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임술
왕이 정전(正殿)에 나아가 상수연(上壽宴)을 받았다.
전교하였다. "박승종을 불러들여 연회에 참석하게 하라."
"박승종을 불러들여 연회에 참석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수연을 전날에 하던 것처럼 하지 말고 정전에 나와 앉은 후에 응당 거행해야 할 절목을 차례대로 자세히 살펴 제때에 거행하도록 하되, 정전 안이 비좁으니 정재(呈才)와 의장(儀仗)은 들어오지 말게 하라. 이를 살펴서 거행하라."
"수연을 전날에 하던 것처럼 하지 말고 정전에 나와 앉은 후에 응당 거행해야 할 절목을 차례대로 자세히 살펴 제때에 거행하도록 하되, 정전 안이 비좁으니 정재(呈才)와 의장(儀仗)은 들어오지 말게 하라. 이를 살펴서 거행하라."
전교하였다. "선대 임금의 영정(影幀)이 전주(全州)에서 출발하는 좋은 날은 이달 13일이 만약 좋다면 그날에 출발하라. 이를 예조의 관리로 하여금 살펴 거행하게 하라."
"선대 임금의 영정(影幀)이 전주(全州)에서 출발하는 좋은 날은 이달 13일이 만약 좋다면 그날에 출발하라. 이를 예조의 관리로 하여금 살펴 거행하게 하라."
정원이 탑전에서 아뢰기를, "어제 거둥하신 후로 오늘도 저녁이 다 지나도록 임어하고 계시는데 만약 밤이 깊을 때까지 가게 되면 아무래도 전하의 몸에 해로울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지난해에도 대례를 완료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번거롭게 아뢰지 말아서 대례를 완료시키게 하라." 하였다.
"어제 거둥하신 후로 오늘도 저녁이 다 지나도록 임어하고 계시는데 만약 밤이 깊을 때까지 가게 되면 아무래도 전하의 몸에 해로울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지난해에도 대례를 완료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번거롭게 아뢰지 말아서 대례를 완료시키게 하라."
하였다.
대사간 윤인, 부제학 정광성이 아뢰기를, "지금 더없이 큰 경사를 만나 신하들이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매우 성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연(法筵)에서 만약 밤이 깊을 때까지 계신다면 온당치 않을 듯합니다. 술잔 수를 줄이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정원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지금 더없이 큰 경사를 만나 신하들이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매우 성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연(法筵)에서 만약 밤이 깊을 때까지 계신다면 온당치 않을 듯합니다. 술잔 수를 줄이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정원에 유시하였다."
하였다.
11월 2일 계해
전 교관(敎官) 최연(崔衍)이 상소하면서, 태조조(太祖朝)께서 타셨던 준마도(駿馬圖) 8폭을 올렸다.
11월 3일 갑자
비변사가 아뢰기를, "함경도 순검사 권반(權盼)에게 일찍이 대례를 치른 뒤에 내려가라고 명하였기 때문에 오늘내일 사이에 응당 떠나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겨울철이 이미 깊었으므로 마천령(摩天嶺) 이북과 남도의 삼수(三水)·갑산(甲山) 등지에는 눈이 쌓여서 순시할 수 없습니다. 부득이 남관(南關)에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다만 남관의 여러 군읍(郡邑)들은 해마다 계속 흉년이 들어 기근이 매우 심합니다. 순검사의 일행에는 종사관도 있고 또 군관이 있어 많은 원역(員役)을 공궤하자면 매우 곤란합니다. 평안도 강변에도 역시 눈이 쌓여 길이 막힐 우려가 있는데, 한창 얼고 추운 이때 군사들을 모아놓고 활쏘기 시험을 보이며 군대를 사열하는 등의 일은 역시 적합하지 않습니다. 서북도의 순검사는 모두 설이 지난 뒤에 파견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함경도 순검사 권반(權盼)에게 일찍이 대례를 치른 뒤에 내려가라고 명하였기 때문에 오늘내일 사이에 응당 떠나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겨울철이 이미 깊었으므로 마천령(摩天嶺) 이북과 남도의 삼수(三水)·갑산(甲山) 등지에는 눈이 쌓여서 순시할 수 없습니다. 부득이 남관(南關)에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다만 남관의 여러 군읍(郡邑)들은 해마다 계속 흉년이 들어 기근이 매우 심합니다. 순검사의 일행에는 종사관도 있고 또 군관이 있어 많은 원역(員役)을 공궤하자면 매우 곤란합니다.
평안도 강변에도 역시 눈이 쌓여 길이 막힐 우려가 있는데, 한창 얼고 추운 이때 군사들을 모아놓고 활쏘기 시험을 보이며 군대를 사열하는 등의 일은 역시 적합하지 않습니다. 서북도의 순검사는 모두 설이 지난 뒤에 파견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감찰(監察) 문위(文緯)는 지난 정미년경에 영경(永慶)과 천건(天健)의 집에 종처럼 드나들면서 분수에 넘는 벼슬을 하여 외람되게 대궐에 머물러 있었으니, 악한 자와 편이 된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신들이 성명(聖明)으로부터 용서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을 사리고 있으면서 말을 방자하게 하며 그른 것도 옳은 것처럼 꾸며대곤 합니다. 학도(學徒)들을 가르친다고 핑계대고서 패거리를 모아놓고 조정을 비방하며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자를 헐뜯고 역적 정온(鄭蘊)을 찬양하며 역적을 옹호하는 요사스런 말을 퍼뜨려 지금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니, 이 자도 역시 오늘날의 역적 정온인 것입니다. 역적 정온은 비록 귀양갔지만 이 역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정온을 감싸주는 논의가 멎을 날이 없을 것입니다. 사판에서 삭거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감찰(監察) 문위(文緯)는 지난 정미년경에 영경(永慶)과 천건(天健)의 집에 종처럼 드나들면서 분수에 넘는 벼슬을 하여 외람되게 대궐에 머물러 있었으니, 악한 자와 편이 된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신들이 성명(聖明)으로부터 용서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을 사리고 있으면서 말을 방자하게 하며 그른 것도 옳은 것처럼 꾸며대곤 합니다. 학도(學徒)들을 가르친다고 핑계대고서 패거리를 모아놓고 조정을 비방하며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자를 헐뜯고 역적 정온(鄭蘊)을 찬양하며 역적을 옹호하는 요사스런 말을 퍼뜨려 지금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니, 이 자도 역시 오늘날의 역적 정온인 것입니다. 역적 정온은 비록 귀양갔지만 이 역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정온을 감싸주는 논의가 멎을 날이 없을 것입니다. 사판에서 삭거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11월 4일 을축
전교하였다. "사은사는 다음달 20일 이후로 날을 받아서 보내도록 하라."
"사은사는 다음달 20일 이후로 날을 받아서 보내도록 하라."
중국에서 돌아온 주청사(奏請使) 이정귀(李廷龜)와 유간(柳澗)이 아뢰기를, "신들의 일행이 칙서(敕書)를 받지 못한 사유에 대해서는 북경에 있을 때 이미 치계하였으며 며칠 전 탑전에서도 대략 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듣건대 성절사 김존경(金存敬)이 올린 글에 ‘전 사신은 병이 나서 칙서를 미처 받지 못하였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황제의 유지는 4월 9일에 내렸으나, 예부에서는 황제의 유지에 칙서를 등사하여 그들에게 주라는 말이 없다 하여 각 해당 관청에 공문을 보내 관복을 만들게만 하고 칙서를 등사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거조가 없었습니다. 신들이 여러 번 호소하자, 예부에서 처음에는 문건으로 요청할 것을 허락하더니, 이윽고 표정로(表廷老) 등을 불러서 반복하여 설명하기를 ‘처음 추후로 책봉할 때 이미 칙서를 내렸다. 그러기 때문에 고명(誥命)을 받아갈 때에도 칙서는 없었다. 옛날부터 보충하여 하사하는 경우에는 다 칙서가 없었으니, 이번에 준 이 관복도 바로 추가로 하사한 것인데 같은 일을 가지고 어찌 매번 황제의 유지를 내리겠는가. 더구나 이 일은 너희들을 위하여 간신히 성사시킨 것으로 외부의 의논이 아직까지도 많은데 지금 또 칙서를 내릴 것을 요청한다면 별도의 논의가 제기될 것이다. 요올(姚兀)이 근간에 들어올 터인데 만약 이전의 의견을 고집한다면 일은 틀림없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빈 문서를 얻기 위해 큰일을 그르치게 되면 그 뒤에 뉘우쳐도 소용 없는 일이다. 더구나 칙서 안에 혹시 좋지 않은 말이라도 언급된다면 도리어 해만 되는 일이니 다시는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들도 여러모로 생각해 보다가 감히 굳이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5월 초에 신 이정귀가 병이 났으나 신 유간과 장자호(張自好)는 아무런 탈이 없었으며 신 이정귀도 그믐 무렵에는 병이 낫기 시작하였고 6월 초에 관복을 받아가지고 14일에 비로소 북경을 떠났습니다. 그 사이의 날짜가 거의 두 달이나 지났는데 어찌 칙서를 받을 겨를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병 때문에 미처 받지 못하였다.’고 말한 것은 크게 사실과 다른 것이어서 매우 온당치 않습니다. 또 선래 역관의 말을 듣건대 ‘칠적관(七翟冠)이 자문의 목록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받아간 것은 의심할 것이 없지만 초출(抄出)한 것을 인수하지 못했으니 그 내막을 알 수 없다.’ 하고, 또 말하기를 ‘칠적관이 이미 나갔으면 거듭 받을 근거가 없으니 반드시 먼저 왔던 일행에게 자세히 물어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칠적관을 받아왔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의 유지에서 이미 그것을 허락하였는데 해당 관청에서 어찌 감히 주지 않을 수 있으며 신들도 무슨 일 때문에 갔는데 그것을 받지도 않고 지레 돌아왔겠습니까. 관복에 딸린 물건들도 예부의 등록에 자세히 적혀 있었으므로 표정로 등을 시켜 그것을 베껴다가 《대명참례도식(大明參禮圖式)》과 대조하여 보니 약간의 차이가 있기에 해리(該吏)에게 물었더니, 서리가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내번(內藩)의 왕비를 추후에 책봉하는 제도이며, 또 죽은 뒤에 책봉하는 것은 살아 있을 때에 책봉하는 것과 같지 않다. 따라서 여러 해 동안 종합된 규례가 다 동일하다. 예부(禮部)와 공부(工部)에서는 그것을 등초(謄抄)하여 공문을 띄울 뿐이고 감히 조금이라도 거기에다 가감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당초에 내관감(內官監)에는 응당 미리 만들어 둔 칠적관이 있었을 것인데 관아에서 정한 값을 받지 못하였다고 핑계대면서 거절하고 주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인정(人情) 3백 냥을 주고 또 예부와 공부에도 여러 번 뇌물을 준 다음에야 비로소 내주었습니다. 신들이 그것을 하나하나 예부에서 받았으며 예부에서도 점검한 뒤에 비로소 자문의 목록 안에 써넣었으며 담삭(擔索)과 강목(杠木)도 빠뜨리지 않고 목록 가운데 써넣었으니 어찌 초출(抄出)을 받지 않았을 리가 있겠으며, 만약 과연 받지 않았다면 어찌 목록 안에 써넣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신들이 그 이유를 몰라서 역관들에게 물었더니 말하기를 ‘칠적관은 관아에서 정한 값이 2천 냥이나 되는데 해사(該司)에서 미처 초출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뒷날에 값을 받으려는 계책으로 삼자는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그럴 듯합니다. 이때문에 초출을 수령하지 못하였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칙서의 초고를 보건대, 이미 받아온 관복과 아직 받지 않은 선물 이름이 모두 목록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칠적관과 예복을 거듭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임낭중(林郞中)과 담당 관리가 때마침 다 승직되거나 체직되었으므로 왕낭중(王郞中)은 내막을 알지 못하고 새로 임명된 관리는 토색질에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살피지 않고 속여서 말하는 것이 더 받아먹고자 하는 꿍꿍이속입니다. 이렇게 하는 짓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번에 갔을 때 이같이 하고 이 뒤에 갈 때도 역시 이럴 것이기 때문에 관복에 관한 문제는 아마 결말이 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신들은 놀랍고 괴이하게 여기던 끝에 황공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감히 와서 진계하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를 살펴보고 자세히 알았다. 황공하게 생각하지 말라." 하였다.
"신들의 일행이 칙서(敕書)를 받지 못한 사유에 대해서는 북경에 있을 때 이미 치계하였으며 며칠 전 탑전에서도 대략 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듣건대 성절사 김존경(金存敬)이 올린 글에 ‘전 사신은 병이 나서 칙서를 미처 받지 못하였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황제의 유지는 4월 9일에 내렸으나, 예부에서는 황제의 유지에 칙서를 등사하여 그들에게 주라는 말이 없다 하여 각 해당 관청에 공문을 보내 관복을 만들게만 하고 칙서를 등사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거조가 없었습니다. 신들이 여러 번 호소하자, 예부에서 처음에는 문건으로 요청할 것을 허락하더니, 이윽고 표정로(表廷老) 등을 불러서 반복하여 설명하기를 ‘처음 추후로 책봉할 때 이미 칙서를 내렸다. 그러기 때문에 고명(誥命)을 받아갈 때에도 칙서는 없었다. 옛날부터 보충하여 하사하는 경우에는 다 칙서가 없었으니, 이번에 준 이 관복도 바로 추가로 하사한 것인데 같은 일을 가지고 어찌 매번 황제의 유지를 내리겠는가. 더구나 이 일은 너희들을 위하여 간신히 성사시킨 것으로 외부의 의논이 아직까지도 많은데 지금 또 칙서를 내릴 것을 요청한다면 별도의 논의가 제기될 것이다. 요올(姚兀)이 근간에 들어올 터인데 만약 이전의 의견을 고집한다면 일은 틀림없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빈 문서를 얻기 위해 큰일을 그르치게 되면 그 뒤에 뉘우쳐도 소용 없는 일이다. 더구나 칙서 안에 혹시 좋지 않은 말이라도 언급된다면 도리어 해만 되는 일이니 다시는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들도 여러모로 생각해 보다가 감히 굳이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5월 초에 신 이정귀가 병이 났으나 신 유간과 장자호(張自好)는 아무런 탈이 없었으며 신 이정귀도 그믐 무렵에는 병이 낫기 시작하였고 6월 초에 관복을 받아가지고 14일에 비로소 북경을 떠났습니다. 그 사이의 날짜가 거의 두 달이나 지났는데 어찌 칙서를 받을 겨를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병 때문에 미처 받지 못하였다.’고 말한 것은 크게 사실과 다른 것이어서 매우 온당치 않습니다.
또 선래 역관의 말을 듣건대 ‘칠적관(七翟冠)이 자문의 목록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받아간 것은 의심할 것이 없지만 초출(抄出)한 것을 인수하지 못했으니 그 내막을 알 수 없다.’ 하고, 또 말하기를 ‘칠적관이 이미 나갔으면 거듭 받을 근거가 없으니 반드시 먼저 왔던 일행에게 자세히 물어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칠적관을 받아왔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의 유지에서 이미 그것을 허락하였는데 해당 관청에서 어찌 감히 주지 않을 수 있으며 신들도 무슨 일 때문에 갔는데 그것을 받지도 않고 지레 돌아왔겠습니까. 관복에 딸린 물건들도 예부의 등록에 자세히 적혀 있었으므로 표정로 등을 시켜 그것을 베껴다가 《대명참례도식(大明參禮圖式)》과 대조하여 보니 약간의 차이가 있기에 해리(該吏)에게 물었더니, 서리가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내번(內藩)의 왕비를 추후에 책봉하는 제도이며, 또 죽은 뒤에 책봉하는 것은 살아 있을 때에 책봉하는 것과 같지 않다. 따라서 여러 해 동안 종합된 규례가 다 동일하다. 예부(禮部)와 공부(工部)에서는 그것을 등초(謄抄)하여 공문을 띄울 뿐이고 감히 조금이라도 거기에다 가감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당초에 내관감(內官監)에는 응당 미리 만들어 둔 칠적관이 있었을 것인데 관아에서 정한 값을 받지 못하였다고 핑계대면서 거절하고 주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인정(人情) 3백 냥을 주고 또 예부와 공부에도 여러 번 뇌물을 준 다음에야 비로소 내주었습니다. 신들이 그것을 하나하나 예부에서 받았으며 예부에서도 점검한 뒤에 비로소 자문의 목록 안에 써넣었으며 담삭(擔索)과 강목(杠木)도 빠뜨리지 않고 목록 가운데 써넣었으니 어찌 초출(抄出)을 받지 않았을 리가 있겠으며, 만약 과연 받지 않았다면 어찌 목록 안에 써넣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신들이 그 이유를 몰라서 역관들에게 물었더니 말하기를 ‘칠적관은 관아에서 정한 값이 2천 냥이나 되는데 해사(該司)에서 미처 초출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뒷날에 값을 받으려는 계책으로 삼자는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그럴 듯합니다. 이때문에 초출을 수령하지 못하였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칙서의 초고를 보건대, 이미 받아온 관복과 아직 받지 않은 선물 이름이 모두 목록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칠적관과 예복을 거듭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임낭중(林郞中)과 담당 관리가 때마침 다 승직되거나 체직되었으므로 왕낭중(王郞中)은 내막을 알지 못하고 새로 임명된 관리는 토색질에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살피지 않고 속여서 말하는 것이 더 받아먹고자 하는 꿍꿍이속입니다. 이렇게 하는 짓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번에 갔을 때 이같이 하고 이 뒤에 갈 때도 역시 이럴 것이기 때문에 관복에 관한 문제는 아마 결말이 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신들은 놀랍고 괴이하게 여기던 끝에 황공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감히 와서 진계하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계사를 살펴보고 자세히 알았다. 황공하게 생각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성절사(聖節使)가 올린 장계를 보건대, 황제의 은혜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니 감격의 눈물만 흐를 뿐 보답할 방도를 모르겠다. 칙서를 맞이하기 위한 좋은 날을 다음달 초승으로 미리 받아놓고 형편을 보아가면서 앞당기거나 늦추도록 하라. 태묘(太廟)에 직접 고하는 제사는 정월 보름 전으로 날을 받아가지고 입계하되, 모든 의식을 거행하는 예절은 한결같이 관복을 받고 종묘에 고할 때의 규례에 따라 자세히 살펴서 할 것을 예관에게 말하라."
"성절사(聖節使)가 올린 장계를 보건대, 황제의 은혜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니 감격의 눈물만 흐를 뿐 보답할 방도를 모르겠다. 칙서를 맞이하기 위한 좋은 날을 다음달 초승으로 미리 받아놓고 형편을 보아가면서 앞당기거나 늦추도록 하라.
태묘(太廟)에 직접 고하는 제사는 정월 보름 전으로 날을 받아가지고 입계하되, 모든 의식을 거행하는 예절은 한결같이 관복을 받고 종묘에 고할 때의 규례에 따라 자세히 살펴서 할 것을 예관에게 말하라."
사헌부가 아뢰기를, "천안 군수(天安郡守) 권성기(權成己)는 나이도 많고 늙어서 앞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재물을 마구잡이로 거두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온 고을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공홍 수사(公洪水使) 신경징(申景澄)은 사람됨이 사나운데다 탐욕만 일삼고 있습니다. 일찍이 훈련 도감 도정으로 있을 때는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등급을 매겼으므로 보고듣는 사람치고 더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본직에 제수되고 나서는 더욱 끝없는 욕심을 제멋대로 부려 군사를 놓아보내고 베를 거둔 결과 영내가 텅텅 비었습니다. 만약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 방책이 없게 되었으니, 방어에 관한 문제가 참으로 한심합니다. 모두 파직시키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천안 군수(天安郡守) 권성기(權成己)는 나이도 많고 늙어서 앞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재물을 마구잡이로 거두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온 고을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공홍 수사(公洪水使) 신경징(申景澄)은 사람됨이 사나운데다 탐욕만 일삼고 있습니다. 일찍이 훈련 도감 도정으로 있을 때는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등급을 매겼으므로 보고듣는 사람치고 더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본직에 제수되고 나서는 더욱 끝없는 욕심을 제멋대로 부려 군사를 놓아보내고 베를 거둔 결과 영내가 텅텅 비었습니다. 만약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 방책이 없게 되었으니, 방어에 관한 문제가 참으로 한심합니다. 모두 파직시키소서."
하니,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좌참찬 이충(李沖)이 상차하여, 본직과 겸임하고 있는 훈련 도감, 비변사의 당상관, 성균관 동지를 해임시켜주기를 청하니, 사직하지 말고 몸조리를 잘 하고서 일을 보도록 하라고 답하였다. 【이충은 이량의 손자이고 이정빈(李廷賓)의 아들인데 조상의 누덕(累德) 때문에 사람축에 들지 못하였다. 성질이 못되고 간사한 그는 궁중과 연줄을 대고 음식만드는 여종을 대궐에 들여보낸 다음 진기한 반찬을 만들어 올리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총애를 받아 재상의 반열에 갑자기 올랐고 좋은 벼슬도 겸임하였다. 두 대궐의 공사를 시작한 것도 이충이 사실 주장하였으며, 왕의 뜻에 아첨하는 모든 일에 있는 힘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전라 감사 이홍주(李弘胄)가 김제남의 남종 억이(億伊)를 체포하여 형틀을 채워서 보냈다.
대궐 뜰에서 죄인을 국문하였다.
11월 5일 병인
유학 한보길(韓輔吉)·박몽준(朴夢俊)·설구인(薛求仁)·한천정(韓天挺) 등이 재차 상소하기를, "지금 나라의 운명은 위급하다고 하겠습니다. 망할 징조가 이미 나타났고 화근이 단단히 얽혔습니다. 인심은 동요하고 놀라서 모두 다 떠나갈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고립되어 구원하는 사람도 없이 신하와 백성의 위에 외롭게 앉아 계시니 장차 전도될 형세가 마치 달걀을 포개놓고 바둑알을 쌓아놓은 것 같아서 지혜로운 사람이건 어리석은 사람이건 할 것 없이 모두 한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흉측한 격문이 던져진 뒤로부터 전하께서 비록 병력을 엄하게 하여 스스로 호위하면서 종사를 충분히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위험은 더욱 심하여지기만 하였습니다. 계축년 이후로 일어난 역적들의 변고와 대궐 안의 화란은 말하기도 참혹합니다. 지난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성상의 효성은 천성으로 타고 난 것이어서 모자간이나 형제간의 은정을 차마 끊어버리지 못하시니, 대소의 신하들이 어느 누가 우순(虞舜)이나 주문왕(周文王)보다도 뛰어난 전하의 효성을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효도란 일반 사람들의 효도와는 다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직은 중(重)하고 임금은 경(輕)하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임금보다 한 등급 낮은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간신배들과 얼자들이 날로 늘어나서 서궁(西宮)에 눈독을 들이며 슬금슬금 기회를 엿보면서 국가에 변고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니, 만일 간악한 무리가 팔뚝을 휘두르며 한 번 부르짖는다면 난리를 일으키려는 자들이 사방에서 호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궁을 끼고 나라에서 호령한다면 전하의 신변을 호위하던 군사들도 다 적의 편으로 넘어가서 창 끝을 돌릴 것이니, 그렇게 되면 전하께서 의지하고 믿던 신하도 어찌 끝까지 전하를 저버리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인데도 녹봉을 타먹는 신하들 가운데 털어놓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 형편이 곤란할 때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한들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기자헌은 임금의 친척이고 대신이며 한효순은 두 왕대를 섬긴 노련한 사람인데, 흉측한 격문이 처음 던져졌을 때 자기를 해칠까 의심하여 지레 떠나갔으며 병이 위중하다고 핑계대면서 나오지 않기도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대신으로서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의리이겠습니까. 오늘날 기자헌과 한효순이 정승 자리를 도로 차지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앞에다 불러놓고 나라의 큰 계책에 대하여 의논하지 않는 것입니까. 심지어 박승종·유희분·이이첨은 모두 인척관계로 인하여 두터운 총애를 받고 있으니 나라가 망하면 함께 망해야 한다는 의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위험이 이런 극도에 이른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겁을 먹고는 배회하며 대사를 담당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 박승종과 유희분은 녹봉이나 받아 자신을 살찌우려는 신하들이므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를 지키라고 요구할 수도 없지만, 임금의 처지가 위태로우면 자신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쯤은 저도 알 것입니다. 알면서도 과감하게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며, 재앙이 닥쳤는데 자기만 면할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행동은 다같이 나라를 저버리는 것이니, 신은 삼가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중에서 이이첨은 의리를 조금은 알기 때문에 한 시대의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의리를 극력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토벌한 것은 지엽적인 인물뿐이고 그 우두머리에 대해서는 토벌할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충성심은 있으나 지혜롭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도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단지 자기와 맞서는 사람들의 말을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자신을 보존하는 데서는 잘한 것이지만 나랏일을 꾀하는 데서는 잘하지 못한 것입니다. 뒷날 설사 절개와 의리를 지켜 죽는다 하더라도 나라가 망해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신은 이이첨도 역시 소견이 좁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듣건대, 한 순제(漢順帝)가 염 태후(閻太后)의 난을 만났을 때 대신 이하가 다 태후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진달하는 것이 옳다고 제의하였고, 순제에게는 태후에게 조회하던 것을 그만둘 것을 제의하였는데, 주거(周擧)가 이합(李郃)에게 권고하여 말을 올린 결과 태후가 쫓겨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논의하는 사람은 이것을 구실로 삼지만 이것도 역시 한 가지만 안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염 태후가 난을 일으켰을 당시에 그와 공모한 자는 염현(閻顯)이었으므로, ‘동생이 역적이라해서 그의 누이까지 함께 죄를 준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이합의 논의가 시행된 것입니다. 그때에 만약 태후의 아비가 이런 모의를 하였다면 죄인의 자녀는 결코 천하의 어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며, 이합의 논의도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제기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晉)나라의 양준(楊駿)을 주벌할 때 장화(張華)가 한 효성제(漢孝成帝)와 조 태후(趙太后)의 고사에 의거하여 태후의 존호를 없애되 그 의물(儀物)과 시중드는 사람의 수를 줄임으로써 태후를 내쫓지 않겠다는 뜻을 보일 것을 청하였는데, 우리 왕조의 정릉(貞陵)에 대한 일도 이와 유사하였습니다. 장화는 이름난 신하입니다. 예법을 널리 통달하고 때에 맞게 난국을 수습하였으니 이것도 하나의 의로운 일입니다. 어찌 소소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만약 장화의 논의에 의거하여 서궁의 존호를 삭제하고 궁전의 호위를 없애며 백관이 조회했던 것과 팔도에서 공물을 바치던 것도 모두 중지하게 하고 분조(分朝)의 호위도 철거하게 하여 온 나라 사람과 함께 폐위시키되, 성상께서는 다만 모자간의 사사로운 은정만으로 음식을 대접하고 안부를 물어 그로 하여금 타고난 수명을 다 살게 한다면, 처음과 마지막을 한결같이 하려는 전하의 은의를 온전히 할 수 있고 간사한 적들이 틈을 노리고 있는 조짐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가 태평하고 사직이 안정되는 길이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어리석은 저의 충성심을 굽어살피시어 중대한 계책을 속히 결정하소서. 특별히 신의 상소를 내려서 기자헌·윤효순과 박승종·유희분·이이첨 및 전하의 이목 역할을 하는 삼사(三司)의 관리들을 불러 가부를 물어보소서. 그리하여 좋은 의견을 따라 결단을 내려서 속히 거행하도록 하고 공연히 지연시켜 탐욕스런 마음을 먹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리고 대신 이하 관리들 중에서 혹은 의심을 가지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곧 엄중하게 단죄하고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사직을 편안히 하고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그리하신다면 더 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예부에 글을 오려 후환을 방지할 일에 대해서는 신들이 올린 먼젓번 상소문에서 이미 다 진달하였으니, 이것까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한꺼번에 의논하여 처리하게 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이때 왕이 이이첨으로 하여금 중대한 논의를 속히 거론하도록 강하게 요구하였으며, 허균은 또 격문을 낸 일이 발각되면 무거운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흉악한 무리를 불러모은 다음 소군(疏軍)이라는 명목하에 매일 글을 올렸는데 내용이 매우 패역스러웠다. 【그 글은 다 허균이 직접 초고를 쓴 것이다.】 한보길(韓輔吉) 등이 이전에 글을 올려 대비를 속히 내쫓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이번 상소에서 ‘재차 간절한 말을 올린다.’고 하였다.】
"지금 나라의 운명은 위급하다고 하겠습니다. 망할 징조가 이미 나타났고 화근이 단단히 얽혔습니다. 인심은 동요하고 놀라서 모두 다 떠나갈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고립되어 구원하는 사람도 없이 신하와 백성의 위에 외롭게 앉아 계시니 장차 전도될 형세가 마치 달걀을 포개놓고 바둑알을 쌓아놓은 것 같아서 지혜로운 사람이건 어리석은 사람이건 할 것 없이 모두 한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흉측한 격문이 던져진 뒤로부터 전하께서 비록 병력을 엄하게 하여 스스로 호위하면서 종사를 충분히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위험은 더욱 심하여지기만 하였습니다.
계축년 이후로 일어난 역적들의 변고와 대궐 안의 화란은 말하기도 참혹합니다. 지난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성상의 효성은 천성으로 타고 난 것이어서 모자간이나 형제간의 은정을 차마 끊어버리지 못하시니, 대소의 신하들이 어느 누가 우순(虞舜)이나 주문왕(周文王)보다도 뛰어난 전하의 효성을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효도란 일반 사람들의 효도와는 다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직은 중(重)하고 임금은 경(輕)하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임금보다 한 등급 낮은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간신배들과 얼자들이 날로 늘어나서 서궁(西宮)에 눈독을 들이며 슬금슬금 기회를 엿보면서 국가에 변고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니, 만일 간악한 무리가 팔뚝을 휘두르며 한 번 부르짖는다면 난리를 일으키려는 자들이 사방에서 호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궁을 끼고 나라에서 호령한다면 전하의 신변을 호위하던 군사들도 다 적의 편으로 넘어가서 창 끝을 돌릴 것이니, 그렇게 되면 전하께서 의지하고 믿던 신하도 어찌 끝까지 전하를 저버리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인데도 녹봉을 타먹는 신하들 가운데 털어놓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 형편이 곤란할 때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한들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기자헌은 임금의 친척이고 대신이며 한효순은 두 왕대를 섬긴 노련한 사람인데, 흉측한 격문이 처음 던져졌을 때 자기를 해칠까 의심하여 지레 떠나갔으며 병이 위중하다고 핑계대면서 나오지 않기도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대신으로서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의리이겠습니까. 오늘날 기자헌과 한효순이 정승 자리를 도로 차지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앞에다 불러놓고 나라의 큰 계책에 대하여 의논하지 않는 것입니까. 심지어 박승종·유희분·이이첨은 모두 인척관계로 인하여 두터운 총애를 받고 있으니 나라가 망하면 함께 망해야 한다는 의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위험이 이런 극도에 이른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겁을 먹고는 배회하며 대사를 담당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 박승종과 유희분은 녹봉이나 받아 자신을 살찌우려는 신하들이므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를 지키라고 요구할 수도 없지만, 임금의 처지가 위태로우면 자신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쯤은 저도 알 것입니다. 알면서도 과감하게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며, 재앙이 닥쳤는데 자기만 면할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행동은 다같이 나라를 저버리는 것이니, 신은 삼가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중에서 이이첨은 의리를 조금은 알기 때문에 한 시대의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의리를 극력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토벌한 것은 지엽적인 인물뿐이고 그 우두머리에 대해서는 토벌할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충성심은 있으나 지혜롭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도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단지 자기와 맞서는 사람들의 말을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자신을 보존하는 데서는 잘한 것이지만 나랏일을 꾀하는 데서는 잘하지 못한 것입니다. 뒷날 설사 절개와 의리를 지켜 죽는다 하더라도 나라가 망해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신은 이이첨도 역시 소견이 좁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듣건대, 한 순제(漢順帝)가 염 태후(閻太后)의 난을 만났을 때 대신 이하가 다 태후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진달하는 것이 옳다고 제의하였고, 순제에게는 태후에게 조회하던 것을 그만둘 것을 제의하였는데, 주거(周擧)가 이합(李郃)에게 권고하여 말을 올린 결과 태후가 쫓겨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논의하는 사람은 이것을 구실로 삼지만 이것도 역시 한 가지만 안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염 태후가 난을 일으켰을 당시에 그와 공모한 자는 염현(閻顯)이었으므로, ‘동생이 역적이라해서 그의 누이까지 함께 죄를 준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이합의 논의가 시행된 것입니다. 그때에 만약 태후의 아비가 이런 모의를 하였다면 죄인의 자녀는 결코 천하의 어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며, 이합의 논의도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제기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晉)나라의 양준(楊駿)을 주벌할 때 장화(張華)가 한 효성제(漢孝成帝)와 조 태후(趙太后)의 고사에 의거하여 태후의 존호를 없애되 그 의물(儀物)과 시중드는 사람의 수를 줄임으로써 태후를 내쫓지 않겠다는 뜻을 보일 것을 청하였는데, 우리 왕조의 정릉(貞陵)에 대한 일도 이와 유사하였습니다. 장화는 이름난 신하입니다. 예법을 널리 통달하고 때에 맞게 난국을 수습하였으니 이것도 하나의 의로운 일입니다. 어찌 소소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지금 만약 장화의 논의에 의거하여 서궁의 존호를 삭제하고 궁전의 호위를 없애며 백관이 조회했던 것과 팔도에서 공물을 바치던 것도 모두 중지하게 하고 분조(分朝)의 호위도 철거하게 하여 온 나라 사람과 함께 폐위시키되, 성상께서는 다만 모자간의 사사로운 은정만으로 음식을 대접하고 안부를 물어 그로 하여금 타고난 수명을 다 살게 한다면, 처음과 마지막을 한결같이 하려는 전하의 은의를 온전히 할 수 있고 간사한 적들이 틈을 노리고 있는 조짐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가 태평하고 사직이 안정되는 길이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어리석은 저의 충성심을 굽어살피시어 중대한 계책을 속히 결정하소서. 특별히 신의 상소를 내려서 기자헌·윤효순과 박승종·유희분·이이첨 및 전하의 이목 역할을 하는 삼사(三司)의 관리들을 불러 가부를 물어보소서. 그리하여 좋은 의견을 따라 결단을 내려서 속히 거행하도록 하고 공연히 지연시켜 탐욕스런 마음을 먹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리고 대신 이하 관리들 중에서 혹은 의심을 가지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곧 엄중하게 단죄하고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사직을 편안히 하고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그리하신다면 더 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예부에 글을 오려 후환을 방지할 일에 대해서는 신들이 올린 먼젓번 상소문에서 이미 다 진달하였으니, 이것까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한꺼번에 의논하여 처리하게 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이때 왕이 이이첨으로 하여금 중대한 논의를 속히 거론하도록 강하게 요구하였으며, 허균은 또 격문을 낸 일이 발각되면 무거운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흉악한 무리를 불러모은 다음 소군(疏軍)이라는 명목하에 매일 글을 올렸는데 내용이 매우 패역스러웠다. 【그 글은 다 허균이 직접 초고를 쓴 것이다.】 한보길(韓輔吉) 등이 이전에 글을 올려 대비를 속히 내쫓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이번 상소에서 ‘재차 간절한 말을 올린다.’고 하였다.】
전교하였다. "요즘 낮시간이 매우 짧다. 영정을 맞이하고 직접 제사지내는 일들을 일찍이 거행하도록 하라."
"요즘 낮시간이 매우 짧다. 영정을 맞이하고 직접 제사지내는 일들을 일찍이 거행하도록 하라."
11월 6일 정묘
예조가 아뢰기를, "친히 제사를 지낸 뒤에 서울과 지방에서 전문(箋文)을 올리고 축하하며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토산물·음식물·안팎 옷감을 올리며, 유생·늙은이·교방(敎坊)에서 축하하는 시와 노래를 올리고 길거리에 채색천을 둘러치며, 향 동이를 이고 좌우편에서 탈춤을 추고 음복연을 여는 등에 관한 일들을 한결같이 관복(官服)을 받았을 때의 규례에 따라 차례대로 거행할 것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친히 제사를 지낸 뒤에 서울과 지방에서 전문(箋文)을 올리고 축하하며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토산물·음식물·안팎 옷감을 올리며, 유생·늙은이·교방(敎坊)에서 축하하는 시와 노래를 올리고 길거리에 채색천을 둘러치며, 향 동이를 이고 좌우편에서 탈춤을 추고 음복연을 여는 등에 관한 일들을 한결같이 관복(官服)을 받았을 때의 규례에 따라 차례대로 거행할 것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칙서와 같이 가져온 선물들을 태묘에 보관해 둘 것인가?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칙서와 같이 가져온 선물들을 태묘에 보관해 둘 것인가?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대궐 뜰에서 국문을 실시하였다.
11월 7일 무진
유학 윤유겸(尹惟謙)이 상소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의 국가 형세는 매우 위태롭다고 하겠습니다. 높고 낮은 신하와 백성들이 다 의심스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며, 주상 전하께서는 궁전의 경비를 엄하게 하여 큰 적을 대기하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존망 문제가 달려 있는 위급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조정에 있는 대신들이나 임금의 안팎 친척 등 아주 가깝고도 나라와 운명을 같이할 사람들은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고 인심이 이미 이탈되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저 고식적인 태도로 안일에만 익숙해져 서로 눈치만 보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신들과 안팎 친척이 맨 먼저 전하를 배반한 것이니, 하물며 소원하게 지내는 신하들이나 뜻을 펴지 못한 무리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김제남이 역적 이의(李㼁)를 추대하려고 꾀한 간악한 정상이 남김없이 드러났으며, 대궐 안에서는 저주하는 변고를 일으켜, 안팎에서 화란을 얽어대었으니, 그 흉악하고 요사스런 죄상은 지난 시대를 상고해 보아도 드문 일입니다. 전하께서 기어코 처음부터 끝까지 모자간과 형제간의 은정을 보존하려 하시는 것은 실로 전하의 끝없는 효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신하들에게 있어서는 그들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처지에 있으니, 어찌 일반적인 견해에 구속되어 역적의 괴수를 옹호함으로써 나라가 장차 망하게 되는 것을 내버려 두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형조 판서 이경전(李慶全), 완창군 이병(李覮)은 충성스럽고 원대한 꾀와 의로운 기백을 분발하여 화근을 제거할 논의를 제창하고, 박승종·유희분·이이첨 세 집을 규합하여 일심으로 협력해서 어려운 형편에 놓인 국가를 건져내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큰일이 거의 성사되어갈 때 반대하는 논의들이 판을 쳐서 마침내 그 계책을 실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전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뜻있는 선비와 충직한 신하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분개하고 한탄해 마지않습니다. 지난해 김제남을 사형에 처하려 할 때 해당 관청에서 큰 의리에 의거하여 결단할 것을 요청한 것은 국법으로 보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나도록 질질 끌고 아직도 드러내놓고 단죄하지 않으니, 선비들의 기개가 위축되고 나라의 위세가 점점 저하되어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대한 논의를 선두로 제창한 경전 등도 화를 받을까 두려워서 도로 물러서면서 회피하는 말까지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신은 속으로 괴이하게 여깁니다. 대체로 임금의 효성은 오직 나라가 태평하고 사직이 영원히 보존되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의 의로운 임금들은 변고를 만났을 때 만약 나라에 유리한 일이라면 오직 대의를 따를 뿐이었습니다. 만약 구구하게 사정을 보아주면서 기회를 놓치고 가만히 있다가 화가 갑자기 나타나서 삼령(三靈)까지 바꾸어놓게 된다면 이것도 효성을 다하고 먼저 임금이 물려준 왕업을 잘 계승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믿고 의지하는 자는 대신인데, 기자헌은 임금을 저버린 죄를 범하였고 한효순은 나쁜놈들과 결탁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하께서 용서하고 형벌을 주지 않는 것은 두 신하가 나라의 은혜를 후하게 받은 것만큼 반드시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 속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는 동안 녹봉을 받아 자기 집만 부유하게 했을 뿐이고 나라의 큰 계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한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이런 두 신하를 이처럼 부당하게 비호해서 장차 무엇에 쓰려 하십니까. 그리고 세 집은 두 대신과는 형편이 더욱 다릅니다. 기자헌은 믿지 못할 사람인 것이 4년 간 권세를 잡고 있을 때 추천한 사람은 다 전하를 미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한효순은 원래 역적을 비호한 자의 괴수입니다. 설사 나라가 위태롭게 되더라도 그는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물쭈물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 박승종과 유희분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있기에 아직도 성패를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면서 역적을 따르는 것을 달갑게 여기고 이이첨과 마음을 합하여 역적을 치지 않는단 말입니까. 뒷날 화변이 왕실 내부에서 일어나서 전하와 서궁의 위치가 바뀐다면 그들만 자기들의 족속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 우리 태종 대왕은 부역하는 역군(役軍)의 수를 제 마음대로 줄였다고 해서 심온(沈溫)을 죽였으며, 임금이 앉는 자리에 장난삼아 앉았다고 해서 민무구(閔無咎) 형제를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나라의 공신이고 임금의 친척인 대신들이며 범한 죄가 또한 용서할 수도 있었는데 사형에 처하고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나라를 소중히 여겨 이런 법을 집행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니, 아, 이때가 바로 왕업을 일으켜 세운 시대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 집이 이미 화합하자 중앙과 지방의 높고낮은 관리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것을 나라의 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어찌 세 집이 부귀를 영구히 누리게 된 것을 생각하여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이이첨은 힘이 약하여 혼자서는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환란을 제거하는 일이야 어찌 꼭 한 사람의 충성만으로 이루어지겠는가. 세 집이 계책을 합친다면 온 나라에서 반드시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니 이것도 화를 복으로 만드는 기회인 것이다.’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 집이 화합된 지 10여 개월이 지났으나, 바른말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답답하게 여기고 모든 사람들의 심정은 더욱 해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세 신하는 생각이 또한 여기에 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이첨은 충의(忠義)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대략 알고 있는데, 현재 역적을 토벌할 것에 대하여 논의를 주장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유희분·박승종과 함께 형세만 바라보면서 그 주모자는 토벌하지 않고 추종자만 토벌하고 있으니, 그를 과연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사직의 신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첨의 허물이 유희분·박승종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한(漢)나라 태후 염씨(閻氏)가 자기의 동생인 염현(閻顯)과 함께 변란을 일으키자, 순제(順帝)는 여러 신하들의 의논을 채택하여 그를 별궁으로 옮겼다가 이합(李郃)의 말을 듣고 수명을 제대로 다하게 하였습니다. 당초에 염현이 만약 태후의 아비였다면 이합이 어찌 감히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믿고 있는 두 정승과 세 집이 이미 전하를 저버렸습니다. 언론을 담당하면서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이 입을 다물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삼사의 벼슬아치들도 이미 전하를 저버린 셈입니다. 이 밖에 버림받고 뜻을 잃은 무리들로 다른 날에 부귀를 누리려고 침을 흘리며 뱃속에는 반역의 음모를 품은 자들이 끊이지 않고 왕래합니다. 그리하여 벼슬살이에는 공정한 도리가 없고 관리들은 다 너절한 사람들뿐이므로 사대부가 원망하고 있으며, 궁궐에 경비를 세워 밤낮으로 쉬지 못하게 하므로 호위하는 군사들이 원망하고 있으며, 조정에 일이 많아서 부역이 점점 더 무거워지므로 일반 백성이 원망하고 있으며, 세력있는 집들이 권세를 믿고 강탈하기 때문에 도성의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당들을 모으고 뜻을 얻지 못하여 환란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무리들과 협잡하여 유혹하고 선동함으로써 품었던 흉계를 장차 펴려고 하지만 아직 안팎에 틈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흉악한 음모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북쪽 지방에서는 해마다 계속 가뭄·황충·홍수의 피해로 거주민들이 절반 이상이나 죽었고 살아 남은 자들은 오랑캐들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노추(奴酋)가 만일 1개 부대의 군사를 시켜 한 곳의 보루를 점거한다면 인심은 내부에서 와해되고 도성 안도 어수선해져 반란자들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금의 깃발이 도성문 밖으로 나가기 전에 정사를 보는 거조를 갑자기 서궁에서 취하게 된다면 전하께서는 어디로 가서 머무르시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신은 《춘추(春秋)》의 의리로 단언을 내려 보고자 합니다. 노(魯)나라 환공(桓公)이 시해되었을 때 부인 강씨(姜氏)가 이 사실을 알았었습니다. 공자는 《춘추(春秋)》에 쓰기를 ‘부인이 제(齊)나라로 도망쳤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씨(姜氏)라고 쓰지 않은 것은 관계를 끊고 친(親)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고, 도망쳤다고 쓴 것은 마치 가서 돌아오지 않을 듯한 점이 있었다는 것으로 심하게 단죄한 것입니다. 호씨(胡氏)049) 는 말하기를 ‘사정을 따르면 세상의 큰 의리에 해를 끼치게 되고 왕법(王法)을 거행하면 모자(母子)간의 지극한 은정에 손상을 주게 되니, 이것이 나라의 공론을 결단하기 어려운 점이다. 《춘추(春秋)》의 본문에 「부인이 제나라로 도망쳤다.」고 썼으니 은혜와 의리의 경중이 밝혀진 셈이다. 양(梁)나라에서 어떤 계모가 남편을 살해하자, 그 아들이 계모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법관이 그를 대역죄로 다스리려고 하자, 공계언(孔季彦)이 말하기를 「문강(文姜)이 노나라 환공을 죽이는데 참여한 것에 대하여 《춘추(春秋)》에는 강씨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며, 그 전(傳)에는 『관계를 끊고 친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예법이다.』고 하였다. 관계를 끊고 친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는 곧 일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도리에 비추어볼 때 법관이 아니면서 사람을 제 마음대로 죽인 죄에는 해당되지만 대역죄로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비추어 보면, 이번에 있었던 흉악한 저주의 변고는 안팎에서 힘을 합하여 장차 나라의 운명을 이전시키려 했던 것이니, 그 죄는 남편을 시해하는데 참여한 것보다도 크다 하겠습니다. 막된 무리와 뜻을 잃은 무리들이 빈틈을 엿보면서 흉악한 계책을 이루어보려고 설쳤으니, 사태가 노(魯)나라의 상황보다도 심하다 하겠습니다. ‘은혜는 가볍고 의리가 중하다.’는 말은 실로 오늘의 사태를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아, 군신 상하가 모두 구구한 은정에 연연하여 이 화란의 싹을 기르기만 하고 감히 제때에 다스리지 않고 있는데, 《춘추(春秋)》의 의리는 아마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춘추(春秋)》의 법에 따라 전하의 모자간의 은정을 온전히 하는 한편 온 나라의 신하들이 다같이 그를 버리고 관계를 끊음으로써 큰 의리를 세상에 밝힐 것을 청합니다만, 성상께서 과연 이 의견을 채택하여 시행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이 청하건대 대신과 삼사, 인척인 여러 신하들을 불러 신의 글을 보인 다음 존호를 낮추고 분조(分朝)의 여러 관리와 호위하는 장사들을 철수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의 궁전 이름을 삭제하여 개인집으로 강등시키고 별장(別將) 한 사람을 두어 지키게 하소서. 여러 도에서 공물을 바치는 것과 관리들이 임명받고 사례하는 것을 일체 그만두게 하소서. 공주의 칭호도 삭탈하여 서인(庶人)으로서 혼례를 치르게 하고 그를 모시던 궁녀들도 감축시키고 김제남의 처를 노비 장부에 등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 그와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뜻을 보이소서. 그런 다음 성상께서는 문안하고 음식물을 보내는 일을 정상적으로 어김없이 함으로써 타고난 수명을 잘 마칠 수 있게 하소서. 또 세상을 떠난 뒤에는 국조(國朝) 정릉(貞陵)의 고사에 의거하여 그 은혜를 온전히 하소서. 이처럼 하는 것이 바로 윤리를 다하고 예법을 다하는 거조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 김제남을 비롯한 여러 역적을 처벌해서 평정한 사실을 갖고 백관이 예부에 글을 올려서 성상의 지극한 효성과 온전한 은혜, 그리고 신하와 백성의 큰 의리와 정당한 법이 다 황제에게 보고되게 한다면, 중국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하늘이 낸 전하의 지극한 효성을 훌륭하게 여기고 감탄할 것입니다. 그리고 변란이 일어날 조짐도 반드시 막아줄 것이니 비록 윤이(尹彝)·이초(李初)와 같은 간악한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에서 문제를 만들어 내고 환난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은 걱정되는 것이 또 있는데, 전하의 효성과 슬기로움은 여러 임금들보다 탁월하시나 엄격하기보다는 은혜로운 성품이 더 많으시기 때문에 비록 규율을 어기고 임금을 무시하는 자가 있어도 역시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요사스럽고 간악한 무리들은 믿고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골목마다 논의하고 집집마다 말을 하여 흉악한 말을 공공연히 제멋대로 합니다. 역적을 공격하는 것을 지적하여 사의(邪議)라 하고 역적을 옹호하는 것을 가리켜 공론(公論)이라 하며, 거짓으로 과장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함으로써 임금을 현혹시킵니다. 대신 이하가 위축되어 감히 먼저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무리들에게 꺾여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 중대한 논의를 내놓아서 위로는 대신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관리에 이르기까지 만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전하께서 법관의 말을 채택하여 국법으로 결단을 내리면서 권세 있는 자라 해도 동요되지 마소서. 그러면 공정한 논의가 저절로 서고 임금의 위엄도 저절로 떨쳐질 것이며 화근도 제거될 수 있을 것이고 요망스런 무리도 격파될 수 있어서 나라의 끝없는 복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신은 단지 우레와 같은 전하의 위엄을 제대로 떨치지 못하게 되면 임금을 소홀히 여기는 흉악한 무리의 마음을 열어주게 되고 많은 사람이 지껄이는 소리를 위압할 수 없게 될까 두려워할 뿐입니다. 전하께서 큰일을 할 만한 기회를 만난 것이 모두 세 번이었으나, 맨 처음은 계축년에 놓쳤고 그 다음은 지난해에 놓쳤으며 세 번째는 올 봄에 놓쳤습니다. 이것은 결단하여야 할 때 결단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간신들의 임금을 소홀히 대하는 마음을 열어놓은 데 기인한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의 무고(誣告)가 통쾌하게 씻어졌고 고명(誥命)과 예복(禮服)도 잇따라 반포되었으며 높고 큰 칭호로 큰 의식을 거행하고 대례(大禮)도 이미 끝마쳤으므로 인심은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이 큰 계책을 정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느 때에 가서 안정되는 경사를 보겠습니까.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법이며 기회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유의하셔서 흔쾌히 결단하여 큰 효도를 끝마치소서. 그리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註 049] 호씨(胡氏) : 호안국(胡安國).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의 국가 형세는 매우 위태롭다고 하겠습니다. 높고 낮은 신하와 백성들이 다 의심스러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며, 주상 전하께서는 궁전의 경비를 엄하게 하여 큰 적을 대기하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존망 문제가 달려 있는 위급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조정에 있는 대신들이나 임금의 안팎 친척 등 아주 가깝고도 나라와 운명을 같이할 사람들은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고 인심이 이미 이탈되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저 고식적인 태도로 안일에만 익숙해져 서로 눈치만 보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신들과 안팎 친척이 맨 먼저 전하를 배반한 것이니, 하물며 소원하게 지내는 신하들이나 뜻을 펴지 못한 무리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김제남이 역적 이의(李㼁)를 추대하려고 꾀한 간악한 정상이 남김없이 드러났으며, 대궐 안에서는 저주하는 변고를 일으켜, 안팎에서 화란을 얽어대었으니, 그 흉악하고 요사스런 죄상은 지난 시대를 상고해 보아도 드문 일입니다. 전하께서 기어코 처음부터 끝까지 모자간과 형제간의 은정을 보존하려 하시는 것은 실로 전하의 끝없는 효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신하들에게 있어서는 그들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처지에 있으니, 어찌 일반적인 견해에 구속되어 역적의 괴수를 옹호함으로써 나라가 장차 망하게 되는 것을 내버려 두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형조 판서 이경전(李慶全), 완창군 이병(李覮)은 충성스럽고 원대한 꾀와 의로운 기백을 분발하여 화근을 제거할 논의를 제창하고, 박승종·유희분·이이첨 세 집을 규합하여 일심으로 협력해서 어려운 형편에 놓인 국가를 건져내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큰일이 거의 성사되어갈 때 반대하는 논의들이 판을 쳐서 마침내 그 계책을 실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전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뜻있는 선비와 충직한 신하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분개하고 한탄해 마지않습니다.
지난해 김제남을 사형에 처하려 할 때 해당 관청에서 큰 의리에 의거하여 결단할 것을 요청한 것은 국법으로 보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나도록 질질 끌고 아직도 드러내놓고 단죄하지 않으니, 선비들의 기개가 위축되고 나라의 위세가 점점 저하되어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대한 논의를 선두로 제창한 경전 등도 화를 받을까 두려워서 도로 물러서면서 회피하는 말까지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신은 속으로 괴이하게 여깁니다. 대체로 임금의 효성은 오직 나라가 태평하고 사직이 영원히 보존되도록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의 의로운 임금들은 변고를 만났을 때 만약 나라에 유리한 일이라면 오직 대의를 따를 뿐이었습니다. 만약 구구하게 사정을 보아주면서 기회를 놓치고 가만히 있다가 화가 갑자기 나타나서 삼령(三靈)까지 바꾸어놓게 된다면 이것도 효성을 다하고 먼저 임금이 물려준 왕업을 잘 계승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믿고 의지하는 자는 대신인데, 기자헌은 임금을 저버린 죄를 범하였고 한효순은 나쁜놈들과 결탁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하께서 용서하고 형벌을 주지 않는 것은 두 신하가 나라의 은혜를 후하게 받은 것만큼 반드시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 속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는 동안 녹봉을 받아 자기 집만 부유하게 했을 뿐이고 나라의 큰 계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한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이런 두 신하를 이처럼 부당하게 비호해서 장차 무엇에 쓰려 하십니까.
그리고 세 집은 두 대신과는 형편이 더욱 다릅니다. 기자헌은 믿지 못할 사람인 것이 4년 간 권세를 잡고 있을 때 추천한 사람은 다 전하를 미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한효순은 원래 역적을 비호한 자의 괴수입니다. 설사 나라가 위태롭게 되더라도 그는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물쭈물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 박승종과 유희분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있기에 아직도 성패를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면서 역적을 따르는 것을 달갑게 여기고 이이첨과 마음을 합하여 역적을 치지 않는단 말입니까. 뒷날 화변이 왕실 내부에서 일어나서 전하와 서궁의 위치가 바뀐다면 그들만 자기들의 족속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 우리 태종 대왕은 부역하는 역군(役軍)의 수를 제 마음대로 줄였다고 해서 심온(沈溫)을 죽였으며, 임금이 앉는 자리에 장난삼아 앉았다고 해서 민무구(閔無咎) 형제를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나라의 공신이고 임금의 친척인 대신들이며 범한 죄가 또한 용서할 수도 있었는데 사형에 처하고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나라를 소중히 여겨 이런 법을 집행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니, 아, 이때가 바로 왕업을 일으켜 세운 시대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 집이 이미 화합하자 중앙과 지방의 높고낮은 관리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것을 나라의 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어찌 세 집이 부귀를 영구히 누리게 된 것을 생각하여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이이첨은 힘이 약하여 혼자서는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환란을 제거하는 일이야 어찌 꼭 한 사람의 충성만으로 이루어지겠는가. 세 집이 계책을 합친다면 온 나라에서 반드시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니 이것도 화를 복으로 만드는 기회인 것이다.’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 집이 화합된 지 10여 개월이 지났으나, 바른말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답답하게 여기고 모든 사람들의 심정은 더욱 해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세 신하는 생각이 또한 여기에 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이첨은 충의(忠義)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대략 알고 있는데, 현재 역적을 토벌할 것에 대하여 논의를 주장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유희분·박승종과 함께 형세만 바라보면서 그 주모자는 토벌하지 않고 추종자만 토벌하고 있으니, 그를 과연 국가와 운명을 함께하는 사직의 신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첨의 허물이 유희분·박승종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한(漢)나라 태후 염씨(閻氏)가 자기의 동생인 염현(閻顯)과 함께 변란을 일으키자, 순제(順帝)는 여러 신하들의 의논을 채택하여 그를 별궁으로 옮겼다가 이합(李郃)의 말을 듣고 수명을 제대로 다하게 하였습니다. 당초에 염현이 만약 태후의 아비였다면 이합이 어찌 감히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믿고 있는 두 정승과 세 집이 이미 전하를 저버렸습니다. 언론을 담당하면서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이 입을 다물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삼사의 벼슬아치들도 이미 전하를 저버린 셈입니다. 이 밖에 버림받고 뜻을 잃은 무리들로 다른 날에 부귀를 누리려고 침을 흘리며 뱃속에는 반역의 음모를 품은 자들이 끊이지 않고 왕래합니다. 그리하여 벼슬살이에는 공정한 도리가 없고 관리들은 다 너절한 사람들뿐이므로 사대부가 원망하고 있으며, 궁궐에 경비를 세워 밤낮으로 쉬지 못하게 하므로 호위하는 군사들이 원망하고 있으며, 조정에 일이 많아서 부역이 점점 더 무거워지므로 일반 백성이 원망하고 있으며, 세력있는 집들이 권세를 믿고 강탈하기 때문에 도성의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당들을 모으고 뜻을 얻지 못하여 환란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무리들과 협잡하여 유혹하고 선동함으로써 품었던 흉계를 장차 펴려고 하지만 아직 안팎에 틈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흉악한 음모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북쪽 지방에서는 해마다 계속 가뭄·황충·홍수의 피해로 거주민들이 절반 이상이나 죽었고 살아 남은 자들은 오랑캐들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노추(奴酋)가 만일 1개 부대의 군사를 시켜 한 곳의 보루를 점거한다면 인심은 내부에서 와해되고 도성 안도 어수선해져 반란자들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금의 깃발이 도성문 밖으로 나가기 전에 정사를 보는 거조를 갑자기 서궁에서 취하게 된다면 전하께서는 어디로 가서 머무르시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신은 《춘추(春秋)》의 의리로 단언을 내려 보고자 합니다. 노(魯)나라 환공(桓公)이 시해되었을 때 부인 강씨(姜氏)가 이 사실을 알았었습니다. 공자는 《춘추(春秋)》에 쓰기를 ‘부인이 제(齊)나라로 도망쳤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씨(姜氏)라고 쓰지 않은 것은 관계를 끊고 친(親)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고, 도망쳤다고 쓴 것은 마치 가서 돌아오지 않을 듯한 점이 있었다는 것으로 심하게 단죄한 것입니다. 호씨(胡氏)049) 는 말하기를 ‘사정을 따르면 세상의 큰 의리에 해를 끼치게 되고 왕법(王法)을 거행하면 모자(母子)간의 지극한 은정에 손상을 주게 되니, 이것이 나라의 공론을 결단하기 어려운 점이다. 《춘추(春秋)》의 본문에 「부인이 제나라로 도망쳤다.」고 썼으니 은혜와 의리의 경중이 밝혀진 셈이다. 양(梁)나라에서 어떤 계모가 남편을 살해하자, 그 아들이 계모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법관이 그를 대역죄로 다스리려고 하자, 공계언(孔季彦)이 말하기를 「문강(文姜)이 노나라 환공을 죽이는데 참여한 것에 대하여 《춘추(春秋)》에는 강씨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며, 그 전(傳)에는 『관계를 끊고 친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예법이다.』고 하였다. 관계를 끊고 친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는 곧 일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도리에 비추어볼 때 법관이 아니면서 사람을 제 마음대로 죽인 죄에는 해당되지만 대역죄로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비추어 보면, 이번에 있었던 흉악한 저주의 변고는 안팎에서 힘을 합하여 장차 나라의 운명을 이전시키려 했던 것이니, 그 죄는 남편을 시해하는데 참여한 것보다도 크다 하겠습니다. 막된 무리와 뜻을 잃은 무리들이 빈틈을 엿보면서 흉악한 계책을 이루어보려고 설쳤으니, 사태가 노(魯)나라의 상황보다도 심하다 하겠습니다. ‘은혜는 가볍고 의리가 중하다.’는 말은 실로 오늘의 사태를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아, 군신 상하가 모두 구구한 은정에 연연하여 이 화란의 싹을 기르기만 하고 감히 제때에 다스리지 않고 있는데, 《춘추(春秋)》의 의리는 아마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춘추(春秋)》의 법에 따라 전하의 모자간의 은정을 온전히 하는 한편 온 나라의 신하들이 다같이 그를 버리고 관계를 끊음으로써 큰 의리를 세상에 밝힐 것을 청합니다만, 성상께서 과연 이 의견을 채택하여 시행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이 청하건대 대신과 삼사, 인척인 여러 신하들을 불러 신의 글을 보인 다음 존호를 낮추고 분조(分朝)의 여러 관리와 호위하는 장사들을 철수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의 궁전 이름을 삭제하여 개인집으로 강등시키고 별장(別將) 한 사람을 두어 지키게 하소서. 여러 도에서 공물을 바치는 것과 관리들이 임명받고 사례하는 것을 일체 그만두게 하소서. 공주의 칭호도 삭탈하여 서인(庶人)으로서 혼례를 치르게 하고 그를 모시던 궁녀들도 감축시키고 김제남의 처를 노비 장부에 등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 그와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뜻을 보이소서. 그런 다음 성상께서는 문안하고 음식물을 보내는 일을 정상적으로 어김없이 함으로써 타고난 수명을 잘 마칠 수 있게 하소서. 또 세상을 떠난 뒤에는 국조(國朝) 정릉(貞陵)의 고사에 의거하여 그 은혜를 온전히 하소서. 이처럼 하는 것이 바로 윤리를 다하고 예법을 다하는 거조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 김제남을 비롯한 여러 역적을 처벌해서 평정한 사실을 갖고 백관이 예부에 글을 올려서 성상의 지극한 효성과 온전한 은혜, 그리고 신하와 백성의 큰 의리와 정당한 법이 다 황제에게 보고되게 한다면, 중국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하늘이 낸 전하의 지극한 효성을 훌륭하게 여기고 감탄할 것입니다. 그리고 변란이 일어날 조짐도 반드시 막아줄 것이니 비록 윤이(尹彝)·이초(李初)와 같은 간악한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에서 문제를 만들어 내고 환난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은 걱정되는 것이 또 있는데, 전하의 효성과 슬기로움은 여러 임금들보다 탁월하시나 엄격하기보다는 은혜로운 성품이 더 많으시기 때문에 비록 규율을 어기고 임금을 무시하는 자가 있어도 역시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요사스럽고 간악한 무리들은 믿고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골목마다 논의하고 집집마다 말을 하여 흉악한 말을 공공연히 제멋대로 합니다. 역적을 공격하는 것을 지적하여 사의(邪議)라 하고 역적을 옹호하는 것을 가리켜 공론(公論)이라 하며, 거짓으로 과장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함으로써 임금을 현혹시킵니다. 대신 이하가 위축되어 감히 먼저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무리들에게 꺾여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 중대한 논의를 내놓아서 위로는 대신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관리에 이르기까지 만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전하께서 법관의 말을 채택하여 국법으로 결단을 내리면서 권세 있는 자라 해도 동요되지 마소서. 그러면 공정한 논의가 저절로 서고 임금의 위엄도 저절로 떨쳐질 것이며 화근도 제거될 수 있을 것이고 요망스런 무리도 격파될 수 있어서 나라의 끝없는 복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신은 단지 우레와 같은 전하의 위엄을 제대로 떨치지 못하게 되면 임금을 소홀히 여기는 흉악한 무리의 마음을 열어주게 되고 많은 사람이 지껄이는 소리를 위압할 수 없게 될까 두려워할 뿐입니다.
전하께서 큰일을 할 만한 기회를 만난 것이 모두 세 번이었으나, 맨 처음은 계축년에 놓쳤고 그 다음은 지난해에 놓쳤으며 세 번째는 올 봄에 놓쳤습니다. 이것은 결단하여야 할 때 결단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간신들의 임금을 소홀히 대하는 마음을 열어놓은 데 기인한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의 무고(誣告)가 통쾌하게 씻어졌고 고명(誥命)과 예복(禮服)도 잇따라 반포되었으며 높고 큰 칭호로 큰 의식을 거행하고 대례(大禮)도 이미 끝마쳤으므로 인심은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이 큰 계책을 정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느 때에 가서 안정되는 경사를 보겠습니까.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법이며 기회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유의하셔서 흔쾌히 결단하여 큰 효도를 끝마치소서. 그리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대궐 뜰에서 죄인을 신문하였다.
11월 8일 기사
대사간 윤인이 아뢰기를, "신이 서경(署經)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여러 날 논계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자못 온편치 않은 분부가 있었으므로 신은 지금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서경을 실시할 즈음에는 반드시 공론을 널리 채택하고 또 완의(完議)로 하여 낼 만하면 내고 넘길 만하면 넘깁니다. 내고 넘기는 것이 한결같이 공정한 논의에서 나올 뿐 어찌 거기에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성이 성상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엄한 분부를 내리게까지 하였으니 신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큽니다. 형편상 그대로 있기가 어려우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어제 심눌(沈訥)이 잇따라 아뢰자, 여기에 대한 비답에서 "요즘 서경에서 내고 넘기는 것을 공론에 맞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인심을 감복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윤인이 이 계사를 올린 것이다.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박종주(朴宗胄)도 잇따라 인피하고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서경(署經)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여러 날 논계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자못 온편치 않은 분부가 있었으므로 신은 지금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서경을 실시할 즈음에는 반드시 공론을 널리 채택하고 또 완의(完議)로 하여 낼 만하면 내고 넘길 만하면 넘깁니다. 내고 넘기는 것이 한결같이 공정한 논의에서 나올 뿐 어찌 거기에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성이 성상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엄한 분부를 내리게까지 하였으니 신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큽니다. 형편상 그대로 있기가 어려우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어제 심눌(沈訥)이 잇따라 아뢰자, 여기에 대한 비답에서 "요즘 서경에서 내고 넘기는 것을 공론에 맞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인심을 감복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윤인이 이 계사를 올린 것이다.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박종주(朴宗胄)도 잇따라 인피하고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동쪽에서 무지개가 나타났다.
11월 9일 경오
장령 강린(姜繗)·한영(韓詠)이 아뢰기를, "삼가 보건대 사간원의 여러 관리가 심눌의 일로 모두 인피하였습니다. 본부에서도 일찍이 서경 문제는 변경할 수 없다는 뜻으로 논의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신들도 그 논의에 같이 참가하였으니, 신들의 잘못이 사간원의 여러 관원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즉시 인피하지 않고 그대로 입계하였으니 신들의 잘못이 더욱 큽니다. 마음 편하게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보건대 사간원의 여러 관리가 심눌의 일로 모두 인피하였습니다. 본부에서도 일찍이 서경 문제는 변경할 수 없다는 뜻으로 논의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신들도 그 논의에 같이 참가하였으니, 신들의 잘못이 사간원의 여러 관원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즉시 인피하지 않고 그대로 입계하였으니 신들의 잘못이 더욱 큽니다. 마음 편하게 그대로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황제가 조선 국왕에게 칙서를 보내기를, "예부의 제목에 근거하건대, 그대의 아비 소경왕(昭敬王) 이휘(李諱)의 둘째 아내인 김씨는 바로 왕의 생모이다. 왕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부터 독실하게 노력해 왕업을 다시 일으켰는데, 생모를 왕비로 책봉할 것을 요청하였기에 이미 규례대로 왕비의 칭호를 추후로 책봉하고 고명을 주었으니 자애와 효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조례(條例)에 비추어 관복은 자체적으로 갖추게 하였더니, 왕이 배신(陪臣)을 다시 파견하여 두 번 세 번 요청하였는데 그 말이 간절하므로 부(部)와 과(科)에 지시하여 참작 토의하게 하였으나 둘째 아내를 본처와 동등하게 보기가 어려우므로 윤허하여 따르기에는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그대의 어미는 번왕(藩王)을 낳아 길러서 조선의 왕위를 잇게 하였다. 어미가 아들로 인하여 귀하게 되는 것은 인정과 사리로 보아 당연한 일이며 이미 큰 경사를 받았으니 응당 법도에 맞는 옷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에 특별히 격식을 깨뜨리고 은혜를 베풀어 관복과 선물을 비롯한 물건을 줄 것을 승락하고, 파견되어 온 배신인 김존경(金存敬) 등에게 싸서 가지고 돌아가게 하니, 물건이 도착하거든 수령하도록 하라. 그래서 칙서를 받는 영광을 새롭게 내리고 어미를 사모하는 마음을 길이 위로한다. 왕은 마음을 결백하게 하여 작은 나라를 견고하게 지킴으로써 효행과 충성을 표창하는 나의 지극한 뜻에 보답하도록 하라. 공경할지어다. 그러므로 유시한다." 하고, "조선 국왕의 생모 김씨에게 아래와 같이 선물 목록을 적어 보낸다." 하였는데, 목록은 다음과 같다. "비취빛 구슬로 꾸민 칠적관(七翟冠) 1개, 차향색소(次香色素)의 예복갑(禮服匣) 1개, 여자가 가지는 상아홀(象牙笏) 1개, 목홍(木紅) 빛 명주로 된 판자 상자 1개, 다홍빛 생모시에 초록빛 안을 댄 큰 옷 1건, 푸른빛 모시에 금빛 꿩을 둥글게 수놓은 겹배자 1건, 푸른 실로 짠 무늬 없는 비단에 금빛 나는 꿩과 학을 둥글게 수놓은 치마 1건, 녹색 꽃무늬 비단에 꿩을 수놓고 안을 받친 단삼(團杉) 1건, 암홍색 꽃무늬 비단 겹치마 1건, 암청색 꽃무늬 비단 겹치마 1건, 붉은 보자기 1개, 꽃무늬를 잘게 놓은 비단 4필, 다홍빛 천 1필, 청색 천 1필, 앵가록(鶯歌綠) 1필, 취익(翠益) 1필, 줄이 진 무늬 없는 비단에 꽃무늬를 잘게 놓은 천 4필."
"예부의 제목에 근거하건대, 그대의 아비 소경왕(昭敬王) 이휘(李諱)의 둘째 아내인 김씨는 바로 왕의 생모이다. 왕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부터 독실하게 노력해 왕업을 다시 일으켰는데, 생모를 왕비로 책봉할 것을 요청하였기에 이미 규례대로 왕비의 칭호를 추후로 책봉하고 고명을 주었으니 자애와 효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조례(條例)에 비추어 관복은 자체적으로 갖추게 하였더니, 왕이 배신(陪臣)을 다시 파견하여 두 번 세 번 요청하였는데 그 말이 간절하므로 부(部)와 과(科)에 지시하여 참작 토의하게 하였으나 둘째 아내를 본처와 동등하게 보기가 어려우므로 윤허하여 따르기에는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그대의 어미는 번왕(藩王)을 낳아 길러서 조선의 왕위를 잇게 하였다. 어미가 아들로 인하여 귀하게 되는 것은 인정과 사리로 보아 당연한 일이며 이미 큰 경사를 받았으니 응당 법도에 맞는 옷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에 특별히 격식을 깨뜨리고 은혜를 베풀어 관복과 선물을 비롯한 물건을 줄 것을 승락하고, 파견되어 온 배신인 김존경(金存敬) 등에게 싸서 가지고 돌아가게 하니, 물건이 도착하거든 수령하도록 하라. 그래서 칙서를 받는 영광을 새롭게 내리고 어미를 사모하는 마음을 길이 위로한다. 왕은 마음을 결백하게 하여 작은 나라를 견고하게 지킴으로써 효행과 충성을 표창하는 나의 지극한 뜻에 보답하도록 하라. 공경할지어다. 그러므로 유시한다."
하고, "조선 국왕의 생모 김씨에게 아래와 같이 선물 목록을 적어 보낸다." 하였는데, 목록은 다음과 같다.
"비취빛 구슬로 꾸민 칠적관(七翟冠) 1개, 차향색소(次香色素)의 예복갑(禮服匣) 1개, 여자가 가지는 상아홀(象牙笏) 1개, 목홍(木紅) 빛 명주로 된 판자 상자 1개, 다홍빛 생모시에 초록빛 안을 댄 큰 옷 1건, 푸른빛 모시에 금빛 꿩을 둥글게 수놓은 겹배자 1건, 푸른 실로 짠 무늬 없는 비단에 금빛 나는 꿩과 학을 둥글게 수놓은 치마 1건, 녹색 꽃무늬 비단에 꿩을 수놓고 안을 받친 단삼(團杉) 1건, 암홍색 꽃무늬 비단 겹치마 1건, 암청색 꽃무늬 비단 겹치마 1건, 붉은 보자기 1개, 꽃무늬를 잘게 놓은 비단 4필, 다홍빛 천 1필, 청색 천 1필, 앵가록(鶯歌綠) 1필, 취익(翠益) 1필, 줄이 진 무늬 없는 비단에 꽃무늬를 잘게 놓은 천 4필."
좌우 포도 대장이 아뢰기를, "도적의 괴수 강잉질세(姜芿叱世)를 다시 더 수색하여 체포하라는 일로 전교하였습니다. 군관을 많이 풀어서 밤낮으로 수색한 결과 오늘 체포하였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엄하게 국문해서 사실을 알아내도록 하라." 하였다.
