 망극한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간절히 요청한 지 몇년이 되었는데 지금 준허하는 은전을 받았는바 황상의 은혜가 지극하여서 감격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지극한 소원이 이루어졌는바 경사스러움이 실로 비길 데 없다. 고묘(告廟)하는 등의 예전(禮典)을 일체 추숭(追崇)할 때의 전례에 의거해서 살펴 거행하여 크게 경하하는 뜻을 펴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이번에 관복(冠服)을 하사받은 것은 실로 성스런 천자의 망극한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간절히 요청한 지 몇년이 되었는데 지금 준허하는 은전을 받았는바 황상의 은혜가 지극하여서 감격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지극한 소원이 이루어졌는바 경사스러움이 실로 비길 데 없다. 고묘(告廟)하는 등의 예전(禮典)을 일체 추숭(追崇)할 때의 전례에 의거해서 살펴 거행하여 크게 경하하는 뜻을 펴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회답사는 병오년의 전례에 의거해서 겸쇄환사(兼刷還使)로 칭호를 바꾸는 것으로 부표(付票)를 고쳐서 속히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당시에 왜추(倭酋) 가강(家康)이 아들인 가광(家光)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가광이 미약했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백성들을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또 우리 나라의 사신을 오게 해서 그가 세력을 굳힌 뜻을 밝히려 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의 계책에 빠져들어 마치 가광을 후원하는 것처럼 하고 말았다. 대개 불구대천의 원수에 대한 복수심을 풀어버린지 이미 오래 되었는 바, 지금에야 비롯된 것이 아니다.】
"회답사는 병오년의 전례에 의거해서 겸쇄환사(兼刷還使)로 칭호를 바꾸는 것으로 부표(付票)를 고쳐서 속히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당시에 왜추(倭酋) 가강(家康)이 아들인 가광(家光)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가광이 미약했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백성들을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또 우리 나라의 사신을 오게 해서 그가 세력을 굳힌 뜻을 밝히려 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의 계책에 빠져들어 마치 가광을 후원하는 것처럼 하고 말았다. 대개 불구대천의 원수에 대한 복수심을 풀어버린지 이미 오래 되었는 바, 지금에야 비롯된 것이 아니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각 시전(市梠)의 백성들이 연명하여 본사에 정장(呈狀)하기를 ‘근래에 경비가 부족하여서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시전에다가 내도록 책임지우고 있다. 그리고 또 동·납·철 등을 1만여 근이나 시장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누어 주고서 그 대가(代價)를 억지로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에 시장의 남녀들이 모두들 현재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하고 있다. 그런데 해조에서는 또 평시서(平市署)로 감시(監試)의 응판관(應辦官)을 삼았다. 바라건대 전례에 의거해서 공물(貢物)을 받아들이는 아문(衙門)으로 응판관을 고쳐 정하여서 백성들의 바람을 위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각 시전(市梠)의 백성들이 연명하여 본사에 정장(呈狀)하기를 ‘근래에 경비가 부족하여서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시전에다가 내도록 책임지우고 있다. 그리고 또 동·납·철 등을 1만여 근이나 시장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누어 주고서 그 대가(代價)를 억지로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에 시장의 남녀들이 모두들 현재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하고 있다. 그런데 해조에서는 또 평시서(平市署)로 감시(監試)의 응판관(應辦官)을 삼았다. 바라건대 전례에 의거해서 공물(貢物)을 받아들이는 아문(衙門)으로 응판관을 고쳐 정하여서 백성들의 바람을 위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6월 27일 경신

상이 평안 감사로 하여금 민성징(閔聖徵)과 신성(申晟) 등에 대해서 조사하여 치계하라고 하였다. 이보다 앞서 평안 병사 성우길(成祐吉)이 판관으로 있는 민성징과 잘 지내지 못하였는데, 성우길이 민성징을 파직시키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신성은 용천(龍川)의 수령으로 있었는데, 탐학스럽게 재물을 긁어들여서 짐바리가 길에 줄을 이었으므로 대간으로부터 중하게 탄핵을 받았다. 이에 이런 명이 있었던 것이다.  【성우길은 억센 무부이며 민성징은 청렴한 관리이니, 형세상 참으로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의 탐학스러움에 대해서는 눈과 귀가 있는 자들이 모두들 알고 있다. 그런데 다시금 무슨 조사할 만한 일이 있겠는가.】
【성우길은 억센 무부이며 민성징은 청렴한 관리이니, 형세상 참으로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의 탐학스러움에 대해서는 눈과 귀가 있는 자들이 모두들 알고 있다. 그런데 다시금 무슨 조사할 만한 일이 있겠는가.】
【성우길은 억센 무부이며 민성징은 청렴한 관리이니, 형세상 참으로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의 탐학스러움에 대해서는 눈과 귀가 있는 자들이 모두들 알고 있다. 그런데 다시금 무슨 조사할 만한 일이 있겠는가.】

