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3권, 순종5년 1912년 4월

싸라리리 2025. 2. 8. 11:07
반응형

4월 1일 양력

【음력 임자년(壬子年) 2월 14일】  단종 대왕(端宗大王)의 태실(胎室)을 묻은 산 이외 1개소(箇所), 현종 대왕(顯宗大王)의 태실을 묻은 산 이외 5개소의 경계를 결정하는 일에 관한 농상공부 장관(農商工部長官)의 통첩(通牒)을 받았다.


【원본】 6책 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71면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단종 대왕(端宗大王)의 태실(胎室)을 묻은 산 이외 1개소(箇所), 현종 대왕(顯宗大王)의 태실을 묻은 산 이외 5개소의 경계를 결정하는 일에 관한 농상공부 장관(農商工部長官)의 통첩(通牒)을 받았다.

 

4월 4일 양력

비원(祕苑) 식물원(植物苑) 본관(本館)에 왕림하여 내무부 장관(內務部長官) 우사미 가쓰오〔宇佐美勝夫〕, 복심법원(覆審法院) 검사장(檢事長) 고쿠분 산가이〔國分三亥〕, 전 토지조사국 총재(土地調査局總裁) 다와라 마고이치〔俵孫一〕를 접견하였다. 이어 후작(侯爵) 윤택영(尹澤榮), 백작(伯爵) 이완용(李完用) 및 민영찬(閔泳瓚),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 차관(次官) 고미야 미호마쓰〔小宮三保松〕, 찬시(贊侍) 자작 윤덕영(尹德榮), 부무관(附武官) 자작 이병무(李秉武)를 소견(召見)하였다. 오찬(午餐)을 내리고 배식(陪食)하였다.

 

4월 5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덕안궁(德安宮)에 나아가 별다례(別茶禮)를 행하였다.

 

4월 6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찬시(贊侍) 이은우(李恩雨)를 보내어 숙명여자고등학교(淑明女子高等學校)에 공책(空冊) 200권(卷)과 연필(鉛筆) 24타(打)를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였기 때문이다.

 

4월 7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 고희경(高羲敬)을 소견(召見)하였다. 그가 왕세자부 사무관(王世子附事務官)으로서 토쿄〔東京〕에서 돌아왔으므로 왕세자의 근간의 생활과 학습에 관한 일들을 하문(下問)하였다.

 

4월 10일 양력

올해 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 특별회계의 세출 경상(歲出經常) 부분에서 이왕직(李王職) 세비(歲費) 150만 원(圓)의 지불 명령을 총독부 회계과장(會計課長) 이리에 카이헤〔入江海平〕에게 위임한다는 뜻의 총독부의 통첩(通牒)를 받았다.

 

4월 12일 양력

선정전(宣政殿)에서 정무총감(政務總監)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군사령관(軍司令官) 안도 사다미〔安東貞美〕, 제2사단장(第二師團長) 닛타하라 시게유키〔仁田原重行〕, 제8사단장(第八師團長) 고이즈미 마사야스〔小泉正保〕, 참모장(參謀長) 시바 가쓰사부로〔柴勝三郞〕, 경무총장(警務總長) 아카시 겐지로〔明石元二郞〕, 중추원 서기관장(中樞院書記官長)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 및 동행한 무관을 접견하고 이어 비원(祕苑) 식물원(植物苑) 본관에서 오찬(午餐)을 하사하였다. 두 사단장 및 동행한 무관들은 이어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알현하였다.

 

황태자 전하(皇太子殿下)가 동경(東京) 별저(別邸)에서 왕세자(王世子)를 방문(訪問)하였다. 왕세자가 전보로 품달(稟達)한 것이 있었다.

 

4월 16일 양력

꽃관람회가 개최되어 비원(祕苑)에 왕림하였다. 왕비도 함께 갔다. 종척(宗戚), 귀족(貴族), 이왕직 고등관(李王職高等官) 【칙임(勅任)】  이상이 배참(陪參)하였다. 이어 연경당(演慶堂)에서 다과회를 가졌다. 취규정(聚奎亭), 옥류천(玉流泉), 육각정(六角亭)에 모의점(模擬店)을 설치하고 이왕직 고등관 【주임(奏任)】  이하 그 가족 고용원 등에게 음식을 베풀었다.

