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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2권, 순종1년 1908년 6월

6월 1일 양력【음력 무신년(1908) 5월 3일】 내각(內閣)에서 탁지부(度支部)에서 청의(請議)한 것으로 인하여 폭도 소진비(暴徒掃鎭費) 2만 5,965원(圓), 특설 순사대비(特設巡査隊費) 1만 4,039원, 임시 기밀비(臨時機密費) 4,500원, 면화 재배비(棉花栽培費) 6,334원, 공로 상여금(功勞賞與金) 5,500원을 예비금(豫備金) 가운데서 지출할 사안에 대하여 상의를 거쳐 상주(上奏)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재가(裁可)한다." 하였다.【원본】 3책 2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14면【분류】재정-국용(國用)내각(內閣)에서 탁지부(度支部)에서 청의(請議)한 것으로 인하여 폭도 소진비(暴徒掃鎭費) 2만 5,965원(圓), 특설 순사대비(特設巡査隊費) 1만 4,039원, 임시 ..

순종실록2권, 순종1년 1908년 5월

5월 2일 양력【음력 무신년(戊申年) 4월 초2일】                     이다.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                     송병준(宋秉畯)을 소견(召見)하였다. 일본에서 돌아와서 알현하였기 때문이었다. 5월 4일 양력종묘(宗廟)에 나아가 전알(展謁)하고 희생(犧牲)을 살피고 제기(祭器)를 살핀 뒤 재실(齋室)에 돌아와서 원임 의정 대신(原任議政大臣)과 내각(內閣)과 궁내부(宮內府)의 대신(大臣) 이하          【원임 의정 대신            민영규(閔泳奎), 총리대신(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이윤용(李允用), 내부 대신(內部大臣)            임선준(任善準), 탁지부 대신(度支部大臣)..

순종실록2권, 순종1년 1908년 4월

4월 1일 양력【음력 무신년(戊申年) 3월 초1일】  태황제(太皇帝)의 족부(足部)에 편치 않은 증상이 있어서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고 문안을 하였다. 황후(皇后)도 따라 나아갔다.【원본】 3책 2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11면【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태황제(太皇帝)의 족부(足部)에 편치 않은 증상이 있어서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고 문안을 하였다. 황후(皇后)도 따라 나아갔다. 칙령(勅令) 제18호, 〈관측소 관제(觀測所官制)〉, 칙령 제19호, 〈함경북도                     부령군                     청진항 경계 제정에 관한 안건〔咸鏡北道富寧郡淸津港經界制定件〕〉을 모..

순종실록2권, 순종1년 1908년 3월

3월 2일 양력이달 1일은                         【음력 무신년(戊申年) 정월 29일】                     이다.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이 아뢰기를,"제실 소유 및 국유 재산 조사국 위원장(國有財産調査局委員長) 서리                     유성준(兪星濬)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13도(十三道)에 국유로 되어 있는 이전의 진(鎭)과 보(堡), 산성(山城), 봉수대(烽燧臺), 찰방(察訪), 목사(牧使)가 있는 고을 등을 폐지한 옛 터와 현재 남아 있는 집들, 그리고 거기에 속해 있던 전답과 원림(園林)을 조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3월 5일 양력칙령(勅令) 제11호, 〈염업 시험장 관제..

순종실록2권, 순종1년 1908년 2월

2월 1일 양력【음력 정미년(丁未年) 12월 29일】                      일본국인 종2품 훈(勳) 3등 오미와 쵸베〔大三輪長兵衛〕를 특별히 훈 2등에 서훈(敍勳)하고 팔괘장(八卦章)을 하사하였다.【원본】 3책 2권 4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08면【분류】외교-일본(日本) / 인사-관리(管理)일본국인 종2품 훈(勳) 3등 오미와 쵸베〔大三輪長兵衛〕를 특별히 훈 2등에 서훈(敍勳)하고 팔괘장(八卦章)을 하사하였다. 통감(統監) 대리 부통감(副統監) 자작(子爵)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가 일본 육군 중좌(陸軍中佐) 아다치 가메하루〔足立龜治〕 등을 대동(帶同)하고 폐하(陛下)를 알현하였다. 2월 4일 양력종1품 장석룡(張錫龍), 정2품 이승우(李勝宇)를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에 임용하였으..

순종실록2권, 순종1년 1908년 1월

1월 1일 양력【순종 문온 무녕 돈인 성경 효황제 실록(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實錄) 제2권】                          【음력 정미년(丁未年) 11월 28일】 종친과 문무 백관이 세수(歲首)에 진하(陳賀)하고 치사(致詞)를 올렸다. 모두 권정례(權停例)로써 인정전(仁政殿)에서 행례(行禮)하였다.【원본】 3책 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07면【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음력 정미년(丁未年) 11월 28일】 종친과 문무 백관이 세수(歲首)에 진하(陳賀)하고 치사(致詞)를 올렸다. 모두 권정례(權停例)로써 인정전(仁政殿)에서 행례(行禮)하였다.【원본】 3책 2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07면【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종친과 문무 백관이 세..

