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기유일식(日食)이 있었다. 빈전(殯殿)에 나아가 삭제(朔祭)를 지냈다. 민영위(閔泳緯)를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조경하(趙敬夏)를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심이택(沈履澤)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민영익(閔泳翊)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으로, 이희준(李熙準)을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삼았다.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수정(修正)할 때 감독한 당상(堂上官)과 교정 당상(校正堂上官)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주고, 감인 당상관(監印堂上官) 이연응(李沇應)과 어첩 서사관(御牒書寫官) 이인명(李寅命)과 종친부 정(宗親府正) 김만식(金晩植)에게는 가자(加資)하였다. 전교하기를,"전례가 많이 있으니 도승지(都承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