"도적의 괴수 강잉질세(姜芿叱世)를 다시 더 수색하여 체포하라는 일로 전교하였습니다. 군관을 많이 풀어서 밤낮으로 수색한 결과 오늘 체포하였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엄하게 국문해서 사실을 알아내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를 보건대 ‘청기와를 굽는 데 쓸 염초를 사기 위하여 의주(義州)로 내려가는 역관 최흘(崔屹)에게 도감에서 값을 주어 그로 하여금 골라사서 보내게 할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필요한 염초 6천 근 중 3천 근은 일찍이 전교에 따라 동지사가 다녀오는 길에 이미 무역해 왔고, 1천 근은 의주 부윤에게, 또 1천 근은 부산의 수세관(收稅官)에게 무역해 오라는 뜻을 도감이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으며 이미 행회(行會)하였습니다. 그 밖에 차지 못한 수량은 도감에서 올해에 쓰고 남은 것이 약간 있는데 그것으로 보충할 수 있으므로 이 밖에 다시 살 필요가 없습니다. 후년에 쓸 것은 명년의 형편을 보아가면서 서서히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명년에 값을 주어 최흘로 하여금 무역해 오게 할 일을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비망기를 보건대 ‘청기와를 굽는 데 쓸 염초를 사기 위하여 의주(義州)로 내려가는 역관 최흘(崔屹)에게 도감에서 값을 주어 그로 하여금 골라사서 보내게 할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필요한 염초 6천 근 중 3천 근은 일찍이 전교에 따라 동지사가 다녀오는 길에 이미 무역해 왔고, 1천 근은 의주 부윤에게, 또 1천 근은 부산의 수세관(收稅官)에게 무역해 오라는 뜻을 도감이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으며 이미 행회(行會)하였습니다. 그 밖에 차지 못한 수량은 도감에서 올해에 쓰고 남은 것이 약간 있는데 그것으로 보충할 수 있으므로 이 밖에 다시 살 필요가 없습니다. 후년에 쓸 것은 명년의 형편을 보아가면서 서서히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명년에 값을 주어 최흘로 하여금 무역해 오게 할 일을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공조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새로 지은 두 대궐에서 쓸 장작을 내년부터 더 배정할 것을 해조로 하여금 대신들에게 의논해서 결정하여 시행하게 하라.’는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과 우의정 한효순은 의논드리기를 ‘새 대궐로 옮기고 나면 빈 대궐에는 땔나무나 숯을 매일 쓸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불을 지피는 데 쓸 것만 계산하고 그 나머지는 자연 옮겨다 쓸 수 있습니다. 두 대궐의 전당(殿堂)과 그 아궁이의 수를 평상시대로 되도록 간단하게 마련하여 비준받아 시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전교하기를, "아궁이의 수를 명년에 자세히 상의해서 결정짓고 배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에 ‘새로 지은 두 대궐에서 쓸 장작을 내년부터 더 배정할 것을 해조로 하여금 대신들에게 의논해서 결정하여 시행하게 하라.’는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과 우의정 한효순은 의논드리기를 ‘새 대궐로 옮기고 나면 빈 대궐에는 땔나무나 숯을 매일 쓸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불을 지피는 데 쓸 것만 계산하고 그 나머지는 자연 옮겨다 쓸 수 있습니다. 두 대궐의 전당(殿堂)과 그 아궁이의 수를 평상시대로 되도록 간단하게 마련하여 비준받아 시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전교하기를, "아궁이의 수를 명년에 자세히 상의해서 결정짓고 배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조가 아뢰기를, "헌부의 계사 내용 중에 ‘남행(南行)의 나이가 64세가 되면 수령으로 임명하지 않는다.’고 한 일로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의 의견은 ‘대간이 올린 계사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법전을 상고해서 아뢰라고 전교하였다. 이조가 아뢰기를, "《대전(大典)》의 외관작조(外官爵條)에 ‘65세가 넘은 사람은 수령으로 임명하지 말라.’고 하였고, 그 소주(小註)에는 ‘당상관 및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는 사람은 이 규정에 적용받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주해(註解)에는 ‘대체로 수령은 6년을 만기로 하여 교체하는데 65세 된 자가 6년을 채우고 나면 70세가 되기 때문에 수령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이고, 당상관이나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는 사람은 3년만에 교체하여 나이가 70세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이 규정에 적용받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니, 법전대로 시행하라고 전교하였다.
"헌부의 계사 내용 중에 ‘남행(南行)의 나이가 64세가 되면 수령으로 임명하지 않는다.’고 한 일로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의 의견은 ‘대간이 올린 계사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법전을 상고해서 아뢰라고 전교하였다. 이조가 아뢰기를,
"《대전(大典)》의 외관작조(外官爵條)에 ‘65세가 넘은 사람은 수령으로 임명하지 말라.’고 하였고, 그 소주(小註)에는 ‘당상관 및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는 사람은 이 규정에 적용받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주해(註解)에는 ‘대체로 수령은 6년을 만기로 하여 교체하는데 65세 된 자가 6년을 채우고 나면 70세가 되기 때문에 수령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이고, 당상관이나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는 사람은 3년만에 교체하여 나이가 70세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이 규정에 적용받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니, 법전대로 시행하라고 전교하였다.
이조가 아뢰기를, "간원의 계사 내용 중의 ‘30세가 안 된 사람에게는 첫 벼슬을 주지 말라.’는 문제를 가지고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은 의논드리기를 ‘나이 어린 사람에게 벼슬을 주는 것은 남의 자식을 버리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간이 올린 계사는 옛사람이 말한 40세가 되어 학문이 넉넉해진 다음 벼슬에 오른다는 뜻과 유사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거듭 강조하고 엄하게 금지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법전을 상고해서 아뢰라고 전교하였다. 이조가 회계(回啓)하기를, "《대전(大典)》의 경관작조(京官爵條)에 ‘20세가 못 된 사람에게는 동반직(東班職)을 주지 말라.’ 하였으며, 그 소주에는 ‘여러 가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장권조(奬勸條)에는 ‘여러 해 동안 성균관에서 기숙하였으며 학문이 정밀하고 품행이 특이한 데다 50세가 된 사람, 본관에서의 매일 강론·순별 시험·예조에서의 월별 시험의 점수가 우수한 사람,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문과에 응시하여 성균관 시험, 한성부 시험에 일곱 번 합격하였고 50세가 된 사람은 계문(啓聞)하여 서용(敍用)한다.’고 하였고, 그 주해에 ‘선비가 한창 학문에 대한 뜻이 독실할 때에 갑자기 직무를 맡기게 되면 필시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게 되며 심한 자는 지조를 지켜 학업에 힘쓰는 대신 요행수를 바라며 권세 있는 집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그 폐해가 장차 학업을 폐기하는 데에 이르게 되어 선비의 풍습이 비루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50세가 되기를 기다려 품행이 단정하고 학문이 정밀해진 다음에 천거하여 임용하도록 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법전에 의하여 시행하라고 전교하였다.
"간원의 계사 내용 중의 ‘30세가 안 된 사람에게는 첫 벼슬을 주지 말라.’는 문제를 가지고 대신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은 의논드리기를 ‘나이 어린 사람에게 벼슬을 주는 것은 남의 자식을 버리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간이 올린 계사는 옛사람이 말한 40세가 되어 학문이 넉넉해진 다음 벼슬에 오른다는 뜻과 유사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거듭 강조하고 엄하게 금지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법전을 상고해서 아뢰라고 전교하였다. 이조가 회계(回啓)하기를,
"《대전(大典)》의 경관작조(京官爵條)에 ‘20세가 못 된 사람에게는 동반직(東班職)을 주지 말라.’ 하였으며, 그 소주에는 ‘여러 가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장권조(奬勸條)에는 ‘여러 해 동안 성균관에서 기숙하였으며 학문이 정밀하고 품행이 특이한 데다 50세가 된 사람, 본관에서의 매일 강론·순별 시험·예조에서의 월별 시험의 점수가 우수한 사람,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문과에 응시하여 성균관 시험, 한성부 시험에 일곱 번 합격하였고 50세가 된 사람은 계문(啓聞)하여 서용(敍用)한다.’고 하였고, 그 주해에 ‘선비가 한창 학문에 대한 뜻이 독실할 때에 갑자기 직무를 맡기게 되면 필시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게 되며 심한 자는 지조를 지켜 학업에 힘쓰는 대신 요행수를 바라며 권세 있는 집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그 폐해가 장차 학업을 폐기하는 데에 이르게 되어 선비의 풍습이 비루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50세가 되기를 기다려 품행이 단정하고 학문이 정밀해진 다음에 천거하여 임용하도록 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법전에 의하여 시행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성절사 김존경(金存敬)은 품계를 뛰어넘어 지사(知事)를 제수하고, 서장관 신의립(辛義立)은 가자하여 실직을 제수하라."
"성절사 김존경(金存敬)은 품계를 뛰어넘어 지사(知事)를 제수하고, 서장관 신의립(辛義立)은 가자하여 실직을 제수하라."
영건 도감이, 감역관과 서원 등이 역군(役軍)을 사적으로 활용한 것에 대한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하니, 따랐다.
대궐 뜰에서 죄인을 신문하였다.
11월 10일 신미
지평 홍요검(洪堯儉), 집의 임건(林健)이 계속해서 인피하고 물러가 서 물론을 기다렸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영건 도감의 계사에 ‘경기(京畿)·전라(全羅)·공홍(公洪)·황연(黃延)·강원(江原) 등 도에서 목재 9천여 조(條)를 지금 더 베어내려 하는데, 베어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끌어내리기가 더 어려우며 끌어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어나르기가 더 어려운 형편입니다. 각도에서 해마다 나무를 베어내기 때문에 백성들의 힘은 이미 다 빠졌고 사공들도 생업을 잃었으니, 특별한 방법으로 처리하여 백성들의 힘을 조금이나마 펴이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대책을 찾지 못하겠으니 한없이 안타깝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호남의 수군을 영남으로 더 보내어 적을 막게 하면서, 이들을 변장(邊將)들이 혹독하게 부려먹는 관계로 격군(格軍)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변장 밑에서 일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랏일에 옮겨 쓰는 편이 좋을 것이다.」고 합니다. 지금 남쪽 변방에는 당장 위급한 일이 없으므로 호남의 수군 10여 척은 몇 달을 기한으로 우선 영남에는 보내지 말고, 그 일부를 완도(莞島) 부근에 머물려 두어 완도의 재목을 베어내게 하고 또 일부는 변산(邊山) 부근에 머물려 두어 변산의 재목을 베어내게 한다면, 배를 지키고 나무를 베어내는 두 가지 일이 다 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방어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마음대로 정할 수 없으니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윤허한다는 것으로 전교하셨습니다. 변장이 군사들을 마구 내몰아 부리는 폐단은 참으로 도감에서 올린 글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다만 그것을 금지할 뿐이지 어찌 이 때문에 바다의 방어를 철수할 수 있겠습니까. 완도와 변산은 다 변란에 대처하는 지점도 아닌데 다만 나무를 찍고 끌어내리는 일을 하려고 10여 척의 전선을 일 없는 조용한 곳에 머물려 둔다는 것은 적을 방어하는 도리로 볼 때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도감에서도 이런 뜻을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감히 이런 계사를 올린 것은 아마 부득이한 형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복군(結卜軍)·연호군(烟戶軍)·주사군(舟師軍)의 명목은 비록 다르지만 실지 신역을 지는 사람은 한 사람으로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신역을 질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궐을 짓는 역사와 수군은 복무하는 두 가지 일을 다 온전히 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도감에서도 어쩔 수 없어서 이 계사를 올린 듯하니, 이대로 집행하게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의 계사에 ‘경기(京畿)·전라(全羅)·공홍(公洪)·황연(黃延)·강원(江原) 등 도에서 목재 9천여 조(條)를 지금 더 베어내려 하는데, 베어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끌어내리기가 더 어려우며 끌어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어나르기가 더 어려운 형편입니다. 각도에서 해마다 나무를 베어내기 때문에 백성들의 힘은 이미 다 빠졌고 사공들도 생업을 잃었으니, 특별한 방법으로 처리하여 백성들의 힘을 조금이나마 펴이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대책을 찾지 못하겠으니 한없이 안타깝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호남의 수군을 영남으로 더 보내어 적을 막게 하면서, 이들을 변장(邊將)들이 혹독하게 부려먹는 관계로 격군(格軍)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변장 밑에서 일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랏일에 옮겨 쓰는 편이 좋을 것이다.」고 합니다. 지금 남쪽 변방에는 당장 위급한 일이 없으므로 호남의 수군 10여 척은 몇 달을 기한으로 우선 영남에는 보내지 말고, 그 일부를 완도(莞島) 부근에 머물려 두어 완도의 재목을 베어내게 하고 또 일부는 변산(邊山) 부근에 머물려 두어 변산의 재목을 베어내게 한다면, 배를 지키고 나무를 베어내는 두 가지 일이 다 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방어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마음대로 정할 수 없으니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윤허한다는 것으로 전교하셨습니다.
변장이 군사들을 마구 내몰아 부리는 폐단은 참으로 도감에서 올린 글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다만 그것을 금지할 뿐이지 어찌 이 때문에 바다의 방어를 철수할 수 있겠습니까. 완도와 변산은 다 변란에 대처하는 지점도 아닌데 다만 나무를 찍고 끌어내리는 일을 하려고 10여 척의 전선을 일 없는 조용한 곳에 머물려 둔다는 것은 적을 방어하는 도리로 볼 때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도감에서도 이런 뜻을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감히 이런 계사를 올린 것은 아마 부득이한 형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복군(結卜軍)·연호군(烟戶軍)·주사군(舟師軍)의 명목은 비록 다르지만 실지 신역을 지는 사람은 한 사람으로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신역을 질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궐을 짓는 역사와 수군은 복무하는 두 가지 일을 다 온전히 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도감에서도 어쩔 수 없어서 이 계사를 올린 듯하니, 이대로 집행하게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를 모두 출사하도록 명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동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두 대궐을 건축하는 일은 실로 부득이한 형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전하께서 몹시 걱정하시는 것이며 신하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감의 각색(各色)·각부에 있는 낭청 감역관으로부터 아래로 고직(庫直)·서원(書員)·사령(使令)에 이르기까지 명색은 감독한다고 하나 사실은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급료로 주는 베는 성실성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그저 날수와 달수만 계산하여 주는 것을 정상적인 규정으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역군(役軍)에 대해서는 점고한 뒤에 다른 곳에 사사로이 쓰며, 또는 헛이름을 장부에 적어놓고 급료로 주는 베를 타낼 궁리만 하는데, 내부의 동료들은 서로 비호하면서 감히 발언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당상관 이하는 총찰하고 지휘하는 외에 낱낱이 적발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므로, 외부의 여론이 분분하기 그지없습니다. 대개 대궐을 짓는 공사는 일이 급하고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곡식도 다 백성의 힘에서 나오는데, 일에 태만하고 물건을 낭비하는 폐단이 참으로 듣는 것과 같다면 어찌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해방(該房)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다만 분개할 뿐이고 적발할 길이 없었는데, 지금 도감에서 올린 글을 보니 실로 들은 말과 꼭 같습니다. 만약 범연하게 추궁하고 다스린다면 죄를 범한 사람들이 죄를 모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온갖 꾀를 다 써서 본래 자리에 도로 붙여달라고 청탁을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그 방자하게 날뛰는 폐단은 더욱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계사에 지적된 범죄자는 온 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관원들은 잡아 가두되 대사령이 내리더라도 범한 죄를 용서해주지 않음으로써 한 사람을 처벌하여 백 사람을 징계하는 거조로 삼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서서히 의논해서 처리하겠다고 전교하였다.
"두 대궐을 건축하는 일은 실로 부득이한 형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전하께서 몹시 걱정하시는 것이며 신하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감의 각색(各色)·각부에 있는 낭청 감역관으로부터 아래로 고직(庫直)·서원(書員)·사령(使令)에 이르기까지 명색은 감독한다고 하나 사실은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급료로 주는 베는 성실성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그저 날수와 달수만 계산하여 주는 것을 정상적인 규정으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역군(役軍)에 대해서는 점고한 뒤에 다른 곳에 사사로이 쓰며, 또는 헛이름을 장부에 적어놓고 급료로 주는 베를 타낼 궁리만 하는데, 내부의 동료들은 서로 비호하면서 감히 발언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당상관 이하는 총찰하고 지휘하는 외에 낱낱이 적발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므로, 외부의 여론이 분분하기 그지없습니다.
대개 대궐을 짓는 공사는 일이 급하고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곡식도 다 백성의 힘에서 나오는데, 일에 태만하고 물건을 낭비하는 폐단이 참으로 듣는 것과 같다면 어찌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해방(該房)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다만 분개할 뿐이고 적발할 길이 없었는데, 지금 도감에서 올린 글을 보니 실로 들은 말과 꼭 같습니다. 만약 범연하게 추궁하고 다스린다면 죄를 범한 사람들이 죄를 모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온갖 꾀를 다 써서 본래 자리에 도로 붙여달라고 청탁을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그 방자하게 날뛰는 폐단은 더욱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계사에 지적된 범죄자는 온 가족을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관원들은 잡아 가두되 대사령이 내리더라도 범한 죄를 용서해주지 않음으로써 한 사람을 처벌하여 백 사람을 징계하는 거조로 삼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서서히 의논해서 처리하겠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기를, "부평 부사(富平府使) 허임(許任)과 금천 현감(衿川縣監) 유대명(柳大鳴)을 속히 올려보낼 일로 경기 감사에게 하유하라." 하였다. 【허임과 유대명은 다 얼자(孼子)인데 침놓는 재간이 있었으므로 총애를 받아 특별히 기읍(畿邑)의 수령에 제수된 것이다.】
"부평 부사(富平府使) 허임(許任)과 금천 현감(衿川縣監) 유대명(柳大鳴)을 속히 올려보낼 일로 경기 감사에게 하유하라."
하였다. 【허임과 유대명은 다 얼자(孼子)인데 침놓는 재간이 있었으므로 총애를 받아 특별히 기읍(畿邑)의 수령에 제수된 것이다.】
우의정 한효순이 재차 사직소를 올리자, 답하기를, "지금은 대신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사퇴할 때가 아니니, 앞서 내린 전지(傳旨)에 따라 몸조리를 하고서 출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효순의 처 강씨는 성질이 간교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다. 왕궁과 내통이 있어서 그 영향으로 한효순이 정승이 되자, 모든 일을 강씨가 하자는 대로 하였다.】
"지금은 대신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사퇴할 때가 아니니, 앞서 내린 전지(傳旨)에 따라 몸조리를 하고서 출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효순의 처 강씨는 성질이 간교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다. 왕궁과 내통이 있어서 그 영향으로 한효순이 정승이 되자, 모든 일을 강씨가 하자는 대로 하였다.】
대궐 뜰에서 죄인을 신문하였다.
11월 11일 임신
대사간 윤인, 헌납 조정립, 정언 박종주가 아뢰었다. "신들은 직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성이 전하를 감격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언관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미더움을 받게 말하지 못하고 나라의 법이 문란해져도 바로잡지 못하여 죄과를 스스로 초래한 결과 공정한 논의에 용서받기 어렵게 되었으니, 과오를 자인하고 스스로 논핵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옥당은 대간과 일체가 되는 관청이면서 공정한 논의를 크게 넓히지 못하고 도리어 법을 문란케 하고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대간을 출사시키라고 청했으니 너무도 구차합니다. 신들이 지은 죄가 이렇기 때문에 형편상 출사하기 어려우니 신들의 관직을 파면하소서."
"신들은 직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성이 전하를 감격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언관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미더움을 받게 말하지 못하고 나라의 법이 문란해져도 바로잡지 못하여 죄과를 스스로 초래한 결과 공정한 논의에 용서받기 어렵게 되었으니, 과오를 자인하고 스스로 논핵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옥당은 대간과 일체가 되는 관청이면서 공정한 논의를 크게 넓히지 못하고 도리어 법을 문란케 하고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대간을 출사시키라고 청했으니 너무도 구차합니다. 신들이 지은 죄가 이렇기 때문에 형편상 출사하기 어려우니 신들의 관직을 파면하소서."
집의 임건, 장령 한영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사간원이 재차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법을 문란하게 하고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출사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죄는 신도 사간원의 여러 관리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결코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삼가 사간원이 재차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법을 문란하게 하고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출사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죄는 신도 사간원의 여러 관리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결코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비밀리에 전교하였다. "22일 교외로 거둥할 때와 대궐 문밖에 이르러 공경히 맞이할 때 호위하는 모든 일들을 각별히 엄밀하게 할 것을 해조로 하여금 아주 착실히 거행하도록 하라."
"22일 교외로 거둥할 때와 대궐 문밖에 이르러 공경히 맞이할 때 호위하는 모든 일들을 각별히 엄밀하게 할 것을 해조로 하여금 아주 착실히 거행하도록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감시(監試) 복시(覆試)의 제 1소 시관이 올린 계사에 ‘이번의 감시 복시에서 낙제된 시험지는 한 장도 사사로이 쓰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모두 서북 변방 군사들의 종이 옷을 만드는 데 쓰도록 실어보낼 것을 비변사가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습니다. 정원에서는 분부에 의하여 응판관(應辦官)을 불러 확인 서명을 하게 하였고, 비변사에서는 또 시험장에 통문을 돌림으로써 거듭 주의시키는 뜻을 보였으니, 비변사의 처사가 면밀하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험장에서 쓰는 시험지는 원래 응시자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것이고 처음부터 관청에서 마련한 물건이 아니므로, 시험 성적을 매긴 뒤에는 이른바 낙제된 시험지를 시험장 안에서 여러 날 동안 수고한 군사들과 각 관청의 하인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그들의 수고에 보답하였습니다. 그리고 합격자를 발표할 때에 합격자 명단 초안을 덧붙이는 데 쓰기도 하고, 감시관이 낙제된 시험지 몇 장을 가져다 여러 시험관의 집에 나누어 보내고 나머지 수는 모두 모아서 해조에 운반해 두었다가 관청의 용품으로 쓰는 것이 규례입니다. 조정이 변방에서 수자리 사는 군사들이 추위에 떠는 것을 몹시 걱정한 나머지 그것을 모두 거두어 모으게 한 것은 실로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근년 이래로 과거시험을 자주 보인 결과 중앙과 지방에서 수합한 것이 평상시에 비하여 10배가 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기저기에 허비하지 않고 변방 군사들이 꼭 입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 낙제된 시험지 처리문제를 가지고 앞서 이미 승전을 받든 적이 있었으니 비국이 공문을 띄워 알리는 것이 불가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거시험을 보일 때마다 곧 자질구레한 문제를 가지고 전하를 번거롭게까지 하며, 심지어는 탐오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문자로 나타내어 마치 협박하고 독촉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전후하여 참가한 시험관들은 모두가 대부분 사대부의 반열에 있는 사람들인데 어느 누가 종이 한 장을 가졌다가 탐오죄에 스스로 빠져들려고 하겠습니까. 비국이 사대부를 너무 야박하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까. 시험관의 불행은 여기에서 또 하나의 액화를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들이 승전(承傳) 안의 뜻을 받들어 시험장 안에서 일정하게 소비되는 것을 제외하고 4백 장을 낱낱이 봉해서 시험장 안에 두겠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끝마친 뒤에 맡아서 지킬 사람이 없으니 시험을 끝마치는 날에 비변사 낭청 1명으로 하여금 문밖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제때에 실어가게 함으로써 중간에 도둑맞을 근심이 없게 하소서.’ 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이것을 윤허한다고 전교하셨습니다. 난리 이후로 낙제된 답안지를 본사에서 수합하여 변방으로 들여보내는 일이 어느 해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지난해에 본사의 당상인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가 유사 당상이 되었을 때 말하기를 ‘낙제된 답안지를 수합하여 북도로 들여보내는 일은 변방 문제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양을 운반하자는 뜻으로 계사의 초안을 써서 여러 당상관과 의논하여 결정할 때 장물죄로 다스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감시 회시에서 낙제된 시험지에 대한 계사는, 낭청이 서북 변방을 담당하고 있는 당상관 호조 판서 최관(崔瓘)의 말로 기자헌에게 와서 전하기를 ‘초시(初試)를 보였을 때에 경외(京外)의 낙제된 시험지를 본사로 운반해 온 것을 한 곳의 창고에다 보관해 두고 한 장도 다른 용도로 활용하지 않고 전부 북도로 들여보냈으나 그 수가 많지 않아 수자리 사는 군사들에게 다 주지 못하였다. 이번 회시(會試)에서 떨어진 시험지도 전례에 의해 입계한 다음 수합해다가 들여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자, 기자헌이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유사 당상에게 말하여 초안을 써가지고 입계하도록 하겠다.’ 하였으며, 그래서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이 규례에 따라 초안을 써가지고 여러 당상관들에게 알려 입계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관들이 올린 계사를 보건대 그 뜻이 또한 옳습니다. 비국의 통문(通文)은 본사의 여러 당상관들이 모르는 일이었으니, 이것은 틀림없이 계사에 대해 윤허하신 후에 정원이 본사의 낭청을 불러서는 다만 윤허하겠다는 뜻만을 말하고 응판관(應辦官)을 패초하여 확인 서명을 시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사의 해당 관리는 응판관이 이미 확인 서명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그저 규례에 따라 이문(移文)함으로써 계하한 후에 거행하지 않았다는 죄를 모면하려 하였으며, 유사 당상도 틀림없이 응판관이 이미 확인 서명한 것을 알지 못한 채 공문을 띄우자는 해당 관리의 말을 들은 것이라고 봅니다. 대체로 감시 회시 때에 낙제된 시험지는 그 수가 본래 적은 만큼 이런 것까지 거두어 모을 필요가 없으며, 본사의 낭청이 시험장에 가서 받아오는 것도 이전 규례에 없던 일이니, 이전 규례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감시(監試) 복시(覆試)의 제 1소 시관이 올린 계사에 ‘이번의 감시 복시에서 낙제된 시험지는 한 장도 사사로이 쓰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모두 서북 변방 군사들의 종이 옷을 만드는 데 쓰도록 실어보낼 것을 비변사가 입계하여 윤허를 받았습니다. 정원에서는 분부에 의하여 응판관(應辦官)을 불러 확인 서명을 하게 하였고, 비변사에서는 또 시험장에 통문을 돌림으로써 거듭 주의시키는 뜻을 보였으니, 비변사의 처사가 면밀하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험장에서 쓰는 시험지는 원래 응시자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것이고 처음부터 관청에서 마련한 물건이 아니므로, 시험 성적을 매긴 뒤에는 이른바 낙제된 시험지를 시험장 안에서 여러 날 동안 수고한 군사들과 각 관청의 하인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그들의 수고에 보답하였습니다. 그리고 합격자를 발표할 때에 합격자 명단 초안을 덧붙이는 데 쓰기도 하고, 감시관이 낙제된 시험지 몇 장을 가져다 여러 시험관의 집에 나누어 보내고 나머지 수는 모두 모아서 해조에 운반해 두었다가 관청의 용품으로 쓰는 것이 규례입니다. 조정이 변방에서 수자리 사는 군사들이 추위에 떠는 것을 몹시 걱정한 나머지 그것을 모두 거두어 모으게 한 것은 실로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근년 이래로 과거시험을 자주 보인 결과 중앙과 지방에서 수합한 것이 평상시에 비하여 10배가 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기저기에 허비하지 않고 변방 군사들이 꼭 입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 낙제된 시험지 처리문제를 가지고 앞서 이미 승전을 받든 적이 있었으니 비국이 공문을 띄워 알리는 것이 불가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거시험을 보일 때마다 곧 자질구레한 문제를 가지고 전하를 번거롭게까지 하며, 심지어는 탐오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문자로 나타내어 마치 협박하고 독촉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전후하여 참가한 시험관들은 모두가 대부분 사대부의 반열에 있는 사람들인데 어느 누가 종이 한 장을 가졌다가 탐오죄에 스스로 빠져들려고 하겠습니까. 비국이 사대부를 너무 야박하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까. 시험관의 불행은 여기에서 또 하나의 액화를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들이 승전(承傳) 안의 뜻을 받들어 시험장 안에서 일정하게 소비되는 것을 제외하고 4백 장을 낱낱이 봉해서 시험장 안에 두겠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끝마친 뒤에 맡아서 지킬 사람이 없으니 시험을 끝마치는 날에 비변사 낭청 1명으로 하여금 문밖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제때에 실어가게 함으로써 중간에 도둑맞을 근심이 없게 하소서.’ 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이것을 윤허한다고 전교하셨습니다.
난리 이후로 낙제된 답안지를 본사에서 수합하여 변방으로 들여보내는 일이 어느 해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지난해에 본사의 당상인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가 유사 당상이 되었을 때 말하기를 ‘낙제된 답안지를 수합하여 북도로 들여보내는 일은 변방 문제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양을 운반하자는 뜻으로 계사의 초안을 써서 여러 당상관과 의논하여 결정할 때 장물죄로 다스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감시 회시에서 낙제된 시험지에 대한 계사는, 낭청이 서북 변방을 담당하고 있는 당상관 호조 판서 최관(崔瓘)의 말로 기자헌에게 와서 전하기를 ‘초시(初試)를 보였을 때에 경외(京外)의 낙제된 시험지를 본사로 운반해 온 것을 한 곳의 창고에다 보관해 두고 한 장도 다른 용도로 활용하지 않고 전부 북도로 들여보냈으나 그 수가 많지 않아 수자리 사는 군사들에게 다 주지 못하였다. 이번 회시(會試)에서 떨어진 시험지도 전례에 의해 입계한 다음 수합해다가 들여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자, 기자헌이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유사 당상에게 말하여 초안을 써가지고 입계하도록 하겠다.’ 하였으며, 그래서 길천군(吉川君) 권반(權盼)이 규례에 따라 초안을 써가지고 여러 당상관들에게 알려 입계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관들이 올린 계사를 보건대 그 뜻이 또한 옳습니다. 비국의 통문(通文)은 본사의 여러 당상관들이 모르는 일이었으니, 이것은 틀림없이 계사에 대해 윤허하신 후에 정원이 본사의 낭청을 불러서는 다만 윤허하겠다는 뜻만을 말하고 응판관(應辦官)을 패초하여 확인 서명을 시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사의 해당 관리는 응판관이 이미 확인 서명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그저 규례에 따라 이문(移文)함으로써 계하한 후에 거행하지 않았다는 죄를 모면하려 하였으며, 유사 당상도 틀림없이 응판관이 이미 확인 서명한 것을 알지 못한 채 공문을 띄우자는 해당 관리의 말을 들은 것이라고 봅니다.
대체로 감시 회시 때에 낙제된 시험지는 그 수가 본래 적은 만큼 이런 것까지 거두어 모을 필요가 없으며, 본사의 낭청이 시험장에 가서 받아오는 것도 이전 규례에 없던 일이니, 이전 규례대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대궐 뜰에서 죄인을 신문하였다.
11월 12일 계유
왕이 눈병으로 인하여 침을 맞았다.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兩司)를 아울러 체차하도록 명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전교하였다. "성절사의 선래 군관(先來軍官) 김희수(金希壽)와 변기(邊基)는 아울러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할 것이며, 사자관(寫字官) 정백수(鄭柏壽)와 군관(軍官) 정윤서(鄭允緖)는 아울러 가자하고 고급 군직(軍職)을 주어서 녹봉을 지급하게 하라."
"성절사의 선래 군관(先來軍官) 김희수(金希壽)와 변기(邊基)는 아울러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할 것이며, 사자관(寫字官) 정백수(鄭柏壽)와 군관(軍官) 정윤서(鄭允緖)는 아울러 가자하고 고급 군직(軍職)을 주어서 녹봉을 지급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을 봉자전(奉慈殿)에 봉안하고 친제를 거행하는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고, 봉자전을 속히 수리할 일도 아울러 살펴서 하도록 하라."
"영정(影幀)을 봉자전(奉慈殿)에 봉안하고 친제를 거행하는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결정하게 하고, 봉자전을 속히 수리할 일도 아울러 살펴서 하도록 하라."
예조가 아뢰었다. "시학 교수(詩學敎授)는 반드시 사람들이 다 함께 아는 시(詩)에 능숙한 그런 사람을 찾아낸 다음에라야 의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삼망(三望)을 역시 갖추지 못하고 단지 한 사람만으로 계청하였습니다. 윤충원(尹忠源)이 교체된 뒤로 아직도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보니 아이들이 매번 와서 호소합니다. 전 교관 지달해(池達海)는 본래 시로 세상에 이름이 났으며 나이는 비록 많으나 정신이 또렷하고 품행도 고상하므로 많은 아이들의 스승이 될 만합니다. 청컨대 이번 정사에서 시학 교수를 윤충원의 전례에 의하여 단망(單望)으로 차하(差下)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시학 교수(詩學敎授)는 반드시 사람들이 다 함께 아는 시(詩)에 능숙한 그런 사람을 찾아낸 다음에라야 의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삼망(三望)을 역시 갖추지 못하고 단지 한 사람만으로 계청하였습니다. 윤충원(尹忠源)이 교체된 뒤로 아직도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보니 아이들이 매번 와서 호소합니다. 전 교관 지달해(池達海)는 본래 시로 세상에 이름이 났으며 나이는 비록 많으나 정신이 또렷하고 품행도 고상하므로 많은 아이들의 스승이 될 만합니다. 청컨대 이번 정사에서 시학 교수를 윤충원의 전례에 의하여 단망(單望)으로 차하(差下)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대궐 뜰에서 죄인을 신문하였다.
11월 13일 갑술
회답사(回答使) 오윤겸(吳允謙), 부사 박재(朴梓), 종사관 이경직(李景稷) 등이 들어와 계사를 올리니, 답하기를, "아뢴 말을 다 살펴보았다. 그대들이 나랏일을 위하여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느라고 갖은 고생을 다하였으니 정말 가상한 일이다." 하였다.
"아뢴 말을 다 살펴보았다. 그대들이 나랏일을 위하여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느라고 갖은 고생을 다하였으니 정말 가상한 일이다."
하였다.
이병(李覮)을 대사헌으로, 남이준(南以俊)을 사간으로, 강수(姜隧)를 장령으로, 정양윤(鄭良胤)을 지평으로, 유광(柳洸)을 지평으로, 김세렴(金世濂)을 정언으로, 정광성(鄭廣成)을 우부승지로, 윤성임(尹聖任)을 수찬으로 삼았다.
대궐 뜰에서 죄인을 신문하였다.
11월 14일 을해
전교하였다. "경덕궁의 세자궁 침실 칭호를 가능한 한 빨리 자세하게 서계할 일로 대제학에게 말하도록 하라."
"경덕궁의 세자궁 침실 칭호를 가능한 한 빨리 자세하게 서계할 일로 대제학에게 말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양사의 계사는 침을 다 맞고 나서 전교하거든 들이도록 하라."
"양사의 계사는 침을 다 맞고 나서 전교하거든 들이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칙서와 영정이 길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 사신은 현재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다고 하니 칙서를 맞이하는 것은 다음달 15일 이후로 다시 택일하라고 하유하라."
"칙서와 영정이 길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 사신은 현재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다고 하니 칙서를 맞이하는 것은 다음달 15일 이후로 다시 택일하라고 하유하라."
전교하였다. "내가 눈병이 매우 심해서 부득이 날마다 침을 맞고 있다. 앞으로 대례가 겹쳐 있으므로 몸을 잘 조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어제는 급하지도 않은 계사를 모두 입계하였다. 다만 긴급한 일만 뽑아서 들일 일을 정원은 살펴서 하라."
"내가 눈병이 매우 심해서 부득이 날마다 침을 맞고 있다. 앞으로 대례가 겹쳐 있으므로 몸을 잘 조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어제는 급하지도 않은 계사를 모두 입계하였다. 다만 긴급한 일만 뽑아서 들일 일을 정원은 살펴서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듣건대 전라도 관찰사 이홍주(李弘胄)가 군관 조영립(趙英立)으로 하여금 순천(順天) 등지에서 쇠를 제련하게 하여 그 제련한 쇠가 거의 수만여 근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필시 새 대궐을 짓는 공사를 적극적으로 돕기 위하여 제련한 것일 것입니다. 본도에는 특별히 필요한 곳이 없는 듯하니 전부 올려보내서 큰 공사에 도움이 되게 하라는 뜻으로, 선전관을 별도로 보내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때 대궐을 짓는 공사가 한창 다급하여 돌과 쇠를 널리 모아들이면서 높은 품계와 상을 주었다. 감사나 수령 중 이끗을 탐내면서도 수치를 모르는 자들은 다 공사를 돕는다는 핑계하에 백성들의 재물을 긁어내어 이에 응하였다. 이홍주는 꽤 자신을 추스릴 줄 아는 자였는데도 광석(鑛石)을 깨어 쇠를 제련한 것이 1만 근이나 되었으니, 몹쓸 풍습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너무도 심하다 하겠다.】
"듣건대 전라도 관찰사 이홍주(李弘胄)가 군관 조영립(趙英立)으로 하여금 순천(順天) 등지에서 쇠를 제련하게 하여 그 제련한 쇠가 거의 수만여 근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필시 새 대궐을 짓는 공사를 적극적으로 돕기 위하여 제련한 것일 것입니다. 본도에는 특별히 필요한 곳이 없는 듯하니 전부 올려보내서 큰 공사에 도움이 되게 하라는 뜻으로, 선전관을 별도로 보내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이때 대궐을 짓는 공사가 한창 다급하여 돌과 쇠를 널리 모아들이면서 높은 품계와 상을 주었다. 감사나 수령 중 이끗을 탐내면서도 수치를 모르는 자들은 다 공사를 돕는다는 핑계하에 백성들의 재물을 긁어내어 이에 응하였다. 이홍주는 꽤 자신을 추스릴 줄 아는 자였는데도 광석(鑛石)을 깨어 쇠를 제련한 것이 1만 근이나 되었으니, 몹쓸 풍습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너무도 심하다 하겠다.】
11월 15일 병자
예조가 아뢰기를, "비망기를 보건대 ‘칙서와 함께 나온 채색 비단을 태묘에다 보관할 것인지를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는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역대의 옛 규례를 상고해 보니, 칙서를 내릴 때에는 반드시 채색 비단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칙서와 함께 나온 채색 비단도 역시 규례에 의거한 것이고 본래 관복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니, 어떻게 태묘에다 보관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관복을 비롯한 물건들의 밑에 개록(開錄)하였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칙서를 위하여 이 예물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선대의 실록을 다시 상고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채색 비단이 하사되었다는 뜻을 함께 고해야 할 듯하니 제문(祭文)을 지을 때 살펴서 처리할 것을 미리 자세히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를 보건대 ‘칙서와 함께 나온 채색 비단을 태묘에다 보관할 것인지를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는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역대의 옛 규례를 상고해 보니, 칙서를 내릴 때에는 반드시 채색 비단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칙서와 함께 나온 채색 비단도 역시 규례에 의거한 것이고 본래 관복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니, 어떻게 태묘에다 보관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관복을 비롯한 물건들의 밑에 개록(開錄)하였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칙서를 위하여 이 예물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선대의 실록을 다시 상고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채색 비단이 하사되었다는 뜻을 함께 고해야 할 듯하니 제문(祭文)을 지을 때 살펴서 처리할 것을 미리 자세히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인경궁의 첫째 별당과 셋째 별당을 이미 문명전(文明殿)의 규모대로 지었으니, 궁전 이름들을 더 서계하도록 하라. 그리고 전일 하교한 경덕궁의 세자궁 침실 이름도 아울러 다시 서계할 일로 대제학에게 말하도록 하라."
"인경궁의 첫째 별당과 셋째 별당을 이미 문명전(文明殿)의 규모대로 지었으니, 궁전 이름들을 더 서계하도록 하라. 그리고 전일 하교한 경덕궁의 세자궁 침실 이름도 아울러 다시 서계할 일로 대제학에게 말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전각(殿閣)의 상량문을 매번 상량할 당시에 지어서 올리는 것은 군색한 일인 듯하다. 경덕궁 조하전(朝賀殿)의 상량문은 다음달에 미리 지어서 올리도록 하고, 나무와 돌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정월 보름 뒤에 상량할 일로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전각(殿閣)의 상량문을 매번 상량할 당시에 지어서 올리는 것은 군색한 일인 듯하다. 경덕궁 조하전(朝賀殿)의 상량문은 다음달에 미리 지어서 올리도록 하고, 나무와 돌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정월 보름 뒤에 상량할 일로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전각(殿閣)의 상량문을 매번 상량할 당시에 지어서 올리는 것은 군색한 일인 듯하다. 경덕궁 조하전(朝賀殿)의 상량문은 다음달에 미리 지어서 올리도록 하고, 나무와 돌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정월 보름 뒤에 상량할 일로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전각(殿閣)의 상량문을 매번 상량할 당시에 지어서 올리는 것은 군색한 일인 듯하다. 경덕궁 조하전(朝賀殿)의 상량문은 다음달에 미리 지어서 올리도록 하고, 나무와 돌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정월 보름 뒤에 상량할 일로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11월 16일 정축
정원이 아뢰기를, "나머지 다른 공사는 정원에 그대로 두었습니다만 이 상소는 내용이 중대한 것이어서 봉입(捧入)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나머지 다른 공사는 정원에 그대로 두었습니다만 이 상소는 내용이 중대한 것이어서 봉입(捧入)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대사헌 이병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정혼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로 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말하기를 화근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의를 가장 먼저 제창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전적으로 위임하여 일을 끝마치도록 책임지움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 신이 근래에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가 연달아 올라왔다고 하는데, 상소 내용 중에 논의하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혼 등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신이 어떠한 논의를 하였는지 정혼이 어떻게 알고 갑자기 가장 먼저 제창하였다고 지목한단 말입니까. 신은 삼가 이 점을 의아하게 여깁니다. 과연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문제라면 온 나라의 높고 낮은 신하와 백성들이 의리상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모든 관리를 통솔하며 사람들을 위엄스럽게 진압하는 일에는 신이 묘당의 대신만 못하고, 좋은 세상을 만나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일에는 신이 공신이나 임금의 친척인 재상들만 못합니다. 이 밖에도 선비들 중에서 재주와 덕행, 충성과 계략이 신보다 몇 배나 월등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필 지극히 어리석고 고루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천한 신을 추천하여 전하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이 이미 이러한 지목을 받았는데 어찌 감히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그대로 버티고 있어 국가를 그릇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삼가 정혼의 상소를 보건대, 대체로 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말하기를 화근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의를 가장 먼저 제창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전적으로 위임하여 일을 끝마치도록 책임지움으로써 종묘 사직을 편안케 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
신이 근래에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가 연달아 올라왔다고 하는데, 상소 내용 중에 논의하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혼 등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신이 어떠한 논의를 하였는지 정혼이 어떻게 알고 갑자기 가장 먼저 제창하였다고 지목한단 말입니까. 신은 삼가 이 점을 의아하게 여깁니다. 과연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문제라면 온 나라의 높고 낮은 신하와 백성들이 의리상 목숨을 걸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모든 관리를 통솔하며 사람들을 위엄스럽게 진압하는 일에는 신이 묘당의 대신만 못하고, 좋은 세상을 만나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일에는 신이 공신이나 임금의 친척인 재상들만 못합니다. 이 밖에도 선비들 중에서 재주와 덕행, 충성과 계략이 신보다 몇 배나 월등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필 지극히 어리석고 고루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천한 신을 추천하여 전하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이 이미 이러한 지목을 받았는데 어찌 감히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그대로 버티고 있어 국가를 그릇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장령 한영이 아뢰기를, "대사헌 이병과 지평 정양필이 모두 인피하여 물러갔고 집의 임건은 병으로 인하여 정사(呈辭)하였으니 신이 응당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사헌 이병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전적으로 정혼이 제기한 문제를 거론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혼의 상소에는 ‘초야에서 올라오는 상소를 기다릴 것 없이 대신과 삼사가 응당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너무도 한심하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도 삼사의 관리 중 한 사람인데 어찌 감히 버젓이 동료들을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벼슬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대사헌 이병과 지평 정양필이 모두 인피하여 물러갔고 집의 임건은 병으로 인하여 정사(呈辭)하였으니 신이 응당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사헌 이병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전적으로 정혼이 제기한 문제를 거론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혼의 상소에는 ‘초야에서 올라오는 상소를 기다릴 것 없이 대신과 삼사가 응당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너무도 한심하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도 삼사의 관리 중 한 사람인데 어찌 감히 버젓이 동료들을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벼슬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교하였다. "영건 도감의 도제조·제조·낭청·감역관·양궁 차지내관 5명에게는 각각 제주(濟州)에서 올려온 말 1필씩을 주고, 도청 3명에게는 각각 말안장 1부씩을 주고, 종사 내관(從事內官) 8명에게는 각각 삼아록비(衫兒鹿皮) 1장씩을 주고, 시문용(施文用)·성지(性智)·김일룡(金日龍)·박자우(朴子羽)에게는 각각 제주 말 1필씩을 주고, 영역부장(領役部將)·녹사(錄事)·의원(醫員)·화원(畫員)에게는 각각 활 1개씩을 주고, 글씨 쓰는 서리 이하 공장인(工匠人)들에게는 각각 무명 1필씩을 나누어 주도록 하라. 지난번 두 궁전에 행차하였을 때 마땅히 나누어 주었어야 했는데 일이 많아서 미루다가 지금에서야 말하게 되었다. 대궐 창고에서 내린 무명을 가지고 동부승지가 나아가서 양궁 차지중사(兩宮次知中使)의 입회하에 자세히 살펴 나주어 준 다음 아뢰도록 하라."
"영건 도감의 도제조·제조·낭청·감역관·양궁 차지내관 5명에게는 각각 제주(濟州)에서 올려온 말 1필씩을 주고, 도청 3명에게는 각각 말안장 1부씩을 주고, 종사 내관(從事內官) 8명에게는 각각 삼아록비(衫兒鹿皮) 1장씩을 주고, 시문용(施文用)·성지(性智)·김일룡(金日龍)·박자우(朴子羽)에게는 각각 제주 말 1필씩을 주고, 영역부장(領役部將)·녹사(錄事)·의원(醫員)·화원(畫員)에게는 각각 활 1개씩을 주고, 글씨 쓰는 서리 이하 공장인(工匠人)들에게는 각각 무명 1필씩을 나누어 주도록 하라.
지난번 두 궁전에 행차하였을 때 마땅히 나누어 주었어야 했는데 일이 많아서 미루다가 지금에서야 말하게 되었다. 대궐 창고에서 내린 무명을 가지고 동부승지가 나아가서 양궁 차지중사(兩宮次知中使)의 입회하에 자세히 살펴 나주어 준 다음 아뢰도록 하라."
비변사가 아뢰기를, "토포관 조찬한(趙纘韓)이 지금 내려가려고 하는데 그의 말을 들으니, 당초에 도적이 공초한 내용과 탐문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도적의 무리가 공홍도 각 고을에 많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찬한이 각 고을에 공문을 띄워서 많은 것을 계획해 보았지만 미처 잡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조찬한에게 경상 공홍 토포관(慶尙公洪討捕官)이란 칭호를 주어 왕래하면서 체포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토포관 조찬한(趙纘韓)이 지금 내려가려고 하는데 그의 말을 들으니, 당초에 도적이 공초한 내용과 탐문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도적의 무리가 공홍도 각 고을에 많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찬한이 각 고을에 공문을 띄워서 많은 것을 계획해 보았지만 미처 잡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조찬한에게 경상 공홍 토포관(慶尙公洪討捕官)이란 칭호를 주어 왕래하면서 체포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권반이 올린 상소문이 군사와 정사의 긴급한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와 같은 상소는 우선 정원에 보류해 두었다가 천천히 입계해야 할 것이다. 요즘 새로 들어온 승지가 옛 규례를 알지 못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니, 침을 맞은 뒤로부터 7일 이전에는 삼사와 재상들의 차자나 정사 단자 일체를 봉입하지 말라. 이 상소문도 도로 내려보내니 전교하거든 들이도록 하라."
"권반이 올린 상소문이 군사와 정사의 긴급한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와 같은 상소는 우선 정원에 보류해 두었다가 천천히 입계해야 할 것이다. 요즘 새로 들어온 승지가 옛 규례를 알지 못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니, 침을 맞은 뒤로부터 7일 이전에는 삼사와 재상들의 차자나 정사 단자 일체를 봉입하지 말라. 이 상소문도 도로 내려보내니 전교하거든 들이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재목(材木)은 무한정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창덕궁을 지을 때 큰 목재 수백 개를 베어서는 즉시 끌어내리지 않고 산속에 그대로 버려 두었다가 모두 썩어서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창경궁 외전과 각 아문을 지을 때에는 교목 한 개를 가지고 기둥 3, 4개를 만들 수 있었는데 전부 잘라 한 개만 만들어 수를 채워 올려보내고 그 나머지는 헛되이 버리기도 하고 내려간 목수들이 함부로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기 어려우나 듣기에 놀라운 일이다. 이 뒤에 병선(兵船)과 법궁(法宮)을 지을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매우 걱정된다. 이번에 나무를 베어낼 때는 한 치의 나무도 마구 깎거나 자르지 말고 충분히 살펴서 하도록 하라. 만약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게 되면 내려가는 경차관·낭청·감역관 등을 각별히 엄중하게 다스리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을 도감에서 다시 더 명백하게 말해 보내 철저히 거행하게 하라. 감역관에게도 이를 자세하게 행회(行會)하도록 하라."
"재목(材木)은 무한정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창덕궁을 지을 때 큰 목재 수백 개를 베어서는 즉시 끌어내리지 않고 산속에 그대로 버려 두었다가 모두 썩어서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창경궁 외전과 각 아문을 지을 때에는 교목 한 개를 가지고 기둥 3, 4개를 만들 수 있었는데 전부 잘라 한 개만 만들어 수를 채워 올려보내고 그 나머지는 헛되이 버리기도 하고 내려간 목수들이 함부로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기 어려우나 듣기에 놀라운 일이다. 이 뒤에 병선(兵船)과 법궁(法宮)을 지을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매우 걱정된다. 이번에 나무를 베어낼 때는 한 치의 나무도 마구 깎거나 자르지 말고 충분히 살펴서 하도록 하라. 만약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게 되면 내려가는 경차관·낭청·감역관 등을 각별히 엄중하게 다스리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을 도감에서 다시 더 명백하게 말해 보내 철저히 거행하게 하라. 감역관에게도 이를 자세하게 행회(行會)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요즘 날씨가 그다지 춥지는 않으니, 지방에서 온 승군(僧軍)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 후에 돌려보낼 것이며, 공사는 이달까지 그대로 계속하고 다음달부터 중지하라는 것으로 도감에 말하라."
"요즘 날씨가 그다지 춥지는 않으니, 지방에서 온 승군(僧軍)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 후에 돌려보낼 것이며, 공사는 이달까지 그대로 계속하고 다음달부터 중지하라는 것으로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관서(關西) 지방에는 크고 작은 재목이 아주 많으므로 잘 요리해서 끌어내려 운반해 온다면 궁전을 한 채 정도 짓는 데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관서의 재목 1천여 개를 서둘러 마련하도록 하라. 경차관을 선발해 보내 베어다가 쓰게 할 것을 도감에 말하라."
"관서(關西) 지방에는 크고 작은 재목이 아주 많으므로 잘 요리해서 끌어내려 운반해 온다면 궁전을 한 채 정도 짓는 데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관서의 재목 1천여 개를 서둘러 마련하도록 하라. 경차관을 선발해 보내 베어다가 쓰게 할 것을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성지(性智)는 국사를 위하여 수고한 일이 매우 많으니 의엄(義嚴)의 전례에 의하여 우선 당상의 실직을 제수하도록 하라."
"성지(性智)는 국사를 위하여 수고한 일이 매우 많으니 의엄(義嚴)의 전례에 의하여 우선 당상의 실직을 제수하도록 하라."
11월 17일 무인
집의 임건(林健), 장령 강린(姜繗)이 아뢰기를, "삼가 정혼(鄭渾)이 상소한 내용을 보건대, 그 요지는 ‘정원·대신·삼사는 응당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했어야 하는데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매우 한심하다.’는 등의 말이었습니다. 신의 직명도 삼사 안에 들어 있으니 그대로 버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정혼(鄭渾)이 상소한 내용을 보건대, 그 요지는 ‘정원·대신·삼사는 응당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했어야 하는데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매우 한심하다.’는 등의 말이었습니다. 신의 직명도 삼사 안에 들어 있으니 그대로 버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언 박종주(朴宗胄)가 아뢰기를, "삼가 헌부의 여러 관원들이 인피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신도 삼사 안의 한 사람이니 구차하게 버티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정언 김세렴과 오늘 상회례를 갖기로 약속했는데 막상 일에 임하여서는 오지 않았으니, 신이 동료에게 매우 무시당한 것입니다. 잠시라도 관직에 더 있을 수 없으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헌부의 여러 관원들이 인피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신도 삼사 안의 한 사람이니 구차하게 버티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정언 김세렴과 오늘 상회례를 갖기로 약속했는데 막상 일에 임하여서는 오지 않았으니, 신이 동료에게 매우 무시당한 것입니다. 잠시라도 관직에 더 있을 수 없으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 각소에 톱질을 하고 마루를 놓는 공사를 하러 지방에서 온 장인(匠人)들을, 이달 보름 후에 일을 중지시키고 내려보내라는 일로 성상의 분부가 간곡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소 장인과 역군들은 다 목이 빠지게 그날을 기다리면서 돌아가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저 간절합니다. 이번에 마땅히 앞서 내린 전교에 따라 돌려보냈다가 내년 정월 보름 뒤에 역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만, 상께서 음식을 대접하라는 명을 또 내리셨으므로 부득이 이 일을 치른 뒤에 바로 보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그리고 각소에 비록 미처 끝마치지 못한 공사가 있다 하더라도, 3해가 이처럼 매우 짧아지고 있으며 날씨도 점차 추워지고 있어서 2, 3일 동안 일한 것이 봄철 하루 일한 것만도 못한데 급료로 주는 베만 허비할 뿐이니,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역사는 원래 단시일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서두르지 말고 작업을 해서 허다한 요포(料布)가 긴요하지 않게 허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실로 형편에 맞는 일인 듯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으니 이달 그믐까지 그대로 역사를 계속하고 다음달에 가서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도감 각소에 톱질을 하고 마루를 놓는 공사를 하러 지방에서 온 장인(匠人)들을, 이달 보름 후에 일을 중지시키고 내려보내라는 일로 성상의 분부가 간곡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소 장인과 역군들은 다 목이 빠지게 그날을 기다리면서 돌아가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저 간절합니다. 이번에 마땅히 앞서 내린 전교에 따라 돌려보냈다가 내년 정월 보름 뒤에 역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만, 상께서 음식을 대접하라는 명을 또 내리셨으므로 부득이 이 일을 치른 뒤에 바로 보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그리고 각소에 비록 미처 끝마치지 못한 공사가 있다 하더라도, 3해가 이처럼 매우 짧아지고 있으며 날씨도 점차 추워지고 있어서 2, 3일 동안 일한 것이 봄철 하루 일한 것만도 못한데 급료로 주는 베만 허비할 뿐이니,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역사는 원래 단시일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서두르지 말고 작업을 해서 허다한 요포(料布)가 긴요하지 않게 허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실로 형편에 맞는 일인 듯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으니 이달 그믐까지 그대로 역사를 계속하고 다음달에 가서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승군(僧軍)들을 성상의 분부에 의하여 16일에 방송(放送)할 일로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다만 승군을 역사에 동원시킬 때 다 2개월로 기한을 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2개월이 다 찬 사람들은 당연히 방송해야 하겠지만 그중에 다 채우지 못한 자까지 다 방송하게 되면, 동쪽과 서쪽에서 돌을 떠서 끌어나르는 역사(役事)와 각소의 역군(役軍)이 매우 낭패를 볼 듯하니, 모두 기한을 채운 뒤에 방송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만약 앞으로 날씨가 몹시 추워져서 모든 역사를 다 중지하게 되면 그때 가서 기한을 다 채우지 못하였더라도 형편을 보아 돌려보내자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기간을 다 채운 승군은 18, 19일에 음식을 먹인 다음 방송하도록 하라." 하였다.
"승군(僧軍)들을 성상의 분부에 의하여 16일에 방송(放送)할 일로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다만 승군을 역사에 동원시킬 때 다 2개월로 기한을 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2개월이 다 찬 사람들은 당연히 방송해야 하겠지만 그중에 다 채우지 못한 자까지 다 방송하게 되면, 동쪽과 서쪽에서 돌을 떠서 끌어나르는 역사(役事)와 각소의 역군(役軍)이 매우 낭패를 볼 듯하니, 모두 기한을 채운 뒤에 방송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만약 앞으로 날씨가 몹시 추워져서 모든 역사를 다 중지하게 되면 그때 가서 기한을 다 채우지 못하였더라도 형편을 보아 돌려보내자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기간을 다 채운 승군은 18, 19일에 음식을 먹인 다음 방송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인왕산(仁王山)은 벌거숭이산이 되고 나무가 없다. 도감으로 하여금 소나무 씨가 나는 곳에 속히 통지하여 넉넉히 받아다가 도감의 차지중사(次知中使)와 내원내관(內苑內官)의 입회하에 오는 정월부터 시작해서 후원 곳곳에 심도록 하고, 백향목(白香木)과 전나무[檜木]도 유의하여 곳곳에 심게 할 것을 도감으로 하여금 각별히 미리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
"인왕산(仁王山)은 벌거숭이산이 되고 나무가 없다. 도감으로 하여금 소나무 씨가 나는 곳에 속히 통지하여 넉넉히 받아다가 도감의 차지중사(次知中使)와 내원내관(內苑內官)의 입회하에 오는 정월부터 시작해서 후원 곳곳에 심도록 하고, 백향목(白香木)과 전나무[檜木]도 유의하여 곳곳에 심게 할 것을 도감으로 하여금 각별히 미리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인왕산(仁王山)은 벌거숭이산이 되고 나무가 없다. 도감으로 하여금 소나무 씨가 나는 곳에 속히 통지하여 넉넉히 받아다가 도감의 차지중사(次知中使)와 내원내관(內苑內官)의 입회하에 오는 정월부터 시작해서 후원 곳곳에 심도록 하고, 백향목(白香木)과 전나무[檜木]도 유의하여 곳곳에 심게 할 것을 도감으로 하여금 각별히 미리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
"인왕산(仁王山)은 벌거숭이산이 되고 나무가 없다. 도감으로 하여금 소나무 씨가 나는 곳에 속히 통지하여 넉넉히 받아다가 도감의 차지중사(次知中使)와 내원내관(內苑內官)의 입회하에 오는 정월부터 시작해서 후원 곳곳에 심도록 하고, 백향목(白香木)과 전나무[檜木]도 유의하여 곳곳에 심게 할 것을 도감으로 하여금 각별히 미리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벌목 경차관(伐木敬差官)을 왜 지금까지 내려보내지 않았는가. 호남 경차관(湖南敬差官)을 먼저 보낼 것을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벌목 경차관(伐木敬差官)을 왜 지금까지 내려보내지 않았는가. 호남 경차관(湖南敬差官)을 먼저 보낼 것을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동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신이 오늘 명을 받고 인경궁과 경덕궁에 나아가 전교 내의 상품들을 중사(中使)와 함께 낱낱이 수를 대조하여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도제조 이하의 출근 현황 단자와 말을 받은 여부에 관한 단자, 그리고 두 궁전의 관원·하인·장공인의 단자를 각각 두 개씩을 아울러 올려보냅니다. 상품들을 나누어 줄 때 기와 굽는 장인과 청기와 굽는 장인 몇몇 사람은 기와 굽는 장소에 가 있다고 하기에 해당 부서 관리에게 봉해 주어서 전달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덕궁의 기와장이와 미장이 몇몇 사람이 상품을 받지 못했다고 와서 하소연하기에 신이 도감에 물었더니, 말하기를 ‘서계할 때에 기와를 얹고 담장을 쌓는 역사를 때마침 중지하였기 때문에 미처 서계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이들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와서 역사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만 상을 받지 못하였으니, 과연 억울할 듯합니다.’ 하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말을 받지 못한 장인 22명에게는 서울 부근에 나누어 기르던 말을 속히 가져다가 다 주도록 사복시(司僕寺)에 말하라. 기와장이들도 자세히 서계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이 오늘 명을 받고 인경궁과 경덕궁에 나아가 전교 내의 상품들을 중사(中使)와 함께 낱낱이 수를 대조하여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도제조 이하의 출근 현황 단자와 말을 받은 여부에 관한 단자, 그리고 두 궁전의 관원·하인·장공인의 단자를 각각 두 개씩을 아울러 올려보냅니다.
상품들을 나누어 줄 때 기와 굽는 장인과 청기와 굽는 장인 몇몇 사람은 기와 굽는 장소에 가 있다고 하기에 해당 부서 관리에게 봉해 주어서 전달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덕궁의 기와장이와 미장이 몇몇 사람이 상품을 받지 못했다고 와서 하소연하기에 신이 도감에 물었더니, 말하기를 ‘서계할 때에 기와를 얹고 담장을 쌓는 역사를 때마침 중지하였기 때문에 미처 서계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이들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와서 역사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만 상을 받지 못하였으니, 과연 억울할 듯합니다.’ 하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말을 받지 못한 장인 22명에게는 서울 부근에 나누어 기르던 말을 속히 가져다가 다 주도록 사복시(司僕寺)에 말하라. 기와장이들도 자세히 서계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근래 말에 대한 행정이 날이 갈수록 해이해져서 임금이 타는 말들이 계속 병들어 죽고 있다. 심지어 낙타까지도 기르는 데 신중을 기하지 않아 병들어서 죽게 하였다. 입직한 관리가 낮에 당직하는 장소에서 제멋대로 떠나도 제조가 검찰하지 못하니 이 역시 잘못이다. 해당 내승(內乘)·이마(理馬)·양마(養馬) 등을 각별히 추고하라."
"근래 말에 대한 행정이 날이 갈수록 해이해져서 임금이 타는 말들이 계속 병들어 죽고 있다. 심지어 낙타까지도 기르는 데 신중을 기하지 않아 병들어서 죽게 하였다. 입직한 관리가 낮에 당직하는 장소에서 제멋대로 떠나도 제조가 검찰하지 못하니 이 역시 잘못이다. 해당 내승(內乘)·이마(理馬)·양마(養馬) 등을 각별히 추고하라."
전교하였다. "삼명일(三名日)에 각도에서 봉진(封進)한 말을 계품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나누어 주어 기르게 했으니 매우 잘못이다. 해당 내승과 사복시의 담당 관리를 아울러 추고하고, 앞으로는 나누어 주어 기르게 하지 말 것을 사복시에 말하라."
"삼명일(三名日)에 각도에서 봉진(封進)한 말을 계품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나누어 주어 기르게 했으니 매우 잘못이다. 해당 내승과 사복시의 담당 관리를 아울러 추고하고, 앞으로는 나누어 주어 기르게 하지 말 것을 사복시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영정(影幀)을 경기전(慶基殿)으로 옮길 때에는 승지와 중사가 한강(漢江)까지 모셔갔었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모시러 갈 것인가? 정원은 미리 강정(講定)해서 아뢰도록 하라."
"영정(影幀)을 경기전(慶基殿)으로 옮길 때에는 승지와 중사가 한강(漢江)까지 모셔갔었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모시러 갈 것인가? 정원은 미리 강정(講定)해서 아뢰도록 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강원도에서 당초에 베어온 추녀용 나무는 용도에 맞지 않는 것이 많으므로 감독관을 추고하기를 청하였으며, 종이를 잘라 견본을 만들어 내려보내서 견본대로 잘라 보내게 하였습니다. 영월군(寧越郡)에서 보낸 추녀용 나무 30개 중에 대목(大木)들이 2개만 고르고 그 밖의 28개는 모두 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혹시 대목들이 뇌물을 주지 않는다 하여 이처럼 퇴각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재목색 제조(材木色提調)더러 낭청과 감역관을 데리고 강가로 나가 직접 적간하게 했더니, 그 재목은 뾰족하고 가늘고 굽어서 과연 쓸 수 없었습니다. 이끌고 온 사람에게 물었더니 물이 얕아서 뗏목을 만들어 띄워보내지 못하고 백성을 징발하여 한 개씩 끌어내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추운 계절에 백성을 부려 힘들게 베어가지고 끌어온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면 비단 백성들의 힘만 아까울 뿐만 아니라 추녀용 목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장차 공사를 중지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일찍이 논의하여 공문을 보낸 것이 정녕할 뿐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벌목을 감독하는 관원이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이 지경이 되게 한 것입니다. 내려가 있는 감역관은 주관하는 일이 어떤 일이기에 감히 그들이 하는 대로 맡겨두고 검칙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감역관을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소서. 추녀용 나무 28개는 얼음이 풀리는 대로 곧 다시 마련하여 올려보내도록 하소서. 그리고 그 쓰지 못할 나무는 본 고을로 돌려보낸다 하더라도 백성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한갓 수령들의 사용물(私用物)이 되고 말 것이니, 그대로 받아두었다가 안팎의 행랑을 짓는 재목으로 쓰도록 하소서. 그리고 강원도에 더 배정한 재목 수량 중에서 영월군은 작은 재목 28 개를 감해주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파발을 띄워 알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강원도에서 당초에 베어온 추녀용 나무는 용도에 맞지 않는 것이 많으므로 감독관을 추고하기를 청하였으며, 종이를 잘라 견본을 만들어 내려보내서 견본대로 잘라 보내게 하였습니다. 영월군(寧越郡)에서 보낸 추녀용 나무 30개 중에 대목(大木)들이 2개만 고르고 그 밖의 28개는 모두 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은 혹시 대목들이 뇌물을 주지 않는다 하여 이처럼 퇴각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재목색 제조(材木色提調)더러 낭청과 감역관을 데리고 강가로 나가 직접 적간하게 했더니, 그 재목은 뾰족하고 가늘고 굽어서 과연 쓸 수 없었습니다. 이끌고 온 사람에게 물었더니 물이 얕아서 뗏목을 만들어 띄워보내지 못하고 백성을 징발하여 한 개씩 끌어내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추운 계절에 백성을 부려 힘들게 베어가지고 끌어온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면 비단 백성들의 힘만 아까울 뿐만 아니라 추녀용 목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장차 공사를 중지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일찍이 논의하여 공문을 보낸 것이 정녕할 뿐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벌목을 감독하는 관원이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이 지경이 되게 한 것입니다. 내려가 있는 감역관은 주관하는 일이 어떤 일이기에 감히 그들이 하는 대로 맡겨두고 검칙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감역관을 무거운 쪽으로 추고하소서.
추녀용 나무 28개는 얼음이 풀리는 대로 곧 다시 마련하여 올려보내도록 하소서. 그리고 그 쓰지 못할 나무는 본 고을로 돌려보낸다 하더라도 백성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한갓 수령들의 사용물(私用物)이 되고 말 것이니, 그대로 받아두었다가 안팎의 행랑을 짓는 재목으로 쓰도록 하소서. 그리고 강원도에 더 배정한 재목 수량 중에서 영월군은 작은 재목 28 개를 감해주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파발을 띄워 알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진사 정흡(鄭潝)이 상소하였다. "전하께서 임어하신 이래로 인애롭고 부드러운 면은 많은데 위엄으로 용단을 내리시는 면이 부족하여, 역적을 다스리는 모든 경우에 가능한 한 너그러운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음모에 참가한 자들은 목숨을 보존하고 있고 편파적으로 비호한 자들이 아직도 형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강이 무엇을 근거로 바로설 수 있겠습니까. 기강이 바로서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론(士論)이 분열되고 반역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니, 참으로 작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아, 지나간 역사를 상고해 보건대, 비록 반역하여 나라를 취한 임금일지라도 사람들이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던 것은 그가 먼저 기강을 세운 뒤에 법으로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세자가 되신 지 17년 만에 말명(末命)을 공경히 받들어 하루아침에 왕위에 오르셨으니 해처럼 밝고 하늘처럼 정대하십니다. 그렇다면 다른 논의가 없어야 마땅한 일인데 간혹 엉뚱한 논의들이 있어서 마치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되는데 오른 것처럼 말합니다. 그 근원을 열어 놓은 것은 근본을 사양하라는 요청이며, 그 풍파를 일으킨 것은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기강을 바로잡으신다면 이런 무리는 마땅히 죽음을 모면하지 못할 것인데 버려두고 다스리지 않으시니 거기서 파생되는 폐단은 장차 수없이 많아질 것입니다. 김시언(金時言)이 글제목을 낸 것과 정협(鄭浹)이 통문(通文)을 낸 것과 이창록(李昌祿)이 시(詩)를 지은 이것이 그 시초가 된 것이니 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아,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계축년의 변고가 또 동기간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일곱살 난 어린아이가 비록 사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이 변란의 불씨가 되었고 이름이 역적의 입에서 나온 이상, 전하에게 있어서는 도의상 죽일 수 없다 하더라도 역적 이의(李㼁)의 입장에서는 또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조정의 신하들이 합문에 엎드려 죄주기를 청하였고, 도의상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전하께서는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하에서 특별히 말감(末減)을 따라 안치시키는 율문을 적용하셨으니, 순(舜)이 상(象)을 처치했던 일일지라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가 갑자기 죽은 것은 필시 귀신의 처단을 받은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온(鄭蘊)은 어떻게 되어먹은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흉악한 말을 지어내어 인자하신 성상에게 가하려 한단 말입니까. 이것을 과연 신하의 도리라고 하겠습니까. 아, 대비가 밖으로 내통하여 역적 모의를 하고 안에서는 저주한 사실이, 역적들의 말에서 드러났고 궁인들의 공초에도 나왔으며 또 전하의 교서에 언급된 것이 한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어미라는 도리가 끊어졌다.’라는 상소문과 ‘두 궁전에 각각 거처해야 한다.’는 계사는 실로 임금을 사랑하는 성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공격하는 자들은 대비를 내쫓았다라는 말을 조작하고, 또 이 말을 듣는 자들은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맞장구를 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글을 올려 기필코 죽이려고 하였으니, 어쩌면 이렇게까지 의리가 극도로 막혀버렸단 말입니까. 옛날 한광무(漢光武)가 수백 년이 지난 뒤에 여후(呂后)를 태묘에서 축출하였는데, 그 뒤 논의하는 사람들은 이 일에 근거하여 두 황후(竇皇后)의 오라비 두헌(竇憲)을 반역을 꾀한 죄로 사형에 처하였고 두 황후도 황제를 낳은 어머니를 황제의 좌석 앞에서 죽였다는 이유로 태묘에 모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비를 폐기할 마음을 가지고 상소하여 논열했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일이 아닌데, 저 간사한 사람들은 말하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떠들면서 떼거지로 일어나 계속 공격해 대고 있으니 그들의 의중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대비와 종묘 사직을 놓고 볼 때 어느쪽이 중하고 어느쪽이 경하다고 하겠습니까. 경하고 중한 차이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현격하며 의리를 위해서는 은혜를 무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신이 되어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은 이원익과 같은 자는, 응당 실지의 상황을 그대로 종묘에 고하고 아래로 사림과 일반 사람을 타이르는 한편 모든 관리들을 이끌고 대궐 앞에 나아가 엎드려 죄줄 것을 청해야 하니, 그러면 신하로서 할 일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는 하지 않고 뜬소문을 퍼뜨려 인심을 선동함으로써 잘한 일은 자신에게 돌리고 죄는 임금에게 돌렸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맹자가 이르기를 ‘순(舜)이 천자가 되었는데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였다면 고요(皐陶)는 그를 가두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상법(常法)이 있는 한 천자의 아비가 높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는 사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고 음모한 죄에 못 미치는데도 천자의 아비라는 이유로 용서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고 음모한 어미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이원익이 이른바 ‘어미가 비록 인자하지 않은 점이 있더라도’라고 한 말을 보면 대비가 무도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무도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이렇게 말하였으니,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옛날 장간지(張柬之) 등이 무후(武后)를 내쫓고 중종(中宗)을 세웠는데 중종은 바로 무후의 친아들입니다. 친아들이면서도 자기 친어미를 내쫓는 것을 만류하지 못했던 것은 나라가 친어미보다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실정도 당나라의 실정과 똑같은데 감히 ‘효도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하였으니, 그렇다면 장간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은 이원익의 죄인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 말을 받들어서 선두에 나선 사람은 조경기(趙慶起)와 정복형(鄭復亨)이고 견강부회하여 후원한 자는 홍무적(洪茂績)과 정택뢰(鄭澤雷)입니다. 비록 폐비의 설을 가지고 정당한 논의를 위협하더라도, 정당한 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다만 나쁜 무리에 가담한 죄에 대한, 춘추의 법에 근거하고 역적을 비호한 죄에 대한 한(漢)나라의 법을 증거로 하여, 그가 역적이란 것을 밝혀 죄를 논핵하고 성토할 것을 요청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대비를 내쫓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변론을 할 것이 없는데 도리어 이 말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으니 신은 삼가 이것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아, 지금 대비에게 사은하는 것은 이 무슨 거조입니까. 위로는 삼공으로부터 아래로는 모든 관리의 제수와 크게는 문과에 급제하고 작게는 생원·진사 시험에 합격한 것이 모두 전하의 은혜이므로 전하에게 사은하는 것은 예절이라고 하겠지만, 대비에게 사은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대비가 국모(國母)라는 이름을 빌고 역적 이의의 권세를 발판으로 하여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하였으니 이는 바로 나라의 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전하를 모해하려 하였으니 이는 역시 신하들의 원수인 것입니다. 역적의 진상이 저러하고 원수의 진상이 저러한데, 임금이 주는 밥을 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는 자가 무슨 면목으로 대비에게 나아가 사은한단 말입니까. 대신과 대간은 전하의 팔과 다리이고 눈과 귀이며, 정원과 옥당은 전하의 혀이고 심장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대비에게 조회하고 사은하기를 마치 별일 없는 국모에게 하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전하의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비록 농사를 지어서 먹는 사람이지만 종묘 사직을 염려하다 보니 조정의 신하들이 대비에게 조회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적으로 강개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혀를 찬 지 오래되었습니다. 예비 시험에 합격되어 먼 길을 걸어 수도에 들어서서 듣건대 병조 판서 유희분(柳希奮)이 대비에게 사은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임금의 친척인 재상으로서 의리를 크게 제창하였으니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위하여 축하할 일이고 한편으로는 조정을 위하여 다행한 일입니다. 신이 처신하는 도리에 있어서도 어찌 유희분에게 양보하겠습니까. 이번 복시(覆試)에서 사마시(司馬試)에 들게 되었는데 합격자를 발표한 뒤에 절대로 경운궁에 사은하지 않음로써 오늘날의 시비를 확정하고 만세의 기강을 세우려고 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글을 보신 다음 접어두지 마시고 속히 정원에 내려보내어 대소의 신하들에게 물어보소서. 그리하여 만약 신의 말이 옳지 않다고 한다면 망령되게 말한 죄로 신을 다스리시고 만약 신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고 하면 경운궁에 조회하고 사은하는 거조를 폐지하소서. 그리고 이어서 유사에게 명하여 전후에 걸쳐 나쁜 무리에 가담하고 역적을 옹호한 자들을 논핵한 다음 차례로 죄를 주어 이 땅의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소서. 그렇게 하면 문란해진 질서가 저절로 바로설 것이고 여러 갈래로 분열된 사론(士論)이 일치될 것이며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 역적들도 멎을 것이니, 국가로 보아도 다행한 일이며 종묘 사직으로 보아도 다행한 일입니다."
"전하께서 임어하신 이래로 인애롭고 부드러운 면은 많은데 위엄으로 용단을 내리시는 면이 부족하여, 역적을 다스리는 모든 경우에 가능한 한 너그러운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음모에 참가한 자들은 목숨을 보존하고 있고 편파적으로 비호한 자들이 아직도 형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강이 무엇을 근거로 바로설 수 있겠습니까. 기강이 바로서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론(士論)이 분열되고 반역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니, 참으로 작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아, 지나간 역사를 상고해 보건대, 비록 반역하여 나라를 취한 임금일지라도 사람들이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던 것은 그가 먼저 기강을 세운 뒤에 법으로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세자가 되신 지 17년 만에 말명(末命)을 공경히 받들어 하루아침에 왕위에 오르셨으니 해처럼 밝고 하늘처럼 정대하십니다. 그렇다면 다른 논의가 없어야 마땅한 일인데 간혹 엉뚱한 논의들이 있어서 마치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되는데 오른 것처럼 말합니다. 그 근원을 열어 놓은 것은 근본을 사양하라는 요청이며, 그 풍파를 일으킨 것은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기강을 바로잡으신다면 이런 무리는 마땅히 죽음을 모면하지 못할 것인데 버려두고 다스리지 않으시니 거기서 파생되는 폐단은 장차 수없이 많아질 것입니다. 김시언(金時言)이 글제목을 낸 것과 정협(鄭浹)이 통문(通文)을 낸 것과 이창록(李昌祿)이 시(詩)를 지은 이것이 그 시초가 된 것이니 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아,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계축년의 변고가 또 동기간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일곱살 난 어린아이가 비록 사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이 변란의 불씨가 되었고 이름이 역적의 입에서 나온 이상, 전하에게 있어서는 도의상 죽일 수 없다 하더라도 역적 이의(李㼁)의 입장에서는 또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조정의 신하들이 합문에 엎드려 죄주기를 청하였고, 도의상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전하께서는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하에서 특별히 말감(末減)을 따라 안치시키는 율문을 적용하셨으니, 순(舜)이 상(象)을 처치했던 일일지라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가 갑자기 죽은 것은 필시 귀신의 처단을 받은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온(鄭蘊)은 어떻게 되어먹은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흉악한 말을 지어내어 인자하신 성상에게 가하려 한단 말입니까. 이것을 과연 신하의 도리라고 하겠습니까.