고종실록2권, 고종2년 1865년 12월

12월 1일 임진전교하기를,"효문전(孝文殿)의 대상(大祥)이 어느덧 가까워지니 서운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 이번 8일에는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완양 부대부인(完陽府大夫人), 용성 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의 사우(祠宇)에 1품의 종신(宗臣)을 보내어 작헌례(酌獻禮)를 섭행(攝行)하게 하라."하였다. 또 전교하기를,"이번 8일에 은언군(恩彦君) 내외의 사판(祠版)에도 승지(承旨)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라."하였다. 이용상(李容象)을 평안도 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로, 정기원(鄭岐源)을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로 삼았다. 의주부(義州府)의 소호(燒戶)와 화재로 죽은 사람에게 휼전(恤典)을 베풀었다. 12월 3일 갑오강원 감사(江原監司) 박승휘(朴承輝)가 장계(狀啓)를 올려, 월송..

한국사 공부 2025.01.07

고종실록2권, 고종2년 1865년 11월

11월 1일 임술효문전(孝文殿)에 나아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였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효문전(孝文殿)의 담제(禫祭)를 지낸 뒤 신주(神主)를 태묘(太廟)에 부묘(祔廟)할 때에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그 설치할 날짜도 미리 품정(稟定)해야 합니다. 삼가 《등록(謄錄)》을 살펴보니 모두 넉 달 앞서서 미리 설행했으나 정조(正祖) 무술년(1778)에만은 특별 전교에 따라 대상제(大祥祭) 뒤에 도감을 설치하였고, 순조(純祖) 임술년(1802)과 헌종(憲宗) 정유년(1837)에는 대신들에게 문의한 뒤 대상제 전에 도감을 설치했습니다. 대행왕(大行王) 신해년(1857)에는 또 특별 전교에 따라 대상제 뒤에 설치했으니, 대략 기일보다 50일 혹은 60일 먼저 설치한 것입니다.이번에는 해가 아주 짧은 때이고..

한국사 공부 2025.01.07

고종실록2권, 고종2년 1865년 10월

10월 1일 임진권강(勸講)하였다.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대왕대비가 전교하기를,"의정부(議政府)를 중건(重建)하는 공사가 지금 끝났다고 한다. 풍악을 금지하는 때라서 선온(宣醞)은 하지 못하지만 이 달 10일에 음식을 내릴 것이니,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과 여러 당상(堂上)및 낭청(郎廳) 이하는 의정부로 와서 모이라."하였다. 전교하기를,"의정부(議政府)에 음식을 내리는 날 김 봉조하(金奉朝賀)001)  도 함께 와서 모이라."하였다. 또 전교하기를,"의정부가 이번에 중건되어 국가의 체모가 더욱 존엄해졌으니 참으로 천만 다행한 일이다. 음식을 내리는 날 세 재상에게는 옥배(玉杯)와 은병(銀甁) 각각 1건(件)씩을, 좌찬성·우찬성·좌참찬·우참찬·사인(舍人)·검상(檢詳)에게는 옥배 ..

한국사 공부 2025.01.07

고종실록2권, 고종2년 1865년 9월

9월 1일 계해일식(日食)이 있었다. 황해도(黃海道)에서 각 관청에 바쳐야 할 포(布)를 순전(純錢)으로 바치도록 특별히 허락하고 병조(兵曹)와 각 군영(軍營)에는 5분의 1만 대납(代納)하도록 하라고 명하였으니, 도신(道臣)이 장계(狀啓)로 청한 일로 인하여 묘당(廟堂)에서 복계(覆啓)하였기 때문이다. 권강(勸講)이 끝나고 좌의정(左議政) 김병학(金炳學)이 아뢰기를,"《대전통편(大典通編)》의 할부(割付) 작업이 지금 거의 끝나가는데 조정 신하들이 상피(相避)하는 규정에 대하여 아뢸 것이 있습니다. 사촌 형제간에 상피하는 규정이 이미 있으니 종조(從祖)와 종손(從孫) 간에도 응당 다름이 없어야 합니다. 이번에 〖대전통편을〗 보간(補刊)하는 기회에 모두 법으로 정하도록 하소서. 처족(妻族)에 대해 상피하는..

