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17권, 광해 9년 1617년 7월

싸라리리 2026. 1. 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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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계해

일식이 있었다.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였는데, 그 대개에, "신궐의 역사가 적당한 때가 아닌데 큰 역사를 일으킨 것이기는 하나, 참으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귀사(鬼邪)가 끊이지 않아서 서별궁을 또 영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금년의 영건은 갑작스러운 데에서 뜻밖에 나와 새 곡식이 익기도 전에 부득이 쌀과 포목을 납부하라고 독촉하는 차관(差官)을 보내게 되었으며, 농삿일이 바야흐로 한창인 때에 부득이 벌목하고 재목을 끌어내리는 일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양궁(兩宮)의 역사를 한꺼번에 거행할 경우에는 한갓 때가 좋지 않은데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일 뿐만이 아니어서 신은 삼가 걱정스럽습니다.  창경궁(昌慶宮)의 경우에는 수채를 파고 담장을 쌓는 등의 새 역사가 없이 옛터를 인하여 지역을 바꾸지 않은 채 바로잡아 지었습니다. 그러나 금년의 경우는 부득이 뜻밖에 하게 되어서 모든 일의 규모가 지난해와 같지 않습니다. 물력(物力)이 다 떨어진 것은 상께서도 이미 진념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두 대궐 가운데서 먼저 완공되어가는 한 대궐에만 온 힘을 기울이소서. 그리고 후원이나 수채 등의 역사는 천천히 할 수 있다면 이어(移御)한 뒤에 형세를 보아 하는 것도 역시 안될 것이 없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특함은 정직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괴이함을 보고서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면 괴이함은 저절로 없어진다.’는 등의 말이 있습니다. 먼저 완공되어가는 한 대궐을 비록 간편하게 완공시킨다 하더라도 반드시 협소한 경운궁(慶運宮)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와 같이 하였다가 조금 백성들의 힘이 펴지기를 기다려서 속히 완공시키도록 하여 이어(移御)할 곳으로 삼는 것이 실로 사의(事宜)에 합당합니다. 한꺼번에 역사를 일으켰다가 모두 속히 완공시키지 못하는 것이 어찌 한 곳에다 전력을 기울여서 속히 완공시키는 것만 하겠습니까. 만약 괴이함이 사라져서 깨끗하게 된 뒤에는 즉시 법궁(法宮)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니, 그리 된다면 국가에 있어서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신궐의 역사는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으로, 감히 고의적으로 크고 사치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외정전(外正殿)은 아직까지 기둥 하나도 세우지 못하였으니, 후원이나 수채를 파는 등의 역사를 어느 겨를에 하겠는가. 내가 몹시 괴이하게 여긴다. 조종조 때에는 혹 재상이 한 사람만 있었던 때도 있었다고 하는바, 상신(相臣)이 사직을 보호하는 명을 받고서 목숨을 걸고 한다면 비록 한 사람이 하더라도 사직을 안정시키고 조정을 맑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더구나 영건 도감의 제조이겠는가. 비록 8, 9인이라도 족하다. 지금은 무려 15, 16인이나 되는데, 이들이 과연 모두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자들인가? 느슨하고 해이하게 된 것은 실로 제조가 몹시 많아서 논의가 일치되지 않아서이다. 서별궁을 짓는 역사에 이르러서는 더욱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편의에 따라 잘 조처하면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소요스러움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바, 내가 병통으로 여긴다. 이와 같이 차자를 올렸으니, 마땅히 다시금 헤아려서 조처하겠다." 하였다.
"신궐의 역사가 적당한 때가 아닌데 큰 역사를 일으킨 것이기는 하나, 참으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귀사(鬼邪)가 끊이지 않아서 서별궁을 또 영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금년의 영건은 갑작스러운 데에서 뜻밖에 나와 새 곡식이 익기도 전에 부득이 쌀과 포목을 납부하라고 독촉하는 차관(差官)을 보내게 되었으며, 농삿일이 바야흐로 한창인 때에 부득이 벌목하고 재목을 끌어내리는 일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양궁(兩宮)의 역사를 한꺼번에 거행할 경우에는 한갓 때가 좋지 않은데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일 뿐만이 아니어서 신은 삼가 걱정스럽습니다.
창경궁(昌慶宮)의 경우에는 수채를 파고 담장을 쌓는 등의 새 역사가 없이 옛터를 인하여 지역을 바꾸지 않은 채 바로잡아 지었습니다. 그러나 금년의 경우는 부득이 뜻밖에 하게 되어서 모든 일의 규모가 지난해와 같지 않습니다. 물력(物力)이 다 떨어진 것은 상께서도 이미 진념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두 대궐 가운데서 먼저 완공되어가는 한 대궐에만 온 힘을 기울이소서. 그리고 후원이나 수채 등의 역사는 천천히 할 수 있다면 이어(移御)한 뒤에 형세를 보아 하는 것도 역시 안될 것이 없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특함은 정직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괴이함을 보고서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면 괴이함은 저절로 없어진다.’는 등의 말이 있습니다. 먼저 완공되어가는 한 대궐을 비록 간편하게 완공시킨다 하더라도 반드시 협소한 경운궁(慶運宮)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와 같이 하였다가 조금 백성들의 힘이 펴지기를 기다려서 속히 완공시키도록 하여 이어(移御)할 곳으로 삼는 것이 실로 사의(事宜)에 합당합니다. 한꺼번에 역사를 일으켰다가 모두 속히 완공시키지 못하는 것이 어찌 한 곳에다 전력을 기울여서 속히 완공시키는 것만 하겠습니까. 만약 괴이함이 사라져서 깨끗하게 된 뒤에는 즉시 법궁(法宮)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니, 그리 된다면 국가에 있어서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신궐의 역사는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으로, 감히 고의적으로 크고 사치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외정전(外正殿)은 아직까지 기둥 하나도 세우지 못하였으니, 후원이나 수채를 파는 등의 역사를 어느 겨를에 하겠는가. 내가 몹시 괴이하게 여긴다. 조종조 때에는 혹 재상이 한 사람만 있었던 때도 있었다고 하는바, 상신(相臣)이 사직을 보호하는 명을 받고서 목숨을 걸고 한다면 비록 한 사람이 하더라도 사직을 안정시키고 조정을 맑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더구나 영건 도감의 제조이겠는가. 비록 8, 9인이라도 족하다. 지금은 무려 15, 16인이나 되는데, 이들이 과연 모두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자들인가? 느슨하고 해이하게 된 것은 실로 제조가 몹시 많아서 논의가 일치되지 않아서이다. 서별궁을 짓는 역사에 이르러서는 더욱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편의에 따라 잘 조처하면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소요스러움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바, 내가 병통으로 여긴다. 이와 같이 차자를 올렸으니, 마땅히 다시금 헤아려서 조처하겠다."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예조에서 아뢴 과거(科擧)에 대한 공사(公事)를 아직까지 계하하지 않았습니다. 계하한 다음에야 바야흐로 할 수가 있습니다. 속히 계하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일체를 근래의 규례에 의거해서 살펴서 하라." 하였다.
"예조에서 아뢴 과거(科擧)에 대한 공사(公事)를 아직까지 계하하지 않았습니다. 계하한 다음에야 바야흐로 할 수가 있습니다. 속히 계하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일체를 근래의 규례에 의거해서 살펴서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황제의 은혜에 사례하는 예를 행할 때 위에서는 면복(冕服)을 갖추어 입고 백관들은 조복(朝服)으로 예를 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서 처리하게 하라."
"황제의 은혜에 사례하는 예를 행할 때 위에서는 면복(冕服)을 갖추어 입고 백관들은 조복(朝服)으로 예를 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살펴서 처리하게 하라."

 

윤중삼(尹重三)을 사은 부사(謝恩副使)로, 윤지경(尹知敬)을 서장관으로 삼았다.

 

7월 2일 갑자

전교하였다. "주청사(奏請使) 이정귀 등이 사신의 명을 받들고 북경에 가서 6개월이나 지체하고 있으니, 그간의 질병과 간고가 박홍구(朴弘耉) 등의 행차 때보다도 더 심할 것이다. 그러니 상사(上使) 이정귀는 가자하고, 그의 아들인 이명한(李明漢)은 6품에 천전(遷轉)시키며, 부사 유간(柳澗)은 자급을 크게 올려주고, 서장관 장자호(張自好)는 가자하라."
"주청사(奏請使) 이정귀 등이 사신의 명을 받들고 북경에 가서 6개월이나 지체하고 있으니, 그간의 질병과 간고가 박홍구(朴弘耉) 등의 행차 때보다도 더 심할 것이다. 그러니 상사(上使) 이정귀는 가자하고, 그의 아들인 이명한(李明漢)은 6품에 천전(遷轉)시키며, 부사 유간(柳澗)은 자급을 크게 올려주고, 서장관 장자호(張自好)는 가자하라."

 

7월 3일 을축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경비가 점점 불어나서 어떤 사람은 ‘마땅히 4결당 1포(布)를 거두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4결당 1포를 거두면 1천여 동에 불과할 뿐이다. 비록 창덕궁을 지을 때와 같이 1결당 1포를 거두는 식으로 과다하게 복정(卜定)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두 번에 걸쳐 거두는 것이 한 번에 거두는 것만 못하니, 혹 2결당 1포나 3결당 1포를 거두는 것이 무방하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가을이 되기를 기다려서 복정하는 것이 무방하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뜻이 이와 같은 바, 천천히 뒷날을 기다려서 의논해 조처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선조 때 창덕궁을 지을 때의 전례에 의거해서 1결당 1필을 거두어 쓰라." 하였다.【 【왕이 스스로 백성들의 힘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고 하고 조도관(調度官) 등이 긁어들인 것을 전용(專用)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민결(民結)에서 곧바로 거두어 들였다.】 】
"경비가 점점 불어나서 어떤 사람은 ‘마땅히 4결당 1포(布)를 거두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4결당 1포를 거두면 1천여 동에 불과할 뿐이다. 비록 창덕궁을 지을 때와 같이 1결당 1포를 거두는 식으로 과다하게 복정(卜定)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두 번에 걸쳐 거두는 것이 한 번에 거두는 것만 못하니, 혹 2결당 1포나 3결당 1포를 거두는 것이 무방하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가을이 되기를 기다려서 복정하는 것이 무방하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뜻이 이와 같은 바, 천천히 뒷날을 기다려서 의논해 조처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선조 때 창덕궁을 지을 때의 전례에 의거해서 1결당 1필을 거두어 쓰라."
하였다.【 【왕이 스스로 백성들의 힘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고 하고 조도관(調度官) 등이 긁어들인 것을 전용(專用)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민결(民結)에서 곧바로 거두어 들였다.】 】

 

전교하였다. "악기(樂器)를 주청하는 것은 종당에는 사신을 보내어야 한다. 그러니 윤중삼(尹重三)을 악기 주청사(樂器奏請使)로 옮겨 차임해서 전교가 있기를 기다렸다가 출발시키라. 그리고 전후의 부사(副使)의 망(望)도 다시 들이라."
"악기(樂器)를 주청하는 것은 종당에는 사신을 보내어야 한다. 그러니 윤중삼(尹重三)을 악기 주청사(樂器奏請使)로 옮겨 차임해서 전교가 있기를 기다렸다가 출발시키라. 그리고 전후의 부사(副使)의 망(望)도 다시 들이라."

 

권반(權狡)을 사은 부사로 삼았다.

 

전교하였다. "서별궁의 담장 안으로 들어간 민가에게 반드시 빈터를 속히 지급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옮겨가서 편안히 살게 한 뒤에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옳다."
"서별궁의 담장 안으로 들어간 민가에게 반드시 빈터를 속히 지급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옮겨가서 편안히 살게 한 뒤에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옳다."

 

7월 4일 병인

전교하였다. "도감에서 회의하는 날에는 도제조 이하가 일일이 나아가 참여해서 상세히 의논하여 아뢰라."
"도감에서 회의하는 날에는 도제조 이하가 일일이 나아가 참여해서 상세히 의논하여 아뢰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제주(濟州)에 정배(定配)한 죄인 환수(還水)·산춘(山春)·영환(永還)이 같은 고을의 관비(官婢) 2명과 함께 도망쳐 왔으며, 또 따라나온 여인이 4명이나 되는데, 그 가운데 두 사람이 뒤떨어져서 해남(海南)에 있다고 합니다. 허다한 죄인들이 마음대로 나돌아다니는데도 조금도 금지시킴이 없으니,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제주 목사와 판관을 각별히 추고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제주(濟州)에 정배(定配)한 죄인 환수(還水)·산춘(山春)·영환(永還)이 같은 고을의 관비(官婢) 2명과 함께 도망쳐 왔으며, 또 따라나온 여인이 4명이나 되는데, 그 가운데 두 사람이 뒤떨어져서 해남(海南)에 있다고 합니다. 허다한 죄인들이 마음대로 나돌아다니는데도 조금도 금지시킴이 없으니,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제주 목사와 판관을 각별히 추고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지난해 성절사(聖節使)의 행차 때 역관 김중휘(金重輝) 등이 어승(御乘)에 합당한 말 2필을 무역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행차가 의주(義州)에 도착하자 판관 윤계륜(尹繼倫)이 그가 타고 있던 말과 사사로이 1필을 바꾸었습니다. 설령 그 말이 몹시 마르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이미 어승마라고 하였으면 마땅히 장관(長官)에게 고하고서 사유를 갖추어 치계한 다음 본부에 머물려 두고서 별도로 잘 길러서 올려보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역관과 공모하고서 중대한 어승마를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였으니, 전혀 신하로서 위를 공경하는 뜻이 없습니다. 판관 윤계륜과 역관 김중휘·변사길(邊士吉) 등을 모두 잡아다가 국문하여 율에 의거해서 죄를 정하소서. 그리고 부윤(府尹) 이극신(李克信)은 자신이 한 부의 장관으로 있으면서 마음대로 서로 바꾸는 것을 내버려 둔 채 금지시키지 못하였으니, 그 책임을 면키 어렵습니다. 되도록 중한 쪽으로 추고하여 다른 사람을 경계시키소서. 왕옥(王獄)의 체모는 아주 엄하고도 중합니다. 그런데 도사(都事) 안전(安佺)은, 고변(告變)하고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박문근(朴文謹)과 본부의 대청마루에 함께 앉아서 사사로이 서로 말하였으니, 일이 몹시 놀랍습니다. 파직하도록 명을 내리소서.  부장(部將) 왕경유(王景裕)는 집안에서의 행실이 패려하여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판에서 삭제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천천히 결정하겠다. 안전과 왕경유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지난해 성절사(聖節使)의 행차 때 역관 김중휘(金重輝) 등이 어승(御乘)에 합당한 말 2필을 무역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행차가 의주(義州)에 도착하자 판관 윤계륜(尹繼倫)이 그가 타고 있던 말과 사사로이 1필을 바꾸었습니다. 설령 그 말이 몹시 마르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이미 어승마라고 하였으면 마땅히 장관(長官)에게 고하고서 사유를 갖추어 치계한 다음 본부에 머물려 두고서 별도로 잘 길러서 올려보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역관과 공모하고서 중대한 어승마를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였으니, 전혀 신하로서 위를 공경하는 뜻이 없습니다. 판관 윤계륜과 역관 김중휘·변사길(邊士吉) 등을 모두 잡아다가 국문하여 율에 의거해서 죄를 정하소서.
그리고 부윤(府尹) 이극신(李克信)은 자신이 한 부의 장관으로 있으면서 마음대로 서로 바꾸는 것을 내버려 둔 채 금지시키지 못하였으니, 그 책임을 면키 어렵습니다. 되도록 중한 쪽으로 추고하여 다른 사람을 경계시키소서.
왕옥(王獄)의 체모는 아주 엄하고도 중합니다. 그런데 도사(都事) 안전(安佺)은, 고변(告變)하고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박문근(朴文謹)과 본부의 대청마루에 함께 앉아서 사사로이 서로 말하였으니, 일이 몹시 놀랍습니다. 파직하도록 명을 내리소서.
부장(部將) 왕경유(王景裕)는 집안에서의 행실이 패려하여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판에서 삭제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천천히 결정하겠다. 안전과 왕경유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병조 좌랑 정세구(鄭世矩)는 바로 죄인 이효원(李效元)의 사위인데, 이효원은 바로 역적 유영경(柳永慶)의 심복입니다. 유영경이 역모를 꾸미던 때 이효원이 하는 짓을 정세구는 의당 모르는 것이 없었을 것인 바, 조정의 반열에 끼어 있는 것만도 역시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병조의 청선(淸選) 자리가 어찌 이 사람이 차지할 바이겠습니까.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이어 그의 천거를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교하 현감(交河縣監) 안대기(安大杞)는 사람됨이 범람하여 도임한 뒤로 오로지 긁어들이기만을 일삼아서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대관(臺官)을 가볍게 보아 무시하였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전주 판관(全州判官) 권주(權澍)는 자리만 지키고 있어서 관사(官事)가 폐지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영정(影幀)을 모셔보낼 때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교묘히 명목을 만들어서 공무를 빙자하여 거두어들였습니다. 바라건대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경상 우병 우후(慶尙右兵虞候) 박경은(朴慶殷)은 행실이 패려하여 버림을 받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어떤 한 조관(朝官)이 자신이 데리고 사는 첩을 보내어 박경은의 영하(營下)에 가서 자기의 어머니를 찾아뵙게 하였는데, 박경은이 그의 얼굴이 곱다는 말을 듣고서는 위협하고서 겁간해 그대로 데리고 살았습니다. 바라건대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사도시 정 권수기(權守己)는 나이가 이미 늙어 쇠약해서 공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번의 이 유릉(裕陵)의 추향 대제(秋享大祭) 때 나이 많음을 믿고 편한 대로 행동하여 드러나게 실례한 일이 있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전옥(典獄)은 바로 죄수들을 관장하는 부서입니다. 그런데 옥관(獄官)이 제대로 직임을 살피지 않아, 비록 상사(上司)에서 가둔 죄인이더라도 한결같이 서리(胥吏)들이 뇌물을 받고서 가두고 풀어주기를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당해 관원을 모두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군기시 직장 이경복(李景福)은 「대전(大典)」의 고강(考講) 때 패초(牌招)하였는데 아무런 까닭없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권주와 안대기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정세구는 거관(居館)하였을 때 이위경(李偉卿)과 안면을 익힌 친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위경이 흉소(兇疏)를 올리는 데 앞장선 뒤에는 정세구가 즉시 끊고는 여러 차례 집을 찾아갔는데도 거절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이에 이위경이 크게 유감을 품어 그의 당여들을 사주해서 공격한 것이다.】 】
"병조 좌랑 정세구(鄭世矩)는 바로 죄인 이효원(李效元)의 사위인데, 이효원은 바로 역적 유영경(柳永慶)의 심복입니다. 유영경이 역모를 꾸미던 때 이효원이 하는 짓을 정세구는 의당 모르는 것이 없었을 것인 바, 조정의 반열에 끼어 있는 것만도 역시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병조의 청선(淸選) 자리가 어찌 이 사람이 차지할 바이겠습니까.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이어 그의 천거를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교하 현감(交河縣監) 안대기(安大杞)는 사람됨이 범람하여 도임한 뒤로 오로지 긁어들이기만을 일삼아서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대관(臺官)을 가볍게 보아 무시하였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전주 판관(全州判官) 권주(權澍)는 자리만 지키고 있어서 관사(官事)가 폐지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영정(影幀)을 모셔보낼 때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교묘히 명목을 만들어서 공무를 빙자하여 거두어들였습니다. 바라건대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경상 우병 우후(慶尙右兵虞候) 박경은(朴慶殷)은 행실이 패려하여 버림을 받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어떤 한 조관(朝官)이 자신이 데리고 사는 첩을 보내어 박경은의 영하(營下)에 가서 자기의 어머니를 찾아뵙게 하였는데, 박경은이 그의 얼굴이 곱다는 말을 듣고서는 위협하고서 겁간해 그대로 데리고 살았습니다. 바라건대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사도시 정 권수기(權守己)는 나이가 이미 늙어 쇠약해서 공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번의 이 유릉(裕陵)의 추향 대제(秋享大祭) 때 나이 많음을 믿고 편한 대로 행동하여 드러나게 실례한 일이 있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전옥(典獄)은 바로 죄수들을 관장하는 부서입니다. 그런데 옥관(獄官)이 제대로 직임을 살피지 않아, 비록 상사(上司)에서 가둔 죄인이더라도 한결같이 서리(胥吏)들이 뇌물을 받고서 가두고 풀어주기를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당해 관원을 모두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군기시 직장 이경복(李景福)은 「대전(大典)」의 고강(考講) 때 패초(牌招)하였는데 아무런 까닭없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권주와 안대기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정세구는 거관(居館)하였을 때 이위경(李偉卿)과 안면을 익힌 친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위경이 흉소(兇疏)를 올리는 데 앞장선 뒤에는 정세구가 즉시 끊고는 여러 차례 집을 찾아갔는데도 거절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이에 이위경이 크게 유감을 품어 그의 당여들을 사주해서 공격한 것이다.】 】