 

예조가 장악원(掌樂院)에 생원진사시 초시(初試)의 시장(試場)을 설치하려 하였는데, 장악원의 관원이 ‘침향산(沈香山) 및 장식물로 늘어놓는 여러 가지 집기와 처용무(處容舞)에 들어가는 여러 기구 및 기생(妓生)들이 쓰는 여러 가지 물품을 보관해 둘 곳이 없다.’는 이유로 시장을 베풀게 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 이에 대해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일찍이 성상의 분부로 인하여 청기와 30눌(訥)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안에서 내려준 염초(焰硝) 2백 근을 쓰는 외에, 부족한 숫자는 무역해 오면 자연 이를 옮겨 써서 구워낼 수가 있습니다. 다만 이외에 또 때때로 계속해서 구워내고자 하면 미리 마련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성상의 분부대로 도감에 있는 은(銀)을 동지사(冬至使)편에 보내어서 그로 하여금 사오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청기와를 구워내는 데 필요해서 무역해 오는 물품은 넉넉하게 사오게 하라." 하였다.
"일찍이 성상의 분부로 인하여 청기와 30눌(訥)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안에서 내려준 염초(焰硝) 2백 근을 쓰는 외에, 부족한 숫자는 무역해 오면 자연 이를 옮겨 써서 구워낼 수가 있습니다. 다만 이외에 또 때때로 계속해서 구워내고자 하면 미리 마련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성상의 분부대로 도감에 있는 은(銀)을 동지사(冬至使)편에 보내어서 그로 하여금 사오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청기와를 구워내는 데 필요해서 무역해 오는 물품은 넉넉하게 사오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서별궁(西別宮)을 수리하고 조성하는 것이 일각이 급한데 만약 별도로 도감을 설치한다면 폐단이 많아서 일을 쉽게 성사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본 도감의 제조와 낭청이 급급히 나아가서 속히 공사를 시작하라."
"서별궁(西別宮)을 수리하고 조성하는 것이 일각이 급한데 만약 별도로 도감을 설치한다면 폐단이 많아서 일을 쉽게 성사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본 도감의 제조와 낭청이 급급히 나아가서 속히 공사를 시작하라."

 

전교하였다. "이번의 이 서별궁의 역사는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은 하고 싶은 역사가 아니다. 다만 철거하는 민가의 주인들에게 각별히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조용히 옮겨가도록 하고 소요를 일으켜 나의 부덕을 더하지 말게 하라. 그리고 재목과 기와의 값을 일일이 분명하게 계산해서 속히 제급해 주라."
"이번의 이 서별궁의 역사는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은 하고 싶은 역사가 아니다. 다만 철거하는 민가의 주인들에게 각별히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조용히 옮겨가도록 하고 소요를 일으켜 나의 부덕을 더하지 말게 하라. 그리고 재목과 기와의 값을 일일이 분명하게 계산해서 속히 제급해 주라."

 