한국사 공부 2025.01.07

고종실록2권, 고종2년 1865년 8월

8월 1일 계사이건필(李建弼)을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삼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의주 부윤(義州府尹) 이건필(李建弼)을 삼전(三銓)으로 옮겨 제수하였습니다. 해부(該府)는 변경(邊境)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근자에 폐국(弊局)이 된 것을 이 수령(守令)이 새로 부임한 이후에 심력을 다하여 대양(對揚)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금 갑자기 영송(迎送)하는 어지러움을 끼쳐서는 안 되니 우선 잉임(仍任)시키소서. 여러 차례의 성적(聲績)에 대하여 이미 경상도(慶尙道) 전 도신(前道臣)이 연석(筵席)에서 아뢰었습니다. 특별히 한 자급(資級)을 가자(加資)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해주(海州)·풍천(豐川)·은률(殷栗)·옹진(瓮津)·강령(康翎) 등 고을의 퇴호(頹戶)·표호(漂戶)와..

한국사 공부 2025.01.07

고종실록2권, 고종2년 1865년 6월

6월 1일 갑오대왕대비가 전교하기를,"곡식은 백성을 살리는 근본인데 삼해주(三亥酒)는 이 곡식을 가장 많이 허비하는 것이니, 전부터 금령(禁令)을 둔 것이 과연 어떠하였는가? 그런데 근래 듣건대 좌우변 포도청이 금하여 막을 방도는 생각지 않고 도리어 수속(收贖)하고서 판매를 허락하고 있다 한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스스로 백성을 속여 이익을 취한 죄과로 귀결되어 법을 적용할 여지가 없으니 어찌 너무도 개탄스럽지 않겠는가? 두 포장(捕將)을 엄하게 추고(推考)하라.금년의 경우, 이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필시 전에 빚어놓은 것도 많이 가지고 있고 새로 빚은 것도 아직 다 팔지 못했을 것인데 이러한 때에 모두 엄히 막는다면 또한 낭패하여 원통해 하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한국사 공부 2025.01.07

고종실록 2권 고종2년 1865년 윤5월

윤5월 1일 갑자권강(勸講)하였다.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윤5월 2일 을축권강(勸講)하였다.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김상현(金尙鉉)을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삼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방금 강화 유수(江華留守) 이인기(李寅蘷)의 보고를 보건대, ‘각 진보(鎭堡)의 돈대(墩臺)ㆍ군기고(軍器庫)와 진장(鎭將)의 공관 대부분이 퇴락하였고, 성첩(城堞)ㆍ행궁(行宮)ㆍ관사(官舍)들도 수선해야 할 곳이 많습니다. 여기에 들어갈 물력(物力)의 조달과 관련하여, 호고전(戶庫錢) 중에서 3,000냥을 추이(推移)하여 공사를 돕도록 한 뒤에, 분표전(分俵錢) 1만 냥의 기한을 전례에 따라 다시 2년에 한하여 연장해 준다면, 그 이조(利條) 3,000냥으로 즉시 채워 갚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습니..

카테고리 없음 2025.01.07

고종실록2권, 고종2년 1865년 5월

5월 1일 을미효문전(孝文殿)에 나아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였다. 권강(勸講)하였다.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하천을 파낼 때의 도제조(都提調)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제조(提調) 신관호(申觀浩), 겸제조(兼提調) 임태영(任泰瑛)·허계(許棨)·이경하(李景夏), 도청(都廳) 이관연(李觀淵)·이민상(李敏庠)·서상익(徐相益)·김선항(金善恒)·양주화(梁柱華)·박정희(朴鼎憙)·현승운(玄昇運)에게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송근수(宋近洙)를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신관호(申觀浩)를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이종순(李鍾淳)을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삼았다. 5월 2일 병신권강(勸講)하였다.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5월 3일 정유권강(勸講)하였다.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전..

한국사 공부 2025.01.07

고종실록 2권 고종2년 1865년 4월

4월 1일 을축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전교하기를,"모레는 책례(冊禮)를 하는 날이라 음식을 내리겠으니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승지(承旨)·사관(史官), 각신(閣臣)과 옥당(玉堂)은 오시(午時) 전에 모이도록 하라."하였다.   4월 1일 을축  전 경상 감사(前慶尙監司) 서헌순(徐憲淳)을 소견(召見)하였다.   4월 1일 을축  예조(禮曹)에서, ‘만동묘(萬東廟)의 방위(榜位)를 봉발(奉發)할 길일을 오는 4월 22일로 받았습니다.’라고 아뢰었다.   4월 2일 병인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전교하기를,"경복궁(景福宮)은 우리 왕조에서 수도를 세울 때 맨처음으로 지은 정궁(正宮)이다. 규모가 바르고 크며 위치가 정제하고 엄숙한 것을 통하여 성인(聖人)의 심법(心法)을 우러러 볼 수..

한국사 공부 2025.01.07