아, 대비가 밖으로 내통하여 역적 모의를 하고 안에서는 저주한 사실이, 역적들의 말에서 드러났고 궁인들의 공초에도 나왔으며 또 전하의 교서에 언급된 것이 한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어미라는 도리가 끊어졌다.’라는 상소문과 ‘두 궁전에 각각 거처해야 한다.’는 계사는 실로 임금을 사랑하는 성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공격하는 자들은 대비를 내쫓았다라는 말을 조작하고, 또 이 말을 듣는 자들은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맞장구를 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글을 올려 기필코 죽이려고 하였으니, 어쩌면 이렇게까지 의리가 극도로 막혀버렸단 말입니까. 옛날 한광무(漢光武)가 수백 년이 지난 뒤에 여후(呂后)를 태묘에서 축출하였는데, 그 뒤 논의하는 사람들은 이 일에 근거하여 두 황후(竇皇后)의 오라비 두헌(竇憲)을 반역을 꾀한 죄로 사형에 처하였고 두 황후도 황제를 낳은 어머니를 황제의 좌석 앞에서 죽였다는 이유로 태묘에 모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비를 폐기할 마음을 가지고 상소하여 논열했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일이 아닌데, 저 간사한 사람들은 말하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떠들면서 떼거지로 일어나 계속 공격해 대고 있으니 그들의 의중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대비와 종묘 사직을 놓고 볼 때 어느쪽이 중하고 어느쪽이 경하다고 하겠습니까. 경하고 중한 차이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현격하며 의리를 위해서는 은혜를 무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신이 되어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은 이원익과 같은 자는, 응당 실지의 상황을 그대로 종묘에 고하고 아래로 사림과 일반 사람을 타이르는 한편 모든 관리들을 이끌고 대궐 앞에 나아가 엎드려 죄줄 것을 청해야 하니, 그러면 신하로서 할 일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는 하지 않고 뜬소문을 퍼뜨려 인심을 선동함으로써 잘한 일은 자신에게 돌리고 죄는 임금에게 돌렸으니 대신의 도리가 과연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맹자가 이르기를 ‘순(舜)이 천자가 되었는데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였다면 고요(皐陶)는 그를 가두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상법(常法)이 있는 한 천자의 아비가 높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죄는 사실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고 음모한 죄에 못 미치는데도 천자의 아비라는 이유로 용서하지 않았는데, 더구나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고 음모한 어미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이원익이 이른바 ‘어미가 비록 인자하지 않은 점이 있더라도’라고 한 말을 보면 대비가 무도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무도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이렇게 말하였으니,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옛날 장간지(張柬之) 등이 무후(武后)를 내쫓고 중종(中宗)을 세웠는데 중종은 바로 무후의 친아들입니다. 친아들이면서도 자기 친어미를 내쫓는 것을 만류하지 못했던 것은 나라가 친어미보다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실정도 당나라의 실정과 똑같은데 감히 ‘효도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하였으니, 그렇다면 장간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은 이원익의 죄인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 말을 받들어서 선두에 나선 사람은 조경기(趙慶起)와 정복형(鄭復亨)이고 견강부회하여 후원한 자는 홍무적(洪茂績)과 정택뢰(鄭澤雷)입니다.
비록 폐비의 설을 가지고 정당한 논의를 위협하더라도, 정당한 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다만 나쁜 무리에 가담한 죄에 대한, 춘추의 법에 근거하고 역적을 비호한 죄에 대한 한(漢)나라의 법을 증거로 하여, 그가 역적이란 것을 밝혀 죄를 논핵하고 성토할 것을 요청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대비를 내쫓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변론을 할 것이 없는데 도리어 이 말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으니 신은 삼가 이것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아, 지금 대비에게 사은하는 것은 이 무슨 거조입니까. 위로는 삼공으로부터 아래로는 모든 관리의 제수와 크게는 문과에 급제하고 작게는 생원·진사 시험에 합격한 것이 모두 전하의 은혜이므로 전하에게 사은하는 것은 예절이라고 하겠지만, 대비에게 사은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대비가 국모(國母)라는 이름을 빌고 역적 이의의 권세를 발판으로 하여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하였으니 이는 바로 나라의 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전하를 모해하려 하였으니 이는 역시 신하들의 원수인 것입니다. 역적의 진상이 저러하고 원수의 진상이 저러한데, 임금이 주는 밥을 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는 자가 무슨 면목으로 대비에게 나아가 사은한단 말입니까. 대신과 대간은 전하의 팔과 다리이고 눈과 귀이며, 정원과 옥당은 전하의 혀이고 심장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대비에게 조회하고 사은하기를 마치 별일 없는 국모에게 하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전하의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비록 농사를 지어서 먹는 사람이지만 종묘 사직을 염려하다 보니 조정의 신하들이 대비에게 조회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적으로 강개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혀를 찬 지 오래되었습니다. 예비 시험에 합격되어 먼 길을 걸어 수도에 들어서서 듣건대 병조 판서 유희분(柳希奮)이 대비에게 사은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임금의 친척인 재상으로서 의리를 크게 제창하였으니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위하여 축하할 일이고 한편으로는 조정을 위하여 다행한 일입니다. 신이 처신하는 도리에 있어서도 어찌 유희분에게 양보하겠습니까. 이번 복시(覆試)에서 사마시(司馬試)에 들게 되었는데 합격자를 발표한 뒤에 절대로 경운궁에 사은하지 않음로써 오늘날의 시비를 확정하고 만세의 기강을 세우려고 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글을 보신 다음 접어두지 마시고 속히 정원에 내려보내어 대소의 신하들에게 물어보소서. 그리하여 만약 신의 말이 옳지 않다고 한다면 망령되게 말한 죄로 신을 다스리시고 만약 신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고 하면 경운궁에 조회하고 사은하는 거조를 폐지하소서. 그리고 이어서 유사에게 명하여 전후에 걸쳐 나쁜 무리에 가담하고 역적을 옹호한 자들을 논핵한 다음 차례로 죄를 주어 이 땅의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소서. 그렇게 하면 문란해진 질서가 저절로 바로설 것이고 여러 갈래로 분열된 사론(士論)이 일치될 것이며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 역적들도 멎을 것이니, 국가로 보아도 다행한 일이며 종묘 사직으로 보아도 다행한 일입니다."
11월 18일 기묘
대사간 윤인, 헌납 조정립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헌부의 많은 관원들 및 동료들의 인피한 글을 보았습니다. 신도 삼사에 있는 한 사람이니 형편상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삼가 헌부의 많은 관원들 및 동료들의 인피한 글을 보았습니다. 신도 삼사에 있는 한 사람이니 형편상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정언 김세렴이 아뢰기를, "신은 어제 정언 박종주와 상회례(相會禮)를 갖자고 약속하였습니다만 갑자기 배가 아파서 나아가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동료로 하여금 인피하게 한 원인이 되고 말았으니 신의 실수가 큽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은 어제 정언 박종주와 상회례(相會禮)를 갖자고 약속하였습니다만 갑자기 배가 아파서 나아가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동료로 하여금 인피하게 한 원인이 되고 말았으니 신의 실수가 큽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유학 정만(鄭晩)이 상소하였다. "삼가 신은 선정신 조식(曺植)을 종사(從祀)하는 문제로 대궐 아래에서 직접 상소했습니다. 지금 듣건대, 나라에 중대한 논의가 벌어졌는데도 높고 낮은 여러 신하들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고 있는데 갑자기 시골 유생이 연달아 발론했다고 하니, 신은 손을 들어 치하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으며 종묘 사직이 장구하게 융성할 징조가 실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전하께서 그 글들을 속히 대신과 삼사에 내려서 여론을 들어보고 대의(大義)를 내세워 화근을 제거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이 조식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그가 인륜에 대한 중책을 맡아가지고 어두워진 의리를 밝히고 끊어진 윤리를 수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특별히 높이고 제사지냄으로써 거친 물결 속의 지주(紙柱)와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달빛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신이 오늘날의 국사를 보건대 삼강(三綱)이 없어지고 구법(九法)도 무너졌으며 임금의 위세가 고립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분열되었습니다. 뜻밖의 화근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가운데 잠복되어 있는데도,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입을 다물고 서로 바라보며 감히 먼저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임금을 직접 보고서 어찌 감히 한 마디라도 진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문강(文姜)은 노(魯)나라 임금을 죽이는 일에 함께 참가하였는데 그가 출국한 일에 대해 《춘추(春秋)》에는 도망쳤다고 썼으며, 해석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부인이 도망쳤다고 쓴 것은 임금을 죽이는 일에 참가하였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무씨(武氏)는 당(唐)나라를 바꾸어 주(周)나라로 만들었는데, 그가 쫓겨나자 식견있는 사람들은 그를 성토하고 사형에 처하지 못하였던 것이 마침내 무삼사(武三思)·위후(韋后)의 반란을 가져오게 한 것이라 하여 한탄하였습니다. 문강(文姜)은 환공(桓公)의 부인이었으니 장공(莊公)에게는 어머니가 되며, 무씨(武氏)는 고종(高宗)의 황후이므로 중종(中宗)에게는 어머니가 됩니다. 비록 일찍이 왕후가 되고 황후가 되어 온 나라의 어머니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용서받기 어려운 죄를 범한 이상 종묘 사직의 의의로는 그와의 관계를 끊어 화근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령 장공이나 중종이 모자간의 은정을 온전히 하려고 했다면 천하의 대의는 어찌 되었겠으며 종묘 사직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당나라 숙종(肅宗)의 장 황후(張皇后)가 건녕(建寧)을 공모하여 죽였으므로 대종(大宗)이 그를 내쫓고 독약을 먹여 죽였는데, 안진경(顔眞卿)과 양관(楊綰) 등 여러 사람들은 조정에 있으면서 찬성하였고, 송나라 철종(哲宗)의 유후(劉后)는 음탕한 죄가 있다 해서 한충언(韓忠彦) 등이 장차 그를 내쫓으려고 할 때 진관(陳綰)은 단지 너무 빨리 내쫓는 것을 염려하였을 뿐 끝까지 내쫓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옛날의 어진 신하들은 이런 변고를 만나면 종묘 사직을 위하여 큰일을 집행하였을 뿐이고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주를 하고 요사한 짓을 하며 외부의 변란을 내부에서 호응한 죄는 아들을 죽인 죄나 음탕한 짓을 한 죄보다 더 심한데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아, 전하의 신하 한두 명이야 어찌 사태를 깊이 이해하고 나라를 위하여 큰 계책을 세움으로써 한 목숨 바치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마는, 오늘날까지 핑계대면서 회피하는 것은 대개 까닭이 있습니다.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이 불평을 품은 무리를 모아놓고 장황하게 말을 하여 옳고 그른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훗날 스스로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기(士氣)와 공론(公論)이 장차 분발하여 일어나려 하다가도 다시 들어가버리곤 합니다. 이는 참으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위급한 때인 것입니다. 만약 속히 왕법(王法)을 집행하여 대대적으로 화근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후일의 일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초야의 상소가 한번 들어오자,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은 병을 핑계대고 출사하지 않고 있으며 영의정 기자헌(奇自獻)은 병을 핑계대고 문안하지도 않습니다. 병이 나는 것이야 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국가에 있어서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두 정승은 이병(李覮)이 인피한 내용을 본 이상 응당 황급히 출사하여 대궐로 나아가 대죄하면서 죄주기를 청하기에 여념이 없어야 할 것인데, 감히 나오지도 않고 버젓이 버티고 있으면서 일이 되어가는 것만 관망하고 있단 말입니까. 대신이 이런데야 무슨 수로 쓰러져가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두 정승을 속히 불러다가 윤유겸의 상소를 보여준 다음 이 문제를 속히 결정하신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만약 일이 중대한 데 관계되므로 경솔하게 처리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럭저럭 시일만 끌어 화변의 불씨를 빚어낸다면 결국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은혜가 중하겠습니까, 의리가 크겠습니까. 오직 전하께서 선택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삼가 신은 선정신 조식(曺植)을 종사(從祀)하는 문제로 대궐 아래에서 직접 상소했습니다. 지금 듣건대, 나라에 중대한 논의가 벌어졌는데도 높고 낮은 여러 신하들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고 있는데 갑자기 시골 유생이 연달아 발론했다고 하니, 신은 손을 들어 치하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으며 종묘 사직이 장구하게 융성할 징조가 실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전하께서 그 글들을 속히 대신과 삼사에 내려서 여론을 들어보고 대의(大義)를 내세워 화근을 제거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이 조식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그가 인륜에 대한 중책을 맡아가지고 어두워진 의리를 밝히고 끊어진 윤리를 수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특별히 높이고 제사지냄으로써 거친 물결 속의 지주(紙柱)와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달빛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신이 오늘날의 국사를 보건대 삼강(三綱)이 없어지고 구법(九法)도 무너졌으며 임금의 위세가 고립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분열되었습니다. 뜻밖의 화근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가운데 잠복되어 있는데도,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입을 다물고 서로 바라보며 감히 먼저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임금을 직접 보고서 어찌 감히 한 마디라도 진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문강(文姜)은 노(魯)나라 임금을 죽이는 일에 함께 참가하였는데 그가 출국한 일에 대해 《춘추(春秋)》에는 도망쳤다고 썼으며, 해석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부인이 도망쳤다고 쓴 것은 임금을 죽이는 일에 참가하였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무씨(武氏)는 당(唐)나라를 바꾸어 주(周)나라로 만들었는데, 그가 쫓겨나자 식견있는 사람들은 그를 성토하고 사형에 처하지 못하였던 것이 마침내 무삼사(武三思)·위후(韋后)의 반란을 가져오게 한 것이라 하여 한탄하였습니다. 문강(文姜)은 환공(桓公)의 부인이었으니 장공(莊公)에게는 어머니가 되며, 무씨(武氏)는 고종(高宗)의 황후이므로 중종(中宗)에게는 어머니가 됩니다. 비록 일찍이 왕후가 되고 황후가 되어 온 나라의 어머니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용서받기 어려운 죄를 범한 이상 종묘 사직의 의의로는 그와의 관계를 끊어 화근을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령 장공이나 중종이 모자간의 은정을 온전히 하려고 했다면 천하의 대의는 어찌 되었겠으며 종묘 사직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당나라 숙종(肅宗)의 장 황후(張皇后)가 건녕(建寧)을 공모하여 죽였으므로 대종(大宗)이 그를 내쫓고 독약을 먹여 죽였는데, 안진경(顔眞卿)과 양관(楊綰) 등 여러 사람들은 조정에 있으면서 찬성하였고, 송나라 철종(哲宗)의 유후(劉后)는 음탕한 죄가 있다 해서 한충언(韓忠彦) 등이 장차 그를 내쫓으려고 할 때 진관(陳綰)은 단지 너무 빨리 내쫓는 것을 염려하였을 뿐 끝까지 내쫓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옛날의 어진 신하들은 이런 변고를 만나면 종묘 사직을 위하여 큰일을 집행하였을 뿐이고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주를 하고 요사한 짓을 하며 외부의 변란을 내부에서 호응한 죄는 아들을 죽인 죄나 음탕한 짓을 한 죄보다 더 심한데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아, 전하의 신하 한두 명이야 어찌 사태를 깊이 이해하고 나라를 위하여 큰 계책을 세움으로써 한 목숨 바치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마는, 오늘날까지 핑계대면서 회피하는 것은 대개 까닭이 있습니다. 이론을 제기하는 자들이 불평을 품은 무리를 모아놓고 장황하게 말을 하여 옳고 그른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훗날 스스로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기(士氣)와 공론(公論)이 장차 분발하여 일어나려 하다가도 다시 들어가버리곤 합니다. 이는 참으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위급한 때인 것입니다. 만약 속히 왕법(王法)을 집행하여 대대적으로 화근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후일의 일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초야의 상소가 한번 들어오자,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은 병을 핑계대고 출사하지 않고 있으며 영의정 기자헌(奇自獻)은 병을 핑계대고 문안하지도 않습니다. 병이 나는 것이야 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국가에 있어서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두 정승은 이병(李覮)이 인피한 내용을 본 이상 응당 황급히 출사하여 대궐로 나아가 대죄하면서 죄주기를 청하기에 여념이 없어야 할 것인데, 감히 나오지도 않고 버젓이 버티고 있으면서 일이 되어가는 것만 관망하고 있단 말입니까. 대신이 이런데야 무슨 수로 쓰러져가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두 정승을 속히 불러다가 윤유겸의 상소를 보여준 다음 이 문제를 속히 결정하신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만약 일이 중대한 데 관계되므로 경솔하게 처리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럭저럭 시일만 끌어 화변의 불씨를 빚어낸다면 결국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은혜가 중하겠습니까, 의리가 크겠습니까. 오직 전하께서 선택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홍문관 교리 이잠(李埁)·정준(鄭遵), 부수찬 서국정(徐國楨)·남명우(南溟羽)가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정혼(鄭渾)이 올린 상소의 내용을 보건대, 대개 말이 삼사에까지 미쳤습니다. 양사가 이미 이를 이유로 서로 잇따라 인피하였는데, 신들이 벼슬이 삼사에 속해 있고 책임도 동일한 마당에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전삭하소서."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삼가 정혼(鄭渾)이 올린 상소의 내용을 보건대, 대개 말이 삼사에까지 미쳤습니다. 양사가 이미 이를 이유로 서로 잇따라 인피하였는데, 신들이 벼슬이 삼사에 속해 있고 책임도 동일한 마당에 어찌 감히 뻔뻔스럽게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직을 전삭하소서."
하니, 대죄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11월 19일 경진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를 아울러 출사하게 하고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지평 유광은 상피(相避) 관계로 체차되었다.】
홍문관이 아뢰기를, "본관에는 부제학 이하 10여 명이나 되는 관원들이 결원되고 다만 교리 이잠·이상항, 부교리 박자응·정준, 수찬 남명우, 부수찬 서국정, 박사 조유선이 있을 뿐입니다. 논사하고 처치하는 모든 경우에 고루함을 면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해조로 하여금 내일 정사에서 모두 차출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지금 몸조리를 하는 중이니 천천히 차출하도록 하라." 하였다.
"본관에는 부제학 이하 10여 명이나 되는 관원들이 결원되고 다만 교리 이잠·이상항, 부교리 박자응·정준, 수찬 남명우, 부수찬 서국정, 박사 조유선이 있을 뿐입니다. 논사하고 처치하는 모든 경우에 고루함을 면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해조로 하여금 내일 정사에서 모두 차출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지금 몸조리를 하는 중이니 천천히 차출하도록 하라."
하였다.
유학(幼學) 이지호(李之皓)가 상소하였다. "요즘 화근에 대한 한 가지 일로 인하여 초야에 묻혀 있는 여러 선비들이 잇달아 글을 올려 중대한 논의가 나온 지 지금 벌써 10일이 되었습니다. 중외의 여론이 모두 역적을 토벌하려고 하는데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은정에 사로잡혀 아직도 비답을 내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올린 글도 여러 날 동안 접어두고 계십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충성심과 의분심이 간절하여 역적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조 태후(趙太后)는 침실을 잠궈놓고 음탕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쫓겨났으며, 당(唐)나라 숙종(肅宗)의 장 황후(張皇后)는 담(錟)을 죽이고 권력을 농락하였다는 이유로 독약을 먹여 죽였으며, 송(宋)나라 철종(哲宗)의 유 태후(劉太后)는 정사에 간섭하고 음란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억지로 죽게 하였습니다. 이 세 황후가 죄로 인하여 폐출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다른 말이 없었고 후세에도 이론을 제기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춘추의 의리로 강씨(姜氏)을 엄책하여 ‘도망쳤다.’라고 썼으니, 이것만으로도 이 사건을 충분히 판단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패거리들을 모아 가지고 서로 헐뜯고 결함을 찾는 것만 일삼고 있습니다. 사류(士類)들이 이런 논의를 먼저 내놓았기 때문에 여러 소인배들이 극력 배격하여 마침내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한 다음에야 속시원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설사 반역을 꾀하여 왕위를 찬탈하는 변란일지라도 만약 자기 패거리가 소원을 이루게 되기만 한다면 역시 달갑게 감행할 자들이니, 참담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윤유겸(尹惟謙)의 상소문을 내리지 않았을 때에는 조정에서 그 전문을 보지 못했으므로 우선 그것이 내려오기를 기다려 역적을 토벌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핑계댄다면 그것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혼(鄭渾)의 상소가 잇따라 들어오고 이병(李覮)이 피혐하기를 청한 상황에서는 화근을 근절시키기 위한 큰 계책에 대하여 사람마다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양사는 느긋한 말로 인피하였고 옥당은 양사의 말을 기다리면서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두 대신은 병들고 위축되어 감히 말도 못합니다. 관학(館學)은 바로 수선(首善)의 지역으로서 이미 정혼의 지적까지 받은 이상 응당 글을 올려 역적을 토벌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잠잠합니다. 이것은 바로 역적을 옹호하는 논의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켰기 때문에 이처럼 상황만 바라보면서 공정한 논의를 내놓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기(士氣)는 여지없이 저하되고 모두가 그저 녹봉만 허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말을 하자니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공자가 《춘추(春秋)》에서 ‘부인이 제(齊)나라로 도망쳤다.’라고만 쓰고 그의 성(姓)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은혜와 의리의 경중은 분명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선비란 공자를 배우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태학의 선비들은 어떤 소견을 갖고 있기에 지금까지 한 마디 말을 하여 대의를 펴지 않는단 말입니까. 심한 사람들은 중대한 논의가 이미 벌어졌는데도 서로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간 남이준은 관직을 제수하자 정사(呈辭)하였고, 정언 김세렴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차라리 전하를 저버릴지언정 감히 역적을 옹호하는 자들의 입에는 오르내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인자하고 관대하시므로 필시 심하게 죄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고 이처럼 인피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때에 이 두 사람에게 엄한 죄를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뒷일을 잘 처리하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의 뜻을 일치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일을 회피한 이 두 사람의 죄를 먼저 다스린 다음 이어 여러 선비들이 올린 글을 내려보내서 두 정승과 삼사의 관원들을 불러 이것을 보게 한 다음 중대한 논의를 상의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
"요즘 화근에 대한 한 가지 일로 인하여 초야에 묻혀 있는 여러 선비들이 잇달아 글을 올려 중대한 논의가 나온 지 지금 벌써 10일이 되었습니다. 중외의 여론이 모두 역적을 토벌하려고 하는데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은정에 사로잡혀 아직도 비답을 내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올린 글도 여러 날 동안 접어두고 계십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충성심과 의분심이 간절하여 역적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조 태후(趙太后)는 침실을 잠궈놓고 음탕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쫓겨났으며, 당(唐)나라 숙종(肅宗)의 장 황후(張皇后)는 담(錟)을 죽이고 권력을 농락하였다는 이유로 독약을 먹여 죽였으며, 송(宋)나라 철종(哲宗)의 유 태후(劉太后)는 정사에 간섭하고 음란한 짓을 하였다는 이유로 억지로 죽게 하였습니다. 이 세 황후가 죄로 인하여 폐출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다른 말이 없었고 후세에도 이론을 제기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춘추의 의리로 강씨(姜氏)을 엄책하여 ‘도망쳤다.’라고 썼으니, 이것만으로도 이 사건을 충분히 판단할 만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패거리들을 모아 가지고 서로 헐뜯고 결함을 찾는 것만 일삼고 있습니다. 사류(士類)들이 이런 논의를 먼저 내놓았기 때문에 여러 소인배들이 극력 배격하여 마침내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한 다음에야 속시원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설사 반역을 꾀하여 왕위를 찬탈하는 변란일지라도 만약 자기 패거리가 소원을 이루게 되기만 한다면 역시 달갑게 감행할 자들이니, 참담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윤유겸(尹惟謙)의 상소문을 내리지 않았을 때에는 조정에서 그 전문을 보지 못했으므로 우선 그것이 내려오기를 기다려 역적을 토벌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핑계댄다면 그것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혼(鄭渾)의 상소가 잇따라 들어오고 이병(李覮)이 피혐하기를 청한 상황에서는 화근을 근절시키기 위한 큰 계책에 대하여 사람마다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양사는 느긋한 말로 인피하였고 옥당은 양사의 말을 기다리면서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두 대신은 병들고 위축되어 감히 말도 못합니다. 관학(館學)은 바로 수선(首善)의 지역으로서 이미 정혼의 지적까지 받은 이상 응당 글을 올려 역적을 토벌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잠잠합니다. 이것은 바로 역적을 옹호하는 논의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켰기 때문에 이처럼 상황만 바라보면서 공정한 논의를 내놓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기(士氣)는 여지없이 저하되고 모두가 그저 녹봉만 허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말을 하자니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공자가 《춘추(春秋)》에서 ‘부인이 제(齊)나라로 도망쳤다.’라고만 쓰고 그의 성(姓)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은혜와 의리의 경중은 분명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선비란 공자를 배우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태학의 선비들은 어떤 소견을 갖고 있기에 지금까지 한 마디 말을 하여 대의를 펴지 않는단 말입니까.
심한 사람들은 중대한 논의가 이미 벌어졌는데도 서로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간 남이준은 관직을 제수하자 정사(呈辭)하였고, 정언 김세렴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차라리 전하를 저버릴지언정 감히 역적을 옹호하는 자들의 입에는 오르내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인자하고 관대하시므로 필시 심하게 죄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고 이처럼 인피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때에 이 두 사람에게 엄한 죄를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뒷일을 잘 처리하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의 뜻을 일치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일을 회피한 이 두 사람의 죄를 먼저 다스린 다음 이어 여러 선비들이 올린 글을 내려보내서 두 정승과 삼사의 관원들을 불러 이것을 보게 한 다음 중대한 논의를 상의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
지평 정양윤(鄭良胤)이 아뢰기를, "양사의 여러 관원이, 정혼이 올린 상소의 내용을 문제삼아 모두 인피하였습니다. 신도 삼사의 한 사람인만큼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사의 여러 관원이, 정혼이 올린 상소의 내용을 문제삼아 모두 인피하였습니다. 신도 삼사의 한 사람인만큼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정언 김세렴이 아뢰기를, "신이 병으로 인하여 상회례에 참석하지 못하여 동료를 인피하게까지 만들었으니, 비록 병이 난 것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감히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여기고서 버젓이 공무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삼가 유생들이 올린 글의 요지를 보건대 ‘교묘하게 일을 회피한 죄를 다스리소서.’라는 말이 있으니, 더욱 관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병으로 인하여 상회례에 참석하지 못하여 동료를 인피하게까지 만들었으니, 비록 병이 난 것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감히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여기고서 버젓이 공무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삼가 유생들이 올린 글의 요지를 보건대 ‘교묘하게 일을 회피한 죄를 다스리소서.’라는 말이 있으니, 더욱 관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11월 20일 신사
병조 판서 박승종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의 정성을 자세히 알았다. 노부모의 병환은 자연히 낫게 될 기쁨이 있을 것이니, 사직하지 말고 국문하는 데에 참석하여 옥사를 마무리짓도록 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경의 정성을 자세히 알았다. 노부모의 병환은 자연히 낫게 될 기쁨이 있을 것이니, 사직하지 말고 국문하는 데에 참석하여 옥사를 마무리짓도록 하라."
하였다.
사간 남이준이 아뢰기를, "어제 이지호가 신에게 죄줄 것을 엄중히 청하였으니 하루라도 관직에 몸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어제 이지호가 신에게 죄줄 것을 엄중히 청하였으니 하루라도 관직에 몸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우의정 한효순이 세 번째 정사(呈辭)하니, 답하기를, "지금 같이 유생들의 상소가 연달아 들어오고 나라가 소란스런 때에 대신이 계속 글을 올려 사퇴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경은 안심하고 잘 조리하여 속히 출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지금 같이 유생들의 상소가 연달아 들어오고 나라가 소란스런 때에 대신이 계속 글을 올려 사퇴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경은 안심하고 잘 조리하여 속히 출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사간원이, 정언 김세렴과 사간 남이준을 아울러 출사하도록 명할 것을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천추사(千秋使)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온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복명(復命)하지 않고 있으니 매우 잘못된 일이다. 사신·서장관·상통사(上通事)를 아울러 추고하라."
"천추사(千秋使)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온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복명(復命)하지 않고 있으니 매우 잘못된 일이다. 사신·서장관·상통사(上通事)를 아울러 추고하라."
11월 21일 임오
정혼(鄭渾)·이지호(李之晧)·박몽준(朴夢俊)·정흡(鄭潝)·정만(鄭晩)·한보길(韓輔吉)·윤유겸(尹唯謙) 등의 상소를 봉하여 예조에 내려보냈다.
예안(禮安)에 사는 유학 서신(徐兟)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김제남(金悌男)은 역적 이의(李㼁)를 세울 음모를 하였고, 서양갑(徐羊甲)은 군수 물자를 훔쳐서 모았으며 대궐 안에서는 저주하여 안팎으로 재앙을 빚어내었습니다. 전하를 음해하고 왕위를 빼앗으려고 반역을 도모한 사실이 이미 여러 역적의 공초에 나왔고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으니, 당시 전하의 처지는 그야말로 위험 천만이었습니다. 만약 천지가 말없이 돕고 조종(祖宗)이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전하에게 오늘이 있는 것은 진실로 기필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하의 조정에도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고 의리를 의리로 여기지 않으면서 한 하늘 아래에 살고 그의 신하가 되는 것을 달갑게 여긴다면, 전하의 신하 중에 과연 제대로 된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양갑에게 먼저 사형을 내리고 김제남에게는 죽은 뒤에 참형(斬刑)을 가하였으니, 역적을 토죄하는 의리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은정을 온전히 하여 성상의 효성은 더욱 두터웠으니, 이는 바로 아들을 죽이기 위해 우물을 파게 하고 창고 지붕을 수리하게 했던 고수의 행위 자체를 잊어버린 우순(虞舜)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우순의 입장에서는 잊을 수 있는 일이지만 우순의 신하가 된 사람들이야 어찌 우물을 파게 하고 창고 지붕을 수리하게 하던 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 위로 삼공(三公)으로부터 아래로 모든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전하가 준 옷을 입고 전하가 준 밥을 먹고 있으면서, 벼슬에 제수되면 사은 숙배를 세 궁전에 한결같이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끌고 가서 원수에게 절하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부끄러워할 일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신은 동해(東海)에 몸을 던져 죽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임금을 잊고 원수를 섬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 신하들은 아래에서 다른 마음을 품고 전하는 위에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한 몸을 잊고 의리를 주장하는 선비들이 잇달아 항의하는 글을 올려 대신에 대하여 언급하는 데도 대신은 입을 다물고 있으며, 간관에 대해 언급하여도 간관은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망설이고 시일만 끌면서 수수 방관하고 심한 경우는 아무개가 아무 선비를 부추겼다고도 하고 아무개가 어떤 논의를 주장하였다고도 하면서, 보고 듣는 사람이 서로 중상 모략하며 무리를 지어 나무라고 배격하는 것이 마치 뜻밖의 환란이 장차 선비들에게 미칠 것만 같습니다. 아, 임금의 원수를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종묘 사직을 저버릴 수야 있겠습니까. 자신을 위한 계책은 고려하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서 방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방에 있는 자들은 암암리에 모해하려고 하고 있으며, 죄를 범하고도 법망에서 빠져나간 자들은 칼을 갈아놓고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무기를 가진 강도들은 제멋대로 설치고 있으며, 변경에서 군마를 기르던 오랑캐들은 축적한 힘을 발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위급한 사태가 벌어져서 나라의 형편이 황급하게 되면 흉악한 무리들이 역적을 끼고서 온 나라를 호령할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여러 선비들이 올린 글을 조정에 있는 신하들에게 흔쾌히 보이고서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널리 수집하는 한편, 분조의 조회와 호위·공물 등의 일을 속히 철폐하여 중외의 대소 신민들로 하여금 대의(大義)를 다 알아서 원수와는 영원히 인연을 끊도록 하소서. 혹시라도 맞지 않는 논의를 하며 의리를 등지고 원수를 잊는 자가 있으면 유사(有司)에게 넘겨 대역죄로 다룬 다음, 위로는 황제에게 고하고 아래로는 온 나라에 유시하셔서 화근을 두절시키고 종묘 사직의 안녕을 보존하소서. 그리고 전하께서는 다만 모자간의 은정을 온전히 하여 아침 저녁으로 음식 대접하는 일을 폐지하지 않으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올린 글을 의정부에 내려보냈다.
"삼가 생각건대, 김제남(金悌男)은 역적 이의(李㼁)를 세울 음모를 하였고, 서양갑(徐羊甲)은 군수 물자를 훔쳐서 모았으며 대궐 안에서는 저주하여 안팎으로 재앙을 빚어내었습니다. 전하를 음해하고 왕위를 빼앗으려고 반역을 도모한 사실이 이미 여러 역적의 공초에 나왔고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으니, 당시 전하의 처지는 그야말로 위험 천만이었습니다. 만약 천지가 말없이 돕고 조종(祖宗)이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전하에게 오늘이 있는 것은 진실로 기필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하의 조정에도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고 의리를 의리로 여기지 않으면서 한 하늘 아래에 살고 그의 신하가 되는 것을 달갑게 여긴다면, 전하의 신하 중에 과연 제대로 된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양갑에게 먼저 사형을 내리고 김제남에게는 죽은 뒤에 참형(斬刑)을 가하였으니, 역적을 토죄하는 의리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은정을 온전히 하여 성상의 효성은 더욱 두터웠으니, 이는 바로 아들을 죽이기 위해 우물을 파게 하고 창고 지붕을 수리하게 했던 고수의 행위 자체를 잊어버린 우순(虞舜)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우순의 입장에서는 잊을 수 있는 일이지만 우순의 신하가 된 사람들이야 어찌 우물을 파게 하고 창고 지붕을 수리하게 하던 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 위로 삼공(三公)으로부터 아래로 모든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전하가 준 옷을 입고 전하가 준 밥을 먹고 있으면서, 벼슬에 제수되면 사은 숙배를 세 궁전에 한결같이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끌고 가서 원수에게 절하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부끄러워할 일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신은 동해(東海)에 몸을 던져 죽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임금을 잊고 원수를 섬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 신하들은 아래에서 다른 마음을 품고 전하는 위에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한 몸을 잊고 의리를 주장하는 선비들이 잇달아 항의하는 글을 올려 대신에 대하여 언급하는 데도 대신은 입을 다물고 있으며, 간관에 대해 언급하여도 간관은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망설이고 시일만 끌면서 수수 방관하고 심한 경우는 아무개가 아무 선비를 부추겼다고도 하고 아무개가 어떤 논의를 주장하였다고도 하면서, 보고 듣는 사람이 서로 중상 모략하며 무리를 지어 나무라고 배격하는 것이 마치 뜻밖의 환란이 장차 선비들에게 미칠 것만 같습니다. 아, 임금의 원수를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종묘 사직을 저버릴 수야 있겠습니까. 자신을 위한 계책은 고려하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서 방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방에 있는 자들은 암암리에 모해하려고 하고 있으며, 죄를 범하고도 법망에서 빠져나간 자들은 칼을 갈아놓고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무기를 가진 강도들은 제멋대로 설치고 있으며, 변경에서 군마를 기르던 오랑캐들은 축적한 힘을 발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위급한 사태가 벌어져서 나라의 형편이 황급하게 되면 흉악한 무리들이 역적을 끼고서 온 나라를 호령할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여러 선비들이 올린 글을 조정에 있는 신하들에게 흔쾌히 보이고서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널리 수집하는 한편, 분조의 조회와 호위·공물 등의 일을 속히 철폐하여 중외의 대소 신민들로 하여금 대의(大義)를 다 알아서 원수와는 영원히 인연을 끊도록 하소서. 혹시라도 맞지 않는 논의를 하며 의리를 등지고 원수를 잊는 자가 있으면 유사(有司)에게 넘겨 대역죄로 다룬 다음, 위로는 황제에게 고하고 아래로는 온 나라에 유시하셔서 화근을 두절시키고 종묘 사직의 안녕을 보존하소서. 그리고 전하께서는 다만 모자간의 은정을 온전히 하여 아침 저녁으로 음식 대접하는 일을 폐지하지 않으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올린 글을 의정부에 내려보냈다.
병조가 아뢰기를, "전 전라병사 조의(趙誼)가 무기를 많이 마련하였으니 논상하는 문제에 대해 상께서 재가를 내리소서." 하니, 가자하라고 답하였다.
"전 전라병사 조의(趙誼)가 무기를 많이 마련하였으니 논상하는 문제에 대해 상께서 재가를 내리소서."
하니, 가자하라고 답하였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도 쳤다. 개암만한 우박이 쏟아졌다. 하루종일 안개가 끼었다.
11월 22일 계미
사헌부가 아뢰기를, "선비들의 상소가 잇달아 들어오고 나랏일이 어려운 시기에 바른말하는 직책을 맡은 자들은 응당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언 김세렴은 감히 자신을 보전할 계책을 꾸며 고의로 병을 핑계대면서 재차 인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전후에 걸쳐 교묘하게 회피한 사실이 분명하여 감출 수가 없으니 관작을 삭탈하도록 명하소서. 대사헌 이병은 외사촌 윤용(尹溶)의 상을 당하여 현재 휴가를 받고 있는 중이어서 아직까지 상회례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중대한 논의를 하는 날에 장관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큰일이 있을 때에는 원래 상제와 정기적인 휴가도 중지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대사헌 이병을 정상적인 규정에 구애하지 말고 오늘 안으로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선비들의 상소가 잇달아 들어오고 나랏일이 어려운 시기에 바른말하는 직책을 맡은 자들은 응당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언 김세렴은 감히 자신을 보전할 계책을 꾸며 고의로 병을 핑계대면서 재차 인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전후에 걸쳐 교묘하게 회피한 사실이 분명하여 감출 수가 없으니 관작을 삭탈하도록 명하소서.
대사헌 이병은 외사촌 윤용(尹溶)의 상을 당하여 현재 휴가를 받고 있는 중이어서 아직까지 상회례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중대한 논의를 하는 날에 장관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큰일이 있을 때에는 원래 상제와 정기적인 휴가도 중지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대사헌 이병을 정상적인 규정에 구애하지 말고 오늘 안으로 출사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한 통의 간통(簡通)을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정언 김세렴이 이조 좌랑 황덕부(黃德符)를 논핵하고자 하는 일이었습니다. 김세렴은 성품이 간사한 사람으로 중대한 논의가 한창인 이런 때에 교묘하게 인피하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습니다. 본직에 제수되자 갖은 꾀를 다 부려 체직되려고 하였으며, 이미 동료들과 상회례를 행하기로 약속해 놓고는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다가 그대로 인피하였습니다. 옥당이 출사하기를 청하여 그 꾀가 이루어지지 않자 또 인피하였습니다. 본원이 또 출사시키기를 청함으로 해서 그의 간사한 꾀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궁지에 몰리자, 도리어 자기를 추천했던 사람을 원수로 여기고 해치려는 마음을 부리고자 했습니다. 공론을 멸시하고 사악한 논의를 감히 제멋대로 퍼뜨리는가 하면 이조의 관원을 모함하여 일이 시끄러워지게 하였습니다. 전후 행적이 그대로 드러났으니 이러한 때에 이런 사람을 잠시라도 사판에 실어둘 수 없습니다. 귀양을 보내도록 명하여 조정을 안정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김세렴이 이조 좌랑 황덕부를 논핵하고자 하여 동료들에게 간통을 발하자, 동료들이 크게 미워하며 논핵하였다. 김세렴은 유희발의 사위여서 대각에 참여한 것이지 그의 본의는 아니었다.】
"신들이 어제 한 통의 간통(簡通)을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정언 김세렴이 이조 좌랑 황덕부(黃德符)를 논핵하고자 하는 일이었습니다. 김세렴은 성품이 간사한 사람으로 중대한 논의가 한창인 이런 때에 교묘하게 인피하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습니다. 본직에 제수되자 갖은 꾀를 다 부려 체직되려고 하였으며, 이미 동료들과 상회례를 행하기로 약속해 놓고는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다가 그대로 인피하였습니다. 옥당이 출사하기를 청하여 그 꾀가 이루어지지 않자 또 인피하였습니다. 본원이 또 출사시키기를 청함으로 해서 그의 간사한 꾀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궁지에 몰리자, 도리어 자기를 추천했던 사람을 원수로 여기고 해치려는 마음을 부리고자 했습니다. 공론을 멸시하고 사악한 논의를 감히 제멋대로 퍼뜨리는가 하면 이조의 관원을 모함하여 일이 시끄러워지게 하였습니다. 전후 행적이 그대로 드러났으니 이러한 때에 이런 사람을 잠시라도 사판에 실어둘 수 없습니다. 귀양을 보내도록 명하여 조정을 안정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김세렴이 이조 좌랑 황덕부를 논핵하고자 하여 동료들에게 간통을 발하자, 동료들이 크게 미워하며 논핵하였다. 김세렴은 유희발의 사위여서 대각에 참여한 것이지 그의 본의는 아니었다.】
유학 서의중(徐義中)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전에 없던 변고를 당하였습니다. 주상이 고립되어 있는데 대신들은 따르지 않은 채 모두가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김제남이 사형을 받고 서궁에 화살이 투척된 뒤로부터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더욱 놀라워하고 있으며 나라의 형편이 더욱 약화된 것은, 모두 대신들이 대의를 내세워 화근을 제거하지 못하여 간사한 논의가 횡행하도록 만든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윤유겸과 정혼의 상소가 잇달아 들어왔는데 귀와 눈이 멀쩡한 대신들이 어찌 감히 상소 원본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털끝 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병이 인피했는데도 한 마디도 없으니 그러한 죄를 용서해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상께서 모자간의 은정을 내세워 이 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다만 여러 상소문을 예조에 내려보내셨으니, 그 애통하여 스스로 편치 못해 하는 뜻이 말하지 않는 중에서도 넘쳐 흐릅니다. 비록 우순(虞舜)이나 문왕(文王)의 효성이라 하더라도 어찌 여기에 더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당한 한 나라의 공적인 논의를 해조가 어찌 감히 단독으로 감당하겠습니까. 세 대신들을 다 찾아다니며 모든 관리의 의견을 수렴하여 화근을 제거하기를 강력하게 청한 해조의 견해가 매우 사리에 합당합니다. 대신의 처지에서는 응당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속히 조정 관리들을 거느리고서 의를 거행할 일로 개유하는 한편, 모든 사직시키고 파직시키는 일을 대신이 직접 단행함으로써 종묘 사직이 자기 손에 의하여 안정될 수 있게 하고, 성상은 조금도 간여하지 않게 함으로써 사사로운 은정을 온전히 유지하게 하는 것이, 인정으로 보나 예절로 보나 당연한 일입니다. 수상(首相) 기자헌은 미적거리며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은 해조가 대신들과 의논하여 아뢰어서 재가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처치하려 하였으며, 우상 한효순은 입을 다물고 관망만 하면서 줄곧 병 때문에 출사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으며, 원임 대신 정창연도 병 때문에 인사를 살피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고 한 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모두 주상에게 일을 떠넘기고 자기들은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계책인 것입니다. 나라에 대신을 두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이 얼마나 중대한데 감히 아름다운 이름은 자기가 가로채고 임금을 의롭지 못한 처지에 빠지게 한단 말입니까. 오늘 하늘에서 우박이 많이 내리고 동짓달에 우레와 번개가 쳤습니다. 하늘이 경고함으로써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대신의 허물을 보여주는 뜻이 명백히 나타났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은 이전에도 조종의 무함을 변론하여 밝히려 하지 않고 임금을 버린 채 도망갔었는데, 이번에 또 이 중대한 일을 당하여서는 음흉하고 간사하게 역적을 비호하며 해조에 책임 소재를 떠넘김으로 해서 그 죄가 하늘에 달하였으니, 하늘이 경고하는 뜻을 보인 것은 바로 이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기자헌에게 중한 죄를 주지 않는다면 하늘의 뜻에 대답할 수가 없고 임금의 위엄을 세울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효순은 두 왕대에 걸쳐 은혜를 받은 80세 된 노신인데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단지 역적을 비호하는 논의가 그의 마음을 현혹시켰으니 망설이면서 출사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대원칙을 가지고 질책한다면 그가 어찌 감히 출사하지 않겠습니까. 저 정창연은 친척인데도 불구하고 역시 관망만 하고 있으니 그 죄가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합니다. 전하께서 이런 자를 용서하고 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김세렴과 같은 무리가 잇달아 교묘하게 피하며 큰일을 그르치는 것이 사실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왕법(王法)으로 결단하여 기자헌과 정창연 두 정승을 중한 죄로 다스리고 김세렴을 귀양보내는 조치를 취하소서. 그렇게 해서 큰 의리가 온 나라에 밝혀지고 간사한 논의가 중앙과 지방에서 근절되게 하여 국가가 다시 안정되고 왕실을 길이 융성하게 한다면, 전하의 효성은 선대의 유업을 완성하는 데서 더욱 드러날 것입니다. 아, 국가의 운명은 순간에 좌우되는 것이니 전하께서는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훌륭한 사람을 다시 임명하여 의정부에 올려놓음으로써 위로는 하늘의 변고를 누그러뜨리게 하고 아래로는 나라의 장래를 안정되게 하소서. 그렇게 하여 변란의 조짐을 근절시킴으로써 조종의 대업을 견고하게 한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전에 없던 변고를 당하였습니다. 주상이 고립되어 있는데 대신들은 따르지 않은 채 모두가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김제남이 사형을 받고 서궁에 화살이 투척된 뒤로부터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더욱 놀라워하고 있으며 나라의 형편이 더욱 약화된 것은, 모두 대신들이 대의를 내세워 화근을 제거하지 못하여 간사한 논의가 횡행하도록 만든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윤유겸과 정혼의 상소가 잇달아 들어왔는데 귀와 눈이 멀쩡한 대신들이 어찌 감히 상소 원본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털끝 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병이 인피했는데도 한 마디도 없으니 그러한 죄를 용서해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상께서 모자간의 은정을 내세워 이 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다만 여러 상소문을 예조에 내려보내셨으니, 그 애통하여 스스로 편치 못해 하는 뜻이 말하지 않는 중에서도 넘쳐 흐릅니다. 비록 우순(虞舜)이나 문왕(文王)의 효성이라 하더라도 어찌 여기에 더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당당한 한 나라의 공적인 논의를 해조가 어찌 감히 단독으로 감당하겠습니까. 세 대신들을 다 찾아다니며 모든 관리의 의견을 수렴하여 화근을 제거하기를 강력하게 청한 해조의 견해가 매우 사리에 합당합니다. 대신의 처지에서는 응당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속히 조정 관리들을 거느리고서 의를 거행할 일로 개유하는 한편, 모든 사직시키고 파직시키는 일을 대신이 직접 단행함으로써 종묘 사직이 자기 손에 의하여 안정될 수 있게 하고, 성상은 조금도 간여하지 않게 함으로써 사사로운 은정을 온전히 유지하게 하는 것이, 인정으로 보나 예절로 보나 당연한 일입니다.
수상(首相) 기자헌은 미적거리며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은 해조가 대신들과 의논하여 아뢰어서 재가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처치하려 하였으며, 우상 한효순은 입을 다물고 관망만 하면서 줄곧 병 때문에 출사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으며, 원임 대신 정창연도 병 때문에 인사를 살피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고 한 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모두 주상에게 일을 떠넘기고 자기들은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계책인 것입니다. 나라에 대신을 두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이 얼마나 중대한데 감히 아름다운 이름은 자기가 가로채고 임금을 의롭지 못한 처지에 빠지게 한단 말입니까. 오늘 하늘에서 우박이 많이 내리고 동짓달에 우레와 번개가 쳤습니다. 하늘이 경고함으로써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대신의 허물을 보여주는 뜻이 명백히 나타났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은 이전에도 조종의 무함을 변론하여 밝히려 하지 않고 임금을 버린 채 도망갔었는데, 이번에 또 이 중대한 일을 당하여서는 음흉하고 간사하게 역적을 비호하며 해조에 책임 소재를 떠넘김으로 해서 그 죄가 하늘에 달하였으니, 하늘이 경고하는 뜻을 보인 것은 바로 이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기자헌에게 중한 죄를 주지 않는다면 하늘의 뜻에 대답할 수가 없고 임금의 위엄을 세울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효순은 두 왕대에 걸쳐 은혜를 받은 80세 된 노신인데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단지 역적을 비호하는 논의가 그의 마음을 현혹시켰으니 망설이면서 출사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대원칙을 가지고 질책한다면 그가 어찌 감히 출사하지 않겠습니까. 저 정창연은 친척인데도 불구하고 역시 관망만 하고 있으니 그 죄가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합니다. 전하께서 이런 자를 용서하고 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김세렴과 같은 무리가 잇달아 교묘하게 피하며 큰일을 그르치는 것이 사실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왕법(王法)으로 결단하여 기자헌과 정창연 두 정승을 중한 죄로 다스리고 김세렴을 귀양보내는 조치를 취하소서. 그렇게 해서 큰 의리가 온 나라에 밝혀지고 간사한 논의가 중앙과 지방에서 근절되게 하여 국가가 다시 안정되고 왕실을 길이 융성하게 한다면, 전하의 효성은 선대의 유업을 완성하는 데서 더욱 드러날 것입니다. 아, 국가의 운명은 순간에 좌우되는 것이니 전하께서는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훌륭한 사람을 다시 임명하여 의정부에 올려놓음으로써 위로는 하늘의 변고를 누그러뜨리게 하고 아래로는 나라의 장래를 안정되게 하소서. 그렇게 하여 변란의 조짐을 근절시킴으로써 조종의 대업을 견고하게 한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였다. "앞으로 거둥이 있을 것이다. 국가가 소란스러운 이런 때에 대신이 인혐하고 들어가는 것은 옳지 않으니 속히 출사해서 마음을 다하여 나랏일을 돕도록 하라고, 우상에게 사관을 보내 유시하라."
"앞으로 거둥이 있을 것이다. 국가가 소란스러운 이런 때에 대신이 인혐하고 들어가는 것은 옳지 않으니 속히 출사해서 마음을 다하여 나랏일을 돕도록 하라고, 우상에게 사관을 보내 유시하라."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여 사직하니, 사직하지 말고 안심하고 직무를 살피도록 하라고 답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계하기를, "여러 선비들의 상소 내용 중에 논의한 문제는 해조가 회계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처리할 방도로 말하자면 그 일은 묘당(廟堂)이 아니면 결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원은 그 일의 중대함을 생각지 않고 다만 일반적인 법규에만 구애되어 해조에 내려보냈던 것입니다. 해조는 감히 멋대로 논의할 수 없어서 대신에게 고하였더니 대신은 이미 해조에 넘긴 일이라 하여 역시 선뜻 담당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중대한 논의가 정체되어 주관할 곳이 없게 하였으니, 체제에 어두워 큰일을 그르친 정원의 죄가 무겁습니다. 색승지는 파직하고 동참한 승지는 추고하소서. 그리고 그 상소는 다시 거두어 직접 묘당에 내려보내 속히 대신들로 하여금 광범위하게 토의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색승지는 추고하라." 하였다.
"여러 선비들의 상소 내용 중에 논의한 문제는 해조가 회계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처리할 방도로 말하자면 그 일은 묘당(廟堂)이 아니면 결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원은 그 일의 중대함을 생각지 않고 다만 일반적인 법규에만 구애되어 해조에 내려보냈던 것입니다. 해조는 감히 멋대로 논의할 수 없어서 대신에게 고하였더니 대신은 이미 해조에 넘긴 일이라 하여 역시 선뜻 담당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중대한 논의가 정체되어 주관할 곳이 없게 하였으니, 체제에 어두워 큰일을 그르친 정원의 죄가 무겁습니다. 색승지는 파직하고 동참한 승지는 추고하소서. 그리고 그 상소는 다시 거두어 직접 묘당에 내려보내 속히 대신들로 하여금 광범위하게 토의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색승지는 추고하라."
하였다.
대단한 우레와 함께 번개가 치고, 콩알만한 우박이 내렸다.
11월 23일 갑신
여성군(驪城君) 이지완(李志完)이 졸하였다. 【이지완은 이상의(李尙毅)의 아들이다. 문장에 대한 재주는 좀 있었으나 이끗과 권세를 좋아하여 시세에 따라 부침(浮沈)하면서 벼슬을 잘했을 뿐 마음가짐이나 처신은 볼 만한 것이라곤 한 가지도 없었다. 만년에 이이첨과 사돈을 맺어 이익엽(李益燁)을 사위로 맞이하자, 사람들이 모두 비루하게 여겼다.】
정언 김세렴을 곽산(郭山)으로 귀양보냈다.
전교하였다. "전후하여 올라온 선비들의 상소문을 의정부에 내려보내기만 하고 승전을 받들지는 말라."
"전후하여 올라온 선비들의 상소문을 의정부에 내려보내기만 하고 승전을 받들지는 말라."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였다. "여러 선비들의 상소를 묘당에 내려보내라는 것으로 계하(啓下)하셨습니다. 신은 본래 학식이 없는데다 재주도 용렬하고 인망도 가벼운 자인데 마침 인재가 부족한 때를 만나 의정부의 인원수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신이 만약 갑자기 대비를 내쫓을 것을 주장한다면 국사(國史)에 기록하기를 ‘아무개가 제 마음대로 내쫓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대의 공론에 죄를 얻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성상의 조정에 수치가 될 것이며, 성명께서는 필시 대비를 제 마음대로 내쫓으려 한 신들에게 죄를 주고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날 대간들이 궁전을 달리 하여 각각 거처하게 하자는 논의를 주장한 것만으로도 삭직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만약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로 혹시 신에게 죄줄 것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아무리 인자한 전하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영부사 이항복과 좌의정 정인홍은 지방에 있고 전 우상 정창연은 두문 불출하고 있으며 현재 우상 한효순은 병이 나서 휴가 신청을 낸 지 여러 날이 지났으므로, 대신 중에서 신 혼자만 서울에 있으면서 애써 공무를 보고 있습니다만 이처럼 더없이 중대한 일을 어찌 혼자서 처리해 낼 수 있겠습니까. 계축년간에 여러 대신이 글을 올릴 때 신도 거기에 참여하여 ‘아비가 비록 사랑하지 않더라도···.’라는 말을 하였으니, 그때와 지금의 논의를 다르게 할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이원익이 견책을 받았을 때 삼사에서 말하기를 ‘조정에는 본래 이런 마음이 없었는데 이원익이 노망하여 함부로 말하면서 악명을 전하에게 돌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원익은 비록 경자년간에는 전하께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죄를 짓고 떠나는 것을 면치 못하였던 것입니다. 온 나라 사람들은 모두 전하가 우순과 같은 덕을 지녔다고 말하면서 큰 성인의 장한 덕을 모두 흠모하고 있습니다. 여러 상소의 내용을 놓고 본다면, 신은 일찍이 계축년간에 대신들이 글을 올릴 때 참여하였으니 신은 바로 죄를 진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재상직에 외람되게 몸담고 있는 지가 지금 4년이 되었으니 매우 미안합니다. 그리고 항상 해조에서 전하는 공문이나 하리들이 떠나기를 청하는 것을 보면 대비에게 문안하는 등의 일들을 전례대로 하였으니 신의 죄가 더욱 큽니다. 신이 일찍이 선조(先朝) 때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본 적이 있는데 장구령(張九齡)이 태자를 교체하려 할 때를 당하여 ‘신은 감히 조서를 받들지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말은 죽어도 받들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진덕수(眞德秀)가 이를 칭찬하였습니다. 망령된 생각에 신 또한 구령을 본받고 싶어서 일찍이 말하기를 ‘모든 관리가 신(臣) 자를 써서 사은 숙배를 하고 만약 바꾼다면 이것은 사람들에게 반역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하여 이번의 일이 이것과 마찬가지므로 혹시 변란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여겨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범한 것이니, 신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큰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상소문이 하도 많아서 비록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는 실로 전에 없던 일이므로 놀랍고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며 어떻게 처리하여야만 인심을 감복시키고 뒷세상에 할 말이 있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강씨(姜氏)와 무후(武后)의 일은 그것이 과연 이 일과 모두가 유사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진 혜제(晉惠帝) 때 양 태후(楊太后)의 일은 망발인 듯합니다. 어찌 이것을 성명의 세상에다 견주어서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장화(張華)는 ‘별궁에 거처하게 함으로써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은정을 온전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다른 궁전에 각각 거처하게 한다는 전날의 말과 같을 뿐입니다. 왕황(王晃) 등이 전적으로 내쫓을 것을 주장하였고, 주희(朱熹)는 《강목(綱目)》을 편찬할 때에 동양(董養)의 말을 인용하여 썼는데, 그 뒤에 과연 오호(五胡)가 중국을 어지럽힌 일이 있습니다. 진덕수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편찬할 때 이 사실을 간추려서 쓰기를 ‘동양이 태학에서 공부할 때 명륜당에 올라 탄식하기를 「조정에서 이 집을 세운 것은 장차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었던가. 하늘과 사람의 도리가 없어졌으니 큰 난리가 장차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고, 진덕수는 논하기를 ‘모후(母后)에게 내쫓기는 모욕까지 준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늘과 사람의 도리가 여기서 다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식견있는 사람이 장차 큰 난리가 일어날 줄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 그것을 전례로 인용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장 황후에 대해서는 주희가 ‘이보국(李輔國)이 죽였다.’라고 특별히 썼습니다. 그리고 안진경(顔眞卿)은, 숙종 때는 봉주(蓬州)의 장사(長史)로 폄직되었고 대종(代宗) 때는 이주(利州)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니, 그때는 실지로 조정에 돌아와서 찬성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양관전(楊綰傳)에도 장 황후(張皇后)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없으니, 이 말이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염 황후(閻皇后)는 처음에 황제의 모친을 죽였으며 중간에는 황제를 내쫓고 북향후(北鄕侯)를 내세웠고 마지막에 북향후가 죽은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을 내세우려 하였으니, 그 흉악하고 참혹한 사실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다 주거(周擧)가 이합(李郃)에게 한 말을 인용하여 쓰기를 ‘「옛날 고수가 항상 우순(虞舜)을 죽이려 하였으니 우순은 더욱 조심하였다. 정(鄭)나라 무강(武姜)은 장공(莊公)을 죽이려고 음모하였으나 장공이 저승에 가서나 만나겠다고 맹세하였으며, 진 시황(秦始皇)은 어미의 행실이 나쁜 것을 원망하여 오랫동안 인연을 끊었는데, 그 뒤에 영고숙(穎考叔)과 모초(茅焦)의 말에 감동하여 다시 자식의 도리를 행하였으므로 전(傳)에다 기록하여 칭찬하였다. 지금 여러 염씨들이 갓 처단되고 태후가 이궁(離宮)에 갇혀 있으니 만약 원망하고 시름하다 병이 생겨 하루아침에 뜻밖의 변고가 발생하면 주상께서는 장차 무슨 말로 온 나라에 지시하겠는가. 그러므로 조정에 비밀히 글을 올려 태후를 받들도록 하고 여러 신하를 데리고 이전과 같이 문안함으로써 하늘의 의사에 순종하고 사람의 기대에 대답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합이 곧 글을 올려 제의하였더니 다음 해에 순제가 태후에게 문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주거가 말한 것을 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의 의견을 따르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가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너무 빠르다는 진관의 말도 역시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신덕 왕후(神德王后)의 사실과 같은 것은 죽은 뒤에 빈말로 단죄한 것으로 지금은 해마다 한식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이것도 오늘의 일에 견줄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여러 상소문의 결론에서 중국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많은데, 임진년 후부터는 우리 나라의 모든 일에 대하여 중국이 참견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석상서(石尙書)·정응태(丁應泰)·조즙(趙楫)·이성양(李成樑) 등의 무리 중에 반드시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만약 우리 나라에 일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뜻밖의 근심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 상소 가운데 따져 물을 것이 한 개 조항이라도 있으면 대체로 신이 근심하는 것과 대략 같을 것이며, 중국 사람들은 욕심이 끝이 없으므로 만약 이 기회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수만 냥의 뇌물로는 아마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동양·진덕수처럼 말한다면 어찌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근년에 역적의 족속인 역관(譯官)을 중국에 보내지 않는 것은 앞을 내다보는 원대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상소에는 군현(郡縣)의 청(請)이 들어 있었는데 말을 하자니 기가 막히고, 또 진강 유격이 무섭다는 말이 있으니 소견이 없지 않은 말입니다. 예부에 자문을 띄우겠다고 한 말이나 황제에게 보고하겠다고 한 말은 바로 자는 범의 꼬리를 밟아서 없는 일을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헤아리소서.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만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은 아마 먼 곳에 있는 신하들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은 식견이 어두워서, 우리 임금을 허물없는 위치에 계시게 하고 싶으나 스스로의 논의를 주장하지는 못하고 사마광·주희·진덕수 등 여러 사람의 말을 엮어서 먼저 헌의한 것입니다. 이 일은 지극히 중대한 것이어서 처리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상소한 사람들은 신이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난합니다만 전하께서는 역시 인정을 아실 것입니다. 요즘 본대로 말씀드리면 책임을 회피한 사람은 신 한 사람뿐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신의 논의가 허망한 것이라면 귀양가거나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대신들이 ‘집에 있어서 모른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이항복·정인홍·정창연·한효순 등에게 물어보고 또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집해서 처리한다면 반드시 나라를 위하여 좋은 방책을 드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22일에 밤부터 낮에 이르기까지 잇달아 천둥이 치는 변고가 있었습니다. 모든 음기가 이미 극도에 이르고 새로운 양기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이때를 당하여 노기띤 우레 소리가 이처럼 요란스럽게 오랫동안 천지를 뒤흔들었으니 이는 근래에 없던 재앙입니다. 형남(荊南)에서 10월 달에 우레가 친 것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더구나 지금 동짓달에 10 일 동안 계속해서 안개낀 가운데서 갑자기 우레가 치는 경우이겠습니까. 변고란 공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신은 앞으로 무슨 조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서의중(徐義中)의 상소에서 대신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으니, 이번에 하늘이 노한 원인도 신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신과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오랫동안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음양을 조화시키지 못하여서 이런 큰 변고를 초래하였으니 이같은 정승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신을 파면시키고 새로 정승을 임명하는 것이 실로 일에 합당하니,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우선 어리석은 신을 중한 죄로 다스림으로써 하늘의 견책에 대답하소서. 신이 지금 혼자서 일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부득이 전하를 번거롭게 하였으니 진실로 황공합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여러 선비들의 상소를 묘당에 내려보내라는 것으로 계하(啓下)하셨습니다. 신은 본래 학식이 없는데다 재주도 용렬하고 인망도 가벼운 자인데 마침 인재가 부족한 때를 만나 의정부의 인원수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신이 만약 갑자기 대비를 내쫓을 것을 주장한다면 국사(國史)에 기록하기를 ‘아무개가 제 마음대로 내쫓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대의 공론에 죄를 얻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성상의 조정에 수치가 될 것이며, 성명께서는 필시 대비를 제 마음대로 내쫓으려 한 신들에게 죄를 주고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날 대간들이 궁전을 달리 하여 각각 거처하게 하자는 논의를 주장한 것만으로도 삭직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만약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로 혹시 신에게 죄줄 것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아무리 인자한 전하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영부사 이항복과 좌의정 정인홍은 지방에 있고 전 우상 정창연은 두문 불출하고 있으며 현재 우상 한효순은 병이 나서 휴가 신청을 낸 지 여러 날이 지났으므로, 대신 중에서 신 혼자만 서울에 있으면서 애써 공무를 보고 있습니다만 이처럼 더없이 중대한 일을 어찌 혼자서 처리해 낼 수 있겠습니까.
계축년간에 여러 대신이 글을 올릴 때 신도 거기에 참여하여 ‘아비가 비록 사랑하지 않더라도···.’라는 말을 하였으니, 그때와 지금의 논의를 다르게 할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이원익이 견책을 받았을 때 삼사에서 말하기를 ‘조정에는 본래 이런 마음이 없었는데 이원익이 노망하여 함부로 말하면서 악명을 전하에게 돌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원익은 비록 경자년간에는 전하께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죄를 짓고 떠나는 것을 면치 못하였던 것입니다. 온 나라 사람들은 모두 전하가 우순과 같은 덕을 지녔다고 말하면서 큰 성인의 장한 덕을 모두 흠모하고 있습니다. 여러 상소의 내용을 놓고 본다면, 신은 일찍이 계축년간에 대신들이 글을 올릴 때 참여하였으니 신은 바로 죄를 진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재상직에 외람되게 몸담고 있는 지가 지금 4년이 되었으니 매우 미안합니다. 그리고 항상 해조에서 전하는 공문이나 하리들이 떠나기를 청하는 것을 보면 대비에게 문안하는 등의 일들을 전례대로 하였으니 신의 죄가 더욱 큽니다.
신이 일찍이 선조(先朝) 때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본 적이 있는데 장구령(張九齡)이 태자를 교체하려 할 때를 당하여 ‘신은 감히 조서를 받들지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말은 죽어도 받들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진덕수(眞德秀)가 이를 칭찬하였습니다. 망령된 생각에 신 또한 구령을 본받고 싶어서 일찍이 말하기를 ‘모든 관리가 신(臣) 자를 써서 사은 숙배를 하고 만약 바꾼다면 이것은 사람들에게 반역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하여 이번의 일이 이것과 마찬가지므로 혹시 변란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여겨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범한 것이니, 신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큰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상소문이 하도 많아서 비록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는 실로 전에 없던 일이므로 놀랍고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으며 어떻게 처리하여야만 인심을 감복시키고 뒷세상에 할 말이 있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강씨(姜氏)와 무후(武后)의 일은 그것이 과연 이 일과 모두가 유사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진 혜제(晉惠帝) 때 양 태후(楊太后)의 일은 망발인 듯합니다. 어찌 이것을 성명의 세상에다 견주어서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장화(張華)는 ‘별궁에 거처하게 함으로써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은정을 온전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다른 궁전에 각각 거처하게 한다는 전날의 말과 같을 뿐입니다. 왕황(王晃) 등이 전적으로 내쫓을 것을 주장하였고, 주희(朱熹)는 《강목(綱目)》을 편찬할 때에 동양(董養)의 말을 인용하여 썼는데, 그 뒤에 과연 오호(五胡)가 중국을 어지럽힌 일이 있습니다. 진덕수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편찬할 때 이 사실을 간추려서 쓰기를 ‘동양이 태학에서 공부할 때 명륜당에 올라 탄식하기를 「조정에서 이 집을 세운 것은 장차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었던가. 하늘과 사람의 도리가 없어졌으니 큰 난리가 장차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고, 진덕수는 논하기를 ‘모후(母后)에게 내쫓기는 모욕까지 준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늘과 사람의 도리가 여기서 다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식견있는 사람이 장차 큰 난리가 일어날 줄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 그것을 전례로 인용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장 황후에 대해서는 주희가 ‘이보국(李輔國)이 죽였다.’라고 특별히 썼습니다. 그리고 안진경(顔眞卿)은, 숙종 때는 봉주(蓬州)의 장사(長史)로 폄직되었고 대종(代宗) 때는 이주(利州)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니, 그때는 실지로 조정에 돌아와서 찬성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양관전(楊綰傳)에도 장 황후(張皇后)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없으니, 이 말이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염 황후(閻皇后)는 처음에 황제의 모친을 죽였으며 중간에는 황제를 내쫓고 북향후(北鄕侯)를 내세웠고 마지막에 북향후가 죽은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을 내세우려 하였으니, 그 흉악하고 참혹한 사실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다 주거(周擧)가 이합(李郃)에게 한 말을 인용하여 쓰기를 ‘「옛날 고수가 항상 우순(虞舜)을 죽이려 하였으니 우순은 더욱 조심하였다. 정(鄭)나라 무강(武姜)은 장공(莊公)을 죽이려고 음모하였으나 장공이 저승에 가서나 만나겠다고 맹세하였으며, 진 시황(秦始皇)은 어미의 행실이 나쁜 것을 원망하여 오랫동안 인연을 끊었는데, 그 뒤에 영고숙(穎考叔)과 모초(茅焦)의 말에 감동하여 다시 자식의 도리를 행하였으므로 전(傳)에다 기록하여 칭찬하였다. 지금 여러 염씨들이 갓 처단되고 태후가 이궁(離宮)에 갇혀 있으니 만약 원망하고 시름하다 병이 생겨 하루아침에 뜻밖의 변고가 발생하면 주상께서는 장차 무슨 말로 온 나라에 지시하겠는가. 그러므로 조정에 비밀히 글을 올려 태후를 받들도록 하고 여러 신하를 데리고 이전과 같이 문안함으로써 하늘의 의사에 순종하고 사람의 기대에 대답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합이 곧 글을 올려 제의하였더니 다음 해에 순제가 태후에게 문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주거가 말한 것을 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의 의견을 따르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가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너무 빠르다는 진관의 말도 역시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신덕 왕후(神德王后)의 사실과 같은 것은 죽은 뒤에 빈말로 단죄한 것으로 지금은 해마다 한식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이것도 오늘의 일에 견줄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여러 상소문의 결론에서 중국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많은데, 임진년 후부터는 우리 나라의 모든 일에 대하여 중국이 참견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석상서(石尙書)·정응태(丁應泰)·조즙(趙楫)·이성양(李成樑) 등의 무리 중에 반드시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만약 우리 나라에 일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뜻밖의 근심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 상소 가운데 따져 물을 것이 한 개 조항이라도 있으면 대체로 신이 근심하는 것과 대략 같을 것이며, 중국 사람들은 욕심이 끝이 없으므로 만약 이 기회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수만 냥의 뇌물로는 아마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동양·진덕수처럼 말한다면 어찌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근년에 역적의 족속인 역관(譯官)을 중국에 보내지 않는 것은 앞을 내다보는 원대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상소에는 군현(郡縣)의 청(請)이 들어 있었는데 말을 하자니 기가 막히고, 또 진강 유격이 무섭다는 말이 있으니 소견이 없지 않은 말입니다. 예부에 자문을 띄우겠다고 한 말이나 황제에게 보고하겠다고 한 말은 바로 자는 범의 꼬리를 밟아서 없는 일을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헤아리소서.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만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은 아마 먼 곳에 있는 신하들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은 식견이 어두워서, 우리 임금을 허물없는 위치에 계시게 하고 싶으나 스스로의 논의를 주장하지는 못하고 사마광·주희·진덕수 등 여러 사람의 말을 엮어서 먼저 헌의한 것입니다. 이 일은 지극히 중대한 것이어서 처리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상소한 사람들은 신이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난합니다만 전하께서는 역시 인정을 아실 것입니다. 요즘 본대로 말씀드리면 책임을 회피한 사람은 신 한 사람뿐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신의 논의가 허망한 것이라면 귀양가거나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대신들이 ‘집에 있어서 모른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이항복·정인홍·정창연·한효순 등에게 물어보고 또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집해서 처리한다면 반드시 나라를 위하여 좋은 방책을 드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22일에 밤부터 낮에 이르기까지 잇달아 천둥이 치는 변고가 있었습니다. 모든 음기가 이미 극도에 이르고 새로운 양기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이때를 당하여 노기띤 우레 소리가 이처럼 요란스럽게 오랫동안 천지를 뒤흔들었으니 이는 근래에 없던 재앙입니다. 형남(荊南)에서 10월 달에 우레가 친 것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더구나 지금 동짓달에 10 일 동안 계속해서 안개낀 가운데서 갑자기 우레가 치는 경우이겠습니까. 변고란 공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신은 앞으로 무슨 조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서의중(徐義中)의 상소에서 대신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으니, 이번에 하늘이 노한 원인도 신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신과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오랫동안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음양을 조화시키지 못하여서 이런 큰 변고를 초래하였으니 이같은 정승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신을 파면시키고 새로 정승을 임명하는 것이 실로 일에 합당하니,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우선 어리석은 신을 중한 죄로 다스림으로써 하늘의 견책에 대답하소서. 신이 지금 혼자서 일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부득이 전하를 번거롭게 하였으니 진실로 황공합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유학 이숙(李璹)이 상소하기를, "예로부터 제왕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반드시 마음을 함께하고 덕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그 힘겹고 위급한 정세를 힘을 모아 타개하였으며, 깊고 면밀한 계책으로 임금 곁에 있으면서 운명을 같이 하고 두 마음을 먹지 않았습니다. 또한 인척이나 가까운 친척으로서 낮밤이 따로 없이 주선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한 사람이 역사에 끊이지 않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를테면 한(漢)나라의 마원(馬援)과 당(唐)나라의 장손무기(長孫無忌)가 그렇습니다. 신은 멀리서 인용하지 않고 다만 조종조의 일만 가지고 진달하겠습니다. 정도전이 어린 왕자를 세워 나라의 운명을 옮기려고 음모하자 태종 대왕이 군사를 일으켜 사직을 안정시켰는데, 그때 원경 왕후의 오라비 민무회(閔無悔)와 민무휼(閔無恤) 형제가 사실 그 계획을 도왔습니다. 노산(魯山)이 아직 어릴 때 이용(李瑢)이 은밀히 반역을 꾀하자 세조대왕이 사전에 낌새를 알아차려 그 변란을 평정하였는데, 그때 한확(韓確)과 정인지(鄭麟趾)는 모두 혼인관계를 맺은 처지로 힘써 보좌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아직도 사람들의 이목에 뚜렷하게 남아 있으니 인척이 나라에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것을 보고도 알 만합니다. 이번에 대궐에서 발생한 망측한 변고는 천고에 드문 일로 화근의 뿌리가 깊게 서렸고 인정(人情)을 위협하고 있어서 온 나라 백성들 중에 전하를 반대할 자가 절반이나 됩니다. 갑자기 변란이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흉악한 역적의 무리가 서궁(西宮)을 받들고서 이윤(伊尹)과 곽광(霍光)이 했던 것처럼 나서는 일이 눈앞에 닥칠 것입니다. 전하는 신하와 백성의 위에 고립되어 있어서 의지할 만한 곳은 다만 인척인 정승 기자헌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유희분·박승종·이이첨 세 사람은 왕후의 오라비거나 혹은 혼인관계를 맺은 처지로서 임금과 고락을 함께 해야 하므로, 나라의 변란이 위급할 때에는 반드시 화근을 제거할 대책을 생각하여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그들의 직책일 것입니다. 며칠 전에 유생(儒生) 8명이 잇달아 호소하는 글을 올려 대의(大義)를 이미 내세웠으니 그것을 중지할 수 없습니다. 기자헌은 비록 책임을 회피한 자취가 있다 하더라도 대죄하는 내용의 상소를 보건대 아직도 여지가 있으니, 기울어지려는 나라의 운명을 부지하도록 책임지울 수 있겠습니다. 이이첨은 해조의 장관으로서 유생들의 상소문을 가지고 세 집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화근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극력 토의하였으니, 역시 신하된 사람의 직책을 다하였다고 할 만합니다. 오직 유희분(柳希奮)·박승종(朴承宗) 두 신하만은 화근을 제거하려는 논의가 이미 현저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한결같이 물러나 있으면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어떻게 되어가는가만 바라볼 뿐 잠자코 말 한 마디 없으니 신은 삼가 괴이하게 여깁니다. 세 집이 회합(會合)한 것은 이 큰일을 위한 것입니다. 외부에는 그들이 서로 화합하였다는 소문이 있는데, 막상 긴급한 상황에 임하여서는 기꺼이 나서려 하지 않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두 신하에게 간곡히 타일러 기자헌·이이첨과 함께 합의하여 환란을 제거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러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예로부터 제왕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반드시 마음을 함께하고 덕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그 힘겹고 위급한 정세를 힘을 모아 타개하였으며, 깊고 면밀한 계책으로 임금 곁에 있으면서 운명을 같이 하고 두 마음을 먹지 않았습니다. 또한 인척이나 가까운 친척으로서 낮밤이 따로 없이 주선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한 사람이 역사에 끊이지 않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를테면 한(漢)나라의 마원(馬援)과 당(唐)나라의 장손무기(長孫無忌)가 그렇습니다. 신은 멀리서 인용하지 않고 다만 조종조의 일만 가지고 진달하겠습니다.