전교하였다. "병조에 보관해 둔 봉부동(封不動)042)  의 가포(價布)는 뜻밖의 군자금으로 쓰기 위하여 마련해 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에 시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 어찌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태복시(太僕寺)에도 미포(米布)가 많다고 한다. 병조의 가포 수백 동과 태복시의 쌀 수백 석을 서별궁에 나누어 실어보내어서 수리하고 조성하는 데 보태어 쓰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註 042] 봉부동(封不動) : 국가의 중대한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은이나 포목 등을 별도로 저장하여 봉해 두고 쓰지 않는 것. 비상시기 이외에는 절대로 쓰지 않았음.
"병조에 보관해 둔 봉부동(封不動)042)  의 가포(價布)는 뜻밖의 군자금으로 쓰기 위하여 마련해 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에 시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 어찌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태복시(太僕寺)에도 미포(米布)가 많다고 한다. 병조의 가포 수백 동과 태복시의 쌀 수백 석을 서별궁에 나누어 실어보내어서 수리하고 조성하는 데 보태어 쓰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삼궁(三宮)의 가사(家舍) 및 공터의 값을 해조로 하여금 시가를 기준으로 해 헤아려 보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궁와가(宮瓦家) 한 칸의 값이 포목 4필이고, 사와가(私瓦家) 한 칸의 값이 포목 2필 반이며, 빈터 10칸의 값이 포목 2필 반이고, 동산(東山) 50칸의 값이 포목 2필인 것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일체 시가에 준해서 값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국가가 불행하여서 나의 부덕으로 말미암아 대내(大內)에 유고가 있는 탓에 장차 두 궁전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러니 원망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왔으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또 어찌 가물(價物)을 줄여 주어서 나의 부덕을 더할 수가 있겠는가. 이번에 마련한 숫자가 지나치게 적으니 백성들의 원망이 더욱 많을 것이다. 다시금 참작해서 마련하여 아뢰라." 하였다.
"삼궁(三宮)의 가사(家舍) 및 공터의 값을 해조로 하여금 시가를 기준으로 해 헤아려 보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궁와가(宮瓦家) 한 칸의 값이 포목 4필이고, 사와가(私瓦家) 한 칸의 값이 포목 2필 반이며, 빈터 10칸의 값이 포목 2필 반이고, 동산(東山) 50칸의 값이 포목 2필인 것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일체 시가에 준해서 값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국가가 불행하여서 나의 부덕으로 말미암아 대내(大內)에 유고가 있는 탓에 장차 두 궁전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러니 원망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왔으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또 어찌 가물(價物)을 줄여 주어서 나의 부덕을 더할 수가 있겠는가. 이번에 마련한 숫자가 지나치게 적으니 백성들의 원망이 더욱 많을 것이다. 다시금 참작해서 마련하여 아뢰라."
하였다.

 

대사간 이대엽(李大燁), 사간 정도(鄭道), 헌납 한옥(韓玉), 정언 황덕부(黃德符)·채승선(蔡承先)이 아뢰기를, "과거의 설치는 지극히 공정하고도 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국가의 기강 이 해이해지고 선비들의 습속이 아름답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매번 문에 들어가서 녹명(錄名)하고, 피봉(皮封)을 쓰기를 요구하며, 다른 사람에게 대신 써주기를 청하여서 사사로움을 행해 급제할 계책을 꾸미는데, 그 폐단이 장차 구제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녹명하는 것은 사목(事目)에 의거해서 기일 전에 다 녹명하게 하고 문에 들어간 뒤 녹명하는 것은 일체 허락하지 마소서. 그리고 피봉에 대해서는 ‘근봉(謹封)’이라고 쓰지 말고 단지 사관(四館)의 도장만 셋째 피봉에다가 찍게 하소서. 또 대신 쓰는 것에 대해서는, 각사(各司)의 글씨에 능한 하리(下吏)를 기일에 앞서 법부(法府)에서 성책(成冊)하고 시험 날짜에 일일이 점고해서 궐도(闕到)가 있을 경우에는 ‘남입(濫入)’으로 논죄하여 율에 의거하여 죄를 주어 폐습을 바루게 하소서. 신들은 언관의 직책에 있으니 마땅히 조목조목 진달해서 해조로 하여금 착실하게 거행하게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기일 전에 잇달아 국기(國忌)가 있어서 미처 논계하지 못하여서 물의가 시끄럽게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말하지 못한 잘못을 면키 어려운 바,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과거의 설치는 지극히 공정하고도 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국가의 기강 이 해이해지고 선비들의 습속이 아름답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매번 문에 들어가서 녹명(錄名)하고, 피봉(皮封)을 쓰기를 요구하며, 다른 사람에게 대신 써주기를 청하여서 사사로움을 행해 급제할 계책을 꾸미는데, 그 폐단이 장차 구제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녹명하는 것은 사목(事目)에 의거해서 기일 전에 다 녹명하게 하고 문에 들어간 뒤 녹명하는 것은 일체 허락하지 마소서. 그리고 피봉에 대해서는 ‘근봉(謹封)’이라고 쓰지 말고 단지 사관(四館)의 도장만 셋째 피봉에다가 찍게 하소서. 또 대신 쓰는 것에 대해서는, 각사(各司)의 글씨에 능한 하리(下吏)를 기일에 앞서 법부(法府)에서 성책(成冊)하고 시험 날짜에 일일이 점고해서 궐도(闕到)가 있을 경우에는 ‘남입(濫入)’으로 논죄하여 율에 의거하여 죄를 주어 폐습을 바루게 하소서.
신들은 언관의 직책에 있으니 마땅히 조목조목 진달해서 해조로 하여금 착실하게 거행하게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기일 전에 잇달아 국기(國忌)가 있어서 미처 논계하지 못하여서 물의가 시끄럽게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말하지 못한 잘못을 면키 어려운 바,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6월 28일 신유

