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19권, 광해 9년 1617년 9월

싸라리리 2026. 1. 1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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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계해

사헌부가 연계하기를, "윤충원(尹忠源)은 권간(權姦)의 자식일 뿐만 아니라 문무(文武)로 발신(發身)한 자도 아니고 천첩의 소생입니다. 정철은 비록 권간이라고는 하나 윤원형(尹元衡)과는 다른데 그의 적자 정종명(鄭宗溟)은 문과(文科)의 장원으로 수령에 의망되었으나, 선왕이 그 천망 단자를 내려보내면서 전조(銓曹)를 엄하게 견책하였습니다. 그때 판서는 이 일로 체직되었는데 그 일이 발생한 지가 멀지 않으니 누군들 모르겠습니까. 충원이 특별히 집터를 바쳤다는 이유로 그에게 실직(實職)까지 제수하고 또 백성을 다스리는 관직까지 제수하였습니다. 설사 권간의 천첩 소생이 아니고 인물도 쓸만하다 하더라도 집터를 바친 것으로 인하여 관직을 제수한다면, 어찌 정사의 체모만 괴리되겠습니까. 그는 감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며, 벼슬한 사람들의 대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이 공로를 치하하는 은전은 관작에만 있지 않습니다. 명기(名器)가 한번 혼탁해지면 조정이 청명해지지 않을 것이니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윤충원에게 내린 성명을 속히 환수하소서." 하고, 새로이 아뢰기를, "부사맹(副司猛) 허쟁(許崝)은 동궁이 외출할 때에 버젓이 높은 곳에 서서 굽어보고 피하지 않았으니, 그의 오만함과 무지함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파직하고 뒤에 추고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허쟁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윤충원(尹忠源)은 권간(權姦)의 자식일 뿐만 아니라 문무(文武)로 발신(發身)한 자도 아니고 천첩의 소생입니다. 정철은 비록 권간이라고는 하나 윤원형(尹元衡)과는 다른데 그의 적자 정종명(鄭宗溟)은 문과(文科)의 장원으로 수령에 의망되었으나, 선왕이 그 천망 단자를 내려보내면서 전조(銓曹)를 엄하게 견책하였습니다. 그때 판서는 이 일로 체직되었는데 그 일이 발생한 지가 멀지 않으니 누군들 모르겠습니까. 충원이 특별히 집터를 바쳤다는 이유로 그에게 실직(實職)까지 제수하고 또 백성을 다스리는 관직까지 제수하였습니다. 설사 권간의 천첩 소생이 아니고 인물도 쓸만하다 하더라도 집터를 바친 것으로 인하여 관직을 제수한다면, 어찌 정사의 체모만 괴리되겠습니까. 그는 감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며, 벼슬한 사람들의 대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이 공로를 치하하는 은전은 관작에만 있지 않습니다. 명기(名器)가 한번 혼탁해지면 조정이 청명해지지 않을 것이니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윤충원에게 내린 성명을 속히 환수하소서."
하고, 새로이 아뢰기를,
"부사맹(副司猛) 허쟁(許崝)은 동궁이 외출할 때에 버젓이 높은 곳에 서서 굽어보고 피하지 않았으니, 그의 오만함과 무지함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파직하고 뒤에 추고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허쟁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전 판관 남궁연(南宮戭)은 전에 회령 판관(會寧判官)으로 있을 때 군기(軍器)를 마련하였고 역적들도 체포하였으니, 가자해 주도록 하라."
"전 판관 남궁연(南宮戭)은 전에 회령 판관(會寧判官)으로 있을 때 군기(軍器)를 마련하였고 역적들도 체포하였으니, 가자해 주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영춘 현감(永春縣監) 신득자(申得滋)는 각별히 군기와 군량을 마련하였으니, 가자해 주도록 하라."
"영춘 현감(永春縣監) 신득자(申得滋)는 각별히 군기와 군량을 마련하였으니, 가자해 주도록 하라."

 

9월 2일 갑자

전교하였다. "안에서 돌을 뜨는 공사가 매우 해이하고 필요한 철물을 넉넉하게 마련해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돌을 다루는 역사가 더욱 지체된다고 한다. 해당 감역관을 추고하고 각별히 살펴서 할 것을 도감에 말하라."
"안에서 돌을 뜨는 공사가 매우 해이하고 필요한 철물을 넉넉하게 마련해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돌을 다루는 역사가 더욱 지체된다고 한다. 해당 감역관을 추고하고 각별히 살펴서 할 것을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음복연(飮福宴)을 거행할 때 주청사(奏請使)와 사은사(謝恩使)의 상사(上使), 부사(副使), 서장관 등을 아울러 참석하게 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음복연(飮福宴)을 거행할 때 주청사(奏請使)와 사은사(謝恩使)의 상사(上使), 부사(副使), 서장관 등을 아울러 참석하게 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여 대죄하고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의 간절한 심정을 모두 알았다. 황공한 마음으로 대죄하지 말라. 이렇게 사직하니 마지못해 따라 주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영상이 누차 사직하니, 내의 제조(內醫提調)를 체차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경의 간절한 심정을 모두 알았다. 황공한 마음으로 대죄하지 말라. 이렇게 사직하니 마지못해 따라 주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영상이 누차 사직하니, 내의 제조(內醫提調)를 체차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빙고 별좌(氷庫別坐) 정지산(鄭之産)이 무림군(茂林君)과 상의하여 환적(喚賊)을 체포하였으니,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하라." 하였다. 환적은 임해군이 데리고 있던 기생 환어사(喚御史)이고, 정지산은 폐인(嬖人) 정 숙원(鄭淑媛)의 오라비인데, 사람들이 그에게 권세를 사기 위해 뇌물을 바쳐 문전이 시장처럼 분주하였다. 그리하여 천첩 소생으로 외람되이 당상에 올랐다. 무림군은 누차 흉소(兇疏)를 올려 모후(母后)를 무함한 자이다. 그래서 이 명이 있었다.
"빙고 별좌(氷庫別坐) 정지산(鄭之産)이 무림군(茂林君)과 상의하여 환적(喚賊)을 체포하였으니,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하라."
하였다. 환적은 임해군이 데리고 있던 기생 환어사(喚御史)이고, 정지산은 폐인(嬖人) 정 숙원(鄭淑媛)의 오라비인데, 사람들이 그에게 권세를 사기 위해 뇌물을 바쳐 문전이 시장처럼 분주하였다. 그리하여 천첩 소생으로 외람되이 당상에 올랐다. 무림군은 누차 흉소(兇疏)를 올려 모후(母后)를 무함한 자이다. 그래서 이 명이 있었다.

 

9월 3일 을축

전교하였다. "인경궁에서 밤을 지내겠다는 일에 대해 대간이 누차 하지 말기를 청하니, 우선 그 말대로 따라 석양 무렵에 대궐로 돌아오기로 하겠다."
"인경궁에서 밤을 지내겠다는 일에 대해 대간이 누차 하지 말기를 청하니, 우선 그 말대로 따라 석양 무렵에 대궐로 돌아오기로 하겠다."

 

병조가 아뢰기를, "전일에 비망기를 내려 인경궁 뒤 초수(椒水)가 백성들의 집을 굽어보고 있으니, 해조로 하여금 장막을 설치하여 보이지 않게 가리라.’는 것으로 하교하셨습니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상께서 만일 이곳에 올라가서 살펴보시게 된다면 그곳은 산골짜기가 깊기 때문에 호위하는 여러 장수들이 불가불 따라가서 시위를 엄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구구한 심정을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입시할 필요 없다고 전교하였다.
"전일에 비망기를 내려 인경궁 뒤 초수(椒水)가 백성들의 집을 굽어보고 있으니, 해조로 하여금 장막을 설치하여 보이지 않게 가리라.’는 것으로 하교하셨습니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상께서 만일 이곳에 올라가서 살펴보시게 된다면 그곳은 산골짜기가 깊기 때문에 호위하는 여러 장수들이 불가불 따라가서 시위를 엄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구구한 심정을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입시할 필요 없다고 전교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무장 현감(茂長縣監) 조박(趙璞)은 위인이 어리석고 패려하여, 전에 수령이 되었을 때 삼가 모친을 잘 모시지 않아 소문이 파다해서 놀랍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가 본직에 제수되자, 공론이 더욱 격렬합니다.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무장 현감(茂長縣監) 조박(趙璞)은 위인이 어리석고 패려하여, 전에 수령이 되었을 때 삼가 모친을 잘 모시지 않아 소문이 파다해서 놀랍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가 본직에 제수되자, 공론이 더욱 격렬합니다.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9월 4일 병인

생원 이덕무(李德茂)가 상소하여 조식(曺植)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할 것을 청하였다.

 

9월 5일 정묘

전교하였다. "역적 이춘기(李春起)를 체포한 전적(典籍) 이원엽(李元燁), 빙고 별좌(氷庫別坐) 정지산(鄭之産), 상호군(上護軍) 이상(李祥), 제일 먼저 체포한 포도 군관(捕盜軍官) 이영생(李瀛生)에게 모두 가자하라."
"역적 이춘기(李春起)를 체포한 전적(典籍) 이원엽(李元燁), 빙고 별좌(氷庫別坐) 정지산(鄭之産), 상호군(上護軍) 이상(李祥), 제일 먼저 체포한 포도 군관(捕盜軍官) 이영생(李瀛生)에게 모두 가자하라."

 

전교하였다. "인경궁은 비록 명년까지라 하더라도 공사를 마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경덕궁의 공사는 방대하지 않으니 잘 상의해서 요리한다면 명년 내에 공사를 마치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각별히 공사를 감독해서 경덕궁의 공사를 먼저 끝낼 수 있도록 도감에 말하라." 하였다.
"인경궁은 비록 명년까지라 하더라도 공사를 마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경덕궁의 공사는 방대하지 않으니 잘 상의해서 요리한다면 명년 내에 공사를 마치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각별히 공사를 감독해서 경덕궁의 공사를 먼저 끝낼 수 있도록 도감에 말하라."
하였다.

 

무림군 이선윤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감선(監膳)에 관한 순번이 되어 대궐에 들어갈 때, 당하관 한 사람이 길에서 피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말을 나란히 타고 지나가기에, 그의 성명을 물었더니 대꾸도 하지 않고 단지 채 수찬(蔡修撰)이라고만 말하고 의기양양하게 지나갔습니다. 신이 사람을 시켜 하인을 잡아오게 했더니, 하인을 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믿고 신이 보낸 하인을 길에서 말을 멈추고 구타하는 모습이 마치 무뢰한들이 하는 행위와 같았으므로 보기에 매우 놀라웠습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관작은 조정의 관작이며. 품질(品秩)의 고하는 자연적으로 등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직제학에서부터 당상관에 이르기까지라도 말을 나란히 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이 소상하게 법전에 실려있는데, 채승선(蔡承先)은 감히 교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면서 공족(公族)을 능멸하였습니다. 일개 6품관이 정2품 재신(宰臣)을 멸시하고 도리어 하인을 구타한 행위는 2백 년 이래로 듣지 못했던 일입니다. 일의 체모가 매우 형편없었으나 어제는 습의(習儀)하는 문제 때문에 바로 와서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이 어제 감선(監膳)에 관한 순번이 되어 대궐에 들어갈 때, 당하관 한 사람이 길에서 피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말을 나란히 타고 지나가기에, 그의 성명을 물었더니 대꾸도 하지 않고 단지 채 수찬(蔡修撰)이라고만 말하고 의기양양하게 지나갔습니다. 신이 사람을 시켜 하인을 잡아오게 했더니, 하인을 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믿고 신이 보낸 하인을 길에서 말을 멈추고 구타하는 모습이 마치 무뢰한들이 하는 행위와 같았으므로 보기에 매우 놀라웠습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관작은 조정의 관작이며. 품질(品秩)의 고하는 자연적으로 등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직제학에서부터 당상관에 이르기까지라도 말을 나란히 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이 소상하게 법전에 실려있는데, 채승선(蔡承先)은 감히 교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면서 공족(公族)을 능멸하였습니다. 일개 6품관이 정2품 재신(宰臣)을 멸시하고 도리어 하인을 구타한 행위는 2백 년 이래로 듣지 못했던 일입니다. 일의 체모가 매우 형편없었으나 어제는 습의(習儀)하는 문제 때문에 바로 와서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대죄합니다."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9월 6일 무진