 

7월 5일 정묘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의 낭청과 감역관 가운데 실직에 붙이지 못한 자는 일일이 실직에 붙이라. 그리고 신궐의 담장 안에 들어간 집의 주인들 중에 생원·진사와 학생은 모두 초수직(初授職)을 제수하라."
"영건 도감의 낭청과 감역관 가운데 실직에 붙이지 못한 자는 일일이 실직에 붙이라. 그리고 신궐의 담장 안에 들어간 집의 주인들 중에 생원·진사와 학생은 모두 초수직(初授職)을 제수하라."

 

전교하였다. "각도에서 별도로 마련한 쌀과 콩 등의 물품을 그들로 하여금 일일이 상납하게 해서 영건하는 역사에 보태어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그리고 혹시라도 거짓으로 속이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가자한 것을 삭제한 뒤 중하게 다스리는 일을 아울러 살펴서 의논하여 아뢰라."
"각도에서 별도로 마련한 쌀과 콩 등의 물품을 그들로 하여금 일일이 상납하게 해서 영건하는 역사에 보태어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라. 그리고 혹시라도 거짓으로 속이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가자한 것을 삭제한 뒤 중하게 다스리는 일을 아울러 살펴서 의논하여 아뢰라."

 

7월 6일 무진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별당(別堂) 세 곳의 터를 닦을 길일(吉日)을 관상감으로 하여금 가려뽑게 하였더니, 이번 7월 11일이 길하다고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별당(別堂) 세 곳의 터를 닦을 길일(吉日)을 관상감으로 하여금 가려뽑게 하였더니, 이번 7월 11일이 길하다고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거제 현령(巨濟縣令) 신훤(申萱)은 사람됨이 용렬하며, 본직에 제수되어서는 오로지 탐학만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솔을 본현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데리고 가서 짐바리가 줄을 이어 폐단을 갖가지로 끼쳤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직책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본부에서 일찍이 가솔들을 함부로 데리고 가는 폐단에 대해 논계하고서 신칙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도의 감사가 제대로 규찰하지 못하여서, 한 사람도 보고되어 파직된 자가 없습니다. 그 대간의 논계를 무시하고 사사로운 정을 따라 거리낌없이 한 죄 역시 면키 어렵습니다. 되도록 중한 쪽으로 추고하도록 명하소서. 이달 5일에 경운궁(慶運宮)에 입직한 소서문(小西門) 수문장 김취련(金就鍊)과 남문 수문장 김의록(金義菉), 북문 수문장 신유원(申有源), 충의위(忠義衛) 윤선(尹瑄) 등 네 사람이 소동문(小東門) 수문장 이영원(李榮元)의 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바둑을 두고 마음 놓고 떠들어대었는데, 하지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마음대로 직소(直所)를 떠나고 방자하여 거리낌없이 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문장들을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고, 충의위 윤선은 되도록 중한 쪽으로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신훤 등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거제 현령(巨濟縣令) 신훤(申萱)은 사람됨이 용렬하며, 본직에 제수되어서는 오로지 탐학만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솔을 본현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데리고 가서 짐바리가 줄을 이어 폐단을 갖가지로 끼쳤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직책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본부에서 일찍이 가솔들을 함부로 데리고 가는 폐단에 대해 논계하고서 신칙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도의 감사가 제대로 규찰하지 못하여서, 한 사람도 보고되어 파직된 자가 없습니다. 그 대간의 논계를 무시하고 사사로운 정을 따라 거리낌없이 한 죄 역시 면키 어렵습니다. 되도록 중한 쪽으로 추고하도록 명하소서.
이달 5일에 경운궁(慶運宮)에 입직한 소서문(小西門) 수문장 김취련(金就鍊)과 남문 수문장 김의록(金義菉), 북문 수문장 신유원(申有源), 충의위(忠義衛) 윤선(尹瑄) 등 네 사람이 소동문(小東門) 수문장 이영원(李榮元)의 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바둑을 두고 마음 놓고 떠들어대었는데, 하지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마음대로 직소(直所)를 떠나고 방자하여 거리낌없이 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문장들을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고, 충의위 윤선은 되도록 중한 쪽으로 추고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신훤 등의 일은 천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7월 7일 기사

전교하였다. "서별궁은 이달 20일 사이에 터를 닦을 길일을 택해 들이고 8월부터 역사를 시작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서별궁은 이달 20일 사이에 터를 닦을 길일을 택해 들이고 8월부터 역사를 시작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보루 도감(報漏都監)이 아뢰기를, "12신(辰)에 각각 스스로 쳐서 울리는 종(鍾)의 기명(記銘)은 대제학이 현재 짓고 있습니다. 도감의 일은 다 살펴보지 않아서는 안되니, 예조 판서 이이첨을 호조와 병조 판서가 으레 겸임하는 규레에 의거해서 제조로 계하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12신(辰)에 각각 스스로 쳐서 울리는 종(鍾)의 기명(記銘)은 대제학이 현재 짓고 있습니다. 도감의 일은 다 살펴보지 않아서는 안되니, 예조 판서 이이첨을 호조와 병조 판서가 으레 겸임하는 규레에 의거해서 제조로 계하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의 초기(草記)로 인하여 전교하기를 ‘서별궁의 담장 안으로 들어간 민가가 1백여 집이나 된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와 같이 많은가? 다시 살펴서 아뢰라.’고 하시었습니다. 신들이 시문용·성지 등과 함께 서별궁 둘레의 응당 들어가야 할 땅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동쪽으로는 봉상시 큰길의 서쪽편에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고 판서 신잡(申磼)의 집까지 이르렀으며, 남쪽으로는 새문동(塞門洞) 큰길 남쪽편 산등성이까지 이르고, 북쪽으로는 현령 남이걸(南以傑)의 집 동산(東山)까지 이르러서 그 안에 있는 응당 들어가야 하는 민가가 자연 이와 같이 많게 되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도감의 초기(草記)로 인하여 전교하기를 ‘서별궁의 담장 안으로 들어간 민가가 1백여 집이나 된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와 같이 많은가? 다시 살펴서 아뢰라.’고 하시었습니다. 신들이 시문용·성지 등과 함께 서별궁 둘레의 응당 들어가야 할 땅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동쪽으로는 봉상시 큰길의 서쪽편에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고 판서 신잡(申磼)의 집까지 이르렀으며, 남쪽으로는 새문동(塞門洞) 큰길 남쪽편 산등성이까지 이르고, 북쪽으로는 현령 남이걸(南以傑)의 집 동산(東山)까지 이르러서 그 안에 있는 응당 들어가야 하는 민가가 자연 이와 같이 많게 되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7월 8일 경오

전교하였다. "요즈음 전교하는 일에 대해 즉시 회답하지 않고 있다. 지금 이후로는 며칠 안에 급속히 회계하라고 영건 도감에 말하라."
"요즈음 전교하는 일에 대해 즉시 회답하지 않고 있다. 지금 이후로는 며칠 안에 급속히 회계하라고 영건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포도청에 구금되어 있는 역적들을 즉시 엄하게 가두고 정죄(定罪)하지 않아서 죄인들이 혹 옥에서 도망치기도 한다고 한다. 지금 이후로는 급급히 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알아내어 율대로 죄를 정하고서 굳게 가두라고 형조와 포도 대장에게 말하라."
"포도청에 구금되어 있는 역적들을 즉시 엄하게 가두고 정죄(定罪)하지 않아서 죄인들이 혹 옥에서 도망치기도 한다고 한다. 지금 이후로는 급급히 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알아내어 율대로 죄를 정하고서 굳게 가두라고 형조와 포도 대장에게 말하라."

 

장악원이 아뢰기를, "이번에 면복(冕服)을 하사받은 일로 고묘(告廟)하고 친제(親祭)한 뒤 환궁할 때의 교방가요(敎坊歌謠)와 헌축(獻軸)은 추숭(追崇)할 때의 예에 의거하여 거행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침향산(沈香山)을 비록 기와집 안에다 보관하였으나 장맛비로 퇴색되어서 흠집이 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막중한 대례를 당하여서는 결단코 그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침향산 및 청백학(靑白鶴) 등의 물품은 각별히 꾸미는 것이 마땅하며, 산을 끌 군인 역시 장차 조발(調發)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호령에 관계되는 것은 도감이 아니면 형세상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추숭할 때의 전례에 의거해서 장악 도감(掌樂都監)이라고 칭하여 그로 하여금 부역하게 해서 기일에 맞추어 만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번에 면복(冕服)을 하사받은 일로 고묘(告廟)하고 친제(親祭)한 뒤 환궁할 때의 교방가요(敎坊歌謠)와 헌축(獻軸)은 추숭(追崇)할 때의 예에 의거하여 거행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침향산(沈香山)을 비록 기와집 안에다 보관하였으나 장맛비로 퇴색되어서 흠집이 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막중한 대례를 당하여서는 결단코 그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침향산 및 청백학(靑白鶴) 등의 물품은 각별히 꾸미는 것이 마땅하며, 산을 끌 군인 역시 장차 조발(調發)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호령에 관계되는 것은 도감이 아니면 형세상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추숭할 때의 전례에 의거해서 장악 도감(掌樂都監)이라고 칭하여 그로 하여금 부역하게 해서 기일에 맞추어 만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7월 9일 신미

예조가 아뢰기를, "난리를 겪은 뒤로 중국 조정에서 우리 나라를 마치 내복(內服)과 같이 보아서, 우리 나라의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을 일체 중국 제도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경 사신(赴京使臣)을 통하여 듣건대, 절일(節日)에 축하하는 반열에, 내복제후(內服諸侯)들의 절사(節使)는 모두 조복(朝服)을 착용하는데, 우리 나라의 사신은 그대로 흑관대(黑冠帶)로 반열에 입참(入參)하여 예전 제도를 바꾸지 않아서 외방의 오랑캐 족속과 뒤섞여서 구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찌 몹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에 어떤 사신이 조복을 착용하는 것에 대해 예부(禮部)에 품정(稟呈)하니, 예부에서 ‘본국에서 자문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다 합니다. 이번의 동지사(冬至使) 행차에 이에 대한 자문 한 통을 지어 보내어 해부(該部)에 간청하여서 기어이 변경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난리를 겪은 뒤로 중국 조정에서 우리 나라를 마치 내복(內服)과 같이 보아서, 우리 나라의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을 일체 중국 제도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경 사신(赴京使臣)을 통하여 듣건대, 절일(節日)에 축하하는 반열에, 내복제후(內服諸侯)들의 절사(節使)는 모두 조복(朝服)을 착용하는데, 우리 나라의 사신은 그대로 흑관대(黑冠帶)로 반열에 입참(入參)하여 예전 제도를 바꾸지 않아서 외방의 오랑캐 족속과 뒤섞여서 구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찌 몹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에 어떤 사신이 조복을 착용하는 것에 대해 예부(禮部)에 품정(稟呈)하니, 예부에서 ‘본국에서 자문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다 합니다. 이번의 동지사(冬至使) 행차에 이에 대한 자문 한 통을 지어 보내어 해부(該部)에 간청하여서 기어이 변경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서별궁의 역사가 아주 긴급하니 이달 안으로 미리 요리하여야 한다. 봉상시 전복(典僕)들이 들어가 살 곳에 대해서는 속히 재목과 기와 값을 주어 즉시 옮겨가게 해서 다음달 1일에는 날짜를 물리지 말고 역사를 시작하도록 도감에 말하라."
"서별궁의 역사가 아주 긴급하니 이달 안으로 미리 요리하여야 한다. 봉상시 전복(典僕)들이 들어가 살 곳에 대해서는 속히 재목과 기와 값을 주어 즉시 옮겨가게 해서 다음달 1일에는 날짜를 물리지 말고 역사를 시작하도록 도감에 말하라."

 

【생원 박의립(朴毅立)이 상소하여 속히 감훈(勘勳)해서 공로에 보답하는 은전을 끝마치고 요행의 문을 막기를 청하였다.】

 

7월 10일 임신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서별궁 안으로 들어가는 집의 주인들에게 속히 빈터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편안히 살 수 있게 하라는 전교를 내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에 신들이, 백성들이 생업을 잃을까 염려하는 성상의 성대한 뜻을 받들어서 즉시 한성부에 분부하여 서둘러서 거행하라고 여러 차례 신칙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한성부에서는 심상하게 보아 아직까지 입계하여 처치한 일이 없어서 이와 같은 하교가 내리게 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한성부의 당해 낭청을 추고하고 치죄하소서. 그리고 도청(都廳) 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일을 전적으로 관장해서 한성부를 엄히 독려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성상의 분부대로 봉상시의 전복에 대해서는 장악원의 빈터를 주고, 그 나머지 백성들에게는 군자 본감(軍資本監) 및 사온서(司醞署) 옛터의 빈터를 칸수를 헤아려서 일일이 나누어 주되, 이달 안으로 기한을 정하여 모두 옮겨가 살게 해서 백성들의 원망이 없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서별궁 안으로 들어가는 집의 주인들에게 속히 빈터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편안히 살 수 있게 하라는 전교를 내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에 신들이, 백성들이 생업을 잃을까 염려하는 성상의 성대한 뜻을 받들어서 즉시 한성부에 분부하여 서둘러서 거행하라고 여러 차례 신칙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한성부에서는 심상하게 보아 아직까지 입계하여 처치한 일이 없어서 이와 같은 하교가 내리게 하였으니, 몹시 그릅니다. 한성부의 당해 낭청을 추고하고 치죄하소서. 그리고 도청(都廳) 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일을 전적으로 관장해서 한성부를 엄히 독려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성상의 분부대로 봉상시의 전복에 대해서는 장악원의 빈터를 주고, 그 나머지 백성들에게는 군자 본감(軍資本監) 및 사온서(司醞署) 옛터의 빈터를 칸수를 헤아려서 일일이 나누어 주되, 이달 안으로 기한을 정하여 모두 옮겨가 살게 해서 백성들의 원망이 없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7월 11일 계유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에 현재 낭청과 감역관 등의 숫자가 많기는 하나, 혹 신궐과 서별궁의 감조관으로 차임되었거나 긴요한 일을 관장하고 있어서 옮겨 차임해서 파견할 만한 관원이 전혀 없습니다. 부득이 일을 잘 아는 낭청 한 사람을 별도로 차임해서 하루 이틀 안에 급속히 가평(加平)과 양근(楊根) 등처에 보내어서 작은 재목을 넉넉히 베어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벌목하고 끌어내리는 일꾼은, 경기 감사로 하여금 연군(烟軍)을 조발해서 역사가 끝날 때까지 부리게 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문낭청(文郞廳)을 뽑아 보내어서 먼저 양읍(兩邑)과 경기 지방의 각 고을 중에서 쓸만한 작은 재목이 있는지의 여부를 조사해 본 뒤에 상세히 살펴서 베어 오게 하라." 하였다.
"도감에 현재 낭청과 감역관 등의 숫자가 많기는 하나, 혹 신궐과 서별궁의 감조관으로 차임되었거나 긴요한 일을 관장하고 있어서 옮겨 차임해서 파견할 만한 관원이 전혀 없습니다. 부득이 일을 잘 아는 낭청 한 사람을 별도로 차임해서 하루 이틀 안에 급속히 가평(加平)과 양근(楊根) 등처에 보내어서 작은 재목을 넉넉히 베어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벌목하고 끌어내리는 일꾼은, 경기 감사로 하여금 연군(烟軍)을 조발해서 역사가 끝날 때까지 부리게 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본도 감사에게 하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문낭청(文郞廳)을 뽑아 보내어서 먼저 양읍(兩邑)과 경기 지방의 각 고을 중에서 쓸만한 작은 재목이 있는지의 여부를 조사해 본 뒤에 상세히 살펴서 베어 오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상호(上號)하는 날짜를 10월로 물려서 거행하라고 하교한 지 이미 오래인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날짜를 다시 택해 아뢰지 않는가? 속히 날짜를 다시 택한 다음 급속히 파발마를 보내어서 각도에 알리라."
"상호(上號)하는 날짜를 10월로 물려서 거행하라고 하교한 지 이미 오래인데 어찌하여 지금까지 날짜를 다시 택해 아뢰지 않는가? 속히 날짜를 다시 택한 다음 급속히 파발마를 보내어서 각도에 알리라."