정도전이 어린 왕자를 세워 나라의 운명을 옮기려고 음모하자 태종 대왕이 군사를 일으켜 사직을 안정시켰는데, 그때 원경 왕후의 오라비 민무회(閔無悔)와 민무휼(閔無恤) 형제가 사실 그 계획을 도왔습니다. 노산(魯山)이 아직 어릴 때 이용(李瑢)이 은밀히 반역을 꾀하자 세조대왕이 사전에 낌새를 알아차려 그 변란을 평정하였는데, 그때 한확(韓確)과 정인지(鄭麟趾)는 모두 혼인관계를 맺은 처지로 힘써 보좌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아직도 사람들의 이목에 뚜렷하게 남아 있으니 인척이 나라에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것을 보고도 알 만합니다.
이번에 대궐에서 발생한 망측한 변고는 천고에 드문 일로 화근의 뿌리가 깊게 서렸고 인정(人情)을 위협하고 있어서 온 나라 백성들 중에 전하를 반대할 자가 절반이나 됩니다. 갑자기 변란이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흉악한 역적의 무리가 서궁(西宮)을 받들고서 이윤(伊尹)과 곽광(霍光)이 했던 것처럼 나서는 일이 눈앞에 닥칠 것입니다. 전하는 신하와 백성의 위에 고립되어 있어서 의지할 만한 곳은 다만 인척인 정승 기자헌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유희분·박승종·이이첨 세 사람은 왕후의 오라비거나 혹은 혼인관계를 맺은 처지로서 임금과 고락을 함께 해야 하므로, 나라의 변란이 위급할 때에는 반드시 화근을 제거할 대책을 생각하여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그들의 직책일 것입니다.
며칠 전에 유생(儒生) 8명이 잇달아 호소하는 글을 올려 대의(大義)를 이미 내세웠으니 그것을 중지할 수 없습니다. 기자헌은 비록 책임을 회피한 자취가 있다 하더라도 대죄하는 내용의 상소를 보건대 아직도 여지가 있으니, 기울어지려는 나라의 운명을 부지하도록 책임지울 수 있겠습니다. 이이첨은 해조의 장관으로서 유생들의 상소문을 가지고 세 집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화근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극력 토의하였으니, 역시 신하된 사람의 직책을 다하였다고 할 만합니다. 오직 유희분(柳希奮)·박승종(朴承宗) 두 신하만은 화근을 제거하려는 논의가 이미 현저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한결같이 물러나 있으면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어떻게 되어가는가만 바라볼 뿐 잠자코 말 한 마디 없으니 신은 삼가 괴이하게 여깁니다. 세 집이 회합(會合)한 것은 이 큰일을 위한 것입니다. 외부에는 그들이 서로 화합하였다는 소문이 있는데, 막상 긴급한 상황에 임하여서는 기꺼이 나서려 하지 않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두 신하에게 간곡히 타일러 기자헌·이이첨과 함께 합의하여 환란을 제거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러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신광업(辛光業)을 수찬으로, 이강(李茳)을 정언으로, 김호(金昈)를 지평으로, 이대엽(李大燁)을 부제학으로, 이익엽(李益燁)을 직제학으로, 백대형(白大珩)을 동부승지로 삼았다. 【백대형은 사람이 음탕한데다 온갖 악행을 다부렸다. 그는 아비를 아비로 섬기지 않았고 아비 백수종(白守宗)도 그를 아들로 대하지 않았다. 이이첨을 종처럼 섬겨 신천 군수(信川郡守)가 된 다음 진기한 물건을 많이 마련하여 궁녀들과 결탁한 결과로 본도의 감사가 되었다. 그리고 최기(崔沂)·정충남(鄭忠男)의 사건을 근거없이 일으키더니 드디어 중요한 벼슬에 올랐다. 심지어 승지까지 되었는데 전적으로 폐론(廢論)을 주장하였다.】
11월 24일 을유
정원이 아뢰기를, "의정부 사인 유충립(柳忠立)이 와서 문틈으로 말하기를 ‘유생의 상소를 봉해서 내려보낸 것이 아홉 번이나 되므로 어제 초저녁이 지난 뒤에 영의정 기자헌에게 가서 전하였더니, 오늘 이미 헌의하였으니 우의정에게 가서 전하라고 했다. 그래서 곧 우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영의정의 뜻으로 고하였더니, 지금 휴가를 받고 병을 치료하는 중이므로 정신이 어지러워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또 이런 뜻을 영의정에게 회보하였더니,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과 봉래 부원군(蓬萊府院君)은 다 대신의 반열에 있으므로 그 부서의 낭청이 좌의정에게 가서 의논하자면 그 상소문을 한 장 등서하여 보내야 하니 밀봉한 상소문을 열어서 등서할 일로 정원에 문의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유생들의 상소는 우선 도당(都堂)에 두라고 하였다. 그래서 밀봉해서 의정부 궤 안에 두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것이 어찌 내가 알 일이겠는가. 내가 하도 불행하여 이런 변고를 또 당했다만 차마 듣지 못하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였다.
"의정부 사인 유충립(柳忠立)이 와서 문틈으로 말하기를 ‘유생의 상소를 봉해서 내려보낸 것이 아홉 번이나 되므로 어제 초저녁이 지난 뒤에 영의정 기자헌에게 가서 전하였더니, 오늘 이미 헌의하였으니 우의정에게 가서 전하라고 했다. 그래서 곧 우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영의정의 뜻으로 고하였더니, 지금 휴가를 받고 병을 치료하는 중이므로 정신이 어지러워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또 이런 뜻을 영의정에게 회보하였더니,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과 봉래 부원군(蓬萊府院君)은 다 대신의 반열에 있으므로 그 부서의 낭청이 좌의정에게 가서 의논하자면 그 상소문을 한 장 등서하여 보내야 하니 밀봉한 상소문을 열어서 등서할 일로 정원에 문의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유생들의 상소는 우선 도당(都堂)에 두라고 하였다. 그래서 밀봉해서 의정부 궤 안에 두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것이 어찌 내가 알 일이겠는가. 내가 하도 불행하여 이런 변고를 또 당했다만 차마 듣지 못하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였다.
유학(幼學) 김정량(金廷亮)이 상소하기를, "서궁(西宮)은 역적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며 역적 이의(李㼁)의 어미인데, 세 가지 큰 죄를 종묘 사직에 지었습니다. 첫째는 밖으로 자기 아비로 하여금 흉악한 무리들을 불러모아 불측한 일을 꾸미게 한 것이고, 둘째는 안으로 어린 자식을 끼고 왕위를 엿본 것이며, 셋째는 저주의 기도(祈禱)를 오늘날까지도 자행하여 성상의 신변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역적의 괴수 중에서 유독 심한 자입니다. 그 죄는 나라 안의 사람이면 아무나 죽일 수 있을 정도인데 전하께서는 무엇이 두려워 당연히 처단할 자를 처단하지 않아 다른 날에 큰 변고의 씨앗을 남기려 하십니까. 여러 유생들의 상소에서 지적하기를 ‘한(漢)나라 아무 황제가 어떤 일을 하였고, 당(唐)나라 아무 황제가 어떤 일을 결단하였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실로 가소로운 말입니다. 역적 한 사람을 죽여 종묘 사직의 수치를 씻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사죄한다면 그것이 후세에 무슨 허물이 될 일이겠습니까. 이 문제는 옛날의 전례를 상고하지 않고도 행할 수 있는 일이니, 이것이 성인(聖人)이 말한 《춘추(春秋)》의 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사(有司)들은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고요(皐陶)는 그에게 죄를 줄 것이다.’라고 한 선유(先儒)들의 말뜻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작은 일을 가지고도 감히 천자의 아버지에게 법을 적용하는데, 더구나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반역을 도모한 자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조정에 화근을 제거하려는 신하가 없다는 사실을 이것을 근거로 알 수 있겠습니다. 오늘 중대한 논의를 제기한 것이 전하를 위하여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사정(私情)을 둘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조정을 위하여 제기된 것이라면 하루도 늦추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그저 세월만 보냄으로써 변란의 불씨가 조성되게 하고 있으니 무슨 사체(事體)가 이렇습니까. 조정에는 녹봉을 받는 사람이 많으니 반드시 충직하고 지성스러운 신하를 가려서 그와 함께 큰일을 도모함으로써 큰 변고를 제거하셔야 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이이첨(李爾瞻)·이병(李覮)·허균(許筠)·이경전(李慶全)·임취정(任就正) 등을 불러 중대한 논의를 결정하지 않으십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 다섯명의 신하들을 급히 불러들여 그들로 하여금 명을 받들고 외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전하께서는 또 기강을 바로잡고 서궁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어서 도성문 밖으로 출송시킨 다음 거기서 살게 하고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리하여 역적을 옹호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감히 간사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그 죄과가 밝혀지는 대로 법으로 처리한 후에 중국에 그 죄과를 고한다면, 종묘 사직의 다행이며 국가의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서궁(西宮)은 역적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며 역적 이의(李㼁)의 어미인데, 세 가지 큰 죄를 종묘 사직에 지었습니다. 첫째는 밖으로 자기 아비로 하여금 흉악한 무리들을 불러모아 불측한 일을 꾸미게 한 것이고, 둘째는 안으로 어린 자식을 끼고 왕위를 엿본 것이며, 셋째는 저주의 기도(祈禱)를 오늘날까지도 자행하여 성상의 신변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역적의 괴수 중에서 유독 심한 자입니다. 그 죄는 나라 안의 사람이면 아무나 죽일 수 있을 정도인데 전하께서는 무엇이 두려워 당연히 처단할 자를 처단하지 않아 다른 날에 큰 변고의 씨앗을 남기려 하십니까.
여러 유생들의 상소에서 지적하기를 ‘한(漢)나라 아무 황제가 어떤 일을 하였고, 당(唐)나라 아무 황제가 어떤 일을 결단하였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실로 가소로운 말입니다. 역적 한 사람을 죽여 종묘 사직의 수치를 씻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사죄한다면 그것이 후세에 무슨 허물이 될 일이겠습니까. 이 문제는 옛날의 전례를 상고하지 않고도 행할 수 있는 일이니, 이것이 성인(聖人)이 말한 《춘추(春秋)》의 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사(有司)들은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고요(皐陶)는 그에게 죄를 줄 것이다.’라고 한 선유(先儒)들의 말뜻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작은 일을 가지고도 감히 천자의 아버지에게 법을 적용하는데, 더구나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반역을 도모한 자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조정에 화근을 제거하려는 신하가 없다는 사실을 이것을 근거로 알 수 있겠습니다.
오늘 중대한 논의를 제기한 것이 전하를 위하여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하께서는 사정(私情)을 둘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조정을 위하여 제기된 것이라면 하루도 늦추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그저 세월만 보냄으로써 변란의 불씨가 조성되게 하고 있으니 무슨 사체(事體)가 이렇습니까.
조정에는 녹봉을 받는 사람이 많으니 반드시 충직하고 지성스러운 신하를 가려서 그와 함께 큰일을 도모함으로써 큰 변고를 제거하셔야 합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이이첨(李爾瞻)·이병(李覮)·허균(許筠)·이경전(李慶全)·임취정(任就正) 등을 불러 중대한 논의를 결정하지 않으십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 다섯명의 신하들을 급히 불러들여 그들로 하여금 명을 받들고 외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전하께서는 또 기강을 바로잡고 서궁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어서 도성문 밖으로 출송시킨 다음 거기서 살게 하고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리하여 역적을 옹호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감히 간사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그 죄과가 밝혀지는 대로 법으로 처리한 후에 중국에 그 죄과를 고한다면, 종묘 사직의 다행이며 국가의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부제학 이대엽(李大燁)이 상차하기를, "신의 아비 이첨을 대제학 겸 지춘추로 삼으셨습니다. 부제학도 춘추관의 당상이니 신의 관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자세히 알았다. 의논해서 처리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차자를 해조에 내려보내서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신의 아비 이첨을 대제학 겸 지춘추로 삼으셨습니다. 부제학도 춘추관의 당상이니 신의 관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자세히 알았다. 의논해서 처리하겠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차자를 해조에 내려보내서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유학(幼學) 송영서(宋永緖)가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국가의 운명은 장차 끊어지려 하고 인정이 안으로 분열되고 있는데, 중대한 논의가 제기된 지 지금 20일이 지났습니다. 신하된 자로서 춘추의 의리를 내세워 역적을 토벌하는 법을 거행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려는 것은 불가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려는 자들은 대신들의 추이를 잔뜩 기대하였는데, 대신들이 도리어 지연시키려는 마음을 갖고 있을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처음 올린 차자의 내용은 극도로 음흉한 말이었으니, ‘부도한 짓을 마음대로 저질렀다.[專輒不道]’는 그의 말은 지목한 것이 아주 은밀합니다. 부도라고 하는 것은 신하된 자로서 더없이 중한 죄인데 그를 부도한 죄에 빠뜨린다면 중대한 논의를 제창한 사람들이 모두 부도하단 말입니까. 마음대로 하였다는 말의 ‘첩(輒)’ 자도 암암리에 위(衛)나라의 첩(輒)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가 전에 이이첨을 해치려고 할 때에는 임금에게 올린 단자에서 ‘훌륭한 신하를 얻어 백성들이 다함께 바라보는 자리에 있게 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였고, 허균을 해치려 할 때에는 그가 도망가면서 올린 차자에서, ‘어떠한 자가 이러한 짓을 하였다.[何許人如許事]’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평생 동안 써오던 수법이었는데 이번에는 임금에게까지 쓰고 있으니, 어찌 패악스러운 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생들의 상소가 정부(政府)에 도착했을 때 명령을 내려 모든 관리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 감히 자기 혼자 먼저 의견을 올렸으므로 그 차자의 내용을 신은 감히 알지 못합니다. 대체로 충직한 신하와 의로운 사람들이 아래에서 화근을 능히 제거하여 자기 임금으로 하여금 그 사이에 간여하지 않도록 해야 하니, 이는 바로 고요(皐陶)가 법에 따라 집행한 뜻과 치당(致堂)050) 이 무후(武后)를 처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한 논의로서, 백대 후에 성인이 나타나더라도 이 말은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헌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 문제를 전하께 진달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임금에게 돌리려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의 마음 씀씀이가 더욱 괴이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기자헌은 성품이 시랑(豺狼)과 같고 행실은 짐승과 같아 평소에 일삼아온 것이라곤 오로지 임금을 저버리고 나라를 배반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왔을 뿐입니다. 조종(祖宗)과 선왕(先王)이 부당하게 악명을 입었을 때에는 흔쾌히 변무(辨誣)하려 들지 않았으며, 흉측한 글이 화살에 매달려 투척되어 요사스런 변고가 일어나게 되자 떠나가서 자신만 모면할 생각을 하였으며, 서궁의 생일에 여러 사람들은 다 가지 않았는데 혼자 가서 축하하고는 마치 잘한 일처럼 스스로 자랑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죄 가운데서 사람에게 한 가지 죄만 있어도 그 사람은 1백 번 죽여 마땅할 것인데 하물며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중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도 줄곧 물러서서 핑계대며 갖은 방법으로 회피하고 있는 그 정상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용서하고 벌을 주지 않으며 대간은 겁을 먹고 성토하지 않습니다. 왕법이 이와 같고서야 어떻게 임금의 위엄을 세우고 국가의 화란을 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에게는 또 걱정스런 것이 있습니다. 기자헌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어찌 믿는 데가 없이 그러겠습니까. 그는 지금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고 무관들과 결탁하여 심복들을 몰래 호위군 속에 배치하였으므로 도감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다 그의 수하에 있습니다. 병조 판서가 아니면 군색 제조(軍色提調)를 겸임할 수 없는 것은 전해오는 규례인데, 기자헌에게는 종전대로 겸임시키면서 바꾸지 않았습니다. 만약 공정한 논의가 점점 강력해져서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서궁을 끼고 변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났으므로 도성 안의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만 알지 못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 서궁의 악행은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뼈를 산릉에 묻어 재앙이 무덤 속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이름을 고기점에 써서 억누르기를 자행하였으니 왕후에게 욕이 미친 것이고, 기회를 타서 임금에게 참소하고 임금의 지시를 조작하여 내려보냈으며 마지막 유언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자기 아들 의를 옹호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선조 대왕까지 속인 것입니다. 대궐 안에서 저주하여 여러 해 동안 요사한 짓을 하였으며 하늘과 해에 비는 등 온갖 방법으로 해독이 되게 하였으니 전하의 몸에 화가 참혹하게 미친 것이고, 밖으로 김제남을 끼고 내시들과 결탁하여 나라 창고에서 자금을 꺼내 역적 무리를 불러모았으니 그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그리고 진기한 물품을 은밀히 사들여 역적 서양갑에게 몰래 주고 그를 왜인들 속으로 들여보내 중국을 침범할 때에 응원하도록 하였으니 재앙이 명(明)나라에 미쳤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요사스런 왕후가 변란을 일으킨 사실을 내리 찾아보아도 이처럼 심한 경우는 없는데 신하된 사람들이 아직도 그와 한 하늘 아래서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수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헌은 감히 그의 온갖 죄악을 덮어줄 뿐, 드러내놓고 치려 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헌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큰 의리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니, 그가 두 가지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당한 조정에 어찌 충효(忠孝)와 염절(廉節)을 지닌 신하로서 많은 사람의 신망을 받고 막중한 임무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그렇게도 없어서, 하필 기강을 문란케 한 기자헌으로 하여금 백관을 앞장 서서 이끌고 이 의로운 거사를 행하도록 하여 치욕을 끼치게 한단 말입니까. 신은 기자헌이 비록 이 임무를 담당하겠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런 추물(醜物)을 채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신이 삼가 염려하는 것은, 기자헌이 고의로 세월을 지연시키면서 뜻을 얻지 못한 무리들을 규합하여 군사를 일으켜 전하를 곤경에 몰아넣고 착한 사람들을 다 죽인 후에 그들의 흉계를 자행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미가 약간 나타나고 있는데도 상께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신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 먼저 기자헌을 훈련 도감 제조의 임무에서 체직하고 또 군색(軍色)도 분할하여 특별히 다른 제조를 차출해서 맡게 하소서. 그리고 대궐에 대한 경비를 삼엄하게 하고 방비를 더욱 견고하게 하소서. 또한 신의 글을 양사에 보여 주어서 양사가 만일 자헌에게 죄가 있다고 한다면 법을 적용하여 속히 처단하소서. 그리고 덕망 있는 사람을 다시 선출하여 의정부를 주관하게 하고 그에게 어렵고 위급한 판국을 수습할 책임을 지워 사직을 보전하게 한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註 050] 치당(致堂) : 호인(胡寅).
"삼가 생각건대, 국가의 운명은 장차 끊어지려 하고 인정이 안으로 분열되고 있는데, 중대한 논의가 제기된 지 지금 20일이 지났습니다. 신하된 자로서 춘추의 의리를 내세워 역적을 토벌하는 법을 거행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려는 것은 불가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려는 자들은 대신들의 추이를 잔뜩 기대하였는데, 대신들이 도리어 지연시키려는 마음을 갖고 있을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처음 올린 차자의 내용은 극도로 음흉한 말이었으니, ‘부도한 짓을 마음대로 저질렀다.[專輒不道]’는 그의 말은 지목한 것이 아주 은밀합니다. 부도라고 하는 것은 신하된 자로서 더없이 중한 죄인데 그를 부도한 죄에 빠뜨린다면 중대한 논의를 제창한 사람들이 모두 부도하단 말입니까. 마음대로 하였다는 말의 ‘첩(輒)’ 자도 암암리에 위(衛)나라의 첩(輒)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가 전에 이이첨을 해치려고 할 때에는 임금에게 올린 단자에서 ‘훌륭한 신하를 얻어 백성들이 다함께 바라보는 자리에 있게 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였고, 허균을 해치려 할 때에는 그가 도망가면서 올린 차자에서, ‘어떠한 자가 이러한 짓을 하였다.[何許人如許事]’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평생 동안 써오던 수법이었는데 이번에는 임금에게까지 쓰고 있으니, 어찌 패악스러운 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생들의 상소가 정부(政府)에 도착했을 때 명령을 내려 모든 관리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 감히 자기 혼자 먼저 의견을 올렸으므로 그 차자의 내용을 신은 감히 알지 못합니다. 대체로 충직한 신하와 의로운 사람들이 아래에서 화근을 능히 제거하여 자기 임금으로 하여금 그 사이에 간여하지 않도록 해야 하니, 이는 바로 고요(皐陶)가 법에 따라 집행한 뜻과 치당(致堂)050) 이 무후(武后)를 처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한 논의로서, 백대 후에 성인이 나타나더라도 이 말은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헌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 문제를 전하께 진달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임금에게 돌리려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의 마음 씀씀이가 더욱 괴이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기자헌은 성품이 시랑(豺狼)과 같고 행실은 짐승과 같아 평소에 일삼아온 것이라곤 오로지 임금을 저버리고 나라를 배반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왔을 뿐입니다. 조종(祖宗)과 선왕(先王)이 부당하게 악명을 입었을 때에는 흔쾌히 변무(辨誣)하려 들지 않았으며, 흉측한 글이 화살에 매달려 투척되어 요사스런 변고가 일어나게 되자 떠나가서 자신만 모면할 생각을 하였으며, 서궁의 생일에 여러 사람들은 다 가지 않았는데 혼자 가서 축하하고는 마치 잘한 일처럼 스스로 자랑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죄 가운데서 사람에게 한 가지 죄만 있어도 그 사람은 1백 번 죽여 마땅할 것인데 하물며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중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도 줄곧 물러서서 핑계대며 갖은 방법으로 회피하고 있는 그 정상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용서하고 벌을 주지 않으며 대간은 겁을 먹고 성토하지 않습니다. 왕법이 이와 같고서야 어떻게 임금의 위엄을 세우고 국가의 화란을 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에게는 또 걱정스런 것이 있습니다. 기자헌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어찌 믿는 데가 없이 그러겠습니까. 그는 지금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고 무관들과 결탁하여 심복들을 몰래 호위군 속에 배치하였으므로 도감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다 그의 수하에 있습니다. 병조 판서가 아니면 군색 제조(軍色提調)를 겸임할 수 없는 것은 전해오는 규례인데, 기자헌에게는 종전대로 겸임시키면서 바꾸지 않았습니다. 만약 공정한 논의가 점점 강력해져서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서궁을 끼고 변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났으므로 도성 안의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있는데 전하께서만 알지 못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 서궁의 악행은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뼈를 산릉에 묻어 재앙이 무덤 속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이름을 고기점에 써서 억누르기를 자행하였으니 왕후에게 욕이 미친 것이고, 기회를 타서 임금에게 참소하고 임금의 지시를 조작하여 내려보냈으며 마지막 유언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자기 아들 의를 옹호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선조 대왕까지 속인 것입니다. 대궐 안에서 저주하여 여러 해 동안 요사한 짓을 하였으며 하늘과 해에 비는 등 온갖 방법으로 해독이 되게 하였으니 전하의 몸에 화가 참혹하게 미친 것이고, 밖으로 김제남을 끼고 내시들과 결탁하여 나라 창고에서 자금을 꺼내 역적 무리를 불러모았으니 그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그리고 진기한 물품을 은밀히 사들여 역적 서양갑에게 몰래 주고 그를 왜인들 속으로 들여보내 중국을 침범할 때에 응원하도록 하였으니 재앙이 명(明)나라에 미쳤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요사스런 왕후가 변란을 일으킨 사실을 내리 찾아보아도 이처럼 심한 경우는 없는데 신하된 사람들이 아직도 그와 한 하늘 아래서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수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헌은 감히 그의 온갖 죄악을 덮어줄 뿐, 드러내놓고 치려 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헌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큰 의리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니, 그가 두 가지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당한 조정에 어찌 충효(忠孝)와 염절(廉節)을 지닌 신하로서 많은 사람의 신망을 받고 막중한 임무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그렇게도 없어서, 하필 기강을 문란케 한 기자헌으로 하여금 백관을 앞장 서서 이끌고 이 의로운 거사를 행하도록 하여 치욕을 끼치게 한단 말입니까. 신은 기자헌이 비록 이 임무를 담당하겠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런 추물(醜物)을 채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신이 삼가 염려하는 것은, 기자헌이 고의로 세월을 지연시키면서 뜻을 얻지 못한 무리들을 규합하여 군사를 일으켜 전하를 곤경에 몰아넣고 착한 사람들을 다 죽인 후에 그들의 흉계를 자행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미가 약간 나타나고 있는데도 상께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신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 먼저 기자헌을 훈련 도감 제조의 임무에서 체직하고 또 군색(軍色)도 분할하여 특별히 다른 제조를 차출해서 맡게 하소서. 그리고 대궐에 대한 경비를 삼엄하게 하고 방비를 더욱 견고하게 하소서. 또한 신의 글을 양사에 보여 주어서 양사가 만일 자헌에게 죄가 있다고 한다면 법을 적용하여 속히 처단하소서. 그리고 덕망 있는 사람을 다시 선출하여 의정부를 주관하게 하고 그에게 어렵고 위급한 판국을 수습할 책임을 지워 사직을 보전하게 한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김서룡(金瑞龍)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서궁(西宮)은 전하를 낳아 기른 분에 비유할 수 없습니다. 무후(武后)는 중종(中宗)의 생모인데도 호씨(胡氏)는 그를 종묘에 고하고 죽였어야 옳았다고 말하였으니, 이 일을 처리하기가 무엇이 그리 어렵기에 다른 의견이 이렇게까지 마구 생겨난단 말입니까. 더구나 서궁의 죄악은 옛날의 요사스런 왕후들보다도 더 심하지 않습니까. 그는 유릉(裕陵)에 뼈를 묻고 고기점에 왕후의 이름을 써서 선령(先靈)을 억눌렀으며, 요사스런 술법을 제멋대로 써서 성상을 해치고자 대궐 안에서 저주를 하는가 하면 개·닭·돼지를 낭자하게 묻어놓고 갖은 저주를 자행한 사실이 모두 궁녀들의 공초에서 나왔습니다. 심지어 밖으로는 자기 아비를 끼고 안으로는 반역하는 내시들과 통하여 은과 비단을 많이 내어 서양갑에게 주어 왜인들 속에 들여보내어 응원을 맺게 하였으며, 이의(李㼁)를 세운 뒤에는 이어 중국을 배반하려고 획책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늘에 사무친 그 죄악은 처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인데도 온 나라 사람들이 아직 의리에 어두워서 오히려 그를 돌보고 애석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어찌 통분할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유생들의 상소를 의정부에 내려보냈으니 대신들은 응당 속히 회의하여야 할 것인데, 기자헌은 역적의 괴수를 가만히 비호하면서 한결같이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처음에 올린 그의 차자 안에는 ‘부도한 짓을 마음대로 저지른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른바 ‘부도한 짓’이란 곧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간범한다는 말입니다. 가사 그가 이 일을 한다 하더라도 무슨 분수를 어기는 죄가 있기에 억지로 부도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으로 보아 그의 뜻을 단적으로 알 만합니다. 겨울에 우레가 일어나는 변고가 생기는 것은 그 허물이 대신이 직책을 다하지 못한 데 있으니, 이는 여러 역사책에 천문(天文) 맡은 관리들이 자세하고 명백하게 적어놓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도리어 이 일을 가지고 거기에 대응시켜 자기의 죄를 면하려 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한 죄가 여기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이런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왕법(王法)을 밝히고 대의(大義)를 펼칠 수 있겠습니까. 대신(大臣)이란 나라의 주춧돌이며 임금의 팔다리인데, 기자헌은 이처럼 임금을 속이고 있으며 한효순도 이처럼 물러서서 핑계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랏일이 위급하기가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누구와 함께 환란을 진정시키고 사직을 안정시키시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기자헌을 속히 제거하시고 덕망있는 사람을 다시 정승으로 뽑으시고, 또 바른말과 정당한 논의를 주장하는 초야의 선비를 불러 대간에 두소서. 그리하신다면 어찌 나라의 영원한 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서궁(西宮)은 전하를 낳아 기른 분에 비유할 수 없습니다. 무후(武后)는 중종(中宗)의 생모인데도 호씨(胡氏)는 그를 종묘에 고하고 죽였어야 옳았다고 말하였으니, 이 일을 처리하기가 무엇이 그리 어렵기에 다른 의견이 이렇게까지 마구 생겨난단 말입니까. 더구나 서궁의 죄악은 옛날의 요사스런 왕후들보다도 더 심하지 않습니까. 그는 유릉(裕陵)에 뼈를 묻고 고기점에 왕후의 이름을 써서 선령(先靈)을 억눌렀으며, 요사스런 술법을 제멋대로 써서 성상을 해치고자 대궐 안에서 저주를 하는가 하면 개·닭·돼지를 낭자하게 묻어놓고 갖은 저주를 자행한 사실이 모두 궁녀들의 공초에서 나왔습니다. 심지어 밖으로는 자기 아비를 끼고 안으로는 반역하는 내시들과 통하여 은과 비단을 많이 내어 서양갑에게 주어 왜인들 속에 들여보내어 응원을 맺게 하였으며, 이의(李㼁)를 세운 뒤에는 이어 중국을 배반하려고 획책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늘에 사무친 그 죄악은 처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인데도 온 나라 사람들이 아직 의리에 어두워서 오히려 그를 돌보고 애석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어찌 통분할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유생들의 상소를 의정부에 내려보냈으니 대신들은 응당 속히 회의하여야 할 것인데, 기자헌은 역적의 괴수를 가만히 비호하면서 한결같이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처음에 올린 그의 차자 안에는 ‘부도한 짓을 마음대로 저지른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른바 ‘부도한 짓’이란 곧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간범한다는 말입니다. 가사 그가 이 일을 한다 하더라도 무슨 분수를 어기는 죄가 있기에 억지로 부도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으로 보아 그의 뜻을 단적으로 알 만합니다. 겨울에 우레가 일어나는 변고가 생기는 것은 그 허물이 대신이 직책을 다하지 못한 데 있으니, 이는 여러 역사책에 천문(天文) 맡은 관리들이 자세하고 명백하게 적어놓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도리어 이 일을 가지고 거기에 대응시켜 자기의 죄를 면하려 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한 죄가 여기서 환히 드러났습니다. 이런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왕법(王法)을 밝히고 대의(大義)를 펼칠 수 있겠습니까. 대신(大臣)이란 나라의 주춧돌이며 임금의 팔다리인데, 기자헌은 이처럼 임금을 속이고 있으며 한효순도 이처럼 물러서서 핑계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랏일이 위급하기가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누구와 함께 환란을 진정시키고 사직을 안정시키시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기자헌을 속히 제거하시고 덕망있는 사람을 다시 정승으로 뽑으시고, 또 바른말과 정당한 논의를 주장하는 초야의 선비를 불러 대간에 두소서. 그리하신다면 어찌 나라의 영원한 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이구(李榘)·한보길(韓輔吉)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김제남이 반역을 꾀한 흉악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신하된 자로서는 응당 눈물을 씻고 역적을 토벌하기를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들 다투어가며 역적을 옹호하는 논의를 주장하여 임금을 무시하는 지경에 스스로 빠져들어가면서도 미혹하여 깨닫지 못한 채 이렇게 계속 해대는 것은, 실로 정인홍과 이이첨 등이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논의를 힘껏 주장하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논의를 함으로써 다른 날에 득세할 길만 찾을 뿐, 자신이 역적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니, 아, 슬픈 일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단지 역적을 토벌하려는 사람들을 제거하고자 하여 어떻게 하든 무너뜨릴 심산으로 기만하여 미혹시키고 선동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는 괴이한 언론들을 수없이 만들어냅니다. 그리하여 전하를 속일 수 있다는 계산하에서 온 세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고 심한 비방이 기어이 임금에게 돌아가게 하고난 후에야 마음에 흔쾌하게 여기니, 남인(南人)의 심지는 괴이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번에 여러 유생들이 잇달아 상소를 올려 화근을 속히 제거할 것을 모두 청하였는데, 대신은 남인들이 그 뒤를 논의하는 것이 두려워 감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삼사는 남인이 자신들의 말로를 헐뜯는 것이 두려워서 그저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의(大義)가 이미 제기되었으나 중지하게 되었고 국시(國是)가 거의 확정되는가 싶더니 도로 흐려지게 되었으니, 임금에게 있어서 남인은 가슴속에 앓고 있는 고질병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의정 한효순은 두 왕조의 원로로서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의리로 보아 응당 정성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할 것을 요청하고 죽고 사는 것을 그 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인의 괴수로서 그 논의를 굳이 고집하다가 사론이 장차 일어나리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병을 핑계대고 갑자기 들어가서 잇달아 글을 올려 한사코 체직되려 합니다. 전하께서 이미 유생들의 글이 잇달아 들어온다는 것으로 타이르고 그로 하여금 속히 나오게 하였으니 종묘 사직의 책임이 이미 자신에게 돌아간 것인데 그는 꿈적도 않으며 버티고 있으니 다시 나올 리가 없습니다. 신하된 사람으로서 나랏일이 심히 위급하기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보고도 꿈적도 하지 않으니 이런 짓을 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김세렴이 큰일을 교묘하게 피하고 일부러 시끄러운 단서를 일으킨 것도 이 무리들의 사주가 아니라고 기필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입니까. 김세렴은 바로 유희발(柳希發)의 사위이니 임금과 신하의 의리 말고도 또 인척의 친분까지 있습니다. 비록 당파를 옹호하려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전하를 완전히 등질 수야 있겠습니까. 아, 여러 유생의 글에서는 다 춘추의 의리를 인용하여 전하로 하여금 모자간의 사사로운 은정을 온전히 하게 하려고 하였으며, 온 나라의 신민들도 모두 서궁을 기척하고 있으니, 그 일은 높이 받들던 의식을 줄이고 그의 지위를 폄삭해서 원수처럼 끊어버리는 뜻을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남인의 무리는 상소문이 내려오지 않은 틈을 타서 서로 뜬소문을 퍼뜨려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니,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원소(原疏)를 보지 못한 터라 서로 말하기를 ‘치당(致堂)이 무후(武后)를 처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논의와 숙종이 장후(張后)에게 독약을 먹여 죽인 것과 같은 일이 오늘에 생겨나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대신·삼사·성균관의 선비들이 한결같이 물러서며 핑계대기만 하는 것이 다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여러 유생들의 상소문은 지금 모두 다 내려보냈지만 비상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야 어찌 우리 나라가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천자가 위에 계시는데 어찌 감히 갑자기 의로운 일을 행하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로 하여금 돈유하게 하소서. 그래도 끝까지 회피하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다면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한효순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니, 잡아다 가두고 임금을 저버린 죄를 따질 것이며, 대형의 목을 베어 모든 백성에게 보이고 남인들을 경고하여 감히 반역할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대신·삼사·육경·동서벽의 관리들을 불러 가부를 의정한 다음 즉시 예부에 글을 보내 화근을 근절시켜서 종묘사직을 안정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김제남이 반역을 꾀한 흉악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신하된 자로서는 응당 눈물을 씻고 역적을 토벌하기를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들 다투어가며 역적을 옹호하는 논의를 주장하여 임금을 무시하는 지경에 스스로 빠져들어가면서도 미혹하여 깨닫지 못한 채 이렇게 계속 해대는 것은, 실로 정인홍과 이이첨 등이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논의를 힘껏 주장하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논의를 함으로써 다른 날에 득세할 길만 찾을 뿐, 자신이 역적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니, 아, 슬픈 일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단지 역적을 토벌하려는 사람들을 제거하고자 하여 어떻게 하든 무너뜨릴 심산으로 기만하여 미혹시키고 선동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는 괴이한 언론들을 수없이 만들어냅니다. 그리하여 전하를 속일 수 있다는 계산하에서 온 세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고 심한 비방이 기어이 임금에게 돌아가게 하고난 후에야 마음에 흔쾌하게 여기니, 남인(南人)의 심지는 괴이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번에 여러 유생들이 잇달아 상소를 올려 화근을 속히 제거할 것을 모두 청하였는데, 대신은 남인들이 그 뒤를 논의하는 것이 두려워 감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삼사는 남인이 자신들의 말로를 헐뜯는 것이 두려워서 그저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의(大義)가 이미 제기되었으나 중지하게 되었고 국시(國是)가 거의 확정되는가 싶더니 도로 흐려지게 되었으니, 임금에게 있어서 남인은 가슴속에 앓고 있는 고질병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의정 한효순은 두 왕조의 원로로서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의리로 보아 응당 정성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할 것을 요청하고 죽고 사는 것을 그 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인의 괴수로서 그 논의를 굳이 고집하다가 사론이 장차 일어나리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병을 핑계대고 갑자기 들어가서 잇달아 글을 올려 한사코 체직되려 합니다. 전하께서 이미 유생들의 글이 잇달아 들어온다는 것으로 타이르고 그로 하여금 속히 나오게 하였으니 종묘 사직의 책임이 이미 자신에게 돌아간 것인데 그는 꿈적도 않으며 버티고 있으니 다시 나올 리가 없습니다. 신하된 사람으로서 나랏일이 심히 위급하기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보고도 꿈적도 하지 않으니 이런 짓을 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김세렴이 큰일을 교묘하게 피하고 일부러 시끄러운 단서를 일으킨 것도 이 무리들의 사주가 아니라고 기필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입니까. 김세렴은 바로 유희발(柳希發)의 사위이니 임금과 신하의 의리 말고도 또 인척의 친분까지 있습니다. 비록 당파를 옹호하려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전하를 완전히 등질 수야 있겠습니까.
아, 여러 유생의 글에서는 다 춘추의 의리를 인용하여 전하로 하여금 모자간의 사사로운 은정을 온전히 하게 하려고 하였으며, 온 나라의 신민들도 모두 서궁을 기척하고 있으니, 그 일은 높이 받들던 의식을 줄이고 그의 지위를 폄삭해서 원수처럼 끊어버리는 뜻을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남인의 무리는 상소문이 내려오지 않은 틈을 타서 서로 뜬소문을 퍼뜨려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니,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원소(原疏)를 보지 못한 터라 서로 말하기를 ‘치당(致堂)이 무후(武后)를 처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논의와 숙종이 장후(張后)에게 독약을 먹여 죽인 것과 같은 일이 오늘에 생겨나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대신·삼사·성균관의 선비들이 한결같이 물러서며 핑계대기만 하는 것이 다 여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여러 유생들의 상소문은 지금 모두 다 내려보냈지만 비상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야 어찌 우리 나라가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천자가 위에 계시는데 어찌 감히 갑자기 의로운 일을 행하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로 하여금 돈유하게 하소서. 그래도 끝까지 회피하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다면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한효순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니, 잡아다 가두고 임금을 저버린 죄를 따질 것이며, 대형의 목을 베어 모든 백성에게 보이고 남인들을 경고하여 감히 반역할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대신·삼사·육경·동서벽의 관리들을 불러 가부를 의정한 다음 즉시 예부에 글을 보내 화근을 근절시켜서 종묘사직을 안정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대사헌 이병(李覮), 집의 임건(林健), 장령 한영(韓詠)·강수(姜𢢝), 지평 김호(金昈)·정양윤(鄭良胤), 대사간 윤인(尹訒), 사간 남이준(南以俊),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박종주(朴宗胄)·이강(李茳)이 합사하여 아뢰기를, "빈청(賓廳)은 상께서 정승들을 맞아들여 정사를 묻는 곳이니 반드시 계품할 일이 있어야만 여기에 모여서 의논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그리고 여러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의정부에 내려졌으니, 대신들은 응당 의정부에 가서 여러 관리들과 함께 널리 의논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대신들이 빈청에 와서 이 일을 의논하려는 것이 마치 계품할 일과 관계가 있는 듯이 하니, 사체(事體)에 매우 온당치 않습니다. 대신들로 하여금 도당(都堂)에 모여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빈청(賓廳)은 상께서 정승들을 맞아들여 정사를 묻는 곳이니 반드시 계품할 일이 있어야만 여기에 모여서 의논하는 것이 규례입니다. 그리고 여러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의정부에 내려졌으니, 대신들은 응당 의정부에 가서 여러 관리들과 함께 널리 의논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대신들이 빈청에 와서 이 일을 의논하려는 것이 마치 계품할 일과 관계가 있는 듯이 하니, 사체(事體)에 매우 온당치 않습니다. 대신들로 하여금 도당(都堂)에 모여 의논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의 차자에 답하였다. "겨울에 우레가 친 변고는 실로 내가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지 어찌 대신 때문이겠는가.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도록 하라."
"겨울에 우레가 친 변고는 실로 내가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지 어찌 대신 때문이겠는가.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도록 하라."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이 헌의하였다. "신은 8월 9일에 중풍(中風)이 재발하여 몸은 죽지 않았으나 정신은 이미 탈진된 상태입니다. 직접 뵙지도 못하고 멀리에서 분수에 입각하여 죽음을 결심한 지도 지금 거의 반년입니다만 아직 병석에 있습니다. 공무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해서 대답하여 올리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이 문제는 국가의 대사인만큼 남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병들었다고 핑계대면서 잠자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를 위하여 이 계획을 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임금께 요순의 도리가 아니면 진술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옛날에 있었던 명훈(明訓)입니다. 순임금은 불행하여 완악한 아비와 사나운 어미가 항상 순임금을 죽이고자 하여 우물을 파게 하고는 흙으로 덮었으며 창고 지붕을 수리하게 하고는 밑에서 불을 질렀으니 그 위급함이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그래도 순임금은 울부짖으면서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를 사모할 뿐, 부모에게 옳지 않은 점이 있다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진실로 아비가 설사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춘추(春秋)》의 의리에는 자식이 어미를 원수로 대한다는 뜻이 없습니다. 더구나 ‘급(伋)의 처가 되었다면 백(白)의 어미가 된다.’ 하였습니다051) 이제 마땅히 효도로 나라를 다스려야 온 나라가 앞으로 점차 감화될 가망이 있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해서 전하에게 이르게 한단 말입니까. 자식된 도리는 능히 화평함으로 효도를 다하여 노여움을 돌려 사랑하도록 만든 우순의 덕을 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신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註 051] ‘급(伋)의 처가 되었다면 백(白)의 어미가 된다.’ 하였습니다 : 급(伋)은 자사(子思)의 이름. 자사의 전처가 죽었는데 그의 소생 자상(子上)에게 상례를 갖추지 못하게 했다. 자사의 문인들이 그 이유를 묻자 자사가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
"신은 8월 9일에 중풍(中風)이 재발하여 몸은 죽지 않았으나 정신은 이미 탈진된 상태입니다. 직접 뵙지도 못하고 멀리에서 분수에 입각하여 죽음을 결심한 지도 지금 거의 반년입니다만 아직 병석에 있습니다. 공무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해서 대답하여 올리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이 문제는 국가의 대사인만큼 남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병들었다고 핑계대면서 잠자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를 위하여 이 계획을 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임금께 요순의 도리가 아니면 진술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옛날에 있었던 명훈(明訓)입니다. 순임금은 불행하여 완악한 아비와 사나운 어미가 항상 순임금을 죽이고자 하여 우물을 파게 하고는 흙으로 덮었으며 창고 지붕을 수리하게 하고는 밑에서 불을 질렀으니 그 위급함이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그래도 순임금은 울부짖으면서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를 사모할 뿐, 부모에게 옳지 않은 점이 있다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진실로 아비가 설사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춘추(春秋)》의 의리에는 자식이 어미를 원수로 대한다는 뜻이 없습니다. 더구나 ‘급(伋)의 처가 되었다면 백(白)의 어미가 된다.’ 하였습니다051) 이제 마땅히 효도로 나라를 다스려야 온 나라가 앞으로 점차 감화될 가망이 있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해서 전하에게 이르게 한단 말입니까. 자식된 도리는 능히 화평함으로 효도를 다하여 노여움을 돌려 사랑하도록 만든 우순의 덕을 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신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좌의정 정인홍이 의정부에 의견을 보내기를, "재상 여러분이 중대한 논의를 가지고 먼 곳까지 와서 별것 아닌 나에게 의견을 물으니 감격스러운 일이오만 늙은이의 말을 어찌 시행할 수 있겠소. 신하에게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의리가 있고 모자지간에는 바꿀 수 없는 명분이 있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그 도리를 다한 뒤에야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삼가 여러 대신들께서는 조정의 사대부들에게 널리 물어서 최대한으로 옳은 점을 취하여 거행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늙은 나의 구구한 소망입니다. 나머지는 낭관이 구두로 진술할 것이외다." 하고, 또 이이첨에게도 글을 보내기를,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신하의 큰 의리입니다. 그러므로 《춘추(春秋)》에는 애강(哀姜)과 문강(文姜)이 도망갔다고 써서 가까이 여기지 않았으며, 노(魯)나라에 간 것도 오히려 도망갔다고 하였으니, 아주 심하게 관계를 끊은 것입니다. 그 후에 한 광무(漢光武)가 고 황후(高皇后)를 원묘(園廟)로 삭출시켰으며, 한(漢)나라 조정의 신하들은 장릉(章陵)에다 두씨(竇氏)를 부장(附葬)하지 말기를 청하였으므로 호씨(胡氏)가 ‘장간지(張柬之) 등이 죄는 토벌하지 않고 도리어 존호를 올렸다.’고 기롱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의리가 있는 곳엔 예를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역을 도모한 자를 반드시 처벌하는 것은 역시 《춘추》의 의리이니 역적 음모에 참여하고 저주를 한 것은 반역을 도모한 것 중에서 가장 심한 것입니다. 결국 점차적으로 개선되게 하려는 노력이 사나운 어미와 오만한 동생에게 미더움을 받지 못함에 큰 불효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던 날 한 궁전에서 거처할 수 없게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온 나라의 신민이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자들도 포용해 주는 것이 임금이 가져야 하는 큰 도량인 것입니다. 군신(君臣)과 모자(母子)의 명분과 의리는 천성에서 나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왕(寧王)같은 성인과 태공(太公)같은 현인이 3천 8백 명의 대중과 함께 잔적(殘賊)으로써 일개인이 되어버린 은 나라 주(紂)를 주벌하는 때에 백이와 숙제만이 유독 나서서 말을 멈추어 세우고 간하면서 흔들리지 않았으니, 그것은 단지 이 명분과 의리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그를 칭송하여 ‘인(仁)을 구하여 인을 얻었다.’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인 것입니다. 성명께서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신하들과 같지 않은 점도 여기에 있으며, 논의하는 사람들이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기면서 간쟁하는 것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애강(哀姜)과 문강(文姜)에 대하여 도망쳤다고 쓴 것 외에 특별히 죄를 더 준 말이 없었고, 광무 황제가 고 황후에 대하여 종묘에는 모시지 않았으나 원릉에는 모시게 하였으며, 화제(和帝)는 부장하지 말자는 조정 신하들의 청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가지고 말한다면 성명께서도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그에 맞는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 이른바 분조(分朝)와 분부(分府)와 분원(分院)의 관리들과 모든 관리들이 아침 문안하는 것 등 일반적인 모든 절차를 한결같이 두 조정과 두 임금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보잘것없는 나의 소견으로는 이와 같은 규례를 일제히 폐지해서 두 조정과 두 임금이 없게 함으로써 온 나라 사람에게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다는 의리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만약 만에 하나라도 막지 않아서 이에 해를 입었다는 염려를 가진다면 한두 명의 충실한 신하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서궁을 호위하게 하면서 드나드는 것을 엄하게 금하고 외부와의 접촉할 길을 막되 한결같이 대내(大內)에서처럼 한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홀어미로 지내는 한 부인은 다만 나쁜 사람들을 포용하는 중의 일개인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의 일생을 잘 보전할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은 공자가 ‘도망쳤다.’고만 쓴 것과 광무 황제가 고 황후를 종묘에서 내쫓고 왕릉의 사당에서는 제사지내게 한 것과 화제가 조정 신하들의 요청을 듣지 않은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다같이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민으로서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의리와 나쁜 사람까지도 널리 포용하는 전하의 덕행이 병행되어 서로 어긋나지 않고 광대한 천지 사이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신하인 저는 먼 지방에 물러가 있기 때문에 사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론은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소활하고 어리석은 소견만으로 이같이 정성을 다하여 피력하는 것이니, 여러분들이 채택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재상 여러분이 중대한 논의를 가지고 먼 곳까지 와서 별것 아닌 나에게 의견을 물으니 감격스러운 일이오만 늙은이의 말을 어찌 시행할 수 있겠소. 신하에게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의리가 있고 모자지간에는 바꿀 수 없는 명분이 있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그 도리를 다한 뒤에야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삼가 여러 대신들께서는 조정의 사대부들에게 널리 물어서 최대한으로 옳은 점을 취하여 거행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늙은 나의 구구한 소망입니다. 나머지는 낭관이 구두로 진술할 것이외다."
하고, 또 이이첨에게도 글을 보내기를,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신하의 큰 의리입니다. 그러므로 《춘추(春秋)》에는 애강(哀姜)과 문강(文姜)이 도망갔다고 써서 가까이 여기지 않았으며, 노(魯)나라에 간 것도 오히려 도망갔다고 하였으니, 아주 심하게 관계를 끊은 것입니다. 그 후에 한 광무(漢光武)가 고 황후(高皇后)를 원묘(園廟)로 삭출시켰으며, 한(漢)나라 조정의 신하들은 장릉(章陵)에다 두씨(竇氏)를 부장(附葬)하지 말기를 청하였으므로 호씨(胡氏)가 ‘장간지(張柬之) 등이 죄는 토벌하지 않고 도리어 존호를 올렸다.’고 기롱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의리가 있는 곳엔 예를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역을 도모한 자를 반드시 처벌하는 것은 역시 《춘추》의 의리이니 역적 음모에 참여하고 저주를 한 것은 반역을 도모한 것 중에서 가장 심한 것입니다. 결국 점차적으로 개선되게 하려는 노력이 사나운 어미와 오만한 동생에게 미더움을 받지 못함에 큰 불효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던 날 한 궁전에서 거처할 수 없게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온 나라의 신민이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자들도 포용해 주는 것이 임금이 가져야 하는 큰 도량인 것입니다. 군신(君臣)과 모자(母子)의 명분과 의리는 천성에서 나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왕(寧王)같은 성인과 태공(太公)같은 현인이 3천 8백 명의 대중과 함께 잔적(殘賊)으로써 일개인이 되어버린 은 나라 주(紂)를 주벌하는 때에 백이와 숙제만이 유독 나서서 말을 멈추어 세우고 간하면서 흔들리지 않았으니, 그것은 단지 이 명분과 의리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그를 칭송하여 ‘인(仁)을 구하여 인을 얻었다.’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인 것입니다. 성명께서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신하들과 같지 않은 점도 여기에 있으며, 논의하는 사람들이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기면서 간쟁하는 것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애강(哀姜)과 문강(文姜)에 대하여 도망쳤다고 쓴 것 외에 특별히 죄를 더 준 말이 없었고, 광무 황제가 고 황후에 대하여 종묘에는 모시지 않았으나 원릉에는 모시게 하였으며, 화제(和帝)는 부장하지 말자는 조정 신하들의 청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가지고 말한다면 성명께서도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그에 맞는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 이른바 분조(分朝)와 분부(分府)와 분원(分院)의 관리들과 모든 관리들이 아침 문안하는 것 등 일반적인 모든 절차를 한결같이 두 조정과 두 임금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보잘것없는 나의 소견으로는 이와 같은 규례를 일제히 폐지해서 두 조정과 두 임금이 없게 함으로써 온 나라 사람에게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다는 의리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만약 만에 하나라도 막지 않아서 이에 해를 입었다는 염려를 가진다면 한두 명의 충실한 신하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서궁을 호위하게 하면서 드나드는 것을 엄하게 금하고 외부와의 접촉할 길을 막되 한결같이 대내(大內)에서처럼 한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홀어미로 지내는 한 부인은 다만 나쁜 사람들을 포용하는 중의 일개인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의 일생을 잘 보전할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은 공자가 ‘도망쳤다.’고만 쓴 것과 광무 황제가 고 황후를 종묘에서 내쫓고 왕릉의 사당에서는 제사지내게 한 것과 화제가 조정 신하들의 요청을 듣지 않은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다같이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민으로서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의리와 나쁜 사람까지도 널리 포용하는 전하의 덕행이 병행되어 서로 어긋나지 않고 광대한 천지 사이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신하인 저는 먼 지방에 물러가 있기 때문에 사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론은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소활하고 어리석은 소견만으로 이같이 정성을 다하여 피력하는 것이니, 여러분들이 채택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11월 25일 병술
죄인 김세렴을 가도사로 하여금 압송하라고 전교하였다.
영상의 차자를 봉해서 삼사에 내리라고 전교하였다.
관학 유생인 김상하(金尙夏)·김극수(金克修)·최상질(崔尙質)·유진정(柳震楨)·박희(朴憘)·이전방(李傳芳)·이홍순(李弘詢)·유창길(柳昌吉)·조후겸(曺厚謙)·이책(李江)·최광필(崔光弼)·이선철(李善徹)·조원규(趙元規)·김대진(金大進)·하인준(河仁俊)·정기(鄭淇)·신경업(辛敬業)·유의남(柳義男)·이건원(李乾元)·나만기(羅萬紀)·채유제(蔡有濟)·여응백(呂應伯)·이덕무(李德茂)·정희립(鄭希立)·임기지(任器之)·오운(吳霣)·배홍우(裵弘祐)·여후망(呂後望)·정성(鄭晟)·민심(閔葉)·정미(鄭渼)·정준(丁駿)·신홍업(辛弘業)·신경함(申景涵)·이광업(李光業)·이영구(李榮久)·조익형(趙益亨)·이정(李綎)·박훤(朴箮)·민설(閔渫)·민준(閔濬)·이진서(李震瑞)·고대허(高大虛)·김경원(金慶遠)·민성(閔娍)·송대정(宋大庭)·전유흠(全有欽)·배경생(裵慶生)·서긍(徐兢)·김주국(金柱國)·송사성(宋思誠)·최흘(崔屹)·금대아(琴大雅)·남길(南佶)·서상안(徐尙顔)·한지업(韓志業)·금대진(琴大進)·신환(申渙)·김치우(金致禹)·김탁(金鐸)·박준영(朴俊英)·윤사은(尹事殷)·박유빈(朴由彬)·한성(韓晟)·이발(李渤)·황정필(黃庭弼)·김첩(金穕)·마계변(馬繼卞)·장응한(張應翰)·김윤겸(金允兼)·김홍원(金弘愿)·이훤(李箮)·이광계(李光啓)·최준(崔準)·한영(韓瑛)·남순(南恂)·임취(任悍)·임원(任楥)·김경(金璥)·양응징(梁應澄)·박빈(朴彬)·이호겸(李好謙)·남숙(南淑)·권이급(權以伋)·이광홍(李光弘)·송석우(宋錫祐)·김창(金暢)·권덕여(權德輿)·선방호(宣方虎)·정응선(鄭應善)·이정관(李廷冠)·임징지(任徵之)·정주한(鄭周翰)·전홍량(全弘諒)·이송수(李松壽)·윤지임(尹之任)·전시헌(全時獻)·윤진(尹震)·정시현(鄭時賢)·이성립(李誠立)·김옥장(金玉章)·오행철(吳行哲)·한천정(韓天挺)·정사길(鄭士吉)·한의방(韓義方)·강식(康軾)·방여징(方汝澄)·강철(康轍)·박용빈(朴用賓)·박률(朴嵂)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서궁의 죄악은 말하기에도 참혹합니다. 요사한 무당을 신봉하여 의인 왕후의 능묘에 저주를 행하라고 요구한 결과 썩은 뼈를 능 위에 묻어 욕됨이 지하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살점에다가 왕후의 휘를 써가지고 까마귀와 솔개에게 나누어주어 먹게 한 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아들 이의(李㼁)를 귀하게 만들려고 억누르기를 도모하여 여우 뼈와 나무로 만든 인형을 궁궐 안 각처에다 묻었으며 흉악한 소경을 은밀히 끌어들여 요사스런 경문을 외우게 한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선왕이 병이 났을 때 밖으로는 최영경·홍로와 결탁하여 형세로 서로 의탁하였으며 은밀히 역적 이진(李珒)과 약속하여 왕위를 그에게 물려주었다가 이의가 성장하기를 기다려 넘겨주려고 한 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남몰래 김제남을 사주하여 대군집의 종 1천여 명을 단속하여 은밀히 각 부서(部署)에 배치해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활용하게 한 것이 네 번째 죄입니다. 좌의정 정인홍이 최영경을 공격한 상소가 들어오자 감히 간악한 마음을 먹고 기회를 틈타 세자를 바꾸려고 선왕에게 울면서 고하여 엄한 하교를 누차 내리게 해서 나라의 근본이 위태로울 뻔한 것이 다섯 번째 죄입니다. 선왕이 세상을 하직하던 날에 유언을 조작하여 자기 아들인 이의를 여러 재상에게 부탁하여 보호하게 한 것이 여섯 번째 죄입니다. 성상이 임어하신 후에는 무당에게 저주를 행하게 해서 여러 해 동안 계속하여 닭·개·양·돼지 등의 짐승을 대궐 뜰에다 버리지 않는 날이 없는 등 기필코 성상을 해치고야 말겠다는 심산이었으니, 이것이 일곱 번째 죄입니다. 김제남을 사주하여 불평 분자들과 결탁하고 무사들과 짜서 나라에 틈이 생길 때를 기다렸다가 국정(國政)을 옮기려고 하였으니, 이것이 여덟 번째 죄입니다. 발칙한 말을 지어내어 전하를 속이고 그의 족속들에게 말을 퍼뜨렸으며 심지어는 반역의 잔당으로 하여금 흉측한 격문에 써넣게 하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아홉 번째 죄입니다. 내탕고의 돈을 많이 꺼내서 서양갑에게 두둑하게 주어 왜국에 가서 결탁하여 외원(外援)이 되게 하였으며 이의를 세운 뒤에는 중국을 배반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열 번째 죄입니다. 이 열 가지나 되는 큰 죄를 지었으니 여후(呂后)나 무후(武后)의 죄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는 아직도 어미의 도리로 대우하고 있으며 온 나라에서도 국모로 받들고 있으니, 순(舜)이나 문왕(文王)과 같은 전하의 효성이야 지극하다 하겠지만 종묘 사직을 안정시켰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온 나라에서 떠받드는 정성은 예라고 하더라도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윤리가 막히고 간사한 말들이 유행하여 우리 나라 수천리에 절반 이상이 전하를 반대할 군사이므로 위급한 상황이 금방이라도 닥칠 것만 같은데,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은혜를 보전하려 하시고 신하들은 아침 문안을 폐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삼강(三綱)은 두절되고 구법(九法)은 문란하여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러 유생들의 상소가 내려가서 대책이 곧 나올 것이지만, 신들은 삼가 바라건대 《춘추(春秋)》의 필법으로 온 나라에다 정의를 알리고 서궁의 존호(尊號)를 강등시키고 분조(分朝)를 철거하고 시위하는 일과 공물 바치는 것과 조회하는 것을 일체 중지하소서. 그리고 전하께서는 단지 음식만을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여생을 잘 마치게 하소서. 그리고 그 동안의 전후 곡절을 적어서 예부에 정문(呈文)을 보내 윤이(尹彝)·이초(李初)가 참소하던 길을 근절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급무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조정의 사대부를 불러 좋은 의견에 따라 처리해서 속히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러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기자헌은 영의정이 되어 국정을 맡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큰 변란을 당하여는 의리상 정성을 다하여 토죄하기를 청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는 않고 음흉하게 다른 속셈을 가지고 역적의 괴수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또 조정의 논의를 널리 수합하려 들지는 않고 도리어 흉측한 차자만 올리고 있으니, 그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만합니다. 기자헌을 처벌하지 않으면 국시(國是)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왕법을 내리셔서 모든 관료들을 경계하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니 나라를 위한 정성을 알 만하다. 나는 불행이 심하여 이같은 변란을 만났다만 귀로 차마 들을 수도 없고 어찌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대신이 비록 소회를 진달하였다고는 하나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고,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서궁의 죄악은 말하기에도 참혹합니다. 요사한 무당을 신봉하여 의인 왕후의 능묘에 저주를 행하라고 요구한 결과 썩은 뼈를 능 위에 묻어 욕됨이 지하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며 살점에다가 왕후의 휘를 써가지고 까마귀와 솔개에게 나누어주어 먹게 한 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아들 이의(李㼁)를 귀하게 만들려고 억누르기를 도모하여 여우 뼈와 나무로 만든 인형을 궁궐 안 각처에다 묻었으며 흉악한 소경을 은밀히 끌어들여 요사스런 경문을 외우게 한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선왕이 병이 났을 때 밖으로는 최영경·홍로와 결탁하여 형세로 서로 의탁하였으며 은밀히 역적 이진(李珒)과 약속하여 왕위를 그에게 물려주었다가 이의가 성장하기를 기다려 넘겨주려고 한 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남몰래 김제남을 사주하여 대군집의 종 1천여 명을 단속하여 은밀히 각 부서(部署)에 배치해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활용하게 한 것이 네 번째 죄입니다. 좌의정 정인홍이 최영경을 공격한 상소가 들어오자 감히 간악한 마음을 먹고 기회를 틈타 세자를 바꾸려고 선왕에게 울면서 고하여 엄한 하교를 누차 내리게 해서 나라의 근본이 위태로울 뻔한 것이 다섯 번째 죄입니다. 선왕이 세상을 하직하던 날에 유언을 조작하여 자기 아들인 이의를 여러 재상에게 부탁하여 보호하게 한 것이 여섯 번째 죄입니다. 성상이 임어하신 후에는 무당에게 저주를 행하게 해서 여러 해 동안 계속하여 닭·개·양·돼지 등의 짐승을 대궐 뜰에다 버리지 않는 날이 없는 등 기필코 성상을 해치고야 말겠다는 심산이었으니, 이것이 일곱 번째 죄입니다. 김제남을 사주하여 불평 분자들과 결탁하고 무사들과 짜서 나라에 틈이 생길 때를 기다렸다가 국정(國政)을 옮기려고 하였으니, 이것이 여덟 번째 죄입니다. 발칙한 말을 지어내어 전하를 속이고 그의 족속들에게 말을 퍼뜨렸으며 심지어는 반역의 잔당으로 하여금 흉측한 격문에 써넣게 하기까지 하였으니, 이것이 아홉 번째 죄입니다. 내탕고의 돈을 많이 꺼내서 서양갑에게 두둑하게 주어 왜국에 가서 결탁하여 외원(外援)이 되게 하였으며 이의를 세운 뒤에는 중국을 배반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열 번째 죄입니다.
이 열 가지나 되는 큰 죄를 지었으니 여후(呂后)나 무후(武后)의 죄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는 아직도 어미의 도리로 대우하고 있으며 온 나라에서도 국모로 받들고 있으니, 순(舜)이나 문왕(文王)과 같은 전하의 효성이야 지극하다 하겠지만 종묘 사직을 안정시켰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온 나라에서 떠받드는 정성은 예라고 하더라도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윤리가 막히고 간사한 말들이 유행하여 우리 나라 수천리에 절반 이상이 전하를 반대할 군사이므로 위급한 상황이 금방이라도 닥칠 것만 같은데, 전하께서는 사사로운 은혜를 보전하려 하시고 신하들은 아침 문안을 폐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삼강(三綱)은 두절되고 구법(九法)은 문란하여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러 유생들의 상소가 내려가서 대책이 곧 나올 것이지만, 신들은 삼가 바라건대 《춘추(春秋)》의 필법으로 온 나라에다 정의를 알리고 서궁의 존호(尊號)를 강등시키고 분조(分朝)를 철거하고 시위하는 일과 공물 바치는 것과 조회하는 것을 일체 중지하소서. 그리고 전하께서는 단지 음식만을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여생을 잘 마치게 하소서. 그리고 그 동안의 전후 곡절을 적어서 예부에 정문(呈文)을 보내 윤이(尹彝)·이초(李初)가 참소하던 길을 근절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급무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조정의 사대부를 불러 좋은 의견에 따라 처리해서 속히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러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기자헌은 영의정이 되어 국정을 맡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큰 변란을 당하여는 의리상 정성을 다하여 토죄하기를 청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는 않고 음흉하게 다른 속셈을 가지고 역적의 괴수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또 조정의 논의를 널리 수합하려 들지는 않고 도리어 흉측한 차자만 올리고 있으니, 그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만합니다. 기자헌을 처벌하지 않으면 국시(國是)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왕법을 내리셔서 모든 관료들을 경계하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니 나라를 위한 정성을 알 만하다. 나는 불행이 심하여 이같은 변란을 만났다만 귀로 차마 들을 수도 없고 어찌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대신이 비록 소회를 진달하였다고는 하나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고,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김정량(金廷亮)·송영서(宋永緖)·김서룡(金瑞龍)·이구(李榘) 등이 상소하였는데, 봉하여 의정부에 내렸다.
영의정 기자헌이 상차하여 훈련 도감 제조를 체직시켜 주기를 청하였다.
전교하기를, "장흥 부사(長興府使) 권여경(權餘慶)의 딸을 숙의(淑儀)로 결정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가례청의 감역관은 전에 맡았던 관원으로 찰임(察任)하게 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하였다.
"장흥 부사(長興府使) 권여경(權餘慶)의 딸을 숙의(淑儀)로 결정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가례청의 감역관은 전에 맡았던 관원으로 찰임(察任)하게 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하였다.
양사가 아뢰었던 승전을 받들기 위한 단자를 가지고 전교하였다. "대신들이 응당 알고 있을 것이니 승전을 받들지 말도록 하라."
"대신들이 응당 알고 있을 것이니 승전을 받들지 말도록 하라."
대사헌 이병(李覺), 집의 임건(林健), 장령 강수(姜襚)·한영(韓詠), 지평 정양윤(鄭良胤)·김호(金昈), 대사간 윤인(尹訒), 사간 남이준(南以俊),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박종주(朴宗胄)·이강(李茳)이 합사하여 아뢰기를, "영의정 기자헌은 성품이 음흉하고 마음이 간사하며 행동이 짐승같아서 삼강 오상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인척의 세력을 빙자하여 정승 자리를 훔쳐 차지하고 있으면서 추악하고 음험한 행동을 평소의 잘하는 일로 삼았습니다. 사람을 해치고 사물을 해롭게 한 일이 한도 끝도 없었으며 벼슬을 얻기 전에는 얻기 위하여 고심하고 얻고 나서는 잃을까 고심하여 못하는 짓이 없이 하면서도, 조종과 선왕의 무함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변론하려 하지 않았으며 흉측한 격문을 화살에 달아 투척하는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임금을 버리고 도망쳤으니, 신하로서의 의리가 여기에 이르러 완전히 소멸된 것입니다. 그러니 수많은 죄악을 들자면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김제남이 변란을 꾸미고 서궁이 음모에 가담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공초에서 모두 드러났으니, 이 나라에 사는 백성들치고 어느 누가 분개해 하지 않겠습니까. 큰 의리가 어두워지고 공정한 논의가 막혀버린 이런 때에 다행히 시골 유생들이 충성과 용기로 떨치고 일어나 잇달아 호소하는 상소를 올려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나라의 주춧돌과 같은 대신이 조복을 갖추어 입고 의정부에 앉아서 모든 관리들을 모아 공정한 논의를 널리 받아들여 비상한 변고를 처리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환란을 멈추게 함으로써, 위로는 종묘 사직을 편안히 하고 임금을 보좌하며 아래로는 신하의 직책을 다하고 사람의 윤리를 세워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어물어물 형세만 바라보면서 뒷날의 복을 받으려고만 꾀하고 있습니다. 유생들의 글이 한번 내려오자 굳이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해조가 가서 의논하자 ‘자기의 직분을 넘어서서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는 무도한 짓을 제멋대로 하는 죄를 범할까봐 두렵다.’라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유생의 글을 다시 의정부로 내려보내자, 자기 혼자 먼저 의견을 들여 역적을 옹호하는 도적들을 위한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또 어제는 문안하러 들어온 모든 관리들을 인하여 대궐 뜰에서 강제로 의견을 종합하려고 하였는데 마치 지시를 받고 여론을 결단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더욱 해괴합니다. 신들이 그 차자를 보건대 그 안에 ‘아무개가 서궁을 멋대로 폐위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신하된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역적을 처벌할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과연 담당하려 하겠습니까. 먼저 간사한 의견을 전하에게 드리고 요사스런 무리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자기 세력을 돕게 하였으니, 그가 제 마음대로 한 일이란 역적을 옹호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계축년간에 여러 대신들이 글을 올릴 때 신도 참가하여 「아비가 비록 사랑하지 않더라도……」라는 등의 말을 하였으니 전후의 논의를 달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덕형 등이 역적을 옹호하고 임금을 위협하는 논의였는데, 기자헌이 아직도 그릇된 소견을 고집하면서 임금을 등지는 죄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으니, 그가 역적을 옹호하는 데서는 달라지지 않고 임금을 섬기는 데서만 달라진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또 말하기를 ‘몇 해 전에 이원익이 견책을 당하였을 때 삼사가 말하기를 「조정에서는 본래 이런 마음이 없었는데 이원익이 노망하여 함부로 말함으로써 악명을 전하에게 돌렸다.」고 했다.’ 하였는데, 이것은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로 하여금 끝까지 은혜를 온전히 하여 어미를 사적으로 봉양하게 하려 했던 것이 원래 여러 신하들의 의도였으나, 그뒤에 여러 역적들이 서궁을 좋은 기화로 삼고 변란을 계속 일으켰으므로 화근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오늘의 사태가 이전과 같지 않은 점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은밀히 이원익을 도우면서 도리어 그때 삼사가 한 말을 증거로 하여 저지시키려 하였으니, 그의 계책이 교활하다고 하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일찍이 선조(先朝) 때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보았는데 장구령은 태자를 바꾸려할 때를 당하여 신은 감히 분부를 받들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당 나라 현종이 태자 이영(李瑛)을 폐출할 때의 일입니다. 오늘날에 대비(對比)할 일이 무엇이 있기에 감히 밑도끝도없는 말을 지어내어 임금을 농락한단 말입니까. 그가 전혀 근사하지도 않은 말을 끌어다가 은연중에 자신을 내세웠으니 그 마음 역시 몹시 패독스럽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모든 신하가 신(臣) 자를 쓰고 절하였으니 만약 바꾼다면 이것은 사람에게 반역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였는데, 참으로 이 말과 같다면 무씨(武氏)의 조정에서 장간지(張柬之) 등이 원래 신으로 자처하였지만 무후를 상양궁(上陽宮)으로 옮긴 뒤에도 과연 신하의 도리로 섬겼단 말입니까. 남에게 역적을 가르친다는 말도 실지로 자기 스스로 역적질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강씨와 무씨의 일을 오늘날과 비교할 때 과연 모두가 유사한지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강씨는 노나라 환공을 시해하는 데 참여하였으므로 《춘추(春秋)》에서는 강씨라고 쓰지 않는 것으로 단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무후는 임금의 어미를 살해하고 황제를 쫓아낸 다음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으므로 호씨는 말하기를 ‘장간지 등이 그의 죄를 따져서 폐출시킨 다음 사형에 처했더라도 중종(中宗)은 참견하지 못했을 것인데 대의를 내세워 죄인을 토벌하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지금 서궁은 내외로 결탁하여 반역을 꾀한 정상이 수없이 드러나 임금을 죽이는 데 참여했던 강씨보다도 심하고, 궁중에서 저주를 행하여 성상을 해치려고 모의한 것은 임금을 축출한 것보다도 더 심하며, 선후(先后)를 억누르려고 능침에까지 흉악한 짓을 감행한 화변은 임금의 모친을 살해한 것보다도 더 참혹합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도리어 같지 않다고 주장하려 하고 있으니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진나라 혜제 때의 양 태후의 일은 망발인 듯하다.’ 하였는데, 여러 유생들의 글은 성상으로 하여금 모자간의 은혜를 온전하게 하려는 의도로 장화(張華)가 한나라 성제 때 조 태후의 전례를 든 것을 인용하여 대비를 폐출시키려 한 것일 뿐, 처음부터 오늘날의 일을 양 태후에게 비교하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동양(董養)의 의도는 양 태후가 애매하게 내쫓겼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 대궐 안에서 일어난 변고도 애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은 상소문에다 인용도 하지 않은 말을 첨가하여 감히 임금을 욕되게 하였으며, 끝에 가서는 《강목(綱目)》에 있는 말과 진덕수의 말을 인용하여 위협하고 미혹시키기를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으니, 임금을 배반하고 역적을 옹호한 그의 마음이 여기에 이르러 더욱 드러났습니다. 또 말하기를 ‘장 황후(張皇后)에 대하여 주희는 이보국(李輔國)이 그를 죽였다고 특별히 썼고, 안진경은 조정에 돌아온 적이 없었으며 양관(楊綰)도 언급한 일이 없었다.’ 하였는데, 《당서(唐書)》를 살피건대 숙종(肅宗) 때 장 황후가 월왕을 세우려고 음모할 때에 보국은 군사를 거느리고 태자를 호위하고 장 황후를 별전에 가두었으며, 대종(代宗)이 왕위에 오르자 여러 신하들이 황제에게 보고하여 서인으로 만든 다음 죽게 하였습니다. 《강목(綱目)》을 편찬할 때에는 특별히 보국을 미워하여 그렇게 쓴 것이고 장 황후를 용서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본전을 상고하건대, 양관은 숙종으로부터 덕종에 이르기까지 중서 사인(中書舍人), 예부 시랑(禮部侍郞), 이부 시랑(吏部侍郞)으로 조정에 있었습니다. 진경은 대종 때에 이주 자사(利州刺史)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형남 절도사(荊南節度使)로 임명되었으나 가지 않았다가 상서우승(尙書右丞)으로 고쳐 임명되었으니, 그가 조정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에 만약 다른 의논을 제기하였었다면 사관(史官)이 반드시 적었을 것인데 역사에 적은 것이 없으니 두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서 간쟁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에 근거하여 알 만합니다. 자헌이 1천 년이 지난 뒤에 장 황후를 옹호하려 하는 마음은 바로 서궁을 옹호하려는 계책입니다. 또 말하기를 ‘염 황후(閻皇后)가 처음에는 황제의 어미를 죽였고 중간에는 황제를 내쫓고 북향후를 세웠으며 마지막에는 또 다른 사람을 세우려 하였는데 사마광(司馬光)은 주거(周擧)가 이합(李郃)에게 한 말을 인용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이합이 글을 올려 제의하자 순제가 염 황후에게 조회하였다. 그때 주거의 말에 대하여 죄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 의견을 따랐으니 역시 칭찬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염씨가 갇혔을 때 진선(陳禪)이 내쫓을 것을 요청하자 온 조정이 그 의견을 따랐는데 주거의 의견으로 인하여 쫓겨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염 황후는 어리고 약한 아들을 내세우려고 욕심을 내었으나 계책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실패하였을 뿐이고, 오랫동안 음모하였거나 요사스런 짓을 하고 저주를 행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덕수는 말하기를 ‘왕후가 정사에 간섭하고 외가(外家)에서 권력을 잡는 것은 옛날 어진 임금의 좋은 법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어찌 깊은 뜻이 없겠습니까. 기자헌은 감히 그 실지 사실을 덮어놓고 주거의 말만 들어서 비교하려 하였으니, 여러 신하를 데리고 서궁에 조회하는 그 뜻이 여기에서 또 드러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너무 빨리 내쫓으려 한다고 한 진관(陳瓘)의 말은 또한 내쫓지 않으려는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철종 때 유 황후가 음탕하고 정사에 간섭함으로 한충언(韓忠彦) 등은 모두 내쫓을 것을 요청하였으나 진관은 말하기를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 하고 너무 빨리 내쫓지 말 것이다.’고 했는데, 뒤에 가서 내쫓기게 되자 왕후는 마침내 자살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이 어떻게 진관의 마음이 반드시 끝내 내쫓지 않으려는 것인 줄 알아서 억지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미 옛사람의 마음을 속인 것이고 또 전하를 속인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신덕 왕후에 대한 일은 죽은 뒤에 빈말로 처리한 것이었고 지금은 해마다 한식날에 제사를 지내니 역시 오늘날의 일에 비교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직을 안정시킨 초기에 신덕 왕후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방석(芳碩)의 일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음모에 참여한 사실이 있었다면 한식날에 한 번 제사지내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유생들의 결론은 오로지 중국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석성(石星)·정응태(丁應泰)·조즙(趙楫)·이성량(李成樑)의 족속들 중에 또한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기자헌이 중국에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끌어들여서 임금을 공갈하려는 것이므로 더욱더 음흉합니다. 그리고 《임거만록(林居漫錄)》이 처음 왔을 때에 기자헌이 그 책은 위조한 것이라고 극력 주장하면서 먼저 임금의 무고를 해명할 것을 요청하자는 의견을 저지하여 따르지 않더니, 오늘에 와서는 군현(郡縣)의 일을 들어 임금을 위협할 자료로 삼으니 역시 간악합니다. 또 말하기를 ‘형남에서 10월달에 우레가 친 것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데, 변고란 공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을 초래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0월에 우레가 친 것은 그 원인이 대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역사에서 여러 번 썼고, 형남에서 우레가 친 것은 대개 적이 서울을 웅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할 변고를 도리어 나라에 돌리고 오랑캐의 변고라는 말로 두려워하게 하였으니 역시 매우 음흉합니다. 그가 한평생 처신한 것과 임금을 섬긴 것을 보면 단지 한 덩어리의 흉물에 지나지 않는데도 스스로 말하기를 ‘사마광·주희·진덕수 등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합하여 올린다.’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시서를 이야기하면서 무덤을 도굴한다.[詩書發塚]’는 격이고 ‘도살장에서 부처님 이야기하기[屠門談佛]’와 같은 것입니다. 기자헌은 하늘에 달하는 많은 죄를 지었는데 아직도 영의정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감히 무도한 말을 제창하여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대의를 저해하는 한편 전하를 반대하는 일을 즐겨하면서 외면할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를 망각하고 임금을 배반한 그의 죄를 법률에 의하여 중한 형벌로 다스리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우선 먼 섬에 위리 안치시켜서 귀신과 사람의 분함을 통쾌하게 씻을 수 있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런 때에 대신을 어찌 경솔하게 논의할 수 있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은 성품이 음흉하고 마음이 간사하며 행동이 짐승같아서 삼강 오상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인척의 세력을 빙자하여 정승 자리를 훔쳐 차지하고 있으면서 추악하고 음험한 행동을 평소의 잘하는 일로 삼았습니다. 사람을 해치고 사물을 해롭게 한 일이 한도 끝도 없었으며 벼슬을 얻기 전에는 얻기 위하여 고심하고 얻고 나서는 잃을까 고심하여 못하는 짓이 없이 하면서도, 조종과 선왕의 무함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변론하려 하지 않았으며 흉측한 격문을 화살에 달아 투척하는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임금을 버리고 도망쳤으니, 신하로서의 의리가 여기에 이르러 완전히 소멸된 것입니다. 그러니 수많은 죄악을 들자면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김제남이 변란을 꾸미고 서궁이 음모에 가담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공초에서 모두 드러났으니, 이 나라에 사는 백성들치고 어느 누가 분개해 하지 않겠습니까. 큰 의리가 어두워지고 공정한 논의가 막혀버린 이런 때에 다행히 시골 유생들이 충성과 용기로 떨치고 일어나 잇달아 호소하는 상소를 올려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나라의 주춧돌과 같은 대신이 조복을 갖추어 입고 의정부에 앉아서 모든 관리들을 모아 공정한 논의를 널리 받아들여 비상한 변고를 처리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환란을 멈추게 함으로써, 위로는 종묘 사직을 편안히 하고 임금을 보좌하며 아래로는 신하의 직책을 다하고 사람의 윤리를 세워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어물어물 형세만 바라보면서 뒷날의 복을 받으려고만 꾀하고 있습니다. 유생들의 글이 한번 내려오자 굳이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해조가 가서 의논하자 ‘자기의 직분을 넘어서서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는 무도한 짓을 제멋대로 하는 죄를 범할까봐 두렵다.’라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유생의 글을 다시 의정부로 내려보내자, 자기 혼자 먼저 의견을 들여 역적을 옹호하는 도적들을 위한 기치를 내세웠습니다. 또 어제는 문안하러 들어온 모든 관리들을 인하여 대궐 뜰에서 강제로 의견을 종합하려고 하였는데 마치 지시를 받고 여론을 결단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더욱 해괴합니다.