영건 도감(營建都監)이 아뢰기를, "심눌(沈訥)에게 수령을 제수한 일은 은명(恩命)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들이 논의할 문제는 아닙니다마는, 목재에 관한 일로 논한다면 두 궁궐에 필요한 양의 부족분에 대해서는 가까운 곳에서 베어 쓰는 것이 나을 텐데 하필 평안도에서 옮겨오려 하십니까. 본도는 관방(關防)의 중대한 지역이므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시키는 것이 온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난 창덕궁을 중건할 때에 양덕(陽德) 등지에서 목재를 베어 대동강(大同江)으로 내려보낸 뒤에 그 도의 감사가 바다로 운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뜻으로 장계를 올렸으므로 인하여 방매(放賣)하도록 하였으나 사겠다는 사람이 적어서 드디어 썩게 하여 낭비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비록 벌목을 한다고 하더라도 바닷길이 험하여 수송하기가 어렵고, 설사 취해 쓰게 된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경차관을 보내 해도(該道)의 감사와 함께 도내의 물력을 융통성있게 처리해야지, 일개 현감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선조 때에 관서 지방에서 베어낸 목재를 끝내 사용하지 못했던가. 비록 경차관을 보낸다 하더라도 필시 본읍의 수령을 가려 보낸 뒤에라야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두 궁궐에 소용되는 목재가 매우 많이 필요하니 관서 지방의 목재를 베어와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덕 현감(陽德縣監) 심눌(沈訥)을 차임하여 보내고, 이창원(李昌源)은 다른 고을 수령에 제수하라." 하였다. 【심눌이 궁중에 연줄을 대서 관서 지역에 좋은 재목이 많으니 베어다가 운반하여 대궐을 짓는데 쓸 수 있다는 것으로 왕을 꼬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명이 있었다.】
"심눌(沈訥)에게 수령을 제수한 일은 은명(恩命)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들이 논의할 문제는 아닙니다마는, 목재에 관한 일로 논한다면 두 궁궐에 필요한 양의 부족분에 대해서는 가까운 곳에서 베어 쓰는 것이 나을 텐데 하필 평안도에서 옮겨오려 하십니까. 본도는 관방(關防)의 중대한 지역이므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시키는 것이 온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난 창덕궁을 중건할 때에 양덕(陽德) 등지에서 목재를 베어 대동강(大同江)으로 내려보낸 뒤에 그 도의 감사가 바다로 운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뜻으로 장계를 올렸으므로 인하여 방매(放賣)하도록 하였으나 사겠다는 사람이 적어서 드디어 썩게 하여 낭비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비록 벌목을 한다고 하더라도 바닷길이 험하여 수송하기가 어렵고, 설사 취해 쓰게 된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경차관을 보내 해도(該道)의 감사와 함께 도내의 물력을 융통성있게 처리해야지, 일개 현감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선조 때에 관서 지방에서 베어낸 목재를 끝내 사용하지 못했던가. 비록 경차관을 보낸다 하더라도 필시 본읍의 수령을 가려 보낸 뒤에라야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두 궁궐에 소용되는 목재가 매우 많이 필요하니 관서 지방의 목재를 베어와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덕 현감(陽德縣監) 심눌(沈訥)을 차임하여 보내고, 이창원(李昌源)은 다른 고을 수령에 제수하라."
하였다. 【심눌이 궁중에 연줄을 대서 관서 지역에 좋은 재목이 많으니 베어다가 운반하여 대궐을 짓는데 쓸 수 있다는 것으로 왕을 꼬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명이 있었다.】

 

황뉴(黃紐)를 주서로, 【충성심과 신의가 있고 정의를 지켰다. 병을 칭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한급(韓昅)을 봉교로, 조정립(曺挺立)을 헌납으로, 한옥(韓玉)을 겸문학으로, 유충립(柳忠立)을 사성으로 삼고, 박자응(朴自凝)을 문학으로 삼았다.

 

9월 7일 기사

전교하였다. "경덕궁의 동궁이 협소하니 이암(李馣)의 집을 동궁 안에 들이게 해서 통용하도록 하라. 만약 더욱 넓게 하기 위하여 장악원과 봉상시 등처를 모두 궐내에 포함시킨다면 불가할 듯하니, 다시 살펴서 할 것을 도감에 말하라."
"경덕궁의 동궁이 협소하니 이암(李馣)의 집을 동궁 안에 들이게 해서 통용하도록 하라. 만약 더욱 넓게 하기 위하여 장악원과 봉상시 등처를 모두 궐내에 포함시킨다면 불가할 듯하니, 다시 살펴서 할 것을 도감에 말하라."

 

한성부가 아뢰기를, "지금 들으니, 친제(親祭)를 거행하고 환궁할 때 유생(儒生)과 기로(耆老)들이 음악을 동시에 연주할 것이라고 합니다. 유생이 부를 가요는 이미 악기를 설치해 놓았지만 기로들의 가요에는 악기 등의 물품을 아직 준비하지 못하였으니, 앞으로의 습의를 형세상 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국가의 막중한 대례(大禮)가 매우 염려스러우니, 해당 선공감 차지 감역관(次知監役官)을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소서. 그리고 하인들은 유사로 하여금 가두어 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지금 들으니, 친제(親祭)를 거행하고 환궁할 때 유생(儒生)과 기로(耆老)들이 음악을 동시에 연주할 것이라고 합니다. 유생이 부를 가요는 이미 악기를 설치해 놓았지만 기로들의 가요에는 악기 등의 물품을 아직 준비하지 못하였으니, 앞으로의 습의를 형세상 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국가의 막중한 대례(大禮)가 매우 염려스러우니, 해당 선공감 차지 감역관(次知監役官)을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소서. 그리고 하인들은 유사로 하여금 가두어 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9월 8일 경오

예조가 아뢰기를, "이번에 종묘에 고하는 대례에 교방 가요(敎坊歌謠)와 정재(呈才)가 있어야 하겠기에, 평안도 기생 중에서 가사(歌詞)를 잘하는 향란(香蘭)과 문향(文香) 등을 각기 소속되어 있는 관청으로부터 올려보낼 것을 이문하였습니다. 그런데 문향은 마침 서울에 와 있다가 전 전랑 허함(許涵)의 집에 피신하여 숨어 있습니다. 장악원에서 차관을 보내 찾았으나 허함은 문을 잠근 채 숨겨 두었고 일을 아는 종까지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원에서는 끝내 찾아내지 못한 채 본조에 이문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큰 경사를 만나 창기(娼妓)를 두고 있는 사대부들이 허함을 본받아 내놓지 않는다면 대례(大禮)가 꼴이 우습게 될 것입니다. 허함을 무겁게 다스리고 문향은 즉시 자수하게 하여, 법을 멸시하고 함부로 구는 습성을 징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사면을 받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두 기녀는 다 관서 지방의 명창(名倡)이었다. 왕이 성기(聲伎)를 좋아하여 보고싶어 하므로 예조가 뜻을 받들어 아부하느라 이렇게 아뢴 것이다. 이때에 교방(敎坊)에는 여악(女樂)이 극성이었고 이를 경례 가요(慶禮歌謠)라고 말하였다. 이들이 서울에 모여들자 왕은 이름있고 예쁜 여자만을 뽑아 대궐로 불러들여 온종일 가무(歌舞)를 즐기고 여러 날 밤을 내보내지 않자, 폐인(嬖人)들은 제각기 예쁜 기생을 데려다가 노래와 춤을 가르쳐서 궁중에서 베푸는 연회를 이바지하게 하였다. 사대부집의 여종들도 연줄을 따라 시연(侍宴)에 출입하였고, 진출을 꾀하는 사람도 모두 여종을 바치는 것으로 발판을 삼았다. 노직(盧稷)의 노비가 일찍이 대궐에 들어가 연회에서 모셨는데, 왕이 이르기를, "너의 주인 장준완(蔣俊琬)을 지금 첨사(僉使)에 제수하였으니 행하로 적당할 것이다." 하였다. 여러 창기들도 다투어 은전을 빌어 관직을 팔기를 내폐(內嬖)나 친속들과 차이가 없게 하였으므로, 뇌물을 바치는 길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이번에 종묘에 고하는 대례에 교방 가요(敎坊歌謠)와 정재(呈才)가 있어야 하겠기에, 평안도 기생 중에서 가사(歌詞)를 잘하는 향란(香蘭)과 문향(文香) 등을 각기 소속되어 있는 관청으로부터 올려보낼 것을 이문하였습니다. 그런데 문향은 마침 서울에 와 있다가 전 전랑 허함(許涵)의 집에 피신하여 숨어 있습니다. 장악원에서 차관을 보내 찾았으나 허함은 문을 잠근 채 숨겨 두었고 일을 아는 종까지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원에서는 끝내 찾아내지 못한 채 본조에 이문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큰 경사를 만나 창기(娼妓)를 두고 있는 사대부들이 허함을 본받아 내놓지 않는다면 대례(大禮)가 꼴이 우습게 될 것입니다. 허함을 무겁게 다스리고 문향은 즉시 자수하게 하여, 법을 멸시하고 함부로 구는 습성을 징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사면을 받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두 기녀는 다 관서 지방의 명창(名倡)이었다. 왕이 성기(聲伎)를 좋아하여 보고싶어 하므로 예조가 뜻을 받들어 아부하느라 이렇게 아뢴 것이다. 이때에 교방(敎坊)에는 여악(女樂)이 극성이었고 이를 경례 가요(慶禮歌謠)라고 말하였다. 이들이 서울에 모여들자 왕은 이름있고 예쁜 여자만을 뽑아 대궐로 불러들여 온종일 가무(歌舞)를 즐기고 여러 날 밤을 내보내지 않자, 폐인(嬖人)들은 제각기 예쁜 기생을 데려다가 노래와 춤을 가르쳐서 궁중에서 베푸는 연회를 이바지하게 하였다. 사대부집의 여종들도 연줄을 따라 시연(侍宴)에 출입하였고, 진출을 꾀하는 사람도 모두 여종을 바치는 것으로 발판을 삼았다. 노직(盧稷)의 노비가 일찍이 대궐에 들어가 연회에서 모셨는데, 왕이 이르기를, "너의 주인 장준완(蔣俊琬)을 지금 첨사(僉使)에 제수하였으니 행하로 적당할 것이다." 하였다. 여러 창기들도 다투어 은전을 빌어 관직을 팔기를 내폐(內嬖)나 친속들과 차이가 없게 하였으므로, 뇌물을 바치는 길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충훈부가 아뢰기를, "공신(功臣)을 추가로 등록할 것인지의 여부를 상고하여 아뢰라는 것으로 전교하셨습니다. 본부에서는 다만 개국(開國)한 이후로 여러 공신들에게 내려준 녹권(錄券)을 지키고 조정에서 훈신들을 우대하는 전례를 주관할 뿐입니다. 녹훈(錄勳)을 주고 빼앗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부가 감히 참여하여 알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례에 추가로 등록한 것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본부에서 상고할 만한 징빙 자료가 없다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공신들의 녹권(錄券)을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공신(功臣)을 추가로 등록할 것인지의 여부를 상고하여 아뢰라는 것으로 전교하셨습니다. 본부에서는 다만 개국(開國)한 이후로 여러 공신들에게 내려준 녹권(錄券)을 지키고 조정에서 훈신들을 우대하는 전례를 주관할 뿐입니다. 녹훈(錄勳)을 주고 빼앗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부가 감히 참여하여 알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례에 추가로 등록한 것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본부에서 상고할 만한 징빙 자료가 없다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공신들의 녹권(錄券)을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상번 군사(上番軍士)를 나누어 배정할 때에 삼사(三司)가 회동하여 고헐(苦歇)을 균등하게 하는 것은 일단의 군정(軍政)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만일 사정에 따라 균등하게 하지 않은 자가 있을 경우 적발하여 죄를 다스리는 문제는 병조에서 전적으로 관장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져 폐습이 만연되고 있는데, 군사를 수월한 곳에 배정해달라고 여러 상사(上司)가 임의대로 지시를 하여, 혹시 명령을 어기기라도 하면 책벌이 막중하니 위장(衛將)의 하리들은 겁에 질려 명령을 제대로 받들지 못할까 겁먹고 있습니다. 비단 하리들만 이러는 것이 아니라 조(曹)나 사(司)의 위장들도 감히 뭐라고 말을 못합니다. 이 때문에 가난한 군졸들은 세력이 없기 때문에 장기간 동안 고달픈 복무에 시달리면서 끊임없이 원통을 호소하고 있으니, 보고 듣기에 몹시 가련합니다. 앞으로는 상사의 지시를 들어주는 자는 위장으로 하여금 낱낱이 고발하게 해서 병조가 법에 따라 엄중하게 다스리게 하되, 만일 숨기고 고발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 담당 위장은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고 부장은 파직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상번 군사(上番軍士)를 나누어 배정할 때에 삼사(三司)가 회동하여 고헐(苦歇)을 균등하게 하는 것은 일단의 군정(軍政)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만일 사정에 따라 균등하게 하지 않은 자가 있을 경우 적발하여 죄를 다스리는 문제는 병조에서 전적으로 관장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져 폐습이 만연되고 있는데, 군사를 수월한 곳에 배정해달라고 여러 상사(上司)가 임의대로 지시를 하여, 혹시 명령을 어기기라도 하면 책벌이 막중하니 위장(衛將)의 하리들은 겁에 질려 명령을 제대로 받들지 못할까 겁먹고 있습니다. 비단 하리들만 이러는 것이 아니라 조(曹)나 사(司)의 위장들도 감히 뭐라고 말을 못합니다. 이 때문에 가난한 군졸들은 세력이 없기 때문에 장기간 동안 고달픈 복무에 시달리면서 끊임없이 원통을 호소하고 있으니, 보고 듣기에 몹시 가련합니다.
앞으로는 상사의 지시를 들어주는 자는 위장으로 하여금 낱낱이 고발하게 해서 병조가 법에 따라 엄중하게 다스리게 하되, 만일 숨기고 고발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 담당 위장은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고 부장은 파직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9월 9일 신미