 

전교하였다. "요즈음 논박을 받은 수령들에 대해 본도로 하여금 상세하게 사실을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감사가 바뀐 곳은 전 감사로 하여금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요즈음 논박을 받은 수령들에 대해 본도로 하여금 상세하게 사실을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감사가 바뀐 곳은 전 감사로 하여금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사헌부가 아뢰기를, "낭관(郞官)은 임무가 아주 중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명망이 있는 음관(蔭官)이 아니면 그 선발에 끼일 수가 없는 법으로, 전부터 계청해서 태거(汰去)시킨 자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해조에서는 신중히 가리지 못하여서 용잡한 자로 차임하였으니, 몹시 온당치 못합니다.  형조 좌랑 윤취지(尹就之)는 바로 윤양(尹暘)의 아들로, 그의 아비는 역적 서양갑(徐羊甲)의 서얼 매부로서 현재 폐기된 중에 있으니, 어찌 그의 아들로 하여금 다시 낭관의 반열에 끼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조 좌랑 신희손(辛喜孫)은 본디 용렬한 사람으로 처음부터 명망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본직에 있으면서 제대로 직임을 살피지 못하여서 물정이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훈련정(訓鍊正) 오응남(吳應男)은 사람됨이 용렬하여 이미 명망이 없으며, 또 경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본직에 뛰어올랐으므로 뭇사람들이 모두들 놀랍게 여기고 있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취지·신희손은 체차하라. 오응남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낭관(郞官)은 임무가 아주 중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명망이 있는 음관(蔭官)이 아니면 그 선발에 끼일 수가 없는 법으로, 전부터 계청해서 태거(汰去)시킨 자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해조에서는 신중히 가리지 못하여서 용잡한 자로 차임하였으니, 몹시 온당치 못합니다.
형조 좌랑 윤취지(尹就之)는 바로 윤양(尹暘)의 아들로, 그의 아비는 역적 서양갑(徐羊甲)의 서얼 매부로서 현재 폐기된 중에 있으니, 어찌 그의 아들로 하여금 다시 낭관의 반열에 끼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조 좌랑 신희손(辛喜孫)은 본디 용렬한 사람으로 처음부터 명망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본직에 있으면서 제대로 직임을 살피지 못하여서 물정이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훈련정(訓鍊正) 오응남(吳應男)은 사람됨이 용렬하여 이미 명망이 없으며, 또 경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본직에 뛰어올랐으므로 뭇사람들이 모두들 놀랍게 여기고 있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취지·신희손은 체차하라. 오응남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검상 심즙이 서계하기를, "신이 지난달 27일에 좌의정 정인홍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정인홍이 명을 받은 뒤에 신으로 하여금 상달(上達)하게 하면서 말하기를 ‘체차하는 명이 내리지 않고 올라오라는 명이 도리어 이르렀는데, 병들어 쇠약한 실정을 다시금 성상께 아뢰고 싶지 않습니다. 신은 이제 끝났습니다. 다시는 서울로 올라갈 가망이 없습니다. 이에 한밤중에도 잠못 이룬 채, 중한 짐을 벗어버리고 하루 저녁에 편안히 잠들었다가 죽기만을 원할 뿐입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지난달 27일에 좌의정 정인홍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정인홍이 명을 받은 뒤에 신으로 하여금 상달(上達)하게 하면서 말하기를 ‘체차하는 명이 내리지 않고 올라오라는 명이 도리어 이르렀는데, 병들어 쇠약한 실정을 다시금 성상께 아뢰고 싶지 않습니다. 신은 이제 끝났습니다. 다시는 서울로 올라갈 가망이 없습니다. 이에 한밤중에도 잠못 이룬 채, 중한 짐을 벗어버리고 하루 저녁에 편안히 잠들었다가 죽기만을 원할 뿐입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7월 12일 갑술

전교하였다. "관복을 맞이하는 의식의 예행 연습을 인정전에서 고악(鼓樂)을 갖추어 놓고 상세히 익히고, 황은(皇恩)에 사례하는 의식도 아울러 한 차례 행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어람(御覽)하는 관안(官案)의 제목(題目)을 써서 취품(取稟)하는 일에 대해 전교하기를, "오익(吳翊)으로 하여금 쓰게 하라." 하였다.
"오익(吳翊)으로 하여금 쓰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서별궁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이달 20일 안으로 급속히 아무 공해(公廨)의 빈터로 옮기는 일을 십분 착실하게 거행하라는 뜻으로 도감에다가 말하라."
"서별궁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이달 20일 안으로 급속히 아무 공해(公廨)의 빈터로 옮기는 일을 십분 착실하게 거행하라는 뜻으로 도감에다가 말하라."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을 받들어 옮기는 것은, 대례(大禮)가 지난 뒤 예조 당상과 승지가 내려가는 것으로 날짜를 다시 택해 아뢰라."
"영정(影幀)을 받들어 옮기는 것은, 대례(大禮)가 지난 뒤 예조 당상과 승지가 내려가는 것으로 날짜를 다시 택해 아뢰라."

 

사간원이 아뢰기를,      "사옹원 주부        성흔(成忻)은 사람됨이 음험하고 교활하며 집안에서의 행실이 패려해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여러 차례 대간의 논박을 받았습니다.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감찰        나무춘(羅茂春)은 사람됨이 사악하고 망령스러우며 행실이 거칠고 비루한데, 갑자기 본직에 제수되었으므로 물정이 해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함경도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떠도는 자가 길에 가득하고 굶어죽은 시체가 골짜기를 메우고 있습니다. 이를 무마하여 안정시키는 책임은 수령들에게 있는데, 무신(武臣) 수령들은 오로지 재물을 긁어들이기만을 일삼아서 어루만져 길러준다는 것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묘당에서 문관으로 수령을 뽑아 보내기를 청한 것은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차출한 것은 모두 무부들입니다. 부령 부사(富寧府使)        조영혼(趙英混)은 문벌이 미천하고 인물이 용렬하여, 잔약해진 변방의 진을 소생시키는 계책은 결단코 이 사람이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파직하도록 명하고, 그 대임자를 각별히 뽑아 보내소서. 사옹원 참봉        김숭지(金崇址)는 사람됨이 거칠고 억세며 관무를 봄에 있어서 비루한 일이 많았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국자감의 아장(亞長)은 바로 사유(師儒)의 직책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청선(淸選)이 아니면 함부로 제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성(司成)        윤민헌(尹民獻)은 명망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성흔에 대해서는 천천히 결정하겠다. 나무춘은 체차하라. 조영혼은 바로 충신 조종도(趙宗道)의 아들이며 비국에서 의논하여 천거하였으니, 한 번 시험삼아 보내보는 것도 무방하다. 다른 나머지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사옹원 주부        성흔(成忻)은 사람됨이 음험하고 교활하며 집안에서의 행실이 패려해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여러 차례 대간의 논박을 받았습니다.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감찰        나무춘(羅茂春)은 사람됨이 사악하고 망령스러우며 행실이 거칠고 비루한데, 갑자기 본직에 제수되었으므로 물정이 해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함경도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떠도는 자가 길에 가득하고 굶어죽은 시체가 골짜기를 메우고 있습니다. 이를 무마하여 안정시키는 책임은 수령들에게 있는데, 무신(武臣) 수령들은 오로지 재물을 긁어들이기만을 일삼아서 어루만져 길러준다는 것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묘당에서 문관으로 수령을 뽑아 보내기를 청한 것은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차출한 것은 모두 무부들입니다. 부령 부사(富寧府使)        조영혼(趙英混)은 문벌이 미천하고 인물이 용렬하여, 잔약해진 변방의 진을 소생시키는 계책은 결단코 이 사람이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파직하도록 명하고, 그 대임자를 각별히 뽑아 보내소서.
사옹원 참봉        김숭지(金崇址)는 사람됨이 거칠고 억세며 관무를 봄에 있어서 비루한 일이 많았습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국자감의 아장(亞長)은 바로 사유(師儒)의 직책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청선(淸選)이 아니면 함부로 제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성(司成)        윤민헌(尹民獻)은 명망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체차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성흔에 대해서는 천천히 결정하겠다. 나무춘은 체차하라. 조영혼은 바로 충신 조종도(趙宗道)의 아들이며 비국에서 의논하여 천거하였으니, 한 번 시험삼아 보내보는 것도 무방하다. 다른 나머지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관학 유생(館學儒生) 민심(閔𦸂) 등이 상소하여서, 속히 오정남(吳挺男)·나의소(羅宜素) 등이 현인을 모함한 죄를 바로잡아서 국가에서 어진이를 존숭하는 의리를 보이기를 청하였다.

 

사헌부가 연계(連啓)해서 윤취지(尹就之)와 신희손(辛喜孫) 등의 일을 아뢰고, 신계(新啓)하기를, "강진 현감(康津縣監) 조응휴(曺應休)는 도임한 뒤로 처사가 청렴치 못합니다. 그의 집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 관고(官庫)의 물품을 공공연히 실어 날라 갖가지로 폐단을 끼치고 있어서 온 경내가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다가 서원(書院)을 지을 때에는 현인을 높이는 것은 생각지 않아 선비들을 저지시키고 억눌렀는 바, 유림(儒林)에 죄를 얻은 것이 아주 심합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취지·신희손은 이미 체차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조응휴에 대해서는 천천히 결정짓겠다." 하였다. 【이 때에 정인홍의 무리로서 호남에 있는 자들이 장차 조식(曺植)의 서원을 강진(康津)에다가 세우고서 흉도(兇徒)들이 모이는 장소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기세를 돋구면서 수령들을 능멸하였다. 이에 조응휴가 그들의 구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주창자인 윤유겸(尹惟謙)을 곤장쳤는데, 이로 말미암아 탄핵을 입었다. 윤유겸은 인조반정 초기에 흉소(兇疏)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복주(伏誅)되었다.】
"강진 현감(康津縣監) 조응휴(曺應休)는 도임한 뒤로 처사가 청렴치 못합니다. 그의 집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 관고(官庫)의 물품을 공공연히 실어 날라 갖가지로 폐단을 끼치고 있어서 온 경내가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다가 서원(書院)을 지을 때에는 현인을 높이는 것은 생각지 않아 선비들을 저지시키고 억눌렀는 바, 유림(儒林)에 죄를 얻은 것이 아주 심합니다.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취지·신희손은 이미 체차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조응휴에 대해서는 천천히 결정짓겠다."
하였다. 【이 때에 정인홍의 무리로서 호남에 있는 자들이 장차 조식(曺植)의 서원을 강진(康津)에다가 세우고서 흉도(兇徒)들이 모이는 장소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기세를 돋구면서 수령들을 능멸하였다. 이에 조응휴가 그들의 구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주창자인 윤유겸(尹惟謙)을 곤장쳤는데, 이로 말미암아 탄핵을 입었다. 윤유겸은 인조반정 초기에 흉소(兇疏)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복주(伏誅)되었다.】

 

