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122권, 광해 9년 1617년 12월

싸라리리 2026. 1. 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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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임진

양사가 합사(合司)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할 것을 연계(連啓)하고, 옥당이 연차(連箚)하여 공론을 흔쾌히 따를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나는 이 계사에 대해서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만, 여러 날 번거롭게 고집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일을 놓고 보더라도 전후의 말을 다르게 하고 반복하여 핑계만 대면서 일을 담당하려 하지는 않고 오직 아름다운 이름만 차지하려는 자가 어찌 기자헌뿐이겠는가. 대신을 고향으로 추방한 것도 가벼운 율이 아니다. 위리 안치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중한 벌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나는 이 계사에 대해서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만, 여러 날 번거롭게 고집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일을 놓고 보더라도 전후의 말을 다르게 하고 반복하여 핑계만 대면서 일을 담당하려 하지는 않고 오직 아름다운 이름만 차지하려는 자가 어찌 기자헌뿐이겠는가. 대신을 고향으로 추방한 것도 가벼운 율이 아니다. 위리 안치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중한 벌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재차 계사를 올리고, 옥당도 두 번째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마음 속에 다른 의견을 품고 한쪽 편을 들면서 아름다운 이름만 차지하려는 사람이 기자헌 한 사람뿐만이 아닌데 어찌 굳이 기자헌만을 논핵하는가.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마음 속에 다른 의견을 품고 한쪽 편을 들면서 아름다운 이름만 차지하려는 사람이 기자헌 한 사람뿐만이 아닌데 어찌 굳이 기자헌만을 논핵하는가.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유학 양시익(楊時益)이 상소하여, 김세렴(金世濂)을 사주한 유희발(柳希發)의 죄를 속히 다스릴 것을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啓下)하였다.

 

합사하여 세 번째 아뢰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유학 이위(李偉)가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흉악한 기자헌은 김제남(金悌男)의 충신이고 서궁(西宮)이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서인(西人)·남인(南人)·소북(小北)의 무리들이 서궁에게 마음을 쏟아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을 엿보고 은밀히 뒷날을 도모하기 위한 계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상의 인자한 마음만 믿고 생각하기를 ‘내가 서궁을 폐출시키지 않더라도 상이 나를 처단할 리는 없을 것이다. 수년간 귀양살이 하다가 왕위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면 나는 응당 아름다운 이름을 차지하고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밤낮으로 애쓰면서 오직 서궁을 보호하는 것으로 자기 직책을 삼았습니다. 서궁을 따르고 임금을 배반하는 그 마음은 이미 흉측한 차자 안에 드러났으니 만번 죽이더라도 그 죄는 다 갚지 못할 것인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덮어주려고 하시니, 신은 삼가 안타깝게 여깁니다. 아, 상과 친밀한 사람으로서 형제보다 더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이진(李珒)과 이의(李㼁)가 귀양가서 죽게 되었을 때에도 전하께서는 구제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일개 역적에 대해서만은 이처럼 너그럽게 대하시니, 이렇게 하고도 역적들로 하여금 두려워할 줄 알게 하고자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나라의 존망 문제가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궐문은 굳게 닫혀 조용하며, 조정의 의견을 밀봉하여 올렸으나 아직도 내려보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사가 합문을 지키고 있지만 크게 간사한 자들은 제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이 나라에 복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가 봅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자헌과 이항복이 어찌 의지하는 데가 없이 감히 전하를 배반하겠습니까. 최관(崔瓘)이 바로 역적을 옹호하는 자들의 괴수입니다. 지난해에 황해도에서 변란이 일어났을 때 가족들을 가장 먼저 성밖으로 내보내어 관망하였므로 사람들은 그가 모략에 참가하지 않는가 하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그의 간사한 마음을 살피지 못하여 호조 판서로 선발 임명하였고, 유희분도 바로 그와 결탁하였습니다. 그들이 역적 기자헌을 찾아서 강가로 갔을 때 말을 나란히 타고 다녀왔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의한 것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간에서 말이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함께 좁은 길로 떨어진 것을 본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니, 이 사실은 숨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역적 기자헌이 나라를 배반한 죄는 유영경보다 작지 않은데, 유희분과 최관이 감히 백일하에 제멋대로 가서 만났으니,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은 또한 불 보듯 명백합니다. 기자헌을 옹호하는 뜻은 바로 유영경을 옹호하는 뜻이니, 말에서 떨어져 다친 것은 하늘이 실로 미워한 것으로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상께서 만약 유희분을 아끼는 마음으로 특별히 엄격한 지시를 내려 의리로 타이르되 기자헌과 이항복처럼 임금을 등지는 역적들과는 일체 서로 왕래하지 말며 정인홍과 이이첨처럼 역적을 치는 신하들과 함께 화근을 제거해서 나라의 위태로운 형세를 편안히 하고 한 분의 임금을 함께 받들어 세상을 태평한 지경에 올려 세우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어찌 신하와 임금에게 다같은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바라건대, 상께서는 속히 기자헌을 처단함으로써 유희분으로 하여금 악한 무리들과 한편이 되었다는 비방을 받지 않게 하고 자기 집을 보전하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흉악한 기자헌은 김제남(金悌男)의 충신이고 서궁(西宮)이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서인(西人)·남인(南人)·소북(小北)의 무리들이 서궁에게 마음을 쏟아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을 엿보고 은밀히 뒷날을 도모하기 위한 계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상의 인자한 마음만 믿고 생각하기를 ‘내가 서궁을 폐출시키지 않더라도 상이 나를 처단할 리는 없을 것이다. 수년간 귀양살이 하다가 왕위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면 나는 응당 아름다운 이름을 차지하고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밤낮으로 애쓰면서 오직 서궁을 보호하는 것으로 자기 직책을 삼았습니다. 서궁을 따르고 임금을 배반하는 그 마음은 이미 흉측한 차자 안에 드러났으니 만번 죽이더라도 그 죄는 다 갚지 못할 것인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덮어주려고 하시니, 신은 삼가 안타깝게 여깁니다. 아, 상과 친밀한 사람으로서 형제보다 더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이진(李珒)과 이의(李㼁)가 귀양가서 죽게 되었을 때에도 전하께서는 구제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일개 역적에 대해서만은 이처럼 너그럽게 대하시니, 이렇게 하고도 역적들로 하여금 두려워할 줄 알게 하고자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나라의 존망 문제가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궐문은 굳게 닫혀 조용하며, 조정의 의견을 밀봉하여 올렸으나 아직도 내려보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사가 합문을 지키고 있지만 크게 간사한 자들은 제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이 나라에 복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가 봅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자헌과 이항복이 어찌 의지하는 데가 없이 감히 전하를 배반하겠습니까. 최관(崔瓘)이 바로 역적을 옹호하는 자들의 괴수입니다. 지난해에 황해도에서 변란이 일어났을 때 가족들을 가장 먼저 성밖으로 내보내어 관망하였므로 사람들은 그가 모략에 참가하지 않는가 하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그의 간사한 마음을 살피지 못하여 호조 판서로 선발 임명하였고, 유희분도 바로 그와 결탁하였습니다. 그들이 역적 기자헌을 찾아서 강가로 갔을 때 말을 나란히 타고 다녀왔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의한 것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간에서 말이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함께 좁은 길로 떨어진 것을 본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니, 이 사실은 숨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역적 기자헌이 나라를 배반한 죄는 유영경보다 작지 않은데, 유희분과 최관이 감히 백일하에 제멋대로 가서 만났으니,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은 또한 불 보듯 명백합니다. 기자헌을 옹호하는 뜻은 바로 유영경을 옹호하는 뜻이니, 말에서 떨어져 다친 것은 하늘이 실로 미워한 것으로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상께서 만약 유희분을 아끼는 마음으로 특별히 엄격한 지시를 내려 의리로 타이르되 기자헌과 이항복처럼 임금을 등지는 역적들과는 일체 서로 왕래하지 말며 정인홍과 이이첨처럼 역적을 치는 신하들과 함께 화근을 제거해서 나라의 위태로운 형세를 편안히 하고 한 분의 임금을 함께 받들어 세상을 태평한 지경에 올려 세우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어찌 신하와 임금에게 다같은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바라건대, 상께서는 속히 기자헌을 처단함으로써 유희분으로 하여금 악한 무리들과 한편이 되었다는 비방을 받지 않게 하고 자기 집을 보전하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幼學) 이국헌(李國獻)이 상소하기를, "삼가 지난 병진년 8월에 신이 서궁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논의와 성상의 무함을 모면할 대책에 대하여 가장 먼저 상소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공정한 논의가 점점 벌어졌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의로운 논의가 크게 일어나고 세상의 공론이 다같이 분개한 덕분에 종묘 사직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오늘 종묘 사직을 위하여 먼 곳에서 와서 축하를 올리는 것입니다.  상(象)의 어미는 흉악하였으나 반역을 은밀히 꾀하지 않았는데, 서궁은 감히 저주를 자행한 악행과 안에서 호응하는 음모를 꾸몄으니 이는 바로 선왕의 죄인인 것입니다. 선왕에게 죄를 지었으니 그가 조종(祖宗)의 신령에게 거절당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선왕이 만일 생존하였더라면 반드시 폐위하여 육형을 가하였을 것이고, 조종이 알음이 있다면 반드시 내쫓아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흉모(凶謀)를 꾸미는 자들은 《춘추(春秋)》의 의리와 호씨(胡氏)의 논의를 지침으로 삼지 않고 도리어 진(秦)나라·수(隋)나라의 얼토당토않는 말로 전하를 속여 그와 비교하여 말하고 있으니, 간사한 논의를 제창하여 임금을 무시하고 부도한 행위를 한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흉모를 꾸민 자에게 속히 참형을 가함으로써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그리고 《춘추(春秋)》의 대의(大義)를 법으로 삼고 호씨의 정론(定論)을 귀감으로 삼아 종묘 사직에 대한 큰 계책을 소중히 하고 태종대왕의 공평한 처사를 실천에 옮기소서. 그리고 신에게 음모(陰謀)를 방지할 만한 한 가지 대책이 있어서 감히 진달합니다. 생각건대, 우리 전하는 천자에게 책봉을 받아 이 나라의 임금이 되셨으니 그런 임금을 모해하는 자는 천자의 죄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자에게 명을 받은 전하를 해치려는 자가 있다면 어찌 천자에게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모든 나라의 임금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고 있으므로 만약 우리 나라에서 안으로 호응하는 음모와 저주를 자행하는 악행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황제는 필시 역적을 처벌하라는 조서를 내릴 것입니다. 더구나 하늘은 백성을 통하여 보고 백성을 통하여 듣기 때문에 절박한 호소를 하게 되면 황제는 반드시 우리 나라의 소원을 따라 줄 것입니다. 황제의 조서가 오는 문제는 우리들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대로만 하신다면 천하 후세에 명분이 바로 서고 말하기도 순조로울 것입니다. "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지난 병진년 8월에 신이 서궁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논의와 성상의 무함을 모면할 대책에 대하여 가장 먼저 상소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공정한 논의가 점점 벌어졌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의로운 논의가 크게 일어나고 세상의 공론이 다같이 분개한 덕분에 종묘 사직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이 오늘 종묘 사직을 위하여 먼 곳에서 와서 축하를 올리는 것입니다.
상(象)의 어미는 흉악하였으나 반역을 은밀히 꾀하지 않았는데, 서궁은 감히 저주를 자행한 악행과 안에서 호응하는 음모를 꾸몄으니 이는 바로 선왕의 죄인인 것입니다. 선왕에게 죄를 지었으니 그가 조종(祖宗)의 신령에게 거절당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선왕이 만일 생존하였더라면 반드시 폐위하여 육형을 가하였을 것이고, 조종이 알음이 있다면 반드시 내쫓아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흉모(凶謀)를 꾸미는 자들은 《춘추(春秋)》의 의리와 호씨(胡氏)의 논의를 지침으로 삼지 않고 도리어 진(秦)나라·수(隋)나라의 얼토당토않는 말로 전하를 속여 그와 비교하여 말하고 있으니, 간사한 논의를 제창하여 임금을 무시하고 부도한 행위를 한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흉모를 꾸민 자에게 속히 참형을 가함으로써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그리고 《춘추(春秋)》의 대의(大義)를 법으로 삼고 호씨의 정론(定論)을 귀감으로 삼아 종묘 사직에 대한 큰 계책을 소중히 하고 태종대왕의 공평한 처사를 실천에 옮기소서.
그리고 신에게 음모(陰謀)를 방지할 만한 한 가지 대책이 있어서 감히 진달합니다. 생각건대, 우리 전하는 천자에게 책봉을 받아 이 나라의 임금이 되셨으니 그런 임금을 모해하는 자는 천자의 죄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자에게 명을 받은 전하를 해치려는 자가 있다면 어찌 천자에게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모든 나라의 임금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고 있으므로 만약 우리 나라에서 안으로 호응하는 음모와 저주를 자행하는 악행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황제는 필시 역적을 처벌하라는 조서를 내릴 것입니다. 더구나 하늘은 백성을 통하여 보고 백성을 통하여 듣기 때문에 절박한 호소를 하게 되면 황제는 반드시 우리 나라의 소원을 따라 줄 것입니다. 황제의 조서가 오는 문제는 우리들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신의 계책대로만 하신다면 천하 후세에 명분이 바로 서고 말하기도 순조로울 것입니다. "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2일 계사

전교하였다. "각 해사는 궐내에 당연히 있어야 할 부서가 아닌데, 내섬시는 아직까지 인경궁 후원 내에 있으니 매우 부당하다. 내섬시를 조성하는 감역관과 본시의 당해관을 아울러 추고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빨리 역사를 마쳐서 1, 2월 내로 옮겨갈 것을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각 해사는 궐내에 당연히 있어야 할 부서가 아닌데, 내섬시는 아직까지 인경궁 후원 내에 있으니 매우 부당하다. 내섬시를 조성하는 감역관과 본시의 당해관을 아울러 추고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빨리 역사를 마쳐서 1, 2월 내로 옮겨갈 것을 도감에 말하도록 하라."

 

신방(新榜)에 오른 진사 민종(閔悰)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은 전하의 신하라서 전하가 계신 줄만 알고 서궁이 있는 것은 모릅니다. 김호(金昈)와 이강(李茳)은 대간의 신분으로 정론을 진작시키지는 않고 원수의 뜰에다 먼저 무릎을 꿇었으니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엊그제 정부에서 회의할 때에 공공한 논의가 일치하였는데, 정홍익(鄭弘翼)과 민형남(閔馨男) 등 약간의 무리들만이 두어 줄의 문자에다 속셈을 내보였으니, 서궁을 은밀히 추대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겠습니다. 아, 전하께서는 인자함만 힘쓰고 위엄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무신년의 역변에 영경만 사사(賜死)하고 역모를 다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무리가 많아졌고 김제남은 벗어날 수가 있었으며, 계축년의 변란에 단지 역적 정협만을 주벌하고 공초한 것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주동자들은 다 빠져 나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항복이 아직도 살아 있으면서 전하를 모욕하고 서궁을 비호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사전에 방지하지 않으면 곧바로 어려움이 닥친다는 사실을 전하에게서 징험할 수 있겠습니다.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와 교묘하게 일을 회피하는 무리들이 정론을 애써 막고 큰 일을 방해하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신하를 속히 불러들이고 시골에 묻혀 있는 석덕(碩德)에게 물어서 종묘 사직의 대계를 확정함으로써 신민들의 소망에 보답하소서. 그리하신다면 나라에는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전하의 신하라서 전하가 계신 줄만 알고 서궁이 있는 것은 모릅니다. 김호(金昈)와 이강(李茳)은 대간의 신분으로 정론을 진작시키지는 않고 원수의 뜰에다 먼저 무릎을 꿇었으니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엊그제 정부에서 회의할 때에 공공한 논의가 일치하였는데, 정홍익(鄭弘翼)과 민형남(閔馨男) 등 약간의 무리들만이 두어 줄의 문자에다 속셈을 내보였으니, 서궁을 은밀히 추대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겠습니다.
아, 전하께서는 인자함만 힘쓰고 위엄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무신년의 역변에 영경만 사사(賜死)하고 역모를 다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무리가 많아졌고 김제남은 벗어날 수가 있었으며, 계축년의 변란에 단지 역적 정협만을 주벌하고 공초한 것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주동자들은 다 빠져 나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항복이 아직도 살아 있으면서 전하를 모욕하고 서궁을 비호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사전에 방지하지 않으면 곧바로 어려움이 닥친다는 사실을 전하에게서 징험할 수 있겠습니다.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와 교묘하게 일을 회피하는 무리들이 정론을 애써 막고 큰 일을 방해하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두문불출하고 있는 신하를 속히 불러들이고 시골에 묻혀 있는 석덕(碩德)에게 물어서 종묘 사직의 대계를 확정함으로써 신민들의 소망에 보답하소서. 그리하신다면 나라에는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정언 이강(李茳)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달 25일에 대궐에 나아가 사은 숙배를 하고, 서궁에게는 숙배하고 싶지 않았으나 간통을 돌려 서로 가부에 대해 물으니 ‘조정에서 아직도 처치를 하지 않고 있고 조알(朝謁)하는 문제도 아직 그대로 하고 있다. 대간(臺諫)은 법관인데, 조정의 논의를 기다리지도 않고 지레 결정하는 것은 일의 원칙에 어긋나는 처사이다.’고 하였으므로 마음에도 없는 절을 억지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논핵하고 인피하였는데, 지금 유생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는 신을 책망하고 기자헌 등과 이름을 나란히 거명하면서 다스릴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속히 신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지난달 25일에 대궐에 나아가 사은 숙배를 하고, 서궁에게는 숙배하고 싶지 않았으나 간통을 돌려 서로 가부에 대해 물으니 ‘조정에서 아직도 처치를 하지 않고 있고 조알(朝謁)하는 문제도 아직 그대로 하고 있다. 대간(臺諫)은 법관인데, 조정의 논의를 기다리지도 않고 지레 결정하는 것은 일의 원칙에 어긋나는 처사이다.’고 하였으므로 마음에도 없는 절을 억지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논핵하고 인피하였는데, 지금 유생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는 신을 책망하고 기자헌 등과 이름을 나란히 거명하면서 다스릴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속히 신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지평 김호(金昈)가 아뢰기를, "신은 일찍이 서궁에 숙배한 잘못을 갖추어 인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종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는 신의 이름을 거론하여 죄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코 버젓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여 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은 일찍이 서궁에 숙배한 잘못을 갖추어 인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종의 상소를 보건대 대개는 신의 이름을 거론하여 죄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코 버젓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여 주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합사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할 것을 연계하고, 옥당이 연차하니, 답하기를, "대신을 이미 시골로 보냈으니 왕법(王法)을 시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어찌 꼭 위리 안치하여야만 하겠는가. 고집부리지 말라." 하였다.
"대신을 이미 시골로 보냈으니 왕법(王法)을 시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어찌 꼭 위리 안치하여야만 하겠는가. 고집부리지 말라."
하였다.

 

양사가 이강과 김호에 대한 처치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인피하고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옥당이 아울러 출사시킬 것을 청하자, 따랐다.

 

남부(南部)의 방민(坊民) 희인(希仁) 등이 상소하여 속히 큰 계획을 정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킬 것을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당시에 이이첨이 허균으로 하여금 흉악한 무리들을 널리 모아 그의 집에다 채워두고 좌우로 불러주고 대응하여 날마다 6, 7편의 상소문을 지어 번갈아가며 올리게 하였다. 간혹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이름을 위조하여 올렸다. 김개(金闓)가 우윤(右尹)이 되어 방민들을 억지로 몰아대면서 옥에 가득 채우기까지 했으나 거리의 부로(父老)들은 울부짖으며 따르지 않는 자도 있었다. 결국은 삼의사(三醫司), 내삼청(內三廳), 도감 군교(都監軍校), 산학(算學)과 율학(律學) 등 각사의 서리(胥吏)들이 혹독히 매를 맞고 서로 상소하기까지 하였다. 대개 당초에 허균과 김개 등이 후한 이득을 미끼로 흉악한 무리들을 모집하여 말하기를 ‘만약 폐모론이 성공하게 되면 전시(殿試)에 직부하도록 허락할 것이며, 정훈(正勳)에 기록하고 군(君)으로 봉할 것이다.’ 하였으므로 무뢰배들 가운데 호응한 자가 많았다. 흉소가 의정부에 내려진 뒤에 병조가 군사를 배정하여 수직하도록 하였는데, 김희설(金希契)이란 자가 심한 독촉을 받고도 목숨을 걸고 거부하면서 따르지 않자, 헌부는 그에게 형장을 가하여 죽였다. 노인 유희경(劉希慶)도 여러 달 가두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이조 판서 유희발이 상소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다시 충성어린 지조를 다하여 종묘 사직의 위급한 상황을 부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다시 충성어린 지조를 다하여 종묘 사직의 위급한 상황을 부지하도록 하라."
하였다.

 

병조 판서 유희분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개는 병이 심해진 지 오래되었으므로 말을 타고 성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는데 지금 이위(李偉)의 무함을 받았으므로 사정을 진달하니 면직시켜 주기를 청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이런 때에 남들의 말을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경은 마땅히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순수한 충성심을 더욱 돈독히 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이런 때에 남들의 말을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경은 마땅히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순수한 충성심을 더욱 돈독히 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신방(新榜)에 오른 진사 윤유겸(尹唯謙)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요지는 속히 합사(合司)의 요청에 따라 기자헌을 처벌해서 이론을 제기하고 공론을 주장하는 간관(諫官)을 저지하는 폐단을 막도록 하고, 사인 유충립(柳忠立)이 당하의 백료들을 거느리고 나오지 않은 죄와 대장 원수신(元守身)이 상소하려던 장졸을 저지한 죄를 다스려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기를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동부(東部)의 방민(坊民)인 이봉(李鳳)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요지는 속히 의리를 내세워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자,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유학 송영서(宋永緖)가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이항복의 의논은 기자헌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정홍익의 말도 기자헌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창연과 한효순이 두문 불출하고 있는 것도 모두 기자헌을 모방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자헌을 처벌하지 않으면 내일 또다시 기자헌과 같은 자가 나타나서 이론은 날마다 첨가되어 앞으로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가중될 것입니다. 저 박홍구와 민형남 등이 감히 비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논의를 하는 것도 자헌으로부터 연유한 것인 이상, 기자헌이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전하에게는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기자헌을 도감 제조에서 체직시킨다 하더라도 그와 친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장관으로 있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서궁을 기화로 여기고 다른 날 고주(孤注)052)  로 삼아 왕위를 가로채려 할 것입니다. 일을 속히 처리하게 되면 경황없는 사이에 함께 모의하지 못하겠지만 여러 날을 지연하다 보면 간악한 모의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니, 만약 수십 인을 규합하여 밤을 틈타 변란을 일으킨다면 대궐을 호위하던 군졸이 되돌아서서 반란에 가담하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지금은 진실로 위급하고 절박한 시기인데도 상하가 한결같이 안일에 젖어서 깊은 생각을 소홀히 하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하늘이 우리 나라를 돕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까. 신은 정말 안타까워서 먼저 죽음으로써 전하께 보답하고 싶습니다. 기자헌과 친밀한 장관을 어찌 먼저 도태시켜서 오늘날의 걱정을 풀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전하의 조정에 충성심이 강하고 정직한 신하가 한두 명이 아니니 만약 정승을 신중히 골라 임명하는 명을 내려 속히 조정에서 일을 보게 하여 나라를 편하게 하고 세상을 구제할 책임을 맡긴다면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머뭇거리면서 한효순이 출사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체로 한효순은 역적과 한통속인데 어찌 전하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 하겠습니까.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다른 정승을 임명하여 큰 판국을 완결짓고 사람들의 의구심을 진정시키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이번에 대의가 이경전과 이병에게서 나왔는데 유희분과 박승종은 이를 담당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병은 처음 의견을 확고하게 지켰으나, 이경전은 두 가지 마음을 갖고서 사람을 대할 때마다 매번 말하기를 ‘중대한 논의는 허균이 주관하니 우리들은 상관할 것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흉악한 마음을 품고 임금을 저버렸으니 이런 자를 주벌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간악한 자를 징계하고 불충한 자를 회유시킬 수 있겠습니까. 유몽인은 전병(銓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탐욕스러운 짓을 자행하였는데, 국청에서 의논할 때도 매번 기자헌과 함께 모의하여 은근히 역적을 비호하였으며 모여서 의논할 때에는 시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으로 대신과 삼사에 떠넘기고 있으니, 그는 대의를 거행하지 않고 고의로 우물쭈물하는 말을 해서 다른 날의 입지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처음에는 사림에 아부하여 겉으로는 역적을 토벌하자는 논의를 주장하다가 일이 다급해지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임금을 저버린 죄상과 후일의 복(福)을 도모한 그들의 계책이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을 귀양보내서 모든 관리를 경계시켜야 합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註 052] 고주(孤注) : 도박하는 사람이 돈을 거의 다 잃고 마지막에 남은 돈을 다 걸어 승부를 겨루는 밑천을 말함.
"삼가 생각건대, 이항복의 의논은 기자헌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정홍익의 말도 기자헌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창연과 한효순이 두문 불출하고 있는 것도 모두 기자헌을 모방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자헌을 처벌하지 않으면 내일 또다시 기자헌과 같은 자가 나타나서 이론은 날마다 첨가되어 앞으로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가중될 것입니다. 저 박홍구와 민형남 등이 감히 비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논의를 하는 것도 자헌으로부터 연유한 것인 이상, 기자헌이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전하에게는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기자헌을 도감 제조에서 체직시킨다 하더라도 그와 친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장관으로 있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서궁을 기화로 여기고 다른 날 고주(孤注)052)  로 삼아 왕위를 가로채려 할 것입니다. 일을 속히 처리하게 되면 경황없는 사이에 함께 모의하지 못하겠지만 여러 날을 지연하다 보면 간악한 모의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니, 만약 수십 인을 규합하여 밤을 틈타 변란을 일으킨다면 대궐을 호위하던 군졸이 되돌아서서 반란에 가담하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지금은 진실로 위급하고 절박한 시기인데도 상하가 한결같이 안일에 젖어서 깊은 생각을 소홀히 하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하늘이 우리 나라를 돕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까. 신은 정말 안타까워서 먼저 죽음으로써 전하께 보답하고 싶습니다. 기자헌과 친밀한 장관을 어찌 먼저 도태시켜서 오늘날의 걱정을 풀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전하의 조정에 충성심이 강하고 정직한 신하가 한두 명이 아니니 만약 정승을 신중히 골라 임명하는 명을 내려 속히 조정에서 일을 보게 하여 나라를 편하게 하고 세상을 구제할 책임을 맡긴다면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머뭇거리면서 한효순이 출사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체로 한효순은 역적과 한통속인데 어찌 전하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 하겠습니까. 신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다른 정승을 임명하여 큰 판국을 완결짓고 사람들의 의구심을 진정시키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이번에 대의가 이경전과 이병에게서 나왔는데 유희분과 박승종은 이를 담당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병은 처음 의견을 확고하게 지켰으나, 이경전은 두 가지 마음을 갖고서 사람을 대할 때마다 매번 말하기를 ‘중대한 논의는 허균이 주관하니 우리들은 상관할 것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흉악한 마음을 품고 임금을 저버렸으니 이런 자를 주벌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간악한 자를 징계하고 불충한 자를 회유시킬 수 있겠습니까. 유몽인은 전병(銓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탐욕스러운 짓을 자행하였는데, 국청에서 의논할 때도 매번 기자헌과 함께 모의하여 은근히 역적을 비호하였으며 모여서 의논할 때에는 시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으로 대신과 삼사에 떠넘기고 있으니, 그는 대의를 거행하지 않고 고의로 우물쭈물하는 말을 해서 다른 날의 입지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처음에는 사림에 아부하여 겉으로는 역적을 토벌하자는 논의를 주장하다가 일이 다급해지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임금을 저버린 죄상과 후일의 복(福)을 도모한 그들의 계책이 여기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을 귀양보내서 모든 관리를 경계시켜야 합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3일 갑오

유학 이국광(李國光)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서궁은 천하에 죄를 얻었으니 사람마다 그를 죽일 수 있으며, 종묘 사직에 거절을 당하였으니 신령에게도 이미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대체로 한 하늘에는 오직 하나의 해가 있을 뿐이며 한 나라에는 오직 한 임금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저 서궁을 비호하는 무리들은 장차 무슨 짓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다른 마음을 갖는단 말입니까. 이는 필시 임금을 모해하고 뒷날의 복을 노리는 계책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런 무리들에게 국가의 중책을 맡기고 대간의 임무를 맡기시니 이는 이른바 산중에 혼자 앉아서 호랑이를 길러 자신을 호위하려 하는 격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무리들을 처벌하여서 국시(國是)를 확정하고, 훌륭한 정승을 다시 뽑아서 의구에 차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소서. 그리하여 《춘추(春秋)》의 의리를 법으로 삼고 종묘 사직의 계책을 중하게 여겨 태종대왕이 보여주었던 법을 실행함으로써 신명과 사람의 분함을 씻어주고 종묘 사직의 화근을 제거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서궁은 천하에 죄를 얻었으니 사람마다 그를 죽일 수 있으며, 종묘 사직에 거절을 당하였으니 신령에게도 이미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대체로 한 하늘에는 오직 하나의 해가 있을 뿐이며 한 나라에는 오직 한 임금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저 서궁을 비호하는 무리들은 장차 무슨 짓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다른 마음을 갖는단 말입니까. 이는 필시 임금을 모해하고 뒷날의 복을 노리는 계책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런 무리들에게 국가의 중책을 맡기고 대간의 임무를 맡기시니 이는 이른바 산중에 혼자 앉아서 호랑이를 길러 자신을 호위하려 하는 격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무리들을 처벌하여서 국시(國是)를 확정하고, 훌륭한 정승을 다시 뽑아서 의구에 차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소서. 그리하여 《춘추(春秋)》의 의리를 법으로 삼고 종묘 사직의 계책을 중하게 여겨 태종대왕이 보여주었던 법을 실행함으로써 신명과 사람의 분함을 씻어주고 종묘 사직의 화근을 제거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동당 회시(東堂會試)의 날을 누차 받았다가 누차 물리는 바람에 먼 곳에서 온 선비들이 서울 어귀에서 오래 머물고 있으면서 시험볼 날짜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내년으로 미룬다면 선비들의 마음이 해이해질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큰 경사는 해를 넘겨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가까운 날을 받도록 해서 선비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동당 회시(東堂會試)의 날을 누차 받았다가 누차 물리는 바람에 먼 곳에서 온 선비들이 서울 어귀에서 오래 머물고 있으면서 시험볼 날짜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내년으로 미룬다면 선비들의 마음이 해이해질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큰 경사는 해를 넘겨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가까운 날을 받도록 해서 선비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하고, 옥당이 연차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어찌 꼭 위리 안치하여야만 하겠는가. 위리 안치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하였다.
"어찌 꼭 위리 안치하여야만 하겠는가. 위리 안치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하였다.