전교하였다. "각도에 정배(定配)한 죄인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몹시 많다고 하니, 일일이 상세히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다시금 십분 굳게 지켜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각별히 각 고을에 신칙하라. 태만하여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서 도망치는 일이 있게끔 하였을 경우에는, 감사는 파직하고 수령은 잡아다가 추고하라. 역적에게 연좌된 죄인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굳게 지키도록 엄하게 신칙해서 허술한 걱정이 없게 하라. 이상의 일을 각도의 감사에게 하유하라."
"각도에 정배(定配)한 죄인들 가운데 도망친 자가 몹시 많다고 하니, 일일이 상세히 살펴서 아뢰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다시금 십분 굳게 지켜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각별히 각 고을에 신칙하라. 태만하여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서 도망치는 일이 있게끔 하였을 경우에는, 감사는 파직하고 수령은 잡아다가 추고하라. 역적에게 연좌된 죄인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굳게 지키도록 엄하게 신칙해서 허술한 걱정이 없게 하라. 이상의 일을 각도의 감사에게 하유하라."

 

대사헌 유경종(柳慶宗), 집의 김질간(金質幹), 장령 곽천호(郭天豪), 지평 이창정(李昌幀)·최호(崔濩)가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간원이 피혐한 내용을 보니, 선비들의 습속이 아름답지 못하여서 과장(科場)에서 사사로움을 행하는 상황을 말한 것이 있었는데, 각종의 폐단이 모두 그러한바, 오늘날의 병통을 바로 맞추었습니다. 신들은 법관의 직에 있으니 마땅히 제때에 바로 잡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기일 전에 잇달아 국기(國忌)가 있어 미처 논계하지 못하여서 물의가 일어나게 하였음이 간원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대로 태연히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어제 간원이 피혐한 내용을 보니, 선비들의 습속이 아름답지 못하여서 과장(科場)에서 사사로움을 행하는 상황을 말한 것이 있었는데, 각종의 폐단이 모두 그러한바, 오늘날의 병통을 바로 맞추었습니다. 신들은 법관의 직에 있으니 마땅히 제때에 바로 잡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기일 전에 잇달아 국기(國忌)가 있어 미처 논계하지 못하여서 물의가 일어나게 하였음이 간원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대로 태연히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승지 이창후가 대간의 말대로 시행하기를 계청하니, 전교하기를, "법전에 의거해서 살펴서 하라." 하였다. 또 입계해서 전지를 받들어서 예조에 전교하였다. 예조가 회계하기를, "대간이 피혐한 내용 가운데 있는 과거의 폐단에 있어서, 문에 들어가서 녹명하는 것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 것은, 그에 대한 사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봉의 경우, 당초에는 첫째 피봉에 ‘근봉(謹封)’이라고 썼고, 셋째 피봉에 쓰는 것은 근래의 규례에서 나온 것으로, 근봉이라고 쓰고 안 쓰고는 법전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비록 근봉이라고 쓰지 않고 단지 사관의 도장만 찍더라도 이는 참으로 간사한 짓을 막으려는 데에서 나온 것으로, 무방한 것입니다. 또 글씨를 잘 쓰는 하리를 법부에서 성책하고 점고하는 것은 본디부터 있었던 사목입니다. 그러니 이상의 세 조항에 대해서는 대간이 피혐한 내용에 의거해서 신명하여 거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시험 날짜가 단지 이틀 남아서 원근의 시험장에 결단코 다 알리기가 어렵습니다. 법을 경외가 다르게 적용해서는 안되니 회시(會試)부터 신칙하라는 뜻으로 우선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법전에 의거해서 살펴서 하라."
하였다. 또 입계해서 전지를 받들어서 예조에 전교하였다. 예조가 회계하기를,
"대간이 피혐한 내용 가운데 있는 과거의 폐단에 있어서, 문에 들어가서 녹명하는 것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 것은, 그에 대한 사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봉의 경우, 당초에는 첫째 피봉에 ‘근봉(謹封)’이라고 썼고, 셋째 피봉에 쓰는 것은 근래의 규례에서 나온 것으로, 근봉이라고 쓰고 안 쓰고는 법전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비록 근봉이라고 쓰지 않고 단지 사관의 도장만 찍더라도 이는 참으로 간사한 짓을 막으려는 데에서 나온 것으로, 무방한 것입니다. 또 글씨를 잘 쓰는 하리를 법부에서 성책하고 점고하는 것은 본디부터 있었던 사목입니다. 그러니 이상의 세 조항에 대해서는 대간이 피혐한 내용에 의거해서 신명하여 거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시험 날짜가 단지 이틀 남아서 원근의 시험장에 결단코 다 알리기가 어렵습니다. 