신들이 그 차자를 보건대 그 안에 ‘아무개가 서궁을 멋대로 폐위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신하된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역적을 처벌할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과연 담당하려 하겠습니까. 먼저 간사한 의견을 전하에게 드리고 요사스런 무리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자기 세력을 돕게 하였으니, 그가 제 마음대로 한 일이란 역적을 옹호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계축년간에 여러 대신들이 글을 올릴 때 신도 참가하여 「아비가 비록 사랑하지 않더라도……」라는 등의 말을 하였으니 전후의 논의를 달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덕형 등이 역적을 옹호하고 임금을 위협하는 논의였는데, 기자헌이 아직도 그릇된 소견을 고집하면서 임금을 등지는 죄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으니, 그가 역적을 옹호하는 데서는 달라지지 않고 임금을 섬기는 데서만 달라진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또 말하기를 ‘몇 해 전에 이원익이 견책을 당하였을 때 삼사가 말하기를 「조정에서는 본래 이런 마음이 없었는데 이원익이 노망하여 함부로 말함으로써 악명을 전하에게 돌렸다.」고 했다.’ 하였는데, 이것은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로 하여금 끝까지 은혜를 온전히 하여 어미를 사적으로 봉양하게 하려 했던 것이 원래 여러 신하들의 의도였으나, 그뒤에 여러 역적들이 서궁을 좋은 기화로 삼고 변란을 계속 일으켰으므로 화근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오늘의 사태가 이전과 같지 않은 점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은밀히 이원익을 도우면서 도리어 그때 삼사가 한 말을 증거로 하여 저지시키려 하였으니, 그의 계책이 교활하다고 하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일찍이 선조(先朝) 때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보았는데 장구령은 태자를 바꾸려할 때를 당하여 신은 감히 분부를 받들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당 나라 현종이 태자 이영(李瑛)을 폐출할 때의 일입니다. 오늘날에 대비(對比)할 일이 무엇이 있기에 감히 밑도끝도없는 말을 지어내어 임금을 농락한단 말입니까. 그가 전혀 근사하지도 않은 말을 끌어다가 은연중에 자신을 내세웠으니 그 마음 역시 몹시 패독스럽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모든 신하가 신(臣) 자를 쓰고 절하였으니 만약 바꾼다면 이것은 사람에게 반역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였는데, 참으로 이 말과 같다면 무씨(武氏)의 조정에서 장간지(張柬之) 등이 원래 신으로 자처하였지만 무후를 상양궁(上陽宮)으로 옮긴 뒤에도 과연 신하의 도리로 섬겼단 말입니까. 남에게 역적을 가르친다는 말도 실지로 자기 스스로 역적질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강씨와 무씨의 일을 오늘날과 비교할 때 과연 모두가 유사한지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강씨는 노나라 환공을 시해하는 데 참여하였으므로 《춘추(春秋)》에서는 강씨라고 쓰지 않는 것으로 단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무후는 임금의 어미를 살해하고 황제를 쫓아낸 다음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으므로 호씨는 말하기를 ‘장간지 등이 그의 죄를 따져서 폐출시킨 다음 사형에 처했더라도 중종(中宗)은 참견하지 못했을 것인데 대의를 내세워 죄인을 토벌하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지금 서궁은 내외로 결탁하여 반역을 꾀한 정상이 수없이 드러나 임금을 죽이는 데 참여했던 강씨보다도 심하고, 궁중에서 저주를 행하여 성상을 해치려고 모의한 것은 임금을 축출한 것보다도 더 심하며, 선후(先后)를 억누르려고 능침에까지 흉악한 짓을 감행한 화변은 임금의 모친을 살해한 것보다도 더 참혹합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도리어 같지 않다고 주장하려 하고 있으니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말하기를, ‘진나라 혜제 때의 양 태후의 일은 망발인 듯하다.’ 하였는데, 여러 유생들의 글은 성상으로 하여금 모자간의 은혜를 온전하게 하려는 의도로 장화(張華)가 한나라 성제 때 조 태후의 전례를 든 것을 인용하여 대비를 폐출시키려 한 것일 뿐, 처음부터 오늘날의 일을 양 태후에게 비교하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동양(董養)의 의도는 양 태후가 애매하게 내쫓겼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 대궐 안에서 일어난 변고도 애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은 상소문에다 인용도 하지 않은 말을 첨가하여 감히 임금을 욕되게 하였으며, 끝에 가서는 《강목(綱目)》에 있는 말과 진덕수의 말을 인용하여 위협하고 미혹시키기를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으니, 임금을 배반하고 역적을 옹호한 그의 마음이 여기에 이르러 더욱 드러났습니다. 또 말하기를 ‘장 황후(張皇后)에 대하여 주희는 이보국(李輔國)이 그를 죽였다고 특별히 썼고, 안진경은 조정에 돌아온 적이 없었으며 양관(楊綰)도 언급한 일이 없었다.’ 하였는데, 《당서(唐書)》를 살피건대 숙종(肅宗) 때 장 황후가 월왕을 세우려고 음모할 때에 보국은 군사를 거느리고 태자를 호위하고 장 황후를 별전에 가두었으며, 대종(代宗)이 왕위에 오르자 여러 신하들이 황제에게 보고하여 서인으로 만든 다음 죽게 하였습니다. 《강목(綱目)》을 편찬할 때에는 특별히 보국을 미워하여 그렇게 쓴 것이고 장 황후를 용서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본전을 상고하건대, 양관은 숙종으로부터 덕종에 이르기까지 중서 사인(中書舍人), 예부 시랑(禮部侍郞), 이부 시랑(吏部侍郞)으로 조정에 있었습니다. 진경은 대종 때에 이주 자사(利州刺史)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형남 절도사(荊南節度使)로 임명되었으나 가지 않았다가 상서우승(尙書右丞)으로 고쳐 임명되었으니, 그가 조정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에 만약 다른 의논을 제기하였었다면 사관(史官)이 반드시 적었을 것인데 역사에 적은 것이 없으니 두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서 간쟁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에 근거하여 알 만합니다. 자헌이 1천 년이 지난 뒤에 장 황후를 옹호하려 하는 마음은 바로 서궁을 옹호하려는 계책입니다.
또 말하기를 ‘염 황후(閻皇后)가 처음에는 황제의 어미를 죽였고 중간에는 황제를 내쫓고 북향후를 세웠으며 마지막에는 또 다른 사람을 세우려 하였는데 사마광(司馬光)은 주거(周擧)가 이합(李郃)에게 한 말을 인용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이합이 글을 올려 제의하자 순제가 염 황후에게 조회하였다. 그때 주거의 말에 대하여 죄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 의견을 따랐으니 역시 칭찬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염씨가 갇혔을 때 진선(陳禪)이 내쫓을 것을 요청하자 온 조정이 그 의견을 따랐는데 주거의 의견으로 인하여 쫓겨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염 황후는 어리고 약한 아들을 내세우려고 욕심을 내었으나 계책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실패하였을 뿐이고, 오랫동안 음모하였거나 요사스런 짓을 하고 저주를 행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덕수는 말하기를 ‘왕후가 정사에 간섭하고 외가(外家)에서 권력을 잡는 것은 옛날 어진 임금의 좋은 법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어찌 깊은 뜻이 없겠습니까. 기자헌은 감히 그 실지 사실을 덮어놓고 주거의 말만 들어서 비교하려 하였으니, 여러 신하를 데리고 서궁에 조회하는 그 뜻이 여기에서 또 드러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너무 빨리 내쫓으려 한다고 한 진관(陳瓘)의 말은 또한 내쫓지 않으려는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철종 때 유 황후가 음탕하고 정사에 간섭함으로 한충언(韓忠彦) 등은 모두 내쫓을 것을 요청하였으나 진관은 말하기를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 하고 너무 빨리 내쫓지 말 것이다.’고 했는데, 뒤에 가서 내쫓기게 되자 왕후는 마침내 자살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이 어떻게 진관의 마음이 반드시 끝내 내쫓지 않으려는 것인 줄 알아서 억지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미 옛사람의 마음을 속인 것이고 또 전하를 속인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신덕 왕후에 대한 일은 죽은 뒤에 빈말로 처리한 것이었고 지금은 해마다 한식날에 제사를 지내니 역시 오늘날의 일에 비교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직을 안정시킨 초기에 신덕 왕후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방석(芳碩)의 일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음모에 참여한 사실이 있었다면 한식날에 한 번 제사지내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유생들의 결론은 오로지 중국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석성(石星)·정응태(丁應泰)·조즙(趙楫)·이성량(李成樑)의 족속들 중에 또한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기자헌이 중국에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끌어들여서 임금을 공갈하려는 것이므로 더욱더 음흉합니다. 그리고 《임거만록(林居漫錄)》이 처음 왔을 때에 기자헌이 그 책은 위조한 것이라고 극력 주장하면서 먼저 임금의 무고를 해명할 것을 요청하자는 의견을 저지하여 따르지 않더니, 오늘에 와서는 군현(郡縣)의 일을 들어 임금을 위협할 자료로 삼으니 역시 간악합니다.
또 말하기를 ‘형남에서 10월달에 우레가 친 것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데, 변고란 공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을 초래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0월에 우레가 친 것은 그 원인이 대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역사에서 여러 번 썼고, 형남에서 우레가 친 것은 대개 적이 서울을 웅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할 변고를 도리어 나라에 돌리고 오랑캐의 변고라는 말로 두려워하게 하였으니 역시 매우 음흉합니다.
그가 한평생 처신한 것과 임금을 섬긴 것을 보면 단지 한 덩어리의 흉물에 지나지 않는데도 스스로 말하기를 ‘사마광·주희·진덕수 등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합하여 올린다.’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시서를 이야기하면서 무덤을 도굴한다.[詩書發塚]’는 격이고 ‘도살장에서 부처님 이야기하기[屠門談佛]’와 같은 것입니다. 기자헌은 하늘에 달하는 많은 죄를 지었는데 아직도 영의정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감히 무도한 말을 제창하여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대의를 저해하는 한편 전하를 반대하는 일을 즐겨하면서 외면할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를 망각하고 임금을 배반한 그의 죄를 법률에 의하여 중한 형벌로 다스리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우선 먼 섬에 위리 안치시켜서 귀신과 사람의 분함을 통쾌하게 씻을 수 있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런 때에 대신을 어찌 경솔하게 논의할 수 있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홍문관 부제학 이대엽(李大燁), 직제학 이익엽(李益燁), 교리 이잠(李埁)·이상항(李尙恒), 부교리 정준(鄭遵), 수찬 남명우(南溟羽)·신광업(辛光業)·윤성홍(尹聖弘), 부수찬 서국정(徐國楨), 박사 조유선(趙裕善) 등이 상차하여 기자헌에 대한 공론을 흔쾌히 따르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런 때에 대신을 어찌 경솔하게 논의할 수 있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런 때에 대신을 어찌 경솔하게 논의할 수 있겠는가.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흉소(凶疏)가 이미 의정부에 내려지자 영의정 기자헌이 먼저 상차하여 헌의하고 인하여 도당(都堂)에 모여 각각 수의(收議)하게 하였다. 오성 부원군 이항복과 좌의정 정인홍의 의견 및 도당에 보낸 글은 이미 위에 나타나 있다. 행 사과 정홍익(鄭弘翼)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생각건대, 옛날의 제왕으로 인륜의 변고를 당한 자는 순임금같은 분이 없으며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제대로 다한 자도 순임금같은 분이 없습니다. 그 악독한 어미가 화를 불러 일으켜 순임금을 해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도 순임금은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을 뿐이니, 선도하고 개선되게 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인륜상의 극치인 것입니다. 우리 성상께서는 저궁(儲宮)에 계실 때부터 인자하고 효성스럽다고 알려졌으며 온 나라의 신민들이 효성의 지극한 덕을 우러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륜상의 변고를 만남에 성상을 보좌해야 할 신하들은 전하의 효행을 도와 순임금과 같이 훌륭하게 하지는 못하고 반대로 이처럼 전에 없던 일을 가지고 논의하고 있으니, 신은 삼가 의혹을 느낍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멀리 순임금을 본받아 효성을 다하여 두 궁궐 사이를 화기가 애애하게 만든다면,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인자하고 효성스러운 성상의 덕행에 감화될 것이고 전하의 덕은 만대에 빛날 것입니다. 지금 의견을 드리는 때를 당하여 만약 미천한 목숨을 아끼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전하의 큰 은혜를 등지는 것이며 충성하지 못하는 죄에 스스로 빠지는 행위인 것입니다. 혹시 전하께서 사람은 변변치 못할지라도 직접 올린 말만은 버리지 않고 특별히 들어주신다면 신은 만 번 죽더라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하고, 군기시 정 김덕함(金德諴)은 의논드리기를, "일편단심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항복·정홍익과 같습니다." 하고, 첨지 오윤겸(吳允謙)은 의논드리기를, "오늘의 변고에 대처함에 있어서 그 도리를 충분히 다한 연후에야 천하에 할 말이 있게 될 것이고 후세에도 부끄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는 바는, 묘당이 옛사람 중에서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제대로 다한 자를 찾아서 법으로 삼아 성상의 효도를 더욱 커지게 하고 성상의 덕행을 더욱 융성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청풍군(淸風君) 김권(金權)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허물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임금을 사랑하는 소신의 지극한 정성이고, 끝까지 은의를 온전히 하는 것이 변란에 대처하는 성상의 큰 덕망입니다. 천 년이 지나가도 순임금과 함께 나란히 칭송되는 것이야말로 구구한 저의 소망입니다." 하고, 행 사과(司果) 권사공(權士恭)은 의논드리기를, "천하의 일이란 정상적인 경우에 대처하기는 쉬워도 변란에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도리는 사람마다 다 논의할 수 있지만 변란의 경우는 도를 체득한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지체 높은 대신들이 묘당에서 계획을 세우고 있으므로 하찮은 소신이 망녕스레 논의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임금이 일을 처리할 때에는 마땅히 성인(聖人)을 본받아야 하고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이후로는 본받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옛날 성인들이 인륜의 변고를 당하고도 성인의 지위를 잃지 않았던 것은 그 처리가 도를 체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그 도를 체득하였다는 것은 또한 하늘의 당연한 도리에 맞게 하면서 당시의 형편에 적당하게 하는 데도 방해되지 않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문제는 오직 조정에서 반복하여 논의한 다음, 고금(古今)을 참작하고 그 경중을 헤아려서 처리하되, 천리(天理)에 부합되고 인정(人情)에 알맞게 하여 조금이라도 미진한 감이 없게 해야 오늘에도 유감이 없고 후세에 가서도 할 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변고에 대처했던 옛 성인의 도리에 부합될 것이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후세 사람들의 처사에 귀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강구하고 살펴서 처리한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행 사용(司勇) 이신의(李愼儀)는 의논드리기를, "《상서(商書)》에 ‘반드시 참는 마음이 있어야 일을 이룰 수 있고 포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덕이 확대된다.’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모든 일은 포용하고 참아서 이루지 못하는 경우는 없으며, 대부분 포용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데서 낭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능히 포용하고 참으면 그 일은 반드시 후회가 없게 될 것이고 포용하지 않거나 참지 않으면 그 일은 반드시 후회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논의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인정(人情)과 천리(天理)를 살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개 인정이 기뻐하는 부분은 천리의 당연(當然)한 면의 극치이고 인정이 기뻐하지 않는 곳은 곧 천리의 부당연(不當然)한 면의 극치인 것입니다. 오늘날 더없이 중대하고 지극히 난처한 문제를 놓고 만약 인정과 천리에 따라 살피지 않고 경솔하게 처리한다면 이는 포용하지도 못하고 참지도 못하는 처사로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하니 삼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개 사람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고 하늘의 마음은 곧 사람의 마음인 것이니, 사람의 마음이 편하면 하늘의 마음도 편하고 사람의 마음이 편치 않으면 하늘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충분히 살펴서 기꺼이 승복하는 인심과 당연한 천리를 흔쾌히 따르신다면 대순(大舜)의 시대와 같은 세상을 오늘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대순의 마음을 체득하고 대순의 도리를 행하신다면 귀신도 사람도 기뻐할 것이니 이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국가의 복이기도 하고 백성과 신하들의 복이기도 합니다. 바라건대 조정은 살피고 또 살펴서 전하로 하여금 끝까지 인자하고 효성스런 덕을 온전히 하게 한다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고단(孤單)한 음관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살고 입을 놀리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차마 침묵하고 있을 수 없어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감히 어리석은 소견을 진달합니다." 하고, 지사(知事) 이시언(李時彦)은 의논드리기를, "심히 늙은데다 정신까지 없습니다만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마음은 단지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일 뿐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사랑하는 방법은 도리에 따라 인도 하는 것이니, 오직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경사(經史)를 널리 상고하고 신하들에게 널리 물어서 알맞게 처리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행 호군 송영구(宋英耉)는 의논드리기를, "이 문제는 의리에 입각하여 충분히 강구해야 할 일로 전적으로 묘당에서 처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종실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은 의논드리기를, "병중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마당이라 숨결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논의를 절충하여 끝까지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서평수(西平守) 이훈(李壎)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실이 어찌 감히 망녕스레 의논드리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경사를 상고하고 원로에게 물어서 천 년이 지난 뒤에도 다른 의견이 없도록 하소서." 하고, 낙원 부수(洛原副守) 세관(世寬)은 의논드리기를, "나이가 젊고 용렬합니다만 단지 임금을 사랑할 줄만 알고 그 밖의 것은 모릅니다. 다만 원하건대 조정은 사대부들의 충직한 논의를 따르소서." 하고, 병조 정랑 오윤해(吳允諧)는 의논드리기를, "보통일에 대처하기는 쉬워도 변란에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이니, 오직 묘당이 문헌을 널리 상고하고 충분히 의논해서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연원 부원군(延原府院君) 이광정(李光庭)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에서 충분히 강구하고 잘 처리해서 능히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호조 좌랑 김상(金尙)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면서 그 도리를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 임금을 사랑하는 신의 지극한 정성입니다." 하고, 김상용(金尙容)·장만(張晩)·심돈(沈惇)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고사를 널리 상고하고 충분히 강구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김류(金瑬)·박동선(朴東善)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충분히 강구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최관(崔瓘)·권반(權盼)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옛 문헌을 널리 상고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옹원 정 윤정(尹綎), 내섬시 정 이순민(李舜民), 주부 김연경(金延慶) 등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는 경중을 잘 조절해서 의리에 맞게 하는 데 있으며, 그것을 결정하여 시행하는 문제는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형조 정랑 권첩(權怗)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덕망 있고 노련한 신하에게 자세히 묻고 학식 풍부한 선비에게 널리 물은 다음, 예문에 근거하고 경서를 상고하여 충분히 고찰하고 명확하게 판단하되 끝까지 신중을 기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부사과 심즙(沈檝)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더욱 신중을 기하여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봉상시 참봉 김지수(金地粹)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비상한 사람이라야 능히 비상한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묘당에는 필시 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하찮은 소신은 죽는 한이 있어도 감히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이필영(李必榮)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여러 대신들이 경사(經史)를 널리 상고하고 공론을 두루 채집한 다음 충분히 강구하고 살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이시발(李時發)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이 이전 역사를 두루 상고한 다음 타당한 방법을 찾아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강인(姜絪)·강침(姜枕)·경섬(慶暹)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이 이전 역사를 널리 상고해서 충분히 강구한 다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분승지 목장흠(睦長欽)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이 의리를 참작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승문권지 홍헌(洪憲)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더욱 신중을 기하여 타당성 있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부정자 정양필(鄭良弼)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이전의 법을 널리 상고하여 능히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부사과 조국빈(趙國賓)은 의논드리기를, "성스러운 시대에 국시(國是)를 견지하는 자들은 모두 의리를 알고 있습니다. 의리를 알고 있다면 난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찮은 관리로서는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유공량(柳公亮)은 의논드리기를, "막중한 국가의 일이니 옛 문헌을 상고하고 공론을 채집해서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전유형(全有亨)은 의논드리기를, "경사(經史)를 두루 상고하셔서 타당성 있게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윤휘(尹暉)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에서 지난 역사를 두루 상고하여 알맞게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호군 정문부(鄭文孚), 행 사과 윤안국(尹安國)·조희보(趙希輔) 등은 의논드리기를, "천하의 일에는 변란에 대처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는데, 그 변란에 대처하는 방법은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 문제는 오직 묘당이 헤아려서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 정랑 이은로(李殷老)는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도를 예로부터 어렵게 여겨왔습니다만 오늘날의 일은 더욱 난처합니다. 잘 처리할 수 있는 대책이 묘당에 있는데 늙고 병든 산관이 어찌 그 사이에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권협(權鋏)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전무후무한 이 큰 변란을 당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변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세밀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의견을 널리 수렴하는 거조가 있게 된 것입니다만, 어리석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지나간 문헌을 널리 상고하여 변란에 잘 대처했던 옛날의 일을 취해서 처리하소서." 하고, 부사정 오숙(吳䎘)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성명께서 적절한 대책을 굽어 살피시어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힘써 다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윤의립(尹義立)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지나간 문헌을 두루 고찰해보고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과 황락(黃洛)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이 난처한 변란은 묘당과 삼사가 깊이 생각하고 멀리 헤아려서 잘 처리할 것입니다." 하고, 김신국(金藎國)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경외의 여러 대신들과 협의를 끝내고 온 나라의 공론을 참작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노직(盧稷)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여러 훈신(勳臣)과 척신(戚臣)들과 헤아려서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직 권희(權憘)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충분히 고려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과 윤이지(尹履之)는 의논드리기를, "오로지 묘당이 충분히 강구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주서 이진영(李晉英), 부사용 송시보(宋時保)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상부(相府)에서 이전 문헌을 널리 상고하여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권지 박초(朴簉)는 의논드리기를, "묘당이 참작하여 적절하게 변란에 대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공조 좌랑 박선(朴𧂍), 호조 좌랑 홍득일(洪得一)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장점을 따라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형조 정랑 신득연(申得淵)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널리 상고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인 유충립(柳忠立)은 의논드리기를, "헤아려서 잘 처리하는 문제는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과 이분(李芬)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문제를 적절하게 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신식(申湜)은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국가의 막중 막대한 것으로 변란에 대처하는 일은 사람마다 의논할 일이 아니라 오로지 상부(相府)에서 널리 상고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더구나 시골에 묻혀 있는 훌륭한 재상은 세상 사람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니 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을 놓아두고 누구에게 묻겠습니까. 속히 불러들여서 물어본 다음 여론을 결정하소서." 하고, 행 판돈녕부사 민형남(閔馨男)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천고에 없던 큰 변고를 만났으니 그 변고에 대처하기 위한 방도는 사람마다 논의할 일이 아니고 여러 대신들이 담당할 일입니다. 더구나 대신들 중에는 시골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없지 않으니 원컨대 이전 역사를 널리 상고하고 충분히 토의한 다음 인륜상의 변고에 잘 대처하게 해서 임금으로 하여금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하고, 박홍구(朴弘耉)는 의논드리기를, "전후하여 올린 유생들의 상소는 국가 대사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사람마다 경솔하게 의논할 일이 아닙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나라에 큰일이 있게 되면 대신들과 대책을 의논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삼정승이 자리에 다 있고 정부에도 인재가 있으니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옛 문헌에 기록된 사실을 상고하고 오늘의 일을 참작하여 변고에 대처할 도리를 다하도록 함으로써 뒷날의 논의가 없게 하소서." 하고, 조탁(曺倬)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예전에 없던 이런 변을 만났으니 참으로 국가의 큰 변고입니다. 그러나 일찍이 들은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나라에 큰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묘당에서 대책을 세웠다.’고 하였으며, 선유들이 또 말하기를 ‘대신이 되어서는 큰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대신들이 묘당에 자리잡고 있으니 큰 문제를 결정하는 길은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한마음으로 잘 의논하여 대처할 도리를 힘써 다하는 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이식립(李植立)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이 난처한 일은 오직 대신들과 삼사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이척(李惕)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중외의 대신들이 충분히 토의하고 익히 생각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분병조 참판 김지남(金止男), 통례(通禮) 김위남(金偉男)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으므로 별도로 의논드릴 필요가 없겠습니다." 하고, 행 사직 유영순(柳永詢)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좋은 쪽으로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이형욱(李馨郁)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안위 문제는 묘당에 달려 있고, 한때의 공론(公論)은 삼사에서 나오는 것이니, 묘당과 삼사가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할 일입니다." 하고, 윤중삼(尹重三)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한흥군(漢興君) 조공근(趙公瑾)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호군 민성징(閔聖徵)은 의논드리기를,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살펴서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것은 오직 묘당이 처치를 타당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용 이서(李曙)·이익(李榏)·구인후(具仁垕)·문희성(文希聖) 등은 의논드리기를, "무식한 무관들이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직강 이숙(李橚)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대사를 잘 처리하는 도리는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부사용 홍진도(洪振道)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에서 지난 일을 널리 상고해서 타당하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부정자 박안효(朴安孝)·김신(金信) 등은 의논드리기를, "헤아려서 처치하는 것은 오직 묘당이 타당하게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는 의논드리기를, "인륜상의 변고를 대처하는 문제는 옛날부터 어렵게 여겨왔던 일인데 성상의 효성은 출천하시어 다른 임금들보다 월등하시므로 저는 항상 성상의 덕행을 흠앙하였습니다만 감히 의논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묘당이 지난 역사를 널리 상고한 다음 충분히 강구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판중추부사 이정귀(李廷龜)는 의논드리기를, "저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 죽음을 앞둔 마당에 어제는 또 3촌의 상을 당하여 곡을 하였더니 어지러워져 위급한 증세가 심해지고 말았습니다. 또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에 ‘협적(浹賊)이 끌어댄 여러 재상들은 주벌을 가하거나 귀양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저도 잔치에 참석한 일로 역적의 공초에서 이름이 거론되었으며 또한 여러 재상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는 비록 성상의 은혜를 입어 너그럽게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만 지금 또 거론되고 있으니, 공론이 지극히 엄격하므로 현재 저는 집에서 짚자리를 깔고 삼가 견책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감히 버젓이 헌의할 수 없습니다." 하고, 화산 부수(花山副守) 정(汀), 철성 부수(鐵城副守) 효원(孝元), 선성 부수(先城副守) 신원(信元), 덕원 부령(德源副令) 덕손(德孫), 순원 감 경손(淳原監敬孫)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막대한 일을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적절하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산 감역(四山監役) 윤형준(尹衡俊)은 의논드리기를, "제가 맡아보는 일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잘 기르는 일일 뿐이므로 조정의 중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감히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상께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창성 정(昌城正) 이유(李維), 완성 부정(完城副正) 이수영(李秀英), 순평 수 이선봉(順平守李善鳳) 등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친이 어찌 감히 의논드리겠습니까. 오직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좌찬성 박승종(朴承宗)은 의논드리기를, "지난해 신경희(申景禧)의 공초에 ‘박승종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성명께서 놓아두고 문죄하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니 모두가 성상의 은혜입니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에는 여러 상소를 가지고 외지에 나가 있는 시임 대신에게 하문하셔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병조 판서 유희분(柳希奮)은 의논드리기를, "외람되게도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천지와 같은 큰 은혜를 두텁게 입어 죽고 사는 문제를 국가와 함께 하고 있으므로, 성상을 추대하고 사직을 염려하는 정성은 일반 사람보다 만 배나 되는데 어찌 먼 곳에 있는 유생들보다 못하겠습니까. 지금 이 유생의 상소 중에 언급한 내용은 실로 국가의 막대한 변례이니 학식이 얕은 친족들 중에서 비록 한두 마디 언급한다 해서 어찌 공론에 경중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신은 이미 창의(倡義)했다는 정흡(鄭潝)의 조롱을 받은 터라서 놀란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감히 한 마디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대안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막중한 변례에 대해서는 고금을 통달한 지식과 의리에 해박한 학력을 가진 자가 아니면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좌의정 정인홍은 일생 동안 시골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식견이 고상하고 의지가 확고하여 어진 임금을 만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이미 큰 덕망을 지닌 채 지금 정승 직책을 띠고 있으니, 반드시 그의 한 마디 말이 있어야 아마 큰 변고에 대처하고 모든 사람의 의심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유생들의 상소가 계속 제기되고 국사가 위급해진 때에 어찌 차마 물러가 있는 것을 편하게 여기고 임금의 위급한 상황을 나몰라라 하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특별히 온화한 유지를 내리시고 근신(近臣)과 중사(中使)를 뽑아 보내되, 난리에 임하여 변란을 진정시키라는 뜻으로 유시한 다음 기어이 불러오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와 함께 상의하여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국론을 확정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행 사직 정광성(鄭廣成)은 의논드리기를, "평소에 식견도 없고 또 학식도 없다 보니 막중한 일에 대해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보덕 정광경(鄭廣敬), 호조 좌랑 정지경(鄭之經), 내자시 정(內資寺正) 금변(琴忭) 등은 의논드리기를, "말단 관직에 있는 자가 감히 함부로 의논드릴 일이 아닙니다." 하고, 병조 정랑 이용진(李用晉)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일에 임하여 큰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모두 묘당에서 처리해 왔습니다. 소관이 어찌 감히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좌의정 정인홍은 한평생 초야에 묻혀 살면서 경사(經史)를 두루 보았고 의리를 강구하였으니, 이런 때에 좌상을 놓아두고 누구에게 물어보겠습니까.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조정에 있는 대신들과 함께 자세히 상의해서 잘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사과 남이웅(南以雄)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임금과 같은 효성으로 전에 없던 변고를 당하셨는데 소신이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적 홍경찬(洪敬纘)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중대한 데에 관계되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하고, 행 사맹 이계남(李桂男)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정당한 논의를 충분히 강구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학정 권준(權濬)은 의논드리기를, "비록 미관 말직에 있습니다만 국가에 충성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가지입니다. 오직 원하건대 조정에서 좋은 방향으로 처치하소서." 하고, 사재감 정 송극인(宋克訒), 부사직 이구징(李久澄) 등은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는 소관이 의논드릴 일이 아닙니다. 오직 묘당에서 상의해서 결정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공조 좌랑 이명한(李明漢)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은 국가의 대사를 나이 젊은 미관 말직으로서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도사(都事) 홍서(洪恕), 익찬(翊贊) 유정립(柳鼎立) 등은 의논드리기를, "미관 말직이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상의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정(司正) 변응원(邊應垣)은 의논드리기를, "막중한 논의는 조정의 계책에 속한 것이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신하의 충성입니다. 속히 초야에 묻혀 사는 경서를 통달하고 옛일을 널리 아는 사람을 불러서 하문하소서." 하고, 종부시 정 유탁(兪濯)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에 삼공(三公)을 세우고 대간(臺諫)을 둔 것은 논의를 주관하고 시비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즘 중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국시(國是)는 정해지지 않고 있으니 어리석은 신의 허튼 소리를 감히 그 사이에다 덧붙일 수 없습니다. 오직 옛일을 널리 상고하고 의리를 헤아려서 타당하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부사과 최숭(崔嵩)은 의논드리기를, "미관 말직에 있는 자가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타당하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적 남이성(南以聖), 공조 좌랑 최전(崔琭), 형조 좌랑 윤정지(尹挺之) 등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원하건대 묘당이 최선을 다하여 처리해서 일이 잘 되게 하소서." 하고, 내섬시 직장 한덕윤(韓德胤), 봉사(奉事) 최명선(崔明善) 등은 의논드리기를, "비상한 변고에 처하여서는 비상한 도리를 다한 연후에야 의리에 맞게 경중을 따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고, 병조 정랑 유진증(兪晉曾)은 의논드리기를, "막중한 국가의 일을 평범한 관리가 어찌 감히 마음대로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결정하여 처리할 일입니다." 하고, 감찰 최진운(崔振雲)·신욱(辛頊)·유경찬(柳景纘)·강홍정(姜弘定)·권담(權縉)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예조 참판 윤수민(尹壽民)은 의논드리기를, "대체로 조정의 중대한 일은 묘당이 있고 대각이 있으므로 일반 관청에서 참여하여 의논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더구나 저는 본래 지식이 없고 또 앞 시대의 전고(典故)를 알지 못하는데 이처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막중 막대한 일에 대해 어찌 감히 의견을 내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한창군(韓昌君) 이경함(李慶涵)은 의논드리기를, "이것은 나라에 관계되는 더없이 중대한 문제로 묘당이 있고 대간이 있는데 일반 관청에서 관리의 머릿수나 채우고 있고 식견도 어두운 제가 어찌 감히 의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유몽인(柳夢寅)은 의논드리기를, "저는 본래 편협한 소견과 얄팍한 지식으로 고금의 사실을 널리 통달하지 못했고 또 사리를 잘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더구나 막대한 조정의 변고 처리에 대하여 어찌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듣건대 옛사람은 말하기를 ‘이른바 조정이란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상신(相臣), 둘째는 대간(臺諫), 셋째는 시종(侍從)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중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일반 관청에서 머릿수나 채우고 있는 자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일이 아닙니다. 삼가 원하건대 이 세 곳의 견해를 들어보고 그들로 하여금 고금의 타당함을 참작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고, 조존세(趙存世)는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일 말고는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복천군(福川君) 오백령(吳百齡)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일은 대단히 중대한 것이므로 오직 묘당의 여러 대신들이 노력해서 최선을 다하여 국가를 안정시키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민형(閔泂)·황이중(黃履中) 등은 의논드리기를, "묘당의 여러 대신이 상의하여 잘 처리해서 일이 타당하게 되도록 하소서." 하고, 석릉군(石陵君) 전용(全龍)은 의논드리기를, "글도 볼 줄 모르는 무식한 자입니다. 그저 묘당의 의논대로 따른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지돈령부사 박안세(朴安世)는 의논드리기를, "병이 심하여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군자감 정 유효립(柳孝立)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에서 자세히 의논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박자흥(朴自興)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왕실의 인척으로서 나라를 위하는 정성은 남보다 배나 됩니다만, 오직 묘당에서 조정의 의논을 널리 수합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성이문(成以文)은 의논드리기를, "저는 노망하여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묘당에서 강구하여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능해군(綾海君) 구성(具宬)은 의논드리기를, "묵은 병으로 여러 해를 앓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사리를 전혀 살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논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고, 행 사직 김예직(金禮直)은 의논드리기를, "배우지 못한 무관이 외척 관계에 있는데다 식견도 없으므로 조정의 중대한 일에 대하여 감히 의논을 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분승지 민여임(閔汝任)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에서 충분히 강구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동지돈령부사 김극효(金克孝)는 의논드리기를, "여든이 멀지 않은 나이로 질병이 심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하여 감히 의논을 드리지 못합니다." 하고, 여양군(驪陽君) 민인백(閔仁伯)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은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습니다만, 오늘의 일은 오직 묘당과 삼사가 함께 상의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으므로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전적 이지정(李志定)은 의논드리기를, "미관 말직에 있다 보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적절하게 처리하는 문제는 오직 묘당이 결정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동지 김현성(金玄成)은 의논드리기를, "더없이 중대한 일은 늙어서 혼매한 사람이 경솔히 의논할 바가 아닙니다." 하고, 행 사직 박이서(朴彛叙)는 의논드리기를, "죄로 인해 폐출된 지 여러 해이므로 감히 의견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묘당이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조준남(趙俊男)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과 삼사가 충분히 강구하고 살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해숭위(海嵩尉) 윤신지(尹新之)는 의논드리기를, "의빈(儀賓)이 조정의 논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원래 옛 규례입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다같이 타고난 천성이니 진실로 아는 것이 있다면 누가 감히 진달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조정에서 잘 의논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달성위 서경주(徐景霌)는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의 안위(安危)에 관계되는 만큼 신하의 의리로서 응당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질병에 걸린 생명이 본래 아는 것이 없는데다가 병으로 인하여 폐기된 지 이미 오래이므로 정신이 혼매하고 죽을 날이 가까왔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바입니다. 오직 공경 대부들이 널리 의논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는 의논드리기를, "남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기를 원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법입니다. 더구나 어렸을 때부터 거듭 성은(聖恩)을 입어 살과 골수에 무젖은 채로 오늘에 이르렀으니 보답하고 싶은 정성은 온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국가의 법규상 의빈(儀賓)은 감히 국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우매하여 본래 식견도 없기 때문에 일찍이 전후하여 수의할 때에 감히 함부로 의논드릴 수 없다는 것으로 말씀드렸었습니다. 이번에 닥친 조정의 중대한 논의에도 다시 더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 일선위(一善尉) 김극빈(金克鑌) 등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같이 타고난 천성이니 만약 아는 것이 있으면 누가 감히 진달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조정에서 충분히 의논하기에 달렸습니다." 하였다. 길성위(吉城尉) 권대임(權大任)은 의논드리기를, "젊은 나이에 배운 것이 없다 보니 무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대사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니 헌의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병조 참판 이덕형(李德泂), 참의 정립(鄭岦) 등은 의논드리기를, "이번에 제기된 막대한 논의에 대하여 어찌 감히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이호신(李好信)은 의논드리기를, "근래에 올라온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다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로 국가의 막중한 일입니다. 저는 본래 아는 것이 없으므로 감히 제 마음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이 알맞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여우길(呂祐吉)은 의논드리기를, "비상한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였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합하여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직강 정대해(鄭大海)는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려는 계책은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어찌 감히 다른 의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승문원 권지 이명운(李溟運)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정성은 미관 말직이라고 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중대한 일에 대해서 감히 헌의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묘당이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사섬시 봉사 민선철(閔宣哲)은 의논드리기를, "성상의 효도와 신하들의 충성으로 은혜와 의리를 각각 서로 극진히 할 뿐입니다." 하고, 우치적(禹致績)은 의논드리기를, "망측한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했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합하여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판결사 박경신(朴慶新)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보건대 성상께서 ‘듣고 싶지도 않다.’는 하교를 내리신 것이 두세 번 뿐만이 아니었으니 감격의 눈물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고 있으니 전하께서도 자유롭게 대처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하고, 안륵(安玏)은 의논드리기를, "비상한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여 유생들의 상소가 계속 줄을 잇고 있습니다.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조정의 논의를 널리 수합하여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송석경(宋錫慶), 이이경(李頤慶), 임연(任兗), 송강(宋康) 등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선비들이 논의한 내용은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일 이외에는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박정현(朴鼎賢)은 의논드리기를, "예로부터 국가에 비상한 거조가 있을 때 묘당의 대신들이 공론을 널리 수합해서 의논하여 결정해 왔던 것은, 지극히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사람마다 참여하여 논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여러 유생들의 상소문에 제기된 내용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한산직에 있는 자로서 경솔히 의논할 바가 아닙니다. 오직 경외(京外)의 여러 대신들과 서로 의논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여인길(呂䄄吉)은 의논드리기를, "예로부터 제왕이 비상한 변고를 만났을 때에는 비상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중론을 널리 채집하여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도록 하소서." 하고, 행 사직 이정험(李廷馦)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막중 막대한 일에 대해서 감히 의견을 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잘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장자호(張自好)는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문제인데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이조 참의 유희발(柳希發)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들의 상소는 국가의 대계를 위한 것인데 저에게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첨지 한총(韓叢)은 의논드리기를, "실로 공론(公論)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고, 능원군(綾原君) 이보(李俌)는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응당 조정의 처리가 있을 것입니다. 종척(宗戚)인 신하에게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창계 부수(昌溪副守) 세온(世溫), 창평 부수(昌平副守) 세례(世禮) 등은 의논드리기를, "식견이 없는 어리석은 신은 그저 임금을 충성과 의리로 섬길 줄만 알 뿐이고 국가의 논의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인지 모릅니다. 오늘날의 국론에 대해서는 원컨대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문성군(文城君) 이건(李健)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막대한 논의에 대하여 무식한 종친이 비록 함부로 논의하지는 못합니다만 그저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뿐입니다. 공론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행 사직 박재(朴梓)는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는 더없이 중대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위로 하늘의 뜻을 따르고 아래로 사람의 마음을 살펴 옳게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행 사용 이제(李穧)는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인만큼 그 책임이 묘당에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소신은 임금을 사랑하는 일 말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고, 조명욱(曺明勖)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결정은 묘당에서 하여야 합니다. 말직에 있는 소신이 어찌 감히 의견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송석조(宋碩祚)는 의논드리기를, "지금 헌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재야의 공론이 이와 같으니 미관 말직에 있는 저의 식견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고,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에서 의논하여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상원 부수(祥原副守) 세령(世寧)은 의논드리기를, "서적을 상고하고 사람들의 실정을 굽어 살펴 타당하게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검상 남궁경(南宮儆)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상소로 인하여 대대적인 논의가 한창 제기되고 있으니 낮은 관리의 소견으로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와 의리의 경중에 대해서는 절충하는 방도가 있기 마련이니 그저 묘당에서 신속하게 잘 처리하기를 소망합니다." 하고, 학유(學諭) 조희진(趙希進)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므로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 정랑 이정(李涎)은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묘당에서 처리할 문제이므로 성상을 번거롭게 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승문원 박사 이둔(李遯)은 의논드리기를, "예로부터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은 반드시 대신(大臣)에 의하여 결정되어 왔으므로 대신들의 의논이 한번 결정되면 소관(小官)들의 의견은 자연히 결정된 대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오늘의 이 문제는 상께서 알 바가 아니므로 그에 대한 처리는 더더욱 대신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신이 정사를 담당하는 여러 재상들과 함께 묘당에 모여서 가부를 토의하여 타당하게 처리한다면, 기강은 엄격해지고 일의 체모는 높아져서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진정되고 나라의 형편도 안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소란스럽게 매번 수의(收議)하는 것으로 일을 삼아 마치 남에게 떠넘기고 핑계대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대신이 일을 당하여 처결한다는 본의가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나라의 운명은 대신에게 달렸다.’라고 하였으니, 아무쪼록 이 뜻을 염두에 두고 많이 묻는 것만을 고집하지 말도록 하소서." 하고, 사복시 정 황익중(黃益中), 첨정 유일(柳𦨙), 판관 유희안(柳希安), 주부 박수의(朴守誼) 등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와 여항에서 잇달아 소장이 올라오고 여론도 모두 그와 일치하니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 군수 안종길(安宗吉)·이안민(李安民), 전 판관 홍응귀(洪應龜), 전 현령 이숭원(李崇元)·이경황(李慶滉)·권순(權淳), 전 현감 이운근(李雲根)·정혜연(鄭蕙衍)·노망해(盧望海)·이양휴(李揚休)·이덕순(李德淳), 전 영(令) 권광환(權光煥), 전 좌랑 성이민(成以敏)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론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더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고, 좌승지 유대건(兪大建)은 의논드리기를, "대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이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은 의논드리기를, "대론이 현재 제기되었고 조정의 논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오직 잘 재량함으로써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고,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대의(大義)가 있고 전하에게는 끝까지 보전하려는 사정(私情)이 있으니, 여러 유생들의 상소를 절충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좌참찬 민몽룡(閔夢龍)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의 상소가 실로 공공한 논의에서 나온 것인데 무슨 논의할 것이 또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직 허균(許筠)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임금을 해치려 한 자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런 원수에게 절을 한다면 이보다 더 통분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끝까지 은혜를 온전히 하려는 것은 전하의 심정이고 대의를 내세워 폄삭을 가하려 하는 것은 신하들의 책임입니다. 재야에서 올린 여러 상소는 그 견해가 매우 정당하니 여기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실로 사리에 맞을 듯합니다." 하고, 좌윤 김개(金闓)는 의논드리기를,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임금의 원수는 아비의 원수와 같이 본다.’고 하였으니 임금과 아비의 원수는 실지로 경중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 가운데는 아비의 원수라는 것 때문에 죽을 때까지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상을 해치려 한 자는 바로 우리 임금의 원수입니다. 대의(大義) 앞에서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재야에서 올린 정성어린 상소가 명백하고 통쾌하니 여기에 의하여 거행하게 되면 과연 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고, 한천군(漢川君) 조정(趙挺), 한평군(韓平君) 이경전(李慶全), 한산군(漢山君) 조진행(趙振行), 좌참찬 이충(李沖), 행 호군 남근(南瑾), 형조 참판 조국필(趙國弼), 동지 유간(柳澗), 행 사직 조유도(趙有道)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한집안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참으로 천고에 없던 일입니다. 지금 이 유생들의 상소는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인데 저희들이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대사헌 이병(李覮), 대사간 윤인(尹訒), 집의 임건(林健), 사간 남이준(南以俊), 장령 한영(韓詠)·강수(姜𢢝), 지평 정양윤(鄭良胤)·김호(金昈),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이강(李茳)·박종주(朴宗胄) 등은 의논드리기를, "신들의 의견은 합사하여 아뢸 때 다 말씀드렸으니 다시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신속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도승지 한찬남(韓纘男), 우승지 이창후(李昌後),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 등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는 경사(經史)에 나타나 있고 유생들의 상소에 다 진달하였으며 사람들의 의견도 같은 내용이니, 절충하여 처리하는 문제는 오직 의정부에 달렸습니다." 하고,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 동부승지 백대형(白大珩)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의는 지극히 엄한 것이고 공론은 지극히 소중한 것이므로 신하의 도리는 오직 대의를 밝히고 공론을 제창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 있을 뿐입니다. 이밖에 어찌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하고, 직제학 이익엽(李益燁), 교리 이잠(李埁)·이상항(李尙恒), 부교리 정준(鄭遵), 수찬 신광업(辛光業)·남명우(南溟羽), 부수찬 윤성임(尹聖任)·서국정(徐國楨), 박사 조유선(趙裕善) 등은 의논드리기를, "한결같이 국론에 따라 인정과 예법을 절충한다면 은혜와 의리의 경중 문제는 자연히 처리할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하고, 봉교 조정생(曺挺生)·오익환(吳益煥), 검열 박종윤(朴宗胤) 등은 의논드리기를,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어 신하와 백성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으니, 처리하는 방도는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대교 김주하(金奏夏)는 의논드리기를, "대의를 밝히고 공론를 제창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것이 신하의 도리입니다. 이밖에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고, 검열 이필달(李必達), 이점(李蒧)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죄악이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귀신과 사람이 다 분개합니다. 공정한 논의가 다행히 제기되고 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합니다. 신들이 사국(史局)에 몸담고 있는 이상 감히 직필(直筆)을 사용하여 헌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공정한 논의를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대교 이경익(李慶益)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묘당에서 의논하여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검열 안응로(安應魯)는 의논드리기를, "정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단정코 다른 견해가 없습니다." 하고, 유경종(柳慶宗)은 의논드리기를, "근래 전후하여 올린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다 화근을 제거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의(大義)가 강조되는 곳에는 사은(私恩)을 고려할 수 없는 것이며, 일이 중대한만큼 반드시 사유를 갖추어서 주문(奏聞)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이위경(李偉卿)은 의논드리기를, "전에 벼슬하지 않았을 때 태학(太學)의 여러 선비들과 함께 이미 짧은 상소문을 올렸었는데, 윤인과 정조의 논의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임금을 사랑하는 열성은 설사 목을 베자는 홍무적(洪茂績) 등의 요청이 있었어도 오히려 가슴속에 서려 있습니다. 지금 널리 의논하는 때를 당하여 어찌 감히 다시 헌의할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참지 정조(鄭造)는 의논드리기를, "일찍이 계축년에 언관(言官)으로 있으면서 전에 없던 변고를 만나 각각 따로 거처해야 한다는 논의를 망령되게 진달하였으며, ‘모후(母后)가 안으로는 무당을 시켜 저주를 하게 하고 밖으로는 역적 음모에 호응함으로써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어미된 도리를 스스로 끊었는데 오늘날 신하들이 그를 국모(國母)로 대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것은 대개 서궁이 자기가 낳은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꾀하여 아주 은밀히 모해한 흉악하고 참혹스런 사실이 뭇사람의 공초에서 일치되어 갖은 정상이 다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큰 변고인 동시에 실로 온 나라 신하와 백성의 원수인 것입니다. 오늘날 유생들의 상소는 분하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관계로 말을 자제하지 못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금을 위하고 종묘 사직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예로부터 변고에 대처하는 데는 그 방도가 있었습니다. 권경(權經)을 고려하고 은의(恩義)를 참작해서 우리 임금을 허물없는 데로 인도하여 후세에 영원히 할 말이 있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자기 도리를 다하도록 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앞서 이른바 ‘모자간의 관계는 사람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이고 종사의 계책은 책임이 대신에게 달렸습니다.’고 한 것도 이 뜻입니다. 지금 널리 의논하는 때를 당하여 전날의 소견을 또 진달합니다." 하고, 형조 참의 정규(鄭逵)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한가족 중에서 나왔으니 진실로 천고에 없던 일입니다. 이번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실로 공공한 논의입니다. 어찌 감히 더 논의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전 사간 정도(鄭道)는 의논드리기를, "사은(私恩)과 대의(大義)는 원래 경중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오직 묘당에서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장악원 정 이홍엽(李弘燁)은 의논드리기를, "일찍이 벼슬하지 않았을 때에도 대의(大義)를 감히 내세웠었습니다만 오늘날 변고에 대처하는 데에 있어서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이원엽(李元燁)·이대엽(李大燁)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의가 있는 데에는 정론(正論)도 같은 법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이야 어찌 유생들만 못하겠습니까." 하고, 전 사예 박홍도(朴弘道)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만큼 신하와 백성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의리가 있으니 그 누가 통분한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까. 지난 계축년에 대간(臺諫)에 있을 때 몸바쳐 역적을 토벌하였으며 저주한 여러 역적들도 대부분 토죄하였습니다. 지금 이 논의에 있어서 어찌 전후의 논의를 서로 다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묘당에서 대의를 밝혀 종묘 사직을 안정되게 하소서." 하고, 사과 원종(元悰)·양홍(梁泓) 등은 의논드리기를, "노(魯)나라는 문강(文姜)을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강(哀姜)의 변이 잇달아 일어났고, 당(唐)나라는 무후(武后)를 주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씨(韋氏)의 난이 또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춘추(春秋)》에 써서 단죄하였으며, 호씨(胡氏)는 장간지(張柬之)가 무후에게 죄를 주었어야 했다고 논했던 것입니다. 김을 매면서 뿌리를 완전히 뽑지 않으면 결국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니, 원컨대 속히 대의를 들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이조 좌랑 한옥(韓玉)·황덕부(黃德符) 등은 의논드리기를, "사사로운 은혜를 온전히 간직하는 것은 성상에게 달렸고, 대의를 가지고 변란에 대처하는 것은 신하들에게 달렸으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절충해서 끝까지 잘 처리하여 신하된 도리를 다하는 것은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판윤 윤선(尹銑)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하와 백성의 심한 노여움을 사고 있으므로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의 대신들과 훈척(勳戚)인 여러 재상들이 잘 마무리하는 계책을 함께 의논하여 적합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분병조 참판 이성길(李成吉)은 의논드리기를, "전후로 올린 유생들의 항의하는 상소는 종묘 사직을 위한 대계(大計)가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재야 선비들의 충언을 받아들이고 온 나라의 공정한 논의를 따라 속히 묘당의 대신들, 그리고 훈척인 재상들과 함께 자세히 토론해서 서둘러 대의(大義)를 결정하소서." 하고, 분병조 참의 박사제(朴思齊)는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이 항소(抗疏)를 올림으로 해서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온 나라의 백성들이 어찌 견해를 달리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의 대신들과 훈척인 재상들이 속히 종묘 사직을 위한 계책을 정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엄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우윤 이원(李瑗)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하와 백성들의 심한 분노를 사고 있으므로 유생들의 항의하는 상소가 잇달아 올라와 정론이 한창 격렬하니, 이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참으로 사리에 맞겠습니다." 하고, 행 사정 황치성(黃致誠)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는 진정을 피력하였고 공론은 지극히 엄격하니 오직 의를 내세울 뿐 달리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하고, 행 사과 윤개(尹凱)는 의논드리기를, "나랏일 중에는 상에게 진달하기 어렵고 대신이 직접 담당하여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랏일의 위태로움이 과연 유생들의 상소와 같고 그 위급한 화가 눈앞에 닥쳤다면 대신은 응당 적절하게 처리해야 하고, 만약 위태로운 정도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대신은 응당 그것을 진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국가의 안위가 대신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어찌 분분하게 의견을 수합하기를 마치 길가에 집을 짓는 사람처럼 한단 말입니까." 하고, 이선복(李善復)은 의논드리기를, "인륜상의 큰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여 유생들의 상소가 계속 올라오고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늘날의 거조(擧措)는 관계되는 것이 매우 중대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다같이 느끼는 것은 변고에 대처하는 문제를 타당성 있게 처리하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고, 예조 좌랑 유약(柳瀹), 승문원 권지 유집(柳潗) 등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에게는 역적과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의리가 있고 전하에게는 사사로운 은혜를 고려해야 하는 정분이 있으니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설서 이모(李慕)는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해치려 했던 원수를 신하의 도리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대의가 존재하는 이상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형조 좌랑 이원여(李元輿)는 의논드리기를, "대의에 관계되므로 조정과 재야가 다같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변란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보덕 배대유(裵大維), 필선 곽천호(郭天豪) 등은 의논드리기를, "현재 대대적인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어찌 이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전 지평 홍요검(洪堯儉)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이 상소하여 항의하고 있고 공정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으니 사사로운 은정이 비록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대의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속히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예빈시 정 금개(琴愷)는 의논드리기를, "삼사가 잇달아 아뢰고 있고 유생들이 항의하는 소장을 올리고 있으니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원 권지 심지청(沈之淸)은 의논드리기를, "계축년 이후로 이미 모후(母后)로 대우할 수 없다는 의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국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전하의 신하가 된 자들이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예조 좌랑 한정국(韓定國)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은 임금의 원수인만큼 어린아이일지라도 다 그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다는 의리를 알고 있는데 어찌 감히 이론을 제기하여 임금의 원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예조 정랑 채겸길(蔡謙吉)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운수가 불행하여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결과 사람의 도리는 어두워지고 이론(異論)들만 판을 쳐 《춘추(春秋)》의 대의가 문란해져 장차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재야의 선비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충성스런 말로 전하에게 호소한 지 여러 날이 지났으나 아직도 결정짓지 않고 있습니다. 임금이 주는 밥을 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고도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서궁의 죄악을 들어 태묘에 고한 다음 먼저 그의 존호(尊號)를 강등시키고 다음으로 분사(分司)·공헌(貢獻)·조알(朝謁) 등의 일을 철폐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이니, 옳은 의견을 따라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예조 정랑 최호(崔濩)는 의논드리기를, "당초에 서궁이 안으로는 무당을 불러들여 저주를 행하고 밖으로는 반역 음모에 동조하였다는 사실이 여러 사람의 일치된 공초를 통하여 진상이 다 드러났으므로, 일찍이 벼슬하기 전에도 주제넘게 항의하는 소장을 올려 대의를 밝혔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유생들이 다함께 분개해 하고 조정과 재야가 같은 말을 하는데,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여 종묘 사직을 등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봉상시 주부 강문익(康文翼)은 의논드리기를, "한 하늘 아래에서 어찌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누구라도 주벌을 가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고, 승문원 부정자 정심(鄭沁)은 의논드리기를, "충성을 다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것이 평소에 원하던 바입니다. 하찮은 소신이 다시 무슨 의논을 드리겠습니까." 하고, 행 사과 이담(李憺)은 의논드리기를, "정성을 다하여 역적 토죄할 것을 청하는 것이 신하의 가장 큰 의리입니다. 속히 공론을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문학 한희(韓暿), 전적 한급(韓昅) 등은 의논드리기를, "희(暿)·오(晤)·급(昅) 형제 세 명이 일찍이 벼슬하기 전인 계축년에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소장을 올렸다가, 흉악한 엄성(嚴惺) 등의 모함으로 ‘국모(國母)를 동요시켜 윤리상의 죄를 범했다.’는 것으로 지목받아 모두 정거(停擧)되고 말았으며, 또 그들이 번갈아가며 글을 올려 참형에 처할 것을 청하여 마지않았는데 하늘이 일월(日月)처럼 굽어살펴 흉악한 무리를 척결하심을 힘입어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으니, 이 모두가 다 성상의 은혜입니다. 임금을 위하고 종묘 사직을 위하는 구구한 마음은 일편 단심 다른 뜻이 없습니다. 다만 원하건대, 묘당으로 하여금 여러 유생의 글을 절충하고 공론을 더욱 확장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군기시 정 강린(姜繗)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은 소중한 것이어서 사사로운 은정으로 막기는 어렵습니다. 속히 중대한 논의를 따라 여러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고, 전 정 이람(李覽)은 의논드리기를, "국시가 이미 정해졌으니 오직 묘당의 대신들과 훈척인 중신들이 잘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직강 유광(柳洸)은 의논드리기를, "전후에 걸쳐 올려진 유생들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내용이었으니, 오직 묘당이 절충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용 정호신(鄭虎臣)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망극한 변란을 겪게 되었습니다만 임금의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습니다.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경양군(慶陽君) 이사공(李士恭), 봉산군(蓬山君) 정상철(鄭象哲)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공론(公論)이 무리를 지어 일어나고 조정의 정의(正義)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이 적당하게 헤아려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정 최철견(崔鐵堅)은 의논드리기를, "여론이 다 분개함에 따라 정당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국가를 위하여 화근을 제거하는 데에 있어서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전 판관 김여순(金汝純)은 의논드리기를, "한 하늘 아래에서 참고 살아온 지가 10년이 되어가니 공정한 논의가 제기된 것이 지금도 늦었다고 하겠습니다. 대의가 있는 곳에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교서관 교리 정흡(鄭洽)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의 의리로는 역적을 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조정이란 중대한 논의가 있는 곳이니, 잘 처리할 수 있는 방도가 나오기를 신은 날마다 바라고 있습니다." 하고, 주부 박항길(朴恒吉)은 의논드리기를, "신하된 자로서는 다만 의리로 떨치고 일어나 역적을 토벌해야 할 뿐입니다.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사예 박수서(朴守緖)는 의논드리기를, "공의(公議)는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국시(國是)는 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공의를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것이야말로 어찌 오늘날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전 감찰 김설(金渫)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인만큼 은혜는 가볍고 의리는 중합니다. 화근을 제거하기에 힘쓸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하고, 전 정랑 정감(鄭鑑)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은 항의의 상소를 올리고 있으며 관리와 백성들은 잇달아 소장을 올리고 있으니, 이것은 온 나라가 다같이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조정에 있는 높고 낮은 신하들로서는 더욱더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이 모든 관리를 다 거느리고 가서 정성껏 호소하여 성상의 마음을 돌림으로 해서,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한편으로는 인심을 진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전 현령 정흠(鄭欽)은 의논드리기를, "선비들과 일반 사람들은 계속 글을 올리고 온 나라 사람들이 다같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높고 낮은 관리들은 의리로 보아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가 없으니, 묘당에서는 속히 큰 계책을 정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전 정 허경(許儆)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한창 벌어지고 있으며 조정의 계책도 이미 결정되었는데 거의 죽어가는 병든 몸이 어찌 거기에다 다른 의견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익위(翊衛) 이평형(李平亨)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의 상소가 계속 올라오고 중대한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으니, 오직 묘당이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살펴서 처리를 적절하게 잘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동몽 훈도 이적(李績)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한가족 가운데서 나온 것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니, 신하와 백성의 입장에서는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동몽교관 김휘(金翬)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죄는 실로 종묘 사직에 관계되므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이번 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의리상 정성을 다하여 토죄할 것을 청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원컨대 옛 선비들이 이미 정하였던 논의에 의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고, 사섬시 부정 유철(柳澈), 평시서 영(平市署令) 이문현(李文顯), 서제(書題) 정몽필(鄭夢弼)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한창 제기되고 있어 막을 수 없으니 속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도사 정결(鄭潔)은 의논드리기를, "밖으로는 반역 음모에 동조하고 안으로는 저주한 자취가 명백히 드러나서 의심할 것이 없으니, 이는 진실로 신하로서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비록 사사로운 은혜를 보존하려 하더라도, 공정한 논의가 이미 격렬하게 일어나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옳다고 한다면 어찌 사사로운 은혜로 큰 의리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성균관 박사 황상겸(黃尙謙)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은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되고 국시도 정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 공론에 따라 국시를 정하는 것이 어찌 오늘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성균관 박사 왕보신(王輔臣)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한번 제기되자 여론이 일치되었습니다. 국가의 대계를 정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문제는 대신이 할 일입니다.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종묘서 영 우정침(禹廷琛)은 의논드리기를, "사론(士論)이 일제히 일어나 여론이 한창 일고 있으니 오직 묘당이 공론을 따라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적 채승선(蔡承先), 학정 이유일(李惟一)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들어오자 공론이 더욱 준엄합니다. 속히 대의를 내세우는 문제는 오직 묘당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적 이창정(李昌庭)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이 올린 상소의 내용과 다른 의견이 없으니, 속히 국가의 대계를 결정하여 종묘 사직을 부지하소서." 하고, 전적 신칙(申恜)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들어오자 여론이 정해졌습니다. 속히 국가의 대계를 세워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였다. 돈녕부 판관 윤흥충(尹興忠), 주부 경선(慶選), 참봉 이몽룡(李夢龍) 등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중대한 논의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처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고, 예조 정랑 안경(安璥)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 사람의 공정한 논의인만큼 오직 묘당이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종부시 주부 이응철(李應喆), 직장 남궁격(南宮格) 등은 의논드리기를, "의리를 내세워 변란에 대처하는 데에 있어서는 종묘 사직이 중한 것인만큼 사사로운 은혜 때문에 공의(公義)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교서관 박사 권두남(權斗南), 저작 최업(崔嶪) 등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고 국시(國是)가 이미 정해졌으니,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제용감 정 이시정(李時楨)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일은 온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이니 대의에 입각해서 잘 처리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형조 정랑 나인(羅籾)은 의논드리기를, "선비들이 계속 글을 올리고 군민(軍民)이 다 호소하니 온 나라의 공론이라고 할 만합니다. 오직 은혜와 의리를 참작하고 경중을 고려하여 대신·삼사와 함께 좋은 방향으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분병조 정랑 박률(朴慄)은 의논드리기를, "위로 공경 대부로부터 아래로 사서인에 이르기까지 뭇 의논이 다 동일하니, 이것은 바로 국시(國是)입니다. 어찌 감히 그 사이에다 이론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분병조 정랑 이종언(李宗彦)은 의논드리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하의 대의이고 은혜를 온전히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사정인 것입니다. 어찌 한 사람의 사정으로 천하의 대의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수의(收議)하는 날을 당하여 다른 말을 더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군기시 주부 윤호(尹昈)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우리 임금을 모해한 사실은 귀가 있는 사람이면 다 들었을 것이니, 신하된 자로서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대의가 있는 데에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선공감 감역 서탁(徐晫), 가감역 오염(吳焰)·이종립(李宗立) 등은 의논드리기를, "휘호(徽號)를 폄하하고 조알(朝謁)을 없애며 분사(分司)를 철폐하는 것 외에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사도시 첨정 조계한(趙繼韓)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의 공공한 논의에 대하여 다시 더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적 양시헌(梁時獻)은 의논드리기를, "더없이 중대한 일을 감히 경솔하게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 사람이 다 옳다고 할 때에 시행한다면 이것은 바로 국인이 시행하는 것입니다." 하고, 행 사과 이중로(李重老)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실로 천고에 없었던 일입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논의해서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케 하소서." 하고, 사직서 영 박채(朴綵)는 의논드리기를, "대의를 밝혀서 종묘 사직을 부지하는 것은 신하의 책임입니다.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재감 참봉 정담(鄭湛)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의 원수와는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속히 공정한 논의에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사복시 주부 이선득(李善得)은 의논드리기를, "인륜의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여 상소가 계속 올라오는 등 대대적인 논의가 제기되고 있으니, 변고에 대처함에 있어 타당하게 하는 것은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내시 교관 이일형(李日馨)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얻어 그 죄악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속히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엄하게 하소서." 하고, 와서 별제(瓦署別提) 이진영(李震英)은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는 마땅히 온 나라 사람들이 동의하는가의 여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옳다고 한다면 다시 논의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고, 직강 민호(閔頀)는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대대적인 논의는 실로 공정한 논의입니다. 여러 사람의 의논을 절충하여 좋은 의견에 따라 잘 처리하는 것은 오직 묘당과 삼사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봉상시 첨정 차운로(車雲輅)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일은 나라 안의 사람이 다 아는 바입니다.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집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봉상시 판관 조익(趙釴)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이 소중하기 때문에 정당한 논의가 이미 제기된 것입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봉상시 봉사 김경후(金慶厚)는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한번 제기되자 좌우의 경대부와 상하의 국민이 모두 옳다고 말하고 있으니, 공론(公論)과 여정(輿情)을 여기에서 알 만합니다." 하고, 봉상시 주부 이재영(李再榮)은 의논드리기를, "전후에 걸친 유생들의 상소에서 이미 중대한 논의를 제창하자 위로는 여러 재상들의 의논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리(胥吏)와 군민(軍民)의 심정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한 계책이 아닌 것이 없으니, 여정과 공의를 여기에서 알 수 있겠습니다. 다시 무슨 논의를 하겠습니까." 하고, 전흥군(全興君) 이시언(李時言)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훈련 도감 중군 원수신(元守身)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실로 천고에 없었던 일입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논의해서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행 사정 홍택(洪澤)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에서 화근을 제거하는 문제가 이미 공공한 논의를 통해 제기되었으니, 미천한 관리가 감히 멋대로 논의할 바가 아닙니다. 묘당에서 결정하도록 하소서." 하고, 부총관 유순무(柳舜懋), 행 사과 민항(閔沆)·조훤(趙暄)·노세준(盧世俊)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논의는 국가의 안위 문제에 관계됩니다. 묘당과 삼사가 잘 살펴서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김경서(金景瑞)·이문전(李文荃)·송안정(宋安廷)·이백복(李伯福)·원근(元慬)·신충일(申忠一)·조유정(趙惟精)·이응순(李應順)·권형(權炯)·이선지(李先智)·홍대방(洪大邦)·안숙도(安肅道)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의 상소는 국가를 위한 계책이니 오직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지사 한희길(韓希吉), 행 사과 조의(趙誼)·허완(許完)·이응해(李應獬)·이응기(李應麒)·유응형(柳應泂)·박성룡(朴成龍)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것입니다. 조정의 논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어찌 다른 논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과 정진철(鄭震哲)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운명과 사직의 안위가 오늘에 달려 있습니다. 신의 고루한 소견은 여러 유생의 상소에서 말한 뜻과 다름이 없습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고, 행 사용 김윤신(金允信)·박덕린(朴德麟) 등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므로 사사로운 은혜를 가지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대의(大義)를 결정하소서." 하고, 행 사용 김효신(金孝信)·윤인남(尹仁男) 등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첨지 유황(柳璜)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정의 논의를 채택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행 사용 최한(崔漢)·홍창세(洪昌世)·이성(李晟)·조발(趙橃)·이은종(李殷宗)·김정간(金廷幹)·권극정(權克正)·이정생(李挺生)·김운성(金雲成)·문홍경(文弘慶)·황유중(黃裕中) 등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만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과 원유남(元𥙿男)·유승서(柳承瑞)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공공한 논의에 대하여 어찌 문제를 삼겠습니까." 하고, 안숭헌(安崇憲)·신진(申蓁)·이균(李鈞) 등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 외엔 본래 진달할 말이 없습니다. 묘당의 여러 재상들의 의논에 따르겠습니다." 하고, 행 사과 유몽룡(劉夢龍)·이경호(李景湖)·유림(柳琳)·박상(朴瑺)·이현(李玹)·김경운(金慶雲)·이눌(李訥)·김응함(金應緘)·유정생(劉挺生)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제기된 논의는 국가의 막중한 일이니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맹 전득우(田得雨)는 의논드리기를, "한 나라의 공정한 논의가 유생들의 상소에서 잇달아 나왔으니 경외의 신민이 어찌 다른 의견을 제시하겠습니까.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대의를 내세워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행 사정 윤경기(尹景祺)·이능운(李凌雲)·홍기남(洪奇男)·이영남(李英男)·박난영(朴蘭英)·구인경(具仁慶)·김원복(金元福) 등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내승(內乘) 홍술(洪珬)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의 공론이 오히려 존재하고 있으니 적합하게 논의하여 처리할 뿐입니다." 하고, 첨지 이유성(李惟誠), 행 호군 윤응삼(尹應三), 행 사과 오정방(吳定邦)·전윤(田潤)·고경민(高敬民)·권근(權瑾)·남빈(南贇)·황정철(黃廷喆)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유생들의 상소에서 나왔으니 오직 묘당에서 적절히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직 변응지(邊應祉)·장응명(張應明)·구덕령(具德齡)·조충일(趙忠一)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제기되었고 조정의 논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정 유옥(柳沃)·이여해(李汝諧)·정봉수(鄭鳳壽)·최경춘(崔景春)·이귀경(李龜慶)·성식(成軾)·이종성(李宗誠)·이복광(李復匡)·정지륜(鄭之淪)·박정기(朴廷琦)·손경지(孫景祉)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상소의 요구를 조정에서 다 이미 시행하기로 하였으니,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용 이정(李楨)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은 지극히 소중한 것이니 대의로 용단을 내려 화란을 그치게 하소서." 하고, 행 사정 김영남(金穎男)은 의논드리기를, "베옷 입은 유생들이 정성을 다하여 상소하였고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어 공론이 지극히 엄격한데, 여기에다 어찌 감히 다시 의논을 덧붙이겠습니까." 하고, 직강 박효생(朴孝生)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주부 민정(閔瀞)은 의논드리기를, "임금과 신하의 사이에 의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는데, 유생들의 상소내용 외에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통례 양극선(梁克選), 상례 정유번(鄭維藩), 인의 홍사준(洪師俊)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다시 무슨 의견을 드리겠습니까.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별좌 황식(黃湜)·이사성(李士星)·유식(兪湜)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들의 상소는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호조 정랑 김적(金適)은 의논드리기를, "지난 역사를 널리 상고한 다음 묘당과 상의해서 대의를 밝히고 정론을 넓혀 좋은 쪽으로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호조 좌랑 김우익(金友益), 제용감 참봉 정문회(鄭文晦)는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학록(學錄) 허돈(許燉)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항의하는 상소가 누차 제기되고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나왔으니,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학정(學正) 박진(朴瑨)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은 소중한 것입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정해졌는데 하찮은 소신이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전 좌랑 정대용(鄭大容)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와 백성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원수와 함께 살 수 없는 의리가 있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대책을 세워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사옹원 주부 성흔(成昕)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화란을 일으켜 예기치 않았던 변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신하된 자로서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이니, 혈기를 가진 자라면 어느 누가 분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대의가 밝혀지지 않아 이론이 마구 나오고 있으니, 오늘의 이 거조가 좀더 일찍 제기되지 않은 것이 애통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모든 관리를 이끌고 대궐 앞에 모여서 정성어린 눈물로 호소하여 성상의 마음을 돌리게 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가내승(假內乘) 홍걸(洪傑)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전하를 위태롭게 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전하의 위태로움은 곧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인데 전하의 백성인 자들이 그를 서궁으로 대우할 수 있겠습니까. 속히 의논하여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군기시 부정 정문진(鄭文振)은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할 대의에 대해서는 이미 상소에 진달하였습니다.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감찰 이영식(李永式)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유생들이 이미 상소를 올렸고 조정의 많은 관리들도 각각 헌의하였으니, 오직 묘당에서 속히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정 김원남(金元男)은 의논드리기를, "비록 사사로운 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의는 지극히 엄격한 것입니다. 좋은 의견을 따라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전 주부 이대섭(李大涉)은 의논드리기를, "죄있는 자를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신하와 백성들의 분한 마음을 풀게 하소서." 하고, 전 판관 권진(權聄)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의 대원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공론을 흔쾌히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호군 한찬(韓襸)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된 이상 사사로운 은혜를 가지고 용서해 줄 수는 없습니다. 속히 공론을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주소서." 하고, 세마(洗馬) 유시립(柳時立)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는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인데 이는 실로 다같은 소원입니다. 신과 같은 미관 말직에 있는 자가 무슨 특별한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전옥서 주부 이순(李楯), 참봉 이유원(李幼原)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신속하게 잘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봉사 정진(鄭晉)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 외에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감찰 박미(朴楣)·정응성(鄭應星)·김대하(金大河)·정민구(鄭敏求)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이 재야 유생들의 상소를 널리 채집하여 처치를 타당성있게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김광익(金光翼)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대의(大義)를 밝히도록 하소서." 하고, 이두남(李斗男)은 의논드리기를, "재야 유생들의 상소가 실로 공론에 부합됩니다. 삼가 원컨대 묘당은 좋은 쪽으로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조형남(趙亨男)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중대한 논의인만큼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처리해서 모든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소서." 하고, 이경백(李慶百)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에서 일고 있는 대대적인 논의는 관계되는 바가 더없이 중요합니다. 즉시 묘당으로 하여금 공론을 흔쾌히 따르도록 하소서." 하고, 김종진(金宗振)은 의논드리기를, "묘당의 계책을 따름으로써 대의를 밝히도록 하소서." 하고, 【이상은 모두 감찰이다.】 행 사직 성시헌(成時憲), 분승지 윤경(尹絅)·한회(韓懷)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일은 지극히 중대하니 오직 묘당이 헤아려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제용감 판관 김현(金俔), 봉사 박희(朴暿), 의금부 도사 정찬(鄭纘)·이담경(李曇慶), 별제 윤형임(尹衡任), 봉사 이사민(李師閔), 직장 이준익(李俊翼), 학유 조훈(趙塤), 별제 이경준(李慶浚), 감역 성창렬(成昌烈), 참봉 윤보형(尹保衡)·임기령(任麒齡), 정랑 이중계(李重繼), 참봉 이몽룡(李夢龍), 별좌 심숙(沈俶), 봉사 신순(申楯), 주부 김영(金韺), 봉사 이해(李𥩲)·유여성(柳汝惺), 사정 성희구(成僖耉), 별제 김수정(金守正), 직장 최응두(崔應斗)·우대유(禹大有), 교관 이성석(李聖錫), 주부 손종하(孫宗賀), 참봉 심정익(沈廷翼), 주부 심이(沈怡)·박안국(朴安國), 봉사 신종근(申從謹), 도사 이국형(李國衡), 참봉 한사일(韓師一), 직장 이사증(李師曾)·정연수(鄭兗岫), 별제 김형윤(金亨胤), 봉사 김양선(金揚善), 주부 김덕망(金德望), 직장 황효전(黃孝全), 주부 황효의(黃孝儀), 별제 한오(韓晤), 직장 정섭(鄭涉), 첨정 박천서(朴天敘), 주부 강세경(姜世慶), 직장 이경민(李景閔), 도총부 경력 변언황(邊彦璜)·이중룡(李重龍), 도사 정국정(鄭國楨)·박영(朴瑛)·권극평(權克平)·한기영(韓耆英), 서윤 윤희(尹僖), 시직 김수관(金守寬), 교관 최구(崔衢), 참봉 이간(李簡), 주부 유건(柳健)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제기되었고 중대한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으니, 오직 묘당에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조치를 취하도록 하소서." 하고, 혹자는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다시 더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에 관계되는 일이니 의리에 입각하여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수문장 정제룡(鄭霽龍) 등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신하와 백성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식한 무관이다 보니 별로 진달할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서소문 별장 조옥건(趙玉乾)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에서 발생한 망측한 변고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묘당은 속히 토의하여 잘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전 첨사 손문욱(孫文彧)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천고에 없었던 일이니 신하와 백성의 의리로서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무겸선전관 이인헌(李仁憲)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5년 만에 제기되었으니 지금 시점에서 보면 너무 늦은 것입니다.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다시 더 다른 논의를 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내의원 지사 조흥남(趙興男), 박홍헌(朴弘憲)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가 한가족 중에서 일어났으니 이는 천고에 없던 변고입니다. 신하와 백성들은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으니,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행 호군 안정국(安正國)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은 스스로 종묘 사직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비상한 변고에는 마땅히 비상한 거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관상감 부정 정사륜(鄭思倫)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니 사사로운 은혜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속히 공론을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쾌하게 해주소서." 하고, 혜민서 주부 조여로(趙汝櫓)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될 수 있는 한 빨리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강예습독관(講藝習讀官) 이수현(李守玄)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에서 일어난 망측한 변고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토의한 다음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내수사 별좌 윤수우(尹秀宇)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될 수 있는 한 속히 잘 처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고,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 내용은 대체로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려는 큰 계책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종반(宗班)의 대열에 있는 사람으로서 의리상 고락을 함께 하고 목숨을 바쳐야 할 신의 마음이 어찌 재야의 유생들만 못하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공공의 청을 속히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 달려 있습니다." 하고, 경창군(慶昌君) 이주(李珠)는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모두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과 국가를 위한 큰 계책에서 나왔습니다. 더구나 의리상 고락을 같이해야 할 자가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흥안군(興安君) 이제(李瑅)는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잇달아 올라오고 서민들도 모두 다같은 의견을 제기하였으니, 이는 온 나라의 공통된 대론(大論)인 것입니다. 그런데 왕실의 지친으로서 역적을 토벌하는 대의에 대하여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경평군(慶平君) 이륵(李玏)은 의논드리기를, "오늘의 수의(收議)는 종묘 사직을 위한 거국적인 공론인데 고락을 같이하여야 할 신하에게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순녕군(順寧君) 이경검(李景儉)은 의논드리기를, "오늘 이 논의는 실로 모든 사람의 여론에서 나온 것이니 묘당이 화근을 속히 제거한다면 종묘 사직을 위하여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무림군(茂林君) 이선윤(李善胤)은 의논드리기를, "대체로 수의(收議)의 뜻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을 가지고 타당성의 여부를 결정짓지 못할 때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궁이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고 꾀하여 저주와 흉악한 짓을 자행한 일에 대하여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다같이 분노하고 있는 이상, 이 문제를 처리할 대의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기자헌은 중대한 논의를 확장시켜야 할 날에 이미 충성스럽지 못한 의견을 드리더니 또 도당에 앉아 감히 수의(收議)한다는 의견을 내놓아 막중한 대론을 이렇게까지 지체되게 하고 있으니 그 누가 통분해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임금이 주는 밥을 먹고 우리 임금이 주는 옷을 입고 있는 이상 진실로 불충(不忠)한 신하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여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갖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대의를 내세워서 간사한 논의를 배척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킴으로써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게 하소서." 하고, 풍해군(豊海君) 이호(李浩), 풍릉 수 이혼(豊陵守李混)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종묘 사직에 죄를 지은 사실에 대해 귀신과 사람이 다같이 분노하고 있는 바이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양천군(陽川君) 이봉수(李鳳壽), 제천 령 인수(濟川令麟壽) 등은 의논드리기를,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종묘 사직이 편안치 못할 것이니 속히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능림 령 능윤(綾林令能胤)은 의논드리기를, "오늘의 수의(收議)는 중대한 논의를 정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의(大義)입니다. 신하된 자로써 어느 누가 원하지 않겠습니까. 이 밖에 다른 말이 없습니다." 하고, 무산 부령(茂山副令) 복윤(福胤)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에서 올린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니 혈기가 있는 자라면 어느 누가 생각이 같지 않겠습니까. 흔쾌히 공론을 따른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안성 부수(安城副守) 인충(仁忠), 춘성 부수(春城副守) 의충(義忠), 은계 부령(銀溪副令) 철민(哲敏), 은산 부령(銀山副令) 철순(哲純) 등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의 공정한 논의는 모두 국가를 위한 대계(大計)이니 마땅히 중론을 따름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고, 영천군(永川君) 이유(李瑜)는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이 상소한 것은 신하의 대의를 밝히려는 것이니 종묘 사직을 위한 지극한 계책이라 하겠습니다. 참작하여 결정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적선 정(積善正) 득인(得仁), 회덕 정(懷德正) 처인(處仁), 일선 정(一善正) 숭인(崇仁), 정선 부정(旌善副正) 안인(安仁), 영선 부수(永善副守) 순인(純仁), 숭선 부정(嵩善副正) 부인(富仁), 운성군(雲城君) 계남(繼男)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이 진달한 것은 실로 국가의 공공한 논의이니 공론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금양 부령(錦陽副令) 철윤(哲胤), 전양 부령(全陽副令) 귀윤(貴胤) 등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은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 공론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영원 감 남수(永原監楠壽), 부흥 감 경(富興監經)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속히 공론을 따름으로써 귀신과 사람의 분한 마음을 씻게 하소서." 하고, 여성 정(驪城正) 운경(雲慶), 익창 부수(益昌副守) 충생(忠生), 송진 부수(松津副守) 근(瑾), 영원 부령(靈原副令) 탁(晫), 영릉 부령(靈陵副令) 질(晊), 순양 부령(順陽副令) 흔(昕)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에서 진달한 것은 종묘 사직을 위한 대계이니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완천 령(完川令) 이계남(李繼男)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가 다 화근을 속히 제거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바라고 있는데, 하물며 종척(宗戚) 중의 한 사람으로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무릉 감(茂陵監) 희맹(希孟), 파릉 감(巴陵監) 희민(希閔), 청성 감(靑城監) 희순(希舜), 화성 감(花城監) 희천(希天), 신릉 감(愼陵監) 희급(希伋), 평림 수(平林守) 지윤(祉胤), 운림 수(雲林守) 종윤(宗胤), 봉래군(蓬萊君) 형윤(炯胤), 봉산 수(蓬山守) 형신(炯信), 양성 감(陽城監) 희안(希顔), 청계 도정(淸溪都正) 오(鼇), 시림 부정(始林副正) 세준(世俊), 추계 수(秋溪守) 귀(龜), 운계 부령(雲溪副令) 타(恭), 광천 부령(廣川副令) 지길(智吉), 순안 수(順安守) 선룡(善龍), 고산 부령(高山副令) 공(恭), 영성 감(靈城監) 희선(希善), 성산 감(星山監) 희신(希信), 금성 감(錦城監) 우수(禹壽), 언양 부령(彦陽副令) 엽(曄), 두릉도정(杜陵都正) 희안(希顔), 덕림 수(德林守) 희윤(禧胤), 오성 감(烏城監) 희량(希良), 서성 감(西城監) 희성(希聖), 창산 감(昌山監) 희현(希賢), 원흥 부령(原興副令) 원(瑗) 등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이 막중한 논의에 대하여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온 나라의 공론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하고, 완산 수 덕윤(完山守德胤), 귀안 부수(龜安副守) 담(曋), 영산군(寧山君) 예윤(禮胤), 흥원 령(興原令) 노(), 덕의 부령(德義副令) 선(墠), 신천 부령(信川副令) 경사(景獅), 계양 령 예길(桂陽令禮吉), 광성 부령(廣城副令) 제길(悌吉), 수양 령 충길(樹陽令忠吉), 덕성 부수(德城副守) 전(佺), 용성 부수(龍城副守) 중(仲), 연계 부령(蓮溪副令) 종호(終虎), 풍림 부수(豊林副守) 백윤(伯胤), 태산 감 황(泰山監凰), 영가 부수(永嘉副守) 효길(孝吉), 덕은 수 유(德恩守游) 등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은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풍천 부령(豊川副令) 경운(景雲), 원성 감(原城監) 은(垠), 장림 정(長臨正) 경령(慶齡)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안위가 이 한 가지 거조에 달렸으니 흔쾌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순원 령 저(順原令翥), 영흥 정 경일(永興正敬一), 학성 령 주(鶴城令儔)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으며 여론이 답답하게 여기고 있으니, 속히 공론을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덕산 수 순(德山守洵), 강릉 수 응하(江陵守應賀)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는데다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타당하게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덕은 부령(德恩副令) 완(琬)은 의논드리기를, "이번의 거조는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바로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나서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정과 재야의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속히 윤음을 내림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호안군(湖安君) 이오(李澳), 호성 도정(湖城都正) 낙(洛)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문제는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인만큼 묘당에서 알아서 처리할 일입니다. 어찌 감히 의견을 드리겠습니까." 하고, 익산군 이정진(益山郡李正璡)은 의논드리기를, "이렇게 수의(收議)하는 날을 당하여 여러 유생의 의논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공성군(功城君) 이식(李植), 덕진 수 이연(德津守李淵), 덕산 감 이종(德山監李琮), 덕청 령 이주(德淸令李澍), 덕해 령 이항(德海令李沆), 진천 감 이홍(晉川監李洪), 봉산 부령(鳳山副令) 이진(李珍), 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 원평 부령(原平副令) 이박(李珀), 원계 부령(原溪副令) 거(琚), 송화 부정(松禾副正) 이언경(李彦璟), 의령군(義寧君) 이호(李琥), 의흥 정 이황(義興正李璜), 인산 부령(仁山副令) 이우(李瑀), 영성 감 이경(永城監李璟), 영릉 감 이유(永陵監李琉), 영양 감 이박(永陽監李珀), 광원 령 이호(光原令李琥), 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기(李玘), 덕신 령 이경례(德新令李鏡禮), 덕순 령 이경충(德純令李鏡忠), 덕창 령 이경지(德昌令李鏡智), 덕인 령 이경신(德仁令李鏡信) 등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친으로 본래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어찌 묘당과 삼사의 논의에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여론을 두루 수합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명성군(明城君) 이작(李綽), 의원 감 역(義原監權), 해원 감 장(海原監檣), 니성 정 신(尼城正紳), 흥원 도정(興原都正) 의(檥) 등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의 상소 내용에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켰으면 합니다." 하고, 봉릉 감 이철수(鳳陵監李鐵壽), 한릉 감 이해수(漢陵監李海壽), 귀원 수 이조(龜原守李眺), 학릉 감 이애수(鶴陵監李愛壽), 서양 령 이형의(西陽令李炯義), 낙성 부령(洛城副令) 이낭(李琅), 금원 령 이탁(錦原令李倬), 풍성 정 이희린(豊城正李希獜), 귀흥 부수(龜興副守) 이섬(李睒), 하성 령 이형륜(夏城令李炯倫), 익성 수 이충록(益城守李忠祿), 의성 부수(義城副守) 이유경(李惟敬), 충성 부수(忠城副守) 이유일(李惟一), 충원 부수(忠原副守) 이유정(李惟精), 의천 부수(義川副守) 이유훈(李惟訓), 귀산 부수(龜山副守) 이권(李眷), 능성 감 이암(綾城監李黯), 완성 감 이묵(完城監李默), 철산 부령(鐵山副令) 이종윤(李終胤), 운산 부령(雲山副令) 이양윤(李良胤), 화산 부령(花山副令) 이계윤(李季胤), 충릉 정 이유성(忠陵正李惟誠), 의원 부수(義原副守) 이유함(李惟諴) 등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실로서 본래 지식이 없습니다. 조정과 재야의 의논을 따랐으면 합니다." 하고, 오천군(烏川君) 이굉(李鍧), 춘성 부수(春城副守) 의충(義忠), 의성도정(宜城都正) 효충(孝忠), 송산 령 삼남(松山令三男), 해성 부수(海城副守) 원충(元忠), 영성 부수(泳城副守) 형충(亨忠)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대사를 어찌 감히 참견하겠습니까. 오직 의정부에서 헤아려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항산 수 정(恒山守楨), 한성 령 녕(漢城令濘), 오강 정(烏江正) 건(鍵), 회원 부수(懷原副守) 철(鐵), 연성도정(蓮城都正) 몽호(夢虎) 등은 의논드리기를, "조정에서 처리하는 대로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고, 평창도정(平昌都正) 이만수(李萬壽)는 의논드리기를, "국가에 불행이 닥쳐 전에 없던 큰 변고를 만났으니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어느 누가 마음아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유생들의 많은 상소가 일제히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삼가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 중에는 옛일을 낱낱이 들어서 제시한 것이 많다고 하는데 고사(古史)를 상고해서 거행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덕신정(德信正) 이난수(李鸞壽)는 의논드리기를, "변변치 못한 종친으로 나이가 이미 70세가 되다 보니 국가의 큰일에 대하여 실로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남이 그렇다고 말하면 신도 역시 그런가보다 할 뿐입니다." 하고, 덕양도정(德陽都正) 충윤(忠胤)은 의논드리기를, "과 재야 사이에 공론이 한창 제기되고 있으니 두려워할 것은 바로 이 공론이 아니겠습니까. 어리석은 신의 생각도 여기에 귀착될 뿐입니다." 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옛날의 제왕으로 인륜의 변고를 당한 자는 순임금같은 분이 없으며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제대로 다한 자도 순임금같은 분이 없습니다. 그 악독한 어미가 화를 불러 일으켜 순임금을 해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도 순임금은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을 뿐이니, 선도하고 개선되게 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인륜상의 극치인 것입니다. 우리 성상께서는 저궁(儲宮)에 계실 때부터 인자하고 효성스럽다고 알려졌으며 온 나라의 신민들이 효성의 지극한 덕을 우러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륜상의 변고를 만남에 성상을 보좌해야 할 신하들은 전하의 효행을 도와 순임금과 같이 훌륭하게 하지는 못하고 반대로 이처럼 전에 없던 일을 가지고 논의하고 있으니, 신은 삼가 의혹을 느낍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멀리 순임금을 본받아 효성을 다하여 두 궁궐 사이를 화기가 애애하게 만든다면,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인자하고 효성스러운 성상의 덕행에 감화될 것이고 전하의 덕은 만대에 빛날 것입니다. 지금 의견을 드리는 때를 당하여 만약 미천한 목숨을 아끼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전하의 큰 은혜를 등지는 것이며 충성하지 못하는 죄에 스스로 빠지는 행위인 것입니다. 혹시 전하께서 사람은 변변치 못할지라도 직접 올린 말만은 버리지 않고 특별히 들어주신다면 신은 만 번 죽더라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하고, 군기시 정 김덕함(金德諴)은 의논드리기를,
"일편단심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항복·정홍익과 같습니다."