 

호조 판서 최관(崔瓘)이 차자를 올렸는데, 전체 내용은 유생들로부터 심한 지척을 받았으므로 자신의 직명을 삭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경의 실정을 모두 알았다.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한층 더 직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하였다.
"차자를 살펴보고 경의 실정을 모두 알았다.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한층 더 직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하였다.

 

유학 서의중(徐義中)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역적을 다스리는 법이 엄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대체로 최현(崔晛)은 심희수(沈喜壽)의 부추김으로 전에 죄를 지었으며 김세렴(金世濂)은 유희발(柳希發)의 사주를 받아 그 후에 일을 저질렀습니다. 심희수야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을 극력 주장하여 일찍부터 전하를 저버린 자이므로 다시 거론할 것이 없겠지만, 유희발은 가까운 인척인만큼 고락을 함께 해야 할 터인데 김세렴을 꼬여서 정론(正論)을 회피하게 하였으니 유희발은 과연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신이 근래에 도성 안의 논의를 들으니 ‘유희분은 헌의할 때에 자기의 의견은 말하지 않고 좌상 정인홍에게 미루었다고 하는데, 교묘하게 회피한 정상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입니다. 유충립(柳忠立)은 사인(舍人)의 신분으로 당하의 백관을 거느리고 가서 합의하여 진달하지 않았다고 하니, 기자헌의 낭청으로서 한집의 사론(邪論)에 물든 자라고 하겠습니다. 박자응(朴自凝)은 박승종(朴承宗)의 아들이며 박자흥(朴自興)의 아우인데 이 막대한 논의를 당하여 감히 병을 핑계대는 글을 올렸으니, 이는 부형(父兄)의 가르침을 우선으로 하지 않고 역적을 비호하는 마음을 중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항복·정홍익·민형남 등은, 혹은 역적 정협을 천거한 모주(謀主)이기도 하고 혹은 칠신(七臣) 중의 하나인 허성(許筬)에게 아부하기도 하고 혹은 유희분의 괴이한 논의에 물들기도 하였으니, 이들은 모두 역적을 모의한 무리들로서 왕법(王法)에 용서받지 못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임금의 이목과 같은 삼사의 처지로서는 마땅히 탄핵하고 공격하기를 마치 새매가 참새를 덮치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헌 한 사람말고는 다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헌의 죄는 진실로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밖의 역적을 비호한 무리들을 유독 놓아두고 논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직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삼사의 잘못을 문책하시고,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운 기자헌의 죄를 다스린 다음, 김세렴을 사주한 유희발의 죄를 다스리고 이항복 이하는 차례대로 논죄하소서. 그리하신다면 대론이 저절로 바로잡히고 화근도 제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필부의 말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승락하는 명을 속히 내리소서. 그리하신다면 종묘 사직의 처지에서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역적을 다스리는 법이 엄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적을 비호하는 무리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대체로 최현(崔晛)은 심희수(沈喜壽)의 부추김으로 전에 죄를 지었으며 김세렴(金世濂)은 유희발(柳希發)의 사주를 받아 그 후에 일을 저질렀습니다. 심희수야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을 극력 주장하여 일찍부터 전하를 저버린 자이므로 다시 거론할 것이 없겠지만, 유희발은 가까운 인척인만큼 고락을 함께 해야 할 터인데 김세렴을 꼬여서 정론(正論)을 회피하게 하였으니 유희발은 과연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신이 근래에 도성 안의 논의를 들으니 ‘유희분은 헌의할 때에 자기의 의견은 말하지 않고 좌상 정인홍에게 미루었다고 하는데, 교묘하게 회피한 정상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입니다. 유충립(柳忠立)은 사인(舍人)의 신분으로 당하의 백관을 거느리고 가서 합의하여 진달하지 않았다고 하니, 기자헌의 낭청으로서 한집의 사론(邪論)에 물든 자라고 하겠습니다. 박자응(朴自凝)은 박승종(朴承宗)의 아들이며 박자흥(朴自興)의 아우인데 이 막대한 논의를 당하여 감히 병을 핑계대는 글을 올렸으니, 이는 부형(父兄)의 가르침을 우선으로 하지 않고 역적을 비호하는 마음을 중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항복·정홍익·민형남 등은, 혹은 역적 정협을 천거한 모주(謀主)이기도 하고 혹은 칠신(七臣) 중의 하나인 허성(許筬)에게 아부하기도 하고 혹은 유희분의 괴이한 논의에 물들기도 하였으니, 이들은 모두 역적을 모의한 무리들로서 왕법(王法)에 용서받지 못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임금의 이목과 같은 삼사의 처지로서는 마땅히 탄핵하고 공격하기를 마치 새매가 참새를 덮치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헌 한 사람말고는 다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헌의 죄는 진실로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밖의 역적을 비호한 무리들을 유독 놓아두고 논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직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삼사의 잘못을 문책하시고,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운 기자헌의 죄를 다스린 다음, 김세렴을 사주한 유희발의 죄를 다스리고 이항복 이하는 차례대로 논죄하소서. 그리하신다면 대론이 저절로 바로잡히고 화근도 제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필부의 말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승락하는 명을 속히 내리소서. 그리하신다면 종묘 사직의 처지에서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하여 재차 아뢰고,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북부(北部)의 방민(坊民) 임연지(林連枝) 등이 상소하여, 속히 나라의 큰 계책을 결정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역관 표헌(表憲)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요지는 대론이 이미 제기되었는데 아직도 상황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으니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좋은 쪽으로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기로(耆老) 이숭수(李崇壽) 등 및 시민(市民)들이 상소하여, 속히 화근을 제거해서 모든 백성을 안정시키기를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군기시 부정 정문진(鄭文振)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지난 계축년간에 역적들이 난을 선동하여, 밖으로는 서양갑·심우영 등의 무리들이 은밀히 역모를 꾀해 서로 결탁하여 기회를 옅보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성상을 시해하려 하였으니 발호(跋扈)한 계책이 흉칙하다 하겠으며, 안으로는 자전의 세력에 가탁하여 나이 어린 이의를 기화로 삼고 궁중에서 화란을 빚어내어 능침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니 저주한 변괴가 참담하다 하겠습니다. 아, 반역하는 무리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만 오늘날의 일은 말하기에도 가슴이 아픕니다. 흉악한 음모가 발각되어 여러 역적들이 처벌을 받은 것은 어찌 조종의 신령이 지하에서 암암리에 도와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바로 온 나라의 신민이 굳게 결심하고 임금의 원수를 갚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당초 역적 이의를 죽이기를 요청할 때에 간사한 논의가 함부로 제기되어 역적 이의를 죽일 수 없다는 논의가 나오기도 하고 임금의 원수를 갚을 수 없다고 하는 자도 있었으니, 이는 실로 정론은 수립되지 않고 의리는 막혀 있어서 저들은 치성하고 이쪽은 쇠잔하다는 것을 분석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손을 빌려 의를 처단했다는 정온의 말이 한번 제기되자, 조경기 등의 역적을 비호하는 논의가 계속 나와 이의를 일단 죽였고 보면 뒷날의 우환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간사한 말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확대되고 정론은 이것으로 인하여 저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위에서 고립되게 하였으며 몹쓸 무리들로 하여금 다시 치성하게 하였습니다. 아, 간사한 무리들이 역적을 옹호하고 있는 상황을 성상께서 통찰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정형(正刑)에 처하여 간사한 논의의 불씨를 근절시킴으로써 국가의 위세를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 성상의 아량은 관대하시어 단지 먼 곳으로 귀양을 보냈으니 그 사람을 포용하고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또한 성대하다 하겠습니다. 이후로 서궁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 자전(慈殿)과 가까이하여 저주를 자행함으로써 불씨를 빚어냈으니 임금을 음해하고 종묘 사직을 전복시키려는 죄는 머리털을 다 뽑아도 세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에 원근의 유생들이 함께 나와서 정성을 다해 상소를 진달하여 자전의 휘호를 삭제하고 또 진어(進御)하던 그전 규례를 철회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대체로 시비를 결정하고 공론을 밝히는 것은 성상께서 용단을 내리시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대신들이 변란에 대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영의정의 신분으로서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잊고 헌의하던 날을 당하여 먼저 괴상한 말을 올렸는데 종이에 가득 쓴 흉측한 말은 못하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안으로는 역적을 편드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로채려는 말을 하였으니 비록 극형에 처하더라도 온 나라에는 사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변란을 바로잡을 뜻을 더욱 견고히 하고 반역하는 자들을 제거할 뜻을 더 한층 가다듬어서 먼저 기자헌을 참형에 처하고 이어서 여러 흉측한 자들의 죄를 다스리소서. 그리하신다면 공론은 스스로 밝혀질 것이며 시비도 확정될 것이며 또 의리는 밝게 드러날 것이고 화근은 자연스럽게 근절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궁에 대한 조회와 시위, 봉진하는 물건 등을 속히 폐지하도록 명하시고 또 휘호를 강등한다면 사람들의 의심이 시원하게 풀리고 배반할 마음을 갖던 사람들이 스스로 안정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로는 조종의 신령에게 위안이 될 것이며 아래로는 신민들의 바람에 보답할 수 있게 되어 국가의 형세가 안전하기가 반석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지난 계축년간에 역적들이 난을 선동하여, 밖으로는 서양갑·심우영 등의 무리들이 은밀히 역모를 꾀해 서로 결탁하여 기회를 옅보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성상을 시해하려 하였으니 발호(跋扈)한 계책이 흉칙하다 하겠으며, 안으로는 자전의 세력에 가탁하여 나이 어린 이의를 기화로 삼고 궁중에서 화란을 빚어내어 능침에까지 미치게 하였으니 저주한 변괴가 참담하다 하겠습니다. 아, 반역하는 무리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만 오늘날의 일은 말하기에도 가슴이 아픕니다. 흉악한 음모가 발각되어 여러 역적들이 처벌을 받은 것은 어찌 조종의 신령이 지하에서 암암리에 도와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바로 온 나라의 신민이 굳게 결심하고 임금의 원수를 갚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당초 역적 이의를 죽이기를 요청할 때에 간사한 논의가 함부로 제기되어 역적 이의를 죽일 수 없다는 논의가 나오기도 하고 임금의 원수를 갚을 수 없다고 하는 자도 있었으니, 이는 실로 정론은 수립되지 않고 의리는 막혀 있어서 저들은 치성하고 이쪽은 쇠잔하다는 것을 분석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손을 빌려 의를 처단했다는 정온의 말이 한번 제기되자, 조경기 등의 역적을 비호하는 논의가 계속 나와 이의를 일단 죽였고 보면 뒷날의 우환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간사한 말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확대되고 정론은 이것으로 인하여 저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위에서 고립되게 하였으며 몹쓸 무리들로 하여금 다시 치성하게 하였습니다.
아, 간사한 무리들이 역적을 옹호하고 있는 상황을 성상께서 통찰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정형(正刑)에 처하여 간사한 논의의 불씨를 근절시킴으로써 국가의 위세를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 성상의 아량은 관대하시어 단지 먼 곳으로 귀양을 보냈으니 그 사람을 포용하고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또한 성대하다 하겠습니다. 이후로 서궁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 자전(慈殿)과 가까이하여 저주를 자행함으로써 불씨를 빚어냈으니 임금을 음해하고 종묘 사직을 전복시키려는 죄는 머리털을 다 뽑아도 세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에 원근의 유생들이 함께 나와서 정성을 다해 상소를 진달하여 자전의 휘호를 삭제하고 또 진어(進御)하던 그전 규례를 철회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대체로 시비를 결정하고 공론을 밝히는 것은 성상께서 용단을 내리시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대신들이 변란에 대처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영의정의 신분으로서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잊고 헌의하던 날을 당하여 먼저 괴상한 말을 올렸는데 종이에 가득 쓴 흉측한 말은 못하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안으로는 역적을 편드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로채려는 말을 하였으니 비록 극형에 처하더라도 온 나라에는 사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변란을 바로잡을 뜻을 더욱 견고히 하고 반역하는 자들을 제거할 뜻을 더 한층 가다듬어서 먼저 기자헌을 참형에 처하고 이어서 여러 흉측한 자들의 죄를 다스리소서. 그리하신다면 공론은 스스로 밝혀질 것이며 시비도 확정될 것이며 또 의리는 밝게 드러날 것이고 화근은 자연스럽게 근절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궁에 대한 조회와 시위, 봉진하는 물건 등을 속히 폐지하도록 명하시고 또 휘호를 강등한다면 사람들의 의심이 시원하게 풀리고 배반할 마음을 갖던 사람들이 스스로 안정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로는 조종의 신령에게 위안이 될 것이며 아래로는 신민들의 바람에 보답할 수 있게 되어 국가의 형세가 안전하기가 반석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박증(朴)·김영해(金瀛海)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국가가 불행하여 이런 서궁의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이미 역모의 우두머리가 되어 스스로 종묘 사직에 인연을 끊었는데 전하께서는 어찌 그를 국모로 대우하신단 말입니까. 이미 국모로 모실 수가 없는데 아직도 서궁에 거처하도록 하면서 모호(母號)를 간직하고 있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의심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으며 선비들은 모두 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생들의 상소가 한번 나오고 중대한 논의가 제기됨에 따라 의로운 소리가 미치는 곳에 기뻐서 날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영의정의 신분으로서, 먼저 간사한 논의를 주장하였으니 그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하는 작태가 환히 드러나서 가리울 수가 없는데 감히 묘당에 앉아서 이 일에 대한 가부를 물었습니다. 하찮은 무리들이 이 틈을 타서 그의 뜻을 받들어 많은 이견을 제기하였으니 이는 실로 당요(唐堯) 때 공공(共工)과 같고 주(周)나라 때 관숙(管叔)과 같은 자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역적을 옹호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서 마음 씀씀이와 행동하는 것이 극도에 이르지 않은 때가 없었기 때문에 의견을 널리 수렴하는 날에도 그것이 언사에 나타나 속셈이 환히 드러나는 한편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현혹시켰던 것입니다. 흉모를 꾸민 자들과 협작한 꼴이 반역을 꾀한 무리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이런 사람을 만일 제거하지 않는다면 다른 날에 무궁한 화란을 만들어낼지 어찌 알겠습니까. 현명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은 현상도 살피곤 하는데 더구나 이미 나타난 화란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잡초를 제거하면서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결국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은 바로 오늘을 두고 한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이의를 제기한 무리들을 속히 참형에 처함으로써 더한층 무서운 위엄을 보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들로 하여금 엄한 형벌 앞에 조금도 용서받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국가가 불행하여 이런 서궁의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이미 역모의 우두머리가 되어 스스로 종묘 사직에 인연을 끊었는데 전하께서는 어찌 그를 국모로 대우하신단 말입니까. 이미 국모로 모실 수가 없는데 아직도 서궁에 거처하도록 하면서 모호(母號)를 간직하고 있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의심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으며 선비들은 모두 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생들의 상소가 한번 나오고 중대한 논의가 제기됨에 따라 의로운 소리가 미치는 곳에 기뻐서 날뛰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영의정의 신분으로서, 먼저 간사한 논의를 주장하였으니 그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하는 작태가 환히 드러나서 가리울 수가 없는데 감히 묘당에 앉아서 이 일에 대한 가부를 물었습니다. 하찮은 무리들이 이 틈을 타서 그의 뜻을 받들어 많은 이견을 제기하였으니 이는 실로 당요(唐堯) 때 공공(共工)과 같고 주(周)나라 때 관숙(管叔)과 같은 자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역적을 옹호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서 마음 씀씀이와 행동하는 것이 극도에 이르지 않은 때가 없었기 때문에 의견을 널리 수렴하는 날에도 그것이 언사에 나타나 속셈이 환히 드러나는 한편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현혹시켰던 것입니다. 흉모를 꾸민 자들과 협작한 꼴이 반역을 꾀한 무리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이런 사람을 만일 제거하지 않는다면 다른 날에 무궁한 화란을 만들어낼지 어찌 알겠습니까.
현명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은 현상도 살피곤 하는데 더구나 이미 나타난 화란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잡초를 제거하면서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결국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은 바로 오늘을 두고 한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이의를 제기한 무리들을 속히 참형에 처함으로써 더한층 무서운 위엄을 보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들로 하여금 엄한 형벌 앞에 조금도 용서받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황정필(黃廷弼)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선조(先朝)의 말기에 적신(賊臣)이 난을 선동한 일이 있었는데 성상께서 즉위하심으로 해서 몹쓸 무리들이 일단 스러지긴 했으나 화근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기 때문에 온 나라 사람들은 다 그들을 제거해서 대의를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서, 위로는 조정의 모든 관리로부터 아래로 지방의 유생에 이르기까지 엄한 형벌을 피하지 않고 앞을 다투어 역적을 토죄할 것을 정성을 다하여 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간사한 논의를 제일 먼저 올려 국시를 배격하였으며, 김세렴은 정사(呈辭)하여 교묘하게 회피하여 언로를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대체로 임금을 위하여 환란을 제거하려는 것은 신하의 마음이며, 도적을 보면 반드시 토벌하는 것은 《춘추(春秋)》의 법인데, 기자헌과 김세렴은 유독 신하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론을 애써 주장하여 화근을 은근히 비호하는 것은 역적을 위하는 면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장차 임금을 어떤 처지에 두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당여를 토죄하는 《춘추(春秋)》의 필법으로 그들의 죄를 처벌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약간의 견벌(譴罰)만을 가하시는 정도에 그치고 극형을 가하지 않으셨으니 이 때문에 잔당이 계속 일어나서 한두 사람에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기자헌과 김세렴을 모두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항복·박홍구·민형남·정홍익 등은 같은 목소리로 뇌화부동하여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니 이들도 역시 기자헌과 일체인 것입니다. 임금을 망각하고 역적을 비호한 행위는 그 죄가 같은 것이니 신은 이 네 사람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효순(韓孝純)의 경우는 이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대론이 한창 제기될 당시에 먼저 그 기미를 엿보고 갑자기 정사(呈辭)를 하였으며 전하께서 유생들의 상소를 내려 조정에 널리 물을 때에도 중신(重臣)을 집으로 보내 돈유하였으나 끝까지 병을 핑계대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의 속셈을 단적으로 알 만합니다. 음휼하고 간특한 그의 죄가 기자헌보다도 더 무거운 만큼 신의 생각에는 한효순도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초에 이론을 제기한 사람과 역적을 비호한 무리들이 서로 글을 올려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하였으니, 예를 든다면 김효성(金孝誠)·정택뢰(鄭澤雷)·홍무적(洪茂績)·윤선도(尹善道)·원이곤(元以坤)·이현문(李顯門)·허국(許國)·조직(趙溭) 등과 같은 사람들로 마땅히 이들은 중한 벌을 내려 그외의 사람들을 경계시켰어야 하는데, 전하께서는 모두 가벼운 율을 적용하여 귀양보내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항상 보복할 마음을 갖고서 대부분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심지어 안팎으로 결탁하여 대의를 저지함으로써 임금을 고립시키고 사람들을 울분에 쌓이게 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전에 방지해야 할 것을 철저하게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전일에 올렸던 상소에 이 사람들의 죄상을 열거하여 임금께 올렸던 것은 바로 이런 의도였던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 사람들도 죄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깁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선조(先朝)의 말기에 적신(賊臣)이 난을 선동한 일이 있었는데 성상께서 즉위하심으로 해서 몹쓸 무리들이 일단 스러지긴 했으나 화근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기 때문에 온 나라 사람들은 다 그들을 제거해서 대의를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서, 위로는 조정의 모든 관리로부터 아래로 지방의 유생에 이르기까지 엄한 형벌을 피하지 않고 앞을 다투어 역적을 토죄할 것을 정성을 다하여 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간사한 논의를 제일 먼저 올려 국시를 배격하였으며, 김세렴은 정사(呈辭)하여 교묘하게 회피하여 언로를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대체로 임금을 위하여 환란을 제거하려는 것은 신하의 마음이며, 도적을 보면 반드시 토벌하는 것은 《춘추(春秋)》의 법인데, 기자헌과 김세렴은 유독 신하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론을 애써 주장하여 화근을 은근히 비호하는 것은 역적을 위하는 면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장차 임금을 어떤 처지에 두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당여를 토죄하는 《춘추(春秋)》의 필법으로 그들의 죄를 처벌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약간의 견벌(譴罰)만을 가하시는 정도에 그치고 극형을 가하지 않으셨으니 이 때문에 잔당이 계속 일어나서 한두 사람에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기자헌과 김세렴을 모두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항복·박홍구·민형남·정홍익 등은 같은 목소리로 뇌화부동하여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니 이들도 역시 기자헌과 일체인 것입니다. 임금을 망각하고 역적을 비호한 행위는 그 죄가 같은 것이니 신은 이 네 사람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효순(韓孝純)의 경우는 이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대론이 한창 제기될 당시에 먼저 그 기미를 엿보고 갑자기 정사(呈辭)를 하였으며 전하께서 유생들의 상소를 내려 조정에 널리 물을 때에도 중신(重臣)을 집으로 보내 돈유하였으나 끝까지 병을 핑계대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의 속셈을 단적으로 알 만합니다. 음휼하고 간특한 그의 죄가 기자헌보다도 더 무거운 만큼 신의 생각에는 한효순도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초에 이론을 제기한 사람과 역적을 비호한 무리들이 서로 글을 올려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하였으니, 예를 든다면 김효성(金孝誠)·정택뢰(鄭澤雷)·홍무적(洪茂績)·윤선도(尹善道)·원이곤(元以坤)·이현문(李顯門)·허국(許國)·조직(趙溭) 등과 같은 사람들로 마땅히 이들은 중한 벌을 내려 그외의 사람들을 경계시켰어야 하는데, 전하께서는 모두 가벼운 율을 적용하여 귀양보내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항상 보복할 마음을 갖고서 대부분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심지어 안팎으로 결탁하여 대의를 저지함으로써 임금을 고립시키고 사람들을 울분에 쌓이게 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전에 방지해야 할 것을 철저하게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전일에 올렸던 상소에 이 사람들의 죄상을 열거하여 임금께 올렸던 것은 바로 이런 의도였던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 사람들도 죄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깁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양사의 모든 관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서의중이 올린 글을 보건대, 그 요지는 ‘양사의 많은 관리들이 위세에 겁을 먹고 잠자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분을 다하지 못한 양사의 죄를 먼저 다스리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세렴이 교묘하게 피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귀양을 보냈고 유희발이 사주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대론은 김세렴 때문에 조금도 저해를 받지 않았으니 탈이 났다고 말할 수 없으며, 유희발은 전관(銓官)으로 정사에 참여하였으니 버젓이 있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찌 위세에 겁을 먹고 잠자코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거듭 지척을 받았으니 구차하게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들이 삼가 서의중이 올린 글을 보건대, 그 요지는 ‘양사의 많은 관리들이 위세에 겁을 먹고 잠자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분을 다하지 못한 양사의 죄를 먼저 다스리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세렴이 교묘하게 피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귀양을 보냈고 유희발이 사주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대론은 김세렴 때문에 조금도 저해를 받지 않았으니 탈이 났다고 말할 수 없으며, 유희발은 전관(銓官)으로 정사에 참여하였으니 버젓이 있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찌 위세에 겁을 먹고 잠자코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거듭 지척을 받았으니 구차하게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체차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12월 4일 을미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의 관원을 모두 출사시키기를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역원 정 김경생(金慶生) 등이 상소하여,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좋은 쪽으로 잘 처리해서 국란을 없애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기를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선전관 신진(申蓁) 등이 상소하여,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큰 계획을 의논하여 결정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훈련 도감 군사 최춘기(崔春起) 등이 상소하여, 속히 화근을 제거하고 호위(扈衛)를 철수하기를 청하니, 정부에 계하하였다.

 

우의정 한효순이 신병을 무릅쓰고 출사하여 상차하기를, "덕망이 높은 새 정승을 뽑아서 조정의 여망에 맞추도록 하소서. 그리고 좌의정과 영돈녕을 불러서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할 수 있게 하소서. 또 동·서벽(東西壁)의 궐원을 수일 내로 정사를 열어 채워서 일의 체모를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의 정성을 자세히 알았다. 현재 국사가 어려운 국면에 처하여 있다. 지금이 어찌 원로 대신이 사퇴할 시기이겠는가.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다시 더욱더 충성을 다하여 종묘 사직을 부지하도록 하라. 다른 대신을 불러오게 할 일과 동·서벽의 궐원을 차출하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덕망이 높은 새 정승을 뽑아서 조정의 여망에 맞추도록 하소서. 그리고 좌의정과 영돈녕을 불러서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할 수 있게 하소서. 또 동·서벽(東西壁)의 궐원을 수일 내로 정사를 열어 채워서 일의 체모를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의 정성을 자세히 알았다. 현재 국사가 어려운 국면에 처하여 있다. 지금이 어찌 원로 대신이 사퇴할 시기이겠는가.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다시 더욱더 충성을 다하여 종묘 사직을 부지하도록 하라. 다른 대신을 불러오게 할 일과 동·서벽의 궐원을 차출하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중부(中部)의 방민(坊民) 김충수(金忠壽) 등이 상소하여, 속히 대신을 불러 이 상소를 분명하게 보여 주어 공고한 국가의 대계를 결정함으로써 위태로운 국가의 기반을 안정시키기를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서부의 방민 서응학(徐應鶴) 등이 상소하여, 주저하지 말고 흔쾌히 공론을 따를 것을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순녕군(順寧君) 이경검(李景儉)이 차자를 올렸는데, 그 대강은 도당(都堂)이 수의(收議)하던 날 대신이 분부한 뒤에도 종친으로서 미처 수의에 참석하지 못하였으므로 황공하여 대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이 일은 내가 듣고 싶지 않는 내용이다. 경은 안심하고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이 일은 내가 듣고 싶지 않는 내용이다. 경은 안심하고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무림군(茂林君) 이선윤(李善胤)이 상소하여, 재야의 훌륭한 정승을 속히 불러들여 국시를 정하고 공론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하였는데, 답하기를, "상소를 살펴보고 경의 나라를 위하는 정성을 잘 알았다. 좌상을 불러오는 일은 마땅히 헤아려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상소를 살펴보고 경의 나라를 위하는 정성을 잘 알았다. 좌상을 불러오는 일은 마땅히 헤아려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하고 홍문관이 연차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재차 아뢰자, 중도 부처(中道付處)하라고 답하였다. 세 번째 아뢰고, 홍문관이 재차 차자를 올리자, 이미 부처하였으니 번거롭게 고집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유학 윤로(尹魯)가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대체로 심상한 논의에 있어서도 본말과 선후가 있기 마련인데 더구나 이처럼 당당한 대론을 처리하면서 어찌 근본은 차치하고 말단만 다스려서야 되겠습니까. 계축년 초에 정조·윤인·이위경 등이 강개(慷慨)한 마음을 갖고 가장 먼저 정론(正論)을 제기하여 혹은 피혐하기도 하고 혹은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니, 그들이 종묘 사직을 부지하고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얻은 것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무뢰한 조경기는 김제남의 심복으로서 역적들의 응원군이 되어 선비란 이름을 가탁하여 망령스레 흉악한 상소를 올려 간사한 논의를 제창하고 충직한 신하를 배격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안으로는 관학에서 밖으로는 팔방에서 마구 들고 일어나 정론으로 하여금 이미 제기되었다가 다시 중지하게 하고, 대의가 밝혀지는 듯하다가 다시 퇴색되게 하였습니다. 당시에 엄성(嚴惺)은 사필(史筆)을 잡은 관리로서 조경기와 한 통속이 되어 하루아침에 수십 명의 선비들을 정거시켰는데, 이후부터는 정대한 사기는 위축되고 간사한 무리만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덕형은 ‘어미를 원수로 여겼다. 어미와 인륜관계를 끊었다.’ 하였고, 역적 정온은 ‘무관의 손을 빌려 이의를 죽였다.’는 상소를 하였으며, 이현문의 무리는 ‘대비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명륜당(明倫堂)에서 큰 소리로 떠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역적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맞장구를 치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재야에서 글을 올림으로 해서 화근이 거의 제거되어 가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지연시키면서 한 사람도 담당하고 나서서 대의를 거론하는 자가 없으니, 이는 일종의 사론이 그 사이에서 방해를 하는데도 그 근본을 다스리지 않은 소치입니다. 기자헌과 정홍익 등이 멋대로 논의를 제기하여 정당한 논의를 저지하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고 하겠습니까. 왕법이 해이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은 삼가 통탄스럽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용단을 내리셔서 크게 위엄을 보이시어 먼저 조경기·이현문·엄성·역적 정온 등을 참형에 처하고, 다음으로 기자헌·이항복·정홍익 등을 처벌하소서. 그렇게 함으로써 대론을 부지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킨다면 국가의 처지로서는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대체로 심상한 논의에 있어서도 본말과 선후가 있기 마련인데 더구나 이처럼 당당한 대론을 처리하면서 어찌 근본은 차치하고 말단만 다스려서야 되겠습니까. 계축년 초에 정조·윤인·이위경 등이 강개(慷慨)한 마음을 갖고 가장 먼저 정론(正論)을 제기하여 혹은 피혐하기도 하고 혹은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니, 그들이 종묘 사직을 부지하고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를 얻은 것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무뢰한 조경기는 김제남의 심복으로서 역적들의 응원군이 되어 선비란 이름을 가탁하여 망령스레 흉악한 상소를 올려 간사한 논의를 제창하고 충직한 신하를 배격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안으로는 관학에서 밖으로는 팔방에서 마구 들고 일어나 정론으로 하여금 이미 제기되었다가 다시 중지하게 하고, 대의가 밝혀지는 듯하다가 다시 퇴색되게 하였습니다. 당시에 엄성(嚴惺)은 사필(史筆)을 잡은 관리로서 조경기와 한 통속이 되어 하루아침에 수십 명의 선비들을 정거시켰는데, 이후부터는 정대한 사기는 위축되고 간사한 무리만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덕형은 ‘어미를 원수로 여겼다. 어미와 인륜관계를 끊었다.’ 하였고, 역적 정온은 ‘무관의 손을 빌려 이의를 죽였다.’는 상소를 하였으며, 이현문의 무리는 ‘대비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명륜당(明倫堂)에서 큰 소리로 떠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역적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맞장구를 치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극도에 달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재야에서 글을 올림으로 해서 화근이 거의 제거되어 가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지연시키면서 한 사람도 담당하고 나서서 대의를 거론하는 자가 없으니, 이는 일종의 사론이 그 사이에서 방해를 하는데도 그 근본을 다스리지 않은 소치입니다. 기자헌과 정홍익 등이 멋대로 논의를 제기하여 정당한 논의를 저지하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고 하겠습니까. 왕법이 해이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은 삼가 통탄스럽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용단을 내리셔서 크게 위엄을 보이시어 먼저 조경기·이현문·엄성·역적 정온 등을 참형에 처하고, 다음으로 기자헌·이항복·정홍익 등을 처벌하소서. 그렇게 함으로써 대론을 부지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킨다면 국가의 처지로서는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5일 병신

