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철종실록4권 철종3년 1852년 9월

싸라리리 2025. 4. 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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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무신

하교하기를,
"추판(秋判)047)                                             의 일은 내가 매우 의혹스럽게 여긴다. 지난 일은 별달리 추론(追論)할 단서가 없는데, 관직을 제수하면 문득 인피(引避)하니, 그 마음의 소재를 알 수 없다. 다시 지나치게 인피하지 말고 속히 들어와 사례하라는 뜻을 다시 신칙(申飭)하도록 하라."
하였다.

 

9월 2일 기유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안핵사(按覈使)                     이시우(李時愚)를 소견(召見)하였는데,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9월 3일 경술

태백성이 나타났다.

 

삼사(三司)에서 합계(合啓)했던 권돈인(權敦仁)의 일을 정계(停啓)하고, 양사(兩司)에서 합계했던 김정희(金正喜)의 일을 정계하였다.

 

9월 4일 신해

일강(日講)하였다.

 

오취선(吳取善)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유광로(柳光魯)를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로 삼았다.

 

9월 5일 임자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희정당(熙政堂)에서 약원(藥院)의 입진(入診)과 일강(日講)을 행하였다. 북평사(北評事)                     임응준(任應準)을 소견(召見)하였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소대(召對)하였다.

 

9월 6일 계축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일강(日講)하였다.

 

소대(召對)하였다.

 

명하여 고(故) 유신(儒臣) 이현일(李玄逸)의 직첩(職牒)을 우선 돌려주라고 하였다.

 

9월 7일 갑인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일강(日講)하였다.

 

소대(召對)하였다.

 

9월 8일 을묘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9일 병진

일강(日講)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10일 정사

태백성이 나타났다.

 

일강하였다.

 

9월 11일 무오

태백성이 나타났다.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12일 기미

태백성이 나타났다.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13일 경신

태백성이 나타났다.

 

진전(眞殿)에 나아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14일 신유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15일 임술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16일 계해

태백성이 나타났다.

 

이문원(摛文院)에 나아가 함흥(咸興)·영흥(永興) 두 본궁(本宮)의 의대(衣襨)와 향촉(香燭)을 친히 전하였다.

 

일강하였다.

 

소대(召對)하였다.

 

성균관(成均館)에서 아뢰기를,
"유생(儒生)들의 소회(所懷)는 이현일(李玄逸)의 직첩(職牒)을 돌려주라는 명(命)을 정침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 일은 이미 성명(成命)이 있었으며, 두 성조(聖朝)의 처분을 준수하는 것도 또한 짐작하여 헤아린 바가 없지 않다. 이제 이 사론(士論)은 실로 온당치 못하니, 즉시 들어가도록 권하라."
하였다.

 

9월 17일 갑자

일강(日講)하였다.

 

소대(召對)하였다.

 

9월 18일 을축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19일 병인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각릉(各陵)의 수목(樹木) 도벌(盜伐)을 살피지 못한 능관(陵官)을 나처(拿處)하라고 명하였다.

 

9월 20일 정묘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21일 무진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22일 기사

진전(眞殿)에 나아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23일 경오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24일 신미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종묘(宗廟) 동향(冬享)의 서계(誓戒)를 행하였다.

 

일강하였다.

 

9월 25일 임신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송지양(宋持養)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9월 26일 계유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27일 갑술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9월 28일 을해

일강하였다.

 

소대하였다.

 

경상도 안핵사(慶尙道按覈使)                     이시우(李時愚)가 장계(狀啓)하니, 하교하기를,
"이 계본(啓本)을 보니 더욱 다른 근저(根柢)가 없음을 알겠다. 그리고 정우룡(鄭禹龍)이 거괴(渠魁)가 됨은 그가 이미 자복(自服)하였고, 이윤경(李允慶)·신종익(辛宗益)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섭(參涉)하였으니, 털끝만큼도 용서할 만한 자취가 없다. 안핵사(按覈使)는 도신(道臣)을 안동(眼同)048)                                             하여 군민(軍民)을 크게 모은 다음 모두 효수(梟首)하여 뭇사람을 경계하고, 그 나머지 여러 죄수는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경중(輕重)을 구분해서 처단하여 아뢰게 하라. 고변인(告變人)에게는 마땅히 격상(激賞)하는 법이 있어야 하니, 도신(道臣)은 그가 원하는 바를 물어서 후하게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9월 29일 병자

일강(日講)하였다.

 

이문원(摛文院)에 나아가 재숙(齋宿)하였다.

 

9월 30일 정축

이문원(摛文院)에서 일강(日講)하였다. 영부사(領府事)                     정원용(鄭元容)이 말하기를,
"신(臣)이 참강(參講)하기 위하여 아침에 옥당(玉堂)에 들어가니, 유신(儒臣)과 각신(閣臣)이 서로 하례하면서 말하기를, ‘어제 밤이 깊을 때까지 강(講)하시는 옥음(玉音)이 밖에까지 들렸으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시위(侍衛)하는 군리(軍吏)까지도 모두 기뻐하여 서로 고하기를, 「장차 지치(至治)의 은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요즈음 과강(課講)이 간단(間斷)하는 때가 없으시니, 진실로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과연 하루도 혹 정강(停講)하려고 하지 않는데, 명일에는 일찍 향소(享所)에 나아가야 하니, 개강(開講)하기가 어렵겠다."
하였다. 정원용(鄭元容)이 아뢰기를,
"엎드려 듣건대 장차 소대(召對)를 행하는데 시임(時任)·원임(原任) 각신(閣臣)을 입참(入參)시키라는 하교가 있었다고 하니, 진실로 성대한 거조입니다. 강규(講規)를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각신(閣臣)으로 하여금 각각 문의(文義)를 진술하게 하려고 한다."
하고, 어제(御製) 4구(四句)를 내놓고 하교하기를,
"이곳에서 지은 것인데, 과연 어떠한가?"
하였는데, 정원용이 아뢰기를,
"전중(典重)함이 경서(經書)의 모훈(謨訓)과 같습니다. 덕(德)을 닦아 나라를 다스리고 천수(天壽)를 누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복록(福祿)이 무강(無彊)한 기상이 모두 4구 안에 있으니 진실로 축하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을 새기어 이문원(摛文院)에 걸려고 하니, 경은 모름지기 기(記)를 지어 올리도록 하라. 이 글귀 밑에 써서 걸려고 한다."
하였다.

 

이문원(摛文院)에서 소대(召對)하고, 시임(時任)·원임(原任) 각신(閣臣)을 소견(召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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