왕이 안질 때문에 침을 맞았다.

 

9월 10일 임신

전교하였다. "알성시의 방방(放榜)에 응당 행해야할 절목에 대해 해조로 하여금 정돈해 두고 기다리게 하라."
"알성시의 방방(放榜)에 응당 행해야할 절목에 대해 해조로 하여금 정돈해 두고 기다리게 하라."

 

합천 생원 유진정(柳震楨) 등이 상소하여, 문정공(文貞公) 조식(曺植)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현인을 존경하는 그대들의 정성을 가상하게 여긴다.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할 것이니 그대들은 물러가서 글을 읽도록 하라." 하였다.
"상소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현인을 존경하는 그대들의 정성을 가상하게 여긴다.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할 것이니 그대들은 물러가서 글을 읽도록 하라."
하였다.

 

9월 11일 계유

의금부가 아뢰기를, "어제 신들이 회동해서 재인(才人)들을 조사하여 살펴보니, 경상도에서는 전원이 오지 않았고 강원도에서는 단지 4명만 왔습니다. 경상도에는 재능있는 사람이 꽤 많은데 대례(大禮)가 임박한 마당에 차출하여 보낼 뜻이 없으니, 차사원(差使員)은 파직시키고 감사(監司)는 조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수령은 모두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고 체차되어 온 후에는 일등(一等)의 녹봉을 감봉하라." 하였다.
"어제 신들이 회동해서 재인(才人)들을 조사하여 살펴보니, 경상도에서는 전원이 오지 않았고 강원도에서는 단지 4명만 왔습니다. 경상도에는 재능있는 사람이 꽤 많은데 대례(大禮)가 임박한 마당에 차출하여 보낼 뜻이 없으니, 차사원(差使員)은 파직시키고 감사(監司)는 조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수령은 모두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고 체차되어 온 후에는 일등(一等)의 녹봉을 감봉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전일 태묘에 천신(薦新)할 때 연어(鰱魚)를 날것으로 올렸는데 악취가 나서 사람들이 코를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국가의 큰 일은 제사에 있는 것인데 요즘 태묘에 천신하는 물건에 대해 불경스럽기가 이러하니 매우 한심하다. 봉진(封進)한 관리와 감사는 조사하고, 앞으로는 봉상시(奉常寺)로 하여금 각별히 살펴서 처리하도록 하라."
"전일 태묘에 천신(薦新)할 때 연어(鰱魚)를 날것으로 올렸는데 악취가 나서 사람들이 코를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국가의 큰 일은 제사에 있는 것인데 요즘 태묘에 천신하는 물건에 대해 불경스럽기가 이러하니 매우 한심하다. 봉진(封進)한 관리와 감사는 조사하고, 앞으로는 봉상시(奉常寺)로 하여금 각별히 살펴서 처리하도록 하라."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전 부장 고대근(高大根)이 본청에 정장(呈狀)하기를 ‘지난 경술년에 선조(先朝)의 연식(輦飾)을 훔친 도적 심사룡(沈士龍) 등 3명을 힘을 다해 체포하여 모두 전형(典刑)을 가하였고, 인신(印信)을 위조한 도적 홍언방(洪彦邦)도 체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서(李曙)는 종사관이었으나 지금 당상직에까지 올랐는데 저는 도적을 체포한 공이 있는데도 유독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원통합니다. 본청의 문서를 상고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논상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문서를 상고해 보니, 부장 고대근은 무신년 역변이 있을 때부터 임자년 계축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고생하면서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끌어들인 역당과 자복한 대신을 찾아서 체포한 수효가 2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듯 그의 전후로 세운 공로가 상줄 만한데 아직도 은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원통하다고 할 만합니다. 각별히 논상해서 다른 사람을 권장하소서. 황공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가자하라고 전교하였다.
"전 부장 고대근(高大根)이 본청에 정장(呈狀)하기를 ‘지난 경술년에 선조(先朝)의 연식(輦飾)을 훔친 도적 심사룡(沈士龍) 등 3명을 힘을 다해 체포하여 모두 전형(典刑)을 가하였고, 인신(印信)을 위조한 도적 홍언방(洪彦邦)도 체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서(李曙)는 종사관이었으나 지금 당상직에까지 올랐는데 저는 도적을 체포한 공이 있는데도 유독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원통합니다. 본청의 문서를 상고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논상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문서를 상고해 보니, 부장 고대근은 무신년 역변이 있을 때부터 임자년 계축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고생하면서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끌어들인 역당과 자복한 대신을 찾아서 체포한 수효가 2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듯 그의 전후로 세운 공로가 상줄 만한데 아직도 은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원통하다고 할 만합니다. 각별히 논상해서 다른 사람을 권장하소서. 황공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가자하라고 전교하였다.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전 부장 고대근(高大根)이 본청에 정장(呈狀)하기를 ‘지난 경술년에 선조(先朝)의 연식(輦飾)을 훔친 도적 심사룡(沈士龍) 등 3명을 힘을 다해 체포하여 모두 전형(典刑)을 가하였고, 인신(印信)을 위조한 도적 홍언방(洪彦邦)도 체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서(李曙)는 종사관이었으나 지금 당상직에까지 올랐는데 저는 도적을 체포한 공이 있는데도 유독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원통합니다. 본청의 문서를 상고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논상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문서를 상고해 보니, 부장 고대근은 무신년 역변이 있을 때부터 임자년 계축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고생하면서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끌어들인 역당과 자복한 대신을 찾아서 체포한 수효가 2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듯 그의 전후로 세운 공로가 상줄 만한데 아직도 은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원통하다고 할 만합니다. 각별히 논상해서 다른 사람을 권장하소서. 황공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가자하라고 전교하였다.
"전 부장 고대근(高大根)이 본청에 정장(呈狀)하기를 ‘지난 경술년에 선조(先朝)의 연식(輦飾)을 훔친 도적 심사룡(沈士龍) 등 3명을 힘을 다해 체포하여 모두 전형(典刑)을 가하였고, 인신(印信)을 위조한 도적 홍언방(洪彦邦)도 체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서(李曙)는 종사관이었으나 지금 당상직에까지 올랐는데 저는 도적을 체포한 공이 있는데도 유독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원통합니다. 본청의 문서를 상고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논상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문서를 상고해 보니, 부장 고대근은 무신년 역변이 있을 때부터 임자년 계축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고생하면서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끌어들인 역당과 자복한 대신을 찾아서 체포한 수효가 2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듯 그의 전후로 세운 공로가 상줄 만한데 아직도 은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원통하다고 할 만합니다. 각별히 논상해서 다른 사람을 권장하소서. 황공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가자하라고 전교하였다.

 

9월 13일 을해

전교하였다. "앞으로는 축하를 드릴 때 선교관(宣敎官)을 잘 가려서 각별히 높은 소리로 하여 백관이 모두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하라고 명하라."
"앞으로는 축하를 드릴 때 선교관(宣敎官)을 잘 가려서 각별히 높은 소리로 하여 백관이 모두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하라고 명하라."

 

9월 14일 병자

전교하였다. "지난 선조(先朝) 신축년 정월에 예조가 파방(罷榜)하지 말라는 것으로 입계하여 윤허를 내렸다. 법을 정해 놓은 것이 이러하니 이것에 의거하여 시행하라는 뜻으로 해조에 말하라."
"지난 선조(先朝) 신축년 정월에 예조가 파방(罷榜)하지 말라는 것으로 입계하여 윤허를 내렸다. 법을 정해 놓은 것이 이러하니 이것에 의거하여 시행하라는 뜻으로 해조에 말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가 지금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이곳은 예사로운 누관(樓館)을 수령이 마음대로 중수한 것이 아니고 상께서 머물렀던 까닭에 중건하라는 거조가 상의 하교에서 나왔으니, 문형(文衡)이 기문(記文)을 제술하여 후세에 전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가 지금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이곳은 예사로운 누관(樓館)을 수령이 마음대로 중수한 것이 아니고 상께서 머물렀던 까닭에 중건하라는 거조가 상의 하교에서 나왔으니, 문형(文衡)이 기문(記文)을 제술하여 후세에 전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성모(聖母)의 관복(冠服)을 하사하신 것에 대해 태묘에 고하는 예를 친히 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으니, 다시 택일하여 늦추도록 하라."
"성모(聖母)의 관복(冠服)을 하사하신 것에 대해 태묘에 고하는 예를 친히 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으니, 다시 택일하여 늦추도록 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전에 없던 큰 경사를 오랫동안 종묘에 고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비가 내리고는 있으나 석양이 되면 조금 그칠 것입니다. 마련해 놓은 제물이 이미 오래되었고 모든 일이 다 준비 되어 있으니, 상께서는 종묘에 나아가서 망묘(望廟)의 예만 행하셔도 군속한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때쯤 거둥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친제(親祭)를 늦추는 문제는 일의 체모가 중난하다는 것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으니 비록 석양에 조금 그친다 하더러도 뜰이 젖어서 좋지 않을 것이다. 대례를 이렇게 거행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늦추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였다. 옥당이 또 상차하여 늦추지 말기를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전에 없던 큰 경사를 오랫동안 종묘에 고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비가 내리고는 있으나 석양이 되면 조금 그칠 것입니다. 마련해 놓은 제물이 이미 오래되었고 모든 일이 다 준비 되어 있으니, 상께서는 종묘에 나아가서 망묘(望廟)의 예만 행하셔도 군속한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때쯤 거둥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친제(親祭)를 늦추는 문제는 일의 체모가 중난하다는 것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으니 비록 석양에 조금 그친다 하더러도 뜰이 젖어서 좋지 않을 것이다. 대례를 이렇게 거행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늦추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였다. 옥당이 또 상차하여 늦추지 말기를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9월 15일 정축

전교하였다. "음복연(飮福宴)에 참석해야 할 인원으로서 임시하여 병으로 오지 못할 자를 낱낱이 명초(命招)해서 연례에 참석하게 할 것을 살펴서 하도록 하라."
"음복연(飮福宴)에 참석해야 할 인원으로서 임시하여 병으로 오지 못할 자를 낱낱이 명초(命招)해서 연례에 참석하게 할 것을 살펴서 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대연(大輦)을 살펴보니 파손되고 퇴색된 곳이 많았다. 거둥한 후에는 존숭 도감으로 하여금 신속하게 개조해서 쓸 수 있도록 하라."
"대연(大輦)을 살펴보니 파손되고 퇴색된 곳이 많았다. 거둥한 후에는 존숭 도감으로 하여금 신속하게 개조해서 쓸 수 있도록 하라."