정원이 아뢰기를, "지금 상인(喪人) 신응구(申應榘)가 올린 상소를 보니 매우 터무니없습니다. 그는 나이 많고 조정에 벼슬한 신하인 만큼 거상중인 직함을 가지고 임금 앞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상주인 몸으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말로 버젓이 상소하여 5, 6년이 지난 뒤에 공훈을 사양하였습니다. 그에게 실지로 고사(固辭)할 마음이 있었다면 당초에 감정할 때에 재차 사양하고 3차 사양했더라도 가한 일입니다. 그런데 버젓이 참여하여서는 남에게 조소를 받아가면서 2품 이상의 직함과 군(君)이라는 칭호를 받아 여러 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다가, 오늘에 이르러 마치 공론을 두려워하고 염치를 숭상하는 것처럼 하면서 거상중에 굳이 사양하고 훈적(勳籍)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니, 그 꾀가 교묘한 듯하나 사실은 어리석고 패악합니다. 하늘에 제사지내고 피를 마시며 한 맹세를 어찌 그의 한마디 말에 의하여 변경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임금을 번독스럽게 하여 다른 날 책임을 모면하고 입지를 구축할 자료로 삼으려 하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경기 감사 유희량(柳希亮)도 이런 터무니없는 상소를 받아 올렸으니 매우 잘못되었습니다.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공신인 재상이 상소하였는데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언로를 가로막는 조짐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감사를 추고하지 말라." 하였다. 【신응구는 바로 왕이 세자로 있을 당시 사부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총애를 받았으며, 임해군의 변란 때에는 상소를 옷소매에 넣어가지고 가서 진달하려 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정훈(正勳)에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모두 추잡하게 여겼으나, 신응구는 버젓이 지내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6년이 지난 후 거상중인 사람으로 억지로 상소를 올려 공신 칭호를 사양하였다.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니 탓할 것이 없다.】
"지금 상인(喪人) 신응구(申應榘)가 올린 상소를 보니 매우 터무니없습니다. 그는 나이 많고 조정에 벼슬한 신하인 만큼 거상중인 직함을 가지고 임금 앞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상주인 몸으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말로 버젓이 상소하여 5, 6년이 지난 뒤에 공훈을 사양하였습니다. 그에게 실지로 고사(固辭)할 마음이 있었다면 당초에 감정할 때에 재차 사양하고 3차 사양했더라도 가한 일입니다. 그런데 버젓이 참여하여서는 남에게 조소를 받아가면서 2품 이상의 직함과 군(君)이라는 칭호를 받아 여러 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다가, 오늘에 이르러 마치 공론을 두려워하고 염치를 숭상하는 것처럼 하면서 거상중에 굳이 사양하고 훈적(勳籍)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니, 그 꾀가 교묘한 듯하나 사실은 어리석고 패악합니다. 하늘에 제사지내고 피를 마시며 한 맹세를 어찌 그의 한마디 말에 의하여 변경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임금을 번독스럽게 하여 다른 날 책임을 모면하고 입지를 구축할 자료로 삼으려 하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경기 감사 유희량(柳希亮)도 이런 터무니없는 상소를 받아 올렸으니 매우 잘못되었습니다.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공신인 재상이 상소하였는데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언로를 가로막는 조짐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감사를 추고하지 말라."
하였다. 【신응구는 바로 왕이 세자로 있을 당시 사부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총애를 받았으며, 임해군의 변란 때에는 상소를 옷소매에 넣어가지고 가서 진달하려 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정훈(正勳)에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모두 추잡하게 여겼으나, 신응구는 버젓이 지내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6년이 지난 후 거상중인 사람으로 억지로 상소를 올려 공신 칭호를 사양하였다.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니 탓할 것이 없다.】

 

예조가 민인백(閔仁伯)의 상소에 대하여 회계하기를, "종묘 사직의 신주를 친히 모시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고초를 겪었고, 신명과 사람이 협력하고 도와서 왕업이 중간에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존호 중에 ‘준덕홍공(俊德弘功)’ 네 글자로는 오히려 성대한 덕업의 1만분의 1도 형용하기에 부족하여 여러 사람들의 심정이 아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날 유생의 상소에서도 ‘이천(伊川)에 머물러 있으면서 종묘 사직의 신주를 보호함으로써 기울어지고 막혔던 국운을 마침내 일으켜세웠다.’고 전하의 큰 공에 대하여 강력히 말하였는데, 이번에 민인백이 진달한 것도 대개는 이 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신하와 백성들이 다함께 원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결정해서 존호를 더 올리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돌아보건대, 대단찮은 나는 오랫동안 재앙을 겪어온 몸으로 이 만년을 당하여 누차 어울리지 않는 칭호를 받은 것도 이미 과다한데, 어찌 또 더 받아서 거듭 죄를 범하겠는가. 다만 이 임진년에 종묘 사직을 모시고 갖은 고초를 겪은 일에 대해서는 하늘에 계시는 여러 열성(列聖)의 혼령이 실지로 살피고 계시기도 하거니와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이며, 천억 년이 지나도록 길이 말할 수 있는 일이다.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종묘 사직의 신주를 친히 모시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고초를 겪었고, 신명과 사람이 협력하고 도와서 왕업이 중간에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존호 중에 ‘준덕홍공(俊德弘功)’ 네 글자로는 오히려 성대한 덕업의 1만분의 1도 형용하기에 부족하여 여러 사람들의 심정이 아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날 유생의 상소에서도 ‘이천(伊川)에 머물러 있으면서 종묘 사직의 신주를 보호함으로써 기울어지고 막혔던 국운을 마침내 일으켜세웠다.’고 전하의 큰 공에 대하여 강력히 말하였는데, 이번에 민인백이 진달한 것도 대개는 이 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신하와 백성들이 다함께 원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결정해서 존호를 더 올리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돌아보건대, 대단찮은 나는 오랫동안 재앙을 겪어온 몸으로 이 만년을 당하여 누차 어울리지 않는 칭호를 받은 것도 이미 과다한데, 어찌 또 더 받아서 거듭 죄를 범하겠는가. 다만 이 임진년에 종묘 사직을 모시고 갖은 고초를 겪은 일에 대해서는 하늘에 계시는 여러 열성(列聖)의 혼령이 실지로 살피고 계시기도 하거니와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이며, 천억 년이 지나도록 길이 말할 수 있는 일이다.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하고 옥당이 연차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대신을 부처(付處)하기까지 하였으니 처벌을 가한 것이 실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위리 안치하는 것은 결코 불가한 일이니 번거롭게 고집하지 말라." 하였다.
"대신을 부처(付處)하기까지 하였으니 처벌을 가한 것이 실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위리 안치하는 것은 결코 불가한 일이니 번거롭게 고집하지 말라."
하였다.

 

전의감 정 유경방(劉景邦) 등이 상소하여,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좋은 쪽으로 처리해서 국가의 변란을 해소시키도록 하기를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하여 재차 아뢰고,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렸으며, 합사하여 세 번째 아뢰었으나, 모두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서리 김호성(金好誠)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는 대신을 출사시킬 것과 묘당에 명하여 유생의 상소대로 시행함으로써 대의를 밝히도록 하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6일 정유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청양 현감(靑陽縣監) 임길후(任吉後)가 정철(正鐵) 1천 5백 근을 별도로 마련하여 올려 보냈습니다. 그것은 중대한 공사에 성의가 있는 것이므로 아주 좋게 여길 만합니다. 그것을 받아 썼으면 하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품계를 올려주고 목사 또는 부사로 임명하라." 하였다. 【임길후는 임금이 총애하는 첩 임씨의 오라비이고 임취정(林就正)의 조카이다.】
"청양 현감(靑陽縣監) 임길후(任吉後)가 정철(正鐵) 1천 5백 근을 별도로 마련하여 올려 보냈습니다. 그것은 중대한 공사에 성의가 있는 것이므로 아주 좋게 여길 만합니다. 그것을 받아 썼으면 하는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품계를 올려주고 목사 또는 부사로 임명하라."
하였다. 【임길후는 임금이 총애하는 첩 임씨의 오라비이고 임취정(林就正)의 조카이다.】

 

진사 곽영(郭瓔)이 상소하기를, "생각건대, 역적을 옹호하는 자들은 대체로 모해할 마음을 속에 품고 앞에서 또는 뒤에서 번갈아 제창하며 나랏일을 남의 일처럼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들이 어찌 종묘 사직의 안위와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모르기야 하겠습니까. 다만 속으로 충성치 못한 마음을 품고 겉으로 큰 이름을 팔고 있기 때문에 종묘 사직의 화복은 따지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만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몇 명의 흉악하고 교활한 무리를 처단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워서 아직도 형벌을 적용하여 뭇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또 사직은 조종의 사직입니다. 밖으로 역적 음모와 통하고 안으로 저주를 자행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하였으니, 이는 바로 조종의 죄인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사사로이 봐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비록 지나치게 인자하고 효성스러워서 차마 흔쾌히 용단을 내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신은 임금 앞에 엎드려 죄줄 것을 청해야 할 것이고 대간은 응당 목숨을 걸고 간쟁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들은 움추리고서 상황만 엿보고 있으며 대간은 느슨하게 논핵하면서 공밥을 먹고 있으니, 신은 오늘날의 대신과 대간들도 죄가 없지 않다고 봅니다. 아,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다같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공정한 논의라고 합니다. 이번에 안으로는 관학의 선비와 밖으로는 재야의 신하들로부터 대궐을 호위하는 군사들과 마을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의하지 않았는데도 다같이 연명으로 글을 올려 죄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찌 명예를 탐내거나 벼슬과 상주기를 바라서 그리하였겠습니까. 대개 공정한 논의가 일치된 일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격동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비록 사사로운 은혜를 온전하게 하려 하시지만 자연적으로 되는데야 어찌하시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논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생각건대, 역적을 옹호하는 자들은 대체로 모해할 마음을 속에 품고 앞에서 또는 뒤에서 번갈아 제창하며 나랏일을 남의 일처럼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들이 어찌 종묘 사직의 안위와 은혜와 의리의 경중을 모르기야 하겠습니까. 다만 속으로 충성치 못한 마음을 품고 겉으로 큰 이름을 팔고 있기 때문에 종묘 사직의 화복은 따지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만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몇 명의 흉악하고 교활한 무리를 처단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워서 아직도 형벌을 적용하여 뭇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또 사직은 조종의 사직입니다. 밖으로 역적 음모와 통하고 안으로 저주를 자행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하였으니, 이는 바로 조종의 죄인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사사로이 봐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비록 지나치게 인자하고 효성스러워서 차마 흔쾌히 용단을 내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신은 임금 앞에 엎드려 죄줄 것을 청해야 할 것이고 대간은 응당 목숨을 걸고 간쟁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들은 움추리고서 상황만 엿보고 있으며 대간은 느슨하게 논핵하면서 공밥을 먹고 있으니, 신은 오늘날의 대신과 대간들도 죄가 없지 않다고 봅니다.
아,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다같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공정한 논의라고 합니다. 이번에 안으로는 관학의 선비와 밖으로는 재야의 신하들로부터 대궐을 호위하는 군사들과 마을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의하지 않았는데도 다같이 연명으로 글을 올려 죄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찌 명예를 탐내거나 벼슬과 상주기를 바라서 그리하였겠습니까. 대개 공정한 논의가 일치된 일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격동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비록 사사로운 은혜를 온전하게 하려 하시지만 자연적으로 되는데야 어찌하시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논을 흔쾌히 따름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할 것을 연계하니, 답하기를, "날씨가 이렇게 추운 때에 날마다 와서 아뢰니 내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 위리 안치하는 것은 지나치다. 마땅히 참작할 것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 때에 날마다 와서 아뢰니 내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 위리 안치하는 것은 지나치다. 마땅히 참작할 것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우상의 차자에 다른 대신을 불러올 것을 청한 일에 대하여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셨는데, 본부 낭관을 보내 불러와야 하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좌상과 영돈녕에게 사관(史官)을 보내 돈유하라." 하였다.
"우상의 차자에 다른 대신을 불러올 것을 청한 일에 대하여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셨는데, 본부 낭관을 보내 불러와야 하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좌상과 영돈녕에게 사관(史官)을 보내 돈유하라."
하였다.

 

율학 교수(律學敎授) 김천희(金千喜)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강은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신중하게 처치해서 국가의 변란을 해소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기를 청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옥당이 연차하니, 이미 부처(付處)하였으니 법대로 다할 필요는 없다고 답하였다.

 

합사하여 재차 아뢰자 이미 정하였으니 법대로 다할 필요는 없다고 답하였다.

 

관학 유생 정기(鄭淇)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의 내용은 기자헌·이항복·정홍익 등을 참형에 처함으로써 신하로서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경계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자세히 알았다. 나의 뜻은 전에 이미 유시하였다. 기자헌에 대해서는 이미 죄를 정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고,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상소를 보고 자세히 알았다. 나의 뜻은 전에 이미 유시하였다. 기자헌에 대해서는 이미 죄를 정하였으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고,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가 세 번째 아뢰고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양사의 서리(書吏) 최득룡(崔得龍)·곽수한(郭守漢)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신중히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기를 청한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산학 교수(算學敎授) 강인경(康仁慶) 등이 상소하기를,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신중히 처치해서 국가의 변란을 해소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신중히 처치해서 국가의 변란을 해소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훈련 도감 대장 이시언(李時言) 등이 상소하기를, "지극한 덕행으로 왕위를 이어받았고 지극한 효성으로 조상을 받들었으나, 궁중에서 망극한 변고를 당하게 되어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를 사모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내온 지가 10 년이나 되었습니다. 지금 다행히도 큰 의리가 없어지지 않아 공론이 거세게 일어나서, 초야에서는 항의하는 글을 올리고 묘당에서는 헌의(獻議)를 하는가 하면 항간이나 저자거리의 늙은이와 군민(軍民)에 이르기까지 분개하고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다들 말하기를 ‘서궁의 변은 실로 천고에 없던 것으로 마땅히 속히 화근을 제거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나라 안에 말들이 자자하고, 인심이 흉흉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하고 왕법은 지극히 엄격한 것이니,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이 상황을 잘 수습하게 함으로써 인심을 진압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신들은 장관(將官)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의리를 들어 상소하는 것을 삼군(三軍)보다 뒤에 하고 말았으니 죽을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지극한 덕행으로 왕위를 이어받았고 지극한 효성으로 조상을 받들었으나, 궁중에서 망극한 변고를 당하게 되어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를 사모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내온 지가 10 년이나 되었습니다. 지금 다행히도 큰 의리가 없어지지 않아 공론이 거세게 일어나서, 초야에서는 항의하는 글을 올리고 묘당에서는 헌의(獻議)를 하는가 하면 항간이나 저자거리의 늙은이와 군민(軍民)에 이르기까지 분개하고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다들 말하기를 ‘서궁의 변은 실로 천고에 없던 것으로 마땅히 속히 화근을 제거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나라 안에 말들이 자자하고, 인심이 흉흉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하고 왕법은 지극히 엄격한 것이니,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이 상황을 잘 수습하게 함으로써 인심을 진압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신들은 장관(將官)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의리를 들어 상소하는 것을 삼군(三軍)보다 뒤에 하고 말았으니 죽을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7일 무술

전교하였다. "성절사의 선래 역관(先來譯官) 강충립(康忠立)은 가자한 다음 실직을 제수하고, 군관(軍官) 송충신(宋忠信)은 가자한 다음 높은 품계의 군직(軍職)을 제수하라."
"성절사의 선래 역관(先來譯官) 강충립(康忠立)은 가자한 다음 실직을 제수하고, 군관(軍官) 송충신(宋忠信)은 가자한 다음 높은 품계의 군직(軍職)을 제수하라."

 

검열 이천(李薦)이 서계하기를, "신이 영돈녕 정창연에게 가서 유시를 전하였더니, 그가 아뢰기를 ‘신은 불행하여 병의 증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황공하고 답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영돈녕 정창연에게 가서 유시를 전하였더니, 그가 아뢰기를 ‘신은 불행하여 병의 증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황공하고 답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동지 황윤경(黃允敬) 등이 상소하여,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처치하도록 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내수사 별좌 한덕량(韓德良) 등이 상소하여, 변란의 불씨를 속히 막음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할 것을 연계하니,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영정을 옮겨올 날을 받은 택일단자를 가지고 전교하였다. "1월 4일에 서울을 지나게 되면 상하의 관리들과 군민(軍民)이 모두 설날 전부터 지나는 길에 나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 열흘과 보름 사이로 날을 고쳐 받으라고 하유하라."
"1월 4일에 서울을 지나게 되면 상하의 관리들과 군민(軍民)이 모두 설날 전부터 지나는 길에 나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 열흘과 보름 사이로 날을 고쳐 받으라고 하유하라."

 

관학 유생 정기 등이 재차 상소하였는데, 그 대강에 이르기를, "기자헌을 부처(付處)하는 정도로는 역적을 토벌하는 법대로 다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항복과 정홍익 등도 기자헌과 다름이 없으니 삼사에서는 응당 그들을 함께 처단하도록 요청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날만 보내며 아직도 처단하는 조치를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역적을 토벌하는 문제를 지연시킨 삼사의 책임을 문책하고 이어 세 사람의 역적을 참형에 처함으로써 신령과 사람의 분함을 씻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조정에서 마땅히 처치할 것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기자헌을 부처(付處)하는 정도로는 역적을 토벌하는 법대로 다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항복과 정홍익 등도 기자헌과 다름이 없으니 삼사에서는 응당 그들을 함께 처단하도록 요청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날만 보내며 아직도 처단하는 조치를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역적을 토벌하는 문제를 지연시킨 삼사의 책임을 문책하고 이어 세 사람의 역적을 참형에 처함으로써 신령과 사람의 분함을 씻으소서."
하니, 답하기를,
"조정에서 마땅히 처치할 것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겸사복 양응림(梁應霖)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는 속히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국란을 해소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양사의 전체 관원이 아뢰기를, "삼가 관학 유생 정기 등이 상소한 내용을 보건대, 대개는 ‘이항복과 정홍익은 기자헌과 차이가 없으므로 삼사에서는 마땅히 아울러 청했어야 하는데 잠자코 날짜만 보내면서 아직도 처벌을 지연시키고 있으니 먼저 역적 토벌하는 일을 지연시킨 삼사의 책임을 다스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날 수의(收議)할 때 이항복과 정홍익이 역적을 비호하는 논의에 편들었다는 말을 신들도 들었으므로 즉시 논핵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의한 내용이 아직도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들은 그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자세히 알고난 후에 그들의 죄를 청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생들이 역적 토벌하는 문제를 지연시켰다는 것으로 배척하였으니 신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가 큽니다. 그대로 있을 수가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삼가 관학 유생 정기 등이 상소한 내용을 보건대, 대개는 ‘이항복과 정홍익은 기자헌과 차이가 없으므로 삼사에서는 마땅히 아울러 청했어야 하는데 잠자코 날짜만 보내면서 아직도 처벌을 지연시키고 있으니 먼저 역적 토벌하는 일을 지연시킨 삼사의 책임을 다스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날 수의(收議)할 때 이항복과 정홍익이 역적을 비호하는 논의에 편들었다는 말을 신들도 들었으므로 즉시 논핵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의한 내용이 아직도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들은 그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자세히 알고난 후에 그들의 죄를 청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생들이 역적 토벌하는 문제를 지연시켰다는 것으로 배척하였으니 신들이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가 큽니다. 그대로 있을 수가 없으니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부사과 송영조(宋榮祚)가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역적 기자헌은 간사한 논의를 가장 먼저 제창하여 한 나라의 막대한 논의로 하여금 제기되었다가 바로 중지하게 해서 세월만 보내게 만들었으니, 왕법으로 논한다면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날 전하의 신하라면 어느 누가 드러내놓고 죽이고 싶지 않겠습니까. 어제 우상 한효순이 도당에 분부하여 현직에 있는 관리들과 높고 낮은 전직 관리들로 하여금 아울러 헌의하도록 하였습니다. 신은 대충이나마 가정교육을 받아 임금을 섬기는 대의를 들었으므로 우리 임금 말고 또 다른 서궁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전하께서 꺼려하는 문제라 할지라도 강력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궁은 자기가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성상을 음해하려 하였습니다. 김제남 등이 밀모를 주장하여 은밀히 서양갑·심우영·정협 등과 결탁하여 밖에서 변란을 꾀하게 하고 금란(今蘭)·의일(義一)·고성(高成)·응벽(應璧) 등을 시켜 안에서 저주를 하게 한 온갖 반역 모략은 죄다 서궁이 꾸며낸 것으로서 이에 대한 여러 죄수들의 진술이 일치하여 모든 사실이 다 드러났습니다. 서궁은 이처럼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나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었으니 신하들에게는 그와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의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폐위시켜 내쫓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전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어서 왕법으로 토죄하지 못하고 오늘 헌의하게 된 것입니다. 사사로운 은혜가 비록 간절하다 하더라도 대의는 지극히 엄격한 것입니다. 모자간의 관계로 처리하는 것은 전하의 사사로운 은정이고 의리를 내세워 척결하는 것은 신하로서 해야 할 의리입니다. 경중의 사이에는 큰 법이 존재하는 것이니 절충하여 잘 처리하는 것은 오직 이 두 갈래가 있을 뿐입니다. 무슨 결단하기 어려운 의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헌의할 것이 있습니다. 김제남의 집은 바로 서궁의 옛집이니 김제남의 처를 먼저 축출하고 당분간 서궁을 여기에 옮겨두어 뒷날을 기다리게 한다면, 그것은 《춘추(春秋)》에서 주(邦)땅으로 달아난 애강(哀姜)을 처리한 의리와 근사할 것이며 수직을 서고 변란을 예방하기 위한 방도에도 적합할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의 제의에도 이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역적 기자헌은 간사한 논의를 가장 먼저 제창하여 한 나라의 막대한 논의로 하여금 제기되었다가 바로 중지하게 해서 세월만 보내게 만들었으니, 왕법으로 논한다면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날 전하의 신하라면 어느 누가 드러내놓고 죽이고 싶지 않겠습니까.
어제 우상 한효순이 도당에 분부하여 현직에 있는 관리들과 높고 낮은 전직 관리들로 하여금 아울러 헌의하도록 하였습니다. 신은 대충이나마 가정교육을 받아 임금을 섬기는 대의를 들었으므로 우리 임금 말고 또 다른 서궁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전하께서 꺼려하는 문제라 할지라도 강력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궁은 자기가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성상을 음해하려 하였습니다. 김제남 등이 밀모를 주장하여 은밀히 서양갑·심우영·정협 등과 결탁하여 밖에서 변란을 꾀하게 하고 금란(今蘭)·의일(義一)·고성(高成)·응벽(應璧) 등을 시켜 안에서 저주를 하게 한 온갖 반역 모략은 죄다 서궁이 꾸며낸 것으로서 이에 대한 여러 죄수들의 진술이 일치하여 모든 사실이 다 드러났습니다. 서궁은 이처럼 종묘 사직에 죄를 짓고 나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었으니 신하들에게는 그와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의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폐위시켜 내쫓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전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어서 왕법으로 토죄하지 못하고 오늘 헌의하게 된 것입니다. 사사로운 은혜가 비록 간절하다 하더라도 대의는 지극히 엄격한 것입니다. 모자간의 관계로 처리하는 것은 전하의 사사로운 은정이고 의리를 내세워 척결하는 것은 신하로서 해야 할 의리입니다. 경중의 사이에는 큰 법이 존재하는 것이니 절충하여 잘 처리하는 것은 오직 이 두 갈래가 있을 뿐입니다. 무슨 결단하기 어려운 의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헌의할 것이 있습니다. 김제남의 집은 바로 서궁의 옛집이니 김제남의 처를 먼저 축출하고 당분간 서궁을 여기에 옮겨두어 뒷날을 기다리게 한다면, 그것은 《춘추(春秋)》에서 주(邦)땅으로 달아난 애강(哀姜)을 처리한 의리와 근사할 것이며 수직을 서고 변란을 예방하기 위한 방도에도 적합할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의 제의에도 이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8일 기해

우림위(羽林衛) 전득춘(田得春) 등이 상소하여, 속히 화근을 제거하여 국란을 해소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혜민서 주부 조여로(趙汝櫓) 등이 상소하여, 속히 공론을 따를 것을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 사과 황박(黃珀)이 상소하여, 서궁의 존호를 속히 폐지함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기를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교리 이잠(李埁)·이상항(李尙恒), 부교리 정준(鄭遵), 수찬 신광업(辛光業)·남명우(南溟羽), 부수찬 윤성임(尹聖任)·서국정(徐國楨), 박사 조유선(趙裕善) 등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관학 유생 정기 등이 올린 상소를 보건대, 그 요지는 역적을 치는 일을 지연시켰다는 것으로 삼사를 지척한 것이었습니다. 양사의 많은 관리들이 이미 이로 인하여 인피하였으니, 신들이 어찌 버젓이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삼가 관학 유생 정기 등이 올린 상소를 보건대, 그 요지는 역적을 치는 일을 지연시켰다는 것으로 삼사를 지척한 것이었습니다. 양사의 많은 관리들이 이미 이로 인하여 인피하였으니, 신들이 어찌 버젓이 처치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훈련 도감 기패관(旗牌官) 김계생(金繼生) 등이 상소하여,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처치케 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옥당이 상차하여, 양사를 모두 출사시키도록 명하기를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의정부 서리(書吏) 박언호(朴彦豪) 등이 육조의 여러 부서의 서리들을 거느리고 와서 상소하여, 흔쾌히 공론을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의원(醫員) 박홍헌(朴弘憲) 등이 상소하여, 흔쾌히 공론을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옥당이 연차하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재차 차자를 올리자, 답하기를, "이미 정죄(定罪)하였는데 어찌 번거롭게 논의하는가." 하였다.
"이미 정죄(定罪)하였는데 어찌 번거롭게 논의하는가."
하였다.

 

12월 9일 경자

덕산수(德山守) 이순(李洵)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신의 병세가 위중하여 여러 종실들과 함께 그때 수의(收議)하지 못하였기에 황공하여 대죄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밀 비망기를 봉함하여 정원에 내려보냈는데, 비밀스러운 일이므로 전하지 않았다.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오늘날 국론은 한창 제기되고 있는데 큰일이 결정되지 않고 있으며, 사람들은 다같이 분개하고 있지만 조정의 의견이 더러 차이가 있으므로 인심은 의구에 차 있고 종묘와 사직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신들은 이목 역할을 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오늘의 난국을 목격하고도 정성이 성상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말이 미더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날을 버티다 보니 풍력(風力)이 다 꺾이고, 비록 혈성을 가지고 담당해 보고자 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이 바로 신들이 수심에 젖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기자헌의 죄는 제 자신이 저지른 데서 나온 것이므로 그가 범한 죄에 해당한 벌을 주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전하께서는 사적인 사랑에 치우쳐 줄곧 굳이 거부하고 계시니, 이런 상황에서 저쪽 편만 드는 무리들을 어떻게 징계할 수 있겠으며 공정한 논의를 과연 진작시킬 수 있겠습니까. 공정한 논의가 진작되지 못하고 간사한 무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의구에 차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진정시키며 위태롭게 되어 가는 종묘 사직의 운명을 어떻게 안정시키겠습니까. 정론을 확장시키고 화란을 진압시킬 수 있는 계기는 다만 먼저 기자헌의 죄를 정당하게 다스리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위리 안치시키는 것도 가벼운 법적용인데 어찌 부처하는 정도에만 그치고 말겠습니까.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속히 윤허를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정죄하였다. 어찌 번거롭게 논의하는가." 하였다.
"오늘날 국론은 한창 제기되고 있는데 큰일이 결정되지 않고 있으며, 사람들은 다같이 분개하고 있지만 조정의 의견이 더러 차이가 있으므로 인심은 의구에 차 있고 종묘와 사직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신들은 이목 역할을 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오늘의 난국을 목격하고도 정성이 성상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말이 미더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날을 버티다 보니 풍력(風力)이 다 꺾이고, 비록 혈성을 가지고 담당해 보고자 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이 바로 신들이 수심에 젖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기자헌의 죄는 제 자신이 저지른 데서 나온 것이므로 그가 범한 죄에 해당한 벌을 주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전하께서는 사적인 사랑에 치우쳐 줄곧 굳이 거부하고 계시니, 이런 상황에서 저쪽 편만 드는 무리들을 어떻게 징계할 수 있겠으며 공정한 논의를 과연 진작시킬 수 있겠습니까. 공정한 논의가 진작되지 못하고 간사한 무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의구에 차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진정시키며 위태롭게 되어 가는 종묘 사직의 운명을 어떻게 안정시키겠습니까. 정론을 확장시키고 화란을 진압시킬 수 있는 계기는 다만 먼저 기자헌의 죄를 정당하게 다스리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위리 안치시키는 것도 가벼운 법적용인데 어찌 부처하는 정도에만 그치고 말겠습니까.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속히 윤허를 내리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정죄하였다. 어찌 번거롭게 논의하는가."
하였다.

 

역관 행 사용 장예충(張禮忠)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 의리로써 은혜를 단절하셔서 속히 거행하라고 명하소서." 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헌납 조정립이 아뢰기를, "신이 실로 죽을 병이 들어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임금의 명에 달려가지 않았으니 태만한 죄를 지은 것이고, 대론이 한창 제기되고 있는데 회피한 형적이 드러났으니, 이것으로나 저것으로나 엄한 벌로 다스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또한 여러 날을 조리하였으나 차도를 보지 못하다가 지금에서야 와서 인피하게 되었으니 신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큽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본원(本院)이 출사시키기를 청하니, 따랐다.
"신이 실로 죽을 병이 들어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임금의 명에 달려가지 않았으니 태만한 죄를 지은 것이고, 대론이 한창 제기되고 있는데 회피한 형적이 드러났으니, 이것으로나 저것으로나 엄한 벌로 다스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또한 여러 날을 조리하였으나 차도를 보지 못하다가 지금에서야 와서 인피하게 되었으니 신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더욱 큽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라고 명하소서."
하였는데,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본원(本院)이 출사시키기를 청하니, 따랐다.