7월 13일 을해

관학 유생 민심 등의 상소에 답하였다.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상소의 내용은 모두 알았다.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장악 도감이 아뢰기를, "침향산(沈香山)과 가요(歌謠), 헌축(獻軸)할 때 쓸 기생과 공인(工人)들의 각종 정재(呈才)를 모름지기 기일에 앞서 날마다 연습하여야만 그때 가서 뒤죽박죽되는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사(上司)에서는 사체를 헤아리지 못하고 여러 곳에 보내어 며칠씩 있게 하여, 자신의 업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일체 정해 보내지 않는 것으로 전에 여러 차례 승전을 받들었으나 모두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몹시 온당치 못합니다. 대례를 치루기 전까지를 기한으로 하여 신명하여 거행하는 것으로 각별히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침향산(沈香山)과 가요(歌謠), 헌축(獻軸)할 때 쓸 기생과 공인(工人)들의 각종 정재(呈才)를 모름지기 기일에 앞서 날마다 연습하여야만 그때 가서 뒤죽박죽되는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사(上司)에서는 사체를 헤아리지 못하고 여러 곳에 보내어 며칠씩 있게 하여, 자신의 업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일체 정해 보내지 않는 것으로 전에 여러 차례 승전을 받들었으나 모두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몹시 온당치 못합니다. 대례를 치루기 전까지를 기한으로 하여 신명하여 거행하는 것으로 각별히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서별궁의 바깥 담장을 두를 동서 남북의 한계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대개를 살펴 정하여서 입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어제 담장을 쌓을 터를 살펴보는 일로 다시금 주위를 돌아볼 때 시문용(施文用)이 말하기를 ‘서북쪽의 담장을 장륜(張綸)의 집 뒤쪽 산등성이 우뚝 솟은 곳에서부터 꺾어서 남쪽으로 연하여 남쪽편의 산등성이에 있는 윤빈(尹儐)의 집 동산(東山) 아래를 감돌아 구인준(具仁俊)의 집 앞에서 그치게 하면 지세가 아주 좋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터를 정할 경우 신잡(申磼)의 집 등 몇 집이 서쪽 담장 밖으로 나가고 구인준의 집터 및 여염집 8, 9가구가 남쪽 담장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전에 정한 터에 따라 담장을 쌓습니까, 아니면 시문용이 말한 데 따라 쌓습니까? 감히 성상의 결재를 여쭙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다시 김일룡(金馹龍) 등에게 물어서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그리고 장륜의 집 근처에 초수(釐水)가 있다고 하니, 서별궁의 안쪽 담장을 초수 있는 데까지 포함해서 쌓아 초수가 대내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 하였다.
"서별궁의 바깥 담장을 두를 동서 남북의 한계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대개를 살펴 정하여서 입계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어제 담장을 쌓을 터를 살펴보는 일로 다시금 주위를 돌아볼 때 시문용(施文用)이 말하기를 ‘서북쪽의 담장을 장륜(張綸)의 집 뒤쪽 산등성이 우뚝 솟은 곳에서부터 꺾어서 남쪽으로 연하여 남쪽편의 산등성이에 있는 윤빈(尹儐)의 집 동산(東山) 아래를 감돌아 구인준(具仁俊)의 집 앞에서 그치게 하면 지세가 아주 좋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터를 정할 경우 신잡(申磼)의 집 등 몇 집이 서쪽 담장 밖으로 나가고 구인준의 집터 및 여염집 8, 9가구가 남쪽 담장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전에 정한 터에 따라 담장을 쌓습니까, 아니면 시문용이 말한 데 따라 쌓습니까? 감히 성상의 결재를 여쭙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다시 김일룡(金馹龍) 등에게 물어서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그리고 장륜의 집 근처에 초수(釐水)가 있다고 하니, 서별궁의 안쪽 담장을 초수 있는 데까지 포함해서 쌓아 초수가 대내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도감의 공사낭청(公事郞廳) 한 사람을 일을 잘 알고 나이 어리며 부지런한 사람으로 더 차출해서 그로 하여금 즉시 의논해 처리하게 하여 지체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도감의 공사낭청(公事郞廳) 한 사람을 일을 잘 알고 나이 어리며 부지런한 사람으로 더 차출해서 그로 하여금 즉시 의논해 처리하게 하여 지체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인왕산 아래의 신궐은 시문용과 성지의 말에 따라 짓고 서별궁은 김일룡이 말한 바에 따라 지으라고 도감에 말하라."
"인왕산 아래의 신궐은 시문용과 성지의 말에 따라 짓고 서별궁은 김일룡이 말한 바에 따라 지으라고 도감에 말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이번의 이 신궐을 지을 때를 당하여서는 석역(石役)이 아주 커서 여염에서 사다가 쓸만한 곳도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청계부령(淸溪副令) 오(襠)의 집터가 사직동 입구에 있는데, 그 집터의 계체석(階砌石) 1백 10개를 도감에 바쳐서 국용에 보태고자 한다고 합니다. 빈한한 종실이 돈을 받고 팔지 않고 이와 같이 바치고자 하니, 그 뜻이 가상한 바, 권장하는 거조가 있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청계부령은 그 정성이 가상하니 그 값을 준 다음 가자하여서 다른 사람을 권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이번의 이 신궐을 지을 때를 당하여서는 석역(石役)이 아주 커서 여염에서 사다가 쓸만한 곳도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청계부령(淸溪副令) 오(襠)의 집터가 사직동 입구에 있는데, 그 집터의 계체석(階砌石) 1백 10개를 도감에 바쳐서 국용에 보태고자 한다고 합니다. 빈한한 종실이 돈을 받고 팔지 않고 이와 같이 바치고자 하니, 그 뜻이 가상한 바, 권장하는 거조가 있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청계부령은 그 정성이 가상하니 그 값을 준 다음 가자하여서 다른 사람을 권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서별궁의 터를 닦는 길일을 이달 20일로 앞당겨 정하여서 16일에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서별궁의 터를 닦는 길일을 이달 20일로 앞당겨 정하여서 16일에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국가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은 도를 높이고 어진이를 떠받드는 길뿐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조식(曺植)은 문장과 도덕이 실로 백세의 사표(師表)인 바, 다섯 현신043)  들과 더불어서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거행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 성스러운 세상의 흠전(欠典)이 아니겠습니까. 유생 박문환(朴文煥) 등이 스승을 떠받드는 의리를 분발해서 먼길을 달려와 진소하여 경현서원(景賢書院)에 배향(配享)하여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상께서 그들의 성의를 가상히 여겨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는 바, 이는 실로 사림의 크나큰 다행입니다. 지금 오정남(吳挺男)·나의소(羅宜素) 등이 무뢰한 자들로서 이에 감히 선현을 무고하면서 평생동안 하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었으니, 이런 짓을 차마 하는데 무슨 짓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심지어는 박문환 등의 유적(儒籍)을 불태워 성명을 삭제하면서 스승을 떠받드는 거조를 저지하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흉악하고도 참혹하지 않겠습니까. 흉도들이 선현을 무고하고 사림을 무함하는 것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는 바, 신들이 가까이서 모시는 직책에 있으면서 감히 입다물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이 상소와 계사를 해조에 내려서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註 043] 다섯 현신 : 조선조의 뛰어난 유학자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일두(一蠧) 정여창(鄭汝昌),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가리킴.
"국가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은 도를 높이고 어진이를 떠받드는 길뿐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조식(曺植)은 문장과 도덕이 실로 백세의 사표(師表)인 바, 다섯 현신043)  들과 더불어서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거행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 성스러운 세상의 흠전(欠典)이 아니겠습니까.
유생 박문환(朴文煥) 등이 스승을 떠받드는 의리를 분발해서 먼길을 달려와 진소하여 경현서원(景賢書院)에 배향(配享)하여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상께서 그들의 성의를 가상히 여겨 의논하여 아뢰게 하였는 바, 이는 실로 사림의 크나큰 다행입니다.
지금 오정남(吳挺男)·나의소(羅宜素) 등이 무뢰한 자들로서 이에 감히 선현을 무고하면서 평생동안 하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었으니, 이런 짓을 차마 하는데 무슨 짓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심지어는 박문환 등의 유적(儒籍)을 불태워 성명을 삭제하면서 스승을 떠받드는 거조를 저지하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흉악하고도 참혹하지 않겠습니까. 흉도들이 선현을 무고하고 사림을 무함하는 것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는 바, 신들이 가까이서 모시는 직책에 있으면서 감히 입다물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이 상소와 계사를 해조에 내려서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어제 헌부의 나장(羅將)이 떼를 지어 서별궁으로 뛰어들어가 공장이들을 잡아서 무수히 난타하여 부역하는 일꾼과 공장이들이 한꺼번에 흩어지게 하였다. 이것이 어찌 무지한 나졸들이 스스로 한 짓이겠는가. 이것은 반드시 본부의 관원이 지시한 것이다. 비록 사대부의 집이라도 참으로 이와 같이 해서는 안되는데, 더구나 이 별궁은 이미 어소(御所)로 수리하고 있는데이겠는가. 법부는 직책이 시정(時政)을 논집하고 백관을 규찰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 별궁 안으로 난입하여 공장이들을 잡아다가 마음대로 난동을 부리게 한단 말인가. 그 나졸들을 금부로 하여금 일일이 잡아다가 중하게 다스리게 하라. 그리고 공장이들을 잡아다가 장차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를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어제 헌부의 나장(羅將)이 떼를 지어 서별궁으로 뛰어들어가 공장이들을 잡아서 무수히 난타하여 부역하는 일꾼과 공장이들이 한꺼번에 흩어지게 하였다. 이것이 어찌 무지한 나졸들이 스스로 한 짓이겠는가. 이것은 반드시 본부의 관원이 지시한 것이다. 비록 사대부의 집이라도 참으로 이와 같이 해서는 안되는데, 더구나 이 별궁은 이미 어소(御所)로 수리하고 있는데이겠는가. 법부는 직책이 시정(時政)을 논집하고 백관을 규찰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 별궁 안으로 난입하여 공장이들을 잡아다가 마음대로 난동을 부리게 한단 말인가. 그 나졸들을 금부로 하여금 일일이 잡아다가 중하게 다스리게 하라. 그리고 공장이들을 잡아다가 장차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를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대사헌        유경종(柳慶宗)이 아뢰기를,      "전부터 양사(兩司)에 입역하는 조졸(皂卒) 가운데는 간혹 공장이의 직업을 가진 자가 있기도 하였는데, 비록 궁궐을 지을 때라도 잡아다가 부역시키지 않았는바, 전례가 그렇습니다. 나장 박계원(朴戒元)은 현재 본부에서 입역하고 있는데, 영건 도감이 목수로 뽑아 나오기를 독촉하면서 그의 정처(正妻)를 가두기까지 하였습니다. 어제 박계원이 좌기(坐起)할 때 와서 하소연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그 사유를 물어보고자 하여 동료에게 의논하고서 나졸을 시켜서 해당 아전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졸이 한참 지난 뒤에 와서 말하기를 ‘중사(中使)가 결박하고서 때렸는데 겨우 달아났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괴이함을 금치 못하면서 생각하기를 ‘법사의 하인이 비록 죄를 범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도감으로 하여금 통보하고서 죄를 다스리게 하여도 안될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이와 같이 하였으니, 사유를 갖추어 인피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중사가 한 짓은 따질 것조차 없겠기에 서로 상의하고서 중지하였습니다. 그간의 곡절은 이와 같은 데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 삼가 비망기를 보건대, 미안한 전교가 많이 있었습니다. 신들이 비록 아주 형편없기는 하지만 이처럼 큰 역사가 한창 급할 때를 당하여서 어찌 어소(御所)의 공장이들을 잡아갈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모두 본 바로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장관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하는 일 없이 날짜만 보내면서 자신을 탄핵하지 못하였는데, 도리어 엄한 전지를 받았는 바 죄가 더욱 많습니다. 그대로 태연스레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부터 양사(兩司)에 입역하는 조졸(皂卒) 가운데는 간혹 공장이의 직업을 가진 자가 있기도 하였는데, 비록 궁궐을 지을 때라도 잡아다가 부역시키지 않았는바, 전례가 그렇습니다. 나장 박계원(朴戒元)은 현재 본부에서 입역하고 있는데, 영건 도감이 목수로 뽑아 나오기를 독촉하면서 그의 정처(正妻)를 가두기까지 하였습니다. 어제 박계원이 좌기(坐起)할 때 와서 하소연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그 사유를 물어보고자 하여 동료에게 의논하고서 나졸을 시켜서 해당 아전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졸이 한참 지난 뒤에 와서 말하기를 ‘중사(中使)가 결박하고서 때렸는데 겨우 달아났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괴이함을 금치 못하면서 생각하기를 ‘법사의 하인이 비록 죄를 범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도감으로 하여금 통보하고서 죄를 다스리게 하여도 안될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이와 같이 하였으니, 사유를 갖추어 인피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중사가 한 짓은 따질 것조차 없겠기에 서로 상의하고서 중지하였습니다. 그간의 곡절은 이와 같은 데 불과할 뿐입니다.
지금 삼가 비망기를 보건대, 미안한 전교가 많이 있었습니다. 신들이 비록 아주 형편없기는 하지만 이처럼 큰 역사가 한창 급할 때를 당하여서 어찌 어소(御所)의 공장이들을 잡아갈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모두 본 바로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장관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하는 일 없이 날짜만 보내면서 자신을 탄핵하지 못하였는데, 도리어 엄한 전지를 받았는 바 죄가 더욱 많습니다. 그대로 태연스레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의 직을 파척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7월 14일 병자

예조가 아뢰기를, "무오년 초시(初試)를 내년으로 물려 거행하는 일 및 추숭하는 데 따른 별시(別試)를 금년 안으로 날짜를 택해 거행하는 일에 대해 이미 계하하였습니다. 다만 지금 이 관복(冠服)을 하사받은 큰 경사에 대해서도 별시가 있는데, 두 차례의 별시를 올해 안에 다 치루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니 두 과거를 합하여 금년에 치루어서 넉넉하게 사람을 뽑아야겠습니까, 아니면 두 과거를 나누어서 내년에 한 과거를 실시해야겠습니까? 현재 과거에 대해 판하(判下)한 명이 없는데, 전일에 계하하신 별시의 택일을 지금 장차 팔도에 알려야 하겠기에 황공하게도 감히 여쭙는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관복을 아직까지 교외에서 맞이하여 종묘에 고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년에 별도로 한 과거를 실시해서 그 경사에 걸맞게 하라." 하였다.
"무오년 초시(初試)를 내년으로 물려 거행하는 일 및 추숭하는 데 따른 별시(別試)를 금년 안으로 날짜를 택해 거행하는 일에 대해 이미 계하하였습니다. 다만 지금 이 관복(冠服)을 하사받은 큰 경사에 대해서도 별시가 있는데, 두 차례의 별시를 올해 안에 다 치루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니 두 과거를 합하여 금년에 치루어서 넉넉하게 사람을 뽑아야겠습니까, 아니면 두 과거를 나누어서 내년에 한 과거를 실시해야겠습니까?
현재 과거에 대해 판하(判下)한 명이 없는데, 전일에 계하하신 별시의 택일을 지금 장차 팔도에 알려야 하겠기에 황공하게도 감히 여쭙는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관복을 아직까지 교외에서 맞이하여 종묘에 고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년에 별도로 한 과거를 실시해서 그 경사에 걸맞게 하라."
하였다.

 

장악 도감이 아뢰기를, "본원은 다른 각사(各司)에 비할 바가 아닌 것으로, 제향(祭享) 및 일체의 거둥할 때에 필요한 허다한 악기나 공인(工人)의 관복과 기생들이 단장하는 데 쓰는 여러 가지 도구를 모두 본원 안에다 들여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염집에다가 보관할 경우에는, 비단 화재가 염려스러울 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생과 공인들이 연습을 할 때에는 반드시 넓고 툭트인 곳이어야만 음악을 익힐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침향산을 넣어 둔 것도 옮겨서 설치하기 어려우니 몹시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니 본원의 빈터를 다른 각사의 전복(典僕)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 지당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본원은 다른 각사(各司)에 비할 바가 아닌 것으로, 제향(祭享) 및 일체의 거둥할 때에 필요한 허다한 악기나 공인(工人)의 관복과 기생들이 단장하는 데 쓰는 여러 가지 도구를 모두 본원 안에다 들여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염집에다가 보관할 경우에는, 비단 화재가 염려스러울 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생과 공인들이 연습을 할 때에는 반드시 넓고 툭트인 곳이어야만 음악을 익힐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침향산을 넣어 둔 것도 옮겨서 설치하기 어려우니 몹시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니 본원의 빈터를 다른 각사의 전복(典僕)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 지당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홍문관이 아뢰기를, "도총부는 숙위(宿衛)를 전담하는 곳으로, 평상시에는 입직(入直)하고 거둥시에는 연(輦)을 호위하므로, 전례에 일찍이 본관의 장관이 겸대한 적이 없었으며, 혹 이미 겸대하고 있더라도 본직에 제수됨에 미쳐서는 감하(減下)하기를 계청하는 것이 이제까지 전해져 온 고사입니다. 본관은 경연을 담당하는 외에도 교정(校正)하기 위해 한 곳에 모두 모여서 처치하는 등의 일이 있고 동료 관원이 유고(有故)할 경우에는 때때로 입직하기도 하기 때문에 형세상 도총부의 직임을 겸하여 살피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거둥할 때에는 사체에 있어서 방애되는 바가 있습니다. 부제학 이호신(李好信)이 겸대한 부총관의 직임을 예전 규례에 의거하여 감하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도총부는 숙위(宿衛)를 전담하는 곳으로, 평상시에는 입직(入直)하고 거둥시에는 연(輦)을 호위하므로, 전례에 일찍이 본관의 장관이 겸대한 적이 없었으며, 혹 이미 겸대하고 있더라도 본직에 제수됨에 미쳐서는 감하(減下)하기를 계청하는 것이 이제까지 전해져 온 고사입니다. 본관은 경연을 담당하는 외에도 교정(校正)하기 위해 한 곳에 모두 모여서 처치하는 등의 일이 있고 동료 관원이 유고(有故)할 경우에는 때때로 입직하기도 하기 때문에 형세상 도총부의 직임을 겸하여 살피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거둥할 때에는 사체에 있어서 방애되는 바가 있습니다. 부제학 이호신(李好信)이 겸대한 부총관의 직임을 예전 규례에 의거하여 감하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장령 강린(姜繗), 지평 이창정(李昌庭)·최호(崔濩)가 아뢰기를, "이달 12일에 본부의 나졸이‘도감의 해당 아전을 불러오는 일로 갔더니 중사(中使)가 결박하고서 때렸는데, 겨우 빠져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그간의 곡절을 듣고 괴이함을 금치 못하면서 ‘법사의 하인이 비록 죄를 범했다하더라도 중관(中官)은 도감으로 하여금 본부에 통보하고서 죄주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어찌 마음대로 결박하고서 난타한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동료들과 함께 사유를 갖추어 인피하여서 체면을 중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환시(宦寺)가 한 짓이라서 따질 것도 못 되기에 상의하고서 중지하였습니다. 삼가 어제 비망기를 보건대 미안스런 분부가 많이 있었는바, 결단코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서 물론을 기다렸다.
"이달 12일에 본부의 나졸이‘도감의 해당 아전을 불러오는 일로 갔더니 중사(中使)가 결박하고서 때렸는데, 겨우 빠져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그간의 곡절을 듣고 괴이함을 금치 못하면서 ‘법사의 하인이 비록 죄를 범했다하더라도 중관(中官)은 도감으로 하여금 본부에 통보하고서 죄주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어찌 마음대로 결박하고서 난타한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동료들과 함께 사유를 갖추어 인피하여서 체면을 중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환시(宦寺)가 한 짓이라서 따질 것도 못 되기에 상의하고서 중지하였습니다.
삼가 어제 비망기를 보건대 미안스런 분부가 많이 있었는바, 결단코 뻔뻔스럽게 그대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서 물론을 기다렸다.

 

집의 남이준(南以俊)이 아뢰기를, "삼가 엄한 분부를 보건대 놀랍고 황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본직에 있으면서 사은(謝恩)이 늦었다는 이유로 인피하였기 때문에 당초 본부에서 아무 일 때문에 나졸을 아무 곳에 보내었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나졸을 보낼 때에는 신이 그 자리에 참여해 있었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지금 비로소 와서 인피하니, 신의 죄가 더욱 큽니다.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엄한 분부를 보건대 놀랍고 황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본직에 있으면서 사은(謝恩)이 늦었다는 이유로 인피하였기 때문에 당초 본부에서 아무 일 때문에 나졸을 아무 곳에 보내었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나졸을 보낼 때에는 신이 그 자리에 참여해 있었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지금 비로소 와서 인피하니, 신의 죄가 더욱 큽니다.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라도 경시관(全羅道京試官)이 서계하였다. "강진 유생(康津儒生) 문여개(文如凱)와 순천 유생(順天儒生) 이지흥(李智興) 등이 시장(試場)의 울타리를 불태우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조정으로 하여금 조처하게 하소서."
"강진 유생(康津儒生) 문여개(文如凱)와 순천 유생(順天儒生) 이지흥(李智興) 등이 시장(試場)의 울타리를 불태우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조정으로 하여금 조처하게 하소서."

 

장령 곽천호(郭天豪)가 아뢰기를, "신은 복제(服制)로 집에 있었던 탓에 나졸에 대한 일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신 역시 본부의 관원입니다. 그런데 감히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은 복제(服制)로 집에 있었던 탓에 나졸에 대한 일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신 역시 본부의 관원입니다. 그런데 감히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신의 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7월 15일 정축

비변사가 아뢰기를, "형조 판서 이경전(李慶全)이 계사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대개 ‘모름지기 주사(舟師)가 파하기 전에 내려가도록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상세히 헤아려서 결정하게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영남(嶺南)의 파방(罷防)은 8월 15일에 있고 호남의 파방은 8월 그믐에 있습니다. 그러니 계사에서 말한 대로 파방하기 전에 내려가서 순시하면서 검칙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례(大禮)를 치룬 뒤에 내년 봄 사이에 내려가서 요리하게 하라." 하였다.
"형조 판서 이경전(李慶全)이 계사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대개 ‘모름지기 주사(舟師)가 파하기 전에 내려가도록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상세히 헤아려서 결정하게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영남(嶺南)의 파방(罷防)은 8월 15일에 있고 호남의 파방은 8월 그믐에 있습니다. 그러니 계사에서 말한 대로 파방하기 전에 내려가서 순시하면서 검칙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례(大禮)를 치룬 뒤에 내년 봄 사이에 내려가서 요리하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내섬시의 전복(典僕)들은 본시(本寺)가 옮겨가는 곳으로 그대로 옮겨가 살게 하고, 다른 나머지 거민(居民)들이 들어가 살 곳은 동평관(東平館)의 옛터나 혹 아무 곳의 빈터로 정하여 살게 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내섬시의 전복(典僕)들은 본시(本寺)가 옮겨가는 곳으로 그대로 옮겨가 살게 하고, 다른 나머지 거민(居民)들이 들어가 살 곳은 동평관(東平館)의 옛터나 혹 아무 곳의 빈터로 정하여 살게 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관복(冠服)을 맞이하는 예를 8월 10일에 행할 경우 7일에 행하는 배표례(拜表禮)와 반드시 도중에 서로 만나게 될 것이며, 인마(人馬) 역시 서로 교대하도록 주선할 수 없습니다. 배표례를 8월 보름 이후로 조금 물려서 정하라."
"관복(冠服)을 맞이하는 예를 8월 10일에 행할 경우 7일에 행하는 배표례(拜表禮)와 반드시 도중에 서로 만나게 될 것이며, 인마(人馬) 역시 서로 교대하도록 주선할 수 없습니다. 배표례를 8월 보름 이후로 조금 물려서 정하라."