 

4월 17일 양력

찬시(贊侍) 이성묵(李聖默)을 총독부 의원(總督府醫院)에 보내어 훈(勳) 1등 이준용(李埈鎔)의 병치료 상황을 위문하라고 명하였다.

 

4월 18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사무관(事務官) 서상선(徐相璿)을 총독부 의원(總督府醫院)에 보내어 훈(勳) 1등 이준용(李埈鎔)의 병치료 상황을 위문하라고 명하였다.

 

4월 19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덕안궁(德安宮)에 나아가 별다례(別茶禮)를 행하였다.

 

4월 21일 양력

인정전(仁政殿)에서 내무부 장관(內務府長官) 우사미 가쓰오〔宇佐美勝夫〕, 지방 국장(地方局長) 오하라 신조〔小原新三〕, 충청북도 장관(忠淸北道長官) 스즈키 다카시〔鈴木隆〕, 충청남도 장관(忠淸南道長官) 박중양(朴重陽), 전라북도 장관(全羅北道長官) 이두황(李斗璜), 전라남도 장관(全羅南道長官) 구도 에이이치〔工藤英一〕, 경상북도 장관(慶尙北道長官) 이진호(李軫鎬), 경상남도 장관(慶尙南道長官) 가가와 테루〔香川輝〕, 황해도 장관(黃海道長官) 조희문(趙羲聞), 강원도 장관(江原道長官) 이규완(李圭完), 평안남도 장관(平安南道長官) 마쓰나가 다케요시〔松永武吉〕, 함경남도 장관(咸鏡南道長官) 신응희(申應熙), 함경북도 장관(咸鏡北道長官) 다케이 도모사다〔武井友貞〕를 소견(召見)하고 이어 오찬(午餐)을 하사하였다.

 

4월 22일 양력

왕세자(王世子)가 육군 유년학교(陸軍幼年學校) 수학여행으로 오늘 토쿄〔東京〕를 떠나 탑택(塔澤), 노탕(蘆湯), 삼도(三島), 수선사(修善寺)를 지나 소진(沼津)에 머물러 숙박하고 27일 동경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전보로 품달(稟達)해 왔다.

 

4월 23일 양력

숙명 고등 여학교(淑明高等女學校)에서 조화(造花) 1분(盆)을 덕수궁(德壽宮)에 진헌(進獻)하였다.

 

4월 25일 양력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 유찬(劉燦), 속(屬) 미야자키 다다오키〔宮崎忠與〕·신현주(申鉉周)·김명규(金命圭)·하재운(河在運)에게 경선궁(慶善宮) 유산청산위원(遺産淸算委員)의 사무를 분장하라고 명하였다.

 

4월 27일 양력

3일간 감선(減膳)하고 복장을 바꾸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효창원(孝昌園)에 화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왕세자(王世子)가 수학여행을 잘 마치고 오늘 무사히 별저에 돌아왔는데, 황후 폐하(皇后陛下)가 어사(御使)를 보내어 토산(土産) 어효(御肴) 1대(臺)와 정강(靜岡) 도문대(塗文臺) 벼루 각 1조(組)를 특별히 하사하자 지수(祗受)하였다는 뜻을 전보로 품달(稟達)하였다.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왕세자에게 친히 전보로 이르기를,
"수학여행을 잘 마치고 별저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기쁘다. 여러 날을 수고하느라 과연 피로가 쌓여 건강에 손상됨은 없는지 멀리서 근심이 그치지 않는다. 더욱 몸을 아끼어 보존하는 것이 황후 폐하(皇后陛下)가 물품을 각별히 하사한 은혜를 잊지 않는 길이며 이는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4월 28일 양력

천황 폐하(天皇陛下)가 식부관(式部官) 야마우치〔山內〕를 토쿄〔東京〕 별저(別邸) 왕세자(王世子)에게 보내어 과물(菓物) 2롱(籠)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이어 칙유(勅諭)하기를,
"좋지 않은 날씨에 수학여행을 별 탈 없이 잘 마쳤으니 기쁘기 그지없고, 오히려 더욱 학업에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왕세자가 전보로 품달(稟達)하였기 때문이다.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총독부(總督府)로 보내어 천황 폐하(天皇陛下)가 특별히 왕세자(王世子)를 위해 염려해 준 두터운 은혜에 한없이 감사하다는 뜻을 아뢰어 주도록 부탁하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