 

행 사직 이상룡(李祥龍)이 상소하기를, "대론을 중간에 중지할 수는 없습니다.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신중히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대론을 중간에 중지할 수는 없습니다. 속히 묘당으로 하여금 신중히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하여 재계하니, 답하기를, "부처(付處)시키는 것이나 위리 안치(圍籬安置)시키는 것이나 다 같은 유배이니 계속 논의할 것이 없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부처(付處)시키는 것이나 위리 안치(圍籬安置)시키는 것이나 다 같은 유배이니 계속 논의할 것이 없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전라도 유학 신상연(申尙淵)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선정신 조식을 문묘에 종사(從祀)하기를 청한 것을 속히 따르고, 응서의 무리가 흉악한 말을 지어내어 선현을 무함한 죄를 흔쾌히 다스려서 나라의 명맥을 부지하라."는 것이었다.

 

승문원 사자관 이경량(李景良) 등과 서원(書員) 김충신(金忠信)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대론이 이미 제기되었으니 흔쾌히 공론을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하여 세 번째 아뢰고,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대신을 부처시키기까지 하였는데 왕법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위리 안치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대신을 부처시키기까지 하였는데 왕법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위리 안치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조 참판 유몽인(柳夢寅)이 유생의 상소에서 배척을 받았다는 이유로 상차하여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차자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12월 10일 신축

예조가 아뢰기를, "존호를 더 올리는 문제를 가지고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우의정 한효순은 아뢰기를 ‘임진년에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위급한 보고가 있게 되어 인심이 혼란스러운 때에 성상께서는 직접 묘사(廟社)의 신주를 모시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시면서 「종묘와 사직이 여기에 있는데 나만 홀로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하늘도 땅도 귀신도 모두 감동하여 결국은 왕업을 다시 회복하고 종묘의 모습이 이전과 같이 되었으니, 단지 네 글자만으로는 공적의 만분의 일도 형용하기에 부족하였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유생이 앞서 단서를 제기하였고 민인백(閔仁伯)이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으니, 다시 의논해서 결정하여 존호를 추가해 올리는 것이 실지로 여론에 부합할 것입니다. 해조의 회계(回啓)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본조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예로부터 세자가 나라 형편이 위급할 때에 군사를 통솔하고 나라를 지킨 일은 간혹 있었지만 종묘 사직의 신주를 모시고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운 상황에서 대업을 완성시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임진년 난리에 성상께서는 직접 종묘 사직의 신주를 모시고 비바람을 무릅쓴 채 산림 속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호타강에 얼음이 얼어붙어 건널 수 있게 됨에 비로소 하늘이 돕는다는 것을 믿었고 송 고종이 진흙으로 만든 말이 길을 막아서 가지 않아 화를 모면하게 됨에 과연 신령이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난 다닐 때의 고초와 외롭고 절박한 정상에 대해서는 어찌 차마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성상의 효성이 끝이 없고 정성이 두터움을 힘입어 신주(神主)를 중도에 묻어두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고 절간에 모셔두자는 여러 관리들의 의견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공중에 떠도는 조상 신령의 슬픔을 위로하고 종묘의 면모를 난리통에 완전하게 보호하였으니, 나라가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거듭 융성해진 것이 누구의 힘이며 누구의 공이겠습니까. 선왕의 명을 잘 계승하고 천자의 조칙도 잘 받아 이루었으니, 큰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되듯 여러 신하들이 공을 돌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여덟 글자의 존호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높은 공적을 충분히 형상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마음을 기울여 크게 나타내는 칭호를 더 올리려 하는 것입니다. 대신들의 의논에 따라 속히 도감을 설치하고 좋은 날을 받아 거행함으로써 성대한 행사를 완결짓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하였다.
"존호를 더 올리는 문제를 가지고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우의정 한효순은 아뢰기를 ‘임진년에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위급한 보고가 있게 되어 인심이 혼란스러운 때에 성상께서는 직접 묘사(廟社)의 신주를 모시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시면서 「종묘와 사직이 여기에 있는데 나만 홀로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하늘도 땅도 귀신도 모두 감동하여 결국은 왕업을 다시 회복하고 종묘의 모습이 이전과 같이 되었으니, 단지 네 글자만으로는 공적의 만분의 일도 형용하기에 부족하였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유생이 앞서 단서를 제기하였고 민인백(閔仁伯)이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으니, 다시 의논해서 결정하여 존호를 추가해 올리는 것이 실지로 여론에 부합할 것입니다. 해조의 회계(回啓)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본조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예로부터 세자가 나라 형편이 위급할 때에 군사를 통솔하고 나라를 지킨 일은 간혹 있었지만 종묘 사직의 신주를 모시고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운 상황에서 대업을 완성시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임진년 난리에 성상께서는 직접 종묘 사직의 신주를 모시고 비바람을 무릅쓴 채 산림 속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호타강에 얼음이 얼어붙어 건널 수 있게 됨에 비로소 하늘이 돕는다는 것을 믿었고 송 고종이 진흙으로 만든 말이 길을 막아서 가지 않아 화를 모면하게 됨에 과연 신령이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난 다닐 때의 고초와 외롭고 절박한 정상에 대해서는 어찌 차마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성상의 효성이 끝이 없고 정성이 두터움을 힘입어 신주(神主)를 중도에 묻어두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고 절간에 모셔두자는 여러 관리들의 의견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공중에 떠도는 조상 신령의 슬픔을 위로하고 종묘의 면모를 난리통에 완전하게 보호하였으니, 나라가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거듭 융성해진 것이 누구의 힘이며 누구의 공이겠습니까. 선왕의 명을 잘 계승하고 천자의 조칙도 잘 받아 이루었으니, 큰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름을 얻게 되듯 여러 신하들이 공을 돌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여덟 글자의 존호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높은 공적을 충분히 형상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마음을 기울여 크게 나타내는 칭호를 더 올리려 하는 것입니다. 대신들의 의논에 따라 속히 도감을 설치하고 좋은 날을 받아 거행함으로써 성대한 행사를 완결짓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하였다.

 

이조가 아뢰기를, "강원 감사 서장에서 운운하였습니다. 흡곡 현령(歙谷縣令) 이후근(李厚根), 원주 목사(原州牧使) 신감(申鑑), 간성 군수(杆城郡守) 성준길(成俊吉), 금성 현령(金城縣令) 이부(李阜) 등이 정사를 잘한 사실에 대하여 본도 감사가 모두 포장할 것을 아뢰었으며, 양양 부사(襄陽府使) 심종도(沈宗道)는 부임한 날수도 많지 않은데 역시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니 마땅히 권면하는 은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은명(恩命)에 관한 일은 중대한 것이므로 아래서 마음대로 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상께서 처리하소서." 하니, 모두에게 가자하라고 하였다.
"강원 감사 서장에서 운운하였습니다. 흡곡 현령(歙谷縣令) 이후근(李厚根), 원주 목사(原州牧使) 신감(申鑑), 간성 군수(杆城郡守) 성준길(成俊吉), 금성 현령(金城縣令) 이부(李阜) 등이 정사를 잘한 사실에 대하여 본도 감사가 모두 포장할 것을 아뢰었으며, 양양 부사(襄陽府使) 심종도(沈宗道)는 부임한 날수도 많지 않은데 역시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니 마땅히 권면하는 은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은명(恩命)에 관한 일은 중대한 것이므로 아래서 마음대로 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상께서 처리하소서."
하니, 모두에게 가자하라고 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이런 때에 정승의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날 우상이 올린 차자에 속히 새 정승을 선출하기를 청하기도 하였는데, 아직도 결정을 하지 않고 계시니 사람들이 매우 답답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안으로 우상을 불러들여 덕망있는 사람을 속히 선출함으로써 정승의 수를 채우기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대의를 밝히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문제는 정승이 많고 적은 데에 달려 있지 않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이런 때에 정승의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날 우상이 올린 차자에 속히 새 정승을 선출하기를 청하기도 하였는데, 아직도 결정을 하지 않고 계시니 사람들이 매우 답답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안으로 우상을 불러들여 덕망있는 사람을 속히 선출함으로써 정승의 수를 채우기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대의를 밝히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는 문제는 정승이 많고 적은 데에 달려 있지 않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연계하기를, "기자헌은 가장 먼저 흉측한 차자를 올려 그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데, 성상께서는 부처(付處)하는 것으로 다스려 가벼운 법을 약간 적용하고 말았습니다. 고금 천하에 어찌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데 가벼운 법을 약간 적용하고 마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기자헌의 죄는 저렇게 무거운데 성상께서 기자헌을 죄주는 정도는 이렇듯 가볍게 하셔서 매번 위리 안치시키는 것은 지나치다고 전교하시니, 신들은 실로 성상의 의도한 바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국시가 정해지지 않고 인심이 의구에 차 있는 날을 당하여 비록 우레와 같은 위엄으로 철퇴를 가하더라도 오히려 간사한 논의가 들고 일어남에 따라 대의(大義)가 밝혀지지 못할까 우려되는데, 더구나 가벼운 법을 흉악한 역적의 괴수에게 그릇 적용하고 계시니 그러고도 대의를 밝히고 큰일을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채 역적의 괴수를 옹호하였으니 신들이 주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헌 자신이 스스로 주벌을 받는 것이며,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명과 사람이 함께 분노하고 있으니 성상께서 주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명과 사람들이 주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에 해당하는 법으로 논한다면 주벌을 가하고 육형을 가하더라도 오히려 그 죄에 해당하는 처벌이라고 하기 어려운데 더구나 이 위리 안치시키는 정도의 말감(末減)을 성상께서는 무슨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오래 끌고 계십니까. 청컨대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속히 윤허를 내리소서. 신들이 삼가 이항복과 정홍익 등의 수의(收議)한 내용을 보건대, 우순(虞舜)이 변란에 대처한 도리를 인용하여 말하였습니다. 우순의 경우는 인륜상의 극치이므로 진실로 법으로 삼아야 하겠지만 오늘날의 일과 비교한다면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의 우순은 일개 개인이었으므로 비록 사나운 어미에게 침해를 당했더라도 이는 재앙이 한 몸에 그칠 뿐이었으며 우순이 자식된 직분을 다한 것도 우순이 우순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왕(帝王)은 종묘 사직과 신민의 부탁을 받고 있는 몸입니다. 그러므로 화변을 만나게 되면 종묘 사직과 신민에게 그 화변이 미치게 되기 때문에 제왕이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는 일개 개인이 하는 것처럼 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합니다. 설령 순이 이미 왕위에 있는 상황에서 사나운 어미가 순에게 이와 같이 침해하였다면 순이야 비록 어미로 대한다 하더라도 순의 신하들의 처지에서 순이 침해당하는 것을 뻔히 바라만 보고 사나운 어미의 죄를 밝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살인은 미미한 죄인데도 고요(皐陶)는 오히려 고수(瞽瞍)를 잡아 가둘 것이며 그러는 고요를 순은 말리지 못하고 단지 몰래 엎고서 도망칠 계획만 세울 것이라고 하였으니,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로 처리하고 어미와 자식 사이에는 은혜로 대처하는 도리가 어찌 크게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고와 저주를 자행한 변고가 발각되었고 역모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만일 흉악한 음모가 그 당시에 이루어졌더라면 성상께서는 어떠한 처지에 있게 되었겠으며 종묘 사직과 신민들의 화는 어떠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서궁을 몰래 엎고 도망갈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상의 신하 된 자들이 유독 고요가 집행한 것처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묘당에서 수의한 것은 단지 신하들이 대처해야 할 도리를 가지고 서로 의논해서 절충할 논의를 물으려는 것뿐으로 성상은 그 사이에 조금도 간여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항복과 정홍익 등은 묘당의 물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감히 위협하는 말로 마치 성상에게 헌의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그 속셈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의리는 밝지 못하고 정론은 오랫동안 막혀 있었는데 어쩌다 다행스럽게도 재야에서 항의하는 상소를 올리고 모든 백성들이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이는 신하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대의를 밝히고 큰일을 결정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항복과 정홍익은 뜻을 얻지 못하여 임금을 원망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회를 틈타 손뼉을 치면서 감히 역적을 편들 계획을 하면서 장황하게 비유를 끌어대고 참여한 바 없는 전하까지 언급하여서 기어이 대악(大惡)의 이름에 빠져들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역적을 비호하고 복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원수를 잊고 임금을 저버린 죄는 기자헌보다 심합니다. 이항복이 수의한 내용 중에 이른바 ‘급(伋)의 처는 백(白)의 어미이다.’라는 말에 있어서는 더욱 통분함을 느낍니다. 어찌 신하된 자가 임금에게 고하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임금이 모욕을 당하면 신하가 대신 죽는다는 옛사람의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들이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차마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김덕함(金德諴)은 이항복·정홍익과 한 뜻이라고 말해 그 마음이 같았고 보면 그 죄를 다르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니, 이항복·정홍익·김덕함 등을 아울러 절도(絶島)에다 위리 안치시켜서 신민들의 분한 마음을 씻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이항복은 관작만 삭탈하고 정홍익과 김덕함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기자헌은 가장 먼저 흉측한 차자를 올려 그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데, 성상께서는 부처(付處)하는 것으로 다스려 가벼운 법을 약간 적용하고 말았습니다. 고금 천하에 어찌 죄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데 가벼운 법을 약간 적용하고 마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기자헌의 죄는 저렇게 무거운데 성상께서 기자헌을 죄주는 정도는 이렇듯 가볍게 하셔서 매번 위리 안치시키는 것은 지나치다고 전교하시니, 신들은 실로 성상의 의도한 바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국시가 정해지지 않고 인심이 의구에 차 있는 날을 당하여 비록 우레와 같은 위엄으로 철퇴를 가하더라도 오히려 간사한 논의가 들고 일어남에 따라 대의(大義)가 밝혀지지 못할까 우려되는데, 더구나 가벼운 법을 흉악한 역적의 괴수에게 그릇 적용하고 계시니 그러고도 대의를 밝히고 큰일을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채 역적의 괴수를 옹호하였으니 신들이 주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헌 자신이 스스로 주벌을 받는 것이며, 종묘 사직에 죄를 지어 신명과 사람이 함께 분노하고 있으니 성상께서 주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명과 사람들이 주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에 해당하는 법으로 논한다면 주벌을 가하고 육형을 가하더라도 오히려 그 죄에 해당하는 처벌이라고 하기 어려운데 더구나 이 위리 안치시키는 정도의 말감(末減)을 성상께서는 무슨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오래 끌고 계십니까. 청컨대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속히 윤허를 내리소서.
신들이 삼가 이항복과 정홍익 등의 수의(收議)한 내용을 보건대, 우순(虞舜)이 변란에 대처한 도리를 인용하여 말하였습니다. 우순의 경우는 인륜상의 극치이므로 진실로 법으로 삼아야 하겠지만 오늘날의 일과 비교한다면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의 우순은 일개 개인이었으므로 비록 사나운 어미에게 침해를 당했더라도 이는 재앙이 한 몸에 그칠 뿐이었으며 우순이 자식된 직분을 다한 것도 우순이 우순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왕(帝王)은 종묘 사직과 신민의 부탁을 받고 있는 몸입니다. 그러므로 화변을 만나게 되면 종묘 사직과 신민에게 그 화변이 미치게 되기 때문에 제왕이 변란에 대처하는 도리는 일개 개인이 하는 것처럼 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합니다. 설령 순이 이미 왕위에 있는 상황에서 사나운 어미가 순에게 이와 같이 침해하였다면 순이야 비록 어미로 대한다 하더라도 순의 신하들의 처지에서 순이 침해당하는 것을 뻔히 바라만 보고 사나운 어미의 죄를 밝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살인은 미미한 죄인데도 고요(皐陶)는 오히려 고수(瞽瞍)를 잡아 가둘 것이며 그러는 고요를 순은 말리지 못하고 단지 몰래 엎고서 도망칠 계획만 세울 것이라고 하였으니,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로 처리하고 어미와 자식 사이에는 은혜로 대처하는 도리가 어찌 크게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고와 저주를 자행한 변고가 발각되었고 역모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만일 흉악한 음모가 그 당시에 이루어졌더라면 성상께서는 어떠한 처지에 있게 되었겠으며 종묘 사직과 신민들의 화는 어떠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서궁을 몰래 엎고 도망갈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상의 신하 된 자들이 유독 고요가 집행한 것처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묘당에서 수의한 것은 단지 신하들이 대처해야 할 도리를 가지고 서로 의논해서 절충할 논의를 물으려는 것뿐으로 성상은 그 사이에 조금도 간여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항복과 정홍익 등은 묘당의 물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감히 위협하는 말로 마치 성상에게 헌의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그 속셈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의리는 밝지 못하고 정론은 오랫동안 막혀 있었는데 어쩌다 다행스럽게도 재야에서 항의하는 상소를 올리고 모든 백성들이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이는 신하들이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대의를 밝히고 큰일을 결정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켜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항복과 정홍익은 뜻을 얻지 못하여 임금을 원망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회를 틈타 손뼉을 치면서 감히 역적을 편들 계획을 하면서 장황하게 비유를 끌어대고 참여한 바 없는 전하까지 언급하여서 기어이 대악(大惡)의 이름에 빠져들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역적을 비호하고 복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원수를 잊고 임금을 저버린 죄는 기자헌보다 심합니다. 이항복이 수의한 내용 중에 이른바 ‘급(伋)의 처는 백(白)의 어미이다.’라는 말에 있어서는 더욱 통분함을 느낍니다. 어찌 신하된 자가 임금에게 고하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임금이 모욕을 당하면 신하가 대신 죽는다는 옛사람의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들이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차마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김덕함(金德諴)은 이항복·정홍익과 한 뜻이라고 말해 그 마음이 같았고 보면 그 죄를 다르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니, 이항복·정홍익·김덕함 등을 아울러 절도(絶島)에다 위리 안치시켜서 신민들의 분한 마음을 씻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이항복은 관작만 삭탈하고 정홍익과 김덕함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내금위 박호(朴浩)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속히 공론을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공홍도 진사 최상질(崔尙質)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서궁에 실시하는 분조(分朝)·조알(朝謁)·공헌(貢獻) 등의 일을 철거하고, 속히 기자헌·이항복·정홍익·김덕함 등을 참형에 처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하여 재차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이항복을 위리 안치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유시하였다. 이항복을 위리 안치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옥당이 차자를 올렸다. 그 대개에 이르기를, "기자헌·이항복·정홍익·김덕함은 모두 그 죄가 같습니다. 그런데 위리 안치하는 벌을 단지 소원(疎遠)하고 미천(微賤)한 사람에게만 적용하고 귀근(貴近)한 신하에게는 집행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난신적자를 징계시키고 인심을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분개하는 여론을 씻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죄를 정하였으니,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기자헌·이항복·정홍익·김덕함은 모두 그 죄가 같습니다. 그런데 위리 안치하는 벌을 단지 소원(疎遠)하고 미천(微賤)한 사람에게만 적용하고 귀근(貴近)한 신하에게는 집행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난신적자를 징계시키고 인심을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공론을 흔쾌히 따라서 분개하는 여론을 씻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죄를 정하였으니, 번거롭게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하여 세 번째 아뢰고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강릉 참봉(康陵參奉) 유증화(柳增華),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 정준(鄭儁), 헌릉 참봉(獻陵參奉) 유신남(柳信男), 영릉 참봉(英陵參奉) 이협(李筴), 현릉 참봉(顯陵參奉) 이운(李蕓)·최진영(崔震榮), 광릉 참봉(光陵參奉) 이덕부(李德溥), 창릉 참봉(昌陵參奉) 박동민(朴東民), 공릉 참봉(恭陵參奉) 이유형(李惟馨)·김진개(金進凱), 경릉 참봉(敬陵參奉) 민결(閔潔), 선릉 참봉(宣陵參奉) 정창언(鄭昌言)·박대건(朴大健), 순릉 참봉(順陵參奉) 유철견(柳鐵堅), 정릉 참봉(靖陵參奉) 이태기(李泰基)·안홍중(安弘重), 희릉 참봉(禧陵參奉) 박승훈(朴承勳)·박니(朴柅), 태릉 참봉(泰陵參奉) 양기(梁機), 효릉 참봉(孝陵參奉) 기징헌(奇徵獻)·한권(韓權), 강릉 참봉(康陵參奉) 유위(柳偉), 목릉 참봉(穆陵參奉) 변일(邊逸)·심대림(沈大臨), 유릉 참봉(裕陵參奉) 정재윤(鄭再胤)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들이 외람되게 열성들의 능침을 지키면서 녹봉을 받고 직무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영(先靈)을 공경하는 마음과 국가를 염려하는 정성이 자연히 다른 사람보다 배나 됩니다. 그런데 국가가 불행하여 지난 계축년에 김제남이 역모를 꾀하자 서궁이 모의에 가담하여 여러 역적들과 결탁해 궁중에서 저주를 자행하여 성상을 침해하려고 함으로써 국가의 운명이 거의 이전될 뻔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미로서의 도리를 단절시켰다.’는 상소가 갑자기 재야의 선비들에게서 나옴에 따라 흉악한 무리들이 죄를 인정하고 왕법이 대략 거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화근이 아직 그대로 있어서 국시는 정해지지 않고 의리는 막혀 있으며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 온 나라 수천 리가 온통 금수의 땅이 되게 생겼는데, 초야의 충의로운 선비가 천리 길을 달려와서 정성어린 상소를 올림으로 해서 대의가 다시 밝아지고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습니다. 위로는 조정과 관학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리와 군민에 이르기까지 서로 진지한 계획을 진달하고 큰 국면을 완결시키기를 청하였습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아서 가면 갈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있는데, 더구나 신들은 모두 국가의 은혜를 입은 집사(執事)의 반열에 있으니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 방민(坊民)이나 하서(下胥)들만 못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위하고 한편으로는 백성을 위하여 속히 삼사의 청에 따라 즉시 새로운 정승을 뽑아서 그로 하여금 여론을 따라 화근을 제거하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국가에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신들이 외람되게 열성들의 능침을 지키면서 녹봉을 받고 직무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영(先靈)을 공경하는 마음과 국가를 염려하는 정성이 자연히 다른 사람보다 배나 됩니다.
그런데 국가가 불행하여 지난 계축년에 김제남이 역모를 꾀하자 서궁이 모의에 가담하여 여러 역적들과 결탁해 궁중에서 저주를 자행하여 성상을 침해하려고 함으로써 국가의 운명이 거의 이전될 뻔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미로서의 도리를 단절시켰다.’는 상소가 갑자기 재야의 선비들에게서 나옴에 따라 흉악한 무리들이 죄를 인정하고 왕법이 대략 거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화근이 아직 그대로 있어서 국시는 정해지지 않고 의리는 막혀 있으며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 온 나라 수천 리가 온통 금수의 땅이 되게 생겼는데, 초야의 충의로운 선비가 천리 길을 달려와서 정성어린 상소를 올림으로 해서 대의가 다시 밝아지고 공론이 이미 제기되었습니다. 위로는 조정과 관학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리와 군민에 이르기까지 서로 진지한 계획을 진달하고 큰 국면을 완결시키기를 청하였습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아서 가면 갈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있는데, 더구나 신들은 모두 국가의 은혜를 입은 집사(執事)의 반열에 있으니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 방민(坊民)이나 하서(下胥)들만 못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한편으로는 종묘 사직을 위하고 한편으로는 백성을 위하여 속히 삼사의 청에 따라 즉시 새로운 정승을 뽑아서 그로 하여금 여론을 따라 화근을 제거하게 하소서. 그리하신다면 국가에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11일 임인

유학 박몽준(朴夢俊)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서궁은 국가의 화근입니다. 속히 그를 처치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패망하게 될 염려가 곧 닥쳐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은 지난 가을 사이에 대략 중국에 정청(呈請)하는 일을 가지고 전하에게 진달하였으나, 성상의 비답이 아직 내려오지 않아서 지레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남도 지방에 있으면서 본도의 인심을 살펴보니 모두 들뜬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정온(鄭蘊)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구(鄭逑)와 정경세(鄭經世) 등의 무리들이 유생의 상소가 올려졌다는 말을 얼핏 듣고서 모두 말하기를 ‘인륜상의 변고는 극력 논쟁해서 그 논의를 막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습니다. 열읍의 유생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인심을 들뜨게 만들고 있으니, 그 형세가 마지막에는 변란을 불러 일으키고 말 것입니다. 좌상 정인홍이 비록 도내에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진압해 내지 못할 것 같아 신은 삼가 민망한 생각만 들 뿐입니다. 대체로 영남 지방의 인심이 변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는 것은 신이 눈으로 본 바이고 서울 사람들이 의구에 차 있다는 것은 신이 귀로 들은 바입니다. 이것으로 보면 주상의 위급함은 마치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침묵만 지키고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십니다. 말이 여기에 이르니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리고 신하들의 마음이 각각 다릅니다. 소북(小北)은 서궁이 결국에 가서는 화근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여 대북(大北)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인(南人)들은 모두 교활한 무리들로서 누가 성공하고 실패하는가를 앉아서 바라보면서 은밀히 서인(西人)과 한 패가 되고 있으며, 서인들은 줄곧 서궁에게 마음을 돌려 기어코 그를 보호함으로써 후일의 부귀를 누릴 터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험삼아 오늘 수의(收議)한 내용을 가지고 보건대, 이항복은 김제남 무리의 괴수로서 임금을 모욕하는 말을 가장 먼저 하였고, 정홍익은 남인으로 서인에게 붙은 자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괴이한 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김권·오윤겸·김덕함 등의 무리들은 모두 서인으로서 그 논의에 부화뇌동한 정상이 이미 드러나고 반역을 꾀한 정상이 분명한데 이런 자들을 엄한 벌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장차 무엇으로 인심을 감복시켜 국시(國是)를 결정하겠으며, 화변의 불씨를 막아 임금의 위엄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이 가장 먼저 흉측한 차자를 올린 것은 서인들이 부추겨줄 것을 믿고 감히 임금을 저버릴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 가장 알맞은 계책으로는 이항복과 기자헌 등을 참형에 처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왕법을 바로잡고 속히 대신을 불러들여 조정 신하들의 의견을 수합한 것을 보여 준 다음 즉시 서궁의 지위를 폄삭시킨다면, 정구와 정경세의 무리가 비록 변란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더라도 화근이 이미 제거되면 흉계도 제거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감히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신에게는 드릴 말씀이 또 있습니다. 서궁의 일을 단지 폄삭만 가한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막된 무리들이 감히 부추기고 옹호할 계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대의로 결단하여 화근을 영원히 근절시킨다면 누가 감히 이론을 제기하여 여기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호씨(胡氏)는 무후(武后)를 논의하면서 말하기를 ‘대신이 역적의 우두머리를 태묘에서 수죄하고 참형에 처하되 중종(中宗)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였는데, 주자(朱子)는 이 말을 특별히 《강목(綱目)》에다 실었습니다. 지금 서궁의 악에 대해 성균관 유생이 수죄한 열 가지 죄는 무씨의 아홉 가지 죄악보다 더 심합니다. 만약 이에 근거하여 거행한다면 의리에 부합할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속히 신의 상소를 묘당에 내려서 변란을 대처하게 함으로써 화변의 불씨를 방지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서궁은 국가의 화근입니다. 속히 그를 처치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패망하게 될 염려가 곧 닥쳐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은 지난 가을 사이에 대략 중국에 정청(呈請)하는 일을 가지고 전하에게 진달하였으나, 성상의 비답이 아직 내려오지 않아서 지레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남도 지방에 있으면서 본도의 인심을 살펴보니 모두 들뜬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정온(鄭蘊)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구(鄭逑)와 정경세(鄭經世) 등의 무리들이 유생의 상소가 올려졌다는 말을 얼핏 듣고서 모두 말하기를 ‘인륜상의 변고는 극력 논쟁해서 그 논의를 막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습니다. 열읍의 유생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인심을 들뜨게 만들고 있으니, 그 형세가 마지막에는 변란을 불러 일으키고 말 것입니다. 좌상 정인홍이 비록 도내에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진압해 내지 못할 것 같아 신은 삼가 민망한 생각만 들 뿐입니다.
대체로 영남 지방의 인심이 변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는 것은 신이 눈으로 본 바이고 서울 사람들이 의구에 차 있다는 것은 신이 귀로 들은 바입니다. 이것으로 보면 주상의 위급함은 마치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침묵만 지키고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십니다. 말이 여기에 이르니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리고 신하들의 마음이 각각 다릅니다. 소북(小北)은 서궁이 결국에 가서는 화근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여 대북(大北)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인(南人)들은 모두 교활한 무리들로서 누가 성공하고 실패하는가를 앉아서 바라보면서 은밀히 서인(西人)과 한 패가 되고 있으며, 서인들은 줄곧 서궁에게 마음을 돌려 기어코 그를 보호함으로써 후일의 부귀를 누릴 터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험삼아 오늘 수의(收議)한 내용을 가지고 보건대, 이항복은 김제남 무리의 괴수로서 임금을 모욕하는 말을 가장 먼저 하였고, 정홍익은 남인으로 서인에게 붙은 자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괴이한 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김권·오윤겸·김덕함 등의 무리들은 모두 서인으로서 그 논의에 부화뇌동한 정상이 이미 드러나고 반역을 꾀한 정상이 분명한데 이런 자들을 엄한 벌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장차 무엇으로 인심을 감복시켜 국시(國是)를 결정하겠으며, 화변의 불씨를 막아 임금의 위엄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기자헌이 가장 먼저 흉측한 차자를 올린 것은 서인들이 부추겨줄 것을 믿고 감히 임금을 저버릴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 가장 알맞은 계책으로는 이항복과 기자헌 등을 참형에 처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왕법을 바로잡고 속히 대신을 불러들여 조정 신하들의 의견을 수합한 것을 보여 준 다음 즉시 서궁의 지위를 폄삭시킨다면, 정구와 정경세의 무리가 비록 변란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더라도 화근이 이미 제거되면 흉계도 제거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감히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신에게는 드릴 말씀이 또 있습니다. 서궁의 일을 단지 폄삭만 가한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막된 무리들이 감히 부추기고 옹호할 계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대의로 결단하여 화근을 영원히 근절시킨다면 누가 감히 이론을 제기하여 여기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호씨(胡氏)는 무후(武后)를 논의하면서 말하기를 ‘대신이 역적의 우두머리를 태묘에서 수죄하고 참형에 처하되 중종(中宗)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였는데, 주자(朱子)는 이 말을 특별히 《강목(綱目)》에다 실었습니다. 지금 서궁의 악에 대해 성균관 유생이 수죄한 열 가지 죄는 무씨의 아홉 가지 죄악보다 더 심합니다. 만약 이에 근거하여 거행한다면 의리에 부합할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속히 신의 상소를 묘당에 내려서 변란을 대처하게 함으로써 화변의 불씨를 방지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부제학 이호신(李好信)은 본래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사림에 붙었다가 뒤에는 최영경을 섬기는 등 이랬다저랬다 하는 자인데 아직도 관작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땅히 태도와 마음을 고쳐 성은을 보답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번에 옥당의 장관이 되어서는 심희수의 논을 교묘하게 피하려고 다 모인 자리에서 도망쳐 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본직에 제수되자, 또 그전의 태도를 취하면서 남에게 말하기를 맹세코 이 논의를 따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벼슬을 제수한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소명(召命)을 받고도 10여 일 동안이나 지연시키다가 비로소 성문 밖에 와서 또 어버이의 병환을 핑계댈 뿐 나와서 사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대론에 대하여 온 나라의 신민이 어느 누가 의분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미천한 서리들도 오히려 다 상소하곤 하는데 그자만 유독 망설이면서 성패를 관망만 하고 있으니 은밀히 두 마음을 가져 나라를 저버리고 임금을 망각한 그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작을 삭탈하고 성문 밖으로 출송시키소서." 하니, 파직만 하라고 답하였다.
"부제학 이호신(李好信)은 본래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사림에 붙었다가 뒤에는 최영경을 섬기는 등 이랬다저랬다 하는 자인데 아직도 관작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땅히 태도와 마음을 고쳐 성은을 보답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번에 옥당의 장관이 되어서는 심희수의 논을 교묘하게 피하려고 다 모인 자리에서 도망쳐 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본직에 제수되자, 또 그전의 태도를 취하면서 남에게 말하기를 맹세코 이 논의를 따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벼슬을 제수한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소명(召命)을 받고도 10여 일 동안이나 지연시키다가 비로소 성문 밖에 와서 또 어버이의 병환을 핑계댈 뿐 나와서 사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대론에 대하여 온 나라의 신민이 어느 누가 의분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미천한 서리들도 오히려 다 상소하곤 하는데 그자만 유독 망설이면서 성패를 관망만 하고 있으니 은밀히 두 마음을 가져 나라를 저버리고 임금을 망각한 그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작을 삭탈하고 성문 밖으로 출송시키소서."
하니, 파직만 하라고 답하였다.