 

9월 16일 무인

일본 평조흥(平調興)이 사신을 보내 서계(書契)를 전하고, 포로로 잡아간 남녀 4명을 쇄환해 왔다.

 

신시에 왕이 태묘에 나아갔다.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이 음복례를 21일로 늦추도록 명하셨는데,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고 음복례를 베푸는 것은 신이 주신 복을 빛내기 위한 것입니다. 삼대의 예는 ‘제사 지낸 다음날에 손님들과 시동에게 역(繹)제사를 지낸다.’ 하였고, 옛날에는 제사 지낸 음식을 3일을 넘기지 않았으니, 3일을 넘기게 되면 고기가 상해서 사람들이 먹을 수가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귀신이 남겨준 음식을 함부로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전에 없던 큰 경사를 당하여 친제를 지내고 나서 실시하는 음복례를 어찌 5일 동안이나 늦출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온당치 않게 여기고 있으니, 전에 정하여 놓았던 18일에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일은 불길하므로 늦추려는 것이다. 예관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지금 이 음복례를 21일로 늦추도록 명하셨는데,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고 음복례를 베푸는 것은 신이 주신 복을 빛내기 위한 것입니다. 삼대의 예는 ‘제사 지낸 다음날에 손님들과 시동에게 역(繹)제사를 지낸다.’ 하였고, 옛날에는 제사 지낸 음식을 3일을 넘기지 않았으니, 3일을 넘기게 되면 고기가 상해서 사람들이 먹을 수가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귀신이 남겨준 음식을 함부로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전에 없던 큰 경사를 당하여 친제를 지내고 나서 실시하는 음복례를 어찌 5일 동안이나 늦출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온당치 않게 여기고 있으니, 전에 정하여 놓았던 18일에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일은 불길하므로 늦추려는 것이다. 예관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정원이 아뢴 내용은 예를 근거로 하여 인정을 참작한 것으로서 매우 타당합니다. 제삿날을 이미 길한 날로 잡았다면 음복날을 다시 가릴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음복하는 대례를 5일 동안이나 늦추는 것은 사람들이 다 온편치 않게 여기고 있으니, 전에 정해 놓았던 18일에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정원이 아뢴 내용은 예를 근거로 하여 인정을 참작한 것으로서 매우 타당합니다. 제삿날을 이미 길한 날로 잡았다면 음복날을 다시 가릴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음복하는 대례를 5일 동안이나 늦추는 것은 사람들이 다 온편치 않게 여기고 있으니, 전에 정해 놓았던 18일에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9월 17일 기묘

왕이 공성 왕후(恭聖王后)의 관복(冠服)을 태묘에 고하였다. 제사를 마치고 어가를 타고 나갔다. 채붕(彩棚)과 향산(香山)을 설치해 놓고 배우와 기생들이 큰길에서 놀이를 하니, 곳곳에서 어가를 멈추고서 하루 종일 관람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오늘이 비록 대단히 경사스러운 날이기는 합니다만 밤새도록 제사를 지내셨으므로 필시 옥체가 많이 손상되셨을 터인데, 오랫동안 어가를 멈추고 배우들의 놀이와 여악을 관람하시는 것은 참으로 성덕(聖德)의 일이 아닙니다. 속히 정전(正殿)으로 돌아가셔서 신하들의 축하를 받으소서." 하고, 사헌부가 아뢰기를, "오늘 채붕을 세우고 향산을 설치한 것은 큰 경사를 빛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큰 경사의 근본은 사당에 고하고 하례를 올리는 데 있으니, 채붕과 향산은 관람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속히 환궁하여 축하를 받아서 대단히 경사스러운 예를 마무리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전에 없던 큰 경사이다. 같이 즐기고 경사를 누려서 황은(皇恩)을 빛내는 것은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사헌부가 재차 아뢰기를, "관복을 이미 내려서 태묘에 고했으니, 오늘의 큰 경사가 어찌 꼭 여악(女樂)을 설치해야만 유익하겠습니까. 더구나 밤새도록 예를 행하셨으니 성상의 몸이 고달프실 것입니다. 속히 법궁(法宮)으로 돌아가서 신하들의 하례를 받으소서." 하고, 사간원이 아뢰기를, "조섭하신 지가 오래되지 않았는데 밤새도록 제사를 지내셨으니, 옥체가 필시 많이 상하셨을 것입니다. 더구나 함께 즐기고 경사를 누리는 것은 여악(女樂)과 잡희(雜戲)에 있지 않으며, 황은(皇恩)을 빛내는 것도 배우들의 요사스러운 기예에 있지 않으니, 더욱 잠시라도 어가를 멈추어서 성덕에 누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속히 법전(法殿)으로 환궁하셔서 여러 신하들의 축하를 받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큰 경사를 치른 후에 황은(皇恩)을 빛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사간원이 세 번째 아뢰기를, "황제의 은혜를 빛내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완고하게 거절하시니, 신들은 삼가 민망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만일 마음을 비우고 이 말을 받아들이신다면 실로 많은 사람들이 격려될 것이며, 그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속히 정전으로 돌아가셔서 신하들의 기대에 보답하소서." 하고, 사헌부가 세 번째 아뢰기를, "배우들의 잡기와 분바른 것들의 요망스런 놀이는 임금이 보지 않아야 할 것들입니다. 오늘의 경사가 전에 없던 것이라고는 하나, 전하께서 오랫동안 어가를 멈추고서 마냥 보고 계시니, 이래서 신들이 두번 세번 청하는 것입니다. 잡희를 보지 말고 속히 정전으로 환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뜻은 이미 유시하였다만 마땅히 헤아려서 조처할 것이니,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승정원과 홍문관도 어가 앞에서 세 번이나 아뢰었으나, 모두 따르지 않았다. 아침에 묘문(廟門)을 나와 해가 기운 다음에야 돌아왔다. 경례(慶禮)의 여악은 다 간당(奸黨)이 종용해서 진행한 것이었는데, 어가 앞에서의 논계는 규례에 따라 책임만 모면하려는 데 불과했던 것으로 직언이 아니었다.
"오늘이 비록 대단히 경사스러운 날이기는 합니다만 밤새도록 제사를 지내셨으므로 필시 옥체가 많이 손상되셨을 터인데, 오랫동안 어가를 멈추고 배우들의 놀이와 여악을 관람하시는 것은 참으로 성덕(聖德)의 일이 아닙니다. 속히 정전(正殿)으로 돌아가셔서 신하들의 축하를 받으소서."
하고, 사헌부가 아뢰기를,
"오늘 채붕을 세우고 향산을 설치한 것은 큰 경사를 빛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큰 경사의 근본은 사당에 고하고 하례를 올리는 데 있으니, 채붕과 향산은 관람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속히 환궁하여 축하를 받아서 대단히 경사스러운 예를 마무리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전에 없던 큰 경사이다. 같이 즐기고 경사를 누려서 황은(皇恩)을 빛내는 것은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으니,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사헌부가 재차 아뢰기를,
"관복을 이미 내려서 태묘에 고했으니, 오늘의 큰 경사가 어찌 꼭 여악(女樂)을 설치해야만 유익하겠습니까. 더구나 밤새도록 예를 행하셨으니 성상의 몸이 고달프실 것입니다. 속히 법궁(法宮)으로 돌아가서 신하들의 하례를 받으소서."
하고, 사간원이 아뢰기를,
"조섭하신 지가 오래되지 않았는데 밤새도록 제사를 지내셨으니, 옥체가 필시 많이 상하셨을 것입니다. 더구나 함께 즐기고 경사를 누리는 것은 여악(女樂)과 잡희(雜戲)에 있지 않으며, 황은(皇恩)을 빛내는 것도 배우들의 요사스러운 기예에 있지 않으니, 더욱 잠시라도 어가를 멈추어서 성덕에 누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속히 법전(法殿)으로 환궁하셔서 여러 신하들의 축하를 받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큰 경사를 치른 후에 황은(皇恩)을 빛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사간원이 세 번째 아뢰기를,
"황제의 은혜를 빛내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완고하게 거절하시니, 신들은 삼가 민망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만일 마음을 비우고 이 말을 받아들이신다면 실로 많은 사람들이 격려될 것이며, 그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속히 정전으로 돌아가셔서 신하들의 기대에 보답하소서."
하고, 사헌부가 세 번째 아뢰기를,
"배우들의 잡기와 분바른 것들의 요망스런 놀이는 임금이 보지 않아야 할 것들입니다. 오늘의 경사가 전에 없던 것이라고는 하나, 전하께서 오랫동안 어가를 멈추고서 마냥 보고 계시니, 이래서 신들이 두번 세번 청하는 것입니다. 잡희를 보지 말고 속히 정전으로 환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뜻은 이미 유시하였다만 마땅히 헤아려서 조처할 것이니,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승정원과 홍문관도 어가 앞에서 세 번이나 아뢰었으나, 모두 따르지 않았다. 아침에 묘문(廟門)을 나와 해가 기운 다음에야 돌아왔다. 경례(慶禮)의 여악은 다 간당(奸黨)이 종용해서 진행한 것이었는데, 어가 앞에서의 논계는 규례에 따라 책임만 모면하려는 데 불과했던 것으로 직언이 아니었다.