하고, 첨지 오윤겸(吳允謙)은 의논드리기를,
"오늘의 변고에 대처함에 있어서 그 도리를 충분히 다한 연후에야 천하에 할 말이 있게 될 것이고 후세에도 부끄럽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는 바는, 묘당이 옛사람 중에서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제대로 다한 자를 찾아서 법으로 삼아 성상의 효도를 더욱 커지게 하고 성상의 덕행을 더욱 융성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청풍군(淸風君) 김권(金權)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허물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임금을 사랑하는 소신의 지극한 정성이고, 끝까지 은의를 온전히 하는 것이 변란에 대처하는 성상의 큰 덕망입니다. 천 년이 지나가도 순임금과 함께 나란히 칭송되는 것이야말로 구구한 저의 소망입니다."
하고, 행 사과(司果) 권사공(權士恭)은 의논드리기를,
"천하의 일이란 정상적인 경우에 대처하기는 쉬워도 변란에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도리는 사람마다 다 논의할 수 있지만 변란의 경우는 도를 체득한 자가 아니면 여기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지체 높은 대신들이 묘당에서 계획을 세우고 있으므로 하찮은 소신이 망녕스레 논의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임금이 일을 처리할 때에는 마땅히 성인(聖人)을 본받아야 하고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이후로는 본받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옛날 성인들이 인륜의 변고를 당하고도 성인의 지위를 잃지 않았던 것은 그 처리가 도를 체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그 도를 체득하였다는 것은 또한 하늘의 당연한 도리에 맞게 하면서 당시의 형편에 적당하게 하는 데도 방해되지 않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문제는 오직 조정에서 반복하여 논의한 다음, 고금(古今)을 참작하고 그 경중을 헤아려서 처리하되, 천리(天理)에 부합되고 인정(人情)에 알맞게 하여 조금이라도 미진한 감이 없게 해야 오늘에도 유감이 없고 후세에 가서도 할 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변고에 대처했던 옛 성인의 도리에 부합될 것이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후세 사람들의 처사에 귀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강구하고 살펴서 처리한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행 사용(司勇) 이신의(李愼儀)는 의논드리기를,
"《상서(商書)》에 ‘반드시 참는 마음이 있어야 일을 이룰 수 있고 포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덕이 확대된다.’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모든 일은 포용하고 참아서 이루지 못하는 경우는 없으며, 대부분 포용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데서 낭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능히 포용하고 참으면 그 일은 반드시 후회가 없게 될 것이고 포용하지 않거나 참지 않으면 그 일은 반드시 후회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논의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인정(人情)과 천리(天理)를 살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개 인정이 기뻐하는 부분은 천리의 당연(當然)한 면의 극치이고 인정이 기뻐하지 않는 곳은 곧 천리의 부당연(不當然)한 면의 극치인 것입니다. 오늘날 더없이 중대하고 지극히 난처한 문제를 놓고 만약 인정과 천리에 따라 살피지 않고 경솔하게 처리한다면 이는 포용하지도 못하고 참지도 못하는 처사로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하니 삼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개 사람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고 하늘의 마음은 곧 사람의 마음인 것이니, 사람의 마음이 편하면 하늘의 마음도 편하고 사람의 마음이 편치 않으면 하늘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충분히 살펴서 기꺼이 승복하는 인심과 당연한 천리를 흔쾌히 따르신다면 대순(大舜)의 시대와 같은 세상을 오늘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대순의 마음을 체득하고 대순의 도리를 행하신다면 귀신도 사람도 기뻐할 것이니 이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국가의 복이기도 하고 백성과 신하들의 복이기도 합니다. 바라건대 조정은 살피고 또 살펴서 전하로 하여금 끝까지 인자하고 효성스런 덕을 온전히 하게 한다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고단(孤單)한 음관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살고 입을 놀리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차마 침묵하고 있을 수 없어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감히 어리석은 소견을 진달합니다."
하고, 지사(知事) 이시언(李時彦)은 의논드리기를,
"심히 늙은데다 정신까지 없습니다만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마음은 단지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일 뿐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사랑하는 방법은 도리에 따라 인도 하는 것이니, 오직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경사(經史)를 널리 상고하고 신하들에게 널리 물어서 알맞게 처리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행 호군 송영구(宋英耉)는 의논드리기를,
"이 문제는 의리에 입각하여 충분히 강구해야 할 일로 전적으로 묘당에서 처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종실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은 의논드리기를,
"병중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마당이라 숨결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논의를 절충하여 끝까지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서평수(西平守) 이훈(李壎)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실이 어찌 감히 망녕스레 의논드리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경사를 상고하고 원로에게 물어서 천 년이 지난 뒤에도 다른 의견이 없도록 하소서."
하고, 낙원 부수(洛原副守) 세관(世寬)은 의논드리기를,
"나이가 젊고 용렬합니다만 단지 임금을 사랑할 줄만 알고 그 밖의 것은 모릅니다. 다만 원하건대 조정은 사대부들의 충직한 논의를 따르소서."
하고, 병조 정랑 오윤해(吳允諧)는 의논드리기를,
"보통일에 대처하기는 쉬워도 변란에 대처하기는 어려운 것이니, 오직 묘당이 문헌을 널리 상고하고 충분히 의논해서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연원 부원군(延原府院君) 이광정(李光庭)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에서 충분히 강구하고 잘 처리해서 능히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호조 좌랑 김상(金尙)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면서 그 도리를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 임금을 사랑하는 신의 지극한 정성입니다."
하고, 김상용(金尙容)·장만(張晩)·심돈(沈惇)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고사를 널리 상고하고 충분히 강구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김류(金瑬)·박동선(朴東善)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충분히 강구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최관(崔瓘)·권반(權盼)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옛 문헌을 널리 상고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옹원 정 윤정(尹綎), 내섬시 정 이순민(李舜民), 주부 김연경(金延慶) 등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는 경중을 잘 조절해서 의리에 맞게 하는 데 있으며, 그것을 결정하여 시행하는 문제는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형조 정랑 권첩(權怗)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덕망 있고 노련한 신하에게 자세히 묻고 학식 풍부한 선비에게 널리 물은 다음, 예문에 근거하고 경서를 상고하여 충분히 고찰하고 명확하게 판단하되 끝까지 신중을 기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부사과 심즙(沈檝)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더욱 신중을 기하여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봉상시 참봉 김지수(金地粹)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비상한 사람이라야 능히 비상한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묘당에는 필시 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하찮은 소신은 죽는 한이 있어도 감히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이필영(李必榮)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여러 대신들이 경사(經史)를 널리 상고하고 공론을 두루 채집한 다음 충분히 강구하고 살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이시발(李時發)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이 이전 역사를 두루 상고한 다음 타당한 방법을 찾아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강인(姜絪)·강침(姜枕)·경섬(慶暹)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이 이전 역사를 널리 상고해서 충분히 강구한 다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분승지 목장흠(睦長欽)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이 의리를 참작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승문권지 홍헌(洪憲)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더욱 신중을 기하여 타당성 있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부정자 정양필(鄭良弼)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이전의 법을 널리 상고하여 능히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부사과 조국빈(趙國賓)은 의논드리기를,
"성스러운 시대에 국시(國是)를 견지하는 자들은 모두 의리를 알고 있습니다. 의리를 알고 있다면 난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찮은 관리로서는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유공량(柳公亮)은 의논드리기를,
"막중한 국가의 일이니 옛 문헌을 상고하고 공론을 채집해서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전유형(全有亨)은 의논드리기를,
"경사(經史)를 두루 상고하셔서 타당성 있게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윤휘(尹暉)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에서 지난 역사를 두루 상고하여 알맞게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호군 정문부(鄭文孚), 행 사과 윤안국(尹安國)·조희보(趙希輔) 등은 의논드리기를,
"천하의 일에는 변란에 대처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는데, 그 변란에 대처하는 방법은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 문제는 오직 묘당이 헤아려서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 정랑 이은로(李殷老)는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도를 예로부터 어렵게 여겨왔습니다만 오늘날의 일은 더욱 난처합니다. 잘 처리할 수 있는 대책이 묘당에 있는데 늙고 병든 산관이 어찌 그 사이에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권협(權鋏)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전무후무한 이 큰 변란을 당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변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세밀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의견을 널리 수렴하는 거조가 있게 된 것입니다만, 어리석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지나간 문헌을 널리 상고하여 변란에 잘 대처했던 옛날의 일을 취해서 처리하소서."
하고, 부사정 오숙(吳䎘)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성명께서 적절한 대책을 굽어 살피시어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힘써 다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윤의립(尹義立)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지나간 문헌을 두루 고찰해보고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과 황락(黃洛)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이 난처한 변란은 묘당과 삼사가 깊이 생각하고 멀리 헤아려서 잘 처리할 것입니다."
하고, 김신국(金藎國)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경외의 여러 대신들과 협의를 끝내고 온 나라의 공론을 참작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노직(盧稷)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여러 훈신(勳臣)과 척신(戚臣)들과 헤아려서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직 권희(權憘)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충분히 고려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과 윤이지(尹履之)는 의논드리기를,
"오로지 묘당이 충분히 강구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주서 이진영(李晉英), 부사용 송시보(宋時保)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상부(相府)에서 이전 문헌을 널리 상고하여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권지 박초(朴簉)는 의논드리기를,
"묘당이 참작하여 적절하게 변란에 대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공조 좌랑 박선(朴𧂍), 호조 좌랑 홍득일(洪得一)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장점을 따라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형조 정랑 신득연(申得淵)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널리 상고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인 유충립(柳忠立)은 의논드리기를,
"헤아려서 잘 처리하는 문제는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과 이분(李芬)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문제를 적절하게 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신식(申湜)은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국가의 막중 막대한 것으로 변란에 대처하는 일은 사람마다 의논할 일이 아니라 오로지 상부(相府)에서 널리 상고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더구나 시골에 묻혀 있는 훌륭한 재상은 세상 사람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니 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을 놓아두고 누구에게 묻겠습니까. 속히 불러들여서 물어본 다음 여론을 결정하소서."
하고, 행 판돈녕부사 민형남(閔馨男)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천고에 없던 큰 변고를 만났으니 그 변고에 대처하기 위한 방도는 사람마다 논의할 일이 아니고 여러 대신들이 담당할 일입니다. 더구나 대신들 중에는 시골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없지 않으니 원컨대 이전 역사를 널리 상고하고 충분히 토의한 다음 인륜상의 변고에 잘 대처하게 해서 임금으로 하여금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하고, 박홍구(朴弘耉)는 의논드리기를,
"전후하여 올린 유생들의 상소는 국가 대사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사람마다 경솔하게 의논할 일이 아닙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나라에 큰일이 있게 되면 대신들과 대책을 의논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삼정승이 자리에 다 있고 정부에도 인재가 있으니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옛 문헌에 기록된 사실을 상고하고 오늘의 일을 참작하여 변고에 대처할 도리를 다하도록 함으로써 뒷날의 논의가 없게 하소서."
하고, 조탁(曺倬)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예전에 없던 이런 변을 만났으니 참으로 국가의 큰 변고입니다. 그러나 일찍이 들은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나라에 큰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묘당에서 대책을 세웠다.’고 하였으며, 선유들이 또 말하기를 ‘대신이 되어서는 큰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대신들이 묘당에 자리잡고 있으니 큰 문제를 결정하는 길은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한마음으로 잘 의논하여 대처할 도리를 힘써 다하는 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이식립(李植立)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이 난처한 일은 오직 대신들과 삼사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이척(李惕)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중외의 대신들이 충분히 토의하고 익히 생각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분병조 참판 김지남(金止男), 통례(通禮) 김위남(金偉男)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으므로 별도로 의논드릴 필요가 없겠습니다."
하고, 행 사직 유영순(柳永詢)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좋은 쪽으로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이형욱(李馨郁)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안위 문제는 묘당에 달려 있고, 한때의 공론(公論)은 삼사에서 나오는 것이니, 묘당과 삼사가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할 일입니다."
하고, 윤중삼(尹重三)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한흥군(漢興君) 조공근(趙公瑾)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호군 민성징(閔聖徵)은 의논드리기를,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살펴서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는 것은 오직 묘당이 처치를 타당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용 이서(李曙)·이익(李榏)·구인후(具仁垕)·문희성(文希聖) 등은 의논드리기를,
"무식한 무관들이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직강 이숙(李橚)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대사를 잘 처리하는 도리는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부사용 홍진도(洪振道)는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에서 지난 일을 널리 상고해서 타당하게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부정자 박안효(朴安孝)·김신(金信) 등은 의논드리기를,
"헤아려서 처치하는 것은 오직 묘당이 타당하게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공조 판서 이상의(李尙毅)는 의논드리기를,
"인륜상의 변고를 대처하는 문제는 옛날부터 어렵게 여겨왔던 일인데 성상의 효성은 출천하시어 다른 임금들보다 월등하시므로 저는 항상 성상의 덕행을 흠앙하였습니다만 감히 의논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묘당이 지난 역사를 널리 상고한 다음 충분히 강구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판중추부사 이정귀(李廷龜)는 의논드리기를,
"저는 오랫동안 병을 앓아 죽음을 앞둔 마당에 어제는 또 3촌의 상을 당하여 곡을 하였더니 어지러워져 위급한 증세가 심해지고 말았습니다. 또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에 ‘협적(浹賊)이 끌어댄 여러 재상들은 주벌을 가하거나 귀양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저도 잔치에 참석한 일로 역적의 공초에서 이름이 거론되었으며 또한 여러 재상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는 비록 성상의 은혜를 입어 너그럽게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만 지금 또 거론되고 있으니, 공론이 지극히 엄격하므로 현재 저는 집에서 짚자리를 깔고 삼가 견책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감히 버젓이 헌의할 수 없습니다."
하고, 화산 부수(花山副守) 정(汀), 철성 부수(鐵城副守) 효원(孝元), 선성 부수(先城副守) 신원(信元), 덕원 부령(德源副令) 덕손(德孫), 순원 감 경손(淳原監敬孫)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막대한 일을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적절하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산 감역(四山監役) 윤형준(尹衡俊)은 의논드리기를,
"제가 맡아보는 일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잘 기르는 일일 뿐이므로 조정의 중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감히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상께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창성 정(昌城正) 이유(李維), 완성 부정(完城副正) 이수영(李秀英), 순평 수 이선봉(順平守李善鳳) 등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친이 어찌 감히 의논드리겠습니까. 오직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좌찬성 박승종(朴承宗)은 의논드리기를,
"지난해 신경희(申景禧)의 공초에 ‘박승종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성명께서 놓아두고 문죄하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니 모두가 성상의 은혜입니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에는 여러 상소를 가지고 외지에 나가 있는 시임 대신에게 하문하셔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병조 판서 유희분(柳希奮)은 의논드리기를,
"외람되게도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천지와 같은 큰 은혜를 두텁게 입어 죽고 사는 문제를 국가와 함께 하고 있으므로, 성상을 추대하고 사직을 염려하는 정성은 일반 사람보다 만 배나 되는데 어찌 먼 곳에 있는 유생들보다 못하겠습니까. 지금 이 유생의 상소 중에 언급한 내용은 실로 국가의 막대한 변례이니 학식이 얕은 친족들 중에서 비록 한두 마디 언급한다 해서 어찌 공론에 경중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신은 이미 창의(倡義)했다는 정흡(鄭潝)의 조롱을 받은 터라서 놀란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감히 한 마디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대안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막중한 변례에 대해서는 고금을 통달한 지식과 의리에 해박한 학력을 가진 자가 아니면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좌의정 정인홍은 일생 동안 시골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식견이 고상하고 의지가 확고하여 어진 임금을 만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이미 큰 덕망을 지닌 채 지금 정승 직책을 띠고 있으니, 반드시 그의 한 마디 말이 있어야 아마 큰 변고에 대처하고 모든 사람의 의심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유생들의 상소가 계속 제기되고 국사가 위급해진 때에 어찌 차마 물러가 있는 것을 편하게 여기고 임금의 위급한 상황을 나몰라라 하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특별히 온화한 유지를 내리시고 근신(近臣)과 중사(中使)를 뽑아 보내되, 난리에 임하여 변란을 진정시키라는 뜻으로 유시한 다음 기어이 불러오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와 함께 상의하여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국론을 확정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행 사직 정광성(鄭廣成)은 의논드리기를,
"평소에 식견도 없고 또 학식도 없다 보니 막중한 일에 대해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보덕 정광경(鄭廣敬), 호조 좌랑 정지경(鄭之經), 내자시 정(內資寺正) 금변(琴忭) 등은 의논드리기를,
"말단 관직에 있는 자가 감히 함부로 의논드릴 일이 아닙니다."
하고, 병조 정랑 이용진(李用晉)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일에 임하여 큰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모두 묘당에서 처리해 왔습니다. 소관이 어찌 감히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좌의정 정인홍은 한평생 초야에 묻혀 살면서 경사(經史)를 두루 보았고 의리를 강구하였으니, 이런 때에 좌상을 놓아두고 누구에게 물어보겠습니까.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조정에 있는 대신들과 함께 자세히 상의해서 잘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사과 남이웅(南以雄)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임금과 같은 효성으로 전에 없던 변고를 당하셨는데 소신이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적 홍경찬(洪敬纘)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중대한 데에 관계되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하고, 행 사맹 이계남(李桂男)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정당한 논의를 충분히 강구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학정 권준(權濬)은 의논드리기를,
"비록 미관 말직에 있습니다만 국가에 충성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가지입니다. 오직 원하건대 조정에서 좋은 방향으로 처치하소서."
하고, 사재감 정 송극인(宋克訒), 부사직 이구징(李久澄) 등은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는 소관이 의논드릴 일이 아닙니다. 오직 묘당에서 상의해서 결정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공조 좌랑 이명한(李明漢)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은 국가의 대사를 나이 젊은 미관 말직으로서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도사(都事) 홍서(洪恕), 익찬(翊贊) 유정립(柳鼎立) 등은 의논드리기를,
"미관 말직이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상의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사정(司正) 변응원(邊應垣)은 의논드리기를,
"막중한 논의는 조정의 계책에 속한 것이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신하의 충성입니다. 속히 초야에 묻혀 사는 경서를 통달하고 옛일을 널리 아는 사람을 불러서 하문하소서."
하고, 종부시 정 유탁(兪濯)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에 삼공(三公)을 세우고 대간(臺諫)을 둔 것은 논의를 주관하고 시비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즘 중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국시(國是)는 정해지지 않고 있으니 어리석은 신의 허튼 소리를 감히 그 사이에다 덧붙일 수 없습니다. 오직 옛일을 널리 상고하고 의리를 헤아려서 타당하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부사과 최숭(崔嵩)은 의논드리기를,
"미관 말직에 있는 자가 어찌 감히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타당하게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적 남이성(南以聖), 공조 좌랑 최전(崔琭), 형조 좌랑 윤정지(尹挺之) 등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원하건대 묘당이 최선을 다하여 처리해서 일이 잘 되게 하소서."
하고, 내섬시 직장 한덕윤(韓德胤), 봉사(奉事) 최명선(崔明善) 등은 의논드리기를,
"비상한 변고에 처하여서는 비상한 도리를 다한 연후에야 의리에 맞게 경중을 따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고, 병조 정랑 유진증(兪晉曾)은 의논드리기를,
"막중한 국가의 일을 평범한 관리가 어찌 감히 마음대로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결정하여 처리할 일입니다."
하고, 감찰 최진운(崔振雲)·신욱(辛頊)·유경찬(柳景纘)·강홍정(姜弘定)·권담(權縉)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잘 처리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예조 참판 윤수민(尹壽民)은 의논드리기를,
"대체로 조정의 중대한 일은 묘당이 있고 대각이 있으므로 일반 관청에서 참여하여 의논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더구나 저는 본래 지식이 없고 또 앞 시대의 전고(典故)를 알지 못하는데 이처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막중 막대한 일에 대해 어찌 감히 의견을 내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한창군(韓昌君) 이경함(李慶涵)은 의논드리기를,
"이것은 나라에 관계되는 더없이 중대한 문제로 묘당이 있고 대간이 있는데 일반 관청에서 관리의 머릿수나 채우고 있고 식견도 어두운 제가 어찌 감히 의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유몽인(柳夢寅)은 의논드리기를,
"저는 본래 편협한 소견과 얄팍한 지식으로 고금의 사실을 널리 통달하지 못했고 또 사리를 잘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더구나 막대한 조정의 변고 처리에 대하여 어찌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듣건대 옛사람은 말하기를 ‘이른바 조정이란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상신(相臣), 둘째는 대간(臺諫), 셋째는 시종(侍從)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중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일반 관청에서 머릿수나 채우고 있는 자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일이 아닙니다. 삼가 원하건대 이 세 곳의 견해를 들어보고 그들로 하여금 고금의 타당함을 참작해서 처리하게 하소서."
하고, 조존세(趙存世)는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일 말고는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복천군(福川君) 오백령(吳百齡)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일은 대단히 중대한 것이므로 오직 묘당의 여러 대신들이 노력해서 최선을 다하여 국가를 안정시키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민형(閔泂)·황이중(黃履中) 등은 의논드리기를,
"묘당의 여러 대신이 상의하여 잘 처리해서 일이 타당하게 되도록 하소서."
하고, 석릉군(石陵君) 전용(全龍)은 의논드리기를,
"글도 볼 줄 모르는 무식한 자입니다. 그저 묘당의 의논대로 따른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지돈령부사 박안세(朴安世)는 의논드리기를,
"병이 심하여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감히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군자감 정 유효립(柳孝立)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에서 자세히 의논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박자흥(朴自興)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왕실의 인척으로서 나라를 위하는 정성은 남보다 배나 됩니다만, 오직 묘당에서 조정의 의논을 널리 수합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성이문(成以文)은 의논드리기를,
"저는 노망하여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묘당에서 강구하여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능해군(綾海君) 구성(具宬)은 의논드리기를,
"묵은 병으로 여러 해를 앓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사리를 전혀 살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논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고, 행 사직 김예직(金禮直)은 의논드리기를,
"배우지 못한 무관이 외척 관계에 있는데다 식견도 없으므로 조정의 중대한 일에 대하여 감히 의논을 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분승지 민여임(閔汝任)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조정에서 충분히 강구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동지돈령부사 김극효(金克孝)는 의논드리기를,
"여든이 멀지 않은 나이로 질병이 심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하여 감히 의논을 드리지 못합니다."
하고, 여양군(驪陽君) 민인백(閔仁伯)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은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습니다만, 오늘의 일은 오직 묘당과 삼사가 함께 상의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으므로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전적 이지정(李志定)은 의논드리기를,
"미관 말직에 있다 보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적절하게 처리하는 문제는 오직 묘당이 결정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동지 김현성(金玄成)은 의논드리기를,
"더없이 중대한 일은 늙어서 혼매한 사람이 경솔히 의논할 바가 아닙니다."
하고, 행 사직 박이서(朴彛叙)는 의논드리기를,
"죄로 인해 폐출된 지 여러 해이므로 감히 의견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묘당이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과 조준남(趙俊男)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과 삼사가 충분히 강구하고 살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해숭위(海嵩尉) 윤신지(尹新之)는 의논드리기를,
"의빈(儀賓)이 조정의 논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원래 옛 규례입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다같이 타고난 천성이니 진실로 아는 것이 있다면 누가 감히 진달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조정에서 잘 의논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달성위 서경주(徐景霌)는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의 안위(安危)에 관계되는 만큼 신하의 의리로서 응당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질병에 걸린 생명이 본래 아는 것이 없는데다가 병으로 인하여 폐기된 지 이미 오래이므로 정신이 혼매하고 죽을 날이 가까왔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바입니다. 오직 공경 대부들이 널리 의논해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는 의논드리기를,
"남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기를 원하는 것은 천지의 떳떳한 법입니다. 더구나 어렸을 때부터 거듭 성은(聖恩)을 입어 살과 골수에 무젖은 채로 오늘에 이르렀으니 보답하고 싶은 정성은 온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국가의 법규상 의빈(儀賓)은 감히 국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우매하여 본래 식견도 없기 때문에 일찍이 전후하여 수의할 때에 감히 함부로 의논드릴 수 없다는 것으로 말씀드렸었습니다. 이번에 닥친 조정의 중대한 논의에도 다시 더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 일선위(一善尉) 김극빈(金克鑌) 등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같이 타고난 천성이니 만약 아는 것이 있으면 누가 감히 진달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조정에서 충분히 의논하기에 달렸습니다."
하였다.
길성위(吉城尉) 권대임(權大任)은 의논드리기를,
"젊은 나이에 배운 것이 없다 보니 무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대사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니 헌의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병조 참판 이덕형(李德泂), 참의 정립(鄭岦) 등은 의논드리기를,
"이번에 제기된 막대한 논의에 대하여 어찌 감히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이호신(李好信)은 의논드리기를,
"근래에 올라온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다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로 국가의 막중한 일입니다. 저는 본래 아는 것이 없으므로 감히 제 마음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이 알맞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여우길(呂祐吉)은 의논드리기를,
"비상한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였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합하여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직강 정대해(鄭大海)는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려는 계책은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어찌 감히 다른 의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승문원 권지 이명운(李溟運)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정성은 미관 말직이라고 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중대한 일에 대해서 감히 헌의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묘당이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사섬시 봉사 민선철(閔宣哲)은 의논드리기를,
"성상의 효도와 신하들의 충성으로 은혜와 의리를 각각 서로 극진히 할 뿐입니다."
하고, 우치적(禹致績)은 의논드리기를,
"망측한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했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합하여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판결사 박경신(朴慶新)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보건대 성상께서 ‘듣고 싶지도 않다.’는 하교를 내리신 것이 두세 번 뿐만이 아니었으니 감격의 눈물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고 있으니 전하께서도 자유롭게 대처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하고, 안륵(安玏)은 의논드리기를,
"비상한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여 유생들의 상소가 계속 줄을 잇고 있습니다.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조정의 논의를 널리 수합하여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송석경(宋錫慶), 이이경(李頤慶), 임연(任兗), 송강(宋康) 등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선비들이 논의한 내용은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일 이외에는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박정현(朴鼎賢)은 의논드리기를,
"예로부터 국가에 비상한 거조가 있을 때 묘당의 대신들이 공론을 널리 수합해서 의논하여 결정해 왔던 것은, 지극히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사람마다 참여하여 논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여러 유생들의 상소문에 제기된 내용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한산직에 있는 자로서 경솔히 의논할 바가 아닙니다. 오직 경외(京外)의 여러 대신들과 서로 의논해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여인길(呂䄄吉)은 의논드리기를,
"예로부터 제왕이 비상한 변고를 만났을 때에는 비상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중론을 널리 채집하여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도록 하소서."
하고, 행 사직 이정험(李廷馦)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막중 막대한 일에 대해서 감히 의견을 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묘당의 대신들이 잘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장자호(張自好)는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문제인데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이조 참의 유희발(柳希發)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들의 상소는 국가의 대계를 위한 것인데 저에게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첨지 한총(韓叢)은 의논드리기를,
"실로 공론(公論)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고, 능원군(綾原君) 이보(李俌)는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응당 조정의 처리가 있을 것입니다. 종척(宗戚)인 신하에게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창계 부수(昌溪副守) 세온(世溫), 창평 부수(昌平副守) 세례(世禮) 등은 의논드리기를,
"식견이 없는 어리석은 신은 그저 임금을 충성과 의리로 섬길 줄만 알 뿐이고 국가의 논의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인지 모릅니다. 오늘날의 국론에 대해서는 원컨대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문성군(文城君) 이건(李健)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막대한 논의에 대하여 무식한 종친이 비록 함부로 논의하지는 못합니다만 그저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뿐입니다. 공론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행 사직 박재(朴梓)는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는 더없이 중대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위로 하늘의 뜻을 따르고 아래로 사람의 마음을 살펴 옳게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행 사용 이제(李穧)는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인만큼 그 책임이 묘당에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소신은 임금을 사랑하는 일 말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고, 조명욱(曺明勖)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결정은 묘당에서 하여야 합니다. 말직에 있는 소신이 어찌 감히 의견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송석조(宋碩祚)는 의논드리기를,
"지금 헌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재야의 공론이 이와 같으니 미관 말직에 있는 저의 식견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고, 예조 참의 이명남(李命男)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에서 의논하여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상원 부수(祥原副守) 세령(世寧)은 의논드리기를,
"서적을 상고하고 사람들의 실정을 굽어 살펴 타당하게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검상 남궁경(南宮儆)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상소로 인하여 대대적인 논의가 한창 제기되고 있으니 낮은 관리의 소견으로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와 의리의 경중에 대해서는 절충하는 방도가 있기 마련이니 그저 묘당에서 신속하게 잘 처리하기를 소망합니다."
하고, 학유(學諭) 조희진(趙希進)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므로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 정랑 이정(李涎)은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묘당에서 처리할 문제이므로 성상을 번거롭게 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승문원 박사 이둔(李遯)은 의논드리기를,
"예로부터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은 반드시 대신(大臣)에 의하여 결정되어 왔으므로 대신들의 의논이 한번 결정되면 소관(小官)들의 의견은 자연히 결정된 대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오늘의 이 문제는 상께서 알 바가 아니므로 그에 대한 처리는 더더욱 대신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신이 정사를 담당하는 여러 재상들과 함께 묘당에 모여서 가부를 토의하여 타당하게 처리한다면, 기강은 엄격해지고 일의 체모는 높아져서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진정되고 나라의 형편도 안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소란스럽게 매번 수의(收議)하는 것으로 일을 삼아 마치 남에게 떠넘기고 핑계대는 것처럼 하고 있으니, 대신이 일을 당하여 처결한다는 본의가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나라의 운명은 대신에게 달렸다.’라고 하였으니, 아무쪼록 이 뜻을 염두에 두고 많이 묻는 것만을 고집하지 말도록 하소서."
하고, 사복시 정 황익중(黃益中), 첨정 유일(柳𦨙), 판관 유희안(柳希安), 주부 박수의(朴守誼) 등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와 여항에서 잇달아 소장이 올라오고 여론도 모두 그와 일치하니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 군수 안종길(安宗吉)·이안민(李安民), 전 판관 홍응귀(洪應龜), 전 현령 이숭원(李崇元)·이경황(李慶滉)·권순(權淳), 전 현감 이운근(李雲根)·정혜연(鄭蕙衍)·노망해(盧望海)·이양휴(李揚休)·이덕순(李德淳), 전 영(令) 권광환(權光煥), 전 좌랑 성이민(成以敏)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론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더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고, 좌승지 유대건(兪大建)은 의논드리기를,
"대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이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은 의논드리기를,
"대론이 현재 제기되었고 조정의 논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오직 잘 재량함으로써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를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고,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대의(大義)가 있고 전하에게는 끝까지 보전하려는 사정(私情)이 있으니, 여러 유생들의 상소를 절충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좌참찬 민몽룡(閔夢龍)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의 상소가 실로 공공한 논의에서 나온 것인데 무슨 논의할 것이 또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직 허균(許筠)은 의논드리기를,
"우리 임금을 해치려 한 자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런 원수에게 절을 한다면 이보다 더 통분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끝까지 은혜를 온전히 하려는 것은 전하의 심정이고 대의를 내세워 폄삭을 가하려 하는 것은 신하들의 책임입니다. 재야에서 올린 여러 상소는 그 견해가 매우 정당하니 여기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실로 사리에 맞을 듯합니다."
하고, 좌윤 김개(金闓)는 의논드리기를,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임금의 원수는 아비의 원수와 같이 본다.’고 하였으니 임금과 아비의 원수는 실지로 경중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 가운데는 아비의 원수라는 것 때문에 죽을 때까지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상을 해치려 한 자는 바로 우리 임금의 원수입니다. 대의(大義) 앞에서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재야에서 올린 정성어린 상소가 명백하고 통쾌하니 여기에 의하여 거행하게 되면 과연 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고, 한천군(漢川君) 조정(趙挺), 한평군(韓平君) 이경전(李慶全), 한산군(漢山君) 조진행(趙振行), 좌참찬 이충(李沖), 행 호군 남근(南瑾), 형조 참판 조국필(趙國弼), 동지 유간(柳澗), 행 사직 조유도(趙有道)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한집안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참으로 천고에 없던 일입니다. 지금 이 유생들의 상소는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인데 저희들이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대사헌 이병(李覮), 대사간 윤인(尹訒), 집의 임건(林健), 사간 남이준(南以俊), 장령 한영(韓詠)·강수(姜𢢝), 지평 정양윤(鄭良胤)·김호(金昈), 헌납 조정립(曺挺立), 정언 이강(李茳)·박종주(朴宗胄) 등은 의논드리기를,
"신들의 의견은 합사하여 아뢸 때 다 말씀드렸으니 다시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신속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도승지 한찬남(韓纘男), 우승지 이창후(李昌後), 좌부승지 김질간(金質幹) 등은 의논드리기를,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는 경사(經史)에 나타나 있고 유생들의 상소에 다 진달하였으며 사람들의 의견도 같은 내용이니, 절충하여 처리하는 문제는 오직 의정부에 달렸습니다."
하고, 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 동부승지 백대형(白大珩)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의는 지극히 엄한 것이고 공론은 지극히 소중한 것이므로 신하의 도리는 오직 대의를 밝히고 공론을 제창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 있을 뿐입니다. 이밖에 어찌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하고, 직제학 이익엽(李益燁), 교리 이잠(李埁)·이상항(李尙恒), 부교리 정준(鄭遵), 수찬 신광업(辛光業)·남명우(南溟羽), 부수찬 윤성임(尹聖任)·서국정(徐國楨), 박사 조유선(趙裕善) 등은 의논드리기를,
"한결같이 국론에 따라 인정과 예법을 절충한다면 은혜와 의리의 경중 문제는 자연히 처리할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
하고, 봉교 조정생(曺挺生)·오익환(吳益煥), 검열 박종윤(朴宗胤) 등은 의논드리기를,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어 신하와 백성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렀으니, 처리하는 방도는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대교 김주하(金奏夏)는 의논드리기를,
"대의를 밝히고 공론를 제창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것이 신하의 도리입니다. 이밖에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고, 검열 이필달(李必達), 이점(李蒧)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죄악이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귀신과 사람이 다 분개합니다. 공정한 논의가 다행히 제기되고 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합니다. 신들이 사국(史局)에 몸담고 있는 이상 감히 직필(直筆)을 사용하여 헌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공정한 논의를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대교 이경익(李慶益)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묘당에서 의논하여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검열 안응로(安應魯)는 의논드리기를,
"정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단정코 다른 견해가 없습니다."
하고, 유경종(柳慶宗)은 의논드리기를,
"근래 전후하여 올린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다 화근을 제거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의(大義)가 강조되는 곳에는 사은(私恩)을 고려할 수 없는 것이며, 일이 중대한만큼 반드시 사유를 갖추어서 주문(奏聞)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이위경(李偉卿)은 의논드리기를,
"전에 벼슬하지 않았을 때 태학(太學)의 여러 선비들과 함께 이미 짧은 상소문을 올렸었는데, 윤인과 정조의 논의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임금을 사랑하는 열성은 설사 목을 베자는 홍무적(洪茂績) 등의 요청이 있었어도 오히려 가슴속에 서려 있습니다. 지금 널리 의논하는 때를 당하여 어찌 감히 다시 헌의할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참지 정조(鄭造)는 의논드리기를,
"일찍이 계축년에 언관(言官)으로 있으면서 전에 없던 변고를 만나 각각 따로 거처해야 한다는 논의를 망령되게 진달하였으며, ‘모후(母后)가 안으로는 무당을 시켜 저주를 하게 하고 밖으로는 역적 음모에 호응함으로써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어미된 도리를 스스로 끊었는데 오늘날 신하들이 그를 국모(國母)로 대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것은 대개 서궁이 자기가 낳은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꾀하여 아주 은밀히 모해한 흉악하고 참혹스런 사실이 뭇사람의 공초에서 일치되어 갖은 정상이 다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큰 변고인 동시에 실로 온 나라 신하와 백성의 원수인 것입니다. 오늘날 유생들의 상소는 분하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관계로 말을 자제하지 못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금을 위하고 종묘 사직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예로부터 변고에 대처하는 데는 그 방도가 있었습니다. 권경(權經)을 고려하고 은의(恩義)를 참작해서 우리 임금을 허물없는 데로 인도하여 후세에 영원히 할 말이 있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자기 도리를 다하도록 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앞서 이른바 ‘모자간의 관계는 사람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이고 종사의 계책은 책임이 대신에게 달렸습니다.’고 한 것도 이 뜻입니다. 지금 널리 의논하는 때를 당하여 전날의 소견을 또 진달합니다."
하고, 형조 참의 정규(鄭逵)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한가족 중에서 나왔으니 진실로 천고에 없던 일입니다. 이번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실로 공공한 논의입니다. 어찌 감히 더 논의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전 사간 정도(鄭道)는 의논드리기를,
"사은(私恩)과 대의(大義)는 원래 경중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오직 묘당에서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장악원 정 이홍엽(李弘燁)은 의논드리기를,
"일찍이 벼슬하지 않았을 때에도 대의(大義)를 감히 내세웠었습니다만 오늘날 변고에 대처하는 데에 있어서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이원엽(李元燁)·이대엽(李大燁)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의가 있는 데에는 정론(正論)도 같은 법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이야 어찌 유생들만 못하겠습니까."
하고, 전 사예 박홍도(朴弘道)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만큼 신하와 백성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의리가 있으니 그 누가 통분한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까. 지난 계축년에 대간(臺諫)에 있을 때 몸바쳐 역적을 토벌하였으며 저주한 여러 역적들도 대부분 토죄하였습니다. 지금 이 논의에 있어서 어찌 전후의 논의를 서로 다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묘당에서 대의를 밝혀 종묘 사직을 안정되게 하소서."
하고, 사과 원종(元悰)·양홍(梁泓) 등은 의논드리기를,
"노(魯)나라는 문강(文姜)을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강(哀姜)의 변이 잇달아 일어났고, 당(唐)나라는 무후(武后)를 주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씨(韋氏)의 난이 또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춘추(春秋)》에 써서 단죄하였으며, 호씨(胡氏)는 장간지(張柬之)가 무후에게 죄를 주었어야 했다고 논했던 것입니다. 김을 매면서 뿌리를 완전히 뽑지 않으면 결국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니, 원컨대 속히 대의를 들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이조 좌랑 한옥(韓玉)·황덕부(黃德符) 등은 의논드리기를,
"사사로운 은혜를 온전히 간직하는 것은 성상에게 달렸고, 대의를 가지고 변란에 대처하는 것은 신하들에게 달렸으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절충해서 끝까지 잘 처리하여 신하된 도리를 다하는 것은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판윤 윤선(尹銑)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하와 백성의 심한 노여움을 사고 있으므로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의 대신들과 훈척(勳戚)인 여러 재상들이 잘 마무리하는 계책을 함께 의논하여 적합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분병조 참판 이성길(李成吉)은 의논드리기를,
"전후로 올린 유생들의 항의하는 상소는 종묘 사직을 위한 대계(大計)가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재야 선비들의 충언을 받아들이고 온 나라의 공정한 논의를 따라 속히 묘당의 대신들, 그리고 훈척인 재상들과 함께 자세히 토론해서 서둘러 대의(大義)를 결정하소서."
하고, 분병조 참의 박사제(朴思齊)는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이 항소(抗疏)를 올림으로 해서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온 나라의 백성들이 어찌 견해를 달리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의 대신들과 훈척인 재상들이 속히 종묘 사직을 위한 계책을 정하여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엄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우윤 이원(李瑗)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하와 백성들의 심한 분노를 사고 있으므로 유생들의 항의하는 상소가 잇달아 올라와 정론이 한창 격렬하니, 이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참으로 사리에 맞겠습니다."
하고, 행 사정 황치성(黃致誠)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는 진정을 피력하였고 공론은 지극히 엄격하니 오직 의를 내세울 뿐 달리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하고, 행 사과 윤개(尹凱)는 의논드리기를,
"나랏일 중에는 상에게 진달하기 어렵고 대신이 직접 담당하여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랏일의 위태로움이 과연 유생들의 상소와 같고 그 위급한 화가 눈앞에 닥쳤다면 대신은 응당 적절하게 처리해야 하고, 만약 위태로운 정도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대신은 응당 그것을 진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국가의 안위가 대신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어찌 분분하게 의견을 수합하기를 마치 길가에 집을 짓는 사람처럼 한단 말입니까."
하고, 이선복(李善復)은 의논드리기를,
"인륜상의 큰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여 유생들의 상소가 계속 올라오고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늘날의 거조(擧措)는 관계되는 것이 매우 중대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다같이 느끼는 것은 변고에 대처하는 문제를 타당성 있게 처리하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고, 예조 좌랑 유약(柳瀹), 승문원 권지 유집(柳潗) 등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에게는 역적과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의리가 있고 전하에게는 사사로운 은혜를 고려해야 하는 정분이 있으니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설서 이모(李慕)는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해치려 했던 원수를 신하의 도리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대의가 존재하는 이상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형조 좌랑 이원여(李元輿)는 의논드리기를,
"대의에 관계되므로 조정과 재야가 다같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변란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보덕 배대유(裵大維), 필선 곽천호(郭天豪) 등은 의논드리기를,
"현재 대대적인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어찌 이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전 지평 홍요검(洪堯儉)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이 상소하여 항의하고 있고 공정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으니 사사로운 은정이 비록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대의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속히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예빈시 정 금개(琴愷)는 의논드리기를,
"삼사가 잇달아 아뢰고 있고 유생들이 항의하는 소장을 올리고 있으니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승문원 권지 심지청(沈之淸)은 의논드리기를,
"계축년 이후로 이미 모후(母后)로 대우할 수 없다는 의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국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전하의 신하가 된 자들이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예조 좌랑 한정국(韓定國)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은 임금의 원수인만큼 어린아이일지라도 다 그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다는 의리를 알고 있는데 어찌 감히 이론을 제기하여 임금의 원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예조 정랑 채겸길(蔡謙吉)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운수가 불행하여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결과 사람의 도리는 어두워지고 이론(異論)들만 판을 쳐 《춘추(春秋)》의 대의가 문란해져 장차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재야의 선비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충성스런 말로 전하에게 호소한 지 여러 날이 지났으나 아직도 결정짓지 않고 있습니다. 임금이 주는 밥을 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고도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서궁의 죄악을 들어 태묘에 고한 다음 먼저 그의 존호(尊號)를 강등시키고 다음으로 분사(分司)·공헌(貢獻)·조알(朝謁) 등의 일을 철폐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이니, 옳은 의견을 따라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예조 정랑 최호(崔濩)는 의논드리기를,
"당초에 서궁이 안으로는 무당을 불러들여 저주를 행하고 밖으로는 반역 음모에 동조하였다는 사실이 여러 사람의 일치된 공초를 통하여 진상이 다 드러났으므로, 일찍이 벼슬하기 전에도 주제넘게 항의하는 소장을 올려 대의를 밝혔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유생들이 다함께 분개해 하고 조정과 재야가 같은 말을 하는데,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여 종묘 사직을 등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봉상시 주부 강문익(康文翼)은 의논드리기를,
"한 하늘 아래에서 어찌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누구라도 주벌을 가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고, 승문원 부정자 정심(鄭沁)은 의논드리기를,
"충성을 다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것이 평소에 원하던 바입니다. 하찮은 소신이 다시 무슨 의논을 드리겠습니까."
하고, 행 사과 이담(李憺)은 의논드리기를,
"정성을 다하여 역적 토죄할 것을 청하는 것이 신하의 가장 큰 의리입니다. 속히 공론을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문학 한희(韓暿), 전적 한급(韓昅) 등은 의논드리기를,
"희(暿)·오(晤)·급(昅) 형제 세 명이 일찍이 벼슬하기 전인 계축년에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소장을 올렸다가, 흉악한 엄성(嚴惺) 등의 모함으로 ‘국모(國母)를 동요시켜 윤리상의 죄를 범했다.’는 것으로 지목받아 모두 정거(停擧)되고 말았으며, 또 그들이 번갈아가며 글을 올려 참형에 처할 것을 청하여 마지않았는데 하늘이 일월(日月)처럼 굽어살펴 흉악한 무리를 척결하심을 힘입어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으니, 이 모두가 다 성상의 은혜입니다. 임금을 위하고 종묘 사직을 위하는 구구한 마음은 일편 단심 다른 뜻이 없습니다. 다만 원하건대, 묘당으로 하여금 여러 유생의 글을 절충하고 공론을 더욱 확장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군기시 정 강린(姜繗)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은 소중한 것이어서 사사로운 은정으로 막기는 어렵습니다. 속히 중대한 논의를 따라 여러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고, 전 정 이람(李覽)은 의논드리기를,
"국시가 이미 정해졌으니 오직 묘당의 대신들과 훈척인 중신들이 잘 처리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하고, 직강 유광(柳洸)은 의논드리기를,
"전후에 걸쳐 올려진 유생들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내용이었으니, 오직 묘당이 절충하여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용 정호신(鄭虎臣)은 의논드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망극한 변란을 겪게 되었습니다만 임금의 원수와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습니다.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경양군(慶陽君) 이사공(李士恭), 봉산군(蓬山君) 정상철(鄭象哲)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공론(公論)이 무리를 지어 일어나고 조정의 정의(正義)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이 적당하게 헤아려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정 최철견(崔鐵堅)은 의논드리기를,
"여론이 다 분개함에 따라 정당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국가를 위하여 화근을 제거하는 데에 있어서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전 판관 김여순(金汝純)은 의논드리기를,
"한 하늘 아래에서 참고 살아온 지가 10년이 되어가니 공정한 논의가 제기된 것이 지금도 늦었다고 하겠습니다. 대의가 있는 곳에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교서관 교리 정흡(鄭洽)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의 의리로는 역적을 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며 조정이란 중대한 논의가 있는 곳이니, 잘 처리할 수 있는 방도가 나오기를 신은 날마다 바라고 있습니다."
하고, 주부 박항길(朴恒吉)은 의논드리기를,
"신하된 자로서는 다만 의리로 떨치고 일어나 역적을 토벌해야 할 뿐입니다.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사예 박수서(朴守緖)는 의논드리기를,
"공의(公議)는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국시(國是)는 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공의를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것이야말로 어찌 오늘날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전 감찰 김설(金渫)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인만큼 은혜는 가볍고 의리는 중합니다. 화근을 제거하기에 힘쓸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하고, 전 정랑 정감(鄭鑑)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은 항의의 상소를 올리고 있으며 관리와 백성들은 잇달아 소장을 올리고 있으니, 이것은 온 나라가 다같이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조정에 있는 높고 낮은 신하들로서는 더욱더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이 모든 관리를 다 거느리고 가서 정성껏 호소하여 성상의 마음을 돌림으로 해서,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한편으로는 인심을 진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전 현령 정흠(鄭欽)은 의논드리기를,
"선비들과 일반 사람들은 계속 글을 올리고 온 나라 사람들이 다같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높고 낮은 관리들은 의리로 보아 원수와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가 없으니, 묘당에서는 속히 큰 계책을 정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전 정 허경(許儆)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한창 벌어지고 있으며 조정의 계책도 이미 결정되었는데 거의 죽어가는 병든 몸이 어찌 거기에다 다른 의견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익위(翊衛) 이평형(李平亨)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의 상소가 계속 올라오고 중대한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으니, 오직 묘당이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살펴서 처리를 적절하게 잘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동몽 훈도 이적(李績)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한가족 가운데서 나온 것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니, 신하와 백성의 입장에서는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동몽교관 김휘(金翬)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죄는 실로 종묘 사직에 관계되므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이번 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의리상 정성을 다하여 토죄할 것을 청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원컨대 옛 선비들이 이미 정하였던 논의에 의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고, 사섬시 부정 유철(柳澈), 평시서 영(平市署令) 이문현(李文顯), 서제(書題) 정몽필(鄭夢弼)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한창 제기되고 있어 막을 수 없으니 속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도사 정결(鄭潔)은 의논드리기를,
"밖으로는 반역 음모에 동조하고 안으로는 저주한 자취가 명백히 드러나서 의심할 것이 없으니, 이는 진실로 신하로서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비록 사사로운 은혜를 보존하려 하더라도, 공정한 논의가 이미 격렬하게 일어나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옳다고 한다면 어찌 사사로운 은혜로 큰 의리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적절하게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성균관 박사 황상겸(黃尙謙)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은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되고 국시도 정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 공론에 따라 국시를 정하는 것이 어찌 오늘의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성균관 박사 왕보신(王輔臣)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한번 제기되자 여론이 일치되었습니다. 국가의 대계를 정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문제는 대신이 할 일입니다.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종묘서 영 우정침(禹廷琛)은 의논드리기를,
"사론(士論)이 일제히 일어나 여론이 한창 일고 있으니 오직 묘당이 공론을 따라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적 채승선(蔡承先), 학정 이유일(李惟一)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들어오자 공론이 더욱 준엄합니다. 속히 대의를 내세우는 문제는 오직 묘당에 달렸습니다."
하고, 전적 이창정(李昌庭)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이 올린 상소의 내용과 다른 의견이 없으니, 속히 국가의 대계를 결정하여 종묘 사직을 부지하소서."
하고, 전적 신칙(申恜)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들어오자 여론이 정해졌습니다. 속히 국가의 대계를 세워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였다.
돈녕부 판관 윤흥충(尹興忠), 주부 경선(慶選), 참봉 이몽룡(李夢龍) 등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중대한 논의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처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고, 예조 정랑 안경(安璥)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 사람의 공정한 논의인만큼 오직 묘당이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종부시 주부 이응철(李應喆), 직장 남궁격(南宮格) 등은 의논드리기를,
"의리를 내세워 변란에 대처하는 데에 있어서는 종묘 사직이 중한 것인만큼 사사로운 은혜 때문에 공의(公義)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교서관 박사 권두남(權斗南), 저작 최업(崔嶪) 등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고 국시(國是)가 이미 정해졌으니,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제용감 정 이시정(李時楨)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일은 온 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이니 대의에 입각해서 잘 처리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형조 정랑 나인(羅籾)은 의논드리기를,
"선비들이 계속 글을 올리고 군민(軍民)이 다 호소하니 온 나라의 공론이라고 할 만합니다. 오직 은혜와 의리를 참작하고 경중을 고려하여 대신·삼사와 함께 좋은 방향으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분병조 정랑 박률(朴慄)은 의논드리기를,
"위로 공경 대부로부터 아래로 사서인에 이르기까지 뭇 의논이 다 동일하니, 이것은 바로 국시(國是)입니다. 어찌 감히 그 사이에다 이론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분병조 정랑 이종언(李宗彦)은 의논드리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천하의 대의이고 은혜를 온전히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사정인 것입니다. 어찌 한 사람의 사정으로 천하의 대의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수의(收議)하는 날을 당하여 다른 말을 더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군기시 주부 윤호(尹昈)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우리 임금을 모해한 사실은 귀가 있는 사람이면 다 들었을 것이니, 신하된 자로서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대의가 있는 데에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선공감 감역 서탁(徐晫), 가감역 오염(吳焰)·이종립(李宗立) 등은 의논드리기를,
"휘호(徽號)를 폄하하고 조알(朝謁)을 없애며 분사(分司)를 철폐하는 것 외에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사도시 첨정 조계한(趙繼韓)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의 공공한 논의에 대하여 다시 더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전적 양시헌(梁時獻)은 의논드리기를,
"더없이 중대한 일을 감히 경솔하게 의논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 사람이 다 옳다고 할 때에 시행한다면 이것은 바로 국인이 시행하는 것입니다."
하고, 행 사과 이중로(李重老)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실로 천고에 없었던 일입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논의해서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케 하소서."
하고, 사직서 영 박채(朴綵)는 의논드리기를,
"대의를 밝혀서 종묘 사직을 부지하는 것은 신하의 책임입니다.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재감 참봉 정담(鄭湛)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의 원수와는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속히 공정한 논의에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사복시 주부 이선득(李善得)은 의논드리기를,
"인륜의 변고가 성상의 시대에 발생하여 상소가 계속 올라오는 등 대대적인 논의가 제기되고 있으니, 변고에 대처함에 있어 타당하게 하는 것은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내시 교관 이일형(李日馨)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얻어 그 죄악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속히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엄하게 하소서."
하고, 와서 별제(瓦署別提) 이진영(李震英)은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하는 도리는 마땅히 온 나라 사람들이 동의하는가의 여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옳다고 한다면 다시 논의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고, 직강 민호(閔頀)는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대대적인 논의는 실로 공정한 논의입니다. 여러 사람의 의논을 절충하여 좋은 의견에 따라 잘 처리하는 것은 오직 묘당과 삼사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봉상시 첨정 차운로(車雲輅)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일은 나라 안의 사람이 다 아는 바입니다. 조정의 의견을 널리 수집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봉상시 판관 조익(趙釴)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이 소중하기 때문에 정당한 논의가 이미 제기된 것입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봉상시 봉사 김경후(金慶厚)는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한번 제기되자 좌우의 경대부와 상하의 국민이 모두 옳다고 말하고 있으니, 공론(公論)과 여정(輿情)을 여기에서 알 만합니다."
하고, 봉상시 주부 이재영(李再榮)은 의논드리기를,
"전후에 걸친 유생들의 상소에서 이미 중대한 논의를 제창하자 위로는 여러 재상들의 의논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리(胥吏)와 군민(軍民)의 심정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한 계책이 아닌 것이 없으니, 여정과 공의를 여기에서 알 수 있겠습니다. 다시 무슨 논의를 하겠습니까."
하고, 전흥군(全興君) 이시언(李時言)은 의논드리기를,
"오직 묘당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훈련 도감 중군 원수신(元守身)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실로 천고에 없었던 일입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논의해서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행 사정 홍택(洪澤)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에서 화근을 제거하는 문제가 이미 공공한 논의를 통해 제기되었으니, 미천한 관리가 감히 멋대로 논의할 바가 아닙니다. 묘당에서 결정하도록 하소서."
하고, 부총관 유순무(柳舜懋), 행 사과 민항(閔沆)·조훤(趙暄)·노세준(盧世俊)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논의는 국가의 안위 문제에 관계됩니다. 묘당과 삼사가 잘 살펴서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김경서(金景瑞)·이문전(李文荃)·송안정(宋安廷)·이백복(李伯福)·원근(元慬)·신충일(申忠一)·조유정(趙惟精)·이응순(李應順)·권형(權炯)·이선지(李先智)·홍대방(洪大邦)·안숙도(安肅道)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의 상소는 국가를 위한 계책이니 오직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지사 한희길(韓希吉), 행 사과 조의(趙誼)·허완(許完)·이응해(李應獬)·이응기(李應麒)·유응형(柳應泂)·박성룡(朴成龍)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것입니다. 조정의 논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어찌 다른 논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과 정진철(鄭震哲)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운명과 사직의 안위가 오늘에 달려 있습니다. 신의 고루한 소견은 여러 유생의 상소에서 말한 뜻과 다름이 없습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고, 행 사용 김윤신(金允信)·박덕린(朴德麟) 등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므로 사사로운 은혜를 가지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대의(大義)를 결정하소서."
하고, 행 사용 김효신(金孝信)·윤인남(尹仁男) 등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첨지 유황(柳璜)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조정의 논의를 채택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고, 행 사용 최한(崔漢)·홍창세(洪昌世)·이성(李晟)·조발(趙橃)·이은종(李殷宗)·김정간(金廷幹)·권극정(權克正)·이정생(李挺生)·김운성(金雲成)·문홍경(文弘慶)·황유중(黃裕中) 등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만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행 사과 원유남(元𥙿男)·유승서(柳承瑞)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공공한 논의에 대하여 어찌 문제를 삼겠습니까."
하고, 안숭헌(安崇憲)·신진(申蓁)·이균(李鈞) 등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 외엔 본래 진달할 말이 없습니다. 묘당의 여러 재상들의 의논에 따르겠습니다."