 

은(銀)을 바친 당상관 최학(崔鶴)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선비들의 논의를 흔쾌히 따르고 삼사의 요청을 속히 허락함으로써 큰 계책으로 하여금 중간에 저지되고 나랏일이 날로 그릇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가 연계하여, 기자헌과 이항복을 위리 안치하라고 청하니, 답하기를, "헌의한 내용 중에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도 있고 ‘아름다움을 훔치려 한다.’는 말도 있으며, 병을 핑계댄 자도 있고 모호하게 말한 자도 있으며, 남에게 떠넘긴 자도 있다. 이런 자들을 다 다스릴 수 없어서 단지 기자헌은 부처(付處)하고 이항복은 관직을 삭탈하게 한 것이니, 실은 이것도 공론을 중시한 데서 나온 것이다. 형률을 더할 것이 없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헌의한 내용 중에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도 있고 ‘아름다움을 훔치려 한다.’는 말도 있으며, 병을 핑계댄 자도 있고 모호하게 말한 자도 있으며, 남에게 떠넘긴 자도 있다. 이런 자들을 다 다스릴 수 없어서 단지 기자헌은 부처(付處)하고 이항복은 관직을 삭탈하게 한 것이니, 실은 이것도 공론을 중시한 데서 나온 것이다. 형률을 더할 것이 없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합사가 재차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참작하여 처리한 것이니, 억지부리지 말라." 하였다.
"이미 참작하여 처리한 것이니, 억지부리지 말라."
하였다.

 

훈련 도감 습독관 이언필(李彦弼) 등이 상소하여,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처치하게 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옥당이 잇따라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헌의한 내용 중에 역적을 편들며 임금을 우롱한 자가 한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는데 그들을 어찌 다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죄목으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기자헌 등은 이미 참작하여 처리하였으니 억지로 고집부리지 말라." 하였다.
"헌의한 내용 중에 역적을 편들며 임금을 우롱한 자가 한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는데 그들을 어찌 다 임금을 잊고 나라를 등진 죄목으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기자헌 등은 이미 참작하여 처리하였으니 억지로 고집부리지 말라."
하였다.

 

이조 판서 민몽룡이 차자를 올려 사직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경의 정성을 자세히 알았다. 좌의정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경은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전형(銓衡)을 바르게 하여, 군자를 나오게 하고 소인은 물러가게 함으로써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한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라." 하였다.
"차자를 보고 경의 정성을 자세히 알았다. 좌의정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경은 안심하여 사직하지 말고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전형(銓衡)을 바르게 하여, 군자를 나오게 하고 소인은 물러가게 함으로써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한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라."
하였다.

 

합사가 세 번째 아뢰고,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기자헌은 먼곳으로 귀양 보내고 이항복은 고향으로 돌려 보내라." 하였다.
"기자헌은 먼곳으로 귀양 보내고 이항복은 고향으로 돌려 보내라."
하였다.

 

훈련 도감 좌우 포도 대장이 비밀리에 전교를 듣고 나갔다.

 

정홍익은 진도(珍島)에, 김덕함은 남해(南海)에 위리 안치하였다.

 

칠원 현감(漆原縣監) 권성오(權省吾)가 흉서를 위조한 노극함(盧克諴)을 체포했다고 장황하게 첩보(牒報)를 올리고, 좌병사가 도적 잡는 군사를 증설하여 사찰을 엄하게 하고 인하여 치계하여 알려 왔다.

 

정국(庭鞫)을 실시하였다. 【이후부터는 매일 추국을 실시하였다.】

 

유학 이국헌(李國獻)·이국광(李國光) 등이 상소하기를, "애강(哀姜)이 역모에 가담함으로 해서 노(魯)나라가 하마터면 위태로울 뻔하였고, 무영(武嬰)이 역모를 함으로 해서 당(唐)나라의 운명이 끝장날 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 서궁은 오늘날의 애강이며 무영인 것이며, 선왕의 죄인인 것입니다. 선왕에게 죄를 얻었다면 조종과 신령이 이미 관계를 끊었을 것입니다. 선왕이 만일 살아계신다면 반드시 그를 폐위시켜 육형을 가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애강은 큰 의리를 이미 단절시켰으므로 다시는 종묘에 모실 수 없다.’고 하였고, 선유인 호씨(胡氏)는 정론(定論)을 내리기를 ‘장간지(張柬之) 등은 응당 무씨가 죄인의 괴수라는 것을 밝혀서 종묘에 고하고 주벌을 가하는 것이 가한 일이었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정치를 하면서 《춘추(春秋)》의 큰 의리와 옛 선비들의 논리처럼 하기만 한다면 만대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신들은 나라가 장차 위태롭게 되고 임금이 억울한 이름에 빠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에 감히 《춘추(春秋)》 의 대의와 선유의 정론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신들의 상소를 조정에 내려 보이소서. 그리하여 신들이 논의한 것이 만약 이치에 부당하다면 신들이 망령스레 말한 죄를 다스리소서. 더구나 지금 역적의 잔당을 아직 다 제거하지 못하였는데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노(魯)나라와 당(唐)나라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변란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우리 전하께서는 지금 불붙은 땔나무 위에 누워 있는 것과 같은데도 종묘 사직에 대한 계획을 소홀히 하고 있으니 신들은 삼가 전하를 위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바입니다. 오직 다행스럽게도 여러 유생들이 의분심에 차서 역적을 토벌하자고 요청하였으니, 이는 바로 묘당의 대신은 백관을 거느리고 서둘러 정청을 실시하되 화급을 다투듯이 해야 할 터인데 어찌 좌상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우상은 출사한 후에도 정청을 하지 않고 세월만 보내고 있고, 삼사에 몸을 담고 있는 자들도 시비를 논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건장하고 민첩한 벼슬아치가 유생만도 못하단 말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직무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삼사의 죄를 다스리시고 이어서 흉악한 무함을 자행한 무리들을 모두 처벌하여서 인심을 안정시키고 속히 훌륭한 재상을 뽑아서 국시를 확정하소서. 그리고 《춘추(春秋)》의 대의를 법으로 삼고 호씨의 정론을 따라 종묘 사직의 큰 계획을 중하게 여길 것이며 태종 대왕(太宗大王)의 밝은 법을 시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애강(哀姜)이 역모에 가담함으로 해서 노(魯)나라가 하마터면 위태로울 뻔하였고, 무영(武嬰)이 역모를 함으로 해서 당(唐)나라의 운명이 끝장날 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 서궁은 오늘날의 애강이며 무영인 것이며, 선왕의 죄인인 것입니다. 선왕에게 죄를 얻었다면 조종과 신령이 이미 관계를 끊었을 것입니다. 선왕이 만일 살아계신다면 반드시 그를 폐위시켜 육형을 가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애강은 큰 의리를 이미 단절시켰으므로 다시는 종묘에 모실 수 없다.’고 하였고, 선유인 호씨(胡氏)는 정론(定論)을 내리기를 ‘장간지(張柬之) 등은 응당 무씨가 죄인의 괴수라는 것을 밝혀서 종묘에 고하고 주벌을 가하는 것이 가한 일이었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정치를 하면서 《춘추(春秋)》의 큰 의리와 옛 선비들의 논리처럼 하기만 한다면 만대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신들은 나라가 장차 위태롭게 되고 임금이 억울한 이름에 빠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에 감히 《춘추(春秋)》 의 대의와 선유의 정론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신들의 상소를 조정에 내려 보이소서. 그리하여 신들이 논의한 것이 만약 이치에 부당하다면 신들이 망령스레 말한 죄를 다스리소서.
더구나 지금 역적의 잔당을 아직 다 제거하지 못하였는데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노(魯)나라와 당(唐)나라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변란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우리 전하께서는 지금 불붙은 땔나무 위에 누워 있는 것과 같은데도 종묘 사직에 대한 계획을 소홀히 하고 있으니 신들은 삼가 전하를 위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바입니다.
오직 다행스럽게도 여러 유생들이 의분심에 차서 역적을 토벌하자고 요청하였으니, 이는 바로 묘당의 대신은 백관을 거느리고 서둘러 정청을 실시하되 화급을 다투듯이 해야 할 터인데 어찌 좌상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우상은 출사한 후에도 정청을 하지 않고 세월만 보내고 있고, 삼사에 몸을 담고 있는 자들도 시비를 논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건장하고 민첩한 벼슬아치가 유생만도 못하단 말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직무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삼사의 죄를 다스리시고 이어서 흉악한 무함을 자행한 무리들을 모두 처벌하여서 인심을 안정시키고 속히 훌륭한 재상을 뽑아서 국시를 확정하소서. 그리고 《춘추(春秋)》의 대의를 법으로 삼고 호씨의 정론을 따라 종묘 사직의 큰 계획을 중하게 여길 것이며 태종 대왕(太宗大王)의 밝은 법을 시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12일 계묘

경상 우병사 남이흥(南以興), 토포사 조찬한(趙纘韓)의 비밀 장계가 들어왔다.

 

의금부 도사(都事) 2명, 가도사(假都事) 2명, 선전관(宣傳官) 2명이 비밀리에 전교를 듣고 나갔다.

 

합계로 연계하여 전 부제학 이호신을 관작을 삭탈하고 도성 밖으로 출송시킬 것을 청하니, 이미 파직시켰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합사가 연계하고 옥당이 연차하여, 기자헌과 이항복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번에 역변이 또 일어나서 국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으니, 이미 다스린 사람에게 죄를 더 주는 문제는 다시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이번에 역변이 또 일어나서 국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으니, 이미 다스린 사람에게 죄를 더 주는 문제는 다시 논의하지 말라."
하였다.

 

이문 학관(吏文學官) 이장배(李長培)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사람들의 심정을 통찰하여 종묘 사직의 대계로 삼으라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가 재차 아뢰니, 이미 유시하였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세 번째 아뢰자,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의금부가 김양선(金揚善)을 잡아다 가두었다.

 

예조 좌랑 유약(柳瀹), 부정자(副正字) 유집(柳潗) 등이 상소하였는데, 수의할 때 정당하지 못하게 하였기에 황공하여 대죄한다는 내용이었다. 답하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변란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나도 마땅히 내가 할 도리를 다해야 하겠다만 신하된 자는 마땅히 신하된 도리를 다할 뿐이다. 이전 무신년에 정구(鄭逑)가 가장 먼저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로챘으므로 임금은 다시 은혜를 베풀 곳이 없게 되었으며 국시(國是)를 어지럽혀 지금까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인심이 동요되고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게 되었으니 함부로 하는 논의가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것이 이런 정도이다. 좌상(左相)이 설사 뭐라고 하더라도 시골에 있는 어진 정승의 말은 조정 신하가 직접 헌의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으니 함께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그대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서 스스로 불충하고 불의한 죄에 빠지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국가가 불행하여 변란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나도 마땅히 내가 할 도리를 다해야 하겠다만 신하된 자는 마땅히 신하된 도리를 다할 뿐이다. 이전 무신년에 정구(鄭逑)가 가장 먼저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로챘으므로 임금은 다시 은혜를 베풀 곳이 없게 되었으며 국시(國是)를 어지럽혀 지금까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인심이 동요되고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게 되었으니 함부로 하는 논의가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것이 이런 정도이다. 좌상(左相)이 설사 뭐라고 하더라도 시골에 있는 어진 정승의 말은 조정 신하가 직접 헌의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으니 함께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그대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서 스스로 불충하고 불의한 죄에 빠지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허균(許筠)을 좌참찬으로, 유간(柳澗)을 우참찬으로, 박승종(朴承宗)을 좌찬성으로, 이충(李沖)을 우찬성으로, 이원여(李元輿)를 사서로, 한옥(韓玉)을 이조 정랑으로, 박종주(朴宗胄)를 겸사서로, 허경(許儆)을 봉상시 정으로, 정도(鄭道)를 상의원 정으로, 조정(趙挺)을 형조 판서로, 이원엽(李元燁)을 병조 참지로, 한희(韓暿)를 문학으로, 정조(鄭造)를 부제학으로, 정광경(鄭廣敬)을 사성으로, 홍요검(洪堯儉)을 부교리로 삼았다.

 

12월 13일 갑진

전교하였다.      "전 현감        안대남(安大楠), 현감        윤형갑(尹衡甲), 전 현감        이암(李馣), 첨지        조방보(趙邦輔), 전 별좌        윤유(尹游), 전 군수        이경한(李景漢), 부사과        이숙(李琡), 별좌        이성원(李誠元), 사과        이천(李蕆), 귀원수(龜原守) 이조(李眺), 전 선전관        유파(柳坡)는 집터나 빈터, 기와집과 초가집을 경덕궁 대내(大內)에 바쳤으니 모두 가자하라. 조방보·안대남·이암·이경한·이숙에게는 실직을 제수하고 조(眺)에게는 도정(都正)을 제수하라."
"전 현감        안대남(安大楠), 현감        윤형갑(尹衡甲), 전 현감        이암(李馣), 첨지        조방보(趙邦輔), 전 별좌        윤유(尹游), 전 군수        이경한(李景漢), 부사과        이숙(李琡), 별좌        이성원(李誠元), 사과        이천(李蕆), 귀원수(龜原守) 이조(李眺), 전 선전관        유파(柳坡)는 집터나 빈터, 기와집과 초가집을 경덕궁 대내(大內)에 바쳤으니 모두 가자하라. 조방보·안대남·이암·이경한·이숙에게는 실직을 제수하고 조(眺)에게는 도정(都正)을 제수하라."

 

합사가 연계하고 옥당이 연차하여, 기자헌과 이항복을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헌의한 자 중에 역적을 편들고 임금을 모욕한 자가 한두 명뿐만이 아니어서 이들을 다 처벌할 수가 없다. 그런데 유독 항복 등만을 공격하는 것은 죄를 고르게 주는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가. 이미 참작하여 처리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헌의한 자 중에 역적을 편들고 임금을 모욕한 자가 한두 명뿐만이 아니어서 이들을 다 처벌할 수가 없다. 그런데 유독 항복 등만을 공격하는 것은 죄를 고르게 주는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가. 이미 참작하여 처리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합계로 연계하여 이호신(李好信)을 관작을 삭탈하여 성밖으로 출송시키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호신에게 늙은 부모가 있다는 말을 나도 들었다. 그가 부모의 병 때문에 즉시 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자세히 살펴서 논의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호신에게 늙은 부모가 있다는 말을 나도 들었다. 그가 부모의 병 때문에 즉시 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자세히 살펴서 논의하도록 하라."
하였다.

 

영흥정(永興正) 이경일(李敬一)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헌의하던 날에 미처 여러 종친들의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신들의 의견도 받아들이게 하소서." 하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가 재차 아뢰니, 답하기를, "반드시 역적을 편든 자들을 죄주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자헌 등에게 형율을 다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유시한 것이다. 굳이 고집하지 말라." 하였다. 세 번째 아뢰자,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이항복은 자원에 따라 중도(中道)에서 부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반드시 역적을 편든 자들을 죄주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자헌 등에게 형율을 다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유시한 것이다. 굳이 고집하지 말라."
하였다. 세 번째 아뢰자, 답하기를,
"이미 유시하였다. 이항복은 자원에 따라 중도(中道)에서 부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서부(西部)의 참봉 전원(全瑗)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속히 공론을 따라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행 사과 정진철(鄭震哲)과 전윤(田潤)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속히 화근을 제거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악사(樂師) 임항(林恒) 등이 상소하여 흔쾌히 공론을 따라 처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강원도 생원 박홍익(朴弘益), 진사 최광필(崔光弼), 유학 김상건(金尙鍵)·송석명(宋錫命)·원급(元汲)·이극성(李克誠)·최광달(崔光達)·이광계(李光啓) 등이 상소하였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서궁의 죄악을 말하자니 참담합니다. 아, 의리는 밝혀지지 않고 윤리 도덕은 두절되었으며 간사한 논의가 제멋대로 나돌고 공정한 논의는 날마다 없어져 갑니다. 기자헌과 이항복이 아직도 사형을 받지 않아서 사람들의 울분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무엇을 염려하시기에 이 역적의 괴수를 비호함으로써 근심을 스스로 자초하십니까.  여후(呂后)는 악한 짓을 한 결과 수백 년 뒤에 사당에서 쫓겨났고 무씨(武氏)의 죄에 대해서는 호치당(胡致堂)도 마땅히 폐출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의거(義擧)도 단적으로 이것을 법안으로 삼아야 할 것인데 머뭇거리면서 세월만 보낼 뿐 아직도 드러나게 토죄하는 문제를 늦추고 있기 때문에, 이론이 들고 일어나고 있으며 간사한 모략이 더욱 불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하께서는 어떻게 뒷처리를 잘할 수 있겠으며, 종묘 사직과 신민들은 무엇을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신의 정성을 밝게 살피셔서 속히 두 역적을 참형에 처하고 이어 대신들과 육경, 삼사의 관원들을 불러와 대계(大計)를 의논해 확정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서궁의 죄악을 말하자니 참담합니다.
아, 의리는 밝혀지지 않고 윤리 도덕은 두절되었으며 간사한 논의가 제멋대로 나돌고 공정한 논의는 날마다 없어져 갑니다. 기자헌과 이항복이 아직도 사형을 받지 않아서 사람들의 울분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데 전하께서는 무엇을 염려하시기에 이 역적의 괴수를 비호함으로써 근심을 스스로 자초하십니까.
여후(呂后)는 악한 짓을 한 결과 수백 년 뒤에 사당에서 쫓겨났고 무씨(武氏)의 죄에 대해서는 호치당(胡致堂)도 마땅히 폐출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의거(義擧)도 단적으로 이것을 법안으로 삼아야 할 것인데 머뭇거리면서 세월만 보낼 뿐 아직도 드러나게 토죄하는 문제를 늦추고 있기 때문에, 이론이 들고 일어나고 있으며 간사한 모략이 더욱 불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하께서는 어떻게 뒷처리를 잘할 수 있겠으며, 종묘 사직과 신민들은 무엇을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신의 정성을 밝게 살피셔서 속히 두 역적을 참형에 처하고 이어 대신들과 육경, 삼사의 관원들을 불러와 대계(大計)를 의논해 확정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전라도 유생 이책(李𣽤)이 상소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중대한 논의가 제기된 지가 벌써 달을 넘겼습니다. 위로는 정당의 회의로부터 아래로 서리들과 군민에 이르기까지 서로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전하께서는 즉시 윤허하지 않으시고 결단하지 않기 때문에 대의에 입각한 논의는 잠잠해지고 간사한 논의만 분분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옛날에 조정이 사직을 안정시키고 난리를 평정시킬 때에 다른 마음을 가진 신하를 제거시키기를 오늘날처럼 느슨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의 위엄이 자연히 서고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아서 후세에 이르기까지 감히 시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상께서 신하 보기를 마치 대적(大敵)을 두려워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위협하고 모욕하는 말을 하더라도 차마 법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매번 온화한 말로 유시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과부집의 거치른 노비들이 입만 열면 욕설을 해대는 것과 차이가 없으니 신은 삼가 통탄스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오늘 기자헌을 죄주고 내일 새 정승을 뽑아서 큰 논의로 하여금 수일 안으로 완결짓게 하되, 마치 뇌성벽력이 지나가듯이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미처 손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뭇거리면서 만약 뜻을 펴지 못한 무리와 불량한 자들이 자기들에게 재앙이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한편 은밀히 부귀를 누릴 꾀를 내어 갑자기 한 나라 안에서 난을 일으켜 서궁을 끼고 정사를 대행하게 한다면, 오늘날 조정에 있는 전하의 신하들이 그들의 뜰에 무릎을 꿇고 전하를 원수처럼 보지 않을 것이라고 기필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듣건대, 호남과 영남 등지에는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무리들과 김제남의 잔당들이 우두머리를 추대하여 여러 곳에 모여 괴이한 논의를 주장하고는 모조리 올라올 것이라고 합니다. 화변이 장차 일어나 군사의 힘으로 위협할 날이 멀지 않으니 왕궁을 포위하고 대부를 살해하는 변고를 오늘 또다시 보게 될까 염려됩니다. 흉악한 무리들이 서쪽과 남쪽에서 협력하여 도성 안에 와서 소란을 피운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그들을 다 죽일 수 있겠습니까. 또한 무슨 수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은 발생한 후에 제압하는 것보다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즉시 기자헌과 이항복을 사형에 처하고 이어서 난국을 수습할 정승을 선출하여 중대한 논의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게 하고 간사한 무리들로 하여금 모두 위축되게 하는 등, 2, 3일 이내에 변란을 잘 처리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종묘 사직에 이보다 다행스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중대한 논의가 제기된 지가 벌써 달을 넘겼습니다. 위로는 정당의 회의로부터 아래로 서리들과 군민에 이르기까지 서로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전하께서는 즉시 윤허하지 않으시고 결단하지 않기 때문에 대의에 입각한 논의는 잠잠해지고 간사한 논의만 분분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옛날에 조정이 사직을 안정시키고 난리를 평정시킬 때에 다른 마음을 가진 신하를 제거시키기를 오늘날처럼 느슨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의 위엄이 자연히 서고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아서 후세에 이르기까지 감히 시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상께서 신하 보기를 마치 대적(大敵)을 두려워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위협하고 모욕하는 말을 하더라도 차마 법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매번 온화한 말로 유시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과부집의 거치른 노비들이 입만 열면 욕설을 해대는 것과 차이가 없으니 신은 삼가 통탄스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오늘 기자헌을 죄주고 내일 새 정승을 뽑아서 큰 논의로 하여금 수일 안으로 완결짓게 하되, 마치 뇌성벽력이 지나가듯이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미처 손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뭇거리면서 만약 뜻을 펴지 못한 무리와 불량한 자들이 자기들에게 재앙이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한편 은밀히 부귀를 누릴 꾀를 내어 갑자기 한 나라 안에서 난을 일으켜 서궁을 끼고 정사를 대행하게 한다면, 오늘날 조정에 있는 전하의 신하들이 그들의 뜰에 무릎을 꿇고 전하를 원수처럼 보지 않을 것이라고 기필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듣건대, 호남과 영남 등지에는 은혜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무리들과 김제남의 잔당들이 우두머리를 추대하여 여러 곳에 모여 괴이한 논의를 주장하고는 모조리 올라올 것이라고 합니다. 화변이 장차 일어나 군사의 힘으로 위협할 날이 멀지 않으니 왕궁을 포위하고 대부를 살해하는 변고를 오늘 또다시 보게 될까 염려됩니다. 흉악한 무리들이 서쪽과 남쪽에서 협력하여 도성 안에 와서 소란을 피운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그들을 다 죽일 수 있겠습니까. 또한 무슨 수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은 발생한 후에 제압하는 것보다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즉시 기자헌과 이항복을 사형에 처하고 이어서 난국을 수습할 정승을 선출하여 중대한 논의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게 하고 간사한 무리들로 하여금 모두 위축되게 하는 등, 2, 3일 이내에 변란을 잘 처리하소서. 그리하신다면 종묘 사직에 이보다 다행스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박홍익(朴弘益)과 이책(李𣽤) 등의 상소에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나라를 위하는 정성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는 내 듣고 싶지 않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 기자헌 등은 이미 죄를 주었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고, 상소는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상소를 보고 나라를 위하는 정성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는 내 듣고 싶지 않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 기자헌 등은 이미 죄를 주었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고, 상소는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14일 을사

용성 부수(龍城副守) 이중(李仲)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형제와 조카 등이 노모의 병환이 심하여 교하(交河)에 가 있는 바람에 여러 종친들이 수의할 때에 미처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황공하여 대죄합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추급하여 신들의 의논을 수합하게 하소서." 하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황연도(黃延道)와 평안도(平安道) 등의 조도사 윤수겸(尹守謙)이 정철(正鐵) 1만 3천 5백 근과 신철(薪鐵) 1만 근을 연이어 올려 보냄으로써 도감에서 이에 힘입어 철물을 계속 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조도사는 공사를 끝마치고 올라오더라도 종사관과 그밖의 일을 맡아보는 궁관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쇠를 불리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런 뜻으로 조도사 윤수겸에게 올라오기 전에 하유하소서. 그리고 차지군관 전 수문장 오경민(吳敬敏)은 성의를 다하여 쇠를 불려가지고 여러 차례 바쳤으니 역시 가상한 일입니다. 별도로 논상을 실시해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을 권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윤수겸은 가자하라. 오경민은 6품으로 올리고 실직을 제수하라." 하였다.
"황연도(黃延道)와 평안도(平安道) 등의 조도사 윤수겸(尹守謙)이 정철(正鐵) 1만 3천 5백 근과 신철(薪鐵) 1만 근을 연이어 올려 보냄으로써 도감에서 이에 힘입어 철물을 계속 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조도사는 공사를 끝마치고 올라오더라도 종사관과 그밖의 일을 맡아보는 궁관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쇠를 불리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런 뜻으로 조도사 윤수겸에게 올라오기 전에 하유하소서.
그리고 차지군관 전 수문장 오경민(吳敬敏)은 성의를 다하여 쇠를 불려가지고 여러 차례 바쳤으니 역시 가상한 일입니다. 별도로 논상을 실시해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을 권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윤수겸은 가자하라. 오경민은 6품으로 올리고 실직을 제수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전후하여 논핵을 받은 수사(水使)와 수령 중에서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한 자들에 대하여 자세히 살피도록 본도의 감사에게 하유해서 사실대로 복계(覆啓)하게 하라.  여주 목사 김용(金湧)은 지방 관리로서 대역(大逆)에 관계되는 일이라서 거짓이든 사실이든 간에 위에 보고하고 조정의 처치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 감히 이 문제를 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김용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당초에 논계하였던 대간을 명초하여 말하도록 하라."
"전후하여 논핵을 받은 수사(水使)와 수령 중에서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한 자들에 대하여 자세히 살피도록 본도의 감사에게 하유해서 사실대로 복계(覆啓)하게 하라.
여주 목사 김용(金湧)은 지방 관리로서 대역(大逆)에 관계되는 일이라서 거짓이든 사실이든 간에 위에 보고하고 조정의 처치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 감히 이 문제를 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김용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당초에 논계하였던 대간을 명초하여 말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성흔(成忻)은 간원이 아뢴 내용 중에 있는 말과 같이 음흉하고 교활한 문제로 인하여 논핵을 당하였는가? 이른바 음흉하고 교활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살펴서 아뢰도록 하라."
"성흔(成忻)은 간원이 아뢴 내용 중에 있는 말과 같이 음흉하고 교활한 문제로 인하여 논핵을 당하였는가? 이른바 음흉하고 교활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살펴서 아뢰도록 하라."

 

합사하여 연계하고 옥당이 연차하여 기자헌과 이항복을 위리 안치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유배시킨 사람을 다시 논핵할 것은 없다." 하였다.
"이미 유배시킨 사람을 다시 논핵할 것은 없다."
하였다.

 

합계로 연계하여 이호신을 문밖으로 출송시킬 것을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의금부 판사 박승종이 차자를 올려 사직하니, 답하기를, "국가의 운수가 불행하여 역적 변고가 또 일어났으므로 나는 근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경은 사직하지 말고 되도록 나와서 국문에 참석하도록 하라." 하였다.
"국가의 운수가 불행하여 역적 변고가 또 일어났으므로 나는 근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경은 사직하지 말고 되도록 나와서 국문에 참석하도록 하라."
하였다.

 

합사가 재차 삼차 아뢰고, 옥당이 재차 차자를 올리니, 이미 유시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12월 15일 병오

유학 이국광(李國光)과 이국헌(李國獻) 등이 다섯 번째 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서궁이 반역한 죄를 《춘추(春秋)》의 큰 의리와 호씨의 결론에 의하여 흔쾌히 용단을 내림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훈련 도감 별무사 황몽륜(黃夢倫)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속히 잘 처리해서 인심을 진정시키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합사로 연계하여 기자헌과 이항복을 위리 안치시키기를 청하니, 이미 유시하였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재차 아뢰고 삼차 아뢰었는데,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오는 16일에 생원과 진사의 방방(放榜)을 권정례로 실시하라."
"오는 16일에 생원과 진사의 방방(放榜)을 권정례로 실시하라."