 

왕이 정전에 거둥하니, 왕세자가 백관을 거느리고 와서 하례를 올렸다. 팔도에 교서를 반포하여 잡범으로서 사형수 이하를 사면하고, 백관에게 가자하되 품계가 다한 자는 대가(代加)하게 하였다. 그 교서에 이르기를, "법복을 베풀어 주셔 이미 추숭하는 예전을 갖추었으며, 정결히 제사를 지내고 이에 널리 고하는 법을 따른다. 기쁨을 어찌 나만 누릴 수 있겠는가. 이 경사스러움을 백성들과 함께 하여야 한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길러준 은혜를 받지 못했다. 동조(東朝)에서 보양을 받지 못하였으니 몇 번이나 꿈속에서 모습을 보았으며, 임금이 되고 나서 어리는 슬픔은 즐거울 때 더욱 억제할 수가 없다. 다행히 효자를 돌봐주는 황제의 은혜를 입어, 어버이를 높이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황제의 조서로 부친의 지위는 건원(乾元)에 나란해졌으나, 장식을 갖춘 모후(母后)의 관복은 오히려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이에 황제께 거듭 청하여 상자에 담아 보내주신 관복을 받게 되었다. 상홀(象笏)과 적관(翟冠)은 구장(九章)의 성대한 장식이 빛나고, 수놓은 의복은 오색(五色)의 기이한 무늬가 찬란하다. 황제의 하사에 감사하고 그 함(函)을 받들어 와서, 좋은 날을 받아 태묘에 전알하였다. 처음 영좌(靈座)에 진열할 때에는 모후의 거둥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결국 신위(神幃)를 가리자 위의(褘衣)의 제도를 시험해 보지 못하였다. 중후한 은택이야 생시에나 사후에나 균일하지만 미약한 정성은 이승과 저승에 막혀 있다. 태실(太室)에다 잘 보관하여 길이 후손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능묘의 제삿날에는 달밤에 나와서 노니실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름다움을 이룬 것이 아니라 실로 성조(聖朝)의 도움이신 것이다. 훌륭한 황제의 특이한 은수를 내 한평생에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자식으로서의 지극한 정을 오늘에서야 펼 수 있게 되었다. 제사를 마치자마자 사면령을 내리는 규례를 살펴보았다. 아, 근본에 힘쓰고 윤리를 다하는데 있어 어찌 제사지내는 것만으로 돈목(敦睦)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죄를 용서해주는 사면을 베풀어야 정치가 거의 화합될 것이다. 이에 이 교시를 내리는 것이니, 마땅히 잘 알 줄로 믿는다." 하였다.
"법복을 베풀어 주셔 이미 추숭하는 예전을 갖추었으며, 정결히 제사를 지내고 이에 널리 고하는 법을 따른다. 기쁨을 어찌 나만 누릴 수 있겠는가. 이 경사스러움을 백성들과 함께 하여야 한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길러준 은혜를 받지 못했다. 동조(東朝)에서 보양을 받지 못하였으니 몇 번이나 꿈속에서 모습을 보았으며, 임금이 되고 나서 어리는 슬픔은 즐거울 때 더욱 억제할 수가 없다. 다행히 효자를 돌봐주는 황제의 은혜를 입어, 어버이를 높이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황제의 조서로 부친의 지위는 건원(乾元)에 나란해졌으나, 장식을 갖춘 모후(母后)의 관복은 오히려 갖추어지지 못하였다. 이에 황제께 거듭 청하여 상자에 담아 보내주신 관복을 받게 되었다. 상홀(象笏)과 적관(翟冠)은 구장(九章)의 성대한 장식이 빛나고, 수놓은 의복은 오색(五色)의 기이한 무늬가 찬란하다. 황제의 하사에 감사하고 그 함(函)을 받들어 와서, 좋은 날을 받아 태묘에 전알하였다. 처음 영좌(靈座)에 진열할 때에는 모후의 거둥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결국 신위(神幃)를 가리자 위의(褘衣)의 제도를 시험해 보지 못하였다.
중후한 은택이야 생시에나 사후에나 균일하지만 미약한 정성은 이승과 저승에 막혀 있다. 태실(太室)에다 잘 보관하여 길이 후손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능묘의 제삿날에는 달밤에 나와서 노니실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름다움을 이룬 것이 아니라 실로 성조(聖朝)의 도움이신 것이다. 훌륭한 황제의 특이한 은수를 내 한평생에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자식으로서의 지극한 정을 오늘에서야 펼 수 있게 되었다. 제사를 마치자마자 사면령을 내리는 규례를 살펴보았다.
아, 근본에 힘쓰고 윤리를 다하는데 있어 어찌 제사지내는 것만으로 돈목(敦睦)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죄를 용서해주는 사면을 베풀어야 정치가 거의 화합될 것이다. 이에 이 교시를 내리는 것이니, 마땅히 잘 알 줄로 믿는다."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제주 판관 박동명(朴東命)에 대해서 본부가 서경(署經)을 세 번이나 넘겼으니, 규례에 따라 체차하소서. 전에 없던 국가의 경사로 인하여 상께서 몸소 대제(大祭)를 지내기까지 하셨으니 이것이 얼마나 큰 경사입니까. 종실로서 제사에 차출된 자가 31명이었으나 예행 연습에 실지로 참석한 자는 단지 2명 뿐이었으니, 보기에 형편없었을 뿐 아니라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진 것을 여기에서 더욱 알 수 있습니다.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종실에 관한 일은 서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제주 판관 박동명(朴東命)에 대해서 본부가 서경(署經)을 세 번이나 넘겼으니, 규례에 따라 체차하소서. 전에 없던 국가의 경사로 인하여 상께서 몸소 대제(大祭)를 지내기까지 하셨으니 이것이 얼마나 큰 경사입니까. 종실로서 제사에 차출된 자가 31명이었으나 예행 연습에 실지로 참석한 자는 단지 2명 뿐이었으니, 보기에 형편없었을 뿐 아니라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진 것을 여기에서 더욱 알 수 있습니다.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종실에 관한 일은 서서히 결정하겠다."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사당에 고하고 제사를 지낸 다음 음복하는 잔치를 여는 것은 신명이 남겨준 음식을 공경히 하고 귀신이 주는 것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경사스러움은 전에 없던 것이고 그 예절은 막중한 것인데, 어찌 예에 맞지 않는 풍악을 법연(法筵)에서 연주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임금이 하는 일은 반드시 기록하게 되는데 법이 아닌 것을 기록해 놓는다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여악(女樂)을 설치토록 하신 명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조종조(祖宗朝)에는 모든 연례(宴禮)에 여악을 설치했었다. 더구나 이 관복을 태묘에 고하는 일은 실로 막대한 경사이므로 구례(舊例)에 의거하여 여악을 쓰려는 것이다.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사당에 고하고 제사를 지낸 다음 음복하는 잔치를 여는 것은 신명이 남겨준 음식을 공경히 하고 귀신이 주는 것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경사스러움은 전에 없던 것이고 그 예절은 막중한 것인데, 어찌 예에 맞지 않는 풍악을 법연(法筵)에서 연주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임금이 하는 일은 반드시 기록하게 되는데 법이 아닌 것을 기록해 놓는다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여악(女樂)을 설치토록 하신 명을 환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조종조(祖宗朝)에는 모든 연례(宴禮)에 여악을 설치했었다. 더구나 이 관복을 태묘에 고하는 일은 실로 막대한 경사이므로 구례(舊例)에 의거하여 여악을 쓰려는 것이다.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친제(親祭)를 지내고 환궁하던 날 양사(兩司)가 계사를 들이지 않았다. 요즘 새로 제수된 대간이 전례를 몰라서 그런 것이니 앞으로 정원은 살펴서 하라."
"친제(親祭)를 지내고 환궁하던 날 양사(兩司)가 계사를 들이지 않았다. 요즘 새로 제수된 대간이 전례를 몰라서 그런 것이니 앞으로 정원은 살펴서 하라."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계하여, 심희수 등 3인에게 내린 성명을 환수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 일을 가지고 어찌 합계까지 하는가.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양사가 매일 연계(連啓)하였으나 따르지 않으므로 이때에 이르러 합계(合啓)한 것이다. 옥당도 잇따라 차자를 올렸다.】
"이 일을 가지고 어찌 합계까지 하는가.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양사가 매일 연계(連啓)하였으나 따르지 않으므로 이때에 이르러 합계(合啓)한 것이다. 옥당도 잇따라 차자를 올렸다.】

 

9월 18일 경진

왕이 정전(正殿)에 거둥하여 음복연(飮福宴)을 거행하였다. 여악을 설치하고 술이 아홉 순배가 돌았는데, 양사의 장관이 아뢰기를, "어제 상께서 밤새도록 제사를 지내시고 바로 음복연을 거행하시니 큰 경사스러움에 대한 일이 극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술잔수를 다하기 전에 밤이 깊어질 것입니다. 옥체가 상할까 염려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법연을 한밤중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부당할 듯합니다. 정지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전에 없던 큰 경사이니 비록 밤이 되도록 거행하더라도 괜찮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옥당과 정원도 거듭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열한 순배가 돌자 대신이 아뢰어 한밤에 연회를 파하였다.
"어제 상께서 밤새도록 제사를 지내시고 바로 음복연을 거행하시니 큰 경사스러움에 대한 일이 극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술잔수를 다하기 전에 밤이 깊어질 것입니다. 옥체가 상할까 염려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법연을 한밤중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부당할 듯합니다. 정지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전에 없던 큰 경사이니 비록 밤이 되도록 거행하더라도 괜찮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옥당과 정원도 거듭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열한 순배가 돌자 대신이 아뢰어 한밤에 연회를 파하였다.

 

9월 19일 신사

사헌부가 아뢰기를, "음복하는 잔치는 더없이 성대한 예입니다. 그런데 행 사직 이문전(李文荃)은 정전 내에서 동쪽 계단으로 나올 때 조관(朝官) 한 명을 발로 차서 대단히 품위를 잃었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임금의 가까운 자리에서 이처럼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여 보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놀라워하였습니다. 이러한 습성은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음복하는 잔치는 더없이 성대한 예입니다. 그런데 행 사직 이문전(李文荃)은 정전 내에서 동쪽 계단으로 나올 때 조관(朝官) 한 명을 발로 차서 대단히 품위를 잃었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임금의 가까운 자리에서 이처럼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여 보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놀라워하였습니다. 이러한 습성은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파직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병조의 군사를 징집하는 공사(公事)를 가지고 전교하였다. "요즘 거둥하는 일이 너무 잦다. 이달 21일에 인경궁에 친림하려던 것은 형편상 하기 어려울 듯하니, 후일 다시 하교하거든 마련하도록 하라."
"요즘 거둥하는 일이 너무 잦다. 이달 21일에 인경궁에 친림하려던 것은 형편상 하기 어려울 듯하니, 후일 다시 하교하거든 마련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양덕 현감(陽德縣監) 심눌(沈訥)은 특별히 제수한 사람이다. 속히 서둘러 며칠 안으로 내려보낼 일로 해조에 말하라."
"양덕 현감(陽德縣監) 심눌(沈訥)은 특별히 제수한 사람이다. 속히 서둘러 며칠 안으로 내려보낼 일로 해조에 말하라."

 

9월 20일 임오

전교하였다. "정부(政府)에 봉진한 마필(馬匹)은 더욱 사용할 수가 없는데 보기에 매우 형편없었다. 앞으로 사복시와 해조는 살펴서 하도록 하라."
"정부(政府)에 봉진한 마필(馬匹)은 더욱 사용할 수가 없는데 보기에 매우 형편없었다. 앞으로 사복시와 해조는 살펴서 하도록 하라."

 

9월 21일 계미

의금부가 아뢰기를, "전에 없던 큰 경사를 만나 잡범으로서 죽을 죄를 지은 자 이하를 모두 석방하라는 명을 내리셨으니, 우리 나라 수천리에 생명을 가진 무리로서 어느 누가 기쁨에 고무되어 마치 다시 소생한 것처럼 여기지 않겠습니까. 천지의 대덕(大德)은 살리는 데 있는 것이니 큰 경사로 인하여 지극히 인자함을 베푼 것은 실로 제왕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지덕(至德)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부는 하교를 받들어 추국할 뿐으로 석방 대상을 의논할 즈음에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두 공사(公事) 건의 죄수를 석방시키기를 서계하는 것은 형벌을 신중히 하려는 성상의 의도에 괴리되는 것같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에 없던 큰 경사를 만나 잡범으로서 죽을 죄를 지은 자 이하를 모두 석방하라는 명을 내리셨으니, 우리 나라 수천리에 생명을 가진 무리로서 어느 누가 기쁨에 고무되어 마치 다시 소생한 것처럼 여기지 않겠습니까. 천지의 대덕(大德)은 살리는 데 있는 것이니 큰 경사로 인하여 지극히 인자함을 베푼 것은 실로 제왕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지덕(至德)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부는 하교를 받들어 추국할 뿐으로 석방 대상을 의논할 즈음에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두 공사(公事) 건의 죄수를 석방시키기를 서계하는 것은 형벌을 신중히 하려는 성상의 의도에 괴리되는 것같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첫번째 정사하니, 답하기를, "지금 역옥(逆獄)을 완결짓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례(大禮)가 겹쳐 있다. 이런 때에 대신이 정고해서는 안 되니 안심하고 조리하여 일을 보라는 것으로 유시하라. 그리고 내의(內醫)를 보내 병을 보살피게 하라." 하였다.
"지금 역옥(逆獄)을 완결짓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례(大禮)가 겹쳐 있다. 이런 때에 대신이 정고해서는 안 되니 안심하고 조리하여 일을 보라는 것으로 유시하라. 그리고 내의(內醫)를 보내 병을 보살피게 하라."
하였다.