법을 경외가 다르게 적용해서는 안되니 회시(會試)부터 신칙하라는 뜻으로 우선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이미 창덕궁·창경궁·경운궁 등의 궁궐이 있는데 신궐을 또 짓고 있는바, 한 도성 안에 궁궐이 지나치게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지금 또 서별궁에다 전우(殿宇)를 조성해서 궁궐 모양을 만들 경우, 철거를 당한 무지한 백성들이 어찌 국가의 사세상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소연하면서 원망하는 소리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민정(民情)이 관계된 바로, 이 역시 염려하여야 합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다시금 생각을 더하시어 결단을 내리셔서 편의한 데 따라 잘 처리하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스럽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뜻이 참으로 옳다. 다만 창덕궁·창경궁·경운궁 등 세 궁궐이 만약 무고하다면, 내가 비록 임금답지 못하지만 어찌 시세를 모르고서 신궐을 짓고 서궁을 수리하겠는가. 세 궁궐이 모두 안전하고 깨끗지 못하여서 장차 거처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부득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진산군(珍山君) 집은 얼마 전에 상을 당하였으니 궁궐 담장 안으로 들이지 말라. 신순일(申純一)과 기협(奇協)의 집만 대내(大內)로 들이라. 그리고 동궁(東宮)은 작은 재목으로 조성해서 배설(排設)하라. 담장을 쌓고 문을 세우는 등의 일은 먼저 공사를 시작하고, 철거되어 나가는 민가에게는 상세히 알려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조용히 옮겨 나가게 하라. 또 재목과 기와의 값 및 논상하는 등의 일을 우선 급급히 거행하라. 이곳은 오랫동안 거처할 곳이 아니니 비록 경운궁의 서청(書廳)과 같이 조성하여도 된다. 시문용(施文用) 등에게 상세히 물어서 좌향(坐向)을 살펴 정하여서 속히 작은 재목으로 시사청과 조하(朝賀)를 받는 곳 등을 조성하라. 그리고 인정전(仁政殿)과 명정전(明政殿)은 부득이 대례(大禮)를 이곳에서 거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양궁이 모두 유고하여 예를 행할 수 있을 지 기필할 수가 없다. 대개 이 일은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으로, 좌우의 환관들은 모두 상세히 알고 있으나, 경들은 반드시 내간(內間)의 사정을 알지 못하여서 그러는 것이다. 마땅히 나의 뜻을 잘 살펴서 십분 헤아려서 되도록 속히 지으라." 하였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이미 창덕궁·창경궁·경운궁 등의 궁궐이 있는데 신궐을 또 짓고 있는바, 한 도성 안에 궁궐이 지나치게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지금 또 서별궁에다 전우(殿宇)를 조성해서 궁궐 모양을 만들 경우, 철거를 당한 무지한 백성들이 어찌 국가의 사세상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하소연하면서 원망하는 소리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민정(民情)이 관계된 바로, 이 역시 염려하여야 합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다시금 생각을 더하시어 결단을 내리셔서 편의한 데 따라 잘 처리하소서. 그러면 몹시 다행스럽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뜻이 참으로 옳다. 다만 창덕궁·창경궁·경운궁 등 세 궁궐이 만약 무고하다면, 내가 비록 임금답지 못하지만 어찌 시세를 모르고서 신궐을 짓고 서궁을 수리하겠는가. 세 궁궐이 모두 안전하고 깨끗지 못하여서 장차 거처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부득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진산군(珍山君) 집은 얼마 전에 상을 당하였으니 궁궐 담장 안으로 들이지 말라. 신순일(申純一)과 기협(奇協)의 집만 대내(大內)로 들이라. 그리고 동궁(東宮)은 작은 재목으로 조성해서 배설(排設)하라. 담장을 쌓고 문을 세우는 등의 일은 먼저 공사를 시작하고, 철거되어 나가는 민가에게는 상세히 알려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조용히 옮겨 나가게 하라. 또 재목과 기와의 값 및 논상하는 등의 일을 우선 급급히 거행하라. 이곳은 오랫동안 거처할 곳이 아니니 비록 경운궁의 서청(書廳)과 같이 조성하여도 된다. 시문용(施文用) 등에게 상세히 물어서 좌향(坐向)을 살펴 정하여서 속히 작은 재목으로 시사청과 조하(朝賀)를 받는 곳 등을 조성하라. 그리고 인정전(仁政殿)과 명정전(明政殿)은 부득이 대례(大禮)를 이곳에서 거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양궁이 모두 유고하여 예를 행할 수 있을 지 기필할 수가 없다.
대개 이 일은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으로, 좌우의 환관들은 모두 상세히 알고 있으나, 경들은 반드시 내간(內間)의 사정을 알지 못하여서 그러는 것이다. 마땅히 나의 뜻을 잘 살펴서 십분 헤아려서 되도록 속히 지으라."
하였다.