 

전일에 상인(喪人) 김자점(金自點)이 올린 상소에 대해 답하였다. "청룡사(靑龍寺)는 바로 조종조의 내원당(內願堂)이니 그 앞산에는 장사지내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듯하다. 더구나 김탁(金琢)이 비록 훈신(勳臣)이라고는 하나 허잠(許潛) 역시 훈신이다. 묘산(墓山)은 친족이 아니면 장사지내는 것이 부당하니 그로 하여금 다른 산의 빈 곳에다 장사지내게 하라."
"청룡사(靑龍寺)는 바로 조종조의 내원당(內願堂)이니 그 앞산에는 장사지내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듯하다. 더구나 김탁(金琢)이 비록 훈신(勳臣)이라고는 하나 허잠(許潛) 역시 훈신이다. 묘산(墓山)은 친족이 아니면 장사지내는 것이 부당하니 그로 하여금 다른 산의 빈 곳에다 장사지내게 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금년에 재상경차관(災傷敬差官)이 싸가지고 내려갈 사목(事目)을 전례에 의거하여 마련해서 각도의 감사에게 행이(行移)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금년에는 각도에 벌목하고 끌어내리는 소요스러운 일이 있으니 경차관을 보내지 말라. 그리고 각도 도사(都事)로 하여금 다시 살펴서 하게 하되,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금년에 재상경차관(災傷敬差官)이 싸가지고 내려갈 사목(事目)을 전례에 의거하여 마련해서 각도의 감사에게 행이(行移)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금년에는 각도에 벌목하고 끌어내리는 소요스러운 일이 있으니 경차관을 보내지 말라. 그리고 각도 도사(都事)로 하여금 다시 살펴서 하게 하되,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헌부가 모두 인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환관이 한 짓이라 애당초 따지지 않고 상의하고서 정지하였으니, 조금도 잘못이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서 알지 못하여 말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에 대해 해명하는 바탕으로 삼았는바, 대간의 풍채가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복제(服制)로 인해 집에 있어서 그 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더욱더 피혐할 것이 없습니다. 대사헌 유경종, 장령 강린, 지평 이창정·최호, 장령 곽천호는 출사시키고, 집의 남이준은 체차하소서." 하였다.
"헌부가 모두 인혐하고서 물러갔습니다. 환관이 한 짓이라 애당초 따지지 않고 상의하고서 정지하였으니, 조금도 잘못이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서 알지 못하여 말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에 대해 해명하는 바탕으로 삼았는바, 대간의 풍채가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복제(服制)로 인해 집에 있어서 그 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더욱더 피혐할 것이 없습니다. 대사헌 유경종, 장령 강린, 지평 이창정·최호, 장령 곽천호는 출사시키고, 집의 남이준은 체차하소서."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북병사(北兵使) 이수일(李守一)은 포도 대장이 되었을 적에 대간이 파직하라고 논계하였는데, 이에 대한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아, 이 때문에 사은(謝恩)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추방(秋防)이 점차 가까워 오고 오랑캐의 동정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새 장수와 구 장수가 교대할 즈음에 일에 소루한 점이 많으니 새 병사가 내려가는 것이 하루가 급합니다. 그러니 이수일에 대해서 급속히 처치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병조에서 비록 조사하여 아뢰지 않았더라도 이수일로 하여금 속히 부임하게 하라." 하였다.
"북병사(北兵使) 이수일(李守一)은 포도 대장이 되었을 적에 대간이 파직하라고 논계하였는데, 이에 대한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아, 이 때문에 사은(謝恩)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추방(秋防)이 점차 가까워 오고 오랑캐의 동정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새 장수와 구 장수가 교대할 즈음에 일에 소루한 점이 많으니 새 병사가 내려가는 것이 하루가 급합니다. 그러니 이수일에 대해서 급속히 처치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병조에서 비록 조사하여 아뢰지 않았더라도 이수일로 하여금 속히 부임하게 하라."
하였다.

 

금부의 민진원(閔震遠) 등에 관한 공사에 대해 판부하였는데, 거기에, 민진원 등은 형추(刑推)하는 것을 면제하고 파직한 다음 풀어주고 김경(金敬) 등은 형추를 면제하고 조율(照律)하라고 하였다.

 

7월 16일 무인

홍문관 행 부제학 이호신(李好信), 직제학 박정길(朴鼎吉), 전한 정광경(鄭廣敬), 부교리 정준(鄭遵), 부수찬 한희(韓暿)·서국정(徐國楨), 박사 조유선(趙裕善) 등이 상차하기를, "삼가 어진이를 떠받들고 덕있는 이를 숭상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있어서 급선무인데, 선비들의 추향이 바르게 된 다음에야 어진이를 떠받들 수 있고 덕있는 이를 숭상할 수 있어서 국론이 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조식(曹植)은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에 힘쓰고 정성과 공경의 도에 마음을 다하여서 먼 시골에 물러나 은거해 있으면서 후학들의 모범이 되었으니, 우리 유학에 공이 있는 것이 아주 크고도 깊습니다. 우리 성상대에 이르러서는 시호를 추중하고 관작을 높이 올려서 어진이를 받드는 도리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에 선비들이 내달리고 사방에서 움직여서 종사(從祀)하라는 청을 원근에서 모두 올려 장차 배위(配位)에 올리라는 명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괴귀스러운 무리들이 감히 그들끼리 서로 다투면서 선현에까지 욕이 미치게 할 줄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심지어는 그가 평생 동안 하지도 않았던 말을 만들어내어 마구 헐뜯고 망령되이 비방하였으며, 이미 어진이를 높이 떠받드는 상소를 배척하고, 또 유생들의 유적(儒籍)을 불태우기까지 하였습니다. 인심이 아름답지 못함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향리에서 스스로 학자인 체하는 선비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행실과 처신을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조식은 일생 동안 도학(道學)의 바름을 지킴이 푸른 하늘의 밝은 태양과 같아서, 종들조차도 모두 그가 맑고 밝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내용을 모두 알았다.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삼가 어진이를 떠받들고 덕있는 이를 숭상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있어서 급선무인데, 선비들의 추향이 바르게 된 다음에야 어진이를 떠받들 수 있고 덕있는 이를 숭상할 수 있어서 국론이 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조식(曹植)은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에 힘쓰고 정성과 공경의 도에 마음을 다하여서 먼 시골에 물러나 은거해 있으면서 후학들의 모범이 되었으니, 우리 유학에 공이 있는 것이 아주 크고도 깊습니다. 우리 성상대에 이르러서는 시호를 추중하고 관작을 높이 올려서 어진이를 받드는 도리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에 선비들이 내달리고 사방에서 움직여서 종사(從祀)하라는 청을 원근에서 모두 올려 장차 배위(配位)에 올리라는 명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괴귀스러운 무리들이 감히 그들끼리 서로 다투면서 선현에까지 욕이 미치게 할 줄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심지어는 그가 평생 동안 하지도 않았던 말을 만들어내어 마구 헐뜯고 망령되이 비방하였으며, 이미 어진이를 높이 떠받드는 상소를 배척하고, 또 유생들의 유적(儒籍)을 불태우기까지 하였습니다. 인심이 아름답지 못함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향리에서 스스로 학자인 체하는 선비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행실과 처신을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조식은 일생 동안 도학(道學)의 바름을 지킴이 푸른 하늘의 밝은 태양과 같아서, 종들조차도 모두 그가 맑고 밝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내용을 모두 알았다.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대사간 이대엽(李大燁), 헌납 한옥(韓玉), 정언 황덕부(黃德符)·채승선(蔡承先)이 아뢰기를, "남이준이 비록 새로 제수된 관원이라고는 하나 이에 상회례(相會禮)를 하는 자리에 참여하였으니,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인피한 내용 가운데 ‘다시 나졸을 보낼 때에는 그 자리에 참여해 있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동참한 것입니다. 이미 동참하고서는 도리어 ‘알지 못하여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 해명할 계책을 하여, 동료들에게 허물을 돌린 채 자신은 잘못이 없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의 속셈은 분명하여 가리울 수 없기에 신들이 어제 모두 모여서 처치할 즈음에 상의하고서 체차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상의 비답에 ‘처치가 잘못되었다. 남이준은 체차하지 말라.’고 전교하시었는 바, 신들은 뻔뻔스럽게 그대로 언관의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상이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남이준이 비록 새로 제수된 관원이라고는 하나 이에 상회례(相會禮)를 하는 자리에 참여하였으니,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인피한 내용 가운데 ‘다시 나졸을 보낼 때에는 그 자리에 참여해 있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동참한 것입니다. 이미 동참하고서는 도리어 ‘알지 못하여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 해명할 계책을 하여, 동료들에게 허물을 돌린 채 자신은 잘못이 없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의 속셈은 분명하여 가리울 수 없기에 신들이 어제 모두 모여서 처치할 즈음에 상의하고서 체차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상의 비답에 ‘처치가 잘못되었다. 남이준은 체차하지 말라.’고 전교하시었는 바, 신들은 뻔뻔스럽게 그대로 언관의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상이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병조 판서 박승종(朴承宗) 등이 아뢰었다. "지난해 역적의 변고로 인하여 우졸(郵卒)들을 대궐 아래에서 대기하게 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심하게 병들거나 늙은 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여러 차례 정장(呈狀)함으로 인하여 간혹 면제하여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이미 1년이 지나 역옥(逆獄)이 다 끝나서 현재 별로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우졸이 오랫동안 서울에 머물러 있으면서 구걸하여 연명하고 있어 원통함을 하소연함이 날마다 이르고 있으니, 외방의 인마(人馬)를 풀어보내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지난해 역적의 변고로 인하여 우졸(郵卒)들을 대궐 아래에서 대기하게 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심하게 병들거나 늙은 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여러 차례 정장(呈狀)함으로 인하여 간혹 면제하여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이미 1년이 지나 역옥(逆獄)이 다 끝나서 현재 별로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우졸이 오랫동안 서울에 머물러 있으면서 구걸하여 연명하고 있어 원통함을 하소연함이 날마다 이르고 있으니, 외방의 인마(人馬)를 풀어보내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전교하였다. "이번의 이 영건하는 역사는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인데, 경장인(京匠人)들에 대해서 도감에서도 손을 써서 뽑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법관들은 도리어 장인들을 불러 가기까지 하니, 나랏일이 한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건하는 역사가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서 더욱더 해이하게 될 것이다. 한성부로 하여금 1, 2년을 기한으로 해 집 짓는 것을 엄하게 금지시키고, 때때로 적간하여 아뢰게 하라. 이 일을 각별히 거행하라."
"이번의 이 영건하는 역사는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인데, 경장인(京匠人)들에 대해서 도감에서도 손을 써서 뽑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법관들은 도리어 장인들을 불러 가기까지 하니, 나랏일이 한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건하는 역사가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서 더욱더 해이하게 될 것이다. 한성부로 하여금 1, 2년을 기한으로 해 집 짓는 것을 엄하게 금지시키고, 때때로 적간하여 아뢰게 하라. 이 일을 각별히 거행하라."

 

전교하였다. "헌부의 나졸 가운데 서별궁에 뛰어들어가 패만스러운 말을 마구 하면서 거리낌없이 난동을 부린 자가 4명인데, 지금 단지 2명에 대해서만 승전을 받들었으니, 몹시 놀랍다. 2명도 함께 잡아가두고 승전을 받들어서 엄하게 국문한 뒤 죄를 정하라."
"헌부의 나졸 가운데 서별궁에 뛰어들어가 패만스러운 말을 마구 하면서 거리낌없이 난동을 부린 자가 4명인데, 지금 단지 2명에 대해서만 승전을 받들었으니, 몹시 놀랍다. 2명도 함께 잡아가두고 승전을 받들어서 엄하게 국문한 뒤 죄를 정하라."

 

7월 17일 기묘

장령 곽천호·강린, 지평 이창정·최호가 아뢰기를, "남이준을 체차하라고 청한 것은 잘못이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그러니 신들이 출사(出仕)한 것 역시 잘못을 면치 못한 것입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남이준을 체차하라고 청한 것은 잘못이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그러니 신들이 출사(出仕)한 것 역시 잘못을 면치 못한 것입니다. 신들의 직을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집의 남이준을 어제 명초(命招)하였으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규(常規)를 가지고 말한다면 응당 추고하여야 하나, 이 사람은 대간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남이준은 이미 간원의 처치를 받았으니, 비록 체차하지 말라는 전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패초에 나오지 않은 것은 그 뜻이 있는 것이다. 어찌 상규로 책할 수 있겠는가. 아뢴 내용은 상세히 살피지 못한 것인 듯하다." 하였다.
"집의 남이준을 어제 명초(命招)하였으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규(常規)를 가지고 말한다면 응당 추고하여야 하나, 이 사람은 대간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남이준은 이미 간원의 처치를 받았으니, 비록 체차하지 말라는 전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패초에 나오지 않은 것은 그 뜻이 있는 것이다. 어찌 상규로 책할 수 있겠는가. 아뢴 내용은 상세히 살피지 못한 것인 듯하다."
하였다.

 

7월 18일 경진

유학(幼學) 김시헌(金時獻) 등이 상소하여 정운공신(定運功臣)을 더 녹훈하기를 청하였는데, 답하기를, "녹훈을 감정할 때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정운(定運)은 바로 정인홍이 유영경을 죽이기를 청한 데 대한 공신의 칭호이다. 정인홍의 뒤를 이어 상소한 자가 10인인데, 당초에 단지 3인만 녹공하였으므로 나머지 7인이 김시헌을 사주하여 따지게 한 것이다.】
"녹훈을 감정할 때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정운(定運)은 바로 정인홍이 유영경을 죽이기를 청한 데 대한 공신의 칭호이다. 정인홍의 뒤를 이어 상소한 자가 10인인데, 당초에 단지 3인만 녹공하였으므로 나머지 7인이 김시헌을 사주하여 따지게 한 것이다.】

 