 

교리 이잠(李埁)이 서계하기를, "신이 명을 받들고 가서 좌의정 정인홍에게 유시하였더니, 그가 아뢰기를 ‘신이 늙고 병들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누차 차자를 올려 체직시켜 주기를 간절히 빌었으나, 성상의 비답은 완고하게 거절하시면서 사람을 계속 보내오셨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번에는 또 유신(儒臣)을 보내시어 하유하셨습니다. 성상의 하교가 이렇듯 간절하시니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부르심에 따를 수 없다는 이유는 전후하여 올린 차자에 이미 다 진달하였으므로, 이번에는 감히 다시 말씀을 드리지 않고 땅에 엎드려 대죄하면서 단지 체척시켜 줄 기약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좌상에게 대죄하지 말고 마음 편히 조리하다가 일어나 올라오라는 것으로 다시 사관을 보내 하유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이 명을 받들고 가서 좌의정 정인홍에게 유시하였더니, 그가 아뢰기를 ‘신이 늙고 병들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누차 차자를 올려 체직시켜 주기를 간절히 빌었으나, 성상의 비답은 완고하게 거절하시면서 사람을 계속 보내오셨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번에는 또 유신(儒臣)을 보내시어 하유하셨습니다. 성상의 하교가 이렇듯 간절하시니 황공하고 감격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부르심에 따를 수 없다는 이유는 전후하여 올린 차자에 이미 다 진달하였으므로, 이번에는 감히 다시 말씀을 드리지 않고 땅에 엎드려 대죄하면서 단지 체척시켜 줄 기약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좌상에게 대죄하지 말고 마음 편히 조리하다가 일어나 올라오라는 것으로 다시 사관을 보내 하유하도록 하라."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중국에 가는 일행에는 위로 상사(上使)와 부사(副使)를 두고 아래로 서장관(書狀官)을 두었으니, 그만하면 전대(專對)하는 책임을 맡을 수 있고 사신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정관(質正官)을 폐지한 지가 거의 30년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왕명을 받드는 데는 무익하고 오가는 길에만 해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사은사의 일행에 상사 신식(申湜)의 아들 신득연(申得淵)을 질정관으로 삼았는데, 이는 30년 동안 폐지했던 관직을 창설한 것입니다. 신식의 부자에게는 영광이겠지만 국가의 정체로 볼 때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국내에 말들이 자자하고 물의가 격렬하게 일고 있으니, 다시 질정관을 세우라고 했던 명을 환수하소서. 예로부터 국가를 소유한 자는 현인을 존경하고 도를 중시하는 것으로 교화를 불러일으키고 정치를 잘하는 근본으로 삼지 않은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인을 존경하라는 명만 내리고 장려하는 은전은 베풀지 않는다면 예양(禮讓)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따라서 문을 숭상하는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조식(曺植)은 학문은 수사(洙泗)의 학문을 전수받았고 도맥(道脈)은 염락(濂洛)에 접맥되어 있으며, 유림이 종사(宗師)로 여기는 바로써 온 나라가 공경하고 있는데 아직도 종사(從祀)의 은전을 받지 못하였으니, 어찌 밝은 세상의 흠이 아니겠으며 우리 도학의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영남 지방의 유생들이 천리 길을 와서 임금께 상소를 진달하였으니 현인을 존경하는 정성이 지극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윤허하는 분부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선비들의 소망을 외면하는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을 살펴보면 의리가 밝지 못하고 막혀서 선비들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시(國是)가 현란하기 때문에 윤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포상하는 은전을 베풀어서 존경하고 숭상하는 도리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결국 백성은 짐승이 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며 나라는 나라답지 못할 것입니다. 선정신 조식에게 종사하라는 명을 속히 내려서 사문(斯文)을 소중하게 여기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중국에 가는 일행에는 위로 상사(上使)와 부사(副使)를 두고 아래로 서장관(書狀官)을 두었으니, 그만하면 전대(專對)하는 책임을 맡을 수 있고 사신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정관(質正官)을 폐지한 지가 거의 30년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왕명을 받드는 데는 무익하고 오가는 길에만 해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사은사의 일행에 상사 신식(申湜)의 아들 신득연(申得淵)을 질정관으로 삼았는데, 이는 30년 동안 폐지했던 관직을 창설한 것입니다. 신식의 부자에게는 영광이겠지만 국가의 정체로 볼 때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국내에 말들이 자자하고 물의가 격렬하게 일고 있으니, 다시 질정관을 세우라고 했던 명을 환수하소서.
예로부터 국가를 소유한 자는 현인을 존경하고 도를 중시하는 것으로 교화를 불러일으키고 정치를 잘하는 근본으로 삼지 않은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인을 존경하라는 명만 내리고 장려하는 은전은 베풀지 않는다면 예양(禮讓)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따라서 문을 숭상하는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조식(曺植)은 학문은 수사(洙泗)의 학문을 전수받았고 도맥(道脈)은 염락(濂洛)에 접맥되어 있으며, 유림이 종사(宗師)로 여기는 바로써 온 나라가 공경하고 있는데 아직도 종사(從祀)의 은전을 받지 못하였으니, 어찌 밝은 세상의 흠이 아니겠으며 우리 도학의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영남 지방의 유생들이 천리 길을 와서 임금께 상소를 진달하였으니 현인을 존경하는 정성이 지극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윤허하는 분부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선비들의 소망을 외면하는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을 살펴보면 의리가 밝지 못하고 막혀서 선비들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시(國是)가 현란하기 때문에 윤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포상하는 은전을 베풀어서 존경하고 숭상하는 도리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결국 백성은 짐승이 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며 나라는 나라답지 못할 것입니다. 선정신 조식에게 종사하라는 명을 속히 내려서 사문(斯文)을 소중하게 여기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질정관(質正官)은 평상시에도 그다지 긴요한 직책이 아니었으며, 난리후로 폐지한 지가 오래되었지만 아무런 폐단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가는 사은사의 임무는 별로 질정할 만한 일이 없는데, 상사 신식(申湜)이 그의 아들을 데리고 가고자 특별히 다시 설치하게 하였습니다. 부자가 함께 사신이 되는 것이 영광이라면 영광입니다만, 우리 나라가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어찌 기어이 그들 부자를 일행으로 함께 보내서 조선에는 사람도 없다는 중국 측의 비난을 사려 하십니까. 신득연에게 내린 질정관의 직함을 바꾸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질정관(質正官)은 평상시에도 그다지 긴요한 직책이 아니었으며, 난리후로 폐지한 지가 오래되었지만 아무런 폐단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가는 사은사의 임무는 별로 질정할 만한 일이 없는데, 상사 신식(申湜)이 그의 아들을 데리고 가고자 특별히 다시 설치하게 하였습니다. 부자가 함께 사신이 되는 것이 영광이라면 영광입니다만, 우리 나라가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어찌 기어이 그들 부자를 일행으로 함께 보내서 조선에는 사람도 없다는 중국 측의 비난을 사려 하십니까. 신득연에게 내린 질정관의 직함을 바꾸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국가에 큰 경사가 있으면 잡상(雜像)을 설치하고 우희(優戲)를 늘어놓아서 함께 기뻐하는 뜻을 기리는 것은, 조종조로부터 2백 년 동안 유래되는 예이지, 진실로 오늘날 새로 창설한 것이 아니다. 여악(女樂)의 경우만 해도 해조가 청하여 예행 연습을 해온 지가 벌써 오래되었는데, 이날 응당 거행할 것이라는 것을 삼사(三司)에서는 어찌 익히 들어서 미리 알고있지 않았더란 말인가. 그런데 어가를 멈춘 길가에서 감히 큰소리를 내어 강직한 체하려고 마치 이 일에 대해서 일찍이 듣지 못했다가 별안간 보고 놀라는 것처럼 하였으니, 임금에게 고하는 말이 신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원근의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매우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여악(女樂)의 정재(呈才)는 이미 수를 줄였으니, 도중에서 아뢰어 단지 한번 정도 뜻을 진달하면 되었다. 그런데 삼사가 서로 번갈아가면서 아뢰어 그 번거로움을 꺼려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전례가 아니다. 이 뜻을 정원은 잘 알도록 하라."
"국가에 큰 경사가 있으면 잡상(雜像)을 설치하고 우희(優戲)를 늘어놓아서 함께 기뻐하는 뜻을 기리는 것은, 조종조로부터 2백 년 동안 유래되는 예이지, 진실로 오늘날 새로 창설한 것이 아니다. 여악(女樂)의 경우만 해도 해조가 청하여 예행 연습을 해온 지가 벌써 오래되었는데, 이날 응당 거행할 것이라는 것을 삼사(三司)에서는 어찌 익히 들어서 미리 알고있지 않았더란 말인가. 그런데 어가를 멈춘 길가에서 감히 큰소리를 내어 강직한 체하려고 마치 이 일에 대해서 일찍이 듣지 못했다가 별안간 보고 놀라는 것처럼 하였으니, 임금에게 고하는 말이 신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원근의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매우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여악(女樂)의 정재(呈才)는 이미 수를 줄였으니, 도중에서 아뢰어 단지 한번 정도 뜻을 진달하면 되었다. 그런데 삼사가 서로 번갈아가면서 아뢰어 그 번거로움을 꺼려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전례가 아니다. 이 뜻을 정원은 잘 알도록 하라."

 

9월 22일 갑신

전교하였다. "내가 선조(先朝) 때 실시하던 알성시(謁聖試)를 보니, 날샐 무렵에 혹은 먼동이 틀 무렵에 명륜당(明倫堂)에 거둥하여 출제를 하였다. 앞으로는 이 규례에 의거하여 일찍이 나아가 살펴서 할 것을 색승지는 각별히 검찰하여 실시하라."
"내가 선조(先朝) 때 실시하던 알성시(謁聖試)를 보니, 날샐 무렵에 혹은 먼동이 틀 무렵에 명륜당(明倫堂)에 거둥하여 출제를 하였다. 앞으로는 이 규례에 의거하여 일찍이 나아가 살펴서 할 것을 색승지는 각별히 검찰하여 실시하라."

