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철종실록4권 철종3년 1852년 8월

싸라리리 2025. 4. 2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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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기묘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경모궁(景慕宮)의 추향(秋享)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였다.

 

8월 3일 신사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명하여 어진(御眞)을 대내(大內)로부터 주합루(宙合樓)에 봉안(奉安)하게 하였다.

 

8월 5일 계미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8월 6일 갑신

태백성이 나타났다.

 

8월 7일 을유

태백성이 나타났다.

 

8월 8일 병술

태백성이 나타났다.

 

8월 9일 정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사직(社稷)의 추향(秋享)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였다.

 

진전(眞殿)에 나아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8월 10일 무자

태백성이 나타났다.

 

8월 11일 기축

태백성이 나타났다.

 

이약우(李若愚)·조두순(趙斗淳)·서기순(徐箕淳)·조학년(趙鶴年)·김학성(金學性)·이경재(李景在)·김경선(金景善)·이돈영(李敦榮)·홍종응(洪鍾應)·서유훈(徐有薰)을 일강관(日講官)으로 차하(差下)하였다.

 

8월 12일 경인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8월 13일 신묘

명하여 이응식(李應植) 등을 양이(量移)하게 하였다.

 

정원(政院)에서 의계(議啓)하기를,
"바라건대 성명(成命)을 정침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후원(喉院)은 삼사(三司)와 다르니, 즉시 반포(頒布)하도록 하라."
하였다.

 

옥당(玉堂)에서 연차(聯箚)                        【응교                           조재응(趙在應), 부응교                           윤자덕(尹滋悳), 부교리                           박문현(朴文鉉), 부수찬                           이승보(李承輔)·박규수(朴珪壽)이다.】                     하여 성명(成命)을 도로 정침하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성명(成命)이 있었으니,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양사(兩司)에서 연차(聯箚)                        【대사헌                           이규팽(李圭祊), 대사간                           홍익섭(洪翼燮), 집의                           이종우(李鍾愚)이다.】                     하여 성명(成命)을 거두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지금 이렇게 특별히 사유(赦宥)하는 일은 짐작하여 헤아린 바가 있으니, 경 등이 이와 같이 번거롭게 하는 것은 실로 온당치 못하다."
하였다.

 

8월 14일 임진

시임(時任)·원임(原任) 대신이 연차(聯箚)하여 성명을 정침하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경 등은 이미 옛것을 생각하여 새로워지기를 생각하는 뜻을 알고 있는데도 오히려 이를 거듭 어렵게 여기니, 실로 노성(老成)한 말이 못된다. 양해하도록 하라."
하였다.

 

8월 15일 계사

진전(眞殿)에 나아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8월 16일 갑오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8월 17일 을미

태백성이 나타났다.

 

8월 18일 병신

태백성이 나타났다.

 

8월 20일 무술

태백성이 나타났다.

 

명릉(明陵)에 나아가 친히 제사하고, 이어서 익릉(翼陵)·홍릉(弘陵)에 나아가 전알(展謁)하고,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의 묘소(墓所)와 은언군(恩彦君)의 묘소에 전배(展拜)하였다.

 

8월 21일 기해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8월 22일 경자

용성 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의 묘소(墓所)에 전배(展拜)하고, 이어서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가 전열무(殿閱武)를 행하였다.

 

이시우(李時愚)를 경상도 안핵사(慶尙道按覈使)로 차하(差下)하였다.

 

8월 23일 신축

태백성(太伯星)이 나타났다.

 

조헌영(趙獻永)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이기연(李紀淵)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8월 25일 계묘

약방(藥房)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入診)하였다.

 

8월 27일 을사

민치성(閔致成)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박종휴(朴宗休)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삼사(三司)에 정계(停啓)하도록 명하였다.

 

8월 29일 정미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희정당(熙政堂)에서 차대(次對)하였다. 좌의정                     이헌구(李憲球)가 아뢰기를,
"외읍(外邑)의 도결(都結)046)                                             의 폐단을 엄중하게 신칙하여 금단(禁斷)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개성 유수(開城留守)                     김시연(金始淵)이 상소(上疏)하여, 여왕 능관(麗王陵官)을 천전(遷轉)시키기를 청하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라고 비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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