7월 19일 신사

사헌부가 아뢰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의 급선무는 어진이를 떠받드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실로 사습(士習)에서 말미암는 것으로, 사습이 바르게 된 뒤에야 치도가 융성해지는 법입니다. 선정신 조식은 시골로 물러나 은거해 있으면서 도와 덕을 이루고 세워 한때의 종장(宗匠)이 되었고 후학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에 성조(聖朝)에서 표창하여 시호를 내리고 관작을 올렸으며, 사문(斯文)이 흥기되고 다사(多士)들이 고무되어, 종사(從祀)하라는 청을 이미 진달하였으며, 배위(配位)에 올리라는 명이 곧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괴귀(怪鬼)스러운 무리들이 감히 사사로운 싸움을 가지고 선현에게까지 욕을 미치게 해, 거짓을 날조하여 헐뜯음이 끝이 없습니다. 이미 유생의 상소를 배척하고 또 원적(院籍)을 불태웠는바, 인심이 나쁨에 대해 통탄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런데도 치죄하지 않는다면 선비들의 습속이 바르지 않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아서, 어진이를 떠받드는 실제가 미진하게 되고 다스리는 방도가 어그러지게 될 것입니다. 속히 오정남(吳挺男)과 나의소(羅宜素) 등이 선현을 무고한 죄를 바루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의 급선무는 어진이를 떠받드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실로 사습(士習)에서 말미암는 것으로, 사습이 바르게 된 뒤에야 치도가 융성해지는 법입니다.
선정신 조식은 시골로 물러나 은거해 있으면서 도와 덕을 이루고 세워 한때의 종장(宗匠)이 되었고 후학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에 성조(聖朝)에서 표창하여 시호를 내리고 관작을 올렸으며, 사문(斯文)이 흥기되고 다사(多士)들이 고무되어, 종사(從祀)하라는 청을 이미 진달하였으며, 배위(配位)에 올리라는 명이 곧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괴귀(怪鬼)스러운 무리들이 감히 사사로운 싸움을 가지고 선현에게까지 욕을 미치게 해, 거짓을 날조하여 헐뜯음이 끝이 없습니다. 이미 유생의 상소를 배척하고 또 원적(院籍)을 불태웠는바, 인심이 나쁨에 대해 통탄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런데도 치죄하지 않는다면 선비들의 습속이 바르지 않고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아서, 어진이를 떠받드는 실제가 미진하게 되고 다스리는 방도가 어그러지게 될 것입니다. 속히 오정남(吳挺男)과 나의소(羅宜素) 등이 선현을 무고한 죄를 바루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사복시가 아뢰기를, "각도에서 삼명일(三名日)에 봉진하는 말이 임금이 타기에 합당하다면 비록 중한 값을 주더라도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근년 들어 봉진하는 말이 점차 전만 못한데도 그 값은 전보다 점점 더 많아져서, 처음에는 2동(同)으로 값을 정했었는데 지금은 8동이나 됩니다. 어찌 말 한 마리의 값이 이와 같이 많은 데 이른단 말입니까. 비록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라 해도 그 값이 반드시 이와 같은 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천리마도 아닌 데이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외방에서 값을 주는 수가 강원도는 4동이고 다른 도는 6동이며, 평안도는 8동이라 하니, 말이 안됩니다. 값이 높아질수록 말은 더욱더 나쁜 바, 그 사이의 곡절은 감히 다 진달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값으로 주는 것이 귀신이 실어다주는 것이 아닐진대 이와 같이 지나치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더구나 한 자 한 필도 모두 백성들의 힘에서 나온 것인 데이겠습니까. 일 년에 바치는 삼명일(三名日) 및 별례(別例)의 봉진 말 값을 팔도를 통틀어서 계산하면 무려 수백 동이나 됩니다. 그러니 백성들의 힘이 고갈됨이 극도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내구(內廐)를 둘러보면 좋은 말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연전에 값의 다소를 참작해 정하여서, 내구에 뽑아들인 것에 대해서만 그 값을 더 주기를 허락하는 것으로 계하받아 명백하고도 정녕하게 공문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도 외방에서는 한결같이 사정(私情)을 따라서 값을 내도록 독촉해서 반드시 그들의 청을 채워주려고 가두고 매질하여 백성들이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니, 제때에 미쳐 변통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봉진한 말은 한결같이 노둔하니, 감사는 추고하고 봉진관은 파직하여 일체 사목(事目)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나, 허다한 각 관원들을 감히 한꺼번에 파직하라고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뒷날에 성상께서 결정하시기를 기다립 니다. 인하여 생각건대 백성들의 고혈을 뽑아내어서 수를 더하여서 지나치게 많이 준다면 응당 받아야 할 자도 반드시 미안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강원도의 예에 의거해서 주는 수를 사실대로 치계하게 해서 이를 근거로 사고(査考)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말이 노둔한데도 값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는, 봉진한 수령은 파직하고 감사는 중한 쪽으로 추고하되, 모두 물간사전(勿訶赦前)하게 하소서. 이상의 내용으로 파발마를 보내어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봉진관은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각도에서 삼명일(三名日)에 봉진하는 말이 임금이 타기에 합당하다면 비록 중한 값을 주더라도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근년 들어 봉진하는 말이 점차 전만 못한데도 그 값은 전보다 점점 더 많아져서, 처음에는 2동(同)으로 값을 정했었는데 지금은 8동이나 됩니다. 어찌 말 한 마리의 값이 이와 같이 많은 데 이른단 말입니까. 비록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라 해도 그 값이 반드시 이와 같은 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천리마도 아닌 데이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외방에서 값을 주는 수가 강원도는 4동이고 다른 도는 6동이며, 평안도는 8동이라 하니, 말이 안됩니다. 값이 높아질수록 말은 더욱더 나쁜 바, 그 사이의 곡절은 감히 다 진달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값으로 주는 것이 귀신이 실어다주는 것이 아닐진대 이와 같이 지나치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더구나 한 자 한 필도 모두 백성들의 힘에서 나온 것인 데이겠습니까.
일 년에 바치는 삼명일(三名日) 및 별례(別例)의 봉진 말 값을 팔도를 통틀어서 계산하면 무려 수백 동이나 됩니다. 그러니 백성들의 힘이 고갈됨이 극도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내구(內廐)를 둘러보면 좋은 말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연전에 값의 다소를 참작해 정하여서, 내구에 뽑아들인 것에 대해서만 그 값을 더 주기를 허락하는 것으로 계하받아 명백하고도 정녕하게 공문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도 외방에서는 한결같이 사정(私情)을 따라서 값을 내도록 독촉해서 반드시 그들의 청을 채워주려고 가두고 매질하여 백성들이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니, 제때에 미쳐 변통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봉진한 말은 한결같이 노둔하니, 감사는 추고하고 봉진관은 파직하여 일체 사목(事目)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나, 허다한 각 관원들을 감히 한꺼번에 파직하라고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뒷날에 성상께서 결정하시기를 기다립 니다.
인하여 생각건대 백성들의 고혈을 뽑아내어서 수를 더하여서 지나치게 많이 준다면 응당 받아야 할 자도 반드시 미안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강원도의 예에 의거해서 주는 수를 사실대로 치계하게 해서 이를 근거로 사고(査考)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말이 노둔한데도 값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는, 봉진한 수령은 파직하고 감사는 중한 쪽으로 추고하되, 모두 물간사전(勿訶赦前)하게 하소서. 이상의 내용으로 파발마를 보내어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봉진관은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문과(文科) 이소(二所)의 시관(試官) 임성지(任性之)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오늘 중장(中場)에서 부(賦)와 표(表)의 제목을 내어 제판(題板)에다 걸자, 선비들이 와서 제목을 고치기를 청하였는데, 혹 ‘사사로이 이 제목을 접하여서 지어본 것이다.’느니, 혹 ‘「동인(東人)」에 있는 것이다.’느니, ‘향시(鄕試)에서 일찍이 출제되었던 제목이다.’고 하면서, 출제하면 문득 고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신들이 한결같이 유생들의 말에 따라서 청하면 그 즉시 고쳤습니다. 그런데 계단 아래 서쪽편에 앉아 있던 유생 한두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큰소리로 통곡하면서 혹 팔뚝을 걷어붙이거나 두건을 벗은 채 장옥(場屋)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허언을 조작하기를 ‘이 제목은 아주 어려우니, 이것은 반드시 시관이 장외(場外)에서 미리 낸 제목이다.’고 하면서 시관을 능욕하기를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다른 유생들 가운데 그대로 앉아서 짓고자 하는 자가 10분의 7은 되었는데, 나이 어린 무뢰배 10여 인이 앉아서 짓고자 하는 유생을 몰아내면서 말하기를 ‘시관 역시 파장(罷場)하고자 한다고 하니, 너희들이 진정시키고자 하나 진정시킬 수 있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크게 소리치면서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앉아서 제술하는 자는 시관의 아들이다.’고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진정시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송시길(宋時吉)과 신집(愼㙫) 등 6인이 문을 지키는 군사를 마구 때리고 앞장서서 장옥을 무너뜨리면서 문을 부수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온 과장 안의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우왕좌왕하여 마치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전고에 없던 변고입니다. 대개 근래에는 선비들의 습속이 패악스러워 낙방한 유생들이 으레 장옥에서 사사로움을 부렸다는 비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이런 비방이 있을까 염려하여 응판관(應辦官)으로 하여금 《사문유취(事文類聚)》와 《송감(宋鑑)》 등을 가져오게 하여 무식한 군사를 시켜서 아무 곳이나 뽑게 한 다음 세 시관이 정좌하여 서로 번갈아 가면서 출제하게 해 그 사이에 추호도 사사로움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썽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일이 없는 데에서 일을 만들어 내어, 한 사람이 떠들어 대자 열 사람이 호응하여, 끝내는 온 장내가 동요하여 뒤죽박죽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록 신들이 형편없는 탓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선비들의 습속이 패악스럽기가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먼저 앞장선 자 5, 6인과 장옥을 무너뜨리고 나갈 즈음에 금난관(禁亂官)을 잡고 장옥을 무너뜨리고 나간 자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제술하게 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앞장 선 유생들은 모두 잡아다가 추고하라." 하였다. 【이 당시에 과거장이 당파를 끌어모아 은혜를 파는 기화(奇貨)가 되어, 강경(講經)의 경우에는 일곱 개의 대문(大文)을 미리 출제하고, 제술의 경우에는 시제(試題)를 미리 내어, 비록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과거에 급제하기를 지푸라기 줍는 것처럼 쉽게 하였다. 이번의 과거시험에서 임성지(任性之) 등이 그의 당파들과 9개의 제목을 내기로 미리 약속하고는 그들로 하여금 대신 지어 익숙하게 하였는데, 그 말이 먼저 누설되어 거자(擧子)들 가운데 아는 자가 많이 있었다. 과거장을 열음에 미쳐서는 과연 그러하여, 한 제목을 내고 다시 고쳐서 다른 제목을 내어 9개의 제목을 내었는데, 모두 들은 것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에 과거장이 시끌벅쩍해지면서 박장대소하였다. 선비들 가운데 유식한 자들은 뜨락에 단정히 앉아 있으면서 날이 저물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기운이 팔팔한 나이 어린 자들 50여 명이 먼저 나가버렸다. 그러자 임성지 등이 드디어 사실을 날조하여서 아뢴 것이다.】
"신들이 오늘 중장(中場)에서 부(賦)와 표(表)의 제목을 내어 제판(題板)에다 걸자, 선비들이 와서 제목을 고치기를 청하였는데, 혹 ‘사사로이 이 제목을 접하여서 지어본 것이다.’느니, 혹 ‘「동인(東人)」에 있는 것이다.’느니, ‘향시(鄕試)에서 일찍이 출제되었던 제목이다.’고 하면서, 출제하면 문득 고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신들이 한결같이 유생들의 말에 따라서 청하면 그 즉시 고쳤습니다. 그런데 계단 아래 서쪽편에 앉아 있던 유생 한두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큰소리로 통곡하면서 혹 팔뚝을 걷어붙이거나 두건을 벗은 채 장옥(場屋)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허언을 조작하기를 ‘이 제목은 아주 어려우니, 이것은 반드시 시관이 장외(場外)에서 미리 낸 제목이다.’고 하면서 시관을 능욕하기를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다른 유생들 가운데 그대로 앉아서 짓고자 하는 자가 10분의 7은 되었는데, 나이 어린 무뢰배 10여 인이 앉아서 짓고자 하는 유생을 몰아내면서 말하기를 ‘시관 역시 파장(罷場)하고자 한다고 하니, 너희들이 진정시키고자 하나 진정시킬 수 있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크게 소리치면서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앉아서 제술하는 자는 시관의 아들이다.’고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진정시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송시길(宋時吉)과 신집(愼㙫) 등 6인이 문을 지키는 군사를 마구 때리고 앞장서서 장옥을 무너뜨리면서 문을 부수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온 과장 안의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우왕좌왕하여 마치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전고에 없던 변고입니다.
대개 근래에는 선비들의 습속이 패악스러워 낙방한 유생들이 으레 장옥에서 사사로움을 부렸다는 비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이런 비방이 있을까 염려하여 응판관(應辦官)으로 하여금 《사문유취(事文類聚)》와 《송감(宋鑑)》 등을 가져오게 하여 무식한 군사를 시켜서 아무 곳이나 뽑게 한 다음 세 시관이 정좌하여 서로 번갈아 가면서 출제하게 해 그 사이에 추호도 사사로움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썽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일이 없는 데에서 일을 만들어 내어, 한 사람이 떠들어 대자 열 사람이 호응하여, 끝내는 온 장내가 동요하여 뒤죽박죽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록 신들이 형편없는 탓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선비들의 습속이 패악스럽기가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몹시 한심스럽습니다. 먼저 앞장선 자 5, 6인과 장옥을 무너뜨리고 나갈 즈음에 금난관(禁亂官)을 잡고 장옥을 무너뜨리고 나간 자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제술하게 하라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앞장 선 유생들은 모두 잡아다가 추고하라."
하였다. 【이 당시에 과거장이 당파를 끌어모아 은혜를 파는 기화(奇貨)가 되어, 강경(講經)의 경우에는 일곱 개의 대문(大文)을 미리 출제하고, 제술의 경우에는 시제(試題)를 미리 내어, 비록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과거에 급제하기를 지푸라기 줍는 것처럼 쉽게 하였다. 이번의 과거시험에서 임성지(任性之) 등이 그의 당파들과 9개의 제목을 내기로 미리 약속하고는 그들로 하여금 대신 지어 익숙하게 하였는데, 그 말이 먼저 누설되어 거자(擧子)들 가운데 아는 자가 많이 있었다. 과거장을 열음에 미쳐서는 과연 그러하여, 한 제목을 내고 다시 고쳐서 다른 제목을 내어 9개의 제목을 내었는데, 모두 들은 것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에 과거장이 시끌벅쩍해지면서 박장대소하였다. 선비들 가운데 유식한 자들은 뜨락에 단정히 앉아 있으면서 날이 저물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기운이 팔팔한 나이 어린 자들 50여 명이 먼저 나가버렸다. 그러자 임성지 등이 드디어 사실을 날조하여서 아뢴 것이다.】

 

7월 20일 임오

함경도 갑산부(甲山府)에 흰나비가 떼를 지어서 동북쪽에서 날아와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긴 뱀의 형상과 같았으며, 아주 많아서 하늘을 가리운 채 날아갔는데, 3일 동안이나 그치지 않았다. 또 북청부(北靑府)에서 흰나비가 떼를 지어 북쪽에서 날아와 남쪽 바닷가를 향해 날아갔는데, 연 이틀 동안 하늘을 가리운 채 날아갔다. 남병사(南兵使) 현즙(玄楫)이 치계하여 아뢰었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오정남·나의소 등이 선현을 모욕하고 유적(儒籍)을 불태운 것은 참으로 전고에 없던 크나큰 변고입니다. 이 자들을 치죄하지 않는다면 나라에서는 어진이를 존경할 수 없고 선비들은 모범으로 삼을 것이 없어서, 바른 도리가 날로 사라지고 사특한 의논이 날로 일어나, 대현인이 무고를 당한 것을 분간하기 어려우며 온 나라의 분통함을 씻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관학(館學)에 있는 선비들이 상소를 올리고 정원과 옥당 및 헌부에서 죄주기를 청한 것은 실로 공공의 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시원스럽게 따라주는 명이 없어서 여러 사람들이 답답해 하며, 사림이 울적해 하고 있습니다. 속히 오정남·나의소 등이 현인을 무고하고 바른 사람을 해친 죄를 바루라고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오정남·나의소 등이 선현을 모욕하고 유적(儒籍)을 불태운 것은 참으로 전고에 없던 크나큰 변고입니다. 이 자들을 치죄하지 않는다면 나라에서는 어진이를 존경할 수 없고 선비들은 모범으로 삼을 것이 없어서, 바른 도리가 날로 사라지고 사특한 의논이 날로 일어나, 대현인이 무고를 당한 것을 분간하기 어려우며 온 나라의 분통함을 씻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관학(館學)에 있는 선비들이 상소를 올리고 정원과 옥당 및 헌부에서 죄주기를 청한 것은 실로 공공의 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시원스럽게 따라주는 명이 없어서 여러 사람들이 답답해 하며, 사림이 울적해 하고 있습니다. 속히 오정남·나의소 등이 현인을 무고하고 바른 사람을 해친 죄를 바루라고 명하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7월 21일 계미

회답사 오윤겸(吳允謙)·박재(朴榟)가 장계하였다. "이달 7일 아침에 배를 띄워 저녁에 대마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달 7일 아침에 배를 띄워 저녁에 대마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대마도주 평의성(平義成)의 서계가 들어왔다.

 

전교하였다. "서별궁의 역사가 느슨해지고 해이해지는 듯하다. 다시금 검독하여서 속히 역사를 마치게 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서별궁의 역사가 느슨해지고 해이해지는 듯하다. 다시금 검독하여서 속히 역사를 마치게 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근년 이래로 외방의 수령 등이 별도로 마련한 것이라고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관찰사가 다시 전계(轉啓)해서 상을 받은 자가 전후로 잇달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혹 거짓으로 불린 숫자 및 피잡곡(皮雜穀) 중에 여물지 않은 곡식이 없지 않을 것인 바, 그 숫자가 거짓인 듯합니다. 그러니 해조로 하여금 각도의 군읍(郡邑)에서 별도로 마련한 곡물을 모두 조사하여 남김없이 장부에 기록한 다음 각도의 관찰사에게 보내어서 유무와 허실을 조사하고 쓴 곳을 모두 기록하게 하소서. 그리고 혹 없는 것을 찼다고 하고 빈 것을 있다고 하여 망녕되이 상을 받고자 해서 속인 자가 있을 경우에는 적발하여 계문하고 엄하게 다스려 용서하지 말며, 상으로 가자한 것을 삭제하게 하는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또 현재 남아 있는 곡식은 혹 포목으로 바꾸거나 곡식으로 상납하게 하라는 뜻으로 해조로 하여금 참작하여 각도에 분부해서 그들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따랐다.
"근년 이래로 외방의 수령 등이 별도로 마련한 것이라고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관찰사가 다시 전계(轉啓)해서 상을 받은 자가 전후로 잇달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혹 거짓으로 불린 숫자 및 피잡곡(皮雜穀) 중에 여물지 않은 곡식이 없지 않을 것인 바, 그 숫자가 거짓인 듯합니다. 그러니 해조로 하여금 각도의 군읍(郡邑)에서 별도로 마련한 곡물을 모두 조사하여 남김없이 장부에 기록한 다음 각도의 관찰사에게 보내어서 유무와 허실을 조사하고 쓴 곳을 모두 기록하게 하소서. 그리고 혹 없는 것을 찼다고 하고 빈 것을 있다고 하여 망녕되이 상을 받고자 해서 속인 자가 있을 경우에는 적발하여 계문하고 엄하게 다스려 용서하지 말며, 상으로 가자한 것을 삭제하게 하는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게 하소서. 그리고 또 현재 남아 있는 곡식은 혹 포목으로 바꾸거나 곡식으로 상납하게 하라는 뜻으로 해조로 하여금 참작하여 각도에 분부해서 그들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따랐다.

 

오시(午時)에 우박이 내렸는데, 모양이 팥과 같았다.

 

7월 22일 갑신

전교하였다. "내가 여러 달 동안 편치 못하여서 일을 살피지 못한 탓에 마시(馬市)044)  에 관한 회답 자문을 아직까지 보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유격(遊擊)으로 하여금 진노케 하였으니, 몹시 미안하다. 회답 자문을 대제학으로 하여금 속히 제술하여 들이게 하되, 자문 안에 ‘국왕이 편치 못하여 제때에 회답하지 못해 지연되게 되었다.’는 뜻으로 상세하게 글을 짓게 하라. 그리고 자문을 가지고 가는 역관을 잘 가려 뽑은 다음 이러한 내용으로 말을 만들어서 잘 대답하게 하라고 아울러 지휘하여 보내라."


[註 044] 마시(馬市) : 우리 나라와 중국이나 여진족과의 교역을 위하여 국경 지방에 설치한 무역소(貿易所)를 말함.
"내가 여러 달 동안 편치 못하여서 일을 살피지 못한 탓에 마시(馬市)044)  에 관한 회답 자문을 아직까지 보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유격(遊擊)으로 하여금 진노케 하였으니, 몹시 미안하다. 회답 자문을 대제학으로 하여금 속히 제술하여 들이게 하되, 자문 안에 ‘국왕이 편치 못하여 제때에 회답하지 못해 지연되게 되었다.’는 뜻으로 상세하게 글을 짓게 하라. 그리고 자문을 가지고 가는 역관을 잘 가려 뽑은 다음 이러한 내용으로 말을 만들어서 잘 대답하게 하라고 아울러 지휘하여 보내라."