 

대사간 윤인(尹認), 사간 정도(鄭道),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황덕부(黃德符) 박종주(朴宗胄)가 아뢰었다. "신들이 모두 보잘것없는 자들로 언관의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전날 상께서 태묘에 고하고 궁궐로 돌아오시던 날에 속히 여악 관람을 중지하고 신하들의 축하를 받으라는 뜻으로 입계하였던 것입니다. 어제 내리신 비망기를 보니 상당히 미안스러운 분부가 있었는데, 신들은 삼가 의혹을 느낍니다. 관복(官服)을 내려준 것은 전에 없던 경사이므로 잡상(雜像)과 우희(優戲)를 설치하였으니, 이는 사실 상하가 다같이 기쁨을 나누자는 것이었습니다. 신들이 어찌 성상께서 황은(皇恩)을 빛내고 큰 경사를 드러내고자 하시는 의도를 모르겠습니까. 다만 길에다 어가를 멈추고 오랫동안 잡희를 구경하시는 것은 성덕에 누가 될 뿐만 아니라, 조섭하는 여가에 밤새도록 제례를 행하셨기 때문에 옥체를 상하실까 염려스러웠습니다.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간절하다 보니 말을 번거롭게 하였던 것으로, 이는 강직한 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엄한 분부를 받았으니 형세상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신들이 모두 보잘것없는 자들로 언관의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전날 상께서 태묘에 고하고 궁궐로 돌아오시던 날에 속히 여악 관람을 중지하고 신하들의 축하를 받으라는 뜻으로 입계하였던 것입니다. 어제 내리신 비망기를 보니 상당히 미안스러운 분부가 있었는데, 신들은 삼가 의혹을 느낍니다.
관복(官服)을 내려준 것은 전에 없던 경사이므로 잡상(雜像)과 우희(優戲)를 설치하였으니, 이는 사실 상하가 다같이 기쁨을 나누자는 것이었습니다. 신들이 어찌 성상께서 황은(皇恩)을 빛내고 큰 경사를 드러내고자 하시는 의도를 모르겠습니까. 다만 길에다 어가를 멈추고 오랫동안 잡희를 구경하시는 것은 성덕에 누가 될 뿐만 아니라, 조섭하는 여가에 밤새도록 제례를 행하셨기 때문에 옥체를 상하실까 염려스러웠습니다.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간절하다 보니 말을 번거롭게 하였던 것으로, 이는 강직한 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엄한 분부를 받았으니 형세상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집의 임건(林健), 장령 한영(韓詠)·강린(姜遴), 지평 홍요검(洪堯儉)·허경(許儆)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모두 못난 자들로 언관의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만, 임금을 보좌하여 그 결점을 바로잡는 것이 신들의 직책이며, 충성을 다하여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신들의 소원입니다. 이번에 설치한 여악과 잡상과 우희가 큰 경사를 위하여 다함께 기뻐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한밤에 거둥하셨으니 옥체를 상하실까 염려스러운 데다가 길에다 어가를 멈추고서 긴 시간 동안 구경하는 것은 성상의 덕에 누가 될까 염려되었습니다.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정성에서 두번 세번 아뢴 것이지 실로 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성상으로 하여금 비답을 내려 직언하는 체한다는 것으로 분부하시게 하였으니, 신들의 죄가 여기에서 드러났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소서." 하였다.
"신들이 모두 못난 자들로 언관의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만, 임금을 보좌하여 그 결점을 바로잡는 것이 신들의 직책이며, 충성을 다하여 국가에 보답하는 것이 신들의 소원입니다. 이번에 설치한 여악과 잡상과 우희가 큰 경사를 위하여 다함께 기뻐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한밤에 거둥하셨으니 옥체를 상하실까 염려스러운 데다가 길에다 어가를 멈추고서 긴 시간 동안 구경하는 것은 성상의 덕에 누가 될까 염려되었습니다.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정성에서 두번 세번 아뢴 것이지 실로 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성상으로 하여금 비답을 내려 직언하는 체한다는 것으로 분부하시게 하였으니, 신들의 죄가 여기에서 드러났습니다. 신들의 직을 파척하소서."
하였다.

 

양사에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조종조에는 채붕(彩棚) 앞에서 오랫동안 어가를 멈추고 있을 경우, 언관은 한번 정도 진계하였으나 말씨는 모두 충후한데다 간략하였고 직언하는 체하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전례를 법으로 삼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9월 23일 을유

대사헌 남근(南瑾)이 아뢰기를, "신의 동성(同姓) 얼삼촌(孽三寸)이 이달 15일에 죽어서 성복하기 전입니다. 그러나 전에 없던 큰 경사로 인하여 부득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어찌 많은 일을 참여하여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이 어가를 선도하는 일 때문에 먼저 대궐에 들어갔는데, 동료들의 간통(簡通)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보고 회답하지 못했습니다만 열어 보았더라도 반드시 잘 알았다고 써서 보냈을 것이니, 잘못은 같습니다. 신의 직책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의 동성(同姓) 얼삼촌(孽三寸)이 이달 15일에 죽어서 성복하기 전입니다. 그러나 전에 없던 큰 경사로 인하여 부득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어찌 많은 일을 참여하여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이 어가를 선도하는 일 때문에 먼저 대궐에 들어갔는데, 동료들의 간통(簡通)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보고 회답하지 못했습니다만 열어 보았더라도 반드시 잘 알았다고 써서 보냈을 것이니, 잘못은 같습니다. 신의 직책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교리 이상항(李尙恒)·정준(鄭遵), 부수찬 서국정(徐國楨), 박사 조유선(趙裕善)이 아뢰기를, "신하로서 자기 임금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일에 따라 논열하여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법이며, 애초에 갑자기 보고 놀란 나머지 이렇게 아뢴 것이 아니었으니, 또한 어찌 조금이라도 큰 소리로 직언하는 척하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윤거(輪車), 잡상(雜像), 여악(女樂), 우희(優戲)를 설치하는 것은 조종조 때부터 큰 경사를 경축하기 위한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성상께서 차가운 밤이슬을 맞아가면서 밤을 새워 예를 행하시고서 어가를 오랫동안 멈춘 채 길에서 오래 있는 것은, 온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옥체(玉體)에 무리가 갈까 염려되어 구구하게 논열한 것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의가 없는 듯하다.’는 등의 분부로 도리어 심한 질책을 가하시니, 신들은 삼가 삼사의 신하들이 앞으로 입을 다물고 세월을 보내면서 이미 지나간 일이라 핑계대고 다시는 말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렇게 되면 말을 하지 않는 자에게 형벌을 주던 세상과는 너무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자들로서 논사(論思)하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어가 앞에서 함께 아뢴 것이 양사와 차이가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삭탈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조종조에는 채붕 앞에서 오랫동안 어가를 멈추고 있을 경우, 언관(言官)이 간혹 한번 정도 진달하기는 했지만 말이 모두 성실하고 간략하였으며 조금도 직언하는 체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했다. 전례를 본받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였다.
"신하로서 자기 임금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일에 따라 논열하여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법이며, 애초에 갑자기 보고 놀란 나머지 이렇게 아뢴 것이 아니었으니, 또한 어찌 조금이라도 큰 소리로 직언하는 척하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윤거(輪車), 잡상(雜像), 여악(女樂), 우희(優戲)를 설치하는 것은 조종조 때부터 큰 경사를 경축하기 위한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성상께서 차가운 밤이슬을 맞아가면서 밤을 새워 예를 행하시고서 어가를 오랫동안 멈춘 채 길에서 오래 있는 것은, 온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옥체(玉體)에 무리가 갈까 염려되어 구구하게 논열한 것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의가 없는 듯하다.’는 등의 분부로 도리어 심한 질책을 가하시니, 신들은 삼가 삼사의 신하들이 앞으로 입을 다물고 세월을 보내면서 이미 지나간 일이라 핑계대고 다시는 말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렇게 되면 말을 하지 않는 자에게 형벌을 주던 세상과는 너무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신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자들로서 논사(論思)하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어가 앞에서 함께 아뢴 것이 양사와 차이가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삭탈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조종조에는 채붕 앞에서 오랫동안 어가를 멈추고 있을 경우, 언관(言官)이 간혹 한번 정도 진달하기는 했지만 말이 모두 성실하고 간략하였으며 조금도 직언하는 체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했다. 전례를 본받아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였다.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의 관원을 모두 출사시키기를 청하니, 따랐다.

 

9월 24일 병술

왕이 성균관(成均館)에 거둥하여 성묘(聖廟)에 배알하였다. 인하여 과거를 베풀고 선비들에게 시험을 보여, 허직(許稷) 등 5명을 뽑았다. 허직은 허 숙의(許淑儀)의 오라비이다. 교만하고 어리석어 문자를 몰랐는데,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해 고시관을 통해 뽑혔다고 한다.

 

9월 25일 정해

홍문관이 상차하여 조식(曺植)을 문묘(文廟)에 모시고 제사하자고 청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9월 26일 무자

전교하였다. "과거에 급제했는지의 여부를 논할 것이 없이, 몸소 제사를 지내고 궁궐로 돌아올 때 유생들이 길가에서 정중하게 전송하는 것은, 구례만 그러할 뿐만 아니라 인정으로 보나 예절로 보나 폐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선비들의 풍습이 아릅답지 못한 데다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져 과거장을 벗어나기만 하면 뿔뿔이 흩어져 가고, 심지어 과거에 급제한 사람도 그림자를 볼 수 없어 방방(放榜)을 할 수가 없으니 매우 한심하다. 성균관의 해당 관원은 앞으로 성묘에 알현할 때 절대로 먼저 해산하여 가지 말 것을 신칙하여 살펴서 하라."
"과거에 급제했는지의 여부를 논할 것이 없이, 몸소 제사를 지내고 궁궐로 돌아올 때 유생들이 길가에서 정중하게 전송하는 것은, 구례만 그러할 뿐만 아니라 인정으로 보나 예절로 보나 폐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선비들의 풍습이 아릅답지 못한 데다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져 과거장을 벗어나기만 하면 뿔뿔이 흩어져 가고, 심지어 과거에 급제한 사람도 그림자를 볼 수 없어 방방(放榜)을 할 수가 없으니 매우 한심하다. 성균관의 해당 관원은 앞으로 성묘에 알현할 때 절대로 먼저 해산하여 가지 말 것을 신칙하여 살펴서 하라."

 