 

옥당이 잇따라 차자를 올리니, 번거롭게 고집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재차 차자를 올렸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생원 신경업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중신(重臣)과 삼사의 관원을 모아 여러 건의 상소와 많은 사람들의 의논을 서로 절충함으로써 변란이 일어날 조짐을 막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전교하기를, "봉상시 정 허경(許儆)에게 전에 승서하라는 명을 내렸었다만, 지금 준직(準職)을 가자하라." 하였다. 【허경은 수년 사이에 과거를 외람되게 차지하고 별안간 3품직에 승급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이 심하여 장차 죽게 되자 숨을 거두기 전에 이와 같은 명을 급히 내린 것이다.】
"봉상시 정 허경(許儆)에게 전에 승서하라는 명을 내렸었다만, 지금 준직(準職)을 가자하라."
하였다. 【허경은 수년 사이에 과거를 외람되게 차지하고 별안간 3품직에 승급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이 심하여 장차 죽게 되자 숨을 거두기 전에 이와 같은 명을 급히 내린 것이다.】

 

12월 16일 정미

전교하였다. "죄인 정홍익과 김덕함을 북도로 고쳐 정배하라."
"죄인 정홍익과 김덕함을 북도로 고쳐 정배하라."

 

합사가 연계하기를, "이항복은 뜻을 펴지 못하여 임금을 원망하고 있는 자로서, 기회를 틈타 역적을 편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감히 헌의한 내용 중에 이론을 제기하여 엇갈린 논의가 더욱 격렬하게 일어나 국시가 정해지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그의 죄는 실로 종묘 사직에 관계되며 말씨가 고약스럽기는 기자헌보다도 더 심합니다. 그렇다면 기자헌은 이미 귀양을 보냈는데 이항복만 어찌 중도에 부처하는 정도에 그쳐서야 되겠습니까. 청컨대 어렵게 여기지 말으시고 속히 절도(絶島)에다 위리 안치하소서." 하니, 먼곳으로 귀양보내라고 답하였다.
"이항복은 뜻을 펴지 못하여 임금을 원망하고 있는 자로서, 기회를 틈타 역적을 편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감히 헌의한 내용 중에 이론을 제기하여 엇갈린 논의가 더욱 격렬하게 일어나 국시가 정해지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그의 죄는 실로 종묘 사직에 관계되며 말씨가 고약스럽기는 기자헌보다도 더 심합니다. 그렇다면 기자헌은 이미 귀양을 보냈는데 이항복만 어찌 중도에 부처하는 정도에 그쳐서야 되겠습니까. 청컨대 어렵게 여기지 말으시고 속히 절도(絶島)에다 위리 안치하소서."
하니, 먼곳으로 귀양보내라고 답하였다.

 

정홍익을 길주(吉州)로, 김덕함을 명천(明川)으로 다시 바꾸어 유배시켰다.

 

12월 17일 무신

전교하였다. "통제사 정기룡(鄭起龍)이 활과 화살을 각각 1부씩 올려보냈다. 들여다가 본 후에 차관으로 하여금 평안 병영에 내려보내도록 하라. 이 사람이 활과 화살을 많이 만들어 보냈으니 국사에 성의를 다한 것이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가자하라. 그리고 감독하여 만들어 올라온 군관도 다른 규례에 의하여 가자하도록 하라."
"통제사 정기룡(鄭起龍)이 활과 화살을 각각 1부씩 올려보냈다. 들여다가 본 후에 차관으로 하여금 평안 병영에 내려보내도록 하라. 이 사람이 활과 화살을 많이 만들어 보냈으니 국사에 성의를 다한 것이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가자하라. 그리고 감독하여 만들어 올라온 군관도 다른 규례에 의하여 가자하도록 하라."

 

우의정 한효순이 상차하여 속히 새 정승을 뽑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보고 경의 정성을 잘 알았다. 정승을 뽑는 문제는 병 때문에 미처 하지 못했다. 서서히 조리하여 뽑도록 하겠다. 다만 삼공은 인원수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대의를 밝히고 국시를 정하며 사직을 안정시키고 조정의 기강을 세우는 문제에 있어서 경의 나이가 비록 많기는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가 있다. 국가의 어려움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나의 경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경은 노병(老病)을 이유로 사직하지 말고 충성을 한층 더하여 염려하고 의지하는 나의 지극한 뜻에 부응하도록 하라." 하였다.
"차자를 살펴보고 경의 정성을 잘 알았다. 정승을 뽑는 문제는 병 때문에 미처 하지 못했다. 서서히 조리하여 뽑도록 하겠다. 다만 삼공은 인원수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대의를 밝히고 국시를 정하며 사직을 안정시키고 조정의 기강을 세우는 문제에 있어서 경의 나이가 비록 많기는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가 있다. 국가의 어려움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나의 경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경은 노병(老病)을 이유로 사직하지 말고 충성을 한층 더하여 염려하고 의지하는 나의 지극한 뜻에 부응하도록 하라."
하였다.

 

기자헌은 멀리 정평(定平)에 귀양보내고, 이항복은 용강(龍岡)에 귀양보냈다.

 

12월 18일 기유

기자헌을 홍원(洪原)으로, 이항복을 흥해(興海)로 고쳐 정배하였다.

 

과거시험에 새로 뽑힌 생원 이영구(李榮久), 진사 조익형(趙益亨)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내용은, "신들이 어제 사은 숙배할 때 감히 서궁(西宮)에 절을 하지 않은 것은 차마 교화시켜주고 길러주신 우리 임금의 은혜를 저버린 채 감히 원수의 뜰에 무릎을 꿇을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상소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다만 나는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하였다. 【이영구는 이강(李茳)·이점(李蒧)·이모(李慕)의 조카이다. 조익형은 조존세(趙存世)의 아들이다. 그들의 부형이 흉역의 논의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생원 진사 시험에서 부당하게 장원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신들이 어제 사은 숙배할 때 감히 서궁(西宮)에 절을 하지 않은 것은 차마 교화시켜주고 길러주신 우리 임금의 은혜를 저버린 채 감히 원수의 뜰에 무릎을 꿇을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상소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다만 나는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하였다. 【이영구는 이강(李茳)·이점(李蒧)·이모(李慕)의 조카이다. 조익형은 조존세(趙存世)의 아들이다. 그들의 부형이 흉역의 논의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생원 진사 시험에서 부당하게 장원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기자헌·이항복·정홍익·김덕함은 모두 나라를 저버리고 임금을 배반한 사람들로 하늘에 사무친 죄는 극형에 처하여도 오히려 가벼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북도에 귀양보내는 것도 오히려 특별한 은혜에서 나온 것이므로 의금부에서 귀양지를 정할 때에 응당 절도에 정배해야 할 것인데, 감히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 국법을 무시하고 모두 내지(內地)의 편리한 곳을 골라 정하였으므로 물정이 통분해 하고 있습니다. 이번 논의에 참여한 당상관과 낭청을 모두 파직하고 네 역적을 먼곳으로 귀양보내서 역적을 토벌하는 법을 엄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금부 당상과 낭청을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기자헌·이항복·정홍익·김덕함은 모두 나라를 저버리고 임금을 배반한 사람들로 하늘에 사무친 죄는 극형에 처하여도 오히려 가벼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북도에 귀양보내는 것도 오히려 특별한 은혜에서 나온 것이므로 의금부에서 귀양지를 정할 때에 응당 절도에 정배해야 할 것인데, 감히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 국법을 무시하고 모두 내지(內地)의 편리한 곳을 골라 정하였으므로 물정이 통분해 하고 있습니다. 이번 논의에 참여한 당상관과 낭청을 모두 파직하고 네 역적을 먼곳으로 귀양보내서 역적을 토벌하는 법을 엄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금부 당상과 낭청을 모두 추고하라."
하였다.

 

12월 19일 경술

광주(廣州)에 사는 유학 김여철(金汝哲)이 상소하였는데, 대개는, "삼사는 먼저 기자헌만 논핵하고 장본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묘당도 자발적으로 선도하지 않고 백관으로 하여금 헌의하게 하였으니, 모두 일을 논의하고 일을 처리하는 의의가 아닙니다. 청컨대 큰 논의가 결정되기 전에는 서궁을 엄하게 수비함으로써 외환을 막고 삼사와 묘당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선유들의 정론(定論)에 따라 죄를 정하여 사당에 고하고, 기자헌을 전후하여 서궁을 호위한 자들을 모두 율에 따라 죄를 정하고 또 중국에 알려서 일을 순조롭게 하고 명분을 바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후일에 윤이(尹彝)와 이초(李初)가 일으켰던 것과 같은 변고가 없도록 하소서." 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삼사는 먼저 기자헌만 논핵하고 장본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묘당도 자발적으로 선도하지 않고 백관으로 하여금 헌의하게 하였으니, 모두 일을 논의하고 일을 처리하는 의의가 아닙니다. 청컨대 큰 논의가 결정되기 전에는 서궁을 엄하게 수비함으로써 외환을 막고 삼사와 묘당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선유들의 정론(定論)에 따라 죄를 정하여 사당에 고하고, 기자헌을 전후하여 서궁을 호위한 자들을 모두 율에 따라 죄를 정하고 또 중국에 알려서 일을 순조롭게 하고 명분을 바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후일에 윤이(尹彝)와 이초(李初)가 일으켰던 것과 같은 변고가 없도록 하소서."
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통제사(統制使) 서목(書目)에 아뢰었다. "칠원현(漆原縣)에서 체포된 초계(草溪) 출신 노극함(盧克諴)이 가지고 있던 흉악한 글을 밀봉하여 군관 김용(金鎔)에게 주어서 올려 보냅니다. 이와 같이 중대한 변고에 대하여 버려두고 보고하지 않은 칠원 현감 권성오(權省吾)의 죄상은 조정에서 처치하도록 하소서."
"칠원현(漆原縣)에서 체포된 초계(草溪) 출신 노극함(盧克諴)이 가지고 있던 흉악한 글을 밀봉하여 군관 김용(金鎔)에게 주어서 올려 보냅니다. 이와 같이 중대한 변고에 대하여 버려두고 보고하지 않은 칠원 현감 권성오(權省吾)의 죄상은 조정에서 처치하도록 하소서."

 

녹사(錄事) 김윤옥(金潤屋) 등이 상소하여, 속히 큰 계획을 정하여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20일 신해

광릉 참봉(光陵參奉) 유건(柳健) 등이 상소하여, 흔쾌히 공론을 따라 종묘 사직을 안정시킬 것을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유학 이국헌·이국광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큰 논의가 중지되었으니 속히 공론을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21일 임자

기자헌을 삭주(朔州)로, 이항복을 창성(昌城)으로, 정홍익을 종성(鐘城)으로, 김덕함을 온성(穩城)으로 바꾸어 정배하였다.

 

행 사직 이여해(李汝諧)가 상소하여, 속히 큰 계획을 결정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고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안악 군수(安岳郡守) 기윤헌(奇允獻)은 본래 추악한 사람으로 평소에 볼 만한 행실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왔습니다. 이번에 본직에 제수되어서는 형의 세력을 믿고 거리낌없이 백성들의 재물을 함부로 거두어들였으며 백성을 징발하여 사유지가 아닌 군지(郡地)에다 제방을 쌓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형이 죄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는 공공연하게 전결(田結)에 베를 징수하여 마소로 실어나르면서 자기가 직접 통솔해와 짐바리가 길에 이어지므로 사람마다 놀라워하고 분해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에는 은밀히 불량배들과 결탁하여 간사한 말로 선동하여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역적을 옹호하고 나라를 등진 그의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청컨대 사판(仕版)에서 삭제하소서.  동지의금 이경함(李慶涵)은 본래 간사한 무리로서 항상 역적을 옹호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수의할 때에는 우물쭈물하면서 남에게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네 역적을 귀양보낼 곳을 정할 때에는 그가 당상관의 책임자로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애써 배제하고 편리하고 가까운 곳을 골라 정했습니다. 사사로운 패거리가 있다는 것만 알고 공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으니, 사정을 따르고 공론을 멸시한 그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관작을 삭탈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안악 군수(安岳郡守) 기윤헌(奇允獻)은 본래 추악한 사람으로 평소에 볼 만한 행실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왔습니다. 이번에 본직에 제수되어서는 형의 세력을 믿고 거리낌없이 백성들의 재물을 함부로 거두어들였으며 백성을 징발하여 사유지가 아닌 군지(郡地)에다 제방을 쌓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형이 죄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는 공공연하게 전결(田結)에 베를 징수하여 마소로 실어나르면서 자기가 직접 통솔해와 짐바리가 길에 이어지므로 사람마다 놀라워하고 분해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에는 은밀히 불량배들과 결탁하여 간사한 말로 선동하여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역적을 옹호하고 나라를 등진 그의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청컨대 사판(仕版)에서 삭제하소서.
동지의금 이경함(李慶涵)은 본래 간사한 무리로서 항상 역적을 옹호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수의할 때에는 우물쭈물하면서 남에게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네 역적을 귀양보낼 곳을 정할 때에는 그가 당상관의 책임자로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애써 배제하고 편리하고 가까운 곳을 골라 정했습니다. 사사로운 패거리가 있다는 것만 알고 공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으니, 사정을 따르고 공론을 멸시한 그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관작을 삭탈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12월 22일 계축

전교하였다. "사은사 서장관 윤지경(尹知敬)은 이미 떠날 채비를 갖추었으니 비록 중등(中等)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따지지 말라. 겸대간(兼臺諫)으로 비답을 내리니 그대로 보내도록 하라."
"사은사 서장관 윤지경(尹知敬)은 이미 떠날 채비를 갖추었으니 비록 중등(中等)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따지지 말라. 겸대간(兼臺諫)으로 비답을 내리니 그대로 보내도록 하라."

 

유학 한보길(韓輔吉)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의 내용은, "여러 신하들에게 수의를 이미 마쳤으니 의정부로 하여금 많은 관리를 소집하여 각각 자신의 이름자 아래에다 가부에 대한 견해를 쓰게 하소서.  기자헌을 삭주에 정배하였는데, 그 지역은 중국과 인접해 있어서 은밀히 내통하여 화란을 야기시킬 소지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금부 당상도 사정을 따른 죄가 똑같은데 단지 경함만을 죄주는 것은 역시 온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수민(壽民) 등 관원도 아울러 삭탈하고 이어서 기자헌을 다른 도로 옮기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여러 신하들에게 수의를 이미 마쳤으니 의정부로 하여금 많은 관리를 소집하여 각각 자신의 이름자 아래에다 가부에 대한 견해를 쓰게 하소서.
기자헌을 삭주에 정배하였는데, 그 지역은 중국과 인접해 있어서 은밀히 내통하여 화란을 야기시킬 소지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금부 당상도 사정을 따른 죄가 똑같은데 단지 경함만을 죄주는 것은 역시 온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수민(壽民) 등 관원도 아울러 삭탈하고 이어서 기자헌을 다른 도로 옮기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평안도 유학 강호여(康皞如) 등이 상소하였는데, 전체 내용은 속히 대신으로 하여금 대의를 결정해서 신속하게 이 상황을 수습함으로써 종묘 사직의 대계를 삼으라는 것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12월 23일 갑인

장령 강수(姜𢢝), 정언 이강(李茳)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기자헌과 이항복 등을 옮겨 정배하는 문제를 놓고 입계(入啓)하기에 앞서 한 곳에 모여 간통(簡通)으로 가부를 수합하던 차에 그만 날이 저무는 바람에 미처 입계하지 못하였습니다. 막중한 논의를 지체시켜 이 지경이 되게 하였으니 신들이 성상소의 관원으로서 직무수행을 다하지 못한 죄가 큽니다. 더구나 오늘은 국기(國忌)가 돌아와서 재계하는 날인 만큼 논계(論啓)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상례인데도 불구하고 규정을 어겨가면서 성상을 번거롭게 하고 있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신들의 관직을 체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신들이 어제 기자헌과 이항복 등을 옮겨 정배하는 문제를 놓고 입계(入啓)하기에 앞서 한 곳에 모여 간통(簡通)으로 가부를 수합하던 차에 그만 날이 저무는 바람에 미처 입계하지 못하였습니다. 막중한 논의를 지체시켜 이 지경이 되게 하였으니 신들이 성상소의 관원으로서 직무수행을 다하지 못한 죄가 큽니다. 더구나 오늘은 국기(國忌)가 돌아와서 재계하는 날인 만큼 논계(論啓)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상례인데도 불구하고 규정을 어겨가면서 성상을 번거롭게 하고 있으니 잘못이 더욱 큽니다. 신들의 관직을 체척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합계하고 비밀의 일을 입계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일은 비밀이어서 전하지 않는다.】

 

12월 24일 을묘

전교하였다. "3월 19일에 친경례(親耕禮)를 행하기로 정하였으니, 존호를 올릴 날짜는 3월 그믐이나 4월 초로 다시 날을 받아 결정할 일로 해조에 말하라."
"3월 19일에 친경례(親耕禮)를 행하기로 정하였으니, 존호를 올릴 날짜는 3월 그믐이나 4월 초로 다시 날을 받아 결정할 일로 해조에 말하라."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청기와는 을묘년부터 널리 굽기 시작하는 한편 그 굽는 방법을 익힐 일로 누차 전교하였습니다. 해사에서 1눌(訥)을 구워 바치는데 드는 여러 가지 비용이 무명으로 쳐서 7, 8동 이나 되며 두 해 동안에 구은 것이 3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듯 경비만 많이 들고 성사될 기약은 없으므로 지난해 창경궁 공사를 끝낸 후에 이어 전교를 내려 별도로 낭청과 감역을 설치하고 선수도감에서 쓰고 남은 쌀과 무명을 마련해서 기와 1눌을 굽는데 드는 비용을 무명 4동씩 계산해서 주면서 기와 30눌을 굽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낭청 한사성(韓師聖), 감역관 윤간(尹侃)이 처음부터 끝까지 날마다 출입하면서 감독한 결과로 금년에 구워낸 숫자가 35눌이나 됩니다. 거기에 든 비용을 따져보면 1눌에 무명 3동 가량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전의 공사에 비교하면 거의 절반이나 절약되었습니다. 이것을 놓고 따져보면 남아있는 여러 가지 잡물을 가지고도 15, 16눌 정도는 충분히 구을 수 있을 듯합니다. 남아있는 염초·무명·잡물 등은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한사성은 직급을 올려주라. 윤간은 응당 6품으로 나갔어야 하나 전교에 따라 출품시키지 않았으니 지금은 5품직을 초수(超授)하여 본 도감낭청에 제수함으로써 한사성과 함께 계속 감독하여 내년에 쓸 청기와도 이 수량에 의하여 정성을 다해 굽게 하라." 하였다. 【당시에 도감 제조 이충(李沖)·윤중삼(尹重三) 등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부추겨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키더니 단청(丹靑)과 조각을 극도로 화려하고 교묘하게 하였으며, 윤간과 한사성은 기와 굽는 일을 전담하면서 무명과 포목을 낭비하였으며, 흙을 다루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가 궁중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었다. 왕이 또 장인(匠人)으로 하여금 많은 돈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황기와 굽는 방법을 배워오게 하였다. 황기와는 천자가 정전(正殿)의 지붕을 덮을 때 쓰는 기와로, 왕(王)·후(侯) 이하는 참람스럽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청기와는 을묘년부터 널리 굽기 시작하는 한편 그 굽는 방법을 익힐 일로 누차 전교하였습니다. 해사에서 1눌(訥)을 구워 바치는데 드는 여러 가지 비용이 무명으로 쳐서 7, 8동 이나 되며 두 해 동안에 구은 것이 3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듯 경비만 많이 들고 성사될 기약은 없으므로 지난해 창경궁 공사를 끝낸 후에 이어 전교를 내려 별도로 낭청과 감역을 설치하고 선수도감에서 쓰고 남은 쌀과 무명을 마련해서 기와 1눌을 굽는데 드는 비용을 무명 4동씩 계산해서 주면서 기와 30눌을 굽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낭청 한사성(韓師聖), 감역관 윤간(尹侃)이 처음부터 끝까지 날마다 출입하면서 감독한 결과로 금년에 구워낸 숫자가 35눌이나 됩니다. 거기에 든 비용을 따져보면 1눌에 무명 3동 가량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전의 공사에 비교하면 거의 절반이나 절약되었습니다. 이것을 놓고 따져보면 남아있는 여러 가지 잡물을 가지고도 15, 16눌 정도는 충분히 구을 수 있을 듯합니다. 남아있는 염초·무명·잡물 등은 별단(別單)으로 서계(書啓)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한사성은 직급을 올려주라. 윤간은 응당 6품으로 나갔어야 하나 전교에 따라 출품시키지 않았으니 지금은 5품직을 초수(超授)하여 본 도감낭청에 제수함으로써 한사성과 함께 계속 감독하여 내년에 쓸 청기와도 이 수량에 의하여 정성을 다해 굽게 하라."
하였다. 【당시에 도감 제조 이충(李沖)·윤중삼(尹重三) 등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부추겨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키더니 단청(丹靑)과 조각을 극도로 화려하고 교묘하게 하였으며, 윤간과 한사성은 기와 굽는 일을 전담하면서 무명과 포목을 낭비하였으며, 흙을 다루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가 궁중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었다. 왕이 또 장인(匠人)으로 하여금 많은 돈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황기와 굽는 방법을 배워오게 하였다. 황기와는 천자가 정전(正殿)의 지붕을 덮을 때 쓰는 기와로, 왕(王)·후(侯) 이하는 참람스럽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창준(唱准) 장언(張彦)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는 흔쾌히 공론을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광주(廣州) 유학 홍덕민(洪德民)이 상소하였는데, 그대개는, "오늘날의 상황은 대순(大舜)이 미천한 몸으로 있을 때와는 다릅니다. 자식과 어미의 관계를 들어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이는 자와 우순의 사실을 함부로 끌어대어 임금을 위협하는 자들을 속히 처단하여 큰일을 결정하고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게 하소서." 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기자헌을 회령(會寧)으로, 이항복을 경원(慶源)으로 고쳐 정배하였다.

 