 

6월 29일 임술

전교하였다. "신궐의 정전 뒤편 사직단의 담장 아래에 해골이 파묻혀 있다고 하니, 몹시 놀랍다. 이 일은 전에 이미 하교하였는데도 태만하여 제대로 살피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해당 감역관을 즉시 조사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대내의 각 아문 및 후원의 각 곳을 중사(中使)와 함께 급속히 가서 일일이 파내어서 깨끗하게 하라. 그리고 파묻혀 있는 해골이 있을 경우에는 중을 시켜서 깨끗한 곳에 옮겨 파묻게 하라. 또 사직 담장 아래의 상하를 상세히 살펴서 파내는 일을 착실히 하라."
"신궐의 정전 뒤편 사직단의 담장 아래에 해골이 파묻혀 있다고 하니, 몹시 놀랍다. 이 일은 전에 이미 하교하였는데도 태만하여 제대로 살피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해당 감역관을 즉시 조사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대내의 각 아문 및 후원의 각 곳을 중사(中使)와 함께 급속히 가서 일일이 파내어서 깨끗하게 하라. 그리고 파묻혀 있는 해골이 있을 경우에는 중을 시켜서 깨끗한 곳에 옮겨 파묻게 하라. 또 사직 담장 아래의 상하를 상세히 살펴서 파내는 일을 착실히 하라."

 

승문원 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 이명운(李溟運)이 건원릉(健元陵)의 전사관(典祀官)으로서 태연스레 집에 있으면서 종일토록 제물(祭物)을 받아가지 않았다. 이에 봉상시의 관원이 재삼 독촉하자 이명운은 말하기를 "내가 비록 파직된다 한들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끝내 받아가지 않은 채 날이 이미 저녁때가 되었다. 봉상시 봉사 곽천구(郭天衢)가 분주히 승정원에 와서 고하였는데, 승지 성진선(成晉善)은 바로 이명운의 처삼촌이었으며, 승지 이원(李瑗) 역시 친척이었다. 이에 곽천구에게 말하기를 "네가 와서 고하는 것이 늦었다. 그러니 네가 임시로 전사관의 직책을 띠고 제물을 받아가지고 가라." 하니, 곽천구가 말하기를 "저는 과연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운은 유독 죄가 없단 말입니까?" 하였는데, 성진선이 이명운과 친척간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고 묻지 않았다. 도승지 한찬남(韓纘男)이 바깥에서 들어와서 이 말을 듣고는 노하여 꾸짖으면서 "전사관이 이 얼마만한 큰일인데 당해 승지가 내버려 둔 채 묻지 않는단 말인가. 이명운과 승지 모두 죄가 있다." 하였다. 이에 이원 등이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입계하면서 조사하기를 청하였는데, 상께서는 단지 아뢴 대로 하라고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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