장령 한영(韓詠)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조보(朝報)를 보니, 금군(禁軍)들이 사립(絲笠)을 사용하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범한 일을 가지고 외람되이 상께 진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문란함을 금지시키는 일은 성상소(城上所)가 관장하고 있으며 사립을 쓰지 못하도록 단속한 것은 이번 만이 아닙니다. 비록 신이 성상소가 되어 처음 창설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 이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그 곡절에 대하여 진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근래에 법이 크게 무너지고 기강이 없어져서, 시장 장사꾼들이 살찐 말을 타고 좋은 옷을 입으며 하인과 천인들이 자대(紫帶)와 주립(朱笠)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하의 복식이 난잡하여 법도가 없으니, 존비를 어떻게 구별하겠으며 귀천을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런 폐단을 보고 항상 분한 마음을 먹어오던 터에 본직에 제수된 다음 장사꾼이 비단옷을 입고 하인들이 사립을 쓰는 것을 간혹 나가서 금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금리(禁吏)가 아무 상놈은 비단옷을 입었고 아무 천인은 사립을 썼다고 이름을 써서 바치게 되면, 단지 구례에 의거하여 헌부에 나누어줄 뿐이고 실상 어느 상놈이 금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저들이 어가 앞에서 호소한 것을 보면, 금리(禁吏)가 김가(金哥)를 이가(李哥)로 꾸며 허위로 아뢰었다고 했는데, 그런 일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이런 사실을 병조에 고하여 입계하게 하거나 본부에 이문(移文)하게 했다면 그래도 가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음대로 대오(隊伍)를 이탈하여 난잡하게 호소하고 부르짖기를 마치 사나운 종들이 집주인을 경시하고 동료를 고자질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이것은 이전에 없던 일입니다. 국가의 기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저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같이 못난 자들이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자리에 있으면서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더구나 처음부터 금리를 엄하게 가르치지 못하여 허위로 고하게까지 하였으니, 신의 잘못이 여기에 이르러 더욱 드러났습니다. 이것으로 보나 저것으로 보나 버티고 있을 수 없는 형편이니 신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당시에 대헌(臺憲)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탐심이 많은 소인배들이었다. 풍기(風紀)를 단속하겠다고 서로 나가서는 각자 사욕(私慾)만을 챙겼다. 집의 임건(林健)은 진주와 은귀걸이를 얻어가지고는 자리에서 주머니에 담으면서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데 밑천으로 삼으려 한다." 하였고, 장령 신광업(辛光業)은 붉은 철릭을 얻어가지고 다음날 입고서 관청에 나아갔으나, 서로 부러워할 뿐 조금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또 시장 주변에 사는 부유한 자를 탐문한 다음 엉뚱한 죄목(罪目)을 씌워 놓고 은밀히 소문을 내어 재물을 바치게 하되 그 사람의 재산 정도에 따라 고하(高下)를 정하였다. 그리하여 욕구에 차면 즉시 석방시켰다. 그리하여 법관을 한번 지내기만 하면 가업을 이루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지목하여 ‘야차대당(夜叉大倘)’이라고 하였다.】
"신이 어제 조보(朝報)를 보니, 금군(禁軍)들이 사립(絲笠)을 사용하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범한 일을 가지고 외람되이 상께 진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문란함을 금지시키는 일은 성상소(城上所)가 관장하고 있으며 사립을 쓰지 못하도록 단속한 것은 이번 만이 아닙니다. 비록 신이 성상소가 되어 처음 창설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 이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그 곡절에 대하여 진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근래에 법이 크게 무너지고 기강이 없어져서, 시장 장사꾼들이 살찐 말을 타고 좋은 옷을 입으며 하인과 천인들이 자대(紫帶)와 주립(朱笠)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하의 복식이 난잡하여 법도가 없으니, 존비를 어떻게 구별하겠으며 귀천을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런 폐단을 보고 항상 분한 마음을 먹어오던 터에 본직에 제수된 다음 장사꾼이 비단옷을 입고 하인들이 사립을 쓰는 것을 간혹 나가서 금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금리(禁吏)가 아무 상놈은 비단옷을 입었고 아무 천인은 사립을 썼다고 이름을 써서 바치게 되면, 단지 구례에 의거하여 헌부에 나누어줄 뿐이고 실상 어느 상놈이 금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저들이 어가 앞에서 호소한 것을 보면, 금리(禁吏)가 김가(金哥)를 이가(李哥)로 꾸며 허위로 아뢰었다고 했는데, 그런 일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이런 사실을 병조에 고하여 입계하게 하거나 본부에 이문(移文)하게 했다면 그래도 가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음대로 대오(隊伍)를 이탈하여 난잡하게 호소하고 부르짖기를 마치 사나운 종들이 집주인을 경시하고 동료를 고자질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이것은 이전에 없던 일입니다.
국가의 기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저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같이 못난 자들이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자리에 있으면서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더구나 처음부터 금리를 엄하게 가르치지 못하여 허위로 고하게까지 하였으니, 신의 잘못이 여기에 이르러 더욱 드러났습니다. 이것으로 보나 저것으로 보나 버티고 있을 수 없는 형편이니 신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당시에 대헌(臺憲)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탐심이 많은 소인배들이었다. 풍기(風紀)를 단속하겠다고 서로 나가서는 각자 사욕(私慾)만을 챙겼다. 집의 임건(林健)은 진주와 은귀걸이를 얻어가지고는 자리에서 주머니에 담으면서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데 밑천으로 삼으려 한다." 하였고, 장령 신광업(辛光業)은 붉은 철릭을 얻어가지고 다음날 입고서 관청에 나아갔으나, 서로 부러워할 뿐 조금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또 시장 주변에 사는 부유한 자를 탐문한 다음 엉뚱한 죄목(罪目)을 씌워 놓고 은밀히 소문을 내어 재물을 바치게 하되 그 사람의 재산 정도에 따라 고하(高下)를 정하였다. 그리하여 욕구에 차면 즉시 석방시켰다. 그리하여 법관을 한번 지내기만 하면 가업을 이루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지목하여 ‘야차대당(夜叉大倘)’이라고 하였다.】

 

9월 27일 기축

전교하였다. "돌을 모집해다가 공사에 사용하는 것은 그만 둘 수 없는 일인 듯하다. 돌을 헌납한 갯수에 따라 아무 벼슬을 제수하거나 가자하는 등의 일에 대해서, 충분히 참작하고 마련하여 계하(啓下)를 받아 시행한 것이니, 이미 상을 주고난 뒤에는 도로 거두어 들일 수 없다. 그리고 집터를 바친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서 한 일이 아닌데 대간이 이 문제를 논계(論啓)하였으니, 이는 매우 온당치 못한 일이다. 그중에 문벌이 미비하여 어느 벼슬에도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세히 살펴서 다른 상을 주도록 하되, 이미 동반(東班)의 관직에 제수된 사람은 문벌이 미비한 부류가 아닌 듯하니 논계할 것이 없고, 서반(西班)의 경우는 비록 역관이라 하더라도 선조(先朝) 때부터 다 하비(下批)하였으니 더욱 논의할 일이 아니다. 이 뜻을 도감에 말하여 각별히 살피도록 하고 논계한 대간에게도 아울러 이러한 뜻으로 말하도록 하라."
"돌을 모집해다가 공사에 사용하는 것은 그만 둘 수 없는 일인 듯하다. 돌을 헌납한 갯수에 따라 아무 벼슬을 제수하거나 가자하는 등의 일에 대해서, 충분히 참작하고 마련하여 계하(啓下)를 받아 시행한 것이니, 이미 상을 주고난 뒤에는 도로 거두어 들일 수 없다. 그리고 집터를 바친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서 한 일이 아닌데 대간이 이 문제를 논계(論啓)하였으니, 이는 매우 온당치 못한 일이다. 그중에 문벌이 미비하여 어느 벼슬에도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세히 살펴서 다른 상을 주도록 하되, 이미 동반(東班)의 관직에 제수된 사람은 문벌이 미비한 부류가 아닌 듯하니 논계할 것이 없고, 서반(西班)의 경우는 비록 역관이라 하더라도 선조(先朝) 때부터 다 하비(下批)하였으니 더욱 논의할 일이 아니다. 이 뜻을 도감에 말하여 각별히 살피도록 하고 논계한 대간에게도 아울러 이러한 뜻으로 말하도록 하라."

 

사헌부가 아뢰기를, "훈련부정 정문일(鄭文一)은 사람이 패악스러운 데다 위리 안치된 정문익(鄭文翼)의 아우인데, 아직도 관리의 반열에 있으므로 물정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사판(仕版)에서 삭제하소서. 전부터 성묘(聖廟)에 알현할 때에는 관학(館學)의 유생과 사학(四學)의 유생에게 해당 관원이 미리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뜰에 들어가서 절을 하거나 영접하거나 전송하도록 했으니, 이는 오래된 규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성묘에 알현할 때에 상은 명륜당(明倫堂)에 앉아 있고 유생들은 뜰에 서 있었는데 태반이 절을 하지 않았고, 환궁할 때에도 모두 흩어져 한 사람도 전송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관원이 미리 검칙하지 못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직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훈련부정 정문일(鄭文一)은 사람이 패악스러운 데다 위리 안치된 정문익(鄭文翼)의 아우인데, 아직도 관리의 반열에 있으므로 물정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사판(仕版)에서 삭제하소서.
전부터 성묘(聖廟)에 알현할 때에는 관학(館學)의 유생과 사학(四學)의 유생에게 해당 관원이 미리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뜰에 들어가서 절을 하거나 영접하거나 전송하도록 했으니, 이는 오래된 규례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성묘에 알현할 때에 상은 명륜당(明倫堂)에 앉아 있고 유생들은 뜰에 서 있었는데 태반이 절을 하지 않았고, 환궁할 때에도 모두 흩어져 한 사람도 전송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관원이 미리 검칙하지 못한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직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영월 군수(寧越郡守) 구심(具瀋)은 사람이 패악스러운 데다가 성품도 잔인하여 백성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형벌을 함부로 써서 무고한 자를 장형(杖刑)을 가하여 죽이고는, 그 죄를 고발할까 두려워하여 은밀히 하인에게 미포(米布)와 관곽(棺槨)을 충분히 주어 그로 하여금 매장하게 함으로써 고발할 기한을 넘기게 하였으니, 그 패악스러운 정상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파직시키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영월 군수(寧越郡守) 구심(具瀋)은 사람이 패악스러운 데다가 성품도 잔인하여 백성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형벌을 함부로 써서 무고한 자를 장형(杖刑)을 가하여 죽이고는, 그 죄를 고발할까 두려워하여 은밀히 하인에게 미포(米布)와 관곽(棺槨)을 충분히 주어 그로 하여금 매장하게 함으로써 고발할 기한을 넘기게 하였으니, 그 패악스러운 정상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파직시키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정광성(鄭廣成)을 부제학으로, 유충립(柳忠立)을 사인으로, 곽천호(郭天豪)를 필선으로, 박정길(朴鼎吉)을 동부승지로 삼고, 새로 급제한 허직(許稷)에게는 통정(通政)의 품계를 가자하였다.

 

9월 28일 경인

내금위 조국철(趙國哲)이 상소하여, 그의 아버지 조의(趙誼)가 무신년에 이진(李珒)을 체포할 때 첫째 공이 있었는데 훈록(勳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소송하면서, 추록(追錄)해 줄 것을 청하였다. 【조국철은 바로 조국필의 종부제(從父弟)이고 그의 누이는 후궁으로 들어가 총애를 받았다.】

 

9월 29일 신묘

전교하였다. "역적 이춘기(李春起) 등을 지휘하여 체포한 포도 대장 이수일(李守一)과 개똥이를 쫓아가 체포할 때 지시했던 감찰 최위(崔褘), 삼척 부사(三陟府使) 이승(李昇), 앞장 서서 체포한 군관 박계남(朴繼男)에게 아울러 가자하도록 하라."
"역적 이춘기(李春起) 등을 지휘하여 체포한 포도 대장 이수일(李守一)과 개똥이를 쫓아가 체포할 때 지시했던 감찰 최위(崔褘), 삼척 부사(三陟府使) 이승(李昇), 앞장 서서 체포한 군관 박계남(朴繼男)에게 아울러 가자하도록 하라."

 

의금부가 아뢰기를, "임춘일(林春一)은 사형을 받아야 할 죄인으로 왕옥(王獄)에 가두어 놓았었는데 바로 벽을 뚫고 도망했다가 이번에 다행히 체포되었습니다. 도망자에 대해서는 해당되는 율문이 있으므로 다시 물을 것이 없습니다. 법대로 처단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임충간(林忠幹)의 예에 따라 교외에다 진을 치고 사형을 집행할 것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임춘일(林春一)은 사형을 받아야 할 죄인으로 왕옥(王獄)에 가두어 놓았었는데 바로 벽을 뚫고 도망했다가 이번에 다행히 체포되었습니다. 도망자에 대해서는 해당되는 율문이 있으므로 다시 물을 것이 없습니다. 법대로 처단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임충간(林忠幹)의 예에 따라 교외에다 진을 치고 사형을 집행할 것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전일에 성묘에 알현했을 때 관학 유생과 사학 유생이 뜰에서 태반이나 절을 하지 않았고, 환궁할 때도 전혀 전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관계로 미리 검칙하지 못한 해당 관원의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파직시키기를 청하였는데,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일을 보았던 가장무관(假掌務官)은 당연히 파직해야 하겠지만, 실장무관(實掌務官)은 일이 생길 줄을 미리 알고 임시하여 교묘하게 피하였으니 마음 씀씀이가 형편없습니다. 실장무관도 아울러 파직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일에 성묘에 알현했을 때 관학 유생과 사학 유생이 뜰에서 태반이나 절을 하지 않았고, 환궁할 때도 전혀 전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관계로 미리 검칙하지 못한 해당 관원의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파직시키기를 청하였는데,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일을 보았던 가장무관(假掌務官)은 당연히 파직해야 하겠지만, 실장무관(實掌務官)은 일이 생길 줄을 미리 알고 임시하여 교묘하게 피하였으니 마음 씀씀이가 형편없습니다. 실장무관도 아울러 파직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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