예조 좌랑        기준격(奇俊格)이 비밀리에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국가가 불행하여 역변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 역적의 뿌리는 실로 허균(許筠)인데 그가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신은 몹시 분통합니다. 지금 허균이 역적 이의를 세워서 서궁을 끼고 정사를 보게 하려 한 진상을 일일이 진달하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전하께서는 아마 죄인을 알게 될 것이고 종묘 사직도 공고해질 것입니다. 기유년 겨울에 신의 아비는 외지에 있었고 신만 서울에 있었는데, 하루는 허균의 집에 갔더니, 신의 아비의 안부를 묻고 이어 말하기를 ‘이의창(李義昌)은 선왕이 아끼던 자식이었으므로 매번 왕으로 옹립하려 하였으나 너의 아비의 저지로 옹립할 수가 없었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마 이의가 출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옹립하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또 신해년 겨울에 신의 아비가 역시 외지에 있었고 신만 서울에 있었는데 하루는 허균의 집에 갔더니, 허균이 말하기를 ‘연흥부원군김제남(金悌男)이 나로 하여금 심정세(沈挺世)의 딸을 며느리로 삼도록 윤수겸(尹守謙)에게 청혼해 달라고 하였다. 연흥은 윤수겸이 일찍이 도감의 군사들에게 호감을 샀기 때문에 혼사를 맺고서 큰일을 시행하여 시체 두 구를 끌어내고 대군을 세워서 대비로 하여금 정사를 대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뼈가 저리고 가슴이 막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얼마 후 두 시체는 누구를 말하느냐고 천천히 물었더니 ‘임금과 동궁이다. 오늘 내가 연흥부원군김제남과 함께 가서 윤수겸을 만나보고 청혼을 했다. 윤수겸이 비록 싫더라도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윤이 뭐라고 하던가?’ 하니, 들어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허균이 또 말하기를 ‘연흥을 통하여 궁중의 사실을 얻어 듣건대 임금에게는 이러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차마 듣지 못할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내가 지금은 연흥에게 지휘받고 있지만 일이 성사된 뒤에는 내가 병권을 장악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무력을 행사하여 연흥도 함께 죽임으로써 나의 권력을 가장 크게 만들고 대비를 끼고 온 나라를 호령하여 다른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상책이다. 그리고 상에게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황제에게 모두 진달할 것이다. 그리고 적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미 폐지하고 적자인 이의를 세웠다고 한다면 은을 1만여 냥까지 쓰지 않아도 일은 순조롭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내가 권력을 잡는 것은 좋지만 심가 집에서는 그대의 집을 원망하고 있으니 심가가 뜻을 이루게 되면 그대의 집은 크게 패망하고 말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때 신이 그의 표정을 보니 의기양양하여 곁에 사람은 안중에 없는 듯이 행동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상소하려 하였으나 그 당시 온 조정이 동인·서인·남인·북인을 막론하고 모두 신의 집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혹시 신을 위협하고 죄를 뒤집어 씌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백방으로 생각을 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혼사를 중지시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사약(司鑰)        조희형(趙希珩)을 불러서 이르기를 ‘듣건대 심가와 윤가 사이에 혼사말이 있다고 한다. 그대는 윤가와 서로 알고 있으니 꼭 나를 위하여 윤가에게 말하기를 「아무리 김가와 허가가 정세의 딸을 며느리로 삼도록 권하더라도 따르지 말아야 한다. 허가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사람이니 만약 그의 말을 따른 뒤에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이다.」고 하라.’ 하였습니다. 그후 며칠이 지나자 조희형이 돌아와 말하기를 ‘윤가는 생원님의 분부에 따라 혼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하였으며, 윤수겸은 즉시 신과 절친한 사람인 송구(宋耉)를 청하여 손을 잡고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기를 ‘김가와 허가가 와서 혼사 문제를 말하여 내 몹시 민망스러웠다. 만약 기생원(奇生員)이 혼사를 중지시키지 않았더라면 나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꼭 기모(奇某)에게 달려가 만나보고 혼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주고 고맙다고 해달라.’ 하였다 합니다. 그 당시 심가와 김가는 신을 얼마나 미워했겠습니까.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허균이 윤수겸에게 혼사를 하도록 권한 전말이 명백하게 드러났으며 윤수겸·조희형·송구가 다 살아있으므로 속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 윤수겸이 신의 덕을 입어 혼사를 하지 않았지만 만약 혼사를 하였더라면 어찌 균에게서 나쁜 영향을 받아 나라에 화를 끼치지 않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용렬하지만 속으로는 노중련(魯仲連)과 이병길(李丙吉)의 높은 의리를 본받아 혼란된 것을 배제하고 큰 화변이 확대되기 전에 방지하고서도 감히 공로를 말하지 않았으니, 신을 일러 화단을 사전에 방지하였다고 말하더라도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균은 역적의 주모자입니다. 대개 허균은 선왕을 해치려고 음모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있다가 파면당하고 부안(扶安)으로 돌아갔을 때 그 고을 수령은 바로 심광세(沈光世)였는데, 허균은 그와 함께 이의를 세우고 권세를 잡을 것을 음모하였습니다. 또 경술년에는 죄를 받고 옥에 갇혔으며 신해년 정월에는 귀양갔으며 석방되어 돌아온 뒤에는 허균의 집이 광세와 문을 맞대고 있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상종하면서 감히 역적 음모를 하였습니다. 그의 성질이 경박하고 또 망령되기 때문에 신이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소진(蘇秦)은 제(齊)나라에 있으면서도 연(燕)나라를 위하여 제 나라를 쇠퇴하게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허균은 김제남과 공모하면서 서울을 옮기자는 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참서(讖書)의 본문에 없는 말을 더 써 넣어 ‘첫째는 한(漢), 둘째는 하(河), 셋째는 강(江), 넷째는 해(海)이다.’고 하였는데, 하(河)라고 한 것은 교하(交河)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의 인심이 원망하고 소란하게 한 다음 이어서 손을 쓰려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허균이 공주 목사 시절에 영(營)을 셋이나 두었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의 식객인 심우영(沈友英)·윤계영(尹繼榮)·이재영(李再榮)을 두고 이른 말입니다. 심우영은 허균의 처가집 친족으로서 서로 친밀하기가 한몸과 같았다는 것은 온 나라에서 다 아는 바입니다. 허균이 일찍이 시문(詩文)을 지어 심우영에게 주기를 ‘나의 벗 심군’이라고 하였습니다. 허균은 한평생 정도전(鄭道傳)을 흠모하여 항상 ‘현인(賢人)’이라고 칭찬하였으며, 《동인시문(東人詩文)》을 뽑을 때에도 정도전의 시를 가장 먼저 썼고 우영의 시도 그 안에 뽑아 넣었습니다. 그런데 계축년 뒤로 허균은 말하기를 ‘나는 복이 있다. 남쪽 지방으로 내려갔을 때 심우영에게 준 시를 모두 가지고 와서 나의 문집 속에다 넣으려 하였는데 때마침 일이 터져서 나만 화를 면하였다.’ 하였습니다. 심우영과 서양갑은 모두 허균이 친히 기른 자들입니다. 허균이 서양갑의 자를 석선(石仙)이라고 지어 주었으니 그것은 전설 속의 신선 황초평(黃初平)이 돌을 양으로 둔갑시킨 일에서 뜻을 취한 것입니다. 허균은 매번 하는 말이 ‘오늘날 영웅은 내가 본 바로는 서석선(徐石仙)뿐이다.’ 하였는데, 허균이 법망에서 빠져나가게 된 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계축년에 허균이 태인(泰仁)에서 올라온 후에 말하기를 ‘옥사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신경이 쓰여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는데, 죄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오던 길에 선전관을 만나자 혼이 떨어져 나갔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을 그냥 지나가자 매우 기뻤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역적의 격문은 내가 지었지만 내가 심우영으로 하여금 내 이름을 말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끝내 죄를 면할 수 있었는데, 허실(許實)은 어떻게 내가 지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단 말인가. 매우 잘못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경술·신해 년간에 신에게 이르기를 ‘상이 법궁(法宮)으로 이어하지 않으면 법궁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게 될 것이다.’ 하기에, 신이 묻기를 ‘이른바 주인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하였더니, 허균이 말하기를 ‘천시(天時)와 인사(人事)를 놓고 볼 때 대군이 마침내 주인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계축년 전에는 허균이 스스로 말하기를 ‘의가 성사만 되면 원훈(元勳)을 바로 이루게 될 것이다.’고 하였으며, 매번 말하기를 ‘이이첨의 집에 머리가 큰 뱀이 있는데 최영경과 김직재의 귀신이라고 한다. 그러니 얼마 후에 망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변란이 발생하여 몸둘 곳이 없게 되자 결국 이이첨에게 의탁하였습니다. 신이 계축년 가을 경에 그에게 묻기를 ‘전에는 어찌 대비로 하여금 이의를 왕위에 앉혀놓고 수렴 청정하게 하겠다고 해놓고 오늘날은 그를 폐위시키겠다고 하는가?’ 하니, 허균이 말하기를 ‘너는 나이가 어리니 무엇을 알겠는가. 말로(末路)를 걷는 사람은 화살이 떨어지는 곳에다가 과녁을 세워야 세상을 무사히 지낼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아마 허균의 성품이 경솔하지 않았다면 신은 필시 허균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그의 마음도 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방자한 말을 함부로 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그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신의 집안이, 그의 전일에 임금을 모해한 사실과 서궁을 부추겨 의를 세우려 했던 사실과 심가와 윤가의 혼사를 의논한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싫어하여 기필코 우리 식구를 다 죽이고자 기회를 틈타 모함을 하기에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신은 허균에게 큰 은혜를 베푼 셈인데, 알면서도 일찍이 진달하지 않은 죄는 마땅히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허균의 죄는 그 진상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신의 아비의 차자는 시대 상황을 알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죄를 범한 것이므로 그저 그릇된 일인 줄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남곤(南袞)이 광국(光國)의 공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비록 허균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어서 변무하는 일을 감당할 것이며, 대론(大論)의 경우는 삼사(三司)와 우의정, 동벽(東壁)과 서벽(西壁)의 다른 관리들이 응당 수일 안에 처리할 것이므로 허균과 같은 역적이 간여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담당하면서 뒤로 물리고 또 물려 고의로 지연시키면서 오로지 신의 아비를 무함하는 것으로 일을 삼고 공적인 일을 빙자하여 사적인 원수를 갚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허균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천지간에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게 한 것은 신의 죄입니다.  균이 또 말하기를 ‘정협이 자복하는 날에 이원형(李元亨)이 먼 곳으로부터 손을 흔들며 오기에 내심 그의 공초에서 말이 나올까 우려했는데 도착한 후에 문초하였으나 발설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겨우 모면하였다.’ 하였습니다. 균이 또 말하기를 ‘내가 만약 정권을 잡고 대비가 청정을 하게 된다면 내가 심이기(審食其)가 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땅히 원상(院相)이 되어 안에서 온 나라의 일을 결정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렇듯 무뢰하고 패려스러운데다 흉악하기까지 한 허균의 죄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지금은 대론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허균과 같은 역적의 도움이 없더라도 일을 변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을 모해하고 이의창(李義昌)을 세우려 한 죄와 이의를 내세워 서궁으로 하여금 수렴 청정하게 하려 한 허균의 죄를 다스리소서." 하였다.          【상소를 오랫동안 궁중에 머물려 두었다가 무오년 윤4월 14일에 추국청에 계하하였다. 당시에 기자헌은 강가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준격(奇俊格)이 이 상소를 올려 그의 아비를 구하였다. 허균의 세력도 이때부터 떨치지 못하게 되었다.】
"삼가 생각건대, 국가가 불행하여 역변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 역적의 뿌리는 실로 허균(許筠)인데 그가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신은 몹시 분통합니다. 지금 허균이 역적 이의를 세워서 서궁을 끼고 정사를 보게 하려 한 진상을 일일이 진달하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전하께서는 아마 죄인을 알게 될 것이고 종묘 사직도 공고해질 것입니다.
기유년 겨울에 신의 아비는 외지에 있었고 신만 서울에 있었는데, 하루는 허균의 집에 갔더니, 신의 아비의 안부를 묻고 이어 말하기를 ‘이의창(李義昌)은 선왕이 아끼던 자식이었으므로 매번 왕으로 옹립하려 하였으나 너의 아비의 저지로 옹립할 수가 없었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마 이의가 출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옹립하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또 신해년 겨울에 신의 아비가 역시 외지에 있었고 신만 서울에 있었는데 하루는 허균의 집에 갔더니, 허균이 말하기를 ‘연흥부원군김제남(金悌男)이 나로 하여금 심정세(沈挺世)의 딸을 며느리로 삼도록 윤수겸(尹守謙)에게 청혼해 달라고 하였다. 연흥은 윤수겸이 일찍이 도감의 군사들에게 호감을 샀기 때문에 혼사를 맺고서 큰일을 시행하여 시체 두 구를 끌어내고 대군을 세워서 대비로 하여금 정사를 대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뼈가 저리고 가슴이 막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얼마 후 두 시체는 누구를 말하느냐고 천천히 물었더니 ‘임금과 동궁이다. 오늘 내가 연흥부원군김제남과 함께 가서 윤수겸을 만나보고 청혼을 했다. 윤수겸이 비록 싫더라도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묻기를 ‘윤이 뭐라고 하던가?’ 하니, 들어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허균이 또 말하기를 ‘연흥을 통하여 궁중의 사실을 얻어 듣건대 임금에게는 이러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차마 듣지 못할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내가 지금은 연흥에게 지휘받고 있지만 일이 성사된 뒤에는 내가 병권을 장악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무력을 행사하여 연흥도 함께 죽임으로써 나의 권력을 가장 크게 만들고 대비를 끼고 온 나라를 호령하여 다른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상책이다. 그리고 상에게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황제에게 모두 진달할 것이다. 그리고 적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미 폐지하고 적자인 이의를 세웠다고 한다면 은을 1만여 냥까지 쓰지 않아도 일은 순조롭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내가 권력을 잡는 것은 좋지만 심가 집에서는 그대의 집을 원망하고 있으니 심가가 뜻을 이루게 되면 그대의 집은 크게 패망하고 말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때 신이 그의 표정을 보니 의기양양하여 곁에 사람은 안중에 없는 듯이 행동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상소하려 하였으나 그 당시 온 조정이 동인·서인·남인·북인을 막론하고 모두 신의 집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혹시 신을 위협하고 죄를 뒤집어 씌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백방으로 생각을 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혼사를 중지시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사약(司鑰)        조희형(趙希珩)을 불러서 이르기를 ‘듣건대 심가와 윤가 사이에 혼사말이 있다고 한다. 그대는 윤가와 서로 알고 있으니 꼭 나를 위하여 윤가에게 말하기를 「아무리 김가와 허가가 정세의 딸을 며느리로 삼도록 권하더라도 따르지 말아야 한다. 허가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사람이니 만약 그의 말을 따른 뒤에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이다.」고 하라.’ 하였습니다. 그후 며칠이 지나자 조희형이 돌아와 말하기를 ‘윤가는 생원님의 분부에 따라 혼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하였으며, 윤수겸은 즉시 신과 절친한 사람인 송구(宋耉)를 청하여 손을 잡고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기를 ‘김가와 허가가 와서 혼사 문제를 말하여 내 몹시 민망스러웠다. 만약 기생원(奇生員)이 혼사를 중지시키지 않았더라면 나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꼭 기모(奇某)에게 달려가 만나보고 혼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주고 고맙다고 해달라.’ 하였다 합니다. 그 당시 심가와 김가는 신을 얼마나 미워했겠습니까.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허균이 윤수겸에게 혼사를 하도록 권한 전말이 명백하게 드러났으며 윤수겸·조희형·송구가 다 살아있으므로 속일 수가 없는 일입니다. 윤수겸이 신의 덕을 입어 혼사를 하지 않았지만 만약 혼사를 하였더라면 어찌 균에게서 나쁜 영향을 받아 나라에 화를 끼치지 않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용렬하지만 속으로는 노중련(魯仲連)과 이병길(李丙吉)의 높은 의리를 본받아 혼란된 것을 배제하고 큰 화변이 확대되기 전에 방지하고서도 감히 공로를 말하지 않았으니, 신을 일러 화단을 사전에 방지하였다고 말하더라도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균은 역적의 주모자입니다. 대개 허균은 선왕을 해치려고 음모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있다가 파면당하고 부안(扶安)으로 돌아갔을 때 그 고을 수령은 바로 심광세(沈光世)였는데, 허균은 그와 함께 이의를 세우고 권세를 잡을 것을 음모하였습니다. 또 경술년에는 죄를 받고 옥에 갇혔으며 신해년 정월에는 귀양갔으며 석방되어 돌아온 뒤에는 허균의 집이 광세와 문을 맞대고 있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상종하면서 감히 역적 음모를 하였습니다. 그의 성질이 경박하고 또 망령되기 때문에 신이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소진(蘇秦)은 제(齊)나라에 있으면서도 연(燕)나라를 위하여 제 나라를 쇠퇴하게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허균은 김제남과 공모하면서 서울을 옮기자는 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참서(讖書)의 본문에 없는 말을 더 써 넣어 ‘첫째는 한(漢), 둘째는 하(河), 셋째는 강(江), 넷째는 해(海)이다.’고 하였는데, 하(河)라고 한 것은 교하(交河)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의 인심이 원망하고 소란하게 한 다음 이어서 손을 쓰려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허균이 공주 목사 시절에 영(營)을 셋이나 두었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의 식객인 심우영(沈友英)·윤계영(尹繼榮)·이재영(李再榮)을 두고 이른 말입니다. 심우영은 허균의 처가집 친족으로서 서로 친밀하기가 한몸과 같았다는 것은 온 나라에서 다 아는 바입니다. 허균이 일찍이 시문(詩文)을 지어 심우영에게 주기를 ‘나의 벗 심군’이라고 하였습니다. 허균은 한평생 정도전(鄭道傳)을 흠모하여 항상 ‘현인(賢人)’이라고 칭찬하였으며, 《동인시문(東人詩文)》을 뽑을 때에도 정도전의 시를 가장 먼저 썼고 우영의 시도 그 안에 뽑아 넣었습니다. 그런데 계축년 뒤로 허균은 말하기를 ‘나는 복이 있다. 남쪽 지방으로 내려갔을 때 심우영에게 준 시를 모두 가지고 와서 나의 문집 속에다 넣으려 하였는데 때마침 일이 터져서 나만 화를 면하였다.’ 하였습니다. 심우영과 서양갑은 모두 허균이 친히 기른 자들입니다. 허균이 서양갑의 자를 석선(石仙)이라고 지어 주었으니 그것은 전설 속의 신선 황초평(黃初平)이 돌을 양으로 둔갑시킨 일에서 뜻을 취한 것입니다. 허균은 매번 하는 말이 ‘오늘날 영웅은 내가 본 바로는 서석선(徐石仙)뿐이다.’ 하였는데, 허균이 법망에서 빠져나가게 된 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계축년에 허균이 태인(泰仁)에서 올라온 후에 말하기를 ‘옥사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신경이 쓰여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는데, 죄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오던 길에 선전관을 만나자 혼이 떨어져 나갔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을 그냥 지나가자 매우 기뻤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역적의 격문은 내가 지었지만 내가 심우영으로 하여금 내 이름을 말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끝내 죄를 면할 수 있었는데, 허실(許實)은 어떻게 내가 지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단 말인가. 매우 잘못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경술·신해 년간에 신에게 이르기를 ‘상이 법궁(法宮)으로 이어하지 않으면 법궁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게 될 것이다.’ 하기에, 신이 묻기를 ‘이른바 주인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하였더니, 허균이 말하기를 ‘천시(天時)와 인사(人事)를 놓고 볼 때 대군이 마침내 주인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계축년 전에는 허균이 스스로 말하기를 ‘의가 성사만 되면 원훈(元勳)을 바로 이루게 될 것이다.’고 하였으며, 매번 말하기를 ‘이이첨의 집에 머리가 큰 뱀이 있는데 최영경과 김직재의 귀신이라고 한다. 그러니 얼마 후에 망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변란이 발생하여 몸둘 곳이 없게 되자 결국 이이첨에게 의탁하였습니다. 신이 계축년 가을 경에 그에게 묻기를 ‘전에는 어찌 대비로 하여금 이의를 왕위에 앉혀놓고 수렴 청정하게 하겠다고 해놓고 오늘날은 그를 폐위시키겠다고 하는가?’ 하니, 허균이 말하기를 ‘너는 나이가 어리니 무엇을 알겠는가. 말로(末路)를 걷는 사람은 화살이 떨어지는 곳에다가 과녁을 세워야 세상을 무사히 지낼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아마 허균의 성품이 경솔하지 않았다면 신은 필시 허균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그의 마음도 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방자한 말을 함부로 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그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신의 집안이, 그의 전일에 임금을 모해한 사실과 서궁을 부추겨 의를 세우려 했던 사실과 심가와 윤가의 혼사를 의논한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싫어하여 기필코 우리 식구를 다 죽이고자 기회를 틈타 모함을 하기에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신은 허균에게 큰 은혜를 베푼 셈인데, 알면서도 일찍이 진달하지 않은 죄는 마땅히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허균의 죄는 그 진상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신의 아비의 차자는 시대 상황을 알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죄를 범한 것이므로 그저 그릇된 일인 줄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남곤(南袞)이 광국(光國)의 공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비록 허균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어서 변무하는 일을 감당할 것이며, 대론(大論)의 경우는 삼사(三司)와 우의정, 동벽(東壁)과 서벽(西壁)의 다른 관리들이 응당 수일 안에 처리할 것이므로 허균과 같은 역적이 간여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담당하면서 뒤로 물리고 또 물려 고의로 지연시키면서 오로지 신의 아비를 무함하는 것으로 일을 삼고 공적인 일을 빙자하여 사적인 원수를 갚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허균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천지간에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게 한 것은 신의 죄입니다.
균이 또 말하기를 ‘정협이 자복하는 날에 이원형(李元亨)이 먼 곳으로부터 손을 흔들며 오기에 내심 그의 공초에서 말이 나올까 우려했는데 도착한 후에 문초하였으나 발설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겨우 모면하였다.’ 하였습니다. 균이 또 말하기를 ‘내가 만약 정권을 잡고 대비가 청정을 하게 된다면 내가 심이기(審食其)가 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땅히 원상(院相)이 되어 안에서 온 나라의 일을 결정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렇듯 무뢰하고 패려스러운데다 흉악하기까지 한 허균의 죄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지금은 대론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허균과 같은 역적의 도움이 없더라도 일을 변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상을 모해하고 이의창(李義昌)을 세우려 한 죄와 이의를 내세워 서궁으로 하여금 수렴 청정하게 하려 한 허균의 죄를 다스리소서."
하였다.          【상소를 오랫동안 궁중에 머물려 두었다가 무오년 윤4월 14일에 추국청에 계하하였다. 당시에 기자헌은 강가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준격(奇俊格)이 이 상소를 올려 그의 아비를 구하였다. 허균의 세력도 이때부터 떨치지 못하게 되었다.】

 

12월 25일 병진

사헌부가 아뢰기를, "근래에 수령과 변방 장수들 중에는 군민(軍民)을 침학하여 군량을 마련하거나 무기를 제조한 다음 서로 상을 받을 궁리를 합니다. 그리하여 관작을 함부로 받아내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으므로 명기(名器)가 날로 흐려지고 있으니, 식견있는 자들이 한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함경 감사의 서장(書狀)을 보건대, 훈융 첨사(訓戎僉使) 임용길(林龍吉)은 군수물자를 특별히 마련했다는 것으로 새로이 당상직에 올랐는데, 막상 점고를 실시해 보니 새로 마련한 물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품목에도 없는 숫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조정을 기만한 그의 죄를 엄중하게 다스려서 다른 사람들을 경계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용길을 잡아다가 법률에 따라 죄를 정하도록 하소서. 승정원의 직책은 임무가 막중한 만큼 그전부터 신중을 기하여 뽑았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부승지 백대형(白大珩)은 성품이 본래 음탕하고 행실이 짐승같아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대간의 논핵도 누차 받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본직에 제수되자 물의가 들끓고 있으며 더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근밀한 자리에 두어 명기(名器)를 더렵혀서는 안 됩니다. 파직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백대형은 체차하라." 하였다.
"근래에 수령과 변방 장수들 중에는 군민(軍民)을 침학하여 군량을 마련하거나 무기를 제조한 다음 서로 상을 받을 궁리를 합니다. 그리하여 관작을 함부로 받아내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으므로 명기(名器)가 날로 흐려지고 있으니, 식견있는 자들이 한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함경 감사의 서장(書狀)을 보건대, 훈융 첨사(訓戎僉使) 임용길(林龍吉)은 군수물자를 특별히 마련했다는 것으로 새로이 당상직에 올랐는데, 막상 점고를 실시해 보니 새로 마련한 물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품목에도 없는 숫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조정을 기만한 그의 죄를 엄중하게 다스려서 다른 사람들을 경계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용길을 잡아다가 법률에 따라 죄를 정하도록 하소서.
승정원의 직책은 임무가 막중한 만큼 그전부터 신중을 기하여 뽑았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부승지 백대형(白大珩)은 성품이 본래 음탕하고 행실이 짐승같아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대간의 논핵도 누차 받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본직에 제수되자 물의가 들끓고 있으며 더럽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근밀한 자리에 두어 명기(名器)를 더렵혀서는 안 됩니다. 파직시키라고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백대형은 체차하라."
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업무 성적을 고과 평정하여 출척(黜陟)시키는 법은 지극히 엄격하므로 권세를 가지고 함부로 간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천 현감(泗川縣監) 양극(梁𧩦)은 역적 양즙(梁楫)의 서얼 동생으로 어울리지 않게 본직을 제수받았으니 몹시 외람된 일입니다. 전 감사 성진선(成晉善)은 그가 제수된 날수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는데 포폄을 가할 때에 하등(下等)을 내렸으니, 이는 실로 고과 평정을 엄격하게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양극이 자기 첩의 자식과 동서간이란 이유로 허위로 토박이라고 칭하여 비국에 정고(呈告)함으로써 기어이 잉임시키려는 계획을 이루고야 말았으니, 왕법을 무너뜨린 그들의 죄는 준 자나 받은 자나 모두 같습니다. 물정이 날이 갈수록 더욱 분개하고 있으니 사천 현감 양극을 사판에서 삭제하소서. 근래 장수의 자리를 돈으로 산다는 비방이 나도는 것은 전적으로 사정에 끌려 청탁을 일삼는 폐단에서 기인합니다. 장수 자리가 하나만 비어 있어도 1백 사람이 앞다투어 뇌물 행각을 벌이면서 망(望)에 들기를 청합니다. 현재의 최고 관리는 진퇴시킬 수 있는 권한을 잡고 있기 때문에 매번 비망(備望)을 가지고 값을 논하는 자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장수를 뽑는 망(望)에 많게는 10여 명이 몰려서 득실거리기는 하여도 대부분 적임자가 아니어서 식견있는 사람들이 가슴아파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그가 이미 벌을 받았으니 여론이 모두 흔쾌하게 여기면서 필시 그전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라 수사를 천망(薦望)하는 계사에 대하여 전하께서는 특별히 그전에 추천한 사람을 그대로 채용하라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어찌 천거한 주인은 내쫓고 추천받은 사람만 채용함으로써 깨끗한 조정에서 돈냄새가 난다는 혐의를 받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묘당에는 다른 재상이 있기 마련이므로 이 정승의 의견을 버리고 저 정승의 의견을 채용함으로 해서 그의 체면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전라 수사를 속히 비국으로 하여금 다시 새로 천망하게 하소서. 앞으로 비국에서 천망할 때에는 일체 구례에 따라 3인으로 한정하고 임의대로 인원수를 증감시키지 말게 해서, 관리를 임명할 때 인물을 우선으로 하는 국가의 법을 소중하게 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업무 성적을 고과 평정하여 출척(黜陟)시키는 법은 지극히 엄격하므로 권세를 가지고 함부로 간여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천 현감(泗川縣監) 양극(梁𧩦)은 역적 양즙(梁楫)의 서얼 동생으로 어울리지 않게 본직을 제수받았으니 몹시 외람된 일입니다. 전 감사 성진선(成晉善)은 그가 제수된 날수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는데 포폄을 가할 때에 하등(下等)을 내렸으니, 이는 실로 고과 평정을 엄격하게 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자헌은 양극이 자기 첩의 자식과 동서간이란 이유로 허위로 토박이라고 칭하여 비국에 정고(呈告)함으로써 기어이 잉임시키려는 계획을 이루고야 말았으니, 왕법을 무너뜨린 그들의 죄는 준 자나 받은 자나 모두 같습니다. 물정이 날이 갈수록 더욱 분개하고 있으니 사천 현감 양극을 사판에서 삭제하소서.
근래 장수의 자리를 돈으로 산다는 비방이 나도는 것은 전적으로 사정에 끌려 청탁을 일삼는 폐단에서 기인합니다. 장수 자리가 하나만 비어 있어도 1백 사람이 앞다투어 뇌물 행각을 벌이면서 망(望)에 들기를 청합니다. 현재의 최고 관리는 진퇴시킬 수 있는 권한을 잡고 있기 때문에 매번 비망(備望)을 가지고 값을 논하는 자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장수를 뽑는 망(望)에 많게는 10여 명이 몰려서 득실거리기는 하여도 대부분 적임자가 아니어서 식견있는 사람들이 가슴아파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그가 이미 벌을 받았으니 여론이 모두 흔쾌하게 여기면서 필시 그전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라 수사를 천망(薦望)하는 계사에 대하여 전하께서는 특별히 그전에 추천한 사람을 그대로 채용하라는 전교를 내리셨습니다. 어찌 천거한 주인은 내쫓고 추천받은 사람만 채용함으로써 깨끗한 조정에서 돈냄새가 난다는 혐의를 받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묘당에는 다른 재상이 있기 마련이므로 이 정승의 의견을 버리고 저 정승의 의견을 채용함으로 해서 그의 체면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전라 수사를 속히 비국으로 하여금 다시 새로 천망하게 하소서. 앞으로 비국에서 천망할 때에는 일체 구례에 따라 3인으로 한정하고 임의대로 인원수를 증감시키지 말게 해서, 관리를 임명할 때 인물을 우선으로 하는 국가의 법을 소중하게 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정광경(鄭廣敬)을 사인으로, 이대엽(李大燁)을 동부승지로, 윤선(尹銑)을 겸 동지의금부사로, 조국필(趙國弼)을 개성 유수로, 홍매(洪邁)를 연안 부사(延安府使)로 삼았다. 【홍매는 숙의(淑儀) 홍씨(洪氏)의 아비이다.】 강복성(康復誠)을 중화 부사(中和府使)로 삼았다.
12월 26일 정사

053) 전교하기를, "봉상시의 위판(位版)을 봉안해 놓은 곳은 그대로 두어 옮기지 말고, 관원들이 좌기하거나 숙직하는 곳과 같은 경우는 선혜청에 옮길 만한 곳이 있다고 하니, 옮길 만한 곳을 자세히 살펴서 아뢸 일로 도감에 말하라." 하였다. 【이 때에 봉상시를 허물고 새 궁궐로 옮기려 했기 때문에 이런 전교를 내린 것이다.】


[註 053]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전교하기를, "봉상시의 위판(位版)을 봉안해 놓은 곳은 그대로 두어 옮기지 말고, 관원들이 좌기하거나 숙직하는 곳과 같은 경우는 선혜청에 옮길 만한 곳이 있다고 하니, 옮길 만한 곳을 자세히 살펴서 아뢸 일로 도감에 말하라." 하였다. 【이 때에 봉상시를 허물고 새 궁궐로 옮기려 했기 때문에 이런 전교를 내린 것이다.】


[註 053]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봉상시의 위판(位版)을 봉안해 놓은 곳은 그대로 두어 옮기지 말고, 관원들이 좌기하거나 숙직하는 곳과 같은 경우는 선혜청에 옮길 만한 곳이 있다고 하니, 옮길 만한 곳을 자세히 살펴서 아뢸 일로 도감에 말하라."
하였다. 【이 때에 봉상시를 허물고 새 궁궐로 옮기려 했기 때문에 이런 전교를 내린 것이다.】


[註 053]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4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054)  전 현감 이문란(李文蘭)이 비밀리에 상소를 하였는데, 입계하였다.






[註 054]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5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전 현감 이문란(李文蘭)이 비밀리에 상소를 하였는데, 입계하였다.






[註 054]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5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055) 사간원이 아뢰기를, "서경(署經)하는 법은 조정이 제정한 금석과 같은 법이므로 뒤를 이어가는 자로서는 어기지 말고 잘 준수하여 영원히 허물이 없도록 함으로써 왕업을 공고히 하고 안정되게 해서 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양덕 현감 심눌(沈訥)은 세 번이나 서경을 받지 못했는데도 그대로 두고 체직시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조정의 법이 심눌로 말미암아 실추된 것이며 변할 수 없는 법이 여기에 이르러 다하게 된 것입니다. 법 지키기를 예전처럼 하더라도 오히려 폐지될까 염려인데 오늘날 법을 허물고 만다면 무엇을 가지고 후손들을 경계시킬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가면 갈수록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일개 양덕(陽德)이란 고을을 아껴서가 아니라 바로 조정의 법을 아끼기 때문이며, 일개 심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바로 옛법을 실추시키는 것이 미워서입니다. 요순을 본받으려면 마땅히 조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왕의 법을 준수하였는데 과실을 범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양덕 현감 심눌을 급히 체차하라고 명하여 조종이 제정한 서경하는 법을 중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註 055]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서경(署經)하는 법은 조정이 제정한 금석과 같은 법이므로 뒤를 이어가는 자로서는 어기지 말고 잘 준수하여 영원히 허물이 없도록 함으로써 왕업을 공고히 하고 안정되게 해서 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양덕 현감 심눌(沈訥)은 세 번이나 서경을 받지 못했는데도 그대로 두고 체직시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조정의 법이 심눌로 말미암아 실추된 것이며 변할 수 없는 법이 여기에 이르러 다하게 된 것입니다. 법 지키기를 예전처럼 하더라도 오히려 폐지될까 염려인데 오늘날 법을 허물고 만다면 무엇을 가지고 후손들을 경계시킬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가면 갈수록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일개 양덕(陽德)이란 고을을 아껴서가 아니라 바로 조정의 법을 아끼기 때문이며, 일개 심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바로 옛법을 실추시키는 것이 미워서입니다. 요순을 본받으려면 마땅히 조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왕의 법을 준수하였는데 과실을 범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양덕 현감 심눌을 급히 체차하라고 명하여 조종이 제정한 서경하는 법을 중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註 055]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6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서경(署經)하는 법은 조정이 제정한 금석과 같은 법이므로 뒤를 이어가는 자로서는 어기지 말고 잘 준수하여 영원히 허물이 없도록 함으로써 왕업을 공고히 하고 안정되게 해서 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양덕 현감 심눌(沈訥)은 세 번이나 서경을 받지 못했는데도 그대로 두고 체직시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조정의 법이 심눌로 말미암아 실추된 것이며 변할 수 없는 법이 여기에 이르러 다하게 된 것입니다. 법 지키기를 예전처럼 하더라도 오히려 폐지될까 염려인데 오늘날 법을 허물고 만다면 무엇을 가지고 후손들을 경계시킬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가면 갈수록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일개 양덕(陽德)이란 고을을 아껴서가 아니라 바로 조정의 법을 아끼기 때문이며, 일개 심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바로 옛법을 실추시키는 것이 미워서입니다. 요순을 본받으려면 마땅히 조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왕의 법을 준수하였는데 과실을 범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양덕 현감 심눌을 급히 체차하라고 명하여 조종이 제정한 서경하는 법을 중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056)  예조 좌랑 기준격(奇俊格)이 비밀리에 재차 상소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엊그제 상소를 올리고 한편으로 명을 기다리는 외에 반역을 꾀한 허균의 죄상을 가지고 다시 성상께 자세히 진달하겠습니다. 대체로 허균은 선조 때에 신의 아비가 그와 이홍로가 한마음으로 반역을 꾀했다 하여 먼곳으로 귀양보내려 하자, 그들은 김공량(金公諒)의 첩으로 하여금 궁중과 내통하여 선조를 현혹시키고 이어 옥사를 일으켜 신의 아비로 하여금 죄를 받게 하는 한편 그와 홍로가 조정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려 하였습니다. 신의 아비가 그러한 기미를 미리 알고 두루 방지하였으므로 그들의 계책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전하의 처지가 외롭고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허균이 감히 이러한 반역 음모를 꾀하였으니, 신의 아비가 죄를 받는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이고, 장차 전하를 어느 위치에 있게 한다는 말입니까. 생각하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허균의 마음에는 전하께서 필시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전적으로 홍로에게 마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홍로는 병오년 이후로 심엄(沈㤿)의 집과 혼인을 하였는데 심엄의 아들 심정세(沈挺世)는 곧 김제남의 사위입니다. 홍로가 심엄의 집과 혼인을 한 것도 역시 김제남의 집과 이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허균과 홍로는 절친하기 때문에 드디어 심씨 집안과 의기투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심엄은 무신년에 전하께서 왕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놀라 자진하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그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심우영(沈友英)은 허균의 처삼촌이며 심광세(沈光世)의 가까운 족속입니다. 허균과 심우영이 절친하다는 것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사실인 만큼, 실지로 몸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가 또 심씨 집안과 윤씨 집안 간에 혼인을 주장하였으나 신 때문에 성사시키지 못하였고, 신의 집안이 그가 역적 음모를 한 사실과 김제남·심우영·심광세 등과 서로 절친하여 반역을 도모한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미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유홍(李惟弘)·허균(許筠)·송언신(宋言愼)·조호(曺浩)·이홍로(李弘老) 등의 서간을 점련(粘連)하여 진달합니다. 여기에서 허균이 역모를 꾀할 때가 가장 먼저였기 때문에 그의 죄가 홍로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그 서간은 모두 네 장인데, 그 서간을 초한 사람 중에 ‘병한(病漢)’이라고 한 자는 유홍이며, 그 아래 쓴 자는 허균입니다. ‘호봉(壺峰)’은 바로 언신이며 ‘호(浩)’는 바로 조호입니다. 그 아래 두 장은 홍로의 글인데 밀납종이를 이용하여 그대로 모양을 떠낸 다음 그들의 필적을 성상께 올립니다. 모든 사건의 불씨는 허균에게 있는 만큼,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여 살피도록 하소서."