하고, 행 사과 유몽룡(劉夢龍)·이경호(李景湖)·유림(柳琳)·박상(朴瑺)·이현(李玹)·김경운(金慶雲)·이눌(李訥)·김응함(金應緘)·유정생(劉挺生)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제기된 논의는 국가의 막중한 일이니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맹 전득우(田得雨)는 의논드리기를,
"한 나라의 공정한 논의가 유생들의 상소에서 잇달아 나왔으니 경외의 신민이 어찌 다른 의견을 제시하겠습니까.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대의를 내세워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행 사정 윤경기(尹景祺)·이능운(李凌雲)·홍기남(洪奇男)·이영남(李英男)·박난영(朴蘭英)·구인경(具仁慶)·김원복(金元福) 등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내승(內乘) 홍술(洪珬)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의 공론이 오히려 존재하고 있으니 적합하게 논의하여 처리할 뿐입니다."
하고, 첨지 이유성(李惟誠), 행 호군 윤응삼(尹應三), 행 사과 오정방(吳定邦)·전윤(田潤)·고경민(高敬民)·권근(權瑾)·남빈(南贇)·황정철(黃廷喆)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유생들의 상소에서 나왔으니 오직 묘당에서 적절히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직 변응지(邊應祉)·장응명(張應明)·구덕령(具德齡)·조충일(趙忠一)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제기되었고 조정의 논의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어찌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정 유옥(柳沃)·이여해(李汝諧)·정봉수(鄭鳳壽)·최경춘(崔景春)·이귀경(李龜慶)·성식(成軾)·이종성(李宗誠)·이복광(李復匡)·정지륜(鄭之淪)·박정기(朴廷琦)·손경지(孫景祉)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상소의 요구를 조정에서 다 이미 시행하기로 하였으니,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행 사용 이정(李楨)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은 지극히 소중한 것이니 대의로 용단을 내려 화란을 그치게 하소서."
하고, 행 사정 김영남(金穎男)은 의논드리기를,
"베옷 입은 유생들이 정성을 다하여 상소하였고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어 공론이 지극히 엄격한데, 여기에다 어찌 감히 다시 의논을 덧붙이겠습니까."
하고, 직강 박효생(朴孝生)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주부 민정(閔瀞)은 의논드리기를,
"임금과 신하의 사이에 의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는데, 유생들의 상소내용 외에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통례 양극선(梁克選), 상례 정유번(鄭維藩), 인의 홍사준(洪師俊)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다시 무슨 의견을 드리겠습니까. 오직 묘당에서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별좌 황식(黃湜)·이사성(李士星)·유식(兪湜) 등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이 유생들의 상소는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호조 정랑 김적(金適)은 의논드리기를,
"지난 역사를 널리 상고한 다음 묘당과 상의해서 대의를 밝히고 정론을 넓혀 좋은 쪽으로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호조 좌랑 김우익(金友益), 제용감 참봉 정문회(鄭文晦)는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종묘 사직에 관계됩니다.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는데 어찌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학록(學錄) 허돈(許燉)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항의하는 상소가 누차 제기되고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나왔으니, 오직 묘당이 잘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학정(學正) 박진(朴瑨)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은 소중한 것입니다.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정해졌는데 하찮은 소신이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전 좌랑 정대용(鄭大容)은 의논드리기를,
"신하와 백성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원수와 함께 살 수 없는 의리가 있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대책을 세워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사옹원 주부 성흔(成昕)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화란을 일으켜 예기치 않았던 변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신하된 자로서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이니, 혈기를 가진 자라면 어느 누가 분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대의가 밝혀지지 않아 이론이 마구 나오고 있으니, 오늘의 이 거조가 좀더 일찍 제기되지 않은 것이 애통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모든 관리를 이끌고 대궐 앞에 모여서 정성어린 눈물로 호소하여 성상의 마음을 돌리게 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가내승(假內乘) 홍걸(洪傑)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전하를 위태롭게 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전하의 위태로움은 곧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인데 전하의 백성인 자들이 그를 서궁으로 대우할 수 있겠습니까. 속히 의논하여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군기시 부정 정문진(鄭文振)은 의논드리기를,
"변고에 대처할 대의에 대해서는 이미 상소에 진달하였습니다.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감찰 이영식(李永式)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의 유생들이 이미 상소를 올렸고 조정의 많은 관리들도 각각 헌의하였으니, 오직 묘당에서 속히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행 사정 김원남(金元男)은 의논드리기를,
"비록 사사로운 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의는 지극히 엄격한 것입니다. 좋은 의견을 따라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전 주부 이대섭(李大涉)은 의논드리기를,
"죄있는 자를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신하와 백성들의 분한 마음을 풀게 하소서."
하고, 전 판관 권진(權聄)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의 대원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공론을 흔쾌히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호군 한찬(韓襸)은 의논드리기를,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된 이상 사사로운 은혜를 가지고 용서해 줄 수는 없습니다. 속히 공론을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주소서."
하고, 세마(洗馬) 유시립(柳時立)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는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인데 이는 실로 다같은 소원입니다. 신과 같은 미관 말직에 있는 자가 무슨 특별한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전옥서 주부 이순(李楯), 참봉 이유원(李幼原)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신속하게 잘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봉사 정진(鄭晉)은 의논드리기를,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 외에 다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묘당에서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감찰 박미(朴楣)·정응성(鄭應星)·김대하(金大河)·정민구(鄭敏求)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오직 묘당이 재야 유생들의 상소를 널리 채집하여 처치를 타당성있게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김광익(金光翼)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대의(大義)를 밝히도록 하소서."
하고, 이두남(李斗男)은 의논드리기를,
"재야 유생들의 상소가 실로 공론에 부합됩니다. 삼가 원컨대 묘당은 좋은 쪽으로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고, 조형남(趙亨男)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을 위한 중대한 논의인만큼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대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처리해서 모든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소서."
하고, 이경백(李慶百)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에서 일고 있는 대대적인 논의는 관계되는 바가 더없이 중요합니다. 즉시 묘당으로 하여금 공론을 흔쾌히 따르도록 하소서."
하고, 김종진(金宗振)은 의논드리기를,
"묘당의 계책을 따름으로써 대의를 밝히도록 하소서."
하고, 【이상은 모두 감찰이다.】 행 사직 성시헌(成時憲), 분승지 윤경(尹絅)·한회(韓懷) 등은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일은 지극히 중대하니 오직 묘당이 헤아려 처리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제용감 판관 김현(金俔), 봉사 박희(朴暿), 의금부 도사 정찬(鄭纘)·이담경(李曇慶), 별제 윤형임(尹衡任), 봉사 이사민(李師閔), 직장 이준익(李俊翼), 학유 조훈(趙塤), 별제 이경준(李慶浚), 감역 성창렬(成昌烈), 참봉 윤보형(尹保衡)·임기령(任麒齡), 정랑 이중계(李重繼), 참봉 이몽룡(李夢龍), 별좌 심숙(沈俶), 봉사 신순(申楯), 주부 김영(金韺), 봉사 이해(李𥩲)·유여성(柳汝惺), 사정 성희구(成僖耉), 별제 김수정(金守正), 직장 최응두(崔應斗)·우대유(禹大有), 교관 이성석(李聖錫), 주부 손종하(孫宗賀), 참봉 심정익(沈廷翼), 주부 심이(沈怡)·박안국(朴安國), 봉사 신종근(申從謹), 도사 이국형(李國衡), 참봉 한사일(韓師一), 직장 이사증(李師曾)·정연수(鄭兗岫), 별제 김형윤(金亨胤), 봉사 김양선(金揚善), 주부 김덕망(金德望), 직장 황효전(黃孝全), 주부 황효의(黃孝儀), 별제 한오(韓晤), 직장 정섭(鄭涉), 첨정 박천서(朴天敘), 주부 강세경(姜世慶), 직장 이경민(李景閔), 도총부 경력 변언황(邊彦璜)·이중룡(李重龍), 도사 정국정(鄭國楨)·박영(朴瑛)·권극평(權克平)·한기영(韓耆英), 서윤 윤희(尹僖), 시직 김수관(金守寬), 교관 최구(崔衢), 참봉 이간(李簡), 주부 유건(柳健)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제기되었고 중대한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으니, 오직 묘당에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조치를 취하도록 하소서."
하고, 혹자는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다시 더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에 관계되는 일이니 의리에 입각하여 잘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수문장 정제룡(鄭霽龍) 등은 의논드리기를,
"종묘 사직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신하와 백성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식한 무관이다 보니 별로 진달할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서소문 별장 조옥건(趙玉乾)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에서 발생한 망측한 변고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묘당은 속히 토의하여 잘 처리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전 첨사 손문욱(孫文彧)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는 천고에 없었던 일이니 신하와 백성의 의리로서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무겸선전관 이인헌(李仁憲)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5년 만에 제기되었으니 지금 시점에서 보면 너무 늦은 것입니다. 유생들의 상소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다시 더 다른 논의를 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내의원 지사 조흥남(趙興男), 박홍헌(朴弘憲)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변고가 한가족 중에서 일어났으니 이는 천고에 없던 변고입니다. 신하와 백성들은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으니,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행 호군 안정국(安正國)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은 스스로 종묘 사직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비상한 변고에는 마땅히 비상한 거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관상감 부정 정사륜(鄭思倫)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니 사사로운 은혜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속히 공론을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쾌하게 해주소서."
하고, 혜민서 주부 조여로(趙汝櫓)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될 수 있는 한 빨리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강예습독관(講藝習讀官) 이수현(李守玄)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서궁에서 일어난 망측한 변고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토의한 다음 잘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내수사 별좌 윤수우(尹秀宇) 등 이하는 의논드리기를,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될 수 있는 한 속히 잘 처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고,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은 의논드리기를,
"삼가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 내용은 대체로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려는 큰 계책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종반(宗班)의 대열에 있는 사람으로서 의리상 고락을 함께 하고 목숨을 바쳐야 할 신의 마음이 어찌 재야의 유생들만 못하겠습니까. 오직 묘당이 공공의 청을 속히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 달려 있습니다."
하고, 경창군(慶昌君) 이주(李珠)는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의 상소는 모두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과 국가를 위한 큰 계책에서 나왔습니다. 더구나 의리상 고락을 같이해야 할 자가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흥안군(興安君) 이제(李瑅)는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가 잇달아 올라오고 서민들도 모두 다같은 의견을 제기하였으니, 이는 온 나라의 공통된 대론(大論)인 것입니다. 그런데 왕실의 지친으로서 역적을 토벌하는 대의에 대하여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경평군(慶平君) 이륵(李玏)은 의논드리기를,
"오늘의 수의(收議)는 종묘 사직을 위한 거국적인 공론인데 고락을 같이하여야 할 신하에게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순녕군(順寧君) 이경검(李景儉)은 의논드리기를,
"오늘 이 논의는 실로 모든 사람의 여론에서 나온 것이니 묘당이 화근을 속히 제거한다면 종묘 사직을 위하여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무림군(茂林君) 이선윤(李善胤)은 의논드리기를,
"대체로 수의(收議)의 뜻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을 가지고 타당성의 여부를 결정짓지 못할 때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궁이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고 꾀하여 저주와 흉악한 짓을 자행한 일에 대하여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다같이 분노하고 있는 이상, 이 문제를 처리할 대의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기자헌은 중대한 논의를 확장시켜야 할 날에 이미 충성스럽지 못한 의견을 드리더니 또 도당에 앉아 감히 수의(收議)한다는 의견을 내놓아 막중한 대론을 이렇게까지 지체되게 하고 있으니 그 누가 통분해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임금이 주는 밥을 먹고 우리 임금이 주는 옷을 입고 있는 이상 진실로 불충(不忠)한 신하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여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갖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속히 대의를 내세워서 간사한 논의를 배척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킴으로써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게 하소서."
하고, 풍해군(豊海君) 이호(李浩), 풍릉 수 이혼(豊陵守李混)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이 종묘 사직에 죄를 지은 사실에 대해 귀신과 사람이 다같이 분노하고 있는 바이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양천군(陽川君) 이봉수(李鳳壽), 제천 령 인수(濟川令麟壽) 등은 의논드리기를,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종묘 사직이 편안치 못할 것이니 속히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고, 능림 령 능윤(綾林令能胤)은 의논드리기를,
"오늘의 수의(收議)는 중대한 논의를 정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의(大義)입니다. 신하된 자로써 어느 누가 원하지 않겠습니까. 이 밖에 다른 말이 없습니다."
하고, 무산 부령(茂山副令) 복윤(福胤)은 의논드리기를,
"재야에서 올린 상소는 실로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니 혈기가 있는 자라면 어느 누가 생각이 같지 않겠습니까. 흔쾌히 공론을 따른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고, 안성 부수(安城副守) 인충(仁忠), 춘성 부수(春城副守) 의충(義忠), 은계 부령(銀溪副令) 철민(哲敏), 은산 부령(銀山副令) 철순(哲純) 등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의 공정한 논의는 모두 국가를 위한 대계(大計)이니 마땅히 중론을 따름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고, 영천군(永川君) 이유(李瑜)는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들이 상소한 것은 신하의 대의를 밝히려는 것이니 종묘 사직을 위한 지극한 계책이라 하겠습니다. 참작하여 결정하는 것은 오직 묘당에 달려 있습니다."
하고, 적선 정(積善正) 득인(得仁), 회덕 정(懷德正) 처인(處仁), 일선 정(一善正) 숭인(崇仁), 정선 부정(旌善副正) 안인(安仁), 영선 부수(永善副守) 순인(純仁), 숭선 부정(嵩善副正) 부인(富仁), 운성군(雲城君) 계남(繼男)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이 진달한 것은 실로 국가의 공공한 논의이니 공론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금양 부령(錦陽副令) 철윤(哲胤), 전양 부령(全陽副令) 귀윤(貴胤) 등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은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 공론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영원 감 남수(永原監楠壽), 부흥 감 경(富興監經) 등은 의논드리기를,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으니 속히 공론을 따름으로써 귀신과 사람의 분한 마음을 씻게 하소서."
하고, 여성 정(驪城正) 운경(雲慶), 익창 부수(益昌副守) 충생(忠生), 송진 부수(松津副守) 근(瑾), 영원 부령(靈原副令) 탁(晫), 영릉 부령(靈陵副令) 질(晊), 순양 부령(順陽副令) 흔(昕) 등은 의논드리기를,
"유생들의 상소에서 진달한 것은 종묘 사직을 위한 대계이니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하고, 완천 령(完川令) 이계남(李繼男)은 의논드리기를,
"온 나라가 다 화근을 속히 제거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바라고 있는데, 하물며 종척(宗戚) 중의 한 사람으로 어찌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
하고, 무릉 감(茂陵監) 희맹(希孟), 파릉 감(巴陵監) 희민(希閔), 청성 감(靑城監) 희순(希舜), 화성 감(花城監) 희천(希天), 신릉 감(愼陵監) 희급(希伋), 평림 수(平林守) 지윤(祉胤), 운림 수(雲林守) 종윤(宗胤), 봉래군(蓬萊君) 형윤(炯胤), 봉산 수(蓬山守) 형신(炯信), 양성 감(陽城監) 희안(希顔), 청계 도정(淸溪都正) 오(鼇), 시림 부정(始林副正) 세준(世俊), 추계 수(秋溪守) 귀(龜), 운계 부령(雲溪副令) 타(恭), 광천 부령(廣川副令) 지길(智吉), 순안 수(順安守) 선룡(善龍), 고산 부령(高山副令) 공(恭), 영성 감(靈城監) 희선(希善), 성산 감(星山監) 희신(希信), 금성 감(錦城監) 우수(禹壽), 언양 부령(彦陽副令) 엽(曄), 두릉도정(杜陵都正) 희안(希顔), 덕림 수(德林守) 희윤(禧胤), 오성 감(烏城監) 희량(希良), 서성 감(西城監) 희성(希聖), 창산 감(昌山監) 희현(希賢), 원흥 부령(原興副令) 원(瑗) 등은 의논드리기를,
"이와 같이 막중한 논의에 대하여 어찌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온 나라의 공론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하고, 완산 수 덕윤(完山守德胤), 귀안 부수(龜安副守) 담(曋), 영산군(寧山君) 예윤(禮胤), 흥원 령(興原令) 노(), 덕의 부령(德義副令) 선(墠), 신천 부령(信川副令) 경사(景獅), 계양 령 예길(桂陽令禮吉), 광성 부령(廣城副令) 제길(悌吉), 수양 령 충길(樹陽令忠吉), 덕성 부수(德城副守) 전(佺), 용성 부수(龍城副守) 중(仲), 연계 부령(蓮溪副令) 종호(終虎), 풍림 부수(豊林副守) 백윤(伯胤), 태산 감 황(泰山監凰), 영가 부수(永嘉副守) 효길(孝吉), 덕은 수 유(德恩守游) 등은 의논드리기를,
"공론은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풍천 부령(豊川副令) 경운(景雲), 원성 감(原城監) 은(垠), 장림 정(長臨正) 경령(慶齡)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안위가 이 한 가지 거조에 달렸으니 흔쾌히 공론을 따르소서."
하고, 순원 령 저(順原令翥), 영흥 정 경일(永興正敬一), 학성 령 주(鶴城令儔)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으며 여론이 답답하게 여기고 있으니, 속히 공론을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덕산 수 순(德山守洵), 강릉 수 응하(江陵守應賀) 등은 의논드리기를,
"대대적인 논의가 한창 펼쳐지고 있는데다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삼가 원하건대 묘당은 타당하게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덕은 부령(德恩副令) 완(琬)은 의논드리기를,
"이번의 거조는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바로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나서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정과 재야의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속히 윤음을 내림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호안군(湖安君) 이오(李澳), 호성 도정(湖城都正) 낙(洛) 등은 의논드리기를,
"서궁의 문제는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인만큼 묘당에서 알아서 처리할 일입니다. 어찌 감히 의견을 드리겠습니까."
하고, 익산군 이정진(益山郡李正璡)은 의논드리기를,
"이렇게 수의(收議)하는 날을 당하여 여러 유생의 의논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공성군(功城君) 이식(李植), 덕진 수 이연(德津守李淵), 덕산 감 이종(德山監李琮), 덕청 령 이주(德淸令李澍), 덕해 령 이항(德海令李沆), 진천 감 이홍(晉川監李洪), 봉산 부령(鳳山副令) 이진(李珍), 의신 부수(義信副守) 이비(李備), 원평 부령(原平副令) 이박(李珀), 원계 부령(原溪副令) 거(琚), 송화 부정(松禾副正) 이언경(李彦璟), 의령군(義寧君) 이호(李琥), 의흥 정 이황(義興正李璜), 인산 부령(仁山副令) 이우(李瑀), 영성 감 이경(永城監李璟), 영릉 감 이유(永陵監李琉), 영양 감 이박(永陽監李珀), 광원 령 이호(光原令李琥), 우산 부령(牛山副令) 이기(李玘), 덕신 령 이경례(德新令李鏡禮), 덕순 령 이경충(德純令李鏡忠), 덕창 령 이경지(德昌令李鏡智), 덕인 령 이경신(德仁令李鏡信) 등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친으로 본래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어찌 묘당과 삼사의 논의에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여론을 두루 수합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명성군(明城君) 이작(李綽), 의원 감 역(義原監權), 해원 감 장(海原監檣), 니성 정 신(尼城正紳), 흥원 도정(興原都正) 의(檥) 등은 의논드리기를,
"여러 유생의 상소 내용에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켰으면 합니다."
하고, 봉릉 감 이철수(鳳陵監李鐵壽), 한릉 감 이해수(漢陵監李海壽), 귀원 수 이조(龜原守李眺), 학릉 감 이애수(鶴陵監李愛壽), 서양 령 이형의(西陽令李炯義), 낙성 부령(洛城副令) 이낭(李琅), 금원 령 이탁(錦原令李倬), 풍성 정 이희린(豊城正李希獜), 귀흥 부수(龜興副守) 이섬(李睒), 하성 령 이형륜(夏城令李炯倫), 익성 수 이충록(益城守李忠祿), 의성 부수(義城副守) 이유경(李惟敬), 충성 부수(忠城副守) 이유일(李惟一), 충원 부수(忠原副守) 이유정(李惟精), 의천 부수(義川副守) 이유훈(李惟訓), 귀산 부수(龜山副守) 이권(李眷), 능성 감 이암(綾城監李黯), 완성 감 이묵(完城監李默), 철산 부령(鐵山副令) 이종윤(李終胤), 운산 부령(雲山副令) 이양윤(李良胤), 화산 부령(花山副令) 이계윤(李季胤), 충릉 정 이유성(忠陵正李惟誠), 의원 부수(義原副守) 이유함(李惟諴) 등은 의논드리기를,
"하찮은 종실로서 본래 지식이 없습니다. 조정과 재야의 의논을 따랐으면 합니다."
하고, 오천군(烏川君) 이굉(李鍧), 춘성 부수(春城副守) 의충(義忠), 의성도정(宜城都正) 효충(孝忠), 송산 령 삼남(松山令三男), 해성 부수(海城副守) 원충(元忠), 영성 부수(泳城副守) 형충(亨忠) 등은 의논드리기를,
"국가의 대사를 어찌 감히 참견하겠습니까. 오직 의정부에서 헤아려 처리하기에 달렸습니다."
하고, 항산 수 정(恒山守楨), 한성 령 녕(漢城令濘), 오강 정(烏江正) 건(鍵), 회원 부수(懷原副守) 철(鐵), 연성도정(蓮城都正) 몽호(夢虎) 등은 의논드리기를,
"조정에서 처리하는 대로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고, 평창도정(平昌都正) 이만수(李萬壽)는 의논드리기를,
"국가에 불행이 닥쳐 전에 없던 큰 변고를 만났으니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어느 누가 마음아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유생들의 많은 상소가 일제히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삼가 듣건대 유생들의 상소 중에는 옛일을 낱낱이 들어서 제시한 것이 많다고 하는데 고사(古史)를 상고해서 거행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고, 덕신정(德信正) 이난수(李鸞壽)는 의논드리기를,
"변변치 못한 종친으로 나이가 이미 70세가 되다 보니 국가의 큰일에 대하여 실로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남이 그렇다고 말하면 신도 역시 그런가보다 할 뿐입니다."
하고, 덕양도정(德陽都正) 충윤(忠胤)은 의논드리기를,
"과 재야 사이에 공론이 한창 제기되고 있으니 두려워할 것은 바로 이 공론이 아니겠습니까. 어리석은 신의 생각도 여기에 귀착될 뿐입니다."
하였다.
11월 26일 정해
이조가 아뢰기를, "부제학 이대엽의 차자에 ‘춘추관 지사 이이첨과는 아비와 자식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피하여야 하니 교체하여 줄 것을 청합니다.’ 하였습니다. 전날에 박자흥도 이러한 규정을 적용하여 이미 다시 차정한 바 있으니, 여기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부제학 이대엽의 차자에 ‘춘추관 지사 이이첨과는 아비와 자식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피하여야 하니 교체하여 줄 것을 청합니다.’ 하였습니다. 전날에 박자흥도 이러한 규정을 적용하여 이미 다시 차정한 바 있으니, 여기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유학 이강(李杠)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오늘의 대신들은 임금을 잊는 행동이 심하고 역적을 비호하는 죄가 극도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영의정 기자헌은 흉계를 은밀히 계획하여 맨 먼저 간사한 논의를 제기하였으니, 이것은 서궁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임금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처사입니다. 전에 올린 차자에서는 부도한 말을 하기까지 하였고 뒤에 올린 논의에서는 또 흉악하고 참혹한 말을 하였는데, 그의 본심을 따져보건대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의정 한효순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그 낌새를 미리 살피고는 병을 핑계로 문을 닫고 들어앉아 나오지 않음으로 해서 끝내 수의(收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혼미하다는 말로 감히 전하를 모독하면서 전적으로 교묘하게 회피하는 것만 일삼아 조정을 우롱하였으니, 자신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는 잘한 것인지 몰라도 나라를 위하여 몸바쳐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아, 임금의 원수와는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의 팔다리와 같은 대신들이 어찌 모든 관리들을 거느리고 앞장서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대의를 밝혀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의 원수를 갚지 않아서는 안 되며 화근은 뿌리 뽑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는 논의가 공론이 제기되고 있는 날에 발생하여 국시(國是)를 흐리게 하고 인심을 어지럽게 하였으니,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임금의 위세가 약화되고 공론이 행해지지 못하는 까닭은 누가 주창하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문벌이 있는 집안에서 선호하는 것이면 온 나라에서 그것을 선호하는 법인데, 정창연·유희분·박승종 등은 권력있는 집안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의리로 보아 나라와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여야 할 것인데, 배회하면서 형세만 관망하고 한 마디도 말이 없이 잠자코 지내면서 임금의 위급한 상황을 남의 일 보듯이 하고 뒷날에 자신을 보존할 생각만 하니, 척신(戚臣)으로서 고락을 같이하여야 한다는 의리가 과연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아, 죄있는 자를 처벌하는 일이 엄격하지 못하여 역적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때에 이들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뒷날의 우환이 기자헌의 무리보다도 더 심한 경우가 있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재앙의 불씨를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리고 속히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기자헌·한효순 등의 죄를 다스려서 국시를 정하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오늘의 대신들은 임금을 잊는 행동이 심하고 역적을 비호하는 죄가 극도에 이르렀다 하겠습니다. 영의정 기자헌은 흉계를 은밀히 계획하여 맨 먼저 간사한 논의를 제기하였으니, 이것은 서궁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임금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처사입니다. 전에 올린 차자에서는 부도한 말을 하기까지 하였고 뒤에 올린 논의에서는 또 흉악하고 참혹한 말을 하였는데, 그의 본심을 따져보건대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의정 한효순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그 낌새를 미리 살피고는 병을 핑계로 문을 닫고 들어앉아 나오지 않음으로 해서 끝내 수의(收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혼미하다는 말로 감히 전하를 모독하면서 전적으로 교묘하게 회피하는 것만 일삼아 조정을 우롱하였으니, 자신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는 잘한 것인지 몰라도 나라를 위하여 몸바쳐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아, 임금의 원수와는 의리상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의 팔다리와 같은 대신들이 어찌 모든 관리들을 거느리고 앞장서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대의를 밝혀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의 원수를 갚지 않아서는 안 되며 화근은 뿌리 뽑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는 논의가 공론이 제기되고 있는 날에 발생하여 국시(國是)를 흐리게 하고 인심을 어지럽게 하였으니,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임금의 위세가 약화되고 공론이 행해지지 못하는 까닭은 누가 주창하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문벌이 있는 집안에서 선호하는 것이면 온 나라에서 그것을 선호하는 법인데, 정창연·유희분·박승종 등은 권력있는 집안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의리로 보아 나라와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여야 할 것인데, 배회하면서 형세만 관망하고 한 마디도 말이 없이 잠자코 지내면서 임금의 위급한 상황을 남의 일 보듯이 하고 뒷날에 자신을 보존할 생각만 하니, 척신(戚臣)으로서 고락을 같이하여야 한다는 의리가 과연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아, 죄있는 자를 처벌하는 일이 엄격하지 못하여 역적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때에 이들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뒷날의 우환이 기자헌의 무리보다도 더 심한 경우가 있게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재앙의 불씨를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그리고 속히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기자헌·한효순 등의 죄를 다스려서 국시를 정하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정언 이강(李茳)이 아뢰기를, "신은 시골에서 새로 왔으므로 나랏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금년 5월에 찬집 낭청(撰集郞廳)이 되어 전후에 걸친 옥안(獄案)을 수집하여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안으로는 저주하고 밖으로는 역적들과 결탁하여 온갖 간악한 행동으로 임금을 모해한 사실이 불을 보듯이 환하게 적혀 있어서 그 행적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서궁은 신하와 백성들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그런 원수에게 어찌 절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초야에 있는 충의로운 선비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상소하여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를 밝히고 천지간의 떳떳한 법을 길이 전하였습니다. 신도 역시 우리 임금의 신하입니다. 설사 초야의 논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임금을 잊고 원수에게 절하려 하지 않을 터인데, 더구나 이 세상 어디에서나 영구히 변치 않을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어제 숙배할 일로 대궐에 왔다가 지평 김호(金昈)에게 간통을 보내 ‘서궁에 절하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김호는 대답하기를 ‘조정에서 아직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단정하기가 어렵다.’ 하고 먼저 서궁으로 갔습니다. 김호는 법부의 관원인만큼 신이 만약 혼자 서궁에 절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피혐하는 거조가 이어야 하고 또 오늘 계사를 올려야 하는 문제가 다급했기 때문에 감히 마음에도 없는 절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하니 벼슬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남의 죄를 논하기는 결코 어렵습니다. 속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은 시골에서 새로 왔으므로 나랏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금년 5월에 찬집 낭청(撰集郞廳)이 되어 전후에 걸친 옥안(獄案)을 수집하여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안으로는 저주하고 밖으로는 역적들과 결탁하여 온갖 간악한 행동으로 임금을 모해한 사실이 불을 보듯이 환하게 적혀 있어서 그 행적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서궁은 신하와 백성들에게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그런 원수에게 어찌 절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초야에 있는 충의로운 선비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상소하여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를 밝히고 천지간의 떳떳한 법을 길이 전하였습니다. 신도 역시 우리 임금의 신하입니다. 설사 초야의 논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임금을 잊고 원수에게 절하려 하지 않을 터인데, 더구나 이 세상 어디에서나 영구히 변치 않을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어제 숙배할 일로 대궐에 왔다가 지평 김호(金昈)에게 간통을 보내 ‘서궁에 절하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김호는 대답하기를 ‘조정에서 아직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단정하기가 어렵다.’ 하고 먼저 서궁으로 갔습니다. 김호는 법부의 관원인만큼 신이 만약 혼자 서궁에 절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피혐하는 거조가 이어야 하고 또 오늘 계사를 올려야 하는 문제가 다급했기 때문에 감히 마음에도 없는 절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하니 벼슬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남의 죄를 논하기는 결코 어렵습니다. 속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사가 연계하기를, "기자헌은 성품이 음흉하고 마음씨가 간사한 자로서 인척(姻戚)의 세력을 빙자하여 정승자리를 가로챘습니다. 그리하여 추잡하고 음험한 짓을 마음대로 하고 재물을 탐하여 쌓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으며, 사람들을 해치고 사물에 해가 되게 하는 것이 끝이 없었으며, 벼슬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얻을 것을 얻었을 때는 잃을 것을 근심하여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종과 선왕이 무고당한 것을 중국에 해명하려 하지 않았으며 흉악한 격문을 화살에 매달아서 던진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임금을 버리고 도망갔으니, 신하된 의리가 여기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입니다. 만약 그의 모든 죄과를 다 들자면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다 세기 어려울 것입니다. 김제남이 변란을 일으킬 때에 서궁이 함께 꾀한 사실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진술이 일치하여 모든 사실이 다 드러났으니, 이 나라에 사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분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마는, 대의가 어두워지고 정론이 막혀버렸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시골의 여러 선비가 충성심과 의기를 발하여 정성어린 상소를 잇따라 올려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대신들이 묘당에서 단정히 앉아 모든 관리를 불러모으고 공정한 논의를 널리 채집해서 비상한 변고에 대처하고 뜻밖의 환난을 늦춤으로써 위로는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임금을 보호하며 아래로 신하의 직책을 다하고 사람의 윤리를 세워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자헌은 감히 배회하고 관망하면서 뒷날의 복을 차지할 것만 꾀하고 있습니다. 유생들의 상소문을 내려보냄에 따라 해조가 기자헌에게 가서 의논하자, 핑계대기를 ‘자기 직분이 아닌 남의 일을 참견하다가 무도한 짓을 마음대로 하는 죄에 걸릴까 두렵다.’고 하였으며, 상소문을 다시 의정부에 내려보냈을 때에는 자기 혼자 의견을 먼저 드림으로써 간사한 무리를 모으고 역적을 옹호하는 기치를 세웠으며, 또 좋은 말은 자기가 듣고 일은 임금에게 떠넘기기 위하여 대궐뜰에서 의견을 수집하기를 마치 지시를 받고 문의하여 처리하는 것처럼 하려 했으니 더욱 통분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차자 안에 적은 말은 어느 것이나 다 유생들의 논의를 배척하고 임금을 등지는 논의를 부추기는 것으로 반복하여 변론한 것이 터무니없는 증거를 댐으로써 임금을 협박하는 꾀를 실현하려 하였으니 역시 흉악하고 참혹합니다. 그의 장황하고 현란스런 말에 대해서는 어제 올린 글에 이미 다 확실하게 분변했습니다. 기자헌은 이와 같이 하늘에 달하는 죄악을 저질렀는데 아직도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물의가 들끓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생들이 여지없이 공격하는데도 즉시 석고대죄하지 않고 거만스럽게 다시 묘당에 들어와 임금을 반대하는 무리로 하여금 임금을 무시하는 자기 의견을 돕게 함으로써 서궁을 보호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종묘 사직을 망각하고 임금을 저버린 그의 죄를 법에 따라 처벌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신들이 다만 위리 안치시키기만을 청한 것은 역시 말감(末減)을 따른 것인데 성상의 비답에는 도리어 ‘경솔히 논의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전교하시니, 신들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기자헌의 죄를 하루라도 다스리지 않는다면 이론이 떼 지어 일어나 전하의 위세가 더욱 고립될 것입니다. 나라가 위험해질 조짐이 눈앞에 다가와 있으니 속히 흔쾌한 결단을 내려서 대의를 내세움으로써 화근을 근절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가 매우 불행하여 이 큰 변고를 만났으니 듣고 싶지도 않고 어찌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없이 근심스럽고 안타깝다. 이런 때에 어찌 대신의 죄를 다스려서 나의 부덕함을 거듭 드러내야 하겠는가. 그러나 대신이 논핵을 받고서는 형편상 출사하기가 어렵다. 이 걱정스럽고 위급한 때에 정승의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으니, 체차하도록 하라." 하였다.
"기자헌은 성품이 음흉하고 마음씨가 간사한 자로서 인척(姻戚)의 세력을 빙자하여 정승자리를 가로챘습니다. 그리하여 추잡하고 음험한 짓을 마음대로 하고 재물을 탐하여 쌓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으며, 사람들을 해치고 사물에 해가 되게 하는 것이 끝이 없었으며, 벼슬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얻을 것을 얻었을 때는 잃을 것을 근심하여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종과 선왕이 무고당한 것을 중국에 해명하려 하지 않았으며 흉악한 격문을 화살에 매달아서 던진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임금을 버리고 도망갔으니, 신하된 의리가 여기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입니다. 만약 그의 모든 죄과를 다 들자면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다 세기 어려울 것입니다.
김제남이 변란을 일으킬 때에 서궁이 함께 꾀한 사실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진술이 일치하여 모든 사실이 다 드러났으니, 이 나라에 사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분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마는, 대의가 어두워지고 정론이 막혀버렸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시골의 여러 선비가 충성심과 의기를 발하여 정성어린 상소를 잇따라 올려 화근을 제거할 것을 요청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대신들이 묘당에서 단정히 앉아 모든 관리를 불러모으고 공정한 논의를 널리 채집해서 비상한 변고에 대처하고 뜻밖의 환난을 늦춤으로써 위로는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임금을 보호하며 아래로 신하의 직책을 다하고 사람의 윤리를 세워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자헌은 감히 배회하고 관망하면서 뒷날의 복을 차지할 것만 꾀하고 있습니다. 유생들의 상소문을 내려보냄에 따라 해조가 기자헌에게 가서 의논하자, 핑계대기를 ‘자기 직분이 아닌 남의 일을 참견하다가 무도한 짓을 마음대로 하는 죄에 걸릴까 두렵다.’고 하였으며, 상소문을 다시 의정부에 내려보냈을 때에는 자기 혼자 의견을 먼저 드림으로써 간사한 무리를 모으고 역적을 옹호하는 기치를 세웠으며, 또 좋은 말은 자기가 듣고 일은 임금에게 떠넘기기 위하여 대궐뜰에서 의견을 수집하기를 마치 지시를 받고 문의하여 처리하는 것처럼 하려 했으니 더욱 통분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차자 안에 적은 말은 어느 것이나 다 유생들의 논의를 배척하고 임금을 등지는 논의를 부추기는 것으로 반복하여 변론한 것이 터무니없는 증거를 댐으로써 임금을 협박하는 꾀를 실현하려 하였으니 역시 흉악하고 참혹합니다. 그의 장황하고 현란스런 말에 대해서는 어제 올린 글에 이미 다 확실하게 분변했습니다.
기자헌은 이와 같이 하늘에 달하는 죄악을 저질렀는데 아직도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물의가 들끓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생들이 여지없이 공격하는데도 즉시 석고대죄하지 않고 거만스럽게 다시 묘당에 들어와 임금을 반대하는 무리로 하여금 임금을 무시하는 자기 의견을 돕게 함으로써 서궁을 보호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종묘 사직을 망각하고 임금을 저버린 그의 죄를 법에 따라 처벌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신들이 다만 위리 안치시키기만을 청한 것은 역시 말감(末減)을 따른 것인데 성상의 비답에는 도리어 ‘경솔히 논의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전교하시니, 신들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기자헌의 죄를 하루라도 다스리지 않는다면 이론이 떼 지어 일어나 전하의 위세가 더욱 고립될 것입니다. 나라가 위험해질 조짐이 눈앞에 다가와 있으니 속히 흔쾌한 결단을 내려서 대의를 내세움으로써 화근을 근절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내가 매우 불행하여 이 큰 변고를 만났으니 듣고 싶지도 않고 어찌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없이 근심스럽고 안타깝다. 이런 때에 어찌 대신의 죄를 다스려서 나의 부덕함을 거듭 드러내야 하겠는가. 그러나 대신이 논핵을 받고서는 형편상 출사하기가 어렵다. 이 걱정스럽고 위급한 때에 정승의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 없으니, 체차하도록 하라."
하였다.
홍문관이 상차하여 기자헌에 대하여 속히 공론대로 따를 것을 청하니, 이미 체차하여 면직시켰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정에 친히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거둥할 때 대신이 없이는 할 수 없으니, 서둘러 승지를 파견하여 영돈녕부사와 우의정에게 간곡히 타일러서 출사하도록 하라. 만약 끝내 출사하지 않는다면 우선 영정을 수원부(水原府)에 모셔두고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모셔올 일로 하유할 뜻을 정원은 살펴서 하라."
"영정에 친히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거둥할 때 대신이 없이는 할 수 없으니, 서둘러 승지를 파견하여 영돈녕부사와 우의정에게 간곡히 타일러서 출사하도록 하라. 만약 끝내 출사하지 않는다면 우선 영정을 수원부(水原府)에 모셔두고 대신이 출사하기를 기다렸다가 모셔올 일로 하유할 뜻을 정원은 살펴서 하라."
생원 진호선(陳好善)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서궁이 화근이 되었다는 것을 온 나라 사람들이 어느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가 온 나라에 가득 차 있어 그릇된 논의가 마구 일어나 보고 듣는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임금의 원수를 자기의 부모처럼 여기고 서로 보호하기에 급급해 하면서 오직 그가 일생을 잘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가 어떻게 안정될 수 있겠습니까. 전날 초야에 있는 충의로운 신하들이 여러 차례 연명으로 글을 올려 큰 계책을 결정할 것을 청한 일이 있습니다만, 영의정 기자헌이 맨 먼저 이론을 제기하여 유생의 글을 극력 배격하고 터무니없는 증거를 인용하여 임금을 위협할 계책을 삼았던 까닭에 정론이 이미 나왔다가 중간에 저지되었으니, 나라를 저버린 기자헌의 죄과는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주벌을 제대로 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삼사가 올린 계사를 즉시 윤허하지 않음에 따라 간사하고 반역스러운 무리들이 손뼉을 치고 일어나 계속 간사한 말을 하면서 역적의 괴수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기자헌을 하룻동안 처벌하지 않으면 종묘 사직에 하룻동안의 근심을 끼치는 것입니다. 자헌을 사형에 처하면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던 자들이 그들의 음모를 멈출 것입니다만 자헌을 처단하지 않으면 나라를 등진 무리가 그들의 기세를 올릴 것이니, 국가의 안위 문제가 전하의 용단에 달려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속히 윤허를 한번 내리심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되게 한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어제 도당(都堂)에서 회의할 때 기자헌은 유생의 상소에서 지적당한 사람으로서 버젓이 들어가 앉아 모든 관리를 불러모으는 일을 조금도 기탄없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의도는 바로 원수를 잊은 무리로 하여금 자기의 차자에 보호할 계책을 올리게 해서 자기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홍구(朴弘耉)와 민형남(閔馨男)은 다 ‘비방을 받게 될 것이다.’는 말로 끝을 맺었으며, 정홍익(鄭弘翼)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따를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다 기자헌이 충동질한 것입니다. 이런데도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러 사람이 떠들어대는 말을 제압할 수 있겠으며 여러 사람의 뜻을 일치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항복은 김제남 무리의 괴수이므로 서양갑 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항복의 병권(兵權)을 스스로 믿고 공모 결탁하여 때를 기다렸다가 일어나려 한 것입니다. 좌의정 정인홍은 이항복이 환난을 일으킬 것을 미리 근심하였는데 전하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논의에서는 감히 ‘아들은 어미를 원수로 대할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유생들의 논의가 어찌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서궁을 내쫓도록 하고자 한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이항복은 감히 죄를 전하에게 돌리려 했으니 이것만 해도 이미 극도로 패만스러운 짓인데, 또 ‘급(伋)의 처는 백(白)의 어미이다.’는 말을 인용하여 선왕을 우롱하고 전하를 모욕하였으니 그의 마음은 자헌보다 더 흉악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개 전날에 흉악한 모략을 이루지 못한 까닭에 틈을 타서 기치를 세움으로써 변란의 단서를 열어놓은 것이니, 그의 몸에 1백 번 주벌을 가하더라도 분을 다 풀 수 없습니다. 이런 자를 내버려두고 처단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아, 기자헌이 한 짓이 어찌 남에게 미루고 핑계댄 것뿐이겠습니까. 그 중에는 필시 숨긴 사실과 은밀한 시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병진년에 주청하러 갈 때에는 ‘쟁립(爭立)’이란 두 글자를 해명하려 하지 않은 것과 올 봄에 흉악한 격문의 변고가 일어났을 때에 변란을 틈타 도망쳐간 것은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란 말입니까. 더구나 기어코 서궁을 보호하려고 여러 사람의 상소문을 극력 헐뜯었으며 마침내 ‘전첩(專輒)’이라는 ‘첩’ 자로써 은근히 임금을 모욕하였으니, 그 사실을 철저히 따져서 국법을 바로잡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기자헌을 잡아가두고 엄하게 신문하여 실정을 캐내도록 하고, 다음으로 수의(收議)할 때에 간사한 논의를 한 사람들과 역적 정협의 공초에서 나온 김제남과 패거리가 된 여러 재상들을 모두 처벌하고 귀양보내도록 하소서. 그리고 이어서 이항복은 참형에 처하여 팔방에 조리를 돌림으로써 신하로서 임금을 업신여기고 의리를 무시하는 자들에게 경계가 되게 한다면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서궁이 화근이 되었다는 것을 온 나라 사람들이 어느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가 온 나라에 가득 차 있어 그릇된 논의가 마구 일어나 보고 듣는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임금의 원수를 자기의 부모처럼 여기고 서로 보호하기에 급급해 하면서 오직 그가 일생을 잘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가 어떻게 안정될 수 있겠습니까.
전날 초야에 있는 충의로운 신하들이 여러 차례 연명으로 글을 올려 큰 계책을 결정할 것을 청한 일이 있습니다만, 영의정 기자헌이 맨 먼저 이론을 제기하여 유생의 글을 극력 배격하고 터무니없는 증거를 인용하여 임금을 위협할 계책을 삼았던 까닭에 정론이 이미 나왔다가 중간에 저지되었으니, 나라를 저버린 기자헌의 죄과는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주벌을 제대로 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삼사가 올린 계사를 즉시 윤허하지 않음에 따라 간사하고 반역스러운 무리들이 손뼉을 치고 일어나 계속 간사한 말을 하면서 역적의 괴수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기자헌을 하룻동안 처벌하지 않으면 종묘 사직에 하룻동안의 근심을 끼치는 것입니다. 자헌을 사형에 처하면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던 자들이 그들의 음모를 멈출 것입니다만 자헌을 처단하지 않으면 나라를 등진 무리가 그들의 기세를 올릴 것이니, 국가의 안위 문제가 전하의 용단에 달려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속히 윤허를 한번 내리심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되게 한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어제 도당(都堂)에서 회의할 때 기자헌은 유생의 상소에서 지적당한 사람으로서 버젓이 들어가 앉아 모든 관리를 불러모으는 일을 조금도 기탄없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의도는 바로 원수를 잊은 무리로 하여금 자기의 차자에 보호할 계책을 올리게 해서 자기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홍구(朴弘耉)와 민형남(閔馨男)은 다 ‘비방을 받게 될 것이다.’는 말로 끝을 맺었으며, 정홍익(鄭弘翼)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따를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다 기자헌이 충동질한 것입니다. 이런데도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러 사람이 떠들어대는 말을 제압할 수 있겠으며 여러 사람의 뜻을 일치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항복은 김제남 무리의 괴수이므로 서양갑 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항복의 병권(兵權)을 스스로 믿고 공모 결탁하여 때를 기다렸다가 일어나려 한 것입니다. 좌의정 정인홍은 이항복이 환난을 일으킬 것을 미리 근심하였는데 전하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논의에서는 감히 ‘아들은 어미를 원수로 대할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유생들의 논의가 어찌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서궁을 내쫓도록 하고자 한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이항복은 감히 죄를 전하에게 돌리려 했으니 이것만 해도 이미 극도로 패만스러운 짓인데, 또 ‘급(伋)의 처는 백(白)의 어미이다.’는 말을 인용하여 선왕을 우롱하고 전하를 모욕하였으니 그의 마음은 자헌보다 더 흉악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개 전날에 흉악한 모략을 이루지 못한 까닭에 틈을 타서 기치를 세움으로써 변란의 단서를 열어놓은 것이니, 그의 몸에 1백 번 주벌을 가하더라도 분을 다 풀 수 없습니다. 이런 자를 내버려두고 처단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아, 기자헌이 한 짓이 어찌 남에게 미루고 핑계댄 것뿐이겠습니까. 그 중에는 필시 숨긴 사실과 은밀한 시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병진년에 주청하러 갈 때에는 ‘쟁립(爭立)’이란 두 글자를 해명하려 하지 않은 것과 올 봄에 흉악한 격문의 변고가 일어났을 때에 변란을 틈타 도망쳐간 것은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란 말입니까. 더구나 기어코 서궁을 보호하려고 여러 사람의 상소문을 극력 헐뜯었으며 마침내 ‘전첩(專輒)’이라는 ‘첩’ 자로써 은근히 임금을 모욕하였으니, 그 사실을 철저히 따져서 국법을 바로잡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기자헌을 잡아가두고 엄하게 신문하여 실정을 캐내도록 하고, 다음으로 수의(收議)할 때에 간사한 논의를 한 사람들과 역적 정협의 공초에서 나온 김제남과 패거리가 된 여러 재상들을 모두 처벌하고 귀양보내도록 하소서. 그리고 이어서 이항복은 참형에 처하여 팔방에 조리를 돌림으로써 신하로서 임금을 업신여기고 의리를 무시하는 자들에게 경계가 되게 한다면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가 재차 아뢰자, 이미 체차하여 면직시켰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지평 김호(金昈)가 아뢰기를, "신이 어제 아침에 숙배할 일로 대궐에 갔을 때에 정언 이강이 신에게 간통을 보내와 묻기를 ‘서궁에 절하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유생들의 상소문이 잇따라 올라오지만 조정이 아직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서궁의 칭호가 그대로 있으니, 장차 어떻게 해야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또 신에게 간통을 보내와 묻기를 ‘그렇다면 숙배를 올리려 하는가? 나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기에, 신이 또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답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유생들의 상소가 잇따라 올라오고 대론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조정이 아직 처리하지 않아서 분조·호위·조알하는 등의 일을 아직도 그대로 두고 있으니 서궁에 절하는 것을 제 마음대로 폐지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언 이강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신이 잘못을 면할 수 없습니다. 결코 그대로 있기 어려우니 신의 벼슬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어제 아침에 숙배할 일로 대궐에 갔을 때에 정언 이강이 신에게 간통을 보내와 묻기를 ‘서궁에 절하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유생들의 상소문이 잇따라 올라오지만 조정이 아직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서궁의 칭호가 그대로 있으니, 장차 어떻게 해야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또 신에게 간통을 보내와 묻기를 ‘그렇다면 숙배를 올리려 하는가? 나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기에, 신이 또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답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유생들의 상소가 잇따라 올라오고 대론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조정이 아직 처리하지 않아서 분조·호위·조알하는 등의 일을 아직도 그대로 두고 있으니 서궁에 절하는 것을 제 마음대로 폐지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언 이강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신이 잘못을 면할 수 없습니다. 결코 그대로 있기 어려우니 신의 벼슬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합사가 세 번째로 아뢰자, 이렇게 논집하니 파직하라고 답하였다.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자, 이렇게 논집하니 파직하라고 답하였다.
유학 한천정(韓天挺)·이구(李榘)·윤지임(尹之任)·한보길(韓輔吉)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서궁(西宮)이 국가에 화근이 되고 있다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임금을 위하여 충성하는 자는 모두 그를 제거하려 하지만 뒷날의 부귀를 꾀하는 자들은 이것을 기화(奇貨)로 여기고 있으며,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전하를 돕는 사람이 없는 것을 위태롭게 여기면서 모두 물러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초야의 유생들이 잇따라 정성어린 상소를 올렸고 그것을 이미 묘당에 내려보내어 의논하였는데, 대신들 중에는 기꺼이 일을 담당하려 하지 않는 자도 있으며 두문불출(杜門不出)하는 자도 있고 또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는 자도 있어서, 국가 대사가 장차 파탄되고 나라가 멸망할 날이 멀지 않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대신들이 오히려 관망하면서 화근을 뿌리뽑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더구나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과 화변이 나는 것을 즐기는 무리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현재 임금은 다만 서너 명의 충신과 일부의 의로운 사람들을 데리고 고립되어 있을 뿐이고, 대신 이하는 역적을 옹호하는 무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조정에 가득찬 관리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다 그 휘하에 속하여 있으니, 비록 창칼은 서로 겨누고 있지 않더라도 형세는 마치 두 나라 군사가 대치하여 변란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중에 혹시 불행하게도 병권을 가진 신하가 병간(兵諫)하자는 논의를 주장하고 나서서 착한 사람들을 먼저 살해한 다음 전하의 신변에까지 미치게 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종묘 사직이 마침내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간담이 서늘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지금 조정의 신하로서 전하를 저버린 자는 낮은 관리들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왕실의 친척이나 가까이에 있는 신하들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임금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잘 보살펴 주리라 믿고서 ‘설사 역적을 옹호하는 논의를 주장하더라도 상께서는 필시 나를 주벌하지 않을 것인데 내가 무엇이 두려워서 그를 옹호하지 않겠는가.’고 여기는 것입니다. 전하의 총애는 형편상 역적을 치려는 사람들에게로 쏠리기 마련인데 왕실 친척들이 이들을 미워하여 앞을 다투어 분풀이를 하려고 역적을 치려던 사람들을 죽인다면, 임금을 내쫓는 일까지도 차마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공정한 논의가 오늘에 이르도록 확장되지 못하고 화근을 오늘날까지 뽑지 못한 것입니다. 말을 하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옛날 당나라 왕곡(王轂)은 비첩(婢妾)을 지나치게 사랑한 결과, 그 처가 남편을 독살하고 그 첩의 사지를 찢어 죽였습니다. 법관이 사실을 신문하자, 그는 말하기를 ‘남편이 나를 박대하니 차라리 죽여서 분을 풀고자 한 것이다.’ 하였으니, 오늘 인척들의 하는 행위가 불행하게도 이와 유사합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기자헌이 헌의한 차자를 신이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 요지는 대략 얻어 들었는데, 임금을 위협하고 업신여기며 우롱한 그 내용을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로 서궁의 죄악은 임금을 죽이는 데 참여한 문강(文姜)의 죄보다도 더하며, 저주하고 요사스런 일을 행하여 그 화가 유릉(裕陵)에까지 미치게 하고, 재앙이 전하에게 미치게 한 것은 왕후(王后)를 독살하고 방주(房州)로 내쫓은 무후(武后)의 죄보다도 심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감히 ‘같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는 도대체 무슨 속셈을 가졌단 말입니까. 여러 선비들이 진(晉)나라 장화(張華)의 말을 인용한 것은 장화가 양 황후(楊皇后)를 내쫓으려고 조비연(趙飛燕)의 고사에 의거하여 한(漢)나라 황실에서 한 것처럼 구전(舊典)을 폄하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이 논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감히 유생들의 글에 쓰지도 않은 뜻을 끌어다 동양(董養)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임금을 위협하였습니다. 대체로 양 황후가 폐위된 것은 애매한 일이었기 때문에 동양이 탄식했던 것이었습니다. 어찌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고 꾀한 형적이 이와 같이 명백했겠습니까. 그런데 기어이 망발한 것으로 허물을 삼고자 하였으니 그의 의도한 바가 또한 이상하다고 하겠습니다. 당 숙종(唐肅宗) 때 장 황후(張皇后)가 태자 담(倓)을 죽이고 정권을 독차지하였으며 대종(代宗)을 내쫓고 계(係)를 세우려 하자, 이보국(李輔國)은 대종의 뜻으로 장 황후를 내쫓으려 하였으며, 그 뒤에 여러 신하들도 장 황후를 쫓아내고 독살할 것을 극력 요청하였습니다. 그때 양관(楊綰)은 예부 시랑이었고 안진경(顔眞卿)은 이주(利州)에 부임하지 않고 이부 시랑(吏部侍郞)으로 임명되어 조정 신하의 반열에 있었으니, 만약 다른 의견이 있었다면 역사에 반드시 그 말이 적혀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있을 때 여러 신하들이 연명으로 황후를 내쫓을 것을 요청하였을 것은 단연코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기자헌은 무슨 책을 상고하였기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단 말입니까. 장 황후가 무슨 천행으로 수천 년 뒤에 기자헌에게 옹호받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서궁의 처지를 위하여 이런 논의를 제창한 것에 불과합니다. 염 황후(閻皇后)는 염현(閻顯)과 함께 변란을 일으켰는데 계책을 이루지 못하고 패하였습니다. 당시에 현이 만약 염 황후의 아비로서 뒤에서 조종하여 한 나라 조정을 위태롭게 하였다면 여러 신하들이 어찌 흉악한 한 여자를 용서하고 토죄하지 않았겠습니까. 송 철종(宋哲宗) 때 유 황후(劉皇后)의 죄는 음탕한 데 그쳤을 뿐인데도 원우(元祐) 이후의 현인들은 오히려 쫓아내려 하였습니다. 그때에 진관이 ‘빨리 내쫓지는 말아야 한다.’고 한 말은 먼저 명분을 바로잡기 위해서 말한 것인데, 기자헌이 옛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서 기어코 내쫓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정릉(貞陵)이 폐출된 경우는 그가 죽은 뒤에 있었던 일이므로 변란을 꾀하는데 참여하여 알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한식날에 한 번씩 제사지냄으로써 그 제사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신덕 왕후(神德王后)가 만약 헌릉(獻陵)에 대하여 저주를 하였다면 어찌 은혜를 온전히 해줄 리가 있겠습니까. 그가 중국의 일을 인용하여 전하를 위협한 그 마음은 더욱 흉하고 참혹합니다. 중국에서는 우리 나라를 한집안처럼 보기 때문에 좋은 일과 궂은 일, 화와 복의 단서에 대하여 다 환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역하는 무리가 상을 원망하여 혹시 뜻밖의 이간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니, 지금 이 큰일을 처리하면서 만약 중국 조정에 먼저 보고하지 않았다가 혹시 중국 사람의 귀에 들어가서 그들이 덧붙이고 선동하여 중국 조정에 전달된다면 중국에서 설사 따져 묻지 않더라도 우리의 수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하게도 만약 일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언관이 내막을 조사할 것을 청한다면 장차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그가 이른바 정응태·조즙·성량의 족속들이 허구날조하여 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 알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니,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유생들의 상소에서 진강(鎭江)에 대하여 우려한 것도 역시 이것을 우려한 것이니, 어찌 덮어두고서 구차하게 지냄으로써 뒷날의 우환을 열어놓아서야 되겠습니까. 기자헌이 ‘자는 범의 꼬리를 밟는 격’이라는 말로 전하를 놀라게 한 것도 사실은 서궁을 옹호하려는 뜻입니다. 그의 반역을 꾀한 형적이 이미 드러났으니 백 번 처단한들 무슨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중국에 고하려 한 것은 황제에게 직접 고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예부(禮部)가 외국의 일을 관장하고 있으면서 봉(封)하고 폐(廢)하는 법전을 마음대로 품달하여 시행하기 때문에 예부에 고하려는 것입니다. 신이 삼가 중국의 옛일을 상고하건대, 성화(成化)연간에 한음왕(漢陰王) 징제(徵提)가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어미 평씨(平氏)가 다른 사람의 아들을 얻어 대를 이을 아들로 책봉하려 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이번에 서궁이 범한 죄는 왕실의 계통을 어지럽힌 것뿐이 아니므로 예부가 만약 자세히 듣게 된다면 우리가 내쫓도록 청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평씨에 대한 전례에 의거하여 법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다만 왕비의 아비가 반역을 하고 왕비가 안에서 호응하여 반역하는 무리를 모으고 왜국(倭國)과 연결하여 중국을 배반하려 한 사실을 백관들이 보내는 공문에 기록하고, 계속하여 전하는 타고난 효성으로써 변함없이 대비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찬양하여 쓴다면, 중국의 관리들도 반드시 좋게 여기고 감탄하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차자의 회답 내용에 만약 ‘변란에서 교훈을 찾아 우환을 조심하고 화근을 근절시킬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라 안의 역적 무리가 어찌 감히 ‘어버이가 사랑하지 않더라도’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윤이·이초와 같은 자가 1 백 명이 있더라도 어찌 감히 중국에 가서 이간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현재 가장 좋은 계책인데도 불구하고 자헌은 필사적으로 전하를 위협하여 기어이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서궁을 은밀히 돕는 그의 죄상이 여지없이 드러났으니 또한 흉악하지 않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반드시 기자헌을 서시(西市)에서 참형에 처하여 도성 안에 매달아 다른 사람들을 경계한다면 큰 의리가 저절로 밝혀지고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부합될 것이라고 봅니다. 설사 간사한 모략과 패악스러운 계획을 세워놓았다 하더라도 겁이 나서 감히 다시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는 조금도 너그럽게 용서하지 마셔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킨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정창연(鄭昌衍)은 바로 중전과 아주 가까운 친척으로서 병이 심하다고 핑계대고 출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깊은 방 밀실에서 좌우에 첩을 끼고 않아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는 등 낮으로 밤을 삼아 노닥거리고 있습니다. 병이 나서 인사를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이럴 수 있습니까. 그의 여러 조카들은 다 정창연을 스승으로 삼고 그의 간사한 말을 본받아 차라리 전하를 등질지언정 그의 논의를 감히 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기자헌처럼 자취를 독특하게 하지도 않으며 소소한 일까지도 삼가고 사양하여 평소에 인망을 좀 샀으므로 자헌과 같이 인심을 크게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헌을 공격하는 문제는 쉽게 생각하면서도 창연을 공격하는 문제는 매우 어렵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전하의 가슴 속에 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왕후의 집을 보전하고자 하신다면 속히 정창연을 먼 변방으로 귀양을 보내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 조카들의 마음도 조금 돌려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급선무는 반드시 높은 자리에 있는 인척을 중하게 다스려야만 뭇 사람의 떠들어대는 것을 진정시키고 큰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기자헌을 속히 참수하시고 정창연을 빨리 귀양보내어 국시를 정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서궁(西宮)이 국가에 화근이 되고 있다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임금을 위하여 충성하는 자는 모두 그를 제거하려 하지만 뒷날의 부귀를 꾀하는 자들은 이것을 기화(奇貨)로 여기고 있으며,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전하를 돕는 사람이 없는 것을 위태롭게 여기면서 모두 물러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초야의 유생들이 잇따라 정성어린 상소를 올렸고 그것을 이미 묘당에 내려보내어 의논하였는데, 대신들 중에는 기꺼이 일을 담당하려 하지 않는 자도 있으며 두문불출(杜門不出)하는 자도 있고 또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는 자도 있어서, 국가 대사가 장차 파탄되고 나라가 멸망할 날이 멀지 않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대신들이 오히려 관망하면서 화근을 뿌리뽑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더구나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과 화변이 나는 것을 즐기는 무리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현재 임금은 다만 서너 명의 충신과 일부의 의로운 사람들을 데리고 고립되어 있을 뿐이고, 대신 이하는 역적을 옹호하는 무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조정에 가득찬 관리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다 그 휘하에 속하여 있으니, 비록 창칼은 서로 겨누고 있지 않더라도 형세는 마치 두 나라 군사가 대치하여 변란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중에 혹시 불행하게도 병권을 가진 신하가 병간(兵諫)하자는 논의를 주장하고 나서서 착한 사람들을 먼저 살해한 다음 전하의 신변에까지 미치게 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종묘 사직이 마침내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간담이 서늘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지금 조정의 신하로서 전하를 저버린 자는 낮은 관리들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왕실의 친척이나 가까이에 있는 신하들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임금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잘 보살펴 주리라 믿고서 ‘설사 역적을 옹호하는 논의를 주장하더라도 상께서는 필시 나를 주벌하지 않을 것인데 내가 무엇이 두려워서 그를 옹호하지 않겠는가.’고 여기는 것입니다. 전하의 총애는 형편상 역적을 치려는 사람들에게로 쏠리기 마련인데 왕실 친척들이 이들을 미워하여 앞을 다투어 분풀이를 하려고 역적을 치려던 사람들을 죽인다면, 임금을 내쫓는 일까지도 차마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공정한 논의가 오늘에 이르도록 확장되지 못하고 화근을 오늘날까지 뽑지 못한 것입니다. 말을 하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옛날 당나라 왕곡(王轂)은 비첩(婢妾)을 지나치게 사랑한 결과, 그 처가 남편을 독살하고 그 첩의 사지를 찢어 죽였습니다. 법관이 사실을 신문하자, 그는 말하기를 ‘남편이 나를 박대하니 차라리 죽여서 분을 풀고자 한 것이다.’ 하였으니, 오늘 인척들의 하는 행위가 불행하게도 이와 유사합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기자헌이 헌의한 차자를 신이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 요지는 대략 얻어 들었는데, 임금을 위협하고 업신여기며 우롱한 그 내용을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로 서궁의 죄악은 임금을 죽이는 데 참여한 문강(文姜)의 죄보다도 더하며, 저주하고 요사스런 일을 행하여 그 화가 유릉(裕陵)에까지 미치게 하고, 재앙이 전하에게 미치게 한 것은 왕후(王后)를 독살하고 방주(房州)로 내쫓은 무후(武后)의 죄보다도 심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감히 ‘같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는 도대체 무슨 속셈을 가졌단 말입니까. 여러 선비들이 진(晉)나라 장화(張華)의 말을 인용한 것은 장화가 양 황후(楊皇后)를 내쫓으려고 조비연(趙飛燕)의 고사에 의거하여 한(漢)나라 황실에서 한 것처럼 구전(舊典)을 폄하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이 논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감히 유생들의 글에 쓰지도 않은 뜻을 끌어다 동양(董養)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임금을 위협하였습니다. 대체로 양 황후가 폐위된 것은 애매한 일이었기 때문에 동양이 탄식했던 것이었습니다. 어찌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고 꾀한 형적이 이와 같이 명백했겠습니까. 그런데 기어이 망발한 것으로 허물을 삼고자 하였으니 그의 의도한 바가 또한 이상하다고 하겠습니다. 당 숙종(唐肅宗) 때 장 황후(張皇后)가 태자 담(倓)을 죽이고 정권을 독차지하였으며 대종(代宗)을 내쫓고 계(係)를 세우려 하자, 이보국(李輔國)은 대종의 뜻으로 장 황후를 내쫓으려 하였으며, 그 뒤에 여러 신하들도 장 황후를 쫓아내고 독살할 것을 극력 요청하였습니다. 그때 양관(楊綰)은 예부 시랑이었고 안진경(顔眞卿)은 이주(利州)에 부임하지 않고 이부 시랑(吏部侍郞)으로 임명되어 조정 신하의 반열에 있었으니, 만약 다른 의견이 있었다면 역사에 반드시 그 말이 적혀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있을 때 여러 신하들이 연명으로 황후를 내쫓을 것을 요청하였을 것은 단연코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기자헌은 무슨 책을 상고하였기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단 말입니까. 장 황후가 무슨 천행으로 수천 년 뒤에 기자헌에게 옹호받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서궁의 처지를 위하여 이런 논의를 제창한 것에 불과합니다.
염 황후(閻皇后)는 염현(閻顯)과 함께 변란을 일으켰는데 계책을 이루지 못하고 패하였습니다. 당시에 현이 만약 염 황후의 아비로서 뒤에서 조종하여 한 나라 조정을 위태롭게 하였다면 여러 신하들이 어찌 흉악한 한 여자를 용서하고 토죄하지 않았겠습니까. 송 철종(宋哲宗) 때 유 황후(劉皇后)의 죄는 음탕한 데 그쳤을 뿐인데도 원우(元祐) 이후의 현인들은 오히려 쫓아내려 하였습니다. 그때에 진관이 ‘빨리 내쫓지는 말아야 한다.’고 한 말은 먼저 명분을 바로잡기 위해서 말한 것인데, 기자헌이 옛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서 기어코 내쫓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정릉(貞陵)이 폐출된 경우는 그가 죽은 뒤에 있었던 일이므로 변란을 꾀하는데 참여하여 알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한식날에 한 번씩 제사지냄으로써 그 제사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신덕 왕후(神德王后)가 만약 헌릉(獻陵)에 대하여 저주를 하였다면 어찌 은혜를 온전히 해줄 리가 있겠습니까.
그가 중국의 일을 인용하여 전하를 위협한 그 마음은 더욱 흉하고 참혹합니다. 중국에서는 우리 나라를 한집안처럼 보기 때문에 좋은 일과 궂은 일, 화와 복의 단서에 대하여 다 환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역하는 무리가 상을 원망하여 혹시 뜻밖의 이간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니, 지금 이 큰일을 처리하면서 만약 중국 조정에 먼저 보고하지 않았다가 혹시 중국 사람의 귀에 들어가서 그들이 덧붙이고 선동하여 중국 조정에 전달된다면 중국에서 설사 따져 묻지 않더라도 우리의 수치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하게도 만약 일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언관이 내막을 조사할 것을 청한다면 장차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그가 이른바 정응태·조즙·성량의 족속들이 허구날조하여 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 알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니,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유생들의 상소에서 진강(鎭江)에 대하여 우려한 것도 역시 이것을 우려한 것이니, 어찌 덮어두고서 구차하게 지냄으로써 뒷날의 우환을 열어놓아서야 되겠습니까.
기자헌이 ‘자는 범의 꼬리를 밟는 격’이라는 말로 전하를 놀라게 한 것도 사실은 서궁을 옹호하려는 뜻입니다. 그의 반역을 꾀한 형적이 이미 드러났으니 백 번 처단한들 무슨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중국에 고하려 한 것은 황제에게 직접 고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예부(禮部)가 외국의 일을 관장하고 있으면서 봉(封)하고 폐(廢)하는 법전을 마음대로 품달하여 시행하기 때문에 예부에 고하려는 것입니다. 신이 삼가 중국의 옛일을 상고하건대, 성화(成化)연간에 한음왕(漢陰王) 징제(徵提)가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어미 평씨(平氏)가 다른 사람의 아들을 얻어 대를 이을 아들로 책봉하려 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이번에 서궁이 범한 죄는 왕실의 계통을 어지럽힌 것뿐이 아니므로 예부가 만약 자세히 듣게 된다면 우리가 내쫓도록 청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평씨에 대한 전례에 의거하여 법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다만 왕비의 아비가 반역을 하고 왕비가 안에서 호응하여 반역하는 무리를 모으고 왜국(倭國)과 연결하여 중국을 배반하려 한 사실을 백관들이 보내는 공문에 기록하고, 계속하여 전하는 타고난 효성으로써 변함없이 대비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찬양하여 쓴다면, 중국의 관리들도 반드시 좋게 여기고 감탄하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차자의 회답 내용에 만약 ‘변란에서 교훈을 찾아 우환을 조심하고 화근을 근절시킬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라 안의 역적 무리가 어찌 감히 ‘어버이가 사랑하지 않더라도’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윤이·이초와 같은 자가 1 백 명이 있더라도 어찌 감히 중국에 가서 이간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현재 가장 좋은 계책인데도 불구하고 자헌은 필사적으로 전하를 위협하여 기어이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서궁을 은밀히 돕는 그의 죄상이 여지없이 드러났으니 또한 흉악하지 않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반드시 기자헌을 서시(西市)에서 참형에 처하여 도성 안에 매달아 다른 사람들을 경계한다면 큰 의리가 저절로 밝혀지고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부합될 것이라고 봅니다. 설사 간사한 모략과 패악스러운 계획을 세워놓았다 하더라도 겁이 나서 감히 다시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는 조금도 너그럽게 용서하지 마셔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킨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정창연(鄭昌衍)은 바로 중전과 아주 가까운 친척으로서 병이 심하다고 핑계대고 출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깊은 방 밀실에서 좌우에 첩을 끼고 않아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는 등 낮으로 밤을 삼아 노닥거리고 있습니다. 병이 나서 인사를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이럴 수 있습니까. 그의 여러 조카들은 다 정창연을 스승으로 삼고 그의 간사한 말을 본받아 차라리 전하를 등질지언정 그의 논의를 감히 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기자헌처럼 자취를 독특하게 하지도 않으며 소소한 일까지도 삼가고 사양하여 평소에 인망을 좀 샀으므로 자헌과 같이 인심을 크게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헌을 공격하는 문제는 쉽게 생각하면서도 창연을 공격하는 문제는 매우 어렵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전하의 가슴 속에 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왕후의 집을 보전하고자 하신다면 속히 정창연을 먼 변방으로 귀양을 보내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여러 조카들의 마음도 조금 돌려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급선무는 반드시 높은 자리에 있는 인척을 중하게 다스려야만 뭇 사람의 떠들어대는 것을 진정시키고 큰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기자헌을 속히 참수하시고 정창연을 빨리 귀양보내어 국시를 정하신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1월 27일 무자
정언 이강이 아뢰기를, "신이 이미 본심을 굽히고 억지로 원수의 뜰에 절한 이상 비록 사직하지 말라는 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응당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합사하여 아뢰는 문제가 다급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전하를 번거롭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평 김호(金昈)가 물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건대, 신은 그와 같은 잘못이 있는 사람으로서 혼자 물러가 기다리지 않았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신의 관직을 체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이미 본심을 굽히고 억지로 원수의 뜰에 절한 이상 비록 사직하지 말라는 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응당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합사하여 아뢰는 문제가 다급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전하를 번거롭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평 김호(金昈)가 물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건대, 신은 그와 같은 잘못이 있는 사람으로서 혼자 물러가 기다리지 않았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신의 관직을 체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유학 김정량(金廷亮)·김정계(金廷啓) 등이 아뢰기를, "삼가 생각건대,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고 여러 관리들의 의견도 바야흐로 수집했으므로 변고에 대처하기 위한 거조를 날을 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기자헌이 몰래 반역스러운 계획을 하고 있을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서궁을 비호하여 뒷날의 복을 꾀하려고 흉악한 차자를 재차 올려 큰일을 파괴하려 했기 때문에 삼사가 그를 주벌할 것을 청하였으나, 아직도 윤허받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간사한 무리는 손뼉을 치며 괴이한 의논을 더욱 성하게 일으키고 있으니, 신은 삼가 민망스럽게 여깁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속히 왕법을 적용하여 다스림으로써 신인(神人)의 울분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않으십니까. 대체로 비상한 사고에 대한 처리는 빨리 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더디게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은 명백한 이치입니다. 이번 화근을 제거하기 위한 이 계책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데 전하께서는 구중궁궐 안에서 침묵하고 계실 뿐, 준엄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시일만 끌어감으로써 간사한 무리로 하여금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먹게 하고 계십니까. 조정 신하들의 의견을 이미 거두어 종합하였으니, 대신들은 응당 서둘러 절충하여 좋은 의견을 따라 잘 처리한 다음 큰 판국을 잠깐 동안에 완성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정승은 논핵을 받아 견책을 기다리고 있고 또 한 정승은 병을 핑계대고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논핵을 받은 사람은 진실로 논할 것이 없지만 병을 핑계대고 있는 자는 어찌 눈이 멀고 귀가 막혔거나 절름발이가 되어 일을 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야 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어찌 일을 회피한 그의 죄를 용서해주시어 뒷날의 성과를 내도록 요구하지 않으십니까. 계속해서 승지를 하루에도 여러 번 보내어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로 타이른다면 그가 어찌 감히 꼼짝도 않고 누워 있음으로써 임금을 저버리는 죄를 스스로 범하겠습니까. 만약 끝내 고집하고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면 귀양을 보내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으며 참형에 처하는 것이 무엇을 꺼려할 일이겠습니까. 아, 전하는 궁전둘레에 호위를 세워 자신만 보호하고 있고 신하들은 모두 떠나갈 생각만 하고 있으며, 중대한 논의는 두 갈래로 갈라지고 공정한 논의는 생기를 잃어 확정되지 않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위험한 때입니까. 예로부터 왕대(王代)가 갈릴 때에는 반드시 중대한 조치가 있어 허황된 논의를 진정시키고 뭇 사람의 떠드는 것을 진압함으로써 큰 난국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금에게 사람을 죽이도록 권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만 변란을 안정시킬 때는 죽이지 않으면 뭇 사람을 위압할 수 없는 법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직은 중하고 임금은 경하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대신은 임금보다 한 등급이 낮으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기자헌을 참형에 처하는 데 대해서는 이제 다른 의견이 없고, 한효순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그도 기자헌과 함께 큰 장대에 머리를 매달아서 신하로서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도 위급한 때를 당하여 임금을 배반하는 자들을 경계한다면, 종묘 사직의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고 여러 관리들의 의견도 바야흐로 수집했으므로 변고에 대처하기 위한 거조를 날을 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기자헌이 몰래 반역스러운 계획을 하고 있을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서궁을 비호하여 뒷날의 복을 꾀하려고 흉악한 차자를 재차 올려 큰일을 파괴하려 했기 때문에 삼사가 그를 주벌할 것을 청하였으나, 아직도 윤허받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간사한 무리는 손뼉을 치며 괴이한 의논을 더욱 성하게 일으키고 있으니, 신은 삼가 민망스럽게 여깁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속히 왕법을 적용하여 다스림으로써 신인(神人)의 울분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않으십니까. 대체로 비상한 사고에 대한 처리는 빨리 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더디게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은 명백한 이치입니다. 이번 화근을 제거하기 위한 이 계책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데 전하께서는 구중궁궐 안에서 침묵하고 계실 뿐, 준엄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시일만 끌어감으로써 간사한 무리로 하여금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먹게 하고 계십니까.