 

전교하였다. "청옥용정(靑屋龍亭)을 주청사(奏請使)가 장계에서 알려온 견본대로 속히 고쳐 만들어서 기다리라고 해조에 말하라."
"청옥용정(靑屋龍亭)을 주청사(奏請使)가 장계에서 알려온 견본대로 속히 고쳐 만들어서 기다리라고 해조에 말하라."

 

7월 23일 을유

경기 감사 유희량(柳希亮)이 여주 목사(驪州牧使) 김용(金涌)이 고변한 것에 대해 비밀히 치계하였다.

 

7월 24일 병술

비밀히 전교하였다. "대신들과 금부 당상을 명초(命招)하라."
"대신들과 금부 당상을 명초(命招)하라."

 

한찬남(韓纘男)이 아뢰기를, "대신들과 금부 당상을 명초하니, 영상 기자헌, 영돈녕부사 정창연, 판의금부사 박승종은 병으로 인해 나오지 못하고, 우상 한효순 및 금부 당상 윤수민·이경함·유몽인은 나오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대신들과 금부 당상을 명초하니, 영상 기자헌, 영돈녕부사 정창연, 판의금부사 박승종은 병으로 인해 나오지 못하고, 우상 한효순 및 금부 당상 윤수민·이경함·유몽인은 나오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서별궁에 조성하는 서청(書廳) 등처의 터를 닦고 초석을 정하며 기둥을 세우는 날짜를 미리 가려뽑아서 날짜에 맞추어 역사를 끝내라고 도감에 말하라."
"서별궁에 조성하는 서청(書廳) 등처의 터를 닦고 초석을 정하며 기둥을 세우는 날짜를 미리 가려뽑아서 날짜에 맞추어 역사를 끝내라고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현재 더위가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 낮의 길이가 점차 짧아지고 있으니 서별궁의 역사가 일각이 급하다. 그러니 도감의 제조 등이 날마다 부지런히 출사해서 감독하여 착실하게 거행하라."
"현재 더위가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 낮의 길이가 점차 짧아지고 있으니 서별궁의 역사가 일각이 급하다. 그러니 도감의 제조 등이 날마다 부지런히 출사해서 감독하여 착실하게 거행하라."

 

사간원이 아뢰기를, "장흥고 직장(長興庫直長) 한희인(韓喜仁)은 사람됨이 간사하고 처사가 비루합니다. 공가(公家)의 물품을 공공연히 차지하여 공상(供上)을 담당하는 중요한 곳을 날로 허술하게 만들었습니다. 풍저창 직장(豊儲倉直長) 김종해(金宗海)는 본디 거칠고 비루한 사람으로서 오로지 탐학만을 일삼아서 사람들이 모두 침을 뱉으면서 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루도 관직에 있게 할 수 없습니다.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장흥고 직장(長興庫直長) 한희인(韓喜仁)은 사람됨이 간사하고 처사가 비루합니다. 공가(公家)의 물품을 공공연히 차지하여 공상(供上)을 담당하는 중요한 곳을 날로 허술하게 만들었습니다. 풍저창 직장(豊儲倉直長) 김종해(金宗海)는 본디 거칠고 비루한 사람으로서 오로지 탐학만을 일삼아서 사람들이 모두 침을 뱉으면서 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루도 관직에 있게 할 수 없습니다. 모두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여주 목사(驪州牧使) 김용(金涌)이 고한 김해정(金亥丁)의 익명 서장(匿名書狀)에 관해 비밀히 전교하였다. "이 서장을 의논하여 처리하라. 판의금부사는 집에 있으면서 의논을 아뢰게 하라."
"이 서장을 의논하여 처리하라. 판의금부사는 집에 있으면서 의논을 아뢰게 하라."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여 사직한 데 대해 답하였다. "차자를 보고 경의 뜻을 모두 알았다. 대죄하면서 말라. 이처럼 인심이 아름답지 못한 때를 당하여서는 국경의 경비에 있어서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는 바, 내가 몹시 걱정이 된다. 그러니 비국의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겠다."
"차자를 보고 경의 뜻을 모두 알았다. 대죄하면서 말라. 이처럼 인심이 아름답지 못한 때를 당하여서는 국경의 경비에 있어서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는 바, 내가 몹시 걱정이 된다. 그러니 비국의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겠다."

 

전교하였다. "관시(關市)에 대한 계차공사(啓絓公事)는 봉하여 들이고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
"관시(關市)에 대한 계차공사(啓絓公事)는 봉하여 들이고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

 

우의정 한효순, 동지의금부사 이경함(李慶涵)·유몽인(柳夢寅)·윤수민(尹壽民), 도승지 한찬남(韓纘男)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삼가 장계 안의 내용을 보니, 김해정의 소지(所志)에서 운운한 것은, 실로 그들 가운데 원한이 있어서 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 무명장(無名狀)과 같은 유의 것입니다. 무명장에 관한 한 가지 일은 오늘날의 막기 어려운 폐단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심한 것입니다. 신들의 뜻으로는, 이와 같이 근거도 없고 사실도 아닌 일은 거론하여서 소요를 일으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삼가 상께서 결단하소서." 하였다. 【이 옥사는 여러 날 동안 추국하였으나 끝내 단서가 없었다. 김해정 등 6인은 모두 풀려났다.】
"삼가 장계 안의 내용을 보니, 김해정의 소지(所志)에서 운운한 것은, 실로 그들 가운데 원한이 있어서 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 무명장(無名狀)과 같은 유의 것입니다. 무명장에 관한 한 가지 일은 오늘날의 막기 어려운 폐단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심한 것입니다. 신들의 뜻으로는, 이와 같이 근거도 없고 사실도 아닌 일은 거론하여서 소요를 일으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삼가 상께서 결단하소서."
하였다. 【이 옥사는 여러 날 동안 추국하였으나 끝내 단서가 없었다. 김해정 등 6인은 모두 풀려났다.】

 

7월 25일 정해

전교하였다. "며칠 전부터 감기가 심해져서 증세가 가볍지 않아 한 달 안에 차도가 있기는 어려울 듯하다. 앞으로 있을 대례(大禮)를 뒤로 물려 치루어야 하는 바, 이것이 비록 부득이한 데서 나온 일이기는 하나, 몹시 답답하고 염려된다. 관복(冠服)을 맞이하는 길일을 8월 보름 뒤로 다시 가려서 급급히 외방에 알리라. 그리고 주청사(奏請使)에게도 이런 내용으로 하유해서 그로 하여금 평양(平壤)과 황주(黃州)·개성(開城) 등처에서 우선 5, 6일간 머물러 있다가 형세를 보아 전진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하라. 관복을 맞이하는 의식의 예행 연습은 다음달로 차차 물려서 거행하라."
"며칠 전부터 감기가 심해져서 증세가 가볍지 않아 한 달 안에 차도가 있기는 어려울 듯하다. 앞으로 있을 대례(大禮)를 뒤로 물려 치루어야 하는 바, 이것이 비록 부득이한 데서 나온 일이기는 하나, 몹시 답답하고 염려된다. 관복(冠服)을 맞이하는 길일을 8월 보름 뒤로 다시 가려서 급급히 외방에 알리라. 그리고 주청사(奏請使)에게도 이런 내용으로 하유해서 그로 하여금 평양(平壤)과 황주(黃州)·개성(開城) 등처에서 우선 5, 6일간 머물러 있다가 형세를 보아 전진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해조에 말하라. 관복을 맞이하는 의식의 예행 연습은 다음달로 차차 물려서 거행하라."

 

사간원이 아뢰기를, "교서관 박사 박문명(朴文溟)은 본디 미천하고 간사한 사람으로 전부터 과거를 치룰 때 차비관(差備官)이 되어 과거장으로 들어가 사사로움을 행하고자 한 상황에 대해 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차비관으로서 간교한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런데도 다스리지 않으면 뒤폐단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교서관 박사 박문명(朴文溟)은 본디 미천하고 간사한 사람으로 전부터 과거를 치룰 때 차비관(差備官)이 되어 과거장으로 들어가 사사로움을 행하고자 한 상황에 대해 입이 있는 자들은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차비관으로서 간교한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런데도 다스리지 않으면 뒤폐단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사판에서 삭제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계축년 이후에 문외 출송시킨 사람들을 서계하라."
"계축년 이후에 문외 출송시킨 사람들을 서계하라."

 

7월 26일 무자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서울로 올라와 부역하고 있는 외방 장인(匠人)들의 숫자가 꽤 많은데도 그 가운데 솜씨가 좋은 장인은 아주 드물며, 편수(邊首)에 합당한 자는 더욱 더 드뭅니다. 앞으로 서별궁의 역사 역시 급한데, 적은 숫자의 편수로는 형세상 주선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듣건대 성천(成川)의 강선루(降仙樓)를 짓는 공사가 이미 다 끝나서 단지 판자만 깔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본도에 있는 각종 장인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으니, 솜씨가 좋은 자가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본부(本府)로 하여금 하나도 남김없이 장인들의 명단을 기록하여 한꺼번에 급속히 올려보내라고 본도의 관찰사에게 파발마를 보내어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성천의 장인들을 일일이 다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숫자를 참작해서 알려서 올려보내게 하라. 그리고 서울에 있는 목수 가운데 나오지 않은 자가 몹시 많다. 보루 도감(報漏都監)만 제외하고 대소 공해(公廨)를 짓는 역사를 이미 다 정지하였다. 그러니 서울에 있는 장인들을 다시금 나오도록 해서 일을 시키라." 하였다.
"서울로 올라와 부역하고 있는 외방 장인(匠人)들의 숫자가 꽤 많은데도 그 가운데 솜씨가 좋은 장인은 아주 드물며, 편수(邊首)에 합당한 자는 더욱 더 드뭅니다. 앞으로 서별궁의 역사 역시 급한데, 적은 숫자의 편수로는 형세상 주선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듣건대 성천(成川)의 강선루(降仙樓)를 짓는 공사가 이미 다 끝나서 단지 판자만 깔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본도에 있는 각종 장인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으니, 솜씨가 좋은 자가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본부(本府)로 하여금 하나도 남김없이 장인들의 명단을 기록하여 한꺼번에 급속히 올려보내라고 본도의 관찰사에게 파발마를 보내어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성천의 장인들을 일일이 다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숫자를 참작해서 알려서 올려보내게 하라. 그리고 서울에 있는 목수 가운데 나오지 않은 자가 몹시 많다. 보루 도감(報漏都監)만 제외하고 대소 공해(公廨)를 짓는 역사를 이미 다 정지하였다. 그러니 서울에 있는 장인들을 다시금 나오도록 해서 일을 시키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신궐(新闕)의 외전(外殿) 정문 바깥에 있는 어로(御路)의 석교(石橋)와 난간석(闌干石) 등을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속히 요리하여 역사를 시작하라고 도감에다 말하라."
"신궐(新闕)의 외전(外殿) 정문 바깥에 있는 어로(御路)의 석교(石橋)와 난간석(闌干石) 등을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속히 요리하여 역사를 시작하라고 도감에다 말하라."

 

전교하였다. "관복을 맞이하는 것을 늦추는 데 대한 해조의 공사(公事)를 단지 역자(驛子)로 하여금 싸가지고 가게 한다면 반드시 지체되는 걱정이 있을 것이다. 혹 각도에 하유하거나, 해조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시켜서 급급히 싸보내는 일을 살펴서 하라."
"관복을 맞이하는 것을 늦추는 데 대한 해조의 공사(公事)를 단지 역자(驛子)로 하여금 싸가지고 가게 한다면 반드시 지체되는 걱정이 있을 것이다. 혹 각도에 하유하거나, 해조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시켜서 급급히 싸보내는 일을 살펴서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함경도 감사 권진(權縉)이 수원부(水原府)에서 지금 이미 올라왔습니다. 만약 해유(解由)가 완전히 나오기를 기다려서 부임한다면 날짜가 점차 지체될 것이니, 북쪽 변경의 일이 염려됩니다. 그러니 권진은 비록 해유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속히 부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 마땅히 병이 낫기를 기다려서 면대해 유시하여 보내겠다. 사은(謝恩) 역시 멀지 않았으니, 다음달 사이에 천천히 내려보내라. 그리고 권진이 내려가기 전에 북쪽 변경의 방비와 구황(救荒) 등에 관한 일을 본사에서 상세하게 의논하여 품정한 다음 지시해서 보내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권진의 사람됨은 천성이 흉악한데 아부를 잘해 총애를 받아서 여러 차례 청반(淸斑)을 역임하였다. 수원부의 방어사가 되었을 때에는 처사가 망령스러웠으며, 백성들을 학대하여 마구 재물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권채(權綵) 역시 남포 현감(藍浦縣監)으로 있으면서 탐욕스럽고 잔학하게 굴면서 마구 거두어들임이 끝이 없어서, 그의 아비의 분묘가 파헤쳐 지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 권진으로서는 마땅히 동생을 꾸짖어 개과천선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아 행실을 고쳤어야 한다. 그런데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핑계로 죄없는 사람 5, 6명을 마구 죽였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들 그의 잔혹함에 대해 통분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북문(北門)의 중요한 지역을 이 사람에게 내맡겼다. 더구나 이 때를 당해서는 남북(南北) 두 도에 기근이 겹쳐서 유망하는 자가 서로 잇달았으므로 잘 보살펴 주지 않으면 보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폭리(暴吏)를 만났으니, 불쌍하게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이로부터 다 죽게 생겼다. 이에 관방(關防)의 요처가 장차 텅비게 되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함경도 감사 권진(權縉)이 수원부(水原府)에서 지금 이미 올라왔습니다. 만약 해유(解由)가 완전히 나오기를 기다려서 부임한다면 날짜가 점차 지체될 것이니, 북쪽 변경의 일이 염려됩니다. 그러니 권진은 비록 해유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속히 부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 마땅히 병이 낫기를 기다려서 면대해 유시하여 보내겠다. 사은(謝恩) 역시 멀지 않았으니, 다음달 사이에 천천히 내려보내라. 그리고 권진이 내려가기 전에 북쪽 변경의 방비와 구황(救荒) 등에 관한 일을 본사에서 상세하게 의논하여 품정한 다음 지시해서 보내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권진의 사람됨은 천성이 흉악한데 아부를 잘해 총애를 받아서 여러 차례 청반(淸斑)을 역임하였다. 수원부의 방어사가 되었을 때에는 처사가 망령스러웠으며, 백성들을 학대하여 마구 재물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권채(權綵) 역시 남포 현감(藍浦縣監)으로 있으면서 탐욕스럽고 잔학하게 굴면서 마구 거두어들임이 끝이 없어서, 그의 아비의 분묘가 파헤쳐 지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 권진으로서는 마땅히 동생을 꾸짖어 개과천선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아 행실을 고쳤어야 한다. 그런데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핑계로 죄없는 사람 5, 6명을 마구 죽였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들 그의 잔혹함에 대해 통분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북문(北門)의 중요한 지역을 이 사람에게 내맡겼다. 더구나 이 때를 당해서는 남북(南北) 두 도에 기근이 겹쳐서 유망하는 자가 서로 잇달았으므로 잘 보살펴 주지 않으면 보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폭리(暴吏)를 만났으니, 불쌍하게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이로부터 다 죽게 생겼다. 이에 관방(關防)의 요처가 장차 텅비게 되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사신은 논한다. 권진의 사람됨은 천성이 흉악한데 아부를 잘해 총애를 받아서 여러 차례 청반(淸斑)을 역임하였다. 수원부의 방어사가 되었을 때에는 처사가 망령스러웠으며, 백성들을 학대하여 마구 재물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권채(權綵) 역시 남포 현감(藍浦縣監)으로 있으면서 탐욕스럽고 잔학하게 굴면서 마구 거두어들임이 끝이 없어서, 그의 아비의 분묘가 파헤쳐 지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 권진으로서는 마땅히 동생을 꾸짖어 개과천선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아 행실을 고쳤어야 한다. 그런데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핑계로 죄없는 사람 5, 6명을 마구 죽였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들 그의 잔혹함에 대해 통분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북문(北門)의 중요한 지역을 이 사람에게 내맡겼다. 더구나 이 때를 당해서는 남북(南北) 두 도에 기근이 겹쳐서 유망하는 자가 서로 잇달았으므로 잘 보살펴 주지 않으면 보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폭리(暴吏)를 만났으니, 불쌍하게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이로부터 다 죽게 생겼다. 이에 관방(關防)의 요처가 장차 텅비게 되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다.】

 

7월 27일 기축

전교하였다. "요즈음 듣건대 신궐 바깥의 민가를 풍저창까지 철거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무슨 일로 철거하는 것인가?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요즈음 듣건대 신궐 바깥의 민가를 풍저창까지 철거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무슨 일로 철거하는 것인가?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아뢰게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술관(術官)들에게 물어서 서별궁에 먼저 담장을 쌓고, 그 근처에 사는 백성들을 속히 옮겨가게 하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급급히 거행하게 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술관들에게 물어보니, ‘평상시 술가(術家)에서는 집을 짓기도 전에 먼저 담장을 쌓는 것을 꺼리나 이번의 이 서별궁의 경우는 원래 지은 집이 있는 바, 이것을 침전(寢殿)으로 삼고 바깥에 담장을 쌓으면 별로 꺼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돌을 주워 모아서 추위가 닥치기 전에 다 쌓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사는 백성들은 궁궐 담장의 주위를 살펴서 정한 뒤 거의 다 옮겨 갔는데, 남아 있는 몇몇 집은 도감에서 현재 옮겨가도록 독촉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하루 이틀 안으로 속히 공사를 시작하여 9월 안에 기어코 역사를 끝내며, 바깥 담장은 지나치게 낮게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살펴서 하라." 하였다.
"‘술관(術官)들에게 물어서 서별궁에 먼저 담장을 쌓고, 그 근처에 사는 백성들을 속히 옮겨가게 하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급급히 거행하게 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술관들에게 물어보니, ‘평상시 술가(術家)에서는 집을 짓기도 전에 먼저 담장을 쌓는 것을 꺼리나 이번의 이 서별궁의 경우는 원래 지은 집이 있는 바, 이것을 침전(寢殿)으로 삼고 바깥에 담장을 쌓으면 별로 꺼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돌을 주워 모아서 추위가 닥치기 전에 다 쌓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사는 백성들은 궁궐 담장의 주위를 살펴서 정한 뒤 거의 다 옮겨 갔는데, 남아 있는 몇몇 집은 도감에서 현재 옮겨가도록 독촉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하루 이틀 안으로 속히 공사를 시작하여 9월 안에 기어코 역사를 끝내며, 바깥 담장은 지나치게 낮게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살펴서 하라."
하였다.