[註 056]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7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예조 좌랑 기준격(奇俊格)이 비밀리에 재차 상소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엊그제 상소를 올리고 한편으로 명을 기다리는 외에 반역을 꾀한 허균의 죄상을 가지고 다시 성상께 자세히 진달하겠습니다. 대체로 허균은 선조 때에 신의 아비가 그와 이홍로가 한마음으로 반역을 꾀했다 하여 먼곳으로 귀양보내려 하자, 그들은 김공량(金公諒)의 첩으로 하여금 궁중과 내통하여 선조를 현혹시키고 이어 옥사를 일으켜 신의 아비로 하여금 죄를 받게 하는 한편 그와 홍로가 조정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려 하였습니다. 신의 아비가 그러한 기미를 미리 알고 두루 방지하였으므로 그들의 계책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전하의 처지가 외롭고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허균이 감히 이러한 반역 음모를 꾀하였으니, 신의 아비가 죄를 받는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이고, 장차 전하를 어느 위치에 있게 한다는 말입니까. 생각하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허균의 마음에는 전하께서 필시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전적으로 홍로에게 마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홍로는 병오년 이후로 심엄(沈㤿)의 집과 혼인을 하였는데 심엄의 아들 심정세(沈挺世)는 곧 김제남의 사위입니다. 홍로가 심엄의 집과 혼인을 한 것도 역시 김제남의 집과 이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허균과 홍로는 절친하기 때문에 드디어 심씨 집안과 의기투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심엄은 무신년에 전하께서 왕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놀라 자진하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그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심우영(沈友英)은 허균의 처삼촌이며 심광세(沈光世)의 가까운 족속입니다. 허균과 심우영이 절친하다는 것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사실인 만큼, 실지로 몸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가 또 심씨 집안과 윤씨 집안 간에 혼인을 주장하였으나 신 때문에 성사시키지 못하였고, 신의 집안이 그가 역적 음모를 한 사실과 김제남·심우영·심광세 등과 서로 절친하여 반역을 도모한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미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유홍(李惟弘)·허균(許筠)·송언신(宋言愼)·조호(曺浩)·이홍로(李弘老) 등의 서간을 점련(粘連)하여 진달합니다. 여기에서 허균이 역모를 꾀할 때가 가장 먼저였기 때문에 그의 죄가 홍로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그 서간은 모두 네 장인데, 그 서간을 초한 사람 중에 ‘병한(病漢)’이라고 한 자는 유홍이며, 그 아래 쓴 자는 허균입니다. ‘호봉(壺峰)’은 바로 언신이며 ‘호(浩)’는 바로 조호입니다. 그 아래 두 장은 홍로의 글인데 밀납종이를 이용하여 그대로 모양을 떠낸 다음 그들의 필적을 성상께 올립니다. 모든 사건의 불씨는 허균에게 있는 만큼,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여 살피도록 하소서."


[註 056]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7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삼가 생각건대 엊그제 상소를 올리고 한편으로 명을 기다리는 외에 반역을 꾀한 허균의 죄상을 가지고 다시 성상께 자세히 진달하겠습니다.
대체로 허균은 선조 때에 신의 아비가 그와 이홍로가 한마음으로 반역을 꾀했다 하여 먼곳으로 귀양보내려 하자, 그들은 김공량(金公諒)의 첩으로 하여금 궁중과 내통하여 선조를 현혹시키고 이어 옥사를 일으켜 신의 아비로 하여금 죄를 받게 하는 한편 그와 홍로가 조정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려 하였습니다. 신의 아비가 그러한 기미를 미리 알고 두루 방지하였으므로 그들의 계책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전하의 처지가 외롭고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허균이 감히 이러한 반역 음모를 꾀하였으니, 신의 아비가 죄를 받는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이고, 장차 전하를 어느 위치에 있게 한다는 말입니까. 생각하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허균의 마음에는 전하께서 필시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전적으로 홍로에게 마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홍로는 병오년 이후로 심엄(沈㤿)의 집과 혼인을 하였는데 심엄의 아들 심정세(沈挺世)는 곧 김제남의 사위입니다. 홍로가 심엄의 집과 혼인을 한 것도 역시 김제남의 집과 이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허균과 홍로는 절친하기 때문에 드디어 심씨 집안과 의기투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심엄은 무신년에 전하께서 왕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놀라 자진하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그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심우영(沈友英)은 허균의 처삼촌이며 심광세(沈光世)의 가까운 족속입니다. 허균과 심우영이 절친하다는 것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사실인 만큼, 실지로 몸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가 또 심씨 집안과 윤씨 집안 간에 혼인을 주장하였으나 신 때문에 성사시키지 못하였고, 신의 집안이 그가 역적 음모를 한 사실과 김제남·심우영·심광세 등과 서로 절친하여 반역을 도모한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미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유홍(李惟弘)·허균(許筠)·송언신(宋言愼)·조호(曺浩)·이홍로(李弘老) 등의 서간을 점련(粘連)하여 진달합니다. 여기에서 허균이 역모를 꾀할 때가 가장 먼저였기 때문에 그의 죄가 홍로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그 서간은 모두 네 장인데, 그 서간을 초한 사람 중에 ‘병한(病漢)’이라고 한 자는 유홍이며, 그 아래 쓴 자는 허균입니다. ‘호봉(壺峰)’은 바로 언신이며 ‘호(浩)’는 바로 조호입니다. 그 아래 두 장은 홍로의 글인데 밀납종이를 이용하여 그대로 모양을 떠낸 다음 그들의 필적을 성상께 올립니다. 모든 사건의 불씨는 허균에게 있는 만큼,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유념하여 살피도록 하소서."


 

057)  우참찬 허균이 비밀리에 상소하여 자책을 가하였다. 【상소 내용은 유실되어 기록하지 못한다. 재차 올린 상소는 아래에 보인다.○허균은 요망스런 불교(佛敎)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였는데 기자헌이 불교를 신봉하였기 때문에 서로 친밀하게 지냈다. 또 기준격으로 하여금 허균을 스승으로 섬기게 하였기 때문에 기준격은 그의 집에 마치 자식처럼 출입하였다. 허균이 이미 대론과 관련하여 의견을 달리하고 기자헌을 죽이려 하자, 기준격은 전일 그의 집에 출입할 때 얻은 서찰 중에 국사를 언급한 것과 평소에 말한 내용들을 들추어내었는데, 이것은 모두 기자헌이 술책을 부린 것이다.】


[註 057]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8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우참찬 허균이 비밀리에 상소하여 자책을 가하였다. 【상소 내용은 유실되어 기록하지 못한다. 재차 올린 상소는 아래에 보인다.○허균은 요망스런 불교(佛敎)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였는데 기자헌이 불교를 신봉하였기 때문에 서로 친밀하게 지냈다. 또 기준격으로 하여금 허균을 스승으로 섬기게 하였기 때문에 기준격은 그의 집에 마치 자식처럼 출입하였다. 허균이 이미 대론과 관련하여 의견을 달리하고 기자헌을 죽이려 하자, 기준격은 전일 그의 집에 출입할 때 얻은 서찰 중에 국사를 언급한 것과 평소에 말한 내용들을 들추어내었는데, 이것은 모두 기자헌이 술책을 부린 것이다.】


[註 057]  : 이 기사는 정초본에 12월25일 8번째 기사로 편집되어 있으나 중초본에 따라 12월 26일 기사로 바로 잡았다.

 

 

 

12월 27일 무오

유학 이국광(李國光)·이국헌(李國獻) 등이 일곱 번째 상소하였다. 그 대개의 내용에, "대신이 두 가지 마음을 갖는 것과 훌륭한 임금도 몰라보고 함부로 헐뜯는 것은 모두 화근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멀지 않은 시기에 큰 변고가 발생할 것만 같으니 청컨대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춘추(春秋)》의 대의를 법으로 삼고 호씨(胡氏)의 정론(定論)에 의거하여 마땅히 용단을 내려야 할 일은 흔쾌히 용단을 내려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요즘 삼사는 재야의 정론(正論)을 빙자하여 단지 사흉(四凶)에 대해서만 토죄를 하고 큰일을 결정하는데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더니 그 논의마저 중지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한두 명의 사직신(社稷臣)의 도움을 받아 대의를 밝히고 종묘 사직을 부지하게 되었는데, 만약 이와 같은 충성스런 한두 명의 신하마저 없었더라면 사직이 과연 사직다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자기가 맡고 있는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지위에 걸맞는 정사를 꾀할 수 없는 것이며 재능이 탁월한 자에게 사소한 일을 맡기는 것은 공자도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참찬의 임무를 맡은 것만으로는 자신의 충정을 다할 수 없으며 경조윤(京兆尹)만으로는 나라를 부지하는 큰 의리를 시행할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이와 같이 충성스런 인재를 진출시키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종묘 사직의 복이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참찬은 허균(許筠)이고, 경조윤은 김개(金闓)이다.】
"대신이 두 가지 마음을 갖는 것과 훌륭한 임금도 몰라보고 함부로 헐뜯는 것은 모두 화근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멀지 않은 시기에 큰 변고가 발생할 것만 같으니 청컨대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춘추(春秋)》의 대의를 법으로 삼고 호씨(胡氏)의 정론(定論)에 의거하여 마땅히 용단을 내려야 할 일은 흔쾌히 용단을 내려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요즘 삼사는 재야의 정론(正論)을 빙자하여 단지 사흉(四凶)에 대해서만 토죄를 하고 큰일을 결정하는데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더니 그 논의마저 중지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한두 명의 사직신(社稷臣)의 도움을 받아 대의를 밝히고 종묘 사직을 부지하게 되었는데, 만약 이와 같은 충성스런 한두 명의 신하마저 없었더라면 사직이 과연 사직다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자기가 맡고 있는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지위에 걸맞는 정사를 꾀할 수 없는 것이며 재능이 탁월한 자에게 사소한 일을 맡기는 것은 공자도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참찬의 임무를 맡은 것만으로는 자신의 충정을 다할 수 없으며 경조윤(京兆尹)만으로는 나라를 부지하는 큰 의리를 시행할 수 없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이와 같이 충성스런 인재를 진출시키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종묘 사직의 복이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참찬은 허균(許筠)이고, 경조윤은 김개(金闓)이다.】
전교하였다. "국사에 어려움이 많은 이런 때에 병사나 수사를 교체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성우길(成祐吉)은 추고한 다음, 서둘러 군량과 무기를 원 수량에 맞추어 마련한 뒤 다시 계문하게 하라."
"국사에 어려움이 많은 이런 때에 병사나 수사를 교체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성우길(成祐吉)은 추고한 다음, 서둘러 군량과 무기를 원 수량에 맞추어 마련한 뒤 다시 계문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회답사 오윤겸(吳允謙), 부사 박재(朴梓)는 가자하고, 종사관 이경직(李景稷) 이하 일행이었던 관원에게는 선조 때 상을 주었던 규례에 의거하여 시상할 것이니, 속히 《실록(實錄)》을 상고하여 계문하도록 하라."
"회답사 오윤겸(吳允謙), 부사 박재(朴梓)는 가자하고, 종사관 이경직(李景稷) 이하 일행이었던 관원에게는 선조 때 상을 주었던 규례에 의거하여 시상할 것이니, 속히 《실록(實錄)》을 상고하여 계문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주청사 이정귀(李廷龜)에게는 외거 노비 5명과 토지 30결, 부사 유간(柳澗)에게는 외거 노비 3명과 토지 20결, 서장관 장자호(張自好)에게는 외거 노비 2명과 토지 10결을 하사하라. 장예충(張禮忠)과 이응(李膺)에게는 실직을 제수하라. 규정외에 연달아 세 차례 중국에 다녀온 상통사(上通事) 방의남(方義男)에게는 전에 정직(正職)을 제수하라는 명을 두 번이나 내렸는데도 아직 거행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자급을 건너뛰어 실직을 제수하라. 규정 외에 연달아 세 차례 중국에 다녀온 박선(朴璇)에게는 본아문의 정직을 제수하라. 규정외 연달아 세 차례 중국에 다녀온 군관 양귀생(梁貴生)과 질문의관 최순립(崔順立)에게는 모두 실직을 제수하라. 이문 학관 이장배(李長培)와 사자관 이정상(李廷祥)에게는 전에 동반 6품직을 제수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아직도 승전을 받들어 거행하지 않았으니 지금 모두에게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하도록 하라. 유학 신경식(申景禔)에게는 알맞는 관직을 제수하라. 군관 이시길(李時吉)과 조안인(曺安仁)에게는 모두 가자하라. 압마관(押馬官) 박신남(朴信男)에게는 연속적으로 세 번이나 다녀왔으니 높은 품계의 녹봉을 내려주도록 하라."
"주청사 이정귀(李廷龜)에게는 외거 노비 5명과 토지 30결, 부사 유간(柳澗)에게는 외거 노비 3명과 토지 20결, 서장관 장자호(張自好)에게는 외거 노비 2명과 토지 10결을 하사하라. 장예충(張禮忠)과 이응(李膺)에게는 실직을 제수하라. 규정외에 연달아 세 차례 중국에 다녀온 상통사(上通事) 방의남(方義男)에게는 전에 정직(正職)을 제수하라는 명을 두 번이나 내렸는데도 아직 거행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자급을 건너뛰어 실직을 제수하라. 규정 외에 연달아 세 차례 중국에 다녀온 박선(朴璇)에게는 본아문의 정직을 제수하라. 규정외 연달아 세 차례 중국에 다녀온 군관 양귀생(梁貴生)과 질문의관 최순립(崔順立)에게는 모두 실직을 제수하라. 이문 학관 이장배(李長培)와 사자관 이정상(李廷祥)에게는 전에 동반 6품직을 제수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아직도 승전을 받들어 거행하지 않았으니 지금 모두에게 가자하고 실직을 제수하도록 하라. 유학 신경식(申景禔)에게는 알맞는 관직을 제수하라. 군관 이시길(李時吉)과 조안인(曺安仁)에게는 모두 가자하라. 압마관(押馬官) 박신남(朴信男)에게는 연속적으로 세 번이나 다녀왔으니 높은 품계의 녹봉을 내려주도록 하라."


 

사헌부가 아뢰기를, "선왕이 제정한 법은 후세 왕이 마음대로 폐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한 나라의 공론은 아무리 임금이라 하더라도 위세로 저지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이번에 양덕 현감 심눌은 미천한 일개 서자 출신으로서 성품이 본래 형편없는 자인데 세 번이나 서경을 받지 못한 후에도 체직시키지 말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금석과 같은 국가의 법이 심눌로 말미암아 무너지게 되었는데, 양덕지방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신들이 지금까지 집요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일개 양덕을 아껴서가 아니라 조종이 제정해 놓은 법을 아껴서이며 또한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양덕 현감 심눌을 속히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선왕이 제정한 법은 후세 왕이 마음대로 폐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한 나라의 공론은 아무리 임금이라 하더라도 위세로 저지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이번에 양덕 현감 심눌은 미천한 일개 서자 출신으로서 성품이 본래 형편없는 자인데 세 번이나 서경을 받지 못한 후에도 체직시키지 말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금석과 같은 국가의 법이 심눌로 말미암아 무너지게 되었는데, 양덕지방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신들이 지금까지 집요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일개 양덕을 아껴서가 아니라 조종이 제정해 놓은 법을 아껴서이며 또한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양덕 현감 심눌을 속히 체차하라고 명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이문 학관(吏文學官) 이원형(李元亨)이 비밀리에 상소하였는데, 입계하였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기준격은 허균이 임금을 모해했다는 것으로 장문을 올려 고변하였습니다. 실지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허균은 더할 나위 없는 역적인 것이며, 날조하여 무고한 것이라면 준격도 큰 역적인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이미 역적인 이상 역적을 성토하는 거조를 잠시라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기준격의 상소가 두 번씩이나 올라왔고 허균도 이미 상소를 올려 자책을 가하였는데, 국문을 실시하라는 명은 아직도 지연되고 있으니, 이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인데 이처럼 심상하게 보십니까.  기준격과 허균의 상소가 비록 비밀리에 올려졌다고는 하나 온 나라에 벌써 소문이 나 사람들은 모두 들어서 알고 있으며, 여론이 답답하게 여기면서 분명하게 조사하여 확실한 형벌을 가하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신들이 임금의 이목(耳目) 역할을 하는 관직에 몸담고 있는 이상 어찌 비밀 상소라는 이유로 핑계대고 정성을 다하여 역적을 성토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가 있겠습니까. 기준격의 상소는 사실 기자헌의 지시에서 나온 것입니다. 청컨대 기자헌·기준격·허균을 모두 국문을 실시해서 실정을 밝혀냄으로써 신명과 사람의 분함을 씻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기준격은 허균이 임금을 모해했다는 것으로 장문을 올려 고변하였습니다. 실지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허균은 더할 나위 없는 역적인 것이며, 날조하여 무고한 것이라면 준격도 큰 역적인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이미 역적인 이상 역적을 성토하는 거조를 잠시라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기준격의 상소가 두 번씩이나 올라왔고 허균도 이미 상소를 올려 자책을 가하였는데, 국문을 실시하라는 명은 아직도 지연되고 있으니, 이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인데 이처럼 심상하게 보십니까.
기준격과 허균의 상소가 비록 비밀리에 올려졌다고는 하나 온 나라에 벌써 소문이 나 사람들은 모두 들어서 알고 있으며, 여론이 답답하게 여기면서 분명하게 조사하여 확실한 형벌을 가하기를 바라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신들이 임금의 이목(耳目) 역할을 하는 관직에 몸담고 있는 이상 어찌 비밀 상소라는 이유로 핑계대고 정성을 다하여 역적을 성토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가 있겠습니까. 기준격의 상소는 사실 기자헌의 지시에서 나온 것입니다. 청컨대 기자헌·기준격·허균을 모두 국문을 실시해서 실정을 밝혀냄으로써 신명과 사람의 분함을 씻도록 하소서."
하니,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평안도 평사(評事) 최유해(崔有海)는 본래 간사한 사람으로서 이랬다저랬다 일정한 주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도 끝도 없이 공정한 논의를 배격해 왔기 때문에 본직에 제수되자 물정이 모두 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청컨대 그를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  군자 판관(軍資判官) 이숙(李潚)은 본래 음험한 사람으로 전에 조경기(趙慶起)가 흉측한 소를 올릴 때에 그는 거상(居喪) 중에 있었는데 직접 상소문을 초하여 사론(邪論)을 선동하였으니 그의 죄상은 경기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지금, 이와 같이 요망스런 무리로 하여금 어찌 버젓이 관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다른 논의를 주장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판에서 삭거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평안도 평사(評事) 최유해(崔有海)는 본래 간사한 사람으로서 이랬다저랬다 일정한 주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도 끝도 없이 공정한 논의를 배격해 왔기 때문에 본직에 제수되자 물정이 모두 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청컨대 그를 파직하고 서용하지 마소서.
군자 판관(軍資判官) 이숙(李潚)은 본래 음험한 사람으로 전에 조경기(趙慶起)가 흉측한 소를 올릴 때에 그는 거상(居喪) 중에 있었는데 직접 상소문을 초하여 사론(邪論)을 선동하였으니 그의 죄상은 경기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 지금, 이와 같이 요망스런 무리로 하여금 어찌 버젓이 관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다른 논의를 주장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판에서 삭거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12월 28일 기미

전 훈도 김대하(金大河)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거짓말을 꾸며 정소(呈疏)함으로써 큰 공이 있는 사람을 방해한 기준격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한 내용이었다.

 

 

 

호군 이문전(李文荃)과 예조 좌랑 기준격이 비밀리에 두 번째 소를 올렸는데 계(啓) 자(字)를 찍지 않고 내려보냈다. 【이문전의 상소는 유실되어 기록하지 못한다.】
전교하였다. "내가 요즘 감기를 앓고 있으므로 망궐례는 며칠을 지내보고 결정하겠다만, 다음달 4일에 칙서를 맞이하는 예를 실시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6일이 좋을 듯하니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아뢸 일로 해조에 말하라."
"내가 요즘 감기를 앓고 있으므로 망궐례는 며칠을 지내보고 결정하겠다만, 다음달 4일에 칙서를 맞이하는 예를 실시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6일이 좋을 듯하니 일관(日官)에게 물어서 아뢸 일로 해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근래에 병사 수사 이하 수령과 변방 장수들이 병기와 군량을 별도로 마련했다고 보고하여 높은 벼슬을 받은 자가 전후하여 상당히 많은데, 그중에는 허위로 꾸며댄 자가 적지 않다고 하니 매우 놀랍다. 훈융 첨사 임용길(林龍吉)을 잡아다가 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캐낸 다음 임금을 기만한 율을 적용토록 하고, 각도 감사에게 하유하여 무기와 군량을 마련한 사람들을 일일이 상세하게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근래에 병사 수사 이하 수령과 변방 장수들이 병기와 군량을 별도로 마련했다고 보고하여 높은 벼슬을 받은 자가 전후하여 상당히 많은데, 그중에는 허위로 꾸며댄 자가 적지 않다고 하니 매우 놀랍다. 훈융 첨사 임용길(林龍吉)을 잡아다가 엄하게 국문하여 실정을 캐낸 다음 임금을 기만한 율을 적용토록 하고, 각도 감사에게 하유하여 무기와 군량을 마련한 사람들을 일일이 상세하게 조사해서 아뢰게 하라."
대사간 윤인(尹訒), 정언 이강(李茳)이 아뢰었다. "정당한 논의가 막힌 냇물을 터놓은 듯 거세게 일고 의리를 앞세운 상소가 여기저기서 구름이 일듯 모여들었습니다. 세월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정승 자리에 있는 자들은 말없이 잠자코 있기만 하기 때문에 상황은 결말날 기약이 없고 정당한 기풍은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간사한 사람들이 흔단을 만들어 내는 바람에 큰일은 점차 그릇되어 가고 우려되는 현상은 황급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때야말로 신하된 자들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시기입니다. 신들은 언관의 자리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저 대열만 따랐을 뿐, 한마디 말을 해서 대의를 밝혀 만분의 일이나마 임금의 원수를 갚지 못하였습니다. 이렇듯 녹봉만 타먹는 살아있는 송장 같고 소리없이 서있는 의장말과 같으니, 직책을 다하지 못한 죄를 사실상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의리에 분개하고 있는 초야의 선비들이 들고 일어나 불충한 자로 지목하여 조소하고 있는데, 어찌 얼굴을 들고 버티고 있음으로써 종묘 사직을 저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신들의 관직을 먼저 파척하여 공의에 답하소서."
"정당한 논의가 막힌 냇물을 터놓은 듯 거세게 일고 의리를 앞세운 상소가 여기저기서 구름이 일듯 모여들었습니다. 세월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정승 자리에 있는 자들은 말없이 잠자코 있기만 하기 때문에 상황은 결말날 기약이 없고 정당한 기풍은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간사한 사람들이 흔단을 만들어 내는 바람에 큰일은 점차 그릇되어 가고 우려되는 현상은 황급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때야말로 신하된 자들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시기입니다.
신들은 언관의 자리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저 대열만 따랐을 뿐, 한마디 말을 해서 대의를 밝혀 만분의 일이나마 임금의 원수를 갚지 못하였습니다. 이렇듯 녹봉만 타먹는 살아있는 송장 같고 소리없이 서있는 의장말과 같으니, 직책을 다하지 못한 죄를 사실상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의리에 분개하고 있는 초야의 선비들이 들고 일어나 불충한 자로 지목하여 조소하고 있는데, 어찌 얼굴을 들고 버티고 있음으로써 종묘 사직을 저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신들의 관직을 먼저 파척하여 공의에 답하소서."


 

지평 김호(金昈)가 아뢰었다. "삼가 간원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책임 완수를 하지 못한 실책은 신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버젓이 버티고 있을 수가 없으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삼가 간원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책임 완수를 하지 못한 실책은 신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버젓이 버티고 있을 수가 없으니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정언 박종주(朴宗胄)가 아뢰었다. "삼가 대사간 윤인과 정언 이강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불충하다는 조소는 신도 역시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삼가 대사간 윤인과 정언 이강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불충하다는 조소는 신도 역시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우의정 한효순(韓孝純)이 상차하여 속히 새 정승을 뽑기를 청하자, 답하기를, "상소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가까운 시일에 임명할 것이니 경은 협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상소를 살펴보고 잘 알았다. 가까운 시일에 임명할 것이니 경은 협의해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유학 이구(李榘)가 상소하였다. 그 대개에 이르기를, "서궁의 내인(內人)을 엄하게 단속하여 한층더 출입을 통제하게 하고, 두 흉물을 속히 귀양지로 보내서 빈말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를 다스린 다음, 바로 서궁을 폐출시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서궁의 내인(內人)을 엄하게 단속하여 한층더 출입을 통제하게 하고, 두 흉물을 속히 귀양지로 보내서 빈말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를 다스린 다음, 바로 서궁을 폐출시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진사 최광필(崔光弼) 등이 상소하기를, "중대한 논의가 중지됨에 따라 상황을 완결지을 기약이 없게 되고, 간악한 무리들이 흑심을 품고 나서니, 임금의 처지가 매우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삼사의 관원들은 마땅히 서둘러 토죄하기를 청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만 보내면서 잠자코 있기만 합니다.  이병(李覮)은 대사헌의 신분입니다. 말로는 중대한 논의를 주장한다고 하고서 서궁을 폐출하자는 논의를 제기하지도 않았으며 폄삭을 가하자는 주장도 자발적으로 담당하려 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다른 데 있는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지 않은 삼사의 죄를 다스린 다음 지위만 격하시키자는 논의를 받아들이지 말고 속히 서궁을 처단함으로써 흉악한 무리들이 그에게 걸고 있는 희망을 근절시킴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이런 말을 어찌 나에게 하는가. 차마 듣지 못하겠다." 하였다. 【무오년 정월 16일에 비로소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중대한 논의가 중지됨에 따라 상황을 완결지을 기약이 없게 되고, 간악한 무리들이 흑심을 품고 나서니, 임금의 처지가 매우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삼사의 관원들은 마땅히 서둘러 토죄하기를 청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만 보내면서 잠자코 있기만 합니다.
이병(李覮)은 대사헌의 신분입니다. 말로는 중대한 논의를 주장한다고 하고서 서궁을 폐출하자는 논의를 제기하지도 않았으며 폄삭을 가하자는 주장도 자발적으로 담당하려 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다른 데 있는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지 않은 삼사의 죄를 다스린 다음 지위만 격하시키자는 논의를 받아들이지 말고 속히 서궁을 처단함으로써 흉악한 무리들이 그에게 걸고 있는 희망을 근절시킴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이런 말을 어찌 나에게 하는가. 차마 듣지 못하겠다."
하였다. 【무오년 정월 16일에 비로소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대사헌 이병이 아뢰었다. "지금 간원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직무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는 신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최광필의 상소는 대체로 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극도로 배척을 가하였으니, 신이 어찌 감히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지금 간원이 피혐한 내용을 보건대 직무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는 신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최광필의 상소는 대체로 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극도로 배척을 가하였으니, 신이 어찌 감히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집의 임건(林健), 지평 정양윤(鄭良胤)이 아뢰었다. "신들이 삼가 간원의 여러 관리들과 동료들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간언을 드리지 않고 충성을 다하지 못한 죄는 신들도 그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신들이 삼가 간원의 여러 관리들과 동료들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간언을 드리지 않고 충성을 다하지 못한 죄는 신들도 그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전교하였다. "이항복을 정홍익·김덕함과 똑같이 육진에 정배시킨 것은 타당치 않다. 이항복을 남쪽의 다른 도에다 다시 정배하도록 하라."
"이항복을 정홍익·김덕함과 똑같이 육진에 정배시킨 것은 타당치 않다. 이항복을 남쪽의 다른 도에다 다시 정배하도록 하라."
사간 남이준, 헌납 조정립이 아뢰었다. "삼가 동료들이 직무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로 인피한 것을 보건대, 신들이 버티고 있을 수 없는 처지가 동료와 차이가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삼가 동료들이 직무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로 인피한 것을 보건대, 신들이 버티고 있을 수 없는 처지가 동료와 차이가 없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대사헌과 대사간 이하에게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12월 29일 경신

장령 강수(姜燧)와 한영(韓詠)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삼가 간원의 여러 관리들과 동료들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간언을 드리지 않은 죄와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조롱은 신도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신이 어제 삼가 간원의 여러 관리들과 동료들이 인피한 내용을 보건대 간언을 드리지 않은 죄와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조롱은 신도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들의 관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전교하였다. "좌상에게 설을 지낸 뒤에 사관을 보내 안부를 묻고 음식물을 넉넉하게 보내줄 일로 경상 감사에게 하유하라."
"좌상에게 설을 지낸 뒤에 사관을 보내 안부를 묻고 음식물을 넉넉하게 보내줄 일로 경상 감사에게 하유하라."


 

 

 

가주서 한정국이 서계하기를, "신이 이달 7일에 좌의정 정인홍에게 내려가서 유문(諭文)을 전하였더니, 그가 아뢰기를 ‘신이 두어 해 동안 전하 곁을 떠나 있어서 죄가 무거워졌으니 합문에서 대죄하는 예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견책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찌 부르시는 명이 천만 뜻밖에 나올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신이 이달 7일에 좌의정 정인홍에게 내려가서 유문(諭文)을 전하였더니, 그가 아뢰기를 ‘신이 두어 해 동안 전하 곁을 떠나 있어서 죄가 무거워졌으니 합문에서 대죄하는 예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견책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찌 부르시는 명이 천만 뜻밖에 나올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역변이 또 발생하여 죄인이 많이 들어왔으니 추국하는 문제가 매우 시급하다. 그런데 여러 날 동안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음으로써 오랫동안 추국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무슨 경우인가. 판의금 박승종과 동지의금 윤수민을 추고하라."
"역변이 또 발생하여 죄인이 많이 들어왔으니 추국하는 문제가 매우 시급하다. 그런데 여러 날 동안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음으로써 오랫동안 추국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무슨 경우인가. 판의금 박승종과 동지의금 윤수민을 추고하라."


 

 

 

유학 김정량(金廷亮)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개는 "선후(先后)를 저주하고 중국을 배반한 죄를 들어 서궁을 폐출시키고 이어서 네 명의 흉악한 자와 다섯 명의 역적을 참형에 처함으로써 남의 신하가 되어 부도한 행위를 하는 자들의 경계로 삼도록 하소서." 하는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홍문관이 상차하여 양사를 모두 출사시키기를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유학 김건(金鍵)이 상소하여, 서궁을 폐출시킴으로써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고 이어서 허황된 말을 꾸며 훌륭한 재상을 지나치게 꾸짖고 큰일을 그르치게 하려 했던 남궁경(南宮㯳)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였는데,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부사직 유전(柳湔)이 상소하여, 흔쾌히 공론을 따라서 종묘 사직을 안정시키기를 청하니, 의정부에 계하하였다.


 

이항복을 삼수(三水)로 고쳐 정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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