조정 신하들의 의견을 이미 거두어 종합하였으니, 대신들은 응당 서둘러 절충하여 좋은 의견을 따라 잘 처리한 다음 큰 판국을 잠깐 동안에 완성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정승은 논핵을 받아 견책을 기다리고 있고 또 한 정승은 병을 핑계대고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논핵을 받은 사람은 진실로 논할 것이 없지만 병을 핑계대고 있는 자는 어찌 눈이 멀고 귀가 막혔거나 절름발이가 되어 일을 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야 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어찌 일을 회피한 그의 죄를 용서해주시어 뒷날의 성과를 내도록 요구하지 않으십니까. 계속해서 승지를 하루에도 여러 번 보내어 임금과 신하 사이의 큰 의리로 타이른다면 그가 어찌 감히 꼼짝도 않고 누워 있음으로써 임금을 저버리는 죄를 스스로 범하겠습니까. 만약 끝내 고집하고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면 귀양을 보내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으며 참형에 처하는 것이 무엇을 꺼려할 일이겠습니까.
아, 전하는 궁전둘레에 호위를 세워 자신만 보호하고 있고 신하들은 모두 떠나갈 생각만 하고 있으며, 중대한 논의는 두 갈래로 갈라지고 공정한 논의는 생기를 잃어 확정되지 않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위험한 때입니까. 예로부터 왕대(王代)가 갈릴 때에는 반드시 중대한 조치가 있어 허황된 논의를 진정시키고 뭇 사람의 떠드는 것을 진압함으로써 큰 난국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금에게 사람을 죽이도록 권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만 변란을 안정시킬 때는 죽이지 않으면 뭇 사람을 위압할 수 없는 법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직은 중하고 임금은 경하다.’고 하였는데, 더구나 대신은 임금보다 한 등급이 낮으니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기자헌을 참형에 처하는 데 대해서는 이제 다른 의견이 없고, 한효순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그도 기자헌과 함께 큰 장대에 머리를 매달아서 신하로서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도 위급한 때를 당하여 임금을 배반하는 자들을 경계한다면, 종묘 사직의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였다. "전 주부 정대립(鄭大立), 전 사과 윤정준(尹廷俊)·신인민(愼仁民)·송진(宋震)이 섬돌과 주춧돌을 많이 바쳤으니, 아울러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하되 윤정준은 수령을 제수하고 송진은 가자하도록 하라."
"전 주부 정대립(鄭大立), 전 사과 윤정준(尹廷俊)·신인민(愼仁民)·송진(宋震)이 섬돌과 주춧돌을 많이 바쳤으니, 아울러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하되 윤정준은 수령을 제수하고 송진은 가자하도록 하라."
사헌부가 아뢰기를, "지평 김호가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한창 벌어지고 있으나 조정이 아직 처리하는 조치가 없었으니, 숙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별히 인피할 만한 혐의가 없으니 출사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지평 김호가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중대한 논의가 한창 벌어지고 있으나 조정이 아직 처리하는 조치가 없었으니, 숙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별히 인피할 만한 혐의가 없으니 출사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정언 이강이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조정이 아직 처리하지 않고 있어서 제 마음대로 폐지할 수 없었던만큼 규례에 따라 한번 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로 언관을 함부로 교체해서는 안 되니 출사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정언 이강이 인혐하고 물러갔습니다. 조정이 아직 처리하지 않고 있어서 제 마음대로 폐지할 수 없었던만큼 규례에 따라 한번 절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로 언관을 함부로 교체해서는 안 되니 출사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합사가 연계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시킬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대신을 이미 그 직위에서 파면하였으니, 책벌은 벌써 가한 것이다. 어찌 꼭 위리 안치를 시켜야만 하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대신을 이미 그 직위에서 파면하였으니, 책벌은 벌써 가한 것이다. 어찌 꼭 위리 안치를 시켜야만 하겠는가. 번거롭게 논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25일에 있었던 도당(都堂)의 회의에서 의정부 당상관으로 하여금 일일이 숫자를 헤아려서 봉하여 들이도록 하라."
"25일에 있었던 도당(都堂)의 회의에서 의정부 당상관으로 하여금 일일이 숫자를 헤아려서 봉하여 들이도록 하라."
홍문관이 상차하여, 기자헌의 흉악한 차자를 속히 불태워서 간사한 논의의 불씨를 근절시키고 속히 공론을 따름으로써 신하와 백성들의 울분을 씻어 주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대신을 이미 그 직위에서 파면하였으니, 책벌을 벌써 가한 것이다. 어찌 꼭 위리 안치를 시켜야만 하겠는가.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대신을 이미 그 직위에서 파면하였으니, 책벌을 벌써 가한 것이다. 어찌 꼭 위리 안치를 시켜야만 하겠는가.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영정(影幀)을 우선 수원부에 모셔두고서 다시 하유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셔올 일로 서둘러 선전관을 보내 하유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다음달 초순 이전에 날을 다시 받도록 하라고 하유하라." 하였다.
"영정(影幀)을 우선 수원부에 모셔두고서 다시 하유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셔올 일로 서둘러 선전관을 보내 하유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다음달 초순 이전에 날을 다시 받도록 하라고 하유하라."
하였다.
합사가 재차 아뢰니, 이미 유시하였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합사가 세 번째 아뢰니, 관작을 삭탈한 뒤에 성문 밖으로 내쫓도록 하라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국가에 일이 많고 인심이 흉흉한 이런 때에 정승의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두어서는 안 됩니다. 서둘러 어진 정승을 임명함으로써 불안에 떠는 인심을 진정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처리하겠다고 답하였다.
"국가에 일이 많고 인심이 흉흉한 이런 때에 정승의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두어서는 안 됩니다. 서둘러 어진 정승을 임명함으로써 불안에 떠는 인심을 진정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처리하겠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정승에게는 모든 책임이 집중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정승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중대한 논의가 한창 제기되고 있는 날에 삼정승의 자리가 제대로 차 있지 않아 주장할 사람이 없다면, 의구에 차 있는 인심을 누가 진정시킬 수 있겠으며 국가의 안위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서둘러 덕망이 있는 사람을 세우도록 명하여서 애타게 기대하고 있는 신민(臣民)의 바람에 부응하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처리하겠다고 답하였다.
"정승에게는 모든 책임이 집중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정승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중대한 논의가 한창 제기되고 있는 날에 삼정승의 자리가 제대로 차 있지 않아 주장할 사람이 없다면, 의구에 차 있는 인심을 누가 진정시킬 수 있겠으며 국가의 안위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서둘러 덕망이 있는 사람을 세우도록 명하여서 애타게 기대하고 있는 신민(臣民)의 바람에 부응하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처리하겠다고 답하였다.
홍문관이 상차하여 덕망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여 비워둔 자리를 채우기를 청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이호신(李好信)을 부제학으로, 이대엽(李大燁)을 호조 참의로 삼았다. 민몽룡(閔夢龍)은 이조 판서에 제수하라고 전교하였다. 【민몽룡은 흉악하고 교활하며 비루한 사람이다. 당시에 폐모론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이조 판서에 임명한 것이고, 얼마 후에 다시 정승이 되었다. 대비의 존호를 폄삭하는 항목들은 모두 그가 의정(議定)한 것이었다.】
11월 28일 기축
정원이 아뢰기를, "근래에 국가의 기강이 해이하여 사람들이 법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조정의 명령이 아래로 하달되지 않습니다. 어제 영돈녕과 우상에게 간곡히 타이를 일을 하명하셨는데, 병조의 군영에는 한 마리의 말, 한 명의 군사도 대기시킨 것이 없어서 종일토록 독촉하였지만 끝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교한 일을 이렇게까지 지체되게 하기에 서리(書吏)에게 따져 물었으나 심상한 일로 보았으며 마패(馬牌)를 발급하는 관리도 제때에 나오지 않았으니, 이것은 정말 2백 년간 없던 변고입니다. 대기시킬 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병조 낭청이 법을 어기고 함부로 타는 것이 나라의 큰 폐단이 된 것입니다. 정원이 제기하여 법규정을 거듭 밝혀 함부로 타지 말도록 승전을 받든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병조의 낭관이 조금도 시정하지 않고 더욱더 방자하게 굴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역마를 대기시키지 않은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이런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습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일이니 바라건대 함부로 말을 탄 낭청은 법률대로 죄를 다스리되 사면령이 내리더라도 용서받지 못하게 하소서. 이제부터는 달마다 당번을 교체시키고 마안(馬案)은 전부 정원에 초록해서 올려 보내게 하는 동시에, 대기하는 말들은 일제히 군영에서 영을 기다렸다가 당번을 갈 때 항상 검열하여 이전과 같이 함부로 타는 일이 없도록 할 일로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병조 낭청을 이미 추고하였다. 본조로 하여금 거듭 승전을 받들어 착실히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근래에 국가의 기강이 해이하여 사람들이 법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조정의 명령이 아래로 하달되지 않습니다. 어제 영돈녕과 우상에게 간곡히 타이를 일을 하명하셨는데, 병조의 군영에는 한 마리의 말, 한 명의 군사도 대기시킨 것이 없어서 종일토록 독촉하였지만 끝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교한 일을 이렇게까지 지체되게 하기에 서리(書吏)에게 따져 물었으나 심상한 일로 보았으며 마패(馬牌)를 발급하는 관리도 제때에 나오지 않았으니, 이것은 정말 2백 년간 없던 변고입니다. 대기시킬 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병조 낭청이 법을 어기고 함부로 타는 것이 나라의 큰 폐단이 된 것입니다. 정원이 제기하여 법규정을 거듭 밝혀 함부로 타지 말도록 승전을 받든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병조의 낭관이 조금도 시정하지 않고 더욱더 방자하게 굴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역마를 대기시키지 않은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이런 죄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습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일이니 바라건대 함부로 말을 탄 낭청은 법률대로 죄를 다스리되 사면령이 내리더라도 용서받지 못하게 하소서. 이제부터는 달마다 당번을 교체시키고 마안(馬案)은 전부 정원에 초록해서 올려 보내게 하는 동시에, 대기하는 말들은 일제히 군영에서 영을 기다렸다가 당번을 갈 때 항상 검열하여 이전과 같이 함부로 타는 일이 없도록 할 일로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병조 낭청을 이미 추고하였다. 본조로 하여금 거듭 승전을 받들어 착실히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국가에 변이 발생하여 중대한 논의가 한창 벌어진 이런 때에 정승의 자리를 비워둘 수 없으니, 오늘 속히 정승을 임명하소서. 신들은 모두 가까이에 있는 관리로서 우려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감히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천천히 처리하겠다고 답하였다.
"국가에 변이 발생하여 중대한 논의가 한창 벌어진 이런 때에 정승의 자리를 비워둘 수 없으니, 오늘 속히 정승을 임명하소서. 신들은 모두 가까이에 있는 관리로서 우려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감히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천천히 처리하겠다고 답하였다.
동부승지 백대형(白大珩)이 아뢰기를, "신이 명을 받들고 영돈녕 정창연과 우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정창연은 아뢰기를, ‘가까이에 있는 신하를 보내어 간곡히 타이르는 유지를 받으니 황송하고 감격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고질병에 걸려 기력이 완전히 빠졌으며 정신이 혼미하여 거의 죽어가다가 간신히 살아났으므로 출사할 가망이 없습니다. 그저 땅에 엎드려 흐느낄 뿐입니다.’ 하였고, 한효순은 아뢰기를, ‘신은 병 증상이 한창 심해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습니다. 병 증상을 보아가면서 행동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명을 받들고 영돈녕 정창연과 우의정 한효순에게 가서 유시하였더니, 정창연은 아뢰기를, ‘가까이에 있는 신하를 보내어 간곡히 타이르는 유지를 받으니 황송하고 감격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고질병에 걸려 기력이 완전히 빠졌으며 정신이 혼미하여 거의 죽어가다가 간신히 살아났으므로 출사할 가망이 없습니다. 그저 땅에 엎드려 흐느낄 뿐입니다.’ 하였고, 한효순은 아뢰기를, ‘신은 병 증상이 한창 심해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습니다. 병 증상을 보아가면서 행동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여양군(驪陽君) 민인백(閔仁伯)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공훈과 업적은 높고 큰데 명분과 실상이 혹 서로 맞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성덕을 발양하여 만세에 전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삼가 전하의 공훈과 업적을 나타내어 칭송하는 일에 흠이 있는 듯하니,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살펴보소서. 삼가 생각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임진년 난리를 피할 때에 선왕의 막중한 부탁을 받고서 친히 종묘 사직의 신주를 받들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몹시 험하고 먼 변방지역까지 갔었습니다. 적에 대한 정보가 날로 급하게 되자 인심이 이산되고 호위하는 장병들도 서로 이끌고 도망쳤으니, 당시의 형편을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약간의 시종(侍從)하는 신하들이 있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으므로 다들 종묘 사직의 신주(神主)를 두어 칸의 절간에 임시로 봉안해 두고 성상만을 모시고 따로 피할 계획을 세웠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한결같아 변동시킬 수 없을 만큼 강경했습니다. 전하는 그 당시 춘추가 아직 젊었으나 타고난 효성으로 혼자서 용단을 내리시고 요동하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전교하시기를, ‘주상 전하가 종묘 사직을 나에게 부탁하였는데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찌 차마 궁벽한 산골에 임시나마 모셔둘 수 있겠는가. 종묘 사직이 여기에 있는 한 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 혼자 어디로 가서 목숨을 구차하게 보전할 계획을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호위하는 여러 신하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감격하여 흐느꼈으며 성상의 하교를 받들어 끝까지 봉행함으로 해서 큰일을 다시 수습하고 종묘의 면모를 전과 같이 하였으니, 나라를 다시 일으킨 전하의 공적이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습니까. 임금을 호위한 공로를 기록하고 신기한 공훈을 찬양하는 날에 이르러서는, 호위하며 따라갔던 여러 신하가 절반 이상이 죽었고 조정에 있는 신하들도 실지 사적을 자세히 알지 못하여 존호에 한 글자도 전하의 효성을 형용하지 못하였으니, 훌륭한 덕행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도리에 어찌 커다란 흠점이 아니겠습니까. 신의 아비로, 죽은 신하인 민사권(閔思權)도 호위하는 반열에 참가하여 전하의 효성이 지극한 것을 목격하였으므로 매번 신에게 이 사실을 언급할 때마다 흐느끼며 오열하지 않는 때가 없었는데, 뜻밖에 은혜가 저승에까지 미치어 훈적(勳籍)에 참여하였습니다. 아비와 자식이 저승과 이승에서 감격이 함께 깊었으니 만약 조금이라도 보답할 길이 있다면 어찌 때가 늦고 직분에 벗어난다는 것을 혐의하여 구구한 생각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직접 관계되는 문제라고 해서 사양하지 마시고 신의 글을 속히 내려보내어 다시 의논하게 함으로써 공훈(功勳)과 존호(尊號)가 서로 맞아 후세에 길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니, 피난길에 있을 때의 생각이 다시 난다.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고, 이어 하교하기를, "이 상소를 해조로 내려보낸 다음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공훈과 업적은 높고 큰데 명분과 실상이 혹 서로 맞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성덕을 발양하여 만세에 전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삼가 전하의 공훈과 업적을 나타내어 칭송하는 일에 흠이 있는 듯하니,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살펴보소서.
삼가 생각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임진년 난리를 피할 때에 선왕의 막중한 부탁을 받고서 친히 종묘 사직의 신주를 받들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몹시 험하고 먼 변방지역까지 갔었습니다. 적에 대한 정보가 날로 급하게 되자 인심이 이산되고 호위하는 장병들도 서로 이끌고 도망쳤으니, 당시의 형편을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약간의 시종(侍從)하는 신하들이 있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으므로 다들 종묘 사직의 신주(神主)를 두어 칸의 절간에 임시로 봉안해 두고 성상만을 모시고 따로 피할 계획을 세웠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한결같아 변동시킬 수 없을 만큼 강경했습니다. 전하는 그 당시 춘추가 아직 젊었으나 타고난 효성으로 혼자서 용단을 내리시고 요동하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전교하시기를, ‘주상 전하가 종묘 사직을 나에게 부탁하였는데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찌 차마 궁벽한 산골에 임시나마 모셔둘 수 있겠는가. 종묘 사직이 여기에 있는 한 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 혼자 어디로 가서 목숨을 구차하게 보전할 계획을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호위하는 여러 신하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감격하여 흐느꼈으며 성상의 하교를 받들어 끝까지 봉행함으로 해서 큰일을 다시 수습하고 종묘의 면모를 전과 같이 하였으니, 나라를 다시 일으킨 전하의 공적이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습니까.
임금을 호위한 공로를 기록하고 신기한 공훈을 찬양하는 날에 이르러서는, 호위하며 따라갔던 여러 신하가 절반 이상이 죽었고 조정에 있는 신하들도 실지 사적을 자세히 알지 못하여 존호에 한 글자도 전하의 효성을 형용하지 못하였으니, 훌륭한 덕행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도리에 어찌 커다란 흠점이 아니겠습니까. 신의 아비로, 죽은 신하인 민사권(閔思權)도 호위하는 반열에 참가하여 전하의 효성이 지극한 것을 목격하였으므로 매번 신에게 이 사실을 언급할 때마다 흐느끼며 오열하지 않는 때가 없었는데, 뜻밖에 은혜가 저승에까지 미치어 훈적(勳籍)에 참여하였습니다. 아비와 자식이 저승과 이승에서 감격이 함께 깊었으니 만약 조금이라도 보답할 길이 있다면 어찌 때가 늦고 직분에 벗어난다는 것을 혐의하여 구구한 생각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직접 관계되는 문제라고 해서 사양하지 마시고 신의 글을 속히 내려보내어 다시 의논하게 함으로써 공훈(功勳)과 존호(尊號)가 서로 맞아 후세에 길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니, 피난길에 있을 때의 생각이 다시 난다.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처리하도록 하겠다."
하고, 이어 하교하기를,
"이 상소를 해조로 내려보낸 다음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아침에 ‘25일 여러 재상들이 헌의한 내용을 의정부 당상관으로 하여금 일일이 숫자를 헤아려 봉입(封入)하라.’는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전교하신 뜻으로 의정부 낭청에게 분부하고자 즉시 패(牌)를 발급하여 독촉하였더니, 의정부 낭청이 또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막중하고 시급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매우 놀랍습니다. 당해 낭청을 각별히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아침에 ‘25일 여러 재상들이 헌의한 내용을 의정부 당상관으로 하여금 일일이 숫자를 헤아려 봉입(封入)하라.’는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전교하신 뜻으로 의정부 낭청에게 분부하고자 즉시 패(牌)를 발급하여 독촉하였더니, 의정부 낭청이 또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막중하고 시급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매우 놀랍습니다. 당해 낭청을 각별히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의정부가 전교로 인하여 25일 도당에서 회의한 내용을 봉입하였다.
유학(幼學) 정지문(鄭之問)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화근을 제거하지 못함에 따라 국가의 위태로움이 실오라기에 달려 있는 듯하더니, 초야의 유생들이 충성심에 의한 상소를 계속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고 공정한 논의가 현재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 신하들의 회의에서는 서로 모의하지 않고도 똑같은 말이 나오고 있으니, 이는 바로 위태로운 때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승 한 사람은 탄핵을 당하였고 또 한 사람은 병을 핑계대고 있어서 큰일은 지연되고 간사한 무리만 내심 좋아하고 있으니, 이는 조야(朝野)가 다같이 통탄하는 부분입니다. 서궁의 추악함에 대해서는 말만 해도 속이 썩는 듯합니다. 그가 안팎으로 음모를 꾸며 저주하고 흉악한 짓을 한 사실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말을 하여 가리울 수 없이 명백하니, 신의 말을 빌린다 해서 거기에 경중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의인왕후를 억누르기 위하여 뼈를 능묘에 묻었고 잘라낸 고기점에다 임금의 휘자(諱字)를 써서 까마귀와 솔개에게 뿌려서 먹임으로써 이의(李㼁)를 위하여 복을 빈 사실은, 고성(高成)과 응벽(應璧)의 솔직한 공초와 차극룡(車克龍)이 고발한 말에 의하여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단지 온 나라 신하들과 백성들의 원수일 뿐만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선후(先后)가 길러준 아들로서 어찌 차마 세상을 떠난 영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밝게 드러난 큰 의리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신하들은 의리가 밝지 못하여 아직도 하찮은 은혜를 고려하면서 전하로 하여금 작은 혐의를 구차스레 피함으로써 은혜를 끝까지 온전히 하게 하려 하니, 신은 삼가 괴이하게 여깁니다. 전하께서 비록 선후(先后)의 원수를 스스로 갚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도록 하지야 못하겠습니까. 칭호를 폄삭하는 거조도 말감(末減)이라 하겠는데 이 의견에 대해서조차 반대하는 자가 있는 것은 정말 임금과 신하의 대원칙도 모르고 역적의 괴수를 내심 비호하려는 계책인 것이니 역시 흉참스럽지 않습니까. 우의정 한효순은 국가의 은혜를 후하게 입었으니 비록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어찌 임금을 재앙 속에 앉혀 두고 아랑곳하지 않음으로써 패망을 자초하려 한단 말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내관을 계속 보내어 엄한 전지(傳旨)로 타이르고 큰 의리로 책망하여 선뜻 마음을 돌려 부름에 응하게 함으로써 큰 판국을 완성하고 나라를 편안히 하소서. 그리한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화근을 제거하지 못함에 따라 국가의 위태로움이 실오라기에 달려 있는 듯하더니, 초야의 유생들이 충성심에 의한 상소를 계속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대대적인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고 공정한 논의가 현재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 신하들의 회의에서는 서로 모의하지 않고도 똑같은 말이 나오고 있으니, 이는 바로 위태로운 때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승 한 사람은 탄핵을 당하였고 또 한 사람은 병을 핑계대고 있어서 큰일은 지연되고 간사한 무리만 내심 좋아하고 있으니, 이는 조야(朝野)가 다같이 통탄하는 부분입니다.
서궁의 추악함에 대해서는 말만 해도 속이 썩는 듯합니다. 그가 안팎으로 음모를 꾸며 저주하고 흉악한 짓을 한 사실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말을 하여 가리울 수 없이 명백하니, 신의 말을 빌린다 해서 거기에 경중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의인왕후를 억누르기 위하여 뼈를 능묘에 묻었고 잘라낸 고기점에다 임금의 휘자(諱字)를 써서 까마귀와 솔개에게 뿌려서 먹임으로써 이의(李㼁)를 위하여 복을 빈 사실은, 고성(高成)과 응벽(應璧)의 솔직한 공초와 차극룡(車克龍)이 고발한 말에 의하여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단지 온 나라 신하들과 백성들의 원수일 뿐만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선후(先后)가 길러준 아들로서 어찌 차마 세상을 떠난 영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밝게 드러난 큰 의리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신하들은 의리가 밝지 못하여 아직도 하찮은 은혜를 고려하면서 전하로 하여금 작은 혐의를 구차스레 피함으로써 은혜를 끝까지 온전히 하게 하려 하니, 신은 삼가 괴이하게 여깁니다.
전하께서 비록 선후(先后)의 원수를 스스로 갚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도록 하지야 못하겠습니까. 칭호를 폄삭하는 거조도 말감(末減)이라 하겠는데 이 의견에 대해서조차 반대하는 자가 있는 것은 정말 임금과 신하의 대원칙도 모르고 역적의 괴수를 내심 비호하려는 계책인 것이니 역시 흉참스럽지 않습니까. 우의정 한효순은 국가의 은혜를 후하게 입었으니 비록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어찌 임금을 재앙 속에 앉혀 두고 아랑곳하지 않음으로써 패망을 자초하려 한단 말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내관을 계속 보내어 엄한 전지(傳旨)로 타이르고 큰 의리로 책망하여 선뜻 마음을 돌려 부름에 응하게 함으로써 큰 판국을 완성하고 나라를 편안히 하소서. 그리한다면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였다. "국가에 대신이 없으므로 방방(放榜)하는 예를 시행할 수 없으니 생원·진사의 시험합격자 발표는 다음달 초순으로 날을 다시 받아 물려서 거행하도록 하라."
"국가에 대신이 없으므로 방방(放榜)하는 예를 시행할 수 없으니 생원·진사의 시험합격자 발표는 다음달 초순으로 날을 다시 받아 물려서 거행하도록 하라."
생원 지성해(池成海), 진사 김이일(金以一)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들이 비록 초야에 묻혀 있지만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대의(大義)에 관계되는 일에는 저도 모르게 분발하게 됩니다. 아, 저주를 자행하여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꾀한 데 대해서는 차마 들을 수가 없습니다. 변란이 한집안에서 생겨나 화변이 원릉(園陵)에까지 미쳤으니 말을 하자면 숨이 끊어지는 것 같고 생각하자니 소름이 끼칩니다. 역적의 잔당은 제거했으나 그 뿌리가 아직 그대로 있는 한 베어내도 다시 자랄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심이 극악해져서 임금을 원망하는 것이 풍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임금의 원수를 좋은 기화로 삼고자 하는 한 종묘 사직을 위한 대계를 누가 주장한단 말입니까. 중대한 논의가 결정되지 않음에 따라 사람마다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 힘센 맹분(孟奮)도 망설이고만 있으면 아이들이 이길 수 있으며, 붙기 시작한 불도 끄지 않으면 장차 산등성이를 태우게 되는 법입니다. 중대한 논의가 일단 제기된 이상 머뭇거리기 어려우니, 유생들이 진정을 피력한 것을 어찌 소견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신들은 이름이 성균관에 올라 있지만 멀리 떨어진 시골 출신입니다. 처음으로 서울에 왔으니 성균관 유생이 올린 상소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성상의 은택은 바다처럼 넓은 반면에 신의 죄는 산과 같이 큽니다. 천리 밖에 외로이 있으므로 조정의 의논을 알지 못합니다만 임금을 생각하는 정성이 깊기 때문에 감히 우둔한 말을 올리는 바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공론을 따르시고 큰 의리를 밝게 내세우셔서, 이론(異論)이 완전히 해소되게 하고 귀신과 사람의 분노를 씻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신들이 비록 초야에 묻혀 있지만 임금을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대의(大義)에 관계되는 일에는 저도 모르게 분발하게 됩니다.
아, 저주를 자행하여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꾀한 데 대해서는 차마 들을 수가 없습니다. 변란이 한집안에서 생겨나 화변이 원릉(園陵)에까지 미쳤으니 말을 하자면 숨이 끊어지는 것 같고 생각하자니 소름이 끼칩니다. 역적의 잔당은 제거했으나 그 뿌리가 아직 그대로 있는 한 베어내도 다시 자랄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심이 극악해져서 임금을 원망하는 것이 풍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임금의 원수를 좋은 기화로 삼고자 하는 한 종묘 사직을 위한 대계를 누가 주장한단 말입니까. 중대한 논의가 결정되지 않음에 따라 사람마다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 힘센 맹분(孟奮)도 망설이고만 있으면 아이들이 이길 수 있으며, 붙기 시작한 불도 끄지 않으면 장차 산등성이를 태우게 되는 법입니다. 중대한 논의가 일단 제기된 이상 머뭇거리기 어려우니, 유생들이 진정을 피력한 것을 어찌 소견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신들은 이름이 성균관에 올라 있지만 멀리 떨어진 시골 출신입니다. 처음으로 서울에 왔으니 성균관 유생이 올린 상소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성상의 은택은 바다처럼 넓은 반면에 신의 죄는 산과 같이 큽니다. 천리 밖에 외로이 있으므로 조정의 의논을 알지 못합니다만 임금을 생각하는 정성이 깊기 때문에 감히 우둔한 말을 올리는 바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공론을 따르시고 큰 의리를 밝게 내세우셔서, 이론(異論)이 완전히 해소되게 하고 귀신과 사람의 분노를 씻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생원 선세휘(宣世徽)가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우리 나라에 있어서 서궁의 존재는 마치 곡식에 비유하면 잡초와 같아서 그 뿌리를 뽑지 않으면 그 해독을 제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즘 다행히 충의로운 선비들이 격분을 금치 못하여 여러 차례 연명으로 글을 올림으로써 천지에 달하는 서궁의 죄를 들어 전하에게 대략이나마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을 구사하는 가운데 소략하고 빠뜨린 결함이 없지 않으므로 신이 자세히 진달하려 합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관학의 유생들이 열 가지 조항의 죄로 나누어서 진달하였다 합니다. 대체로 태산의 높이는 자로 잴 수 없으며 바다의 깊이는 되로 헤아릴 수 없는 법인데 서궁에게 쌓인 죄를 한두 마디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열 가지 조항의 죄는 단지 그 대략을 들어 말한 것뿐입니다. 그는 선왕이 병이 나기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전하를 따돌리면서 왕위를 욕심내어, 아침에는 저주를 자행하고 저녁에는 반역을 일삼았으며 어미와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탁하여 한 집안에서 화변을 조성하고 대비라는 칭호를 빌어 큰 역적 음모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틈타 일을 저지르려 한 물여우와 같은 행동에 대해서는 남산의 대나무를 다 쓰더라도 기록해 낼 수 없으며 동해의 물결을 터 대더라도 다 씻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가지의 죄를 든 것으로는 아무래도 귀신과 사람의 분노를 씻을 수 없고 간사한 무리의 혹하는 마음을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자헌은 괴이한 의견으로 선동하였는데도 아직 목숨을 보전하고 있으며, 이항복은 기자헌을 계승하고 있으나 아직도 형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이항복의 죄를 다스려 중외에 보임으로써 서울과 지방의 백성들로 하여금 역적을 토죄하는 일을 준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화근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게 하소서. 그리한다면 종묘 사직을 위하여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나라에 있어서 서궁의 존재는 마치 곡식에 비유하면 잡초와 같아서 그 뿌리를 뽑지 않으면 그 해독을 제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즘 다행히 충의로운 선비들이 격분을 금치 못하여 여러 차례 연명으로 글을 올림으로써 천지에 달하는 서궁의 죄를 들어 전하에게 대략이나마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을 구사하는 가운데 소략하고 빠뜨린 결함이 없지 않으므로 신이 자세히 진달하려 합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관학의 유생들이 열 가지 조항의 죄로 나누어서 진달하였다 합니다. 대체로 태산의 높이는 자로 잴 수 없으며 바다의 깊이는 되로 헤아릴 수 없는 법인데 서궁에게 쌓인 죄를 한두 마디의 말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열 가지 조항의 죄는 단지 그 대략을 들어 말한 것뿐입니다. 그는 선왕이 병이 나기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전하를 따돌리면서 왕위를 욕심내어, 아침에는 저주를 자행하고 저녁에는 반역을 일삼았으며 어미와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탁하여 한 집안에서 화변을 조성하고 대비라는 칭호를 빌어 큰 역적 음모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틈타 일을 저지르려 한 물여우와 같은 행동에 대해서는 남산의 대나무를 다 쓰더라도 기록해 낼 수 없으며 동해의 물결을 터 대더라도 다 씻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가지의 죄를 든 것으로는 아무래도 귀신과 사람의 분노를 씻을 수 없고 간사한 무리의 혹하는 마음을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자헌은 괴이한 의견으로 선동하였는데도 아직 목숨을 보전하고 있으며, 이항복은 기자헌을 계승하고 있으나 아직도 형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이항복의 죄를 다스려 중외에 보임으로써 서울과 지방의 백성들로 하여금 역적을 토죄하는 일을 준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화근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게 하소서. 그리한다면 종묘 사직을 위하여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양사의 모든 관리들이 아뢰기를, "오늘 합사하여 논의하려던 일을, 국기(國忌)가 임박하여 재계를 하기 때문에 가까운 전례에 의하여 중지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물의(物議)를 듣건대, 더없이 중대한 논의에 대하여 연계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 하니, 일을 논의함에 있어 민첩하게 처리하지 못한 신들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언관의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오늘 합사하여 논의하려던 일을, 국기(國忌)가 임박하여 재계를 하기 때문에 가까운 전례에 의하여 중지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물의(物議)를 듣건대, 더없이 중대한 논의에 대하여 연계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 하니, 일을 논의함에 있어 민첩하게 처리하지 못한 신들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언관의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체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생원 신서정(申瑞廷)·한립(韓岦) 등이 상소하였는데, 요지는 속히 훌륭한 정승을 뽑아 국시를 정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합사가 연계로 기자헌을 위리 안치 시킬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삭출하였다. 국기에 의한 재계날에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두 번 아뢰고 세 번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미 삭출하였다. 국기에 의한 재계날에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두 번 아뢰고 세 번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유학 최성(崔晟)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계축년 변란 초기에 이위경(李偉卿) 등이 역적을 토죄해야 한다는 논의를 가장 먼저 주장하였는데, 그 말이 엄하고 의리가 밝았으며 진달한 뜻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조와 윤인이 계속 따로 거처해야 한다는 논의를 제기하였는데, 저 조경기(趙慶起)가 먼저 간사한 논의를 제창하자, 정복형(鄭復亨)·정온(鄭蘊)·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조직(趙溭)·이현문(李顯門)·허국(許國) 등이 서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리하여 역적을 옹호하는 무리가 꼬리를 물고 계속 나옴으로 해서 하늘과 땅이 다하도록 바뀔 수 없는 정론(定論)으로 하여금 변란에 대처하는 때에 시행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창칼 사이에 외로이 앉아 있게 한 지 현재 5년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 가닥의 공론이 하마트면 없어질 뻔하다 다시 밝혀져서 호남·호서·영남의 여러 선비들이 천리 길을 걸어와 정성을 피력하여 상소문을 올리고 매일같이 대궐문 앞에서 호소하였습니다. 이 상소들로 인하여 중대한 논의가 벌어지려 하던 참에 정언 김세렴은 감히 역적을 옹호할 마음을 먹고 밤을 세워가며 초고를 써서 한 통의 글로 삼사의 관원을 쓸어버리려고 새벽에 대궐로 달려가다가 길에서 탄핵을 받고 물러갔으니, 이것은 선비들을 일망타진하고 중대한 논의를 극력 막아 역적을 옹호하는 기치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 당초에 조경기를 참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온 등이 징계되지 않았던 것이니 패거리들이 불어나서 오늘에 이른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더욱 통탄할 일은 중대한 논의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 세렴이 다시 죄를 저질렀는데도 조정에서 무거운 형벌로 다스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헌이 이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본받으면서 사형에 처하지 않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뒷날의 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흉측한 차자를 올렸으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죄가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이항복·민형남·정홍익 등도 기자헌을 본받아 임금을 모욕하는 말을 종이에 가득 적어 올림으로써 흉측한 짓을 다하였으니, 신하된 사람으로서는 차마 보지도 못하겠으며 듣지도 못하겠습니다. 아, 서궁에게는 이처럼 은밀히 받드는 신하들이 있으니 지금 만약 중대한 논의를 조금이라도 늦춘다면 아마도 오늘의 종묘 사직은 마침내 전하의 종묘 사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용단을 내리셔서 먼저 계축년의 흉도(兇徒)인 경기 등을 처단하고 다음으로 김세렴·기자헌 등을 사형에 처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공론을 확장시키고 화변(禍變)의 불씨를 제거한다면 종묘 사직의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계축년 변란 초기에 이위경(李偉卿) 등이 역적을 토죄해야 한다는 논의를 가장 먼저 주장하였는데, 그 말이 엄하고 의리가 밝았으며 진달한 뜻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조와 윤인이 계속 따로 거처해야 한다는 논의를 제기하였는데, 저 조경기(趙慶起)가 먼저 간사한 논의를 제창하자, 정복형(鄭復亨)·정온(鄭蘊)·홍무적(洪茂績)·정택뢰(鄭澤雷)·김효성(金孝誠)·조직(趙溭)·이현문(李顯門)·허국(許國) 등이 서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리하여 역적을 옹호하는 무리가 꼬리를 물고 계속 나옴으로 해서 하늘과 땅이 다하도록 바뀔 수 없는 정론(定論)으로 하여금 변란에 대처하는 때에 시행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창칼 사이에 외로이 앉아 있게 한 지 현재 5년이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 가닥의 공론이 하마트면 없어질 뻔하다 다시 밝혀져서 호남·호서·영남의 여러 선비들이 천리 길을 걸어와 정성을 피력하여 상소문을 올리고 매일같이 대궐문 앞에서 호소하였습니다. 이 상소들로 인하여 중대한 논의가 벌어지려 하던 참에 정언 김세렴은 감히 역적을 옹호할 마음을 먹고 밤을 세워가며 초고를 써서 한 통의 글로 삼사의 관원을 쓸어버리려고 새벽에 대궐로 달려가다가 길에서 탄핵을 받고 물러갔으니, 이것은 선비들을 일망타진하고 중대한 논의를 극력 막아 역적을 옹호하는 기치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 당초에 조경기를 참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온 등이 징계되지 않았던 것이니 패거리들이 불어나서 오늘에 이른 것은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더욱 통탄할 일은 중대한 논의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 세렴이 다시 죄를 저질렀는데도 조정에서 무거운 형벌로 다스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헌이 이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본받으면서 사형에 처하지 않는 것을 이롭게 여기고 뒷날의 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흉측한 차자를 올렸으니,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죄가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이항복·민형남·정홍익 등도 기자헌을 본받아 임금을 모욕하는 말을 종이에 가득 적어 올림으로써 흉측한 짓을 다하였으니, 신하된 사람으로서는 차마 보지도 못하겠으며 듣지도 못하겠습니다.
아, 서궁에게는 이처럼 은밀히 받드는 신하들이 있으니 지금 만약 중대한 논의를 조금이라도 늦춘다면 아마도 오늘의 종묘 사직은 마침내 전하의 종묘 사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용단을 내리셔서 먼저 계축년의 흉도(兇徒)인 경기 등을 처단하고 다음으로 김세렴·기자헌 등을 사형에 처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공론을 확장시키고 화변(禍變)의 불씨를 제거한다면 종묘 사직의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옥당이 잇따라 차자를 올려 기자헌이 올린 흉측한 차자를 속히 소각시켜버리고 공론을 흔쾌히 따를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기자헌은 이미 관직을 삭탈한 다음 성문 밖으로 출송시켰으니, 국기(國忌)로 인하여 재계하는 날에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아뢴 대로 하라. 기자헌은 이미 관직을 삭탈한 다음 성문 밖으로 출송시켰으니, 국기(國忌)로 인하여 재계하는 날에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재차 차자를 올리자,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내일은 국기의 당일이다. 삼사의 계사나 차자를 우선 정지할 것을 말하도록 하라."
"내일은 국기의 당일이다. 삼사의 계사나 차자를 우선 정지할 것을 말하도록 하라."
생원 정충립(鄭忠立), 유학 박률(朴嵂)·김탁(金鐸)·박준영(朴俊英)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화근을 제거하지 못하여 인심이 의구에 차 있고 공론이 기세가 꺾임으로 해서 간사한 논의가 시끄럽게 일어나고 있는데, 정승이라고 하는 자는 역적 괴수의 편을 들고 있으며 국가의 인척인 자는 계축년 당시의 신하들을 배격함으로써 뒷날의 기반을 삼으려 하고 있으니, 전하께서 지위를 보전하고 계실 날이 대체로 며칠이나 될 것인지 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통탄스러워서 흐느낄 뿐입니다. 이것은 모두 정조와 윤인이 당초에 이 점에 대해 항론하였다가 조경기와 이명달에게 살해당할 뻔하였고, 두 번째는 권심·이안진·정복형 등에 의해 살해당할 뻔하였으며, 홍무적과 정택뢰 등은 떼 지어 일어나 그들을 목 베려 하였고 김효성까지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론을 주장한 신하들로 하여금 의지할 곳 없는 곤궁한 사람과 같은 처지로 만들어 기어이 그들을 죽이고야 말려고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간사한 논의가 날로 불어나고 공정한 논의는 면면히 이어오던 명맥마저 겨우 남아 있는 것이 얼마 없었으니, 어떻게 나라가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삼사(三司)에서 논의하여 제기한 것은 단지 정조와 윤인의 하수인을 논핵한 것이었으며 태학(太學)에서 상소한 것도 위경이 말하던 것을 형식적으로 말한 것뿐이었으니, 오늘의 일이 허위라고 하겠습니까, 사실이라고 하겠습니까. 오늘날 취하여야 할 계책으로서는 무엇보다도 김세렴을 아주 먼 변방으로 귀양보냄으로써 대간의 관리들을 경계하고, 경기를 동시(東市)에서 목 베어 죽임으로써 불충한 신하들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공론이 확장되는 것을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확장될 것이며, 시비가 밝혀지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밝혀져 임금과 신하의 윤리가 확립되고 반역하고 순종하는 길이 구별될 것이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또 오늘날의 급선무로서는 무엇보다도 비범한 사람을 정승으로 임명하여 도움을 받고 그로 하여금 모든 관리를 통솔하여 조정의 요청을 앞장서서 논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인들로 하여금 자기 죄를 인정하게 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되게 한다면 이는 만대에 전할 만한 훌륭한 계책이 될 것입니다. 이에 진정어린 상소를 올리는 것이니 성상께서 채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화근을 제거하지 못하여 인심이 의구에 차 있고 공론이 기세가 꺾임으로 해서 간사한 논의가 시끄럽게 일어나고 있는데, 정승이라고 하는 자는 역적 괴수의 편을 들고 있으며 국가의 인척인 자는 계축년 당시의 신하들을 배격함으로써 뒷날의 기반을 삼으려 하고 있으니, 전하께서 지위를 보전하고 계실 날이 대체로 며칠이나 될 것인지 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통탄스러워서 흐느낄 뿐입니다. 이것은 모두 정조와 윤인이 당초에 이 점에 대해 항론하였다가 조경기와 이명달에게 살해당할 뻔하였고, 두 번째는 권심·이안진·정복형 등에 의해 살해당할 뻔하였으며, 홍무적과 정택뢰 등은 떼 지어 일어나 그들을 목 베려 하였고 김효성까지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론을 주장한 신하들로 하여금 의지할 곳 없는 곤궁한 사람과 같은 처지로 만들어 기어이 그들을 죽이고야 말려고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간사한 논의가 날로 불어나고 공정한 논의는 면면히 이어오던 명맥마저 겨우 남아 있는 것이 얼마 없었으니, 어떻게 나라가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삼사(三司)에서 논의하여 제기한 것은 단지 정조와 윤인의 하수인을 논핵한 것이었으며 태학(太學)에서 상소한 것도 위경이 말하던 것을 형식적으로 말한 것뿐이었으니, 오늘의 일이 허위라고 하겠습니까, 사실이라고 하겠습니까.
오늘날 취하여야 할 계책으로서는 무엇보다도 김세렴을 아주 먼 변방으로 귀양보냄으로써 대간의 관리들을 경계하고, 경기를 동시(東市)에서 목 베어 죽임으로써 불충한 신하들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공론이 확장되는 것을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확장될 것이며, 시비가 밝혀지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밝혀져 임금과 신하의 윤리가 확립되고 반역하고 순종하는 길이 구별될 것이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또 오늘날의 급선무로서는 무엇보다도 비범한 사람을 정승으로 임명하여 도움을 받고 그로 하여금 모든 관리를 통솔하여 조정의 요청을 앞장서서 논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인들로 하여금 자기 죄를 인정하게 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되게 한다면 이는 만대에 전할 만한 훌륭한 계책이 될 것입니다. 이에 진정어린 상소를 올리는 것이니 성상께서 채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1월 29일 경인
비변사가 아뢰기를, "본사는 군국(軍國)에 관한 중대한 일을 모두 정승에게 품재(稟裁)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신이 한 사람도 없으므로 여러 도에서 올린 서계(書啓)와 장계(狀啓)에 대하여 오랫동안 복계(覆啓)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비변사의 여러 당상관이 자주 회좌(會坐)하여서 긴급한 공사(公事)일 경우는 즉시 회계하여 각도에 분부하도록 하라." 하였다.
"본사는 군국(軍國)에 관한 중대한 일을 모두 정승에게 품재(稟裁)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신이 한 사람도 없으므로 여러 도에서 올린 서계(書啓)와 장계(狀啓)에 대하여 오랫동안 복계(覆啓)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비변사의 여러 당상관이 자주 회좌(會坐)하여서 긴급한 공사(公事)일 경우는 즉시 회계하여 각도에 분부하도록 하라."
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네 번째 사직소를 올리니, 윤허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비답하라고 전교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민인백(閔仁伯)이 처음 상소했을 때는 신들은 그저 휘호(徽號)를 새로 올린 뒤에 비로소 뒤미처 상소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는 것만 알고 망설이면서 받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백이 두 번째로 상소한 때에야 상소내용을 삼가 자세히 보니 문제가 중대한 것이어서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 응당 듣고 알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이 전후의 상소를 모두 들여온 것입니다. 어찌 조금이라도 중간에서 막으려는 마음이 있어서 그랬겠습니까. 어제 전하의 엄하신 분부를 받고 너무도 황공하여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죄하지 말라. 왕명의 출납을 오직 진실되게 하여 중간에서 저지하는 폐단을 근절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민인백(閔仁伯)이 처음 상소했을 때는 신들은 그저 휘호(徽號)를 새로 올린 뒤에 비로소 뒤미처 상소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는 것만 알고 망설이면서 받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백이 두 번째로 상소한 때에야 상소내용을 삼가 자세히 보니 문제가 중대한 것이어서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 응당 듣고 알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이 전후의 상소를 모두 들여온 것입니다. 어찌 조금이라도 중간에서 막으려는 마음이 있어서 그랬겠습니까. 어제 전하의 엄하신 분부를 받고 너무도 황공하여 땅에 엎드려 대죄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죄하지 말라. 왕명의 출납을 오직 진실되게 하여 중간에서 저지하는 폐단을 근절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대신은 아직도 출사할 기약이 없고 새로 임명할 정승의 출사할 시기도 언제쯤 될지 역시 확정하기가 어려우니, 영정을 우선 수원부에 모셔 두고서 영숭전 참봉(永崇殿參奉)과 본부 부사로 하여금 십분 신중을 기하여 수직하도록 하고, 승지와 예조 당상, 중사(中使)는 모두 당분간 올라오도록 하라는 일로 하유하라. 그리고 정월 초순 전으로 다시 택일해서 모셔올 일을 해조에 말하라."
"대신은 아직도 출사할 기약이 없고 새로 임명할 정승의 출사할 시기도 언제쯤 될지 역시 확정하기가 어려우니, 영정을 우선 수원부에 모셔 두고서 영숭전 참봉(永崇殿參奉)과 본부 부사로 하여금 십분 신중을 기하여 수직하도록 하고, 승지와 예조 당상, 중사(中使)는 모두 당분간 올라오도록 하라는 일로 하유하라. 그리고 정월 초순 전으로 다시 택일해서 모셔올 일을 해조에 말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어제 옥당이 차자를 올려 기자헌의 차자를 소각시킬 일을 윤허 받았습니다. 정부의 낭청으로 하여금 차자를 정부에서 소각시켰으면 하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어제 옥당이 차자를 올려 기자헌의 차자를 소각시킬 일을 윤허 받았습니다. 정부의 낭청으로 하여금 차자를 정부에서 소각시켰으면 하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생원 곽유도(郭有道)가 상소하기를, "서궁의 죄악이 이미 하늘에 달하였으니 국법으로 볼 때 참으로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항복은 두 왕대의 원로로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왔으니 이 위급한 때를 당하여 의리로 보아 응당 죽음을 각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널리 의논하는 날에 감히 간사한 논의를 주장하여 임금을 무도하고 불효한 지경에 빠뜨리려 하였으니, 그가 이의(李㼁)에게 마음을 쏟고 김제남을 두둔하고 있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백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그를 사형에 처하여 신인(神人)의 분노를 풀게 하소서. 오늘날 국가의 나침반 역할을 할 사람으로서 어지러운 세상에 우뚝이 서서 무신년의 변고 때에는 탁월한 공로를 세웠고 계축년의 난에는 세상을 바로잡는 큰 힘을 발휘하였던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신하의 인품에 대해서는 임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니, 전하께서도 필시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선책은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을 정승으로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대각에 있으면서 일을 논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종의 괴이한 논의가 저절로 사라지고 의구에 차있던 인심이 저절로 진정될 것이며, 해이해진 기강이 저절로 정립되고 꺾였던 사기가 저절로 되살아날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 만일 신의 말을 불충하다고 여기신다면 먼저 신의 목을 잘라다가 이항복의 문에다 매달아서 역적의 무리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서궁의 죄악이 이미 하늘에 달하였으니 국법으로 볼 때 참으로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항복은 두 왕대의 원로로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왔으니 이 위급한 때를 당하여 의리로 보아 응당 죽음을 각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널리 의논하는 날에 감히 간사한 논의를 주장하여 임금을 무도하고 불효한 지경에 빠뜨리려 하였으니, 그가 이의(李㼁)에게 마음을 쏟고 김제남을 두둔하고 있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백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그를 사형에 처하여 신인(神人)의 분노를 풀게 하소서.
오늘날 국가의 나침반 역할을 할 사람으로서 어지러운 세상에 우뚝이 서서 무신년의 변고 때에는 탁월한 공로를 세웠고 계축년의 난에는 세상을 바로잡는 큰 힘을 발휘하였던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신하의 인품에 대해서는 임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니, 전하께서도 필시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선책은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을 정승으로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대각에 있으면서 일을 논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종의 괴이한 논의가 저절로 사라지고 의구에 차있던 인심이 저절로 진정될 것이며, 해이해진 기강이 저절로 정립되고 꺾였던 사기가 저절로 되살아날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 만일 신의 말을 불충하다고 여기신다면 먼저 신의 목을 잘라다가 이항복의 문에다 매달아서 역적의 무리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박충윤(朴忠胤)이 상소하여, 나라의 큰 계책을 속히 세우고 또 김제남을 조목조목 성토한 이국헌(李國獻)의 공로를 먼저 훈록(勳錄)에 올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충의로운 마음을 권장할 것을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1월 30일 신묘
생원 여후망(呂後望), 진사 오운(吳霣), 유학 정사길(鄭士吉), 유학 박우(朴瑀), 유학 강식(康軾)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지난번 좌의정 정인홍이 여러 번 차자를 올려 7명의 신하와 요사스런 선비, 은혜를 온전히 하고 왕위를 사양해야 한다는 논의를 주장했던 자들을 치죄하기를 청하였으나, 전하께서 그 말대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변고를 가져오게 된 것이니, 신들은 삼가 매우 통탄스럽습니다. 7명의 신하는 위명(僞名)을 거짓으로 받들어 즉시 들어내놓고 고하지 않았으니, 7명의 신하들은 바로 역적 의의 충신이지 전하에게는 머리수를 채우는 신하도 아닌 것입니다. 선왕이 세상을 하직하고 왕위가 결정되었을 때에 칼부림하는 변고가 임금의 빈소 옆에서 일어났으니, 온 나라의 신하된 사람치고 그 누가 그들의 사지를 찢어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온전히 하여야 한다는 말로 선동하여 모든 사람을 의혹시켰으며, 그 당시에 부고(訃告)를 가지고 간 사신은 여러 가지 논함에 이어서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는 말을 중국에 퍼뜨려 마치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될 사람이 왕위에 오른 것처럼 해서 중국이 우리 나라에 차인(差人)을 파견하여 묻도록 하게까지 하였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변고의 내막에 대하여 중국에 알리지 않을 수 없으니, 반드시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고 그릇되게 대답한 자의 목을 먼저 베어 중국 사람들에게 보여야만 중국 사람들이 흡족하게 여길 것입니다. 정인홍이 상차하여 부고를 가지고 갔던 사신이 잘못 답변한 죄를 다스릴 것을 말하자, 전하께서는 비망기를 내려 대신들에게 의논하도록 하였으나 대신들은 한 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정인홍이 두 번째로 차자를 올려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가지고 가서 사실대로 전하지 못한 이필영(李必榮)의 죄를 논핵하자, 성상께서는 비답을 내리셔서 ‘나를 핍박하는 것 같기 때문에 조정에서 하는 대로 맡긴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역시 한 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등지고 일을 그르친 자의 죄를 징계하여 다스릴 길이 없게 하였으므로 남인(南人) 일파는 오늘도 역적을 옹호하는 말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러한 변고가 다시 일어난 것은 모두다 ‘은혜를 온전히 하여야 한다.’는 말과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는 말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 국가가 불행하여 역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데 의리가 막혀서 역적 토벌하는 일을 엄하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떠한 현상이라 하겠습니까. 역적 기자헌은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중대한 논의를 막았으니 법으로 보면 참형에 처해야 하는데 안치(安置)시킬 것으로만 아뢰었고, 김세렴은 언관(言官)의 신분으로 간사한 논의를 먼저 제기하였으니 의리로 보아 사형에 처하여야 하는데 귀양보낼 것으로만 논하였으니, 이것이 과연 조정 신하들이 역적을 토죄하는 의리를 다한 것이라 하겠습니까. 이항복은 두 왕조의 오랜 신하로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면서 은밀히 딴 마음을 품고 감히 흉측한 차자를 올렸으니, 이항복의 죄는 너무나 많아서 이루다 세기도 어렵습니다. 아, 이항복은 이전부터 고약한 말을 많이 하여 임금을 모욕한 사실이 명백하여 가리울 수 없습니다. 신들이 그가 위관(委官)이 되었을 때에 한 ‘송피(松皮)를 벗겨 떡을 만든다.’라는 말과 ‘세입량을 헤아려서 진배한다.’라는 말을 듣건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말과 얼굴, 행동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전하에 대하여 음모하지 않은 것이 단지 다행한 일입니다. 어진 신하가 올린 차자에서 ‘예기치 않았던 화변이 장차 서울에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인데, 전하께서는 즉시 그를 귀양보내거나 처단하지 않음로써 대의를 내세우는 날에 방해자가 되게 하였으니 신들은 삼가 분하게 여깁니다. 아,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됨에 따라 조정의 논의가 아주 명백해졌는데, 유독 정홍익(鄭弘翼)만이 그 사이에서 반역할 생각을 내어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채 역적 괴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역적의 무리가 징계받을 곳이 없을 것입니다. 역적 정온의 상소와 이원익의 차자는 역적들의 괴수가 되어 홍무적과 정택뢰 등의 무리를 불러일으켜 이위경·정조·윤인처럼 전하에게 충성을 다한 신하들로 하여금 오히려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공격을 받게 하였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직(趙溭)이 임금을 모욕한 그 말은 극도로 흉측하여 귀로 차마 들을 수 없고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이현문과 허국 등은 ‘서궁을 구원하여 인심을 얻어야한다.’는 말로 관중(館中)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으니, 비록 공정한 논의가 한번 격렬해져서 흉악한 무리가 옥에 갇혔다 하더라도 임금 앞에서 주벌을 가하는 조치는 아직도 지연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역적의 무리들에게는 목을 잘라야 할 죄가 있으니, 마땅히 유사(有司)에 명하여 아울러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 사람을 논죄하고 내일 또 한 사람을 논죄하여 시일만 지연시키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전날에 어진 정승이 기미를 살펴 했던 말을 특별히 생각하셔서 속히 상방검(尙方劍)을 충의로운 신하 한 사람에게 내주어, 전후로 역적을 옹호했던 자들을 처단함으로써 그 밖의 사람들을 반성하게 하소서. 그리고 예부에 이자(移咨)할 때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고 그릇되게 대답했던 자의 목을 베어 가지고 가서 중국으로 하여금 그 곡절을 알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한다면 종묘 사직의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지난번 좌의정 정인홍이 여러 번 차자를 올려 7명의 신하와 요사스런 선비, 은혜를 온전히 하고 왕위를 사양해야 한다는 논의를 주장했던 자들을 치죄하기를 청하였으나, 전하께서 그 말대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변고를 가져오게 된 것이니, 신들은 삼가 매우 통탄스럽습니다. 7명의 신하는 위명(僞名)을 거짓으로 받들어 즉시 들어내놓고 고하지 않았으니, 7명의 신하들은 바로 역적 의의 충신이지 전하에게는 머리수를 채우는 신하도 아닌 것입니다. 선왕이 세상을 하직하고 왕위가 결정되었을 때에 칼부림하는 변고가 임금의 빈소 옆에서 일어났으니, 온 나라의 신하된 사람치고 그 누가 그들의 사지를 찢어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온전히 하여야 한다는 말로 선동하여 모든 사람을 의혹시켰으며, 그 당시에 부고(訃告)를 가지고 간 사신은 여러 가지 논함에 이어서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는 말을 중국에 퍼뜨려 마치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될 사람이 왕위에 오른 것처럼 해서 중국이 우리 나라에 차인(差人)을 파견하여 묻도록 하게까지 하였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변고의 내막에 대하여 중국에 알리지 않을 수 없으니, 반드시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고 그릇되게 대답한 자의 목을 먼저 베어 중국 사람들에게 보여야만 중국 사람들이 흡족하게 여길 것입니다.
정인홍이 상차하여 부고를 가지고 갔던 사신이 잘못 답변한 죄를 다스릴 것을 말하자, 전하께서는 비망기를 내려 대신들에게 의논하도록 하였으나 대신들은 한 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정인홍이 두 번째로 차자를 올려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가지고 가서 사실대로 전하지 못한 이필영(李必榮)의 죄를 논핵하자, 성상께서는 비답을 내리셔서 ‘나를 핍박하는 것 같기 때문에 조정에서 하는 대로 맡긴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역시 한 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등지고 일을 그르친 자의 죄를 징계하여 다스릴 길이 없게 하였으므로 남인(南人) 일파는 오늘도 역적을 옹호하는 말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러한 변고가 다시 일어난 것은 모두다 ‘은혜를 온전히 하여야 한다.’는 말과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는 말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 국가가 불행하여 역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데 의리가 막혀서 역적 토벌하는 일을 엄하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떠한 현상이라 하겠습니까. 역적 기자헌은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중대한 논의를 막았으니 법으로 보면 참형에 처해야 하는데 안치(安置)시킬 것으로만 아뢰었고, 김세렴은 언관(言官)의 신분으로 간사한 논의를 먼저 제기하였으니 의리로 보아 사형에 처하여야 하는데 귀양보낼 것으로만 논하였으니, 이것이 과연 조정 신하들이 역적을 토죄하는 의리를 다한 것이라 하겠습니까. 이항복은 두 왕조의 오랜 신하로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면서 은밀히 딴 마음을 품고 감히 흉측한 차자를 올렸으니, 이항복의 죄는 너무나 많아서 이루다 세기도 어렵습니다. 아, 이항복은 이전부터 고약한 말을 많이 하여 임금을 모욕한 사실이 명백하여 가리울 수 없습니다. 신들이 그가 위관(委官)이 되었을 때에 한 ‘송피(松皮)를 벗겨 떡을 만든다.’라는 말과 ‘세입량을 헤아려서 진배한다.’라는 말을 듣건대, 임금을 무시하고 조정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말과 얼굴, 행동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전하에 대하여 음모하지 않은 것이 단지 다행한 일입니다. 어진 신하가 올린 차자에서 ‘예기치 않았던 화변이 장차 서울에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인데, 전하께서는 즉시 그를 귀양보내거나 처단하지 않음로써 대의를 내세우는 날에 방해자가 되게 하였으니 신들은 삼가 분하게 여깁니다.
아, 중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됨에 따라 조정의 논의가 아주 명백해졌는데, 유독 정홍익(鄭弘翼)만이 그 사이에서 반역할 생각을 내어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채 역적 괴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역적의 무리가 징계받을 곳이 없을 것입니다. 역적 정온의 상소와 이원익의 차자는 역적들의 괴수가 되어 홍무적과 정택뢰 등의 무리를 불러일으켜 이위경·정조·윤인처럼 전하에게 충성을 다한 신하들로 하여금 오히려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공격을 받게 하였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직(趙溭)이 임금을 모욕한 그 말은 극도로 흉측하여 귀로 차마 들을 수 없고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이현문과 허국 등은 ‘서궁을 구원하여 인심을 얻어야한다.’는 말로 관중(館中)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으니, 비록 공정한 논의가 한번 격렬해져서 흉악한 무리가 옥에 갇혔다 하더라도 임금 앞에서 주벌을 가하는 조치는 아직도 지연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역적의 무리들에게는 목을 잘라야 할 죄가 있으니, 마땅히 유사(有司)에 명하여 아울러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 사람을 논죄하고 내일 또 한 사람을 논죄하여 시일만 지연시키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전날에 어진 정승이 기미를 살펴 했던 말을 특별히 생각하셔서 속히 상방검(尙方劍)을 충의로운 신하 한 사람에게 내주어, 전후로 역적을 옹호했던 자들을 처단함으로써 그 밖의 사람들을 반성하게 하소서. 그리고 예부에 이자(移咨)할 때 왕위를 사양하여야 한다고 그릇되게 대답했던 자의 목을 베어 가지고 가서 중국으로 하여금 그 곡절을 알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한다면 종묘 사직의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였다. "나라가 소란스러운 이런 때에 날마다 유문(留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삼사에서 올리는 계사와 차자를 일찍 입계(入啓)하도록 해서 밤이 깊은 뒤에 유문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 말게 하라는 일을 삼사에 말하라."
"나라가 소란스러운 이런 때에 날마다 유문(留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삼사에서 올리는 계사와 차자를 일찍 입계(入啓)하도록 해서 밤이 깊은 뒤에 유문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 말게 하라는 일을 삼사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판중추 이정귀의 병이 중하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애를 많이 쓴 사람이니 내의원의 의원을 보내 간병하게 하라."
"판중추 이정귀의 병이 중하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애를 많이 쓴 사람이니 내의원의 의원을 보내 간병하게 하라."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계하기를, "근래에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이 날로 해이해져서 퇴보하기만 하고 진전되는 것이 없으므로 식견있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여긴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번에 영정을 모셔오는 일은 실로 온 나라의 더없이 중대한 거조로서 이미 전주(全州)를 떠나 수원(水原)으로 와서 머물고 있으니 서울까지의 거리는 1백 리도 안 됩니다. 그런데 교외에서 맞이하고 제사를 지낼 일에 대하여 날을 여러 번 받았다가 여러 번 물렸습니다. 음식물을 공급하거나 다리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남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천리 길에 잇닿아 있는데 시기마저 한겨울이다보니 사람과 말이 얼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래도 작은 폐단이므로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수원은 부(府)이므로 관사(官舍)가 협소하고 누추한데다 민가와 인접해 있어서 혹시 한 명의 군사라도 조심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 뜻밖의 변고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신하와 백성들의 애닯고 다급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영정이 서울을 지날 때 직접 지내는 제사를 가까운 시일에 날을 받아 지내도록 해서 중대한 의식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국가의 안위는 삼정승에게 달렸으며 모든 관리를 통솔하는 것도 역시 삼정승에게 달렸으므로 나라에 있어서 삼정승은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들이 정승의 자리를 오래 비워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미 다 아뢰었던 것인데, 성상의 비답에는 ‘서서히 처리하겠다.’고 전교하셨습니다. 인심이 뒤숭숭하고 국시가 정해지지 않은 이런 때에 어찌 잠시라도 지연시켜 뒷날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정승을 속히 세워서 어려운 형편을 수습하고 국시를 안정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복상(卜相)하는 문제는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근래에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이 날로 해이해져서 퇴보하기만 하고 진전되는 것이 없으므로 식견있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여긴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번에 영정을 모셔오는 일은 실로 온 나라의 더없이 중대한 거조로서 이미 전주(全州)를 떠나 수원(水原)으로 와서 머물고 있으니 서울까지의 거리는 1백 리도 안 됩니다. 그런데 교외에서 맞이하고 제사를 지낼 일에 대하여 날을 여러 번 받았다가 여러 번 물렸습니다. 음식물을 공급하거나 다리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남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천리 길에 잇닿아 있는데 시기마저 한겨울이다보니 사람과 말이 얼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래도 작은 폐단이므로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수원은 부(府)이므로 관사(官舍)가 협소하고 누추한데다 민가와 인접해 있어서 혹시 한 명의 군사라도 조심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 뜻밖의 변고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신하와 백성들의 애닯고 다급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영정이 서울을 지날 때 직접 지내는 제사를 가까운 시일에 날을 받아 지내도록 해서 중대한 의식을 완결짓도록 하소서.
국가의 안위는 삼정승에게 달렸으며 모든 관리를 통솔하는 것도 역시 삼정승에게 달렸으므로 나라에 있어서 삼정승은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들이 정승의 자리를 오래 비워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미 다 아뢰었던 것인데, 성상의 비답에는 ‘서서히 처리하겠다.’고 전교하셨습니다. 인심이 뒤숭숭하고 국시가 정해지지 않은 이런 때에 어찌 잠시라도 지연시켜 뒷날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정승을 속히 세워서 어려운 형편을 수습하고 국시를 안정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복상(卜相)하는 문제는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합사가 연계하기를, "신들은 기자헌이 전후하여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빠짐없이 논열하였는데 전하께서는 단지 삭출(削黜)하는 것만을 허락하셨습니다. 기자헌이 성상을 저버린 정도가 저러한데 성상께서는 기자헌을 이렇게까지 옹호하시니, 신들은 성상의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자헌은 왕실의 인척 관계로서 대신의 자리에 있었으니, 서궁이 전하를 해치려는 계획을 세워 성상이 몹시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외부에서는 비록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자헌만은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자헌으로서는 응당 성상을 위하여 시종일관 담당해 나서야 하고 피하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화살을 던진 변고가 발생하자 임금을 버리고 밤중에 도망쳤고,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자 가장 먼저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여, 결국 종묘 사직을 잊고 임금을 등졌습니다. 그리하여 은연중 다른날 임금을 모함하고 온 세상을 위협하여 통제할 계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자라 하더라도 역시 사람의 성품은 타고났을 것인데, 그가 과연 서궁이 꾸민 온갖 흉악한 모략과 은밀한 계책을 몰라서 반대로 이와 같이 왜곡되게 비호할 계획을 세웠겠습니까. 그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차마 말도 못하겠습니다. 대체로 임금과 신하, 아들과 어미 사이의 은혜와 의리의 경중에 대해서는 원래 정당하게 처리할 방도가 있기 마련이므로 유생들의 상소를 절충하는 문제는 오직 묘당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자헌은 무슨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허물을 임금에게 돌리고 아름다운 이름은 자기가 차지하기를 이처럼 거리낌없이 한단 말입니까.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다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나 성상께서는 참여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자헌이 계산에 넣고 있었으니 정말 음흉하다고 하겠습니다. 기자헌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곳곳에다 소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중 계림(鷄林)에는 축척해둔 것이 더욱 많습니다. 벼슬을 마구 팔면서 하인에게까지 두루 팔았으니 이것도 역시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본심은, 조정에서 만약 벼슬을 빼앗고 내쫓기만 한다면 영남으로 돌아가 한가롭게 살면서 부유한 생활을 편안히 누리는 한편, 간사한 무리들을 불러들여서 뒷날 일생에 품고 있던 것을 이루고야 말 것이니, 오늘날 나랏일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그의 속셈이 여기에서 다 드러났으니 비록 중죄로 다스리더라도 나라 안의 사람에게 사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속히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함으로써, 남의 신하가 되어 나라를 등지고 역적을 비호하는 자들의 경계로 삼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삭출하였다. 어찌 번거롭게 다시 논의하는가." 하였다.
"신들은 기자헌이 전후하여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빠짐없이 논열하였는데 전하께서는 단지 삭출(削黜)하는 것만을 허락하셨습니다. 기자헌이 성상을 저버린 정도가 저러한데 성상께서는 기자헌을 이렇게까지 옹호하시니, 신들은 성상의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자헌은 왕실의 인척 관계로서 대신의 자리에 있었으니, 서궁이 전하를 해치려는 계획을 세워 성상이 몹시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외부에서는 비록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자헌만은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자헌으로서는 응당 성상을 위하여 시종일관 담당해 나서야 하고 피하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화살을 던진 변고가 발생하자 임금을 버리고 밤중에 도망쳤고,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자 가장 먼저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여, 결국 종묘 사직을 잊고 임금을 등졌습니다. 그리하여 은연중 다른날 임금을 모함하고 온 세상을 위협하여 통제할 계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자라 하더라도 역시 사람의 성품은 타고났을 것인데, 그가 과연 서궁이 꾸민 온갖 흉악한 모략과 은밀한 계책을 몰라서 반대로 이와 같이 왜곡되게 비호할 계획을 세웠겠습니까. 그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차마 말도 못하겠습니다.
대체로 임금과 신하, 아들과 어미 사이의 은혜와 의리의 경중에 대해서는 원래 정당하게 처리할 방도가 있기 마련이므로 유생들의 상소를 절충하는 문제는 오직 묘당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자헌은 무슨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허물을 임금에게 돌리고 아름다운 이름은 자기가 차지하기를 이처럼 거리낌없이 한단 말입니까.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다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나 성상께서는 참여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자헌이 계산에 넣고 있었으니 정말 음흉하다고 하겠습니다. 기자헌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곳곳에다 소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중 계림(鷄林)에는 축척해둔 것이 더욱 많습니다. 벼슬을 마구 팔면서 하인에게까지 두루 팔았으니 이것도 역시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본심은, 조정에서 만약 벼슬을 빼앗고 내쫓기만 한다면 영남으로 돌아가 한가롭게 살면서 부유한 생활을 편안히 누리는 한편, 간사한 무리들을 불러들여서 뒷날 일생에 품고 있던 것을 이루고야 말 것이니, 오늘날 나랏일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그의 속셈이 여기에서 다 드러났으니 비록 중죄로 다스리더라도 나라 안의 사람에게 사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속히 절도(絶島)에 위리 안치시키라고 명함으로써, 남의 신하가 되어 나라를 등지고 역적을 비호하는 자들의 경계로 삼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삭출하였다. 어찌 번거롭게 다시 논의하는가."
하였다.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려 기자헌에 대하여 흔쾌히 공론을 따르기를 청하자, 답하기를, "이미 삭출하였으니 다시 논의할 것이 없다." 하였다.
"이미 삭출하였으니 다시 논의할 것이 없다."
하였다.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사가 재차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세 번째 아뢰자,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답하였다.
생원 이홍순(李弘詢)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의 친구 이건원(李乾元)은 신과 더불어 뜻이 같았기 때문에 상의하여 상소를 올리기를, ‘재앙의 불씨를 막기 위해서는 서궁의 존호를 폄삭하는 것보다 다급한 것이 없고, 화근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의 명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 중국에 알려서 화근을 제거하는 법을 실시하려면 반드시 역관들에게 엄하게 주의시켜 감히 근거없는 말로 동요시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정응태의 차비 역관(差備譯官)을 추후로 형벌을 가하여 그밖의 사람들을 경계하여야 방법에 맞을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형벌을 줄 것을 우선적으로 청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이 상소문의 요지는 ‘여러 역적의 실태를 적어 예부에 자문을 보내야 한다.[諸賊曲折移咨禮部]’는 여덟 글자에 있을 뿐입니다. 기자헌은 본래 두 마음을 품고 서궁을 극력 옹호하였으며, 상소를 내려보낸 지 수십 일이 지났는데도 회계할 뜻은 전혀 없고 서궁에 아부하여 뒷날의 복을 바라는 죄상이 헌의(獻議)한 차자를 보지 않아도 이미 명백히 드러났으니, 어찌 음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한 가지 일만 가지고도 만 번 죽인다 하더라도 피하기 어려울 것인데 하물며 모든 죄악을 다 가지고 있는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항복과 정홍익은 흉측한 기자헌의 말을 이어받아 임금을 욕되게 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이 하고 있습니다. 남의 신하가 되어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니 신은 삼가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근일에 흉악한 기자헌의 논리를 답습하여 혹 중국에 관한 일을 가지고 임금을 위협하기 위한 자료로 삼기도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사대부들도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은 우리 나라를 임진년 이래로 모든 일에 있어서 한집처럼 대하였으므로 좋은일 궂은일 할 것 없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약 계축년에 있었던 요사스러운 무리와 같은 자가 나타나 요동과 광녕으로 잠입해 들어가 망극한 참소를 하고, 조즙처럼 흉악한 일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간사한 논의를 선동하여 황제의 의혹을 살 경우, 황제가 만일 힐문하는 일이 있기라도 한다면 국가에 화를 끼치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들의 편견이 아닙니다. 국내의 사람으로 전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자가 모두 지당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속히 대신을 선정하라는 명을 내리셔서 대국(大局)을 안정시키고, 이어 신이 올린 상소를 가지고 의논하게 한 다음 속히 기자헌을 참형에 처함으로써 임금을 위협한 죄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런 뒤에 일을 잘 아는 중신(重臣)을 한 사람 뽑아서 백관이 올리는 글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황제의 명을 받아 시행함으로써, 화근(禍根)을 영원히 근절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그리한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신의 친구 이건원(李乾元)은 신과 더불어 뜻이 같았기 때문에 상의하여 상소를 올리기를, ‘재앙의 불씨를 막기 위해서는 서궁의 존호를 폄삭하는 것보다 다급한 것이 없고, 화근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의 명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 중국에 알려서 화근을 제거하는 법을 실시하려면 반드시 역관들에게 엄하게 주의시켜 감히 근거없는 말로 동요시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정응태의 차비 역관(差備譯官)을 추후로 형벌을 가하여 그밖의 사람들을 경계하여야 방법에 맞을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형벌을 줄 것을 우선적으로 청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이 상소문의 요지는 ‘여러 역적의 실태를 적어 예부에 자문을 보내야 한다.[諸賊曲折移咨禮部]’는 여덟 글자에 있을 뿐입니다. 기자헌은 본래 두 마음을 품고 서궁을 극력 옹호하였으며, 상소를 내려보낸 지 수십 일이 지났는데도 회계할 뜻은 전혀 없고 서궁에 아부하여 뒷날의 복을 바라는 죄상이 헌의(獻議)한 차자를 보지 않아도 이미 명백히 드러났으니, 어찌 음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한 가지 일만 가지고도 만 번 죽인다 하더라도 피하기 어려울 것인데 하물며 모든 죄악을 다 가지고 있는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항복과 정홍익은 흉측한 기자헌의 말을 이어받아 임금을 욕되게 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이 하고 있습니다. 남의 신하가 되어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니 신은 삼가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근일에 흉악한 기자헌의 논리를 답습하여 혹 중국에 관한 일을 가지고 임금을 위협하기 위한 자료로 삼기도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사대부들도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은 우리 나라를 임진년 이래로 모든 일에 있어서 한집처럼 대하였으므로 좋은일 궂은일 할 것 없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약 계축년에 있었던 요사스러운 무리와 같은 자가 나타나 요동과 광녕으로 잠입해 들어가 망극한 참소를 하고, 조즙처럼 흉악한 일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간사한 논의를 선동하여 황제의 의혹을 살 경우, 황제가 만일 힐문하는 일이 있기라도 한다면 국가에 화를 끼치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들의 편견이 아닙니다. 국내의 사람으로 전하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자가 모두 지당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속히 대신을 선정하라는 명을 내리셔서 대국(大局)을 안정시키고, 이어 신이 올린 상소를 가지고 의논하게 한 다음 속히 기자헌을 참형에 처함으로써 임금을 위협한 죄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런 뒤에 일을 잘 아는 중신(重臣)을 한 사람 뽑아서 백관이 올리는 글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황제의 명을 받아 시행함으로써, 화근(禍根)을 영원히 근절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그리한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진사 김현길(金鉉吉) 등이 상소하여 속히 역적을 비호했던 무리들을 참형에 처하여 흔쾌히 공공의 논의를 따르기를 청하자,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이때에 관학 유생이 올린 상소는 이이첨이 주관하였고, 관학 외의 유생이 올린 상소는 허균이 주장하였는데, 그 상소를 많은 사람이 올릴 경우에는 중추부에 모여서 올렸기 때문에 중추부 유소(中樞府儒疏)라고 하였다.】
【이때에 관학 유생이 올린 상소는 이이첨이 주관하였고, 관학 외의 유생이 올린 상소는 허균이 주장하였는데, 그 상소를 많은 사람이 올릴 경우에는 중추부에 모여서 올렸기 때문에 중추부 유소(中樞府儒疏)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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