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662

고종실록15권, 고종15년 1878년 7월

7월 1일 기유일식(日食)이 있었다. 빈전(殯殿)에 나아가 삭제(朔祭)를 지냈다. 민영위(閔泳緯)를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조경하(趙敬夏)를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심이택(沈履澤)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민영익(閔泳翊)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으로, 이희준(李熙準)을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삼았다.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수정(修正)할 때 감독한 당상(堂上官)과 교정 당상(校正堂上官)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주고, 감인 당상관(監印堂上官) 이연응(李沇應)과 어첩 서사관(御牒書寫官)                     이인명(李寅命)과 종친부 정(宗親府正) 김만식(金晩植)에게는 가자(加資)하였다. 전교하기를,"전례가 많이 있으니 도승지(都承旨)            ..

고종실록15권, 고종15년 1878년 6월

6월 1일 기묘빈전(殯殿)에 나아가 삭전(朔奠)과 조전(朝奠) 조상식(朝上食)을 행하였다. 6월 5일 계미대군(大君)이 졸서(卒逝)하였다. 전교하기를,"상(殤)이 되지 않았으니 예조(禮曹)에서 초기(草記)를 거행하는 등의 절차는 행하지 말라."하였다. 6월 6일 갑신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방금 일본 외무성(外務省)의 서계(書契)를 보니, ‘우리나라 주재 프랑스 전권공사(全權公使)의 말을 들으니, 근래에 프랑스 선교승(宣敎僧) 4, 5명이 귀국에 갔다가 체포되어 옥에 갇혔는데 참혹한 형벌을 가한다면 프랑스에서 응당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생각건대, 귀국에서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다시 지난날의 전철을 밟는다면 프랑스의 격노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귀국과 이웃하여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