 

요동 유격 장군(遼東遊擊將軍) 구탄(丘坦)이 배첩(拜帖)과 채단을 보내어서 면복(冕服)의 청을 허락받은 것을 축하하였다.

 

전교하였다. "구 유격(丘遊擊)의 표문(表文) 안에 오대산(五臺山)에서 약초 캐기를 요청하였다. 해조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구 유격(丘遊擊)의 표문(表文) 안에 오대산(五臺山)에서 약초 캐기를 요청하였다. 해조로 하여금 속히 의논해 처리하게 하라."

 

7월 28일 경인

전교하였다. "유격에게 보내는 회첩(回帖)과 회례 물품(回禮物品)을 마련해서 보내라."
"유격에게 보내는 회첩(回帖)과 회례 물품(回禮物品)을 마련해서 보내라."

 

전교하였다. "관복을 맞이하는 것은 나의 증세가 비록 쾌차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병을 무릅쓰고 행하겠다. 그러나 고묘(告廟)하고 친제(親祭)하는 것은 회복되기 전에는 형세상 예를 치루기가 어렵다. 그러니 9월 초순 이후로 날짜를 다시 택해 조금 물리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관복을 맞이하는 것은 나의 증세가 비록 쾌차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병을 무릅쓰고 행하겠다. 그러나 고묘(告廟)하고 친제(親祭)하는 것은 회복되기 전에는 형세상 예를 치루기가 어렵다. 그러니 9월 초순 이후로 날짜를 다시 택해 조금 물리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구유격에게 보내는 관시(關市)에 대한 자문을 마감하여 내려 가자면 반드시 며칠 늦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상의 분부대로 ‘임금의 몸이 편치 않아서 제때에 회답 자문을 보내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먼저 의주 부윤에게 하유하고,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유격에게 잘 말하게 하며, 회답 자문이 내려간 뒤에도 또 이와 같이 말을 만들어서 말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구유격에게 보내는 관시(關市)에 대한 자문을 마감하여 내려 가자면 반드시 며칠 늦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상의 분부대로 ‘임금의 몸이 편치 않아서 제때에 회답 자문을 보내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먼저 의주 부윤에게 하유하고,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유격에게 잘 말하게 하며, 회답 자문이 내려간 뒤에도 또 이와 같이 말을 만들어서 말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요즈음 금부 죄인들 가운데에는 별로 형신을 받은 자가 없다. 그런데도 잇달아 병이 들어 죽거나 병을 앓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월령 의원(月令醫員)을 중한 쪽으로 추고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월령 의원을 잘 가려뽑아 각별히 착실하게 구료하라. 또 색승지 역시 항상 신칙하고 살펴서 하라."
"요즈음 금부 죄인들 가운데에는 별로 형신을 받은 자가 없다. 그런데도 잇달아 병이 들어 죽거나 병을 앓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월령 의원(月令醫員)을 중한 쪽으로 추고하라.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월령 의원을 잘 가려뽑아 각별히 착실하게 구료하라. 또 색승지 역시 항상 신칙하고 살펴서 하라."

 

전교하였다. "이처럼 영건하는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서 차관이 나올 경우 그 폐단을 어찌 이루 다 말하겠는가. 차관이 나와 약재를 채취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급급히 의주 부윤에게 하유하여 극력 유격에게 정문(呈文)하여 나오지 못하도록 하게 하라. 그리고 차관이 혹 이미 강을 건넜더라도 십분 잘 말을 만들어서 달래어 우선 본부(本府)에 머물러 있게 하고, 한편으로는 치게하거나, 혹 극력 달래어서 도로 들어가도록 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선전관을 보내어서 하유하라."
"이처럼 영건하는 일이 많은 때를 당하여서 차관이 나올 경우 그 폐단을 어찌 이루 다 말하겠는가. 차관이 나와 약재를 채취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급급히 의주 부윤에게 하유하여 극력 유격에게 정문(呈文)하여 나오지 못하도록 하게 하라. 그리고 차관이 혹 이미 강을 건넜더라도 십분 잘 말을 만들어서 달래어 우선 본부(本府)에 머물러 있게 하고, 한편으로는 치게하거나, 혹 극력 달래어서 도로 들어가도록 하게 하라. 이상의 일을 선전관을 보내어서 하유하라."

 

함경북도 병사 이수일(李守一)이 상소하기를, "신은 미관(微官)일 때부터 북문(北門)에 출입하여 미관말직인 군관과 변장 등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지냈으며, 병신년 이후로는 다섯 차례나 중임(重任)을 겪어 회령 부사(會寧府使)로 2년, 방어사로 1년, 길주 목사(吉州牧使)로 3년을 있었으며, 두 차례나 병사에 제수되어 각각 1년이 넘도록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단 계획과 조치가 점차 사람들의 기대에 못미쳤을 뿐만 아니라, 오랑캐들이 듣고는 반드시 ‘조정에 사람이 없어서 늙은 장수로 하여금 구차하게 이 지역을 맡게 하였다.’고 하였는 바, 반드시 조정을 가볍게 보아 깔보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또다시 간다면 어찌 크게 염려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더구나 북쪽 변방은 까마득히 먼 곳에 있어 왕화(王化)가 미치지 못하는 탓에, 국가의 위엄이 서지 않고 생민들이 도망쳐 흩어짐이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점차 어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유래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근년 이래로는 기근이 겹쳐 일어났는데, 법도없이 세금을 거두고 부역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한 사람이 1백 사람의 역(役)을 담당하고 있는데 귀신이 가져다 주기도 어려운 것이고 보면 유망(流亡)하는 것이 마땅하며, 사내를 낳아도 거두어 기르는 집이 없이 오로지 부역을 피할 줄만 알고 있으니, 원망이 극도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변장이 적임자가 아니어서 한갓 침탈만을 일삼아, 군졸의 고혈을 짜내고 다 죽어가는 백성들을 내몰아서, 온 도의 9개 고을을 모두 합하여도 내지(內地)의 잔폐한 한 현의 편호(編戶)만도 못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적을 막고 어떻게 모양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조종께서 왕업(王業)을 일으킨 지역이 머지 않아 오랑캐 땅이 되게 생겼습니다. 성상께서도 이미 이에 대해 염려하고 계실 줄 압니다만 아마도 다 통촉하고 계시지는 못한 듯합니다. 비록 장자방(張子房)의 지혜와 제갈량(諸葛亮)의 재주로도 오히려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둔하고 무디기가 여러 사람들 중에 가장 심하며, 또 앞서서 말한 것과 같이 감당하지 못할 점이 있는 자이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나이 어리고 재주가 있는 자를 뽑아서 북쪽 변방의 경비를 맡기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숙장(宿將)으로 이름이 오랑캐들 사이에 났으니, 여러 차례 부임하더라도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는가. 지나치게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가서 직무를 살펴 국가의 위세를 장하게 하라." 하였다.
"신은 미관(微官)일 때부터 북문(北門)에 출입하여 미관말직인 군관과 변장 등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지냈으며, 병신년 이후로는 다섯 차례나 중임(重任)을 겪어 회령 부사(會寧府使)로 2년, 방어사로 1년, 길주 목사(吉州牧使)로 3년을 있었으며, 두 차례나 병사에 제수되어 각각 1년이 넘도록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단 계획과 조치가 점차 사람들의 기대에 못미쳤을 뿐만 아니라, 오랑캐들이 듣고는 반드시 ‘조정에 사람이 없어서 늙은 장수로 하여금 구차하게 이 지역을 맡게 하였다.’고 하였는 바, 반드시 조정을 가볍게 보아 깔보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또다시 간다면 어찌 크게 염려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더구나 북쪽 변방은 까마득히 먼 곳에 있어 왕화(王化)가 미치지 못하는 탓에, 국가의 위엄이 서지 않고 생민들이 도망쳐 흩어짐이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점차 어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유래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근년 이래로는 기근이 겹쳐 일어났는데, 법도없이 세금을 거두고 부역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한 사람이 1백 사람의 역(役)을 담당하고 있는데 귀신이 가져다 주기도 어려운 것이고 보면 유망(流亡)하는 것이 마땅하며, 사내를 낳아도 거두어 기르는 집이 없이 오로지 부역을 피할 줄만 알고 있으니, 원망이 극도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변장이 적임자가 아니어서 한갓 침탈만을 일삼아, 군졸의 고혈을 짜내고 다 죽어가는 백성들을 내몰아서, 온 도의 9개 고을을 모두 합하여도 내지(內地)의 잔폐한 한 현의 편호(編戶)만도 못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적을 막고 어떻게 모양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조종께서 왕업(王業)을 일으킨 지역이 머지 않아 오랑캐 땅이 되게 생겼습니다. 성상께서도 이미 이에 대해 염려하고 계실 줄 압니다만 아마도 다 통촉하고 계시지는 못한 듯합니다. 비록 장자방(張子房)의 지혜와 제갈량(諸葛亮)의 재주로도 오히려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둔하고 무디기가 여러 사람들 중에 가장 심하며, 또 앞서서 말한 것과 같이 감당하지 못할 점이 있는 자이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나이 어리고 재주가 있는 자를 뽑아서 북쪽 변방의 경비를 맡기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숙장(宿將)으로 이름이 오랑캐들 사이에 났으니, 여러 차례 부임하더라도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는가. 지나치게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가서 직무를 살펴 국가의 위세를 장하게 하라."
하였다.

 

사시(巳時)에 태백이 오지(午地)에 나타났다.

 

7월 29일 신묘

전교하였다. "조관(朝官)들이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는 일에 대해 명을 내린 뒤에 흑단령(黑團領)을 입은 사람은 조반(朝班)에 참여하지 못하는데, 조복을 갑자기 마련하지 못할 경우에는 반행(班行)이 드문드문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속히 조복을 마련하여 착용하게 하되, 혹 다 마련하지 못할 경우에는 해조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조관(朝官)들이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는 일에 대해 명을 내린 뒤에 흑단령(黑團領)을 입은 사람은 조반(朝班)에 참여하지 못하는데, 조복을 갑자기 마련하지 못할 경우에는 반행(班行)이 드문드문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속히 조복을 마련하여 착용하게 하되, 혹 다 마련하지 못할 경우에는 해조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신궐과 서별궁의 담장 안으로 포함된 집의 집주인들 가운데 사대부의 경우 몇 칸 이상을 가자하고, 또 몇 칸의 경우 비록 자급이 차지 않았더라도 당상에 올리며, 몇 칸을 6품에 천전(遷轉)시키고 몇 칸을 직책에 제수할 것인지를,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하여 마련해서 서계하게 해 정식(定式)으로 삼으라."
"신궐과 서별궁의 담장 안으로 포함된 집의 집주인들 가운데 사대부의 경우 몇 칸 이상을 가자하고, 또 몇 칸의 경우 비록 자급이 차지 않았더라도 당상에 올리며, 몇 칸을 6품에 천전(遷轉)시키고 몇 칸을 직책에 제수할 것인지를, 도감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하여 마련해서 서계하게 해 정식(定式)으로 삼으라."

 

전교하였다. "서별궁의 이름을 ‘경덕궁(慶德宮)’으로 정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그리고 ‘홍정(弘政)’은 조하전(朝賀殿)에다 쓰고 ‘광정(光政)’은 시사전(視事殿)에 쓰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하게 하라."
"서별궁의 이름을 ‘경덕궁(慶德宮)’으로 정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그리고 ‘홍정(弘政)’은 조하전(朝賀殿)에다 쓰고 ‘광정(光政)’은 시사전(視事殿)에 쓰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도감의 실제조(實提調)가 11명이나 되는데도 요즈음은 단지 1명만 사진(仕進)하고 있으니, 전혀 전교한 뜻이 없다. 하루에 2명씩 사진하여서 마음을 다해 감독하라. 그리고 벌목(伐木)에 관계되는 긴급한 장계에 대해서는 하루 이틀 안에 속히 의논해 아뢰어서 조처를 취하라. 또 시사전과 조하전의 계체(階砌)와 월대(月臺)의 높낮이를 일체 문정전(文政殿)과 명정전(明政殿)의 전례에 의거해서 십분 상세하게 살펴서 만들라. 이상의 일을 도감에 말하라."
"도감의 실제조(實提調)가 11명이나 되는데도 요즈음은 단지 1명만 사진(仕進)하고 있으니, 전혀 전교한 뜻이 없다. 하루에 2명씩 사진하여서 마음을 다해 감독하라. 그리고 벌목(伐木)에 관계되는 긴급한 장계에 대해서는 하루 이틀 안에 속히 의논해 아뢰어서 조처를 취하라. 또 시사전과 조하전의 계체(階砌)와 월대(月臺)의 높낮이를 일체 문정전(文政殿)과 명정전(明政殿)의 전례에 의거해서 십분 상세하게 살펴서 만들라. 이상의 일을 도감에 말하라."

 

예조 판서 이이첨이 아뢰기를, "상께서 ‘약재를 채집하는 차관(差官)이 나오지 못하도록 급히 대신에게 의논하여 역관을 잘 가려뽑아 요동아문(遼東衙門)에 자문을 싸가지고 들여보내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속히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영의정 기자헌은 ‘성상의 분부대로 속히 역관을 가려 뽑은 다음 자문을 싸가지고 요동아문으로 들여보내어 기어이 막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고, 우의정 한효순은 ‘성상의 분부가 지당하다. 이것은 전에 없던 일이니, 역관을 가려 뽑아 보내어 극력 막아서 뒷날의 폐단을 끼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신의 뜻은 이와 같은데, 신의 뜻은 ‘요동도사(遼東都司)가 비록 사람을 보내어서 약재를 채집하고자 하더라도 이미 조정에 보고한 문서가 없다. 지금 만약 우리편에서 앞질러 자문을 보낼 경우, 사체가 중하게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근거가 없는 것이 된다. 그러니 아침에 계하된 공사(公事)에 의거하여 급급히 의주 부윤에게 하유해서 먼저 주선하여 진강(鎭江) 아문에 통보하기를 「지난해에 독부(督府)와 무원 아문(撫院衙門)에서 『차관을 보내면 폐단을 끼치는 일이 몹시 많으니, 지금부터는 모든 긴급한 공문은 의주(義州)에 보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 전달하게 하고 원역(員役)을 보내지 말라.』는 것으로 이미 규례를 정하였다. 그러니 도사가 비록 무단히 사람을 보내고자 하더라도 소방에서 어찌 감히 상사(上司)인 독부와 무원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사사로이 영접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방을 지키고 있는 신하는 더욱더 국왕에게 알리지 않아서 규례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저들 역시 무슨 말로 회답하고 곧장 다른 나라로 사람을 보내겠는가. 저들이 만약 이런 내용으로 자문을 보내온다면 그때 가서 조정에서 이치와 전례에 의거해서 거절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고 여깁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대신의 의논에 따라 자문을 미리 지어두었다가 뒷날 정확한 장계가 오기를 기다려서 다시금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상께서 ‘약재를 채집하는 차관(差官)이 나오지 못하도록 급히 대신에게 의논하여 역관을 잘 가려뽑아 요동아문(遼東衙門)에 자문을 싸가지고 들여보내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속히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시었습니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영의정 기자헌은 ‘성상의 분부대로 속히 역관을 가려 뽑은 다음 자문을 싸가지고 요동아문으로 들여보내어 기어이 막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고, 우의정 한효순은 ‘성상의 분부가 지당하다. 이것은 전에 없던 일이니, 역관을 가려 뽑아 보내어 극력 막아서 뒷날의 폐단을 끼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신의 뜻은 이와 같은데, 신의 뜻은 ‘요동도사(遼東都司)가 비록 사람을 보내어서 약재를 채집하고자 하더라도 이미 조정에 보고한 문서가 없다. 지금 만약 우리편에서 앞질러 자문을 보낼 경우, 사체가 중하게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근거가 없는 것이 된다. 그러니 아침에 계하된 공사(公事)에 의거하여 급급히 의주 부윤에게 하유해서 먼저 주선하여 진강(鎭江) 아문에 통보하기를 「지난해에 독부(督府)와 무원 아문(撫院衙門)에서 『차관을 보내면 폐단을 끼치는 일이 몹시 많으니, 지금부터는 모든 긴급한 공문은 의주(義州)에 보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 전달하게 하고 원역(員役)을 보내지 말라.』는 것으로 이미 규례를 정하였다. 그러니 도사가 비록 무단히 사람을 보내고자 하더라도 소방에서 어찌 감히 상사(上司)인 독부와 무원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사사로이 영접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방을 지키고 있는 신하는 더욱더 국왕에게 알리지 않아서 규례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저들 역시 무슨 말로 회답하고 곧장 다른 나라로 사람을 보내겠는가. 저들이 만약 이런 내용으로 자문을 보내온다면 그때 가서 조정에서 이치와 전례에 의거해서 거절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고 여깁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대신의 의논에 따라 자문을 미리 지어두었다가 뒷날 정확한 장계가 오기를 기다려서 다시금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7월 30일 임진

전교하였다. "고묘(告廟)하고 헌제(憲祭)하기에는 9월 12일이 크게 길하지는 않다고 하니, 15일로 물려 거행하는 것이 옳다. 2일과 15일 가운데 어느날이 더 좋은지를 다시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정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고묘(告廟)하고 헌제(憲祭)하기에는 9월 12일이 크게 길하지는 않다고 하니, 15일로 물려 거행하는 것이 옳다. 2일과 15일 가운데 어느날이 더 좋은지를 다시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정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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